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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0
관객 입장. 하우스 뮤직이 깔리고 관객이 모두 착석하면 모든 조명과 음향이 꺼진다.
조명 in. 엘리베이터 앞에서 통화하는 김민석. LED 화면은 5 층으로 표시되어 있다.

김민석 : (다급하게) 뭐? 지..진짜? 아직 예정일은 2 주나 남았는데? 아..알았어. 내가 지금 당장 갈게!


그때 까지 힘낼 수 있지? 그..그래…! 시..심호흡 하고,..후우…후우….후우우우….응. 알았어. 금방 갈게!
응! 응! 사랑해!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버튼을 연타하며 초조하게 기다리는 민석.


조명 out. 암전.

#1
잠시 후 엘리베이터 도착음 ‘띵’ 들린다. LED 는 8 층을 가리키고 있다.
얼굴에 조명이 비친다.

세 사람 : (웅성거리며) 어~일어난다. 깨어났어!

#2.
조명 in. 남자가 쓰러져 있고 세 사람이 남자를 내려다 보고 있다. 눈을 뜨는 남자. 천천히 일어난다.
중년의 남자와 오타쿠로 보이는 안경 쓴 남자 독특한 분위기의 지저분한 곰인형을 든 교복 입은
여자다. 학생인 것 같다.

장덕환 : 다행이네! 거 죽은 줄 알았잖아.

곰인형을 안은 교복의 여자는 구석으로 가서 앉는다.

김민석 : 누…누구세요?
장덕환 : 여기 주민.
김민석 : 저 쪽의 두 분은?
장덕환 : 몰라. 여기서 처음 봤는데?
김민석 : (잠시 생각하다 뒤통수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는다) 아~
장덕환 : (민석을 부축하며) 아우 괜찮아? 거 조심 좀 해.
김민석 :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된거죠?
오타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섰어요.
김민석 : (오타쿠를 보며) 네?
오타쿠 : 그쪽이 타자마자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쭈~욱! (킥킥 웃으며) 완전 매트릭스였는데.

김민석. 둘러보다가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선다. 층수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는 엘리베이터.


급기야 오락기 누르듯 연타 하는 김민석.

여자 :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깜짝 놀란 민석.

오타쿠 : 소용없어요. 우리가 아까 닳도록 눌러봤으니까.

오타쿠 얘기를 듣고 두리번 거리다 비상버튼을 발견한다.

1
김민석 : (비상벨을 들여다보며) 그래, 비상버튼, 비상버튼을 누르면 감시센터에서 응답합니다?
오타쿠 : 응답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가 안 나와있다구요.
김민석 : 마…맞다! 해..핸드폰!! (주머니를 뒤지며) 어? 어? 내 핸드폰!!! 어디 갔지? 어?

모든 주머니를 뒤지지만 핸드폰이 없다

장덕환 : 왜 그래?
김민석 : (안절부절하며) 핸드폰이 없어졌어요!! ….(머리를 긁적인다) 떨어뜨렸나?...저기, 119 는요?
장덕환 : (핸드폰을 꺼내며) 배터리가 없어.

김민석. 오타쿠에게 시선을 보낸다.

오타쿠 : 저도 없어요. 잠깐 편의점 갔다 오는 거라…

김민석. 다시 여자를 간절히 쳐다본다. 민석의 시선을 외면하는 여자.

여자 : 버렸어. 이젠 필요 없으니까.
김민석 : (뒷통수를 맞은 듯) 그렇다…는건…

음악 in 쾅쾅쾅쾅!

오타쿠 : 밀실 상태라구요 여기. 외부와 일체 연결 안되는!!


김민석 : 밀실이요? 안돼요! 전 당장 여기서 나가야 된다구요! (문을 세게 두드리며) 여기요!!
살려주세요!!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혔어요!! 거기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세 사람. 안보인다는 듯 딴청을 부리고 있다. 민석, 두드려도 사람들이 오지 않자 엘리베이터 안을


초조하게 서성이다가 천정의 CCTV 를 발견한다.

김민석 : (CCTV 를 향해 팔을 흔든다) 거기 누구 없어요?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혔다구요!!


장덕환 : 관둬 형씨. 그 CCTV 아직 안 돌아가. 그리고 여기 새 아파트라 입주한 세대가 얼마 안돼. 뭐,
그런 거 들여다 볼 사람도 없고.
김민석 : (무슨 소리냐는 듯) 네?
장덕환 : 아 당신 여기 주민 아냐? 거 왜 몰라? (기지개를 펴며 일어난다) 뭐, 아침이면 누군가
알아채겠지. 그 때 까지 느긋하게 있자고~
김민석 : 그 때 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사람 살려! 엘리베이터가 멈췄어요!
사람 살려! 경찰 불러요!!
장덕환 : (버럭) 거 왜 일을 크게 벌여?!! 이러다 곧 움직이겠지. 그래! (벽을 탕탕 두드린다) 이거…지가
충전중인지도 모르잖아!
김민석 : 엘리베이터가 무슨 핸드폰입니까?! 지가 충전하게? (울상) 진짜…미치겠네…
장덕환 : 어어~? 징징 짜? 아깐 호들갑이더니. 당신 폐쇄공포증이야?! 크흠…
김민석 : 지금 당장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야 된다구요…!!!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김민석을 향한다.


조명 cut out

#4.
조명 cut in.

미정 : (숨이 넘어갈 듯) 민석. 나 큰일났어. 지금 어디야? 아 지금 애가 나올 것 같다고!! (신음소리) 아

2
~아~배가 너무 아파. 모르겠어……아직 2 주나 남았는데…내 옆에 있어 줄 거지? 빨리와!!!

조명 cut out

#5.
무대 중앙 조명 기본 cut in

장덕환 : (진지하게) 진짜?


김민석 : 곧 나온대요.……근데 왜 하필 지금…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달라고 외쳐주세요!
오타쿠 : (안경을 쓸어 올리며) 이웃에 폐가 될 텐데…

오타쿠를 때리려는 시늉을 하는 김민석. 말리는 장덕환.

장덕환 : 그래! 거 사정도 딱한데 뭐 한 번 도와줍시다!


좋아! 하나 둘 셋 하면 사람 살려야? (침을 씨름선수 처럼 손에 뱉으며) 하나 둘 셋!!!
장덕환, 오타쿠, 김민석 : (동시에) 사람 살려!!!
장덕환 : 하나 둘 셋!!!
장덕환, 오타쿠, 김민석 : (동시에) 사람 살려!!!

침묵.

장덕환 : 에이~! 사람 살려는 역시 안돼겠다. (정면을 향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김민석 : 네?
장덕환 : ‘불이야’!!!. 어때? 자기들도 위험하니까 나올 수도 있고! 아 사람들 그 불 구경 좋아하잖아~!
자, 다시!! 하나 둘 셋!!
장덕환, 오타쿠, 김민석 : 불이야!!
장덕환 : 불이야!!!
오타쿠, 김민석 : 불이야!!
장덕환 : 싸움났다!!!
오타쿠, 김민석 : 싸움났다!!!
장덕환 : !!!
오타쿠, 김민석 : !!
장덕환 : !!
오타쿠, 김민석 : !!
장덕환 : !!
오타쿠, 김민석 :!!!
장덕환 : !!
오타쿠, 김민석 : !!
장덕환 : !!!!!
오타쿠, 김민석 : !!!!!
장덕환 : !!
오타쿠, 김민석 : !!
장덕환 : (돌아서서 응원하듯) !!!!!
오타쿠, 김민석 : !!!
장덕환 : (응원하듯) 김문기다!!!
김민석: 김문..!!! ??……아!! 씨!! 그게 뭐야! 김문기가 뭔데요!
장덕환 : (깜짝) 응? 걸 왜 몰라? (객석을 향해) 거 이 바닥에서 유명하잖아?
오타쿠 : 이 사람 잘 하고 있었는데 왜 그래요.
김민석 : 좀 진지해 집시다! 네?!
장덕환 : 난 진지하다구!……(오타쿠에게) 그럼 다음은…존박으로 갈까?

