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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아마네(西周)에 있어서 정치경제

모리노·에이이치(森野栄一)

니시·아마네(西周 1829-97)는 일본이 근대국가로 탈피하는 막말명치기(幕末明治期)를 지


낸 계몽 사상가이다. 유학자로서 한학에 정통한 그의 본격적인 서양사상과의만남에는, 근
대화에 따른 사상에 있어서 드라마틱함이 응축되어 있다. 본고는 그가서구의 정치경
제학을 어떻게 수용하려고 했는가에 초점을 두고, 근세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사고와 연휴
하면서 근대를 전망 하려고 한 그의 사고의 한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근세에 있어서 경제의 의미를 사토·노부히로(佐藤信淵 1769-1850)에 의하면,“국토를


정한후 그 인민을 구제한다”라고 한다. 영역내의 인민에게 “홍수나 가뭄으로 인한 어려
움이 없이, 민중을 평온하게 살게한다는 것을 ‘제’(濟)”라 하고, “각자에게 산업을 장려
하고 식물·의류등이 여유있도록 하는것을 ‘교’(敎)”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제교(濟敎)가“한 나라의 임금(國君)의 긴요한 임무”이고,군주는“경제에 힘쓰
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며, 인민의 임무는 각각 그 가업(家業)에 힘쓰고 의
식(衣食)이 충족 되도록 해야 한다”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는 오로지 국가를 경륜하는
한 나라의 임금이 행해야 할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경제’가 ‘위
정자가 행하는 정치’의 범위에 속한다 라는 것이다.

옛부터 정치에있어서 중요한 요체를 삼사육부(三事六府)라 했다.미우라·바이엔(三浦


梅園 1723-1789)도 “水·火·木·金·土·穀,을 육부라 이르고,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
生), 이것을 삼사라 일러, 후세의 치세는 천술만법(千術萬法)이 있다고 하나 이 육부삼
사로 부터 나온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생존해감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자원을 육부라 하고, 이것을 잘다스리는것이 정치
였다. 이를 위해서는 덕을 바르게 하고[正德], 쓰임을 이롭게 하고[利用], 삶을 두텁게 하
는[厚生], 삼사를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각자 그 직능을 가지고 얻은 성과를 남에게 배
풀면, 육부는 널리 그 혜택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통치의 기본
으로 생각해 왔다.
이러한 위정자가 지녀야 할 규범은 니시아마네도 아는 바일 것이다. 바로 그가 서구의
정치경제학과 만남을 갖게 된다. 그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에 대해서, “그 글자
의 뜻은 ‘家法’이고, 사람들의 생활의 방도를 얻어 부유함에 이르는 생계[活計]를 가르
킨다”라고 한다. “Economy 만을 말할때는 ‘一家’를 가르키고, Political Economy 라고하
면‘국가의 制産’에 관련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 하고 있다.

오늘날 정착된 ‘경제학’이라는 역어에 해당하는 「經世濟民」 이란 말은“생계를 논할


때는 적절치 않다”라고 지적하면서 맹자의‘제민지산(制民之産)’(『맹자』「양혜왕」편;인
민에게 생업을 설정해주다)이라는 말에서 ‘制産學’이라고 번역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니시아마네는 ‘경세제민’에서 경제라고 번역하는데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경
제의 본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활계(活計)란, 사람들이 ‘생업을 영위하는것’을 가르킨
다. 경세제민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와 관련한 정의이
다”라고 니시아마네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 줌에는 반드시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 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경제활동의 주체’를 의미한다. 한 나라의
백성의 생업에는 다양한 경제주체가 관여하고, 생출해 내고 있다. 사람들이 그 경제활동
을 통해서 부유함에 이르는 것을 파악하는 學은 경세제민의 학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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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것이다.
그는“이 學의 오래된 정의는 The science of government and the organization of civil
society. 오늘날의 정의는 The science of the wealth of nation and treatise on the mode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국민부유의 學으로서 그 부유를 분배하고 인민
각자 그것을 소유 및 소비하는 法이다. 예전의 오래된 정의로써 制産을 이해하는 것은
금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에 있어서 정치경제학은 예전의 시민사회의 통치 내지 조직의 학문이었지만, 지금
은 모든국민의 富의 과학, 즉 부의 생산·분배·소비의 양식에 관한 과학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니시아마네는 ‘경세제민의 학’과 유럽의‘정치경제학’을 구별하려고 한다.
그러나 民의 부유함을 바라고, 증진 시키고자 하는 생각은 경세제민의 사고 속에도 존
재한다. 어디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는 제산학의 대략을 논함에 있어 먼저 ‘경제가 성립하는 사회’에 대해서 논하고 있


