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자본론

You might also like

Download as pdf or txt
Download as pdf or txt
You are on page 1of 36

부정자본론

사회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Theory of Negative Capital : The Social and the Symbolic

저자 김홍중
(Authors) Kim Hong Jung

출처 한국사회학 51(3), 2017.8, 1-35(35 pages)


(Source) Korean Journal of Sociology 51(3), 2017.8, 1-35(35 pages)

한국사회학회
발행처
The Korean Sociological Association
(Publisher)

URL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230946

APA Style 김홍중 (2017). 부정자본론. 한국사회학, 51(3), 1-35

이용정보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58.232.252.***
(Accessed) 2021/07/05 23:45 (KST)

저작권 안내
DBpia에서 제공되는 모든 저작물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으며, 누리미디어는 각 저작물의 내용을 보증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
리고 DBpia에서 제공되는 저작물은 DBpia와 구독계약을 체결한 기관소속 이용자 혹은 해당 저작물의 개별 구매자가 비영리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위반하여 DBpia에서 제공되는 저작물을 복제, 전송 등의 방법으로 무단 이용하는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민, 형사
상의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Information
Copyright of all literary works provided by DBpia belongs to the copyright holder(s)and Nurimedia does not guarantee
contents of the literary work or assume responsibility for the same. In addition, the literary works provided by DBpia may
only be used by the users affiliated to the institutions which executed a subscription agreement with DBpia or the
individual purchasers of the literary work(s)for non-commercial purposes. Therefore, any person who illegally uses the
literary works provided by DBpia by means of reproduction or transmission shall assume civil and criminal responsibility
according to applicable laws and regulations.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pp. 1~35

연구논문

부정자본론:
사회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1)2)

김 홍 중**

이 연구는 부르디외의 자본 개념을 집중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다음 세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첫째, 부르디외 자본 개념의 내용과 특이성을, 그 이중적 속성을 중심으로 고찰한
다. 둘째, 그의 상징자본 개념을 탐구한다. 상징자본은 사회적 인정을 획득함으로써 어떤 자본이
취하는 형식(form)으로서, 그 형성과정을 가리키는 상징적 변형(상징자본의 사회적 구성)의 논리
를 해명하기 위해 부르디외가 원용한 뒤르케임의 토템분석과 프로이트의 부인(Verneinung) 개념
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부르디외의 취향분석과 예술장/문학장 분석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부정적인 것’의 관점에 주목한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취향은 선호가 아니라 도리어 혐오의 능력,
즉 무언가를 부정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예술자본은 사회적으로 부정적 가치들
(가난, 고통, 질병, 광기, 죽음)이 예술적 성취와 함께 축성되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양자를
총칭하여 나는 부정자본이라 부르기를 제안한다. 이 논의를 통해 부르디외 사회학에서 사회적인
것이 상징적인 것, 그리고 부정적인 것과 맺고 있는 깊은 연관의 의미를 성찰해 볼 것이다.

주제어: 부르디외, 자본, 상징자본, 부정자본, 사회적인 것, 부정성, 바울

** 이 논문은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


2014S1A2A2050864).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slimciga@hanmail.net).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2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Ⅰ. 바울의 경우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은 스스로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라 객관


화시키면서, 낙원으로 이끌려가 필설을 넘어서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음을, 그런 환
상과 계시를 체험했음을 자랑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의 호승심은 처음부터 기묘하게
위축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자랑이 ‘무익’하다고 전제한다(“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오니”(고후 12: 1)1)). 그 까닭은 무엇일까?
잘 알려진 것처럼 바울 카리스마의 원천은 계시였다. 예수를 실제 본 적 없는 그
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고 개종한다(행 9: 3-22). 이
후 부활한 예수를 직접 접했다는 사실로부터 자신 사도직의 정당성을 끌어낸다(고전
9: 1). 그런데 의아하게도 지금 이 체험은 과시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가 정작 자랑
하겠다고 토설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초라함과 연약함이다(“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치 아니 하겠다”(고후 12: 5)). 고린도 교회와의 미묘한 관계라는 당시의 정황을
괄호에 묶고 텍스트만 들여다보면, 거기서 우리는 납득할 만한 사연을 하나 발견하
게 된다. 계시의 은혜를 입은 바울이 오만해지지 않도록 신이 그에게 “사탄의 가시”
(질병)를 박아 넣었다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에 병을 사해달라고 바울은 세 번 간구
하지만 청은 끝끝내 거절당한다. 바울은 이렇게 쓴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
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
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
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후 12: 9-10).
우리는 여기 매우 독특한 사고회로가 천명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세속적 가치의
이항대립(强/弱)이 흔들리고, 그 중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던 항(弱)이 불현듯 우위를
획득하고 있다. ‘약한 것’이 자신의 대척에 있는 ‘강한 것’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뒤
섞여 급기야 가치의 전도가 발생하고 있다. 바울이 창설하고 있는 기독교적 구원경
제의 새로운 논리 속에서 약함은 이제 공동체에 의해 인정되는 덕성의 성격을 띠면
서, 신자들이 애써 획득해야 하는 무언가로, 마음으로부터 긍정해야 하는 하나의 가
치, 윤리, 혹은 힘(카리스마)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2)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 성서 인용은 대한성서공회에서 나온 1989년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을 따른다.


2) 바울의 역설은 사실 예수 자신의 일관적인 가르침이기도 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사람들을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3

사회학의 간판 용어를 적용해 보자면, 바울은 기독교적 “종교자본” 혹은 “영성자본


(spiritual capital)”의 논리를 선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Bourdieu, 1991: 22-3;
Verter, 2003; Lambert, 1992: 135).
‘성스런’ 영역을 세속적 자본 개념으로 접근해 가는 이런 관점의 뿌리에는 사실
베버(Max Weber) 종교사회학이 있다(Bourdieu, 1987: 33, 63, 94). 베버는 세계종교
에 대한 기념비적 탐구 속에서 소위 정신적인 것의 유물론적 근거를 가차 없이 탐색
하면서 종교 공간의 상이한 위치들(사제, 예언가, 마술사)과 그에 기인하는 이해관계
의 대립에 대한 선구적 시각을 모색했다. 부르디외가 베버로부터 배워온 결정적 통
찰은 “모든 행위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interested)”는 것이었다(Swartz, 1997: 66).
인간행위에 대한 낭만적 이해나 순진한 기대를 차단하고 그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응
시하려는 이 철저한 사회학적 입장은 후일 부르디외 사회학의 ‘자본’ 개념에 고스
란히 수렴되었고, 이에 관해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다양한 비판들이 제기되었다
(Lebaron, 2005; Caillé, 1981; Passeron, 1982).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비판들은 부
르디외 자본개념의 핵심에 ‘상징자본’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
고 있다. 모든 행위가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은, 사회적 삶의 모든 논리가 경제적
이해관계(혹은 정치적 권력)로 일원화되어 있다는 관점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
다. 본문에서 상술하겠지만, 부르디외가 자본 개념을 통해 보여준 것은, 경제적 이해
관계가 ‘부인’되며 나타나는 ‘상징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 거기서 벌어지는 다양
한 실천들이 경제논리를 전략적으로 굴절시키는 탄력성을 갖고 있다는 것, 사회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 혹은 정치적인 것의 코드를 뒤집기도 하고, 기왕에는 존재하지 않
던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상징의 창조성에 대한 이런 탐
구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이론적 성찰에 매우 절실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연구는
바울이 말하는 ‘약할 때의 강함’이라는 테마를 화두로 삼아, 부르디외가 보여준 사회
적인 것의 기본 원리에 대한 탐구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논의는 다음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첫째, 부르디외 자본 개념의 내용과 특이성을 고찰한다. 그가 말하는 자본은 사회
를 구성하는 객관적 에너지인 동시에 행위자들의 주관적 욕망이 지향된 대상이라는,
독특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이는 자본에 대한 순수한 경제학적 접근이 이미 부르디

가장 높은 사람들로 대접하고, 비천한 곳에서 고귀를 읽고, 무시 받고 천대받은 자들의 발을 씻


기는 태도, 고저(高低), 빈부(貧富), 귀천(貴賤), 선악(善惡)을 철저하고, 라디칼하고, 일관적으로
전도시킨 예수의 혁명적 복음에 비추어보면, 바울의 역설은 오히려 온건한 것처럼 여겨진다.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4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외 이론에서는 적절히 차단되어 있으며, 대신 사회심리의 역동이 그의 자본 개념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 함의를 추적해 볼 것이다.
둘째, 부르디외의 상징자본 개념을 심층적으로 논의해 볼 것이다. 상징자본은 고
정된 자본 범주가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인가를 획득함으로써 모종의 자본이 취하게
되는 이차적 형식(form)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자원도 잠재적으로 상징자본이 될
수 있지만, 자동적으로 상징자본이 되는 것이 예정된 그런 자본이 따로 존재하는 것
이 아니다. 상징자본은 ‘사회적으로’ 생산된다. 상징자본이 구성되는 이 프로세스를
부르디외는 ‘상징적 변형’이라 부른다. 상징적 변형의 개념과 연관해서 그는 모스와
뒤르케임의 인류학적 통찰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통찰을 원용해 온다. 양자의
논리를 살펴봄으로써 부르디외 사회학에서 ‘상징적인 것’의 위상을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내보겠다.
마지막 과제는 부르디외가 수행한 취향분석과 예술장 분석을 참조하면서 상징자
본의 ‘부정성’을 집중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구별짓기(distinction)는
상징적 차이를 생산하는 실천이다. 그런데 상징적 차이는 어떤 것의 ‘부정(négation)’
을 통해서 다른 것의 ‘규정(détermination)’을 생산할 때 나타난다. 그가 보여준 취향
의 본질은 이처럼 ‘부정적 구성’의 사회적 실천에 있으며, 이는 그가 말하는 상징자
본의 작동은 부정적인 것의 움직임과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르디외는 예술장이나 문학장의 주요 자본형태
가 지배적 가치체계에서 부정적으로 여겨진 것들(약함, 모욕, 가난, 핍박, 괴로움, 실
패, 죽음)이 인정을 통해 사회적 가치로 등극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바 있다. 보
들레르나 플로베르의 실례를 통해 당대 부르주아 사회가 경멸하거나 경원시하던 가
치들이 어떻게 예술적 이상으로 전환되었는지를 실감 있게 보여주면서 그는, 사회적
삶의 근저에서 꿈틀대는 부정적인 것의 힘이 실정적 제도로 설립되는 현상을 드러내
고 있다. 나는 이를 ‘부정자본’ 개념으로 재구성해 볼 생각이다.

