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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발제)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벤야민이 그토록 발견하길 원했던 “이제 침묵해 버리고 만 목소리의 한 가락 반향”(2), 반드시
읽어내어 계승해야만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든 변화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이러한 사
소한 변화”(4)들을,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폐허에서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보다 구체적인 질문은, 지
금 여기에서 발견되는 파국의 징후들을 그렇다면 <꼽추 난장이>가 가시화하려는 중지로 읽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파국>이 <항상 승리>할 때에, 그 승리는 역사를 필연적인 방식으로 구성하는가?
역사의 분열에 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벤야민이 <역사적 유물론자>라고 명명하
는 독자들에게 부디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해 마지 않았던 구분은 <역사주의>와의 구분이다. 역사주
의라는 “적(enemy)은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6) 이미 존재하는 역사, 단일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지금의
전통을 구성하고 있는 그 폭력적 서사에 맞서, <역사적 유물론자>는 “찰나에 영원히 되돌아 올 수 없이
사라져버리는”(5), “휙 스쳐 지나가버리는”(5) 과거라는 장소의 진정으로 이야기되어야만 하는 상(像)에
1) Des Knaben Wunderhorn(소년의 마적). Alte deutsche Lieder. hrsg. v. Achim von Arnim u. Clemens
Brentano. 3. Bd., Heidelberg 1808. S. 54. 번역: 최성만
2) 벤야민 암살과 「테제」에서 드러난 마르크스주의 실패에 관한 분석과의 연관성은 슬라보예 지젝이 『시차적 관점』의
서문에서 흥미로운 방식으로 주장한 바 있다.
3)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는 18개로 분열된 테제와 두 개의 덧붙여진 글(A, B)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 인용은 괄호
안에 특별한 언급 없이 단락 기호만 표기한다.
주의를 기울인다. 물론 이는 우연한 징후로 나타나고, <꼽추 난장이>처럼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징후를 가
시화 한 뒤에는 늘 사라져버린다...... 혹은 사라져야만 한다.
발견되고, 말해지고, 사라지는 그 중지의 연속, 우연한 간극의 진열에서 발견되는 것은 <역사주
의의 중지>이고, <불가능한 역사>의 재구성이다. 그것은 망각해서는 안 되는 죽음을 애도하고, 이야기되
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죽음들을 다시 이야기한다. 그것이 말해져야만 하는 이유는 벤야민이 강조한 바와
같이 “현재에 의해 인식되지 못했던 모든 과거의 상은 언제든지 현재와 함께 영원히 사라져 버릴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5) 하지만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요청되어야만 하는 질문은, 벤야민
이 건져 올리려는 폐허는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견될 수 있으며, <꼽추 난장이>의 폭정은 어
떻게 지양될 수 있는가? 질문을 바꾸어보면, 모든 현재를 중지시키는 언어는 폐허라고 단정할 수 있으며,
모든 파국의 징후들은 초월성을 지양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연 채 뒤로 물러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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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벤야민처럼 예민한 독자들에게만 허락된 일이라면, 그러한 비난이 벤야민에게 흔
히 가해지는 엘리트주의라는 기표의 비난, 난해하다는 비난,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벤야민이 스스로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벤야민이 기획한 작업은 오히려 엘리트주의로부터 가
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작업이다. 벤야민은 어떤 초월적 기표도 신뢰하지 않았기에 가장 초월적인 기표인
‘신’을 폐허에 두었다. 그 장소에는 인간 중심주의도, 진일보에 대한 허구적 믿음도, 단일한 공동체의 서사
도, 파시즘을 향한 노예적 갈구도 자리하지 않아야만 한다. 신화와 신은 다르다. 다만 벤야민은 타협하기
를 원치 않았다. 타협의 언어에는 역사주의의 언어를 반복해야만 하는 맹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
고, 그러므로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 언어를 반복하지 않는 방식으로 벤야민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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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적 정지의 표식”(17)이 기입된 <묵시록>의 순간들, 실재들은 상징계를 죽음의 가능성으
로 몰아넣는다. 그 장소에서 더 이상 사용되던 말들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명멸하
는 기표들은 다른 방식으로, 혹은 새로운 말들로 같은 자리를 반복하며, 또는 기존의 말들로 다른 자리를
반복하며 상실된 잉여, <꼽추 난장이들>을 구원한다. 벤야민의 반복은 “억압된 과거를 위한 투쟁”(17)이
지만, 여기에는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이 늘 남아 있고, 남아 있어야만 한다. 현재가 사라지는 만큼 과거
는 늘 다시 억압되기 때문이다. 억압이 미래를 산출하고, 미래는 현재의 폐허를 구성하며, 현재는 다시 다
른 과거를 억압한다. 그렇다면 이 무한한 루프의 반복은 다시, <파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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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Walter Benjamin, “Franz Kafka: Beim Bau der chinesischen Mauer”, GS. II/2, S/ 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