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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교회 금요말씀

기독교강요 3권 7장 1-3절

1. 그리스도인의 삶의 철학: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

비록 여호와의 법이 삶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나며 가장 유익한 방법이라 하더라


도, 하늘 교사가 율법에 규정된 규율대로 자기의 백성을 빚어가고자 하시는 훨씬 더 정확한
질서가584)1) 있는 듯하다.

이 질서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성도들의 직무는 자기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


룩한 산 제물로"(롬 12:1) 드리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예배가 있다. 이로
부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
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적용 롬 12:2)라는 권고의 논증이 도출된다. 위대한 일이 여기
에 있다. 우리는 거룩해져서 하나님께 드려졌다. 그러므로 이후로는 오직 그의 영광을 위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묵상하고, 행하도록 하자. 거룩한 것이 더럽게 사용될 때는 필히 그의 영광
을 해칠 것이니, 그 표가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여호와의 것이라면, 피해야 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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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가 무엇인지와 일생 동안 행할 모든 행위의 방향이 어디인지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우리


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이나 우리의 의지가 우리의 계획과 행위를
좌우하지 말게 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라 우리에게 유익
한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지말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
로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에 속한 모든 것을 내려놓자. 585)2)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자. 우리는 하나님


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지혜와 의지가 우리의 모든 행위를 다스리게 하자. 우리는 하나님
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합당하게 드려 오직 진정한 목표를 바라고 노력
해 가도록 하자(롬 148 참조 고전 6:19) 586)3)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받고, 이성의 지배와 다스림을 벗어


버린 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는 자는 얼마나 복된가! 자기 유익을 구함은 역병과

1) 584) "coelesti magistro, accuratiore etiamnum ratione ad ipsam, quam in lege


praescripserat, regulam suos formare,"
2) 585) "Nostri non sumus: ergo ne vel ratio nostra, vel voluntas in consiliis nostris
factisque dominetur, Nostri non sumus: ergo ne statuamus nobis hunc finem, ut
quaeramus quod nobis secundum carnem expediat, Nostri non sumus: ergo quoad licet
obliviscamur nosmetipsos ac nostra omnia," 여기서 'Nostri non sumus: ergo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가 수사학적으로 반복되어 성도 의 자기 부인에 따르는 삶의 모습이
극적으로 그려진다.
3) 586) "Rursum, Dei sumus: illi ergo vivamus ac moriamur, Dei sumus: cunctis ergo nostris
actionibuspraesideat sapientia eius et voluntas, Dei sumus: ad illum igitur, tanquam
solum legitimum finem,contendant omnes vitae nostrae partes." 여기서 Dei sumus(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가 수사학적으로 반복되어 성도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극적으
로 그려진다.
같아서 가장 신속하게 창궐하여 우리를 파멸로 인도할 것이니, 구원의 유일한 정박지는 아무
것에도 스스로 지혜롭고자 하지 아니하며 어떤 것도 자기 스스로 행하려 하지 않고 오직 주님
의 이끄심만 따름에 있다. 587)4)

그러므로 각자의 소질에 따라 모든 역량을 모아 여호와께 복종하기 위하여 사람이 자기


자신을 떠나는 것이 첫 번째 단계가 되게 하자. 내가 말하는 '복종'은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 육체적 감관(監官)을 비우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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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를 바울은 "심령의 새로움"(적용 엡 4:23)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생명으로 들어


가는 제일 관문이 588)5)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무지한데, 그들은
오직 이성만을 사람의 통치자로 세우고, 오직 그것의 음성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이성 하나에 삶의 통수권을 넘겨주고 만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은 이성이 성령에 양보
하고, 속하고, 따르도록 명령해서, 사람이 더 이상 스스로 살지 않고 자기 안에서 살고 다스리
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에 순종하게 한다(갈 2:20). 589)6)

2.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한 자기 부인의 길

이로부터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으로부터 나온 것을 찾고 그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하여 그것을 행하여야 한다는 두 번째 원리가 뒤따른다.