Ⅱ. 자본의 사회학

1. 실천의 일반이론

1970년대 후반에 부르디외는 사회학적 일반이론을 제출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장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5

(場), 하비투스, 자본과 같이 그의 사회학을 특징짓는 핵심개념들을 통해 자신이 인


류학적 필드워크를 통해 탐색하고 관찰해온 사회공간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체계적
으로 정립하는 작업으로 귀결된다. 즉, 사회란 무엇이며, 행위자는 누구이며, 그는
어떻게 실천하며, 무엇을 추구하며, 사회적 질서는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며, 변동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메타적 그림,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이론이 구축되었던 것
이다.3)
우선 그는 고전 사회이론의 통념과 과감하게 단절한다. 더 이상 사회는 국민국
가의 영토와 동일시되는 무언가(가령 프랑스사회나 한국사회)로 인지되지 않는다
(Pyyhtinen, 2010: 24; 엘리엇·터너, 2015: 10). 대신 그가 초점을 맞춘 핵심 단위는
중범위 수준에서 자율적 공간을 이루어가며 부단히 분화되어가는 역동적 공간, 즉
‘장(champ)’이다(보네위츠, 1997: 70). 장은 전체사회의 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직
능적, 전문적, 공식적 세계로서 자신에게 고유한 내적 법칙과 자율성을 갖는 “차별
적 위치들의 체계”(Bourdieu, 1979: 191) 혹은 “분화된 위치들의 구조”(Bourdieu,
1994: 31)이다. 장 내부의 상이한 위치들 사이에는 항상적 투쟁, 적대, 경쟁이 벌어
진다(Bourdieu, 1992b: 73). 사회공간은 이런 의미에서 “영구혁명의 장소”(Bourdieu,
1994: 77)에 비유된다.
의문의 여지없이, 부르디외의 사회는 온정적이고 협동적이며 공감으로 연대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헤겔이나 맑스가 근대 시민사회에서 발견했던, 혹은 베버
가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에서 찾아냈던 적대와 대립 혹은 적자생존적 긴박감을 물씬
풍기며, 더 높은 위치를 향한 치열하고 항상적인 고투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거기 살
아가는 행위자들은 “실천적 위급함”(Bourdieu, 1980: 53) 속에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3) 부르디외가 사회학적 일반이론을 구성하기 위해 시도한 것은 ‘장’이라는 물리학적 유비와 ‘자


본’이라는 경제학적 유비를 대거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1976년 11월에 파리고등사범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그는 장 개념이 일반이론의 구상에 기여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장
들의 일반 법칙이 존재한다. 정치장이나 철학장, 종교장처럼 상이한 장들은 항구적 기능법칙들
을 갖고 있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장에 대한 일반 이론을 기획한다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의
특수한 장에서 관찰된 모든 것은 다른 장들을 질문하거나 해석할 때 사용함으로써, 단일한 전공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고립성과 형식적이고 공허한 이론성 사이의 치명적 대립을 초월하게 된
다”(Bourdieu, 1984a: 113). 유사한 기획은 󰡔예술의 규칙󰡕에도 천명되어 있다(Bourdieu, 1992a:
299-301). 주르뎅(Anne Jourdain)과 놀랭(Sidonie Naulin) 역시 자본개념의 사용이 일반이론의
구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경제적 용어들의 사용은 사실 부르디외로 하
여금 상이한 사회적 우주들에 공통적인 특성들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게 하였다. 자본개념은 예
를 들어 경제, 문화, 정치영역에 전치될 수 있다. 사회학자는 그렇게 사회현실을 객관화하고 특
히 문학계와 같이 이런 객관화에 저항하는 세계를 객관화할 수 있다.”(Jourdain and Naulin,
2012: 101).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6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해결하려 노력하는 노골적으로 전투적인 존재들로서, 상승과 지배의 열망으로 무장


한 채 경쟁에서 승리하고 존재를 보존하거나 확장하려는 코나투스적(conatic) 인간들
이다(Fuller, 2008). 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더 많은 자원의 획득과 축적을 향하
게 하는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리비도(libido socialement institué)”이다(Bourdieu,
1998: 112). 이런 자본추구적 성향은 행위자에 의해 반드시 의식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행위자의 성향은 (합리적 선택의 주체에게서처럼) 사고나 판단의 차원이 아니
라 신체와 감각 수준에 ‘하비투스’ 형식으로 육화되어, 일상의 미시적 실천양식 전반
에 삼투되어 있다. 그는 온 몸으로, 존재론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아닌 살(肉)의 차원
에서 사회적 환경에 최대치로 적응해 들어가는 자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르디외가
그려내는 행위자는 ‘생존주의자’에 가깝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
체 이 생존주의자의 리비도와 믿음, 그리고 관심의 에너지는 어떤 ‘대상’에 지향되고
있는 것인가? 부르디외의 ‘인간’은 사회세계에서 ‘무엇’을 위해, ‘무엇’을 획득하고
축적하고 전유하려는 의욕에 불타고 있는가? 그가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르디
외는 단언한다. 그것은 ‘자본’이다.

2. 자본이란 무엇인가?

맑스를 따라 부르디외는 “(물질적인 형태나 체화된 형태로) 축적된 노동”(Bourdieu,


1986: 241)으로 자본을 규정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자본은 경제영역을 넘어 사회
세계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의미론적 확장을 겪는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부르디외는
자본을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으로 유형화했고, 물적 자원 뿐 아니라 상징적
권위나 체화된 능력 또한 자본으로 간주했다. 다음에 열거되는 것은 자본에 대한 대
표적 규정과 표현들이다.4)

4) 부르디외 자본개념의 광범위한 학문적 영향력은 20세기 후반 계급사회학의 경향을 배경으로 이


해될 필요가 있다. 즉, 1980년대 이래 계급 사회학은 전통적 노동 분업과 국가수준의 착취문제
에 대한 거시적 분석경향의 퇴조와 미시 수준의 계급문제의 부각으로 특징지어진다(Blau and
Duncan, 1967). 이를 배경으로 개인적 행위를 통해 계급효과가 어떻게 생산되는가에 대한 연
구들이 다수 제출되었는데, 이때 등장한 주요한 용어들이 바로 자산(asset), 자본, 그리고 자원
(resources)이었다(Savage, Warde, and Devine, 2005: 32). 󰡔구별짓기󰡕(1979)의 출간과 더불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한 부르디외의 자본개념은 라이트(E. O. Wright)나 소렌슨의 ‘자
산(assets)’, 드바인의 ‘자원(ressources)’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Wright, 1985; Sorensen,
2000; Devine, 1998).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7

a) “규정된 공간 안에서 작동하며 어떤 행위자들의 수중에 집중될 수 있는 사회


적 에너지”(Bourdieu, 2015: 518).
b) “사회물리학의 에너지”(Bourdieu, 1980: 209).
c) “자본은 사회적 관계, 즉 사회적 에너지(énergie sociale)로서, 그것이 생산되
고 재생산되는 장에서만 존재하고 효과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계급과 결
부되는 각 특성의 가치와 유효성은 각 장의 고유한 법칙들로부터 주어진
다.”(Bourdieu, 1979: 127).
d) “객관적·주관적인 구조들에 새겨진 힘(force)이자 (…) 사회세계의 내적 규
칙성의 기초를 이루는 원리”(Bourdieu, 1986: 141).
e) “행위자로 하여금 행위로부터 나오는 특수한 이윤을 획득하게 하거나 경기장
에서 경쟁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행위의 구조화된 경기장(場)에서 유효한 모
든 자원”(Wacquant, 1998: 26)
f) “주어진 장 안에서 무기이자 투쟁의 내기물(stakes)로서 효능이 있는 것”(부르
디외·바캉, 2015: 176).
g) “특수한 사회적 형성체 안에서 추구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
는,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모든 재화들“(Bourdieu, 1977a: 178).
h) “실제적으로 활용 가능한 자원과 권력의 총체”(Bourdieu, 1979: 128).
i) “사회라는 게임을 만드는 무엇”(Bourdieu, 1986: 241).

이 정의들은 대략 두 범주로 대별된다. 첫째, a, b, c에서 사용된 “사회적 에너지”


혹은 “힘”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사회물리학적 관점에서 자본이 규정되는 경우
이다. 자본이 에너지라는 것은 사회공간이 특정 자본들의 분포양상에 따라 구성된다
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자본은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물성을 띤다. 자기장이 자력
의 물리적 분포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사회공간은 자본의 특수한 “배분구조”와 일
치한다(Bourdieu, 1997a: 19; Bourdieu, 1993: 30). 장 내부의 여러 위치들의 차이는
결국 그 위치들에 분할된 자본의 총량의 차이로 설명된다. 일반이론에서 제시되었던
장의 부단한 역동성은 이에 기인한다.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보유자들과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요구자들 사이에 항상적 갈등이 전개된다. 이 싸움은 장에
변화를 가져온다(Bourdieu, 1994: 76). 요컨대, 장의 구조는 “장 내부에 현존하는 힘
들(행위자, 제도들) 사이의 역사적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된다(Lahire, 1999: 25).
장과 자본은 구성적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착종되어 있다. 자본이 장을 이루는 에
너지라면, 장의 존재는 자본의 생산과 효력의 ‘한계’를 결정한다. 분화된 장들은 자
신들에게 특수한 형태의 자본들을 생산하며, 장의 외부에서는 이 자본 형태가 더 이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8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Bourdieu, 1997a: 19). 가령, 의료장에서 중요한 자원은


의학지식과 학위, 그리고 전공분야에 필수적인 기술, 품성, 성격, 그리고 하비투스이
다. 외과의사에게는 냉철하고 무감하며 강인한 인성이 요청된다. 과단성과 엄격성,
고(高)난이도의 수술을 냉정하게 수행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의료장
의 가치를 이루는 이런 의학 자본은 그러나 미술장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
요구되는 예술자본과는 그 내용과 색깔이 판이하게 다르다. 의료장의 경계 밖으로
나가면 의학 자본은 특유의 권능을 상실한다. 따라서 어떤 사회 공간 혹은 관계가
장으로 구조화되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하고 싶다면, 특유한 자본형식과 효과가 그
공간에 형성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5) 장의 자율성은 행위자들이 추구하는 자
본의 특이성과 병행하기 때문이다(Jensen, 2006: 266). 이런 이유로, 자본은 “그것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장에서만 존재하고 효과를 생산할 수 있다”(d)고 말해지는 것
이다.
두 번째 특징은 자본이 객관주의적이고 경험주의적 관점(사회물리학의 에너지)
을 넘어서는 “실천학적(praxéologique)” 입장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Bourdieu,
1972: 234-5). e, f, g, h의 규정들에 드러나 있듯이, 자본은 행위자들이 장에서 활용
하는 실효성 있는 자원과 권력의 총체이다. 그것은 무기이며 내기물이다. 추구될 가
치가 있는 것으로 행위자들의 의미세계에 현상하는 무엇이다. 자본을 “오랜 기간에
걸쳐 수입이나 다른 유용한 결과를 생산하는 (모든 것)”(Becker, 1993: 15)으로 파악
하는 경제학적 관점과 비교해보면, 이 시각의 이채로운 점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자본을 객관적 실체로 간주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본은, 그것을 존재
에 흡수하고 주입하고 축적하여 육화하려는 행위자들의 욕망이 실천적으로 지향된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차후에 모종의 ‘이윤’을 가져다주는 투자된 자원인 동시에,
갈망을 촉발하는 것으로 의미부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은 리비도,

5) 부르디외적 자본은 일종의 “발견술적 장치(heuristic device)”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Reay, 2000:
569). 실제로 부르디외는 다양한 자본개념을 활용하면서 사회의 다각적 차원들을 분석했다. 가
령 “문학자본”, “과학자본”, “법-경제적 자본”(Bourdieu, 1979: 89), “정치자본”(부르디외, 2014:
229), “인격자본”, “명망자본”(부르디외, 2014: 230), “신체자본”(Bourdieu, 1978), “윤리적 자본”
(부르디외, 2014: 403), “지적 자본”(Bourdieu, 1984b: 75), “권위자본”(Bourdieu, 1984b: 92),
“대학자본”(Bourdieu, 1984b: 116), “과학자본”(Bourdieu, 1997a: 19), “철학자본”(부르디외·
바캉, 2015: 254), “언어자본”(부르디외, 2014: 59-60)과 같은 용어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고 있
다. 부르디외 자본 개념을 경험연구에 창의적으로 활용한 실례들도 다수 존재한다. “신체자본”
(Hutson, 2013), “매력자본(erotic capital)”(하킴, 2013), “젠더자본”(McCall, 1992), “하위문화자
본(subcultural capital)”(Thornton, 1996; Jensen, 2006), “코스모폴리턴 자본”(Bühlmann, David,
Mach, 2012), “정체성자본”(Côté, 2005), “감정자본(Zembylas, 2007) 등이 그들이다.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9

코나투스, 이해관계 혹은 일루지오와 분리되지 않는다. 추구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자본이 아니다.
이런 관점은 맑스적이라기보다 베버적인 입장과 더 가깝다. 후자에게 자본주의는
순수한 경제 질서가 아니라 ‘윤리’나 ‘정신’ 같은 사회심리와 연동되어 있는 시스템
으로 이해되었다. 부르디외의 자본 역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추구되
어야 하는 것으로 인정/오인되는 심적 역동에 연결되어 있다. 자본이 “사회라는 게
임”(i)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게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가자들이 게임의 가치를 신뢰해야 한다. 게임은 이 집합적 믿음 위에서만 가능하
다. 그런데 믿음은 자본의 물질적 요소로부터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외
부에서 생성되어 게임에 투입된다. 이 과정이 바로 ‘상징적인 것’의 작동이다. 부르
디외 자본개념의 가장 뛰어난 성취는, 그것이 경제학적 비유를 사회세계에 깊숙이
도입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세계에는 경제학적 측정이 불가능하
고 그 모델로는 포착될 수 없는 ‘상징’ 질서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이게
도 경제학적 메타포를 최대한 동원하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말하자
면 그는 “경제주의에 대항하는 경제학적 모델”(Lebaron, 2005)을 상징자본 개념을
통해 성취하고 있는 셈이다.

