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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별제귀선 (別制龜船) ' 연구
이순신의 ‘별제귀선 (別制龜船) ' 연구
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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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논문
이순신의 ‘별제귀선(別制龜船)’ 연구
-구조와 전술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영상학과
홍 순 구
2017년 8월
이순신의 ‘별제귀선(
別制龜船)’연구
-구조와 전술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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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장 인 규
2
017
년 8
월
홍익대학교 대학원
영상학과
홍 순 구
홍순구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준함
홍익대학교 대학원
목 차
국문초록 ························································································································ ⅴ
표 목차 ·························································································································· ⅹ
그림 목차 ······················································································································ ⅹ
Ⅰ. 서 론 ············································································································ 1
1. 문제제기 ············································································································ 5
2. 연구문제 ············································································································ 8
3. 연구방법 및 범위 ···························································································· 11
4. 논문의 구성 ······································································································ 15
5. 선행연구의 조사 및 검토 ·············································································· 16
Ⅱ. 이론적 배경 ································································································ 19
1. 거북선에 관한 사료 ························································································ 19
1.1.『태종실록(太宗實錄)』 ········································································· 19
1.2.『난중일기(亂中日記)』 ········································································· 19
1.3.『임진장초(壬辰狀草)』 ········································································· 20
1.3.1. 제2차 당항포 등 네 곳의 승첩을 아뢰는 계본
[二度唐項浦等四處勝捷啓本]」 ···················································· 20
1.3.2. 해전과 육전에 관한 일을 자세히 아뢰는 계본
[條陳水陸戰事狀]」 ········································································ 21
1.4. 이분(李芬)의 행록 ················································································ 21
1.5.『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22
1.6.『징비록(懲毖錄)』 ················································································· 22
1.7.『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 23
i
1.8. 이순신 종가 귀선도(龜船圖) ······························································ 27
2. 별제귀선의 도안과 모형복원 ········································································ 29
2.1. 도안 ··········································································································· 29
2.2. 모형 복원 ································································································· 35
ii
Ⅴ. 조선시대 거북선 분석 ············································································ 122
1. 기본구조 및 유형 ························································································· 122
2. 별제귀선의 차별적 특징 ············································································· 125
3. 거북선의 변천 ······························································································· 126
Ⅵ. 결론 ············································································································ 129
1. 결론 및 연구결과 요약 ·············································································· 129
2. 연구의 한계 및 제언 ·················································································· 133
iii
국 문 초 록
v
임진왜란 이순신 거북선의 구조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그림이나 치수는 전해
지지 않기 때문에 거북선 원형 연구는 임진왜란 200여년 후의 거북선인 『이
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는 통제영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림의 해석과 임진왜
란 관련 사료의 연구로 시작된다. 거북선은 해전에서 사용되는 전선(戰船)으
로 물리적인 구조와 형태를 갖는다. 따라서 연구결과는 구체적 형상의 시각화
된 결과물의 제시가 요구되지만 그동안의 거북선 연구는 문헌중심의 연구로
주장만 있고 구체적인 대안제시가 없어 거북선 원형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현재 복원된 거북선들의 구조와 형태가 임진왜란 해전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원형 연구는 『이충무공전서』의 두 거북선 그림의 해석에 한
정되어 왔고 고증되지 않은 연구결과를 거북선 복원의 설계 자료로 사용되었
다는 것을 선행연구 검토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이순신 거북선의 구조와 전술에 대해 구체적인 연구결과를 제시
하기 위해 사료의 시각화에 기반 해서 분석하였다. 거북선 그림으로는 통제영
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이덕홍(李德弘)의 귀갑선도(龜甲船圖), 이순신 종가의
귀선도(龜船圖)를 3D 컴퓨터 그래픽 모델로 시각화시키고 시뮬레이션으로 사
료의 내용을 고증하는 연구방법을 적용하였다.
이덕홍의 귀갑선도는 우리나라 현존 최초의 거북선 그림이다. 1592년 이순
신이 거북선으로 해전에서 승리하고 있을 때 왕세자를 호종(扈從)했던 이덕홍
이 국란극복의 대책으로 귀갑선의 전법과 이로움을 왕세자에게 상소문으로 올
리고 1593년에는 왕에게 올린 상소문에 귀갑선의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한 구
상도까지 첨부해 귀갑선 제작을 건의하였다. 이 구상도는 아주 단순하게 표현
된 구상도 수준의 표현이지만 거북선 전술의 설명문에는 왜적의 철저한 분석
과 거북선의 기본구조에 대한 당대의 지식이 모두 반영된 내용들을 담고 있어
3D 컴퓨터 그래픽 모델로 복원해 거북선의 기본구조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이
론적 근거를 도출할 수 있었다.
vi
거북선의 구조해석에서 층수를 나타내는 높이와 덮개인 개판(蓋板)의 구조
는 원형연구의 첫 번째 분석대상이다. 현재 사료에 기록된 거북선의 높이에
관한 치수는 『이충무공전서』의 통제영 거북선 설명문에 ‘현란에서 패란까지
의 높이는 4.3척(130cm)’이라는 치수만 있고 전체 높이는 기록에 없다.
거북선이 2층 구조인지 3층 구조인지의 논쟁은 4.3척의 해석에 따라 층수
가 달라진 결과였다. 거북선이 학술적으로 연구되면서 거북선 높이에 관한 주
장들은 분명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양립되어왔던 상황에서 본 연구
자는 2015년 4.3척 높이해석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적 근거를 논문으로 제시
하였다. 방패높이가 4.3척으로 낮은 이유는 방패 밑에 위치하는 현란이 멍에
와 걸침턱맞춤으로 되어있어 기본적으로 높게 위치하고 또한 왜선과의 충돌로
부터 방패가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패의 높이를 낮게 하고 두꺼운
현란의 높이를 더 높여 선체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치수이었다.
2층 구조 거북선의 근거는 현란에서 패란까지의 높이 4.3척(130cm)을 2층
의 현측 높이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신장 160cm 정도의 수군이 서있기도 어
려운 낮은 높이로 인해 노군들이 현측에서 노를 젓기 위해서는 머리위로 공간
이 있어야 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2층 천장인 개판을 둥근 구조로 덮어 2층
구조로 복원하였다. 결론적으로 현란-방패-패란이 고정되는 결구방법을 고려
하지 않고 4.3척의 치수를 2층 현측에 그대로 적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층 구조 거북선이 이순신 거북선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결정적인 근거는 통
제영 거북선의 용머리 포혈과 개판 좌우에 있는 포혈이다. 이순신은 용머리
포혈에서 현자포로 철환을 쏘았다고 기록하고 있어 용머리를 2층 전면에 고정
시켜야 하지만 2층 전면에는 닻과 닻 물래가 위치해 있어 용머리를 설치할 수
없고 높게 설치하면 화포를 사용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개판에는 포
혈을 뚫어도 개판이 높아 화포를 배치할 수 없기 때문에 복원된 2층 구조 거
북선에는 개판에 포혈이 없는 것이다.
vii
이덕홍의 귀갑선이 2층 판옥 구조라는 것은 구상도와 전법의 설명에서 알
수 있다. 개판은 사다리꼴 구조로 쇠 송곳은 경사진 선수전면, 개판 상단, 경
사진 선미의 위치에 그려져 있는데 귀갑선도가 거북선 연구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개판의 사다리꼴 구조와 쇠 송곳의 위치에 있다. 거북선 사료의 기록에
는 거북선 앞머리가 ‘뾰족하다’는 표현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데 1596년
『선조실록』에 이순신 거북선은 ‘쇠못을 옆과 양머리에 꽂았다’는 기록이 있
고, 1748년 이언섭의 장계에 거북선의 ‘앞머리는 가파르고 뾰족하다’는 형태
를 묘사하고 있다. 1795년 통제영,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3D 컴퓨터 그래픽
모델 시뮬레이션에서도 개판은 사다리꼴 구조로 분석되어 모든 거북선의 기본
구조는 선수 전면이 뾰족한 사다리꼴 구조라는 것이 규명되었다.
거북선의 개판이 사다리꼴의 구조를 갖는 것은 속도와 안정된 복원력을 위
한 돌격선의 특징에 있다. 거북선은 적진 속을 파고들어 임무를 수행하기 때
문에 빠른 이동속도가 요구된다. 또한 방호를 위해 사방을 판자로 높게 막은
구조로 인해 행선할 때 공기의 저항이 크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속도를 높이고 바람의 영향을 제어하기 위해서 거북선은 기본적인 구조로 가
파른 경사의 사다리꼴 구조를 개판에 적용했다.
개판이 전후좌우로 사다리꼴로 상단이 좁아진 구조는 개판의 무게를 줄여
안정된 복원력을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거북선의 전체구조는 상하가 대칭인
‘오뚝이’의 형상으로 거북선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1592년 이순신이 장계에 기록한 ‘용머리를 붙이고 그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였
다’는 별제귀선(別制龜船)은 3층 구조이며, 개판의 옆과 양머리에 쇠 송곳을
꽂은 사다리꼴 구조로 상하가 대칭인 전형적인 ‘오뚝이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
다.
1591년 이순신은 왜적이 침략을 것을 예상하고 강력한 신무기의 조총과 왜
적의 등선과 백병전, 대규모의 군선이 참전한다는 왜적의 실태를 파악하고 일
viii
당백의 돌격선 기능을 갖춘 거북선을 구상하였다. 선수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으로 화포를 쏠 수 있고, 왜적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개판에는 칼과 송곳
을 꽂았으며, 선미에는 거북꼬리를 만들어 붙이고 그 밑에도 화포를 설치하였
다. 선내에는 천자, 지자, 현자, 황자포로 무장하였으며, 외형은 신령한 현무의
형상을 거북선 구조에 적용하였다. 현무의 거북선 형상은 조선 수군에게는 막
강한 힘을 지닌 신구(神龜)로 용맹함을 주고 적군에게는 두려움과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심리적 요소를 거북선의 구조에 적용했다는 것은 구조와 기능의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의 별제귀선은 범노선으로 돛대를 눕히고 세우기 위한 개판 중앙에
위치한 1.5척 너비의 긴 통로는 돛과 돛대의 운용과 사방으로 막혀있는 선내
의 채광 및 통풍창의 기능으로 화포의 화약연기가 2층 천장의 중앙통로를 거
쳐 3층 개판의 긴 통로로 배출되는 다목적 용도의 과학적인 구조로 설계되었
다.
전술적인 혁신으로 이순신의 별제귀선은 전·후진 노 젓기가 가능하고, 낮은
2층의 위치에서 대전(大箭)과 탄환으로 왜선을 깨트릴 수 있도록 방패에는 장
방형의 패문과 포혈이 함께 있어 필요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구조였다.
용머리 포혈과 개판 좌우 현측에 위치한 12개의 화포, 꼬리 밑의 화포에서
는 철환을 쏴서 선상에 있는 적군의 조총을 한 번에 무력화 시키고 대량살상
이 가능한 돌격선이 별제귀선이었다.
현재 별제귀선의 학문적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별제귀선은 다양한 영역의
학문적 연구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이 연구가 이순신 별제귀선의 실체를 밝
히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별제귀선이 승리의 그 바다에 재현될 수 있도
록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가 있기를 기대한다.
