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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엘레나 세르게예브나

(Дорогая Елена Сергеевна)

나오는 사람들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발로쟈
빠샤
랼라
비쨔

작 : 류드밀라 라쥬몹스까야 (Людмила Разумовская)

- 1 -
제 1 막

고등학교 선생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의 집.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옐레나 세르게예


브나가 문을 연다. 현관 앞에 옐레나 선생의 학생인 세 명의 남학생과 한 명의 여학
생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학생들: 안녕하세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선생님! 좋은 저녁이예요!
옐레나: 아니, 너희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왔어?
빠 샤: 존경하는 옐레나 선생님...저...
비 쨔: (말을 끊으며) 저희는 반대표로써 ...
빠 샤: (비쨔를 쳐다보며) 넌 조용히 해. 선생님! 저희는 곧 졸업을 앞둔 3학년 2반의 대표
로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드리려고 왔어요. 선생님, 이 꽃들처럼 늘 화사하고, 행복
하시고, 에... 또, 건강!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생일과 우리들의
화려한 졸업식을 위해!

모두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


빠 샤: (꽃다발을 건네며) 키스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선생님, 네?
비 쨔: 저두요, 저두요,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랼 랴: 축하드려요, 받으세요, 선생님. (포장된 것을 건넨다)
발로쟈: 우리들의 성의를 받으세요. (꽃다발을 건넨다)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한다.


학생들: 선생님, 우린.. 선생님을 축하해 드리기 위해 온 것인데, 왜 그러세요? 선생님!
옐레나: (울먹이며) 어떡하지.. 난 너무 고마워서...상상도 못했어... 고마워...얘들아, 근데
내 생일은 어떻게 알았어?
비 쨔: 그거야 아주 쉽죠! (웃으며) 선생님!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진 마세요! 하하하!
옐레나: (웃으며) 대단한데! 자 어서 들어와.
빠 샤: 아니요, 그만 가 봐야죠. 시험이 또 남았잖아요?
옐레나: 무슨 소리야? 오늘 겨우 수학시험을 끝냈는데, 이대론 아무데도 못 가.
비 쨔: 저희가 귀찮으시지는 않으세요? 손님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옐레나: 손님은 무슨! 선생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어떤 손님도 없으니까 편하게
놀다가 가. 절대 그냥은 못 보낸다.
발로쟈: 고마워요 선생님. 대신,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마세요. 우린 조금만 있다가 일어날께
요.
옐레나: 진작 그럴 것이지! 자, 꽃은 꽃병에 꽃도록 하고... 랼랴, 거기 찬장 안에... 근데
이건 뭐야? (마침내 지금껏 손에 들고 있던 포장물에 관심이 간다)
랼 랴: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죠.

- 2 -
옐레나: 어쩜, 이런 생각들을 다했을까. (포장을 풀며) 이게 뭐야?
비 쨔: (자랑스럽게) 잔 이예요. 크리스탈로 된 오래된 수공품이래요. 여기 글씨 보세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여섯 개에 다 쓰여져 있어요.
옐레나: 받을 수 없어.(포장을 접는다.)
랼 랴: 그러지 마세요!
옐레나: 이게 도대체 얼만지 알아? 선생님 선물로 이렇게 많은 돈을 쓰면 어떻게 해, 선생
과 제자 사이에 이런 선물은 지나쳐.
발로쟈: 선생님, 이건 뇌물도 아니고, 저희 정성인데요.
옐레나: (좀 혼란해 져서)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비 쨔: 저희 마음예요, 네?
옐레나: 너무 고맙지만, 난 이런 선물은 받을 수 없어.
비 쨔: 거봐, 내가 책이 좋다구 했잖아! 도스또옙스끼의 사인이 있는 책 말야. 겨우 이런
유리조각이나 가져왔으니!
빠 샤: 그럼 어떻게 할까? 갖다버릴까? 선생님, 저희들 성의를 생각해서 좀 받아 주세요.
발로쟈: (강하게) 그러시면 안되죠. 받으세요. 선생님. 저 실망스런 얼굴들 좀 보세요.
옐레나: 너희들 이걸 사기 위해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했을꺼 아냐, 그분들이 나 같은 선생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겠니?
빠 샤: 이거 하나 때문에 부모님들 파산하는 거 아니잖아요! 받으세요, 선생님! (크리스탈
잔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비 쨔: 소리도 참 이쁘다!
옐레나: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일어나며) 마실 것 좀 가져올게! 아, 너희들 음악 들을래?
나한테 정말 좋은 레코드가 있는데, 한번 골라봐. 잠깐만!
랼 랴: 제가 도와 드릴까요?

옐레나와 랼랴 나간다.
비 쨔: 안 받으려던 거 아니었었냐? (빠샤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린다.) 안
받는 척 하면서 낼름 받아먹기는! 선생들은 다 똑같애! 얼마 전에 교무실에서, 저
여자가 자기 수업을 늘려 달라고 야단을 떠는 거야! 돈에 얼마나 목을 매시던지!
발로쟈: 비쨔 너, 포도주잔 없어졌다고 혼나지 않겠어?
비 쨔: 좋은 일을 위해 쓴 거잖아! 잘했다고 기뻐하실 껄!
발로쟈: 유감스럽게도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해. 인생이란 힘 있는 자에게 바치고 또 갖다
바쳐야 되는 거니까. 그게 현실이야.
빠 샤: 그렇지만, 선물로 저 여자 마음을 살 순 없어. 저 여자에겐 동정표를 얻는 게 제일
이야.
비 쨔: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내가 주는 선물을 상대방이 거절하는 건 그 선물이 너
무 값싸기 때문이래.
빠 샤: 너네 아버지 아직 안 잡혀가셨냐?
비 쨔: (도전적으로) 너네 아버진?
빠 샤: 우리 아버진 안 훔쳐.

- 3 -
발로쟈: 어떤 방법이든 가려선 안돼. 사람은 약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거든.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약점을 정확히 알아내서, 제 시간에 터트려야 한다는 거야. 때를 잘 맞춰서
쾅!

부엌.
랼 랴: (음식을 만들며) 부럽다, 부러워요. 전 요, 제 집을 갖는 게 소원이예요, 선생님. 커
다란 방에 넓은 거실, 커다란 욕실도 있고, 발코니엔 온갖 화초가 숨쉬죠! 샐러드에
햄을 넣을까요?... 저희 집, 조만간 집수리를 한다고는 하는데, 보나마나 엄마랑 또
같은 방이죠. 마요네즈는 냉장고에 있어요? 사람이 사는 거 자체가 정말 문제 투성이
예요.
옐레나: 사실 그래, 안타깝지만.
랼 랴: 엄마랑 한방을 쓰는 거,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엘레나: 왜?..
랼 랴: 맛 좀 보세요.(샐러드를 수저에 떠서 준다)
옐레나: (받아먹으며) 서로 사이가 좋다면야, 뭐...
랼 랴: 한 방에서 어떻게 사이가 좋을 수가 있어요? 난 밖에선 어른 대접을 받는데, 엄마
는 여전히 날 애 취급해요. 얼마나 화가 나는데요.
옐레나: 모르겠다, 나두 평생을 엄마랑 둘이 살아 왔는데, 그치만 뭐 어쩔 수 없잖아...
랼 랴: 난 벌써 영문으로 된 나바꼬프의 책도 읽어요! 그런데 엄만 사사건건 참견에, 저를
가르치려고만 한다니까요!
옐레나: 다 됐다. 너무 조촐하지만...
랼 랴: 무슨 말씀이세요? 먹는 건 중요하지 않잖아요! 인간관계와 진실이 중요하죠! 음식
이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지만, 인간 관계는 틀리잖아요.

방으로 들어간다.
옐레나: 남자들끼리 지루했지? 랼랴랑 샐러드를 좀 만들었어.
비 쨔: 선생님, 한잔씩! 좋죠? (샴페인을 꺼낸다)
옐레나: 너희는 아직 안돼!
학생들: (모두) 선생님! 구시대적 발상을 갖고 계시군요! 이건 샴페인이예요. 지금이 어느
시기죠? 이건 초등학생들도 마시는 거라구요! 한 병에 하나, 둘, 셋... 다섯 명예요!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옐레나: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이기겠니, 자, 모두 앉자!
학생들: (환호한다.) 우와!
비 쨔: 자, 모두 식탁으로! 모두 모여! (모두 앉는다) 집중!(펑 소리와 함께 샴페인 뚜껑이
천정을 향해 날아간다.) 선생님, 잔 주세요... 랼랴! (술을 따른다)
빠 샤: (일어선다.) 존경하는 옐레나 선생님의 생일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건강과 성공을 위해!
랼 랴: 정말 축하드려요, 선생님!

- 4 -
옐레나: 고마워, 얘들아. 정말 고마워. (마신다) 너희는 안주를 많이 먹어야 돼.
비 쨔: 참, 선생님두! 이건 애들 마시는 음료수라구요!
옐레나: 비쨔!
발로쟈: 웃어넘기세요, 선생님. 이건 쟤만의 유머죠. 저희는 전혀 안 마셔요.
비 쨔: 맞아, 그리고 여자랑도 안 자고... 음.. 그러니까...저희는 오직 시험만 준비하죠!
랼 랴: 선생님, 혹시 그거 아세요? 네 번째 숫자랑 늘 관련이 있는 사람은 저능아래요!
비 쨔: 정말?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모두들 웃는다.
랼 랴: 이게 모두 우리 부모들의 알콜중독과 성문란의 결과예요. (기쁘게) 인류는 퇴화하고
있대요. 상상이 되세요?
옐레나: (진지하게)실제로 인류는 어떤 알 수 없는 무서운 경계선까지 와 버렸어. 매일 들려
오는 뉴스들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기사들뿐이니까, 환경오
염, 생태계 파괴, 기근, 전쟁, 천재지변, 그리고 각종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 끔찍
해! 문제는 끝이 없어!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비 쨔: (그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 듯) 선생님, 음악을 듣는 게 어때요?
옐레나: 그래, 비쨔. 우리가 갑자기 왜 이렇게 우울해졌지? 내 생일인데! (레코드를 고른다)
나한텐 왈츠밖에 없는데... 너희들 왈츠에 맞춰, 춤추겠니?
발로쟈: 예! 춰요. 선생님, 저랑 함께 추시겠어요?
옐레나: 나? 아냐, 발로쟈, 난 춤춘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랼랴와 추는 게 더 날 꺼야.
발로쟈: 랼랴는 빠샤랑 밖에 안춰요. 쟤 둘이 사귀거든요.
옐레나: 그래, 뭐, 그럼... (춤추러 일어선다)
빠 샤: (랼랴와 춤추며) 너 기분 안 좋아 보인다?
랼 랴: 우리의 무모한 계획이 싫어졌어.
빠 샤: 언제부터?
랼 랴: 이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옐레나: (발로쟈랑 춤추며) 중요한 건, 발로쟈, 너의 강한 의지로 네가 원하는 길을 찾아내
는 것에 있어! 절대 포기하지 말고!
발로쟈: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옐레나: 난 내 일을 사랑해. 학교에 내 모든 인생이 있거든.
발로쟈: (웃으며) 자기 일을 사랑하는 건 좋은 거죠, 하지만, 원하는 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
는다면 그래도 행복할까요?
옐레나: 난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너희같이 똑똑한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
는 걸 볼 때 가장 행복해.

왈츠를 추며 그들은 식탁 쪽으로 다가간다. 발로쟈는 자기의 파트너를 매우 정중하


게 앉히며 그녀의 손에 키스한다. 옐레나는 흥분되어 있다. 마치 소녀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손수건으로 부채질을 한다.

- 5 -
옐레나: 춤 춰본지도 정말 오랜만이다. 이 왈츠...사람의 감정은 어떤 멜로디와 연관되어 있
을 때가 많아. 그럴 땐 그 멜로디를 마음 깊이 들을 줄 알아야 해.
랼 랴: (탁자로 와서 앉으며) 그걸 연상되는 감정의 기억이라고 하죠!
옐레나: 그래, 너희 두 사람 보니까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가 떠오른다! 사랑에 빠져 있다,
얼마나 행복한지! (쓸쓸하게) 난 뭐, 어떤 결과도 없었지만...
랼 랴: 왜요?
옐레나: (웃으며) 그 사람은, 사랑을 하기엔 너무 바쁜 사람이었거든.
랼 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럼 선생님은 바로 다른 사람을 찾았어야죠.
옐레나: (웃으며) 그러기엔 난 너무 보수적인가 봐.
비 쨔: 선생님, 시험 채점은 내일이죠?
옐레나: 그래, 비쨔.
비 쨔: 위원회에서요?
옐레나: 뭐, 언제나 그랬듯 선별 작업인거지.
비 쨔: 그럼, 점수 발표는요?
옐레나: 점심 시간 이후면 알 수 있을 거야.
비 쨔: 끔찍해! 여지껏 먹은걸 다 토할 것 같아!
옐레나: 비쨔, 시험을 엉망으로 본 건 아니지?
비 쨔: 몰라요, 하나도 쓴 게 없는 것 같네요.
옐레나: 뭐라구?
비 쨔: 하나도 안 썼다구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하지만 비쨔, 넌 항상 평균은 유지했잖아?

