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죽은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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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죽은 원조

가난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가난한 휴머니즘』(이후, 이두후 역, 2007)

아직은 가난하지 않은 벗들에게

저는 앞으로 당신과 함께 ‘가난’에 대해 생각하고 써보려고 합니다. ‘가난’이라니. OECD 가입


국가이자 세계 11 위 경제대국이라는 나라에서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자니, 무슨 소리인가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는 가난을 벗어났고, 가난의 문제는 특수한 일부 소수층의 문제가 된지
오래니까요. 가난에 대해 말해보자고 하면 단박에 ‘반(反)빈곤’이란 개념을 떠올리지만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반빈곤’이나 ‘빈곤 탈출’이 아닙니다. 반대로 제가 당신과 함께 찾고 싶은 길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다시 ‘가난으로 가는 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다시
가난해질 수 있을까요, 가난으로 가는 길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요.

언젠가부터 빈곤은 퇴치되어야할 사회적 질병 같은 것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이란 곧 실패한 사람, 무능한 사람, 낙오한 사람입니다. 제가 있는 학교의 많은 학생들도 ‘부를
창출하는 사람’이 되어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군요. 이 학생들은 ‘
각자의 능력대로 살 일이다’라고 냉정하게 대답하는 사람보다 분명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겠지요.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제 주위의 좋은 분들도 역시 그러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빈곤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은 분명 선량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어쩐지 모순이 있는 듯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 나는 그들을 도울 자원과 수단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도움의 수단이
가난한 세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지금 잘 사는 나라들의 선량한 시민들은 그런 모순과 위선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럼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 외면하는 것이 맞다는 것인가요, 하고
물으시겠군요. 아마도 이 글귀가 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난이 가난을 편들지 않으면 세상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구절에서 저는 망치가 머리를 내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난이
가난을 편들지 않으면’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그것을 ‘오직 가난만이 가난의 편이 될
수 있다’로 이해했습니다. 부자가 되어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난해질 때에만 가난의
편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더 많은 이들이 가난의 편에 설 때에만 지금 세상의 비참하게 조롱당하는
가난은 사라지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저는 ‘가난의 희망’이 어디서 생겨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희망은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쓰고, 더 풍족한 삶을 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이 점점 커지는 데 있다는 것을. 그렇게 가난이 점점 커지면 우리는 존엄한 가난의
삶을 함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러므로 가난의 희망을 거기에 걸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의 대부분의 땅에서 민중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항상


다수였습니다. 서구의 시민들이 누리는 삶이 인류의 표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건 생태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나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니까요. 만약 지구의 모든
인류가 그렇게 살기 시작하면 그건 이 별에 거대한 재앙이 될 테니까요. 그러므로 풍족한 삶을 사는
이들은 언제나 그들의 십분의 일, 백분의 일, 심지어 백만분의 일의 물자로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이 지구의 삶을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되고,
가난이 오직 벗어나야만 할 비참한 상태로만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가난을 그렇게 만든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잘 사는 나라의 잘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도 자신을
볼 때 그들의 안경을 쓰고 보기 때문에 자기를 경멸하고 이웃을 업신여기게 되며, 가난한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존엄함을 지켜나가기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이 굴절된 렌즈를 깨트려 밝은 눈으로 다시 가난한 삶에 스민 인간애와 연대의 방식, 삶의


기술과 예술을 회복시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들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아이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난한 휴머니즘』도 그런 책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가 가난의 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자 이웃으로서 가난에
대해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이티의 대통령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제 3 의 길을 창조하는 데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날마다


죽음과 맞댄 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습니다. 우리 아이티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좀 거슬리는 발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라면 가난에 대한 해결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원조나 도움 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아이티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의 가난한 사람들, 그들이 살아온 역사는 일종의 인간애의
박물관입니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몇 번이나 멈추어 눈물을 훔치며 읽게 되는 책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여러


곳에서 몇 번이고 멈추어 뜨겁게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다시 읽어가야 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대학에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한 기초 교양과정으로서 이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개설된 강좌들을 이수해야만 합니다. 어떤 과목은
필수적으로 어떤 과목은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무슨 일인지 그 어떤 과목에서도 이 아이티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것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드문 편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을 영국,
프랑스, 독일의 사가(史家)들이 만들어낸 고대사의 박물관으로 인도합니다. 거기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들에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할 어떤 훌륭한 인간성을 발견할 것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현재는 어떤가요? 우리의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때야할까요? 그럴 때조차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모여 있는 북구의 시민사회를 찾아갑니다. 물론 우리는 세계의 가난한 곳을
찾아볼 때도 있지만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가 휴머니즘의
박물관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로부터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대신 우리는
존재하지 말아야할 존재로서 가난한 존재들을 대하고, 없어져야하나 없어지지 않은 곳으로서 가난한
땅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문명화된 나라의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리스티드가 묻습니다. “왜 유독
아이티에서는 자살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것일까요?” 아이티 사람들보다 1 인당
국민소득이 20 배는 더 높으면서도 하루에 40 명씩 자살을 하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가장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 묻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계를 넘어선 곳으로 옮겨 가야만 합니다. … 풍부한 유머, 온화한 성격,
곧잘 터져 나오는 웃음, 품위, 연대감 따위 말입니다. 우리 아이티 사람들은 될 수 있는 한 음식을
나눠먹는 전통이 있습니다. 친구나 친척이 아이를 기를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아이들을 대신 기릅니다.
우리는 수확 때가 되면 콘비(두레와 유사한 아이티 전통)를 이루어 함께 일하기도 하고, 이웃의 집을
함께 짓고 그 대가로 하루 일이 끝날 때 곡물로 나눠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들어설 수 없이
꽉 찬 탭-탭(트럭을 개조해 만든 아이티의 대중교통수단)에서 한 자리를 더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소 짓고 있으며,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가난의 고통도 이 사람들의 친절함을 망가트려 놓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눈물이 나는 이유는, 이


아이티 사람들과 닮은 사람들이 제 기억 한 구석에도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했던
시절에 골목길에 왁자지껄하게 섞여있던 농지거리와 욕지거리, 터져나오던 웃음소리, 긴급한 순간에
항상 달려오던 이웃들, 들에서 밭에서 바다에서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용해서
매일매일 근근이 차려내면서도 소박하나 품위 있던 어머니의 밥상 같은 것 말입니다. 세계의 모든
식재료가 다 들어와 있는 대형마트와 대형냉장고와 전기밥솥과 전기오븐과 가스레인지를 다
갖고서도 그 조각보 아래 밥상의 우주를 저는 창조해내지 못합니다. 우리 집에는 갑자기 닥칠
누군가를 위해 남겨놓는 밥 한 그릇이 없습니다. 아이가 울면 달려와 주는 이웃 대신 이웃의 항의를
대신 전하는 경비실 인터폰이 울립니다. 시장에선 물건 값에 실랑이 하며 흥정의 규칙, 끝전의 규칙,
떨이의 규칙을 만들어내고 지키던 사람들이 마트의 계산대에서 마주한 사람과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계산을 마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웃음을 잃었고, TV 앞에서만 바보처럼 크게 웃습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이토록 파괴한 것은
가난입니까, 풍요입니까. 우리가 지금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풍요한 삶 속에 있겠습니까, 가난한 삶 속에 남아있겠습니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조달 가능한 세계는 돈이 있는 한 인간이 신과 같이 전능해질 수 있다는 착각을


