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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보임 자서전>

음악이나 음악가에 대해 확신있게 이야기할만큼 오만하지 못하고 나는 다만 음악에 사로잡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쓰고 이런 몰입을 검증하기 위한 호기심을 간직하고자 애썼다.
아 버지 는 오 케스 트 라 의 사 운드 를 마 음에 담 고 피 아노 를 연 주하 라 고 내 게 가 르쳐 주 었 다 .
루빈스타인의 손가락이든 재떨이즌 심지어 돌멩이든 건반을 누르는 힘만 있으면 무엇으로든
소리를 낼 수 있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힘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색채감이 넘치거나 흥미로운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아노의 소리가 지닌 중성적 성격을 깨닫고 나면 이 때문에
피아노가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악기 고유의 색채를 지니고 있는
바이올린이나 오보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는 각자 고유한 사운드를
지니고 있으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소리는 아이작 스턴이나 다른 누구의 소리와도 같지 않다 .
피아노의 소리가 지닌 중성적 성격과 건반을 누르는 힘이 소리를 빚어낸다는 사실 때문에 피아노는
일견 연주하기 쉽고 재미도 덜한 것처럼 보인다.

내게 피아노 공부는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 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믿었고 나는 음악적인 문제와 기교 사이에 어떠한 구분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기본 원칙 아래서 자랐다. 이 점은 아버지의 철학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였다. 나는 특정한 음계와
아르페지오를 연습하도록 강요 당한 적이 없다. 피아니스트로서 내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오로지 작품 자체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 어릴 적부터 어떤 음표도 기계적으로 연주해선
안된다고 머릿속에 주입했고 , 지금도 그렇게 고수하고 있다 . 아버지의 가르침은 모차르트의
협주곡에도 음계는 충분히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나는 우선 기교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서 나중에 케이트위에 크림을 뿌리듯이 ‘음악성’을


추가하려는 음악가들과 종종 마주친다 . 하지만 특정한 신체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교를
사용하면 표현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교와 표현은 처음부터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기교적으로 까다로운 음악적 단락(passage)들을 해결하고 구성할 수 있을 정도까지


부분적으로 천천히 연습한다. 보다 느린 속도에서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올바른
속도에서 연주하려는 유혹을 참아야 한다.

프레이징을 나중에 추가하기 위해 특정 단락들을 기계적으로 연습하지는 않는다 .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음악적 단락은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더 천천히 , 하지만 올바른 음악적
표현으로 연주할 필요는 있다. 음악에서 표현과 기교라는 측면을 구분하려는 건 , 신체에서 정신을
떼어놓으려는 시도와 같다.
피아노는 양손이라는 두 개의 단위가 아니라 두 손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연주해야 한다 .
리스트는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이음새가 보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아르페지오와 단락들을
작곡했는데 이는 양손이 하나의 단위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 . 아니면 차라리 독립적인
열손가락이 열 개의 단위로 연주해야 한다 . 양손과 열 손가락이라는 두가지 요소의 결합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때 양손을 두 개의 분리된 단위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

아버지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철학적 관점에서 모든 행동이나 자세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는 자세가 우리의 마음 가짐을 보여주며 건반에
힘을 모두 전달할 수 있을만큼 거리를 두고 자연스러운 자세로 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등을 곧게
세울 수 있도록 의자는 너무 낮아도 너무 높아도 안됐다 . 연주에 필요한 에너지는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어깨를 들어 올려서는 안됐따.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끊이지 않는 하나의 선을 갇게
됐다. 이것이 내가 받아들였던 원칙이며 나중에 수정해갔다. 그 다음 손목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손가락을 꼿꼿히 펴서 연주할지 굽혀서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손목은 현악기의 활에 비교할 수 있다.

피아노 연주와 음악은 내 삶의 일부일 뿐 아니라 삶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나를 성장시킨 또 다른 중요한 요소였다. 비록 고통과 열정이 음악적 표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나는 연주자들이 이 같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살면서 긍정적인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에 담긴 무언가를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성찰하거나 회상할 필요도


있다고 믿는다. 자신을 성찰하거나 회상하는 것은 열정적인 몰입만큼이나 연주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영어에서 성찰(recollection)과 기억(memory)과 암기(remembrance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음악이나 연주에서도 차이는 분명하다. 젊은이는 기억하지만 늙은이는 성찰을 한다.
기억은 우리를 즉각적으로 도와주지만, 성찰은 충분한 숙고를 거친 뒤에야 찾아온다. 성찰은
환상을 이용하는 기술이 필요한 예술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 집에 있을 때조차 향수라는 감정은
생길 수 있다. 이는 성찰을 필요로 하며 암기와는 별 관계가 없다 . 오늘날의 연주자들은 너무나
많은 음악을 암기에 의존해서 연주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다 . 성찰은 개인적 노력을
필요로 하며 모든 연주는 이러한 성찰의 힘에 달려 있다.
암보로 지휘한다는 것은 오케스트라에 의존하지 않고 세부적인 디테일과 음표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단지 음표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 음표들을 어떻게
연주 해야 하는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성찰의 도움 없이 기억만으로 불안정하며
기계적일 뿐이다. 성찰하는 능력이야말로 창의력의 요건이다.

우리는 분명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하지만 ‘연습’이라는 말은 분명 비음악적인 단어이다. 이는


언어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서 예술과 훈련과 믿음은 모두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단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감을 높인다는 비음악적 이유 때문에 하루에 몇시간씩 연습을 한다. 하지만
자신감이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자신감을 쌓으려는 목적이라면 음악 연주는 그리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자신감은 성격과 추론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는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을 통해 이를 높일 수 있다. 눈과 손가락, 마음을 통해서 작품 전체를 하나로 이해하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말이다.
2.유럽 간주곡 1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지휘하고 싶다면 우선 지휘하는 법부터 따로 배워야 한다.
단지 오케스트라의 연주 수준에만 기댈 수는 없지 않겠니. 지휘와 연주를 모두 할 줄 알아야 독립된
지휘자만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일체감을 얻게 된단다. -피셔-
그는 페달이 없이도 레가토를 연주할 수 있었따. 이 점은 그가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페달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페달 없이 연주를 한다는 건 페달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레가토와는 달리 아티큘레이션이 직접적이고 명징한다.

3.이스라엘
유대인들이 2 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국가를 다시 갖게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방인들의 반응에 일일이 신경써야 하는 해묵은 습관에서 벗어났고 비유대적 관습에 동화되어야
하는 필요성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유럽의 문화적 요소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었고 나는
세파르디(서유럽 라틴 국가에 자리 잡은 유대인 )문화와도 그다지 많은 접촉이 없었다 . 나는
겉모습을 무척 중시하는 라틴 국가라는 전혀 다른 전통에서 자라왔다 . 아르헨티나에서는 사회적
우아함이 필수적이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겉치레일뿐 거부감이 강했다. 나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라기보다는 이상주의와 긍정적 사고에 대한 건강한 몰입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했다.
유럽에서의 광범위한 유입은 1948 년쯤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이상주의의 중심이었다. 우리는 유대인 국가에 모여 사는 한, 특별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믿었다 . 이를테면 당시에는 유대인 경찰이라는 관념조차 낯설다 .
디아스포라 시절에 유대인들은 보통 의사, 변호사, 예술가, 작가와 은행원 같은 자유로운 전문직에
종사했다. 하지만 유대인 경찰, 군인, 도둑같은 개념은 정상적인 사회를 나타내는 징표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새롭기만 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자기 집을 잠그지 않았다. 집 안 대문과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옆집 사람을 부를 때는 큰 소리로 외치기만 하면 됐다 . 골목은 상대적으로 좁았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서로 쉽게 소통을 나눴다. 성서는 우리 역사이자 우리 유산의 일부로
학습됐으며 우리의 일상생활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 유월적과 같은 유대교 축일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축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무척 강했다. 나는 오페라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


점을 상기했다 . 오페라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도 어떻게든 오늘날의 삶과 연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와 일상생활의 연관성을 오페라 공연 만이 아니라 교향곡이나 피아노 작품,
실내악 같은 추상 음악에서도 의식적으로 적용시키려고 늘 노력했다. 인간의 불안함과 고뇌의 많은
부분이 사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 음악, 정치나 역사와 마찬가지로 철학이나 철학 행위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이나 의사를 갖춘 사람도, 막상 일상에서 부침을 겪에 되면 철학은
없어도 된다고 느낀다.

4.유럽 간주곡 2
나는 시간을 아끼는 지름길이 존재하지만 음악에서는 그렇지 않으며, 먼 길을 돌아가겠다는 각오
없이 지름길만 선택하는 건 위험하다고 믿는다 . 지름길에서는 종종 핵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
마르케비치는 리듬의 정확성과 균형감각을 철저하게 요구했고 사운드와 리듬과 동작의
명확성성에 면밀히 주의를 기울였다. 지휘에서 그가 가르쳐 준 중요한 원칙은 불필요한 동작이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란한 몸짓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 그는 오른손이 단지 박자를 젓는 역할
뿐 아니라 지휘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오케스트라에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루바토는 rubato 는 도둑맞다-라는 뜻이며 무언가 훔쳤다면 반드시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적으로 말해서 조금 더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시간 여유를 갖는다면 어떤
지점에 가서는 반드시 원래의 박자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 빠르기의 변화와 유연성,
조절에는 수학적 엄질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 손실된 박자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
선율은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지만 반주 파트의 리듬감은 엄격해야 한다.

