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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후훌辯讓士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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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지 문

대한변호사협회는 이제 두번째 인권보고서를 간행하게


되었다. 본협회가 인권보고서를 간행하기 시작한 뜻은 38
션을 경계로 한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해방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권이 얼마만큼이나 존중되고 발전되어 왔논
가를 평가해 보자는 데 있었다.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위에 서려면 국민의 기
본권이 얼마나 보장되어 있는가가 그 척도로 될 것이고 기
본권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존중
되고 있는가가 그 관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
당이나 공화당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제 5공화국이 들
어서면서 부터,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보호하고
여론형성에 관한 언론의 공적 기능을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기 위하여 제정했다는 언론기본법의
위헌성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안보를 칭탁한 공권력의 개업
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로 인해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라는 미명
하에 집회와 시위는 할 때와 장소가 없어지게 되었다.

악화일로에 있는 인권상황은 86 년 벽두부터 현행헌법의


대통령 간접선거제는 비민주적이므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을 해야 한다는 야당 및 재야 여러 사회단체들과, 대통령
’ ,

간접선거제가 비민주적이 아니라는 정부 • 여당이 대립하게


되었다. 드디어 야권에서는 개헌서명을 시작으로 전국 주
요도시에서 개헌추진집회와 시위를 벌여나갔는데, 이로 인
해 정국은 더욱 긴장되어 개헌도 못한 채 많은 정당인 • 시
민 • 학생의 구속사태로 변이되고 말았다.
우리가 겪은 건국 이래의 개헌파동은 매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더우기 어느 개헌파동이건간에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권연장에 집착했던 치욕적인
개헌사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 대표적 작태이자 지금도
우리 국민의 뇌리에 선명한 것이 있다면, 자유당 때나 공
화당 때의 삼선개헌파동이 그것이다. 하나 더 든다면 자유
당 때의 일로서 대통령은 자유당 출신이, 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 당선되어 만일 노 대통령의 유고시에는 헌법상 야
당 출신인 부통령이 대통령 지위를 숭계하게 되어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자유당으


로서는 만일 유고시 정권을 야당에 이양해야 할 경우를 상
정하여 대통령이 유고되더라도 자유당이 계속 집권할 수
있도록 내각책임제 개헌을 기도한 사실을 또한 잊을 수 없
다. 현하 개헌정국은 여야가 ‘장군 멍군’으로 전도를 예측
할 수 없다. 우리 대한변협은 법률가단체로서 국가와 국민
의 차원에서 모법답안에 가까울 만큼의 대통령직선제 헌법
개정안을 어느 정파나 단체보다 먼저 요로에 제출한 바 있
는 바, 이번 헌법개정에서 우리 변협안이 꼭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지난날의 개헌파동이 집권연장에 있
었음을 상기할 때 앞으로의 개헌정국은 어느 한 개인을 위
하거나 어느 정당을 위한 개헌이 되어서는 안되며 정파를
초월하여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백년대계의 국가기본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헌정사 40 년에 이제야 자유민주주의
를 꽃피울 기회를 맞이한 이때, 어느 정당이건 정권에 집
착하지 않는다면 개헌정국은 순항이 될 것으로 믿는 바이
다.
끝으로 본보고서는 본협회 인권옹호위원회의 전적인 협
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현재의 인권상황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인권옹호활동과 사회정의실현에 귀중한 지침으로
쓰일 것을 기대하면서 본보고서 간행에 관여한 여러 위원
의 노고에 감사하는 바이 다.

1987. 1

대 한 변 호 사 협 회 장 키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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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권보고서는 원칙적으로 1986 년 한해동안 발생했던


모 든 인권침해사례를 총망라하여 기술하려고 노력한 결과
의 소산이다. 그러나 정치적 격동의 와중에서 여러 현장으
로부터 빈발하는 인권문제는 제한된 소수 인권위원의 활동
으로는 그 진상규명이나 시정노력을 충분히 수행해 내기에
는 역부족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해 두고자 한다.
제 1 부에서는 86 년 인권상황을 총괄적으로 검토해 보았
다. [ l ] 「개관 」 은 종합적 검토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감이 있기는 하나 학원, 노사, 언론 • 출판, 민주화 등의
여러 부문에서 여러가지 유형으로 중첩되어 나타 나 고 있는
한국인권문제의 구조적 특질을 배경으로 하여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뚜렷한 현상을 살펴보았으며 [ 2 ] , [ 3 ], [ 4 ], [
5 ] , [ 6 〕은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기본적 제권리의 주요
내용인 신체의 자유와 안전, 언론 • 출판의 자유, 집회 • 결
사의 자유, 근로자의 권리, 생존권 등이 실제 현실에서 어
떠한 수준으로 충족되고 있는지 검증해 보았다.
제 2부는 대한변협의 1 986 년도 인권관계 활동내용을 수록
하였다. 건의문, 담화문, 고발장, 인권침해사례 촉구공문
등의 자료는 회원들로부터 접수한 조사보고서나 인권위원
들의 조사활동을 거쳐 작성, 상임이사회의 결의를 얻어 관
계당국에 제출된 문서들이다. 그외 법원 , 검찰의 문서는
변협 인권관계 활동과 내용상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이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 부분적으로 수록하였다.
제 3 부는 인권문제에 대해 각 종교, 사회단체 등에서 그
때그때의 현안에 대해 견해를 피력했던 문건들로서 언론자
유가 심각하게 제약당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국민에게
알렬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원문 그대로 수록하
였다.

1987. l .

대 한 변 호 사 협 회

혀。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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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인권보고서 / 목차

• 취지문 /3

• 해 제 /6

제 1부 ’86 년의 인권상황

1. 개판 /15
가. 개헌정국파 ’86 인권상황 /15
냐. 한계점에 다다른 인권문제의 심각성 /17
(1) 정치척 구속과 수배의 격증/ 17

(2) 분신 둥 극한적 저항사태 빈발/ 19


(3) 재판거부 사태의 확산 I 20
2. 신체의 자유와 안전 /23
가. 영장없는 체포,구금,가택연금 및 강제수사권의 남용 I 24
냐.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고문 빛 가혹행위 I 21
다. 의운의 변사 사건들 I 31
라. 일반 형사피의자에 대한 고운 I 33
마. 수감자의 인권 I 35
3. 언론·출판의 자유 I 38
가. 언론기본법의 위헌성 I 39
냐. 연혼의 현실 I 42 42
(1) 보도의 자유와 알 권리 I 42
(2) 기 자들의 ‘언흔자유수호선언’ I 55
(3) KBS-TV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I 56
다. 출판의 자유 I 57
라. 현실비판파 표현의 자유/%
(1) 대학교수 시국선언 I 59
(2) 교사들의 교육 민주화 운동 I 60
(3) 그럽 철거 및 영화인 구속 I 61
4. 집회 ·결사의 자유 I 63
가. 집회 및 시위에 판한 법률 I 64
냐. 결사의 자유 I 67
5 . 근로자의 권리 I 10
가. ’86노동운동을 통해서 본 근로자의 권리 I 11
(1) 단결권 I 11

(2) 단체교성 및 단체행동권 I 73


냐. 노동법 개정운동 I 76
다. 취엽의 자유와 대학출신 근로자의 문제 I 1s
6. 기타 경제적 · 사회적 제권리 /8 0
가. 재개발파 도시서민 I so
냐. 농민의 현실 I s2
다. 환경권 및 건강하게 살 권리 I ss
라. 여성의 권리 I 90

저| 2부 대한변협의 인권관계 활동자료

1. 헌법개정얀 /95
1- 가 헌법개정연구위원회 설치 성명서 I 95
1- 나 대한변협 헌뱅개정안 I 96
2 . 서노련사건 피의자의 고문에 대한 법률구조활동 /125
2- 가 고운사건 조사보고서 ( 1 차, 2 차) I 125
2-나 고발장/ 134
2- 다 고운흔적 증거보전 청구서 I 14 0
2-라 서울형사지법 기각결정문/ 141
2- 마 항고 및 기각결정운/ 142
2- 바 재항고장/ 145

3. 부천서 성고문사건 관련활동 /147


3- 가 성고운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건의문/ 147
3- 냐 인천지검 보도자료/ 154
3- 다 검철발표에 대한 변호인단의 견해 I 155
3- 라 재정신청 대리인단 쿠성 발표문/ 165
3- 마 재정신챙 기각결정문/ 165
4. 재소자 인권침해 시정건의 I 179
·4- 가 서울구치소 재소자 인권침해 사례보고/ 17 9
4- 나 인권침해사례 시정건의 I 185
4- 다 인천교도소 재소자에 대한 폭력사건 말생보고서 /
5. 변호사의 접견교통권 침해사례 시정건의 /188
5- 가 대쿠교도소 변호사 출입제한사례 발생 보고/ 188
5- 냐 시정건의문/ 189

6. 김근태 고발사건 처리 촉구 공문/ 190


7. 재판사무에 관련된 건의 I 191 、


8. 국제인권규약 가입동의얀에 대한 의견/ 196
9. 인신쿠속은 신중을 기하라 I 200
10. 평화적 집회 및 시위보장에 판한 담화문 I 202
11 인권기 념알 담화문/ 203
'iz. 정 신보건법 안에 반대 한다 I 209
13. 사회보호판계 법률에 대한 개정의견 I 209
14. 형사소송법 개정안 I 215
15. 민법 중 개정뱅률안에 대한 의견 I 221
16. 한국피폭자 대책에 판한 건 I 222
저13 부 기타 인권관계 자료
1. 우리의 결의 (한국기자협회 한국일보분회) I 22s
2. 오늘의 언론상황에 관한 우리의 입장
(조선일보 현집국기자 일동) I 226
3. 현 시국파 언론상황에 대한 우리의 결의
(동아일보 기자일동) I 22s
4. 선언문(중앙일보 기자 얼동) I 230
5. 민주화, 인간화의 복음을 선포한다
(천주교 정의구현 천국사제단) I 232
6. 민주화는 정호의 구현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 152 명 선언) I 248
7. 교육민주화선언 (한국 YMCA중둥교육자 협의회) I 2s2
8. 우리의 돗을 다시 한벤 밝힌다천국대학교수단 265 안 선언) I 255
9. 1986 년도 인권선언 (NCC 인권위원회) I 265
10. 86 반공해선언 (공해문제연구소) I 212
11. 가난한 사랑도 제 자리에 살 권리가 있다
(재개발지역 공동조사위) I 2n
12. 정신보건법안을 규탄한다(정신뱅저지 공동대책위) I 2so
13. 시청료 거부 및 자유언혼 공동대책위 발표문 I 2as
14. 이돈명 변호사를 즉각 석방하라(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I 2s9
15.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기도와 선언
(천주교 정 의 구현 천국사제 단) I 290
16. 연이은 백화의 파괴와 화가의 업건올 규탄한다
(민족마술협의회) I 299
17. 서울대 김성수군 변사사건 관련자료 I 3 이
18. 인천 연안가스 근로자 신호수씨 변사사건 관련자료 I 306
• 펀접후기 I 313
제 1부 ’86 년의 인권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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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관

가. 개헌정국과 ’86 인권상황

(1) 1986 년은 1 년 내내 헌법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정


부권력과 비판세력 사이에 격렬한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지속된 해로서 이 해의 인권상황은 이 개헌문제의 추이와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전개되었다. 겨울방학 중인 2. 4. 서
울대학교에 재경 14개 대학생 1 천여 명이 모여 ‘개헌서명
운동추진본부 결성식’을 개최하였다가 189 명이 무더기 구
속되는 사태로써 단초를 연 개헌정국은, 신민당과 민주화
추진협의회(민추협)가 ‘ 2. 12총선 1 주년 기념식껴l 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위한 1 천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
언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이 무렵까지 정부 • 여당은 ‘호헌’주장을 고수하면서 서명
운동 등 일체의 개헌운동을 사실상 불법화하고 엄격히 봉
쇄하려는 방침을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한때
나마 신민당과 민추협의 사무실을 경찰력으로 봉쇄하는 극
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그후 이같은 극단적인 물리적 봉쇄정책은 후퇴
되었으며, 3. 23. 부산대회를 시발로 광주 (3 . 30.), 대구 (4
5.), 대전 (4 . 19.), 청주 (4 . 27.), 인천 (5 . 3.) 등 전국 각 대도시

에서 차례로 개최된 신민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추진 집회


•‘

16

에 매번 수만 내지 수십만의 시민들이 운집하여 개헌열기


가 크게 고조되자, 정부 여당은 종전의 ‘호헌’방침을 철회
하고 스스로 ‘민주화를 위한 개헌’으로서 내각책엄제 개헌
을 주장하고 나서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당의 내각책엄제 개헌주장
이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주장과 팽팽히 대립되어 오고
있을 뿐 구체적인 개헌작업은 한가지도 진척된 것이 없다.

(2) 개헌운동은 무엇보다도 현행헌법이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그 대통령의 선출방식에 있
어서는 국민들의 의사가 공정하게 반영될 수 없는 기형척
인 간섭선거 방식을 취함으로써 국민들의 자유로운 정부선
태권을 저해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선택권이란 민주주의정치의 핵심적 원칙일 뿐만 아니
라 다른 모든 개별적 기본권의 실현을 담보하는 가장 원천
적인 기본권인 것이며, 이 점에서 볼 때 정부 여당이 어떻
든 ‘국민의 정부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 국민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역사적 노력에 있어서 이룩된 하나의 획기적인 사태발전이
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 • 야가 공히 “민주화”와 그것을 위한 “합의개
헌”을 부르짖고 있는 가운데에서 구속자 석방, 언론자유의
회복 등 민주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은 거의 실현된 것
이 없고 도리어 역설적으로 1 년 내내 지속된 고도의 정치
적 긴장과 갈등 상태 속에서 각종 반민주적인 인권침해 사
태들이 걷잡을 수 없올 정도로 악화된 형태로 표출되었던
것이 1986 년의 상황이었다. 정치범의 격증과 무더기구속
17

사태의 빈발, 14개 노동단체 벚 민통련 등 재야단체에 대


한 강제해산 조치, 현직 국회의원과 변호사의 구속에까지
이른 국가보안법 적용사례의 확대, ‘성고문’과 ‘보도지침’이
라는 전대미문의 추문사건, 신민당 개헌추진 서울대회에
대한 물리적 봉쇄, 잇따른 분신 • 투신 • 음독 등 정치적 자
살, 잇따른 재판거부 사태, 교도소 내의 폭행과 가혹행위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이 모든 불행한 사태들은 86 년
한 해 동안 ‘민주화’와 ‘합의개헌’의 구호 아래서 정치적 자
유의 폭이 오히려 좁아졌고 법질서와 인권에 대한 경시가
더욱 노골화되었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 한계점에 다다른 인권문제의 심각성

86 년에 언권문제가 어느 정도로 위험수위에 달하였는지


를 알기 위하여는 다음 몇 가지 사실만을 살 펴보는 것으로
도 족하다.

(1) 정치적 구속과 수배의 격증

정치적 구속과 수배가 증대될 조짐은 야당의 개헌운동


추진과 더불어 엿보이기 시작하였다. 5. 3 인천사태에 이
르기까지의 일련의 개헌추진집회 과정에서 총 200 여 명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소요죄, 또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당하고 100 여 명 이상이 수배되었
다. 특히 5. 3 인천사태에 있어서 시위 참가자 내지 관련
자 중 상당수가 정부당국에 의해 좌경용공세력으로 규정되
18

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이래로는 학생, 근


로자, 재야단체 회원 등 비판세력의 ‘용공좌경’성 여부에

관한 논란이 본격화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보안법 적용사례


가 현저히 확대되었으며 급기야는 현직 국회의원과 변호사
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사태를 보이기에 이
르렀다. 정치적 구속자의 격증을 초래한 또 하나의 원언은
정부당국이 86 년에 들어와 누차 학생집회의 참석자 천원을
검거 • 구속하는 초강경책을 변 데에 있다. 10. 28'"Y31 의
세칭 “ 건국대사태 ” 에 있어서는 1,300 명에 가까운 학생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헌정사상 보기 드문 대량구속 사태까지
야기되었다.
86. 6. 19. 현재 공안사건 구속자 수는 총 978 명이었으나
(86. 6. 19. 법무부 국회법사위 보고), 9. 30 . 경에는 총 1,229 명으

로 증가하였고(신민당 집계 86. 10. 4. 한국일보), 11 . 5. 현재에

는 건대사건 관련구속자 포함 2,643 명에 이르렀다. 이중


건대사건 구속자를 제외한 1 , 359 명을 적용법규별로 분류하
면 국가보안법 461 명, 집시법 391 명, 폭행 235 명, 사문서
위조 37 명, 기타 235 명이었다.
또 1986년 한 해 동안에 구속된 정치범의 총 수효는 12.
16. 현재 3,400 여 명에 이르렀고, 그중 1,630 여 명이 12.
16. 현재에도 구속되어 있다 위 3,400 여 명의 구속자를 계
충별로 분류하면 학생 2,900 여 명, 근로자 250 여 명, 재야

인사 등 일반인 250 여 명으로 집계된다. 이 중 1986 년의


학생구속자 2 , 900 여 명은 전년도의 900 여 명에 비해 3배
이상에 달하는 숫자이다(검찰발표 1986. 12. 16. 동아일보). 단

기간에 이처럼 정치적 구속자의 수효가 격증하고 더우기


인구 4 천만 명 정도의 국가에서 1 년 사이에 3천 4 백여 명
19

。1 정치적 이유로 투옥되기에 이른 사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같은 비정상 상태는 더 이상 방치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대량구속 사태로 인하여 구속자 가
족들의 모임이 하나의 정치적 압력단체로 형성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편 구치소·교도소 등 수용시설의 수용능력이
나 재판사무의 처리능력도 거의 한계에 도달하여 여러가지
무리가 빚어지고 있다. 특히 교도소 내에서는 미결수를 기
결수와 동일하게 취급한다든지, 접견 • 서신 • 도서열독 등
에 대해 과도한 제한이 가해진다든지 하는 등의 부당처우
문제로 인해 분규가 빈발하고 이에 따라 86 년 내내 피구금
자의 권리 를 확보하기 위한 구속자들의 집단적인 옥중투쟁
과 그에 맞서는 행형당국의 집단폭행 등 가흑행위 사태가
줄을 잇고 이에 대한 구속자 가족들의 고발 • 고소 • 진정이
그칠 사이가 없다시피 하였다.

(2) 분신 등 극한적 저항사태의 빈발

86 년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학생, 근로자, 농민들의


잇단 분신, 투신, 음독자살이 빈발한 것이다.
서울대생 깅세진, 이재호 군이 4. 28. 신럼동 건물 옥상
위에서 전방업소교육 거부투쟁을 주도하던 중 분신, 끝내
사망하였고, 5. 20 . 에는 역시 서울대생인 이동수 군이 학생
회관 옥상에서 분신한 후 반미,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투
신, 자살하였다. 다음 날인 5. 21 . 에는 서울대 국문과 4년
박혜정 양이 사회적 불의에서 느끼는 아픔을 감당할 수 없
다는 유서를 남긴 채 한장에 투신자살하였다. 6. 5 . 에는 재

수생 이경환 군이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고 검세진, 이재호


군을 추모하는 일기와 유서를 남기고 청량리 맘모스 호탤

’,
..

20

옥상 에 서 투신하였고, 6. 6 . 에는 목포전문 대 생 강상철 군 이


목포역 광장 에 서 양심선언문을 뿌리며 분신하였다.
한편 서울 대 지리학과 1 년생인 김성수 군은 6. 22. 부산
시 암남동 매 립지 앞바다 에 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경찰
은 자살로 발표했으나 타살의 의심이 징다고 하여 신민당
언권위원회가 재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1 . 5.
부산산업대생 진성일 군이 건국대농성 강제진압 진상규명
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뿌리면서 동 대학 문과대학 건물 옥
상에서 분신 사망하였다.
한펀 근로자들의 경우 3. 17. 임금인상투쟁 끝에 경찰에
포위당한 채 분신했던 신흥정밀 박영진 씨에 뒤이어 3. 28.
청주시 대화운수 버스기사인 김태용 씨, 4. 30 . 에는 서울시
방화동 삼환태시 기사 변형진 씨, 6. 21, 에는 전주시 전북
여객 검남용 씨가 부당해고 등에 항의하여 분신하였다.
농민들 가운데서도, 2. 28 과 3. 10 . 에 소값하락으로 농협
벚 등을 비관하여 젊은 영농인인 섬양섭 씨 (25, 천남 함평
군)와 오한섭씨 (30, 충 남 아산군)가 농약 을 마시고 자결하였

다. 유신치하 9년 간에도 3 건밖에 없던 정치적 자살사건이


금년 한 해에만 15 건이나 발생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상
황 개선요구가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절박한 한계점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3) 재판거부 사태의 확산

86 년은 무엇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법부의 기능에 대


한 깊은 불신과 더불어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사법부
에 대한 집단적 재판거부 현상이 일어난 해로서 특기될 만
21

하다. 사법부는 검근태 씨 사건, 서울노동운동연합 사건에


서 보듯이 당사자들의 고문 퉁 가혹행위에 대한 주장을 외
면하고, 고문혼적 증거보전 신청마저도 받아주지 아니한
채 고문에 의한 자백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함으로써 고문
행위를 사실상 비호하고 조장하는 결과가 되었다. 더우기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있어
서, 사법부는 권양과 166 명의 변호인단이 제출한 재정신청
에 대해서도 명백한 증거에 의한 가혹한 성고문 사실의 대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기각함으로써 인권옹호의 사명
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물론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유린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는 압수수색
영장의 무원칙한 남발, 서울대 연합시위와 건국대사태 등
에서 무더기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영장
담당부서’로 전락했다는 극심한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정치척 구속자에 대한 거의 예외없는 유죄판결, 그리고 일
률적 중형선고 및 구류처분 등은 재판이 실체적 진실의 발
견이나 정의실현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결과를 향한 요식행
위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식을 더욱 일반화시켜 이것이 전
례없는 재판거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민정 당연수원 점 거 관련 이 현철(서울대, 징 역 7 년) 등과 서
울대연합시위 관련 오수진(성대, 징역 7 년) 등을 비롯한 피
고인 대다수가 재판을 거부하여 중형선고에도 불구하고 항
소를 포기하였다. 이외에도 5. 30 한미은행 점거, 전경련회
관 점거농성, 모세미용실 시위, 대구한미은행 점거, 부산
미문화원 점거농성, 5. 3 인천사태 관련자들을 비롯하여 문
익환 씨, 장기표 씨, 이창복 씨 등이 잇달아 모든 재판절
차를 거부했다.
사법부의 권능에 대한 배신감은 곧바로 법정에서 격렬한
22

표현으로 나타났으며 그로 인해 법정모독으로 추가기소되


는 피고인이 속출했다. 뿐만 아니라 방청객까지 이에 통조
하여 공무집행 방해, 법정모독으로 구속되는 미증유의 사
태가 다수 발생하여 사법부는 성역화되어 왔던 권능의 많
은 부분이 훼손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3

2. 신체의 자유와 안전

간f' 현행헌법 제 11 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압수, 수
색, 심문, 처벌과 보안처분을 받지 아니하며,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

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신체의 자유는 다른 모든


기본권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권리로서 강조되고 있
다. 그러나 우리 헌법상에 열거된 모든 국민의 권리 가운
데 이 신체의 자유에 관한 보장규정만큼 공권력에 의하여
정면으로 무시당하고 유린되고 있는 예도 드물 것이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 ‘연행’이나 ‘가택연금’ 등은 하등의
법적 근거가 없는 국가권력의 남용으로서 불법체포, 강금
에 해당하는 명백한 범법행위이다. 더구나 피의자에 대한
고문과 가혹행위 등은 말할 나위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임의동행을 빙자한 불법연행과 장기구금, 가택연금 나아가

고문과 가혹행위는 변함없이 빈발하고 있으며 국가권력이


이를 시정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극히 의문스러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헌법상 보장되어 있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첫째 가는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신체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로서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신체의
자유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
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 ‘·
24

가. 영장없는 체포, 구금, 가택연금 및 강제수사권의


남용

l) 대규모 국제행사나 시위예상 시기에, 재야단체 간부 ‘1、r


및 운동권학생에 대한 가택연금, 연행 등의 방법에 의한
격리조치가 공공연히 취해져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
컨대 검대중 씨의 경우 1985 년 2 월 귀국 이후 무려 40 여

회의 가택연금을 당했다. 일반 재야인사와 운동권학생에


대한 가택연금은 4.19, 5.18 광주사태 기념행사 기간을 위
시하여 아시안게임 등 국제행사와 신민당 개헌대회 등을
전후하여 빈번히 자행되었는데, 11 월 29 일 신민당의 ‘직선
제개헌추진 및 장기집권음모저지 범국민대회’시에는 김대
중, 김영삼 씨를 비롯하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대표 송건
호 씨, ‘자유실천문언협의회’ 대표 이호철 씨 등 30 여 명이
자태에 연금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국가권력에 의해 공공
연히 자행되고 오랜 기간 동안 관행화되어 왔기 때문에 마
치 법 률 상의 정당한 근거를 가진 제도인 양 국민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상의 인신의
자유의 이념 을 거의 무력화하는 사태라고 하겠다.

2) 1986 년 5 월 3 일에서 동월 6 일 사이에 ‘서울노동운동


연합’ 지도위원인 검문수 씨를 비롯하여 최한배, 윤현숙,
김진태 씨 등 13 인의 근로자들이 보안사령부 소속 수사요
원들에게 불법 연행당하였다. 이들은 을지로 2가의 인쇄소
및 부천시 역곡동, 잠실, 독산동 등지의 자택에서 연행되
어 동월 12 일 밤까지 강동구 거여동 소재 보안사령부 송파
25

| 분실에 감금되어 있으면서 각종 고문 및 가혹행위를 당한


다음 서울시 장안동 소재 서울시경 대공5계 분실로 이송되
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동
월 15 일까지 이들은 각각 10내지 13 일씩 위의 두 장소에
불법 감금당한 것이다 이기백 국방부장관은 6 월 임시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시 “간첩혐의가 있어 군 수사기관이 연행
조사한 결과 간첩은 아니나 국가보안법 위반사항이 있어서
경찰로 이송했다”고 답변함으로써 연행사실을 시인하였다.
이 사건은 군 수사기관이 단지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아무 적법절차 없이 연행, 감금했다는 점에서 심
각한 우려와 비판을 야기하였다.

3) ‘민족민주교육쟁취 투쟁위원회’ 사건의 노현설 씨(양화


중 교사)는 9 월 13 일, 지 영근 씨(서울사대 체육학과 제적)는 9
월 14 일, 그리고 윤병선 씨(관악고 교사)는 9 월 19 일, 송원
재 씨(당곡고 교사), 이상대 씨(당산중 교사), 이장원 씨(봉화중
교사) 등은 9 월 20 일에 서울시경 대콩과 장안동 분실에 불

법 연행당한 후 9 월 24 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각각


12 일, 6 일, 5 일간 불법 감금당한 가운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11 월 11 일 기소되었다.

‘반제동맹당’사건의 박충열, 우종원, 구용회, 이민영 씨


등 16 명은 10 월 27 일을 전후해서 경기도경 대공과에 영장
없이 불법 연행당한 후 구속영장이 발부된 11 월 12 일까지
약 16 일간 불법 감금당한 상태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주로 노동운동에 투
신한 대학출신 근로자들로서 경기도경은 11 월 13 일에야 이
들이 반제동맹당 결성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예하
에 주안, 부형 등의 지역지도부와 비합법노조를 두고 반정
26

부 및 비합법 노동운동을 전개해 왔다고 공식발표하였다.


이외에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ML당 결성기도 사
건’(10 월 24 일) ‘ 전국노동자연맹 추진위 원회 사건 ’{l 0 월 12 일),
검상복, 이범, 고경대 씨 등 출판언 14 인이 관련되었던
‘보엄사’사건 (4월 14 일),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사무국장 유상
덕 씨 등이 연루된 ‘교수간첨단사건’ 등 사회의 이목을 집
중시켰던 사건들이 하나같이 영장 없는 체포로 시작되어
장기구금과 고문 시비를 불러일으컨 바 있다.

4) 즉결심판을 통한 구류션고 및 유치명령은 경범죄 처벌


법과 즉결심판 절차법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본래
의 취지를 벗어나 정치적 탄압의 도구로 남용되고 있다.
대규모 구류조치의 예로서는 3 월 30 일 신민당 직선제개헌
추진 광주대회시 37 명, 3 월 23 일 전태얼기념관 박영진 씨
추도식 사건으로 31 명, 5 월 3 일 인천시위에서 22 명이 한꺼
번에 즉심에 회부되어 구류에 처해진 일을 들 수 있다. 그
러나 일년간 얼마나 많은 수가 정치적 이유로 즉섬에 회부
되었는지는 정확한 통계가 없어 알 수 없다.

5) 86 년은 구속자 수의 격증뿐만 아니라 단일사건 구속


자 수의 기록에서도 기억될 만한 한해였다. 85 년 11 월 18
일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기습점거 농성사건으로 191 명
전원이 구속된 이래 86 년 2 월 4 일 서울대 연합시위의 경우
는 189명, 5 월 3 일 인천사태로 129 명이 구속되는 등 대형
구속사건이 빈발하다가 급기야 10 월 28 일∼ 31 일의 건국대
연합시위 농성사건에서는 1 , 300 여명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이례적인 대규모 구속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들 중 70% 가량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증거언
27
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명백한 경우인 유성환 의원 빛
이돈명 변호사의 구속은 강제수사권 남용의 표본적 사례로
서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다.

나.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고문 및 가혹행위

공권력이 정치적 반대자에게 가한 가혹행위의 한 생생한


표본으로서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던 85 년의 검근태 씨 고
문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사회에는 고문반대의 여론이 널
리 환기되었다. 그러나 86 년에 들어와서도 물고문, 전기고
문, ‘통닭구이’고문 등 업에 담기도 끔찍한 온갖 야만적인
가혹행위를 수반하는 억압적인 수사관행이 여전히 건재하
고 있음이 수많은 피해당사자들의 호소나 기타 관계자들의
주장을 통하여 알려진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더우기 고문문제에 관한 검찰과 법원의 소극적 • 회피적인
자세 역시 전혀 시정된 흔적이 없었던 것은 실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86 년에 제기된 숱한 고문피해 사례 주장 중
검찰의 적극적 수사에 의해 그 진상이 밝혀지고 고문수사
관이 처벌된 예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법정에서 당사자들
의 고문주장이 대부분 그대로 묵살되다시피 하는 사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법원 • 검찰의 소극적 자세
가 고문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자성이
있기를 촉구한다.
86 년의 대표적인 고문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노동
운동연합’사건과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을 통하여 사
태의 심각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

28

l) ‘서노련’사건의 검문수 씨 등 13 명은 보안사령부 송파


분실에서 ‘서노련’이 85 년 9 월부터 발행해 온 ‘노동자신문’
제작 및 배포 경위와 5 월 3 일 인천시위 가담 여부 등에 관
해 조사를 받으면서 흑심한 구타를 비롯하여 각종 고문을
당했다. 특히 ‘서노련’ 지도위원인 검문수 씨의 경우 5 월 6
일 밤부터 7 일 아침까지 전기고문, 고추가루를 섞은 물을
코와 업으로 들어붓는 물고문, 강력범 체포시 사용하는 전
기방망이 구타, 몽퉁이 구타 등의 가혹한 고문을 집중적으
로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 고문사실은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위원들로 구성된 조
사위원들이 피구속자를 접견하고 조사한 바에 의해 확인되
었다. 인권위원회는 고문자를 색출, 처벌해줄 것 등을 요
구하며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당국은 고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을 위한 하등의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5 월 29 일 변협
인권위원들로 구성된 변호인단이 제출한 검문수 씨의 몸에
남아 있던 고문흔적 증거보전 신청은 법원에 의해 기각당
하였다.

2) 서울대 제적학생으로서 주식회사 ‘성신’에 취업했던


권모양은 6 월 4 일 밤 통장의 신고로 부천경찰서 형사들에
게 불법연행되어 동월 7 일 밤까지 주민등록증 위조등의
경위와 양승조 씨 등 언천사태 수배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받으면서 동 경찰서 문귀동 경장으로부터 문제의

성고문을 당했다.
이 사실은 권양이 6 월 16 일 인천교도소로 송치된 후 동
료들에게 진상을 얄리면서 70 여 명의 양심수와 더불어 6 월
29

28 일부터 문귀동의 구속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시작 하고


구속자 가족 40 여 명이 7 월 1 일 부천경찰서를 찾아가 항
의농성을 벌인 데 이어 7 월 3 일 권양의 변호인단이 문귀동
에 대한 고발을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사회에 알려지기 시
작했다. 경찰 등 관계당국은 당초에 위 성고문 주장은 권
양이 ‘의식화투쟁의 일환’으로 허위조작한 것이라고 들고나
왔으나, 검찰의 집중적인 수사와 그 이후의 재정신청사건,
심리과정을 통하여 권양의 주장이 진실임이 사실상 공인된
감이 있다. 이 충격적인 성고문사건은 여성계, 종교계 등
사회 각계의 거센 규탄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단체연
합 성고문대책위원회’, ‘천주교수녀회 장상연합회’등 7개
단체가 연합하여 부천경찰서 성고문 공동대책위원회도 발
족하여 이 사건에 대한 조직적 대응이 시작되었다. 7 월 19
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성고문 범국민 폭로대회’를 시작으
로 ‘성고문 규탄 기도회 '(7 월 27 일 성공회 대성당), ‘부천서 성
고문 진상보고대회’ (7 월 28 일 광주), ‘성고문 인권탄압 저지
를 위한 미사’(7 월 30 일 부천),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8 월
4 얼 서울)등을 위시하여 8월 6일 청주, 8월 8일 이리, 8월

9 일 청주, 8 월 10 일 부산, 8월 11 일 대전과 광주, 8 월 14


일 34개 재야단체와 신민당 주최의 ‘고문 • 성고문 • 용공조
작 범국민 폭로대회’로 이어져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전국
에 걸쳐 전개되어 경찰과 충돌하였다.
한편 대한변협에서도 이 문제를 중시하여 진상조사위원
회를 구성, 조사에 나선 결과 권양의 성고문 주장이 사실
임을 확인하고 진상조사 결과발표를 통하여 문귀동의 구속
기소를 요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인천지검
은 불구속입건된 문귀동을 고소 50 일만에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에 당시로서는 사법사상 최대규모인 166 명의 변
30

호인단이 구성되어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서울고법은 10 월 31 일 검찰발표 내용과는 달리 문귀동이

저지른 성고문 행위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재정신청은 기


각하는 모순된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재항
고를 제기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이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로 인해 다수의 구속자가 파생
되었고 고려대 여학생 3 명이 경고의 뭇으로 인천지검 청사
에 방화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구속중인 양심수가 법정에
서 성고문 규탄 구호를 외쳐 법정모독 혐의로 추가기소되
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20 대의 한 처녀가 부도덕한
정치권력의 전체계와 정면으로 대결한 양심의 투쟁이었다.
검찰의 허위발표, 얄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한 부천경찰서
경찰관들의 조직적인 허위증언, 정체를 알 수 없는 공안당
국의 ‘성을 의식화의 도구화’ 운운하는 악의에 찬 왜곡발
표, 문귀동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과 재정신청 기각, 언론
에 대한 보도통제, 항의집회에 대한 경찰의 강제진압, 권
양에 대한 균형 잃은 중형선고 등은 국가권력의 부도덕성
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인
권유련의 거의 모든 측면을 집약하여 보여주고 있으며 한
국의 국제적 위신을 크게 실추시킨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

러나 진실을 밝히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한 젊은 대학출신 여성근로자의 양심의 소리에 동참하려
한 국민의 뜨거운 관심과 정열은 우리사회의 밝은 앞날을
예고해 주는 인권상황 개선의 귀중한 원동력임이 확언되었
다고 할 것이다.
31

다. 의문의 번사 사건들

85 년 10 월 11 일 밤 황간역 부근의 철로변 콩밭에서 변사


체로 발견된 서울대 우종원 군(당시 ‘깃발’사건으로 수배중)사
건에 뒤이어 86 년에도 의문의 변사 사건들이 얼어났다. 이
사건들은 과거 검근조 씨 폭행치사 사건이나 공안관계 피
의자에 대한 흑심한 고문실태에 비추어 수사기관에 의한
사체 유기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자아내고 있으며, 진상규
명을 회피하는 듯한 당국의 태도에서 이 의혹은 더욱 철어
지고 있다.

l) 86 년 6 월 21 일 부산시 서구 암남동 소재 송도 매립지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서울대 검성수 군의 경우 경
찰은 자살로 단정, 발표하였다. 검군은 6월 18 일 오전 10
시경 집을 나간 뒤 실종되었는데, 유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 부산에서 자살할 동기가 없으며, 시체가 발견된 곳
은 철조망이 쳐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해안에서 10
미터나 들어간 수성 17u] 터 바다 속 바위였고, 직경 25 센
티미터 가량의 시멘트덩이를 2 개나 몸에 달고 있었다. 그
리고 안경과 신발이 벗겨져 있지 않았고 손발이 말짱하며
유류품에서는 차비조차 나오지 않았고 신발 속에서 판금도
서의 제목이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다. 이런 점에서 검군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의문이 발생하였고, 가
족들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서울시경과 부산 서
부경찰서에 6 월 26 일 재수사를 요청했으나 진상은 규명되

지 않고 있다.
、‘
,,;•• -」 '1 ‘ .,

32

2) 인 천 연 안가스 근로자 신호수 씨 (24)는 1986 년 6 월 11


일, 방위근무시 자취방 바닥에 넣어 두고 제대하였다가 문
제가 된 북괴 불온전단에 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
부경찰서 형사 3 명에 의해 연행되었다. 신씨는 그후 행방
불명되었다가 6 월 19 일 고향인 여수시 인접 지역인 전남
여천군 돌산읍 평사리 대미산 중턱의 바위틈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관할경찰서는 자살로 변사처리하여 동월 21 일
가매장한 후 27 일에야 가족에게 통보하였는데, 경찰의 자살
판정과는 달리 수많은 의문점이 있어 가족이 신민당 신순
범 의원에게 진정서를 제출, 신민당 인권위원회가 7 월 10
일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유서가 없고 발
견 당시 흰색 면양말의 발목 부분이 피로 뒤벙벅이 되어
있었으며, 핫줄처럼 꼬인 상의가 목에 걸려 있고 다른 쪽
끝이 바위톰에 끼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도저히 자살한
상황으로 볼 수 없다는 점 등이 의문점으로 지적된다. 그
러나 서부경찰서측은 신씨를 하루만 조사하고 혐의가 없어
훈방하였으며 자살임에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사건진
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3) 장이기 씨 (33세 청주대 졸,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중이었음)


는 86 년 3 월 16 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 수감중이던 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망했다 ( r동아일
보』 ,3 21.). 장씨는 그 며칠 전 예비군훈련 교육장에서 담당

교관의 훈시내용에 대해 “정부선전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등의 발언
을 했다가 군 부대와 치안본부를 전전하던 끝에 3 월 16 일
사망하였는데 국회 대정부질문에 그 사인이 문제시된 바,
33

법무장관은 “복부에 이상 있으나 사인은 심부전증이다”라


고 답변했다. 이 역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짙은 의혹을 야기시킨 사건이었다.

라. 일반 형사피의자에 대한 고문

금년에 사회의 관심 을 끈 일반 형사피의자의 고문사건으


로는 경주 ‘국일당구장’ 여주인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몰렸
다가 무죄로 풀려난 박호영 씨 등 3 명의 경우와 사례이다.

l) 박호영, 신백현, 박해선 씨 등 3 명은 1983 년 1 월 14


일 새벽 3시 경 발 생한 경주 ‘국일당구장’ 여주인 살해사건
범인으로 몰려 동년 8 월 29 일 1 심에서 사형 3 형에 무기징

역 을 선고받았으나 84 년 1 월 20 일 대구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 을 받았다. 그 러나 검사의 상고로 풀려나지 못하다가
84 년 5 월 15 일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에 의해 석방되였
다. 그후 86 년 3 월 3 일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대에 의해
그 진범이 검거-됨으로써 매 스 컴에 널리 보도되어 사회에

알려진 이 사건은 일반 형사피의자에 대한 고문을 규탄하


는 여론 을 다시 한번 야기시켰다 박호영 씨 등이 작성한
장문의 호소문에 나타난 이 사건의 경위에 관한 본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박호영 씨는 당시 현직 경찰관으로서 평소 피해자 이경
순 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다 2 월에 경찰
직을 그만둔 후 3 월 18 일 경주지청 직원 3 명에 강제 연행
당하여 3 월 22 일 정식영장이 발부되기까지 나흘 동안 검종
보 검사의 방 맞은편 빈 방에 감금되어 있으면서 살인자백

/
“ •
' ”

34

을 강요받고 고문을 당하였다 검사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피해자와 같이 장을 자던 김정심 씨 (20세)를 박씨의 옆방에
감금, 협박하여 김씨로부터 박씨를 목격했다는 허위자백을
얻어 내어 겪씨를 단독범으로 몰아 구속시켰다. 그리고 그
후 알리바이가 업증되자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박씨의 친
구인 신백현 씨와 박해선 씨를 검찰청 지하 보일러실에 감
금, 10 여일간 고문을 가함으로써 공범으로 조작하고 사건
발생 시간까지 변경하는 등 사건 자체를 조작하였다. 이
세 사람은 억울한 1 년 2개월의 옥살이를 하는 동안 가정마
저 파탄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들은 공히 검찰청 지하
보일러실에서 밤마다 거꾸로 매달린 채 겨자를 섞은 물을
코에 들이붓는 고문과 각목을 팔다리의 관절에 끼워 비트
는 ‘주리 틀 기’, 연 나흘간 밥을 굶기고 장을 재우지 않는
등의 참흑한 고문을 당하여 심 각한 고문후유증의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특히 신백현 씨는 거의 운신을 못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어 버렸다고 한다.

2) 서재선 씨 (27 세, 서울 도봉구)는 1983 년 12 월 절도벙 일


제 소탕령이 내렸을 때 구속되었다가 84 년 10 월 2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석방된 후 운전기사로 근무하던 중 85 년
6 월 26 일 다시 83 년 당시 서씨를 구속했던 이창률, 검은배
등 서울시경 소속 형사에 의해 불법 연행되었다. 서씨의
주장에 의하연 친구인 검선태 씨와 함께 동대문경찰서 옆
구 전매청 자리에 있는 건물 2층으로 끌려가 절도사실 자
백을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손목과 발목을 수갑으로 함께
묶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속칭 ‘통닭구이’와 고추가루 물고
문, 쇠파이프를 무 릎 과 종아리 사이에 넣어 무릎을 끓게
하고 허벅지를 짓밟는 등 반복되는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허
35

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6 월 27 일 영장이 발부


되어 ‘특수절도 ’ 혐의로 구속된 서씨는 85 년 11 월 1 섬에서
10 년 구형을 받았으나 무죄판결이 내렸고, 이어서 86 년 4
월 23 일의 2섬과 86 년 7 월 22 일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모두
무죄라 선고되어 석방되었다. 서씨는 지금도 고문후유증으
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마. 수감자의 인권

건국대사태 관련 구속자를 포함한 정치적 구속자 수가


3,400 여 명에 달했던 86 년 한해 동안 전국 36개 구치소와
교도소에는 불법부당한 소내의 제반 처우의 시정을 요구하
는 수감자들의 항의사태가 빈발했다. 특히 쟁점이 되었던
것은 과도한 도서열독의 제한, 직계가족에 한하는 면회 제
한, 교도관의 폭언 • 폭행, 검열에 의한 서신 차단 등인데,
이는 형사피고언으로서 무죄추정 등에 의해 법적 지위를
보장받아야 할 미결수용자에게 기결수에 대한 처우방식이
그대로 적용됨으로써 행형제도 운용의 문제점으로 지적되
었다.
86 년 10 월 2 일 구속학생 학부모 150 여 명이 신민당 중앙
당사로 찾아가 서울구치소 내의 교도관들에 의한 수감자
집단폭행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줄 것과 소내 인권유린 사
태에 대해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면서 철야농성을 함으
로써 피구금자의 인권문제가 국회상임위에까지 비화되어
여 • 야간의 공방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앞서 가족들의 진
정에 의해 8 월 14 일에 있었던 대구교도소 양성수 집단폭행
사건을 조사하러 갔던 신민당 국회의원 8 명이 교도소 측 의

36

경비교도대의 집단시위로 관할 달성경찰서에 신변보호 요


청을 하기에 이르렀던 사건은 소내 인권유린 사태의 외부
확산을 막으려는 행형당국과 조사단 사이의 마찰이 극에
달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었다.
1 월 16 일, ‘고문 및 용공조작 저지 공동대책위원회’의 공
동대표 계훈제, 박형규, 송건호 씨 등 14 명이 검근태 씨
고문사실의 증거가 되는 발뒤꿈치의 상처딱지를 수명의 교
도관을 지휘하여 강제탈취해 간 서울구치소 보안과장 송선
웅 씨를 서울지검에 고발한 일을 펼두로, 2 월 22 일에는 박
문식 씨(서울대) 가족이 시승시갑한 채 집단폭행한 서울구
치소 9사 주엄 이강용을 비롯한 다수의 교도관을 고소, 이
에 변협 언권위원 조숭형 변호사가 조사 작성한 소내 언권
유린 사례보고서 (3월 3 일)에 의거 변협은 법무부장관 앞으
로 인권침해사례 시정건의문을 통해 진상규명과 범법자 의
법조치를 촉구했다.
3월 3일 최순얼(외대)의 부모가 집단폭행을 당하여 좌측
고막 출혈상의 부상을 업였다고 주장 서울구치소 보안계장
을 고소, 4 월 21 일 민추협 소속 변호사들이 영등포교도소
의 보안계장 등을 가혹행위 이유로 서울지검에 각각 고발
했다. 그러나 이중 한 건도 납득할 만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노춘월(감신대, 서울구치소)이 4월 7 일에, 검말숙(축
대, 의정부교도소)이 6 월 5 일에, 임성안(한신대 대전교도소)이
9월 6 일에, 유길용(국민대, 전주교도소)이 8월 7 일에, 검미정
(외대, 원주교도소)이 9월 27 일에 각각 재소자 인권유린 사태
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며 안경과 유리 등으로 동맥절단을
시도해 줄;상을 업였으며 11 월 15 일 ‘현재 전국의 교도소에
서 60 여 회의 수감자 항의사태가 발생했고 안창완(고대, 서
37

울구치소), 최진호(서울대, 서울), 정원수(고대, 서울), 검장호


(서울대, 서울), 김미경(노동자, 영둥포), 구영한(서울대, 영등
포), 유종철(숭전대, 영동포), 사공준(전도사, 대구), 노광호(전
주, 서강대), 안병용(서울대, 원주), 오맥균(노동자, 청주), 한
덕 희 (노동자, 공주), 이 규웅(노동자, 인 천), 오세 만(노동자, 인

천)등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 ,. ' r.

38

3. 언론 • 출판의 자유

현행 헌법은 제 20조 제 1 항에서 언론 • 출판의 자유를 규


정하고 있다. 언론 • 출판의 자유는 집회 • 결사의 자유와
함께 민주적 정치 • 사회생활의 방법적 기초를 뭇할 뿐 아
니라 민주시민의 주요한 의사표현 수단을 뭇하기 때문에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그 정치 • 사회질서의 중추신경에 해
당하는 주요한 기본권이다. 언론 • 출판의 자유가 존재함으
로써 각 개인은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교환하여 자율적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이룰 ‘ 수 있고, 국가
사회는 사회성원간의 의사접촉 • 여론형성을 도모하여 민주
주의 원리를 유지 • 발전시킬 수 있다 특히 민주정치제는
정치적 사상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한 정치적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
의 완전한 보장 역시 필수적인 것이다.
현행헌법 제 35조 제 2 항은 이처럼 중요한 언론 • 출판의
자유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면서도 그 본질척 내용은 침해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첫째, 언론 •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들은 일단 위
헌의 추정을 받는다 즉 위헌이 아니라는 적극적 반증의
사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위헌적인 것으로 그 효력을 인
정할 수 없다.
둘째, 어떤 언론 • 출판 행위가 사회질서에 ‘명백하고 현
존하는 위험’이 아닌 한 이를 제한할 수 없다.
세째, 설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경우일지라도 필
39

요불가결한 최소한의 재한만이 인정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신체제 하에서 ‘사실을 왜곡하거
나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하는 행위를 정역 15 년 이하 중형
으로 금압한 긴급조치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는 언론 • 출판의 자유에 대한 유형 • 무형의 각종 과도한
제한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언론 • 출판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법률에 의해 제도화된 제한, 법률을 남용한 제한,
완전히 불법적인 제한 등 여러가지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
다. 「언론기본법」(약칭 언기법)은 첫번째 유형의 대표적인
본보기이고, 경범죄처벌법 제 1 조 제 44호 유언비어날조유포
규정의 남용, 압수수색과, 「출판사 및 인쇄소 등록에 관한
법률」을 악용한 출판사 • 정기간행물 등록취소 등은 두번째
유형의 것이며, 「보도지침」이나 언론인 • 출판인에 대한 위
협 등은 세번째 유형에 속한다.

가. 언론기본법의 위헌성

1980 년 7 월 31 일 사회정화라는 명목 아래 많은 언론인들


이 해고되고 「창작과 비평」 「씨을의 소리」 「뿌리깊은 나
무」 등 192 종의 정기간행물이 등록취소되었다. 그리고 동
년 11 월 14 일의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 임시총회의
「건전한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이라는 형식을
밟아 신문 • 방송 • 통신사의 전면통폐합이 단행되었다. 그
결과 합동통신과 동양통신 등 3개 통신사가 연합통신으로
통합되고 중앙지의 지방주재기자가 철수되었으며 지방기사

를 연합통신£로부터 일률척으로 독점공급받게 되었다. 그


리고 각 도별로 하나의 지방신문만이 허용되었으며 T.V.

40
방송국은 실질적으로 정부소유로 되었고 (MBC주식의 70%를

KBS 가 소유), 기독교방송국은 보도 • 광고 기능을 정지당하

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80 년 12 월 19 일 국가보위업법회의 문
공위원회가 발의한 언기법이 동월 26 일 국가보위입법회의
본회의를 통과하여 동월 31 일에 공포되었다. 이 법은 그후
현행헌법 부칙 제 6조에 의해 법률£서 효력을 부여받았으
나 제정과정상에서 언론인들을 상대로 한 공청회 한번 거
치지 않은 비민주적인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총 57 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언기법은 제 1 조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보호하고 여론형성에 관한 언론
의 실질적 기능을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공공복리의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와는 달리 수많은 문제조항을 내포하고
있다.

(1) 동법 제 6조는 “ 진행중인 직무의 합리적 수행이 좌절,


곤란 또는 위태롭게 될 때”(처l]l 호), ‘?더 중한 공익 또는 보
호할 사익이 명백히 침해될 때”(제 3호), “정상적언 직무수
행에 현저한 지장을 줄 때”(제 4호),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와 공공단체는 언론기관의 정보청구권을 배제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처럼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예
외사유가 인정됨으로써 정보청구권 자체가 형해화되어 버

리고 있다.

(2) 취재원에 대한 기자의 진술거부권을 규정한 동법 제


8조 제 1 항의 예외조항 역시 극히 막연하고 포괄적이며 추
상적이다. 즉, ‘범죄를 구성하는 내용이 공표된 때’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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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1 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는 범죄로 공표의


기초가 된 자료 및 정보를 입수한 때’에는 취재원을 묵비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각종 비리행위와 범죄사실에 대한
보도를 통하여 사회정화에 기여해야 할 언론 본연의 기능
에 섬대한 제약을 초래할 수 있다.

