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3 2) 성의연극회회상50년
(3 2) 성의연극회회상50년
PROGRAMS
제 41회 아니 이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1986년
250
PROGRAMS 1986년 ~ 1991년
251
PROGRAMS
제 41회 아니 이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1986년
252
PROGRAMS 1986년 ~ 1991년
253
PROGRAMS
제 41회 아니 이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1986년
254
PROGRAMS 1986년 ~ 1991년
255
PROGRAMS
제 41회 아니 이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1986년
256
PREFACE PROGRAMS
PROGRAMS 1986년 ~ 1991년
축|시
제 42회 작은 사랑의
제 42회멜로디 1987년
작은 사랑의 3월 20,
멜로디 1987년 3월 21일
20, 21일
257
PREFACE
PROGRAMS
축|시
제 43회 꽃피는 체리 1987년 9월 18, 19일
258
PROGRAMS 1986년 ~ 1991년
259
PROGRAMS
제 43회 꽃피는 체리 1987년 9월 18, 19일
260
PROGRAMS 1986년 ~ 1991년
261
PREFACE
PROGRAMS
축|시
제 43회 꽃피는 체리 1987년 9월 18, 19일
262
PROGRAMS 1986년 ~ 1991년
263
PROGRAMS
제 43회 꽃피는 체리 1987년 9월 18, 19일
264
PROGRAMS 1986년 ~ 1991년
265
PROGRAMS
제 43회 꽃피는 체리 1987년 9월 18, 19일
266
PROGRAMS 1986년 ~ 1991년
267
PROGRAMS
제 43회 꽃피는 체리 1987년 9월 18, 19일
268
PROGRAMSPROGRAMS 1986년 ~ 1991년
269
PROGRAMS
제44회
제 44회안티고네
안티고네 1988
1988 3월 3월
25, 26일 25, 26일
270
PROGRAMS 1986년 ~ 1991년
271
PROGRAMS
제 45회 상상병 환자 1988년 9월 1, 2, 3일
272
PROGRAMS 1986년 ~ 1991년
273
PROGRAMS
제 45회 상상병 환자 1988년 9월 1, 2, 3일
274
PROGRAMS 1986년 ~ 1991년
275
PROGRAMS
제 45회 상상병 환자 1988년 9월 1, 2, 3일
276
PROGRAMS 1986년 ~ 1991년
277
PROGRAMS
제46회
제 46회탑 1989년
탑 1989년
3월 17,3월
18일17, 18일
278
PROGRAMS 1986년 ~ 1991년
279
PROGRAMS
제 47회 정의의 사람들 1989년 9월 8, 9일
280
PROGRAMS 1986년 ~ 1991년
281
PROGRAMS
제 47회 정의의 사람들 1989년 9월 8, 9일
282
PROGRAMS 1986년 ~ 1991년
283
PROGRAMS
제 47회 정의의 사람들 1989년 9월 8, 9일
284
PROGRAMS 1986년 ~ 1991년
285
PROGRAMS
제 47회 정의의 사람들 1989년 9월 8, 9일
286
PROGRAMS 1986년 ~ 1991년
제 48회 제
만선48회1990년 3월3월
만선 1990년 16,16,17일
17일
287
PROGRAMS
제 50회 메피스토 1991년 9월 6, 7일
288
PROGRAMS 1986년 ~ 1991년
289
PROGRAMS
제 50회 메피스토 1991년 9월 6, 7일
290
PROGRAMS 1986년 ~ 1991년
291
PROGRAMS
제 50회 메피스토 1991년 9월 6, 7일
292
PROGRAMS 1986년 ~ 1991년
293
1982년부터 시작된 졸업정원제의 여파로 연극부에 지원하는 인원이 급감하였다. 1986년 ‘처녀 비행’에서는 연극부원 모두가 스텝과
캐스트를 담당해야 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 지속되었다. 5공화국 말기인 80년대 후반, 민주화를 향한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했고, 그
영향으로 참여극, 목적극을 지향하느냐, 순수 연극을 고수하느냐의 내부 갈등은 위축된 연극부의 인적 자원을 더욱 고갈시키는 결과
를 가져왔다. 창립 30주년을 한 해 앞둔 1989년에는 가용 인원 10명이 채 안되었으나 정기공연 2회, 워크샵 2회 공연을 소화해내면
서 연극부의 저력을 보여주었고, 드디어 1990년, 학교 운동장에서 야유회와 운동회 형식으로 ‘창립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를 갖고,
‘재학생-졸업생 합동 공연’으로 ‘우리 읍내’를 마리아홀 무대에 올리는 감격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1년에는 정기공연이 가
을 대공연 1회로 축소되었고...
김양수 (의·34회)
* 1986년 가톨릭의대 의학과 입학
* 1986년 5월 26일 work shop 공연 "뜻대로 생각하세요" (루이기 필란델로 작 / 장기육 연출) 객원배우로
참여, ‘아가치 의원’ 역으로 무대 데뷔
* 1986년 가을 정기 대공연 성의 연극회 정식 입단 ‘아니, 이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브라이언 클라크 작/ 기국서 연출) 피터 커셔우 역/ 조명 보조
* 1987년 봄 공연 ‘작은 사랑의 멜로디’ (미겔라모스/삐달아사 작/ 정홍준 연출) 까를로스 역/ 조명
* 1987년 가을 정기 대공연 ‘꽃피는 체리’ (로버트 볼트 작/ 김병훈 연출) 톰 체리역/ 조명
* 1988년 봄 공연 ‘안티고네’ (장 아누이 작/ 이경욱 연출) 병사 2 역/ 무대감독
* 1988년 가을 정기 대공연 ‘상상병 환자’ (몰리에르 작/ 양정현 연출) 끌레앙뜨 역/ 기획
* 1989년 봄 공연 ‘탑’ (피터 바이스 작) 연출
* 1989년 가을 정기 대공연 ‘정의의 사람들’ (알베르 까뮈 작 / 김영환 연출) 이반 까리아예프 역/ 기획
* 1990년 봄 공연 ‘만선’ (천승세 작/ 김태경 연출) 조명
* 1990년 창립30주년 재학생-졸업생 합동 공연 ‘우리 읍네’ (손튼 와일더 작/ 정종화 연출) 피이터 깁스 역
* 1991년 가을 정기 대공연 ‘메피스토’ (클라우스 만 작/ 송미숙 연출) 한스 요스트힝겔 역/ 조명
* 1993년 졸업과 동시에 성의연극회 동문회원으로 신분 상승 됨.
* 2010년 창립50주년 재학생-졸업생 합동 공연 ‘닥터 체홉의 인생 산책’ 이바니치 역
아이들이 학교에서 대고구려 제국의 위대한 역사를 배우듯, 우리도 신입생 시절 선배로
부터 연극부의 ‘믿기지 않는 전설’을 들으며 무대에 섰다. 하지만 가용 인원 15명을 절
대로 넘지 않았던 1980년대 후반 연극부의 현실은 다음의 키워드들로 설명된다.
294
1986년 ~ 1991년
295
`88 의 학 과 : 정명선
`89 의 학 과 : 윤주희, 고석진
`89 간호학과 : 홍은경
`90 의 학 과 : 서상원
`90 간호학과 : 고은화
`91 의 학 과 : 곽태호, 길기철, 이상희
`91 간호학과 : 노은숙, 이경주
1986년-1991년의 명배우
(당시 공연평과 개인적 기억을 토대로)
`86 이진석
1989 봄 공연 ‘탑’ 마술사 역
`85 홍은영 1989 가을 공연 ‘정의의 사람들’ 스테빵 역
1987 가을공연 ‘꽃피는 체리’ 이사벨 체리 역 1991 가을 공연 ‘메피스토’ 브루크너 역
`88 정명선
1989 봄 공연 ‘탑’ 곱추 역
1990 30주년 기념 공연 ‘우리 읍네’ 소움즈 부인역 `89 홍은경
1991 가을공연 ‘메피스토’ 미리암 호로비츠 역 1990 30주년 기념 공연 ‘우리 읍네’ 에밀리 역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
296
1986년 ~ 1991년
1. 공연 후 합평회,
2. 신입생 환영회 및 졸업생 환송회
3. 각종 MT :
- 워크샵 합평회를 겸한 봄 MT,
- 가을 공연 연습 직전의 여름 여행
- 총회 직후의 가을 MT
- 봄 공연 연습 직전의 겨울 여행
4. 까메아드 축제 기간 중 주점 운영
5. 외부 연극 관람
6. 국가고시 응시 선배 응원
7. 외부에서 섭외 들어온 연극 공연 지원, 마리아홀 행사 시 조명, 장치 등 지원
297
86년-91년 사이 연극부 활동 중 특기할만한 사항
1. 1990년 창립 30주년 기념 재학생-졸업생 합동 공연
2. 1990년 동문 홈커밍 데이
- 30주년 기념 공연 준비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 되어 1990년 5월 하순 지금 서울성모병원 자리에 있었던 학교 운동장에서 야유회+운동
회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3.1989년 가을 워크샵 공연
- 개인적인 회상으로 1989년은 연극부에 있어서 ‘기적의 한 해’였다. 진행 팀을 제외한 가용 인원 10명이 안되었던 연극부가 정기공연
2회, 워크샵 2회 공연을 소화해낸 것이다. 1989년 가을 워크샵 공연 이야기는 연도별 활동 내역에서 다시 기술할 예정이다.
