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살행섭삼십육의 (入菩薩行攝三十六義) 』의 보리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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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17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1)
-『입보리행론』의 인도와 티벳의 주석서를 중심으로-

양승규(동국대학교 한의학연구소/연구교수)

Ⅱ 목 차 Ⅱ

Ⅰ. 머리말
Ⅱ. 『입보리행론』의 주석서와 『삼십육의』
Ⅲ. 『 삼십육의』의 보리심
1. 보리심의 토대
2. 보리심의 이익
1) 모든 악업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증득할 수 있음
2) 특별한 이름과 의미를 획득함
3) 보리심의 이익을 비유를 통해 설명함
3. 보리심의 종류
4. 보리심을 수습하는 이익
5. 이익이 생기는 것이 타당함
6. 보리심을 수습하는 사람을 찬탄함
Ⅳ. 맺음말

1) 이
 논문은 2008년도 정부재원(교육인적자원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KRF-2008-A00062).
218 韓國禪學 제33호

□국문요약문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Bodhisattva-caryāvatāra)』은 샨티
데바(Śantideva, 687-763)가 남긴 인도 대승불교의 걸작품이다.
대승보살행의 입문서로서 이 논서는 인도 뿐만 아니라 티벳에서
도 널리 읽혔다. 후기 대승불교의 논서로서 드물게 한역된 논서
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와 티벳 등지에서는 『입보리행
론』에 대한 다수의 주석서가 찬술되었다. 인도에서 찬술된 주석서
는 대부분 『입보리행론』의 어의와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 대부분이
지만,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 Bodhisattva-
caryāvatāra-ṣaṭtrimśat-piṇḍārtha)』는 약간 다른 목적으로 정
리된 것으로 보인다.
『삼십육의』는 『입보리행론』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의 주석서
가 아니다. 『입보리행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까말라락씨따
(Kamalarakṣita)와 디빰까라스리즈냐나(Dīpaṁkaraśrījňāna)가
간추려 요약한 것이다. 『삼십육의』는 『입보리행론』에서 중요한 게
송을 모아 『입보리행론』 전체를 항상 떠올려 생각할 수 있도록 편
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삼십육의』는 『입보리
행론』의 장의 순서와 마찬가지로 『삼십육의』에서도 앞부분인1-18
송에서 1장의 게송을 정리하고 있다.
『입보리행론』에서는 보살행에 들어가는 것을 설명하기 때문에 보
리심이 중심이 된다. 보리심은 대승불교에 들어가는 문이다. 이 문
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리심의 토대가 필요하다. 이 토대를 『삼
십육의』에서는 여가(餘暇)와 원만(圓滿)으로 설명한다. 이 토대에
서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먼저 보리심을 이익을 명상해야
한다. 보리심의 공덕을 떠올릴 수 있으면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
다. 『삼십육의』에서는 보리심을 원심과 행심의 보리심으로 구분한
다. 원심은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증득하겠습니다’
라고 발원하는 보리심이고, 행심은 원심을 일으킨 후에 보살의궤
를 수지하여 보살의 행으로 나아가는 보리심이다. 원심과 행심의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19

보리심에도 여러 가지 공덕이 있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


의 행으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보리심을 항상 일으켜야 한다.

□국문핵심어
『입보리행론』, 삼십육의, 보리심, 샨띠데바, 디빰까라스리즈냐나.
220 韓國禪學 제33호

Ⅰ. 머리말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에서는 보리행인 보살행에 들어가는 것


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입보리행론』은 샨티데바에 의해 씌여졌
다. 10장으로 구성된 『입보리행론』은 중관학파의 입장에서 대승보
살행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인도불교 뿐만 티벳불교에서도 큰 주목
을 받았다. 인도주석가에 의해 다수의 주석서가 쓰여졌고, 이를 근
거로 많은 티벳의 학승들이 주석서를 남기고 있다. 티벳불교의 영
향권에 있는 몽골, 부탄 등에서도 대승불교 실천의 필독서로 간주
되고 있다. 특히 1, 2, 3장에서는 보살행에 나아가는 수행자들이
반드시 일으켜야 하는 보리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입보리행론』은 9장을 제외하고는 난해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
다. 하지만 정확하게 논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석서의 도움이 필
요하다. 인도에서 찬술된 『입보리행론』의 주석서는 『입보리행론』
의 본 송을 설명하는 주석서가 대부분이지만, 『입보살행섭삼십육
의 』 (이하 『 삼십육의 』 로 약칭함)와 『 입보살행섭의( 入菩薩行攝義 ,
Bodhisattva-caryāvatāra-piṇḍārtha)』(이하 『섭의』로 약칭함)처
럼 『입보리행론』 전체를 약술한 주석서도 있다. ‘섭(攝)’, ‘섭의(攝
義)’처럼 『입보리행론』을 요약한 것은 『입보리행론』을 이해하고 난
다음 그 핵심적인 의미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
로 보인다.
『입보리행론』에 대해서는 원문의 번역과 해설이 첨부된 역주 등
이 발간되었기 때문에2)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삼십육의』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확인하
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삼십육의』가 새로운 형태의 주석서가 아
니라 『입보리행론』 전체를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별다

 티데바 저, 청전 역, 『입보리행론』, 서울: 하얀연꽃, 2004 ; 샨티데바 저,


2) 샨
최로덴 역주, 『입보리행론역주』, 서울: 하얀연꽃, 2005.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21

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만 『삼십


육의』가 『입보리행론』 전체의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핵심적인 의
미를 쉽게 알고 떠올릴 수 있도록 편찬되었다면, 『입보리행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보리심의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되
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점을 중심으로 보리심을 『삼십육의』의 게
송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용적인 면에서 『입보
리행론』을 자세하게 설명한 인도찬술의 주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
고, 또 각 장의 게송을 자세하게 과단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티벳의
주석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다른 주석서를 통해 『삼
십육의』를 살펴보면 훨씬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
기 때문이다.

Ⅱ. 『입보리행론』의 주석서와 『삼십육의』

『입보리행론』의 주석서는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는 『입보리행론』 전체를 주석하면서 『입보리행론』의 내용 중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주석서이다. 이것은 대부
분의 주석서가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는 주석방식이다. 인도의 주
석으로는 쁘라즈냐까라마띠(Prajňākaramati)의 『입보리행론난어
석(入菩提行論難語釋, Bodhi-caryāvatāra-paňjikā)』, 깔야나데
바(Kalyāṇadeva)의 『입보살행선회(入菩薩行善會, Bodhisattva-
caryāvatāra-saṁskāra)』, 티벳의 주석서로는 갤찹달마린첸rGyal
tshab dar ma rin chen, 1364-1432)의 『입보리행론정문석(入
菩提行論正文釋, Byang chub sems dpa’i spyod pa la ‘jug pa’i
rnam bshad rgyal sras ’jug ngogs zhes bya ba bzhugs so)』 등
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입보리행론』의 일부를 주석한 것이
다. 이 경우는 대부분 『입보리행론』에서 가장 난해한 제 9장을 별
도로 주석한 것이 대부분이다. 인도의 주석서로는 바이로짜나락
씨따(Vairocanarakṣita)의 『지혜품난어석(智慧品難語釋, Prajňā-
222 韓國禪學 제33호

pariccheda-pa ň jik ā ) 』 등이 있고, 티벳의 주석서로는 쫑카빠


(Tshong kha pa)의 『지혜품의 비망록(備忘錄)(Shes rab leu’i zin
bris)』 등이 있다. 셋째는 까말라락씨따(Kamalarakṣita)·디빰까라
스리즈냐나(Dīpaṁkaraśrījňāna)의 공저로 되어 있는 『삼십육의』
와 『섭의』처럼 『입보리행론』을 요약하여 정리한 것이다. 세 가지
방식의 주석 모두 『입보리행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주석이다. 이 중에서 세 번째의 주석서에 주목을 하는 이유는 『입
보리행론』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입보리행론』
의 내용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입
보리행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도 『입보리행론』을 이
해하는 기초적인 작업에서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십육의』의 발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입보살행섭의』는 너무
간략하기 때문에 오히려 『입보리행론』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
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본고에서는 『삼십육의』를 주목한 것이다.
델게대장경의 목록을 보면 『삼십육의』는 까말라락씨따
(Kamalarakṣita)·디빰까라스리즈냐나(Dīpaṁkaraśrījňāna)의 공
저로 되어 있다.3) 그러나 이보다 후에 정리된 북경판대장경의 목록
에서 셀링(gSer gling)의 라마 최꾱(Chos skyong, Dharmapāla)
의 저술을 디빰까라(Dīpaṃkara)와 출팀갤와(Tshul khrims rgyal
ba)가 번역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4) 티벳대장경에서는 경전과
논서의 말미에 저자와 역자에 관련된 것을 명기하는 것이 일반적
이다. 델게판대장경에는 『삼십육의』의 발문에 이 책이 누구에 의해
완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3) P rof. Hakuju Ui et al. ed., A Complete Catalogue of the Tibetan