(3J 동법 제 18조 1 항은 언론인에 대한 의무적 연수제도


를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81 년 6 월 22 일 「한국언
론연구원」이 설치되어 매년 수주일간씩 의무적인 연수교육
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기관 및 유사기관에서 일률
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언론인에 대한 권위주의
적 통제의 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4) 동법 제 20조는 정기간행물의 등록제를 규정하고 있


다. 법조문상으로 ‘등록’의 법률적 성질은 허가가 아닌 단
순한 신고 정도로서 행정관청에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데
그 취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법 52조는 제 20
조 위반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이를 출판의 자유를 박탈하기 위한 독소조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제 24조 1 항은 법원의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기간행물의 등록취소나 발행정지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문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이 조항은 언기법 제
20조 제 1 항의 규정에 의해 등록하지 않고 정기간행물을 발
행한 경우 관할청이 출판사 등록취소를 할 수 있게 한 「출
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 제 5조 제 2 항 제 4호와
더불어 「실천문학」과 「이삭출판사」, 「창작과 비평사」 등록
취소의 무기로 사용되었다. 또 “정기간행물의 내용이 등록
된 발행목적이나 제 3조 제 4 항의 공적 책임(언론은 폭력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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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위법행위를 고무 찬양하여서는 아니

된다)을 반복하여 현저하게 위협할 때” 등록취소와 발행정


지 사유가 된다는 언기법 제 24조 제 1 항 제 4호는 정기간행
물의 내용에 대한 행정관청의 간섭과 검열을 필수적인 전
제로 삼고 있는 만큼 언론 • 출판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
해하는 것이다.

(5) 이외에도 편집권을 제약하는 제 22 조 제 4 항, 제 33조


제 2 항, 제 53 조 등과 형식에 불과한 방송위원회 설치규정
(제 34 조), 정치권력이 광고수입을 독점할 수 있게 해둔 광
고방송에 관한 규정(제 44 조), 과도한 별칙규정(제 52 ∼ 57 조) 듯

갖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이 법에 의해 언론 • 출판의 자유가 현저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제도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자
연스러운 일이다. 언론이 반민주성과 국민적 불신을 청산
하고 명실상부한 민주사회의 여론형성 매체로서 기능하게
하기 위해서 이 법은 폐기되거나 대폭 개정되어야 할 것이

다.

나. 언론의 현실

(|) 보도의 자유와 알 권리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86 년 9 월 6 일 발간한 『 말』 특집 호 「보도지 침 」은 오늘날 우
리 언론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위 민
주언론운동협의회의 주장에 의하면 이 보도지침은 문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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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 홍보정책실이 수시로 각 신문사에 은밀하게 시달하는


보도통제 가이드라인이다. 홍보조정실은 1981 년 1월 9일
신설된 문화공보부 내의 홍보정책실이 85 년 10 월 11 일 국

무회의의 문공부직제개정안 의결에 따라 개편 보강된 것이


다. 문공부직제 제 8조에 의하면 홍보정책실에는 실장 밑에
홍보정책관 1 명, 홍보기획관 3 명, 홍보심의관 1 명, 홍보담
당관 7 명이 있는데 이들이 각 신문사의 면집국 간부들에게
보도통제 일일지침을 계속 시달한다는 것이다.
이 「보도지침」은 85년 10 월 19 일부터 86 년 8 월 8 일까지

의 약 10개월간의 것을 수록한 것으로 이 기간중에 있었던


국내외의 수많은 사건과 사태에 대해 보도여부는 물론이고
보도방향, 내용, 형식 등을 일일이 지시하고 있다.
보도의 억제뿐만 아니라 기사의 내용을 유도하는 지시까
지 ‘크지 않게’, ‘눈에 띄게’, ‘돋보이게’, ‘균형 있게’ 등으
로 빈틈없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 보도지침은 실로 충격적
인 것이었다. 정부의 언론통제가 공공연한 비밀로서 알려
져 있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세밀하고 철저한 것일
줄이야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농촌 파멸 직전 보도하지 말 것”, “야당질문 내용 빼고
‘그저 했다’라고만 보도할 컷”, “담배수업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 아니다’라고 쏠 것”, “부천경찰서 성폭행사건은
‘부천사건’으로 쓰라”, “고문관계는 오늘도 일체 보도하지
말 것” 등등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보도통제가 이루어져
용 사실을 이 자료는 보여주고 았다 이것은 국민의 얄 권
리, 들을 권리, 말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불법부
당한 언론자유의 침해로서 더 구차한 설명조차 요하지 않
는 듯하다. 여론의 정치인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여론 자
체가 권력에 의해 조작되어 국민들에게 거꾸로 주업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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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껍데기만의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보도지침의 공개사실과 관련하여 위 협의회
사무국장 검태홍 씨와 실행위원 신홍범 씨, 한국일보 기자
검주언 씨가 각각 12 월 10 일, 12 월 15 일에 연행되어 국가
보안법 위반과 국가모독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보도지침 중 인권과 관련된 부분만을 인용하면 아래
와 같다.

85 년
‘국회의원 미행, 도청 말라’ 보도하지 말 것
10. 25. ‘ 국회 야당의원 보좌관 3 명의 검찰 소환으로 국회가
유회(流會), 공전된 것.
CD 스트레이트 3 ∼ 4단 기사로 보도할 것.
@ 스케치기사는 안되고 해셜 박스기사는 좋음.
@ 야당의원들의 의사진행, 신상발언 등을 모은 박
스기사는 보도하지 말 것.
‘ 이재형 국회의장 「정부는 국회의원을 미행, 도청,
잠복하지 말라」는 표현을 보도하지 말도록.

‘고문’ 일체 보도하지 말라
11 . 4. ‘ NCC, ‘고문대책위’ 구성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11 . 5. ‘ 국회내무위에서 천경환 새마을중앙회장이 새마을본
부에 대한 학생들의 화염병 투척 사건을 보고하고
질의에 답변한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 서울시경, 오늘 오후 6 시에 주한미상공회의소(조선
호텔 내) 학생 난업 사건의 처리방침올 발표할 예

정. 사회면 톱기사나 중간 톱기사로 다루지 않기를.

(사이드 톱기사 정도가 좋다고 판단)


‘ 오늘 산발적인 학생시위, 일일이 떼어서 보도하지
말고 묶어서 척 당히 크지 않게 보도하기 바람.
45

언론사에 안기부, 보안사 요원 상주는 사실인가

11. 15. ‘ 예결위원회에서 유준상 (신민)의원이 질의한 다음내


용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특히 언론정책관계는
보도하지 말 것.
CD 당국이 최일남(동아일보 논셜위원), 검중배(동아
일보 논설위원), 장명수(한국일보 여기자) 등에
게 컬럼과 관련, 경고했다는데 사실인가.
@ 언론사 사장들 수시로 청와대 초치, 언론대책위

구성 사실인가.
@ 언론인 50여 명, 사생활 관련, 곧 제 2숙정한다
는데 사실언가.
@ 각 언론사에 문공부, 안기부, 보안사 요원이 상
주하고 어떤 때는 최고 7개 부처가 관여한다는
데 사실인가.
@ 홍보죠정실 예산 165 억설 내역 밝혀라.
@ 홍보조정실에서 각 신문의 제목, 기사 일일이
통보, 간섭한다는데 사실인가.
@ 이원홍 문공부장관이 지난번 수해기사와 공무원
부정기사 못싣게 했다는데- - -
® IFJ(국제기자연맹)이 전 대통령에게 해직언론인
복직건의서(공한)를 보냈는데 기자협회가 이를

협회보에 못 싣게 한 이유는?
@ 당국이 최근 서울대 시위와 관련, 2페이지짜리
보도지 침 을 각사에 보냈다는데 ?
@ 「선경」이 「유공(油公)」올 인수한 배경을 밝혀라.

학생시위 ‘적군파식 모방’으로 쓸 것

11 . 18. ‘ 대학생 들 「민정당 연수원 난업, 해산」


이 기사는 사회변에서 다루 되, 비판적 시 각으로 해
,.‘
t

46

줄 것. 단, 사진은 구호나 격렬한 플랭카드 등 이

담긴 것은 피할 것 .
‘ 치안본부 발표. 「최근 학생 시위 적군파식 모방」
이 발표문을 크게 다뤄줄 것과 특히, 「적군파식 수

법」이 라는 제옥을 붙여줄 것 .

‘ 김 건설부장관회견 ,「일부 그린벨트 완화설 부인」은


제목에 크게 실어둘 것.
11 19. ‘ 20 일 대업고사. 치안본부의 입시 수상작전 등 업시
관계 요란하게 보도(예고)하지 말 것 .

‘ 민정당연수원 난입학생 수사관계 보도.


@ 관련사진 자극적인 것 피할 것 .

@ 「영장없이 가택수사」 등은 제목으로 뽑지 말


‘ 목사 등 30 여 명의 고문저지 보고회는 싣지 말 것.

예산안 번칙 통과, “책임은 야당에 있다”


12. 2. ‘ 국회,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을 통과시킨 점과 관련,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제 작 바람.
@ 민정당은 예산안을 정상 처리하고 개헌특위 문
제는 대폭 양보해서 오늘 새벽 최종안을 냈음에
도 불구하고 협상을 외연한 채 야당은 국회를
정쟁(政얀)의 장으로 만들었다. 책임은 야당에---
@ 여당은 정치의안과 예산안을 일괄 타결하려 했
으나(즉 협상을 제의했으나) 야측, 특히 검대중

측의 반대로 결렬됐음.
@ 예결위원장과 여당 총무를 야측이 폭행, 경상을
업힌 것은 불법.
@ 야당으로 하여금 협상 결과를 준수하는 자세를
지키도록 언론이 유도할 것.
@ 예산안처리 관계기사 제옥에 「변칙 날치기 통
과」라 하지 말고 「여 단독처리 강행」 식으로 할
47

<.

12. 19. ‘ 국회 폐회 후, 정국 전망 기사 중 제목에서 「장외


대결」 「원외공방」 풍의 표현을 쓰지 말 것.
특히 「장외정치」를 부추기지 않도록.

‘ 검근태(「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전의장) 첫 공판, 검


은 정치뱅이 아닌 보안사범이므로 스케치기사나 사

진 쓰지 말고 공판 사실만 1 단으로 보도할 것.

‘ 민추협 성명, 「안기부에서 민추협 직원 1 명 연행한


점」을 비난한 성명은 싣지 말 것.

86 년
민정당 의원 검찰출두는 사진을 쓰지 말라
1. 14. ‘ 13 일 발표된 재 야인사,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보도
하지 말것.
‘ 미문화원 2섬공판, 사진 없이 공판사실만 보도할

<.

‘ 여야의 조사관계는 스케치 기사량을 너무 많이


하지 말 것.
1. 15. ‘ 신민의원 기소 관계
@ 기사나 제목에서 「협상정신 위배」, 「과영조치」,

「의회민주주의 끝장」 등 야당의 극단적인 것 쓰


지 말 것.
@ 스케치 기사는 여러 면에 벌이지 말고 고십기사
속에 소화할 것.
@ 사진은 자극척언 것 쓰지 말 것.
@ 이번 기소 결정이 고위충과 연결된 인상을 주지

말것.
‘ 민정 창당대회에서 대통령 치사, 1 면 톱기사로 보
도하기 바람.

‘ 이원홍 문공부장관이 발표한 「저작권관계 자문위원


회 구성 」은 크게 보도해 주기 바람.
48

‘ 문교부 교육정책실장, 14 일 「각대학 학생처장과 비


밀회의」 중에 「문제학생 휴학 또는 업영조치」 운운

한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
... 워싱턴에 있는 「아시아인권위원회」 14 일 회견, 「한
국에도 필리핀처럼 렉설트 의원 보내 인권탄압을
중지하도록 촉구해야…」하는 내용은 보도하지 말

“고문당했다” 보도하지 말 것

‘ 김근태 공판
그가 「고문당하고 변호인 접견을 차단당했다」는 등
의 주장은 보도하지 말도록.

사진이나 스케치기사 쓰지 말 것.

‘ 조순형, 박찬종 의원 공판, 사진, 스케치기사 쓰지


말 것. 피고인 진술도 부드럽게 걸러서 쓰도록.
‘ 최근 안전기획부와 청와대 사칭 사기사건 기사에서
기관명이 나오지 않도록 할 것.
‘ 금얼 서울대생 300 여 명 시위중 「야당의 개헌주장
지지」 부분은 보도하지 말 것.

‘ 신문 제목에 야당이 주장하는 「개헌」 또는 「 1000만


명 서명운동」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도록 할 것.

필리핀 관련기사 1 면에 싣지 말라

2. 7. ‘ 필리핀 선거관련 기사는 1 변에 싣지 말고 외신변에


실을 것. 또 「필리핀, 운명걸린 민주주의 갈링길」
따위의 컷이나 제목은 피할 것.
‘ 검영삼 신민당 입당 환영식은 1 면에 1 단기사로
보도

2. 11 . ‘ 필리핀 관계기사는 외신면에 축소보도할 것.


‘ 민정당 정치연수원사건 공판보도에서 사진이나 스케
치기사는 쓰지 말 것.
49

‘ NCC(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의 KBS시청료 거부운


통은 보도하지 말 것.

‘ 김동완 목사, 개헌서명운동 움직임 관련해 자택보호


(연금), 금치 된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서명’이란 말 쓰지 말고 ‘학생 폭력화’라고 쓸 것

3. 3. ‘ 오늘 학생 시위중 외대 학생과장이 얻어맞아 중태인


데 주 제목을 「학생폭력화」 등으로 할 것. ‘서영’이
란 말을 뽑지 말 것. 또 업수한 사진을 사용할 것.
I ‘ 일본 산께이 신문이 3월 3 일자에 전 대통령 취임5돌
을 맞아 사설을 게재했는데 연합통신 보도로 싣기
바람.
3. 4. ‘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민
주화를 위한 시대적 요청」이란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 내용은 사회면 1 단드로 보도할 것.

‘ 전학련 주최 서울대 시위사건 수사 본격화, 적절히


보도할 것. ‘ 펼리핀 사태는 안밖의 모든 상황을
균형있게 보도할 것. 예를 들면 신인민군의 정부군
공격, 또는 흘부르크 차관보나 아마코스트 차관이
발언한 「한국은 필리핀과 다르다」 퉁.

‘노동자 석방’ 노동부장관이 건의할 것이 아니다.

3. 10. ‘ 검수환 추기경 강론 관계


@ 1 단으로 취급하기 바람.
@ 내용중에서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는 것은 삭
제하기 바람.

※ 헌법관계 신경 쓸 것.

‘ 노동부장관 회 견중에 밝힌 “구속노동자 사면 건의


검토하겠다”는 내용은 싣지 말 것.
※ 노동부장관이 건의할 성질의 것이 아님.

‘ 근로자의 날 기념식은 노신영 총리 치사중 「경제호


‘ ’ }"

50

기를 맞아」라는 대목을 제목으로 뽑을 것.

예비군 훈련장 사망사고 일체 보도하지 말 것

3. 20. ‘ 최근 서울 근교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망사고 발생.


보도하지 말 것.

3. 31. ‘ 신민, 광주 개헌집회 관계


@ 사진, 스케치 없이 기사 2단으로(길지 않게)
@ 치안본부장 발표, 눈에 띄게 보도할 것.
@ 시위군중들, 「축 직할시 승격」아치 불태우는 것
(사진), 사회변에 쓸 것.
‘ 해직교수들, 고대 교수들의 개헌지지 성명관계, 사
회면에 크지 않게 1 단기사로 할 것.

‘ 국회 관계
@ 야당의원 질문중, 「최근 예비군 훈련장서 대통
령 사진 훼손으로 조사받다 죽은 (장이기 씨)진
상」 쓰지 않도록
@ 정통성 의원(민정) 질문중 6. •. 광주사태(개헌 현
판식 관계), 신민당이 군중 선통. 6. 야당은 각
성하고 민주투쟁에 참여하라. 6. 검대중, 깅영
삼은 대통령칙 야욕 버려야. 이상의 내용은 눈
에 띄게 보도할 것.

‘ KBS시청료 거부’ 보도하지 말 것


4. l. ‘ 기독교교회협의회 (NCC)
KBS - TV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을 4 월 초부터 개

시하고 세미나 등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발표,


이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4. 8. ‘ KBS - TV 시청료거부 관계
CD 기사 를 사회연에서 가급적 척게 취급할 것.
@ 특 히 천주교의 캠페인 참가 사실은 사회연 1 단
기사로 취급할 것 .
51

‘ 성균관대 총장, 집체훈련 거부학생 연행에 대해 동


대문경찰서에 항의한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

‘ 검대중 관계
4월 7 일 미국 NBC TV 에서 12분간 방영한 정치

상황에 관한 검대중의 회견 사실은 보도하지 말



/、.

KBS 란 글자는 일체 쓰지 말 것
4. 28. ‘ 천주교에서 27 일(얼) 「신도 개헌서명자 4,000 여 명」
이란 발표내용은 사회면 1 단기사로 처리할 것.

‘ 분신자살한 박영진 장례식은 기사 짧게, 사회연 1


단으로 처리하기 바람.

4. 29. ‘ 야권지도자회의 관계
@ 1 면 톱기사로 처리하지 말 것.
@ 사진 싣지 말 것.
@ 제옥중 「전방업소 일단 중지 촉구」 등의 내용은
쓰지 말 것 •
... 금일부터 KBS - TV 시청료 관계 기사 빛 ‘KBS ’라
는 표현도 일체 쓰지 말 것.
5. 16. ‘ 검추기경, CBS 대당중 「KBS-TV 시청료 거부」
운운한 것은 제목으로 뽑지 말 것.
‘ 「KBS 시청료 특집기사」에 사진을 쓰지 말 것.
‘ 「민주교육실천협의회」창립 관계는 1 단기사 처리할

< .

교사들의 ‘교육민주화 선언’ 보도하지 말도록


6. 30. ‘ 김대중의 AP통신 회견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 「KBS-TV 시청료 징수원이 또 행패부렸다」는 내
용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도록

‘ 「해남 지역 YMCA 중동교사 50 명과 충남북 지역


64 명의 교육민주화선언」 사실은 보도하지 말도록.
52

‘부천경찰서 성폭행 사건’은 ‘부천사건’으로 쓰라


7. 9. ‘ 부천서 형사의 여피의자 폭행(추행)사건은 당국에서
조사중이고 곧 발표할 예정. 「성폭행사건」으로 표
현하면 마치 기정사실화한 인상을 주므로 「폭행주
장 관련」으로 표현 바꾸도록.
‘ 「판금조치 불온서적, 20종」이란 기사는 일부내용이
사실과 다르므로 정확하게 취재한 후 보도할 것.
또 「책 목록표」 (20 종)는 보도하지 않도록.

‘부천 성고문’ 관계기사는 일체 자제할 것

‘ 부천서 성폭행 사건, 컴찰 발표 때까지 관련된 모


든 기사를 일체 보도하지 말 것. 부천사건의 검찰
발표 시기에 관한 것이나 부천사건 항의시위, 검대
중의 부천사건 언급 등 이와 관련된 일체를 보도하

지 말 것.
7. 12. ‘ 「부천 성고문」 관계는 발표 때까지 일체 보도 자제
요망. 모든 보도를 자제할 것.

‘고문관계’는 오늘도 일체 쓰지 말것
7. 15. ‘ 14 일부터 시작되는 을지연습은 충실 보도 요망.
@ 등화관제, 차량 제한운행 등 세부적인 실시 요
령을 상세하게 보도할 것.
@ 이원홍 장관의 담화는 눈에 띄게 보도할 것.
@ 공무원들의 비상근무 관계는 보도하지 말 것.
‘ 성균관 대학생, 고|산서 농촌활동하러 가다가 경찰
과 투석전, 이 내용은 보도할 것.
‘ 「부천 성고문 사건」은 계속 보도를 자제할 것. 오
늘 기독교교회협의회 (NCC) 등 6개 단체에서 엄정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는데 이 사실은 보도
하지 말 것
53

7. 16. ‘ 부천 성폭행 사건, 계속 발표 때까지 보도를 자제할


성고문 고소장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7. 17. ‘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보도지침.


@ 오늘 오후 4시 검찰 이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
@ 사회면에서 취급할 것.(크기는 재량에 맡검)

@ 검찰발표 전문은 꼭 실어줄 것 .


@ 자료 중 「사건의 성격」에서 제목을 뽑아줄 것 .
@ 이 사건의 영칭을 「성추행」이라고 하지 말고

「성모욕행위」라고 할 것.
@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 보도 내용은 불가.
@ 시중에 나도는 「반체제측의 고소장 내용」이나

「 NCC, 여성단체 등의 사건관계 성명」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

성고문사건 폭로대회 보도하지 말 것

7. 19. ‘ 18 일 오전 8시부터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NCC 인


권위원회, 여성위, 구속자 가족 퉁이 공동으로 부

천사건 폭로 대회 를 가질 예정. 이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 부천사건 변호인단 회견은 회견했다는 사실만 보도

할 것.
‘ 신민당의 확대간부회의 결과(부천사건 규탄)와 의원
4명이 노총리 방문, 항의한 사실은 조그땅게 실어

줄 것.
7. 20. ‘ 범야권의 「부천 성폭행사건」 규탄대회 관계(영동성
당)
@ 경찰 저지로 무산된 사실은 2단 이하로 조그땅
,
‘· ‘

54

게 싣고 사진 쓰지 말 것 .

광부들 집단행 동 일 체 보도 말 것
7. 27. ‘ 상척의 「경동탄좌」에 서 광부 및 가족 이 휴가비와 δ
월봉급 지급올 요구하며 집단 행 동을 벌 이면 서 현 재
회사측과 절충중 임. 이 사실은 사회불 안 요인이 되
므로 일체 보도하지 말도록.
‘ 양 검 씨 와 재 야인 사들 , 부천사건으 로 단식 농성 중
인 권양 에게 위 로편지 , 묶어 서 사회변 에 간략히 보
도하되 김 대 중 이 제 목 에 안 나도록.
‘ 미 국무 성 , 「성고문사 건 에 개탄 표 명」
이 내용은 보도하지 말도록.

“ 총리실 전문위원 앙심선언 ” 일체 쓰지 말 것


7. 29. ‘ 이민우 기자회견, 「김형배 국무총리실 전문위원이
지난번 명동 성고문규탄대회 때 양심선언했다」고
밝힌 내용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 성공회 주최으| 「부천사건규탄」 모임은 사회면에 조
그및거| 1 단기사로 보도할 것.
8. 5. ‘ 이원홍 문공장관이 청소년대책회의에서 치사한 내
용은 순에 띄게 보도하기 바람.

‘ 4일 저녁, 서울 홍제동성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성고문규탄집회. 이 사실은 보도하지 않도
트료

8. 7. ‘ 이 문공장관이 「사퇴용의를 표명」했다고 일부 신문


이 보도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며 문공위원회

에서는 그같은 의사를 표명한 바 없었음.

‘ 「신민주전선 호외 압수」 관련기사에서 「전 국무


총리실 사무관 김형배의 양심선언이 게재되었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말 것.

8. 8. ‘ 독립기념관 원형극장의 시설이 모두 일제로 되었다


55

는 사실은 화재 전 담당기자들에게 사전 므리핑을


통해 앙해를 구했던 것이므로 쓰지 말도록.

(2)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제도언론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권력의 간섭 • 통제는 급


기야 일선기자들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여론형성의 매체로
서 기능하지 못하는 제도언론의 현실을 기자들 스스로가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4월 18 얼 한국기자협회 『 한국일보』분회 정기총회는 1 월
19 일 이후 안의섭 편집위원의 두꺼비만화 중단사태와 2 월
13 일 신민당사 민추협 사무실 수색시 발생한 경찰의 기자
집단구타 사건 등을 언론인에 대한 중대한 신분상의 위협
및 취재 • 보도활동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기관원
출입과 홍보지침 등 일체의 외부간섭 거부를 결의했다. 뒤
이어 4 월 23 일 『 대구매일신문』, 5 월 1 일에 『조선일보』 편
집국 기자들이, 5 월 8 일과 15 일에는 『동아일보』와 『중앙일
보』, 5월 16 일 『부산일보』 , 5 월 23 일 『광주일보』, 5 월 30
일 『경향신문』 , 6 월 5 일 『서울신문』, 6 월 14 일 『연합통신』
기자들이 각각 언론자유 수호를 결의하는 선언문을 채돼하
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언론의 자유는 출판 • 집회 • 결
사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와 함께 본질적으로 보장
되어야 하며 이를 침해하는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배격한
다”, “개헌문제를 비롯한 민주화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언론
의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가 필수적이다”, “언론기본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언론언에 대한 불법적인 연행, 구금,
강제해고 등을 배격한다”는 등의 결의를 채택했다.
이같은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은 어느 신문에서도
56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국민들 대다수는 그


선언이 있었던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

(3) KBS-TV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회 일각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시청


료 거부 운동은 86 년 1 월 20 일 KBS-TV 시청료 거부 기
독교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되면서 서서히 불붙기 시작했
다. 이 운동은 우연한 계기로 폭발적인 확산을 이루었다.
4 월 3 일자 『 동아일보』 사회면의 보도가 KBS 측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양 언론사간의 노골적이고 감정적인 대결로 번
지면서 전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날 이후 운동본부에는 시민의 격려와 성금이 답지하기
시작했고 한 달 사이에 전국 도시에 26 개 지역본부가 설치
되었다. 여기에 신민당, 민추협, 여성단체, 천주교, 각 대
학 총학생회까지 가세함으로써 시청료 거부운동은 범국민
적 저항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운동은 표면상으로는
KBS-TV 가 공영방송으로서 월 2,500 원의 시청료를 받는
동시에 81 년 3 월부터 상업광고방송을 시작함으로써 5 년간
무려 9,000 억 원의 수업을 올려 이것을 공익사업과는 관계

없는 부동산투기 • 자금유용 등 임의로 남용하고 있다는 데


에 대한 반발언 듯하다. 이 운동에 호응하고 있는 국민들
대다수의 보다 뿌리깊은 불만은 KBS-TV 가 정부의 선전
기관처럼 되어 일방적인 정치홍보나 편파보도 •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K B S-TV 시
청료 거부 기독교범국민운동본부」의 홍보전단 「이 래도 시
청료를 내야 합니까」는 이 운동이 국민의 권리회복운동임
을 명시하고 있다.
57

운동본부측의 집계에 의하면 86 년 한해 동안 최소한 200


만 매 이상의 시청료납부 거부 스티커와 수백만 장의 홍보
전단이 배포되었다. 정부는 광고량을 줄이는 등 약간의 개
선책을 내놓기는 했으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의
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서울의 몇 개 구에서 실시되던 각
종 조세공과금과 시청료 통합고지서 발부가 시민 편의 도
모라는 명분 아래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료거부운동은 언론자유회복 시민운동의 성격과 아울
러 점차 일종의 조세저항운동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으며
가두홍보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운동은 눈
에 보이는 성과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 국민의 성숙한 주인
의식과 민주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며, 언론자유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드높였다.
이 열망은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방송의 보도 • 광고 기능
정상화운동으로도 분출되고 있다.

다. 출판의 자유

(l) 85 년 5 월 이후 출판물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대폭


강화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법령 중 출판에
대한 사전허가나 검열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규정은 없다.
단지 「언론기본법」과 「출판사 빛 인쇄소 등록에 관한 법
률」의 일부 조향을 변칙운용함으로써 사전검열과 허가제도
를 실질적으로 시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서점에 대
한 수색 • 압수를 자주 실시하고 출판인과 서정주를 업건 •
구속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최
근 빈발하고 있다.
·,
l
t --’ .

58

(2) 지난해 후반기 계간문예지 『 실천문학』 과 ‘창작과 비


형사 ’, ‘ 이삭출판사’의 등록취소 조치가 내린 데 이어 금년
에도 ‘아 침 ’, ‘ 화다’, ‘여래 ’ 등 여러 출판사의 등 록이 취 소
되고 신규 출 판사 설 립과 기존 출 판사의 명의변경마저 전면
봉쇄됨으로써 출 판의 자유가 현저히 위축되었다. 뿐만 아
니라 출판언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는 일도 빈발
하여 도서출판 ‘ 백산서당’대표이범 씨와‘보엄기획’대표 고
경대 씨, 검상복 씨 등 14 명이 3 월 25 일에 치안본부에 연
행된 후 이적표현물 소지혐의로 구속기소되었고, 7월 3일
에는 ‘ 아침 ’ 출판사 사장 정동익 씨와 편집부장 위성부 씨
등 3 명이 같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거름’출판사 대표 박윤
배 씨 역시 마찬가지로 구속당하였다. 이범 씨나 정동익
씨의 경우 출판사가 보유하고 있던 책자들이 문제가 됐고
‘거름 ’ 출판사 박윤배 씨의 경우는 동 출판사가 펴낸 『볼셰
비키와 러시아혁명 』 이 용공서적이라는 판정을 받음으로서
그 뒤 그 책을 서점에서 구업하여 소지하고 있던 학생들까
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얼이 자주 얼어났다.

(3) 서점에 대한 압수수색은 수시로 이루어졌으나 가장


대규모의 것은 전국 40 여 개의 대학가 서점을 수색하여 수
천 권을 압수하고 23 명의 서점주를 연행, 그중 3 명을 국가
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한 사건이다. 8 월 8 일 문교부와 관
할경찰서 형사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이 국가보안법 위반혐
의로 서울시내 24개 대학가 서점들을 수색, 다량의 책을
압수하고 10 명의 서점주를 연행하였다. 가족들과 「언문사
회과학 서적상연합회」 회원 20 여 명이 나흘간 이에 항의하
여 농성을 벌이고 ‘대학서정’, ‘겨레터 서점’ 등 26개 서점
59

이 철시를 했으나 김태문(다락방), 검현(이어도) 이상호 씨(겨


레터) 등 3 명이 결국 구속당하였다. 이어 당국은 8 월 25 일

과 26 일, 부산 • 울산 • 마산 • 광주 • 전주 • 대구 • 제주 • 춘
천 등 전국 각지의 34 명의 서점주를 연행한 다음 조사 후
석방하거나 즉심에 회부하였다.

(4) 지난해 12 월 9 일 부정기간행물 『 창작과 비평 』 을 발


간했다가 이것이 1980 년 폐간된 계간지를 계숭하는 통일한
제호의 책이라 하여 출판사 등록을 취소당했던 ‘창작과 비
평’사는 각계 지식언의 참여와 출판인들의 단합으로 - 출판
업을 재개하게 되었다. 『 창비 』 폐간은 국내외의 비상한 관
심을 불러일으켜 「‘창비’ 등록취소 조치에 관한 범지식인
2,853 명의 건의문」이 문공부에 제출되었고 이것이 AFP,
AP통신에 의해 세계 언론계에 알려졌다. ‘창비’사는 1월 7
일 서울시에 「등록취소 처분 취소청구」에 대한 행정심판
청구서를 제출했고, 5 월 2 일에는 국제펜클럽 회장이 한국
펜 회장 앞으로 ‘창비’ 폐쇄조치에 항의하는 미국 펜의 「86
함부르크대회 결의문」 사본을 보내왔다. 이러한 국내외 노
력에 힘입어 ‘창작과 비펑’사는 7 월 25 일 ‘창작사’로 신규등
록, 출판활동을 재개했다. -

라. 현실비판과 표현의 자유

(1) 대학교수 시국선언

86 년 3 월 28 일 28 명의 고대 교수들이 민주화와 개헌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한 것을 펼두로 하여 6 월 초까지 모
60

두 29 개 대학의 783 명의 교수들이 이와 유사한 시국선언에


서명했다. 6 월 2 일에는 전국 23개 대학 265 명의 교수들이
서명한 「우리의 뜻을 다시 한번 밝힌다」라는 제목의 이 선
언들을 통해 대학교수들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대학의 제반 부조리와 문제를 지적하면서 조속한 사
회의 민주화와 헌법 개정, 빈부격차의 해소, 민중의 생존
권 보호 등을 역설하였고 학생들에게는 분신 등 과격행위
의 자제를 촉구하였으며, 문교부와 대학당국에게는 반성과

혁신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나라 최고 지식인들의 양성과


견해의 평화적인 표현활동인 이 시국선언에 대한 정부당국
의 대응은 실로 개탄스러운 것이었다. 서명한 보직교수들
에 대한 보직사퇴 강요(서울대 검광억, 이인영 교수 등), 해외

연수 • 출장 불허(서울대 정윤찬,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 경위


서 강요(울산대, 동아대 등), 연구비지급 제외(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승진누락(전남대 송기숙, 명노근, 부산대 김석준 교수

등) 등 갖가지 불이익처분이 음으로 양으로 몇개월간 계속


되었다. 대학당국과 문교부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
급했던 선언교수에 대한 보복조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라 하겠다.

(낀 교사들의 교육민주화운동

교사들의 교육민주화선언은 86 년 5월 10 일 「 한국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의 선언을 시작으로 교수시국선
언과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동 협의회 지역
지부와 「민주교육실천협의회」 등의 주도로 이루어진 교육
민주화운동은 업신출세를 위한 대학입시 준비기관, 점수따
기 경쟁장으로 전락해 버린 오늘날의 교육현실에 대한 교
61

사들의 뼈아픈 자기반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참담한 교


육현실 앞에, 이 교사들은 ‘교육의 중립성;‘교사의 중립성;
‘교사의 교육권과 제반 시민적 권리 보장; ‘교육자치제의
조속한 실현; ‘자주적인 교원단체 설립과 활통의 자유; ‘보
충수업 • 심야학습 폐지’등을 주장했다. 이 선언에 참가한
중등교사들이 받은 불이익은 대학교수 시국선언의 경우에
비해 가일층 심대한 것이였다. 교육민주화선언에 참가하였
다는 이유로 각종 정계가 내려진 것을 보면 윤종인 씨(온양
송남중)등 30 명이 ‘주의’, 이상석 씨(부산 성모여고) 등 22 명
이 ‘경고’, 이수호 씨(서울 신일고) 등 5 명이 ‘견책’, 윤영규
씨(전남 냐주중) 등 4 명이 ‘감봉 1 개월’,주진평 씨(해남 계콕
중) 등 4명이 ‘감봉 3개월’, 이병희 씨(대구 협성중)등 9명이
‘직위해제’, 조용진 씨(신원중)등 7 명이 ‘해임’, 표정축 씨(거
창고)가 ‘사직강요’, 이은희 씨 (부산서중) 등 2 명이 ‘정직’ 이
인호 씨 (당진 고대중) 등 2 명이 ‘징계계류중’ 등, 모두 82 명
이다.

(3) 그림 철거 및 영화인 구속

지난해 「20 대의힘」전 전시장 폐쇄로 물의를 빚었던 「민


중미술」에 대한 봉쇄조치는 86 년에도 계속되었다. 6명의
미술대학생이 신촌역사 옆 건물 외벽에 그린 대형벽화 「통
일의 기쁨」이 7 월 9 일과 12 일 두 차례에 걸쳐 서대문구청
직원과 경찰에 의해 철거되었고, 8 월 2 일에는 화가 유연
복, 검진하 씨 등 6명이 유씨의 집 담에 그런 17(m) × 3(m)
의 대형벽화 「상생도」가 역시 구청직원과 경찰에 의해 강
제철거되었으며, 경찰은 이들 중 4 명을 즉심에 회부하였
다. 뿐만 아니라 그럼전시회와 작품에 대한 문공부의 간섭
62

도 계속되어 7 월 5 일 「그럼마당 • 민」 개관기념전의 하나인


「젊은세대에 의한 신선한 발언」전에 전시된 5점의 작품에
대한 문공부의 철거 요청이 있었고, 7월 9 일에 「일본
JAALA 미술가회의」 기획으로 일본 동경도미술관에서 열
린 「제 3세계와 일본전-제 5회 . 민중의 아시아」전에 한국 작
가 23 명의 작품 66점이 출품되어 호평을 받으면서 국제적
시선을 꿀자 문공부는 국내언론의 보도통제를 요청하였으

며 이 행사에 초대받은 원동석, 손장섭, 검정헌 씨 등에


대한 출국이 지연되기도 했다 벽화 철거는 당국의 설명에
의하면 「광고물 관리법」 중의 ‘미풍양속 및 도시미관 저해’
혐의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예술품을 ‘ 광고물 ’ 로 취급하
고 또 구청장이나 경찰서창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예술
품의 ‘도시미관 저해 ’ 여부를 결정하여 일방적으로 철거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작품은 문공부가 자의

적으로 판단하여 철거를 요청할 것이 아니라 감상자들의


심미안과 건전한 상식에 따라 그 예술성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현대예술의 중요한 영역의 하나인 영화에 대한 「공
연윤리위원회」의 간섭과 통제는 영화의 소재, 내용, 제목
에 이르기까지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영화
「허튼소리」의 제작을 둘러싸고 중견감독이 위 공연윤리위
원회의 간섭을 비판하면서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영화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가톨릭농민
회」의 의뢰를 받아, 오늘날의 농민현실을 담은 35mm 소
형영화 「부활하는 산하」를 제작한 홍기선 씨 등 2 명의 영
화언이 11 월 18 일 「영화법」 위반으로 구속당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63

4. 집회 • 결사의 자유

현행헌법은 제 20조 제 1 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 • 출판


의 자유와 집회 •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회의 자유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다수인이 자발척으로
일시적인 모임을 가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시위의 자유를 포함한다. 집회의 자유는 타인과의 접촉을
통하여 개성을 신장시키고 의사를 형성하며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하고 집단적인 형태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언론 • 출판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정치의 실현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 중의 하나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사회
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언론매체들의 대다수가 정부
와 거대독점자본에 독점되어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
의 의사를 표출할 수단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집회의 자
유가 갖는 중요성은 더욱 크다 하겠다. 또한 결사의 자유
는 다수인이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지속적인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자유로서 집회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
다.
현재 집회의 자유는 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결사의 자유는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심대한 제
약을 받고 있다. 또한 집회 • 결사의 자유는 「경찰관 직무
수행법」 「경범죄 처벌법」 등을 변칙운용함에 의해서 침해
되기도 하며 심지어 아무 법률적 근거도 없이 집회 • 결사
의 자유가 침해되는 경우도 많다.
τ ----‘ ~._........,

64

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집회의 자유는 집단적 속성을 지녀 공공질서에 대한 영


향이 비교적 크기 때문에 헌법 제 35조 제 2 항의 규정에 의
해 필요한 경우에는 제한밭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언론 • 출판의 자유와 마찬가지의 원칙, 즉 허가제의 금지,
명확성의 이론,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이론, 이익의
비교형량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등에 따라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집시법은 5 . 16 후 군정기간이었던 1962 년에 처음 제정된
이래 73 년에 두 차례 개정되었고 80 년 12 월에 국가보위업
법회의에 의해서 집회 • 시위의 규제기준이 훨씬 더 확대되
고 추상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집시법은 제정 이래 주로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금압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
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비난받고 있다. 내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86 년 1 월∼ 10 월 사이 학생시위는 교 ­
내시위 1494 회, 가두시위 203 회로 하루 평균 5.6 회 꼴이

다. 노사분규 역시 같은 기간에 249 건이 발생했고 여기에


일반 민주단체나 종교단체, 농민, 철거민들의 시위까지 합
하면 거의 2 , 000 건에 달하는 시위가 얼어났다 이 시위 참
가자의 상당수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총 18 개 조항의 「집시법」은 제 1 조에서 ‘집회 및 시위를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 하여 헌법 제 20조 제 1 항에 규정된 집회의 자유를 구체
화한 것임을 밤히고 있다. 그러나 동법은 그 내용상 집회
자유의 보호법적 성격보다는 제한법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비판되고 있다.
65

( 1) 동법 제 1 조 저]2 항은 시위의 개념을 “다수언이 공동


목적을 가지고 도로, 기타 옥외의 장소에서 ---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
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한다.이는 1973 년 3 월 비
상국무회의가 개정한 법조항의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도로, 기타 옥외의 장소’로 확대 개정한
것으로서 계엄령이나 긴급조치 9호를 대체할 평상시법의
필요성을 총족시키려는 의도에서 국보위가 개정한 것이다.
이로써 구법과는 달리 대학구내나 종교시설 내의 집회 • 시
위도 규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의 사례로서 승려들의
불교자주화투쟁을 들 수 있다. 불교재산관리법, 자연공원
법 등 불교관계법 철폐와 민주화 등을 요구하고 나선 불교
계의 자주화투쟁은 9 월 7 일 「해인사 전국승려대회」와 동월
8 일과 9 일 승가대학생들의 집회 • 시위, 10 월 29 일 봉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의 「 10·27 법난규탄 및 불교자주쟁취대

회」 등으로 진전되었는데 이 집회들이 집시법 규제대상이


되어 구속자까지도 생겨났다.

(2J 현행 집시법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조항 중의


하나가 제 3조 집회 및 시위의 금지조항이다.
이 조항에 규정된 ‘공공의 안영질서’ ‘현저히’ ‘사회적 불
안’ ‘야기시킬 우려’ ‘민주적 기본질서’등의 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극히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들이어서 죄형법
정주의와 관련하여 그 위헌성이 논의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제 2 항 제 4호의 ‘---현저히 사회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 • 시위’라는 규정은 현재 거의 어
떤 비판적인 집회나 시위에도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방만
66
하게 해석 • 운용되고 있어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사실
상 형해화하고 있다 심지어는 몇몇 지인들끼리 옥내에서
가진 토론모임까지도 위 규정의 적용으로 단죄되는 예가
있다. 그런가 하면 신민당의 개헌추진집회처럼 대도시의
간선대로에서 수십만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된 집회
나 시위에 대해서는 위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도 한다. 이
것은 위 단속규정이 권력의 편의에 따라 그때그때 자의적
으로 집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l 제 4조는 옥외집회 및 시위를 개최하고자 하는 자는


48시간 전에 신고서를 관할경찰서에 제출하도록 규정하는
한편 관할경찰서장이나 경찰국장은 제 3조 1 항을 위반한다
고 판단할 때 금지를 통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리고 제 13조는 이 경우 경찰서장이나 국장에게 해산을 명

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실상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가 도입된 것이다. 명시적으로는 허가제가 아
니라고 하나 실제로 허가제와 다름없이 해석 • 적용되고 있
다. 더구나 경찰서장에게 ‘민주적 기본질서’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적 권능을 위임하고 이의신청이나 불복의 제
도적 장치조차도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동법의
위헌성을 더욱 농후하게 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행집시법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첫째, 그 제정과 개정
과정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고 둘째,
지나치게 애매하고 추상적인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실질
적인 사전허가제를 도입하는 등 위헌적인 것이며 세째, 경
찰에 사실상의 사법적 권능을 부여한 결과 본질적 기본권
을 제약하고 있고 네째, 법의 운용에 있어서는 권력의 자
의적 판단과 처리에 의거하는 과정이 많아 초실정법적, 법
67

질서 파괴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폐지되거나 크게 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나. 결사의 자유

( l) 국민들의 결사활동을 규제하는 법률로서는 사회단체


등록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안법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앞의 법률은 일찌기 대법원이 사회단체의 등록의무를 단순
한 행정관청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보고 등록의무 해태의

경우에 과태료 (5 만원 이하)를 물리는 외에는 다른 제재나 불


이익을 줄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어서, 결사
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제약할 만한 근거가 되지 않고 있
고, 이에 비하여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 등에 관한
단속규정들을 포함하는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결사의 자유
에 실질적인 한계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그 운용 여하에 따
라서 결사의 자유의 운명에 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
겠다.

(2) 제 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개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단체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사례가 빈번해졌으며 특히 급
진좌경 시비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85 년 이후 이것은 급증
하고 있다. 아람회 사건 (1981. 8.l, 전국민주학생연맹 사건
(세칭 학립사건, 81.8.),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 (81. 9.), 부산

양서조합사건(세청 부럼사건, 81 .9.), 충남 대 낚시회 사건 (81 ‘


l 0.), 공주사대 금강회 사건 (81 . l 0.), 미문화원을 정거한 삼
민투 사건 (85 . 5 . ) 깃발 사건을 중심으로 한 서울대 민주화추
68
진위원회 사건 (85 . 8 .),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검근태 씨 사건

(85. 9.)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러다가 86 년에 들어서


자 서울대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세청 자
민투)와 각 대학의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약칭
민민투), 건국대 시위농성 사건의 「전국반외세반독재 애국
학생투쟁연합」(애학투),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고려대
「애국청년학도회」 등의 학생조직을 비롯하여 「서울노동운
동연합」, 「전국노동자연맹 추진위원회」, 「ML 당 결성기도
사건」, 「반제동맹당」 등의 노동운동 조직들이 반국가단체
고무 • 찬양이나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관련자들이 국가보안
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었고,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거나 재
판이 진행중이다. 재야 • 노동 • 종교 • 여성 등 24개 가맹단
체로 구성된 공개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경우에도 정책실장 장기표 씨와 사무차장 이부영 씨 등이
이적단체 구성 예비죄로 구속기소되었다. 노동운동 • 학생
운동 • 사회운동 단체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사례가 이
같이 급증하고 각종 유인물이나 신문발행으로 인해 개별적
으로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는 경우가 늘어난 결과 12 월 현
재 전체 공안사범 2,643 명 중 496 명이 국가보안법 적용대
상자이다.
위 수많은 사례들에서 과연 국가보안법이 적정하게 적용
되고 있는 것인지 여부를 일일이 가려낸다는 것은 이 보고
서의 범위 밖의 일이다. 다만, 국가보안법위반사건의 피고
인들 중 대다수가 수사과정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았음을
호소하고 있는 점 및 사법권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되어 있
지 못한 오늘의 현실 아래서 “이척단체” 등 범죄구성요건
이 지나치게 방만하게 해석 • 운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유념할 때, 국가보안법의 빈번한 적용이 국민들의 결사의
69

자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


다.
국가보안법이 본래의 업법취지에서 벗어나 정치 • 경제 •
문화·언론·예술·학술 등 각 분야에서의 국민들의 결사
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단체활동을
박해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신중한 법운용이 요청된
다 하겠다.

(3) 11 월에 들어와 노통당국이 「서울노동운동연합」, 「인


천지역노동자연맹」, 「청계피복노동조합」, 「한국노동자복지
협의회」 등 14 개 노동운동단체에 대하여 불법단체로 규정
하고 ‘해산명령’을 내린 데 뒤이어 경찰당국이 민주통일민
중운동연합에 대해 해산명령을 내린 것은 법률상 근거가
전혀 없는 공권력의 자의적 행사로서 결사의 자유를 근본
적으로 부정하는 중대사태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우
기 검찰과 경찰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 대한 강제해산
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민통련 본부와 각 지부의 사무실들을 실력행사로
써 폐쇄한 것은 법절차의 변칙적 운용으로 국민의 헌법상
의 권리가 침해된 가장 현저한 사례라고 하겠다.
70

5. 근로자의 권리

경제개발이 시작된 60 년대 이래 한국경제는 저임금에 기


초한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왔다. 800
만 이상으로 엄청나게 증가한 근로자들은 그간 ‘선성장후
분배’의 약속을 믿고 땀흘려 일해 왔으나 계층간 소득격차
는 날로 심해져, 상위 소득계층 20%가 차지하는 소득점유
율은 65 년의 34.3% 에서 82 년에는 43%로 늘어난 반면, 하
위 소득계 충 40%의 소득점 유율은 19 . 3% 에 서 18.8%로 강소
함으로써, 양자간의 소득격차는 4 배에서 6 배로 벌어졌다.
( r 한국일보』 8. 21 .). 84 년말 현재 근로소득세 납세대상 인원
792 만 명 중 56 . 8% 인 450 만 명 이 비 과세근로자에 해 당한다
는 사실은 대다수의 근로자가 최저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그리고 10언 이상
제조업체에서도 근로자의 13 . 5% 인 30 만 명이 10 만 원 미만
의 봉급을 받고 있다. 임금인상율은 82 년 15.8%, 83 년 11 .
0%, 84 년 8.7%, 85 년 7 . 1% 에서 86 년에는 ‘3저’ 호기를 맞
아 340 억 불 이상의 수출과 14%가 념는 성장율을 기록하
면서도 6%로 더욱 하락했다. 주당 평균근로시간은 10 년
사이에 4 . 5시간이나 늘어나 전산업 53.4시간, 제조업 54.4
시간으로 세계에서 제일 길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은 매우
심각한 바,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형식
에 그쳐 재해는 감소되기는 커녕 날로 증가되고 있는 실정
이다. 정부통계에 의하더라도 80 년부터 86 년 9 월까지 9 천
71

8백 58 명 이 사망하고 92 만 3천 2백 32 명 이 부상을 업 은 것
으로 나타났다. 86년 한 해 동안의 사상자 수는 86 년 9 월
말 현재 이 미 10 만 6 천 명을 넙어섰다(국회에 제 출 한 노동부
자료). 이 러한 통계수치들은 오늘의 노동현실 이 행복추구권
을 명시한 헌법의 이념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단적
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한편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86 년 조직률은 80 년보다 훨씬
감소한 11%에 불과하고 100 대 대 기업 에 노조가 없는 곳이
45%나 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 역시 근로자들
에 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 는 정
표라 하겠다.

7 ~. ’86노동운동을 통해서 본 근로 자 의 권 리

(l) 단결권

전체 근로자의 9 할 정도가 미조직된 상태에 있다. 유신


체제에 치명타를 가한 YH 노조 등 70 년대의 이른바 ‘ 민주
노조운동’은 5.17 후의 노통계 정화조치로 많은 노조가 해
산되거나 노조간부가 해고당함으로써 잠시 주춤했으나, 84
∼ 85 년간에 수많은 신규노조가 탄생함으로써 다소 활기 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85 년 6 월 대우어패렬 노조간부 구속
을 계기로 한 연대 투 쟁 과정에서 40 여 명의 근로자 들 이 구
속되면서 그 때 생겨난 노조 들 도 파괴되거나 어용화되고 말
았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
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근로자 30 인 이상 또는 5분의
72

l 이상의 찬성이 있는 설립총회에서 의결하여 행정관청에


신고함으로써 자유로이 설련할 수 있고 셜럽신고서를 접수
한 행정관청은 신고펼충을 교부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
로는 행정관청이 신고서 작성상의 사소한 하자를 이유로
이를 교부하지 않거나 교부를 지연시킴으로써 기업주로 하
여금 노조 설립을 저지할 시간적 여유를 벌어주는 일이 자
주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85 년에 한국유니전, 협진양행,
한국음향기기, 경동산업 등 많은 사업장에서 이런 일을 경
험한 근로자들은 노조 설럽을 포기하고 소규모 학습써클이
나 비공개조직을 결성하여 이를 중심으로 임금인상투쟁을
전개하였다. 콘티빵, 대한광학, 협진양행, 삼경복장, 나우
정밀 등 상반기 임금인상투쟁이 치열했던 대부분의 사업장
이 그랬고, .박영진 씨 분신을 몰고 온 신흥정밀(주)의 경우

도 마찬가지였다. 행정관청뿐만 아니라 사용자측의 노조설


립 방해, 가업 빛 활동 방해,조직파괴, 부당해고, 부서이
동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도 단결권을 침해하는 중요한 요
소의 하나이다.
특히 삼경복장이나 나우정밀 등에서는 사용주측의 사주
를 받은 깡패들이나 반 노조 근로자 모임 등이 동원되어
노조간부들을 폭행, 경찰서로 끌고가거나 난지도 쓰레기매
립지에 융기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상황
하에서 근로자들이 단결권을 행사해 온 주요한 조직형태는
노동조합법의 테두리를 뛰어념어 자발적으로 임의 조직된
지역단위의 각종 노동자단체였다. 구로, 인천, 성남, 반
월, 안양 등지에 서노련, 인노련, 성남노동자생존권쟁취위

원회 등의 지역적 조직이 구성되어 나름대로 신문을 발행


하고 임금인상투쟁을 주도했으며, 3.19. 가리봉 오거리 시
위, 전태일 기념관 농성 등 노동운동탄압 저지투쟁을 벌이
73

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더이상 노조결성이 불가능한 상황 하에서
근로자들이 정치적 각성을 이루어나감에 따라 불가피하게
일어냐는 일인 듯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지역단위 노동
자단체를 불온시하여 탄압을 가중하였던 바, 국가보안법상
의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그 구성원들이 구속기소된 서울노
동연합도 위와 같은 상황 속에서 조직된 지역단위 노동자
단체였다. 정부의 이러한 노동단체에 대한 탄압은 최근 노
동부장관의 노동단체 해산명령에서 그 실상을 더욱 적나라
하게 보여주었다.

