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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맨

극작 : 마틴 맥도너

연출 : 박근형

번역 : 박천휘

제작 : 뮤지컬 헤븐

2007. 3. 19 (4 차 각색본)

등장인물 :

투폴스키 반장 - 최정우

카투리안 - 최민식

에리얼 형사 - 이대연
마이클 - 윤제문

엄마

아빠

소년

소녀

1막 1장

경찰 취조실. 카투리안이 무대 중앙에 눈가리개를 쓴 채 의자에 앉아 있다. 투폴스키와

에리얼이 반대편에 등장해 앉는다. 투폴스키는 많은 서류들이 들어 있는 두꺼운 폴더를 들고

들어온다.

투폴스키 : 카투리안씨, 이 쪽은 에리얼 형사, 난 투폴스키라고 하네... 아니 누가 그걸 하고 있으라고

했나?

카투리안 : 네?

(투폴스키가 눈가리개를 빼준다.)

투폴스키 : 누가 이걸 씌워놨냐고?

카투리안 : 저기 어떤 남자가...

투폴스키 : 그렇다고 이걸 계속 쓰고 있었어? 멍청하게

카투리안 : 벗으면 안 되는 건 줄 알았습니다.

투폴스키 : 너 또라이지?

카투리안 : (사이) 네...

투폴스키 : (사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긴 에리얼, 난 투폴스키라고 하네.

카투리안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형사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도울 방법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투폴스키 : 뭐, 듣기 나쁜 이야긴 아니군.

카투리안 : 전.. 그... 그런 놈은 아니거든요. 아시죠?

투폴스키 : 몰라, 어떤 놈?

카투리안 : 왜 경찰들을 경멸하는 놈들 있잖아요. 전 단 한 번도 경찰들의 관심을 살만한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
에리얼 : ‘단 한 번도 경찰들의 관심을 살만한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만 예외라는 말인가?

카투리안 : 예?

에리얼 :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한 번도 경찰의 관심을 살만한 짓을 한 적이 없었다 이 말 아니야?

카투리안 : 제가 그럼 지금 경찰의 관심을 살만한 짓이라도 했단 말인가요?

에리얼 : 그렇지 않다면 여기 왜 왔겠어?

카투리안 : 제 도움이 필요하셔서 부른 줄 알았습니다.

에리얼 : 우리가 친구냐. 도우러 오게. 지금 여기 친구들이랑 소풍 온 줄 알아?

카투리안 : 친구는 아니겠죠.

에리얼 : 널 채포해서, 가두고, 눈가리개까지 씌워 놓았는데. 그래도 우리가 니 친구처럼 느껴져?

완전 또라이 아냐!

카투리안 : 친구는 아닐지 몰라도, 적은 아닙니다. 아니 적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에리얼 : (사이) 입 꽉 깨물어. 대갈통이나 좆나 갈겨줘야겠다.

카투리안 : (사이) 예?

에리얼 : 반장님, 제가 지금 말을 똑바로 못하고 있나요? 내가 더듬었나?

투폴스키 : 아니, 더듬은 적 없네. 아주 똑바로 잘 들려.

에리얼 : 그러게요.

카투리안 : 그러신 적 없습니다... 질문하시면 제가 아는 대로 다 말씀드릴 테니까.. 그럴 필요까진

없습 /

에리얼 : 우리가 질문하면 다 대답하시겠다.. 근데 어쩌나, 우린 질문을 한 적이 없는데, 질문하기

전에 널 얼마큼 손봐주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그게 바로 내 질문이다 이 새끼야!

카투리안 : 손보실 필요 없습니다. 전 어떤 질문에도 다 대답할 준비가 되었으니까요.

투폴스키 : 그래, 뭐 시작 치고는 나쁘지 않네, 그지?

에리얼은 카투리안을 노려보며, 옆벽 쪽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자네가 여기 왜 왔을까? 아니 너도 뭐 짚이는 데가 있을 거 아냐? 안 그래?

에리얼 : 쓸데없는 소리 다 집어치우고, 우리 손부터 봅시다.

카투리안 : 네?

투폴스키 : 에리얼, 여기 반장이 누구야? 자네야 나야? (사이) 그래. 신경 쓸 거 없네. 내 말만 들으면
돼. 그건 그렇고, 자네가 왜 여기 오게 됐을까?

카투리안 : 저도 죽어라 머리를 굴려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투폴스키 : 진짜 모르겠어?

카투리안 : 예, 전 단 한 번도 법을 어겨본 적이 없습니다. 굳이 생각해 본다면, 저와 연관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투폴스키 : 무슨 연관?

카투리안 : 절 데려올 때 제 이야기들을 압수하셨잖아요. 제 작품들이 저기 파일 속에 있죠? 그게

유일하게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입니다.

투폴스키 : 여기 이 파일 속에 있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파일을 몰래 열어보기라도 했단 말이야?

카투리안 : 열어 본 적 없습 /

투폴스키 : 일급비밀로 분류된 이 파일을 네가 어떻게 알아?

카투리안 : 제목이 잠시 보였습니다.

투폴스키 : 지금 곁눈질이라도 했단 말이야?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 : 잠깐 야! 니가 곁눈질로 이걸 보았다면, (얼굴을 옆으로 돌린다) 이렇게 했을 거 아니야?

옆으로 봐야 곁눈질인거 아니야...

카투리안 : 제 말은 /

투폴스키 : 이렇게 옆으로 봤어?

카투리안 : 제 말은 눈의 밑쪽으로 곁눈질을 했단 말입니다.

투폴스키 : 오 그러셔, 눈의 밑쪽으로 곁눈질을 하셨다.

카투리안 : 제가 아는 한 그 말 말고는 더 정확한 말이 없는 걸로 압니다.

투폴스키 : 그래 없지 (사이) 니가 여기 온 이유와 그 이야기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글을 쓰는

게 죄는 아니잖아 그지?

카투리안 : 예. 그렇죠.

투폴스키 : 몇 가지만 조심한다면...

카투리안 : 그럼요.

투폴스키 : 저기,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왜 그런 놈들 있잖아, 검열이라고 할 것도 없지.

카투리안 : 검열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투폴스키 : 상식적인 선만 지켜 준다면, 이야기를 짓는 거야 아무 문제될게 없지.


카투리안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왜 ‘경찰들은 이렇다’, ‘정부가 뭐 어떻다’라고 말하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다들 좆까라 그래요. 왜 그 사상 같은 것에 경도된 놈들... 다 가서 논설이나

쓰라고 그래요. 좌익이고, 우익이고 지랄들 하지 말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요. 한 위대한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 말은 제

신념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제가 하는 유일한 일이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겁니다. 어떤

정치적인 뜻도 없고, 사회적인 발언을 하려고 한 적도 없습니다. 혹시 실수로 정치적인

것으로 오해하실 만한 무언가를 제가 썼다면, 어느 부분인지 말씀해 주십쇼. 당장이라도

지워버리겠습니다. 씹할, 태워 버리지 뭐!

정적이 흐른다, 투폴스키가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한다.

제 말이 잘 이해가 안 되시나요?

투폴스키 : 자, 서류를 하나 작성할 거네, 혹시라도 여기서 무슨 사고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 (

사이) 여기, 자네 이름이 좀 잘못 된 거 같은데, 성이 뭐지? 카투리안, 맞나?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 : 여기 이름도 카투리안이라고 돼 있는데

카투리안 : 예 카투리안 맞습니다.

투폴스키 : (사이) 이름 카투리안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 : 성도 카투리안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 : 그럼 자네 이름이 카투리안 카투리안인가?

카투리안 : 부모님은 재밌는 분들이었죠.

투폴스키 : 가운데 애칭은?

카투리안 : K 입니다.

투폴스키가 그를 쳐다본다. 카투리안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깨를 들썩인다.


투폴스키 : 그러니까 자네 이름이 카투리안 카투리안 카투리안이다?

카투리안 : 이미 말씀 드렸지만, 재밌는 분들이었죠.

투폴스키 : 재밌는 게 아니라 씹할 완전 또라이들이었군.

카투리안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투폴스키 : 주소 카메니스 4443?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 : 혼자 사나?

카투리안 : 형 마이클하고 같이 삽니다.

투폴스키 : 아, 마이클, 그래도 또 좆같은 카투리안은 아니네!

에리얼 : 형이 지체아지? 맞나?

카투리안 : 아니요, 지체아는 아닙니다. 다만 좀 느린 편이어서 그렇지.

에리얼 : 느린 편이라.. 좋아, 좋아.

투폴스키 : 가족사항은?

카투리안 : 마이클 하나요.

투폴스키 : 직장?

카투리안 : 카메니스 도살장

에리얼 : 작가란 놈들은 왜 다 그 모양이야?

카투리안 : 그렇게 이상한 데 아닙니다.

투폴스키 : 하는 일은 맘에 드나?

카투리안 : 아니요, 그래도 나쁜 편은 아니죠.

에리얼 : 목 베고, 싹둑~

카투리안 : 제가 동물들을 직접 죽이지는 않습니다. 전 치우기만 합니다.

에리얼 : 오 죽이지는 않고 치우기만 하신다.

카투리안 : 네.

사이, 투폴스키가 팬을 내려놓는다, 갑자기 그동안 써 내려갔던 종이를 찢는다.

투폴스키 : 이 서류, 너 사고 당했을 때를 대비하려고 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네. 그냥 장난친 거야

카투리안 : 그럼 뭐였죠?
투폴스키 : 이렇게 쭉~ 찍으려고 만든 서류

투폴스키가 서류를 뒤지다가 자신이 찾았던 것을 찾는다.

여깄네, ‘작은 사과맨’

카투리안 : 그게 왜요?

투폴스키가 이야기를 대충 다시 훑는 동안, 에리얼이 천천히 테이블로 돌아와 앉는다.

담배를 비벼 끈다.

최고의 작품은 아니지만 (사이) 그래도 나쁘진 않죠.

투폴스키 : 이건 한 작은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하던데... 아버지한테 학대를 당한다.

카투리안 : 폭력적인 아빠죠. 그는 /

투폴스키 : 넌 맨 날 그런 얘기만... 뭐라고? 그는? 그는 뭐?

카투리안 : 뭐요?

에리얼 : 아니 지금 그는.. 다음에 뭐라고 말하려다 말았잖아.

투폴스키 : 아빠는 무얼 상징하는 인물이지?

카투리안 : 그는 나쁜 아빠를 상징하죠. 폭력을... 휘두르니까요. 아니 상징이란 말은 무슨 뜻으로

사용하신 거죠?

투폴스키 : 나쁜 아빠라... 나쁜 아빠로서 또 무슨 짓을 하는데?

카투리안 : 이야기가 말하는 건 그저 아빠가 딸을 괴롭힌다는 거죠. 결론은 읽는 사람 각자의

몫입니다.

에리얼 : 그럼 결론은 우리 맘대로 생각해도 된다는 거네?

카투리안 : 네?

에리얼 : 방금 니가 그랬잖아. 결론을 우리 맘대로 생각하면 되는 거라고?!

카투리안 : 아니요, 아니 맞습니다.

에리얼 : 니가 결론은 우리 맘대로 생각하라며!

카투리안 : 그럼요
에리얼 : 뭐?

카투리안 : 그러시라고요.

에리얼 : 야! 새끼야!

에리얼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흥분을 가라앉히려 한다.

투폴스키 : 에리얼이 빡 돈 건 결론을 맘대로 내리라고 해서 그런 거야. 그게 말하자면 우리 직업인

셈이거든. (사이) 우리가 내려야 할 첫 번째 결론은 도대체 니가 얘들이 학대당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몇 개나 썼느냐 하는 거야.

카투리안 : 좀 됩니다. 좀 되요

에리얼 : ‘좀 돼요’ 되긴 뭐가 돼! 씹할! 내가 처음 읽은 이야기 스무 개가 전부다 학대하고 겁탈하고

아주 생 지랄을 하는 이야기던데!

카투리안 : 하지만, 무슨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아니, 지금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에리얼 : 무슨 의도라니?

카투리안 : 아이들이 뭘 상징하기라도 한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민중이라던가. 뭐 그런...

에리얼 : (다가서며) 이젠 아주 내 입에다가 말을 만들어서 달아 주려고 그러네, 이 개새끼야! 난

무슨 의도 같은 거 없어! 아까는 우리 맘대로 결론을 내린다고 지랄하더니

카투리안 : 그런 게 아닙니다.

에리얼 : 이게 우리 입을 막아버리려고 하네, 손 내려 이 새끼야!

에리얼이 카투리안의 머리카락을 잡아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가 무릎 꿇게 만들고는

팬다. 투폴스키가 이 광경을 보고 한숨을 쉰다.

투폴스키 : 준비되면 말해. 에리얼?

에리얼이 멈춘다, 숨을 거칠게 쉬다가는 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카투리안에게) 자리에 가 앉아시죠.


카투리안이 고통에 겨워하며 돌아가 앉는다.

투폴스키 : 아 한 가지 애기해 주는 걸 깜박했는데, 난 착한 형사고, 재가 나쁜 형사야 (사이) 자 우리

작품이야기로 돌아가자고, 그러니까 이 소녀를 아빠가 학대하는데, 여기까진 아까

애기했지... 그런데 어느 날 소녀가 사과를 사람 모양으로 깎아서 작은 사과맨을 여러 개

만든다. 작은 손가락, 작은 발가락, 작은 눈을 가진, 그리고 그걸 아빠에게 선물한다. 소녀는

이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어린시절을 기억하라고 만든 거니 먹어 없애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 하지만, 이 못된 아빠는 딸을 비웃으며 당연히 이걸 그냥 통째로 삼키게 되고,

사과조각 속에 들어있던 면도날 때문에 아빠가 죽는다.

카투리안 : 이야기는 거기서 그렇게 인과응보로 끝나는 듯이 보이지만, 끝이 아니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투폴스키 : 소녀는 그 날 밤, 잠에서 깨어난다. 그 사과맨들이 소녀의 가슴 위로 걸어 올라와서는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시끄럽게 떠든다. /

카투리안 : (작은 목소리) 니가 우리 친구를 죽였어!

투폴스키 : ‘니가 우리 친구를 죽였어’라고 말하고는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소녀는 자기 자신의

피에 숨이 막혀 질식사한다. 끝.

카투리안 : 나름대로 이야기를 꼰 거죠. 꿈 장면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죠. (사이) 왜요?

뭐, 썩 뛰어난 작품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에리얼 : 너, 유태인 촌에 자주 가서 놀지?

카투리안 : 유태인 촌이요? 아닙니다. 거길 지나다니긴 하죠. 형 학교가 있는 라메넥가로 형을

데리러 다니거든요. 유태인 촌에 간 게 아니라 거길 지나다니는 겁니다.

에리얼 : 형을 데리러 다니신다. 너보다 나이도 많은데.. 아직도 학교에 다녀?

카투리안 : 특수학교입니다. 학업이 많이 늦어졌거든요. (사이) 지금 제가 여기 온 게 무슨

유태인들과 관계라도 있는 건가요? 전 유태인이라곤 친구도 한 명 없습니다.

에리얼 : 아는 친구 중에 유태인이 하나도 없으시다?

카투리안 : 제가 뭐 유태인을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그냥 아는 유태인이 없단 말이죠.

에리얼 : 유태인을 싫어하지도 않는다면서?

카투리안 : 예, 뭐 싫어해야할 이유라도 있나요?


투폴스키 : ‘이유라도 있나요?’ 좋은 대답이야. ‘이유라도 있나요?’ 아주 겁이 많고 비굴한 느낌이

드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살짝 조소가 섞여 있는 도발적인 느낌이랄까? ‘이유라도 있나요?’

카투리안 : 도발적으로 보이려고 한 건 아닙니다.

투폴스키 : 그럼 비굴해 보이려고 하는 중이니?

카투리안 : 아니요.

투폴스키 : 그럼 도발적이려고 한 거 맞잖아. 너 좀 맞아야겠다. 에리얼. /

카투리안 : 잠시 만요, 아니 제가 여기 왜 이러고 있어야 하죠?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죠? 전 누구한테 원한 같은 것도 없습니다. 유태인이든, 형사들이건, 아무 상관 안 해요. 전

그저 이야기를 쓸 뿐입니다. 집에 틀어박혀 이야기를 쓰는 게 전부라고요.

에리얼이 서서 문 쪽으로 간다.

에리얼 : 그러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자네 형하고 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에리얼이 퇴장한다. 투폴스키가 씩 웃는다, 카투리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겁에 질린다.

카투리안 : 제 형은 학교에 있는데요.

투폴스키 : ‘그러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이건 우리 형사들 말버릇이지. 뭐 생각나는 게 좆도

없어도 일단 그렇게 말하고 보는 거야. 웃기지.

카투리안 : 제 형은 학교에 있다고요.

투폴스키 : 형은 옆방에 있네.

카투리안 : (사이) 하지만, 형은 겁이 많아요. /

투폴스키 : 정말 쫄은 건 자네 같은데.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 : 뭐가 무서운 거야?

카투리안 : 형이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거요. 에리얼 형사가 형을 때릴까봐 두렵고, 다시 돌아와서

날 때릴까 봐도 겁나지만 차라리 그건 괜찮아요... 제 이야기가 맘에 안 드신다면 저에게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제 형은 이야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뿐더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 할 겁니다. 제가 한 거라곤 이야기들을 몇 번 들려 준 거 밖에


없습니다. 형을 이렇게 잡아들이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풀어줘. 지금 당장 형을

풀어주라고... 에이! 씹할 지금 당장 보내줘, 형은 아무 죄가 없어!

투폴스키 : (사이) 아주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모양이군, 그지? 아실만한 분이 그럼 곤란하지, 오~

화나셨어?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우리가 미친놈들처럼 보이나?

카투리안 : 아닙니다.

투폴스키 : 우린 미친놈들이 아니야, 가끔 미친놈들을 다루긴 하지만. (사이) 형은 무사할 거야, 내가

보장하지.

투폴스키가 파일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나 꺼낸다.

‘사거리의 세 사형대’ 너의 그 주제가 안 보이는 작품이네.

카투리안 : 주제요?

투폴스키 : 왜 그 일관되신 주제 있잖아. 불쌍한 애들이 좆 되는 주제.

카투리안 : 그건 제 주제가 아닙니다. 그냥 이야기 몇 개가 그렇게 나온 거지, 그게 절대 주제는

아니라고요.

투폴스키 : 음, 다른 이야기들보다 간접적일지는 몰라도 여기도 분명히 너의 그 주제가 보여.

카투리안 : 제 이야기에 주제 같은 건 없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만 한 사오 백 개는 될 겁니다. 그

중에 애들이 등장하는 건 스무 개 정도도 안 될걸요.

투폴스키 : 살해된 애들이 등장하는 게 그 정도겠지.

카투리안 : 설사 그렇다고 칩시다. 제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게 무슨 문제라도 된단

말입니까? 그게 뭐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살해하고 다녀도 좋다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투폴스키 : 내가 언제 자네가 애들을 죽이고 다니라고 했다고 그랬나! (사이) 아니, 사실은 그게 바로

자네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아니야?

카투리안 :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요. 지금 날 데리고 장난하는 거예요? 난 그 어떤 말을 하려

한 적도 없어요. 그게 제 작품의 본질입니다.

투폴스키 : 알았어, 알았다고, 본질이라... 그러니까 작가의 의무는 /

카투리안 : 바로 그겁니다.

투폴스키 : 이 이야기 말이야. ‘세 개의 사형대’ /


카투리안 : 설사 거기 아이들이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투폴스키 : 자네 꼭 명심할 게 하나 있네. 내가 말할 때는 내 말을 끝까지 듣는 거야. 알았어?

