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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째 호떡 굽는 할아버지, "내 취미는 여행" - 오마이뉴스

55년째 호떡 굽는 할아버지, "내 취미는 여행"


75세 이신일 할아버지의 일과 여가

09.10.02 14:50 l 최종 업데이트 09.10.02 14:53 l 김소연(thdus0615)

▲  55년째 호떡을 굽고있는 이신일 할아버지, 가을을 맞아 여름 바지 밑에 타이


즈를 신고 머리엔 빨간 두건을 둘렀다.

ⓒ 김소연 관련사진보기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낙원상가에서 운현궁을 향해 걷다 보면 달콤한 냄새가 시선을


잡아챈다. 1톤 트럭 위에 '길이 잘 든' 드럼통을 엎어놓고 기름을 두르지 않은 노릇한
호떡을 굽고 있는 이신일 할아버지(75). 빨간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여름 내 입던 갈
색 반바지 속에 여성용 잿빛 타이즈를 신었다. 나름의 가을맞이다.

55년째 호떡을 구워 파는 이 할아버지는 젊을 때 연탄집게 공장을 운영하다 철물을


모두 도둑맞는 바람에 하룻밤 사이 망해 버렸다고 한다. 맨주먹으로 일어설 수가 없
어 잠시 한다는 게 50년을 훌쩍 넘겼다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의 손은 숙련된 솜씨로 연신 호떡을 구워낸다. 할아버지


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일만 하고 사는 건 옳지 않으
며, 일만큼 휴식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60년 넘게 보아온 영화 "변사가 나오던 시절 영화가 참 재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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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 넘게 영화 마니아로 살아온 할아버지의 DVD플레이어. 한가한 시간엔


영화 한 편 보며 호떡을 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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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영화 마니아라고 말하는 이 할아버지의 트럭에는 DVD 플레이어가 설치되어


있다. 손님이 뜸해 한가로울 때면 호떡을 구우며 영화를 감상한다. 60년 넘게 보아
온 영화다.

"어려서 아버지 손 붙잡고 영화관 따라다니던 시절부터 영화가 좋았어. 6.25 후엔 영


화관이 많이 생겨나서 그때부터 이때껏 영화를 취미 삼았지요."

가슴을 쥐어짜는 아픔이 싫어서 애정 영화는 보지 않는다. 무협 액션이나 공포물, 기


록 영화 등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기록 영화다. 하지만 한
국 역사 기록 영화들은 화질도 떨어지고 좋은 척 포장하는 경우가 많아 거의 구입하
지 않았다. "조금 부끄러워도 사실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야"라며 아쉬움을 표
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영화를 묻자 이 할아버지는 1926년에 제작된 나운규의 <아리랑


> 이야기를 꺼냈다. 필름은 물론 시나리오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전설의 무성영화 이
야기를 듣게 되다니!

"변사가 나와서 얘기해 주는 영화가 정말 재밌었지. 가끔 변사 따로, 음악 따로인 경


우도 있어. 그럼 완전히 공연을 망치는 거야. 사실은 그것도 재미지."

종로 4가와 5가 사이 제일극장을 포함한 그 근방 극장들에서는 국악이나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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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주로 공연했고,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에선 영화를 많이 상영했다고 한다. 이 할
아버지는 인간 문화재 이은관옹의 배뱅이굿을 부민관에서 보았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고 부민관 폭파사건 주인공이기도 했던 이 건물은 광복 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다가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서울시 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인다. 할아버지의 설명에 세월이 진하게 묻어난다.

돈도 그렇다. 영화 한 편에 10원 정도 하던 때가 있었다는데 지금 영화 한 편 가격을


생각하면 그 사이 화폐 가치가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이 난다.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TV가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냉큼 사버렸어. 남의 집 셋방


을 살았지만 우리 집엔 TV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늘 바글거
렸지."

좋아하는 것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일까? 할아버지의 표정엔 예민함이 없


다.

"이젠 늙어서 제목이나 내용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해. 또 기억할 필요도 없고"라고
말하면서도 <마부> 영화 촬영장 구경하던 일, 존 웨인 영화를 좋아한 얘기, 6편 모두
를 간직하고 있다는 히말라야 <차마고도> 이야기 등, 그의 영화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렇듯 평생 영화를 즐겨온 그에게는 영화 외에도 30년 넘게 즐겨온 여가가 있는데,


그것은 여행이다.

찬찬히 음미하는 여행, "밥 한 덩이에 소금만 찍어 먹어도 꿀맛이야"

8살, 6살 어린 아이들을 두고 아내가 세상을 등진 후, 할아버지는 혼자 아이들을 키


우며 산행에 취미를 붙였다. 자녀들이 장성한 후론 호떡을 팔지 않는 여름 내내 여행
을 다닌다. 트럭에 이불과 버너, 쌀을 싣고 정처 없이 떠나 한 장소에서 며칠씩, 때론
한 달 이상 머무르기도 한다. 차를 장만하기 전엔 오토바이에 텐트를 싣고 떠났고, 그
마저 없을 땐 밤기차로 떠나 여행을 했었다고 한다.

"여행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못할 것도 없지요. 밥 한 덩이에


소금만 찍어 먹어도 그 맛이 꿀맛이야. 오히려 배가 고파야 구경도 제대로 할 수 있
지."

요즘 실물 경기가 IMF때보다 더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채워줄 즐거


움 한 조각은 가지는 게 좋다는 이신일 할아버지, 그는 홀로 가는 여행 중에 목적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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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들과 동행하며 친구가 된다.

▲  드럼통으로 만든 할아버지의 호떡 기계. 지금 자리에서 호떡을 팔기 시작하면


서 부터이니 사용한 지 20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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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에 아기자기하고 좋은 데가 참 많지"라며 그가 추천해준 산들은 전라남도에


있는 영암 월출산과 해남 달마산이다.

"바다 근처 산을 오르면 안개가 껴서 산봉우리가 섬이 되지요. 기가 막혀. 말 못할 아


름다운 경치를 보면 두 눈에서 눈물이 솟구쳐 흐른다니까."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이 반짝이던 할아버지는 산마다 도로를 놓아 민둥산이 많아지


는 걸 못내 아쉬워하면서 산에 가면 자작나무, 고사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들
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즐겨보라고 권해 준다.

이제는 몸 상태를 고려해서 산보다 평지를 주로 다닌다는 할아버지는 지금도 쉬는 날


이면 초등학생인 어린 손자들에게 "가고 싶음 타거라"라고 말하고 제부도로, 대부도
로 데리고 다닌다.

지금 자리에서만 20년 이상 장사를 해왔다는 할아버지. 이제는 자신이 한동안 보이


지 않으면 친한 손님들은 또 여행을 떠났으려니 한다더니 정말 지나던 사람들이 "오
랜만이네요" "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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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트럭이 이 할아버지의 가게요, 여행지 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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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렇지만 힘 있게 삶을 살아가는 한 노인이 잰 걸음으로 바삐 세상을 사는 이


들에게 한 템포 천천히 숨 쉬기를 일러준다. '백년전통 불가마, 춤추는 호떡' 몇 개를
사서 돌아오는 길, 자꾸 걸음을 늦추게 된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노인 인구가 크게 늘어나며 고령사회에 대한 준비가 시급


하지만 아직 노인 복지 정책은 미비한 상태라고 한다. 소박하지만 일과 여가를 잘 분
배하여 매력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노인 복지 정책이 잘 뿌
리내려 노인들이  여가를 선용하고, 일을 통해 소득과 만족을 얻을 기회가 늘어나
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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