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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에 루트』

세상이란 건 게임처럼 풀리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는 세이브도 없으며, 로드도 없다.
재시작할 기회가 없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만약에ㅡㅡ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중요한 선택지를 다시 고를 수 있다면, 대체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만약, 학교 입학 전의 세이브 데이터가 있다 치고, 리온이 다른 길을 골랐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됐을
것인가?
이건 그러한 이야기이다.

학교에 무사하게 입학할 수 있었던 1 학년 봄.


나, 【리온・포우・발트하르트】는, 뒤뜰의 수풀에 숨어 있었다.
나하고 마찬가지로 숨어 있는 건, 파트너 룩시온이다.

「연못 앞에서 생각에 잠긴 왕자님은 그림이 되는구만. 속으로는, 어차피 왕자님이라는 입장에 지쳤다, 같은
수준의 고민을 하고 있겠지만 말이지.」

그 여성향 게임의 공략 대상 중 한 명인 율리우스 전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상황인데ㅡㅡ 이건 이른바 이벤트다.

『훔쳐보시다니 악취미시군요.』

「그치만 신경쓰이잖아. 질리도록 플레이한 게임의 명장면을, 현실로 볼 수 있다니 귀중하단 생각 안 드냐?」

주인공과 왕자님이 만나는 이벤트다.


학교 생활에 기대하며 분발하는 주인공이, 무례한 왕자님에게 싸대기를 날린다.
왕자님이 싸대기를 맞는다는, 속이 후련해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훔쳐봐 주지.

『자기하고는 상관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요?』

확실히 상관은 없지만, 신경쓰이는 점도 있다.


ㅡㅡ주인공이 어떤 아이인지 확인 만큼은 해두고 싶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주인공과, 현실의 주인공은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문 같은 걸 해소하기 위해 훔쳐보고 있는 거다.

「미남이 싸대기 맞는 광경을 보고 싶은 거라고.」

적당한 이유를 말하자, 룩시온이 외눈을 옆으로 저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무척 훌륭한 성격이시네요.』


「여전히 엄청 비꼬는구나.」

『그렇게 만드는 건 마스터 아닌가요? ㅡㅡ음?』

룩시온의 외눈이 움직여서, 이쪽으로 살며시 다가오는 여자를 발견해 냈다.


숨어있는 우리들을 알아채진 못한 상태다.
그 여자는ㅡㅡ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 여성향 게임의 패키지 일러스트와는 전혀 비슷한 점이 없는 여자였다.

「쟤는ㅡㅡ 입학식에서 본 적 있었지.」

묘하게 사람 조바심나게 하는 여자였다.


딱히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고 만다.

『마스터, 그녀는 율리우스에게 접촉하려고 합니다. 그녀가 주인공인가요?』

나는 이동을 개시한다.

「그럴 리가 있냐. 생김새가 너무 달라.」

게임 일러스트에서는, 좀 더 키도 크고, 살집도 잘 붙어 있었다.


주인공은 아닐ㅡㅡ 것이다.
상황을 보고 있었더니, 뭔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진정하자, 마리에. 왕자님과 만나는 이벤트를 잘 이용해서, 이대로 안면을 트면 내 승리야.」

그 순간에 모든 걸 이해했다.
ㅡㅡ아아, 얘도 나하고 똑같구나, 하고.

「룩시온, 따라와.」

뛰쳐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던 여자ㅡㅡ 마리에에게 몰래 다가가서, 율리우스 전하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순간에


달려들었다.
팔을 붙잡고, 입을 막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데리고 떠났다.

「으응!」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알지 못하는 마리에는, 엄청나게 놀라고ㅡㅡ 그리고 떨고 있었다.


끌어안은 채로,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 마리에를 풀어줬다.
그러자, 떨면서도 나를 노려봤다.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서두르고 있거든. 이런 짓을 하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아? 절대 용서


못해.」

강한 척하고 있지만, 겁먹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다.


마치 전생의 여동생을 상대하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래서 짜증나는 건가?

「ㅡㅡ왕자님과 만나는 이벤트인데 방해받고 싶지 않다, 이 말이냐?」


그러자, 마리에는 눈을 크게 뜬 뒤, 서서히 가늘게 떴다.
방금 전보다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다.

「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네.」

아무래도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슨 짓을 하는 건데? 왜 튀어나가려고 한 거야?」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왠지 짐작은 간다.


하지만, 확인해 두고 싶었다.

「ㅡㅡ너하고 상관있긴 해?」

시선을 피하는 마리에는, 아무래도 조우 이벤트를 이용해서 주인공을 제칠 심산이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있지. 너,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는 있냐?」

「시끄러워! 그것보다, 작작하고 풀어줘. 빨리 안 가면, 주인공이 와버릴 거 아냐!」

도망가려고 하는 마리에를 벽으로 몰아붙여서, 두 손을 벽에 붙이고 도주로를 차단했다.


몸집이 작은 마리에는 당황했다.

「방해하지 마. 알겠냐? 주인공이 왕자님 일행하고 만나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한다고.」

게임으로 말하자면 게임 오버를 뜻한다.


인생의 게임 오버를 맞이하기에는, 아직 너무 일러서 사양해두고 싶다.

「뭐어? 왜 그렇게 되는 건데? 협박할 거라면, 좀 더 제대로 된 말을 생각해둬. 안 풀어주면, 소리 질러서


사람을 부를 거야. 내가 여기서 소리 지르면, 네 학교 생활ㅡㅡㅡ 아니, 인생 앞길이 막힐 거야.」

이 녀석ㅡㅡ 여동생처럼 성격이 안 좋다.


분명 여기서 이 여자가 소리 지르면, 나는 악당이 되고 말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왜 얘는, 왕자님을 노리고 있는 거지?

「너, 그 여성향 게임을 플레이한 거지? 그러면, 왜 조우 이벤트를 망치려고 하는 거야?」

「그야 당연히ㅡㅡ」

대화를 나누고 있었더니, 멀리서 「찰싹!」이라는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우리들은 알고 있다.

「모처럼의 조우 이벤트를 놓쳐버렸나.」

마리에는 벽에 등을 댄 채로 무릎부터 무너져 버린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그럴 수가ㅡㅡ 겨우 학교에 입학했는데. 10 년이나 기다렸는데!」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야, 야.」

「이번에야말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 때문이야. 네 탓에, 나는 계속 가난뱅이 신세라고!」

ㅡㅡ여자가 울면 초조해져서 싫다.

『마스터, 한 번 정보를 공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룩시온의 제안에, 나도 그런 필요성을 느꼈다.


그 여성향 게임을 클리어했다면, 조우 이벤트를 망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 야, 그만 울음 그쳐라.」

그런데, 울고 있던 마리에의 배에서 「꼬르르륵」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에가 뚝, 하고 울음을 멈추고, 배를 두 손으로 누르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ㅡㅡ배고파?」

마리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짓이 전생의 여동생하고 닮아서, 정말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전생자다. ㅡㅡ방치할 수도 없지.

「밥은 사줄 테니까, 일단 자리를 옮기자.」

내가 내민 손을, 마리에가 잡았다.

「으, 응.」

학교를 나와서 거리로 왔다.


대중 식당 같은 가게에 들어가서, 마리에는 주문한 요리를 우걱우걱, 하고 먹고 있었다.
이미 스테이크를 세 장이나 먹어 치우고, 거기다 추가로 요리를 주문하고 있다.
지금은, 뼈가 있는 고기에 달라붙어 먹고 있었다.
마치 굶주린 짐승이 식사하는 것 같다.

「좀 더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어 먹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내 옆에 떠다니며, 마리에를 관찰하고 있는 룩시온은 흥미진진한 상태다.

『마스터도 흥미롭지만, 이분도 참으로 흥미롭군요.』

마리에도 전에 일본인이었단 말을 듣고, 룩시온은 『구인류 분이십니까.』 라면서 마리에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다.

『마리에, 요리는 충분히 있습니다. 이야기를 계속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요리가 올 때까지 얘기한 내용은, 마리에는 전 일본인 여성이라는 점.
연령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말하는 내용을 보면 30 대 중반에서 40 대 초반이라고 생각된다.
부모님께 의절당하고, 글러먹은 남자를 애인으로 삼아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애인의 폭력에 의해, 기절했다고 생각했더니 이 세계에 있었다는 모양이다.

ㅡㅡ너무 불쌍해서 웃지도 못하겠다.

이런 불쌍한 화제는, 놀릴 수 없으니까 난감하다.


마리에가 입에 넣은 음식을 물로 넘기고, 마음이 진정됐는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어디까지 얘기했었더라?」

「라판 자작가의 막내딸로 전생했다는 부분이야.」

「아~ 그랬었지.」

입 주위가 더러워진 마리에에게, 룩시온이 손수건을 눈앞에 갖다 줬다.


그걸 받고, 입가를 닦은 마리에는 이야기를 계속 한다.

「전생한 집안이 끔찍한 집안이라서 말이지. 본토에 영지를 가진 자작가였지만, 지금은 영지도 작고, 엄청
가난하거든. 가족도 자존심만 높은 부모님하고 쓰레기 같은 오빠, 언니 뿐이야.」

고개를 숙인 마리에는 작은 목소리로 「전생의 오빠하고는 딴판이야.」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 녀석, 전생에 오빠가 있었다는 모양이다.
우연이구만, 나도 여동생이 있었지.
그러니까 공연히 조바심이 나서 ㅡㅡ놔둘 수가 없다.

설마, 내 여동생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타인이겠지.


남매 둘 다 이세계에 전생이라니, 진짜 웃지도 못할 일이다.
애초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ㅡㅡ엄청 확률이 낮은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인생에서 빠져나가고 싶어서, 왕자님을 노린 거야?」

동정은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자님을 노리면 못 쓰지.

「ㅡㅡ그치만, 나는 1 편을 클리어하지 않았으니까, 자세한 건 몰랐단 말이야.」

마리에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울고 싶다. 여하튼, 그 여성향 게임에 속편이 있을 줄은 몰랐다.
마리에랑 대화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1 편은 어려웠으니깐 말이지. 나도 과금해서 클리어했고. 그건 그렇다 쳐도, 속편이 나왔었다니,


아직도 안 믿긴다.」

「그치! 평범하게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하다구. 내가 몰랐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야?」

『마리에, 추가 요리가 왔습니다.』


점원이 요리를 잔뜩 가져왔다.
마리에는 금새 식사를 다시 시작한다.
내가 마리에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끄럽다는 듯이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 잔뜩 먹을 수 있는 건 오랜만이거든. 본가에서는 만족스럽게 먹을 수가 없었어. 맛도 안나는 스프만


나오는 날도 있었으니까.」

얘 가족은 대체 뭘하는 거지?

「비참한 이야기구만.」

「너, 자기가 축복받았단 사실을 자각하도록 해.」

「복잡한 기분이야.」

할망구에게 팔려갈 뻔한 나조차도 얘보단 나았다니ㅡㅡ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마리에보다 가족 복이 타고 난 건 사실이지.
조라는 둘째 치고, 아버지나 어머니는 좋은 부모님이라고 생각해.
닉스 형도 믿음직하고, 콜린은 귀여운 남동생이다.

「학교라면 식사할 때 곤란한 점은 없을 텐데.」

「배, 배가 고프다고! 이쪽에 전생한 뒤로, 이상하게 배가 고프고, 왠지 성장도 늦고ㅡㅡ」

마리에를 관찰하고 있던 룩시온이, 그 원인을 알아챈 모양이다.

『마리에의 이야기를 토대로 추측하자면, 치료 마법을 과도하게 연습한 게 원인이 아닐까요? 원래대로라면
육체적으로 좀 더 성장하고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나는 룩시온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네. 성장기에 너무 무리를 한 결과입니다. 육체적인 성장은 멈춘 상태입니다만, 치료 마법은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을 만한 기량을 얻은 상태입니다. 꽤나 무리를 한 거겠죠. 마스터도 조금은 본받으시는 게 어떨까요?』

나한테 더 노력하라는 말인가?

「나는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고 싶거든. 쓸데없는 노력은 안하는 주의야.」

『역시 마스터입니다. 마리에를 본받으서 노력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거절한다.」

단호하게 거부하자, 마리에가 넋을 놓고 있었다.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떨어뜨린다.

「야, 야, 왜 그래?」

마리에가 부들부들 떨면서ㅡㅡ.


「뭐? ㅡㅡ뭐라고? 서, 설마, 내가 이렇게 애들 같은 몸인 건ㅡㅡ」

『노력의 결과입니다. 자랑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여성적인 기능에 문제는 없으니까요. 그저 이 이상 성장하지


않을 뿐입니다.』

즉ㅡㅡ 마리에는 연령보다 어린 체형 그대로다. 앞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도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 후, 마리에는 화풀이로 음식을 먹으며 울고 있었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어!」

다음 날.
학교 복도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 마리에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나를 인기척이 없는 곳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선언한 게ㅡㅡ.

「주인공이 노리지 않는 공략 대상을 노릴 거야! 건더기 작전이지!」

주인공ㅡㅡ 알아보니까, 이름은 【올리비아】라는 모양인데, 그 주인공이 노리지 않았던 남자에게 접근한다는
하이에나 같은 작전을 선언했다.

「너는 정말 굴하지 않는구만.」

「당연하지. 세계가 멸망하는 건 싫어. 하지만, 그거하고 이건 얘기가 다르지.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협력해.」

손을 모아서 부탁하는 마리에에게, 나는 웃어줬다.

「미안하지만 무리다. 나는 구혼 활동을 하느라 바쁘거든.」

「뭐야, 이 구두쇠야! 구혼 활동 같은 건 뒤로 미뤄도 되잖아!」

「시끄러워! 남자에게 있어선 사활이 걸린 문제다, 멍청아아!」

룩시온이 주위를 경계하면서 『사이가 좋으시네요』 같은 소리를 한다.


나는 마리에에게, 얼마나 남자가 괴로운 입장인지 말하기 시작했다.

「알겠냐? 남자는 스무살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인격조차 부정당하고 만다고. 이후의 인생과 관련되는 일이지.
여자처럼 가만히 있어도 남자가 모여드는 게 아니라고.」

마리에가 반론하기 시작한다.

「뭐어? 남자도 노리는 여자한테만 말을 걸잖아. 나는, 아직 다과회에도 초청받은 적 없거든.」

「다과회는 5 월부터야. 입학하고 이렇게 빨리 누가 말을 걸 것 같아?」

「너 바보야? 1 학년이 다과회를 시작하는 건 5 월부터지만, 상급생에게는 상관없다구. 2 학년이나 3 학년에게서


초청받질 않는다는 뜻이야.」

얘하고 얘기하다 보면 짜증이 나려고 한다.


마리에는 남자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다.

「너희 남자들은, 결국 자기들한테 편리한 여자만 보잖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급생이 말을 거는데,
라판 자작가 출신이란 점 하나 때문에 다들 외면한다구.」

마리에가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야, 네 본가는 평판이 엄청 구리잖아.」

알아보니까 꽤나 심각해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는 것조차 망설이게 될 것 같은 집안이었다.


마리에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런 건 납득이 안 돼.」

애초에, 연을 맺을 상대의 집에 막대한 빚이 있다면 당연히 망설이게 되겠지.


딸을 갖고 싶거든, 돈을 내놓으라고 말할 것 같다.
변경의 남작가에게, 거금을 내놓으라고 해봤자 난감할 뿐이다.

왜냐하면 돈이 없거든.
하지만, 이대로 마리에를 방치해서, 뭔가 문제를 일으켜도 곤란하다.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도와줄 테니까.」

「진짜지!」

울음을 그치고 웃는 마리에를 보고 있으면 ㅡㅡ정말 여동생이 떠오른다.


적어도, 그 녀석은 마리에보다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용서할 수 없단 마음은 있지만, 마리에처럼 끔찍한 상황에 처했다면 웃지도 못할 테니깐 말이지.

「그래서, 누구를 노릴 건데?」

「일단은 말이야~」

즐거운 듯이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마리에였다.

통나무가 늘어서 있는 훈련장.


거기서 땀을 흘리고 있는 건, 파란 머리카락의 【크리스・피아・아크라이트】였다.
안경을 낀 인텔리로 보이지만, 사실 홀퍼트 왕국에서 검성으로 불리는 무인의 아들이다.
본인도 젊은데도 검호라는 칭호를 얻은 상태다.

그런 크리스와 마리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그늘에서 그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는데ㅡㅡ.

「미안하지만 관심 없다.」

「네? ㅡㅡ네?」

꽤 괜찮은 분위기로 말을 걸었다고 생각해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ㅡㅡ크리스는 마리에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크리스는 땀을 닦으면서, 마리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내게 접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래뵈도 약혼자가 있는 몸이다. 너무 다른 여학생과


친하게 지내면, 의롭지 못한 일이 되고 말지. 앞으로는 너무 말 걸지 말아줬으면 해.」

정론으로 타일러져서, 마리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 네.」

크리스는, 말이 끝나자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났으면 돌아가 줘. 산만하니까.」

쌀쌀맞은 태도였다.
그러고 보니까, 이놈은 차가운 태도가 부각되는 놈이었지.
마리에가 내 쪽으로 돌아오고,

「ㅡㅡ실패해 버렸어.」

침울해져 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왜냐하면ㅡㅡ.

「이걸로 4 연패구만.」

ㅡㅡ더는 뒤가 없는 수준도 아니고, 시합 종료다.


공략 대상인 남자ㅡㅡ 왕자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면서 돌아다녔지만, 훌륭하게 전부 실패했다.

「전원 쌀쌀맞다니 너무하지 않아!?」

무슨 일이든 게임처럼 잘 풀리진 않겠지.


나는 룩시온에게 시선을 보낸다.

「야, 정말 올리비아 씨는 왕자님하고 친한 거 맞지?」

『친하게 지내고 있긴 하네요. 마스터와 마리에의 정보를 토대로, 율리우스를 노리고 있다는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공략 대상인 남자들은 마리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현실이란 건 가혹하구나.
낙담한 마리에에게 말을 걸었다.

「힘내. 밥 사 줄게.」
그 소리를 듣자, 침을 닦으며 마리에가 나에게 말했다.

「바, 바보 취급하지 마. 음식 정도로 간단하게 기분을 풀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알았으니까 침 닦아라.」

크리스에게서 숨어서, 마리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ㅡㅡ 훈련장에 올리비아 씨가 찾아 왔다.


소박한 느낌이 나는 여자애였다. 그리고, 크리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평소에는 쌀쌀맞은 크리스였지만ㅡㅡ 올리비아 씨에게만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리에에게는ㅡㅡ 전혀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 차이나는 태도는 뭐지?

하지만, 크리스의 기분도 이해가 간다.


밝고, 기운차고, 가슴도 큰 올리비아 씨는 매력적인 여자다.
나라고 해도 말을 걸어주면, 분명 미소를 짓게 되겠지.
ㅡㅡ그에 비해서.

「야, 내 어디를 저 여자하고 비교했냐?」

마리에가 엄청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기에, 시선을 피했다.

「자, 그러면ㅡㅡ 밥을 먹으러 가볼까.」

「내 가슴을 보고, 저 여자하고 비교했지! 똑바로 말해!」

「진실은 때로는 사람을 상처입히고 말거든. 착한 내가, 사실을 말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젠장할! 역시 가슴이냐!? 남자 따위 전부 멍청한 놈들이야!」

실제로는 크기보다는 형태나 둥그스름한 모양이 중요하지만, 그 점은 말하지 않도록 해야지.


마리에의 평평한 가슴에는, 형태도, 둥그스름한 모양도 연관이 없으니까.

「아~ 짜증나. 오늘은 스테이크 열 장은 먹어 줄 거야!」

룩시온이 대화에 참가한다.

『지난 번에는 열두 장을 전부 드셨습니다만? 마리에, 분명 성장은 하지 않습니다만, 지방은 몸에 붙습니다.


주로 가슴이나 엉덩이가 아니라ㅡㅡ 배 주위나 팔뚝에요.』

마리에는 그 말을 듣고 얌전해졌다.

「ㅡㅡ여, 여섯 장만 먹을게.」

얘 역시 덜렁이구만.
이런 여자에게, 공략 대상 남자들이 농락당할 리가 없지.
너무 걱정하고 말았다.
방치해도 문제는 없겠지만, 이제 와서 놔둘 수도 없지.

「자, 가자.」
「자, 잠깐 기다려!」

그러면, 신입생이 본격적으로 여자에게 말을 거는 건, 5 월 다과회부터다.


왜 5 월인 것인가?
이유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ㅡㅡ.

「나는 다시 태어났어.」

ㅡㅡ차는 훌륭한 문화란 걸 깨달았다.


친구인 다니엘과 레이먼드가 나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너는 정말 행복해 보이는구나.」

「역시 능력 있는 남자는 다르구만.」

아무래도 두 사람의 시선이나 말투에서 질투가 느껴진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왜 그래? 오늘은 되게 트집을 잡는 것 같은데.」

학교의 안뜰에 있는 벤치.


셋이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과 거리를 느끼게 된다.
레이먼드가 안경을 괴상하게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소문을 들었거든. 전속 하인도 데리고 있지 않은 상급 클래스의 여자와, 꽤나 친하게 지내고 있다던데.」

다니엘이 손을 붙잡고,

「부럽다, 이 짜식아! 우리한테도 소개해 주십쇼!」

나에 대한 건 화가 나지만, 이용해서 여자를 소개받으려 하고 있다.


그런 너희들이 나는 싫지 않지만ㅡㅡ 그저, 틀렸다.

「마리에를 말하는 거야? 걔하고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레이먼드가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떨런지. 그리고, 친한 여자 지인이 있단 것만으로도 부럽거든.」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나도 전속 하인이 없는 여자하고 친해지고 싶어,」

상급 클래스에서, 전속 하인이 없는 여자라는 건ㅡㅡ 특수한 여자다.


일반적인 상급 클래스의 여자라면, 전속 하인이 있기 때문이다.
마리에처럼 가난하거나ㅡㅡ 혹은,
「아, 전하다.」

레이먼드가 중얼거리자, 안뜰에 왕자님ㅡㅡ 율리우스 전하가 젖형제인 지르크를 데리고 찾아왔다.
그 뒤에는, 전하들을 따라다니고 있는 여학생들이 있다.
새된 성원을 받는 율리우스 전하와 지르크는, 딱히 흥미가 없는 모양이다.

「부러운 양반들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먼드와 다니엘도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너희들, 친구는 좀 더 소중하게 여겨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ㅡㅡ.

「아, 특대생이다.」

다니엘이 그렇게 말하자, 왠지 율리우스 전하 일행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율리우스 전하의 약혼자 【안젤리카・라파・레드그레이브】의 모습이 보인다.

「전하, 입장을 헤아려 주십시오!」

율리우스 전하는, 지겹다는 듯이 안젤리카 씨를 대한다.

「안젤리카, 여기는 학교다. 바깥의 입장을 끌어들이지 마라.」

「하, 하오나!」

약혼자 앞에서, 특대생 올리비아 씨를 감싸고 있다.


올리비아 씨와 만나고, 그대로 5 월의 다과회에 초청하고 있었더니 약혼자인 안젤리카 씨가 온 것이다.
게임에서는 초반에 나오는 이벤트 장면이지만, 이렇게 보니까 수라장이구만.

「미남은 좋겠다. 약혼자 앞에서, 다른 여자하고 친하게 지내도 용서받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니엘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안되지. 게다가, 상대는 특대생ㅡㅡ 평민이라고.」

레이먼드도 똑같았다.

「후궁으로 맞이한다면 평민도 가능하지 않아? 전례라면 있어.」

「그래?」

평민의 여성을 왕궁으로, 라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약혼자 앞에서 이런 태도는ㅡㅡ 문제가 있겠지.
이렇게 보면, 그 여성향 게임의 주인공은 의외로 악녀구만.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었더니, 집단은 해산했다.

「좋아, 우리들도 가볼까ㅡㅡ 야, 왜 그래?」

교사로 돌아가려는데 다니엘과 레이먼드가 나를 붙잡았다.


「얘기하던 도중이었잖아!」

「그 마리에라는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 자세하게 들려주셔야겠어. 같은 그룹의 친구로서, 들어두고 싶으니깐


말이야.」

가난뱅이 남작의 그룹 친구.


오해를 풀지 않으면 귀찮은 일이 될 것 같다.

ㅡㅡ그리, 하여서, 마리에에게 상담하기로 했다.


그런 마리에였지만, 장난 아니게 침울해져 있었다.

「ㅡㅡ 5 월 다과회, 아무한테도 불리질 못했어.」

왕자님들 5 인조 뿐만이 아니라, 5 월의 다과회를 여는 모든 남자들에게 무시당한 마리에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마리에는, 본가가 너무 끔찍해서 남자들이 망설인 거 아닐까요?』

룩시온의 냉정한 대답에, 마리에는 일어서서 머리를 싸맨다.

「그런 정론은 질리도록 들었다고! 좀 더 나 개인을 평가해 줘!」

「불가능한 말은 하지 마.」

귀족의 결혼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해도 정략 결혼이다.


설령, 서로 사랑하도 있더라도, 집안 사정으로 맺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신분의 차이라든지, 집안 간의 파벌이 다르다거나, 그 외에도 여러 사정이 있다.

「어째서! 그 여성향 게임 세계에서는, 여자에게 다정한 세계였잖아!」

「남자는 하드 모드지만 말이지.」

마리에도 하드 모드였던 모양이다.


보고 있자니 불쌍해지려고 한다.

「그것보다, 나하고 너의 관계를 친구들에게 설명해 줘. 너한테 부탁해서, 자기들에게 여자 좀 소개해 달라면서
시끄럽게 굴고 있거든.」

「너, 나한테 좀 더 잘해 달라고! ㅡㅡ아니, 애초에 소개해 주면 될 거 아냐?」

「나한테 여자 지인 같은 건 없거든요.」

「무슨 뜻이냐, 이 짜식아!」

「으악!」

『두 사람 다 즐거워 보이네요.』
마리에한테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꽤 아프다.
아니, 얘는 작은 몸집에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의 파워를 갖고 있는 모양이다.
흥분하고 있는 마리에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우리들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아니, 그래서ㅡㅡ 여자를 소개해 줄만한 지인이 없단 말이야. 제나ㅡㅡ 누나는 성격이 나쁘고, 그 인간 친구는
분명 성격이 더러울 테니깐 말이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면 「시골의 가난뱅이 귀족 따위, 우리들 안중에 없거든.」 같은 소리를 할 것 같다.
그 자식, 자기도 그 시골의 가난뱅이 귀족 출신인데 말이지.

「원한다면, 내가 소개해 줄 수도 있지.」

「어, 가능해!?」

놀라자, 마리에가 나를 보면서 「너, 나를 너무 바보 취급하잖아.」 라면서 화내고 있었다.

가난뱅이 남작 그룹이 자주 이용하는 술집에 와 있었다.


마리에가 소개해 준다는 여자를 데려와 있었고, 점내의 분위기는 평소하고 달랐다.
선배, 동급생ㅡㅡ 다들 나를 보고 웃는다.

「리온 군, 나는 너를 믿고 있었어.」

「리온, 너는 최고의 친구야.」

「무슨 일이 있으면 상의해 줘. 너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테니까!」

며칠 전까지, 스쳐지나갈 때마다 노려보던 놈들이 태세를 전환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웃음이 나온다.
점내에는, 마리에와 다른 여자 세 명이 있었다.

한 사람은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고, 다른 한 명은 긴장하고 있는 여자.


마지막은, 머리도 푸석푸석하고, 옷도 조금 흐트러진 상태다.
교복에는 물감이 묻어 있었다.
나는 마리에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야, 저런 애들을 어디서 찾아온 거야?」

우리들도 정보를 모으고는 있었지만, 많이 본 적 없는 여자였다.


마리에는 고기를 먹으면서, 여자들에 대해 알려 준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인 여자들이야.」

「은둔형 외톨이!?」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애는, 게으름뱅이야. 긴장하고 있는 애는, 사람이 많은 곳을 꺼려해서, 기숙사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어. 다른 한 명은, 예술가 기질이 있어서ㅡㅡ 다른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어.」
세 명 다 문제아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이먼드의 안경이 번쩍였다.

「마리에 씨, 세 명에게 전속 하인이 없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마리에는 주스를 마셔서, 입 안의 음식을 위로 흘려보낸 다음 대답했다.

「관심이 없거든. 긴장하고 있는 애는, 아인종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셋 다, 결혼한다면 집에서 나가기 싫다는
모양이야. 시골이든 도시든 상관없고, 틀어박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결혼한다는 모양이야.」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아이는,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인은 필수.


긴장하고 있는 아이는, 책을 갖고 싶으니까 정기적인 서적 구입이 필수.
예술가 기질이 있는 아이는,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는 게 조건이었다.

ㅡㅡ뭐냐, 이 좋은 조건은.

다니엘이 일어섰다.

「ㅡㅡ나, 진심으로 대시하고 올게.」

「기다려라, 다니엘! 내가 먼저다!」

싸움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다투다니 추악하구만. 그러면, 내가ㅡㅡ」

세 사람 중에, 누구에게 말을 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ㅡㅡ 마리에가 노려봤다.

「왜 그래?」

「딱히.」

고개를 돌리고, 다시 식사를 재개하는 마리에를 보고 의아해하고 있었더니ㅡㅡ 다니엘과 레이먼드가 나를 보며


깬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온, 그건 아니지.」

「맞아, 최악이라고.」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이 믿겨지질 않는다.

「왜 그러는데!」

결국, 그 날은 세 사람을 둘러싸고 그룹 내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럴 만큼, 세 사람의 조건이 좋았던 것이다.

전생ㅡㅡ 이전 세계였다면 문제아였을지도 모르는 세 명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너무 우량 물건이라서, 함정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의 여자들인 것이다.
ㅡㅡ나도 노리고 싶었어.

5 월의 다과회.

「결국, 내 다과회에 온 건 너 밖에 없나.」

준비한 차와 과자를 앞에 두고, 마리에는 눈을 반짝이고 있다.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다.

「뭐 어때서 그래. 아무도 참가하지 않는 것보다 낫잖아. 것보다, 이거 인기 좋은 가게의 과자 맞지? 한 번


먹어보고 싶었거든~」

빌린 방에서 다과회를 열고, 여자를 초대하는 게 5 월의 다과회다.


남자는 이렇게 여자를 접대하는 게, 이 학원의 상식이었다.
룩시온이 방안에서 떠올라, 나하고 마리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마스터, 준비한 차와 과자가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맞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왕자님들 다과회에 갈 거야~ 라면서 들떠서 말이야. 다른 남자들한테는 민폐 그
자체라고. 그렇게 왕자님들이 좋은 건가?」

다니엘이나 레이먼드도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기 있는 남자가 다섯 명이나 있는데다가, 다과회를 여는 회장은 드넓고, 훌륭하다고 한다.
초대받은 여자도 많으며, 그 때문에 다과회에 초대해도 거절당하는 남자가 많다.
ㅡㅡ솔직히 왕자님들하고 비교당해도 난감하다.
마리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ㅡㅡ너 말이야, 저 다섯 명하고 자기를 비교하면 안 부끄러워?」

「쓰, 쓸데없는 참견 마. 너는, 저 다섯 명으로 역 하렘을 노리고 있었잖아.」

컵을 양손에 든 마리에는, 차를 홀짝대며 마시고 있었다.

「아~ 그거 말이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

「드디어 포기했냐.」

역 하렘을 노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된 짓이 아니다.


마리에는 컵을 놓고, 케이크 하나를 먹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공략 대상인 남자는 매력이 없거든. 올리비아에게만 살랑대고, 좀 바보고.」

룩시온이 그 평가를 듣고 납득하고 있다.

『약혼자도 있는데, 주인공인 올리비에와 자주 행동을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에게는 입장도 있을 텐데


말이죠. ㅡㅡ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룩시온,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마리에가 하고 싶은 말은, 자기보다 올리비아 씨를 선택한 그 다섯 명을


용서할 수 없다, 는 거야. 매력 운운하는 건 변명이고.」

얼굴 잘생겼고, 재력도 좋고, 권력도 좋고ㅡㅡ 전부 다 갖춘 거나 마찬가지인 양반들이다.


마리에가 정색을 하면서 반론하기 시작했다.

「성격은 중요한 요소야. 저 다섯 명은, 그 점에서 글러먹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래? 비교적 평판은 좋던데.」

주변에서 아첨하고 있는 걸지 모르겠지만, 나쁜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애초에, 잘 생각해 보면 사귀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다구. 들었어? 브래드의 다과회 회장은 왕도에 있는 정원을
전세낸 거래.」

「아~ 게임에서 그런 식이었지.」

「그거, 게임이라면 인정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면 좀 아니지 않아? 대체 다과회 한 번에, 얼마를 쓰는 건지.」

금전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면, 얘도 나처럼 서민이란 걸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ㅡㅡ.

「참고로 말하는 거지만, 지금 네가 먹고 있는 과자나 차ㅡㅡ 모두 합치면 금액이 꽤 나온다구.」

이 세상의 과자는 꽤 비싸지.


내가 준비한 과자도, 장인에게 손수 만들게 한 거라 가격은 꽤 높다.
그 말을 듣자, 마리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렇게 비싸!?」

「인기 좋은 가게의 장인에게, 특별 주문을 넣어서 만들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

마리에는 「이만큼이나 있으면, 속옷하고 양말을 얼마나 살 수 있는 걸까.」 라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속옷이나 양말에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ㅡㅡ나, 나는, 성장이 멈췄으니까, 계속 같은 걸 쓰고 있어서ㅡㅡ 그게ㅡㅡ 양말에 구멍이 나더라도, 새로


사서 바꿔 신을 수가 없거든.」

마리에는 부끄러운 듯이 굴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너, 너 말이야ㅡㅡ 먼저 말하라고!」

「이렇게 부끄러운 걸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빡센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얘도 필사적이었던 거겠지.

「너는 성장하지 않으니까 새로 사서 바꿀 필요가 없다는 말을 가족에게 들은 내 마음을 알겠냐아아아!」


흥분하는 마리에를 진정시킨다.