푸르트뱅글러가 루바토를 활용한 방식은 결코 제멋대로이거나 변덕스럽지 않았으며 오로지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나 극적인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서만 사용하였다. 작품 구조를 뒷받침하는 추가
수단이었던 것이다 . 그는 이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집중할 줄 알았고 필요한 집중력을
오케스트라에 모두 전달할 수 있었다. 오늘까지도 그가 얼마나 이성적으로 철저하게 숙고했으며
얼마나 감성적으로 느꼈는지 그 깊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 가끔은 이 두가지가 너무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가슴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느끼는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언제나 강약의 상대성에 주의를 기울였고 레가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은 직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세르주 첼리비다케와 피셔디스카우처럼 그와 정기적으로
작업하거나 관찰해온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그가 얼마나 자주 중간에 중단하고서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거나 ‘올바른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는지 알게 된다 . 그의 글을 읽어보면
자신이 간절히 원하거나 이루고자 했던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심사숙고 했는지 알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는 소리 자체를 위해 소리를 조작하거나 이용하는 일은 없었따. 가끔씩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 름답 거나 감동적일 경우에도 언제나 의도했 던 표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그는
무서울만큼의 집중력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음악은 언제나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건 위험한 면이 있지만 ,


어떤 다른 지휘자로부터도 이처럼 필사적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내 생각엔 푸르트벵글러는
흐르는 강물이나 폭풍우처럼 자연과 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나 리허설을 많이 하고 그 수준을 잘 유지하든 간에 연주 당일 밤에는 당대의 누구도
비길 수 없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최후의 낭만 주의자로 불린다. (박자 그대로
엄격하게 연주하지 않고 강약에 자율성을 부여하면 사람들은 낭만적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제
박자를 지키면서 풍부하게 연주하면 우리는 고전적인 지휘자가 되고 만다 ) 그의 박자 변화는
오로지 내면적인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크립스는 모차르트, 슈베르트 같은 고전적 작곡가를 연주할 때면 언제나 아름답게 노래하는 듯한


음색을 빚어내고 조금의 거친 느낌도 허용하지 않았다 . 동시에 그는 엄격한 빠르기와 리듬감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표현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박자를 늦추려는 유혹에 굴하지 않았다 .
그는 항상 음악은 민주적이라기보다는 귀족적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빠르기나 리듬에 관한 한
올바른 주장이었다.

내게 주빈 메타는 가장 좋은 의미에서 음악을 ‘세계화’한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사레이기도 하다.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와 이전까지 독일음악가는 독일 음악을 , 프랑스 연주자는 프랑스 음악을
연주하고 이탈리아는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념이었다.

루빈스타인은 피아노에서 빚어내는 고유한 소리로 유명했다 . 진정 고결하면서 풍만했다 . 그는


불명확한 사운드를 싫어했다.(프랑스 음악을 연주할 때는 꽤 유용한) 그는 소리는 중심이 있어야
했으며 자연스럽고도 감성적이어야 했다. 심지어 루빈스타인은 굉장히 크게 연주할 때도 그 소리는
딱딱하지 않았다. 그는 터치를 분명히 하기 위해 거의 건반에 기대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어떤 때는
심지어 그가 의자에서 일어날 때에도 여전히 손가락은 화음 위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 그는
작품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에도 결코 서둘러서는 안되며 , 선율이나 클라이맥스의 정점에서 그
프레이즈가 노래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리듬감, 즉 올바른 리듬에 대해서도
독특한 관점을 지녔는데 리듬에 대한 그의 안정감은 거의 신체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또
바순의대단히 짧은 스타카토와 희극적 효과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일러줬다. 음악에 자긍심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낄 때는 언제나 구체적인 리듬감이 존재한다 . 반드시 군대처럼 착착 맞을 필요는
없지만 리듬에 대한 강력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가 빚어내는 소리가 무척이나 개인저기고 독특한
것처럼 리듬은 그의 가장 소중한 자산 가운데 하나였다 . 리듬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는 도저히
흉내내기 힘든 생동감을 띄었다.

5.아이에서 어른으로
제 1 빈악파-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 제 2 빈악파-쇠베르크, 알반 베르크, 베버른
스토코프스키가 대단한 쇼맨쉽을 지니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그는 오케스트라에 대해
상세한 기술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소리나 음색에 대한 몰입도도 전혀 쇼맨쉽이 아니었다.
대사는 물론 악보 상의 모든 음표를 외우고 나서 리허설에 임하는 그의 모습은 경이적이었다 .
미니애폴리스의 음악 감독 시절에는 미국 신작을 세계 초연할 예정이었는데 , 단원용 악보는 첫
리허설 전날에야 도착했고 지휘자가 쓰는 총보는 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단원용 악보를
집으로 가져가 마루에다 오케스트라 좌석 배치에 따라 악보를 펼쳐 놓고 밤새 작품을 다 외운 뒤
다음 날 아침에는 역시 암보 리허설을 했다고 한다. 그는 대단한 집중력과 성실성을 보여 준 순수한
음악인이었다.

퀠릭은 “물론 네 연주는 효과적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만 때로는 기나긴 선율과 구조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순간적 아름다움은 희생해야 한다”고 내게 말해줬다 .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아주 낯선 개념은 아니었지만 쿠벨릭은 너무나 분명하고 적절한 때에 명확하게
집어냈기 때문에 언제나 기억에 남아있었다. 나는 음악가나 인간으로서 그에게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몇 안되는 진정한 독립적 음악가 가운데 하나였다 . 그는 어떠한 예술적 타협
없이, 언제나 안이하고 손쉬운 노선이 아니라 힘든 길을 택했다.

대중 앞에서 연주할 때 겪는 위기 가운데 하나는 청중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다 . 달리 말해,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든지 이런저런 것을 심어주기 위해 무대에 나간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이상적인 소통은 연주자가 청중을 의식하지 않고
연주할 때 일어난다. 연주자가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때 청중도 그 연주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루빈 스타인은 곁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공부나 연습을
제대로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 그는 호텔방에 있을 때에도 웨이터가 아침 식사를 가져오면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웨이터를 위한 연주가 된다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연주는 결코
혼자서 연습하는 것과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아노가 중립적이고 악기 자체의 흥미가 덜하다는 점 때문에 거꾸로 우리는 피아노에 다양한
색채를 입혀 나갈 수 있다. 무척 단순한 원리다. 피아노로는 단일 음표를 아름답게 만들 수가 없다 .
피아노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점 가운데 하나는 화가가 말하는 원근법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림을 들여다볼 때, 어떤 부분은 가깝게 보이지만 다른 부분은 아주 멀게 느껴진다 .
피아노의 경우도 비슷하다. 우리는 레가토라는 환상을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 . 마치 성악가가
포르타멘토를 들리게 하려면 하나의 음표에서 다른 음표로 끊어지지 않고 옮겨가야 한다 .
음반으로만 알 수 있지만, 부소니나 오이겐 달베르트 같은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어떤 형태로운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음표들은 어떤 음표가 귀에 조금 더 가깝게
들리도록 균형이 잡혀 있다 . 이는 두 손은 두 개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 혹은 열 개의 단위를
의미한다고 말했던 이치와 같다 . 무엇보다 손가락의 독립성이 중요하며 이런 의미에서
피아니스트들은 끊임없이 바흐의 푸가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지 지휘하든 노래를 하든, 1 백분의 1 초라도 그 전에 미리 머릿속에서 소리를
그려놓을 때만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다. 이 점은 음악에서 가르쳐줄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 번 g 장조의 도입부
화음에서 두개의 D 음과 세개의 G 음, 다시 세개의 B 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어떤 음역에서 음표들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든지, 엄지손가락은 새끼 손가락보다 더 많은 무게가
실린다든지 같은 사항은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다 . 하지만 설령 내가 설명한 것과 다를지라도 ,
학생이 직접 연주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소리를 상상해낼 수 없다면 , 그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다. 내적인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듣고 자신이 원하는 프레이즈를 구사하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능력 가운데 하나다.
음악을 향한 몰입이나 음악가와 음악의 관계 역시 말로는 가르칠 수가 없다 . 음악에는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많으며, 직관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도 많다. 하지만 몰입만큼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음악가의 위대함은 실제 연주에서 보여주는 열정의 강조를 통해 측정할 수 있다. 실례로
스포르찬도를 연주하면서도 거칠게 들리지 않으려면 음표 자체에 의존해야 한다. 주어진 그 순간에
표현해 낼 수 없다면 거의 육체적 고통을 느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단지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악센트가 너무 거칠었다”고 말하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음악인이 음악에 보여주는 몰입의
정도는 청중에게도 전달되어야 하며, 청중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연주는 잘한다는 것은 기술적 측면과 음악적 측면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문제다. 둘은 분리할 수
없으며 테크닉상의 모든 문제 해결은 음악적 표현에도 영향을 낳는다. 손가락의 빠르기와 관련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한 뒤에 음악성, 프레이징이나 음악적 표현을 보태겠다고 하면 너무 늦다 . 이
때문에 나는 결코 기계적으로 연습하지 않는다 . 처음부터 일정한 통합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
기계적으로 공부하다보면 음악의 본질 자체를 변질시킬 위험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예술’을
창조적 상상력이 담긴 작품에 필요한 기술을 적용시키는 것으로 정의하다 보면 , 오늘날 종종
오해하듯이 ‘테크닉’을 기계적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순전히 기계적인 것으 기술로 간주할 수 없다.

