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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이병휘공초李秉輝供草

이 자료는 1894년 10월 5일, 10월 7일, 10월 8일 3차에 걸친 이병휘李秉輝


에 대한 신문기록이다. 이병휘李秉輝는 농민군의 북상을 재촉하는 흥선대원
군興宣大院君의 밀서를 전달한 혐의로 9월 2일 체포된 인물이므로, 여기에서는
흥선대원군과 농민군과의 관련을 밝혀 흥선대원군을 축출하려는 일본측과
반대원군측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신문내용이 중심이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그의 손자 이준용李埈鎔과 손을 잡고 여러 명의 밀사를
농민군 측에 파견하여 정국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였는
데, 박동진을 호서지방의 연락책으로, 정인덕을 서울지역 연락책으로 삼았
다. 그리하여 박동진과 정인덕 사이에 주고받는 편지 등은 마침 산송山訟 사
건으로 경기도와 호서지방을 왕래하고 있던 이병휘李秉輝에게 전달토록 하였
다. 이병휘는 편지를 몇 번 전달하다가 당시 경무사로 있던 이윤용에게도
보고하였는데, 이에 따라 흥선대원군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병휘공초李秉輝供草󰡕는 흥선대원군을 둘러싼 당시 숨가뿐 중앙 정치동향
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며, 흥선대원군과 농민군과의 관계를 밝히는
데 요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61

이병휘 공초
李秉輝供草

개국開國, 조선의 개국 503년 갑오甲午, 1894년 10월 일


허엽許燁 공초
이병휘李秉輝 공초
[일본 영사관 참관]

개국 503년 1894년 10월 5일 죄인 이병휘의 1차 문목


[開國 五百三年 甲午年 十月 初五日 罪人 李秉輝 一次 問目]
문問 : 너는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감옥에 갇히길 원하는가?
공供 : 대원군大院君이 잡아 가두라는 명命이 있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
었을 뿐입니다.
문問 : 어떻게 대원군이 잡아 가두라는 명을 알았는가?
공供 : 포교捕校가 체포하라는 명命을 가지고 집으로 잡으러 왔기 때문에 그것
을 알았을 뿐입니다.
문問 : 그것이 대원군의 분부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공供 : 포교가 집에 잡으러 왔을 때에, “이것은 대원군의 명命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문問 : 무슨 죄로 잡혀 갇혔는가?
공供 : 단지 대원군의 명命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거역할 수 없어서 지금 갇혀
62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있습니다. 9월 4일 밤에 본아本衙의 낭관郎官이 불러서 묻기를, “네가 네


죄를 아는가?”라고 하기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문問 : 너는 허엽許燁과 서로 관계한 일이 있는가?
공供 : 일찍이 허엽과 서로 친하였습니다.
문問 : 서로 관계한 일이 무엇인가?
공供 : 산송山訟 때문에 서로 관계한 적이 있습니다.
문問 : 서로 관계한 일의 내면을 상세히 말하라.
공供 : 일찍이 허엽이 말하기를, “청석동靑石洞에 사는 사인士人 정인덕鄭寅德이
제법 재주와 학문이 있어 서로 친할만한데 어찌 가서 보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 명성을 흠모하여 바로 가서 보았습니다. 그 뒤
안성安城에서 산송山訟이 있었으나 동학배東學輩에게 곤경을 당하여 부탁
할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일찍이 서로 친했던 사람을 수소문했더니,
허엽이 말하기를, “지금 박동진朴東鎭이 선무사군관宣撫使軍官의 <직함을>
가지고 호중湖中으로 가는데, 이 사람에게 긴밀하게 부탁을 하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긴밀하게 부탁을 할 만한 사
람은 정인덕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제가 바로 허엽에
게 간절히 부탁하여 정鄭, 정인덕의 편지를 얻으러 갔습니다. 허엽이 정말
로 8월 초순에 정인덕의 편지를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가지고 바로 천안天安에 갔더니 산송 일은 이미 타결이 되었습니다. 박
동진이 정인덕의 편지를 보여주었는데, 그 편지에, “동도東徒 몇 만 명
을 바로 인솔하여 신속하게 올라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박동진이
정인덕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여주었는데, 그 편지에, “동도 30만
명을 이끌고 20일 이후에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보내는
편지가 3통이었는데, 1통은 허엽에게, 다른 1통은 정인덕에게, 또 다
른 1통은 송정松亭에게 전하라고 했기 때문에 저는 그 편지를 가지고
서울에 올라온 날에 허엽에게 전하고 나누어 주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63

문問 : 이밖에 따로 상관한 일이 없는가?


공供 : 8월 20일 이후에 허엽과 함께 정인덕이 사는 집에 가서, “지금 경병京兵
과 일본군이 내려가려고 하고 뒤따라 신속하게 그믐 전에 올라올 것이
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밀봉密封한 편지 1통이 있었는데, 임
진수林璡洙를 시켜 박동진에게 전하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8월 20일 이
후에 다시 직산稷山에서 산송山訟이 있고 동도에게 곤경을 당하였습니
다. 다시 허엽에게 편지를 부탁하니, 허엽이 다시 정인덕의 편지를 구
해서 주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보았더니, 제법 크고 별지別紙가 들어
있어 의심스러워서 전하지 않고, 바로 경무사警務使 이윤용李允用에게 전
했습니다.
문問 : 네가 비록 허엽과 친분이 있고, 정인덕이 박동진과 평소에 정情이 통하
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비밀스런 일을 어떻게 너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할 수 있는가?
공供 : 저는 정인덕과 허엽 두 사람에게 실제보다 지나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인덕의 편지를 얻을 때에도 해결하기 어려운 산송山訟이었는
데, 허엽이 말하기를, “네가 박동진에게 편지를 전할 때에 이 일을 안
다고 하면 산송일은 저절로 타결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 지시대로 이 전후의 일을 들어서 알았을 뿐입니다.
이 공초供招는 착오가 없습니다.
10월 5일 이병휘
64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일본 영사관이 함께 신문]


개국 503년 1894년 10월 7일 이병휘의 2차 문목
[開國 五百三年 甲午年 十月 初七日 李秉輝 再次 問目]

