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Untitled
Untitled
1화
“아악!”
비명을 지르면서도 타냐는 소지주의 발목을 붙들었다. 그러나 소지주가 발길질을 했고 타냐는
진흙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멈춰요 제발!”
갑자기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접은채 고개를 내렸다.
우와, 카딜 하에르다.
어머나, 이런 영광이.
저분이면 전쟁터에 노예로 끌려가신 부모님도 찾고 소지주에게 끌려간 남동생 토디엘도 찾을수 있을
것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어차피 살아갈 의미도 없어진다. 부모님이 끌려가면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당부하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토디엘만은 지켜야 한다고.
때마친 카딜의 백마가 보였다. 타냐는 제 몰골이 어찌됐든 신경쓰지 않고 카딜의 말 앞으로 뛰어들었다.
타냐도 알고 있다. 이렇게 하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렇다면 해보는데까지 해볼 것이다.
“하에르 대장군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다짜고짜 살려달라며 카딜의 백마앞을 가로막는 여자를 본 카딜의 수석호위무사 바훌이 번개같이 칼을
빼들어 타냐의 목에 가져다댔다.
“무슨 소리냐.”
그러자 바훌이 다시 칼을 빼들려 했지만 카딜이 손을 들었다. 바훌은 카딜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주군의 명에따라 검을 검집에 넣었다.
“눈을 들어라.”
카딜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른채 타냐에게 말했다. 그러자 타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진흙으로 칠갑이된 얼굴과 머리지만 그녀가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사파이어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눈동자가 보였다.
말을 타고 있는 카딜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지만 그녀의 새파란 눈동자는 카딜의 회색빛 눈동자와
확실하게 마주쳤다.
그 순간 두 사람에게 묘한 일이 벌어졌다.
실제 숲속에서 늑대를 만났을 때 눈빛 하나로 늑대 무리를 물리쳤던적도 있었다. 그것은 소문이 아니라
그때 그 순간에 바훌이 함께 있어 직접 제 두 눈으로 본 사실이었다. 그런 카딜과 시선을 마주하고도 얼른
피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치유의 능력을 가진 샤마란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원래 북대륙의 주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하루 아침에 멸족당했다. 이후 치유의 능력을 가진
샤마란족은 그저 전설로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지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시선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타냐의 간 큰 소리에 바훌이 속으로 요사한 년이라고 욕했다. 주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들도 옆에
있는 사람과 수군거렸다.
“그러게요, 쯧.”
“대장군님!”
***
타냐는 카딜의 저택에 도착했다. 카딜은 황제에게 전쟁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러 들어갔고 그녀는 그의
저택으로 왔던 것이다.
“이쪽으로 오너라.”
연락을 받은 카딜의 시녀장 실리아는 진흙투성이인 타냐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특별히 쓰임새가 지정되지
않은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먹을 것을 주라는 지시만 받았다.
“감사합니다 시녀장님.”
타냐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옷을 받아 들었다. 칸막이 안으로 들어서니 나무로된 욕조에 뜨거운 물이
가득했다. 타냐는 옷을 하나 하나 벗어던졌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녀의 몸에 있던 상처가 모두
사라지고 통증도 사라졌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색이 입혀진 옷감은 구경만 해봤지 이렇게 옷으로 만들어 입어본적이 없어 신기하기만 했다.
“다 씻었으면…!”
“다 씼었습니다 시녀장님.”
하지만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천민의 신분이다. 천민이 주군의 저택에 왔을때는 궂은 일을 시키기
위함일터였다.
“따라 오너라.”
2화
실리아는 인상도 그렇고 행동과 말투도 여간 각지지 않았다. 여러 일꾼들을 다스리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그녀는 타고난 것처럼 그런 모습이 잘 어울렸다.
실리아의 말에 타냐는 얼른 일어나 그녀를 또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별채에 타냐는 남겨졌다.
이방 저방 돌아다니다 카딜의 침실에 도착한 타냐는 비단침상으로 꾸며진 화려한 침실에 넋을 놓았다.
타냐는 아무도 없는데도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천천히 침상으로 다가갔다. 네 개의 기둥이 세워진 커대한
침대는 투명한 비단휘장이 달려 있었다. 침대에 다가온 타냐가 손을 뻗어 기둥을 만지다 이불을
내려다보았다.
황금색 실로 문양이 그려진 이불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던 타냐가 살며시 그곳에 앉았다.
“좋으네.”
혼잣말을 한 타냐가 하품을 길게 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끼니도 챙겨먹지 못하고 죽으라고
일만했던 그녀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배불리 먹었다.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
부스럭, 부스럭, 뭔가 움직이는 소리에 타냐가 눈을 떴다. 숙면을 취해본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던 타냐는 카딜의 침상에서 한 시간이나 잠들었었다. 그걸 깨닫지 못한 타냐는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물체를 응시했다.
향기로운 냄새가 온 방안에 감돈다는 생각에 여기가 어디인가 생각하던 타냐는 눈앞에 보이는 카딜의
섹시한 몸을 보고는 꺅 비명을 내질렀다.
급하게 두 손으로 제 시야를 가렸지만 손가락 사이로 알몸의 남자가 제게 걸어오는 것이 보여 저도 모르게
제 시야를 가렸던 손을 뗐다.
전쟁터에서 생긴 수많은 상처가 아물면서 만들어낸 흉터는 남자의 온몸에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제야 타냐는 여기가 카딜의 내실이고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짓을 벌였는지 깨달았다.
“!”
“일단 따라와.”
“!”
그가 따라오라고 하자 타냐가 고개를 들었다. 카딜은 속살이 훤히 비치는 하얀색 시스루 침의를 걸치고는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지?”
속으로 생각한 타냐는 아직도 카딜의 알몸에 적응되지 않아 최대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 소용없는 짓이란걸 금새 깨달았다.
“예? 아, 예, 그렇습니다.”
“!”
“뭐해?”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생각하던 타냐는 카딜의 무서운 눈빛에 욕조로 다가갔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욕조에 들어앉은 카딜은 나른한 눈빛으로 타냐를 올려다 보았다.
“이름이 뭐지?”
“타냐 이옵니다.”
“타냐, 그래 성은?”
천민으로 태어난 타냐는 감히 붉은 기사단의 단장인 카딜 하에르의 얼굴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었다.
“내 얼굴 감상 끝났으면 이제 좀 씻어줄래?”
“앗!”
“들어와.”
“예?”
“옷 다 벗고 들어오라고, 너만 내 알몸을 보면 불공평하지 않겠어?”
“하, 하지만….”
카딜의 말에 심장이 철렁하고 떨어진 타냐가 서둘러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래, 이까짓 몸뚱어리가
뭐라고. 아클란 대제국을 쥐락펴락하는 대장군 카딜이 부모님과 남동생을 찾겠다 마음만 먹으면 그건 바로
시간문제일텐데.
카딜은 타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하얗다 못해 푸른빛을 띠는 그녀의 피부에서는 광채가 났다.
전쟁터에서 한달을 지내다 온 카딜이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잠도 자지 못했던 그는 타냐의 손길에
피로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타냐는 어느새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도 잊은채 카딜의 몸을 씻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두 눈을 감은채
욕조에 머리를 기댄 그의 얼굴을 닦아 주면서도 여간 조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민이라고 해야될지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지만 타냐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다 결정을 내렸다.
그곳은 그냥 지나치기로.
“!”
3화
그동안 전쟁터를 누비느라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했지만 이렇게 쉽게 잠든적이 없었다. 저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잠이 들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감히 제가 어떻게….”
거길 만지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예?”
타냐가 두 손까지 모으고 울먹이자 카딜이 그제야 타냐가 쫓겨나는 걸로 오해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명 뭔가가 있어.
“아, 알겠습니다.”
“죄송하면 그만 좀 일어나지.”
“아, 예, 예.”
타냐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일어나려고 했지만 미끈거리는 물과 더 미끈거리는 카딜의 몸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았다.
꾹!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
그러나 카딜은 타냐의 뒤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옷을 집어들 뿐이었다. 그제야 무안해진 타냐가 뭐라도
해야되나 싶어 말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냥 해본소리였는데.
“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좋아, 안그래도 옷 입는게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는데 잘 됐네.”
천민들은 헝겊으로 대충 기워진 속바지에 겉옷을 걸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카딜이 입어야 할
옷은 다섯겹이나 됐다. 속옷 위에 바지를 입고 상의는 실크로된 속옷에 실크로된 셔츠, 그 위에 공단에
색색의 실로 수가 놓여진 조끼를 입어야 했고 마지막으로 장의를 걸친 후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진
허리끈을 묶는다.
“잘 하는군.”
“동생에게 옷을 입혀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내가 동생같다는 뜻은 아니렸다?”
그때 노크소리가 났다.
“들어와.”
“그래, 거기 놓고 나가봐.”
“예.”
“뭐해 안 나가고?”
“타냐, 어서 나오너라.”
“아, 예.”
“예? 아, 예.”
카딜의 행동에 흠칫 놀란 실리아는 이게 아니구나 싶어 얼른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거기 앉아.”
“예?”
“아, 예.”
“아, 죄, 죄송합니다.”
타냐는 무슨 죽을 죄라도 지은것처럼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카딜은 기다렸고 타냐도 기다렸다.
“어디서 태어났느냐.”
“예?”
“이곳 도성안입니다.”
“그래?”
“예.”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좀 더 지켜보면 알겠지.
***
피오레는 타냐를 침대 아래로 끌어 내렸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물건인지도 모르는게 자신은 감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대장군 카딜을 유혹했다 싶어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것이다.
“따라나와!”
카딜의 별채에 딸린 시녀와 하녀들은 전부 열두명이었다. 그들중 여자가 절반이고 남자가 절반이었다.
여자들과 남자들의 일은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주로 보통의 여자들처럼 가사일을 하고
남자들은 힘을 써야하는 일들을 했다.
피오레가 나무로 만든 물지개를 타냐에게 턱 맡겼다. 타냐는 사람이 열명은 들어가게 생긴 커다란 독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조금만 올라가면 있다던 샘물은 30 분 정도를 올라가고 나서야 보였다. 힘은 들었지만 빽빽한
나무숲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보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마치 이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녀는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 이유는 당연히 남동생
토디엘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쏟아내는 눈부신 햇살을 올려다 보던 타냐는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보기보다 좀 힘드네.’
4화
새벽검술 훈련을 마친 카딜은 타냐를 볼 생각에 서둘러 내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여자가 안보인다.
“실리아!”
“부르셨습니까.”
“타냐 어디갔지?”
“!”
실리아의 입에서 나온 새로 들어온 하녀라는 말에 카딜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실리아는 그의 못마땅해 하는 심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보고했다.
“조금전 샘물을 길러오라는 지시를 받고 뒷산으로 올라간 것으로 압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몰라도 제가
받들겠습니다 대장군.”
“예?”
카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실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모시는 주인의 살기어린 눈빛을 그제야
알아차린 실리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
“당장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됐다, 내가 직접 가겠다.”
“예?”
뒷산을 내달리던 카딜은 멀리서 보이는 타냐를 보고 속도를 늦추었다. 무거운 물지개를 어깨에 진 그녀를
본 그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을까?
“어머!”
아까운 물을 던져버리자 타냐가 저도모르게 카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시선을 떨구고
화를 누르며 물었다.
“애써 퍼온 물을 왜 버리십니까?”
심장이 제 마음대로 뛰기 시작하자 타냐가 제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딜과 눈이 마주치면 심장이 제 궤도를 벗어난 듯 마구 뛰기 시작했다.
“고삐를 잡아.”
“예?”
떨어질 수 있다는 말에 타냐는 카딜의 허리를 꼭 안았다. 두 다리를 한쪽으로 내린 상태로 앉은 타냐는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깜짝 놀라며 그의 몸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
바람을 가르고 숲을 달리던 카딜은 제 가슴팍에 꼭 붙어 있는 타냐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황금빛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했다.
“타냐, 앞을 봐봐.”
그의 말대로 타냐가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감탄사를 내뿜었다. 절벽이 보였고 그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보였다. 아침햇살을 받은 물줄기는 아직 마르지 않은 이슬이 증발하면서 햇살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마치 폭포수에 무지개가 걸쳐있는 듯한 모습에 타냐가 탄성을
내질렀다.
“뭐가 있는데요?”
“치유의 정령?”
***
“타냐 이년 어디로 간거야 대체? 물독에 물을 채우라고 말한지가 1 시간이 넘었는데 물독은 그대로
비어있잖아?”
“네가 시켰어?”
“어머나! 시녀장님!”
“!”
“괜찮아요?”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예?”
카딜은 은근히 타냐에게서 어떤 기운이 나오길 기대하며 말했다. 하지만 어제처럼 신기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해본 소리였어.”
5화
“대장군님, 조반 준비되었습니다.”
시녀장 실리아의 말에 카딜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말도 묻지않았지만 실리아는 알아서 대답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예? 아, 예, 대장군님.”
‘이 정도라고?’
실리아는 얼른 대답을 하긴 했지만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어젯밤 대장군의 침상에서 잠을 잤다더니 혹시
몸을 섞었나?
똑똑!
“시녀장님.”
“!”
아까부터 타냐님이라고 불러 불편해 죽겠는데 실리아가 의자까지 빼주었다. 타냐는 몸둘바를 몰라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카딜이 제 옆 자리를 가리켰다.
“이쪽으로 와서 앉지.”
하지만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썰리지 않았다. 곤란함과 당혹함이 엇갈리면서 이마에 진땀이 밸
때 카딜이 타냐의 접시를 빼앗가 가더니 이미 다 잘라진 그의 스테이크접시와 바꿔치기했다.
“실리아.”
“예?”
“모두 물렸습니다.”
“너도.”
“!”
“이제 편히 먹어.”
카딜의 말에 타냐는 그제야 카딜이 왜 그랬는지 알아차렸다. 태연한척 했지만 카딜은 이미 알아차렸던
것이다. 타냐는 감사의 표시로 그와 잠시 눈을 맞추고는 식사를 이어나갔다.
“동생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녀가 살던 지역의 땅을 소유한 소지주들은 천민들의 노동력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이면서 세금은 세금대로
매겼다. 추수가 끝나도 밀가루 한자루도 남지 않을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밀가루를 빌리면 그
이자는 두배에서 세배가 넘어 해마다 빚은 쌓여만 갔다.
“오늘 당장 알아보지.”
“정말이십니까?”
이렇게 까지 빨리 손을 써줄줄 기대하지 않았던 타냐였다. 여태 보아왔던 귀족들은 약속을 해놓고 제때에
지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천민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그런 것이다. 천민과의 약속이 무슨 약속이든가. 그래서 카딜도
한달이나 달포가 지나야 뭔가 물어보고 움직이는 시늉을 할 줄 알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수소문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매달렸던 것이다.
타냐가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카딜은 여전히 무감한 표정으로 식사를
계속하라는 듯 눈짓을 했다. 타냐는 벌떡 일어났던 것이 무안해져 조용히 자리에 앉아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콧김을 뿜어내는 바훌의 눈치를 보던 타냐는 카딜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내실을 빠져나갔다.
바훌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뒤통수에 꽂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일순간 날카로워진 카딜의 눈빛에 바훌은 살짝 기가 꺽였지만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카딜의 말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아는 바훌이 한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렇죠? 그러신거죠?”
“뭐가?”
바훌이 타냐를 천한계집이라고 표현하자 카딜의 속이 뒤틀렸다. 자신은 그녀를 그렇게 부를 수 있어도
다른 놈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가만히 있는 이유는 이렇게 해놔야 바훌이
타냐를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아무리 천하를 다스리는 군왕이라고 해도 명분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 카딜도 그랬다. 바훌이 자신의
신하지만 자신이 상관으로서의 명분없는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부하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누를수만은 없다.
현재로서는 타냐의 특별한 능력을 바훌에게 말할 수 없다. 한번 더 정확하게 그녀의 능력을 경험하거나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
만약 타냐가 제가 생각한대로 치유의 능력을 가졌다면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될 것이다.
6화
다음날.
“이미 다른 곳에 팔아 넘겼다고?”
“그렇습니다 대장군.”
챙그랑!
“안그래도 물어봤습니다만 시장에서 노예장사를 하는 상인에게 넘겨서 어디로 팔려갔는지는 알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노예상인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알았다, 일단 물러가있어.”
카딜은 심부름꾼을 먼저 물렸다. 부서진 찻주전자 조각을 줍는 타냐의 손이 떨렸지만 카딜은 심부름꾼이
나갈때까지 기다렸다. 내실 문이 닫힐 때서야 그가 급하게 일어나서 타냐에게 다가왔다.
“데인거야?”
“괜찮….”
“입닫아.”
그녀의 발에 물을 끼얹어주던 카딜은 절망감에 뿌옇게 변한 타냐의 청안을 올려다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열네살 어린 남자아이를 어디에 쓸데가 있다고 강제로 데려간 것도 모자라
노예상인에게 팔아넘기다니. 동시에 이런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든 황제 알테베르에게도 화가 났다.
***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요!”
“뭐라고?”
“그녀에게 받을 돈이 얼마지?”
“예?”
“예?”
카딜의 말대로 담보물 또는 담보인은 그 소유주가 포기각서를 쓰기전에는 팔아넘길 수 없다는 국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국법일뿐 천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항목이었다. 하지만 그 국법을 카딜이
따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폴란은 시종에게 눈짓을 했고 시종이 부싯돌을 가져와 불씨를 만들었다. 폴란은
카딜에게 잘 보라는 듯 장부를 북북 찢어서 불태웠다.
“예?”
“마을 광장에 매달아 놓고 태형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벌금으로 금화 1 천 클랑을 내야 할 것이고 가지고
있는 전답을 모두 몰수할 것이다.”
“!”
금화 1 천클랑 이라고 했을때는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는제 전답을 모두 빼앗긴것도 모자라 광장에서
태형까지 받아야 하다니.
폴란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재산이 아무리 많은들 제 목숨 잃으면 무슨 소용이든가. 하지만 목숨은
건졌는데 재산이 하나도 없다면 그 또한 살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죽는 것 보다야 낫지 싶어
그는 대답했다.
소문에 타냐가 대장군의 여자가 되었다고 했는데 사실인가 보다. 폴란은 피눈물을 흘리며 가진 전답과
금화 1 천클랑을 나라에 받치고 온마을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광장에서 채찍질까지 당했다. 타냐에게 받을
돈을 불려서 받으려다가 돈은 돈대로 한푼도 못 받고 빚은 탕감해주었고 그도 상거지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이 일을 건너 건너 마을까지 소문냈고 이후 소지주들은 함부로 담보물이나
담보인을 처분하지 못했다.
***
속으로 생각하며 별채로 온 그가 타냐의 거처로 향했다. 그녀의 남동생 토디엘은 찾지 못했지만 이미
사람들을 풀어 놓았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는 노예상인들마다 찾아가서 물어보면 분명 토디엘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하는 카딜이었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건 카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크흠!”
7화
“쉬고 있었어?”
“아, 네, 그냥 좀….”
대충 대답을 얼버무릴 때 카딜이 타냐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게스트룸으로 사용하던 곳을 그녀의 방으로
꾸며주었기에 방의 분위기는 완전 달라졌다. 은은한 꽃향내가 나는 것은 아마도 타냐의 체향일 것이다.
“잠자리는 어때?”
“예, 더 없이 좋습니다.”
툭툭!
그가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타냐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두 팔을 접어서
베개처럼 베고 있던 그가 뭔가 뿌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
“!”
“흐음, 그건 아니다.”
제길,
속으로 제 스스로에게 욕을 한 카딜은 실망하는 타냐에게 희망을 주려고 약간은 부풀려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흑, 죄, 죄송합니다.”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할수 있는 시대였다. 그래서 돈많은 지주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사람을 소유했다. 그것이 노예가 되었든 시종이 되었든 아니면 첩이 되었던 가리지 않았다.
이후 나라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다. 흥청망청 쓰기만 하려니 세금을 더 거두어들여야만 했다.
***
다음날.
카딜은 황제의 부름을 받고 황제가 머무는 수이젤궁으로 입궁했다. 화려하다 화려하다 말하지만 이처럼
화려할 수는 없을 터였다. 마치 황금을 쳐발라놓은 듯한 궁 내실 벽을 쳐다본 카딜이 티크 우드에 황금을
쳐발라서 만든 의자에 앉아 있는 황제 알테베르에게 인사를 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에게 한달의 휴가를 주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불러들였는지 궁금했다. 물론 눈치는
챘지만 아니길 바랐다.
“어서와 카딜.”
사람이 농담도 하고 살아야지 저렇게 앞뒤가 꽉 막혀서야 원. 속으로 생각한 알테베르가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카딜을 살짝 노려보며 대답했다.
“!”
황제의 말에 카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카딜은 노골적으로 기분나쁨을 표했다. 하지만 알테베르 황제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황제폐하-”
“들라하라.”
“예, 황제폐하.”
카딜의 인사에 로젠시아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카딜은 못마땅한 표정을
겨우 감추고 로젠시아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 이제 그만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어릴때부터 보아왔던 카딜을 혼자 흠모해왔던 로젠시아는 드디어 그의 여자가 된다는 생각에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나도 내 의사를 분명히 말했다 카딜, 한번만 더 거절하면 황명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겠다, 그러니 더
이상 이 건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라.”
아무리 파워가 황제인 자신을 넘어선다고 해도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로젠시아는 멀어지는 카딜을 아련한
눈으로 쳐다보다 알테베르를 졸랐다.
“티도를 들라 하라!”
“예?”
8화
“티도는 왜요?”
로젠시아의 물음에 알테베르는 귀찮다는 듯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내가 남자휘어잡는 기술이 없는게 아니라 카딜 하에르 대장군이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거라구요, 흥!”
“그게 아니라뇨?”
“뭐라구요?”
“부르셨습니까 폐하.”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
“그만 돌아가자.”
바훌의 물음에 카딜은 대꾸도 않고 마차의 문을 닫아버렸다. 뭔가 또 사단을 냈구나 생각했지만 바훌은
한숨만 내쉴뿐 마부에게 출발하라 지시했다.
카딜을 태운 마차는 황궁을 빠져나와 한참을 달려 그의 저택으로 최단시간 도착할 수 있는 숲길로 들었다.
비적때가 자주 출몰한다는 숲길이라 일반인들은 피해다니는 길이지만 카딜에게는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두 눈을 감은 카딜은 타냐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상하게 그녀만 생각하면 온몸이
저릿해질 정도로 열이 올라왔다. 그 열은 카딜의 정수리를 한번 치고는 다시 아래로 향했다. 묵직한
기운으로 뭉쳐진 열기는 결국 그의 중심으로 몰렸다.
그렇게 또 어느정도 달리는데 갑자기 복면을 쓴 놈들이 산속에서 튀어나와 카딜의 마차앞을 가로막았다.
바훌의 고함소리에 카딜을 경호하던 호위대가 일제히 마차를 에워쌌다. 감히 하에르 대장군의 마차를
습격하다니. 괘씸하다 생각한 바훌이 검을 뽑아 들었다.
“무슨 일이지!”
바훌의 말에 카딜이 다시 창을 닫았다. 비적떼 정도야 식은죽 먹기라는 생각에 카딜은 전혀 당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늘 비적떼는 보통의 비적떼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공이 뛰어나서 바훌마저도 힘겨워하며 겨우
방어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싸움이 끝나지 않자 카딜이 마차 밖으로 나오려 할때였다. 누군가 마차를 끄는 말을
자극했고 말 두 마리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장군님!”
한낱 비적떼에게 이렇게 당하다니 카딜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부터 건지고 봐야한다.
“제길, 할 수 없군.”
카딜은 마차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뛰어내릴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커다란 돌부리에 걸린
마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그대로 확 뒤집혔다. 문이 열려 있었던터라 카딜은 뛰어내릴 시간도 없이
마차와 함께 몇바퀴를 굴렀다.
***
비적떼와 싸우다 여러군데 상처를 입은 바훌이 시종에게 소리쳤다. 카딜이 이렇게 심하게 다쳤던적은
없었기에 모두들 우왕좌왕댔다.
이대로 카딜에게 변고라도 생겨버리면 남동생을 찾을 희망이 사라진다. 그때문에라도 타냐에게 이남자는
절대 죽으면 안되는 사람이었다.
“카딜님, 카딜님!”
“머리를 다치신 것 같은데 나도 정확히 알수는 없다. 일단 치료마법을 사용하는 아밀리에를 불렀으니
기다려보자.”
“왜 깨어나시지 않는 거지?”
첫째로 비적떼가 의심스러웠다. 그 이유는 그들의 검술 실력과 그들이 사용하는 검술때문이었다. 황제를
호위하는 무사들만 사용하는 검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 비적떼를 보낸 사람이 황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제폐하를 모시는 치유마법사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치유마법사를 부르면 카딜 대장군이
심하게다쳤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그것은 황제가 카딜을 제거하기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황제와 카딜은 적과의 동침처럼 아군이면서 기회만 되면 서로를 제거하려는 적이기도 했다.
바훌의 명령에 시녀장 실리아가 모두를 이끌고 내실을 나갔다. 바훌도 비적떼 우두머리와 맞서싸우면서
생긴 칼에 맞은 크고 작은 상처로 인해 더 버티기 힘들었다.
타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바훌이 내실을 나갔다. 모두 나가고 타냐 혼자만 남자 그녀는 카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하아-!”
“타냐….”
타냐는 토디엘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한 얼굴로 카딜을 불렀다.
분명 마차와 함께 뒹굴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었는데 지금은 마치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하기만 했다.
놀란 눈으로 말하는 타냐를 쳐다본 카딜은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다 타냐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
“그래서 나았나보다.”
“네?”
“곧 알게 될거야. 나 좀 씻어야겠어.”
***
“이게 도대체….”
9화
“폐하! 제사장 비숍이 급하게 알현을 청하옵니다!”
시종의 말에 알테베르는 티도를 물렸다. 티도는 비숍이 들어오기 전에 내실의 뒷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들라하라.”
알테베르는 밤늦은 시각에 제사장이 웬일인가 싶었다. 시종은 비숍을 안내해주고 물러갔다.
“황제폐하!”
“무슨일이오 대제사장.”
“아무일이라니? 무슨일?”
“지금 장난하나?”
“아니 그게 아니오라…방금…저….”
“분명 빛을 보았는데….”
비숍은 혼자 중얼거리며 대신전으로 왔다. 혼자 기도를 올리고 있었던 그는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을 살피다가 신전의 밀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금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읽어서는 안되는 금서였기에 대제사장인 비숍이 신전
밀실에 숨겨놓았다.
***
“네? 아, 죄송합니다.”
타냐는 헝겊을 꾹 짜서 카딜의 얼굴을 살살 닦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현기증이
느껴진다. 타냐는 이게 뭐지 하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 이러지?’
“하아, 하아,”
“타냐, 왜그래?”
