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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를 지어 보이니 술에 취한 변 사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글을 받아 본 운봉은 속으로

‘아불싸! 일 났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운봉이 공형 불러 분부한다.

“야야, 일 났다!”

공방 불러 자리 단속, 병방 물러 역마 단속, 관청색 불러 다과상 단속, 옥사장 불러 죄인 단속, 집사


불러 형벌 기구 단속, 형방 불러 서류 단속, 사령 불러 숙직 단속, 한참 이렇게 요란할 때 눈치 없는
본관 사또, 운봉을 향해 말을 던진다.

“여보 운봉, 어딜 그리 바삐 다니시오.”

“소피 보고 들어오오.”

그때 술이 거나하게 취한 변 사또가 술주정을 하느라고 느닷없이 명을 내렸다.

“춘향이 빨리 불러 올려라.”

이때 어사또가 서리에게 눈길을 주어 신호를 하니, 서리 · 중방이 역졸 불러 단속할 때,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한 가닥 올로 지은 망건에 두터운 비단 갓싸개,
새패랭이 눌러 쓰고, 석 자 길이 발감개에 새 짚신 신고, 속적삼 · 속바지 산뜻이 입고, 여선 모
방망이에 사슴 가죽끈을 매달아 손목에 걸어 쥐고, 여기서 번뜻 저기서 번뜻, 남원읍이 웅성웅성.
청파 역졸 거동 보소. 달 같은 마패를 햇빛같이 번쩍 들고 우렁차게

“암행어사 출두야!”

역졸들이 일시에 외치는 소리에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니 산천초목인들 금수인들
아니 떨겠는가. 한 번 소리가 나자 남문에서도

“출두야!”

북문에서도

“출두야!”

동문에서도 서문에서도 “출두야!” 소리가 맑은 하늘에 천둥 치듯 진동했다.

“공형 들라!”

외치는 소리에 육방이 넋을 잃는다.

“공형이오.”

서둘러 나오는데 등나무 채찍으로 따악 치니,

“에고, 죽네.”

“공방, 공방!”

공방이 자리를 들고 들어오며,

“안 하려는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어가랴?”

등나무 채찍으로 따악 치니,

“에고, 박 터졌네.”
좌수 · 별감은 넋을 잃고, 이방 · 호장은 혼을 잃고, 삼색 옷 입은 나졸들은 분주하네. 모든 수령들이
도망하는데 그 꼴이 가관이다. 도장 궤 잃고 유밀과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밥상 쓰고,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니 거문고요, 깨지나니 북 · 장구라. 본관 사또 똥을
싸고, 멍석 구멍에 새앙쥐 눈 뜨듯 하면서 관아 깊숙한 안채로 들어가며 급히 내뱉는 말이,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관청색은 상을 잃고 문짝을 이고 내달으니 서리 · 역졸 달려들어 후다닥 따악친다.

“에고, 나 죽네.”

이때 암행어사 분부하되,

“이 고을은 대감께서 계시던 고을이다. 소란을 금하고 객사로 옮기라.”

관아를 한 차례 정리하곤 동헌에 올라앉은 후에,

“본관은 봉고파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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