문問 : 성명姓名은 무엇인가?
공供 : 이병휘李秉輝입니다.
문問 : 나이는 얼마인가?
공供 : 47세입니다.
문問 : 관직官職은 무엇인가?
공供 : 관성장管城將1)으로 지금 갇혀있을 뿐입니다.
문問 : 언제 파면되었는가?
공供 : 이번에 갇히면서 파면되었을 뿐입니다.
문問 : 임금으로부터 파면을 당했는가?
공供 : 대원군大院君의 처분 때문에 파면되었습니다.
문問 : 언제 갇혔는가?
공供 : 9월 2일에 갇혔습니다.
문問 : 갇히기 전에 파면되었는가?
공供 : 갇힌 뒤에 그것을 듣고 바로 파면되었습니다.
문問 : 어디에 사는가?
공供 : 탑동塔洞에 살고 있습니다.
문問 :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가?
공供 : 경성京城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문問 : 여기에 있는 사람은 바로 일본 영사領事인데, 이노우에井上 공사公使의 지
시로 조사하러 왔다. 동학당東學黨이 살육하고 약탈한 사항들을 이번에
일일이 물을 것이니 모某 대신大臣과 관련이 있는 사항은 해를 입을까

1) 관성장(管城將) : 북한산성의 방어와 관리를 담당한 경리청의 정 3품 무관직을 말한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65

꺼리지 말고 모호한 얘기는 버리고 모두 상세히 말하라.


공供 : 비록 혹시 해를 입더라도 마땅히 바른말에 근거하여 말할 뿐입니다.
문問 : 네가 동학배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공供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네가 누구의 편지를 받아 어떤 사람에게 전했는가? 또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
공供 : 실제로 편지를 전한 일이 있습니다.
문問 : 네가 편지를 받아 동학東學에게 전한 것은 몇 번인가?
공供 : <편지를> 전한 것은 두 차례인데, 한번은 제가 전한 것이고 다른 한번
은 받았을 뿐입니다.
문問 : 편지는 언제 전했는가?
공供 : 8월 16일이었습니다.
문問 : 처음에 언제 편지를 받았는가?
공供 : 8월 13일이었습니다.
문問 : 누구의 편지를 누구에게 전했는가?
공供 : 정인덕鄭寅德의 편지를 박동진朴東鎭에게 전했습니다.
문問 : 정인덕은 본래 동도東徒인가?
공供 : 애초에 동도가 아니고 단지 선비로만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처음에 정인덕의 편지를 무슨 일로 얻으려고 했는가?
공供 : 단지 산송山訟일 때문에 얻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네가 요청하여 그것을 얻었는가?
공供 : 요청해서 얻었습니다.
문問 : 박동진은 또한 어떤 사람인가?
공供 : 동학인東學人입니다.
문問 : 편지에 어떤 얘기가 있었는가?
공供 : 편지에 산송山訟에 관한 일이 있었고, 또한 빨리 올라오라는 이야기가
66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있었습니다.
문問 : 단지 빨리 올라오라는 이야기 뿐이었는가?
공供 : 경영할 일을 어찌 하겠습니까? 빨리 올라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편지에 있는 말을 어떻게 알았는가?
공供 : 박동진이 편지를 열어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문問 : 어제 대신大臣이 사실을 조사할 때에 수십만 명이 올라온다는 말이 있
었는데, 지금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 말은 누가 한 것인
가?
공供 : 이 아무개가 정인덕에게 그것을 말하게 한 것일 뿐입니다.
문問 : 그 편지는 누가 쓴 것인가?
공供 : 정인덕이 쓴 것입니다. 그 전에 박동진의 동생이 가지고 간 편지가 있
었는데, 거기에 이 아무개의 편지가 있어 박동진에게 동도東徒 수십만
명을 인솔해서 바로 신속하게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문問 : 위에서 올라오라는 얘기는 바로 정인덕이 편지에서 말한 것인가?
공供 : 정인덕이 편지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아무개 친척의 편지에
서 말한 것입니다.
문問 : 박동진의 편지는 무엇을 말했는가?
공供 : 그것은 모릅니다.
문問 : 잠깐 전에 들은 것은 바로 정인덕의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는가?
공供 : 정인덕의 편지에는 다만 올라오라는 얘기뿐이었고, 보여준 이 아무개
의 편지에 바로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문問 : 박동진이 보여준 편지가 분명히 이 아무개의 편지인가?
공供 : 분명히 이 아무개의 친필입니다.
문問 : 이 아무개의 필적을 네가 아는가?
공供 : 그 필적을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문問 : 이 아무개의 편지에서 말한 것을 다시 상세하게 말하라.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67

공供 : 동도東徒 수십만 명을 하루가 못되어 단속해서 바로 신속하게 올라오라


는 얘기였습니다.
문問 : 그 편지는 누구에게 보냈는가?
공供 : 박동진에게 보냈습니다.
문問 : 박동진은 누구를 통해 관직을 얻었는가?
공供 : 이미 주사主事로서 선무사宣撫使의 군관軍官을 겸임하고 있었습니다. 박동
진은 겉으로 비록 선무宣撫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난리를 선동했을
뿐입니다.
문問 : 박동진이 선무사를 수행했으나 실제로는 난리를 선동했다는 것을 네
가 어떻게 아는가?
공供 : 바로 신속하게 올라오라는 편지가 있었던 데다가 바로 신속하게 올라
간다는 답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난리를 선동한 게 아니라면 무엇입
니까?
문問 : 네가 편지를 박동진에게 전할 때에 다시 답장을 받아 올라갔는가?
공供 : 3통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문問 : 3통의 편지는 그대로 아무아무개에게 전했는가?
공供 : 한통은 허엽許燁에게, 다른 한통은 정인덕鄭寅德에게, 또 다른 한통은 이
참판李參判에게 전했습니다.
문問 : 3통의 편지내용을 네가 아는가?
공供 : “하교하신 일은, 지금 병사 30만 명을 인솔하여 바로 8월 25일과 26일
사이에 올라가겠습니다. 서울안의 기미는 자세히 통지해주시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일본군이 내려온다면 정말로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신
속하게 기별을 전하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편지를 보낸 날짜는 언제인가?
공供 : 8월 17일입니다.
문問 : 다른 편지는 언제 있었고 어떤 얘기가 있었는가?
68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공供 : 같은 날에 정인덕에게 전하였고, 편지에 이대감 및 박영감과 상의하여