3
오타쿠 : 전 장재인이 좋던데요…
여자 :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곰인형을 휘두르며 발광하는 여자. 엘리베이터 안을 휘저으며 도망다니는 세 사람. 쫓는 여자. 일동


정지. 숨을 거칠게 쉬던 여자가 진정된 듯 하다.

장덕환 : (두려운듯 다가서며) 괜찮아?


여자 : 시끄러워.
장덕환 : 진정해.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안 분위기가 싸해지고 어디선가 끼익 하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린다.

#6.
침묵의 엘리베이터.

김민석 : (체념한 듯) 아무도 안 오네요.


오타쿠 : 우리가 멈춘 층수가 아직 입주자가 안 들어온 층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아마 시간이 늦어서
다 자고 있을 거에요.
김민석 : 시간? 지금 몇시죠? …..(세사람을 둘러보며) 아니, 설마 시계 아무도 없어요?

끄덕 거리는 세 사람.

김민석 : 아 왜 없는데요!
여자 : 자기도 없으면서…
장덕환 : 요즘 시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다 핸드폰 들고 다니지.
김민석 : 그럼 핸드폰은요!!
여자 : 지도 없으면서…
김민석 : 전 항상 손목시계 차고 다닌다구요!
오타쿠 : 그럼 그 시계 어딨는데요?
김민석 : 그게…!! (아깝다는 듯한 행동으로) 아아~! 분명 있었는데? (혼잣말) 어딨지…? 술집? 노래방?
장덕환 : 별 수 있나. 그냥 기다려야지. 근데 우리 서로 이름도 몰랐네? 자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서로 자기소개나 한 번 합시다!
오타쿠 : 아, 그러네요. 합시다! 자기소개!
장덕환 : 그럼 나부터... (헛기침 몇 번 하고) 내 이름은 장.덕.환! 올해 서른 셋이고 여기 703 호에
삽니다.
오타쿠 : 근데 이거 집 호수까지 말해야 되나요?
장덕환 : 그건 자기 맘이고! 자, 이제 질문! 궁금한거 뭐~든지 물어보쎄요~! 자 질문!

장덕환. 민석을 빤히 바라본다. 마지못한 민석. 질문해준다.

김민석 : (마지못해) 직업이 뭐예요?


장덕환 :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음…그러니까…뭐..부동산 관련한거! 자, 또? 사양말고 다 물어보라니까?
(관객을 향해) 자자!! 질무우우운!! (돌아서며 중얼거린다)...요즘 사람들은 도대체가 질문이란 게 없어

오타쿠 : (앞으로 나서며) 궁금한 거 없다잖아요~! 내 소개를 하죠. 이름은 신승욱. 나이는 서른
입니다. 저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장덕환 : 취미는 뭐야?
오타쿠 : 애니감상, 피규어 수집. 이상형은 ㅇㅇㅇ입니다.
장덕환 : (혀를 끌끌차며) 알만하네. 그 나이에 피규어, 만화에 ㅇㅇㅇ… 이거 오타쿠구만.
여자 : (중얼거리며) 십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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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여자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한번 째려본다.

장덕환 : 직업은?
오타쿠 : 그게..
장덕환 : 캬~거기다 무직이야? 왜? 인간관계 때문에? 내가 이래뵈도 사람들 상담 좀 잘하거든? 따뜻~
한 인간미가 느껴진다나? (피식 웃고) 괜찮으니까 말해봐.
오타쿠 :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그냥……인간관계가 성가실 뿐이니까.
장덕환 : 이봐 신씨.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렸어. 당신도 일할 수 있다니까?
오타쿠 : 아 글쎄 아니래두요! 이렇게 얘기 잘 하고 있잖아요! 자! 저는 이제 그만! 다음.

장덕환 여자를 본 뒤 김민석을 본다.

김민석 : 김민석입니다.
오타쿠 : 몇 살?
김민석 : 서른이요.
오타쿠 : 직업은?
김민석 : 바탠더…
오타쿠 : 와~진짜? 멋있다! 톰 크루즈 처럼 (흉내내며) 막 춤추고 쉐이커 흔들고 그래요?
장덕환 : (민석에게 들이대는 오타쿠를 밀치며) 그건 당연하잖아~! 민석씨도 여기 살아?
김민석 : 아니요……가게 알바생이…
장덕환 : 놀러 온거야? 색시 배가 남산만 한데?
김민석 : (움찔) 아니요! 그 알바생 송별회였는데 너무 취해서 데려다 준겁니다. (눈치를 보다가) 술
안마시고 차 있는 사람이 저 뿐이고…명색이 가게 매니저라…
장덕환 : 음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여자 바라보며) 다음은 언니 차례야.

여전히 쭈그려 앉은 자세로 못들은 척 하는 여자.


장덕환 여자보며 조용히 압박한다. 여전히 회피하는 여자

오타쿠 : 아니 하기 싫다는데 뭐 굳이 억지로…


장덕환 : 우린 공동체야!! 자, 언니 이름은?
여자 : (시끄럽다는 듯이) 미선.
장덕환 : 몇 살?
여자 : 열 아홉.
장덕환 : 직업은?
여자 : 고딩.
장덕환 : 여기 살아?
여자 : 아니.
장덕환 : 그럼 친구?
여자 : 아니
장덕환 : 남친 만나러?
여자 : 아니.
장덕환 : 설마…원조…?!
여자 : 아니
장덕환 : 그럼 이 아파트엔 왜 온 거야?
여자 : 자살.

일순간 침묵이 감돌고, 여자. 손목에 감은 붕대를 보이며 말한다. 세 사람. 일제히 여자에게서 거리를
둔다.

5
여자 : (손목의 붕대를 보이며) 이게 실패해서 왔어. 근처에서 여기가 제일 높잖아.
장덕환 : 뛰…뛰어 내리려고? 설마 진짜 죽으려는 건 아니지?

레코더를 꺼내 켜는 여자. 거친 숨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리는 배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레코더 : 그 동안 날 괴롭혔던 녀석들. 잘 들어. 난 비록 죽지만 그건 너희들이 죽인거야. 너희들이 날
죽음으로 몰아간거야.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은 없어. 그치만 나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롭잖아? 조금만
기다려. 우린 친구니까 갈 때도 같이 가야지. 그치?

#7.
고요해지는 엘리베이터 안. 모두가 오싹 하다는듯한 숨을 죽이고 있다.
침묵.

장덕환 : 거..거 가만 있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좀!!

민석. 장덕환에게 끌려 몇 발짝 앞으로 슬금슬금 여자에게 다가간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게끔 한쪽 발로만 다가간다.

김민석 : (마른침을 삼키고) 그..그래요. 학생. 내가 학생 심정…다 알아요.


여자 : 알긴 뭘 알아. 오늘 첨 본 주제에.
오타쿠 :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지며) 나…난!!!!!!!! 아…알아요….. (여자를 바라보며) 그 쪽…(자꾸
가슴을 쳐다보며) 헤헤..! 가슴…소…!!속 마음이요!! …보여요...가슴… 속마음이요! 사실 저…옛날부터
초능력이 있어요.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장덕환 : (쯧쯧) 이 사람 문제 심각하네. 하하하하~나 어이가 없어서…야 야 초능력이랜다 초능력.
지금이 어떤 시댄데(킥킥 웃는다) 그래, 무슨 능력인데?
오타쿠 : 신체 일부를 접촉하면 그 사람의 속마음을 볼 수 있어요.
여자 : (비웃으며) 뻥치시네
장덕환 : 신체의 일부?…그게 어딘데?
오타쿠 : (여자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는다) 헤헤헤헤헤헤…

짜악. 오타쿠를 향해 뺨을 갈기는 여자.

오타쿠 : (억울하다는 듯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진짜예요! 시험해 보실래요?