Ⅲ. 상징자본

1. 상징자본이란 무엇인가?

에너지인 동시에 욕망의 대상인 자본은 사회세계와 심리세계, 주관적인 것과 객관


적인 것의 교점에 위치하여 행위자들을 실천하게 하고 그들에게 존재의미를 제공한
다. 그것은 사회적 삶의 핵을 이룬다. “자본의 유형은 (…) 그 소유자로 하여금 권력,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그리하여 고려 대상인 장 안에서 하찮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대신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부르디외·바캉, 2015: 176)는 언명은 자본이 행위
자에게 부여하는 심원한 의미를 역설한다. 즉, 그것은 장에서의 물질적 생존조건 뿐
아니라 상징적 존재근거를 부여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처럼 행위자에게 “존재이
유”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핀토, 2003: 186)할 수 있게 해주는 힘으
로 작용하는 자본을 부르디외는 특별히 상징자본이라 부른다.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10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부르디외의 자본이론에 우리가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자칫 다음과 같은 안이한 오


해에 사로잡힌다. 그가 말하는 자본에는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상징자본이
라는 네 유형이 존재하고, 이들은 각각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심급에서 서로 다른 내
용(화폐, 관계, 교양, 권위)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
제, 사회, 문화자본은 가능한 자본형식들 중 몇 개의 대표 유형을 예시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분화된 장이 자율적이면 자율적일수록 독자적 자본들이 생성되어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사회세계에 존재하는 자본의 수는 연역적·선험적으로 확정될 수
없다. 또한 상징자본은 경제, 사회, 문화자본과 동일한 심급에 속하는 다른 유형의
자본이 아니라, 이들과 질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다른 수준의 자본이다. 그가 반복적
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징자본의 정의들을 보면, 이 사실은 비교적 자명하다.

a) “상징자본은 경제자본이나 문화자본이 인지되고(connu) 인정되었을(reconnu)


때와 다르지 않다”(Bourdieu, 1987: 160).
b) “사람들이 ‘위신’이나 ‘권위’라 부르는 이 오인되고, 인정되고, 합법적인 자
본”(Bourdieu, 1977b: 4).
c) “상징자본은 (…) 특별한 종류의 자본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자본이 (…) 정
당한 것(légitime)으로 인정될 때 변화해서 되는 것이다.”(Bourdieu, 1997b:
347).
d) “어떠한 속성(propriété)이라도 (…) 사회적 행위자들에 의해 지각(perçu)될
때 상징자본이 된다. 이때 행위자들의 지각 범주들은 이 속성을 알아볼 수
(지각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으며,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다“(Bourdieu,
1994: 116).
e) “우리는 여기에 상징자본을 덧붙여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자본유형들이
(경제, 문화, 사회자본 – 필자) 그 특수한 논리를 인정하는, 다른 말로 그 소
유와 축적의 자의성을 오인하는 지각 범주를 통해 파악될 때 취하는 형식
(form)이다.”(부르디외·바캉, 2015: 205).
f) “어떤 종류의 자본이든 거치게 되는 상징자본으로의 변형, 즉 (자본의 소유
가) 그 소유자의 본성에 기초한 정당한 소유로서 인식되는 과정은 사회적 연
금술의 근본적인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부르디외, 2013: 30).
g) “상징자본은 하나의 사회적 지위이며, 사회적 존재가 되는, 사회적 세계 속에
존재하는, 대타적(對他的)으로 되는 하나의 방식이다(une manière d’être social,
d’être dans le monde social, d’être pour les autres)”(Bourdieu, 2015: 132).
h) “상징자본, 즉 사회적 중요성 및 삶의 이유들”(Bourdieu, 1997b: 345).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11

a에서 f까지 일관적으로 천명되고 있는 것처럼, 상징자본은 무언가가(다른 자본이


나 행위자가 소유하는 어떤 속성) 사회의 인정, 오인, 인지, 지각을 통해 중요하고 가
치 있는 것으로 변화되어 나타나는 자본의 존재양태이다. 상징자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지각된 존재(percipi)”가 되어야 하며, 지각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장에서 통
용 중인 지각 및 평가 범주들”에 근거한 인지과정이 요청된다(Bourdieu, 1994: 229).
그것은 “인지적 기초를 지닌 자본(capital à base cognitive)”인 것이다(Bourdieu, 1994:
180-1). 이런 의미에서 부르디외는 상징자본이라는 용어 보다 “자본의 상징적 효과
(effets symboliques)”라는 용어가 더 정확하다는 견해를 제안하기도 하며(Bourdieu,
1997b: 347; 핀토, 2003: 180), 아예 “인정자본(capital de reconnaissance)”이나 “축성
자본(capital de consécration)”이라는 용어로 상징자본을 지칭하기도 한다(Bourdieu,
2015: 134; Bourdieu, 1977b: 4).
경제자본도, 정치자본도, 육체자본도, 언어자본도, 그리고 아직 자본이 되지 않은
어떤 속성들도 원칙적으로 상징자본이 될 수 있다. 그들 너머에, 그들과 다른 어떤
순수한 상징자본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양의 경제자본(예
컨대 누군가 소유하고 있는 빌딩)도 사회와 시대에 따라서 상징자본이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전(前)자본주의 시대에는 물질적 부가 위신과 명예를 가져다주
지 않았다. 거대 빌딩의 소유자가 청빈을 설교하고 무사심을 설파하는 성직자나 교
육자라면, 부가 그의 상징자본이 될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위신에 손상을 가져올 확
률이 더 크다. 빌딩 소유는 그의 ‘존재’와 모순을 일으켜 그가 던지는 메시지에 의미
론적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동일한 양의 물질이 사회의 가치와 분위기에 따라서
상징자본이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상징자본은 행위자에게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회적 인간에게 물질적
자산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훨씬 더 타인의 인정이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g와
h에서 부르디외가 말하고 있듯이, 상징자본은 “사회적 지위”로 간주되며, 그런 의미
에서 “삶의 이유”를 제공하는 것으로 운위되기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부르디외 사회
학은 헤겔의 ‘인정’ 테마를 깊이 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호네트, 2011: 35-143).
헤겔이 “생사를 건 투쟁”이라는 극단의 언어로 표현했던 인간의 인정욕구는 목숨만
큼 중요한 무언가가 사회적 삶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기(自己)가 하나의 존재로 설립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 다른 자기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생명의 일차원적
존속(자기보존)을 넘어서는 사회적 생명의 상징적 유지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질서가
사회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한다(󰡔정신현상학󰡕 4장). 부르디외적 인간은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12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기본적으로는 홉스적 투쟁인이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인정을 통해 수


여되는 ‘상징적’ 존재감, 실존의 느낌과 확신, 더 나아가 사회적 존재로서 행위할 때
느끼는 행복감이라는 점에서, 그는 동시에 헤겔적 사회인이기도 한 것이다. 󰡔파스칼
적 명상󰡕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사회세계는 그것이 제안하는 사회적 게임들을 통
해서 외관상의 목적들보다 더 많은 것을, 그리고 무언가 그들과 다른 것을 확보해준
다(…). 임금, 상, 보상 같은 자명한 이익들을 넘어서는 행위의 행복이 있는 것이다.
이 행복은 무관심(또는 의기소침)으로부터 벗어나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으며, 자신
이 목적을 향해 던져져 있으며 (…) 사회적 미션을 부여받았다는 느낌으로부터 온
다.”(Bourdieu, 1997b: 344).
‘행위의 행복’은 상징자본의 획득과 긴밀히 연관된다. 상징자본은 “존재의 지속적
정당화”를 제공하며(Bourdieu, 1997b: 35), “삶에 의미를 줄 수 있고, 죽음을 최고의
희생으로 인정함으로써 죽음 자체에 의미를 줄 수”도 있다(Bourdieu, 1997b: 345).
그것은 살게 하고 죽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것은 자본의 자본, 자본이 욕망하는
자본, 최종 소유대상이다. 상징자본이 “메타-자본(méta-capital)”인 까닭이 여기에 있
다(Durand, 2007: 77). 상징자본의 힘으로 사회세계에 던져진 다자인(Dasein, 행위
자)은 죽음이나 무(無)와 같은 존재론적 심연을 잊고(파스칼이 말하는, 신 없는 인간
실존의 비참을 망각하고 혹은 니체가 말하는 이 세계의 무의미를 잊고) 내가 왜 살
아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 상징자본에는 사회신학적 함축이 내포되어 있다.

2. 상징적 변형(transfiguration)

물적 자원이 상징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사회적’ 과정이다. 자원 자체에 내재


되어 있지 않은 가치와 권위와 권력이 사회적으로 창조·생성되어 거기 귀속되기 때
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징적’과 ‘사회적’은 유사한 사태를 지칭한다.6) 부르디외는

6) 1977년에 󰡔아날(Annales)󰡕지에 실린 글에서 부르디외는 자신의 사회학에서 ‘상징적인 것’이 차


지하고 있는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부르디외, 2014: 185-195). 그에 의하면, 소위 상징
체계(système symbolique)는 사회적 삶에서 인식, 소통, 지배라는 세 가지 주요 기능을 수행한
다. 첫째, 그것은 “구조화하는 구조”, 즉 대상들을 인식의 표상으로 구성하는 프레임을 역할을
수행한다. 그가 상징에 부여하는 이 힘은 칸트로 소급해가는 인식론적 뿌리를 갖는다. 칸트는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인식론적 불가능(물자체)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인식 주체에게 선
험적으로 부여된 감성직관의 형식들(시/공간)과 상상력(도식), 그리고 오성의 범주(개념)를 통해
자연을 ‘표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상을 창안한다. 인간은 표상을 통해 자연의 물질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13

자신 텍스트의 여러 곳에서 사회적인 것이 작용하여 자본이나 권력이 탄생하는 과정


을 ‘상징적 변형’이라 부른다. ‘변형’이라는 말에 사용된 ‘trans’가 잘 보여주고 있듯
이, 상징자본의 생성은 순수한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물(자
원)을 ‘형질변환’하는 과정(Bourdieu, 1994: 183-4, 214), 이미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어떤 것의 ‘의미’가 집합적으로 인지되고 그 존재가 인가되는 과정이다(Bourdieu,
2015: 123). 이를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도식 1>
사물/자원 → 상징적 변형 → 상징자본

부르디외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상징적 변형의 별칭들은 ‘상징적 축성(consécration)’,


‘주술(magie)’, ‘사회적 연금술(alchimie)’, ‘성변화(聖變化, transsubstantiation), ‘완곡화
(euphémisation)’, 혹은 ‘실천적 완곡어법(euphémisme pratique)’ 등이 있다.7) 가령 다
음 인용문에는 이들 용어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자본들

