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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성의연극회회상50년
(3 1) 성의연극회회상50년
12 10:33 AM 페이지1
1960 ~ 2010
형틀 뒤에 돼지 비게를 몇 근 사다가 안보이게 매달고는 벌겋게
단 쇠꼬챙이로 지져대면, 살이 타는 소리와 냄새와 더불어 조명
발 받은 붉은 연기가 막 올라가는 가운데 마치 노틀담의 꼽추같
은 험악한 인상으로 분장한 옥졸이 대사 한마디 없이 연기해내는
잔인한 장면은 관객들이 숨죽이며 흐느끼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
뜨리게 만들곤 했습니다.
- 서학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간호대학
차 례
무대 위에서 _ On Stage
공연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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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 1964년
성의연극회의 탄생 - 김광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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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대 연극부를 회상하며 - 최불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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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 참 잘했습니다 - 진성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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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1977년
1978년 ~ 1985년
경운동의 추억 - 신경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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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동의 연극반 - 유경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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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그리고 템페스트 - 황혜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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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례
차 례
1986년 ~ 1991년
1992년 ~ 1998년
1999년 ~ 2009년
3
차 례
김정유입니다 - 김정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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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부를 추억하며 - 이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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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연의 추억(2003년) - 심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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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과 2005년을 기억하며 - 이창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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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반짝이는 순간 - 이유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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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맛보기, 연극 느끼기 - 김은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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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경험 - 계수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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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워크샵의 시작 - 이종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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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워크샵 작품 - 문일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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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차 례
무대 뒤에서 _ Backstage
동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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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와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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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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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서 _ On Campus
홈그라운드 연극반 - 김병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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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을 살았다 - 남 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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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반 - 최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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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반 들어와서 느낀점 - 박병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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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뒤 - 신소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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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극반 이야기 - 이동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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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 맺어진 인연 - 유연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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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 나도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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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경험 - 김은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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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을 붙이지 못했던 연극반 - 신수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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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 정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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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 - 이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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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분위기 - 박세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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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애정 - 김고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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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경험 - 박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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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한 경험 - 이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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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연극부 - 송주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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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졸이던 기억 - 박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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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잡일을 하며 - 김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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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서 _ On Line
졸업생 게시판 이전을 축하하며 - 김광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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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공연과 나 - 이한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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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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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차 례
동문회원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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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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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연극회 회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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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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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발|간|사
최 봉 춘
(의・25회, 성의연극회 동문회장)
이렇게 서로의 시간을 쪼개가며 밤낮으로 이뤄낸 결과,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보
답을 해주었고 이 성원이 우리가 연극을 사랑하고 또 무대에 서게 하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
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례
축|사 축|사
유 남 진
(의・24회, 성의연극회 지도교수)
성의 연극회 오십년
