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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작 문경민

(*준민: 목소리 출연1 학생(남)/ 주희 : 목소리 출연2 학생(여)/ 선생님 : (학교 선생님))

1. 지구수비대의 탄생
스쿨버스 이미지와 버스 소리. 이어서 높은 아파트 건물 이미지.

정혁 : 우아, 저게 다 몇 층이냐? 일... 이... 삼... 사.. 오... 십오.. 십육 우와, 우와.

고찬 : 6학년이나 됐는데 어쩜 저렇게 철이 없을까. 프로방스아파트에 비하면 지구아파트는


도미노 블록 같았다. 프로방스아파트는 척 봐도 비싼 아파트였다. 오늘은 봄방학이
끝나고 처음 새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5학년 마지막 날 선생님은 ‘지구아파트
학생들은 학교 가는 길이 멀어지긴하지만 교육지원청에서 스쿨버스를 운영한다’ 고
했었다.

버스 멈추는 소리. 이어서 학교이미지.

정혁 : 우아! 끝내준다. 우리 학교!

고찬 : 새 학교는 갓 지은 문화 센터 같았다. 안에 들어가면 영화관도 있고 헬스장도 있을 것


같았다. 프로방스아파트단지와 잘 어울리는 학교였다.

정혁 : 나는 1반. 고찬아, 너 몇 반이라고?


고찬 : 난 3반. 준민이는 2반이고.
정혁 : 우아, 1, 2, 3 이야! 삼총사 같네.
고찬 : 아쉽지만. 학교 갈 때랑 올 때는 스쿨버스에서 만나니까.
정혁 : 그래도 같은 반 아니면 좀 그렇잖아. 야, 우리 이름 하나 만들까? 각자 다른 반 가니
까 좀 그렇잖아.
고찬 : 그래, 그러자. 우리 이름을 뭐라고 할까?
정혁 :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며) 우리 셋 다 지구아파트 살잖아. 지구수비대라고 하자. 어때?
(조르듯) 지구수비대, 지구수비대~
고찬 : 내가 못 산다. 정말. (고민하다) 좋아. 지구 수비대.
정혁 : (오른팔을 위로 치켜세우며) 우리는! 지구수비대!

고찬, 고개를 숙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지구수비대 이미지.

- 1 -
2. 균형이 맞지 않는 개
운동장 이미지.
고찬 : 그렇게 새 학교에서의 낯선 생활이 시작되었다. 얼마 뒤 미세먼지가 없어 오랜만에 운
동장에서 피구를 하기로 했다. 상대편에는 주황색 피구공을 두 손으로 꾹꾹 누르는 민
경이가 있었다. 민경이가 양손으로 공을 누를 때마다 공이 움푹 들어갔다 나왔다. 아무
리 보아도 만만치 않을 아이였다. 민경이 뒤에 숨은 수림이는 무서워 죽겠다고 호들갑
을 떨었다. 어쩐 일인지 주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민경이, 주희, 수림이는 여자애
들 중에도 눈에 띄는 단짝이었다. 아이들은 셋을 ‘쓰리걸즈’ 라는 이름으로 따로 부를
정도였다.

고찬 혼자 둘러싸인 이미지.

난 이기고 싶었다. 새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방이 프로방스아파트 아이들이


었고, 난 교실에서 섬이 된 기분이었다. 등교할 때부터 집에 돌아갈 때까지 내내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운동장에서 만큼은 이기고 싶었다.

개 짓는 소리.

학생1(목소리 출연1) : 어? 개다!


학생2(목소리 출연2) : 개다, 개!
학생3(목소리 출연3) : 어쩜 좋아! 완전 귀여워!

개 이미지.
고찬 : 다 자란 진돗개처럼 큰 개였다. 어떤 종류의 개라고 보기는 어려운, 그냥 개였다. 귀엽
다는 말은 개였기 때문에 그냥 한 소리였다. 유기견이 분명했다. 누런 털은 푸석푸석했
고 궁둥이와 가슴팍에는 어디에서 묻혀 왔는지 모를 검댕이가 잔뜩 묻어 있었다. 털로
덮인 몸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균형이 맞지 않아 보였다. 가슴팍은 퉁퉁하다 싶을 만큼
부풀어 있었는데 배는 이상하리만치 홀쭉했다.

선생님(학교 선생님) : 가까이 가지 말고 부르지도 마라. 다시 시합해. 시합 시작.

고찬 : 선생님이 말씀을 마친 순간. 뜨억! 민경이 손에서 발사된 피구공이 미사일처럼 날아와
개를 바라보고 있던 나의 아랫배 아래쪽을.... 강타했다. (중요부위를 부여 잡으려 하
다 둘러보고는 엉거주춤하며) 아파 죽을 거 같았지만 창피해서 만질 수도 없었다.

선생님(학교 선생님) : (선생님 올라와서 웃고, 고찬의 엉덩이를 때려주며) 괜찮아? 자, 오늘


체육수업 끝!

선생님 고찬이의 엉덩이를 다시 한번 때리고 크게 웃으며 들어간다.


그 모습에 민경이는 입을 막고 웃는다. 고찬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자리에 앉는다.

고찬 : 결국 그렇게 창피를 당한 채 피구경기는 끝났다.

고찬은 아직도 얼얼한 부분을 만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다.

정혁 : 야! 뭐하냐?
고찬 : 어? 그냥...
정혁 : 야, 너네 사이판 알아?

