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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진화 개념의 등장과 기독교의 반응
근대적 진화 개념의 등장과 기독교의 반응
양승훈1)
Paul Seung-Hun YANG
에스와티니 기독의과대학교
Eswatini Medical Christian University
Po Box A624 Swazi Plaza Mbabane
Mbabane H101, Kingdom of Eswatini
E-Mail: viewman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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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Open Forum for Creationists」 Vol.15(2)
III. 새로운 지구 이론
IV. 모세 지질학과 새로운 지질학
V. 절대연대 측정법의 등장
VI. 인류의 오랜 연대와 선아담 인류(Pre-Adamites) 논쟁
1. 라페이레르의 선아담인류론
2. 19세기의 선아담 인류
3. 미국에서 인류의 다중기원설과 흑인 인종차별
4. 도전 받는 인류의 연대
VII. 19세기 지질학과 창세기 해석
1. 베이컨적 절충안2)
2. 비평적 성경해석학의 등장과 전문가들의 불일치
3. 독일의 성경 비평학
4. 위기에 처한 베이컨적 절충안
VIII. 진화론에 대한 세 가지 반응
IX. 진화론의 등장과 교회의 반응
X. 진화론과 종교를 화해시키려는 시도
XI. 진화론과 유전법칙
1. 멘델의 유전법칙
2. 유전법칙의 재발견
3. 진화론과 유전법칙의 결합?
XII. 요약과 결론
ABSTRACT
This Essay deals with the church's response to the various events that led to the emergence of the modern
concept of evolution from the mid-17th century to the late 19th century, and furthermore, the emergence of
fundamentalism in the 20th century and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creation science as a part of
it. For examples, the emergence of a long earth age from James Usher's 6000 years of earth age, the
transition from the geocentrism to the heliocentrism, the emergence of modern geology from Moses geology,
the emergence of absolute dating technique, the emergence of archaic anthropology, the debate on the
pre-Adamite theory. With the emergence of those events, new interpretations of Genesis were proposed and
the Baconian Compromise represented by the “two book theory” coexisted and was widely accepted.
However, it was threatened as naturalists who studied only nature, regardless of the Bible, were strongly
influenced. Finally it was dismantled after lasting 200 years since Bacon. As the movement of naturalists to
interpret the Bible within an academic framework has emerged stronger than the previous influence of the
Bible on interpreting science, “scientific hermeneutics” and “critical hermeneutics” appeared. Particularly, the
2) Moore, “Geologists and Interpreters of Genesis in the Nineteenth Century,” <God & Nature>, Ch.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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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gence of modern geology opened a new horizon for biblical interpretation. Among the people in
modern geology, Charles Lyell thought that catastrophism geology based on Noah's Flood should be
abandoned and a geology based on uniformitarianism should be established. It was also Charles Robert
Darwin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transition to an era dominated by scientists. Darwin was fascinated
by Lyell’s uniformitarian ideas after reading Lyell's books. As time passed after the publication of <Origin
of Species>, naturalists gradually took the lead in geological studies. In particular, the combination of the
theory of evolution and the Mendel’s laws of heredity brought together a number of experts in the fields of
geology and biblical hermeneutics to downgrade Genesis narrative to a “primitive” account of the beginning.
Eventually, as this situation continued, the church and Christians in general suffered confusion, and they
were expecting a new movement to establish a more clear foundation of Christianity. The conditions for the
revival of fundamentalism that emerged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creation science, one of its fruits,
were ripe.
영역: 과학사/과학철학
키워드: 창조연대, 모세 지질학, 절대연대 측정법, 선아담 인류론, 베이컨적 절충안, 성경 비평학
3) Martin J.S. Rudwick, “The Shape and Meaning of Earth History,” <God & Nature>, Ch.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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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하, 역대상, 하에 나타난 사람들의 계보를 근거로, 그리고 1년을 현재와 같은 365일로 계산하
여 나온 것이었다.
그림 1 어셔(좌)와 라잇풑
4) “the entrance of the night preceding the 23rd day of October... the year before Christ 4004” from
Rupke, <Great Chain of History>, pp.32-33; Gillispie, <Genesis and Geology>, p.108.
