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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末麗初 불교사상의 흐름에 대한 일고찰 선의 전래와 화엄종의 대응을 중심으로
羅末麗初 불교사상의 흐름에 대한 일고찰 선의 전래와 화엄종의 대응을 중심으로
대한 일고찰*
석 길 암〜
들어가는 말
3. 의상계 화엄승들의 禪宗 전향 원인
1. 신라 하대 禪•嚴 관계에 대한
4. 華嚴宗의 대응
기존 견해의 검토
맺는 말 /
2. 관련 史料에 보이는 禪과 華嚴의 匕一于1斗
갈등
〈국문요약〉
1. 신라 하대 禪 • 嚴 관계에 대한 기존 견해의 검토
3. 의상계 화엄승들의 禪宗 전향 원인
51) 위와 같음.
52)『대기』에서는 생멸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중에, 신림의 말을 빌어서
열 번째 ‘性起生滅’을 설명하면서 “越情見處無住生滅也”(같은 책, 818a)라고
하는 표현이 사용된다.『진7ᅵ』에서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禪的인 사유의 정도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8세기 전후
의 신림이 사용한 것보다 9세기 중반 이후에 성립된『진기』에서의 용례가
훨씬 더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향자만이 아니라 새롭게 전래된 선을 원용하여 의상화엄의 사상적
정비를 추구하는 계통 역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에
표훈,진정 등 10여 명의 제자가 모여서 법계도를 배울 때 의상에게
묻는다. “‘부동한 나의 몸이 그대로 곧 법신 자체이다’고 하는데,이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의상이 대답했다. “나의 범부의 五尺
身이 三際에 칭합하여 부동함을 무주라 한다.”비 의상은 일승의 내용
곧 진리를 곧바로 자신의 신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신체가 곧바로 진리세계와 상응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곧 세간
의 몸이란 더럽고 무상하며,그래서 멀리 떠나야 할 것인데,세간 그
자체로 일승이며 몸은 무상한 것이 아니라 부동의 法身 그 자체로 이
해되어지고 잇는 것이다. 곧 표훈을 비롯한 의상의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중심과제는 일승의 법계에 무상한 몸으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같은 이해는 ‘平常心是道’를 주장하는 마
조의 주장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평상심이 바로 道’라고 하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평상심이 도라고 하는 것을 체득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서 문제의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의상
계와 마조 계통의 홍주종은 거의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의상계 화엄승들이 쉽게 마조 계통으로 전향하는 일
원인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의상의 직제자인 표훈은 법성게 30구를, 증분 4구는 實相觀, 연기분
14구는 無住觀,이타분 4구는 性起觀과 緣起觀,나머지는 緣起觀과 因
緣觀으로 분류한다.53
56> 54
교학적인
55 체계로서는 차이가 없지만 觀法으로
서「법계도」를 이해하는 특징 이 있다. 교학적인 체계 곧 이론적인 틀
로서가 아니라 직접 체득해야 할 대상으로서 관법의 대상으로서 이해
하는 것에 의상과 의상계 화엄의 실천적 특징이 존재하는 것이다.
57) 같은 책,777a.
58) 佐藤 厚,2001,「의상계 화엄학파의 사상과 신라불교에서의 위상』『보조사
상』16집, 127 〜 128쪽.
59) 인경, 앞의 논문, 162쪽.