주입합니다. 그래서 부자는 자기의 결여를 인식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의 도움이 없이는
총체적으로 빈곤한 자입니다. 그는 대가 없이 도움을 주고받을 친구와 이웃이 없고 그렇게 쌓아온
관계도 없습니다. 그는 밥도 할 줄 모르고, 집도 지을 줄 모르고, 옷도 만들 줄 모릅니다.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법도, 필요한 물건을 구하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나누는 방법도 모릅니다. 돈이 부족할
때 다 같이 목돈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모릅니다. 시장과 신용카드가 없다면 그는 거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티드는 말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결집시킬 수 있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 기술과 에너지, 그리고 힘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런 창조성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티를 비롯해 멕시코, 브라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점점 늘어나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여 준 인간적인 인고
(忍苦)에서 말입니다.”

그럼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해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으며 혼자서는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함께
만들어냅니다. 한 몸통에서 나온 수없이 많은 머리로 이루어진 히드라처럼 아무리 목을 잘라내도
그들은 죽지 않습니다. 한 머리가 잘리면 다른 머리가 대신 합니다. 피터 라인보우의 책 『히드라』(
갈무리, 2008)를 보세요. ‘장작 패는 남자들’과 ‘물 긷는 여자들’이 이루어 온 세계와,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 끝내 살아내는 ‘더러운 사람들, 위험한 사람들, 미개한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들인지를 다시 알게 될 테니까요.

생각해보면, 예로부터 가난이 항시 비참하고 굴욕적인 것으로 여겨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청빈’은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오랫동안 지식인의 도덕률 중 하나였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부자’가 이렇게 존경할만한 인물로서 추구되는 것이야말로 극히 예외적인 이 시대 특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돈이 신(神)이 된 시대의 결과이지만 또한 그것을 이론적
사상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정당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난의
감각’을 상실하고 ‘가난의 미학’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운 가난’이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용모순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난에 대해 게으름, 무능력,
주체화의 실패 등등의 온갖 부정적 언사와 수사를 붙이며 가난을 문명사회가 퇴치해야할 과제로
만들었습니다. 가난은 문명화된 사회의 부끄러운 치부가 되었습니다. 국제기구와 잘사는 나라의
시민들은 원조프로그램을 통해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빈곤퇴치
프로젝트는 일견 휴머니즘적인 듯 보이지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휴머니즘이 아니라 그들을
대상으로 자선을 베푸는 자신들의 휴머니즘을 돋보이게 할 뿐입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빈곤 개념, 즉 퇴치되어야할 것으로서의 ‘빈곤’이란 개념은 ‘발전·개발·진보·풍요·


복지’와 같은 개념과 함께 서구사회의 지배엘리트들이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특히 유엔 밀레니엄
개발목표에 ‘반빈곤’이 중심 의제로 설정된 이후 빈곤퇴치 사업에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빈곤퇴치의 실상은 우리의 풍요로운 세계에서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고
격리시키는 프로젝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사회보건과 위생의 개념은 오염원과 더러운 사람들을,
안전이 불안전과 위험한 사람들을, 발전이 저발전의 개념과 미개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만들었듯이 풍요로운 사회가 수립한 반빈곤 정책은 때로는 복지와 원조라는
통치방식으로, 때로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가난한 풍경과 가난한 이들을 사회로부터 제거해왔습니다.
발전, 환경, 평등, 원조, 시장,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등등 우리가 기대어 생각하는 개념들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고 세계를 보는 관점을 어떻게 왜곡시켜왔는지 알고 싶다면 『반(反)자본
발전사전』(아카이브, 2010)이란 책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풍요로운 삶의 조건이 필요하고 그건 결국 성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가난
속에서 과연 풍요로운 삶,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까, 의심하신다면,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2011)도 함께 읽어주세요.

빈곤은 발전과 성장의 쌍생아입니다. 복지국가가 없다면 빈곤국가도 없습니다. 가난을 만든 것은


가난이 아니라 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처한 비참한 빈곤 상태를 끝내기 위해 우리가 이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제거해야 한다면, 그것은 가난이 아니라 풍요일 것입니다. 가난의 퇴치가 아니라
풍요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만이 가난한 삶을 비참으로부터 구해내고 가난한 이들에게 존엄과
당당함을 되돌려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난으로 가는 길을 찾습니다. 고립된 가난은 무력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난해지고 싶습니다.
가난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담비사 모요『죽은 원조』(김진경 옮김, 알마, 2012)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분명 선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에 그것은 인간의 의무이며 가장


확실한 인류애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빈곤퇴치를 위한 원조는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에서,
잘사는 나라의 시민사회에서, 그리고 IMF 와 세계은행에서도, 확고한 공통의 ‘글로벌 의제’로 언제나
가장 우선순위에 놓여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니. 이런 현상은 인류의 휴머니즘이 점점 확산되어왔다는 증거일까요?

그런데 여기 한 경제학자가 ‘원조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원조를 받고 있는 아프리카의 경제학자입니다. 담비사 모요. 잠비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다시 잠비아로 돌아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입장에서 ‘원조의 경제학’을
의심해보기 시작한 사람. 그의 질문은 제가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의문과 비슷합니다. 온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이 이토록 돕고 있는데도 왜 아프리카는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놀랍게도 그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죽음을 부르는 원조를 중단하라!’고.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처음 받아온 저금통이 생각납니다. 빵모양의 작은 저금통에는 제


또래의 아프리카 소년의 사진이 붙어있었지요. 앙상하게 마른 얼굴에 퀭한 눈, 그리고 그 눈빛을
번역해 놓은 것 같은 글귀 ‘도와주세요’가 함께 쓰여진 사진이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연말이 되면 이
저금통에 모은 동전을 먼 나라의 가난하고 배고픈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 돈은 국제
NGO 단체를 통해 저금통에 그려진 아프리카 소년에게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년은 빵도 사고
우유도 사고 연필도 책도 사고 학교도 다닐 수 있겠지요.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다른 가난한 나라에 국제적 원조를 한다고 하면 한국도 과거 잘사는
나라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만큼 잘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조에 지지하는 것이 성숙한 세계시민적 태도라고 여기면서 말입니다. 제가
일했던 대학의 연구소를 비롯하여 많은 국내 연구기관들은 몇 해 전부터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라고 불리는 정부 차원의 국제개발원조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상당히 많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증여 차관 기술원조 등 다양한
형태의 원조를 제공하는 방식을 설계하거나 그 효과를 예측하고 검증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의 빈곤국들에 대해 ODA 원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뿌듯할 만큼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도 열심히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그 노력이 오히려 죽음을 불러왔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오늘 당신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가난을 돕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반세기


동안 천문학적인 액수의 원조금이 흘러들어간 아프리카는 왜 더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
담비사 모요의 『죽은 원조』는 바로 그러한 의문을 풀어간 책입니다. 그의 연구는 ‘원조의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실증적으로 밝혀내서 우리에게 그 비밀을 하나씩 알려줍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이 외부세계에 알려지고
국제사회의 양심 있는 시민들이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운동을 시작한다. 정부와
국제기구들도 이 도덕적 호소를 외면할 수 없어 빈곤국들에 대한 국제적 연대의 일종으로서 원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공유하는 이 시나리오는 그러나 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잘사는
나라들의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 세계에 대한 원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국제정치경제학의 배경이 있습니다.