문 일 신
(의・16회, 50주년 예술총감독)
성의 연극회 오십년~!
성의 연극회 오십년~!
그 긴 세월 속에서
그 긴 세월 속에서
숱한 사연들이 층층히 쌓여 가는 동안
숱한 사연들이 층층히 쌓여 가는 동안 성의 연극회 오십년~!
청년이 장년(壯年)되고, 초로(初老), 할배 되도록
청년이 장년(壯年)되고, 초로(初老), 할배 되도록 허술한 무대에
우리 몸과 마음을 서로 연결해주며 성의 연극회 오십년~!
우리 몸과 마음을 서로 연결해주며 서툰 연기지만
우리가 만나고 하나가 된 그 곳. 허술한 무대에
우리가 만나고 하나가 된 그 곳. 그래도‘맨 몸뚱어리의 진실’이라며
서툰 연기지만
우린 맡겨진 역(役)에 정열을 다하여
그래도‘맨 몸뚱어리의 진실’이라며
열연을 했었지요.
우린 맡겨진 역(役)에 정열을 다하여
연극은 절정에서 막이 내리고
열연을 했었지요.
성의 연극회 50년~! 땀에 젖은 몸으로
연극은 절정에서 막이 내리고
이제 장년(壯年)의 큰 나무되어 우뚝 선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뒤로하고 돌아설 때
땀에 젖은 몸으로
저 앞에 한번쯤 멈추어 서서 어김없이 밀려드는 허전한 마음에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뒤로하고 돌아설 때
오랜 내력의 아픈 줄기를 봉은사 코스모스길을 내달렸습니다.
성의 연극회 50년~! 어김없이 밀려드는 허전한 마음에
찬찬히 쓰다듬어 보셨나요?
이제 장년(壯年)의 큰 나무되어 우뚝 선 봉은사 코스모스길을 내달렸습니다.
그 긴 세월 속에서
저 앞에 한번쯤 멈추어 서서
내가 뿌리가 되었는지
오랜 내력의 아픈 줄기를 세월이 서리서리 붙들어놓은
모진 바람의 손자국에 긁힌 줄기인지
찬찬히 쓰다듬어 보셨나요? 그런 것들을.., 더듬으면
어깨가 밟혀 구부러진 가지인지
그 긴 세월 속에서 나름대로 지켜온 허술한 역사에 부끄러울 때도 있고,
그냥 그 아래 딩구는 낙엽인지..,
내가 뿌리가 되었는지 밋밋하게 지나간 세월을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찬찬히 내려다 보셨나요~?
모진 바람의 손자국에 긁힌 줄기인지
그러나, 오랜 세월 굽이진 소나무와
어깨가 밟혀 구부러진 가지인지
갈라지고 떨어져나간 밑둥이의 주목(朱木)이
그냥 그 아래 딩구는 낙엽인지.., 세월이 서리서리 붙들어놓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데..,
찬찬히 내려다 보셨나요~? 그런 것들을.., 더듬으면
나름대로 지켜온 허술한 역사에 부끄러울 때도
아~,성의연극회~!
있고,
백년, 천년, 언제까지나
밋밋하게 지나간 세월을 부끄러워하기도
위대한 역사를
합니다.
찬란히 꽃피워 가기를...
-문나무-
역|대|지|도|교|수
안 치 열(영상의학과)
1960 ~
44년 평양의전 졸업
56년 서울적십자병원 방사선과장
57년 가톨릭의대 방사선과 주임교수
68년 원자력청장
80년 경희대학교 총장
88∼95년 음성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의무원장
문 재 각(인문사회학과) 이 동 호(생화학과)
1970 ~ 1974 1975 ~ 1985
윤 여 웅(인문사회과학) 심 상 인(임상병리학과)
1985 ~ 1988 1989 ~ 1991
윤 여 웅(인문사회과학) 이 종 건(성형외과)
1992 ~ 1997 1998 ~ 2000
이 정 태(정신과) 유 남 진(병리학과)
2001 ~ 2007 2008 ~
역|대|연|극|부|임|원
역|대|연|극|부|임|원
1대 2대
회 장 부 회 장 회 장 부 회 장
김 정 규(의・5) 김 정 숙(간・13) 김 광 평(의・7) 김 정 숙(간・13)
총무 유남진(의・24)
3대 4대
회 장 회 장 부 회 장 부 회 장
김 영 민(의・12) 문 일 신(의・16) 박 경 웅(의・16) 박 영 숙(간・21)
총무 김영훈(의・25) 총무 이종건(의・18)
부총무 유남진(의・24), 김영훈(의・25), 김혜정(간・29)
5대 6대
회 장 부 회 장 회 장 부 회 장
박 경 웅(의・16) 정 순 희(간・25) 이 종 건(의・18) 유 경 애(간・25)
총무 이종건(의・18) 총무 유남진(의・24)
총무임소 문일신(의・16) 무임소 문일신(의・16) 박경웅(의・16)
차례
역|대|동|문|회|임|원
7대
회 장 부 회 장
김 경 수(의・19) 유 경 애(간・25)
총무 김창재(의・28)
8대
회 장 부 회 장 부 회 장
최 창 순(의・22) 유 남 진(의・24) 이 유 배(간・26)
총무 최봉춘(의・25), 김창재(의・28), 김양수(의・34), 차현민(의・39)
총무 황혜순(간・27), 홍은영(간・32), 고은화(간・37), 김귀란(간・41)
감사 이종건(의・18), 김경수(의・19)
9대
회 장 부 회 장 부 회 장
최 봉 춘(의・25) 이 헌 상(의・28) 황 혜 순(간・27)
총무 차현민(의・39)
무대 위에서 _ On Stage
공 연 연 보
회 차 년 도 작 품 작 연 출
1 1960 장남의 권리 T. S. 머레이 나봉한
2 1960 시작과 끝 존 골즈위디 나봉한
3 1960 서학란 이해남 나봉한
4 1961 어느 인간가족 안재성 김정규
5 1961 프레스 룸 잭하우스 주상현
6 1964 아버지 스트린드베리 최진하
7 1968 실수연발 세익스피어 이승규
8 1969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함현진
9 1970 안도라 막스 프리쉬 이승규
10 1971 수업료를 돌려주세요 카인츠 프릿취 이재철 외
11 1971 국물있사옵니다 이근삼 이승규
12 1972 곰 안톤 체홉 문일신
13 1972 노부인의 방문 뒤레마트 이승규
14 1973 강제결혼 몰리에르 문일신
15 1973 십이야 세익스피어 이승규
16 1974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 몰리에르 박창서
17 1974 우리읍내 손톤 와일더 김도훈
18 1975 건강진단 조해일 이종영
19 1975 안티고네 장 아누이 이승규
20 1976 환타스틱스 톰 존슨 이정태
21 1976 해녀 뭍에 오르다 오영진 이정태
22 1977 찰리 브라운 존 고든 신상현
23 1977 4계절의 사나이 로버트 볼트 김재연
24 1978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최창순
25 1978 만리장성 막스 프리쉬 정종화
26 1979 끝없는 아리아 E. St. V. 밀레이 김병욱
27 1979 30일 간의 야유회 이근삼 최창순
28 1980 블랙코미디 피터 쉐퍼 이종승
29 1980 진짜 하운드 경위 톰 스토파드 정상일
30 1981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이강백 김용범
31 1981 시련 아서 밀러 조일도
32 1982 비더만과 방화범 막스 프리쉬 박영학
33 1982 템페스트 세익스피어 정종화
34 1983 토끼와 포수 박조열 유순집
35 1983 아득하면 되리라 오태영 기국서
36 1984 성자의 샘물 존 M. 싱그 최 황
18
공연 연보
공 연 연 보
회 차 년 도 작 품 작 연 출
37 1984 보이체크 G. 뷰흐너 이병훈
38 1985 의사망나니 몰리에르 이천희
39 1985 미시시피씨의 결혼 뒤렌마트 심재찬
40 1986 처녀비행 이만희 구태형
41 1986 아니 이 생명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B. 클라크 기국서
42 1987 작은 사랑의 멜로디 삐달아사, 마켈라모르 정흥준
43 1987 꽃피는 체리 로버트 볼트 김병훈
44 1988 안티고네 장 아누이 이경욱
45 1988 상상병 환자 몰리에르 양정현
46 1989 탑 피터 바이스 김양수
47 1989 정의의 사람들 알베르 까뮈 김영환
48 1990 만선 천승세 김태경
49 1990 우리 읍내 손톤 와일더 정종화
50 1991 메피스토 클라우스 만 송미숙
51 1992 굿닥터 닐 사이먼 윤주희
52 1993 누가 선인장을 삼켰대? 곽태호 곽태호
53 1994 유리 동물원 테네시 윌리엄스 곽태호
54 1995 어떤 인생 휴 레너드 서상원
55 1995 다리위에서 바라본 풍경 아서 밀러 차현민
56 1996 돼지와 오토바이 이만희 박상협
57 1996 Media 에우리피데스 이남희
58 1997 동승 함세덕 김민정
59 1998 마지막 포옹 윌리엄 인지 손보성
60 1998 한여름 밤의 꿈 세익스피어 김중기
61 1999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문영동
62 2001 오장군의 발톱 복조열 현미자
63 2002 바다가 보고싶다 김봉웅 장우재
64 2003 인어전설 정의신 김낙형
65 2004 김치국 씨 환장하다 장소현 하일호
66 2005 한여름밤의 꿈 세익스피어 차지성
67 2006 사랑을 찾아서 김광림 차지성
68 2007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위성신 이한얼
69 2007 우리 읍내 손톤 와일더 송형종
70 2008 밑바닥에서 막심 고르끼 이한얼
71 2009 트랜스 십이야 세익스피어/오동식 각색 이성구
72 2010 닥터 체홉의 인생산책 안톤 체홉 김성노
19
1960년 ~ 1964년
PROGRAMS
제 1 회 장남의 권리 1960년 2월 6일
22
PROGRAMS 1960년 ~ 1964년
23
PROGRAMS
제 2 회 시작과 끝 1960년 5월 6일
1960년 5월 6일 ‘제6회 개교기념일, 신입생환영, 졸업생 국가고시 전원합격 축하제’에서 다시 한번 무대에 올랐다.
24
PROGRAMS 1960년 ~ 1964년
25
PROGRAMS
제 3 회 서학란 1960년 7월 28일
26
PROGRAMSPROGRAMS 1960년 ~ 1964년
27
PROGRAMS
제 3 회 서학란 1960년 7월 28일
28
PROGRAMS 1960년 ~ 1964년
29
PROGRAMS
제 5 회 프레스 룸 1961년 11월 1일
30
PROGRAMSPROGRAMS 1960년 ~ 1964년
31
PROGRAMS
제 5 회 프레스 룸 1961년 11월 1일
32
1960년 ~ 1964년
1960년 2월 6일, 1회 졸업생 배출을 축하하기 위해 김정규, 김광평 동문이 주축이 되어 올린 T.S. 머레이 원작 ‘장남의 권리’가 성의
연극회 최초의 연극이다. 같은 해 4월, ‘제1회 전국의과대학 합동 예술제’에 단막극 ‘시작과 끝’을 공연하고, 1회 졸업생 전원 국시
합격을 축하하고 신입생 환영을 위하여 가톨릭 문화관에서 재공연을 하게 된다. 7월에 올린 ‘서학란’은 캐스트만 20여 명이 등장하
는 대작으로, 연극부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듬해인 1961년 KBS 주최 ‘전국 대학 방송극 경연대회’에 참가하
여 ‘어느 인간 가족’으로 작품상을 받았으며, 그해 11월, 김광평 동문이 번역한 한국 초연의 ‘프레스 룸’을 명동 성모병원 낙성 축하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2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개교 10주년이 되던 1964년, 역시 김광평 동문이 번역한 ‘아버지’를 국내 초연으로
당시 최고의 공연장 ‘드라마센터’에서 올리게 된다.
성의연극회의 탄생
김광평 (의·7회)
CMC 최초의 연극
[1회] '장남의 권리' - T.S. 머레이 작 , 나봉한 연출, 1960년
때 : 1960년 2월 6일(토) 하오 2시, 6시
곳 : 본교 강당 ( 명동 가톨릭 문화관 )
주 최 : 가톨릭의대 학도호국단
후 원 : 교수회. 성의월보사
캐스트 : 밧트 모리시 (아버지)-김광평(7회), 모-라 (어머니)-민정원(숙대 약대), 휴 모리시 (큰아들)-박영수(5회), 쎈 모리시
캐스트 : (작은 아들)-김정규(5회), 단 헤가티 (이웃사람)-오인동(8회)
장남의 권리
왼쪽부터 오인동, 김광평, 김정규 동문과,
바닥에 누워있는 박영수 동문, 여역은 숙대
약대 재학생 민정원
33
이 소식을 학생회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당시 예과 2학년이었던 김정규 선배가 연극부
를새로 만들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연극 활동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하다가
예과 1학년인 고핀과 만나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연극부를 조직했어요.
나운규(羅雲奎) 씨 아들 나봉한(羅奉漢) 씨
“그 사람은 사극만 하는 감독인가”하는 소리를 듣는 젊은 감독이 있다. 나
봉한 씨(36)
한국 영화계의 귀재 고 나운규 씨의 아들이다. “선친 얘기로 결부시키는 것
은 싫습니다. 저의 영화와는 별개 문제이니까” 철저한 ‘독립’을 주장한다.
그러나 영화계에선 나운규 씨의 아들, ‘이대’ 감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처음엔 연극에 뜻을 뒀죠” 그래서 서라벌예대에 들어갔다. “너도 아버지
같이 고생하고 싶으냐”는 백부의 맹렬한 반대를 설득하고, 친구인 임원식
감독의 권유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와 같이 만든 첫 영화가
‘청일 전쟁과 민비’. 그리고는 ‘청산별곡’,‘꽃가마’,‘화촉신방’, ‘문정왕후’,지
금은‘인조반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사극만 만들어서 그런지 사극
전문으로 알려진 것이 좀 불만이라 한다. “사극도 시대의 증언이 되는 방향
으로 하고 싶은데, 제작자의 흥행성 때문에 뜻이 굽혀지는 것이 한스럽다”
고도 말한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현대 애정물. 젊은이의 공통된 고민
을 파헤쳐보고 싶은 의욕이 있다.
34
1960년 ~ 1964년
명동 가톨릭 문화관
1939년 2월 11일 축성식을 거행한 문화관은 한국 교회의
상징인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의연극회 1회 공연인 ‘장남의 권리’를 위시해서 수많은
문화행사가 열렸고, 특히 명동 성모병원으로 실습을 나가
는 의대 본과 3, 4학년들의 교실로도 사용되었다. 현재는
문화관 2층에 문화예술공간인 ‘꼬스트홀’이 문을 열어 476
석 규모의 클래식 음악 전용 연주홀로 사용되고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2회] '시작과 끝' - 존 골즈위디 작 , 나봉한 연출, 1960년
때 : 4293년 (1960년) 4월 17일 오후 2시
곳 : 숙명여자대학교 대강당
캐스트 : 키스 다란트 (엘리트 고등 변호사)-김정규(5회), 라리 다란트 (술주정꾼 깡패 동생)-김광평(7회), 완 더 (동생 라리의
캐스트 : 애인)-장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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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맡겼는데 알고 보니 3류 날라리여서 연극을 망칠 것 같아, 다시 나봉한 선생님에게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예술제 개최 장소였던 숙명여대 대강당에서 4월에 1차 공연하고 난 얼마 후인 5월에, 학
교 구내 가톨릭 문화관에서도 다시 공연을 하였지요.
그 때는 1회 졸업생이 전원 의사국가고시에 합격된 것을 축하하고 신입생을 환영하는
행사를 제6회 개교기념일에 했는데, 이때도 명동의 성모병원 식구들과 주교관 및 수녀원
에서도 와서 구경을 했습니다.
작품은 19세기 말 영국을 무대로 상류사회 일각의 비리와 부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형
제간의 갈등을 비판적으로 바라 본 사회극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정규 선배가 엘
리트 고등변호사인 형 역으로 나오고, 고핀이 술주정꾼이며 늘 말썽만 부리며 형을 몰락
의 길로 인도하는 깡패 동생 역을 맡았었지요. 여역은 동생의 애인이구요.
자세한 작품 줄거리는 기억이 안 나지만 캐스트가 적어서 연습기간 내내 단출하면서도
아주 재미있었지요.
