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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 행복론 (자살 161-162쪽)
쇼펜하우어 - 행복론 (자살 161-162쪽)
쇼펜하우어 - 행복론 (자살 161-162쪽)
강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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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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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을 비판하면서 철학의 출발점을 인간의 ‘안’에서 찾고자 한다. 왜냐
하면 소박한 유물론은 생명력을 부정하고 생명현상을 물리적, 화학적, 기
계적 작용으로만 좁게 설명하면서 생명에 대한 역동적 이해를 놓치고 있
기 때문이다. ‘삶’(생명Leben)이라는 근본현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새롭게
규명함으로써 쇼펜하우어의 행복 개념이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행
복의 가치가 사는 것에 있지 죽는 것에 없기 때문에 행복은 삶과 불가분
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이며 세계란 무엇인가?
쇼펜하우어의 학위 논문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거에 대하여(181
3)5)의 사유를 이어받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첫 문장을 ‘세계
는 나의 표상이다’6)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바깥 세계가 우리의 감각과 표
상을 통해서만 알려진다는 칸트의 기본입장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다
만, 차이점이라면 쇼펜하우어가 칸트의 물자체 개념을 변형하여 세계를
의지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의지는 시간과 공간, 다수성으로 파악될 수
없는 불변하는 세계의 유일한 세계이다. 우리에게 세계를 개별적 존재로
현상하면서 구분짓는 것이 ‘개별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다.
따라서 생명을 개별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공간과 시간은 ‘마야의 베일’로
서 사물의 통일성을 가리는 환상일 뿐이다.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종 차원의 생명의 의지 뿐이다. 이러한
의지가 객관화(현상)되는 단계는 ①무기물, ②식물, ③동물, ④인간으로
나뉜다. 중력, 전기, 자력을 포함한 무기물의 단계는 가장 낮은 단계의
어두운 의지의 객관화 단계이고, 식물은 영양과 생명보존의 의지의 객관
화 단계이며, 동물은 충동과 본능의 객관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의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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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는 인간의 욕망의 주체로서 객관화된 의지다. 신체는 ‘개별화의 원
리’에 의해 ‘인식되면서’ 동시에 ‘인식되지 못하는’ 점에서 ‘이중으로’ 파
악되는 의지다. 신체는 의지와 동일한 “직접적인 객관”이다.9) 발생학적으
로 볼 때 욕망에 앞서 신체의 기관을 형성하는 것은 의지다. 곧 잡으려
는 의지가 손을, 보려는 의지가 눈을, 먹으려는 의지가 소화기관을 발달
시키듯 인식하려는 의지가 뇌를 형성한다. 의지의 객관화인 신체기관에
대응하여 욕망이 나중에 생겨난다. 따라서 눈이 보려는 의지의 발현이므
로 대상을 보려는 욕망10)의 지향성을 갖게 되는 것처럼, 신체의 각 부분
은 의지가 나타내는 욕구와 완전히 일치하게 된다. “신체의 각 부분은
의지를 발현시키는 주된 욕구와 완전히 상응해야 하며, 그러한 욕구의
가시적 표현이어야 한다. 즉, 치아, 목구멍, 장기는 객관화된 배고픔이고,
생식기는 객관화된 성 욕동이며, 물건을 집는 손이나 재빠른 발은 그것
들로 표현되는 이미 보다 간접적으로 된 의지의 노력과 상승한다.”11)
욕망이 신체적 기관과 일치할 때 욕망의 작용은 지성의 작용보다 먼저
일어난다. 욕망이 외부 대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 자체가
스스로 의욕하면서 대상을 결정하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욕망과 지성의
관계에 대해 전통 철학자가 인간의 본질을 이성, 정신, 사고, 의식으로
규정한 것을 오류로 비판하고, 의식의 내면에는 무의식적 의지, 집요한
생명력, 욕구의 의지가 우세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마치 ‘절름발이’(이성)
를 어깨에 메고 가는 힘센 ‘장님’처럼 의지는 맹목적으로 외부대상에서
무엇을 욕구할 이유를 찾아서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하기 때문에
2015, 233쪽; A. Schopenhauer,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I, Sämtliche
Werke, Bd. I, Textkritisch bearbeitet und herausgegeben von Wolfgang Frhr. von
Löhneysen, Frankfurt am Main, 1986, 197쪽.
