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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세계들과 근대성의 신화들: 게임, 게이머, 온라인의 초월성

로버트 제라시(Robert M. Geraci)

1. 서론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그의 사이버펑크 소설의 고전 『뉴로맨서』(Neuromancer,


1983)에서 사이버 공간은 우리가 “몸 없는 환희”(bodiless exultation)를 경험할 수 있는 “합
의된 환각”(consensual hallucination)이라고 쓰고 있다. 불과 몇 년 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은 그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 1991)에서 우리가 어떻게 메타버스
에서 "전사 왕자"(a warrior prince)가 될 수 있는지를 묘사한다. 보다 최근에 어니스트 클라
인(Earnest Cline)은 보다 몰입적인 가상현실인 『오아시스』(the OASIS)를 "더 나은 현실로의
출구… 무엇이든 가능한 마법의 장소"라고 묘사했다. 이 세 권의 책들은 모두 우리가 두뇌-컴
퓨터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가상 세계로 "잭인"(jacking into)함으로써 현대 생활의 실패, 불
만,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붙들고 씨름한다.

팬데믹, 세계 분쟁,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1))의 부상, 그리고 불가피해 보이


는 우리 환경의 붕괴 사이에서, 우리는 이미 습관적으로 현실이라고 인정해온 실재를 가상 현
실을 위해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증강현실(AR) 기술
을 개발하고 가상현실 기술을 개선하여 점점 더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가상
세계의 부상은 비디오 게임으로 시작되었고, 오늘날에는 (헤드셋을 쓰고, 모니터 화면 위에서
구현되는) 온라인 게임과 가상 세계로 연장된다. 우리의 기술적 인터페이스는 계속 개선되고
있고,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입증된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의 신경을 네트워크에 직접 접속하
는 방식인] 뉴로링크(Neurolink)와 같은 혁신적 개발들이 바로 깁슨, 스티븐슨, 또는 클라인의
공상과학 소설들이 약속했던 것과 유사한 기회들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현재] 기술은 아직 완전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경험하게 만들어주지


는 못하며, 아직 우리의 뇌를 직접 컴퓨터에 접속시킬 수 있는 단계도 아니다. 하지만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겉보기에는 가상 세계의 내용뿐만 아니라 문화
에서도 그때보다 몇 광년은 더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가상 세계란 물론 1인용 비디오 게임을
포함하지만, 내가 여기서 주로 말하고 있는 가상세계는 주로 인터넷을 활용하여 사회적 경험
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게임과 환경을 의미한다. 어떤 가상 세계는 한 번에 몇 명의 플레이어
만 허용하고, 다른 가상 세계는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이 공유 서버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도
록 허용한다. 어떤 가상 세계는 게임 목표, 승리 조건, 그리고 물리칠 상대를 갖고 있는 게임
이다. 다른 가상 세계는 사회적 환경이다: 즉, 함께 모여 [가상세계의] 다른 "주민"과 대화하는

1) 역자: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이란 온라인 상에서 교환되는 개인정보들을 기반으로


자본을 창출하는 자본주의를 가리키는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용자들의 정보를 제어하고 통제하는
정보기업의 역량이 필수적이다. 현재 페이스북, 구글, 유튜브 등과 같은 기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이러한 형태의 자본주의에 기반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사회학자 쇼샤나 주보
프가 처음 도입한 용어로, 2019년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김보영 역 [문학사상사, 2021])를 출판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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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구성한다. 오늘날의 가상 세계는 다크 소울(Dark Souls), 이브 온라인(Eve Online)을
포함하며, 심지어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와 같은 게임에서의 짧은 만남을 포
함한다. 그래서 기술은 멀티플레이어 가상현실을, 때로는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가상현실을 만
들어내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우리는 아직 공상과학 작가들이 예측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장래에 일어날 일로 예감하고 있다(혹은 성서 저자인 다소의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컴퓨터 화면을 통해 어둡게 예감하고 있다).

내가 가상세계와 비디오게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독교 개종자이자 신학자인 바울을 여


기로 소환하는 것은 의도가 없지는 않다. 나는 종교가 이러한 기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렌
즈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게임 기술이 세속화된 종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많은
사람들에게 비디오 게임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신화의 원천이 되었다.