Buddhist Canons (Sendai, Japan:Tohuku Imperial University, 1934),
p.585.
4) Dr. Daisetz T. Suzuki ed., The Tibetan Tripitaka Peking Edition (Tokyo,
kyota: Tibetan Tripitaka Research Institute, 1961). p.642.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23

쎌링의 라마 최꾱을 존경하는 제자 까말라락씨따와 디빰까라가 발원


하여 『입보리행론』의 핵심인 십일의(十一義)보다 큰 삼십육(三十六)의
섭의(攝義)를 별도로 저술한 것을 완성했다.5)

북경판대장경의 『삼십육의』에서도 발문에 동일한 내용을 싣고 있


다.6) 북경판대장경의 목록에서 『삼십육의』의 저자를 ‘쎌링의 라마
최꾱’이라고 한 것은 이 발문에 등장하는 까말라락씨따와 디빰까라
의 스승인 라마 쎌링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쎌링바는 디빰
까라스리즈냐가 보리심을 배우기 위해 찾았던 스승이다. 십 년 넘
게 스승으로 모셔 보리심을 배웠기 때문에 “쎌링의 라마 최꾱을 존
경하는 제자”라고 한 것이고, 까말라락씨따도 이 쎌링바의 제자임
을 알 수 있다. 델게대장경의 목록에는 『삼십육의』 다음에 『섭의』
인 ‘십일의(十一義)’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동일하게 까말라
락씨따와 디빰까라의 저작으로 되어있다. 목록에서는 『삼십육의』
를 먼저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섭의』보다 먼저 정리된 것으로 보
이지만, 위의 발문을 근거로 살펴보면 먼저 『섭의』가 정리되고, 그
다음에 『삼십육의』가 정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입보리행론』의 핵
심을 『섭의』로 정리했지만, 너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입보리행론』
을 이해하는데 부족하다고 여겨져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항을 통해서도 『삼십육의』가 정리된 의도를 약간
이나마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삼십육의』는 독자적인 저술이 아니
기 때문에 저자 문제는 크게 부각될 주제는 아닐 수 있지만, 동일
한 서물을 델게판대장경과 북경판대장경의 목록을 만들면서 다르
게 소개한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5) 『 삼십육의』(D.3878. 191b1-2) “gSer gling gi bla ma chos skyong la / gus


pa dang ldan pa’i slob ma ka ma la rakṣi dang / dī paṃ ka ras gsol ba
btab nas / spyod pa la ’jug pa’i gtso bo’i don bcu gcig ba las phye ba
sum cu rtsa drug gi don bsdus pa logs su bkod pa rdzogs so”
6) 『 삼십육의』(P.5280, 227b3-4).
224 韓國禪學 제33호

까말라락씨따에 대해서는 별도 알려진 것이 없지만 디빰꺄라스


리즈냐나는 티벳의 후전기에 불교를 전한 논사이다. 『보리도등론
(菩提道燈論)』과 같은 중요한 저작의 저자이면서, 티벳의 여러 종
파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디빰까라스리즈냐의 주저는 『보리도
등론』이다. 『보리도등론』에서 디빰까라스리즈냐나는 도차제의 가
르침을 티벳에 전했다. 『보리도등론』에서는 보살행을 자세하게 설
명하면서도 반야바라밀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중관학의 교의가
간결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빰까라스리즈냐나는 용
수에서 전승되고 발전된 중관학파의 사상을 계승한다. 중관학의
계보에 있는 디빰까라스리즈냐가 유식학자로 알려져 있는 쎌링바
(gSer gling pa)를 찾아가 보리심을 배운 것은 종파를 초월해서 보
리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갤찹달마린첸은 『 입보리행론정문석( 入菩提行論正文釋 ) 』 (이하
『정문석』이라고 약칭함)의 서론에서 『입보리행론』의 성격을 다음
과 같이 규정한다.

이 논서는 큰 사람의 생각을 닦는 갈래로 작은 사람과 중간 사람의


생각을 먼저 닦고, 수승한 깨달음에 발심하여 보시 등의 육바라밀행을
배워 깨달아가는 도의 단계를 원만하게 설명한 것이다.7)

라고 하여, 도차제(道次第)의 전통에서 설명하는 세 사람의 도차


제에서 작은 사람과 중간 사람의 도차제를 닦은 다음 큰 사람의 도

7) r Gyal tshab dar ma rin chen, Byang Byang chub sems dpa’i spyod
pa la ‘jug pa’i rnam bshad rgyal sras ‘jug ngogs zhes bya ba bzhugs
so(Mundgod:Gajang computer input center, 2004), p.11; bstan bcos ’dis
skyes bu chen po’i bsam pa sbyong ba’i yan lag tu skyes bu chung ‘bring
gi bsam pa sbyong ba sngon du btang nas / byang chub kyi mchog tu
sems bskyed de spyod pa sbyin pa la sogs pa’i pha rol tu phyin pa drug
la bslabs nas / sangs rgya ba’i lam gyi rim pa rdzogs par ston pa yin
no.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25

차제를 닦는 것으로, 먼저 보리심을 일으키고, 이를 바탕으로 육바


라밀의 행을 닦아 완전한 깨달음을 깨닫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보
리심을 『입보리행론』에서는 1장, 2장, 3장에서 설명하고, 나머지 4
장 이하에서는 육바라밀의 행을 설명한다. 보리심을 설명하는 부
분에서도 1장에서는 보리심의 이익을 설명하고, 2장에서는 보리심
을 일으키기 위해 상위하는 연을 없애는 것을, 3장에서는 상응하는
연인 자량을 쌓아서 보리심을 수지하는 것을 설명한다.8) 이 중에서
보리심의 이익을 설명하는 1장에서 보리심을 설명한다. 그렇기 때
문에 『삼십육의』에서는 가장 난해한 9장에 대해서는 전체 82송 중
에서 2송 밖에 없지만, 1장에는 18송을 할애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
하고 있다. 보리심을 이해하고, 보리심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중
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삼십육의』의 보리심

보살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리(自利)와 일체중생을 구하는 이타


(利他)의 두 가지 목적을 지향한다. 이 두 가지 목적을 향해 나아가
기 위해서는 청정한 보리심이 요청된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뿐
만 아니라 일으킨 보리심이 쇠퇴하지 않고 견고하게 가질 수 있도
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리심을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하고 명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승행자란 점에서
인도논사와 티벳학승들은 구분되지 않는다. 쫑카빠는 “그와 같이
대승에 들어가야 한다면 들어가는 문은 어떤 것인가? 부처님께서
는 이것을 바라밀승과 비밀승의 대승 둘로 설명하신다. 이외에 대
승은 없다. 이 둘 중 어느 문을 통해 들어가더라도 문은 보리심 뿐

8) Ibid., pp.11-12.
226 韓國禪學 제33호

이다”9)라고 하여 대승에 들어가는 문을 보리심으로 설명한다. 보리


심이 있으면 대승이고, 보리심이 없으면 대승이 될 수 없다. 그렇
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은 ‘입보리행’ 즉 보살행에 들어가
는 관문이자 핵심이다. 그렇지만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
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공덕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명상
하지 않으면 보리심을 일으키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삼십육의』
에서도 보리심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1. 보리심의 토대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토대가 필요하다. 보리심의 토대는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 많은
『입보리행론』 주석서에서는 1송을 보리심의 토대를 설명한 것으로
주석한다.10)

이 여가의 원만함은 매우 얻기 어렵다.