성과 무한성을 통제하고 세계를 적극적으로 구성해 낸다. 20세기 초반 독일 문화학은 칸트가 정


립한 인식론적 입장을 문화 전반에 확장·적용하고자 했는데(Didi-Huberman, 1990: 154-168),
상징형식(symbolishe Form) 개념을 제출한 카시러(Ernst Cassirer)가 그 대표적 존재이다. 상징
형식은 학문, 예술, 신화, 종교, 언어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세계)을 인식하게 해주는 인지적
구조로서, 객관적 실재의 다양성에 통일성과 종합가능성을 부여한다. 즉, 상징적 형식을 통해
“정신적인 것의 의미내용”이 “감각적 기호와 연결”되고 그것에 흡수된다(카시러, 2002: 21). 도
상학을 창설한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카시러의 발상을 원근법에 적용하였다. 원근법은
주관적 시각인상을 합리화하고 객관화하여 자연을 기하학적 질서로 환원시켜 지배하게 하는 효
과를 산출한다(파노프스키, 2014: 65). 부르디외가 이런 인식기능의 차원에서 상징체계를 이론
화한 전사(前史)로 이들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상징체계의 두 번째 기능은 소통이
다. 소통의 매체로 기능하는 이 “구조화된 구조”는 프랑스 구조주의가 탐구했던 여러 형태의 구
조들을 가리키기도 한다(Bourdieu, 1987: 147). 소쉬르의 랑그나 뒤르케임의 사회적 사실, 혹은
레비-스트로스의 친족구조, 라캉의 상징계(언어처럼 구조화된)는 모두 행위자들의 의지나 의식
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들의 실천에 방향을 부여하거나 실천을 강제하다는 점에서 소통기능
을 수행하는 상징체계에 분류될 수 있다. 상징체계의 마지막 기능은 지배이다. 상징이 발휘하는
권력효과에 대한 이런 관점을 부르디외는 맑스에게 빌려온다(부르디외, 2014: 185-195). 사회세
계는 폭력과 물리력을 통한 지배가 아니라 인정된 정당성에 기초하여 행사되는 ‘상징권력’의 작
용을 통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상징권력이 “비전(vision)과 분할(division)의 원칙들에
대한 권력”(Bourdieu, 2016: 139)인 한에서, 그것은 이미 인식과 소통에 작용하며, 하비투스의
수준에서 합의된 지배관계를 이끌어내는 것이다(홍성민, 1999). 한편, 1998년의 󰡔남성지배󰡕에서
그는 상징적인 것의 물질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상징은 순수한 정신의 소산이 아니
고, 물질에 작용하여 그것을 변형시키며, 상징계의 형성과 작동은 끝없는 역사적 노동의 산물이
라는 것이다(Bourdieu, 1998: 55).
7) 부르디외는 국가에 의한 상징자본의 생산에도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한 바 있다. 국가의 위임
(délégation)이나 임명(institution)을 통해 자동적으로 생산되는 상징자본이 그것이다. 이 경우
국가는 “상징자본의 은행”이라 불린다(Bourdieu, 1997b: 344).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14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을 상징자본으로 변환하는 법칙, 특히 은폐(dissimulation)와 변형(transfiguration)


(한마디로 완곡화) 작업을 지배하는 법칙을 기술해야 한다. 완곡화 작업은 역학관계
에 사실상 포함된 폭력을 오인-인정하게 만들며, 그리하여 역학관계를, 에너지의 손
실 없이도 실제 효과를 가져 오는 상징권력으로 성변화(transsubstantiation)시킨다”
(부르디외, 2014: 195. 강조는 필자. 번역은 부분수정). 용어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동기제는 동일하다. 사회가 모종의 재료를 가치 있는 것으로 전환시킨다는 의미에
서 변형은 ‘연금술’이나 ‘마술’, 혹은 ‘성변화’에 비유되며(그것은 ‘가치발생’의 창조
적 과정이다), 사물의 물질적 성격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그 일부를 괄호에 묶
고 다른 일부를 상징화시켜 표상한다는 의미에서 변형은 무언가를 돌려 말하는 ‘완
곡화’에 비유된다. 그것은 ‘마치...처럼(as if)’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Swartz,
1997: 90-1). 한편에는 ‘성스러운’ 가치의 창출이 있고(주술, 연금술, 성변화, 축성),
다른 한편에는 ‘상징화된’ 리얼리티의 창출이 있다(실천적 완곡어법). 양자에게 공히
발견되는 것은 상징적 가치가 ‘인정’되고 물질세계의 무언가가 ‘오인’되는 과정이다.
부르디외가 상징적 변형에 대한 이런 성찰과 연관해 크게 빚지고 있는 것이, 모스
(Marcel Mauss)가 수행한 주술에 대한 연구, 뒤르케임의 토테미즘 연구, 그리고 프
로이트 정신분석학이다. 이들을 각각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 축성(祝聖)

모스에 의하면, 원시부족에서 흔히 발견되는 주술적 힘은, 마술사 자신의 권능이


나 마술적 행위의 퍼포먼스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주술에 부여하는 “관
념들(idées)”과 “믿음들(croyances)”에 기인한다(Mauss, 1995: 10, 32-3). 말하자면
주술이란, 그것이 행해지는 상황 외부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무언가
로 전환시키는 연금술적 실천인 것이다.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살과 피
로 인지된다. 빵의 밀가루와 효모는, 그 일차적 물질성은 상징적 변형 과정에서 탈각
되고(빵의 물성에 대한 오인), 대신 그 신성성과 정신성이 새로운 의미맥락에서 창조
된다(빵의 상징성에 대한 인정). 상징자본의 생성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뒤샹
(Marcel Duchamp)의 변기는 사기로 만들어진 한갓 사물이지만, 화랑이라는 예술 공
간에서 사회적으로 인가된 평가와 지각도식을 소유한 행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인
정되면 상징적 변형, 이른바 성변화(聖變化)을 겪는다(Bourdieu, 1984a: 204). 인정
이라는 인지적 과정과 연금술(주술, 성변화)이라는 가치창조의 과정은 성/속의 구별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15

이 수행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 “상징적 축성”이다(Bourdieu, 2016: 141 이


하).8) 사회학 전통에서 그 기원적 모델은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들󰡕의 7장에서 왔
다. 뒤르케임은 이 저작에서, 집합열광의 흥분상태(코로보리)의 와중에 어떤 방식으
로 특정 동물이 토템 상징으로 옹립되는지에 관해 생생한 논의를 전해 준다. 그에
의하면, 토템은 그것에 부착되는 도덕적 힘을 소거하고 보면 그저 하나의 동물에 불
과하다. 그런 단순한 동물이 숭배의 대상이자 부족의 상징으로 전환되는 것은, 의례
를 통해 풀려 나온 강렬한 집합적 감정 에너지가 동물의 이미지 즉 ‘기호’에 고착되
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이 불러일으킨 감정들을 바로 이러한 기호와 연결시킨다. 사랑받고


두려워하고 존경받는 것도 기호이며,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도 기호이며, 희생을
바치는 것도 기호에 대해서이다. 자신의 군대 깃발을 위해 죽는 병사는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의 의식/양심(conscience) 속에서 최고의 자
리를 차지하는 것은 깃발이다. 하나의 군기가 적의 손아귀에 넘어가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병사는 군기
를 다시 탈취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다(…). 사람들은 기호가 현실 그 자체인
것처럼 그것을 다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토템은 그 씨족의 깃발이다”(Durkheim,
1990: 315. 강조는 필자).

기호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현실만큼이나 존중한다.


깃발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병사의 행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깃발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한 것인데, 상징이 어떻게 행위자의 의식/양심 속에서 그토록 강력한 추
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토테미즘이 던지는 수수께끼는 바로 이것이다. 가령, 개구
리를 토템으로 숭배하는 부족에게 개구리란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동물이 아니다. 그
것은 “이미지”, “상징”, “장식(décoration)”, “표식(marque)”에 불과하지만(Durkheim,
1990: 315-6), 도덕적 힘과 초월적 권위를 발휘한다. 부족을 하나의 사회로 묶고, 동
질감을 부여하고, 연대하게 한다. 소쉬르가 유사한 시기에 발견한 기호의 자의성은
토테미즘에도 적용된다(소쉬르, 1990: 85). 즉 어떤 동물이 토템이 되느냐를 결정하
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원칙적으로 다른 것들은 모두 제외시키면서 그것만이 성

8) 사회는 이단자들도 축성을 통해 제도 내에 수용한다. 프랑스 아카데미에 관한 연구에서 부르디


외는 제도가 수용한 반골들을 “축성된 이단자들(hérétiques consacrés)”이라 부른다(Bourdieu,
1984b: 140-8). 축성은 이단에 합법성과 사회적 위치를 부여한다.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16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스러운 것이 되도록 운명 지어진 본질을 가진 것은 없”으며 “필연적으로 성스럽게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없다”(Durkheim, 1990: 327). 그것은 “우연적 상황들”에
달려 있다(Durkheim, 1990: 461). 하지만 일단 토템으로 축성된 동물은 숭배의 대상
이 되고 도덕의 강력한 원천이 된다. 사회적 삶을 이루는 기호의 세계는 자의적 세
계이지만 동시에 초월적 세계이다. 성스러운 특성이 사물에 ‘덧붙여지는(surajouté)’
과정(Durkheim, 1990: 328), 즉 토템이 축성되는 과정은 이처럼 부르디외가 ‘상징
적 변형’이라 부르는 상징자본의 탄생과정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전거를 제공한다.

4. 완곡화(euph misation)

상징적 변형의 또 다른 실례로 부르디외가 거론하는 것은 완곡화 경향이다. 완곡


어법이란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척하면서 그것을 말하는 것, 객관적 진실을 은폐하
고 그것을 다른 언어로 대체하여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완곡어법을
씀으로써 실제 의미와 표명된 언어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내어 진실을 숨기고 미화한
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실을 이원화한다). 그것은 일종의 상호기만의 테크닉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이런 완곡화가 특징적으로 관찰되는 영역이 바로 ‘상징적 자산
경제’다. 협소한 의미의 “경제적 경제(économie économique)”(Bourdieu, 1987: 131)
와 달리, 상징적 자산경제는, 화폐와 연관된 혹은 권력과 연관된 직접적 언급이나 계
산, 이해타산이나 세속적 욕망 등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행위하고 소통해야 한
다. 즉, 경제적인 것에 대한 완곡어법을 요구하는 세계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부르
디외는 상징적 자산경제를 “반(反)-‘경제적’ 경제”(Bourdieu, 1992a: 235) 혹은 “전
도된 경제세계”(Bourdieu, 1983)라 부른다.9)

“상징적 자산경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적 이익의 억제, 혹은 검열에 토대한


다. 따라서 경제적 진실, 다시 말해 가격은 적극적 혹은 수동적으로 숨겨지거나
막연하게(dans le vague) 해 놓아야 한다. 상징적 자산 경제는 모호함(flou)과 불
확정적인 것(indéterminé)의 경제이다. 그것은 명시의 금기(tabou de l’explication)
이다(…). 이와 같은 억제로 인해 상징적 자산 경제를 특징짓는 전략들과 실천들
은 언제나 애매하며, 이중적 얼굴을 하고, 심지어 외관상 모순적으로 보인다(예
컨대 그것들 속에서 자산은 가격이 있으면서도 ‘가격이 없다’). 실천에서와 마찬

9) 이에 관해서는 특히 다음 논문을 참조할 것(박정호·현정임, 2010).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17

가지로 담론(완곡어법)에서도 상호배타적인 진실들의 이런 이중성은 위선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고, (일종의 지양(Aufhebung)을 통해) 대립된 것들의 공존을
보장하는 부인(dénégation)으로 생각되어야 한다”(Bourdieu, 1994: 209).