일을 마련하라는 얘기가 있었으며 석정石庭, 李埈鎔의 호과 상의하라고 하
였습니다. 일본군의 출동여부를 상세히 탐지하여 알리라고 하였습니
다.
문問 : 이대감과 박영감은 모두 누구인가?
공供 : 이李는 바로 이태용李泰容이고, 박朴은 박준양朴準陽입니다.
문問 : 허엽許燁에게 전한 편지내용은 어떠한가?
공供 : 산송山訟의 일을 말하였고 믿을만한 인편에 그 편지를 정인덕에게 전한
다고 하였습니다. 그 3통의 편지 중에 허엽에게 전하는 것이 1통이고,
정인덕과 이태용에게 전하는 것은 함께 봉함하였습니다. 그 겉봉에 석
정대인대감石庭大人台監 죽계생경함竹溪生敬椷2)이라고 썼습니다.
문問 : 죽계竹溪는 바로 누구인가?
공供 : 박동진의 별호別號입니다.
문問 : 어제 조사할 때에 3통의 답장 중에 송정松亭에 전하라고 했는데, 지금
송정이 없는 것은 어찌 된 것인가?
공供 : 송정은 바로 이준용李埈鎔3)의 집이고 석정은 그의 별호입니다.
문問 : 이참판이 박동진의 동생을 시켜 그의 형에게 전하게 한 편지는 언제인
가?
공供 : 모릅니다.
문問 : 1차에 편지를 전한 얘기는 들었고, 2차에 박동진의 답장을 네가 가지
고 가서 전했는가?
공供 : 2차의 답장을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2) 석정대감께 죽계(竹溪, 호)가 삼가 편지를 올립니다.


3) 이준용(李埈鎔 1870~1917)* :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경극(景極)이며 호는 석정(石庭)・
송정(松亭)으로 흥선대원군의 적손(嫡孫)이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69

문問 : 2차에 박동진이 이준용에게 보낸 편지는 무슨 얘기를 했는가?


공供 : 2차의 편지는 비록 보지 못했으나 정인덕에게 들었는데, “지금 일본군
이 출동하려하니 대원군이 의원議院에서 막는 것이 옳다. 만약 일본군
이 내려오면 각 처의 동도는 한꺼번에 흩어졌다가 11월쯤에 청나라 군
대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모여 힘을 합해서 안팎에서 협공을
한다면 일본군을 깨뜨릴 수가 있고, 조정을 깨끗하게 할 수가 있다. 그
리고 따로 나라를 맡을 사람을 세워 백성을 편안하게 할 계획이다”라
고 하였습니다.
문問 : 나라를 맡는다고 하는 것은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운다는
뜻인가?
공供 : 정말로 그 이면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나라를 맡는다고 하는 것은
반역을 말하는 듯합니다.
문問 : 만약에 해를 입을 것을 꺼리지 않고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고자 한
다면 비록 <임금을> 폐하고 새로 세우는 이야기도 이미 드러난 마당
에 명백하게 말하는 게 옳다.
공供 : 이와 같은 얘기들을 들은 것이 없지 않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으니 부끄럽고 두려워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문問 : 그밖에 이준용과 대원군이 동도東徒와 왕래한 일을 너도 알고 있는가?
공供 : 정인덕이 경무사警務使에 잡힌 뒤에 내가 갇혔는데, 무슨 들은 게 있어
그것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8월 24일에 이준용과 정인덕이 임진수林璡
洙를 시켜 박동진에게 편지를 전했는데, 이준용의 편지에는 주랍朱蠟4)
과 침鍼 3개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정인덕의 말을 들어보니
“일본군이 모두 출동하기 전에 신속하게 올라와서 입성入城하라”는 뜻
이었다고 하였습니다.

4) 편지 따위를 봉하는 데 쓰는 붉은 밀랍
70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문問 : 그 때에 박동진이 내려가서 어느 읍에 머물렀는가?


공供 : 그 때에 박동진은 공주에 있었습니다.
문問 : 그 밖에 정말로 이참판이 박동진과 왕래한 일을 모르는가?
공供 : 모릅니다.
문問 : 이참판이 박동진의 동생을 시켜 그의 형에게 전한 편지는 언제 보낸
것인가?
공供 : 그 날짜는 실제로 알지 못하나 나중에 들은 것으로 보면, 박동진의 동
생이 7월 그믐에서 8월 초순에 올라왔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네가 운현대감雲峴大監의 분부로 갇혔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공供 : 운현대감의 분부로 비록 갇혔다고 하나 무슨 죄가 있는지를 모르겠습
니다.
문問 : 갇힌 뒤에 대원군의 어떤 분부가 있었는가?
공供 : 제가 본 아문에 갇힌 뒤에 본 아문에 원정原情5)을 올렸으나, 본 아문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 4일 밤 본 아문의 낭관郎官
에게 공초供草를 받게 되어 제가 그 이유를 상세히 진술하였으나 그 낭
관은 제 말을 모두 적지 않고 대강만을 적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서
저에게 말하기를, “대원군이 너를 불쌍히 여기고 있고, 네가 만약 내
말대로 한다면 벼슬을 줄 것이나 내말을 어긴다면 죽을 것이다”라고
하기에, “나는 벼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해당 서리書吏가 말하기를, “서울에 사는 사람인 네가 반드시 난초亂招6)
를 하지 않을 것이니 시골 사람에게 죄를 돌릴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죽은 이준필李埈弼을 주모자로 지목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5)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진정서


6) 난초(亂招)* : 죄인이 신문을 받을 때에 거짓말로 꾸며대는 것을 말한다. 난공(亂供)이라
고도 한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71

문問 : 그 때의 주사主事는 누구인가?
공供 : 모르지만 그 날 밤 공초供招를 받을 때에 박준양朴準陽과 이태용李泰容을
언급하면 해당 낭관이 크게 화를 내고 붓을 던지며 적지 않으면서 말
하기를, “네 스스로가 쓸 수 있을 것이니 나는 쓸 수가 없다”고 하였습
니다. 그래서 제가 붓을 잡고 그것을 썼을 뿐입니다.
문問 : 그 때의 관원官員과 서리書吏 및 그들의 얼굴을 상세히 기억할 수 있는
가?
공供 : 그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문問 : 일전에 사실을 조사하는 자리에서 그 관원과 서리가 모두 있었는가?
공供 : 서리는 보았으나 관원은 너무 많아서 구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문問 : 4일에 입직入直, 숙직한 주사主事는 한 사람 뿐인가?
공供 : 그것은 모릅니다.
문問 : 지금 그 사람은 여기에 있지 않은가?
공供 :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문問 : 아까 사람들을 물리치기 전 여러 관원들 중에서 본 자가 있는가?
공供 : 보지 못했습니다.
문問 : 해당 관리의 생김새는 어떠하고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가?
공供 : 얼굴은 좁으면서 얽었고, 성근 눈썹에 수염은 드물었습니다. 나이는
50쯤 된 듯합니다.
문問 : 해당 서리의 생김새는 어떠하고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가?
공供 : 얼굴의 위는 넓적하고 아래는 좁습니다. 얼굴빛은 검고 수염은 제법
길며 나이는 40이 넘어보였습니다.
갑오년1894년 10월 7일 이병휘李秉輝
72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개국 503년 1894년 10월 8일 이병휘의 3차 문목


[開國 五百三年 甲午年 十月 初八日 李秉輝 三次 問目]

문問 : 너는 이태용李泰容과 박준양朴準陽을 알고 있는가?


