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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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어릴때부터예술에관심을보여서그는유년시절때부터조토와마사치오의작품들을습작하며

그림에많은관심을쏟아집안에서자주꾸중을들었습니다. 계몽사에 따르면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가 에서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미술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13세때화가도미니
크에게서그림을배웠습니다. 또 14세 때부터 메디치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베르트르드디조반니를 통하여
도나텔로 작품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며 자라온 미켈란젤로는 세계에서 인정
받는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는<다비드상>, <시스티나성당천장화>와<피에
타>가있습니다.
먼저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가 공정화가 수립된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그해 새로운 도시를 위해
제작한 것입니다. 다비드상에 쓰여진 대리석은 40년동안 피란체의 작업장에 방치 되어있던 것 입니다.미켈란
젤로는 이 5미터가 넘는 다루기 곤란한 대리석으로 골리앗을 돌로 때려 쓰러뜨린 성서의 소년 영웅 다비드
를 힘이 넘치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상을 만들었습니다. 예전부터 다비드는 시민들에게 작지만 강
한, 승리의 인물로서, 교황과 황제의 세력을 견제하고 도시의 독립을 지킨다는 상징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다비드상은 피렌체의 독립과 자유를 상징하는 조각으로 표현해 낸 것입니다. 미켈란젤로 외에
도 다비드상을 조각한 사람들은 있지만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은 다른 사람들이 조각한 것과 달랐습니다. 기
존의 다비드상은 골리앗의 머리를 든 승리의 순간으로 묘사 되어있었지만, 미겔란젤로의다비드상은 승리를
거둔 모습이 아닌 경계하고 있는 다비드가 투석기를 어깨에 짊어 지고서 전투를 결심한 전사의 엄숙한 결의
와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이 다비드상과는 차별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듯 미켈란젤로
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조각했던 다비드상을 조각했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이 조각 한 것과 달리 다른 생각
과 개념을 통해 기존에 다비드상과 다른 모양의 다비드 상을 만들었는데요 그리하여 미켈란젤로가 예술을
하는 방식이 특이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라는 작품은 미겔란젤로가 1580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


아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그린 창세기 9장면을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천지창조'로도 많이 알려져 있
습니다. 그는 4년 동안 작업의 틀을 짜고 거기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천장화는 성서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를네 가지 단계를 거쳤다고 합니다. 첫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
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고, 두 번째 단계는 〈아담
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 〈하늘과 물의 분리〉 〈달과 해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중순에 완성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원형 벽화로 같은 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
이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려나간 순서에 따라 화면은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데, 이것은 높은 곳에 그려지는 천
장화의 특수성을 미켈란젤로가 차츰 깨닫기 시작했을 거라고 여러 학자들이 입을 모읍니다. 그림은 1512년
완성되어 같은 해 11월 1일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그 후 500여 년 동안에 이 벽화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덧칠
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졌고, 또 1982년에는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한 복원작업이
9년에 걸쳐 실시되어 그림을 덮고 있던 때와 후대에 이루어진 덧칠이 제거되어 본래의 화려하고 웅장한 색
체와 형태가 다시금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그 시대에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예술에 뛰어났는지를
또 한번 증명시켜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한 작품에 대한 집요함도 나타내는 작품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성배드로 성당에 들어선 뒤 오른쪽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보입니다. 세계 3대 조각상이


라 명성이 자자한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조각상에다가 새긴 르네상스 시대 조각
예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유명한 작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에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놓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묘사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표현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마리
아의 얼굴이 매우 앳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나, 예수의 몸에 비해 마리아의 신체 비율이 매우 거대하게 표
현된 점, 그리고 사망한 후 사후 강직이 일어났어야 하는 예수의 몸이 부드럽게 늘어져있는 모습으로 표현
된 점 등 매우 독창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 당시의 이상과 자연주의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예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또한, 미켈란젤로
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생전에 만든 거대한 조각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을 끝마친 작품이기도합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 는 그 르네상스 시대에 최고의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리고 시인 입니다.
그의 수많은 작품 하나하나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도 뛰어나고 심지어
아름답기 까지 합니다. 그는 아무리 작품이 거대하다 해도 그는 오직 그의 힘으로 완성하는가 하면 아무리
안 좋은 재료를 가져와도 이를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그의 아주 훌륭한 작품 덕에 그 시대 왕
들에게 많이 고용이 되었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
들이 더욱 많아져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랑 받고 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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