2 차 대전 후 서구자본주의 경제는 재건에 성공합니다. 당시 미국은 마셜플랜을 통해 미국은 엄청난


자금을 원조하여 유럽의 재건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일방적인 원조는 아니었습니다. 유럽 재건 사업을
통해 미국경제 역시 공황의 위기에서 벗어나 급발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마셜플랜의 성공을 통해
서구의 자본은 투자자본이 경제성장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인식과 경험을 얻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차관 형식으로 유럽에 자금을 제공하자 세계은행과 IMF 는 유럽구제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해 배정한 자금은 새로운 개발의제에 쓰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곧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냅니다. 아프리카! 그곳에는 원조를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있습니다.
교육받지 못한 다수의 인구, 저임금 노동, 미비한 공공기반시설, 개발을 위해 필요한 금융자본의
절대적 부족,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서구의 엘리트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해외원조는 더 많은
투자를 유발시켜 더 큰 경제성장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정부와 시민사회를
설득합니다. 기업들이 직접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국가가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의
차관공여를 통한 원조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과거의 제국과 식민지는 채권국과 채무국의 관계로 전환됩니다. 원조는 결코 거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서구 제국주의가 과거 식민지들에 대해 저지른 수탈과 착취에 대한 반성도,
배상도, 순수한 인도주의적 지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원조경제는 서구경제의 활로였던 것입니다.
서구의 ‘자본’이 아프리카에 ‘투자’한 것, 그것이 원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원조경제’는
오늘날 세계경제의 지배적 산업인 금융산업과 부채경제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원조경제는 수여국보다 공여국에게 더 남는 장사이기도 했습니다. 서구사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받을 수 없는 돈을 퍼붓기만 했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사실상 서류상의 독립이었을 뿐
현실은 과거 식민지 시절의 주인 국가들로부터 받은 금융지원에 의존한 독립이었습니다. 서구의
국가들에게 금융원조는 이 독립국들을 계속해서 자기 나라의 지정학적 영향력 하에 두고 원조에 대한
조건과 담보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반면 아프리카의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들어 오는 원조가 오히려 거대한 저주였습니다.

미·소 냉전기에 미국은 원조를 냉전의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서방세계는 경제적 동맹과 해외영토를
통해 세계 패권을 장악하려고 하였습니다. 원조가 세계를 자본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만들기 위한
경쟁에서 또 하나의 무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독재정권과 전쟁광 군부에게도
아낌없이 돈을 퍼부어주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그리고 그 원조금을 둘러싸고, 아프리카의
각지에서는 내전이 끊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서구의 총칼이 아프리카를 짓밟았다면 이번에는
서방세계의 돈이 아프리카를 철저히 파괴합니다. 무력에 의한 예속이 돈에 예속된 상태로 변질되었을
뿐, 예속상태는 변함이 없습니다. 서구의 돈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정부, 자립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으니까요.

책에는 ‘가난(빈곤)’이 국제원조의 중심의제가 된 현실적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이 나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서구 시민사회에 싹트기 시작했다’는 식의 설명과는
전혀 다릅니다. 70 년대까지의 서구의 원조정책은 ‘돈 빌려 드립니다’와 ‘(그 돈으로) 건설해드립니다’
로 상징됩니다. 그런데 유가상승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오르자 국제사회(서방세계)는 개발의제를
‘빈곤퇴치’로 전환합니다. 이전까지의 원조가 실질적인 투자, 즉 대규모 공공기반시설 투자(전기, 운송
등)에 집중되었다면, ‘경제적인 이유에서’ 빈곤퇴치(문맹퇴치캠페인이나 예방접종프로그램 식량보급
등)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1970 년대 중반까지 원조의 거의 2/3 가 도로, 철도,
상하수도, 항만, 공항, 발전소, 통신 같은 공공기반 시설에 쓰였지만, 1980 년대 초반이 되면 빈곤구제
원조가 50%에 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원조의 중심의제가 빈곤의제로 바뀌게 된 것은 아프리카의 경제
상황에서는 더 안 좋은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경제의 자립적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인 공공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중단되고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물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조의존
경제시스템이 시작된 것이니까요.

더 기만적인 것은 원조경제의 혜택이 수여국보다 공여국에 돌아갈 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책 장 베르트낭 아리스티드의 『가난한 휴머니즘』에는 1980 년대 아이티의 토종돼지들이
전멸했던 일화가 나옵니다. 보면 원조가 어떻게 공여국에 더 많은 이익을 돌려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작고 검은 크리올 돼지는 아이티 농촌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아이티 기후와 조건에 잘 적응한


돼지였습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 찌꺼기를 먹을 뿐 아니라 음식 없이도 사흘은 지낼 수
있었습니다. 시골가구의 80~85 퍼센트는 돼지를 기르는데, 돼지를 기르는 것은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농민의 개인 저축은행 노릇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돼지는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나 경사가 있을 때 학비를 마련해야할 때 팔아서 요긴하게 썼습니다.
1982 년 국제기구는 개발프로젝트를 통해 아이티 토종돼지들을 살처분하고 대신 더 나은 돼지를
들여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고도의 효율성으로’ 13 개월 동안 크리올 돼지들은 모두 도살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새 돼지들이 들어왔는데, 그 돼지들은 워낙 훌륭한지라 아이티 인구의 80 퍼센트가
식수난에 처해 있는데도 깨끗한 물을 먹게 해야 했고, 당시 아이티의 1 인당 국민소득이 130 달러인
상태에서 90 달러나 하는 수입사료를 먹여야 하는데다가 덮개가 있는 돼지우리까지 있어야 했습니다.
아이티 농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돼지들에게 “네발 달린 왕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공여국들은 원조금을 줄 때 그냥 주지는 않습니다. 원조금에는 이자 외에도 항상 조건이 따라
붙습니다. 아이티에 새로운 축산업 육성을 위한 원조금을 빌려줄 때도 마찬가지였죠. 국제기구는 돈을
빌려주면서 그 돈으로 토종돼지를 박멸하고 미국산 돼지를 살 것을 조건에 답니다. 아이티의
농부들은 저리에 축산장려금을 빌려 그 돈으로 아이티 돼지를 죽이고, 미국산 돼지를 사고, 그 돼지를
위한 축사를 짓고, 축사를 짓는 건설회사에 비용을 지불하고, 미국산 사료를 사서 먹입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원조의 경제가 너무나 이상한 셈법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조프로그램은 과연 아이티의 농부들을 도운 것이었나요? 아리스티드의 다음과 같은 항의 속에는
모든 원조 받는 나라 농부들의 절규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1 달러당 84 센트가 원조를 제공한
나라에 다시 돌아간다면, 이 나라의 농민과 물을 위해 쓸 돈은 도대체 몇 푼이 남는 셈입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요, 회수할 수 없는 투자라고 하면서도 서구 정부들이 빈곤국들에 대한 원조를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 테니 그 돈으로 가게를 열고 내 물건을
사시오, 그 돈으로 운송비와 인건비도 나한테 줘야 하오, 그리고 사업을 계속하려면 물건은 계속
나한테서 공급받아야 할 거요, 그리고 빌려준 돈도 갚으시오, 기한 내에 돈을 못 갚으면 대신 다른
담보물을 주시오, 당신 앞마당의 광물을 파갈 수 있는 채굴권이라든가, 상하수도 시설
독점권이라든가, 아 그걸 할 돈이 없다고? 걱정 마시오, 그 돈은 얼마든지 빌려줄테니.” 당신을 찾아와
이렇게 말하는 놈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조경제가 만들어내는 것은 무한 착취,
무한 수탈, 무한 예속의 순환고리일 뿐입니다.