공供 : 모두 모릅니다.
문問 : 9월 4일 밤에 너를 조사한 관원이 참고하여 물었다고 하는 자는 누구
인가?
공供 : 이태용과 박준양이 그것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한 것은 어떤 것인가?
공供 :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한 것은 동학당의 일입니다.
문問 : 누가 동학배를 불러들였는가?
공供 : 이준용李埈鎔으로부터 부르는 말과 아울러 대원군의 분부가 있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문問 : 그것이 대원군의 분부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공供 : 박동진朴東鎭에게 그것이 대원군의 분부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알았
을 뿐입니다.
문問 : 대원군과 이준용이 동학당을 부르는 일에 이태용과 박준양이 그 사이
에서 서로 무슨 관련이 있었는가?
공供 : 함께 도모하고 주선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그렇다면 대원군과 이준용이 동학당을 불러오는 일을 이태용과 박준
양이 함께 도모했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
공供 : 박동진에게 들어서 알았습니다.
문問 : 이태용과 박준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공供 : 애초에 서로 알지 못하는데다가 갇힌 지 1달이 되어 지금은 어디에 있
는지를 모릅니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73

문問 : 네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에 어디에 있었는가?


공供 : 그 때에는 서울에 있었는데, 이태용은 도헌都憲, 의정부 도찰원의 벼슬에, 박준
양은 승지承旨였습니다.
문問 : 아까 네가 말하기를, “대원군과 이준용이 동학당을 불러오는 일을 이
태용과 박준양이 공모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그들
이 함께 일을 모의하고 주선한 낌새를 알았는가?
공供 : 처음에 모의하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문問 : 대원군과 이준용이 동학당을 부를 때에 함께 도모한 사람들은 반드시
위의 몇 사람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나머지 사람들을 너는 상세
하게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공供 : 정인덕鄭寅德과 박세강朴世綱 및 위의 이태용와 박준양 3사람 이외에는 애
초에 모릅니다.
문問 : 박세강도 대원군의 분부로 서로 관계를 했는가? 아니면 이준용의 지
휘로 관계를 했는가?
공供 : 대원군의 분부라고 하여 전라도에 갔을 뿐입니다.
문問 : 어떻게 대원군의 분부로 전라도에 갔다는 것을 아는가?
공供 : 박동진은 호서湖西의 비도匪徒를, 박세강은 호남의 비도를 불러모으러
갔습니다. 박동진은 이준용의 지휘를, 박세강은 대원군의 분부를 받았
다고 합니다. 박朴 두 사람은 서로 성기聲氣가 통했기 때문에 박동진이
저에게 말했을 뿐입니다.
문問 : 이준필李駿弼은 대원군이 동학당을 불러오는 일에 혹시 관련이 있는가?
공供 : 이것은 애초에 모르는 일입니다.
문問 : 나주사羅州事를 너는 혹시 알고 있는가?
공供 : 다만 그 사람의 호가 성산星山이라는 것은 들었으나 그 사람은 애초에
모릅니다.
문問 : 나주사는 어디로 갔는가?
74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공供 : 전라도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문問 : 너는 혹시 임진수林璡洙를 알고 있는가?
공供 : 임진수가 편지를 가지고 떠났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그 사람은 모릅니
다.
문問 : 그 사람이 누구의 편지를 가지고 어디로 갔는가?
공供 : 8월 24일에 정인덕과 이준용의 편지를 가지고 박동진에게 갔을 뿐입
니다.
문問 : 그것은 동학을 불러모으라는 편지인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누구에게 들어서 그것을 알았는가?
공供 : 정인덕에게 들어 알았을 뿐입니다.
문問 : 임진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정동貞洞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문問 : 너는 김명호金明鎬를 알고 있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그 사람은 동학과 관계가 있는가?
공供 : 그 사람이 동학을 선무宣撫하는 일로 호중湖中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문問 : 어디에 갔는가?
공供 : 충청도에 갔다고 들었으나 자세하게 모릅니다.
문問 : 그 사람은 누구의 분부로 갔는가?
공供 : 그것도 상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문問 : 너는 이교리李校理를 알고 있는가?
공供 : 이교리는 그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문問 : 대원군과 이준용이 각 처의 동학을 불러와서 장차 어떻게 하려고 했는
지 너는 알고 있는가?
공供 : 공초供招에 있는 것처럼 조정을 깨끗이 쓸어 없애고 일본군을 물리쳐서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75

나라를 맡을 사람을 따로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편지 한 장을 보여주며] 이 편지는 네가 본적이 있을 터인데, 누구의 편지인가?
공供 : 이 편지는 제가 본 적이 없으나, 바로 정인덕의 편지인 듯 싶습니다.
그 편지에서 학천學川은 바로 임진수의 호이고, 수봉壽峰은 바로 박동진
의 호입니다.
문問 : [다시 편지 한 장을 보여주며] 이것도 정인덕의 편지인가?
공供 : 이 글씨와 이 글도 바로 정인덕의 편지입니다.

주사 민규정 서기 조문석 죄인 이병휘 대질 [主事 閔圭政 書記 趙


文錫 罪人 李秉輝 對質]

문問 : [조문석趙文錫에게 말하기를] 9월 4일 밤, 이병휘李秉輝를 문초問招할 때에 너는 무


슨 말을 했는가?
공供 : 입직낭관入直郎官으로 문초를 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 날 밤에 상직上直, 당
직하는 서리書吏였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말하기를] 그 날 밤의 일을 상세하게 말하라
공供 : 그 날 밤 낭관郎官이 취초取招할 때에 서리 조문석이 촛불을 들고 옆에서
제게 말하기를, “이 일은 이준필李駿弼이 주동이 되어서 이렇게 죽는 데
에 이르게 되었다고 애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이번 공초는 서울
사람을 부르지 않고, 단지 향인鄕人을 부르려고 한다. 허가許哥가 불러
온 사람이 50여명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말하기를] 할 말이 더 있는가?
공供 : 낭관이 취초할 때에 제가 이태용과 박준양을 말하면 낭관과 서기가 좋
지 않은 기색을 띠고 붓을 던지며 제게 말하기를, “네 스스로가 쓰도
록 하라”고 하여 저는 어쩔 수가 없이 박준양과 이태용의 성명姓名을
76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썼습니다. 물러나서 생각을 해보니 다만 화禍를 불러 오고 공초供招에


