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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와 하나님의 영

천사무엘(한남대학교)

I. 서론

구약에는 “하나님의 영,” “주의 영,” “거룩한 영” 등 하나님을 “영”(spirit)과 관련시킨 표현들이 나온
다. 예를 들면, “숨,” “바람,” “영”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구약 히브리어 본문에서
주로 여성형으로 사용되는데 378회 나오며 이 중 적어도 94회 정도는 하나님 혹은 야웨의 “영”을 의미한
다.293)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의 역할이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구약학자들은 많지 않다. 이것은 신
약학자들이 신약에 나오는 “거룩한 영”이나 “성령” 등 하나님의 영 개념을 활발하게 연구하는 것과 대조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구약학자들은 구약이 표현하는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영의 역할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294)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에 대한 구약학자들의 연구가 적극적이고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구약의 하나님을 “영”(spirit)이 아니라 “인격”(person) 혹은 “인격적”(personal)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계약개념을 강조하면서 구약신학을 서술한 아이흐로트는 구약 신앙의 근거
가 하나님의 영적인 본성이 아니라 “인격성”(personhood)이라고 주장했다.295) 그는 철학적 의미에서 “영”
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구약에서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클레멘츠도 주장하기를, 구약은 하나님의
능력과 초월을 나타내기 위해 “빛,” “불,” “바람,” “영” 등 상징어들을 사용하지만, 하나님을 사람처럼 대
할 수 있는 어떤 “인격체”(person)로 여기는 것보다 더 적절한 방식은 없다고 했다.296) 그는 구약에서 하
나님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신인동형론, 가족관계 용어들, 3인칭 남성형 등은 야웨 하나님이 “인격
성”(personality)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것은 구약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이라고 주장했다.297) 앤더슨도 구약신학을 서술할 때, 이스라엘에 계시된 하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거나
불가해하거나 알 수 없는 “그”(It)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야기로 표현될 수 있고 나와 너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인격적 존재(“who”)라고 주장했다.298) 구약에서 하나님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묘사되는 “영화로운 인격성”(glorified personality)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약학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추상적인 본질이 아니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격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구약의 하나님을 헬라철학에서처럼 본질론적이 아니라 관계론적으로 이
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학자들이 하나님의 영이라는 표현의 역할과 기능을 완
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러한 표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 생명의 원천으로서 하나님, 무
소부재하신 하나님 등을 나타낼 때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299) 이것은 구약의 하나
님을 “인격적”으로만 혹은 “영적”으로만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구약
학자들이 하나님의 영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신약학자들이

293) F. 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Oxford: Clarendon Press, 1978), 924-25. 아람어 본문에서도 “루아흐”가 11회 사용되는데, 모두 다니엘서 나온
다. 우드는 구약성서에서 “루아흐”가 인간의 영에 대해서 84회,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 97회 사용되었다고 한다.
Leon Wood, The Holy Spirit i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1976), 142. 구약에서 “루아
흐”가 하나님의 “영”(spirit)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 횟수는 학자마다 다르게 계산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준희,
“예언과 영: ‘문서 예언서’에 나타난 ‘예언’과 ‘하나님의 영’의 관계,” 「기독교신학논총」 15/1 (1998/9), 56을 보라.
이것은 “루아흐 엘로힘”이나 “루아흐 야웨”의 번역과 의미 파악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94) R. G. S. Idestrom, “The Spirit in the Old Testament: A Review of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of God by W. Hildebrandt,” JPT 14 (1999), 127.
295) W. Eichrodt,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Vol. I (London: SCM, 1961), 211-12.
296) R. E. Clements, Old Testament Theology, 김찬국 역, 『구약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9), 63-65.
297) 하우에 의하면, 성서에서 신인동형론은 하나님을 “인격”(person)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는데, 멀리 계시
고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분으로 제시한다. B. G. Howe,
“Anthropomorphism,” NIDB, Vol. 1, 174.
298) B. W. Anderson, Contours of Old Testament (Minneapolis: Fortress, 1999), 56, 62.
299) R. E. Clements, 윗글, 74-75; W. Eichrodt, 윗글, 215. Th. C. Vriezen, An Outline of Old Testament
Theology (Oxford: Basil Blackwell, 1958),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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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성서신학의 통전적 서술을 위해서 구약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에 더욱 분발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의 영 개념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와 변천과정 등의 연구
를 위한 구약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구약의 하나님의 영 개념이 신구약 중간시대까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구약성서 및 구약외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 개념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본다. 이러한 연구는 하나
님의 영 개념의 변천과정에 대한 이해와 성서신학에서 하나님의 영 개념을 통전적으로 파악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을 삼위일체론의 성령과 동일시하지 않고 올바로 이해하는데 기
여할 것이다.

II. 하나님의 영에 대한 오해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은 신약이나 서구 기독교교리에서도 사용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따라서


그들을 서로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던 하나님의 영이란 표
현을 헬라철학이나 서구 문화적 관점에서 오해할 수 있다. 실제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을 잘못 이해
하는 경우들이 있다.
첫째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을 삼위일체론의 성령(Holy Spirit)과 동일시하는 경우다. 구약이
하나님과 관련하여 “거룩한 영”(holy spirit)이란 말을 3회 사용하고(시 51:13; 사 63:10, 11), 구약 한글번
역이 “성령”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는 쉽게 전파될 수 있다.300) 그러나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이나 거룩한 영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삼위일체론의 성령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 즉 구약
에는 헬라철학적인 위격(hypostasis) 개념으로 하나님의 영이나 성령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둘째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을 인간의 영과 엄밀히 구별하는 경우이다.301) 기독교 교리에서 하
나님의 영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 중 하나인 성령으로 이해할 경우 인간을 구성하는 “영”과 구별된다.
그러나 구약에서 “영”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루아흐”가 인간의 호흡이나 숨 등 생명력을 의미할 경우
하나님의 루아흐와 분리시킬 수 없다. 인간의 루아흐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요, 동시에 인간의 생명을 이끌고 가는 힘과 능력이기 때문이다(욥 34:14-15; 사 42:5).302) 이것은 루아흐
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신적인 생명의 원리(principle)를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303) 예를 들면, 시편
104:29-30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루아흐를 인간에게 주시거나 거두어들일 수 있다고 한다. “...당신께서 그
들의 루아흐를 거두어 가시면 그들은 죽어서 먼지로 돌아갑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루아흐를 불어넣으시면
그들은 창조됩니다...” 욥기 34:14-15은 인간뿐만 아니라 육체를 가지고 움직이는 모든 창조물들에도 하나
님의 루아흐가 있다고 언급한다. “만약 그분(주)께서 자기의 루아흐...를 가져가시면, 모든 육체는 죽고 인
간도 먼지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숨 쉬면서 움직이는 모든 창조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
의 루아흐를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루아흐와 하나님의 루아흐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을 육적 혹은 물질적인 것과 분리된 추상적인 실체로 여기는 경우
이다. 기독교 교리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나타내는 실체는 “육”이 없는 순수한 “영”이라는 것이다. 그
러나 영과 육을 엄밀히 분리하는 이러한 사고는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구약에는 나오지 않는
다.304) 구약의 본문들 중에는 육체적인 것도 하나님의 속성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을 신인동형론
으로 묘사하는 경우인데, 예를 들면,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하나님과 씨름했고 그분
의 얼굴을 직접 보았다고 한다(창 32:22-32). 모세도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말씀을 들었고 그분의
등을 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한다(출 33:11, 23). 따라서 구약의 하나님을 전혀 실체가 없고 비물질적
인 “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300) 개역개정판 구약에는 “성령”이란 단어가 7회 나오고(왕하 2:9, 15, 16; 대상 12:18; 시 51:11; 사 63:10, 11), 표
준새번역 구약에는 2회 나온다(대상 12:18; 28:12).
301) J. R. Levison, “Holy Spirit,” NIDB, Vol. 2, 860.
302) H. W. Wolff, Anthropologie des Alten Testaments, 문희석 역, 『구약성서의 인간학』 (왜관: 분도출판사,
1976), 71-72.
303) H. Ringgren, Israelitische Religion, 김성애 역, 『이스라엘 종교사』, 127.
304) S. V. McCasland, “SPIRIT,” IDB, Vol. 4,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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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하나님의 영 개념을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던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을 경우 이상과 같은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오해를 구약 본문의 주석과 해석에 적용할 경우 그릇된 성서신학적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에 대한 히브리적 사고를 반영한 이해가 필요하다.

III.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그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구
약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영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어떤 것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힘(divine power)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현존이나 임재(presence)를 나타낸다.