1986년
1986년 연극부 활동 내역
1986년 워크샵 공연
공 연 일 : 1986년 5월 24일
작 품 : 루이기 피란델로 작 “뜻대로 생각하세요”
연 출 : 장기육
무대감독 : 유경임
일 시 : 1986년 5월 24일-25일
장 소 : 강원도 강촌 MT 민박집
# 대장의 3대 의무
1. 음주 시 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한다.
2. 음주 시 누구라도 대작을 원하면 언제든지 대작해 주어야 한다.
3. 끝까지 술자리에서 살아남아 뒤처리를 해야 한다
298
1986년 ~ 1991년
# 대장의 권리
누구든지 술을 마시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선후배 불문하고 술을 권할 수 있다.
1986년 여름 여행
(가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1986년 7월 30일-8월 2일
장 소 : 대천 해수욕장
1986년 가을 정기 대공연
[41회] '아니 이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B. 클라크 작 , 기국서 연출, 1986년 가을
공 연 일 : 1986년 9월 20일-23일(4일간 4회 공연)
최초 연습 시작일 : 1986년 8월 4일/연습 기간 42일
작 품 : 브라이언 클라크 작 “아니, 도대체 이 생명은 누구의 것인가?”
연 출 : 기국서
기 획 : 장기육
무대감독 : 정홍준
299
침대 위에 누워서 연기를 해야 하는(사지마비 환자니까)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
건이었는데 기국서 연출께서 상상과 회상의 장면에서 과감하게 주인공을 일으켜 돌아다
니게 하는 것으로 간단히 그 문제를 해결했다.(당시 본3이던 김용욱 동문께서 연출에게
이 파격적 제안을 해서 채택되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300
1986년 ~ 1991년
301
학년 때까지 연극부 가을 MT 장소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그밖에 연극부 지정 여행지
였던 치악산, 송지호, 강촌 등은 그보다 훨씬 전에 연극부에서 외면을 받던 것과 대조적
이었다.
1986년 겨울 여행
(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1986년 12월 혹은 1987년 1월 중 3박 4일
장 소 : 치악산
302
1986년 ~ 1991년
303
있는 국립공원 등산로에서 괴성을 지르며 눈썰매 타듯 하산하던 우리들의 모습. 무모하
고 대책 없을 지라도 그것은 젊음의 특권이었다.
1987년
1987년 연극부 활동 내역
1987년 봄 정기 공연
304
1986년 ~ 1991년
305
도 나에겐 부원들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예전의 대본들에 더욱 애틋한 애착이 간다.
1987년 워크샵 공연
공 연 일 : 1987년 6월 4일
제 1 작품: 이반 작, F선상의 아리아
연 출 : 이경욱
무대감독 : 이진석
일 시 : 1987년 6월 공연날 이후 1박 2일
장 소 : 강원도 강촌
1987년 여름 여행
(가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1987년 8월 초순
장 소 : 강원도 송지호 해수욕장
1987년 가을 정기 대공연
306
1986년 ~ 1991년
참석자 : 정홍준, 이경욱, 유경임, 홍은영, 이진석, 정봉수, 박선미, 박정미, 김양수, 유미영(진
행팀 김용욱, 구태형, 장기육)
후보작 총 21편
1차 선정 결과 남은 작품
1. 정의의 사람들 2. 유리동물원 3. 오해 4. 여왕과 반역자 5. 분신 6. 나비야 저 청
산에 7. 꽃피는 체리
307
가졌지만 87년의 경우에는 기말고사 기간이라 정홍준 연극부장 혼자서 연출을 만났다.
1987년 겨울 여행
(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1988년 1월 26일-27일
장 소 : 남이섬
1988년
1988년 연극부 활동 내역
1988년 봄 정기 공연
1988년 워크샵 공연
일 시 : 1988년 5월 26일
작 품 : 따라지 극작가
연 출 : 이진석
무대감독 : 김태경
308
1986년 ~ 1991년
1988년 봄 MT 및 합평회
일 시 : 1988년 5월 28일-30일
장 소 : 강원도 강촌
1988년 여름 여행
(가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1988년 7월 하순 3박 4일
장 소 : 강원도 송지호 해수욕장
1988년 가을 정기 대공연
네 번째 뮤지컬
[45회] '상상병 환자' - 몰리에르 작, 양정현 연출, 1988년 가을
일 시 : 1988년 9월 1일-3일 (3일간 4회 공연) 연출 : 양정현
최초 연습 시작일 : 1988년 7월 25일/총 연습일 37일 기획 : 김양수
작 품 : 몰리에르 작 상상병 환자 무대감독 : 이진석
309
1988년 가을 MT(정기 총회)
일 시 : 미상
장 소 : 미상
1988년 겨울 여행
(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1989년 1월 중 3박 4일
장 소 : 제주도
1989년
1989년 활동 내역
1989년 봄 정기 공연
89년 봄 공연은 연극부 최대의 위기가 스쳐지나간 공연이기도 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사회 문화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연극부에서도 연극작업에서 용인되는 연출의 우월적
지위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연기력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한
평가를 받던 86학번 정봉수는 연극부 동아리 생활에는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모
습을 보여 왔는데, 그는 연출의 위상 변화라는 움직임을 명분으로 당시 연출을 맡았던
나와 배우 훈련이나 작품 해석 등 공연 연습 진행과정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연극부 안팎에서 참여예술과 순수예술을 둘러싼 이념적 균열은 연극부를 떠나는 사람들
의 이유 중 하나가 되어 왔었다.(84학번 이환, 86학번 임효영이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310
1986년 ~ 1991년
311
활동을 편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 ‘연극부 기적의 해’로 부르는 1989년은 이렇게 태풍과 홍역을 치르면서
시작 되었다.
1989년 워크샵 공연
일 시 : 1989년 5월
작 품 : 안톤 체홉 작 ‘청혼’
연 출 : 김태경
무대감독 : 정명선
무대장치 : 황동진-장기육-정홍준-이진석-윤주희
조 명 : 김창재-이헌상(?)-구태형-이경욱-김양수-김태경
분 장 : 김혜정-한현진-유경임-유미영-정명선(?)-고은화(?)
의 상 : 김희정-홍은영-박선미-이미경-홍은경
효 과 : 이숙희 -??
312
1986년 ~ 1991년
1989년 여름 여행
(가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미상
장 소: 미상
1989년 가을 정기 대공연
[47회] '정의의 사람들' - 알베르 까뮈 작 , 김영환 연출, 1989년 가을
일 시 : 1989년 9월 8일-9일(2일간 3회 공연)
작 품 : 알베르 까뮈 작 ‘정의의 사람들’
연 출 : 김영환
기 획 : 김양수
무대감독 : 김태경
313
50주년 공연 연습 도중, 89년 가을 공연 연출을 맡으셨던 김영환 선생님께서 2010년
초 고인이 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김영환 연출님을 깊은 눈매와
과묵한 성격으로 기억한다. 차분하고 간결한 어조로 감정과 극 흐름을 잡아주던 연습 때
의 모습이 아직도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짧지만 깊고 강렬할 수밖에 없는 무대를 통한
인연. 늦게나마 이 지면을 빌어 그분의 명복을 빌어본다.
일 시 : 미상
장 소 : 미상
1989년 가을 워크샵 공연
일 시 : 1989년 11월
작 품 : 끝없는 아리아
연 출 : 이진석
무대감독 : 윤주희
314
1986년 ~ 1991년
1989년 겨울 여행
(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미상
장 소 : 미상
315
술과 여흥으로 정신없이 몰아치는 쫑파티는 연극 작업을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허무함
과 허탈감으로 대변되는 공연 후유증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예방백신
이었다. 하지만 그 백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1990년
1990년 연극부 활동 내역
1990년 봄 정기 공연
연출의변
316
1986년 ~ 1991년
줄거리
1990년 워크샵 공연
일 시 : 1990년 5월 24일
작 품 : 즐거운 여행
연 출 : 정명선
무대감독 : 윤주희
317
번외편 : 86-91 연극부 생활사 여섯 : 연극부의 술 문화.