장덕환 : (민석을 보며) 어쩔래?
김민석 : ……왜 절 봅니까?
장덕환 : 아까 이 사람이 구조요청 도와줬잖아.
김민석 : 그래도 시..싫어요! 그런 기분나쁜 실험 대상…
오타쿠 : (눈물 글썽이며) 증명하게 해줘요…! 아무나 좋으니까 몸을 만지게 해주세요!! 저 여자 찍소리
못하게 만들고 싶어요! 제발…좀…만지게 해줘요…가슴…흑..흑…만지고 싶어..만지고….싶은데….
여자 : 잠깐, 설마 이 인간 진짜 우는거야?
장덕환 : 김민석씨!

장덕환, 억지로 오타쿠를 향해 민석의 등을 떠민다. 얼떨결에 오타쿠 앞에 바짝 서 있는 민석.

김민석 : (뻣뻣하게) 꼭…가슴…이여야 되나요?


오타쿠 : (수줍은듯)그럼 손…잡아도 될까요?
김민석 : 빠…빨리 해 주세요…

오타쿠, 민석의 손을 잡는다. 민석의 손을 이상하게 만지작거리는 오타쿠.

민석 : (기분 나쁘다는 듯) 아으…!!

6
#8.
(초고속 카메라) 음악 in. 오타쿠. 뭔가 느끼는 듯 콧김을 센다. 점점 더 콧김이 세지는 오타쿠. 김민석
목덜미에 콧김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더 세게 가해진다. 음악이 고조되고 조명도 떨리는 느낌.
최고점에서 음악 out

오타쿠 : 아내 분이 참 아름다우시네요. 양 볼에 보조개가 있어요. (미간에 힘을 주는 오타쿠. 음악이


다시 커진다) 카레..!! 카레가 보이는군요! 근데..이건 뭔가요? 생선? 동태?
장덕환 : (민석을 보며) 카레 먹었어?
김민석 : 네…요 일주일간 세 번…오늘 아침에도..
장덕환 : 아내가 카레에 동태를 넣어?
김민석 : 네. 의외로 잘 어울려요. (오타쿠가 힘을주며 손에 집중한다)
여자 : 미쳤어?! 카레에 동태를 왜 넣어~~!!?
오타쿠 : 당신 옆에 지민 이라는 이름이!!!!!
장덕환 : 부인이야?
김민석 :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지며) 아…아니요!! 태어날 딸 아이 이름이요.
여자 : 말도 안돼! 거짓말. 분명 뻥이라고! 어디, 내 마음도 봐봐! (손 내민다)

오타쿠. 여자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간다. 가슴을 만지려는 오타쿠를 향해 여자가 오타쿠 팔을 잡고


비틀어버림.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오타쿠. 근데 어쩐지 느끼는 것 같다.

여자 : (팔을 더 세게 꺾으며) 뭐야, 어디든 상관 없다며. 빨리 시작해.

여자, 팔을 풀어주며 손을 내민다.

오타쿠 : 아, 예!(오타쿠는 바로 여자의 손을 잡고 집중한다.)

#9.
음악이 흐른다.

오타쿠 : (집중하며) 그 곰인형, 쓰레기 장에서 주운 거죠?


여자 : (깜짝 놀라며 억지로 손을 뺀다.) 어…어떻게 안거야?!
장덕환 : (오타쿠와 여자를 번갈아 보며) 뭐야? 또 맞혔어?
여자 : (엘리베이터 바닥의 곰인형을 주워 들고 꼭 안으며) 여기 오기 전에 공원에 있었는데 얘가
버려져 있길래 불쌍해서 주웠던거야. (의심스러운 듯) 아저씨, 내가 얘 줍는 거 봤지? 그치?
오타쿠 : 이 바닥에 아직도 안 믿는 거예요?
여자 : (장덕환을 보며) 이 사람 마음도 보인다고 하면 믿을게.
장덕환 : 난 패스.
여자 : 뭐야! 남은 다 시켜놓고!! 지금 장난해?
장덕환 : 프라이버시 라는 거야 (강조하며) 프.라.이.버.시!

여자. 가방에서 커터칼을 꺼내 들고 장덕환에게 다가간다. 흠칫 하며 놀라 뒷걸음질 치는 장덕환.


나머지 사람들이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

여자 : (커터칼을 겨누며) 죽여 버릴거야.


김민석 : (다급하게) 빨리 한다고 해요! 얘 손목 긋고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작정한 인간 이예요!
진짜로 한다니까요!!?
장덕환 : (다가오는 여자를 향해) 아, 알았어..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제발 그거 다시 집어 넣어…
오타쿠 : (재빨리 장덕환의 손을 잡는다) 감옥이 보이는데요? 혹시?!
장덕환 : 그래~~~!!! 나 깜방 갔다.

7
여자 : 어? 진짜였어? 당신 범죄자구나! 꺄악! 무서워! 강도! 살인마! 강간범!!
장덕환 : (버럭) 니가 더 무섭거든요?!
오타쿠 : (관객을 향해) 좀도둑입니다. 베란다 난간을 넘다가……이건 도베르만인가요?
장덕환 : (한숨) 15 평짜리 연립주택 베란다에 도베르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오른쪽 소매를
걷어 상처를 보여주며) 8 바늘이나 꿰맸다니까.
여자 : 아하! 그럼 여기도 한 건 하러 오신 거네? 지은 지 얼마 안 되서 경비도 허술하니까.
장덕환 : 이봐. 지금은 일반 시민이라고! 이 모습이 어딜 봐서 좀도둑으로 보여?
김민석 : (추리한다) 의심받지 않으려고 양복 입은 거 아니 예요?
장덕환 : 어이 김씨, 당신까지 왜 그래?
김민수 : (다가오며) 정확히 부동산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장덕환 : (말을 흐리며) 그러니까..그게…땅투기..비슷한거야.
김민수 : (손 내밀며) 명함 좀 보여줘봐요.
장덕환 : 아~며..명함? 이…이거 어쩌나? 차에 두고 왔는데…
김민수 : 그럼 열쇠 좀 봐봐요.
장덕환 : 당연히 있지. 열쇠도 없이 1 층 도어록을 어떻게 열고 들어와.
여자 : 그 장치 작동 안 시켰던데? 그러니까 나도 들어왔잖아.
오타쿠 : 요즘 계속 열려 있더라구요. 혹시……?

모두 장덕환을 노려보며 다가온다.

장덕환 : (배째라는 듯) 그래애애애애!! (바지 속 몽키스패너를 꺼내 휘두르며) 나 아직 현역이다!


어쩔래! 어쩔래! 신고해! 못하지? 나 아직 아무 대도 안 털었거든? 안 털었다고!

피하다가 오타쿠의 안경이 스친다. 기겁하는 오타쿠. 안경을 빼들어 확인한다.

오타쿠 : (절규) 으악! 이게 얼마짜린데!!

여자. 커터칼을 꺼내 응수한다. 민석. 가운데 껴서 오도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김민석 : 진정해요!! 제발!! 임신한 아내가 애를 낳는다구요!! 제발 진정해요! 자살도 하지 말고!


초능력도 그만! 흉기는 집어 넣으라구요 제바아아아아알!!!!

김민석 나래이션 : 인생 최악의 밤이다. 임신한 아내는 곧 아이가 나온다는데 난 엘리베이터에 자살


희망자 여자와 변태 같은 초능력자에 빈집털이 흉악범과 갇혀있다. 게다가 둘은 흉기까지 갖고 있다.
악몽이다. 이건 분명히 악몽이다.