사이.
비 쨔: 죄다 베껴 쓴거예요!
옐레나: 어떻게 베껴 쓸 수가 있어?
비 쨔: 모르셨어요? 젠장! 오늘은 다 그 안경 낀 마리야 선생님 때문예요! 나만 뚫어져라
감시하니까... 죄송해요, 선생님... 이번 졸업 시험은 눈동자조차 굴리지 못했다 이
겁니다.
옐레나: 비쨔, 내가 다가갔었지?
비 쨔: 다가오셨죠.
옐레나: 내가 힌트를 줬었지?
비 쨔: 힌트를 주셨죠.
옐레나: 그런데?
비 쨔: 소용없었어요.(한숨을 쉰다)
옐레나: (자리에서 일어선다, 사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두 세
문젠 풀었겠지.
비 쨔: (비탄에 빠져) 전혀요.
랼 랴: 선생님, 그럼 비쨔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D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옐레나 침묵
한다) 설마 F를 줄까요?

- 6 -
옐레나: 모르겠어...

사이.
발로쟈: (침착하게) F는 안 줄거야. 졸업 시험에서 F는 아예 없으니까. 선생님, 선생님 어머
님은 어느 병원에 입원하고 계세요?
옐레나: 어머니? 바실리옙스끼가에 있는 25번 병원.

발로쟈는 펜을 꺼내 적는다.
랼 랴: 쟤는 하나도 못썼는데?
빠 샤: 어쨌든 B는 줄 거야.
랼 랴: 완전히 백지여도?
빠 샤: 선생님이 잘 아시니까 설명 좀 해 주세요.
옐레나: 나두, 빠샤, 잘 모르겠어. 그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거든. 위원회에
서 결정할 문제지.
빠 샤: 그렇겠죠. 하지만 학교에서도 학생들 모두가 졸업하는 걸 원하지 않을까요?
옐레나: 아냐. 꼭 그렇지만은 않아, 위원회의 감시하에서는...
발로쟈: 선생님, 병원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죠?
옐레나: 누구? 아, 라브로프일꺼야, 아마. 그건 왜? 비쨔, 너 진짜 한문제도 못 풀었을려
고..
비 쨔: (어이없다는 듯이 큰소리로) 손도 못 댔다니까요! 도저히 안 믿어지세요? 네! 안 믿
어지실꺼예요! 전 모범생인척, 모두를 감쪽같이 속여 왔거든요! 10년이나 학교에서
썩는데 뭔들 못하겠어요?
빠 샤: 선생님 걱정하시는데 그만 좀 해! B는 줄 테니까 앉아 있어.
옐레나: 어쩌면 그렇게 경솔한 생각을....
빠 샤: 그 반대죠. 우린 너무나 진지해요.
옐레나: 나도 노력은 해보겠지만, 이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야.
비 쨔: (빠샤에게 조용히) 흥정하고 있잖아! 포도주 잔이 너무 적었어!
빠 샤: 저흰 선생님께서 저희를 도와 주실거라고 믿어요.
비 쨔: 걱정마세요, 선생님! 천재 중에 수학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뿌쉬낀도 수학
은 늘 F였대요! 근데 어쨌든 천재잖아요!
발로쟈: 그 당시엔 한 가지에만 뛰어나면 됬었어! 조국에 충성해서 나라를 힘 있게 만들던
지, 아니면, 뿌쉬낀처럼 문학에 충성해서 예술을 발전시키던지, 둘 중 하나였어!
비 쨔: 갑자기 뭐 르네상스 시대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야! 근데 물리학은 서정시를 알아
야 하고, 서정시는 또 물리학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거야.
빠 샤: 비쨔, 좀 조용히 해! 선생님, 왜이리 불공평하죠? 저 같은 미래의 철학자는 수학을
잘할 필요가 없거든요. 저는 도스또옙스끼에 대한 글을 써서 상을 두 번이나 받았는
데, 수학점수 하나 때문에 제 꿈을 접게 되었다구요!
옐레나: 도스또옙스끼를 공부한다구? 네 나이에? 난 전혀 몰랐어.

- 7 -
발로쟈: 왜 아니겠어요! 우리한테 새로운 도스또옙스끼가 성장하구 있는데요, 좀 상태가 안
좋지만...
빠 샤: 선생님. 전 악의 근원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옐레나: (흥미롭게) 그래? 대단한데, 어디 얘기 좀 해 봐!
발로쟈: 밤을 새야 될텐데.
비 쨔: 아냐, 얘기 해봐.
빠 쌰: 좋아, 선생님, 악은 어디서 오죠?
옐레나: 글쎄.
빠 샤: 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면 하나님은 선이 아니죠, 하지만 악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게 아니라면 그가 전지전능한 신이란 건 거짓이예요. 도스또옙스끼는 신을 부정
했어요. 그건 그의 내부에 끊이지 않는 악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 초기 기독교
에서는 ‘신은 악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며, 악과 신은 무관함을 증명했죠.
옐레나: 그럼 악에 대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
빠 샤: 바로 우리 자신에게요! 신은 자유를 주었어요! 선택의 자유! 그는 우리가 노예가 되
는 것도, 지나치게 선한 것도 바라지 않았어요. 선과 악, 너희 스스로 선택하라!
옐레나: 그런데 왜 인간은 가끔 악을 선택하는 거지?
발로쟈: 왜냐하면 악하니까요, 선생님. 우린 악함 속에서 만족을 얻거든요. 사실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은 어떤 것을 해도 만족을 느끼지 못할 거예요 .
옐레나: 요즘 너희같은 학생들을 보면 놀랄 때가 많아. 주관이 뚜렷하고 거침없으니까... 우
리 땐 오히려 자기 주장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었는데..
빠 샤: 선생님, 그건 당연한 거예요. 세대가 바뀔수록 뭐든 발전되어 가야만 해요. 그게 바
로 진보의 법칙이죠. 그런데 단지, 수학점수 하나 모자라서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해
야 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요? 젠장! 이런 상황에서 무슨 놈의 도스또옙
스끼람... 왜 제가 아무 흥미없는 수학까지 최고 점수를 받아야만 하는거죠 .
옐레나: 설마 빠샤도 백지를 낸건 아니겠지?
빠 샤: (당혹하며) 저요... 아뇨, 조금 풀긴 했는데... 그치만...
비 쨔: (말을 끊으며) 재밌네! 왜 넌 최고점수를 받고, 난 억지로 최하점수를 받아야 되냐?
빠 샤: 야, 비쨔, 뻔뻔스러운 놈! 넌 임마, 그거라도 감사해야돼! 그렇죠, 선생님?

사이.
옐레나: 비쨔도 철학과를 지망하니?
비 쨔: 저요?! 아뇨, 선생님. 저는 농대에 가고 싶은데 올해는 신입생 모집을 안 한대요.
저는 시골이 너무 좋아요. 여름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데 그곳엔 산딸기
랑 버섯들이 진짜 많아요! 이만큼 따서 내려오면, 산딸기 냄새에 코끝이 싸해요! 머
리며, 옷에도 딸기 향이 배는데, 흠... (딸기냄새에 취한 듯) 손톱에는 빨간 물이 들
고! 손에 벤 달콤한 딸기냄새가 며칠이나 가요! 시험 끝나면 함께 가실래요, 선생
님? 여기서 안멀어요.
옐레나: 고맙지만, 비쨔, 엄마가....
비 쨔: 가는 길가엔 산짐승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요! 선생님, 다람쥐 보셨어요? 얼마나

- 8 -
귀여운데요, 짜식들, 얼마나 빠른지! 저기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덩덩 울리고, 재잘
거리는 새소리는 또 얼마나 듣기 좋은데요! 주위는 온통 노란 꽃밭이고 그 위로 엄
청난 나비떼가 날아 다녀요!
옐레나: 아니, 아니, 고맙지만 선생님 엄마가 병원에 계시니까 아무래도..
비 쨔: 우리 할머니는 젖소를 기르시는데요, 아침에 일어나면 금방 짠 우유를 침대로 가져
와요.
발로쟈: 허락하세요, 선생님. 조금 남았는데 (샴페인을 잔과 함께 건넨다)
옐레나: 너흰 더 이상 안 마셨으면 좋겠는데...
발로쟈: 더 이상 남아 있지도 않아요. 자, 모두 옐레나 선생님을 위해 건배!
옐레나: 고마워..그리고 비쨔, 빠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너희들, 너무 걱정하
지마, 모든게 다 잘 될 꺼야. 가을에 있는 재시험 보고 대학은 내년에 들어가면 돼.
중요한 건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지금의 진실 된 너희 모습을 잃지 말아야 된다
는 거야!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치고자 노력해온 그 이상이 언제나 살아 있기를 바
래.. 자 너희들의 진실 된 삶을 위해 건배하자!

아이들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잔을 내린다.


비 쨔: 이번 해든 내년이든 10년 후가 되든 대학 가는게 중요한 건 아니지, 뭐. 중요한 건
인간이 되는 거야! 지금 당장 시골로 내려가 버릴까, 그럼, 우리 불쌍한 엄마가 날
평생 안보시겠지? 아님 날 잡으러 숲으로 오시려나?
빠 샤: 그러기 전에 군대에서 널 잡아갈걸!
옐레나: 어떡하겠니, 아직 전쟁의 위험이 남아 있는 동안은...나라를 지켜야 되는 건 남자들
의 의무야.
비 쨔: 거기 도대체 뭐가 있죠! 듣기론 군대에 있으면 머리도 썩어 버린 대요!

사이.
발로쟈: 선생님, 저 부탁드릴게 하나 있는데요. 잠시만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와 발로쟈 주방으로 들어간다.


비 쨔: 우리 외교관이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고.
빠 샤: 지금 당장 협상은 어려울꺼야. 하지만 선생님은 결국 너를 동정하게 될 거고, 눈물
까지 흘릴거야.
랼 랴: (조소하며) 난 어떤 희망도 안보이는데. 니네 남자애들,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할
거야.
비 쨔: 니가 어떻게 알아?
랼 랴: 직관이야.
비 쨔: 꺼져버려! 빠샤랑 같이 아주 사라져 버리라구! 아무 것도 믿지 않잖아.!
랼 랴: 너는 뭘 믿는데?

- 9 -
비 쨔: 나? 난 발로쟈를 믿어! 그리고 승리를!
랼 랴: (경멸스럽게 고함치며) 빠샤, 가자!
비 쨔: 야, 쟤 왜 저러냐... 완전히 분위기 망쳐 놓네. 그럴려면 여기까지 뭐하러 왔어!
랼 랴: 난 말야, 비쨔, 아마 이런 식으로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아.
비 쨔: (투덜거리며) 뒤뜰에서나 배우지 그래! 야, 너네 어디가?
랼 랴: 키스하러!

엘레나 세르게예브나와 발로쟈가 있는 주방.


발로쟈: 선생님, 혹시 선생님 어머니를 뽀뽀프 교수가 있는 병원으로 옮기고 싶지 않으세
요?
옐레나: 발로쟈!... 교수 뽀뽀프라면... 그 교수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잖아!... 그건 불
가능해.
발로쟈: 뽀뽀프 교수님은 저희 아버지 주치의세요. 선생님을 위해 아빠한테 부탁해 볼께요.
거절하지 않으실 거라고 확신해요.

사이.
옐레나: 발로쟈, 그래도 될까?...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지?
발로쟈: 아무것도요.
옐레나: 아, 맞아. 내가 좋은 가정교사 한 분을 소개시켜 줄께. 기술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했지?
발로쟈: 고맙습니다만, 선생님. 전 므기모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요.
옐레나: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 관계 대학?
발로쟈: 네.
옐레나: 아휴, 거긴 얼마나 들어가기 어려운데, 발로쟈. 유감스럽게도 그 쪽은 내가... 하지
만, 나한테 모스크바에 사시는 고모가 한 분계시거든. 만약에 시험 볼 때쯤 해서 네
가 모스크바에서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편지를 써 줄께. 아주 좋은 분이야. 굉장히
기뻐하실거야. 그래, 오늘 당장, 지금 편지를 써야겠다!
발로쟈: 아뇨, 괜찮아요, 선생님. 그쪽은 문제없어요.
옐레나: 그럼, 내가 뭘 도와 줄 수 있을까?....
발로쟈: 선생님도 참 재미있는 분이세요. 저한테는 정말 아무 것도 필요없어요. (조소적으
로) 그 정도는 아버지께서 다 해주세요.
옐레나: 아냐, 발로쟈. 그냥은 너무 불편해. 정말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발로쟈: 그럼, 좋습니다! 선생님께서 꼭 그렇게 저를 위해 무언가 하셔야겠다면... 그럼 제
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이건 사실 제 친구들을 위한 거예요.
우린 서로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옐레나: 물론이지! 어떤 부탁이든 기쁘게 들어줄 수 있어, 난!
발로쟈: (웃으며) 어떤 부탁두요? 그 말이 선생님을 꽁꽁 묶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으세요?... 선생님, 제 친구들은 모두 아주 훌륭하고, 착한 애들 이예요, 인정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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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 똑똑하고, 재능 있고, 예의바른 애들이라구요. 우린 목표가 있죠. 그걸 위해서
는 수단과 방법이 변하구요. 인간은 생각의 자유가 있어요, 맞죠? 그래서 저희가 여
러번 생각한 결과, 선생님만이 저희의 불행을 해결 할 수 있는 분이란 결론을 내렸
어요! 저흰 선생님께서 도와주실 거라고 믿고 있어요. 도와 주실꺼죠?
옐레나: (끄덕이며) 노력할께. 뭔지는 모르지만...
발로쟈: 고맙습니다, 선생님! (큰소리로) 얘들아, 선생님께서 도와 주신대.
아이들: 정말이예요, 선생님?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발로쟈! 성공할 줄 알았어! 넌 정말
능력 있는 외교관이야! 대단해!
옐레나: 감사는 나중에 해. 난 아직 무슨 일인지 몰라.
빠 샤: 예? 발로쟈가 아무 말씀 안 드렸어요?
발로쟈; 뿌리는 확실히 박아두었지! 선생님이 약속하셨거든. 그렇죠?
옐레나: 그래, 하지만...
발로쟈: 그럼 실행하세요!
랼 랴: (웃으며) 시험지 보관소 열쇠, 선생님께 있죠?
옐레나: 응, 나한테 있어. 근데 왜?
랼 랴: (매력적인 미소를 띄며) 저희한테 그 열쇠 좀 주실 수 있어요? 아주 잠시 동안만요!
옐레나: 뭐 땜에?
랼 랴: (애매하게)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빠 샤: 선생님! 저희 모두 인문학부에 입학할 예정이예요. 그런데 저희들 모두 이번 수학
시험을 완전히 망쳐 버렸어요. 비쨔를 제외한 저희 모두는 최소한 A는 받아야 되는
데 말이죠.
발로쟈: I am sorry! 난 필요 없어. 다시 말하는데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난 오직
너희들을 위해서야, 미안하지만.
랼 랴: (극도로 순진하게) 선생님, 잠시 동안만 열쇠를 빌려주시면 안돼요? 답만 고치고
바로 돌려 드릴께요, 네?
비 쨔: 맞아요. 우린 정답까지 다 준비해 왔어요.(품속에서 리스트를 꺼낸다) 여기요. 그러
니까, 저희가 이걸... 가지고... 바꾸기만 하면...(사이) 근데 사실 뭐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면... 그까짓 점수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빠 샤: 피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린 어차피 인문대 쪽으로만 지원할거니까 이과
생들의 경쟁자가 아니거든요.
발로쟈: 선생님께서 두려우시다면, 이 일은 완벽한 비밀로 묻어 버릴 수 있어요.
비 쨔: 선생님. 저희를 믿으세요!
빠 샤: A 만 더 많아지는 거죠, 뭐. 그렇게 되면 다들 선생님을 더 존경하게 될 거구요.