ix
표목차
그림목차
x
<그림 22> 장학근 거북선의 횡단면도(1995) ··································································· 38
<그림 23> 장학근 거북선의 측면도 ···················································································· 38
<그림 24> 4.3척 치수 해석에 의한 층수 높이와 개판의 구조 ···································· 40
<그림 25> 조성도의 이순신 별제귀선 복원도 ·································································· 41
<그림 26> 김재근의 거북선 중앙단면도 ············································································ 42
<그림 27> 김재근의 통제영 거북선 2층 구조 단면도 ···················································· 42
<그림 28> 이원식의 1795년 전라좌수영 거북선 구조도 ··············································· 43
<그림 29> 이원식의 통제영 거북선 횡단면도 ·································································· 44
<그림 30> 이원식의 임진왜란 거북선 복원 우측면도 ···················································· 44
<그림 31> 남천우의 통제영 거북선 복원도 ······································································ 46
<그림 32> 남천우의 통제영거북선 복원도 ········································································ 46
<그림 33> 장학근의 3층 구조 단면도 ················································································ 48
<그림 34> 정진술의 3층 구조 복원도 ·············································································· 49
<그림 35> 부분상갑판 3층 구조 거북선의 특징 ······························································ 50
<그림 36> 부분상갑판 3층 구조 내부 출처: 경남 사천 ················································ 50
<그림 37> 표현의 오류부분 ·································································································· 52
<그림 38> 3D 모델재현 ········································································································· 52
<그림 39> 중앙통로의 수정 모델 ························································································ 52
<그림 40> 통제영 거북선 개판의 해석 ·············································································· 53
<그림 41> 역원근법 곡선 표현의 특징 ·············································································· 54
<그림 42> 수정된 개판 구조 ································································································ 54
<그림 43> 3D 모델로 복원된 통제영 거북선 ··································································· 54
<그림 44> 판옥선(전선)과 통제영 거북선의 현란과 멍에의 결구 ······························ 55
<그림 45>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현란과 멍에의 결구 ···················································· 55
<그림 46> 이순신 종가 귀선도2의 현란과 멍에의 결구 ·············································· 55
<그림 47> 결구의 차이에 의한 현란 상단의 높이 변화 ················································ 57
<그림 48> 현란, 멍에의 장부맞춤과 2층 높이 ························································ 58
<그림 49> 현란과 멍에의 걸침턱맞춤과 2층 높이 ·························································· 58
<그림 50> 전라좌수영 거북선 ······························································································ 59
<그림 51> 제기도설의 문양 표현과 현전제기 ·································································· 60
<그림 52> 제기도설의 입체표현 ·························································································· 61
<그림 53>『화기도감의궤』백자총통 ·················································································· 62
<그림 54> 개판 상단의 거북무늬 삭제 ·············································································· 63
<그림 55> 개판 상단의 외곽선 삭제 ·················································································· 63
xi
<그림 56> 개판상단의 구조 ·································································································· 64
<그림 57> 개판전면의 수직과 사선구조의 비교 ······························································ 65
<그림 58> 통영의 전라좌수영 ······························································································ 65
<그림 59> 3D 모델로 재현된 전라좌수영 거북선 개판구조 ········································· 66
<그림 61> 3D 모델로 재현된 전라좌수영 거북선 ··························································· 67
<그림 61> 개판의 거북무늬와 흰줄 ···················································································· 67
<그림 62>『간재집』의 귀갑선도 ························································································ 70
<그림 63> 귀갑선의 구조 ······································································································ 72
<그림 64> 이덕홍의 귀갑선 복원도 ···················································································· 73
<그림 65> 귀갑선의 횡단면 내부구조 ················································································ 73
<그림 66> 이덕홍의 2층 판옥구조 귀갑선 복원도 ·························································· 75
<그림 67> 별제귀선의 치수1 (단위: 尺) ·········································································· 78
<그림 68> 별제귀선의 치수2 ································································································ 79
<그림 69> 별제귀선의 부재별 명칭 ···················································································· 80
<그림 71> 엎드린 자세의 거북이 형상 ·············································································· 82
<그림 71> 측면도 ···················································································································· 83
<그림 72> 정면도, 배면도 ····································································································· 83
<그림 73> 개판 출입구와 십자로 ························································································ 84
<그림 74> 개판의 구조와 칼·송곳 위치 ············································································· 87
<그림 75> 개판의 구조와 공기·바람의 저항 ····································································· 88
<그림 76> 용머리 현자포, 대장군전의 위치 ····································································· 90
<그림 77> 조성도의 全羅左水營龜船의 舷版圖 ································································ 92
<그림 78> 미익과 포혈의 위치 출처: 전쟁기념관 ··························································· 93
<그림 79> 현무기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 95
<그림 80>『홍릉천봉주감의궤』 현무도출처: 규장각 ····················································· 95
<그림 81> 통제영 거북선의 현란 ························································································ 99
<그림 82> 수군조련도 출처: 국립진주박물관 ··································································· 99
<그림 83>『국조오례의서례』「병기도설」의 대장군전 ·············································· 100
<그림 84> 통제영 거북선, 이순신 종가 귀선도의 패문 ·············································· 101
<그림 85> 별제귀선 방패의 구조 ······················································································ 101
<그림 86> 별제귀선의 포혈, 패문, 사혈의 위치 ··························································· 102
<그림 87> 창과 사혈의 시야각 ·························································································· 105
<그림 88> 『헌성유고』의 상장식도 ················································································ 107
<그림 89> 돛대의 회전축 위치 ·························································································· 108
xii
<그림 90> 병선(兵船) 출처: 규장각 ················································································ 109
<그림 91> 조선(漕船) 출처: 규장각 ················································································ 109
<그림 92> 한국의 노 ············································································································ 110
<그림 93> 전·후진 노 젓기 구조 ······················································································ 110
<그림 94> 멍에와 방패의 위치 ·························································································· 110
<그림 95> 성가퀴의 사혈, 총안, 타구 ············································································· 113
<그림 96> 별제귀선의 방패와 개판의 구조 ···································································· 113
<그림 97> 선내의 채광, 통풍창 구조 ·············································································· 114
<그림 98> 갑판, 상갑판의 통풍창 구조 ·········································································· 115
<그림 99> 포혈을 위장한 방패의 통풍구 ········································································ 115
<그림 100> 별제귀선의 구조와 전술 ··············································································· 118
<그림 101>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상대적 크기 ····························································· 119
<그림 102> 노의 전·후진 구조와 화포의 위치 ······························································ 121
<그림 103> 귀갑선의 상하 마름모꼴 대칭구조 ····························································· 124
<그림 104> 별제귀선의 상하 마름모꼴 오뚝이 구조 ··················································· 124
<그림 105> 조선시대 거북선 연표 ··················································································· 128
xiii
Ⅰ. 서 론
1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거북선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충분한 고증의 과정이 없는 상태에서 별제귀선의 복원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져
모형이 만들어질 때마다 새로운 유형의 거북선이 창제되는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
이순신 별제귀선의 원형연구는 『이충무공전서』에서 시작된다. 권수도설에
는 통제영과 전라좌수영 두 거북선 그림과 구조에 대한 설명문이 있다. 같은
거북선 그림과 설명문이 해석을 달리해 2층과 3층 구조로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별제귀선 원형연구의 연구방식의 차이에 있다. 그동안 거북선의 층
수에 대한 해석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34년 언더우드가 거북선을 2층 구조로 해석한 근거는 서양식 노의 사용
법에 있다. 서양식 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노가 수면에 닿는 각도가 고려되
어야 하는데 낮은 1층에 노가 설치되어야 노 젓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2층 구조의 또 다른 주장은 통제영 거북선의 설명문에 2층에 해당하는 “현
란과 패란까지의 높이 4.3척(130cm)”2)을 치수해석에 근거를 두었다. 통제영
거북선 설명문에는 1층 선체의 높이 7.5척과 방패의 높이 4.3척만 기록되어있
고 거북선 전체의 높이에 관한 치수는 언급이 없다. ‘현란과 패란까지의 높이’
란 거북선 2층을 판자로 둘러싼 벽체의 높이를 말하는 것으로 2층의 높이가
4.3척이라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의 평균 신장은 161cm3)로 천장의
높이를 계산하면 130cm 높이의 천장에서 노를 젓거나 화포를 쏜다는 것은 이
해할 수 없는 치수였다. 따라서 2층 전후좌우 벽체의 높이는 4.3척이고 격군
들이 서서 노 젓기가 가능하려면 머리위에 추가적인 여유 공간이 필요했을 것
으로 해석하였다. 현재 2층 구조 거북선의 덮개인 개판이 둥근 타원형으로 만
2)『李忠武公全書』, 卷首 圖說.
3) Dong-Hoon SHIN ,Chang-Seok OH ,Yi-Suk KIM ,Young-il HWANG, Secular change in
stature of Korean people from ancient to modern periods,대한체질인류학회 학술대회 연제 초록,
Vol.54, 대한체질인류학회, 2011, p.15.
2
들어진 이유는 가장자리 현측 높이는 4.3척으로 낮고 중심부에서는 서서 활동
이 가능하도록 천장을 높게 해석해서 만들어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앞의 두
가지 근거로 제시된 2층 구조의 근거가 타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이순신의 거북선에서 유래되었다는 통제영 거북선 개판에는
있는 22개의 포혈이 그려져 있고, 용머리는 3층 선수전면 앞으로 수평으로 길
게 돌출되어 붙어있는 구조를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구조에 있다. 화포는 갑
판 바닥면에 위치하기 때문에 천장에 포혈을 뚫어도 거리가 멀어 쏠 수 없다
는 것이고, 용머리는 2층 선수전면에 닻과 닻을 감아올리는 닻 물래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용머리를 갑판 바닥에 수평으로 붙이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1975년에 처음 제시된 3층 구조는 『이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는 두 거북
선의 개판에 있는 포혈의 표현만으로도 별제귀선은 3층 구조가 명백하다고 주
장하였다.
2009년에는 ‘부분갑판 3층 구조 유형’의 거북선이 제안되었는데, 앞에서의
두 근거를 하나로 통합해 해석하였다. 그림 해석으로는 개판의 포혈 표현으로
3층 구조가 분명하고 현란에서 패란까지의 높이 즉 2층의 높이가 4.3척
(130cm)은 이해될 수 없는 치수로 노 젓기를 하는 공간 머리 위 부분은 갑판
이 비어있는 것으로 해석해 2층의 좌우 현측은 낮고, 3층에는 타원형 개판의
구조로 되면서 포혈이 아니고 활을 쏘는 구멍(射穴)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
다. 문제는 강제로 머리위의 공간을 만들면서 내부에는 완전한 3층 구조가 아
닌 부분 상갑판 3층 구조로 만들어지면서 높이는 높아졌지만 선내 중앙에 위
치해 있는 상갑판으로 인해 2층에서는 노 젓기와 화포 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공간이 좁아져 문제가 되었다.
2015년 거북선이 학술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지 80여년 만에 수수께끼의
4.3척 치수가 결구법의 분석으로 해석되었다. 4.3척 높이의 방패는 현란이라
는 부재위에 얹히는데 이 부재의 높이가 높아서 상대적으로 방패는 그만큼 낮
3
은 높이가 된 것이었다. 현재 2층 구조의 거북선은 좌우 현측의 높이를 4.3척
으로 규정하고 개판을 타원형으로 불룩하게 만든 것으로 해석의 오류로 만들
어진 거북선이다.
이순신의 별제귀선은 혁신적인 구상으로 건조되었으며 그 구조는 공격과 방
어가 가능한 대규모 전투용 돌격선이다.
본 연구에서는 사료의 시각화와 3D 컴퓨터 그래픽 시뮬레이션 연구방법으
로 이순신 별제귀선의 구조 및 전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4
1. 문제제기
5
지속되고 복원된 모형들이 타당성 있는 근거제시와 고증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6
미국 건축가로 모더니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은 1891년 세인트루이스에 세계 최초의 고층 빌딩인 웨인라이트 빌딩을 설계
하면서 20세기 건축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Form Follows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것으로 기능적 요구조건이 구조와 형태를 만든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능’과 ‘형태’의 관계에 관한 건축가의 명언은 그동안 밝히
지 못한 별제귀선의 원형과 실체에 관한 연구방법을 제시해준다.
그동안 이순신 별제귀선의 원형에 관한 연구는『이충무공전서』에 있는
1795년의 통제영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에 제한되어온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
미 형태로 완성되어 있는 200여년 후의 거북선 그림에서 200여년 이전의 기
능을 해석하는 한다는 것은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부
터는 당시에 거북선이 왜 필요했는지, 이순신 별제귀선이 해전에서 승리의 요
인으로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기능이 필요했는지 분석하면 ‘기능이 형태를 만든
다.’는 설리번의 말처럼 이순신의 지혜를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 연구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행연구와 차별화 된
연구방법을 적용한다. 선행연구의 검토에서 분석된 공통적인 특징은 문헌중심
의 분석만 있고 대안은 제시하지 못해 확장된 연구가 될 수 없었다.
거북선 관련 사료분석과 3D 컴퓨터 그래픽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연구로 그
동안 밝히지 못했던 이순신 별제귀선과 조선시대 거북선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7
2. 연구문제
[연구문제 1]
1592년 이순신 별제귀선의 도안과 모형이 1795년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유
사한 형태의 2층 구조로 제작, 활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8
[연구문제 2]
이순신의 ‘별제귀선’이 남해안에서 승전하고 있을 때 국난극복의 계책으로
이덕홍은 ‘귀갑선(龜甲船)’의 건조를 상소하는데 두 거북선은 어떤 관계가 있
고, 어떻게 다른가?
9
[연구문제 3]
임진왜란 해전에서 승전의 요인이고, 이순신이 장계에 기록한 ‘별제귀선’이
란 어떤 거북선인가?
[3-1]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3-2] 전술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3-3] 어떤 독창성을 보이는가?
10
3. 연구방법 및 범위
11
들을 참고자료로 돛대와 닻 물레를 배치한 후 내·외부의 구조를 모델로 제작
한다. 별제귀선은 전후좌우로 이동할 수 있다는 기록이 있어 화포를 사용하는
방패와 노를 젓는 노창의 구조를 분석해 전후진과 화포사용이 가능한 구조를
모델링으로 제작한다.
연구결과
3D 시뮬레이션
1800년대 이후
거북선 구조
별제귀선
12
<표 2>는 시각화 분석을 위한 연구모형으로 1592년 이순신 별제귀선은
구체적 치수나 형태의 그림은 계승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림의 분석과정으
로 이순신 별제귀선의 구조와 선형을 도출하고자 한다.
거북선은 판옥선 선체와 기본구조가 같기 때문에 1차 분석대상이 된다.
1593년의 이덕홍의 귀갑선도는 임진왜란 당시의 사료로 구상도와 귀갑선 전
술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1795년 통제영, 전라좌수영,
1800년대 이순신 종가의 거북선은 거북선의 구조에 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
할 것이다. 거북선은 항해와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부재들로 구성되지만 본
연구가 설계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 유형에 한
해 연구범위를 둔다. 『이충무공전서』의 기록에 이순신 별제귀선의 치수는
계승되고 있지 않고 가감이 있을 수 있다는 기록으로 시뮬레이션을 위해 제작
될 별제귀선의 크기는 사료의 분석에서 도출된 치수를 기준으로 한다.