종교는 항상 가상 실재들에 관여해 왔다. 우리가 상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실현할 수는 없


는 것들 말이다. 예를 들어, 마거릿 워트하임(Margaret Wertheim 1999)은 기독교의 대성당
들은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천국에 접속할 수 있는 가상환경을 제공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실한 기독교인이 성당에 들어설 때, 그들은 새로운 영역에 즉
초월적인 영광의 영역에 있는 자신들을 보게된다. 이는 종교가 어떻게 인간이 신성한 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여건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디지털
환경이 어떻게 그와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세속" 시대라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세속
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로이트가 '환상의 미래'(Future of an Illusion, 1927년)
에서 예언한 것처럼, 과학이 종교를 압살하는 시대, 그래서 이성이 믿음을 극복하는 시대를
의미하는가? 프로이트는 "신은 죽었다. ... 그리고 우리는 그를 죽였다"(1883)는 니체의 믿음을
공유했다. 니체는 신의 죽음과 함께 오는 자유를 두려워했었을 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두려
움을 탈자적(脫自的) 경이로움(ecstatic wonder)으로 물리쳤다. 그는 종교란 자연과 죽음 앞
에서 우리의 무력함에 대한 위로(consolation)일 뿐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그는 인류가
성숙해지면, 종교는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주위 도처에서 종교를 본다. 신의 죽음을


선포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 그런데 만일 종교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우
리는 세속주의란 도대체 무엇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환상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세속주의는 오해되었다. 세속주의는 종교의 종말(end)이 아니라, 오히려 절
대 진리의 종말, 즉 자신이 믿는 종교적 믿음의 확실성의 종말을 의미한다—이는 니체 자신의
어법에 어느 정도 근접하게 남아있다. 세속주의는 우리가 여러 종교와 세상을 보는 많은 방법
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우리가 이 다양한 방법들을 거의 동등한
진리값을 갖는 것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진실이라고 생각
하는 일군의 믿음들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의 믿음이 진실이고 나의 믿음은 거짓이라
고 내게 확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혹 그럴 거라고 여러분이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세속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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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속 시대에 과학과 종교는 무엇으로 구성될 것인가? 분명코 과학은 종교를 정복하
지 못했다. 오히려, 과학과 종교는 흥미로운 새로운 교차 방식을 발견했다. 스타크(Stark)와
베인브리지(Bainbridge)의 주장에 따르면, 세속 시대에 종교는 과학적 형식의 진리로 채택되
어야만 하고 그리고 종교 자신의 가르침들을 진보하는 과학과 기술의 빛에서 적응시켜야 한다
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1986). 모든 종교들은 이러한 실천에 참여하고, 여기에는
전통 종교와 신종교 운동들(new religious movements) 모두가 포함된다. 그러나 비록 종교
가 나의 설정이자 분석을 위한 구조라고해도, 나는 전통 종교의 신자들이 가상 세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 대신, 나는 가상세계들이 어떻게 전통 종교를 대체하고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종교적 동기들을 만들어내고 종교적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관
심이 있다. 즉, 과학을 활용하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를 활용하는 기술에 대해 논의하
고자 한다.

세속 세계에서는 비종교적 실천들과 산물들이 종교적 효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데


이비드 치데스터(David Chidester 2005)는 이를 “진정한 가짜”(authentic fakes)라고 묘사한
다. 이는 사기라는 의미에서 가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데스터가 묘사하는 것은
코카콜라와 미국의 야구 스포츠와 같은 완전히 세속적인 제도와 사물인데, 그는 이것들이 어
떻게 예전에 제도 종교들이 만들어내던 효과들을 (그것들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다: 윤리, 신화적 이야기들, 공동체, 그리고 그 외 다수 등의 것들을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의
미에서 나는 이제 가상 세계를 종교적인 것으로 묘사할 것이다. 즉 나는 가상 세계와 (온라인)
비디오 게임이 제도종교와 어떤 연관성을 갖지 않은 채 전통 종교의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다.