서구가 원조를 계속 제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1 만여


명의 직원이 있고, IMF 는 2,500 여 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유엔기구들에서 일하는 직원
5,000 명을 더하고, 최소 25,000 개의 등록된 NGO, 민간 자선단체와 정부의 원조기구 직원들까지
더하면 50 만 명가량 됩니다. 이들은 10 년, 아니 20 년이 지나도 여전히 원조 사업에 몸담고 있을
것입니다. 원조를 제공받는 관리들의 생계가 그런 것처럼 원조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생계도 원조에
달려있으니까요. 원조경제는 결국 두 집단을 먹여 살리는데, 공여국의 엘리트와 수여국의 엘리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원조금 대부분은 결국 다시 서구 기업의 주머니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원조기구의 운영비와 인건비로 쓰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원조의 메커니즘은 피터 바우어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서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기업을 원조하고 엘리트 계층을 원조하는 것’
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누구를 돕고 있는가요? 이 역설적 결론 앞에서 아마 당신은 당황하고 있겠지요. 어쩌면


불쾌할지도 모릅니다. 당장 그동안 아프리카에 보내던 얼마간의 기부약정을 취소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책 뒤표지에 쓰여 있는 글귀처럼 ‘진심으로
그들을 돕고 싶다면 단순히 양심을 달래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해야 하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아프리카 경제학자는 원조의 수렁에서 탈피하여 자립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방법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원조의존의 최종적 결과는 제대로 돌아가는 아프리카를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외부인들이 아프리카의 운명을 결정하고 지배하려고 기를 쓰는 결과만 가져온다.
아프리카 문제가 글로벌 의제에서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프리카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며 서구의 팝스타와 정치인들이 아프리카 담론을 독식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손에 선발된 아프리카 사람들이 국제무대에서 발언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프리카를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운영하도록 하라’는 외침은 ‘가난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이 해결하도록 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빈곤
담론을 가난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다시 만들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착취를 투자라 생각하고 파괴를 개발이라 수탈을 원조라 여기며 이런 식의 새로운 식민주의를
국제연대라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 이 거꾸로 뒤집힌 말을 원래대로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오히려 이 세계의 잘 사는 나라들과 잘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 위에 얹혀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가 깨닫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난의 정치학’을 고민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난을 돈으로 돕는 것이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남아 있던 인간애마저
파괴한다는 것은 단지 국제정치적 상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국내의 지역개발의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절대 들어설 수 없는 위험한 시설물들을 가난한 동네에
지으면서 사람들을 돈으로 유혹하는 방식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핵폐기물 처리장, 쓰레기
매립지, 하수처리장, 고압송전로를 엄청난 돈과 함께 들이 밀면서, 그것이 지역경제개발을 위한
호재라고 말합니다. 그 돈을 놓고서 주민 간에 갈등과 반목이 생기고 가난해도 단란했던 동네
이웃들이 적이 되고 맙니다. 신도시 개발도 마찬가지여서, 개발이 추진되고 토지에 대한 집단 수용이
시작되면 과거의 강제철거 대신 지금은 돈을 풉니다. 돈은 가난한 사람들을 찢어놓고 서로 싸우게
만듭니다. 이는 서방세계가 아프리카에 대해 했던 원조개발정책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해도,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치루고 있는 마음의
내전도 그보다 가혹하지 않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돈으로 도움을 주는 것, 거저 주는
것도 아니고 빌려주면서, 가난하나 순박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돈으로 갈갈이 찢어 서로 싸우게
만들고 결국은 가난에 스며있던 인간애까지 파괴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런 현실은 보지 않은 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자기 양심의 알리바이까지 지켜온 어떤 ‘선량한 시민사회(good society)’가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회를, 그런 시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지난 주, 어떤 강의에서 만난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북유럽은 내부적으로는 매우 좋은


사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요? 제가 본 그 나라들에는 가난한 동네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하지만 저는 가난한 동네와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에 가난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을
얼마나 멀리 쫒아냈는지를.

가난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

최민식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현문서가, 2004)


세바스치앙 살가두, 이자벨 프랑크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¹(이세진 옮김, 솔빛길, 2014)

함께 가난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제 세 번째 편지를 씁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가난의 미학, 가난한 아름다움에 대한 것입니다. 가난이
아름답다고 하면 사람들은 벌써 코웃음을 치는군요. 당신이 가난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얼마나
비참한 것인 줄 알기나 하느냐고.