우리에게 속한 것을 거의 다 잊어버리고, 우리의 이성을 확실히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과 그의 계명들에게 열심을 쏟으려는 우리의 충실한 시도 자체가 큰 진보에 해당한다.
우리의 사사로운 이성을 버리라고 성경이 명령할 때, 이는 우리의 마음에서 소유에 대한 욕망
과 권력에 대한 욕구와 사람들에 대한 애착을 뽑아낼 뿐만 아니라, 야망과 사람의 영광을 추
구하려는 모든 성향과 다른 은밀한 역병들을 몰아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전 생
애를 통해서 모든 일을 하나님과 함께하려는 온당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과 헤아림에 돌리듯이, 마음의 모든 의
향을 독실하게 그에게 맡기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
을 배운 사람은 동시에 모든 헛된 지식을 멀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첫 번
째 사역을 내보내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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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의 제자들에게 그렇게 진지하게 명령하셨던, 바로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마 16:24).


자기 부인이 한 번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우선 어떤 자랑도 어떤 교만도, 어떤 자만도,

4) 587) "O quantum ille profecit, qui se non suum esse edoctus, dominium regimenque sui
propriae rationi abrogavit, ut Deo asserat! Nam ut haec ad perdendos homines
efficacissima est pestis, ubi sibi ipsis obtemperant, ita unicus est salutis portus, nihil nec
sapere, nec velle per se ipsum, sed Dominum praeeuntem duntaxat sequi,"
5) 588) "primus … ad vitam ingressus."
6) 589) "christiana philosophia illam[rationem] loco cedere, spiritui sancto subiici ac
subiugari iubet: ut homo iam non ipse vivat, sed Christum in se ferat viventem ac
regnantem,"
또한 어떤 탐욕도, 어떤 정욕도, 어떤 무절제도, 어떤 쾌락도, 혹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마
음에서 생겨나는 어떤 사악한 것들도 자리 잡을 곳이 남지 않는다(참조, 딤후 3:2-5),

반면에 자기 부인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지 않으면 수치를 모른 채 가장 추악한 악행들이


모든 곳에서 번져 나가게 하거나, 덕의 외양만 갖춘 채 영광을 구하는 타락한 욕망으로 사악
해지거나 한다. 가능하다고 여겨지지 않지만, 여호와의 계명에 따라 자기를 버리지 않고서도
사람들 가운데서 거저 자선을 베풀고자 원하는 사람이 있거든 나에게 보여 달라. 누구든지 자
기 부인의 의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적어도 칭찬을 받기 위해 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덕은 그 자체를 위하여 추구되어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철학자들이라고 하는 저 사
람들은 590)7) 매우 교만에 부풀어 자기들의 자랑거리로 삼을 일이 없다면 추구해야 할 덕도
없다고 거들먹거린다. 하나님은 대중의 인기를 잡으려고 애쓰는 사람들과591)8) 위선으로 가득
찬 가슴을 지닌 사람들을 모두 기뻐하지 않으신다. 얼마나 그러하신지, 그들은 자기의 상을
이 세상에서 이미 받았으며 그들보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더욱 가깝다고 선포
하실 정도이다(마 6:2. 5. 16; 21:31).

우리는 아직 사람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 한, 얼마나 많고, 얼마나 큰 장애물


들이 올바른 길을 가로막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옛날에, "악들의 세계는 사람
의 영혼 가운데 숨겨져 있다."592)9)라는 금언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따라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길은 당신이 자기를 부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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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성을 지워 낸 후 여호와가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을 마음을 다해구하는 데, 오직


그렇게 구하는 데 있다. 그 외 다른 처방은 어디에도 없다. 593)10)

3. 잘 짜인 그리스도인의 삶 버릴 것과 취할 것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 비록 간결하지만 더욱 명확하게 잘 짜인 삶의 부분들이 어떠한


지를 묘사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
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1-14),

여기서 사도는 우리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한 후,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