사이.
비 쨔: 왜 그렇게 저흴 쳐다보기만 하세요?
옐레나: (천천히) 그러니까, 너희들은 열쇠 때문에 나한테 온 거니?
비 쨔: 뭐 그렇죠... 왜요?
빠 샤: 아녜요!

- 11 -
랼 랴: 단지 그것 하나 때문에 온 건 아니고...
발로쟈: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 생일을 축하해 드리기 위해 온 거예요!
옐레나: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시험결과를 위조할 방법까지 준비해 온 거고!
랼 랴: 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선생님! 저흰 진심으로 선생님 생일을 축하드리러 온
거예요. 그리고 불쌍한 저희들을 선생님께서 도와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옐레나: 그건 비겁한 짓이야.
빠 샤: (슬프게) 그래요, 선생님. 우린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이제부터
선생님은 또 그 의미 없고 거대한 말들, 너무나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힌 말들을 하시
겠죠.
옐레나: 아니, 이건 잔소리가 아냐, 이해하지 못하는 너희들이 안타깝다. (목소리가 떨린다.
애써 가다듬고 다시 이야기한다.) 존경하는 학생 여러분, 가져온 선물들 챙겨서 모
두 나가 주세요. 내가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오늘 내 집에서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사이
발로쟈: (부드럽게)그건 쓸데없는 도덕심이예요. 저희는 지금 신중하거든요, 이 문제에 대해
서 저희들 생각 많이 했어요, 그리고 조금 전 선생님께선 도와주시겠다고 약속 하셨
구요. 많은 사람들은요, 선생님. 그 흔한 도덕의 편견 속에서...
옐레나: 난 더 이상 너의 선동주의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아, 발로쟈. 그리고 내 어머니에 관
한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도록 해. 난 점수를 팔지는 않아!
발로쟈: 선생님의 그런 고집은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왜 모르시죠! 선생님, 전 최
소한 제가 한 약속은 번복하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님 같은 분이 어떻게 그리도 쉽
게 약속을 번복할 수 있죠?
옐레나: 나의 어머니는 너의 도움 없이도 뽀뽀프 교수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가시게 될 거
야.
발로쟈: 선생님, 그건 전체평등이란 법의 실현이 가능한 나라에서나 가질 수 있는 확신이예
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런 나라는 이 세상에 없죠. 다시 말씀드리는데요, 전 어떤
경우에도 제가 한 말을 번복하지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필요한 건 정말 아무 것
도 없어요. 잘못하면 길을 잃고 헤맬지 모를 이 재능 있는 친구들이 불쌍해서 이러
는 거죠,
옐레나: 그렇지 않아! 진정한 재능이 있다면 자신의 길은 저절로 찾아지게 되어 있어!
발로쟈: 죄송합니다만... 선생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사이.
옐레나: 만약 열쇠가 마리야 선생님에게 있었다면 너희는 그녀에게 찾아가서 열쇠를 달라고
했겠니? 아님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나를 그렇게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비 쨔: 선생님을 존경해요. 사랑하구요.
빠 샤: 그 선생님이라면, 더 쉬웠겠죠. 우리 반 담임이니까. 그분이라면 우린 벌써 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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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냈을꺼예요.
옐레나: 그리고 교무주임에게도 갈거고?
비 쨔: 아니, 뭐 베라 이바노브나는 사람 아닌가요? 그 선생님 아들도 이번에 대학에 들어
가야 되는데.
빠 샤: 누구에게 가건 무슨 차이가 있어요? 우리에겐 하나의 목표와 과제만 있을 뿐이라구
요.
옐레나: 너희들을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고?
발로쟈: 물론이죠.
옐레나: 그렇다면 나를 선택한 건 너희들의 큰 오류야.
발로쟈: 아니요, 선생님은 혼자 사시니 목표달성이 편리하죠, 밤새워 무슨 얘길 해도 아무
도 모를 테고.
옐레나: 밤을 새는 일은 없을거야.
발로쟈: 왜요? 제가 알기론 올 손님도 없는 것 같고, 저희들도 외박할 수도 있다고 집에 미
리 얘기한 상태거든요.
옐레나: 여기서 나를 지키고 있으려고?
발로쟈: 아뇨. 평화적으로 끝낼꺼예요.

사이.
옐레나: 너희들, 정말 두렵지 않니, 내가 내일 학교에서 이 모든 일을 다 얘기할 수도 있는
데?
발로쟈: 선생님은 얘기하지 않으실 거예요.
옐레나: 왜?
발로쟈: 왜냐하면 열쇠를 주실 거니까요.
옐레나: 만약에 안준다면?
발로쟈: 저희가 선생님을 설득시킬 거예요.
옐레나: 확신해?
발로쟈: 아니면 강제로 뺏을 거예요.
옐레나: (분노를 겨우 참으며) 지금 당장 여기서 모두 나가!
발로쟈: (진지하게) 저흰 아무데도 안가요, 선생님.
비 쨔: 선생님, 존경하는 선생님.
옐레나: 그만해! 이건 미친 짓이야!
빠 샤: 저희가 선생님께 무례하게 구는 건 아니잖아요. 무례하게 굴었다면 사과 드릴께요.
옐레나: 대단히 고맙구나!
발로쟈: 선생님께서는 지금 저희들이 죄를 짓도록 하시는 거예요.
옐레나: 내가?! 내가 죄를 짓도록 만든다구? 너희들 정말 미쳤구나! 그래 너희들이 도대체
뭘 할 건데?
비 쨔: 뭐든지요.
옐레나: 솔직히 말하겠는데 비쨔, 너한테 정말 안 어울리니까 날 협박할 생각 하지 마. 너
희들 모두 지금 장난하는 거지? 응, 빠샤? 그렇다면 실제로 그렇게 진지하게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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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안돼....너희들 그러지마, 바보 같은 장난이야, 얘들아, 그러는 건 나쁜...

사이.
발로쟈: 장난하는 거 아니예요, 선생님.

사이.
옐레나: 유감이구나.
발로쟈: 뭐야, 이렇게 계속 서 있기만 할 거야? 시간은 가는데, 우린 서 있기만 하고... (빙
그레 웃으며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 당긴다) 선생님, 열쇠 좀
주세요, 그리고 우리 서로 좋게 헤어져요.
옐레나: 가라고 했지! 아직 늦지 않았을 때 빨리 모두 나가! 무슨 말인지 설마 이해 못하는
건 아니겠지?
발로쟈: 우린 아무데도 안 간다니까요.

사이.
옐레나: 그렇다면 내가 나갈께.
빠 샤: 죄송합니다만, 선생님도 못가세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는 문으로 뛰어가나, 빠샤와 비쨔가 그녀를 막아 선다.


옐레나: 뭐야?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거야?
발로쟈: (부드럽게) 이렇게 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옐레나: 난... 난 경찰에 전화하겠어.(수화기를 집는다) 번호가 어떻게 되더라?
비 쨔: (기계적으로) 112 요.
발로쟈: 그러지 마시기를 충고 드립니다, 선생님. (비쨔를 쳐다보며) 도대체 왜... 경찰이
야...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는 번호를 돌린다.


비 쨔: 참내, 그러시지 마세요. 그러실 필요 없다니까요, 선생님. (전화선을 뽑아 버린다)

사이.
옐레나: 이런건 공포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어...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면
안 되는 거야. (사이) 난 너희들이 신중히 생각해서 스스로 나가 주기를 충고한다.
아직 늦지 않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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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으로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근다. 아이들은 잠시동안 당혹감에 서 있다. 발로쟈
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랼랴는 옷을 입기 시작한다.
비 쨔: 어딜가려고 그래?
랼 랴: 집에.
비 쨔: 뭐? 우린?
랼 랴: 몰라! (조소적으로) 난 니 도움은 좀 더 현명한 건 줄 알았어.
비 쨔: 기다려! (발로쟈를 보며) 발로쟈, 어떻게 좀 해봐!
랼 랴: 뭘 기다려? 그만 돌아가. 빨리 용서를 빌고 여기서 사라지는 것이 좋아.
비 쨔: 겨우 D 받는 거에 만족하라고?
랼 랴: 네가 잘 생각해봐! (빠샤에게) 가자!
빠 샤: 정말 이럴 필요까지 있는 거야?.. 이럴 땐 물러서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발로쟈: (조용히) 꺼져! 니들 모두!
비 쨔: (발로쟈의 눈치를 살피고) 얘들아, 가면 안돼. 몇 시간만 지나면 좀 얘기가 통할 꺼
같은데, 발로쟈, 네가 좀 얘기해봐!
발로쟈: (랼랴를 보지 않고) 야 여자 애, 너 잘 들어둬. 난 무슨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을 끝
맺어야 직성이 풀려. 나한테 아무 이득이 없어도.
비 쨔: 맞아! 저 여잘 왜 그렇게 무서워 하냐? 저 여잔 아무 짓도 못해. 저 여자 성격상
시험에서 낙제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꺼야! 내 말 맞지, 발로쟈?
발로쟈: 그래, 우리가 존경하는 옐레나 선생님은 안티고네 콤플렉스가 있거든.
비 쨔: 뭐, 뭐라구?
발로쟈: 현실에 대한 관념적인 지각이 원칙으로 승화될 때를 말하는 거야. 사람의 인격이나
그의 이상에 대한 모든 종류의 강압이 영웅적인 저항의지를 불러일으킬 때를 말하는
거지. 그리고 여기엔 정확한 종속관계가 존재하지: 누르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의 저항은 더 세어지고 분명해 지지. 이런 종류의 인간형에서 혁명이나 전쟁
의 강철과 같은 영웅들과 지도자들이 탄생하는 거야.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
런 사람들은 괴짜나 백치들로 보이거든.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비웃어
버리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위급한 상황은 그들에게 숭고한 것이며, 그들의 정신적
힘의 최대한을 발현시키는 가능성을 제공하거든. 그러니까 엘레나 선생님은 원칙적
으로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구. 우리가 그런 빛나는 가능성을 제공하니까.
빠 샤: 그런데?
발로쟈: 난 이대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엘레나 선생이 내일 우리를 잡아넣을 거냐
안 넣을 거냐가 문제가 아니야. 우리의 목표는 선생님을 공범으로 만드는 거야.
빠 샤: 만약 선생님이, 니 표현대로, 안티고네라면, 절대로 우리의 공범이 되려고 하지 않
을 거야.
발로쟈: 아니야, 첫째로, 완전한 안티고네는 존재하지 않아. 둘째로, 어떠한 인간형으로 부
터도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좀 더 얘기하지. 난 안티고네를 부숴버릴 방법도 알거
든. (사이. 모두 호기심을 가지고 발로쟈를 본다) 완력으로!
비 쨔: 만약 선생님을 그렇게 하면...누가 열쇠를 주는데?
발로쟈: 반복하지! 완력으로! 다만 안티고네가 아니라, 그녀의 눈앞에서 그녀의 동족을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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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비 쨔: 무슨 소리야 -- 동족이라니?
발로쟈: (빈정대며) 그러니까 비쨔, 니 팔을 잡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선생님, 열쇠를 주
세요, 안 그러면 비쨔를 7층에서 던져 버릴 겁니다.
비 쨔: 에이, 농담은!
발로쟈: 농담이라구? (진지하게) 대신 이 방법은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돼. 상대의 심
리가 완전히 부서지고 도덕적으로도 붕괴되어 있을 때, 마지막 한번의 공격으로 완
전히 부술 수 있어야 돼.
비 쨔: 너...정말 나를 던져 버릴 생각이냐?
발로쟈: 진정해. 우선 할 일은 저 여자의 도덕성을 파괴하는 거지!
비 쨔: 그런데 어떻게, 발로쟈, 저 여자를 파괴시켜?
발로쟈: 참, 니들은 역시 애들이다! 랼랴! (웃으며) 봐, 랼랴는 날 이해 하잖아.
랼 랴: (웃으며) 아니.
빠 샤: 모든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에 대해 아주 혼란스러운 관념을 가지고 있지.
발로쟈: 바로 그거야! 선생님의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 줘야만 해. 세상의 실제 모습을 보
여 주는 거야.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소리 내어 웃으며) 그래서 지금의 순진한 모
습을 독기 어린 다른 모습으로 바뀌도록 하는 거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린 인간 쓰
레기를 연기하면 되는 거야.
비 쨔: 그거 죽인다! 우리가 보여주자! 사실주의를! 근데 그럴려면 좀... 마셔야 되지 않겠
어? 리얼리즘을 위해!
빠 샤: 야, 그냥은 뭐 연기 못하냐?
발로쟈: 두고 보자, 필요하면, 그때 가서 마셔.
비 쨔: 알았어. 10루블 짜리 지폐는 대장에게 있으니까.
발로쟈: (이마에 주름을 지며) 야, 비쨔, 주정뱅이가 한번 돼 보는 건 어때?
비 쨔: 난 뭐 일을 위해서니까, 사실 안 마셔도 돼, 니가 잘 생각해 봐!
발로쟈: 랼랴, 넌? (랼랴는 어깨를 으쓱한다) 이 계획이 좀 무모한 것으로 생각되진 않냐?
(랼랴 침묵한다) 좋아, 아주 좋아, 난 기쁘다. 나머진 모두 동의하는 걸로 알고 투표
는 생략하자, 우린 형식주의자들이 아니잖아.