1. 하나님의 영향력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개인이나 공동체 등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힘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다.305) 그 힘은 하나님에게서 기인하는 생명력이나 기운, 활기, 능력, 복, 의지력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구약의 주요 실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고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에게 임한 경우 하나
님의 영은 그들에게 지도력(leadership)을 발휘하는 힘으로 작용했다.306) 예를 들면, 기드온(삿 6:34)과 옷
니엘(삿 3:10), 입다(삿 11:29)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전쟁에 나가기 전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주
어졌다. 또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했고(삿 13:25), 그가 사
자를 죽이거나(삿 14:6)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기 전(삿 14:19; 15:14)에도 그에게 세차게 내렸다.307) 암몬
족속과 전쟁을 할 때 하나님의 영은 사울에게도 임했다(삼상 11:6; 16:14 참조). 하나님의 영은 사무엘이
소년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기름을 부을 때 임했고(삼상 16:13) 이후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쳤다(삼상 17
장). 이것은 사사들이나 아직 왕정이 확립되기 전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지도자들에게 하나님
의 영이 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영은 이스라엘을 억압하거나 괴롭히는 타민족과
의 전쟁에 나서는 지도자들로 하여금 비범한 능력과 용기를 갖고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의미했다. 그 힘은
위기의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주어졌다.308)
다른 한편, 구약은 하나님의 영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미래의 지도자에게도 임할 것을 기대한다. 예를
들면,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왕에게도 임할 것이라고 선포한다(사
11:2; 42:1; 61:1). 그리하여 그는 지혜, 총명, 모략, 권능, 지식, 주를 경외함 등을 가지고 통치할 수 있다
(사 11:2). 그러한 메시아는 심지어 고난도 감내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사 42:1). 이것은 메
시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이 전쟁 수행의 능력이 아니라 평화적 통치 능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은 예언의 능력을 주는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모세 그리고 장막에 모
인 장로 70명과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진영 안에 있던 2명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예언을 했다(민
11:17, 25). 발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선포했다(민 24:2). 사울과 그의 전령
들이 예언자 집단을 접촉할 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다른 예언자들처럼 예언을 했다(삼상 10:10;
19:20-23).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다윗은 마치 예언자처럼 신탁을 말한다(삼하 23:2).
하나님의 영을 예언하는 능력과 연관시키는 이러한 실례는 왕정시대 문서 이전 예언자들(pre-writing

305) J. Reiling, “HOLY SPIRIT,” in Dictionary of Deities and Demons in the Bible, eds., K. van der Toorn,
B. Becking and P. W. van der Horst (Grands Rapids: Eerdmans, 1999), 418; Th. C. Vriezen, 윗글,
249-50; R. Albertz and C. Westermann, “spirit,” in E. Jenni and C. Westermann, Theological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 3 (Peabody: Hendrickson, 1997), 1213.
306) R. Albertz and C. Westermann, 윗글, 1213-14.
307) 메릴에 의하면, 사사기 13-16에서 삼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은 신앙이나 불신앙 혹은 복종이나 불복종의 상
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도구로서 역할을 하게 한다. E. H. Merrill, “The Samson Saga and
Spiritual Leadership,” in Presence, Power and Promise: The Role of the Spirit of God in the Old
Testament, edited by D. G. Firth and P. D. Wegner (Nottingham: Intervarsity, 2011), 281-93.
308) C. Barth, God with Us: A Theological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1),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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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phets)이나 문서 예언자들(writing prophets)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309) 즉 왕정시대 예언자들의 예
언 신탁 선포는 하나님의 영과 긍정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나님의
영은 예언의 능력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능력과 연관된다(왕상 18:12; 왕하 2:15-16). 엘리사는 “하나님
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임할 때 예언하기 시작했다(왕하 3:15).310) 아모스에서 예레미야까지의
문서 예언자들의 책에서도 하나님의 영을 예언하는 능력으로 언급하지 않는다.311)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
씀하시되”(코 아마르 야웨)라는 메신저 양식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의 유일한 합법성으로 여
긴 것 같다.312)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라고 여겨진다.313) 즉 그러한 예언현상은 아마도 바알 예언자들이나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방식으로
여겨졌고 이들은 하나님의 영을 빙자하여 사람을 속이거나 사기를 치는 어리석은 자들로 간주되었다는 것
이다(호 9:7). 실제로 미가야와 싸웠던 거짓 예언자 스마야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을 언급
했다(왕상 22:24).
예언 선포와 하나님의 영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연관시키는 본문은 포로기 및 포로기 이후 문서 예언
자들에서 다시 찾아 볼 수 있다. 에스겔의 경우, 그의 예언이 하나님의 영에 의한 은사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지만, 포로기 이전 문서 예언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 예언의 능력을
주는 대리자(agent)로 여긴다(11:5).314) 제2 이사야(사 48:16)315)와 제3 이사야(사 59:21; 61:1), 스가랴(슥
7:12)도 하나님의 영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으로 여긴다. 요엘은 그 능력이 모세처럼 모든 백성에게 계속
해서 주어지기를 희망하는데(민 11:29; 겔 39:29 참조), 예언뿐만 아니라 꿈을 꾸고 환상을 보는 능력도
포함한다(욜 2:29-29). 포로기 이후 문서인 역대기(대상 12:18; 대하 15:1; 20:14; 24:20)와 느헤미야(느
9:20, 30)도 하나님의 영과 신탁을 긍정적으로 연관시킨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의 영의 역할과 기능에 대
한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16)
셋째로, 하나님의 영을 지혜와 연관시키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브살렐과 같은 기술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온갖 기술” 등 지혜자의 능력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시킬 수 있었다(출 31:2-6; 35:30-35; 36:1-2). 고대 이스라엘에서 지혜교사들 뿐만 아니라
물건을 만들거나(출 28:3) 건물을 짓는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왕상 7:14), 심지어는 선원들(시 107:27)도
지혜를 가진 사람들로 여겨졌다. 이것은 브살렐과 같은 기술자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영이 지혜의 능력
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엘리후처럼 나이가 어린 사람도 슬기와 분별력 등
지혜의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작용했다(욥 32:6-13). 그리하여 그들은 경험이 많은 나이든 사람들처럼 다
른 사람이 말한 내용을 분석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고 그릇된 말을 반박할 수 있었다.317) 요셉

309) R. Albertz and C. Westermann, 윗글, 1215. 이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차준희, 윗글 참조.
310) “야웨의 손”과 예언현상을 연관시키는 본문은 에스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겔 1:3; 3:14, 22; 8:1; 37:1; 40:1).
311) 문서 예언자들 중 미가의 “하나님의 영”(3:8)이 예언의 능력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첫째로, 벨하우젠
(J. Wellhausen) 이래 이 목적어가 문맥상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후대의 삽입으로 간주하여 무시하는 경우이
다. 차준희, 윗글, 71-73. 둘째로, 이를 원래의 본문으로 여겨 미가에서도 하나님의 영이 예언의 능력으로 여겨졌다
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J. Lindblom, Prophecy in Ancient Israel (Philadelphia: Fortress, 1962), 175, n 109;
L. 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Grand Rapids: Eerdmans, 1976), 314. 셋째
로, 이를 예언의 능력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 “정의와 용기”와 동의어로 여기는 것이다. J. R. Levison, 윗글, 862.
여기에서는 세 번째 주장이 문맥상 타당한 것으로 여긴다.
312) S. Mowinkel, “‘The Spirit’ and the ‘Word’ in the Pre-Exilic Reforming Prophets,” JBL 53 (1934), 199.
모빙켈은 포로기 이전 문서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영을 예언의 능력으로 여기는 것을 거부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말
씀에 의존했다고 주장했다; R. Albertz and C. Westermann, 윗글, 1217.
313)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of God (Peabody: Hendrickson, 1995), 178;
차준희, 윗글, 82; 엄현섭, “A Study of the Spirit of the God in the Old Testament,” 「신학과 신앙」 13
(2002), 189-90.
314) 에스겔의 예언이 하나님의 영에 의존하는지에 대한 논란과 부정적 결론에 대해서는 S. Mowinkel, 윗글,
199-227; 차준희, 윗글, 74-76을 보라. 긍정적 결론에 대해서는 J. Lindblom, 윗글, 176-77을 보라. 린드블롬은
모빙켈이 문서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상태
를 야기하는 초자연적인 힘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177, n 112); J. Reiling, 윗글, 419;
D. I. Block, The Book of Ezekiel Chapters 1-24 (Grand Rapids: Eerdmans, 1997), 50, 334, 359; D. I.
Bloch, The Book of Ezekiel Chapters 25-48 (Grand Rapids: Eerdmans, 1998), 373. 에스겔은 황홀경 상태에
빠졌던 초기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인한 엑스타시 상태와 계시 등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315) B. S. Childs, Isaiah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1), 378; J. N. Oswalt,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Grand Rapids: Eerdmans, 1998), 278.
316) W. Hildebrandt, 윗글,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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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1:38)과 다니엘(단 4:8-9, 18 5:11, 15)의 경우, 외국의 왕들이 그들의 꿈 해석의 능력을 신의 영이
연관시키는데, 꿈 해석은 신탁 지혜(mantic wisdom)의 특징 중 하나이다.318)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은
지혜를 주는 능력 혹은 대리자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지혜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지혜의 능력과 연관될 경우 지혜의 영과 동일시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사
야 11:2은 하나님의 영을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를 경외하게 하는 영”이라 부른
다. 하나님의 영이 지혜의 영이라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지혜와 총명, 모략, 권능, 지식, 주를 경외함 등
은 메시아 왕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제시되지만, 잠언에서는 지혜의 왕이나 지혜자가 가져야 하는 요소
들이다(잠 8:12-16; 16:12-13; 왕상 4:29). 이것은 지혜의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영이 인간으로 하여금 지
혜로운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요 지혜의 원천(source)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과 지혜의 영을 동일시할 수 있는 또 다른 실례는 신명기 34:9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지도력을 계승할 때에 지혜의 영이 그에게 주어졌다(민 27:12-23 참조). 이 영
은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하는 등 자신의 임무
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구원행동의 대행자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수아에게 임한 지혜의 영이 모세(민 11:17)나 사사 등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과 같이 그로 하여금 공동체 지도자로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음을 의미한다.
이상의 본문에서 지혜의 영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잠언에서는 지혜가 자신의 영을 직접 사람들에게 부
어준다. 잠언 1:23에서 여성으로 의인화된 지혜는 마치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나 고대 헬라 세계의 순회
(peripatetic) 교사처럼 다음과 같이 외친다.319) “너희는 나의 책망을 듣고 돌아서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가 내 말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잠 1:23). 지혜는 자기의 영을 어리석은 사람들
에게 부어 주어 그들이 지혜의 가르침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인화된 지혜
는 더 이상 인간의 능력(capacity)이나 성취(achievement) 등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영을 부어주는 주
체로 등장한다. 즉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제시된다.320) 그렇다고 해서 의인화된
지혜를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인격체나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321) 왜냐하면 그녀는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고안이기 때문이다.322) 따라서 의인화된 지혜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여기거나 그녀의 부름을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야웨의 외침으로 여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323) 이
것은 의인화된 지혜의 영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영이나 능력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로, 하나님의 영이 복(blessing)과 연관된 경우이다.324) 신명기 역사가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은
사울에게서 떠나 다윗에게는 옮겨져 지속되었다고 한다(삼상 16:13-14; 18:12).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blessing)이 사울에게서 다윗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 이사야도 하나님의 영을 하나님의
복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여 번영과 행복을 주는 힘으로 제시한다. “내가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듯이, 네 자손에게 내 영을 부어 주고, 네 후손에게 나의 복을 내리겠다”(사 44:3). 이사
야 32:15도 하나님의 영을 자연과 공동체에 번성과 평화, 정의를 가져다주는 힘, 즉 복으로 여긴다. “그러
나 주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317) 욥기 32:8은 슬기를 주는 것이 사람 안에 있는 영 곧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라고 언급하는데, 하나님의 영이 사람