7) 590) Cicero, De finibus III, xi, 36 (LCL ed., pp. 254f.); De legibus 1, xiv, 40 (LCL ed.,
Laws, and Republic, pp. 340f); Seneca, Dialogues VII, ix, 4 (LCL Seneca, Moral Essays II,
122f); Diogenes Laertius, Lives and Opinions of the Philosophers VII, Ixxxix, 127 (LCL ed.,
II, 196f,), Cf, Lactantius, Divine Institutes V. xvii, 16 (CSEL 19, 454; MPL 6 [ch, xviii] 606;
tr, ANF VII, 153), Quot, Battles tr., n. 3.
8) 591) Livy, History III, xxxiii, 7 (LCL Livy, II, 110), Cf Institutio, 1,1,2;1.3.12.1.4;3.13.1. Quot,
Battles tr., n, 4.
9) 592) "mundum vitiorum esse reconditum hominis anima,"
10) 593) "Nec aliud remedium invenias, quam si te abnegato, ac praeterita tui ratione,
mentem ad ea quaerenda totam intendas quae abs te Dominus requirit, et ideo tantum
quaerenda, quia illi placent,"
는 길을 고르게 하는 데 가장 크게 방해가 되는 두 가지 장애물을 걷어 내고 있다. 그중 첫째
는 우리에게 본성적으로 과도한 경향이 있는 불경건이며, 둘째는 더욱 널리 퍼져 있는 세속적
욕정이다. 불경건은 미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경외와 배치되는 모든 것을 합의
한다. 세속적 욕정은 아주 왕성한데, 그것은 육체의 정념과 맞먹는다(요일 2:16; 엡 2:3; 벧후
2:18; 갈 5:16) 594)11)

그리하여 사도는 율법의 두 돌판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천품을 벗어 버리고,


우리의 이성과 의지가 일러주는 것은 무엇이든 다 멀리할 것을 명령한다. 그는 삶의 모든 행
위를 절제, 의로움, 경건 세 부분으로 제한해서 다룬다. 그중 절제는 의심할 바 없이 때에 따
라 주어진 재화들을 검소하게 사용하고 궁핍함을 참는 것뿐만 아니라 순결하고 절도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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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움은 각자에게 속한 것이 자기에게 되돌아갈 수 있도록(롬 13:7)595)12) 모든 공평에


관한 모든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불의들로부터 멀어진 우리를 진정한 거룩
함으로 하나님과 결합시키는 경건이 뒤따른다. 596)13)

이 세 가지가 풀 수 없는 고리로 묶여 서로 하나가 될 때 견실한 완전함이 작용하기 시작


한다. 597)14) 그러나 육체의 이성과 결별하고 정욕을 억제한 채, 더나아가 정욕을 버린 채,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우리 자신을 바치고 지상의 더러운 것들 가운데서도 천사의 삶을 묵상하
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모든 덫에서 우리의 영혼
을 구출해 내기 위하여 우리의 싸움이 헛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살전 3:5), 우리에게
복된 불멸의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한 차례 구속주로 자기를 드러내신 그리스도가 마지막에
오실 때에는 자기가 맺게 하신 구원의 열매를 친히 보이실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바울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하늘의 영광을 갈망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의 눈을 구름으
로 가리는 모든 미혹을 흩어 버린다. 나아가 우리를 위한 하늘의 기업이 소멸되거나 끊어지지
않게끔 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이 합당하다고598)15) 가르친다.

11) 594) "Ac sub impietate quidem non modo superstitiones notat, sed comprehendit etiam
quidquid pugnat cum serio timore Dei, Mundanae autem cupiditates tantundem valent
atque carnis affectus,"
12) 595)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V, 10 (LCL ed, pp. 312f), Cf, Institutio, 4,20,3, Quot,
Battles tr.. n. 6.
13) 596) "Ex quibus sobrietas haud dubie tam castitatem et temperantiam quam purum et
frugalem temporalium bonorum usum, et inopiae tolerantiam denotat, Iustitia autem
omnia aequitatis officia complectitur, ut reddatur unicuique quod suum est, Sequitur
pietas, quae nos a mundi inquinamentis segregatos vera sanctitate cum Deo coniungit,"
14) 597) "Haec ubi insolubili vinculo inter se connexa sunt, solidam efficiunt perfectionem,"
15) 598) "peregrinandum esse in mundo, ne pereat vel excidat nobis coelestis haereditas,"
Augustine, City of God XV. vi (MPL 41, 442; tr, NPNF II. 287), Cf, Institutio, 3.9.4-5;3.10.1.
Quot, Battles tr.. n.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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