타냐가 옷을 입은채로 욕조 안으로 들어오더니 카딜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이미 그녀는 타냐가 아니었다.
“하아, 카딜님….카딜님….”
타냐가 카딜의 뺨을 쓰다듬다가 갑자기 그에게 입을 맞추어왔다. 얼떨결에 그녀에게 입술이 빼앗긴 카딜은
당황했지만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녀로 인해 사경을 헤매다가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그녀는
카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카딜님, 어서…어서…..”
타냐의 붉어진 두 뺨이 그녀가 지금 얼마나 다급한지 말해주고 있었다.
“하아응!”
카딜의 굵은 성기가 타냐의 좁은 곳으로 밀려 들어오자 타냐는 통증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카딜은
상상이상으로 좁은 타냐의 질구에 놀랐다.
처음인 것이 분명했다.
남자를 몰랐던 그녀가 왜 갑자기 제게 이렇게 애원하면서 달려드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게 더 급했다.
욕실을 나온 카딜이 침상으로 와서 타냐를 내려 놓았다. 하지만 타냐는 눈물까지 흘리며 어서 안아달라
사정했다.
“아흐으윽!”
아픔을 참느라 카딜의 등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타냐였지만 카딜은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 할퀴어, 마음껏 할퀴어, 네 아픔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기꺼이 네 손톱정도는 받아줄게.”
하지만 타냐가 숨이 넘어가게 안겨들어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타냐가 느끼는 통증보다야 못하겠지만
카딜도 함께 통증을 느끼며 두 사람은 절정에 올랐다.
정말 벼락같은 정사였다.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지 않아도 이제 시작이라 더 할 생각이었던 카딜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튕겼다.
“네가 샤마란의 후예라는게 세상에 알려지면 위험할지도 몰라, 그러니 당분간 너와 나만 아는걸로 하자,
아니, 아니지, 너도 모르고 있으니 나만 아는게 되는건가?”
다음날 아침.
“카딜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어제? 경험?”
“뭐?”
카딜이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가 완전한 알몸인 것을 본 타냐가 얼른 그의 가운을 가져다 공손하게 건넸다.
가운을 받아들며 수줍어하는 타냐를 가만히 쳐다보던 카딜은 어제 애욕덩어리 같았던 타냐를 떠올렸다.
고개를 갸웃하던 카딜은 일단은 타냐에게 어제의 상황을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으니까.
“예? 제, 제가요?”
그런데 왜 저런 거짓말을….
타냐가 알겠다며 수긍을 했지만 표정이나 말투가 전혀 아니어서 카딜은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마치 여자를 강제로 취하고 오리발 내미는 천하에 둘도 없는 양아치가 되는 느낌은 결코 즐겁지 않다.
10 화
“카딜님은 괜찮으신가?”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지.”
“예.”
“타냐는?”
“그렇군, 어서 들어가지.”
“예, 바훌님.”
“카딜님?”
“대장군님, 괜찮으십니까?”
바훌과 실리아가 동시에 물으며 카딜에게 다가왔다. 타냐는 얼른 바훌과 실리아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바훌과 실리아는 타냐의 인사를 받을 정신이 없었다. 멀쩡한 카딜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어 내렸다.
“대장군, 괜찮으십니까?”
카딜은 어깨와 팔에 붕대를 감은 바훌을 보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어지간한 장수와 맞붙지 않고서는
다치지 않던 바훌이 어제 비적떼에게 저렇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괜찮아.”
“정말이십니까?”
“아밀리에가 다녀갔었나?”
“하아, 그렇군요, 아밀리에가 얼마전 신전에서 하는 마법치료 3 기 과정을 수료했다고 하더니 실력이
늘었군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멀쩡하실 수가…..”
“예, 대장군님.”
“타냐, 어디가?”
“조반준비를 도우려고….”
“아냐, 넌 여기 있어.”
“아닙니다, 전 나가서.”
명령이라는 말에 타냐가 우물쭈물 바훌의 눈치를 보며 카딜의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아랫도리가 따가워서
걸음을 걷기도 힘들긴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근거는?”
“검술실력과 검법 때문입니다.”
카딜의 물음에 바훌이 타냐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타냐가 듣는 와중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알테베르군.”
“그렇습니다.”
“이것봐, 내 말이 맞지?”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알테베르, 네가 시작한거야.”
***
황제 알테베르는 시종의 보고에 가늘게 눈을 떴다. 무공이 뛰어나다 못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는건 알지만 그 상황에서 살아나다니. 그래도 심하게 상처는 입었을테지.
말도안돼.
“흐음.”
“예, 폐하.”
“거기 누구 없느냐!”
“분부 받잡겠습니다.”
잠시 후.
“부르셨사옵니까.”
“뭐야?”
“그렇습니다 폐하.”
“그게….그러니까….”
11 화
“그게 선황제님께서 봉인하셨던 금서라서 황제폐하께서는 알 필요도 없었기에 지금까지 밀실에 보관만
되어있었습니다.”
“그렇사옵니다.”
“나도 들은적은 있다, 그런데 그 부족은 백여년전 몰살된 것으로 아는데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더냐?”
“흐음, 그래?”
“예, 폐하.”
“하아, 답답하긴, 그러니까 세상이 어떻게 뒤집힌다는거냐고,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라도 된다는
거야?”
“!”
“왜 그렇게 놀라?”
“아, 아닙니다.”
“폐하.”
“말해봐.”
“그러셨군요.”
“금서를요?”
“지, 지금요?”
***
에그타르트 접시가 타냐쪽으로 갔다가 카딜 쪽으로 갔다가 하는 모습을 시녀장과 다른 시녀들이 보느라
눈동자가 오른쪽 왼쪽으로 정신없이 돌아갔다.
“명령이다 먹어.”
결국 타냐가 졌다. 명령이라며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고 말하는 카딜을 쳐다보던 타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는거야?”
“죄송할 것 없어, 울고 싶으면 울어, 나도 사실은 전쟁으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동생을 잃어버린적은
없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은 충분히 알고 있어.”
“타냐, 조금만 더 기다려, 곧 소식이 올거야, 내가 수십명의 사람들을 풀어서 전국의 노예상인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알아보고 있으니까.”
“응?”
타냐는 카딜의 품에서 천천히 나왔다. 카딜은 타냐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회색빛 눈동자를 빛냈다.
“그게….”
“카딜님?”
“예?”
타냐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소리를 해야 고개가 끄덕여지는법이다. 그런데 온몸은
물론 얼굴까지 진흙투성이의 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니?
타냐가 벙찐 눈빛으로 카딜을 올려다 보자 카딜이 첫날의 그녀를 떠올리고는 속으로 아차 했다.
이건 사실이었다.
“제 눈동자에요?”
“그래?”
“정말이야?”
카딜이 타냐의 붉어진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타냐는 저도모르게 뒤꿈치를 들어 카딜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타냐와 키스를 하던 카딜은 급하게 그의 겉옷을 벗어 짚단위에 던졌다. 카딜의 긴 코트는 짚단위에
융단처럼 펼쳐졌다. 그 위에 타냐를 눕힌 카딜은 갈증으로 미쳐버릴지경에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타냐에게 달려 들었다.
햇살이 가장 좋은 5 월의 봄날 오전이었으니까.
“하아, 타냐…하아….”
카딜은 타냐의 몸을 으스러져라 끌어 안고 절정에 도달했다. 카딜보다 먼저 고지에 도달한 타냐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을 감쌌던 하얀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12 화
“타냐, 자는거야?”
“…………”
창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찡그린 눈으로 올려다보던 카딜이 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타냐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착각했었나?”
“넌 나잖아.”
“그래, 너 맞아.”
“걱정마 또 들어갈테니까.”
“뭐?”
“헉!”
“!”
“둘이 뭘….했는데요?”
“타냐가 나한테 먼저 키스했잖아, 그래서 날 원한다 생각해서 급하게 여기로 들어왔지, 지난밤처럼
타냐가 꽤 급해보였거든, 그리고 애써 가꾼 튤립꽃밭을 망가뜨릴 순 없잖아, 내 거처로 돌아가기엔 네가
너무 급해보였기도 했고.”
“아, 네, 제가 또 그랬나보네요.”
“기분이 어떤데요?”
“저 때문에요?”
“응?”
카딜은 타냐의 맑은 눈동자를 보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해 뭐하겠어, 내가 앓느니 죽지.
카딜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흥분하면 기억을 잃는구나 정도로만 치부해버렸다. 참 희한하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타냐가 기억이 안나는척 연기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타냐.”
“네?”
“그래,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그리고…기억이 사라졌어요.”
“하아!”
“제가요?”
“그래 네가.”
“제가 왜요?”
“갑자기?”
“그래 갑자기.”
“갑자기 왜요?”
“그건…..”
“그래, 말해봐.”
“그건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 응? 뭐라고?”
“뭘요?”
타냐는 시치미를 뚝 뗐다. 대화를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카딜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말해버린 것 같아서.
“제가요?”
끄응.
“그게 그렇게 중요한건 아닌 것 같아요 카딜님, 그러니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그리고 어서 나가요,
여기 냄새 심하지 않나요?”
타냐가 코를 막으며 일어서자 카딜도 그제야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냐를 따라 창고에서
나오는 카딜은 혼자 고개까지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떤 꿈인데?”
“뭐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그게…..”
타냐는 갑자기 아까 나눈 대화가 기억이나지 않아 두 눈동자를 굴리며 기억을 해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까먹었어요.”
“뭐?”
“그런가봐요.”
***
그날 오후.
갑자기 카딜의 저택에 비상이 걸렸다. 시종들과 시녀들, 그리고 카딜의 호위무사들까지 평소와 다르게
우왕좌왕했다.
“황제폐하께서?”
바훌의 말에 카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적떼를 보냈고 마차가 벼랑으로 굴렀고 적어도 몇 달은 운신을
못할 정도로 다쳤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시종을 보냈는데 다치기는커녕 멀쩡한
모습이라고 보고를 받았으니.
“예, 대장군님.”
“타냐.”
“예, 카딜님.”
“아,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백여년전 샤마란족이 몰살당한 것과 타냐의 능력이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황제가 단순히 자신의
상태를 살피러 오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혹시 뭔가를 알아차리고 타냐를 찾아온 것이라면 타냐는 절대
황제의 눈에 들켜서는 안된다.
13 화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친 이유가 느낌상 자신의 상처가 어떻게 그렇게 빠른시간에, 그리고 완벽하게
치유되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함인 것 같았다.
“황제폐하 드십니다!”
“비적떼를 만나서 크게 다쳤다는 소식으로 가슴을 졸였는데 다행히 완쾌되었다는 말에 이렇게 왔어. 정말
보고대로 전혀 다친적이 없어 보이는군, 크게 다쳤다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루 아침에 거뜬하게
나았지?”
“아, 그래?”
“예, 그리고 사실 마차만 그렇게 부서졌지 전 마차가 부서지기전에 뛰어 내렸습니다. 그래서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더 치료가 쉬웠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까지 몸소 방문하실 필요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랬던가?”
“예, 아직도 그런 비적떼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헤치고 그들의 소중한 재산을 갈취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으니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지않겠습니까? 게다가 이번 비적떼는 감히 제 마차까지
공격했습니다. 그 말은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는 뜻도 되겠지요, 그런 놈들은 아예 진짜로 간을 빼내서
들판에 사는 늑대무리에게 던져줘버릴겁니다.”
크흠!
“그럼, 참으면 안돼지, 이 나라가 얼마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데 그런 비적떼라니, 말도 안되지.”
“응? 아, 그, 그래, 안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그대에게 비적떼를 소탕하라 명을 내리겠다.
감히 내 이름에 먹칠을 하는 놈들을 잡아다가 단두대에 세우고 그 잘린 머리는 성탑에 매달아 비적질을
하면 어찌된다는 것을 모든 국민들이 알게하라.”
알테베르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카딜에게 비적떼 소탕을 맡겼다.
“그 치유마법사를요?”
황제와 카딜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바훌과 시종들은 말은 못하고 속으로 의아해 했다. 분명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갔는데 왜 상처가 가볍다고 말을 하는거지?
“그랬었죠. 하하하.”
“예, 대장군.”
“대장군님! 급한 전갈이옵니다!”
“무슨 일이냐!”
하지만 화이트고스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하얀빛의 가운데를 검으로 가르거나
화살로 쏘면 마물은 괴이한 비명소리를 내면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달려드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
무술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칼을 빼들 시간도 없이 당하게 된다.
“대장군! 어찌할까요!”
“어떡하긴 당장 출동해야지!”
카딜은 실리아에게 갑옷을 입히라 지시했고 시녀들과 하녀들이 우르르 내실의 뒤쪽 정 중앙에 옷걸이에
걸려 있는 갑옷을 내렸다.
“분부받들겠습니다!”
카딜이 겉옷을 벗어던지자 시녀들과 하녀들이 카딜에게 갑옷을 입혀주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는 황제의
태도는 이상하게 느긋했다.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지? 카딜은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얼른 갑옷을
조이는데 집중했다.
잠시 후.
카딜은 마물을 처치하기 위해서 붉은 기사단 1 군단을 이끌고 출정했고 저택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알테베르는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카딜의 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티도의 보고에 의하면 분명 엄청나게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카딜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누군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 누군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말과 상통한다.
“문을 열어라.”
“하지만 폐하.”
“내 명을 거역하는 것이냐?”
“이 문도 열어라.”
“예, 폐하.”
“아직도 멀었느냐!”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요!”
“타하! 어서 가자!”
“저기입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송구합니다요.”
“예, 대장군.”
그런데 화이트고스트에 당했다는 시체가 꽤 오래되어 보여 카딜이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마물에게 당하면
미이라처럼 변하긴 하지만 이건 오늘 당한 시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왜그러십니까?”
“!”
“돌아가자!”
“예?”
카딜이 갑자기 말에 올라 내달리기 시작하자 바훌도 놀라서 붉은 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병사에게
시체의 화장을 책임지라 명한 바훌이 멀어지는 카딜을 따라잡았다.
14 화
“안 열립니다 폐하.”
“그래?”
“그 말이 그말이지 않느냐?”
“그렇게 차서 열리겠느냐?”
“문을 부숴라.”
“예, 폐하.”
타냐는 열린 문 뒤에 얼른 숨었다.
제길.
“이쪽으로 오시죠.”
분명 뭔가 알고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내가 타냐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방문을 왜 부셨느냐 추궁하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지만 카딜은 묻지 않았다.
잠시 후.
“마물은 잡았고?”
“과찬입니다 폐하.”
“당연히 알지, 하지만 사냥대회는 업무가 아니고 일종의 놀이가 아니던가, 그러지 말고 같이 사냥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자고, 어떤가? 황제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예, 대장군.”
“거기 숨어 있었어?”
“네, 혹시 들킬까봐서요.”
“!”
“타냐, 눈떠봐.”
“타냐, 또 기억안나?”
“아뇨, 그럴리가요.”
“하아, 다행이네.”
카딜은 타냐를 안은채 한바퀴 굴렀다. 그리고 다시 타냐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타냐는 어찌할바를
몰라하면서도 그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다.
생전처음 맛보는 남자의 혀와 타액이었지만 거부감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황홀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듯 하여 마치 뼈가 없는 동물처럼 온몸이 흐느적거렸다.
“타냐.”
“!”
“예, 카딜님.”
“키, 키스요.”
“네, 그럴게요.”
타냐가 공손하게 대답을 하자 카딜이 그녀의 옷을 하나 하나 벗겨내기 시작했다. 타냐의 호흡이 빨라지고
그녀의 흉곽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완전한 알몸으로 변한 타냐는 부끄러움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카딜이 타냐의 턱을 잡아 저를
보게했다.
그의 명령같은 부탁에 타냐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자 카딜이 그의 갑옷을 벗기 시작했다.
“타냐 이것 좀 풀어봐.”
갑옷 상의가 벗겨지자 카딜이 급하게 나머지 옷들을 벗어 던졌다. 카딜은 알몸인채로 알몸의 타냐를
이끌어 침대에 눕혔다.
황금빛 머리카락이 부채살처럼 활짝 펼쳐진채 타냐는 다소곳이 누웠다. 전쟁에서 얻은 훈장같은 흉터들이
곳곳에 있는 카딜의 몸을 올려다보는 타냐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콧잔등에도 옆으로 그어진 흉터가 있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굴에도 두군데나 흉터가 있지만
그의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하여 그의 수려한 마스크에 흠도 하나 주지 못했다.
타냐는 카딜의 얼굴에 나있는 흉터를 가만히 만져 보았다.
“이거 많이 아팠겠어요.”
카딜이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데 타냐의 심장이 널을 뛰었다. 카딜은 타냐의 눈부신 알몸을 훑어 내리다
그녀의 젖가슴을 양껏 쥐어 보았다. 그녀와 두 번 몸을 섞었지만 두 번다 이렇게 여유롭지 못했었다.
“아, 으읏.”
타냐가 허리를 뒤틀며 신음을 흘리자 카딜이 고개를 내렸다. 이내 그의 입안으로 타냐의 가슴 하나가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아, 앗.”
타냐는 저도 모르게 카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활처럼 휘어지는 등 밑으로 카딜의 손이 파고 들었다.
15 화
흡입력이 어찌나 강한지 온몸이 그의 입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휘어진 몸은 허공에 떠있는
상태였다. 저도모르게 더 빨아달라는 듯 가슴을 카딜에게 내민 모양새였다.
또 다시 새로운 감각이 정수리를 내리치는 느낌에 타냐의 잇새로는 쉴새없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번의 정사때는 늘 그녀가 애원하며 달려들어 모든 절차를 건너뛰고 삽입부터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하으응, 거, 거긴 제발.”
동그란 진주알을 혀로 둥글리자 타냐의 몸이 제 마음대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딜은 그녀가
도망갈 수 없게 골반을 꽉 누른채 타냐의 진주알을 핥아댔다.
혓바닥을 넓게 편 카딜이 그녀의 진주알 같은 음핵을 빙글빙들 돌려가면서 문지르기 시작했다. 분홍빛
음순을 활짝편 혀로 부드럽게 핥아 올리기도 했다.
“타냐, 잘 봐.”
“타냐 보고 있어?”
“하아, 카딜님…아파요.”
이불자락을 쥐어뜯듯 잡은채 몸서리치는 타냐의 미간은 심하게 구겨졌다. 그 모습은 카딜의 성욕에 불이
붙었다.
“미안해, 타냐.”
“아앗!”
“하아, 네, 기억해요.”
찔걱이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은행나무로 만들어진 침상이 흔들릴 정도로 폭주한 카딜은
얼마지나지 않아 타냐의 몸안에 정액을 쏟아냈다.
하지만 욕정이 사그라들긴커녕 더 치솟았다. 몇 년동안 여자라고는 모르고 전쟁터만 누비고 다녔던 그는
몇 번의 정사로 욕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오늘이 디데이라도 되는 듯 카딜은 타냐의 몸안에 쌓인 욕정을
풀고 또 풀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식사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래.”
실리아가 물러가고 난 후 카딜은 타냐를 깨웠다. 깨우는 방법은 키스였다. 그녀의 이마와 볼에 입을 맞춘
후 입술로 향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그의 입술을 사선으로 겹친 후 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타냐가
두 눈을 떴다.
“깼어?”
“카딜님….”
“여긴 제 방이잖아요.”
“기억해?”
“그럼요. 다 기억해요.”
“하아, 다행이다.”
“훗, 기억하는구나?”
“기억한다고 했잖아요.”
“네, 인정해요.”
***
카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 네.”
“아니 왜?”
“……….”
말문이 막혀버린 카딜은 앞에 놓인 냉수를 짜증나게 마셨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대화를 하다보면
매번 타냐에게 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딱히 짚고 넘어갈 것이 없어서 따질 수도 없다.
“좋아, 그럼 당장 시작해볼까?”
“당장요?”
“사냥대회?”
카딜은 차라리 타냐를 제 눈앞에 두기로 했다. 24 시간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의 호위무사가
적격이었다. 설령 황제 앞에 타냐를 내보인다고 해도 그게 더 안전할 것이다 생각했다. 꽁꽁 숨기는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게다가 오히려 황제 앞에 내놓으면 큰 의심을 사지 않을지도 모른다. 황제가 자신의 내실을 샅샅이
뒤졌다는 것은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차라리 호위무사라며 내놓으면 오히려
타냐를 유심히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
“그렇게 입으니까…..”
“입으니까 어떤데요?”
카딜이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할 말을 잃은 타냐는 얼른 서두르는척 했다. 이대로 있다간 손가락 발가락이
다 오그라들 것 같아서다.
“뭐부터 하면 될까요?”
바훌은 타냐의 검술 훈련을 직접 하겠다고 한 카딜을 조금은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섰다.
아무리 결혼까지 황제의 명을 따를 수 없다며 버틴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황제의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카딜이 이렇게 까지 강경하게 결혼을 피하려 하지는 않았었다. 타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가
나타난 후 더 심하게 로젠시아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카딜이었다. 바훌은 어떻게 하면 타냐를
카딜에게서 떼어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이 더 심각하게 되기전에 피바람을 막아야 한다.
16 화
“이렇게요?”
“그렇지, 잘 하네.”
“벌써요?”
“벌써라니?”
“오오, 잘 하는데?”
“그 다음에는요?”
“네.”
타냐가 자신있게 대답하자 카딜이 일부러 초급과정의 제일 어려운 검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바훌이 코웃음을 쳤다.
처음 검을 잡아보는 사람에게 석달은 훈련해야 따라할 수 있는 검형을 가르치려 하다니. 아무리 마음이
급하기로서니 쯧쯧. 혀를 차며 카딜을 쳐다보던 바훌은 타냐가 얼마나 못따라 할지 궁금해져서 아예
팔짱을 끼고 구경태세에 들어 갔다.
“네, 해볼게요.”
타냐는 아까 카딜이 가르쳐준 준비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조금전에 카딜이 보여주었던 검형을 천천히
시전해나갔다. 30 초정도 되는 검형이지만 3 개월정도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자세였다. 하지만 타냐는
순식간에 카딜이 보여준 검형의 기초를 똑같이 따라했다.
“!”
“!”
“타냐, 완전 천재잖아?”
“네?”
타냐는 카딜이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누가봐도 한번에 따라할 수 있는 검형을 따라했다고 이렇게까지
좋아하다니. 역시 뭐든 배울때는 아는 사람에게 배우면 안되는 거였어.
“좀 하시는 것?”
“제법 잘 하십니다.”
“정말입니까?”
타냐는 카딜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생각하고 바훌에게 물었다. 그러자 바훌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바훌이 타냐에게 공손한 어투로 말하자 타냐가 오히려 어색해했다. 그냥 편하게 대해주면 좋을텐데.
“네, 정말 잘 하십니다.”
“검형 2 형으로요?”
“정말요?”
“그렇다니까? 일단 내가 하는대로 따라해봐.”
“하나.”
“하나.”
“두울.”
“두울.”
둘이서 시간차를 두고 검형의 동작을 취하는 모습을 보던 바훌은 놀라움과 걱정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갑자기 천재적인 검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바훌의 말대로 파워만 키운다면 1 년안에 붉은 기사단에
들어갈 실력쯤은 될 것 같았다.
***
타냐는 자신이 연습했던 목검을 카딜의 검에 가져다 댔다. 카딜의 검은 손잡이에는 그의 이름이, 그리고
칼날에는 무슨 뜻인지 알수 없는 상형문자가 적혀 있었다.
“벌써부터 진검을 가지고 연습하면 다쳐,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봐 타냐, 오늘은 그만하고 씻으러가자,
배도 고프다.”
“네.”
타냐는 목검을 거치대에 올려 놓고 카딜과 나란히 그의 거처로 향했다. 바훌은 두 사람의 검술훈련이 끝날
기미가 안보이자 일이 있다며 물러갔다.
내실에 들어온 카딜은 실리아에게 욕조에 물을 받으라 지시했다. 마법석을 이용하여 물을 따뜻하게 데운
실리아가 준비가 끝났다고 아뢰고 식사준비를 하겠다며 물러갔다.
“옷도 안 벗었어요.”
카딜의 말에 타냐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둥근 욕조에 두 사람이 들어가자 물이 출렁이며
넘쳤다. 타냐는 카딜에게 안긴채 물에 잠겼다. 타냐의 머리끈을 풀어 내리며 카딜이 입을 맞추어왔다.
머리끈이 풀어지자 긴 황금빛 머리카락이 물위에 둥둥 떴다. 2 시간의 검술훈련에 타냐는 지쳤는데 카딜은
전혀 지친기색조차 없었다. 그녀의 젖은 옷을 벗겨내는게 재미가 있는 듯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다.
동그란 어깨가 보이자 그곳에 입을 맞추고 다시 타냐의 입술을 삼키는 카딜.
“이번에도 기억하는거지?”
“네, 기억해요.”
“신기하네.”
“뭐가요?”
“그런가요?”
대답하는 순간 카딜이 타냐의 젖가슴을 한껏 베어물어 타냐가 흠칫 놀라며 신음을 흘렸다. 카딜은 이제
타냐의 상의를 다 벗겨내고 그녀의 하의를 벗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젖가슴을 계속 농락했다.
타냐의 몸이 저절로 뒤로 젖혀지고 그녀는 물속에 잠기지 않으려 욕조의 벽을 두 손으로 잡고 버텼다.
물에 젖은 바지를 벗겨내자 속옷이 나왔다. 속옷의 허리끈을 풀어내면서 옷 위로 타냐의 음부를 비벼댄다.
손가락을 세워 옷위로 구멍쪽에 대고 살살 찔러대자 속살이 벌름대며 애액을 토해냈다.
드디어 속옷까지 벗겨져나가고 타냐는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카딜은 타냐의 질구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돌려대며 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도와줘 타냐.”
“하아, 모, 못해요.”
구멍에 손가락 두 개가 들어와 이리저리 휘저으며 찔러대는통에 타냐는 그저 온몸을 뒤틀기에도 바빴다.
타냐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물위로 올라온 젖가슴이 출렁대는 모습에 흥분감이 극에 달한 카딜이 제
옷을 찢어 버렸다.
17 화
***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아바마마.”
로키의 뜬금없는 인사말에 알테베르가 로키를 내려다 보았다. 황후를 비롯한 제 8 후첩이 속으로 웃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아, 저기 오십니다.”
“그래?”
로젠시아의 인사에 카딜은 굳은 얼굴로 짧게 ‘네’ 라는 대답만 하고는 말에서 내려섰다. 바훌과 타냐도
말에서 내려서서 황제에게 대한 예의를 표했다.
“황송합니다.”
“그렇군.”
황후의 말에 모두들 뷔페식으로 차려진 테이블로 왔다. 사냥대회를 시작하기전 간단하게 다과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스탠딩파티개념이라 황제와 황족들을 위한 의자외에는 없었다. 황제를 비롯한 황족사람들만 의자에 앉고
나머지는 서서 다과를 즐겼다.