별제귀선의 차별적 특성에서는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의 거북선 변천과정을 살
펴보고 이순신이 창제한 혁신적 별제귀선에 대해 분석하기로 한다.
연구범위는 거북선 관련 사료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정한다.
특히 거북선의 철갑선 문제는 이순신의 장계, 이분의 행록에는 개판위에 뾰족
한 쇠못이나 칼과 송곳을 꽂았다는 기록이 있어 연구대상에 포함되지만 별제
귀선의 철갑선 여부는 조선시대 어떤 사료에도 거북선의 전체 또는 개판을 철
사료의 시각화를 위한 3D 컴퓨터 그래픽 시뮬레이션의 프로그램은 오토데스
크(Autodesk)사의 3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마야(Maya)를 사용한다. 마야
는 가상의 공간에서 3D 공간좌표에 입체구조물을 모델링하고 재현하는 도구
적 특성으로 사용에 적합하고 입체 구조물의 치수를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하
기 때문이다. 공간분석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동작표현이 가능하고 외부, 내
부를 자유롭게 가상의 카메라가 촬영할 수 있어 본 연구의 시각화와 해석에
적합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13
<표 3> 사료의 시각화 분석을 위한 연구모형
14
4. 논문의 구성
15
5. 선행연구의 조사 및 검토
16
것은 거북선에서도 2층에서 화포공격을 한다는 것으로 거북선은 2층에서 화
포를 사용하고 3층에서 조총이나 개인무기를 사용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또한
통제영 거북선의 현란에서 패란까지 높이 4.3척은 거북선 현측의 높이로 이해
할 수 없는 치수이며, 이 높이로는 노군이 활동하기 어려워 머리 위쪽으로 별
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장학근(1995)은 그의 논문 “군선으로서의 원형구선”에서 거북선에서 효율
적인 전투가 이루어지려면 2층 구조로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3층 구조의 필
요성 주장하였다. 거북선은 전투가 시작되면 노 젓고, 활과 포를 쏘는 3행위
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2층 구조의 좁은 공간에서는 3행위가 이루어질 수 없
어 3층 구조가 필요하고, 화포는 높은 3층에 있어야 명중률이 높다고 주장하
였다. 또한 임란당시 출전한 거북선의 선제가 남아있는 것은 전라좌수영 거북
선이며 특히 3층 개판에 총혈이 6개가 있는 것은 임란당시 거북선이 3층 구
조였다는 근거라고 하였다.
이원식(2007)은 그의 논문 “1592년 龜船의 主要 置數 推定에 關한 硏究”
에서 1592년 임진왜란 이순신의 거북선 치수에 한하여 연구하였다. 치수 산
정의 근거로는 영조실록의 박문수의 장계와 『여암전서』, 이순신 종가의 귀
선도, 「호좌수영지」를 자료로 본판장의 길이를 산출하였는데 1592년 거북
선의 크기를 저판장 50척, 전선장 84.1척, 상장장 68척, 선두광 13.1척, 선요
광 22.6척, 선미광 11.2척, 저판두광 9.3척, 저판요광 11.2척, 저판미광 8.2척
으로 제시하였다.
김재근(1974)은 그의 논문 “龜船의 造船學的 考察”에서 통제영 거북선의
현란에서 패란까지의 높이 4.3척의 치수에 대한 해석으로 ‘높이가 낮기 때문
에 사람이 불편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나대용이 사부가 거북선에서 이러한 불
편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전라좌수영은 이와 같은 결점
을 시정하기 위해서 개판을 보다 높인 것이라 생각한다. 김재근은 4.3척이 2
17
층 전체의 높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조성도(1963)의 논문
에서도 나타나는데 “龜船考”에서 “통제영 거북선의 4.3척이 방패의 높이만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또는 舷版上에서 牌上의 난간에 이르기 가지 높이를 뜻하
는 것인지는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난간의 두께와 몇 개의 방패를 난간위에
꽂았는지는 명시하고 있지 않고 있으므로 현란의 형상에 관하여 비교적 세밀
하게 그려진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림에 의거하면 될 것이라는”4) 그의 견해는
김재근과 같다.
마광남(2010)의 논문 “한선의 노와 범의 역할”에서 뱃전 난간(신방) 위에
서부터 패 위 난간(언방)에 이르기까지의 높이는 4.3척으로 군사들이 자유롭
게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마광남은 패판의 높이로 보았다. 따라서 언방의
두께를 6촌만 추가해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견해를 밝혔지만 현란
에서 패란까지의 높이가 4.3척으로 왜 낮은지에 대한 견해는 없었다.
홍순구(2015)의 논문 “1795년 통제영 거북선의 높이해석에 의한 임진왜
란 거북선 선형 연구”에서 통제영 거북선의 현란에서 패란까지의 높이의 치수
4.3척 해석의 이론적 근거를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방패의 높이 4.3척은 별제
귀선의 특수설계에 의한 정확한 치수이고 방패를 왜선의 충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18
Ⅱ. 이론적 배경
1. 거북선에 관한 사료
1.1. 『태종실록』
1.2. 『난중일기(亂中日記)』
19
포, 현자포 발사를 시험한 것은 임진왜란 하루 전날인 4월 12일 이었다.
1.3. 『임진장초(壬辰狀草)』
20
현자철환을 치쏘고 또 천자·지자철환과 대장군전을 쏘아 왜선을 깨트리고 뒤
에 있는 여러 전선도 철환과 화살을 섞어서 퍼부으며····”9)
1.4. 이분(李芬)의 행록
21
1.5.『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1.6. 『징비록(懲毖錄)』
22
1.7.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23
좌수영 거북선 설명에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대비해
거북선을 건조했지만 지금의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이순신의 것이 아니라고 후
세에 혼란이 있을까 상세히 기록했다.
24
좌우 뱃전에는 속명이 신방(信防)이라고 하는 난간을 설치하고, 난간머리
에 속명 가룡(駕龍)이라는 횡량(橫梁)을 걸쳤는데 바로 뱃머리 앞에 닿게
되어 마치 소나 말의 가슴에 멍에를 걸친 것과 같다. 난간을 따라 판자를
깔고, 그 둘레에 패(牌)를 둘러 꽂았으며, 패 위에 또 속명이 언방(偃防)이
라는 난간을 만들었는데 현란 위에서 패란까지의 높이는 4척3촌이며, 패란
좌우에 속명이 개판(蓋版) 또는 귀배판(龜背版)이라는 판자를 각각 11쪽으
로 비늘처럼 이어 덮고, 등에는 1척5촌의 틈새를 내어, 돛대를 세웠다 눕히
는데 편리하도록 하였다.
뱃머리에는 거북머리를 설치하였는데, 그 길이는 4척3촌, 넓이는 3척이
다. 그 속에서 유황, 염초를 태워 벌어진 입으로 연기를 안개같이 토하여
적을 혼미하게 한다.
좌우의 노(櫓)는 각각 10개이고, 좌우 패에는 각각 22개의 포혈(礟穴)을
뚫었고, 12개의 문을 만들었다.
거북머리 위로 2개의 포혈을 뚫었고, 아래에 2개의 문을 냈으며, 문 옆에
는 각각 포혈 1개씩 있다. 좌우 복판(覆版)에도 또한 각각 12개의 포혈을
뚫었으며, 귀(龜)자의 기(旗)를 꽂았다.
좌우 포판(鋪版) 아래 방이 각각 열두 칸인데 두 칸에는 철물을 넣고, 세
칸에는 화포(火礟), 궁시(弓矢), 창검(槍劍) 등을 넣고, 열아홉 칸은 군사들
의 쉬는 곳이다.
왼쪽 포판 위의 방 한 칸은 선장이, 오른쪽 포판 위의 방 한 칸은 장교들
이 거처하는데 군사들이 휴식할 때는 포판 아래에 있고 전투가 벌어지면 포
판 위로 올라와 모든 포혈에서 쉬지 않고 대포를 쏜다.
상고하건대 「충무공 행장(行狀)」에 이르기를 ‘공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왜적이 장차 쳐들어올 것을 알고 지혜를 써서 큰 배를 만들었는데, 배의
위를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는 십자(十字)의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송곳칼(錐刀)을 깔았는데, 앞쪽은 용머리
로 뒤쪽은 거북꼬리로 되어있으며, 총혈(銃穴)은 전후좌우에 각각 6개씩으
25
고 선봉이 되어, 적이 배에 오르려 하면 송곳칼에 부딪치고, 엄습하려고 하
면 일제히 총을 쏘아 가는 곳마다 휩쓸지 못하는 바가 없어 크고 작은 전투
에서 이것으로 거둔 공적이 심히 많으며 형상이 엎드려 있는 거북과 같아
거북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라고 하였다.
명나라 화옥의 『해방의(海防議)』에 ‘조선의 거북선은 돛대를 세우고 눕
히기를 임의로 하고 역풍이 불건 썰물 때이건 마음대로 간다.’ 하였는데 그
것이 바로 충무공이 창제한 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 그 치수
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고 있는 것이 없다.
지금의 통제영거북선은 대개 충무공의 옛 제도에서 유래된 것이나 역시
약간의 치수의 가감은 없지 않다. 충무공이 이 배를 창제한 곳은 실로 전라
좌수영이었는데 지금의 좌수영거북선은 통제영거북선의 제도와 약간 서로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제도를 아래에 붙여 써 둔다.
전라좌수영거북선의 치수·길이·넓이 등은 통제영귀선과 거의 같으나, 다만
거북머리 아래에 또 귀신머리를 새겼으며, 복판 위에는 거북무늬를 그렸고,
좌우에 각각 문이 2개 있으며, 거북머리 아래에 포혈이 2개, 현판 좌우에
포혈이 각각 1개씩, 현란 좌우에 포혈이 각각 10개씩, 복판 좌우에 포혈이
각각 6개씩이며, 노는 좌우에 각각 8개씩이다.”15)
26
1.8 이순신 종가 귀선도(龜船圖)
紋。左右各有二門。龜頭下礟穴二。舷板左右。礟穴各一。舷欄左右。礟穴各十。覆板左
右。礟穴各六。左右櫓各八
16) 이순신 종가의 귀선도는 종손 이재훈이 1976년에 제공한 것으로 『이충무공 전서』의 도설과 화법이
유사해 18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17) 濫叨梅營 敢粧龜船 長本十把 廣幾五把 體丈十三 輈門二六 内藏八九 外顯四七 有無互環 銃矢并擧 口
尾吐黑 背脇飛红 甲變爲臺 三層加一 上設座幙 大小兩欄 鍊板列立 雲水彩屏 左右插旗 前後植干 發号施
令 一金一鼓 誰知此船 泛彼飛龜
27
통제하기 위한 임시 구조물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먼저 치수의 기록으로 본판장의 길이 10파(50척), 배의 너비 5파(25척),
선체의 길이 13파(65척), 방패는 좌우로 26개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치수들
은 임진왜란 전후의 판옥선 크기의 변화를 살펴보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
타난다. 입과 꼬리, 등과 옆구리에서 화포를 쏜다는 표현은 별제귀선이 3층
구조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귀선도에 그려져 있는 2개의 돛대,
장방형의 패문과 포혈은 이순신의 별제귀선에서 유래되었다는 1795년 통제영
거북선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순신 별제귀선의 원형을 해석하는데
앞의 기록들과 함께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순신 종가 귀선도의 치수를 근거로 이순신 별제귀선을 3D
컴퓨터 그래픽 모델로 제작해 분석하였다.
28
2. 별제귀선의 도안과 원형복원
2.1. 도안
1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09/2016040901737.html,
“convex-covered decks resembled a turtle shell...sporting a powerful psychological weapon —
a smoke-spewing dragon’s head at the bow — were not only virtually impenetrable, but also
fast and maneuverable”
19) http://m.archives.go.kr/next/m/monthly/recordView.do;jsessionid=mVFsms2Hp5BWZdSNrFAjnyB4S
8Sz6y2nvZTLgshtHKTbbSBUg4VSSi4XmbjiEBhw.CW-MOBILE_servlet_engine4?archiveEvntId=0051
843819&archiveMonthlyId=114&page=38
20) https://news.usni.org/2016/04/06/survey-results-what-is-the-greatest-warship-of-all-time
21) 1979년 해군에서 학계의 고증을 받아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치수를 기준으로 설계하였으며, 해
군 정비창 기술진이 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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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북선 복원의 오류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국사교과서에서 오류의 결과물로 이순신 별제귀선의 역사교육을 받
았으며 이 문제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어 왜곡된 별제귀선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대책이 요구된다.
아래의 <그림 6>22), <그림 7>23), <그림 8>24), <그림 9>25), <그림
10>26), <그림 11>27), <그림 12>28), <그림 13>29)은 1955년에서 1984년
까지 이순신 출판서적으로 표지 및 만화의 내용에서도 모두 전라좌수영 거북
선 도안 또는 일러스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표지에 나타난 공통점은 목이 위로 솟아있고, 등은 철판으로 덮여있으며 송
곳이 꽂혀있는 모습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철갑으로 둘러싼 세계 최초의 철
갑선이라는 표현이 강조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해전의 상황에 대한 설명에서
이순신의 거북선은 철갑으로 되어있어 조총을 쏘아도 뚫을 수가 없다는 내용
을 자랑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세계최초의 철갑선으로 되었으면 좋겠지
만 사료의 어디에도 별제귀선을 철갑으로 덮었다는 기록은 없다.