구호의 상당수는 이정태 선배님께서 만드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호에는 유명한 싯
구, 유행어, 연극 대사 등을 권주가 개념으로 패러디 하고 변형하여 만들어진 것들과, 연
극부 생활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들
이 있다. 구호는 술자리에서 철저하게 선후배간 구전(口傳)으로 익혔다. 신입생 시절 그
많은 구호를 주저함 없이 유창하게 외우며 즐겁게 술 마시는 선배들을 보며 굉장히 재
미있고 신기하게 여겼었다. 나는 언제 저걸 다 외우나 걱정했지만 1학년 가을공연 무렵
술잔만 들면 구호가 술술 튀어 나오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내가 머리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술자리가 잦았었다.)
318
1986년 ~ 1991년
일 시 : 1990년 5월 26일-27일
장 소 : 강촌
일 시 : 1990년 6월 3일
장 소 : 학교 운동장
319
이었다. 당시 본과 2학년이던 내가 30주년 기념 공연 전체를 서술하는 것은 무리이다.
재학생 측면에서 몇 가지만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320
1986년 ~ 1991년
일 시 : 1990년 9월 20-21일
장 소 : 경기도 새터 오동나무 집
1990년 겨울 여행
일 시 : 미상
장 소 : 미상
1991년
1991년 연극부 활동 내역
1991년 워크샵 공연
일 시 : 1991년 5월 24일
작 품 : 엘렉트라
연 출 : 윤주희
무대감독 : 미상
321
1991년 봄 MT 및 워크샵 합평회
일 시 : 1991년 5월 25-26일
장 소 : 강촌
1991년 여름 여행
(가을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1991년 7월 26일-28일
장 소 : 강원도 송지호 해수욕장
1991년 가을 정기 대공연
Staff :
연출 : 송미숙 조명 : 고석진, 김대욱
기획 : 윤주희 의상 : 홍은경, 노은숙
무감 : 정명선 분장 : 고은화, 오수희
진행 : 이경욱, 박정미, 이미경, 김형숙 소도구 : 서상원, 이경주
장치 : 심동석, 윤주희 음향 : 이상희, 이해정
322
1986년 ~ 1991년
연출의 변
1991년 가을 MT(정기총회)
일 시 : 1991년 10월 19-20일
장 소 : 경기도 새터 오동나무 집
1991년 겨울 여행
(봄 공연 연습 개시 MT)
일 시 : 미상
장 소 : 미상
323
마무리-20년 후 되새김 해보는
고난과 영광의 연극부 시절
김미경, 김양수, 김춘일, 김필영, 박선미, 박정미, 박종갑, 이선영, 임효영, 장재순, 정봉
수, 정정임, 최윤희, 함영옥. 나와 동기인 86학번 의학과, 간호학과 학생 중 워크샵 공
연과 정기 공연, 그 외 연극 작업등으로 가톨릭 의대의 연극, 그리고 연극부와 직, 간접
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 중 끝까지 연극부에 남은 사람은 나, 이진
석,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아내인 박선미이다. 다른 사람들은 끝까지 함께
할 만한 무엇인가를 여기서 느끼지 못했거나, 혹은 연극보다 더욱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과 이유로 성의 연극회의 동문으로 남지 않
았다. 열 네 명 중 세 명이다. 86년-91년. ‘고난의 연극부’라는 말은 결코 허언(虛言)은
아니었다.
꾸준하고 부지런하지 못한 천성 때문에 굉장히 급하게 정리한 내용들이다. 학생 때나
불혹 나이 지금이나 ‘벼락치기 공부’로 승부하는 좋지 못한 습성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
는다. 좀 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작업했다면 하는 후회가 없지 않다. 정리한 내용의 절반
가량은 당시에 작성한 나의 개인기록에서,(특히 날짜에 대해서는) 나머지는 기억에 의존
하여 기술한 내용이다. 당연히 본의 아닌 ‘기억의 왜곡’에 의한 오류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연극부 생활을 나와 함께 했던 선・후배, 동기들에 의한 오류 수정 작업을 간
절히 기대해 본다.
서클룸에는 아직도 당시의 일지, 앨범, 기획, 연출, 무감노트 등이 적잖게 보관중인 것
으로 알고 있다. 여유를 가지고 작업에 임했다면 서클룸 기록을 검토해서 보다 정확하고
내실 있는 결과물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예를 들어 기획 노트를 통해
연극 예산 규모와 내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정리했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성의
연극회 모두에게 의미 있고 도움 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324
1986년 ~ 1991년
325
과거의 회상에 빠져 [1984~1986]
한현진 (간·31회)
326
1986년 ~ 1991년
327
창립30주년 기념
재학생 ・ 졸업생 합동공연-우리 읍내
PROGRAMS
제 49회 우리읍내 1990년 9월 14, 15, 16일
330
PROGRAMS 차례
331
PROGRAMS
제 49회 우리읍내 1990년 9월 14, 15, 16일
332
PROGRAMS 차례
333
PROGRAMS
제 49회 우리읍내 1990년 9월 14, 15, 16일
334
PROGRAMS 차례
335
PROGRAMS
제 49회 우리읍내 1990년 9월 14, 15, 16일
336
PROGRAMS 차례
337
PROGRAMS
제 49회 우리읍내 1990년 9월 14, 15, 16일
338
PROGRAMS 차례
339
PROGRAMS
제 49회 우리읍내 1990년 9월 14, 15, 16일
340
PROGRAMS 차례
341
PROGRAMS
제 49회 우리읍내 1990년 9월 14, 15, 16일
342
PROGRAMS 차례
343
[49회] '우리 읍내' - 손톤 와일더 작 , 정종화 연출, 1990년 가을
연출의 글
삶은 하나의 신비(神秘)
344
창립30주년 기념 재학생-졸업생 합동공연-우리 읍내
345
차양이며, Joe가 문간에 집어던지는 것은 가상의 신문, 우유배달부가 가상의 말을
끌고 가상의 우유를 배달하는 것 등, 이와 같이 대.소 도구와 배우들의 마임과 음향
효과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상의 무대, 이런 모든 것들이 「연극적」 특성을 무대 위
에서 최대한 확대시키고, 또한 응집시키려 해보았다.
작품소개
"우리읍내"란 어떤 작품인가?
346
창립30주년 기념 재학생-졸업생 합동공연-우리 읍내
347
에필로그
김광평(의・7회)
348
창립30주년 기념 재학생-졸업생 합동공연-우리 읍내
③ ②
우리읍내
① 하우이 : 안녕합쇼? 사모님. 선생님은 방금 행길 따라
오시던뎁쇼.
깁스 부인 : 그러셔요? 오늘은 아저씨가 좀 늦었나봐요.
349
① ②
③ ④
우리읍내 ⑤
① 깁스 부인 : 정말 멋진 성가 연습이었어요. 안그래요? 에밀리 엄마,
저기 저 달을 좀 봐요. 감자 풍년이 확실하다니까.
350
창립30주년 기념 재학생-졸업생 합동공연-우리 읍내
문일신 (의・16회)
'90년 창립 30주년 기념 재학생 동문 합동공연 소오튼 와일더작 "우리읍내"에서 웹 편집장으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박창서 (의・18회)
연극부 창립 30주년과 개교 35주년을 맞아 동문 재학생 합동 공연을 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 잘 아
는 일이지만 나에게도 새로운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소식에 흔쾌히 참여하기로 하였다.
모여 의논하기를 주로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엮어가고 동문들은 주로 재정적 후원을 맡고 혹 단역으로
출연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장의사 역이나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 역할을 하리
라 마음먹고 있었다. 정종화 연출님과의 대면에서 그가 동문들을 보더니 작품 속 배역과 실제 나이에
걸맞게 캐스팅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장의사 역할을 하게 되
리라 속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무대감독 역을 맡게 되었다.