카투리안 : 죄송합니다.

투폴스키 : 너에게 정확하게 뭔가 질문을 했을 때, 아님 내가 눈으로 ‘뭔가 이제 말해봐’라는 눈빛을

보냈을 때, 그럴 때는 이야기를 시작해도 돼. 하지만 이렇게 내가 말하고 있는 중에는 /

카투리안 :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투폴스키 : 이 새끼 이거 바보 아니야? 너 지금 내 말을 끊지 말라고 하고 있는데, 또 말을 끊어! 누가

물어봤어? 내가 언제 말해보란 눈빛을 보냈냐고!

카투리안 : 아닙니다.

투폴스키 : 그래, 안 그랬잖아 내가 그랬어? (사이) 자! ‘내가 그랬어?’ 이런 거는 정확한 질문이야.

내가 지금 뭔가 말해보라는 눈빛 보내는 거 봤지? 그래, 이럴 때만 말하란 말이야.

카투리안 : 죄송합니다. 좀 긴장했나 봅니다.

투폴스키 : 그래 긴장 좀 해야지,

카투리안 : 왜요?

투폴스키 : (사이) ‘사거리의 세 사형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카투리안 : 그 작품도 특별한 주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건 하나의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은 거죠.

투폴스키 : 내가 보기엔 정답이 있어, 내가 좀 머리가 좋거든.

카투리안 : 반장님 말도 틀린 건 아니죠. 제 의도는 독자가 각자의 정답을 찾게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실은 정답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두 가지 경우보다 더

잔혹한 범죄는 세상에 없으니까요.

투폴스키 : 더... 없다?

카투리안 : (사이) 그럼 있나요?

투폴스키가 이야기를 다시 훑어 내려가면서 요약한다.

투폴스키 : 한 남자가 꿈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사형대 감옥에 갇혀 굶어 죽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뭔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무슨 죄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사거리

다른 맞은편에는 각각 두 대의 사형대가 더 있다. 각각의 사형대 위에는 강간범, 또 하나는

살인마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올라가 있다. 강간범의 우리에는 이미 먼지만 쌓인 해골이


들어있고, 살인마라고 쓰인 우리에는 한 늙은이가 죽어가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

위에 있는 현수막을 읽을 수 없었기에, 맞은편 늙은이에게 자신의 표지판을 읽어달라고

한다. 그 노인은 남자의 현수막을 쳐다보더니 혐오에 가득 찬 얼굴로 남자에게 침을 뱉는다.

(사이) 수녀들이 길을 지나다 멈추어서는 죽은 강간범에게 기도를 해주고, 늙은

살인마에게는 음식과 물을 준다. 하지만 이 남자의 죄명을 보고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둘러 떠나간다. (사이) 강도가 나타나서는 강간범의 시체를 별 관심

없이 지나치더니, 늙은 살인마를 보고는 그의 감옥에 있던 자물쇠를 부숴버리고는 그를

풀어준다. 주인공의 감옥에 다가오더니, 그의 죄를 읽고는 살짝 웃음을 짓는다. 주인공이

살짝 따라 웃자, 그 강도는 총을 빼들더니 그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주인공이

죽어가며 외친다. “도대체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그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서버린다. 죽어가는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이러하였다. ‘제가 지옥에

가게 될까요?’ 주인공이 이 세상을 떠나며 들은 마지막 소리는 그 강도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뿐이었다.

카투리안 : 꽤 근사한 이야기죠. <아주 간결하면서도... 음 형식미라고 해야 할까? 뭐 형식미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하여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이 이야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그죠?

투폴스키 : 이야기에 문제 같은 건 없어. 하지만 여기서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걸 쓴 새끼가

사이코 변태 쓰레기라는 거지. 아, 그리고 이 이야기는 뭔가를 암시하고 있어.

카투리안 : 암시요?

투폴스키 : 그래 암시

카투리안 : 아~

투폴스키 : 자네가 겉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 척하면서, 그 이면 저 뒤로는 뭔가 딴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는 거지.

카투리안 : 하~

투폴스키 : (사이) 그러니까 이게 너의 최고작이라 이거지?

카투리안 : 아니요 (사이) 제 최고의 작품은 아마도 ‘강가의 한 마을 이야기’일거에요.

투폴스키 : ‘강가의 한 마을 이야기’라.. 그게 최고라 이거지? 잠시만... 어디보자, 어디보자

투폴스키가 빠르게 이야기를 찾아낸다.


자.. 여기 있군. 아하. 이거 기억나네. 자칭 최고의 작품. 이거야 말로 내가 유심히 읽었던

이야기야.

카투리안 : 왜요? 뭘 또 암시하기라도 하나요?

투폴스키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제 이야기 중 유일하게 출판된 거죠.

투폴스키 : 유일하게 출판 되신 거 다 알거든

카투리안 : 아직까지는요.

투폴스키가 카투리안에게 이야기를 건네준다.

투폴스키 : 한 번 읽어줘 봐

카투리안 : 전부 다요?

투폴스키 : 그래, 전부 다. 일어나서

카투리안이 일어선다.

카투리안 : 꼭 학창시절로 돌아온 기분이군요.

투폴스키 : 음, 그래 하지만 학교에서는 다 읽고 난 다음에 널 사형시키진 않았겠지. (사이) 아주

좆같으신 학교를 다니지 않으셨다면 말이야.

사이, 카투리안이 일어나서 읽기 시작한다. 자신이 쓴 이야기 속의 디테일과 비틀려 있는

상황들에 도취된다.

카투리안 : 옛날 옛적, 급류가 흐르던 강 옆의 한 작은 자갈밭길 마을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 소년은 가난했고, 부모는 술주정뱅이였죠. 항상 누더기 옷에

맨발로 다녔기 때문에, 모두들 그를 놀리고 못살게 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년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꿈이 많았던 소년이었습니다. 가슴 속에는 사랑이 넘쳤고, 언젠가는

누군가 그의 참 모습을 알아보고 따듯한 손길을 내밀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강가의 나무다리 앞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어두운

자갈밭 길을 달려오는 말과 마차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차가 다가오자,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색의 망토를 입고 있는 마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의 울퉁불퉁한 얼굴은

그림자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죠. 소년의 몸으로 간담이 써늘한 공포가 흘러내렸습니다.

두려움을 꾹 참으며, 소년은 그날 밤 저녁으로 싸온 작은 샌드위치를 꺼내서 마차가 다리로

오르려던 순간 마부에게 샌드위치를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마차는 멈추어 섰고, 마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려와, 소년의 옆에 앉아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너는 왜 맨발이고, 옷은 누더기인 채로 이렇게 혼자 있느냐고 마부가 묻자,

소년은 가난과 고통으로 가득 찬 자기의 인생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마부는 자신의 마차

뒤에 높게 쌓아 올린 빈 우리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작은 우리들은 아주 더러웠고 냄새가

고약했죠. 소년이 저 우리들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냐고 물어보려 하자, 마부는 갈 길이

멀다며 일어났습니다. “넌 참 착한 아이로구나, 가기 전에 불쌍한 늙은 여행자에게 얼마

되지도 않는 샌드위치 반을 준 댓가를 지불해야겠어” 라고 속삭였습니다. “내가 너에게 줄

선물의 가치는 지금은 잘 깨닫지 못하겠지만, 좀 더 크게 되면, 아마도 그 가치를 알게 되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게 될 거야. 자 이제 눈을 감아봐” 소년은 그가 시킨 대로 눈을

감았고, 마부는 자신의 깊은 주머니 어딘가에서 길고 날카롭게 빛나는 고기 칼을 꺼내 하늘

높이 치켜 올리더니, 있는 힘을 다해 소년의 오른발을 내리 쳤습니다. 진흙이 잔뜩 묻은

소년의 다섯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갔습니다. 소년은 앉은 채 놀라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허공만 멍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마부는 핏자국이 선연한 소년의 발가락들을 주워 그 때

마침 시궁창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쥐들에게 던져주고는, 자신의 마차를 타고 그 소년과 그

쥐들과 급류가 흐르던 강과 어두워져만 가는 '하멜른 마을’을 뒤로 하고는 조용히 다리를

건너 사라져 갔습니다.

카투리안이 투폴스키의 반응을 살피듯 쳐다보다가, 그에게 이야기를 돌려주고는 다시

앉는다.

하멜른 마을이요, 아세요?


투폴스키 : 하멜른?

카투리안 : 모르시겠어요? 이 아이가 바로 그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절름발이 소년인 거죠. 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다 데려갔을 때, 혼자 따라가지 못했던 그 절름발이 소년이요.

그 아이가 절름발이가 된 이유가 바로 제 이야기인 셈입니다.

투폴스키 : 그건 나도 아네.

카투리안 : 그가 노렸던 것은 아이들이었던 거죠.

투폴스키 : 누가 아이들을 노렸는데?

카투리안 : 피리 부는 사나이가 노린 것은 처음부터 아이들이었어요. 제 이야기 속에서는 마을에

쥐를 데리고 온 것도 그고, 마을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을 것이란 것도 미리 알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노리고 이 마을에 왔다는 거죠.

투폴스키 : (끄덕인다, 사이) 그러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투폴스키가 캐비닛으로 가서 작은 과자 상자만한 크기의 금속성 상자를 하나 꺼내서는

자리로 돌아와 앉고는 탁자 가운데 올려놓는다.

카투리안 : 뭐가 생각나시나요? 아~ 그건. 아무 생각도 안 날 때 하는 말이라고 했죠.

투폴스키가 뚫어져라 쳐다본다.

상자 안엔 뭐가 들었죠?

옆방에서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카투리안이 일어난다. 이성을 잃으며

형 목소리잖아요!

투폴스키 : (들어보고는) 그래, 그런 거 같은데.

카투리안 : 우리 형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투폴스키 : 좆나게 두들겨 패나보지. 몰라, 내가 알아야 돼?

카투리안 : 당신이 손대지 않겠다고 했잖아.

투폴스키 : 난 손 안댔어.
카투리안 : 하지만, 무사할거라고 했잖아요. 보장한다며.

비명소리가 멈춘다.

투폴스키 : 카투리안, 나는 전체주의가 난무하는 좆같은 이 나라의 아주 높으신 형사야. 내 말을

믿어서 뭘 어쩌시겠다는 거야?

에리얼이 피가 난 주먹을 흰 천으로 감은 채로, 방으로 돌아온다.

카투리안 : 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에리얼이 투폴스키에게 몸짓을 보내자, 둘이 방 모서리 쪽으로 가서 뭔가 이야기를

맞추고는 돌아와 앉는다.

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투폴스키 : 이봐, 에리얼? 카투리안이 지금 질문하잖아. 첫 번째 질문은 이 상자에 뭐가 들었죠? 그건

니가 저 저능아를 고문하고 있었을 때 했던 질문이고, 또 ‘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또

물어보잖아.

카투리안 : 씹할, 이 상자에는 뭐가 들었고, 형한테는 무슨 짓을 한 거야?!

투폴스키 : 이봐, 에리얼은 성장기에 좀 문제가 많았어. 그래서 바보들만 잡아오면 다 패서

스트레스를 풀거든. 나쁜 짓인 건 자기도 알거야.

카투리안 : 무슨 짓을 한 거냐고요?!

에리얼 : 이봐, 이렇게 니가 지랄 발광할 때는 이 주먹을 얼굴에다가 꽂아 줘야하는 게 내 의무지만,

좀 전까지도 니 저능아 형한테 그 짓을 하고 와서 이 주먹이 살짝 아프시거든. 한 번만 봐 줄

테니까, 닥치고 있어! 이 새끼야.

카투리안 : 형을 봐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투폴스키 : 아니 얼굴에다가 주먹을 꽂으면 되나, 에리얼? 그거 잘못하면 폭력 경찰로 몰리는 수가

있어. 그리고 얼굴에 주먹을 어떻게 꽂나?

에리얼 : 손이 많이 아프죠.
투폴스키 : 불쌍한 그 손 좀 봐. 얼굴에다 꽂으면 아프지.

에리얼 : 그러게요. 아프네요.

투폴스키 : 내가 몇 번을 얘기해 줘야 돼? 어! 곤봉을 쓰란 말이야. 아니면 뭐 딴 거라도. 맨손으로

저능아를 쳐. 그게 도대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카투리안 : 형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라고요! 제 형을 지금 봐야겠어요!

투폴스키 : 그 세 번째 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

카투리안 : 예? (사이) 세 번째 아이라니요?

에리얼 : 그러니까 너하고 니 형? 아주 가까운 사이지?

카투리안 : 저한테 형은 전부입니다.

에리얼 : 그 저능아가?

카투리안 : 저능아 아닙니다.

투폴스키 : ‘작가와 그의 저능아 형’ 작품으로도 꽤 멋진 제목인데, 카투리안.

카투리안 : (눈물을 흘리며) 그냥 어린아이일 뿐이라고요

투폴스키 : 아니. 진짜 연약한 어린 아이는 안드레아 야바코빅이지. 누군지 아나?

카투리안 : (사이, 앉으며) 신문으로 만요.

투폴스키 : 신문으로 만이라, 그래 신문에서 뭐래디? 그 애에 대해서?

카투리안 : 황야에서 발견된 여자 아이죠

투폴스키 : 그래 황야에서 발견된 한 소녀, 근데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카투리안 : 신문에 그건 안 나왔습니다.

투폴스키 : 그래! 신문에 그건 안 나왔어. 아론 골드버그는 알아?

카투리안 : 신문에서 본 게 전부입니다.

투폴스키 : 그래, 그 소년은 유태인 촌 뒤 시궁창에서 발견되었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카투리안 : 아니요.

투폴스키 : 역시 신문에는 나오지 않았지. 신문엔 많은 것들이 나오지 않아. 신문에는 그 세 번째

아이에 대해서도 나오지 않았어. 삼일 전에 같은 자리에서 실종 된 똑같은 나이의 벙어리

소녀이야기도.

에리얼 : 하지만 내일 신문은 요란할 거야

투폴스키 : 그래, 내일 신문은 많이 요란하겠는데. 전할 이야기가 아주 많으니까.

카투리안 : 그 벙어리 소녀이야기요?


투폴스키 : 그래, 그 벙어리 소녀이야기, 또 한 남자의 자백과 즉각적인 사형에 대해서도. 뭐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들 있잖아.

카투리안 : 무슨 말인지 전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일이 현실에 실제로 있다고

해서, 아이들이 살해되는 이야기를 쓰는 게 죄가 되나요?

에리얼 : 이 놈이 무슨 지 좆같은 작품세계에 대해 논쟁하는 줄 아나보네. 참나, 니 형이 아무것도 안

불었을 거라고 생각해?

카투리안 : 제 형이 무슨 말을 했는데요?

에리얼 : 저기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우리가 몰랐으면 좋겠지?

카투리안 : 형이 무슨 말을 했건, 당신이 그 말을 하게 한 거야. 형은 낯선 사람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에리얼 : (감은 붕대를 매만지며) 나랑 잘만 떠들던데 뭘.

카투리안 : 형을 봐야겠습니다.

에리얼 : 지금 형을 만날 것을 요구하는 거야?

카투리안 : 형을 지금 봐야겠다고.

에리얼 : 지금 형을 만날 것을 요구하는 거냐고 물었어.

카투리안 : 그래, 요구한다. 씹할, 형이 괜찮은지 봐야겠어.

에리얼 : 형은 괜찮아질 수가 없어.

카투리안 : (일어나서) 나한텐 형을 볼 권리가 있어 /

투폴스키 : 앉아. 제발

에리얼 : 이젠 없어. 권리는 무슨, 넌 아무 권리도 없어.

카투리안 : 권리가 왜 없어. 누구에게나 권리는 있어.

투폴스키 : 상자 열어봐.

카투리안 : 네?

에리얼 : 니 권리는 조금 있다가 알려줄게

카투리안 : 그래, 형한테도 권리는 알려 주셨겠지.

에리얼 : 그래, 니 형한테도 알려줬어

카투리안 : 그러셨겠지. 아주 잘 알겠어, 무슨 말인지

투폴스키 : 상자나 열어봐.

에리얼 : 알긴 뭘 알아, 이 새끼야


카투리안 : 니가 어떤 인간인지 아주 잘 /

투폴스키 : (소리친다) 그 좆같은 상자나 열어봐!

카투리안 : 그래 한 번 열어보지 이 좆같은 상자!

카투리안이 화가 나서 상자를 열어본다. 그리고 안을 보고는 경악한다. 모서리 쪽으로

가서 떨기 시작한다.

카투리안 : 저게 뭐야?

투폴스키 : 와서 앉아시죠.

카투리안 : 저게 뭔데요?

에리얼이 돌진해서 카투리안을 끌어다 다시 앉힌다. 그의 머리를 잡아 상자 안을 보게

만든다.

에리얼 : ‘저게 뭔데요?’ 잘 알면서 왜 그래. 이거 네 집에서 나온 물건이야.

카투리안 : 아니야!

에리얼 : 니 형이 이미 다 불었어...

카투리안 : 아니야!

에리얼 : 저 저능아가 이런 엄청난 일을 혼자 저지를 두뇌가 없잖아. 그 황야의 소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두 개의 면도날이 사과 조각 안에 들어 있는 채로 목구멍에서 발견됐어.

웃기지 않아? 그리고

투폴스키가 상자 안으로 손을 넣는다.

에리얼 : 그리고 그 유태인 소년은 어떻게 죽었을까?

그 안에서 다섯 개의 발가락을 꺼낸다.

투폴스키 : 엄지발가락, 둘째발가락, 셋째발가락, 넷째발가락, 새끼발가락.


에리얼 : 불쌍한 유태인 소년의 발가락 다섯 개가 너희 집에서 나왔는데, 그래도 니가 상관이 없어?

카투리안 : (울면서) 난 그냥 이야기를 썼을 뿐이야

에리얼 : 아주 기막힌 극적 반전이야, 정말 대단해!

투폴스키 : 처먹게 만들어.

에리얼이 카투리안을 세게 잡아 일으킨다.

에리얼 : 벙어리 소녀는 어디 있지? 어? 어디 있냐고?

에리얼이 카투리안의 입에다가 발가락을 쳐 넣으려 한다.

투폴스키 : 야 에리얼, 뭐하는 짓이야? 그렇다고 진짜 먹이면 어떡해.

에리얼 : 방금 먹이라고 했잖아요.

투폴스키 : 그냥 겁주란 이야기지. 증거를 없애면 어떡하려고 그래! 제발 정신이 있는 거야?

에리얼 : 씹할, 정신은 무슨 놈의 정신이요! 나한테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아요. 특히 성장기에 문제가

있었다니 뭐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지 말란 말이에요.

투폴스키 : 성장기에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잖아.

에리얼 : 그만 두라고 말했어요!

투폴스키 : 그리고 그 손에 있는 피, 가짜 티가 너무 나잖아.

에리얼 : 아이, 씹할!

에리얼이 흥분해서 바닥에 발가락들을 던지고 퇴장한다. 투폴스키가 발가락을 주워서

상자 안에 다시 넣는다.

투폴스키 : 저렇게 흥분을 잘해서야

카투리안 : (사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투폴스키 : 그래? 월요일, 현재 시간 5 시 15 분, 지금까지 우리가 내린 결론. 당신의 집에서 발견된

증거물들과, 저능아가 아니건 맞건, 당신 형한테 고문을 가해서 한말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오늘 밤 그를 사형시켜도 될 만큼 확실한 자백을 받아냈음. 하지만 에리얼이 말한 것처럼,


그가 이런 일을 혼자 벌일 만한 지능이 없어 보이는 관계로, 당신의 자백을 기다리고 있음.