에게 지혜의 능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J. E. Hartley, The Book of Job (Grand Rapids: Eerdmans,
1988), 434; C. Bennema, “The Strands of Wisdom Tradition in Intertestamental Judaism: Origins,
Developments and Characteristics,” Tyndale Bulletin 52/1 (2001), 65-66. 욥기 33:4은 “하나님의 영”과 “전
능하신 분의 입김”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318) 천사무엘,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서울: 동연, 2009), 87-88.
319) L. G. Perdue, Wisdom and Creation: The Theology of Wisdom Literature (Nashville: Abingdon, 1994),
85.
320) B. W. Anderson, 윗글, 269.
321) 잠언 8:22-31은 지혜가 첫 번째 피조물로서 창조사역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도왔다고 언급한다.
322) 구약에서 추상적 개념의 의인화는 자주 등장하는데 정의와 하나님의 영광(사 58:8), 인애, 진리, 의, 평화(시
85:10) 등의 묘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23) 머피는 지혜를 야웨와 동일시한다. R. E. Murphy, The Tree of Life: An Exploration of Biblical Wisdom
Literature (New York: Doubleday, 1990), 138. 반면에 테리언은 지혜의 활동이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S. Terrien, The Elusive Presenc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78), 351-61.
324) R. Albertz and C. Westermann, 윗글, 1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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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하나님의 영은 사람이나 사물을 움직이게 하거나 이동시키는 힘(왕하 2:16; 겔 1:12, 20-21;
2:2; 3:12-14), 회개와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의지력(겔 36:26-28),325) 생명을 주는 힘(창 6:3;
욥 27:3; 33:4; 34:14; 시 104:29),326) 창조하는 힘(욥 33:4; 시 104:30), 판단을 흐리게 하는 힘(왕하
19:7), 거짓예언을 하게 하는 힘(왕상 22:22)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상의 실례들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
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 하나님을 대신해 활동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리자(agent)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이 영을 하나의 인격체나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 하나님의 현존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대부분 영향을 주는 힘이나 대리자를 의미하지만, 소수의 경우에 하나님의 현
존이나 임재(presence)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개인 탄원시인 시편 51편에서 시인은 주 앞에서 자신을
쫓아내지 말고 “주의 거룩한 영”을 거두어가지 말라고 호소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은 창조적인 생명력
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없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다
는 것이다.327) 또 다른 개인 탄원시인 시편 139편의 시인은 창조세계 어디에나 영향을 끼치시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고 호소한다. 여기에서도 “주의 영”은 시편 51:11에서처럼 “주의 얼굴(앞)”과 동의적 평행
을 이루어 하나님의 현존을 나타낸다.328)
이사야 63:10-11도 이스라엘에 임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언급하는데, 이는 백성 가운데 임재하
신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329) 학개 2:5은 하나님이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이 아직도 유효
하고 그의 영이 지금도 백성 가운데 머물러 있다고 묘사하는데,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영은 임재하신 하나
님의 현존을 나타낸다.330) 학개와 동시대 예언자인 스가랴는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슥 4:6)라고 선포한다. 이것은 제이 성전 건축의 약속이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나의 영”은 야웨의 영인데,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 개념이 어떤 것에 영향력을 주는 요소에서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현존을 묘사하는 포괄적
인 신학 개념으로 변한 것은 포로기 이후의 현상이다.331) 클레멘츠가 지적하는 것처럼, 포로기 이후에 영
(spirit) 개념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주요 단어가 되었고 하나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언어와 개념들은 제
의적 개념과 상징들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었다.332) 이러한 개념 변화는 성전이 없어서 실제적 제의행위가
불가능했던 유대인들이 종교생활을 유지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과 같이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 개인이나 공동체에 대해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행동의 도구 혹은 대리자를 주로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한
다. 그렇지만 구약은 그 영을 하나님과 연관되거나 구별되는 신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이와 같은 하
나님의 영의 개념은 포로기 이후 구약 본문에서 하나님의 현존이나 임재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IV. 구약외경에서 하나님의 영

325) H. W. Wolff, 윗글, 79-80; R. Albertz and C. Westermann, 윗글, 1211, 1218-19.
326) H. W. Wolff, 윗글, 72-75.
327) M. E. Tate, Psalms 51-100 (Dallas: Word, 1990), 23-24. 에스테스는 “거룩한 영”을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
한 열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11절 상반절과 하반절을 동의적 평행법으로 여겨 하나님의 현존(presence)으로 이
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D. J. Estes, “Spirit and the Psalmist in Psalm 51,” in D. G. Firth and P. D.
Wegner, eds., 위 책, 133.
328) J. A. Grant, “Spirit and Presence in Psalm 139,” in D. G. Firth and P. D. Wegner, eds., 위 책, 142.
329) B. S Childs, 윗글, 524. 차일즈에 의하면, “거룩한 영”으로서 야웨의 거룩한 현존은 그의 존재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는 외적인 현상의 형태이다. 그는 이러한 표현이 신약성서의 “거룩한 영”과는 구별되지만, 초월적이고 내재
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보여주는 묘사라고 주장한다. 오스왈트는 이사야 63:10-11에 나오는
“거룩한 영”(holy spirit)을 “성령”(Holy Spirit)으로 번역하면서 삼위일체론의 성령 개념과 밀접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거룩한 영”은 고유명사나 어떤 영적 존재의 이름으로 번역될 수 없다. J. N. Oswalt, 윗글,
607-9.
330) P. A. Verhoef, The Books of Haggai and Malachi (Grand Rapids: Eerdmans, 1987), 100-101.
331) R. Albertz and C. Westermann, 윗글, 1219.
332) R. E. Clements, 윗글,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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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외경에도 하나님의 영이나 거룩한 영 등 영을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표현들이 나온다. 이 표현들에
서 사용된 “영”의 의미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구약에서처럼 영향을 주는 신적인 힘을 의미한 경우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 위격화된 경우이다.

1. 하나님의 영향력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대부분 어떤 것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힘이나 능력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경우는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이 쓴 외경의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기원전 약 180년경 팔레스틴의
유대인 지혜교사가 쓴 집회서는 “이해의 영”(the spirit of understanding)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 책의
저자인 벤 시라는 율법과 지혜와 예언을 연구하는 이상적인 학자를 묘사할 때, 이를 언급한다.

“그의 관심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를 만드신 주께 간구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간청하며 입을 열어 기도하고 자기 죄의 용서를 비는 것이다.
그 때 위대하신 주님께서 원하시면, 그는 이해의 영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지혜의 말씀을 입으로 전하고, 감사의 기도를 주께 드릴 것이다.
그가 주님의 신비를 명상할 때 주님은 조언과 지식을 주실 것이다.”
(집 39:5-7).

여기에서 “이해의 영”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이나 “지혜의 영”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의 능력
을 의미한다. 즉, 이 영은 학자가 토라와 예언, 지혜 등을 연구하여 올바른 깨달음을 얻고 학생들에게 이
를 가르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뜻한다.333) 벤 시라에 의하면, 이 영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죄의 용서를 빌
때 주어진다. 이것은 참된 지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연구뿐만 아니라 기도와 명상도 반드시 필요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334)
집회서는 예언자를 “영”(spirit)의 소유자라고 언급한다. 예를 들면, 집회서 48:12은 예언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싸여 사라질 때, 함께 있던 제자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엘리사가 소
유한 영은 그의 스승인 엘리야의 영인데 이로 인하여 엘리사는 예언자로서의 직분을 다할 수 있었다는 것
이다(집 48:13). 여기에서 엘리야의 영은 엘리사가 계승한 하나님의 영으로 예언의 능력을 의미한다. 또한,
집회서 48:24-25에 의하면, 예언자 이사야는 “그의 강한 영으로 미래를 내다보았으며 슬피 우는 이온 사
람들을 위로하였고, 세상 종말까지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었으며 감추어진 일들을 사전에 미리 알려주었다”
고 한다. 여기에서 “그의 강한 영”은 이사야가 소유하고 있던 예언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도구를 뜻
하는데, 하나님의 영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집회서에서 예언자들이 소유한 영은 구약
의 하나님의 영처럼 예언자들로 하여금 예언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335) 따라서 그 영
은 예언의 능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영과 동일시될 수 있다.
유딧은 기원전 150-125년경 팔레스틴의 유대인이 히브리어로 쓴 단편소설인데, 마지막 부분에 있는
유딧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영이 언급된다.

“당신의 모든 피조물은 당신을 섬겨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당신의 말씀으로


생겨났습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니 만물이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당신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사옵니다”(딧 16:14).