9) A. Schopenhauer,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홍성광 옮김, 서울: 을유문화사,
2015, 66쪽, 187쪽.
10) 이 논문에서는 욕망과 욕구에 대한 개념을 구별없이 혼용하여 사용한다.
11) A. Schopenhauer, 앞의 책, 198-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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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과 인식능력에 비례하여 고통을 최고로 느끼게 된다. 인간 가운데
가장 민감한 천재가 가장 불행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방대한 지식을 늘
린다고 해서 고통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16)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견도 인간의 불행을 더할 뿐이다. 따라서 역설적
으로 ‘무지한’ 젊은 사람이 인생의 경험이 많아 욕망의 탐욕과 충족의
덧없음을 깨달은 늙은 사람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고통 자체는 순간적
인 것이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고뇌의 더 큰 원인이
되듯이 인간의 고통의 대부분은 회상과 예상이라는 지성의 활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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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이며 해소할 수 없는 갈증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의욕의
기초는 결핍, 부족, 즉 고통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미 근원적으로 또
그의 본질로 인해 이미 고통의 수중에 들어 있다. 이와는 달리 의욕
이 너무 쉽게 충족되어 곧 소멸되면서 의욕의 대상이 제거되면 인간
은 무서운 공허와 무료감에 빠진다. 즉, 그의 존재와 그의 현존 자체
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된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진자(振
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가
삶의 궁극적인 요소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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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객관적인 선호도 순서가 수시로 뒤바뀔 수 있어서 무한한 욕망 가운
데 하나의 욕망의 실현은 결코 진정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실현된 욕망이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무한히 계속되면
서 사람은 자기 내부에 분열적 모순을 갖는다. 세계의 의지만이 실제로
존재하며 인간은 그 의지에 의존하여 살아야하기 때문에 결핍은 피할 수
없다.
비른바허(D. Birnbacher)에 따르면, ‘의지의 순환’에서 볼 때 인간은 결
핍에 따른 고통 때문에 욕망의 충족을 추구하지만, 만족된 결과에 대해
‘무관심하게 됨’(Gleichgültigwerden)으로써 결핍에 따른 고통에 다시 시
달리게 된다.26)
삶에의 의지가 맹목적으로 무의미한 삶을 영원히 추구한다해도, 죽음
앞에서 의지는 꺽인다. 의지가 죽음에 의한 생명의 단절을 넘어서려고
할 때 ‘종족의지와 개인의지의 비대칭성’이 문제가 된다.27) 유기체가 생
식의 전략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거미, 말벌, 인간 등 모든 생명
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식이 유기체의 궁극적 목적이자 가장 강한 본
능인 이유는 종족보존을 통해서만 의지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
다.28) 그러나 종의 보존에 기여하기 위한 생식에의 의지가 인식과 반성
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오류를 범하는 철
학자도 예외없이 불행하게 된다.
연애와 결혼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유전자를 선택하는 우생학
적 행위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세대의 삶의 고
통을 은밀하게 다음세대에 물려주려는 점에서 결혼은 정당하지 못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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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A.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Vol. II,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E. F. J. Payne, New York, 1958, 5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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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현상의 자발적 파괴인 자살은 무상하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물
자체인 종의 생명의지 일반은 “마치 무지개를 구성한 하나의 물방울이
아무리 교체되더라도 무지개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아무런 영
향도 받지 않고 한결같이 남아있기 때문이다.”30) 개체의 죽음 이후에도
세계의 불행과 투쟁은 계속된다. 자발적인 죽음 이후에도 생명은 그의
자손이나 타인의 자손을 통해 살아남게 한다. 개인차원에서 멸종해도 종
의 차원에서 생명은 다음 세대를 통해 여전히 번성하게 된다.