(2)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86 년 들어 10 월말까지 249 건의 노

사분규가 발생, 이에 참가한 근로자 수가 44,142 명으로 집


계되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0 건, 참가자 28,652
명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원인별로 보면 임금체불 41 건, 임금인상 60 건, 휴 • 폐업
조업단축 11 건, 해고 31 건,부당노동행위 14 건, 노동조건
개선 54 건, 사납금 13 건 등이다. 이처럼 노사분규가 증가
한 것은 근로자들의 생활조건의 악화 및 정상적인 노동조
합운동에 대한 제약 때문이겠지만, 근로자들의 전반적인
의식수준의 향상도 큰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1 월 17 일 새벽 체불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인천 한신여객 기사들을 필두로 성남공단의 콘티빵, 구로
공단의 대한광학, 협진양행, 삼경복장, 삼애설업, 주안공
단의 한양공영, 부천의 경원기계, 안양의 국제전기 등 경
인지방 각 지역에서 근로자들은 임금인상, 부당해고, 노조
74

탄압 중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이들 근로자들의


파업은 급기야 분신투쟁이라는 극단의 양상으로까지 치닫
게 되었다.
검태웅, 변영진 씨 등 운전기사들의 분신도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신흥정멀 근로자 박영진 씨의 분신은 그
발생 경위 때문에 더 큰 충격과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박
씨는 동 회사 도금반에서 일당 3,280 원의 저임금을 받으면

서 하루 평균 14시간 40분의 장시간노동을 했다. 3월 17 일


r박씨 등 9명의 근로자들이 회사 식당에서 농성을 시작했는
데 요구조건은 “일당 4,200 원” “부당해고 철회” 등 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박씨는 즉각 투업된 경찰과 회
사측 근로자들과의 몸싸움 끝에 회사건물 욱상으로 밀려올
라갔고, 경찰 철수를 요구하면서 몸에 석유를 부였으나 경
찰이 오히려 돌맹이를 던지고 “죽을테면 죽으라”고 말하자
이에 격분, 몽을 불사르고 말았다고 한다. 또한 그의 시신
은 경찰에 의해 가족의 동의도 없이 화장되었다고 한다.
근로자들의 임금투쟁은 경인지역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발생하였던 바,군산 세풍합판, 대구공단의 한국경전기(주),
강원 삼척군의 경동탄광 분규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면 근로자들은 단순히 기업 내에셔의 임금인상투쟁에
만족하지 않고, 지역별로 연대하여 가두투쟁의 방법으로
노동운동탄압 중지, 노동법 개정 등 정치투쟁을 벌였으니,
3.19 가리봉 5거리 시위, 4.2. 성남공단 시위, 4.12. 부형
로타리 시위 등이 그것이다.
더우기 주목되는 것은 근로자들이 최초로 반미문제를 들
고나와 영등포 한미은행을 점거한 사건이었다. 근로자들까
지 그들의 노동조건과 관련하여 반미운동을 벌였다는 것은
실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75

86 년 들어 9월말까지 접수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


건 288 건 중 254 건이 근로자가 노동조합과 관련된 행위를
했다고 해서 해고 내지 불이익을 받은 경우인 바(노동부 국
회제출 자료), 이것은 사용자언 기업의 노동조합 탄압이 얼

마나 극심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정표라 하겠다.


현행 노동쟁의조정법 하에서는 장기에 걸친 냉각기간,
직권중재제도 등 각종 제약 때문에 근로자들이 적법한 절
차를 밟아 단체행동권을 행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수년간 적법절차에 따라 얼어난 파업을 찾아볼 수 없
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노동쟁의조정법은 근로자들의
교섭력을 현저히 약화시킴으로써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을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대
부분의 쟁의가 자연발생적으로 격렬한 형태의 불법쟁의의
양상을 띠고 전개되는 역작용이 초래되며, 자주적이며 능
동척인 교섭자세를 갖추지 못한 사용자측은 사태를 수습할
의지나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공권력이 개입
하여 쟁의를 물리적으로 진압하고 주동자를 구속함으로써
노사분규는 막을 내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 노동운동 관련
구속자가 지난 85 년의 75 명에서 금년 들어 10 월말 현재
200 여 명으로 늘어난 것도 바로 이러한 쟁의 양상 때문인

것이다.
관계법규의 개정과 합리적인 운영, 단체교섭 및 단체행
동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통해 노사간의 분규를 자주적으로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전통을 수럽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 하겠다.
76

나. 노동법 개정운동

노사간의 분쟁은 노사가 자융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


직스러우며, 그 자융적인 해결올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
사가 대동성을 견지해야 한다. 그리고 노사간의 대등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노동관계법이다. 그
런데 우리 노동관계법은 노사간의 대등성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노동관계법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관
계당국의 정책적 편의나 필요에 의해 개정이 거듭되면서
노통기본권에 관한 많은 규제조항만 내포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1980년 국보위입법회의에서 개정된 현행 노동관계
법은 1971 년에 제정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폐지
됨에 따라 그 법에 규정되어 있었던 노동기본권 제한규정
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더 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동관계법상의 문제조항은 대부분 80
년 개정 당시 노동기본권 규제를 위해 신셜된 것이다. 노
동기본권에 관한 이러한 규제조치는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기능과 역할을 대폭 위축시킴으로써 노사관계의 불균형과
불안정성을 노정케 했을 뿐 아니라, 음성적인 노사대럽을
격화시켜 비정상적인 노사분규를 야기케 했다. 84 년 이래
근로자들에 의해 활발히 추진되어 온 노동법개정운동은 작
년에도 근로자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왔다. 85 년에는 한
국노동조합총연맹, 천주교정의형화위원회, 한국노동자복지
협의회 등 3개 단체가 각각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청원
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금년에는 신민당, 국민당뿐만 아니
라 여당인 민정당에서도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제출하기에
77
이르렀다. 그 결과 작년 정기국회에서 노동관계법의 일부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그 정도로는 근로자들의 기대를 만
족시키기에는 너무나 미홉한 것 같다.
종래 부당노동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었던 것이
신설된 점,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냉각기간이 다소 단축
되고 일반사업에 대한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된 점 등은 입
법적 성과라고 하겠으나, 제 3자 개업금지 조항의 제 3자 개
념에서 노총과 산별노조를 제외한 것은 이미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의해 시행되어 오던 것으로 제 3자 개업금지 조항
의 전면적 폐지가 없는 한 별 의미가 없다 하겠다. 노동조
합 설립요건의 강화 및 조직형태의 강제, 행정관청의 과도
한 개업, 각종 쟁의행위의 제한 등 노동3 권의 실질적 보장
과 노사간의 자율성, 대등성 확보를 위해 개정되거나 폐지
되어야 할 부분이 아칙도 노동관계법의 콧곳에 있는 바,
노동관계법의 개정운동은 87 년에도 그대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변호사회에서도 노동관계법 개정의 중요성을 인식하
여 노동관계법의 문제점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고, 그 결
과를 개정안으로 성안하여 국회에 청원키로 했다.
특히 금년 국회에서 제정된 최저임금법은 근로자들을 위
한 중요한 업법적 성과로 운위되고 있다. 아직 공포되지
않아 이 법의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자율적이고 민
주적인 노동운동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 하에서는, 최저임
금법의 시행과정에서 사실상 사용자에 의해 지불할 임금의
최고수준을 규정한 최고임금법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
된다.
78

다. 취업의 자유와 대학출신 근로자의 문제

85 년 4 월 대우자동차 파업농성시 파업을 주도한 근로자


들이 대학을 다닌 적이 있거나 대학졸업 경력을 가진 사실
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대학출신 근로자의
문제, 소위 l 위장취업’ 문제는 86 년 6 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 다시 한번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86 년 10 월말까지 당국에 의
해 적 발된 대 학출신 근로자는 373개 업체 699 명 으로 85 년
1 년간의 1557H 사업장 321 명보다 대폭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밝혀진 경우일 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대
학출신 근로자가 존재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다. 더욱 철저해지는 감시와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수
는 계속 늘어만가고 있는 듯하다. 대학출신 지식인들이 생
산직 근로자로 취업하는 것이 불순시되고 봉쇄당함으로써,

학력 • 신분을 위장하고 취업하는 이른바 위장취업 문제가


대두되었다. 당국은 이를 적발하는 경우 공 • 사문서 위조
등으로 구속시키며, 회사측은 이력서 허위기재 등을 들어
해고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방식이다. 따라서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태의 자유와 관련하여 그 대응책의 정당성
여부는 계속 시비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와 아울러 일반근로자들 중 한번이라도 노동운동
에 참여한 적이 있는 사람의 명단을 수사기관에서 작성,
각 사업체에 배포하여 취업을 봉쇄하는 이른바 ‘블랙리스
트’문제도 자주 근로자의 집회 • 시위에서 거론되고 있다.
예컨대 독산동의 대명산업 (5 월 31 일)에서 6 명, 영창산업 (6 월
79

20 일)에서 1 명, 부평의 신도전자 (7 월 3 일)에서 1 명의 근로자


가 전 근무처인 효성물산, 성도섬유, 고니정밀에서 노사분
규로 해고된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업사 수일만에 다시 해
고되는 일이 얼어났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계속 빈발하자
9월 7 일에는 영등포 산업선교회에 약 200 여 명의 해고근로
자들이 모여 ‘블랙리스트철폐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공동
대처키로 했다고 한다. 또 운전기사들에게는 특별히 취업
카드가 문제로 되고 있다. 취업카드는 운전기사들이 직장
을 옮길 때 함께 따라다니는 일종익 근무성적표로서 한번
사용자에게 잘못하여 ‘위험하다’고 기재되면 다른 지방에서
도 취업을 할 수 없어서 직종을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블랙리스트나 취업카드 등에 의한 취업제한이 사실이라
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관련하여 볼
때, 명백히 위법한 행위이므로 마땅히 규명되어 근절되어

야 할 것이다.
한편 금년 들어 대기업체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종업원들을 집단적으로 해고조치한 것도 주목되어야 할 큰
문제로 생각된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취해지는 해
고는 근로자의 귀책사유에 의한 해고가 아니라는 점,현실
적으로 동일조건의 재취업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 등과 관
련해서 볼 때 그 적법성의 보장이 특히 요구된다 하겠다.
이 문제는 한편으로 기업가의 도덕성, 윤리성의 재고를
촉구케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입법조치, 즉, 근로기준
법 제 27 조의 해고제한 규정 등의 탄력적 운용에 의한 사법
적 보장의 필요성을 요청케 했다.
80

6. 기타 경제적 • 사회적 제권리

가. 재개발과 도시서민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고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


며, 이웃과 사랑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
의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을 때 인간적 존엄성 역시 운위될 수 없다. 고도성장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우리사회에 절대적 빈곤이 존
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고도성장의 그늘에는 많
은 사람들이 절대빈곤의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심각한 경우가 대도시 지역 철거민들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85 년 목동 철거문제와 관련하여 중대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고, 헌법 제 32조에 규정된 바 국가의 사회보장 의
무에 비추어 보아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서울시는 88올럽픽에 대비하여 32개 지역을 재개발지역
으로 선정, 이중 15개 지역을 필수사업지구로 지정, 아시
안게임 전에 철거를 완료했고 나머지 지역의 철거를 추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의 도시빈민은 서울시 인구의 30%
정도로 추계되는데 이들은 주로 상계동, 중계동, 난곡동,
봉천 5 . 6동, 삼양동, 사당2 . 3동, 하월곡동, 정릉3 • 4동, 가
리봉동, 양동, 목동, 신정동 등 227개 지구에 분포되어 살
고 있다. 예컨대 봉천 6동 산 101 번지에는 한 번지에 2만
4천 명이 2,500 채의 집에 살고 있고, 상계 5동 173 번지의
81

경우 무려 1,520 여 세대가 살았다. 이들이 사는 집은 전


기 • 상하수도 • 교통 등 주거환경이 극히 열악하며 주로 일
용노동, 고물행상, 포장마차, 구두닦이, 신문팔이, 지갯
군, 암표상, 구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수단으
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KDI 의 빈민지역
조사에 의하면 빈민가구주들의 직업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는 막일, 건설노무자 등 단순노동이 35.5%, 실업자 31 .5%,
노점 • 행상 등 자영업 13%, 생산기능직 8%, 사무직 4.8%,
기타 7.2%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시빈민들에게는 노점단속과 강제철거가 생
존에 대한 무서운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조치가 야
기한 대표적인 사건을 몇가지 들면, 83 년 8 월 3 일 노정상
양복임 (37, 여) 씨가 종로 4가에서 단속반에 폭행당하여 업
원치료 받던 중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 85 년 10 월 28 일
간판제작공인 검진택 (26) 씨가 ‘생활이 어려운 이유가 경제
정책의 잘못엄’을 항의하는 뜻에서 세종로에서 분신을 기 ·
도한 사건 등이 있고, 아들의 중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비관자살한 청소원 。]병우 씨 (86 년 2월 5 일), 여섯 식
구를 부양하는 등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소녀가장
강성아 양(19 세, 86 년 2월 18 일), 중학생 딸의 등록금을 마련

하지 못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하진권 씨 (51, 86년 2월 20 일)

사건 등도 사회에 충격을 던진 경우이다.


빈민들의 철거반대운동은 지난해 목동사태 이후에 사당3
동, 상계 5동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상계동 173 번지
1 , 520 여 세대가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가옥주에게는 아파트
입주권을 제공했으나 세업자 520 여 세대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았다 상계동 인근에 일터를 가진
세입자들은 가까운 콧에 정착터전을 마련해 주거나 장기저
82
리로 입주할 수 있는 서울 인근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지급
한 후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왜냐하면 현재 보증금 50
∼ 100 만 원을 가지고 다른 콧에서는 세방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개발추진위원회측은 포천읍 동교리
에 3,116 평의 이주촌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교통 • 생계 •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업자들이 이를 거
부함으로서 사태는 표면화되었다. 일천여 명의 가옥주와
개발추진위원회, 구청 및 경찰이 한편이 되어 강제철거를
실시하자 세업자들이 이에 저항, 6 월 26 일과 7 월 5 일에 대
규모 충돌사태가 벚어져 이치오 씨, 정연심 씨, 세업자대
책위원회 황길구 회장 등 8 명이 전치 4주까지의 부상을 당
하였고 50 여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런 사태는 이후에
도 수차례 계속되어 11 월에 들면서 거의 강제철거가 완료

되었다.
상계 5동의 사태는 작금의 재개발 및 강제철거의 전형적
인 사례이며 다른 지역에서도 사태는 대동소이하다. 현재
의 재개발정책은 가옥주와 건축회사의 일방적인 이익창출

수단으로 기능할 뿐 서민의 생존권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존권보장이라는 헌법상의 이념에 비추어
서도 일체의 재개발정책은 재고하여야 할 것이다. 88 올럼
픽을 이유로 외형만을 꾸미는 재개발의 강행은 주민 상호
간의 갈등과 분열, 폭력을 유발하여 국민 사이의 위화감과
사회적 불안만을 조장할 우려를 낳고 있다.

나. 농민의 현실

1960 년대 초 경제개발이 시작될 당시 약 1 천 5 백만으로


83

전체 인구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던 우리나라 농촌인구


는 현재에 이르러 4분의 1인 1 천만 명에도 못미치는 정도
로 절대적 • 상대적으로 격감하였다. 수출을 위한 저임금을
지탱하기 위하여 장기간 지속되어 온 저곡가정책, 협상가
격차 등으로 인한 농업경제의 피폐상은 48% 에 불과한 식
량자급율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연간 600 만 톤이 넘는
외국농산물 수입은 식량의존도를 심화시키고 농가수업을
더욱 감소시키고 있다. 한편 농업노동력의 도시 이주로 인
한 농번기의 노동력 부족을 메꾸기 위한 농기계 사용의 증
가, 농약과 버료 사용 증가는 농업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킴
으로써 농가부채의 격증을 초래하였다. 40%가 넘는 농가
가 호당 평균 270 만 원 가량의 부채(카톨릭농민회 추계)를 지
고 있는 것이다. 소작농지도 늘어나 전체 농지의 23%나
되고 소작농이 전체 농가의 47% 나 되는 것도 농업생산력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같은 농업위기에 대해 정부는 나름대로 특별대책을
마련하는 등 부심하고 었으나 근본적인 문제인 농축산물
가격문제 등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전환을 할 기미는 보이
지 않고 있다. 특히 1961 년 5 . 16 직후 제정된 「농업협동조
합 임직원 임명에 관한 임시조치법」은 그 명칭에도 불구하
고 오늘날까지 폐지되지 않고 있는데 이 법에 의하면 농협
의 주요 임직원들은 조합원의 의사에 따라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의도에 따라 하향적으로 임명되게끔 되어
있어 농민 권익기구로서의 자율적 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
다. 단결권과 자율권을 획득하기 위한 농민들의 주체적인
노력은 1983 년 3 월 이후 가톨릭농민회가 주도하는 「조합장
직선제 실시를 위한 100 만 언 서명운동」으로 표출되었고
정부는 총대표가 조합장 후보의 복수추천권을 가지도록 조
84
합창 임명규칙의 일부를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적 미봉책만으로는 농협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의 자
율성이 현저히 향상되기 어려우므로 보다 획기적인 조치가
요구되어 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9 월 정기국회에서 위 임
시조치법을 폐지하여 농수축협의 단위조합장을 선출제로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개헌논쟁을 비롯한 여러 문제
들에 밀려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1985 년 소값 피해보상문제에 이어 금년에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외국농축산물수입 반대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주로 쌀, 밀, 곡류, 옥수수, 소, 양
고기, 참깨, 땅콩 등을 수입해 왔는데 최근에는 각종 과일
과 사료를 비롯 담배까지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우리
나라가 83 년의 경우 무려 18 억 4 천만 달러의 농산물을 수
업하여 미국농산물 수입액 5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외세배격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양담배 수업이 실시되
자, 국치일인 8월 29 일을 기해 가톨릭농민회 전국본부와
10개 연합회에서 마국농축산물 수입저지운동 전국본부 및

지부 결성과 현판식을 개최하는 한편 9월 1 일에는 미국농


수산물 수입저지 실천대회를 전국 30 개 시군에서 동시에
열어 농민 스스로 집단적인 자구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
다.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는 자살자가 속출하는 데서도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7 월 14 일, 자신이 하천부지에 심은 옥
수수가 결실 열홀을 앞두고 시청단속반에 의해 베어지는
것을 보고 격분, 음독자살한 전주시의 박대원 씨 (5 1 세 ) 사건
이나, 소값폭락으로 인한 420 만 원의 부채를 비관하여 86

년 3월 11 일 음독자살한 아산군의 「영농후계자」 오 한섭


씨 (29 세)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특히 오씨의 경우 모두가
85
떠나가는 농촌에 남아 「축산의 꿈」을 키워나가던 한 농촌
청년이 계속되는 소값폭락과 벚더미에 깔려 몸부렴치다 스
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서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
게 하였다.

다. 환경권 및 건강하게 살 권리

공해는 산업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


공해를 배출하는 기업이 스스로 부담해야 할 공해처리비용
을 부담하지 않음으로 해서 전사회에 그 피해를 강요한 데
서 빚어지는 문제이며, 또한 국가가 공해를 감시하고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난 문
제라고도 볼 수 있다. 고도성장만을 지고의 가치로 추구해
온 우리 경제는 산업공해와 환경오염의 피해라는 값비싼
뱃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니 되는 상황에 직변하였다. 고도
성장이라는 신화의 뒤안길에서 공해문제의 심각성은 인위
적으로 은폐되어 온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80 년대에
이르러 공해문제는 더이상 은폐되거나 방치될 수 없을 정
도로 악화되었다. 그 결과 공해에 대한 국민적 경각성이
높아가는 가운데 정부당국 역시 진일보한 문제의식을 가지
고 이에 대처하는 것으로 보였다. 제 5공화국 헌법에 환경
권 조항이 신설되었으며 환경청, 국립환경연구소의 체제개
편, 환경보전법 제정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공해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직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환경오염의 실태에 대한 종합적인 파
악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부분적인 조사결과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6월 25 일 서울시가
i ‘ ..
•“

86
123개소의 시내 공해배출 업체에 대한 시설개선명령을 내
린 것을 보면 「서울미원」, 「동국무역」, 「대한전선」, 「롯데
제과」 등 유수한 재벌업체와 종합병원, 제약회사, 운수업
체, 호텔 등이 거의 대부분이다. 공해가 국민생활에 미치
는 엄청난 피해를 생각하면 이러한 시정명령 정도로는 미
흉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또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실시한 서울시 대기오염도 조사결과의 일부가 신문에 흘러
나간 일을 두고 환경청이 ‘자료 보안’에 급급하는 현실을
볼 때 공해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정책당국의 인식마저 의
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가운데 수많은 공해문제들이 발생했는데 4만 명의

농어민의 이주문제가 걸려 있는 울산 • 온산 공단 오염문


제, 광양만 제 2제철 공사,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논란을
야기한 낙동강 하구언 공사,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국내
원자력 발전소 문제, 서울시 대기 속의 발암성 오염 물질
검출, 학생시위와 관련된 최루탄의 유독성 시비, 화학조미
료 및 PVC 랩 문제, 농민들의 농약중독 문제, 어련이에
대한 아스피린 유해성 문제, 현대건셜의 간척사업으로 인
한 천수만 검 양식 피해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l) 85 년 들어 허리 • 팔다리에 통충이 오는 전신신경통


과 마비, 반점이 생기는 괴질인 ‘ 온산병 ’ 이 사회에 알려짐
으로써 주목을 끈 울산 • 온산지역의 공해문제는 결국 4만
여 농어민의 집단이주문제로까지 번져나갔다. 이 괴질로
이해 85 년 한햇동안 사망 3 명을 포함하여 1 천여 명의 환자
가 발생했다. 그리고 울산지역 섬산형야 85 만 평과 온산
일대의 5개 부락 28 만여 병의 밭이 공해의 피해로 황폐화
했으며, 온산 앞바다의 수산물이 전멸하는 등 극심한 피해
87

를 초래하였다. 환경청은 지난해 3 월, 1 주일 간의 형식적

인 조사로 공해병 발생사실을 부인하고 10 월에 울산·온산


지역 8 천여 가구에 대한 피해보상과 이주대책을 발표하였
다. 주민들은 ‘온산면 이주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피해보
상, 꽁해배출 감시, 이주비 지급 등을 요구하며 자구책을
강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국의 물리적인 탄압이 가해지
자 86 년 7 월 18 일부터 열흘간 연언원 5 천여 명의 주민들이
당국의 미온적인 보상에 항의하는 집회와 가두시위를 벌인
사실이 있다.

(2) 낙동강 하구 둑공사는 낙동강 생태계에 큰 타격을


가함으로써 김 양식장을 황폐화시켰다. 84 년부터 10 ∼ 20%
씩 격감되어온 김 수확량은 86 년의 보기 드문 전국적인 대
풍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하구, 하동 광량만, 천수만 세곳
에서는 전멸하다시피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공
사 시행자인 산업기지개발공사는 거꾸로 지난해 피해액 15
억 8 천만 원 보상이 과다했다는 이유를 들어 10 억여 원의
환불소송을 제기중에 있다. 그간 피해보상운동을 벌여온
주민들은 6 월 10 일 공사현장에서 농성을 별여 공사를 중단
시키는 한편 90 여 척의 고깃배를 동원 강상시위를 벌인 뒤
무려 나흘간의 철야농성을 벌이는 등 절박한 사정을 호소
하고 있다. 이들은 첫째, 산업개발공사 측의 소송취하 , 둘
째, 금년도 피해보상, 세째 무면허 어장 보상, 네째, 신매
럽지의 매립원가 불하,다섯째, 전업대책 수럽 등을 요구하

고 있다.

(3)최루탄 피해에 대한 논쟁은 6 월 국회에서 본격화되었


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5년 간 최루탄 사용에 든
88

비용이 무려 100 억 원이나 된다. 사과탄, 직격탄, 다발성


최루탄, 페퍼포그 등의 남용으로 인해 각종 피부병, 물집,
무력감 등이 초래되고 파편으로 인한 실명 등 사고도 빈발
해 왔다. 대학 구내에 서식하던 조류, 곤충 등이 자취를
감추었고 진달래, 개나리 등 꽃마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최루탄은
시위진압용이 아닌 폭동진압용으로 유독한 화학물질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cs 가스는 눈의 통증,
눈물, 눈꺼 풀 의 경련을 일으키는 외에도 코, 목, 가슴을

찌르는 듯 한 통증을 일으키며, 노출시간이 길수록 통증이


심해 질식감을 느낀다고 한다. cs 의 농도가 높으면 격렬
한 기침이 나오고 구토가 나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하
루 종 일 최루탄 가스 속에서 사는 전투경찰의 경우 l / 3 이
상이 피부물집이나 호홉기 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다고 한
다. 일본의 어떤 특파원은 최근 70 년 초 일본의 격렬한 학
생시위 때 쓴 최루탄보다 한국의 것이 10 배 이상 독하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최루탄 공해는 산업이나 건설활동의 결
과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서 파생한 공해문제이나 시민
의 생활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

(4) 농민들의 농약중독피해 역시 심각한 문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정문식 교수 등이 83 년부터 85 년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농약을 뿌려본 농민의 57% 가 매년 농약중독
증상을 경험했으며, 경험자의 70% 이상이 현기증과 두통
등 신경계통 장애를 느꼈다고 한다.농약중독 경험자의
80%가 평균 3시간 이상 계속해서 농약살포를 했으며 85%
이상이 살충제 살포 때에 이것을 경험했다. 이들 중 70%
89

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였으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경우는 3.5% 에 불과하다. 또 빈 농약병은 농협에서 무료수
거토록 되어 있으나 수거율은 6% 에 지나지 않아 잔류농약
과 깨진 병으로 인한 토양오염과 수중 생태계 파괴의 위험
역시 매우 높은 실정이다 . ( r동아일보』 , 1 월 2 일) 농약사용의

증가는 농민 자신의 건강상의 피해와 아울러 경제적인 부


담의 가중을 수반한다. 농민들이 이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안전기구와 피해를 피하는 방법의 결여, 농약사용을 불가
피하게 하는 농법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에 대한 대

책은 정부당국에서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5l 공해로 인한 피해는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해줄 제도적 장치가 미홉하다는 사실도 지적되
어야 한다. 특히 공해배출업체의 무책임한 행위에 의한 농
어민의 피해는 사후의 피해보상청구 소송이 지연되는 탓으
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14 년의 소송 끝에 승소판결을 받은 진해만 공해사건 피해
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박향규 씨 등 175 세대가 1972
년 ‘진해화학’을 상대로 낸 김 양식장 피해에 대한 손해배
상청구소송은 2섬에서 패소한 후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이
내렸으나 서울고법이 7 년이나 사건을 묵혀둠으로써 14 년
만에 가까스로 승소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두 사람이 비관자살했고 대부분의 영세어민들이 인지대가
없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포항제철과 어업권 저해 보상 소송을 벌이고 있는 광양
군 태금면 태인도 주민 254 명도 2년 만에 1 심 승소판결을
거두었으나 2심은 언제 어떻게 될지 막연한 실정이다. 또
전남 여천군의 피조개 양식업자 2 명이 원유수송업체인 호
90
남 탱크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속 역시 2
년 만에 3 억 8백 50 만 원 배상판결이 10 월 21 일 서울고법
에서 내려졌으나 아직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이
경우 “유조선 회사가 원유유출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는 반
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공해피해라는 개연성이 언정된
다”는 판결이 난 것은 공해피해자의 권익을 우선척을 보호
하는 판결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통한 사후적 구제는 입증의 곤란성, 소송의 장기
화, 단체소송 또는 대표소송제도의 미비, 소송 구조의 미
흡 등 제반 장해요인 때문에 충분히 활용되고 있지 못하
다. 따라서 이를 제거하기 위한 입법적 • 사법적 조치가 요
망되며 아울러 유지(留止)청구소송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공해피해의 사전예방을 위한 사법적 구제의 길을 여는 문
제가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건강하게 살 권리와
관련하여 또 한가지 유의할 점은 인콩식품을 위시한 각종
유해 • 위험 제조물에 대한 안전기준의 문제이다. 일반적으
로 이같은 제조물에 대한 안전기준은 아직도 지극히 낮은
상태에 있으며 충분한 사전검사 • 판정이 전문기관에 의해
실시되지도 않고 있다 따라서 피해에 대한 사법적 구제
역시 아직 매우 미홉한 편인데, 구조의 실효를 기하기 위
해서 단체소송제도의 도입, 위험책임의 법제화 등 제반 노
력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라 . 여성의 권 리

인간 역사는 만언의 권리와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는 과


정이다. 그에 따라 여성들의 권리 역시 부단히 확대되어
91

왔으며 완전한 남녀형등을 지향하는 여성운동은 봉건적 전


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사회에서도 끊임없는 질적 • 양
적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 사
회적, 문화척, 정치적 차별은 뿌리깊게 존재하고 있다.
우선 가장 심각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 여성근로자
들이다. 현재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40% 이상이 여성이
다. 여성근로자들은 .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저엄금구조 속에
서도 더욱 흑심한 저임금에 고통받고 있는데 전직종 여성
큰로자의 평균임금은 1985 년 현재 남성근로자의 48% 에 불
과하다. 특히 생산직 여성근로자들은 저임금 외에도 생리
휴가 • 출산휴가 등 근로기준법 상 보장된 제반 권리를 누
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남성관리직, 감독직 직
원들의 반말, 욕설, 구타와 심지어는 성적 희롱에까지 시
달리는 경우도 척지 않다. 뿐만 아니라 남성들과는 달리
가사노동까지 전담하여야 하는데, 이런 현상은 남성노동력
야 도시로 유출된 농촌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근로여성들
은 생산, 출산, 가사노동, 육아 등의 부담에 아울러 여성
일반에 대한 사회척 차별까지도 함께 당하고‘ 있는 것이다.
동일노통 • 통일임금의 이념이 준수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
고 고급 여성인력의 전문직 • 행정직 진출의 기회 역시 극
히 협소하여 취업기회의 차별과 함께 결혼퇴직제, 임신퇴
직제 등의 관행이 사규에 의해 공식화되어 있건 비공식적
이건 간에 일반적으로 강요되고 있다.
여성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온 가족법 개정운동은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런 가운데 금년 정
기국회에 상정된 가족법 개정안이 유럼단체와 여성단체 사
이의 격렬한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단체들이 주장하는
호주제도의 폐지, 동성동본 금혼 폐지 등의 내용까지를 포
• !

92

함한 이번 가족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성단체들은


활발한 홍보작업과 로비활동을 전개해왔고 12 월 2 일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2,500 여 명의 유생들이 이에 반대하는 대
규모 시위를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였다. 이에 여야는 공히
이 법안에 대한 당론을 결정하지 않고 의원 개인의 자유로
운 판단에 맡겨 소위 크로스 보우팅을 실시할 예정이었으
나 정기국회의 파란으로 실시되지 못하였다.

또한 교통사고 피해를 당한 미혼 여성회사원 이경숙 씨


가 가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관하여
1985 년 서울민사지법의 판결은 @ 미혼 여성회사원의 25 세
결혼퇴직을 전제로 일일 설수익을 산정하였고 @ 가사노동
의 경제적 가치를 도시여성 일용임금 얼당 4 천 원으로 산
정한 점에서 여성단체들의 심각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단체들이 항소심을 통한 시정을 목표로 「여성 25 세 조
기청년제 철폐를 위한 여성단체연합회」를 결성하여 소송
지원에 엄한 결과 「여사원의 정년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55
세」라는 판례를 남기게 되었다.
오늘날 남녀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여성들의 활동은 단순
히 남성과의 평등뿐만이 아니라 정치 • 사회의 제반 문제해
결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노동운동은
젊은 여성근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은 바 크다. 주
지하는 바와 같이 유신 치하의 동일방직, 원풍모방, 청계
피복노조, YH 노조 등 유수한 노조들이 거의 여성근로자
들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지난해 6 월 7,000 여 명이 참여
한 구로지역 연대파업농성도 여성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진
행된 바 있다. 중산층 여성운동도 활성화 • 조직화되어
KBS-TV 시청료 거부 운동, 시국선언과 개헌서명운동,
각종 소비자운동, 반(反)공해운동 등에 앞창서고 있다.
저| 2 부 대한변협의 인권관계활동자료
“‘???熱펀‘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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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 헌법개정안

1- 가. 헌법개정연구위원회 설치 성명서

성 口j
C그 서

대한변호사협회는 86 년도 제 1 차 이사회에서 민주화를 위한 시대


적 요청에 따라 우리 국민이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현행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현행 헌법이 제정될 무렵 본협회도 헌법안을 마련하여 관계요로
에 건의한 바 있었으나, 현행 헌법은 그 내용에 있어서 그 주권자

인 국민의 정부선택권 행사에 제약을 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


론·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 행사 역시 어렵게
하고 있어서 참정권을 비롯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유린할 위험성
을 안고 있다.
이에 본협회는 변호사법 제 1 조에 정하는 바 기본적 인권의 옹호
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렵을 사명으로 하는 법률가단체로서 현행
헌법개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파당적 관계를 초과, 국민의 입장에
서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하고자 다음의 회원으로 헌법개정연구위원
회를 설치하는 것이다.

1986. 4. 7.

대 한 변 호 사 협 회 장 ?|
C그

L-

~
. ‘

96

口 헌법개정 연구위원회 위원
고영구, 앙병호, 임항준, 강철선, 김준수, 김 준, 김교창, 유현
석, 번정수, 이세중, 윤희경, 조준회, 이해진, 황인철, 황해진

1- 나. 대한변협 헌법개정안

헌법개정 제안이유
l 우리 대한변호잔협회는 변호사의 사명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을 이념으로 하여 설립된 단체이

다.
2. 우리 협회는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민주적으로 제정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권력구

조의 형태가 결정되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헌법의 정신에 따


라 보호되고 국정의 운영이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서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가 이땅에 영원히


존속하고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갚은 신념 을 가지고 있다.
3, 우리 협회 는 우리의 현행헌법이 위와같은 이념에 맞도록 개정되
어야 할 시대적 요청과 국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이 헌법개
정안을 제안하는 바이다.

전 -,-
C그
"-

l . 3. 1 운동의 위대한 독립정신 을 계승하고 4. 19 의거의 숭고한 이


념에 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재건하려는 국민의 결의를
선언하고
2. 주권재민의 기본원리를 재인식하고 자유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이 세계형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민족의 염

원인 국가의 평화적 통일을 성취할 결의를 천명하며


97 I

3.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의하여 헌법이 파괴되거나 기본적 인권이


침해당하여 온 역사를 반성하면서 헌법수호에 관한 국민의 저항
권을 신설하였다.

제 1 장 총 :>:I
-「

l . 모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견지를 헌법적 의무로 지양하고


2. 국군의 사명을 국토방위 의 사명 에 국한시 키며 국가의 안전보장
사명올 삭제하여 국가안보의 미영 아래 행하여진 군의 정치개업
을 봉쇄하였다.

저| 2 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기본적 인권)

l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기본이 되는 신체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

장하기 위하여
(l) 보안처분제도 자체 를 폐지하고
(2) 고문은 물론 공무원에 의한 어떠한 형태의 정신적 • 신체척
침해행위도 절대로 금지하고 이에 위반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

(3) 영장제도를 강화하여 긴급구속은 현행병인에 한하여 24시간
이내에만 가능하고
(4) 영장의 사전심사제도를 도업하고 영장발부요건올 엄격히 하
여 법관의 영장에는믿을만한 중거에 의하여 범죄가 되는 이유
를 명시하여야 하며 요구가 있을 때에는 방어의 기회를 주는
섬문을· 거치지 아니하고는 발부할 수 없게 하고
(5) 영장의 집행요건도 신셜하여 이유의 고지와 변호인의 조력올
받을 권리를 미리 보장받지 아니하고는 영장의 집행올 당하지

않게 하며
(6) 법관의 영장에 의하여 척법한 절차를 거쳐 구속된 경우 법원
에 대한 척부성사청구권을 보장함은 물론
(기 구제명령청구제도를 신설하여 법관의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
고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나 침해를 받은 경우에는 그것이
98

연행 • 연금 • 체포 • 구금 등 어떤 형태이건 법관에게 구 제명령


을 청구하여 48시간 이 내에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기본
권으로 보장하며
(8) ‘ 보석권도 명문화하였다.
2. 형사피고인의 권리 역시 신체의 자유 못지않게 보장하여야 하기
때문에
(l)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를 강화하고 법정에서 직접 진솔하
거나 조사된 증거 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아 니 하게
하여 전문 (jl!{ J떠)중거나 서연(얀面)증거의 증거능력을 제한하고
(2) 국가의 비용으로 강제력을 행사하여 자기방어에 필요한 모든
증언을 소환하여 충분하게 심문할 권리를 인정하며
(3) 변호인 선임권을 보장하여 형사피고인에 대한 변호사강제주

의를 채돼하고 변호인과의 제한없는 비밀접견 • 교통권을 보


장하고
(4) 자백의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고문이나 폭행 • 협,..,
등의 방법에 의하여 진술된 자백이라고 의성되기만 하는 때

에도 증거능력을 배 제함으로써 자백만능의 시 대 착오적인 범


죄수사나 재판을 근원적£로 봉쇄하며
(5) 위법수집 • 작성된 증거의 중거능력도 배제하였다.
3. 민간인이 군사재판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비상
계염 이 선포된 기간중에만 군사재판을 받도록 한정하였 다.
4. 민주제도의 기본이 되고 있는 언론 • 출판 • 방송 • 방영 • 집회 •
결사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기 위하여 언론 • 출판 • 방송 • 방
영에 대한 허가나 검열(사전이건 사후이건)은 물론 집회 • 결사
에 대한 허가제도 자체를 금지시켰다.

5. 국민의 재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공용수용 • 사용


또는 제한할 때에 완전한 사전보상을 하는 제도를 신설하였다.
6. 형사보상제도도 확대하여 재판에 서 무죄로 확정된 경우뿐 아니
라 검찰에서 무혐의로 확정된 때 에도 정당한 형사보상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였다.
7. 근로자의 생존권 보장을 보다 철저히 그리고 보다 실효성있게
하기 위하여 종래 인정되고 있던 단결권 • 단체교섭권 • 단체행동
99

권 이외에 근로자의 경영참여권제도를 도입하여 근로자의 경제


적 •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생산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법
률이 정하는 방법과 범위 내에서 근로자에게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였다 이 제도야말로 근로자의 권
익향상을 위하여서는 종래 제헌헌법의 이익분배균점권 같은 이
윤참가제도나 자본참가제도에 비하여 실효성이 큰 것엄이 선진

제국의 경험을 통하여 밝혀졌으므로 산업사회화과정에서 필연적

으로 발생하는 노사분쟁문제에 효융적으로 대처한다는 차원을


넘어 근로자의 인간존엄성과 인칸다운 삶의 보장을 위하여는 필

수불가결의 제도로 본 것이다.


8. 그밖에 공무원선거권을 갖는 연령을 시대적 추세에 비추어 18셰
로 인하하였다.
9. 기본권에 대한 법률유보조항을 꼭 필요한 경우로 엄격하게 한정
하고 법률유보조항이 있어서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 경우에도
기본적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명확하게 하여
그 제한의 한계에 관한 종래의 확대해석가능성을 배제하였다.

제 3장 국 회

l. 국회의 구성과 국회의원 선거방법


2. 법률안 거부권의 제한
3. 국정감사권의 부활
4. 발의정족수의 완화

제 4장 정
t:I
-「

l. 대통령중섬제의 채돼
(1) 대통령의 선출방법
(2) 대통령의 피선거권 제한
(3) 대통령의 엄기
2. 국무회의의 권한확대
3. 국민투표제의 폐지
. '(

100

4. 긴급조치권 등의 제한
5. 국회해산권의 폐지
6. 자문기구의 폐지

저15장 법 원

1. 대법원의 구성
(1) 대법 원 구성의 일원화
(2) 대법원 판사수의 법률위임
2.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의 임명절차
(1)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의 임명절차
(2) 법관추천회의제도의 신설
(3) 대법원판사회의제도의 신셜
3. 법관의 임기와 정년
4. 위헌심사권과 헌법소청 및 행정심판제도
5. 대법원의 법률안 제출권과 예산 편성권
(1) 법률안 제출권
(2) 예산안 편성권
6. 재판의 이유셜시(設示)와 상고이유제한 금지
(1) 재판의 이유셜시
(2) 판결의 상고이유제한 금지
7. 특별법 원의 셜치 금지
8. 재판공개의 철저
9. 헌법위원회제도의 폐지

저1 6장 선거관리

제 7장 지방자치

저18장 경 제

저19장 헌법개정
101

대한민국헌법


C그
τr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벚나는 우리 국민은 3. 1 운동의


위대한 독렵정신과 4 . 19의거의 숭고한 민주이념을 계숭하
고 조국의 평화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민주공화국을 새로이 건설함
에 있어서 특정집단이나 개언의 행위로 인하여 또다시 헌
정중단의 비극이 얼어나지 아니하도록 할 것올 결의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엄축하게 선언한다.
우리 국민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정치 • 경제 • 사
회 •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국민 개개인의 침해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인간 생래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각인의 창의와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

록 기회의 균동을 실현하며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더


욱 굳건하게 지격 나갈 것올 다짐한다.
우리 국민은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퉁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형화에 이바지함£로써 우리들과
우리 후손들의 생존과 존엄, 자유와 명동, 그리고 행복올
길이 확보하며 나라의 명화적 통일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 국민은 이 헌법이 파괴되고 헌법에 확렵된 국
민의 기본적 인권이 명백하게 침해될 경우에 달리 구제수
단 이 없을 때에는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저항할 권리가 있
음을 확인하면서 이에 헌법올 개정한다.

저I l 장 총 칙

제 l 조(국호, 국체와 정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이 다.


102

제 2 조(주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


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 3 조(국민의 요건) 대한민국의 국민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제 4 조(국제평화의 유지와 국군의 사명) @ 대한민국은 국
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 국군은 국토방위의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
제 5 조(조약과 국제법규의 효력, 외국인의 법적 지위) @
비준 공포된 국제조약과 일반적으로 숭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 외국인에 대하여는 국제법과 조약에 정한 바에 의하
여 그 지위를 보장한다.
제 6 조(공무원의 책임과 정치적 중렵성) @ 모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
다.
@ 모든 공무원은 정치적 중렵을 견지하여야 하며 그 신
분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제 7 조(정당) @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
장된다.
@ 정당은 그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
다.
@ 정 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저| 2 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 8 조(기본적 인권의 보장)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


염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국민에게 부여된 불가침의
인권올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 9 조(국민의 형등, 특수 계급제도의 부언) CD 모든 국민
은 법 앞에 평등하다.
@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
103

치적 •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척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아니한다.
@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제 10 조(신체의 자유) CD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

다.
@ 누구든지 법관에 의한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
는 어떠한 형태로도 처벌을 받거나 강제노역올 당하지
아니한다.
@ 공무원에 의한 정신적 • 육체적 침해행위는 금지되며
처벌된다.
제 11 조(자유박탈에 대한 보호) @ 모든 국민은 검사의 신
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 구금 • 수색 • 압수를 당하지 아니한다. 다만 현행
범인인 경우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24시간 이
내에 사후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 법관의 영장에는 믿을 만한 중거에 의하여 범죄가 되
는 이유를 명시하여야 하며 영장의 집행올 받을 자의 요
구가 있을 때에는 방어의 기회를 주는 성문을 거치지 아
니하고는 이를 발부할 수 없다.
@ 누구든지 그 이유의 고지를 받고 즉시 접견 · 교통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아니하고는 체

포 • 구금을 당하지 아니 한다.


@ 누구든지 체포 • 구금을 당한 때에는 법원에 대하여
즉시 공개된 법정에서 척부의 심사를 청구할 권리를 가
진다.
@ 누구든지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연행, 연금 기타 신
체의 자유의 침해를 당할 때에는 즉시 법관에게 구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지며 법관은 이 청구에 대한 재판을 48
시간 이내에 하여야 한다.
@ 미결구금은 법률로 그 최장시간을 정하여야 하며 구
금된 사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과중하지 아니

104

한 보중으로 보석될 권리를 가진다.


제 12 조(형벌불소급, 일사부재리, 소급업법의 금지, 연좌
제의 긍지) @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
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통일
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권리를 박탈 또는 제
한 당하거나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언하
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 13 조(거주 • 이전의 자유) @ 모든 국민은 거주 •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외이주와
국적이탈의 자유를 가진다.
제 14 조(직업선택의 자유)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제 15 조(거주의 자유) @ 모든 국민은 거주의 자유를 침해
받지 아니한다.
@ 주거에 대한 수색, 압수, 경중에는 그 장소와 물건을
명시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올 제
시하여야하며 법률이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의하지 아니
하고는 이를 할 수 없다.
제 16 조(통신의 자유) @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
받지 아니한다.
@ 우편물의 검열, 전신 • 전화의 도청, 서신의 개피는
국가의 안녕과 공공의 질서를 해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할 수 없
다.
제 17 조(종교의 자유) @ 모든 국민은 신앙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 국교는 존재 하지 아니한다.
제 18 조(사상 • 양성의 자유) 모든 국민은 사상과 양성의 자
105

유를 가진다.

제 19 조(언론 • 출판 • 방송 • 방영 • 집회 및 결사의 자유) @


모든 국민은 진실을 알고 의사를 표명하는 권리를 가진
다.
@ 언론·출판·방송·방영과 집회 및 결사는 타인의 권
리를 칭해하지 아니하는 한 제한할 수 없다.
@ 언론·출판·방송·방영에 대한 허가냐 검열은 인정
하지 아니한다.
@ 육외의 집회에 대하여는 그 시간과 장소에 관한 규제
를 법률로 정할 수 있다.
제 20 조(학문과 예술의 자유) @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
의 자유를 가진다.
@ 저작자 • 발명가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 보호한다.
제 21 조(재산권의 보장) CD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
다.
@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법률
로 정한다.
@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 사용 또는 제한은
완전한 보상이 미리 지급되지 아니하고는 이를 할 수 없
다.
제 22 조(공무원의 선택권) 모든 국민은 18세가 되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제 23 조(공무담임권)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
여 공무를 당임할 권리를 가진다.
제 24 조(청원권) @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
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 국가기관은 청원에 대하여 성사할 의무를 진다.
제 25 조(재판청구권, 무최추정권) @ 모든 국민은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에 의
한 신속한 재판을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 행사피고인은 유죄의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

106

@군인 또는 군속이 아닌 국민은 비상계염이 선포된 기


간을 제외하고는 군법회의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
@ 누구든지 자력이 없음을 이유로 소송상 불이익을 받
지 아니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원
조를 받을 권리가 있다.
제 26 조(형사피고인의 권리) CD 형사피고인은 법률이 정하
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정에서 칙접 진솔하거나 조사된
증거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아니한다.
@ 형사피고인은 모든 증인에 대하여 법정에서 심문할
권리를 가진다.
@ 누구든지 체포·구금·수색 ·압수 기타 신체의 자유
를 제한받은 때에는 즉시 변호인을 선임하여 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변호인과의 접견 • 교통은 제한없이
가능하며 그 비밀도 보장된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
로 변호언을 선엄할 수 없을 때에는 국가가 이를 선임한
다.
@ 누구든지 자기에게 불이익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
하며 자백이 고문 • 폭행 • 협박 • 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진솔된 것이라고 의심
되는 때 또는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인 때에
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 위법한 구속
상태에서 이루어졌거나 법률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의하
지 아니하고 수집 작성된 증거인 때에도 또한 같다.
제 27 조(형사보상) 누구든지 체포 구금되었다가 무혐의 또
는 무죄로 석방된 때에는 국가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제 28 조(국가 • 공공단체의 배상책임)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
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국가 • 공공단체에 대하여 배
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 29 조(교육을 받을 권리 • 의무, 교육의 자주성, 정치적
중렵성 빛 평생교육) CD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
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를 가진다.
107

@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소년에게 법률이 정하는 의


무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 교육의 자주성, 천문성 및 정치적 중렵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 국가는 국민에 대한 명생교육올 보장하여야 한다.
@ 학교교육 빛 형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
로 정한다.
제 30 조(근로의 권리 • 의무, 근로조건, 여자와 소년의 근
로에 대한 보호) @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고용의 확대와 적정
임 금을 보장하여 야 한다.
@ 근로의 내용과 임금, 취업시간, 휴가 기타의 근로조
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올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
다.
@ 여자와 소년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제 31 조(근로자의 단결권 등과 경 영 참여 권) @ 근로자는 근
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다만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
하는 바에 의한다

@ 근로자는 경제적 •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생산의


요구에 웅하기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방법과 범위내에서
기업의 경영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제 32 조(사회보장) @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 활을 할 권
려를 가진다.
@ 국가는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을 증진시킬 의무를 진
다.
@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제 33 조(혼인의 순결 및 보건) @ 혼인의 순결과 가청은 국
108

가의 보호를 받는다.
@ 모든 국민은 건강하게 생활하며 질병의 예방과 치료
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 34 조(환경권) 모든 국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 35 조(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존중) @ 국민의 자유와 권
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나한 이유로 부인되거나 경시되

지 아니한다.
@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제 36 조(납세의 의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
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제 37 조(국토방위의 의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토방위의 의무를 진다.

제 3장 국 회

제 38 조(입법권) 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 39 조(구성) @ 국회는 지역선거구에서 국민의 보통 • 명
등 • 직접 •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한
다.
@ 국회의원은 주민 20 만 명에 1 인의 비융로 선출하며
그 단수가 10 만 명을 초과하연 1 언을 추가한다.
@ 국회의원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 40 조(의원의 임기)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제 41 조(의원의 겸직제한)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할 수 없다.
제 42 조(의원의 불체포특권) @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
를 제외하고는 회기중 국회의 동의없이 체포 또는 구금
되지 아니한다.
@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 에는 국회
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중 석방된다.
109

제 43 조(의원의 연책특권)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행한 발언


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올 지지 아니한다.
제 44 조(의원의 청렴의무) @ 국회의원은 청령의 의무가 있
다.
@ 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 • 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 •
이익 또는 칙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
제 45 조(정기회 • 임시휘) @ 국회의 정기회는 법률이 정하
는 바에 의하여 매년 1 회 집회된다.
@ 대통령 또는 국회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에 의
하여 국회의장은 국회의 엄시회 집회를 공고한다.
@ 정기회의 회기는 120 일을, 임시회의 회기는 30 얼을
초과할 수 없다.
제 46 조(의장 • 부의장) 국회는 의장 1 인과 부의장 2인을 선
거한다.
제 47 조(의결정족수와 의결방법)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그 재척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
석의 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 결한다. 다만 가부동수언
때에는 부결된 것으로 한다.
제 48 조(의사공개의 원칙)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국회의 결의에 의하여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 49 조(의안의 차회기 계속)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은 회기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아니한
다. 다만 국회의원의 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
니하다.
제 50 조(법률안제출권) 대통령, 법률이 정하는 수의 국회의
원과 대법원은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이
제출하는 법률안은 법원의 조직 • 인사 및 운영에 관한
사항에 한한다.
제 51 조(법률의 공포, 대통령의 거부권, 법률의 확정 • 공
포) @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 일
’ ‘

110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 1 항의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에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국회가 폐회중에도 또한 같다.


