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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노·에이이치(森野栄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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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것이다.
그는“이 學의 오래된 정의는 The science of government and the organization of civil
society. 오늘날의 정의는 The science of the wealth of nation and treatise on the mode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국민부유의 學으로서 그 부유를 분배하고 인민
각자 그것을 소유 및 소비하는 法이다. 예전의 오래된 정의로써 制産을 이해하는 것은
금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에 있어서 정치경제학은 예전의 시민사회의 통치 내지 조직의 학문이었지만, 지금
은 모든국민의 富의 과학, 즉 부의 생산·분배·소비의 양식에 관한 과학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니시아마네는 ‘경세제민의 학’과 유럽의‘정치경제학’을 구별하려고 한다.
그러나 民의 부유함을 바라고, 증진 시키고자 하는 생각은 경세제민의 사고 속에도 존
재한다. 어디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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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아마네는 전자를 계승하면서도 근대와 마주 보고, 政治의學과는 달리經濟의學을 도
입하려고 했다 라고도 볼 수 있다. 근세의 실학자들에게 공통하는 ‘民富의 增進’의 사고
는 위정자가 무엇보다도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 이었다. 그는 그것을 근대적인
경제 시스템의 실현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막말유신의 내란의 와
중에 메이지(明治)를 맞이한 상황은 냉엄했다. 국가는 칸트를 연구한 그에게 일본육군의
제도확립의 일을 맡겼다. 당시, 强兵을 가지고 富國을 지향하려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
나 니시아마네에의하면 부국및 민부의 형성이 먼저이고 강병은 그 후이다.
그러나, 국정을 보면 민심이 私利에 빠지고 公利가 무시받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론
자유주의 경제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사욕에 빠져 방탕함과 세속의 악습
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니시아마네의 자세는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했
다. 强兵은 군사력 행사에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풍기를 유지하고, 천박함에 빠지
지 않게 하고, 富實을 축적해서 산란함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정략”이라고 한다. 인간이
사는 사회의 도덕관, ‘풍기[風尙]를 견고히 한다’ 라는 시점에서 이것을 보고 있는 것이
다. 이것은 그가 받드는 자유로운 경제에 있어서도 상호의존의 사회야말로 사리추구이
고, 도덕의 필요성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다. 강병책도“국력의 가난함과 부함은 단지 강
력한 전쟁에 있는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군비의 비용도 民力의 여유에서 취하지 않
을 수 없으므로, 먼저‘民富의 形成’이야말로 긴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도덕
관을 유지하고 거기에 자유주의경제의 실현에 의한 부국의 실현을 꾀하고자 하는 주장
이다. 그 근저에는 근세의, 민부의 형성이 근본이라고 보는 사상의 계승이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문교정책을 책정함에 있어서“부국의 근원을 열어 민생을 두텁
게 한다”는 ‘利用’의 과목으로서 경제학을 위치지움을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