삶에의 의지를 인식과 지성으로 완전히 지배해야만 인생의 고통을 극
복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살, 열반, ‘무의지의 평정’을 통
해 해탈에 도달하려고 한다. 삶에의 의지를 제약하는 죽음의 공포는 철
학의 발단이자 종교의 단초이다. 신학을 통해 불사에 대한 신앙을 갖는
것은 죽음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두려움 때문이다. 죽음으로부터의 도
피나 죽음에 대한 열망은 모두 자신을 그러한 공포에서 구원하려는 목적
에서 갖게 된 태도다. 그러나 자살과 해탈을 포함한 많은 형태의 삶의
부정은 역설적으로 삶의 긍정이다. 자살도 생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따른 고통을 부인하는 것에 불과하다.31)
4. 행복에 이르는 길
30) A. Schopenhauer,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I, Sämtliche Werke, Bd.
I, Textkritisch bearbeitet und herausgegeben von Wolfgang Frhr. von Löhneysen,
Frankfurt am Main, 542쪽.
31) A. Schopenhauer, 앞의 책, 5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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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하고 개별적인 사물 뒤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을 보여줌으로써 삶
의 고통을 줄여준다. ‘미적 인상’이란 ‘미적 즐거움의 근원’으로 ‘모든 욕
망으로부터의 복됨과 정신의 평온’을 갖고 모든 개별성과 고통에서 ‘벗어
난 순수한 인식’을 뜻한다.35) 이러한 ‘순수한 의지없는 인식’을 통해 스
피노자의 말처럼, “사물을 영원의 상에서 볼 때에만 정신은 영원성을 분
유한다.”(mens aeterna est, quatenus res sub aeternitatis specie concipit)36)
여러 분야 가운데 의지의 고통을 초월하게 하는 예술의 힘이 가장 뚜
렷한 것은 음악이다. ‘음악은 다른 예술과 달라서 이데아의 모방’, 곧 사
물의 본질의 모방이 아니라 ‘의지 자체의 모방’이기 때문에 음악의 효과
는 다른 예술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 다른 예술은 그림자를 나타
내지만 음악은 본질을 나타낸다.’37) 음악은 관념의 매개 없이 감정에 작
용하기 때문에 지성보다 미적인 것을 더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예술적 관조 외에 철학적인 지혜를 갖춘 지적 관조가 참된 행복을 가
능하게 한다. 철학의 본질은 ‘개체를 물자체가 아니라 현상’으로 파악하
고 ‘질료의 부단한 변화 속에서 형상의 불변의 지속성’을 파악하는 것이
다. 동일한 것을 다른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사물은 변할수록 동일하다는,
동일성과 차이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철학적 사고는 개별적인 것,
특수한 것 넘어 형상, 영원한 실재, 객관적인 질서를 보편적 본질로 분명
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세계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면,
필연적 원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고통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도 경감
할 수는 있다. 욕망의 고통은 이성의 힘으로 모든 일을 선행상태의 필연
적 결과로 인식하는 결정론에 의해 완화되거나 진정된다. 인간이 괴로움
을 느끼는 이유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일어남의 필
연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적 및 외적 필연성을 갖고 가장 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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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하지만 대부분 인간은 사물을 자신의 이기적 욕망의 대상으로 봄으
로써 불행한 인생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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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행복의 세 가지 조건
쇼펜하우어는 ‘미학적, 지적 관조’처럼 철학자에 해당되는 행복의 특수
한 조건 외에도 ‘삶의 지혜’에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행복의 보편적
인 조건을 제시한다. 행복을 결정하는 근본 조건은 다음 세 가지의 물음
과 관련된다: 누구인가(Was einer ist), 무엇을 갖고 있는가(Was einer
hat), 무엇을 내세우는가(Was einer vorstellt)45)
첫째, 누구인가의 물음은 넓은 의미의 ‘인간됨’(Persönlichkeit)46)을 지
칭하면서,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적 성격, 지능 그리고 교양을 함
축한다.47) 둘째, 무엇을 갖고 있는가의 물음은 재물과 재산을 뜻한다. 셋
째, 무엇을 내세우는가의 물음에서 본질은 그 사람에 대한 타인들의 생
각에서 드러나는 평판, 위신 그리고 명예를 뜻한다.48) 이 가운데 쇼펜하
우어는 첫 번째(인간됨)가 두 번째(소유), 세 번째(평판)보다 더 본질적이
고 포괄적이라고 본다.49) 다시 말해, ‘어떤 인간인가’라는 물음이 ‘무엇을
갖고 있는가’라는 물음보다 행복의 성취에 더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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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획득보다 ‘인간됨’을 위한 정신적 수양에 힘써야 한다. 만약 부를
기쁨으로 바꿀 지혜가 없다면 한가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몰라 권태라는