이 기도는 과부이자 신앙심이 깊은 여걸 유딧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전쟁에서 승리한 뒤 하나님께 드리


는 감사기도 중 일부이다. 여기에서 그녀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만물이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은 하

333) 집회서에서 토라 즉 율법과 지혜는 동일시된다(집 24:23). 즉 토라는 지혜의 화신이자 거하는 곳으로, 토라를 연
구하고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혜를 얻게 한다(집 15:1; 21:11). 바룩(바 3:37-4:1)과 마카비 4서
(1:15-17)에서도 토라와 지혜는 동일시된다.
334) P. W. Skehan and A. A. Di Lella, The Wisdom of Ben Sira (New York: Doubleday, 1987), 452.
335) E. Sjöberg, “Ruach in Palestinian Judaism,” TDNT, Vol. 6,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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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창세기 2:7의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는 내용과 유사하다(시
33:6, 9; 104:29-30 참조). 여기에서 “당신의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 구약에서처럼 창조의 힘으로 작용하
여 피조물에게 생명력을 주는 대행자(agent) 역할을 한다(창 2:7; 시 104:29-30).336)
칠십인역에서 다니엘에 속하는 수산나 역시 단편소설인데, 팔레스틴 유대인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에 의하면, 주인공 수산나가 원로들의 성폭력 시도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주님
께서 다니엘에게 “거룩한 영”(holy spirit)을 불어넣으셨다(산 45/단 13:45).337) 그러자 다니엘이 군중들에
게 큰 소리로 수산나가 죄가 없다고 외치면서 그녀를 변호하기 시작했다(산 46/단 13:46). 여기에서 “거룩
한 영”은 다니엘로 하여금 정의를 위해서 용기를 가지고 나서서 지혜롭게 수산나를 변호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 영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구원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영향력으로 작용했다. 하나님의 영이
일시적으로 임하자 위기 상황의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들처럼 다니엘은 이 영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수산나를 구한다. 따라서 다니엘에게 임한 “거룩한 영”은 하나님의 영과 동일시 될 수 있고, 그 역할
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에스드라스 이서는 기원후 70년 이후에 쓰였는데, 묵시문학에 속한다. 이 책에서 에스라는 율법을 가
르치는 서기관이 아니라 환상 가운데 미래를 바라보는 예언자(seer)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두 번째
묵시를 말하기 전 “이해의 영”(the spirit of understanding)을 받는다(에이 5:22).

“그리하여 나는 우리엘 천사가 나에게 명한대로 칠일 동안 금식하면서


울며 애통해 했다. 칠일 후에 나는 나의 생각들 때문에 다시 한 번 매우 슬퍼졌다.
그 때 나의 영혼은 이해의 영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다시 한 번 말하기 시작했다”(에이 5:20-22).

여기에서 “이해의 영”은 에스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말을 할 수 있게 한다.338) 즉 그 영으로 인해 에


스라는 하박국처럼 하나님께 항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해의 영”이 예언의 능력을 주는 하나님의 영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14:22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제가 당신의 마음에 들면, 거룩한 영을 나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제가


태초부터 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것, 당신의 율법에 쓰인 모든 것을 기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길을 찾을 것이고, 마지막 날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살 것입니다“(에이 14:22).

에스라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거룩한 영”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이 영을 통해서 백성들이 바른


길을 따라 살 수 있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백성들이 그 기록을 읽고
마지막 때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거룩한 영”은 예언자나 학자(집 39:6)에게 임한
“영”처럼 깨닫고 이해하여 그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게 하는 힘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이 에스라에게 임한 “영”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글로 기록하게 한다. 이것은 에스라가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에스라에게 임한 영은 예언의 능력을 주는 하나님의 영과 동일시 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위격

구약외경에서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위격(hypostasis)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삼위일체론에서 하


나님의 세 위격인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면서 셋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위격
으로 여겨져 하나님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구분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는 솔로몬의 지혜서에 나온다. 기

336) C. A. Moore, Judith (Garden City: Doubleday, 1985), 250. 시편 33:4에서 “하나님의 말씀”도 창조력이 있는
대행자 역할을 한다.
337) 칠십인역(LXX)은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해의 영”(spirit of understanding)을 주었다고 한다.
338) M. E. Stone, Fourth Ezra (Minneapolis: Fortress, 1990),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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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후 38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영(프뉴마)은
하나님과 동일시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힘, 거룩한 영, 자비의 영, 정의, 선, 지혜, 지혜의 영, 힘 등
도 하나님과 동의적으로 사용된다(솔 1:5-7).339) 이것은 이들을 영광의 하나님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방
출물(effluence) 혹은 발산체(emanation)로 여기기 때문이다(7:25).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지혜를 주는 힘을 의미하여 지혜(호크마)와 구별하지만,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는 지혜(소피아) 그 자체와 동일시된다(9:17). 또한, 지혜는 지혜의 영과 동의적으로 사용된다(7:7). 그리하
여 지혜나 지혜의 영은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할 때 주어지며 다르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7:7; 8:21). 지혜는 기도로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
편, 솔로몬의 지혜서는 지혜와 지혜의 영을 구분하기도 한다(7:22). 이 경우 지혜의 영은 지혜 속에 거하면
서 지혜와 그 가르침을 드러내는 힘의 기능을 한다. 즉 영리함, 거룩함, 민첩함, 강인함 등 지혜의 속성들
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7:22-23).340)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지혜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과 같은 역할도 한다. 예를 들면, 지혜는 아담, 노
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등(10:1-16)과 솔로몬(7:7-14), 예언자들(7:27; 11:1), 대제사장 아론
(18:18-21)이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10:1-16). 또한, 지혜는 창조사역에 참여했고(9:2, 9)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박에서 구했으며 광야에서 인도했고(10:15-19:22), 악인들을 심판했다(10:19;
19:13). 지혜는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7:27).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지혜는 말씀과도 동일시되기도 한다.341) 여기에서 말씀은 헬라어로 “고로
스”(logos)인데 지혜처럼 창조사역의 도구(9:1)나 심판자(18:15)의 역할을 한다. 특히 로고스가 심판자의
역할을 할 때 지혜처럼 하늘의 옥좌로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이 땅으로 내려와서 그 명령을 수행한
다(9:10). 이러한 역할을 하는 로고스 역시 하나님의 위격으로 간주되며 하나님의 영과 동일시될 수 있
다.342)
솔로몬의 지혜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은 온 세상에 내재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온 세상에 충만하며
모든 것을 유지하고 지탱하게 한다(1:7; 7:23-24). 그것은 마치 스토아 철학에 나오는 우주의 영혼(cosmic
soul)이나 온 세상에 배어있는 숨처럼, 온 세상의 모든 것에 내재하여(immanent) 생명을 불어넣고 활기차
게 한다(8:1).343)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은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고 알 수 있으며 심지어 감추어
진 모든 것도 알 수 있다(1:6; 7:17-21).
요약하면, 구약과는 달리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산한 하나의 위격으로
이 세상에 편재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일시되거나 구분되기도 한다. 또한, 지혜나 말씀 등 다른 위격
들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영의 위격화는 신약성서(요 14:16-17; 롬 8:16; 고전 2:10)와 삼위일체
교리에 반영되어 있다.

V. 결론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대부분 어떤 것에 영향을 주는 신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의 인격체


나 어떤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생명력이나 활력을 갖고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지칭한다.344) 따라서 하나님
의 영이 임할 때에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나 예언의 능력, 지혜의 능력, 의를 행하려는 의지력 등을 가지
고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이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구약외경에서도 계속되며, 신
구약중간시대 문헌과 신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마 4:1; 눅 1:35; 행 2:4).345)

339) D. Winston, The Wisdom of Solomon (Garden City: Doubleday, 1979), 100.
340) 솔로몬의 지혜서 7:22-24은 헬라철학에서 사용되는 21개의 형용사로 지혜의 본성을 묘사한다.
341) 집회서와는 달리 솔로몬의 지혜서는 토라와 지혜를 동일시하지 않고 토라를 지혜가 머무는 곳으로 여기지 않는
다. D. Winston, 윗글, 42-43; C. Bennema, 윗글, 71.
342) 솔로몬의 지혜서는 하나님의 말씀 즉 로고스 개념을 필로와 유사하게 사용한다. J. J. Collins, 윗글, 201-202. 필
로의 로고스 개념에 대해서는 K. Schenck, A Brief Guide to Philo (Louisville: WJK, 2005), 58-63을 보라.
343) D. Winston, 윗글, 100, 104; J. J. Collins, Jewish Wisdom in the Hellenistic Age (Edinburgh: T & T
Clark, 1997), 197. 솔로몬의 지혜서의 철학사상은 전반적으로 중기 플라톤주의에 속하는데, 스토아철학뿐만 아니
라 플라톤철학과 유대사고 등이 혼합되어 있다.
344) “하나님의 영”처럼 “하나님의 손”(야드)도 하나님의 능력이나 힘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출 9:3; 욥 12:9; 사
41:20; 66:14; 겔 3:22; 40:1).
345) E. Schweizer, “pneuma,” TDNT, Vol. 6, 397.

- 215 -
포로기 이후에 하나님의 영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
님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나 용어로 사용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의 현존하시는 모습을 나타낼 뿐이다.
이러한 용례는 신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막 1:10-11; 9:7; 마 3:16; 요 1:33).346)
하나님의 영은 기원후 1세기 디아스포라 문헌인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하나님의 위격으로서 등장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영광의 발산체로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힘, 정의 등 다른 발
산체들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영의 위격화는 신약에서도 계속된다.
이상과 같이 구약과 구약외경에서 하나님의 영 개념은 하나님의 영향력,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위
격을 의미하며, 이러한 개념은 신약에서도 사용된다. 따라서 신약에서 언급되는 “거룩한 영”은 삼위일체론
의 성령을 의미하는지 구분해야 하며, 성서를 번역할 때 이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
의 영 및 이와 연관된 단어들은 문맥에 따라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을 우리의 삶과
더 밀접하게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346) W. Hildebrandt, 윗글, 50.

- 216 -
예언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

이사야(남서울대학교)

1. 들어가는 말

구약학에서 루아흐(‫)רוח‬와 성령론은 다른 신학적 주제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연구된 것이 사실이다.