① ②
시작과 끝
36
1960년 ~ 1964년
연극부의 기초를 다진 대작
[3회] '서학란' - 이해남 작 , 나봉한 연출, 1960년
공연 일시 : 1960년 7월 28일
공연 장소 : 원 각 사
원 작 : 이 해 남
연 출 : 나 봉 한
조 연 출 : 최영한, 안재성(5회)
무 대 감 독 : 문원걸(5회)
음 악 효 과 : 유연덕(5회), 이상철(5회)
캐 스 트 :
김안드레아-김정규(5회), 현회장-김광평(7회), 판관-박영수(5회), 김여상-왕규선(1회), 이재학(6회), 김 방지거-진성만, 최베드
로-김왕기(7회), 이 도마-박성호(9회), 영국사관-안재성(5회), 중국 관헌-한상억(5회), 임성룡-박장원(6회), 염수-이학구(5회),
교우 A-최은철(10회), 교우 B-김인정, 포졸 갑-김익명(7회), 포졸 을-박태수(6회, 작고), 왕 요셉-이상철(5회), 야고보-손충성
(7회), 옥졸-최영한 (특별찬조출연)
그러나 캐스트가 문제였습니다. 최소한 18명 이상의 연기자가 필요한 연극인데 연극무대에
서 본 경험은 커녕 연극구경조차 한 일이 없는 의대생들이 태반인 가운데 의예과 1학년과 2
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다 소화하려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한 학년이 겨우 60명 전후였던 당시 사정에 비추어 본다면 의예과 학생 중 정말 많은 인원
이 캐스트와 스탭으로 동참하였던 거지요.
그해 1회로 졸업을 한 왕규선 선배가 뒤늦게 캐스트로 같이 참여하였고 오원섭 선배도 아낌
37
없는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원각사
6·25 전쟁 이후 영화나 여성국극이 인기를 끌면서 대부분의 사설극장
들이 관중을 끌어 모았기 때문에, 연극은 명맥 유지조차 어려웠다.
1958년 12월 을지로 입구에 소극장 원각사가 개관되었고, 본격적인 소
극장 원각사가 생기면서 침체해 있던 공연예술계가 생기를 찾아 극단
들도 몇 개 더 조직되었다. 원각사는 시설도 비교적 좋았고 내부나 극
장 문이 정취가 풍기도록 꾸며져 있었는데, 불행히도 1960년 12월에
불이 나서 전소되었다.
38
1960년 ~ 1964년
① ② ③
④ ⑤
⑥ ⑦
서 학 란
① 그 더운 여름날 한 겨울 의상을 입고 땀 좀 흘렸다. 김 신부를 만난 두 사람이 눈물
을 흘리며 반가워하고 있다. 좌로부터 김광평, 김정규, 김왕기 동문,
② 국경으로 드나들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중국에서 신부 서품을 받은 김 신부를 모셔오
기 위해 고깃배로 위장하고 출발할 준비를 하는 교우들, 좌로부터 김인정, 최은철, 김
광평 동문
③ 서해를 건너 상해에 도착한 현 회장 일행이 중국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김 신부를
고국으로 모셔가게 된다. 김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교우들
④ 상해 항구에 배를 준비하고 김대건 신부를 맞는 교우들, 좌로부터 김 신부 역의 김정
고, 현 회장 역의 김광평, 이 도마 역의 박성호
⑤ 김 신부로부터 중국 교우들이 전하는 선물을 받는 현 회장과 그 일행, 좌로부터 김정
규, 박성호, 김광평, 최은철 동문
⑥ 김대건 신부가 영국 사관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영국 사관역은 당시 키가 제일 컸던
안재성 동문이 맡았는데, 분장을 하고보니 외국사람 모습 그대로여서 단역이었지만
큰 인기를 모았다.
⑦ 클라이막스가 되는 김대건 신부 재판 장면, 무대 우측 대청마루에 판관이 앉아 천주
를 거부하도록 강요하였으나, 김 신부가 의연하게 대응하자 화가 치밀어 고문을 명하
고 있다. 무대 뒤쪽 중앙에서 형틀을 준비하는 꼽추 옥졸(최불암 분)의 모습이 보인다.
⑧ 참혹한 고문 끝에 사형 언도가 내려지고 형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남은 교우들을 위
로하며 기도하는 김 신부의 마지막 모습, 김정규 동문 양 옆으로 포졸 갑, 을 역의
박태수, 김익명 동문, 뒤로 손이 묶인 현 회장 역의 김광평 동문과 교우들이 다같이
⑧ 울부짖으며 슬퍼할 때, 관객들도 같이 울었다고 한다.
39
천주를 부정할 것을 강요하는 판관의 지시에 의하여 불꽃이 이글거리는 청동화로에
달군 시뻘건 쇠꼬챙이로 김 신부의 등에 무자비하게 담금질을 해대는 시츄에이션이지요.
실제로 매 공연 때마다 무대 위에 대형 숯불 화로를 들여다 놓은 후 쇠꼬챙이 몇 개를 꽂
아 놓고 달구곤 했고 연기자들은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가운데 정말 더워서 곤욕을 치르곤
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손을 뒤로 묶인 고핀은 땀 때문에 턱에 단 수염이 떨어지려는 위기를 맞곤
했는데, 그 엄숙한 장면에서 수염이 떨어지는 것은 극 진행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커다란
사건이 될 수 있었기에 늘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진작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의대생 중에 그 옥졸 역을 실감나게 연기할만한 인물
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습 중 여러 번의 역 교체 끝에 결국 막이 오르기 전날 연
출 선생님이 조연출인 최불암씨를 붙들고 "어쩌겠나... 자네가 하게."하면서 사정을 하였
지요.
40
1960년 ~ 1964년
최 불 암
몇해 전 마카오에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아내가 “아마 여기에 김대건 신부님
유골의 일부 조각이 모셔져 있을 거예요.”라 해서 “내가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서 잘 알지”라고 얘
기했더니 아내가 “아니 어떻게 알아요?”하며 깜짝 놀라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성인 김대건 신부
님 순교(殉敎)의 족적(足跡)을 알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연극 ‘서학란’ 때문이니, 가톨릭의대 연극부
와 함께 한 그 인연이 저에게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만났던 연극부 친구들 얼굴도 떠오릅니다.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갸름한 외모에 얌전했던
김정규, 남자다웠던 김광평..., 그네들의 얼굴이 스쳐지나 갑니다. 가끔 성모병원을 가게 되면 ‘혹
시 저 의사가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고, 담당 의사에게 “가톨릭의대 연극부 아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장에서 가톨릭의대 연극부 출신이라
며 인사를 하는 문일신 선생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갑고 기뻤었지요. 안부를 묻고 또 묻고, 여
러분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1958년 서라벌 예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배우가 되려는 생각은 없
었고, 연출 공부를 하려고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연기는 미남, 미녀들이 하는 건데, 저는 잘 생기
지 못해서 배우가 될 조건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나 이 일을 좋아했기에 연출을 하려고 했습니다.
노역(老役)은 ‘서학란’을 연출하신 나봉한 선배님 덕에 하게 되었습니다. 나봉한 선배께서 연출을,
41
제가 조연출을 하며 여러 작품을 만들었는데, 할아버지 역할이 나오면 나봉한 선배께서 ‘네가 나
가서 하는 게 낫지 않느냐’하셨고, 그러면 저는 연출 겸 배우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42
1960년 ~ 1964년
공연을 마친 후에도 아쉬운 마음에 연극부 친구들을 좀 만났던가 싶습니다. 김정규, 김광평 선
생과도 몇 년 동안은 관계를 가졌던 것 같은데... 그 당시 김정규 선생을 좋아했었습니다. 나이도
비슷했고 얌전하면서도 속이 깊은 분으로 기억합니다.
2010년 7월 한 여름.
서재에서... 최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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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을 받은 라디오 방송극
[4회] '어느 인간가족' - 안재성 작 , 김정규 연출, 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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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 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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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 참 잘했습니다.
- 5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에서
진 성 만
제가 며칠 전 낯선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성의연극회 50주년 기념 모임이 있는데 참석해달라..”
제게는 전혀 생소한 얘기라 전화를 잘 못 걸지 않았나 싶었는데, 전화를 건 채진호 원장
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고 영광스런 초대에 가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 다음에 본과 1학년 재학생 회장이 전화를 해서 다시 한번 초청을 한다는 말씀을 듣고 쾌
히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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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 1964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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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성모병원 낙성 축하, 한국 초연의 연극
[5회] '프레스 룸' - 잭하우스 원작, 주상현 연출, 1961년
공연일시 : 1961년 11월 1일
공연장소 : 시공관
주 최 : 가톨릭의과대학 학생회
원 작 : 잭 하우스 (Jack House ) 번 역 : 김광평
연 출 : 주상현, 박신호
진 행 : 주수동(본3, 4회, 작고) 무대감독 : 박영수(본2, 5회)
장 치 : 안재성(본2, 5회) 의 상 : 유연덕(본2, 5회)
소 도 구 : 문원걸(본2, 5회) 조 명 : 장영대
효 과 : 홍두표
캐 스 트 :
찜 왈린(기자)-김익명(예2, 7회), 엘 시(레스토랑 여급)-홍정자(간2), 얀 블래싱톤(기자)-김광평(예2, 7회), 도날드 바톤(기자)-김정규
(본2, 5회), 미스 모리스(여기자)-오정옥(간1), 비트 막실리안(기자)-진성만(예2), 윌리 화이트(기자)-최은철(예2, 10회), 기절한 부인-
김혜숙( KBS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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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 1964년
② ③
49
개교 10주년 기념, 한국 초연, 드라마센터를 넘쳐나게 하다.