사실 ‘가난’에 대해 쓰면서 가장 괴로운 일은 나 자신이 가난한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난을 경험해 본 적은 있지만 가난하게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누가 ‘당신은 가난한
사람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점이 늘 나 자신을 조금
부끄럽고 당당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가난의 길을 찾고, 가난할 꿈을 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시인이 농촌의 풍경을 노동의 삶터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목가적 세계로만
상상하듯이 낭만주의적으로 가난을 꿈꾸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보다 더 가난해진다는 것이 분명
어떤 고통과 불편을 가져다 줄 것을 잘 압니다. 물질적인 것 이상으로 잃어야할 것이 많다는 것도,
누려온 삶을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마음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삶을 추구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제 눈에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풍족한 생활 속에서 나타나지 않고, 가난한 삶 속에서만 자꾸 보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책 『가난한 휴머니즘』에서도 가난한 삶이 어째서 참되고 바르고 선한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내는가에 대해 잠깐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이티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죠. 그 책에서 저자인 아리스티드가 가난한 삶의 진실성과 정당성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호소했다면 오늘 소개할 책에서는 ‘예술’의 형식으로 가난한 세계가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바로
최민식과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ão Salgado)의 사진들이 그것입니다. ‘가난한 아름다움’이란
주제를 생각했을 때 단박에 눈앞에 떠오른 장면들은 대부분 그들의 렌즈를 통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책은 글이 아니라 사진으로 읽는 ‘사진책’입니다. 굳이 소개하는 책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펴낸 사진집이 많으니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2005 년 한국에서 사진전이 열릴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을 위해 디카를 사고 아이의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댈 때였지요. 사진에 막 취미가 생기기
시작한 때라 유명한 다큐 사진작가의 사진전이라고 해서 갔었는데 직접 사진전을 보곤 난 후에는 ‘
유명한 다큐작가’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위대한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붙이기엔
너무나 작은 규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술성과 사회성, 형식의 미학과 내용의 비판성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이분법은 마치 예술성과
사회성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예술의 순수미를 해치는 것처럼, 호도해온
소위 ‘순수예술’ 진영의 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어리석은 질문에 스스로 빠지곤 했던
아마추어 취미사진가는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들 앞에서 어떻게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이 하나
속에 존재하는가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빛과 구도는 완벽하지만, 그것이 쏘아내고
있는 메시지가 아니라면 어쩌면 공허한 형식미에 그쳤을지도 모를 하나의 장면, 하나의 그림이 그
속에 담겨 있는 인물들을 통해 단지 미적 쾌감만이 아니라 진실에 다가가는 감동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이민자들, 혼혈인디오 메스티조, 여성과 아이들,
익명의 노동자들, 이런 사람들이 살가두 사진의 주인공들입니다.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로부터
전송되어온, 기아와 내전과 가뭄과 흉작과 질병과 재난 속에 던져진 절망의 얼굴들은 그의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상의 비참하고 참혹한 현장을 찍은 사진은 많고 많지만
살가두의 사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가장 비참한 상태의 인간을 가장 고귀한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의 먼지바람 속을 걸어와 눈이 먼 늙은 여인, 초점 없는 눈으로 아이에게 빈 젖을 물린 젊은 엄마,


때와 땀으로 절은 몸으로 싸구려 예수님 그림 옆에서 역시 더러운 딸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아버지, 관습에 따라 손가락과 발가락이 묶여 매장될 아이, 배급량의 조절을 위해 저울에 매달려
체중을 재고 있는 한 줌도 안되어 보이는 아기.

그런데 이 사진들은 자신보다 약하고 낮은 존재에 보내는 동정과 연민이 아니라 존경과 겸손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게 하고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게 하는 성자의 모습으로, 숭고하고 아름답게, 그렇게 말입니다. 그들의 존재감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단골로 등장하는 부족사회의 원시인들이나 연합통신(YP)의 희생자들 사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살가도의 렌즈에서 이들은 타자화된 피사체가 아니라 존엄한 존재로 부활합니다.

미국의 평론가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이란 책에서 서구의 사진작가나 기자들이
전쟁이나 재난 현장의 사진을 찍을 때 서구와 비서구에 대해 완전히 다른 감성과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서구지역의 전쟁 사진에선 터부시 되는 훼손된 시체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경우엔 금기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전쟁이나 재난을 겪는
서구인들이 언제나 고통을 ‘이겨내는’ 모습으로,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 비해 비서구 지역에서는 오직 현실의 비참함만이 부각되며 그 속에 놓인 인간
역시 가련하고 불쌍한, 고통을 ‘당하는’ 희생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것을 혹시 눈치 챈 적이
있으신지요? 일종의 상징조작과도 같은 그러나 하는 사람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로 생산된 사진들을
통해 서구인들의 뇌리에 서구세계 바깥 사람들의 검은 몸은 언제나 ‘인간의 몸’이 아닌, 미개한 ‘
몸뚱이’로 문명사회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인 일들이 새겨지는 곳으로 각인되어 왔다는
것이 손택의 통찰입니다.

그러나 살가두의 사진에서 이들의 검은 몸, 야위고 더러운 검은 몸은, 오히려 문명이 저지른 죄악을
씻어줄 성소로 등장합니다. 뺏지 않고 속이지 않고 착취하지 않고 억압하지도 않고, 반대로 빼앗기고
쫒기고 짓밟히고 억눌리면서도 인간의 선함을 잃지 않고 살아온 이들은 그러하기에 역설적으로
죄악을 저지른 자들을 용서하고 구원해줄 수 있는 성자들인 것입니다. 풍요롭고 안전한 곳에서
오히려 욕심에 뒤틀리고 타인에게 잔인해져가는 사람들과 달리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사랑과 희생을 보여주는 이 선하면서도 강인한 사람들이야말로 이 땅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인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최민식의 사진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사진에는 우리의 얼굴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아프고, 더 슬픕니다. 그도 온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왔지만 그
역시 가난을 단지 일그러진 고통으로만 형상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가난한 이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인간의 사랑은 아름다움 그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고통과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줍니다.”
‘인간이, 그것도 서럽도록 착한 인간이 거기에 있기에’ 그들의 곁에서 사진을 찍어왔을 뿐이라는 이
작가의 책에서는 사진 그 자체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삶이 뿜어내는 진실성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지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난에 대한 작가 자신의 철학과 정치미학이 또 다른 큰
놀라움과 기쁨을 줍니다.

“단순히 행색이 초라하고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아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가난과 고통은 따지고 보면 정부를 비롯해서 가진 자와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오랫동안 군소리 않고 묵묵히 일하는 가난한 서민들, 그들을 대변할 사진작가가 있는가. 이런 고귀한
일들을 사진작가는 해내야 한다. ... 사진이란 다른 사람이 짊어진 아픔의 감각을 기술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의 슬픔을 미적 존재로 승화시킴으로써 미를 다시 희망으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한 생명도 있을 것이다.”

“예술 창작은 민중 속에 어우러져 들어가고, 거기에서 민중의 피와 땀을 흠뻑 적신 채 드러나야 되지


않겠는가. 삶에서 나타나는 풍부한 체험으로 건져 내야 한다. … 찌든 삶에서 우러나는 풍부한 비판
정신, 평범하게 살아가는 진실한 모습이 담긴 민중 현실을 주제로 설정해야 한다. …이것을 해내는
것이 진실한 예술가의 사명일 것이다. 위대한 작품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동시대의 현장에서
도피하지 않고 그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현장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때만 실현되었다. 아무리
짓밟혀도 이 땅의 들꽃은 거듭 피어나 온 들판을 덮어갈 것이다.”