5) http://en.wikipedia.org/wiki/James_Ussher; 예기(豫記) 율리우스력이란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을 AD 4년까지 거
슬러 올라가도록 율리우스력을 확장한 달력이다. 율리우스력이 시행된 BC 45년과 AD 4년 사이의 윤년은 불
규칙적이었다.
6) Bernard Ramm, <The 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 (Grand Rapids, MI: Eerdmans, 1954) p.121.
7) 예를 들면 창4:14,11:12-3; 눅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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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가 시작될 무렵의 흠정역 성경에서부터는 어셔의 연대가 성경의 관주
나 제목으로까지 삽입되었다. 많은 독자들은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구절과 주석가들이 추기한
각주의 연대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더욱이 흠정역 성경은 재빨리 영어권 나라들의 독보적인 성
경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기독교가 유럽을 벗어나 세계로 퍼질 때 이 영어권 나라들이 바로 개
신교의 주요 지지자들이 되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심각한 논의도 없이 어셔의 창조연대와 성경
은 결합하게 되었고 어셔의 계산은 개신교가 퍼지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권위 있는 창조연대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성경기록만을 근거로 제시된 창조연대는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
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먼저 중세의 우주관을 잠시 살펴본 후 이러한 우주관이 근대에 들어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 중세의 우주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세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위로 구형으로 형
성된 우주는 한정된 시스템(bound system)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계급 사회의 안정된 균형이
라는 사회적 질서를 반영한 것이었으며, 발전하지 않고 단순히 주기적 변화(cyclic change)만을 반
복하는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런 개념은 우주가 영원하며 자기 보존적이어서 스스로 자연
과 사회질서의 유지자이며 공간적으로도 무한하다는 이론으로부터도 추론될 수 있었다.8)
그림 2 중세의 우주관9)
안정된 사회질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기적 변화라는 제한된 인식과 우주의 유한함, 그리고
방향이 결정된 세계 역사를 통합하려고 하였다. 이런 견해는 하나님이 창조와 함께 종말을 예정
8) Martin J.S. Rudwick, “The Shape and Meaning of Earth History,” <God & Nature>, Ch.12.
9) http://faculty.knox.edu/fmcandre/cosmolog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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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artin J.S. Rudwick, “The Shape and Meaning of Earth History,” <God & Nature>, Ch.12.
11) Rudwick, <God & Nature>, p.163.
12) Nelson, <When Science & Christianity Meet>, pp.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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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뷔퐁(좌)과 퀴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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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에 관하여>(De Genesi ad Litteram, On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라는 책에서 창세기의 “날”은 문자적 하루로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16) 날-시대 이론은
어거스틴 이후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근대로 와
서는 영국 지질학자 라이엘(Charles Lyell)이 자신의 유명한 저서 <지질학 원리>(Principles of
Geology)를 통해 날-시대 이론을 주장했다. 또한 19세기 중반, 미국 지질학자 구이요트(Arnold
Guyot), 19세기 후반, 캐나다 지질학자이자 주석가였던 도손(John William Dawson),17) 미국 지질
학자이자 오벌린 신학교(Oberlin Theological Seminary) 교수였던 라이트(George Frederick
Wright, 1838-1921),18) 미국 반진화론 정치가이자 스콥스 재판 검사(Scopes Trial prosecutor)였던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19) 미국 침례교 목사이자 반진화론 캠페인을 벌렸
던 릴리(William Bell Riley, 1861-1947),20) <믿는 이유>(Reasons to Believe)의 창설자이자 천문학
자 로스(Hugh Ross, 1945-) 등이 날-시대 이론을 지지했다. 근래에 와서 간격 이론은 지질학적 증
거와 맞지 않음이 점점 드러났기 때문에 퇴조하였고 현재는 복음주의권에서 날-시대 이론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21)
III. 새로운 지구 이론
창조연대와 더불어 사람들의 관심은 역시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구였다. 지구는 우주의 일부라
는 개념이 나온 후에야 지구의 기원이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개념은 코페르니
쿠스의 태양중심설에 의한 것이 아니라 16세기 말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도미니칸 수도사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1600)와 17세기 중반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의 우주론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들의 우주론에 의하면 우주는 중심도, 경계도 없으며, 심지어 창조되지도 않았
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우주론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시작과 동시에 시작했다고 보
았지만 이들은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젊은 지구 역사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지구 역사를 우주 역사와 분리하였다.