(그 순간 팍 하고 정전. 전체 조명이 꺼진다)

장덕환 : 정전이다!!!
김민석 : (오버랩)뭐……뭐야? 악!! 누구야! 내 발!! 악!!
여자 : (오버랩)제발……나 좀 죽게 해줘!!!
오타쿠 : (오버랩) 안경! 내 안경!!! 내 안경!!!
김민석 : (엘리베이터 문을 세게 두드리며) 사람살려!! 사람살려!!!
장덕환 : (민석을 말리면서) 김씨! 진정해! 침착 하라고!!
김민석 : 이거 놔!!(장덕환 얼굴을 쳐버리는 김민석)
장덕환 : 이런 씨발 새끼가!!

(몽키 스패너로 김민석의 목을 누르는 장덕환)

#10.

8
무대가 약간 밝아진다. 민석은 고통스러워하며 장덕환의 팔을 풀으려 애쓴다. 김민석이 팔을 두 번
두드리자 황급히 풀어주는 장덕환. 민석, 고통스러운 얼굴로 기침한다.

김민석 : 컥컥…헉…
장덕환 : (침착한 목소리로) 모두 진정해. 패닉 상태가 제일 무서운 거 알지?

그 순간. 끼익~하는 엘리베이터 와이어 기계음이 어딘가에서 들린다.

장덕환 : (심호흡) 무서운 건 다 똑같애. 진정하고 다른 데로 신경을 돌리자. 그래…뭐, 좋아 하는 노래


없어? 뭐 좋아해?
오타쿠 : (살짝 손들며) ㅇㅇ의 ㅇㅇ…
장덕환 : 불러봐.
오타쿠 : 그러죠.

(오타쿠가 어둠 속에서 흥얼 거린다. 왠지 섬뜩한 콧노래에 장덕환이 끊는다.)

장덕환 : 스톱 스톱 스톱!!! 이건 아니다.


여자 : 게임하자! 무슨 게임이든 좋으니까 게임하자! 집중 할 만한 거!
장덕환 : 그래! 다같이 게임 하면 긴장도 풀리고 다른 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오타쿠 : 무슨 게임 할건데요? 난 369 같은 거 못해요.
여자 : 진실게임 하자!!
장덕환 : 진실게임?
여자 :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 비밀을 얘기 하는 거야. 어차피 여기서 나가면 평생 볼 일 없잖아?
김민석 : 비밀 고백?

조명 out.

#11.
조명 in. 열려있는 502 호 문 앞. 민석 엘리베이터를 향해 나선다. 지민 뒤에서 바라본다.

지민 : 가는 거야? 지금 가면 다시는 못 볼 줄 알아!


김민석 : 알잖아. 가 봐야 돼. 들어가.
지민 : 내가 좋다며! 그럼 그 동안 우리 추억들은 다 뭐야? 갖고 논거였어?
김민석 : 어차피 우린 정리해야 돼. 그 시점이 지금인 것 뿐이야..

지민. 반지를 빼서 민석에게 던진다.

지민 : (민석을 향해) 나쁜새끼…

김민석은 반지를 주워 들고 돌려주려 하지만 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는 지민.


조명 cut out

#12.
Cut In 되면 다시 엘리베이터 안.

여자 : (즐거운듯한 목소리로) 어때? 재밌겠지?


오타쿠 : 그건 그렇지만…그럼 그 쪽부터……
여자 :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나…사실 왕따야.

침묵.

9
여자 : 놀랐지? 뭐가 제일 괴로운지 알아?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거야. 오늘도 그 끔직한 애들이
있는 학교에 가야 된다는거. 그것도 모르고 부모님은 결석하면 화만 내셨어. 근래도.. 언니는
내편이었어.. 근데 어느 날 엄마가 날 청소년 센터에서 상담 받게 하더라고. 난 거기 자원봉사자가
말거는게 귀찮아서 계속 무시했더니 그 인간이 우리 언니랑 눈이 맞아버린거야.
오타쿠 : 그래서?
여자 : 태우러 갔어.
오타쿠 : 청소년 센터?
여자 : 응. 한밤중에 석유통 들고 가서 식당에다 뿌리고 불질렀지.

(불나는 소리. 소리치는 사람들 소리효과)

장덕환 : 그래서?
여자 : 전소. 인명피해 없음.
장덕환 : 용케 안 잡혔네.
여자 : 잡혔으면 비밀이게? 후우,(속이 후련해졌는지 밝은 목소리로) 내 비밀은 여기까지! 다음은
누구야? (세사람을 둘러본다)
장덕환 : (주머니 약병을 꺼내 흔들며) 내 비밀은…이거야.
장덕환 : 이름하여 마법의 약! 이거 한방이면 코끼리도 그냥~!(과장된 엎어지는 시늉을 하면서)
오타쿠 : 그거 뭐, 영화에서 나오는 손수건으로 입 막아서 기절시키는 그거?
여자 : 빈집 털이 하는데 그런 게 왜 필요해?
장덕환 : 빈집 털이 기본이 뭔지 알아? 아무도 없을 때 들어가는 거야. 근데 혹시나 집에 사람이
있으면 존나 난감하잖아? 그 때! (약병을 흔들며) 이걸 쓰는 거지. 야매 의사한테 샀는데 효과는
확실해. 사실 오늘 밤 털려고 했던 집에 연예인이 살거든.
여자 : 잠깐! 그게 비밀이야? 내 비밀하고 레벨이 틀리잖아!!
장덕환 : 어허! 하여간 요즘 애들은……끝까지 들어봐! 3 년 전인가. 평소처럼 빈집을 털러 갔는데 고급
주택이었어. 근데 빈 집 이여야 될 집에 스무 살쯤 된 딸내미가 혼자 자고 있는 거야. 너무
아름다웠지. 뭔가 고귀하고..도도하고...난 그 딸에게 이 약으로 더 깊게 잠들게 했지. 그리고..덮쳤어.
이틀 동안.
오타쿠 : 저…빈집 털이 할 때 마다 하나요?
장덕환 : (버럭) 이 사람이 말을 해도 꼭….!! 어쨌든 내 비밀은 여기까지야.
여자 : 저질!!!! 그치만 뭐..그 정도면 비밀로 쳐줄게.
김민석 : (경악하며) 네가 여자냐?!
오타쿠 :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심호흡하며) 조금..떨리네요.
여자 : 그냥 말해. 말하고 나면 시원해져.
오타쿠 : 전…여자애를 유괴 했었어요. 한 7 살쯤 됬을려나.
김민석 : (경악하며) 네가 인간이냐?!
오타쿠 : 4 년 전 여름이였어요. 서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가는 길이었죠. 근데 차가 너무 밀려서
입장도 못했어요. 근때! 그 주차장에 그 애가 혼자 놀고 있더라구요…너무 외로워 보이길래....
장덕환 : 어떻게 유괴했어?
오타쿠 : 뽀로로 보여줄까? 하고. 차에 태우고 으슥한 산속으로 데리고 갔죠.
장덕환 : 그래서?
오타쿠 : 그것 까지는 좀 봐주세요…
장덕환 : 여자애는?
오타쿠 : 원래 주차장으로 돌려 보냈죠.
김민석 : (혼잣말로) 이건 악몽이야..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하면 다 잊는 거야. 아이도 잘 태어나고~난
아빠가 되는 거야. 난 변화 없어. 행복할거야. 행복한 가정…
장덕환 : 다음은 김민석씨!
김민석 : 저..전 비밀 같은 거 없어요.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거나..다른 동네에서 자전거 훔친
적은 있어도..다 그런 비밀 정도는 있잖아요? 하하하…

10
장덕환 : 이 새끼가! 어디서 구라질이야!!
여자 : 얍삽하게 혼자만 빠져나가려고?

몽키스페너를 집어드는 장덕환, 파우치의 커터칼을 집는 여자, 김민석을 몰아 붙인다.


놀란 민석. 뒷걸음질 친다. 걱정하는 듯한 오타쿠

장덕환 : 신승욱씨! 이 새끼 마음 읽어! (오타쿠가 기어가 민석의 손을 잡는다)


김민석 : (발버둥치며) 이봐요! 그만해!! 그만 하라구요!!!이거 놔아아!!
오타쿠 : (민석의 손을 잡고) 봤습니다!