사람이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만약 여기서 도움을 얻지 못한다면
나중에 이와 같은 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는가.(1)11)

여가의 원만함을 도차제에서는 세 사람의 도차제에 들어가기에

 카빠 지음, 『보리도차제약론』, 양승규 옮김, 시흥: 시륜, 2006, pp.250-


9) 쫑
251.
10) mKhan chen gzhan dga’, sPyod ’jug mchan ’grel(Thimphu, Bhutan,
KMT Press, 2009) p.6; Khenpo kunpal, Byang chub sems dpa’i
spyod pa la ’jug pa rtsa ba dang ’grel pa bzhug(Kangra: Yashodhara
publications, 1993) p.177.
11) 『 삼십육의』(D.3878, 188b1), “dal ‘byor ’di ni shin tu rnyed par dka’
/ skyes bu’i don grub thob par gyur pa la/ gal te ‘di la phan par ma
bsgrub na/ phyis ’di yang dag ‘byor bar ga la ’gyur”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27

앞서 예비수행의 일환으로 설명하지만12) 『입보리행론』처럼 큰 사람


의 도차제인 대승으로 들어가는 것에서는 보리심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게송에서 언급되는 여가의 원만함이 보리심의 토대이다. 여
가의 원만함을 『난어석』에서는 지옥, 아귀, 축생, 야만인, 긴 수명
의 하늘, 변방의 야만인, 악견(惡見), 부처님이 출현하지 않음, 저
능인과 같은 여덟 가지 여가가 없음[八無暇]이 아닌 것으로 설명한
다.13) 하지만 티벳의 주석서에서는 “십팔법을 가진 이 여가와 원만
은”14)이라고 하여 팔무가가 없음과 함께 열 가지 원만함으로 설명
한다. 팔무가가 없음은 『난어석』의 설명과 동일하고, 열 가지 원만
함은 『성문지(聲聞地)』를 근거로 다섯 가지 자원만(自圓滿)과 다섯
가지 타원만(他圓滿)으로 구분한다. 다섯 가지 자원만은 사람임,
중앙에 태어남, 근을 갖춤, 극단적인 업을 짓지 않음, 삼장을 믿음
이고, 다섯 가지 타원만은 부처님께서 오심, 정법을 설함, 가르침
이 머뭄, 그것을 따라함, 남을 위해 자비를 베품이다.15)
여가의 원만함에 대한 명상은 『입보리행론』 원문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얻기 힘듦을 명상하는 것이다. 얻기 힘듦을 명상하는 방법
에는 비유를 통해 얻기 힘듬, 원인을 통해 얻기 힘듬, 본성을 통해
얻기 힘듬 셋이 있다.16) 비유를 통해 얻기 힘듬은 지붕 위에 자란
한 포기 풀이 여가와 원만함이고, 나머지 땅에 자라는 풀이나 나무
가 여가와 원만함이 없는 것이다. 원인을 통해 얻기 힘듬은 훌륭한
몸의 토대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계율 정도를 반드시 수지해야
하고, 여가와 원만의 원인으로는 원만한 계율이 필요한 것이다. 본

12) 쫑 카빠, 앞의 책, pp.87-96.


13) 『 난어석』(D.3872, 45a4-45b5).
14)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9 “chos bco brgyad dang ldan
pa’i dal ’byor ’di ni”
15) Ibid., p.11.
16) 5대 달라이라마 외, 『쫑카빠의 도의 세 가지 핵심』, 양승규 옮김, 시흥: 시
륜, 2009, pp.27-31.
228 韓國禪學 제33호

성을 통해 얻기 힘듬은 사람의 몸을 얻은 것은 낮의 별 정도이고,


축생은 밤의 별 정도인 것, 아니면 축생은 낮은 별 정도이고, 아귀
는 밤의 별 정도인 것이다. 『정문석』에서 “사람의 몸 정도를 획득
하는 것에도 하나의 계율을 수지해야 하고, 특별한 여가와 원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청정한 계율을 토대로 보시 등이 돕고, 때 없는
원이 결합되어야 한다면”17)이라고 한 것은 원인을 통해서 얻기 힘
듬을 설명한 것이다.
여가와 원만을 얻기 힘듬을 명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원하는 목적은 증상생(增上生)
이라고 하는 훌륭한 몸과 결정승(決定乘)이라고 하는 해탈과 열
반 둘이다.18) 이 두 가지 목적이 궁극적으로 불교에서 추구하는 목
적이다. 여가와 원만을 구족한 훌륭한 몸이 아니면 결코 결정승이
라고 하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사람
의 목적이다. 여가와 원만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이 번 생에 두 가
지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면 내생에 다시는 이 여가와 원만함을 얻
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목적을 성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가와 원만을 얻은 지금 사람의 두 가지 목
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토대가 보리심이다.

2. 보리심의 이익

보리심을 일으키는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보리심의 이

17)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cit., pp.9-10 “mi lus tsam zhig thob
pa la yang tshul khrims sna gcig gzrung dgos la / dal ’byor khyad par
can thob pa la tshul khrims rnam par dag pas gzhi gzung/ sbyin pa la
sogs pas grogs byas smon lam dri ma med pas mtshams sbyar ba dgos
na”
18) 『 입보살행해설난어석( 入菩薩行解 說 難語釋 , Bodhi-caryāvatāra-vivṛti-
paňjikā)』(이하 『해설』이라고 약칭함), (D.3873, 291b4)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29

익을 떠올려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습차제(修習次


第)』와 도차제에서도 보리심을 설하기에 앞서 한결 같이 보리심의
이익을 설명한다.19) 『삼십육의』에서도 보리심을 설명하기 전에 먼
저 2-7게송에서 보리심의 이익을 설명한다. 보리심의 이익을 설명
함으로써 보리심을 일으켜야 할 이유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문석』에서는 3송2구부터 보리심의 이익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하여, 보리심의 이익을 모든 악업을 없애고 모든
선업을 증득할 수 있음, 특별한 이름과 의미를 획득함, 보리심의
이익을 비유를 통해 설명함 셋으로 구분한다.20) 하지만 2송에서 3
송1구까지도 보리심을 수습하는 이익을 생각함이라고 구분하기 때
문에21) 2송에서부터 보리심의 이익을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모든 악업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증득할 수 있음

밤에 검은 구름이 낀 상태에서
번개가 순간 밝혀 주는 것처럼
부처님의 힘으로 어쩌다가
이 세상에 공덕의 지혜가 잠깐 동안 생겼다.(2)

그와 같이 선업은 미약하고,
항상 죄업의 힘은 크고 감당할 수 없다.
원만한 보리심이 아닌 다른
어떤 선한 것으로도 조복할 수 없다.(3)

수많은 겁 동안 깊이 생각하신

 암,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 연구』, 서울: 불교시대사, 2006, pp.293-294


19) 중
; 쫑카빠, 앞의 책, p.289.
20)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14.
21) Ibid. p.12.
230 韓國禪學 제33호

능인(能仁)께서 이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시고


이것으로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이
수승한 안락을 손쉽게 획득한다.(4)

수많은 두려움과 고통을 없애고 싶고,


즐겁지 않은 마음을 없애고 싶고,
수많은 즐거운 것을 행하고 싶어 한다면
보리심만은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5)22)

악업과 선업의 과보는 분명하기 때문에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무명에 휩싸인 중생은 어쩔 수 없이 악업을
행하게 된다. 2,3송에서는 중생의 위험한 상황을 언급하고, 보리심
을 통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중생들은 ‘밤에 검
은 구름이 낀 상태’에 놓여 있다. 밤에 불빛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다. 하물며 구름까지 껴 있으면 중생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것은 선업이 미약하고 죄업의 힘이 큰 중생들이 법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와 선근도 없이 오로지 불선업만 행하여 악도에 떨어지
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어두운 밤을 번개가 밝혀주는 것처럼
부처님의 지혜의 힘으로 어두운 중생의 세상에 공덕의 지혜가 잠
깐 동안 생겼다. 중생들은 선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은 미약하고,

22) 『 삼십육의』(D.3878, 188b1-4), “ji ltar mtshan mo mun nag sprin rum
na/ glog ’gyu skad cig rab snang ston pa ltar/ de bzhin sangs rgyas
mthu yis brgya lam na/ ’jig rten bsod nams blo gros thang ’ga’ ’
byung/ de ltar dge ba nyam chung nyid la brtag/ sdig pa stobs chen
shin tu mi bzad pa/ de ni rdzogs pa’i byang chub sems min pa/ dge
gzhan gang gis zil gyis non par ’gyur/ bskal pa du mar rab dgong
mdzad pa yi/ thub dbang rnams kyis ’di nyid pan par gzigs/ ’dis ni
tshad med skye bo’i tshogs rnams kyi/ bde mchog bde blag nyid du
thob par byed/ ’jigs dang sdug bsngal brgya phrag gzhom ’dod cing/
sems can mi bde bsal bar ‘dod pa dang/ bde mang brgya phrag spyod
par ’dod pas skyang/ byang chub sems nyid rtag tu btang mi bya”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31

죄업의 힘은 크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행한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유일한 희망이 보리심이
다. 성문 등의 원심(願心)과 행심(行心)과 같은23) 선한 것으로는 불
가능하다. 보리심을 『난어석』에서는 “일체중생을 바르게 구하는 생
각으로 깨달음을 획득하기 위해 수승한 생각을 생각하고 작의하는
것이다”24)으로 설명한다. 『난어석』에서 설명하는 보리심은 결과로
서 완성된 보리심이 아니라 원인으로 닦아가는 보리심이다. 이 보
리심은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내가 벗어나게 하겠습니다’, ‘일체중
생의 안락을 내가 만들겠습니다’라고 생각하는 ‘수승한 생각’을 토
대로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을 일으키
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보리심은 승의의 보리심
이 아니라 세속의 보리심이다.25) 『수습차제(修習次第)』에서 까말라
쉴라(Kamalaśīla)는 “세속보리심은 대비로써 일체중생을 진실로
구제하길 서원한 뒤,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 부처가 되어지
이다’라고 사유해서, 무상정등각을 희구하는 마음을 처음으로 일으
킴이다”26)라고 설명한다.
‘수많은 겁’을 『난어석』에서는 첫째 아승기겁 등이라고 설명하는
것처럼27) 부처님께서 배움의 단계에서 보살행을 닦을 때부터 이 보
리심의 이익을 생각한 것이다. 이 보리심은 머리카락을 뽑는 고행
이나28), 다섯 가지 불로 몸을 괴롭히는 고행이 아니라29) 일체중생
이 원하는 안락을 손쉽게 획득한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게송에서

23) 『 해설』(D.3873, 292a4).