「아, 알겠으니까 진정해. 다음에 거리로 나가서 쇼핑하러 가자. 이, 일단, 필요한 물건만이라도 빨리 사자.」

「돈이 없다구. 이제 곧, 모험 파트ㅡㅡ 아니지.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니까, 그때 벌 생각이야. 그러니까,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야지.」

룩시온이 마리에를 솔직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 녀석, 마리에에게 무르지 않나?

『없다면 스스로 번다. 훌륭한 정신입니다. 쉬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점도 높게 평가합니다.』

「어? 그래? 이 녀석, 가난뱅이 신세에서 탈출하려고, 역 하렘을 노리던 여자잖아.」

『ㅡㅡ마스터는, 좀 더 마리에를 본받으셔야 겠네요.』

나보고 역 하렘이라도 노리란 말인가?


남자라면 하렘이지만ㅡㅡ 이 세계에서 하렘ㅡㅡ 그건 좀 아니지.

누나 같은 여자랑 결혼하느니, 독신으로 사는 게 낫다.


애초에, 독신이라는 건 디메리트가 너무 많아서,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억울하다.
마리에가 어두운 표정으로 투덜대면서ㅡㅡ.

「최소한 필요한 물건 정도는 살 수 있을 만큼 노력해야지. ㅡㅡ나,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매일


던전에서 돈을 벌 거야. 독립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거든.」

ㅡㅡ이 녀석, 진심으로 매일 던전에 도전할 것 같구만.

「필요한 것 정도는 사 줄 테니까, 던전에 매일 들어가거나 하는 바보짓은 하지 마라.」

사 준다고 말하자, 마리에가 양손을 쥐고 미소를 짓는다.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약삭빠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도 돼!?」

「다 큰 여자애가, 구멍 뚫린 양말을 신는다니 너무 안쓰럽잖아. 그 정도 돈은 내 줄게.」

룩시온이 나를 보면서,

『어라, 쑥쓰러운 걸 숨기시려고 그러시나요? 솔직하게 마리에가 불쌍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ㅡㅡ시끄러워.」

마리에는 불안한 요소가 하나 사라진 덕분에, 그대로 미소 지은 채로 차와 과자를 즐기고 있었다.


자, 그 뒷일이지만ㅡㅡ 엑스트라에게 이렇다 할 만한 큰 이벤트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평범하게 학생 생활을 보내고, 평범하게 던전에 도전하여 다과회 비용을 버는ㅡㅡ 그런 나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더니, 어느새 한 학기가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과회를 열어도 매번 얼굴을 비추는 건 마리에 뿐이다.


가끔씩, 차녀인 제나가 놀리러 오는 정도다.
ㅡㅡ오늘처럼 말이지.

「바보 동생, 너 정말로 마리에랑 결혼할 거야?」

「뭐?」

추가로 차를 준비하고 있는 내게, 제나는 흥미없다는 듯이 얘기를 던져온다.

「매번 쟤를 다과회에 부르고 있잖아. 오늘은 없는 모양이지만.」

「오늘은 거리에 드레스를 받으러 갔거든. 걔, 드레스가 없어서, 장기 휴가 전에 있는 파티에서 어쩔지 고민하고
있었고.」

「걔, 진짜로 가난하구나. ㅡㅡ걔 본인은 문제가 없더라도 걔네 집안은 귀찮아.」

과자를 먹으며 말하는 제나의 진의를 알 수 없었다.


마치, 내게 쐐기를 박으려고 하는 것 같다.

「쟤하고는 연인 같은 관계가 아니야. ㅡㅡ친구라고 해야 하나, 지긋지긋한 인연이 맞나?」

둘 다 전생자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보다 말이 잘 통한다.
전생에서 일본인이었던 사람의 감각은, 이 세계에서는 미묘하게 통용되지 않으니까.
제나는 나를 의심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뭐, 고생하는 건 네 몫이니까, 나는 말렸어.」

「오늘은 왜 그래? 그것보다, 누나야말로 결혼 얘기는 잘 성립됐어?」

「너랑 다르게 나는 마음대로 고를 수 있거든. 지금도 몇 명에게서 구애를 받고 있어.」

제나는 도시물이 들어서 성격도 독해졌지만, 그래도 남자들은 말을 걸어온다.


외모는ㅡㅡ 나쁘지 않은 편이지.
본가도, 내가 투자한 덕분에, 빚도 없어지고 발전 중이다.
시골의 남작가라서, 괜한 파벌 같은 거랑 상관도 없는 우량 물건이라는 모양이다.

이런 독한 여자라도 우량 물건이라니, 참 심각한 세계다.


그건 그렇다 쳐도ㅡㅡ 마리에의 친가는 문제구만.
걔가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그 얘기를 주워 들었는지 마리에의 이름으로 빚을 만들고 있었다.
범인은 마리에의 친언니라서 웃음조차 안 나온다.

장기 휴가 전의 학년별 파티.
넓은 장소에서 열리는 파티는, 무척 호화롭다.
입식 파티에다가, 나열된 건 일류 셰프들이 만든 요리다.
행사장 안은 라이브 연주가 흘러나와서, 전생에도 이만한 파티에 참가한 기억이 없다.

「이세계도 대단하구만.」

「마쟈!」

입안 가득하게 음식을 쑤셔넣은 마리에를 바라봤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드레스를 입고, 맛있게 요리를 먹고 있다.
드레스는, 어느 쪽이냐 하면 귀여운 쪽이다.

마리에의 분위기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어리게 보이고 만다.


여자애가 애써서 드레스를 입은 식으로 보여서, 참으로 흐뭇하다.
그건 그렇고,

「ㅡㅡ왜 나랑 너 둘 뿐인 거야.」

다니엘과 레이먼드도, 마리에가 소개해 준 여자와 함께 있어서 여기에는 없다.


원래대로라면, 그 두 사람과 함께 여자에게 말을 걸면서 돌아다니고 싶었는데ㅡㅡ 박정한 놈들이야.
자기들만, 얼른 상대를 찾아내서 가혹한 구혼 활동 레이스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다.
ㅡㅡ그런 건 용서 못하지.

방해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리에가 손에 접시를 들고 요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서 시선을 움직였다.
그 앞을 쫓아가보자, 거기에 있던 건 율리우스 전하와ㅡㅡ 올리비아 씨다.
교복 차림의 올리비아 씨는, 율리우스 전하 외의 남자들에게도 둘러싸여 있었다.

「미련이라도 있어?」

아직 포기하지 않았나 싶었더니만, 마리에는 고개를 저었다.

「바보야. 살고 있는 세계가 다르구나~ 싶었던 거야. 1 학기 때 여러모로 알게 됐지만, 나하고 저 다섯 명은ㅡㅡ


가치관이 맞질 않아.」

마리에에게는 놀랄 만한 사치라 해도, 저 다섯 명의 입장에서는 평범하거나 검소하다고 할 만한 수준이다.


부럽기는 한 모양이지만, 마리에는 이걸로 다행인 거라며 납득하고 있다.

「이해해 줘서 다행이야. 이걸로, 올리비아 씨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어진 거지.」

주인공인 올리비아 씨가, 다섯 명 중 누군가와 맺어지면ㅡㅡ 그걸로 세계는 구원받는다.


커다란 불안 요소는 사라지게 되는 거다.

파티 회장의 벽쪽에서, 우리 두 사람은 귀족들의 파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세계가 다르다.
이세계라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고ㅡㅡ 살고 있는 세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ㅡㅡ아.」

마리에가 목소리를 내자, 율리우스 전하에게 안젤리카 씨가 말을 걸고 있었다.


올리비아 씨를 노려 보면서,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에 화를 내는 율리우스 전하.
그 모습을 보고 마리에는ㅡㅡ.

「있지, 잘 생각해 보니까, 약혼자 앞에서 다른 여자와 끈적대며 붙어있는 건 말도 안되는 일 아니야? 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약혼자가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면 못쓰겠지.」

「거울이라도 보는 게 어때? 하지만, 그 의견에는 동의해.」

그 여성향 게임의 시나리오니까 어쩔 수가 없지.


그렇게 말해 버리면 끝이긴 하지만ㅡㅡ 확실히 심한 스토리구만.

「약혼자를 버리고, 자기를 선택하는 남자가 좋은 걸까? 여자란 잘 모르겠어.」

나는 여성의 마음을 모르는 모양이다.


마리에가 여성의 시선으로, 이 상황을 말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아이가 생기면 혼약자를 버린다, 는 건ㅡㅡ 바꿔 말하면, 더 매력적인 여자가 튀어나왔을 때,
그 애도 버린다고 공언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나였으면 극혐할 거야.」

「여자라면 동경하는 시츄에이션이잖아?」

「동경하고 현실은 다른 법이야. 일시적으로 들떠 있으니까, 착각하고 있을 뿐인 거지. 냉정해지고 나면, 이건


아니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구.」

확실히, 현실이라면 그건 어떠려나? 라고 생각은 들겠지.


본인들은 금단의 사랑! 이라고 들떠있을지도 모르지만, 주위는 흥이 깨져서 난감할 뿐이야.
그렇긴 하지만, 마리에가 말하면 개그구만.

「역 하렘을 생각하고 있던 누구 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야.」

웃어주자, 마리에가 토닥토닥하고 나를 때린다.

「뭐가!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딱히 없어. 나도 너의 의견에는 동의하니까.」

그러자ㅡㅡ 묘하게 회장 안이 조용했다.


주위를 보자, 우리들에게 시선이 쏠려 있었다.
내 근처에 숨어있는 룩시온이, 상황을 설명해 준다.

『방금 전, 율리우스와 안젤리카의 말다툼에 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전환되는 타이밍이기도 해서, 조용해진 찰나에 두 분의 대화가 막 달아오르고 있었죠.』
ㅡㅡ전부 주위에 들리고 말았다, 고.
나하고 마리에는, 식은 땀을 흘렸다.

「어, 어쩔 거야?」

마리에에게 질문을 받고, 나는ㅡㅡ 마리에의 손을 잡고 회장 안에서 도망쳤다.

「시, 실례했습니다!」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가자, 그 후에 라이브 연주가 재개되었다.


ㅡㅡ늦다고! 좀 더 분위기를 파악해!

「너, 어쩔 거야! 주목받았잖아!」

「내 탓으로 돌리지 마! 그것보다, 모든 종류의 요리를 먹지 못했거든!」

색기보다도 식욕이라니ㅡㅡ 얘는 정말 덜렁이 전생자구만.


밖으로 나오자 주위는 어두웠다.
룩시온이 외눈을 빛내며 주위를 밝혔다.
마리에는 회장을 돌아보며ㅡㅡ.

「좀 더 즐기고 싶었어.」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조금 죄책감이 북받쳐 오르려고 한다.
얘는 얘대로, 파티를 기대하고 있었으니깐 말이지.

「학교에 있으면, 파티에 나갈 기회는 많으니까 안심하라구.」

「내가 나갈 수 있는 파티 같은 건, 학교에 있는 동안에 참가할 수 있는 것 뿐이야.」

종업식 전의 파티가 끝나면, 하기 휴가가 기다리고 있다.

「ㅡㅡ그것보다, 너 여름 휴가 예정은 어떻게 돼? 본가로 돌아가는 거야?」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비참했다.

「학교에 남아서 돈을 벌래. 그리고, 돈을 보내라고 편지가 왔어. 가족 전원에게서.」

진짜, 너무 비참해서 말도 안 나온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견딜 수 없어져서 마리에에게 권했다.

「도시는 아니지만, 우리 집에 올래?」

「너희 집?」

「장기 휴가에 내 영지로 돌아갈 예정이야. 거기에는 말이야ㅡㅡ 온천이 있어.」

「온천!」
갑자기 기뻐하는 마리에를 보고,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야! ㅡㅡ쌀도 있어.」

「싸아아아알!」

엄청 놀라며 기뻐하는 마리에는, 그 자리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전생자 입장에서는, 원래 세계의 주식을 먹기는 어렵다.
그게 가능해지자, 엄청 기뻐하는 것이었다.

「된장은! 간장은!?」

「아니, 거기까진 아직 힘들어.」

그 말을 듣자 「에~」 라며 아쉬워하는 마리에를 보고, 룩시온이 내 옆에서 궁시렁거렸다.

『마스터가 천연물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제가 준비했겠지만요.』

영양소라든지 맛이 같은, 별개의 무언가.


이 녀석은 그걸 준비할 수 있지만, 나는 자연산이 좋다.

「나는 자연산을 먹고 싶어.」 「나도 자연산이 좋아.」

의견이 겹치자, 우리는 얼굴을 마주봤다.


좀 쑥쓰러워져서, 서로 고개를 돌렸다.
룩시온은 『그러신가요. 그러면 앞으로 1 년은 기다려 주셔야 해요.』 라고 말했다.

이 녀석 대단하구만.
앞으로 1 년이면 된장도 간장도 준비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ㅡㅡ좀 더 빨리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마리에는 장기 휴가가 기대된다고 까불다가ㅡㅡ 넘어졌다.

「야, 괜찮아?」

「ㅡㅡ굽 높은 구두를 신는 게 오랜만이라, 다리가 아파.」

무리해서 하이힐 같은 걸 사니깐 그렇지.


스스로 발목에 치료 마법을 쓰고 있는 마리에를 보고, 옛 생각을 떠올렸다.

전생의 여동생이,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며 울면서 움직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방치하고 돌아갔지만, 잠시 후에 걱정이 되어서 돌아갔었다.


ㅡㅡ그 녀석, 지쳐서 자고 있었지.
그걸 떠올리고, 치료가 끝난 마리에에게 등을 돌리고 숙였다.

「자, 바래다 줄 테니까 업혀.」

「눈치가 빠르네. 여자 기숙사까지 가 줘.」


너는 얼마나 내 여동생을 닮은 거냐?
먼저 감사 인사를 해.

마리에는, 리온에게 업혀서 옛날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두운 학교내의 길을, 룩시온이 비춰주고 있다.

(옛날 생각 난다. 그러고 보면ㅡㅡ 오빠도 이렇게 어부바해 줬었지.)

그 열받는 오빠를 떠올린다.


자기 때문에 죽어버리고 난 뒤로,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전생의 일이 떠올라서, 리온의 등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야, 아파.」

불평하는 리온이, 너무나 오빠를 닮은 게 화가 나서ㅡㅡ 기뻤다.

「불평하지 말고 빨리 가.」

눈물이 흘러나오고, 부끄러워져서 리온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결국, 나는 계속 오빠가 없으면 글러먹은 인간이었지.)

오빠가 죽은 뒤로 자기 인생은 미쳐 돌아갔다.


입이 험하고, 성격도ㅡㅡ 나빴지만, 근본은 다정한 오빠였다.
그런 오빠와 리온이 겹쳐 보인다.
하지만, 마리에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빠도 전생 같은 걸 한 걸까? ㅡㅡ이번에는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

젊은 나이에 죽어버린 오빠를 떠올리며,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까 달이 아름다웠다.

「저기, 너희 집은 어떤 곳이야?」

「시골이야. 한가하지만, 나는 좋아해.」

「너는, 도시 같은 곳을 싫어할 것 같긴 해.」

「난잡한 걸 싫어하거든. 바쁘게 일하고 싶지 않아.」

「우와, 글러먹은 인간이 하는 말이잖아.」

(오빠도 그런 얘기를 했었지.)

리온의 등에서, 마리에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저 네 명에게 말을 걸었을 때도, 딱히 내키진 않았었고. 나에게 왕자님 일행은 어울리지가 않지.)
리온과 함께 율리우스 말고 다른 사람들을 노려봤지만, 마음 속에서는 아무리 봐도 괜찮다는 느낌이 오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이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ㅡㅡ아~, 나는 남자 취향이 안좋았던 거구나. 설마, 오빠 같은 사람을 좋아했었다니 두 번째 인생에 와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야.)

리온과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걸 생각하는 마리에였다.

종업식이 무사하게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항구에는 아버지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나는 제시간에 나오지 않는 마리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녀석, 지각을 하셨구만.」

닉스, 제나, 두 사람 다 이미 항구로 가고 있었다.


룩시온은 마리에가 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고 있다.

『ㅡㅡ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런 걸까요?』

「여자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혹은, 늦잠을 잔 걸까요?』

「가능성 있겠다.」

ㅡㅡ하지만, 아침부터 묘하게 가슴이 술렁였다.


어떻게 해도 진정되지가 않았다.

『마스터, 데리러 가실 겁니까?』

「그래야겠지. 하지만, 여자 기숙사에는 못 들어가는데.」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우리 눈앞을 여자들이 사복 차림으로 지나갔다.


다만, 그 대화 내용이 신경쓰이는 내용이었다.

「꼴 좋았지.」

「뻔뻔스러웠으니깐 말이야. 속이 후련해.」

「파티에서 그렇게 눈에 띈 게 잘못이지.」

심술궂어 보이는 여자 3 인조에게는, 전용 하인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대화 내용을 듣고, 나쁜 예감이 들었다.

「파티? 속이 후련해? ㅡㅡ룩시온, 마리에를 찾아내.」


내가 달려나가자, 룩시온이 먼저 여자 기숙사 쪽으로 향해 갔다.
ㅡㅡ설마, 걔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잠결에 아직도 머리가 뻗쳐있는 마리에는, 여행가방을 들고 달리고 있었다.

「늦잠 잤다아아아!」

어제는 긴장해서 잠에 들질 못했던 것이다.


리온의 가족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또 자기 집안에서 또 뭔가 저지르진 않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ㅡㅡ그리고, 묘하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덕분에 잠에 든 건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일어났더니 약속 시간이 되기 조금 전인 시간.

「하웃!」

엄청 급하게 준비를 하고 방에서 뛰어나온 마리에는, 길모퉁이에서 여학생과 부딪쳤다.


쓰러진 마리에는 곧장 일어섰다.

「아야야야ㅡㅡ 아, 괜찮아!? 미안해. 서두르고 있었어서ㅡㅡ 어?」

부딪친 상대에게 손을 내밀자, 그 여학생의 눈을 바라본 마리에는 몹시 무서워졌다.


어두운 눈동자를 한 여학생은ㅡㅡ 올리비아였다.

올리비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서고, 마리에를 무시한 채로 걸어서 가버렸다.


마리에는, 자기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뭐, 뭐야. 뭐냐고.」

ㅡㅡ엄청 무서웠다.
평소에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미지였던 올리비아가, 무표정에다가 엄청 탁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 점을 마리에는 무서워 했다.

(왜 저러지. 마치 모든 걸 미워하는 것 같은ㅡㅡ 저런 눈을 한 애는 몇 명 정도 봤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올리비아를 쫓아가려고 했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자ㅡㅡ

『어라, 늦잠을 자신 거였나요.』

「흐왁! 루, 룩시온이잖아. 놀래키지 마.」

초조해 하던 마리에는, 땀을 닦으며 여행가방을 주웠다.

『마스터가 걱정하고 계셨어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고요.』


「미, 미안해. 어제는 잠이 잘 안 왔거든. 일어나니까 벌써 이런 시간이었고ㅡㅡ」

핑계를 대자, 룩시온이 외눈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동작을 보여줬다.

『문제가 없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면, 가볼까요?』

「으, 응.」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린 마리에는, 아무래도 올리비아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친하지도 않은 자기가 말을 걸어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리온 일행이 기다리고 있기도
해서ㅡㅡ 올리비아를 뒤쫓지 않았다.

「늦잠을 자다니 니가 애냐!」

「미, 미안해.」

마리에가 지각한 이유가 늦잠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정말로 안심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애초에 내 감 같은 건 썩 맞지도 않는다.
빗나가서 다행이다.

둘이 함께 서둘러서 항구로 향하는 비행선 승강장으로 향한다.


걸으면서, 나는 마리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배가 출발한 거야?」

아버지의 배가 출항했는지 걱정하는 모양이다.

「정기선이 아니라서, 융통성이 있거든. 불평은 듣겠지만.」

『두고 갔더라도 괜찮습니다. 제 펄 토너로 두 분을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펄 토너는 눈에 띄잖아. 너무 크게 만들었어.」

『마스터의 지시였으니까요. 저는 나쁘지 않답니다.』

「그러십니까. 그랬었구만요.」

룩시온과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였지만, 아까 전부터 묘하게 가슴이 술렁거리며 진정되지가 않았다.

「ㅡㅡ마리에,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걱정해서 마리에에게 확인하지만, 본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뭐가 대체 뭔데?」

「그러니까ㅡㅡ 아니다, 역시 됐다.」


「잠깐만! 신경 쓰이니까 빨리 말해 줘!」

묘하게 가슴이 술렁였다고 말해도, 얘는 그저 웃겠지.


나는 룩시온을 바라봤다.

「룩시온, 어제 뭔가 특이한 일 있었어?」

『제가 이 학교의 모든 걸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명령은 받지 않았었기에,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받는 놈일세.
마리에는 룩시온을 유감스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인공지능이라는 건, 좀 더 우수하다고 생각했는데. 너, 혹시 좀 그런 애야?」

마리에의 말에 불이 붙었는지, 룩시온이 반박한다.

『흘려들을 수가 없군요. 학교에 딱히 관심도 없는 마스터가, 저에게 정보 수집을 명령하지 않은 게 원인입니다.


명령도 받지 않았는데, 그쪽 분야로 일하리라 기대하는 건 대체 무슨 일인가요? 애초에, 저도 한가하지 않아요.
본체는 지금도 마스터의 본가에서 공장을 세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구요.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우수하다는 증거로서ㅡㅡ』

열렬하게 이야기하는 룩시온을 무시하고, 마리에는 공장 얘기에 관심을 드러냈다.

「공장을 갖고 있어!? 어, 혹시 부자야!?」

「장래적으로는, 말이야. 수입원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좋겠다~」

나도 마리에도, 룩시온의 설명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룩시온은 말했다.

『ㅡㅡ두 분 다 성격이 닮았네요. 제 설명을 흘려듣는 점도 판박이에요.』

「어디가 닮았다고!?」 「어디가 닮았는데!?」

마리에와 또 말이 겹쳐버리고 말았다.


그게 쑥쓰럽고ㅡㅡ 그리고 웃겼다.
둘이서 함께 웃었다.

「리온 집에 가면, 일단 쌀을 먹고 싶어. 그리고ㅡㅡ 센베이!」

「준비시켜 두긴 하겠지만, 너는 뭐라 해야 하나, 아재 취향이구나.」

「뭐 어때서 그래. 바삭한 것도 맛있고, 조금 눅눅해진 것도 맛있다구.」

「맛있긴 한데, 다른 것도 있잖아.」

「떡?」
센베이나 떡을 희망한다니ㅡㅡ.
아니, 마음은 이해하지만 말이야.

나는 묘하게 술렁이던 가슴도 진정되어서, 안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좋은 예감은 기분 탓이었던 것 같다.
대화가 무르익기 시작하자, 항구로 향하는 소형 비행선 승강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승강장에서 비행선이 출발하기 전이었던 모양이다.

「오, 마침 와있네. 저기 타자.」

「창가 쪽 자리 앉을래!」

달려나가는 마리에를 보며, 나는 기운 넘치네ㅡㅡ 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여동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여동생 같은 애하고 인연이 있는 건가?

문득, 신경이 쓰여서 왔던 길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만다.
오늘 아침에 묘하게 가슴이 술렁이기도 했고ㅡㅡ 이걸로 괜찮은 걸까 싶어서 왔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터, 왜 그러시나요?』

「ㅡㅡ아무것도 아니야.」

마리에가 비행선에 올라타서, 이쪽에 크게 손을 흔들고 있다.

「쟤는 오늘도 기운차구만.」

뭔가 실수한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ㅡㅡ 분명 기분 탓일 거야.

『마리에 루트 2』 ①

때는 학교 2 학기.
아직 1 학년인 【마리에・포우・라판】은, ㅡㅡ신전이라고 불리는 종교 시설에 있었다.
전생의 교회를 연상케 하는 그 장소에서, 마리에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베일 너머로 스테인드 글라스를 올려 보니까, 쏟아져 내려온 햇빛이 비쳐서 무척 아름다웠다.


동경하면서도, 전생에선 마지막까지 입을 수 없었던 웨딩 드레스.
그리고, 신전에는 자기나 상대방의 친족들이 열석해 있었다.
전쟁에서 이루지 못한 꿈이었던 결혼식이 한창인 때였다.

(ㅡㅡ왜 이렇게 되는 거야.)


하지만, 마리에의 기분은ㅡㅡ 최악이었다.
학교에 입학한지 1 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렇게 결혼식을 거행하게 됐다.
약혼이 아니라, 학교를 퇴학해서 치르는 결혼이다.

살며시 긴 의자에 앉아있는 가족을 보니까, 제법 기뻐 보이는 듯했다.


빈말이라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현생의 가족들이, 마리에의 결혼을 반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현생의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쓸모없는 막내딸 한 명이, 제법 비싸게 팔렸군.」

현생의 어머니도 기쁜 듯하다.

「그러게. 이걸로 우리 집안 빚도 없어질 거야.」

ㅡㅡ마리에는 가족들에게 팔려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자식들, 절대로 용서 못해!)

어금니를 깨물고, 분노에 몸을 떠는 마리에 곁에 신랑이 걸어오고 있다.


그런 신랑의 모습을 보고, 마리에는 마음 속으로 욕을 했다.

(ㅡㅡ이 자식, 왜 더럽게 싫어하는 표정인 건데!)

마리에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곁으로 다가왔다.


연령은 서른을 넘기고, 몸도 성해보이지 않는 뚱뚱한 남자는 마리에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왜 내가 이런 땅딸보랑 결혼해야 하는 거냐. 내 취향은 좀 더 글래머러스한 여자인데.」

불만이라는 듯한 태도에다가, 이런 말투까지 쓰는 것이었다.


마리에는 속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니 집안이 제안한 결혼이잖냐아아아!)

마리에는 알맹이는 제쳐두고, 육체만 따지면 아직 16 세다.


이쪽 세계에서는 성인으로 인정받아서, 결혼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리에 입장에서 보자면ㅡㅡ 즐거운 학생 생활을 빼앗기고,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의 집에 억지로
시집가게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가족에게 팔려버린 결과라는 것 때문에 웃음도 안 나온다.
도저히 납득 가능한 결혼이 아니었다.

(개소리 말라고! 어째서 "그 여성향 게임" 세계에서, 이딴ㅡㅡ 이딴 꿈도 희망도 없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건데.
나는 좀 더ㅡㅡ 제대로 좋아하는 사람하고ㅡㅡ)

그 여성향 게임의 세계에 전생한 뒤, 마리에는 계속 고생해 왔다.


언젠가 학교에 다니는 것만을 꿈꾸며, 치료 마법 실력을 연마해 왔다.
그 덕분에, 몸의 성장조차 희생됐을 정도였다.
가족에게 알려지면, 분명 좋을 대로 이용되고 말 게 뻔하기에 몰래 치료 마법을 습득했다.
전생의 가족들하고 비교하면, 정말 막되먹은 인간들이다.
여하튼, 빚이 너무 많이 불어나서ㅡㅡ 채무를 탕감하는 대신, 마리에를 부잣집에 팔아넘긴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힘들게 학교에 입학해서, 예정과는 달랐지만, 나름대로 재밌게
생활해 왔는데!)

신부ㅡㅡ 그런 존재가, 두 사람이 함께 서게 되자 결혼식을 개시했다.

「그러면, 결혼식을 시작해 볼까요.」

신랑은 빨리 끝났으면 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부터 마리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있는 건ㅡㅡ 마리에의 핏줄 뿐이었다.

상대방의 집안은, 흔히 말하는 벼락출세라고 불리는 집안이다.


그리고, 출세한 방법도 특수해서, 다른 귀족들에게는 미움받는 집안이기도 했다.
그런 집안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귀족의 피를 얻고 싶어하고 있었다.
딱히 마리에가 아니라도 괜찮았던 것이다.

「빨리 끝내달라고.」

이딴 상대에게 시집을 가면 어떻게 될까?


마리에는 쉽게 예상하고 말았다.

분명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를 낳으면, 역할은 끝났다면서 냉대받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열심히 하자고ㅡㅡ 두 번째 인생은, 행복해지자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마리에는 전생의 오빠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믿음직한 오빠였다.

(ㅡㅡ도와줘, 오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 그리고 마리에는 왜 이렇게 되고 만 것인지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여름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을 무렵이다.


나, 【리온・포우・발트하르트】는, 집으로 돌아와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 쪽에 떠다니는 파트너 룩시온은, 외눈 같이 생긴 붉은 렌즈로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는 콜린과ㅡㅡ


마리에를 보고 있다.
마리에가 콜린에게 화를 내면서 쫓아다니고 있었다.

「기다려라, 쨔사아아아!」
콜린은 웃으면서 달리고 있다.

「싫~거든.」

마리에가 내 남동생을 쫓아다니고 있는데, 그 이유는 콜린이 만든 거겠지.

「또 싸운 거야?」

어이없어하는 내게, 룩시온이 사정을 설명해 준다.

『네, 동생분이 마리에를 놀린 게 원인입니다.』

아무래도 콜린은 마리에를 나이가 비슷한 누나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연상답게 행동하는 마리에를 놀리며 놀고 있었다.
그만하면 좋을 텐데, 마리에도 일일이 화를 내니까 콜린이 괜히 더 재밌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저택에서 아버지가 나와서 콜린의 머리에 주먹으로 꿀밤을 먹이셨다.

「아야!」

「콜린, 마리에 양을 놀리면 못쓴다!」

콜린을 쫓아다니던 마리에가, 아버지의 태도에 당황한다.

「저, 저기, 아저씨, 그렇께까지 하지 않으셔도ㅡㅡ」

아버지가 마리에를 보고 미안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셨다.

「미안하게 됐어, 마리에 양. 콜린도 싫어서 저러는 게 아니야. 미워하지 않길 바라네.」

「아, 네.」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고 있던 콜린이, 저택 안으로 도망치자 그 대신에 닉스ㅡㅡ 작은 형이 나온다.


내 곁으로 오더니, 그대로 말을 걸어왔다.

「또 콜린이 마리에 양을 놀리고 있었어?」

「맞아, 둘 다 질리지도 않지. 꼭 나이 비슷한 남매 같아.」

실실 웃으며 말하자, 작은 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형수랑 도련님 사이인데, 딱히 다를 것도 없지.」

「ㅡㅡ뭐?」

그 대답에 놀라자, 작은 형도 놀랐다.

「어?」

「아니, 그게ㅡㅡ 뭐? 왜 마리에가 형수님이 되는 건데?」

「ㅡㅡ너,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진심으로 놀라는 작은 형을 보고, 나도 난감해진다.

「아니, 그게ㅡㅡ」

「그게, 는 개뿔이! 집까지 데려와서, 같이 한 달도 넘게 살았잖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미 약혼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정식으로 약혼한 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면 여자가 남자 집에서 여름휴가를 통째로 보낸다는 건ㅡㅡ
확실히 약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아니라니까! 마리에는 그게ㅡㅡ 집에 못 돌아가니까.」

마리에의 집안 말이지만, 이야기를 듣자하니 심각한 집안인 모양이다.


그래서 마리에가 여름방학에 집에 돌아가기 싫다고 해서, 내 집으로 데려온 거였다.
당연하지만 손 같은 건 대지도 않았다.

집 근처에 있는 내 부유섬에는, 온천과 밭ㅡㅡ 쌀 등을 재배하고 있다.


온천에 들어갔다가, 오랜만에 일본식을 둘이서 먹으며 즐거워하기도 했었다.

마리에도 나도 똑같은 전생자.


공통적인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것에 불과하다.
애초에, 마리에는 미남을 좋아한다.
나는 미남이냐 하면 그렇지 않으니까, 걔 취향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거유를 사랑한다.
마리에는 평평하니까 논외다.

ㅡㅡ슬플 정도로, 서로의 취향과는 다르다.


작은 형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렇게 착한 애, 앞으로 찾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는, 너하고 마리에 양이
결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ㅡㅡ묘하게 우리 부모님이, 마리에에게 상냥하게 대해줬던 건 그것 때문이었나?


오해를 풀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
작은 형이 한숨을 쉬었다.

「너는 좋겠다. 학교에서 바로 상대를 찾아냈으니까. 나 같은 놈은, 상대를 못 찾아서 큰일인데 말이지.」

작은 형도 구혼 활동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와 다르게 보통 클래스에 재적하고 있으니까, 구혼 활동은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ㅡㅡ 아무래도,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형이 있는 클래스라면, 상대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작은 형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보통 클래스 여자들도 도시에 살고 싶어 하거든. 연줄이 있어서, 왕도나 본토에서 살 수 있는 상대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나 같은 놈은 안전빵 취급도 못 받아.」

작은 형도 고생하는 모양이다.
나도 뭔가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ㅡㅡ 지금은 내 일만으로도 힘에 부쳐서 힘들겠구만.

「그보다, 리온. 너희들도 내일이면 학교로 돌아가잖아?」

「그럴 생각이야.」

또, 학교에서 구혼 활동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건 작은 형도 마찬가지였다.
한숨을 내쉬며, 매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올해로 졸업인데도, 아직도 상대를 못 찾았어. 너처럼, 요령 좋게 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ㅡㅡ형.」

「야, 그만둬. 불쌍한 놈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라. 동생에게 동정당하면 울고 싶어진다고.」

정말로, 어째서 이 세계는 남자에게 엄격한 걸까?


아니, 엑스트라에게 엄격한, 건가?
우리들과 다르게 그 여성향 게임의 주역인 올리비아 씨나 공략 대상인 남자들은, 지금쯤 아무런 고민도 없이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겠지.

ㅡㅡ부럽기 그지없다.

그 무렵.
학교의 여자 기숙사에서는, 침입당해서 난장판이 된 방안에서 올리비아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껴안고 떨고 있다.
방은 커튼을 완전히 닫아서 어두컴컴했다.

「괜찮아ㅡㅡ 나는 아직 괜찮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올리비아의 눈밑에는 다크서클이 껴있다.


손에는 고향에서 온 편지가 쥐어져 있다.
가족에게 온 편지다.
올리비아에게 있어서는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특대생인 올리비아지만, 학교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돈에 여유가 없다.