이익이 없었기 때문에 다 쓰지 못한 말이 있다고 핑계를 대어 다시 들
어가서 그 두 사람의 이름을 지워줄 것을 요청하니 해당 낭관이 허락
을 하였습니다. 해당 서기가 그 재상의 이름을 드러낸 것을 꾸짖었습
니다.
문問 : [조문석에게 말하기를] 이병휘가 이야기한 것을 너는 이미 상세히 들었을 것이
다. 정말로 그 이야기대로 인가?
공供 : 그 날 밤 낭관이 취초할 때에 단지 옆에 있었을 뿐입니다. 애초에 촛불
을 든 적도 없었고 그 밖에 할 만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운현궁의 분부로 은밀히 취초를 하러 온 사람이 촛불 옆에 앉아 있었
는데, 이병휘가 그 사람을 저로 착각한 듯합니다.
문問 : [조문석에게 말하기를] 운현궁에서 온 사람이 혹시 이병휘에게 설통說通, 설득을
했는가?
공供 : 처음에 옆에 있다가 상직방上直房7)이 비어있는 것이 걱정되어 곧 돌아
가서 그 사이의 일은 듣지 못해 알지 못합니다.
문問 : [조문석에게 말하기를] 그곳에 왔던 사람이 분명 운현궁 사람인가?
공供 : 분명히 운현궁에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말하기를] 저 서리가 <당직하는 방에> 돌아가서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 공초는 바로 숨기는 말일 것이다. 그 날 밤에 낭관 1명과 서
리 1명 밖에 다른 사람이 없었는데, 더욱이 들을 수 있겠는가? 옥졸獄卒
들이 저 서리의 성姓을 알고 있는데, 당직하는 방에 돌아가서 모른다는
말은 교묘하게 둘러대는 것일 뿐이다.
문問 : [조문석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병휘가 말한 것을 들어보면, 네가 진술한 것은
모두 숨기는 말인데, 무엇 때문인가?

7) 당직하는 방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77

공供 : 옥졸들에게 물은 것은 옥졸들이 그 당시 입직入直, 당직한 사람의 성명姓名


만을 대답했을 뿐인데, 어찌 그 참섭參涉8) 여부를 구분하십니까?
문問 : [조문석에게 말하기를] 운현궁에서 온 사람의 성명은 무엇인가?
공供 : 잠깐 들었는데, 장문순張文順이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조문석에게 말하기를] 운현궁에서 온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가?
공供 : 노대감老大監, 흥선대원군의 분부로 갇혀있는 이병휘의 문초를 조용히 들으
러 왔다고 했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말하기를] 저 서리가 말한 대로라면 문초하는 자리에 낭관 1명・서
리 1명・옥졸 1명・운현궁에서 보낸 사람 1명을 합하여 모두 4명이라고
한다. 너는 단지 낭관 1명과 서리 1명 및 옥졸 1명 뿐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공供 : 처음부터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저 서리가 내 얼굴을 보고 있
었고, 나도 저 서리의 얼굴을 보아 내 마음에 들어와 있습니다. 만약
운현궁의 사람이 옆에서 나에게 말을 했다면 어찌 그 사람을 버리고
저 사람을 선택하겠습니까?
문問 : [주사主事 민규정閔圭政에게 말하기를] 9월 4일 밤에 이병휘를 문초한 일이 있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있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누구의 지시로 문초를 했는가?
공供 : 운현궁에서 보낸 사람 때문에 문초를 했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취초取招할 때에 너 혼자 그것을 썼는가?
공供 : 저와 서기 조문석이 함께 공초供招를 썼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문초할 때에 운현궁에서 온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가?
공供 : 그때 분부를 전한 뒤에 계단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운현궁에서 온 사람은 그 때에 대청大廳 에 올라왔는가?

8) 참섭(參涉) : 어떤 일에 끼어들어 간섭하는 것을 말한다.


78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공供 : 계단 아래에서 편지 쓰는 것을 기다렸다가 가지고 갔습니다.


문問 : [조문석에게 말하기를] 너와 민규정이 말한 것이 서로 어긋나니 전에 말한 것
이 모두 꾸민 말임을 알 수가 있다.
공供 : 어찌 서로 어긋날 리가 있겠습니까?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그 때에 공초供招는 누가 썼는가?
공供 : [민규정이 문서 1장을 내보이며] 이것은 그 때의 공초인데, 이병휘의 말한 공초는
제가 직접 썼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말하기를] 저 문서가 정말로 네가 말한 것인가?
공供 : 대강 비슷하나 정인덕의 인寅자를 인仁자로 바꿔 썼습니다. 처음 취초
할 때에도 인仁자로 썼기 때문에 여러번 인寅자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와 같아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말하기를] 9월 4일 밤에 문초한 낭관이 바로 저 사람인가?
공供 : 정말로 그렇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9월 4일 밤에 문초할 때에 박준양과 이태용을 언급하면
네가 붓을 던지고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인가?
공供 : 문초할 때에 이병휘가 이태용과 박준양 두 사람을 말해서 저는 바로
썼는데, 나중에 다시 들어와서 요청하기를, “박과 이 두 사람의 일은
근래에 상세하지 않아 지우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
을 허락하지 않으니 이병휘가 직접 먹으로 지울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붓을 던지며 크게 화를 내어 그 해독을 당할 것을 걱정
했기 때문에 이병휘가 어쩔 수가 없이 그 이름을 지울 것을 다시 요청
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공供 : 그렇지가 않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이병휘가 말한 것 가운데 붓을 던지고 쓰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는 모두 거짓말인가?
공供 : 붓을 던지고 쓰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79

문問 : [이병휘에게 말하기를] 그렇다면 붓을 던지고 쓰지 않았다는 네 말과 어찌하여


서로 어긋나는가?
공供 : 박준양과 이태용 두 사람의 성명을 불러 적을 때에 해당 낭관이 듣고
도 못들은 척 했습니다. 공초를 끝내고 납고納侤9)를 한 뒤에 제가 다시
그 두 사람의 성명을 적지 않은 것을 따지니 해당 낭관이 이李자 1글자
만 쓰고 붓을 던지며 크게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너에게 쓰게 하겠
다”고 하기에 제가 썼습니다. 제가 붓을 잡고 박준양의 이름을 언문諺
文, 한글으로 썼을 뿐입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병휘가 말한 것이 모두 거짓말인가?
공供 : 모두 거짓입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네가 반드시 짐작해서 알 수 있을 것이나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네가 반드시 사실대로 말한 뒤에야 그 일이 분명해질
것이다. 만약에 속이거나 숨기려고만 한다면 관계되는 것이 사소하지
않을 것이다. 더우기 속이거나 숨기려고 하는 데에는 혹시 부탁한 사
람이 있는가?
공供 : 어찌 속이거나 숨길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만을 거론할 뿐이고 애초
에 부탁한 사람은 없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그 날 밤 문초를 할 때에 내 말대로 한다면 벼슬을 주지
만 어기면 죽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공供 : 애초에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 말하기를] 이것도 모두 거짓말인가?
공供 : 모두 거짓말입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이병휘가 말한 것은 전혀 없었던 얘기고 모두 거짓인
가?

