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AN 3. - 단원-김홍도와-혜원-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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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조선 시대의 르네상스라고 불렸던 18 세기, 당시의 조선에는 천재 화가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화가로 꼽을 수 있는 김홍도와
신윤복이다. 영조와 정조 시대를 거치며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면서 서민들 또한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 중에서도 그림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문화와 예술이 큰 부흥을 이루었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에 풍속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활약한 김홍도와 신윤복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모두 도화서 화원 출신으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며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그림인 풍속화를 그린 화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작품 세계에서는 서로 차이점을 보인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은 정조 시대의 선후배 화가이면서 풍속화로
이름을 날렸다. 두 화가가 그린 풍속화를 통해 그 당시 임금과 신하는 물론이고
서민들의 생활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풍속화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또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빨래터나 주막, 길거리의 풍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그림은 자주 비교가 된다. 두 사람은 모두 도화서
화원 출신이라는 것, 조서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작품
세계에서는 서로 차이점을 보인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 공통점은 정조 시대의 임금과
신하는 물론이고 서민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점이다. 또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빨래터나 주막, 길거리의 풍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그림은 자주
비교가 된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홍도는 농촌지역 서민의 일상 생활을 주로 그렸고 신윤복은 도회지 양반과
기녀의 풍류 생활을 화폭에 담았다. 신윤복의 그림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여성들을 작품에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특히 천한 신분으로 무시당했던 기녀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그림 세계를 만들어갔다. 김홍도의
대표작으로는 ‘씨름, 서당’ 등이 있고, 신윤복의 대표작으로는 ‘미인도, 월하정인’
등을 들 수 있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홍도는 농촌지역 서민의 일상 생활을 주로 그렸고 신윤복은 도회지 양반과
기녀의 풍류 생활을 화폭에 담았다. 특히 신윤복의 그림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여성들과 천한 신분으로 무시당했던 기녀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그림
세계를 만들어갔다.

또한 붓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표현법에서도 두 사람은 크게 차이가 난다.


김홍도가 붓을 거칠게 다루며 선을 간결하고 소탈하게 표현하여 서민들의
흥취를 드러냈다면 신윤복은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며 주로 채색화를
그렸다. 인물의 얼굴 모양도 대조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김홍도는 서민의 얼굴을
둥글게 표현했지만 신윤복은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 얼굴도 V 자 형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들의 화풍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김홍도는
어려서부터 그림의 천재로 소문이 나서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 강세황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워 20 대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28 세 때인 1773 년에는
재능을 인정받아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렸다. 그 당시 어용화사는 화원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였다.
그에 비해 신윤복은 화원 가문인 신한평의 장남으로 태어나 도화서의
화원으로 벼슬을 했으나 속화를 즐겨 그린다는 이유로 후에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개인적인 생애와 사망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조선의 풍속화를 얘기할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실력이
비등비등했던 두 사람은 진정한 맞수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은 조선
시대 우리 문화와 역사를 고찰하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으며, 동시대와 후대에
지댄한 영향을 끼쳤다. 그들의 풍속화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는 18 세기 조선의
여러 계층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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