상징적 자산경제는 애매한 말들과 모호한 해석의 공간을 매개로 운영된다. 모든


것은 거기에서 이중성과 양가성을 띤다. 경제논리는 억압되어 드러나지 않고, 대신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언어들이 사태의 본질에 베일을 드리운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
게 드러내는 현상이 바로 증여교환이다. 인류학적 탐구들을 수행하면서 부르디외는
증여교환의 본질이 상징적 교환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등가물을 즉각적
으로 교환하는, 호혜구조의 자동적 작동(레비-스트로스)이 아니며, 후덕한 행위들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져가는 것(모스) 또한 아니다. 증여교환의 핵심은 증여와 그에 대
한 답례 사이에 행위자들이 삽입시키는 시간 간격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의미구조에
있다.
가령, 선물이 교환되는 관행을 살펴보면, 교환되는 것의 경제적 가치가 인지되지
못하게(다른 말로 하면 그 가치를 오인하게) 만드는 교묘한 절차가 그 안에 작용하
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사람은 곧바로 답례를 하
지 않는 것이 적절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선물을 받고 같은 가격의 물건으로 즉각
답례한다면, 상대방에게 모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제공한 선물의 가
치를 상대방이 타산적으로 계산함으로써 선의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선물에 대한 답례는 반드시 지연되어야 한다(또한 등가교환도 의도적으로 회
피되어야 한다). 이 지연행위는 지금 수행되는 교환으로부터 ‘이해타산적’ 외관을 제
거하는 완곡화 작업의 일환이다. 바로 돌려주면 선물의 가치를 계산하는 것이 되지
만, 한 참 지난 후에 되돌려주면, 최초의 선물을 교환 회로 밖으로 끌어내어 대가 없
는 증여라는 인상을 주면서, 답례를 새로운 증여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두 행위 사이
에 시간을 삽입함으로써, 선물과 답례 모두가 “강제적 연속이 아니라 하나의 절대적
시작으로” 오인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Bourdieu, 1994: 177 이하; Bourdieu,
1977c: 35). 이 경우 선물은 더 이상 교환가치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를 창조하기에 적합한 메시지 혹은 상징”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Bourdieu,
1994: 189). 선물 행위는 이런 방식으로 경제적인 것을 부인하면서 상징적 의미의
창출(완곡화)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열어간다. 증여된 선물이 생산하는 인격적 존경,
미덕에 대한 칭송, 관대함의 인정, 그리고 그런 경제적 이해관계에의 무관심이 가져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18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다주는 도덕적 이득이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상징자본이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부


인”(Bourdieu, 1992a: 235)이 완곡화의 핵심 논리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인이 이해관계의 전적이고 단순한 기각, 즉 부정
(négation)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징적 부인은 무언가를 오인하면서, 혹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하면서 다른 차원의 (상징적) 이해관계를 창출하여 가동시키는
행위이다. 부인은 완벽한 무지의 소산도 아니고, 허위의식의 표출도 아니다. 이중의
세계가 동시에 고려되고 있다. 한 세계(경제)가 ‘차폐’되고, 다른 세계(상징)가 ‘인정’
되고 있다. 이 인정은 동시에 오인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행위자는 그가 차폐한 세계
를 완전히 억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가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그것을 하고 있다”(Bourdieu, 1994: 184)라는 말은 이 논리의 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런 미묘하고 흥미로운 논리를 부르디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빌려온다
(Bourdieu, 1998: 100; Bourdieu, 1993: 74; Bourdieu, 1992a: 20; 부르디외·바캉,
2015: 242).10) 1925년의 논문 “부인(Verneinung)”에서 프로이트는 환자들이 부정문
(否定文)을 사용할 때 발견되는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한다.11) 가령 ‘꿈속에 등장하는
이 사람이 누구냐?’라는 의사의 질문에 환자는 “그 사람은 나의 어머니가 ‘아닙니
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환자는 부정을 통해(‘어머니가 아닙니다’) 어
머니라는 표상을 의식에 떠올렸고, 부정의 형식 속에서 그 표상을 발화하고 있다. 프
로이트에 의하면, 억압의 흔한 대상인 어머니를 환자가 의식에 떠올릴 수 있었던 것
은, 그것이 부정의 형식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즉, 억압된 이미지나 생각의 내용
은 그것이 부정된다는 조건으로 의식화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
인은 억압된 것을 인정하는 방식”(프로이트, 1997: 446)으로 작용한다.12) 이 통찰은

10) 스타인메츠(George Steinmetz)는 부르디외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상당한 개념적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무의식, 오인, 투사, 현실 원칙, 리비도, 자아-분열, 부정, 타협물의 형
성, 억압된 것의 회귀 그리고 집합적 판타지 등의 용어들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이다(Steinmetz, 2006: 445).
11) 우리말 ‘부정’으로 번역된(프로이트, 1997) Verneinung은 원래 논리적 부정(négation)과 심리적
부인(déni)의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프로이트는 후자를 Verleugnung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위의 논문에서 프로이트가 두 의미를 혼용하고 있는데 반해서, 부르디외는 Verneinung을 일관
적으로 dénégation이라 번역했고, 주로 심리적 부인의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Bourdieu,
1977b: 5). 이 글에서는 논리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부정’으로, 심리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부
인’으로 고정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다만, 프로이트의 논문 제목은 연구의 방향에 맞게 ‘부인’으
로 고쳐 사용한다. 용어와 연관된 좀 더 자세한 설명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Laplanche
and Pontalis, 1967: 112-4).
12) 부르디외는 인정이 언제나 오인(méconnaissance)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그는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19

부정적인 것의 작용에 내포되어 있는 욕망과 표상의 변증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가령 “당신은 내가 남을 모욕하는 어떤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실
은 나는 그러한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프로이트, 1997: 445)라고 말하는 환자의 경
우, 위의 부정문은 다음의 세 가지 상이한 심적 사태의 전개를 응축하고 있다.

i) 남을 모욕하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 – 실제의 욕망


ii) 그런 욕망을 억압하는 도덕적 힘
iii) 부정문에 언표의 형태에 포섭되어 들어온 모욕의 욕망 – 상징화된 욕망

남을 모욕하고 싶다는 욕망은 ‘부정’됨으로써 의식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것은


도덕적 억압의 힘을 우회하여 언어(상징)의 세계로 틈입한다. 그 결과 하나의 판단,
하나의 표상, 하나의 언표가 생산된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의사소통 세계, 상징적
매체로 연결된 세계에 나타난 욕망은, 자신을 부정하는 언표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가면을 쓰고 변신한 충동, 즉 ‘부인’된 욕망이다. 한편으로는 욕망임을 스스로 드러
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 그 자체의 원초적 힘이 거세된 욕망, 그것이 바로 ‘상
징화된 충동’이다. 부인된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변형을 거쳐 새로운 존
재양태를 부여받은 채,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부정적 상징”으로서 다시
등장해 오는 것이다(프로이트, 1997: 450). 부인은 순전한 욕망의 세계도 아니고 순
전한 억압의 세계도 아닌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프로이트가 개인 심리에서 발견한 이런 현상을 부르디외는 사회세계에 적용하고
있다. <무의식적 욕망 → 도덕적 간섭 → 상징화된 욕망>이라는 심적 과정은 사회세
계에서 상징자본이 생성되는 과정인 <물질적 자본 → 상징적 변형 → 상징자본>의 전
개와 거의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또한 앞서 언급한 상징재화의 교환논리인 <경제적
경제 → 완곡화 → 상징적 경제>의 전개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도 ‘경제적 경
제’는 은폐, 억압, 미화되어 ‘부인된 경제’인 상징경제로 변형된다. 증여교환의 실례
에서 보았듯이, 등가교환의 구조적 법칙(이해타산)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증여를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사회관계로 지양되어 흡수된다. 경제적 이득 대신에 선물교환

“모든 인정은 오인이다”(부르디외, 2013: 26)라 말하거나 “인정, 오인, 또는 믿음”을 “유사 동의
어”(부르디외, 2013: 28)들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는 라캉을 연상시킨다. “오인은 무지(ignorance)
가 아니다. 오인은 주체가 특정 방식으로 긍정과 부정을 조직하고 그것을 고수하는 것이다. 따
라서 오인은 그것과 상관적인 인식 없이는 사고불가능하다(…). 주체의 오인의 배후에는 오인되
어야 하는 무언가에 대한 어떤 일정한 인식이 있었어야 한다”(Lacan, 1975: 261).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20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을 통해 상징적 이득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행위자들은 상징적 부인이라는


집합적 인정/오인을 통해 경제적 실재를 감추고 그 위에 “주술에 걸린(enchanté), 기
만된(mystifié), 그리고 공모된 지각”의 세계를 구축한다(부르디외, 2013: 21). 이는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리얼리티이다. 부르디외가 보는 사회세계는 이처럼 마술적이며
심지어 몽환적이다(김홍중, 2015: 47). 그것은 “깨어있는 꿈(rêverie éveillée)”의 세
계이다(Bourdieu, 1998: 106).
그런데 이 꿈은 이중성과 양가성을 갖는다. 한편으로 그것은 기왕의 질서를 재생
산하고, 권력에 상징적 위광을 부여하는 혼몽으로 기능한다. 인정되고 오인된 힘이
지배하면서 “주술에 걸린 굴종”(Bourdieu, 1998: 63)을 구조적으로 야기하는 곳이
바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회적인 것의 몽환성은 상징의 창조성
과 상통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강고한 사회적 가치들
도 사실은 부단히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며, 현미경적 시선으로 사회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인간 실천의 역동성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고, 기왕의 질서를 전복시키
는 창조의, 투쟁의, 적대의, 희생의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다. 로마를 뒤엎는 바울의
‘약할 때의 강함’이 300년에 걸친 투쟁의 역사를 통해 결국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
될 수 있었듯이(더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독교 교회가 역사 속에서 자신의 혁명성을
다시 억압적 제도로 전환시켜 스스로 혁명적 부정의 대상으로 전환되었듯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모든 지배적 힘, 가치, 상징들은 애초에는 하나의 작은 씨앗들에 불
과했으며, 어느 누구의 존중과 인정도 받지 못하던 것들이었다. 사회적인 것과 상징
적인 것의 결합 속에서는 상징적 ‘권력’도 가능하지만 상징적 ‘저항’이나 “상징적 혁
명”(Bourdieu, 2013) 또한 가능한 것이다. 상징적인 것에 내재적인 부정성은 부르디
외 자본이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역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그것을 나는 부정자본
개념을 통해 탐구하고자 한다.

Ⅳ. 부정자본

1. 부정자본이란 무엇인가?

상징적 변형은 질료의 물성이 부정되거나 은폐되고, 특정 속성이 가치로 지양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뒤르케임의 ‘토템’은 자의적으로 선택된 동물에 사회적 에너지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21

가 투사되어 상징이 된다. 상징적 교환은 관계의 타산적 성격을 은폐하고 도덕적 위
신의 공간을 연다. 이처럼 사회적 마술(연금술)은 대상의 물적 속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치화하는 사회적 조건들에 준하여 수행된다. “동일한 ‘신체적’ 혹
은 ‘도덕적’ 특성, 예컨대 뚱뚱하거나 날씬한 몸, 희거나 어두운 피부, 음주 또는 그
에 대한 거부는 다른 시대 같은 사회에서, 혹은 서로 다른 사회들에서 정반대되는
(위치의)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화의 상징은 언어 기호와 다를
바 없이 자의적이다”(부르디외, 2013: 24; Wacquant, 1998: 27).
동일한 사물에 다른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인정의 코드에 선험적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 의해 인정/부
정될지에 관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바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가 ‘부정자본(negative capital)’이라 부르기를 제안하는, 상징자본의 특수 유형을 만
나게 된다. 여기에서 ‘부정적’이라는 형용사는 그 용법에 따라 다음의 두 가지로 분
류될 수 있다. 하나는 ‘통사론적’ 관점으로서, 부정적인 것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의
미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부정되거나 배제된 그 ‘자리’ 자체가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면서, 그 텅 빈 자리가 도리어 역능 혹은 자본으로 구성되어
나타나는 형태를 가리킨다. 이때 부정적인 것은 음성적인 것, 결여된 것, 혹은 배제
된 것으로 드러난다. 나는 이를 ‘통사론적 부정자본(syntactically negative capital)’
이라 부르기를 제안한다. 또 다른 용법은 좀 더 실체적인 부정성과 연관을 갖는다.
즉 지배적 관점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무언가가 사회적으로 축성되어 자
본으로 성립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처럼 부정성이 내용수준에서 구체적으로 확정
된 경우에는 ‘의미론적 부정자본(semantically negative capital)’이라 부르기를 제안
한다.