9) 관아에서 다짐을 받는 일
80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공供 : 이병휘가 말한 것이 모두 거짓은 아니지만 제가 지시했다는 이야기 같


은 것은 거짓말입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하는 말 한 마디가 거짓이라면 그 밖의 말도 모
두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병휘가 말한 것도 모두 거짓일
것이다. 거짓으로 꾸민 공초를 운현궁 대감에게 드렸는가?
공供 : 저는 그 때에 입직入直, 당직을 했기 때문에 단지 대원군의 분부에 의거하
여 취초를 했을 뿐입니다. 애초에 그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계산하
지 않습니다.
문問 : [민규정에게 말하기를] 조금 전에 말하기를 네가 이병휘가 말한 것이 모두 거
짓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일본 영사領事에게 네가 말한 것을 가지고 가
서 우리 공사公使에게 그 연유를 말할 것이다.

개국 503년 1894년 10월 10일 이병휘와 허엽의 대질 심문


[開國 五百三年 甲午年 十月 初十日 李秉輝 許燁 對質 審問]

[참의參議 장박, 홍종억, 일본영사가 와서 참관하였다]

문問 : [이병휘에게] 너는 허엽을 아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너와 서로 친한가?
공供 : 친하게 지낸 지 3년이 되었습니다.
문問 : [허엽에게] 너는 이병휘가 말한 것을 들었을 터인데 정말 그 말대로인가?
공供 :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입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친한 지가 3년이 되었다면 그의 필적을 알 수가 있는가?
공供 : 물론 그 필적을 알 수 있습니다.
문問 : 성산性山이라고 한 것은 바로 허엽의 별호別號인가?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81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일본 영사가 보여준 편지 한 통을 이병휘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허엽의 필적인가?
공供 : 허엽의 필적이 맞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편지 한 통을 보여주며] 이것도 허許 아무개의 필적인가?
공供 : 그것 또한 허엽의 필적입니다.
문問 : [허엽에게 아까 보이던 이병휘의 편지 한 통을 다시 허엽에게 보여주며] 정말로 이병휘가 말한
대로인가?
공供 : 저의 필적이 맞습니다.
문問 : [허엽에게 다시 편지 한 통을 보여주며] 이것도 너의 필적인가?
공供 : 이것 또한 저의 필적입니다.
문問 : [허엽에게] 네 편지에서 대노장大老丈이라고 하는 자는 누구인가?
공供 : 대노大老라고 하는 사람은 바로 대원군의 별칭입니다.
문問 : [허엽에게] 어제 네가 말한 것 중에 애초에 동학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했으나 지금 네 편지를 보면 의심할 행적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어찌
이처럼 서로 어긋나는가?
공供 : 지금 그 편지를 보면 비록 의심할만한 단서가 혹시 있더라도 이처럼
편지를 쓴 것은 중도에 갑자기 동도東徒에게 잡히면 발뺌할 단서를 면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문問 : [허엽에게] 두 장의 편지도 박동진朴東鎭에게 쓴 것인가?
공供 : 한 통은 박동진에게, 다른 한 통은 김명호金明鎬에게 보냈습니다.
문問 : 두 통의 편지 중에 한 통은 8월 25일에, 다른 한 통은 8월 26일인데, 어
느 날짜의 편지가 김명호에게 보낸 것이고, 박동진에게 보낸 것인가?
공供 : 편지 뒤를 보아야 알 수가 있습니다.
문問 : [허엽에게] 그렇다면 두 장의 편지는 바로 동학과 공모한 편지가 아닌가?
공供 : 그것은 동학과 공모한 것이 아니고 의병에 뜻을 두고 편지를 그처럼
쓴 것입니다.
82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문問 : 편지를 이처럼 썼다면 혹시라도 동학에게 잡혀 기밀을 누설하려는 뜻


이었는가?
공供 : 박동진이 지금 선무군관宣撫軍官으로 호중湖中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박동
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혹시라도 편지를 한 날
짜가 드러나는게 걱정스럽고, 또한 박동진이 해를 당하는게 염려되었
기 때문에 그처럼 편지를 썼을 뿐입니다.
문問 : 지금 네가 쓴 편지를 보면 그 주된 뜻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으나 편지
를 본 뒤에 태우라고 하였고, 너의 전후에 걸친 공초를 상세히 살펴보
면 모두가 꾸민 것이고 진실이 아니다.
공供 : 전후에 걸친 공초는 모두 사실이고 거짓이 아닙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너는 허엽과 친하게 지낸 지가 3년이 되어 사사로운 정이 비
록 많다고 해도 이번 일은 중요하고 국가의 중요한 일과도 관계가 있
다. 사사로운 정에 억매이지 말고 일일이 바른대로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공供 : 이것이 중대한 사건에 관계되는데, 어찌 사사로운 정으로 숨기거나 피
하겠습니까?
문問 : [이병휘에게] 네가 갇힌 뒤에 혹시라도 허엽과 사통私通, 연락한 편지가 있는
가?
공供 : 사통한 편지가 있습니다.
문問 : 사통한 편지의 내용은 어떠했는가?
공供 : 사통한 편지는 평소의 정의情誼와 다르지 않았고 안부를 물었을 뿐입니다.
문問 : [허엽에게] 답장은 없었는가?
공供 : 답장이 있었습니다.
문問 : 답장엔 무어라고 썼는가?
공供 : 답장에서 첫 부분에선 경무사警務使의 두 차례에 걸친 평문平問10)에 관한
것을 말하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평문할 때의 답변에 대해 말했습니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83

