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 3 3 16-18

You might also like

Download as pdf or txt
Download as pdf or txt
You are on page 1of 3

양재교회 금요말씀

기독교강요 강설(105)

범위: 3권 3장 16-18절

제목: 마음을 찢는 회개

본문: 요엘 2:12-14

16. 내적이고 외적인 회개의 열매들 

이제 우리는 회개의 열매들이 293)75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곧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의무들, 그리고 이 세상 전체 가운데서의 거룩함과 순수함이 294)76 그것들이다. 요컨대 하나님의
법을 규범으로 삼아 자기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 더 많은 열의를 쏟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회개 

148 

에 대한 더욱 확실한 표징들을 보여 줄 것이다. 295)77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를 권고하셔서 회개에 이르


게 하심에 있어서 자주, 어떤 때는 율법의 가르침들 각각을, 어떤 때는 두 번째 판의 의무들을 환기시키신
다. 그러나 다른 본문들에서 성령은 먼저 우리 마음의 원천에 도사리고 있는 불결을 저주하신 후에 신실한
회개를 권하는 외적 증언들로 나아가신다. 나는 곧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루면서 독자들의 눈앞에 이 사안
에 관한 일람표를 제출하도록 하겠다. 296)78 

나는 선지자들로부터 증언들을 모으지 않을 것이다. 선지자들은 어떤 때는 의식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


려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그들이 단지 조롱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다른 때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속을 보시기 때문에 삶의 외적인 순전함이 회개의 주요부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성경에 조금이라도 정통한 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다루어야 할 일이 있을 때 297)79 마음의 내적
정서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음을298)80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머지 일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욜 2:13)라는 요엘서의 말씀이 결코 모자람
없이 작용할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야고보의 다음 말씀에 더욱 간략하게 나타난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약 4:8). 실로 이 본문의 첫 문장은 첨가된 것
이다. 그 원천과 원리는 뒷부분에서 예증된다. 즉 자기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단을 세우려면
은밀한 더러움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거나 우리 육체를 길들이기 위한 처방들로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외적인 어떤 훈련들이 있다. 이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회개를 공적으로 증명하게 된다(고후 7:11). 이것들은
바울이 전하는 '징벌'로부터 생겨난다(고후 7:11). 왜냐하면 고통 당하는 마음에 고유한 것들은 비탄, 

149 

신음, 눈물 가운데 있는 것, 화려함 및 어떤 종류의 호화로움으로부터도 도망치는 것, 모든 환락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의 반역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경험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로막을
모든 처방을 찾는다. 게다가 하나님의 의를 거역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를 잘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겸
손함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까지 편안하게 쉴 수 없을 것이다. 

옛 저술가들은299)81 회개의 열매들을 논하면서 이런 종류의 훈련들을 자주 상기시키지만 결코 그 훈련들


가운데 회개의 힘을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확실히 그들은 그 훈련들을 도
에 넘치도록 강조하고 있다. 내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을 말한다 해도 독자들은 너그럽게 봐줄 것이
다. 만약 누군가 이 사안을 사려 깊게 헤아린다면, 내가 소망하건대, 그는 그들이 두 가지 점에서 지나치
다는 나의 주장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첫째, 그들은 저 육체적 훈육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과도한 찬사를 더하여 권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반 사
람들이 한층 더한 열의를 갖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러나 마땅히 권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것들
은 어느 모로 희미하게 하였다. 

둘째, 징벌을 부과함에 있어서 그들은 교회의 온유함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였다. 이는 다른
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300)82 

17. 회개의 본질은 금식과 우는 것에 있지 않음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여러 구절들, 특히 요엘 선지자가 전한 말씀이(욜2:12)우는 것과 금식하는 것과 재


에 대해서 자주 상기시키므로, 30183 이를 듣고 회개가 주로 금식하는 것과 우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판단
하게 된다. 그들의 이러한 현혹은 제거되어야 한다. 

150 

전체 마음을 여호와께로 회심하는 것과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는 것은 회개에 고유하게 속한 것이다.


그러나 우는 것과 금식은 회개에 영구적이거나 필연적으로 부수하는 효과들은 아니다. 그것들은 특별한 경
우에만 그렇게 작용을 한다. 요엘은 유대인들이 극심한 재앙으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그들
이 회개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슬픔을 공개적으로 표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미리 방비하라고 권유하
였다. 범죄자가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여 자비를 얻기 위해 긴 수염, 고르지 않은 머리, 곡하는 자의 옷을
입고 그 앞에 자기 자신을 세우곤 했듯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었을 때 비
참한 행색 가운데 그 엄격함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해야 했다. 아마 굵은 베와 재가 당시에는 더 적합했을
지는 몰라도, 우리 중에는 여호와가 어떤 재난과 재앙으로 위협하시는 듯이 보일 때마다 우는 것과 금식하
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적절한 방식들이 될 것이다. 여호와가 우리에게 위험을 드러내실 때에
는 자기의 보복을 위한 준비가 되셨으며 일종의 무장을 갖추셨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여호와의 백성에게 우는 것과 금식하는 것을, 즉 범죄자들이 비탄한 모습을 보일 것을 권고한 것은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앞에서 전했듯이, 그들의 악행들이 하나님의 심문을 받도록 결정되었기 때문
이다. 