24) 『 난어석』(D.3872, 46a6-7), “sangs rgyas nyid la sems can yang dag
par gdon pa’i bsam pas de thob par bya ba’i don du lhag pa’i bsam pa
sems gang zhig yid la byed pa ste”
25)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15
26) 중암,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 연구』(서울: 불교시대사, 2006), p.350.
27) 『 난어석』(D.3872, 46b2).
28) 『 난어석』(D.3872, 46b7).
29) 『 해설』(D.3873, 292a6).
232 韓國禪學 제33호

다음 게송에서 ‘보리심만은 버리지 마라’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도, 보리심을 수지하는 것도 쉽지 않
음을 알 수 있다.
『삼십육의』에서는 5송의 첫머리가 “수많은 두려움과 고통을 없
애고 싶고(’jigs dang sdug bsngal brgya phrag gzhom ’dod
cing)”30)이라고 되어 있지만, 『난어석』과 『입보리행론』의 티벳본에
서는 “수많은 세상의 고통을(srid pa’i sdug bsngal)”31)이라고 되
어 있다. 『해설』에서도 “두려움과”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입보리
행론』에 대한 이본(異本)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삼십육의』는
『해설』과 같은 판본을 중심으로 『삼십육의』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
다. 『난어석』에서는 5송의 1구를 성문과 연각이 세상의 수많은 고
통을 없애려고 하는 것과, 2구와 3구를 보살이 고통을 없애고, 즐
거움을 주려고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32) 이러한 해석은 『정문석』에
그대로 받아들여져 1구에서 세 사람의 도차제에서 중간사람의 도
차제를 배우고 나서 세상의 수많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
음을 일으키는 것, 2, 3구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큰 사람의 도차제
를 배워 일체중생이 편안하지 않는 것을 없애고자 하고, 훌륭한 생
과 지극한 선함을 행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33)

2) 특별한 이름과 의미를 획득함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한 찰나에


윤회의 감옥에 묶여 고통 받는 이들을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30) 『 삼십육의』(D.3878, 188b3).


31) 『 난어석』(D.3872, 47a4),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cit., p.15.
32) 『 난어석』(D.3872, 47a4-6).
33)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16.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33

천인의 세간에서 절하게 된다.(6)34)

‘보리심을 일으킨다면’은 처음부터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율의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35) 보리심을 일으키는 방법에는 처음부터 보리
심을 일으키는 방법과 처음에는 성문과 연각이 추구하는 무여열반
을 얻은 후에 부처님의 자비심에 의해 이끌려 보리심을 일으키는
방법이 있다.36) 결국 보리심으로 나아간다면 처음부터 보리심을 일
으키는 것이 좋다. 보리심을 일으키면 윤회의 감옥에 묶여 고통 받
는 이들도 한 찰나에 부처님의 아들 즉 ‘불자(佛子)’라고 하는 특별
한 이름을 얻을 뿐만 아니라 천인의 세간이 그를 받들어 공경하고
절한다.

3) 보리심의 이익을 비유를 통해 설명함

『입보리행론』에는 보리심의 이익을 연금액(鍊金液), 선장(船長),


파초(芭蕉)에 비유한 세 가지 비유가 등장한다.37) 이 중에서 『삼십
육의』에서는 연금액의 비유를 소개하고 있다. 이 연금액의 비유가
다른 비유보다 보리심의 이익을 잘 설명하는 비유이기 때문일 것
이다.

연금액과 같은 수승한 방식으로


청정하지 못한 이 몸을 얻어 부처님의 몸과 같이
가치가 크고,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된다면

34) 『 삼십육의』(D.3878, 188b4-5), “byang chub sems skyes gyur na skad


cig gi/ ’khor ba’i btson rar bsdams pa’i nyam thag rnams/ bde gshegs
rnams kyi sras zhes brjod bya zhing/ ’jig rten lha mir bcas pas phyag
byar ’gyur”
35) 『 난어석』(D.3872. 47b2).
36) 쫑카빠, 앞의 책, p.249.
37)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p.17-19.
234 韓國禪學 제33호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을 매우 견고하게 가질 수 있다.(7)38)

『해설』에서는 연금액의 비유를 『화엄경』에서 “선남자여, 다음과


같다. 예를 들면 금으로 변하는 수은의 종류가 있다. 그것 한 냥으
로 쇠 천 냥을 금으로 바꾼다. 한 냥의 수은은 천 냥의 쇠를 없애
거나 쇠로 변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일체종지에 발심한 물의 근
원이 선근을 가져 업과 번뇌의 장애의 쇠를 모두 없앤다. 일체법을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색으로 만들더라도 일체종지에 발심하는 물
의 근원 하나 만으로는 업과 결과인 번뇌의 쇠가 모두 번뇌로 되거
나, 아니면 없애지 못한다.”39)라고 한 것을 근거로 설명한다. 경의
비유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연금액으로 쇠 천 냥이 금으로 변
하는 것처럼 마치 쇠처럼 녹슬어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 몸이 보리
심에 의해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부처님의 몸이 된다면 충분
히 보리심을 일으킬 만하다.

38) 『 삼십육의』(D.3878, 188b5), “gser ’gyur rtsi yi rnam pa mchog lta bur/
mi gtsang lus ’di blang nas rgyal ba’i sku/ rin chen rin thang med par
sgyur bas na/ byang chub sems zhes bya bar rab brtan bzung”
39) 『 해설』(D.3873, 292b4-7), “ji skad du rigs kyi bu ‘di lta ste/ dper na
dngul chu’i rigs gser du snang ba zhes bya ba yod de/ de ni srang
gcig gis kyang lcags srang stong gser du bsgyur te/ dngul chu srang
gcig po de ni lcags srang stong po des zad par bya ba’m lcags su
bsgyur bar mi nus so/ de bzhin du thams cad khyen pa nyid du sems
bskyed pa’i khu ba’i ’byung khungs dge ba’i rtsa ba yongs su bzung
ba’i las dang nyong mongs pa’i sgrib pa’i lcags thams cad zad par
byas te/ chos thams cad thams cad mkhyen pa nyid kyi kha dog tu
byed kyang thams cad mkhyen pa nyid du sems bskyed pa’i khu ba’i ’
byung khungs gcig po di ni las dang ’bras bu nyong mongs pa’i lcags
thams cad kyis kyang kun nas nyong mongs par bya ba’m zad par bya
bar mi nus so”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35

3. 보리심의 종류

보리심의 정의는 대부분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에서 “발심은


다른 이들을 위해 / 올바른 깨달음을 희구하는 것이다”40)라고 한
것을 기초로 한다. 『정문석』에서도 이를 토대로 보리심을 “대승 발
심의 정의는 남을 위해 바르게 구족된 깨달음을 추구하는 희구와
상응하는 마음이다”41)라고 보리심을 정의한다. 정의에서 알 수 있
듯이 보리심은 ‘남을 위함’이라고 하는 이타와 ‘올바른 깨달음을 희
구함’이라고 하는 자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깨달음을 희
구함은 성문과 연각에게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남을 위한 이타심이다. 그리고 이 경우의 남도 자신이
아닌 몇 사람의 남이 아니라 일체중생이기 때문에 일체중생을 전
제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희구하는 발심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렇
기 때문에 일체중생을 위한 마음을 어떻게 일으킬 것인가 하는 것
이 대승의 보리심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중생들은 일체중생
을 염두에 두는 이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
키지 못한다. 따라서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먼저 남이 나하
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을 위해 자신
의 소중한 것을 베풀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대승 행자는 대승에 들어가는 문인 보리심을 한결 같이 의지해
야 한다. 대승 행자가 닦아가는 깨달음의 길이 다양한 만큼 보리심
도 다양하다. 보리심의 종류에 대해서 『해설』에서는 “또 보리심을
구분하는 것은 ‘그것도 금, 달, 불’이라고 하여 스물둘이 있는 것
에서, 여기서는 처음 바람을 가진 것과 같은 것을 가진 것을 위주
로 한 것이다. 또 발심은 ‘신해(信解), 청정한 증상심(增上心), 남

40) 쫑카빠, 앞의 책, p.271.