그래서, 여름방학이라 해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
기숙사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며, 조금이라도 주위에 따라갈 수 있도록 공부에만 전념하는 매일을 보내야ㅡㅡ 했을
터였다.

허나, 현실은 비정하다.


방에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히익」

비명이 나올 뻔해서 입을 손으로 억누르자, 직원이 말을 걸어 온다.

『ㅡㅡ올리비아 씨, 왕세자 전하가 기숙사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준비해 주십시오.』

그 말만 한 뒤, 직원은 갔다.
올리비아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ㅡㅡ왜 내버려두지를 않는 거야.」

여름방학에, 율리우스를 시작으로 귀공자들이, 빈번하게 올리비아를 초대하러 여자 기숙사까지 찾아오는 것이었다.
다섯 명이 서로 엇갈려서 오는 바람에, 올리비아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원에 여학생이 적은 지금은, 올리비아에게 정말 너무나도 귀중한 시간이다.


그것을 다섯 명에게 빼앗겨 가고 있다.

「나는 좀 더 공부하고 싶은데.」

허나, 올리비아의 입장으로는, 율리우스의 권유를 거절할 수가 없다.


상대가 왕세자란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율리우스의 권유를 받는다면 다른 남자ㅡㅡ 귀공자들의 권유도 거절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다섯 명과 친하게 지내자, 학교의 여자들에게서는 원망을 받았다.

「어쩌면 좋은 건데. 어쩌면.」

솔직하게 민폐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말을 해버리면 올리비아가 있을 곳이 없어지고 만다.


상대는 왕세자 전하ㅡㅡ 이 나라의 차기 왕이다.

자기 뿐만이 아니라, 고향에 있는 가족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올리비아는 일어서서 준비를 마치고, 율리우스에게 가는 것이었다.

2 학기가 시작되면, 엑스트라의 생활도 꽤나 분주해진다.


학교 행사만 하더라도, 학원제와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원제에 어떤 걸로 나갈지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문제인 건ㅡㅡ.

「마리에 님, 저희한테도 여자를 소개해 주세요!」

ㅡㅡ가난뱅이 남작 그룹 남자들이, 마리에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리에는ㅡㅡ.

「어머? 공짜로, 해달라는 말은 안하겠지?」

ㅡㅡ의자에 앉아서 아주 까불대고 있다.


팔과 다리를 꼬고,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고 있다.
얘한테는 겸허라는 단어를 알려 주고 싶어진다.
리더격인 남자가 마리에와 교섭하러 나섰는데, 그 뒤에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1 학년부터 3 학년까지ㅡㅡ 거의 전원이 모여 있다.

「물론입니다!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까ㅡㅡ 여자를ㅡㅡ 멋진 여자분들을


소개시켜 주세요!」

「어떻게 할까~」

전에, 마리에는 우리들에게 조금 문제가 있는 여자들을 소개시켜 줬다.


전생의 세계ㅡㅡ 일본이었다면, 좀 문제가 있는 애들이다.
은둔형 외톨이, 게으름뱅이, 취미 말고는 관심도 없는 애, 라는 멤버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그 정도의 문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멋진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 같은 가난뱅이 남작가의 후계자들에게 있어선, 마리에가 소개시켜 주는 여자란 건 여신님들을 뜻하는 거다.
아니, 너무 과장했나? 어쨌든 우량 물건이란 건 분명하다.
그야말로, 결투를 벌여서라도 사귀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여자들인 것이다.

설령, 틀어박혀서 수업이나 학교 행사에 참가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귀찮다는 이유로, 빈둥거리며 지낸다고 해도 괜찮다.
취미 말고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사람의 이름조차 외우지 않더라도 괜찮은 거다.

그 정도는, 평범한 여자들이 너무 심각하니까 개성으로 넘길 수 있다.


그런 문제가 있는ㅡㅡ 아니, 개성적인 여자들과 친한 마리에는, 그 중개료를 남자들에게 요구한다.

「그러면ㅡㅡ 학생 식당의 푸딩을 매일 준비해 줄래? 점심으로 매일 푸딩을 먹고 싶거든.」

「네!?」

학생 식당의 푸딩이지만, 학교는 귀족들의 배움터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학식으로 판매하고 있는 푸딩도 엄청나게 호화롭다.
현대 일본으로 비유하자면, 1 개에 천엔은 할 법한 학식의 인기 간식인 것이다.

참고로, 학생 식당은 기본적으로 무료로 이용 가능하지만, 메뉴의 변경이나 사이드 메뉴 추가는 별도 요금이
부과된다.
나는 마리에를 보고 어이가 없어졌다.

「사람을 소개해주는 것만으로 푸딩이라니. 게다가 매일이냐고.」

마리에도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그, 그치만, 먹고 싶은걸. 아, 알았어. 그러면, 일주일에 세 번이면 돼.」

그 말을 들은 남학생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 세 번이요!?」

마리에도 놀랐고, 바로 양보해 버리고 말았다.


「그, 그러면ㅡㅡ 일주일에 한 번으로.」

남자들이 둥글게 모여서 의논하기 시작한다.

「야, 이거 진짜 푸딩을 준비하면 되는 거 맞아? 왠지, 요구 사항이 점점 하향되는데?」

「멍청아! 분명 뭔가를 뜻하는 은어일 거야. 그게 아니라면ㅡㅡ 보수가 너무 싸잖아.」

「분명 함정 아닐까? 아, 아니면, 더는 남아있는 여자가 없다든지?」

남자들의 말을 들어 보니까, 마리에가 제시한 보수가 너무 적어서 의심을 품은 모양이다.


예를 들자면ㅡㅡ 명품인 고급 백이나 옷을 요구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편의점 푸딩을 내놓으란 소리를 들은
감각 같은 걸까?

너무 싸서 불안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평소에 여자들에게 얼마나 돈을 바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ㅡㅡ남자란 슬프구만.
리더가 마리에를 돌아봤다.

「마리에 님ㅡㅡ 저희가 무지해서 면목이 없습니다만, 푸딩이란 뭐를 뜻하는 은어입니까?」

마리에는 굳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 내가 이상한 걸 요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학생 식당의 푸딩을 준비하란 소리야! 다른 뜻이 뭐가
있는데!」

「엑!!」

남자들이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교실.

2 학기가 되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다니엘과 레이먼드는 웃고 있었다.

「푸딩을 은어로 착각했다고? 선배들도 바보 같다.」

다니엘이 그렇게 말하자, 레이먼드는 「바보 취급하면 안 돼.」 라면서 다그쳤다.

「그만큼 필사적이란 뜻이야. 그보다, 올해 신입생은 운이 좋아. 마리에 씨가 있어서, 우리들도 여자와 만날
기회가 있으니까.」

여자 기숙사에서 잘 나오지 않는 문제아들.


마리에가 없었다면, 만날 수도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마리에의 존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존재였다.
나는 푸념을 내뱉었다.
「나도 소개시켜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말을 했더니, 주위의 반응이 엄청 미묘해졌다.


실제로 다니엘과 레이먼드가,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ㅡㅡ리온,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너 혹시 바보냐?」

「리온은 진심으로 반성해야 해. 반성하지 않을 거라면, 밤길 조심하도록 하고.」

다들 이런 반응을 보여준다.

「너희들, 나하고 마리에가 사귄다고 생각하는 거냐?」

다니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사귀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잖아. 여름 방학에는, 마리에 씨하고 같이 집에서 보냈지? 이건 그냥, 약혼한
거나 마찬가지잖냐.」

레이먼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식으로 발표는 안했으니까, 약혼 일보 직전인 걸까? 정말 부러워.」

그런 말을 하는 레이몬드를 다니엘이 노려본다.

「야, 레이먼드. 너도 전에 소개받은 여자하고 사귄다고 들었는데? 설마, 나보다 앞질러 가려는 건 아니겠지?」

「다니엘ㅡㅡ 미안해.」

기쁜 듯이 사과하는 레이먼드의 멱살을 다니엘이 두 손으로 붙잡아 들어올렸다.

「너도냐아아아!」

소란스러운 놈들일세.
나는 어이없어하며 보고 있었는데, 교실에 마리에가 찾아왔다.
손에는 전단지가 쥐어져 있었다.

「들어봐, 들어봐! 학원제 말인데, 세 번째 날에는 경기대회가 열려! 거기서 상위에 입상하면, 상금이
나온대!」

눈동자를 엄청나게 반짝거리면서, 되게 즐거워하는 마리에였다.


상금에 눈이 멀었다.
정말 욕망에 충실한 애구만.

「출전할 거야?」

물어보자, 마리에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안 돼. 집안이라든지 역학 관계 때문에 선수가 정해져 있거든. 애초에, 여자가 참가하는 경기가 적기도
하고.」

대회는 남자가 메인이다.


메인인 이유? 구혼 활동 때문이지.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활약해야만 한다.

이유는ㅡㅡ 여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여성향 게임에서는, 공략 대상 남자들이 활약하는 이벤트다.
주인공님께서도 활약하셨던가?

「ㅡㅡ그래서 말인데, 리온은 여기 출전해보지 않을래?」

마리에가 보여 준 전단지에는, 에어 바이크 레이스 시합에 대해 써져 있었다.

「에어 바이크 레이스? 무리야.」

「왜! 이 레이스 상금 엄청 많다구!」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건, 출전할 선수 자리를 놓고 남자들 사이에서 쟁탈전이 벌어지기 마련이야. 여자도
집안이니 뭐니 여러가지가 있듯이, 우리들도 힘들거든.」

이전 세계에 있었던 뭐시기한 스쿨 카스트 같은 게 아니라, 진짜배기 스쿨 카스트가 존재하고 있다.


애초에, 카스트ㅡㅡ 계급제가 리얼하게 존재하고 있는 거다.
귀족과 평민 뿐만이 아니라, 귀족 내에서도 계급이 있다.

출장 선수를 결장하는 것도, 본가의 지위가 영향을 미친다.


실력만 가지고는 안되는 거다.
마리에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기, 룩시온을 써서 출전하면 우승도 가능할 거 아냐?」

「ㅡㅡ너, 그 녀석에 대해 모르는구나.」

그 녀석이라면 분명 『돈? ㅡㅡ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같은 말을 할 게 뻔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우리 둘에게만 들리도록 룩시온이 대답을 했다.

『조건을 확인했습니다. 경기대회에 참가, 그리고 우승이죠? 그러면, 지금부터 유력 선수들은 컨디션 불량이
되어 주셔야겠고, 당일의 참가 선수들은 불행한 사고에ㅡㅡ』

내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 불행한 사고는 대체 뭔데!?
마리에도 룩시온에게 의지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건지, 전단지를 보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모처럼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나를 출전시키고, 너도 한몫 받으려고 하는 건데? 너 바보냐?」

「출전할 거라면 서포트 정도는 할 거라구! 그보다도 부탁해. 이번 달은 위험해! 나한테 협력해 줘.」

「뭐? 내가 용돈 줬잖아.」

너무 딱해보여서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에 다소 용돈을 줬었다.


게다가 금액도 상당해서, 바로 다 써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었다.
마리에가 눈물을 닦는다.

「ㅡㅡ집안 빚 때문에 없어졌어. 조금이라도 돈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 쪽으로 빚쟁이들이 몰려 온다구. 내 빚이


아닌데 너무한 거 아냐!?」

「우와아」

룩시온이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

『학교에 재적하며, 모험자로서 돈을 벌고 있다고 여겨지는 마리에에게서 조금이라도 회수하고 싶은 거겠죠. 그


다음에, 채권 추심원들에게 가족이 마리에의 이름을 알려준 거 아닐까요?』

너무 참담해서 말이 안 나온다.
마리에가 울기 시작해자, 우리를 지켜보던 다니엘과 레이먼드가 나를 노려본다.
내가 울렸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일단 울음 그쳐. 맞다! 경기대회에는 내기도 있으니까, 내가 잔뜩 벌어줄게.」

그냥 들으면 멍청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에겐 룩시온이 있으니까 쉽게 내기에서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마리에는 강한 의지로 거부했다.

「그건 안 돼.」

「ㅡㅡ어?」

「나는 내기가 정말 싫어! 너도 꼭 할 필요가 없는 한, 절대 하지 말도록 해.」

「으, 응.」

ㅡㅡ인생은 도박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해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나는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마리에는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신음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학원제에서 정직하게 벌어 주겠어! 팔릴 만한 상품을 생각해야겠다.」

참 씩씩한 애야.

학원제 당일.

「어서 옵쇼ㅡ!! 쌉니다, 싸요!」

포장마차에서 점원을 하고 있는 마리에가, 소리를 높이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학원제에 낸 가게는 포장마차.
컬러풀한 토핑에 알록달록한 도넛을 팔고 있다.

「이거,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드는데.」

도넛을 만들고 있는 내 옆에서는, 다니엘과 레이먼드가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리온, 열심히 일해.」

「맞아, 마리에 씨의 소중한 생활비가 되는 거잖아.」

마리에를 딱하게 여긴 두 사람이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도넛을 계속 만들고 있다.
마리에는 손님을 잡고선, 차례차례 도넛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ㅡㅡ쟤, 수수하게 대단하구만.」

때로는 억지로, 때로는 말로 구워삶아서, 그리고 때로는 눈물을 떨구며ㅡㅡ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 도넛을
팔아치우고 있다.
중얼거린 내게, 숨어있는 룩시온이 대답했다.

『마스터도 본받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 부자니까 일하고 싶지 않아.」

『형편없으시네요.』

「나는 이런 형편없는 나 자신도 싫지 않지만 말이야.」

『그보다 도넛을 기름에서 꺼내 주세요.』

「예, 예.」

룩시온의 지시대로 도넛을 꺼내니까, 확실히 딱 알맞을 때였던 모양이다.

『마스터, 오른쪽에서 두 번째 도넛이 상품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분량을 지켜 주세요.』

「너는 너무 세심해. 휴식 중에라도 내가 먹을 거니까 그걸로 된 거잖아.」

룩시온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마리에의 목소리가 주위에 잘 울려퍼진다.

「어서 오세요ㅡㅡ!!」

휴식 시간.

실패한 도넛을 들고, 나는 포장마차에서 떨어진 벤치에 걸터앉았다.


학원제의 부스가 없는 장소라서, 사람이 적으니까 진정된다.

여기서 홀로, 실패작인 도넛을 처리하고,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왔다.


마리에? 도넛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어서, 웃음이 그치질 않는 건지 지금도 계속 팔고 있다.
쟤의 노동 의욕에는 감탄이 나오는구만.

「점심 메뉴는 도넛인가. 너무 만들어대서 먹기 싫다.」


『실패작을 처리하는 거로군요. 마스터의 실수니까 당연한 일입니다만.』

「너, 나 싫어하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뭐야, 그 대답은?」

도너츠를 천천히 먹는다.


룩시온이 준비한 레시피대로 만들었는데, 학생이 만든 것치고는 꽤나 수준급이었다.

「아, 꽤 맛있는데.」

『잘 됐네요.』

첫 번째 도넛을 금방 먹어치우고, 두 번째를 덥석 물었는데ㅡㅡ 내 눈 앞에 여자 한 명이 지나갔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그 여자는, 조금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여자가 갑자기 양손으로 배를 누른다.

내 눈앞을 지나가려던 찰나에, 도넛의 달콤한 냄새를 맡았는지 「꼬륵~」 하고 배가 귀여운 울음소리를 냈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 여자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드, 들었나?」

평소라면 「뭐가요?」 라고 대답하면서 못 들은 척을 해줬을 신사다운 나였지만, 그 여자를 보고 당황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 네ㅡㅡ 아, 아뇨, 안 들렸습니다!」

당황해서 정정해봤자 이미 늦어버렸다. 그 여자 【안젤리카・라파・레드그레이브】는 얼굴을 붉히면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 여러모로 바빠서, 점심 식사를 할 틈이 없었다. 그, 그리고ㅡㅡ 오늘은 평소에 옆에 있는 자들도 없어서,
그게ㅡㅡ」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젤리카 씨의 시선이 내 도너츠를 포착한 것을 놓치지 않고 봤다.

「드실래요?」

남아 있는 도너츠를 내밀자, 안젤리카 씨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받았다.

「괘, 괜찮나?」

「뭐, 괜찮아요.」

「미안하다. 돈은 나중에 내마.」

「아, 그거 실패작이라서 안 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자, 도넛을 작은 입에 덥석 물었던 안젤리카 씨가 놀랐다.


「마, 맛있는데. 뭐가 실패했단 거냐?」

「사이즈가 크다든지, 작다든지, 그런 실패 말이에요.」

「그, 그래? 충분히 맛있다.」

안젤리카 씨는 내 옆에 걸터앉아서 도넛을 맛있게 먹고 있다.

「이런 건, 곁에 있는 자들이 먹지 못하게 하니깐 말이지. 무척 신선했다.」

안젤리카ㅡㅡ 그 여성향 게임의 악역 영애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마리에가 말했었지.
남의 약혼자를 빼앗는 주인공 쪽이 더 나쁜 사람이야, 라고.
ㅡㅡ근데, 걔는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려고 했었지? 결국에는, 전부 실패했지만.
안젤리카 씨를 보니까, 어딘가 슬픈 듯했다.

「왜 그러시나요?」

「ㅡㅡ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도넛, 맛있었다. 실례하마, 발트하르트 공.」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떠나는 안젤리카 씨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유명인이었구나.」

중얼거리자, 룩시온이 대답을 한다.

『ㅡㅡ자각이 없으셨던 건가요?』

학원제 두 번째 날이 끝났다.

마리에는 포장마차로 번 돈을 세고 있었다.

「역시 부자가 다니는 학교다워. 단가를 말도 안될 정도로 높게 잡았는데도, 불티나게 팔렸어.」

일본 엔으로 치자면, 한 개당 300 엔에서 500 엔 정도로 판매했다.


그래도 꽤나 많이 팔려서, 엄청나게 벌었다.
마리에는 신바람이 났다.

「이 돈이 있으면, 내일부터 생활비 때문에 곤란할 일은 없겠어. 아참, 숨겨 둬야지, 빚쟁이들에게 뺏길라.」

이번에는 뺏기지 않도록, 마리에는 돈다발을 품에 숨겨 두었다.


거기에 똘마니들을 끌고 다니는 여학생이 찾아왔다.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땋아서 고리를 만든 헤어 스타일을 한 여자는, 전속 하인이라고 불리는 아인종의 노예들을
많이도 거느리고 있었다.
떡화장에, 향수 냄새도 독해서ㅡㅡ 구린 느낌이 드는 여학생이었다.

「너, 라판 자작가의 마리에 맞지?」

평소에 친분이 없는 사람이 말을 걸어서, 마리에는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너, 넌 누구야.」

「너 말이야,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돼먹질 않았구나. 오프리 백작가를 모른다는 소리라도 하려고 그래?」

「오프리 백작가!?」

그 이름을 듣고, 마리에는 게임 지식을 하나 떠올렸다.


그래ㅡㅡ 이 여자는 그 여성향 게임에 이름이 나왔었다.

(말도 안 돼!? 왜 나한테 시비를 털러 온 거야!)

귀족의 집을 빼앗아, 상인에서 벼락출세한 오프리 가문.


그 가문은 그 여성향 게임에서, 공적과 손을 잡고 있던 나쁜 귀족 가문이다.
그 공적이 중반의 중요한 이벤트와 연관되어 있어서, 싫어도 주인공과 엮이는 캐릭터이지만ㅡㅡ 어째선지
마리에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이다.

「그, 그래서 무슨 볼일로 오신 건가요?」

저자세로 나오는 마리에에게, 오프리 백작가의 딸이 대답한다.

「아무 말도 못 들었어? 너희 집하고, 우리 집이 혼인을 맺기로 했어. 우리 오빠하고 네가 결혼하게 될 거야.」

「ㅡ네?」

그 말을 듣고 마리에는 놀랐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셔도 곤란해요. 그런 말, 못 들었다구요.」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네 의견 같은 건 어떻든 상관없어. 너희 집에서, 너를 결혼시킨다고 말했단 말이야. 그리고, 가난뱅이


귀족들하고 어울리고 다니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자제하도록 해. 너 때문에, 내 평판까지 떨어지는 건
사양이야.」

「ㅡㅡ평판이 떨어진다는 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가난뱅이 남작 가문 그룹인데다가, 벼락출세한 발트하르트하고 사이가 좋은 모양이더라? 그런 거


민폐니까 하지 마.」

이 년은 뭘 착각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한 마리에였지만, 상대방은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넌 우리 오빠랑 결혼하게 될 거야. ㅡㅡ발트하르트하고 이어지지 못해서 아쉽게 됐네.」


바보 취급하는 듯이 웃는 오프리 백작가의 영애를 보고, 마리에는 뭘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해냈다.

(이 년,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고 있구만.)

태도나 말투에서, 상대방이 공연히 사람을 깔보는 타입이라고 판단했다.

「걔, 걔ㅡㅡ 리온하고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고개를 돌리고 그렇게 말하자, 백작 영애는 콧방귀를 꼈다.

「아무래도 좋거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촌뜨기 가난뱅이 귀족들하고 친하게 지내면 나까지 얕잡아
보인다는 소리야. 우리 집으로 시집 올 거라면, 그 정도 쯤은 똑바로 생각을 해둬. ㅡㅡ충고는 했어.」

물러가는 백작 영애를 보며, 마리에는 생각한다.

(내 제 2 의 인생ㅡㅡ 끝장났다.)

학원제 세 번째 날.

경기 대회가 한창 달아오를 무렵에, 나는 마리에에게 집안 사정을 들었다.

「오프리 백작가하고 약혼? ㅡㅡ네가?」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성향 게임에서 나왔던 가문 이름이다.


ㅡㅡ공적과 손을 잡고 있는 집안이었을 거다.

마리에는 힘없이 웃고 있다.


경기대회장에서 들려오는 성원 소리ㅡㅡ 어제까지는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웃기지. 아니~, 역시 나는 죄 많은 여자인가봐. 가만히 있어도 남자가 꼬여들잖아.」

「ㅡㅡ거절할 수는 없는 거야?」

「너도 알잖아? 이래뵈도 난 귀족이니까.」

아무리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귀족은 귀족.


결혼에 자유가 없다는 것도, 드문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한 번, 집안을 위해 결혼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오프리 백작가라니, 그 여성향 게임에서는 멀쩡하게 끝난 곳이 아니잖아.」

하지만, 저 여성향 게임에서는 텍스트로만 이름이 나와서, 어느샌가 처분당했단 얘기만이 나오는 가문이다.
얽히면 안 된다.
그 여성향 게임의 시나리오를 생각한다면, 얽혀선 안되는 집안이다.

「도망칠 수 있다면, 나도 도망가겠지. 하지만,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거절하면, 그건 집안끼리의 문제가 된다.
라판, 오프리, 합심해서 마리에를 찾아내려 들겠지.
마리에도, 학교를 퇴학하고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집, 몰락했어도 일단 귀족이야. 저쪽 집안에도 체면이 걸린 문제니까, 반드시 잡힐 거야.」

어딘가, 마리에는 체념한 듯한 눈치였다.

「아~아, 최소한 수학여행 정도는 가보고 싶었어.」

「ㅡㅡ참가 못해?」

2 학기 행사에 참가할 수 없단 건, 당장이라도 퇴학한다는 뜻인가?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는 건가?

「상대방 집안에서, 결혼은 빨리 하는 게 좋다고 했대.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집에서도 어차피 퇴학할 거라면
지금 해도 괜찮겠지, 라고 했다더라. ㅡㅡ아까 알려주러 왔어.」

도중에, 경기대회장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분명 누군가가 활약한 거겠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ㅡㅡ마리에.」

「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룩시온을 써서 구하려고 생각하던 찰나에, 마리에가 그만두라는 말을 건넨다.

「나도 도움을 받을까 생각은 했어. 생각은 해봤지만ㅡㅡ 아무래도 오프리 백작가하고 충돌은 하고 싶지 않아.
오프리 백작가는, 악행을 저질러도 묵인되고 있는 가문이잖아. 게다가ㅡㅡ 이벤트에 얽혀있기도 하고.」

게임적인 이유로 말하자면, 오프리 백작가는 중반의 중요한 이벤트와 얽혀있는 가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관여하고 만다면, 앞으로 벌어질 전개를 예상할 수 없게 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나쁜 소문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는 집안이란 건 참 성가신 존재다.

악행을 저질러도 묵인된다는 건, 왕국이 봐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실력이 있는 누군가가 감싸고 있겠지.
어설프게 얽히면 일이 번거로워진다.
그럼에도 마리에를 구하려 든다면ㅡㅡ 그에 걸맞는 각오가 필요하게 된다.

마리에가 말한다.

「ㅡㅡ즐거웠어.」

「뭐?」

「그러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즐거웠단 소리야. 왕자들은 날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역 하렘 꾸려서 놀고
먹으며 지내지는 못했지만ㅡㅡ 너하고 같이 학교 생활한 것도 즐거웠으니까.」

마리에는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그리고 고개를 들자ㅡㅡ 웃고 있었다.


「그럼 잘 있어. 뭐, 나는 치료 마법도 쓸 수 있으니까, 이벤트가 끝나면 질기게 살아남을 거야. 그 때는
도와줘야 한다?」

벌써, 앞일을 생각하고 있다.


여러모로 체념하고 있는 것 같다.

「너는 그래도 괜찮은 거야? 역시ㅡㅡ 다시 학생 생활을 보내고 싶을 거 아냐.」

「게임 오버가 되는 것보다 낫지. 왜냐하면, 주인공이 활약하지 않으면, 우리들 진짜 큰일나잖아.」

「그, 그치만 말이야.」

마리에는 그대로 내게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로 고마웠어. 너도ㅡㅡ 힘내.」

무척 작고 미덥지 못한 등이다.
그 뒷모습이, 전생의 여동생과 겹쳐 보이고 말았다.

「ㅡㅡ앗.」

손을 뻗었다가, 나는 곧장 그 손을 내렸다.

밤.

나는 내 방 침대에서 교복 차림으로 누워 있었다.


근처에는 룩시온이 떠있었는데, 방이 어두워서 붉은 렌즈가 빛나고 있었다.

『ㅡㅡ괜찮으신 겁니까?』

「뭐가?」

『말하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이대로 마리에를 보내도 괜찮은 겁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게임의 이벤트라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마스터는 정말 쫄보시군요.』

「ㅡㅡ내버려 둬.」

그러자, 룩시온이 제안을 해 온다.

『제게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오프리 백작가를 없애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 뒤에 있는


패거리도 모조리, 말이죠.』

정말 위험한 인공지능이다.
ㅡㅡ무심코, 그 제안을 받아들여버릴까 생각한 내 자신이 한심하다.
「그 결과, 이 여성향 게임 세계가 멸망하면 의미가 없잖아. 최종 보스가 귀찮은 놈이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주인공 님은 활약해 주셔야 한단 말이지.」

『저조차도 해치울 수 없는 적, 인가요. ㅡㅡ여차하면 이 대지를 가라앉혀 버리면 그만 아닌가요?』

「ㅡㅡ싫어. 진짜, 너는 늘 과격하구만.」

『그러면, 마리에가 이대로 결혼해도 괜찮다는 건가요?』

「입 좀 다물고 있어.」

그 이상, 룩시온이 내게 할 말은 없었다.


그저, 붉은 렌즈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나무라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와중에, 나는 마리에의 등과 내 여동생의 모습이 겹쳐보인 게 신경 쓰였다.

ㅡㅡ전부터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나도 마리에도, 전생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 여성향 게임에 대한 것도, 전생의 기억도 있는데ㅡㅡ 이름만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뭔가 의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ㅡㅡ 여러모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리에는 내 전생의 여동생과 닮았다.


때때로, 여동생에게 향했던 조바심 나는 감정과, 그리움ㅡㅡ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ㅡㅡ마리에도 그런 걸까?
그렇다면, 나는ㅡㅡ.

상반신을 일으킨 나는, 룩시온에게 물어본다.

「ㅡㅡ룩시온, 지금부터 말하는 사항을 실행할 수 있겠어? 꽤 조건이 빡세.」

룩시온은 자신감을 표한다.

『말씀하시지요.』

ㅡㅡ그리고 이야기는 되돌아와서 예식장.


마리에는 전생의 오빠를 떠올린다.

(ㅡㅡ도와줘, 오빠!)

전생의 오빠는 빈말로라도 만점을 줄 수 있는 오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리에가 위험할 때는 도와준 존재다.
조금 과할 때도 있었지만, 살아있었다면 지금 상황이라도 도와줄 것 같다.
그래, 살아만 있다, 면.

(나, 두 번째 인생에서도 오빠에게 기대기만 하잖아.)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리에는, 눈물을 흘리며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식장의 커다란 문이 거칠게 활짝 열렸다.

「그 결혼, 잠깐 기다려 주실까!」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결혼을 제지하는 청년이 한 명.


식장의 시선이 청년에게 쏠린다.
마리에도 베일 너머로 그 모습을 확인하려 했는데ㅡㅡ 청년의 모습이 전생의 오빠로 보였다.

「오빠?」

마리에의 작은 목소리에, 주변의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서둘러서 베일을 벗고 확인하자, 식장에 뛰어든 사람은 리온이었다.

「너, 너, 뭐하러 온 거야!?」

리온의 모습이 베일 너머나마 전생의 오빠와 겹쳐 보였다.


마리에는 동요하면서도, 리온의 모습을 보고, 삿대질을 하며 호통쳤다.

방금 전까지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지만, 잘 보니까 리온의 모습은 멋이 없었다.


라이플을 들고, 무장한 발트하르트 가문의 병사를 이끌고 있다.

씩씩하게 뛰어들어와서, 마리에의 손을 붙잡고 도망치려는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리온은 살며시 웃고 있다.

「말했잖아. 이 결혼은 잠깐 기다려 주셔야겠어. 아니ㅡㅡ 중지해야지.」

그런 리온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건, 식장에 침입을 받은 오프리 백작가와 라판 자작가의 친척들이다.

「웬 놈이냐!」

「호위는 뭘 하고 있는 거냐?」

「저 남자를 끌어내라!」

당장이라도 리온을 쫓아내라고 떠드는 하객들.


하지만, 리온은 동요하지 않았다.
서류 몇 장을 그런 그들에게 과시했다.

「어이쿠, 움직이지 마라. 이쪽은 왕궁의 허가를 얻은 상태다.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 대봐야, 정의는 내 쪽에
있다! 는 뜻이지.」

왕궁에서 받은 서류를 방패로 삼아, 리온은 식장에 쳐들어 온 모양이다.


양가 관계자들도 놀라고 있다.
마리에의 남편이 될 남자ㅡㅡ 신랑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왕궁이라고? 그런 건 거짓말일 게 뻔하잖나.」

리온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면서 반박한다.


「거짓말 아니야. 확인해 봐라.」

당황하는 양가 관계자ㅡㅡ 마리에도 놀라고 있다.

「왕궁? 어, 무슨 짓을 한 거야!?」

리온은 수다스럽게 말하기 시작한다.

「사실 좀 귀찮은 공적을 퇴치했더니, 그놈들하고 손잡고 있는 귀족의 이름을 말하더라고. 조사해 봤더니,
오프리 백작가의 이름이 나오는 거 아니겠어. 이건 큰일이다 싶어서, 내가 왕궁에 알렸다 이거지.」

공적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오프리 백작들.

「ㅡㅡ그 정도 일로 왕궁이 움직였다니.」

리온이 눈을 가늘게 뜬다.

「알렸을 때 이 정보를 묵살시키려는 패거리가 있었거든. 좀 다투긴 했지만, 문제없이 얘기를 끝냈어. ㅡㅡ설마
프램튼 후작이 너희들 뒷배일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말이야.」

오프리 백작가의 관계자들이, 그 말을 듣고 눈에 띄게 당황한다.


공적 얘기만 나온 게 아니라, 자기들의 뒷배인 프램튼 후작의 이름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오프리 백작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리온이 라이플을 들고, 진지한 표정을 짓자 방금 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농담이 통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게 되었다.

「오프리 백작, 동행해 주실까. 그리고, 라판 자작도 따라와 주셔야겠어.」

라판 자작ㅡㅡ 마리에의 아버지가 놀라고 있다.

「나, 나도 말인가!?」

리온은 증거를 제시했다.

「오프리 백작과 밀약을 나눴지? 빚을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공적 건에 협력한다고 쓰여 있었다. 공적과


협력해서 한탕 벌어제낄 심산이었던 모양이야?」

마리에는 아버지를 본다.


그러자, 밀약을 나눈 게 사실이었는지, 의자에 무너져 내리듯이 주저앉아 있었다.

마리에 말고 다른 가족도 알고 있었는지, 동요하고 있다.

「ㅡㅡ말도 안 돼. 설마 그렇게까지 썩어빠져 있었다니.」

그 말을 듣고, 마리에의 아버지가 고개를 든다.

「그렇군. 이 녀석을 되찾으려고 여기까지ㅡㅡ 그, 그러면, 이 녀석과의 결혼을 인정해 주마. 그러니까,
우리들은 눈감아다오.」

리온이 이 자리에 쳐들어 온 건, 마리에를 되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건 즉, 마리에와 리온의 관계를 알면서 갈라놨다는 뜻이다.

마리에는 오해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야, 이 자식? 내 행복을 박살내놓고, 이번에는 날 이용해서 자기만 도망가려는 거야?)

한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패주려고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이번에는 신랑이 마리에를 끌어안고 목에 팔을
감았다.

「우, 움직이지 마라! 이 여자가 어떻게 돼도 좋단 거냐! 한 걸음이라도 움직였다간, 이 목을 분질러 주마!」

「뭐 하는 거야, 임마!」

마리에는 저항하지만, 상대방은 남성인데다가 자기보다 체격도 크다.


날뛰지만 도망갈 수가 없었다.
발트하르트 가문의 병사들이 라이플을 겨누자, 신랑은 마리에를 방패로 삼아서 리온과 교섭을 시작한다.

「이런 여자를 되찾으려고 고생 참 많으시구만. 나는 딱히, 이년한테 관심 없었다고. 갖고 싶으면 주마.