@ 대통령은 법률안을 수정하여 재의를 요구할 수 없다.
@ 재의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
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
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 대통령이 제 1 항 기간 내에 공포나 재의의 요구를 하

지 아니한 때에도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 대통령은 제 4 항과 제 5항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된 법
률을 지체 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 제 5항에 의하여 법률이 확정된 후 또는 제 4항에 의한
확정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5 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
하지 아니할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한다.
@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 일
을 경 과함‘무로써 효력 을 발생 한다.
제 52 조(예산안의 심의, 확정권, 준예산) @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 • 확정한다.
@ 정부는 회계년도마다 예산안을 펀성하여 회계년도 개
시 90 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년도 개시
30 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
@ 대법원은 그 소관예산안을 펀성하여 회계년도 개시
120 일 전까지 정부에 제출하고 정부는 제 2항의 예산안을

펀성함에 있어서 이를 수정할 수 없다.


@ 정부는 예산안에 수업과 지출을 정확하게 하여야 하
며 기밀 기타의 이유로 이를 은폐하여서는 아니된다.
@ 새로운 회계년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다음의 목적을 위한 경비는 전년도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
l. 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
---

지와 운영
2. 법률상의 지출의무의 이행
3. 이미 예산으로 숭인된 사업의 계속
제 53 조(계속비 • 예비비) @ 한 회계년도를 넘어 계속하여
지출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정부는 연한을 정하여 계속
바로서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 예측할 수 없는 예산외의 지출 또는 예산의 초과지출
에 충당하기 위한 예비비는 미리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다만 예비비의 지출은 차기 국회의 숭언을 얻어야

한다.
제 54 조(추가경정예산) @ 정부는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
가 있을 때에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
할 수 있다.
@ 대법원이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추
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여 정부에 제출하고 정부는 이를
수정함이 없이 국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제 55 조(지출예산 각 항의 층액과 새 비목 셜치의 금지) 국


회는 ’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제 56 조(국채모집 기타에 대한 의결권) 국채을 모집하거나
예산외에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에는
정부는 미리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제 57 조(조세의 종목과 세융) 조세의 종목과 세융은 법률로

써 정한다.
제 58 조(조약 • 선전포고 기타에 대한 동의권) @ 국회는 국
제조칙에 관한 조약,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
약, 통상조약, 어 엽조약, 강화조약, 외국꾼대 의 지위에
관한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 • 추진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
한민국 영역 내에서의 주둔에 대하여 국회는 동의권을
가진다.
‘” --

112

제 59 조(국정 감사 및 조사권) @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고


특정한 국정사안에 관하여 조사할 수 있다.
@ 제 1 항의 감사와 조사에 ‘ 필요한 때에는 서류의 제출,
증인의 출석과 중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 제 1 항의 감사와 조사는 재판과 진행중인 벙죄수사 및
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
제 60 조(국무총리 동의 출석 • 답변) 국무총리 • 국무위 원 또
는 정부위원은 국회나 그 위원회에 출석하여 국정처리상
황을 보고하거나 의견을 진솔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
으며 국회나 그 위원회 또는 의원 30 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출석 답변하여야 한다.
제 61 조(국무총리 및 국무위원의 해엄의결권) @ 국회는 국
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그 해임을
의결할 수 있다.
@제 1 항의 해엄의결은 재척의원 4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의하여 재척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제 2항의 의결이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국무총리 또는
해당국무위원을 즉시 해임하여야 한다.
제 62 조(탄핵소추권) @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정부
위원, 행정각부의 장,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 및
감사원장 •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공무원이 그 직
무수행에 관하여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
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 탄핵소추는 재척의원 4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재척의원 과 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 이 있을 때까
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제 63 조(탄핵심판의 효력) 탄핵심판은 공직으로부터 파연함
에 그친다. 그러하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 형사상의 책임

이 연제되지는 아니한다.
113

제 δ4 조(탄핵심판소의 구성) @ 탄핵사건 을 심판하기 위하


여 탄핵심판소 를 둔다.
@ 탄핵심판소는 대법원장을 심판장으로 하고 대법원판
사 5 인, 국회의원 5 인의 심판관으로 구성한다. 다만 대
법원장을 심판할 경우에는 국회의장이 심판장이 된다.
@ 탄핵심판에는 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 탄핵심판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 65 조(국회의 자율권) @ 국회는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
는 벙위 내에서 의사와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 을 제정할
수 있다.
@ 국회는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며 의원을 갱계할 수 있
다.
@ 의원의 제명은 재척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
야 한다.
@ 제 2항과 제 3 항의 처분에 대하여는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

저14 장 정 t:::I
-「

저11 절 대 통 령

제 66 조(대통령의 지위)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며 외국


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제 67 조(대통령의 선거) @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 • 형퉁 •
직접 •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다만 대통령이 궐위
된 경우에 그 잔임기간이 1년 미만인 때에는 국회에서

선출한다.
@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
권이 있고 50세에 달하여야 한다.
@ 군인은 현역을 연한 후 3년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대
통령에 선출될 수 없다.
.'

114

@ 대통령선거에 관한 사항은 뱅률로 정한다.


제 68 조(승전) @ 국민이 대통령을 선거하는 경우에 유효투표의 과반
수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 전항의 경우에 파반수득표자가 없을 혜에는 국회가 다득표자 2
인중에서 선출하며 국회의 재척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
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 대통령후보자가 1 인얼 혜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
분의 l 이상이 아니연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제 69 조(승천) @ 제 67 조 제 l 항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가 대통
령을 선거하는 경우에는 재척의원 3 분의 2 이상이 출석한 공개회
의에서 출석의원 3 훈의 2 이상의 득표자를 대통령당선자로 한다.
@ 제 1 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을 혜에는 다수득순위로 2 인에 대
한 결선투표를 하여 다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
제 70 조(대통령의 선거시기) @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혜에는 엄
기만료 70 일 내지 40 얼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 대통령이 궐위펀 혜에는 지체없이 후엄자를 선거한다. 다만 대
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탄해 또는 그밖의 사유로 자격올
상실한 혜에도 또한 같다.
제 71 조(대통령의 취임선서) 대통령운 취임에 즈음하여 국회에서 다
음의 선서를 한다,
“냐는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의 안천을 보호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
리의 증진에 노력하며 민주절서의 확렵과 조국의 명화통일을 위하
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주권자인 국만앞에
엄숙히 선서함니다.”
제 72 조(대통령의 임기) @ 대통령의 엄기는 6년요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에 후임자는 전엄자의 잔엄기간중 재엄
한다.
제 73 조(대통령의 권한대행)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
115

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에 정한 국무위원의


순위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제 74 조(외교에 관한 권한)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 • 비준하고 외교사
절을 신임 • 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한다.
제 75 조(국군의 통수, 조직과 편성) @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
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
@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 정한다.
제 76 조(대 통령령) 대통령은 법률에서 범위를 정하여 위엄받은 사항
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

할수 있다.
제 77 조(긴급재 정처분과 긴급영령권) @ 내우 • 외환 • 천재 • 지변 또
는 중대한 재청, 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
지하기 위하여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대통령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상 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냐 이
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카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천상태에 있어서 국가를 보
위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은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 제 1 항과 제 2항의 처분 또는 영령은 7 일 이내에 국회에 보고하
고 그 숭언을 얻어야 한다.
@ 제 3항의 숭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그 처분 또는 명령은 그때
부터 효력을 상실하며 그 명령에 의하여 개정 또는 폐지되었던

법률은 그 효력을 회복한다.


@ 대통령은 제 3항과 제 4항의 사유를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제 78 조(계 영) @ 대통령은 전시 • 사변에 있어서 병 력으로써 군사상
의 필요에 웅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여야 할 필요가 있
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 계엽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염으로 한다.
@ 비상계엄은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변에 있어서 척의 포
위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에 선포한다.
@ 비상계염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잠정적
11 6

으로 언론 • 출판 • 방송 • 방영 • 집회 • 결사의 자유와 정부의 권한


에 관한 특별조치를 할 수 있고 법원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지역에 한하여 영장제도와 법원의 권한에 관한 특별조치를 할 수


있다.
@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7 일 이내에 국회의 소집을 요
구하고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국회에서 동의를 받지 못하
거나 국회가 계염의 해제를 결의한 때에는 계엄은 그때부터 효력
。 。 1 '一 ~1
걱를「 u-.::- 」-r .
제 79 조(공무원임명권)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명한다.
제 80 조(사면 • 감형 • 복권) @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 · ·감형 • 복권을 명할 수 있다.
@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 사연 • 감형 •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 81 조(영전수여권)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
타의 영전을 수여한다.

제 82 조(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발언 • 의견의 표시)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
제 83 조(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행위 및 부서)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행위는 문서로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국무위원이 부


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
제 84 조(대통령의 경직금지) 대통령은 국무총리 • 국무위원 • 행정각

부의 장 기타 법률이 정하는 직올 겸할 수 없다.


제 85 조(대통령의 형사상 특권)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
한 때가 아니면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저1 2 절 국무회의

제 8δ 조(국우회의의 권한과 구성) @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


하는 중요한 정책을 의결한다.
@ 국무회의는 대통령 •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A로 조직하며 의장
은 대통령으로 한다.
@ 국무위원의 수는 15 인 이상 25 인 이내로 한다.
117

제 87 조(국무총리 • 국무위원) @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 를 얻어 대


통 령이 임명한다.
@ 국무총리는 대통령올 보좌하고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 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엄명한다.
@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화하며 국무회의의 구
성원으로서 국정을 의결한다.
@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 건의할 수 있다.
@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국회의원을 겸직할 수 없으며 군인은
현역을 연한 후가 아니면 이에 임명될 수 없다.
제 88 조(국무회의의 의결사항) 다음 사항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야 한다.
l .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2. 조약안 • 선전 l 宣戰l • 강화 기타 중요한 대외정책
3. 법률안 • 긴급명령안 • 대통령령안
4. 예산안, 결산안 • 긴급재정처분안 예비버지출에 관한 사항,
국유재산처분의 기본계획,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 기타 재정

에 관한 중요사항
5. 임시국회의 집회요구에 관한 사항
6. 계엄안 • 해엄안
7. 군사에 관한 중요사항
8. 영천수여 • 사면 • 강형 • 복권에 관한 사항
9. 행정각부간의 권한의 획정
10. 정부 내의 권한의 위임 또는 배정 에 관한 기본계획
11 . 국정처리상황의 명가 • 분석
12. 행정각부의 중요한 정책의 수럽과 조정
13. 정부에 제출 또는 회부된 정부의 정책에 관계되는 청원의
심사

14. 검찰총장 • 국럽대학교총장 • 대사 • 공사 • 합동참모회의의장 •


각군참모총장 기타 법률 이 정한 공무원과 국영기업체관리자
의 임명

15. 대통령 • 국무총리 • 국무위원이 제출한 사항


118

제 3절 행 정 각 부

제 89 조(행정각부의 장)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중에서 국무총리


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 90 조(총리령 • 부령) 국무총리 또는 행정각부의 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법률 또는 대통령령의 위임에 의하여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
제 91 조(행정각부의 설치 등) 행정각부의 설치 • 조칙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한다.

제 4절 감 사 원

제 92 조(감사원의 직무와 소속) 국가의 세입 • 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에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
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 하에 감사원을 둔다.
제 93 조(감사원의 구성 등) @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한 5 언 이상
11 인 이 하의 감사위 원으로 구성 한다.
@ 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
년으로 하며 1 차에 한하여 중임될 수 있다.
@ 원장이 궐위된 경우에 임명된 후임자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임
기간으로 한다.
@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
년으로 하며 1 차에 한하여 중임될 수 있다.
제 94 조(결산의 검사 • 보고) 감사원은 세업 • 세출의 결산을 매년 검
사하여 대통령과 차년도 국회에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제 95 조(감사원의 조직과 직무범위) 감사원의 조칙과 직무범위, 감

사위원의 자격, 감사대상의 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


한다.

저| 5 장 법 원

제 %조(사법권과 법원, 법관의 자격) @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119

@ 법원은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한다.


@ 대법원은 모든 심판기관의 최고법원이다.
@ 법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
제 97 조(법원의 조직) @ 대법원은 대법원장인 대법원판사와 기타
대법원판사로 구성한다.
@ 대법원과 각급법원의 조직 및 관할은 법률로 정한다.
제 98 조(법관의 독렵)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성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제 99 조(법관의 추천 및 임명) @ 대법원장인 대법원판사는 법관추
천회의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대통령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이 었으면 국회의 통의를 요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임명하여야 한다.
@ 기타의 대법원판사는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엄명한다. 대통령은 제청이 있으면 임명하여야 한다.
@ 법관추천회의는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 빛 이와 동수의 대한
변호사협회가 추천한 변호사와 경창총장으로 구성한다.
@ 대법원장은 법관추천회의를 주재한다.
@ 대법원판사 이외의 법관에 대한 임명 및 보칙은 대법원판사회
의의 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행한다.
@ 법관추천회의와 대법원판사회의의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
은 법률로 정한다.
제 100 조(법관의 엄기, 정년) @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의 엄기는 6

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없다.


@ 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의 정년은 법률로 정한다.
@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 아닌 법관의 엄기는 10 년으로 하며 법
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
제 101 조(법관의 신분보장) @ 법관은 탄핵 •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
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 • 감
봉 또는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 법관이 중대한 섬신상의 장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
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퇴직하게 할 수 있다.
제 102 조(법률 • 명령 심사권) @ 대법원은 법률 • 명령 • 규칙과 처분
120 ι‘
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
진다.
@ 법률에 대한 위헌판결을 할 때에는 대법원판사 재적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제 103 조(행정심판) @ 재판의 전심(前審)절차로서 행정심판을 할 수

있다.
@행정심판의 절차는 법률로 정하고 사법절차가 준용되어야 한
다.
제 104 조(대법원의 자율권)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
위 내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
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제 105 조(재판공개의 원칙) @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 재판의 심리는 공공의 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법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공개하지 아니
할 수 있다. 다만 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문
제로 된 사건의 심리는 공개하여야 한다.
제 106 조(상고이유제한 금지 등) @ 모든 종국(終同)재판에는 이유를
붙여야 한다.
@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 • 법률 • 명령 • 규칙 또는 판례위반의
이유가 있는 상고는 제한되지 아니한다.
제 107 조(군사재판) @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하여 특별법원으로
군법회의를 둘 수 있고 그밖의 특별법원은 둘 수 없다.
@ 군법회의의 상고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 군법회의의 조직, 권한, 심판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

제 6 장선거관리

제 108 조(선거관리위원회) @ 선거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게 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
하는 3인과 대법원판사회의에서 선출하는 5언의 위원 A로 구성하
고 위원장은 위원중에서 호선한다.
121

@ 위원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1 차에 한하여 중임될 수 있다.


@ 위원은 정당에 가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률의 벙위 내에서 선거의 관리에 관
한 규칙 올 제정할 수 있다.
@ 위원은 탄핵 또는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연되지 아니한

다.
@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칙 • 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 한다.
제 109 조(선거운동 • 선거경비) @ 선거운동은 각급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하에 법률에 정한 범위 내에서 하며 균퉁한 기회가 보장되
어야 한다.
@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

저17 장지방자치

제 110 조(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과 그 종류) @ 지방자치단체는 주


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올 관리하며 법령의 벙위
내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
제 111 조(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 CD 지방자치단체에는 의회를

둔다.
,@ 지방자치단체의 장, 그 의회의 의원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자는 그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이 직접 이를 선거한다.
@ 지방의회의 조칙, 권한, 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의
선거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칙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
로 정한다.

제 8장 경 제

제 112 조(경제질서의 기본, 경제에 관한 규제 • 조정의 범위) @ 국


122
가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
으로 한다.
@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
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 독과점의 폐단은 규제 조청한다.
제 113 조(천연자원의 채취 • 개발 • 이용의 특허) 팡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법

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채취 • 개발 또는 이용


을 특허할 수 있다.
제 114 조(농지의 소작 • 임대차 • 위임경영)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
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금지된다. 다만 임대차 및 위탁경영은 법
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제 115 조(국토의 이용 • 개발 • 보전)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 •
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
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제 11δ 조(농어민 • 중소기업자의 자조육성) 국가는 농민 • 어민과 중


소기업자의 자조를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을 육성하고 그 정치

적 중립을 보장한다.
제 117 조(소비자보호) 국가는 국민의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

는 바에 의 하여 보장한다.
제 118 조(무역의 육성) 국가는 대외무역을 육성하며 이를 규제 • 조

정할 수 있다.
제 119 조(사기업의 국 • 공유화 및 경제의 통제 • 관리의 한계) 국가
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
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

저1 9 장헌법개정

제 120 조(헌법개정의 제안) φ 헌법개정의 제안은 국회의 재적의원

3분의 l 이상의 찬성으로 한다.


123

@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30 일 이상의 기간 이를 공고하


여야 한다.
제 121 조(헌법개정안의 의결) @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
부터 60 얼 이내에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
@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은 재척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 헌법개정안이 전항의 찬성을 얻는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
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

부 칙

제 l 조(시챙기일 시행준비) @ 이 헌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

다.
@ 이 헌법상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규정은 그 법률이 시행되는 때부터 시행한다.
제 2 조(최초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 • 임기) @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는 이 헌법의 공포일로부터 90
얼 이내에 실시한다.
@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엄기는 최초의
국회의 집회일로부터 개시되며 이 헌법 시행 당시의 대통령과 국
회의훤의 임기는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국회의 집회일 전일에
종료된다.
제 3 조(법령과 조약의 효력) @ 이 헌법 시행 당시의 법령과 조약은
이 헌법의 규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
@ 이 헌법시행 당시의 대통령령, 국무원랑, 각령은 이 헌법에
의한 대통령령으로 본다.
제 4 조(꽁무원의 지위) 이 헌법 시행 당시의 공무원은 이 헌법에 의
하여 임명된 것으로 본다. 다만 이 헌법에 의하여 그 선임방법이
나 임명권자가 변경된 공무원은 이 헌법에 의하여 후임자가 선임
또는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행하며 이 경우 전임자의 임기는
후임자가 선임 또는 임명될 때까지로 한다.
제 5 조(신설기관에 대한 경과조치) @ 이 헌법 시행 당시에 이 헌법
*’r
' .

124

에 의하여 새로이 설치휠 기관의 권한에 속하는 직무를 행하고


있는 기관은 이 헌법에 의하여 새로운 기관이 설치될 때까지 계
속하여 그 직무를 행한다.
@ 이 헌법에 의하여 새로이 설치될 기관은 이 헌법 시행 후 180
일 이내에 구성하여야 한다.
@ 이 헌법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의 선거는
이 헌법 시행 후 9 월 이내에 실시하여야 한다.
제 δ 조(법령의 정비) 이 헌법의 규정에 저촉되어 효력을 상실하는
법령의 개폐나 새로운 법률의 제정 등은 이 헌법 시행 후 1 년 이
내에 완료하여야 한다.
제 7 조(기관의 폐지) 이 헌법 시행 당시에 존속하는 헌법위원회, 국
정자문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는 폐지한

다.

1986. 6.

대 한 변 호 사 협 회
125

2. 서노련사건 피의자의 고문에 대한 법률


구조활동

2- 가. 고문사건조사보고서( l 차, 2차)

조 사 보 고 서( l 차)
수 신 대한변호사협회장
참 조 인권위원장
제 목 불법연행, 감금, 압수, 수색 및 고문행위 등 조사에
관한건

피구속자 깅문수, 최한배, 검진태, 노정래, 서혜경, 유시주, 유


인혜, 윤현숙, 송재성, 이은홍, 황만호, 박계현, 박애숙, 가정우
등(이 사람들은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노동운동가들로서 ‘서울
노동운동연합’을 조직하여 『노동자 신문』을 발간하고 있으며 이른
바 위장취업자들임)의 가족들은 이들이 불법연행, 불법감금, 불법
압수, 수색올 당하였고 또한 심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였으니
진상을 조사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해 달라는 진정서(별첨)를 1986.
5. 19 . 자로 대한변호사협회에 제출하였고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회는 1986. 5. 19. 12시의 정례회에서 위 진정서 내용의 진상을 조사
하기로 의결하고 그 조사위원으로서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변
정수, 조숭형, 강철선 등 3인을 지명하였으므로 위 조사위원들은
우선 다음과 같이 조사결과를 보고함.
126


0
t그

l . 우선 피구속자들의 가족을 통하여 피구속자들이 구금되 어 있는

장소를 알아 본 결과 김문수, 검순천은 성동경찰서에, 황만호,


윤현숙, 이은흥은 청량리경찰서에, 송재섭, 검진태, 유인혜는
동대문경찰서에, 최한배는 종로경찰서에 노정래, 유시주는 중부

경찰서에, 서혜경은 남대문경찰서에 각각 구금되어 있음을 알아


냈으나 박계현, 가정우, 박애숙의 구금장소는 아칙 알아내지 못

하였음.
2 . (가) 우선 성동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는 검문수 (36세, 한일공업주
식회사에서 해고됩)와 검순천 (27 세, 유니전전자에서 해고됨)에 대하
여 알아 보기로 하고 1986‘ 5 21. 14시 15분 성동경찰서 수사계에 도

착하여 피의자 접견을 신청하였던 바, 담당경찰관은 위 두 사람은


서울시 경 찰국에서 구속하여 성동경 찰서 유치 장에 수강하였으며 , 서
울시경은 오전 10시에 데려다가 조사하고 밤늦 게 돌려보내고 있는
실정이어서 접견시킬 수 없다고 하였음.
(나) 그리하여 서울 시경에 가서 접견하기로 하고 일어서려는 데
때마침 피구속자 검순천의 오빠 검종억과 친구 이은순 양이 검순천
을 접견하기 위하여 방에 들어왔으므로 친구 이은순 양의 도움을
받아 동대문구 장안동 장안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서울시경 대공분
실을 어렵게 찾아내어 부분실장을 만나 피구속자 검문수, 깅순천
등의 접견을 요청하였던 바, 부분실장은, 현재 검문수, 검순천, 송
재섭, 유인혜 퉁이 이곳에 와 있£나 그들을 현재 조사중에 있으므
로 접견신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하고 위 피구속자들과의 관련자중
한 사람언 이준복(여 34세, 인쇄업자)은 성동경찰서에 그 대 로 있으
니 오늘 접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깅문수, 검순천은 내
일 성동경찰서에 가서 접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므로 부분실장을
통하여 피구속자 검문수, 검순천, 송재섭, 유인혜 등의 변호인 선
임신고서만을 받아낸 채 피구속자 이준복을 접견하기 위하여 다시
성통경 찰서 에 돌아왔음.
127

(다) 1986. 5. 21 . 16시 30분 성동경찰서 수사계에 가서 피구속자


이준복을 접견하고 대한변협 인권위원회에서 접견하고자 하는 취지
를 알렸던 바, 그는 1986. 5. 2. 오후 6:30분 경 송파보안사에 연행되
어 가서 1986. 5. 5. 16시 경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1986. 5. 12. l 0:30
경 장안동 소재 서울시경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와서 1986. 5. 14 . 에
구속영장이 집행되었는데 그동안 고문당한 얼은 없었다고 함.
3. 1986. 5. 23. 11 : 45 경 성동경찰서 수사계에 가서 피구 속 자 검 문
수, 검순천을 1 시간 동안 접견하였음.
(가) 검문수(36 세,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의 경우
그의 말에 의하연 1986. 5. 6. 밤 11 시 경 장실아파트 서혜경의
집에서 서혜경, 최한배, 노정래, 유시주, 손세환 등과 함께 두
사랑에게 연행되어 송파에 있는 보안사에 갔는데(깅문수는 세
단차로 가고 나머지는 다른 차로 갔음) 아파트 방안에서 도주

하려고 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에게 발로 채이고 밟히고 몹시


구타당하였으며, 차안에서도 발로 채이고 주먹으로 얻어맞았으
며 보안사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당에서 10 여 명이
탈려들어 간첩보다 나쁜 놈이니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야구방
망이로 때리고 발로 차는 퉁 온몸을 마구 때려 잠깐 실신했다.
그들은 곧 지하실로 데리고 가더니 두 사람이 들어와서 심상
정, 박노해의 소재를 대라고 하기에 모른다고 하자 몽둥이로
온옴을 사정없이 때린 다음 옷을 발가벗긴 다음 다시 또한충
아래의 지하설(지하 2충)로 블고 가서 쇠의자(속칭 에레베타)에
앉히고 팔결이에다 손옥올 묶고 팔묵, 몸체, 무릎, 발목을 의
자에 단단히 묶은 다음 양쪽 엄지손가락에 전깃줄을 강고 온몸
에 물을 끼 얹고 나서 15 명이 들어와서 방안의 전동을 끄고 컴
컴하게 한 다음 후핫쉬로 얼굴올 비추연서 또다시 심상정, 박
노혜의 소재 를 대라고 하기에 모른다고 하자 전기스윗치 를 넣
어 차층 전압을 높여 갔다.
피구속자가 견디다 못해 요동을 하면서도 이야기를 안하자,

이제는 고추가루를 보이면서 고추가루 고문을 하겠다고 협박을


하더니 옆에 있는 드럼통 물에 고추가루를 탄 다음 피구속자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목을 의자 등받이 뒤로 꺾게 하고 고
128

추가루물을 수건 위에 부어 코와 입, 눈, 그리고 귀에 스며 들
게 했다.
이러한 전기 및 물고문을 약 30분 간 계속하여 피구속자가
실신하자 업어다가 지하 1 충에 있는 침대에 눔히고 두 사람 이
맛사지를 하여 정신올 깨게 했다.
정신을 차리자 또다시 두 사람의 소재를 대리고 해서 박노해
의 장인집의 약도를 그려주었더니 심상정의 거처도 마저 대라
고 해서 모른다고 하자 발가벗긴 채 또다시 지하 2층으로 데리
고 가서 다시 1 차 때와 같이 쇠의자에 앉혀 꽁꽁 묶고 전기고문

과 고추가루물 고문을 더 심하게 했다.


그래도 대지 않자 야구방망이로 우릎을 때리고 막대기로 성
기(자지)를 때리는 것올 비롯하여 온옴을 때리는 등 이러한 고
문을 약 30분 간 계속하였다 l그동안 드럼통 2개 반의 고추가루

물을 얼굴에 부었다). 이리하여 다시 기철하자 또다시 지하 1


충 침대방에 업어다 눔히고 맛사지하여 정신을 차리게 했는데
위와같은 고문은 5. 6. 밤부터 5. 7.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5. 7. 아침 날이 새자 옷을 입히고 엠블런스에 태워 피구속자


가 그려준 약도대로 천호동 소재 피구속자의 친구집을 찾아가
면서 약도가 틀리지 않느냐면서 5 ∼ 6 영이 몹시 때리고 전기방
망이로 손과 발을 50 회 이상 지저했으며, 못 견디어 기절하자
다시 송파보안사로 데리고 와서 침대에 눔히고 맛사지를 하여
다음날 아침에야 깨어났다.
피구속자가 깨어나자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고 맥박을 챈 다

음 어디인지는 모르나 핑장허 큰 군병원에 데리고 가서 X 레이


를 찍고 약을 주었다(식후에 먹으라면서).
그리고 또다시 보안사에 데리고 가서 매일 목욕과 맛사지를
시키고 상처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었다고 함.
피구속자는 위와같은 고문으로 4 일 간이나 소변을 못보고 대
변도 못보았으며, 현재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가렵고
험이 없고 뒤틀리고 걷지도 잘 못한다고 하며 현재 남아 있는
고문 상처라고 하연서 보여주어 확인한 바, 왼쪽다리, 허벅지
에 손바닥 크기의 시퍼런 멍이 들어 있고 배에도 작은 정들이
129

많이 있었음. 피구속자는 1986. 5. 6. 밤에 송파보안사에 연행되


어 가서 독방에 갇혀 있다가 1986. 5. 15. 구속영장에 의하여 서
울시경에 이송되어 성동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고 함.

그리고 서울시경에서는 고문을 당하지 아니하였다고 함.


(나) 김순천 (27세, 서노련신문 편집푸원)의 경우
1986. 5. 5. 새 벽 송파보안사에 연행 되 어 수감되 어 있다가
1986. 5. 15. 구속영장에 의하여 서울시경에 이송되어 성동경찰
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고 함.
5. 5. 새벽 송파보안사에 연행되어 가자마자, 지하실에 데리
고 가서 몽둥이로 때라고 발로 차고 슬리퍼로 얼굴을 때혔다.
다시 물고문실로 데리고 가서 죄의자에 앉히고 물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몸을 꽁꽁 묶은 다음 가명을 대라고 하연서 수건
위에다 물을 부었다.(약 10분 간)
그리고 나서 목욕을 시키고 맛사지도 해주고 안티푸라민도
발라주어 상처가 많이 나았으나 아직도 영덩이에 멍이 남아 있
다고 함.
4. 문제정
(가) 군수사기관이 민간안을 연행하여 간 점.
(나) 구속영장 없이 10 얼 간이나 불법 구속한 정.
(다) 전기고문, 고추가루물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정.
5. 대책

(가) 불법구속과 가혹행위를 직접 자행한 군인과 그 지휘 감독


책임자에 대한 법적인 책임 추궁.
(나) 군 최고 책임자에 대한 시정 촉구.
(다) 고문 사실의 중거를 확보하기 위한 증거보전청구.

조 사 위 원 변 호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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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사 번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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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추가조사보고서 (2 차)

수신 대한변호사 협회장
참조 인권위원장
제목 ‘서노련’ 사건 피구속자 고문사실여부 2차 조사결과보고

가족들이 “불법연행, 감금 및 고문을 당하였다”라고 주장하는 세


청 ‘서노련’ 사건 피구속자 1 5 명 중 검문수, 깅순천 등에 대하여는
그 사실여부를 조사하여 그 결과를 1986. 5. 27. 보고하였는 바, 그
뒤 2 차로 조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0
C그

1. 제 1 차 조사 당시 , 시내 각 경찰서 유치장에 분산 구금된 상태로


서울시경에서 수사를 받고 있던 ‘서노련’ 사건 피구속자 들은
1986. 6. 3. 서울 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어 현재 모두 서울구치소
에 수감되어 있읍니다.
2. 본인들은 1986. 6. 11. 14:00부터 16 :00까지 2시간 동안 서울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에서 위 피구속자 중 서혜경, 노정래 , 유시주 등

3 명을 순차로 접견하고 그들의 진술을 듣는 방법£로 조사하였

는데 ,
가) 서혜경(여 27 세, 가리봉전자 근로자로 취업 중 해고당함)
「) 동녀는 1986. 5. 6. 23:00 경, 잠실 주공아파트 87동 403호에서
검문수, 노정래 , 손 세환, 최한배, 유시주 등과 같이 약 10 여
명의 기관원들에게 끌려 그들 이 몰고 온 3,4 대의 숭용차에
분산승차, 송파보안사로 강제연행되었는데, 그들은 처음 아

파트 방실에셔 뺨을 때리고 양손에 수갑을 채워 차에 태우고


연행하여 갔다. 동일 23:00 경 송파보안사에 도착하니 1 0여
명의 요원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중 1 명은 몽둥이를 들고 있
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몽둥이로 때려 그 자리에 쓰러졌
다. 그러자 요원이 옆에서 부축하여 지하실 1 층으로 데리고
131

가서 “성명과 주소 등 을 기재하라”고 했으나 기진맥진 상태


라 쓸 수가 없어 누워 있었 는 데, 밤새도록 옆방에서 남자의

“악”,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와서 공포에 떨었다. 다음


날인 5. 7. 10:00부터 10:30 까지 조사관이 “동료 심상정의 소
재 를 대라”고 하며 머리채 를 잡고 의자 뒤로 고개를 꺾은 다
음 주먹으로 얼굴을 무수히 구타하여 코피가 터졌지만 “모른

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먹으로 양쪽 눈부위만을 난타하며


추궁하기에 그래도 “모른다”고 했더니 부하직원에게 “고문실
로 데리고 가서 물고문을 시키겠으니 옷을 갈아 입히라”라고
지시하고 나갔다. 그뒤 울고문은 하지 않고 다만 죄수복 같
은 파란 옷으로 갈아 업히기만 했는데 그때 거울을 보니 얼
굴이 붓고 눈이 충혈되어 흰자위는 하나도 없었다. 통일 15:

00 경 ‘“서노련’과 관련된 행척에 대한 자술서를 쓰라”고 했


다. 5. 8 . 자술서 중 ‘“서노련’의 토론평가회에 대한 부분이 자
세치 않으니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쓰라. 그렇지 않
으면 고문할 것이다”라고 협박을 해서 3,4 회에 걸쳐 자술서
를 썼다. 그 뒤 5. 12. 23 : 00 경까지는 고문당함이 없이 송파보
안사에 있었는데, 더운물에 목욕시키고 맛사지 를 하여 주며
안티푸라민 을 발라 주 어 고문으로 생긴 멍 등을 치료해 주었
다. 당시 맛사지 를 해 준 여자가 멍을 보고 “어떻게 여자 를
이렇게 구타할 수 있느냐”라는 말까지 했다.
L} 5. 12. 23 : 00 경, 장안형에 있는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이첩되

었고 5. 15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남대분경찰서에 유치되었다


가 6. 3 . 검찰에 송치되었는데, 시경에서는 고문행위를 하지
아니했다.
나) 노정래 (27 세, 한국마벨 근로자로 취업중 해고당함)
동인도 5. 6. 22 : 00경 잠실 주공아파트 87동 403호실에서 깅문
수, 손세환, 최한배, 유시주, 서혜경 등파 같이 송파보안사로

강제연행되었는데, 아파트 방실에서부터 주먹과 발로 얼굴과


배 등을 구타당하고 양손을 뒤로 하여 포숭줄로 묶인 채 숭용

차로 연행되었으며, 송파보안사에 도착, 하차하자마자 대기하

고 있던 10 여 영의 요원들이 다짜고짜로 달려들어 손과 발, 몽


’ ;

132

퉁이 등으로 전신을 무수히 구타하여 쓰러졌다. 통일 24 : 00 경


지하 1 충 조사실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겨 알옴으로 무릎을 꿇
어 앉게 하고 다음날 09:00 까지 부동자세로 있게 하며 잠을 자
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인 5. 7. 09 : 00 경 최수복 같은 파란 옷으
로 갈아 업히고 5. 13 . 까지 조사하였는데, 행척에 대한 자술서
작성을 요구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쓰지 않는다고 주먹과
몽둥이로 한두 차례 때려 얻어 맞고 5. 12. 23 ‘:00경 장안평에 있
는 서울시경으로 이첨되었다. 서울시경으로 이첨된 뒤 5. 15.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중부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6. 3. 검찰에
송치되었는데 시청에 있을 동안 고문을 당하지 아니했다.
다) 유시주(여자 26 세, 가리봉 전자 근로자로 취업중 해고. )
동녀 도 5. 6. 22 : 00 경 잠실 주공아파트 87동 403호실 에서 검 문
수, 손세환, 최한배, 서혜경, 노정래 등과 같이 송파보안사로
강제연행되었는데, 아파트 방실에서부터 손을 뒤로 하여 수갑
을 채우고 포숭으로 몽과 함께 묶어 연행하고, 송파보안사에
도착하자마자 몽퉁이로 수없이 때려 얻어 맞았다. 그뒤 지하조
사실로 데리고 가서 속옷(련녕샤쓰, 뺀스)만 남걱놓고 겉옷올
벗게 한 다음 꿇어앉게 하고 조사관이 몽둥이를 들고 “심상정
의 소재를 대라”고 해서 “모른다”고 한 바, “너 죽을래” 하며
전퉁불을 회미하게 하고 발로 두어 번 걷어차서 얻 어 맞았다.
그때 옆방에서 얻어맞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음날인 5.7. 다
른 조사실로 옮겨 자솔서를 썼는데, 8 일인지 9 얼인지 15 : 00 경,
키 크고 뚱뚱하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수사관이 자솔서 내용
이 허위라고 하며, 죄수복 같은 파란 옷으로 갈아 업히고, “물
좀 먹어야 겠다”고 하며 양손을 포송줄로 묶고 그 묶인 손의
양팔을 벌려 그 안에 양무릎을 솟아 나오게 한 다음 양팔과 양
무릎 사이에 목봉을 끼워 넣어(속칭 비녀꼽기)그 목용의 양끝
을 책상과 의자 위에 올려 걸쳐 놓아서 마치 목봉에 통닭구 이
시 통닭이 매달린 듯한 자세로 만들고 얼굴에 젖은 수건을 대고
그위에 바가지로 물을 약 10분 간 붓고는 다른 사람의 진술서
를 보이며, “사실이 이런데 왜 허위로 썼느냐”고 하며 , 위 다
른 사람의 자 숨 서 내용대로 자백하기를 강요하기에 “그렇게 쓰
133

겠다”고 했더니 풀어 주였다. 그뒤 5. 10. 11:00 경, 새로운 조사


관이 “심상정의 소재를 대라”고 하며 주먹 A 로 얼굴을 10 여 회

때리고 위와 같은 속칭 비녀꼽기 고문율 약 20분 간 하였다.


그리고 송파보안사에 있는 동안 고문으로 인한 상흔치료를 위

하여 더운물 목욕, 맛사지, 안티푸라민 등 치료를 받았다. 그


위 5. 12. 12 : 30 경, 장안평에 있는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이첩되
어 5. 12.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중부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가 6
30. 검찰에 송치되었는데 시경에서는 고문당하지 아니했다.
3. 위 3인은 다 같이 1986. 5. 6. 연행되어 구속영장이 발부(그들 말
로는 5. 15.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함.)되기 전인 5. 14 . 까지
불법구금을 당하였고, 송파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하였으며, 현재
고문한 흔적(영, 근육이 붓고 한 것 퉁)은 시일의 경과로 사라
지고 없다고 하고 있는 바, 위 사람들의 각 진술은 그 태도로
보아 진실로 보여지고, 또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검문수, 김순
천(제 1 차 보고분) 등의 각 진술에 비추어 보아도 진실한 사실로
인정됩니다.
4. 우리 조사 위원들은 제 1 차 보고서에서 그 문제점과 대책을 제시
한 바 있읍니다마는 이 사건에 대하여는 불법연행, 감금을 한
자와 고문한 자를 색출하여 엄멸하도록 고발조치를 하고, 그 행
정 최고 책임자에 대하여는 강력한 시정촉구를 하여야 할 것으
로 생각합니다.

1986. 6. 13.
수 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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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나. 고 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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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01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류 택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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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원장 강 신 옥
피고발인 서 울 강동구 거 여동 소재 육군보안사(속칭 송파보안

사)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깅문수 등 1 5 언을 연행
조사한 수사책임자 및 가혹행위를 한 장병 전원 .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는 서울노동운동연합 소속 노동운동가


검문수, 최한배, 검진태, 노정래 , 서혜경, 유시주, 유인혜, 윤현
숙, 송재섭, 이은홍, 황만호, 박계현, 박애숙, 가정우 둥의 가족들
로부터 이들이 군수사기관에 불법연행, 불법감금, 불법압수· 수색
을 당하였고 또한 심한 고문을 당하였으니 진상을 조사하여 척철한

조치를 취하여 달라는 진정을 받고 인권위원회로 하여금 진상을 조


사케 한 바, 우선 다음과 같은 불법연행, 불법구속 및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사실을 발견하였으므로 이를 고발하오니 이를 철저히 조사
하여 엄중한 처벌을 함으로써 이러한 불법 사 태 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0
C그

1. 피구속자 김 문 수의 경우

그의 말에 의하연 1986. 5. 6. 밤 11 시 경 잠실아파트 서혜경의


집에서 서혜경, 최한배, 노정래, 유시주, 손세환 등과 함께 두 사
/
135

람에게 연행되어 송파에 있는 보안사에 갔는데(검문수는 세단차로


가고 나머지는 다른 차로 갔음)아파트 방안에서 도주하려고 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에게 발로 채이고 밟히고 몹시 구타당하였으며, 차
얀혜서도 발로 채이고 주먹으로 얻어맞았£며 보안사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당에서 10 여 영이 달려들어 간첩보다 나쁜 놈
이니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온
몸을 마구때려 잠깐 실신했다. 그들은 곧 지하실로 데리고 가더니
두 사람이 들어와서 심상정, 박노해의 소재를 대라고 하기에 모른
다고 하자 몽둥이로 온옴을 사정없이 때린 다음 옷을 발가벗긴 다
음 다시 또 한층 아래의 지하실(지하 2층)로 끌고가서 쇠의자(속칭
에레베타)에 앉히고 팔걸이에다 손목을 묶고 팔뚝, 몽체, 무릎, 발
목을 의자에 단단히 묶은 다음 양쪽 염지손가락에 전깃줄을 감고
온옴에 물을 끼얹고 나서 15 명이 들어와서 방안의 전등을 끄고 컴
컴하게 한 다음 후닷쉬로 얼굴을 비추연서 또다시 심상정, 박노해
의 소재를 대라고 하기에 모른다고 하자 전기 스윗치를 넣어 차층
전압을 높여갔다. 피구속자가 견디다 못해 요동을 하면서도 이야기
를 안 하자, 이제는 고추가루를 보이면서 고추가루 고문올 하겠다고
협박을 하더니 옆에 있는 드럼통물에 고추가루를 탄 다음 피구속자
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목을 의자등받이 뒤로 꺾게 하고 고추
가루물을 수건 위에 부어서 코와 입, 눈, 그리고 귀에 스며들게 했

다.
이러한 전기 및 물고문을 약 30분 간 계속하여 피구속자가 실신
하자 업어다가 지하 1 층에 있는 침대에 놓히고 두 사람이 맛사지를
하여 정신을 깨게 했다.
정신을 차리자 또다시 두 사람의 소재를 대라고 해서 박노해의
장인집의 약도를 그려주었더니 심상정의 거처도 마저 대라고 해서
모른다고 하자 발가벗긴 채 또다시 지하 2층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1 차때와 같이 쇠의자에 앉혀 꽁꽁묶고 전기고문과 고추가루 고문을
더 심하게 했다.
그래도 대지 않자 야구방망이로 무릎을 때리고 막대기로 성기(자
지)를 때리는 것을 비롯하여 온몸을 때리는 등 이러한 고문을 약
30분 간 계속하였다. (그동안 드럼통 2개 반의 고추가루물을 얼굴에

136

부었다.) 이리하여 다시 기절하자 또다시 지하 1 충 칭대방에 업어


다 눔히고 맛사지를 하여 정신올 차리게 했는데 위와 같은 고문은
5월 6 일 밤부터 5월 7 일 아침까시 계속되었다. 5월 7 일 아침 날이
새자 옷을 업히고 엠브란스에 태워 피구속자가 그려준 약도대화천
호동 소재 피구속자의 친구접울 찾아가면서 약도가 틀리지 않느냐
연서 5 ∼ 6명이 몹시 때리고 전기방망이로 손과 발올 50 회 이상 지
져했으며, 못 견디어 기절하자 다시 송파보안사로 데리고 와서 침대
에 눔히고 맛사지를 하여 다음날 아침에야 깨어났다. 피구속자가

깨어나자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고 맥박을 챈 다음 어디인지는 모


르나 굉장히 큰 군병원에 데리고 가서 액스레이를 찍고 약을 주었
다(식후에 먹으라고 하면서).
그리고 또다시 보안사에 데리고 가서 매일 목욕과 맛사지를 시키

고 상처 에 안티 푸라민올 발라주었다고 함.
피구속자는 위와 같은 고문으로 4 일 간이나 소변을 못보고 대변

도 못보았으며, 현재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가렵고 힘이 없


고 뒤틀리고 걷지도 잘 못한다고 하며 현재 남아 있는 고문상처라
고 하면서 보여주어 확인한 바, 왼쪽다리, 허벅지에 손바닥 크기의
시퍼런 멍이 들어 있고 배에도 작은 점들이 많이 있었음. 피구속자
는 1986. 5. 6. 밤에 송파보안사에 연행되어가서 독방에 갇혀 있다
가 1986. 5. 15. 구속영장에 의하여 서울시경에 이송되어 성동경찰
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고 함.
그리고 서울시경에서는 고문을 당하지 아니하였다고 함.

2. 피구속자 김순천의 경우

1986. 5. 5. 새벽 송파보안사에 연행되어 수감되어 있다가 1986.


5. 15. 구속영장에 의하여 서울시경에 이송되어 성동경찰서 유치장
에 수강되었다고 함.
5. 5. 새벽 송파보안사에 연행되어 가자마자, 지하실에 데리고 가
서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차고 슬리퍼로 얼굴을 때렸다.
다시 물고문실로 데리고 가서 쇠의자에 앉히고 물수건으로 눈올
가리고 옴을 꽁꽁 묶은 다음 가명을 대라고 하면서 수건 위에다 물
올 부였다. (약 10분 간)
137

그리고 나서 목욕올 시키고 맛사지도 해주고 안티푸라민도 발라


주어 상처가 많이 나았으나 아척도 영덩이에 멍이 남아 있다고 함.

3. 피구속자 서혜경의 경우
(1) 동녀는 1986. 5. 6. 23 : 00 경, 잠실 주공아파트 87 통 403호에서

깅문수, 노정래, 손세환, 최한배, 유시주 동과 같이 약 10 여 명


의 기 관원 들 에 게 끌려 그들이 몰고온 3,4대 의 숭용차에 분산숭
차, 송파보안사로 강제연행되었는데, 그들은 처음 아파트 방실에
서 뺨을 때리고 양손에 수갑을 채워 차에 태우고 연행하여 갔다.
동일 23 : 30 경 송파보안사에 도착하니 10 여 명의 요원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중 1 명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몽퉁이로 때려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자 요원이 옆에서 부축
하여 지하실 1 충으로 데리고 가서 “성명과 주소 동을 기재하라”
고 했으나 기진맥진 상태라 쓸 수가 없어 누워 있는데, 밤새도록
옆방에서 남자의 “악”, “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와서 공포에 떨
었다. 다음날인 5. 7. 10:00부터 10 : 30까지 조사관이 “동료 심상정

의 소재를 대라”고 하며 머리채를 잡고 의자 뒤로 고개를 꺾은


다음 주먹으로 얼굴올 무수히 구타하여 코피가 터쳤지만 “오른
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먹요로 양쪽 눈부위만올 난타하며 추
궁하기에 그래도 “모른다”고 했더니 부하칙원에게 “고문실로 데
리고 가서 물고문을 시키겠으니 옷을 갈아 업히라”라고 지시하고
나갔다. 그뒤 물고문은 하지 않고 다만 죄수복 같은 파란 옷으로
갈아 업히기만 했는데, 그때 거울올 보니 얼굴이 붓고 눈이 충혈
되어 흰자위는 하나도 없었다 동일 15 : 00 경 “ ‘서노련’과 관련된
행척에 대한 자술서를 쓰라”고 했다. 5월 8 일 자술서 중 “ ‘서노
련’의 토론명의회에 대한 부분이 자세치 않으니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쓰라. 그렇지 않으면 고문할 것이다” 라고 협박을
해서 3,4회에 걸쳐 자술서를 썼다. 그뒤 5. 12. 23:00경까지는 고
문당함이 없이 송파보안사에 있었는데, 더운물에 목욕시키고 맛
사지를 하여 주며 안티푸라민을 발라 주어 고문으로 생긴 맹 등
올 치료해 주었다. 당시 맛사지를 해준 여자가 영올 보고 “어떻
게 여자를 이렇게 구타할 수 있느냐”라는 말까지 했다.
138
(2) 5. 12. 23:00 경, 장안평에 있는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이첩되었고
5. 15.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남대문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6.3. 검
찰에 송치되었는데 시경에서는 고문행위를 하지 아니했다.

4. 피구속자 노정래의 경우
동인도 5. 6. 22:00 경 잠실 주공아파트 87 동 403호실에 서 검 문수,
손세환, 최한배, 유시주, 서혜경 등과 같이 송파보안사로 강제연행
되었는데, 아파트 방실에서부터 주먹과 발로 얼굴과 배 등을 구타
당하고 양손을 뒤로 하여 포숭줄로 묶인 채 숭용차로 연행되었으
며, 송파보안사에 도착, 하차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10 여 명의 요
원들이 다짜고짜로 달려들어 손 과 발, 몽둥이 등으로 전신을 무수
히 구타하여 쓰러졌다. 통일 24:00 경 지하 1 충 조사실로 데리고 가
서 옷을 벗걱 알몸으로 무릎을 꿇어 앉게 하고 다음날 09:00까지
부동자세로 있게 하며 장을 차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인 5. 7. 09:
00 경 죄수복 같은 파란옷으로 갈아 업히고 5. 13. 까지 조사하였는
데, 행적에 대한 자술서 작생을 요구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쓰
지 않는다고 주먹과 옹퉁이로 한두 차례 가볍게 때려 얻어맞고 5.
12. 23 :00 경 장안평에 있는 서울시경으로 이첩되었다. 서울시경으로
이청된 뒤 5. 15.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중부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δ 3. 검찰애 송치되었는데 시경에 있을 통안 고문을 당하지 아니했
다.

5. 피구속자 유시주의 경우

동녀도 5. 6. 22:00 경 잠실 주공아파트 87동 403 호실에서 검문수,


손세환, 최한배, 서혜경, 노정래 등과 같이 송파보안사로 강제연행
되었는데, 아파트 방실에서부터 손을 뒤로 하여 수갑을 채우고 포
숭으로 몽과 함께 묶어 연행하고, 송파보안사에 도착하자마자 몽퉁
이로 수없이 때려 얻어 맞았다 그뒤 지하조사실로 데리고 가서 속
옷(런녕샤츠, 팬티)만 남겨놓고 겉옷을 벗게 한 다음 꿇어앉게 하
고 조사관이 몽둥이를 들고 “심상정의 소재를 대라”고 해서 “모른
다”고 한 바, “너 죽을래”하며 전등불을 회미하게 하고 발로 두어
번 걷어차서 얻어맞았다. 그때 옆방에서 얻어맞는 비명소리가 들렸
139
다. 다음날인 5. 7. 다른 조사실호 옮겨 자술서를 썼는데, 8 얼인지
9 일인지 15 :00 경, 키크고 뚱뚱하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수사관이
자솔서 내용이 허위라고 하며, 죄수복 같은 파란옷으로 갈아입히
고, “물 좀 먹어야겠다”고 하며 양손올 포숭줄로 묶고 그 묶인 손
의 양 팔을 벌려 그 안에 양 무릎을 솟아 나오게 한 다음 양 팔과
양 무릎 사이에 목봉을 끼워 넣어(속칭 비녀꼽기)그 목봉의 양 끝
을 책상과 의자 위에 올려 걸쳐 놓아서 마치 목봉에 통닭구이 시
통닭이 매탈린 듯한 자세로 만들고 얼굴에 젖은 수건울 대고 그 위
에 젖은 수건을 대고 그 위에 바가지로 물을 약 10분 간 붓고는 다
른 사람의 진술서를 보이며, “사실이 이런데 왜 허위로 썼느냐”고
하며, 위 다른 사람의 자솔서 내용대로 자백하기를 강요하기에 “그
렇게 쓰겠다”고 했더니 풀어 주었다. 그 뒤 5. 10. 11 :00 경, 새로운
조사관이 “성상정의 소재를 대라”고 하며 주먹으로 얼굴을 10 여 회
때리고 위와 같은 속칭 비녀꼽기 고문을 약 20분 간 하였다. 그리
고 송파보안사에 있는 동안 고문으로 인한 상흔치료를 위하여 더운
울 목욕, 맛사지, 안티푸라민 등 치료를 받았다. 그 뒤 5. 12. 12:
30 경, 장안평에 있는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이첩되어 5. 12. 구속영

장이 발부되고 중부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가 6. 30. 검찰에 송치되었

는데 시경에서는 고문당하지 아니했다.