구약성서학자인 블락이 “성령론이란 본질적으로 신약성서의 교리”라고 단언했을 정도로347) 구약성서에서
성령론이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우리 입과 귀에 익숙한 성령(론)이라는 직접적
인 표현이 구약성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성령(‫)רוח קדוש‬
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시편 51편 13절(개역-11절), 이사야 63장 10절, 11절 뿐이다. 힐데브란트는 이
루아흐의 기원에 대한 연구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대 근동에서 영(spirit)이라는 개념의 기
원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은 마치 우주를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복잡한 일이 구약에서 제시하는 이스라엘의 성령론에 대한 배경 추적이다.”348)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389회의 루아흐 중 루아흐 야웨(‫)רוח יהוה‬와 루아흐 엘로힘(‫ )רוח אלהים‬그리고 신명
이 없는 형태의 루아흐 중 바람이나 호흡, 사람의 마음 등의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영과 힘이라는 의미를
지닐 때, 신인식론적 의미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신명 야웨나 엘로힘이 붙어있는 형식이 모두 신인
식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셋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349) 이
중 구약의 예언서는 오경(38회), 역사서(42회), 성문서(25회)보다 하나님의 영에 대한 본문을 많이 담고 있
다. 특이한 점은 예언서에서 모두 65회 언급되는 하나님의 영 본문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고 포로
기와 그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모스, 예레미야, 하박국, 나훔, 스바냐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
고, 호세아와 미가도 심판맥락 속에서 각각 1회(호9:7)와 2회(미2:7;3:8) 사용하였을 뿐, 8-7세기의 예언자
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영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아예 침묵한다. 반면 제2,3이사야와 에스겔, 요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들에 집중되어 있고,350) 제1이사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
본문들(사11:1-5; 28:5-6; 30:1-5; 32:15-20; 34:16-17)도 대부분 그 연대가 제2, 3이사야 시대의 것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다.351)
본 논문은 구약의 예언서, 특히 포로기와 그 이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 본문들을 주석적으로 살펴보
면서 그 신학적 특징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루아흐가 구약성서의 또 다른 신학적 중심어라는 사
실을 주목함과 동시에 구약의 영과 영성, 성령론에 대한 빈곤한 연구 건축에 돌 하나를 얹고자 한다.

2. 예언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

1) 창조와 새 창조, 회복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13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
14
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
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352)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사40:12-14)

347) D.I. Block, "The Prophet of the Spirit: The Use of RWH in the Book of Ezekiel," JETS 32:1 (1989): 27.
348)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Massachusetts: Hendrickson, 1995), 27.
349) 루아흐의 쓰임새는 하나님의 영과 힘 외에도 자연의 바람, 방향, 인간의 마음 등 다양하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서
에서 성욕에 찬 들나귀의 헐떡거림에 사용된 용어도 루아흐이다(렘 2:24; 14:6).
350) 사4:4(x2); 11:2(x4),4; 28:6; 29:10; 30:1; 31:3; 32:15; 34:16; 37:7; 40:7,13; 42:1,5; 44:3; 48:16; 59:19,21;
61:1; 63:10,11,14; 겔1:12,20(x3),21;2:2; 3:12,14(x2),24; 8:3; 10:17; 11:1,5(x2),19, 24(x2); 36:26,27;
37:1,5,6,8,9(x3),10,14; 39:29; 43:5; 호9:7; 욜3:1,2; 미2:7; 3:8; 학2:5; 슥4:6; 7:12; 12:10; 말2:15(x2).
351) 이사야, “야훼 임재의 상징과 영,” 「구약논단」 30집 (2008), 187-188.
352) “지식을 가르쳤으며”: LXX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1QIsaa와 Tg에는 나타난다. 베스터만은 이를 후대의 편집으로
본다. C. Westermann, Isaiah 40-66, OTL (Philadelphia: Westerminster, 1965), 46.

- 217 -
이사야 40장은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선포되는 기쁜 위로의 말씀으로 시작하면서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그려준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삶 속에 다시 개입하실 것이라는 메시지가
낙심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달된다. 여기서 이사야는 가르치다, 의논하다, 교훈하다, 의논하다 등의 표현
을 수사학적으로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루아흐(여호와의 기운)가 불면 풀고
같이 시들고 마는 인간을 다스리며, 자기 양들을 돌보는 목자이시지만(사40:6-7,11). 그러나 이사야 40장
의 주요 주제는 무엇보다도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다.353) 이사야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엄과 솜씨
를 노래하며,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이 비교불가능한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며, 이 맥
락 속에서 성령의 사역을 말하고 있다.354) 인간은 스스로 우상을 만드는 반면(18-20절),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다(26,28절). 이사야는 하나님께 아무 도움 없이 스스로 충분히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사40:12-14).355) 창조라는 맥락에서 하나님의 영은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며, 누
구도 하나님의 영을 측량하거나 판단할 수 없으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측량하시며, 창조
라는 맥락에서 하나님의 영은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나타낸다.356) 우주의 창조를 계획하시고 자신의 영으
로 그 계획을 실행하신 하나님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으로 창조를 계획하고 하늘들과
땅, 바다, 산들이 생기도록 실행하셨을 정도로 절대적인 주권을 갖고 계신다.357)

1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3나는 목마른 자
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5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사44:1-5)

새로운 종, 야곱/이스라엘에게 뜻밖의 축복이 약속된다. 황폐하고 소망이 없는 마른 땅, 이스라엘에게


제2의 출애굽까지도 암시되고 있다.358) 하나님의 영과 복이 평행을 이루면서 야곱/이스라엘의 후손에게
부어진다. 신실한 종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야곱(사43:22-28)에게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타내는 구원 말
씀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불순종의 결과를 짊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을 백성을 격려하고 확신을 준다. 야곱을
‘나의 종’, ‘나의 택한 여수룬’359)으로 부르는 표현은 회복을 위한 근거로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의지와
행동을 보여준다.
여기서 이사야는 ‫(ישה‬아사/만들고)와 ‫(יצר‬야차르/지어 낸)라는 창조 용어를 사용한다.360) 창세기 2장 3,7
절에서 사용된 두 단어를 통해 야웨의 종으로서 새롭게 태어나게 될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창조행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361) 제2이사야에서 동사 ‫יצר‬를 사용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

353)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40.


354) 김정우, “이사야서의 성령론,” 「신학지남」 262호 (2000), 120.
355)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40.
356) 하나님의 지혜와 인식력으로서의 영은 구약에서는 흔하지 않은 용법이다. 비창조맥락인 이사야 30장 1절에서 루
아흐 야웨가 한 번 더 지혜와 연관될 뿐이다. 와이브레이는 여기서 지혜의 영향을 부정한다. R.N. Whybray, The
Heavenly Counsellor in Isaiah xi 13-14: A Study of the Source of the Theology of Deutero-Isaiah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1), 26-27.
357) C. Westermann, Isaiah 40-66, OTL, trans. by D. M. G. Stalker (Philadelphia: Westerminster, 1969),
50; Ma Wonsuk, The Spirit of God in the Book of Isaiah & its Eschatological Significance (US: UMI,
1996), 173-175.
358) J. Smart, History and Theology in Second Isaiah: A Commentary on Isaiah 35, 40-66 (Philadelphia:
Westminster, 1965), 110; P.D. Hanson, Isaiah 40-66, Interpretation: A Bible Commentary for Teaching
and Preaching (Louisville, KY: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5), 82-83; Ma Wonsuk, The Spirit of
God, 188에서 중인.
359) 여수룬은 야곱/이스라엘을 시적으로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신32:15; 33:5,26). 통상적으로 ‘속이는 자’라는 뜻을
지닌 야곱과는 달리 ‘정직한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독일성서공회판 성경전서 본문 해설).
360) 코흐는 이를 ‘하나님에게서 나와 인간에게 생명을 불러 일으키고 그 생명을 유지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생명 호
흡’으로 규정한다. R.T. Koch, Die Geist Gottes im Alten Testament (Frankfurt: Peter Lang, 1991), 121.
361)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עשה‬모든 일을 마치시고(창2:3),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
고(‫()יצר‬창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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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포로 공동체에게 구원에 대한 큰 희망이다.362) 더 나아가 5절에 나오는 사람
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라면 이들은 이스라엘 내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영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
을 인정하고 개종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의 보편적인 사역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물과 영 사이의 중요한 상징적 역할은 생명을 준다는 차원에 있다. 하나님의 영은 목마른 자에게 주는
물과 마른 땅에 흐르는 시내처럼 백성에게 주어진다. 바싹 말라버린 땅에 비가 내려 풀이 자라듯,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영이 말라버린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창조의 힘을 부여한다. 물질적으로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는 비를 갈망한 것처럼, 장차 도래할 메시야시대의 정결과 갱신, 영적 복, 회복을 가져올
비처럼 내리는 영을 소망했다.363) 물과 영은 흔히 갱신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종말론적인 이미지들로 볼
수 있다(사32:15; 42:5; 57:16; 욥27:3; 34:1; 시104:30; 146:4; 슥12:1,10; 에스겔 37장 등). 이와 같은 이
미지는 에스겔 37장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마른 뼈들이 소생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
이 한다고 하겠다.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
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
10
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14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
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7:9-10,14)