하지만ㅡㅡ 나를 놔주는 게 조건이다.」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신랑은 마리에를 교섭 소재로 내밀었다.


그런 신랑과ㅡㅡ 붙잡힌 마리에의 모습을 보고, 리온은 조금 짜증난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잡으라는 명령을 받았거든. 그리고, 여성에게 손을 대다니 용서할 수가
없겠는데. 학교 남자들이 알면, 뭐라고 말할까?」

담담하게 대답하고 있지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하게 화를 내는 그 모습을 보고, 마리에는 전생의 오빠를 떠올렸다.

리온과 전생의 오빠가, 흡사 동일 인물처럼 보인다.

(말도 안 돼!? 설마 진짜로 리온이ㅡㅡ)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천장에서 가느다란 빛이 신랑의 어깨를 꿰뚫었다.

「크악!」

신랑이 마리에에게서 팔을 놓고,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 아파, 누, 누가 나 좀 살려줘!」

쭈그리고 울기 시작한 신랑에게서 도망쳐서, 마리에는 리온에게 달려갔다.

「리온!」

리온은 라이플의 총구를 내렸다.


그리고 마리에는, 기막혀하면서도 어딘가 기뻐 보이는 표정을 짓는 듯이 보였다.

「결혼식이 파탄나서 기뻐 보이잖아. 역시, 납득하지 않았던 거구나.」


「미, 미안해.」

룩시온이 천장에서 내려온다.

『마스터, 작전이 다음 단계로 이행됐습니다.』

리온이 라이플을 어깨에 짊어졌다.

「좋아, 그러면 계속 전진하자. 오늘 내로 오프리 백작가의 영지를 함락시켜야 하니까.」

마리에는 리온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 기다려 봐? 왜 오프리 백작가의 영지 얘기가 나오는 거야?」

리온은 웃었다.

「아니, 왕궁과 교섭한 결과, 오프리 백작가와 라판 자작가를 박살내서 몰수하기로 결정됐거든. 너의 본가는
본토에 있으니까 왕궁이 맡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백작의 영지는 부유섬이라 왕궁도 필요없다고 하더라.」

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마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룩시온이 마리에에게 설명한다.

『오프리 백작가가 모아둔 재물을 빼앗아서, 왕국에 헌상한 뒤 영지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귀결되었습니다. 현재,
마스터의 아버지와 형님이 오프리 백작가를 공격하고 계십니다.』

거기에 리온이 추가 사항을 알려 줬다.

「참고로, 말을 걸어보니까 가난뱅이 귀족 멤버가 협력해 준다더라고. 너에게 은혜가 있다, 고 말하더라. 잘
됐지?」

「으, 응. 응?」

도와주는 건 기쁘지만, 그들이 뭘 협력하고 있는지 모르는 마리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룩시온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마스터가 소속된 그룹의 남자들이, 본가에 응원을 요청했습니다. 보수를 준비했더니, 그 외에도 협력해 주는
귀족들이 있었고요. 뭐, 200 척 정도 비행선이 모였습니다.』

그만한 함대가, 오프리, 라판의 영지로 쳐들어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 말을 듣고, 오프리 백작과 라판 자작이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후일.

나는 아버지, 작은 형ㅡㅡ 그리고 졸린 듯한 콜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제는 지난 번에 있었던 전쟁에 대한 것이다.

전쟁이라고 해야 하나, 오프리 백작가와 라판 자작가 쪽에 비행선을 보냈을 분이다.


소규모 전투는 있었지만, 그럭저럭 무사하게 정리됐다.
아무튼, 숫자는 이쪽이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그 결과, 홀퍼트 왕국의 지도에서 라판 자작가의 영지가 사라졌다.


왕국이 직할지로 관리하게 되면서, 오프리 백작가가 소유하고 있던 부유섬은 발트하르트 가문이 소유하게 되었다.
앞으로 있을 일도 고려하여, 오프리 가문은 남겨둬야 하나 고민했지만ㅡㅡ 나중에 귀찮아 질 거란 예감이 들어서,
여기서 퇴장하게 만들었다.

어중간하게 얽히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과다.


하지만ㅡㅡ 백작가의 영지를 손에 넣은 내 본가가, 조금 소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왜 내가 독립해서 백작인 건데! 이런 건 이상하지!」

소란을 피우고 있는 건 내가 아니다.


작은 형인 닉스다.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됐으니까 받아둬라. 분가라고 부를 수준의 규모가 아니지만, 네가 독립해 준다면 아빠도 기쁠 거다.」

작은 형 닉스가 구 오프리 가문의 영지를 이어받아서, 백작이 된다는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아버지가 백작이 되는 거 아니었나?
그런 의문을 품고, 이유를 물어보자, 「백작가의 영지를 관리한다니 무리지. 그리고, 조라나 루트아트가 오기
전에 닉스에게 넘겨줘서 독립시켜 주고 싶다.」 라고 하셨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귀여운 작은 형을 어엿하게 독립시켜주고 싶은 거겠지.


내가 백작이 되면, 작은 형에게 물려줄 수가 없으니까.
아버지가 백작이 되면, 조라랑 그쪽 인간들이 좋답시고 그 자리를 루트아트ㅡㅡ 큰 형에게 넘기라고 할 게 뻔하다.

작은 형에게 본가를 물려주는 게 좋지 않냐고 했더니 「ㅡㅡ그러면, 조라 쪽 사람들이 발트하르트 가문의 본가가
되고 말아. 너희가 착취당하고 말 거다.」 라고 말씀하셨다.
모처럼 귀찮은 오프리 가문을 박살냈는데, 성가신 조라 쪽이 물려받게 되면 일이 피곤해진다.

그러니까, 나도 작은 형이 백작이 되는 걸 받아들였다.


내가 백작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귀찮은 일도 적으니까 완전 찬성이다.
하지만, 작은 형이 납득하질 않는다.

「이런 건 이상하지! 애초에, 백작의 지위란 게 받을 수 있긴 한 거야? 내가 물려받아도 되는 거야!? 안


되잖아!!」

아버지가 문제없다면서 웃으신다.

「그거 말인데, 사실 너에게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이 있다.」

「어?」

「마음에 안 드는 오프리 가문을 날려버린 근성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딸을 주겠다면서ㅡㅡ 로즈블레이드


백작에게서 편지가 왔어.」

ㅡㅡ뒤에서 말을 한 건 나지만 말이야.


듣자하니 명문 백작가인 로즈블레이드 가문은, 오프리 백작가를 싫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파벌이라든가, 여러 사정이 있는 거겠지.
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콜린이, 동경한다는 듯한 시선으로 작은 형을 바라봤다.

「닉스 형아가 백작님이구나아. 대단해!」

작은 형이 콜린의 양쪽 어깨에 손을 얹고서 흔들고 있었다.

「갑자기 백작이 되란 말을 들어도 난감하다고! 마, 맞아! 리온이 있잖아. 리온이 백작이 되면 될 거 아냐!
이번 일을 추진한 건 전부 리온이잖아!」

모처럼 출세할 수 있는데, 동생에게 양보하다니 형의 귀감이다.


그런 닉스가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싫~거든요. 형은 백작이 되어서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떼를 쓸 거라고 생각해서 상대 여성분을
모셔왔어. 두 분 다, 들어와 주세요!」

방에 두 명의 여성을 부르자, 시중을 들기 위해서인지 여동생인 디어드리 선배까지 따라왔다.


디어드리 선배는, 학교 3 학년이다.

「어머, 오프리 불량배들을 물리친 분치고는, 겁이 많은 남자분이시네요.」

작은 형은 디어드리 선배와 반은 다르지만, 동급생이다.


얼굴을 알고 있던 모양이다.

「디어드리 씨? 설마, 로즈블레이드라니!」

그런 디어드리 선배는, 금발 세로 롤을 한 아가씨 모습이다.


그 언니인 도로시아 씨는ㅡㅡ 스트레이트 롱의 금발에, 글래머러스한 체형이 잘 드러나는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뭐랄까, 차가운 느낌이 나는 미녀다.

디어드리 선배 이상으로 여왕님! 이란 분위기의 소유자다.


연령은 20 세.
채찍을 들고 등장해도 위화감이 없는 미인 분이시다.
작은 형이 부럽구만.

「이쪽 분은, 도로시아 씨입니다. 형의 맞선 상대야.」

내가 소개시켜 주자, 작은 형이 내 얼굴에 삿대질을 하는 것이었다.

「뭘 웃고 있냐, 너!」

이 거유 여성이 작은 형의 부인이 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질투도 했지만, 성격을 알고 난 뒤로는 동정할 수 있게


되었다.
뭐, 생긴 것처럼 빡센 사람이다.

「아내를 방치하고 꽤나 즐거워 보이시네요.」


도로시아 씨가 그렇게 말하자, 작은 형이 「히익」 하고 비명을 지르며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벌써 마누라가 됐단 심산인가?

뭐, 오늘은 맞선이라는 이름의 상견례라서, 결혼은 8 할 정도 결정된 상태지만 말이지.


내가 거기까지 추진했다.
두 사람의 아버지인 로즈블레이드 백작도 마음에 들어했고.

「제 남편이 되는 건데, 대체 무슨 태도를 취하시는 거죠? 오프리 불량배들을 해치웠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ㅡㅡ 이래 가지고는 기대에 못 미치잖아요.」

디어드리 선배도 아쉬워하는 것 같다.

「정말이에요. 아버님도, 왜 이 결혼에 긍정적이신 건지 이해하질 못하겠네요.」

ㅡㅡ룩시온에게 조사를 부탁해 봤는데, 두 사람의 아버지인 로즈블레이드 백작은 도로시아 씨가 제대로 시집을 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던 모양이다.
제대로 된 상대가 있으면 시집을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도로시아 씨가, 작은 형을 내려다보고 있다.

「동생이신 리온 공은, 모험자로서 공적을 세웠다는데ㅡㅡ 형인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요? 그러고도


같은 피를 잇는 사람이 맞다고 할 수 있나요?」

진짜 막말을 해대네.
콜린이 아버지 뒤에 숨어 있다.

아버지도 작은 목소리로 「리온은 돌연변이고, 우리 집안에서 평범한 건 닉스니까」 라며 너무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그러자ㅡㅡ 떨고 있던 작은 형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맞아! 나는 동생보다 덜떨어진 형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도로시아 씨에게 싸울 듯이 덤벼들었다.


이 인간 제정신인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작은 형의 생각을 알아챘다.

「형, 설마!」

「입 다물고 있어!」

작은 형은 이 혼담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서, 도로시아 씨에게 싸움을 거는 모양이다.


도로시아 씨가 화를 내고 뛰쳐나가면, 나중에는 어떻게든 될 거라는 얕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형, 왜 그렇게 체념을 못해! 그리고 좀 진정해. 상대방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고!」

「리온, 너한테 듣고 싶지는 않아! 알겠냐, 잘 들어라, 이 거만한 여자!」

작은 형이 도로시아 씨에게 삿대질을 한다.


도로시아 씨는 놀란 얼굴로 「거, 거만한 여자라구요!」 라면서 격분하고 있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결혼을 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야. 결혼을 해주는 거다! 그게 싫으면, 지금 당장 집으로
가버려!」

서로 격분하여 얼굴을 붉히는 두 사람.


아버지는 「닉스, 그만해! 이번에는 로즈블레이드 가문하고 전쟁하게 되고 만다!」 라면서 울상을 짓고 있다.

ㅡㅡ그런데, 말이지.
시중을 들고 있던 디어드리 선배가 웃고 있었다.

「언니, 다행이네요.」

ㅡㅡ응?
얼굴을 붉히고 있던 도로시아 씨가, 웃으면서 입술을 혀로 요망하게 핥았다.
격분했다기 보다는, 흥분한 것처럼 보인다.

「좋아. 당신 최고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로즈블레이드란 말만 들어도 비굴해지는 남자들 뿐이었지. 나는ㅡㅡ
당신 같이 훈육할 보람이 있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어.」

작은 형이 경악하고 있었다.

「ㅡㅡ어? 뭐, 뭐라고?」

도로시아 씨가 손을 잡고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서로 조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ㅡㅡ 더욱 격렬하게 부딪칠 수 있는 남성분이 내 취향이야.


조신한 남자 따위 싫어. 나는 드디어ㅡㅡ 이상형인 남성분을 찾아낸 거야!」

작은 형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로시아 씨가, 그런 작은 형의 팔에 자기 팔을 감고서ㅡㅡ 방에서 데리고 나가 버린다.

「당신 최고야.」

작은 형이 끌려가며, 방에서 나갈 때 나에게 손을 뻗었다.

「사, 살려ㅡㅡ」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잘 됐다, 형!」

아버지도 콜린도, 끌려가는 작은 형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이거면 잘 풀린 거겠지?」

「닉스 형아가 끌려가 버렸어.」

무사히 작은 형에게 백작이라는 성가신 지위를 떠맡겼다.


거기다가 작은 형의 결혼 상대를 찾아내 주는 나는, 이 얼마나 착한 동생인 걸까?
문이 닫히자, 작은 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리온, 너 이 자식 두고 보자!』
아무래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모양이다.
디어드리 선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언니가 부럽네요. 나도 기골이 있는 남성을 찾고 싶어라.」

ㅡㅡ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니까, 평가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 줘.


자, 그러면 나는 남은 사후처리를 해야지.

『마리에 루트 2』 ②

학교에 돌아오자 마리에가 울고 있었다.

「우리 집이 없어지고, 귀족이 아니게 돼 버렸는데요!」

울고 있는 이유는, 본가가 작살나서 귀족의 지위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마리에는 학교를 다닐 자격을 잃고 만 것이다.

「오프리 가문의 후계자와 결혼하는 게 더 나았냐?」

「그, 그건 싫지만.」

나는 마리에에게 한 가지 확인을 하기로 했다.


마리에가 귀족이란 자리를 유지하면서, 학교를 다닐 방법이 한 가지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확인해야 할 게 있다.
결과에 따라, 나는ㅡㅡ 마리에와 함께 할 사람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ㅡㅡ저기, 저번에 나한테 전생에 여동생이 있었다고 말했었지?」

마리에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대로 나를 외면하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으, 응.」

마리에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겠지.


나는 조금씩 여동생ㅡㅡ 전생의 여동생에 대해 얘기한다.

「이름은 떠올릴 수 없지만, 가족은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는 4 인 가족이었어.」

「ㅡㅡ나도.」

좀 더 빨리 알아차려야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ㅡㅡ 마리에가 전생의 내 여동생이란 걸, 좀 더 빨리 알아차려야 했다.
그랬더라면ㅡㅡ 이런 감정은 품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꽤나 제멋대로인 여동생이었어. 얼굴은 예쁘지만, 내숭을 잘 떨어서, 부모님은 나보다도 여동생을
믿으셨거든.」

마리에의 전생에 대해서 말해 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마리에가, 도중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ㅡㅡ잠깐 기다려 봐? 부모님이 오빠보다 여동생을 믿고 계셨던 거야?」

「응. 걔는, 내숭을 되게 잘 떨었거든.」

「잠깐, 그거 이상한데. 왜냐면, 우리 부모님은 오빠를 더 신용하고 계셨어.」

「뭐?」

뭔가 어긋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잠깐. 그거 있잖아! 너도 오빠에게 클리어 못하겠다면서, 그 여성향 게임을 떠맡긴 거잖아!?」

「분명 떠맡기긴 했지만, 나는 부탁했거든. 그리고, 내 지인도 형제에게 의지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랬어.
애초에, 나는 그렇게까지 막되먹은 여동생은 아니었고.」

막되먹은 여동생이 아니었다고?

「그러면, 너희 오빠는?」

「우리 오빠는 화내게 하면 엄청 무섭고, 과한 면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손바닥 위에 놓고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타입? 뭐랄까, 둔감계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내가 부탁하면, 기꺼이 이것저것 다 해줬어.」

「어, 그런 오빠가 있다고? 그보다, 화나게 만들면 무서운 사람을 손바닥 위에 놓고 니 마음대로 다루려는
생각을 잘도 하는구만.」

「뭐, 내 오빠니까. 화나게 만드는 경계선? 한계를 잘 알고 있었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여동생인 나한테
물렀지.」

ㅡㅡ나하고 완전 딴판이잖아!

애초에, 내게는 전생의 여동생이 그 여성향 게임을 떠맡겼다.


그리고, 화나게 만들면 무섭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과하게 일을 저지른 적도 없었고, 여동생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지도 않는다.
ㅡㅡ제대로 보복을 해 줬으니깐 말이지.

그리고, 둔감계도 아니야!


뭐냐고, 그 라노벨 주인공 같은 오빠는!
거기다, 여동생을 귀여워 하려는 생각도 안 했으니까ㅡㅡ 나하고는 다른 사람이잖아!

「우리 집 여동생은, 성격이 꽤 막되먹었어. 거 있잖아, 집안하고 집밖에서 성격이 표변하는 타입. 요령이
좋아서, 부모님의 신용을 방패 삼아 아주 제멋대로 굴고 다녔지.」

「그러면 나하고는 다르네. 아니, 그런 여자가 진짜 있긴 하구나. 분명 그 여동생,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닐


거야.」

「으, 응.」

이건 부녀자 취미가 있어서, 나에게 떠넘겼던 얘기도 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리에는 그라비아 아이돌이 취할 것 같은 포즈를 보여 준다.

「그리고, 나는 전생에서도 미인이었어.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전생에서는 스타일도 엄청 좋았으니까.」

ㅡㅡ내 여동생, 얼굴은 예뻤지만, 스타일이 좋았었나? 분명 말랐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을 텐데.
서로 엇갈리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왠지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나는 마리에에게 말을 한다.

「ㅡㅡ미안해, 네가 내 여동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잠깐만! 내가 그렇게 막되먹은 여자로 보였어? 너무한 거 아냐!?」

「아, 아니, 미안해. 하지만, 너도 나를 자기 오빠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나는, 네 오빠처럼 무서운 사람이
아니야.」

나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남자였으니까.

「바, 반성하고 있다구! 설마, 싶었지만ㅡㅡ 역시 아니었구나.」

애초에, 남매 둘 다 그 여성향 게임 세계에 전생했다니 농담거리도 못될 말이다.


나랑 마리에는, 그대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점차 우스워져서 웃기 시작했다.

「뭐야. 서로 착각하고 있었던 건가.」

「그러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렇기에 나는 마리에에게 말한다.

「그래, 그러면 문제없겠다. 마리에ㅡㅡ 너, 우리 집으로 와.」

「ㅡㅡ어?」

마리에가 놀라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어서, 나는 쑥쓰러움을 숨기려고 뺨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너는 몰락해도 귀족의 혈통이니깐 말이야. 게다가, 네 신병을 내 쪽에서 맡겠다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었거든. 허가도 나올 것 같고, 문제가 없다면ㅡㅡ 이대로, 그게ㅡㅡ 거 있잖아.」

머리를 긁으며 아래를 바라보자, 마리에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고, 고백할 거면, 좀 더 무드를 만들라구. 이 바보야아아아!」

울려 버리고 말아서 당황하고 있자, 마리에가 꾸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ㅡㅡ고백은 받아줄 테니까 다시 해 줘. 야경이 보이는 곳에서, 반지를 받는 게 꿈이거든.」

이 어찌나 넉살 좋은 여자란 말인가.


하지만, 이 정도가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인이라도 도로시아 씨 같은 여성은 안 돼.


나는 작은 형의 결혼에서 많은 걸 배웠다.
「알았어. 룩시온에게 준비시켜 볼까.」

그렇게 중얼거리자, 룩시온이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ㅡㅡ드디어 각오를 굳히셨군요.』

「너, 너 듣고 있었냐!」

놀라자, 아무래도 기쁜 건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네. 곧바로 최고의 야경이 보이는 장소를 알아내서, 반지 제작을 시작하겠습니다. 세 시간만 기다려 주신다면,
모든 준비가 끝날 겁니다.』

그 소리를 들은 마리에가, 불평했다.

「그런 식으로 당장 해버리는 건 싫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줘! 그리고, 반지는 열심히 만들어 줘! 싸더라도
괜찮으니까!」

『일부러 시간을 들이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말이야!」

룩시온이 마지못해 납득한다.

『번거롭군요. 그리고, 반지에 대해서는 안심해 주세요. 커다란 보석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모든
손가락에 다른 보석이 달린 반지를 마련해 드릴까요?』

마리에는 그런 룩시온의 센스에 완전 깬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센스 나쁘다는 소리 안 들어?」

『ㅡㅡ여성은 금, 금속을 좋아한다고 자료에 써져 있는데요?』

「아무거라도 다 좋을 리가 없잖아.」

아무래도, 룩시온은 이러한 센스는 이해할 수 없는 듯하다.

「너도 못하는 게 있었구나.」

웃어 주니까, 룩시온이 빨간 렌즈를 내 쪽으로 돌렸다.

『어째서 기쁜 듯이 말씀하시는 건가요?』

「글쎄~」

학교에서 보내는 변함없는 일상이 돌아왔다.


하지만, 마리에는 지금ㅡㅡ 비행선의 객실 앞에 서서, 격렬하게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열어라, 짜샤아아아!」

호화 여객선으로 가는 수학여행인데도, 마리에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마리에 뒤에는, 책을 끌어안은 자그마한 여자가 쭈뼛대고 있었다.

「마, 마리에 짱, 둘 다 일어나질 않네.」

마리에가 돌봐 주고 있는 여자 두 사람이, 아침 식사 시간이 됐는데도 방에서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이게 평범한 여자였다면 문제없지만, 마리에가 돌봐 주고 있는 여자들은 문제가 많다.

방치하면 방에서 안 나오고 게으른 생활을 보내는 게으름뱅이 여자.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자는, 집중하면 침식을 잊고서 어느샌가 쓰러져 있을 때도 있다.
그런 두 사람을 같은 방에 넣어놨기 때문에, 아침부터 일어나질 않는 거였다.

(왜 내가 얘들을 돌봐 줘야 하는 거지? 모처럼 온 수학여행인데, 문제아들을 보살피기만 하고 있잖아.)

문을 어떻게든 열려고 하고 있었더니, 책을 안고 있던 여자가 바닥에 앉아서 독서하기 시작했다.

「왜 책을 읽기 시작한 거야?」

「어? 그, 그게, 아직 안 나오고 있으니까.」

그 대답을 듣고 울고 싶어진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읽지 마! 그리고, 아침 식사하러 갈 건데 책을 들고 오지 말고!」

「뭐!?」

책을 안고 있는 여자가, 진심으로 경악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도 다른 두 사람 못지 않게 개성이 강하구나.)

원래 세계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이런 성격이라도 남자에게 엄청 인기 있다.


마리에는 다시금,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일어나라아아아!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버리잖냐아아아!」

그렇게 시끄러운 객실 옆의 문이 열리고, 거기에서 심사가 불편한 듯한 엘프 소년이 나온다.


전속 하인인 듯하지만, 어떻게 봐도 애였다.
마리에가 문을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얘, 설마ㅡㅡ)

그 소년, 카일은, 마리에를 바라보며 비꼬는 말을 던졌다.

「아침부터 기운이 넘치셔서 부럽네요. 제 주인님은 컨디션이 안 좋으시니까 조용히 해주시겠습니까?」

마리에의 시선이 왔다갔다한다.

(그렇단 건, 여기에 주인공인 올리비아가 있는 건가? 나, 난감한데. 딱히 얽히고 싶지도 않고, 미움받는 것도
피하고 싶어.)

장래는 성녀이자, 홀퍼트 왕국의 왕비님이시다.


적대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다.

「미, 미안해! 친구 두 사람이 안 나와서 말이야.」

카일이 눈을 가늘게 뜬다.

「열쇠라도 빌려 오시는 게 어떨까요?」

「ㅡㅡ그럴게. 저, 저기, 미안해.」

마리에는 책을 끌어안고 있는 여자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떴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객실 침대 위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올리비아는, 돌아온 자기 전속 하인인 카일을 쳐다본다.

「ㅡㅡ쫓아냈어?」

카일은 자랑스레 말했다.

「예, 설득하고 왔습니다. 간단했어요.」

전속 하인인 카일은, 율리우스가 사 준 노예다.


올리비아가 자기 돈을 써서 구입한 게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카일의 생활비였다.

노예의 주인인 올리비아에게는, 카일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


의식주를 제공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여름방학이 끝난 뒤로는 적극적으로 던전에 도전하여 돈을 버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이마에 손을 대보니, 아직 열이 다 내려가지 않았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귀족이니까, 말투는 조심해 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한 짓을 당했을 때는, 율리우스 전하에게 말씀드리면 되잖아요.」

「그건 안 돼!」

소리를 지른 올리비아를 보고, 카일은 놀라고 말았다.

「미, 미안해. 카일 군, 물 좀 가져다 줄 수 있어?」

「ㅡㅡ네.」

카일은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 아이다.


하지만, 험한 말투가 눈에 띄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올리비아에게 어리광부리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도 있다.
여유가 없는 올리비아는, 때때로 그런 카일이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말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카일은 올리비아의 입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리비아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열이 난 올리비아는, 다시 누워서 눈을 감았다.

「사실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방에 있는 책상에는, 교과서나 공책이 놓여 있었다.


열이 나서 공부를 할 상황이 아니게 되어, 올리비아의 마음이 조급해지기만 했다.
그러자, 문을 거칠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일이 아니다.
카일이 없는 때를 노리고 온 거겠지.
올리비아는 일어나서, 양손으로 얼굴을 싸안고 일어나 휘청거리며 문으로 갔다.

「왜 그러시나요?」

그곳에 있던 건 학교의 여자들이었다.


전속 하인을 데리고 있다.

「어머, 꽤나 싫다는 표정을 하고 있네. 모처럼, 놀러 가자고 권유를 해 줬는데.」

「ㅡㅡ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서,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올리비아를, 여자가 억지로 방에서 끌어냈다.

「됐으니까 오라고! 모처럼이니까, 갬블에 대해 알려줄게. 여기 카지노에는, 게임이 많이 갖춰져 있으니까,


잔뜩 놀 수 있을 거야.」

혐오스러운 미소를 짓는 여자와 전속 하인인 아인종들.


올리비아는, 열이 오른 머리 때문에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무슨 짓을 당하는 걸까?)

호화 여객선의 실내.

카지노가 마련된 그 방에서,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ㅡㅡ말도 안 돼.」

트럼프를 사용한 카드 게임이 행해지고, 주인공 님ㅡㅡ 올리비아 씨가 계속 패배하고 있었다.


이미 판돈 같은 건 없는데도, 둘러싸고 있는 여자들이 억지로 배팅하게 만들고 있다.
돈 뿐만이 아니다.
학교로 돌아갔을 때 어떤 벌칙 게임을 할지, 여러 가지를 걸고 있었다.

「너, 진짜 약하구나.」

「ㅡㅡ.」

그래서 그런지, 올리비아 씨의 안색도 안 좋다.


호흡도 흐트러졌고, 눈의 초점이 맞질 않는다.
그리고ㅡㅡ.

『마스터, 올리비아의 상대 쪽에서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ㅡㅡ룩시온이 준 보고로, 올리비아 씨가 함정에 빠졌단 사실을 알게 됐다.


마리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저거 어떻게 할 거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마리에에게, 나는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수학여행 말인데, 3 학년 합동으로ㅡㅡ 세 군데로 보내진다.

올리비아 씨는, 운이 안 좋은 건지 공략 대상인 남자들이 타고 있지 않은 이 호화 여객선에 타게 되고 말았다.


정확하게는, 율리우스와 지르크가 탈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명에게 볼일이 생겼다는 바람에, 현지에서 합류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마리에와 대화를 나눴지만,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현지에 합류한다면 문제는 없겠지, 라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 때문에, 현재ㅡㅡ 올리비아 씨를 지켜 줄 남자는 없다.

「있지, 이대로 가다간 쟤 파산하고 말 거야.」

금액은 도저히 지불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닌 데다가 벌칙 게임의 내용도 끔찍하다.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여자들이, 도망치려고 하는 올리비아 씨를 놔주지 않는다.
주위를 전속 하인들이 에워싸고,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ㅡㅡ최악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ㅡㅡ 그리고, 여자들의 대화를 들었다.

「아, 맞아. 이제 더는 배팅할 게 없어졌으니까, 이번에는 네 퇴학을 걸지 않을래?」

「예?」

올리비아 씨가 고개를 들자, 여자들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괜찮지? 니가 알아서 자퇴하면, 이쪽도 귀찮아질 일이 안 생기니까.」

「그거 좋다. 아, 그치만 벌칙 게임에서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패배한 만큼의 금액도, 확실히
회수할 거니깐.」
「빚을 내서라도 지불해. ㅡㅡ도망가면 니 가족이나 고향이 어떻게 되려나?」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은, 웃으며 보는 사람도 있고, 동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에게 말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ㅡㅡ 왕세자 전하 일행과 친한 특대생이 눈에 거슬렸는지, 이대로 사라져 주길 바라는 학생도 많은


모양이다.
ㅡㅡ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난감해!

「내가 교대할게.」

「어?」

올리비아 양을 구하려고 하자, 마리에가 내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도박 같은 건 하면 안 돼.」

「나도 알아. 그리고, 애초에 난 도박 같은 건 안 해.」

「그, 그치만.」

「괜찮으니까 보고 있어. 난ㅡㅡ 도박은 안 하지만, 이기는 승부는 하는 남자야.」

구경꾼을 밀어내고, 테이블로 다가가자, 여자들과 전속 하인들이 노려본다.


올리비아 씨 옆에 선 나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놨다.

「사기를 치다니 공평하지가 않잖아.」

그렇게 말하자, 여자 중 한 명이 확실하게 당황했다.


다른 두 명은 동요를 감추려 하고 있다.

「ㅡㅡ이쪽으로 오지 마. 너, 이 녀석 편을 들려는 거야?」

올리비아 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맞아. 이런 끔찍한 내기를 보고, 가만히 있질 못하겠어서 말이지.」

한 명이 나를 비난한다.

「벼락출세한 주제에. 까불대지 마.」

확실히 나는 벼락출세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얼마든지 까불대 주마.

「그게 뭐 어쨌다고?」

「뭐, 뭐라고?」

평소였다면 나도 여자에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지만ㅡㅡ 지금 나는, 마리에와 임시로 약혼을 마친 상태다.
그렇기에, 구혼 활동에서 해방된 몸이란 거다.
즉, 지금 나는 무적이야!
「있잖아, 나랑 승부 안 할래? 판돈은 그래ㅡㅡ 이런 거면 어떻겠어?」

품속에서 동전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꺼낸 나는, 테이블 위에 엎질러 줬다.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온 건 금화보다도 가치가 높은, 판타지 동전인 백금화다.
여자들의 눈빛이 변한다.

「올리비아 씨가 진 몫은, 내가 맡도록 하지. 그게, 너희들도 회수하기 편할 거 아냐?」

그렇게 말하자, 나를 보던 올리비아 씨가 놀라고 있다.

「저, 저기ㅡㅡ 왜 도와주시는 건가요?」

나는 「지금은 괜찮으니까」 라고 말하며, 여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자 중 한 명이 웃었다.
벼락출세한 놈인 나를 갬블로 이겨서 망신을 당하게 해주리라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좋아. 하지만, 졌다고 해서 사기를 이유로 대면서 도망가지 마.」

이미 이긴 심산인 모양이다.

「ㅡㅡ물론이지. 하지만, 찾아내면 봐주지 않는다.」

「핫! 얼른 앉기나 하시지.」

나는 올리비아 씨와 교대해서 승부를 시작한다.


그러자, 룩시온이 내게 말을 전해 온다.

『마스터, 그녀들의 전속 하인이 카드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 소매에 카드를 숨기고 있네요.』

나는 뒤돌아보며, 전속 하인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건 그렇고, 소매에 카드를 숨기고 있는 이 놈들을 치워주지 않을래? 이미 다 들켰거든.」

전속 하인들이 동요한단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만, 내 뒤에 있던 마리에가 그 중 한 명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카드가 몇 장 떨어진다.

「아, 이 자식 카드를 숨기고 있었어!」

여자 세 명이 엄청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긋, 하고 웃었다.

「이걸로 사기라고 떠들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ㅡㅡ그러면, 시작해 볼까?」

룩시온을 써서 사기를 치는 내게, 눈앞에 있는 여자들이 이길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말이지.

호화 여객선의 카지노.

올리비아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자기를 괴롭히고 있던 여자 세 명이, 울면서 카드를 보고 있다.
몇 번이나 리온에게 사과하고 있다.

「용서해 주세요. 더 이상 배팅할 게 없어요.」

사기를 치면 간파당하고, 승부를 하면 패배한다.


리온을 앞에 두고, 도망치지도 못하는 여자 셋이 패배해서 나온 금액은, 올리비아가 패배해서 나온 금액보다도 더
불어나 있었다.
리온은 웃고 있다.

「아까 그녀에게 말했었지? 빚을 져서라도 갚게 만들겠다, 였나? 너희들이 말한 거잖아. 지면 똑같이 지불해 줄
거지? 자, 콜이다!」

카드를 꺼내자, 또 다시 리온이 승리했다.


리온은 아까 전부터 계속 이기고 있다.

주위에서 사기를 치고 있다고 짐작하며, 어떻게든 증거를 잡으려고 하지만ㅡㅡ 증거가 하나도 나오질 않는다.
그 반면에, 여자들이 치는 사기는 모두 간파당한다.

「내가 이겼다! ㅡㅡ자, 그러면 다음에는 뭘 배팅하게 만들어 볼까?」

여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고 하자, 리온이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

「도망가면 너희들 집으로 돈을 받으러 갈 거다. ㅡㅡ오프리나 라판처럼, 왕국의 지도에서 가문 이름을
지워주마.」

얼마 전, 발트하르트 가문이 오프리 가문과 라판 가문을 없애버렸다.


리온의 위협이 허세로 들리지 않는 여자들은, 자리로 돌아와서 꼴사납게 울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할게요. 사기친 것도 사과드릴 테니까, 용서해 주세요.」

울면서 리온에게 사죄하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을, 리온은 용서해주지 않는다.