카딜은 울프팽을 얻기위해서라도 오늘 사냥에 1 등하자 마음 먹었다. 어쩌면 울프팽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스탈트가 신호를 보내자 나팔부대가 힘껏 나팔을 불었다. 황제는 황금마스크를 씌운 백마에 올라탔다.
황후와 후첩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알테베르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호위무사 둘이 흑마를
타고 따랐다.
“카딜님, 이것 받으세요.”
“됐습니다.”
“아뇨, 받아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마법이 담긴 부적이 그려진 손수건이예요, 오늘 꼭 1 등하시길
빌게요.”
로젠시아가 강제로 카딜의 손목에 그녀의 손수건을 감아 주었다. 카딜은 속으로 끙 앓는 소리만 하고 말을
출발시켰다. 그의 뒤로 타냐와 바훌의 흑마가 따라붙었다. 어느정도 달린 후 카딜은 손목에 감긴
손수건을 풀어서 숲속으로 휙 던져버렸다. 나중에 찾으면 잃어버렸다고 하면 되니까 말이다.
카딜보다 조금 앞서 달리는 황제는 묘하게 타냐에게 끌리고 있었다. 일개 호위무사로 두기에는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깝다 생각하며 뒤에서 카딜의 뒤를 따르는 타냐를 힐끔거렸다. 호위무사하나쯤이야 달라고
하면 주겠지. 속으로 생각한 황제 알테베르는 혼자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미소지었다.
“타냐,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네, 카딜님.”
“네, 알겠습니다.”
타냐가 큰 소리로 대답을 했지만 카딜은 영 마음이 놓이질 않는 표정이었다. 하긴 옆에 바훌이 지키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황제와 다른길로 접어든 카딜은 점점 더 깊은 숲으로 내달렸다. 검은숲이라 이름이 지어진 이유는 숲의
나무들이 모두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새싹이 날때는 붉은 빛으로 피었다가 점점 커지면서 색이 짙어졌고
성체가 되면 검은색으로 변했다. 왠지 음산한 분위기라 일반인들은 거의 접근을 하지 않아 짐승들이 더
많았다.
“예, 대장군.”
바훌이 염려말라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카딜은 안심하고 사냥에 집중했다. 타냐도 말 위에서 숲속을
이리저리 살폈다. 흑곰이 나타나기 때문에 나무들과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들었다.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잔뜩 긴장한 상태로 뭔가 움직이는 숲속을 노려보는데 검은빛깔의 야생고양이 한 마리가 오히려 카딜을
보고 놀라서 빠르게 도망쳤다.
휴우!
18 화
한시간 이상이 지났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어 자꾸만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카딜이 약간 불안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럴까? 타냐 배고파?”
“배가 고프기 보다는 좀 쉬었다 하면 어떨까 싶어요.”
“타냐, 어디 아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타냐에게 카딜이 물었다. 타냐는 샌드위치도시락을 열어서 펼치며 바훌을
한번 쳐다보고는 카딜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한번 봐줄까?”
“!”
타냐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하며 아연실색하는 모습에 카딜이 피식 웃고는 그녀의 입안에 샌드위치 조각을
넣어 주었다. 벌어진 입으로 샌드위치가 들어오자 어쩔 수 없이 씹긴했지만 카딜의 손이 자꾸만 타냐의
허리춤을 더듬거려 하마터면 목이 막힐 뻔했다.
정말 심하게 실망하는 카딜의 표정을 본 타냐가 배시시 웃고는 그의 입에 샌드위치 조각을 넣어 주었다.
둘이 서로 먹여주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바훌은 사방을 더 경계했다. 혹시 황제의 무리라도 지나가도
볼까 싶어서다.
한시간 넘게 숲속을 헤맸던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쉬면서 간식으로 배를 채우는 중이었다.
“자 이제 또 다시 시작해볼까?”
“말 탈 수 있겠어?”
“견딜만 해요.”
타냐의 대답에 안쓰러웠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더 카딜이 바훌을 불렀다.
“바훌.”
“예, 대장군님.”
“하지만….”
타냐가 얼른 나섰지만 카딜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바훌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냐 주변을 떠나지
말라고. 바훌은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해야만 했다.
“많이 아픕니까?”
타냐가 뒷말을 얼버무리자 바훌이 약간은 싫어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좀 많이 싫어하는 눈빛이었다.
“!”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는 타냐를 노려보던 바훌은 속으로 생각했다.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나
유기견같았던 것이 언제 이렇게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했을까 하고.
바훌도 카딜보다는 못해도 감히 천민이나 평민이 시선을 맞추고 말대꾸를 할 위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훌은 타냐에게 무엄하다 꾸짖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지 카딜의 여자라서라기 보다는 그녀의 눈빛에서
흐르는 오묘한 기운때문이었다.
“네가 카딜님의 여자라는 것을 로젠시아 공주님이나 황제폐하께서 아시는 날에는 네 목숨을 거두어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카딜님까지 위험해진단 말이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거냐?”
스르릉!
갑자기 바훌이 칼을 뽑아 들었다. 타냐는 시퍼렇게 빛이나는 바훌의 검날을 보면서도 위축되지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잘못봤나?
“타….타냐, 너…”
바훌이 말을 더듬으며 손가락질을 하자 타냐는 그제야 온몸의 힘을 풀었다. 순간 그녀를 감쌌던 오로라
같은 하얀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가 뭘요?”
“카딜님?”
“대장군님!”
“카딜님!”
곧바로 도착한 타냐도 말에서 뛰어 내렸다. 바훌이 심장근처에 화살을 맞은 카딜의 곁에서 어찌해야할바를
몰라 했다.
“누가 좀 도와주십시오!”
“세상에, 곰이 아니었어?”
갑자기 카딜을 엄청 위하는 듯 시종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알테베르가 역겨웠지만 바훌은 일단 카딜을 먼저
살리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먹고 실험을 해보기 위해 일부러 곰인줄 알았다며 화살을 쏜 것이다.
죽으면 뭐 어쩔 수 없고.
19 화
잠시 후.
“그게 무슨 소린가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너무 심하게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심장을 비켜가긴 했지만 폐를 다치신 것 같습니다. 피도 많이 흘렸고
…..제 소견으로는 오늘밤이 고비일 것 같습니다.”
황제의 물음에 궁의는 죄송하다는 대답만 했다. 제 목을 친다고 했는데도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카딜의
상처가 위중한걸 알 수 있었다.
“저도 같이 타게 해주십시오.”
바훌의 허락이 떨어지자 타냐도 황제의 마차에 올라탔다. 말에게 채찍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마차는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짧은 시간에 발현된 치유력으로 카딜은 눈을 떴다. 화살이 폐에 박혀 생겨났던 상처가 아물었던 것이다.
폐에 생긴 상처가 아물어서인지 카딜은 숨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타냐는 남동생을 찾아줘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카딜이 정신을 차리게 도와주었다.
“하아…울지마….나 안 죽어.”
“지금은 아냐 타냐.”
“지금은 아니라뇨?”
“타냐, 내 말 잘들어.”
“!”
타냐는 제 두손을 들여다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카딜은 분명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특별한 치유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 어떻게요?”
카딜의 말에 타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 토디엘을 찾아줄 사람은 카딜밖에 없다. 이 남자가 죽으면
저도 살 이유가 없다.
타냐는 눈물을 닦고 카딜이 시키는대로 했다. 카딜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지만 해보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제발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안돼, 하지마.]
“!”
“왜그래 타냐?”
“하지말라고? 누가?”
“여자 목소리였는데….”
타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마차 안에는 카딜과 타냐밖에 없었다. 달리는 마차 밖에서 누가
말을 걸리도 없었다.
“그게 무슨소리야 타냐, 누가 말을 걸었다고?”
“누가?”
“제가요.”
“네가?”
“네, 제가요.”
“그게 무슨….”
“!”
“한번 해볼게요.”
타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냐가 두 눈을 감은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카딜이 말을 걸었다.
“타냐, 대화했어?”
타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카딜은 마치가 공격을 받은 다음날 자신의 상처가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왔던 황제를 떠올렸다.
그때 그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했었다. 혹시 황제가 타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자라면? 오늘 사고도 사고가 아닐지도.
“타냐.”
“네, 카딜님.”
“왜요?”
“조심, 조심!”
***
“황제폐하 드시옵니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시종의 목소리에 카딜은 메소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의식이 없는
것처럼 온몸에 힘도 뺐다.
20 화
“그렇습니다 폐하.”
알테베르는 실눈을 뜨고는 아밀리에를 지켜보았다. 아멜리에는 황제의 시선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하는 듯한
과장된 포즈를 취했다.
[저 여자 가까이에 다가가.]
“뭐라고?”
또 제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타냐는 주춤대다가 아밀리에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보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혹시몰라 생수와 손수건을 챙겨서 쟁반에 들고 있던 시녀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들었다.
“타냐, 방해하지마.”
“으으음…”
“어머! 깨어나나봐요!”
“으으, 하아…”
제길.
속으로 욕을 한 카딜이 눈을 떴다. 제일먼저 타냐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았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타냐와 눈이 마주친 카딜은 의아해 했다.
“아니야, 지난번에도 느꼈는데 그대는 치유마법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 같군, 그쪽으로 대성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말씀하십시오 폐하.”
“예?”
이미 자신이 죽어가는 카딜을 두 번이나 살렸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아밀리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말했다.
“황궁의라구요?”
아밀리에는 꿈에도 그리던 직책을 받게 되었다는 기쁨에 저도모르게 황제에게 반문을 했다가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로젠시아는 여전히 카딜만 걱정하며 입안으로 웅얼거렸다. 하지만 카딜은 어서 황제가 아밀리에를 데리고
가기를 원했다.
“예? 아, 예 폐하.”
“아밀리에를 죽여라.”
“예? 아, 예 폐하.”
대제사장 비숍이 어젯밤 그를 찾아왔었다.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샤마란족이 살아 있으면 황제의
목숨이 위태롭다며 보이는대로 죽여야한다고 했다.
한편 카딜은 당분간은 타냐가 안전하다는 것에 안도했다. 황제가 타냐를 죽이려 한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타냐의 안에 있는 또 다른 타냐가 해준 말에 카딜은 확신했다.
“타냐는 어디갔지?”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니까, 상처보여줄까?”
카딜이 상의를 펼쳤다. 바훌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에게 다가와 상처를 살폈다. 정말 거짓말처럼
상처가 아문 것을 본 바훌의 입이 벌어졌다. 아밀리에를 황제가 데려갈만하다 생각한 카딜은 타냐를 불러
오겠다고 했다.
바훌은 카딜이 타냐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카딜은 내실을
나와 타냐의 방으로 왔다.
“타냐, 옷 다 갈아 입었어?”
“………..”
“타냐!”
“타냐, 타냐!”
“으음…하아…하아…”
겨우 정신을 차린 타냐는 카딜을 보자 갑자기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카딜은 그녀가 깨어났지만 어디가 안
좋은가 싶어서 제 입술을 마구 빨아대는 그녀를 살며시 밀어내고 물었다.
혹시 지금도 그런 경우라면?
“으읍, 타냐.”
타냐가 달아오르면 카딜도 여지없이 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카딜은 이미 알몸인 타냐를 침대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의 옷가지도 전부 벗어 던졌다.
그러자 타냐가 손을 뻗어 카딜의 성기를 쥐고는 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느새 흥건하게 젖은 그녀의
안은 카딜의 성기를 강한 흡입력으로 빨아 들였다.
21 화
아직은 이 두 개의 인격체가 어떻게 하나의 몸에 자리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치유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건 틀림이 없다.
타냐는 카딜의 목을 끌어 안고 상체를 일으켜 그에게 찰싹 들러 붙었다.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카딜의
돌덩이 같은 가슴근육과 맞닿을 정도로.
“하아, 미치겠네.”
카딜은 타냐의 입술을 삼키며 엉덩이를 더 강하게 튕겼다. 뒤로 쑥 빠져나갔던 그의 엉덩이가 다시 앞으로
튕겨지면 그의 검붉은 성기는 귀두만 걸친채로 빠져나왔다가 성기뿌리까지 밀고 들어왔다.
“하아, 타냐…”
카딜은 타냐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를 강하게 쳐올렸다. 그녀와 키스를 갈무리한 그는 제게 매달리는
타냐를 밀어내고 그녀의 두 손목을 휘어잡았다. 타냐는 흐릿한 시선으로 카딜을 올려다보며 붉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찔걱,찔걱,
탁탁탁탁,
애액에 절은 카딜의 성기는 쉴새없이 타냐의 안을 들락거렸다. 도톰하게 부푼 타냐의 음순이 카딜의
성기를 한껏 조였다. 깊게 빨려 들어간 카딜의 선단이 타냐의 극점을 자극하자 타냐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타냐의 두 다리는 어느새 카딜의 어깨위에 올려졌다. 그러자 엉덩이마저 허공에 뜬 타냐의 몸이 카딜이
허리를 흔들때마다 속절없이 따라 흔들렸다.
탁탁 탁탁.
타냐의 뽀얀 엉덩이살은 카딜의 말근육 같은 허벅지 근육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지금은 아무런 대화가
필요 없었다. 그저 초점이 흐려진 몽롱한 눈동자를 주고 받으며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을 향해 내달렸다.
타냐의 얼굴 양쪽 옆에 팔을 지탱한 카딜은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들어올 것처럼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노려본다.
타냐의 푸른 눈동자에 카딜의 눈부처가 섰다. 하지만 타냐는 카딜을 본다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절정을
향한 애욕으로 가득찼을뿐 초점이라고는 없었다.
***
“또 제가 덮쳤나요?”
“그래.”
“카딜님.”
“응, 말해.”
“상처는 다 나았어요?”
“내가 누굴까요?”
“……….”
“글쎄,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노력하면 언젠가는 알아내지 않을까?
한가지 확실한건 하나 있어.”
“그게 뭔데요?”
타냐가 고개를 위쪽으로 들어 카딜을 올려다 보았다. 카딜은 그런 타냐를 내려다 보며 대답해주었다.
“예, 대장군님.”
“정말요?”
“그래.”
잠시 후.
카딜은 소파에 앉았고 타냐는 그의 옆에 섰다. 타냐는 이미 심하게 벌렁대는 심장을 다스리느라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래, 보고하라.”
“예, 대장군.”
“아…”
“타냐, 괜찮아?”
“하아….토디엘….흑…”
“예, 대장군님.”
타냐가 싫다며 고집을 피우자 카딜이 실리아에게 물러가라 눈짓으로 말했다. 실리아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계속하라.”
“예, 대장군, 그래서 북대륙의 남쪽 끝에 있는 죽음의 계곡 쪽으로 쫓으시면 토디엘이란 아이를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 쫓을지 말지도 여쭤봐야 하고 중간 보고도 드려야 해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장군님.”
“살아있기는 할까요?”
“뭐?”
이제 타냐는 그냥 천민이 아니었다. 황제가 노리는 샤마란족의 한 사람이 틀림이 없다. 그런 그녀를
위험하게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겠다.”
“!”
***
다음날 아침.
바훌은 타냐가 뭣이 그리 중요한지 그녀의 남동생을 찾아 이 험악한 여정을 떠나려는 카딜이 못마땅했다.
22 화
“대장군님!”
“무슨 일이냐?”
시종은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카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뭐라고?”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지가 일주일전인데 또 진군이라니? 카딜의 두 눈썹이 갈매기 날개처럼 휘어질 때
시종이 자세하게 정리하여 보고했다.
시종이 품에서 황제의 진군명령이 적힌 칙서를 내밀었다. 황제의 칙서는 일반족자와 모습이 달랐다.
칙서의 내용을 다 읽은 카딜이 마지막에 황제의 직인을 확인하고는 알았다 말하고 타냐를 쳐다보았다.
“뭐?”
바훌이 이렇게 나올줄 몰랐던 카딜은 그를 노려보았다. 솔직히말하면 카딜은 타냐를 그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바훌이 카딜의 속내도 모르고 나섰던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예?”
바훌의 우렁찬 목소리에 브릴트 일행이 얼른 인사를 하고 떠나려했다. 그러나 타냐가 말고삐를 잡아
당기며 그쪽 일행에 합류하려 할때였다.
‘안돼, 가지마.’
“뭐라고?”
“뭐?”
타냐가 제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되묻는 소리였지만 카딜은 제게 한 말인줄 알고 물었던 것이다.
타냐가 또 혼잣말을 하자 그제야 카딜은 그녀가 또 다른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만 죽는게 아냐, 카딜도 너 없으면 죽어, 너희 둘은 항상 붙어 있어야 해. 카딜의 목숨은 너한테 달려
있고 네 목숨은 카딜한테 달려 있어, 그리고 동생은 살아있어, 그러니 걱정안해도 돼.’
“아, 알았어.”
타냐가 대답을 하고는 말고삐를 돌렸다. 그 모습에 카딜은 뭔지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그 목소리가?”
“무슨 소리야?”
“왜 그런지는 설명 안해주고?”
“그게 정말이야?”
카딜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사실 전쟁이 일어나서 떠나야하긴 했지만 타냐의 남동생 토디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건 안될말인데….”
“예, 대장군님!”
그럴 것이다, 그 여자 또한 타냐니까.
“나도 알아요, 모르시겠지만 전 하루하루가 전쟁을 치루듯 살았어요, 칼과 창으로 사람을 찔러죽여야
죽이는건 아니예요, 먹을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것은 칼에 찔려 죽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장면이랍니다.
그리고 가끔은 채찍을 견디지 못해 죽을때도 있어요, 채찍이 살을 파고 들어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보이고
피는 흘러내려 웅덩이를 만들어요. 그런걸 매일 한번씩은 보고 살았어요.”
드디어 카딜의 최종결정이 떨어지자 타냐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카딜은 여전히 걱정이었다.
***
“예, 대장군님.”
카딜이 지도상에 보이는 점을 가리켰다. 테일러는 그곳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딜은 싸움도 잘하지만 지략가였다. 북대륙의 곳곳을 제 안방처럼 잘 알기도 했고 지형과 지물을 십분
이용하여 작전을 짰다.
23 화
“내가 늘 말했듯이 목숨을 내건 단 한명의 병사를 수십명의 병사가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너희들은 살고자
하지말고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싸움에 임해야 할 것이다. 후퇴명령은 오직 나만이 내린다, 만약
후퇴명령도 없이 후퇴하는 병사가 있다면 너희들이 직접 죽여라, 전쟁은 기술싸움이 아니라 사기싸움이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는 나머지 병사들에게 독이나 다름 없다, 알았나!”
“예! 대장군!”
카딜의 회색빛 눈동자에 살기가 보였지만 타냐는 그의 멋진 모습에 매료되었다. 저래서 모두가 카딜
장군을 우러러 보는거였어.
“자 이제 출발하자.”
“예!”
모두들 일제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바훌과 타냐만 남은 상태에서 카딜은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네.”
타냐 또한 두 눈에 힘을 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이 카딜에게는 가소롭고 귀여울뿐이었지만 그는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 예?”
“왜그래?”
“아, 네, 알겠습니다.”
허리와 팔목의 고리까지 단단하게 채워진 것을 확인한 카딜은 그녀에게 나가자고 했다. 타냐도 붉은
기사단들만 입는 갑옷을 입으려 했지만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거동이 불가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가죽보호대만 사용하여 보호할 수 있는 곳은 다 보호했다. 가슴보호대, 그리고 팔목에서 팔꿈치까지 오는
보호대와 발목에서 무릎밑에까지 올라오게 한 보호대를 찼다.
***
약한 뼈대지만 매일같이 남자들과 대등한 노동을 하여 어느정도 단련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수년동안 훈련된 남자들과 함께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대장군님!”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카딜이 말고삐를 당겼다. 말이 뚜레질을 하며 멈추었고 카딜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제 말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조금전 바위산을 넘다가 이끼에 미끄러져서 발목이 부러진 것 같습니다!”
말은 이미 서지를 못하고 드러누운 상태에서 거칠게 호흡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 보여 죽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카딜의 미간이 구겨졌다.
한 마리 말은 한 사람을 태워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을 태우면 아무래도 뒤쳐질 것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잠시만요.”
“왜그래 타냐?”
하지만 타냐는 카딜에게 눈짓으로 괜찮다 말하고 기사단들이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예전에 마굿간일을 했었어요, 그때 부러진 관절에 좋은 약초가 무언지 알게 되었거든요, 그 약초만
바르면 1 시간내에 뼈가 붙어요.”
“이거예요.”
“아니 저 흔한 풀이 그런 귀한 약초라고?”
“이것도 맞습니까?”
“네, 맞아요, 고마워요.”
“여기 있습니다.”
“아, 네, 고마워요.”
“예! 대장군.”
“이 정도는 괜찮아요.”
“정말?”
“아, 그래?”
“예, 대장군님.”
전쟁터에서는 간단하면서도 고단백 고열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말린음식을 주로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무게또한 가벼워 이동할 때 크게 부담을 주지 않고 시일이 오래도록 지나도 썩지 않는다며 카딜이
말해주었다.
타냐의 말에 카딜이 나무수저로 스튜를 떠서 타냐의 입앞에 디밀었다. 타냐는 주위 군사들의 눈치를 보다
얼른 입을 벌렸다. 그녀가 순순히 받아 먹는 모습에 카딜의 두 눈꼬리가 은은하게 접혔다.
“맛이 어때?”
“맛있어요.”
“맛있는데요?”
카딜의 저택에서 살면서도 타냐는 지난날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릴때부터 굶었던 타냐는 음식에 대한
예의가 대단했다.
“너 다 먹어.”
“왜요? 맛이 없어요?”
“이상하네, 진짜 맛있는데?”
타냐는 나무그릇을 가져와 맛있게 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 양고기도 이렇게나 부드럽고
맛있을수가 업는데. 야채는 말려서 끓여서 그런지 고기처럼 쫄깃거렸다.
“아, 맛있다.”
타냐는 국물하나 남기지 않고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는 배까지 두드렸다. 그 모습에 카딜은 또 한번 웃을
수밖에 없었다.
24 화
“무슨 소리냐?”
“그럴 리가? 분명 다 죽어가던 카딜을 살렸는데? 황궁의도 그날밤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아밀리에가 살렸어, 그런데 그녀가 샤마란족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비숍도 황제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저도 누군지 확실하게 알면 딱 찝어서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알테베르는 고개를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대륙 연합군이라고 해봐야 별볼일 없을 것이라 여기는 알테베르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특히 카딜을
그쪽으로 보내놓았으니 더 안심하는 그였다.
북대륙을 통합한 알테베르는 동대륙도 속국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북대륙을 통합할때 그
중심에는 카딜과 그의 붉은 기사단이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시간이 이미 지난터라 북대륙을 통합한 것은
카딜의 공이 아니라 자신의 힘이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비숍이 금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금서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현재로서는 알테베르를 가장 위협하는 사안이었다.
대신전에 도착한 비숍은 밀실로 들어가 금서를 꺼냈다. 이것을 신전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절대 안된다고
선대 제사장이 신신당부했었는데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던 비숍은 밖에서 시종장 스탈드의
목소리에 얼른 밖으로 나왔다.
금서의 힘을 신전의 힘으로 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비숍은 스탈드와 함께 내전으로 향했다.
같은시간 제이단숲에 하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샤마란족의 고향이자 치유의 정령들이 사는 곳 제이단
숲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듯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
“자 다시 출발한다!”
카딜은 타냐에게 눈짓을 하고 말의 배를 힘차게 찼다. 바훌도 곧바로 출발했고 타냐도 카딜처럼 뒤꿈치로
말의 배를 찼다. 세 마리의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붉은 기사단들도 뒤를 따랐다.
들판을 지나고 숲속을 지나고 바위산을 지나는 동안 타냐의 말타는 솜씨는 계속 발전해나갔다.
“실패했나?”
제 1 군단의 지휘자 테일러가 무릎을 꿇었지만 카딜은 일어서라 명했다. 이것은 테일러의 잘못이 아니었다.
소식을 들었을때는 이미 그들이 동쪽끝의 병영을 뚫은 후였다. 그곳에서부터 두 번째 병영까지의
최단거리가 그 곳 나이브상류를 가로지르는 르에타브릿지다리라는 것쯤은 적군들도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다리로 달리는 시간과 카딜의 저택에서 그곳으로 달리는 시간은 벌써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북대륙의 아클란 대제국은 황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작은 거점들과 병영이 있었다. 하지만 북대륙은
지형이 가로로는 좁고 세로로만 길게 생겨 동쪽에서의 공격은 황궁까지 꽤 가까운 거리였다.
동쪽의 가장 끝부분에 있는 병영이 뚫렸기 때문에 지금은 카딜이 도착한 이곳이 최전방이 되는 셈이었다.
하루종일 달렸던 관계로 말도 지쳤고 사람도 지쳐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곳 병영의 지휘자인
마테스가 카딜과 붉은 기사단을 위해 만찬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카딜의 전략을 타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 카딜은 전면전이 아닌 게릴라전을 펼치자고 했다.
앞에서 막는척 하다가 밀리는척 하면서 뒤로 후퇴하면 놈들이 기세등등하여 따라올 것이다. 그때 갑자기
산등성이에 매복해 있던 다른 군단들이 습격하는 방법이었다.
새벽에 벌써 동대륙 연합군들이 이곳까지 도착한다는 소리에 타냐의 심장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카딜이 지휘자와 군단장들과 회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슬금슬금 막사를 빠져나온 타냐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공터로 왔다.
한번 연습했는데 벌써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하지만 타냐는 멈추지 않았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일어섰다.
“뭐라고?”
“3 초식을 한다고?”
“네, 사실 몇 번 연습해봤거든요.”
카딜은 주변에 보이는 나무토막 하나를 세우고 그곳에 앉았다. 타냐는 카딜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에
두근대는 심장을 다스리며 검형을 시작했다.
그걸 4 주일만에 해내다니.
“그거 몇 번 연습했어?”
“하아,”
“그 정도로 형편없어요?”
“네?”
“정말요?”
타냐가 좋아서 환하게 웃자 카딜이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죄송합니다.”
“네?”
“이리와봐.”
“어머, 뭐하시는….”
“아뇨, 그건 아니지만….”
25 화
“그렇긴 하지만….”
타냐는 조금은 조급해 보이는 카딜의 손을 막지 못했다. 가죽으로 가슴을 덧대고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가자
몸이 한층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눈도 못 뗄 정도로 잘 생기긴 했지. 하지만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지마 심장이 살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으니까.”
“어딜봐 난 여기 있는데.”
카딜의 놀리는 말에 타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리로 치자면 자신이 내는 소리가 꽤 높으니 말이다.
“네?”
“씻어야 해요.”
“내가 혀로 씻겨주고 싶은데?”
타냐가 욕조를 가리키자 카딜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허리끈을 풀고는 입고 있던 옷을
단번에 벗어 던졌다. 웅장하다는 표현과 어울리는 그의 근육질의 몸이 드러나자 타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읏차!”