용머리 포혈로 현자포를 쏘았다는 분명한 사료의 기록이 있지만 우리 국민
의 정서에는 용머리 화포가 보여주는 상징성보다 거북형상의 등에 철판과 송
곳이 빼곡하게 꽂혀있어야 이순신의 별제귀선으로 인정된다는 정서가 크게 작
용하고 있다. 아래의 자료사진이나 복원 모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는
1950년대나 지금이나 이순신 별제귀선은 보이지 않고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닮은 모형이 전국의 박물관, 교육기관, 기념관, 관광지에 있고 교육에 미치는
30
영향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다.
31
<그림 6> 충무공독본(1955) <그림 7> 성웅 이순신(1969)
32
<그림 10> 국역 난중일기(1978) <그림 11> 성웅 이순신(1984)
33
<그림 13> 이순신 장군 외(1984)
34
2.2. 모형복원
35
<그림 17> 1960년대 거북선 모형
36
Ⅲ. 거북선 구조와 해석
31)Underwood, H. H., 「Korean Boats and Ships」Transactions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p78, 1934.
32)홍순구,「1795년 통제영 거북선의 높이해석에 의한 임진왜란 거북선 선형 연구」,『조형미디어학』,
18권 3호, 2015, p.326.
37
<그림 21> 언더우드 거북선의 횡단면도
33) 장학근, 「軍船으로서의 原型龜船 -龜船改造論을 중심으로」, 『昌原史學』 第2輯, 1995, p.24.
38
1.2. 높이의 해석에 의한 구조
해석 한 경우가 정진술39)이다.
34) 조선시대 선박의 길이 1척(尺)의 길이가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달라 연구자는 평균값 30cm로 환산
했으며, 조성도는 다른 척도(29.5cm)로 환산해 4.3척을 127cm로 표기한 것이다.
35) 趙成都, 「龜船考」. 海軍士官學校硏究報告 2, 1963.
36) 金在瑾,「龜船의 造船學的考察」, 學術院論文集, 1974.
37) 이원식,「1592년 龜船의 主要 置數 推定에 關한 硏究」, 박사학위논문, 한국해양대학원, 2007.
38) 부분상갑판: 갑판위에 적정한 높이의 별도로 만들어진 층수로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
39) 정진술, 「이순신 정론Ⅳ」,이순신 연구논총, 2012.
40) 홍순구,「1795년 통제영 거북선의 높이해석에 의한 임진왜란 거북선 선형 연구」,『조형미디어학』,
18권 3호, 2015.
39
다.41)
40
<그림 25> 조성도의 이순신 별제귀선 복원도
41
낮아서 전라좌수영귀선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43)
42
1592년 거북선을 모두 <그림 29>45)의 상장과 같은 2층 구조로 해석하고 2
층 갑판의 바닥에서 둥근 개판의 중심부까지 높이를 1795년 거북선은 8.5척
(265cm)과 1592년 거북선은 6.94척(217cm)을 높이로 제시’46)하였다.
이원식의 거북선 높이와 구조에 대한 해석의 근거는 김재근과 같다.
<그림 30>의 1592년 거북선 구조도에서 용머리가 2층 선수 전면에 높게 위
치된 상태는 앞의 김재근의 통제영 거북선의 단면도 <그림 27>과 매우 유사
하다. 조성도, 김재근, 이원식의 거북선 구조의 해석에서 이순신의 별제귀선은
용머리에서 현자포를 쐈다는 기록이 있는데 제시된 용머리가 개판 상단의 모
서리 부분에 높게 위치한 포혈에서 어떤 방법으로 현자포를 장전하고 쏠 수
있는지, 이원식의 <그림 30>에서 선수 전면에 용머리가 위치해 있어 닻을
올리고 내리는 공간은 어느 곳에 위치해야 하는지 내부구조에 대한 단면도와
고증이 요구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층 구조 거북선에서는 노를 젓고, 좌우 방패의 포혈과 사혈에서 화포를 발
사하고 활을 쏴야 하지만 왜선의 3층 선상에 있는 왜적을 <그림 29> 좌측
방패에서와 같이 사수가 앉아 전투가 가능한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43
<그림 29> 이원식의 통제영 거북선 횡단면도
44
1.3. 전술에 의한 해석과 구조
45
<그림 31> 남천우의 통제영 거북선 복원도
46
멀게 하고 명중률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로 화포가 3층의 개판에 위치해 있는
3층 구조 거북선 구조도를 제시하였고 2층 구조에서 3행위가 어렵다는 이유
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47
<그림 33> 장학근의 3층 구조 단면도
48
<그림 34> 정진술의 3층 구조 복원도
49
적으로 부분상갑판 위에서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3층에서는 조총이나 쇠뇌
등의 개인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된다. 정진술은 2층에서 노 젓
기와 화포를 사용하고, 3층에서 활과 같은 개인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구조를
해석하였다.
<그림 36>부분상갑판 3층 구조 내부
출처: 경남 사천
50
1.4. 통제영 거북선 해석에 의한 구조57)
51
사가 서있으면 천장의 높이가 모두 다른 구조가 만들어진다.
분석된 입체구조를 해석하면 포혈이 일정한 높이를 가지려면 개판 상단은
평면구조로 되어있어야 한다. 또한 화포나 조총은 하늘방향이 아닌 좌우 현측
전방을 향하려면 <그림 37>과 같이 개판 상단의 통로 안쪽에서 세 번째 판
자에서부터 모서리가 생기도록 꺾여있어야 한다.
통제영 거북선의 구조해석이 어려운 것은 다시점 역원근법의 특징으로 <그
림 41>은 역원근법의 오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예이다. 뒤쪽을 크게
그리면서 아래로 급하게 마무리를 하면 원본의 그림처럼 오류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 그림은 처음 시작되는 선의 방향을 직선으로 시작하
는 경우 <그림 42>와 같은 일정한 높이의 포혈이 그려지고 개판의 상단은
평면이 된다. 또한 포혈은 좌우 정면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것을 3D 컴퓨터 그
래픽 모델로 재현하면 <그림 43>의 복원도가 만들어진다.
분석결과를 종합하면 통제영 개판의 상단은 평면이고 좌우 현측의 포혈이
정면으로 향하려면 개판은 마름모꼴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52
<그림 40> 통제영 거북선 개판의 해석
53
이순신 별제귀선의 원형연구에서 그동안 거북선의 층수 해석에 논란이 되어
왔던 것은 통제영 거북선의 치수 해석이었다.『이충무공전서』에 거북선의 높
이에 관한 치수는 1층 선체에 해당하는 7.5척의 현판의 높이와 현란에서 패란
까지의 높이 4.3척(130cm)59)의 치수만 기록되어있고 거북선 전체 높이에 대
한 치수의 기록은 없다. 현란에서 패란까지의 높이란 방패의 높이로 2층의 높
이를 말하는 치수로 방패높이 해석의 오류에 대한 검토는 이전의 ‘1.2. 높이
해석에 의한 구조’에서 살펴보았다.
2015년 홍순구는 4.3척의 치수를 현란과 멍에의 결구법으로 해석해 학술논
문60)으로 발표하였다. 통제영 거북선의 4.3척 방패높이는 돌격선 별제귀선의
완벽한 방호와 근접전에서 화포 공격을 위해 특수 설계된 방패 높이의 치수라
고 연구결과에서 밝혔다.
<그림 44>의 현란-방패-패란은 2층의 높이를 결정하는 부재들이다.『각
선도본』에 판옥선(전선)의 방패높이는 5척(150cm)으로 기록61)되어있다. 통
제영 거북선의 방패 높이는 4.3척(130cm)으로 방패만의 높이를 기록한 것이
고 현란과 패란의 결구에 대한 내용은 설명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2층의 높이
의 추정에는 결구법이 먼저 분석 되어야 해석이 가능하다.
판옥선과 통제영 거북선의 방패높이의 치수 기록이 낮은 것은 현란과 멍에
의 결구법이 걸침턱맞춤으로 고정되어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걸침턱맞
춤은 현란의 높이가 기본적으로 높게 위치하기 때문으로 2층을 구성하는 현란
-방패-패란의 높이는 2m 정도로 선내에서 수군이 활동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54
<그림 44> 판옥선(전선)과 통제영 거북선의 현란과 멍에의 결구
55
<그림 44>의 판옥선과 통제영 거북선, <그림 45>의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림 46>의 이순신 종가의 귀선도에서 상대적인 크기, 비례가 정확하게 지
켜진 표현은 아니지만 횡량, 현란, 멍에의 결구법62)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옥선의 경우 멍에 위로 현란이 걸쳐 있고, 통제영거북선 횡량의 결구를
살펴보면 현란이 선수 전면으로 길게 돌출되어 있고 횡량 위에 위치한다. 또
한 다른 부재보다 상대적으로 높이가 두껍게 그려져 있고 멍에와의 맞춤도 멍
에 위로 또는 부분적으로 겹쳐서 현란이 위에 얹혀있는 구조로 확인된다. 현
란에 있는 많은 수의 나머지 멍에도 현란의 중앙보다는 대체로 아래쪽으로 정
렬되어있다.
<그림 45>의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경우 현란의 중간에 구멍을 뚫고 멍에
를 끼워넣고 쐐기를 박아 고정시키는 장부맞춤63)이 분명하게 표현되어있다.
현란과 멍에의 장구맞춤은 방패가 얹어지는 현란의 상단위치가 걸침턱보다 상
대적으로 많이 낮아 2층의 구성에서 방패의 치수는 상대적으로 커져야 2층의
높이가 만들어진다.
<그림 46>의 이순신 종가 귀선도의 경우 두꺼운 현란의 높이와 현란의 밑
에 위치한 멍에는 통제영 거북선과 매우 유사해 걸침턱맞춤의 해석을 뒷받침
한다. 이순신의 별제귀선에서 유래되었다는 통제영 거북선과 이순신 종가 귀
선도는 현란과 멍에의 결구법에서 같지만 방패에 패문이 있는 것도 같아서 별
제귀선의 구제에서 나왔다는 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림 47>은 장부맞춤과 걸침턱맞춤을 그래픽으로 표현한 경우로 장부맞
춤은 현란의 중심으로 멍에가 통과해 결구되는 방식으로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62) 김왕직, 『한국건축용어사전』, 동녘, 2007, p.321, 결구란 목조구조물에서 이음과 맞춤으로서 서로
연결되는 부분을 결구라고 한다.
63)한쪽 재료에 장부를, 다른 재료에 장부구멍을 파서 재료를 접합하는 것. 대부분의 경우 비녀장, 쐐기,
꽂임촉 등으로 보강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88496&cid=50320&categoryId=50320
56
맞춤에 적용되었다.
걸침턱맞춤은 멍에 위로 현란이 걸쳐 고정되는 맞춤으로 통제영 거북선과
이순신 종가 귀선도에 적용되었다. *표는 방패가 위로 얹어지는 곳으로 걸침
턱맞춤이 장부맞춤보다 기본적으로 훨씬 높은 것이 특징이다.
57
<그림 48>현란, 멍에의 장부맞춤과 2층 높이
58
1.5. 전라좌수영 거북선 해석에 의한 구조64)
59
가 있다.
1795년 당시 문양이 있는 구조물의 입체표현은 눈으로 보이는 소실점과 관
계없이 형태와 문양은 별개의 것으로 간주해 표현되었다. 형태가 그려지면 형
태 안쪽으로는 일정한 문양의 크기로 반복해서 채우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림 52>67)는 제기도설과 현전 제기를 비교한 그림으로 가장 오른쪽 그
림은 현전 제기이고 왼쪽 세 개는 그림으로 표현한 예이다. 가는 대나무를 엮
어 만든 문양의 표현에서 소실점의 표현보다는 형태의 테두리 안에 동일한 문
양을 정면의 시점으로 채워 넣은 경우가 된다. 시점의 표현은 전체적인 형태
는 정면의 시점으로 그려지고 입구부분은 어떤 형태인지 한 장의 그림으로 설
명하기 위해 약간 위에서 본 시점으로 입구부분을 그려서 표현했다.