당시 오후 7시에 연습을 시작하였기에 8시까지 진료하던 것을 오후 6시로 줄이며 그 복잡한 서울 시내
교통을 뚫고 매일 연습장 강남 마리아 홀로 가게 되었다. 한편 치주염으로 고생하면서 결국은 피로가
겹쳐 치아를 6개나 발치를 하게 된다. 그러니 발음이 새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썼던 기억이 새롭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일은 극중의 성가대 역이다. 이왕이면 가톨릭의대 합창단을 동원하리라 생각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해서 나에게 극중 합창단 구성의 임무가 맡겨졌는데, 아는 후배에게 부탁하였더
니 모 대학 성악과 학생들 몇을 보내주었다. 한데 이들은 연극 분위기에 맞지 않았고, 터무니없는 출연
료를 요구하기에 난감했었다. 당시 나는 과거에 참여했던 합창단의 동문들이 동문합창단을 만들어 내가
단장을 맡아보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이들을 동원하기에는 단원들의 개인적 사정이, 다들 직장인이고
가정주부들이어서 매우 힘들었던 것이다. 하여 학생들로 구성된 <대학 합창단> 단원들을, 내가 운영이
사임을 내세워 자원하는 사람을 모아 왔다. 그들도 음대 성악과 학생들이고 앞으로 오페라 등에 출연해
야 하기에 연극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단원들이 적극 참여해 주어서 수준 높고 아름다운 합창으
로 공연에 동참할 수 있었던 일이 보람 있게 느껴진다.
351
암튼 모든 분들의 각고의 노력과 열정으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음은 우리 모두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다. 내 아내와 내 아이들도 내가 하는 연극을 처음 보았고, 당시
내 주변에 연결되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관람을 했던 것이다. 작품이 주는 감동이 관객
들에게 잘 전달되었던 아주 좋은 공연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읍내"에 대해서는 많은
동문들이 언급하였을 것이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그 때 함께한 모든
동문들과 재학생 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플 따름이다.
352
1992년 ~ 1998년
PROGRAMS
제 52회 누가 선인장을 삼켰대? 1993년 8월 27, 28일
354
PROGRAMS 1992년 ~ 1998년
355
PROGRAMS
제 52회 누가 선인장을 삼켰대? 1993년 8월 27, 28일
356
PROGRAMS 1992년 ~ 1998년
357
PROGRAMS
제 53회 유리 동물원 1994년 3월 4, 5일
358
PROGRAMS 1992년 ~ 1998년
359
PROGRAMS
제 53회 유리 동물원 1994년 3월 4, 5일
360
PROGRAMSPROGRAMS 1992년 ~ 1998년
361
PROGRAMS
제 53회 유리 동물원 1994년 3월 4, 5일
362
PROGRAMS 1992년 ~ 1998년
363
PROGRAMS
제 54회 어떤 인생 1995년 3월 17, 18일
364
PROGRAMS 1992년 ~ 1998년
365
PROGRAMS
제 54회 어떤 인생 1995년 3월 17, 18일
366
PROGRAMS 1992년 ~ 1998년
367
PROGRAMS
제 55회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 1995년 8월 31일, 9월 1일
368
PROGRAMS 1992년 ~ 1998년
369
PROGRAMS
제 55회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 1995년 8월 31일, 9월 1일
370
PROGRAMS 1992년 ~ 1998년
371
PROGRAMS
제 56회 돼지와 오토바이 1996년 3월 15, 16일
372
PROGRAMSPROGRAMS 1992년 ~ 1998년
373
PROGRAMS
제 57회 Media 1996년 9월 4, 5일
374
PROGRAMS 1992년 ~ 1998년
375
PROGRAMS
제 57회 Media 1996년 9월 4, 5일
376
PROGRAMS 1992년 ~ 1998년
377
PROGRAMS
제 57회 Media 1996년 9월 4, 5일
378
PROGRAMS 1992년 ~ 1998년
379
PROGRAMS
제 57회 Media 1996년 9월 4, 5일
380
PROGRAMS 1992년 ~ 1998년
381
PROGRAMS
제 58회 동승 1997년 9월 3, 4일
382
PROGRAMS 1992년 ~ 1998년
제 58회 동승 1997년 9월 3, 4일
383
PROGRAMS
제 58회 동승 1997년 9월 3, 4일
384
PROGRAMS 1992년 ~ 1998년
제 58회 동승 1997년 9월 3, 4일
385
PROGRAMS
제 58회 동승 1997년 9월 3, 4일
386
PROGRAMS 1992년 ~ 1998년
387
PROGRAMS
제 60회 한 여름밤의 꿈 1998년 9월 4, 5일
388
PROGRAMS 1992년 ~ 1998년
389
PROGRAMS
제 60회 한 여름밤의 꿈 1998년 9월 4, 5일
390
PROGRAMS 1992년 ~ 1998년
391
PROGRAMS
제 60회 한 여름밤의 꿈 1998년 9월 4, 5일
392
1992년 ~ 1998년
92년 봄 공연 ‘굿닥터’를 무대에 올린 후 92년 가을 정기공연과 93년 봄 공연이 무산되었으나 93년 가을, 곽태호 동문이 직접 대본을 쓰
고 연출을 맡은 ‘누가 선인장을 삼켰대?’를 무대에 올려 연극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92~93년 연극반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넘기면서 다시 중흥의 깃발을 올리고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차현민 (의·39회)
정신없이 공연을 마치고 강촌으로 MT를 갔다. 밤새 술 마시고 다음날 삼악산에 오르는
연극반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전통도 9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
다. 당시에는 전통을 지속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393
공연이 끝나고 한동안 연극반을 찾지 않았다.
394
1992년 ~ 1998년
워크샵 하겠다는 신입생은 10명 확보되었는데 연출과 무감할 사람이 없어서 어찌어찌
하다가 예2 신소영이 연출을 하고 내가 무대감독을 하게 되었다. 둘다 정식 연극부원 아
니고 전년도 워크샵과 가을에 있었던 모유먹이기 행사공연에 참석했던 인연으로 참여했
다고는 하나 모양새가 좋지는 않았다. '연인과 타인'이라는 꽤 괜찮은 작품을 했었는데
문제는 대학로에서 공연했던 작품을 신입생과 신참내기 연출이 하기에 버거웠다는 것이
었다. 연출은 뻑 하면 안 나오고 선배들이 결국 개입해서 한 장면씩 만들어 주었는데,
선배들도 이러 저래 티격태격하다가 급기야 공연을 1주 미루고 힘들게 마무리했다. 결과
적으로 공연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여러 안 좋은 모습을 본 신입생들이 모조리
빠져나가 다시 연극반은 1학년이 박상협만 남게 되었다.
연출의 변
395
정수리에 박힌 것이고, 당신이 낚시에 사용한 갈고랑쇠의 뾰족함은 결국 당신의
식도에 박힌 가시로 변한 것이다.
밤송이와 생선가시... 또 무엇이 있을까? 장미의 가시라고? 그건 너무 예쁜 가시
이다. 예수가 쓴 가시 면류관? 희생 치곤 너무 고통스럽다.
4. TV와 Cinema와 넘치는 Video가 연극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연극이라는 행위가
전자와 빛 알갱이에 짓눌려있다. 요즘의 관객은 연극보다는 '자극'을 원하는 듯하
다. 그렇다고 과거의 연극을 고집한다면 스스로 연극의 무덤을 파는 일이리라 생
각한다. 연극은 변해야 한다.
4. ...... 적어도 이번 연극으로 우리는 그것을 시도해 보았다.
4. 끝으로 방학을 투자하며 고생한 배우들과 무감, 기획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비록 연습 때는 그 말을 못했지만...
기획의 변
폭 삼 미터
너비 오 미터의 공간
무대라고들 말하는 그 조그마한 공간은
무한한 세계입니다.
그 안에는 자유가 숨을 쉽니다.
창조가 나래를 폅니다.
396
1992년 ~ 1998년
그 곳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우리들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팔월은 어느새 흘러가버리고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아쉬움을 간직한 채
이제는
여러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군요.
기획은 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했다. 간신히 연출, 무감, 기획은 정해졌는데 배우가 모
자랐다. 이리저리 사람을 끌어 모아 연습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문제가 다른 데에서 발
생했다. 당시 연극부 동문회에서 작품이 정기공연으로 올리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후원을
안 하겠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러 선배님들의 도움과 박상협, 이경주 등의 뛰
어난 연기로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397
92년에는...
고 은 화(간・37회)
그러다 2학기가 시작되어 모유수유 협회에서 간단한 콩트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서 마리아홀에서 그 당시론 엄청나게 큰 돈인 100만원을 받고 곽태호가 대본을 써서 일
주일인가 연습하고 아주 조그만 콩트를 막간을 이용해서 올리게 되었죠.