「안 돼. 너희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이해할 때까지, 이 게임은 속행한다. 깨달을 때까지, 대체 얼마나
잃게 될까?」

그 말을 들은 여자 세 명이, 리온 옆에 있던 올리비아를 보고 울면서 사과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만 용서해 주세요. 이런 거금ㅡㅡ 지불할 수가 없어요.」

올리비아는, 머리를 숙이는 여자들을 보고 당황하는 것이었다.

「어ㅡㅡ 아ㅡㅡ.」

이해할 수 없었다.
평민인 자신에게 귀족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도와 준 리온도 이해할 수가 없다.


리온은 카드를 놓고 일어선다.

「ㅡㅡ너희들이 패배한 몫은 보류해 주도록 하지. 다음에 특대생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다간, 진짜로 수금하러 갈
테니까 각오해 둬라.」

리온은 세 사람에게서 돈을 빼앗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가려는 리온에게 올리비아가 말을 건다.

「저, 저기, 어째서 도와주신 건가요?」

이런 귀족은ㅡㅡ 처음이다.
율리우스 일행과는 다른 리온의 태도에, 올리비아는 조금이나마 빛을 찾아낸 것 같았다.
리온은 올리비아에게 등을 돌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ㅡㅡ왠지 모르게? 또 무슨 일 생기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해 줘.」

가는 리온을 보며, 올리비아는 생각했다.

(저런 귀족님도 있구나.)

수학여행지는 일본풍 부유섬이었다.

여기는 그 여성향 게임에서, 엄청 귀중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그 섬에서 밤에 열리는 축제에서,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파는 아이템ㅡㅡ 부적이 엄청 성능이 좋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얻어두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랑 마리에는ㅡㅡ.

「도망가지 마라, 임마아아아!」


「부적을 팔라고오오오!」

ㅡㅡ유카타 차림으로, 여우 가면을 쓰고 부적을 파는 남자를 쫓아다니고 있다.

「누가 좀 살려줘어어어!」

이 녀석이 팔고 있는 부적이, 게임에서는 성능이 좋은 데다가 캐릭터의 육성 면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하므로


어떻게 해서든 확보해두고 싶었다.
그러나, 이 녀석이 팔고 있는 부적 말인데, 내용물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종류도 많아서, 노린 부적이 나올 확률은 낮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하면 그만이다.


허나, 현실에는 세이브도 없거니와 로드도 없다.

ㅡㅡ없는 걸까? 있으면 편할 텐데 말이야.


그리고, 이 부적은 1 인당 한 개까지라고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단판승부를 해야 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적을 죄다 사재기하려 하고 있다.


그러자, 이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사, 사재기 같은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걸 기대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신다구요!」 라고 말하며, 우리들에게 팔아주질 않는 것이다.

ㅡㅡ그런 거 용납 못하지.

「돈이라면 있다고! 가격의 10 배를 주고 살 테니까! 100 배라도 괜찮아!」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도망가면서 거부한다.

「안 됩니다!」

마리에도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쫓아가고 있다.

「그러면 적어도 한 개라도 팔라구!」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확인을 한다.

「정말 한 사람당 한 개 뿐이에요. 한 개 뿐이니깐요!」

못을 박는 여우 가면 남자에게, 나는 소리 질렀다.

「알았으니까, 서라고!」

멈춰 서 준 여우 가면 남자는, 무서워하듯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 남자에게 부적값을 건넸다.

나와 마리에는 땀범벅이 되어 어깨로 호흡을 하면서 그 남자가 가지고 있는 상품에서 부적을 고른다.
단, 흰 색 종이 봉투에 들어가 있어서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당첨돼라ㅡㅡ 앗!」

내가 고른 봉투에 담겨있던 건, 하얀 구슬에 빨간 실이 달린 것이다.


마리에도 구입하자, 여우 가면을 쓴 남자는 도망가듯이 달려갔다.

「당첨돼라. 당첨돼ㅡㅡ 랏!」

마레이가 봉투에서 꺼낸 건, 은색으로 빛나는 검과 방패 장식이었다.


서로, 상대방이 손에 넣은 아이템을 바라본다.
마리에가 내게 검과 방패 장식을 내민다.

「나, 이거 필요 없으니까, 그거 줘.」

「그게 나으려나. 그건 그렇고 지쳤다.」

「벌써 땀범벅이야. 지쳤으니까 쉬고 싶어. ㅡㅡ앗!」

서로 교환하자, 하늘에서 큰 소리가 울러 퍼졌다.


올려다보니까, 꽃불이 차례차례 잇달아 밤하늘로 올라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지친 우리들은, 근처에 있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마리에는 볼꽃놀이를 바라보며, 나와 교환한 부적을 보고 있다.


유리구슬만한 크기의 하얀 구슬은, 분명 마력을 높여서 치료 마법의 적성을 향상시키는 아이템이었을 거다.
마리에에게는 딱 맞겠지.

「ㅡㅡ고마워.」

마리에가 감사 인사를 하길래, 나는 부적 얘기를 하는 거라 생각하고 대답을 한다.

「나도 노리고 있던 부적을 얻었으니까 괜찮아.」

그러자 마리에는 나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손가락에 코끝이 눌렸다.

「너도 둔감하구나. 딱히 부적만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야.」

「아니, 알 리가 없잖아. 제대로 말로 하라구.」

불평을 하자, 마리에는 수줍어했다.


벤치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다.

「그, 그러니까ㅡㅡ 우리 집 일이라든지, 오프리 백작가 일이라든지ㅡㅡ 이, 이것저것 말이야!」

「그걸 인사 한 마디로 끝내려고 한 거야?」

「똑바로 고맙다는 말을 못했으니까, 말로 한 거잖아!」

「예, 예, 그러십니까.」

정말로 전생의 여동생을 닮은 애다.


마리에 쪽은 「이런 부분까지 전생의 오빠하고 똑같아.」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볼꽃놀이를 감상하며, 우리는 계속 대화한다.


마리에는, 오프리 백작가를 이렇게 빨리 퇴장시켜도 괜찮았던 거냐고 걱정하고 있다.

「저기, 공적 이벤트는 어떻게 할 거야?」

「성녀의 목걸이를 말하는 거야? 안심해. 내가 숨겨두고 있으니까. 뭐, 시기가 되면 주인공 님에게 바칠
거야.」

「회수한 거야!?」

「그야 당연하지.」

「저기, 보여줘.」

「안 가져와서 못 보여줘. 학교에 돌아가면 보여줄게.」

「약속한 거다!」
사실 오프리 백작가가 협력하고 있던 공적은, 그 여성향 게임의 중요 아이템을 숨겨두고 있었다.
그게 성녀의 목걸이다.
주인공 님께서 지니시면, 굉장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괜찮을까? 이벤트가 하나 사라져 버렸어.」

「괜찮겠지?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면, 나도 얽힐 테니까.」

「뭐?」

더욱 큰 꽃불이 밤하늘에 퍼지고, 마리에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왜 놀라는 거야?」

「그, 그야, 전쟁에 얽힌다니까.」

「그 여성향 게임을 떠올려 봐. 학생들도 참가했었잖아.」

「그, 그치만.」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룩시온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 그렇지. 걔가 있으면, 리온은 지지 않으니깐 말이야.」

「그런 거지.」

그대로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둘이 함께 보냈다.

수학여행이 끝나자, 딱히 변한 것도 없는 일상이 돌아왔다.

나는 마리에를 다과회에 초대하고, 룩시온과 셋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화제는ㅡㅡ 성녀의 목걸이에 대해서다.
룩시온이 성녀의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마리에에게 말을 건다.

『이게 성녀의 목걸이입니다. 제게 있어서는, 그냥 목걸이일 뿐이지만요. 권위의 상징인 건가 싶었습니다만,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뭔가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마리에는 자기 목에 걸어 봤다.

「그거 좋네. ㅡㅡ어때?」

성녀의 목걸이를 건 마리에는, 나에게 보여 준다.

「안 어울려.」

웃어 주니까, 마리에가 화를 냈다.


「뭐야! 좀 더 칭찬해 줘도 되잖아!」

나는 마리에를 보면서,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뭔가 신비한 효과라도 있어?」

마리에는 자신의 양손을 본다.


그리고, 목걸이에서 흘러 들어오는 힘을 포착하기 위해서인지, 눈을 감은 채로 잠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눈을 뜨자ㅡㅡ.

「ㅡㅡ안 되겠어. 조금 효과가 있으려나~, 싶은 정도? 역시, 세 개가 다 모이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ㅡㅡ안 되는 모양이다.

「아쉽게 됐네. 그래도, 조금은 효과가 있는 거지?」

「아마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그 말을 들은 나는, 성녀의 목걸이를 마리에에게 맡겨 두기로 했다.

「그러면, 네가 갖고 있어. 내가 사용해도 효과 같은 건 느끼지도 못했으니까.」

「뭐!? 그래도 돼? 도둑이라도 맞으면 어떻게 해!」

그런 마리에에게, 룩시온이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목걸이에는 발신기도 부착해 놨습니다. 또, 마리에 주변에는 드론을 배치하고 있으니까, 뭔가 움직임이 있다면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ㅡㅡ그러면 내 프라이버시는 지켜지고 있긴 한 거야?」

늘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마리에는 엄청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리에의 프라이버시는 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마스터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어요. 또, 반대로


마스터의 비밀도 말하지 않을 거에요.』

「잠깐만, 그러면 리온이 바람 피우더라도 안 알려줄 거라는 뜻이야?」

『예. 마스터의 비밀은 제가 지킬 겁니다.』

왜 얘는, 내가 바람을 피울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게 더 심한 짓 아닌가?

「너희들, 사람을 바람둥이인 것마냥 말하지 마라.」

마리에는 의자에 앉아서 주눅든 것처럼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다.

「나는 말이지, 남자의 본능적인 부분은 신용하질 않거든.」


「그러십니까. 뭐, 그건 됐다 치고, 니가 갖고 있어도 괜찮으니까 안심해.」

마리에는 아직도 불안한 모양이다.

「괜찮을까?」

그러자, 룩시온이ㅡㅡ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마스터는 마리에를 걱정하고 있는 거에요.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갖고 있길 바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마리에는, 조금 놀란 뒤 나를 바라보며 히죽대기 시작했다.

「헤에~ 흐~응, 그랬구나~」

룩시온 녀석이 괜한 말을 하니까, 요 녀석이 까불대잖아.


내가 얼굴을 돌리자, 마리에는 테이블에 놓인 과자를 먹는다.

「그보다 말이지~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뭘 말하고 싶은지 바로 이해했다.


그 여성향 게임의 스토리를 말하는 거겠지.
서로에게 있어서 꽤나 옛날 얘기라, 떠올리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2 학기는 이벤트도 많았지만, 3 학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가? 그보다, 겨울방학은 어떻게 할 거야?」

「겨울방학? 집에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마님하고 형님ㅡㅡ 아, 아버지의 정실인 조라와 장남인 루트아트지. 그 인간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말이야. 구
오프리 가문의 영지를 루트아트에게 넘기라고 악을 써대면서 온다는 모양이야.」

「아~ 정실인 사람? 리온 집도 힘들겠다. 어라? 설마, 뺏길 가능성이 있는 거야?」

루트아트에게 작은 형의 영지가 뺏긴다?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문제없어. 그걸 위한 후원자로서, 로즈블레이드 가문과 손을 잡은 거니까. 로즈블레이드 백작도, 작은 형을


마음에 들어하니까 안심이야.」

작은 형과 도로시아 씨의 이야기를 듣고, 백작이 뭐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작은 형이 「저, 기대에 부응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한 모양인데, 웃으면서 「자네는 이미 충분히 기대에
부응해 줬네.」 ㅡㅡ라고 했다더라.
백작의 속마음을 의역하자면 「너만큼은 놓치지 않겠다.」 는 뜻이 되려나?

제멋대로 구는 딸의 신랑감으로, 작은 형은 최고였던 거지.


그런 작은 형의 영지를, 분명 백작이 지켜줄 거다.
작은 형을 바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역시 내 지휘는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마리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다.

「리온의 형ㅡㅡ 닉스 씨가 『너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었지?」


「형제니깐 말이지. 고맙다고 인사하기 쑥쓰러워서 저러는 거야.」

「진심으로 원망하는 눈이던데.」

「분명 언젠가는 이해해 줄 거야. 동생 덕분, 이라고.」

다른 사람들 시선으로 보자면, 작은 형은 나보다도 더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갑자기 백작이란 신분을 손에 넣고, 대귀족의 영애를 아내로 맞이한 거다.
최고의 승리자인 셈이다.

아~아, 부럽구만! ㅡㅡ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역시 결혼 상대가 도로시아 씨니까.


게다가, 백작가의 영지 같은 걸 강요받았으니, 조금 불쌍하긴 한가? 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므로, 룩시온에게 보조는 시킬 생각이다.

「오늘도 홍차가 맛있구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리에는 나를 보고 말한다.

「너, 언젠가 따끔한 맛을 보게 될 거야.」

그 날 밤.

마리에가 침대 위에서 담요를 걷어차고, 배를 드러낸 채로 자고 있다.


행복하게 자고 있다.

「오ㅡㅡ 빠ㅡㅡ 끄우~」

그러자, 침상 옆탁자에 놓은 성녀의 목걸이에서, 괴상한 그림자가 마리에를 향해 뻗어왔다.


그건 사람의 모습이었다.
손이 마리에에게 뻗어오자 목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ㅡㅡ찾았다. 나의 혈연자ㅡㅡ 자손.)

그리고 마리에를 건드리자, 검은 그림자는 당황한다.

(뭐, 뭐야!? 몸을 빼앗을 수 없다고?)

검은 그림자의 목적은 마리에의 몸을 빼앗는 거였다.

(그러면, 정신 깊숙한 곳을 간섭해 주면 그만이지!)

검은 그림자가 마리에의 정신의 깊숙한 부분까지 간섭한다.


자고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마리에의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침입하면, 상대는 무방비한 상태다.


간단하게 몸을 빼앗을 수 있지만, 이를 행하면 검은 그림자도 힘을 소모하게 되니까 피하고 싶었다.
허나, 그런 소리를 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

마리에의 마음으로 침입하자, 문이 놓여 있었다.


자물쇠가 잠겨 있다.
검은 그림자는, 그걸 억지로 비집어 열고서 안으로 들어간다.

(ㅡㅡ뭐야? 이국의 방인 건가?)

그곳은 여성스러운 방이지만ㅡㅡ 어딘가, 이 세계하고는 다른 분위기였다.


낯선 물건이 많고, 가구나 놓여 있는 도구 중에선 사용법을 알지 못하는 물건이 많다.
검은 그림자가 넓지도 않은 방 안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애를 바라본다.
마리에는 자고 있다.

(이 녀석, 꿈 속에서도 자고 있는 건가!? 게다가 모습이 다르잖아. 이쪽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자기 모습 같은


건가? 이봐, 일어나라!)

마리에의 모습은, 방금 전까지의 현실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전생의 모습이었다.


방은 전생에 살고 있던 본가 쪽 방이다.

「뭐야. 시끄럽게스리~」

마리에의 마음속에 있는ㅡㅡ 솔직한 마음이 깨어나서, 졸린 눈을 비비며 검은 그림자를 바라본다.

「ㅡㅡ너, 누구야?」

잠에서 덜 깬 마리에를 상대로, 검은 그림자는 몸을 빼앗으려고 행동을 시작했다.


먼저 자기 소개다.

(나 말이냐? 나는ㅡㅡ)

마리에는 크게 하품을 하고, 그대로 꾸벅대며 졸기 시작한다.

(자지 마!)

핫, 하고 고개를 든 마리에는, 입가를 닦고서 검은 그림자에게 말한다.

「아, 안 잤거든. 날 자게 만들면 대단한 거지.」

잠에서 막 깨어나서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녀석, 진짜 너무 글러먹었구만. 그건 그렇다 치고, 너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다. 내 힘을 원하지 않나?


나는 성녀의 목걸이에 깃들어있는 힘 그 자체다. 네가 받아들여 준다면, 더 큰 힘을 빌려주마. 성녀의 힘을
원하지 않나?)

마리에가 베개를 끌어안고서, 잠결에 뻗친 머리를 놔둔 채로 검은 그림자를 바라본다.


꽤나 의심하고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히, 힘을 원하지 않는 거냐?)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러면 속으로는 힘을 갈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들 힘을 갖고 싶어 했다.

과거에 몇 번이나 시험해 본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자손ㅡㅡ 혈연자가 아니기에, 몸을 빼앗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 문제도 있어서, 성녀의 목걸이는ㅡㅡ 신전의 관리를 빠져나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빼앗을 몸을
찾아 다녔다.
성녀의 목걸이라는 귀중한 도구가, 신전의 관리에서 빠져나온 이유인 것이다.
진지하게 말하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마리에는 콧방귀를 뀐다.

(그 반응은 뭐냐?)

「ㅡㅡ너 말이야, 뭔가 수상하거든. 그러니까, 성녀의 힘 같은 건 필요없어.」

(뭐가 말이냐? 너에게 힘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잖나?)

「그게 수상하다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나한테 힘을 빌려준다니ㅡㅡ 너무 수상해서 뭔가 꾸미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 그렇지 않아!)

「거짓말하고 있네. 나라면 남을 속일 때 똑같이 할 거야.」

(ㅡㅡ뭐?)

검은 그림자는 생각했다.
이 녀석, 자기가 나쁜 인간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나? 하고.
허나, 이 정도 수준의 여자는 지금까지 몇 명이나 봐 왔다.

(훗, 간파당했다면 어쩔 수 없지. 사실은ㅡㅡ)

적당히 말로 구워삶으려 들자, 마리에는 침대에 누워서 팔꿈치를 괴고서 히죽대는 얼굴로 바라본다. 대담한 태도
때문에 검은 그림자는 짜증이 솟구쳤다.
검은 그림자는, 이런 녀석이 자기 자손이라고 생각하자 싫은 기분이 들었다.

「거짓말하지 마. 너에게선, 나하고 같은 냄새가 나거든.」

(너하고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알 수 있다고. 여자는 여자의 더러운 부분에 민감하단 말이야. 나의 여자로서의 감이, 너는 위험하다고
알려주고 있어.」

(이, 이년이!)

이제, 말로 구워삶기를 포기하고, 억지로 몸을 뺏어 버리고자 행동하기 시작한 검은 그림자는 마리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리에의 마음의 벽이라고 할 수 있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뭣이!?)
검은 그림자가 필사적으로 마리에를 향해 손을 뻗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서 닿지 않는다.
마리에는 하품을 하고 있다.

「헛짓이야. 나는 기본적으로 아무도 신용하질 않아.」

(이 뱃속이 시커먼 년이이이!)

검은 그림자가 소리를 지르자, 마리에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앙? 나한테 뭔가 하려고 한 주제에, 뭔 놈의 태도가 그따위야? 애초에, 이 방은 내 소중한 퍼스널


스페이스라고. 말하자면, 나만의 공간이란 거지. 멋대로 들어온 시점에서, 너는 당연히 되먹지 않은 존재란
소리잖아.」

열받게도, 마리에의 몸을 빼앗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마리에가 사람을 신용하고 있질 않다.
나쁜 의미로 마음에 빈틈이 존재하질 않는 것이다.
마리에가ㅡㅡ 얄미운 여자이기 때문에, 마리에의 마음을 봉인하고, 몸을 빼앗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최소한, 네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ㅡㅡ)

복수하기 위해 이 방에서 날뛰려고 하자, 마리에는 눈을 부릅떴다.


긴 머리카락이 살아있는 것마냥 꿈틀거린다.
눈이 요사스럽게 빛나서,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너ㅡㅡ 내 방에서 날뛰려고 했지. 절대 용서 못 해. 저주해 주마. 후세까지 원망해 주마아아아!」

(니, 니가 그런 소리를 하냐! 애초에, 네가 내 자손이니까 지금은 네가 후세ㅡㅡ)

이미 마리에의 언동은 괴물 같은 부류에 가까웠다.

「여기는 내 마음 속. 최강의 존재를 불러내서, 너를 내쫓아 줄게. 오빠, 살려줘어어어! 얘가 나를 괴롭혀어


~」

마리에가 응석 부리는 목소리를 내자, 방문이 철컥, 하고 열렸다.


거기에서 들어온 건, 검은 아우라 같은 걸 풍기면서 눈을 붉게 빛내고 있는 한 청년이었다.
손에는 금속 배트를 쥐고 있다.

「ㅡㅡ박살내 버린다.」

한 마디를 중얼거리고선, 문답무용으로 검은 그림자에게 금속 배트를 내리찍었다.

(뭣!?)

마리에가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최강의 존재.


아무래도, 그건 오빠인 모양이다.
마리에가 만들어낸 오빠가 금속 배트로 검은 그림자를 마음속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있다.

「오빠, 해치워버려! 그 녀석을 두들겨 패 줘!」

마리에가 오빠를 응원하고 있다.


검은 그림자는, 마리에의 마음의 강인함ㅡㅡ 꺼려지는 강인함의 앞에, 꼼짝달싹도 못했다.

(너, 자기가 만든 오빠를 이 방에 구현화하다니ㅡㅡ 즉, 브라콘이란 거냐!)

마리에는 도망다니는 검은 그림자를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런데요, 그게 뭐 어쨌다고요? 나는 오빠를 진~짜루 좋아하거든.」

이 안에 있는 마리에는 솔직했다.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야, 얼른 이 방에서 나가기나 해.」

마리에는 검은 그림자에 대한 관심이 식었는지, 하품을 하고 자려고 한다.

(이, 이딴 게 내 자손이라고오오오!)

오빠의 풀스윙을 맞아서, 검은 그림자는 마리에의 방에서 내쫓기고 말았다.

(네 이녀어어언!)

ㅡㅡ정신이 들고 보니까, 검은 그림자는 마리에의 마음에서 쫓겨나 버리고 말았다.


검은 그림자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중얼거린다.

(이 어찌나 지독한 년인가.)

천하태평하게 자고 있는 마리에의 몸을 빼앗지 못했다.


절호의 찬스였는데, 마리에의 마음이 철벽 그 자체인 수비를 선보여서 어쩔 방도가 없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 거야. 모처럼, 내 혈연자가 내 사념을 머금은 도구를 손에 넣었는데! 모처럼의
기회가ㅡㅡ 이런 뱃속 시커먼 년에게 망쳐지고 가만 있을쏘냐.)

성녀의 목걸이에는, 어떤 인물의 사념이 깃들어 있다.


마리에의 몸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실패해 버려서 분해하고 있었다.
되려, 몸을 빼앗으려다가 반격을 당해서, 자기가 흠씬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

(이, 이 년, 혹시 피가 묽은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지. 힘은 진짜배기야. 자질도 있어. 허나, 성격이ㅡㅡ


너무 더러워서 몸을 못 뺏겠어!)

검은 그림자가 마리에 앞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가, 방구석에 떠 있는 구체를 알아챘다.

(뭐, 뭐야, 이건?)

검은 그림자를 구체가 바라보고 있다.


도망가려고 하자, 창문에서도 몇 개나 둥근 구체ㅡㅡ 외눈의 구체들이 떠올라서,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뭔가를 조사하는 듯하다.

(제, 젠장할! 이러면 목걸이로 돌아가ㅡㅡ 어?)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자기가 깃들어 있던 목걸이가 없어져 있었다.


당황하는 검은 그림자.

여기저기를 둘러보자, 조금 커다랗고 둥근 구체가 떠 있었다.


그 아래에, 성녀의 목걸이가 떠 있다.

『찾고 계신 건 이겁니까?』

(말을 했다고? 지금 시대에는, 이런 것까지 존재하는 건가.)

놀라고 있는 검은 그림자에게, 룩시온이 말한다.

『경계하고 있길 잘했군요. 그건 그렇고,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샘플로서 포획하도록 하죠.』

(이, 이런 곳에서 잡힐 수는 없다!)

검은 그림자가 도망치려고 하지만, 이미 방안은 포위되어 있었다.

문의 틈새로 빠져나가려 해봐도, 그대로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서 포박당하고 만다.

(놔, 놔라!)

『ㅡㅡ안 됩니다. 당신에게는 여러모로 물어볼 게 있으니깐 말이죠.』

붉은 외눈을 보는 검은 그림자는, 공포에 떨듯이 몸을 움츠렸다.

(그, 그만해. 내게는 목적이ㅡㅡ 이뤄야 할 일이!)

『그것도 포함해서, 천천히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룩시온이 마리에를 지켜냈다.


허나, 장본인인 마리에는, 배를 드러내고 침을 흘리면서 행복한 듯이 자고 있다.

「오빠아ㅡㅡ 더는 못 먹어.」

맛있는 거라도 먹는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


검은 그림자가 마리에를 원망한다.

(너 이 계집년아아아!)

다음 날.

나는 마리에를 다과회에 초대하여, 낌새를 살펴보고 있었다.


룩시온이 한 보고에 따르면 문제는 없다는 듯하지만, 누군가에게 몸을 빼앗길 뻔했다는 것 같다.
그렇지만ㅡㅡ.

「이 과자 최고야!」

ㅡㅡ케이크를 잇달아 먹는 마리에는, 평소하고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몸을 빼앗길 뻔했다고는 생각되지가 않는다.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아주 천하태평이다.

「ㅡㅡ너는 고민이 없어 보여서 부럽다.」

홍차를 컵에 따르면서 말하자, 마리에는 입가에 크림을 묻히면서 항의한다.

「나도 고민 정도는 하거든!」

「헤에~ 어떤 고민?」

실실 웃으면서 들어 주자, 마리에는 눈길을 헤매면서 대답했다.

「다, 다음 시험이라든지, 생활비라든지ㅡㅡ」

공중에 떠 다니는 룩시온이, 마리에의 고민을 듣고 답변한다.

『이 학교에서는, 그렇게까지 성적이 중요해질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생활비도, 마스터에게


받으셨잖아요?』

마리에가 포크를 입에 넣고, 부끄러워 하고 있다.

「ㅡㅡ키하고 가슴이라든지.」

그걸 들은 나는, 풋, 하고 뿜어버리고 말았다.

「뭐여, 그게.」

웃음을 터뜨리자, 마리에가 흥분한 건지 큰 소리를 지른다.

「시끄러워! 나도 말이야, 신경쓰고 있다고. 뭐냐고. 너무 노력해서 성장이 멈추다니 너무하잖아. 전생에서는
몸에도 자신이 있었는데ㅡㅡ.」

또 얘가 전생 자랑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포기해. 아니면, 룩시온에게 달아 달라고 부탁할래?」

룩시온이라면 성형도 간단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리에가 고개를 들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룩시온을 바라본다.

「룩시온, 내게 키와 가슴을 줘!」

그런 마리에에게 룩시온은ㅡㅡ.

『거절합니다.』

ㅡㅡ거부했다.

「ㅡㅡ어?」

마리에가 굳은 미소를 짓고 있다.


룩시온은, 성형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애초에, 외관을 건드릴 필요성이 존재하질 않습니다. 확실히 발육 부족이긴 합니다만, 마리에는 충분히
건강하니까요.』

마리에가 울고 있다.

「뭐 어때서 그래! 좀만 달라구!」

『안 됩니다.』

「이 짠돌이!」

참 수준 낮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마리에에게 물어봤다.

「왜 키와 가슴을 갖고 싶은 건데? 전에는, 난 미인이니까 이거면 충분해, 라고 말했었잖아.」

그러자, 마리에가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ㅡㅡ니가, 올리비아를 보고 헤벌레하니깐 그러지.」

「뭐? 내가 언제, 올리비아 씨를 보고 헤벌레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자, 룩시온이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그건 수학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올리비아 씨의 가슴에 눈길을 보내는 내가 있다.

『시선이 몇 번이나 가슴으로 이동했었습니다. 우연, 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ㅡㅡ이건 그런 게 아니야. 그게, 그냥 본능이니까.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냐. 남자의 눈은, 어떻게 해도


가슴을 록온해 버리고 말거든.」

고성능 록온 장치를 남자는 모두 갖고 있다.


변명을 늘어놓는 나에게, 마리에가 포크를 던진다.

「역시 보고 있었잖아! 그렇게 가슴이 좋냐, 멍청한 놈아!」

「좋아하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아니면 뭐야? 싫습니다, 하고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거야?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요령이 좋지 않단 말이야!」

「왜 좋은 말을 했다, 란 표정을 짓는 건데? 바보야? 성취향 드러내놓고 창피하지도 않아?」

마리에가 평소보다 화를 내고 있다.

「나 자신에게 거짓말은 할 수 없ㅡㅡ 지?」

묘하게 가슴이 술렁였다.


가슴이 조여오는 것 같아서, 자연스레 내 가슴을 손으로 누른다.
내 상태가 이상하다면서, 마리에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들여다 봤다.

「왜 그래? 안색이 나빠.」


룩시온도 나를 보고 있다.

『ㅡㅡ심박수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발한도ㅡㅡ 마스터, 조금 진정해 주세요.』

테이블에 손을 얹고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마리에가 나를 걱정한다.

「괘, 괜찮아? 아, 나 치료 마법 잘 쓰니까, 진찰해 줄게.」

마리에가 내 손을 잡는다.
그 손이 따뜻했다.
나는 마리에의 작은 손을 잡는다.

「ㅡㅡ리온, 너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모르겠어. 아무것도 아니긴 할 텐데 말이야.」

일순간ㅡㅡ 무척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대체 뭐였던 걸까?
마리에가 방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길래, 신경이 쓰여서 물어봤다.

「왜 그래?」

「으~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거든. 호, 혹시, 이 방 말인데 귀신 붙은 물건 같은 거 아닐까!? 나, 그런


거에 민감하거든!」

ㅡㅡ어젯밤에, 무언가에게 몸을 빼앗길 뻔한 상황에서 태평스레 자고 있던 여자가 한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무렵, 올리비아는 홀로 던전에 와 있었다.

등에 짊어진 짐 속에는, 마석이나 금속을 잔뜩 쑤셔 넣어놨다.


그게 너무나 무겁다.
허나, 돈을 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올리비아는 노력하고 있다.

「영, 차.」

던전 깊은 곳까지 도전하여, 거기서 얻은 고순도의 마석을 들고 돌아가면 그럭저럭 돈이 된다.


한동안은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벌었다.

「오늘은 무리를 해 버렸네.」

쓴웃음을 지으며 던전 안을 걷고 있자, 옆길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ㅡㅡ그건, 전속 하인을 데리고 온 여자들이었다.
올리비아의 앞을 가로막아 선다.

「어, 저기?」

도망치려고 하지만, 뒷쪽도 가로막혀 버렸다.

「혼자서 이런 곳까지 오다니 부주의하구나.」

여학생이 그렇게 말하면서, 전속 하인들에게 올리비아를 둘러메게 한다.

「놔 줘요! 놔 주세요!」

여학생들이 웃고 있다.

「네가 까분 게 잘못이지.」

「덕분에, 그 발트하르트에게 찍혀 버렸잖아!」

올리비아가 끌려간 곳은, 출입 금지라고 써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깊은 수혈(縦穴)이 있었다.
꽤나 큰 구멍이며,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떨어지면 위험하단 걸 바로 알 수 있는 구멍이다.
여학생들이 말한다.

「ㅡㅡ학교의 학생이 말이지, 던전에서 죽는 경우가 있거든. 몇 년에 한 번 정도지만 말이야.」

올리비아는 여자들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눈치채 버렸다.

「자, 잠깐!」

「바이바이.」

여학생들이 웃고 있다.

「네가 잘못한 거야. 평민 주제에 건방지게 구니까.」

「왕태자 전하랑 다른 분들에게 접근한 분수도 모르는 년이, 진짜 꼴 좋다.」

「방심한 네 잘못이지. ㅡㅡ자, 던져버려.」

전속 하인들이, 올리비아를 구멍 속으로 던저버렸다.


낙하하는 올리비아는 손을 뻗었다.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걸까?

율리우스의 마음에 들어 버렸으니까?


내가 학교에 있으니까?
올리비아는 눈물을 흘린다.

「나, 나는ㅡㅡ!」

그러자, 구멍 안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커다란 입을 열고 다가왔다.


이대로 먹혀버리나 싶었는데, 그런 몬스터를 한 둥그런 빛을 내는 무언가가 찢어 버리고 검은 연기로 만들어
버렸다.

안개처럼 사라진 검은 연기 속에서, 올리비아가 놀라고 있자 그 무언가는 왼팔에 휘감겨 왔다.


왼팔에 감긴 건 팔찌였다.

팔찌가 빛나자, 낙하 속도가 점차 느릿해져 간다.


지면에 도착하자, 다치지 않고 착지할 수 있었다.

「이건, 뭘까?」

나를 지켜 준 걸까?
신비한 팔찌라고 생각해서 들여다보자, 팔찌는 희미한 빛을 뿜었다.
올리비아의 눈이 빛을 잃는다.

그러자, 팔찌에서 한 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육체는 없으며, 마치 환상 같은 여성은 멍하니 있는 올리비아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ㅡㅡ찾아냈다.』

올리비아는 저항하지 못 한다.

「저, 저기.」

『ㅡㅡ내 피를 이어받았군. 너는 내 힘과ㅡㅡ 이 마음, 그리고 의지, 모든 걸 계승할 자격이 있다!』

그 여성은 무척 아름답고ㅡㅡ 무서웠다.


양손으로 올리비아의 얼굴을 붙잡는 여성ㅡㅡ 하지만, 실체가 없기에 만져지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그저,
너무도 차갑다는 감촉은 있었다.

『불쌍한 아이 같으니. 이런 어두운 구멍의 밑바닥에 버려지고 말았구나.』

「ㅡㅡ저, 저기.」

『그리고 무척이나ㅡㅡ 다정한 아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여성은, 마치 고스트ㅡㅡ 유령 같은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도망갈 수가 없다.
그 유령 여성이 말한다.

『너무도 솔직하고 상냥해서ㅡㅡ 빼앗기 쉬워!』

눈을 번쩍 뜨고, 올리비아의 몸을 달라붙자 여성은 사라져 버렸다.