우린 작가를 죽이는 일에 매우 흥분되어 있지. 얼간이들이야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또 그래

왔고. 하지만 작가를 죽이는 일은 꽤 멋진 일이야. 상징적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래? (

사이) 뭐에 대한 상징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건 내 분야가 아니거든. (사이) 아니, 알아. 뭘

상징하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지 ‘ 어린.... 아이들을.... 살해하고... 다니면... 너도... 좆된다...

(사이) 그 벙어리 여자 애는 어디 있지? 니 형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즐거움만큼은

동생한테 양보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카투리안 :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좆같은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한 말씀드리죠.

당신들이 저와 제 형에게 살해 혐의를 씌우려는 이유는 두 가지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나,

왠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가 쓴 이야기들이 당신들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 둘,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들이 사는 이 세상에 지체아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게 싫다는 것! 내 형을

보게 해 주기 전까지는 입도 뻥긋 안 할 거니까, 어디 날 고문 하려면 마음껏 해봐. 투폴스키

반장, 이제 한 마디도 안할 거야! 맘대로 해봐.

투폴스키 : (사이) 그래, 좋아 (사이) 가서 전기 고문기부터 가져와야겠군.

투폴스키가 상자를 갖고 퇴장한다. 문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카투리안이 고개가

내려간다. 암전.

1막 2장

카투리안이 장난감과 그림물감, 필기도구, 종이 등이 있는 한 어린아이의 방으로 보이는

곳 침대에 앉아 있다. 옆방에는 그것과 거의 똑같은 방이 (어쩌면 유리로 된 방이다) 완전한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카투리안이 자신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엄마, 턱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쓴 아빠가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카투리안 : 옛날 옛적에, 엄마 아빠의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자란 한 행복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숲 속에 있는 커다란 집에 자기만의 방도 가지고 있었죠. 소년은 그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답니다. 장난감, 그림물감, 책, 종이, 펜 모두 소년이 원하기만 한다면 전부

소년의 것이 되었으니까요. 부모는 소년이 어려서부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예술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문학은 소년의 첫사랑이 되었습니다. 짧은 이야기, 동화,
단편소설 등, 모두 곰과 아기 돼지, 천사 등이 나오는 화려한 색감이 넘치는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평범했고, 어떤 이야기들은 꽤 훌륭했죠. 어째든 부모의

실험은 성공한 셈이었습니다. 아니, 그건 실험의 첫 번째 단계가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카투리안에게 키스와 사랑을 듬뿍 주고는 옆방으로 퇴장해 시야에서

사라진다.

소년에게 악몽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그의 일곱 번째 생일 날 밤부터였습니다. 소년의

옆방 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항상 자물쇠로 잠긴 채 못질되어 있었지만, 소년은 한 번도

그걸 궁금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낮게 돌아가는 드릴 소리, 볼트가

조여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 단조롭게 돌아가는 전기제품 소리, 입을 막힌 채 겨우

질러대는 듯한 한 작은 아이의 비명소리 등이 저 두꺼운 벽돌 뒤에서 들려오기 전까지는요.

그 소리는 매일 밤 계속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소년의 목소리로) ‘엄마, 어제 밤 들리던 그

소리는 뭐야?’ (평범한 목소리) 매일 잠 못 이루는 길고도 절망적인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올

때마다 소년은 늘 그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죠...

엄마 : 우리 예쁜 아들아, 그건 니 상상력이 너무 지나쳐서, 너에게 장난을 치는 거란다.

카투리안 : (소년의 목소리로) ‘아, 그렇구나. 엄마, 그럼 다른 아이들도 나처럼 밤마다 끔찍한 소리를

듣는 거야?’

엄마 : 아니란다. 아들아. 너처럼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만 그렇단다.

카투리안 : (소년의 목소리로) ‘와, 신난다.’ (평범한 목소리) 부모는 지극한 사랑으로 소년을 계속

격려했으며, 소년은 계속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드릴소리와 비명소리는

계속되었죠.

악몽 속의 어떤 한 순간, 어렴풋이 윤곽정도만 보이는 옆방에서, 한 1 초 동안, 8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침대에 묶인 채 전기장과 드릴로 고문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왜 이야기 속에 보면 늘 그렇듯이, 부모의 사랑과 격려 덕에 소년의 이야기는 점점 더, 점점

더 훌륭해져 갔습니다. 반면 옆방에서 들려오는 고문소리는 소년의 이야기를 점점 더, 점점

더 어둡게 만들어 갔죠.


옆방의 조명이 페이드 아웃된다. 아이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카투리안이 장남감 등을 치운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열네 번째 생일이 찾아왔습니다. 그 날은 소년이 이야기 경연대회

본선에 올라 내일의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던 날이기도 했죠. 그날 밤, 잠긴 문 밑으로 누군가

옆방에서 종이 한 장을 밀어 넣었습니다...

빨간 글씨가 쓰인 종이 한 장이 문 밑으로 들어온다. 카투리안이 그걸 집어 들고 읽는다.

‘우리 부모는 지난 7 년 동안 너한텐 사랑만을, 나한테는 고문만을 해 왔어. 그 모든 것은

특별한 이유도 없는 그들만의 예술적인 실험이야. 이 실험은 아주 성공적이었지. 넌 이제 더

이상 밝고 따듯한 이야기를 쓰진 않지. 그지?’ 마지막에는 사인이 있었습니다. ‘너의 형이’ 이

종이에 쓰인 글씨는 모두 붉은 피로 쓴 거였습니다.

카투리안이 옆 방문을 도끼로 찍어 열어버린다.

소년은 방문을 도끼로 찍어 열었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조명이 들어온다. 그들은 아래에 묘사되는 것처럼 방안에서 드릴과

녹음기를 가지고 있다.

... 방안에는 부모님이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었죠. 아빠는 드릴로 뭔가를 고치고 있었고,

엄마는 베개에 눌린 것 같은 아이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는

들통에 든 돼지 피가 있었죠. 아빠가 그 종이 뒷면을 좀 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소년이

아동 문학 경연대회에서 일등상을 받게 된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죠. 그들은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실험의 두 번째 단계도 성공적으로 끝난 셈이었죠.

카투리안이 엄마 아빠와 함께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엄마 아빠가 카투리안의 양 옆에

눕는다. 조명이 어두워진다.


그 일 이후 얼마 안 있어 그들은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소년은 더 이상 그런 악몽을

꾸지는 않았지만, 어둡고 비틀린 이야기들을 계속 썼습니다. 소년은 부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괴짜 같은 그들의 장난기 덕에 뛰어난 이야기를 쓰게 되었으니까요. 그 후로 몇

년이 흘러 소년의 작품이 처음으로 출판 되었을 때, 소년은 자신이 어렸을 때 살았던 그 집을

처음으로 다시 찾아가고 싶어졌습니다. 옛날에 살던 그 방에는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그림물감 등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카투리안이 옆방에 들어간 본다.

그리고는 그 옆 방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거긴 역시 그대로 녹이 슨 드릴과 자물쇠 전기선

등이 흐트러져 있었죠. 소년은 어렸을 때의 그 엉뚱한 기억들을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침대가 이상하게 울퉁불퉁하게 느껴진다. 소년이 매트리스를 당기자 그 안에는 한 소년의

끔찍한 시체가 있다.

거기엔 다 썩어버린 열 네 살짜리 소년의 시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뼈는 다

부러지거나 불에 그슬려 성한 게 없었으며, 형 시체의 손에는 피로 쓴 이야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상황

속에서 형이 썼던 이야기는 놀랍게도 그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따뜻하고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알았습니다. 형이 쓴 이야기는 자신이 쓴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훌륭했고, 앞으로도 자신은 영원히 다가 설 수조차 없는 걸작이라는 사실을.

카투리안이 라이터를 꺼내 이야기를 불태운다.

소년은 그 이야기를 태우고, 시체위에 다시 매트리스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부모에게도, 출판업자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부모의 마지막 실험도 모두 끝이 났던 셈이었죠.


옆방에 조명이 살짝 들어온다, 침대에는 엄마와 아빠가 자고 있다.

카투리안의 이야기 ‘작가와 작가의 형제’는 그렇게 멋진 음침한 결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지만, 현실은 이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현실의 이야기도 결코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지만 거기에는 그가 숨길 수밖에 없었던 진실이 있었죠. 앞에까지는 똑같고, 틀려지기

시작한 부분은 당연히... 소년이 피로 쓰인 편지를 보고, 문을 부수는 순간부터죠...

시체가 벌떡 일어나 앉은 채 숨을 할딱거린다.

... 소년은 자신의 형을 발견했습니다. 살아있었지만, 이미 뇌가 너무 손상되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밤, 부모들이 잠자는 사이, 열네 번 째 생일 맞은 그 소년은 아빠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놓고는 잠시 기다렸고...

카투리안이 아빠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킨다. 아빠가 몸을 부르르 떨다 죽는다. 소년이

엄마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자 엄마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엄마는 입을 벌린 채

죽어있는 아빠의 모습을 본다.

... 그리고 엄마를 살짝 깨운 후, 아빠의 파랗게 죽어 있는 모습을 보게 할 시간을 잠깐 준 후,

엄마의 얼굴에도 베개를 눌러 놓고는 잠시 기다렸습니다.

카투리안이 멍한 표정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엄마의 얼굴에 베개로 눌러 질식시킨다.

엄마의 몸이 강렬하게 떨리지만, 소년은 한 번 더 힘을 주어 꽉 누른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2막 1장

감옥. 마이클이 나무 의자에 앉아, 옆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맞춰 허벅지를 손으로

딱딱 때리고 있다. 카투리안은 옆방에서 고문을 받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블랭킷이 놓인
얇은 매트리스와 베개 하나가 방바닥에 놓여있다.

마이클 : ‘옛날 옛적에.. 한 기나긴 고지의 땅에...

카투리안이 다시 비명을 지른다. 마이클이 비명을 흉내 낸다. 비명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길게.

‘옛날 옛적, 한 기나긴 고지의 땅에, 그러니까 작은 초록 돼지가... 아니 아니지.. 머나먼

고지의 땅에, 초록 돼지가 살았습니다. (사이) 그래, 머나먼 곳에, 한 작은 초록 돼지가...

카투리안의 비명, 마이클이 또 흉내 낸다, 이번에는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카투리안! 조용히 좀 해. 그렇게 소리 지르면 작은 초록 돼지 이야기가 생각이 안 난단

말이야! (사이) 그 다음에 초록 돼지가 뭘 했더라?

카투리안의 비명, 마이클이 그냥 듣는다.

아, 왜 난 너처럼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할까. 어째든, 널 이제 그만 좀.. 고문 했으면 좋겠다.

지루해. 여긴 너무 지루해.

옆방 문의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 마이클이 듣는다. 마이클의 방문이 따지는 소리가

들린다. 에리얼이 문을 열고 피가 흥건히 묻은 카투리안을 던져 넣는다.

에리얼 : 금방 다시 올 거니까 기다려, 저녁은 먹고 해야 할 거 아니야.

마이클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에리얼이 나가서 문을 잠그고는 떠난다. 마이클이

카투리안을 쳐다본다. 카투리안은 바닥에서 떨고 있다. 카투리안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하지만 잘 안된다. 다시 의자에 앉는다.


마이클 : 안녕~

카투리안이 고개를 들어 본다. 기어가서는 마이클의 다리를 안는다. 마이클이 뚫어져라

밑으로 내려다보며, 어색해 한다.

뭐하는 거야?

카투리안 : 형 다리 잡고 있잖아.

마이클 : 허. (사이) 왜?

카투리안 : 나도 몰라, 아파서 그래! 아플 때 형 다리 좀 잡으면 안 되는 거야?

마이클 : 물론 되지. 그냥 좀 웃겨서

카투리안 : (사이) 형은 그래 좀 어때?

마이클 : 좋아. 지루하긴 하지만. 맞아, 아까 막 소리 지르던데. 뭐하고 있었던 거야? 널 고문 한 거야?

카투리안 : 응.

마이클 : (혀를 찬다. 사이) 아팠어?

카투리안의 마이클의 다리를 놓는다.

카투리안 : 형, 아프지 않다면, 고문이라고 하기 힘들겠지?

마이클 : 그래, 그런가 보다.

카투리안 : 형도 아팠어?

마이클 : 뭐가?

카투리안 : 고문당했을 때 말이야

마이클 : 고문 안 당했는데

카투리안 : 뭐?

카투리안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형을 쳐다본다, 어디에도 상처나 멍은 없다.

마이클 : 그 아저씨가 나한테 고문을 할 거라고 했어,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정말 아프겠더라고, 그럼

안 되잖아. 그래서 아저씨 원하는 데로 다 내가 대답해 준다고 했지.


카투리안 : 그럼 비명은 왜 지른 거야?

마이클 : 그 아저씨가 시켰어. 정말 잘 한다고 칭찬도 받았는걸.

카투리안 : (사이) 그 아이들을 죽인 건 아니라고 말해봐. 목숨 걸고 맹세해보라고

마이클 : 그 아이들 안 죽였어, 목숨 걸고 맹세해.

카투리안이 긴 한숨을 쉰다. 형의 다리를 다시 안는다.

카투리안 : 혹시 싸인 같은 건 안했어?

마이클 : 어? 나 싸인 같은 거 할 줄 몰라.

카투리안 : 그럼 우리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는 거야

마이클 : 무슨 희망?

카투리안 : 여기서 아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당하지 않고 나갈 희망.

마이클 : 오. 아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당하지 않고 어떻게 나가는데?

카투리안 : 그들이 가진 혐의는 형이 했다는 그 자백하고, 우리 집에서 나왔다는 그 것 밖에 없는

거라고.

마이클 : 그게 뭔데?

카투리안 : 그 놈들이 상자에 넣어온 발가락들. 아니야, 잠깐만, 그리니까 그게 발가락이라고 말한 건

그 놈들이야. 그렇게 발가락처럼 생기지도 않았던데. 그래 모르는 거야. 젠장, (사이) 그

새끼가 형을 고문했다고 했어. 손에 피까지 묻혀서 들어왔었다고. 근데 형한테 손끝하나 안

댔다며?

마이클 : 햄 샌드위치를 하나 줬어. 양배추는 내가 빼고 먹었지만

카투리안 : 우리가 멍청해서 당한 거야. 그 놈들한테 한방 먹은 거라고. 그들이 말하는 걸 하나도

믿을 필요가 없어.

마이클 : 왜?

카투리안 : 이건 이야기를 만드는 거랑 똑같은 거야!

마이클 : 그래

카투리안 : 만약에 한 남자가 형한테 와서 형 엄마가 죽었다고 말했다 쳐봐

마이클 : 나도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건 알아.

카투리안 : 아니, 그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한테 가서 ‘ 당신 어머니가 죽었다’


고 말했다 치자. 그럼 우린 정말 이 남자의 엄마가 죽었는지 알 수 있을까?

마이클 : 그럼

카투리안 : 아니야, 모르는 거야

마이클 : 아니야, 모르는 거야

카투리안 :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가서 ‘당신 엄마가 죽었다’고 말했다는

사실 하나 밖에 없는 거야. 알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이야기의 첫 번째 법칙 - 쓰여진 것을

전부 믿어서는 안 된다.

마이클 : 쓰여진 것을 전부 믿으면 안 된다. 난 신문도 안 보는데

카투리안 : 그래, 그래서 형은 세상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는 거야

마이클 :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너 지금 되게 웃기다.

카투리안 : 한 남자가 ‘방금 니 형이 세 명의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이건 형 방에서 나온 그

아이들의 발가락이야’라고 한다면 뭘 알 수 있을까?

마이클 : 아하~ 알겠어!

카투리안 : 형이 정말 아이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마이클 : 아니

카투리안 : 그렇지, 그럼 형이 정말 아이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자백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을까?

마이클 : 아니

카투리안 : 그래그래, 그럼 그 집에서 아이들의 발가락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아니야.

그럼... 아니.. 세상에

마이클 : 왜 그래?

카투리안 : 우린 죽은 아이들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거야

마이클 : 신문에 났다는데

카투리안 : 신문은 누구 손에 있지?

마이클 : 경찰들. 오! 그래 너, 되게 똑똑하다.

카투리안 : 아니! 세상에! 전체주의 국가의 한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에 나오는 어두운 이야기와 그

동네 아이들의 살해사건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심문을 받는다. 하지만 아이들의 살해 사건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이) 이건 정말 멋진 소재야. 한 시간 안에 사형당하지만

않아도 멋진 이야기를 하나 만들 수 있을 텐데. (사이) 형, 내 말 잘 들어. 그 놈들이 형한테

어떻게 해도 싸인 만은 절대 하면 안돼. 알았어?


마이클 : 그들이 어떻게 하더라도 난 사인하지 않을 거야. 절대 사인만은 하지 않는다. (사이) 근데,

니 이름은 사인해도 되는 거야?

카투리안 : (웃으며) 내 이름은 특히 더 안돼. 내 이름도 절대 안돼!

마이클 : ‘난 아이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카투리안 카투리안 사인 하!

카투리안 : 진짜... 형...

마이클 : ‘내 형, 마이클과는 특히 아무 연관도 없습니다, 눈곱만큼도’ 카투리안 카투리안 하!

카투리안 : 그럼 형은 나한테 아주 혼나는 줄 알아...

마이클 : 혼내지 마...

카투리안이 형을 안는다. 마이클도 같이 안는다. 하지만 너무 세게 안아 카투리안의

상처가 아파온다.

카투리안 : 아! 씨~ 형!

마이클 : 미안해

카투리안 : 괜찮아 (사이) 형, 걱정 마. 괜찮을 거야. 우리만 잘하면 여길 나 갈 수 있어.

마이클 : 오늘 왜 이렇게 똥꼬가 가렵지? 왠지 모르겠어. 그 파우더 남은 거 없어?

카투리안 : 없어. 형이 다 썼잖아.

마이클 : 음.. 근데 집에 가지러 갈 수도 없잖아. 어떡하지?

카투리안 : 못가지.

마이클 : 그럼 똥고가 계속 가려울 텐데.

카투리안 : 똥꼬가 가려울 때마다 계속 말해줘. 그 말만 들어도 왠지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마이클 : 진짜? 와! 아니야, 바보같이 굴지 좀 마. 똥고가 가려운데 어떻게 기분이 좋아질 수가 있어.

카투리안 : 누구 똥꼬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마이클 : 뭐? 씨! (사이) 그래, 니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참아 볼게. 하지만 정말 가렵다. 아~ (사이)

세상에서 제일 가려운 똥고를 가진 사람이 누군지 알아? 으 (사이) 야, 이야기 하나만

들려줘. 그럼 잊어버릴 수 있을 거 같아.

카투리안 : 그래, 똥고 가려운 거 까먹게 해줄게..

마이클 : 응, 가려운 똥꼬

카투리안 : 무슨 이야기 듣고 싶어?


마이클 : 음. 초록 돼지 얘기

카투리안 : (어린아이 발음) 에이, 그건 너무 유치하잖아

마이클 : (어린아이 발음) 유치하지 않아 (보통 발음), 좋은 얘기야. ‘작은 초록 돼지 이야기’ 그게

생각이 잘 안 나서 기억하려고 하고 있었어.

카투리안 : 그래도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뭐가 좋을까?

마이클 : 필로우맨 해줘

카투리안 : (웃는다) 왜 그 이야기야?

마이클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건 아주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마이클 : 응, 아주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해줘

카투리안 : 어떻게 시작했더라? (사이) 아주 아주 오래전, 옛날에... 한 남자가 살았어. 하지만 이

남자는 보통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대. 키가 삼 미터도 넘었고...