‘음악성’이라는 단어는 독일이나 프랑스만큼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음악성’은 음악 표현에


필요한 감성을 모호하게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것은 곧잘 남용되는 또 다른 용어인 ‘영감’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면서 잘못 인식되기도 한다. 영감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 아니다. 기계적으로만 연습하면서 실연 도중에 영감이 강림해 주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음악의 아름다움에 그저 감탄하기만 해선 안되며 아름다운의 본질을 찾고 그
법칙과 구성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그리고 나서야 이성으로 인식했던 것을
신성한 영감을 통해 조명할 수 있다 . 셰익스피어는 실제로 기술을 이성으로 정의했다 . 영감은
이성을 적용한 다음에야 찾아오는 것이다 . 메시아의 강림처럼 기적을 기다려서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음악에는 단순한 몇가지 원칙이 있다. 기계적으로 훈련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영감을 기다려서는 안되며 ,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과 실제 표현 사이의 연결고리를
의식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성적, 감성적, 기술적, 그리고 음악적 요소처럼 겉보기에
상반되는 요소들은 사실 분리되지 않는다. 음악연주는 반드시 의식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영감이나
직관이라는 것은 기초 작업을 마친 뒤에 보다 쉽게 찾아오는 법이다.
나는 음악을 직업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으로 여긴다 . 몰입니다 완벽한 집중은 해석가나
연주자에게 일종의 필수조건이다. 듣는 이의 즐거움을 위해 의식적으로 음아을 전달하다보면 그
즉시 연주의 성격도 변화한다. 우리의 생각이 그냥 멋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
관객들과 의사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최선책을 우리 자신과 소통하고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무대에서 어떤 작품을 연주한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행위이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관객 2 천~3


천명의 즉각적이고 전적인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연주가
끝나면 이런 이기심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나 다른 이들의 삶도 견딜 수
없게 된다. 외향적인 연주를 통해 정화함으로써 , 자아는 창조와 상상력의 중심이 될 수 있다 .
자아를 계속 남겨 놓는 일은 자아를 내버려 두는 것만큼이나 해롭다.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해석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으므로 음악을 재현하는데 필요한 이성적


측면인 사고력에 관한 한 언제나 통합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결과에서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분석(analysis)과 원인에서 결과로 나아가는 통합(synthesis)의 과정은 함께 가야 한다.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과 연관되어 있다 . 서로 다른 작곡가들은 각기 다른 표현에
관심을 쏟아왔다. 악기가 개량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더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거나 변화 가능한 표현 방법에 속하는 것이지 표현 자체는 아니다. 기계적인 것에만
의존하거나 충분히 숙고하지 않으면 철학적 의미에서는 잘못된 해석에 이르고 만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이 물리학과 형이상학 , 심리학이라는 세 가지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물리학이라는 건 음악 작품이 오직 물리적 소리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음향과 배움등 물리적 법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 물리학을 뛰어넘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형이상학이기도 하다. 이를 시적으로 표현하면 음악은 침묵마저 들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심리학이기도 한데, 심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화성과 리듬 혹은 패턴들 사이의
긴장감과 함께 음악 작품에서 여러 요소들이 서로 연관을 맺고 있으며 특정 요소들이 지배적이거나
덜 두드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연주는 자연스러워야 하고, 이에 선행하는 분석을 그대로 드러내서는 안된다. 연주하는


동안에는 의식적, 무의식적, 이성적, 직관적인 모든 측면이 하나로 통합된다. 감정으로 사고하고,
이성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두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영원으로 향하고 다른 하나는 그 당대로
향한다. 특정 시기에는 그 시대의 고유한 관습이나 유행이 존재하며 어떤 작품들은 한 시대를
표현한다. 작품은 이러한 면모는 낡은 것이 되어, 미래 세대에는 더 이상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하지만 작품이 지닌 정신, 즉 본질은 여전히 남는다. 따라서 음악은 완벽하게 독립적이다.
음악은 존재하거나 이해를 받기 위해 과학이나 다른 예술의 도움을 받거나 그 가치를 입증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음악 작품 그 자체로 ,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 . 음악은
아무리 긍정적이나 자선적이더라도 특정 목적을 위해 창작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
음악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유용한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는 있지만 음악 자체에는 그러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지 안하. 음악은 다른 사물에 대한 묘사다 아니다. 음악으 자선적이지도
악의적이지도 않다. 피상적으로는 우리는 음악이 새나 바다의 파도 같은 소리를 흉내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사소한 사항일 뿐이다. 특정한 음악적 분위기를 통해 우리는 사랑의 장면이나 위엄
넘치는 장면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환기 작용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하는 것이지 음악
자체에 내포된 것은 아니다. 나는 종종 같은 음악 작품을 놓고도 서로 다른 시기에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슬플 때는 음악 작품이 비애를 북돋고 , 거꾸로 행복할 때는 같은
작품이 즐거움을 고취시키기도 한다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내재한 이런 성격을 탐구하면서 음악은 무한함을 인식한다 . 인간은


무한함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음악가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한한 힘을 통해 어느 선까지는
무한이라는 환상을 빚어낼 수 있다. 우리 외부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알 때만
가능하다. 음악 작업을 할 때 우리는 특정 대목에서 신체적 조절에 어려움이 뒤따르는 것이지 어떤
대목에서 우리의 이성과 이해력을 넘어서는 흥분을 일으키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예술가라면 우리가 제멋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 음악
연주에서 다시 일 상생 활로 돌아가 기 란 무척 힘들다 . 음악을 할 때 필요한 품성이 반드시
일상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고유한 예술 분야에서는 결단력과 열정과
권위를 지녀야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그런 특별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피아노 음악에는 세가지 서로 다른 악파가 존재했다 . 우선 기술적 숙련을 중시하는


비르투오소 악파, 분석력에 매혹됐던 소위 지성인 그룹 또, 에드빈 피셔처럼 민감하고 활력
넘치지만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

처음에는 예술 작품을 순수하게 맞부딪혀야 한다. 그 다음의 복잡한 단계에서 분석과 관찰을 통해
배우고 작업하는 것이며 이상적으로 세 번째 단계에서는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 일종의
의식적인 순진성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철학적 개념에 대해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감정이
곧바로 감상적이라는 걸 뜻하지 않듯이, 천진난만하다가 유치하다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예술이나
음악 표현에서 아이 같은 천진난민함은 지극히 중요하다. 극소수의 예술가만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데 피셔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사운드를 개발해옴.(아라우)

6.영국
내 생각에 모든 연주 행위의 근본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에서 나온다 . 한 예로 피아니스트처럼
단 한 명이 연주하고 있을 때에도 한 손이나 개별 손가락은 다른 손이나 손가락의 연주에 귀
기울여야 하고 개별적으로 연주해서는 안된다 . 두 명이 연주하면서부터는 음악적 표현의 기본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일에서 출발한다 . 귀를 기울이다(listening)는 것은 듣는다 (hearing)는
것보다 훨씬 능동적인 과정이다. 단지 자신의 선율을 계속해 연주해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동시에 동료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무척 까다롭다.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작업은 다른 여러 가지와 함께 악단의 추진력과 힘이 단원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줬다. 음악적으로 말해서 지휘자는 필연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조직 (organize)해야
하고, 자신의 사고와 개성을 악단에 불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체임버 오케스트라에서는 이러한
관료적인 마음가짐으로 연주할 수가 없다. 단원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 점은
나중에 교향악단과 일하면서도 의식적으로 살려나가기 위해 노력한 대목이다. 잉글리쉬 체임버
단원들은 아 티큘레이션과 프레이징에 대해 각자 분 명한 관점을 지니고 있었고 나는 이를
표현하거나 힘을 유지할 때 더욱 폭 넓게 만들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극소수의 연주자만이 지니고 있는 재능 , 즉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음악을 실제 작곡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 재클린은 기교상 어려움이라듡 , 조심스럽게 안전제일로
연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녀는 연주할 때 순수한 의미에서 자유분방하다는 느낌을 줬고
이런 점 때문에 동료들이나 청중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 그녀의 연주에는 박자나 강세에서
완벽하면서도 불가피할 정도로 ‘올바르다’는 느낌이 있었다 . 그녀는 굉장히 많은 루바토를 쓰면서
자유롭게 연주했지만 설득력이 강해서 속인들이 천상의 면모를 지닌 누군가와 마주친 듯한 느낌을
안겼다. 음악적으로 말해 그녀는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반항아에 가까웠다.
그녀 내부 깊은 곳에서 당연한 것이나 익숙한 것,관습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음악가를 판단할 때 그녀는 헌신이나 몰입 , 정직성의 결여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고 할 만큼
극단적이었다 . 자기 자신을 모두 내던지지 않는 사람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 그녀는
권위라는 걸 자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반드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 그녀는
반항적이었지만 직접적이고 본능적이면서도 거의 육체적으로 음악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순진무구했다. 이런 점들이 음악가로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 10 대시절에도
그녀는 뛰어난 집중력과 활력을 갖고 연주했다. 훗날 계속 발전해나갔지만 첼로 연주의 기본적인
성격이나 특징은 이미 어린 나이에 확립돼 있었던 것이다 . 살면서 위대한 음악가들을 많이
만났지만 재클린처럼 음악이 그토록 자연스러운 표현형식으로 다가온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
음악가는 음악을 연주하는 인간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거꾸로 그녀는 인간으로 태어난
음악가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친구를 만나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비중이 달랐다. 음악이 언제나 존재의 중심이었다. 지병으로 연주를 중단하기 전까지는 그녀는
첼로를 통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고 연습도 많이 필요치 않았다 . 그녀는 다른
음악가에게선 볼 수 없는, 소리를 상상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으며 오류 없는 본능을 지니고 태어난 천성적인 음악가였다.