다. 그는 ‘Society’에 ‘서로 의지하면서 생업을 부양하는길’[相生養之道]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이것은 ‘分業에 근거해 서로가 물건을 교환하고, 공용함으로서 서로에게 도움
이되는 방법’으로 보고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는 것은 각자 그 독자의 재능[才]을 가
지고 참가하고, 서로가 의존하며 생업을 기르는것에 있고, 분업(業)과 노동(勞)을 통해서
참가하는것이 아니라면 天道로 부터 도적질하는 것이된다”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相
生養之道’가 성립될때 ‘국가가 바로 선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업을 사회적기능의 분화와 상호의존으로 보는 지적을 볼때, 정덕, 이
용, 후생의 三事와의 공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들어 “德이란 스스로 얻은
성과를 남에게 배푸는 것이고, 몸에 전혀 기술도 능력도없이, 거짓된 꾸밈과 아첨하는
말을 가지고 세상에 서는 사람은 ‘正德’이라고 볼 수 없다”라는 생각은 맹자의 시대 부
터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 몸에 갖추어져 있는 덕을 바르게 하고 신장해야 함은 儒
者가 강조하는 점 이었다. 니시아마네는 正德을“서구사회에 관한 학문 중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즉, 三事六府의 논의를 거부하는듯 하면서도 공유하고 있는것 처
럼 보인다. 차이라고 하면 ‘사회의 先在性’에 관한 지적이다. 이러한 분업과 노동을 통
한 상호의존은 인민이 아직 나라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있었고, 국가가 이것들을 통치에
의해 조정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것 같다.
 
니시아마네가 바라는 경제학은 자유주의적인 그것이다. 制産學의 대략은 이 society
의 논의에 이어서 가격메카니즘에 의한 자원배분이 말해지고 있다. 그리하여“古來
Political Economy 에 있어서 그 도리에 적합한 가르침이 있다”라고 하며, 독점길드, 보호
관세, 각종규제등을 들고 있다. 또한 제산학의 大本으로서 노동가치설, 자유방임, 실체경
제의 중시와 화폐 veil 이론, 각자의 사리추구가 공리를 극대화 한다는 생각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자유주의적인 고전경제학의 기본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경제를
이러한 점에서 파악하면 니시아마네는 근세의 사고와 근대의 사고와의 틈새에 낄수 밖
에 없을 것이다.
그가 ‘production’의 역어인‘産殖’의 ‘産’은 근세에 있어서 사람들의생존에 빠질
수 없는 물질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종다양하다. 근대는 이것들을 모두 ‘産’으
로서 사회적 또는 경제적인 가치를 가진것으로 본다. 근대사회는 모든것을 私有에 맡기
고, 가격에 의해 배분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産의 점유에 의해서 이것을 마음대로
처분하고 私益을 취득할수 있어야만 된다라고 하면, 三事六府에 의해 사람들의 분업과
노동을 조정하고자 하는 것과 가격메카니즘에 의한 그것과는 상호의존의 경제사회를
보는데에 있어서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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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아마네는 전자를 계승하면서도 근대와 마주 보고, 政治의學과는 달리經濟의學을 도
입하려고 했다 라고도 볼 수 있다. 근세의 실학자들에게 공통하는 ‘民富의 增進’의 사고
는 위정자가 무엇보다도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 이었다. 그는 그것을 근대적인
경제 시스템의 실현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막말유신의 내란의 와
중에 메이지(明治)를 맞이한 상황은 냉엄했다. 국가는 칸트를 연구한 그에게 일본육군의
제도확립의 일을 맡겼다. 당시, 强兵을 가지고 富國을 지향하려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
나 니시아마네에의하면 부국및 민부의 형성이 먼저이고 강병은 그 후이다.
그러나, 국정을 보면 민심이 私利에 빠지고 公利가 무시받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론
자유주의 경제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사욕에 빠져 방탕함과 세속의 악습
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니시아마네의 자세는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했
다. 强兵은 군사력 행사에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풍기를 유지하고, 천박함에 빠지
지 않게 하고, 富實을 축적해서 산란함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정략”이라고 한다. 인간이
사는 사회의 도덕관, ‘풍기[風尙]를 견고히 한다’ 라는 시점에서 이것을 보고 있는 것이
다. 이것은 그가 받드는 자유로운 경제에 있어서도 상호의존의 사회야말로 사리추구이
고, 도덕의 필요성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다. 강병책도“국력의 가난함과 부함은 단지 강
력한 전쟁에 있는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군비의 비용도 民力의 여유에서 취하지 않
을 수 없으므로, 먼저‘民富의 形成’이야말로 긴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도덕
관을 유지하고 거기에 자유주의경제의 실현에 의한 부국의 실현을 꾀하고자 하는 주장
이다. 그 근저에는 근세의, 민부의 형성이 근본이라고 보는 사상의 계승이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문교정책을 책정함에 있어서“부국의 근원을 열어 민생을 두텁
게 한다”는 ‘利用’의 과목으로서 경제학을 위치지움을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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