고통에 시달린다. 행복의 두 가지 적(適)인 ‘고통’과 ‘권태’에 맞설 수 있
는 방어수단은 바로 자기 자신의 인간됨 자체다. 행복론의 핵심은 ‘소유’
나 ‘명성’보다 ‘존재’에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은 인간의 참된 실존의 내적평온이다. 사람이 동일한
환경과 세계에서 다른 자극과 영향을 받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진행되
는 감각과 의지와 사유의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것은 생각
과 감정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작용을 할 뿐이며, 인간은 실제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안에 살면서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 따라서 건강, 명
랑한 기질, 활력, 명료한 이해력, 절제된 의지가 어떤 외적인 것보다 중
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행복론에서 객관적인 것보다 주관적인 것, 곧 즐
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인간의 행복이 의식 속에서만 직접
적으로 존재하면서 형성되기 때문에 외적 형식보다 의식 자체가 더 본질
적인 것이다.
인간됨을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고 해서 재산을 가난보다
경시하려는 의도를 쇼펜하우어가 갖고 있지 않다. 쇼펜하우어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데 인간됨을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주
관이 평생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문제점’과 연결된다. 소유와 위신이라는
다른 두 가지 요소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반면, 주관은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언제 어느 곳으로 가든 반드시 따라
다니는 인간됨의 가치는 재산이나 평판의 가치처럼 상대적인 것이 아니
라 절대적인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본질적으로 필요한 자기 자신의
가치의 인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바로 인간됨이다. 인간됨은 재산이나
평판처럼 우연에 예속되어 있지 않아서 취득할 수 없는 뿐만 아니라 탈
취당할 수도 없다.50) 인간됨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지니고 있는 것’
으로 고독에서도 ‘동행’하며, ‘취득’이나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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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에게, “보편적 인간형식이 보편적 인간의지와 상응하듯, 그
때문에 전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특색을 나타내는 의미심장한 개인적 체
형은 개인적으로 변형된 의지, 개별인간의 성격에 상응한다.”52) 인간의
신체가 대개 일반적인 의지와 일치하듯이, 개인의 신체구조도 개별적으로
변경된 의지, 곧 개인의 성격과 일치한다. ‘심적상태’로서 ‘타고난 기질’
을 뜻하는 성격 가운데 행복을 위해 ‘명랑한 정서, 행복한 활기’가 중요
하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누리는 괴로움과 기쁨의 정도를 결정한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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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적 특성’이란 지적 특성이나 경험적 특성과는 별개인 제3의
특성을 말한다. 이 성격은 세상의 인습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동안 얻
게 된다. 경험적 특성 자체는 본능적인 성향에 불과하므로 비이성적
이다. 이로 인해 세상에서 오직 자기만의 개성을 발휘하여 할 수 있
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을 통찰하기가 어려워진다. 인간은 각자 서로
다른 인간적 갈망과 능력 속에서 자기의 소질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소질의 수준이 개성에 따라 다르다는 점은 실제 겪어보아야 뚜렷이
인식할 수 있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특정의 목
표를 진지하게 추구하여 수월하게 실현시키려면, 그 목표가 향락, 명
예, 부, 지식, 예술, 미덕, 기타 어느 것이든 그 한 가지 목표와 무관
한 모든 욕심을 버려야한 한다. 그리고 다른 목표들도 포기해야 한
다. 그러므로 단순한 의욕과 능력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자
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서 인간은 성격을 나타내게 된다. 또 그런 후에야 진
정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 이르기 전에는 경험적
특성에서 자연히 생겨나는 특징들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그는 성격이 없는 인간이다. 그의 삶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동요하다
가 벗어나서 되돌아가게 되며, 후회와 고통을 맛보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무척 많은 것 중에 자기에
게만 적합하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것, 또한 자기에게만 즐거운 것
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러 사람의 처지와 상
황을 부러워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처지와 상황은 그들의 성격에나