398
1992년 ~ 1998년
399
50년사 끼워넣기 1994~1995년
차현민 (의·39회)
연출의 변
1. 유리는 투명하다.
1. 유리는 반짝인다.
1. 그러나 유리는 깨지기 쉽다.
400
1992년 ~ 1998년
401
남 2, 여 2 나오는 작품이고 모든 배역이 각기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기에 졸업반 이
경주 선배가 어렵게 배우로 나서겠다고 하였고, 역시 졸업반 윤주희 선배도 후배들의 부
담을 덜어주고자 기획을 자청하고 나섰다. 곽태호 선배는 몽환적인 작품 분위기를 최대
한 살리기 위해 무대장치와 음향, 조명에 각별한 신경을 써서 음악작곡과 무대디자인을
외부에서 섭외해 왔다. 무대디자인은 무대 안에 집 구조물을 만들고 마리아홀 뒷벽을 모
두 가리는 장막에 배경이 되는 미국남부 어느 도시의 배경을 채색하였다. 장막이 워낙
크다보니 마땅히 작업할 공간이 없어 당시 성의회관 다목적실에 장막을 깔아놓고 그림
을 그렸는데 다 그리고 걷어보니 바닥이 온통 페인트 자국으로 덮여 있어 지워야 할 필
요가 있었다. 마침 그날 흰 눈이 많이 내려 연습하던 배우들이 눈을 가져다 바닥을 닦던
일은 아직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연습 중에 이번 신입생 중 타 학교에서 잠
시 연극반 하다 다시 재수해서 들어온 학생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한번 나
와 달라고 하였더니 용케도 연습장에 나와 주어 연습 후 터미널에서 같이 술 마시고 약
간의 폭력(?)을 사용하여 연극부에 들게 하였다. 이 신입생이 바로 이후 연극부 인맥의
큰 축을 이루는 한영고 인맥의 시작인 이준현이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무대와 구슬처럼
빛나던 유리 동물들, 적절한 음악이 배우들의 연기를 빛내주었고 곽태호 선배의 뛰어난
연출력과 이경주, 이혜승, 박상협의 개성 있는 연기가 어우러져, 어쩌면 성의연극회 역사
상 두고두고 기억될 공연으로 남을 수 있었는데 내가 맞은 '짐' 이라는 역이 그야말로
연극에 짐이 되어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자책감이 두고두고
남는 공연이었다. 그래도 신입생 환영 공연을 보고 예1에서 윤완수가 추가로 들어오고,
간1에서 김귀란, 오재숙, 정진아가 들어와 연극반에는 간만에 떠들썩한 날들이 찾아왔다.
이에 준비한 워크샵 공연이 2년 전 봄 공연으로도 올렸던 ‘굿닥터’ 였고 관객들의 반응
도 비교적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을 공연을 준비해야 하나 지난 1년 동안 나름 공
연을 지속한 탓에 부원들의 피로도 상승으로 또 한번 쉬어가기로 하였다. 이제는 공연을
쉰다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악의 시기를 잘 버텨냈고 연극반이 문
닫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점차 잊혀져 갔다.
402
1992년 ~ 1998년
403
[54회] '어떤 인생' - 휴 레너드 작 , 서상원 연출, 1995년 봄
404
1992년 ~ 1998년
연출의 변
405
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순수성을 항변하고 주위 사람들의 충고에 분개한
다. 이러한 그가 물론 위선적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숨기
지 않고 다 드러내 보인 그가 오히려 가식적이지 않고 더 진실한 인간의 모습
이 아닐까 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 감정에 솔직했던 한 인간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음을 밝힌다.
올해는 우리 연극부가 의욕적으로 활동했던 한 해였다. 영하의 마리아홀에서 준
비했던 지난 봄 공연, 두 작품을 올렸던 Work Shop, 그리고 이번 가을 공연까
지 힘들더라도 잘 따라주었던 모든 연극부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이번
공연으로 올 한해를 풍성히 마무리했으면 한다.
끝으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틈틈이 조언을 해 주셨던 김영민 동문회장님
과 윤여웅 지도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406
1992년 ~ 1998년
추억의 습작
손보성 (의·39회)
극중 역할은 교장선생님이었다.
분장 준비 중 한 컷... 이때를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늘씬한 몸매였었는데...ㅠ.ㅠ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ㅠ.ㅠ
연극부에서 먹은 술 때문에 몸에 부종이 생겼다.;;;;
407
[56회] '돼지와 오토바이' - 이만희 작 , 박상협 연출, 1996년 봄
주~~연 : 손 보 성!!
블로킹이 너무 복잡해서 너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연습하던 중 한 장면을 훌쩍 뛰어 넘어갔던 적도...
‘돼지와 오토바이’는 90년대 연극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연극이었다.
바로 이 연극 ‘돼지와 오토바이’를 통해 90년대 후반을 주름잡게 될 대배우 ‘손보성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408
1992년 ~ 1998년
극중 배역 ‘야슨’.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장치...
공연장 바닥을 전부 철판으로 깔고, 뒤에 계단을 만들기 위해 밤새워 톱질을 했던 무대장치였다.
공연이 끝나고 장치를 부술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연기를 위해 삭발까지 했던...
강한 카리스마를 위해 당시 연출을 하셨던 이남희 선생님이 삭발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삭발을 했건만 삭발한 모습을 본 연출님의 한마디에 쓰러지고 말았다.
"귀여워졌네. 실패다." -.-;;
409
[58회] '동승' - 함세덕 작 , 김민정 연출, 1997년 가을
기획: 손보성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그 연극 ‘동승’
메디아에 이어 두 번째로 아름다운 무대장치였던 것 같다.
나무는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슬쩍 해온 것 이고 옆의 돌담과 바위는 스티로폴과 종이
상자로 만든 실감나는 무대장치였다.
더운 여름에 마리아홀에서 스티로폴을 톱으로 잘라 커다란 바위 모형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410
1992년 ~ 1998년
--아리스토 텔레스--
411
412
1999년 ~ 2009년
PROGRAMS
제 61회 세일즈맨의 죽음 1999년 9월 3, 4일
414
PROGRAMS 1999년 ~ 2009년
415
PROGRAMS
제 61회 세일즈맨의 죽음 1999년 9월 3, 4일
416
PROGRAMS 1999년 ~ 2009년
417
PROGRAMS
제 61회 세일즈맨의 죽음 1999년 9월 3, 4일
418
PROGRAMS 1999년 ~ 2009년
419
PROGRAMS
제 62회 오장군의 발톱 2001년 9월 7, 8일
420
PROGRAMS 1999년 ~ 2009년
421
PROGRAMS
제 62회 오장군의 발톱 2001년 9월 7, 8일
422
PROGRAMS 1999년 ~ 2009년
423
PROGRAMS
제 62회 오장군의 발톱 2001년 9월 7, 8일
424
PROGRAMS 1999년 ~ 2009년
425
PROGRAMS
제 62회 오장군의 발톱 2001년 9월 7, 8일
426
PROGRAMS 1999년 ~ 2009년
427
PROGRAMS
제 63회 바다가 보고 싶다. 2002년 8월 30, 31일
428
PROGRAMS 1999년 ~ 2009년
429
PROGRAMS
제 63회 바다가 보고 싶다. 2002년 8월 30, 31일
430
PROGRAMS 1999년 ~ 2009년
431
PROGRAMS
제 63회 바다가 보고 싶다. 2002년 8월 30, 31일
432
PROGRAMS 1999년 ~ 2009년
433
PROGRAMS
제 64회 인어전설 2003년 8월 29, 30일
434
PROGRAMS 1999년 ~ 2009년
435
PROGRAMS
제 64회 인어전설 2003년 8월 29, 30일
436
PROGRAMS 1999년 ~ 2009년
437
PROGRAMS
제 64회 인어전설 2003년 8월 29, 30일
438
PROGRAMS 1999년 ~ 2009년
439
PROGRAMS
제 64회 인어전설 2003년 8월 29, 30일
440
PROGRAMS 1999년 ~ 2009년
441
PROGRAMS
제 65회 김치국씨 환장하다 2004년 9월 3, 4일
442
PROGRAMS 1999년 ~ 2009년
443
PROGRAMS
제 65회 김치국씨 환장하다 2004년 9월 3, 4일
444
PROGRAMS 1999년 ~ 2009년
445
PROGRAMS
제 65회 김치국씨 환장하다 2004년 9월 3, 4일
446
PROGRAMS 1999년 ~ 2009년
447
PROGRAMS
제 66회 한 여름밤의 꿈 2005년 9월 2, 3일
448
PROGRAMS 1999년 ~ 2009년
449
PROGRAMS
제 66회 한 여름밤의 꿈 2005년 9월 2, 3일
450
PROGRAMS 1999년 ~ 2009년
451
PROGRAMS