같은 취지로,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도 자기들 백성의 목에 파멸이 드리운 것을 볼 때 금식하는 것과 우는


것을 재촉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 다만 이전보다 더 마음을 기울여 깊이 착념하는 가운데 노력을 경주하면
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욜 2:13)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의심할 바 없이
금식은 항상 회개와 부착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재난의 때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는 자기를 빼앗길 날이 올 때까지는 금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시면서 회개를 애통하는
것과 관련 지으신다(마 9:15). 나는 지금 공식적인 금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 생애를 통하여
검소함과 술에 취하지 않는 절도를 보여야 하는 경건한 사람들의 삶은 그것 자체가 일종의 계속적인 금식
처럼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302)84 

151 

그러나 이 문제 전체에 대해서는 교회의 권징을 다룰 때 303)85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므로 지금 나는


간략하게 논하고 있을 뿐이다. 

18. 특별한 회개와 통상적 회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 이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회개'라는 말이 이러한 외적 고백으로 전용될


때에는 부적절하게도 내가 설명한 그 본래적 의미를 떠나게 된다. 왜냐하면 회개는 죄과에 대한 고백이라
기보다 하나님을 향한 회심이며, 형벌과 죄책을 거두어 달라는 간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304)86 따라서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마 11:21;눅 10:13) 하는 것은 하나님이 중대한 범법들로 인하여 우리에게
진노하실 때 우리가 그것들을 저지른 자신에 대한 혐오를 입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로 이러한 종류의
고백은 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천사들과 세상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저주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앞당겨 맛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방임하는 자들의 무기력을 책망하시면서 "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하나님에 의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 11:31) 라고 말한다. 

실상 항상 사람들을 우리의 회개에 대한 공공연한 목격자들 및 증인들로 삼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사적으로 고백하는 것이야 말로 참 회개의 일부로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우리가 기고만장해 떠벌이고 있는, 그리고 빛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우리가 위선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죄들을 하나님이 모르는 척해 주신다는 것보다 더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152 

우리는 날마다 짓는 죄들뿐만 아니라 더 오래전에 저지른 더 중한 범죄들이 이미 묻혀 버렸다 하더라도


다시 끄집어내어 기억을 되살리며 고백해야 한다. 다윗은 그 자신을 예로 삼아 이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는 최근에 저지른 악행으로 인하여 수치를 느끼게 되자 심지어 어머니의 몸에 있었을 때 자기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조차 자세히 살펴보고 난 후 그때에도 자기는 육체의 욕정으로 인하여 부패하고 전염되어 있었
음을 인정한다(시 51:3-5). 이렇듯 그는 자기 죄에 대한 비난을 경감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군중 속에 자기들의 모습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들의 죄에 연루시켜 자기들은 형벌을 받지 않고 모
면하려고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르게 이에 대처한다. 그는 자기가 아주 어릴 때부터 부패했으며 악에 악을
쌓아 올리는 일을 그친 적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오히려 자기 죄에 대한 비난을 진심으로 확대시킨다. 또한
다른 본문에서 그는 자기의 지난 삶을 아주 자세히 살피면서 자기가 지은 젊은 시절의 죄들에 대해서 하
나님의 자비를 탄원하고 있다(시 25:7). 만약 우리가 지고 있는 짐으로 인하여 신음하고 저지른 악행들로
말미암아 통곡하면서 하나님이 그것들을 완화시켜 주실 것을 간청한다면, 마침내 그때에 우리는 우리가 깊
은 잠에서 깨어났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다음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에 힘써야 한
다. 이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지는 명령이다. 이러한 회개는 마치 죽은 자들이 깨어나듯이 하는 회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죽은 자들이 깨어나듯이 하는 회개는 치욕스럽게 나락에 떨어졌거나, 고삐가 풀려 방자
히 죄를 짓는 데 각자 자신을 던졌거나, 하나님의 멍에를 내팽개치고 모종의 반역을 꾀했던 사람들이 돌이
킬 때 하는 회개이다. 성경은 이 회개를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나아가는 통로나 부활과 같다고 제시한다.
305)87 또한 성경은 여러 곳에서 백성이 '회개를 했다'라고 칭하는데, 그들이 우상 숭배와 다른 흉악한 범
죄들로 부터 돌이켰음을 의미한다. 죄인들이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고후 12:21) 애
통한다 라고 한 바울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153 

이렇듯 회개가 두 가지로 구별되는 데 대해서 우리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소수만이 회개에 이르
는 부르심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듣고 이를 빌미로 삼아 마치 육체를 죽임이 306)88 이제는 우리와 무관
하듯이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사악한 욕망에 물들어 있으며 악한 것들이 반복해서우리
안에서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빼앗기고, 마귀가 치명적인 덫에 걸리게
한 어떤 사람들에게만 강요되는 특별한 회개가, 본성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전 생애 동안 우리에게 부과되
는 통상적 회개를 제거할 수는 없다. 307)89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