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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220630 08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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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일제히
자신 또래의 한 아이를 향해, 더럽고 추악한 말들을 쏟아냈다. 아이들은 고개만 숙이고서 아무 반응도 없는
아이의 행동이 짜증났는지,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들과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아이들은 일제히 아이를 빙
둘러싸고서 조롱하듯 욕설을 내뱉으며 강도 높은 폭력을 가했다.
유나인은 그녀의 티파티, 베로나이카의 사교계 데뷔 무대에서 그를 비웃으며 조롱했다. 바보 취급하며, 웃음을
잔뜩 머금고 그에게 건넨 첫 한마디.
사교계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그런 말들을 고스란히 삼켰다. 그 일이 자신을 업신여겨도 좋다는 허락이 되어, 12
살의 그는 또래들의 폭력 속에서 불행하게 자라났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뜻 들으면 영애라고 오해할만한 이름, 얼굴을 가리는 기다란
머리카락과 꽤나 왜소한 체격은 또래들의 흥미를 불러왔는지, 사교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줄곧 괴롭힘을
받아 왔다. 하지만 내가 끔찍한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된 사건은 따로 있었다.
그 이후로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욕했다. 나를 괴롭히던 다른 아이들과 나를 배신한 유나인에게 반감을 가지고
싫어했으며, 그 상황에서조차 아무런 대꾸도 없이 멍청하게 행동해버린 나를, 어딘가 멍한 눈을 띄고 있는 내
눈동자를, 혐오스럽게 일그러진채 거울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을 혐오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만
반항해볼 생각도 못한 채 그저 나 자신만 끊임없이 혐오했다.
괴롭힘은 과할 정도로 심했다. 아이들은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영악했고, 철저하도록 괴롭힘을 은폐했다.
멍들게 하는 법 없이 폭력을 가했으며, 나에게 악마라 욕하며 침을 뱉고, 정신적으로 끈질기게도 괴롭혔다. 그
괴롭힘 중에서도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 있었다. 그 날도 폭력을 각오하고 티파티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한 아이는 내가 귀족 영애같다며, 진짜 여자가 아니냐고 비웃으며 상반신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그림이라도 보듯이 가벼운 말들을 내뱉었다. 유나인은 언제나처럼 그저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날 나와 눈이 마주쳤을때는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부정이 불가능한 비웃음 그 자체였다.
그녀의 이름은 메이란 웨이드였다. 황족의 양녀로 들여졌다는 그녀는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처음 나는
그녀를 믿지 않았을뿐더러, 약간의 혐오감 마저 지니고 있었다. 메이란도 유나인과 같은 부류일 것이라는 생각,
금새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버릴 가식적인 태도, 높은 신분에서 비롯된 동정심 등 그녀를 싫어할만한 이유가
넘쳤다. 특히 자기 혐오를 넘어 인간 자체를 혐오할 만큼 비관적이었던 나로서는 차라리 솔직한 폭력이 나았다고
말 할 수 있었다. 메이란과 내가 만나는 날은 모두 누군가의 초대장을 받았을 때였다. 참가가 필수인 공적인
무도회나 티파티라면 모를까, 아무리 사교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초대한 자리라도 메이란과 나는 그곳에 가지
않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나는 어느 숲의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마당에는 예쁜 벤치가 있었는데,
주변에 보이는 숲과 호수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우리는 꽤 높은 빈도로 만났지만 그 때마다 메이란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띄우곤 했다. 나는 어떤 속셈인가 경계하면서 끊임없는 비관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새 그 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 메이란은 항상 고요한 시간을 즐기면서도, 가끔은 나에게 솔직한
속마음이나 내 마음을 꿰뚫어본 듯한 위로들을 건네곤 했다. 내가 그 시간 뿐만 아니라 메이란이라는 존재 자체가
좋아졌음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리는 오랜 시간 연인이었으며, 십 대의 반을 의지하며
지냈다. 그녀는 피해자였던 나를 유일하게 격려해준 존재였다.
그녀와 함께한 기억들로 인하여 나의 어린 시절은 비극 뿐 만이 아니었다. 또한 그녀가 나에게 붙여준 애칭,
베론이라는 그 이름은 나에겐 큰 행복이었다. 그녀는 내가 붙여준 란이라는 애칭 또한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란은 그렇게 나에게 뿌리내린 부정적인 생각들을 통째로 바꾸어줬다. 성별에 대한 자기 혐오는 사랑으로
사라져버렸고, 괴롭힘 또한 서서히 잊어갔다. 나는 란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살아는 있을지 조차 불분명했다.
그런 나였지만 한순간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본인을 아스모데우스라 소개한 악마는 달콤한 계약을 제시했다. 나에게 모든 여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힘,
영구적이고 대가 없는 그 힘을 주겠다고 속삭인 것이었다. 그 계약은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다.
깊은 상처로 남은 폭력의 기억이 너무나 커서, 복수심으로 가득 차버린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정말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당연히도 그 힘을 가지고 마을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기에 고민하고있던 찰나에,
악마는 숲 속의 저택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완벽하게 간섭 받지 않을 낙원을 마련한 악마는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그 선택으로 중요한 것을 여러가지 잃었다. 바로 생각나는 것은 란이라는 존재였다. 악마와 금단의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란은 사라졌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으며 완벽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처음엔 그녀를 어떻게든
찾으려 온갖 노력을 들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그 일은 내려두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 작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란을 잊기 위해 그녀는 대신할 다른 여자들을 찾고는 했다. 그 시점의 나는 어린 시절과 큰 변화가
있었다. 연보라색 긴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정리했으며, 대게는 검은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있었다. 체구는 제법
커졌고, 성격은 반 쯤 비뚤어져서 이상한 취미를 즐겼다.
"....란?"
나를 찾아온 그 여자는 어딘가 이상했다. 문을 열고 수줍은 듯이 들어오는 금발의 여자는 보통보다 체격이 살짝
컸으며, 드레스가 부자연스러운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못한 채,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심장을 꿰뚫었다. 셔츠의 가슴 부분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금발의 여자는 가발을 벗으며 웃었다. 그녀, 아니 그는 자신의 연인을 찾으러 온 청년이었다. 손에는 단도가
들려있었으며, 근처에 있던 유나인을 감싸듯 끌어안는 것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 따위를
신경 쓸 상태가 아니었다. 독이 묻었는지 호흡이 점점 힘들어졌고,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시야가 흔들리고,
뒤엉켰으며, 때로는 흐려졌다. 쓰러진 나는 마침내, 유나인의 비웃는듯한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아직은, 아직은 절대 죽기 싫었다. 란에게 진심을 담은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아아, 끝까지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