마이클이 위를 쳐다보며, 휘파람 소리를 낸다. (키가 크다는 표현 : 역자 주)

몸은 푹신푹신한 핑크색 베개들로 만들어져 있었어. 팔도 베개, 다리도 베개, 몸통도 베개.

손가락도 작은 베개들로 만들어졌고, 머리도 베개였어. 아주 큰 원형의 베개

마이클 : 동그란 베개였겠네.

카투리안 : 그래 같은 말이야.

마이클 : 하지만 난 동그란 베개가 더 좋아

카투리안 : 그래, 머리도 크고 동그란 베개로 되어 있었어. 그리고 얼굴에는 두개의 단추로 되어 있는

눈이 있었고, 입은 언제나 웃는 모양이어서 항상 이빨을 볼 수가 있었어. 그 이빨도 조그만

하얀 베개로 되어 있었데.

마이클 : 베개라. 카투리안, 너도 필로우맨처럼 한번 웃어봐.

카투리안이 이 아주 큰 웃음을 지어 보인다. 마이클이 카투리안의 입술과 볼을 만져본다.


카투리안 : 음, 필로우맨은 항상 이런 모습으로 다녔어. 사람들한테 안정감과 평온함을 줘야

했으니까, 그건 그에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어려운 직업 때문이었어.

마이클 : (무서워하면서도 들떠서) 야~ 이제 시작이다.

카투리안 : 누구라도 인생이 너무 힘들고 비참해서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목숨을 끊으려는

방법이 총이든 칼이든 약이든 가스든 그 무슨 방법이든...

마이클 :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떨어지려는 사람도?

카투리안 : 그래.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 다른 거니까 - 취향이란 말이 그리 적절한 단어는 아닌 거

같지만, 어째든 그 순간이 되면, 필로우맨이 그들을 찾아갔어. 그 사람 옆에 가서 앉아

부드럽게 안아주고는 손을 잡고 말했지. ‘잠깐만’ 그러면 갑자기 시간이 이상하게 느려졌어.

필로우맨은 시간을 거꾸로 쭉 돌려서, 아직 인생의 불행과 어둠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시간을 되돌렸어. 필로우맨이 해야 했던 일은 너무 너무 슬픈 일이었어. 왜냐면

필로우맨의 일은 그 어린시절로 돌아간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도와주는 일이었거든.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라고 묻겠지? 필로우맨은

항상 그 아이에게 아주 우연한 사고로 보일만한 방법을 알려줘야 했던 거야. 그는 사탕처럼

보이는 약을 찾아주기도 했고, 꽁꽁 얼어붙은 강에서도 제일 약한 얼음이 어딘지를

찾아주기도 했고, 또 주차장에서도 제일 위험할 만한 차들 사이의 틈을 찾아주기도 했어.

왜냐면 부모입장에서 다섯 살짜리 자식이 비극적인 사고로 죽는 걸 받아들이는 게, 아이가

인생이 얼마나 좆같은지를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보다야 받아들이기 훨씬

쉬웠을 테니까 말이야. 물론 모든 아이들이 필로우맨의 말에 처음부터 수긍했던 건 아이야.

너무도 행복했던 한 소녀가 있었어, 필로우맨이 찾아와 그가 소녀의 인생이 끔찍하고, 또

결국엔 어떻게 될 거라고 설명했지만, 이 소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며, 그를

돌려보냈어. 필로우맨은 울면서 돌아갔어. 필로우맨의 눈에서 크고 끈적끈적한 눈물이

떨어졌고, 그 눈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땅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났지. 다음날 밤

소녀의 방에 또 다른 노크 소리가 들렸어. 소녀는 말했지 ‘싫어, 돌아가요,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요,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 문을 두드린 건 필로우맨이

아니라 다른 남자였어. 그날은 엄마가 어디가고 없었거든. 그 후로도 엄마가 없을 때마다 이

남자는 소녀를 찾아왔어. 소녀는 곧 불행해졌지. 소녀가 불행하디 불행한 세월을 보내고

스물한 살이 됐을 때, 죽을 생각으로 오븐 앞에 앉아 있는데 필로우맨이 다시 찾아왔어.

소녀는 물었지 ‘왜 그때 날 설득하지 못했어요?’ 그러자 필로우맨이 대답했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널 설득했었는데, 하지만 넌 그 때 너무 행복 했어’ 그러자 소녀가 가스를 방안 가득

틀어 폭발하기만 기다리면서 말했지. ‘난 한 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행복해

본적이 없어’

마이클 : 음, 야, 그냥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면 안 될까? 제발.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다.

카투리안 :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얘기 안 해준다!

마이클 : 아이. 미안해. (사이) 근데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자. 응?

카투리안 : (사이) 그래.. 필로우맨 이야기의 마지막이라... 음... 그러니까 필로우맨이 성공했을 때는

어린 아이들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그러지 못했을 때는 더 끔찍했어. 아이들은

끔찍한 인생을 살고 나서, 어른이 되서도 불행한 인생 때문에 결국은 또 자살까지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필로우맨은 언제나 눈물을 흘렸고, 집에도 온통 커다란 웅덩이들로 가득

차게 됐지. 필로우맨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이 일을 하고, 모두 끝낼 거라 생각했어.

그는 예전에 본 아름다운 강이 있는 곳으로 갔어.

마이클 : 난 이 부분이 제일 좋아

카투리안 : 작은 병에 석유를 담아 갔지. 그 강에는 아주 오래된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필로우맨은 그

나무 밑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어. 그 나무 밑엔 장난감들이 있었지. 그리고 /

마이클 : 무슨 장난감인지 이야기 해 줘야지

카투리안 : 작은 자동차 하나, 작은 장난감 강아지, 또 만화경도 있었어.

마이클 : 작은 장난감 강아지? 와! 짖기도 했어?

카투리안 : 뭐라고?

마이클 : 강아지가 짖기도 했냐고?

카투리안 : 어... 그래. 어째든, 그 옆에는 유랑극단 가건물이 하나 있었어. 그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발자국소리가 났어.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지. ‘엄마 조금만 놀다가

들어올게’ 그러니까 엄마가 말했어. ‘그래, 차 끓이고 있으니까 식기 전에 들어와서 마셔야

된다, 알았지?’ ‘네 빨리 올게요.’ 작은 발자국 소리가 필로우맨 쪽으로 점점 다가 왔어.

버드나무 잎사귀들이 열리자 필로우맨은 깜짝 놀랐어. 그건 생각했던 보통 아이가 아니라

필로우보이였거든. 베개로 된 그 작은 필로우보이가 말했어. ‘안녕하세요’ 그러자

필로우맨도 ‘안녕’하고 대답했지. 둘은 나무 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을 같이 놀았어 /

마이클 : 자동차하고, 만화경, 그리고 장난감 강아지를 가지고 놀았겠네. 짖을 줄도 아는. 음 아마

강아지를 제일 많이 가지고 놀았을 거 같아. 그지?


카투리안 : 그러다 필로우맨이 필로우보이에게 그 아이가 앞으로 갖게 될 슬픈 직업,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만나게 될 불쌍한 아이들, 뭐 그런 걸 전부 다 이야기 해줬어. 필로우보이는 그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어, 왜냐면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였고, 남을 돕고 사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으니까. 필로우보이는 자기 몸에 필로우맨이 가져온 석유를 뿌렸어,

그래도 필로우보이의 웃는 입은 그대로였지. 필로우맨은 서글픈 눈물을 흘리며

필로우보이에게 말했어. ‘고맙다’ 그러자 필로우보이가 말했지. ‘괜찮아요, 근데 엄마한테

오늘 그 차는 못 마실 거 같다고 전해주세요’ 필로우맨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어. ‘응,

그럴게 꼭’ 필로우보이는 성냥 하나를 꺼내 자기 몸에 불을 붙였어. 필로우맨은 소년이

그렇게 불타는 것을 보며 자신도 서서히 사라져 갔어. 그가 본 이 세상의 마지막은 그렇게

웃고 있는 필로우보이의 미소가 서서히 녹아 가는 모습이었지. 저 공허한 무로 사라지는

모습. 하지만 그가 들었던 마지막 소리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어. 그건 그가 자살을

도와주었던 수많은 아이들이 되살아나 다시 끔찍한 삶을 계속 살아가면서 지르는 끝없는

비명들이었어. 필로우맨이 사라지면서 이젠 피할 수 없어진 수많은 불행들, 그건 이제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사람들의 비명이었던 거지.

마이클 : 음 (사이) 이 마지막 부분은 좀 잘 이해가 안가지만, 그래서 필로우맨은 그냥 사라진 거야?

어?

카투리안 : 그냥 서서히 사라졌어. 마치 한 번도 존재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이클 : 천국으로?

카투리안 : 아니, 어딘가로, 허공으로...

마이클 : 난 필로우맨이 좋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야.

카투리안 : 제일 좋아하기에는 좀 우울하긴 하지. 이제 그 가려운 똥꼬는 괜찮아?

마이클 : 어 씨, 말하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왜 기억나게 해. 아~ (엉덩이를 움직인다) 음. 근데

그래도 잘 모르겠어.

카투리안 : 뭘? 뭘 모르겠는데. ‘필로우맨’?

마이클 : 아니, 내가 굉장히 잘 숨긴 줄 알았거든.

카투리안 : 뭘 잘 숨겨?

마이클 : 발가락을 넣은 그 상자. 정말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옷장 서랍에 숨겨뒀는데,

그래 뭐 좋은 생각은 아니었어. 시간이 지나니까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창고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화분 속에 숨겼어. 크리스마스트리를 다시 꺼낼 일은 다음 크리스마스


때까지 없으니까. 그 정도 시간이면 곰팡이가 다 잡아 먹어 줄 거라 생각했지. 이미 곰팡이가

많이 먹은 것 같았는데. 아까 봤을 때 곰팡이가 많지 않았어?

카투리안이 끄덕인다. 표정이 마치 생명이 다 빠져 나간 사람 같다.

경찰아저씨들이 데리고 다니는 그 냄새 잘 맡는 개를 썼나봐. 내가 정말 머리를 잘 써서 숨긴

거였는데. 나 머리 잘 썼지? 어. 크리스마스트리 화분. 일 년에 한 번 밖에 안 꺼내니까.

카투리안 : 형 좀 전에 나한테 말했잖아. 그 아이들을 죽인 게 아니라고.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

마이클 : 아니야. 난 그 아저씨가 와서 그 아이들을 죽였다고 자백하지 않으면, 고문한다고 하길래,

내가 죽였다고 말했다 그랬지. 내가 아이들을 실제로 안 죽였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나

죽였어 그 아이들

카투리안 : 나한테 맹세까지 했어, 목숨 걸고. 그 아이들을 죽인 게 아니라고

마이클 : 아, 그거! 그건... 니 목숨을 걸고 맹세한 거야. 내 목숨을 걸라고 하진 않았잖아. 흐흐 나

머리 좋지. 카투리안~ 미안해

카투리안이 매트리스 쪽으로 뒷걸음질친다.

뭐 그러면 안 되는 일인지는 알았지만 꽤 재미있었어. 그 남자 아이는 니가 이야기해준 거랑

정말 똑같더라고. 발가락을 잘랐는데 소리도 지르지 않는 거야. 그냥 앉아서 쳐다봤어. 놀란

거 같았어. 그 나이면 원래 그런 건가봐. 이름이 아론이라고 했지. 엄마 이야기를 계속 했어.

와.. 피가 정말 많이 나오더라. 조그만 아이한테 피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 피가 멈추니까

얼굴이 파래졌어. 마음이 안 좋아, 착한 아이인 거 같았는데. ‘엄마한테 가게 해줘요, 제발

보내줘요.’ 근데, 그 소녀는 아주 못된 계집애였어. 아주 눈이 빠져라 울어대더라고, 사과

조각을 먹으려 하지도 않았어. 내가 사과 조각을 만드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그리고

면도날을 넣는 것도 정말 힘들더라고.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는 왜 이야기에서 안 가르쳐 준

거야? 어째든, 억지로 입에다 집어넣었어. 두 개만 넣으니까 바로 조용해지더라고. (사이)

옷에 묻은 피자국은 정말 잘 안 지워지는데, 그거 니 피야? 되게 안 지워져. 빨아봐라.

내말이 맞지. (사이) 내가 해줄까? 이제 되게 잘해.

카투리안 : (사이, 속삭이듯이) 뭐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거야?


마이클 : 뭐? 잘 안 들려, 말을 똑바로 해야지

카투리안 : (울며) 뭐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거냐고?

마이클 : 울지 마 카투리안, 울지 마.

마이클이 가서 동생을 안는다. 카투리안이 혐오감에 치를 떨며 뿌리친다.

카투리안 : 왜 그랬어?

마이클 : 어? 니가 그러라고 그랬잖아

카투리안 : (사이) 내가 뭐?

마이클 : 니가 나한테 그러라고 그랬잖아

카투리안 : (사이) 내가 형한테 숙제하라고, 매일 밤 자기 전에 꼭 이빨 닦고 자라고 그랬지, 언제 /

마이클 : 나 매일 밤 이빨 잘 닦아 /

카투리안 : 내가 언제 형한테 조그만 아이들을 다 찢어 갈기고 다니라고 했어?

마이클 : 찢어 갈긴 적 없어. 찢어 갈기려면 이렇게...

마이클이 누군가를 찢어 갈기는 동작을 취한다.

난 그렇게 한 게 아니고. 이렇게

마이클이 한칼에 살짝 발가락을 내리치고, 발가락들을 주어서는 던지는 동작을 취한다.

또...

마이클이 목으로 사과 조각을 넣어서는 꿀꺽 삼키는 시늉을 한다.

찢어 갈기다니, 그건 너무 심한 표현이야. 니가 이야기 안했으면 그런 짓은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혼자 결백한 척하지 마. 니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한테 끔찍한 짓을 하는 거잖아. 난 그냥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하기 힘든 건지 시험해 본

거 밖에 없어. 내 생각에는 불가능한 것 같았거든. (사이) 근데 그거 알아? 생각보단 하나도


안 힘들더라고

카투리안 : 왜 이야기 속에 예쁜 짓들도 있잖아. 왜 그런 건 시험 안 해봤어?

마이클 : 예쁜 짓이 어디 있었어?

카투리안 : 형은 가학적인 변태, 정신병자야! 아이들을 죽이면서 돌아다니는 게 재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들만 들려줬었어도 형은 하나도 안 달라졌을 거야.

마이클 : 그래? 하지만 불행히도 그건 알 수가 없는 일이네. 왜냐면 넌 그런 이야기를 쓸 줄

모르니까. (사이) 그리고 그 아이들을 죽이는 게 뭐 재밌어서 그런 줄 알아? 나도 정말 기분

나빴다고. 시간도 얼마나 많이 걸렸는데. 죽이려고 한 것도 아니야. 그냥 발가락을 잘라보고,

면도날 먹여본 게 전부라고.

카투리안 : 그럼 형은 작은 아이의 발가락을 다 자르고, 목에 면도날을 쑤셔 넣고도 아이들이 멀쩡할

줄 알았다는 거야?

마이클 : 이젠 확실히 알았어. 그만해.

카투리안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강구해 보려고.

그 고문하겠다던 아저씨는 확실히 내 편이던데 뭐. 그 아저씨도 이건 다 니 잘못이라고

그랬어.

카투리안 : (사이) 뭐라고 얘기 해 줬는데?

마이클 : 사실대로

카투리안 : 그러니까 사실 중에 어떤 부분

마이클 : 그냥 사실대로, 내가 아이들한테 한 짓 전부랑, 그게 다 니가 나한테 들려준 이야기대로 한

거라고.

카투리안 : 그걸 저 형사들한테 이야기했다고?

마이클 : 응, 그래, 그냥 진실만

카투리안 : 형, 그건 진실이 아니야.

마이클 : 아니긴 뭐가 아니야.

카투리안 : 아니라니까

마이클 : 니가 아이들을 죽이는 이야기를 쓴 건 사실이잖아.

카투리안 : 그건 그렇지만...

마이클 : 니가 그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줬잖아.


카투리안 : 그래

마이클 : 그래, 그리고 내가 정말 이야기대로 아이들을 죽이고 돌아다녔을까? (사이) 맞아, 그랬지.

다 기억나. 난 니가 뭐가 진실이 아니라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어. 방금 전 그 필로우맨

이야기도, 평생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죽이고 태우고 그랬다는 거잖아. 물론 그 필로우맨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는 아냐, 훌륭한 사람이지, 내가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야. 왠지 나

같거든

카투리안 : 어떻게 형 같은데?

마이클 : 아이들 죽여주는 거

카투리안 : 필로우맨은 한 번도 살인을 하고 다닌 인물이 아니야. 형, 그리고 그 아이들은 불행한

인생을 살다가 어차피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이었다고

마이클 : 맞아, 모든 아이들은 다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니까. 그러니까 빨리 죽여주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

카투리안 : 모든 아이들이 다 불행한 삶을 거는 아냐.

마이클 : 음.. 흠... 넌 어려서부터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나? 불행했지. 그래.. 음.. 그럼 나는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나? 나도 그랬어. 그럼 둘 중에 둘이면 백 프로 아닌가?

카투리안 : 필로우맨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말 싫어했던, 사려 깊고 따듯한 인물이었어. 형은

모든 면에서 그 반대잖아.

마이클 : 난 그 뭐 반대란 말은 잘 모르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어. (사이)

필로우맨은 꽤 잘 쓴 이야기야, 니가 쓴 거 중 최고지. 넌 유명해질 거야. 언젠가는 아주

유명한 작가가 될지도 몰라. 안 그래?

카투리안 : 우린 한 시간 반 있으면 사형 될 거야

마이클 : 그럼 유명한 작가가 되긴 글렀네.

카투리안 : 저 새끼들이 우릴 완전히 짓밟으려고 하고 있어. 우리만 죽이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까지도 모두 없애버릴지도 몰라. 전부다

마이클 : 우리만 걱정하면 되겠는데, 그 이야기들은 다 필요 없으니까.

카투리안 : 그래?

마이클 : 그래, 그건 그냥 종이잖아

카투리안 : (사이) 그냥 뭐라고?

마이클 : 그냥 종이라고
카투리안이 마이클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다가 세게 내동댕이친다. 마이클은 동생의

행동에 놀라 고통을 느낄 정신도 없다. 자기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본다.

카투리안 : 만약에 저들이 지금이라도 와서 형과 나 그리고 내 이야기 중 둘을 태워야 한다고

말한다면, 일단 형부터 태워 죽여 버리라고 할 거야. 다음은 나, 난 내 이야기를 살릴 거야.

마이클 : 내 머리를 바닥에다가 던졌잖아

카투리안 : 그래서

마이클 : 내 머리를 바닥에다가 던졌다고!

카투리안 : 그래서 뭐

마이클 : 너도 엄마아빠랑 똑같아!

카투리안 : (웃으며) 다시 말해봐?!

마이클 : 너도 엄마아빠랑 똑같다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카투리안 : 내가 엄마아빠랑 똑같다고? 어디 한 번 정리 좀 해보자 /

마이클 : 그만해.

카투리안 : 우리 엄마아빠는 자기 자식을 방에다가 가두고 칠 년 동안 고문했던 사람들이었어. 형은?

형은 어린 소년의 발가락을 다 잘라 피 흘려 죽게 했고, 작은 소녀의 목에 면도날을 집어넣어

즉사 시켰어. 또 세 번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해서 죽였는지 하느님만 아시겠지만... 그런데

형은 엄마 아빠와 똑같진 않고, 형 머리를 바닥에 한 번 던졌다고 내가 엄마와 아빠와

똑같냐?