- 2 -
고찬 : ... 먹을 거냐?
정혁 : 팔라우는 알아?
고찬 : ....응?
정혁 : 코타...키..나, 발루? 코타키나발루 알아?
고찬 : 아프리카 동물 이름이야?
정혁 : (고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래,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네. 다 휴양지래. 외국.
비행기 타고 가는.
고찬 : 근데 갑자기 왜?
정혁 : 점심 먹는데 애들이 해외여행 어디 어디 가 봤다고 자랑질이야. 근데 나는 뭔 소린지
알아듣지도 못했거든.
잠시 침묵이 흐른다.

고찬 : (분위기를 바꾸며) 어제 저쪽에 불났다더라.


정혁 : 우아, 불? 어디?
고찬 : 꽃대울.
정혁 : (움츠린 목소리로) 거기도 외국이야?
고찬 : 이그. 프로방스아파트 뒷산 너머에 있는 마을. 불 엄청 크게 났대. 사람도 죽었다는데?
정혁 : 진짜? 우아, 대박.
고찬 : 말 좀 가려서 하지?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대박이야?
정혁 : 아니,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고.
고찬 : 불도 나고 사람도 죽었는데 뭐가 이렇게 없냐. 이상한 동네네.
정혁 : 재수없어.
고찬 : 이그. 야! 우리 스쿨버스 타지 말고 걸어갈래? 아파트 단지 뒷산 넘어가면 금방일걸.
정혁 : 길은 있어?
고찬 : 지구수비대가 모험을 두려워해서 되겠냐.
정혁 : 맞다, 맞다. 지구수비대. 고찬이가 뭘 좀 아네.

정혁 발딱 일어서서 브이 자로 양팔을 힘차게 뻗고 큰 소리로 외친다.

정혁 : 우리는! 고찬 따라서 양팔을 위로 뻗는다.

고찬 : 근데 제발 여기서 소리치지는 말자.


정혁 : (큰소리로) 지구수비대! 지구수비대! 지구수비대!
고찬 : 알았다고! 지구수비대 한다고!

다같이 (+목소리 출연단 포함) : 지구수비대!

3. 다시 만난 그 개
프로방스아파트 뒷산 현재와 과거 이미지.

고찬 : 지구수비대는 비가 올 때가 아니면 스쿨버스를 타지 않았다. 아침에 삼십 분 정도 일


찍 나서면 등교 시간 안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힘들기는 했어도 나는 스쿨버스
를 타기 싫었다.

사람들은 개천 양 기슭에 큼지막한 시멘트 판을 박아 깔끔한 둑을 만들고 둑 위에 산

- 3 -
책로를 냈다. 프로방스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그냥 시골 개천이었다. 물고기가 살
았고 여름이면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백로가 찾아와 희고 넓은 날개를 펼치며 당당히
날아 내렸다. 오리가 새끼들을 한 줄로 끌고 다니며 자맥질을 하거나 개천 가장자리의
무성한 풀밭을 뒤졌다. 이제는 예전처럼 새와 물고기가 오가지는 않는다. 깔끔한 게
전부였다.

개 짓는 소리.

정혁 : 우아, 저거 개 아냐?

개 이미지.

고찬 : 개 맞네. 묶였나? 배고프겠다.

정혁이는 빨리가자는 준민이의 말을 무시한 채 가방에서 우유와 초코파이를 꺼낸 다음


덤불을 발로눌러 가며 개에게 다가갔다. 개는 정혁이를 보자 애처로운 소리로 컹컹거
렸다. 개의 목줄이 소나무 밑동에 묶인 것처럼 엉켜 있었다. 운동장에서 봤던 그 개가
분명했다. 홀쭉한 배와 부푼 가슴팍이 그 증거였다. 딱 봐도 떠돌이 개였다. 땟국에 절
은 털은 군데군데 뭉쳐있었고 지쳐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개는 개였다. 두툼한 앞
발과 까맣게 반질거리는 코, 서예 붓으로 선을 그은 것 같은 검정 입술이 멋있었다. 꾀
죄죄하기는 해도 메트로놈처럼 왔다 갔다 하는 꼬리도 맘에 들었다.

정혁 : 누가 왔다 갔나? 저기. 개 옆에 은박지 도시락.


개 짓는 소리.

정혁 : (개에게) 응. 알았어~
고찬 : 개한테 말한 거야?
정혁 : 쟤가 우리보고 먹을 것 좀 달라잖아.
고찬 : 개가 하는 말도 알아듣냐?
정혁 : 당연한걸 뭘 물어보냐? 히히
고찬 : (고민하다) 이 개, 우리가 키우면 어때?
정혁 : 우아. 진짜?
고찬 : 우리가 지구수비대라면 뭔가 지키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냐.
정혁 :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난 좋아. 히히
고찬 : 그럼 이름부터 정하자. 토리? 누렁이?
정혁 : 장군이? 바람이?
고찬 : 그럼 가위 바위 보로 정해! 자, 가위 바위 보!
정혁 : 앗싸! 그럼... 장군이로 하자.

고찬 : 우리는 소나무에 엉킨 목줄을 풀고 목걸이에서 걸쇠를 풀어냈다. 초조한 얼굴로 기다


리던 장군이는 목줄이 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튕기는 것처럼 달려나갔다. 장군
이는 신나 보였다. 주변을 뱅글 돌기도 하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기도 했다. 같이 놀
자는 몸짓이었다.