이 새로운 모델에 따르면 성경이 말하는 역사는 우주 전체보다는 인간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지
구상의 사건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영국 신학자 버어넷(Thomas Burnet, 1635-1715)도 데카르트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그는 <지구에 관한 거룩한 이론>(Sacred Theory of the Earth)에서 지구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명백히 거부하며 지구의 유한하고 짧은 역사가
거대한 우주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였다.
16) Robert T. Pennock, <Tower of Babel, The Evidence against the New Creationism> (MIT Press, 2000), p.19.
17) Ronald Numbers, <The Creationists: From Scientific Creationism to Intelligent Design>, Expanded Edi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2006), pp.21-23.
18) Numbers, <The Creationists: From Scientific Creationism to Intelligent Design>, pp.33-50, 82.
19) Numbers, <The Creationists: From Scientific Creationism to Intelligent Design>, p.58.
20) Numbers, <The Creationists: From Scientific Creationism to Intelligent Design>, p.82.
21) Nelson, <When Science & Christianity Meet>,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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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어넷의 이론을 필두로 지구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영국의 자
연학자이자 지질학자인 우드워드(John Woodward, 1665-1728)는 화석과 지층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으로 노아 홍수를 설명함으로써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범주를 넘었다. 이런 해석의 배후에는
당시 계몽주의적 지성의 수용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것은 이전의 성경 외적 자료를 성경
해석에 적당하게 수용함으로써 의미 있는 것이 되게 한 것을 뒤집어서 성경해석을 성경 외적 자
료의 틀 내에 적당하게 수용함으로서 의미 있는 것이 되게 한 것이었다. 즉 과거에는 지구의 역
사에 대한 철학적, 역사적 이론이 성경의 원리에 의해 합당한 것인지가 평가되었으나 이제는 성
경의 원리가 다른 이론들에 의해 그 정당성을 확인받는 형편이 된 것이다.
나아가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노골적으로 반기독교적 우주론을 장려하였다. 그들은 지구
이론을 기독교 교리와 교회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어떤 이론도 검증되거나 명확한 과
학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구는 지금까지도 항상 동일한 자연법칙
의 지배하에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주장을 인간 역사에까지 확장, 적용시켰다. 그래
서 그들은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고, 따라서 전통적 도덕과 사회적 강압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다
고 하였다.
이러한 반기독교적 우주론이나 인간 역사에 대한 해석은 지구 역사에도 적용되었다. 18세기, 화
석이 발견되는 지층보다 더 오래된 암석이 발견됨에 따라 성경에 기록된 노아 홍수는 상대적으로
최근 사건이 되었다. 홍수 지층 아래의 지층이나 암석은(요즘 용어로 선캄브리아기 지층) 창세기
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고 화석도 없으므로 인간 이전 지구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록된” 사료가 없는 역사라는 새로운 종류의 역사학이 등장했다. 그리고 18
세기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의 유물보다 화석과 지층의 증거를 더 믿을만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로
인해 18세기 말, 사람들은 인간 이전의 지구 역사가 1만 년 혹은 10만 년 정도라고 생각하게 되
었다. 물론 이 때도 “영원한 우주론”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지구 역사를 터무니없이 길게 잡기
도 했지만 그런 사람들의 숫자는 소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경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지구 역사를 길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성경비평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성경비평학 자체가 반기독교적인 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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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Samuel Kinns, <Moses and Geology: Or, the Harmony of the Bible with Science Thoroughly Revised, and
the Astronomical Facts Brought Up to Date, with a Special Preface> (Originally published in 1882, revised
and updated in 2015 from Arkose Press); George McCready Price, <The New Geology> (Pacific Press
Publishing Association, 1923); John C Whitcomb, Jr. and Henry M Morris, <The Genesis Flood: The Biblical
