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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자본론
부정자본론
부정자본론
사회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Theory of Negative Capital : The Social and the Symbolic
저자 김홍중
(Authors) Kim Hong Jung
한국사회학회
발행처
The Korean Sociological Association
(Publisher)
URL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230946
이용정보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58.232.252.***
(Accessed) 2021/07/05 23:4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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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pp. 1~35
연구논문
부정자본론:
사회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1)2)
김 홍 중**
Ⅰ. 바울의 경우
Ⅱ. 자본의 사회학
1. 실천의 일반이론
2. 자본이란 무엇인가?
5) 부르디외적 자본은 일종의 “발견술적 장치(heuristic device)”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Reay, 2000:
569). 실제로 부르디외는 다양한 자본개념을 활용하면서 사회의 다각적 차원들을 분석했다. 가
령 “문학자본”, “과학자본”, “법-경제적 자본”(Bourdieu, 1979: 89), “정치자본”(부르디외, 2014:
229), “인격자본”, “명망자본”(부르디외, 2014: 230), “신체자본”(Bourdieu, 1978), “윤리적 자본”
(부르디외, 2014: 403), “지적 자본”(Bourdieu, 1984b: 75), “권위자본”(Bourdieu, 1984b: 92),
“대학자본”(Bourdieu, 1984b: 116), “과학자본”(Bourdieu, 1997a: 19), “철학자본”(부르디외·
바캉, 2015: 254), “언어자본”(부르디외, 2014: 59-60)과 같은 용어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고 있
다. 부르디외 자본 개념을 경험연구에 창의적으로 활용한 실례들도 다수 존재한다. “신체자본”
(Hutson, 2013), “매력자본(erotic capital)”(하킴, 2013), “젠더자본”(McCall, 1992), “하위문화자
본(subcultural capital)”(Thornton, 1996; Jensen, 2006), “코스모폴리턴 자본”(Bühlmann, David,
Mach, 2012), “정체성자본”(Côté, 2005), “감정자본(Zembylas, 2007) 등이 그들이다.
Ⅲ. 상징자본
1. 상징자본이란 무엇인가?
2. 상징적 변형(transfiguration)
<도식 1>
사물/자원 → 상징적 변형 → 상징자본
3. 축성(祝聖)
4. 완곡화(euph misation)
“모든 인정은 오인이다”(부르디외, 2013: 26)라 말하거나 “인정, 오인, 또는 믿음”을 “유사 동의
어”(부르디외, 2013: 28)들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는 라캉을 연상시킨다. “오인은 무지(ignorance)
가 아니다. 오인은 주체가 특정 방식으로 긍정과 부정을 조직하고 그것을 고수하는 것이다. 따
라서 오인은 그것과 상관적인 인식 없이는 사고불가능하다(…). 주체의 오인의 배후에는 오인되
어야 하는 무언가에 대한 어떤 일정한 인식이 있었어야 한다”(Lacan, 1975: 261).
Ⅳ. 부정자본
1. 부정자본이란 무엇인가?
가 투사되어 상징이 된다. 상징적 교환은 관계의 타산적 성격을 은폐하고 도덕적 위
신의 공간을 연다. 이처럼 사회적 마술(연금술)은 대상의 물적 속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치화하는 사회적 조건들에 준하여 수행된다. “동일한 ‘신체적’ 혹
은 ‘도덕적’ 특성, 예컨대 뚱뚱하거나 날씬한 몸, 희거나 어두운 피부, 음주 또는 그
에 대한 거부는 다른 시대 같은 사회에서, 혹은 서로 다른 사회들에서 정반대되는
(위치의)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화의 상징은 언어 기호와 다를
바 없이 자의적이다”(부르디외, 2013: 24; Wacquant, 1998: 27).