가상 세계는 일종의 세속 종교를 허용한다. 게이머들은 윤리에 대해 토론하고, 개인의 자기


이해를 발전시키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초월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바로 인간의
역사적 경험에서 종교를 설득력 있고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경험들이다. 이제 그 경험들
이 온라인에 접속하는 삶의 문화적 힘에 기여한다. 이 경험들이 바로 내가 이 강연을 시작하
면서 언급한, 공상과학 소설이 약속했던 바로 그 기회들이다. 『뉴로맨서』, 『스노우 크래쉬』,
그리고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2)은 모두 중요한 의미에서 가상 세계의 종교
적 본성을 탐구하는 작업들이다. 이제 게임과 게임 문화로 눈을 돌려 가상 세계가 현대 대중
문화의 중심이 되는 신화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또한 세계가 지금껏 경험했던 가장 국제적
이고, 교차-문화적인 신화 체계들 중 하나인 초월의 신화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변론할 것이
다. 가상 세계는 우리에게 초월을 약속한다.

2. 가상 세계와 비디오 게임의 세속적인 종교

내가 가상 세계를 종교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마도 여러분은 문득 "그런데


이 사람이 말하는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떠올릴 것이다. 토론의 용어와 규칙들을 규

2) 역자 - 소설가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18년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게임이 사람들의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2045년
의 미래를 배경으로 가상현실 세계의 의미와 목적을 물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적 삶의 공생
(sympoiesis) 가능성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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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지 않은 채, 이렇게 터무니없는 주장을 어떻게 변론할 수 있을까? (라고 여러분들이 생각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여러분이 맞다. 그렇다면 종교가 무엇인지 한번 정의해 보자. 다시 한
번, 나는 데이비드 치데스터를 따라 종교를 "초인(superhuman)과 ‘인간-이하’(subhuman)의
경계에서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협상"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만약 여러분이 이
것이 종교처럼 미끌미끌한 개념에 대한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정의라고 동의해 준다면, 이야
기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이 정의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협상”(negotiation)이라는 말로 치데스터가 의미하는
것은, 내가 믿기로, 바로 우리의 윤리, 교리, 의식, 본문, 상징, 예술, 습관 등 우리가 참여하
는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데, 그 안에서 우리는 “초인과 인간-이하의 경계에서 인간이란 무엇
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한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는 것
이 아니다. 그런 일은 종교적인 과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과제일 것이
다. ‘인간이 된다는 것’(to be human)이 무엇일지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특별히 초인
(superhuman)과 인간-이하(subhuman)에 대한 관계들에 참여하게 될 때, 종교가 된다: 예를
들어 신들, 천사들, 악마들, 심지어 영화 <스타워즈>의 포스(Force)처럼 도처에 편만한 신비
한 힘들과 같은 것들 말이다.

가상 세계는 우리가 컴퓨터에 접속할 때 획득하는 초인적 상태와 견주어 우리를 정의할 수 있
는 분명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정의는 제의적 실천들, 윤리적인 논쟁들, 신화적 이야기들
그리고 게이머 문화의 본질적인 특징인 공동체 결성에서 일어난다.