클렘페레는 내가 만났던 수천명의 사람들 가운데 외모에 가장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었다. 그가


오케스트라에 전달하는 힘의 원천은 아무런 주저 없이 자신이 원하는 핵심에 직접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그는 사운드에만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음악가였고 오히려
박자와 강약,균형이 명확하게 실행되고 있는지에 주된 관심을 보였다 . 그는 오케스트라의 서로
다른 악기 사이의 균형을 잡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런 다음 강세에 집중했다 . 내 생각에
그는 연주에서 사운드를 가장 중요하 요소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연주나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이 있으면 견디질 못했고 끔찍할 정도로 냉소적이고 신랄했다 . 정직이야말고 그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최상으로 간주하는 덕목이었다. 그가 무척 흥미로워했고 대단한
존경심을 가졌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피에르 불레즈였다.

7.지휘와 실내악에 대해
일류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는 아마도 교향악단에 영향을 미치는 지휘자가 거의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단원들은 지휘자가 지정해준 박자와 그가 원하는 뉘앙스와 균형을 살려서
연주하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좋은 지휘자를 만나면 강한 음악적 교감이 일어나 지휘자의
손이나 손가락, 아주 작은 눈짓이나 몸짓에도 반응을 보인다 . 악단이 그런 지휘자와 함께 있으면
곧게 몸을 세우거나 앞이나 옆이나 뒤로 굽히는 것만으로도 다르게 연주한다 . 단원들은 모든
동작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더구나 지휘자의 업비트(upbeat, 지휘봉의 상향동작)는 처음 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그의 업비트에 권위가 실려 있지 않으면 단원들이 지휘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연주하지 않는 한, 사운드는 죽게 된다. 단원들이 지휘자들을 위해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면 즉 그가 자신들에게 전달해 줄 것이 없다고 여기면 예전에 수천 번은 했던 방식으로
베토벤의 교향곡을 그냥 연주할 것이다. 반대로 지휘자를 존경한다면 첫 지휘 동작부터 지휘자와
함께 할 것이다. 또한 딱딱하든 부드럽든 소리에 관계없이 첫 음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음을 지속하는 방식이나 어느 정도까지 울려야 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좋은 지휘자는 마디나 박자마다 지휘봉을 흔들지 않는다. 거꾸로 오케스트아와 청중이 아예 마디나
박자를 잊게끔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프레이즈는 특정한 수의 마디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마디나 한마디 내의 박자마다 지휘봉을 흔들면, 음악을 가장 초보적인 수둔으로 떨어뜨리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좋은 지휘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박자를 구분한다.


박자를 나눈다(beat time)는 것은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연주하든지 알게끔 지휘한다는 것이다 .
실제 박자와 손동작은 단원들에게 어디서부터 연주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음표
사이의 여백을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도 보여줘야 한다 .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시카고와 베를린의
오케스트라 두 곳 지휘할 때는 이따금씩 서너 박자를 통쨰로 지휘하지 않고 놓아둘 때도 있다.
단원들이 스스로 그 공백을 메워 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다음번 내가 특정한 표현을
원하는 대목까지 단원들에게 넘겨준 뒤에 다시 지휘동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전에 모든 동작을 계산에 넣는 식으로는 지휘를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옭아맬 뿐이다.
모든 동작은 오케스트라 전체나 일부에게 하나의 신호가 되어야 한다. 악기나 노래는 직감으로 할
수 있다 해도, 지휘는 본능만으로는 할 수 없다. 오케스트라에 대한 지휘자의 영향력이나 소통은
반드시 이성적 바탕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 프레이즈는 네 마디로 구성되어 있고 저기에선
여덟 마디로 되어 있ㅇ며 어디가 절정인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기악 독주자나 성악가라해도
전적으로 직감에 의존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직감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나는 작업할 때 보통 세 단계를 밟는다. 첫 번째 단계는 집에서 총보를 공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리허설이며 마지막 단계는 연주다. 총보를 공부하는 것은 작곡과 정반대 과정을 거친다 . 영감이든
지식이든 본능이든 작고가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단편에 불과하더라도 작업을 시작할 수 있고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낸다 . 그 곡이 반드시 브루크너의 교향곡일 필요는
없다. 작은 소품이라해도 원칙은 같다 . 하지만 지휘자는 처음 작품을 볼 때 , 디테일부터 보지
않는다. 작품 전체를 마음 속으로 다시 작곡(re-compose)한 뒤에 세부 사항으로 나간다. 지휘자의
작업은 차량를 부품별로 뜯어본 뒤에 다시 조립하는 자동차 정비공에 비유할 수 있다. 지휘자느
이를테면 베토벤 ‘영웅 교향곡’ 제 1 악장에서 화성적 연결, 리듬의 연결, 강약의 연결과 음표들
사이의 지리적 거리감까지 모든 세부 항목을 드러내야 한다 . 베토벤은 음 사이의 간격을 점차 줄여
나가면서 지리적 거리감은 줄이고 긴장은 증폭 시켰다. 만약 ‘영웅교향곡’에서 반음계적 간격을
두지 않고 처음의 거대한 포르타시모까지 써나갔다면 긴장감의 전혀 없었을 것이다.

세르부 첼리비다케가 악보를 읽을 줄 아는 동료가 거의 없거나 없다고 했을 때 ,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많은 지휘자들이 악보를 읽는 동안에도 정작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강약 , 균형을 듣지
못한다는 점이다 . 악보 상의 어떤 지점에 크레센도가 적혀 있으면 전체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시모에서 포르티시모로 점점 크게 연주한다 . 여기서부터는 악보를 읽는 능력과 지식이
필요하다. 오케스트라에서 크레센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악기가 정확히 같은 시각에 시작할
수는 없다. 크레센도는 모든 것이 들릴 수 있게끔 모든 악기가 도달해야 하는 최대치까지 끌어내야
한다. 지휘자는 음향까지도 감안해야 하는데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 단순하게 포르테를
연주하고 나서 갑자기 피아노로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니다. 피아노로 바뀌기 직전에 낭떠러지 같은
효과를 내도록 포르테가 치솟아야만 한다 . 악보 독해가 뜻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 모든 걸
상세하게 배울 수 있지만 강도만큼은 예외다 . 포르테나 피아노의 강도나 돌연 피아노로 바뀌기
전에 얼마만큼의 힘으로 포르테를 연주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는 공부로 해결되지 않는다.

피아노와 포르테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강약부터 예로 들어보자 . 얼마만큼의 데시벨이 피아노를
뜻하며 조금 더 크면 메조포르테가 된다는 식으로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박자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균형감, 강세, 비브라토 등 다른 요소들이 적절할 때에만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무척 빠른 박자로 연주할 때 특절한 유형의 비브라토로 연주한다 .
지휘자는 박자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할 경우에 아티큘레이션이나 음질에도 (sound quality)반드시
변화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변화는 보잉(bowing)에서 시작한다. 보잉의 속도가 그
방향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박자가 바뀌어 변화가 필요하고 연주자 혼자서는 이를 해낼 수 없을 때 지휘자는 반드시 이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올바른 박자란 연주하는 그 순간에 다른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고 했던 푸르트벵글러의 말은 여전히 옳다 . 이제 사람들이 실황 연주를 음반과 비교하기
때문에 훨씬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시간순으로 말해 지휘자는 우선 악보를 연구한 뒤에 리허설을 시작한다. 이때 처음 부딪히는


문제는 머리속으로 이론적으로만 연습을 해보았다는 것이다. 기악 연주자라면 어떻게 소리 나는지
다양한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을 통해 미리 시도해볼 수 있지만 오케스트라 앞에 서면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혼자서 연주하는 것도 아니다 . 단원들이 연주하기 시작하며
지휘자는 자신의 의도나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크레센도와 스토르판도의 출발점을 이야기해
주기도 쉽지 않다.

지휘자들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악보를 꿰뚫고 있어야 하며 , 기술적 문제를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제각기 고유한 문제와 음악적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지휘자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음악저으로 말해서 고된 작업이 끝난 뒤에는 자신감을 갖고 편안해야 하며 선의와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 리허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것을
강조해야 하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 글을 쓸때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한
문장을 쓸 때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강조하면 글의 핵심이 빠진다 . 음악을 연주하거나 프레이징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선 명확한 주제와 생각을 정한 뒤에 강조하고 싶은 대목을 단원들이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리허설을 해야 한다 . 오케스트라와 함께 있고 단원들이 맹목적으로
쫓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와 결합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매 콘서트마다 다른 연주를 할 수 있다 .
원칙이나 음정의 위치는 고정 되지만 연주 방법은 달라질 수 있으며 연주회에서 자발성을 살릴 수
있다.

절대 음감은 음정을 바로 잡는데 도움을 준다 . 음정은 진공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균형이


올바르거나 틀릴 때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음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으면 혹은 화음이
깨끗하지 않게 들린다면 균형이 관점에서 뭔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음에서 배음(overtune)이 갑자기 약해지거나 커질 때 혹은 사운드 자체가 균일하지 않을 때도
그렇다. 지휘자는 한 작품을 그대로 쭉 연주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것을 기억한 뒤 즉각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잘못을 잊어벌리 수 있기 때문이다 . 악보를 공부하거나 리허설을 할 때
더욱 면밀히 분석하고 작업할수록 그날 밤 연주에서 더욱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다 .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도를 미리 공부해 두면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 어떤
음악가들은 음악적인 문제들을 너무 많이 분석하거나 해석하다보면 신선함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성적인 작업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신선함이 더욱 크다. 작곡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최대한 폭 넓은 지식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다 . 우리가 연주하거나 지휘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지식은 실제 연주하는 작품 해석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작품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연주하거나 지휘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갖고 있었고 자신이 연주해보지
않음 음악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 나는 멈출 줄 모르는 이런 호기심이야 말로
우리가 계속 발전하는데 필요한 요소라도 생각한다.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할 때 중요한 것은 통일성을 이룰 수 있느냐는 점이다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거나 이따금 나란히 진행할 때에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음악적 방향을 갖는
편이 굉장히 유익하다. 별도의 지휘자가 없을 때 오케스트라는 언제 연주에 들어갈지만이 아니라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기 위해 더욱 주의 깊게 독주 악기에 귀를 기울인다.