다. 동학이 창궐하는 것을 걱정하여 박동진에게 편지를 전한 것과 이


병휘의 산송山訟에 대해 말했을 뿐입니다.
문問 : [허엽에게] 답장에서 혹시라도 조사를 받을 때에 서로 간에 묵인한 약속이
없었는가?
공供 : 그런 약속은 없었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너는 허엽과 서로 친하다고 했는데, 허엽이 동학과 서로 관계
한 일을 알고 있는가?
공供 : 허엽이 동학과 관계한 일들은 모릅니다. 다만 산송 때문에 정인덕의
편지를 허엽에게서 몰래 얻었을 뿐입니다.
문問 : 허엽이 박동진에게 보낸 편지는 단지 산송에 관한 것뿐인가?
공供 : 허엽이 박동진에게 보낸 편지가 있으니 이 편지를 가져다가 보면 저에
게 번거롭게 들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문問 : [허엽許燁에게 일본 영사의 편지 한 통을 내보이며] 이것은 누구에게 보낸 편지인가?
공供 : 박동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허엽과 박동진이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을 너는 혹시 알고 있는
가?
공供 : 그들이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다
만, 그 편지를 살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일전에 허엽의 편지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안에 정말로 서
로 묵인한 약속이 없었는가?
공供 : 정말로 그런 약속은 없었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허엽이 경무사警務使의 문초 이외에 허다한 얘기가 있었을 터인
데, 너는 혹시 들은 것이 있는가?
공供 : 경무사가 문초한 것 이외에 다른 얘기는 비록 듣지 못했으나 의심할

10) 형구를 쓰지 않고 죄인을 신문하는 일


84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만한 것이 있습니다. 8월 20일 쯤에 박동진이 정인덕과 이李에게 한 답장


및 이李가 박동진에게 한 답장의 내용을 허엽이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문問 : 박동진이 정인덕과 이李에게 한 답장과 이李가 박동진에게 한 답장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가?
공供 : 동학과 체결締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問 : 허엽이 그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을 너는 어떻게 아는가?
공供 : 박동진이 정鄭에게 답장한 편지에 현재 동학과 서로 관계를 맺는 일이
있습니다. 허엽이 정인덕과 함께 살펴본 일이 있는데, 어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문問 : 정인덕이 허엽과 함께 그 편지를 볼 때에 너도 정말로 옆에서 보았는
가?
공供 : 정인덕과 허엽이 박동진의 편지를 볼 때에 저는 비록 동참을 하지 않
았으나 동학의 일을 말할 때에 저도 참여해서 들었습니다.
문問 : 참여해서 그 얘기를 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供 : 정인덕과 허엽이 함께 앉아 얘기를 할 때에 제가 옆에서 들어보니, 정
인덕이 동도東徒가 신속하게 올라온 뒤에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자 허
엽도 그 말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정인덕이 어디에서 함께 앉아 얘기를 했는가?
공供 : 정인덕의 집이었습니다.
문問 : 얘기를 나눌 때가 언제였는가?
공供 : 8월 20일 쯤이었습니다.
문問 : [일본 영사領事가 다시 편지 한 통을 내보이며] 이것은 누가 누구에게 보낸 편지인가?
공供 : 이것은 분명히 허엽의 필적입니다. 의심할 필요 없이 분명 허엽의 편
지이며, 김명호에게 보낸 것입니다.
문問 : 무엇 때문에 이런 편지를 김명호에게 보낸 것인가?
공供 : 애초에 공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속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85

문問 : 너는 김명호를 알고 있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김명호는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가?
공供 : 정부의 주사主事인 듯합니다.
문問 : 김명호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영남嶺南 사람이라는 얘기는 들었으나 그 거처는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문問 : 정인덕이 박동진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는 언제 경무사警務使에게 바쳤
는가?
공供 : 8월 26입니다.
문問 : 편지 안에 따로 봉封한 것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공供 : 만져보았더니 조금 컸기 때문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문問 : [허엽에게] 조금 전에는 말한 것 중에 "애초에 동학과는 서로 관여하지 않
았다"고 했으나 지금 이병휘의 말을 들어보면 박동진이 정인덕에게 보
낸 편지에 동학 얘기가 허다하다. 네가 정인덕과 함께 그 편지를 볼 때
에 이병휘도 참여해서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정말로 없었는가?
공供 : 정말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네가 말한 것이 허엽이 말한 것과 서로 어긋나니 무슨 이유인
가?
공供 : 박동진이 정인덕에게 보낸 답장은 정말로 허엽이 저에게 분명히 박동
진의 편지를 보았다고 말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問 : [이병휘에게] 정인덕과 허엽이 얘기를 나눌 때에 정鄭이 동학 때문에 지금
일본군이 출동하려고 하는데, 대원군은 안된다고 하였고, 회의소會議所
는 된다고 한 얘기를 너는 허엽과 함께 옆에 참여해서 들었는가?
공供 : 정말로 옆에 참여해서 들었습니다.
문問 : 허許에게 너도 그런 얘기를 들었는가?
공供 : 이 얘기는 저도 정인덕에게서 들었습니다.
86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1894년 10월 사건
허엽 문초許燁 問招
[일본 영사관 심문]

개국 503년 1894년 10월 9일 죄인 허엽의 1차 문목


[開國 五百三年 甲午年 十月 初九日 罪人 許燁 初次 問目]

문問 : 성명은 무엇인가?
공供 : 허엽許燁입니다.
문問 : 나이는 얼마인가?
공供 : 44세입니다.
문問 :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경상도 선산善山입니다.
문問 :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가?
공供 : 선산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문問 : 하는 일이 무엇인가?
공供 : 학문學文을 업業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問 : 오늘 심문을 맡고 있는 나는 일본 영사領事이다. 공사公使의 분부로 동학
관련 사건을 조사하러 왔다. 너는 조금도 숨기지 말고 일일이 상세히
말하라.
공供 : 제가 사는 곳이 비록 읍의 인근 지역이지만 애초에 동학이라고 일컫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동학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학
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유교儒敎 이외에는 달리 배울만한 학문이 무
엇이 있겠습니까?
문問 : 너는 정인덕鄭寅德을 알고 있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정인덕이 바로 네가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함께 도모한 자인가?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87

공供 : 애초에 함께 모의한 일도 없는데다가 서로 친한 사람도 아닙니다.


