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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대의 파괴력, 대중가요의 힘


임진모(대중문화 평론가)

지적이고 고매하며 부유한 사람들, 그 상류계층과 그 정서가 사회생활의 영역을 관리통치할지 몰라

도 결코 지배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대중음악이 그 중 하나로 가수, 연주자, 프로

듀서, 엔지니어 중에는 학벌이든 경제력이든 고급 아닌 중하급이 널려 있다. 우아하고 잘난 계급의 정

서는커녕 속물과도 같은 하류인생의 표현 정서가 흥행대박을 터뜨린 역사적 사례는 즐비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역설적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정장

에다 선글라스를 끼고 잔뜩 멋을 내고 있지만 누가 봐도 품위와 격조가 없다. A급이 아니라 뭔가 낮고

부족하고 망가진 것 같은 B급이다. 광대요, 피에로다. 가슴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하다며 ‘한국의 베벌리

힐스’ 강남 소속임을 떠들어대지만 말춤을 추고 훤칠한 출연자들에 끼어 있는 모습은 조금 안쓰럽다.

‘루저’가 ‘귀빈’이라고 우기는 꼴이랄까.

이 역설이 그런데 팬들에게 재미를 주고 심지어 쾌감까지 선사한다. 만약 슈퍼미남 장동건이나 강동

원이 ‘강남스타일’ 하며 정통과 우아함을 드러냈다면 호감은커녕 반감을 불렀을지 모른다. 속물적 B급

코드는 때로 대중음악의 파괴력을 웅변하며 그것은 일류 아닌 이류가, 주연이 아닌 조연이 제공하는

친화력이 기반이다.

열풍은 상당 부분 1996년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를 닮았고 세계적으로는 클론과 같은 해에 나이 든

두 스페인 아저씨가 춤추며 전한 ‘마카레나’의 열기를 연상시킨다. 두 곡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와는 인

연이 없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은 음악적 현상을 넘어 이제는 사회적 현상이며 지구촌 곳곳을 달구기

시작한 글로벌 현상으로 점프했다. 모처럼 세대와 지역을 망라한 진정한 가요대박이다.

폭발적 인기를 얻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중독성을 일으키는 전자음의 리듬 반복이 무아

지경을 연출하는 음악적 매력이 먼저일 것이다. 흔히 트랜스(Trance)라고 일컫는 이러한 몽환적 분위

기에다 노랫말은 23년 전 변진섭의 ‘희망사항’ 이래 가장 재미난 남녀 짝짓기 가사라는 말이 나온다.

당연히 입에 딱딱 달라붙는다. 거부할 수 없는 재미, 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흥은 대규모 음악현상의

기반이다. 따라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제목과 가사 일부를 바꿔 ‘태릉스타일’ ‘영등포스타일’ ‘뉴욕스타

일’ ‘변태스타일’ 등 자기 식으로 만드는 변용(變用) 또한 무궁하기에 인기 확산은 필연적이다.

아이돌 댄스음악 하면 떠오르는 인위적인 홍보와 마케팅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작위적인 인기몰이 없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입에서 입으로 퍼져 마침내 국제적으로 번진 자연적 현상

이다. 여기서 진짜 한류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류 지평 확대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은 ‘강남스타일’도 결국 댄스음악이라는 점에서 쉬 동의가 되지 않는다.

한류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메시지 측면이다. 사람들은 이 곡을 통해 잘난 사람들과 1등, 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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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하는 불평등 세상, ‘쿨’과 품격을 압도적 우위에 놓는 서열사회에 대한 은근하고도 유쾌한 린치를

읽는다. 서민대중의 무망이 꼭짓점에 오른 2012년이라서 더욱 노래의 위안 기능은 상승한다. ‘강남스

타일’은 확실히 ‘핫’하며 싸이는 낮은 위치에 주목하는 소셜테이너의 요소가 보인다. 그가 시사주간지

‘타임’에 “뮤지션이 되지 않았더라면 난 십중팔구 루저가 돼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은 예사롭지 않다.