성가 같은 음악 in

오타쿠 : 반지에요! 지금 주머니에 있습니다.


장덕환 : 어이! 주머니 좀 보자구~ (주머니를 뒤진다)
김민석 : 사생활 침해예요!

이때 목에 칼을 들이대는 여자. 김민석 얌전해 진다

장덕환 : 누구 반지야?
김민석 : 집사람 겁니다.
장덕환 : 그게 왜 남편 주머니에 있어?
김민석 : 오늘 아침, 싸우다 아내가 집어 던졌어요.
오타쿠 : 거짓말.
김민석 : (억울하다는 듯) 아 진짜예요~!
오타쿠 : 그럼 여기서 나가면 그 반지 부인께 돌려드려도 되겠네요?
김민석 : (다급하게) 그건 안돼!
장덕환 : 김민석씨. 여기에 왜 왔다고 했지?
김민석 : 알바생…데려다 주러…
장덕환 : 그 알바생 여자잖아!
김민석 : 그게 왜요?
장덕환 : 답 나왔네. 그 반지, 그 여자 꺼지?
김민석 : …네.
여자 : 알바생에게 반지를? 이상하잖아!
장덕환 : 대체 무슨 관계야?
김민석 : 매니저랑 알바 관계입니다. 1 년 전에 만났어요.
여자 : 부인이 임신 중인데?
장덕환 : (사람 잘못봤다는 듯) 김씨. 사람 그렇게 안봤는데 참…그렇다…
김민석 : 죄송합니다.(꾸벅) 하지만 오늘은 그냥 데려다 주러 왔을 뿐이예요! 정말입니다!
장덕환 : 아~? 오늘은? 평소엔 매번 하고? 아~이거~아내가 애가 나온다는데…
오타쿠 : 김민석씨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할까? 만약 이대로 못 나가면…?
여자 : 굶어 죽겠지. 탈수로 죽던가.
오타쿠 : 남편의 시체 발견 장소가 불륜 상대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여자 : 나 같음 자살하겠다.
김민석 : (힘없이 무너진다) 어떡하죠..전 이제…도와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여자 : 그냥 현실을 받아 들여. 유언이라도 남기는 게 어때? 부인한테 진심을 남겨 두는거야.

여자. 레코더를 꺼내 김민석에게 준다. 민석. 레코더를 받아 들며 감회에 젖는다.

김민석 : (떨리는 목소리로) 미정아…네가 이걸 듣고 있다는 건..난 이미…아이는 태어났지? 우릴


닮아서 많이 예쁠 거고. 출산 때 옆에 없어서 미안해..그리고 아이 잘 부탁해. 지금까지 속여서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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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용서받지 못 할거야. 하지만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울음을 참으며) 그 사람은…

갑자기 삐삐삐비삐삐삐삐 신호음이 들린다. 민석, 소리에 따라 두리번 거린다.

여자 : (레코더를 민석 입에 더 갖다 대며) 잘하다 왜 그래? 계속 해.


김민석 : 이 소리… (기억을 더듬는 민석) 내 손목시계!!!

소리를 끄려고 바지춤에서 애쓰는 오타쿠. 민석 오타쿠에게 다가간다.

김민석 : 주머니 안 좀 봅시다!


오타쿠 : 아 왜 남의 주머닐 뒤지려고 해요?

(민석, 오타쿠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는다)

오타쿠 : 뭐야? 왜이래! 뭐 하는 거야?!


김민석 : (오타쿠 주머니의 자기 손목시계를 꺼내며) 왜 당신이 내 시계를 가지고 있지?
장덕환 : 그…그건..그쪽이 기절했을 때 맥을 본다고 풀렀던 거였어!
오타쿠 : 그래요! 맥 짚을려고…

민석. 세 사람을 쳐다본다. 하지만 눈빛을 외면하는 세 사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민석.

김민석 : 그래,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너무 당황해서 생각을 못 했던 거야.


엘리베이터를 탄 후…기절해서…응?

세 사람의 얼굴을 보는 민석. 침묵이 흐른다.

김민석 : 신승욱씨. 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어딜 갔다 구요?


오타쿠 : 아까 말했잖아요. 편의점이라고.
김민석 : 학생! 학생은 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릴려고 했댔죠?
여자 : 그게 왜?
김민석 : 장덕환씨는 이 아파트에 털러 온 거구요. 그리고 난 아내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려던
중이였구요…이상하잖아요! 어째서 아파트를 나가는 저랑 올라오는 당신들이 같은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는 거죠? 분명히 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근데 왜 올라간다는 당신들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거죠?

마주보는 세 사람.. 예비전력이 들어와 엘리베이터 조명이 켜진다

장덕환 : 아~~들켰네. 시발. 다 끝나가는데.


김민석 :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뭐…뭐야…당신들 뭐야! 누구야!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방화에
유괴에 이상한 약까지!!
오타쿠 : (장덕환에게) 짱떡. 어떡하지?
여자 : 우선 진정부터 시캬야지. 마법의 약!

장덕환 손수건을 꺼내 약을 적신다

김민석 : 뭐야!!

(달려들려 하지만 여자의 커터칼이 민석의 목에 먼저 닿는다)

여자 : 피 보는거 보다 저게 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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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을 든 장덕환이 다가온다)

김민석 : 그만!! 안돼! 그러지마! 안돼애애애애!!!

몸을 웅크려 엘리베이터 문으로 달려가는 김민석. 문을 다시 거세게 두드리며 외친다.

김민석 : 사람살려!! 사람살려어어어!!!

순간, 뒤에서 민석의 입을 틀어막는 장덕환. 점점 의식을 잃는 김민석. 조명이 꺼지고 서서히
암전된다.

김민석 나레이션 : 다음부터는…계단을 이용하자…

음악 in, out

#13.
조명 in 되면 무대는 탐정사무소. 원탁. 전화기, 의자, 화이트 보드 등이 있는 단촐한 무대.
장덕환. 초조한 듯 손목시계를 본다. 심각한 얼굴로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통장을 괜히 열어봤다 한다.
착잡한 얼굴로 계산기를 바라보던 중 바지에 손을 집어 넣는데 오른쪽 문에서 여자가 등장. 미정이다.

장덕환 : 아, 어서오세요. (고개 인사하는 두 사람) 앉으시죠.


빙미정 : (자리에 앉으며) 어떻게 됬죠?

장덕환. 과장되게 심각한 얼굴로 원탁위의 봉투를 미정에게 민다. 봉투의 내용을 확인하는 미정.
민석과 지민이 바람 피우는 증거 사진들. 묵묵히 사진을 보던 미정. 사진을 다시 봉투에 담는다.

빙미정 : (감정을 억누르는 듯) 됐어요. 이것들, 일단 보관해주세요.


장덕환 :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진행비 때문에 그러는데..익명으로 의뢰하셔서 계좌를 좀..
빙미정 : 여기 진행비요. 나머진 다음 일이 끝나면 드리죠. 그럼 부탁 드립니다.

미정. 그대로 일어나 나간다. 장덕환 원망스러운 눈으로 미정을 봄. 오타쿠와 여자. 왼쪽 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온다.

여자 : 이제, 우리가 뭘 하면 되는거예요?


장덕환 : 남편의 진심을 끌어내고 그걸 녹음해야지. 걱정 마. 밀실 상태가 그 자식 마음을 열게 할
테니까. 어쨌든, 일단 시작하면 우리 셋은 모르는 사이인거다? 오케이?
오타쿠 : 잠깐, 세 사람이라니? 나까지?
장덕환 :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왜? 싫어?
오타쿠 : 당연히 싫지! 너 기억 안나? 저번에 부잣집 푸들 찾는 일하다가 그 개새끼 동네 똥개랑
교미하던 거 떼놓다가 물렸잖아! 나는 엉덩이! 너는 팔! 그 때 엉덩이에 물린 게 아직도…

엉덩이를 까려고 하는 오타쿠. 장덕환이 급하게 말린다.