에스겔 37장에서 에스겔은 절망적인 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대한


환상을 표현하고 있다. 마른 뼈 환상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은 재창조적인(re-creative) 역사와 상관되어
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루아흐의 새로운 창조 역사를 대비시킴과 동시에 피조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영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364)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 부음을 통해여 회복되어 이스라엘 고토
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선포된 생기(9절)는 단순히 죽은 자의 소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
의 회복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영을 부으시겠노라고 선포하신다. 이러한 선포는
환상에서 본 마른 뼈들에게 영이 공급되었을 때, 그 마른 뼈들이 살아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을
부으셔서 민족의 회복을 이끄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선포이다. 에스겔 36장 26-27을 반복하는 14절은
생명의 영을 불어넣어 줄 뿐 아니라, 민족을 새롭게 하는 영의 부음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하
나님의 영의 임재는 단순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넘어서서 민족 전체의 내적 갱신까지를 지시한다. 이 반복
적인 표현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확실하게 말씀하시고 보증하신다.
회복과 새로운 창조의 의미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결속을 가능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창출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
게 있어서 포로생활은 실제적으로 죽은 자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포로생활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
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흙덩이의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셨던 그 호흡으로 이스라엘 백성
들을 살리시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가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바로 새로운 창조의 영을 공급하시는 것
이다.
이어 에스겔 37장 15-18절에서 에스겔은 처음으로 정치적 의미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언급
한다. 통합된 한 나라로서의 회복, 곧 이상적인 왕국으로의 회복,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백성들을 정착시

362) 제2이사야는 ‘창조하다’ 혹은 ‘만들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פעל‬45:11), ‫(עשׂה‬40:23; 44:17; 54:5 등), ‫יצר‬
(44:10,21; 45:18; 54:17 등), ‫(ברא‬40:26; 41:20; 45:18; 54:16 등)동사를 많이 사용하며, 이것은 제2이사야의 문학
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김지은,『포로와 토지소유』(서울: 한들출판사, 2005), 132.
363)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66.
364) 이학재, 『에스겔 어떻게 읽을 것인가』(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300-301. 죽음과 절망을 상징하는 단어인
‘뼈들’(에차모트)이 10번이나 사용되었고(1,3,4a,4b,5,7a,7b,7c,11a,11b), ‘무덤’(케렘)이라는 말도 4번이나 사용되었
다. (12a,12b,13a,13b). 그리고 ‘살린다’(하야)라는 단어가 무려 5번이나 사용되었는데(5,6,9b,10,14a) 이 단어는 루
아흐와 연결되는 문장의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대비적인 단어를 통해 루아흐의 사역을 극대화시키고, 루아
흐의 살리는 영의 역할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한다. Lee Hakjae, A Rhetorical and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 רוּ‬in Ezekiel 37:1-14, US: The University of Stellenbosch, 1999, 179-183.

- 219 -
키고, 지도자를 세워서 하나의 나라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은 단순한 이념적 선언
이 아니다. 에스겔은 앗시리아 제국과 바벨론 제국에 의해 포로로 흩어져 지내고 있는 남왕국과 북왕국의
포로민들에게 땅으로의 귀환 약속을 주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에게 준 땅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이는 땅과 민족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편집자의 이상적인 회복표현이다.365)

2) 하나님의 이름, 영광 그리고 말씀

19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20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21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
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59:19-21)

이사야 59장 19-21절은 하나님의 영과 이름, 영광이 함께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사야와 에스
겔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오는 하나님 야웨를 표시한다. 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이 다시 시온과 야곱의 자손에게 돌아올 것을 소망/확신하면서 신명기사가와 제사장적 자료에서 사
용하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하나님 임재의 표현들로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야가 하나
님의 이름과 영광을 하나님 임재의 표현으로 모두 사용하는데 반해 예루살렘 제사장 출신이었던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사용하고 있다. 에스겔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은 잠시 그의 백성을 떠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백성의 우상숭배로 이미 더럽혀졌고, 이전의 성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성전을 기대하
고 있기 때문이다.366)

22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이름을 위
23
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이름을 내가 거
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겔36:20-23)

에스겔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여호와의 땅’에서 쫓아낸 이유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이 계시
는 땅(겔35:10)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에스겔이 ‘예루살렘’이라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로 인해 이미 실패한 곳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쫓아
내어 그들이 여러 민족 가운데 머물러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 받고 더럽혀진 사건이었다. 하
나님은 자신의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오고, 포로된 유다 백성이 가나안 땅
으로 돌아옴으로써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 또한 하나님의 영광, 거룩하심이었다.367)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과의 연합도 주목된다. 하나님은 ‘그들’ 즉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
나는 자’와 언약을 새롭게 세우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실 언약의 중심 내용은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영원토록 지속되리라는 데에 있다.368) 하나님의 말씀과 영이 함께 작용
하여 언약의 말씀이 하나님 백성의 경험 속에서 세대를 거듭하면서 성취될 것이라는 현실을 확언한다(사
42:6; 49:8; 54:10; 55:3; 61:8 참조). 예언과 하나님의 영과의 밀접한 관련은 포로기 말기부터 시작되어
포로기 이후에 와서는 서로 나뉠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가 되었다.369) 성전 제의가 부재하던 때에 하나
님의 말씀은 그 중요성을 더했을 것이다. 특히 몬태그는 이사야 59장 21절이 ‘영과 말씀의 완벽한 일치’(a
perfect coincidence of spirit and word)를 표현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영에 의한 예언과 말씀이
이스라엘 안에서 영원히 존속할 것을 굳건히 확증한다고 주장한다.370)

365) 김지은, 『포로와 토지소유』, 173-174.


366) 이사야, “하나님의 이름과 영 그리고 종교양태의 변화,”「기독교사회윤리」 28집 (2014), 188.
367) 이사야, “하나님의 이름과 영 그리고 종교양태의 변화,” 175.
368) 김정우, “이사야서의 성령론,” 137.
369) 차준희, “예언과 영: ‘문서 예언서’에 나타난 ‘예언’과 ‘하나님의 영의 관계,”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5집
(1998),” 78-79를 보라.

- 220 -
하나님의 영의 임재가 하나님의 선택의 상징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근거가 됨을 말하는 구절
은 이 외에도 하나님의 영으로 영감을 받은 다윗의 예언자적 외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여호와의 영(‫יהוה‬
‫)רוח‬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삼하23:2). 흥미롭게도 포로기 이후 예언서
에서 하나님의 영이 더 이상 어느 특정 개인이 아닌 전체 이스라엘과 모든 백성에게 부어지는 것처럼, 하
나님의 말씀/예언 또한 특정 왕을 비롯한 개인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백성을 향하고 있다. 베커
는 예언의 말씀이 전체 민족에게 전이되는 현상은 왕권이 민족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이됨으로 비유된
다고 주장한다.371) 다가오는 구원의 세대에 공동체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지고, 언약의 약
속들이 세대에서 세대를 걸쳐 하나님 백성들의 경험 가운데 성취되리라는 것이다.

3) 영 부음과 기름부음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
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
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

이사야 61장 1-3절에서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 시대의 축복이 기름부음을 받은 야웨의 종의 사역을 통해
희년이 회복되리라는 것으로 예언되고 있다.372) 여기에서 전통적인 기름부음 사상과 하나님의 영과의 통합
적인 관계가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름붓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
다. 전통적으로 구약시대의 지도자들은 기름부음을 통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는 사실을 공포하였
다. 사무엘이 사울을 택할 때나 다윗을 택할 때에도 기름을 부었다(삼상10: 1-13; 삼상16:12-13; 삼하
23:1-7). 그러나 포로기 이후의 많은 본문들은 전통적인 양식인 기름부음 대신 영 부음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을 드러내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는 이전의 기름부음 양식을 대신하여 또 다른 하나님 임
재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373)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포로기 이후의 예언서에 나타나는 영 부음이
전통적인 기름부음 양식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직접적
인 통치에 대한 기대를 담고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부어진다는 것이다. 요엘은 모든 사람에게 다
부어질 하나님의 영을 다가올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인 희망으로 언급한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
29
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2:28-32, MT 3:1-2)

사사나 왕 같은 특정 사람에 대한 제한이 완전히 철폐되어, 다른 사람의 매개나 해석 없이도 모든 백성


이 직접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갈 수 있게 된다. 바이저는 이를 곧 모든 백성이 영을 받아 선지자 되기를
원하는 모세의 소망(민11:29)의 성취로 보면서 이제 더 이상 예언자는 필요없게 된다고 주장한다.374) 모든
백성에게 부어질 하나님의 영은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목자의 이미지, 즉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
님으로 묘사된다(사63:14). 심판의 때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된 영광스런 모습의
회복과 성취에 대한 희망은 아직도 희미하기만 한 가운데, 이사야는 낙심한 공동체에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영원히 임재하셔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는 목자처럼 이끌어 가시리라는 용기와 확신을 불어넣어주
고 있는 것이다.375)

370) G. T. Montague, The Holy Spirit: Growth of a Biblical Tradition (New York: Paulist, 1976), 60, 135.
371) J. Becker, Messianic Expectation in the Old Testament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0), 51, 68-69.
372) 김정우, “이사야서의 성령론,” 141.
373) 이사야, “야훼 임재의 상징과 영,” 193-194.
374) A. Weiser, Joel, Das Buch der zwölf kleinen Propheten, 『호세아/요엘/아모스/즈가리야』 국제성서주석 25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2), 195.

- 221 -
하나님의 영은 전체 백성 뿐 아니라 야웨의 종에게도 임한다. 이사야 42장 1-4절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
을 통해 이방과 세상에 공의를 베풀 것을 묘사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강조되는 공의의 실현은 하나님
의 영에 의해 수행되는 포로기 이후의 보편주의적 경향을 드러낸다. 이 본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둠
(B. Duhm)이 이 본문을 독립된 네 개의 종의 노래(사42:1-9; 49:1-13; 50:1-11; 52:13-53:12) 중 첫 번
째 것으로 분류한 이후, 주로 종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376) 그러나 이사야는 종의 정체에 대
한 관심 보다는, 하나님의 영이 그 종을 고무하여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며 공의를 맺게 하는
데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
리로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시행할 것이며 4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42:1-4)

하나님이 택한 종은 하나님의 영을 부음받은 자로 나타난다. 이사야서의 영 본문들에서 하나님의 영이


주어지는 것은 대부분 미래형으로 나타나는 반면, 여기에서 종은 이미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는 과거형으로
나타나며, 계속적으로 누릴 것이 강조된다.377) 니브는 본문이 하나님의 영의 카리스마적 사역의 연속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378) 하지만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은 영 임재의 증명수단으로서 초인간적인 혹은 영웅
적인 능력을 보여주어야 했지만, 여기서의 종은 아무런 영웅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이 선택했
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임재했던 카리스마적 지도자들과는 달리, 하나님 자신
에 의해 종이 직접 소개된다. 종으로 하여금 소외받는 자와 민족들, 심지어 섬들에게까지, 이방과 세상에
공의를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고, 미래의 긴 고난 중에서 종을 지지하고 그로 하여금 영속
적으로 사명을 완수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이다.