2. 통사론적 부정자본

통사론적 부정자본은 배제된 것들이 구성하는 빈 자리(결여)가 자원으로 기능하면


서 형성되는 자본형태이다. 부르디외 사회학에서 이런 의미의 ‘부정자본’은 ‘구별짓
기’의 논리를 분석할 때 부각되어 소묘된 바 있다. 가령 부르디외는, 행위자들이 취
향을 생성해갈 때, 선호(préférence)를 확인하고 확정해간다기 보다는, 자기의 기준
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배제를 실천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취향
(즉 겉으로 표현된 선호도)은 피할 수 없는 차이의 실제적인 확증이다. 따라서 취향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22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이 정당화될 때 순전히 부정적으로(de manière toute négative), 즉 다른 취향들에 대


한 거부(refus)의 형태로 확인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아마 취향의 문제만큼
모든 규정이 부정일 수밖에 없는 다른 영역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취향(goût)은 무
엇보다도 혐오(dégoût),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한 공포감 또는 본능적인 짜증(구역질
난다)에 의해 촉발되는 불쾌감이다.”(Bourdieu, 1979: 59-60. 강조는 필자).
‘모든 규정이 부정(omnis determinatio negatio est)’이라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인
용하면서 부르디외는 취향의 실천에 내재되어 있는 이 “본질적 부정성”(Bourdieu,
1979: 60)을 강조한다.13) 취향은 선택된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의 총량,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그것의 하찮음과 보잘 것 없음을 직시하여 선호하지 않는 것으
로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고도의 음악적 취향은 자신이 좋아하
는 음악들의 합계로 계산되는 문화자본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낮은 수준의 음악
들에 대한 ‘거부’, 즉 혐오감을 동반한 부정의 축적이다. 진정 고급한 음악취향을 가
진 사람이 되려면, 그는 말하자면 ‘트로트’를 혐오할 줄 알고, 상업적 댄스음악이나
‘아이돌’ 음악에 대한 거리감을 명확하게 표명해야 한다. 단순히 재즈를 즐기는 것에
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재즈와 다른 재즈의 구별을 가차없이 인지, 표명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타인들의 고급취향을 추종하는 것도 좋은 취향의 구성을 저해한
다. 핵심은 부정의 힘에 있다. 부정을 통해 배제된 것들의 힘이 취향을 만든다.
환언하면, 자신이 부정한 모든 것들의 무게만큼 취향의 무게도 결정된다. 이처럼
거부된 것들이 ‘부정적으로’ 형성하는 빈 공간의 밀도와 강도가 부정자본의 총량이
다. “취향은 천 가지 혐오로 이루어져 있다(Le goû̂t est fait de mille dégôûts)”(Valéry,
1996: 14)는 발레리의 말이나 히스(Joseph Heath)와 포터(Andrew Potter)의 다음 지
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음악적 취향을 보려면, 즐겨 듣는 음악
이 무엇인지보다는 듣지 ‘않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음반 컬렉
션에 라이오헤드 시디 몇 장을 소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셀린 디옹, 머라
이어 캐리, 본 조비의 시디가 ‘없어야 하는 것’ 역시 필수이다. 너무 주류적이지 않
은 몇 가지 괜찮은 복제품을 소장하는 것도 좋다”(히스·포터, 2006: 158). 문화자본

13) 부르디외는 2000년 3월 8일 콜레주 프랑스에서 행한 마네(Edouard Manet)에 대한 강의에서 스


피노자를 다시 언급하면서, 장과 부정성의 연관을 지적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말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omnis determinatio negatio est)’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 아주 잘 적용되는
멋진 공식이다. 장에 존재하는 누구라 할지라도 장에서의 다른 위치들에 대한 부정을 통해 규정
되게(determiné) 된다”(Bourdieu, 2013: 492).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23

은 이 ‘듣지 않음’과 ‘없어야 하는 것’으로 측정된다. 따라서 문화적 소비물을 측정


하고 양화함으로써 문화자본을 측정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부정된
것들, 배제된 것들은 측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구별짓기’라는 개념의 흥
미로운 함축이 드러난다. 구별짓는다는 것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고 다른 것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즐겨 듣지 않는 음
악은 관심권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적 가치가 ‘부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선택’된 음악을 가리킨다.
구별짓기의 이 부정성은 학문장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발견된다(Bourdieu, 1984b).
칸트가 학부 간 알력에 대해 지적했듯이 학문장에서는 문과와 이과 사이에, 인문학
과 사회과학 사이에, 혹은 (사회학의 내부에서) 소위 질적 방법 전공자들과 양적 방
법 전공자들 사이에, 이론가와 경험연구자 사이에 상호 ‘부정’을 통한 상징투쟁이 벌
어진다. 특정 분과의 전문가가 폭넓고 다양한 지식들을 피상적으로 혹은 무차별적으
로 추구하거나 소유한다면, 그것은 그가 프로페셔널이 아닌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암
시하는 징표이다. 고도로 분화된 학문장에서 존재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주요 방책
중 하나는 자신 분야 외부의 지식과 방법에 대해서 ‘전략적 무지’를 구축하는 것이
다. 독일 관념론 철학의 전공자가 통계 분석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은 그의 지적 위신에 타격을 주지 않는다. 도리어 통계와 같이 구체적이고 실증적
인 지식의 산출방식에 대한 ‘무지’ 혹은 ‘배제’가 사변적 사고의 전문가로서 그가 구
가하는 아우라를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반대로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가지고 작
업하는 경제학자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나 데리다(Jacques Derrida)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사변 철학이나 미학 혹은 문
학의 지식에 대해서 스스로 얼마나 금욕적인 태도를 설정하고 이를 과시하느냐가(그
것을 읽지 ‘않거나’, 인용하지 ‘않거나’, 언급하지 ‘않거나’, 평가하지 ‘않는 것’) 학
문적 엄격성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학자의 정체성은 그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가
누가 아닌가에 의해 더 결정적으로 규정된다. 그가 읽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는 것,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하지 않는 것, 그가 비판하는 것, 거리를 두는 것, 혹은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으로서 선택되어 배제된 것들이 바로 그의 학문적 부정자본
인 것이다. 학생들이 성장해가는 과정 역시 부정성의 실천방식을 체화해가는 것과
동시적이다. 어떤 분과, 어떤 학파, 어떤 저자, 어떤 방법을 ‘부정’해야 하는지, 누구
를 언급하지 ‘않아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방법을
시도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그들이 알게 될 때, 그 앎이 감각적으로 체화될 때 비로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24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소 전문연구자가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14) 학문자본의 형성과정에서 수행되는


구별짓기는 이처럼 ‘않음’과 ‘모름’과 ‘못함’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15)
부정된 것은 단지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의 형식 그 자체로 행위자에 의해
강하게 의미부여 되어 작동하는 힘이다. 그 논리와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 부정자
본은 보이지도 감지되지도 않지만, 동일한 내기물을 놓고 경쟁하는 자들에게는 부정
자본 만큼 적나라하게 차별적이고 웅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 또한 드물다. 문화
적 취향이나 학문적 실천의 영역에서는 소유된 것보다 삭제된 것, 괄호에 묶인 것,
방법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버려진 것이 더 강력한 자원으로 작용한다.

3. 의미론적 부정자본

서론에서 언급했던 바울의 일화는 의미론적 부정자본의 전형적 실례를 제공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바울이 이야기하는 ‘약할 때의 강함’은 기독교의 성장과 더불
어 역사 속에서 하나의 가치로 제도화될 그런 덕목이자 실천양식이다. 유교적 종교
자본이 군자적 덕성(仁)을 핵심 표상으로 하며, 불교의 종교자본이 초탈과 자비심을
핵심 표상으로 한다면, 기독교의 종교자본은 십자가라는 낮은 자리에서 처형된 ‘메
시아’를 따르는 길에 내포된 역설적 구원가능성에 뿌리를 내린다. 기독교의 위대한
성자들은 ‘깨달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깊은 차원에서 신의 버
림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 원형이 예수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순교”를
의미한다(몰트만, 1979: 87-9). 바울이 가치화하는 저 질병, 모욕, 가난, 핍박, 고통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난, 박해, 순교와 같은 골고다적인 것
의 부정성은 구원의 영광으로의 ‘상징적 변형’ 과정에 투입될 질료가 된다. ‘존재의
삭감’(약함)이 오히려 ‘존재의 증강’(자본)이 되는, 존재가 삭감될수록 존재가 강화되

14) “사람들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들 다수가 오랫동안 소르본에서는 ‘단죄된
(condamnés)’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1960년을 전후로 학사 학위를 취득
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실패를 무릅쓰지 않고서는, 귀르비치(Gurvitch)의 앞에서 레비-스트로스
의 이름을 인용할 수 없었고, 외르동(Heurgon)의 면전에서 뒤메질(Dumézil)의 이름을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Bourdieu, 1984b: 143).
15) 부정자본의 과도한 추구는 ‘지성적 반지성주의’라 부를 만한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를 낳는다.
언급한 대로 분과학문들의 분화에 조응하는 구별짓기의 전략은 지성적으로 반(反)지성을 과시
하는 것이며,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대학이라는 ‘지성적’ 공간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지식, 방법, 학문에 대한 무지, 폄하, 부정, 조롱이 표방되는 ‘반지성주의적’ 하비투스가 다른 어
느 곳보다 더 활발하게 작용함을 체험한다. 지성적 반지성주의는 한 사회의 문화적 풍토일 수도
있지만, 학문공간의 구조적 원리와 그 안에서 진행되는 경쟁의 양태, 그리고 부정자본 추구의
양상들의 복합적 조합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25

는 역설의 회로에서 산출되는 것이 바로 부정자본인 것이다.16)


이런 유형의 자본들은 사실 부르디외가 상징적 재화의 장이라 부른 문학, 예술,
학문, 종교, 과학 등의 영역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들 영역에서 가장 고도의 상
징자본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표적 존재들(시인, 예술가, 학자, 성직자, 과
학자)에 대한 신화들은 그들이 체험했어야 하는 비범한 운명적 가혹함(질병, 불운,
요절, 고통, 광기)이 도리어 그들 존재의 아우라로 전환되는 주술적 모멘트들에 집중
되어 있다17). 우리가 시인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달변에 부자이고 사교를 즐기는 그
런 ‘긍정적’ 자본의 소유자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정형화된 상식 속에서 위
대한 시인들의 운명은 우울하고 어둡고 불행한 양상으로 얼룩져 있다. 예컨대, 김소
월(1902-1934)이 건강과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채 한 세상을 호사롭게 살아갔다
면, 우리가 지금 그 이별의 절창(가령 <진달래꽃>)에 부여하는 문학적 권위가 성립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요절과 아편중독과 질병, 그리고 유약함과 이 세상에서의 실
패가 역설적으로 그의 시세계를 두르는 예술적 비감의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법정 스님(1932-2010)이 갈파했던 ‘무소유’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부유함
의 대척에서만 가능한 삶의 형식과 종교적 위광의 메시지가 아닌가?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
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법정, 1976: 34).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는 (경제, 사회, 문화) 자본의 ‘결여’는 모든 것을 갖는다는 불교적 부정자본의 ‘풍요’
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것은 역리가 아니라 상징적인 것의 영역에서는 도리어 순리