동일한 사물에 다른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인정의 코드에 선험적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 의해 인정/부
정될지에 관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바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가 ‘부정자본(negative capital)’이라 부르기를 제안하는, 상징자본의 특수 유형을 만
나게 된다. 여기에서 ‘부정적’이라는 형용사는 그 용법에 따라 다음의 두 가지로 분
류될 수 있다. 하나는 ‘통사론적’ 관점으로서, 부정적인 것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의
미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부정되거나 배제된 그 ‘자리’ 자체가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면서, 그 텅 빈 자리가 도리어 역능 혹은 자본으로 구성되어
나타나는 형태를 가리킨다. 이때 부정적인 것은 음성적인 것, 결여된 것, 혹은 배제
된 것으로 드러난다. 나는 이를 ‘통사론적 부정자본(syntactically negative capital)’
이라 부르기를 제안한다. 또 다른 용법은 좀 더 실체적인 부정성과 연관을 갖는다.
즉 지배적 관점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무언가가 사회적으로 축성되어 자
본으로 성립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처럼 부정성이 내용수준에서 구체적으로 확정
된 경우에는 ‘의미론적 부정자본(semantically negative capital)’이라 부르기를 제안
한다.
2. 통사론적 부정자본
3. 의미론적 부정자본
14) “사람들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들 다수가 오랫동안 소르본에서는 ‘단죄된
(condamnés)’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1960년을 전후로 학사 학위를 취득
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실패를 무릅쓰지 않고서는, 귀르비치(Gurvitch)의 앞에서 레비-스트로스
의 이름을 인용할 수 없었고, 외르동(Heurgon)의 면전에서 뒤메질(Dumézil)의 이름을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Bourdieu, 1984b: 143).
15) 부정자본의 과도한 추구는 ‘지성적 반지성주의’라 부를 만한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를 낳는다.
언급한 대로 분과학문들의 분화에 조응하는 구별짓기의 전략은 지성적으로 반(反)지성을 과시
하는 것이며,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대학이라는 ‘지성적’ 공간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지식, 방법, 학문에 대한 무지, 폄하, 부정, 조롱이 표방되는 ‘반지성주의적’ 하비투스가 다른 어
느 곳보다 더 활발하게 작용함을 체험한다. 지성적 반지성주의는 한 사회의 문화적 풍토일 수도
있지만, 학문공간의 구조적 원리와 그 안에서 진행되는 경쟁의 양태, 그리고 부정자본 추구의
양상들의 복합적 조합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16) 여기에서 우리는 베버의 고전적인 논의를 다시 상기하게 된다. 베버에 의하면 고통에 대한 종교
적 해명의 최초 논리는, 고통에 가치(대가)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가치가 바로 카리스마이다.
“고통의 종교적 미화의 일차적 요인은 다음과 같은 경험이었다. 즉 무아의 경지, 환상적, 히스테
리적 경지의 카리스마, 한 마디로 ‘성스럽다’고 평가되고 그래서 주술적 금욕주의자들이 지향했
던 그 모든 비일상적 경지들의 카리스마는 수많은 종류의 고행과 정상적 식사, 수면 및 성생활
의 절제를 통해서 일깨워지거나 배양된다는 경험이 그것이다. 특정한 종류의 고통과 고행을 통
해 도달한 비정상적 경지는 초인적, 즉 주술적 힘을 얻는 길이라는 믿음 덕분에 이러한 고행은
높은 명성을 누렸다”(베버, 2008: 135). 여기에는 고통과 주술적 힘 사이의 등가교환 관계를 설
정하는 사고가 나타나 있다. 고통은 미래의 보상과 연결된다. 환언하면, 부정적 체험이 상징화되
거나 가치화되어 하나의 ‘자본’으로 전환되고 있다.
17) 가령, 18세기 이래 서구에서는 천재로서의 예술가라는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이때 천재
성은 고통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사고되어 왔다. “고통은 천재의 슬픈 운명일 뿐만 아니라 진
정한 예술적 특징의 포기할 수 없는 요소”로 여겨지게 된다(크리거, 2010; 87). 19세기에 이르
면 고통이 이상화되기에 이르러, 세속적 명성이 도리어 예술가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실패가 천
재성의 징표로 간주되기 시작한다(크리거, 2010: 91). 예술가들에게는 질병, 특히 정신질환이 창
조성의 근원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샌드블롬, 2003). 이런 부정자본의 화신 중
한 사람이 바로 반 고흐(Van Gogh)이다. 그가 예술적 성인(聖人)으로 추대되어간 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에니히, 2006).