인류의 깊은 종교적 본성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데, 여기에는 우


리가 "운"(luck)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많은 영역들을 포함한다. 무작위성을 통제하고픈 우리의
욕망이 마술적인 사고와 심지어 제의적 실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방식에 대해 잠깐 간략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던전스 앤 드래곤>(Dungoens and Dragons)과 같은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3)에서 플레이어는 좋아하는 주사위를 가지고 있으며, 주사위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주사위를 "타임아웃"에 넣는 것과 같은 다소 이상한 제의(ritual)를 수행한
다(Fine 1981). 트위터에서는 우버(Uber)를 통해 금방 차를 찾아서 타고 가는 일처럼 얼핏 임
의적 디지털 알고리즘의 결과가 행운을 얻게 해주었을 때, “#알고리즘에은혜를입
어”(#blessedbythealgorithm)라는 해쉬태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Singler 2020). 트위
터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예들은 운명의 변덕들 속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인지하는 인류의 능
력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의도적이고 심지어 대체로 제의적
(ritual)이다: 말하자면, 테이블과 온라인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특정 행동이 더 나은 결과로 이
어진다고 믿는다. 그들은 행운의 주사위, 행운의 의자 등과 같은 것을 갖는다. 거의 모든 기술
에 행운의 마법이 주입될 수 있다. 비슷하게, 게임 환경에 로그인하거나 게임 환경에서 만남
을 시작하는 의식은 마술적 주문의 모양새를 취한다. 내가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마술적 체계와 종교적 체계들 모두에는 (행위의) 결과를 개선하기 위해 의도된 제의적 주문의
실천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실천관행은 가상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3)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tabletop role-playing games)은 일종의 역할극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참여자가 말로 자신의 캐릭터의 행위를 기술한다. 게임 참여자가 자신의 캐릭터 구성에 기반하여 캐
릭터의 행위를 결정하면, 이 행위들은 게임에 설정된 공식 규칙들과 가이드라인들에 따라 성공하거나
실패하는데, 게임 참여자의 결정이 게임의 향방과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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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동체의 결성이라는 부분으로 넘어가 보자. 종교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항상 존재하는
윤리적 논쟁부터 시작해 보자.

미국에서는 비디오 게임의 윤리에 대한 시클벅적한 정치적 논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비평가들은 게임이 폭력적이면, 아이들이 폭력적인 마니아로 변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비평가들은 비디오 게임에서 섹스나 마약의 존재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비슷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Grand Theft Auto series)는 미국 문화
에서 가장 자주 비판받는 게임 중 하나였지만, 아마도 미국에서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등급매
기기 전쟁을 촉발한 것은 <모탈 컴뱃>(Mortal Kombat)4)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커뮤니
티 밖에서 들려오는 모든 거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 내에서 플레이어는 윤리에 대
해 훨씬 더 미묘한 접근을 보여준다. 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와
<스타 워즈>(Star Wars: The Old Republic)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예들을 제시하면서, 가상
세계의 게이머들이 어떻게 윤리에 대해 의미 있는 논쟁을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게임들을 활
용하여 심지어 윤리적으로 보다 성숙해 나아가는지를 예증하고자 한다.

<스타워즈>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시스(Sith, 제다이 기사들의 적5))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


기 때문에, 고문, 무고한 사람들의 살해, 그리고 악의 역할극에 대한 분노가 폭발적으로 분출
했다. 그 게임은 사람들을 인간 도덕성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으로 유혹해 가는가? 가
상 게임에서 고문에 참여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어들을 실제 세계의 폭력으로 이끌어가는가?
나의 학생인 냇 래신(Nat Recine)과 함께, 369명의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게임 선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약 15%의 선수들만이 논플레이어 캐릭터들
(non-player characters, NPC)6)을 고문했다고 인정했고, 또한 고문을 했다고 인정한 그 소
수의 플레이어들은 도덕적 질문들을 스스로 숙고하는 행동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스타워즈: 올드 리퍼블릭>(Star Wars: The Old Republic)은 그저 "게임
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거의 절반은 논플레이어 캐릭터를 고문하
는 것을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5점 만점에 1점으로 답했다. (이는 그들이
“전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고문은 고문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고한 논
플레이어 캐릭터들을 고문하는 사악한 시스(Sith) 캐릭터를 조장하는 보상 시스템에 맞서, 거
의 어떤 플레이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사악한 편에 가담하기로 선택한 게임
에서조차 사악한 선택을 하는 것의 어려움을 서술하면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느낀다고 언급한다.

게이머들이 일반적으로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 관리

4) 역자 -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격투게임 종류인데, 게임화면으로 전달되는 폭력성이 너무 강해