볼레즈는 자신의 콘서트에서 악보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랄도 쪼개서 무척 꼼꼼하게 리허설 했다 .


그는 개별 그룹별로 리허설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작품의 구조와 뼈대를 잇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했다. 리허설을 하는 방법도 대단히 독특했다. 출발점은 언제나 틀림없는 청력이었다. 그는 아무리
크거나 복잡한 순간에도 세부 사항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아무리 사소한 음정의 잘못도 정확히
끄집어냈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배운 것이 너무 많았다. 연주자나 가수, 지휘자 모두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 종종 성악가들은 지휘자가 지적한
올바른 음정으로 고치는 법을 모를 수도 있다 . 감정적이거나 심리적 문제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관련자 모두 이 문제를 순수하게 음악적 , 기술적이고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음악교육은 조성음악 , 무조 음악, 음렬주의 같은 모든 음악 체계를 포괄해야 할 뿐 아니라 ,


중요하다가 인식되는 작품은 정기적으로 연주할 필요가 있다는 불레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구의 고전 음악은 예술 가운데 가장 젊다 . 우리가 아는 한 그림의 역사는 2 천년 까지, 문학은


3~4 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함께 하는 음악은 17 세기 무렵에
기원한다. 3 백 년은 무척 짧은 시간이다. 조성 음악의 어떤 속성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냈다는 것
이상의 느낌을 내게 준다. 나는 음악에서 화음이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일정한 독립성이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평등을 향한 투쟁은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되어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에서 극단에 이르렀다. 음악의 발전에서도 비슷한 점을 보게 된다 . 내 생각이 옳다면 음악은
오랫동안 ‘난국’, 즉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당시 훌륭한 합창 지휘자이자 합창단 감독을 맡고 있던 피츠에게서 레가토 (음과 음 사이를 끊이지
않게 연주하는 것)과 마르카토(음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연주하는것)창법 사이에서 세세한 차이를
구분해 내고 둘을 다시 통합 시키면서 폭 넓게 감정을 표현해 내는 그의 능력에 매우 놀랐다.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연주할 때 악기의 특성이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언제나 발견하고 싶어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배워나갔다. 물론 당신도 실내악을
통해서 이 점을 익힐 수 있다.

지휘자는 음악이 어떻게 소리 나야 하는지 미리 염두에 뒀던 생각과 실제 연주 사이에는 완벽한


균형이 존재해야 하며 실제 연주는 똑같이 두 번 반복될 수 없다.

8. 1967 년 이후의 이스라엘


1967 년 봄,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위험에 처했다 . 이집트 대통령이 티란 해협을 봉쇄하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이스라엘 공군기가 미처 이륙하지 못한
이집트 공군기를 수 시간 안에 파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다 . 그 때는
결과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조국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라는
점만이 분명했다. 1967 년 전쟁 이후에 중동에서 유대인 국가의 존립을 보장 받게 되자 거꾸로
많은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들어갔다는 점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다. 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하며 반드시 관용이 필요핟는 것과 같은 무척 개인적이고 유대적인 의사만을
표명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수세기 동안 우리는 박해받았던 소수의 일원이기 때문에, 우리
이웃들에게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 엘 국민에게 너무 빨리 많은 거을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대인 국가의 존리을 위해서라도 그런 관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 시절 오랫동안 겪었던 경험으로 인한 관점과
태도를 상당히 바꾸려는 의식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방인같은 비유대인에 대한 표현은 유대인이
소수였던 상황에서는 자기 방어의 의미로 심지어 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대인 역사와 다음 단계인 아랍과의 공존은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에서 실현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1967 년 이후의 사건들은 이스라엘 국가와 정신의 존립을 위해 공존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고 믿는다. 이는 미래를 위한 가장 의미 있는 발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유대인 국가는
중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지역과 문화, 지역의 성장에도 책무가 있다. 이스라엘이
건국됐을 당시에는 언젠가 중동 지역 국가들의일원이 될거라고 확실할 만한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실례로 학교에서는 제 1 외국어가 아랍어인 적도 없었고 언제나 영어였으며 , 제 2 외국어는
가끔 프랑스어, 이따금 아랍어였다. 우리는 아랍에 둘러 싸여 있으며 그들이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 중세 시대의 아랍 시가 대표적이며 아랍은 풍요로운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다. 과학 역시 아랍에서 비롯했으며 화학과 대수의 용어가 대표적이다. 공존의
원칙이 실행 되면, 이스라엘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리더는 아닐지라도 , 그 중 하나는 될 수 있다 . 유대인, 아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이 오로지 유럽이나 서방으로만 향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대신 동양과
서양의 융합을 이뤄내야 한다. 아랍을 의무 외국어로 지정함으로써 중동 지역 문화의 일부가 국가
교육에 편입 되어야 하며 이스라엘 국가가 지니고 있는 중동적 성격을 점차 발전시켜야 한다.
음식에서는 이미 이런 통합이 이뤄졌다. 문화나 정치적 분야에서도 비슷한 수용이 일어날 수 있다 .
아랍인들도 이스라엘이 인위적으로 이식된 서방 국가가 아니며 바르샤바와 베를린 , 뉴욕과
모스크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민자뿐 아니라 중동의 일원이 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 생각에 이것이야 말로 이스라엘이 공준이라는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한
국가가 이웃 사회에 전혀 의존하지 않으면서 섬으로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전쟁 중에 있을 때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가 불가능하겠지만 공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스라 엘부터
준비해야 한다. 나는 국방 전문가가 아니기에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의견을 표명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벤구리온과 그의 동료들이 주창했던 유대인 국가라는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중동 지역 국가들의 유기적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문화, 언어와
지식은 평화가 정착된 뒤에 첨가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 우리는 마냥 훗날로 미루기보다는
일찍부터 준비해야 한다.

역사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공존할 수 있고 서로를 고무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중세


시대 스페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중동에서는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참되고 진실되며
효과적인 협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가져야하는지, 요르단이나 이스라엘과 연방을 구성해야 하는지는 나도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언젠가 중동 혹은 근동 지역에 이집트와 이스라엘 , 요르단, 레바논과
시리아로 구성된 국가들의 연합체가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 1950 년 초반, 다비드 벤구리온이 내 연주를 들으러 왔다. 디아스포라 시절의
유대인 이미지에서 이스라엘의 유대인으로 정체성을 바꾸는 것에 당시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다. 벤구리온은 실용주의자였으며 비전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 가운데 많은
부분은 많은 부분은 그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처칠과 비견될만한 금세기의 위대한 정치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정치인이라는 말이 보통 실용적 계획들과 연괸되어 있다면 정치가는 전략과 비전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는 차이가 있다. 비전을 지닌 사람이 전에나 정치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정치가라면 비전을 보여줘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라는 이상을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위한 동력을 제공했고 이런 노선을 향해 실제로 이끌어갈 줄도 알았다 .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이스라엘은 그의 비전과 창조력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대의를 위해서는 위대한 전사를 자처하지만 과도한 위험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언제나 흘륭한 조정자 역할을 맡았다 . 그는 초기에는 영연반 , 후반부에는 아랍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전쟁이 끝난 뒤, 벤구리온은 혜안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평화의 대가로 점령한 모든 영토를 반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따. 당시 아랍국가 어느 곳도
이스라엘과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토피아적 발상이기는 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오랜 방볍들도 철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전체가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할
가능성도 있지만 예루살렘이 다시 분리된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시킬 수 있었다.