갑자기 문이 열린다.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의 목소리:<<랼랴, 잠깐 나 좀 보겠니?>>


아이들 말없이 돌아본다. 사이. 랼랴는 머뭇거린다.
비 쨔: 랼랴, 어서 가봐!
빠 샤: 여자끼린 통할 꺼야.
발로쟈: 랼랴는 현명하니까 잘 알아서 할거야.(조심스럽게 랼랴를 밀며) 가봐?...

랼랴는 친구들을 한번 보고, 웃으며 부엌으로 간다.


비 쨔: 좀 엿들었으면 좋겠는데...

- 16 -
아이들 모두 문 앞으로 무리지어 모인다.
옐레나: 넌 왜 안 가는 거지? 내가 기회를 줬잖아!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알고나 있
니? 난 너만이라도.... 넌 여자애잖아!
랼 랴: 전 애가 아니예요.
옐레나: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꺼다! 그렇게 되면 졸업장도 없어!
랼 랴: 선생님은 자신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 하고 계시네요.
옐레나: 과대평가라니? 너희들을 잡아간다니까! 너 지금 내 말을 이해하는 거니, 감옥을 말
하는 거야!
랼 랴: 뭐 때문에요?
옐레나: 뭐 때문이라니? 난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네. 도대체 무슨 일이니? 넌 어떻게 아
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니?
랼 랴: 모르겠어요...
옐레나: 정말... 두렵지 않아?
랼 랴: 선생님요? - 아뇨.

사이.
옐레나: 좋아, 이런 경우엔 무조건 너를 구하고 봐야겠어. 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
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어.
랼 랴: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마음의 충고를 하고 싶어요. 솔직히 선생님은 애같이 쓸데
없는 고집을 부리고 계세요. 열쇠를 주셨으면 금방 끝났을 거예요. 우리 모두는 지
금쯤 편안히 자고 있을 거구요.
옐레나: 랼랴, 너 지금 진심이니? 넌 지금 아주 비열한 짓에 대해 말하고 있어! 비열하다구!
랼 랴: 인생 자체가 비열하게 흘러가요, 선생님. 선생님도 역시 그런 인생 위에 서 있지
않아요? (사이) 선생님은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세요? 뭐, 당연한 얘기네요. 선생
님과 저는 승용차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선생님은 그 대중교통 속에서 움직이
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셨을 거예요. 마치 빨갛게 녹슨 자물통이 매달려 있는 것 같
은 얼굴, 피곤에 절은 얼굴... 더 심한 건 그 여자들이 아침 일찍 갓난아기를 안고
유아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때예요. 전 이들과 전혀 다른 여자들도 보았어요. 전
혀 다르게 사는 여자들도 있죠! 아침마다 미용실서 머리를 하고 외제자동차에서 내
려 비싼 레스토랑에 가고, 집에 돌아와선 커다란 욕조에 비누거품을 가득 풀어서 몸
을 담그고!

사이
엘레나: 그래서?
랼 랴: 전부예요.
옐레나: 알겠다. 넌 풍족한 인생을 원한단 얘기지.
랼 랴: 그럼요, 안 될 것도 없죠!

- 17 -
옐레나: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니?
랼 랴: 물론이죠. 그런데 가난한 게 습관이 되어서 그렇지. 엄마는 도서관 사서 세요. 늘
“절약해야 돼, 더 절약해야 돼.”하시죠. 하지만 제가 옷이 필요할 때면 평소의 3배
더 일을 하신대요. 저희들 옷은요, 더 나은 인생을 위한, 보증수표 같은 거예요! 선
생님, 여자 대 여자로 한번 얘기해 보죠. 선생님 옷차림이 어떻죠?...
옐레나: (자신없게) 어떤데?...
랼 랴: 학교에서 선생님 보구 모두 웃어요.
옐레나: 거짓말...
랼 랴: 선생님은 좋은 분이세요, 그런데 옷차림은 정말 너무 심각해요. 요새 누가 이런 옷
을 입어요? 머리는요? 미장원은 언제 다녀오셨죠? 선생님의 그 싸구려 화장품!...
향수는 4루블짜리구요!...
옐레나: 난 만족해! 나한텐 병석에 계신 엄마가 있어. 사람이 너무 오래 아프면 그것도 돈
을 필요로 해.
랼 랴: 모르겠어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버릴 수 있는지... 도대체 왜 이렇게 사시는 거
예요? 어떤 관심도, 애정도, 기쁨도, 사랑도, 그 어떤 만족감도 없이 말예요! 선생님
은 여자가 아니예요, 선생님은 단지 치마만 입은 신문의 논설위원 같아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어 할 뿐인 저희들을 책망하고 싶으세요?
옐레나: 인간답게?
랼 랴: 아세요? 모두들 원하는 건 한 개의 커다란 빵에서 어떻게 하면 좀더 영양가 높은
조각을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뿐이예요.
옐레나: (힘 있게) 모두는 아냐.
랼 랴: 모두 원해요. 하지만 모두 차지할 수는 없는 거죠. 차지하지 못하는 바로 그 사람
들이 말하죠, 원하지 않는다고! 도덕적인 사고 때문에...선생님도 무슨 일이 벌어지
는지 직접 보시잖아요, 아니라면 거짓말하시는 거구요. 도대체 왜요?
옐레나: 세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특별하게 변한 건 없지 않니? 자신의 비열한 이득을 위해
서만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현실의 가치와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두 부류의 사
람들이 존재하는 건 언제나 똑같아. 너는 왜 첫 번째 종류의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
각하니? 그건 악을 더 증가시키는 거야!... 그래, 만약에 이 세상 전체가 그렇다
면... 모든 사람들이... 그러면 그땐... 물론 모두가 이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지! 하
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정말 단 한 명이라도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악은 분명히 사라질 거고, 선과 정의가 승리하게 될 거야.
랼 랴: (크게 웃으며) 그런데, 혹시 아세요... 발로쟈의 말이 옳다는 거. 선생님은 정말 안
티고네예요!
옐레나: 뭐라구? 어떤?
랼 랴: (웃음을 갑자기 중단하며) 신화속의...
옐레나: 그래, 좋아. 그럼 너희들한테 정직, 양심, 동정 같은 단어들은 어떤 의미가 있지?
랼 랴: 자비에 대해서도 물어보시지 그러세요! 선생님과 저희들, 어떤 차인지 아세요? 선
생님은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위해 살고, 저흰 더 나은 삶을 위해 산다는 거예요. 전
엄마처럼 살긴 싫으니까 하나하나 계산하면서 살 꺼예요. 순결도 그렇죠! 가장 값어
치가 있는 사람에게 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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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레나: 하지만 넌... 빠샤를 사랑하잖아.
랼 랴: 하지만 더 유망한 남자가 있는데도 빠샤를 고를 만큼은 아니예요.

듣고 있던 아이들, 문에서 떨어진다. 빠샤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부엌으로 들어가 랼


랴의 빰을 때린다.
빠 샤: 나쁜 년!

사이.
랼 랴: 이제부터 결혼은 물론이고, 니 옆에 앉는 일도 없을 거야!
빠 샤: 너 나한테 얘기 했었잖아...
랼 랴: 얘기했지, 그래서 뭐?
빠 샤: 네가 얘기했지...
랼 랴: 너와 결혼하겠다고. 하지만 조건이 있었지. 잊어 버렸니?
빠 샤: 아니.
랼 랴: 그런데 뭘 그렇게 흥분해? 노력하도록 해. 우린 할 수 있지, 안 그래요, 선생님?
옐레나: 네가 빠샤에게 내건 조건이란 게 뭔지 물어봐도 되니?
랼 랴: 가난하게 살지 않는 거요.
빠 샤: 너 이미 알고 있잖아, 가난하게 살지 않을 거라는 거.
랼 랴: 난 오직 한 가지만 알고 있어. 우리 시대에 잘 살기 위해선 더러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거. 근데 난 확신이 없어.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을 때, 그때도 역시 지금처
럼 너를 사랑하는 나일지!
빠 샤: 지금은 날 사랑 하냐? 지금은? 난 아직 더러운 인간이 못됐는데! 내가 알고 싶은
건 지금 이순간은 나를 사랑 하냐는 거야. 응?
랼 랴: (소리치며) 그래, 그래, 그래!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가난하고, 아무
런 연줄도 없는 나 같은 애는 당연히 너를 사랑해야지!
빠 샤: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만 하지 못해!
랼 랴: 꼴보기 싫어!
발로쟈: (문 앞에서) 자, 지금부터 얘들은 다른 길을 걸을 꺼야. 비쨔, 용감해 지려면 좀 더
마셔라.-그리고 시작하는 거야!
비 쨔: (술을 좀 더 마신다) 이런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부엌으로 뛰어 들어간다. 손에 반병정도 남아 있는 와인병을 들고 있는 그는 가볍게