4) 내면적, 윤리적 변화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
20
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
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겔18:31)

에스겔서에 나타나는 영 본문들은, 특히 개인의 내면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포로기 이후의 종교
적 양태의 변화를 잘 드러낸다. 하나님은 새 언약과 같은 회복의 말씀을 마음에 이식하여 사람을 새롭게
한다. 이러한 새로운 언약과 내면적인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말씀을 좇고(‫ הלך‬할라크), 지
키고(‫ שמר‬샤마르), 행하는(‫ עשה‬아사)사람이 되길 원하신다.379) 하나님의 영으로 인한 사람의 내면적, 윤리적
변화는 역사서에 나타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부분이다. 블락은 에스겔 11장 19
절은 그 기본이 신명기 30장 6절의 ‘마음에 베푸는 할례’에 있는 약속이라고 주장한다. 신명기의 ‘마음의

375) R.J. Sklba, "'Until the Spirit from on High is poured out on Us' (Isa32:15): Reflections on the Role of
the Spirit in the Exil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46 (1984): 13;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of God, 94에서 중인.
376) B. Duhm, Das Buch Jesaja, Übersetz und erkärt, HKAT 3 (Göttingen:Vandenhoeck & Ruprecht,
1902).
377) 김정우, “이사야서의 성령론,” 140.
378) L. Neve, The Spirit of God in the Old Testament (Tokyo: Seibunsha, 1972), 84. 핸슨은 이 루아흐를 ‘하
나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하나님의 힘과 지혜’라고 규정한다. P.D. Hanson, Isaiah 40-66, 77. 하지만
윌슨은 이를 ‘하나님의 예언자적 영’으로 분류한다. A. Wilson, The Nations in Deutero-isaiah: A Study of
Composition and Structure (Lewiston: Edwin Mellen, 1986), 55.
379) 이학재, 『에스겔 어떻게 읽을 것인가』, 100.

- 222 -
할례’가 ‘굳은 마음’ 대신 ‘부드러운 마음’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방신을 좇는 마음 대신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소유하기를 촉구하고 있다.380) 하나님이 직접 개
입하여 준 영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만(겔11:19), 이스라엘은 또한 죄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겔18:31). 이는 집단적인 종교생활에 대한 책임보다는 개
별적인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포로기 이후 성전이 존재하지 않던
때에 신앙과 종교생활의 책임이 더 이상 집단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각 개인에게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표
현이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중심에서 역사하시며 또한 그를 새롭게 창조하신다. 결국 에스겔에게 있어
서 이스라엘의 마음 속에 ‘새 영’이 주어지는 목적은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하여 하나
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데
있었다(겔11:20).
에스겔을 비롯한 예언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은 (역사서에 나타나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임하면서, 하나님이 새 시대에 그의 백성을 새롭게 하는 역
할을 한다. 하나님의 영이 어느 특정 개인에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여서 내적인 개혁이 일어나며,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백성의
모습이다. 돌같이 굳은 옛 본성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윤리적으로 심화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임
재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따르고 행하게 되리라는 점에서 분명해 진다.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
26
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381)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2-23,25-27)

여기서 에스겔은 하나님이 온 백성에게 영을 부어주신다는 종말론적인 약속을 가장 원숙하게 발전시킨


다.382) 여기서 하나님은 이제 ‘새 영’을 사람의 내부에 넣어 주신다. 25절은 이러한 갱신사건의 첫 번째
행위로,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깨끗케 될 것을 촉구하고, 26절은 갱신의 두 번째 행위, 즉 하나님께서 이스
라엘 백성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공급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신다
는 것이다. 이는 백성을 내면에서부터 변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단순한 마음의 할례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개입이자 새로운 창조의 사역이다. 백성들의 존재를 윤리적으로 심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간헐적인 활동보다는 인간 내면에서 영속적으로 활동하는 능력으로 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
이 인간에 대해 영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사람이 총체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변화한다고 하는
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명기 30장 6-8절에서 보여주는 마음의 할례라
는 방법으로 정결하여 질 수 없어서, 하나님은 좀 더 극단적인 방법, 즉 ‘새 마음’과 ‘새 루아흐’를 공급하
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시는 것이다.383)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

38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
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D.I. Block, The Book of Ezekiel, Chapters
1-24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7), 353.
381) 개역성경은 26절의 번역순서를 MT와 달리하고 있다. MT에서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ורוח חדשׁה אתן בקרבכם‬가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ונתתי לכם לב חדש‬보다 뒤에 나온다. 아마도 이는 뒤이어 나오는 “굳은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 때문인 듯하지만, 27절에서 “새 영”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MT의 순서대로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저희 속에 두되”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나을 듯하다.
382)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고,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는 에스겔 36장의 이 약속은 예레미
야 31장 31-34절과 일치한다. 블락은 다음과 같은 구조의 유사성을 들며 에스겔이 예레미야에게서 받은 영향을 잘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D.I. Block, "The Prophet of the Spirit: The Use of RWH in the Book of Ezekiel."
JETS 32:1 (1989): 9.
<렘31:33> <겔36:26-28>
‫נתתי את־תורתי בקרבם‬ ‫ואת־רוחי אתן בקרבכם‬
‫והייתי להם לאלהים‬ ‫והייתם לי לעם‬
‫והמה יהיו־לי לעם‬ ‫ואנכי אהיה לכם לאלהים‬
I will have put my Torah within them... And my spirit I will put within you...
And I will be their God And you shall be my people
And they shall be my people. And I will be your God.

- 223 -
에게 새로운 의지의 중심부를 심어주실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겔11:19).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로 황폐해진 도시와 성읍들이 새로 건축되며, 황무지가 에덴동산으로 변할 것을 바
라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마지막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 임재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영의 임재를 통
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회복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지켜야 하는 계약을 감당하지
도,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지 않았다.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라는 암울한 현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났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떠남으로 인해 종국을 맞이하게 된 정황 속에서 본문은 포로민들에
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선언이다(겔11:19; 18:31; 37:14 참조).384) 에스겔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완고한 불순종과 반역 때문에 그들을 흩으시고 징벌하셨으나, 포로민들의 상황 때문에 열방 중에서 더럽혀
진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로 약속하셨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에스겔은 새로운 성전의
청사진에 앞서 마지막 날에 마곡의 왕 곡과의 우주적인 싸움을 묘사하고, 그 싸움의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
이 이방인 가운데 세워질 것을 말한다(겔39:21).
포로기 이후의 내면적인 변화에 대한 강조는 야웨 신앙의 활력을 위한 공동체 사상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 사상에 깊이 연관되어 있던 야웨 신앙이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는 사건에 의해 와
해될 위기에 처하자, 야웨 신앙으로 뭉쳐진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속 내지는 새로운 형성을 위하여 개인의
내면적인 변화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이스라엘을 외적 공동체가 아니라 내면적 공동체로 이
어지게 만들었다.385) 사람이 변화한다는 약속은 하나님의 영이 위에서부터 부어지든지(겔39:29) 아니면 하
나님이 그 영을 인간의 내면에 두어 그들의 돌같은 마음을 연한 살과 같은 마음으로 변화시키든지(겔
11:19; 36:26), 외부에서 역사하는 권능에서 개개인의 삶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그 활동 범위가 확대된다
는 점에서 진일보하였다고 할 것이다. 개인주의 및 내적인 생활에 대한 강조는 포로기 이후에 나타난 종교
적 양태의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변화이다. 보편주의가 심판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 인식의 변화를 나타낸다
면, 개인주의는 공동체 중심의 신앙에서 개인중심으로의 변화라는 종교적 양태의 변화라 할 수 있다. 하나
님의 영은 개인적, 윤리적, 내적 변화를 강조한다. 이는 포로기 이후의 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드러낸
다고 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수행되어지던 공적인 제의의 파괴로 인해, 사적인 예배자의 내적 생활
의 발전을 더욱 강조하게끔 된 것이다.386)

5) 하나님의 영과 성전 재건

사사시대를 다루는 여호수아서와 사무엘상 전반부에서 법궤가 차지하는 비중은 중대하다. 이 시대에 법
궤는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다주는 절대적인 요소로 나타난다.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 신앙에서 법궤는 하
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인 상징이었기 때문이다.387) 이스라엘에게 있어 법궤가 안치된 성전의 파괴
는 단순히 전쟁의 패배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인 퇴폐와 하나님의 계명
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결국 성전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
나게 된 것이다(겔10:3-9). 성전의 부재는 거룩한 도성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 작용할 새로운 성전에 대
한 청사진으로 이어진다. 에스겔 43장 1-12절은 하나님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설명한다. 예루살
렘 제사장 출신으로 누구보다도 성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성
전 안뜰로 옮겨지는데, 곳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운다(겔43:5). 이는 성전의 파괴 이후 다시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로 회복됨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학개와 스가랴는 하나님의 영을 통한 성전 회복을 소망하면서 무너진 성전의 회복에 대한 새로운 청사
진을 제시한다.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7...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9이 성전의 나

383) D.I. Block, The Book of Ezekiel, Chapters 25-48 (Grand Rapids: W.B.Eerdmans, 1998), 355.
384)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94-95.
385) L. Neve, The Spirit of God, 173 참조.
386) L. Neve, The Spirit of God, 59-61.
387) 이사야, “사사시대와 사사기의 하나님 임재 상징,” 「종교연구」58집 (2010),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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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5-9)

