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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윤리와 진보 그 사이에서

경제금융학부 2023038186 이서원

본 평전을 분석하며 주도적으로 구축한 논제는 다음과 같다. 바로 과학자가 기술을 개발할 당시에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하는가 이다. 핵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그가 개발한 핵폭탄이 후대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고려했을까? 그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핵을 개발했고 그것의 후폭풍을 감당했는지
우리는 분석했다. 먼저 나는 과학자가 기술을 개발할 당시에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과학자는 기술의 직접적 사용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1오펜하이머는 핵폭탄 투하 지점에 있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다음은 평전에 드러난 발언의 요약이다. 본인이 투하지점을 직접 고른 것이
아니고, 군부 상관들이 폭탄의 투하 지점을 논의하는 곳에 자신이 폭탄의 위력을 알려주는 조력자로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종전 후 반핵활동을 진행할 당시 트루먼 대통령에게 ”자신의 손에
피가 묻은듯 하다“ 라는 말을 하며 핵 기술에 사용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을 본인, 즉 과학자 집단이 다
부담해야한다는 듯이 치부했다. 이중적인 발언들은 정책 결정자들이 오펜하이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주된 원인이 되었고, 과학자들 역시 그가 더이상 과학자가 아닌 정치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오펜하이머는 기술의 사용자와 개발자 사이에서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정치가로서는
기술의 사용자적인 모습을 취했고 본인의 인정투쟁의 욕망을 이뤄내고 있던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에는
그 폭탄이 가져올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의 개발자로서 집중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러나 폭탄의
투하를 결정한 것은 정책 결정자이고, 과학자가 아니다. 우리가 분석한 내용의 핵심도 이를 따른다. 그가
과학자로서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은 과학자가 아닌 나아가 정치가로서의 욕망을 일궈내고자 했던
수단적 모습이였다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학자는 기술의 사용과는
독립적일 수 밖에 없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라기보단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 즉 정치가로서 그 기술의
사용에 약간이나마 가담한 것이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기술의 사용에 대해서 고려할 수 없는 구조이다.
주로 핵 기술로 대표되는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 문제는 이렇듯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여된 논리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집단에 소속된 과학자 개개인이 연구에 있어 사용의 고려를 임무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과학자가 사회와 분리될 때 그 가치가 보존된다는 점이다. 과학자와 공학자는(본 에세이에서는 둘을
통칭하여 과학자로 부르겠다) 이론을 바탕으로 그것을 실현시키고, 증명하고, 이 과정을 통해 진리를 찾아나가는
탐구자이다. 개척과 적용이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존재한다면, 과학자들은 정치나 이익집단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한 학문의 탐구가 가능하다.
일례로 담배산업전략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Tobacco industry playbook, 또는 Tobacco Strategy, 통칭 담배산업
전략은 흡연이 여러 치명적인 병, 특히나 암과 같은 질환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가 시작된 1950 년대에
사용된 마케팅 전략이다. Playbook 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완전한 각본이다. 담배전략을 이루는 4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은데, 과학자들에게 기존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연구를 반박하는 연구를 하도록 후원하고,
Astroturfing 하며, 정치적 로비 활용, 제품의 위험성이 업계 자율적 규제와 개인 책임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1950 년대 담배회사들은 과학자들에게 후원하며 담배가 해롭다는 연구에 의심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하도록 했다. 당시 2 차 세계대전 이후로 과학에 대한 전폭적인 군의 지원이 줄은 터, 과학자들의 유일한
희망이였던 거대 산업의 자본은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담배전략은
여러 환경문제나 위험성이 제기된 제품들의 기업들이 동일한 구조로 차용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과학사에서
연구비 후원자의 입김이 연구의 내용에 있어 강하게 작용한 대표적 사례이다.234 후에 담배회사의 기밀문서가