정혁 : 근데 목줄이 너무 더럽네.
고찬 : 우리가 돈 걷어서 바꿔주자.

- 4 -
정혁 : 좋아. 목줄도 새것으로 바꾸고 사료랑 장난감도 사고.
고찬 : 매일 아침 등교할 때마다 물도 갈아주고.
정혁 : (들뜬 목소리로) 집에 갈 때마다 넷이서 같이 놀자!

개 짓는 소리.
민경 : (맘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너네 여기서 뭐하냐?

4. 지구수비대 vs 쓰리걸즈
지구수비대와 쓰리걸즈의 이미지.

민경 : 뭐하냐고.
고찬 : (당황하는 기색을 추스르며) 보면 모르냐?
민경 : (비아냥 거리는 투로) 보기야 봤지. 뭐 몰라서 묻는 거 아냐, 그것도 몰라?
수림 : 어? 저거 뭐야? 캔디한테 뭘 준거야? 어머머, 세상에. 캔디한테 초코파이를 줬어? 야! 
개한테 초콜릿을 주면 안 되는 거 몰라?
정혁 : 초콜릿 주면 어떻게 되는데?
수림 : 야! 그것도 몰라? 양파랑 튀김 같은 것도 안 되고 우유도 별로야. 조심해야 하는 게
어디 한두 갠 줄 알아? 잘못하면 죽어! (양손을 뺨에 대며) 캔디야! 너 괜찮아?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혁 : 정말이야? 진짜야? 죽은 건 아니지?
민경 : 죽을 수도 있다고. 이제는 손 떼. 캔디는 우리 개야. 있던 자리에 없어서 한참 찾았잖
아.
수림 : 그래, 우리 개거든! 우리 캔디!
고찬 : 캔디? 장군이 말이야?
민경 : 장군이? 야, 캔디는 여자애야. 딱 보면 모르냐?
고찬 : 장군이가 왜 너네 개야? 이름 써 놨어? 너희들이 집에서 키웠어?
수림 : 그래,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다. 어쩔래?
고찬 : 그래?
민경 : 수림아 잠깐. 키우던 개는 아냐. 돌아다니는 개를 우리가 돌봐줬어. 그러니까 우리 개
지.
정혁 : 소나무에 묶어 놓고?
민경 : 그때는 우리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거고.
수림 : 이제는 키우기로 했어. 집이랑 밥도 사 왔고.
고찬 : 우리도 준비했거든? 개집이랑 밥그릇이랑.
민경 : (피식 웃으며) 저거?

고찬 주먹을 쥔다.

정혁 : 저거 뭐. 저거 뭐! 우리는 장군이랑 같이 놀아줬어. 밥도 주고 물도 줬어!


민경 : 아무튼 캔디는 우리 개야!
고찬 : 장군이는 우리 개거든?
정혁 : 그냥 장군이가 결정하게 하자.

- 5 -
민경 : 뭐?
정혁 : 장군이를 가운데 놓고 서로 부르는 거야. 장군이가 가는 쪽이 키우는 걸로 해. 그럼 되
잖아?
수림 : 어쭈, 자신 있나 봐?
정혁 : 왜, 쫄리냐?
민경 : (헛기침) 너희들이 캔디한테 초콜릿 줬잖아. 초콜릿 맛을 캔디가 잊을 수 있겠어?
수림 : 이런 비겁한 자식들! 야! 잔말 말고 캔디한테서 떨어져! 저기 쓰레기들도 다 갖고 내려
가!
정혁 : 쓰레기!
수림 : 그래, 쓰레기! 쓰레기!
고찬 : 그건 좀 심한거 야냐?
수림 : 너네가 캔디한테 한 행동이 심한거지!
민경 : 다들 잠깐! 좋아! 그럼 시합해!
고찬 : 무슨 시합?
민경 : 세 번 시합해서, 두 번 먼저 이기는 쪽이 캔디를 키우는 거야.
고찬 : 좋아, 해. 까짓거. 종목은 뭔데?
민경 : 뭐든지 좋으니까 시합 종목은 서로 하나씩 얘기해. 너무 어처구니없는 종목은 말고 양
쪽이 다 동의할 수 있는 걸로. 상대가 동의 못 하면 다른 시합을 제안하고.
고찬 : 일 대 일 되면 마지막 시합은 누가 정해?
민경 : 가위 바위 보 해. 어차피 세 번째 시합까지는 가지도 않겠지만.
고찬 : 칫, 그 말을 너한테 들으니까 왜 이렇게 웃기냐. 첫 번째 종목은 너희가 정해.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걸로 가져와. 내일까지.

5. 지구수비대 vs 쓰리걸즈의 대결
지구수비대 쓰리걸즈 이미지.

종목1. 수학점수시합

고찬 : 다음날 도서실 앞에서 지구수비대와 쓰리걸즈는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고찬 : 첫 번째 시합은 뭐야?
민경 : 수학 시험 점수.
고찬 : 뭐?
민경 : 어차피 2단원 수학 시험 준비도 해야 하잖아. 시합도 하고 시험 준비도 하고. 괜찮지
않을까?
고찬 :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고는) 수학 시험 준비야 우리도 하는 거긴 한데, 그래도
점수로 뭘 가른다는 게 그렇지 않아? 수학 문제는 어떻게 하고?
수림 : 선생님한테 수학 학습지 한 장 받지 뭐. 복사해서 같이 보면 되지 않아?
정혁 : 좋아. 해. 까짓 거.
민경 : 그래 그럼 내일모레 수업 끝나고 봐. 장소는 빈 교실 아무 데나. 안녕.