“꺅!”
“아읍!”
소리를 내려하자 카딜이 타냐의 뒷목을 잡아 당겼다. 이내 그의 입술이 타냐의 입술을 덮어 버렸다.
읍읍, 으읍! 타냐의 교성은 카딜이 말한대로 그의 입안에서만 울려퍼졌다.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카딜의 얼굴에 비벼지자 카딜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젖가슴으로 입술을 옮겼다. 동시에 옆에 던져 놓았던
자신의 옷을 들어 타냐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타냐는 기다렸다는 듯 카딜의 옷을 재갈처럼 물고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
카딜은 잠든 타냐의 얼굴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알몸의 타냐는 잠든 상태라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은밀한 곳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뭔가 느꼈는지 타냐가 다리 하나를 접으며 몸을 돌렸다. 카딜은 얼른 손가락을 빼고는 빨아대던 유두도
뱉어냈다. 또 다시 욕정이 치솟아 타냐의 몸과 딱 붙여 누운 그가 그녀의 다리 하나를 제 허리에 걸쳤다.
잠결에도 타냐는 그의 성기를 잘도 삼켰다. 카딜이 본격적으로 타냐의 안을 찔러대기 시작하자 타냐가
눈을 떴다.
“하아, 깼어?”
타냐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딜이 그녀의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이내 찔걱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카딜의 말에 타냐가 그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카딜은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
새벽동이 트는 시간.
“예, 대장군님.”
“최전방 병영을 찾은 후 그대로 밀고 들어가서 오후에는 동대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저들의 최전방
병영을 차지한다! 병영을 차지한 후에는 저들이 다시 공격해올 것을 대비하여 사방에 거점을 설치하고
주둔군을 배치한다! 배치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그때 알려주겠다! 모두 준비됐나!”
“예!”
동대륙 연합군은 5000 이라 들었다. 천오백과 오천의 싸움이었지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붉은 기사단
500 이면 1 만명의 병사와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
“출발하라!”
히랴!
***
아클란 황실.
“오늘 안으로 동대륙 경계를 무너뜨리고 저쪽 최전방 병영을 장악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분부받들겠사옵니다 폐하!”
게다가 이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것이다. 확실히 이길 것이기 때문에 위문같은 것은 필요도 없을테고.
“그럴필요 없다.”
전쟁터에서는 뭐든지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로젠시아의 말대로 그녀를 싫어하는 카딜이지만 전쟁터라는
분위기에 위로를 받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테크닉은 좋으냐?”
“예?”
“그래?”
26 화
카딜이 예상했던 바로 그곳에서 동대륙 연합군과 마주쳤다. 카딜은 작전했던대로 부하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지금은 후퇴하는 것이 목적이라 카딜은 뒤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후퇴하라! 모두 후퇴하라!”
처음부터 강한 힘으로 진격하여 빠른시일내에 아클란의 황궁까지 돌격하자는 그의 작전에 동대륙 제국의
왕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갈라스의 작전은 먹혀 들어갔다. 워낙 빠르게 최전방 병영을 정복한 덕분에 아클란 제국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인 나무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진격하라!”
그러나 곧바로 그들은 함정에 빠져들었다. 협곡을 지나는 순간 언덕위에서 매복하고 있던 붉은 기사단이
괴성을 지르며 언덕길을 달려 내려온 것이다.
“퇴각로를 확보하라!”
그의 지시에 군사들은 다시 방향을 돌렸다. 도망쳤던 군사들이 카딜의 명에 뒤로 돌았다.
이번에는 카딜이 맨 앞에서 진두지휘했다. 그의 뒤로 타냐가 따랐고 바훌이 타냐를 보호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시간은 벌써 꽤 되었고 군사들은 지쳤다. 상대편은 더 심하게 지쳤기에 이대로 진격하고 싶지만 카딜은 두
번째 계획을 위해 멈추었다.
오늘 오후에 저들이 차지한 최전방 병영을 되찾을 것이다. 동대륙연합군도 병영으로 들어가서 마지막
싸움을 위해 준비중이었다.
“타냐,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타냐.”
카딜은 애가 타서 타냐의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그러나 타냐는 울음소리조차
내지않고 그저 굵은 눈물만 폭포수처럼 흘리고 있었다.
기절한 타냐를 자신의 장포를 깔아 눕힌 카딜은 눈물로 얼룩진 타냐의 볼을 연신 쓰다듬으며 혀를 찼다.
바훌의 말에 카딜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카딜의 맥빠진 모습에 바훌은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목례를
한 후 막사를 나갔다.
1 시간 후 타냐는 깨어났다.
“네?”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
“아뇨,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한번 믿어볼게.”
“감사합니다.”
타냐의 감사하다는 말에 카딜이 아직도 안심이 안되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안았다.
“네, 카딜님.”
한편 로젠시아는 아직도 멀었느냐며 재촉중이었다.
“방금 최전방 병영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나이브상류를 가로지른 르에타브릿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대로 가시면 카딜님께서 최전방을 되찾았을 때 그곳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공주님.”
“좀 더 서둘러봐.”
카딜은 병영의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군사들을 보았지만 그대로 진격하라 명령을 내렸다.
게이트를 지키던 군사들은 카딜의 말발굽아래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수비군들을 모두 처치한 카딜이
굳게 닫힌 게이트의 위쪽을 올려다 보았다.
“게이트를 열어라! 그렇게 부하들 뒤에 숨어서 있을거라면 애초에 전쟁을 시작하지 말았어야하는 것
아니냐! 전쟁은 너희들이 먼저 시작했다! 지금 네가 있는 그곳은 북대륙의 병영이다! 나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고 이곳을 되찾을 것이다! 그렇게 숨어서 비겁자로 죽을 것이냐 아니면 나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겠느냐! 네 선택에 삶은 없다, 오로지 죽는 길밖에! 그러니 명예롭게 죽을 것인지 비굴하게 죽을
것인지만 선택하라!”
“나는 동대륙 최강왕국 고블린 제국의 갈라스 달타뉴 황자다! 네 말대로 전쟁은 우리가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아클란제국의 황제 알테베르가 우리를 북대륙의 속국으로 만들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소금산을
통째로 삼키려 한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합군을 만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우리의 고귀한
재산을 빼앗길 수 없으니까!”
“뭐?”
“우리 동대륙은 평화를 원하지만 북대륙에서 우리를 속국으로 만들려한다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걸고 싸우다 죽겠다!”
“무슨 오해가 있는거 아닌가! 난 그런 소문을 들은적도 없다! 우리의 황제가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나한테 언질을 주었을것이다!”
“뭐라고?”
카딜은 황제의 간악한 얼굴을 떠올렸다. 사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동대륙의 소금산을 가지고
싶어한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카딜이 황제의 간악함에 치를 떨고 있는 와중에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동대륙 연합군이 카딜의 붉은
기사단쪽으로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카딜은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밀려드는 적군과 싸워야만 했다. 싸움은 카딜의 말대로 아까보다 더 처절했다.
동대륙 연합군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임했다. 그 모습에 카딜은 심정이 착찹해졌다.
27 화
이미 천여명이 죽은 상태였다.
두 지휘관이 서로를 보며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에 바훌이 나팔수에게 지시했고 나팔수가 동작을 멈추라는
뜻의 나팔을 불었다.
“원하던 바입니다!”
카딜의 말에 갈라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형경기장을 만들라!”
“하시죠!”
그래서 갈라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했다. 어차피 이 싸움에서 패자는 자신이 될 것을
알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절대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하를 챙기는 마음이 카딜에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카딜도 자신의 부하를 잃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좋소! 약속하겠소!”
카딜의 대답을 들은 갈라스는 참담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러자 동대륙 연합군 군사들이 모두
그에게 경의를 표하듯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카딜은 살짝 감명받았다. 자신의 붉은 기사단만 그런줄 알았더니 동대륙의 연합군도 대장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다. 그것도 갈라스의 제국인 고블린 군사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제국들의 군사들도
있는데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 감명을 받은 것이다.
“더 부탁할건 없습니까?”
카딜의 물음에 갈라스는 고개를 젖고 칼을 높이 들었다. 카딜은 갈라스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칼을 뽑아 들었다.
쉬익! 챙!
“왜 봐주시는겁니까?”
“!”
“정말 황제폐하께서 소금산을 차지하기 위해 동대륙을 속국으로 만든다고 했습니까? 그 정보는 어디서
들었습니까?”
“이제 끝을 냅시다.”
크흑!
갈라스가 카딜의 칼에 맞은채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카딜이 레저렉션 소드를
확 잡아 빼자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그는 앉은채 숨을 거두었다.
‘살려야 해!’
“뭐라고?”
조용한 가운데 타냐의 목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다. 사람들이 타냐를 쳐다보았고 타냐는 카딜에게 달려왔다.
“타냐, 왜그래?”
“뭐?”
“혹시 당신은…..”
“나를 알아요?”
“그러죠.”
카딜은 타냐와 바훌을 지휘관이 머무는 내실로 들어오게 했다. 갈라스는 그의 호위무사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죽어가는 갈라스를 살려준 타냐를 본 갈라스의 호위무사 에이단이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카딜의 말에 갈라스가 인사를 하고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타냐는 허기를 채우기 보다는 아까 갈라스가
했던말이 궁금해서 미칠지경이었다.
카딜도 타냐를 말리지 않았다. 타냐못지 않게 그도 그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바훌은 아직도 아까
타냐가 했던 그 성스러운 일이 믿어지지 않아 넋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그분은 지금 어디 계세요?”
갈라스의 침울한 표정과 말에 타냐의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28 화
“지금 보병들이 도착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만 나누실게 아니라 뭔가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지금 이 모습을 황제폐하가 알게된다면 적군과 내통하는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예, 대장군님.”
“상황정리를 해야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갈라스 황자의 말에 의하면 황제폐하께서 동대륙을 속국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예?”
“더 이상 무고한 백성들을 죽게 만들지 않게 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황자도 알다시피 알테베르
황제는 포악한 성품을 가졌습니다. 동대륙의 가장 큰 제국 고블린의 황자를 볼모로 잡고 소금산의 소금을
대가없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돈을 주고 사왔지만 지금부터는 공짜라는 겁니다.”
“………”
갈라스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강자의 말에 반박하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황제폐하에게 진군을 멈춘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황제가 원하는 것이 소금산이라고 했으니 일단
소금산의 소금을 무한정 가져다 쓴다는 것과 당신을 볼모로 잡는 것으로 이 전쟁을 종식할까 합니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갈라스의 표정과 말투에 타냐는 안타까웠다. 강국이 약국을 공격하는 것은 사자가
사슴을 잡아 먹는것과 다를바 없었다.
“그런데 저를 볼모로 잡아 가시고 소금산의 소금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알테베르 황제가
만족할지가 더 궁금합니다. 그 자는 분명 이번 기회를 잡아 동대륙을 자신의 발아래 두려고 할텐데
말입니다.”
“그건 내게 맡겨 주시죠.”
“예.”
자리에서 일어선 갈라스가 타냐를 쳐다보았다. 타냐도 갈라스를 쳐다보자 그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제 이름은 타냐예요, 그리고 인명은 제천이라고 했습니다. 황자님께서 살아나신 것도 하늘의 뜻이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인사를 한 갈라스가 자신의 군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방금전 카딜과 협의사항을
알려주며 급하게 서신을 작성해서 호위무사 중 한명에게 건네주었다.
갈라스의 명을 받은 호위무사는 급하게 말등에 올라탔다. 갈라스는 나머지 군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에게
명령했다.
정찰내용을 보고받은 바훌이 카딜에게 와서 그 사실을 보고했다. 카딜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스에게 한명의 호위무사를 허락한 카딜은 그 두 사람을 병영내에 있는 맨 끝방에 머물게 했다.
“안그래도 오늘 이 상황을 전하고 이곳 최전방 병영에 주둔군을 보내달라 서신을 쓰려했다. 주둔군이
올때까지는 우리가 이곳을 지켜야 한다. 황제께 서신을 띄울 것이다 준비하라 바훌.”
“예, 대장군님.”
***
“하아, 카딜님….”
그날밤 타냐는 어김없이 카딜에게 안겨들었다. 카딜은 이제 이런 상황이 익숙해져 기다렸다는 듯 타냐를
안았다. 타냐는 일어나려는 카딜을 밀어서 눕히고는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이미 단단하게 부푼 카딜의
성기기둥을 음부로 비벼대며 그에게 키스를 해왔다.
뻐근한 감각과 함께 치솟는 쾌감은 카딜의 이성을 단번에 잡아 먹었다. 굵은 성기가 타냐의 좁은 질구를
벌리며 안으로 쑥 밀려 들었다.
그런데 왜 힘을 쓰고나면 이렇게 안달을 내는 걸까? 카딜은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타냐가 빠르게 몸을 흔드는 바람에 급격하게 쾌감이 솟구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제 검붉은 성기를 삼킨 타냐의 음부에서 하얀 거품이 일었다.
“하아…흐으읍, 타냐…하아.”
“아, 예, 공주님.”
보초는 분대장에게 알렸고 분대장은 빠르게 움직여 카딜의 방 앞에서 노크를 했다.
똑똑똑!
하지만 방금전 뜨거운 정사를 한시간 동안이나 나누었던 카딜은 타냐를 품에 안고 완전히 잠에 빠진
상태였다.
“대장군님! 대장군님!”
분대장이 방문을 더 세게 두드리며 카딜을 불렀을 때 겨우 카딜이 눈을 떴다. 타냐는 여전히 실신한 듯
깊이 잠든 상태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뭐라고?”
“방금 로젠시아공주님께서 이곳 병영에 도착하셨습니다.”
“내 방에는 왜?”
“그거야 저도 잘은 모르…”
똑똑똑!
분대장의 알림에 카딜은 이를 아드득 갈고는 침상에서 내려섰다. 잠든 타냐에게 이불을 한번 더 덮어준
카딜이 문을 열었다.
29 화
“누구 마음대로 결혼을 합니까? 난 로젠시아님하고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이왕 오셨으니 하루
정도 피로를 푸시고 황궁으로 돌아가십시오.”
“예, 대장군님.”
***
병영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타냐는 제 알몸을 내려다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카딜의 키스자국으로
울긋 불긋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치유의 힘을 사용하고 난 후에는 기력이 떨어져 뭔가로 기력을 다시 체워야 하는데 그것이 카딜과의
성관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카딜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타냐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머리를 동여매고 이마에 띠를
두를 그녀가 붉은 기사단 복장을 입은채 카딜의 방에서 나왔다.
“예?”
***
동대륙 연합군들이 점령한 후에는 저들의 시중을 들었지만 지금은 원래대로 북대륙 병사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주방을 오갔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과 무기 정리를 하는 사람들 등등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갑자기 토디엘 생각이 나서 타냐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예전처럼 걱정은 심하게 하지 않았다.
제 안의 또 다른 타냐가 토디엘은 무사하다는 말때문이었다. 이상하게 그 말에 신뢰가 갔다.
“안녕하세요!”
“안녕, 꼬마야.”
“이게 신기해?”
“네.”
사무엘은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타냐의 검집을 만졌다. 그때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를 부르자
사무엘은 얼른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실례합니다.”
멀어지는 사무엘을 쳐다보고 있는데 로젠시아의 시녀이자 경호원인 베리타가 타냐앞에 나타났다.
“누구?”
“저를요?”
“저한테요?”
“그렇습니다, 어서 가시죠.”
베리타가 타냐를 재촉하자 타냐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녀를 따라갔다. 병영의 뒷문을 빠져나와 가까이
보이는 언덕을 오르던 타냐가 멈추었다.
“아, 그렇군요.”
타냐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여겼지만 그냥 베리타를 따랐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언덕을 올라왔더니 병영건물이 발 아래 보였다.
“시끄럽다, 넌 죽어줘야겠어.”
베리타는 단검을 고쳐 잡고는 아까보다 더 빠르게 타냐에게 달려 들었다. 타냐는 그녀의 눈빛과 단검의
속도로 보아 저를 죽이려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검을 빼들었다.
“타냐 못봤느냐?”
“안에 안계십니까?”
“아, 예, 대장군님.”
바훌은 어제 갈라스를 살리던 타냐의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직접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모습이었다.
“타냐, 거기 있어?”
카딜은 화장실 밖에서 안쪽을 보며 크게 말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다른 사람이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냈다.
화장실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카딜은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설마 아니겠지. 뒷모습이라 타냐인지
절대 알지 못했을텐데….
로젠시아를 떠올린 카딜은 고개를 저었다. 제발 로젠시아가 타냐를 불러들인 것이 아니길 바라며 그는
로젠시아의 숙소로 향했다.
“어머, 대장군님.”
로젠시아의 방을 지키고 섰던 시녀가 카딜을 보고 놀라서 인사를 했다.
“뭐, 뭘요?”
로젠시아가 그렇게 겁없는 소리를 하고 있을때 타냐는 그녀의 시녀 베리타와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검형
4 초식을 익힌 타냐는 베리타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다.
30 화
베리타는 생각보다 뛰어난 타냐의 검술에 흥분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초조해지는 순간 그녀의
자세에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으윽!
“사, 살려줘!”
“왜 날 죽이려고 한거죠?”
“뭐라구요?”
그랬구나. 내가 카딜님의 침실에서 나오는 것을 봤구나. 그런데 어떻게 봤지? 사람을 시켜 엿보고
있었나보네.
의문은 금방 풀렸다.
“좋아요, 그럼 같이 내려가죠.”
타냐는 베리타의 두 손을 등뒤로 돌려 그녀의 이마에 두르고 있던 천으로 묶었다. 베리타는 로젠시아
공주라면 이 상황에서 저를 구해줄 것이라 믿고 타냐가 이끄는대로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뭐?”
바훌의 말에 카딜은 서둘러 병영 앞마당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빙둘러 싼 곳의 중심에 타냐가 로젠시아의
시녀 베리타의 두 손을 묶은채 무릎을 꿇려 놓았다. 늘 알고 있던 타냐가 아닌 듯 신기한 장면이었다.
“타냐, 무슨 일이지!”
“뭐?”
“뭐라고?”
카딜과 로젠시아가 동시에 되물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극명하게 달랐다. 카딜은 로젠시아가 그런 명을
내렸다는 것에 화가 났고 로젠시아는 자신이 그런 짓을 시키지 않은 것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처럼
놀라는 눈빛이었다.
“그 이유가 뭐지?”
‘하지마, 안돼.’
치를 부르르 떨며 심장에 꽂혔던 검을 빼내자 베리타의 가슴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며 그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카딜님, 제발 오해 없으시길바랍니다.”
카딜은 이번기회에 로젠시아가 타냐를 죽이지 못하게 못을 박자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할 생각으로 말했다.
“그럼요,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그렇군요.”
카딜은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없음을 깨닫고 바훌에게 베리타의 시신을 치우라 명했다. 바훌은 부하에게
다시 지시를 내리고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해산시키라고 했다.
“예, 카딜님.”
“왜 말도 없이 나갔어?”
“그랬군, 그래서?”
“하아-, 그래서?”
“그런데 숲이 우거진 곳에 다다르자 갑자기 단검을 빼들고 날 죽이려고 했어요. 얼떨결에 막아내면서 나도
맞서싸웠죠, 그리고 제가 이겼어요. 헤.”
“그렇게 돼버렸지.”
“말렸어?”
“네.”
“아주 잘했네, 타냐의 능력을 공주가 알게되면 황제가 알게 되는건 시간 문제야, 앞으로도 네 안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겠다.”
“입단속은 확실히 해놓았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봤다고 생각할거야, 그 일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었잖아.”
“그리고 타냐.”
“네, 카딜님.”
“그래, 알았다.”
갈라스가 카딜과 타냐를 보고 예를 표했다. 볼모로 잡힌 몸이지만 동대륙 고블린 제국의 황자이니 그
대우를 확실히 해주라 카딜이 명령했었다.
길게 이어진 돌로만든 테이블에 카딜과 갈라스가 나란히 앉았다. 카딜은 타냐를 옆에 앉히려다 로젠시아
공주가 들어오자 일단 타냐를 좀 멀리 앉게 했다. 그러자 로젠시아가 카딜의 곁에 앉았다.
“아, 네, 갈라스황자님.”
두 사람이 웃는 얼굴로 대화하며 식사를 하는 모습에 카딜의 심기가 뒤틀렸다. 로젠시아는 아무것도
모른채 카딜의 곁에 딱 붙어 앉아 교태스럽게 웃으며 샴페인을 권했다. 카딜은 타냐와 갈라스를 보다가
로젠시아가 샴페인잔을 채워주자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31 화
“그냥 죽여버리고 동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그랬어요? 어차피 저들은 우리 북대륙의 상대가
안되잖아요.”
로젠시아의 말에 카딜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로젠시아가 그제야 자신이
너무 못된년으로 보였을까 싶어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아, 네.”
로젠시아는 멀어지는 카딜을 아쉬운 눈빛으로 쳐다보다 갈라스에게 갑질을 하고 싶어 카딜의 자리로 왔다.
“네? 아, 네, 그렇습니다.”
“네?”
“인사가 늦었습니다. 고블린 제국의 황자 갈라스 달타뉴 로젠시아 드 파비앙드 공주님을 뵈옵니다.”
갈라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로젠시아의 손등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이
인사는 상대를 존경한다는 뜻이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공주의 말대로 저는 북대륙의 볼모인걸요, 이렇게 황자 대접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잠시 나갔다가 들어온 카딜은 타냐와 갈라스가 머리를 가까이 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두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음식 맛이 어떠냐?”
“예?”
“아, 맛있습니다.”
“맛있긴, 맛없잖아.”
“아, 뭐, 먹을만 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바훌이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할 때 카딜의 한 손은 뒤로 뻗었다. 그리고 타냐의 허벅지를
잡았다.
“헐.”
아침에 카딜의 방에서 나오는 타냐를 죽이라 명령했던 로젠시아를 생각하면 아무리 막무가내인 카딜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일이면 가지 않을까요?”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
“네 능력을 한번 보겠다.”
“너 지금 개기냐?”
그렇게 어디 하나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카딜은 타냐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타냐는 한손으로
포크질을 하다가 내려놓고 다시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써는 대단한 기술을 선보이며 카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로젠시아는 등뒤로 돌아간 카딜의 팔을 눈치채고 갈라스의 등뒤로 시선을 보냈다. 타냐의 허리에
감긴 카딜의 팔을 본 로젠시아는 포크로 스테이크를 콱 찍었다.
그녀가 포크로 고기를 난도질하자 당황한 시녀가 얼른 다른 고기를 구하러 주방으로 내달렸다.
***
“잠자던 눈동자가 눈을 뜨면 잠자던 의식이 깨어나고 하늘과 땅을 뒤집을 기운이 땅에서부터 흘러나와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미친, 이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라더냐?”
“글쎄요, 저는…”
“예, 황제폐하.”
“그래? 그럼 로젠시아는?”
“그렇군.”
‘카딜을 제 남자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네. 쯧. 테크닉이 좋다고 했으니 카딜이 고자가 아니고서야
로젠시아를 마다하진 않았겠지.’
이미 동대륙 연합군을 동쪽 경계선까지 밀어넣고 동대륙의 최강국인 고블린 제국의 황자를 볼모로 잡고
있으니 동대륙이 제 손안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하하하하하.”
***
“네?”
“갈라스는 적국의 황자야, 그리고 남자야, 널 보는 갈라스의 눈빛이 영 마음에 안들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너무 다정하게 식사를 하더군.”
“속이 상하셨어요?”
“그렇다면.”
“위로해 줄게요.”
“허, 이젠 도발까지?”
카딜은 날로 발전하는 타냐의 색기가 흐뭇한 듯 약간은 장난스럽게 타냐의 두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읏. 아파요.”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낸 카딜은 급하게 바지부터 벗겨 내리고는 타냐의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내렸다.
32 화
“카딜님.”
“응?”
“정말요?”
“좋은 생각이예요.”
잠시 후.
갈라스가 방으로 들어오자 타냐는 준비했던 차를 내왔다. 돌로 만들어진 조금은 투박해보이는 테이블위에
조심스럽게 차주전자를 내려놓은 타냐가 카딜의 옆자리에 앉았다.
찻물이 좀 더 우러나게 하기 위해 그대로 둔채 카딜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카딜이 갈라스를 이곳에
오라고 한 연유를 설명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
“!”
“그게 뭔데요?”
타냐가 조급함을 누르지 못하고 다그치듯 물었다가 얼른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갈라스는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갈라스의 부친이 고블린제국의 황제가 되기전 어느 귀족가의 티파티에 초대되었던 그의 어머니가 돌정도
지난 갈라스를 무척 잘 돌보는 것을 보고 돈을 주고 사들였다고 했다. 마침 유모를 구하던 중이었고 그
할머니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워낙 말이 많은 귀족가라 말을 못하는
하녀나 일꾼들은 오히려 귀족가에 인기가 있었다고 했다. 비밀스러운 일이 밖으로 새나갈 일이 없기
때문에.
타냐와 카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갈라스가 이제야 생각이 난 듯 살짝 좁아진 미간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카딜이 갈라스의 말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냐하면 타냐가 능력을 사용하면 그
유모할머니처럼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불현 듯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게 뭡니까?”
“아, 그게….”
“네, 그럴게요.”
갈라스가 목례를 하고는 물러갔다. 갈라스가 나가고 나자마자 카딜이 타냐를 이끌고 소파에 앉았다.
“그런 것…..같아요.”
“그게 또 왜 그런 쪽으로….”
아직 확실치도 않은데 확신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카딜의 모습에 타냐의 입술이 비죽였다. 그때 카딜이
타냐를 와락 끌어 안았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하는 눈빛으로 타냐가 놀랄 때 카딜이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그날 밤.
동대륙 연합군을 단번에 무찔렀고 고블린 제국의 황자를 볼모로 잡았다는 것에 병사들은 완전히 긴장이
풀린채 새벽까지 마시고 먹고 하다 동이 트기 직전에 겨우 잠이 들었다.
카딜도 타냐를 안고 숙면에 빠져든 시간이었다. 그때 희뿌연 새벽공기를 가르고 하얀색의 물체가 병영쪽
건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화이트고스트였다. 동쪽 최전방 병영인 이곳은 가끔씩 화이트고스트가 나타나곤 했었지만
지난 1 년정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아 저들이 아지트를 옮겼다 생각했었다.
“타냐, 일어나.”
카딜이 조용한 목소리로 타냐를 먼저 깨우고 침상 옆에 세워둔 레저렉션 소드(부활의 검)를 들었다.
“왜 그래요?”
“안그래도 지금 그럴 생각이야.”
“대장군님! 화이트고스트입니다!”
“예!”
바훌이 병영의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내달릴 때 로젠시아의 방쪽에서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 알았어요!”