[6회] '아버지' - 스트린드베르히 원작 , 최진하 연출, 1964년
공연일시 : 1964년 10월
공연장소 : 드라마 센터
주 최 : 가톨릭의과대학 학생회
원 작 : A. 스트린드베르히 (August Strindberg)
번 역 : 김광평
연 출 : 최진하
무대장치 : 함현진
그외스탭 : 윤준모, 하영수, 김정상, 전후근, 조재항 등
캐 스 트 :
아돌프 (기병대위) - 김광평 (본3, 7회), 라우라 (아돌프의 처) - 서정자 (간3, 작고), 닥터 외스테르마크 - 김익명 (본3, 7회),
목사 (아돌프의 처남) - 이수웅 (본1, 10회), 마가렛 (아돌프의 유모) - 한상림 (간2), 베르타 (아돌프의 딸) - 송복자 (간4),
네드 (기병대 하사관) - 성태경 (예1, 11회), 당번병 (기병대 사병) - 이 황 (예1, 작고)
아버지 연습대본
50
1960년 ~ 1964년
51
①
드라마센터
김중업의 설계로 1960년에 착공, 1962년에 완공된 소극장. 창설자
유치진이 록펠러재단의 원조를 받고 건축한 총건평 700여 평, 객석
500석의 소극장으로 100여 평의 주무대와 30평의 원형무대, 뒷 무
대, 옆 무대와 도서관, 연극학교 교실, 작가실, 의상실, 분장실, 욕
실 등을 규모 있게 갖춘 최신식 극장이었다. 그러나 재정문제에 부
닥쳐 휴관과 개관을 거듭하다가 1980년 후반 서울예술대학의 실습
무대로 변용되는 등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2009년 6월 8일 서울시
에서 이곳을 리모델링하여 현대적인 예술 공간인 남산예술센터를
조성하게 되었다.
아버지
③ ④
52
1960년 ~ 1964년
연극발표회
가톨릭의대에서는 창립10주년 기념 연극발표회와 음
악회를 다음과 같이 연다.
연극 발표회 = 30일과 10월 1일 하오 3시와 7시, ‘드
라마센터’에서, ‘스트린드베리’ 원작 김광평 역 ‘아버
지’ 전3막 상연, 연출 최진하
음악회 = 10월 2일 하오 3시와 7시 ‘드라마센터’에서
(동아일보 1964년 9월 29일)
53
마침내 각자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적대적인 위치가 되고 서로의
증오심이 자라면서 비극의 씨앗이 잉태된다.
54
1960년 ~ 1964년
55
②
① ③
④ ⑤
아버지
56
1968년 ~ 1977년
PROGRAMS
제 8 회 안네의 일기 1969년 11월 13일, 14일
58
PROGRAMS 차례
59
PROGRAMS
제 8 회 안네의 일기 1969년 11월 13일, 14일
60
PROGRAMS 차례
61
PREFACE
PROGRAMS
축|시
제 9 회 안도라 1970년 10월 1, 2, 3일
62
PROGRAMS 차례
63
PROGRAMS
제 9 회 안도라 1970년 10월 1, 2, 3일
64
PREFACE PROGRAMS 차례
65
PROGRAMS
제 11회 국물 있사옵니다. 1971년 9월 23, 24, 25일
66
PROGRAMS 차례
67
PROGRAMS
제11회
제 11회국물국물 있사옵니다.
있사옵니다. 1981년
1971년 9월 23, 24, 9월
25일 23, 24, 25일
68
PROGRAMS 차례
69
PREFACE
PROGRAMS
축|시
제 12회 곰 1972년 봄
70
PROGRAMS 차례
71
PROGRAMS
제 13회 노부인의 방문 1972년 9월 28, 29, 30일
72
PROGRAMS 차례
73
PROGRAMSPROGRAMS
제 13회
제 13회 노부인의 노부인의
방문 1972년방문 1972년
9월 28, 29, 30일9월 28, 29, 30일
74
PROGRAMS 차례
75
PROGRAMS
제 13회 노부인의 방문 1972년 9월 28, 29, 30일
76
PROGRAMS 차례
77
PROGRAMS
제 15회 십이야 1973년 9월 27일, 28일, 29일
78
PROGRAMS 차례
79
PROGRAMS
제 15회 십이야 1973년 9월 27일, 28일, 29일
80
PROGRAMS 차례
81
PROGRAMS
제 15회 십이야 1973년 9월 27일, 28일, 29일
82
PROGRAMS 차례
83
PROGRAMS
제 16회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 1974년 3월 30일
84
PROGRAMS 차례
85
PROGRAMS
제 17회 우리읍내 1974년 9월 26, 27, 28일
86
PROGRAMS 차례
87
PROGRAMS
제 17회 우리읍내 1974년 9월 26, 27, 28일
88
PROGRAMS 차례
89
PROGRAMS
제 17회 우리읍내 1974년 9월 26, 27, 28일
90
PROGRAMS 차례
91
PREFACE
PROGRAMS
축|시
제 18회 건강진단 1975년 봄
92
PROGRAMS 차례
93
PROGRAMS
제 19회 안티고네 1975년 9월 25, 26, 27일
94
PROGRAMS 차례
95
PREFACE
PROGRAMS
축|시
제 20회 환타스틱스 1976년 3월 27일
96
PROGRAMS 차례
97
PROGRAMS
제 21회 해녀 뭍에 오르다 1976년 9월 27, 28, 29일
98
PROGRAMS 차례
99
PROGRAMS
제 21회 해녀 뭍에 오르다 1976년 9월 27, 28, 29일
100
PROGRAMS 차례
101
PROGRAMS
제 22회 찰리 브라운 1977년 3월 24일, 25일
102
PROGRAMS 차례
103
PROGRAMS
제 23회 사계절의 사나이 1977년 9월 15, 16, 17일
104
PROGRAMS 차례
105
PROGRAMS
제 23회 사계절의 사나이 1977년 9월 15, 16, 17일
106
PROGRAMS 차례
107
1964년 ‘아버지’ 공연 이후 4년 간의 공백기가 있었으나, 경운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한 1968년, 당시 학생회 회장 성태경 동문이 연극의
부활을 주도하여 ‘실수 연발’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이후 매년 정기공연을 갖게 되었다. 이때 연출을 맡은 이승규 씨는 이후 1975년
‘안티고네’ 공연까지 8년 동안 가을 정기공연의 연출을 맡아서, 계속적으로 본교 연극부를 지도하며 성의연극회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1968년 ‘실수연발’과 1969년 ‘안네의 일기’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하였으나, 1970년 'CAMEAD' 축제 기간 중 공연된 ‘안도라’부
터 외부 공연의 대관료 비용으로 조명기구를 구입, 경운동 강당에 설치하여 사용함으로서, 이후부터 교내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1971년부터 ‘신입생 환영 봄공연’과 ‘가을 정기대공연’으로, 년 2회 공연이 정착되었고, 1972년 ‘곰’을 문일신 동문이 연출함으로써 학
생 연출의 시작을 알렸다.
1974년 이종건 동문이 연극부장을 맡으면서 MT 등, 연극 외의 행사를 통해 동아리의 형태를 갖추며 결속을 다지게 되었다. 또한 1973
년부터는 정기 공연 이외에도, 연극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workshop 공연이 시작되었다.
1976년 봄, 첫 뮤지컬 ‘환타스틱스’를 무대에 올리고 이듬해인 1977년에도 뮤지컬 ‘찰리 브라운’을 공연하였다.
(박창서 ・ 의18회)
108
1968년 ~ 1977년
(문일신 ・ 의16회)
실수연발
109
‘안네의 일기’에서 ‘강제결혼’까지
문일신(의・16회)
110
1968년 ~ 1977년
111
다고 선언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안네의 일기
안네의 일기
112
1968년 ~ 1977년
113
상태로 이어지는 보성고 출신들이 연극부의 강세를 이루게 됩니다.
“연극의 표현 매체는 언어가 아니고 공간입니다. 우리 연극이 언어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큰 발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 조명, 배우의 몸뚱이,
무대장치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언어도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동안의 자신의 연극관의 변화를 이렇게 간추렸다.
어쨌거나 그의 무르익은 예술 세계가 국립극단과 어떻게 맞아 떨어지고 국립극단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연극계의 기대는 자못 크다.
114
1968년 ~ 1977년
경운동 시대의 개막
[9회] '안도라' - 막스 프리쉬 작 , 이승규 연출,
1970년 10월 1일 ~ 3일 (오후 3시, 7시 4회 공연), 경운동 강당
Staff :
연출: 이승규 / 기획: 이광우(본2) / 지도교수: 문재각 / 효과: 김벌레, 최보문 / 장치: 최연호 / 조명: 김덕수, 김은중
/ 분장: 장윤오 / 소도구: 이희숙, 조옥선 / 의상: 박경임, 성말임 / 편집: 이재철 / 진행: 현유진
Cast :
안드리; 윤기헌 / 바르쁠린; 정경희 / 교사; 문일신 / 어머니; 최낭희 / 부인; 유명순 / 신부; 박창서 / 군인; 김남철 /
주인; 박경웅 / 목수; 김명덕 / 의사; 한종석 / 견습생; 고익준 / 낯선자; 이광우 / 천치; 채세용 / 검은제복 군인들;
권혁준, 유혜승. 김용운, 최희수, 이종건 / 유태인 검열관; 권오경
115
'71년 연극부장을 맡으며 봄, 가을 년 2회 공연을 시도하다~
116
1968년 ~ 1977년
연출 없는 연극, 첫 봄 공연
[10회] '수업료를 돌려주세요' - 카인츠 프릿취 작 , 이재철 외 연출,
1971년 봄 연출: 이재철 외 다수 / 기획; 문일신 / 71년 신입생환영회 / 경운동강당
Cast :
문일신, 박경웅, 김남철, 김은중, 박창서, 박경애 외 다수
117
캐스트로 서려면 건강 진단서를 떼어 와라!