- 6 -
쓰리걸즈의 깔깔거리는 소리.

고찬 : 야! 너 어쩌려고 그래!
정혁 : 쟤네 공부 잘하냐?
고찬 : 준민이가 주희랑 같은 학원 다니는데 1단원 수학 시험에서 만점 받았데. 무를까?
정혁 : 우아, 이걸 어쩌면 좋냐. 진짜 미안.
고찬 : (결심하고) 아니야. 야, 우리가 이겨야지. 장군이는 우리 개야. 걔들이 장군이 맡으면
아마 발톱에 매니큐어부터 칠할걸? 꼬리에 분홍색 리본 달지도. (반응없자어색)..헤헤
정혁 : 그래도...

고찬의 집 이미지. / *목소리 출연1 스탠바이.*

고찬 : 그날부터 우리는 매일 우리 집에 모여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수학 선생님 역할은


준민이가 했다.
*목소리 출연1 무대로 나온다.

정혁 : (하품을 하며) 야, 근데 수학이라는 게 갑자기 공부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냐?


준민 (목소리 출연1)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칠 팔에?
정혁 : 오십....구.
준민 (목소리 출연1) : 육! 사칠?
정혁 : 이십...팔?
준민 (목소리 출연1) : 이그... 이구?
정혁 : 십....팔....아 씨... 정혁아... 왜 그랬냐... 너 그때 왜 그랬어... 왜! (고찬이도 거든다)
준민 (목소리 출연1) : 놀구있다 정말. (학생 자리로 돌아간다.)

개 짓는 소리./장군이 이미지.

고찬 : 공부 분량을 다 채우고 난 뒤에는 함께 장군이에게 갔다. 쓰리걸즈 애들과 하루씩 번


갈아 가며 장군이와 놀았다. 장군이는 어딘가 아픈 개였다. 신나게 뛰어 놀다가도 금
방 지쳐서 숨을 몰아쉬곤 했다. 장군이가 헐떡거리면 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
다. 잘 먹이고 잘 돌봐서 당당한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홀쭉한 배에 살이 오르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학교 종소리./학교 이미지.

고찬 : 저기, 민경아. 시합 말인데...


민경 : 수학 시합? 왜?
고찬 : 주희 쉬는 시간에 쓰러졌잖아. 숨도 잘 못쉬고.
민경 : 그런데?
고찬 : 아니.. 주희도 없는데 시합이 되겠어?
민경 : 주희가 없으면 너네가 이길 것 같냐?
고찬 : 주희가 공부 제일 잘하는 건 사실이잖아. 아냐?
민경 : 그렇기야 하지. 그래도 너희들 따위에 질 우리는 아니거든?
고찬 : (흥분해서) 지금, 지... 지구아파트 산다고 무시하는 거야?
민경 : 완전 웃겨. 누가 아파트 얘기했어? 열등감 같은 거냐?

- 7 -
고찬 : 뭐?
민경 : 나 그 단어 완전 잘 알거든? 재수 없게 굴지 말고 그냥 붙어. 인원수 맞추고 싶지?
너희도 한 명 빼. 누구 빼게. 정혁이? 걔 빼려고? 딱 보면 알겠더라.
고찬 : (꾹 참고) 그래. 인원수 맞춰야지. 장군이는 우리거야.
민경 : 캔디는 우리거야.
고찬 : 과연 그럴까? 6교시 수업 끝나고 빈 교실에서 봐.

시험 종이 이미지.

고찬 : 지구수비대와 쓰리걸즈의 첫 번째 시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찬, 준민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문제를 푼다.
정혁은 띠를 들고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잠시 후. 알람소리.
고찬 : 자 점수 말해봐.
민경 : 난 80점.
고찬 : 준민이는 100점이고.
수림 : 나 75점. 고찬이 너는?
고찬 : 나....? 85점!!
정혁 : (계속 어두운 표정으로) 지구수비대 승리!
고찬 : 하하하. 자! 지구! 수비대!
정혁 : (힘없이) 수비대...

종목2. 달리기 시합
고찬의 집 이미지.

고찬 : 두 번째 종목을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쓰리걸즈가 수긍할 수 있으면서도 지


구수비대에게 유리한 종목이어야 했다. 공부로 승부 내는 시합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고찬이 말하면 정혁 종목을 흉내낸다.

고찬 : 오래 앉아 있기.. 팔 씨름.. 눈 싸움.. 나무 블록 탑 쌓기..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그때 수학시합에 시큰둥했던 정혁이가 기운을 내며 먼저 나섰다.

정혁 : 달리기 하자고 할까? 50미터 달리기. 세 번 달려서 두 번 이기는 쪽이 이기는 걸로.


고찬 : 자기들이 불리할게 뻔한데 하겠다고 할까.. 아님 얘기나 한번 해볼까? 주희는 천식이라
던데. 그래서 수학 시합도 못 했잖아. 빨리 뛰면 숨차지 않을까...
정혁 : 야, 그러면 우리한테 좋은 거지. 세 번 중에 한번은 이긴거나 다름없는 건데.
고찬 : 그런가...

잠시 침묵./ 이어서 빗소리.