Record and Its Scientific Implications> (1961). 오늘날 모세 지질학, 홍수 지질학, 창조과학, 젊은 지구론 등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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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접어들면서 성경에 기초한 지질학이 아니라 야외탐사에
기초한 새로운 지질학이 등장하였다. 지질학자들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종교와 과학의 상반된 견
해에서 자신들을 분리한 채 객관적인 증거들을 연구하는 데만 몰두했다. 지질학자들은 전통적인
성경 연대기 학자들과는 무관하게 지질학을 연구했다. 그 결과 19세기에 들어와 지질학은 지구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제공하게 되었다.23)
당시의 지질학은 지질학의 연구 범위를 분명히 했다. 즉 지질학은 비과학적인 것, 지구의 기원
이나 궁극적 운명, 인류의 역사와 기원 등은 아예 연구에서 배제하였다. 이들은 지구 나이와 그들
의 종교적 신념은 무관하다는 성경비평학자들의 견해를 수용하였다. 지질학자들은 화석으로만 출
토되고 지금은 사멸한 많은 생명체들을 연구하면서 성경에만 기초해서 해석하던 지구의 역사를
확장하고 대신 인류의 문명 역사를 축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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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고 변하지 않지만 몇몇 원소들은 방사능 붕괴라는 과정에 의해서 한 원소에서 다른 원소로
변해갔다. 원래의 모원소(parent element)가 자원소(daughter element)로 붕괴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감소한 모원소와 증가한 자원소의 비율에 의해 계산되었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일정하게
지수함수적으로 붕괴하기 때문에 연대 측정 과정에서 방사성 동위원소의 손실이나 첨가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면(대부분의 연대 측정법들은 방사성 동위원소의 손실이나 첨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암석의 절대연대를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26)
수많은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연대측정에 이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믿을만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몇 가지로 압축되었다. 일반적으로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데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반감기가 긴 우라늄-납(Ur-Pb), 토륨-납(Th-Pb), 루비듐-스트론튬(Rb-Sr), 포타슘-아르곤
(K-Ar) 등의 방법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매년 수천 건 이상의 암석과 광물질들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이 잘 정립된 표준 과정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오랜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물리학자 켈빈은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지질학적인 연대를 암석의
방사능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한정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27) 그러나 암석의 방사성 동위
원소법의 폭넓은 사용은 20세기 중엽부터 본격화되었다.
방사능 동위원소를 이용한 지구의 연대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이 제시하는 연대를 훨씬 넘었다.
그리고 암석들의 연대측정이 계속되면서 지구 연대는 계속 확장되어 갔다. 지구 연대가 점차 확
장되면서 오래 지구 연대는 중요한 원군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9세기 중엽에 본격
적으로 시작된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천천히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생명세계가 출현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매우 오랜 연대
가 필요했다. 그런데 바로 그 중요한 근거를 지질학이 제공해 준 셈이었다.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방사능 연대측정 기술들은 지구가 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졌다는 일관된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방사능 연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창세기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창조주간을 현재의 태양일 하루로
해석하고 성경의 족보에 나온 인물들의 수명을 더해서 지구와 인류의 나이는 10,000년을 넘지 않
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방사능 연대측정법이 제시하는 46억 년의 지구연대는 진화론과 동의어
라고 생각한다.28)
26) 방사성 원소의 붕괴는 핵의 변환이므로 온도나 압력 등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붕괴속도가 별로 변화하지 않
았다.
27) 양승훈, <창조론 대강좌>, 개정 2쇄 (예영, 2013), 제12장 참고.
28) 방사능 연대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위튼 대학 졸업생으로서 방사능 연대측정을 전공한 Roger C. Wiens가 일반
인들을 위해 알기 쉽게 쓴 “Radiometric Dating: A Christian Perspective”을 참고하라. 이 논문은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Home Page에 실려 있다. 국내 문헌으로는 양승훈, <창조연대 논쟁: 젊은 지구론,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 SFC, 2017)을 보라.