장덕환 : 야야야 누가 니 엉덩이 보고 싶대?! 이번엔 니 연기력이 필요하다고.


오타쿠 : 너도 연기자였잖아!
장덕환 : 난 지망생 이였고! 넌 프로였잖아! 이태원클럽에서 진짜 공연도 했었고.
오타쿠 : 애당초 엘리베이터에 갇힌다는 설정이 무리야! 어떻게든 멈춘다고 치자. 김민석이 가만히
있겠어?
장덕환 : 안심해. 이게 있으니까.(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내며). 업자 말로는 기절했다가 15 분이면

13
깬대. 기절하는 순간의 기억도 좀 잊어버리고.
오타쿠 : (의심스럽다는 듯) 그 업자 믿을 만해?
장덕환 : 어제 나한테 해봤어. 효과는 확실해.
여자 : 대단하다! 진짜 탐정소설 같애! 저! 어릴 때부터 아가사 크리스티 광팬이였거든요!
장덕환 : (흐뭇하게) 그래. 그 때, 전봇대에서 사원 모집 광고 보고 찾아왔지?
여자 : 네! 안녕하세요! 빙미선 이라고 합니다. 면접 보려고 연습 많이 했어요. 아가사 크리스티
광팬이라 이론은 확실하구요.
장덕환 : (진지하게) 어제 말한 캐릭터는 다 숙지해왔어?
여자 : (곰인형과 커터칼을 꺼내며) 네!
장덕환 : (깜짝 놀라며) 그게 다 뭐야?!
여자 : 설정인데요? 오싹하고 이상한 여자라고 하셔서. 어때요? 진짜 같아요?

오타쿠. 장덕환 마주본다. 여자가 좀 무섭게 느껴진다.

장덕환 : 자, 자, 자. 그럼 각자 작전을 설명한다. 미선아, 너가 할 일은 김민석이 502 호에 내리면 그


엘리베이터를 8 층에 대기시키고 나머지 층에 점검 중 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거야. 알아보니까 8 층엔
아직 입주자가 없어. 무슨 소리가 나도 괜찮을거야.
여자 : 역시! 너무 완벽하시다! 멋있어
오타쿠 : 너 완전 어이없다, 니 눈엔 저게 멋있냐?
여자 : 당연하죠! 호모시면서 그것도 모르세요?
오타쿠 : 호모는 눈이 높다~(잔에 음료수를 따른다)
장덕환 : (오타쿠에게) 그러면 너랑 나는 반대쪽 엘리베이터에 대기하다가 김민석이 나오면 부인보고
아프단 전화를 걸게 해. 그리고 김민석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순간 마법의 약으로 재빨리
기절시키는거지!
여자 : 완벽해요!
장덕환 : 김민석을 8 층으로 옮기고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킨 후 주민들의 의심하지 않도록 다른 쪽
엘리베이터만 작동시킨다!
여자 : 멋있어!!
장덕환 : 미리 매수한 관리인의 열쇠로 문을 잠그면 완벽한 밀실! 작전 준비 끝!
여자 : 드디어 시작이네요!
세사람 : 완벽해! 하하하하하하! 건배!

(음료수로 건배하는 세사람. 서로 쳐다보며 웃으며 암전)

#14.
음악 in. 조명 in(서서히 밝아진다). 음악 out. 엘리베이터 안 분위기 심상치 않음.

장덕환 : (잠시 침묵) 야, 김민석!

목에 손을 대보는 장덕환. 화들짝 물러난다.

오타쿠 : (달려들어 확인하고 김민석을 흔들며) 김민석씨! 일어나요!


장덕환 : 죽었어…씨팔, 이 새끼 죽었다고!!!
오타쿠 : 이 살인자!!! 죽이는 건 계획에 없었잖아!!(장덕환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른다)
여자 : (오타쿠를 말리며) 그만해! 이러다 죽어요! 시체 하나 더 늘면 어쩌려고 그래요!!
오타쿠 : 무슨 마법의 약이야? 독약이잖아!
장덕환 : (양 손을 허리에 올리며) 씨발……그 야매 새끼를 믿었던 게 잘못이야.
오타쿠 : 이런 약을 두 번이나 쓰다니..생각이 있는 거야?
장덕환 : 니가 알람을 울려서 두 번이나 쓴 거잖아!
오타쿠 : 내가 울렸냐? 내가 울렸냐고!

14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굳어지는 세 사람. 다시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에 장덕환이 안심한다.

장덕환 : 구급차구나. 후우우우…


여자 : 어떡하죠? 김민석씨.
오타쿠 : 시체라고 해. 괴로우니까.
여자 : 어떡하죠? 이 시체.
오타쿠 : 이대로 두고 나가면 안돼?
장덕환 : 안돼. (여자 가르키며) 관리인이 나랑 얘 얼굴 다 봤어.
오타쿠 : 관리인은 어디까지 아는거야?
장덕환 : 사람 하나 가둔다고만 했어.
오타쿠 : (믿을 수 없다는 듯) 허락했어? 얼마 줬는데?
장덕환 : 무료. 그 관리인, 내가 잘 아는 사체업자한테 빚이 있더라고. 빚 독촉 살살 해주는 걸로 합의
봤지.
여자 : 그럼 이 시체만 완벽하게 없애면 되겠네요.
장덕환 : 그러니까 어떻게 없애느냐가 문제잖아.
오타쿠 : 난 손 때겠어. 김민석씨…왜 죽은 거야…?
장덕환 : 너 오늘 처음 만났잖아.
오타쿠 : 첫눈에 반했다고.
장덕환 : 시체를 처리한 다음에 천천히 울어.
오타쿠 : 알았어. 노력할게.
여자 : 우선 꼭 해야 되는 일이 세가지 있어요. 먼저, 시체를 어디에다 버리죠?
오타쿠 : 산에서 해야지 뭐.
장덕환 : 뉴스 안보냐? 맨날 산에서 나오잖아. (잠시 생각) 이건 어때? 바람 피운 사실을 아내에게
들켜 충격을 받고 실종.
오타쿠 : 오! 좋다! 그거!
장덕환 : 아니야…뭔~가 2%부족해.
여자 : 그리고 시체는 어떻게 운반하죠?
장덕환 : 차 밖에 더 있어?
여자 : 안 들키고 시체를 차까지 운반할 자신 있어요?
장덕환 : (작게 한숨) 그것도 그렇네.
여자 : 그리고 알리바이가 필요해요. 여기에 우리가 김민석씨와 같이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부인이
알고 있잖아요. 만약 시체가 발견되면 우리 세 사람이 제일 먼저 의심될 걸요?
장덕환 : (잠시 생각) 야야야, 잠깐만…만약 정지된 엘리베이터에 시체만 타고 있다면 완벽하게 밀실이
되는 거잖아. 시체를 여기에 두고 문을 잠근 다음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그 엘리베이터에 없었던게
되는거잖아?
오타쿠 : 와, 짱떡 머리 좋다! 진짜 탐정 같아!
장덕환 : 저기, 나 탐정이거든?
여자 : 아내한테는 뭐라고 하죠?
장덕환 : 작전실패를 보고해야지. 남편의 본심을 녹음했지만 진통이 왔다는 거짓말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남편 분은 화가 나서 지민의 집에 있습니다. 라고.
여자 : 그걸로는 안돼요. 여기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한, 부인은 우릴 의심할거라구요. 게다가 주민들도
수상쩍어 할거예요. 8 층 말고 점검 중 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데 시체가 그 안에서 발견되면
처음부터 누가 숨겼다고 밖에 볼 수 없잖아요.
장덕환 : 다른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되게 해야지.
여자 : 그건 더 안 돼죠. 엘리베이터를 다 못쓰게 되면 주민들이 난리 칠 걸요?
장덕환 : (잠시 생각하곤)….안돼겠다, 김민석 핸드폰 줘 봐.