6. 위와 같이 군수사기관이 민간인을 연행하여 구속영장 없이 10


일 간이나 불법구속한 것만으로도 크나큰 인권침해행위여서 크게
문제되어야 할 것이어늘 더 나아가서 전기고문, 고추가루물 고문
등 가혹행위 를 자행하였다 함은 인간의 양심상으로나 법률상으로나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사라고 아니할 수 없융니다.


그러므로 이에 관련된 자들을 가려내어 관계법률에 의하여 엄중
한 처벌을 받도록 조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서류 l. 조사보고서 사본
2 ‘ 조사보고서 (2 차) 사본
1986. 6. 18.
-‘

140

대한번호사협회 인권부위원장 류 택 형
부위원장 강 신 도a
-「

국방부장관 귀하

2- 다. 고문흔적 증거보전 청구서

증 거 보 전 청 구 서

청구인 피의자 검 문 수(성동 경찰서 수감중)


번호인 변호사 조 숭 형
강 철 선
변 정 수
피의자는 1986‘ 5. 6. 밤 11 시 경 송파보안사에 연행되어 독방에
구금되어 있다가 1986. 5. 15. 구속영장(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집행
과 동시에 서울시 경찰국에 인계되어 성동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
어 있는 바, 공판 청구 전에 미리 중거를 보전해야 할 긴급한 사유
가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중거보전올 청구함.

청 구 취 지

피의자의 신체에 대한 검중 및 감정을 시행하여 주시기 바람.

01 C>
1T

피의자는 소영자료로 첨부된 조사보고서 기재내용과 같이 군수사


기관에서 폭행, 전기고문, 물고문 둥에 의하여 허위자백을 강요당
하였는 바, 수사기관에 있을 때 작성된 진술서, 자솔서, 피의자 신
141

문조서 등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기 위한 피의자 측의 증거를 확보하


기 위하여는 현재 남아 있는 고문의 혼척과 고문후유증인 신체기능
장해 동을 검증, 감정 동 방법에 의하여 미리 보전해 두어야 하고,
긴급히 보전하지 아니하면 중거가 인멸될 우려가 있으므로 조속한
보존을 바랍니다.

1986. 5.

승 철 정

형 선 수
조 카。뷔}
번호인
변호인
변호인


서 형 사 지 방 법 원 귀

2- 라. 서울형사지법 기각 결정문
T

서 t 형 사 지 방 법 원
결 정

사 건 36조 655 중거보전

피의자 검 문 수
청구인겸
변호사 조숭형, 강철선, 변정수
번호인
주 문 이 사건 중거보전 청구를 기각한다.
이 유 변호인들의 이 사건 중거보전 청구의 요지는, 피의
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986. 5. 6. 군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같은 달 15 일 서울시 경찰국에 인계되어 현재 성동경
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는데, 군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
폭행, 고문 등의 방법으로 허위자백을 강요당하며, 피의자의 진술
서, 자술서, 피의자 신문조서 등이 작성되었으므로 위 서류들은 그
... ---,.

142

작성과정에서 임의성이 없고, 이를 이유로 중거능력을 부인하려 하


는데 그 탄핵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현재 남아 있는 피의자의 신
체상의 고문의 흔적과 고문 휴유증인 신체기능 장해 등올 제 1 회 공

판기일 전에 미리 조사하여 보전하도록 피의자의 신체에 대하여 검


증과 감정을 구한다고 함에 있다.
살피건대, 형사소송법 제 184조의 규정에 의한 증거보전은 피고인
의 경우, 그 방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 1 회 공판기일 전에 미리
조사하지 않요연 중거로서 사용하기 곤란한 사유가 있는 때, 그 소
명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할 수 있다 할 것인 바, 이 사건 증거보
전 신청이유에 의하면 군수사기관에서 작성된 피의자에 대한 진술
서, 자술서 및 피의자 신문조서의 임의성을 탄핵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 • 보전함에 있다는 것이나,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
의자 신문조서나 그 앞에서 작성된 진술서 또는 자솔서는 피고인이
나 그 변호인이 공판정에서 그 내용을 인정할 때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로 할 수 없으므로 특별히 그 중

거능력 을 탁핵하기 위하여 제 1 회 공판기일 전에 미리 그 탄핵증거


를 수 접 • 보전할 필요는 없다 할 것이고, 달리 피고인의 방어권을
확보하기 위 하여 미 리 조사하지 않으면 그 증거 로 사용하기 곤란한
사유가 있다고 볼 만한 소명이 없다.
그 렇다면 이 사건 증거보전 청구는 그 사유의 소명이 없음에 돌
아가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1986. 5. 29.

판 사 손 평 업

2- 마. 항고 및 기각 결정문
하。

;야
고 0
143


문 인
、깅 번
항고인 피의자

스。처

조 강 변


선 수
E 처。
서울형사지방법원 86초 655 증거보전청구 사건에 관하여 위 법원

은 1986. 5. 29. 청구를 기각하였으므로 항고를 제기함.

승} 고 취 지
C그

원결정을 취소한다.
피의자의 신체에 대한 검증 및 강정을 시행한다 라는 결정을 구

함.

01 --
1T

원성은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나 그


앞에서 작성된 진술서 또는 자술서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공판정
에서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부인하면 중거로 할 수 없으므로 특별히 그 중거능력올 탄핵하기
위하여 피의자의 신체를 검중, 감정하여 고문 흔적을 보전할 필요
성은 없다는 이유로 증거보전청구를 기각하였음.
그러나 경찰이나 군수사기관 등에서 가한 고문퉁 가혹행위가 검
찰에 송치된 이후의 수사과정에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러한
경우에는 검사 작성의 피의자 신문조서의 기재내용 또한 증거능력
이 부인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피의자가 군수사기관에서 어떻게 고
문 퉁 가혹행위를 당하였는가 하는 정을 미리 보전해 둘 절실한 필
요가 있는 것임.
법원이 이러한 증거보전청구를 과감하게 채용하여 중으로써 수사
기관의 고문을 사전에 방지하는 효과가 클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심
이 타당성 없는 형식논리를 내세워 중거보전청구를 기각하였음은
‘ •

144

필시 인권옹호에 관한 법관의 막중한 사명감올 저버리고 수사기관


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난을 변할 수 없 을 것임.

1986. 6. 2

항고인의 변호인

승 철 정

형 선 수
조 카-벼〕
변호사


서 형 사 지 방 법 원 귀

바。aT처。
형 제

서 사 지 법 원
3

사 건 86호 7 증거보전기각결정에 대한 항고

항고인 검 문 수
(청구인) 변호인 변호사 강철선, 변정수

%
ζ니

원결정 서울형사지방법원 29 . 자 86 . 5. 29 자 86

초 655 결정
주 이 로

문 항고를 기각한다
유 항고인은 당원 소 속 판사 손평업이 1986. 5. 29 . 자
당원 86초 655 증기보전사건에 관하여 한 증거보전청구 기각결
정에 대하여 항고를 제기하였으나 증기보전사건의 당당 법관은 형
사소송법 제 416조 소정의 재판장이나 수명법관에 해당하지 아니하
145
므로 그가 한 결정은 같은 법조에 따른 준항고의 대상이 되지 아니
할 뿐더러 법원이 아닌 1 언의 판사로서의 결정이므로 같은 법 제
403조 제 2항에 의한 항고의 대상도 되지 아니하여 결국 중거보전청
구에 관한 결정에 대하여는 항고를 할 수 없다 할 것이므로 형사소
송법 제 413조, 제 407조에 의하여 이 사건 항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1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1986. 6. 12

안 이 조

문 동 관

태 명 행
재판장 판사
판사
판사

2- 바. 재 항고장
하。

재 고 ;자
C그

재항고인 피의자 검
p ιι

-;i:- -「

번호인 변호사 조 숭 형
강 철 선
변 정 수
원결정 서울형사지방법원 1986 . 6.12. 자 86 포 7 결정

재항고인은 1986. 6. 14 . 원결정문을 송달받았음

재 항 고 취 지

원결정을 취소하고 다시 상당한 재판올 구함


146

01 C>
Tr

원섬은 증거보전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은 항고대상이 될 수 없다


는 이유로 항고를 기각하였으나, 증거보전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은
형사소송법 제 402조 소정의 ‘법원의 결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설사 형사소송법 제 184조에 의한 증거보전청구가 원심의
견해와 같이 법원에 대한 청구가 아니고 법원이 아닌 1 인의 판사에
대한 청구라 하더 라도 같은 법조 제 2항은 “전항의 청구를 받은 판
사는 그 처분에 관하여 법원 또는 재판장과 동일한 권한이 있다”라
고 규정하고 있고 이 사건 증거보전청구를 심리한 서울형사지방법
원 판사 손평엽은 법원의 권한을 행사하여 결정의 형식으로 청구를
기각하였으니 이는 형사소송법 제 402조 소정의 항고할 수 있는 법
원의 결정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증거보전청구를 기각한 결정은 항고의
대상이 아니된다는 이유로 이에 대한 항고를 기각하였으니 이는 필
경 형사소송법 제 184조 소정의 증거보전청구와 같은 법 제 402조 소
정의 항소할 수 있는 ‘법원의 재판’에 관하여 법리를 오해한 것이
분명하므로 원심 결정을 취소하여 다시 상당한 재판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86. δ 17.
승 철 정
조 카。벼〕

형 선 수

번호인 변호사

대 법 원 귀
그i」

「E
147

3. 부천서 성고문사건 관련활동

3 - 가. 성고문사건 조 사 결 과에 대한 건의문

성고문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건의

본 협회는 1986. 7. 7.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들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경찰의 성고문사건을 조사케 하였는 바, 그 결과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건의합니다.


〈그
Cl

l. 피해자는 서울대학교 가정대학 의류학과 4학년 재학중 1985. 7


경 제적된 뒤, 1986. 5. 20. 부천시에 있는 (주)성성 공원으로 위장
취업하였다가 그 사실이 단로날까 두려워서 같은달 28 일 자진하
여 퇴직한 여자로서, 1986. 6. 4. 위장취업시 공문서(주민동록중)
를 위조하였다는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연행되어 구속수사를 받

고, 인천지방검찰청에서 공소제기를 당하여 현재 인천소년교도소


에 수강되 어 있으면서 공판대 기 중에 있는 사람임 •
2. 위 조사위원 (변호사 ; 검춘봉, 변정수, 하경철 , 강철선)들은
1986. 7. 8. 15 : 15 ∼ 16 : 15 경까지 사이 인천소년교도소 보안과장실
에서 성고문을 당하였다는 피해자를 접견하고, 피해자 에 게 피해
자의 사선 변호인 9명이 작성한 고발장을 제시하여 읽게 하고 그
고발내용이 사실이냐고 물 었던 바 ,
가) 피해자는 1986‘ 6. 4. 부천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으면
’ ‘

148
서 피의사실인 공문서 위조 사실에 대하여 모두 순순히 자백
하였는데도 “ 5.3. 인천사태로 수배된 자들 중 아는 사람과 그들
의 행방을 대라”고 추궁하여 “모른다”고 했더니 가해자인 형사
가 고발장에 기재된 고발내용과 같이
「) 1986. 6. 6. 04:30 ∼ 06 : 30까지 1 충 조사실에서 “나는 5.3
사태때 여자만 다루었다 그때 모두 아랫도리를 벗겨서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까 다 불더라, 네 자궁에 봉을 접어넣어야만
불겠느냐”고 협박하고, 바지단추와 지퍼를 강제로 풀어 밑으
로 내리고, 브래지어를 들추어 멀어 올리면서 “ 너 처녀냐 자

위행위 를 해 본 적이 있느냐, 젖가슴을 보니 처녀같지 않다”


라고 모욕적인 말을 해대며, 옆에 있는 형사에게 “고추가루
물 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하는 둥 겁을 주고는 책상 위에 올
라서게 하는 동의 가혹행위를 하였고
니 1986. 6. 7. 21 :00 경에는 1 층 수사과 조사실에서 형사 2 명으

로 하여금 피해자의 양팔을 등뒤로 하여 수갑을 채우게 하고


무 릎을 꿇어 앉게 한 뒤, 양 무릎 사이로 각목을 끼워 넣고

다리와 허리등을 짓밟게 하고 “너 같은 년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협박하여 피해자를 기진맥진하게 한
뒤 형사 2명을 내보내고 그 옆에 있는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21 : 30 ∼ 23:00까지 단독으로 피 해 자의 브래 지 어 를 풀어

올리고 바지를 풀어 지퍼를 내린 뒤 국부에 손을 대고, 팬티


마저 벗기고는 젖가슴을 만지며 자기의 몸을 피해자의 옴에
대고 비벼대다가 자신은 의자에 앉고 피해자를 바로 앞에 꿇
어 앉게 하여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게 하고, 피해자의 얼굴
을 앞으로 잡아당겨 피해자의 업이 자신의 성기에 닿도록 하

면서 자신의 성기 를 피해자의 업에 넣으려고 하다가 피해자


.의 상반신을 책상 위에 옆드리게 하고 그 등뒤에서 자신의
성기를 피해자의 국부에 대고 미는 등 강제추행행위를 한 것
이 사실이라고 하여서
나) 위 조사위원 들은 피해자에게 “위 고말장에 적힌 성고문행위
내용이 사실과 다름 없다는 확인서를 써 줄 수 있겠느냐”고 하
였더니, 피해자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자펄로 “고영구
149

변호사 외 8 명이 제출한 고발장에 적혀 있는 본인이 당한 성


고문 피해내용은 진실업올 밝혀 두고, 이후에 본인이 이와 다르
게 얘기한다면 이는 본인의 진의와 다른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
다”라는 내용의 확인서를 쓰고 무언을 찍어 위 조사위원들에게
교부하여 주어 그 자펼확인서를 받았는데,
다) 교도소 당국에 “위 확인서에 찍힌 무인이 피해자의 우인이
틀렴없음을 확인하여 달라”고 하였던 바, 교도소 보안과장 검

권수가 “이 확인서는 교도소장의 집필허가 없이 작성한 것이라


외부로 내보낼 수 없고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보관하고 있겠으며 법적 절차에 따라 법원이 요구하면 그때 제
시하겠다”고 하면서 내주지 아니하여 가지고 나오지 못했음.
3. 위 조사위원들은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동일 17:30경 인
천지방검찰청에서 성고문사건에 대한 수사진전 내용을 듣고자 검
사장과 성고문사건 담당인 김수장 부장검사를 만나려고 했으나
각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공문서위조사건
만을 수사한 남충현 검사만을 만났는데, 남충현 검사는 “피해자
에 대한 공문서위조피의사건 수사 도중 6. 23. 오전 교도관으로부

터 피해자가 손태봉 변호사와 접견하는 자리에서 경찰한테 성고


문 당하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는 전화보고를 받았다. 그 보고
를 받고 그날 오후 피해자를 불러 조사하였더니 경찰한테 성고문
을 당했다고 해서 가해자인 형사를 불러 조사한 바 그런 일이 없
다고 부인했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성고문사건은 가해자인 형사
와 피해자 단 물이 있는 콧에서 한 것인데, 가해자인 형사가 부
인하고 있어 증거가 약한데다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명예와 장
래를 위해서 문제삼는 것보다는 덮어두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권유한 일이 있다. 그런데 그뒤, 피해자가 성고문 당하였다고 고
소를 하고 피해자의 변호인들이 고발을 하였다. 그리고 가해자인
형사는 피해자를 무고 • 명예훼손죄로 맞고소를 제기하여 그 성고
문사건에 대한 수사는 검수장 부장검사가 담당하게 되어 자기는
손을 떼게 됐다”라고 말하였음.
4. 위 조사위원들은 성고문사건이 “성고문을 당했다”, “그것은 허
위로서 무고다”라고 맞서고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맞고소
150

샤건이라 공형을 기하기 위하여 성고문을 당하였다는 부천경찰서


조 사실을 둘러보고, 가해자인 형사 퉁 경찰측의 진술도 들어 볼

계획이었으나 7. 16.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성고문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바람에 조사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만두었다.


5. 조사위원들의 의견
가) 조사위원들이 피해자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피해자의 진솔태
도는 성실하고 진지하였으며, 그의 진술내용도 대학교 4 년 정
도의 처녀로서는 알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경험자가 아

니연 말할 수 없는 그러한 여러가지 구체적인 사실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성고문을 당하였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진실한 사
실로 믿어지고 받아들여졌음
나) 검찰의 이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에 대하여
인천지방검찰청은 7. 16. 성고문사건에 대하여 “가해자인 형

사가 피해자에게 성적 모욕행위를 가한 사실은 인정할 수 없


고, 다만 δ 6. 04 : 00 ∼ 07:30까지 사이 피해자에게 재킷을 벗게
한 후 티셔츠를 업은 가슴부위를 손으로 3,4 회 쥐어박고, 6. 7
21:00 ∼ 23:00 까지 사이 피 해 자의 가슴부위 를 손으로 3, 4회 쥐어
박아 폭행을 가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가해자인 형사는 10 년 이
상 경찰에 성실히 봉직하였고 잘못을 갚이 반성하고 있으므로

기소유예처분할 방침이라”고 그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는 바, 위


검찰의 수사내용은(이 부분은 신문지상에 발표된 검찰의 부천
서사건 수사결과 발표문과 수사담당 부장검사와의 일문일답을
근거로 하였음)
「) 가해자인 형사는 처음에는 “성적 모욕행위를 가하였다”는
피해자의 고소내용을 전적으로 부인하연서 알리바이를 주장,

피해자가 “성적 모욕을 당했다”고 한 일시에는 조사를 한 일


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차차 피해자의 주장 사실에 접근하기
시작, 피해자가 당했다고 주장한 일시 장소에서 조사를 한
것이 사실이고, 피해자의 젖가슴을 쥐어 박은 것도 사실이라

고 자백하기에 이른 점으로 보아 “성적 모욕을 당했다”는 피


해자의 진술은 신벙성이 있고, 가해자의 진술은 젖가슴 부위
를 쥐어박은 사실만을 자백함으로써 성적 모욕을 가한 이 사
/

151
건의 핵심적인 행위를 은폐하려는 것으로 보여지며
L) 일반형사사법의 운영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1 대 1 일
때,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고, 가해자의 진술이 범행
을 부인하였다가도 피해자의 진숨을 일부 시인하는 등 갈망
질항 할 때에는 피해자의 진숨을 중거로 하여 유죄판결을 선
고하고 있는 실정이며,
c.) 피해자의 본래의 피의사실은 공문서위조, 통행사 등이고,
그에 대하여는 보두 순순히 자백한 관계로 고문할 필요가 없
음은 물론 새벽이나 밤늦게까지 조사할 필요도 없는 사건인
데, 가해자인 형사는 피해자를 6. 6. 에는 새벽 4시부터 6시
반까지 6. 7 은 토요일인데도 밤 9시부터 11 시까지 조사하였

으며, 사법경찰은 직무상 경찰리를 참여시키고 경찰관이 조


사해야 하는 등, 2인이 조사를 하게 되어 있는데도 그를 무
시하고 여자인 피해자를 그것도 새벽과 갚은 밤에 단독으로
조사하는 등 상식과 경험에 반하는 조사활동올 하였다는 점
에서 가해자인 형사의 행동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엿볼 수 있
는데도 위와 같은 점을 간과하고 성고문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점은 납득할 수 없으며,
2) 검찰이 인정한대로 가해자인 형사가 피해자의 젖가슴을 쥐
어박는 폭행행위를 한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근 국제인
권규약에 가입할 준비를 하고 있는 정부의 움직임이나 인권
이 국내의 큰 문제로 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구속수사함
이 마땅한 일이라고 여겨지는데도 기소유예처분할 방침이라
고 하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처사로 생각합니다.
6. 결 론
가) 본 협회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성고문을 당하였다는 피해자의
주장내용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고 가해자의 변소는 전혀
신벙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고문사실을 부인하는 듯한 결론
을 내린 검찰의 수사결과발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므로 명
백한 재수사를 해야 하며
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검찰발표에서 인정한 가해자의 현재
나타난 범죄사실만으로도 구속기소하기에 충분하므로 검찰은
152

앞으로의 고문사건의 근절을 위하여 즉각 구속기소할 것을 촉


구하는 바업니다.

1986. 7. 22
대 한 번 호 사 협 회
협 회 장 김 드g
」 호

3- 나. 인천지검 보도자료

부천경찰서 수사시비사건 수사결과

1 수 사 경 위

• 인천지방검찰청은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절취, 자신의 주민퉁록


중으로 변조하여 부천시 소재 주식회사 성신에 위장취업한 사실

과 관련하여 절도죄와 공문서 변조죄 등으로 인천소년교도소에


구속되어 있던 권 00 으로부터 자신이 부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
을 당시 부천경찰서 수사과 근무 문귀동 경장으로부터 폭행과 성
적 모욕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고소장을 86. 7. 3 접수하고 문

귀동으로부터도 86. 7. 3. 권 00 이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내용의 고소장과 7. 5. 허위고소로 무고하
였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각각 접수하여
• 86. 7. 3 ∼ 7 16 까지 동 고소사실들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집
중수사를 전개하였음 •
• 인천지검은 그 동안

- 사건 당사자인 위 문귀 동올 7 회 , 권 00 을 8회 소환, 조사하


였고
- 관련 참고인 43 명을 소환, 진술을 들었으며
153

- 또한 사건현장에 대한 변밀한 실황조사를 실시하는 등 가능한


모든 조사를 실시하였음.

2. 수사결과

• 권 00 의 고소사실 중 86. 6. 7. 21 :00-23:00사이 문귀동이 권 O

O을 조사하면서 성적 모욕행위를 가했다는 부분은


- 문귀동이 조사를 행한 조사실은 2면 벽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

어 안이 들여다보이고 조사실 뒷편에 있는 무기고의 전등불빛


이 조사실 안으로 비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바로 옆의 조
사실에서도 다른 경찰관들이 날씨가 더워 모두 문을 열어 놓은

채 다른 피의자를 조사하연서 문귀동의 조사실 앞을 왔다갔다


한 사실이 있었으며
- 또한 권 00 과 함께 부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최모
여인 (32세), 박모 여인 (30세) 둥도 참고인 진술에서 조사받고

권 00 이 폭행을 당했다는 말은 유치장에서 한 일이 있으나 성


적 모욕을 당했다는 말은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고 옆
조사실에서 조사를 한 경찰관 깅해성, 권오성, 박경천 동도 그

와 같은 사실을 목격하거나 감지한 바 없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추어 사실로 인정할 수 없음 •
• 그러나 권 。。 의 고소사실 중

- 86. 6. 6 04:00 ∼ 06:30 . 문귀통이 부천경찰서 제 5조사실에서 권


00 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천소요사건 관련수배자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아는 사람의 이릉과 주소를 대라고 거듭 요구했
으나 권 00 이 완강히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권 00 에게
자켓을 벗게한 후 티샤스를 엽은 가슴부 위 를 손으로 3 ∼ 4회 쥐
어 박아 폭행을 가한 사실과
- 86. 6. 7 21:00 ∼ 23:00. 문귀동 이 부천경찰서 제 2조사실 에 서 같

은 내 용을 조사하던 중 권 00 이 전일과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권 00 에게 또 다시 가슴부위를 손
으로 3 ∼ 4회 쥐어박아 폭행을 가한 사실 등은
- 문귀동 이 자백하고 있을 뿐 아니 라 기타 중거 에 의하여 사실
154

로 인정됨

3. 처 리

• 이상과 같이 권 00 의 고소사실 중 성적모욕행위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나 폭언 • 폭행 부분은 일부 사실이 인정됨 •
• 폭언 • 폭행 부분은 문이 조사에 집착한 나머지 저지른 우발적인
과오로서 이로 인해 이미 파면 처분을 받았으며

• 문귀동은 10년 이상 경찰에 봉직하면서 성실하게 근무하여 왔


고,

• 현재 자신의 과오를 갚이 반성하고 있으므로 검찰은 이와같은


정상을 창작 문귀동을 기소유예 처분할 방침임 .

(자 료)

r 사건의 성격

• 급진좌경사상에 의한 노학연계투쟁을 전개해 왔던 권 00 의 ‘성


적모욕’의 허위사실 주장은 운동권 세력이 상습적으로 벌이고 있
는 소위 의식화투쟁의 일환으로서

• 폭행사실을 성 모욕행위로 날조 • 왜곡함으로써 자신의 구명과


아울러 일선 수사기관의 위신올 실추시키고 반체제 혁명투쟁을
사회일반으로 확산시켜 정부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판단됨 •
• 이러한 사실은 동 권 00 이 학원 의식화투쟁을 벌이다가 성적불
량으로 대학 4년 제적 후(서울대 가정대 의류학과), 부모의 권유
도 뿌리치고 가출한 후 위장취업으로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어 반
정부, 반체제 투쟁활동을 전개한 전력을 볼 때에도 뚜렷하게 나
타나고 있음.

1986. 7. 16
인천지방검찰청
155

3- 다. 검찰발표에 대한 변호인단의 견해

검찰 발표에 대한 변호인단의 견해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접한 우리들 변호인단은 분노에 앞서서


깊은 슬픔과 절망을 가눌 길이 없다.
우리가 아는 한 이 사건은 그 동안에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미 그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인천지방검찰청의 수사언력이 총동원

되 다시 피 한 가운데 연 일 불철주야로 사건 당사자와 참고인 43 명 에


대한 집중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권양의 모든 주장은 하나하나 진실
과 부합됨이 명백히 업중되어 갔고 반면에 범행 은폐를 위하여 꾸

며댄 문귀통의 모든 주장과 그를 비호하기 위해 조작된 부천서 간


부진 및 형사들의 모든 진술 내용은 낱낱이 거짓엄이 판명되었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모든 검찰수사 결과는 권양측의 일방적이며
완벽한 숭리로 귀결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검찰은 그동안
전례없이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이 사건 수사에 임하였으며 그
결과 권양의 성고문 주장이 더 이상 의심할 여지 없는 확고부동한
진실임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고심 끝에 찾아
낸 진실을 발표 과정에서는 허겁지겁 왜곡하고 은폐해 버렸다.
“폭언 • 폭행만 있었고 성적 모욕은 없었다”는 검찰의 발표 내용은
검찰이 그동안 모든 노고를 기울여 도달한 수사 결론을 스스로 뒤
엎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하여 이같은 어처구
니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경위에 대하여 의혹을 품지 않
을 수 없다. 이번 검찰발표 과정에 검찰권의 독립적 행사를 저해하
는 외부세력의 작용이 개업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
버렬 수가 없다. 항간의 소문대로 당초에는 문귀동을 구속할 방침
이었다가 급작히 기소유예 방침으로 전환한 것이었다면 그 이유는
f,

156
대체 무엇인가 ? 검찰의 소신과 명예는 어디로 갔는가 ?
우리는 검 찰의 발표 내용을 믿지 않는다.
국민들 중 누구도 검찰의 발표 내용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단언하거니와 다른 누구보다도 검찰 자신이 스스 로의 발
표 내용을 믿지 않을 것이다.

2
우리가 검찰의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문귀동은 당초에 권양을 영예훼손죄로 고소하면서 문귀동 본인


이 권양을 6. 7. 저녁 7:45 경부터 9:45 경까지 이흉기 형사 등의 업
회 아래 단 한 차례 조사한 일밖에 없다고 주장하였고 또 6. 6 에
는 서에는 출근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당일 송추에 놀러갔
다는 얄리바이까지 제시하였다. 문귀동은 검찰에서 조사받는 과
정에서도 당초에는 완강하게 위 주장을 유지하다가 알려바이가

깨어지고 제반 관계 증거에 의하여 위 주장이 거짓임이 명백히


드러나게 된 후에야 바로소 진술을 번복하여 권양의 주장대로 자
신이 권양을 6. 6. 새벽과 6. 7. 밤중에는 9시경부터 11 시경까지
업회 형사가 없는 가운데 조사했다는 사실을 자백하였다. 부천서
형사 이홍기는 실제로는 6. 6. 새벽 문귀통이 권양을 조사할 당시

(‘ 1 차 성고문’ 당시) 업회하였던 자였고 권양이 누차 그 사실을


지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문귀풍의 허위진술을 뒷받침해 주기
위한 목적에서 굳이 6. 6. 새벽에 입회한 사실을 부인하연서 6. '7.
저녁에 자신이 문귀동의 조사현장에 업회하였던 것처럼 허위진술

을 하다가 나중에 와서야 이를 번복하고 권양의 주장 이 진실임을


자백하였다.
사건 당시의 부천서 수사과장이었던 경감 유회수 또한 검찰 조
사시 문귀동이 6. 6. 새벽에 출근한 사실이 없는 것처럼 허위진술
을 하였고 나아가서는 부천서장 옥봉환이 δ 6.아침 10시 이후에
야 서에 출근한 것처럼 허위진숨을 하였다. 그러나 수사결과 위
욱봉환이 권양의 당초 주장대로 6. 6. 새벽에 출근하였던 사실이
157
판명됨으로써 위 유회수의 진술은 허위였음이 드러났다.
부천서 형사 검해성은 당초에는 위 문귀동의 거짓말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6. 7. 밤에 문귀동이 권양을 조사할 때 형사 이홍기
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거짓진술을 하다가 나중에 이홍기가
진술을 번복한 후에야 비로소 당일 이홍기를 본 사실이 없다고
자백하였다.
뿐만 아니라 부천서 형사들 중 문귀동이 6. 7. 밤 조사시 옆에
업회했다고 주장한 형사들과 그날 밤 권양을 유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하는 형사까지 나타나서 위 문귀동의 허위진술 내용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하다가 나중에 모두 조작임이 판명되었다.
요컨대 문귀동의 당초의 허위진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부천서
전체가 동원되다시피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검찰발

표와 같이 문귀동이 권양을 조사할 당시 ‘조사에 열중한 나머지


우발적인 과오로 인하여’ 권양의 가슴을 주먹(손 등)으로 서너 차
례 톡톡 건드린 것이 이 사건의 전부라고 한다면, 대체 무엇 때
문에 문귀동은 위와 같이 조사 회수, 조사 시간, 업회 형사 유우
둥 가장 기초적인 사실에 관해서부터 터무니없는 허위주장을 조
작하여 완강하게 버티었으며 더구나 무엇 때문에 부천서 전체가

공모하다시피하여 강히 조직적으로 검찰을 기만하면서까지 집요


하게 위 문귀동의 허위주장을 감싸고 돌았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검찰 발표 내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첫번째
이유이다.

(2)
검찰이 ‘성적 모욕행위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
은 ‘ 양쪽(권양과 문귀동)주장이 크게 대립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구
체적인 목격자도 없다’( 『조선일보』 86. 7. 17. 보도)라는 것이다.
원래 강간이나 강제추행, 간통 등 성범죄는 목격자가 없는 가
운데 일어나는 것이 통례이다. 그켜므로 이같은 밀실범죄로서의
특성을 감안하여 강간 등 성병죄의 경우에는 제 3자의 직접 충언
이 없더라도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제반 정황에 비추어 경험칙상

수공할 수 었올 정도이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써 얼마든지 유죄


158

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확립된 판례의 태도인 것


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권양과 문귀동 중 어느 쪽의 주장을
믿어야 할 것인가?
43 명의 참고인들을 조사한 끝에 모든 세부적인 정황에 이르기
까지 어느 것 한 가지도 사실과 다른 점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권양의 시종일관된 진술 내용과, 처음부터 얄리바이까지 조작해
가며 어느 것 하나 사실과 부합하는 점이 없는 허위주장을 내세
우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던 끝에 관계증거에 의하여 파탄
에 부잊치자 어쩔 수 없이 ‘약간의 폭언 • 폭행’ 사실만을 자백하
기에 이르렀다는 문귀동의 진솔 내용 중 어느 쪽을 믿고 어느 쪽
을 배척하여야 할 것인가?
도와줄 사랑 하나 없는 고독한 수강생활 속에서 수치성과 굴욕
감 때문에 오랜 번민과 망설임을 거쳐 마침내 여성으로서의 전도
를 회생하는 결단을 내리고 차마 업으로 옮길 수도 없는 처참한

피해 사실을 눈물로써 호소하기에 이른 스물세 살의 미혼처녀의


주장과, 후안무치하게도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내세우며 ‘욕이라
도 한 마디 했더라면 억울하지나 않겠다’고 병행을 깡그리 부인
하고 도리어 피해자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기까지 하였던 문귀동

의 주장 중 어느 쪽을 믿고 어느 쪽을 배척하여야 할 것인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검찰 발표는 결국 ‘폭언 • 폭행’ 부분까지는 문귀동이 자백했으
니 사실로 인정하고 그 이상의 ‘성모욕’ 행위는 문귀동이 자백하
지 않았으니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문귀
동에 대한 이같은 절대적 신뢰가 대체 어떻게 하여 형성된 것인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검찰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는 두번째 이유이
다.

(3)
검찰발표는 6. 7. 밤 9시부터 11 시까지 문귀동이 권양을 조사랬
던 조사실이 “2 연벽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안이 들여다 보이고
조사실 뒷편에 있는 무기고의 전등불빛이 조사실 안으로 비치고
) 59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다른 경찰관들이 문귀동의 조사실 앞을


왔다갔다 한 사실이 있었으며---위 경찰관 깅해성, 권오성, 박경
천 동도 그와 같은 사실(성고문사실)을 목격하였거나 감지한 바
없다고 진술” 하였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성고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단정하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위 조사가 경창서 내에 대부분의 직원이 퇴근하
고 없는 토요일 갚은 밤중에 밀페된 조사실 내에서 이루어진 사
실, 검찰도 자인하듯이 당시 위 조사실 내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바깥마당에 있는 전등의 외광만이 마당쪽에 연한 유리창을 통하
여 겨우 영암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게 흘러들고 있는
가운데 문귀동과 권양 단 둘만이 대치하고 있었던 사실, 따라서

당시 조사실 바깜으로는 일반인이 왕래할 까닭도 없었거니와 설


혹 누가 왕래하였다 하더라도 유리창을 통하여 조사실 내부를 들
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였던 사실이 은폐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 위 경찰관 깅해성 등은 문귀동의 동료이고 검찰조사 과정에
서 문귀동의 거짓말을 뒷받칭하기 위한 허위진솔을 일삼다가 사
후에 탄로가 나자 진솔올 번복한 사실이 있어 그들의 진술 내용
을 도저히 신벙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셜령 그들이 밀폐되어 있는
문귀동의 조사실 바깡올 왔다갔다 했다 할지라도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이상 성고문 사실을 목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 너무
나도 당연한 일인데 어떻게 그들의 진솔 내용을 가지고 성고문이
없었음을 단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인지 실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것이 우리가 검찰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는 세번째 이유이

다.

(4)
검찰 발표는 “권양과 함께 부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최모 여인 (32세), 박모 여인 (30세| 등도…권인숙이 폭행을 당했다
는 말은 유치장에서 한 얼이 있으나 성적 모욕을 당했다는 말은
--

160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것 이 마치 “성적


모욕이 없었다”는 검찰의 결론을 뒤받침할 무슨 근거나 되는 것
처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권양이 2차 성고문을 당한 직후 유치장 내에서 위 두
여인에게 차마 피해사실 전부를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일부분 만
을 이야기한 일이 있다고 하는 점은 권양이 본 변호인단 접견 시
17. 2.)부터 밝혔을 뿐 아니라 검찰조사 과정에서도 당초부터 밝

힌 바이고 강제추행을 당한 처녀가 피해 사실을 곧 바로 타인에


게 전부 이야기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경험칙에 부합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위 두 여인의 진술 내
용이 권양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부
인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뿐더러 우리가 알기로는 위 두 여인은 검찰조사 과정에서 자신
들이 권양으로부터 “옷을 벗기고 젖가슴을 주무르더라”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분명히 진솔하였다. 그것이 어떻게 단순히
“폭행을 당했다”는 말만을 들은 것으로 둔갑하였는지도 알 길이
없다. 또 위 두 여인 외에도 권양과 함께 유치장에 있었던 김철
한이 권양으로부터 성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검찰에서 명백히 증언하였음에도 검찰 발표에서는 이 정에 관하
여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이것이 우리가 검찰의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는 네번째 이유
이다.

(5)
우리가 알기로는 부천서 형사 이홍기는 7. 14. 검찰에서 조사를
받£면서 6. 6 새벽 문귀동이 권양을 조사할 당시 자신 이 입회한
사실 및 그당시 문귀동이 권양의 유방을 주무르고 권양에게 발가
벗고 책상 위로 올라가라고 협박하고 권양의 바지 지퍼를 끌어내
린 사실을 분명히 시인하였다.
또 우리가 알기로는 부천서 형사 검해성은 7 ‘ 14. 검찰 에 서 추궁
당한 끝에 다음과 같은 취지의 진술올 하였다.
161
“ 6 7. 밤 문귀동이 1 호 조사실에서 권양을 조사할 당시 자신은
맞은편 방에 있었다. 문귀동이 자신에게 수갑올 가져오라고 하여
갖다 주었으며 그때 문귀동이 책상의자에 앉고 권양이 그 앞에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후 문귀동이 권양을 데리고 단 둘
이 2호 조사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장근 채 조사를 하였다. 조사
가 끝날 무렵 문귀동이 방문을 열고 수강키를 달라고 하여 갖다
주었다. 조사시간은 분명히 기억나지 않으나 밤 8시 이후부터 10
시반경쯤 되는 것 같다 조사실 안은 어두웠다. 조사 도중 권양
의 비영소리를 들었다.”
검찰이 발표에서 “성적모욕이 없었다”고 강변하는 것은 이같은

검찰의 조사성과를 스스로 뒤엎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6. 6. 새벽 다른 형사가 입회한 자리에서도 “권양의 수치심을
건드리기 위하여 ” 옷을 벗기고 젖가슴을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
고 하는 문귀동이 6. 7. 토요일 갚은 밤중에 자신의 조사실 안에

서 문을 걸어장그고 불을 끈 채 권양에게 수갑을 채워 놓고 한


시간 반 가량을 권양과 단 물이 있는 상태에서 아무런 성적 모욕
을 가한 일이 없다고 한다연 그것을 대체 누가 믿겠는가 ?
이것이 우리가 검찰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는 다섯번째 이유
이다.

16)
검찰 발표에 의하연 문귀동은 권양의 수치심을 건드리기 위하
여 웃옷을 벗게 한 후 f 가슴부위’를 주먹으로 몇 차례 쥐어박았다
고 한다. 처녀의 가슴이란 곧 젖가슴이다. 처녀의 젖가슴을 성적
모욕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구타한다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권양 자신은 시종일관 문귀동이 유방을 주물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검찰은 대체 무슨 근거에서 “주무른 것과는 크게 다르고

손등으로 가볍게 톡톡 건드린 것”이라고 단정하는가 ? 문귀동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대로 믿는다는 것인가 ? 만일 검 찰이 문


귀동의 비행을 은폐하거나 비호할 의사가 없었다면 최소한 “주무

른 것인지 손등으로 건드린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라고는 말했어


야 할 것이다.
.‘

162

이것이 우리가 검찰의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는 여섯번째 이


유이다.
그밖에도 우리가 검찰의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얼

마든지 있으나,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므로 이 정도로 줄인다.

3
우리는 권양에 대한 비열하고 악의적인 모함과 중상으로 가득찬

‘공안당국의 분석자료’라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정체불명의 ‘공안당국’이란 대체 누구인가 ? 검찰 발표문에는 그
같은 “분석자료”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니 검찰이 아닌 것만
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권양 사건을 조사한 당사자도 아닌 검찰 이
외의 ‘공안당국’ 이란 것이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권양의 피해사실

주장을 ‘운동권 학생의 상습적인 의식화투쟁의 얼환’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묻거니와 지금까지 ‘운동권학생들’이 ‘고문 • 폭행 • 추행 사건을
조작’한 전례라도 있단 말인가 ? 우리가 아는 한 지금껏 양성수들
이 제기한 수사과정에서의 고문 퉁 가혹행위 주장이 수사당국의 수
사기피로 인하여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채 묻혀 버린 얼은 있을지
언정 철저한 수사 끝에 조작된 허위주장으로 판명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더우기 명문대학까지 다닌 스물세 살의 처녀가 어떻
게 ‘의식화투쟁의 일환’으로 하필이면 추악한 성고문을 당하였다는
허위주장을 조작해 낼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공안당국’의 그 ‘분석’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고 어떤 논리적 근거에 업각한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기를 요구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번의 검찰발
표가 수사 이전에 이미 결론부터 내려놓은 저 ‘공안당국’의 ‘분석’에

억지로 발을 맞추기 위하여 검찰 자체의 수사결론과는 상반되게 왜


곡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4.
우리는 7. 1과 7. 2. 두 차례에 걸쳐 권양을 접견하면서부터 이미

권양의 피해사실 주장이 진실이라는 확고한 성충을 얻었다.


163

첫째로,권양의 진술 태도로 보아 의성할 만한 점이 전혀 없었으


며,
둘째로,권양의 진숭 내용이 너무나도 소상하고 구체적이어서 어

떤 천재적인 소설가라도 상상만으로는 꾸며낼래야 꾸며낼 수 없을


정도로 절실한 현실감이 있었으며,
셋째로,권양이 성고문 사실을 폭로하게 되기까지 이른 경위가 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처음에는 부모에게도 밝히지 아니하다


가 나중에 접견올 온 변호사 앞에서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강간죄
의 성립여부를 물었고 망서리던 끝에 성고문 사실의 일부를 밝혔으
며 그것이 검찰에 보고되어 검사가 묻게 되자 비로소 울면서 사건
의 전모를 밝히게 된 것엄),
넷째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갇혀 있는 약자의 처지에서 막
강한 국가권력을 상대로 있지도 아니한 사실을 날조해낸다는 것은

심리 법칙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자존성 있는 처녀가 당하지도 아니한 강
제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되
었기 때문이었다.
검찰 조사결과는 위와 같은 우리의 섬중이 적중하였음을 모든 객
관적인 중거자료로써 뒷받침하였다. 우리가 검찰의 발표 내용을 믿
을 수 없는 여섯 가지 이유는 동시에 권양의 성고문 주장이 진실임
을 입증하는 여섯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6. 7. 밤의 조사상황에 관하여 문귀 동이 처 음부터 완강하게
조사시간을 밤 7:45 경부터 9:45 경까지였다고 속이고 조사실 내에 불
이 켜져 있었으며 3 명의 형사가 입회한 가운데 조사하였다고 거짓
말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면 당시 문귀동이 권양의 주장내용과 같은
성고문 범죄를 저지른 것이 사실이었음은(경험칙과 논리칙에 비추
어 녁녁히 인정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성고문이 없었다연 무엇 때문에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불을 끄고 업
회인도 없이 조사를 했을 것인가, 불문가지이다.
뿐더러 부천경찰서 간부진과 형사들이 공모하여 집요하게 문귀동
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허위진숨을 꾸며내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이 문귀동 일 개인의 우발범행이 아니라 경찰권력 내부
164

의 성고문 계획에 따라 자행된 조직범죄였다는 사실도 명백히 업증


되었다고 확신한다.
이제 우리들 변호인단 일동은 우리의 모든 직업적 빛 인간적인

공지와 명예와 성실성을 걸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권양의 모든 주


장은 단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다. 권양은 그 자신이 제출한
고소장과 본 변호인단이 제출한 고발장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부천

경찰서 내에서 필설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추악한 성


고문의 만행을 당하였다.
이 전대미문의 만행의 진상이 백일하에 공개되고 그 관련자들이
남검없이 의법처단되기 전까지는 우리들 변호인단은 물론이요 이
나라의 모든 국민과 산천초목까지도 결코 잠장하지 아니할 것이다.
두렵고 두렵다.
이 사건 하냐에 우리 사회의 법질서와 인권, 인륜도덕의 존폐가
달려 있다.

1986.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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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 박 이 이

구 칠 순 명 수 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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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홍 황

희 우 철

165

3- 라. 재정신청 대리인단 구성 발표문

대한번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발표문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는 세청 부천서사건에 관하여 독자적


인 진상조사 활동올 벌인 결과 피해자인 권 00 양의 주장이 신벙성
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가해자인 문귀통
형사를 구속기소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은 문귀통 둥 사건관련자들에 대하여 불기소결정을 하였다.
본 위원회는 이같은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 남용을 견제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고문 등 수사권력에 의한 고질적인 인권침해를


근절시키기 위한 변호사들의 굳은 결의를 밝히는 뭇에서 권양의 요
청에 응하여 검찰의 불기소결정에 대웅하는 재정신청대리인단을 구

성하키로 결정하였다.