29) Nelson, <When Science & Christianity Meet>, Ch.7. 국내 문헌으로는 양승훈, <인류의 기원과 역사적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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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페이레르의 선아담인류론
그림 8 라페이레르와 그의 책
아담 이외의 인류가 존재했다는 주장은 가인과 아벨이 아담과 하와의 유일한 자녀들이었다고
할 때 가인이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가인이 하나님 앞에서 추방당한
후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했던 사람들, 즉 성경에 등장하는 놋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를 설명할 수 있다.
이 주장은 그 후에도 이따금 지지자들을 모았으며, 자연스럽게 인류의 다중기원론(Polygenism)
으로 이어졌다. 스코틀랜드 귀족이자 식자(man of letters)였던 홈(Henry Home)은 1774년에 출간
한 <인류의 역사에 관한 스케치>(Sketches of the History of Man)에서 모든 인종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살고 있는 기후와 환경에 적합하게 독립적으로 창조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던 단일기원설을 반박하는 주장이었다. 단일기원설에 의하면 모든 인류는
한 조상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후에 다른 환경과 기후가 있는 곳으로 이주했을 때 그 기후와 환
경에 맞게 적응했다는 주장이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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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세기의 선아담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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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페인의 인종차별주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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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전 받는 인류의 연대
36) https://en.wikipedia.org/wiki/Buckner_H._Payne
37) Nelson, <When Science & Christianity Meet>, p.178.
38) Nelson, <When Science & Christianity Meet>, p.306에 있는 각주 40의 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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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Nelson, <When Science & Christianity Meet>, pp.179-180. p.306에 있는 각주 41의 내용 참고.
40) Alexander Winchell, <Preadamites; Or, a Demonstration of the Existence of Men Before Adam: Together
with a Study of Their Condition, Antiquity, Racial Affinities, and Progressive Dispersion Over the Earth>
(1880). 근래에 Amazon을 통해 전자책을 구입할 수 있다.
41) Nelson, <When Science & Christianity Meet>,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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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를 지나면서 창세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더불어 지구와 인류의 기원, 창조연대, 인
종의 기원 등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은 결국 근대적 지질학의 등장과 창세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으로 이어졌다. 아래에서는 먼저 과학혁명기 동안 제시되었던 베이컨의 절충안을 살펴보고 이어
비평적 성경해석학의 등장을 소개한다.42)
1. 베이컨적 절충안43)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과 성경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단일 교재(text)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과학혁명기에 이르러서는
혁명의 여러 주역들은 자연과 성경은 서로 다른 두 권의 교재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베이컨은
<학문의 진보>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사실 한권이 아니라 두 권의 책을 쓰셨다. 물론 우
리 모두는 첫 번째 책, 즉 성경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그 분은 자연이라고 하는 두 번째 책도 쓰
셨다.”44)
42) James R. Moore, “Geologists and Interpreters of Genesis in the Nineteenth Century,” <God & Nature>,
Ch.13.
43) Moore, “Geologists and Interpreters of Genesis in the Nineteenth Century,” <God & Nature>, Ch.13.
44) “God has, in fact, written two books, not just one. Of course, we are all familiar with the first book he
wrote, namely Scripture. But he has written a second book called creation. from ”Francis Bacon,
<Advancement of Learning> (1605) 전체 제목은 “Of Proficience and Advancement of Learning Divine and
Hum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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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두 책 신학”의 핵심인 “자연의 책”(librum naturae) 개념은 초대교회 교부들의 글에서부터 나타난다. “교
부들 중에서도 자연의 책(the Book of Nature)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한 사람들로는 성 바실(St.
Basil), 성 그레고리 닛사(St. Gregory of Nyssa),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존 카시안(John Cassian), 성
존 크리소스톰(St. John Chrysostom), 성 에프렘 시리안(St. Ephrem the Syrian), 성 막시무스 컨페서(St.