이런 구절을 읽을 때 저는 최민식이 사진작가로서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을 연구자로서 나 자신에게


부여하는 사명으로 곧잘 바꾸어 읽고는 합니다. 시대의 고통에 응답하라는 노작가의 충고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에 빚진 존재임을 느끼지 못하고 가난의 구원자로 나선
지식인들이 새겨들어야만 할 아픈 채찍일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용기 있는 작가가 요구되는 시대도 없다. 사람들은 역사적 진실에 목말라 하고 있다. 모든
제약과 고통을 넘어서서 민중들의 갈구에 답하는 용기 있는 작품이 나올 때, 참다운 감동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가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예술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괴로움을 이기며 도전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지배함으로서
문화자본을 독점하고 문화권력자가 되어 저급한 취향을 가진 ‘무식한 대중들’과 ‘가난한 노동계급’에
대해 상징폭력을 행사하는 오늘의 문화귀족들을 향해 돌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사회적 장에서만이 아니라 문화투쟁으로서의 미학적 대결에서도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자립과 연대의 조건을 박탈당하였고, 존엄과 존경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탓이 아닙니다.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이 세계의 부자들이 저지른 죄악을 고발하는데 작가적 사명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민중미학’이란 것이 사라진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민중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작품들이 그들이 사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민중들과 그 삶을 미적 윤리적
투쟁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 최명희의 『혼불』에서, 조정래의 『
태백산맥』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에서, 곤경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형상은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성’을 늘 ‘민중성’에서
찾아온 민중문학의 양식이 언제부터인가 촌스럽게 여겨지거나 또는 ‘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가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타나고, ‘신경숙’이 작가로 태어났던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로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방식으로, 나르시스적 지식인들이나 고립된
개인들을 인간적 고뇌를 대표하는 인간으로 둔갑시키면서 말입니다. 노동의 세계가 문학의 세계에서
멀어져 가고 동시에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지식인들의 부채의식도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
탈정치화’가 이념의 시대를 벗어나 예술의 자유를 얻을 수단인 것 마냥 호도되고 그것이 또한 문학의
사명이 되었을 때, 가난한 삶과 가난한 행복과 가난한 사랑에 대한 미적감수성을 잃어버린 문학의
타락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요?

가난의 미학은 한편으로는 소비의 미학과 한편으로는 순수예술의 형식주의 미학의 정반대편에
있습니다. 오늘날 소비의 미학이 대중예술과 대중문화를 지배한다면 형식주의 미학은 엘리트 예술과
지배계급의 귀족적 취향을 대변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삶의 진실성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가난의 미학을 회복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투쟁이자 대중소비문화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미적취향을 대부분 ‘상품소비’의 형식으로서 만족시키고 있는 현대인들이
그와 같은 ‘소비’를 그만둔다면, 낡은 것을 사랑하고 이미 가진 물건들 가운데서 새로운 쓸모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밥상조각보’에 깃들어 있는 안목과 기술을 갖게 된다면, 시장이 아니라 각자의
공동체 안에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을 다시 갖게 된다면, 그것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강요하는 소비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거부와 저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는 것은 자본주의가 발전시켜온 소비와 착취의 경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지만 지구와
생명에 대해서는 가장 큰 기여가 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가난을 동경하고 가난에
동참함으로써 사는 것을 그만 두고도 필요한 물자를 얻게 될 때, 화폐가 아니라 우리의 손에서
아름다운 물건들이 만들어져 나올 때, 그것이 곧 새로운 경제의 출현이 될 것입니다.

그런 가난의 기술(예술)과 철학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작은 집으로, 더 작은 차로,


더 적은 돈으로, 더 느리게’ 등을 외치며 ‘다운사이징(down sizing)’ ‘다운쉬프트(down-shift)’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양식이 값비싼 물건들로 가득 찬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는 화려한 삶보다 멋져 보이기 시작할 때,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난의 길은 조금씩 생겨날 것입니다. 조심스러워야 할 것은 그것이 단지 형식미학에 머무를 때,
개별적인 개인의 취향 선택으로 그칠 때는 과거의 오가닉 푸드(organic foods)나 웰빙(well-being)
담론처럼 기껏해야 중산층의 새로운 문화적 생활양식이 되어 새로운 소비풍조의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결단은 더 낮은 곳으로의 하방,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더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낮추는 것은 지역적 이전이 될 수도
있고 직업적 이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보다 더 많은 가난한 이들을
이웃과 친구로 만날 수 있고 그들로부터 가난한 삶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삶의 조건들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한 이웃들의 존재야말로 가난한 아름다움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가난한 친구들이
없이는 몸에 배인 중산층의 생활양식과 문화의식, 기존의 삶을 고수하려는 기득권옹호의 자세로부터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난한 삶’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인식론적으로 승인하는
것을 넘어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체감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가난은 계속 두려운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의 길을 택하는 것은 미학적
투쟁입니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정말로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물질적 결핍으로서의 가난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비참해지는 것은 그들이 가진 마지막 삶의 기반까지 최후의 자립과 자존의 수단까지
빼앗기고 난 다음입니다. 한 뙈기의 땅, 한 칸짜리 작은 집, 한 마리의 돼지까지 모조리 빼앗기고
대대로 숲과 강에서 얻어왔던 것까지 금지되고 난 이후에야, 그리고 모여 살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이후에야 ‘비참한 가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
무시당하는 것, 무능력한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가난에 대한 모욕은 부유한 세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상징투쟁입니다. 가난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더 가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더 많은 부를 통해 행복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통치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가난’이 어찌해서 인간성의 보루인지, 가난한 삶이 어찌해서 비루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지를 미적으로 형상화해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우리가 가난을 향해 두려움을
떨치며 한발 더 다가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비참하나 그것이 옳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게
살겠다는 의지의 명령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이 거기에 있으므로 ‘그러므로’ 가난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의 동경이 생겨날 때, 가난의 길은 가고 싶은 길이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삶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동경의 마음이 생겨날 때 가난의 미학은 소비의 미학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하였던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그 가난 속에 깃들었던 짙은


어둠과 그 속에 담겨있던 삶의 진실성과 들꽃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지나온
시절에 새겨져 온 가난의 결이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서로를 비춰주는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
될 수 있다면, 그 얼굴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가난할 힘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가난하여 아름다운 내가 되려는 이유이고 가난의 아름다움을 아는 당신에게 가려는
이유입니다.

가난에 관한 네 번째 이야기
이시무레 미치코『신(神)들의 마을』(서은혜 옮김, 녹색평론사, 2015)

이제 마지막으로 함께 읽을 책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시무레 미치코의 『신들의 마을』입니다. 여기에


내가 떠나온 세계와 닿고 싶은 세계와 그려 보이고 싶은 세계가 다 담겨 있군요. 이 책을 마지막
편지를 쓰기 전에 만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얼마나 울었던지. 그
눈물의 짠맛으로 잊고 있었던 옛날의 기억 하나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인력거를 탄 적이 있습니다. 90 년대 말 중국에서. 그냥 관광지에서 한 바퀴 쯤 재미삼아 타보는