취해있다.
비 쨔: 아, 얘들아, 더 이상 못하겠어! 더 이상 이런 식으론 못 마셔, 얘들아!... 선생님,
술잔이 어디 있어요? (찬장을 여기 저기 뒤진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
이냐면 말야, 옆에서 번개와 벼락이 쳐대도 살아남거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 울
었어. 엄청 울었지.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데! 야채시장 사장이거든! 친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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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은 우리 아버지가 다 먹여 살리거든. 왕이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엄
마만 무서워해. 아버지한테 잔소리 한번 시작하면, 아이고 하나님! 사실 우리 사는
게 꼭 옛날 이야기 같애, 황금 물고기 얘기지, 말 구유에서 시작해서...끝은...뭐 아
직 끝나지 않았지만...아버지의 마지막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제기랄.... 근
데 황금 물고기가 누군지 아세요? 우리 아버지예요. (웃는다) 누가 같이 마실래?
옐레나: (병을 뺏으며) 어디서 감히! 내 집에선 안돼! (와인을 수챗구멍에 모두 버린다)
비 쨔: 아 참 내, 선생님 뭐하시는 거예요? 전 그걸 사기 위해 세 시간이나 서 있었어요 !
오, 선생님, 전 신경과민이예요! 저를 누군가 강압적으로 대하면... 전 사실 간질병
환자거든요. 저 표드르 미할르이취 같은 발작이 저에게도 있어요, 그렇지, 빠샤? 한
번 보여 드릴까요? 자, 자, 한번 보세요! (갑자기 바닥으로 넘어지더니 경련을 일으
킨다) 전 병자예요, 보셨어요? 발작을 일으키는. 불구자라고 부를 수도 있죠. 절 건
드리면 위험해요. 시험에서 D를 맞을 때마다 이렇거든요.
옐레나: (느리게) 취했어..네가 그렇게 술을 마실 줄은 몰랐는데, 끔찍하구나.
비 쨔: (바닥에서 일어서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네, 전 술을 마셔요! 하지만 지금
은 더 이상 못 마시겠어, 술이란 게 이 세상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이런 건 우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는 알콜중독이거든요. 아버진 재능이 있
는 화가였는데, 그림들을 팔아먹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갤러리 사장이 돼 있더라구
요. 아버지의 음주벽이 시작되면 그 말들을 다 들어야만 돼요. 수학과 철학의 절묘
한 만남! 또 인생과 예술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비쨔, 이 쌍놈아!" 모든
진실을 이렇게 생생한 욕으로 다 해치우죠. "난 말야, 내 영혼을 돈 몇 푼에 판 놈
이야, 난 내 이상과 내 고귀한 것들을 팔아서 다 마셔 버렸다구, 넌 절대 나처럼 되
지 말아라! 내가 죽어서도 지켜볼테니까!" 그럼...난 "아버진 지금 무슨 이상을 말
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라도 대 보세요"개자식들! 부르조와 아니면 멍청한 소시민.
개판으로 살고 있지. 그놈들을 위해 인생을 바쳤는데" 내 말이... "누가 바쳤는데요,
아버지, 아버지 혼자 인생을 바친 건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
진지 오래니까, 진정하세요,
옐레나: 시간이 사람을 만들지. 지금은 우리들의, 우리들만의 시대야. 그건 오직 우리들에게
달려 있어.
비 쨔: 누가 감히 논쟁을 하겠어요, 선생님. 저도 똑같은 얘길 한거예요. 시간은 시간이고,
사는 것도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고 말이죠.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세상에 곧
종말이 온다고 해요. 그 증거도 있어요! 첫째,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 둘째,
온갖 오염으로 자연은 파괴되었죠! 과학자들은 혼란을 막기 위해 이 사실을 감춘 대
요. 세상은 바퀴벌레만 사는 곳으로 변할 거래요.
옐레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야. 너희 아버진 정말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비 쨔: 아뇨! 알콜중독자에 도둑이지만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예요. 전 아버질 사랑해요. 아
버진 죄를 지으면 바로 회개해요. 죄인 한 사람을 위해서, 다 알다시피....
옐레나: 회개한 죄인은 다시 죄를 짓지 않아. 그건 오직 유다만...
비 쨔: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죠, 스스로 목을 매 죽었어요. 근데 우리 불쌍한 아버진 이렇
게 말하곤 하죠. "내가 혹시 목을 매는 일이 있어도 저놈의 여편네는 내가 죽길 기
다렸다가 일파운드에 쏘세지가 얼마나 하는지 알아보러 갈거야!" 이건 아버지가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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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 대해 하는 얘기예요. "내가 지금 저년을 잡고 말거야!" (파리를 잡기 위해 쫒다
가 넘어진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그릇들이 떨어진다)
옐레나: 세상에, 넌 완전히 취했어!
빠 샤: 전혀요, 선생님! 비쨔는 취해서 저러는 게 아니예요! 학과장 안드레옙스끼의 아들을
보세요! 대학엔 걔의 자리가 만들어져 있죠! 걔네 아버진 남의 논문을 대신 써주고
있죠! 우리 아버지는 그건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시죠! 선생님! 왜 내가 그런 애
들한테 자릴 빼앗겨야 되죠? 전 기회가 있다면 그 자식과 물어뜯고 싸울 생각이예
요. 거긴 내 자리! 내 자리라구요! 그렇게 살아남아야 한다구요!
옐레나: 그만 하지 못해! 내일 당장 너희들 전부다 학교로 나와! 교사회의로! 위선자들! 우
리가 도대체 어떤 애들을 교육시키고 있는거야?
빠 샤: 그 질문의 형태를 좀 바꿔야 되겠습니다: 위선자들, 우리가 애들을 어떻게 교육시
킨 거지? 이렇게요.
발로쟈: (부엌을 들여다보며, 밝게) 웬 소란이야? 싸움질 한 건 아냐? 선생님, 이런 식으론
동네 사람들 다 깨겠어요. 선생님은 기가 막힌 샤갈 화집을 갖고 계시네요. 저기 '
어둠의 시장'에서 사셨어요? 얼마에 사셨어요?... 선생님, 지금 몇 시나 되었는지 알
고 계세요?
옐레나: 내가 열쇠를 주는 일은 없을 거야, 발로쟈, 절대로 안 줘.
발로쟈: (하품을 하며) 아, 죄송합니다, 졸려서요. 아흐 하나님, 정말 지루하네요! 일을 그렇
게 하심 안 되죠, 하나님. 아무 휴식도 없이 말예요. 선생님은 정말 재능이 없는 분
이라니까요. 우릴 한곳에 몰아넣고 움직이질 못하게 하면 되나요.(사이) 선생님, 반
대 안하시겠죠, 저희가 선생님을 좀 뒤져봐야 될 것 같은데?
옐레나: 뒤지다니?
발로쟈: 체포할 때 처럼요. (비쨔에게 머리를 끄떡인다)
옐레나: 어디서 감히! 다가오지마!
비 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다가오며) 무서워하지 마세요, 선생님. (멈춰서서, 사이,
발로쟈에게) 야, 이럴 필요 까진 없는 거 아냐?
발로쟈: (어깨를 누르며 차갑게) 계속해.
비 쨔: 알겠어. 죄송해요, 선생님. 선생님이 느끼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게 할께요. (갑자기
빠른 동작으로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의 몸을 더듬는다) 자, 다 됐어요, 선생님, 용서
하세요. (발로쟈에게) 아무 것도 없어.
발로쟈: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이제부터 집을 좀 뒤져볼까?
비 쨔: 뭐? 그거야 뭐... 당연히 가능하지. (빠샤의 어깨를 치며) 뭘 그렇게 입을 크게 벌
리고 있어? 시작하자.

빠샤는 천천히 부엌에서 나오고, 그의 뒤로 발로쟈와 비쨔가 나온다.


랼 랴: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빠르게 다가와) 빨리 열쇠를 주세요. 제가 얘기 했었잖아
요, 얼른 주세요!
옐레나: (눈물을 흘리며, 강하게 고개를 흔든다) 아니, 안돼, 절대로!

- 21 -
남자아이들은 아파트 내를 뒤진다.
제 2막

새벽 두 시.
수색 뒤의 아파트. 여기 저기 흩어진 물건들, 가구는 밀려나와 있고, 장농의 한쪽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분위기는 더 이상 무엇인가 요구할 것도, 증명할 것도, 비명
을 지를 것도 없는 차가운 불면의 밤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탁자 주위에 옐레
나 세르게예브나와 발로쟈, 빠샤가 앉아 있다. 소파위에 랼랴가 몸을 오그리고 앉아
꾸벅 꾸벅 졸고 있고, 비쨔는 어슬렁 어슬렁 집 안을 거닐고 있다. 그는 많이 취해
있다. 아꾸드좌바의 둘러싸는 듯한 부드러운 진심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서로 서
로에게 칭찬의 말을 해 보기로 해요...>>
옐레나: 아냐, 아냐, 아냐. 내일 당장 난 사직서를 낼 거야.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 너희처
럼 이렇게 괴물 같은 아이들이 있는 이상 내가 교사로서 계속 일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난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이상과 선과 정의, 사람들 사이의 휴머니즘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해 왔어. 그런데?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가 십자가를 지겠어.
발로쟈: 선생님, 저희들은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아
요. 오히려 마음 깊이 선생님을 좋아하죠. 선생님은 훌륭한 수학자이고 좋은 사람이
예요. 단지 정말 우연히도 열쇠가 선생님한테 있을 뿐이었던 건데 선생님은 모든 것
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려고만 하고 있어요.
빠 샤: 존경하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저흰 지금 선생님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거예요. 어떤 차이인지 아시겠어요?
랼 랴: (소파에서 졸린 목소리로) 아휴! 쟤네들 말 듣지 마세요, 선생님! 아무것도 걱정하
지 마세요, 내일 저희가 모두 정리하고, 닦을게요. 전화선은 비쨔가 고칠 거예요. 쟤
는 완전히 기술자거든요. 그리고 모두들, 그만 자도록 하죠.
옐레나: 전화가 문제가 아냐, 랼랴. 이런 끔찍한 계획은 폭력배들이나 파시스트들의 것이라
구. 하지만 너희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고등학생들일 뿐이야.
빠 샤: (숨을 들이쉬며) 사상은 사상일 뿐이죠, 서로 우열을 가릴 수는 없죠. 생존경쟁에서
무슨 사상이 안 나올까?
옐레나: 너희들은, 분명히, 비열한 사람들이야... 머리가 너무 아파서 지금부터 난 소리 내
서 생각해야겠어.
발로쟈: 얼마든지요, 재밌겠는데요.
옐레나: 어쩌면 내가 이해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지도... 발로쟈, 니가 한번 대답해 봐,
이런 것이 너에게 도대체 왜 필요하지?
발로쟈: 스포츠적 흥미로 인해서라면 이해하시겠어요? 네, 정말 깨끗하게 스포츠적 흥미로
인해서죠. 선생님에 대해서 제가 맞췄거든요.
옐레나: 어떻게 맞췄지?
발로쟈: 만약에 선생님께서 열쇠만 주신다면 저의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구요.
옐레나: 그 모든 일이 뭐지?
발로쟈: 사회적인 성공. 인생. 사랑.

- 22 -
옐레나: 설마 발로쟈 네가 네 인생에 대해서 의심하겠니?
발로쟈: 조금은요. 하지만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선 자신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내 놔야 하거든
요. 협력 - 아주 기막힌 거죠, 특히나 처음 시작에는 없어서는 안되죠, 그렇지만 더
지나가면 모든 건 자신의 재능과 의지에 달려 있죠. 선생님에게서 열쇠를 받아내는
건 제 과제거든요. 미래의 외교관으로서 전 제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옐레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지?
발로쟈: 당연하죠. 도덕은 극히 인간적인 카테고리예요. 그래서 상대적이구요. 전 판단은 도
덕이 아니고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흥미에 비추어서 생각해야만 한
다고 봐요. 예를 들어 우리가 피터1세나 나폴레옹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사실 그의
도덕적인 부분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옐레나: 피터1세, 나폴레옹...대단한 인물들이지...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오래 되었고!
발로쟈: 그리고 그만큼 진실되죠.

사이.
옐레나: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너희들에게 이런 상황은 - 장난이야?
발로쟈: 실험이죠.
옐레나: 살아있는 사람들을 가지고?
발로쟈: 토끼들만 사용할 수는 없잖아요.
옐레나: 넌 철저하게 냉소주의적이구나?
발로쟈: 선생님은 철저하게 도덕 숭배자시구요.
옐레나: 니가 아무리 그래도 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
발로쟈: 그래요? 그건 왜죠?
옐레나: 왜냐하면 내가 열쇠를 주는 일은 없을테니까.
발로쟈: 선생님은 주실 거예요, 아니, 주시게 되어 있어요.
옐레나: 아니, 이번에 넌 뭔가 잘못 계산한거야. 난 절대 안 줘.
발로쟈: 전 선생님보다 훨씬 더 강해요. 제가 선생님을 누를 거예요.
옐레나: 나 역시 약하지만은 않아.
발로쟈: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선생님은 순진하고 직선적으로만 행동하시잖아요. 전 교
묘하게 머리를 써서 여러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할 거예요. (웃으며) 전 큰 모
사꾼이거든요. 전 이야고같은 교활함으로 선생님을 이길 수 있어요.
옐레나: 솔직히 말해서 넌 나를 굉장히 놀라게 하는구나. 너처럼 똑똑한 애가 왜 이렇게 우
둔한 행동을 하는 거지? 내일이면 학교 전체가 이 일을 알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니가 '므기모'에 입학할 수 없게 되는 건 물론이고 당장 퇴학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
다는 걸 알아야지.
발로쟈: 존경하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저를 너무 모르시는군요. 전 이래 뵈도 낭만주의자
예요. 사회적인 성공 - 물론 그건 대단한 거죠.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내가
추구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옐레나: 니가 추구하는 게 뭔데?

- 23 -
발료쟈: 권력이요. 어떤 상황도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아는 능력, 타인의 운명을 손에 쥐고
그들의 두려움을 느껴보는 것 말입니다. 오, 선생님은 그것에서 오는 커다란 쾌락을
모르실 거예요.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자신을 느끼는 것!
옐레나: 그래, 나로선 정말 이해하기 어렵구나. 60년대 세대인 우리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
이란 생각이 들어. 우리들에겐 이상과 지향성이 있었고, 자신을 생각하기 보단 인생
의 의미와 역사와 미래에 대해 생각했어.
발로쟈: 선생님 시대의 사람들이 뭘 했죠? 그들은 어딨어요? 그들은 다 죽었어요!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사회에 적응해서 성공했고, 다른 부류는 처참한 노동으로 연명하고 있
죠! 또 다른 부류는 어딨어요? 그들은 다 러시아를 떠났기 때문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구요!
옐레나: 비록 평범하긴 했지만, 우린 어떤 경우에도 정직하고, 성실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했
어, 너희들한테는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가졌던 선과 정의와 인간적인 아
름다움은, 인간에겐 가장 필요한 것들이야. 그런 사람들 없이 국가는 존재하지도 못
하고 그들 없인 너흰 존재하지도 않아.
빠 샤: 바로 그런 올바른 인간들에게 살충제를 뿌려야만 돼죠. 더 이상 번식되지 않도록!
발로쟈: (웃으며) 그건 모두 감정일 뿐 이예요, 선생님. 매우 존경스럽긴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다른 시기거든요.
옐레나: 어떤 시기인데?
빠 샤: 그걸 모르세요? 그래서 신문을 읽으셔야 되는 거예요.
발로쟈: 다른 시기죠. 더 잔인하면서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죠. 지금 시대에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건 바로 이런 성질들 이예요. 좀더 직선적으로 말하자면- 우린 일을 하고
싶고, 그 일로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거죠.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건 오직 그것 뿐 이
예요.
옐레나: 오직 그것뿐이라... 그게 너희들의 인생 신조이고?
발로쟈: 우리 러시아는 상업적 수완이 뛰어난 사람들의 부재와 지식인들의 극을 치닫는 감
성적 이상주의 때문에 언제나 골치를 썩어왔어요. 상업적 수완이 뛰어나다는 건 즉
무언가 부도덕한 인간이 되는 것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죠. 경제 파산에 빠져 있는
러시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상업적인 수완을 가지고 있는 우리 세대
의 힘 밖에 없다고 저희들은 확신하고 있어요.
옐레나: (웃음을 참지 못하며) 세상에, 발로쟈, 다시 말하면 넌 그러니까 너희들이 우리들의
구원자라고 말하고 싶은 거니? 그런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
빠 샤: 당연하죠, 비쨔만 제외하고.
옐레나: 오, 그래? 비쨔가 어때서?
발로쟈: 각각의 공동체 속엔 그 공동체만이 가지고 있는 쓰레기가 꼭 있는 법이죠.
옐레나: 쓰레기?
빠 샤: 유전성 알콜중독증. 사실 쟤는 이미 끝난 인간이예요.
발로쟈: 진실을 감출 필요는 없잖아요?