현재의 이스라엘 총리는 세 가지 중요한 자질을 지녀야 한다. 우선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2~3 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유대인 한
사람이 있으면 적어도 정당이 세 개는 만들어진다는 오랜 농담도 있다)그는 소수의 아랍인들을
언제나 인식하면서 통치할 수 있어야 한다 . 둘째로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외부의 유대인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워싱턴의 유대인 로비만이 아니라 북,남미와 유럽의 대규모 유대인
지역사회를 포함한다. 벤구리온 시절에는 소련과 접촉할 수 없었지만 일부 대화는 가능했다 . 그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가 수용하기 힘든 전제 조건은 건드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열정을
상호 교감할 수 있었다 . 세번째 자질은 아랍권이나 초강대국과의 협상 능려이다 . 1950 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와도 교섭해야 했다 . 아랍권과의 교섭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거나 협상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벤구리온은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모국으로
인식하는 자신의 전략과 비전에 주저함이 없었지만 아랍인 역시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모든 아랍국가와 전쟁중에 있었고 아랍의 공식 목표가 유대인들을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었던 시기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건 전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벤구리온이 중동에 대한 비전과 이스라엘에 대한 비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나의 존경심도 끝을 모르게 됐다 . 내 생각에 그가 갈등 양상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철학이나 철학적 문제에 대단한 흥미를 지니고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척 박식한 사람이었다 . 극동의 사상과 불교에 관심을 보였고 요가를 익혔다 . 그는
돈키호테의 인물상에 매혹된 나머지, 원어로 세르반스를 읽을 수 있게 스페인어를 배웠으면 하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국가과 국민의 존재 자체가 위기에 처했던 시기에는 중동 갈등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주제에 빠져든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의 철학적 호기심은 자기 자신이나
이스라엘의 문제만 신경쓸 줄 알았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를 사거나 이해받지
못했다. 그는 국민들의 대의에 전적으로 헌신하면서도 실용적으로 사고할 줄 알고 불교와 다른
철학 작품 같이 동떨어져보이는 분야에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내게는 하나의 상징이나 위대한
표본이 되었다. 그는 특별히 음악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많은 사람들에게 끼치는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9.가곡와 객원 지휘
디스카우와 작업하면서 나는 언어와 음악을 결합 시키는 방법 , 단어의 의미, 음악에 따른 음절의
소리까지 독일어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 한 예로 그는 복수의 자음이 모음 앞에 있으면 그 다음은
반드시 음표 이전에 나와야 한다는 것과 같은 기포적인 사실부터 내게 일러줬다. 디스카우는 현대
음악에 활발한 관심을 보여 준 몇 안 되는 성악가 가운데 하나다. 치마로사의 오페라 ‘비밀결혼’도
그와 함께 녹음 했는데 그가 예술적 직감과 독일 특유의 완벽성을 통해 어떻게 이탈리어뿐만
아니라 유머 넘치는 인물의 특징까지 잡아내는지 보면서 매혹되고 말았다. 피아니스트가 가곡
레퍼토리를 알고 연주한다는 것은 무척 유익한 일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목소리는 가장 직접적인
악기다. 독일 가곡처럼 가사가 있는 음악을 연주하다보면 생생한 언어나 놀라운 생각이 노랫말에
나올 때 음악을 연주 하다보면 생생한 언어나 놀라운 생각이 노랫말에 나올 때 음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실례로 죽음(tod)라는 말이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나타나면
화성이나 리듬에도 뭔가 이례적인 변화가 생긴다 . 라틴계 언어들은 계속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다 .
모든 단어의 끝에 악센트가 오는 프랑스어가 단적인 예다 . 반면 독일어는 밀어붙이는 대신, 오히려
뒤로 잡아두려고 한다. 언어의 실제 발성에서 비롯하는 것의로 모차르트가 아주 훌륭한 사례다.

모차르트는 독일어 오페라와 독일어 가곡을 썼고 , 이탈리아어 오페라와 함께 몇몇 가곡들은


프랑스어로도 작곡했다. 주요 마디 이전에 오는 음표나 음표의 집합을 의미하는 업비트의 성격도
언어에 따라 다양하다. 독일어로 정관사(das, die)를 발음할 때는 이탈리아어의 il,la 보다는 길게
난다. 가곡에서 성격묘사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피아노로 서주나 간주, 종결부를 연주할 때 그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묘사해야만 한다 . 가곡을 연주하면서 피아니스트들은 성격묘사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아주 작은 리듬 패턴이나 전조를 통해서도 분위기를 완벽하게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에 대해 그만의 특별한 사운드를 지니고 있고 드뷔시에 대해서는 또
완전히 다른 소리를 갖고 있어야 하며 모든 개별 작곡가마다 다른 사운드를 낼 수 있어야 한다 .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작품마다 똑같은 사운드를 입혀서는 안된다.

어떤 음악적 표현을 하기에 연주회장이 지나치게 크다면 , 연주할 곡이 가곡이든 후기 브람스의


간주곡이든 피아니스트나 성악가는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객석 맨 끝자리까지 소리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대신, 수천 명의 청중을 무대 위의 연주자에게로
끌어당길 수만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디스카우는 청중에게 다가가서, 끌어오는데
노력한 명수였다.

본질적으로 가사에 대한 성악가의 이해는 오페라든지 가곡이든지 같아야 한다 .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에서는 성악가가 지휘자에게 신호나 음악적 지시를 받는데 익숙해있다 . 가곡에서
음악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 나가는건 다름 아닌 성악가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 오페라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 특정 동작을 하거나 지휘자의 지시를 받으며 표현하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종종 가곡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다. 오페라와 가곡 분야를 모두 부르는 성악가는 무척 드문
편이다. 많은 성악가들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오페라에 쏟는 나머지 , 가곡을 부르는데 충분한
시간을 내지 못하거나 많은 습관이 이미 굳어진 이후인 경력 후반에 부르기 시작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페라든, 합창 음악이든, 모든 성악에는 소리를 묘사하는 의성 효과를 담고 있다.
이는 언어에서 소리라는 요소에 대해 심사 숙고를 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빼어난
성악가들은 한편으로 음악의 언어, 다른 한 편으로는 발음하는 언어의 소리에 대해 알 것이다. 둘을
조화시킬 때에만 가곡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게 된다.

기막힌 기술적 완성도, 무얼 주의깊게 들어야 할지, 정확한 음량의 크기와 아티큘레이션까지 꿰고
있고, 전설적인 투명한 질감을(texture)지니고 있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에 가지 않은 건, 중요한 음악 직책에 필요한 경험이 부족했따는 점에서 내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재능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나쁜건 없었다 . 재능과 경험, 음악적이고 인간적인
성숙까지 모두 겸비해야 한다.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기에는 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
아니라, 객원 지휘자로 소중한 경험을 쌓으면서 피아노 연주도 계속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상입 자리는 계속 주저하고 있었다.

가능한 최상급의 음악 수준과 함께 단원들과 가슴 찡할 만큼 따뜻하고 감동적인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 내겐 점차 중요해졌다 . 철저한 장인 정신, 더 높은 수준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집단을 본 적이 없다(시카고 심포니)
10.프랑스
부르크너 교향곡들은 색채의 원근감을 통해서만 이 곡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 나는
파리 오케스트라에서 프랑스 음악이라는 선물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예전에 몰랐던 프랑스 음악에
대한 식견도 얻게 됐다 . 베토벤과 드비쉬 음악에서 느끼는 어려움의 차이는 분명하다 .
베토벤에서는 종종 장시간에 걸펴 크레센도를 해 나가야 한다 . 하지만 드뷔시에서는 정반대다.
갑작스러운 섬광 같은 크레센도나 디미누엔도가 때로는 음표 하나를 통해 아주 빠르게 나타난다.
만약 하나라도 놓치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사운드만 나오게 된다. 파리오케스트라의
최상급 연주자들은 내게 멋진 ‘실험실’역할을 해주었다. 단원들은 음악이 어떻게 생명력을 갖게
되는비, 음악에 필요한 진지함과 깊이는 어떻게 갖춰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 이런 경험은 프랑스
바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점인 오케스트라의 음색에 대한 실험에만 머물지 않았다. 드뷔시의
음악은 거의 형체가 없는 듯한 미묘한 소리를 내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 그의 음악은
독일음악보다 훨씬 더 짧은 프레이즈 구조에서 거대한 힘을 요구하며 강략의 재빠른 변화에도
능숙하게 대처해야 한다. 대체로 지휘자로서 나는 악단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었기에 파리
시절은 무척 긍정적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지휘를 하거나 지휘자가 되는데 겪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기악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에 필요한 신체적 힘과 손가락 기술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다루는 것일까? 기악 연주자는 집에 피아노가 있거나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갖고 있으므로 언제든
연습할 수 있다. 하지만 지휘자는 어디에서 연습해야 할까? 추상적인 방법으로는 음악이나 음표를
익혀나갈 수가 없다. 피아노 없이 베토벤의 소나타를 머리로만 공부해야 하는 피아니스트를 한번
상상해보라.

소리를 다루는 일은 무척 배우기 어렵다. 소리와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는 지휘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악기의 용법 , 음악이 하나의 그룹에서 다른 그룹으로 어떻게
넘어가고 오케스트라에서 실제 음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진정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 제 1
바이올린에는 16 명이 필요하고 각자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조직 화 해야 한다 .
조직화라는 말은 단지 단원 각자가 최선을 다해 연주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면서 연주법을 서로 맞춰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무엇보다 정확한 음정과 소리의
동일한 시작(attack), 사운드, 아티큘레이션을 뜻한다. 지휘자는 악단이 빚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동시에 명확성과 표현까지 챙겨야 한다 . 지휘자라면 수준이 떨어지는 악단에서도
사운드를 끌어낼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휘자는 위대한 악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다성이며 화성은 다성음악이라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성악가와 기악


연주자들에게 음악이 지닌 다성음악적 성격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 즉 음악에서의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 사이의 관계 말이다. 선율의 개별적인 흐름이라는 점에서 수평적이며
화성이나 다성 음악이라는 점에서는 수직적이다 .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 사이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으면 전체 해석도 정확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내게 다성 음악은 음악의 본질을 이룬다. 그것은 여러 ‘성부 voices’들이 존재하며 여러 악기들이


동시에 연주하거나 피아노 같은 하나의 악기에서 독립적인 성부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을 통합
시키기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 피아노의 각기 다른 성부는 진정 독립적일까 ? 서로 다른 성부나
악기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 여기서 운동하거나 멈춰 있는 신체 기관은 다른
기관에 의해 그 운동이나 정지가 결정되고 다른 기관 역시 또 다른 기관의 영향을 받으며 이 과정은
무한 반복된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할 수 있다. 악기들처럼 신체기관 역시 실체라는 점에서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음악은 고유한 통합적 질서에 지배받기 때문에 다양한 성부나 악기들은
신체 기관처럼 반응하고 이 같은 과정이 축적 되면서 전체를 구성한다.