문問 : 함께 도모한 일도 없는데다가 서로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를
아는가?
공供 : 여관旅館에서 만나 몇 차례 대면하였습니다.
문問 : 너는 정인덕과 상의한 일이 없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너는 무슨 일로 갇혔는가?
공供 : 이병휘李秉輝가 직산稷山의 산송山訟일로 제게 박동진에게 보내는 편지를
얻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동진의 편지를 반드시 나에
게 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영감과 친한 사이라면 어찌 동진
에게 직접 부탁하지 않고 나에게 요청하느냐고 말하였더니, 이병휘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내 자신의 일이기에 약간 꺼리는 것이 있다. 그
대처럼 옆에 있는 사람이 긴밀하게 부탁한다면 매우 좋을 것이다”고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하였습니다.
문問 : 박동진을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가?
공供 : 지난해에 잠시 장중場中11)에서 보았고, 올해에 박동진이 선무군관宣撫軍官
의 직함을 가지고 내려갈 때에 길에서 잠깐 보았습니다.
문問 : 그렇다면 너는 이번 일 때문에 갇혔는가?
공供 : 이병휘가 산송일로 편지를 구할 때에 다시 정인덕에게 요청하여 그 편
지를 얻어가지고 직산稷山에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며칠 뒤에 경무
사警務使 이윤용李允用이 저를 그 집에서 불러와 편지 한 통을 내보이며 말
하기를, “이것이 네가 쓴 편지인가?”라고 하기에, 제가 자세히 보았더
니 저의 필적이었고, 거기에서 말한 것은 동도東徒의 창궐을 걱정하며
이병휘의 산송을 부탁하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경무사가 다시 편지 한

11) 과거를 보는 장소
88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통을 내보였는데, 바로 정인덕의 편지였습니다. 경무사가 저와 함께


편지를 살펴볼 때에, 경무사는 전체를 보지 않고 단지 그 중에 4~5곳
을 지적하여 말하기를, “이 편지에서 성산星山이라고 하는 자는 누구인
가”라고 하기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말하기를,
“수봉壽峰과 수산壽山은 모두 누구인가”라고 하기에, “수봉과 수산은 모
두 박동진의 별호別號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말하기를,
“학천學川은 누구인가”라고 하기에, “임진수林璡洙의 별호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말하기를, “두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하기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고, 다시 묻기를, “정인덕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하기에, “청석동靑石洞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
면 너는 정인덕과 함께 오는 것이 좋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그 말대
로 정인덕이 묵는 여관에 가려고 했더니, 경무사가 포교 4명에게 뒤를
따라 오게 하여 모두 정인덕이 머무는 곳에 왔으나 정인덕은 출타出他
하여 그곳에 있지 않았고, 그 때에 포교가 저를 잡아 사관청仕館廳12)에
가두었습니다. 그 후 며칠 뒤에 경무사가 다시 저를 그 집의 뒷채로 불
러내어 당주지唐周紙13) 1축軸을 내어주며 직접 편지 한 통을 부르는 대
로 적게 하였습니다. 제가 할 수 없다고 거절을 하니, 경무사가 말하기
를, “붓을 고를 필요가 없는데다가 네가 만약 이것을 쓴다면 내일 반
드시 풀려날 것이다. 정인덕은 이미 풀려났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시
골의 어리석은 백성으로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단지 풀려나는 것을
기뻐하여 그대로 붓을 잡고 그것을 썼습니다. 쓰는 것을 마친 뒤에 다
시 다짐을 하게 하기에 제가 여러번 거절을 했더니, 경무사가 말하기

12) 사관청(仕館廳)* : 포교가 포도대장의 사가(私家) 근처에 머무르면서 공무를 보던 곳을


말한다.
13) 중국의 두루마리 종이
이병휘공초 李秉輝供草 89

를, “걱정할 일이 없는데 이처럼 지나치게 거절할 필요가 없다”고 하


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가 없어 다짐을 하였습니다.
문問 : 경무사가 조사한 것이 언제인가?
공供 : 처음은 8월 27일이고 나중은 9월 1일과 2일 사이입니다.
문問 : 처음 잡힌 것이 언제인가?
공供 : 잡힌 때도 8월 27일입니다.
문問 : 그 때에 조사한 것은 정말로 어떤 것들인가?
공供 : 경무사가 정인덕과 친한지를 묻기에 친하지 않다고 대답하였고, 다시
정인덕의 편지내용을 아느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한 정인덕의 편지를 내어 보일 때에 경무사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면 풀어준다고 했기 때문에, 그 말대로 말했
습니다.
문問 : 그 때에 문초問草는 경무사가 직접 썼는가? 혹시 다른 사람이 썼는가?
공供 : 처음에는 문초하는 기록이 없었고, 그 뒤에 경무사가 편지 1통을 주며
붓을 잡고 쓰게 하였습니다.
문問 : 처음 문초問招할 때에 옆에 몇 사람이 있었는가?
공供 : 처음 옆에 한 사람도 없었고, 경무사가 혼자 앉아서 물었을 뿐입니다.
문問 : 2차 문초할 때에도 옆에 아무도 없었는가?
공供 : 다짐을 쓸 때에 행수行首와 군관軍官 두 명이 상방上房에서 함께 보고 있었
으나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問 : 경무사가 문초를 할 때에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고 했는데, 어찌 제멋대로 다짐을 쓸 수 있는가?
공供 : 알거나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첫번째 문초할 때의 일이고 2차에서 경
무사는 애초에 알거나 모른다는 말도 없이 이익으로 꾀었기 때문에 그
술책에 빠졌습니다.
문問 : 이번에 조사한 것은 너 한사람에게 관계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한
90 동학농민혁명 관련 재판자료

일에 관계가 있다. 조사하는 마당에 조금이라도 비호하거나 숨겨서는


아니된다. 지금 너의 공초를 보면 모두가 꾸미거나 속이는 데에서 나
왔는데, 이것이 어찌 중대한 사건을 생각하는 뜻이 있겠는가? 네가 만
약에 계속 숨기거나 피한다면 비록 최고의 관원이라도 함께 불러다가
조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대원군과 이참판도 부를 수가 있
으니 너는 일일이 사실대로 말하고 조금이라도 숨기거나 피하지 않아
야 옳을 것이다.
공供 : 비록 만번을 죽더라도 이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저번에 이봉
의李鳳儀 겸찰경무사兼察警務使로부터 처음 관례대로 문초를 받았고, 2차에
는 지독한 형刑으로 심하게 맞았으나 역시 이 말대로 아뢰었습니다.
문問 : 네가 혹시 남의 부탁을 받고 끝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
가? 네가 끝내 사실대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조사를 중단할 것이
다.
공供 : 애초에 부탁한 사람도 없는데다가 오늘 공초도 사실대로 말했고 조금
이라도 숨기거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번역 : 최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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