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그래서 세가와 닌텐도 사장들은 의회청문회까지 불려나가 증언을 해야 했
는데, 이게 오히려 두 게임사에 막대한 광고효과를 가져다 주어 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5) 역자 – 스타워즈는 선과 악의 세력이 우주의 패권을 놓고 싸우는 스토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제
다이 기사들은 우주의 평화를 지키고자 하고, 시스(Sith)는 ‘포스’의 악한 측면에 사로잡혀 흑화(黑化)
한 악의 기사들을 가리킨다.
6) 역자 – 논플레이어 캐릭터(nonplayer character)는 컴퓨터 게임 속에서 인간 유저가 조종하는 캐릭
터말고 컴퓨터의 설정 상 나오는 등장인물 캐릭터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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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moral management strategies)이라 불리는 것을 활용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스
타워즈: 올드 리펴블릭>의 플레이어들이 NPC를 고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특별히 흥미롭다.
"그들이 나를 먼저 공격했다"거나 "그들이 내 동맹들을 공격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게임 속에
서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며, 플레이어들은 심리 연구자나 사
회학 연구자들과의 대화에서도 이러한 전략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 “난 나쁜
놈 편이다”라는 것만으로는 명백히 비윤리적인 행동에 가담하는 것을 정당화하기에는 불충분
한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게임 속에서 도덕적 선택들을 관리하는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그리고 대개 그 한계들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윤리적 논쟁들에 노출된다.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일상의 삶에서 친사회적 행동이나 반사회
적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제 데이터를 얻기 어려울 것이고, 그래서 나는
게임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비록 그럴 수 있는 가능성
이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유명한 게임 디자이너 리처드 바틀(Richard Bartle 2003)7)은
“가상세계가 선을 위한 힘이라는 나의 주장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한 결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주로 근거한다. 이는 가상 세계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을 내가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강의에서, 저의
원초적 목적은 바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디오 게임을 통해 윤리를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적절한 행동 윤리에 대하여 스스로와 대화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우리가 윤리적 행위에서 보다 사려깊게 성숙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이다. 물론 대부분의 윤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배웠지만, 윤리적 행동에 대한
성숙한 성찰은 나이가 들면 필요한 필수적인 부분이며, 바로 그것이 종교적 삶의 보편적 양상
이다. 게임은 그러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와 같은 게임들의 제작은 국제법과 국내


법, 자본주의 시장, 그리고 게임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환경적인 비용이라는 맥락에서 일어난
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다른 많은 게임들처럼, <월드 오브 워크래프
트>는 모욕적인 인종적, 민족적, 성적 그리고 성역할적 고정관념들을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
에, 나는 그 게임이 윤리적 관점에서 순전한 성공이라는 주장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설계자들은 윤리적 문제를 고려하는


데 확실한 보상을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이 게임은 정치적 부패, 자본주의 경제, 그리고 환경
오염에 대한 비판들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의 이야기 줄거리를 따라 진행해 나가면
서, 자신들과 관계한 동맹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퀘스트들(quests), 즉 모험들에 참여한
다. 이 모험들의 대다수는 리더의 동기들이 부정직하고, 고결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악하기까
지 하다는 사실을 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들이 거기에 비윤리적인 정치세력들이 작용하고 있
음을 깨달음에 따라, 그들은 또한 (스팀휠 카르텔Steamwheedle Cartel과 같은) 중립적 단체
들의 모험들을 경험하는데, 이들은 돈을 우상으로 만듬으로 인한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다. 말하자면, 플레이어들은 거기에 돈을 숭배하고, 자본주의를 자신들의 종교로 삼는 NPC들
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그리고 그 게임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많은 퀘스트들은 환경

7) 바틀은 1978년 최초의 다중-사용자 게임인 던전(Multi-Usser Dungeon, MUD)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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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를 가리킨다: 채굴, 숲의 개간, 그리고 과도한 사냥이 치러야 할 대가인 것이다. 게임에는
분명히 플레이어가 사냥, 채굴, 또는 그런 연관된 작업들에 참여해야 하는 측면들이 존재하기
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게임의 퀘스트들과 스토리라인이 보여주는 전반적인 특성은
그 가상 세계 거주자들이 천연 자원을 과도하게 수확할 때, 그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는 다름
아닌 고난(suffering)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다양한 도덕 체계들은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차이를 만든다. 내가


이끈 한 서베이에 따르면, 20%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전사,
마법사, 사제 등의) 특정한 캐릭터를 선호하고, 29%의 플레이어들은 이데올로기나 세계관 때
문에 특정 인종을 선호한다.