41)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p.21-22 “theg chen sems
bskyed kyi mtshan nyid ni/ gzhan gyi don du yang dag par rdzogs pa’i
byang chub don gnyer gyi ’dun pa dang mtshung ldan gyi sems so”
236 韓國禪學 제33호

을 위해 이숙(異熟)을 원함, 마찬가지로 장애를 없앰이다’라고 설


명한 것처럼, 네 가지로 나누는 것 중에서 여기서는 신해의 발심을
위로 한 것이다. 또 세속(世俗)과 승의(勝義)의 발심 둘 중에서 여
기서는 세속의 발심을 위주로 한 것이다”42)고 하여 보리심의 다양
한 갈래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초발심의 보리심은 스물두 가지 보
리심 중에서는 의욕(意慾)의 보리심이고, 네 가지 보리심에서는 신
해의 보리심, 세속과 승의의 보리심에서는 세속의 보리심에 해당
한다. 『수습차제(修習次第)』에서도 까말라쉴라는 보리심을 세속과
승의의 보리심, 원심과 행심의 보리심 넷으로 구분한다. 세속의 보
리심은 비민으로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고 맹세하고서 ‘중생을 돕기
위해 부처가 되겠습니다’라고 위없는 깨달음을 원하는 방식으로 마
음을 처음으로 일으킨 것이고, 승의의 보리심은 세속을 벗어난 것,
모든 희론을 여읜 것, 매우 분명한 것, 승의의 행경인 것, 때가 없
는 것,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세속의 보리심은 원심과 일치하고,
행심을 통해 보살행을 실천하여 승의의 보리심을 성취하는 것이
다.43) 『삼십육의』에서는 주로 원심과 행심으로 보리심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리심을 구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42) 『 해설』(D.3873, 294a1-3), “yang byang chub tu sems bskyed pa’i rab
tu dbye ba ni / de yang sa gser zla ba me / zhes bya ba la sogs pa
nyi shu rtsa gnyis nyid du ’byung ba las ’di ni sems bskyed pa dang
po ’dun pa dang ldan pa lta bu’i dbang du byas pa yin la / yang sems
bskyes pa ni / mos dang lhag bsam dag pa dang / rnam par smin pa
gzhan du ’dod / de bzhin sgrib pa spang pa’o / zhes ji skad bshad pa
lta bur rnam pa bzhi nyid du dbye ba las ’di ni mos pa’i sems bskyed
pa’i dbang du byas pa yin zhing / yang kun rdzob dang don dam pa’
i bskyed pa rnam pa gnyis las ’di ni kun rdzob byang chub kyi sems
bskyed pa’i dbang du byas pa”
43) 양승규,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修習次第)」, 『韓國禪學』 제25호, 서울: 한
국선학회, 2010, pp.92-93.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37

보리심을 요약하면
둘이 됨을 알아야 한다.
깨달음을 원하는 마음과
깨달음을 행하는 것이다.(8)44)

깨달음을 원하는 것이 원심이고 깨달음을 행하는 것이 행심이


다. 원심과 행심을 『난어석』에서는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해 부처
가 되겠습니다’라고 처음에 원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행하는 것
을 생각하거나 행하는 마음이다. 마음의 자성이기 때문이다. 앞의
마음을 가지고서 율의(律儀)를 취하는 것이 선행하는 자량에 들어
가는 것이다”45)라고 설명한다.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와 공
덕을 보고서 처음 원하는 마음이 원심이고, 그 다음 율의를 수지하
여 자량에 들어가는 것이 행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심을 토대로
행심을 일으킨다. 『화엄경』에서도 “선남자여, 중생세간에서 중생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원하는 것도 드물다. 그것보다 위
없는 깨달음을 행하는 중생은 매우 드물다”46)라고 한다. 원심과 행
심의 다름을 『삼십육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4) 『 삼십육의』(D.3878, 188b5-6), “byang chub sems de mdor bsdu na/


rnam pa gnyis su shes bya ste/ byang chub smon pa’i sems dang ni/
byang chub ’jug pa nyid yin no”
45) 『 난어석』(D.3872, 51a3-5), “’gro ba thams cad bskyab pa’i phyir sangs
rgyas su gyur cig ces dang po kho nar smon pa’i sems lta bu’o/ ’jug
pa nyid la sems pa’m ’jug pa nyid kyi sems te/ sem de’i rang bzhin
yin pa’i phyir ro/ sems snga ma sngon du song ba nyid gang nas
bzung ste sdom pa len pa sngon du ’gro ba’i tshogs rnams la rab tu ’
jug pa de ni ’jug pa byang chub kyi sems so”
46) 『 난어석』(D.3872, 51a6-7), “rigs kyi bu sems can gyi ’jig rten na sems
can gang dag bla na med pa yang dag par rdzogs pa’i byang chub tu
sems smon pa de dag kyang dkon no”
238 韓國禪學 제33호

가고자 하는 것과 가는
차이를 아는 것처럼
지자는 이 둘의 차이를
차례로 알아야 한다.(9)47)

‘가고자 하는 것과 가는 차이를’을 『난어석』에서는 “예를 들면 어


떤 사람이 원하는 장소에 가기 위해 가고자 하는 것은 가고자 생
각하는 것이고 가는 것이 아니다. 이와 달리 그곳에 가기 위해 나
아가는 것은 가는 것이다”48)라고 설명한다. 『해설』에서는 8, 9송
을 근거로 원심과 행심에 대해 정의한다. 먼저 원심을 “‘일체중생
을 위해 저는 위없이 바르게 구족된 깨달음을 원만하게 깨닫겠습
니다’라고 하여 깨달음과 중생 둘을 대상으로 추구하는 바람과 상
응하는 의식이다. 예를 들면 가고자 하는 것과 같다”49)고 정의하
고, 행심을 “단멸하는 마음과 행하는 마음과 상응하는 것을 가진,
습기(習氣)를 가진 의식이다. 율의계는 단멸하는 마음의 본성이고,
나머지 둘은 행하는 마음의 본성이다. 그것은 예를 들면 길을 떠난
것이고 움직인 것이다”50)고 정의한다. 원심과 행심을 소연(所緣)과
행상(行相)의 측면에서 구분할 경우, 소연의 측면보다는 게송에서
‘가고자 하는 것’과 ‘가는 것’의 차이라고 한 것처럼 주로 행상의 측

47) 『 삼십육의』(D.3878, 188b6), “’gro bar ’dod dang ’gro ba yi/ byed brag ji
ltar shes pa ltar/ de bzhin mkhas pas ’di nyis kyi/ bye brag rim bzhin
shes par bya”
48) 『 난어석』(D.3872, 51a1-2), “dper na skyes bu ’ga’ zhig mngon par ’dod
pa’i yul du phyin par bya ba’i ched du ’gro bar bsam pa ste ’gro ba
nyid ma yin no/ yang gzhan ni der phyin par bya ba’i ched du ’jug pa
ste ’gro ba nyid do”
49) 『 해설』(D.3873, 294a5-6), “sems can thams cad kyi don du bdag bla na
med pa yang dag par rdzogs pa’i byang chub tu mngon par rdzogs par
sangs rgyas par gyur cig snyam du byang chub dang sems can gnyis
la dmigs pa’i don du gnyer ba’i ’dun pa dang / mtshung par ldan pa’i
yid kyi rnam par shes pa dper na ’gro bar ’dod pa lta bu ste”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39

면에서 구분한 것이다. 왜냐하면 가고자 하는 바람과 가고 있는 실


행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소연의 측면에서 원심은 깨달음과 중
생이지만, 행심은 삼종율의(三種律儀)를 위주로 할 경우 계율, 중
생, 선법 정도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해설』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행심은 삼종율의가 위주가 되기 때문에 원심을 일으키고
난 다음 보살율의를 받고 행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4. 보리심을 수습하는 이익

보리심은 원심과 행심 둘로 구분되기 때문에 보리심을 수습하는


이익에서는 『삼십육의』에서는 원심과 행심의 이익을 구분하여 설
명한다.