체험용 인력거가 아니었어요. 나는 사람이 끄는 수레를 탔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교통수단이지만 소와
자전거와 버스와 자동차가 뒤섞여 다니던 개혁개방기 당시의 베이징에는 택시보다 더 많은
인력거꾼들이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태워주곤 했습니다. 그날 다리는 무거웠고, 집까지
좀 편히 오고 싶은 마음이 인력거꾼과 흥정을 하도록 했던가봅니다. 일행이었던 후배와 어찌어찌
해서 한 인력거꾼과 ‘적정가’에 도달했고, 우리는 문명세계에서 온 ‘외국유학생’의 신분으로 한
가난한 중국인 노동자가 끄는 인간수레 위에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만족은 잠시였을 뿐, 인력거는 곧
작은 지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레 위에 앉아 바로 앞에서 다가오는 터질듯 한 심장 박동소리와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과 검다 못해 불에 달구어지는 듯 활활 타오르고 있는 살갗의 열기와 쓰러질 듯
가쁜 호흡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건장한 두 젊은이가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늙은
노동자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이라니요. 게다가 두 인간을 태우고 두 다리로만 달리기엔
너무 먼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인력거라는 것이 한 인간의 잠깐의 편안함을 위해 다른 인간을
숯덩이처럼 태우며 달리는 수단이란 걸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내내 깨달아야했습니다.
내려서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원래 흥정했던 액수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서도 죄책감은 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걷지 않은 다리에 맥이 풀려 주저앉아버릴 만큼, 한 인간을 죽을 만큼 부려먹었던 그날의
충격은 컸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는 나에게 동행했던 후배는 이렇게
위로해주었지요. “괜찮아요. 우리들 덕분에 그들도 먹고 사는 거니.” 우리가 돈을 써주는 덕분에,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 그 말이 더 토할 것처럼 역겨웠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기업이 노동자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믿음을 산산이 깨트려준 것은 눈
앞에 현전한 한 노동자의 몸, 가난하나 정직한 그의 몸이었습니다. 나는 채찍 대신 돈을 들고 나타난
‘소비자’란 이름의 착취자라는 것을 나는 그 검은 몸에서 숯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던 열기를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어깨 위에 올라탄 사람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비록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인력거의 인력거의 인력거의 인력거로 이어진 합법적 교환의 사슬 맨
앞에는 최종적 착취자인 내게는 도달하지 않는 살이 타는 냄새로 우리가 타고 있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날에도 나는 오늘처럼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까맣게도 잊고 살았었군요. 그 가난한 거리에서 맡은 살냄새가 희미해져가는 동안 말입니다.

이시무레 미치코의 ‘신들의 마을’에서 나는 가난한 마을과 가난한 사람들의 살냄새를 다시


맡았습니다. 그건 산업사회의 먹이사슬의 제일 밑바닥에서 ‘미나마타병’이란 끔찍한 질병에 걸려
유기수은이라는 맹독성 독극물에 중독되어 산채로 태워지고 있는 사람들의 살냄새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끔찍한 냄새 속에서도 ‘미나마타병 환자들은 인간의 모범’이란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만큼, 멀쩡한 인간들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적인 살냄새를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산업사회가 가져온 재앙이나 그것이 파괴한 인간공동체의 비참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고발하는 동시에 잿더미 속에 남아있는 또 다른 한 세계의 희망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 울게 만듭니다. 그녀는 인력거 속에 존재하던 다른 두 세계가 미나마타란 자신의 고향 마을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그렇게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미나마타. 가난한 사람들의 땅.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 미나마타, 일본 열도에서 바라보자면


남쪽 끝 한구석에 팽개쳐진, 깊고 깊은 우물 바닥 같은 촌구석” 작은 마을. ‘미나마타병’으로 알려진
‘수은중독’과 대규모 공해사건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할 가난한 생명들의 땅에서 지난
세기에 일어난 이 비극의 사건은 한 세계를 고발하고 한 세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미나마타가
고발하는 한 세계는 마을에 들어선 대규모 유기화학공장 ‘짓소’로 대표되는 근대적 세계입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같은 화학합성물이 생명체에 치명적인 유독성 물질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입니다. 작은 어촌 마을에 짓소와 같은 화학공장이 들어선 이유는 외부로부터 배가 들어오기
쉬워 원자재 수입과 완제품의 수출이 동시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마창공업단지나
울산공업단지의 조성과 같은 이유의 순전히 경제적 효율성에 따른 원리였습니다. 짓소 본사는 도쿄에
있습니다. 공장은 미나마타에 있고요. 여우의 신령들이 지켜준다는 신묘한 산이 파헤쳐지고 그 자리에
공장이 들어서고 대규모 공장에 필요한 자재 노동력을 수급하기 위해 철도역이 연결되자 짓소는
미나마타의 지역경제를 살리는 대표적 회사가 됩니다. 미나마타 사람들은 이 공장에서 토해내는
유독물이 바다와 물고기와 새와 짐승과 사람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것들을 다 죽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이런 회사가 있어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있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고깃배들이 제 가족과 이웃의 먹거리에 만족할 만큼의 먹거리를 내어주는 바다에서 삶의 양식을 건져
올리며 살아온 작은 바닷가 마을이 죽은 물고기들이 떠오르고 조개가 바위에서 입을 벌린 채
썩어가고 개와 고양이들이 비틀걸음으로 미친 듯이 춤을 추다 바다 속으로 제 몸을 던지는 죽음의
향연장이 되기 시작했을 때에 비로소 사람들은 무엇인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그들 자신의 손발도 뒤틀리고 몸이 휘청거리며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미친 사람’이 되어가는
괴질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어미 뱃속에서부터 ‘미친 채로’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고발했던 세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고발하고 있는 세계가
미야마타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공해나 환경문제를 다룬 고발문학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근대문명이 종말의 묵시록을 써가는 곳, 인류가 가장 비참하게 망가뜨린 땅이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탈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인 이시무레를 비롯한 미야마타의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나라는 고발의 세계와 함께 또 다른 증언의 세계를 드러냅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떠나온 곳, 망각한 곳, 그러나 다시 되살려야할 곳입니다. 미야마타는 자신을 죽임의 장소로 만든 ‘
도쿄적 세계’를 고발하지만, 어찌해서 그 죽임당한 장소만이 다시 살림의 장소가 될 수 있는지를 ‘
증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실패해버린 듯한 20 세기의 성립이 잘 보인다. 왜냐하면 이곳은 물고기의 태(胎),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는 곳이므로, 그 피와 살을 가지고 일본의 근대를 낳고 길러 배웅하고 지켜보면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의 부모의 묘역을 지키고 돌봐온 곳이므로, 여기서는 그것이 잘 보인다.”

문명의 도시가 빛나기 위해 토해낸 배설물들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미나마타는


그 중에서도 유기수은이라는 맹독성 화학물질이 버려진 곳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존재들이 온 몸으로 그 독을 받아 안고 해독해내야 했습니다. 미나마타의 사람들이 온 몸이
뒤틀려가며 살아낸 그 온 삶이야말로 독기어린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마지막 문명이 뱉어낸 온갖 더러운 토사물들이 쌓여 썩어갈 수밖에 없다고 여겨온 가난한 땅이야말로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땅이라고 “어리석게도 화학공장을 ‘세련된 도시풍’이라고
착각하여 극약과 함께 품 속 깊이 끌어안아버린 자들 곁에서” 작가인 이시무레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가장 큰 재앙은 가장 가난한 땅에 먼저 닥쳐오고 가장 작고 약한 존재들을 먼저 덮치는 것일까요?