타냐의 대답을 들은 뒤 카딜은 로젠시아가 머무르는 방쪽으로 달렸다. 눈앞에 나타나는 화이트고스트들은
카딜의 검날에 먼지처럼 산화되었다. 타냐는 겁에 질려 검을 들고 구석쪽에 쪼그리고 앉았다.
33 화
“공주님!”
문을 박차고 들어온 갈라스가 시녀의 피와살을 빨아들이는 화이트고스트의 중심을 가르며 달려 들었다.
파삿!
덜컥, 덜컥,
화이트고스트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마물이라고 들었다. 검으로 놈들의 한가운데를 가르면 죽는다고
알고있었기에 타냐는 검형 4 초식을 떠올리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화이트고스트는 타냐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타냐를 가운데 두고 사방을 에워싼
하얀물체들은 갑자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타냐의 방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카딜과 갈라스와 그의 호위무사 에이단도 갑자기 사라진 화이트고스트들로 인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뒤늦게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카딜은 쓴입맛을 다셨다. 벌벌떨며 울어대는데 밀어내지는
못하겠고 미칠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카딜이 저를 밀어내자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 버티는 로젠시아였다. 그러자 카딜이 힘을 더 주어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
“타냐!”
카딜이 자신의 부서진 방문을 보고는 하얗게 질려서 타냐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섰다.
“카딜님!”
카딜을 본 타냐는 기쁨과 반가움에 그에게 달려 들었다. 달려오는 타냐를 품에 안은 카딜은 그녀가 어디
다친곳이 있나 없나부터 살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바훌은? 다친데는 없어? 놈들은 어디로 갔지?”
“이상했어요.”
“뭐가?”
“뭐?”
“마치 나하고는 적의가 없다는 듯 보였어요. 나는 잔뜩 긴장하고 싸울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
“네. 참 이상하죠?”
“!”
“괜찮으십니까?”
“제가요?”
“예, 대장군님.”
“갈라스 황자께서요?”
“그런데 질투했어요?”
“뭐?”
“네, 좋아요.”
***
황궁까지는 하루가 걸릴 것이다. 나이브강 상류를 가르는 르에타브릿지만 지나면 그곳에 또 하나의 병영이
있기에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황금색에 전설의 새라는 알바트로스가 그려진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병영 안으로 들어선 카딜은
곧장 황제를 알현했다.
로젠시아가 보낸 전령매의 다리에 묶여있던 편지에 의하면 저 여자 때문에 카딜이 저와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고 되어 있었다. 미모가 보통이 아니니 황제의 여인으로 삼으라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그때 사냥대회에서 보았을때도 어딘지 모르게 끌렸던 타냐였기에 황제의 관심은 폭주했다. 특히 카딜이
미치게 좋아한다는 말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래, 나도 그대의 공을 치하하려 이렇게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내 명령은 동대륙을 공격하라고 했는데
황자만 볼모로 잡고 진격은 하지 않았더군.”
그제야 카딜이 로젠시아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황제에게 뭔가를 알려주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34 화
황제가 타냐의 이름을 부르자 타냐는 놀라서 한걸음 앞으로 나와서 예를 표했다.
“이리가까이 와라.”
“!”
“!”
“!”
“뭐하는거지? 내 말이 안들려?”
그 상황을 즐기는 사람은 오로지 로젠시아뿐이었다. 속으로 우리 사촌오빠 잘한다를 외치는 가운데 타냐는
쭈삣거리며 황제 앞에 가까이왔다.
“참으십시오.”
아드득!
알테베르는 타냐의 머리밴드를 풀고 묶여있던 머리도 풀었다. 출렁하고 떨어지는 황금빛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비단결같이 고왔다.
30 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지만 하나같이 지겨운 상황에 카딜의 여자를 탐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욕정이
뒷머리를 타고 올라왔다.
“!”
“폐하! 아클란대제국의 지존이신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타냐는 폐하의 것입니다, 안그런가?”
황제의 명령에 시종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타냐는 시종들에 의해 끌려갔고 카딜은 어금니가 깨지도록 세게
물었다.
시종들과 함께 나가며 타냐가 카딜과 눈을 맞추었다. 카딜이 타냐에게 다가오려 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절대 가볍게 행동하지 말라는 듯 타냐는 두 눈에 힘을 주고 카딜의 분노를 눌렀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타냐를 되찾아올 방법을 연구하면 된다는 바훌의 속삭임에 카딜은 벌벌떨리는 몸을
겨우 다스리고 있었다.
그 결심을 하는 순간 카딜의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성을 찾아야 한다. 역사에 여자하나 때문에 제
황제를 배신한 천하에 둘도 없는 어리석은 역적이라고 기록이 된다고 하더라도 절대 타냐를 황제에게
바치지 않을 것이다.
***
“안으로 들이라.”
“예, 폐하.”
타냐는 그의 말대로 가까이 왔다. 그러자 알테베르가 타냐의 허리에 팔을 두르려했다. 하지만 타냐는
뒤로 살짝 물러서며 말했다.
“걱정되는 것이라니?”
“그래서?”
“흠흠, 뭐 그럴 수도 있지.”
타냐가 강단있게 고개를 흔들자 알테베르는 타냐의 또다른 매력을 찾아냈다. 지금까지는 모든 여자들이
그가 시키는대로만 했다. 그런데 타냐는 감히 자신의 명을 어겨가며 충고를 하려한다.
“황궁으로 돌아가시어 절 첩으로 삼으시고 취하시기바랍니다. 그래야 황제가 카딜의 여자를 갈취했다는
소문은 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말도 안되는 소문이 내일이면 당장 황궁을 시작으로 전국에 퍼질 것입니다. 그러니 며칠만
참으셨다가 절차를 거치시고 절 가지십시오.”
타냐는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억울한 일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날 가지려는 그 순간 나는 네
목젖을 딸 것이다. 흥!
“벌써 가려고?”
“부르셨사옵니까 폐하.”
“그래, 넌 당장 나가서 소문을 좀 퍼뜨려라.”
“예?”
“예?”
“예, 폐하.”
***
“카딜님!”
“그게 무슨 소리지?”
바훌의 말에 카딜은 한숨을 훅 내쉬고는 마음을 다스렸다. 타냐의 일이라 카딜이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봐.”
“나가긴 어딜 나갑니까?”
“뭐?”
바훌이 그의 검을 가슴에 품은채 구석에 있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카딜이 끙 앓는 소리를 하고는
그도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타냐가 없이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 짜증은 나지만 황제의 침실에 타냐가
없다는 것에 위로를 삼기로 했다.
***
카딜은 타냐가 머무는 황제의 시종들의 거처로 왔다. 모두들 잠이들 시간이라 시종들도 모두 곯아떨어졌다.
“읍!”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아무도 안봐.”
“예쁘네.”
“우리 도망갈까?”
35 화
“카딜님 답지 않아요.”
“나다운게 뭔데?”
“나도 겁나요, 하지만 도망치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건데요? 평생 도망만 칠건가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생활이 과연 행복할까요?”
타냐의 푸른 눈동자가 너무 반짝여 눈이 부시다 생각한 카딜이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딜은 솔직한 속마음을 이야기 하긴 했지만 도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널 그만큼 아끼고
사랑한다라는 뜻으로 한 말을 진짜 도망갈 찌질이로 취급하다니.
“실망했어요 사실.”
“뭐?”
“그럴일은 없을거야.”
“정말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특별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때는 타냐 안의 타냐가 뭔가
아이디어라도 주면 좋겠는데 잠잠하기만 하다.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어.”
“뭔데요?”
“!”
“황궁으로 돌아가면 평민들과 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번 보세요, 날마다 올라가는 세금을 내지
못해 하루에도 수백명이 굶어죽어가고 있어요, 귀족들은 매일같이 고급진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티를 여는데 말이죠. 그들이 먹다 남아서 버리는 그 음식들만으로도 수백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어요.”
“계속해봐.”
타냐는 점점 더 열을 올렸다.
타냐의 놀라운 언변에 카딜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카딜은 나라를 지키는데만 집중하느라 타냐같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북대륙을 오늘의 북대륙으로 이끄는데 10 년이 걸렸다. 카딜은 그 10 년동안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백성을 위한 길이라며 그의 청춘을 받쳤는데 정작 그가 지키려했던
나라는 썩어가고 있었다.
알테베르 황제의 폭정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타냐를 만나기전까지는 천민들의 고초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냐, 다 맞는 말이야.”
“흐음, 그렇다고 봐야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말이야. 방금든 생각인데 네가 황제를 하면
정치를 참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도 안돼요, 저 같이 근본도 모르는 천민이 어떻게 황제가 돼요, 카딜님이라면 모를까?”
***
다음날 아침.
황제일행은 아침일찍부터 황궁으로 향했다. 타냐를 후첩으로 만들 생각에 아침조차 간단하게 먹고 출발한
것이다. 카딜은 로젠시아를 태운 마차를 경호하며 상황을 살폈다. 그 안에 타냐가 타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러십니까 공주님.”
“넌 이 상황에 잠이 오니?”
“제가요?”
로젠시아는 시원하지만 괜히 트집을 잡았다. 사실 어깨도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타냐를 괴롭히고
싶을 뿐이었다.
“시원하십니까?”
“무슨 일이지?”
“아, 그래? 안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잘됐네. 마차를 너무 오래탔더니 머리가 아파서 신선한 공기라도
쐬야겠어, 타냐, 네가 내 시중들어.”
“아, 예.”
“카딜님, 손 좀 잡아 주세요.”
은근히 카딜의 손을 잡아보겠다는 흑심이 있었지만 카딜은 손대신 검의 손잡이를 내주었다. 로젠시아는
입술을 비죽여가며 어쩔 수 없이 카딜이 내민 검의 손잡이를 잡고 내려섰다.
타냐가 내리려 할때는 카딜이 얼른 말에서 내려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제 대놓고 그녀를 연인처럼
대하는 그였다.
“예, 공주님.”
타냐가 로젠시아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본 카딜의 눈동자에 비장한 뭔가가 담겼다.
시종들과 시녀들은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였고 병사들은 사방에 흩어져 경계를 강화했다.
황제와 로젠시아 공주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명분도 없이 그런일을 저지르면 단두대에
오른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명분없이 황위를 찬탈하고 황제가 되면 대신들과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법도 법이라고 지키는 것처럼 폭군도 황제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알테베르는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유일한 사람이라 황제가 된 것이다. 그가 황제의 자질이 있든 없든 그것은 두 번 째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어젯밤 이후로 카딜은 진심으로 황제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후대
황제로 타냐를 생각하고 있는 그였다. 그녀가 만약 샤마란족의 후예라면 충분히 이나라의 황제가 될
자격이 있다. 원래 북대륙의 주인이 황제를 하는 것이니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36 화
“카딜!”
젠장.
“부르셨습니까 폐하.”
“예, 폐하.”
로젠시아는 카딜이 제쪽으로 오자 또 타냐를 챙기러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심기가 뒤틀렸다.
아니꼽지만 저 꼴을 계속 봐야한다.
‘하아, 이러다 올케언니로 모셔야 하는건 아니겠지?’
만약 타냐가 후첩이 된다면 로젠시아 공주보다 높은 위치가 된다. 그녀가 천민출신이라고 해도 서열상
그런 것이다. 로젠시아는 황제의 친 여동생도 아니었다.
이러다 제가 친 덫에 걸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로젠시아의 표정이 초조하게 변했다. 가만히 겪어보니
타냐 이것도 보통내기가 아닌데 말이다.
황제의 점심식사 테이블은 황궁에서 못지않게 고급진 음식들로 그득했다. 식재료들을 황궁에서 가져와
쿨링 마법스톤으로 보관했다가 요리를 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카딜님도 같이 드시죠.”
로젠시아의 말에 카딜이 기다렸다는 듯 타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로젠시아가 얼른 카딜의 옆자리에
앉았다.
“감사해요 카딜님.”
좋아서 입이 헤벌쭉 벌어지던 로젠시아는 타냐에게도 스테이크를 건네주자 이내 눈꼬리를 사납게 올렸다.
뒤늦게 타냐를 챙기기 위한 카딜의 꼼수였다는 것을 깨달은 로젠시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다짐했다.
언젠가는 타냐를 없애겠다고.
그녀의 검술실력이 제법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꽤 실력있는 자객을 보내겠다는 꼼꼼한 계획까지
세워본다.
***
그날 밤.
황제일행은 황궁에 도착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황제도 잠을 자기위해 거처인 수이젤궁으로 갔다.
“글쎄.”
카딜의 고민은 물어볼 것도 없이 황제를 죽이는 것일 터였다. 그래서 함부로 더 묻지 못하는 바훌이었다.
“너도 그만 쉬어.”
“그래.”
카딜이 검을 챙겨들고 나가자 바훌은 쉴수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바훌이 카딜의 뒤를 따랐다.
카딜은 예상했던대로 후첩들이 머무는 궁으로 향했다. 이 밤중에 그쪽으로 가는 이유는 당연히 타냐를
불러내기 위함일터였다. 바훌은 황제가 알까 싶어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정확하게 날아간 돌맹이가 탁 소리를 내고 떨어지자 창문이 열렸다. 카딜을 본 타냐가 걱정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바훌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앓는 소리를 내고는 얼떨결에 보초를 섰다.
“카딜님, 이렇게 무모하게 읍.”
황제의 예비후첩을 이렇게 탐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카딜은
망설임이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여자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읏.
타냐의 잇새로 절로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녀의 젖가슴을 모조리 먹어치우겠다는 듯 카딜은 타냐의 등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휘어진 등때문인지 그녀의 젖가슴이 한층 높게 고개를 내밀었다.
카딜은 이제 젖가슴을 놓아주고 아래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신음소리가 높아질까 싶어 타냐는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 막았다. 하지만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나오지 않게 할 수는 없었다.
“으으응, 아으응.”
카딜의 혀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쓸어 올리자 타냐의 허리가 뒤틀리고 그녀의 두 다리가 허공에서 덜덜
떨렸다. 작은 알갱이를 집중적으로 쓸어 올리고 혀끝으로 톡톡 치자 간지러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소음순과 대음순을 번갈아 가며 빨아 당기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불빛은 없고 달빛만 있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정염에 들뜬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카딜이 사랑한다 말하며 그녀의 질속으로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이미 애액으로 젖어든 그녀의 음부는
힘겹게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벌럼대며 그의 성기를 빨아들였다.
카딜은 타냐의 입술을 삼키듯 빨아 들이고는 허리를 천천히 돌렸다. 사방을 마사지 하듯 돌려가며 아래로
누르자 타냐는 그만 절정에 도달해버렸다.
끙끙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질내벽이 미친 듯 조여들자 카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허리를 힘차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잠자리 날개같은 잠옷은 이제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어 타냐의 몸 여기저기 휘감겨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묘하게 카딜을 흥분시켰다.
“하아, 카딜님….아흐흣.”
손가락 사이로 튀어오른 유두를 조이며 혀로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쓸어 올리자 타냐는 침대 시트를 끌어
당겨 제 입안에 재갈처럼 물었다.
37 화
“들어와요.”
“어머 그런가요?”
타냐는 영혼 1%도 들어가지 않은 표정과 말투로 감탄하는척 했다. 하녀들은 저희들보다 못한 천민이었던
타냐가 황제의 서른한번째 후첩이 되는 것이 못마땅한지 썩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
“어젯밤 꿈이 심상치 않았습ㄴ다. 폐하, 아무래도 금서를 다시 밀실에 넣어둬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아침일찍부터 폐하를 뵈러 왔습니다.”
“그래, 말해봐.”
어젯밤 꿈도 분명 예지몽이었다.
“하늘이 두 조각이 났고 그 틈으로 하얀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빛은 점점 커져서 세상을 뒤덮었고 어둠의
끝에 황제폐하께서 위태롭게 서계셨습니다.”
“그래서?”
“죽었어?”
“송구하옵니다만 그렇사옵니다.”
“길몽이네.”
“예?”
“꿈은 반대라고 했지 아마? 그리고 꿈에서 죽으면 길몽이라고 다들 좋아하잖아. 좋은 꿈이네.”
“예? 아, 예, 폐하.”
다이닝룸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다가 가끔씩 특별하게 대신들과 조찬회의가 있을 때나 아니면 귀빈들이
방문했을때 사용하는 곳이었다.
“황제폐하드십니다!”
스탈드의 목소리에 다이닝룸에 도착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아리샤가 허둥지둥 드비스를 챙겨서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에 황후 메리엔의 입꼬리가 살짝 실룩였다. 옆에
있던 에블린 또한 고소하다는 듯 몰래 비웃었다.
이런자리까지 아들을 내세워서 눈길을 끌려는 아리샤가 안되보이기 까지 했다.
황후의 부친인 데자르 백작을 선두로 4 대 가문에서 온 부부들이 알테베르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로젠시아가 허겁지겁 다이닝 룸으로 들어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긴 여행은
처음해보는지라 로젠시아는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예, 폐하.”
알테베르의 말에 타냐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던지라 이미 모두들 그녀가 이번에
새로 맞을 후첩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카딜을 차지하기 위한 로젠시아의 계략인걸 모르는 황후와 후첩들은 벌써부터 타냐에게 보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연히 적의에 가득찬 눈빛이다.
타냐는 일단 인사를 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는 아직도 생각중이었다. 타냐가 이렇게
흘러가는대로 두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늘 자신이 위기에 처할때마다 또는 뭔가 필요할때마다 그녀의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를 타냐는 기다리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뭔가 위험이 닥칠때는 반드시 그녀의 안에서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 믿고 이렇게 겁도 없이 일이 흘러가는대로 두고 보는 것이다.
비숍은 타냐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지 모르게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지만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을 할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금서를 밀실에서 빼내와서 그렇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비숍은 그저 타냐를 보며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타냐의 후첩신고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무도 반박을 하거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간언도 올리지
않았다. 황후는 물론 이 자리에 참석한 후첩들은 타냐의 운명을 잘 안다는 듯 소 닦보듯 했다. 아니
조금은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들도 타냐처럼 황제의 눈에 띄어 후첩이 되었지만 막상 후첩이 되고난 후 황제는 흥미를 잃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황제는 스탈드에게 후첩식을 준비하라 일렀다. 4 대가문에 보고를 했기에 더욱 더 타냐와
잠자리를 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타냐를 제 여자로 만드는 절차를 마친 황제는 카딜에게 볼모로 잡혀온 갈라스를 내실로 불어오라고
했다.
“!”
이건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카딜은 이미 황제가 저렇게 나올 것을 알고 있기에 속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갈라스는 방금전의 태연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눈동자를 무섭게 빛내며 따졌다.
“그래? 그럼 할 수 없군.”
“!”
갈라스가 놀라서 황제를 쳐다보았을 때 알테베르가 말했다.
“내가 그래도 넓은 아량으로 동대륙만은 자유제국으로 남겨둘려 했는데 황자가 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뭐야?”
38 화
“황후마마를 뵈옵니다!”
후첩들이 일제히 메리엔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녀가 착석하기를 기다렸다가 황후가 착석하자 자리에 앉았다.
실크처럼 반들거리는 황금빛 머리카락과 대서양을 품은 듯한 짙푸른 눈동자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황제가 하사한 드레스는 황후의 드레스에도 달아본적 없는 값비싼 보석들이 곳곳에
달려 그 빛을 발했다.
“뭐하시는겁니까?”
“뭐?”
“뭐, 뭐라고?”
“아, 네, 황후마마.”
“내가 널 여기 부른 이유는 모두에게 인사를 시키기 위해서다. 아직 후첩지를 받은건 아니지만 받은거나
마찬가지니까 정식으로 제 소개부터 해보거라.”
“붉은 기사단?”
황제의 후첩이 된 순서대로 서열은 정해져있었다. 하지만 황제와 하룻밤도 지내지 못한 후첩들은 서열이
높아도 황제와 동침한 서열이 낮은 후첩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뭐하는거야? 내 말이 안들려?”
“뭐?”
타냐의 발언에 다른 후첩들도 꽤 놀라는 표정이었다. 저러다 후첩이 된후에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저러나 걱정하는 후첩들도 있었다.
메리엔은 타냐의 말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요즘 아리샤와 에블린 때문에 황후로서의 품위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타냐의 한 마디로 모든 후첩들이 저를 우러러 보듯 쳐다본다.
“황후마마!”
아리샤가 제 분수도 모르고 황후를 나무라듯 큰 소리로 부르자 타냐가 한마디를 했다.
“제 3 후첩 아리샤는 그 입을 다물라!”
황후의 무서운 눈빛에 다른 후첩들까지 어깨를 움찔했다. 현재 하늘 높은줄 모르고 콧대를 쳐들고 다니는
아리샤를 저렇게 묵사발을 만들다니. 괜히 통쾌해져서 옆에 앉은 후첩들과 키득이며 웃었다.
아리샤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타냐를 애초부터 내리누르려 작정을 했다가 되려 당하기만 했다.
“그런가? 하긴 그렇겠군.”
속으로 자신이 왜 며칠전 카딜의 보고에 그리하라고 대답했는지 후회가 됐다. 아무래도 오늘은 2 보
전진을 위한 1 보 후퇴를 해야할 것 같았다.
“갈라스 황자, 내가 좀 심했어, 소금산은 카딜 하에르 대장군이 말한대로 그렇게 하도록 하지.”
“!”
“!”
카딜과 갈라스가 동시에 놀라서 두 눈을 떴다. 황제가 이렇게 빨리 첫날밤을 치루겠다 결정할줄 몰랐던
것이다. 갈라스는 그동안 지내오면서 카딜과 타냐가 연인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황제에게 받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기에 갈라스는 달리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었다.
“아직 후첩지를 내리시지 않으신걸로 압니다, 대신들이 이 일로 황실의 규칙을 깨뜨렸다고 트집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날짜는 신전의 대제사장을 통해 길일을 잡으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저 돌아이 황제는 소유욕을 부리면 부릴수록 빼앗으려할 것이다. 그래서 카딜은 최대한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대신들도 그렇고 대제사장 비숍도 그렇고 느려터져서 언제가 될지 예측을 못하겠단 말이지.”
“알았다, 그럼 그대들의 말대로 대제사장 비숍과 대신들과 의논하여 황실의 규칙을 따라 타냐와 첫날밤을
가지겠다.”
“현명하신 판단이시옵니다.”
39 화
“부르셨사옵니까 황제폐하.”
“예?”
“제 31 번째 후첩을 들이는 연회라고 알리고 초대장을 보내도록 하라, 만약 참석하지 않는 대공이 있다면
내가 꽤 실망할 것이라는 뜻도 확실하게 전하고.”
“잠시만요!”
“그냥 동대륙과 동맹을 맺은 기념으로 황제폐하께서 연회를 베푼다고 하시면서 초대장을 보내시는게
어떨런지요.”
“저도 카딜 하에르 대장군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런의미로 초대를 한다면 참으로 뜻깊은 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알테베르는 타냐를 가지는데 점점 시간이 걸리자 안달이 났는지 의자에서 일어섰다. 스탈드는 다른
시종에게 황제를 모시라 지시하고 그는 황궁사신들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서둘렀다.
카딜의 말에 알테베르는 뭔가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알았다 대답했다. 두 남자가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에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지만 알테베르는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마음속에는 타냐를 품을 생각만
간절했다.
“이상하단 말이야.”
황제는 카딜이 타냐를 제 후첩으로 들이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뭔가가 있다 생각이
들자 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티도를 들라하라.”
“아, 예, 폐하!”
얼른 대답을 한 부시종장은 황급하게 내실을 나가서 황실전용 전령매가 있는 곳으로 갔다. 황제의 부름을
알리는 징표를 전령매를 부리는 남자에게 주었더니 그가 그것을 매의 발에 싸매주었다. 하늘 높이 매를
띄우자 전령매는 티도가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
그날 밤.
카딜은 또 다시 타냐가 머무는 후첩궁으로 향했다. 연회가 열리는 날까지 황궁에서 머물라는 지시를
받았던 그는 속으로 기뻐했다. 안그래도 타냐를 두고 저택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였다.
톡!
“카딜님, 제발 조심 좀.”
“보초나 잘 서.”
또 밤을 새게 생겼다 싶은 바훌의 입꼬리가 비죽였다. 그러나 카딜은 타냐를 안을 생각만 간절하여 서둘러
창문을 넘었다.
하지만 검은 물체는 밤고양이가 아닌 사람이었다. 시커먼 복장이 어디서 눈에 익다 생각한 바훌은 끝까지
놈의 뒤를 쫓았다.
“무슨 일이지?”
“뭐?”
바훌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후첩궁의 사방이 밝아졌다. 이미 황제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떡해요 카딜님.”
이런, 제길.
카딜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이놈도 묶어라!”
바훌을 가리키자 황실 호위부대가 바훌에게도 달려 들었다. 소란스러움에 후첩들이 밖으로 우르르 나왔다.
타냐가 카딜과 내통하다 포박당하는 모습에 기함을 했지만 대부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처음부터 보통 끼가 많지 않았다부터 시작하여 이남자 저남자 꿰어내는 발칙한 년이라며 타냐를 욕하기
시작했다.
“예 폐하!”
철커덩 하고 철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지하감옥에 울려 퍼졌다. 지하감옥은 사형을 당하기 직전의 죄인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황제가 카딜을 이곳에 가두었다는 뜻은 그를 사형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카딜이 왜 잡혀왔는지 알아보는건 어렵지 않았다. 함께 잡혀온 타냐가 31 번째 후첩이 될거라는 소문은
이미 황궁에 다 퍼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래 카딜의 여자였다는 것도 대부분 아는 사실이었다.
확실하게 죄를 묻는다면 황제가 카딜의 여자를 빼앗은 죄였다. 하지만 그가 황제였기에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던 것이다.
“물한모금도 주지 말도록!”
“예, 폐하!”
“모두 물러가있으라.”
“너는 소식을 듣고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감히 내 후첩이 될 여자와 내통했다. 그것도 내 황궁안에서
말이다!”
“너, 너, 지금 말 다했어!”
“아직 다 안했어요! 이런일이 벌어지면 카딜님은 살려두고 타냐만 죽이면 되잖아요! 후첩이 삼십명이나
있는데 타냐를 굳이 후첩으로 삼을 필요가 있어요? 찾아보면 타냐보다 예쁘고 몸매좋은 여자가
널렸을텐데?”
“하아-이젠 마지막 남은 핏줄인 나까지 감옥에 가두시려구요! 마음대로 하세요! 황좌를 차지하려고 그
많은 형제자매를 다 죽였는데 나하나 못 죽일 리가 없겠죠!”
로젠시아는 큰 대자로 팔다리를 뻗고는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어이가 없어진 알테베르는 스탈드를
불렀다.
“이거 당장 좀 치워!”
“아, 예, 폐하!”