1986. 8 25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3- 마. 재정신청 기각 결정문

서 울 고 등 법 원
제 3 형 사 부
결 정

사 건 86초 115, 116 재정신청


166

신청인 1. (고소인)
권 00 (樞00) 무직
주거 원주시 일산동 231 의 9
(현재 인천소년교도소 재감중)
대리인 별지와 같다.
2 . (고발인)
(l) 고 영 구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통 57 의 9 한영벌딩 9이호
(2) 깅상철

주소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360의 l 광학빌딩


905 호

(3) 박원순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57 의 7 대신벌딩 801 호


(4) 이돈영

주소 서울 중구 무교통 7의 l 무교벌딩 502호


(5) 이 상수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55의 4 배재벌딩 311 호
(6) 조영래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58의 17 명지벌딩 1306

효-
(기 조 준 회
주소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360의 l 광학빌딩
706 호

(8) 홍성우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55의 4 배재벌딩 503


효-
(9) 황인철

주소 서울 중구 태형로 2가 360의 l 광학벌딩

601 호
피의자 l. 문 귀 동(文貴童) 전칙 경찰관
1947. 7. 19. 생
주거 부천시 심콕통 566의 l
167

2. 한 회 정(韓喜正) 경 찰관
1953. 7. 8.생

주거 부천시 중통 988 주공아파트 39동 307호

3. 황 병 선(黃炳善) 경찰관
1957. l. 7 생
주거 인천 북구 부병 4동 37

4. 옥 봉 환(玉鳳煥) 전 부천경찰서장
1933. 6. 6갱
주거 서울 성북구 석관동 332 의 121

5. 박 성 용(朴成龍) 경찰관
1941. 12. 17.생
주거 인천 남구 숭의통 248의 182

6. 이 홍 기(李興基) 경찰관
1958. l 0. 27. 생
주거 서울 도봉구 상계 1 동 1106
붙기소결정 인천지방검찰청 1986. 8. 19. 자 86 형제 19828, 19970
호 결정
주 문 이 사건 재정신청을 모두 기각한다
이 유 신청인들의 이 사건 재정신청이유의 요지는, 피의자
욱봉환은 부천경찰서장으로 근무하다가 1986. 7. 16자로 칙위 해제
된 자이고, 피의자 박성용은 경위로서 같은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장으로 근무하다가 같은 날짜에 칙위해제된 자이며, 피의자 문귀동
은 경장으로 같은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에 근무하다가 같은 날짜에
파면된 자이고, 피의자 한희정, 같은 황병선, 같은 이홍기는 위 경
찰서 수사과 형사계 소속 순경들로서,
l. 피의자 문귀동은,
가. 1986. 6. 6. 04:00 경부터 06:30 경까지 사이에 부천경찰서 수사
과 조사계 제 5호 조사실에서 고소인 권 00( 여, 21 세)을 상대
로 5.3. 인 천소요사건 관련 수배 자의 소재를 조사하면서 그녀 에
게 위 수배자 중 아는 사람의 이름과 소재를 밝히라고 추궁하
였으나 그녀가 이에 응하지 않자 그녀의 자켓과 냥방셔어 츠를
벗게 한 후 젖가슴을 들추 어보고 다시 그녀의 바지단추를 풀고
168

지퍼를 직접 끌어내린 다음 상피의자 이홍기 순경을 불러 업회


시킨 가운데 계속 추궁하여드 여전히 불응한다는 이유로 옷위
로 그녀의 젖가슴을 3,4 회 주무르면서 위 이홍기에게 “고추가
루울 가져와”라고 말하여 마치 고추가루물로 고문을 할 것처 럼

협박하는 등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보조하는 사법경찰리로서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에 대하여 가혹한 행위를


하고,
나. 같은 해 6. 7. 21 :0 0 경부터 23:00 경까지 사이에 같은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제 1 호 조사실에서 위 권 00 을 상대로 위와 같
은 내용을 조사하던 중 그녀에게 “이제까지 네가 말한 사실은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됐어. 토요얼 저녁 쉬지도 못하고 너를
조사하라고 지시가 내려와 다시 출근했잖아. 너의 자취방에 찾
아온 년이 누구야”라고 하면서 추궁하였으나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로 하여금 자켓과 남방셔어츠를 벗게 한 후 상

피의자 한희정, 같은 황병션을 불러 그녀의 양손을 등뒤로 하


여 수갑을 채우고 양쪽 오금에 나무막대기를 끼워 꿇어앉힌 후
나무막대기로 그녀의 허벅지와 허리 부위를 수회 구타하고, 다
시 그녀를 수갑을 채운 채 제 2호 조사실로 데리고 가서 조사를
계속하면서 그녀의 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상의를 올
린 후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르다가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음
부를 만지고 그녀의 바지와 팬티를 무릎 밑드로 끌어내린 후
그녀를 책상에 엎드리게 하고 자신의 성기를 그녀의 음부에 대
고 수회 비비는 등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보조하는 사법경찰
리로서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에 대하여 가혹한

행위를 하고,
2. 피의자 한희정, 같은 황병선은
1986. 6. 7. 21:00 경 부터 23 : 00 경까지 사이에 위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제 1 호 조사실에서 상피의자 문귀통이 위 권 00 을 조사할


때 위 제 1 항 나호 기재와 같이 그녀의 양손을 등뒤로 하여 수갑
을 채우고 양쪽 오금에 나무 막대기를 끼워 꿇어앉힌 후 그녀의
허벅지 빛 허리를 나무 막대기로 수회 구타하는 등 가혹한 행위
를 하였으며,
169

3. 피의자 옥봉환은
1986. 6. 6. 04 : 00 경 같은 경창서 상황실에서 위 권 00 에게 “권
양, 너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군”이라고 말하면서 상피의자 문
귀동에게 위 제 1 항 기재와 같은 방법으로 위 권 0 0 을 조사하라
고 지시하여 위 문귀동으로 하여금 위와 같은 가혹행위를 하도록
교사하였고,
4. 피의자 박성용은
1986. 6. 7. 09:00 경 위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장실에서 위 권 。。
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허위진술을 계속한다는 이유로 “권양,
오늘부터 대우가 달라져”라고 말하고, 그 옆에 있던 수사경험이
많은 상피의자 문귀동에게 “오늘부터 그런 방법으로 조사해”라고
지시하여 위 문귀동으로 하여금 위와 같은 가혹행위를 하도록 교
사하였으며,

5. 피의자 이홍기는
1986‘ 6. 6. 04:00 경부터 06 : 30경까지 사이에 위 경찰서 수사과 조
사계 제 5 호 조사실에서 상피의자 문귀동이 위 권 00 을 조사할
때에 업회하여 위 문귀동이 “고추가루물 가져와”라고 하자 이에
호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둥 위 문귀동의 가혹 행위가 용이
하도록 방조하였는 바,
고소인 권 00 의 검찰에서의 진술, 참고인 이향숙, 같은 최옥자
같은 박외숙, 같은 김철한, 같은 검해성등의 검찰에서의 각 일부
진솔, 위 피의자들이 검찰에서의 각 일부진술과 검사의 실황조사
결과 둥 모든 중거자료를 종합하여 보면, 위 피의자들의 피의사실
은 그 혐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피의자들의 변명만을 받
아들여 피의자 문귀동에 대하여는 일부사실만 인정한 후 기소유예
처분을, 나머지 피의자들에 대하여는 혐의 없다고 판단하였으니 검
사의 위 피의자들에 대한 1986. 8. 19. 자 붕기소결정은 부당하므로
이 사건 재정신청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의자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피
의자 문귀동의 위 피의사실에 관하여 보건대, 위 피의자의 검찰에
서의 얼부 자백, 고소인 권 00 의 검찰에서의 진솔, 상피의자 이흥
기의 검찰에서의 일부진술 및 참고인 최옥자, 같은 박외숙, 같은
17(]

김철한, 같은 이향숙, 같은 검혜성 동의 검찰에서의 각 일부진술


기타 수사기록에 나타난 모든 중거자료를 종합하면, 피의자 문귀동
의 이 사건 피의사실은
피의자 l문귀동이
가. 1986. 6. 6. 04 : 20 경부터 06:30 경 사이에 부천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제 5 호 조사실에서 위장취업과 관련하여 공문서변조,
통행사 퉁 피의자로 연행된 피해자 권 00 을 상대로 5. 3. 인
천소요사태 관련 수배자 양숭조 둥과의 관련 및 그들의 소재
에 관하여 조사를 하면서 그녀에게 위 수배자 중 아는 사람
의 이름과 소재를 밝히라고 추궁하였으나 그녀가 모른다면서
이에 응하지 않자 자햇과 남방셔어츠를 벗게 한 후 젖가슴을
들추어 보고j 그녀의 바지단추를 풀고 지퍼를 끌어내련 다음
같은 경창서 수사과 형사계 근무 순경언 상피의자 이홍기를
불러 업회시킨 가운데 그녀에게 화난소리로 “이년”, “저년”,
“옷벗어”둥 폭언올 하고 “ 5 3. 사태 관련 여자아이들도 나한
테 걸려면 금방 다 자백했어”라고 은곤히 진술올 강요하면서
위협을 하여도 불웅하자 그녀의 티셔어츠 위로 젖가슴올 3,4
회 만지고 위 이흥기 숭경올 향하여 “이년 안되겠군” “고추
가루물 가져와”라고 말하여 마치 고추가루물로 고문올 할 것
처럼 위협하는 둥 인신구속에 관한 칙무를 보조하는 사법경
찰리로서 그 칙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에 대하여 가
혹한 행위를 하고,
나. 같은 해 6. 7. 20 :30경 위 같은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제 1 호

조사실에서 위 권 00 을 상대로 위와 같은 사실에 관하여 조


사하던 중 그녀에게 “ 이제까지 네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믿
지 못하게 됐어. 토요일 저녁 쉬지도 못하고 너를 조사하라
고 지시가 내려와 다시 출근했찮아. 너의 자취방에 찾아온
년이 누구야? ” 라고 하면서 추궁하였으나 “회영”이라는 이름
을 가진 주식회사 오룡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고만 말할 뿐 그
의 거처에 대하여는 모른다고 대답하자 그녀의 자켓과 남방
셔어츠를 벗게 한 후 건너편 제 3호 조사실에서 일하던 순경
검해성에게 수갑을 가져오게 하여 위 권 00 의 양손올 뒤로
171
몰려 수갑을 채우고 “거짓말하지 마라”며 고항을 지르고 그
녀를 세벤바닥에 무릎끓게 하다가 약 30 분 후인 그날 21:00
경 위 제 1 호 조사실과 바로붙은 위 조사계 북서쪽 구석에 있
는 피고인 방언 제 2호 조사실로 그녀를 끌고가 그때부터 그
날 23:00 경까지 사이에 불도 켜지 않아 실내가 어둡고 약 12

미터 떨어져 있는 무기고 앞 외동의 불빛에 의하여 겨우 사

람올 식별할 수 있는 그 방 안에서 단 둘이서 피고인은 북쪽


으로 난 피고인의 책상 옆 창가에 앉아 위 권 00 올 가까이
오라고 하여 그녀의 바지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린 후 자기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철제의자에 그녀를 앉게 하고 그녀 가
까이 다가앉으면서 그녀의 상의를 모두 올리고 양손£로 젖
가슴을 만지면서 “간청도 결국은 분다. 너같이 독한 년은 처
음 본다”고 하면서 “희영”의 집을 대라고 하였으나 그녀가 정
말 모른다면서 신음소리를 내자 “신음을 내면 아무도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겁올 주고 욕설을 하면서 그녀의 허
리부분과 상체를 어루만지는 등 추행을 함으로써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보조하는 사법경찰리로서 그 직무를 행함에 당


하여 형사히의자에 대하여 가혹한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된 .‘ \

다.
그러냐 이상과 같은 사실 이외에 피의자 문해동이 1986. 6. 7. 21:
00경부터 23 : 00 경까지 사이에 고소인 권 00 을 조사하던 중 상피의
자 한회정과 황병선 순경을 불러 그들과 함께 그녀의 양활을 통뒤
로 하여 수갑을 채우고 양쪽 오금에 나무막대기 를 끼워 끓어 앉히
고 또 막대기로 그녀의 허벅지와 허리부위 를 수회 구타하였다는 점
에 대하여는 피의자 문귀동이 당시 제 3호 조사실에서 얼올 하고 있
던 순경 깅해성으로부터 수갑올 벌려 위 권 00 의 양팔에 수갑을
채우고 조사하고 있을 때 위 한회정과 황병선등이 들어와서 수배자
사진캡을 제시하고 수배자 중 아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돌아
간 사실이 있 을 뿐 그들이 위 권 00 을 나무막대기로 구타한 사실
은 전혀 없었다고 극구 변소하고 있고, 위 한희정 및 황병선도 이
에 부합되는 진 술을 하고 있 을 뿐 아니라, 위 권 00 도 나무막대기
로 구타당한 사실은 있으나 누구로부터 구타당하였는지를 구체적으
172

로 특정할 수 없다고 진솔하고 있어 그녀의 진슐만으로는 위 사실


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그밖에 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다음, 피의자 문귀동이 1986 ‘ 6. 7. 21:00 경부터 23 : 00 경까지 사이
에 위 권 00 을 조사하던 중 손으로 그녀의 음부를 만지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어 그녀의 음부에 대어 수회 비비는 등으로 추행하였다
는 점은 위 피의자가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고 극구 주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위 권 00 을 조사하던 제 2호 조사실과 인접한 제 3호, 제
5호, 제 7호 조사실에서 각각 일을 하고 있었던 위 경찰서 조사계에
근무하는 검해성, 권오성, 박경천 등도 당시 문을 열어놓고 일을

하면서 제 2호 조사실 앞을 왕래한 바 있으나 위와 같은 사실을 목


격하거나 감지한 사실이 없다고 진숭하고 있으며,
위 권 00 과 함께 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었던 최옥자,
박외숙도 위 권 00 이 자신들에게 경찰관들로 부터 조사를 받으면
서 폭행 당했다는 말은 하였으나 성기를 꺼내어 음부에 비비는 등
의 추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말은 하지 않았다고 진솔하고 있고, 현
장상황을 보더라도 위 제 2호 조사실은 북쪽에 가로 1.75미터, 세로
1.95미터의 유리창문 1 개가 있고, 서쪽에 같은 크기의 유리창문 2
새가 설치되어 있으며, 서쪽 유리창에서 12 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
는 무기고에 200 핫트짜리 외등이 커져 있고 그 앞을 매 시간마다 2
인 1 조의 순찰조가 순찰을 돌면서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있었으며,
조사실과 조사실 사이의 칸막이는 두께 5센티미터 가량의 석고보드
로 되어 있어 옆방에서 타자치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정
도인데 이러한 콧에서 허위진술을 계속하는 피조사자를 상대로 염
문을 하던 조사자가 갑자가 욕정을 일으격 그토록 저열하고 비정상
적인 방법으로 추행을 한다는 것은 일반 경험칙상 수응하기가 어려
울 뿐 아니라 권 00은 문귀동으로부터 추행을 당하였다고 주장하
면서도 추행을 당할 때 반향하거나 소리를 친 사실은 전혀 없으며,
조사 후에도 일체 항의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어 이 정 또한
상식상 납득할 수 없으므로 고소인 권 00 의 일방적 진술만으로는
위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하겠다.
피의자 문귀동의 이 사건 피의사실 중 앞에서 인정되는 사실부분
은 독직가혹행위죄에 해당함。l 영백하다.
173

살피건대 우리 헌법 제 9조가 선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근본규범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인
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집행하는 경찰관이 형사피의자를 위협하고
특히 여성으로서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여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위와 같은 인권침해는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히 응칭하여야 함은 마땅하

다 할 것이다.
그러냐 한연 생각하면 이 사건 범행은 피의자 문귀동이 직무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수사를 하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고
위 피의자 또한 처음에는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가 몸담고 있는 경찰기관 및 상사에게 누가 끼칠 것을 두려워하
여 이 사건 뱅행사실을 완강히 부인하였으나 그후 검찰의 조사과정
에서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대체로 시인하고 용서를 벌고 있으
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위 피의자가 10 여 년 간 여러 차례의 표창
을 받으며 충실히 봉직하여 온 경찰관의 칙에서 파면되는 가장 무
거운 정계 처분을 받았으며 위 피의자가 그동안 이 사건으로 인한
비등한 여론과 피의사실로 인하여 형벌에 못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넉넉히 짐작이 가고 이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일선
수사기관에서의 고문 등 인권침해사례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확고해지고 인신구속에 관한 사무를 집행하는 국가기관에게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범죄인에 대한 응보나 특
별예방 이외의 또 한 가지 주요한 형벌의 목적인 사회일반인에 대
한 일반예방적 효과도 상당히 거두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여러 사정을 두루 살펴보면 기소편의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의 법제 하에서 검사가 위 피의자의 범죄사실에 대하여 기소유

예 처분을 한 것은 그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다.


다음 피의자 한희정, 같은 황병션의 위 피의사실에 관하여 살펴
본다.
위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1986. 6. 7. 20:30 경 상피의자 문귀동 경장의 방인 조사계 제 2호
조사실에 5. 3. 인천사태 수배자 소재수사를 위해 수배자 명부와 사
진첩을 들고 들어가서 위 문귀동 경장의 업회 아래 약 30분간 고소
174

인 권 00 에 게 수배 자들의 사진을 하나씩 를추어 보 이 고 누군지 아


느냐고 추궁해 나 가다가 위 권 00 이 그중 위장취업 관계로 연 행 된
검철한 한 사람만을 알아보고 그 나머지는 모른다고 대답하자 두
사람 모두 그대 로 조사실을 나와 버렸을 뿐 위 권 00 의 양손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거나 그녀의 양쪽 요금에 나무막대기를 끼
워 꿇어 앉히고 또 막대기로 그녀를 구타한 일은 결코 없다고 극구
변소하고 있는 바 위 문귀동의 검찰에서의 진술도 이에 부합하고,
고소인 권 00 자신도 당시 실내가 어둡고 안경을 벗은 상태여서
I 그 당시 자기 를 구타했던 사람들 이 누구언지 또 그 두사람 중 누가
어떻게 구타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위 권 00 의 진
술 이외에 달리 위 피의사실 을 인정하기에 족한 증거가 없으므로
검사가 위 피의사실에 대하여 수사 결과 그 혐의가 없다고 하여 불

기소 결정 을 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겠다.
다음 피의자 옥봉환의 위 피의사실에 관하여 살펴보건대, 위 권
00 의 검찰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위 피의자가 1986. 6. 6. 04:00 경

위 경찰서 상황실에서 고소인 권 00 에게 “권양, 너무 수사에 협조


하지 않는군”이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되나 그러한 사실만 가지고는
가혹행위 를 교사한 것 이라고 볼 수 없고 또 이 사건 수사기록을 두
루 살펴보아도 그가 상피의자 조사계장 박성용 경위 를 통하여 아 니
연 상피의자 문귀동 경장에게 직접 위와 같은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위 권 00 을 조사하도록 지시하여 위 문귀동으로 하여금
위와 같은 가혹행위를 하도록 교사하였다거나 달리 위 문귀동의 가
혹행위에 가공하였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검사가 위
피의사실에 대하여 수사 결과 그 혐의가 없다고 하여 불기소 결정
을 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겠다.
다음, 피의자 박성용의 위 피의사실에 관하여 살펴본다.
피의자 박성용은 상피의자 운귀동 에 게 “오늘부터 그런 방법으로
조사해”라고 지시한 바 없다고 부인하고 있고, 위 문귀동도 그러한
지시를 받은 바가 전혀 없다고 이 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있으며
수사기록에 의하면
원래 고소인 권 00 에 대한 공문서 변조, 통행사 등 피의사건은
같은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경사 정오도의 담당사건 이 었는데 조사
175
계장인 피의자 박성용은 1986. 6. 6. 04:00 경 위 경찰서 3층 상황실
에서 경찰서장인 상피의자 옥봉환이 그 권 00 에게 “권양, 수사에
너무 협조하지 않는군”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자리에서 위 사
건을 수사경험이 많은 상피의자 문귀동 경장에게 조사하도록 지시
하고 그 지시에 따라 상피의자 문귀동이 위 제 1 항 가호 기재와 같
이 위 권 00 올 조사하여 “검성은”과 “이향숙”이란 이름을 알아 내
어 그날 13:00 경 형사 2명으로 하여금 서울 봉천동에 었다는 김성

은의 소재와 인적사항을 조사하게 하였으나 5. 3. 인천사태의 수배


자 수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 지 못하였고 또 그 다음날인 6.7. 09:00
경 위 경찰서 1 충 조사계장실에서 상피의자 문귀동, 위 정오도 경

사 등이 업회한 가운데 위 권 00 의 진술에 따라 데려 온 위 이향


축과 위 권 00 의 자취하는 집 주인 아주머니를 위 권 00 과 상호
대질시켰으나 집 주 인 아주머니가 위 권 00 의 방에 출입하던 여자
가 위 이향숙이 아니라고 말하자 심히 분개하고 배신감을 느낀 나
머지 위 권 00 을 향하여 “권양, 오늘부터 대우가 달라져”라고 말
한 사실은 인정되나 그 당시 조사계장실에서 고소인 권 00 등과
대절하기 위하여 함께 그녀의 대학 친구인 위 이향숙은 대질시 문
귀동 경장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고 그때 피의자 박성용 이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고 진솔함으로써 위 피의자
변소와 대체로 부합하는 진 숨을 하고 있고, 설 사 고소인 권 00 의
진술대로 위 피의자가 “오늘부터 그런 방법으로 조사해 ” 라고 말하
였다 할지라도 “그런 방법”이 바로 위와 같은 내용의 가혹행위를
뭇하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며 달리 위 피의자가 상피의자 문귀

동에게 가혹행위를 교사하였다고 인정하기에 족한 중거자료가 없으


므로 검사가 위 피의사실에 대하여 수사 결과 역시 그 혐의가 없다
고 하여 붕기소 결 정 을 한 것은 상당하다고 하겠다.
끝으로 피의자 이홍기의 위 피의사실에 관하여 살피건대 고소인
권 00 의 검찰에서의 진술, 피의자 이홍기의 검찰 에 서의 진술, 위
문귀동의 검찰에서의 얼부 진숨을 종합하연 피의자 이홍기는 수사
과 형사계에 근무하는 순경으로 1986. 6. 6. 02:50 경 비상소집되어
근무중 그날 04 : 50 경 상급자인 상피 의 자 조사계 경 장 문귀동으로부
터 잠시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위 제 5 조사실에 가서 위 문귀동이
176

고소한 권 00을 조사할 때 장시 업회하고 있다가 위 문귀통이 위


권 00 을 위협하는 과정에서 위 피의자에게 “이년 안되겠군”, “고
추가루물 가져와”라고 말하자 그냥 나와 버리고는 다시 그곳에 들
어가지 아니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위 피의자는 경력도
얼마되지 않은 순경으로서 그의 상급자이고 경험이 풍부한 수사관
인 위 문귀동 경장의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수사를 제지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위 피의자가 문귀통 경장의
지시에 따라 위 문귀동이 고소인 권 00 을 조사할 때 불과 몇 분간
업회하다가 그의 “고추가루물 가져와”라는 화난 소리를 듣고 바로
나와 버린 사실만 가지고 위 피의자가 상피의자 문귀동의 고소인
권 0 0 에 대한 가혹행위의 실행을 용이하게 하였다거나 위 문귀동
의 볍행 결의를 굳게하여 그의 법행을 방조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
로 검사가 위 피의사실에 대하여 수사 결과 그 혐의가 없다고 불기
소 결정을 한 것도 역시 정당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결국 위 피의자들의 각 피의사실에 관한 검사의 불기소

결정에 대한 신청인들의 이 사건 재정신청은 모두 이유 없어 받아

들일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 262조 제 1 항 제 1 호에 의하여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1986. 10. 31.

재판장 판 사 이 철 환
판 사 오 행 남
판 사 손 기 식

신청인 권 00 의 대리언 명단(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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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재소자 인권침해 시정건의

4- 가. 서울구치소 재소자 인권침해 사례보고

인 권 침 해 사 례 보 고

1985 년 4/4분기 및 1986 년 1 ∼ 2월 간에 본 회원이 접한 인권침

해사례(서울 구치소 교도관의 수용자)를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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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l. 사려| 1
1985 12. 23.
‘ 서울구치소 보안과 교도관 20 여 명은, 속청 깃발사

건, 민정당연수원사건 퉁 학생사건으로 동 구치소에 수용중인 수강


자 민병렬 둥 14-5 명이 샤웃팅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동 수용자
들의 전신올 주먹과 구두발로 집단 무차별구타하거나 피가 통하지

못하리 만큼 강력하게 시숭시강올 하여 두는 방법으로 폭행을 가하


고 그들을 갱벌이라는 구실 하에 동과 지하실 특수강방에 감금하였
음(별첨 보고서 창조). 동 사실은 전술 깃발사건언 서울형사지방법
원 85고합 976호 국가보안법위반 피고사건 공판기일에 동 법원 제

105호 법정에서 동 사건 피고인 민병렬, 민관홍이 폭로하여 즉시


본 회원이 동 민병렬, 민정당연수원사건으로 동 구치소에 수용된
원동욱, 동 검영기 등을 접견조사한 바 별청 보고서 내용과 같이
확인되였음.
180

2, 사려| 2
가. 서울구치소 보안과 이강룡 주임, 검정수 교도 및 교도, 경교
대원 등 10 여 명은,
1986. 2. 17. 오전경 동 교도소 보안과 관구실에서 동 구치소
수용자 박문식이가 불법한 시숭시갑에 불응하자 동 관구실에서
동 보안과 지하실까지 사이의 복도 세벤콩크리트 바닥에 동인
을 늄히고 발과 손으로 동인의 전신을 집단폭행하고 강제로 시
갑한 후 동인의 머리와 복부를 무수히 집단구타하여 폭행하고

아무런 정벌처분을 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인을 동과 지하


실 특수강방에 감금하였다는 것임.
나. 동 구치소보안과 보안계장, 당직계장, 이재희 교도, 유하영

교도 등 20 여 명의 교도관 및 경교대원은,
1986. 2. 17. 20:(〕0 경 시숭시갑된 채 동과 지하실 특수강방에 감
금된 백종오에 대하여 취침시간이 임박하여도 시승시갑을 해제
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취칩시키려 함에 대하여 전술 박문식이

가, 동 백종요의 시숭시갑을 해제하라 요구하고, 동 감방에 감


금된 20 여 학생수용자들이 “시숭시갑을 풀라”고 일제 히 외치
자,

통 보안계장 지휘 하에 교도관 등은 통 박문식을 통 감방에서


강제로 끌어내어 동과 보안과 사무실 앞 복도에서 강제로 수갑
2 개를 채우고 온 몸을 여러겹으로 시숭한 후 집단으로 동인의

전신을 무차별 족축하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복도바닥에 부


덤치게 하고 업을 틀어막는 등 폭행함으로써 동 박문식 1로 하
여금 실신케 하였음.
잠시 후 동 박문식이가 정신을 회복하고 동인이 통과 사무실 시
멘트 바닥에 뉘어져 있음을 알아차리자, 이재희 교도 등 수명
은, 동 박문식의 머리를 구두발로 수회 차고, 이재희는 동인에
게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죽고 싶으냐”라고 협박하면서 구두

발로 동인의 얼굴을 밟아 문지르고, 계속하여,


동 이재희, 유하영 교도는 당직계장 지휘하에,
시 승 시갑된 동 박문식의 양발 을 뒤로 꺾어 열십자로 묶고 동 체
181
에 붙이어 전신이 뒤로 활처럼 꺾이도록 묶어서 약 4시간 가량
동소 시벤트 바닥에 방치하는 등 속칭 비녀꽂기 고문을 자행하
였다는 것임.
다. 1986. 2. 18. 10:00 서울 형사지방법원 85고합 976호 피고인
박문식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등 피고사건 공판이 열린 대법
정에서, 통 사건 재판장 부장판사 안문태가 동 박문식의 코와
입술에 심한 찰과상이 있응을 발견하고 그 경위를 신문함으로
언하여 전술 가, 나항 사실이 폭로되고 관여 검사 신광옥이가
동 공판 종료 후에 동언을 통 검사실에서 위로하고 진료와 사
실규명 및 시정을 약속한 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1986. 2.
18. 14:00 경 동과 보안계장 (2 17 의 보안계장과는 다르며 갑부

보안계장이라함)과 보안과장은, 동인이 동법정에서 폭로한 점


과 동인의 어머니가 항의한 데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 끝에, 동
보안계장은 통과 지하실 특수감방 안에 아파서 누워 있던 동언
을 시숭시갑하려 하고 동인이 “지금까지 감방 안에서 시숭시갑
한 일이 없다”고 하연서 불응하자,
동 계장과 동 과장은 교도관 수명과 합세하여 통인을 캉제로
시숭시갑하고 그런 과정에서 통 과장은 동인의 얼굴을 두손으
로 쥐어잡아누르고폭행하며 합세하여 동 구치소 2층 교사침실
까지 끌고가며 집단 폭행하여 동소에서 동인으로 하여긍 실신
케 하였다는 것임.
이와 같은 과정에서 동 박문식이가 구치소당국 전술과 같은 강
제행위에 항거하며 옴부렴치는 광경을 촬영하고 녹음까지 하였
다는 것인 바(후술 검의경의 진술), 동 보안과장 등은 지능적
으로 범행을 은폐하고 있는 듯함.
라. 동 박문식의 가족이 동 구치소 관계자들을 서울 지방 검찰청
에 고소제기하여 검사 신광옥이가 담당하고 있음.

3. 사례 3
제 2의 나항 기재와 같이 동 박문식이가 가혹행위를 땅하는 것을
보고 속칭 민정당연수원사건으로 구치소에 수용중인 수용인 김의겸
이가 항의하자, 1986. 2. 17. 21 :00경 동항기재 보안계장 등은 합세

182

하여 동 박문식이가 당한 경우와 같은 방법의 속칭 “비녀꽂기” 고


문을 자행하였다는 것임 •

• 4. 사려| 4
동 구치소 보안계장 등 20 여 명의 교도관은, 1986. 2. 17. 정오
경부터 동 구치소 수용자 백종오, 안동섭, 황현길 등 20 여 명이 샤
웃텅한다는 구실로 동인들을 집단구타하면서 동과 지하실 특수강방
까지 강제로 끌어가는 등 폭행하고 동 간방에 무단수용하고 있다는

것임.

5. Af 려| 5
가. 동 구치소 보안과 장동원 계장, 보안 2계 하충관구 주임 오
씨 (50 ∼ 55 세 가량), 담당교도관 2명은, 합세하여 1986. 2. 18.
11 : 00 경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피고사건으로 동 구치
소에 수용중인 수용인 최순일이가 동 2. 14 부터 점검을 거부한
다는 이유로,
통 장동원은 동과 보안 2계 사무실에서, 동인의 얼굴을 손바닥
으로 3 ∼ 4 회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수회 흔들다가 -통소 쏘파에

내동탱이 치는 등 폭행하고 시강하라고 지시하여 담당교도관 2


영이 동언을 시갑하자, 계속하여 동인의 얼굴을 5 ∼ 6회 때리
고,

옆에서 구경하던 교도관들 수명이 동언에게 “저놈들은 사람도


아니 야”라고 야유하는 데 대 하여 동언 이 항의 하자 담당교도관
1 명(동 사무실 창구 앞좌석에 앉은 자로서 눈이 약간 치켜올려
지고 30세 가량, 신장 170센치 정도인 자)은 동인의 얼굴을 손
바닥으로 7 ∼ 8회 예라고, 담당교도관 다른 1 명(신장 180센치
정도로 흘쭉하고 곱슬머리, 30 세 가량된 자)은 그에 가세하여
4 ∼ 5회 손바닥으로 동인의 얼굴을 때리고 주먹으로 1 회 폭행하

고, 이어서 동 장동원은 “저놈 맛좀봐야 하겠다”라고 협박하면


서 가죽장갑을 낀 손바닥으로 동인의 얼굴을 5 ∼ 6회 때렸다는
것임.
그후 동 장동원이가 동소를 나갈 때에 동인에게 피해자가 “당
183
신네들을 기억해 두겠다”고 하자,
전술 곱슬머리 당당교도관은 격분하여 피해자의 얼굴을 전숭과
같은 방법으로 10 여 회 때리고 관구주엄 오씨 는 부하 교도에게
피해자의 업에 자갈을 채우라고 지시하연서 피해자의 얼굴올
손바닥으로 5 ∼ 6회 때렸다는 것임.
나. 그로 인하여 동 피해자는 왼쪽 귀에 고막충혈상올 업고 통
구치소 의무실에서 3 ∼ 4회 가량 치료를 받았A나 아직까지 완

치되지 않은 상태이며, 본인의 호소로는 고막파열상을 업은 듯


하다 함.
다. 현재 가족들이 외래의사진료 신청 절차를 취하고 있으며 관
계언을 고소할 예정이라함.
라. 전술 창동운 등 가혹행위자들은,
동 피해자에 대한 정별결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86. 2.
18. 부터 동 2. 25까지 부모연회를 금지시키며, 벙중인멸을 위

하여 성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엄.


마. 위 사실은 1986. 2. 27. 본회원이 동 구치소에서 동 피해자와
같은 감방에 수용된 속칭 서울대 범국민대토론회 사건 피고인
검병오로부터 확인하였음.

1986. 3. 3.

회 원 변 호 사 ::>C i느 형
-‘- C그

4- 나. 인권침해사례 시정 건의

번협 제 98 호 86. 3. 5.
수신 법무부장관

참조 교정국장

제목 인권침해사례 시정건의
184

본 협회 인권위원회의 보고에 의하면 서울구치소 수감자에 대하


여 별점과 같은 인권침해사례가 있었다고 하는 바, 이의 진상을 규
명하여 범법자를 의법조치하여 주시기 바라오며 앞으로는 이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속히 시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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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으」
대 한 변 호 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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ζ〉 C그 호

4- 다. 인천교도소 재소자에 대한 폭력사건 ·


발생 보고서

참조 인권위원장
제목 교도소 내 재소자에 대한 폭력사건 발생 보고서

본인은 1986‘ 7. 14. 세칭 5. 3 인천사태에 관하여 소요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아래 사건을 수임 하여 변론하던 중 인 천소년교도소

에서 다음과 같은 재소자에 대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였으므로 이


에 보고합니다.

아 래

인천지방법원 86고합 342 소요 이상명

인천지방법원 86고합 353 소요등 이 용 주 외 2인


0
I그

l. 본인은 1986. 8. 13 오후 인천소년교도소에서 이상명(언하대 철


학과 4 년 휴학)을 접견하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듣고 보았음.
185

가. 1986. 8. 9. 토요일 14:00 경, 이상명이 가족면회를 마치고 돌아오


던 중 재소자 이규운이 여사 앞에서 주저앉아 교도관에게 보안

과장 연담을 요구하며 연좌하고 있기에 이상명과 재소자 박병


무(인천 5. 3 사태)가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한즉 이규운이 5사
로 뛰어가므로 이상명과 박병무가 뒤따라가 보니 이규운이 5사

에 대고 2사 재소자 검경구가 1 심판결을 선고받는 날 법정소란


행위를 하였다고 추가업건되어 검찰에서 소환함에 조사받으러
나가기를 거부하자 8. 7. 교도관들이 강제로 끌어내어 홍주엄
외 여러 명이 집단구타를 하였으므로 2사 재소자 천원이 항의
단식을 하고 있는 중이고 8. 7. 자기(이규운)자신도 교도관들에
게 집단 구타당하여 얼굴에 상처가 생겨 8. 9. 이 공판기일임에
도 불구하고 무기연기되었다고 보고하자 5사 재소자 황원구 (5
3사태)등 공안사건 미결수들이 업감되어 있는 4,5,6사 대표들
이 교도관의 재소자 폭행에 항의하기 위하여 배 주임에게 보안
관장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교도관들이 이규운, 박병무, 이상영을 5사 9방에 강제로 멀

어넣어 감금하므로 이들이 창문에 나무를 끼우고 문을 열라고


저항하고 각 방에서도 항의하자 교도관 약 30 명, 교도대 약 20
명, 소년수 영조장 2 ∼ 3 명이 몰려와 방안으로 각목을 던지고

창문틈을 나무로 쑤시고 방문을 연 뒤 영조장이 각목을 휘두르


고 들어와 교도관 10 여 명과 영조장 2 ∼ 3명이 9 방 안에서 위 3
언을 세수대야, 양동이 등으로 후려치고, 머리채를 끌고 구두
말로 짓밟고 복도로 끌어내어 둡혀 놓고 발로 짓밟고 팔을 뒤
로 꺾고 주먹으로 동을 치는 등 무차별 구타를 하다가 이상명,
황원구, 재소자 주성종 등 3명을 1 방에 가두고 약 2시간 동안

오물을 끼얹어 폭행한 후 7 방으로 업방시켰다.

위와 같은 집단구타로 박병무는 가슴에 구두뒷굽만한 크기의


시퍼런 멍이 들었고 , 황원구는 5 사 복도에서 애맞고 밖으로 끌
려나가 3 ∼ 4 명에게 짓밟혀 가슴, 목, 목덜미에 시퍼런 멍이 들

였고, 왼쪽 새 끼 발가락이 구두발로 밟혀 퉁퉁 부어 있다고 하


며, 이상명은 가슴에 찰과상이 있고 오른손 팔목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으며 어깨쭉지와 오른쪽 옆구리가 결 란다고 호


186

소하고 오른쪽 발옥이 아프다고 다리 를 절고 있었다.


나. 1986. 8. 10. 일요일 재소자 전원에 대하여 정별로 목욕시키지
않고 그 이튼날인 11 월요일 이상명이 있는 7 방은 운동을 시

키지 않고, 아침에 세변도 안 시키다가 점심배식 때인 12:00 :경

비로소 세연을 시켰으며, 5사 재소자 이상명, 주성종, 박병무,


검동명, 민충기 등이 가족연회를 금지당하였다.
같은 날 5사 재소자 이용주, 동 박종문이 접견나갔다가 재소
자 폭력에 항의하며 입방을 거부하여 교도관들이 강제로 밀어

넣으며 구타하므로 복도에서 재소자 황원구, 이헌필이 구타하


는 교도관을 붙잡고 항의하자 교도관이 황원구의 뺨을 때리고
손가락을 물었다. 위 이용주, 박종문, 황원구, 이헌필이 업방
을 거부하고 재소자 폭력과 운동 안 I 시킨 이유를 따지자 보안
계 장이 5사로 찾아와 운동시 켜 주겠다고 약속하므로 4사, 6사
도 같이 운동시켜 달라고 요구하자 전부 운동을 안 시켰다. 보
안계장과 홍 주임에게 폭력사태를 해명하라고 하며 업방을 거
부하고 교도소측과 협상을 하려 하였으나 교도소측이 거부하여
결렬되고 황원구가 창틀에 매달려 업방을 거부하자 분뇨를 끼
얹고 교도관 약 30 여 명, 교도대 약 20 여 명이 정문과 뒷문으
로 몰려와 이헌필올 9방에, 황원구, 이용구, 박종문 등 3명을
13 방에 강제로 처넣었다가 다시 끌어내며 무차별 구타하여 유
리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로 인하여 황원구는 손에 부상을 업어 붕대를 감고 있고,
이용주는 허벅지가 길이 4센티미터 가량 짖어졌고 박종문은 홍
주임이 13 방으로 들어와 끌어내갔다.
다. 1986. 8. 13. 이상명에 대하여 외래의사 진료신청을 하고 동일
15:25 경 언천 남구 도화동 391-12 흥정형외과의원 원장 홍성훈
이 교도소 내 의무실에서 이상명을 진료하는데 본 변호인이 참
여하였으며, 진단서의 내용은,
병명은 (l) 좌측 흉부 찰과상 (2) 좌측 전박부 좌상이고 향후
치료 의견은 왼쪽팔을 잡힌 채 끌려나가면서 다쳤다는 본인진
술과 일치하는 상처로 보이며 발병일로부터 약 1 주일 간의 ·가료
를 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187

2. 본인은 1986. 8. 13 ‘ 오후 언천소년교도소에서 이용주(언하대 무역


학과 3년 제적)를 접견하고 다음과 같은 사실올 듣고 보았음.
1986. 8. 11 월요일 5사 복도에서 이용주, 황원구, 박종문, 이
헌필 둥 4 명이 재소자 폭행에 항의하여 업방을 거부하며 보안과
장 면담을 요청하자 교도관과 교도대 도합 약 40 ∼ 50 여 명이 몰
려와 4명을 강제로 업방시켰다. 이재영은 13 방으로 끌려들어가
며 머리채를 잡혀 끌리고 무차별 집단구타를 당하였다 하며 그
로 인하여 양쪽팔이 긁히고 멍들어 있었고 오른쪽 대퇴부에 길
이 약 4센티미터 가량 못으로 긁힌 양 갚은 상처가 있음을 목격
확인하였다.
3. 이상명과 이용주는 모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 1986. 2. 12 . 부터 본 변호인이 접견간 13 . 까지 이틀간 인천 5.3
사태 등 공안사건 미결수가 수용된 4, 5,6사에서는 운동, 세면,

가족연회 등이 일체 금지되어 사실상 금치의 정별을 가하고 있

다.
나. 재소자 폭력 사태에 항의하여 2사에서는 1986. 8. 8 부터, 여사
와 6사에서는 8. 12. 부터, 4사에서는 8. 13. 부터 채소자들이 일제
히 단식 중이다.
다. 1986. 8. 11. 6사 재소자 박모가 접견나갔다가 재소자 폭행에 항
의, 업방을 거부하고 구타당하여 머리가 깨졌다고 하는데, 치
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며 안타까와 하였다.

.

첨 -「 서

l. 이상명에 대한 진단서 1 부

1986. 9. 3.
번 호 사 최 영 도
188

5. 변호 사 의 접견교통권 침혜사례 시정 건

5- 가. 대구교도소 변호사 출 입 제한 사례 발
생 보고

수신 대한변호사협회 1986. 8. l
제목 대구교도소 변호사 출입 제한 사례 발생 보고
발신 변호사 검 은 집

본 변호인은 일반 재소자들 을 접견하고 자 대구교도소를 방문하였


던 바, 동 교도소 정문에서 출업을 제한당하여 되돌아 온 사실이
있어 보고합니다.
l 일시 및 장소 : 1986. 8. 19. 14:30-16:30.
경북 화원연 소재 대구교도소 정문
2. 변호인 출업 제한 이유

위 교도소 정문 근무 교도관들은 교도소장의 지시에 의하여


변호사와 일반 재소자의 가족들 모두 접견과 연회를 금지시킨다
고 말하고 있음.
3. 참고사항
ll 본 변호인이 위 교도소 정문에 도착했을 때 동 교도소에 수
감중인 집시법 관련 피고인(일명 ; 양심범)들의 가족들 이 닫
혀진 정문 밖에서 재소자 면회를 요구하며 동 교도소장과 면
담을 요청하고 있었으며,
2) 당시 양성범 가족들은 약 20 명 정도였으며, 재소자들로부터
입고 있던 옷을 전해 받았는 데 옷이 찢어져 있고 피가 묻어
189
있었응을 교도관에게 설명하고 면회를 거절하는 이유를 밝히
라고 항의중이었음.
4. 결론
ll 대구교도소장이 변호사의 피고안 접견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
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변호인 접견 권한
을 침해한 것이고, 이는 교도소장의 직무유기행위로 사료되
며,
2) 교도소 정문이 혼잡을 이루어 몇시간 통제가 되었다고 하더
라도 교도소 내 근무중인 교도관들은 다른 문으로 출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이 익을 위한 변호사의 접견을
막은 행위는 즉각 시정되어야 할 것임.

번 호 사 김 은 집
대구시 수성구 벙어통 32 의 l.

5- 나. 시정건의문

번협 제 465호 1986. 9. l.
수신 법무부장관
제목 변호사의 접견교통권 침해사례 시정 건의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검은집 변호사로부터 별첨 보고서 내용과


같이 대구교도소 정문에서 출업을 제한당하였다 하오니 이‘는 변호
인의 접견교통권을 침해한 것으로 심히 유감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 있으시기 바
랍니다.
첨부;보고서 사본 1 통

대 한 변 호 사 협 회
협 회 장 김 은 호
190

6. 김근태 고발사건 처 리 촉구 공문

번협 제 433 호 1986. 8. 6
수신 서울지방검찰청 컴사장
제목 고발사건(검근태에 대한 고문사건) 처리 촉구

본협회 인권위원회에서 1985. 12. 30.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


장 김근태에 대한 수사과정에서의 고문사건에 관하여 검찰총장에게
고발장을 제출하여 위 사건이 귀청에 계류중언 줄로 알고 있으나
고발사건처리에 관한 법정기한이 초과하도록 아무런 사건처리결과

통보가 없으므로 이에 위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바업니


다.

대 한 번 호 사 협 회
협회장 김은호
191

7. 재판사무에 관련된 건의

재판사무에 관련된 건의사항

제 1. 재판사무 전반에 관련된 사항

l . 집회 •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특수사건의 공판기얼 등에 경


찰이 법원 출입구 및 법정주변을 둘러싸고 경비에 임하여 검
문·검색 또는 법정 방청의 통제 퉁을 하고 있는 바, 이는 일
반에게 사법권의 독렵 내지 사법에 대한 신뢰에 오해를 가져오
게 할 염려가 많으므로 특별히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원
이 자율척으로 내외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대책이 강구되어
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2. 법청은 신성하고 엄숙하며 온화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
인데, 소송진행과정에서 소송대리인의 직무에 대한 미숙 또는
견해의 차이나 특별한 사정 등에 의해 뭇하는 대로 소송진행이
원만하게 되지 않는 경우라도 법원이 소송대리인 변호언 등에
대하여 위압적이고 고답적 태도를 취하거나 소소한 일로 철책
하는 퉁 법정분위기를 좋지 않게 만드는 사례가 없도록 하여
주시기 바람니다.
3. 법정 내부의 시셜 빛 청소 등에 관하여 아직도 형사피고인석
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법정, 방청석이 긴 나무결상으로 되어
있는 법정이 허다하여 사법의 민주화라는 견지에서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되며, 특히 법정 내의 영선, 청소의
철저 를 통하여 일반이 재판을 경시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
기 바랍니다.
192

제 2. 국선변호에 관련된 사 항

국선변호 에 관하여는 그 지정 을 받은 변호사는 성실하게 그 업무


를 수행하도록 계속하여 촉구하고 있는 바, 한편 법원 측으로서는
다음 사항 에 대 하여 협조 있기 를 바랍니다.
l . 국선변호료는 정확히 지급하여 줄 것 .
2. 통일법정일 경우 한 변호인에게 2 ∼ 3 건 을 동시에 지정하여 줄
것.
3. 사선변호인이 선임되었을 경우 즉시 통지하여 주고 국선변호
인 을 취소결정하여 줄 것.
4. 1 개의 사건에 국선과 사선이 동시에 있는 경우에는 공동피고
인 사이에 이해가 상반되지 않는 한 사선변호인 을 국선변호인
으로 ;i.] 명토록 할 것 .

5. 만부 득 이한 경우 이외에는 법정에서 변호인 을 가급적 개임하


지 아니하도록 하여 줄 것.

제 3. 소송진행에 관련된 사항

법원행정당국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선하여 야 할 점 이

많으므로 그 업무집행 에 있어서 다음 사항을 협조하 여 주시 기 바랍

니다.
l . 소송기록의 열람 • 등사방법을 시정하여 줄 것 .
2. 증인신문사항의 제출 이 있을 때 에는 필히 상 대 방 교부용 1 통
의 첨부여부 를 확인하고 , 상대방 소송대리언이 나 그 소속사무
직원의 요구가 있 을 때 에는 변론기일 전에 이 를 교부하여 줄


3. 반대신 문결 과를 꼭 정확하 게 조서에 기재하여 주기 바라며 ,
그 성 질 상 반대신문사항을 미리 서면으로 준 비 할 수 없는 경우
가 많으므 로 가급적 녹음을 하여 줄 것 .
4. 증 인의 적대행위, 불손한 행위에 대 하여는 법정의 위신을 위
하여 법원 측 에서 즉 각 이를 제지시켜 줄 것 .
193

5. 증인여비는 보다 펀리한 장소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개선할



6. 송달료는 송달료처리규칙 제 2조가 준수되도록 조치하여 줄
것.
7. 중인여비예납금은 중인신청시에 동시에 접수할 것과 우송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
8. 소송비용의 결정, 형사보상 등 신청사건은 신속히 처리하여
줄 것.
9. 불변기간 등에 관계되는 소송서류 접수시에는 당사자의 요구
유우에 불구하고 반드시 접수충을 발급토록 하고, 야간접수시
에 그 여행이 소흘히 되지 않도록 할 것 .
10. 모든 강정서는 원본 및 부본 2통을 첨부 제출토록 하여 당사
자 쌍방이 그 부본을 각각 자질 수 있도록 할 것.
11. 소송기록보존에 앞서 예고등기의 말소등기 절차가 취하여진

여부를 재판부에서 확인하여 줄 것.


12. 재판확정증명서의 발급 등 모든 민원서류는 신속하게 처리하
여 줄 것.
13. 송탈불능시에는 다음 변론기일을 기다림이 없이 중시 보정명
령해 줄 것.
14. 법원의 사정 에 의하여(예 ; 인사이동)공판기일 • 변론기일 변경
시 에 는 즉각 서면 또는 전화로 소송관계인에게 통보하여 당해
공판기일이나 변론기일에 공연히 출석을 하는 폐단을 막도록
하여줄 것.
15. 형사법정에서 재판장이 변호인에게 변론요지시 제출을 요구
하연서 변론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사례가 있는 바, 이 는 구두주
의 • 공판중심주의에 위반되는 진행방법이므로 이를 개선하고
변호인의 변론, 피고인의 최후진솔은 제한받지 않도록 하여 줄

16. 판결선고는 가급적 오전 10시 이전에 나도록 하여 재판진행
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 주기 바라며, 법정사용상의 사정이 허

용되는 범위 내에서 특히 형사항소심에서는 선고일을 따로 정


하여 줄 것 .
194

17. 쌍방불출석제도는 소송수행의사의 포기로 보이는 경우에 대


처하는 제도임을 감안하여 가급적 쌍불처리는 하지 않도록 할
것.
18. 기일 통지서에 담당재판부를 필히 명시하여 줄 것 .
19. 법정 등에서 법관, 검사에 의한 변호권침해사례(변호인 비
방, 모욕, 당사자 모욕, 부당한 소송지휘, 변호인 선임간섭,
접견방해 등)를 강력히 시정하여 줄 것.
20. 구속된 형사피고인에 대하여 재판진행 중에 반드시 수갑과

포승을 풀어 위법한 소송진행이 되지 않도록 하여 줄 것 .


21. 법정에서 증거신청이 있을 때에는 그 채부 • 보류 등 여부에
불구하고 그 사실을 반드시 기록에 명시하여 줄 것.
22. 사실성형사재판에 있어서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정상에 관
한 중거신청을 가급적 채용하여 양형에 관한 심리에 보다 적극
적인 조치를 하여 줄 것 .

저| 4. 필요적 오석제도운영의 활성화 에 관한 사항

보석신청이 있을 시는 형사소송법 제 95조 필요적 보석의 정신을

살려 특단의 이유(국가보안법 위반 등)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상


당보증금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하여 인신구속에 관한 안일무사를
배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법적으로는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무
죄의 추정을 받는 것이고 따라서 형사소송정차는 불구속진행올 원
칙으로 하여 방어의 방법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함에도 불
구하고 현 실정은 이를 외면하고 형사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구속이

남용되거나 부당한 구속상태가 안일무사하게 방치펌으로써 절차상


의 구속의 장기화가 사실상 약점 내지 인질화되어 변호권과 방어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중대한 인권침해를


하고 있는 것업니다. 오로지 절차의 편의와 안일무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행되고 있는 이와 같은 전근대적 • 반문명적 인권침해사례
를 하루 속히 시정되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5

제 5. 농업노동자의 가동연렁에 대한 판례의 연장변경건의에 관한


사항

농업노동자의 가동연령을 δ5세로 하여야 합니다. 현하 국내 농업


노동자는 농촌도피현상의 결과 대부분 고령자임 을 알 수 있고, 이
고령자에 의존하지 아니하고는 영농이 불가능한 것이 현하의 농촌
실정일 뿐더러 우리나라 인구통계에서도 평균수명이 많이 연장되고
있고 전반적으로 건강상태도 향상되었으니 농업노동자의 가동연령

을 최저 65 세로 하는 것이 실태에 부합할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1986. 9. 30

대 한 변 호 사 협 회 장 71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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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그 」

법원행정처장 귀하
196

8. 국제인권규약 가업 동의안에 대한 의견

번협 제 502호 86. 9. 25.


수신 국회의장, 국회외무위원장 및 전 위원 (21 명), 국회 법

제사법위원장 및 전 위원 (16명), 외무부장관, 법무부장


관, 법제처장, 대통령비서설 법무수석비서관, 민주정
의당 대표위원, 신한민주탕 총재, 한국국민당 총재
제목 국제인권규약 가업 동의안에 대한 의견서 제출

정부로부터 국회에 제안된 국제인권규약 가업 동의안에 대하여


별지와 같이 의견서를 제출하오니 이를 반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첨 부 국제인권규약 가입 동의안에 대한 의견서 1 통

대 한 번 호 사 협 회
협회장 김 은 호

의 견 서

국제인권규약인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제권리에 관한 국제규


약 (A규약)과 시민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B규약)에
관하여 정부가 이에 가입하고저 국회에 동의안올 제출하였는 바 정
부가 이에 가업코저 함에 대하여 전폭적으로 이 를 지지 환영하는
바이다.
위 동의안에 의하면 A규약에 관하여는 아무 유보조항이 없고 B
규약에 관하여 만 4개 항의 유보조항이 았으므로 이 에 대 한 의 견을
197

다음과 같이 개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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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규약 제 4 조에 관하여 :
전부 유보하지 아니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됩.
이유:
(가) 위 규약에서 말하는 비상사태란 우리 국내법요로는 현행
헌법 제 51 조(비상조치권), 제 52조(계엄)을 지칭한다고 할 것인데
위 규약은 제 4조 제 2항의 비상사태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자의적
사형의 금지, 고문동의 금지, 노예제도의 금지, 민사상 계약불
이행으로 인한 구금의 금지, 형별불소급의 원칙, 법률상의 인격
인정, 사상, 양성, 종교의 자유에 대하여 제한을 가할 수 없는
것인데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우리 국내법에 저촉되는 바
도 없으므로 이를 유보한다연 국제사회에서 많은 오해를 유발하
여 오히려 국제적으로 악선전의 자료를 제공할 염려가 있는 것
이고 또한 대통령의 비상조치권의 행사에 있어 위 규약에 저촉
되는 조치가 있어서도 아니 됨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 다만 현행 실정법과 저촉되는 부분은 위 금지규정 중 규약
제 6조 제 5항의 18세 미만의 자에 대한 사형선고의 금지규정인데
이 점은 우리 소년법 제 53조에 16세 미만의 소년에 대하여만 사
형올 금지하도록 되어 있기는 하나 근래 우리나라에서 18세 미
만의 자에 대하여 사형선고를 한 사례가 없었던 점에 비추어도
그렇거니와 인도적 견지에서도 이때에 이를 받아들여 정부가 추
진중인 형법 개정 및 소년법 개정에 반영시컴이 옳다고 사료되
고 이를 부정함은 오히려 비인도적 조치라는 비난을 받을 염려
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다) 비상조치 에 관하여 국제 연합 사무총장을 통한 타당사국에
게 통지하는 규정에 대하여 북한이 규약의 당사국으로 되어 있
기는 하나 정부가 밝히고 있는 우리나라의 비상조치가 거의 북
괴의 통향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북괴의 부당한
198
행동을 규탄하는 뭇에서 전 가입당사국에 그 실정과 사실올 알
려 주는 것이 득책일 것으로 사료된다.
2. 규약 제 6조 저15 항에 관하여 :
유보하지 아니 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됩 .
이유 ; 전시 (1) 의 (나) 기재와 같다.
3. 규약 저19조 저13 항에 관하여 :
유보하지 아니 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
이유;

정부가 제시하는 유보 제안이유에 의하면 위 조항이 “범죄혐의

로 체포, 억류된 자는 법관 또는 법률에 의하여 사법적인 권한


이 부여된 관헌에게 신속히 회부되며…”으로 되어 있어 그 규정
이 체포된 자가 즉시 법관 면전에 나와 심사를 받는 영미식 제
도를 뭇하는 것으로 협의해석하여 이러한 제도가 우리나라는 없
으니 유보되어야 한다는 취지인 듯하다. 그러나
첫째, 위 조항은 그와 같이 협의해석올 할 것이 아니라 체포,
억류된 자는 신속히 법원 또는 검찰 풍에 송치되어야 한다는 뭇
으로 혜석되므로 적어도 벙죄수사단계에서 법관의 영장에 의하
여 구속되고 수사기관이 제한된 기간 내에 사건처리토록 되어

있는 우리 실정법과 정연으로 충돌된다고는 보여지지 아니하고,


둘째, 그 회부시기에 관하여 ‘신속히’라고만 되어 있어 이 규정
은 다분히 선언척 효력밖에는 없다고 사료된다.
따라서 위 규정을 유보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법률절차 없이 자

의로 체포, 억류를 하여 놓고도 사법적 심사대상이 되지 않게


한다는 크나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염려가 농후하다 할 것이다.
4. 규약 제 23조 저14 항에 관하여 ;
유보하지 아니 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이유;

(가) 정부측의 유보 제안이유에 의하면 첫째, 민법 제 777조(친족


의 범위), 같은 제 837조(이혼과 자의 양육 책임), 같은 제 811 조

(재혼금지기간)의 규정과 저촉된다는 취지이나 위 각 규정은

“배우자의 권리 및 책임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


를 취하여야 한다”는 규정의 문리해석이나 정신에 배치된다고
199

할 수 없고, 둘째, 섭외사법 제 16조(혼인의 효력), 제 17조(부부

채산제), 제 18조(이혼)의 제규정과 저촉된다는 취지이나 위 규정


들은 모두 준거법을 남편의 본국법에 의한다는 것뿐인 바 이것
이 정면으로 남녀형등을 해치는 규정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거
니와 더구나 이것이 부계혈통주의에 업각한 규정이라고만 할 수
는 없고 그 문리해석상 위 규약에 저촉된다고 보여지지도 아니

한다.
(나) 하물며 우리 헌법 제 10조 제 1 항의 남녀평등의 규정이나 같
은 제 34조 제 1 항(혼인과 가족생활)의 규정에 의하면 “혼인과 가
족 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형둥을 기초로 성럽되고 유지
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이 규약 제 23
조 제 4항은 “권리 및 책임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
치를 취한다”고만 되어 있어서 위 규청은 강행법규성의 유무가
의성되어 선언적 의미밖에는 없다고 보여지는 바 남녀명동에 관
하여 우리 헌법규정에도 미치지 않는 이 규약의 규쟁이 국내법
과 저촉 운운의 이유로서 이를 유보한다면 문화국가로서의 체연
을 깎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결과가 될 것이고 설사 만일 그
조문의 엄격한 해석£로 국내법에 저촉된다고 가정한다면 그 국
내법 규정 등은 모두 헌법 위반임이 명백함을 자인하는 결론에
도탈될 것이므로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할 터인즉 그러한 뭇에

서도 유보되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
(다) 뿐만 아니라 유보하지 아니하기로 한 규약 제 3항에도 “남
녀의 동등권을 보장할 것을 약정함”이라고 되어 있어서 이 점에
서도 위 유보는 일관성이 없다.
따라서 위 4개 조항의 유보는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신을 손
상케 할 염려가 크다고 아니할 수 없으므로 아무 유보 없이 가

업하는 것이 옳다 할 것이다.
2 00

9. 인신구 속 은 신중을 기하라

인 신 구속은 신중을 기하라

우리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정치인, 학생 및 재야사회단체 인사

들이 국가보안법 및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등 위반혐의로 구속 • 기


소되는 사태를 깊은 우려와 함께 주시해 왔다.
그런데 또다시 본 협회 회원 이 돈명 변호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
로 구속되어 우리는 김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 법들의 다음과 같은 확대적용에 관하여 우리의 견해를
밝히는 바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를 제한하는 형별법규는 그 구성요건을 명확
히 규정함으로써 유추해석에 의한 법 집 행상의 자의가 개입하지 못
하도록 막아야 한다.
더우기 이와 같은 법이 규정 자체의 불비로 법집행자의 신중하고
제한적인 해석적용 에 의해 치유되지 못하고 , 오히려 그 해석적용이
확대됨으로써 법이 가지는 문제만 더 크게 노정되어 왔다.