몇 세기 전만 해도 윤리적 반성의 기수는 의심의 여지 없이 종교였을 것이고, 실로 사회적 관


계와 공동체 구성의 전체가 종교적 삶으로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다. 만약 외부인이 중세 마을
에 도착한다면, 지역의 종교를 공유하도록 하는 일은 그 공동체로 즉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
할 것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그 지역의 종교를 저버리는 일은 곧 사회적 삶으로부
터 거의 완전한 파문(excommunication)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많은 방식들을 가지고 있지만, 상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한때 종교 기관
들에 부여되었던 권위를 빌려 그렇게 할 것이다. 가상 세계에서 커뮤니티는 디지털적 삶의 핵
심적 특징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길드에 가입한다(전체
설문 응답자 중 78%는 그들의 게임 캐릭터들 전부가 한 두 길드에 속해 있다고 응답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특성이 개인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파제 클랜”(Faze Clan)과 같은 유명한 게임 그룹은 게임 플레이어의 공동체로서, 트위
치나 소셜 미디어의 소위 ‘팔로어들’처럼 보다 광의의 공동체들에게 신뢰할만한 권위를 갖는
다. 게이머와 가상세계 거주자들은 기존의 일상 생활에서도 길드메이트와 디지털 커뮤니티 멤
버들과 연결되기를 즐기는 편인데, 아직 가장 친밀한 게임 공동체를 찾지 못한 70%의 응답자
들은 그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바라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상 커뮤니티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가속화시켰다. 나는


그러한 커뮤니티들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가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다. 단지 가상 세계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시작되었고, 그 커뮤니티들의 연대가 대부분 거
기서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거 10대들이 하던 일
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한때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거의 모든 16세 미국 청소
년들에게 우선 순위였지만, 오늘날에는 운전할 줄도 모르는 고등학교와 대학생들이 있으며,
심지어 면허를 갖고 있는 학생들은 더 적다. 십대들은 파티와 마약에 대신, 온라인 게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는 그들의 미래 사회 활동들이 온라인 세계와 온라인 활동을 계속 활
용할 것임을 암시한다.

3. 가상적 초월(virtual transcendence)

가상 세계들은 한때 제도권 종교의 배타적 영역이었던 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나는 종교와 관


련된 특정의 실천들, 즉 제의, 윤리적인 논쟁, 공동체 구성을 논의했지만, 이제 나는 거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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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종교적인 영역, 즉 초월성의 추구를 고려해 보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초인(the
superhuman)과 연관하여 인간의 의미를 추구하는 치데스터의 핵심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초
월적 경험이 얼마나 종교적인지를 거의 필연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 경험의 근원이 무엇이
든지 간에 말이다. 제 연구 작업에서 반복되는 부분은 기술적 초월에서 창발하는 종교와 과학
의 교차이다. 가상세계는 초능력들에서 서사적인 승리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는 바로 인간정신들을 업로드할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초월에서 기회들이 연속되도록
해주고 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가상 세계에서 우리는 기존의 현실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콘솔 게임과 같은 기초적인 비디오 게임에서, 우리는 마법 주문에서 레이저 총까지 무
한한 수의 불가능한 힘을 얻는다. 가상세계에서 우리는 죽음을 정복한다: <세컨드 라이
프>(Second Life)와 같은 세계에서는 죽음이 전혀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죽은 후에 부활할
능력을 갖는다. 우리는 늙지 않고, 죽지도 않으며, 영웅적인 공적들을 성취할 수 있다. 1990
년대 가상현실 모델링 언어(virtual reality modeling language, VRML)를 공동발명한 마크
페세(Marc Pesce)는 VR 환경을 “정말로 우리 모두가 천사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그런 상태, 즉 신성한 존재의 상태”라고 묘사했다. 동시에, VR 아티스트 니콜 스텐저스
(Nicole Stengers)는 “우리가 끼고 있는 데이터 장갑(data glove8))의 반대편에서 우리는 움
직이는 색색의 빛의 피조물이 되어, 황금 입자와 더불어 고동친다. ... 우리 모두는 천사들이
될 것이고, 그리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말을 정의하든 간에) 메타버스(the Metaverse)에서 영웅들이 된다는 것은