40 화
갈라스는 로젠시아가 자신을 찾아온 것에 놀랐다. 안그래도 갈라스도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하면 카딜과
제 생명의 은인인 타냐를 구할까 고민중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로젠시아가 찾아와서 카딜과 타냐를 구할 방안을 제시했다. 자신이 황제에게 찾아가
시간을 끌며 주위를 흐트릴테니 카딜과 타냐를 구해서 황궁을 빠져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녀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지난 며칠동안 보아왔던 것을 토대로 말하자면 로젠시아는 천하에 쓸모없는
여자였다.
“말을 준비해놓았습니다.”
트로이의 안내로 지하감옥을 빠져나온 카딜과 타냐, 그리고 바훌은 황궁의 뒷문으로 빠져나와 트로이가
미리 데려온 그의 백마에 올라 타냐에게 손을 뻗었다. 타냐가 그의 손을 잡자 힘껏 끌어 당겨 제 앞에
앉혔다. 나머지 말에는 바훌이 올랐다.
정말 확 죽여버려야 하나?
***
웅성웅성
“이 나라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황제를 죽이고 대의를 이루려고 한다! 백성이 편히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 천민과 평민이 고통받지 않고 귀족만 배불리는 세상이 아닌 인간이라면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제국을 만들것이다! 내 뜻에 따를자는 남고 그렇지 않은자는 지금 당장
자리를 떠나도 좋다!”
“예! 대장군!”
황제는 자신밖에 모르고 제 호화스러운 생활을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거머리같은 놈이란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또 한명의 목청높은 소리에 모두들 함성을 지르며 검을 높이 쳐들었다. 횃불이 밝혀진 카딜의 저택
훈련장은 당장이라도 황궁으로 쳐들어갈 기세로 함성을 지르는 붉은 기사단원들로 인해 지축이 울릴
정도였다.
“!”
너무 엄청난 일이라 며칠이 지났을때는 모두들 뭔가 잘못 봤겠지 했었다.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겠는가 말이다. 검술에 뛰어난 카딜 대장군이 아마도 갈라스 황자를 죽지 않을만큼 찌르지 않았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가던 중이었다.
‘넌, 그러니까 다시말해서 난 샤마란족 족장의 딸이야, 네가 나고 내가 너니까 지금부터는 나라고 할게.’
‘처음에는 마법석이 무한정으로 쏟아지는 광산을 찾아 왔었어, 그때는 그들이 그렇게 변할지 모르고
증조할아버지께서 우리가 사는 제이단 숲만 건들지 않으면 자유롭게 광산을 이용하라고 하셨어, 그런데
욕심이 많은 당시 황제가 약속을 어기고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제이단 숲을 불지르고 우리 샤마란족을 전부
죽였어, 그리고 북대륙을 집어 삼켰지.’
“응.”
“반대하는 자가 있느냐!”
그때 바훌이 나섰다.
바훌은 고개를 더 깊이 숙이고 타냐의 말을 기다렸다. 느닷없이 여황제가 되어달라는 말에 타냐는 어떻게
하느냐며 제 안의 타냐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 안의 타냐는 아까와 달리 잠잠하기만 했다.
이런 경우는 타냐가 대답을 해야만 한다. 그녀가 위험에 처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면 목소리가 들렸기에
지금상황은 받아들이라는 뜻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대답했다.
41 화
부모님의 유언과도 같았던 부탁을 지키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낫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두려움같은건 애초에 없었다.
“사실 나도 말을 안했었는데요…..”
“응? 무슨 말?”
“그날 당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전율과 함께 그동안 채찍에 맞았던 상처며
노동하느라 여기저기 찍혔던 상처들이 싹 나았었어요. 그리고 거칠었던 머리카락과 피부까지 윤기로
반짝였어요.”
“뭐야, 그런 말이 어딨어요?”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그들을 진정시킨 카딜은 바훌에게 전쟁준비를 철저하게 하라 지시를 내리고는
타냐와 함께 황후의 아버지인 데자르백작을 찾아갔다.
자정이 다되어 가는 시간임에도 카딜은 4 대가문의 수장을 만나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다.
4 대가문중에 가장 강하다는 황후의 아버지 데자르부터 찾아온 카딜이었다. 데자르 백작만 제 편으로
돌아서도 이 대의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카딜을 본 데자르는 뭔가 일이 있구나를 짐작했다. 하지만 그가 황제를 바꾸려는 역모를
꾀하기 위함이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 변방에 적군이 쳐들어왔나 생각하며 카딜을 집안으로 들였는데 카딜의 입에서는 상상도 못할 말이
나왔다.
“감히 황후의 아버지인 내 앞에서 혁명을 일으킨다고 하다니, 하에르 대장군 지금 제 정신인가? 그리고
저 여인은 분명 황제의 서른한번째 후첩인데 어찌 하에르 대장군과 함께 있는것이오? 아니, 상관없소, 더
들을말도 할 말도 없으니까 그만 나가주시오, 내 그동안 대장군의 공을 생각하여 방금 들었던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해줄테니.”
“!”
데자르 백작은 카딜이 이렇게까지 나올줄 예상못했다가 너무 놀라서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벙긋거렸다.
“무, 무슨…소리인가?”
“할 수 없군요.”
그때 타냐가 나섰다.
“!”
“다, 당신 혹시….?”
“아, 아니 어떻게….그럴수가…샤마란족은….”
“선대 황제가 멸족시킨 샤마란족의 후예가 맞습니다. 방금 그녀의 능력을 직접 경험했지 않습니까, 믿기
어려우시면 한번 더 찔러드릴 수있습니다.”
데자르의 말에 카딜이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러자 데자르가 일어서서 제 상처를 살피며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말했다.
“누가 아픕니까?”
뜻하지 않게 타냐덕분에 데자르가 카딜의 편으로 돌아섰다. 타냐가 그녀의 치유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목숨을 걸고 역모를 반대했을 그였다. 그런 인격이었다는 것이 오히려 카딜은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가 했는데 제 3 후첩과 제 8 후첩인 렐리츠가문과 발키리가문은 카딜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두 가문의 수장과 그 가족들은 포박하여 지하실에 가둘 수 밖에 없었다.
나머지 백작들은 2 천정도만 보유하고 있었고 그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해서 카딜이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뭐라구요?”
타냐의 말에 카딜은 그런가? 하고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타냐가 곰곰이 생각했던 그녀의
생각을 말했다.
“카딜님.”
“응, 왜?”
“금서?”
42 화
“그래?”
타냐의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앞날을 예측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아는 카딜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도 넘치고 리더십도 생겨난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카딜에게는 섹시미로
다가와서 문제이긴 했다.
카딜은 설마 아니겠지 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타냐의 눈빛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녀의 정체를
밝히자고 할 것 같아 카딜은 벌써부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샤마란족의 후예라고 밝히는 거예요.”
“하지마, 너무 위험해.”
“……….”
“왜 말이 없어?”
“화 좀 가라앉으면 말하려구요.”
“뭐?”
타냐는 어느새 카딜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주물러대는 기술까지 익혔다. 그녀가 입을 꼭 다물자
카딜이 얼른 부드러운 음성으로 설득했다.
“잘 들어봐요, 카딜님, 황제는 그나마 나한테는 털끝을 바짝세우지 않아요, 내가 나서야 황제의 경계심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구요, 그리고 내가 샤마란족이라고 하면 두말 않고 날 제 앞에 데려다 놓으려
할거예요, 정 내가 걱정되면 내가 황제와 만날 때 카딜님은 지하감옥을 나와서 내실밖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되겠네요, 어차피 재판에는 나가지 않을거잖아요.”
타냐의 아이디어가 좋지만 카딜은 일부러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타냐가 카딜의 두 손을 잡더니
그의 두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했다.
“왜요?”
“네.”
“대의를 위해 그건 뒤로 미뤄줘요.”
“뭔데?”
“뭐? 그게 정말이야?”
“네, 그래서 화이트고스트들이 황제의 군대만 공격했던거라고 했어요. 샤마란족의 원수라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응, 그랬었지.”
“응, 그랬지.”
“그래?”
“왜 그런 눈으로 봐요?”
“당신이 점점 위대해보여서, 이러다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남편이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되고.”
“읏, 설마 또 다른 타냐?”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묻는 카딜에게 타냐가 고개를 가로로 젓고는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확
겹쳐들었다. 카딜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는 그녀의 키스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타냐의
두 다리가 카딜의 허리에 착 감겼다.
이렇게 이대로 그녀를 안고 저택 침실로 들어가서 뒹굴고 싶었지만 카딜은 이성을 챙겼다.
***
다음날 아침.
“들라.”
그의 대답에 스탈드는 문을 연채로 고했다.
스탈드가 대답하기전에 트로이가 모습을 드러내며 고했다. 덩치가 보통 사람의 두배는 거뜬히 넘는
트로이가 머리를 조아리자 알테베르가 물었다.
“그게….제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서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장난이 아닌 것 같아서 이렇게
황제폐하께 달려 왔습니다.”
“지하감옥에 잡혀 들어온 타냐라는 여자가 자신이 샤마란족장의 후예라고 했습니다. 황제폐하께 고하면
분명 무슨 분부가 있을것이라면서요.”
“뭐?”
“그것이 진짜더냐?”
“이런, 어쩐지 묘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했더니, 타냐가 바로 샤마란의 후예였어. 여봐라, 당장 타냐를
내 앞에 데리고 오너라.”
알테베르의 명령에 트로이가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물러갔다. 알테베르는 드디어 뭔가를 잡았다는
표정으로 스탈드에게 지시했다.
“예, 폐하!”
43 화
같은 시간.
“황후마마.”
“하지만….”
메리엔의 근엄한 눈빛에 지하감옥 병사는 얼른 알았다 대답하고 그녀를 안내했다. 이미 카딜의 혁명에
동참하기로했고 황후의 가문인 부친 데자르백작도 합세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기에 다른 의심은
없었다.
“황후마마, 여긴 어떻게….”
타냐가 먼저 황후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병사가 철문을 열어주자 황후는 안으로 들어섰다. 옆방에
감금된 카딜도 철창사이로 황후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하긴요.”
“예, 준비되었습니다.”
타냐가 결의에 찬 두 눈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조금전 힘을 써서그런지 타냐가 비틀했다.
“타냐!”
“왜그러십니까 타냐님?”
트로이가 놀라서 그녀를 부축하자 타냐가 갑자기 카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트로이의 손을 뿌리치고
카딜에게 다가갔다.
“하아, 키스해줘요.”
카딜의 지시에 트로이와 다른 병사들은 지체없이 대답하고 그곳을 물러났다. 병사들이 모두 물러나고
마지막으로 트로이가 나가면서 말했다.
“예?”
“명령이다, 어서.”
“아, 예, 알겠습니다.”
바훌이 돌아서서 뒤 귀를 손으로 막았다. 그러자 카딜은 제게 엉겨드는 타냐와 키스를 하며 그녀의 옷을
벗겨내렸다.
타냐의 몽롱한 시선은 카딜의 말을 알아듣는지 마는지 알 수 없었다. 카딜은 애액으로 흠뻑젖은 타냐의
음부를 더듬다 제 페니스를 쥐고 구멍을 찾아 밀어 넣었다.
“하아…”
초점이 완전히 사라진 눈동자의 타냐가 신음을 흘리자 카딜이 얼른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30 분이라는
시간은 두 사람의 욕정의 불을 끄트리는데 부족한 시간이라 카딜은 평소와 달리 급하게 움직였다.
빠르게 허리를 튕기던 카딜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의 몸속에 자리한 그의 페니스가 자잘하게
떨어대며 사정했다.
그의 정액이 타냐의 에너지원인지 타냐의 눈동자에 생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좀 부족한 듯 타냐는 다시
카딜의 품으로 파고 들며 그를 재촉했다.
“나도 이걸로는 부족해 타냐, 그러니 사람 미치게 색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아도 돼.”
카딜은 다시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결합된 곳에서 애액과 정액이 뒤어 두 사람의 사타구니를 적셨다.
“이제 된거야?”
“믿지 않겠지만 타냐는 치유의 힘을 쓰고나면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에너지는 내
사랑으로 채워진다.”
“헐.”
“……….”
“진짜라니까? 내가 미쳤다고 이런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타냐는 미쳤다고 이 급박한 상황에 나한테
키스해달라고 하겠어?”
“뭐?”
“들어와.”
“설마 지금 주무시는겁니까?”
“아냐, 잠시 기절했어.”
“예? 아니 왜요?”
트로이의 궁금증 가득한 눈빛을 본 카딜은 설명을 하려다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카딜의 말에 트로이가 바훌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바훌이 어깨를 으쓱해보이기만 했다. 트로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카딜이 타냐를 깨웠다.
“또 제가…”
“그래, 네가 내게 안겨들었어.”
“서, 설마 여기서요?”
“그래, 여기서.”
트로이의 말에 타냐가 얼른 일어섰다. 축축한 아랫도리를 느끼며 타냐는 서둘러 트로이를 따라 나섰다.
“조심해 타냐.”
“걱정말아요 카딜님.”
금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내실에 들어가면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그것만 믿고 이렇게 위험한
곳에 직접 가는 것이다.
***
“어서 들이라!”
“예, 폐하!”
타냐는 황제의 음험한 눈빛을 느끼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동시에 황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뒤쪽에 있는 협탁을 훑었다.
저렇게 눈앞에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가 금서가 밀실에서 나와서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비숍이었다.
금서가 밀실에 보관되어 있을때는 밀실을 둘러싼 결계 때문에 타냐가 힘을 쓰면 비숍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금서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황제 때문에 금서는 자유를 찾았고 비숍은 이후 하얀빛이
생겨나도 인지하지 못하게된 것이었다.
비숍은 아포칼립스소드를 든 황제를 흥분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타냐를 겨누었던 칼날이
갑자기 비숍에게로 향했다.
타냐는 고심했다. 대제사장을 살리고 자신이 샤마란족 후예라고 밝혔을 때 황제의 반응이 어떨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의 증조부가 그랬듯이 황제도 자신을 죽일까? 당연히 그럴것이라는데 의심이 없는
타냐였다.
그렇다면 비숍이 죽도록 두고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면? 그래도 황제는 자신을 죽일 터였다.
‘금서를 손에 넣어야해.’
“사, 살려줘…제발…살려…으윽!”
비숍이 타냐를 애원하는 눈빛으로 올려다 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피를 흘리면 출혈과다로 죽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타냐는 어쩔 수 없이 비숍에게 다가갔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트로이가 황제의 시선이 타냐에게 있는 틈을 타서 천천히 옆으로 이동했다.
아까 황제의 내실로 오면서 타냐가 했던 말을 떠올린 트로이는 아까부터 그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아직은 섣불리 행동할 수 없어서 이러는 것이다. 데자르백작의 사병들은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고
동대륙 연합군은 내일이 되어야 도착한다.
카딜이 트로이를 포함한 모두에게 지령을 내린 상태였다. 내일이 D 데이라고, 내일까지는 황제의 군단과
싸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고.
비숍은 이미 의식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타냐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창조주라도 만난 듯 반가운
눈빛으로 타냐의 손을 잡아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녀를 제게 가까이 오게 했다.
타냐는 눈빛으로 대답을 하고는 비숍을 반듯하게 눕혔다. 피가 심하게 흘러 타냐의 발밑이 축축할
정도였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비숍과 시선을 맞춘 타냐가 정신을 집중하자 그녀의 손에서 하얀 빛이 생겨났다.
하얀빛은 타냐의 몸에서 비숍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비숍의 상처는 눈깜짝할 사이에 아물었다.
멀쩡해진 비숍이 벌떡 일어나더니 타냐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뭐하는 짓이냐!”
“뭘 깨우쳤다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요.”
“좋아, 말해봐.”
“어서 말하라니까?”
“그건 아마도 은유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타냐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부활과 다를바가 없지 않습니까? 방금전 저도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마찬가지구요.”
“그래?”
“예, 폐하.”
“그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타냐를 죽이면 새 세상이 탄생한다는 뜻인데, 그게 나한테 해로운 것인지 날
새로운 영웅으로 만드는 것인지 어떻게 알지?”
“예?”
“그렇잖아,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바로 나일수도 있잖아, 지금보다 더 멋진 세상이 펼쳐진다는 뜻이면
내가 망설일 이유가 없지않겠어?”
황제의 덜떨어진 말에 비숍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뭐하러 금서에 그렇게 서놓았겠는가
말이다. 위험하고 안 좋으니 그것을 하지 말라고 써놓았을것인데.
“예, 폐하!”
“어서 가자!”
타냐도 얼른 트로이가 가자는대로 움직였다. 왜냐하면 그가 품속에 금서를 숨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알테베르는 검을 내려 놓고는 혀를 쯧쯧 찼다. 하긴 지하감옥에 가두면 절대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비숍이 금서의 내용을 좀 더 확실하게 연구하면된다.
“비숍.”
“예, 폐하.”
“안그래도 그럴 참이었습니다.”
비숍의 말이 못마땅했지만 알테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숍이 물러가고 난 후 알테베르는 티도를 불렀다.
“오호, 그래?”
“얼마나 걸린다더냐?”
비숍이 분명 족장의 딸에게만 능력이 전해진다는 것을 들었지만 황제는 그걸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
티도는 토디엘을 찾아서 카딜의 저택으로 돌아오고 있던 무리를 기습해서 토디엘을 쉽게 손에 넣었던
것이다.
45 화
어느새 지하감옥은 혁명집단의 아지트로 변해있었다. 카딜과 바훌, 그리고 지하감옥을 지키던 병사들까지
타냐가 있는 곳으로 모여 들었다.
“타냐, 얼른 받아.”
카딜의 재촉에 타냐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떨리는 손을 뻗었다. 바르르 떠는 손이 금서를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금서에 적혀있던 글들이 허공으로 모두 솟아 올랐다. 하얀빛과 함께 떠오른 글들이 타냐의
정수리로 쑥쑥 빨려 들어갔다.
“타냐, 타냐!”
카딜이 잠든 것처럼 누워있는 타냐를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타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카딜님…..”
“꿈을 꾸었어요.”
“그 짧은 시간에?”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타냐의 말에 카딜은 신기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타냐가 카딜에게 꿈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래?”
카딜은 아직도 이 신비한 현상을 받아들이기 힘든 눈빛으로 물었다. 타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내 부활의 검으로?”
하얀 괴물로 살아왔던 정령들은 아름다운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그 힘도 되찾아 제이단 숲을 100 년전 그
아름답고 신비한 숲으로 되돌렸다.
100 년전처럼 숲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치유의 능력이 생겨났고 풀한포기, 돌멩이 하나까지 치유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족장의 후예, 그것도 딸에게만 있는 치유의 능력으로는 세상을 다 치유할 수 없어 치유의 정령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제이단 숲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정령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제이단 숲에 악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네.”
타냐의 대답에 카딜은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검으로 황제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
카딜이 품고 있던 목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타냐.”
“네.”
뭔가 중요한 질문이 있다는 눈빛으로 카딜이 타냐를 부르자 타냐도 신중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대답했다.
“아마도?”
***
“들어와.”
알테베르는 기대감 가득찬 눈빛으로 내실 입구를 쳐다보았다. 문이 열리고 티도가 토디엘을 데리고
들어왔다.
전쟁노예로 팔려갔다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파란색의 눈동자 빼고는 온몸이 오물과 때로 뒤덮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예, 폐하.”
티도는 다시 토디엘을 데리고 내실을 나갔다. 토디엘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동안 악취가 남아 있어
알테베르는 시종들에게 창문을 모두 열고 향수를 뿌리라 지시했다.
어찌나 묵은때가 많은지 토디엘을 씻기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데자르백작이 이끄는 사병들은
황궁과 아주 가까운 곳에 매복하여 카딜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듯 점심 시간이 지났고 황제는 점심 식사후 대신들과 잡다한 정사를 논한 후 낮잠에 빠져들었다.
오후 4 시.
알테베르는 다시 토디엘과 마주했다. 깨끗이 씻기고 옷까지 갈아 입혔더니 아이의 온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거지.
황제의 부름에 토디엘은 두려움에 떨리는 마음을 겨우 다잡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감히 황제를 눈앞에서 본다는 것자체가 토디엘에게는 무서운 일이었다. 누나가 말하길 황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한자라고 했다.
“배고프지?”
“먹고싶지?”
“감사합니다.”
티도와 시종장 스탈드는 쓰러진 토디엘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아직 어린아이를 볼모로 잡은 황제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예, 폐하.”
토디엘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다면 유용가치가 크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감언이설로 아이를 세뇌시켜서 제
곁에 두면 자신은 병에 들지 않고 불노장생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카딜의 여자라서 아깝지만 죽여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토디엘이 있으니 아까워할 필요도 없이
죽여도 될 것 같다.
“흐흐흐.”
46 화
스르륵.
대신전에서 철야기도를 드리던 비숍은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저절로 눈이 떠졌다.
뒤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에 고개를 돌린 비숍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입마저 쩍
벌렸다.
그 다음으로 비숍의 부친이 대제사장이 되었고 그 또한 금서를 철저하게 신전에 가두어 두는데 큰 힘을
보탰다.
***
비슷한 시간.
카딜과 타냐는 트로이의 배려로 그의 숙소로 옮겼다. 지하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귀하신 분을 잠들게 할
수 없다며 자신의 숙소를 내준 것이다.
슥.
“하응.”
그녀의 신음을 시작으로 카딜의 손길이 빨라졌다. 타냐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친 카딜이 상체를 일으켰다.
여유롭던 손길은 어디로 가고 타냐의 옷을 벗겨내는 손길이 거칠면서도 빨라졌다.
그의 단단한 몸과 타냐의 부드러운 살결이 맞닿자 마치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감각에 저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카딜은 타냐에게 사랑한다 말하며 그녀의 온몸을 마사지하듯 쓸었다. 단단하게 솟아오른 페니스는 어느새
타냐의 비부를 비벼대며 프리컴을 흘려보냈다.
벌려진 타냐의 두 다리는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카딜의 페니스기둥이 타냐의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타냐의 사랑고백을 들은 카딜은 움켜쥐었던 젖가슴 하나를 제 입안으로 빨아 들였다. 영혼까지 빨려들 것
같은 강한 흡입력에 타냐의 음부는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혀끝으로 유두를 잘근대던 카딜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쪽쪽대는 소리를 내며 타냐의 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추며 아래로 내려가더니 어느새 타냐의 음부에
도착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혀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핥기시작하자 타냐는 허리를 부르르
떨어대며 앓는 소리를 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내일을 위해 타냐는 에너지를 비축하고 싶었다. 충분히 비축된 치유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만 내일 누군가 다친다면 쉽게 치료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허리를 들썩이며 카딜이 더 많이 빨아주기를 몸으로 원하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음순은 심장이라도 달린
듯 저혼자 펄떡이며 경련했다.
창으로 들어온 달빛에 타냐의 젖가슴 정점에 달린 유두가 들썩이는 흉곽으로 인해 춤을 추는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아, 타냐….”
찔걱대는 소리와 탁탁 살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해질 때 카딜은 타냐의 두 다리를 제 어깨에 걸쳤다.
질내벽의 자잘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카딜의 잇새로 욕설이 삐져나왔다. 너무 미치게 좋아 절로 욕이
튀어나온 것이다.
너무 좋아도 눈물이 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카딜은 그녀의 눈물을 혀로 핥아주며 허리를 더 강하게
튕겼다.
오래된 나무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빠져든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서로를
원하고 또 원했다.
***
동대륙 연합군을 이끌고 오는 와중에 로젠시아가 걱정된다며 괜찮다면 자신에게 오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내용이 로젠시아에게는 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카딜과의 결혼이 깨지면서 이미 황제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제밤
카딜이 지하감옥을 탈출하도록 도왔다. 그것을 황제가 알게 된다면 그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친 동생도 아니었고 사촌여동생인 그녀를 황제 알테베르가 살려둘 리가 없었다. 카딜과의 정략결혼에
쓰려고 살려 두었었는데 그게 깨졌으니 그녀의 미래가 어떨지는 아무리 머리가 나쁜 로젠시아라고
하더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더 빨리 달릴 수 없어?”
***
“굿모닝 베이비.”
카딜의 아침 인사에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타냐가 배시시 웃었다. 그의 달콤한 모닝키스가 이어졌다.
춥춥!
“네, 알아요.”
“그럼 준비해볼까?”
“네.”
카딜은 타냐와 함께 일어나 그녀의 옷을 챙겨주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는 카딜의 말에 타냐의
심장이 갑자기 두근대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에서 진땀이 솟아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내가 해줄게.”
타냐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딜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다 잘될거야.”
한편 알테베르는 아침부터 4 대 가문에 황제의 칙서를 전하기위해 전령을 보냈다. 오늘이 바로 카딜과
타냐와 바훌을 처형할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비숍을 불러라.”
시종장 스탈드에게 명을 내리자 스탈드가 대답하고 신전으로 향했다. 그 사이 황제는 잠에서 깨어난
토디엘에게 왔다.
내실 한쪽에 마련된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난 토디엘은 온몸에 힘이 없어 황제를 보고도 일어날 수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황제폐하.”
47 화
“아, 정말요?”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토디엘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자꾸 솟아 올랐다. 분명 브릴트라는 사람이
누나가 절 찾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라 오는데 갑자기 습격을 받았고
다른이들은 모두 죽고 자신은 누군가 휘두른 뭔가에 뒷머리를 맞고 기절했었다. 깨어나보니 황궁의
호위무사와 함께 있었다.
“누나가 어떻게….”
“예, 폐하.”
***
“그렇다고 합니다요.”
“이런, 제길.”
제 1 귀족가문 데자르 백작이 카딜과 손을 잡을줄 예상도 못했던 메클렌 백작은 안절부절 못하고 거실을
서성였다.
“너 어서 제 3 가문 렐리츠가문에-”
“소식을 들었습니까?”
“예, 방금 들었습니다.”
“그럼 나도 뜻을 같이 하겠습니다.”
“소식 들었습니까?”
“벌써 들었습니다.”
발키리의 임기응변에 메클렌백작과 렐리츠 백작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뜻을 같이 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
“폐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지?”
“뭐?”
“예?”
금서에 대해서는 비숍과 알테베르만 알고 있었다. 시종장과 부시종장은 황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하지만 알테베르는 자신이 금서를 올려두었던 협탁의 위와 아래, 그리고 서랍까지
하나 하나 열어보며 소리쳤다.
“금서가 사라졌다고!”
카딜이 이렇게 황제를 폐위하기 위해 출동명령을 내렸을 때 알테베르는 뭔가를 느끼고 티도를 불렀다.
황제의 호위부대장인 티도는 호위부대를 황제의 거처 밖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그래, 호위부대는?”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예, 폐하.”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시종들과 시녀들, 그리고 하녀들까지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황제가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인 비숍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었기에 더 불안해
하는 것이었다.
알테베르는 자신의 소파에 앉은채 불안하게 입술을 물어 뜯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서 창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폐하! 반란이옵니다!”
“뭐!”
“뭐야!”
“알았다! 넌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을 막아내야 한다! 시간을 끌어다오! 사병들이 도착하려면 1 시간은
걸릴 것이다!”