정혁 : 우아,비다! 봄비네! 우아 우아
고찬 : 바람도 제법 부나 본데? 저기 나무 흔들리는 것 좀 봐.
같이: (동시에) 야! 장군이!

숲 이미지.

- 8 -
고찬 : 우리 지구수비대는 소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장군이집 옆에 분홍색, 노란색, 보라색 비
옷을 입은 쓰리걸즈가 보였다. 장군이는 비에 젖은 채 개집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바
람이 거세게 불었다. 우리는 서로 싸운 게 언제였냐는 듯 시합은 까맣게 잊고 다 같이
힘을 모아 장군이 집 오른쪽을 우산으로 가리고 왼쪽은 비닐로, 오른쪽은 우산으로 천
막 비슷한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장군이 집을 가운데 두고 임시로 만든 천막 안에 나란
히 쪼그려 앉았다.

민경 : (어색함에) 내일 시합하는 거냐?


고찬 : 어? 당연하지.
민경 : 무슨 종목?
고찬 : 음... (갑자기 생각나서) 50미터 달리기. 어때?
민경 : 달리기?
고찬 : 응. 그... 운동장에서 세 사람이 한 번씩 뛰는 거야. 어... 너네 한 명. 으... 우리 한
명. 그... 제비 뽑아서 순서 정하고, 어... 세 번 중 두 번 이기면 승리.
민경 : (잠시 고민하다) 좋아, 해. 달리기 시합.
고찬 : 오... 오케이! 내일 봐.
난 얼떨결에 달리기 시합을 제안했다. 지구수비대와 쓰리걸즈는 돌아서서 반대 방향으
로 내려갔다.

대진표 이미지.

1조 고찬 vs 민경
2조 준민 vs 주희
3조 정혁 vs 수림

고찬 : 방과후 축구부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이 비었다. 조 편성은 지구수비대에 유리하게 보


였다.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준민이지만 주희는 숨부터 가빠하는 아이였으니 결과는 생
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준민이는 달리기 시합을 하자는 말을 들은 뒤부터 삐
진 사람처럼 굴었다.

운동장 이미지.

고찬 : 결과에는 깔끔하게 승복하는 걸로. 오케이?


민경 : 그걸 꼭 말을 해야 하는 건가?
정혁 : 야! 수림이 봐봐!
고찬 : 저거 육상 선수복이잖아.
민경 : (웃으며) 이따가 육상 선수랑 잘 뛰어봐.
정혁 : 야, 이건 반칙이지, 비겁하잖아.
민경 : 반칙? 무슨 반칙? 그리고, 아, 정말 기가 막혀. 너희는 비겁 어쩌고 말하는 게 부끄럽
지도 않아?
수림 : 주희는 천식이야. 엄청 심하다고. 고찬이 넌 어제 그걸 다 봐놓고 달리기 시합을 하자
고 하냐?
민경 : 뭐해? 시합 안 해?
정혁 : 고찬아, 너 꼭 이겨야해. 육상부랑 나랑 붙잖냐. 알지?

- 9 -
민경 : 야, 발끝, 발끝.
고찬 : 너 나 잘하셔.
정혁 / 수림 : 하나, 둘, 셋!

고찬 : 나는 달리고 달렸다. 이기는 중이라는 느낌이었고 이미 승리한 기분에 양 입꼬리가 올


라갔다. 이대로 끝까지 질주하는 거다. 그때였다. 뒤에서 둥둥둥둥 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민경이가 바짝 따라붙은 것 같았다. 민경이는 마치 하강하는 롤러코스터처럼
치고 나갔다. 민경이는 굉장했다. 벽이라도 뚫고 나갈 기세였다. 결국 난 민경이의 등을
보며 결승전을 통과했다. 민경이는 달려가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운동장 바닥을 굴렀
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 정도였다.

민경 : 에이, 씨. 악!
주희 : 민경아 괜찮아?
민경 : 괜찮아. 괜찮아. 이겼지! 내가 뭐랬어? (고찬이에게) 내가 이겼지?
고찬 : 응... 근데 괜찮냐?
민경 : (팔을 만지고 땀을 닦으며) 뭐가? 걱정해 주는 거냐?
고찬 : 내가? 내가 뭘?
민경 : 너나 잘해. 너나.
고찬 :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민경 : (무시하고) 주희야! 걱정 말고 살살 달려! 우리가 이겨! 주희야! 무리하지 마! 끝까지만
달려!

고찬 : 준민이와 주희가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승부라 여길 것도 없는 시합이었다. 이제


스코어는 동점이나 다름없었다. 진짜 승부는 정혁이에게 달렸다. 수림이가 육상부라곤
하지만 정혁이도 날다람쥐 같았다. 승부욕도 상당해서 이기고 싶은 내기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곤 했다.

민경 : 어? 쟤 왜 저러냐?
정혁 : 준민아!

고찬 : 준민이는 속도를 줄이다가 운동장 한가운데 우뚝 서더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


고 출발선으로 돌아갔다. 타닥타닥 달려오던 주희는 그런 준민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서 결승선으로 다가왔다.

민경 : (박수를 치며) 주희야! 얼른 들어와! 얼른!


주희 (목소리 출연2) : 이번 시합은 나도 기권할래.
민경 : 주희야...