[11회] '국물 있사옵니다' - 이근삼 작 , 이승규 연출, 1971년 가을
1971년 9월 23일(목), 24일(금), 25일(토) 평일 오후 7시, 토요일 오후 3시, 7시,
경운동강당
Staff :
연출; 이승규 / 기획; 김남철 / 조연출; 박창서 / 무대감독; 박경웅 / 효과; 김벌레, 김강회, 노영숙 / 장치; 김해랑,
이장정 / 조명; 권오경, 방진성, 김헌지 / 분장; 김동욱, 고익준 / 소도구; 이종건, 이용배 / 의상; 이래은, 김경숙 /
프로그램; 김은중 / 진행; 윤기헌
Cast :
김상범; 문일신 / 김상학; 민풍기 / 김상출; 김은중 / 사장; 박창서 / 배영민; 박경웅 / 성아미; 유명순 / 태크; 김남철
/ 현소희; 김영수 / 관리인; 하명진 / 박용자; 김영숙 / 문여사; 박명애
118
1968년 ~ 1977년
근삼작 ‘국물있사옵니다’입니다.
물론 교육적 가치만을 고려하고 예술적인 면을 무시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도의 예술적가치의 뒷받침이 있어야
교육적 가치를 충분히 발휘 할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중략) 이번 공연이 이런 여러 가지 요구조건을 얼마
나 충족시킬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예민한 예술적 감각과 예리한 판단력으로 “gap”을 메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119
학생 연출의 시작
[12회] 1972년 '곰' - 안톤 체홉 작 , 문일신 연출, 1972년 봄
Staff:
연출; 문일신 / 기획; 박경웅 / 장치; 김은중 / 분장; 유명순, 조인옥 / 효과; 김강회, 문세호 / 조명; 방진성/ 소도
구; 김영택, 김영수 / 진행; 정진범, 한종석
Cast:
포포브(여지주); 이문영 / 스미르노프(지주); 하명진 / 루카(포포브 하인); 이종건
작품 선정의 기준으로 '단막극'이며 '희극'인 작품을 찾다가 '안톤 체홉'의 단막극 선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창립 50주년 기념공연에 ‘안톤 체홉’의 작품이 선정되어 공연을 하
니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120
1968년 ~ 1977년
연극부 3인방
봉 은 사
1971, 72년도는 가을 공연이 끝나면 뭔가 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서로 헤어지지 못하고 한동안 이렇게 뭉쳐 다녔다.
주 단골코스는 뚝섬 지나서 있는 ‘봉은사’였다. 이 주변이 지금이야 화려한 도심지로 변모했지만, 다들 강북에 살고 있었기에 뚝섬
에 모여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배에서 내려 봉은사까지 가는 길엔 밭과 과수원이 있었고, 배밭 사이
사이 오솔길을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갔다. 눈이 시리도록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길가와 절 안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코스모스
꽃밭은 내 평생에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공연’이라는 격전을 치루어낸 용사들처럼, 가을의 따사로운 태양 아래서 모처럼의 한가함과 여유로움을 즐지며
‘어떤 성취감을 만끽하곤 했다.
좌측사진: 좌측 뒤줄부터 문일신, 박명애, 하명진, 박경웅, 김영수, 박창서, 김은중, 김남철, 앞줄에 민풍기, 김영숙
우측사진: 다정한 포즈의 고익준(항상 돋보이는 의상을 입는 멋쟁이였다)과 이종건
121
분장의 유명순은 그해 가을 공연 '노부인의 방문'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 깊은 연기
를 보여준 명배우입니다. 현재 미국 이민을 갔으며 저와 2~3차례 전화 통화로 안부를 전
해준 고마운 후배입니다.
효과의 김강회(17회)는 공부와 문학, 다방면에 천재성을 발휘한 능력 있는 동문입니다.
서울대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거쳐, 강릉 의료원장으로 오래 재직 중으로 온화한
성품으로 연극부의 친화력을 키워준 사람입니다.
문세호(18회, 본교 통증의학과 교수)는 보성고등학교 인맥으로 연극부에 들어와 cast와
staff을 섭렵하였고, 현재는 연극부와 좀 소원해졌지만, 연락하면 언제든지 달려 올 겁니다.
조명의 방진성(17회, 비뇨기과 제주도)은 저의 바로 다음으로 연극부장을 역임하였고 이
종건 동문에게 연극부를 바톤 터치하여 연극부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제주도로 개업하여 좀 소원해졌습니다.
봉 은 사
좌로부터 : 문일신, 박경웅, 김남철, 넘어지려는 자 김은중, 가운데 이
종건, 고익준, 김강회, 김창규, 박창서, 뒷줄에 미국에 있는 김진배가
보인다.
소백산 희방사
앞줄 좌로부터
장윤오, 최낭희, 조인옥, 문재각 지도교수님, 이종영, 문일신
가운데줄 좌로부터
김영숙, 김은중, 이종건, 유영출,
뒷줄 좌로부터
하명진, 윤기헌, 조용찬, 박영하, 이한식, 김순신
122
1968년 ~ 1977년
‘72년 가을 대공연 연출은 이승규로 무난히 결정이 되었고, 이승규 연출은 독일 전후 쌍벽을 이룬 희곡작
가로 '막스 프리쉬' 와 '뒤렌마트'를 꼽는데, 이미 '안도라'를 통하여 ‘막스 프리쉬’는 접하였기에, 여러모로 대
조적인 작품세계를 갖은 뒤렌마트'의 작품을 택하자고 하셨습니다. 노부인 역의 간2 유명순(현 재미)의 카리
스마 넘치는 연기가 눈에 선하고, 한국 최고의 무대 장치가이신 ‘마이더스의 손’ 최연호 선생님(작고)이 해주
신 멋진 아이디어의 장치는 초라한 경운동 강당 무대에서 독일의 도시 ‘귈렌’의 역, 시청, 경찰서, 마을 등
다양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빠른 무대 전환에도 잘 적응해 공연의 성공에 대단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좌측 끝부터
문세호(18회, 성모병원 마취과 교수), 박창서(18회, 개업, 목사), 이종
건(18회, 성형외과 개업), 민풍기(18회, ENT개업), 김순신(간호대 20
회, 미국이민), 문일신(16회, 소아과 개업), 유명순(간호대 18회, 미국
이민), 박경웅(16회, 통증의학과 개업), 김남철(16회, 미국 이민), 김기
태(19회 본교 방사선과 교수)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물질의 강한 힘에 끝내 굴복 당하고 마는, 약한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친 작
품 이었습니다.
그 때 '이승규' 연출께서 <bare stage의 맨몸의 진실>이란 '성의연극회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말씀을 남기
셨고.., 그런 bare stage에 한국 무대장치의 거장이신 고 '최연호' 선생님께서 멋진 '장치'를 만들어 주셨지요.
2005년 극단 김금지 4회 정기공연 "노부인의 방문"을 김광평 선배님 외에 동문들 7~8명이 사이버 번개팅으
로 가서 관람하며 추억하기도 했었습니다.
123
노병은 죽지 않고...
[14회] '강제결혼' - 물리에르 작 , 문일신 연출, 1973년 봄
연출 : 문일신
Cast :
스가나렐; 이종건 / 알깡또오르; 문세호 / 제로니모; 김진배 / 리까스르; 방진성 / 도리메에느; 홍지희 / 말휘리우스;
김경미 / 알시닷; 이한식 / 사동; 이문영 / 빵끄라스;김경수 / 집시여자; 김혜옥, 유영출, 이종영
124
1968년 ~ 1977년
연극은 인생 그 자체
박창서(의・18 회)
125
수 없었을 것이다. 벌떡 일어나 나가서 경례를 하고 "안녕하십니까? 여기 계시네요?" 아마 이
랬을거다. "어!? 너 여기 웬일이니?" "나이가 많다고 여차저차 군에 징집됐습니다."하여 정밀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는데, 때맞춰 'Osgood- Schlatter's Disease'가 심해서 무릎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하여 귀향 조치를 받고 되돌아왔는데, 학교에는 복학이 안 되고, 그 때 가발 쓰고 다
니던 기억이 난다.
126
1968년 ~ 1977년
127
그리고 십이야...
[15회] '십이야' - 셰익스피어 작 , 이승규 연출, 1973년 가을
128
1968년 ~ 1977년
129
[18회] '건강진단' - 조해일 작, 이종영 연출, 1975년 봄
첫 만남
최창순 (의·22회)
1975년 입학...
순전히 자의적으로(본능적으로?) 방과 후 들러본 경운동 강당에는 신입생 환영공연인
‘건강진단’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는데, 의아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 제일 자
그마하고 목소리 작은 여자(본2. 이종영 선배/재미)가 연출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남여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캐스트들의 연기도 연기려니와 모두
개성이 넘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130
1968년 ~ 1977년
의대 졸업 못 하면 가교에서 받아주세요!
[19회] '안티고네' - 장 아누이 작, 이승규 연출, 1975년 가을
131
제가 75년도에 입학했을 때, 선배님들로부터 들
었던 기분 좋은 얘기는, 그 당시 3대 대학 연극
부로 희극에는 서강대, 실험극에는 숭실대, 그리
고 고전극으로는 우리 가톨릭의대 연극부라는 얘
기를 들었고, 나름대로 자부심이 대단했었습니다.
연극부에 이제 첫발을 디뎠는데, 가을 정기 대공
연에 경비병 2역을 하게 되었으니! 그 당시 경운
동 강당에서 대공연에는 관람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행 팀에서 자리가 없어 돌려보내려고 해
도 무작정 들어와서 객석 사이의 복도까지 인산인
해를 이루었습니다. (이정기·의24회)
132
1968년 ~ 1977년
경운동 교정에서 어느 날
연극부원들과 함께
우리 마누라 왈
“당신이 지도교수 같애 ㅎㅎ”하던 사진이다.
“아니!! 내가 이 사진에서 그렇게 보이오?”
답 “당신만 양복 입었잖아! ㅋㅋ”
133
가슴에 연극반을 담고...