허나, 올리비아가 희미하게 빛을 내고ㅡㅡ 그대로 얼굴을 양손으로 누르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 그만해ㅡㅡ」

엄청난 두통이 몰려온다.


올리비아가 괴로워하고 있자, 몸의 안쪽ㅡㅡ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밉지? 너를 이런 곳으로 떨어뜨린 년들이?)

「그만해!」

(밉지? 너를 학교에 입학시켜놓고ㅡㅡ 무책임하게 방치한 귀족들이?)

「그러니까, 그만 좀 해!」

(좀 더 증오해라! 좀 더 원망해라! 이렇게 된 원인은 누구에게 있지? ㅡㅡ맞아, 그놈들이다. 그 남자들이다!


귀족을 미워해라! 그놈들의 "자손"을 원망해!)

떠오른 건 율리우스 일행의 얼굴이었다.


머리를 누르는 올리비아가 괴로워하고 있지만, 목소리는 멈출 기색이 없다.

(좀 더ㅡㅡ 더 미워해라. 귀족을ㅡㅡ 이 나라를!)

「나가 줘. 내 안에서 나가 줘! 당신은 대체ㅡㅡ 누구야!」

누군가에게 구해 달라고 외쳤다.


떠오른 건ㅡㅡ 수학여행에서 자기를 구해 준 귀족 남자였다.
그러자ㅡㅡ 목소리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ㅡㅡ나는, 옛날에 이 나라에서 "성녀"라고 불렸던 여자다.)

「뭐?」

(너희들이 성녀라고 떠받들고 있는 건ㅡㅡ 나야.)

당황하는 올리비아는, 점점 두통이 격해져서 의식을ㅡㅡ 놓쳐버리고 말았다.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일어난다.
일어나서 자신의 몸을 보는 올리비아는ㅡㅡ 아니, 성녀는 빛을 잃은 눈동자로 웃고 있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올리비아의 몸을 빼앗은 성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오랜만에 육체의 감촉을 즐긴다.

「길었어. 정말 길었어. 그래도, 드디어 육체를 손에 넣었어. 이걸로 나는ㅡㅡ 왕국에 복수할 수 있어! 나와
"리아"에게서 모든 걸 빼앗은 저 쓰레기들에게 복수할 수 있어! 아하, 아하하하!!」

어두운 구멍 속에서 웃는 올리비아ㅡㅡ 성녀는, 그대로 계속 웃었다.

다음 날.

올리비아는 던전에서 쓰러져 있던 모습으로 발견되어, 병원에 옮겨졌다.


그 이야기를 듣고, 율리우스를 필두로 남자들이 병실로 뛰어들어왔다.

「올리비아, 정말 걱정했다.」
「고마워요. 율리우스」

안도하는 율리우스의 얼굴을 보며 웃는 올리비아였지만, 그 얼굴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카일이었다.

「주인님, 왠지 분위기가 바뀌셨네요.」

그런 카일의 머리를, 올리비아는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거든. ㅡㅡ여러 가지 일이, 말이야.」

그리고, 율리우스가 올리비아에게 혼자서 던전에 도전했던 일을 꾸짖었다.

「그것보다, 말이다. 올리비아,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지? 홀로 던전에 도전한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야.」

다른 남자들도 수긍하고 있었다.


다들ㅡㅡ 올리비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올리비아ㅡㅡ 성녀는 속으로 웃고 있다.

(홀퍼트에 마모리아, 아크라이트에 세버그ㅡㅡ 모인 놈들이 전부 그놈들의 자손이라니 잘 됐군. 있는 힘껏, 내게


도움을 주셔야겠어.)

올리비아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누르고ㅡㅡ 울기 시작했다.

「ㅡㅡ죄송해요.」

「왜, 왜 그러나, 올리비아!? 나, 나도 말이 너무 심했다만, 울만한 일은 아닐 텐데.」

율리우스가 당황하자, 올리비아는 손으로 가린 얼굴로 웃고 있다.

「사실은 속아 넘어갔어요. 동급생인 여학생과 전속 하인들이 저를ㅡㅡ 그래서 이런 일이.」

「뭐라고!」

자기를 구멍에 떨어뜨린 패거리에 대해 말하는 올리비아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설명했다.

「사실은 깊은 곳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던전 안에서 만나서 권유받았어요. 그러자ㅡㅡ 율리우스, 다른


분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마음에 안 든다, 면서」

그 말을 들은 율리우스 일행은, 손을 꽉 쥐고 분노를 드러냈다.


올리비아는 생각한다.

(그래, 춤춰라. 내 생각대로 춤춰라.)

올리비아의 어깨에 율리우스가 손을 올렸다.

「미안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화내서 미안하다. 올리비아, 그 여학생들은 죗값을 치르게 하마.」

올리비아는 고개를 들고,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율리우스에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율리우스. 역시, 율리우스는 믿음직하네요.」

율리우스의 이름을 강조하자, 본인은 기뻐하고ㅡㅡ 그 외의 남자들은 조금 조바심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올리비아의 관심을 끌려고 그들도 노력해 주겠지.

「올리비아, 괴로운 일을 겪게 만들었구나. 허나, 바로 내가 해결해 주마.」

율리우스가 손을 쥐었다.
올리비아는 상냥하게 두 손으로 그 손을 감쌌다.

「믿고 있어요. 율리우스」

(그래, 나는 믿고 있어ㅡㅡ 율리우스. 네가 스스로 망해줄 것이란 사실을 말이야.)

얼굴을 살며시 붉히는 율리우스를 보고, 올리비아는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다른 남자들이 질투심을 품은 걸 올리비아는 확인했다.

(그래. 더 질투해라. 내 마음에 들기 위해서, 좀 더 다투면서 나를 위해 일해라.)

올리비아의 계획대로, 율리우스 일행은 그 날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ㅡㅡ안젤리카는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전하가 여학생 세 명에게 퇴학 처분을 내리셨다고?」

측근인 여자가 보고한 내용은, 율리우스가 여학생을 억지로 퇴학시켰다는 것이었다.


보고한 여자가 당황하고 있다.

「왕세자 전하 뿐만이 아닙니다. 젖형제이신 지르크 님이나, 그 외에도 명문 귀족의 적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ㅡㅡ그 특대생을 괴롭힌 학생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학교내에서 권력을 가진 다섯 명이, 올리비아를 괴롭힌 범인을 찾아다니고 있다.


안젤리카는 눈을 가늘게 뜬다.

(전하는 그 여자에게 너무 빠져드셨구나.)

괴롭히는 건 몹쓸 일이지만, 학생들의 불만도 안젤리카는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귀족의 학생들도 율리우스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거다.
그럼에도, 특대생만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 화도 날 만하다.
안젤리카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장래를 위해 여기서 많은 학생들과 교류하여 장래의 아군을 만들어 주길 바랐다.

허나, 지금의 율리우스는 올리비아에게 푹 빠져서 주위가 보이질 않는다.


불만을 폭발시키는 학생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ㅡㅡ 안젤리카가 생각하기에는, 올리비아는 율리우스를 홀린 여자였다.

(자기 주제를 알면 좋으련만.)


「퇴학한 세 명은 무슨 짓을 저질렀지?」

여자가 대답한다.

「본인들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않았습니다만, 던전의 출입 금지 에리어에 특대생을 방치한 모양입니다.」

「ㅡㅡ멍청한 것들이.」

모험자가 존중받는 나라인 홀퍼트에서는, 파티의 동료를 버리는 행위란 건 경멸받는 행위다.
죽을 거란 걸 알고도 저버리는 패거리는, 모험자 뿐만이 아니라 귀족으로서도 끝장난다는 걸 뜻한다.
안젤리카라도 감싸줄 수가 없다.
여자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안젤리카 님, 왕세자 전하와 일행분들은 얼마나 괴롭혔는지 그 정도에 관계없이, 범인을 찾아내서 벌을
주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ㅡㅡ다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올리비아를 괴롭힌 학생이 많다는 뜻이다.


진심으로 범인을 찾으려 든다면, 수많은 학생이 처벌받게 된다.

그 처벌에 겁먹은 학생들이 의지하는 건ㅡㅡ 안젤리카였다.


안젤리카는 율리우스의 약혼자이며, 1 학년생의 조정자 역할을 맡고 있다.
입장 면에서도, 율리우스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건 안젤리카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젖형제인 지르크까지 범인을 찾는 건가. 좀 더 유능한 사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평소였다면, 지르크가 직언을 할 상황이었다.


그러지 못하는 걸 보고, 안젤리카는 지르크의 평가를 떨어뜨렸다.

(좀 더 전하가ㅡㅡ 아니, 내가 똑바로 처신해야 했어.)

이대로 율리우스 일행의 행동을 못 본 척하면, 다른 학생들이 불안하게 생각하겠지.


이래서는, 율리우스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
그렇게 판단한 안젤리카는, 율리우스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전하와 이야기를 나누겠다. 퇴학한 세 명은 둘째 치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일이야.」

여자 기숙사를 나온 올리비아는, 학교에 준비된 외딴집을 사용하고 있다.


주변 학생들을 신용할 수 없다면서 율리우스에게 부탁을 하여, 특별히 준비하게 만든 것이다.
그 곳에서, 올리비아는 율리우스와 소파에 앉아있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다.

「율리우스, 요새 바빠?」

「응? 맞아, 수학여행 전부터 바빠졌어. 발트하르트ㅡㅡ 그, 로스트 아이템을 발견했다는 남자가 있었잖아? 그
녀석과, 그 녀석의 집안이 왕국내의 귀족과 전쟁을 벌였어.」
율리우스가 수학여행에서 중도 참가하게 된 원인은, 리온 일행 때문이었다.

「ㅡㅡ어머나, 무서워. 전쟁 같은 건 하면 안 돼.」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올리비아는 속으로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었다.

(벼락출세라? 어느 시대든 기운찬 인간들은 있는 법이구나.)

율리우스와 대화를 하면서, 국내외의 정보를 모은다.


조금만 치켜세워 주면, 율리우스는 재밌다는 듯이 떠벌떠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과격한 놈이지. 그 녀석이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레드그레이브 공작이 발트하르트 가문을
옹호했어.」

「공작은 왜 그런 거야?」

「ㅡㅡ발트하르트 가문과 싸우고 있던 오프리 가문에게도 문제는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파벌 싸움 때문이겠지.


공작은, 프램튼 후작과 다투고 있었어.」

율리우스는 「내게 앞날에 도움이 될 테니까, 회의에 참가하라는 말을 해 왔어. 더러운 궁정의 다툼을 보는
것보다, 너와 수학여행을 즐기고 싶었는데」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올리비아는 속으로 웃고 있다.

(공작의 호의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군. 너는 정말 어리석은 놈이야.)

이야기를 듣자하니, 공작은 아무래도 공적과 손을 잡는 귀족을 폐하고 힘있는 귀족을 지원하는 모양이다.
그건 즉, 장래적으로 율리우스나 자신의 파벌에 편입시키기 위해서겠지.

자신을 위해서인지, 율리우스를 위해서인지ㅡㅡ 어쟀든, 율리우스의 이익도 생각해서 한 행동이란 건 분명하다.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는 건, 올리비아 입장에서도 다루기 쉬운 상대라는 뜻이다.

「파벌 싸움을 위해서 그 어떤 무모한 짓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거구나.」

낙심한 척을 하자, 율리우스가 올리비아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걱정하지 마. 내가 공작이 제멋대로 굴게 두지 않을 거야. 비록, 약혼자의 아버지라고 해도, 나를 이용해서


멋대로 굴게 두지는 않겠어.」

율리우스의 말을 듣고, 올리비아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믿음직해. 율리우스.」

「올리비아. 나는 너만 있으면」

올리비아는 율리우스를 보고 웃으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그건 그렇고 플램튼 후작이라ㅡㅡ 쓸 만하겠는데.)

올리비아의 마음속에 질척질척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ㅡㅡ기필코 이 나라를 멸망시켜 줄게.)

마리에 루트 3

학생 생활에서의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약혼이라는 부자유도 얻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리온 포우 발트하르트】입니다.

무사하게 진급하여 2 학년이 되었습니다만, 약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형을 팔아넘긴 기분은 어떻지?"

"팔아넘겼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나는 형을 위해서 노력한 건데."

"너는 늘 속이 뻔히 보인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네가 알 수 있겠냐!"

학교를 무사? 하게 졸업한 작은 형 닉스가, 기숙사에 뛰쳐들어 와서 아내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이 탄생한 발트하르트 백작가 ――전에는 오프리 백작이 다스리고 있던 부유섬을 영지로 삼은 영주 귀족이다.

전에 통치하고 있던 오프리 백작은 공적들과 손을 잡았던 사실이 드러나서 가문이 망하게 되었다.

뭐, 내가 박살냈지만 말이지. 꼴 좋다.

그래서, 비어버린 영지가 생기게 됐는데,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백작 급의 영지를 관리하란 말을 들어도 난감하지. 누가 들어도 난감하지.

왕국 입장에서도 난감하고, 애초에 오프리 가문의 재산은 왕국이 회수한 상태다.

남은 건 영지 뿐인데, 보니까 미묘한 부유섬이다.

그래서, 왕국은 새로운 영주를 그곳에 배치하기로 했다.

이번 일의 공로자는 나지만, 나는 아직 학생 신분.


그래서 희생양이 되고 만 사람이, 내 형인 닉스다.

간단하게 정리하긴 했지만, 이 사건이 정리되기까지 여러모로 어른들끼리 협의를 했던 사실은 생략한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길어지고, 재미없거든.

왕국은 백작 가문의 영지도 원하고는 있었지만, 그보다도 대륙 본토에 있는 마리에의 본가인 라판 자작가의
영지를 제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리에의 집안도 박살내게 됐는데, 라판 자작가의 영지는 본토에 있다.

부유섬하고 가치가 다르다.

왕국은 부유섬보다, 본토에 있는 영지를 직할지로 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결과, 닉스는 백작가의 당주가 되었다.

"나는―― 나는 말이지! 학교에서 제대로 된 영지 경영을 배우지도 않았다고! 동격의 귀족 자제 중에 아는


사람도 없어!
새로운 가문을 일으키는 것만 해도 큰일인데, 백작인 내가 애송이면 죽도 밥도 안 되잖냐!"

"그래서 도로테아 씨가 계신 거잖아? 아, 아니지. 도로테아 형수님이었지."

"그 도로테아도 나한텐 버거운 여자라고!"

그런 닉스를 지지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나선 게, 로즈블레이드 백작가였다.

홀파트 왕국에서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그 집안의 장녀인 도로테아 형수님은, 조금 독특하지만, 개성적인 미인분이시다.

닉스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묶고 싶다느니, 묶이고 싶다느니―― 나한테 그런 취미는 없단 말이야!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분위기의 관계가 좋단 말이야!"

"미인이니까 잘 됐잖아. 거유고."

"난 너처럼 가슴 크기로 결혼 상대를 고르진 않는다고!"

닉스의 말을 듣고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슴 크기 가지고 결혼 상대를 고른다고?


아무리 형이라도 그런 착각은 용납할 수 없지.

"정정해! 마리에에게 가슴은 없어! 그런 마리에를 선택한 내가, 가슴 크기에 집착한다는 듯이 말하지 마!
작다 어쩐다 하는 문제가 아니야! 그냥 없다고!"

형제끼리 말다툼을 벌이고 있자, 방문이 열린다.

그곳에는―― 기쁜 듯한 도로테아 형수님과――귀신 같은 얼굴을 한 마리에가 있다.

도로테아 형수님이, 닉스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찾았다, 허니. 오늘은 3 학년생을 스카웃하러 학교에 온 거잖아. 도련님하고 놀고만 있으면 못쓰지."

세상에, 닉스를 "허니" 라고 부르고 있다.

뿜을 뻔한 걸 참고 있자, 닉스의 따가운 시선이 나한테 꽂힌다.

도로테아 형수님이 방에 들어 오면서, 그대로 나를 보고 웃는다.

"리온 군, 허니를 괴롭히면 못써요."

"안 괴롭혔습니다. 형수님 자랑을 하길래, 좀 놀렸을 뿐이에요."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내 마음이 통했나 보다.

도로테아 형수님이, 닉스의 등을 두들긴다.

"어머나, 허니도 참! 리온 군에게 자랑하고 있었구나."

나를 바라보는 닉스의 표정은 대단했다.

분노, 증오―― 그것들이 혼합된 표정이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내게 쏟아졌다고 해서, 나도 똑같은 표정을 지을 순 없지.

증오에다가 증오를 부딪혀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법이다.

나는 닉스에게 미소를 띄워줬다.

"형, 힘내!"
닉스가 도로테아 형수님에게 팔을 붙잡혀서, 방을 나갈 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너 만큼은 기필코 용서하지 않겠다."

――진짜 증오가 담겨 있는 것 같았지만, 분명 기분 탓이겠지.

왜냐하면 우리들은 사이 좋은 형제니까.

당연히 장난이겠지.

"자, 허니, 가자. 최소한 여섯 명은 스카웃해야 하니깐 말이야."

"――네."

고개를 숙인 닉스가, 도로테아 형수님에게 끌려가 버린다.

그 등에는 애수가 감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분명 내 기분 탓이겠지.

나 참, 미인에다 거유인 아내를 맞이해놓고, 뭐가 불만인 걸까? 게다가, 꽤나 열심히 내조해 주는 사람이라구.

――뭐, 나라면 사양하겠지만 말이지.

두 사람이 떠난 방에서, 나는 무표정으로 서있는 마리에를 바라봤다.

"그래서, 너는 무슨 볼일로 왔어?"

마리에가 뚜벅뚜벅하며 내게 가까이 오더니, 그대로 엉덩이를 발로 찼다.

여자애가 날릴 만한 킥이 아니다.

격투가처럼 매서운 킥을 날렸다.

"아악!"

아니, 진짜 아픈데!? 뼛속까지 묵직하게 꽂히는 고통이었다.

얘, 몸은 작은데, 파워가 보통이 아니잖아!?

마리에의 얼굴이 도깨비 같이 변해 있었다.

"누구 가슴이 없다고! 너, 내 가슴을 본 적도 없잖냐!"


진심으로 화나셨나 보다.

나는 마리에의 기백에,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왜, 왜냐하면 진짜로―― 아, 거짓말입니다.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조금 쯤은 있을지도요?"

"지방 덩어리에 정신을 팔고 자빠졌어!"

"여성의 가슴에는 꿈과 희망이 담겨 있거! ――죄송합니다. 이 이상은 말하지 않겠으므로, 자세를 풀어 주세요.
진짜 아프니까 때리지 말아 줘."

마리에가 진심으로 쉐도우 복싱을 시작했기에, 항복해 두기로 했다.

얘 주먹은 묵직하다. 엄청 묵직하다.

남자라도 날아갈 정도의 펀치력이다.

뼛속까지 전해지는 위력을 갖고 있다.

마리에가 혀를 친다.

"나는 아침부터, 형님께 길을 안내해 드리느라 지쳤는데 말이야."

"도로테아 형수님을 이 방으로 데려온 게 너였냐."

"응. 그건 그렇고, 저 사람도―― 여전히 대단하지."

"――그렇지. 목줄을 교환하는 사람이니깐 말이지."

봄방학을 떠올렸다.

닉스와 도로테아 형수님의 결혼식은―― 로즈블레이드 가문의 강력한 희망에 따라, 친척만으로 거행했다.

정식적인 피로연이나 결혼식도 했지만, 비공식―― 친족만 있는 자리를, 부디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진짜, 백작가가 이쪽에 간곡하게 부탁을 해 온 것이다.

부탁이니까, 비공식 결혼식 만큼은 집안끼리만 하자! 고 말이지.

그 이유?

――반지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목줄을 교환하자고 도로테아 형수가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만두라고 말해도,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정식적인 자리에서는 참아달라 하고, 비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여서 도로테아 형수님이 마지못해 납득한
것이었다.

묶고, 묶이는 관계로 지내고 싶다고 하더라고―― 대단하지.

사정을 알고 있는 친척들 밖에 참가시킬 수 없겠지.

나하고 마리에도 식겁했다.

닉스는 앞으로 큰일이겠구만.

"나는 그것보다도, 아주버님에게 한 사랑의 말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다시 태어날지라도, 당신을


찾아내서 맺어지겠노라, 고.
무거워. 전생이 있단 걸 알고 있기에, 진짜 더 무겁게 느껴져. ――저 사람, 진짜로 저지를 것 같지 않아?"

우리들은 전생자다.

도로테아 형수님의 말이, 묘하게 생생하게 들려서 핏기가 싹 가셨다.

아무리 다시 태어날지라도, 너를 놓치지 않겠어―― 그런 식으로 들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이나마 닉스가 불쌍해졌다.

허나, 이건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마리에를 구하기 위해, 조금 무리를 했기에, 그 벌충이라 해야 할지, 커버치는데 희생양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희생양이 닉스다.

뭐, 닉스도 출세해서 미인 신부를 맞이했으니 문제없지.

이건 필요한 희생이었으며, 닉스에게 있어서도 유익한 건수다.

Win-win 관계란 거지.

귀여운 동생의 부탁이니까 용서해 줘―― 형아.

"그러면 그냥 안내만 하려고 남자 기숙사로 온 거야?"

"아, 그것도 있긴 한데 말이야. 루크시온 있어?"

마리에가 부르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광학 미채로 숨어 있었던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내가 아니라, 루크시온에게 볼일이 있는 거야? 이번엔 뭔데? 또 돈을 다 써서, 요 녀석한테 위조 지폐라도
만들어 달라고 하려는 거야?"

루크시온이 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맡겨 주십시오. 진품보다도 더 그럴싸한 지폐를 마련하겠습니다."

그건 아예 딴 거잖아, 라고 말하기 전에 마리에가 화를 낸다.

"언제 내가, 위조 지폐 같은 걸 부탁했는데! 평소에 나를 대체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라, 우리들 벌써 2 학년이 됐잖아! 그, 그 있잖아, 슬슬 여러모로 이벤트가 일어나니까."

"아~ 이벤트 말이구나."

그 여성향 게임은, 2 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야기 중반부터는, 판오스 공국과의 전쟁이 주로 다뤄진다.

마리에는 그걸 신경쓰고 있다.

"그 왜, 저 여성향 게임은 전쟁이 꽤 어려웠잖아?"

"막장 난이도였지. 악의가 느껴질 정도야."

지금 떠올려도 심각한 게임이었다.

과금을 하지 않으면 클리어조차 어렵다니, 밸런스가 너무 막장이잖아.

아무도 여성향 게임에 어려운 전투 요소를 넣어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데, 대체 뭔 짓을 하는 건지.

"지금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역시 신경이 쓰이잖아."


만약, 주인공인 올리비아 씨가 패배하면―― 게임적으로 게임 오버다.

그러면 나로서도 곤란하다.

마리에 왈, 그 여성향 게임은 속편까지 출시됐다고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등장하게 될 올리비아 씨가 사망하는 사태는 피하고 싶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죽는 건 싫어.

우리가 난처해 하고 있자, 루크시온이 말한다.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늘 생각하고 있던 점입니다만―― 전쟁에 학생을 투입한다는 얘기는, 뒤가 없는 상황까지
몰린다는 뜻입니까?"

공국과의 전쟁에서 올리비아 씨나, 율리우스 전하를 비롯한 학생들도 많이 얽히게 된다.

그리고 최종 결전까지 참가하게 되는데―― 확실히, 학생을 동원하다니, 국가로서 홀파트 왕국은 괜찮은 걸까?

마리에는 그다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뭐가 뒤가 없다는 건데? 전쟁에서는 마지막에 이겼어."

나는 마리에의 대답을 듣고 기가 막혔다.

"너, 학교―― 전생에서 안 배웠어? 전쟁에 학생까지 동원한 나라는 어떻게 됐는지?"

"앗!?"

지식으로는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감이 들지 않았던 거겠지.

이야기로 보자면, 젊은이들이 벌이는 활약은 아름답게 보인다.

전생에서도 학생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는 많았다.

허나, 현실로 생각하자면―― 그건, 홀파트 왕국의 어른들이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뜻이 되는 거 아닌가?

전쟁에서 이겼다 해도, 그건 겨우 얻어낸 승리다.

전후 상황이 너무 두렵다.

"그, 그렇다면, 그 게임의 스토리는―― 엄청 위험한 거 아니야!?"

마리에도 당황하지만, 일단 근본적인 흐름을 확인해 보자.


우선, 공국이 선전포고를 날리기 전에 국내에서 공적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군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과외 수업에서 공적과 조우한다.

거기서 승리를 거둔 학생들.

그 후, 공적을 뒤에서 조종하는 오프리 백작가의 존재를 알고, 주인공이 율리우스를 비롯한 공략 대상의 힘을
빌려서 그들을 격퇴한다.

허나, 그 뒤에는 판오스 공국이 있었단 사실이 판명되어, 더욱 깊이 전쟁에 얽히게 되는 것이다.

오프리 백작을 사용하여, 홀파트 왕국을 내부에서 무너뜨리려고 했던 게 판오스 공국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저번에 마리에를 구할 때 해치워 버리고 만 오프리 백작가다.

내가 해치워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공적도―― 내가 해치웠다.

2 학년의 이벤트에 연관되는 중요한 존재를, 내가 박살내고 만 것이다.

덤으로 이벤트도 박살낸 셈이 된다.

"왕국 내에서 날뛰고 다니는 공적, 거기에 오프리 백작가도 없으니깐 말이지."

내 발언에 마리에도 동의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불안하게 여긴다.

"그렇지. 남은 건, 뒤에 있던 판오스 공국 뿐이겠네. 하지만, 저쪽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3 학년 때니까."

그렇게 되면, 바빠지는 건 3 학년 무렵이 된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서――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루크시온은 우리를 보며 기막혀 했다.

"흑막이 판명된 상태라면, 먼저 대처하면 그만 아닙니까?"

"――나쁘지 않은데."

현 단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공국에 손을 대는 건 좀 꺼려지지만, 나는 나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행동할 때는


주저하지 않는다.

마리에가 손뼉을 치며, 좋은 생각이 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먼저 판오스 공국을 해치워 버리면, 전쟁도 안 일어나겠지!"

"네. 그러면, 지금 바로 판오스 공국의 영지를―― 가라앉히고 오겠습니다."

루크시온의 발언에, 마리에가 굳어버리고 만다.

이 녀석의 웃을 수 없는 농담을 듣고, 나는 주의를 준다.

"좀 더 분위기를 파악해, 이 섬멸 바보놈아. 농담으로 안 들린다고."

"진심으로 한 말인데요?"

"어?"

"가라앉혀 버리는 게 뒤탈이 없지 않을까 싶어서요."

요, 요 녀석, 진짜 위험한 인공지능이구만.

전쟁을 피하기 위해, 나라를 통째로 가라앉혀 버린다는 발상이 이상하다.

"멍청아! 왜 우리가 대량 학살을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공국의 부유섬이 가라앉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신인류가 얼마나 죽든지 간에, 저는 곤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스터 식으로 말한다면 "속이 후련하구만!"
같은 심정이 들겠죠."

진짜 요 녀석은――.

"명령이다. 부유섬을 가라앉히지 마."

"――알겠습니다."

마지못한다는 식으로 대답을 하고 자빠졌네, 이 인공지능!?

"될 수 있는 한 원만하게 전쟁을 회피할 거야. 그렇게 되면―― 공국에 전쟁을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겠지."

판오스 공국의 목적은, 왕국이 존재하는 대륙을 바다에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

그걸 우리가 먼저 빼앗거나, 파괴하면―― 공국은 비장의 카드를 잃고,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겠지.

내가 여러모로 앞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마리에가 안도하고 있었다.

"네가 루크시온의 고삐를 잡아 줘서 다행이야. 모자란 인간이 네 입장이었다면, 얘한테 반대로 구슬려져서,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니깐 말이야."

"신인류가 제 마스터가 될 일은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저는 자폭합니다."

"너 극단적이구나. 그건 그렇고, 요새 학교 분위기가 안 좋아."

전쟁이 어떻게든 될 거란 걸 알고, 안도한 마리에는 나와 잡담을 하려고 한다.

"분위기? 아아, 여자들이 무서워 하고 있으니까."

1 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학교의 분위기는 변했다.

율리우스 전하 일행이, 올리비아 씨를 괴롭히던 여자들을 퇴학시킨 것이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얼마나 괴롭혔는지 그 정도에 관계없이 학생들이 계속 처벌당했다.

연관된 학생들을 율리우스 전하를 비롯한 공략 대상 다섯 명이, 경쟁하듯이 찾아내서 처벌을 요구하고, 수많은
귀족 자제가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 결과, 올리비아 씨에게 "평민" 이라는 뒷담화를 한 학생까지 색출당해서, 다섯 명에게 책망받고―― 학교의
분위기는 최악이 되었다.

분명, 올리비아 씨를 괴롭힌 학생들이, 벌을 받는 전개는 게임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 했다.

허나,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다.

공략 대상인 다섯 명은, 앞으로 나라를 짊어져 나갈 입장이 된다.

그런 다섯 명에게 찍히게 되면―― 학원은 고사하고, 인생의 앞길이 막힌다.

――게임에서는, 주인공을 괴롭히던 학생들이 처분됐다고 가벼운 문장이 출력되기만 했었지만, 현실이 되니까 정말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문제는 다섯 명을 사로잡은 올리비아 씨다.


"요새는 잘 보이지도 않던데, 올리비아 씨는 건강하려나? 원망을 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본인은 이 상황에
마음 아파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 다섯 명도, 좀 더 주변 사람을 신경 써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요새 분위기가 어두워서 싫증이 나려고 그래."

전에, 올리비아 씨를 봤을 때는, 순박하고 다정해 보이는 애였으니깐 말이지.

내가 올리비아 씨를 걱정하고 있자, 마리에는 조금 뾰로통해졌다.

"올리비아는, 때때로 학교를 빠져 나간다나봐. 그리고, 분위기가 안 좋은 건 올리비아랑 그 사람들 때문에만


그런 건 아니거든."

"어?"

"안젤리카 말이야. 전하 일행에게 몰려버린 애들이, 안젤리카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그 탓에, 전하와 안젤리카
사이도 나빠졌거든.
학생들끼리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야. 뭐, 우리들 밑바닥 학생들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궁지에 몰리고 만 학생들을, 안젤리카 씨가 감싸준 건가?

그 탓에, 전하 일행하고 대립하고 있는 듯하다.

뭐, 게임에서는 올리비아 씨의 적이었고, 대립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현실로 보니까, 참 미묘하구만.

궁지의 몰린 학생들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안젤리카 씨는 학생들의 중재자 역할―― 공작 영애로서의 입장이 있다.

주위에서 의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가?

하긴, 우리들 같은 엑스트라는 직접 교제할 일조차 없다.

안젤리카 씨에게도 가까이 갈 수 없으며, 다섯 명에게 보호받고 있는 올리비아 씨도 마찬가지다.

전하 일행이 경계하고 있기에, 남녀 모두 올리비아 씨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

스토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 만날 필요도 없으니까 이쪽에선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들은 멀찍이서 소문을 듣기만 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현실은 많이 다르구나.

"뭐, 우리는 공국을 어떻게든 해야 하지만 말이야."


일단, 순조롭게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다면, 나머지는 이쪽에서 커버하면 된다고 생각을 전환했다.

마리에가 허리에 손을 대고 한숨을 쉰다.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해야 이런 거였구나. 같은 학교에 있는데도 소문 밖에


안 들려."

"엑스트라인 우리에게는 좋은 거지. 주역분들하고 얽히는 건 너무 황공하잖아."

"너, 진심으로 하는 말로 안 들리거든? 그리고, 전에 얽힌 적 있었잖아."

"임기응변으로 대응했을 뿐이야."

루크시온은, 내 말투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그건 우유부단이라고 하는 겁니다."

학교 복도.

해질녘이라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그곳을 율리우스와 올리비아가 같이 즐거워하며 걷고 있다.

학교 밖에 돌아온 직후인 두 사람은, 오늘 있었던 일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율리우스는 꼬치를 좋아하는구나."

웃는 올리비아를 보고, 율리우스는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저건 좋은 음식이야! 들기도 간편하지만, 무엇보다 매너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게 최고야. 그건 그렇고,


올리비아도 즐거워 보였어."

"엄격한 식사보다, 소탈한 느낌이 나는 식사를 좋아하거든."


"나도 그래. 궁정에서는 여러모로 너무 시끄러워. 식전만 해도, 예의만 중요시하고 군더더기가 많아서 견딜 수가
없어."

올리비아와 함께 있으면, 율리우스는 모든 걸 받아들여 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왕세자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다.

그리고, 함께 있으면 편했다.

"올리비아, 너만 좋다면――"

나와 계속 함께, 라고 계속 말하려고 하던 율리우스에게 복도 끝에서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안젤리카가 말을


걸어왔다.

그 표정은 험악하여, 율리우스는 지겨워지려고 했다.

즐겁던 기분을 잡쳤다.

"전하! 네빌 백작의 딸을 퇴학으로 몰고 가시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나날이 독한 표정을 짓는 안젤리카를 보며, 율리우스는 자신의 감정이 완전히 식어 버렸단 걸 확인했다.

요새는, 전보다도 안젤리카를 꼴도 보기 싫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올리비아를 감싸는 위치에 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여자는, 올리비아를 뒤에서 험담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모아서, 야습까지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더군."

그런 여학생을, 안젤리카가 감싼다.

"농담 한 마디도 흘려넘기실 수 없으신 겁니까! 분명, 지나치긴 합니다. 허나, 주의하면 끝날 만한 사건이, 왜
퇴학까지 번지는 겁니까?
그리고, 듣자하니, 야습 같은 건 계획한 적도 없다질 않습니까! 그녀는, 제게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러
왔습니다!"

안젤리카의 말투에 열이 받는다.

귀족 여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율리우스는 조용하게 분노를 드러낸다.

"주의라고? 안젤리카, 역시 너도 평민을 깔보는 건가? 그리고, 상대의 의견만을 듣고, 그걸 납득하라고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거냐?"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안젤리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율리우스는 확신한다.

