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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3차 과제

< 영웅 오이디푸스 >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자신의 아들이 훗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몸을 섞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아이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받은 라이오스의 가신은 숲에서 만

난 목동에게 갓난아기를 넘겨주었다. 두 발이 부어 있던 아기는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얻었고,

코린토스 왕가에서 자랐다. 장성한 오이디푸스는 연회장에서 자신의 부모님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델피에 갔다가 끔찍한 신탁을 받았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몸을 섞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러한 운명을 피하려고 평생 노력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포키스의 삼거리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테베의 왕으로서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

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찌르고 방랑자로서 테베를

떠났다.

여기까지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오이디푸

스는 진정으로 비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장님으로 사

느니 죽는 것이 더 나(<오이디푸스 왕>, 1378행)’을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지를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희생당한 무고한 피해자가 바로 부은 발의 소년, 오이디푸스라

는 것이 처음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었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후에 코러스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친구들이여, 아폴론, 아폴론, 바로 그분이시오. / 내게 이 쓰라리고 쓰라린 일이 일어나게 하

신 분은. / 하지만 내 이 두 눈은 다른 사람이 아닌 가련한 내가 손수 찔렀소이다. (<오이디푸


스 왕>, 1329-1332행)”

그는 자신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 장님이

되는 길을 택했다. 결국 그 행위 역시 아폴론 신으로 대변되는 운명이 오이디푸스에게 부여한 비

극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손수’ 찔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동영상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한 답은 오이디푸스가 다른 어떤 영

웅들보다도 더 영웅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인간의 한계에 맞서는 인물을 영웅이라 부른다. 이들은 대부분 신의 혈통

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이기에 필멸의 세계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영웅들은 신의 영역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을 불사하고 치열한 전투

에 참여해 무훈을 세우는 것이 그 사례이다. 불멸의 명성을 쌓음으로써 사후에도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잊히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도전한 인간의 한계는 바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운명은 신의 도움 없

이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필멸의 인간들이 함부로 재단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렇기에 많은 영웅들은 운명을 거역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 활약하는 길을 택

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다면 명예는 없지만

길고 순탄한 삶을, 참전한다면 짧지만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 현실에 절망하여 무공도 쌓고 수명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는 않았다. 오히

려 이 예언을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 중 무엇을 택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운명에 순응한 것이다.

운명의 여신들이 잣는 실로 표현되는 운명은 신들마저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아이스퀼로

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 따르면 제우스 역시 예언과 정해진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는 사르페돈, 멤논 등 사랑하는 자식을 구하고 싶지만 이미 확


정된 미래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영웅들이 신은 갖추었지만 인간은 갖지 못한 것, 즉 불멸을 위해 살아간다면 오

이디푸스는 신들도 갖지 못한 것, 즉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으려 애

썼다.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처럼 되기를 추구한 기존의 영웅들과는 달

리 오이디푸스는 신보다도 뛰어난 존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코러스가 제우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등의 신들을 향해 역병을 몰아내주기를 탄원하는 바로 그 시점에 궁전에서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행동도 신을 능가하려 하는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준다.

사실 신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은 그리스 신화 속에 얼마든지 있다. 페르세우스의 할

아버지 아크리시오스는 외손자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딸 다나에를 청동 탑에 가두

었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 역시 오이디푸스에 관한 신탁을 무효화하기 위해 노력한 셈

이다. 하지만 결국 아크리시오스는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었고, 라이오스는 삼거리에

서 일어난 시비 때문에 아들의 손에 살해당했다. 오이디푸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자는 관계가 되었다. 셋 모두 필멸의 인간이기에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가 가장 특별한 것은 그가 마지막까지도 운명에, 그리고 신에

완전히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눈을 멀게 한 사람은 나다’라는 말은 운명의 폭력성 앞에

무력한 인간이지만, 아무리 절박한 순간이더라도 자신의 자유 의지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테베에서 추방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딸들에게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는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껴안고 그들의 앞날에 비통해하는 오이디푸스에게 크

레온은 이만 아이들을 놓아 주라고 한다. 그러자 오이디푸스는 “내게서 이 애들은 빼앗지 말게(<

오이디푸스 왕>, 1523행)”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이런 그의 행동이 지나치게 변덕스러워 보였다. 바로 방금 전까지도 비윤리적인 근

친상간으로 태어난 딸들의 미래가 얼마나 어두울지에 대해 절망하다가 갑자기 그들을 절대 포기

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다더니 마지막 순간에는 소중한 존재들


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 너무 구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 부분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오이디푸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은 오이디푸스가 사랑해 마지않는 딸들과 그의 관계를 윤리적으로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기

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오이디푸스는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에게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한 배에서

난 오라버니이기도 한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한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들 자매에 대

한 사랑을 죄책감과 본능적 혐오감으로 누르고 미련 없이 테베를 떠나야 한다. 하지만 오이디푸

스는 달랐다. 운명이 그들 부녀, 혹은 남매의 관계를 비틀어 두었지만 그런 외형적인 것보다는 자

매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크레온과 언쟁을 벌이면서까지

딸들과 시간을 보내려 했고, 방랑길에는 안티고네와 동행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운명이 예단해 둔 삶에 맞서 싸운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고대는 물론 현대 사회에서

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국내의 록밴드 국카스텐이 2014년에 발표한 ‘오이디푸스’라는

노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곡의 가사를 쓴 보컬 하현우는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

던 ‘부은 발’의 소년은 가혹한 진실 앞에서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렀다. 하지만 이런 행동도 결국

어두운 운명에게 맞서 싸우는 마지막 반항이었던 셈이다. 이런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이지만 한편

으로는 영웅적인 삶이 ‘밤이 저물어 그가 누군지 몰라도 / 부은 다리로 버린 눈으로 / 어둠을 찾

아 싸우러 간다(국카스텐, 오이디푸스)’는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듯 오이디푸스의 영웅

성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비극 무대를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록밴드의 노래를 통해 우리 곁

에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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