16) 여기에서 우리는 베버의 고전적인 논의를 다시 상기하게 된다. 베버에 의하면 고통에 대한 종교
적 해명의 최초 논리는, 고통에 가치(대가)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가치가 바로 카리스마이다.
“고통의 종교적 미화의 일차적 요인은 다음과 같은 경험이었다. 즉 무아의 경지, 환상적, 히스테
리적 경지의 카리스마, 한 마디로 ‘성스럽다’고 평가되고 그래서 주술적 금욕주의자들이 지향했
던 그 모든 비일상적 경지들의 카리스마는 수많은 종류의 고행과 정상적 식사, 수면 및 성생활
의 절제를 통해서 일깨워지거나 배양된다는 경험이 그것이다. 특정한 종류의 고통과 고행을 통
해 도달한 비정상적 경지는 초인적, 즉 주술적 힘을 얻는 길이라는 믿음 덕분에 이러한 고행은
높은 명성을 누렸다”(베버, 2008: 135). 여기에는 고통과 주술적 힘 사이의 등가교환 관계를 설
정하는 사고가 나타나 있다. 고통은 미래의 보상과 연결된다. 환언하면, 부정적 체험이 상징화되
거나 가치화되어 하나의 ‘자본’으로 전환되고 있다.
17) 가령, 18세기 이래 서구에서는 천재로서의 예술가라는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이때 천재
성은 고통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사고되어 왔다. “고통은 천재의 슬픈 운명일 뿐만 아니라 진
정한 예술적 특징의 포기할 수 없는 요소”로 여겨지게 된다(크리거, 2010; 87). 19세기에 이르
면 고통이 이상화되기에 이르러, 세속적 명성이 도리어 예술가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실패가 천
재성의 징표로 간주되기 시작한다(크리거, 2010: 91). 예술가들에게는 질병, 특히 정신질환이 창
조성의 근원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샌드블롬, 2003). 이런 부정자본의 화신 중
한 사람이 바로 반 고흐(Van Gogh)이다. 그가 예술적 성인(聖人)으로 추대되어간 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에니히, 2006).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26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부르디외는 󰡔예술의 규칙들󰡕에서 19세기 프랑스에서 어떻게 문학이 상업이나 정
치와 구분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실천형태로 분리되어 나오면서, 문학을 위한 문
학이라는 자기-지시적 세계가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근대 문학에
고유한 상징자본의 법칙을 창안한 장본인으로서 보들레르와 플로베르가 언급된다.
플로베르가 “명예는 불명예스럽게 만든다(les honneurs déshonorent)”고 쓸 때
(Bourdieu, 1992a: 44), 그는 부르주아 사회가 상찬하는 가치(명예)를 가차 없이 부
정함으로써, 명예 따위에 초탈한 어떤 스탠스를 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명예인 ‘문학적’ 명예는 이처럼 명예를 부정하는 초연한 태도에 의
해 역설적으로 구성된다. 부정의 몸짓이 ‘진정한’ 문인에게 합당한 부정자본이 된다.
이 논리를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상술한다. “예술이라는 게임은 사업의 관점에서
보면 ‘패자가 승자(à qui perd gagne)’인 게임이다. 경제적으로 전도된 이 세계에서
는 돈, 명예 (...), 세속적 성공과 같은 모든 상징들 즉 이 세상 속에서의 성공을 얻는
과정에서 저 너머에서의 구원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이 역설적 게임의 근본법칙은
무사심에 대한 이해관심(intérêt au désintéressement)이다”(Bourdieu, 1992a: 50-1).
패자가 승자인 게임은 (대중적) 성공이 (예술가로서의) 실패인 게임이다. 세상이
즉각적으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소수의 뛰어난 감식안(그 감식안은 당대에 존재하지
않고 미래에 도래할 수도 있다. 이로부터 상징영역에서 최고의 인정은 언제나 사후
명성이 된다)에 의해 인정받을 때 획득되는 희소한 평가가 도리어 더 큰 성공의 징
표가 될 수도 있다. 발자크도 도스토예프스키도 평생 빚에 허덕였으며, 위대한 작가
들이 생전에 무명(無名)으로 남아 있었던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은,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자들에게는 은근한 희망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세속적 성공이 지연되는 것,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 대중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등은 예술가에게는 휘황찬란한 성공보다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부정
자본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이와 같은 부정자본의 창설, 부정성의
상징화를 글쓰기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기술 그 자체에까지 밀고 나간 전범적
존재이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가장 극단적인 위치, 문학적 제도로부터 시작하여 모
든 권력과 모든 제도들에 대한 저항의 위치”(Bourdieu, 1992a: 114)를 점유하고 “헐
벗음과 비참”(Bourdieu, 1992a: 115), 사회적 무시에 상처를 입은 ‘저주받은 시인’18)

18) ‘저주받은 시인(poète maudit)’은 베를렌(Paul Verlaine)의 1884년 저서의 제목이다. 베를렌은
랭보(Arthur Rimbaud),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등 당대의 젊은 시인들을 언급하면서, 시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27

의 형상을 드라마틱하게 육화하였다. 이처럼 저주받은 시인의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


사랑하는 것, 그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욕망하는 것, 그가 욕망한다고 공언하고 선
언하는 것, 그것이 다음에 인용하는 “이방인”이라는 시에 나타나 있다.

“수수께끼 같은 당신, 말해보시오,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지,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 누이, 아니면 형제?
-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도 없소.
- 친구들은?
- 당신은 오늘날까지 나에게 그 의미가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는 말을 사용하고
있소.
- 당신의 조국(patrie)은?
- 내 조국이 어떤 위도 밑에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오.
- 아름다움(beauté)은?
- 불멸의 여신인 아름다움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소만(aimerais).
- 황금은 어떻소?
-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하오
- 아! 불가사의한 이방인이여,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 거요?
-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저기...저기...저쪽으로 지나가는 구름을...저 찬란한 구름
을”(Baudelaire, 1961: 231)

󰡔파리의 우울󰡕(1862) 서두에 실린 위의 시에서 보들레르는 수수께끼 같은 이방인


의 입을 빌려, 모든 사회적 가치들을 하나씩 부인해 나간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고,
친구도 소중하지 않다. 공화국도 연대도 관심이 없으며, 경제적 이해관계와 종교 또
한 냉정하게 부정된다. 다만, 미학적 가치가 유보적으로 긍정되지만, 그 역시 프랑스
어의 조건법 동사 형태 하에 포섭되어(aimerais), 미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진정 그가
사랑하는 것으로 공표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실체가 없는, 무한히 변화하
는, 아무 것도 아닌, 어떤 효용도 없는 구름이다. 구름의 유일한 속성인 ‘무상성’과
‘덧없음’이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심지어는 미학적 쓸모도 실체도 없는 어떤 상
징을 보들레르는 선택하여, 그 부정적 가치(무상함과 실체 없음)를 문학적 가치의 정

적 위대함을 성취했지만 세속적 성공을 얻지 못하고 몰락해 가는 그들의 이미지를 ‘저주받은’이


라는 용어에 집약한다(Verlaine, 2013). 흥미로운 것은 이 ‘저주받은 시인’들이, 베를렌의 상징
화(명명과 언급과 평가)를 통해 프랑스 문학장에서 진정한 시인들로 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저
주란 이런 경우 부정자본의 기호로 기능했다.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28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상에 등극시키고 있다.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욕망의 가장 먼 대척에 존재하는 것, 자


본주의의 세속적 꿈의 가장 까마득한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의 상징이 바로 “저기....
저기...저쪽으로 지나가는 구름”이며, 그것이 표상하는 영원한 부정성이다. 부르디외
가 분석하는 근대적 문학장에서 탄생한 시인의 이미지는 보들레르가 축성하는 저
‘구름의 애호가’를 닮아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비워내고, 부정적
가치들의 정점에서 사회와의 대립각을 찾아내고, 스스로 구름 같은 존재가 되어감으
로써 역설적으로 그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보하고자 했다. 부르디외가 보들레르
를 근대 문학의 “입법자(nomothète)”(Bourdieu, 1992a: 108)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시적 글쓰기의 준칙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공간인 문학장에서
의 삶의 에토스 전반과 연관되어 있는 언명이다. 위의 시에서 ‘통사론적 부정자본’과
‘의미론적 부정자본’은 구름의 상징에 집결되어 분리할 수 없는 일체를 이루고 있다.
문학장의 행위자들은 “무사심이 가져다주는 이득(profit)”(Bourdieu, 1977b: 4)에
대한 감각을 넘어 “무사심에 대한 숭배(culte)”(Bourdieu, 1992a: 53)를 형성시켜 갔
던 것이다. 이 숭배는, 예술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서의 무능과 무관심에 대한, 그러
니까 부정자본에 대한 숭배이며, 그런 부정자본을 이루는 제스처나 하비투스를 체화
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무사심을 과시한다(vanter)”는 플로
베르의 말은, 무사심이 하나의 규범이 되어 행위준칙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음을 암시
한다(Bourdieu, 1992a: 53). 부정자본은 사후적으로 특정 행위자에 수여되는 아우라
라는 의미를 넘어서 행위자의 신체에 “실천 감각”(Bourdieu, 1994: 45)과 “성향의
체계”(Bourdieu, 1972: 256)로 스며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환언하면, 부정자본은 하
비투스로 체화되어 다양한 문화적 실천들을 통해 가시화되고, 지각되고, 평가되며,
의식적으로 선망되거나 육성된다.19) 이런 점에서 부르디외의 문학장 분석은 문학적
부정자본의 형성사(史)의 분석에 다름 아니다(Bourdieu, 1994: 196-7).
통사론적인 것이건 의미론적인 것이건, 부정자본은 상징자본의 가장 미묘한 영역

19)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제시하는 보보스(bobos)의 행태에 대한 관찰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쿨한 지역, 즉 쿨존(cool zone)에서 신분 상
승을 하려면 오히려 부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즉 부유하고 많은 것을 달성하기보다는 가난하
고 흠이 있는 상태가 더 쿨한 것이다. 부유하고 아름다운 슈퍼모델들이 바에서 여류 시인이나
약물 중독자처럼 보이고 싶어한다”(브룩스, 2008: 37). 미국의 독학예술가들에 대한 연구를 시
도한 파인(Gary A. Fine) 또한 예술가들에게 전기(biography)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
는데, 이때 전기의 내용은 전형적인 사회적 메인스트림과 대척적인 이력들(폭력성, 종교, 알코올
중독, 질병, 가난)로 채워져야 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즉 “예술가의 삶의 고통은 예술가의 창조
성을 합법화한다”(Fine, 2003: 171).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29

을 이룬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세계를 바라볼 때 얼마나 섬세한 해석의 눈을 가져야


하는지, 사회세계가 얼마나 은밀한 의미의 차원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 대한 침착하고 적절한 통찰 없이 일면적이거나 피상적인 측정 혹은 관
찰을 통해 사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자칫 얼마나 폭력적인 외적 개입일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 이와 동시에 부정자본의 시대적 변화, 사회에 따른 차이에 대한 탐구가 과
제로 주어진다. 예술장이나 문학장 혹은 학문장의 자율성이 소실되어가는 추세는 부
정자본의 약화를 동반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패권 하에서 ‘경제적인 것’이 문화영
역에 침투함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도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한국사회처럼 근
대성의 독특한 역사적 체험 속에서 장의 분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경제와
정치의 비대화를 체험하고 있는 사회에서(김덕영, 2014) 부정자본의 형성 혹은 쇠퇴
는 정밀한 탐구의 대상이 된다.

Ⅴ. 마치며

이상에서 우리는 부르디외 사회학의 자본개념을 집중 검토해 보았다. 특히 부정자


본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인 것의 독특한 역동과 역설에 주목했다. 고통
이나 아픔, 약점이나 불행이 자원으로 탈바꿈되어, 도리어 그것을 갖지 못한 ‘유복
한’ 자들을 초라한 빈자로 만들어 내는 사회적 역동이 그것이다. 만일 사회적인 것의
핵심에 이런 전복적 프로세스가 가동되고 있다면, 우리는 사회적 삶을 부정성의 부
단한 준동이자 느리고 지속적인 창조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떤 점
에서 ‘사회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과 차이를 갖는지를 탐구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된다. 이들 사이에는 영역의 차이, 기능의 차이, 그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나 소통방식의 차이 등이 물론 존재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코드’의
수준에서 중대한 차이를 갖는다.
가령 경제적인 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코드는 ‘이득/손실’의 이항대립
이다. 경제적 행위는 부의 소유를 지향한다. 부의 손실을 추구하는 경제적 행위는 있
을 수 없다. 정치적인 것의 기본 코드는 ‘강/약’, 즉 권력의 소유를 기준으로 하는 이
항대립이다. 정치적 행위는 권력의 소유를 지향하며 수행된다. 정치와 경제를 지배
하는 코드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명료한 방향성과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것의 작동코드는 상징적 변형을 지배하는 인정/부정의 이항대립이다. 사회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30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적인 것의 코드가 인정/부정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것의 발동과 진행에는 원칙적으


로 선험적 가치나 방향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인(善人)들의 사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의 사회가 있는 이유,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어 행하는 일들
이 절대악으로부터 절대선까지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인 것의 작용은 이중성을 갖는다. 한편으로 그것은 기존 질서를 재생산한
다. 즉, 인정된 것이 다시 인정되거나, 부정된 것이 다시 부정될 때 기왕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그러나 기왕에 부정되던 것이 인정되거나, 기왕에 인정되어 온 것이 부
정되는 경우에 질서는 변화한다. 상징적 변형은 ‘부정의 인정’과 ‘인정의 부정’이라
는 굴절의 모멘트를 내포한다. 사회의 창조성은 기왕의 지배적인 것을 부정하고, 새
로운 것을 만들어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부정성의 작용이다. 이것은 단순한 해석의
참신함,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가치전도의 우발적 시도를 통해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
다. 어느 누구도 기왕에 작동되는 코드의 가치위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순식간에 전
도시킬 수는 없다. 부정적인 것이 작용하여 그것이 사회적 현실이 되는 과정에는 실
천과 운동의 오랜 역사가 요구된다. 지금 우리가 체험하는 사회는 바로 그런 역사의
최종 결과물이자, 미래에 펼쳐질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을 씨앗처럼 품고 있는 가능성
의 장소이다.