고찬 : 그렇게 주희도 돌아서서 출발선으로 돌아갔다. 승부는 그대로 1 대 0. 마지막 수림이


와 정혁이의 승부. 출발 신호와 함께 정혁이는 미친 듯이 달렸다. 저 정도 집념으로
공부를 했다면 우주 최강 슈퍼 박사 같은 것도 해 버릴 것 같았다. 수림이달리기 실력
도 대단했으나 지면 죽어 버릴 것처럼 달리는 정혁이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1:1. 달리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떡볶이 집 이미지.
고찬 : 준민아, 너 아까 왜 그런 거냐?

- 10 -
정혁 : 내 말이 맞다니까? 너, 주희 좋아하는 거지?
준민 (목소리 출연1) : 죽을래?
고찬 : 그럼 얘기를 좀 해 봐. 아까는 왜 그런거야?
준민 (목소리 출연1) : 아, 아니, 그게, 그게 좀 그렇잖아.
정혁 : 뭐가?
준민 (목소리 출연1) : 주희 걔는 천식이라면서 뭔 달리기를 한 대. 야, 천식인 애랑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 자체가 좀 그렇지 않냐?
정혁 : 그래, 천식인 애랑 시합하는 게 좀 그렇기는 했지.
고찬 : ......
정혁 : 야,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우리가 앞서고 있잖아. 다음 시합에서 우리가 이기면 장군
이는 우리 차지야. 그건 그렇고 야! 이 순대라면 장군이도 좋아하지 않을까?
고찬 : 그래, 오늘 왕은 너다.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게.
정혁 : 그럼 우리 제대로 한 번 외쳐보자. 우리의 자랑스런 이름! 우리의 간판!
고찬 : (조용히) 여기서?
정혁 : 우리는! 야! 무조건 우렁차게! 우리는!
같이 : 지구수비대!

냄비 떨어지는 소리가 풍악소리와 연결. / 이어서 수원화성 이미지.

고찬 : 몇 일 뒤 역사 체험 학습을 나온 나는 수원 화성을 걸으면서 장군이를 어찌할 것인지


고민했다. 어제 엄마 아빠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겨울이 되면 어떻게 하지? 아프기라도
하면? 비가 며칠씩 이어지면? 머릿속이 복잡했다. 부모님이 잠든 사이 유기견 보호센터
를 검색했다. 유기견 보호센터 봉사 활동 후기를 읽는데 ‘마음이 아팠다. 안타깝다, 데
려오고 싶다. 낑낑거리는데 우는 것 같더라’ 같은 내용이었다. 장군이를 유기견 보호
센터에 보내면 이런 식으로 불쌍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쓰리
걸즈 애들은 무엇 때문에 저토록 필사적일까? 왜 굳이 장군이어야 할까?

정혁 : 야 무슨 생각해!
고찬 : 응?
정혁 : 도시락 뚜껑 열어야지. 뭐야. 셋 다 유부초밥이야?
고찬 : 그냥 먹자. 유부초밥 만든 회사가 다 다를 수도 있잖냐.
정혁 : 작년까지는 김밥이었단말야.

준민 (목소리 출연 학생1) 일어서서 뒤돌아 객석을 본다.

준민 (목소리 출연1) : 쟤들 또 저 지랄이네.


정혁 : 뭐가?
준민 (목소리 출연1) : 잘 봐. 반별로 모여 앉은 게 아니지?
고찬 :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준민 (목소리 출연1) : 저게 무슨 규칙 같은 게 있는 거야.
정혁 : 규칙? 무슨 규칙?
준민 (목소리 출연1) : 프로방스 애들끼리 등급을 나눈대. 저쪽은 골드, 저쪽은 실버, 어디
보자. 저기 저쪽엔 브론즈 애들이네. 그냥 앉은 애들도 있긴 한데,
등급별로 앉은 애들은 딱 보면 알겠어.

- 11 -
고찬 : 무슨 소리야?
준민 (목소리 출연1) : 우리 반 대화방에 이런 게 올라왔어. 내가 이미지 떠놨지.

핸드폰으로 찍은 공책 이미지.

고찬 : 이게 뭐야?
준민 (목소리 출연1) : 등급쪽지래. 아파트 넓이로 등급을 나눴다는데. 비싸고 넓은 아파트
애들은 골드, 그 다음은 실버, 맨 마지막은 브론즈.
대화방에서 웃고 떠들고 난리도 아녔어. 이게 말이 되냐? 지들이 뭔
데? 야,이게 장난이야?
정혁 : 우리 이름은 없는데? 와, 다행이다.
고찬 : 그게 왜 다행이야? 우리는 브론즈 축에도 못낀다는 건데. 근데 쓰리걸즈 애들은 왜 없
어?
준민 (목소리 출연1) : 빼먹었나? 나도 모르겠어.
정혁 : 핸드폰 좀 줘 봐.
목소리 출연1 학생이 핸드폰을 전해주고 들어간다.
정혁 핸드폰을 보면 / 핸드폰 사진 이미지들.

정혁 : 어? 이거 장군이 아냐? 장군이 맞지? 우아, 근데 여기 어디야?


고찬 : 뭔데? 뭐야?

장군이와 장군이 할머니 사진, 캔디네 집이 적힌 개집 이미지.

고찬 : 캔디? 그 캔디? 여기가 어디야?


정혁 : 저번에 불났던 꽃대울이네. 날짜가.. 일 년 전이네.
고찬 : 야. 우리 장군이 집에 가볼까?
정혁 : 좋아! 지구수비대의 다음 미션! 히히
고찬 : 그럼 오늘 체험 학습 끝나면 가보자.