가상 세계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들의 한 측면일 뿐이
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는 비디오 게임 플레이어가 어떻게 은하를 정복하거나
한 민족의 구세주가 되는지를 생각해 볼 때 명백하다. 그런데 가상 세계가 새로운 형태의 정
체성으로 문을 열어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성을 바꾸어, 우
리의 생물학적 몸이 용납하지 않는 어떤 다른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제시하고, 정체성을 수행
하도록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상 세계에서 자신들이 다소 사교적이 되었음을 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키보드나 콘솔을 통해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자신을 가상 세계의 인물로 보는
본질적인 방식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만약 내가 여성으로
서 [게임에 접속하고 참여하여] “플레이”한다면, 나는 (물론 완전히는 아니지만) 많은 측면들
에서 세계를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가상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은 마치 내가 여
성인 것처럼 대우할 것이다. 만약 내가 로봇이나 용으로 가상 세계에 접속해 들어간다면, 나
는 그 과정에서 내 자아 전체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가상 세계는 우리가 우리
의 몸과 정체성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한다: 초인적인 능력들을 획득하고, 외모를 바꾸고, 다른
삶의 양식과 동일시하면서 말이다. 이 천사가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은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상
당한 매력을 갖는다.

심지어 우리가 다른 성격과 힘을 입게 되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새로운 역할

8) 역자 – 가상 실재(virtual reality)의 상을 조작하기 위해 끼는, 센서가 부착된 데이터 입력용 장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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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떠맡는다. 신화적인 이야기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우주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떠맡게 된
다. 비디오 게임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이야기와 연관이 지어지고, 심지어 중요해진다.
온라인 세계의 거주자들은 그들이 어떤 종류의 신화적인 이야기를 중시하는지 안다. <월드 오
브 워크래프트> 플레이어들 중 23%만이 제도권 종교인이라고 주장했으며, 45%는 “전혀 아니
다”고 답했다(이는 7점 만점을 기준으로 1점으로 스스로를 평가했다는 것을 말한다). 83%의
주요 다수는 기도를 포함하여 한 주일에 종교활동에 소비하는 시간이 0라고 답했다. 한편,
90% 이상의 응답자가 공상과학 소설 즉 SF를 읽고 있고, 87%는 판타지 소설을 읽는다고 답
했다: 그렇게 그들은 신화적인 텍스트를 가지고 있지만, 이 텍스트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종
교적이지는 않다. 성경이 공상과학 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텍스트 중 하나임을 감안할 때
(Bainbridge, 1986), 게이머들이 전통적인 종교 공동체로부터 어떻게 자신들을 구별해내고 있
는지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게이머들이 즐기는 내러티브의 종류는 본성상 판타지
적이다. 책에서 여러분은 도피적인 환상의 순간을 읽고 경험함으로써 그러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을 구동할 수도 있다.
일부 가상 환경에서는 심지어 내러티브 자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신체, 마법의 힘, 그리고 심지어 우주적 의미를 향한 이러
한 욕망은 가상 세계들을 서술하는 많은 미래주의 내러티브들 속에 싸여있다. 1970년대 초
생물학자 조지 마틴(George Martin, 1971)은 우리의 마음을 기계로 업로드할 수 있다고 제안
했는데, 이는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이 1978년 에세이에서 처음 발표했고,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출판한 책들에서 얻은 생각인데, 매우 견고한 논리를 기반으로
전개한다. 모라벡은 이전에는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거의 독점적으로 옹호되었던 생각들을 과
학적으로 포장하였다. 모라벡은 주장하기를, 우리의 컴퓨터들이 충분히 강력해지면, 우리는 무
한한 수의 시뮬레이션 실재들을 구축하여, 역사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환경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모라벡과 여러 사람들이 믿는 바처럼, 우리가 인간 정신의 정보 콘텐츠를 컴퓨
터로 복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실상 우리의 정신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가
상 세계로 업로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세계는 지구처럼 보일 수도, 화성처럼 보일수도,
아니면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올림포스 산처럼 보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세계를 만들고, 인간의 정신을 그 세계로 전송함으로서, 우