깨달음을 원하는 마음에서


윤회할 때 큰 결과를 얻지만
행하는 마음처럼
공덕이 지속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10)51)

『정문석』에서는 이 게송이 원심의 이익을 설명한 것이라고 주석


하지만,52) 『난어석』 등 인도의 주석서를 근거로 엄밀하게 구분하면
1-2구까지는 원심의 이익을 설명한 것이고, 나머지는 행심의 이익

50) 『 해설』(D.3873, 294a6-7), “spong ba’i sems pa dang ’jug pa’i sems
mtshungs par ldan pa’i yid kyi rnam par shes pa bag chags dang bcas
pa ste / de sdom pa’i tshul khrims ni spong ba’i sems pa’i ngo bo yin
la / lhag ma gnyis ni ’jug pa’i sems pa’i ngo bo nyid yin te / de ni
dper na lam du zhugs te / chas pa lta bu’o”
51) 『 삼십육의』(D.3878, 188b6-7) “byang chub smon pa’i sems las ni/ ’khor
tshe ’bras bu che ’byung yang/ ji ltar ’jug pa’i sems bzhin du/ bsod
nams rgyun chags ’byung ba min”
52)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cit., pp.24-25.
240 韓國禪學 제33호

을 설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53) 『해설』에서는 이 게송에 들어가


기에 앞서 문답으로 “하지만 원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충분한 데 행
심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아니다. 행심을 일으키는
것은 원보다도 결과인 공덕의 덩어리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54)라고
한 것을 보더라도 원심과 행심을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난
어석』에서는 『미륵해탈경』에서 “선남자여, 다음과 같다. 예를 들면
금강석은 깨어지더라도 훌륭한 금장신구를 압도하고, 모든 걸인을
없앤다. 선남자여, 마찬가지로 일체지에 발심한 금강석은 힘들이
지 않고 성문과 연각의 모든 공덕의 금장신구를 압도한다. 보살의
이름을 버리지 않는다. 윤회의 모든 걸인을 없앤다”55)고 설한 것을
인용하여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의 종성이 수승함을 설명한다. 『해
설』에서는 동일한 경을 행심의 수승함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인용
하는데56) 『정문석』에서는 원심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 경을 인용
하는 것을 보면57) 『난어석』의 설명이 타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
다. 원심을 일으키면 그 순간부터 보살이기 때문이다.
다음 게송에서는 이어서 행심의 공덕을 설명한다.

한량없는 중생계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

53) 『 난어석』(D.3872, 51b4).


54) 『 해설』(D.3873, 294a7-294b1), “’on te smon pa’i sems bskyed bas chog
mod / ’jug pa’i sems bskyed pas ci zhig bya zhe na ma yin te / ’jug
pa’i sems bskyed pa ni smon pa las kyang ‘bras bu bsod nams kyi
phung po shin tu che ba’i phyir te”
55) 『 난어석』(D.3872, 51b5-7), “de ltar yang byams pa’i rnam par thar pa
las/ rigs kyi bu ’di lta ste sper na rdo rje rin po che ni chag kyang
gser gyi rgyan khyad par du ’phags pa thams cad zil gyis gnon cing
rdo rje rin po che’i ming yang mi ’dod la/ dbul ba thams cad kyang
rnam par bzlog go”
56) 『 해설』(D.3873, 294b1-4).
57) r Gyal tshab dar ma rin chen, op.cit., pp.24-25.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41

물러서지 않는 마음으로
그 마음을 일으키는(11)

그 순간부터 잠자거나
게을러도 공덕의 힘이
끊어지지 않고
허공처럼 많이 생긴다.(12)58)

원심은 결과를 추구하는 정도에서 완성되지만 행심은 부처님의


원인을 원만하게 증득하는 것에 의해 완성된다.59) 원심에서 ‘일체
중생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증득하겠습니다’라고 발원
했기 때문에 행심에서도 일체중생을 염두에 두고 보살행을 닦는
다. 행이 쇠퇴하지 않는 마음으로 가거나, 일어서거나, 머물거나,
먹거나, 졸도하는 등의 순간에도60) 행심의 공덕이 허공처럼 생긴
다고 한다. 『난어석』에서는 『삼매왕경』을 인용하여 “따라서 젊은
이여, 그대는 행이 핵심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왜냐 하면 젊은
이여, 행이 핵심이 되는 것에는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이 힘들지 않
다”61)라고 설명한다.

58) 『 삼십육의』(D.3878, 188b7-189a1), “gang nas bzung ste sems can


khams/ mtha’ yas rab tu bsgral ba’i phyir/ mi ldog pa yi sems kyis
su/ sems de yang dag blangs gyur pa/ de nas bzung ste gnyid log
gam/ bag med gyur kyang bsod nams shugs/ rgyun mi ‘chad par du
ma zhig nam mkha’ mnyam par rab tu ’byung”
59)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cit., p.26.
60) 『 난어석』(D.3872, 52b5-7).
61) 『 난어석』(D.3872, 53a1-2), “de lta bas na gzhon nu khyod gyis sgrub
pa snying por gyur pa la bslab par bya ste/ ci’i phyir zhe na/ gzhon
nu sgrub pa snying por byed pa la bla na med pa yang dag par rdzogs
pa’i byang chub dk’ ba ma yin no”
242 韓國禪學 제33호

5. 이익이 생기는 것이 타당함

『입보리행론』에서는 원심과 행심의 이익이 생기는 타당함 설명하


지만62), 『삼십육의』에서는 그 중에서 행심의 이익이 생기는 타당함
을 설명하는 게송만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

도움이 되는 것을 생각하는 정도라도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보다 뛰어나다면
남김없이 일체중생의
안락에 정진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13)63)

3, 4송은 행심의 이익이 생기는 타당함을 주로 설명한 것이지만,


주석에서는 대부분 1, 2구에서 설명하는 원심의 이익이 생기는 타
당함을 설명한다. 『난어석』에서는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해 부처
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여 행하지 않고 증상심(增上心)으로 원하고
바라는 보리심에서 공덕이 생긴다.”64)고 하여 원심의 공덕을 설명
하고, “갠지스강의 모래알갱이만큼의 / 불국토에서 어떤 사람이 /
칠보로 가득 채워 / 세간의 보호주께 올리는 것보다 / 합장하여 /
보리심을 일으키면 / 끝이 없는 / 공양인 이것이 훨씬 수승하다”65)
라고 하는 경문을 인용하고 있다. 『선회』에서 『월등경』을 인용하여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공양을 / 천 만, 나유타(那由他)의 국토를 가
득 채워 / 훌륭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 자애심의 수와 부분

62) r Gyal tshab dar ma rin chen, op.cit., p.27.


63) 『 삼십육의』(D.3878, 189a1), “phan par bsams pa tsam gyis kyang/
sangs rgyas mchod las khyad ’phags na/ sems can ma lus thams cad
kyi/ bde don brtson pa smos ci dgos”
64) 『 난어석』(D.3872, 54b4), “’gro ba thams cad bskyab pa’i phyir sangs
rgyas su gyur cig ces lhag pa’i bsam pas smon cing ’dod ba ’ba’ zhig
sgurb pa dang bral ba’i byang chub kyi sems las bsod nams gang zhig
’byung ba ste”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43

에 미치지 못한다”66)고 설명한 것도 역시 원심에 대한 것이다.

고통을 없애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도


고통 속으로 달려가고
안락을 원하지만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의 안락을 원수처럼 없앤다. (14)67)

『정문석』에서는 이 게송을 주석하면서 행심을 일으켜야 하는 근


본적인 물음을 다음과 같이 제기한다. “중생들은 스스로 편안함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애써 편안함을 얻고 고통
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고락의 취사를 스스로 잘 알지 않은가. 남
이 무엇 때문에 그것을 위해 애써야 하는가 하면, 애써야 한다”68)
라고 답하고서 그 이유를 위의 게송으로 설명한다. 중생들은 고통
을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고통으로 들어가고, 안락을 원하지
만 자신의 안락을 없앤다. 『난어석』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중생은

65) 『 난어석』(D.3872, 54b5-6), “gang ga’’i bye ma’i grangs snyed kyi /
sangs rgyas zhing ni mi gang gis / rin chen bdun gyis bkang byas
te / ’jig rten mgon la phul ba bas / gang gis thal mo sbyar byas te /
byang chub tu ni sems bsjyed na / gang la mtha’ ni mi mchis pa’i /
mchod pa ’di ni khyad par ’phags”
66) D.3874, 8a7 “zla ba sgron ma’i mdo las / mchod pa tshang med rnams
mang je snyed pa / zhing ni bye ba khrag khrig gtams rnyed du /
skyes bu mchog la mchod pa de byas pas / byams pa’i sems la grangs
dang char mi phod”
67) 『 삼십육의』(D.3878, 189a1-2), “sdug bsngal ’dor ’dod sems yod kyang/
sdug bsngal nyid la mngon par rgyug/ bde ba ’dod kyang gti mug pas/
rang gi bde ba dgra lar ’joms”
68)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31 “sems can rang nyid bde
ba ’dod cing sdug bsngal mi ’dod la de ltar ’bad pas bde ba thob cing
sdug bsngal spong nus bas bde sdug gi ’dor len rang nyid mkhas pa
ma yin nam / gzhan gyis de’i don du btson ci zhig dgos she na / nges
par bston par bya dgos te”
244 韓國禪學 제33호

나방이 등불에 뛰어드는 것처럼, 살생 등 불선업 때문에 배고픔 등


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이들이 지옥 등의 험한 고통을 경
험하는 자성으로 달려간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전도된 어리석음
때문에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은 것, 획득하는 것과 버
리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69)

안락이 없고
고통이 많은 이들을
모든 안락으로 만족시키고,
모든 고통을 없애고, (15)

어리석음도 없애는
그것과 상응하는 선한 것이 어디에 있으며,
그와 같은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그와 같은 공덕이 어디에 있겠는가. (16)70)

위의 게송이 원심이 아니라 행심의 이익이 타당함을 설명하는 것


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중생의 고통을 없애고, 안락을 주는 것
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어석』에서는 행의 보리심에는 몸
과 마음에서 생긴 모든 안락으로 만족시키는 것에서부터 모든 고
통을 없애는 것과 결국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 공능이 있다고 설명
한다.71) 『입보살행선회』에서는 보리심이 고통을 없애고, 안락을 주

69) 『 난어석』(D.3872, 55a1-4).