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부르디외는 예술의 규칙들에서 19세기 프랑스에서 어떻게 문학이 상업이나 정
치와 구분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실천형태로 분리되어 나오면서, 문학을 위한 문
학이라는 자기-지시적 세계가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근대 문학에
고유한 상징자본의 법칙을 창안한 장본인으로서 보들레르와 플로베르가 언급된다.
플로베르가 “명예는 불명예스럽게 만든다(les honneurs déshonorent)”고 쓸 때
(Bourdieu, 1992a: 44), 그는 부르주아 사회가 상찬하는 가치(명예)를 가차 없이 부
정함으로써, 명예 따위에 초탈한 어떤 스탠스를 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명예인 ‘문학적’ 명예는 이처럼 명예를 부정하는 초연한 태도에 의
해 역설적으로 구성된다. 부정의 몸짓이 ‘진정한’ 문인에게 합당한 부정자본이 된다.
이 논리를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상술한다. “예술이라는 게임은 사업의 관점에서
보면 ‘패자가 승자(à qui perd gagne)’인 게임이다. 경제적으로 전도된 이 세계에서
는 돈, 명예 (...), 세속적 성공과 같은 모든 상징들 즉 이 세상 속에서의 성공을 얻는
과정에서 저 너머에서의 구원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이 역설적 게임의 근본법칙은
무사심에 대한 이해관심(intérêt au désintéressement)이다”(Bourdieu, 1992a: 50-1).
패자가 승자인 게임은 (대중적) 성공이 (예술가로서의) 실패인 게임이다. 세상이
즉각적으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소수의 뛰어난 감식안(그 감식안은 당대에 존재하지
않고 미래에 도래할 수도 있다. 이로부터 상징영역에서 최고의 인정은 언제나 사후
명성이 된다)에 의해 인정받을 때 획득되는 희소한 평가가 도리어 더 큰 성공의 징
표가 될 수도 있다. 발자크도 도스토예프스키도 평생 빚에 허덕였으며, 위대한 작가
들이 생전에 무명(無名)으로 남아 있었던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은,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자들에게는 은근한 희망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세속적 성공이 지연되는 것,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 대중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등은 예술가에게는 휘황찬란한 성공보다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부정
자본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이와 같은 부정자본의 창설, 부정성의
상징화를 글쓰기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기술 그 자체에까지 밀고 나간 전범적
존재이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가장 극단적인 위치, 문학적 제도로부터 시작하여 모
든 권력과 모든 제도들에 대한 저항의 위치”(Bourdieu, 1992a: 114)를 점유하고 “헐
벗음과 비참”(Bourdieu, 1992a: 115), 사회적 무시에 상처를 입은 ‘저주받은 시인’18)
18) ‘저주받은 시인(poète maudit)’은 베를렌(Paul Verlaine)의 1884년 저서의 제목이다. 베를렌은
랭보(Arthur Rimbaud),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등 당대의 젊은 시인들을 언급하면서, 시
Ⅴ. 마치며
참고문헌
This article aims at investigating in deep the concept of ‘capital’ as the nucleus of the
Bourdieusian social theory. For this, it takes analysis in three steps. First, I argue that the
singularity of Bourdieusian concept of capital lies in the emphasis on the psychological
aspect of the capital. That is, the capital appears not only as the energy of the social but
also as the object of desire attracting the social agents. Second, I attempt at clarifying his
concept of symbolic capital which is not one type of many capitals but a specific form that
any capital takes when it gets social recognition. Finally, focusing on the perspective of the
negative, prevalent in Bourdieusian analysis of the taste and artistic capital, I argue that the
most imporst form of symbolic capital can be called ‘negative capital’.
Key words: Bourdieu. capital. symbolic capital. negative capital. the social. negativity.
St. Pa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