제 66회 한 여름밤의 꿈 2005년 9월 2, 3일
452
PROGRAMS 1999년 ~ 2009년
453
PROGRAMS
제 66회 한 여름밤의 꿈 2005년 9월 2, 3일
454
PROGRAMS 1999년 ~ 2009년
455
PROGRAMS
제 66회 한 여름밤의 꿈 2005년 9월 2, 3일
456
PROGRAMS 1999년 ~ 2009년
457
PROGRAMS
제 67회 사랑을 찾아서 2006년 9월 1, 2일
458
PROGRAMS 1999년 ~ 2009년
459
PROGRAMS
제 67회 사랑을 찾아서 2006년 9월 1, 2일
460
PROGRAMS 1999년 ~ 2009년
461
PROGRAMS
제 67회 사랑을 찾아서 2006년 9월 1, 2일
462
PROGRAMS 1999년 ~ 2009년
463
PROGRAMS
제 67회 사랑을 찾아서 2006년 9월 1, 2일
464
PROGRAMS 1999년 ~ 2009년
465
PROGRAMS
제 70회 밑바닥에서 2008년 8월 25, 26일
466
PROGRAMS 1999년 ~ 2009년
467
PROGRAMS
제 70회 밑바닥에서 2008년 8월 25, 26일
468
PROGRAMS 1999년 ~ 2009년
469
PROGRAMS
제 70회 밑바닥에서 2008년 8월 25, 26일
470
PROGRAMS 1999년 ~ 2009년
471
PROGRAMS
제 70회 밑바닥에서 2008년 8월 25, 26일
472
PROGRAMS 1999년 ~ 2009년
473
PROGRAMS
제 71회 트랜스 십이야 2009년 8월 25, 26일
474
PROGRAMS 1999년 ~ 2009년
475
PROGRAMS
제 71회 트랜스 십이야 2009년 8월 25, 26일
476
PROGRAMS 1999년 ~ 2009년
477
PROGRAMS
제 71회 트랜스 십이야 2009년 8월 25, 26일
478
PROGRAMS 1999년 ~ 2009년
479
PROGRAMS
제 71회 트랜스 십이야 2009년 8월 25, 26일
480
PROGRAMS 1999년 ~ 2009년
481
연극부 창립 40주년을 맞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의 여파로 준비 중이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공연을 취소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듬해인 2001년, 예술의 전당에서 ‘창립 4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를 가졌다. 2005년 ‘한 여름밤의 꿈’은 1982년부터 공연장으로 사용되어왔
던 ‘마리아홀’에서의 마지막 공연이었으며, 2008년 ‘밑바닥에서’가 신축 성의회관 ‘마리아홀’ 개관기념 공연이다.
2006년 ‘홈커밍데이’에서 ‘창립 50주년 기념 재학생, 졸업생 합동공연’을 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010년 3월 ‘50주년 기념공연 발대식’을 갖
고 50주년 공연의 첫 발을 내딛었다.
1) 2) 3) 4) 5) 6) 7)
김동진(의·45회) 이두수(의·45회) 김지혜(간·47회) 이유선(간·50회) 심정우(의·51회) 이창건(의·51회) 이한얼(본4)
* 최근 10년의 연극부 역사는 당대의 역사를 스스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연극
부 역사’라고 이름 붙이지 않고 ‘연극부 최근 10년’이라 제목을 정했습니다. 내용도 최근
10년간 연극부 활동을 하며 느낀 소감과 에피소드들을 적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저희들의
최근 10년간 연극부 활동을 회상하고 평가하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라 생각합
2)
니다.
482
1999년 ~ 2009년
2000년 가을 정기 대공연
483
김흥석, 윤소영의 풋풋한 연기와 박서라, 황주철의 능숙한 부부 연기, 정철홍과 이두수의
독특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치장 민진수는 돌도끼부터 온갖 대형 장치들까지 뚝딱뚝딱 혼자 만들어내어 놀라게
2)
했습니다. 당시 남자가 퇴장을 하는 큰 창문이 필요하였는데 단 하루 밤 만에 뚝딱 만
3)
들어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대근, 김동진, 문영규가 만들어낸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도 극과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김지혜는 연출로서 특유의 꼼꼼함과 추진력 그리고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화통함으로 처
음 연기하는 신입들을 능숙하게 이끌었습니다.
차현민 선배님부터 최진현, 김태우, 황현석, 함수경, 조경아, 김숙경, 문혜신과 같은 연기
선배들의 지도와 끈끈하다 못해 한 가족이 되어버린 조직력에 연극부에 완전히 빠져들
어 버렸습니다. 선배님들은 떠먹여 주기에 바빴고 신입들은 받아먹느라 바빴습니다. 이
공연은 황주철의 데뷔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황주철은 한동안 바보 주인공자리를 놓
2)
치지 않았습니다.
484
1999년 ~ 2009년
485
조진범은 무대 위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어둡고 조
용한 무대 위해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일품이었습니다. 정말 진짜 군인 같
2)
았습니다. (지금은 실제로 군인입니다^^)
김지혜는 소로서 열연했는데 대사가 대부분 “뫼에~~뫼에~~”였습니다. 대사 속에 정서를
전달하는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오 장군이 죽어 그 유골함을 들고 무대
를 한 바퀴 도는 장면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연습 중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공연날 오장군의 죽음을 보는 장면에서 쏟아져 진짜 눈물을 뫼에~ 함성에 담았더니 가
2)
장 울음이 실감났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깨 견장 바꾸기였습니다. 일인 다역을 하다 보니 동
쪽나라 사령관을 하다가 서쪽나라 병사도 했다가 하니 그 순간 어깨에 있는 견장을 뒤
집어 다른 색으로 보여지게 해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조명이 켜진 순간
오른쪽에는 동쪽나라 왼쪽에는 서쪽나라 견장을 차고 있으니 장군이의 유골함을 들고
1)
무대를 빙빙 도는 장면에서 계속 나라가 바뀌는 것처럼 보이니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486
1999년 ~ 2009년
487
연극부 부원이 없어 문 닫기 전에 해보자고 했던 작품입니다. (알고 보니 선배님들의
시대에도 숱하게 있었던 일이었더군요.) 더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으신 선배님들께는 송
구스럽지만 그렇게 비장한 각오였던 것 같습니다. 캐스트는 이대근, 문영규, 김지혜, 황
주철 네 명 뿐이었습니다. 진행을 제외하고 보면 알 수 있듯이 소수의 인력으로 해낸 연
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대근은 처음부터 끝까지 속사포처럼 대사를 이어갔
고 그간 쌓아왔던 모든 연극적 에너지를 쏟아냈습니다. 전체의 연극을 휘어잡는 힘이 대
단했습니다. 처음부터 끌어오던 힘을 클라이맥스로 내딛는 힘은 정말 굉장했습니다.
대근이가 꽃다발로 황주철을 수차례 내려치고 꽃잎들이 흩어지는 가운데 음악이 최대한
고조되었던 장면은 회상만 하여도 짜릿합니다. 거의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이대근과 문
영규의 탱고댄스와 문영규가 속옷 바람으로 바바리를 펼치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
니다. 파격적인 장면이었지만 연극에 너무 잘 녹아있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 연극이
좋아 정식 공연도 다 봤지만 그 전에 런 뛰는 것도 계속 봤습니다. 연습하는 것을 지켜
2)
본 김동진이 ‘영규 연극 너무 잘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황주철은 썬글라스를 끼고 ‘마이웨이’를 멋들어지게 불렀고(목소리가 극과 잘 맞아떨어
졌던 것 같습니다)2) 그간 했던 연기 중 가장 뛰어난 몰입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마
지막 김지숙을 목 조르는 장면에서는 너무 몰입한 나머지 땀을 뚝뚝 흘리며 손에 너무
3)
힘을 줘 장면 끝나고 켁켁거릴 정도였습니다. 또한 김지혜는 평상시 전혀 여성적이지
않아 연출님의 특명으로 연습때 마다 화장을 하고 여성스럽게 하고 다니는 등의 노력으
로 다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농후한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듬 해 후배들에게 여성
2)
스러움에 대해 지도를 하여 선배들이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실력도 있었지만 네 명 모두 연극만을 위해서 모든 인생을 투자하고자 했던 열정이 완
연히 드러나는 무대였습니다.(그들은 옆에서 보면 마치 연극에 중독된 사람 같았습니
2)
다.)