방진성(의・17회)
1971 국물 있사옵니다 조명
1972 곰, 조명
1972 노부인의 방문 신문기자
1973 연극부장, 강제결혼 리까스르, 십이야 기획
134
1968년 ~ 1977년
소리로 만든 연극
김강회(의・17회)
1971 국물 있사옵니다 효과
1972 곰, 노부인의 방문 효과
강릉동인병원장
135
가’가 들려오면 요즈음도 객석에서 매회 어김없이 터지던 환성을 기억하고 절로 웃음이
나는, 집사람도 아는 습관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세월은 빨리 가는데 행동은 느려지나 봅니다. 그동안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했던 일, 저를 기억하는 많은 선후배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
며, 회장님을 비롯한 선후배 모두 모두 건강하시고 다시 만나 웃음으로 옛 이야기를 나
눌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136
1968년 ~ 1977년
나와 연극반... 1972,1973
홍지희 (의·19회)
나와 연극반...
이렇게 제목을 쓰고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정리가 잘 안 된다. 그리고 연극반
에 무조건 고마운 마음만 앞선다. 그러면 고마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하여 나에게 이렇
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한 연극반과의 첫 만남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1972년
137
야하는 거야.. 그리고 피곤한 연기를 생생하게! 조는 연기를 힘있게! 해야하는 거야. 조는
연기를 한다고 만약에 정말 졸려서 연기한다면 그게 연기냐? 그건 연기가 아닌거야. 그냥
조는거지..."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에 우리는 “어머나 어쩌면!! 그래 맞아 맞아...” 하면
서 감탄하곤 했다.
1973년
138
1968년 ~ 1977년
마지막으로
어느 소극장에서 보았던
미국의 시인 프로스트가 예술에 대하여 했다는 말을 다시 옮기면서 글을 마치고 싶다.
프로스트는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단어를 그 중의 하나인 ‘연극’이라고 말하면서.
예술(연극)은 우정입니다.
예술(연극)은 살아있는 사람과의 우정일 뿐 아니라
죽은 사람과도 나누는 우정입니다
지난 세기의 커다란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의 삶을 추악하게 할지도 모르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우정입니다.
139
최초의 뮤지컬
[20회] '환타스틱스' - 톰 존슨 작, 이정태 연출, 1976년 봄
(최창순) 우리 연극부 최초의 뮤지컬 공연이 아니었나 생각되며, 연출을 맡으신 이정태
선배님의 다재다능함에 감복. 춤 배우고 노래 배우고 신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인디언2(머티머)로 혼신의 죽는 연기를 펼쳤었지요
140
1968년 ~ 1977년
쓰기 연습
이정태 (의·18회)
141
그리고 겨울이면 폭설이 내린 치악산에서, 시루봉에서,
그리고 계곡의 찬물에 손을 담그며 코펠을 씻던 기억이 있습니다.
치악산 시루봉에서부터 숙소까지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면서, 꽁꽁 얼어버린 후배를 사
랑의 정신으로 돌보던 강회형님, 희방산에서 취한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이 날아다니던
반딧불이들, 강릉 경포 앞바다에서 실속없이 굽던 정어리 구이, 모든 것이 이제는 흘러
간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도 늙고 초라합니다....
쓰기 연습 2. 연극 배우기.
저는 연극부에 입단한 이후
1973년 ‘십이야’에서 광대 ‘패스테’로 노래도 불렀고,
다음해인 1974년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에 ‘마스카리유’ 역으로 출연하고,
그해 가을 ‘우리 읍내’에 ‘신문 돌리는 조오 크로웰’ 역할을 맡았고,
1975년 봄 조해일의 ‘건강진단’에서는 ‘간이 콩알만해진 사람’,
1975년 가을공연인 ‘안티고네’에서는 무대감독,
1976년 봄에는 뮤지컬 ‘환타스틱스’의 연출,
그해 가을엔 ‘해녀 뭍에 오르다’에서는 연출 및 ‘나연호’ 역,
본과 3학년이던 1977년 가을 ‘4계절의 사나이’에서는 ‘토마스 크롬웰’로 출연해 ‘토마스
모어’를 죽였고,
당시 무대 뒤에서 징과 드럼을 치며 효과를 맡았었고,
1978년 본과 4학년에는 ‘만리장성’에서 ‘쥴리엣’역을 맡은 황혜연(간호학과 23회, 필라델
피아 거주)과 함께 ‘십이야’에 나왔던 "오너라 오려무나"를 다시 불렀습니다.
공연 당일 사라지신 고봉인 연출
[21회] '해녀 뭍에 오르다' - 오영진 작 , 이정태 연출, 1976년 가을
142
1968년 ~ 1977년
143
내 맘의 고향 연극부를 그리워 하며
신상현 (의·21회)
두 번째 뮤지컬
[22회] '찰리 브라운' - 존 고든 작 , 신상현 연출, 1977년 봄
144
1968년 ~ 1977년
성인의 길
[23회] '사계절의 사나이' - 로버트 볼트 작 , 김재연 연출, 1977년 가을
145
보고 싶은 사람들
신영희 (간·21회)
146
1968년 ~ 1977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147
휴... 숙제 완료
김홍진 (의·23회)
148
1968년 ~ 1977년
치악산 갔다가 낙오된 여학생 데리고 기어코 정상에 갔는데, 중간에 내려갔을 거라 생
각하고 먼저 내려간 넘들 때매 점심도 못 먹고 당황했던 기억...(겨울 산은 금방 껌껌해
지니깐 쉴 시간 없다고 너무 겁을 줘서 쉬지도 못하고 내려오다가 다 내려와서 기절한
여학생...28회 이현림...)
149
우리 학교가 오씨 아저씨 것이 아니라며?
이거 저만 반갑고 호들갑인가요?
경운동 시절 연극부 이야기를 하면, 술자리 이야기와 함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분이 수위실 "오씨
아저씨" 이지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12시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던 당시는 막차 끊어지면 갈 곳
이 여관이나 학교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고, 요즘도 그렇지만 연습 끝나고 술 한잔 하고 나면 막차 시
간을 놓치기가 다반사였지요.
오씨 아저씨께서 근무하실 때면 통금에 쫒겨도 걱정 없이 소주와 안주를 사들고 아저씨를 졸라서 강
당에 진입, 무대 위에서 한바탕 판을 벌이다 커텐을 몸에 감고 잠들었던 추억을 만들어 주셨던 분이
시고, 술값 모자라면 술값 빌렸던 사람도 적잖았다하고... 저희들에게 형처럼 삼촌처럼 대해주셨던 고마
운 분이셨지요. 우리 동문 모두가 아저씨를 그리워하기에, 이번 50주년 행사에 모시려고 학교에 수소문
하여 알아낸 주소로 편지를 보냈답니다. 공연 안내 브로셔와 초대권을 제 전화 번호와 함께... 편지를
받자마자 너무 감격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더군요. 그런데, 우리 연극부 동문들의 이름과 역사, 개인사
를 어찌나 정확하게 줄줄이 꿰고 계시던지요! 김강회, 문일신, 이종건, 신상현, 변상태, 이정기, 안인호...
끝없이... 무대 뒤에서 공연을 위해 애쓰는 스탭이 있듯이 우리 연극부 뒤에서 안보이는 힘이 되었던
분이셨고, 지금도 무한 추억거리를 주시는 분이시지요... 어휴! 저만 호들갑인가요? 전 무척 반갑고 설레
는데...연극은 만남의 예술 맞는 것 같아요. 어! 연습해야겠네요. 비 옵니다... 아저씨 성함은 ‘오영안’
이랍니다. (최창순·의22회)
150
1968년 ~ 1977년
오 영 안
151
어 “우리 학교가 오씨 아저씨의 것이 아니라며?“하는 어느 단막극 대사도 있었다고요.
152
1968년 ~ 1977년
니다.
그리고 연극반 하면 이정태 동문인데, 연기도 잘하고 재능도 있지요. 아마 배우가 되었
다면 명성을 날렸을 것 같아요. 속마음으로 ‘난 기성 배우보다 연기를 잘한다’고 좀 건
방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또 유남진 동문, 정말 놀랐습니다! 평소엔 수줍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는데 어쩌
면 그렇게 얼굴 두껍게 잘 합니까? 그런데 멋진 의상과 역할에 걸맞은 외모 덕 좀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손주영, 박경희, 홍지희 동문들하고는 연극반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
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잘 어울리는 별종들 같아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튕길 줄 모르는 정의의 사나이 변상태 동문, 또 약방의 감초 같은 최
창순 동문. 그는 진정 가대 연극반을 위하여 태어났으리라.
그리고 선배이면서도 막내 같은 이천희 동문, 말없이 묵묵히 뒷받침 해주는 강주원, 황
동진, 김기수 동문들, 그리고 항상 정이 많고 다정한 간호과 못난이 동문들...
끝으로 최봉춘 동문, 그의 말 없고 많은 것을 내포한 미소와 의젓함은 여전했으며, 맡은
배역 역시 격에 맞는 것 같았고, 연극반을 위해서 많은 애를 쓰고 있으리라 믿지요.