새 소리. / 꽃대울 마을 이미지.

고찬 : 꽃대울에 도착한 우리는 마을을 둘러 보다 사진 속 집이 있던 곳을 찾았다.

정혁 : 이상하다? 여기가 맞는데. 불났었나 봐.


고찬 : 집안으로 들어가 보자.
주희 (목소리 출연2) : 너희 거기서 뭐 해? 당장 안 나와? (차갑게) 빨리 나와, 얼른!
수림 : 여긴 왜 온 거냐?
정혁 : 너네는 여기 어쩐 일이냐?
수림 : 우리 동네에 우리가 있는 게 뭐가 이상해.
정혁 : 너네 여기 살아?
주희 (목소리 출연2) : 여기가 어때서?
고찬 : 우린 캔디 때문에 온 거야.
수림 : 캔디? 왜?
고찬 : 캔디 사진 속 주인 찾아 주려고.
민경 : 나쁘지 않은 이유네.
주희 (목소리 출연2) : 캔디는 주인이 없어. 같이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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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 : (빠르게 끼어들며) 주희랑 친한 할머니셨어. 친할머니는 아니고.
정혁 : 그럼 너네는 장군이가 누군지 알고 있었던 거네?
수림 : 그렇지.
정혁 : 근데 왜 얘기 안 했어?
민경 : 달라지는 게 있어?
고찬 : 집에서 개 키우는 거 싫어하셔?
민경 : 너네는?
고찬 : (어색하게 웃으며) 그만 갈게.
민경 : 온 김에 시합 얘기나 해.
고찬 : 그럴까? 이번엔 너희가 정할 차례지?
민경 : 아닌데. 세 번째는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는데.
고찬 : 그렇지? 그럼 할까? 가위 바위 보?
민경 : 그래.
정혁 : (신나서) 우아! 가위 바위 보? 야야, 내가 나갈게. 내가 가위바위보는 일가견이 있다니
까! 이기면 좋은 거지?
고찬 : 정혁아. 이번엔 준민이가 하라고 하자.
민경 : 우리 쪽에서 가위 바위 보라면 주희지. 한판이다?
고찬 : 당연하지.
다같이 : 가위 바위 보!

목소리 출연1 / 목소리 출연2 학생 친구들 일어나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재미요소 : 목소리 출연2 가 이길 때 까지)

고찬 : 주희가 이겼다. 쓰리걸즈는 바로 시합 종목을 말했다.

천둥 번개와 빗소리 / 개 짓는 소리.

6.횡경막 헤르니아
고찬 : 세 번째 시합을 앞두고 장군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동물병원 이미지.

수의사 선생님 : 그러니까 감기 같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근데 부모님은 안 오시니? 어른은


(학교 선생님) 없어?
민경 : 우리뿐이에요. 캔디는 많이 아픈가요? 어떻게 해요? 약 먹으면 나아요? 왜 아파요? 수
술해야 해요?
수의사 선생님 (학교 선생님) : 허허. 여기 배를 보면.
고찬 : 배가 왜요?
수의사 선생님 : 배에 장기가 거의 없지? 원래는 소화 기관들이 여기, 배에 자리를 잡아야 하
(학교 선생님) 거든. 그런데 이 친구는 이 자리가 비었어. 그래서 배가 홀쭉한 거지. 이 친
구는 횡격막이 없어. 그래서 장기가 다 심장과 폐 쪽으로 쏠린 거야. ‘횡격
막 헤르니아’라고 하지. 수술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저런 상태로 두면 얼
마간은 살 수 있을 거야. 얼마나 살지는 알 수 없어. 계속 아플 거고. 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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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봐야 알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다. 오십 프로.
주희 : 선생님. 수술 해주세요. 수술비는 꼭 마련해 올게요.

고찬 : 아이들과 수술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의논했다. 저마다 모아 둔 세뱃돈과 용돈의 액수


를 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 선생님은 수술비를 반만 받겠다고 했다. 그래도
모자랐다. 의사 선생님은 깎은 수술 비의 반만 받고 수술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머
지 반은 수술에 성공하거든 내라는 거였다. 우리는 병원을 나와 성당을 들러 다 같이
기도하고 집으로 흩어졌다. 쓰리걸즈는 꽃대울로, 지구수비대는 지구아파트로. 집에서
기다리는데 준민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수
술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봐야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인 준민이가
말했다.
준민 (목소리 출연1) : (즐거운 목소리로) 세 번째 시합 연습해야겠어.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고찬 : 확실히 좋은 목소리였다. 모든 게 잘된 목소리였다.

종목3. 에어 로켓 시합
운동장 에어 로켓 이미지. 모여있는 아이들. / 이어서 시합방식 이미지.

1. 50m 떨어진 곳에서 점수가 적힌 동그란 과녁을 바닥에 깔아 둔다.


2. 지구수비대와 쓰리걸즈 셋이 번갈아 가며 공기 펌프를 밟아 에어 로겟을 발사한다.
3. 에어 로켓이 맞히는 과녁의 점수를 획득한다.
4. 점수가 높은 쪽이 승리.

수림 : 모여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쓰리걸즈와 지구수비대의 시합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


다! 우리는 누가 캔디를 키울 것인가를 놓고 벌써 두 번의 시합을 벌였습니다...