70) 『 삼십육의』(D.3878, 189a2), “gang zhig bde bas phong pa dang/ sdug
bsngal mang ldan de dag la/ bde ba kun gyis tshim pa dang/ sdug
bsngal thams cad gcod byed cing/ gti mug kyang ni sel byed pa/ de
dang dge mtshung ga la yod/ de ’dra’i sems kyang ga la yod/ bsod
nams de ’dra’ng ga la yod”
71) 『 난어석』(D.3872, 55a5-7).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45

고, 어리석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을 “일반인 중에서 안락으로 만족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락이 없는 이와, 지옥 등의 고통이 많기 때
문에 여러 차례 고통을 겪는 이들을 대자(大慈)에서 생긴 모든 안
락으로 만족시킨다. 대비(大悲)는 모든 고통을 끊고 없앤다. 지혜
는 어리석음을 없애고 부순다. 보리심의 종성을 가진 이는 저절로
대비 등을 가지기 때문에 간청하지 않더라도 이타에 들어간다.”72)
라고 설명한다. 보리심은 대자심과 대비심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
에 대자심을 통해 일체중생에게 안락을 주고, 대비심을 통해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앤다. 이런 마음을 통해 증상심을 일으켜 깨달음
을 추구하는 보리심을 일으키기 때문에 중생들의 어리석음도 없앨
수 있고, 항상 이타로 나아가는 것이다.

6. 보리심을 수습하는 사람을 찬탄함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리심을 일으키기 어렵고, 보리심에는


한량없는 공덕이 있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켜 수습하는 보살을
항상 찬탄해야 한다. 찬탄하기 위해서는 찬탄해야 하는 정확한 이
유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삼십육의』에서는 그 근거를 밝히는 게송
을 제시하고 있다.

그와 같은 보시자체인 보살에게

72) 『 입보살행선회』(D.3874, 8b5-7), “khyim pa gang zhag bde bas mi


ngoms pa’i phyir bde bas phongs par gyur pa dang / dmyal ba la sogs
pa’i sdug bsngal mang po dang ldan pas lan du mar gzir bar gyur pa
de dag la byams pa chen po las byung ba’i bde ba kun gyis ni tshim
par byed do / snying rjes chen pos sdug bsngal thams cad ni gcod par
byed cing ‘gog par byed do / shes rab kyis gti mug kyang ni sel zhing
’jig par byed do/ byang chub sems dpa’i rigs dang ldan pa dag ni rang
bzhin gyis snying rje chen po la sogs pa dang ldan pa’i phyir gsol ba
ma btab du zin kyang gzhan gyi don ’jug pa yin no”
246 韓國禪學 제33호

만약 나쁜 마음을 일으키는 이는
나쁜 마음을 먹은 수만큼의 겁 동안
지옥에 머물러야 한다고 능인께서 말씀하셨다. (17)

하지만 마음이 매우 수승할 경우


그 결과는 그것보다 훨씬 커진다.
보살들에게 [해악이] 아주 많더라도
죄가 생기지 않고, 선한 것은 저절로 증장한다. (18)73)

17송에서는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의 공능이 얼마나 수승한가 하


는 것을 경설을 근거로 설명한다. 『난어석』에서는 그 근거로 두 가
지 경설을 제시한다. 이것은 『정문석』에서도 그대로 인용되고 있
다.74) 먼저 『신변경(神變經)』을 인용하여 “문수여, 보살이 보살에
대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그때까
지 그 보살은 몇 겁을 지옥에서 머물러야 한다, 갑옷을 입어야 한
다”75)라고 하고, 『입생신력인경(入生信力印經)』에서 “문수여,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갠지스강의 모래알갱이 만큼의 탑을 부수거나
태우거나, 또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을 신해하는 보살마하살을
해치는 마음, 악한 마음,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행동하고, 꾸짖
으면 이것은 앞의 것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큰 업을 일으키게 된

73) 『 삼십육의』(D.3878, 189a2-3), “gang zhig de ’dra’i rgyas sras sbyin


bdag la/ gal te ngan sems skyed par byed pa de/ ngan sems bskyed
pa’i grangs bzhin bskar par ni/ dmyal bar gnas par ’gyur zhes thubs
pas gsungs/ ’on te gang zhig yid rab dang byed pa/ de yi ’bras bu de
bas lhag par ’phel/ rgyal sras rnams la do gal chen pos kyang/ sdig
pa mi ’byung dge ba ngang gis ’phel”
74) r Gyal tshab dar ma rin chen, op. cit., pp.35-36
75) 『 난어석』(D.3872, 57a2-3), “’jam dpal byang chub sems dpas byang
chub sems dpa la khong khro ba’i sems skyed cing brnyas pa’i sems
bskyed pa de srid du des bdag bskal par dmyal bar gnas par bya’o go
cha bgo bar bya’o gsungs so”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47

다. 왜냐하면 보살에게서 태어난 이가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76)


라고 말씀하신 것을 인용하고 있다.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에게 악
한 행동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업인 것은 『입생신력인경』에
서 설명하는 것처럼 보살로부터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때문이다.
이를 부연하여 『난어석』에서는 “보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부처
님의 뿌리를 가진 것을 자르고 완전히 자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 등의 세간의 이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된다”77)고 설명한다.
『정문석』에서는 18송을 둘로 나누어서 1, 2구는 믿음을 수습하는
것이 타당한 이유를, 3, 4구에서는 절하고 귀의할 수 있음을 설명
한 것으로 과단을 구분한다.78) 전자에 대해서 『난어석』에서는 ‘수
승한 마음’을 청정한 믿음으로 설명하고, 이 믿음을 일으킬 경우
악업의 과보보다 훨씬 큰 공덕이 있다는 것을 『입정부정인경(入定
不定印經)』에서 “문수여,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을 신해하는
보살을 청정하게 믿는 마음으로 볼 경우 이것은 저것보다 공덕이
매우 클 것이다”79)라고 한 것을 인용한다.
실제적으로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을 찬탄할 수 있는 근거는 3,4

76) 『 난어석』(D.3872, 57b1-3), “’jam dpal rigs kyi bu’m rigs kyi bu mo
gang la las gang ga’’i klung gi bye ma snyed kyi mchod rten bshig pa’
m/ bsregs la/ yang rigs kyi bu’m/ rigs kyi bu mo gang zhig gis theg
pa chen po la mos pa’i byang chub sems dpa’ sems dpa’ chen po la
gnod sems dang tha ba khong ba’i sems bsked cing spyos te brgyad na
’di ni de bas ches grangs med pa’i sdig pa skye bar ’gyur ro”
77) 『 난어석』(D.3872, 57a6-7), “byang chub sems dpa’ la gnod pa byas pa
ni sangs rgyas nyid rtsa ba dang bcas pa bcom zhing nye bar bcom
pa yin te/ de ltar n yang lha dang bcas pa’i ’jig rten gyi don nye bar
bcom par ’gyur ro”
78) rGyal tshab dar ma rin chen, op.cit., p.36
79) 『 난어석』(D.3872, 58a1-3), “gal te rigs kyi ba’m rigs kyi bo ma byams
pa’i sems la gnas pa ’ga’ zhig de dag thams cad kyi mig skyed par
byed pa pas/ ‘jam dpal rigs kyi bu’m rigs kyi bu mo ga dang gzhag
zhig theg pa chen po la mos pa’i byang chub sems dpa’ la sems dang
bas lta na ‘di ni de bas bsod nams ches lhag par skye’o”
248 韓國禪學 제33호

구에서 설명된다. 『난어석』에서는 『문수해탈경』에서 “그와 같이 보


리심과 대비의 보배의 왕인 여의주왕관에 집착하는 보살에게는 지
옥과 악도의 저쪽의 해악과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80)고 한 경설
을 인용한다. 경설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리심과 대비에 집
착하는 보살에게는 악도나 하물며 지옥에 떨어질 수 없다. 『난어
석』에서는 “따라서 그[보살]들이 의미가 없는 것이 커지는 결과인
거친 것이 어떻게 애쓰고 노력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선한 믿음으
로 섭수한 실사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고, 청정한 업으
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오류가 없기 때문에 그분들을 저절로 좋아
하고, 믿음과 크게 좋아함을 일으키게 된다”81)라고 한다.