153
1978년 ~ 1985년
PREFACE
PROGRAMS
발|간|사
제 24회 고도를 기다리며 1978년 3월 23, 24일
156
PROGRAMS 차례
157
PROGRAMS
제 24회 고도를 기다리며 1978년 3월 23, 24일
158
PROGRAMS 차례
159
PROGRAMS
제 24회 고도를 기다리며 1978년 3월 23, 24일
160
PROGRAMS 차례
161
PREFACE
PROGRAMS
발|간|사
제 25회 만리장성 1978년 9월 14, 15일
162
PROGRAMS 차례
163
PROGRAMS
제 25회 만리장성 1978년 9월 14, 15일
164
PREFACE PROGRAMS 차례
165
PROGRAMS
제 25회 만리장성 1978년 9월 14, 15일
166
PROGRAMS 차례
167
PROGRAM
PROGRAMS
발|간|사
제 27회 삼십일 간의 야유회 1979년 9월 13, 14, 15일
168
PROGRAMS 차례
169
PROGRAMS
제 27회 삼십일 간의 야유회 1979년 9월 13, 14, 15일
170
PREFACE PROGRAMS 차례
171
PROGRAMS
제 27회 삼십일 간의 야유회 1979년 9월 13, 14, 15일
172
PROGRAMS 차례
173
PREFACE
PROGRAMS
발|간|사
제 29회 진짜 하운드 경위 1980년 12월 18, 19, 20일
174
PROGRAMS 차례
175
PROGRAMS
제 29회 진짜 하운드 경위 1980년 12월 18, 19, 20일
176
PREFACE PROGRAMS 차례
177
PROGRAMS
제 29회 진짜 하운드 경위 1980년 12월 18, 19, 20일
178
PROGRAMS 차례
179
PREFACE
PROGRAMS
발|간|사
제
제 30회
30회 내가 내가
날씨에 날씨에
따라 변할 따라 변할1981년
사람 같소? 사람3월같소?
26, 27일
180
PROGRAMS 차례
181
PROGRAMS
제 31회 시련 1981년 9월 17, 18, 19일
182
PROGRAMS 차례
183
PROGRAMS
제 31회 시련 1981년 9월 17, 18, 19일
184
PROGRAMS 차례
185
PROGRAMS
제 31회 시련 1981년 9월 17, 18, 19일
186
PROGRAMS 차례
187
PROGRAMS
제 32회 비더만과 방화범 1982년 3월 24, 25일
188
PREFACE PROGRAMS 차례
189
PREFACE
PROGRAMS
발|간|사
제 33회 템페스트 1982년 9월 16, 17, 18일
190
PREFACE PROGRAMS 차례
191
PROGRAMS
제 33회 템페스트 1982년 9월 16, 17, 18일
192
PROGRAMS 차례
193
PROGRAMS
제 33회 템페스트 1982년 9월 16, 17, 18일
194
PROGRAMS 차례
195
PROGRAMS
제 34회 토끼와 포수 1983년 3월 23, 24일
196
PROGRAMS 차례
197
PROGRAMS
제 35회 아득하면 되리라 1983년 9월 16일, 17일
198
PROGRAMS 차례
199
PROGRAMS
제 35회 아득하면 되리라 1983년 9월 16일, 17일
200
PROGRAMS 차례
201
PROGRAMS
제37회
제 36회보이체크
보이체크
1984년1984년 9월
9월 14, 15일 14, 15일
202
PROGRAMS 차례
203
PROGRAMS
제 37회 보이체크 1984년 9월 14, 15일
204
PROGRAMS 차례
205
PROGRAMS
제 39회 미시시피씨의 결혼 1985년 9월 20, 21일
206
PROGRAMS 차례
207
1978년 의학과 신입생 11명, 간호학과 신입생 5명이 대거 연극부에 들어오면서, 큰 규모의 연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된다. 1979년 의학과
3명, 간호학과 14명의 신입생을 비롯해 매년 많은 수의 신입생들이 연극부에 들어오면서 연극부의 중흥을 이루게 되었다. 그 결과 21명의
캐스트가 등장하는 ‘만리장성’, 가을대공연 최초의 학생 연출로, 15명이 출연하는 ‘30일간의 야유회’ 등이 공연되었다. 1980년, 연극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첫 홈커밍데이를 개최하고 성의연극회 동문회를 발족하였으며, 초대 동문회장으로 김정규 동문을 선출하였다. 1981년 창
립 20주년 기념공연으로 ‘시련’을 무대에 올린다. 1982년 봄, ‘비더만과 방화범’을 마지막으로 경운동 시대를 마감하고, 강남으로 학교가 이
전하면서, 그해 가을 정기 대공연은 ‘강남 교사 신축 기념공연’으로 ‘템페스트’를 신축 교사 마리아홀에서 올리게 된다.
경운동의 추억
신경철 (의·25회)
208
1978년 ~ 1985년
209
21명의 캐스트로 만리장성을 쌓다.
[25회] '만리장성' - 막스 프리쉬 작 , 정종화 연출-1978년 가을
210
1978년 ~ 1985년
가을대공연 학생 최초 연출
[27회] '30일간의 야유회' - 이근삼 작, 최창순 연출, 1979년 가을
CAST로는 ‘죄인 100번’에 박영학, ‘죄인 99번’에 심성보, ‘죄인 5번’에 김기수, ‘죄인 33번’
에 이종승, ‘죄인 18번(1)’에 유경애, ‘죄인 18번(2)’에 임경인, ‘죄인 20번’에 안인호, ‘소장’에
유남진, ‘안종팔’에 최봉춘, ‘고 여사’에 백성숙, ‘신신옥’에 허관순, ‘오 박사’에 이호선, ‘김화
자(1)’에 심계영, ‘김화자(2)’에 이정미, ‘이운수’에 김용범이 출연했다.
211
예과 2학년 2학기에는 해부학 시간에 시체 해부를 하는데, 연극 연습을 위해 강당에 내
려 왔다가, 지하 식당에서 라면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평생 먹었던 라면 중에서 제일
맛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수업 시간도 빼 먹고 대리 출석을 하였던 기억이 나고, 김광옥
(여, 천호동에 김광옥 이비인후과) 친구의 노트 복사로 독학을 했던 기억도 난다. 2009년
에 졸업 25주년으로 동해안으로 놀러 갔는데, 김광옥 친구를 모셔가기 위해 관광버스를
잠실로 경유하게 할 정도로, 노트 복사지는 우리 반의 중요한 TEXT 역할을 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은 더 뜨거워졌지만,
12월 12일 전두환의 쿠테타로, 학년말 고사를 보는 중간에 휴교가 되어 겨울 방학으로 넘
어갔다.
212
1978년 ~ 1985년
삼십일간의 야유회
경운동 시절 가톨릭
대학 의학부와 현재
의 모습
213
경운동의 연극반...
유경애 (간·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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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215
1980년... 그리고 템페스트
황혜순 (간·27회)
내가 입학했던 1980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당시 연극부장이었던 이종승 선배의 채 몇 분도 되지 않는 모노드라
마에 이끌려 옆자리에 앉아있던 정태원과 함께 봄 공연 연습(‘블랙 코메디’)을 하던 강당을 찾
았던 이래로 나는 30년간 연극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16
1978년 ~ 1985년
12월에 올린 가을 대공연
[29회] '진짜 하운드 경위' - 톰 스토파드 작 , 정상일 연출, 1980년 겨울
이렇게 심심치 않은 방학을 보내고 9월 개학을 해서, 정성일 연출의 ‘진짜 하운드 경
위’를 연습을 시작해서 겨울인 12월 중순에야 공연을 올렸다.
217
마지막 부분에 ‘프로스페로’에게 자유를 얻어 계단에서 뛰어내려와 가는 장면에서 발이
그 틈새에 빠져 넘어질 뻔 휘청하였다. 그때 나도 모르게 멈칫 정신이 나간채로 잠시 서
있었는데, 나중에 연출님은 오히려 그 장면이 에어리얼이 자유를 얻고 기쁘게 내려오다
‘프로스페로’에게 여운을 두는 것 같아 좋다며, 마지막 공연 때는 잠시 멈춰서 포즈를
두고 가라 해서 그렇게 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아름다운 작은새여
새장에서 나~~와,
님 만나러 날~아가라 날아~ 가거라.
끝~날거야 곧 끝~나 아마 곧 끝날거야
끝이나면 나는 갈래~~ 자러갈래 대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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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이천희 (의·28회)
219
세 번째 뮤지컬
[30회]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 이강백 작 , 김용범 연출, 1981년 봄
220
1978년 ~ 1985년
20주년 기념공연
[31회] '시련' - 아서 밀러 작, 조일도 연출, 1981년 가을
문화단신
◇가톨릭의대 연극 ‘시련’ 공연 = 가톨릭의
대 연극부는 20회 정기공연으로 ‘아더 밀러’
원작의 ‘시련’을 17일부터 19일까지 가톨릭
의대 강당에서 공연한다. 최봉춘 기획 조일
도 연출
(동아일보 1981년 9월 14일)
221
마녀사냥을 주제로 한 이 극에서 나는 ‘자일즈 코리’라는 할아버지 역을 맡아서 열심히
참여하였다. 하지만 처음이어서 그런지 잘 소화해 내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만 하였나 보
다. 타 대학 연극부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난 뒤에 나의 역에 대해서 ‘자일즈 코리가 목소
리만 크고 성격이 잘 표현 되지 않은 것 같다’ 라는 평가가 들렸으니 말이다. 연극이 끝
나면 당연히 하게 되는 쫑파티! 공연 준비에 온힘을 다 바쳤던 것과 같이 쫑파티에 도
온 정열을 다 바치고 나서 생을 마감하려는 듯이 미친 듯이 날 뛰었다. 어디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식사와 한 잔술을 걸치고 남은 사람은 집에 못가고 강당에 모였다.
그때에는 통금이 있어 늦으면 어딘가에 숨어 들어가서 다음날 아침 통금해제 시까지 기
다려야 만 했다. 중대한 전투를 승리로 마치고 귀환하는 용사들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수
위아저씨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수위 오씨 아저씨는 그런 우리를 이해한다는 듯이 미
소로써 우리들을 통과 시켜주었다. 그 당시 연극부의 위상은 교내 서클 중에 최고였다.