적합할 뿐, 그 자신의 성격에는 적합하지 않다.”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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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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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자연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의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 고통, 그리고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인생뿐만
아니라 자연의 어느 곳에서나 투쟁, 경쟁, 갈등, 그리고 승리와 패배의
무한반복이 발견된다. 모든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지배하고66) 잡아먹
으면서 생존하려는 것처럼 인간은 생존경쟁에서 다른 ‘인간에게 각각 이
리’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쇼펜하우어에게 살려는 의지는 슈바이쳐 박사
처럼 ‘경외’(Ehefurcht)67)로운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점에서 잔인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전쟁과 같은 고통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라이프니츠의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가 바로 지옥과 같은 현실세계라는
점을 지적한다. 생존을 위한 무한한 투쟁에서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해
서 완전한 행복이 실현될 수 없다. 운명과 우연이 지배하는 곳,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고통 앞에서 ‘악도 선에 기여한다’는 변신론을 쇼펜하우
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고난과 궁핍, 그리고 악으로 가득
한 현실에 직면하여 고통스러운 세상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위해 관조의 역할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
내재된 고통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때 인간의 행복이 외부조건(운, 우연)
보다는 자신의 본성에 의해 좌우되며, 특히 성격이 인간 행위의 동기를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타고난 성격보다 ‘제 3의 성격’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65) A.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Vol. II,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E. F. J. Payne, New York, 1958, 573쪽
66) 이와는 반대로 ‘생태학적 정의’에 따르면 종들은 다른 종에 대해 ‘무관심’을 갖
는다. 최병두, 롤즈의 자유주의적 정의론과 생태적 정의론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11권, 제4호, 2005, 476-496쪽을 참고할 것.
67) 슈바이쳐 박사의 ‘생명에의 경외’ 사상을 비교할 것, 데 자르뎅, 환경윤리, 김
명식 옮김, 서울: 자작나무, 1999, 223-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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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의지 그 자체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의 물음이다. 의지에서 발
현된 지성이 독립성을 갖고 의지를 부정할 수 있다는 쇼펜하우어가 인간
의 본성을 지성과 본능 두 가지로 나누고, 지성에 치우친 행복론을 펼치
는 것은 편향적인 시각을 보인다. 오히려 철학적 인간학의 입장에서 의
지와 지성, 욕망과 이성은 서로 보완적이며 통일적인 조절을 통해 행복
과 조화를 이룬다.70) 따라서 인간을 욕망과 지성의 통합체로 넓게 볼 필
요가 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등 서양 전통윤리학의 다양한 입장을 수용하면서 이성을 통한 욕망의 지
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쇼펜하우어 행복론의 독특한 입장이라
면 세계의 객관적인 질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복의 주관적
인 조건을 탐색하는 것이다. ‘완전성’에 따른 세계의 위계질서와 자신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이 인간은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세계는 삶에의 의지가 여러 겹으로 객관화되는 질서의 체계다. 삶에의
의지가 객관화되는 단계에서 개성은 인간의 고유한 존재적 특성을 규정
하고 있는데, 특히 의지가 신체로 객관화되면서 형성되는 성격에 따라
인간의 행복 여부가 결정된다. 행복감이 주관적인 상태라면 그것은 내부
의 주관에 의해 구성된다. 세계의 고통을 수용하고 감당하는 크기, 능력
에 대한 자기 조절이 가능하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통한
욕망, 능력, 성격 등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의지가 발현되는 객관적인 세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정점의 위치를 차
지하는 인간은 자신의 지위에 걸맞게 욕망을 이성으로 지배함으로써 ‘마
음의 평온’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인간다운 삶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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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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