찰리 채플린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오로지 단 하나, 단 하나의 존재로 남아 있으며, 그것은 바로

광대다. 광대라는 존재는 나를 그 어떤 정치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광대의 몸짓과 언

어에 즐거움을 만끽하고 동시에 삶의 페이소스를 맛보듯이 우리는 ‘강남스타일’에 마구 춤추고 이어서

그 속에 도사린 조롱의 의미에 살짝 공감한다.

<경향신문> 2012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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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남스타일’ 그저 즐기면 될 뿐일까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유튜브에서는 2012년 세계 최고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4억2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플래시몹, 리액션, 그리고 ‘건담스

타일’을 비롯한 각종 패러디물까지 꼬리를 물고 있다. 이쯤 되면 강남스타일에 대한 패러디에 대한 패

러디. 실로 어지러울 지경이다.

인기의 비결이 뭘까.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덕분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이건 그냥

그렇다 치자. 왜냐면 같은 뉴미디어 환경 속에 놓인 다른 콘텐츠들도 있는데 왜 하필 강남스타일만 뜬

건가 하면 더는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 퍼포먼스와 멜로디가 대중의 눈과 귀를 열었다는 점이다.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외국

인들은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능수능란하게 춤을 춰대는 싸이의 ‘미니미’, 여자의 엉덩이를 보고 대놓

고 환호하는 싸이, 그리고 ‘엘리베이터 가이’ 노홍철의 저질 댄스까지. ‘말춤’이 따라 하기 쉽다는 점도

빼먹을 수 없겠다. 팬들로 하여금 수행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쪽에선 대세

라 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한국말을 몰라도 쉽게 외울 수 있는 훅멜로디(‘옵옵옵옵’)가 가미

되니 한마디로 말해 중독성 ‘짱’이다.

여기까지가 표준적 해석이다. 좀더 적극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는데 그 진원지는 빌보드 성적 보도에

급급한 국내가 아니라 오히려 해외 쪽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강남스타일의 풍자와 해학에 주목한다.

“뚱뚱한 한국인 사이코가 반(反)자본주의적 메시지를 분출하고 폭발시키고 있다.”(가디언) “이 노래는

본질보다 돈과 외모를 강조하는 물질문화를 겨냥하고 있다.”(유튜브)

이러한 풍자와 해학성은 강남이 뭔지 몰라도, 그리고 굳이 노래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더라도 뮤직

비디오 영상 자체만으로 전달되는 모양이다. 노래하는 얼굴에 쓰레기가 날아들고, 선글라스를 쓴 채

화장실에서 랩을 토해내고, 정장 차림으로 사타구니 아래에 엎드려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싸이

의 뮤직비디오를 단순 코미디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의 말마따나 “옷은 세련되게, 춤은 싸구려같

이”(dress classy, dance cheesy) 입고 추는 와중에 현대적 삶의 물신성과 속물근성을 폭로하는 측면

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싸이와 강남스타일에 마음놓고 열광하면 되는 걸까.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강남스타일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광하는 대중의 정서

구조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뚱뚱한 동양 남성 사이코’라는 맥락은 찜찜한 구석이 있다. 1930~40년대의 시리즈물 <찰리

챈>에서부터 시작해서, 영화 <팀 아메리카>(2004)에서 론리(lonely)를 ‘ronery’로 발음하는 김정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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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져, 이제는 ‘오픈 콘돔 스타일’로 들리는 싸이에 이르기까지, 영미권에서 보는 동양 남자의 스테레

오타입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오는 웃음의 이면, 즉 ‘성애화된 오리

엔탈리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미심쩍은 사정은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싸이 덕분에 미국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국위가 선양됐다는 둥, 케이팝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둥, 부산떠는 모습은 어

딘지 흉해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세계 정복” 운운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런 식의 빗나간 ‘애국주의

적 상상’은 가히 꼴불견이라 할 만하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요즘은 전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반지성주의에 빠져 그냥

‘즐기라’(enjoy it!)는 명령이 일종의 시대정신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스타일은 이미 하나

의 사회적 현상이 돼버렸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저 즐기면 될 뿐일까.

한겨레 신문 2012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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