배우가 부족하고 연기하기도 벅찼던 때 기획을 맡은 문영규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선배님들 및 주변 상가 섭외를 혼자서 다 돌아 당시 부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만 매일 돈 없다며 술집가면 안주 없이 술만 사줘서 당시 술집 사장님께서 불쌍히 여
겨 안주를 주시고, 배우들에게 라면만 먹여 같이 밥을 먹는 연출님께서 김치라도 달라며
3)
울부짖는 등 여러 원성도 샀습니다. 이 작품의 포스터에는 문영규 군(당시 기획)의 심
1)
리 상태가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배우도 적고 모두 고생하며 했던 작품
이지만 특히 당시 부원들을 불쌍히 여겼던 차현민, 김경주 선배 부부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최근 11년 이상 모든 순간 저희와 함께 해주시고 연극반의 무구한
1)2)3)4)5)6)7)
역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점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적은 부원들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매일같이 새벽 3~4시까지 함께
술을 마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쌓을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였습니
3)
다.
488
1999년 ~ 2009년
작품해설(무대감독 황주철)
<인어전설>은 1990년대 초 일본에서 극단 '신주쿠료산바쿠'에서 공연한 작품으
로 1993년에 내한공연을 펼친 적이 있다. 1987년 재일교포 2세 김수진을 대표로
도쿄에서 결성된 극단 '신주쿠료산바쿠'는 일본에서 가장 다이나믹하게 연극활
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극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어전설>은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 대형 텐트를 설치하고 공연하여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489
연극부 신입생들이 대거 입성하며 연극부를 살렸습니다.
힘든 연극부를 누가 들랴 하는 생각에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목마른 사슴이 우
물을 찾듯… 한번만 도와주세요’ 라는 내용의 전단지도 만들었었습니다.(이재민 주민등
록증 복사본도 첨부했었습니다^^)
나중에 신입생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다들 연극에 대한 열망도 강하고 스스로 하고 싶
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
신입부원의 활기찼던 분위기가 생각납니다.
다만 1학년을 제외하고는 배우라고는 황주철 뿐이어서 당시 4학년이었던 김지혜와 더
이상의 연극은 하지 않겠다는 이대근을 기획이었던 민진수가 간신히 무대로 끌어들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연극의 'o'자도 모르는 신입생들과 함께하는 무대라 이대근과
김지혜가 무대 기본을 담당하여 연습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비주얼을 중요하게 보셨
던 연출님이라 복싱장면, 춤추는 장면 등 한 장면 한 장면 만드는데 하루에 몇 시간씩
3)
연습해서 멋진 장면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인어전설은 노래와 춤이 있는 연극이었습니다. 배우 모두가 부르는 떼창도 있었고, 여자
셋이 부르는 코러스도 있었습니다. 금어의 솔로 노래는 모두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단체
로 부르는 떼창 부분은 목소리가 튀거나 음정이 안 맞는 배우들은 하나씩 제외되어 실
4)
제로 노래를 무르는 배우들은 절반 정도였고 탈락된 배우들은 립싱크를 해야 했습니다.
코러스 역할을 맡았던 여자 셋은 우산을 돌리면서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는데, 하필 구
해온 우산이 수동 우산 이었습니다. 안무에는 우산을 접었다 피는 장면도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수동우산을 구해온 기획을 원망하기도 했으나 연습에는 장사가 없다고, 치열한
연습 끝에 본 무대에서는 실수 없이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틀리지 않고 안무를 소화
4)
할 수 있었습니다.
이한얼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역할을 능숙하게 소화했고 맨 무릎으로 땅바닥에 떨어
지는 역할을 하는 통에 봉와직염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공연을 강행하는 투혼을 보여
2)
줬고 공연 끝나고 바로 입원하였습니다. 김경문은 아버지 역할이었는데 느긋하고 느릿
한 특유의 말투를 연출님께서 지적하시며 시연을 보여주셨는데 경문이와 똑같이 연기하
3)
셔서 모두들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권투감독 역할로 출연한 심정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극부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심정
우가 무대에 배우로 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배우 최초로서의 경험을 준 작품입니
다.
심정우의 첫 등장씬에서 부부 싸움 후 부인이 던지는 쟁반 대여섯 개를 한손으로 연속
해서 잡아서 흡사 쇼처럼 보이게 해야 했습니다. 안경을 벗고 무대에 올라야 되어서, 잘
안 보이는 상태에서 해야 했기에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공연 당
시에는 쟁반을 거의 떨어뜨리지 않고 잡아서 탄성을 이끌어냈던 기억이 납니다.
신입생 모두가 처음으로 하는 공연이라 연습 초반에는 실수도 많았지만, 김낙형 연출님
과 여러 선배님들의 혼신어린 지도 덕에 모두들 능숙하게 공연을 서서, 모두가 스스로도
5)
놀랐던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2)
이 공연을 통해 당대 연극부는 신구 조화를 이루고 세대교체를 이루어내게 됩니다.
490
1999년 ~ 2009년
줄거리
491
니다. 아마 이때를 계기로 연극에 더 심취하여 결국은 학생 연출 3번과 명연기로 호평
받는 연극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짱구의 조준형, 교장 선생님의 이민기, 물리 선생님의 이창건, 수학 선생님의 김정유,
지리 선생님의 윤지혜, 역사 선생님의 이유선... 연기 초짜들의 무한도전이 떠오릅니다.
술자리에서도 워크샵 얘기는 잘 나오지 않아서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는데 가끔 술안주
로 꺼내야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땐 이랬지 싶고 그립기도 하고.. 감회가
6)
새롭습니다.
492
1999년 ~ 2009년
493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아울러 처음 등장씬은 객석에서 관객들에게 인터뷰를 하는 모습으
로 시작했었는데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
5)
이외에 다양한 소품과 장치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인형극의 처음 1/3은 연출님의 지도하여 무난하게 진행되었지만 그 뒤는 시간에 쫒기면
서 연출님의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어 배우들이 자력으로 인형극을 꾸며야 했습니다. 그
래도 새로운 경험에 모두들 열심히 하였고, 관객들이 많이 웃어주시고 즐거워 해주셔서
4)
더욱 더 힘내서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첫 정기공연 날, 워크샵과는 비교도 안되는 긴장감에 무대에 제대로 서기도 힘들었지만
관객들의 웃음소리에 점점 목소리와 동작에 힘이 들어갔었습니다. “이 맛에 연극한다”는
닭살돋는 말이 제 입에서도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우리 성의 연극회의 극관에는
많이 어긋난 연극이었지만 첫날 공연 후 선배님들의 응원과 격려는 지금도 정말 감사합
니다. 이번 50주년 기념 공연팀의 엠티에서도 느꼈지만 우리 연극회의 최고 강점은 선배
6)
님의 배려 하에 뭉쳐진 신구의 조화인 것 같습니다.
494
1999년 ~ 2009년
495
06년 성의연극회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었던
마리아 홀이 병원 확장으로 인해서 문을 닫아야만 했고, 따라서 새로운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야만 했습니다. 강남으로 이전한 이후 몇십 년 만에 처음부터 공연장소를 섭외해야 했고,
연습장소도 마땅치 않았으며, 첫 대관 공연으로 인한 예산의 설정 등등 많은 일들을 예전과
는 다르게 알아보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서초 시민 회관, 한전 아트센터 등등
수많은 공연장에서 이미 예약이 다 잡혀있다는 매몰찬 이야기만 듣고 발을 구르고 있을 때
였을 즈음 삼성역 아트센터에서 공연장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이 마련되었
음에도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땅한 연습 장소를 구하기 힘들어 에어컨도,
환풍도 되지 않는 탁한 학교 지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습을 진행하였고, 공연장의 대
관도 3일 정도로 리허설도 겨우겨우 마친 채 공연을 진행하였습니다. 정들었던 마리아홀을
떠나서 하는 첫 공연이었던 만큼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올린 극 ‘사랑을 찾아서’는이렇게
올라갔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과거의 ‘김억만’이 ‘이순례’와의 만남을
현재까지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항상 기억하기를 원했던 이 작품은 첫 대관 공연이라는 이
름을 갖게 되었고 1, 2학년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기에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멋진 마무리
7)
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현직 메이크업아티스트인 신선애가 외부 스탭으로 분장팀에 참여하여, 분장을 도와주고,
분장팀에게 분장의 기본 및 노하우를 차근차근 알려주어 그동안의 분장을 재정립하는 기회
4)
가 되기도 했습니다.