강약의 체계를 결정짓는 것은 음악적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특정 악기나 악기군이 우위에 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악기가 다 들리게 하고 악기나 성부 간의 질서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악기나 성부 간의 올바른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절대적이다. 이 점은 주어진 박자에
영향을 미치는 완벽한 중량감을 부여한다 . 다시 말해, 운동 중인 물체의 무게가 그 움직임도
결정짓는 것이다.

연주자나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른 성부나 악기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다. 진정한 균형을 만든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성부들이 적절한 원근을 갖고 나타나도록
들리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성부가 들리지만 어떤 성부는 다른 성부들보다 조금 더 가깝게
들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모든 성부나 악기는 각각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을 해야 하며 그래야 다른
성부 사이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성부들은 자기 변환이나 다른 성부와의 연관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성부들을 나란히 병치하는 것만으로는
전체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각각의 성부들이 개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성부와 접촉하면서
더욱 복잡한 개성을 무한히 만들어내지만 그렇다고 개별 성부의 독자적 특징까지 양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휘자가 현악 사운드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는 단순히 표준화된 연주법만을 받아들이게


된다. 금관 악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물론 이들 악기가 지닌 힘이다. 지취자는 필요한 음량이나
복용량에 대해 심도깊은 지식을 지녀야 한다. 다시 말해, 악보 전체에 크레센도가 적혀 있다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꺼번에 시작해서는 안된다.

귀를 훈련하는 방식에 있어서 마음을 열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실수를 두려워하면 말하기를 배울 수 없다.

11.오페라
무대에서 성악가들의 신체동작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 음악적으로나
성악적으로 지극히 까다로운 대목에서 바닥에 눕거나 무릎을 꿇기도 한다. 자세가 아니라 타이밍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성악가가 그에 맞는 적절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시점은 언제인가, 성각가가 무대 위에서 필요한 동작을 해야 하는 때는 언제인가 ? 음악과 연기를
때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부딪치기도 하지만 언제나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이럴 때에만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이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다 .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다. 가끔은 연기와
음악이 나란히 갈 때 최대한의 표현을 빚어낼 수 있따 . 음악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고 음악이
빚어내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연출가와는 오페라를 제작할 수 없다 . 구어로 된
원문에서는 모든 음절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오페라에서는 상당수는 음악의 길이에 의해
조절된다.

연출가와 지휘자 사이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무척 밀도 있는 악보를 지니고 있지만
극적 집중력이 떨어진다든지, 연기 수준은 높지만 거꾸로 음악적 밀도가 낮다면 그 프로덕션은
제대로 됐다고 할 수 없다.

12.시카고
몇 세대를 거쳐 형성된 이 오케스트라의 전형적인 특성만큼은 간식하고 싶었다 . 명확한
아티큘레이션, 투명한 리듬, 깨끗한 음정, 아무런 치장 없이 극도로 명징한 프레이징을 찾아내서
이를 보존하려고 애썼다. 솔티는 언제나 메트로놈으로 박자를 체크한 뒤에 그 박자를 그대로
지키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렇기에 박자를 결정하는 것이 언제나 우선이었고 그 박자에
어떤 내용물을 집어넣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 내 접근 방식은 정반대다. 나는 박자를 예감하면서
출발한다. 우리는 박자가 아니라 음표나 음악을 듣는것이다 . 박자는 음악에 긴장을 불어넣는데
필요한 투명성과 명확성, 음량 등 모든 것이 들리도록 하는데 필요한 속도를 뜻한다. 이는 음악을
준비하거나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박자는 가방에 해당하고 음악은 내용물인 것이다 . 박자는 음악의 내용에 필요한 정확한 속도를
제공하므로 마지막에 결정하는 것이다 . 객원 지휘자는 리허설할 때 연주회 프로그램을 가능한
최상의 수준으로 지휘하기 위해 준비하려고 애썼다 . 하지만 음악 감독이 된 뒤에는 리허설에서
소리,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과 음정에 대해 오케스트라와 생각을 공유하고발전 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음악 감독일 때에만 용납될 수 있는 전혀 다른 접근법인 것이다 . 음악 연주에서
통일성을 빚어내는 것은 음악 감독의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지휘자는 단원들을 가르칠
수 있고 이전보다 좋은 연주를 할 수 있게 독려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를 ‘단지 연주’하게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 전문 지휘자가 원하는 것을


오케스트라가 따라오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 그것만으로는 반드시 음악을 만든다고 할 수 없다 .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음악적 허파로 함께 음악을 숨 쉬고 있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다 . 음악 감독이
자신의 생각과 진심을 공유할 수 있고 나누고자 할 때만 이를 이룰 수 있다.

내가 시카고에서 했던 모든 작업은 특정 작품을 준비하기보다는 연주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확립하는 것과 더욱 연관이 있다. 나는 ‘소리를 빚어내는 것은 결국 단원’이라는 사실을 지휘자나
오케스트라 모두 상기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휘자는 단원들을 가르칠 수 있고
이전보다 좋은 연주를 할 수 있게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적인 동력은 소리를 빚어내는 바로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지휘봉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느 오케스트라든지 모든
음표를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만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는 단원들이 존재한다 .
그들은 지휘자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지만 이는 물론 사실이 아니다. 나는 심리적이거나
선동적 분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음악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소리와 침묵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써왔다 . 하지만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에게는 이 점이 천성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나는 첫번째 음을 시작하기 전이 아니라 시작한
뒤에야 음악에 대해 생각한다는 느낌을 빈번하게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의 시작(attack)도
내가 원해던 것보다 날카로워지곤 했다. 소리, 프레이징,박자의 유연성은 많은 단원들에게는 낯선
개념들이었고 특히 오랫동안 오케스트라에 재직했던 단원들에게는 더욱더 그랬다. 매 번 원점에서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작품을 잘 준비해서 가능한 한 자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매번 연주회를 완벽하게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매번 연주회를 완벽하게 반복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다보면 단원들의
삶은 좀 더 편안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이처럼 틀에 박힌 것은 음악 연주의 적이다 . 나는
단원들이 매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려고 애썼다 . 전날 연주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사운드는 새롭게 만들어내야 했다. 때문에 매번 리허설에서 중요한 지점이 어디이고 어느 곳이 덜
중요한지, 강조점을 분명하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멘트처럼 고정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소리가 세상에 나오는 바로 그 순간에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이는 무대 위의
모든 단원들에게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 한 걸음 물러나 앉아서 예전에 해 왔던
식으로 반복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듣는
것이다. 단지 서로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악기 간에 끊임없이 상호 교감을 빚어내는 것이다. 개인
실력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동등할 정도로 중요하다. 개인 실력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동등할 정도로 중요하다. 나는 초반부터 이를 이뤄내려는 욕심에
사로 잡혔다. 단원 개인의 유연성과 창조성을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하면서 나는 초기부터 오케스트라에서 ‘안전함’을 치워버리려고 했다. 예를 들어 소리가 갈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금관 섹션에서 지나치게 작게 연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 반대로 마디의 매
박자마다 강세를 주면 현악기들이 함께 연주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 많은 단원들이 서로 안
맞을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렇게 연주하려고 하겠지만 내게는 너무 낯설기만 하다 .
음악은 그저 안전하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용기이며, 용기는 위험을 무릅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노력이라는 요소 자체가 음악의 내적 본질을 이 룬다 . 편안하게
흘러가는 듯 베토벤을 연주하는 건 그의 음악이 지닌 본질과 어긋나는 것이다 . 수비토 피아노(
갑자기 여리게)직전에 크레센도를 최대한으로 끌고 가고 바로 피아노 앞에서 급격하게 크기를
떨어뜨리는 건 대단한 에너지와 수고를 필요로 하며 음악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대로 더욱
어려운 기교의 음악에서는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시카고 심포니처럼 아무런 제약 없는 기술적 능력을 지닌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어떤 대목에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관점과 맞부딪치자 상당히 힘들어 했다.

음악적 수단과 단어의 의미사이의 관계에 눈뜰 때, 그 둘의 결합 역시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게 된다.

오케스트라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때문에 미국 사회의 다원성은 이 오케스트라에도


깊이 투영되었다. 빼어난 재능을 갖춘 젊은 단원들이 강한 전통을 지닌 오케스트라에 합류해서 그
전통을 흡수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내게 대단한 즐거움이다. \

13.베를린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예술 감독의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오랜 전통과 새로운 출발을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 나는 악단의 수준이 무척 높다는 걸 알고 먼지를
떨어내기 시작했다. 순전히 음악적 의미에서 나는 음정 , 통일된 소리의 시작과 통합된 목표를
지니는 앙상블 연주를 드러냈다 . 그리고 조금씩 오케스트라의 높은 수준에 대한 내 짐작이
옳았으며 , 모든 것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고 느 꼈다 . 전반적인 태도만이 아니라
프레이징과 사운드에 대한 탐구, 타고난 음악적 정합성 같은 올바른 주제에 대한 몰입이라는
점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실력은 무척 대단했다. 하지만 일일 위생(daily hygiene)은 실시해야 했다.
나는 전체주의국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들과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원들은 오랫동안
자유나 바깥 세계와의 접촉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서도 여러모로 불안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부딪치는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일이 금지 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두려움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감정이 된다는 점이다 . 동료나 가족과의 소통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기를 겁내는 것이다. 몇몇 단원들은 오페라 하우스에 올 때면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했지만 미래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강했고, 그런 감정이 사라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전통에 대한 단원들의 감정은 보존되어 있었따 . 그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환경을 고려하면 놀랄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방으로 불리는 외부세계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고, 덕분에 전통을
파괴할만한 요소가 유입되는 일도 적었다.