돌아보며 올리비아를 봤더니, 안젤리카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슬픈 듯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비호 욕구를 돋우는 그러한 행동에, 율리우스의 마음은 휘둘린다.

"괜찮아요, 율리우스. 귀족분들이 보기에는, 저 같은 건 살해당해도 상관없는 수준일 테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럴지라도―― 율리우스 곁에."

애처로운 태도를 보이는 올리비아에게 안젤리카가 격분한다.

"네 이년! 전하에게 무슨 말을 불어넣은 거냐! 네년이 전하의 마음을 어지럽혀서――"

다가서려는 안젤리카를, 율리우스는 손으로 제지했다.

"그만둬라!"

"저, 전하? 왜 그러시는 겁니까. 어째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빌 백작은 이번 일로
분개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 전하의 파벌에서 빠지겠다는 선언까지 했습니다. 네빌 백작은, 율리우스 전하의 파벌에서 중요한――"

"그만 됐다."

"――예?"

율리우스는 진절머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느끼던 즐거운 기분을 잡치게 되어, 올리비아의 손을 잡고 안젤리카를 무시하고 걸어 나간다.

"전하!"

말을 거는 안젤리카에게, 율리우스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한다.

"귀족의 파벌 싸움 따위 지긋지긋하다! 그런 것에, 올리비아를 말려들게 하지 마라."


안젤리카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구고 만다.

"――그 파벌이, 전하의 치세에선 빼놓을 수 없는 존재란 것을, 어째서 이해해 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하하하! 그 홀파트의 핏줄을 이은 여자가,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니 기분이 상쾌해져!"

기숙사 근처에 준비된 작은 저택.

그곳은 올리비아 전용 숙소였다.

율리우스 일행에게 준비시킨 곳으로서, 작지만 튼튼하게 만들어졌으며 가구도 호화롭다.

그런 저택에서, 올리비아는 욕탕에 들어가 있다.

자기 몸을 정성스레 씻고 있다.

"육체가 있단 건 좋군. 세계에 연관되어 있다는 실감이 강하게 드니깐."

오랜만의 육체다.

예전에 성녀라고 불렸던 여성의 원념이, 올리비아의 몸을 빼앗은 상태다.

허나, 가끔 몸에 이상이 생긴다.

팔이 저려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완전히 융합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겠군."

자신의 오른손이, 목을 붙잡으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건, 몸을 빼앗긴 올리비아의 저항이었다.

"올리비아―― 아직도 저항하는 거냐? 너는 강한 아이다. 허나, 나는 이때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나하고
리아의 복수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 줘야겠다."
차츰 오른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올리비아는 일어선다.

"――자, 그러면 율리우스 파벌 분열도 진행했다. 이 나라의 매국노들과의 이야기도 순조롭지만, 조금만 더
놀도록 하마."

올리비아는 천장을 올려보며,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속이기 위해 연극을 해보도록 할까."

판오스 공국의 왕성.

심야, 공왕이 부재한 성에 잠입한 우리들은, 보물창고에 들어가 있다.

"어떤 게 마술의 피리야?"

마술의 피리―― 그건 첫 번째, 세 번째 작품의 최종 보스를 불러내는 중요 아이템이다.

주인공이 소지하지 않으므로 성능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공국의 공주들이 불면 몬스터를 출현시켜서, 조종할 수
있다.

엄청나게 귀찮은 공국의 비장의 패다.

같이 잠입한 마리에가, 공국의 보물창고에 있는 보물을 보고 눈을 빛내고 있다.

"봐, 리온! 이 액세서리 쩔어. 팔면 얼마나 나올까?"

공주가 착용할 법한 여러 장식품들을 보고, 자기가 착용하는 것보다 팔아 넘기면 얼마가 나올지를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꽃가마를 노리던 여자였으며, 공주를 동경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훔쳐가지 마."

"안 훔쳐! 것보다, 잘도 이렇게 쉽게 잠입할 수 있었네."

그 이유는, 루크시온 덕분이다.


주위를 경계하는 루크시온이, 마리에의 의문에 대답한다.

""그 여성향 게임의 속편" 에 대해 들은 마스터가, 뒤늦게나마 주변국의 조사를 제게 명령했습니다.


범위가 넓어서,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만, 성에 잠입하기 위한 정보 정도라면 간단하게 입수할 수 있습니다."

"너, 뭐든지 가능하구나."

"네. 저는 우수하니깐요."

"――너, 자신감이 너무 과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마술의 피리라고 여겨지는 도구는 늘 그 중 하나를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건, 두 개 중에 하나입니다."

최종 보스를 소환하는 마술의 피리는 두 개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술의 피리는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헤르트뤼데에게 여동생이 있단 사실도 몰랐다.

마리에에게 그 여성향 게임에 속편이 있다고 들었을 때는 놀랐었다.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루크시온에게 조사시킨 것이다.

마리에가 가장 호화로운 받침대에 장식되어 있는 피리를 찾아냈다.

"찾았다! 분명 이거야!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아!"

"아, 그건 가짜입니다."

"어?"

"진품은 숨겨놓은 상태입니다. 장치는 이걸――"

나와 마리에는, 보물창고에 있는 장치를 움직여서 마술피리를 발견한다.

"있었구만."

"가짜까지 준비해 놓다니, 대체 얼마나 신중한 거야."


검고 가시가 돋은 피리를 발견한 우리들은, 실물을 보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루크시온에게 방해 받았다.

"경솔하게 손대지 말아 주세요. 장치가 있으므로, 그걸 해제하고 꺼내지 않으면 함정이 발동합니다."

"엄중하구만."

장치를 해제하고 마술의 피리를 회수했는데, 뭔가 불길한 피리다.

마리에가 마술의 피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파괴하는 게 더 안심되긴 하지만―― 파괴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준비도 안해놓고 파괴했는데, 봉인되어 있던 거대 몬스터가 출현했다! 같은 전개가 벌어지면 무서우니까, 마술의
피리는 가지고 돌아가야지.

"가지고 가서 루크시온에게 조사해 달라고 할 거야."

"흐~음. 아, 맞아. 전에 성녀의 목걸이도 조사했었지? 그거, 어떻게 됐어?"

내가 손에 넣은 성녀의 목걸이에는, 뭔가 수상한 존재가 씌여 있다는 듯하다.

그걸 루크시온이 포획했고, 지금은 조사 중이다.

"실로 재미있는 존재라서,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을 위해서 이쪽 케이스에 마술의 피리를 보관해
주세요.
여기 넣어두면 쉽게 꺼낼 수 없게 됩니다."

아타셰 케이스에 마술의 피리를 넣고, 우리는 이동을 개시한다.

공국 성 안에는, 순찰을 돌고 있는 기사나 병사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루트를 돌면서 경계하고 있는지―― 어디가 허술한지.

모두 루크시온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고 있는 덕에, 적과 만나지 않고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장소는―― 제 2 왕녀 【헤르트라우다】 의 침실이었다.

방 앞에는 파수를 서고 있는 기사들이 있다.


그런 기사들을, 나는 소음기가 달린 권총으로 조준한다.

"잠시 잠들어 줘. 금방 끝날 거니까."

파슉, 하는 소리가 몇 번 났다.

총에 맞은 기사들은, 갑자기 엄습한 고통에 놀라지만 무기를 손에 쥐려고 하다가―― 눈이 뒤집힌 채로 쓰러졌다.

루크시온이 나를 재촉한다.

"교대할 기사가 올 때까지 30 분 정도 남았습니다. 서둘러 주세요."

그건 알고 있지만――.

"여자애 방에 들어가려니까, 좀 거북해. 마리에, 가져 와."

"뭐!? 왜 내가 위험한 짓을 해야만 하는 거야. 너도 와!"

――마리에에게 손을 잡아 끌린 나는, 헤르트라우다 전하의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여성이 몇 명 있었지만, 마취총으로 바로 잠들게 한다.

루크시온이 바로 방안을 스캔했다.

"있었습니다."

방안의 장치를 움직이자,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옆으로 이동하여 금고가 나왔다.

마리에가 금고로 다가가서, 루크시온을 본다.

"비밀번호는 뭐야?"

"그쪽 다이얼은 페이크입니다. 여는 방법은――"

지시대로 금고를 열고, 마리에는 안에서 마술의 피리를 꺼냈다.

"두 번째 피리도 얻었다~!"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마리에는 두 번째 케이스에 마술의 피리를 넣었다.


이걸로 공국의 비장의 패는 빼앗았으니까, 전쟁 회피에 크게 가까워 졌겠지.

우리들이 얼굴을 마주 보면서, 바로 이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누구세요? 아버님? 어머님?"

――헤르트라우다 전하가 일어나셨다.

얼른 마취총을 전하에게 겨눴더니, 마리에가 나를 말린다.

"바보야! 아직 애잖아!"

"바보는 너겠지!"

다행히 우리들의 복장은, 전부 검은 색으로 통일했다.

얼굴도 가리고 있다.

하지만, 모습을 들킨 건 위험한 일이다.

목소리도 들켜 버리고 말았다.

바로 잠들게 하려고 했는데, 헤르트라우다 전하도 서서히 잠기운을 깨고 있다.

벽의 장치가 열려 있고, 시녀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네, 네놈들은 어디서 온――"

큰 소리를 지르려고 했기에, 마리에가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만, 목소리가 크잖아! 사람이 와 버릴 거 아냐!"

그러려고 큰 소리를 낸 거겠지.

어쩔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루크시온이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전해 온다.

"이 방의 소리는 바깥에 들리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마스터, 원만하게 끝내시고 싶으시다면――"

"――뭐? 그거면 되는 거야?"


"네."

루크시온의 어드바이스를 듣고, 정말 그대로 따를지 조금 고민했지만―― 고민하고 있을 시간도 없으므로


따르기로 했다.

롱 스트레이트의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와 기가 세보이는 얼굴.

마리에와 키는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머리카락이나 눈의 색 만이 아니다.

연령은 마리에보다 아래일 텐데, 마리에보다도 훌륭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발육이란 잔혹한 것이로구만.

나는 위협하기 위해 마취총을 겨눈 채로, 헤르트라우다 전하에게 다가갔다.

헤르트라우다 전하는, 울먹이면서도 나를 째려본다.

"이 봐 손 놔줘."

"그, 그래도 돼?"

"전해줄 말이 있어서 그래."

마리에가 억누르고 있던 입을 풀어주자, 헤르트라우다 전하가 소리를 질렀다.

"침입자다! 아무도 없느냐!?"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걸 알고, 헤르트라우다 전하는 조금 진정했다.

"――밖에 있는 병사들은 당했나 보네."

"엄청 약했습니다. 공국의 병사는 질이 낮군요."

째릿, 하고 나를 노려보는 헤르트라우다 전하에게 나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힌트를 주기로 했다.

"마술의 피리는 받아 가겠습니다. 이걸로, 공국은 왕국을 상대할 비장의 패를 잃게 되겠군요."

"――그래."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아직, 또 하나 남아 있다면서 안심하고 있는 거겠지.

"보물창고의 마술의 피리도 이미 회수했습니다. 호들갑스럽게 장식되어 있던 가짜가 아니라, 숨겨져 있던 진품을
찾아냈습니다."

약간이지만 어깨가 움직였다.

동요해 준 모양이다.

마리에는 우리의 대화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분하십니까?"

"딱히. 날 죽이고 싶거든 죽여. 허나,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정말 불쌍한 아이군. 아무것도 모른 채로, 좋을대로 조종당한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다니."

"뭐라고?"

"진실이 알고 싶다면, 서고지기 노인에게라도 물어봐. 진짜 역사를 알고 싶다, 고 말이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노인에게 물어봐야 해.
이 성에는, 너희들의 적이 잔뜩 있으니까."

총구를 겨눈 채로, 나는 마리에를 데리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문을 닫고서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리에도 뒤따라온다.

"잠깐만, 지금 한 얘기는 뭐야! 나, 아무 말도 들은 적 없는데!"

"나도 몰라! 루크시온이 그렇게 말하라고 해서 그랬어!"

"이걸로 헤르트라우다가 행동을 시작하게 되면, 마스터가 말씀하시는 평화로운 슬로우 라이프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습니다."

"진짜지!? 이딴, 괴도 흉내내는 짓거리는 두 번 다시 안 할 거야!"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성의 안뜰에 숨겨두고 있던 에어 바이크를 타고 우리는 도망쳤다.

다음 날.

헤르트라우다의 방에는, 관리들이 밀어닥쳤다.

조사 전문 관리들이, 마법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침입자들의 흔적을 찾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체 누가 침입한 거지."

"왕국인가?"

"기사도 시녀도, 적의 침입을 알아채지 못하다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라우다 옆에는, 게라트 백작이 있다.

자랑하는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주무르듯이 쓰다듬고 있으나, 헤르트라우다에게는 가시 돋친 태도를 취한다.

"헤르트라우다 전하, 실태를 저지르셨군요. 하필, 마술의 피리를 빼앗기는 걸 보고만 계실 수 밖에


없으셨다니."

"――핑계는 대지 않을게."

"당연합니다. 마술의 피리는 공국의 보물. 마술의 피리의 적성이 있었기에, 전하들은 후계자가 되실 수 있던
겁니다.
그럼에도, 마술의 피리를 빼앗기셔서는 어쩌실 생각인 겁니까."

가신인데도 꽤나 거만한 태도를 취하는 사내였다.

왕가를 향한 존경심 같은 건 없다.

비난하는 게라트를 가만 둘 수 없어져서, 헤르트뤼데가 다가왔다.


"기사들이 꼼짝도 못한 자를 상대로, 라우다가 저항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게라트, 라우다를 바로 쉬게
해."

게라트는 불만스러운 듯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그 무엄한 자들의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중요한 목격자는 헤르트라우다 전하
단 한 분.
휴식은 조사가 끝난 뒤에 취해 주셔야겠습니다."

"게라트!"

헤르트뤼데가 격분하고 있을 때, 몸집이 커다란 남자가 찾아왔다.


초로에다가, 갑옷을 걸친 그 사내가 오자, 게라트는 심약한 태도를 취했다.

"이, 이거 흑기사 님 아니십니까."

"헤르트라우다 전하는 피곤하신 듯하군. 쉬시게 할 거네만, 문제는 없겠지?"

"예? ――네, 네! 물론이고 말고요."

흑기사―― 그 사내에게 위압되어, 게라트는 마지못해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라우다는, 침입자들이 한 말을 떠올린다.

'이 성에는 우리들의 적이 있다, 라.'

만약을 위해 조사해 두고자, 라우다는 그날 저녁, 서고로 갔다.

'이렇게 혼잡하면, 평소에 나를 호위하고 있는 기사들도 따돌릴 수 있으려나.'

소란을 틈타서 혼자가 된 라우다는, 침입자들이 말한 대로 서고지기 노인에게 말을 걸어서 진실을 알고 싶다고
전했다.
노인은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짓고, 한 번 거절했다.

허나, 두 번째로 부탁을 하자 "원래대로라면 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은 물건입니다." 라면서, 책을 몇 권 가져


왔다.

그건 아주 오래된 책이었다.

그걸 읽은 라우다는 놀랐다.

"――뭐야, 이게."

거기에 써져 있던 건, 왕국과 공국의 역사다.

자신이 알고 있던 역사와는 달랐다.

일방적으로 왕국이 잘못 했다고 배워왔는데, 역사를 알아 보니까 공국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놀라고 있는 라우다에게,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선대 폐하와 왕비님이 돌아가신 이후, 이 책들은 파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차마 처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우다는 떨고 있다.

"사, 사실이야? 이게 진실이라는 거야!?"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이 20 년도 전에 쳐들어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공국이 왕국에서 날뛰고 다니며 똑같은
짓을――"

라우다는,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와 다르다고 당황한다.

"어째서. 어째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건가요!"

"――전하, 죄송합니다."

노인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두 분이 태어나신 직후에, 공국 내에서는 평화파이신 폐하와 왕비님이, 주전파 제후들에게 암살당하고
마셨습니다."

"암, 살?"

그리고 이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공국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왕가는 왕국과 화평을 이루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전파는 격노하며, 공왕과 왕비를 암살해 버렸다.

남겨진 두 공주를 주전파가 추대한 것이, 현재 상황인 것이었다.

라우다는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서, 울면서 웃는다.

"그건 너무하잖아! 이래가지고는, 우리들은 정말―― 자, 잠깐만. 그러면, 반델은? 언니를 호위하는 반델은
어떤데?
우리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버님과 어머님을 배신한 주전파 맞지!?"

노인은 괴로운 듯이 대답한다.

"반델 공은―― 암살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옛날부터 주전파의 중진을 맡고 있죠. 몰랐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라우다는, 대체 뭘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판오스 공국에서 귀환한 나와 마리에는, 루크시온 본체에 있는 연구실 같은 장소에 와 있다.

거기서 마술의 피리의 해석을 진행하고 있다.

"놀랐습니다. 이건, 구 문명이 붕괴한 뒤에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데? 너희들 시대의 도구가 아니란 소리야?"


"네. 저희들의 문명과, 마스터와 다른 분들이 살고 계시는 지금 문명 사이에는 몇 개 정도의 문명이 존재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 시대의 물건입니다."

나와 루크시온의 대화를 듣고 있는 마리에는 마술의 피리를 보고 있다.

"그건 알겠는데, 그게 어쨌단 거야?"

"그 문명은 몬스터를 조종하는 도구를 완성시킨 거겠죠. 마법적인 계약을 통해 몬스터를 따르게 한다고
판단됩니다. 그럴 경우의 촉매는, 술사의 영혼입니다."

"뭐!?"

마리에가 놀라고, 마술의 피리에서 거리를 뒀다.

나도 살며시 한 발짝 물러섰다.

영혼을 흡수하는 도구라니, 무섭기 짝이 없다.

"얼른 부숴 버리자."

"유용하므로 해석을 한 뒤에 파괴하겠습니다. 하지만, 안심해 주십시오. 웬만한 몬스터들 가지고는, 영혼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낄 뿐일 겁니다. 하지만, 이 마술의 피리에 봉인되어 있는 인공적으로 생성된
몬스터는 다릅니다."

마술의 피리엔 거대한 몬스터가 봉인되어 있어서, 피리를 불면 자유롭게 불러낼 수 있다.

성가신 점은, 그 거대한 몬스터는 해치워도 바로 부활하는 점이라는 것 같다.

"봉인이란 건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이 마술의 피리에는 거대 몬스터의 근원이 되는 데이터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술자는 혼을 사용하여 주변의 마소를 모아서 거대 몬스터를 실체화시키는 겁니다."

마리에는 잘 모르겠으니까, 얼른 파괴해 버리고 싶은 모양이다.

"성가신 물건이네. 못 부수는 거야?"

"아뇨, 부수면 주위에 영향을 주지 않고 파괴할 수 있습니다. 사용되고 있는 마법과 과학 기술에 가치가
있으므로, 계속 해석하고 싶은 겁니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그거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똑바로 부숴 둬."

"물론입니다."

연구실에는, 그 외에도 루크시온이 모은 걸로 보이는 여러가지 도구나 생물이 보관되어 있다.

그 중에는 몬스터까지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건―― 구체 유리에 갇혀 있는 검은 그림자였다.

그건 여성의 실루엣을 하고 있는데, 마구 날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건 뭐야?"

내가 삿대질을 하자, 마리에도 궁금해진 모양이다.

"이 녀석,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목걸이에 씌여있던 존재입니다. 아스트랄체에요."

그건 유령이나 원령 말하는 거지?

판타지 세계에 전생해서, 처음으로 실물을 봤다.

하지만, 붙잡혀 있는 모습을 보니까 무섭지 않다.

"성녀의 목걸이에 씌여있던 놈이라. 이거, 뭔가 말하고 있는 거야? 막 날뛰는 것 같은데?"

"음성을 차단하고, 안에서는 바깥 경치가 안 보이도록 해 놨습니다. 여기서 내보내라고 소란을 피우면서, 이쪽
질문에는 하나도 대답을 하지 않기에―― 실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리에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리온, 나는 원령보다 루크시온이 훨씬 더 무서운 놈 아닌가, 싶어지는데."

"우연인걸. 나도 마찬가지야."
"무례한 분들이시군요. 저는 인류에게 위해를 가히지 않는다구요."

요 녀석, 구라를 치고 자빠졌다.

"뻥치지 마. 너, 처음 만났을 때 죽이려고 덤벼 들었잖아!"

"――불행한 오해가 있었죠."

어이없는 놈일세.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마리에가 루크시온의 다른 문제점을 알아챈다.

"잠깐 기다려 봐. 얘가 말하는 인류, 란 건 구 인류를 말하는 거지? 얘, 우리들 말고는 인류라고 인정하지 않는
거 아니야?"

나와 마리에가 루크시온을 쳐다보자―― 붉은 외눈을 딴 데로 돌렸다.

"자, 그러면 마스터랑 마리에도 계시니까, 이 원령과 대화를 나눠 볼까요.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말을 돌리지 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들이 보이게 된 원령이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죽여주마! 몰살시켜주마아아아!!"

엄청나게 큰 성량을 듣자, 루크시온이 음성을 작게 만든다.

"시끄럽군요. 당신이 희망하던 마리에를 데리고 왔습니다. 뭔가 다른 반응을 보여 주세요."

루크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검은 그림자의 붉은 눈 두 개가,

마리에를 바라보고 달려들려고 하다가―― 유리에 가로막혀서, 이쪽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찾았다. 찾았다고, 마리에에! 내 피를 이어받은 자여. 당장 그 육체를 내놔라아아아!"

하는 말이 엉망진창이다.

그리고 외모도 엄청 무서워.


진짜 악령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잡혀 있어서 그런지 마리에는 콧방귀를 끼었다.

"동물원의 맹수 같은 놈이잖아. 애초에, 남의 몸을 넘기라니 말이 되는 소리야? 루크시온, 이 녀석 없애버려


줘."

"그렇네요. 해석도 거의 끝난 상태니까, 문제없다고 판단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악령이 소리 질렀다.

"너는 그러고도 내 자손이냐! 밉지 않은 거냐, 홀파트가아아아! 그 빌어처먹을 새끼들의 자손들을 지옥에


처박아서, 나는 리아의―― 리…… 아의……?"

악령이 나를 바라봤다.

빨갛고 매서운 눈동자가, 나를 보고 동그랗게 떠져 있다.

"야, 야, 뭐야. 왜 나를 보는 거야? 어, 설마 나 저주받는 거야?"

겁이 나서 물러나려고 하자, 악령이 부풀어 올라서 더 날뛰기 시작한다.

"리아―― 리아아아아!!"

"갸아아아악!!"

나한테 다가오려고 하는 악령의 박력은 정말이지―― 무서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구체 유리에 금이 가자, 벽이 출현해서 악령을 격리했다.

난 혼자, 호흡이 거칠어져 있던 가슴에 손을 대고 안심하고 있다.

"아~, 무서웠어."

그런 나를 보고, 마리에가 키득키득 웃고 있다.

"뭐야, 남자인데 한심하기는."

"아니, 무섭잖아!? 유령 같은 거 평범하게 무섭거든!"


"핫! 세상에는 말이지, 유령보다 무서운 게 있어. 현실이 훨씬 더 무서운 법이라구."

전생에서 너무나 가혹한 인생을 걸어 온 마리에에게는, 유령보다도 무서운 게 있나 보다.

나는 유령을 무서워했던 걸 숨기듯이, 루크시온의 실태를 나무랐다.

"야, 똑바로 관리해 둬. 도망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그래."

"경이로운 파워였네요. 그건 그렇고, 마스터에게 반응하고 있던 걸로 보입니다. 본인이 희망하던 마리에보다도,


어째서 마스터에게 반응한 걸까요?
그리고, 마스터를 보고 리아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겠냐! 아~ 무서웠어. 오늘은 집에 가서 얼른 자야겠다."

목욕탕하고 화장실도 얼른 다녀와서, 오늘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야지.

마리에가 나를 놀린다.

"설마 무서운 거야? 밤에 화장실에 못 가는 거야? 리온 귀엽다~. 내가 옆에서 같이 자 줄까?"

바보 취급하고 있네!

"안 무섭거든!"

"정색하는 게 꼭 애 같아."

――요, 요 녀석, 지는 안 무섭다고 으스대기는.

그건 그렇고―― 성녀의 키 아이템이 저주받았다니,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루크시온에게 조사시킬까.

"루크시온, 조금 부탁할 게 있어."

"뭔가요?"

"성녀의 아이템에 대해 조사해 줬으면 해."


"――가능합니다만, 우선순위와 리소스 때문에 뒤로 미루게 됩니다. 현재, 이 별의 조사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본체도 한동안은 반대편으로 이동하므로, 조사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게 될 겁니다."

너무 광범위하게 조사를 시켜서, 루크시온이 소화할 수 있는 업무량을 초과하려 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도 신경 쓰이니깐 말이야. ――그래도, 이쪽도 중요해. 조사해 줘."

"――알겠습니다. 가능한 한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어딘가 납득하지 못한 목소리로 느껴졌지만, 기분 탓인 걸까?

구체 유리의 내부.

갇혀 있는 초대 성녀의 원념은, 주저앉은 듯한 모습이었다.

"틀림없어. 리아야. 왜―― 어째서지?"

흐느껴 울며, 원념은 자신의 자손이 옆에 서있던 걸 떠올린다.

"그렇구나. 그 아가씨―― 마리에와 맺어진 건가. 그렇구나――"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소망은, 시대를 넘어서 지금 이 시대에 실현되어 있었다.

"리아, 나는…… 살아서 당신과 맺어지고 싶었어."

계속 울던 원념은, 그대로 유리 속에서 얌전해졌다.


밤.

학원 밖에 나와있던 올리비아는 율리우스와 지르크를 데리고 있었다.

"둘 다, 쇼핑에 따라와줘서 고마워."

미소를 보이는 올리비아에게 둘 다 쑥스러워했다.

"신경 쓰지 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예. 그렇죠. 저도 전하도 올리비아 씨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낼테니까요."

두 사람은 젖형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무척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올리비아를 앞에 두고서는 경쟁하듯이 말을 걸어왔다.

"고마워. 그래도 지르크는 예정이 있지 않았어?"

올리비아는 그런 두 사람을 농락하고 있었다.

지르크에게 예정이 있는 타이밍을 노려 쇼핑에 함께 갈 것을 권했다.

단, 지르크는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대단한 용무도 아니었으니까요."

미소짓는 지르크를 조금 심사가 꼬인 율리우스만이 나무랐다.

"대단한 용무가 아니라니. 분명히 너에게 있어서는 약혼자와의 이야기 같은거야 아무래도 좋겠지."

"저, 전하. 올리비아 씨의 앞에서 그런 건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이게 몇 번째지? 적당히 상대를 해줘라."


"그건 제게, 올리비아 씨의 권유를 거절하라는 의미입니까? 유감이지만 지금은 학생의 몸입니다.
본가의 일에 얽매이는 것은 싫으니 자유롭게 행동할 겁니다."

지르크의 예정이라는 것은 약혼자인 클라리스와의 만남이었다.

최근 학원의 상태를 신경쓰던 클라리스가 지르크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몇 번이고 불러낸 것이다.

올리비아는 ――그 때마다 지르크를 꾀어내서 학원 밖에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르크는 올리비아의 예상대로 움직여줬다.

'걱정하는 약혼자를 몇 번이고 방치해놓고는 그 정도의 인식밖에 못하는건가.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상대도 똑같을 거라고는 할 수 없는데.'

올리비아는 클라리스라고 하는 여성은 정이 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르크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생각했지만 지르크 쪽은 처음부터 사랑따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점만은 상당히 유감이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세 사람.

이런 장소를 걷고 있는 것은 올리비아가 "이쪽이 지름길이에요." 라고 두 사람을 꾀었기 때문이다.

'자, 슬슬 걸릴까나?'

올리비아가 미소를 보이면서 주변의 기척을 살피자 ――기대대로의 반응이 있었다.

무기를 쥔 남자들이 후드달린 로브를 걸치고 나타났다.

골목에서 세 사람을 포위하듯이 나타나자 무기를 뽑았다.

율리우스와 지르크가 곧바로 올리비아를 감싸는 위치에 섰다.

"누구냐!"

율리우스가 큰 소리를 질렀지만 남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지르크는 권총을 품의 홀스터에서 꺼내 남자들을 겨눴다.

그러자 남자들의 가면에서 보이는 시선이 험악하게 변했다.


올리비아는 확신했다.

'이거 봐, 걸렸다.'

남자들을 대표해서 한 명이 올리비아에게 화를 냈다.

"이 ――마녀 년!"

무기를 손에 든 남자들이 세 사람을 습격했다.

지르크도 권총으로 적을 쏘지만, 상대가 많이 둘러싸고 있기에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죽이려고 덤벼오는 적은 총알받이처럼 ――목숨을 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공격을 받아도 상관 없다는 듯 베어 들어온다.

총에 맞는 것 조차 두려워 않고 세 명에게 공격해왔다.

"이 녀석들 대체 누구지!?"

그 이상함에 율리우스도 놀라고 지르크도 초조해했다.

"전하 제가 퇴로를 열겠습니다. 그 사이에 올리비아 씨와 함께 도망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겠나! 셋이서 살아 남을거다!"

아름다운 우정을 보이자 올리비아는 눈시울을 적셨다.

"두 사람 모두―― 힘내!"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구역질이 난다고 생각했다.

'대를 거듭해도 마모리아는 홀파트의 똘마니인가. 정말 신물이 나.'

그 때 건물의 옥상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다 악당들!"
뛰어 내려온 것은 하얀 슈츠와 검은 망토를 착용한 남자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엔 올리비아조차도 놀랐다.

"――누, 누구!?"

가면을 쓴 남자는 올리비아에게서 등을 돌리며 인사했다.

"정의를 위해 조력하겠다. 나는 ――가면의 기사라고 불러주실까."

지르크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가세에 경계하면서도 감사를 전했다.

"살았습니다 전하. 이만큼 소란스러워 지면 다른 사람도 오겠지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단 율리우스만이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아. 그렇구나."

습격자들을 상대하고 있자 지르크의 말 대로였다.

곧 소동을 듣고서 병사들이 달려왔다.

"――물러나겠다."

리더의 말에 물러나는 습격자들.

그러자 병사들이 습격자들일 쫓지만 ――몇 명이 가면의 기사를 붙잡았다.

"놔, 놔라! 어째서 나를 붙잡는거냐!?"

병사들은 진지했다.

"밤에 이상한 가면을 쓰고 어슬렁거리는 남자가 있다면 붙잡는게 당연하지! 너도 그 놈들의 한 패냐!"

"아, 아니야! 나는 가면의 기사다! 머, 멈춰라. 팔을 비틀지 마!"

그 광경을 보고 올리비아는 속으로 초조해했다.


'뭐하는 녀석이지? 내 계획을 방해하는건가?'

그러자 율리우스가 병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우리들을 도와줬다. 미안하지만 놓아주도록 해라. 그 녀석은 나쁜 녀석이 아니라고 내가
보증하마."

"전하!? 아, 알겠습니다."

곤혹스러워하는 병사들이 가면의 기사를 놓아주었다.

가면의 기사는 흐트러진 복장을 정돈했다.

"사, 살았다. 나는 여기서 이만 실례하지."

돌아가는 것은 평범하게 걸어서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율리우스의 아무말도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고서 지르크가 의아해했다.

"전하의 지인입니까?"

하지만 율리우스는 그걸 강하게 부정했다.

"아, 아니다! 어, 어쨌든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그보다도 우리들을 습격한 녀석들은 대체 누구지?"

각오를 하고 습격해온 자들.

그것도 보통 도둑같은 종류가 아니다.

단련된 집단이고, 무예에도 일가견이 있는 걸 율리우스도 지르크도 알아차렸다.

올리비아는 두 사람이 부상을 입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두 사람 다, 다친 곳은 없어!? 나, 날 지키기 위해 둘이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해면 너무 괴로워서――."

연약한 여성을 연기하자 두 사람은 곧 올리비아에게 상처입지 않았다고 어필했다.

"문제 없어. 넌 어떻지 지르크?"


"저보다도 전하 쪽이 걱정입니다만."

"――너도 말을 제법 할 줄 아는구나."

두 사람이 올리비아의 앞에서 말겨루기를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올리비아는 가면의 기사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면의 기사라고? 웃기는 남자로군. 쓸데 없는 짓을 하는구나.'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도와준 존재에게 올리비아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을 가졌다.

'하지만 계획은 변하지 않아.'

올리비아는 아직도 말다툼을 계속하고 있는 율리우스와 지르크를 유도했다.

"두, 둘다. 사실은 그 사람들과 아는 사이일지도 몰라."

그걸 들은 율리우스와 지르크는 말다툼을 멈추고 화가 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올리비아를 습격한 적에 대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자, 이번에도 감싸줄 수 있을지 보여 줘, 안젤리카.'

다음날 아침.

보고를 받은 안젤리카는 삼학년인 클라리스와 면회하고 있었다.

장소는 학원 내의 응접실,

단, 입구는 기사가 배치되었고 창문에는 급조했지만 쇠창살이 끼워져 있었다.

클라리스는 갇혀 있었다.
"――정말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거지?"

안젤리카가 손을 꼭 잡고 클라리스 앞에 서 있었다.

반대로 클라리스는 의자에 앉았고, 눈 밑에는 거무스름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전보다도 더 말랐고, 머리카락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틈 사이로 심하게 흐려진 눈으로 안젤리카를 올려다봤다.

"내가 명령을 했어. 추종자 애들은 내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내 앞에서도 그런 핑계를 대는거냐? 클라리스. 네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계획해서 습격했다고 자백했어. 너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지."

클라리스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말로 바보같은 애들이네. 그런 짓을 하면 내가 기뻐할거라고 생각한걸까? ――어째서 내게는 말해주지


않는거야."

울기 시작해버린 클라리스를 앞에 두고 안젤리카는 동정해버리고 말았다.

'그 클라리스가 이렇게까지 내몰린건가.'

평상시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그리고 그 뒤에서 여러가지로 계책을 짜내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정이 깊었다.

추종자인 남자들도 상당히 흠모하고 있었다.