오씨 아저씨는 강당과 식당, 그리고 강의실 옥상 등을 휘졌고 다니며 약간의 기물 파손
과 비어 있는 매점 무단침입까지 하는 우리만의 행사를 눈감아 주셨다. 강당에 들어가서
구석구석 자리를 잡아 쉬려고 하는데 갑자기 선배님의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내림 빠
따’가 합법적으로 시작되었다. (김홍진 선배님이 시작하신 걸로 기억된다) 왜 시작 되었
는지는 그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신입생인 우리(아마 나와 헌상이로 기
억된다)는 우리 차례가 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난장판이 되었
다. 아마도 누군가(유순집 선배님으로 기억된다) 항명하며 빠따를 거부하면서 규칙이 사
라진 폭력이 난무하기 시작하였다. 잡으려고 뛰어다니고 잡히면 사망이라는 긴박감에 객
석의자와 탁자를 뛰어넘어 도망다니고 또 이를 쫒아다니며 탁자위에서 구둣발을 휘두르다
가 넘어지기도 하고(신경철 선배님으로 기억된다) 지하식당에까지 도망다니다가 그 옆의
매점의 창문을 억지로 열고 과자 몇 가지를 집어오기도 하고(이헌상으로 기억된다.) 강
의실로 도망가다가 길이 막혀 옥상으로 도망하고(유순집 선배님으로 기억된다) 지칠 때
까지 쫒고 쫒기다가 각자 무대의상을 찾아내 덮거나 강당 창문의 커튼을 뜯어내어 덮고
구석구석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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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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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동 시대의 마지막 공연
[32회] '비더만과 방화범' - 막스 프리쉬 작, 박영학 연출, 1982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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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강남 교사 신축 기념 공연
[33회] ‘템페스트’ -셰익스피어 작, 정종화 연출, 1982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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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역의 박영학 선배님과 요정 역을 맡은 황혜순 선배님의 열정은 타의 모범이 되었다.
강의 도중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틈만 나면 마리아홀에 와서 배역 연습을 하였다.
황혜순 선배님은 자기 키보다 높게 쌓아 올린 무대에 올라가 연습을 하는데 발레와 같은
몸동작을 만들어 내느라고 높은데서 점프를 하면서 반복해서 대사를 내뱉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게 떠오른다. 연출님의 지도아래 연극부원 하나하나의 열정과 노력을 바탕으로 마리아
홀에서의 첫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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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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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신축교사
손주영 (의·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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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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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연극반
정태원 (간·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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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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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연극반
이영애 (간·27회)
성의연극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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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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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사 끼워넣기 1983년
이천희 (의·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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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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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대학가에 ‘과(科) 연극’붐
2학기를 맞은 대학가의 게시판은
갖가지 행사 안내 포스터로 활기를
나타내는 가운데, 연극공연 포스터
가 특히 눈길을 끌며 가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름방학 동안 흘
린 땀의 결실인 이들 대학가의 연
극 공연 중 특이한 현상은 각 학과
별 공연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
가톨릭 의대에서도 ‘아득하면 되리
라’(오태영 작)를 오는 16일과 17일
공연할 예정으로 준비에 열을 올리
고 있다.
(경향신문 1983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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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1984년 봄 ‘성자의 샘물’이란 작품을 나의 동기인 최황의 연출로 무대에 올리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작품이 바로 전 가을공연의 작품과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의 장님거지 부부와 ‘아득하면 되리라’의 꼽추의 이미지가 서로 겹친다. 이 공연부터
마리아 홀로 이사온 후의 연극부의 연습과정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고 안정되어 가고 있
었다. 이 공연에서 나의 역할은 항상 붙어 다니는 장님부부 역할을 맡아 장님의 행동거
지를 연구하여 몸에 익히기 위하여 길거리에 장님만 보이면 면밀히 관찰 했던 기억이
난다. 매번 광대 아니면 엑스트라만 하다가 처음으로 극 중 주인공을 하여서인지 연기에
몰두한 기억 만 남아 있다.
신체 훈련을 시작하다.
[37회] '보이체크' - G. 뷰흐너 작 , 이병훈 연출, 1984년 가을
237
하는 의지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하고 계획된 대로 진행되고 이
루어져야만 했다. 연출님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였고 무엇이든지 적극적이고 열성
적이었다. 배우가 연기연습을 하기 전에 몸과 마음이 모두 비워져야 한다며 우리들을 달리
기로 시작하여 유격훈련 같기도 하고 요가 같기도 한 동작을 반복시켰다. 그 당시 성의 회관
지하에 있는 여유 공간에서 처음에는 웃고 장난으로 시작한 훈련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숨만 헉헉대며 입에 단내가 날 정도가 되었다. 남자 부원뿐만 아니라 여자
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훈련에 참여하고 모두가 잘 견디어 냈다. 연극부에서 처음으로 정신
력 훈련 과정을 도입함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끝나면 어딘가로 모두 흩어져서 땀으
로 뒤범벅이 된 몸을 시원하게 샤워로 닦아내고 나면 정말로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 상태가
된다. 대사 연습과 블로킹은 가볍다. 훈련이 호되어서 배도 자주 고파 선배님들이 사다주는
빵과 우유 등의 간식은 불티나게 팔렸다. 연출님이 강력한 추천으로 ‘보이체크’를 선정하였
다. 이 작품은 영화와 같이 수십 개의 장면의 나열에 의하여 전개되는 작품으로 연출은 이
작품을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연극적인 새로운 시도를 기성극단이 아닌 아마추어 극
단에서 실험해보고자 했던 의도가 깔려있었다. 그리고 연출님도, 그리고 우리 연극반도 성
공하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늘어 통로에 앉아서 보기까지 하였다. 대부분이 군인역
할을 해야 되기에 공연직전에 우리 동기들은 모두 머리를 박박으로 밀었다. 따라서 후배들
도 머리를 밀었다. 이를 본 교내 다른 서클의 반응은 ‘역시 연극부는 뭐가 달라도 달라!’ 였
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동안 내내 연극부원들은 교내에서 주목을 받았다.
238
1978년 ~ 1985년
황동진 (의·28회)
239
에 한 달간은 거의 강의실로 못가고, 강당으로 출근하여 경동시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
입하거나, 학교와 병원 기계실 등을 전전하며 필요한 것을 찾으러 다녔고, 가을 공연 때
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예산이 적어 몸으로 때워야 했었지요. 공연에 임박해서는
무대장치 작업을 한다고 밤샘을 하다가 강당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여름에는 신문지
를 덮고 자고, 가을에는 커튼을 떼서 덮고 잤는데 역시 모기 때문에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천희, 헌상이, 황이 등 동기들이 같이 동참했죠. 수업을 너무 빼먹어 출석
일수가 간당간당 할 때 쯤이면 연극은 끝나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죠. 그나마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준 해부학교실 조교들, 연극반 지도교수님 등의 도움으로 손쉽게 학점도 따
고 졸업도 할 수 있었네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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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85년
구태형 (의·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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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한진수가 강의실로 찾아왔다. 당시 우리 반에는 재수 이상의 사회경력을
가진 분들(?)이 많아 서로간의 호칭에도 혼란이 많았다. 아무래도 그분들은 나와 같은
풋내기를 상대하려 않았던 걸로 생각된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진수와도 거리감이 있었
지만 새 학기를 맞아 다정하게 대해주는 진수가 싫지는 않았다.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그
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본인이 연극반에 들어가 보니 선배들도 잘해주고 간호
학과 1학년 신입생들이 꽤 괜찮다고 귀뜸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당시 83학번 간호학과
동기생은 김혜정, 김희정, 백금자, 오은숙, 정은숙, 000인데 그 중 몇몇은 의학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주 회자되던 인물들로 혹하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원인을 제
공했다.
242
1978년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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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의대 연극부를 회상하며
신입생 워크숍은 “F선상의 아리아”라는 작품을 올리게 되었다. 완고한 교수와 학생들
간의 해프닝을 그린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교수 역을 맡았는데 연습과정이 그렇게 재미
244
1978년 ~ 1985년
245
본과에서는 어렵게 느껴지는 과목들이 있었다. 특히 조직학, 생화학은 공포로 다가왔다.
해부학처럼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은 재미있는데, 조직학처럼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그림 그리는 것은 뱃속이 간질간질한 게 죽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해 유급을 하게 되고,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246
1978년 ~ 1985년
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톨릭 의대에서 인생의 중요한 3년을 보냈지만, 그 기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카대에
서 연극을 처음 접했고, 열심히 했고, 또 무대를 신성시하는 연극철학을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 연극을 버리지 않고 버텼던 원동력
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대에서 이러한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 믿는다.
내가 기억하는 진수 형
한현진 (간·31회)
파란만장 일대기를 뒤로하고 연극을 업으로 하는 교수가 된 진수 형...
저를 기억하시려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진수 형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다른 사람이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려나? 진수 형
은 헌상이 형과 같은 나이입니다.(별걸 다 기억하는 한현진입니다. ㅋㅋ)
그해 대입시험을 치르는데 제가 그 기수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가대 의대와 중앙대 의대를 함께 원서를 넣었답니다. 고민을 하다가 면
접을 아마 중앙대로 가서 보고 중대는 떨어지고 그해 아마 가대의대는 미달이었다고 하네요(중앙대 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보다 높았
다고 했구요.) 다음해에 제수를 하면서 점수가 나와서 서울대 원서를 넣었고 서울대 의대는 안되고 공대에 2지망으로 붙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의대가 가고 싶어서 3수를 해서 가대를 들어오게 되었다고 기억합니다. 태형이 형이랑 같은 동기로 들어온 것 같은데... (오래 전에 한
번 들었던 내용이라 정확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진수 형이 말하기를 첫 번째에 가대의대 면접을 봤어야 했다고 ~~~~~~
그러면 시간을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을텐데...하면서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항상 주위는 소란스럽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극에 대한 열정이 많았고 열심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
고 연극적인 모습이 일상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상시에도 연극처럼 표현을 했던 것 같구요.
연극 교수님으로써의 멋진 모습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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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값진 경험
강현미 (간·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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