"법계도인’을 받았다.6« 이 외에도 의상계는 대부분 스승의 강의와 질
의응답 등을 통해서 상승되었음이『총수록』에서 확인된다. 이 같은 의
상계 화엄의 실천적 특성 그리고 선종과의 유사성이 쉽게 그리고 다
수가 선종으로 전향할 수 있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신라 하대에 접어들면서 의상계 화엄이 신라불교의 주된
흐름 중의 하나로 등장하였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61) 주된 흐
름으로 등장하였다는 것은 그 계통에서 그만큼 많은 구법승들이 의상
계 화엄에서 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라 하대 구법승들의 상
당수가 의상계 화엄과 관련을 맺고 있는 이유의 하나를 여기에서 찾
을 수 있다. 중국에서 새로운 사조로 등장한 선종 특히 남종선을 전래
한 초기 선승들 중에 의상계 관련 화엄승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기본
적인 조건들이 여기에서 충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장계 화엄과는
달리 애초부터 선종과 유사한 점이 많았던 의상계 화엄승들이 남종선
을 수용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구법
승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국내에 있지 않은 신사조에 민감했을 가
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최초기 이후에 선종에 관
심을 두고 입당한 승려들의 대부분이 최초기 구법 선승들의 후예들이
라는 점,도의가 귀국하는 821년부터 8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의 약
70여 년 동안 선종의 다양한 조류 전체에 대해서가 아닌 마조도일 계
통의 선에 대한 집중적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유독 의상
계를 비롯한 화엄종 계통의 승려들이 주로 선종으로 전향하는 예가
많았던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60
62) 61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화엄종 승려들의 선종 전향이 반드시 선종과
화엄종의 대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선종과 화엄종의 긴밀
한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라 하대의 선승들이
4. 華嚴宗의 대응
70)『삼국유사』「대산오만진신」조.
71) 이들 願文은『원종문류』(한불전4, 644~647쪽)에 수록되어 있다.
72) 김상현, 앞의 책, 151〜154쪽.
이 중에서 화엄종의 조사인 지엄과 의상, 법장을 추모하기 위한 결사는 선
종의 조통설에 대응하여 상대적으로 계보의식이 약했던 화엄종의 내적 결
속을 위한 성격이 강한 것으로 이해된다(남동신, 앞의 논문, 147쪽). 이와
더불어 의상계 초기부터 보이는 ‘법계도인’을 통한 認可의 방식이나 스승의
물음에 답한 후에 認可 받는 양식 등의 경우에도 주로 9세기 중후반부터
편집된 것으로 보이는『법계도기총수록』상의 각 저술에 기재되었다는 점
에서 의상계 본래의 전통적인 방식인가 아니면 선종 전래 이후 강화된 계
보의식의 반영인가 하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경』과 친연성이 깊은 신앙이 특별히 강조되면서 성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智拳印 비로자불상이 화엄종을 비룻한 여타 종파의
사찰에서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화엄신중신앙 역시 성행하였
다. 특히 화엄신중신앙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화엄신중경』은 선종
의 득세에 직면한 화엄종단 특히 해인사의 북악파에 의해서 성립되었
던 것, 곧 해인사의 緇軍 조직을 중심으로 한 사원공동체의 구축 및
유지와 구성원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성립된 것으
로 남동신은 추정한다.73) 이는 당시의 화엄종단이 선종에 대한 대응
으로 화엄 신앙을 강화했다는 의미이며,동시에 화엄종의 대응이 사상
적인 재정비에서부터 대중의 지지기반 결속과 신앙에 이르기까지 다
방면에 걸쳐서 이루어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화엄종이 9세기 초반 신라에 전래되어 점차 세력을 강화해
나간 선종에 대하여 본격적 인 대웅을 보이고 있는 것은 9세기 중후반
에 이르러서였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9세기 중반에 이를 때까지도 선
종의 등장이 화엄종의 기반을 잠식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의미로 이해
될 수 있다. 또 신라에 선종이 전파되는 속도 또한 그리 빠르지 않았
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9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화엄종의
선종에 대한 대응이 적극적으로 변화해간 것은 선종의 확장이 화엄종
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화엄종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신앙결사와 사상의 정비를 위해 크
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선종의 세력 확장도 하나의 위협은 될 수 있었겠지만 화엄종 내에서
선종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이 눈에 띠지 않고, 선 전래 초기의 선사들
또한 대부분이 선교의 구별을 크게 강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고려
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화엄종의 다각적인 대응은 일단은 성공적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고려 초에 이르러 새 왕조의 이념으로 채택됨으로써73
74)
맺는 말
의상,『화엄일승법계도』, 한국불교전서 2책
『법계도기총수록』, 한국불교전서 6책
균여,『석화엄지귀장원통초』, 한국불교전서 4책
일연,『삼국유사』. 한국불교전서 6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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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ynasty
Seok, Gil-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