학개는 성전이 재건되고 예루살렘으로 하나님 야웨의 귀환이 이루어져야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것
을 백성전체에게 보여주며, 스가랴도 학개와 마찬가지로 왕국시대의 성전 개념을 사용하여, 새로 재건되는
성전의 열국의 심판자로서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처소임을 선포한다.388) 예루살렘에서의 하
나님의 새로운 통치를 기대했던 학개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종말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귀환자들을 격려하는 학개의 메시지는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주장한다. 하나님은 지도
자들과 백성들에게 똑같이 동기를 부여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학1:2,4; 2:3,7)
에 임하는 복과 샬롬을 말하는 것이다(학2:15,19).389) 이스라엘은 성전의 재건으로 인해 미래의 영광을 약
속받을 수 있고, 성전이 재건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실 수 있음을 역설한다. 학개는 2
장 5절에서 이러한 성전재건을 위해 남은 자들을 격려하고 안심시키기 위해 함께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
님의 영임을 말한다.
학개는 출애굽 사건을 떠올리면서 하나님이 과거에도 그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그들과 함께 하심을 분사형 ‫ת‬(계속하여...머물러 있나니)를 통해 분명
히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강조는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상징이었던 성전에 연결된다. 하나
님이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고자 백성 가운데 임하셔서 힘을 주신다고 강조할 뿐만 아니라, 성전에 하나님
의 영광(카보드)이 다시금 충만하게 될 것을 말한다. 여기서 학개는 카보드가 건물의 화려함을 말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한 성전을 의미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390) 학개에게 있어 성전의 재건은 단
순히 예배처소의 회복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을 찾아와 그의 백성과 함께 계속적으로 임재하
실 것에 대한 확신다. 성전재건에 대한 선포에서 학개는 성전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하는 ‫(מקדש‬미카다쉬,
겔44:1; 단11:31; 렘17:12 등) 대신 집을 뜻하는 ‫הבית‬하바이트, 그 집, 학1:2,8-9 등). 성전을 ‫הבית‬로 표현
한 것은 히브리어 ‫בית‬가 ‫(בית דוד‬다윗왕조:삼상19:11)의 경우와 같이 ‘왕조’를 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
는 거처로서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을 확립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학개가 재건될 성전이 하나님
임재의 장소로 다시 자리잡기를 소망했던 것처럼, 스가랴도 왕국시대의 성전개념을 사용하며 새로 재건하
는 성전이 열국의 심판자로서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처소임을 강조한다.391) 하나님이 예루살
렘으로 돌아와야만 예루살렘이 다시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 백성에게는 샬롬이 깃들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스가랴 4장 6절은 총독 스룹바벨을 향한 말로, 성전 건축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힘의 근원과 관계된다.


군사력이나 인간의 힘만으로는 성전 건축을 완성할 수 없으며, 남은 자들에게 성전 건축을 할 수 있는 필
수적인 자원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충만하여 그들이 성막을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출35:30-36:1), 제2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공동체의 회복도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392)
성전의 재건은 포로기를 경험한(하는) 이들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학개와 스가랴에게 있어서, 성
전의 재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포로기와 함께 바벨론으로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떠났다가 다
시 돌아오시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이 떠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
서의 이스라엘의 회복의 징표였고,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는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과 함께 하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에스겔과 학개와
스가랴의 선포는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새 창조와 회복의 모습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그

388) 김지은, 『포로와 토지 소유』, 205-208.


389)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48-49.
390) H.W. Wolff, Haggai: A Commentary (Minneapolis: Augusburg, 1988), 75.
391) 김지은, “페르시야 시대 이스라엘의 사회-종교 변화에 관한 연구,”「구약논단」13집 (2002), 70.
392) W.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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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내고 있다.

6) 신인식론적 대전환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 פנים‬파님)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
10
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11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
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14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
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
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사63:9-14)

이사야 63장 10-11절은 예언서 중에 유일하게, 성령(=성신)이라는 귀에 익은 표현을 그대로 담고 있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영은 가장 극적인 의미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영의 신인식론에 있어서의 대전
환(大轉換)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은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나는 말 가운데 하나이
다. 출애굽기 33장에 나오는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 사이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얼굴은 곧 그의 임재를 뜻
하며 신명기 저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그의 얼굴로써 인도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393)

주께서 친히(‫ )פני‬가시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옵소서(출33:15)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사랑하신고로 그 후손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בפניו‬인도하여 애
굽에서 나오게 하시매(신4:37)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는 얼굴은 시편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성전 예배를 통해서도 자
주 나타난다(시13:1; 27:8-9; 30:7; 42:2; 44:23-24; 80:19; 88:14).394) 여기서 영과 얼굴은 하나님과 하나
님의 백성 사이의 친밀함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용례는 포로기 이후의 문헌에서 빈번히
등장한다. “내가 주의 영(‫)רוח‬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פנים‬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139:7)처럼 영과
얼굴이 나란히 등장하고 있다. 비록 이와 같은 본문들에서 영이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지 않지만, 하나님
의 임재와 연관된다. “나를 주 앞에서(‫ מלפניך‬밀르파네카) 좇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רוח‬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시51:11[MT, 51:13])에서처럼, 하나님의 거룩함이 거의 그의 현현과 더불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 63장에서 얼굴과 함께 등장하는 영은 비단 하나님의 임재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현존 자체에 까지 확장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은 성령의 인자하신 인도하심에 대한
반역이었다. 여기에서 성령은 인간의 행동에 의해 상처받을 수 있는 인격으로 나타난다. 즉 독자적인 인
격, 성령의 인격화를 보여준다.395) 주의 성령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이끄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광
야에서 백성을 인도하신 구원의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현현묘사가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는 하나
님의 영이 주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도구로 인식되었던 데에 반해, 이제는 하나님의 현현을 통해 하
나님의 존재 자체에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신약성서 요한복음 2장 24절 등에서
하나님을 영과 동일시하는 데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4. 나오는 말

루아흐의 일차적인 의미는 고대 근동의 다른 언어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자연론적인 의미의 바람이고,


사람의 마음 등을 말하는 인간론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과 힘으로서의 신(神)인식론
적인 의미는 구약성서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표현이다. 특히 예언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임재의 한 방법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법궤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영이 등장하

393) 박준서, 『구약세계의 이해』, 262.


394) ibid., 263-4.
395) 김정우, “ 이사야서의 성령론,”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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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고, 영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법궤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성전이 존재하던 8-7세기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반면, 성전이 무너진 이후에는 하나님의 영을 언급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 임재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법궤와 성전이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로서의 가
시적 상징이라면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이름, 영광, 얼굴, 손 등과 같이 비가시적인 하나님 임재의 방법
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포로기 이후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이방에까지 확산됨을 인식한 신학적
사고의 전환 중 하나로 보편주의가 탄생하고, 이스라엘 신앙의 형태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특정 장소에 국한되어 예배하는 공동체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닌, 안식일 준수, 할례, 금식, 기도생활과 같
은 개인주의 사상을 불러일으켰고, 515년 제2성전이 재건된 이후에는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중요시되는
신앙생활을 형성시켰다. 이와 같은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하나님의 영의 임재는 포로기 이후를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내적, 개인적이며 전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이는 성전에서 수행되던 공적인 제의
의 단절로 인해, 개인의 내적 생활의 발전을 더욱 강조하게끔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한 모든 하나
님의 백성은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창조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포로기 이후에 소망하던 새 시대 새 백성의 모습이다. 특히 제2이사야는 종의 모습과 하나님의 영과 공의
사이의 긴밀한 연관을 통해 윤리적 변화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영과 연관된 포로기 이후의 신학적 패러다
임의 전환은 기존의 약속과 성취의 일변도적인 신구약의 연속성만을 드러내기 이전에, 이미 구약성서 가지
고 있는 개인의 종교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에스겔은 단순히 생기를 통한 피조물의 생명 얻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선포하고, ‘생명의 호흡’으로서의 하나님의 영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로운 창조를 말한다. 성
전의 파괴와 왕국의 멸망과 함께 황폐해진 도시와 성읍들이 새로 건축되며, 황무지가 에덴동산으로 변할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마지막 시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통해 도래하
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영이 임재할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본
토와 민족의 회복이라는 사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의미를 제시한다. 창조기사에서 사용된 용어들을 사용하
면서, 루아흐 야웨 임재의 약속이 ‘마른 뼈’, ‘갈한 자’, ‘마른 땅’과 같이 소망이 사라진 현실을 회복시키
고, 영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고토, 자연에까지 확장되며, 이스라엘의 새 창조의 힘으로 기능하는 하나
님의 영을 희망하고, 이 희망은 고난받는 종의 사명을 통해 열방에까지 확장된 우주적인 구원에까지 나아
간다. 또한 에스겔은 바벨론과 예루살렘 성전을 오가는 엑스터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영을 전통적 임재
의 상징이던 성전의 회복을 연관지으며, 학개와 스가랴는 성전의 재건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회복의 필
요한 요소로 하나님의 영을 주목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서의 성전회복에 대한 소망이 무너진 성
전의 회복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하나님의 영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야웨께서 포로기와
함께 이스라엘 땅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바벨론으로 떠났다가 포로 이후시대에 돌아오셨다고
인식하며, 제2성전이 다시금 임재의 상징으로 자리잡을 것을 그려냈다. 이를 통해 포로기 이후의 편집자는
성전의 재건이 마무리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 임재의 또 다른 상징으로서의 영이 임재한 사람과 옛 상
징의 결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사야 63장의 성령(‫)רוח קדוש‬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강조가
하나님의 현현묘사까지 나아간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인식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도구에
서 하나님의 현현을 통한 존재 자체에까지 확장되는 점에서 신인식론적인 대전환(大轉換)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항상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도 다양성과 인식의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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