최근에는 학생들은 물론 여러 단체 인사 에 까지 이 법률들이 확대

적용되고, 면책특권이 부여된 국회의원까지도 구속되기에 이르렀는


바, 우리는 이 법 률들의 그릇된 적용이 자칫하면 참다운 민주사회
건설과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갚은 의혹을 가
지지 않을 수 없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운 급진적인 화경주장 이 일부

운동권 학생 에 의해 주창되고 있는 것은 사 실 이다.


그러나 이들 주장의 존재가 다른 모든 비 판적인 반 정부적 논 의 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아 처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201

정부가 만일 그와 같은 현상이 야기된 근본적언 원인을 치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과거의 냉전체제 하에서 배태된 이분법적 흑백논
리에 의해 모든 사상적 논의를 양분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었다면
이는 즉각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당국이 이돈명 변호사를 단순한 법인은닉
죄도 아닌 국가보안법위반죄로 구속한 처사는 국민에게 정치보복이
아니냐 하는 의문만을 안겨줄 뿐이다.
이돈영 변호사는 우리 재야법조인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 있어
서도 지도적인 인사로서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장직을 맡고 있
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바, 이부영 씨를 숨겨준 사실에 관하여서
도 양성의 소리에 따랐 을 뿐이라고 솔직허 시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어
느 하나 구속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로한 그를 구속까지 한
것은 일반적 구속관행에도 반하는 조치로서 우리는 이 를 도저히 납
득할 수 없다.
이 돈명 변호사는 그동안 학생 , 민주인 사 등에 관한 사건을 주도
적으로 담당해 온 변호사로서 구속될 때만 해도 부천 성고문 사건
을 위시하여 문익환 목사 사건 등 중요한 인권사건올 동료 변호사
들의 선두에 서서 변론해 왔다.
위와 같이 우리사회의 양심을 대변하는 이돈명 변호사에 대한 구
속은 정치보복이라는 의심을 철게 할 뿐만 아니라, 현 정부가 수행
하고 있는 반공정책에도 도움이 안되는 처사라고 확신한다.
작금 건국대학교 사태에 관하여 우리는 자유민주제도를 부인하는
언동을 용납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1 , 000 여명이라는 구
속에 대하여는 옥석(玉石)을 구분({具찢)할까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거듭 촉구하거니와 이돈명 변호사를 위시하여 부당하게 구속된
인사들을 즉각 석방하고 국가보안법 퉁 적용 및 인신구속에 신중을
기해 줄 것을 요구한다.

1986. 11 3.

대 한 번 호 사 협 회
협 회 장 김 은 호

202

10. 평화적 집회 및 시위 보장에 관한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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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국가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야말로 어느 자유보다도 소중

한 것이다.
지난 11 월 29 일 신민당이 주최한 직선제개헌추진범국민대회는 대
회에 참가할 많은 정치인, 시민, 학생들을 가택에 연금하고, 대회
개최 예정지였던 구 서울고를 중심으로 도심지의 주요 간선도로가
6만여 경찰병력에 의해 강정됨과 아울러 대회장 인근의 시청, 종각
등의 지하철, 버스정류장이 폐쇄된 상태에서 정당의 집회는 개최하
지 못하였다.
또 한편 대회 전에 주최측 정당의 당사를 압수수색하여 집회를
알리는 전단올 압수하고, 국민들에게는 언론매체를 통해서 대회참
석 자체가 불법집회를 기도하는 범법행위인양 도하 신문기사를 장
식하였으며, 대회 당일 단 10 여 명의 시민이 지격보기만 해도 최루
탄을 발사하는가 하면 대 회 장으로 참석 하려 던 2,229 명 이 경 찰에 연
행되었다 한다.
정당의 집회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경찰력으로 제지 • 방해한다는
것은 집회 및 시위를 보호하는 집시법의 업법취지에도 위반하고,
정당법에 규정한 정당활동의 자유를 억제하였을 뿐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집회 • 결사의 자유 등 민주척 제권리를 정면 부인하는 중대
하고도 법치주의에 역행하는 위헌적 처사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

다.
앞으로 당국은 평화적 집회와 시위는 보장하여야 한다.

1986. 12. 1.

대 한 번 호 사 협 회
협 회 장 김 은 호
203

11. 언권기념일 담화문

담 화

l. 우리는 해마다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이하여 그 고귀한 뜻을 기리


면서 우리의 인권상황을 지적하고 그 개선을 요구하여 왔다.
오늘 또다시 이 날을 맞으면서 이 땅의 인권상황 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고, 1986 년은 사회정의와 국민의 기본권을 옹
호하는 책무를 지닌 우리들에게 그 어느 해보다도 뼈 아픈 자책과
한없는 부끄러움을 남긴 한해였다.
수많은 학생, 근로자들의 잇달은 구속사태, 그리고 언론 • 출판 •
집회 • 결사 등 제반 자유권척 제도의 제한과 이 에 항의하는 분신
사태 등은 진정 인권옹호와 사회정의실현을 사명으로 한 우리 법

조인들로 하여금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2. 민주척 기본질서의 으똥이자 인간적 존엄성의 기초인 신체의 자
유와 안전이 영장없는 연행, 연금, 장기구금, 고문과 가혹행위
등으로 침해당하여 왔다.
서울노동운동연합사건, 전국노동자연맹추진위원회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등 많은 사건에서 그러한 현상을 보아 왔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언론 • 출판의 자유에 있어서 우리의 우
려는 더욱 가중되었다. 언론계의 한 「보도지침」이라는 자료에 의
하면 언론의 자유가 심히 제한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바 이와
같은 것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사건으로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에 있어서도 출판업자와 서정상의 구속,
서점 • 출판사에 대한 빈번한 압수수색, 그리고 민주통일민중운동
연합 등 단체에 대한 법적 근거 없는 해산병령과 압수수색영장을
남용한 사실상의 사무실 패쇄조치, 최근 신민당의 직선제 개헌
204
서울대회에서 보았듯이 방대한 경찰병력에 의한 집회의 근원적
봉쇄 등은 민주국가에서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아니 될 중대한 사건
이 아닐 수 없다.
3.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상황이 헌법상의 기본권 조향을 근저 에 서

부터 흔들었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 이념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각
계와 본 협회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일부 경찰관의 무지에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불도저식 시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앞으로 인신구속을 담당하는 경찰과 검찰은 법의 집행을 공명정
대화하고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관장하는 사법부는 인권의
보루로서 영장발부 를 신중히 하여 법집행의 남용이나 영장의 남
발로 인한 인권의 침해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 주기 바라는 바

이다.
우리는 지금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저력을 바탕
으로 자유진영의 얼원으로서 세계 속의 한국을 심어가는 중이다.
그러므로 폭력은 금물이다.
당국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정신에
따라 국민의 인권과 인신의 존엉성을 보호해야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1986. 12. 9

-호

혀티 으」

대 한 번 호|
키디

협 회 장 호
205

12. 정신보건법안에 반대한다

정신보건법안에 대한 의견

l. 의견의 요지
정신보건법안에 반대한다.
*이유
(가) 이 법안은 정신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및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고 내세우고 있으나 현재 전국에 산재해 있는 전
근대적이고 비의료척이며 다만 격리와 수용 그리고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고 비인간적 처우로 인하여 사회의 물의가 비등한

이른바 정신요양원을 양성화, 합법화시키려 하고 있다.


정부는 입원치료 또는 요양을 필요로 하는 정신질환자가 전국
에 얼마나 있는지, 그중 이른바 정신요양원에 수용되어 있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용(受容)능
력은 얼마나 되고, 민간의료기관의 수용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자비치료의 능력이 있는 자는 얼마냐 되고, 사회적 원조에 기

대할 수밖에 없는 자는 얼마나 되는지에 관하여 아무런 통계도


발표한 바 없다.
그러나 현재의 정신요양원은 양성화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점

차 폐쇄하거나 전환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 필요한 인적 •


물적 설비를 갖추어야 하므로 이에 소요되는 재정적 조치와 설
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법안은 별도 예산조치를
함이 없이 정신요양원을 그대로 양성화할 것을 의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용태세를 갖추기 전에 정신요양원올 일시에
폐쇄할 수 없는 실정이고 반대로 이 전근대적 • 비의료적인 정
신요양원을 양성화하는 것은 인권적 • 문화적 차원에서 절대로
• - ‘,

206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하루속히 그 수용태세를 갖추도록 노력하고 그
때까지 이 법의 업법은 보류해야 한다.
(나) 이 법안은 의료보호조치(제 14조), 긴급보호조치(제 15조)동 인
신구속의 실질을 가진 제도를 창성하고 있는 바, 이 제도의 남
용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하고도 상세한 규정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안은 이에 관한 아무런 규정도 두지 않고 있다.
사회보호법 제 8조, 제 20 조 등은 섬신장애자, 중독자로서 죄를

범한 자까지도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치료강호를 선고하고 사

회보호위원회의 의결로 이를 종료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죄


를 범한 자도 대싱절차에 의한 법원의 판결로써만 치료감호를
할 수 있을 뿐인데 “민법상의 부양 의무자, 후견인 또는 읍연

장”(제 12조)이 정신질환자라고 하여 신청만 하면(제 14조), 또는


“자기 또는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제 15조)만 있다고 인
정하연 의사의 진단도 없이(제 14 조), 또는 정신과 전문의의 의

견만을 듣고(제 15조) 의료보호시설에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언권칭해의 우려는 물론, 다른 법률과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헌법상의 신체의 자유, 영장제도, 다른 법률과의 균
형 등 광범위하고 신중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이 법을 제정하
는 것은 옳지 않다.

2. 보충 의견
이 법안은 이번 회기에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다음의 몇 가지
점이 수정되어야 한다.
(가)시행시기를 위 반대이유에서 말한 준비기간을 충분히 두고

정하여야 한다. •
(나)이 법의 적용을 받을 자에서 간질환자를 제외하여야 하며,
정신질환자를 대통령령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정신과 전문
의의 진단에 의하여 정신병자로 판명된 자에 국한하여야 하
다.
(다)‘의료보호시셜’이라는 용어는 의료일반의 시설과 혼동할 우
려가 있으므로 ‘정신의료시셜’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207
(라)국가, 지방자치단체나 의료법에 의하여 정신의료기관을 개
설할 수 있는 자 또는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한 사회복지법인
으로서 보건사회부 장관의 허가를 얻은 자만이 정신요양원
또는 정신건강상담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정신요양원
또는 정신건강상담소에는 정신과 전문의를 반드시 두도록
규정해야 한다(제 5조).
(마)정신의료시설의 개설자(국가를 제외한다)가 정신의료시셜을
폐지하거나 엽무를 정지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여야 한다(제 6조).
(바) 보건사회부 장관은 사전협의를 거쳐 정신의료시셜 중에서
의료보호조치를 의뢰할 시설을 지정할 수 있게 하고 제 7조
제 2항을 삭제하여야 한다.
(사)종합병원에 대한 정신과 설치 명령은 의료법에 그 규정여
부를 정하고 이 법에서는 삭제하여야 한다(제 9조, 제 11 조
제 2, 3, 4, 5항).
(아)이 법에 의한 허가취소는 정신요양원 또는 정신건강상담소
의 개설허가에 국한되어야 하며 과정금의 부과는 삭제되어
야 한다(제 11 조 제 1 항).
(자)의료보호조치(제 14조 제 2항)와 긴급 의료보호조치(제 15조
제 2항)는 정신과 전문의 2인 이상의 감정결과와 그 조치의
펼요성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된 경우에 한하도록 하여야 한

다.
(차)보호조치를 결정한 때에는 보호의무자에게 지체없이 서연
통보하도록 하여 야 한다.
(카)보호조치를 받은 자, 그 배우자 및 친족 또는 그들의 대리
언은 보호조치가 있은 날로부터 30 일 이내에 그 당부의 싱
사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게 하고, 법원은 정신과가 설치된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보호조치에 관하여 감정 또는 의견


을 제출한 자를 제외한다)의 의견을 들어 보호조치의 취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타)또한 보호조치를 받은 날로부터 일정기간(예 ; 3 월) 경과할
때마다 보호조치의 해제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게 하고 법
208
원은 같은 절차에 따라 해제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

다-
(파)의료보호조치 에 소요되는 비용은 국가, 지 방자치 단체 또는
보호조치 신청인이 부담하여야 하고 사럽의 정신의료시설에
전가하여서는 아니 된다.
(하)보호의무자의 보호의무 태만은 경범죄처벌법에 처벌규정이
있으므로 이 법에서는 삭제함이 옳다.
(가)보호조치 를 위한 감정의사의 허위감정에 대하여는 형법 제
154조와 유사한 허위감정의 죄 를 규정하여야 한다.

1986. 11 .

대 한 번 호 사 협 회
209

13. 사회보호관계 법률에 대한


개정의견

사회보호관계법률에 대한 개정의견

저| 1‘ 사회 보호관계법 률 개 정의 필 요성

보안처분은 형벌과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형벌만£로써는 불충분


하거나 부적당한 사회방위의 목적을 다른 수단에 의하여 달성하려
는 욕구에서 출발하여 형벌을 보충하거나 대체하는 것으로서 법원
에 의하여 선고되 는 자유의 박탈 또는 제한을 수반하는 치료, 개

선, 격리 등에 관한 형법상의 조치를 지칭한다.


보안처분은 그 본질상 첫째로 법원에 의하여 선고되는 사법처분
이고, 둘째로 형벌을 보충 또는 대체하는 형법상의 효과라는 점에
서 순수한 예방구금이요 한편 현실적으로 범법행위가 행하여졌음을
요건으로 하여 비 로소 과하여지는 불이익처분이며, 세째로 형벌을
보충하거나 대체동L는 기능은 범죄반복의 위험성을 사전에 억지하는
데에 특정이 있다.
보안처분은 오로지 병인의 위험성만을 기초로 하고 범인의 교화,
개선에 의한 사회방위라는 특별예방만을 그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인
권의 보장이라는 형사법 원리의 제약범위 내에서는 벙하여진 위법
행위 즉, 범죄에 대한 범인의 책임의 대소와는 관계없이 책임의 균
등을 념는 자유의 구속까지도 이론상 • 사실상 가능하게 되는 것이
다.
또 보안처분이 재범의 우려라는 의미의 위험성의 대소에 상응한
형사처분이요, 장래에 대한 예방적 조치인 점에서 합목적적 요구가
강하게 지배된다.
210

형법을 범죄의 진압과 사회의 방위라는 사회적 목적의 변에서 관


찰한다면 형벌이나 보안처분이나 동일한 목적을 갖는 것이므로 양
자 모두 형법의 범위에 속하게 되어 양자를 분리하여 취급할 필요
가 없다는 이론이 강하게 나타냐고 있는 바, 형별과 보안처분이 그
본질상 형별은 책임을 기초로 한 회고적 응보이고 보안처분은 위험

성을 기초로 한 전망적 예방인 점에서 구별된다고 하더라도 대상자


에 대한 양자의 현실적 기능면에서 관찰한다면 특히 자유박탈의 보
안처분에 있어서는 형벌과 같은 고통이 주어지는 만큼 보안처분이
범인의 책임해소와는 무관한 것일지라도, 그 집행의 현실이 형별과

통일한 기능을 수행한다면 보안처분의 기간 중에 형벌이 목적히는


응보가 속죄와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국가가 반드시
이중으로까지 고통을 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신중히 고려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누범자, 정신장애자에 대한 보안처분법제화의 요
청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다가 1972. 12. 27. 개정된 우리나라 헌법

제 10조에서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보안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보얀처분제도의 실시를 가능하게 하는


헌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되었고, 이에 근거하여 1980. 12. 18.
에 “죄를 범한 자로서 재벙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에 대하여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사
회복귀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보호법
이 제정 • 시행되게 되었다.
보안처분제도의 정당성이 인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합목적
성에 의한 효융성의 추구에 급급한 나머지 남용되고 오용되어서는
결코 안되므로 보안처분을 구체적 대상자에게 선고 • 척용함에 있어
서는 그 처분의 정당성 즉, 그 선고의 구체적 타당성이 담보되어야
할 엄격한 제약으로 법치국가원리의 지배, 현저한 위험성의 존재,
균등(비례)의 원칙의 적용이라는 요건이 필요하다.

제 2 보안처분의 형법에의 수용

우리 형법전은 사형, 정역, 금고, 벌금 동 전통적인 통상적 형벌


211

만을 규정하고 있는 외에는 현대의 형사정책적 요구에 의하여 실시


하고 있는 보안처분은 형법전에 수용하지 않고 사회안전법, 사회보
호법, 마약법 등 특별법에 위임하고 있으나, 보안처분도 단순히 범
인의 위험성만을 전제로 하는 무조건적인 예방조치가 아니고 일정
한 가벌척 위법행위와 전과 등을 전제로 하는 형사법상의 제재언
이상 형벌에 준하는 엄격하고 제한적이며 신중한 적용으로 국민의
인권보장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형법전이 범인을 위한 마그나 • 카르타로서 유효하게 기능을 다하
려연 보안처분의 적용과 집행에 있어서드 엄격한 사법적 견제와 심
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형벌과 보안처분 양자가 같이
행사적 제재로서 본질적으로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에 중대한 영향
올 미치는 고통이요 해악인 이상 형사벌의 일반적 속성에 따라 필
요 • 최소한도에 그쳐야 힐 최후적 수단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특
별법 또한 형법과 마찬가지로 형식적 의미의 법률인 까닭에 특별법
에 의하더라도 최형법정주의적 요구에 합치하는 이상 국민의 인권
보장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있 을 지도 모르겠으나, 죄형법
정주의, 책임주의, 양형의 조건 등 형사법의 기본적 제원칙이 영시
되어 있고, 형법이야말로 죄와 벌에 대한 기본법이라는 국민적 인
식이 보변화되어 있어서 특별법에 의한 보안처분은 예외적 • 행정처
분적인 것으로 오인될 염려가 없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법전 외의
영역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보안처분의 적용이 당사자에게、 미
치는 지대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형법전상에 규정되어 있는 형벌

만큼 그 적용이나 집행이 신중하게 행하여진다는 국민적 인식이 보


편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형법개정
에 때를 맞추어 사회안전법이나 사회보호법 등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는 보안처분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형사적 제재의 기본적 원리
등을 기본법인 형법전에 수용하여 엄격한 사법절차에 따라 적용하
고 집행하는 것이 형사법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는 데 유익할
것이다.
형법전상에 형사적 제재는 범인에 대한 도덕적 • 규범적 비난 즉,
책임에 상응하는 응보적 성 질을 갖는 형벌적인 것, 범인의 정신척
이상이나 습벽 등을 치료하여 범인의 사회적 위험성을 제거함으로
212

써 범인의 재사회화를 가능하게 하려는 개선적인 것, 나아가 범인


이 현저한 범죄반복성이나 고질적인 반사회적 위험성 때문에 주로
사회방위적 필요성에서 사회로부터 일정기간 격리시키는 보안적인
것 등을 모두 포괄하여야 하며, 각각의 제재는 모두 “형사적 제채”
라는 상위개념으로 포섭하여 죄형법정주의, 책임주의, 균형주의,
법익보호주의 동 형사법상의 기본원칙의 범주 내에서 제약을 받으
면서 각 그 제재가 갖는 성질상의 고유원리에 따라 적용되고 집행
되는 것이 가장 효융적인 대벙죄 투쟁수단이다.
위와 같은 관정에서 형법총칙에서 형의 종류를 현재와 같은 사
형, 정역, 금고, 벌금 둥으로 규정하는 형식을 지양하여 형을 형사
적 제재로 대치하고, 형사적 제재 속에 형별적 제재로서 사형, 자
유형, 벌금을 두고, 개선적 제재로서 치료감호를 두며, 보안적 제
재로서 보안강호 등을 규정하는 것이 옳다.
형별적 제재는 책임을 한도로 제재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는 철저
한 소극적 행위책임주의에 의하여 제약하게 하고, 개선적 제재 는

정신질환, 중독성습벽 등의 치료와 금단 • 요양 둥을 위하여 합목적


적 상당성의 원리의 제약을 받게 하며, 보안적 제재는 사회의 안전
보호를 위한 격리수용에 역점을 두되 수용중의 처우에 있어서는 위
험성 제거를 통한 재사회화에도 노력하도록 하고 위험성의 질과 양
에 비추어 처분이 균형과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제약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결론으로 현행 사회안전법, 사회보호법, 소년법, 갱생보호법 등
특별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보호관찰, 주거제한, 보안강호, 치료감
호, 보호강호 등 각종 보안처분을 통합정비하여 우리의 현실에 알
맞는 보안처분을 형법에 수용하고, 보안처분에 관한 독립된 장을
신설하여 처분의 종류, 대상, 기간, 형과의 관계 등 기본적 사항을
규정하고, 절차 등에 관한 필요한 사항은 형사소송법, 행형법 등에
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 3, 사회보호법에 관한 개정의견

원칙적으로 형법전에 수용할 것으로 하기로 하고, 그 개별적인


213

사항에 대하여는 현행 사회보호법의 적용, 시행을 통하여 문제가


있는 점을 입법시 고려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l) 보호강호의 기간을 현행 사회보호법에서는 7년 또는 10년으
로 절대척으로 규정하여 법원의 재량의 여지를 배제하고 있으나
(제 5조), 구체적 사안과 범인의 정상에 비추어 법원이 융통성
있게 기간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 보안처분의 본질이나 형사제재
의 개별화이념에도 합치되고 구체적 정의의 실현에도 도음이 된

다.
(2) 현행 사회보호법은 보호감호의 요건에 관하여 법관의 재량적
판단을 원칙척으로 배제하고 있으나, 벙죄의 유의성, 재범의 위
험성, 범인의 상습성에 관하여 범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엄격

하게 해석함으로써 보호감호처분을 가급적 억제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3) 보호감호의 목척이 교육, 교화에 대한 사회복귀능력의 배양
에 있으므로 피보호감호자에 대한 교육과 직업훈련을 강화하여
야 하며 피보호강호자에 대한 가출소, 집행연제 등을 확대하는
방향£로 제도를 운영하여야 한다.
(4) 치료감호는 범죄예방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적
인 측 면에서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므로 특별감호시설의
위치와 운영 등 그 개선책이 뒤따라야 한다.

저| 4, 사회안전법에 관한 개정의견

현행 사회안전법의 보안처분 역시 형사적 제재임이 명백하고 주거


제한처분과 보안감호처분이 헌법상의 주거이전의 자유와 법관의 영
장에 의하지 아니한 신체구금을 내용으로 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

제재이면서도 법원의 사법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행하여지고 있음은 분명한 헌법위반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
므로 현행법은 마땅히 폐지하고 새로운 형태로서 업법하여야 한다.
또 새로이 업법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형법전에 수용하여야

하고, 사회안전을 위한 보안처분은 원칙적으로 국시에 반하는 사상


뱀에게 한정하여 과하도록 하되 그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여야 할
214

것이며, 사상범을 형법, 군형법 및 국가보안법 등으로 법원에 공판


청구를 하면서 동시에 보안처분청구를 하여 사법처분에 근거하여
범인에게 적합한 유형의 보안처분을 집행하여야 할 것이다.

1986. 11

대 한 번 호 사 협 회
215

14. 형사소송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

1. 개정이유

가. 법률문화도 타분야의 발전과 더붙어 일익 발전하여야 하고 .

인권존중의 제도적인 자세도 날로 개선되어가야 할 것인 바,


우리나라 현행 형사소송법은 1954. 9. 23. 법률 제 341 호로 제정
된 후 5 회에 걸쳐 부분적스스로 개정되면서, 도리어 이러한 점에
있어서 후퇴한 바 있으므로 그중 우선 긴급히 개적이 요청되는
규정을 보완하고 재정비하려는 것엄.
나. 사건본인인 피고인에게 소송서류 및 중거물을 열람 또는 둥
사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한 것은 부당하므로 피고인 본언도
그 열람권과 등사권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음.
다. 보석허가결정 또는 구속취소결정에 대하여 그 집행의 효력을
박탈하는 즉시항고제를 채택한 것은 보석 또는 구속취소제도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시정하여야 할 것엄.
라. 구속적부심사제도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서 구속된 자는 누
구든지 구속의 적법여부 를 심사하는 제도이므로, 구속자가 경
찰인가 또는 검사인가의 여부에 의하여 차등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죄명의 여하에 따라 차등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다.
마. 구속적부심사청구를 기각한 결정에 한하여 청구인이 항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부당한 구속의 계속을 방지할 필요가 있

p.

바. 구속을 연할 수 있는 신원보중금 예치제도 도입.


216

현 행 법 개 정 안 개 정 이 유

제 55조(피고인의 공판 | 제 55조( ------------등)


조서열람권) @ 변 I CD피고인은 공판조 변호인에게 소송서류
호인이 없는 때에는 서의 열람을 청구할 및 증거물의 열람 또

피고인은 공판조서 수있다. 는 등사권을 인정하면


의 열람을 청구할 서 피고인 본언에게

수었다.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


지 아니하는 것은 불
합리함.
@(생략) @(현행과 같음)
@(생략) @(현행과 같음)
<신 설> @제 35조의 규정은
피고인에게 이를 준
용한다.
제 70조(구속의 이유) 제 70조( ……… ……)
@(생략) @(현행과 같음)
@5만원 이하의 별 @제 75조 제 4 항의 | 신원보증금의 예치에

금, 구류또는과료 규정에 따라 구속영 | 의한 구속연제 제도도


에 해당하는 사건에 장에 기재된 신원보| 업
관하여는 전항 제 1 증금을 예치하거나
호의 경우를 제한 또는 5만원 이하의
외에는 구속할 수 벌금-----.
없다.
제 75조(구속영장의 방 | 제 75조( ---------… 등)
식) | @(현행과 같음)
@(생략) I @(현행과 같응)
@(생략) @(형행과 같음)
@(생략) @제 1 항의 구속영장

<신 설> 에는 상당한 신원보


증금을 기재하고 동
217

금원을 예치하면 구
속을 변하는 취지도
기재하여야 한다.
<신 설> @제 4항의 규정에
의한 신원보증금을
예치한 피고언에 대
한 사건이 종결된
때에는 즉시 그 예
치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제 97조(보석 , 구속의 제 97조( ……------…)
취소와 검사의 의 @(현행과 갇음)
견) @(현행과 같음)
@(생략) @(삭제)
@(생략) 보석허가결정 또는 구
@보석을 허가하는 속취소결정에 대하여
결정 및 구속을 취 불복이 있으면 제 402

소하는 결정에 대하 조에 따른 일반항고를


여는 검사는 즉시 하게 하여야 할것임.
항고할수있다. 즉시 항고제는 인권보
호에 적합하지 아니

| | |함
제 214 조의 2(구속의 | 제 214조의 2( ·········)
| 적부심사)
@구속영장에 의하 I CD ···
여 구속된 피의자
또는 그 변호인, 법
------- -------------““
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
매, 호주, 가족이나|고용주는 관할법원에
동거인 또는 고용주 I 구속의 적법여부의 성
는 구속영장의 발부 | 사를 청구할 수 있다.
2 18

가 법 률에 위반하거
나 구속후 중대한
사정변경이 있어 구
속을 계속할 필요가
없을 때에는 관할법
원에 구속의 적부심
사를 청구할 수 있

다.
다만, 다음 각 호의 | (단서삭제) 구속의 적법여부는 구

1에 해당하는 최나 속주체 또는 죄명에


검사의 범죄인지사 따라 차등이 있을 수
건으로 구속영장이 없는 성질의 것임 .
발부된 자의 경우에
는 그러하지 아니하

다.
1 형법 제 2면 제 1 장 I 1. (삭제)
과 제 2장의 죄, 국

가보안법위반의 죄,

반공법위반의 최
2. 사형, 우기 또는| 2. (삭제)
단기 5년이상의 갱
역이나 금고에 해당
하는죄
@청구가 다음 각호 | @싸제) 구속의 적법여부에
의 1 에 해당하는 예 대한 판단은 재판관
에는 법원은 제 3항 에게 일입할 성질의
의 심문없이 결정으 것엄 .
로 청구를 기각하여

야한다.
1. 청구자 아닌 자
가 청구하거나 통
얼한 구속영장의
219

발부에 대하여 재
청구한때
2. 제 1 항 단서의 청
구금지규정을 위반

한때
3 공범또는공동
피의자의 순차청구

가 수사방해의 목
적임이 분명한 때
@제 1 항의 청구를 @----------
받은 법원은 지체없
이 구속된 피의자를

심문하고, 수사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조
사하여 그 청구가
이유없다고 인정한

때에는 결정으로 이
를 기각하고, 이유 --- ----- ------- -- -------
있다고 인정할 때 에
는 결정으로 구속된
피의자의 석방을 영
하여야한다.
@제 2항과 제 3항의 @제 2항의 청구기각
결정에 대하여논 항 결정에 한하여 항고
고하지 못한다. 할수있다.
@(생략) @(삭제)
@구속된 피의자에 @ -- --
게 변호인이 없는
때 에는 제 33조의 규

정을준용한다.
@(생략) @(삭제)
@(생략) @(삭제)
220

@(생 략) | @(삭제 )

1986. 11 ‘

대 한 번 호 사 협 회
221

15. 민볍중 개정법 률안에 대한의견

번협 제 635 호 86. 12. 5

수신 국회의장 • 국회법사위 • 각 정당대표


제목 민법 중 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민법 중 개정법률안은 민법 중 친족 • 상속


편에 대하여 가부장제 가족제도를 불식하고 친족의 범위와 동
성동본 불흔제도를 조정하고 호주제도를 폐지하는 등 기존 가

족제도를 일대변혁하려는 것으로서 이는 우리나라 전통가족제


도에 대한 중대한 문제이므로 본 협회에서도 연구 중 이 므로 충
분한 연구시간을 가지고 각계의 연구결과를 수렴하여 주시기를
건의합니다.

대 한 번 호 사 협 회
협회장 김은호
222

16. 한국피폭자 대책에 관한 건

번협 제 581 호 1985. 12. 30.


수신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
제목 한국피폭자에 대한 대책에 관한 건

1. 한국피폭자들에 대하여 언도적 견지에서 일본정부에 위자료,


치료비의 청구
2. 한국인 피폭자에 대하여서도 일본인피폭자와 통등하게 도일치
료 및 건강관리수당을 지급하도록 일본정부에의 촉구
3. 도얼치료가 불가능한 한국인 피폭중환자에 대하여서는 원폭종

합병원을 건립하여 줄 것을 일본정부에 건의하여 주시기 바랍


니다.
4. 기타 적절한 조치를 요망합니다.

대 한 번 호 사 협 회
협 회 장 김 은 호
제 3부 기타 인권관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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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우리의 결의 (한국기자 협회 한 국 일보분회)

86년도 기협한국일보분회 정기 총 회에 모인 우리는 지난 1 월 이후


안의섭 편집위원의 두꺼비 만화 연재중단사태와 2월 발생한 경찰기
자 집단구타사건 등을 언론인 들 에 대한 중 대 한 신분상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취재 및 보도활동의 자유, 이와 관련된 언론인의 신분보
장 없이는 진정한 자유언론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음을 거듭 천명
한다.
우리는 오늘의 언론이 어느 때보다도 위축되고 외부압력에 무력
하다는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이며,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얄
렬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갚은 책엄을 통강한다.
또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오늘날의 정치사회 현실이 원만한 대
화와 타협으로 수습되고 전 국민의 소망인 민주회복이 조속히 이루
어지기 를 바라며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안의섭 편집위원의 원상회복을 비롯, 취재보도와 관련 신분상
의 침해 를 받고 있는 모든 언론인의 신분보장을 강력히 촉구
한다.
l 언론의 기능회복과 자율권 확보를 위해 기관원 출업과 홍보지
침 등 일체의 외부간섭을 거부한다.
l 민주화를 위한 정당한 의사표시 들 에 대한 공정한 보도를 통해
민 주발전의 일익을 담당한다.

1 986 년 4 월 1 8일

한국기 자협회 한국 일 보분회


.. ~

226

2. 오늘의 언론상황에 관한 우리 의 입 장

우리 조선일보 기자 들은 지난 80년 봄 자발적인 언론자유를 선언


한 이후 실로 6 년 만에 이 자리에 모였다. 오늘 모임은 유신통치

하에서 꽃을 피웠던 선배들의 자유언론투쟁 이후 거의 11 년 만에


갖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오 늘 이 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정해
만난 이유는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 언론인 모두가 절감하고
있는 위기의식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짧게는 지난 11 년의 언론
투챙사 속 에서 길게는 조선일보 66 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언론현
실은 간단없이 악화되어 왔다.
더우기 80 년 이후 정부의 언론정 책은 국민 들 이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 들 에 대해 침묵 을 강요하는 방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
사안의 반복과대 보도 를 강요하는 단계 에 까지 왔다. 화합 또는 안
정이란 명목으로 우리에게 씌워진 침묵의 멍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난 외부의 압력으로서보다 기자 스스로의 의식 속 에 내 면화되
어 장재의식으로까지 굳어져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강요된 침욱이나 강제된 대 중조작은 새삼 그 예를 들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사회 각 분야의 갈등을 첨예화하고 더욱 심화시키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으며 또 이 순간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고 민주라는 이름의 새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국민들의 사회개혁에 관한 분위기가 성숙해 저마다 처해 있


는 자리에서 주인이 되기 위한 진통이 거듭되고 있다.
민주화의 요체인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격야 할 의우와 권리를
동시 에 가지고 있는 우리 기자들은 오늘날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이 같은 진통에 대한 책임의 일단을 변할 수 없음을 통감하는 한편,


갈등해소의 첫걸음이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얄리는 것 이란 사실
227
에 의견을 같이하며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언론의 자유는 지켜져야 하며 정치권력으
로부터의 부당한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
둘째 , 언론인은 보도하고 싶지 않거나 보도해서 안 될 내용 을 보
도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하며, 누구나 언론제
작의 현장을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떠나서는 안 된다.
셋째, 언론은 정치 · 경제 · 사회 ·문화 등 오든 분야에 걸친 국민
들의 자발적인 의사표현 욕구를 충실히 전달해야 하며 외
부 간섭에 의해 보도내용이나 제목 크기 등이 변형 삭제되
어서는 안 된다,
넷째 , 이 같은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현행 언론기본법의 독소조항
은 삭제, 수정되어야 하며 기관원의 편집국 출엽은 금지되
어야 한다.

1986 년 5 월 1 일

조선일보 편집국 기자일동


228

3. 현 시국과 언론상황에 대한 우리의 결의

오늘의 근본문제인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가운데 민주화를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심각하게 나타나
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비민주화를 비롯, 우리 사회 구
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비민주적 병리요소가 확대되고 국민의 표
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약되어 왔기 때문이다.
오늘의 언론은 권력이 강요하는 상황강제와 스스로 언론의 자유
를 찾고 지키려는 자력의 부족으로 인해 마땅히 맡아야 할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타율과 억압의 굴레 속에서 위축
될 대로 위축되어 있다.
유신독재 하에서도 지난 74 ∼ 75 년 언론자유를 위해 분연히 싸웠
던 선배들의 정진과 80년 4 월의 언론자유수호결의 및 작년 1 월과 9
월의 결의의 일관된 연장선상에 서서 우리 동아기자들은 언론의 기
능회복을 위한 뼈아푼 반 성과 노력이 더 이상 늦어질 수 없음을 확

인한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정치와 함께 가장 퇴영척이고 후진적인 모습
인 언론이 조속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역기능을 더하게 되면 길

게는 민족공통체의 앞날에 암영을 던지고 짧게는 최대 현안인 민주


화를 오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갚이 자성하고 우려하며
이런 점에서도 언론자유는 민주화의 기본 전제로서 확보되어야 함
을 믿는다.
특히 민주화 등 권력에 관련되는 분야와 학원 , 재야, 종교계 및
최근 잇달았던 교수들의 시국선언, 근로자 • 농민 등 소외계층의 문
제 등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언론사의 자율적 인 판단에 의 한 공정
하고 균형있는 보도와는 거리가 별다는 사회일반의 비판을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어떤 권력의 힘으로도 진실은 가려질 수 없기
229

때문에 오직 진실 보도만이 문제해결의 출발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고 천명한다.
이같은 자성과 현실판단을 기초로 우리는 ‘현 시국과 언론상황에
대한 우리의 결의’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언론의 자유는 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
와 함께 본질척으로 보장돼야 하며 이를 침해하려는 부당한 간섭을
배 격하고 언론의 자유를 수호키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최근 개헌문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
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중차대한 현안문제로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
된 민주화가 이땅에서 조속히 이 루어져 야 하며 이 와 관련해 언론의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제작이 반드시 병행 돼야 한다.
-민주화의 실현이 논의되는 마당에 제정과정이 결코 민주적이라
볼 수 없고 위헌적인 독소조항들을 내 포하고 있는 현행 언론기본법

은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언론의 보도제작은 전적으로 언론인의 양식과 양심 및 자율적
판단 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언론조정’과 ‘협조’라는 이름 아래 계
속되고 있는 정부기관의 부당한 언론간섭과 기관원의 언론사 출업
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명백하고도 심각한 사례로서 즉각 중
단되어야 한다.
-보도제작과 관련해 빈발하고 있는 언론인에 대한 불법적인 연
행, 구금, 강제 해 고 등은 언론언의 신분보장을 근본적으로 위협하
는 처사로 단호히 배격되어야 하며 불이익을 받은 언론인들은 원상

회복되어야 한다.

1986 년 5 월 8 일

동아일보 기자 일동

230

4. 선언문(중앙일보 기자일동)

국민적 합의를 통한 민주화의 실현이 절실한 이 시정에서 중앙일


보에 몸담고 있는 우리 기자 일동은 언론인으로서의 맡은 바 책무
를 다하지 못하고 있응을 부끄럽 게 생 각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국민의 알 권리를 외연, 진실을 은폐하거나 나아가 사실 이상의 허
상을 국민들에계 강요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의 언론상황을 뼈저리
게 되새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같은 언론의 퇴영적 상황은 언론자유에 대한
지배권력의 구조적 침해를 언론 스스로 분연히 거부하지 못한 데
책임이 있음올 자성한다.
이는 언론자유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언론인 스
스로가 싸워서 되찾고 당당하게 행사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

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은 민족사의 엄숙한 요구이자 소명이다. 민
주화를 위한 사회 각계각충의 열망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표출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여 이 같은 민주화 갈망을 국민적
합의로 숭화시키기 위해서는 언론자유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타성과 체념의 벽을 깨고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사명

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업장을 천명한다.

l 언론자유침해를 제도화하고 있는 언론기본법은 폐지되어야 하


며 협조요청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고 있는 지배권력에 의한
’ 231

보도통제와 조작, 기관원의 출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l 개헌문제를 포함한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요구는 공정
하게 보도해야 한다.
l 경영진도 언론매체의 사회적 기능을 다하기 위해 편집권을 수
호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l 신문제작과 관련해 기자들이 부당한 신분상의 불이익을 당해
서는 안되며 부당하게 해고된 언론인들의 조속한 복직을 거듭
요구한다.
우리는 이상의 결의를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관철시
킬 것임을 다짐한다.

1986 년 5 월 15 일

중앙일보 기자일동
232

5. 민주화, 인간화의 복음을 선포한다

민주화, 인간화의 복음
우리는 20 세기의 마지막 4 반세기를 살연서 이제 독재적 억압으로
부터의 해방이 하나의 걷잡을 수 없는 세계사의 분류로 되고 있음
을 온세계 인류와 함께 확인하고 있읍니다. 1986년에 들어서도 아
이티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물결은 이웃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20 년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억압에 찌들었던 그 국민들에게 ‘마닐라
의 봉’을 안겨 주었읍니다 이 땅에서도 유신 이래의 독재적 억압
을 청산하고 민주화를 창출하고자 하는 각성과 노력이 날로 확대되
는 역동적인 시대를 맞이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이러한 민주화, 인
간화의 세계사적 흐름이 곧 하느념의 역사하성이요, 섭리라고 믿으

연서 거기에 따르는 것이 크리스찬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하


는 바업니다.
우리 교회는 “진리를 중언하려고 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
에 오신”(요한 18, 38) 그리스도처럼 우리 걱레와 역사앞에 진리를

증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엄숙한 시대척 요청과 마주하고 있읍니


다. 이제 우리는 교회가 언제, 어디서나 참된 자유를 가지고 신앙
을 선포하고, 인간의 기본권과 영흔들의 구원이 요청할 경우에는
정치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 윤리적 판단을 내렬 수 있어야 한다
(현대세계의 사옥헌장 76)는 가르침올 밍받침으로 하여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함께 이 시대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소망

인 민주화와 인간화의 복음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크리스찬의 복음


이라는 것은 압제와 비인간성과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쁜
소식 바로 그 자체인 것업니다.
233

인간성에의 갈망
l . 우리는 서울대 김세진, 이재호 군의 분신과 죽음과 그 고통을
지격보면서 자신올 마지막까지 태워 어둠의 시대에 불을 밝히려는
거룩한 자기 희생의 정신과, 민 족과 민중에 대한 순결한 사랑에 감
동하지 않올 수 없읍니다. 그들의 고통과 아픔은 곧 우리들의 고통

과 아픔이며, 그들의 죽음은 이 시대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업니다. 1975 년 김상진 군의 죽음올 건 ‘양성선언’ 이
래 나라의 민주화 를 위해 숱하게도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육신
을 불살랐는데 아직도 민주화는 요원한 꿈으로 남아있는 현실을 놓
고 통곡하지 않올 수 없융니다.
우리는 또한 신홍정밀 노동자 박영진 씨의 분신자살을 보면서 전
태일 씨 이래 노동현장의 인간화를 외치며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줄을 이었는데도 “우리도 인간이고 싶다”는 울부짖음
이 끊임없이 아직도 계속되어야 하는 현실에 가슴이 터지는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읍니다. 지난 3월에는 농민 오한섭 형제가 소 때


문에 진 벚에 짓눌려 자신이 영농후계자가 된 것 을 비관, 영농정책
을 고발하면서 자살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 이 자신 을 불

살라 햇불을 밝혀야 이 땅에 민주화의 새 날이 오고, 더불어 인간답


게 살 수 있는 경제현실, 인간화된 새 하늘이 올 수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들의 외침과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은 이
미 인간이 아니며 민족공동체의 성원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도 아직은 문제가 없다는 철면피한 현 정권의 비인간성에 우리
는 전융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 정권은 그 많은 의로운 죽음을
언제까지 방치하여 내버릴 것이며 잃었던 인간성을 과연 언제 되찾
을 수 있을 것인지 소리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
음앞에 겸손되게 통회해야 됩니다.
또한 이제는 이러한 죽음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우리 자신의 비
인간화 자체를 고백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리 모두
가 독재적 억압으로 언하여 빼앗켰던 인간성 을 되 찾 아 자신 을 던지
234
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며, 그 아픔올 우리 모두의 것으로
하여, 시대의 비리인 불의를 고발하고 척결하는 데 다 함께 하나됨
으로써만 생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아야만
하겠읍니다. 자신을 던지는 죽음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인간생명에
의 자해행위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함께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인
간다운 삶의 조건을 요구하고 민주화를 소망하고 있는 것 입 니 다.
우리는 이 시대에 절망한 나머지 자신을 던지고 싱은 충동올 가지
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답게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하여 하나

뿐인 우리의 생명을 더욱 소중히 하자고 호소하는 바입니다.

민주화에의 요구

2, 학원에서, 노동현장에서, 농촌에서, 그리고 이 사회의 각 분야


에서 민주화에의 요구가 분출되고 있읍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양심의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인간화, 민주화에의 요구가 시국에 대
한 지식인의 견해표명으로 나타나고 있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지
극히 가라앉아 있 S나 오늘의 현실을 붙들고 안으로 오열하는 통곡
이요, 속으로 울부짖는 절규이면서 동시에 양성과 인간성에 대한
갈구를 담고 있융니다. 이제 인간화,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국민
내부에서 하나의 분류로 되고 있으며, 물리적인 힘으로 억제되거나
말하는 사람의 업에 재갈을 물린다고 그 흐름이 멈추거나 역류될
수는 없읍니다. 누가 소수이고, 어떤 것이 시대의 흐름이며, 누가
역사의 심판을 받올 것인가는 지난 2월 서울대학교 졸업식 현장에
서 극명하게 드 러났읍니다. 시국선언을 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나
제재나 보복은 이 시대의 소명으로서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거역이
될 뿐입니다.
우리는 민주화가 우리 모두의 결단으로서 선언되고 실천될 성질
외 것이지, 흥청되고 타협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
상 유례가 없이 많아진 감옥에 있는 정치범과 민생벙은 즉각 석방
되어야 하며, 유신시대 이래 민주화 요구와 관련하여 법의 제한에
묶여 있 는 사람 들 은 마땅히 사연 • 복권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민
주적이며 반인권적인 법령은 그 개폐가 서 둘 러져야 합니다. 정치범
235

과 민생범은 민주화를 위한 홍정에서의 인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범에 대한 석방과 사면과 복권, 그리고 반민주척 법령의 개폐

가 민주화에의 제일보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현 정권


이 민주화의 큰흐름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민주화 조치에 착수함으

로써 민주화가 이 땅에서도 명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개헌문제
3. 무룻 지배의 권한은 도덕적 질서에서 요구되고 하느념으로부터
전래하는 것이므로 만일 국가의 지배자들이 그러한 질서와 하느님
의 의사에 반대되게 입법하거나 혹은 명령하는 경우에는 입법도 아
니고 그런 권한은 국민들의 양심에 의무를 부가할 효력도 없으며
권력은 무너지고 수치스러운 모욕이 따르는 것업니다(지사의 i영화
38). 우리는 제 5공화국의 출범 자체가 정당하지도, 정통성을 가지
지도 못하고 있올 뿐만 아니라, 그 헌법은 특정한 사람의 권력 장
악을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졌음올 지척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또
한 유신헌법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규정을 거의 그대로 답습, 오늘
의 현실을 유신체제의 연장과 확대로 되게 하고 있융니다. 뿐만 아
니라 무능과 부패, 특권과 특혜, 폭력과 정보공작정치, 허영과 허
례허식과 족별만능, 그리고 언어를 굴절시키는 미사여구의 남발과
거짓말과 허위의식의 강요 퉁, 이 정권의 특성이라고 할 그 부도먹
성은 국민으로 하여금 그 아래서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를 부끄러
움이요 고역으로 느꺼게 하고 있융니다.
역사 속에서, 또 현실 속에서 이러한 성격의 현 정권이 처절하게
부정당하지 않게 할 평화적 개헌, 형화척 정권교체에의 요구가 서
명운동으로 전개, 확산되고 있으며, 우리는 기꺼이 여기에 참여하
고 있읍니다. 우리의 개헌서명과 요구는 정치질서와 관련한 역사의
불행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되고 있읍니다. 최근

대통령과 정당대표와의 회합에서 개헌시기에의 유연성의 표시는 진


일보한 것임에 틀럼없는 것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현행헌
법상 발의권자요, 과반수 이상의 절대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집권당
236
의 총재인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한다면’이라고 단서를 붙인것은 헌
법 규정에도 합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개헌에의
결단을 바라는 국민의 회망에 짙은 의혹을 던져 주고 있읍니다. 여
야가 합의하여 개헌안을 마련한다연 대통령은 반대할 권한이 없는
것이며, 대통령의 확고한 결단으로 개헌의지를 표명하지 않는 한,
개헌안이 마련되고 합의될 수 없음 또한 명백한 것업니다. 개헌은
그러므로 속임수나 흥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합의
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개헌논의가 단지 통치구조의 문제에만 장착되고 있

음을 통탄해 마지 않읍니다. 우리는 통치구조의 문제 역시 국민의


정부선돼권의 벙주안에 드는 것으로서, 재야와 노동자, 농민 등 국
민의 의사가 표명되고, 반영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국민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제한규정의 완전한 철
폐, 삼권분립의 원칙, 노동자와 농민, 재야민주세력이 자신을 관철
할 수 있는 정치통로의 마련 등 민주화의 실체적 내용에 대한 활발
한 논의와 헌법제정에의 국민적 참여를 보장해야 할 것업니다. 새
로운 민주헌법은 단순히 여야간의 흥청과 야함으로 이루어지는 산

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최근의 개헌논의


의 양태를 볼 때, 여당은 물론 야당도 국민 내부에서 분출하는 진
정한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의사도, 능력도, 포용력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편향이 시급히 시정되어야 개헌운동과 관련한 혼
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화에 대한 비관적 견해와 군(軍)


4. 언제부터인가 나라의 민주화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가 우리 사회
를 지배하고 있읍니다. 분단상황 하에서 팽배해진 물리적 혐의 실
체로서의 군대가 나라의 민주화를 결코 지지,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정처없는 소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이는 소수 정치군인이
이 나라의 정의로운 절대다수 군언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의 표
출로서 신성한 군인에 대한 모독입니다 군의 정치개업은 겨레와
237
나라의 불행이며 역사의 퇴영올 가져융니다 지금 우리 군인은 12.
12사태, 5.17 계엄확대조치, 광주사태, 그리고 그 이후의 여러가지
군과 관련된 사건, 사고를 통해 현저하게 국민의 신뢰가 실추되고
있는 바, 국민으로부터의 신뢰의 회복을 통해 국민의 군대로 새롭
게 태어나야 할 섯점에 서 있융니다. 국민을 지배하고 이기려고 하
는 군대는 국민의 군대가 아닙니다.
군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익명의 애국자들의 집합체여야 합니
다. 우리의 군인에게서 민주시민이 불안과 위협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비극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군언을 신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화로 가는 길, 또는 민주화된 이후에 있어서
최대, 최종적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군에 의한 헌정 중단 사태가
다시는 이 땅에서 재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과 밖의 관계 당
사자 모두와 함께 공개적으로 합의하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
다. 4 . 19 민주혁명이 참당한 좌절을 당한 것도, 1980년에 맞이하였
던 민주화의 기회를 끝내 찬탈당했던 것도 결국은 군의 정치개업에
의한 헌정중단을 막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맞서 상가와 시장의 철시, 모든 사업장의 파업, 시민의 전면적인
불복종운동 전개, 부당한 명령에 대한 공무원의 거부권 행사 등,
민주시민이 평화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강구되고, 그
러한 사태를 막아낼 수 있는 운동을 조칙해 나가야 할 것 입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과 함께 우리가 마침내 이룩한 민주주의를 지켜
낼 수 있는 민주시민운동도 동시에 펴 나가야 합니다.
국민으로 하여금 진정 우리나라의 군대에 대해 존경과 신뢰를 갖
게 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국토방위의 엄무가 학생들에 대한 정훈교
육의 기회로 인식되거나, 정별과 보복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최근에 발생한 전
방업소와 관련한 학원사태도 단순히 학생들만을 비방하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군에 대한 신뢰를 위해서 전방입소와 관련한 모든 문
제 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제도개선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토방위의 의무 자체가 그릇 되게 운영되거나 복무과정에서 정치적
이유로 정벌이나 보복 을 받 는 것 은 어떠한 경우에 도 철저히 배제되
238
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할 때 군과 국민 사이에, 그리고 이 나라
안보에 중대한 불신과 위협이 팽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의 이러한 간곡한 호소를 정부 및 군 당국에 애타게 전하는 바업니

다.
우리는 이와 아울러 지난 3 월의 국방위 회식사건의 진상은 물론,
예비군 훈련장에서 집단구타 당한 후 경찰서에서 사망한 대한광학
노동자 장이기 씨의 사인(死因) 둥, 군과 관련된 진실이 공개적으로
밝혀져 국민의 군에 대한 공포와 불신융 씻어 줄 것올 요구하는 바
업니다.