1
마틴 셔윈 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오펜하이머 평전」, 『사이언스 북스』, 2010.
2
Hulac, Benjamin (July 20, 2016). "Tobacco and Oil Industries Used Same Researchers to Sway Public".
ClimateWire – via Scientific American.
3
"New Documents Reveal Denial Playbook Originated with Big Oil, Not Big Tobacco" (Press release).
Center for International Environmental Law. June 20, 2016.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une 25,
2020. Retrieved April 9, 2020.
4
Lauren Etter, 「The Devil's Playbook: Big Tobacco, Juul, and the Addiction of a New Generation」, May
25, 2021
유출되며 미국 내에서 과학자들이 가치중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듯, 과학은 자본이 개입되고, 정치, 이익집단에 의해 휘둘리게 된다면 얼마든지 편향된 연구가 진행될 수
있고, 학문적 차원에서 이러한 일들을 반드시 경계해야한다. 그렇다면 본 사례가 과학자와 사회의 분리에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과학자가 기술 개발 당시 직면하는 윤리적 책임, 그리고 사용에
대한 고려는 과학자 혼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 별로 윤리적 수준과 고려의 정도는 다르고,
이것은 어떠한 논의를 하더라도 사회에서조차 통합된 의견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돈을 과학자의
몫으로 던질 수 있을까? 앞서 첫번째 논거를 이야기했듯이 이러한 혼돈은 과학자 개인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며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사회가 논의를 통해서
과학자에게 합의 사항을 요구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 사례 처럼 사회가 과학자에게 주는 어떤
영향이라도 그것은 변질된 가능성이 높다. 끊임없이 이익집단과 정치가들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사회적 논의를 투명하지 못하게, 탁하게 만들것이다. 그렇기에 과학자는 독립적이고 분리된 상태로 존재해야한다.
마지막으로 개인 블로그에 기고했던 과학의 후원에 관해 썼던 칼럼의 일부를 본 논거의 참고로
첨부한다.
Patron, Similarity in Science and Art
과학사에서 후원자(Patron)의 입김이 연구의 내용에 있어 강하게 작용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이 후원에 있어 예술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예술, 특히 미술사와 음악사에서는 권력과 돈에 의한 창작이 과학보다 빈번했다. 나는 과학과 예술 모두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극단의 창의성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후원은 극단의 창의성이 말하는 방향이
아닌, 후원자가 원하는 목적을 위한 방향으로 연구와 예술을 틀어버린다(예술의 경우 아예 시작부터
목적성을 띈 채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가치 중립적인 연구 후원단체들이 더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방대한 지식과 치밀한 사고력을 가진 뛰어난 과학인재들이 자유로운 방향성의 창의성을
이끌어낼 수 있게 말이다. 그것이 과학기술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가능한 길이 아닐까. ~ 과학사 내에서
후원에 영향을 받는 청렴하지 못한 연구들, 탁한 연구들이 늘어날 수록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줄어든다. 또한 진정한 과학의 발전이 저해된다. 조사 전반에서, 나는 과학에 필요한 ‘경쟁’이 기업의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기존 연구에 대한 반박이 과학 전반의 발전을 위해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수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사용되었다. FUD 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우리를 움직인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 궁금해 왔고,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나섰으며, 그것이 오늘날 인류의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코로나 19 당시 백신에 대한 엄청난 음모가 발생하였다. 어떤 회사의 제품이 안 좋다는
의견, 여러 부작용과 수치들과 쏟아진 연구들은, 어쩌면 21 세기의 새로운 담배전략 이였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처럼 늘 FUD 에 반응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 답게, 모르면 당해야 하고, 모르면 공포에
떨어야 하며, 모르면 불안해 해야 한다. FUD 는 정말 치명적이고 강력한 수단임을 느꼈다. 이와 맞물려,
현재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Fake News, 가짜뉴스, 찌라시, 일명 카더라들, 헛소문들, 가십, 루머,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vulnerable 한 본능을 자극한다. FUD 가 얼마나 강력한지 또다시 느꼈다. 서론에
언급했듯이, 극단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과학자들이 더 가치 중립적이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지원, 사회적인 지원이, 너무나 급변하는 이 사회와 환경에 매우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강력한 동료는 가장 강력한 적이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FUD 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를 좋은 자극제 삼아 더 나은 기술을 위해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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