장덕환. 여자에게 핸드폰을 넘겨받고 전원을 켠다.

15
오타쿠 : 어디다 전화 하는거야?
장덕환 : 문자. 김민석 아내한테.
오타쿠 : (문자를 들여다보고) 당신한테……실망했어? 아니지~ 김민석씨라면 사과부터 했을거야.
탐정한테 다 들었어. 정말 미안해. 너의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바람 피운 날 용서해줘.
장덕환 : 오호. 역시 호모야. 여자 마음을 잘 안다니까? 그럼 보낸다.

두 사람 고개를 끄덕이고 오타쿠는 손목시계를 민석의 왼팔에 다시 채운다. 장덕환은 핸드폰을


김민석의 바지주머니에 넣는다.

장덕환 : 다 됬어. 그럼 이제 밀실만 만들면 된다.

세 사람. 서로 본다. 장덕환은 열쇠를 돌려 수동으로 전환한다. 천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소리.
음향. 바람소리. 조명 out

#15.
조명 in 되면 세 사람 엘리베이터 밖이다. 문 앞에 서 있는 세 사람. 긴장하며 주위를 살핀다.

장덕환 : 좋아. 이제 이 열쇠만 돌리면…

장덕환. 열쇠를 돌리려 하나 돌아가지 않는다.

오타쿠 : 왜 그래? 빨리 돌려.


장덕환 : 어? 왜 이러지? 이거 열쇠가 다른 것 같애!
오타쿠 : 뭐?! 그 열쇠 어딨는데?
장덕환 : (관리인에게 전화하며) 관리인이 갖고 있는데.
오타쿠 : (장덕환을 말리며) 야 잠깐. 그 열쇠 달라고 하면 관리인이 눈치 깔거 아냐.
장덕환 : 아니야. 그 인간도 관계자니까. 만약 허튼소리 했다간 바로 이거…(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
본인이 더 잘 알걸?

전화를 거는 장덕환. 전화 거는 소리. 관리인이 전화를 받는다. 관리인 쪽 조명 cut in. 무대 상수로
핸들을 잡은 버스기사와 승객 몇 명이 앉아있다. 운전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신문을 읽고 자는 등
다양한 액션.

관리인 : 여보세요?
장덕환 : 나야. 문제가 생겼어. 엘리베이터 수동열쇠 있지? 밖에서 잠그는 거. 그거 좀 줘봐.
관리인 : 뭐? 뭐락카노?
장덕환 : 그건 알 거 없고! 지금 관리실이지? 내가 갈 테니까 열쇠나 줘.
관리인 : 우야노…그기는 좀 힘들꺼 같은디.
장덕환 : 뭐?
관리인 : 그…뭐꼬! 내 지금 고속버스다 아이가. 내 너거랑 관계없게…뭐꼬…그…알리봐이라카나? 뭐 거
만든다꼬 아들내미네 가고 있다 아이가.
장덕환 : 뭐?! 열쇠는!!
관리인 : 내한테 있제~! 쪼메 급하게 나온다꼬 옷도 그대로다. 우쨌든 뭔 사고는 없제? 조용히 그카고
얼렁 뜨라. 그람 이만 끊는데이. 아아!아 그라고 정전 타이밍 쥑이제?
장덕환 : 무슨 소리야? 그런 얘기 없었잖아!
관리인 : 전에 전기 끄라고 안캤나! 거 끄고 바로 갔다 아이가. 한 10 분 있음 예비전원 들어올낀데
쥑이지? 그라모 이만 끊는데이. 아아 지금 몇시고? 와 벌써 이리됐나. 한 20 분 카믄 카메라 고 고치러
누가 갈끄야! 고마 하고 후딱 철수캐라 마. 고마 끊는데이~!
장덕환 : (핸드폰 스피커에 대고) 야…야!!

16
관리인 쪽 조명 cut out. 끊어지는 전화음. 다시 전화를 걸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음성메세지가
나온다.

장덕환 :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이런, 니미! 개 좆도. 이런 씨발새끼가!


오타쿠 : 뭐래?
장덕환 : 그 자식 여기 없어. 아~나…씨발…!!! 밀실 못 만든다고!
오타쿠 : 어떡할거야. 이대로 가면 잡힌다고!

전화가 울린다. 놀라서 정지하는 세 사람. 김민석의 전화다. 오타쿠. 김민석의 시체에서 전화기를
꺼낸다.

오타쿠 : 김민석씨 아내야. 어떡하지?

전화를 장덕환에 들이대는 오타쿠.

장덕환 : 내가 받으라고?
오타쿠 : 성대모사라도 해.
장덕환 : 아이 씨. 김민석 목소리가 어땠지?
여자 : (핸드폰을 뺏으며) 잠깐만요. 찬스 잖아요. 아직 이별 중인 걸로 하면 되요. 이 시점에 문자를
보내면 그거야 말로 확실한 알리바이라구요.

벨소리가 끊어진다.

여자 : (핸드폰을 장덕환에게 주며) 좋아요. 문자를 보내세요.


장덕환 : (핸드폰을 오타쿠에게 주며) 야, 니가 보내.
오타쿠 : (문자를 입력하며) 지금 얘기 중이야…지민이 한테는 헤어지자고 했어. 조금만 기다려줘…뭐
이렇게 보내면 되나?

여자. 고개를 끄덕인다. 문자를 보내는 오타쿠. 핸드폰을 닫는다. 조금 후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음.
바로 답장이 온다.

오타쿠 : 왔다 왔어! (문자를 읽으며) 헤어졌는데 왜 거기 있어…라네? 화났다…화났어. 어떡해!


여자 : 뭘 어떡해요! 답장 보내야죠!
오타쿠 : 알았어. (문자를 다시 보내며) 진짜 헤어졌어. 그런데 얘가 받아들이지 않아…이거 어때?
여자 : 일단 보내요.

오타쿠.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닫자마자 더 빨리 답장이 온다.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음.

오타쿠 : (문자를 읽으며) 그 여자가 받아들이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지금 당장 헤어지자고 해. 안


그러면 집에 돌아와도 끝이야. 이혼할거라고. 느낌표 세 개. 잠깐, 이렇게 긴 문장을 순식간에
보낸거야?!

핸드폰 벨소리가 다시 울리고 당황한 오타쿠. 핸드폰을 떨어뜨린다.

오타쿠 : 나..난 몰라.


장덕환 : 니가 받어. 니가 화나게 한 거잖아.
여자 : 혹시 아파트로 튀어오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장덕환 : (핸드폰을 집어 들어 보고) 아내가 아니야. 지민이야.
여자 : 전화 받아요. 이게 기회예요! 부인이랑은 문자, 지민이랑은 통화. 완벽한 알리바이잖아요.
장덕환 : 그럼 뭐해 목소리 들으면 뽀록 나잖아.

17
여자 : 상관 없어요. 엄청 취한데다 제정신도 아닐 테니까.
장덕환 :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지민 : (울면서) 석석. 지금 어디야?
장덕환 : 집.
지민 : 아내는?
장덕환 : 거실.
지민 : 헤어질 수 없어. 부탁해…나 그렇게 못살아. 제발..나 석석없이 못 살아…다시 한번..
장덕환 : 안돼.

전화 끊는 장덕환.

오타쿠 : 뭐야 매정하게. 그러다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여자 : (오버랩) 자살! 자살이예요! 김민석씨를 자살하게 하는거예요. 레코더에 김민석씨 유서도
있잖아요! 출산이 임박한 아내한테 바람 피운 사실을 들키고 심한 죄책감에 자살. 거기에 유서까지.
누가 살인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장덕환 : 역시! 아가사 소설을 헛으로 읽은 게 아니구나! 좋아!
여자 : 그 전에 아내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를 보내는 거예요.

장덕환. 문자를 보낸다.

장덕환 : 이제 시체만 처리하면 완벽해.