60
<그림 53>의 경우도 앞의 것과 같은 표현양식으로 그려져 있지만 상단에
위치한 둥근 입구의 형태를 지나치게 위의 시점으로 표현되어 왜곡이 심하게
그려진 경우이다. 여섯 개의 항아리 형태는 바닥면이 거의 수평으로 그려 정
면의 시점으로 표현했다. 표면의 문양은 좌우 양쪽으로 갈수록 왜곡되는 현대
의 소실점 표현이 아니고 정면의 시점으로 문양의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입구부분은 항아리와 같이 평면의 둥근 형태이지만 그림에서는 뒤쪽
테두리선이 지나치게 위로 올라온 형태로 표현되어 있어 입구부분이 앞쪽으로
휘어져 있는 것으로 판단될 정도로 입구의 형태가 왜곡되어있다. 다른 특징으
로는 입체물이 아니라 납작한 평면처럼 지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1795년의
통제영과 전자좌수영 거북선 그림의 구조해석을 현대의 소실점으로 분석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61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개판이 자연스럽게 타원형으로 보이는 것은 앞에서 분
석한 그림들과 같이 개판의 상단은 평면이지만 상단의 위쪽을 보여주기 위해
불룩하게 표현한 경우가 된다. 또한 우리가 자연스럽게 타원형으로 해석하는
것은 하단에서 상단까지 거북무늬가 정면의 시점으로 채워져 있고 개판 상단
의 곡선이 선수에서 선미까지 부드럽게 하나의 선으로 표현되어 있어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개판의 거북무늬만 살펴보면 벽지처럼 평면적으로 지각되
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기도설의 표현양식은 한 장의 그림에 모든 구조를 설명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앞쪽보다는 뒤쪽이 커지는 다시점 역원근법을 사용했는데 전라좌수영과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에서도 뒤쪽에 위치한 구조물이 크게 표현되고 부풀어
오른 형태는 이러한 표현양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기술도의 경우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점을 달리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전제적인 구조와
형태는 소실점이 없어 왜곡되어 보이게 되고 해석을 위해서는 각각을 별개로
해석하고 조합해야 전체의 해석이 된다. 특히 단면이 둥근 형태일 때 왜곡이
심하게 나타나고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림 54>는 1615년 『화기
도감의궤』의 백자총통 도설로 좌우 양끝의 둥근 단면과 두께를 한 장으로 보
여주기 위해 사각으로 잘려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62
『이충무공전서』의 두 거북선 그림은 현대의 소실점 표현과 반대인 다시점
역원근법으로 입체를 표현했다. 따라서 시대적 입체표현양식의 특징을 고려해
입체구조가 해석되지 않으면 시각적 해석의 오류를 만들어 전혀 다른 구조로
해석하게 된다.
선행연구 검토에서 개판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과 개판
상단을 평면이 아닌 타원형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통제영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의 개판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타원형으로 해석한 것이 분명하다.
거북무늬의 표현으로 인한 시각적 착시를 제거하기 위해 <그림 55>와 같
이 개판 상단의 거북무늬를 삭제하면 개판 중앙의 윗부분이 평평한 평면구조
로 지각된다.
63
<그림 57>에서 b와 c의 연결된 사선을 뒤쪽으로 연장시켜 d의 사선을 만
든 후 연결시키면 개판 뒷부분에 면이 생성된다.
개판 앞부분 e의 모서리 곡선을 f와 같이 뒤쪽으로 대칭이 되도록 배치한
후 d와 연결시키면 완전한 평면구조의 개판 상단이 만들어진다. 재구성된 입
체구조는 현대의 소실점처럼 표현되어 양감(量感)의 표현까지 만들어지며, 꼬
리부분의 g와 h는 앞쪽과 뒤쪽의 공간감까지 표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상태로도 개판의 구조는 전후좌우로 마름모꼴의 구조라는 것을 판단
할 수 있지만 용머리가 있는 부분의 구조를 해석하기로 한다.
\
<그림 56> 개판상단의 구조
64
b의 경우 개판의 전면이 수직구조라면 목의 기울기를 고려할 때 지나치게
돌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목의 뒷부분이 수직으로 잘려져 표현되어야 부착
이 가능하다.
<그림 59>는 통영의 거북선으로 개판의 전면이 수직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돌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용머리 목의 중간부분이 잘려 선체 안쪽으로 위치
해 시킨 경우이다. b와 유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c의 경우는 개판 전면을 사다리꼴 구조를 적용시킨 경우로 목의 두께가 유
지되어 원본의 그려진 용머리 표현처럼 부착될 수 있다.
65
사선구조로 만들어진 개판 전면에 용머리가 부착한 상태를 3D 컴퓨터 그래
픽 모델로 재현하면 <그림 60>의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림과 일치하게 된다.
앞에서 분석된 통제영 거북선과 함께 거북선 개판은 모두 사다리꼴이라는 것
으로 분명하게 해석된다.
66
판의 현측과 상단의 구조를 형성하는 부재에 색을 칠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개판구조 분석
에서 두 거북선은 완전한 3층 구조로 전후좌우 사다리꼴의 개판 구조라는 것
을 검증할 수 있었다.
67
2. 이덕홍의 귀갑선도(龜甲船圖)
68
어 버리려는 자를 흩어지게 하면 왜선이 비록 많으나 그 계책을 쓸 곳이
없을 것입니다. 요즈음 듣건대, 호남의 여러 장수들이 이것을 써서 왜선을
크게 무찔렀다 하오니, 그 효과가 명백히 있었음을 아울러 아룁니다. 만약
강나루에도 이 배를 사용하면 적이 반드시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이 몇 가지의 조목은 모두 육지에 내리지 못하게 미리 방비하는 기구에
대 한 것으로, 앞의 것을 이어받은 바도 없고, 뒤에 시험한 바도 없습니
다. 단지 병화를 근심하던 가운데 얻은 것을 사리로 미루어 헤아리고, 보
고들은 것을 참작하여 밤낮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궁리해서 감히 한 말 올
린 것입니다.71)72)
71) 이재곤,「艮齋 李德弘의 註釋書 撰述과 壬亂 克服意識」, 安東大學校, 석사학위논문, 2000, p.82.
72)『艮齋集』券 2, 「上王世子書 壬辰 」, 有龜甲之船, 亦破賊之良規也. 其制則背著 劒, 頭設伏弩, 腰置
板屋, 容射手於其中, 傍通射穴, 下通船心. 中藏銃筒及大斧, 或打破或放丸, 或射 或擊, 觸之者碎, 犯之者
潰, 則賊船雖多, 無所用其計矣. 頃聞湖南諸將, 用此大破賊船, 明有其效, 故幷及之. 若於江津, 亦用此船,
則賊必不得渡矣. 凡此數條, 皆豫防下陸之具, 而前無所承, 後無 所試. 只得於兵火憂憫之中, 推以事理, 雜
以聞見, 晝思夜度, 敢爲一說.
73) 이재곤, 앞의 논문, p.82.
74)『艮齋集』, 「上行在疏 幷圖」 , 龜甲之制, 背著鎗劒, 頭設伏弩, 腰置小板屋, 容射手於其中, 傍通射穴,
下通船心, 中載銃筒及大斧, 或打破或放 , 或射或擊, 則賊來雖多, 必無如 之何矣. 然則此箭此船之設, 其
功甚小, 而其效甚遠, 令各官費一月之功, 可成不世之效矣. 伏願 聖明戒此日無前之辱, 忘芻 下之言, 討賊
匡國之後, 特令知首末者, 以宣敎之, 以檢督之, 以防 後日之患焉.
69
세부적인 시행방안까지 적어놓았다.
70
다.
1413년, 1415년 태종실록에 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있지만 거북선의 구조,
크기, 선형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없다. 이 후 177년 만에 나타난「귀갑선도」
는 거북선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아이디어 수준의 그림이지만 그의 설명에
는 임진왜란 당시의 무기·전술과 거북선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구체적
내용들을 상소문에 적고 있어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과 전술에 대한 이해를
배경으로 이순신 별제귀선의 원형과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귀갑선의 구조와 형태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71
사수가 위치해 판옥 안에 몸을 숨긴 채로 작은 구멍을 통해 외부를 살피고 명
령을 내리며, 사수는 높은 위치에서 활, 쇠뇌 등을 쏴서 적군을 사살하는 곳으
로 판옥선의 장대와 같은 기능을 한다. 장대와 다른 것은 왜적의 조총과 화살
로부터 완전한 방호를 위해 사방과 천장을 단단한 판자로 막고 사혈을 뚫어
매복한 상태에서 공격하는 것으로 귀갑선은 2층 판옥구조 거북선이라고 할 수
있다.
72
다. 이덕홍의 구상도는 배의 길이와 높이의 비례를 고려해 그려진 것이 아니
기 때문에 가로의 길이가 짧게 그려져 있어 다르게 보일 수 있으나 시뮬레이
션 모델의 모든 크기는 사람을 기준으로 실재의 비례를 적용해 제작되었다.
귀갑선을 3D 컴퓨터 그래픽 모델로 복원하면 <그림 67>의 구조로 만들어진
다.
73
이덕홍의 귀갑선 구조와 전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 조 전 술
등에는 창검을 붙이고, 왜적의 등선 저지
때로는 쳐서 부딪히려는 자와
충돌로 들이받아 깨트린다.
부수어 버리려는 자를 흩어지게,
74
<그림 66> 이덕홍의 2층 판옥구조 귀갑선 복원도
75
대 한 것으로, 앞의 것을 이어받은 바도 없고, 뒤에 시험한 바도 없습니다.
단지 병화(兵火)를 근심하던 가운데 얻은 것을 사리(事理)로 미루어 헤아리
고, 보고들은 것을 참작하여 밤낮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궁리해서 감히 한 말
올린 것입니다.76)
76
Ⅳ. 이순신 ‘별제귀선’의 구조와 전술 분석
1. 제원
1.1. 크기
77
1606년 임진왜란 후 나대용이 “거북선에서 활쏘기가 불편했다”82)는 문헌의
기록은 활을 쏠 수는 있지만 위로 높이 올릴 수 있는 충분한 높이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장 161cm인 사수가 활을 정면으로 세워들었을
때의 높이를 고려해 6.7척(210cm)으로 추정하였다.
별제귀선의 승선인원에 대한 문헌의 기록으로 나대용은 “귀선은 전쟁에 쓰
기는 좋지만 사수와 격군이 125명으로 판옥선보다 적지 않다”83)는 기록과,
이순신의 장계에 “한 전선에 사부와 격군을 합하여 130여 명의 군사를 충당
할 길이 없다.”84)라는 언급이 있어 별제귀선의 정원은 125∼130명 정도가 분
명하다.
치수는 아래의 <그림 67>, <그림 68>과 같다.
78
<그림 68> 별제귀선의 치수2
구분 사료의 내용 출전
크기(規模) 판옥선만하다 (大如板屋) 이분 「행록」
『선조실록』
승선인원 125∼130여명
이순신 장계
『선조수정실록』
형태(船型) 거북형상(龜船), 엎드린 거북형상
『만기요람』
개판(蓋板) 좁은 길의 십자로, 쇠 송곳 이분 「행록」
방패의 높이 4.3척 『이충무공전서』
범노선(帆櫓船) 『해방의』
행선(行船)
전후좌우로 노 젓기 이동 『선조수정실록』
속도 나는 듯이 빨랐다. 『선조수정실록』
노의 수 16 이순신 종가 귀선도
용머리, 꼬리와 포혈, 좌우 각각 6개의 포혈
화기(火器) 이순신 장계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
“먼저 거북선으로 곧장 적의 층루배 밑으로
전술(戰術) 이순신 장계
치고 들어가 ...”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도
내부구조 이순신 장계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채광 개판의 1.5척의 긴 통로 『이충무공전서』
통풍 개판의 1.5척의 긴 통로 『이충무공전서』
79
<그림 69> 별제귀선의 부재별 명칭
80
1.2. 선형
81
뒤에는 꼬리처럼 되어있고 그 밑에 포혈이 있다’는 것으로 돌출된 구조의 용
머리 입에서 천지를 울리는 요란한 화포소리와 많은 수의 철환을 날려 보내고
현무의 형상과 기운으로 무장된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사기를 높이고, 왜적에
게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거북선 구조에 심리적 요인까지 반영한 독창
적인 돌격선 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북선 사료의 분석에서 거북선에 용머리를 붙여 입으로 화포를 쏘고, 꼬리
까지 적용한 경우는 이순신의 별제귀선이 유일하다.
거북선이 ‘현무’의 형상으로 구상되었다는 것은 1748년 경상좌수사 이언섭
의 장계초고에도 나타는데 ‘외양은 신령한 거북이 물 위를 달려가는 것과 비
슷하다는 표현과’ 1795년 통제용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용머리는 연기를 토
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1808년 『순조실록』에 “노 없이 바다에 떠다니는 것
이 마치 거북이 떠 있는 것 같으며, 입과 코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기록에서
이순신 별제귀선을 ‘현무’의 형상으로 창조한 이후 시대가 바뀌어도 신령한 거
북의 상징인 거북선은 지속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인 이분의「행록」에는 별제귀선이 “거북형상 같아 거
북선”86)이라 하였고, <그림 70>은 문헌의 내용처럼 엎드린 거북의 사진으로
용머리가 상갑판과 수평으로 위치해 있는 통제영 거북선과 별제귀선 복원도와
닮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86)『李忠武公全書』附錄1, 行錄, 從子 正郞 芬.
82
<그림 71> 측면도
83
1.3. 구조
84
음 만든 것’이라고 한다. 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임진왜란 이전 177년 동안 사
료에는 전혀 기록된 것이 없었다. 이덕홍의 귀갑선 구상에서도 어떤 것을 참
고로 했다는 언급은 없다. 거북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413년으로 ‘거북선
과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는 내용으로 왜구나 왜적을 상
대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거북선으로 상대를 해야 하는
지는 별제귀선의 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별제귀선의 개판은 판자로 되어있고
칼과 송곳을 꽂았다는 기록에서 근접전에서 등선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꽂
은 것으로 별제귀선은 돌격선으로 적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완전
한 방호가 되어야 한다. 특히 단병전에서 칼을 잘 쓰는 대상을 일정거리 만큼
저지하고 활을 사용해 격퇴시키는 전술로는 거북선이 승산이 있었다.