리는 인간 조건의 완전한 초월을 이룰 것이다. 우리는 가상 세계의 불멸의 거주자가 되어, 아
마도 한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넘나들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 연구자 짐 블라스코비치(Jim
Blascovich)와 제레미 베일렌슨(Jeremy Bailenson)은 그들의 연구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가상
세계 아바타가 수세기 동안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주목한다
(2011). 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컨 라이프> 사용자의 50% 이상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
능할 경우, 가상 세계에 자신들의 마음을 업로드할 것을 고려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실, 가
상 세계 설계자들은 그러한 목표와 행보를 같이한다. <세컨드 라이프>의 설립자인 필립 로제
데일(Philip Rosedale)은 “나는 우리가 죽을 것이고, .... 뼈다구와 해골에 갇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끙끙 앓아 왔다. 이는 좋은 성과가 아니며, 좋은 상황도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회
자된다(Au 2008). 그는 언론인 팀 게스트(Tim Guest 2007)에게 “우리가 몸을 버려두고, 마
음을 가상현실로 업로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주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은 게임 설계자를 넘어 사용자들에게까지 확산된다. <세컨 라이프> 유저들 중 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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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 라이프>와 그 외 다른 노력들이 부분적으로는 마침내 업로드된 실존으로 살아가기 위
한 토대”라고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가상 세계의 많은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믿음인데, 바로 가상


세계들이 초월의 궁극적 형태를 약속한다는 믿음, 즉 한스 모라벡과 그 외 여러 미래주의 옹
호자들이 약속했던 믿음이다. 가상세계의 초월적 경험은 초능력과 더불어 시작하지만, 이윽고
초생명력(super lives)으로 발전해 나아간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꿀 수 있고 그리고
우리가 세계에 스스로를 어떻게 보여줄지를 선택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의미로 풍성한 삶
을 창조할 수 있다: 우리의 행위들은 중요해진다. 이는 비단 비디도게임들 안에 논플레이어
캐릭터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메타버스와 오아시스의 공상과학소설이 전하
는 약속들에 대한 믿음을 고취하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내지만, 또한 소위 “특이
점”(Singularity) 옹호자들과 우주의 미래가 디지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약속들에
대한 믿음도 만들어낸다.

4. 결론

가상 세계들은 단지 놀이터 그 이상이다; 그것들은 현대의 종교성을 위한 자원이고, 개인이나


집단의 종교를 위한 기술이자 장소이다. 가상 세계에서,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고, 윤리적 행위
를 토론하고, 우리 자신을 재발명하고, 신화적인 이야기들에 동참하고, 개인의 초월을 추구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과 메타버스는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이 제가 시작한 공상 과학 소설 작가
들이 불러온 용어들이다: 특별히 나는 이들 중 윌리엄 깁슨과 닐 스티븐슨과 더불어 이 글을
시작했었다. 이러한 용어들, 특별히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는 새로운 천상의 영역을 우리의
컴퓨터라는 영역에 구축하기 위해(circumscribe) 발명되었다. 따라서 그 이후의 기술발전이
우리를 점차 성스러운 경험의 추구로 몰아갔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가상 세계는 비디오 게임이다. 하지만 (가상세계를 구현하려는) 예비적 노력들


은 우리의 일과 교육을 가상 환경으로 전환하는데 집중되어왔다. 이는—구글의 실패할 운명이
었던 구글 글래스 프로젝트나 메타(Meta)가 시도하는 그와 유사한 기술이 전하는 최근의 약속
과 같은—증강현실(augmented reality)를 통해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스크린에 컴퓨터가
실현한 환경을 통해 구현되거나 혹은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처럼 가상현실 헤드셋을
쓰고 실현될 수도 있다.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은 우리에게 미래가 디지털이라고 약속한다. 실
리콘 밸리는 우리에게 미래가 디지털이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가상현실이 가져다 주는 종교적
만족은 우리에게 그들의 마술적 주문으로 불러 일으킨 세계에 동참하고 손짓한다. 21세기 초,
가상 세계들 속에서 디지털 초월을 향한 추구보다 사회에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이데올로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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