참고문헌

김덕영. 2014. 󰡔환원근대󰡕. 길.


김홍중. 2015. “꿈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 󰡔경제와사회󰡕 108: 32-72.
몰트만, 위르겐(Moltmann, Jürgen). 1979.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김균진 옮김. 한국
신학연구소.
박정호·현정임. 2010. “부르디외 예술사회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 󰡔사회와이론󰡕 16.
법정. 1976. 󰡔무소유󰡕. 범우사.
베버, 막스(Weber, Max). 2008. 󰡔막스 베버 종교사회학 선집󰡕. 전성우 옮김. 나남.
보네위츠, 파트리스(Bonnewitz, Patrice). 1997.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 문경자 옮김. 2000.
동문선.
부르디외, 피에르(Bourdieu, Pierre). 2013. “상징자본과 사회계급.” 이상길 옮김. 󰡔언론과
사회󰡕 21(2). pp. 10-33.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3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4. 󰡔언어와 상징권력󰡕. 김현경 옮김. 나남.


부르디외, 피에르(Bourdieu, Pierre)·바캉, 로익(Wacquant, Loïc). 2015. 󰡔성찰적 사회학
으로의 초대󰡕. 이상길 옮김. 그린비.
브룩스, 데이비드(Brooks, David). 2008. 󰡔보보스는 파라다이스에 산다󰡕. 김소희 옮김. 리
더스북.
샌드블롬, 필립(Sandblom, Philip). 2003. 󰡔창조성과 고통󰡕. 방승숙 옮김. 아트북스.
소쉬르, 페르디낭 드(Saussure, Ferdinand De). 1990. 󰡔일반언어학강의󰡕. 최승언 옮김. 민
음사.
에니히, 나탈리(Heinich, Nathalie). 2006. 󰡔반 고흐 효과󰡕. 이세진 옮김. 아트북스.
엘리엇, 앤서니(Elliot, Anthony)·터너, 브라이언(Turner, Brian). 2015. 󰡔사회론󰡕. 김정환
옮김. 이학사.
파노프스키, 에르빈(Panofsky, Erwin). 2014.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프로이트, 지그문트(Freud, Sigmund). 1997.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윤희기, 박찬부 역.
열린책들.
핀토, 루이(Pinto, Louis). 2003. 󰡔부르디외 사회학 이론󰡕. 김용숙·김은희 옮김. 동문선.
카시러, 에른스 트(Cassirer, Ernst). 2002.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 오
향미 옮김. 책세상.
크리거, 베레나(Krieger, Verena). 2010. 󰡔예술가란 무엇인가󰡕. 조이한·김정근 옮김. 휴머
니스트.
하킴, 캐서린(Hakim, Catherine). 2013. 󰡔매력자본󰡕. 이현주 옮김. 민음.
호네트, 악셀(Honneth, Axel). 2011. 󰡔인정투쟁󰡕. 문성훈·이현재 옮김. 사월의책.
홍성민. 1999. “문화와 상징적 권력.” 󰡔한국정치학회보󰡕 33(3).
히스, 조셉(Joseph Heath)·포터, 앤드류(Andrew Potter). 2006. 󰡔혁명을 팝니다󰡕. 윤미경
옮김. 마티.

Baudelaire, Charles. 1961. Œuvres Complètes. éd. C. Pichois. Paris. Gallimard.


Becker, Gary. 1993. Human Capital.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Blau, Peter M. and Duncan, Otis. D. 1967. The American Occupational Strucutre. New
York. Wiley.
Bourdieu, Pierre. 1972. Esquisse d’une théorie de la pratique. Paris. Seuil.
____________________. 1977a. Outline of a Theory of Practi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____________________. 1977b. “La production de la croyance”.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13. pp. 3-43.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32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____________________. 1977c. Algérie 60. Paris. Minuit.


____________________. 1978. “Sport and Social Class". Social Science Information 17.
pp. 819-840.
____________________. 1979. La distinction. Paris. Minuit.
____________________. 1980. Le sens pratique. Paris. Minuit.
____________________. 1983. “The Field of Cultural Production, or The Economic World
Turned Upside Down”. Poetics. vol. XII. n° 4-5. pp. 311-356.
____________________. 1984a. Questions de sociologie. Paris. Minuit.
____________________. 1984b. Homo academicus. Paris. Minuit.
____________________. 1986. “The Forms of Capital". in John G. Richardson, ed.
Handbook of Theory and Research for the Sociology of Education. Westport.
CT. Greenwood. Press. pp. 241-258.
____________________. 1987. Choses dites. Paris. Minuit.
____________________. 1991. “Genesis and Structure of the Religious Field”. trans. J. B.
Burnside, C. Calhoun and L. Florence. Comparative Social Research 13(1). pp. 1-44.
____________________. 1992a. Les règles de l’art. Paris. Seuil.
____________________. 1992b. Réponses. Paris. Seuil.
____________________. 1993. The Field of Cultural Production. ed. Randal Johnson.
Polity Press.
____________________. 1994. Raisons pratiques. Paris. Seuil.
____________________. 1997a. Les usages sociaux de la science. Paris. INRA.
____________________. 1997b. Méditations pascaliennes. Paris. Seuil.
____________________. 1998. La dominationa masculine. Paris. Seuil.
____________________. 2013. Manet. Une révolution symbolique. Raisons d’agir/Seuil.
____________________. 2015. Sociologie générale. vol. 1. Raisons d’agir/Seuil.
____________________. 2016. Sociologie générale. vol. 2. Raisons d’agir/Seuil.
Bühlmann, Felix., David, Thomas., Mach, André. 2012. “Cosmopolitan Capital and
the Internationalization of the Field of Business Elites”. Cultural Sociology 7(2).
pp. 211-229.
Caillé, Alain. 1981. “La sociologie de l’intérêt est-elle intéréssante?”. Sociologie du
travail 23(3). pp. 257-274.
Côté, E. James. 2005. “Identity Capital, Social Capital and the Wider Benefits of Learning”.
London Review of Education 3(3). pp. 221-237.
Devine, Fiona. 1998. “Class Analysis and the Stability of Employment Relations”. Sociology
32(1). pp. 23-42.
Didi-Huberman, Georges. 1990. Devant l’image. Paris. Minuit.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33

Durand, Jean-Pierre. 2007. “Capital”. in Dictionnaire de sociologie. Paris. Encyclopædia


Universalis et Albin Michel. pp. 75-78.
Durkheim, Émile. 1990. Les formes élé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Paris. PUF.
Fine, Gary A. 2003. “Crafting Authenticity”. Theory and Society 32. pp. 153-180.
Fuller, Steve. 2008. “Conatus”. in Key Concepts. edited Michael Grenfell.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pp. 169-178.
Hutson, David J. 2013. ““Your body is your business card”. Bodily Capital and Health
Authority in the Fitness Industry”. Social Science & Medicine (90). pp. 63-71.
Jensen, S. Qvotrup . 2006. “Rethinking Subcultural Capital”. Young 14(3). pp. 257-276.
Jourdain, Anne and Naulin, Sidonie. 2012. La théorie de Pierre Bourdieu et ses usages
sociologiques. Paris. Armand Colin.
Lacan, Jacques. 1975. Les écrits techniques de Freud. Paris. Seuil.
Lahire, Bernard. 1999. “Champs, hors-champs, contre-champs”. in Le travail sociologique
de Pierre Bourdieu. Paris. La Découverte. pp. 23-58.
Lambert, Yves. 1992. “Les religions comme systèmes de maximisation”. Social Compass
(39). pp. 133-145.
Laplanche, Jean and Pontalis, Jean-Bertrand. 1967. Vocabulaire de la psychanalyse. Paris.
PUF.
Lebaron, Frédéric. 2005. “Pierre Bourdieu. Economic Model Against Economism”. in
After Bourdieu. eds. D. L. Swartz and V. L. Zolberg. Kluwer Academic Publishers.
pp. 87-104.
Mauss, Marcel. 1995. Sociologie et Anthropologie. Paris. PUF.
McCall, Leslie. 1992. “Does Gender Fit?”. Theory and Society 21(6). pp. 837-867.
Passeron, Jean-Claude. 1982. “L’inflation des diplômes”. Revue française de sociologie
23. pp. 551-584.
Pyyhtinen, Olli. 2010. Simmel and ‘the Social’. Palgrave MacMillan.
Reay, Diane. 2000. “A Useful Extension of Bourdieu’s Conceptual Framework?”. The
Sociological Review 48(4). pp. 568-585.
Savage, Mike, Warde, Alan and Devine, Fiona. 2005. “Capitals, assets, and resources”.
Th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56(1). pp. 31-47.
Sorensen, Aage B. 2000. “Towards a Sounder Basis for Class Analysi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05(6). pp. 1523-1558.
Steinmetz, George. 2006. “Bourdieu’s Disavowal of Lacan”. Constellations 13(4). pp. 445-
464.
Swartz, David. 1997. Culture & Power. Chicago University Press.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34 󰡔한국사회학󰡕 제51집 제3호(2017년)

Thornton, Sarah. 1996. Club Cultures. Cambridge. Polity.


Valéry, Paul. 1996. Tel quel. Paris. Gallimard.
Verlaine, Paul. 2013. Les poètes maudits. Paris. Obsidiane.
Verter, Bradford. 2003. “Spiritual Capital”. Sociological Theory 21(2). pp. 150-174.
Wacquant, Loïc. 1998. “Negative Social Capital”. Netherlands Journal of Housing and
the Built Environment 13(1). pp. 25-40.
Wright, E. Olin. 1985. Classes. London. Verso.
Zembylas, Michalinos. 2007. “Emotional Capital and Education”. British Journal of
Educational Studies 55(4). pp. 443-463.

김홍중은 서울대 사회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언


어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분야는 사회 이론,
문화사회학, 문학/예술 사회학이고, 저서로는 󰡔마음의사회학󰡕(2009), 󰡔사회학적파상력󰡕(2016)
이 있다.

[2017. 4. 22. 접수; 2017. 5. 25. 수정; 2017. 6. 14. 게재확정]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부정자본론 35

Theory of Negative Capital


: The Social and the Symbolic

Kim Hong Jung


Seoul National University

This article aims at investigating in deep the concept of ‘capital’ as the nucleus of the
Bourdieusian social theory. For this, it takes analysis in three steps. First, I argue that the
singularity of Bourdieusian concept of capital lies in the emphasis on the psychological
aspect of the capital. That is, the capital appears not only as the energy of the social but
also as the object of desire attracting the social agents. Second, I attempt at clarifying his
concept of symbolic capital which is not one type of many capitals but a specific form that
any capital takes when it gets social recognition. Finally, focusing on the perspective of the
negative, prevalent in Bourdieusian analysis of the taste and artistic capital, I argue that the
most imporst form of symbolic capital can be called ‘negative capital’.

Key words: Bourdieu. capital. symbolic capital. negative capital. the social. negativity.
St. Paul.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 IP:58.232.252.*** | Accessed 2021/07/05 23:45(KST)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