마이클 : 그래 똑같아, 완전히 똑같아.

카투리안 : 이제야 형 논리를 좀 알 거 같다. 형 머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야 좀 이해가 가네.

마이클 : 그래, 넌 날 좀 이해해야 돼.

카투리안 : 아빠 엄마가 하늘에서 우릴 지금 내려보고 있다면, 아주 행복해할 거야. 형이 그들이

원하던 그런 자식으로 너무도 훌륭하게 자라 줬으니까...

마이클 : 그러지마...

카투리안 : 정말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형은 그들의 완벽한 복제품 같으니까. 형도 안경 쓰고

염소수염을 길러보지. 죽은 우리 아빠처럼 말이야.

마이클 : 조용히 해!
카투리안 : 아니면 다이아몬드를 많이 하거나 엄마처럼. (엄마 말투를 흉내 낸다.) 말도 이런 식으로

하고.. 내 아들~

마이클 : 조용히 안하면 죽여 버릴 거야!!

카투리안 : 난 일곱 살이 아니거든

마이클 : 난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이야기를 시험해 본 죄 밖에 없다고.

카투리안 : 도대체 세 번째 아이한텐 무슨 짓을 했어?

마이클 : 말 안해. 기분을 이렇게 다 망쳐놓고. 내 머리도 던지고 /

카투리안 : 저 놈들한테는 고문하면, 바로 다 불거면서.

마이클 : 참을 수 있어.

카투리안 : 형이 참긴 뭘 참아.

마이클 : (낮게) 니가 고문이 어떤 건지 알기나 해.

카투리안 : (사이) 그래 모른다. 몰라

마이클 : 니가 옆방에서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칠년 동안 니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내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어땠는지 알 것 같았어. 한 마디 해 줄게. 니 쪽

방이 훨씬 편해.

카투리안 : 그렇겠지 그거야...

마이클 : 겨우 한 시간 고문당하고 이렇게 우는 소리하며, 엄살을 떠나. 평생 한 번 당해봐.

카투리안 :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

마이클 : 너도 두 명이나 죽였잖아!

카투리안 : 난 칠년 동안 자식을 고문한 사람들을 심판해 준 거야. 형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아이

셋을 죽인 거잖아. 그건 엄청난 차이야

마이클 : 그 아이들이 아무 죄가 없다고 누가 그래? 그 소녀는 처음부터 아주 속물이던데 뭐. 아마

개미들도 몇 천 마리는 죽였을 걸.

카투리안 : 세 번째 아이는 어떻게 죽였어? 말 좀 해봐. 그 아이도 이야기대로 죽인거야?

마이클 : 응

카투리안 : 어느 이야기?

마이클 : 들으면 안 좋아 할 텐데.

카투리안 : 화 안낼게 말해봐.

마이클 : 화낼 걸, 음... 어린 여자애였는데... ‘작은 예수’ ‘작은 예수 이야기’


카투리안이 마이클을 한동안 보다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 자신이 쓴 이야기의

끔찍한 정황들을 기억해 보더니 서서히 울기 시작한다. 마이클이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카투리안이 조용히 울고 있자, 말을 꺼내지 못한다.

카투리안 : 왜 하필이면 그 이야기야?

마이클 : (어깨를 들썩하며) 멋진 이야기니까. 넌 참 좋은 작가야. 다른 사람이 뭐라 그래도 신경 쓸

거 없어.

카투리안 : (사이) 어디에다 묻었어?

마이클 : 네가 엄마 아빠를 묻은 바로 그 장소. 소원의 우물 뒤에.

카투리안 : (사이) 시간은 오래 안 끌고 빨리 끝냈지?

마이클 : 그런대로.

카투리안이 다시 울기 시작한다. 마이클이 카투리안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울지 마. 야~. 괜찮을 거야

카투리안 : 아니 괜찮긴 뭐가 괜찮아? 도대체 어떻게 괜찮아질 수가 있어?

마이클 : 글쎄, 다들 이런 때는 이 말을 하던데, 아닌가? ‘괜찮을 거야’ 물론 괜찮을 리가 없는 건

나도 알아. 우릴 와서 곧 죽일 거니까 (사이) 우릴 따로 죽일까? 꼭 같이 해줬으면 좋겠는데.

난 혼자 죽긴 정말 싫어.

카투리안 : 난 아무 죄도 없어!

마이클 : 야, 이제 그러지 좀 마. 정말 짜증나려고 그래. 그리고 혹시라도 따로 죽이더라도 함께

묻어주긴 할 거야. 구멍을 두 개 파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일 테니까. 난 혼자 묻히는 거 정말

싫어. 으으~ 그래도 같이 묻히면 천국에는 같이 가겠다. 그지? 천국은 어떤 곳일까?

하나님하고 놀고, 장난도 치고, 달리기 시합도 하고..

카투리안 : 천국? 형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마이클 : 어딘데? 기분 안 좋다고 끔찍한 데라고 둘러대진 마.

카투리안 : 형은 이제 작은 숲 속에 있는 작은 집, 작은 방으로 가서 영원히 살게 될 거야. 근데 형을

돌봐 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 아빠래. 엄마 아빠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형을 고문해


주겠지. 예전과 다른 점은 내가 형을 구할 수 없다는 거야. 왜냐면 난 형이랑 같은 데로 갈

수가 없거든. 난 불쌍한 아이들을 찢어 갈기고 다니지 않았으니까.

마이클 :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심하게 말한 사람은 없어.

다시는 나한테 말도 걸지 마! 한 마디도 안할 거니까!

카투리안 : 좋아. 그럼 이제 사형 당할 때까지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기나 하자고

마이클 : 내가 끔찍한 얘기는 하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그렇게 부탁까지 했는데. 넌 다 알면서 내

기분이 어떨지 다 알면서

카투리안 : 한 때 형을 정말 사랑했는데

마이클 : (사이)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이제 사랑 안한다는 거야? 그건 더 심한 말이잖아.

아니 아까 들은 말이 내가 들었던 제일 끔찍하고 심한 말이었는데, 어떻게 그것보다 더 심한

말을 또 할 수가 있어. 진짜!

카투리안 : 이제 조용히 기다리기나 하자

마이클 : 난 조용히 기다리려고 하는데, 니가 자꾸 심한 말을 하는 거잖아. (사이) 내 말 안 들려? 오

그러셔, 조용히 기다리는 중이신가 보지. 좋아

사이, 마이클 엉덩이를 긁는다. 사이

마이클 : 죽기 전에 꼭 할 말이 좀 있어. 오래 전에 읽은 그 쓰레기 같은 이야기 ‘작가와 작가의 형제’

정말 심하더라. 내가 여태껏 읽어본 것 중 제일 그지 같은 이야기야.

카투리안 : 내가 언제 형한테 그 이야기를 들려 줬는데?

마이클 : 누가 들려줬대. 그렇지 그런 쓰레기는 들려주고 싶지 않으셨겠지.

카투리안 : 일하러 갔을 때 내 방을 뒤지고 다닌 거야?

마이클 : 당연하지, 그럼 집에서 혼자 뭘 할 줄 알았는데?

카투리안 : 형이 얘들 죽이고 다니느라 바쁘신 줄 알았지.

마이클 : 그래? 애들 다 죽이고 나서 시간 남으면 니 방 뒤졌다. 왜 됐냐? 내가 죽고 엄마 아빠가

살았다고? 그런 거짓말을 왜 써? 완전히 멍청이가 쓴 쓰레기 아니야.

카투리안 : 지금 살인마한테 문학 강의까지 들어야 하나.

마이클 : 왜 끝을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았어? 진짜처럼

카투리안 : 왜냐면 현실에는 해피엔딩이 없으니까.


마이클 : 뭐? 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잖아. 니가 날 구했고. 나쁜 엄마 아빠를 죽여줬잖아. 그거야

말로 해피엔딩이지.

카투리안 : 그리곤 어떻게 됐지?

마이클 : 그리곤, 엄마 아빠를 소원의 우물 뒤에 묻었지.

카투리안 : 그 다음엔?

마이클 : 그 다음엔? 아, 그 다음엔 니가 날 학교에 보냈어. 그때부터 나도 뭔가 배우기 시작했지.

정말 재미있었어.

카투리안 : 그 다음엔?

마이클 : 그 다음이라... 음 (사이) 그 다음에 내가 원반대회에서 우승을 /

카투리안 : 그리고 그 다음엔, 그러니까 삼주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지?

마이클 : 아, 그 때 아이들을 죽였지.

카투리안 : 아이들을 죽였지. 그래, 그게 어떻게 좆같은 해피엔딩이 되냐고? 그 다음엔 잡혀서 이제

사형 당하는 거야. 혼자만 사형 당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없는 동생까지 끌고

들어가서 같이 사형당하는 게, 그게 어떻게 해피엔딩이냐고? 그리고 형이 언제

원반대회에서 우승을 했어? 꼴등 했잖아. 꼴등 형, 그건 우승 하는 거랑 다른 거야.

마이클 : 지금 우승을 했느냐 못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냐를 이야기 하는 중이라고. 내가 원반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거,

그거 아주 좋은 해피엔딩이네, 그지? 내가 죽어서 혼자 썩어간다고? 그건 해피엔딩이 아니야!

카투리안 : 해피엔딩이야.

마이클 : (거의 울면서) 죽어서 혼자 썩어간다는 게 도대체 어떻게 해피엔딩이 돼?

카투리안 : 형이 죽었을 때 형 손에 남겨진 게 뭐였어? 이야기야 형, 내가 쓴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이야기. 제목을 잘 봐 ‘작가와 작가의 형제’ 거기서 작가는 내가 아니라 형이었던

거야, 난 작가의 형제고. 그게 바로 형을 위해 만든 나의 해피엔딩이라고.

마이클 : 하지만 난 죽었잖아

카투리안 : 사느냐 죽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뭘 남기고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지.

마이클 : 난 몰라.

카투리안 : 지금도 날 죽이는 건 상관없어. 아무 상관없다고. 하지만 내 이야기들은 죽이면 안돼. 난

이야기를 살려야겠어. 그 이야기들은 나한텐 전부라고.

마이클 : (사이) 내가 있잖아


카투리안이 잠시 형을 쳐다보더니, 슬프게 고개를 떨군다. 마이클이 울며 고개를 돌린다.

그럼, 그 ‘작가와 작가의 형제’의 끝은 내가 말한 한대로 엄마 아빠가 죽고 내가

원반대회에서 일등 하는 걸로 바꾸기로 해, 그러기로 하는 거다? 그리고 옛날 그 이야기는

태워버려, 아무도 그 이상한 이야기를 읽지 않게.

카투리안 : 그래 형, 태워 버릴게.

마이클 : 정말?

카투리안 : 정말

마이클 : 우와, 생각보다 쉽게 바꿔주네. 그렇다면, 내 생각에 태워야 할 이야기들이 더 많은 거 같아.

아니 내가 뭐 너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좀 이상하고 변태적인 것들

있잖아.

카투리안 : 그냥 다 태워 버리지 그래. 뭘 수고스럽게 골라.

마이클 ; 아니야, 그럼 안 되지. 태워버리다니. 사람들이 읽었을 때 아이들을 죽이고 다니게 될만할

그런 이야기들만 골라내면 돼. 그리고 골라내는 일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 같아.

사람들이 읽고 아이들을 죽이지 않을 만한 이야기는 두 개 정도밖에 없으니까. 그지?

카투리안 : 그러셔?

마이클 : 왜 그 초록 돼지 이야기, 그건 좋은 이야기야. 그걸 읽고서 아이들을 죽이고 돌아다닐

사람은 없을 테니까, 진~짜.... 어.. 그리고... (사이) 음... (사이) 그게 다인가 보다, 하나 ‘작은

초록돼지’

카투리안 : 더는 없어?

마이클 : 응, 없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말이야. 물론 읽고 아이들을 죽이고 돌아다니지

않을 이야기는 더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 불구로는 만들고 돌아다닐 이야기들이거든. 그런

건 안전을 생각해서 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남은 게 ‘작은 초록돼지’

하나네. 물론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가 아이들을 초록색 페인트로 칠하고 다닐지는 모르지만,

하~ 그 정도면 큰 문제는 아니니까

카투리안 : 내 이야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형이 고른 이야기가 제일 끔찍한 것들만 아니었다면

말이야. 처음 읽은 세 개를 골라 실행에 옮긴 거는 아니잖아. 그 변태적인 취향에 가장

적합한 이야기 세 개를 고르셨겠지.


마이클 : 그럼. 니가 한 번 골라봐! 뭐가 멀쩡한 이야기인지

카투리안 : 근데 왜 하필이면 꼭 ‘어린 예수’였냐고?

마이클 : 야, 그만해 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는 거야. 나 졸려. 똥고 가려운 거만

잊어버릴 수 있으면 잘 수 있을 거 같은데. 미치겠다.

마이클이 매트리스에 눕는다.

카투리안 : 자려고?

마이클 : 응

카투리안 : 이제 곧 우릴 죽이러 올 텐데.

마이클 : 그러니까 언제 또 잘 수 있을지 모르잖아. (사이) 어쩌면 마지막 잠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끔찍하지? 난 자는 게 제일 좋은데. 천국에 가면 잘 수 있겠지? 그렇지 않으면 난 안

간다고 전해줘 씨 (사이) 카투리안?

카투리안 : 왜?

마이클 : 이야기 하나만 해줘

카투리안 : 내 이야기를 다 태우는 게 좋겠다며

마이클 : 그 초록돼지 이야기 해줘. 그 이야기는 안 태울래. 이야기 해주면 용서해 줄게.

카투리안 : 뭘 용서하는데?

마이클 : 나한테 심한 말 한 거

카투리안 : (사이) 생각이 가물가물 한다 어떻게 시작했었는지

마이클 : 잘 생각해봐. 기억 날거야. 첫번째 단어는 ‘옛날’ 이고 두번째 단어는 ‘옛적’ 그리고 세번째

단어는 ‘머나먼’ 아.. 네번째 단어가 뭐드라? ... 생각이 안나, 어 어떤 데였더라?

카투리안 : 아주 날 갖고 노는 구나?

마이클 : 햐~ 생각났다 머나먼 미지의 땅. 방금 생각났어. ‘옛날 옛적, 머나먼 미지의 땅’ 이렇게 시작

했어.

카투리안 : 그래, 자 편하게 누워서 들어...

마이클이 베개를 머리맡에 놓고 눕는다.


마이클 : 옛날 생각난다. 딱 이렇게 누워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카투리안 : 옛날 옛적, 머나먼 미지의 땅. 어느 한 농장에

마이클 : 한 농장에..

카투리안 : 다른 모든 돼지들과는 한 눈에 딱 봐도 다른 한 작은 돼지가 있었어.

마이클 : 초록색이야~

카투리안 : 지금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누구야? 형이야?

마이클 : 미안해, 입술 위에 손가락. 쉬~

카투리안 : 그 돼지는 다른 모든 돼지와는 달랐어. 혼자만 밝은 초록색이었거든. 어둠 속에도 빛나는

야광 초록색이었대

마이클 : 그거 기차 다니는 동굴 속에 칠해 놓은 초록색 같은 거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야광

초록색.

카투리안 : 그래

마이클 : 그래

카투리안 : 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 거야, 아님 계속 이렇게 이야기를 끊어 놓을 거야?

마이클 : 들으면서 잘 거야

카투리안 : 그래, 어쨌든 이 초록 돼지는 행복했어. 뭐 다른 평범한 돼지색이 싫은 거는 아니었지만,

핑크도 예쁜 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째든 이 돼지는 자신이 다른 돼지들과는 조금 다르고

특이하다는 게 좋았대. 하지만 모두들 초록돼지를 시기해서 못살게 괴롭혔어. 초록 돼지의

인생은 불행했지.

마이클 : (하품을 하며) 불행해...

카투리안 : 다른 돼지들의 불평이 자꾸 들어오자, 농부들도 신경이 날카로워졌어 그래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곤 어느 날 밤, 모든 돼지들이 탁 트인 평야에서 자고 있을 때,

농부들은 몰래 자고 있던 초록돼지를 납치해서는 헛간으로 데리고 갔어. 초록 돼지는

꿀꿀거리며 발버둥 쳐봤지만, 다른 돼지들은 모두 비웃으며 보고만 있었지...

마이클 : (조용히) 나쁜 새끼들...

카투리안 : 농부들이 헛간으로 데리고 와서는 커다란 드럼통을 열었어. 그 속에는 굉장히 특이한

핑크색 물감이 들어있었지. 그들은 초록돼지를 이 통 속에 있는 물감 속에다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넣었고, 몸에 초록색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담갔어. 이 페인트의 특이한

점은 절대로 씻어 낼 수도, 그 위의 다른 색깔을 칠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지. 초록 돼지가


말했어. (아기 돼지 목소리로) ‘하나님 제발 그들이 날 다른 돼지랑 똑같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전 다른 돼지들과 조금 다른 게 너무 좋아요.’

마이클 : 전 다른 돼지들과 조금 다른 게 너무 좋아요, 하나님

카투리안 :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지. 페인트가 다 말라버렸으니까. 다른 돼지들이 다들 그를

비웃었고, 농부들은 그를 다시 평야로 돌려보냈어. 그 돼지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잔디가

있는 곳으로 갔어. 앉아서 왜 하나님의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했지.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어. 돼지는 그렇게 울고 또 울다가 지쳐 잠들었지. 하지만 작은

돼지의 강 같은 눈물도 그 끔찍한 핑크색 페인트를 지울 순 없었어. 왜냐면...

마이클 : 그 페인트는 절대로 씻어 낼 수도 그 위에 다른 색깔을 칠할 수도 없기 때문이지.

카투리안 : 맞아! 그리곤 깊은 잠에 빠졌지. 그날 밤, 다른 모든 돼지들이 평야에 잠들어 있는 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신비하고도 특이한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렸어. 비는 점점 세게,

또 점점 더 세게, 계속 더욱 더 세게 끝없이 내렸어. 이 비는 평범한 비가 아니었어. 아주

신비하고 특별한 초록색 비였지. 거의 페인트처럼 짙었고, 이 초록색 비의 가장 특이한 점은

절대로 씻어 낼 수도...

카투리안이 형을 쳐다본다. 마이클이 잠이 들어 있다. 카투리안은 형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나머지 이야기는 더 작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 위에 다른 색깔을 칠할 수도 없는 비였다는 거야. 비가 그치고 그 다음날 아침이 밝아와

돼지들이 일어났어. 모두들 자기 색깔이 밝은 초록색으로 바꿨다는 걸 보고 난리가 났지.

모두 다, 딱 한 마리의 돼지만 빼고, 물론 그 돼지는 예전에는 초록색이었지만 이제는

핑크색이 된 바로 그 아기 돼지였지. 그 아기 돼지만은 초록색 비를 금방 씻어 낼 수 있었어,

왜냐면 농부들이 다른 색깔을 칠할 수 없는 핑크색 페인트를 어제 이미 칠해놓았었으니까.

절대로 그 위에 다른 색깔을 칠할 수 없는 페인트 (사이) 평야는 온통 당황한 초록 돼지들의

울음으로 뒤 덮였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그 아기 돼지는 미소를 지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어. 왜냐면 그 아기 돼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조금 특별한

돼지로 남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이. 카투리안이 잠자는 마이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를 잠시 동안 듣는다.