사이.

- 24 -
옐레나: (조용히) 비쨔는 좋은 애야. 재능도 있고. 난 저 애가 5학년 때 사생 대회에 출품했
던 그림을 본 적이 있어. (아이들 크게 웃는다) 너희들은 차갑고, 악하고, 무정한 이
기주의자들일 뿐야! 반대로, 너희같은 사람들로 부터 러시아를 구원해야만 돼! 그리
고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난 너희들이 두렵지 않으니까!

비틀거리며 비쨔가 들어온다.


비 쨔: 선생님, 용서하세요. 전화선은 제가 연결 할께요... 그러시면 안돼요... 뒤진 거...
용서하세요... 전 선생님을 사랑해요...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선생님... 어릴때부
터... 선생님의 더없이 아름다운 두 눈... 마치 두개의 호수 같아...
발로쟈: (마구 웃으며) 브라보! 비쨔, 완전히 로미온데!
비 쨔: 선생님, 손을 이리 주세요... 아..,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부
터 이미... 손 좀 이리 주세요...
발로쟈: 가슴은 나무토막이잖아. 뜨거운 가슴과 함께 손을 청해야 되는 거야.
비 쨔: (분명치 않은 소리로 웅얼거리며)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구... 저한테 C만 주세
요... 전 할 수 있어요...
발로쟈: 믿지 마세요, 선생님, 많이 취했어요. 지금 거짓말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C만 주셔
도 역시 쟤는 기운 빠져 할 거예요. 바로 저는... 전 사람을 속이진 않아요! (웃음
때문에 괴로워하며)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 둘... 셋... 넷? 아니면 마
흔 넷? 나이가 얼마든 상관은 없지만. 전 유미주의자예요, 선생님. 바로 그렇기 때
문에 선생님께 형식적인 제안을 하는 거죠. 계획대로라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열쇠를
주시게 되어 있어요. (웃기를 계속한다) 예? 안들려요! 동의하신다구요? 오- 그런
얼굴표정을 지으니까, 제 가슴이 찢어지네요. 자, 결정하세요, 선생님. 전 남자지만,
지금은 아무 짓 안 할께요! 선생님이 얼마나 여성스러운가에 따라 제 남성적 본능이
꿈틀거리죠!
옐레나: 하나님이 너를 벌하실꺼다!
발로쟈: 뭐라구요? 아직도 하나님 타령이세요? 전 어떤 신도 알지 못해요! 선생님 지금 무
슨 말씀하시는 거죠? 저희들은 무신론자들이잖아요! 선생님께서 그렇게 저희들을 가
르치셔 놓고, 벌써 그걸 잊으셨군요.
비 쨔: 얘들아, 얘들아, 여기 어디에 그게... 나 안 좋은데, 얘들아... (비틀거리며 부엌으
로 가서 토한다)
빠 샤: 야, 너희들 아냐?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게 뭔지? 그건 선생
님이 알콜중독자를 동정하고 있다는 거야. 우리들이 인텔리 계급의 친형제를 동정하
는 것보다는 주정뱅이들을 동정할 때, 그게 훌륭한 러시아적 인간성인 거겠죠, 뭐,
그렇죠? (사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선생님은 비쨔를 동정하시는 거죠? 그가 뭘 한
게 있는데요? 왜 그 애를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하시냐구요? 그 앤 전화선을 망가뜨
렸고, 선생님의 몸까지 수색했는데.
옐레나: (아무말도 듣지 않은 듯) 저 앤 희생자일 뿐야. 너희들이 저 앨 이용했어!
빠 샤: 아, 그런 건 전부 국가적인 이야기죠. 국민은 희생자, 그러니까 보호해야 한다. 비
쨔가 왜 희생자예요? 쟤 어깨 위에 달려 있는 건 머리가 아닌가요? 우린 사실 비쨔

- 25 -
를 데려올 생각조차 안했어요. "나도 좀 데려가 줘!" 하고 귀찮게 졸라대면서 크리
스탈 잔까지 훔쳐 왔죠. 고맙게도 선생님처럼 마음 약한 랼랴가 저 애 편을 들었어
요. "난 단 한문제도 풀지 못했어, D라도 받을 거야." 이렇게 말하더군요. 보잘것없
는 것들만 선생님의 동정심을 살 수 있나보죠? 제게 관용을 베푸세요, 그게 현명해
요. 전 러시아 미래의 희망이라고 해도 좋죠. 뒤늦은 후회를 해봐야 아무 소용없잖
아요. 역사는 관대하지 않거든요.
옐레나: 너 지금 뭐라고 했지?
빠 샤: 역사는 선생님한테 책임을 물을 거라구요.
옐레나: 너, 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럴꺼야!
빠 샤: 선생님의 하나님께 감사드리세요, 선생님이 여자만 아니었어도...
옐레나: 뭐라구? 날 때리기라도 할거니? 그래, 어디 한번 때려 볼래? 때려 봐! 너 같은 아
이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빠 샤: 전 남자예요. 어떤 경우에도 여자에게 손을 올리진 않아요.
옐레나: 그런 거짓말을 제법 잘도 하는구나. 너 같은 아이에게 그런 분별력이 과연 있기나
할까?!
빠 샤: 왜요,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런 괴상한 인간들이 아니예요. 살인이
나 도둑질을 한 적도 없고, 누굴 강간한 적도 없어요.
옐레나: 오호, 그래, 살인을 한 적이 없고... 당연하겠지, 라스꼴리니꼬프처럼 도끼를 들고
가지는 않겠지. 도대체 너희들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너희들에겐 진실이 없어. 거
짓과 파렴치한 행위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저지르고 있다구!
발로쟈: 선생님, 굉장히 어울리시는데요.
옐레나: (이해하지 못하고) 뭐라구?
발로쟈: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 빨개진 얼굴! 배우 할 생각 없으세요? 그 눈빛을 관객들이
좋아할텐데!
옐레나: 너흰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어쩜 이렇게 못 되 먹었니? 세상 살긴 무
척 편할 꺼야... 마음 아플 일이 없을 테니. 아니, 양심이 없는 건가?
빠 샤: 양심이요? 양심이 없다구요? 우리한테요?
발로쟈: 진정해, 저 분은 우릴 이해하지 못해. 안보이냐, 기계야, 자동 판매기, 로보트라구!
빠 샤: 난, 가슴을 땅에 깔고 대포구멍을 향해 기어간 전쟁 영웅들을 증오해요! 그 대포구
멍 자체를 증오하구요! 학교에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열렬한 공산청년동맹 일꾼
인 척 억지 흉내를 내야 하고, 대학에 가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해야만 하다니! 대학
에 못 가느니 차라리 정신병자인척 병원에 갇히는 게 날 걸요! 대체 얼마나 많은 에
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거죠?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요만한 도덕심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라구요!
옐레나: 입 다물어! 그만 하라구! (손으로 두 귀를 가리고 중얼거린다.) 아직 우리가 자유를
불태우고 있을 때...
빠 샤: 선생님은 당신의 위선과 억지에는 어떻게 그렇게 지치지 않으시죠? 우리가 선생님
을 믿지 않는 건, 선생님 스스로 아무도 믿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사상만을 불어넣으
려고 하셨기 때문이예요!
발로쟈: 브라보! 브라보! 빠샤! 선생님, 좀 더 들어보세요!

- 26 -
빠 샤: 선생님으로부터 위선과 거짓, 허영심을 배우죠. 선생님들은 당신들의 인생을 똑같
이 닮아가도록 가르치구요! 이제 그만 주무시죠, 지겨워요! 우린 선생님의 피를 나
눈 친자식들 이라구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다가가서) 그러니까 저희들을 거
부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우릴 낳았으니까요!
발로쟈: (부드럽게) 어서 열쇠를 주시고, 이제 그만 편히 주무세요, 선생님. 피곤해보이세
요. 벌써 새벽 3시예요. 내일은 일찍 시험 검사까지 하셔야 되잖아요. 자, 좀 더 현
명한 방법을 택하세요. 친절은 빠를수록 좋은 거예요. (은근한 목소리로) 양파에 대
한 격언을 기억하세요?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양파를 주라- 그러면 여유가 생기
리라. 우리들 중 과연 죄 없는 자가 있는가? 그러므로 가까운 이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서두르지 말아라. 이것 역시 선생님들이 얘기 하셨어요.
옐레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 선생과 얘기를 나눌 때는! (발로쟈 천천히 일어
선다) 그래, 너희들이 아주 나를 가르치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라도 되는
것 처럼, 쓰레기 통에 코를 박는 눈 먼 고양이라도 되는 것 처럼.... 냄새나는 손수
건으로 코를 풀어대는 히스테리컬한 할머니를 가르치듯 나를 가르쳐! 내가 너희들
보다 악, 위선, 거짓, 비겁한 행위 등에 대해 적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를 놀
라게 하기 위해 도대체 뭘 생각해 낸 거지? 너희들이 가진 그 편견의 눈으로 대체
뭘 보는 거지? 호화찬란한 자동차나 금덩어리들, 번쩍번쩍 빛나는 쓰레기들이나 보
겠지! 그런 것들 때문에 너희들 머리가 휙휙 돌아가고, 침을 흘리는 거지?! 나라면
침을 뱉고 말 그런 것들 때문에 말야! 혁신자들! 자신들의 비겁한 행위가 세계의 불
완전한 현상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말도 안되는 변명까지 해대고! 너, 발로쟈, 복
음서에서 인용한 이런 말 기억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너희들은 지금
알에서 갓 깨어나 조금씩 피를 빨아 먹는 법을 배우는 기생충들과 같아! 닭처럼 멍
청한 두뇌를 가진 하찮은 인간이 자신에게 빠져서 스스로를 위대한 인간인줄 착각하
고 있는거지! 한 무리의 양떼가 먹이통 앞에 찰싹 달라 붙어 있는 꼬락서니! 너희들
은 유치한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어- 좀 더 단 걸 먹고 싶어 하고, 좀 더 따뜻한 걸
입고 싶어하는... 너희들은 도덕적인 잡종들일 뿐야! 지금 당장 여기서 사라져 버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하기 전에! 더 이상 내 앞에서 그 더러운 악취를 풍기지 말
고!
발로쟈: (충격을 받아)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옐레나: 입 닥쳐! 니 말은 그만큼 들었으면 됐어! 넌 정말로 나를 더 이상 꼼짝할 수 없는
모퉁이 까지 몰아세울 작정이었니? 넌 니 자신을 작은 나폴레옹인 것처럼 착각하고,
악의 천재인줄 착각하고 있어! 난 여러 종류의 비겁한 인간들을 보았는데 넌 어떤
종류지? 넌 속물이야. 지겹도록, 얼이 빠져 버릴 만큼, 머리부터 발끝까지 혐오스러
운 속물. 너에게 신은 일원짜리 동전보다도 못하지. 난 너의 그 일원짜리 동전보다
도 못한 가슴에 침을 뱉고 싶어! 어서 내 집에서 사라지지 못해! 아니면 누군가의
고막이 찢어질 때 까지 소릴 지르겠어, 만약에 내 목이 찢어져 소리가 안 나오면 그
땐 가스를 틀고 온 집안에 불을 지르겠어! 너희들이 말하는 그놈의 '여자'랑 정면 싸
움에 처하기 싫다면 당장 나가도록 해! 자, 어서! (아이들의 물건을 사방으로 내던진
다)
발로쟈: 선생님! 제 말 좀 들으세요!

- 27 -
옐레나: 너희들이 더 이상 뭘 할 수 있지? 날 죽이는 거? 죽여 봐! 비겁한 건 비겁한 거고,
더러움은 더러움, 살인은 살인일 뿐이야.
발로쟈: 선생님, 단 한마디만 할께요!
옐레나: 거짓은 거짓일 뿐이고, 비열함은 비열함일 뿐이야.
발로쟈: (소리 지르며) 선생님이 이기셨어요! 선생님이 이기셨다구요! (사이) 실험은 완전한
선생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빠샤, 이제 모든 상황은 끝났으니까 너
역시 더 이상 어떤 증명이나 논리를 주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저희들은 그만
가보겠으니 이제 그만 용서해 주세요. 전 기쁩니다, 우리가 선생님을 잘 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옐레나: 뭐라구?
발로쟈: 저희가 너무 지나쳤죠? 선생님께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희들은
선생님을 모델로 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찾고 싶었어요. 그 친구는 세상에 대한
불신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했었죠. 그래서 저희들은 그에게 선과 정의, 진실이 존재
함을 증명해 보이기로 마음먹은 거죠. 용서해 주세요, 선생님, 한 친구를 살리기 위
한 거였어요, 선생님이 빠샤를 살리셨어요... 자살로부터 빠샤를 살려 내셨다구요.
평생 선생님께 감사드릴꺼예요.