496
1999년 ~ 2009년
497
먼저 작품 선정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우리읍내’는 30주년기념공연을 포
함해 정기공연에만 두 번이나 올렸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목표로 선배님들이 예전에 올렸던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적인 삶, 결혼, 그리
고 죽음이라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는 작품이라 막이 가까워
질수록 아직도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는 것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소극장에서의 무대라 연습이동의 불편함과 대관비가 들고, 관객 수용
의 한계가 있었지만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의 표정과 호흡이 관객과 소통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스트들이 모두 신입생들이라 연극막판까
지 걱정을 많이 했으나 연출님의 연출능력과 기본적으로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의
미가 배우들의 연기를 빛나게 해주었던 연극이었습니다. 예전 선배님들의 작품과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7)
498
1999년 ~ 2009년
CAST STAFF
오시아 - 이루리(간1) 분 장: 임예지(간3),유연지(예2),강민경(간4),
봐이크 - 박창균(본2) 박유미(본2)
올리 - 남 욱(본2) 소 품: 이하늘(간3),신소영(간3),김은희(간4)
세바스 - 김고운(간1) 음 향: 이양현(본1),정규선(간2),임은지(간4)
쏘냐 - 최문경(본1) 의 상: 유지연(간2),정규선(간2),고운정(간3),
앤시아 - 정효선(간1) 계수현(간4)
바니걸 - 박세원(간1) 장 치: 김은재(예2),이동원(본1),김준성(예2)
아크 - 나도현(본1) 조 명: 성주희(간3),이준엽(본2)
마리스 - 도유진(간1) 진 행: 심정우(본4),조준형(본4),김병희(본3),
앤 - 김신영(본1) 양경윤(본3)
선 - 박상민(예2) 홍 보: 김동욱(본4),이창건(본4),양희정(본3)
경찰1 - 김준성(예2) 연기지도: 김경문(본4),황주철(본3),이한얼(본3),
경찰2 - 이동원(본1) 신기원(본3)
신부 - 김은재(예2) 포스터 제작 : 박병훈(본1)
499
인사드립니다. 47회 졸업생 민진수입니다.
민진수
(의・47 회, 내과 전공의 4 년차)
1999 년 2 월 한영고 졸업.
1999 년 3 월 가톨릭의과대학교 입학
1999년 5월 워크샵
소시민의 결혼(작: 브레히트 / 연출: 김동진)
맡은 역은 천방지축의 "아버지".
의예과 1학년 문영규 군과 문동규 군은, 4월의 어느 화창한 오후, 모 실습실에서 실험은 안하
고 그 당시 워크샵 숙제인 "털 뽑기" 등을 하면서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과 같은 실습조였던 저는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은 이번 실험
을 무사히 혼자 마쳐 그들이 편히 워크샵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살신성인의 마음을 가졌
습니다.
그러나 한 구석에서는 연극에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참여하고픈 마음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고,
마침 배우를 하겠다는 한 친구가 빠지는 바람에 제가 그 자리에 대신 설 수가 있었습니다.
1999년 9월 가을정기대공연
세일즈맨의 죽음(작: 아서밀러 / 연출: 문영동)
음향 키잡이.
그 해 여름은 친구와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지만 취소가 되고, 집에서 은
둔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음향 키를 잡게 되었습니다. 동기들의 멋진 연기를 무대 밖에서
바라봐야 할 뿐...
2000년 5월 워크샵
데몬스테스의 재판(연출: 문영규)
맡은 역은 여왕의 "경호원"
의예과 2학년. 신입생 유치가 아주 어려웠던 그 해. 다시 한번 워크샵을 하게 되었습니
다. 이로서 연극은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공연 며칠 전 갑자기 또 명의 여배우가 빠지게
된 상황이 되어 간호학과 2학년 김 모양이 또 한번 워크샵 무대를 서게 되었습니다.
2000년 9월 가을정기대공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윗집 아저씨 역을 맡았으나, 의료파업으로 연극 중단.
500
1999년 ~ 2009년
2001년 5월 워크샵
'....' 제목이 기억이 안 나요 --;;;;
장치짱
의학과 1학년. 워크샵 최고의 장치의 총책임을 맡은 장치짱. 그해 봄은 무지 더웠습니다.
2001년 9월 가을정기대공연
오장군의 발톱(작: 박조열 / 연출: 현미자)
무대감독 & 조교B, 인사장교, 관료B, 동 작전참모, 동 수색중대장
다시 한번 정기공연의 배우로서 무대 위에 섰습니다. 그해 여름 역시 무지 더웠습니다.
2002년 2월 워크샵
파수꾼(작: 이강백/연출: 김지혜)
진행
2002년 9월 가을정기대공연
바다가 보고싶다(작: 스가고에이 / 연출: 장우재)
진행
2003년 9월 가을정기대공연
인어전설(작: 정의신 / 연출: 김낙형)
기획
2004년 5월 워크샵
수업료를 돌려주세요(작: 프린츠 카린시 / 연출: ?)
2004년 9월 가을정기대공연
김치국씨 환장하다(작: 장소현 / 연출: 하일호)
진행
2005년 9월 가을정기대공연
한여름밤의 꿈(작: 세익스피어 / 연출: 차지성)
진행
2006년 2월 가톨릭의과대학교 졸업
2006년 3월 의정부성모병원 / 강남성모병원 인턴
2010년 가톨릭중앙의료원 내과 전공의 4년차
501
나의 성의연극회 활동 [1999~]
문영규 (의·46회)
502
1999년 ~ 2009년
503
인사드립니다. 48회 졸업생 김정유입니다.
김정유 (의・48회)
정신과 전공의 3년차
504
1999년 ~ 2009년
505
연극부를 추억하며
이민기 (의・50회)
도화면 보건지소 공중보건의사
506
1999년 ~ 2009년
507
첫 공연의 추억 [2003년]
심정우 (의・51회)
망운 보건지소 공중보건의사
508
1999년 ~ 2009년
509
2004년과 2005년을 기억하며
이창건 (의・51회)
처인구 보건지소 공중보건의사
2004년
충남, 대전 향우회 신입생 환영식에서 술을 진탕 마신 다음날이었습니다. 추위에 덜덜
떨며 일어난 곳은 으슥한 지하방이었고 전 어제 술자리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주위
를 둘러보니 저 말고도 다른 두 분이 널부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방구석에 서 있는 화이
트보드에는 1호 조준형, 2호 이창건???.....!!.... 막 잠에서 깨신 영규 형과 민기 형이 미소
지으시며 물으셨습니다. “창건아 잘 잤어?” 제 연극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510
1999년 ~ 2009년
511
2005년
우리끼리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그래도 저와 조준형에게는 새로운 얼굴들이 필요했습
니다.
연극반 신입생 유치를 위해 본과 1학년, 예과 2학년, 간호학과 3학년, 거기에 학교로 돌
아오신 주철이형까지 전격적으로 새터에 투입되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의예과 4명, 간호학과 5명. 연극반은 생기가 넘쳤습니다. 연기 지도를 위한 정기 집회가
열렸고 ‘굿닥터’를 대본으로 연습하였습니다. 또 틈만 나면 석민이형이 공보의로 계셨던
영월로 무일푼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석민이형께는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한여름밤의 꿈’
512
1999년 ~ 2009년
가장 반짝이는 순간
이유선 (간・20회)
513
땀방울이 모여 드디어 정말 오를 수 있을까 싶었던 막이 올랐다. 치열했던 여름의 끝에
있었던 공연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인어전설에서 했던 대사 몇
구절이 뇌리를 맴돌고, 그 때 불렀던 노래들을 흥얼거릴 때가 있다.
두 번째 연극은 2004년 봄 워크샵 ‘수업료를 돌려주세요’였다. 나의 배역은 역사 선생
이었는데, 사투리가 입에 붙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수업을 듣는 기간에 연극 연습을 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학기 초 가열차게 끊은 새벽 영어학원은 연극연습 하
느라 피곤하다는 핑계로 결국 거의 가지 못했다. 의상으로 사용하기 위해 몰래 가져갔던
엄마의 구식 정장을 잃어버려서 엄마에게 엄청 혼나기도 하고, 연극 외적으로 가장 파란
만장했던 공연이었다.
① ②
① 인어전설
② 수업료를 돌려주세요
③ 김치국씨 환장하다 ③
514
1999년 ~ 2009년
515
연극 맛보기, 연극 느끼기
김은희 (간・52회)
516
1999년 ~ 2009년
517
소중한 경험
계수현 (간・53회)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