이 이이기가 제일 마음에 들지. 형? (사이) 이 이야기를 제일 좋아했잖아. 이상한 발가락도

안나오고, 면도날도 없어. 그냥 아름다운 이야기 (사이) 고르려면 이 이야기를 고르지

그랬어. (사이) 형 잘못이 아니야, 형은 잘못한 거 없어 (사이, 운다) 잘 자, 내가 금방

따라갈게.

카투리안이 베개를 들어 마이클의 얼굴을 누르기 시작한다. 마이클이 몸을 떨자,

카투리안이 마이클 몸 전체를 눌러 앉아서 베개를 더 더욱 세게 누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클의 떨림이 잦아든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마이클이 죽는다. 카투리안이 형이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자, 베개를 빼주고는 마이클의 입술에 눈물을 흘리며 키스해준다. 눈을

감겨주고, 문 쪽으로 가더니 문을 요란하게 두드린다.

형사님들! (사이) 반장님?! 죄를 자백하겠습니다. 여섯 명을 살해한 혐의를 인정합니다. (

사이)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사이) 제 이야기들에 관련된 겁니다.

암전, 인터미션

2막 2장

카투리안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 이야기를 한 소녀와 부모들이 무대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착한 부모에서 양부모로 바뀔 때 약간의 의상변화가 있다. 물론 배우는 같은

배우들이 연기한다.

카투리안 : 옛날 옛적, 너무 멀지 않은 어떤 곳에, 한 작은 소녀가 살았습니다. 소녀의 착한 부모들이

아이를 종교적으로 키운 것은 아니었지만, 소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예수의 딸이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뭔가 잘못된 수염을 붙이고, 샌들을 신고 있다. 소녀가 여러 가지 것들에 축복을

내리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그건 여섯 살짜리 아이 치고는 아주 특이한 행동이었죠. 소녀는 항상 작은 턱수염을 붙이고,

샌들만 신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보는 것 마다 자신의 축복을 내리고 다녔죠. 소녀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 집 없고 아픈 사람들, 술주정뱅이나 약 중독자들을 위로하고 다녔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여섯 살짜리가 만나선 안 될 사람만 골라 만나고 다닌 셈이죠. 매번

부모들은 불미스러운 상황에 있는 딸을 보았고, 그럴 때마다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 왔지만,

소녀는 항상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부모가 그러는 아이를 꾸중하면,

부모들 : 예수님은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엄마 아빠한테 소리 지르고 그러지 않으셨어.

카투리안 : 그러자 소녀는 대답했죠. ‘그건 몇 천 년 전 예수야! 요즘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데!’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또 다시 실종되었고 악몽처럼 길기만 했던 이틀 동안, 부모는 소녀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생전 모르던 한 신부에게 걸려온 엉뚱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신부는 말했죠. ‘여기 교회로 와서 당신 자식을 좀 데려가 주십시오.

여기서 지금 아주 저희를 좆나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미소를 짓고 있는 부모에게 조명이 서서히 더 밝아진다.

부모는 그들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었습니다. 딸이 살아있고 안전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으니까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급하게 운전해 오다 미끄러져 맞은 편 고기 트럭과

정면충돌했고, 부모들은 머리가 날아가 즉사했죠.

부모가 피를 흘리기 시작하면 조명이 서서히 아웃된다.

소녀는 부모 소식을 들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한 번 고민하더니, 정확히 딱 한 방울의 눈물만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정부에 의해 숲 속에

사는 한 폭력적인 양부모에게 보내졌죠.

비열해 보이는 양부모가 등장한다. 소녀의 손을 일부러 세게 잡아 아프게 한다.

물론 정부도 양부모의 폭력적인 성향까지는 몰랐습니다. 양부모는 종교를 싫어했으며, 그


중에도 특히 예수를 가장 증오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걸 다 싫어했다고 표현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소녀도 그 증오를 피할 순 없었죠.

양부모가 소녀의 턱수염을 떼서 버린다.

소녀는 양부모의 증오도 사랑으로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별 효과가 없었죠.

소녀가 일요일엔 교회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자, 양부모는 소녀의 샌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소녀는 맨발로 혼자 자갈밭길, 유리가 깨진 길도 지났습니다. 그러고도 교회에 가서는

하나님께 자신의 부모님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조차 피로

바닥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쫓겨나야 했죠. 부모는 특별한 귀가 시간도 정해주지 않고, 늦게

오면 귀가 시간을 어겼다며 소녀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밥을

나누어 먹었다는 이유로, 또 나병환자들을 위로하며 돌아 다녔다는 이유 등으로 매일같이

매를 맞았습니다. 소녀의 인생은 계속되는 고문이 연속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더

강하게 해줄 거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한 맹인을

만나게 됩니다.

카투리안이 맹인을 연기한다. 그녀가 먼지를 닦은 후 침을 섞어 맹인의 눈꺼풀에 발라준다.

소녀는 자신의 침과 먼지와 섞어 맹인의 눈꺼풀에 발라 주었습니다. 맹인은 경찰에게 소녀가

자신의 눈에 먼지와 침을 발랐다고 신고했고, 양부모가 경찰서에서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양부모 : 너 진짜 예수가 되고 싶은 거니?

카투리안 : 그러자 소녀는 대답했습니다. ‘이 또라이들이 이제야 뭘 좀 깨달았나 보네’ (사이)

양부모는 한동안 소녀를 노려보았습니다. 이건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죠.

앞으로 나오는 끔찍한 상황들을 모두 무대에서 보여준다.

양 엄마는 가시 면류관을 제대로 만들만큼 부지런하지 못했죠. 그래서 대신 철조망으로 만든

왕관을 머리 깊숙이 씌웠고, 아빠는 고양이 꼬리 아홉 개로 만든 채찍으로 몇 시간동안 계속


때렸습니다.. 소녀가 쓰러졌다 의식을 되찾자 물었죠...

양부모 : 아직도 예수가 되고 싶니?

카투리안 :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죠. ‘네, 그러고 싶어요.’

부모가 무거워 보이는 십자가를 소녀 등에 맨다. 그녀가 힘겹게 십자가를 매고 돌아다닌다.

양 부모는 아주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소녀에게 매게 한 후, 소녀의 다리가 휘어지고,

정강이가 부러질 때까지 마루를 백 번 돌게 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망가진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죠. 부모는 또 물었습니다.

양부모 : 아직도 예수가 되고 싶니?

카투리안 : 너무 아파서 기절할 뻔 했지만,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한 번 더 고통을 삼켰고,

양부모의 눈을 보며 다시 말했습니다. ‘예. 그럼요’

양부모가 십자가를 세워 소녀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양부모는 소녀의 손을 십자가에 못으로 박기 시작했고, 또 다리를 오른쪽으로 휘어

발에다가도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검은 벽에 십자가를 꼿꼿이 세워 놓고는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죠. 저녁 내내 볼만한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나서야 텔레비전을 껐으며, 창을

날카롭게 갈고 다시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양부모 : 아직도 예수가 되고 싶니?

카투리안 : 그러자 소녀는 다시 고통을 삼키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말했습니다. ‘난 예수가 되고

싶은 게 아냐, 씹할 내가 예수야’ (사이) 부모는 소녀의 허리에 창을 꽂았습니다.

창을 꽂는다.

그들은 소녀가 그렇게 죽어가게 내버려두고는 침실로 들어가 잤습니다..

소녀의 머리가 서서히 떨어진다. 눈도 감긴다. 아침이 돌아오자 양부모가 돌아온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꽤나 놀랐죠...

소녀가 서서히 눈을 뜬다. 고개를 끄떡이며 인사를 한다. 부모는 소녀를 십자가에서

빼준다. 소녀는 부모들을 용서하듯이 그들의 얼굴을 매만진다. 그들은 소녀를 유리로 된

관에 넣은 후 뚜껑을 덮어 봉합한다.

...그들은 소녀를 십자가에서 내려 준 후, 관에 넣어 산체로 매장하기로 합니다. 그 관

안에는 길어야 삼 일 정도 겨우 살 수 있을 만큼의 공기만 있었습니다...

양부모 : 니가 만약 예수라면 사흘 후에 꼭 부활하거라. 할 수 있겠지?

카투리안 : 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얼굴에 미소를 띠며 속삭였습니다.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 (사이) 소녀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관에 조명이 어슴푸레 밝아진다. 소녀가 관 뚜껑을 손톱으로 긁는다. 카투리안이 걸어서

그 위를 지나간다.

삼일 후, 숲 속을 산책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발에 새로 만들어진 이 작은 무덤이

채였지만, 이 남자는 앞을 볼 수 없었던 관계로 그냥 지나칩니다. 뼈로 뚜껑을 긁는 그

끔찍한 소리를 뒤로 하고, 남자는 슬프게도 멀어져 갔습니다. 그가 멀어질수록 그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텅 빈 저 숲

속으로, 검디검은 그늘 저 편으로 영원히...

암전

3막

경찰 취조실. 카투리안이 급하게 긴 자백서를 쓰고 있다. 앉아 있는 투폴스키에게 자신이

쓴 첫번째 장을 건넨다. 에리얼은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투폴스키 : ‘여섯 명의 인명을 살해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자백하는 바입니다. 세 명은 단독


범행이었으며, 나머지 셋은 형 마이클과 함께 제가 쓴 어둡고 변태적인 이야기들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었습니다. 괄호 열고 첨부 괄호 닫고. (사이) 제가 저지른 마지막 살인은 제

형 마이클을 살해한 것으로’ 아~ 잘 나셨네, 잘 나셨어, 그게 자네인 줄은 정말 몰랐네. ‘

베개로 얼굴을 눌러 질식사’ 어쩌고저쩌고... ‘그가 당할 고문과 사형 등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제 손으로 직접’ 어쩌고저쩌고. 형을 사랑하신다는 내용 어쩌고저쩌고... 정말 제대로

보여주셨어! ‘ 벙어리 소녀를 살인 한건 삼 일 전 일로 이름은 모르지만... 이 소녀는’

에리얼 : (사이) 소녀는 뭐요?

투폴스키 : 이게 페이지의 끝이야

에리얼 : 펜 좀 빨리 굴려, 씹할 놈아

에리얼이 맞은편 카투리안의 글을 보려고 목을 꺾는다. 카투리안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이 쓰던 글을 가린다. 에리얼이 그의 머리를 한대 때린다.

에리얼 :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시험 보는 줄 알아!

카투리안 : 죄송합니다...

에리얼이 카투리안 어깨 너머로 읽는다.

에리얼 : ‘“어린 예수”라는 이야기에 따라 죽였습니다.’ 어린 예수 이야기가 뭐야? 그건 못 읽어본

이야기인거 같은데...

투폴스키 : 뭐?

에리얼이 파일 상자를 훑다가, 어린 예수 이야기를 찾는다.

에리얼 : 이 놈이 ‘어린 예수’이야기에 따라 살인을 했다고 하잖아요. 혹시 그거 읽어 보셨어요?

투폴스키 : (역겨워 하다가, 슬퍼진다) 어, 읽었어.

에리얼이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다. 카투리안은 투폴스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잠시

그를 쳐다본다. 투폴스키에게 두번째 페이지를 건네고, 다시 글을 쓴다.


시체는 어디다 뒀나?

카투리안 : 지도에 그렸습니다. 저희 집 뒤로 50 미터 정도 가면, 카메니스 숲 속에 소원의 우물이

있습니다. 그 소원의 우물 바로 뒤를 파보시면 거기 어른 시체 두 구와 함께 묻혀 있을

겁니다.

투폴스키 : 어른 시체 두 구는 또 뭐야?

카투리안 : 그것도 이제 곧 쓰려던 참입니다.

투폴스키가 총을 점검한다. 카투리안이 알아채지만, 일단 계속 써내려 간다.

투폴스키 : (에리얼에게) 어디까지 읽었나?

에리얼 : 수염 붙이고 샌들을 신고 다녔다는 부분이요

투폴스키 : 에리얼, 만약에 아이를 어떻게 죽였는지가 궁금한 거라면, 끝에만 보면 되는 거 아니야?

(사이) 부검 팀한테 연락해서 빨리 출동하라고 해야겠다, 어서 시체를 수거해야지.

투폴스키가 카투리안이 준 지도를 가지고 퇴장한다. 에리얼은 이야기를 다 읽고 낮게 울기

시작한다. 카투리안이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써내려 간다. 에리얼은 혐오감에 치를 떤다.

에리얼 : 세상에 너 같은 인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 거니?

카투리안이 쓰던 페이지를 마치고, 새 종이에 다시 쓰기 시작한다. 에리얼이 첫번째 장을

읽는다.

‘“강가의 한 마을 이야기”, 첨부에 따른 것으로 제 형이 발가락을 자를 때 제가 소년의

다리를 잡아 주었습니다. (사이) “작은 사과맨”, 첨부에 따라 제 형이 사람모양으로 작게

조각한 면도날 넣은 사과를 입에 넣을 때 제가 역시 소녀의 입을 열어 주었습니다.’ (사이) 널

죽이고 나서 정말 너의 이 변태적인 이야기들을 다 태우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거냐?

카투리안 : 전 모든 것을 약속대로 진실에 입각해서 자백했습니다. 당신들도 약속대로 제 이야기를

사건 파일과 함께 보관했다가 오십 년 후에 세상에 발표해 주리라 믿습니다.


에리얼 : 뭘 믿고 우리가 약속을 지킬 거라 생각하지?

카투리안 :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 믿습니다.

에리얼 : 존경해, 좆나 존경해?

카투리안 : 저 이거 다 쓰고 나서 때리시면 안 될까요? 이제 곧 엄마 아빠 죽인 부분을 써야 하거든요

카투리안이 계속 쓴다. 에리얼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에리얼 : 엄마 아빠도 죽였어?

카투리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좀 우스운 질문이지만, 왜 그랬어?

카투리안 : 음... 제 이야기 중에 ‘작가와 작가의 형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읽어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리얼 : 봤어

카투리안 : 전 자전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한심한 작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만 쓰는 사람들은 항상 아는 이야기밖에 쓸 줄 모르죠. 뭘 꾸며내기엔 너무도 멍청한

꼴통들이니까, 하지만 제 이야기 중에도 전부가 다 꾸며낸 것만은 아닌, 말하자면 자전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작가와 작가의 형제’입니다.

에리얼 : 그래 (사이) 부모들이 고문하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였는데?

카투리안 : 형은 여덟 살, 전 일곱 살

에리얼 : 고문은 얼마나 간 거야?

카투리안 : 칠년이요

에리얼 : 넌 칠년 내내 그 소리를 들은 거고?

카투리안 :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나중에야 알았죠.

에리얼 : 그래서 부모를 죽였나?

카투리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백서의 마지막 장을 에리얼에게 넘긴다.


카투리안 : 베개로 눌러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집 뒤에 있는 소원의 우물가에 묻었죠. 그 벙어리

소녀가 매장된 곳도 그 장소입니다.

에리얼이 파일이 정리된 캐비닛에 가서 안을 확인한다.

에리얼 : 너의 그 어린 시절은 법정에서 너에게 유리한 변론으로 작용할 수 있어. 우리가 법정에서

하는 엿 같은 과정은 건너뛰고, 여기서 바로 사형시키지 않았을 때 이야기이긴 하지만.

카투리안 : 약속만 지켜준다면, 절 바로 죽여도 상관없어요. 제 이야기들만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면.

에리얼 : 우릴 믿고 싶으면 한 번 믿어봐

카투리안 : 믿을게요. 믿어요.

에리얼 : 우릴 뭘 보고 믿나?

카투리안 :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왠지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설명하긴 좀 힘들지만

에리얼 : 오 그러셔? 이번엔 내 이야기를 좀 해줄까? 그러지 뭐. 내 안에는 너 같은 인간들에 대한

정말 참을 수 없는... 증오.. 그래 증오가 들끓고 있지. 특히 아이들에게 손을 대는

인간들에겐 더 더욱. 잠을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너 같은 인간 생각만 하면 잠이 다 확

깨니까. 난 항상 일찍 출근해서 서류가 잘 정리 되어 있는지, 또 전기 고문기가 잘

작동되는지 점검하지... 단 한 순간의 시간도 허비 하면 안 되니까. 물론 때론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한테 과도한 폭력을 사용한다는 점, 인정해. 하지만 하나 말해두지. 만약에 죄 없는

사람이 석방되어 저 세상으로 나가게 될지라도, 그 놈들은 애들한테 소리를 지르는 상상조차

못하게 될 거야. 혹시라도 다시 끌려와 고문당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이게 과연 경찰의

도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행동일까? 누가 아니래, 이 씹할 놈아! 내가 상관할 거 같아! 좆까

이 씹새야! 내가 늙으면, 아이들이 모두 날 우러러 보고 따를 거야. 나에게 과자를 선물하며

고마움을 표시하겠지, 정말 행복할 거야. 만약에라도 내가 없었다면, 그 중 사라진 아이들도

있었을 테니까. 난 좋은 경찰이야. 많은 사건을 해결했다는 의미에서는 아니지만, 무언가를

지켜냈다는 의미에서. 난 하나의 상징이 될 거야. 옳은 것들을 지켜낸 상징. 항상 옳은 쪽에

서지, 아이들의 편에. 너의 정 반대편! 이 새끼야. 그러니까 한 아이가 살해당했다면, 특히 그

아이가 니 그 예수 이야기처럼 살해당했다면... 니가 그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고문해 줄 거야. 근데 그걸 행동으로 옮겨! 똑바로 들어, 이


개새끼야!

에리얼이 캐비닛에서 무섭게 생긴 큰 건전지와 전기 고문 기계를 꺼낸다.

... 니 엄마 아빠가 너랑 니 형한테 무슨 짓을 했건 상관 안 해. 좆까, 니 부모들도 나한테

걸렸으면, 씹할, 죽을 때까지 고문당했을 거야, 바로 오늘 니 운명처럼 말이야. 두 개의

악이 정의를 만들 수는 없는 거거든. 두 개의 잘못이 잘못을

지우지는 못하는 것처럼. 이리 와서 무릎 꿇어. 건전지 좀 연결해야 되니까.

카투리안이 뒤로 물러선다.

카투리안 : 아까 많이 했잖아요 /

에리얼 : 자, 그러지 말고 이리 좀 와봐...

투폴스키가 등장한다.

투폴스키 : 뭐하는 짓이야?

에리얼 : 이 새끼한테 건전지 맛 좀 보여주려고요.

투폴스키 : 근데 뭘 망설여?

에리얼 : 애기 좀 하느라고요

투폴스키 : 무슨 얘기?

에리얼 : 아무 것도 아닙니다.

투폴스키 : 또 너.. 그 늙으면 아이들이 과자를 선물해주고 존경해 줄 거라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지랄을 떨고 있었냐?

에리얼 : 아이... 씹할

투폴스키 : (놀라며) 뭐? 이게 미쳤나, 오늘 벌써 두번째야...

에리얼 : (카투리안에게) 이리와 무릎 꿇어. 좋게 말할 때 한 번에 얼른 와라


카투리안이 천천히 에리얼에게 다가간다. 투폴스키가 책상에 앉아 자백서를 마저 다

읽는다. 카투리안이 무릎을 꿇는다.

카투리안 : 에리얼 형사님, 당신한테 처음으로 무릎 꿇으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당신

어머니였나요, 아님 아버지?

에리얼이 순간 완전히 얼어버린다. 투폴스키의 입이 딱 벌어진다.

투폴스키 : 맙소사!

카투리안 : 제가 맞혀 볼까요. 아버지였죠?

투폴스키 : 에리얼, 이 놈한테 아빠 이야기까지 다 했니? 정말 왜 그래?

에리얼 : 아닙니다. 반장님. 제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투폴스키 : 또 그 미친 새끼 애기 한 거 아냐?