사이.
옐레나: (천천히) 난... 너희들을... 믿지 않아.
발로쟈: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믿지 않으세요? 빠샤, 니가 말씀드려!
빠 샤: (감동에 어려) 네, 정말... 저는 그랬었는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전... 더 이상 그런 짓은 안 할 거예요.

사이.
발로쟈:(조용히) 선생님께 잘못했다고 말씀 드려.
빠 샤: 저... 저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시기를...
옐레나: 이럴 수는 없어.
발로쟈: 설마 저희를 용서 안하시는 건 아니겠죠, 선생님?
옐레나: 아니.
발로쟈; 선생님, 저희들이 심했던 건 인정해요, 하지만 우리들에겐 목표가 있었잖아요. 죽음
으로부터 친구를 구해내기!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잖아요, 선생님? 이해해 주세
요! 자, (무릎을 꿇는다) 용서하실 때까지.. (빠샤에게) 너두.

빠샤도 발로쟈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옐레나: 일어나. 뭐하는 거야? 일어나라구...
발로쟈: 선생님, 용서해 주시는 거예요? 대답하세요 - 용서하시는 건가요?... 아직 용서 안
하셨잖아요!

- 28 -
옐레나: (괴로워하며) 난... 모르겠어... 만약에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그만 일어나! (나가
려고 하는데 발로쟈가 그녀를 잡는다)
발로쟈: 선생님, 저희들에게 좀 더 벌을 주세요. 좀 더 이렇게 앉아 있겠어요...
옐레나: 됐어... 그만 일어나...
발로쟈: 선생님은 정말 고결한 성품을 가지셨어요. 너 이제 믿을 수 있냐, 뺘샤, 고결한 인
간성과 이상의 존재를?
빠 샤: 믿어.
발로쟈: 훌륭해! 너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안 할 거지?..(손으로 목 주위를 쓰윽 근다)
빠 샤: 안 해.
발로쟈: 자, 보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기적을 일으키셨어요!(노래한다) <<자 이제 말해요,
서로 서로에게 매혹 당했음을, 허풍떠는 말들을 두려워 할 필요 없어요...>> (서로
어깨동무 하고 앉아 흔들며 노래한다)
랼 랴: (소파에서 일어나 소리친다) 사기꾼들! 역겨운 광대들! 토할 것만 같아!
발로쟈: 일어나셨군, 잘 잤냐. 목소리가 거슬린다. 부엌에 있는 비쨔한테나 가서 좀 울어대!
랼 랴: 더러운 자식! 쓰레기!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선생님을 저렇게 비웃고 있는데
왜 보고만 계시죠?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거잖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참으세
요? 어떻게 저런걸 보고 참으실 수가 있냐구요?! 선생님을 향해 비웃는다는 걸 설마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비웃는 거예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능아를 비웃는 것 처
럼요. 저희들을 벌써 내쫓았어야 돼요. 그렇게 함께 논쟁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자
존심도, 예의도 없는 쟤들은 선생님을 발로 짓밟는데 선생님은 그런 애들과 함께 노
래하시는 것과 같아요!

랼랴는 히스테리를 부리고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는 부엌으로 나간다.


발로쟈: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브라보! (빠샤에게) 야, 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여자랑은 사귀지 마. 특히 랼랴 같은 여자애를 봐! 얼마나 피곤하냐? 하루 종일 짹
짹거릴 텐데, 그 히스테리, 끔찍하다! 2분전만 해도 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
어. 근데 갑자기 나한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빠샤를 한쪽으로 데려가 무언
가를 설명한다)
옐레나: (물 컵을 들고 나와 랼랴에게 준다) 자, 진정해.
랼 랴: 선생님은 저런 놈들을 믿으셨죠? 저러는 것도 쟤들의 계획이예요. 전술을 바꾸는
거죠!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제가 말씀드렸었잖아요... 열쇠를 주셨어야 한다구요.
선생님!...왜 쟤들을 믿으세요? 절대로 믿으시면 안돼요! 네?
옐레나: (조용히) 몇 시나 됐니?
발로쟈: 새벽 4시네요, 선생님.
옐레나: (랼랴에게) 나 좀 누울께.
랼 랴: 선생님! 저,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옐레나: 쉿! 더 이상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는 없어.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는... 죽었어.

랼랴는 무서움을 느끼며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를 쳐다본다.

- 29 -
빠 샤: (발로쟈에게) 미쳤어!...넌 미친 거야!
발로쟈: (침착하게) 왜?
빠 샤: 쓰레기 같은 짓이야!
발로쟈: 여태 잘해 왔잖아!
빠 샤: 그렇게 했다간, 난 절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꺼야.
발로쟈: 그래, 이 깨끗한 놈아! 참 점잖구만! 고결하다!
빠 샤: 그만해! 나랑 랼랴는 어떤 관계인지 네가 더 잘 알잖아!
발로쟈: 그래서? 들어봐, 돈키호테, 이러지 않고는 일이 되질 않아. 단지 겁만 주는 거야.
엘레나 선생은 이미 남은 힘이 없어! 조금만 더 밀고 나가자구.
빠 샤: 어쨋거나, 난 못해. 미안해.
발로쟈: 병신, 가 버려 병신아. 계집애구만!
랼 랴: 선생님! 저희들 갈께요! 제가 데리고 나갈께요. 나가자! 빠샤, 빨리 옷 입어.

랼랴는 부엌으로 가서 잠들어 있는 비쨔를 깨운다. 빠샤는 잠바를 찾아 입는다.


발로쟈: (팔짱을 끼고 서서 빠샤를 비웃으며) 그래, 옷 입어라, 빠샤. (빠샤 멈칫한다.) 옷
입어, 꺼져! 빨리! (조용히 웃는다) 네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빠 샤: 난 그렇게는 못 해! 우린 결혼하기로 했어. 그건 서로 가장 소중한 걸 준다는 거야.
발로쟈: 좋지!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일을 위해서라면? 알아들어? 일을 위해서!
빠 샤: 어떤 일을 말하는 거야? 제기랄! 난 더 이상 모르겠어? 네가 설명 해줄래, 우리가
뭐 때문에 이 난장판을 만든 거지?
발로쟈: 얘기 한번 잘 했다! 일은 이미 벌어져서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바보처럼 박수치며
어깨에 힘주겠지만, 뭣 때문에? 누가 나한테 부탁했지? 모를 일이야. 일부터 해결하
고 착한 일 하라고. 너 사람들에게 살을 베서 줘봐라. 감사하는 대신 침이나 뱉을
걸! 겁 많은 놈!
빠 샤: 겁이 많다니?
발로쟈: 내가 왜 니들과 손잡았지? 병신들 이구만! 마음 좋은 저능아들, 냄새나는 성인 군
자들! 니들, 유미주의자들은 내 예술가적 기질을 모욕했어. 기막힌 그림을 망쳐 버
렸단 말야, 멍청아!
빠 샤: 난, 발로쟈...
발로쟈: 시끄러워! 난 이 세상에서 니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니 여자랑 자는 거라는 걸 옛
날부터 알았어! 누가 뭐래!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다만, 앞으로 우리 아
버지한테 부탁하는 일 따위는 꿈도 꾸지 마. 알아들어? 그리고, 좀 지켜봐야 겠어,
니가 대학 대신 군대 간 다음에 랼랴가 어떤 놈팽이랑 놀아날지. (웃는다) 들었잖
아? 싼값에는 팔지 않겠다는 말.
빠 샤: (흐릿하게) 좋아.
발로쟈: 뭐가?
빠 샤: 알았다구, 이 자식아.
발로쟈: 어허, 날 위해서 이러지는 마. 내가 늘 얘기했잖아, 사람은 각자 입맛이 다르다고.

- 30 -
나한텐 이게 전부 고상한 수준에...
빠 샤: 알아 들었다구, 발로쟈. 단지 이것만 알아둬, 만약 랼랴가 이 일 뒤에...
발로쟈: 야, 너 걔를 뭘 그렇게 자랑하려고 하냐, 닭이 알 자랑하듯이! 걔가 먼저 널 팔아먹
었잖아. 알고 싶은 지는 모르겠지만, 작년에 쟨 내 마음에 들었었거든. 하지만 난
쟤를 제때 알아 봤지. 병신아!

사이.
빠 샤: 왜 네 뺨을 때리고 싶지?
발로쟈: (웃는다) 그건 니 유다 콤플렉스가 시작되기 때문이야.
빠 샤: 점점 분명해 지긴 해, 비겁한 행동에 동의했고, 아마 이 일 뒤에는 내 자신을 지독
히 혐오할 거라는 게, 하지만 동의하지 - 이런 게 흥미롭거든...
발로쟈: 야, 됐어, 그만해! 너 또 도스또옙스끼에 너무 열중하고 있어. 자위행위 하려면 혼
자 네 배꼽에다 해. 난 말야, 일본인이 좋아. 개들같이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감
추거든! 속셈을 전혀 알 수가 없단 말야.
랼 랴: (비쨔를 방으로 밀며) 얘 옷이 어디 있지?
비 쨔: 야, 왜 밀고 그래?... 난 자고 싶어.
랼 랴: 잠은 집에 가서 거기서 편하게 자! 네 옷이나 빨리 챙겨! 빠샤, 좀 도와줘.
발로쟈: 넌 오만한 척 하는 게 더 어울린다
랼 랴: 난 너랑은 전혀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아, 인간쓰레기!
발로쟈: (크게 웃으며) 감사라고는 모르는 건방진 계집애! 하나님! 저 여자는 아집과 독단에
빠져있군요!
랼 랴: (빠샤에게) 아니, 왜 서있기만 해? 좀 도와줘! 얘는 지금 이대로 쓰러져서 잠들고
말거야.
발로쟈: 얘야, 시끄럽게 굴지 말고, 좀 침착해라!
랼 랴: 빠샤, 빨리 옷 입어, 우리끼리라도 그만 가자, 아니면...
발로쟈: 아니면?
랼 랴: 지금 너랑 얘기하는 거 아냐!
발로쟈: 난 너랑 얘기하고 있어: 다 챙겼으면 그만 사라져. 우린 여기 좀 더 있을거니까. 그
렇지, 빠샤? (빠샤는 침묵한다)
랼 랴: 빠샤, 마지막으로 말하겠는데...
발로쟈: (거칠게) 그만 좀 깍깍거리지 그래. 안 간다고 하잖아!

사이. 랼랴는 빠샤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랼 랴: 그렇게 하기로 한거야? 이런 인간 쓰레기랑 함께 움직이기로 한거냐구? 그래, 좋
아. 넌 분명히 후회하게 될거야! (미친듯이 옷을 입는다)
발로쟈: 잠깐만,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마, 아직 한 가지 일이 남았으니까. (길을 막고 선
다)
랼 랴: 뭐야, 손 치우지 못해! (밀치고 가려하는데 발로쟈가 랼랴의 팔을 잡고 소파쪽으로