오케스트라에 대한 음악적 ‘처방’은 무척 중요한 두 가지 사이클을 나란히 배치하면서 시작됐다 .


오페라 극장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주하고 콘서트홀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
것이다. 이 두 계획은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법에서 극도의 훈련과 몰입을
필요로 했다. 이 경험을 통해 오케스트라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나는 올바른 길로 걷고
있다고 확신했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에서 오랜 시간을 견뎠던 오페라 극장은 무척 복잡한 기관일 수 밖에 없다.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문제도 막대한 부담이었다. 비밀경찰의 정보원 문제도 대처해야 했다.

나는 축제 같은 갈라 콘서트만 여는데 관심이 없었다. 나는 일상적인 기반에서 음악과 노래, 연기를


특별한 스타일로 빚어내고 싶었다 . 나는 일찍부터 전작을 연속해서 올리는 사이클적 사고의
신봉자다. 이 점은 바그너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사이클 선호하는 예술적 이유이기도 하다 .
음악가가 연작 사이클에 출연하면 극장과도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 나는 내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보조 지휘자를 찾지는 않았다 .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고 실제 작업 과정에서 배우며
자신의 창조력을 작품에 투여할 수 있는 지휘자들을 골랐다. 대부분 지휘자들이 짧은 시기만
머물렀는데 너무나 재능이 넘쳤기 때문에 외부로 나가서 자신의 일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 내 의무이며 그들이 이뤄낸 성과를 지켜보는 것이 행복하다. 언제나 소리를
익히고 듣고 관찰하면서, 그들 스스로 음악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높은 나의
목표였다. 그럴 때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내게 중요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 나는 ‘주의 깊게 듣는 것’(listening)과 들령는 것
(hearing)을 구분하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별개라는 점을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 . 오케스트라는
수많은 공명(sonority)을 빚어낸다. 균형과 음정, 소리의 질감, 음색과 또 다른 많은 것 가운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귀를 통해서 그 순간 재빨리 잡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리가 현실 세계로 나오자마자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이런
지식을 전달하려고 했으며 보조 지휘자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대단히 개성적인 스타일로
지휘하게 됐다. 그들은 나의 복제물고, 서로의 복제물도 아니다. 이 음악가들에게 처음부터 신뢰를
보내고 지휘할 기회를 주는 것이 내게는 언제나 중요했다. 나는 어중간하게 나이 든 지휘자들을
보다 젊은 지휘자들로 교제했지만 음악에서 중간이라는 걸 믿지 않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성악가들에 대한 나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따. 이미 대단한 자질과 명성을 갖추고 있거나 아니면


정상으로 갈 만한 잠재력이 충분한 젊은 성악가를 선택한다. 음악에서 중도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마찬가지로 오디션에서 성악가의 노래를 주의깊게 듣는 법을 배우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그들이 경력 초반에 있는지 중반이지 , 끝까지 도달해버린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발전한 여지는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일까?

음악가들이 성장하기 위한 의욕과 적절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으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 어떤 성각가가 오디션에서 잠재력의 최대치를 냈다는 걸
았았다면 그 최대치는 반드시 대단히 높아야만 했다.

주의 깊게 듣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이유다 . 책이나 악보를 읽을 때 ,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오디션에서 누군가의 연주를 들을 때에도 단지
그 순간 연주하고 있는 음표만이 아니라 그들의 재능까지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 행간을 읽는
것처럼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들려다봐야 하는 것이다. 최종 결과물로만 오디션을 바라본다면 시
전체 대신 한 줄만 읽고 있는 것과도 같다.
14.연출가와 바이로이트
베를린에서 나는 바그너 오페라 전곡을 한 팀과 하고자 했고 행복하게도 연출가 하리 쿠퍼와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무대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인물 연출(persononregie)’과 대본을 명확히
분석하고 전달하는 능력에 커다란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 언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등장하고
어떤 단어에서 그 방향이 바뀌는지 정확히 안다는 점에서는 내가 음악을 다루는 방식과도 무척
흡사했다고 본다. 나는 일반화를 혐오하기 때문에 노래나 연출에서 관습적인 방식보다는 이런 점을
더 중시한다. 연출가는 종종 잘못된 이유로 비판이나 찬사를 받는다. 가장 높은 수준에서 연출가의
작업은 믿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 연출가는 대본을 알고 이해해야 하며 그 내용을 명확히 해서
어디서 동작이 시작되고 어떻게 움직어야 하는지 지시를 내려야 한다. 다른 사람이 조명과 무대
세트와 의상을 디자인하더라도 결국 오페라의 시각적 측면까지 모두 책임지는 사람은 연출가다 .
연기하는 성악가든 노래하는 연기자든 어떤 쪽으로 생각하기를 선호하든지 간에 그 방향의 설정할
수 있다는 제 연출가의 작업이 갖는 깊이가 담겨 있다 . 내 경험상 눈과 귀, 심리적 이해까지 두루
갖춘 연출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출연진이 아무 목적 없이 움직이는 아름다운 회화보다는
시각적 효과를 효과를 희생하더라도 등장인물 간의 심리적 관계를 매혹적으로 드러내는 편을
선호한다. 이것이 음악에서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에 해당한다는 점을 깨달았고 베를린에서
바그너 사이클을 할 때에도 중시했다.

여느 연출가와 달리, 셰로 자신이 대단한 뛰어난 연기자였으므로 성악가들에게 아주 분명한 지침을


줄 수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예외적인 조합을 지니고 있었따 . 프랑스식적 사고의 데카르트적
측면인 규율에 대한 엄격함과 더불어 대단한 직감, 상상력, 이야기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개인 시간에도 그가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들을
겸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개인 시간에도 그가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를
나중에 리허설에서 반영하는 걸 보았다. 그는 음악가는 아니지만 놀랄 만큼 음악적인 사람이다.
그는 예민한 귀와 굉장힌 기억력의 소유자여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마리아 군인을 바라보면서 노래하는 음정이 제 2 막에서 보체크와 복잡한 토론을 벌이는
음정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걸 알아챘다. 거기에다가 그는 특히 상상력 넘치는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다양한 스타일과 분야에 대해 아주 정확한 이해와 민감한 귀를 갖고서 이 모든 요소를
완벽한 조합으로 이끌어내고 심리적 세분화까지 곁들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의 능력은 비길 데가
없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그가 새로운 오페라 프로덕션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
비극적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아울러 그가 예전에 우리에게 커다란 재능을 선보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기를 고대한다.

나는 새로운 캐스팅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에게 말했고 (클렘페러) 우리는 예전에 이


역할을 맡은 적이 없거나 심지어 바그너를 처음으로 불러보는 새로운 성악가들을 캐스팅했다.
한스 작스 역에는 이미 리사이틀 성악가로 훌륭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로버트 홀을 택했다 . 나는
그의 지성과 목소리, 그리고 대사에서 다채로운 색채를 끄집어내기 위해 언어로 연기하는 능력을
결합한다면 그 역에 썩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해를 거듭하면서 나는 바그너의 작품이
지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됐다. 바그너의 음악에서는 모든
표현이 가능한 요소가 극단까지 표출되어 있다. 따라서 지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됐다. 바그너의 음악에서는 모든 표현 가능한 요소가 극단까지 표출되어 있다 .
따라서 지휘자가 단지 악보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가능한 모든 요소를 관찰하려고
노력하면서 바그너에 철저히 몰입하다보면 거의 다른 대부분의 음악 양식에도 필요한 본질들을
모두 배우게 된다. 그러느로 실례로, 모차르트에서 양식이나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이나 전체
막의 구성 등에서 필요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 모차르트와 함께 바그너는 모든 음악가 , 특히
지휘자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15.오늘날의 이스라엘
1989 년 11 월의 베를린 장벽 붕괴는 이스라엘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심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 내게도 장벽은 단순한 물리적 경계만은 아니었다 . 선과 악, 진보와
퇴보라는 두 세계가 존재한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 각자 서로 다른 편을 반대편을 불러왔다. 서방
세계는 소련의 영향권에 있는 세계를 악의 제국으로 불렀고 반대 편도 마찬가지였다. 장벽이
붕괴되자 더 이상 국경도 없고, 금지된 영역도 없고, 금지된 사상도 없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거대한 낙관주의가 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벽 붕괴로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불확실성한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추종해야 할 이데올로기가 사라졌고 자의든 타의든
각자의 편에서 해답을 주는 것처럼 보였던 시스템 역시 없었다 .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보존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진정으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예전 문제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1989 년 11 월의 사건에 따른 결과들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더 많은 자유를 가질수록 더 많은 의무가 따르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제 어떠한 반대도
없는 자유, 순전히 낙관적인 생각과 행동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상대를 헐뜯고
공격하는데 써야 했던 모든 시간과 정력은 갑자기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 . 실제
그렇게 되었는지는 의문스 럽지만 말이다 . 이같은 상황을 보면서 1967 년 초를 떠올렸다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에서 주요 이슈는 팔레스타인 주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다.하지만 1967 년의 상처와 뒤이은 결과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와 비슷했다. 두 상황
모두 행복감에 만연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군사적 승리 이후에 평화적 해결책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상대편의 요구에 대해선 그 무엇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행복감 이후 종종 깊은
우울증이 찾아오는데 이스라엘와 독일의 두 경우 모두 정확히 해당하는 말이었다. 중동 평화
협상은 1991 년 시작됐다. 내 생각에 이스라엘 국가는 확실히 두 개의 시기로 구분 되는 것 같다.
하나는 1967 년에 지속된 시기이며 다른 하나는 1967 년부터 시작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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