Maximus the Confessor)가 있다.” - cf. "The two books prior to the scientific revolution,"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2005): 4-5. Link: http://inters.org/tanzella-nitti/pdf/9.TwoBooks.pdf ; 근대에
들어와서 “두 책 개념“을 가장 분명하게 사용한 사람으로는 베이컨과 더불어 갈릴레오를 들 수 있다: Galileo,
“Letter to the Grand Duchess Christina of Tuscany” (1615), Verses 272-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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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진화론에 대한 세 가지 반응
그림 17 도손(좌)과 애거시즈
55) 1865년에 설립된 “The Victoria Institute”의 목적은 “성경이 계시한 위대한 진리”(the great truths revealed in
Holy Scripture)를 거짓된 과학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다.
56) A. Hunter Dupree, “Christianity and the Scientific Community in the Age of Darwin,” <God & Nature>,
Ch.14.
57) Dupree, <God & Nature>, Ch.14.
58) Dupree, <God & Nature>, Ch.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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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적으로 과학에서 종교의 역할을 제거하고 계시에 근거하여 종교가 진리의 중재자가 되는 것
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
는 과학이 종교적인 계시를 완전히 대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실증주의 과학의 영향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결국 창조자가 활동할 수 있는 초월적 영역을 제거하였다. 1860년 옥스퍼드
논쟁에서는 다윈의 대변자로 나서서 진화론을 옹호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는 “다윈의 불독”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의 손자였던 줄리안 헉슬리(Julian Sorell Huxley, 1887-1975) 역시 유명한 진화
론자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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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궁극적 진리는 이끌어내지 못한다. 헉슬리가 비판한 종교에서의 절대적인 권위주의를 상기한
다면 다윈 이후 세계는 과학에서 새로운 절대적인 권위주의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곳곳에서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파고드는 과학주의라는 새로운 권
위주의의 횡포를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진화론 논쟁에서 볼 수 있
다.
62) Frederick Gregory, "The Impact of Darwinian Evolution on Protestant Theology in the Nineteenth Century,"
<God & Nature> (Berkeley &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Ch.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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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진화론을 수용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리고 진화론의 진위에 무관하게 다윈의 <종의
기원>은 19세기 생물학 분야는 물론 그 이후의 모든 학문, 나아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쳤
다. 실제로 오늘날 진화론(대진화)은 단순한 생물 이론의 하나로 머물지 않고 학문 전체를 재단하
고 평가하는 세계관이 되고 있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책이나 이론은 무차별 비난에 노출되기 십
상이다. 이전에 종교가 가졌던 절대주의의 폐해를 우리는 오늘날 진화론에서 목도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진화론과 더불어 19세기 생물학 혁명의 하나로 평가되는 유전법칙을 살펴보자.
1. 멘델의 유전법칙
66) Gregory, "The Impact of Darwinian Evolution on Protestant Theology in the Nineteenth Century," <God &
Nature>, p.383.
67) 이런 생각을 한 자유주의자들로는 슐라이에르마흐(F. Schleiermacher), 프리이스(J. Fries), 오토(R. Otto), 스테펜
(L. Stephen)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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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전법칙의 재발견
멘델의 법칙은 유전을 설명하는 간단하고도 놀라운 법칙이지만 멘델이 이를 세상에 발표한 이
래 35년 동안이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멘델이 학계의
주류에서 벗어난 아웃 사이더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표한 1865년
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불과 6년 뒤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진화론에 쏠려
있었다. 게다가 당시 생물학 분야에서는 숫자를 세고 통계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은 전에
없던 연구방법이었다. 멘델의 생소한 연구방법은 당시 생물학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하고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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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cf. H.F. Roberts, <Plant Hybridization before Mendel>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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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멘델의 유전법칙은 멘델 자신의 연구는 물론, 멘델의 사후 세 사람의
재발견자들의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법칙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요구되는 모든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어떤가?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할 때는 물론 그 이후에도 자연선택의