“제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티도가 절도 있게 인사를 하고 내실을 나갔다. 알테베르는 급하게 칙서를 썼다. 반란군이 황궁을
습격했으니 모든 사병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와서 황궁과 황제를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예, 폐하!”
48 화
황제의 내실까지 병사들이 쳐들어왔고 알테베르는 몇 안되는 호위무사들과 티도만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데자르백작, 그대의 딸 메리엔이 내 아내이지 않는가, 메클렌 백작, 렐리츠백작, 발키리백작,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게, 그대들의 딸이 내 후첩이란걸 잊었나? 내가 죽으면 그대들의 딸도 단두대에 오를거야,
저 카딜놈이 살려 둘 것 같은가? 그리고 손자 손녀들은 무사할 것 같은가?”
타냐의 말에 알테베르는 달리 할 말이 없었지만 이대로 타냐에게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토디엘!”
“누나!”
“!”
“!”
황제의 비열함에 타냐가 두 주먹을 쥐었다. 손등이 새하얗게 변하도록 힘을 주고 부르르 떨었다.
토디엘이 소리치자 티도가 토디엘의 급소를 쳤다. 이내 푹 쓰러진 토디엘을 본 타냐가 이를 갈며 황제를
노려보았다.
티도의 말에 카딜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매서운 눈빛에 티도는 주춤했다. 카딜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무사로서 모시는 주군을 지키려는 뜻은 백분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를 볼모로 잡아서 협박하다니
무사답지 않구나 티도.”
“말 잘 했다. 난 4 대가문을 협박한적 없다, 황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세금율을 한달에 한번씩 올리고
날마다 굶주려 죽는 사람이 수백 수천이 되어 곳곳에 시체가 쌓여도 내 알바 아니라며 저만 호위호식하는
황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대륙의 원래 주인이었던
샤마란족에게 북대륙을 돌려주려는 것 뿐이다.”
“티도! 카딜 말에 현혹되지 마라! 저놈은 저기 타냐하고 연인사이야! 그래서 저렇게 지껄이는 것이다,
타냐가 여황제가 되든 누가 되든 황위자리는 제것이될테니까!”
“뭐?”
“이제 그만 토디엘을 풀어 주시죠, 더 질척대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테니 말입니다. 폐하 입으로 대
아클란 제국의 황제라면서요, 황제셨던 분이 너무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거 아닙니까? 나 같으면
자결했어도 벌써 했을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토디엘이 중독되었다고 했습니까?”
그때 타냐가 나섰다.
“뭐?”
알테베르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타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타냐가 입꼬리를 늘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테베르가 급하게 자신의 검 아포칼립스 소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티도를 밀어내고 자신이 토디엘을
잡았다. 아이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고 소리 질렀다.
기절한 토디엘이 천천히 눈을 떴다. 타냐는 토디엘과 눈을 맞추고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토디엘이
눈으로 알았다고 하자 타냐가 카딜에게 속삭였다.
타냐의 말에 안도한 카딜이 알테베르에게 한발 다가갔다. 카딜이 가까이 다가오자 알테베르는 토디엘의
목에 칼날을 가져다 댔다.
“토디엘!”
“누나!”
***
타냐는 튜울립 정원을 카딜과 함께 거닐고 있었다. 지금은 봄이 아니라 튤립은 없고 대신 노랗고 하얗고
빨간 국화꽃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당연하죠.”
카딜은 타냐의 시치미에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타냐는 정말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말해주어서
알고는 있었다.
“헤, 눈치챘어요?”
타냐가 배시시 웃으며 그의 팔에 매달리자 카딜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훌은 다정하게 거니는 두 사람의 뒤에서 따라 걸으며 사방을 호위했다. 그런데 점점 거리를 더 두는
그였다. 왜냐하면 지나친 애정행각을 두 눈뜨고 보기가 힘들어서였다.
“폐하!”
“바훌, 오랜만입니다.”
“네? 아, 네, 그랬죠.”
“그래요?”
“그게 뭡니까?”
49 화
100 년전 샤마란족이 몰살당할때 타냐의 할아버지 할머니셨던 족장님부부는 다행히도 목숨을 구했고
시종들과 함께 도망을 쳤다고 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짚시 생활을 하다가 두 분은 객사하셨고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아들마저 험난한 여정을 버티지 못하고 병을 얻어 목숨을 잃었고 딸만 살았다고 한다.
“샤마란족을요?”
“정말요?”
“이러면 어때?”
“어떤?”
“결혼식에요?”
“방?”
***
하얀달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카딜은 혼자서 튤립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분명 밤인데 대낮같이 달빛이
밝다. 카딜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하얀 달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그러자 그 하얀달이 싱긋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갑자기 제 품안으로 쑥 빨려 들어왔다.
깜짝 놀란 카딜이 눈을 떴다.
“꿈?”
“으음, 카딜…”
타냐가 그의 손길을 느끼고 카딜에게 안겨 들었다. 안겨드는 타냐와 키스를 하며 카딜은 그녀의 잠옷을
벗겨냈다.
“하으음, 졸려요.”
타냐가 졸리다며 칭얼댔지만 카딜은 이미 욕정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라서 멈출 수가 없었다. 이불을
걷어낸 카딜이 타냐의 두 다리를 벌렸다.
츄릅대는 소리와 함께 타냐의 옅은 신음도 흘러 나왔다. 자다가 느닷없이 꿈을 꾸었고 잠이깬 카딜이 잠든
타냐를 보자마자 욕정이 분출된 것이다.
“하아, 카딜…”
타냐는 이제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 제 비부를 핥아대는 카딜의 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카딜의 회색빛
머리카락이 타냐의 열 손가락 사이사이에 들어왔다.
츄웁! 추우웁!
“하아, 아흐응.”
도톰한 음순을 손가락을 이용해서 벌린 카딜이 그 안속에 내비친 붉은 속살을 거침없이 핥아 올렸다.
타액으로 흥건하게 젖어든 음부가 어서 뭔가를 달라는 듯 벌름대자 카딜이 상체를 세웠다.
심장박동은 이제 주체할 수 없게 빨라졌다. 모공 하나하나가 열리는 듯한 느낌에 타냐의 몸이 절로
휘어졌다.
“하아, 이제 그만…넣어줘요.”
“사랑해, 타냐.”
“사랑해요, 카딜.”
퍽퍽!
찔걱,찔걱,
***
한달 후.
북대륙은 타냐가 여황제가 되면서 신분제도부터 바뀌었다. 그런데 그 신분제도라는 것이 참으로 특이했다.
군인, 상인, 농민, 건축가, 그리고 의사였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이었다.
이전에 귀족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상인이나 농민에 속했다. 이 다섯가지 신분제도는 실험단계에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유지될 수도 폐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손을 흔들자 하객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타냐와 카딜의 결혼식이 있는 오늘은 황실의 창고를
열어 전 가구에 밀가루 20kg 과 소금 1kg, 그리고 설탕 5kg 이 배급되었다.
“여황제폐하 만세!”
“아클란대제국 만세!”
“샤마란족 만세!”
들려오는 환호성을 들으며 카딜이 타냐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갑자기 타냐가 헛구역질을 했다.
“웁!”
“왜 그래 타냐?”
“우웁!”
“폐하, 감축드립니다.”
그모습에 하객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리다가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해 듣고는 모두들 무릎을 꿇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임신을축하드립니다 폐하!”
“태몽을 꾸었어요?”
“어떤 태몽인데요?”
“하얀 보름달이 내 품에 안겼어,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고 갑자기 당신이 너무 그리워서 막 덮쳤잖아,
기억나?”
“설마 그날 밤에?”
“그래, 맞아 그날 밤.”
타냐는 자는 사람을 깨워서 미친 듯이 욕정을 불태웠던 그날을 떠올리고는 얼굴이 더 심하게 붉어졌다.
“분명할거야.”
50 화
“어서 들라하세요.”
타냐가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로젠시아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타냐와 카딜에게 먼저 예를 표하고
갈라스와 눈빛을 교환했다.
1 시간전.
로젠시아가 여황제가 납시셨다는 알림에 깜짝 놀라서 문을 열고 나와서 인사를 했다. 지난날 카딜과
결혼하고 싶다는 욕심에 타냐에게 함부로 대했던 것이 있어서인지 로젠시아의 태도는 여간 예의바른 것이
아니었다. 샤마란족의 후예, 그것도 족장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난 후 더 타냐에게 경외심을 가지는
그녀였다.
“예, 폐하.”
타냐가 안으로 들어서자 로젠시아는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타냐가 괜찮다고 했지만 어찌 폐하를
아랫자리에 앉게 하느냐며 극구 그녀를 상석으로 안내했다.
“예?”
“이 궁안에 로젠시아 말고는 여자들의 수다를 떨 사람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시녀들과 수다를 떨수도 없고
말이예요.”
“어머, 그렇긴 하겠네요, 호호호, 그런데 전 폐하께서 수다를 좋아하시는줄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좀
놀랍기도 하고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저야 언제든 환영합니다 폐하, 폐하만 괜찮으시다면 전 폐하의
시녀가 되어도 좋습니다.”
“시녀는 무슨, 말도 안돼요.”
로젠시아의 안색이 어둡게 내려앉자 타냐가 벌떡 일어나더니 로젠시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로젠시아가 얼른 일어났다.
“그건….”
“!”
“폐하, 변변치 않지만 드셔보십시오, 이 카모마일차는 심신에 안정감을 주고 숙면도 취하게 해준다고
하네요. 임신하셔서 예민해졌을텐데 주무시기전에 이 차를 한잔씩 마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네?”
“싫어요?”
“저기.”
“어서와요 로젠시아.”
“예?”
이미 그녀와 사랑을 나눈터라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갈라스는 당황한 기색으로 카딜과 타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타냐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채 고개를 끄덕이자 갈라스는 그제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타냐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북대륙의 대제국 아클란의 여황제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사이라고 하면 본국에 계신 아버지도 허락해줄
것이다.
***
“카딜, 이리와요.”
카딜은 임신한 아내가 힘들까봐 치료하는 사람의 숫자를 줄이라고 종용하는 중이었다.
“!”
타냐의 말에 카딜의 눈꼬리가 무섭게 올라갔다. 흠칫 놀란 타냐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그의 눈치를 봤다.
“오늘부터 혼자 자.”
“네?”
“난 백성들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당신과 우리 베이비가 더 중요하니까, 굿나잇.”
“카딜!”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없어, 나하고 같이 자고 싶으면 하루에 치료하는 환자를 다섯명으로 줄여.”
“여덟명.”
“여섯명.”
“일곱명.”
“콜!”
타냐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잠옷을 미리 벗어던지기 시작하자 카딜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두 다리부터
벌렸다.
카딜이 강한 허벅지 근육을 이용해 타냐의 두 다리를 더 벌려 음순이 갈라지게 하고는 붉은 속살이 보이는
곳으로 선단을 밀어 넣었다.
하아, 카딜.
“사랑해요 카딜.”
“그럼 뭘 더 원해요?”
- 본편 끝—
51 화
“이제서야 샤마란족의 진정한 핏줄이 생겼네요, 축하해요 폐하.”
“어머, 제가 말실수를…”
그때마다 타냐는 아무리 정사가 바빠도, 아무리 피곤해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버릇 개 못준다는 말처럼 지난날의 로젠시아 모습이 조금씩 나왔었다.
시녀들에게도 상냥하게 대하던 그녀는 어느순간 타냐의 시녀를 자기 시녀처럼 부리기 시작했고 시종들
또한 자신의 시종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사로이 일을 시키기도 했다.
이래서 인간은 고쳐쓰는게 아닌가 보다 생각하며 조금씩 거리를 둬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이상한
소리를 한 것이다.
로젠시아가 얼른 고개를 끄덕여주길 바라며 타냐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로젠시아가 다행히도
박수까지 치며 타냐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눈치가 빨라진 것도 있지만 요즘 그는 타냐와 카딜을 대하는데 있어서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처럼도 보였다.
“전 이만 가볼게요 폐하.”
“갑자기 검술 연습이라니?”
“이번은 용서해줄게요, 하지만 다시는 토디엘 앞에서 핏줄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하지 말아요.”
“예, 폐하,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만 나가봐요.”
“예?”
토디엘은 조금전 로젠시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안그래도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누나는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았다. 아니, 부모님과도 하나도 닮지 않았다. 어릴때는 그것을 몰랐는데 커가면서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누나가 샤마란족의 핏줄이고 아클란대제국의 여황제가 되면서부터는 그녀와 자신은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꼈다. 그런 와중에 로젠시아가 던진 말은 토디엘의 귀에
팍 꽂혔던 것이다.
“토디엘.”
“!”
“그게….”
로젠시아는 자꾸만 토디엘이 궁금해질만한 표정과 말투로 곤란해 했다. 그 모습에 이미 토디엘은
알아차렸다. 자신이 타냐와 친남매지간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토디엘은 진실을 알고 싶었다.
“나 타냐누나하고 친남매 아니죠? 사실 전에부터 느꼈어요, 하나도 닮지도 않았잖아요, 어쩐지 엄마아빠
하고도 안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랬었구나.”
그리고 타냐가 누구인지 토디엘의 부모님은 누구인지 말해주었다. 잠 자리에서 갈라스 황자를 유혹해
타냐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들은 그녀였다.
***
이불을 확 겉어낸 토디엘이 화를 버럭 냈다. 타냐에게 이렇게 정색하고 대드는 것이 처음이라 타냐가
오히려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누구는 동생 걱정에 점심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안절부절 못해가며 저를
찾아 다녔는데.
“뭐?”
“누나가 언제부터 나 챙겼다고 이래? 누나는 매형하고 비안느하고만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잖아, 나
같은건 그저 귀찮은 존재일뿐이잖아!”
“너 그 입 안 다물어!”
“뭐?”
“뭐?”
“뭐, 뭐라고?”
“뭐라고?”
타냐는 혀가 얼어붙었는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충격에 충격이 더해져 그녀는 입만 벌린채로 토디엘이
방을 나가는 모습을 보기만 했다.
그러다 토디엘이 나간 후에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토디엘의 말대로 밖에는 로젠시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 아닙니다.”
“아마 사춘기라서 예민해져서 그럴겁니다. 그리고 한동안 카딜님도 폐하도 비안느 공주님께 신경쓰느라
토디엘에게 좀 무심했잖아요, 그래서 서운했나봅니다.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마음 풀어주겠습니다.”
로젠시아가 황제에 대한 예를 표하고 마차에 올랐다. 타냐는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기분이 묘했다. 방금전 로젠시아의 눈빛은 그녀가 제게 적대적으로 대할때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디엘 찾았어?”
52 화
카딜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말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지만 타냐는 뭔지 모르게
불안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간간히 로젠시아를 통해서 토디엘은 잘 지내고 있다는 전갈만 받았고 그때 마다 타냐는 편지를 보냈다.
그녀의 편지에 토디엘은 잘 지내고 있다는 답장을 해주었고 타냐는 동생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국정을
돌보느라 동대륙에 방문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황제이기 때문에 특별한 행사가 없이는 다른 나라를 함부로 방문할수도 없었다.
***
“일주일 남았네요.”
오늘도 환자들을 치유해주고 국정을 논하느라 지쳐있던 타냐는 카딜의 품에 쓰러지듯 안기며 말했다.
“당연하죠.”
타냐에게 키스하며 카딜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는 욕조에 앉았다. 두 사람은 가운은 입었지만 이미
물속에서 활짝 벌어져 알몸이나 다름없었다. 타냐와 키스하면서 카딜은 한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쥐었다.
이미 도돌하게 튀어오른 유두를 지분대며 카딜의 혀는 타냐의 혀와 뒤섞었다.
아랫배를 쓸어가며 내려가던 손끝이 타냐의 음핵에 닿았다. 중지로는 음순사이를 아래위로 문질러대면서
엄지로는 음핵을 둥글린다.
마법석 덕분인지 뭉쳐있던 타냐의 어깨 근육들이 풀어졌다. 하지만 카딜이 질속으로 손가락을 찔러넣고
도돌한 내벽근육을 간질이자 타냐의 아랫도리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의 혀를 한껏 빨아당긴 후 카딜은 자잘한 키스를 퍼부으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두툼한
귀두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읏!”
타냐는 고개를 젖히며 날카로운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의 음부는 카딜의 페니스를 반가이 맞이했다.
수압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결합력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제 안을 가득채우는 그의 페니스로 인해 타냐의
파란 눈동자가 정염으로 흐려졌다.
욕조의 물이 사방으로 출렁였다. 출산후 그녀를 배려해 유사섹스만 했던 카딜은 그의 페니스가 타냐의
몸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너무 황홀해 미칠 것 같았다.
“하아, 카딜…사랑해요.”
“사랑해 타냐.”
뇌에서 쥐가 내린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찔한 감각이 뇌를 마비시켰다. 타냐는 카딜이 주는
쾌감을 거부하지 않고 만끽했다.
서로의 흉곽이 함께 들썩인지 한참 후에야 카딜은 타냐를 돌리고 그녀의 두 손을 잡아 욕조를 짚게 했다.
“잠깐만요.”
타냐는 카딜을 밀더니 그를 욕조에 걸터앉게 하고는 여전히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그의 페니스를
그러쥐었다.
“입벌리고 있어봐.”
타냐가 욕조벽을 쥔채 고개를 젖혔다. 터질 듯 부푼 카딜의 페니스는 여지없이 타냐의 극점을 찔러댔고 두
사람은 얼마가지 않아 또 절정에 도달했다.
“카딜.”
“응?”
타냐는 따뜻한 욕조물에 몸을 담근채 카딜의 품에 안겨 그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카딜도 노곤한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딜의 말에 타냐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카딜도 타냐와 시선을 맞추자 타냐가 걱정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왜그래?”
“왜?”
타냐의 말에 카딜은 그제야 그녀가 힘들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아둔함으로 아내가 자신이 가지
능력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자신을 한 대 줘패주고 싶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내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아마도 이건 내가 받아들여야할 숙명일텐데.”
“고마워요 카딜.”
“또 낳으면 더 이쁘겠죠?”
“또?”
타냐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카딜은 속으로 웃었다. 벌써 둘째 생각을 하다니, 출산때의 고통을 3 개월만에
잊은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
타냐의 지시에 바훌은 예를 갖추어 대답하고는 내전을 나갔다. 타냐는 또 남편이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심장이 제 궤도를 벗어났다.
53 화
오랜만에 황실 내전의 공기가 싸늘했다. 갑옷을 챙겨서 입혀주는 타냐의 얼굴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있어 쉽게 그녀의 속내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철컥거리는 갑옷소리만 울려퍼지는 가운데 카딜은 타냐와 시선이라도 맞추려 그녀가 움직이는대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타냐는 카딜과 시선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듯 묵묵히 갑옷고리만 채워주었다.
손목에 덧대어진 가죽패드를 정성스레 동여매주는 타냐를 내려다 보던 카딜이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타냐, 우는거야?”
“아뇨, 눈에 뭐가 들어갔나봐요.”
“알아요.”
그모습에 타냐의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터에 떠나는 남편의 마음이
무거울까 싶어 얼른 눈물을 닦고 애써 환한 미소로 배웅했다.
***
카딜과 타냐가 평화정책을 펼쳐서 4 대륙이 평화롭게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고마움은 무뎌져갔다.
로젠시아의 말에 갈라스가 갑옷을 여미고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원래부터 북대륙에 억하심정이 많았던
갈라스는 로젠시아와 결혼한 후로 그녀의 꼬임에 넘어가서 북대륙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게 되었다.
왕가의 핏줄이기에 자신이 북대륙의 여황제가 되는 것에 명분은 충분했다. 그 명분에 갈라스도 넘어간
것이다.
“아, 사냥가는거야.”
“사냥요?”
“그래.”
“뭐 별로.”
“타냐누나보다 내가 더 좋아?”
친누나로 알았던 사람이 자신의 핏줄이 아니란걸 알았고 그 누나는 남편과 제 아이에게만 정신이 팔렸다.
그런데 로젠시아는 피한방울도 안 섞였지만 타냐보다 더 저를 걱정해주고 챙겨주었다.
“아무리 내가 타냐누나보다 좋아도 그래도 누나인데 그러면 안돼, 준비해, 오랜만에 북대륙 구경이나
가자.”
지도상으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동대륙과 남대륙의 국경보다 고블린 제국의 황궁에서 아클란 대제국
황궁까지의 거리는 배 이상은 짧았다.
카딜도 이미 붉은 기사단을 이끌고 동대륙 국경으로 출발했다는 전갈을 받았기에 로젠시아는 마음놓고
타냐가 있는 아클란 황궁으로 향했다.
이제 곧 카딜과 타냐를 죽이고 아클란의 여황제가 된다는 생각에 로젠시아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
“토디엘!”
토디엘을 본 타냐가 빠르게 다가와 그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토디엘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성의없이 타냐의
포옹을 받아 주었다.
타냐는 카딜이 전쟁터로 떠난후 안그래도 마음이 울적했는데 토디엘이 와주어 너무 반가웠다.
“아니 왜요?”
로젠시아의 웃음소리가 은근히 타냐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타냐는 토디엘을 염두에 두었기에 로젠시아의
말을 웃음으로 넘겼다.
로젠시아의 말에 타냐가 유모를 불렀다. 공주를 안고온 유모가 타냐의 허락을 받아 비안느를 로젠시아에게
건네주었다.
친동생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토디엘은 얼른 잡생각을 떨쳐내고는 아이를 유모에게 건네주더니
일어섰다.
타냐는 아쉬운 눈빛을 했지만 토디엘이 싫어할까봐 붙잡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토디엘이 나가고 나자
로젠시아는 카딜이 이곳에 없음을 재확인차 물었다.
카딜은 갈라스를 의형제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니 카딜은 절대 갈라스를 경계하지 않을테고 그틈을 타서
갈라스는 간단하게 카딜을 죽일 것이다.
“왜 그렇게 혼자 웃어요?”
“제가요?”
동대륙과 남대륙이 국경에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뭐가 그렇게 좋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갈라스 대공도 전쟁터로 달려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편이 걱정도 되지 않는 건가?
“그래요?”
“네, 어릴때부터 자랐던 곳이라 그런지 오면 내 집같고 편하고 좋아요, 그래서 아마 나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나봐요.”
“그렇군요, 하긴 여기서 자랐으니까 그렇겠군요, 그런데 갈라스 대공이 전쟁터로 향했는데 걱정은
안되나봐요?”
“예? 아, 아뇨, 걱정되죠, 안그래도 너무너무 걱정되서 미칠 것 같아요, 그래서 폐하와 이야기라도
나누면 마음이 안정될까 싶어서 온거거든요, 물론 토디엘도 보고싶어 할 것 같기도 해서요.”
방금전과 다르게 금방 표정을 싹 바꾸고는 갈라스를 걱정하는 로젠시아가 이상하게 의심이 가는 타냐였다.
54 화
로젠시아와 다과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시녀장 실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치료하시는군요.”
황궁의가 근무하는 클리닉건물에 도착한 타냐는 오늘 치료받을 일곱명을 순서대로 치유해주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폐하?”
로젠시아는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타냐의 상태를 살폈다. 숨을 색색쉬는 타냐는 로젠시아의 눈에도
확연하게 기운이 없는 것이 보였다.
시녀장 실리아와 원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허브티를 가져왔다. 타냐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실리아가 건네주는 허브티를 마셨다.
“그 입 찢어지고 싶어?”
흡!
***
“카딜 대장군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남대륙 군사들이 줄행랑을 쳤다는게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동대륙과 남대륙이 국경제서 접전을 벌인다며 도움을 청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남대륙군은 없었다.
갈라스의 말에 어딘지 모르게 뿌듯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자신이 붉은 기사단을 이끌고 온다는
소리만으로 줄행랑을 쳤다니.
전쟁을 치룰 생각으로 입고왔던 갑옷을 벗어서 한쪽에 세워놓은 카딜은 갈라스가 준비한 저녁상을 받았다.
“이런 병영에서 이렇게 진수성찬을 차릴 수 있다니, 괜히 나 때문에 군사들 힘들게 족친건 아니겠죠?”
“머루와인이라….좋지.”
“건배!”
“건배!”
두 개의 잔이 부딪히고 두 사람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갈라스는 와인을 입안에 머금고 마시지는 않으면서 카딜이 술을 목너머로 넘기는 것을 유심히 살폈다.
“카하, 좋군요.”
“지금 뭐하는….커읍!”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한다는 말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갈라스 대공이 자신을 독살할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갈라스…하아…하아…은혜를 원수로…하아…크윽!”
카딜의 입에서 또한번 한뭉텅이의 핏덩어리가 쏟아졌다. 갈라스는 카딜이 아직도 죽지 않고 버티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바…후..울.”
바훌을 불러 보며 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카딜은 타냐와 비안느를 떠올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자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로젠시아냐?”
“!”
갈라스가 다시 검을 세워 들었다.
카딜은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타냐와 비안느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나 혼자는 죽을 수 없지.
“하앗!”
갈라스가 카딜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 때 카딜이 털썩 두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자
갈라스의 검날이 갈곳을 잃었다가 다시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그 사이 카딜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제게 달려드는 카딜의 복부를 그었다. 같은 찰라에 갈라스의 칼이 카딜의 심장을 찔렀다.
크헉!
크악!
계획은 독약으로 카딜을 제거하고 그가 쓰러지면 아무일도 없다는 듯 나와 카딜은 피곤해서 이미 잠들었따
말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리고 그길로 황궁으로 내달려 타냐를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도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갈라스는 병영내실의 뒷문으로 엉금엉금 기었다. 뒤쪽으로만 나가면 보초를 서고 있는 자신의 호위무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 타냐는 죽이면된다. 카딜의 안부를 묻는다면 무사하니 아무걱정 말라고 거짓말을 하면 쉽게
넘어가줄 것이다. 카딜도 타냐도 겪어본 바로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스타일이었다.
갈라스가 그렇게 뒷문으로 기어나가는 사이 병영내실의 문이 열렸다. 시커먼 망토를 걸치고 후드모자를 쓴
사람이 들어오더니 쓰러진 카딜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55 화
“타냐야, 일어나거라.”
“……………”
“타냐야, 얼른 일어나거라.”
“으음….누구….시죠?”
타냐는 잠에서 깨어나 제 두 눈앞에 있는 여자를 보며 물었다. 여자는 묘하게 자신과 닮아 있었다.
“엄….마아?”
“엄마….흐흑.”
뒤늦게 타냐는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녀의 델라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타냐를 안아주었다.
아까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에너지가 떨어져서 점심시간에 낮잠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타냐는 델라의
말을 떠올리며 입고있던 옷에 검은 망토만 걸쳤다.
한편 로젠시아는 갈라스에게 전갈을 받았다. 저녁시간에 그에게 독극물을 탄 와인을 먹이고 죽일거라는
계획이 적힌 편지였다. 그 시간에 맞추어 로젠시아도 타냐를 죽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약간의 독극물을 마시게 한 후 에너지가 고갈되어 죽었다 말하면 북대륙을 다스릴 다음 황제는
로젠시아자신 밖에 없다.