화산폭발이나 쓰나미, 폭우, 폭설, 산사태, 건물의 붕괴 등등의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미나마타가 겪은 비극이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근대의 질곡, 문명이 저지른
악이 가장 큰 재앙의 형태로 도달하는 곳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
미야마타의 비극을 작가는 차마 읽어내기가 힘들 정도로 처절하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짓밟혀 스러져가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삶의 비극에 맞서는 의연함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인간의 유대로 ‘함께 싸우고 견뎌내는’ 인간의 모습을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땅과 가난한 삶과 가난한 사람들의 살은 늘 하나이며, 그 몸은 곧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장소가 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은 그 자체가 곧 저항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생존한다는 것은 살아남는다는 것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며 싸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가난을 곧 저항이고 혁명이 되도록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이 세계의 질서가 얼마나 부도덕하고 부조리한지를 드러내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존재함으로써 그 질서의 한 축을 허물어뜨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저항의 한 형태가 됩니다. 그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됩니다. 살기
위한 투쟁, 종종 우리가 ‘생존권 투쟁’이라고 부르는 이 투쟁이 어째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투쟁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을 향한 투쟁’이 될 수 있는지를『신들의 마을』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육체적 존재라고 하는 하나의 직접성을 그곳에 가로질러 놓음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몸은 근대
문명과 자본주의를 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은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아니 가난만이 싸우고
있습니다.

“일본의 진실.... 그렇지, 진실이쥬 일본의, 이 미나마타의 모습이. 미노루코는 몸에 이것을 짊어지고
태어난 것이것지유. 진실하여 거짓되지 않다는 것은 미노루코의 모습이자 거짓이라곤 한 조각도 없는
진실이라구. 말세, 거꾸로 된 세상이니까유.” 미나마타병 환자의 모습은 모두들 그렇게 “거꾸로 된
세상의 진실을 몸에 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는 세상, 역세(逆世)와 말법(末法)의 세상이 온
것을 미나마타가 앞장서서 알린 것이라고 ‘열매맺는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처녀
미노루코가 뒤틀린 손가락으로 땅에 떨어진 벚꽃 잎을 주우며 우리에게 몸으로 증언해주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시무레의 눈에는 이 세계가 거꾸로 된 세계이며 오히려 거꾸로 선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이 구원자가 됩니다. “분명히 거꾸로 된 세상이다. 20 세기의 종언에 들씌어 있던
세월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사람들은 ‘또 하나의 이 세상’의 유민(遺民)이었다. 극단의 수난을
겪는 이분들이 손을 뻗어 구원해주고 계신 것은 이쪽일지도 모른다.”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한 아이가 산채로 죽어가는 장면은 왜 이런


바다에서 죽어가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차가운 파도에 삼켜지는 또 다른 아이를 연상케 합니다.
미나마타의 신들은, 체르노빌에서, 후쿠시마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인간이 파놓은 문명의 구덩이에
산채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수많은 작은 신들을 불러냅니다. 미나마타 환자들로 구성된 영가
순례단이 부르는 진혼곡 속에서 그들은 부활합니다. 산채로 죽어간 이들과 죽은 채로 살아남은 이들
앞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짓의 부끄러움을 알고 진심으로 사과하라는 요구 앞에서 ‘꼬리 아홉 두른
여우’보다 더 무서운 ‘넥타이 두른’ 도회지의 배운 이들은 인간의 존엄을 ‘보상액’으로 흥정하고,
공장이 입을 타격이 지역경제와 일본경제에 가져올 타격을 ‘숫자’로 계산하면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합니다. 미나마타의 할머니들에게서는 밀양의 할머니들이 보이고 생명의 터전을 죽임의 기지로
바꾸는 강정의 바다가 보이고 추악한 음모의 바다 속으로 고꾸라지는 세월호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죽은 자들은 언제나 산 자들의 수치를, 목덜미에 늘어뜨린 쇠사슬처럼
얽어매고 돌아온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를 살리고 있는 것은 “죽은 자들이 견디고 있는 수치의 추
(錘)”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왜 가난이 희망이고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지를 마지막으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가난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을 없애기 위해서’ 이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싸운다고 생각하지만, 싸우고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오늘도 세계의
도처에서 생존의 조건으로 인간의 유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삶을 다시 살아내고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성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당신 말은, 다시 가난하지만 정겨웠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거요? 하지만 우린 이미 풍요의


시절을 맛보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풍요의 시절과 함께 다른 것도 보고 겪지
않았습니까?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서 배부름 대신에 버리고 온 인간의 미덕과 신들의
세계를 다시 경험해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도쿄에 가지 마라 고향을 만들어라.”(다카무레 이츠에) - 이시무레가 들려준 시인의 이 말은


가난으로의 길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듯합니다. 나는 그 말을 ‘여기서 함께 가난해집시다’
로 해석합니다. “변경이나 비경은 이미 사라져버렸으니, 사람 마음속에 남아있는 비경으로 나는 길을
떠나야만 한다.” 미야마타는 들판의 신, 우물의 신, 강물의 신, 바다의 신, 물고기의 신, 여우와 토끼의
신들과 함께 살아온, 그 신들의 말을 듣고 새기며 살아오는 동안 그 신들의 목소리를 자신들의
목소리에 담을 줄 알게 되고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의 인격 속에도 신격을 갖게 된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 신들의 마을이 짓밟히고 파괴될 때 사람들의 선택지는 “이제부터 탈출가능한
조건을 지닌 자와 고향의 실상 속에 가라앉아 가는 자들”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고향의 상실 속에서
함께 가라앉아 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차라리 그 길을 택한 사람들,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 표면으로 나와서 이렇다 할 자기주장을 할 일이 없었던 까닭에 찾아내어진 적도 없었던


정신의 비경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 보존되고 있었다. 그것은 별 것 아닌 겉모습을 한 시골 풍경
속에, 산 깊은 곳이나 어촌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은, 암시적인
민화라든가 불교 설화 등에 나오는 얼굴과 흡사하다. 마을이나 동네는 꼭 그대로 모습만 바꾸어 옛
이야기를 재생한다.”

신들의 마을로 가는 길이 아직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을 믿으며 나는 이제 고라니의 말, 산새의 말,


들꽃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의 곁으로 가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예측이 나의 다음 발걸음을 놓는 방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설혹 많은 사람들이 인력거를 끄는
사람보다 인력거를 타는 사람이 되기를 여전히 바라더라도 나는 다시는 인력거를 타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나 역시 이런 가난한 신들의 세계를 맛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기댐으로서만 올곧게 설 수 있고 내가 당신의 버팀목이 됨으로써만 우리가 서로의


삶을 함께 버텨낼 수 있는 가난의 에토스야말로 어째서 오늘날 가난만이 싸울 수 있는 힘으로
남아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여기서 함께 가난해지기로 해요. 이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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