결과로 형성된 종들이 유전적 다양성을 갖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했다. 즉 다윈은 유전형질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 혹은 재발견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과 유전법칙을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
했다.69)
1890년대에 이르러 유전학과 생물통계학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진화론에 접목시켜서 자연선택
을 거친 유전형질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였다. 유전법칙이 진화론에 접목되
면서 "다양한 개체차를 일으키는 유전형질이 자연선택에 의해 선별되고 그 가운데 적응에 성공한
유전형질만이 자손에게 전달되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현대 진화 이론의 기본적 토대가 확립되
었다.70) 하지만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화론자들은 진화론과 유전법칙이 결합함으로 가장 강력한 이론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진
화가 증명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최적자의 유전자가 자연에 의해 계속 선택되어 새로
운 개체, 나아가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세계를 형성한다고 설명, 혹은 주장하는 것이다. 유전자의
변이가 무한하고 자연이 최적자를 선택하는 과정이 무한하다고 하는 주장은 자연이나 실험실에서
관찰되는 매우 제한된 변이와 매우 제한된 자연선택으로부터 유추한 것일 뿐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진화론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대답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증
명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멘델의 발견은 일찌감치 법칙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진화론은 지금도
여전히 이론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변에는 침을 튀기면서 진화는 증명이 되었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구가 둥근 것이 사실이듯이 진화는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
지만 일정한 변이의 한계, 때로는 종 내에서, 때로는 종 간에서의 변화는 자연에서나 실험실에서
관찰되지만 그것이 과거에 존재했던(화석이 보여주는), 지금도 존재하는 수 백만 종의 생명세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론은 생명세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자연주의적 이론으로서는 문제
69)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멘델의 유전학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한 대표적 인물로는 <진화-현대적 총합>(1942)을 저
술한 쥴리언 헉슬리(Julian S. Huxley 1887-1975),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을 저술한 도브쟌스키
(Theodosius Dobzansky 1900-1975) 등을 들 수 있다. 도브쟌스키는 유전자돌연변이가 유전자풀에서 일어나면
좋은 종이 자연에 의해 신종으로 선택되어 진화한다고 했다.
70) D. Quammen, <The reluctant Mr. Darwin: An intimate portrait of Charles Darwin and the making of his
theory of evolution> (New York, NY: W.W. Norton & Company,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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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I. 요약과 결론
71) Gregory, "The Impact of Darwinian Evolution on Protestant Theology in the Nineteenth Century," <God &
Nature>,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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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교수님의 최신작 <인류의 기원과 역사적 아담: 고인류학과 창세기의 대화>는 인류의 기
원 문제를 고인류학의 지식을 활용하면서도 성경 창세기 기록의 의미도 보존할 수 있도록 조화를
시도한 탁월한 결과물입니다.
인류의 기원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최초의 인류에 대해서 이처럼 방대
한 자료들을 엄밀하게 분석하면서 치밀하게 자료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어떤 결론을 내리는데
까지 나아간 연구물은 여지껏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의 장르는 단순히 성경 주석이나 인류의 기원에 대한 기독교 교리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창세기의 얼개에 고인류학 분야의 지식을 잘 맞추어 아담의 역사성을 부각시킨 고인류학 전문 서
적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저자는 치밀한 검토를 거쳐 도출된 결론을 타협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정답', '무오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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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로 주장하지 않고 일정의 '잠정적 결론', '작업 가설' 정도의 권위만 부여합니다. 이런 면에서 저
자는 아주 겸손하며, 성실한 학술적 노력의 결과로 도출될 수 있는 여러 다른 설명에도 열려 있
습니다.
제가 아는 한 우리나라의 젊은지구론 진영이나 유신진화론 진영의 어느 누구도 양승훈 교수님
처럼 인류의 기원 문제에 대해 이런 정도의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한 이가
없습니다.
기독교계의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우연히 자연 합성된 아미노산으로부터 우연히 단세포 생
물이 나타나고 그게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 진화해서 인간도 지구상에 나타
났다는 유신진화론의 허구적 주장, 과학주의에 함몰되어 가정을 결론으로 뒤바꿔 버리는 유신진
화론자들의 선전선동에 휘둘리지 않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책은 SFC에서 출간된 <양승훈의 창조론 대강좌 시리즈> 일곱권 중에서 제4권, 네 번째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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