에리얼 : (투폴스키에게) 그런 식으로 자꾸 이야기를 꺼내실 겁니까? 자꾸 성장기 문제라니 뭐니

제발 좀 그만 하라고요!

투폴스키 : 무슨 소리야? 성장기 문제를 자꾸 꺼내는 건 너잖아.

에리얼 : 전 한 번도 제 성장기 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성장기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고 자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십니까?

투폴스키 : 그럼 아빠한테 좆나 두들겨 맞은 성장기라고 할까? 그럴 수는 없잖아.

에리얼이 살짝 떨기 시작한다.

에리얼 : 이 새끼한테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주시고 싶으신 겁니까? 반장님

투폴스키 : 정말 자기 어린 시절을 핑계로 미쳐 날뛰는 인간들을 보는 거, 지겨워서 그래. 아주

지긋지긋해.

에리얼 : 저 이제 고문을 좀 시작해야겠습니다.

투폴스키 : 그럼 어서 하셔야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

에리얼이 말을 하면서 고문기를 카투리안에게 연결한다.


에리얼 : 반장님은 오늘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습니다.

투폴스키 : 난 이 새끼 자백서를 마저 읽겠네. 한 가지 사실이라도 놓쳐서는 안 되니까. 난 내 일을

하는 거야. 누구처럼 자기의 가학적인 복수 환상을 위해 쓰레기 같은 죄인을 고문하는 게

아니라고.

에리얼 : 넘어도 한참을 넘었습니다.

투폴스키 : 고문할 거면 빨리 해, 에리얼, 이제 삼십 분 후엔 죽여야 되니까. 시간 없다.

에리얼이 건전지를 연결한다.

카투리안 : 에리얼 형사, 아버님은 지금 어디 계시죠?

에리얼 : 반장님, 가만히 있어요.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요.

투폴스키 : 난 아무 말도 안 해. 자백서 읽느라 바빠.

카투리안 : 감옥에 있나?

에리얼 : 너도 입 닥쳐, 이 변태새끼야

카투리안 : 안 닥치면 어쩌실 건데? 고문하고 사형시키게요? (사이) 감옥에 있나?

에리얼 : 쉬 쉬 쉬~ 집중이 안 되잖아.

투폴스키 : 감옥에 없어. 없지.

에리얼 : 내 말 못 들었어요!

카투리안 : 경찰이 못 잡았어요?

투폴스키 : 잡을 수가 없었지

에리얼 : 반장님!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줄래요... 젠장... 일을 할 수가 없다고요.

투폴스키 : 어쩌나~ 가만히 못 있겠는데.

에리얼 : 자 마지막 선을 연결해야 되거든요. 마지막 선을

카투리안 : 경찰들이 왜 잡을 수가 없었죠?

에리얼 : 쉬 쉬 쉬...

카투리안 : 왜 잡을 수 없었냐니까요?!

에리얼이 마지막 선을 연결하고 건전지를 켜려고 하던 거의 마지막 순간에 투폴스키가


말하기 시작한다.

투폴스키 : 그야 에리얼이 죽여 버렸기 때문이지. 당연한 거 아니야?

에리얼이 살짝 웃으며 또 떨기 시작한다. 건전지를 켤 수가 없다.

뭐 그렇다고 살인이라고 할 순 없지. 그지? 음... 정당방위가 좀 더 적당한 말인가 보다.

하지만 난 그냥 살인이라고 하지. 쟬 좀 놀리려고. 아니 아빠가 여덟 살 때부터 침대로

기어들어와 강간했다면, 나라도 살인했을 거야, 안 그래? (사이) 음. 쟤도 아빠가 잘 때 가서

베개로 눌러 죽였대, 그러고 보니 둘이 아주 닮은 점이 많네.

투폴스키가 자백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에리얼 : (사이) 상부에 보고 해 조사를 요청하겠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 수사는 적절하지도

않았고, 초점도 없는 상태로 진행 되었으니까요. 도대체, 곁눈질 이야기는 다 또 뭡니까?

곁눈질은 밑으로 하는 게 아니라니요? 그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요?

투폴스키 :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말로 죄수를 당황하게 만들고 동요시켜라. 그거 가이드북에 다

있는 지침이야, 에리얼. 이제 죄수님한테 질문을 좀 해야겠으니까, 그 전기 고문기는 좀

빼줄래? 카투리안씨가 제 정신인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어야겠거든.

에리얼 : 지휘관에게 당신을 파면시키고 절 이 사건의 책임자로 선임해 달라고 요청할 겁니다.

지휘관님도 사건의 책임자가 바뀐 것도 여러 번 있던 일이라고 하셨어요. 당신은 댓가를

치르게 될 거야. 내가 이 사건을 매듭짓게 될 거라고.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는 부분들도 다

정리할 거야. 내가 다 해 낼 거라고.

투폴스키 : 그래 우리 에리얼 반장님은 미해결로 남아 있는 부분을 매듭짓기 위해 일단 뭐부터 하실

건데?

에리얼 : 당신이 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대기 전부터 난 계획이 있었어. 첫 번째 할 일은

이 새끼를 이 전기로 고문해 주는 거지.

투폴스키 : 왜?

에리얼 : 왜? 이 개새끼가 아이들을 좆나게 죽였으니까!


투폴스키 : 이봐, 내가 첫 번째로 할 일은 그 벙어리 소녀와 관계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거야.

에리얼 : 그래서 뭘 어쩌는데요?

투폴스키 : 첫 번째 질문은 ‘카투리안씨, 그 “어린 예수”이야기에 따라 형과 함께 소녀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운 게 사실입니까?’ 라고 약간은 형식적인 말투로 물어보겠네.

카투리안 : 예, 사실입니다

투폴스키 : 그렇다면, 나의 두 번째 질문은 ‘소녀를 십자가에 묶어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마루를 돌게

한 게 사실입니까? 그러고 나서는 소녀를 십자가에 박아 세웠습니까?’

카투리안 : 예, 모두 사실입니다.

에리얼 : 그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투폴스키 : 그렇군요.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커다란 창을 소녀의 가녀린 허리에 꽂은 것도

사실입니까?

카투리안 : 저도 유감스럽지만, 사실입니다.

투폴스키 : 그러고 나서 소녀를 매장시켰나요?

카투리안 : 예

에리얼 : 그걸 누가 몰라요?

투폴스키 : 당신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를 묻었을 때, 살아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소녀를

매장했을 때는 살아있었나요, 아니면 죽어있었나요?

카투리안 : (사이) 뭐라고요?

투폴스키 : 그 벙어리 소녀를 매장했을 때, 살아있었어, 죽어있었어?

카투리안이 답을 하려고 생각해보지만, 떠오르는 답이 없다.

카투리안 : (조용히) 잘 모르겠습니다.

투폴스키 : 뭐?

카투리안 : 잘 모르겠다고요.

투폴스키 : 잘 몰라? 그러니까 살아있었는지 죽었었는지 모른다. 하. 에리얼? 지휘관한테 가서

고자질 할 때, 이왕이면 부검 팀한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출동해 달라고 이야기 좀 해

줄래? 그리고 땅을 팔 때, 혹시 소녀가 살아있을지 모르니까, 최대한 서둘러서 일을 진행해

달라고 전해줘, 알았지? 고마워, 이 풋내기야~


에리얼이 투폴스키를 보다가, 급하게 뛰어 나간다. 투폴스키가 천천히 카투리안에게

다가간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카투리안 : 숨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아서, 아마 지금쯤은 확실히 죽었을 겁니다. 아니 그렇게

심하게 당하고도 살리는 없지 않습니까?

투폴스키 : 죽었다는 거야? 아님 죽었을 거 같다는 거야? 난 잘 모르겠어. 소녀를 그런 식으로 못

박아서 매장시켜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투폴스키가 건전지 선을 태평스럽게 만진다. 카투리안은 전기 고문을 당할 줄 알고

긴장한다. 투폴스키가 선을 빼고는 자리로 돌아간다.

죽었을 것으로 사료되긴 하지. 하지만 그건 모르는 거야. 내가 부검팀에게 전화할 때서야

깨달았지. 니가 한 말은 그 작은 예수이야기대로 실행했다는 것 밖에 없잖아. 그게

에리얼한테는 충분할지 모르지 ‘형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지이이잉!’ (

전기고문소리 : 역자 주) 하지만 나한텐 아니지. 에리얼은 형사야, 쟨 형사 짓만 하고

돌아다니지. 개 같은 형사들도 형사 짓은 할 수 있거든. 하지만 난 수사관이야. 나한테

수사관놀이 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지.

카투리안 : 죽었을 게 확실합니다.

투폴스키 : 정말 확실할까? 그래? (사이) 나도 한 때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 나의 세계관을 하나의

작품으로 집약했다고나 할까? 아니지. 그건 아니야. 나한테 세계관 같은 건 없으니까.

있다면 세상은 거짓과 악으로 가득 찬 똥통이라는 정도. 그게 뭐 세계관은 아니잖아. 음...

(사이) 어째든, 내가 직접 쓴 이야기지. 아... 그래, 바로 그거야. 탐정으로서 수사에 대한

나의 관점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집약했다고 말 할 수 있겠군. 그래 맞아. 아니

근데 왜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나?

카투리안 : 잘 모르겠습니다.

투폴스키 : 멍청해 보여, 이 또라이 새끼야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가 의자로 와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카투리안이 마지막 선을 스스로 때어내고는

자리에 와 앉는다.

투폴스키 : 자, 그럼 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래?

카투리안 : 예

투폴스키 : 제목이, 아... 뭐였더라... 아 그래... ‘길고도 긴 기찻길 위에, 작은 귀머거리 소년의

이야기’ (사이) 왜?

카투리안 : 후... 아니... 멋진 제목이라고 생각 합니다

투폴스키 : (사이) 정말 어떻게 생각 하냐고? 지금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해도 좋으니까, 말해봐.

난 아주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어

카투리안 : 그렇다면... 그건 제가 들어본 최악의 제목 같습니다. 제목에 쉼표가 두 개나 됩니다.

제목에 쉼표가 있는 건 쥐약입니다. 그건 기본도 안돼 있는 작가들이나 하는 짓이죠. 미친

짓입니다.

투폴스키 : (사이) 너무 시대를 앞섰을 뿐이야.

카투리안 :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그 제목은 정말 아닙니다.

투폴스키 : 알았거든! 마음속에 있는 말해도 좋다는 거 취소하니까 닥쳐. 너 한 대 안 맞은 걸

행운으로 알아, 이 새끼야! (사이) 좋아,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카투리안 : 귀머거리 소년이 길고도 긴 기찻길에서까지요 (사이) 죄송합니다.

투폴스키 : (사이) 그래, 하여튼 옛날 옛적에 한 작은 귀머거리 소년이 있었어,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지, 어째든, 소년은 넓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고도 길 기찻길을 걸어가고 있었지.

나무도 없어, 아무것도 없지 그냥 좆나 넓은 평야만이 펼쳐져 있어. 소년은 그 기찻길을 따라

걷지, 아 근데 이 소년한테는 약간 정신장애가 있어. 아니 귀머거리라도 제정신인 애가

기찻길 위를 걸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에 뒤에서 기차가 오면 어떻게 되겠어? 소리도 못

들으니, 그냥 짜부가 되어 버리겠지. 어째든 한 작은 귀머거리 장애인 소년이 그 길고도 긴

기찻길을 따라 집에 가고 있었어. 근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좆나 큰 기차 한 대가 뒤에서

열라 달려오는 거 아니겠어. 기차가 멀리 있어 시간이 좀 있었지만 결국엔 소년을 치게

되겠지. 이 때 소년을 본 사람이 있었어. 누군지 알아? 소년이 가고 있던 방향으로 기찻길을

따라 일 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높이가 삼십 미터는 족히 되는 희한하게 생긴 탑이 있었어.


이 탑의 꼭대기에는 언제나 혼자였던 한 신비한 할아버지가 살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이

할아버지가 현자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음침한 할아버지라며 무서워했지. 어째든 이

할아버지는 높은 탑 꼭대기에 앉아서, 아래를 보며 수학적인 계산을 시작했어, 그는 여러

가지 설계도와 디자인들을 그려가며 새로운 발명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벽에는

사방으로 종이가 빼곡하게 핀으로 꽂혀 있었어. 이런 디자인들과 정확한 계산만이 그가 관심

있어 했던 유일한 것들이었지. 그러던 그가 일 킬로 정도의 거리에서 다가오는 작은

귀머거리 소년을 아치형 창문을 통해 발견한 거야. 그리고 그 뒤엔 2 킬로 아니 3 킬로

뒤에서 기차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어. 이 할아버지는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지. ‘저 작은 귀머거리 소년이 기찻길을 걸어가고 있네, 저 뒤에서 오고 있는

기차소리를 못 들을 텐데, 어떡하나, 이대로 가다간 곧 치어 죽겠어.’

카투리안 : 할아버지가 어떻게 소년이 귀머거리인지 알죠?

투폴스키 : (사이) 뭐?

카투리안 : 할아버지는 어떻게 소년이 귀머거리인지 아냐고요?

투폴스키 : (잠시 생각하다) 소년이... 보청기를 했거든

카투리안이 웃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투폴스키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방금 그건 즉흥적으로 떠올린 거야... 그는 소년을 보았지만, 소년을 구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처럼 내려가거나 하지 않았어. 그것도 분명 가능했을 텐데. 근데 할아버지가 뭘

했냐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거야, 그리곤 엉뚱하게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계산을

시작했어. 그는 달려오는 기차의 속도, 기찻길의 거리,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작은

소년의 보폭과 소년의 속도까지 다 고려해서, 정확하게 기찻길의 어느 지점에서 기차가 이

불쌍한 소년의 등을 치게 될까를 계산하고 있었지. 어째든 그 소년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걸었어. 기차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소년이 탑에서 30 미터 정도 거리까지 다다랐을 때,

모든 계산을 끝냈지. 정확하게 소년이 이 탑에서 10 미터 거리일 때 기차에 치인다는 계산을

끝낸 후, 관심 없다는 듯이 하품을 한 번 하고는 자신이 계산했던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만들었고, 창밖으로 그 비행기를 던지더니, 불쌍한 소년의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주지 않고,

냉정하게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어. (사이) 한편 탑으로부터 11 미터 거리까지 온 그 소년은

위에서 날아온 종이비행기를 잡기 위해 기찻길을 벗어났고, 기차는 바로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소년을 피해 지나갔대.

카투리안이 웃는다.

카투리안 : 그거 꽤 그럴 듯한 이야긴데요.

투폴스키 : 꽤 그럴 듯해? 참... 니 그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 전부 다 합친 것보다 몇 배는 훌륭해.

카투리안 : 제 작품보다 훌륭하진 못하지만, 어째든 꽤 그럴 듯 합니다.

투폴스키 : 이봐, 마음속에 있는 말 다 할 수 있는 시간 다 지났거든. 잘 들어, 내 이야기가 니 쓰레기

다 합친 것 보다 훨씬 낫다.

카투리안 : 예, 맞습니다. 그리고 제 열등한 작품들을 사건 파일과 함께 보관해 주시기로 한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투폴스키 : 음....

카투리안 : (사이) 하지만요, 이 작품이 어떻게 반장님의 세계관을 집약하고 있죠? 아니

탐정으로서의 세계관이었나, 뭐... 그게 뭐든..

투폴스키 : 아직도 모르겠어? (자랑스러워하며) 그 현자는 바로 나를 상징하는 거야. 그는 하루 종일

탑 꼭대기에서 친구도 없이 계속 계산만 하잖아. 작은 귀머거리 소년은 바로 내 경찰

동료들을 상징하는 거야, 알겠지? 동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다니잖아, 그 커다란 기차가

오는 지조차 몰라. 하지만 난 알지, 그리고 나의 뛰어난 계산 능력을 통해 정확한 순간에

비행기를 날림으로써, 그 멍청이를 구하는 거지. 내가 마치 범죄자들로부터 동료들을

구하고도, 고맙다는 인사 한 번 못 받듯이. 그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

아니잖아. 소년은 그 비행기만 가지고 놀 뿐이야. 하지만 상관없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나로 인해 아이들이 그 기차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사이) 이번 같이 좆같은 경우만 제외한다면 말이야, 내가

기관사를 잡아 채포했는데, 이 새끼는 이미 많은 아이들을 들이받고 돌아다닌 이후고, 잡아

놓았더니 자기 형까지 눌러 죽여 버리네. 허

카투리안 : (사이) 그럼 그 현자는 소년이 비행기를 잡을 걸 알고 던졌단 말이에요?

투폴스키 : 그럼

카투리안 : 아~

투폴스키 : 그렇게 생각이 안 들었어?


카투리안 : 예, 전 그냥 소년이 비행기를 본 건 우연한 사건인 줄 알았습니다.

투폴스키 : 아니지, 아니지... 그 현자는 소년을 살리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비행기를 던진 거고

카투리안 : 아하~

투폴스키 : 그는 비행기를 정말 정확하게 잘 던지거든, 그는 못하는 게 없어

카투리안 : 근데 던지고,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투폴스키 : 그거야 그가 비행기를 너무도 잘 던지기 때문에, 볼 필요조차 없었던 거지. ‘오, 그 작은

저능아 새끼들, 다들 종이비행기를 너무 좋아하지, 분명히 던지면 받으려고 할 거야’ (사이)

아니 그게 분명하지 않아?

카투리안 : 조금만 다르게 처리했더라도 많이 분명해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투폴스키가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을 하더니, 자신의 본분을 떠올린다.

아.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분명해질지 /

투폴스키 : 닥쳐! 너 같은 새끼한테 문학 강의 들을 마음 없으니까.

카투리안 : 전 그저, 도움을 드리려던 /

투폴스키 : 지금 분명하게 해야 할 문제는 니가 삼일 전에 작살낸 그 소녀를 땅속에 쳐 박았었을 때

살아있었냐, 죽어있었냐야. 그거야 말로 정말 분명하게 해 둬야 할 문제라고. 그리고

이따위로 날 자극하면, 니 이야기들을 다 불속에 던져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아까 그

약속이고 나발이고.

투폴스키가 이야기 한 묶음과 성냥을 같이 든다.

내 의도를 좀 더 분명하게 전달해줄 방법이 있을까?

카투리안 : 아니요. 반장님. 이야기 정말 훌륭합니다.

투폴스키 : 내 이야기가 니 이야기들 다 합친 거 보다 낫지?

카투리안 : 반장님 이야기가 제 이야기 다 합친 거 보다 훨씬 낫습니다.

투폴스키 : 그리고 그 현자가 소년을 구하려고 한 것도 분명하지.

카투리안 : 완전히 분명합니다.

투폴스키 : (사이) 니가 내 이야기가 맘에 안 드는 건 소년이 죽지 않아서야, 씹할!


카투리안 : 저 이야기 진심으로 맘에 들었습니다. 제가 만약에 그걸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정말

질투심이 날 만큼 뛰어난 작품입니다

투폴스키 : (사이) 정말?

카투리안 : 그럼요, 정말입니다.

사이, 투폴스키가 이야기들을 내려놓는다.

투폴스키 : 뭐 자네 이야기를 태우려던 거는 아니었네. 난 약속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카투리안 : 존경합니다. 제가 그러한 결정을 존중하느냐 안 하느냐가 반장님께 중요한 문제가 아닐

거라는 건 알지만, 어째든 존중합니다.

투폴스키 : 날 존중해 준다니, 고맙네. 이렇게 정도 들었는데, 아쉽지? 이십 분 후에 널 쏴야 된다는

게 아주 쬐금 유감인데.