그런 클라리스의 추종자들이 ――올리비아들을 습격한 것이다.

클라리스는 안젤리카에게 간청했다.

"나도 그 애들도 이미 끝이야. 저기 안젤리카 ――마지막으로 지르크와 이야기를 하게 해 줘."

안젤리카는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범죄자와는 면회하지 않겠다는 것 같군. 뭔가 말을 전하고 싶다면 내가 맡도록 하지."


클라리스는 어깨를 떨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렇다면 부탁할게. ――나는 지르크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지옥의 밑바닥에서 너희들이 떨어지는 걸
기다리고 있을게, 라고 전해줄래?
지르크도 전하들도 ――그리고 그 여자도 모두 지옥에 떨어지라고 해! 그런 여자에게 속아서 ――어째서야.
어째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거야."

클라리스는 큰 소리로 절규하고, 그 뒤에는 울면서도 계속 웃어서 이야기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다.

안젤리카는 그런 클라리스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참았다.

'――나로서는 클라리스를 감싸줄 수 없어.――나는 어째서 이렇게 무력한거지? 이 상황을 보고있을 수 밖에


없는건가?'

아침부터 학원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최근의 썰렁한 분위기는 평소대로였지만 교사들까지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업도 자습 뿐.

점심시간을 지나자 아예 휴교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는 스승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물어보려고 와서, 차를 대접받고 있었다.

홍차의 향기가 감도는 실내는 행복하다.

하지만 그런 공간에서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대신의 딸이 처형당할지도 모른다, 라는 겁니까?"

스승님은 창 밖을 보고 계셨다.

"버나드 대신을 알고 있습니까? 애틀리 백작은 대대로 대신 자리를 맡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일로 자리를 잃게 될 것 같군요. 아니, 자리를 잃는 걸로 끝난다면 가벼운 처벌이겠군요."

귀족은 세습제로, 직위조차도 대대로 계승하는 경향이 있다.

영지를 갖지 않은 궁정귀족들에게 있어서는, 직위란 영주귀족이 소중하게 지키는 영지와도 같다.


그걸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대신의 따님이 무슨 일을 한거죠?"

스승님은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셨다.

"율리우스 전하들을 추종자들을 시켜서 습격했습니다."

"거짓말이겠지요!?"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지 ――정치에 서투른 나조차 위험하다고 금방 깨달았다.

그걸 대신의 딸이 모를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궁정에서 파견된 조사관들의 보고로는, 질투에 사로잡힌 범행이었다고 하는군요. 그걸 본인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왕태자인 율리우스 전하를 습격하는 것은 귀족으로서 끝을 의미한다.

애틀리 가문은 파멸할 가능성이 높을까?

가주는 책임을 지게 되는건가?

가문이 끊길 수도 있어.

다만 ――그 여성향 게임에서도 이런 흐름은 있었지.

습격자들의 정체는 상세히 이야기되지 않았었다만, 설마 대신의 딸이 주범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여성의 질투는 무섭군요."

내 한숨 섞인 중얼거림에 스승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미스 클라리스는 그렇게 생각이 짧은 여성이 아닙니다. 추종자 학생들이 멋대로 벌인 행동이겠지요."

"――추종자 녀석들은 대체 뭘 생각하고 있을까요? 주인에게 폐를 끼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은걸까요?"

주인을 지키려고 했던 거겠지만, 덕분에 그 주인은 쫓겨나게 되었다.


게임에서도 있었던 일이지만, 현실이라면 웃을 수 없다.

나도 게임을 플레이 했었던 때에는 멍청한 놈들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승님은 ――습격한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뭔가 불온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가요? 그 바보 녀석들이 앞질러 간게 아니고요?"

"미스터 리온. 그들이 이 정도의 결과를 예상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저라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 예상은 했을거라고 생각하지만요."

뭐가 말하고 싶은건지 대답을 요구하는 내게 스승님은 말했다.

"그들을 부추긴 자가 있지 않은건가 라고 생각합니다. 뭐, 학원에서도 힘 없는 예절 교사의 헛소리입니다만."

스승님은 어딘가 다른 교사들과는 달랐다.

담당하고 있는 것이 예절 교실이기에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지만, 스승님의 실제 작위는 높다는 소문이 나 있다.

학원내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 수수께끼의 교사.

그 때문에 이번 일은 관여못하고 놔둘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섭섭하네요 스승님.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제게 뭔가 부탁이 있는게 아닌지요? 제가 할 수 있는거라면 뭐든지


말씀해주세요."

스승님이 곤란하다는 듯 웃고, 그리고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러면, 미스터 리온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습격자들의 호위를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습격자들을, 말입니까?"

습격한 쪽을 지켜달라니 이상한 부탁이다.

그런 기색이 얼굴에 나와있겠지.

스승님이 손을 잡았다.
"조사관들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철수하고 있습니다. 습격자들을 면회할 수 있는 교사는 한정되어 있어
저로서는 가까이 갈 수 가 없군요.
――신사를 목표로 하는데도 한심하긴 하지만 저로선 어찌할 수 가 없군요. 이번 일은 어떻게 해서도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상당히 이번 일에 대해 집착하시는군요. 뭔가 이유라도?"

"――속죄, 이겠지요."

스승님은 그 이상 내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허나 스승님의 부탁이다.

"알겠습니다 제게 맡겨 주세요. 차를 끓이는 솜씨는 아직 멀었지만 거친 일에는 약간 자신이 있으니까요."

"미스터 리온. 백작가를 멸망시킨 실력을 약간, 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과소평가하는게 아닙니까?"

오프리 백작가와 라판 자작가를 박살낸 일 말이겠지?

그거, 그렇게 진심으로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습격자들을 구출한다고? 마스터는 정말로 방침을 자주 바꾸시는군요. 상사로 삼고 싶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런 싫은 상사를 만나서 불쌍하구만 루크시온. ――각오하라고. 계속 부려먹어줄테니까."

"저를 혹사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재미있겠군요. 다만 은둔형 외톨이의 사고방식을 가진 마스터가 제 능력을
최대로 다뤄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못하겠습니다만."

"네가 전력을 낼 기회라니 좀 봐 달라고. 뭐, 너 가튼 무서운 평기를 쓰지 않고 잠들게 하는 나란 분명 이


세계의 구세주겠지."

"재미있는 농담이군요. 마스터가 구세주라니 정말 웃기지 않습니다만."


"――그럼 어째서 재미있다고 말한거냐?"

"비꼬기입니다."

불평불만을 말하면서 찾아 온 곳은 왕성에 있는 지하 감옥이었다.

그곳에 율리우스 전하들을 습격한 남자들이 붙잡혀 있었다.

눅눅하고 나쁜 기분이 드는 장소다.

이런 곳에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다.

"선배분들, 잘 지내세요~?"

경박스러운 느낌으로 인사를 하는 나는 열쇠를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고개를 드는 남자들 중 덩치가 큰 선배가 일어났다.

상당히 목이 굵다.

그러고보니 작년의 에어 바이크 레이스에서 상위 입상을 해낸 삼학년 선배다.

다른 남자들은 날 경계하고 있었다.

"넌―― 발트하르트인가? 한 때 유명했었지."

"지금은 그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이지만요. ――뭐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도와주러 왔습니다."

"도와주러?"

선배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우리들의 입을 막으려고 온게 아닌건가?"

무척이나 의외인듯한 얼굴을 하며 내게 확인해 왔다.

"입막음?"

"그래. 우리들이 몇번이나 호소해도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어."


내 옆에 있던 루크시온이 시간이 촉박하다고 알려줬다.

"마스터. 스승님이 벌어준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여길 나간 후에 하시죠."

"그렇구만. 내친김에 공주님도 도와줘야 하니까."

그걸 들은 선배가 쇠창살을 붙잡았다.

철커덩 하는 소리가 지하 감옥에 울려 퍼졌다.

"공주님!? 호, 혹시 클라리스 아가씨 말이냐!"

"그렇죠. 도와드릴테니까 협력해주시죠."

"아, 알았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라도 하겠다!"

나는 곧 선배들을 감옥에서 내보내고, 준비해뒀던 복장으로 갈아입혔다.

다행히 망보는 사람은 스승님의 제자 답게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어서, 우리들을 못본 척 해줬다.

그건 그렇고 스승님은 대체 누구인걸까?

파수꾼과 안면이 있다니 대단하구만.

숲에 나 있는 길.

마차로 수송되는 클라리스는, 양손에 수갑을 차고 있었다.

실내에는 검을 찬 여기사들의 모습이 있었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베어버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꼈다.

여성은 기사가문 출신인건지 앞으로 죽게 될 클라리스의 앞에서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명문 귀족인 애틀리 가문의 아가씨라. 생각이 무척 얕구나. 왕태자 전하를 습격한다니 귀족의 수치야."
클라리스는 고개 숙이고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사는 검을 뽑고 칼날을 클라리스의 목에 갖다 대었다.

"지금 여기서 네년의 목을 잘라줄까? 갑자기 날뛰어서 저항했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도 믿어주겠지."

위협하는 여기사는 클라리스가 동요하지 않는 걸 보고 화를 내며 검을 칼집에 수납했다.

"흥!"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클라리스를 괴롭히는 걸 즐길 생각이었던 것이겠지.

클라리스는 이 정도의 인물이 자신을 감시하도록 붙인 궁정에 뭔가 역겨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주변 녀석들도 상당히 질이 낮은 병사들이네.'

어슬렁어슬렁 걷고 잡담이 많았다.

그걸 상관이 질책하지 않고 함께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냥 호송이다.

클라리스에게 커다란 가치가 없어서 이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묘했다.

'이거, 어쩌면 혹시――.'

클라리스가 답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마차가 흔들렸다.

"뭐, 뭐냐!?"

여기사가 놀라서 밖에 뛰쳐나가자, 그곳에는 병사들이 쓰러져있었다.

마법에 의한 공격을 맞고 날아가 즉사해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여기사가 "힛!" 하고 비명을 지르며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주위를 쳐다봤다.

나타난 것은 도적처럼 보이는 자들이었다.


'도적? 도적이 마법을 쓴거야? ――아냐, 이 녀석들은 달라.'

도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소란스럽지 않고 각각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병사들을 찔러서 죽이고 마차에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사는 검을 뽑았지만 떨고 있었다.

홀파트 왕국에서는 일부의 고귀한 여성들을 위한 동성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수는 적고, 거의 행사들에서의 외양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실력은 높지 않았다.

"오, 오지마아아아아!"

겁에 질려서 도망치기 시작한 여기사를 도적들이 쫓아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클라리스는 겁을 먹고 떨고 있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도 떨고 있는 자신이 무척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나는 아직――살고 싶었는데.'

여러가지로 이미 포기했지만 몸은 아직 살아남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도적의 우두머리인 듯한 인물이 마차의 문에 손을 댔다.

클라리스의 얼굴을 보고, 그리고 팔을 붙잡고 난폭히 밖에 끌어냈다.

모여있는 도적들은 전원이 침착했다.

클라리스는 지면에 내동댕이쳐져 고개를 들었다.

"다, 당신들. 도적이 아닌거네."

잘 훈련된 정예병 같은 관록이 있었다.

총을 갖고 있지만,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눈 앞의 도적들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클라리스를 확인하고, 그리고 눈짓을 하자 도끼를 갖고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클라리스의 목을 베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아아, 여기까지인거구나. ――정말, 정말로 싫은 최후야.'

분명 추종자들도 지금 쯤 입막음을 당하고 있는거겠지.

클라리스는 아무것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정말로 분했다.

그 때 숲에서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

도끼를 들고 있던 남자가 팔을 꿰뚫리고서 들고 있던 도끼를 놓쳐버렸다.

그리고 도적들이 품에 감췄던 권총을 뽑고 주변을 경계했다.

"저쪽이다. 가라."

도적의 우두머리가 명령하자 몇 명이 숲으로 갔다.

남은 도적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움직이지 않는다.

도적의 우두머리만은 클라리스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며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고 있었다.

뭔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또다시 총소리가 들려왔다.

도적들이 갖고 있던 권총이 전부 꿰뚫리고, 도적의 우두머리는 팔에 총알을 맞았다.

숲에서 나오는 것은 클라리스의 추종자였던 남학생들이었다.

그 손에는 라이플을 들고 있었다.

"아가씨이!"

"아, 너희들."

클라리스는 추종자들이 나타나자 안도하고 있었다.

그 중 한명만 무척이나 낯선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죽어――라고 말하고 싶은 참이지만, 너희들에게는 묻고 싶은게 있어. 얌전하게 투항해라."

낯선 남학생은 라이플을 겨누고 있었다.

도적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그리고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그대로 부들부들 떨며 쓰러져갔다.

클라리스는 쓰러진 남자들이 새하얗게 눈을 뒤집고 입에서 게거품을 물고 있는 모습을 봤다.

"독을 준비하다니 철저하네."

낯선 남학생이 라이플의 총구를 쓰러진 도적들에게 겨누고 있었다.

"선배들은 클라리스 선배의 확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알았다!"

낯선 남학생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금속빛의 둥근 물체가 떠 있었다.

"――마스터. 주변에 숨어있던 도적들의 확보에 성공했습니다."

"사실은 전원을 붙잡지 못했지만. ――실패했구만."

"상대는 무척 능숙합니다. 방심하면 위험해요. 주저할거라면 앞에 나오지 마십시오. 방해됩니다."

"나는 네 방해를 하는게 무척 좋으니까 싫은데. ――게다가, 여러가지로 직접 내 눈으로 봐두고 싶으니까."

클라리스의 수갑이 풀리자 낯선 남학생이 다가왔다.

"좋아. 이걸로 전원 확보했구만. 미안합니다만 모두 잠시 숨어줘야겠어요."

클라리스는 손목을 신경쓰면서도 낯선 남학생에게 물었다.

"숨는다고? 그것보다 당신은 대체――."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아 숨을 장소는 좋은 곳이니까요. 아무튼 온천이 있으니까요. 뭐 ――온천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클라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와준 것은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내가 이대로 도망친다면 가족들에게 또 폐를 끼치게 될거야. 이젠 도망칠 수
없어."

이 이상은 폐를 끼칠 수 없다.

잘못하면 자신 이외의 가족이 처형당할지도 모른다.

낯선 남학생은 라이플을 어깨에 걸쳤다.

"그 쪽은 스승님에게 부탁드렸으니까 안심해 주세요."

"스승님?"

"――자, 그만 가도록 하죠."

낯선 남학생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한 척의 비행선이 떠 있었다.

소형 비행선이 숲에 내려왔다.

추종자들이 클라리스를 억지로 붙잡고 데려가려 했다."

"자, 잠깐. 너희들!"

"죄송합니다 아가씨. 하지만 이 곳은 발트하르트가 말한대로 해 주세요. 저희들의 죄는 저희들이 나중에


갚을테니까."

클라리스를 태운 소형비행선은 그대로 이 자리를 떠났다.

왕성에 있는 한 방.

그곳에서는 올리비아와 프램튼 후작의 모습이 있었다.

프램튼 후작은 매부리코가 특징적인,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런 남자가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올리비아는 일부러 그러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의외로 도움이 안되는군요."

그 한마디에 프램튼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겉보기엔 어른과 젊은 여성.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연령의 차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 웃기지마라! 내 장기말 중 하나가 사라진거다!"

날뛰는 프램튼 후작은 테이블 위에 들고 있던 유리잔을 내려쳤다.

손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지만 그걸 신경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계집애 하나 못 죽이고, 붙잡았던 남자들도 전부 놓치고 ――그 정도의 장기말 밖에 없으면서, 상당히 강경한
태도로군요. ――존경스러워요."

"큭! ――하, 하지만, 이걸로 적대파벌이나 거슬리던 귀족들은 사라졌다. 빈스 녀석은 의지할만한 귀족들을
잃었고 궁정 쪽은 방해되던 애틀리 가문이 사라졌으니까."

올리비아는 ――프램튼 후작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레드그레이브 가문 ――안젤리카의 본가와 적대하고 있으며, 왕궁내에 두번째로 커다란 파벌을 이끌고 있던
남자다.

야심이 강하며,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활할 뿐인 남자가 현자라도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뭐, 내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 준다면 문제는
없지만.'

프램튼 후작이 올리비아의 팔에서 반짝이는 팔찌를 봤다.

"그보다도, 그대는 정말로 성녀인건가?"

"어머? 증거는 이미 보여줬을텐데."

"팔찌 하나로 신용할 수 있겠나! ――지금이라도 바로 신전에 가서 성녀의 지팡이를 사용해 봐라. 그러면 나라
도――."
자신의 장기말이 사라져버려서 불안해진거겠지.

올리비아는 왼손을 들어 팔찌에서 나오는 흰 빛으로 방을 가득 채웠다.

시야를 빼앗긴 프램튼 후작은 괴로워했다.

"바, 바보같은 녀석! 갑자기 빛을 내지 마라! ――눈이 아프단 말이다."

"손을 보도록 하세요."

"뭐?"

조금전까지 상처 투성이었던 손바닥이 지금은 피로 얼룩져있을 뿐.

닦아내자 상처는 깔끔하게 막혀있었다.

"――성녀의 마법이라는 건가."

한순간에, 그리고 통증도 없이 상처를 치료해보였다.

그것만으로 프램튼 후작은 올리비아를 성녀라고 믿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성녀의 팔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신용하는 이유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최악의 경우 성녀를 속여 이용할 생각이었던 거겠지.

'레드그레이브 가문이 율리우스의 뒷배가 된다면 당신의 입장도 곤란해지겠지 당신은 내게 의지할 수 밖에 없어.'

어떤 시대에도 궁정에서는 권력다툼이 있다.

올리비아는 그걸 찔렀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신경쓰이네. 프램튼 후작이 갖춘 사병이 이렇게 간단히 쓰러질 줄은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한
적이 있는걸까?'

붙잡힌 남학생들은 도망쳐버렸다.

허나, 일부에서는 "이미 스스로 제제했다." 라던가 "처리당했다" 와 같은 소문도 나있었다.

클라리스도 마찬가지다.

도적에게 습격당해서 죽어버렸다 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증거라고는 어디에도 없는데도다.

그걸 형편좋게 해석한 귀족들이 많았다.

분명 누군가가 귀찮아지기전에 처리한거다, 라고.

허나 그런 그들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는 ――프램튼 후작이 그들을 부추긴 장본인이어서다.

올리비아가 마녀이며, 왕국의 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했었다.

율리우스들도 속았으며, 왕국은 위기상황――이라고.

나라의 중추중 하나인 후작의 이야기다.

클라리스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주인도 위험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해서 행동했다.

'어떤 시대라도 사람은 간단히 속지. ――진실은 언제나 왜곡되니까. 그떄도 그랬었지.'

올리비아는 다음 화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프램튼 후작."

"뭐지?"

"클라리스나 그 추종자들이 도망친 것은 오산이었지만, 나중에 그들이 다시 나와도 증언 정도는 묵살할 수 있어.
그것보다 지금은 공국이야.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는걸까?"

"프램튼 후작은 치료된 자신의 손을 보면서 분한듯이 그 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국의 겁쟁이들이 겁에 질렸어. 그들은 침공하는 걸 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올리비아는 그 대답에 눈썹을 조금 치켜올렸다.

"――어떻게 된 걸까? 그들이라면 기꺼이 쳐들어올거라고 말한 것은 당신일텐데?"

올리비아가 내뿜는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에 프램튼 후작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니, 녀석들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공국은 왕국을 침공하게 만들어 줘. 그렇게 하면 당신의 정적도 함께 처분할 수
있을거야."

프램튼 후작의 적수 ――그것은 레드그레이브 공작이다.

율리우스의 휘하에 모인 공작의 파벌은, 지금은 힘이 크게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다시 피폐하게 만든다면 프램튼 후작에게 적은 없어지게 된다.

"공국을 움직이게 하면 되겠지?"

"그래. 국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도 잊으면 안되겠지. 그 대처는 당신의 파벌이 하는거야."

올리비아의 계획은 국내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그걸 프램튼 후작이 진압하는 것이다.

그 틈에 공국이 움직이고 프램튼 후작 대신 레드그레이브 공작을 부딧치게 해서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공국 녀석들의 꽁무니를 걷어차서 움직이게 해주지."

"부탁할게. ――자아. 이제부터 즐거워 질 것 같네."

올리비아는 쿡쿡 미소짓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라도 몰아 넣어주겠어. 리아의 나라를 빼앗은 너희들이 언제까지나 이 땅 위에서 군림하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그 무렵의 공국.

"언니.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왕성 복도를 발빠르게 걷고 있는 것은 헤르트라우다와 헤르트뤼데였다.

앞을 걷고 있는 헤르트뤼데를 헤르트라우다가 쫓아가는 모습이었다.

헤르트라우다는 언니인 헤르트뤼데엑 필사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저희들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공국은――."

"――라우더. 당신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공국이 옛날에 왕국에서 만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 따위 들은적
없어요."

"언니.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부탁이에요. 정말로 이대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고요!"

공국에서는 최근이 되어 주전파를 중심으로 병사들을 출진시킬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왕국에 침공하기 위해서다.

헤르트뤼데가 걷기 시작하자 헤르트라우더가 쫓아갔다.

"한번이라도 좋아요. 언니 한번만이라도 제 이야기를――."

"이미 듣기 질렸습니다."

"――언니."

헤르트라우다가 멈춰서서 고개숙이자 헤르트뤼데도 멈춰섰다.

등을 돌린채 헤르트뤼데는 이후 이야기를 했다.

"라우다. 지금의 당신은 전장에 데려갈 수 없어요."

"에? 무슨 의미죠? 마술의 피리는 이미 빼앗겼어요. 어째서 언니가 전장에 나가는 것 같은 이야기가
되는건가요!"

마술의 피리가 없는 지금, 공국의 공주들을 전장에 데려가도 의미는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될 터인데 헤르트뤼데는 전장에 가려고 하고 있었다.

"마술의 피리가 없어도 왕국과의 싸움의 지휘자로서 저는 전장에 갑니다. 게다가 왕국은 집안싸움으로 바쁜 것
같다는군요.
우리들을 이용해서 정적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인 것 같아요. ――정말로 구제불능들이에요.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직 공국에 잘못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걸까?"

"그, 그건―― 그래도, 이것과 그것은 이야기가 달라요! 게다가 왕국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믿는 것은
위험해요!"
"믿고 있지 않답니다. 그래도 이건 찬스에요. 공국이 대륙에 영지를 가진다.
――그곳을 발판으로 우리들은 왕국을 빼앗겠어요. 앞으로는 공국이 빼앗는 쪽이 될거야."

헤르트라우다는 책에서 읽었던 광경을 떠올렸다.

옛날 ――공국이 왕국의 영지를 유린했던 시대와 같은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언니 다시 생각해 주세요. 마술의 피리가 없다면 공국의 국력으로는 왕국에게 이길 수 없어요."

비장의 수단은 자신들의 손에는 없다.

그래도 공국은 멈추려고 들지 않았다.

"――라우다. 당신은 성에 남도록 하세요."

헤르트뤼데는 걸어서 떠나갔다.

공국의 어떤 장소.

거기에서 밀회를 하고 있는 것은 게라트 백작과 왕국에서 온 밀사였다.

"흐~응, 그래서?"

게라트는 밀사에게서 금화가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를 받고 있었다.

그 밖에는 예술품 같은 것도 받고 있었다.

"왕국의 제 1 진은 진심으로 박살내도 좋습니다. 우리들은 바로는 전장에 나가지 않을테니까요."

"적대파벌을 쓰러트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다니 왕국 사람은 잔혹하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게라트는 예술품을 앞에두고 자랑하는 수염을 손가락으로 집듯이 쓰다듬었다.
"좋아! 공국 쪽은 내가 어떻게든 하지요. 제 일진과는 격렬하게 싸우고 제 이진에게는 좀 양보하고 물러서면
되는거겠지요?"

"부탁드립니다 게라트 백작님."

"맡기세요. 그리고 만약의 경우에는――."

"――안심해주십시오. 공국에서 만약의 경우가 존재한다면 저희들은 당신을 언제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부탁하지요."

게라트는 혼자, 공국이 졌을 때에 왕국으로의 망명을 희망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이겨도 내게 있어선 문제없어. 진정한 책사란 이겨도 져도 승리를 얻는 법입니다.'

게라트에게 있어서 승리란, 자신 한명만의 승리였다.

여러가지로 바쁜 나지만, 오늘은 닉스에게 초대받았다.

닉스가 말하길 "가끔은 얼굴을 비춰라. ――네게는 말하고 싶은 게 잔뜩 있으니까" 라는 것 같다.

닉스가 손에 넣은 성에 저녁을 먹으러 와 있었다.

뭐, 친척을 부른 식사모임 같은 것이지만, 닉스에게 이것저것 싫은 소리를 들을 각오는 하고 있었다.

나도 책임을 느끼고 있으니까 싫은 소리 정도는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냥 들을 뿐이지만.

그런 이유로 전 오프리 백작의 성―― 지금은 닉스와 도로테아 형수님의 사랑의 보금자리에 들어간 나와 마리에는
저녁식사를 대접받게 되었다.

하지만 본래라면 이 자리에서 닉스의 불평을 들어야 했었겠지만――.


"이야~, 정말로 괴로웠었어요. 근처에 숲이 없었다면 전 식사를 못했을거에요."

――마리에의 이야기를 듣고 닉스가 오른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오열하며 울고 있었다.

도로테아 형수님도 정색을 하고 마리에에게 묻고 있었다.

"――당신, 그 숲에서 잡초를 먹고 있었던 거에요?"

마리에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니, 잡초 같은 건 없었으니까. 어떤 식물이든 이름이 있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맛이 없었는걸. 먹을 수는 있어도 식용으로는 기르지 않는다고 책에 쓰여 있었어요."

나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처음은 오프리 백작의 영지 이야기를 하다가, 그 후에는 마리에의 본가 이야기가 되었다가, 마리에의 본가에서의
취급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마리에가 어떻게 살아온건지 와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비아냥거리는 말을 꺼내는 닉스에게 질린 도로테아 형수님이 눈치껏 마리에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설마 그 이야기가 지뢰가 될 거라고는 생각못했다.

"그래도 가장 맛있었던 건 다람쥐네요."

"다람쥐!? 그, 그 귀엽게 생긴 동물말이야!?"

도로테아 형수님이 놀라고 있었다.

닉스나 나도 마찬가지다.

"발견했을 때는 조금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 왜냐면 귀중한 단백질이고."

이 녀석 귀여운 동물을 봐도 단백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니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마리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짐승은 가죽을 팔 수 있으니까 그 돈으로 중고품 옷을 신제품으로 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숲에서도 몇 번인가 무서운 일이 있었는걸. 멧돼지나 곰이 무지막지하게 강했는 걸.
쓰러트리는 데 한나절 넘게 걸린적도 있었고."

메, 멧돼지나 곰을 쓰러트렸――다고!?

나는 마리에의 주먹이 무거운 이유를,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말았다.

일단 확인해두자.

"저, 정말로 멧돼지와 곰과 싸웠던거야?"

마리에는 "그럴리 없잖아요" 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상처 없는 상대는 아무래도 못이기니까. 덧에 걸린 짐승을 노렸는 걸. 그래도 쓰러트리는데 한나절은 걸렸어.
그래도 그 후에 고기는 맛있었는걸~. 내친김에 모피도 팔았더니 다른 의미로 맛있었는걸. 헌옷을 신제품으로 한
세트를 맞췄었어."

신제품 헌옷이란 또 뭐야!?

헌옷인 시점에서 새거가 아니라-고!

도로테아 형수님은 입가를 막고 서빙하는 사용인을 손짓으로 불렀다.

이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있잖아!? 도로테아 형수님을 울게 만들다니 대체 얼마나 고생한거야!?

"사, 사모님. 무슨일이신지?"

하인들도 조금 전의 이야기를 듣고 정색하고, 그 중에는 울고 있는 애도 있었다.

"마리에 쨩에게 고기를 구워 주세요."

그걸 들은 마리에가 기뻐하면서도 부끄러워 했다.

"괜찮은 거에요! 아니~, 재촉한 것 같아서 미안한데~."

잘 보니 마리에의 접시 위는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빨리 다 먹은 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한 건가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망할 자식! 네 말이 원인이라고!

닉스가 일어나서 내게 다가오자 양 어깨에 손을 얹어왔다.


"리온!"

"왜, 왜?"

"너에게는 이것 저것 말하고 싶은 것도 있고, 때리려고 생각했었어. 솔직히 오늘은 한대 패주려고 벼르고


있었지."

심하지 않아? 난 닉스를 백작으로 만들어줬는데.

"그래도――그래도. 그 기분은 그냥 묻어두겠어."

"오, 오우?"

"그러니까 너는. 이 애만은 행복하게 해 줘라. 알겠냐? 절대로다!"

그, 그렇게 말 안해도, 나라도 이 이상 마리에를 몰아넣을 수 없어.

몰아넣을 수 없다고 할지 ――마리에가 상상이상으로 씩씩하고, 그리고 강한 이유가 대충 이해되었다.

마리에 녀석은 상상이상으로 건강하고 믿음직스럽다.

겉보기에 가냘픈 주제에, 이 녀석은 강자다.

전국시대의 무사라던가 그런 레벨의 강자라고.

마리에는 스테이크가 오자 눈을 빛내고 있었다.

"우와~아. 잘 먹겠습니~다!"

도로테아 형수님이 눈물을 닦고 있었다.

"마음 껏 먹도록 해."

기쁜듯이 굴고 있는 마리에를 보면서 나는 이 녀석에게 과거에 얼마나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아는것이 두려워졌다.

앞으로는 마리에 앞에서 과거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맹세했다.

어쨌든 전생에서도 DV 남자에게 살해당했었지.

대체 뭘 하면 이만큼 불행한 여자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녀석. 정말로 저주라도 받았던 건 아닐까?

마리에가 맛있다는 듯이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눈물을 흘리면서 보고 있는 우리들.

그 때 ――식당에 당황한 사용인이 뛰어들어왔다.

그 모습에서 닉스는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것 같았다.

무례한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크, 큰일입니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가!"

"――뭐라고?"

동시에 왕국내의 각지에서 반란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말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수상하다.

아직 누군지는 판명되지 않은 것 같지만 홀파트 왕국에서 반란소동이 적다고 할지, 일어나기 힘들다.

영주귀족들이 거끼까지는 여력이 없고, 왕국의 국력을 알고있기에 손을 대지 않는다.

애초에 승산 없는 싸움은 피한다.

의지라던가 긍지를 걸고 궐기한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각지에서 ――라고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거기까지 계획적이라면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고 있을거다.

귀족이 아니라면 평민들인걸까?

하지만 홀파트 왕국은 일부의 귀족들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평민들에게는 비교적 상냥한 나라다.

귀족도 평민도 아니라면 어떤 조직인걸까?

나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만큼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게임에서는 이 시기에 해적들이 날뛰고 있던 시기였다고 생각해냈다.

해적을 쓰러트리고 공국의 비장의 수를 빼앗았는데 왕국내가 소란스러워진다고?

이게 "수정력" 이라고 하는 것일까?

"――최악이구만."
내 중얼거림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닉스와 도로테아 형수님이 식당을 나갔다.

마리에는 곤란해했다.

"에? 이, 이건 어떻게 하면 좋지? 아직 다 못먹었지만서도!?"

"너는――아니, 상관없나. 천천히 먹도록 해. 어차피 지금 우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마리에가 식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리온. 아직 루크시온과 연락이 닿지 않는거야?"

"――그 녀석. 이 중요한 때에 뭘 하고있는거지."

지금 루크시온은 용무가 있다고 말을 꺼내고서 부재중이었다.

어떻게 해서도 빠져선 안되는 용무가 있다길래 보내줬지만 ――이렇게 되면 루크시온은 옆에 놔뒀어야 했던거구만.

신성마법제국이 있는 대륙.

그 제도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는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영차."

소녀가 일을 끝내서 허리를 펴고, 그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도 좋은 날씨구나~."

소녀의 이름은 미아.

제도에서 살고 있는 평민 여자아이였다.

휴식시간에 하늘을 올려보며 오늘도 날씨 좋다고 혼자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한 줄기의 빛이 보였다.


"어라?"

하눌에서 세로로 한 줄기의 빛이 스치고, 그리고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조금 전 까지 바람한점 없었을텐데――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

"와왓!?"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누르고, 건물의 그늘에 숨어 바람을 피했다.

바람은 그 근처에 나뒹굴던 양동이를 날려보냈고, 하늘을 올려보니 쓰레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잠시 후 바람도 사라지고, 미아는 주변을 확인했다.

주변에서는 제도의 주민들이 조금전의 돌풍에 당황하고 있었다.

"뭐였던거지?"

"글쎄?

"뭐어, 그보다도 하늘에서 빛이 나지 않았어?"

미아도 조금 전의 돌풍에 대해서 생각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서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루크시온의 본체가 하늘 위에 떠 있었다.

그곳은 제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있는 대륙 근처.

루크시온은 함내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찰기로부터 정보를 확인. 아르카디아의 완전파괴를 확인. 기능정지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놀랐습니다."


바다 밑바닥에서 잠들어 있던 것은, 신인류들의 최종병기인 아르카디아라 불리는 비행요새였다.

그걸 발견해서 파괴하기 위해 루크시온은 리온 곁을 떠나있었다.

"각지에는 신인류들이 남긴 병기가 잠들어있을 겁니다. 전부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이 별은 또 죽음의 별이


되겠군요."

이민선으로 건조된 루크시온이지만, 지금 시대라면 자신의 적은 없다.

아르카디아를 완전히 파괴한 지금, 신인류의 병기는 두려워 할 만한 것이 적다고 판단했다.

"전부 파괴한다. ――그래, 전부 파괴해서 이 세계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린다. 언젠가 구인류가 되돌아와도
괜찮도록. 본래 그랬어야 할 모습으로――."

자신과 같은 이민선에 타서 이 별을 떠난 구인류들.

그런 그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그 때를 위해, 자신은 이 별을 구인류를 위해 되돌려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크시온은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었다.

"그래.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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