- 31 -
그녀를 거의 팽개친다) 너 뭐야? 너 지금... 어떻게 된 거 아냐?
발로쟈: 얌전히 앉아 있어, 얌전히! 결정은 우리 남자들이 할 테니까. 알았어? 현재 우리에
겐 가부장제가 살아 있는 거야. (의자에 쓰러져 자고 있는 비쨔에게 다가간다. 발로
쟈는 그를 마구 흔들고, 일으켜 세운다. 비쨔는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뜬다)
비 쨔: 뭐, 뭐야? 너 왜 그래?
발로쟈: 야, 그만 일어나. (비쨔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웅얼거린다) 야, 정신 차리고
내 말 들어! 자, 일어서! (귀에 대고 소리친다) 너 이대로 돌아갈꺼야?
비 쨔: 뭐라구? 음.... (다시 앉으려고 한다. 발로쟈는 물을 떠와 비쨔의 머리 위에 붓는
다) 우흐, 푸우! 너, 이 자식, 미쳤어? 너! (물을 털어내며 조금씩 정신이 든다)
발로쟈: 만약에 다시 한번만 더 앉으면 그땐 창문으로 던져 버린다, 알았어?
비 쨔: 알았으니까 창문으로 던지지 마. (머리를 흔든다) 제기랄, 수건이라도 좀 줘라, 야.
발로쟈: 집중해서 내말 잘 들어. 네가 늘어져 있는 동안 나랑 빠샤는 모든 일을 잘 마무리
했어. 보이냐?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를 가르킨다) 완전히 쓰러졌잖아.
비 쨔: 그래, 정말 깨끗하게 처리했다.
발로쟈: 바로 이런 식으로 우린 마지막 남은 한 가지 방법에 도달했다.
비 쨔: 뭐? 창문으로, 응? 그건 안돼!
발로쟈: 무서워하지 마. 무력은 여러 방법으로 쓰이니까... 단지 니가 해야 할 일은 랼랴를
잡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쟤가, 그러니까...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넌 그냥 잡
아주기만 하면 돼, 알았어?
비 쨔: 응.... 근데 난 왠지 뭔가가 전혀... 발로쟈... 뭘 할 건데?
발로쟈: 꽉 잡고 놓아 주지만 않으면 돼.
비 쨔: 꽉 잡고 놓아주지 않으면 된다, 알았어.
발로쟈: 야, 비쨔, 너 아무 설명도 안했는데... 너, 조심해야 돼!
비 쨔: 아무 걱정하지 마. 나한텐 언제나 기대해도 좋아.
발로쟈: 좋았어, 시작하자. 빠샤, 넌 준비됐냐?.. 어쭈, 잘난 인간! 꼬리에 총 맞은 꼴을 하
고 앉아있네! 뒤로는 갈 수 있는 길이 없어. 뒤쪽은 모스크바!...(숨을 들이쉬고) 자,
이제 최후의 단계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다가간다)
존경하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선생님께 몇 가지 말씀드릴 사항이 있음을 알려 드
립니다. 먼저,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제안을 하겠습니다. 열쇠를 주시죠! 열쇠를 안
주시면 선생님은 증오스러운 목격자가 되시는 건데... 저희 죄인들의 동업자가 되는
건 어떠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아예 발생하지도 않을 텐데요. (침묵)
일분만 기다려 드릴께요.(시계를 빼서 초침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다가 얼마 후 손
을 흔든다) 내 양심은 깨끗해. 난 예고했으니까.
랼 랴: 만약 선생님과 비쨔에게 무슨 일을 저지르면, 넌 그땐...
발로쟈: 야, 빠샤, 선생님과 비쨔랑은 무관한 일임을 네가 한번 증명해 보여.
빠 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난 그렇게 못해... 그렇게 빨리는...
발로쟈: 그래, 이해해. 아직 좀 이르지. 어려울 거야. 자, 그럼 처음엔 작은 스트립쇼로 시
작하는 게 어떨까? (비쨔에게) 음악을 부탁해요! (비쨔는 음악을 튼다) 허락해 주세
요, 마드모아젤. (안락의자에 있는 랼랴를 거칠게 일으켜 세워 강제로 춤을 추다가
갑자기 그녀를 빠샤에게 밀어 서로 포옹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 준다. 얼마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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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기만 한다)
랼 랴: (천천히) 됐어? 나 집에 가도 되는 거니? 아니면, 쟤의 허락을 받아야만 돼? (머리
를 발로쟈를 가르킨다)
발로쟈: (소리 없이 랼랴에게 다가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안는다) 이젠 나에게...
랼 랴: 이거 놔! 놓으라구! 날 만지지마! 빠샤!...
발로쟈: 빠샤는 널 도와주지 않을 거란다, 얘야. 왜냐하면 빠샤를 위해서 내가 널 잡고 있
는 거거든.
랼 랴: (뿌리치며) 나한테서 필요한 게 도대체 뭐야?
발로쟈: 네가 설마 이해 못하고 있을까? 자, 자...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소파엔 자리가 없
고,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를 깨우는 건 실례일 테고. 안락의자를 펼치면 될 것 같은
데.(빠샤에게) 괜찮겠냐?.. 비쨔, 좀 펼쳐 봐!
비 쨔: 그게 왜 필요하냐, 응?
발로쟈: 아, 참내! 왜 그렇게 항상 멍청한 거냐, 응? 모르겠으면 그냥 하라는 대로 해! 응?
(비쨔를 의자를 펼친다) 자, 빨리 빨리 해!
랼 랴: 너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거지?
발로쟈: 무력을 사용하려고.
랼 랴: 인간쓰레기! 정말 더러운 인간쓰레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발로쟈: 어차피 믿을 건 믿어야 되는 거야. (비쨔에게) 야, 넌 왜 그렇게 서있기만 하는 거
야, 입은 쩍 벌리고 서서?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는 거, 그걸로 바꿀까?
비 쨔: 내가 뭘? 내가 언제 뭐라고 했냐.
발로쟈: 근데 시트가 없잖아, 거 참 안되겠는데. 시트가 있어야 돼. 선생님, 어디 시트 좀
없어요? 빠샤, 좀 찾아봐. 분명히 장롱 속에 있을거야. 아무래도 하얀 시트 위에서
하는 게 더 기분 좋을 거 아냐.
비 쨔: 다 됐어, 발로쟈.
발로쟈: 잘했어, 너, 그럼 장롱을 좀 뒤져봐. 있어?...찾았어? 좋아, 여기다 깔아. 그래...
자, 앉으시죠, (빠샤에게) 옷 벗는 것 좀 도와 드려라. (빠샤가 머뭇거리자) 빠샤, 너
오늘 정말 실망스럽다. 벗어! 선생님이 우릴 안 도와주니까 네가 직접 도와야 될게
아니냐! 위대한 희생이라 생각해라... 벗어! 아니면 직접 내 손으로... 그 쟈켓을 벗
기고, 스타킹도, 얼른! (손을 잡아당기나 랼랴는 힘껏 뿌리친다) (빠샤에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자, 그럼 시작해볼까.. (랼랴의 치마를 들어올린다)
랼 랴: 저리 꺼져!
발로쟈: 난 정말 하고 싶어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아. 야, 빠샤, 너 설마 이런 기막힌 광경을
앞에 두고도 이성적일 수 있는 거 아니겠지? 좀 봐, 그놈의 손톱은 나중에 물어뜯
고. 참 내... 비쨔, 쟤 지금 손톱 물어뜯고 있지? (비쨔는 바보같이 웃는다) 그렇다
면 뭐, 내가 직접 나서는 수 밖에 없지. 야, 비쨔, 좀 도와줘.
비 쨔: 뭘?
발로쟈: 반항하면 넌 팔을 꽉 잡고 있어. 얘기 됐지! (쟈켓을 벗기는데 단추가 튿어져 나간
다. 랼랴는 비명을 지른다) 손! 손을 잡아! 빨리!

비쨔는 랼랴의 두 팔을 누르고 있고, 랼랴는 반항한다. 옐레나 세르게예브나가 소파

- 33 -
에서 일어나 조금의 미동도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 광경을 보고 있다.
랼 랴: 놔! 놓으란 말야! 나쁜 자식! 뭐하는 거야, 지금! 아프단 말야!
비 쨔: (이상한 웃음을 띄며) 발로쟈, 우리 지금 가짜로 이러는 거지? 응? 말해봐, 가짜
지?

랼랴는 비명을 지른다.


발로쟈: 얘 입 좀 막아봐!
비 쨔: 우리 진짜로 이러는 거 아니지, 발로쟈? 눈만 깜빡여봐, 알아 들을께! 듣고 있냐,
발로쟈!
발로쟈: 소리 지르지 말고 좀 얌전히 있어라, 아가야.
랼 랴: (소리 지른다) 빠샤! 빠샤!
발로쟈: (랼랴의 치마를 벗기며) 너의 빠샤는 지금 귀가 멀었어!
비 쨔: (랼랴를 기계적으로 잡고 있다) 랼랴, 무서워 하지마. 지금 우린 짜고 이러는 거야.
듣고 있어? 무서워하지 마.
랼 랴: 엄-마-아!
비 쨔: 난 더 이상 못하겠어, 발로쟈! 난 그만 할래! 우리 가짜로 하는 거였잖아. 하나님께
맹세하는데, 난 그만 할 거야!
발로쟈: (이를 악물고) 좀 더 세게 쥐라구... 바보 자식아!
비 쨔: 내가 뭐 새디스트야, 응?... 모두 꺼져 버려! (랼랴를 놓아 준다)
발로쟈: 저 기집애 잡아!(랼랴를 쫓아간다)
비 쨔: (발로쟈를 막으려 노력하며) 발로쟈. 그러지마! 이제 그만 하자, 발로쟈!
발로쟈: 너 자꾸 정신없이 이랬다 저랬다 할래!
비 쨔: (발로쟈의 멱살을 쥐며) 그만해! 내 말 들리냐! 그만 가자구! 내가 있는 한 더 이상
은 안돼! (발로쟈는 돌아서더니 갑자기 비쨔를 세게 때려 바닥으로 넘어뜨린다)

발로쟈는 천천히, 미소를 띄고, 랼랴에게 다가간다. 발로쟈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


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다. 그리고 갑자기 빠샤에게 단호한 행동을 한다. 그를 흔들
고,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린다.
랼 랴: 제발! 제발! 제발!

빠샤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 빠샤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챈 랼랴는 기운을 잃고, 이 순간 발로쟈가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고, 소파로 이끈
다.
옐레나: (아무 색깔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랼랴를 놓아 줘, 듣고 있니? 놓아주라고 얘기
했어. 열쇠를 줄께. (열쇠를 바닥으로 던진다. 그리고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
근다)

- 34 -
침묵. 발로쟈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면서 환희에 찬 미소를 띄고 열쇠를 집는다.
그리고 머리 위로 열쇠를 들어 올려 모두 앞에 흔든다.
발로쟈: 자, 원하는 걸 얻었어! 모두 박수를! 왕의 승리를 위해!
비 쨔: (바닥에서 일어서며) 그 열쇠 바로 그 자리에 내려놔!
발로쟈: 뭐라구? 누가 거기서 삑삑거리는 거지? 삑-삑-삑-삑, 병아리가 구호에 맞춰 행진
하고 있네! (웃는다) 랼랴, 넌 왜 계속 누워있냐, 그만 일어나서 옷 입어! 자, 받아!
(랼랴에게 쟈켓을 던져 준다) 1넌 뭐 내가 진짜로 그러는 줄 알았냐? 하-하! 자,
자, 이제 그만 화 풀어, I am sorry!
비 쨔: 열쇠 제자리에 내려놔!
발로쟈: 야, 난 내가 기뻐 미칠 것만 같을 때 누군가 나를 방해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
아.
비 짜: 열쇠 내려 놓으라구, 젠장!
발로쟈: 자, 이제부터 우리가 할일은 말야... 야, 빠샤! 우리들의 신동! 넌 뭐 그렇게 막대기
처럼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냐?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고 남자답게 행동하자구! 전
부 오케이잖아!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자, 니 여자한테 가서 좀 기쁘게 해 줘
라, 야.
비 쨔: (발로쟈에게 바짝 다가와 갑작스럽게 그의 멱살을 움켜쥔다) 열쇠 돌려 주라는 말
안 들려? 그리고 빠샤도 가만 내버려둬! 건드리지 말라구! 안 그러면 내가 지금...
널 죽여 버릴지도 몰라!
발로쟈: 넌 악취 풍기는 쓰레기야! 이게 지금 어디서 위협까지 하구 있어! 야, 너희들 모두
쓰레기야! 쓰레기는 쓰레기끼리 썩게 되있지! 자, 이 열쇠는 내게 필요한 게 아니었
으니까, 너희들끼리 구워 먹던가 삶아 먹던가 알아서 해!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너희들의 무능력으로 인해 깊은 도덕적 성취감을 맛보았으니까. 자, 그럼 안녕, 친
구들. 에흐! 너희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꼭두각시 인형 같으냐. 아마 평생을 그렇게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면서 살아야 될 거다! 다들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
고, 너희들이 긴 역사 속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도 한번쯤 생각해 봐. 나의
열렬한 작별 인사를 옐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전해라! 아듀! (퇴장)

긴 침묵.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벗어난 빠샤는 랼랴에게 다가간다.


빠 샤: 랼랴... 언젠가... 언젠가는!...

랼랴는 침묵한다. 빠샤는 아파트에서 뛰어 나간다. 랼랴는 옷도 입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다.
비 쨔: (괴로워하며) 그만 가자, 응? 여기 제자리에 열쇠를 놓고 나가면 돼. 너, 왜 그래,
랼랴? 옷 입어. 많이 늦었어... 제기랄, 모든 게 엉망이야! (집안을 좀 치우다가 손
짓을 한다) 야, 저 햇빛 좀 봐. 휴, 우린 도대체 뭐냐? 내일 학교에 가면 무슨 일이

- 35 -
벌어질까! 하나님, 생각하지 않는 게 더 낫겠다, 그치? 랼랴, 너 정말 왜 아무 말도
안 해?... 혹시 옐레나 세르게예브나가 우릴 동정해 주진 않을까, 응? 넌 어떻게 생
각하냐?... 근데 너 정말 갈 거야, 안 갈 거야? 그렇게 아침까지 계속 앉아 있기만
할 거야? 너, 정말 그럴래! 알았어, 너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지, 그럼 내가 요 앞
길 모퉁이에서 기다릴께. 알았지? 넌 천천히 옷 입고 나와.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
께, 알았지? 자, 그렇게 하는 거다. (퇴장)

랼랴는 움직임 없이 앉아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듣는다. 그러더니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날쌔고 가벼운 동작으로 문 앞으로 다가가 계단을 내려다본다. 아무도 없
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문을 닫은 후 부엌으로 간다.
랼 랴: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선생님, 어디 계세요? (욕실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한다) 선
생님, 여기 계세요? 제 말 들리세요?... 선생님, 열쇠는 그대로 있어요! 듣고 계세
요? 애들이 열쇠를 두고 갔다구요! 선생님, 열쇠를 안 가져 갔다구요! (문을 흔든다.
옐레나 세르게예브나는 대답이 없다. 랼랴의 기쁨에 찼던 목소리는 어느새 흐느낌으
로 바뀌어 있다)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안 가져 갔어요... 안 가져... 애들이 그냥
두고 갔어요...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 막 -

1980.

-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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