투폴스키가 웃는다. 카투리안이 꽤 오랜만에 다시 죽음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카투리안 : 어...

투폴스키가 웃음을 멈춘다. 사이

투폴스키 : 아니,, 뭐 나도... 자네 이야기 중에 몇 개는 꽤 훌륭했다고 생각하네, 좋아하게 된

이야기도 있었고.

카투리안 : 어떤 이야기요?

투폴스키 : (사이) 왜 그 필로우맨 이야기 있지. 그게 머리 속에 오래 잔상이 남더라고. 뭔가 포근한

느낌이랄까. (사이) 아이들이 혼자 사고로 죽었을 때도, 이야기 속에서는 혼자 죽은 게

아니라는 거잖아. 필로우맨한테는 뭔가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이 배어 나왔어. 그가 손을

잡아준다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그게 아이의 선택이라는 것도, 뭐라고 할까... 그러니까

안심시켜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이의 죽음이 헛된 낭비같이 느껴지지 않잖아

카투리안 : (끄덕인다. 사이) 반장님, 자식을 잃어 보셨죠?


투폴스키 : (사이) 난 저 멍청한 에리얼처럼, 사형수들과 내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네.

카투리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슬픔이 흐르는 사이.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네 (사이) 혼자 낚시하다가 (사이) 참 어이없지.

카투리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투폴스키가 건전지를 다시 캐비닛 안에 넣는다.

카투리안 : 이제 전 어떻게 되는 거죠?

투폴스키 : 일단 벙어리 소녀 소식부터 듣고 나면...

캐비닛에서 검정색 두건을 꺼낸다. 카투리안에게 우아하게 앞뒤를 돌려가며 보여준다.

니 머리에 이 두건을 씌울 거야, 옆방으로 가서, 머리에 총을 쏘는 거지 (사이) 잠깐, 아니다.

아. 먼저 옆방으로 가서,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그 다음에 총을 쏘는 거다. 만약에 옆방으로

가기 전에 네가 두건을 쓰게 된다면, 가는 길에 어딘가에 부딪혀 다칠 수도 있을 거 아니야.

카투리안 : 왜 옆방이죠? 여기가 아니라?

투폴스키 : 옆방 바닥이 닦기가 더 쉬워.

카투리안 : (사이) 그냥 내키시면 아무 때나 느닷없이 쏘시는 건가요. 아니면, 죽이기 전에 제가

기도할 시간 같은 거라도 주시나요?

투폴스키 : 내가 느닷없이 쏘고 싶으면, 너한테 말해주고 쏘겠니? 아니 천재 작가에 정신병자,

살인마라는 새끼가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 (사이) 두건을 쓰는 순간부터 정확하게

10 초의 시간을 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무슨 이상한 의식 같은 거 한다고 시간 끌지 마.

카투리안 : 감사합니다.

투폴스키 : 천만에

투폴스키가 두건을 테이블 위, 카투리안 앞자리에 내려놓는다. 사이

카투리안 : 아니, 그냥 제 형을 위해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요.


투폴스키 : 그러셔? 형을 위해? 니가 죽인 세 아이들이 아니라, 너의 형을 위해서?

카투리안 : 그렇습니다. 형을 위해서

문이 열린다. 에리얼이 등장한다. 얼굴은 질려있고, 놀라서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카투리안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투폴스키 : 소녀는 찾았나?

에리얼이 카투리안에게 다가오자, 카투리안이 겁에 질린다. 에리얼이 카투리안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잡고, 머리를 뒤로 기울이게 한 후 천천히 뚫어져라 내려다본다.

에리얼 : (조용히) 너... 너, 도대체 뭐가 문제야? 미쳤어?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고?

카투리안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에리얼이 그를 살짝 놓아주자 제 위치로 돌아간다.

투폴스키 : 소녀는 찾았나?

에리얼 : 예, 찾았습니다.

투폴스키 : 죽어있었지?

에리얼이 문 쪽에 가서 선다.

에리얼 : 아니요.

카투리안이 놀라서 입에 손을 갔다 댄다.

투폴스키 : 뭐, 그럼 살아있었어?

에리얼이 문밖으로 누군가를 부른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한 벙어리 소녀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밝은 초록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등장해서 웃는다. 아주 행복하게. 수화로 두


사람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한다.

에리얼 : 소녀는 소원의 우물가 뒤쪽 작은 장난감 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세 마리 돼지들과 함께

있었으며, 거기엔 물과 먹을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돼지 먹이까지도요. 사실 이 번 일을 꽤

재미있어 하는 눈치입니다. 그지 마리아?

에리얼이 웃으며 ‘너 행복하니’를 수화로 한다. 소녀가 그렇다고 좀 길게 수화로 받아준다.

행복하답니다. 근데 아기 돼지들을 키워도 되냐고 물어보는데요? (사이) 제가 물어봐 준다고

했거든요.

투폴스키가 둘을 쳐다본다. 어이가 없다. 사이.

반장님께 소녀가 아기돼지를 키워도 되는지 물어봐 준다고 했습니다.

투폴스키 : 뭐? 어. 그래. 아기 돼지는 키워도 된단다.

에리얼이 소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소녀가 신이 나서 발을 구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카투리안이 살며시 웃는다.

에리얼 : 그래그래, 그럼 먼저 엄마 아빠한테 가기 전에 깨끗이 씻어야지. 니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모른단다.

에리얼이 소녀의 손을 잡는다. 소녀는 모두에게 행복한 작별인사를 한다. 에리얼이 소녀를

데리고 나간다. 투폴스키와 카투리안의 얼굴이 문 쪽에서 서로에게 서서히 향한다. 곧

에리얼이 다시 등장해서, 문을 닫는다.

그 소녀와 함께 커다란 초록색 페인트 통이 함께 발견 되었답니다. 왜 기차 터널에 쓰는 그

야광 초록색이니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저 새끼 말대로, 소원의 우물 뒤에서

부모들의 시체가 발견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 새끼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살인 사건


두개를 자백했고, 실제로는 죽지도 않는 여자아이의 살인도 자백한 셈입니다.

투폴스키 : 왜지?

에리얼 : 글쎄요. 후... 반장님. 여기 이 사건의 책임을 맡은 건 제가 아니라 반장님이거든요.

그러니까, 똑바로 좀 하시죠.

투폴스키 : 허.. 그래 난 빠질 테니, 보고는 자네가 하게

에리얼 : 반장님은 어린 소녀가 살아있었다는 게 기쁘지도 않으세요? 이 새끼도 아이가 살아 있어

기뻐하는 것 같은데. 반장님은 서류 작업 다시 하는 게 그저 귀찮은가 보네.

투폴스키가 서류 속에서 어떤 이야기 하나를 찾는다.

투폴스키 : 아이를 초록색으로 칠하고 아기 돼지들과 함께 놓았다면, 이건 분명히...

에리얼 : 작은 초록색 아기 돼지 이야기를 행동으로 옮긴 거죠. 멋지십니다. 반장님. 그 초록색

페인트와 아기 돼지들을 보고 추측하셨나 보네요. 근데 문제는 왜? 아닐까요? 문제는 왜 이

아이만 죽이지 않았느냐는 거죠? 왜 죽이지도 않고 죽였다고 자백 했을까요?

투폴스키 : 쉬, 지금 어떤 단서가 있는 지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고 있는 중이거든

에리얼 : (웃는다) 우리 그냥 이 새끼한테 물어보죠!

투폴스키 : 내가 읽고 있다고 했잖아!

에리얼 : (카루리안에게) 야, 왜 소녀가 살아있는지 우리한테 설명해 줄 수 있냐?

카투리안 : (사이)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에리얼 : 그 마음은 믿어주지. 하나만 더 물어보자, 이건 내 육감에서 나오는 질문인데, 아 오늘따라

육감이 마구 꿈틀거리네. 반장님의 탐정다운 면모가 나한테 다 옮겨와 버렸나봐. 니가

발가락을 잘라 죽인 그 유태인 소년, 머리카락 색깔이 뭐였나?

카투리안 : 뭐라고요?

에리얼 : 머리카락 색깔이 뭐였냐고?

카투리안 : 흑갈색이요. 흑갈색 계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에리얼 : 훌륭한 대답이야, 유태인 소년이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흑갈색 계통이라’ 아주 좋아. 근데

어쩌나. 엄마가 아일랜드계였고, 아들은 엄마를 꼭 닮아서 빨간 머리였는데. 황야에서

발견된 소녀에 대해서도 질문해 줄까?

카투리안 : 아닙니다.
에리얼 : 아니겠지. 왜냐면 넌 둘 다 죽이지 않았으니까, 그지?

카투리안 : 예

에리얼 : 두 아이들을 본 적조차 없지, 그지?

카투리안 : 네

에리얼 : 형한테 죽이라고 시킨 적 있나?

카투리안 : 사실 오늘에서야 이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에리얼 : 그럼 부모도 형이 죽인 건가?

카투리안 : 부모는 제가 죽였습니다.

에리얼 : 지금 너한테 씌울 수 있는 확실한 혐의는 니 형 살인뿐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정상을

참작한다면, 널 사형시킬 이유가 별로 없어. 그러니 부모를 살인했다는 자백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말할 기회를 줄...

카투리안 : 부모는 제가 죽였습니다. (사이) 제가 확실히 죽였습니다.

에리얼 : 믿어 주지 (사이) 하지만 아이들을 죽인 건 아니지?

카투리안이 머리를 떨구고 고개를 끄덕인다.

에리얼 : 들으셨죠, 반장님

에리얼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투폴스키가 진정을 되찾고 의자 뒤쪽으로 기댄다.

투폴스키 : 아주 잘했네, 에리얼

에리얼 : 감사합니다. 반장님

투폴스키 : 그건 그렇고, 그 소녀가 살아있어서 나도 기뻤네. 일하면서 내 개인적인 감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에리얼 : 그랬군요.

투폴스키 : (사이) 이건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왜 아이들을 살인했다고 자백했나?

카투리안 : 마이클을 죽인 건 이미 드러난 사실이었고, 세 번째 아이를 찾기 전에 이미 제 부모를

살해한 것도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죄를 전부 다 뒤집어쓴다면, 제

이야기라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게 형사님들이 제게 원하는 것


아니었나요. 전 제 이야기만이라도 꼭 지키고 싶었으니까요. (사이) 제게 중요한 건

그것뿐입니다.

투폴스키 : 음... 그렇다면 정말 안됐네, 그지?

카투리안 : 뭐가 안됐다는 거죠?

투폴스키 : 그 이야기들을 보호해 주는 조건은 니가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진실대로

자백하는 것이었어. 지금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거나,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저 좆같은 초록색 페인트나 다 자백이 진실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잖아. 그지?

그러므로 자백이 진실하지 못했다면, 약속에 따라 이야기들도 다 태워야만 하는 거지. 안

그래?

투폴스키가 철제용기를 꺼내더니 거기다 기름을 붓고 성냥을 가져온다.

카투리안 : 정말 그러시려는 건 아니죠?

투폴스키 : 저기 니 두건 있지. 지금 써. 난 불을 붙일 거니까.

카투리안 : 에리얼 형사님 제발...

투폴스키 : 에리얼, 대답해봐. 우리가 카투리안이 진실만을 자백한다면, 그의 이야기를 태우지

않기로 약속했나, 하지 않았나?

에리얼 : 반장님, 너무 하십니다.

투폴스키 : 다시 한 번 묻겠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우리가 카투리안이 진실만을 자백한다면, 그의

이야기를 태우지 않기로 약속했나, 하지 않았나?

에리얼 : 예, 약속했습니다.

투폴스키 : 그가 죽이지도 않은 그 유태인 소년을 죽였다고 자백했나, 안했나?

에리얼 : 했습니다.

투폴스키 : 그가 죽이지도 않은 소녀에게 면도날을 먹였다고 자백을 했나, 안했나?

에리얼 : 했습니다.

투폴스키 : 또 그가 죽지도 않은 저 짜증나는 초록색 소녀를 죽였다고 자백했나, 안했나?

에리얼 : 자백했습니다.

투폴스키 : 그렇다면, 우리는 약속대로 카투리안씨의 이야기들을 태울 의무가 있나 없나?

카투리안 : 에리얼 형사님...


에리얼 : (슬프게) 의무가 있습니다.

투폴스키 : 저기 사 백 개쯤 되는 저 이야기들을 다 태운다면, 리버타드에 실렸다는 그 이야기 하나만

빼고 모두 사라지는 게 되겠군. 평생 노력한 결과물이 이야기 하나라...

투폴스키가 이야기 원고의 무게를 느껴본다.

뭐 남는 건 별로 없군. 여기 이야기에다가 라이터 기름을 더 쳐줄까? 그건 너무 위험할까? 난

불에 그슬리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카투리안 : 에리얼 형사님 제발 좀...

투폴스키 : 어서 두건 쓰라고 말했다

투폴스키가 철제용기에 불을 붙인다. 이야기는 계속 들고 있다.

카투리안 : 에리얼 형사님!!!

투폴스키 : (사이) 에리얼?

에리얼 : (사이) 다 너의 잘못만은 아니야. 니가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고, 형을

죽여야만 했던 너의 그 심정도 이해할 수 있어. 부모를 죽인 것도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거잖아. 정말 불쌍하다. 사형시키는 죄수에게 이런 말은 해보는 건 처음이야. 하지만 씹할,

니 그 이야기들은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어, 알지?

에리얼이 투폴스키에게서 이야기 원고를 받는다.

이제 시간이 다 됐다. 두건 써라.

카투리안이 두건을 쓰려다 멈춘다.

카투리안 : 아니 아까 저한테 옆방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두건을 쓴다고 하지 않았나요?

투폴스키 : 아, 아니야, 여기서 쏘는 거 맞아. 그냥 장난 좀 쳐 본거니까 신경 쓰지 마. 저쪽 아무데나

멀리만 가서 무릎 꿇어, 피가 나한테까지 튀면 안 되니까.


카투리안 : 아까 두건을 쓰고 나면 십 초를 준다고 하셨죠? 그건 지켜주실 거죠? 아니면 그것도

장난치신 건가요?

투폴스키 : 음....

에리얼 : 십 초는 줄게 걱정 마..

투폴스키 : 그래 십 초 줄 게. 그냥 좀 재미있게 해 보려고 장난친 거야.

카투리안이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투폴스키가 총을 꺼내들어 장전한다. 카투리안이 슬픈

눈으로 에리얼을 쳐다본다.

카투리안 : 전 꽤 훌륭한 작가였습니다. (사이) 제 꿈은 그것 밖에 없었어요. (사이) 그래. 난 좋은

작가였어. 좋은 작가.

투폴스키 : (사이) 그래, 거기서 중요한 말은 ‘였다’는 거지. 잘 가.

카투리안이 두건을 쓴다. 투폴스키가 조준한다.

투폴스키 : 십, 구, 팔, 칠, 육, 오, 사...

투폴스키가 카투리안의 머리를 쏜다. 카투리안이 바닥에 쓰러진다. 두건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에리얼 : 아니 정말 오늘 왜 그래요?

투폴스키 : 뭐가?

에리얼 : 십 초 준다고 약속했잖아요. 너무 비열한 거 아니에요?

투폴스키 : 에리얼, 무릎 꿇고 두건 쓴 놈 쏴 죽이는데, 비열하지 않게 쏠 방법도 있니?

에리얼 : 그래도요.

투폴스키 : 잘 들어, 너 오늘 투덜대는 거, 참을 만큼 다 참아 줬으니까, 닥쳐! 아니 정말 왜 그래?

사건 종결 잘 졌잖아. 진실도 다 밝혔고. 안 그래?

에리얼 : 그런가 보네요.

투폴스키 : 오늘 사건으로, 넌 네 일흔 살 생일 때 아이들에게 더 많은 과자를 받을 수 있을 거 아냐.


안 그래?

에리얼이 한숨을 쉰다.

자, 보고할 서류 잘 정리하고, 이 방 깨끗하게 청소해 놔. 그리고 저 이야기들은 다 태워.

알았지? 난 벙어리 소녀 부모와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어. 아기 돼지에 대해 경고할 것도

있고.

투폴스키가 퇴장한다. 에리얼이 불에 약간의 기름을 더 붓는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진

이야기들을 한 번 쳐다본다. 죽은 카투리안이 서서히 일어나서, 두건을 벗는다. 총알에

엉망이 된 피투성이 얼굴이 보인다. 에리얼을 잠시 관찰하더니 말하기 시작한다.

카투리안 : 그에게 죽기 전에 주어졌던 마지막 칠과 사분의 삼초 동안, 카투리안 카투리안은 형을

위해 마지막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건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예전에 있던 이야기에 붙일 후일담 같은 거였죠.

마이클이 몸을 기울여 문으로 얼굴을 내민다. 조명이 아주 어둡다.

한 건강하고 행복한 소년, 마이클 카투리안이 칠년 동안 계속 될 부모의 고문이 시작되려던

바로 그 전 날. 몸 전체가 푹신푹신한 베개로 된, 얼굴에는 커다란 미소를 띤 필로우맨이

소년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마이클 옆에 앉아 한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작해서는,

소년이 앞으로 겪게 될 끔찍한 인생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결국엔 마이클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동생 손에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발버둥치며 죽게 될 그 엄청난 결말까지도 전부

다. 그리곤 물어보았죠.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고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필로우맨이

도와준다면 그게 더 행복한 거 아니겠냐고? 그러자 마이클이 대답했습니다.

마이클 : 하지만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내 동생은 내가 고문당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겠네요,

그죠?

카투리안 : ‘그렇지’라고 필로우맨은 말했습니다.

마이클 : 만약에 동생이 내가 고문당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앞으로 쓰게 될 이야기들도 모두


사라지는 건가요?

카투리안 : ‘그렇단다’라고 필로우맨이 대답했습니다. 마이클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마이클 :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그냥 그렇게 원래대로 살아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난 고문 받고,

동생은 그 소리를 듣고... 왜냐면 난 카투리안이 쓸 그 이야기들을 꼭 듣고 싶어요. 그

이야기들을 정말 좋아하게 될 거 같거든요. 아주 많이요.

마이클을 비추던 조명이 아웃된다.

카투리안 : 사실 이야기는 여기서 그렇게 음울하게 끝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마이클은 그 끔찍한

고문들을 견뎌내고, 카투리안은 그 이야기들을 또 그렇게 써갔지만, 결국은 그 이야기들조차

형편없는 경찰들에 의해 불태워져 이 세상에서 사려져갔다는 그런 결말 말이죠. 카투리안은

분명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려 했습니다. 물론, 2 초 빨리 발사된 총알에 의해 이야기가

중간에 끊어져 버리고 말았지만요. 어쩌면 이야기가 그렇게 끝나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많이 달랐으니까요. 그 형편없는 형사는 우리가 왜

그랬는지는 끝내 알 수 없을 이유로, 이야기들을 불속에 던지지 않기로 결심했고,

카투리안의 사건 파일과 함께 50 년 동안 봉인 되었습니다.

에리얼이 사건 파일박스에 이야기들을 넣는다.

카투리안이 의도했던 그 음울한 결말을 완전히 망쳐버린 이 현실의 마지막 반전, 하지만

왠지.... 왠지.... 이 결말이 전체적으로는 작품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에리얼이 물로 불을 끈다. 조명이 아주 느리게 서서히 암전된다.

끝.

이야기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단지 상상에서 나올뿐이고 이야기에 불

과한 것인가. 카투리안은 자신은 이야기를 했을뿐이고 그 이야기는 사건과 전혀 관계 없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자신의 불우한 어린시절이 반영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는가.

그 이야기는 자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나에게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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