***
서너시간을 내달려 도착한 곳은 동대륙과 남대륙이 접전을 벌이는 국경이었다. 말은 카딜이 쓰러진
병영앞에서 멈추었고 타냐는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는 병영을 이상하게 여기며 안으로 들어섰다.
까만 망토에 달린 후드를 쓰고 있던 타냐는 바닥에 쓰러진 카딜을 보고는 기함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카딜! 카딜!”
붉은 기사단과 바훌은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긴장감을 풀어 놓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뜻으로 갈라스가 차려준 만찬을 즐기고 있다가 놀라서 달려왔던 것이다.
카딜은 온몸이 피투성이이지만 상처는 모두 아물었다. 하지만 타냐의 상태가 안좋아 일단 그녀에게
키스부터 했다.
의식을 잃어가던 타냐는 카딜의 키스로 에너지를 얻고 혼곤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 그녀가 고른 숨소리를
내는 것을 확인한 카딜은 타냐를 안아 침상에 눕혔다.
이렇게 또 네 도움으로 살아나는구나. 카딜은 타냐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골라주면서 속으로 고마워했다.
“카딜님!”
“카딜님!”
“갈라스가 날 배신했다.”
“예?”
“이런, 개-”
욕을 삼킨 바훌이 물었다.
“갈라스는요?”
“놈도 많이 다쳤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어서 사방을 뒤져라, 그리고 항복하는 동대륙 군사는
포로로 잡아 두고 저항하는 놈들은 전부 죽인다, 당장 시행해!”
“예, 대장군!”
바훌은 처음부터 동대륙과의 자매관계를 탐탁치 않게 여겼었다. 하지만 윗선에서 하는 일이라 그저 묵묵히
지시에 따르만 했었다. 로젠시아와 갈라스가 결혼할때에도 바훌은 뭔지 모르게 불안했었다. 그런데 결국
일이 터진 것이다.
급하게 옷을 벗긴 카딜은 잠든 타냐에게 키스하며 애액이 나오지 않아 빠듯한 그녀의 안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타액을 충분히 묻혔지만 그래도 잘 들어가지 않아 이리저리 페니스를 비벼대는데 타냐가
눈을 떴다.
이미 몽롱해진 눈빛의 타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급하게 카딜에게 키스해왔다. 페니스를 절반만 끼운채
부드러운 키스가 농밀하게 변해갈 때 타냐의 음부에서 애액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몇 번 추삽질을 하자
찔걱이는 소리와 함께 카딜의 페니스를 타냐의 몸 안으로 완전히 밀려 들어왔다.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었던 단 한번의 섹스로는 부족했다. 한번의 정사로 절반정도 에너지가 차자 타냐가
카딜을 밀었다. 카딜이 몸을 눕히자 타냐가 그의 위로 올라탔다.
여전히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카딜의 페니스 기둥을 잡은 타냐가 제 구멍에 귀두를 끼우고 아래로
체중을 내렸다.
“하아, 타냐….비안느는?”
그녀의 말에 안심한 카딜이 엉덩이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타냐는 카딜과 입을 맞춘채 온몸을 들썩이며
그의 페니스를 오롯이 받아들였다.
갈라스는 병영의 구석진 방에서 치료를 하고 누워있다가 바훌에게 들켜서 잡혀온 것이다.
타냐는 갈라스에게 호칭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엄마가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카딜은 죽었을 것이다.
갈라스는 그 시간에 타냐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길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분명 로젠시아에게 타냐를
붙들고 있으라고 했는데 말이다.
“사실이냐?”
타냐는 각 부서의 장을 불러놓고 이 사실을 공론화 해서 국법으로 다스릴 생각이었다. 그래야 갈라스와
로젠시아를 공개처형하고 동대륙과는 전쟁을 선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핑계가 없어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참으로 좋은 꼬투리를 갈라스와 로젠시아가 만들어준
것이다.
***
이튿날 아침.
로젠시아는 갈라스의 계략이 성공했다는 편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래서 이 어수선함이
카딜의 죽음에 의한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싶었다.
오늘은 그녀가 북대륙의 여황제가 되는 첫날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가져온 드레스 중 가장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 입었다.
화려하지만 우아해 보이는 모습을 원했지만 그저 화려하기만 해서 짜증이 나려던 순간 시녀장이 황급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로젠시아님! 큰일 났습니다!”
“왜 이리 호들갑이니? 경망스럽게, 쯧.”
56 화
“로젠시아님 그게 아니라….지금…..”
“예!”
“야! 조심하지 못해? 이게 얼마짜린줄 알고! 그리고 너희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내가 여황제님과
언니 동생하는 사이라는 걸 잊었어!”
몇 개단 높은 곳에는 5 개 부서의 수장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여황제와 황제의 남편인 카딜의 자리만
공석인채였다.
피칠갑된 갈라스를 본 로젠시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해야 겠다며 그녀는
갈라스를 발로 툭툭 찼다.
“어떻게된거야.”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상황이라 존대고 뭐고 없었다. 갈라스는 로젠시아가 제 발을 툭툭차는 바람에 힘겹게
눈을 떴다. 숨이 넘어가게 생긴 남편을 보고 한다는 첫 소리가 발로 툭툭 차며 어떻게 되었냐니?
“하아…모…목…”
“목이라니? 목이 뭐 어쨌다는 거야?”
황제의 남편이자 아클란 대제국의 황궁 호위대장인 카딜 하에르를 살해하려 했다가 잡혔기에 역모와
진배없는 재판이라 타냐와 카딜은 정복을 차려 입고 있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타냐의 싸늘한 눈빛과 말투에 갈라스는 또 한번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제게 늘 친절하게 대해줬던 타냐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카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검을 빼들 기세로 갈라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카딜을 쳐다보자 그의 곁에 타냐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상냥하고 착하고 예쁘고
치유능력도 있고. 그에 비해서 자신의 아내 로젠시아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다. 아니 가진게
많긴했다.
그런 여잔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던 제 발등을 찍고 싶다. 그나마 아클란의 여황제 타냐와 언니 동생하고
지낸다는 것 하나가 이점이긴 했었는데 그것도 이젠 끝이다.
“지금부터 카딜 하에르 대장군님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갈라스 달타뉴와 로젠시아 드 파비앙드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들 여황제폐하에게 예를 갗추시오!”
데자르백작의 말에 모두들 타냐에게 예를 표하자 타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로 인사를 받았다. 카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아내이지만 지금은 황제로서 예를 표한 것이다.
데자르 백작은 딸 메리엔을 살려준 타냐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나머지 4 개부서의 수장들도
한번씩은 타냐의 치유능력으로 가족의 일원 중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타냐의 도움을 받을지 알수 없기에 그들은 타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의 있습니다!”
“!”
갈라스의 목소리에 모두들 그를 쳐다 보았다. 갈라스는 타냐의 도움으로 생기를 찾아 목청도 제법 높았다.
“뭐, 뭐라고?”
“뭐?”
이 모든 상황을 저 멀리서 지켜보던 토디엘은 기함했다. 타냐보다 더 따랐던 로젠시아의 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바훌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데자르가 타냐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타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재판의 의장으로서 바훌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열다섯 어린나이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바훌의 말도 제대로 믿지 못하고 그렇다고
로젠시아의 말도 이제는 믿을수가 없어 힘들어 할 때 바훌이 결정적인 말을 했다.
“네, 알아요.”
“그 사람이 사냥꾼의 노예로 팔려간 저를 구해줬어요, 그리고 누나한테 데려다 준다면서 절 데리고 가던
중에 비적떼들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알테베르 황제가 보낸 군사들이 저를 구해주었구요.”
“아냐! 토디엘!”
카딜이 한마디를 하자 데자르가 군사들에게 지시해서 로젠시아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로젠시아는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도 읍읍대며 토디엘을 불렀지만 토디엘은 타냐의 곁으로 갔다.
“누나….미안해.”
“고마워 누나.”
“고맙긴, 얼른 들어가.”
탕탕탕!
그때 카딜이 손을 들었다.
57 화
“살려주십시오 대장군!”
어이가 없다 정말.
“그건 니 사정이고.”
평소 같았으면 그의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니 두 번은 없다.
“끌고가라!”
***
그날 저녁.
둥그런 원탁에 다섯 개 부서의 수장들과 타냐, 그리고 카딜이 둘러앉아 동대륙과의 전쟁에 관한 회의가
열렸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동대륙을 우리의 속국으로 만드는 겁니다. 대신 무혈입성을 하자는 거죠.”
“네?”
“왜 제 백성이 될 수 없어요?”
타냐가 다시 손을 뻗어 카딜의 허리를 만졌다. 그러자 카딜은 터져나오는 신음을 겨우 삼키고 말했다.
타냐가 자세를 고쳐잡고 말하자 데자르 백작이 손을 들었다. 타냐가 고개를 끄덕이자 데자르 백작이
말했다.
“저희들도 의논을 해본 결과 폐하의 의견이 맞다는 것에 결론이 모아졌습니다. 무혈입성을 할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피를 보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혈입성은 사실 전쟁중에 제일 멋진
승리라 말할 수 있습니다, 혹시 복안이라도 가지고 계신지요 폐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갈라스와 로젠시아의 머리가 있습니다. 그 머리를 들고 동대륙의 최강국이 고블린
제국의 대공을 찾아가서 선전포고를 하는겁니다.”
“어떻게요?”
***
“로젠시아를 찢어죽여라!”
갑자기 한 백성이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가 돌을 집어서 로젠시아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죽여라!”
“단두대도 아깝다!”
그 모습을 성벽 높은 곳에서 타냐와 카딜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시퍼렇게 벼러진 칼날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
고블린 제국.
“동대륙은 북대륙의 속국이 되고 북대륙에 매년 생산품과 특산품을 진상해야 한다, 그리고 북대륙인들은
동대륙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사업을 할수 있지만 동대륙인들은 북대륙에 들어올 수 없다.”
“당연하신 말씀입니다요.”
“뜻대로 하시옵소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상이다. 할 말이 있는가?”
“아들만?”
58 화
어쩌면 니콜라스는 로젠시아 때문에 아들을 잃었다며 속으로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크흑!”
“동대륙이 우리 북대륙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하고 다시는 쓸데없는 도발을 하지 안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돌려 드리겠소, 그렇게 하려면 당신의 정치적인 능력을 십분 발휘해야 할 것이오.”
***
갈라스와 로젠시아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북대륙은 동대륙을 점령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동대륙에서 먼저 갈라스와 타냐를 죽이고 북대륙을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져 다른 소제국들은
그저 제게 불똥이 떨어지지 않게하기 위해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동대륙을 속국으로 만들고 두 대륙을 오가며 정치를 하는 사이 3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가 자신을 부르자 카딜은 검을 내려 놓았다. 바훌이 손수건을 건네주자
얼굴에 흘러 내리는 땀을 닦은 후 비안느를 불렀다.
“이리와 안느.”
“아빠한테 냄새나.”
“무슨 냄새?”
“으, 똥냄새나.”
“뭐?”
“땀?”
카딜이 이마에서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한 땀방울을 가리키자 비안느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땀을
쳐다본다.
“이게 땀이야?”
비안느가 코를 막고는 카딜의 품에서 떨어져 나갔다. 살짝 서운하긴 하지만 안그래도 땀냄새 때문에
씻어야하기에 서운함을 뒤로 하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
타냐는 토디엘에게서 온 서신을 읽으며 눈물을 훔쳤다. 1 년전, 열일곱살이 된 토디엘은 붉은 기사단에
들어갔고 훈련이 끝나자 마자 변방으로 보내달라 청했다.
토디엘의 다짐이 확고하여 타냐는 말릴수가 없었다. 변방에서 근무하며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겠다는 말에
기특하다 싶긴 했지만 타냐 눈에는 아직 어린 토디엘이었다.
키는 188cm 였고 온몸은 근육질로 변했다. 모두가 강한 군인이라 말하지만 타냐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였던 것이다.
“어서 들여보내거라.”
“어마마마!”
“안느! 어서오렴.”
“어디 갔다 왔어?”
“아빠한테 다녀왔어.”
“아빠?”
“그래도 아빠한테서 똥냄새가 난다고 하는말은 무례하다 안느, 아빠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니?”
“!”
타냐가 살짝 나무라는 투로 말하자 비안느가 바훌에게 도움을 청하듯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바훌도
어쩔 수 없었다. 바훌이 도움을 주지 않자 비안느는 곧바로 사과부터 했다.
야단맞을때는 저절로 존대어를 사용하는 비안느였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린 비안느를 타냐가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
타냐가 친절하게 알려 주었지만 비안느는 알쏭달쏭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러자 타냐가
다시 설명해주었다.
“다섯살?”
“응.”
하지만 비안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던 타냐의 두 눈이 커졌다.
“안느는 힘이 없어.”
“안느! 안느!”
놀란 타냐가 실신한 안느를 흔들 때 카딜이 들어왔다.
카딜은 타냐의 품에서 축 늘어진 비안느에게 달려왔다. 아이를 받아 안은 카딜은 침실로 향하면서
바훌에게 소리쳤다.
“예!”
어찌나 놀랐든지 타냐가 치유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잊었던 카딜이 뒤늦게 깨닫고 말했다.
“해볼게요.”
“왜 그래? 왜 하얀 빛이 안나오지?”
“뭐?”
“하아-, 안돼요.”
카딜이 타냐에게 딥 키스를 했다. 어젯밤에도 에너지를 넘치도록 채워주었지만 혹시나 싶어서 한번 더
키스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타냐의 두 손에서는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았다.
절망한 타냐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59 화
실리아의 알림에 카딜은 내실로 들어서는 궁의를 구세주라도 되는 듯 반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예, 카딜님.”
궁의는 실신한 비안느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타냐가 아무리 기를 쓰도 치유하지 못했던 열병을
치유마법레벨 4 인 궁의가 너무나도 손쉽게 아이의 열을 내렸다.
“그래, 수고했다, 이런 사소한 치료는 궁의인 자네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시피 폐하께서 몸이
무거우시고 피로하신 관계로 요즘은 치유마법을 자제하고 있는 중이라.”
궁의의 머릿속에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황궁의 궁의로 있으면서 별로 하는 일이 없었던
그였다. 치유마법레벨 4 인 그가 나설 필요도 없이 가벼운 병은 그보다 레벨이 낮은 의사들이 처리했기
때문이다.
카딜은 궁의의 말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 가벼운 열병조차 타냐가
치유하지 못했을까 하고.
궁의는 황제인 타냐에게 최대한 예를 표하고 물러갔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려했다면 왜 그렇게 숨이 넘어가도록 다급하게 자신을 불렀을까 말이다.
“어마마마,”
그날밤.
돌기가 있는 혓바닥이 타냐의 음순을 헤집고 들어와 여린 속살을 쓸어 올리자 그녀의 엉덩이까지 딸려
올라갔다.
그녀의 음순이 길게 늘어나고 통통 부풀도록 빨아댔던 카딜도 더 이상은 무리인 듯 상체를 세웠다.
달빛을 받은 타냐의 알몸은 카딜의 성욕을 부추기는데 단단하게 한몫을 했다. 애액으로 흥건한 그녀의
음순 사이에 제 페니스를 비벼대던 그가 뾰족한 귀두를 구멍에 끼웠다.
엉덩이를 살살 흔들어 가며 타냐의 안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더니 절반정도 걸쳐지자 타냐의 가슴 양쪽에
손을 짚더니 엉덩이를 푹 쳐올렸다.
“하아앙!”
부채처럼 퍼져있는 그녀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집어 키스를 여러번 한 카딜이 타냐의 유두를 잘근 깨물었다.
“하아, 카딜….어서…”
푹.
“여기 좋지?”
“으응, 좋아요.”
푸욱, 퍽, 퍽,
“여기도 좋지?”
“으응…하아…아흐흥. 카딜.”
타냐를 놀리듯 그녀가 좋아하는 곳만 골라서 찔러대던 카딜도 더 이상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쫀쫀하게
들러붙는 타냐의 젖은 속살이 오롯이 느껴져 머릿속에서 쾌락의 폭풍우가 치닫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이후 타냐가 한층 높아진 교성으로 카딜에게 매달렸다. 그녀가 오르가슴에 도달했다는 것에 만족한 카딜은
이제 제대로 해보자는 표정으로 그녀의 다리 하나를 옆으로 넘겼다.
옆으로 돌아누운 타냐의 두 다리를 나란히 누른 카딜이 본격적으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치대는 소리가 더 커졌고 타냐는 또 다시 치솟는 쾌감에 침대시트를 입에 밀어 넣었다. 밖에서 불침번을
서는 시종들과 호위무사들이 여황제의 이 난잡한 교성소리를 들을까 싶어서다.
“응, 또 해줘요.”
“후회 안할거지?”
“후회를 왜 해요?”
***
며칠 후.
타냐는 급한 환자가 있다는 소식에 궁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며칠동안 카딜에게서 에너지를 듬뿍 받은
그녀는 그 환자를 아주 가볍게 치유했다.
비안느는 궁안에 있는 얼어붙은 연못에서 썰매를 하루종일 탔다. 너무 재미있어서 유모와 시종들이 그만
들어가자고 해도 고집을 부리며 몇 시간째 썰매를 타더니 결국 감기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러자 루아다는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랐느냐는 듯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 폐하.”
세상에….타냐는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져 카딜에게 기댔다. 카딜도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지만 타냐를
챙기기에 바빴다.
60 화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것은….”
루아다가 카딜을 잠시 쳐다보더니 입술만 달싹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네?”
“다른게 아니라 내 경우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 우리 비안느도 운명의 베필을 만나면 치유마법이
발현될까요? 그렇다면 그 나이는 언제가 될까요? 나처럼 성인이 된 후에 발현되는 걸까요?”
“고마워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휴우-.”
마차안에 타냐의 한숨이 계속 이어지자 카딜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황궁의도 있고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치유마법이 발현된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 안해도 될거야. 그렇게
한숨쉬면서 걱정하면 뱃 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안 좋아 타냐.”
“겁을 먹어요?”
“훗, 알았어.”
“그래.”
***
“!”
비안느는 어리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안본사이에 엄청 자랐구나.”
비안느가 토디엘의 품에서 쏙 빠져나와서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토디엘은 비안느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기만 했다. 자신의 허벅지 정도 오는 비안느가 양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꽉
깨물어주고 싶었다.
퍽!
“윽!”
“이씨, 누구냐니까?”
“난 토디엘이야, 너의 외삼촌.”
“토디엘? 내 외삼촌?”
“……..!”
잠시 생각을 하던 비안느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토디엘을 올려다 보았다.
토디엘은 비안느가 자신이 누군지 알아본다는 생각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잠시 멍한 눈으로 토디엘을 쳐다보던 비안느의 두 뺨이 빨갛게 변하더니 갑자기 치맛자락을 들고는 빠르게
기둥뒤로 가서 숨었다.
손을 잡고 걸어가던 토디엘이 부탁하듯 말하자 비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디엘은 피식 웃고는 비안느를
안아 들었다. 비안느는 토디엘의 목에 두 팔을 감고는 그의 두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토디엘도 비안느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오늘 비안느 생일이라고 특별히 휴가를 받아서 나왔어, 엄마아빠도 내가 나온걸 모르실거야, 우리 몰래
들어가서 서프라이즈 해줄까?”
비안느가 고개를 끄덕이자 토디엘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심장박동은 점점 더 거세질뿐
가라앉지가 않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토디엘은 심호흡을 여러번 하면서 타냐와 카딜이 있는 내궁에 도착했다.
“누나.”
“!”
“!”
“토디엘?”
타냐는 완전히 멋진 상남자로 변신한 토디엘을 보더니 잰걸음으로 다가와서 토디엘을 안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타냐가 토디엘에게 안긴 모양새였다.
“처남, 휴가나왔어?”
“그래, 잘 왔어.”
“그러게, 하하하.”
토디엘이 호쾌하게 웃다가 비안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또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61 화
“그렇다고 하더라도 황궁의가 있으니 황궁의에게 보이면 될 것이야, 그렇게 다급하게 쫓아와서 날 보자고
하는데는 그만큼 아이가 위독하다는 뜻도 되지 않느냐?”
“예, 폐하.”
실리아는 다시 잰걸음으로 파티장을 나갔다.
“타냐, 무슨 일이지?”
“당신은 지금 힘을 쓰면 안되잖아.”
하아—
“폐하, 이렇게 기쁜날 이렇게 무작정 찾아오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제 딸아이가 너무 위독하여 목숨을
내놓고 이렇게 달려 왔습니다. 제발 제 딸아이를 좀 살려 주십시오.”
토디엘은 비안느와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다가 비안느가 일어나서 아이에게 다가가자 그도 따라갔다.
“많이 아파?”
“괜찮아?”
“이제 안 아파.”
“헤, 다행이야…으움.”
내실로 들어온 카딜은 비안느를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비안느의 빠져나간 기운을 누가 채워주어야 하는지
알지못해 당황했다.
카딜이 평소같지 않게 침착성을 잃었다. 실리아와 시종들은 황급히 대답하고 파티장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던 황궁의를 불러 왔다.
“어떤가? 고칠 수 있겠는가?”
루아다 말로는 비안느도 정인을 만나면 치유마법이 발현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성인이 되고 난 후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여섯 살인 비안느가 언제 정인을 만나 치유마법이
발현되었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냐가 황궁의를 재촉했지만 황궁의는 장승처럼 선채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카딜이 정신을 차리고
황궁의를 물렸다.
카딜의 명에 실리아와 하녀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 급박한 순간에 아이까지 태어나기 위해 진통이
시작되자 모두들 타냐에게 집중했다.
미리준비되어 있는 산실로 타냐가 옮겨지고 아이를 받아내기 위해 모두가 타냐에게 신경을 쓸 때 토디엘이
정신을 잃고 침대에 눕혀진 비안느에게 다가왔다.
복숭아 속살 같은 뽀얀 두 뺨을 내려다 보던 토디엘이 저도 모르게 아이의 두 뺨에 번갈아 가며 뽀뽀를
했다. 그리고 축 늘어진 비안느를 안아 들었다.
“!”
“!”
“외삼촌이 내 꿈에 나타났었어.”
“그래?”
“그랬어?”
“응, 없어.”
“동생?”
“좋아.”
“어? 너 이제 안 아파?”
“잠깐만요.”
“네?”
“아, 네, 토디엘님.”
토디엘의 지시에 마리아라는 시녀가 하녀들에게 지시했다. 남자는 너무 고맙고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네 이름이 뭐니?”
“이름이 예쁘네, 난 비안느라고 해,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 아드레일, 우리 다음에 또 만나면
친구하자.”
“정말요?”
“그래, 약속해.”
토디엘은 마지막 한겹의 벽을 남겨두고 멈추었고 비안느는 실리아가 열어주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느?”
“안느, 깨어났어?”
“응, 깨어났어.”
“아니 어떻게?”
“뭐?”
“뭐라고?”
타냐와 카딜이 동시에 동공을 확장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또 진통이 시작되어 타냐는 아이를 출산하는데
집중해야만 했다.
카딜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실리아에게 비안느를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비안느가 무사한 것을 본 타냐는
몇 시간 만의 산고 끝에 튼튼한 아들을 카딜의 품에 안겨 주었다.
카딜은 아직도 아들을 얻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지 산파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아들이 맞느냐고.
그러자 산파가 확실히 왕자님이 맞다며 환하게 웃었다.
62 화
토디엘이 검지를 입술에 세우고 조용히 말하자 타냐는 속에서 튀어 나오려는 앓는 소리를 겨우 삼켰다.
아직 기운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는지 잠투정을 하던 비안느는 토디엘의 토닥임을 받으며 잠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
“그래.”
토디엘은 조금전 아이를 낳은 타냐가 멀쩡한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샤마란족의 치유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몸소 느끼며 타냐를 따라 그녀의 집무실로 왔다.
“차 마실래?”
토디엘은 타냐와 맞은편에 앉으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토디엘의 표정과 말투로 보아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타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하나 고민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안느가 어떻게 깨어났는지 알아?”
“응,”
“어떻게 깨어났는데?”
역시, 그랬구나.
타냐는 토디엘이 비안느의 운명의 배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운명의 상대와는 가벼운 키스만으로도
에너지가 채워진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물론 토디엘과 비안느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라 베필이 되는건 문제가 안되지만.
“그런데 표정이 왜그래? 무슨 근심이 가득한 사람처럼 안색이 안좋아 누나. 혹시 쉬어야 하는거 아냐?”
토디엘은 아무것도 모른채 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더 이야기 하기가 힘든 타냐였다.
타냐는 말끝을 흐리면서 토디엘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토디엘도 마음이 흔들리는지 당장에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아까는 가벼운 병을 치유해서 기절정도해서 뽀뽀로 기운을 차렸지만 더 큰 병을 치유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큰일이다.
아직 어린아이인 비안느가 본능적으로 병든 사람을 치유하게 된다면 에너지가 방전될 것이고 어서
에너지를 채워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토디엘에게 비밀로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타냐였다.
“저기 토디엘.”
“응 누나.”
“뭔데?”
“놀라지 말고 들어.”
토디엘이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농담을 했다. 그 말에 타냐는 웃지 못했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형하고 누나 이야기를?”
“응.”
타냐가 진지한 눈빛으로 토디엘을 쳐다보자 토디엘도 뭔가를 느꼈는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되었으니까 해 누나.”
토디엘의 진중한 눈빛을 본 타냐는 카딜과 자신이 어떻게 해서 운명적인 사이가 되었는지 말해주었다.
“!”
“카딜과 내가 운명인것처럼 너하고 비안느가 운명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네 스킨십에
기절했던 비안느가 깨어날 리가 없거든.”
귀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토디엘은 목이 타는지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을 집어 들고는 벌컥이며 들이켰다.
“…………”
갑자기 심장이 달음박질을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하지만 차마 여섯 살짜리 비안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
“누나가 하면 안돼?”
“말도 안돼.”
“으응, 그런 것 같아.”
타냐의 말에 토디엘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변했다. 비안느 말만 하면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갛게 변하는
토디엘을 보면서 타냐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본의 아니게 토디엘에게 무거운 짐을 떠안기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
황궁호위대로 들어온 토디엘은 공주인 비안느의 호위무사를 맡았다. 덕분에 24 시간 비안느와 함께 한다.
비안느는 토디엘이 자신의 호위무사가 되었다는 말에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엘 삼촌.”
“응?”
“감기들면 어쩌려고.”
“업혀.”
“응.”
1 초의 망설임도 없이 토디엘의 등에 폴짝 뛰어 오른 비안느가 이랴! 하고 외쳤다. 토디엘은 깃털보다
가벼운 비안느를 업고 눈쌓인 언덕을 올라가며 생각했다.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