개판에는 십자모양의 좁은 길이 있는데 <그림 73>의 복원도에 십자로가
나타나 있다. 십자로는 쇠 송곳을 꽂은 곳과 쇠 송곳이 없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경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십자모양의 길은 개판 출입구 부
분에서 출입문 주변의 쇠 송곳이 없는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거북선의 층수에 관계없이 모든 거북선은 개판이 있고 3층 구조에서는 지휘
관과 전투원들이 위치하는 곳으로 거북선의 기본적인 구조와 유형이 만들어지
는 구조물이다. 거북선의 원형연구에서 거북선의 층수와 개판의 구조가 완전
하게 규명되면 거북선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선조실
록』, 『장계』,『이충무공전서』의 사료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596년『선조실록』에 이순신 별제귀선의 개판구조를 직접 언급하는 내용
은 다음과 같다.
85
상이 이르기를, “어찌하여 많이 만들지 않는가?” 하니,
86
를 장착한다는 것이다.
<그림 74>는 거북선 개판의 유형을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으로 앞과 뒤가
마름모꼴 구조인지, 전면이 수직구조인지에 따라 쇠 송곳이 꽂히는 위치가 다
르다. 사다리꼴에서는 경사진 기울기가 있어 세 개의 면에 쇠 송곳이 있고, 수
직구조에서는 적이 올라설 수 있는 구역이 개판 상단에만 있기 때문에 한 곳
에 쇠 송곳이 위치한다. 별제귀선은 전후좌우가 사다리꼴로 모든 단면에 쇠
송곳이 꽂힌다.
선조와 남이공의 대사에 ‘옆’과 ‘양머리’는 <그림 74>의 오른쪽에 위치한
전후좌우 마름모꼴의 별제귀선으로 쇠 송곳은 모든 면에 꽂힌 상태가 되며,
엎드려있는 거북이 등의 형상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현재 원형이라고 복원되
어있는 국사교과서, 박물관, 만화, 화폐 등에 있는 거북선들은 모두 선수, 선
미가 수직구조의 유형으로 <그림 75>의 왼쪽구조로 복원되어있다.
87
구조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머리는 가파르고 뾰족하게 만들었으며”90)
라는 내용과 “누선과 비교한다면 그 빠르고 둔함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91)의 내용에서 선수부분이 경사진 사선구조로 뾰족하다는
것으로 현재 선수 전면이 수직구조로 복원된 거북선들과 형태가 전혀 다르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원된 <그림 18>의 해군사관학교 2층 구조 거북선, <그림 19>의 3층
구조 거북선,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영화 ≪명량≫에서 등장한 거
북선은 선수 전면이 수직으로 잘려 날렵하고 뾰족한 구조라고 볼 수 없다. 거
북선 앞쪽이 뾰족하다는 것은 47년 후 『이충무공전서』에 있는 통제영과 전
라좌수영 거북선의 개판도 사다리꼴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누선보다 나는 듯이 빠르다’는 것은 거북선이 판옥선의 여장과 장대와 같
은 수직구조물이 있는 판옥선보다 선수 전면이 사다리꼴로 되어있는 <그림
75>의 별제귀선 개판이 공기의 저항을 덜 받아 속도가 빠른 구조라는 것이
다.
88
에서 바람을 제어하기가 취약하다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영조10년(1735)에는 별군직 윤필은(尹弼殷)의 “전선이 크고 높아 바람을
제어하고 달려가지 못한다.”92)는 상소에 따라 형조판서 장붕익(張鵬翼)과 이
삼(李森)은 전선 상갑판의 방패를 별도의 제도를 만들어 때에 따라 눕혔다,
세웠다 하는 접이식으로 만들었다.93)는 기사의 내용으로 누선의 전면이 수직
구조로 되어있어 거북선보다 속도를 낼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1.4 용머리 포혈
89
<그림 76> 용머리 현자포, 대장군전의 위치
90
이순신의 장계「당포파왜병장(唐布破倭兵狀)」에는
91
1.5. 거북꼬리와 꼬리 밑의 포혈
92
<그림 78> 미익과 포혈의 위치 출처: 전쟁기념관
93
어있다. 전라좌수영의 경우 그림처럼 꼬리를 길게 위로 치솟게 제작할 수 있
으나 별제귀선은 그렇게 될 수 없어 현재 선미에 포혈이 있고 위로 치솟은 꼬
리가 있는 거북선들은 어느 시기의 거북선인지 설명되기 어렵다.
이순신 별제귀선의 구상은 현무로 꼬리의 복원을 위한 형태적 근거는 현무
도에서 추정할 수 있다. 거북선에 꼬리가 표현된 그림의 사료는 이순신 종가
의 귀선도에 표현되어 있으나 민화적 화풍의 표현으로 거북선의 구조에 적용
되기 어렵고, 궁궐에서 의장기로 사용되는 <그림 79>의 현무기와『홍릉천봉
주감의궤』에 그려져 있는 현무도 <그림 80>102)의 꼬리는 세 개로 그려져
있지만 현무의 도상적 표현을 별제귀선의 구조에 반영하면 <그림 69>, <그
림 71>의 구조로 복원될 수 있다.
별제귀선의 선미에 꼬리와 꼬리 밑에 포혈을 위치시키는 근거는 별제귀선의
전술에서 추정할 수 있다. 이순신의 별제귀선과 이덕홍의 귀갑선 전술의 공
통점은 2층에서 화포를 쏴서 왜선을 깨고 3층이나 높은 위치의 판옥에는 인
명살상용 무기를 배치한다는 것으로 별제귀선 꼬리 위치는 3층 개판에 실재
거북이 꼬리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있고 바로 밑에 화포가 배치되었을 가
능성이 높다.
2층 상장의 선미 쪽으로 꼬리와 화포를 배치하기 어려운 이유는 키를 조정
하는 구조물이 위치해 있어 화포를 설치하기에 어렵기 때문이다. 앞의 내용을
요약하면 선수 전면의 용머리 포혈에 현자포가 숨겨져 위치하듯이 선미에도 뾰
족한 꼬리가 있고 바로 밑에는 철환이 장전된 화포가 숨겨져 있어 왜선이 근접
하면 선상의 적군을 향해 화포를 발사하는 위한 전술적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
다.
94
<그림 79> 현무기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95
1.6. 개판의 포혈
96
방패의 수는 6개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2층 방패에 특별히 포혈을 6개만 남
기고 나머지는 모두 막아버릴 이유가 없는 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앞의 기사 내용은 영조 때의 거북선이 별제귀선에 비해 더 커졌음을 보여주
는 자료로 ‘좌우 각각 6개의 포혈’이 2층 방패의 포혈 수를 말하는 거라면 원
래 많은 수의 포혈이 있는 2층의 방패에서 구멍을 6개에서 8개 뚫었다고 해
서 거북선이 거대해졌다는 것은 설명되기 어렵다. 거북선 2층의 방패는 8개보
다 더 많기 때문에 방패에 2개의 구멍을 더 뚫어도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
러나 3층 개판은 선수, 선미가 경사진 마름모꼴로 개판 상단의 길이가 3층 상
갑판의 길이보다 짧고, 좌우 현측의 공간도 사다리꼴의 천장으로 위로 올라갈
수록 좁아지기 때문에 화포를 배치한다면 화포간의 좌우 공간이 더 필요하게
되어 포혈의 수를 늘리면 개판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커져야 하고 또한 거북선
전체의 길이도 같이 커져야한다. 3층 개판은 사다리꼴로 인해 수군이 서있을
수 있는 바닥의 면적은 2층의 45% 정도가 된다. 결론적으로 3층 개판의 포혈
의 수는 거북선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으로 기록의 ‘좌우 각각 6개의 포혈’
은 3층 개판에 있는 포혈이 분명하다.
2층 구조 거북선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사료에 나타난 ‘좌우 각각 6개의
포혈’ 수를 강제로 일치시키기 위해 2층 방패에 좌우로 각각 6개의 포혈만을
위치시킨 것은 오히려 거북선 전술을 약화시킨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통제영, 전라좌수영, 이순신 종가의 거북선 좌우 방패에는 많은 수의 포혈과
패문이 있다. 특히 이순신 종가 귀선도의 경우 별제귀선과 같은 50척의 크기
로 많은 수의 포혈과 패문이 위치해 있는 것과 비교하면 2층 구조 거북선의
포혈이 있는 방패에는 노를 젓는 격군, 화포를 다루는 방포장, 활을 쏘는 사수
가 6개의 포혈이 있는 같은 장소를 사용해 돌격선의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2층 구조 거북선은 이순신 별제귀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97
1.7. 현란, 방패의 구조
98
<그림 81> 통제영 거북선의 현란
99
있다.
<그림 76>은 별제귀선의 3층으로 용머리 입에서 현자포를 발포하는 상황
이고, 2층 선수에서는 천자총통에 굵기가 10cm정도 되고 길이는 2m정도의
쇠로 만들어진 깃이 달린 <그림 83>의 대장군전이 장전된 상태를 표현한 것
으로 대장군전을 발포하려면 방패의 동그란 포혈에서는 전혀 불가능하고 그림
과 같이 대장군전의 쇠로 만든 날개깃(鐵羽)이 방패를 빠져 나갈 수 있는 너
비와 세로로 긴 장방형의 패문이 필요하게 된다.
<그림 83>의 선수 전면의 방패에는 넓은 패문이 좌우에 각각 한 개씩 그
려져 있다. 이 패문은 대장군전, 장군전의 큰 대전(大箭)을 쏠 수 있는 패문이
다. 선수 쪽에는 노군들과 겹치지 않는 독립된 공간이 좌우 현측에 있어 천자
총통과 같은 대형 화포를 배치하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방패의 특징이 통제영
거북선과 이순신 종가의 방패에서 나타나는 것은 두 거북선이 별제귀선에서
유래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100
<그림 84> 통제영 거북선, 이순신 종가 귀선도의 패문
101
<표 5>는 별제귀선 포혈의 수이다. 2층 좌우 현측의 통풍을 위한 구멍은 포
혈의 수에서 제외하였다.
현측
층 선수 선미 소계 합계
좌 우
용머리 개판 개판 꼬리 밑
3층 14
1 6 6 1
방패 좌우 방패 방패 방패 좌우 40
2층 원형 2 원형 4 원형 4 원형 2 26
패문 2 패문 5 패문 5 패문 2
102
<표 6>은 별제귀선에 기본으로 배치되는 화포의 종류와 수를 요약한 내용
으로 모두 16개이다. 필요에 따라 2층 좌우 현측에는 예비의 화포를 패문에
추가배치 할 수 있다.
해전의 기록을 검토하면 별제귀선은 적진 속으로 돌격해 근접한 목표대상이
나 주변을 에워싼 왜선들을 2층의 낮은 위치에서 전후좌우로 동시에 화포를
쏴서 한 번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효과를 내는 근접당파전술을 사용하였다.
송규빈의 『風泉遺響』海防總論에는 화포의 배치에 대한 원칙이 나타난다.
“선수와 선미에는 천자포와 지자포를 설치하고 현측으로는 불랑기포를 각각 3
문씩 설치한다.”109)는 내용에서 화포의 크기와 발사 시 선체에 미치는 충격의
영향을 고려해 대형의 화포는 선수와 선미에 위치시켰다. 좌우 현측의 허리부
분에는 노 젓는 곳과 겹치지 않도록 좌우 현측의 앞쪽, 중간, 뒤쪽으로 현자포
3문을 설치해 현측의 모든 방향으로 화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3층 개판의 전면은 이순신 장계의 기록을 근거로 현자총통을 설치하고, 개
판 좌우 현측에는 각각 6문의 황자총통, 선미 꼬리 밑에는 현자총통을 배치하
면 합이 24문으로 <표 6>의 화포의 종류와 수로 요약된다.
현측 소
층 선수 선미 합계
좌 우 계
용머리 개판 개판 꼬리 밑
3층 14
현자총통 1 황자총통 6 황자총통 6 현자총통 1
24
방패 좌우 방패 방패 방패 좌우
2층 10
천자총통 2 현자총통 3 현자총통 3 지자총통 2
103
별제귀선의 사료에는 활을 쏘는 사부의 내용들을 찾아볼 수 없다. 사부가
높은 3층에 위치하는 근거는 이덕홍의 귀갑선 구조와 거북선 전법에 대한 상
소의 내용에 있다. 귀갑선에 판옥을 설치하고 사수를 매복시킨다는 내용과,
『각선도본』의 판옥선 장대의 주변에는 활을 쏠 수 있는 사혈이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거북선에서 사부의 인원수는 적지만 높은 3층에
위치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거북선은 사방이 막혀있어 지휘관이 전후좌우의 외부상황을 한 번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사각지대가 없도록 구역별로 배치된 사수로부터 외부의 상황을 보
고받는 지휘체계와 거북선의 운용방법에 사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후좌우에 배치된 사부는 3층 선수 쪽에서 지휘하는 선장(船將)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구역별 명령을 하달하며 화포가 준비될 때 까지 엄호하고 활로 선상
의 적을 사살하는 여러 역할을 하게 된다.
별제귀선 사부의 수는 사료를 근거로 10명하고, 사혈은 <그림86>, <그림
87>과 같이 위치하고 있으며 좌우 각각 5명씩 모두 3층에 배치되었다.
현측
층 선수 선미 합계
좌 우
좌 우 좌 우
3층 3 3 10
2 2
104
거북선은 근접전을 위한 돌격선으로 왜적과의 근거리의 조총이나 화살의 공
격으로 부터 피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필요한 크기의 포혈과 활을 쏘는 사혈을
뚫어 놓고 그 밑에 안보이도록 매복해 있다가 공격의 명령이 있을 때 화포를
쏘거나 활을 쏘았다.