Ⅳ. 맺음말

샨띠데와의 『입보리행론』은 범본, 티벳본, 한역본이 남아 있는


인도 후기 불교 논서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 논서에서는 보살의
보리심과 보살행이 중점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귀중한 논서이다.
특히 샨띠데와는 중관학자이기 때문에 중관학의 입장에서 보살행
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인도뿐만 아니라 티벳 등지에

80) 『 난어석』(D.3872, 58a6), “de bzhin du byang chub kyi sems dang
snying rje chen po’i rin po che’i rgyal po yid bzhin gyi nor bu cod pan
la bcing pa’i byang chub sems dpa’ la ngan song dang ngan ’gro’i pha
rol gyi gnod pa dang ‘jigs pa mi ’byung ngo”
81) 『 난어석』(D.3872, 58a7-58b1), “de’i phyir de rnams la don ma yin pa ’
phel ba’i ’bras bu rtsub pa ci’i phyir ’bad cing tsol bar byed/ de nyid
kyi phyir/ dge ba dang gis te/ bsdu ba’i dngos po rnams kyis sems
can thams cad la phan pa dang bde ba’i las byed pa’i phyir dang/ las
yongs su dag pas gang du yang ’khrul pa med pa’i phyir de rnams la
ngang gis dga’ ba dang/ dang da dang mchog tu dga’ ba skye bar ’
gyur ro”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49

서 널리 익히고 있다. 티벳 대장경 목록을 살펴보면 『입보리행론』


에 대한 다수의 주석서가 인도에서 찬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입보리행론』의 연구가들에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것
이 『삼십육의』이다.
『삼십육의』는 『입보리행론』의 중심적인 의미를 ‘서른 여섯’으로
요약한 것이고, 이것을 더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 『입보리행론약의』
이다. 이 두 가지 저술의 작자는 까말라락씨따 · 디빰까라스리즈냐
나로 되어 있다. 『삼십육의』는 『입보리행론』의 게송 중에서 중요한
게송을 가려모은 것이기 때문에 『입보리행론』과 마찬가지로 앞부
분에는 보리심을 설명하는 1,2,3장의 중심적인 게송이 소개되고 있
다. 그 중에서 보리심 자체에 대한 내용은 1장의 게송을 모은 1-18
송에 해당한다.
보리심은 대승불교에 들어가는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는 보리심의 토대가 필요하다. 이 토대를 『삼십육의』에서는 여가
와 원만의 가만으로 설명한다. 이 토대에서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
해서는 먼저 보리심을 공덕을 명상해야 한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고 어렵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보리심의 공덕을 명상하
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이 없다. 『삼십육의』2-7송까지는 악업을 없
애고 선업을 키우는 공덕 등 여러 가지 보리심의 공덕을 설명한다.
보리심에는 『현관장엄론』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로 구
분되지만 『삼십육의』에서는 원심과 행심의 보리심으로 보리심을
구분한다. 원심은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증득하겠습
니다’라고 발원하는 보리심이고, 행심은 원심을 일으킨 후에 보살
의궤를 수지하여 보살의 행으로 나아가는 보리심이다. 원심과 행
심의 보리심에도 여러 가지 공덕이 있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의 행으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보리심을 항상 일으켜야 한다.
10송에서 12송까지는 보리심의 이익을 행심을 위주로 설명한다.
원심만으로도 한량없는 이익이 있지만, 실제로 중생을 이롭게 하
는 행심 만큼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원심과 행심의 이익이
250 韓國禪學 제33호

타당한 근거는 13송에서 16송에 걸쳐 경설을 근거로 설하고 있고,


주석서에서는 다양한 경설을 인용하면서 주석하고 있다. 17, 18송
에서는 보리심을 수습하는 사람들을 찬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함
으로써 보리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강조하여 설명한다.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51

Abstract

The study of the Bodhicitta in


Bodhisattvacaryāvātaraṣaṭtriṁśatpiņḍārtha
: focus on indian and tibetan commentaries
of the Bodhisattva-caryāvatāra

Yang, Sung-kyu
(Research professor of Research Institute
of Oriental Medicine)

Śāntideva has lived during the early eight century. His life is very
little known, but his chief work the Bodhicaryāvātara, “Entering the
Path of Enlightenment” was one of the greatest religious works in
human heritage. He was a member of the Mādhyamika which was
originated from Nāgārjuna. He also wrote the Śikṣāsamuccaya, “A
Compendium of Discipline”. He was trying to explain the thought of
enlightment(bodhicitta) and bodhisattva deeds in the subject of this
study, the Bodhicaryāvātara.
There are several commentaries about this Bodhicaryāvātara
in India. Śāntideva’s earliest commentator was Prajňākaramati,
who wrote the Bodhicaryāvātarapaňjikā. This survives in
Sanakrit and Tibetan. Bodhisattvacaryāvātarasaṃskāra
was composed by Kalyāņadeva in eleventh century.
Vairocanarakṣita’s Bodhicaryāvātarapaňjikā and Vibhūticandra’
s Bodhicaryāvātarapaňjikā Viśeṣadyotanī are available in Tibetan
Tripitaka, we can also find very short and condensed forms of this
252 韓國禪學 제33호

commentary, Bodhisattvacaryāvātaraṣaṭtriṁśatpiņḍārtha(hereaft
er Triṁśatpiņḍārtha), “The Thirtysix condensed meaning of the
Entering the Path of Enlightenment” and Bodhisattvacaryāvātar
apiņḍārtha, “The condensed meaning of the Entering the Path of
Enlightenment”. These two are compiled by Kamalarakṣita and
Dīpaṁkaraśrījňāna. Triṁśatpiņḍārtha is the subject ot this study.
Śāntideva’s primary subjects are bodhicitta and bodhisattva’s
deeds. The sanskrit word bodhicitta is the mind of enlightenment.
The mind of enlightenment is the only entrance into the Mahāyāna.
To become a Mahāyāna practitioner, one must pratice the mind of
enlightenment. The training in the sprit of enlightenment has two
parts: the training based on the seven cause-and-effect personal
instructions and the training based on the teaching of exchanging
self and other. The latter was systematized by Śāntideva in his
Bodhicaryāvātara.
Bodhicitta consists of bodhi, which is enlightenment, and citta,
which is mind. The mind of enlightenment is the desire for perfect
enlightenment in order to able to work for the benefit of others.
The mind of enlightenment is of two types, convention and
ultimate, and the conventional is again divided into the aspirational
and the practical. The aspirational mind of enlightenment is the
wish to attain buddhahood in order to help all sentien beings. The
practical mind of enlightenment is practicing the six perfections,
having taken the bodhisattva vow. The ultimate mind of
enlightenment is a wisdom cognizing emptiness directly.

<Key words>
Śāntideva, Entering the Path of Enlightenment, Bodhicaryāvātara ,
bodhicitta, the mind of enlightenment.
『입보살행섭삼십육의(入菩薩行攝三十六義)』의 보리심 연구 253

[참고문헌]

K a m a l a r a k ṣ it a , D ī p a ṁ k a r a ś r ī j ň ā n a , B o d h i s at t va -
caryā vatā ra-ṣ aṭ trimś at-piṇḍā rtha (Byang chub kyi
spyod pa la ’jug pa’i don sum cu rtsa drug bsdus pa) ,
D.3878, Sha.188a7-191b3.
K a m a l a r a k ṣ it a , D ī p a ṁ k a r a ś r ī j ň ā n a , B o d h i s at t va -
caryāvatāra-piṇḍārtha(Byang chub kyi spyod pa la ’jug
pa’i don bsdus pa) D.3879, Sha.191b3-192b6.
D ī pa ṁ kara ś r ī j ňā na, Bodhimā rgpradī paň jikā -nā ma(Byang
chub lam gyi sgron ma’i dka’ ’grel zhes bya ba) , D.3948,
Khi.241a4-293a4.
Praj ňā karamati(Shes rab ’ byung gnas blo gros), Bodhi-
caryāvatāra-paňjikā(Byang chub kyi spyod pa la ’jug
pa’i dka’ ’grel) , D.3872, La.41b1-288a7.
Bodhisattva-caryā vatā ra-vivṛ ti-paň jikā (Byang chub kyi
spyod pa la ’jug pa’i rnam par bshad pa’i dka’ ’grel) ,
D.3873, La.288b1-349a7.
Kaly āṇ adeva(Dge ba lha), Bodhisattva-cary ā vat ā ra-
saṁskāra(Byang chub kyi spyod pa la ’jug pa’i legs par
sbyar ba) , D.3874, Sha.1b1-90b5.

rGyal tshab dar ma rin chen, Byang chub sems dpa’i spyod
pa la ‘jug pa’i rnam bshad rgyal sras ‘jug ngogs z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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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韓國禪學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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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수일 : 2012년 12월 15일 ○ 심사일 : 2012년 12월 17일 ○ 게재결정일 : 2012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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