오타쿠 : 김민석씨…참 잘 생겼었는데…
장덕환 : (오타쿠에게)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오타쿠 : 이번 건만 처리되면 난 더 여길 뜰꺼야
여자 : 제가 밑에 내려가서 망을 볼게요. 제가 전화하면 시체를 떨어뜨리세요.
장덕환 : 잠깐!!! 저기…

여자를 안는 장덕환

장덕환 : 네가 없었다면….고맙다.
여자 : 아니예요. 제가 더 고마워요.

여자. 비상구로 나간다.

장덕환 : (오타쿠에게) 가자.

암전..

#16.

조명 in. 얼굴 밑으로 올라오는 푸른 조명. 음향. 차 소리와 바람소리. 지민, 옥상으로 등장. 결심한 듯,
금방이라도 아래로 뛰어 내릴 것 같다. 옥상으로 올라 온 장덕환과 오타쿠. 깜짝 놀라 서로 등을
떠밀다가 오타쿠를 아래 층으로 내려보내는 장덕환.

장덕환 : 이…이봐요!
지민 : 누구세요?
장덕환 : 그냥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데서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뛰어 내리려는 거죠?
지민 : ….오늘 너무 힘든 일이 있었어요.
장덕환 : (간절하게) 하지마..부탁이야..뛰어내리지마. 나도 힘든 일이 있었어.
지민 : 아니예요. 전 당신보다 더 고통스럽고…이대로 끝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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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환 : 그러고 싶겠지. 분명 오늘밤보다 더 고통스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민 : 무슨 설득이 그래요?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장덕환 : 죽지 않았으면 하니까 이러는 거야. 이제 거짓말 하기 싫으니까.
지민 : 지금보다 더 고통스런 날을 기대하며 살라구요?
장덕환 : 그래.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오늘밤 일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테니까.
지민 : …얼른 왔으면 좋겠네요. 고통스러운 일.

지민, 발길을 돌려 비상구로 나간다.

장덕환 : (혼잣말로) 내일이면 올 거야.

조명 out. 암전 속 전화기 통화 음이 들리고 여자 목소리.

여자 : (전화소리) 지금이예요. 떨어뜨리세요.

시체를 들어올리는 소리. 잠시 후, 쿵 하는 시체가 떨어지는 큰소리가 들린다. 피가 흐르는 듯한


액체소리가 들리고 음악 in.

#18.
조명 in 되면 탐정사무소다. 문이 벌컥 열리며 장덕환과 오타쿠가 들어온다. 의자에 앉는 두 사람.
잠시 말이 없다.

오타쿠 : 아무일 없을 거야. 옥상에 놓은 김민석의 구두 옆에 유서가 녹음된 레코드를 놨으니까


자살로 처리하겠지.
장덕환 : 하지만 난…난 사람을 죽였어. 이 손으로…
오타쿠 : 근데 얘는 왜 안 와? 아까 누가 오는거 같다고 나중에 따로 오겠다고 했는데.
장덕환 : 그래?

(전화를 거는 장덕환. 그러나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음성 메세지가 들려온다)

장덕환 : 핸드폰이 꺼져있어.


오타쿠 : 그럼 오는 중인가보네. 어쨌든 그 애 머리 좋아. 아까 경비새끼 어디 멀리 갔다 그랬을 때
끝인 줄 알았다니까.
장덕환 : 그래. 그 씨발 경비새끼…..(침묵) 야, 근데 우리가 전기 끄라고 했었냐? 니가 시켰어?
오타쿠 : 무슨 소리야. 진짜 정전됬던거 아니였어?
장덕환 : 그런걸 내 허락 없이 할 애가 아닌데…

그 때, 울리는 사무실 전화. 장덕환, 전화를 받는다.

장덕환 : 여보세요?

조명 cut in. 미정이 장덕환과 통화를 하고 있다.

미정 : 저기..남편이 아직 안 돌아와서요.
장덕환 : 분명히 지민이랑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신다고 그러셨는데요.
미정 : 마음에 걸리는 문자가 왔는데…이제..지쳤다고…
장덕환 : 여러모로 힘들겠죠. 곧 들어 가실 겁니다. 남편 분이 사랑하신다고…
미정 : 그만해요! 이제 됬어요. 이혼할거예요. 아이가 나온다는 데도…아이는 저 혼자 키울 겁니다. 그
동안 수고하셨어요. 나머지 돈은 제가 계좌로 송금해드리겠습니다.
장덕환 : 정 그러시다면 그러시죠. 계좌번호 지금 적을 수 있으세요? 네. 국민은행 XXX-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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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X 장덕환입니다. 저 입금자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미정 : (약간 얼버무리며) 빙미정 입니다.
장덕환 : 예? 빈이요?
미정 : 빙이요. 빙.
장덕환 : 아. 얼음 빙이요. 빙과류 얼음…아, 성이 좀 특이하시……빙?

얼어붙은 장덕환. 소리가 들린다. 회상 목소리. 약간 메아리처럼 울리는 듯한 사운드.

-장덕환 : (회상) 그래. 그 때, 전봇대에서 사원 모집 전단지 보고 찾아왔지?


장덕환 : 혹시 여동생이 있으신가요?
-여자 : (회상) 네! 안녕하세요! 빙미선 이라고 합니다. 면접 보려고 연습 많이 했어요. 아가사
크리스티 광팬이라 이론은 확실하구요.

미정 : 네. 있어요.
장덕환 : 동생 분 성함이…
미정 : 미선이요
-미선 : (목소리) 미선이요. 빙미선.

음악 in 놀라는 장덕환.

미정 : 미선이를 아세요?
장덕환 : 아는 사람에 아는 사람…
미정 : (말도 안된다는 듯) 아닐 거예요. 그 애 4 년 전부터 행방 불명이거든요.
장덕환 : 행방불명?
미정 : 4 년 전에 병원에서 도망쳤어요. 저…미선이 있는 데를 아세요?
장덕환 : 아닙니다. 근데……입원은 왜?
미정 : 상담 다니던 자립센터에 불을 질렀어요. 직원 다섯 명이 그 자리에서 전부 사망하는 바람에
병원으로…경계성 인격장애라는데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상처를 주기도
한데요. 저..결혼 전에 흠이 될까봐 시댁에 얘기 안한 것도 그렇고…다 제 탓 같아서…그 애가 있는
데를 아세요? 찾아주실 수 있나요?
장덕환 : 아닙니다. 착각했습니다. 저,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장덕환. 미정 쪽 조명 cut out)

오타쿠 : 뭐야? 무슨 말을 한 거야?

장덕환.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들고 보다가 떨어뜨린다.

오타쿠 : 왜 그러는데? 어?
장덕환 : 약병이 바뀌었어. 정전…그래, 정전 때 바꿔 치기 한 거야. 처음부터 김민석을 죽일 생각
이였던 거라고. 이 탐정 사무소에 입사한 것도 계획 한 거야. 자살로 위장하는 것도, 맞아 언니가 남편
때문에 괴로워 하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

암전..

#19
.
여자 : (중얼거린다) 씨발……잘하면 그년도 죽일 수 있는데. 재수없게 방해하고 지랄이야 지랄이야
방해하고 지랄이야 지랄이야 방해하고 지랄이야 방해하고 지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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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밝아지면 엘리베이터 1 층이다. 빙미선이 서 있다.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보는 빙미선.

여자 : 언니. 곧 웃으면서 만날 날이 올 거야. (다른 사진을 보며) 아이~팔다리 꺾인 것 까진 좋은데


골수까지 터져 나왔어야 되는데. 아이씨…짜증나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핸드폰을 집어 넣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미선. 파우치에서 커터칼을


꺼낸다. 드르륵 드르륵 거리는 커터 칼날 소리.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조명 out.
LED 화면에 1 층, 2 층, 3 층 차례로 불이 켜지는 층수 표시등. 이윽고 5 층에 멈추면 도착음이 들린다.
음악.
암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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