105
1.8. 행선(行船)구조
106
가능성을 높여준다.
돛대의 회전축은 2층 갑판에 있고 3층에서 돛대를 세우고 눕히는 원리로
무거운 돛대를 세우거나 눕힐 때 용이하도록 과학적 지식이 적용되었다. 이
구조가 필요한 추가적인 이유는 선내 상·하층의 통풍과 채광에도 관계한다.
<그림 98>에서 볼 수 있듯이 2층의 천장 중앙은 3층 개판의 통로와 같은
크기인 1.5척의 너비로 뚫려있어 선내 전체의 공기순환과 채광기능도 하는 원
리가 적용되어있다.
판옥선도 같은 구조로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판옥선 2층의 밀폐된 구조
에서 공기의 순환과 채광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특히 전투에서 화포를 사용
하는 경우 판옥선에서도 통풍을 위한 창이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원리가 적용
되었을 것이다.
107
<그림 89> 돛대의 회전축 위치
108
<그림 90> 『각선도본』 병선(兵船) 출처: 규장각
109
<그림 92>116)는 전통적인 한국식 노의 구조로 노봉을 멍에에 박혀있는 회
전축 위로 얹어 구멍에 고정시킨 후 노 끈을 바닥과 연결해 일정한 높이를 유
지시킨다. 손잡이 부분의 노손을 잡고 앞뒤로 밀고 당기면 배가 이동하는 구
조로 되어있다.
110
을 배열하면 공간3과 같이 안쪽으로는 노군이 한 명 설 수 있는 공간만 만들
어진다. 따라서 2명씩 마주보기에는 공간의 문제로 어렵고 안쪽에는 1명, 반
대쪽으로 2∼3명이 배치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군선과 같이 여러 개의 노가
배열된 상태에서는 노의 배치된 순서에 따라 홀수와 짝수로 구분해 밀고 당기
는 것을 반대로 젓기 때문에 노의 손잡이 끝부분이 앞의 노와 가깝게 위치하
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노 하나에 3명이 배정되어
노를 밀고 당기게 된다.
<그림 94>는 방패의 내부구조를 외부에서 본 그래픽으로 멍에와 멍에의
중간에 방패기둥이 위치하고 내부에서는 방패기둥, 노, 노창이 직선상에 위치
하게 된다. 현재 복원된 <그림18>, <그림 19>의 거북선은 멍에에 노의 회
전축이 위치해있어 전진만 할 수 있는 구조로 멍에와 방패기둥이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11
1.9. 내부구조
112
방의 좁은 창으로 밖을 살피고 명령을 내리지만 개판으로 막혀있어 모든 방향
의 상황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3층 전후좌우에 배치된 사수의 보
고로 지휘했을 것이다.
113
1.10. 통풍과 채광
114
것으로 <그림 98>과 같은 순환구조가 적용되었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신선
한 공기는 2층의 노창과 좌우 현측의 방패에 있는 뚫려있는 포혈을 위장한 통
풍구에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2층 천장의 긴 통로를 거쳐 3층 개판의 중앙
의 통풍창으로 빠져나가 순환된다.
115
2. 전술 및 운용
2.1. 별제귀선의 전술
116
별제귀선의 2층에서는 근접당파전술을 위해 전후좌우로 왜선을 깨트릴 수
있는 화포를 배치하였다. 적진 속에서 에워싼 왜선과 기함을 깨트려 무력화시
키기 위해 선수에는 천자총통, 선미에는 지자총통, 좌우 현측으로는 좌우 현측
은 노 젓기와 화포의 간격을 고려해 현자포를 좌우에 각각 3문씩 배치함으로
써 노를 젓고 현자포를 쏴서 왜선을 깨트리는 전술로 배치되었다. <그림
103>은 2층에 대전이 설치된 상태의 표현이다.
이순신의 장계「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 별제귀선은 대장군전으로
왜선을 깨트렸다는 기록이 있듯이 대전은 해전에서 유용한 무기였다.
『명종실록』에 의하면 1555년(명종10) 전라관찰사 김주(金澍)가 “왜선(賊
船)을 깨뜨리는 기구로는 대장군전(大將軍箭) 보다 나은 것이 없다”123)고 총
통을 주조할 것을 건의하였다. 해전에서는 낮은 2층에서 두께가 10cm 정도
이도 길이는 2m 정도의 길고 쇠로된 날개가 달린 대전이 왜선을 깨트리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포르투칼 예수회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는 1592년 임진왜란『예수회 연례보
고서』부록에 거북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117
위협적인 무기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2층의 방패에는 대전과 탄환을 필
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패의 구조는 앞의 내용들을 뒷받침하
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의 별제귀선의 혁신은 3층 구조의 개판에 있다. 일본에 조총이 있기
이전에는 칼을 쓰는 왜적을 상대하기에 거북선 개판에 칼·송곳을 꽂아 대응이
가능했으나 강력한 신무기인 조총이 위력을 보이면서 이순신은 일본의 조총을
무력화 시킬 일당백의 공격용 무기가 필요해 거북선을 3층 구조로 창제하고
전후좌우로 화포를 설치하였다. 높은 3층에는 사수가 위치했지만 적진 가운데
서 전후좌우에서 쏘아대는 일본의 집중적인 조총의 탄환을 사부의 활쏘기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순신은 분석하고 있었다. 따라서 별제귀
선에서는 개판의 전후좌우에 화포를 배치하고 조총보다 더 강력한 화포로 다
량의 소철환을 쏴서 선상에 있는 왜적의 대량살상과 왜적의 조총을 한 번에
무력화 시키는 전술을 구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103>은 3층 개판의 선수 전면으로 용머리와 현자포가 설치되어있고
좌우 현측으로 황자총통을 설치해 소철환을 쏘고 사부는 사혈로 활을 쏘는 상
황을 나타낸 그래픽이다.
118
용머리와 꼬리 밑에 현자포는 3층 상갑판 바닥에서 현자포를 쏠 수 있는 위
치이고 포혈의 방향은 근거리에서 선상에 있는 왜적을 철환으로 쏠 수 있도록
거의 수평방향으로 설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림 103>125)은 판옥선과 일본의 안택선, 세키부네의 크기와 높이를 상
대적으로 비교한 경우이다. 3층 구조의 거북선은 판옥선과 높이가 같기 때문
에 거북선에서 수평으로 쏴야하는 이유는 철환을 쏴 퍼지는 것을 고려해야하
기 때문이다. 복원 거북선들은 현자철환을 ‘치쏘았다’는 것을 구조에 적용시키
기 위해 머리의 방향을 심하게 위로 향하고 있으나 현자총통은 포구가 넓어
빠져나오는 순간 철환이 퍼진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119
총으로 무장한 왜적에게 화포로 철환을 쏴서 대량인명살상의 전술을 펼친 것
으로 해석된다.126)
별제귀선에 관한 임진왜란 당시의 사료는 매우 단편적으로 나타난다. 기록
의 관점에서 포혈의 위치를 분석한다면 이순신의 장계와 이분의 「행록」에
“앞에는 용머리의 포혈 있고, 뒤에는 꼬리처럼 되어있고 그 밑에 포혈이 있다.
좌우에는 각각 6개의 포혈이 있다”는 별제귀선의 전술은 이전부터 전해져 오
는 것이 아니고 혁신적인 발상의 특수한 거북선 구조였기 때문에 특별히 기록
을 남긴 것으로 판단된다. 이순신이 ‘용머리 포혈, 꼬리와 꼬리 밑의 포혈, 좌
우 각각 6개의 포혈’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장계, 조
카 이분의 「행록」에도 기록되어 있어 왜적을 물리칠 중요한 전술이었다는
것을 고증하고 있다. 3층 구조의 특별한 거북선을 처음 건조하면서 판옥선의
2층 방패에 많은 포혈처럼 거북선 2층에 기본적으로 있는 포혈 이었다면 용
머리와 함께 ‘좌우에 각각 6개의 포혈이 있다’고 특별히 기록하지 않았을 것
이다. 즉, ‘이전에 없던 혁신적인 3층 구조의 거북선’에 관한 기록인 것으로
이순신의 장계에 기록된 ‘別制龜船’, 이분 행록의 ‘創作戰船’, 류성용 『징비
록』의 ‘創造龜船’은 표현은 이를 뒷받침 한다.
이덕홍의 상소문과 귀갑선도 그림에서 거북선의 구조와 전술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다. 2층에는 화포를 설치하고 높은 판옥에는 사수를 매복시킨
다는 것으로 층수의 높이에 따라 무기배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선
행연구의 남천우127)와 장학근128)은 별제귀선이 3층 구조라는 근거와 전술에
서 3층에만 화포를 위치시켜야 한다는 해석은 이덕홍과 이순신 별제귀선 전술
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120
2.2. 전·후진 노 젓기와 화포의 사용
121
Ⅴ. 조선시대 거북선의 분석
1. 기본구조와 및 유형
122
서 원거리에서는 활을 쏘거나 화포를 사용하는데 유리하지만 초근접전에서 왜
적이 칼을 들고 등선을 하면 불리하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등선을 저지하기 위
해 크기가 크고 높은 판옥선과 거북선을 개발하게 되었다. 특히 거북선의 경
우에는 초근접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판 전후좌우에 쇠 송곳을 꽂아 찔려
죽거나 등선하는 것을 저지했다.
이덕홍의 귀갑선과 이순신의 별제귀선은 구조에서 서로 다르지만 전술은 같
다. 두 거북선 모두 2층에 화포를 설치해 왜선을 깨트리고, 높은 위치의 판옥
이나 3층 개판에서는 적군을 사살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귀갑선은 2층
판옥구조로 이덕홍의 귀갑선에 나타난 임진왜란 거북선의 기본구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23
경사진 사선구조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신속한 이동과 좌충우돌 거북선의
충돌에서 전복되는 경우가 발생되지 않도록 안정된 복원력을 고려한 과학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거북선의 ‘머리는 급하고 뾰족하게 만들었으며 누선보다 빠르다’는 내용들을
종합하면 사다리꼴의 개판은 공기의 저항을 감소시켜 속도를 높이고, 선수와
선미의 방패가 직접적인 충돌로부터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거리유지, 개
판의 상부의 무게를 감소시켜 안정적인 복원력에 필요한 기본구조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102>의 이덕홍 귀갑선, <그림 103> 이순신의 별제귀선,
1795년 통제영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모두는 2층 상장을 중심으로 물속에 잠
기는 하체와 2층 또는 3층 구조의 개판은 상하가 대칭형으로 ‘오뚝이’의 구조
를 가지고 있어 적진 속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전복되지 않는 과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124
2. 별제귀선의 차별적 특징
125
에서는 용머리, 좌우 개판에 각각 위치한 6개의 포혈, 꼬리 밑의 화포로 소
철환을 발사해 대량인명살상이 가능한 전술을 사용하였다.
별제귀선의 과학적인 설계는 개판 중앙에 위치한 돛을 세우고 눕히는 1.5척
의 통로에 있다. 개판 중앙의 이 통로는 사방이 막혀있는 거북선 내부의 채광
과 온도조절 및 통풍창의 다기능의 과학적 원리가 구조에 있었다.
3. 거북선의 변천
126
<표 8> 1592년 이순신 별제귀선과 1795년 통제영 거북선의 비교
127
<그림 105> 조선시대 거북선 연표
128
Ⅵ. 결 론
1. 결론 및 연구결과 요약
129
는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귀갑선 구상도의 복원을 통해 확인된 것은
거북선 개판의 구조로 개판 상단은 평면이고 사다리꼴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
다. 공기의 저항을 줄여야 돌격선으로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고, 안정된 복
원력으로 많은 충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1795년 통제영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구조분석에서도 개판 상단은 평면이고
전후좌우로 사다리꼴의 개판 구조로 확인되었다.
1591년 이순신은 왜적이 반듯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예상하고 왜적의 신무
기인 강력한 조총, 왜적의 등선과 칼을 사용한 백병전, 대규모의 해전에서 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일당백의 돌격선 기능을 갖춘 거북선을 구상하였다.
선수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으로 화포를 쏠 수 있고, 왜적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개판에는 쇠 송곳을 꽂았으며, 선미에는 거북꼬리를 부착하고 그 밑
에도 화포를 설치하였다. 선내에는 천자, 지자, 현자, 황자포로 무장하였으며,
외형은 신령한 현무의 형상을 거북선 구조에 적용하였다. 현무의 거북선 형상
은 조선 수군에게는 막강한 힘을 지닌 신구(神龜)로 용맹함을 주고 왜적에게
는 두려움과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심리적 요소를 거북선의 구조에 적용했다는
것은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전술적인 혁신으로 이순신의 별제귀선은 낮은 2층의 위치에서 대전(大箭)과
탄환으로 왜선을 깨트릴 수 있도록 방패에는 장방형의 패문과 포혈이 함께 있
어 필요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구조였다.
개판의 옆과 선수, 선미의 양 머리에는 쇠 송곳을 꽂아 근접전에서 왜적의
등선을 저지했다. 3층 선수 전면의 용머리 포혈과 좌우 현측에 위치한 12개의
화포로는 철환을 쏴서 선상에 있는 왜적의 조총을 무력화 시키고 대량살상이
가능한 대규모 해상전투용 돌격선이 임진왜란 이순신의 거북선이었다.