고찬 : 예정에도 없던 시합 중계였는데 수림이는 제법이었다. 어쨌든 등급과 상관없이 아이들


이 모여 있으니 분위기가 살아서 흥이 났다. 무엇이든 나쁠 게 없는 날이었다. 장군이
수술이 잘 됐으니까. 장군이가 다시 살아났으니까.

수림이 친구들에게 박수를 유도하고 학생들(관객) 모두 박수를 친다.


(*수림역의 배우는 학생들을 반으로 나누고, 반은 지구수비대를 반은 쓰리걸즈를 응원하도록
유도한다. 이어서 배우들은 에어 로켓을 꺼낸다. 다같이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선물을 담은 에어 로켓이 객석으로 날아간다. )
점수 이미지.
지구수비대 260. 쓰리걸즈 365
전체 스코어 1 대 1

고찬 : 그럼 이제 연장전인가?
민경 : 저기...
고찬 : 왜? 무슨 일 있어? 장군이가 어디 아파?
민경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어제 저녁에 요~앞에 뭘 사러 나왔거든. 혼자 보러 갈 생
각은 절대 아니었는데 나온 김에 캔디 보러 갔었어. 동물 병원에.
정혁 : 우아, 완전 배신. 하지만 괜찮아. 장군이 괜찮았어?
민경 : 괜찮아 보이긴 했는데 움직이는 건 힘들어 했어. 마취에서 방금 깨어나서 그런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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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잘 됐다고 해서 안심했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나 봐. 마취에서 안 깨어나기도 한
대. 깨어나서 대행이라고 하셨어. (히죽 웃으며) 그런데 말이지. 히히. 의사 선생님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야. 솔직히 의사 선생님 고맙잖아. 수술비도 많이 깎아 주시고.
그래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씀 드렸지. 우리 시합한 것 까지 다. 히히. 그런데 아
까 전화가 온거야. 우리 시합 시작하기 전에. 히히.
수림 : 야! 정확히 좀 말해. 누구한테 무슨 전화가 왔는데? 뭐라고 했는데?
민경 : 아, 미안. 그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어. 캔디 다 나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
시는 거야. 키워 줄 사람은 있냐고. 그래서 그게 문제인거 맞다고 했더니 수업 끝나고
우리들 전부랑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정혁 : 왜?
민경 : 나야 모르지.
수림 : 키워 줄 사람을 찾아 주시겠다는 건가.
정혁 : 그럼 장군이를 딴 데 보내는 거야?
민경 : 그냥 캔디라고 하자. 원래 걔 이름 캔디 맞아. 너네도 봤잖아.
정혁 : 그래, 그럼 그냥 캔디 해.
민경 : 진짜? 괜찮아?
지구수비대 : 응.
수림 : 유기견 보호 센터에 보내시겠다는 거 아냐? 이 근처에는 없던데.
고찬 : 아, 난 거긴 좀. 좋은 분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좀 그래.
수림 : 야, 그래도 솔직히 산에 데려다 놓는 거 보다는 낫지.
정혁 : 의사 선생님이 키우시려나? (잠시 생각하다가) 하긴~ 장군이, 아니, 캔디가 좀 예뻐야
지. 수술하다가 캔디한테 반하셨나 보다.
준민 (목소리출연1) : 우리가 캔디 집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고찬 : 집을?
준민 (목소리출연1) : 캔디가 원래 살던 집이 있잖아. 거길 치우는 거야. 힘은 좀 들겠지만 여
섯 명이 덤비면 못할 것도 없을 걸.
주희 (목소리출연2) : (어두운 목소리로) 그 집 헐릴 거래.
민경 : (분위기를 바꾸며) 우리 일단 가 보자. 하실 얘기가 있으니까 부르셨겠지. 어차피 캔디
도 보러 가야 하고.

고찬 : 그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여섯 친구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었다. 동물 병원 의사 선생님은 아는 사람 중 다큐멘터리 PD가 있다며 출연료를 수술
비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 캔디를 입양해 줄 좋은 사람이 나타 날 수 있다는 말
로 출연을 권했고 우리는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

7.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방송 이미지.
제목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고찬 : 방송에는 우리가 시합하던 모습과 주희가 행복하게 캔디와 뛰어 노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를 한명씩 인터뷰한 영상이 나왔다. (수정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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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왜 그렇게까지 캔디를 지키고 싶었나요? ’

준민 (목소리출연1) : 감정이 오고 가잖아요. 캔디랑 저랑요.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를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요.

민경 : 그럼 캔디를 그냥 버려요? 그렇게 잔인한 마음은 상상해 본 적도 없어요.

정혁 : 좋아하는 사람을, 아, 사람은 아니구나. 아무튼 캔디를 지키는데 특별한 이유 같은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안 그런가요?

수림 : 캔디가 건강해지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뭘 바라거나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


냥 자연스러운 거였어요. 수술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아서 솔직히 제가 저한테 놀랐어
요.

고찬 : 캔디를 돌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힘이 났어요. 위로받는 기분이었고 대단한 일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캔디에게 해준 것보다 캔디에게 받은 게 더 많아요. 빚을 진 건 저에
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뭔가 달라 보였다. 한 계단 한 계단 디디고 올라


서서 불쑥 머리가 솟은 것 같았다. 등급 쪽지나 교실에서 섬이 된 기분은 더 이상 중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같이 일어서서 외친다.

다같이 : 이제 그러거나 말거나다!

지구수비대와 쓰리걸즈 서로 장난을 친다.

캔디의 행복한 사진 이미지.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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