이순신의 장계에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다’는 내
부구조는 성곽의 상단에 위치한 성가퀴와 같은 구조로 적으로부터 몸을 숨겨
130
보호하고 효과적인 공격을 위한 것이다.
별제귀선의 3층 개판에는 10개의 사혈을 뚫고 10명의 사부가 사방으로 배
치되는 이유는 활을 사용해 적군을 사살하는 목적 이외에 각각의 위치에서 별
제귀선 밖의 상황을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
되었다. 사방으로 막혀있는 거북선에서는 외부의 상황을 지휘관 혼자 살필 수
없기 때문에 사부와의 소통으로 지휘하는 시스템이었다.
별제귀선의 방호는 근접전에서 칼을 잘 쓰는 왜적이 등선하지 못하도록 개
판의 전후좌우와 상단에 좁은 십자로를 제외하고 쇠 송곳을 꽂았으며, 왜선의
집중적인 충돌로부터 방패가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패의 높이를 4.3척
으로 낮게 하고 두꺼운 현란의 높이를 크게 설계하였다.
별제귀선이 적진 속에서 전후좌우로 자유로운 행선이 가능했던 것은 멍에
모서리에 노의 회전축을 위치시키지 않고 멍에와 멍에의 중간에 노가 위치하
고 필요에 따라 너를 역방향으로 회전될 수 있는 노창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
기 때문이다.
별제귀선은 범노선으로 무거운 돛대를 눕히고 세우기 위해 회전축을 2층 갑
판에 두었다. 돛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3층에서 힘들이지 않고 작업이 가능했
으며, 개판으로 덮여있는 거북선 구조에서는 필요한 구조였다. 돛대를 운용하
는 방법은『각선도본』의 병선과 조선에 그림으로 나타나 있어 가능성을 더
높여주었다.
개판 상단의 중앙과 상갑판 바닥면이 돛대를 세우기 위한 1.5척 너비의 긴
통로는 돛과 돛대의 운용과 사방으로 막혀있는 선내의 채광 및 통풍창의 기능
으로 화포의 연기가 2층 중앙 통로를 거쳐 3층의 긴 통로로 배출되는 다목적
용도의 과학적인 구조로 설계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덕홍의 귀갑선이 2층 판옥 구조라는 것은 3D 컴퓨터 모델제작으로 확인
되었으며 개판은 사다리꼴 구조로 쇠 송곳은 경사진 선수전면, 개판 상단, 경
131
사진 선미의 위치에 그려져 있는데 귀갑선도가 거북선 연구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개판의 사다리꼴 구조와 쇠 송곳의 위치에 있다. 이덕홍은 본인의 구상
도를 귀선이 아니고 귀갑선으로 기록한 것은 전체의 모습이 이순신의 별제귀
선과 같이 머리, 개판, 꼬리를 붙인 완전한 거북형상이 아니고 개판부분만을
사다리꼴로 덮은 방호기능의 등딱지만 고려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거북선 사료의 기록에 거북선 앞머리가 뾰족하다는 표현은 1596년 『선조
실록』에 이순신 별제귀선은 ‘쇠못을 옆과 양머리에 꽂았다’는 기록과, 1748
년 이언섭의 장계에 거북선의 ‘머리는 가파르고 뾰족하게 만들었으며’라는 구
조의 묘사가 있다. 또한 1795년 통제영,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3D 컴퓨터 그
래픽 모델 시뮬레이션에서도 개판은 사다리꼴 구조로 분석되어 모든 거북선
개판의 구조는 선수와 선미다 뾰족한 사다리꼴 구조라는 것을 규명할 수 있었
다.
거북선의 개판이 사다리꼴의 구조를 갖는 것은 행선 속도와 안정된 복원력
을 위한 돌격선의 특징에 있다. 거북선은 적진 속을 파고들어 임무를 수행하
기 때문에 빠른 이동속도가 요구된다.
거북선은 방호를 위해 사방을 판자로 높게 막은 구조로 이동할 때 공기의
저항이 크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공기의 저항을 줄여 속도를 높
이고 바람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 거북선은 모두 가파른 경사의 사다리꼴 구
조를 개판에 적용해왔다. 또한 개판이 전후좌우로 사다리꼴로 상단이 좁아진
구조는 개판 상단의 무게를 줄여 안정된 복원력을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거북
선의 구조는 상하가 대칭인 ‘오뚝이’의 구조를 갖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순신의 별제귀선이 이덕홍의 귀갑선도가 전해져 만들어졌다는 설이나 나
대용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설은 사실이 아니다. 이덕홍의 귀갑선은 2층 판옥
구조의 거북선으로 완전한 3층 구조의 별제귀선과는 층수, 전술, 화포의 배치
등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에 관계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왜적을 물
132
리치기 위한 혁신적인 돌격선은 이순신의 구상으로 실현되었다는 근거로이순
신 장계에는 ‘別制龜船’, 이분 「행록」에는 ‘創作戰船’, 류성용 『징비록』에
는 ‘創造龜船’, 『선조수정실록』에는 ‘自以意造龜船’ 으로 모두 이순신에 의하여 구
상되고 건조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2. 연구의 한계 및 제언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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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ABSTRACT
Hong, Soonkoo
140
turtle ship was used simply because Admiral Lee had worked at the
camp, but the ship was not Admiral Lee’s ship.
The Turtle ship used by Admiral Lee Sun-sin was part of the
reasons why Admiral Lee could win the naval battles in the Imjinwaeran.
Thus, it is a cultural asset serving to make Korea known in the world, It
is very important to discover the original figure of the ship, for
educational purposes.
Scholastic researches to reveal the original figure of Turtle ship has
continued since 1934, and, based on such researches, models of the ship
30m long, and 2-3 tier structures in the name of Admiral Lee’s Turtle
ship used in the 1592 war. However, the problem is that recovered
Turtle ship can not explain how Admiral Lee used the ship in the battles,
and the builders of the ship have not been able to offer convincing
evidence that the models represent the original.
As there are no drawings and measurements allowing us to know the
structure and form of Admiral Lee’s Turtle ship, drawings and explanation
of the Tongjeyeong and Jeolla Jwasuyeong turtle ship contained in
Leechungmugong Jeonseo and other historical records regarding the war
are used as sources for researches on the original form of the ship.
Turtle ship has physical structure and form as warship. Consequently,
researches are required to provide visualized output of concrete figure.
But, as existing researches on the ship have focused on literature, and
have not offered specific figures, they have limits in describing structure
and form of the ship.
The reason why the structures and forms of recovered Turtle ship do
141
not match the records of naval battles during the war can be found that
existing researches on the ship depended only on the explanations of the
two Turtle ships contained in Leechungmugong Jeonseo and used
un-confirmed research results as sources to design the models.
This study, to suggest concrete research findings on structure and
form of Admiral Lee’s Turtle ship, analyzed sources based on
visualization of historical records. To draw the figure of Turtle ship, this
study visualized the Tongjeyeong and Jeolla Jwasuyeong turtle ship and
Guigapseondo [Drawing of Turtle shell ship] of Lee Deok-hong and
Admiral Lee’s Head family’s Guiseondo as a 3-dimension computer
graphic model, and used a method to investigate contents of documents
by simulation.
Guigapseondo of Lee Deok-hong is the first drawing of Turtle ship
among all the remaining drawings of the ship. While Admiral Lee scored
victories in naval battles, Lee Deok-hong who was escorting the prince,
submitted a memorial asking the prince to consider strategy using turtle
ships to win the war. In 1593, he submitted a memorial to the king
attaching the drawing of Turtle ship describing the structure of it. While
the drawing is simple idea-level one, its explanation of Turtle ship
strategy contains thorough analysis of Japanese troops and all the
knowledges available in those days. Thus, it was used in this study as
theoretical backgrounds to recover the ship and understand and interpret
the basic structure of Turtle ship.
In the Analysis of the structure of Turtle ship, the hight of one tier
and structure of gaepan, deck, is the first object of analysis. As
142
measurement of the height of the ship remaining in the historical records
is the explanation of the Tongjeyeong turtle ship in Leechungmugong
Jeonseo. The explanation only mentions that ‘the height from hyeonran to
peran is 4.3 cheok (130cm)’, but there is no mention on the total height.
The controversy over whether Turtle ship was of 2-tier, or 3-tier
structure is caused by the fact that the number of tiers can be different
from the understanding of 4.3 cheok. In the situation where the
arguments on the height of Turtle ship were not solved because of lack
of clear theoretical bases, I suggested a concrete theoretical basis on the
Analysis of the height of 4.3 cheok in scholastic paper in 2015
The reason why the bangpae height is as low as 4.3 cheok is from the
fact that hyeonran located beneath bangpae was Bird’s mouse joint with
meonge, and located high, and that, to prevent bangpae from breaking
when the ship collided with a Japanese ship, and protect the ship body,
designers of Turtle ship specifically made bangpae low, and heightened
thick hyeonran.
The reason why it is assume that Turtle ship was of 2-tiers is from
the Analysis that the height 4.3 cheok (130cm) from hyeonran to peran
was the height of 2-tier hyeoncheok. For oarsmen about 160cm tall to
paddle oars at hyeonccheok, there should be space over their heads. So,
the recovered model made gaepan, the second tier ceiling, a round
structure. In conclusion, without considering the method of dovetailing
hyeonran-bangpae-peran, the model directly applied the measure of 4.3
cheok to hyeoncheok.
The crucial ground of why Admiral Lee’s Turtle ship was not of
143
2-tier one was the cannon hole at yongmeori [dragen head] and cannon
holes located on the left and rights sides of the at Tongjeyeong turtle
ship. Lee Sun-sin wrote that soldiers shot iron balls with hyeonjapo from
the cannon hole at yongmeori. To shoot them, yongmeori should be
placed at the front of the 2nd tier. But, as ankle and ankle mulrae are
placed at the front of the 2nd tier, it was impossilbe to install yongmeori
there. And, if it is installed at higher position, cannons could not be used.
Even if cannon holes are cut on gaepan, cannons cannot be placed
because gaepan is placed high. Thus, there is no cannon holes in gaepan
in the recovered 2-tier structure Turtle ship.
The fact that guigapseon [Turtle shell ship] of Lee Deok-hong was of
2-tier panok structure can be confirmed from his drawings and
explanation of battle techniques. Gaepan was of trapezoidal structure, and
iron awls are drawn to be on sloped front, upper part of gaepan, and
sloped stern. The reason why Guigapseondo is important for research on
Turtle ship is its description of trapezoidal structure and positions of iron
awls. Various historical records on Turtle ship described that the front of
the ship was sharp. Seonjosillok made in 1596 describes Turtle ship as
‘iron awls are positioned on the sides and two heads’. The 1748 janggae,
report to the king, of Lee eon-seop, describes Turtle ship as ‘its head is
steep and sharp’. In the 3-dimensional simulations of Tongjeyeong and
Jeolla Jwasuyeong turtle ship as well, gaepan was analysed as trapezoidal
structure. Thus, it was determined that the basic structure of all the
Turtle ship was of sharp trapezoidal structure.
The rapezoidal structure of Turtle ship gaepan was from the fact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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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ip needed speed and stable restitutive force to attack enemy ship.
As it penetrated the group of enemy ships, it needed rapid movement. As
all the sides of the ship was covered by panels for protection from
enemy, it faced strong air resistance when it moved, and it was greatly
influenced by wind. So, to reduce air resistance and influence of wind,
designers of the ship made gaepan as steep trapezoidal structure.
The gaepan structure with all its sides being of trapezoidal structure,
and its top being narrow can be interpreted to have been intended to
secure stable reduce weight of gaepan and stable restitutive force. The
whole structure and form of the ship can be summarized as the form of
‘tumbler’ with symmetric bottom and top.
Byeolje turtle ship, which Lee Sun-sin described as ‘dragon head was
attached, and let the cannon fire balls through its mouth’ in his jangge,
was of 3-tier structure, and its gaepan sides and two heads had iron
awls. It had a typical ‘tumbler shape’ with trapezoidal structures.
In 1591, expecting that Japanese troops would invade Korea, and the
characteristics of prospective war such as strong jochong, Japanese rifle,
climbing of Japanese soldiers on the Korean ships, hand-to-hand fights,
and large Japanese fleets, Lee Sun-sin designed Turtle ship as an attack
ship which could fight with 100 ships. Dragon head would be attached on
the bow, and cannon balls would be shot from its mouth. Iron awls would
be installed on gaepan to prevent Japanese soldiers from climbing the
ship, On the stern, turtle tail would be attached, and cannons would be
mounted beneath it. Inside the ship, Cheonjapo, Jijapo, Hyeonjapo would
be arranged. Holy hyeonmu figure was applied to the outward featur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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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ip. It is innovative that the ship was designed to the effect that
the turtle feature would provide Joseon navy with mysterious power of
God Turtle, and Japanese soldiers with fear and oppression.
Lee Sun-sin’s Turtle ship, as sail and oar ship, contained long space
of 1.5 cheok wide at the center of gaepan to lower and erect its mast. It
was scientifically designed to serve multi-purposes: to receive sunlight,
and ventilate, and let cannon smoke exit through the central passage in
the 2nd tier and the 3 tier passage.
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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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 Yi Sun-sin, Byeolje Turtle Ship, Geobukseon, Imjinwaeran,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