언론의 자유와 KBS


5. 연재만화 ‘두꺼비’의 연행과 중발, 창작과 비평사에 대한 등록취
소, 그리고 최근 출판관계 인사에 대한 대량 연행과 구속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나라에 있어서의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완전한
질식상태에 놓여 있융니다. 만주화되고 인간화되는 사회건설을 위
한 고난에 찬 투쟁은 곧 진실을 알려고자 하는 투쟁, 그 자체인 것
입니다. 민주화와 인간화를 실천하는 각 단체들에 의해 자생적인

홍보수단들이 많이 창출되었고, 이러한 민중언론운동은 탄압 속에


서도 날로 확대되어가고 있읍니다. 우리는 한 장의 유인물을 읽으
연서도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
읍니다.
이와 반대로 현 정권 출발과 함께 독점적 공영방송이 된 KBS 는
광고료와 시청료를 징수하여 막대한 재원을 방만하게 사용할 뿐만
아니라, 공영언론이기를 포기하고 정권의 하수인적 홍보매체로 전
락하였읍니다. 이제 깐헐적으로, 산발적으로 전개되던 ‘ KBS 시청
료 납부거부운동’이 국민운동으로 조직, 확대되고 있응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동적 참여는 물론 이와같은 국민운동에의 참
여를 온 국민에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 KBS 시청료 납부거부운동’
은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띤 것으로, 자유언론에 대한 국민의 목미
름을 표시하는 운동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KBS 가 공영언론£로서의 역사적 과오를 솔직히 고백,
반성하지 아니하고, 그 태도를 시정하지 않는 데 대하여 분노를 느
239

껍니다. 더우기 이 나라 정부와 여당이 KBS 의 공영방송으로의 과


감한 개선이나, 시청료 또는 광고방송의 폐지보다는 다른 조세 또
는 공과금에 시청료를 병과하려는 비겁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데
대해 경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만약 정부가 다른 조세에 시청료
를 병과하려 한다연, 그 조세 전반에 대한 조세저항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내가 낸 세금이 잘못되게 쓰여지고 있는 데 대한 저항은

정당한 ‘ 것이며, 그러한 부당한 돈을 다른 세금에 덧붙여 부과한다


면 다른 세금이나 공과금의 정당성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정부당국과 KBS, 그리고 민정당에 경고하

고자 합니다.
또한 KBS 시 청료 납부거부운동은 언론다운 언론, 자유언론에
대한 갈망이며 모든 언론기관과 매체, 그리고 언론인에 향해지는

자유언론 실천에의 요구업니다 이제 언론이 이 사회의 자율적인


정화기능으로서 역할할 때업니다. 이제는 누구나 말할 때요, 또한

잘못을 바로 잡을 때업니다. 정권이 바펀 뒤에 뒤늦게 지난 날의


비화〔秘話)나 캐내려는 언론은 자유언론이 아닙니다. 언론은 당대
를 기록하고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최근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공작언론으로 이용
되고 있음을 보고 안타까와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학원사태와 관
련한 재야 지도자들의 발언, 그리고 5 월 3 일의 인천지역 연합시위
에 있어서 민주세력 내부를 분열, 이간시키려 는 보도태도는 그 대
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는 언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
도하는 언론, 민중의 인간다운 삶에 눈을 돌리는 언론, 자유언론을·
실천하는 언론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읍니다.

국민경제와 인간의 존엄
6. 국민경제는 재화의 재축적된 풍성으로서보다는 오히려 정의에
입각한 재화의 진정하고도 효율적인 재분배로서 이루어져야 합니
다. 분배 정의의 실현을 통하여 사회성원의 인격적 발전이 보장되
어야 하며, 바로 그것이 국가경제의 진정한 목적인 것업니다(어머
니와 교사, 74 참조). 다같이 가난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며, 우리나라외 경제정책은 처음
240

부터 어느 한 분야의 소외와 희생을 골격으로 하여 발상, 집행되어


왔읍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노동자, 농민, 도시이주민의 가
난은 자신이 게으르거나 무능한 탓으로서가 아니라, 제도적 • 정책
척으로 처음부터 틀지워진 것이라 할 수 있읍니다. 가난의 제도화
와 세습화, 그리고 도시 이주민이 다시 도시에서 추방당하는 가난
의 끊임없는 악순환은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빈곤의 특정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척책이 불균형과 불공명을 특질로 하고 있다는 것은 공
동션의 실현이어야 할 공권력의 행사가 처음부터 잘못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업니다. 즉 정치의 반민주성은 경제의 반민주성을 동반하


여 부익부 번익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국민경제를 분열적인 이중
구조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채의 급증과 공해의 확
산에서 국민적 부담은 공분되면서, 성장의 혜돼과 분배에서는 차별
적인 경제정책의 청산을 요구합니다.
최근 노동현장과 농촌, 그리고 도시빈민지역에서의 처절한 삶의
욕구는 박영진 씨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벼랑에서의 목소리 그
자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현 정권은 이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배고프다는 소리조차 집회 및 시위에 관
한 법률 위반 둥으로 투옥시킴으로써 배고픈 민생범을 정치엄화시

키고 있읍니다. 백여 명을 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으로


서의 빵이 주어지기보다는 치안차원에서의 차디찬 수갑이 채워지는
현실은 이 시대의 비극적 한 단연임에 틀럼없는 것업니다. 배고픈
설움과 집없는 설움에 허덕이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간다
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사람의 삶의
양식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이들
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자신들의 단체를 결성할
수 있고, 더불어 함께 자신들의 권익을 주창할 수 있는 노동삼권,
농민삼권,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그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며,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민주화의 달성이 경제적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241

올림픽과 민족화해와 통일

7.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화에 대한 시민적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거리거리마다 검문검색이 이루어지고, 공공기관과 언론기관, 그리
고 집권당의 당사마저 전투하는 경찰에 의해 하루하루의 불안한 안

녕이 지켜지고 있는 실정업니다. 반(反)민주의 몰골이 어떠한 것이


며, 그 비용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우리는 거리에서 날마다 확
인할 수 있읍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화 없이 과연 말하는 바 국
가적 대사(大팎)라는 아시안게임과 올렴픽이 대낮에 낯을 쳐들고 이

루어질 수 있으며, 이루어져도 좋은지 묻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


리는 86 아시안게임과 88올럽픽이 국민의 화합과, 갈라진 민족의 화
해와 통일에 획기적£로 기여하는 계기로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한낱 체육행사에 불과할 뿐업니다. 그 체육행사


를 위해 도시이주민의 주거가 철거되고 생엽이 유련되야 한다변 그
행사는 국민의 화합이 아니라 분열과 위화감을 재촉하는 것일 뿐이
며, 88올림팩이 외국인을 불러다 놓고, 국민 내부에서 독재와 민주
의 싸움이 계속되며, 민족끼리 서로 모략하고 비방하는 잔치판을
벌이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올럽픽에 혼쾌히 통참할 수가 없읍니

다.
88올럼픽이 민주화된 나라의 화합된 국민의 힘으로 치루어지고,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올럽팩올 계기로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
하고 화해를 이루며 하나의 민족, 하나를 지향하는 민족엄올 보여
줄 수 었다면 그것은 이 나라, 이 반도의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
지만, 88올럼픽 때문에 민주화가 유예되거나, 물러가야 될 정권이
의연히 자리를 차지하며 민족끼리 헐뜯고 더욱 불신하여 분열의 골
을 더 깊게 파는 결과로 된다연, 그것은 정권유지를 위한 빚잔치
행사에 불과한 것으로, 민족문제 • 정치 • 경제의 측연에서 다같이
추태를 연출하고 불행을 예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
지 않을 수 없읍니다. 먼주화와 민족화해를 지향하고 그것을 위한
올럼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올렴픽을 보는 시선입니다.
우리는 또한 자기 민족을 두고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일을 우
’ r. l ’

242
리가 먼저, 걷어치우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염
원인 민족통일문제를 정권연장이나 유지에 이용하는 일, 민족간의
대화와 통일논의에 허위와 거짓으로 임하거나 국민에게 진실대로
알리지 않는 일, 그리고 언젠가 하나될 민족의 존엄과 공지에 상처
가 될 부도덕한 행위 등, 모든 민족자해적인 작태를 우리가 먼저
과감히 청산, 솔선할 것을 간폭히 제의하는 바입니다. 민족은 영원
한 것이며 또한 성 스 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작년 고향방문단이 I영양에서 봉헌한 미사를 이 민족의 화
해와 통일을 향해 우리 교회가 그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읍니다. 모든 것을 일치시키시고 하
나되게 하시는 하느닝은 이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든 분열의 질곡을 뚫고 화해
와 일치와 통일을 향해 우리의 모든 노력을 독자적으로 기울이고자
합니다.

민족적 현실에 대한 각성
8. 우리는 1980 년 광주사태 이후 민족 현실과 특히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 대한 보다 주체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에의 요구가 학생과 지
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봅니다. 민족척 현실에 대
한 자성척 질문은 이제까지 우리의 우방으로만 여겨지던 미국은 과
연 우리에게 무엇이었으며, 또한 지금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까지를

내포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질문이며, 마땅히 민족적 업장에서 자


주, 자립척 시선으로 규명되어야 하는 과제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최근 학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민족문제와 한미관계
에 대한 점검과 주장은 민족적 업장에서 충분히 음미되고 수용될
수 있는 것은 민족의 이름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반미(反美)가 용공이며, 자유민주체제의 부정이라는 도식
적인 견해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자유와 민주를 공동의 이상으로
하고 그것의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하지 않는 주한미군의 변질된
존재 이유는 바로 잡아져야 하며,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민족적 입장이 반드시 미국의 이해와 일치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243

재정검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때로 거칠고 과격한 표


현을 쓰고 있지만, 학생들이 죽음으로써 중언한 민족적 자각에의
호소를 결코 저버리거나 쉽게 외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들과 껴안고 같이 흐느끼고 민족적 아픔올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만이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서 감히 말할 수 있읍니다.

민족의 존엄과 권익을 부르짖는 것이 범죄시되는 오늘의 현실적


풍토를 우리는 개탄합니다. 한국을 영원히 경제적 하청기지화할 우
려가 있는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과 불평등한 수입규제 조치에 대해
서 항의하는 것은 민족성원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이며 주장업니다.
또한 이 땅에 핵병기가 장천되고 핵전쟁의 위험이 고조되는 것은
반대되어야 하고, 독재에 대한 지원문제의 도덕적 성격도 밝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임 스 피리트 훈련과 관련하여 제천지방에서 있
었던 불행한 사건의 진상은 공개되어야 하고, 사실이라면 민족적
존엄 에 상응하는 사과를 받아야 합니 다. 광주사태 의 진상과 관련한
미국의 책엄문제도 정치적 또는 도덕적 측면에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일업니다.
우리는 반미(反美)냐 친미(親美)냐 하는 이민족(異民族)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관련해서 내 통족이 내 민족의 법정에서 처단
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비극이라고 지척하면서 그러한 방향으로 사
건을 만들고 몰아가는 것올 자제해 줄 것을 이 정권 당국에 요청하
는 바입니다. 우리는 민족성원으로서의 정당한 주장이 내포된 ‘미
문화원 점거농성사건 ’ 둥에 있어서 학생들의 민족문제 제기가 용공
으로 매도되거나 일체의 민족적 정당성에 대한 판단없이 실정법 위
반의 형사범죄로서만 취급, 처단된 데 대해 민족적 분노와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나아가 현 정권 당국자들이 같은 민족으로
서의 동질성 을 과연 얼마만큼 갖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읍

니다.
우리는 또한 일제 36 년동안 한국을 식민지 통치한 일본제국주의
의 상갱이요, 명령인이었던 일본천황을 대리한 그의 아들의 방한 ! (.:fj

韓l 이 아버지를 대신한 사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그의 방한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초청하는 그런 반민족적
이요 굴욕적언 발상이 어떻게 같은 민족으로서 가능한지 부끄럽기
244
짝이 없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절차의 민주주의를 보장한다는 것을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화가 이
룩되면 민족문제 ·민생문제를 놓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토론과 방
향 설정이 이루어질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화 자체에
우리의 모든 욕구를 합일하자고 호소합니다

똑똑히 보고 기록합시다

9. 이제 우리 모두는 깨어 일어나 오늘의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합

니다. 내 자신, 내 아버지, 내 이웃, 내 형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


는가부터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법관이, 언론인이, 지식인이,
종교인이, 군인이 이 시대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한
장연도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합니다. 또 고백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내 주변의 불의, 내 자신의 불의를 먼저 반성하고 씻어내는 고백운

동이 절실한 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업니다. 우리는 먼


저 나 자신과 내 .자식, 내 형제 앞에서 뱃벗할 수 있는 자신이기를
위해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다듬어 나가는 결단을 보일 때입니
다. 인간성에 반하는 불의한 명령이나 지시는 거부되어야 하며,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주의는 청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경찰에서의 고문과 사건조작, 경찰의 일상적인 학원유린
과 통제,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출판문화운동에 대한 탄압,
수배자에 대한 고말의 강요와 그에 따른 횡포, 그리고 교도소 내의
재소자 특히 정치벙에 대한 차별대우와 보복척 폭행 등, 이 사회의
도덕적 규범이 파탄되고 있는 현실을 진실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
읍니다. 이 사회는 이제 인간애와 인간성이 완전히 에마르고 있다
는 절망에 빠지게 하는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읍니다. 우리 모두가
오랜 억압에 짓눌려 인간본성이 마비된 정신병자일지도 모르지만,
경찰에서의 수사끝에 정신병자가 되어 나오는 현실은 우리의 가슴
을 한없이 아프게 하고 있읍니다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을 용감하고도 소신있는 행위로 평
가하는 정치권력의 비인간적 속성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
억압은 억압하는 사람이나 억압당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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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검창과 법원은 일제시대 일본 식민지 지배체제가 독립운동가를
처단했던 그 논리와 미움과 형량에 비교하여 오늘에 과연 건강한
인간성과 양형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구형이나 원
고에 있어 형량이 기준도 없이 턱없이 높아지고 있으며, 법정에서
의 태도와 관련, 감정적, 즉흥적으로 양형을 높이는 경우가 비일비
재합니다. 검찰성문 때 반성문을 쓰면 석방시켜 주겠다고 해 놓고,
법정에서 중인환시(穩 A環視)리에 반성문을 낭독하여 학생피고언에
게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안겨주는 등, 인간이, 그것도 이 사회의
지도적 역할에 종사하는 지식인이 끝간데 없이 저지 를 수 있는 교
활함과 비열함, 그리고 인간성의 파탄이 어느 정도까지인가 를 거듭

생각해 보게 하고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는 십자가는 오판(誤判)의 상정입니다. 빌
라도의 오판이 예수 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것입니다. 손을 씻는
벌라도의 심정이 결코 편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의 오판이 면죄
될 수는 없읍니다. 십자가의 의미와 아픔이 어떠한 것이며, 단 1 년
의 강옥생활이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법
관과 검찰이 단 한 번만이라도 심각하게 고뇌해 본 적이 있는지 묻
지 않을 수 없읍니다. 법원의 판결로 재판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심판이 있고, 또 하느님의 심판이 있읍니다.
우리는 진정 인간성을 저버리지 말고 인간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교도관, 경찰, 검찰, 법관, 그리고 이땅의 모든 사
람들에 게 간곡하게 당부하고 또 호소봐고자 합니 다.

화해를 위하여
10, 이제 우리 는 그 5월을 다시 맞이 합니다. 광주사태의 치유는 관
련된 사람들은 물론 온 국민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서 우리 모
두가 형제적 동포애로 뜨겁게 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

다. 당시의 광주시민이 폭도라고 규정되는 한, 거기에 책임있 는 사


람의 사과가 없는 한, 그리고 그 진상이 여전히 의도적으로 윤폐되
고 당시의 이야기가 귀에서 귀로 소곤거려지는 속에서는 광주사태
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하는 말과 용기가 화해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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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요 기초업니다. 화해는 전제를 일삼아 온 강자가 폭력에 찌든
약자에게 먼저 청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으며, 또한 뿌리깊이 쌓여 있
는 미웅을 청산하자고 호소합니다. 미웅과 폭력은 맞물려 있는 고
리를 어느 누군가의 피눈물나는 결단으로 끊지 않으면 악순환만을
낳을 뿐입니다. 우리는 젊은 애국청년 학생들이 불의한 정치권력에
대해서 갖는 미웅의 크기를 잘 압니다. 二‘러나 사랑의 힘만이 정의
를 구현할 수 있는 유얼한 힘입니다. 제도척인 폭력이 여러분에게
사과탄올 던지더라도 여러분은 그들에게 사랑을 던져야 합니다. 폭
력이나 미웅은 진리와 정의와 자유를 옹호하는 도덕적 힘 앞에서는
결국 무력해지고 맙니다. 또한 우리는 정부당국에 호소하고자 합니
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조차도 그 수입과 사용올 금지한 최
루탄, 사과탄 등, 생물화학 무기를 같은 국민율 향하여 던지지 맙
시다. 그러면 분명히 학생들로부터 그에 대한 화해의 웅당이 있을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대치의 한가운데서 화혜를
호소하는 이 시대 화해의 사제가 될 수가 있다연 하는 간곡한 바랭
올 가지고 있융니다. 우리를 화해의 사자로 써 주십시요 하는 것이
우리들의 요망업니다.
민주화는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활력이요 자율이며 참펀 말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 사회의 각 분야가 본래의 기능과 본분올 되
찾아 나가는 것, 그것이 민주화요, 그 가운데서 인간이 인간성을
되찾아 인간다와지는 것이 바로 인간화업니다. 법원이 법과 정의의
수호자다우며, 언론이 언론다우며, 노총과 농협이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참된 자율적 조직이 되고 민주사회의 건강한 압력
단체가 될 때, 민주화는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업니다. 우
리는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스스로 자기다와져야 하고 그 방향
은 인간의 본성에 합치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군은 병영으로, 경찰
은 민중의 지 망이로, 학생은 학원으로, 노동자는 사업 장으로, 농민
은 농촌으로 돌아가 제 본령올 되찾아야 합니다. 강욱이 학생이 있
올 콧이 아니듯이 학원은 경찰이 있을 콧이 아닙니다.
·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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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호소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념 사랑에 드리는 우


리들의 웅당은 이웃형제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가장 힘있게 나타내
야 합니다. 정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서로 분리될 수 없융니다.
사랑은 이웃의 존엄성과 권리흘 인청하고자 하는 정의의 절대척 요
청융 내포하기 혜문업니다 우리는 과연 그와 같은 크리스찬요로서
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 뼈를 깎는 아픔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갈라진 써계를 사량과 정의를 통해 화합으로
이어야 할 우리 교회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들의 국가공동체,
우리들의 민족공동체를 아무 사심없이 비워진 마음으로 건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진정 새롭게 시작해야 하겠융니다. 모든 편견과 독
선, 기득권과 욕심울 모두 버리고 우리 하나가 되어 새 하늘, 새
땅의 질서를 창조합시다 거기에는 사랑과 정의와 형화가 있융니

다.
민주화와 인간화된 사회는 명화의 상태 바로 그것업니다. 언간
사회의 창설자언 하느님께서 인간 사회에 푸여하신 질서, 또 항상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철서의 현
실화가 민주화요 인간화이며 동시에 형화인 것입니다.(사목헌장 18
참조)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념쳐흐르게 하여라”
(아모스 5: 24)

1986년 5월 6 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

248

6. 민주화는 정토의 구현이다


끼J

민주화는 정토의 구현이다


-불기 253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흘로 존귀하다 온누리는 고통에 쌓여 있

으니 나는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선언은 이땅의 모든 생명있는 것에 대한 외경심을 압축된 의미로
천명한 것이고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천부적 권리인 자

유 • 평등을 몸소 나누어 실천함으로써 고통과 불행에서 해방되어


정토가 완성된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가오는 불
기 2530 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그 시간적 • 공간적 의미를 이땅
에서 실천적으로 재해석하여 중생해방을 위한 부처님 오심의 참뜻

올 구현코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비에 기


초한 불교도의 실천을 담보로 하여 오늘날 이 사회가 처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l. 민족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 민주화는 조속히 실현되야 한다.
이 나라는 단 한 번도 민주주의를 실현해 보지 못한 채 독재에
신음해 왔다. 장기적인 독재는 권력자와 눌린자, 부자와 번자, 억
압자와 저항자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고 국민적 통합성은 상실되
었다. 더욱 독재는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통로와 정보에 대힌 알 권
리를 권력의 제반장치를 통해 통제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
신은 끝없이 높아가고 있다. 의사표현의 극한적 형태인 분신과 자
살이 노동현장, 농촌, 거리 , 학원에서 속출하고 있으며 이와 맞물
려 악순환을 초래하는 공방전이 가속되고 날이 갈수록 인명의 피해
만 더해가고 있다. 생명의 존염을 가장 이상으로 하는 불교도로서
249

이제 더 이상의 희생을 불러일으키는 자살과 타살은 중지되어야 하


며 이런 결과를 야기시키는 반민주적 요소 척결을 촉구한다. 그들
의 분신과 죽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책임이며, 그들
의 아픔에 숭가의 실천 지성으로서 우리는 크나큰 책임을 통감한

다. 특히 지난 5 월 3 일 인천사태를 전후하여 표연요로 부상한 ‘반


미 • 반핵 • 반전’ 등을 용공 • 좌경으로 단정하고 이를 곧 자유민주
체제의 근본적 부정이라 단죄함은 너무도 형면적, 단선적인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대숭적 견지에
서 그들의 주장 중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발전적으로 수용하여 민족
자주권의 토대로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 민중이 갖고 있는 민주화의 열망은 더 이상 안보와 성장


의 논리로 유보될 수 없다. 안보와 성장은 민주화를 이룩할 때만이
공고해지는 것이며 국민적 합의 속에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민주화
의 중심과제가 개헌이라고 한다면 민주제 개헌은 확실하게 실현되
어야 하며 이제까지 장정적으로 유보되어 왔던 민중의 정치 • 경
제 • 사회 • 문화 • 노동의 제 반 권 리 가 그 내 용으로 담겨 져 야 할 것
이다.
진정한 민주제 개헌의 내용성과 배치되는 ‘보수대연합’ 구상은
그 저의가 현재의 국민의 정치적 열기를 이용한 정치술수에 불과함
요로 우리는 거부한다.
1, 민중의 생존권과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독재의 가중 속에 민중의 생존권은 정점 더 위협을 받고 있다.
노동자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으로 생산
성 제고를 위해 시달리고 있으며 이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였음에

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본생활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인간다운


삶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농민은 막중한 농가부채에 시달리고 있으
며 각종 농수산물 파동으로 부채는 가중되어만 가고 있다. 노동현
장과 농촌이 분해되면서 빈민은 증가되고 있으며 도처에서 생존권
수호투쟁이 가열화되고 있다. 민중의 생존권투쟁 a로 인해 야기된
양성수의 수는 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사상 최대의 수치로
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적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 고문과
폭행이 양싱수에게 가해짐£로써 중대한 인권의 문제가 국내외적으
250

로 파문이 되어 얼어난 것은 나라의 수치요, 국민적 통합에 커다란


공동(空洞)을 만드는 일이라 하겠다. “단 한명이라도 감옥에 갇힌
사람이 었다연 결코 성붕하지 않으리라”(숭만경)는 말씀처럼 감옥
문이 넓어지는 세상이 혼돈이 아니라 감옥이 없어지는 세상의 창조
가 불교도의 사명이요 보살의 실천강령이라 할 때 언권은 지극히
존중되어야 하며 모든 양심수는 이제 뭇갚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
아 모두 석방, 사연, 복권되어야 함을 강력히 촉구한다.
l. 민족문화의 전통은 새롭게 계승되어야 한다.
이땅의 온갖 퇴폐와 저질의 문화가 외래사조에 편숭하여 민족정
신의 발천을 저해하고 있다 어느덧 이 나라 대중은 자신의 전통을
낮게 명가하고 외래의 것은 높게 보며, 민족문화는 저열하고 외래
문화는 고급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스포츠도 프로화되어 국민체

력의 향상과는 거리가 멸고 단지 관객이 되어 즐기는 도구로 전락


하였으며 전 국토는 유흥장화되어 노통에 의한 기쁨보다는 향락올
통한 얼시척 감정해소에 문화기능이 치중되어 가고 있다.
언론은 제도화되어 자유의 소리보다는 안보의 논리가 강화되었으
며 민중의 목탁이 아니라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 KBS 의 편파보
도는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시청료거부운동 등
의 시 민불복종운동은 정 당한 것이 다. 이 땅의 문화는 바야흐로 문화
적 식민주의에 찌들어 있으며 통치의 단순수단으로 화하여 민족혼
을 불러일으키는 전통과 창조의 에네르기는 쇠잔해 가고 있다.
이 나라 민족과 함께 1,609 년의 세월을 부침해 온 불교는 이제
민족의 얼을 새롭게 계숭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이 나라
문화의 모든 부정적 현상을 극복하고 참다운 문화창조를 위해 매진
해야 할 것이다.
l. 민족적 염원인 통일은 자유로운 논의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민족의 참담한 현실은 민족분단에서 비롯되었고 그 분단을 고
수하는 내외적 조건들에 근원적 모순이 내재함으로 우리는 그 근원
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정권적 차원의 통일논의가 아니라 민족의 자주와 평화의 원칙 하에
이 나라 모든 민중이 자유로운 논의와 실천을 통해서만이 민족통일

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리라 믿는다. 따라서 민중의 민주화 염원


251

이 담긴 새로운 헌법 속에는 통일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가 보장되

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민족사의 중대한 기로에서 민주화를 이루는 길이야
말로 불교의 이상국가인 정토가 건설되는 길이며 이러한 길에 우리
의 대열을 정비하는 것이 부처념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라는 것을
서원하면서 우리의 뜻에 동참하는 모든 불교도와 더불어 굳건히 실
천혜 나아갈 것이다.

불기 2530 년 5 월 9 일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152 명 일동
252

7. 교육민주화선언

학생들과 함께 진실을 추구 해 야 하는 우리 교사들은 오늘의 참담

한 교육현실을 지켜보며 가슴을 뜯었다. 영원한 민족사 앞에 그 책


임의 일단을 회피할 수 없음을 통감하게 된 우리는 더 이상 강요된
침묵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섬에 이르렀다. 우리 교사들을 믿고 따
르는 학생들의 올곧은 시선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 에서 방관자로
남아 있는 우리를 더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맹랑한 꼭
둑각시의 허무한 몸짓을 그만 그쳐야 한다.
우리 앞의 저 대상화된 학생들이야말로 이 민족의 미래임 을 잊어
서는 안된다. 기성세대의 탐욕과 허위, 좌절과 패배주의가 저들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주목하자. 이같은 부정적인 현상은 특정 세력
의 허욕과 독선에 바탕한 비민주적 사회와 이에 종속되어 학생들에
게 비판적 안목과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비민주적 교육
에서 비 롯됨을 직시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요원의 불길로 타오르는 민주화의 열기는 역
사의 펼연이며 각 부문의 민주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
었다.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교육부문의 민주화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육의 민주화는 사회
의 민주화의 토대이며 완성이기 때 문 이다.
돌이켜 보건대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은 전 민족의 노예화를 획
책하던 일제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시류에 따
라 부침한 정치권력의 편의대로 길들여진 충직한 시녀로 전락하였
다. 교육의 정치적 중렵성은 누더기 같은 헌법 속 에 그나마 사문화
된 채 보장받지 못했고 식민지 하에서 구조화된 교육행정의 관료성
과 비민주성은 온존되어 왔다.
253

그 결과 민족운동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던 교사들은 국민의 교


사가 아니라 극도로 통제된 관료기구의 말단으로 떨어졌고 교직은
성직이란 미명 아래 점수매깅과 서열짓기에 급급한 사이비 교육의

굴레 속에서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당했다. 참다운 교육을 위한 교


사의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노력과 자율성은 배척되고 있다.

힘써 진리를 탐구하고 섬신이 건전한, 인간미 넙치는 공동체의


성원으로 자라야 할 학생들, 이들은 열악한 교육환경 속 에 서 비 정
한 접수경쟁과 물질만능적 상업주의 문화의 홍수에 시달리며 고통
스럽게 방황하고 있다. 비민주척 교육현장은 일방적으로 선정된 경
색된 가치만을 학생들에게 주입할 뿐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할 기
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모순에 찬 사회구조와 국민의 요구를 올바르 게 충족시킬 수 없는
교육제도로 말미암아 갈피잡지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 이들은 문제
의 본질을 파악할 여유도 없이 당연한 과열경쟁 속에 자신과 사랑
하는 자녀의 인간다운 삶을 저당잡혔다.
산적한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당국의 행정력만으
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음은
이미 증명되지 않았는가. 조령모개가 한국교육정책의 대명사로 된
지 오래이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 • 학생 • 학부모가 소외된 상태에서 추진되는
이른바 교육개혁이란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절차상의 손질일 뿐, 진
정한 의미의 개혁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국민에게 또 하나의 환
상을 싱어줄 뿐이다. 교육개혁은 교육, 인간 빛 사회 를 보는 관점
의 개혁에서 출발하지 않으연 안된다- 교사, 학생, 학부모를 교육
주체의 자리에 확고하게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교육
민주화의 첫결음이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교육의 민주화에 다름아
닌 것이다.
교육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사들의 역할에 일대 전
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까지의 무기력한 말단관료, 역
사 속의 방관자의 위치 를 탈피, 새로운 교사로서 참 삶을 살지 않

으면 안된다. 우리는 교육의 주체로서 국민의 교육적 요구를 올바


르게 실천할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교육의 민주화는 민주사회의 이
254
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바탕이라는 자각에서 새로운 교육 건설
의 역사적 과제를 젊어지고 모든 장애와 고난을 이기며 민주교육을

실천해 나갈 것을 오늘 엄숙히 선언한다.


이에 우리는 교육의 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천명하는 바

이다.

1.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


다. 교육은 정치에 엄정한 중립을 지켜 파당적 이해에 악용되어서
는 안된다.
1 교사의 교육권과 제반 시민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학생과 학

부모의 교육권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1. 교육행정의 비민주성, 관료성이 배제되고 교육의 자율성이 확립되
기 위해 교육자치제는 조속히 실현되어야 한다.
1. 자주적인 교원단체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전면보장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당국의 부당한 간섭과 탄압은 배제되어야 한다.
1‘ 정상적 교육활동을 저해하는 온강 비교육적 잡무는 제거되어야 하
며, 교육의 파행성을 심화시키는 강요된 보충수업과 비인간화를 조

장하는 심야학습은 즉각 절폐되어야 한다.

1986. 5. 10.

한국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255

8. 우리의 뭇을 다시 한번 밝힌다


C그
<!:"

우리사회는 지금까지 누적되어 왔던 여러 모순과 갈등이 일시에


표출되어 점차 폭발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개헌에 대한 촉구,
불공정한 언론 전체에 대한 사실상의 불신인 KBS-TV 시청료 거
부운동,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존권투쟁,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재의 정치 및 경제 체제에 대한 근원적 회의, 반미 • 반일


등 반외세운통, 교육민주화선언과 계속되는 시국성명 등은, 대내적
으로는 다수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민족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현재의 정권은 이러한 국민적 요구를 묵살한 채 이를 정쟁
의 도구로 삼고 있다.
이 마당에서 우리 교수들은 다시 한번 민주사회 건설의 정도를
천명하려고 한다. 우리가 이 몫을 자청하는 것은 우리의 용기를 과
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민중으로부터의 함성과 박수를 기대해서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학생과 더불어 최루탄연기에


눈물을 쏟으며, 학생과 전경들의 무의미한 대결로 유혈의 상처가
늘어가는 것을 목격하며, 더우기 젊은 우리의 후진들이 대학과 노
동현장에서 분신으로 산화하는 처절한 상황을 목도하연서 더 이상
이것을 피할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과 신념

을 재차 밝힌다.

정 치

l. 우리는 이 사회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 일차적£로는 현 정권이


256

정통성을 획득함이 없이 등장한 사실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


한다. 정부를 지탱하는 힘이 국민 전체의 자발적인 선태에 기
초하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에 의거한다면,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정부를 국민척 합의에 기초한 진정한 의미의 정부라고 생각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선
택은 우선 정부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그것은 다시 본래
적 의미에서의 민간정부의 수렵에 있다고 믿는다.
2.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개헌문제의 향방에 지대한 관심을 표

명하는 바이다. 동시에 그 개헌의 방향이 단순히 정권의 인계


와 인수를 바라는 정치집단들 사이의 담합에 의한 권력구조의
개편이나 정부 조직형태의 수정에 그쳐서는 안되고, 민중의 생
존을 위한 권리와 요구가 완전히 반영될 수 있는 민주헌법이기

를 바란다. 현행 헌법에 대한 개정의 시기는- 정치, 경제, 교


육, 언론, 문화예술 등 각계에서 이미 주장되어 온 바대로 가
능한 한 빨라야 하고, 동시에 그 방향은 우리 국민의 정치적
의식과 능력이 최고통치자를 직접적으로 선출하는 데 충분하기
때문에 그러한 국민의 능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것이 되
어야 한다.
3. 자유의 신장이 인류의 보편적 발전방향이라고 이해하는 우리는
실정법을 내세운 기본권의 제한에서부터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온갖 형태의 육체적 고문에 이르기까지 현재 이땅에서 벌어지
고 있는 수많은 인권탄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특히 수
감자들의 적법한 주장과 피의자 및 구속자 가족들의 정당한 요
청이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되어서 는 안된다. 생존을 위협하는
정신적 육체적 압제에 대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저항은 정당하
다고 생각되며, 그 압제에 대한 반응이 폭력적 수단에 의거할
수밖에 없도록 사태가 악화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4. 현재 보수정당의 능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진보척 세력이 사
회의 일각에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
그들의 주장 가운데 상당부분이 정당한 것이고 더구나 그 해결
을 기존의 정당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그들을 급진좌경, 용
공, 불순 등의 갖가지 죄목을 붙여 배척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257
들의 주장을 흉수하고 대변하는 혁신세력이 합법화될 수 있는
여건이 명실상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 사회 최고의
지성을 생산하는 대학에서의 정치행위는 폭넓게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5. 우리는 대학과 사회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미 및 반일 퉁 반외
세주장에 주목하며 특히 그것올 반국가나 용공으로 단죄하려는
흑백논리에 반대한다. 그러한 주장이 한편으로는 외세와의 타
협에 의해 한반도의 지속적인 분단을 고착시키려는 시도, 동북
아시아 반공전략의 일환으로 강행되는 보수정권의 유지노력,
한반도에 배치된 핵무기의 위험 퉁 국가의 장래와 민족의 생존
에 치명척 위협이 되는 여러 사실에 대한 반성의 촉구이며, 다
른 한변으로는 광주항쟁의 경우에서처럼 민족의 자존을 크게
훼손한 외세의 부당한 개업에 대한 항의일 수도 있다는 점에
서, 우리는 학생들의 반외세 주장에 내재한 동기의 순수성을
의미있는 것으로 형가하고자 한다.

경 제

6. 정부는 경제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국민경제의 자럽화와 소득


분배의 균등화에는 실돼하였다. 국내의 인적 • 물적 자원을 합
리척 제도를 통하여 개발하거나 동원하지 않고 손쉽게 외국의
지원에만 의존하여 왔기 때문에 외채의 누적은 불가피하였다.
외채의 원리금 부담이 우리 경제를 제약하고 있는 지금 외채의
존의 성장정책은 포기되어야만 한다.
7. 경제성장은 실절적으로 노동자와 농민 및 도시빈민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들의 희생은 현실적으로 소수 특권
충의 개인재산 축적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불공명한 경제체
제 하에서는 민중들의 저항은 정당한 것이므로 이제 분배의 불
균형올 확대하는 성장위주의 정책은 포기되 어 야 한다.
8. 외채부담과 빈부격차로 말미암아 우리 경제는 파탄의 길을 걷
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국민의 벚인 외채에 의해 이익올
획득한 특권충의 국내 및 해외도피 재산은 당연히 사회로 환원
‘ ,. (

258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주장은 재산 자체가 국민 대다수의 협
력으로 생성된 사회적 재산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조치가 계
층간의 대럽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

다.
9. 우리 경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편입되어, 외국기업의 상품
시장, 외국은행의 대출시장, 외국기업의 투자지역으로 기능하
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자본은 독자척 활동 영역이 점차 축
소되어 외국자본과의 제휴를 통해서만 자본으로서 가능하게 된
다. 다시 말하자연, 외국자본, 국내자본 및 권력충이 서로 협
조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외채가 누적되고 기업
과 은행의 부실화가 발생하며 노동삼권의 탄압과 함께 노동자
와 농민 빛 도시빈민들의 생활이 악화되고 중소기업과 농업이
몰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체제를 ‘자본주의의 옹호’라는
단순한 슬로건으로 미화시키려는 시도는 마땅히 비판되어야 한
다. 사회정의에 기초한 새로운 자주적 경제체제가 모색되어야
만 한다. 이 새로운 체제 하에서 국민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

으로 ‘주인의식’을 갖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0. 우리 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외국정부에 의한 한국상품의 수업

규제 동향과, 우리정부에 대한 외국정부와 외국자본의 개방 요


구에 대하여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정권이 국민적 지
지기반을 잃어감에 따라 외세는 지금의 기회를 포착하여 현 정
권으로부터 여러가지 양보를 얻어내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
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정부간의 흥정대상이 아니라 민족
적 차원의 것임이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외국정
부와 외국자본의 지나친 요구가 결국 반외세운동을 자극하게
되리라는 점을 더욱 분영히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사 회

11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의식과 태도를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식민지지배의 교묘한 통치수법과 계속된 독재정권의 미
화된 자기위장으로 인해 우리의 의식은 극심하게 왜곡되고 전
259
도되어 있다. 즉 권력을 가진 자에게 아첨과 굴종하는 것이 생
존을 위해 펼수적이며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로서 우리 편이며
미국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안이하고 오도된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다. 나아가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자신의 생명을 분신 등을


통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보면서도 우리는 이 일이 우
리 모두에게 관련되며 우리들의 형제가 우리 모두의 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
리는 인간의 참다운 삶과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실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는 사회의 민주화
와 민족의 자주화가 우리의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펼수적이라
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지난날의 외세의존성, 아첨, 굴종, 피
동성 등을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책
임의식을 갖고 과거의 불의와 부정을 심판함으로써 철저한 자
기반성을 행하여야 한다.
12,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
한 수단이다. 사회는 이러한 것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며
적어도 방해물은 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생존권 확보를 위
한 노동운동에 대해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앞세워 비밀리에 지
속적으로 펼쳐지는 억압은 철폐되어야 한다. 특히 현재 진행되
고 있는 노동운동의 지도자들과 참가자들에 대한 인간 이하의
폭챙과 고문은 중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정치권
력에 의한 탄압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고 지금이 바로 그

러한 한계상황이다. 이제 국민대중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권력


의 유지를 위해 기충 노동대중이 회생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
은 불식되어야 한다. 명등과 공존의식이 노동문제를 보는 기본
시각이 되어야 한다.
13,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신체의 혈관과 같다. 언 로의 봉쇄는 자유
로운 의사소통과 건전한 사고의 발전을 저해하며 유언비 어 를
조장함으로써 민족 분열을 격화시킨다. 그러므로 언론의 탄압
과 대중매체를 통한 우민화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 신문, 방
송 등 대중매체는 특정한 정치집단의 사적인 도구가 아니며 국
260
민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공공수단이다. 이러한 뭇에
맞지 않는 대중매체는 거부되어야 하고 혁신되어야 한다. 그리
고 거부와 혁신에 대한 노력에는 전 국민이 참가해야 한다. 특
히 언론에 종사하거나 관계하는 사람들은 국민대중의 뭇올 실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언론이 사회 민
주화운동 대열의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동창자가 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4, 학문의 지속적인 발전을 지원하고 인간의 정신적인 삶올 알차
게 할 수 있는 출판과 민중예술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고 관련
인사들을 안보의 명목으로 구금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출판과 예술을 특정 집단이 임의로
규제하기나 자신들의 이익올 유지, 확대하기 위해 기본권 행사

를 유보시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출판


과 예술에 대한 자유의 폭이 확대됩으로써만 지식의 전파와 창
작활동은 비로소 보장될 수 있다.
15. 우리는 교사들의 교육민주화선언올 적극 지지한다. 정치권력은
교육에 대한 일방적 개업을 중단하고, 교육은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교육의 장인 학교에 일임 하기 를 촉구한다. 아울러 교사
들은 스스 로의 민주화를 주체척으로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타

분야의 민주화행진에 발맞추어 지속척으로 전개할 것을 바란

다.

대 학

16, 사회의 각 부문이 상호 통제기능을 상실할 때 대학이 교육과


연구라는 그 고유의 임무에 덧붙여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된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에 대한 성명이나 학
생들의 현실참여 행위는 대체로 이와 같은 시각에서 이해되어
야 할 것이다. 더구나 오늘의 학생운동은 일부 정치권에서 운
위하듯 한국사 인식의 오해나 2,000 달러 소득수준에서 나타나
는 소위 과도기적 열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해방 이후 우
리의 근대사가 배태해 온 온갖 내외모순의 동시척 폭발에 그
261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다시 세계 반공천선의 첨


병으로 규정된 기본구조 속에서 식민지적 속성의 기능인의 양
산만을 강행해 온 대학의 자세에 대한 혹독한 반성으로 받아들
여져야 할 것이다.
17. 사회의 각 부문이 담당해야 할 비판의 기능을 대학이 온통 대
신하게 될 때 그 발언의 강도는 커질 수밖에 없으며, 또 이를
금지하려는 정치적 탄압이 집요할수록 운동의 정도는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학생운동의 급진적 성향을 일방척으로
매도하기 이전에 우선 사회의 각 부문에 자융적 비판기능올 부
여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온갖 금기의 폭을 축소하
는 일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급진의 원언을 분
석함이 없이, 나타난 일부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어 확대 선
전하고 또 이를 정략의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에 크게 우려를
표하며, 개혁을 허용함으로써 급진을 완화하는 길이 최선의 방
안임을 확인한다.
18.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좌경 이데올로기에 대한 최선의 처방은
그의 속성과 실체를 알려는 길임을 거읍 강조하며, 이를 위해
서는 정부나 일부 권력기관만이 독점해 왔던 좌경 이데올로기
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대학에서 허용되기를 기대한다. 금단의
정원에 피어 있는 미지의 꽃에 대한 단순한 호기성이나 그것이
우리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냐는 순수
한 지적 논의를 국가변란이나 이척행위로 몰아가려는 주장에
우리는 통의 하지 않는다.
19. 병역이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임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우리는
대학과 병영이 기솔적으로 구별되기를 기대한다. 대학 내에서
의 군사교육아나 대학생의 전방업소는 본래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을 높힌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것이 학생들의 자융
활동을 제약하고 감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감
안할 때, 우리는 이미 천명된 군사교육 개선의 폭이 획기척이
어야 하고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20. 생명에 대한 외경은 우리의 도덕적 가치 중에서 최고의 것여
다. 우리는 대학과 노동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분신을
262

옥도하며, 유명을 달리한 젊은 영령에게 정중한 조의를 표한


다. 그러나 그 동기의 더할 나위 없는 고결함에 숙연하게 옷깃
을 여미면서도 그러한 극한 행위의 재발이 더 이상 없도록 자
제해 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젊은 시신에 대한 장례조차 사
회불안의 조장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하고 있는 현재의 정부 처
사나, 학생의 분신에는 한마디 유감의 뜻조차 표하지 않다가
한 전경의 죽음에 대해서는 대학에 그 책업을 전적으로 전가하
고 있는 문교부의 사고방식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들
의 분신이라는 비극에 충격체감의 법칙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
는 우리 교수 모두의 무능을 거듭 한탄하면서, 특히 이 학생들
이 소속했던 대학의 최고 책임자가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조차
지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집착하는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 부
끄러워한다.
21 결론적으로 정부는 관료적 지시로 학원문제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하고 학원은 교원들에게 맡기기


를 기대한다. 영설공히 철저한 자율만이 위기에 처한 우리 대
학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이다.

* 서명 대학(교)
강리교신학대학, 경기대학교, 고려대학교, 동아대학교, 부산대
학교, 부산산업대학,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울산대학,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전남
대학교, 전북대학교, 중앙대학교, 청주대학, 청주사범대학, 충
남대 학교, 충북대 학교, 한남대 학교, 한신대 학, 호서 대 학(23개

대학)

*서명 교수 명단
이원규, 홍정수, 김재은, 방석종, 박익수, 김외식, 박창건
구댁판, 깅연권, 안현수, 이근수, 이헌창, 황현기, 최장접
이기영, 이영기, 박영태. 한석정, 허펑걸, 박재환, 채상식
채회완, 오상훈, 이영철, 윤용출, 김양하, 지두환, 검석준
김차두, 검회복, 냐뱅우 박회뱅, 배학수, 송허은, 유영표
263

이성훈, 이재하, 이재회, 이현석, 조캅상, 최수연, 최정일


김홍영, 한완상, 이명현, 변형윤, 김진균, 장을명, 최근덕
송항룡, 이경의, 이만방, 강선영, 고인수, 공영복, 김선뱀
김영민, 김윤태, 김재란, 도회근, 서정훈, 성인수, 신현재
임 헌, 장경기, 변국서, 최 일, 표교열, 성내운, 오세철
이효재, 박순경, 천형택, 김당택, 윤회만, 박만규, 노회판
이지헌, 깅영욱, 이용환, 신경호, 강관욱, 조형운, 강성영
최 민, 조걸우, 최 협, 나간채, 최석만, 송기축, 영노근
김정수, 이경순, 성걸호, 김현곤, 이 철, 정혜축, 양회석
이종목, 검진국, 이홍걸, 검동수, 김동원, 남성훈, 이광우
조승현, 김민환, 이의정, 깅윤수, 백대웅, 오재일, 조 담
초남중, 이상시, 이석연. 오수성, 홍성식, 주동기, 오규동
김동회, 이석영, 김영정, 유재초, 박영규, 이종민, 정초왕
정학성, 이용인, 유인호, 박영근, 강혜숙, 김뱅태, 박찬정
선정규, 양형기, 유창환, 유제복, 이신일, 천환성, 정종진
정초시, 조창회, 조흥식, 최세영, 황의동, 강철구, 김성건
검진기, 검진석, 박영순, 변성규, 송규뱀, 심용철, 양태순
윤기영, 이경우, 이우태, 이재덕, 이현숙, 조영화, 최갑순
최뱅준, 한홍렬, 박노영, 이숭원, 정영교, 장하진, 강형기
강회경, 구연철, 김성기, 김정화, 남재봉, 노경회, 만경회
박정수, 배영균, 배영옥, 서판모, 안상헌, 오광호, 오제명
유초하, 윤구명, 이동순; 이승복, 이영진, 이옥경‘ 이장회
임성운, 전영태, 천채련, 정동호, 정진경, 정호영, 최세만
한붕래, 허석렬, 송태복, 김의성, 정명기, 깅조년, 김득룡
박영환, 이걸성, 송 천, 이규식, 김태수, 이필영, 깅준석
김홍수, 최뱅현, 이경회, 만영태, 박종화, 운동환, 김성재
고재식, 정태가, 주채용, 이준모, 김주숙, 최순냥, 이윤구
강영선, 박근원, 김창락, 정웅성, 김영일, 황성규, 오영석
김이곤, 안병우, 강돈구, 설준규, 홍정선, 이현회, 차봉회
서굉일, 안명우, 유봉학, 최천택, 정훈교, 곽기완, 장일조
강남훈, 김경모, 김상곤, 김수행‘ , 박영호, 박판영, 이영훈
윤소영, 정운영, 신동윤, 김교벤, 냥상화, 이목훈, 엄운천
264

임태수, 이양호, 이향만, 이종화, 박성휘, 홍성수


(265 영)
1986. 6. 2.

전 국 대 학 교 수 단
265

9. 1986 년도 인권선언

“ 이 스라앨 백성은 고역을 견디다 못하여 신응하며 아우성을 쳤


다. 이렇게 고역에 짓눌려 하나념께 울부짖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계약을 생각하시
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 살펴 주셨다. ”(출애굽기 2 : 23 ∼ 25)

이집트 파라오의 폭정과 로마의 식민지 통치 하에서 절규하며 피


흘려 싸운 유대 민중의 외침을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의 길로 인도
하신 분을 우리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해방의 사역에 몸바쳐 죽으
시고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들은 요늘 이땅
의 처참한 인권상황을 통감하면서 ‘민주챙취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1986 년도 인권문제전국협의회를 개최하였다. 사흘간의 일정을 기도
와 토론 가운데 진지하게 진행하며 우리는 이 민족의 현 상황이 한
발자국도 물러셜 수 없는 극단적인 위기에 직변하여 있음을 절감하

지 않을 수 없였다.
현 군사독재정권은 민주화운동의 지속적이고 굳건한 진전에 의해
몰락의 위기에 직변하게 되자 절대 다수의 국민을 마치 척을 대하
는 것처럼 감시 , 검문, 연금, 연행, 고문, 투욱 둥 온갖 폭력적인
탄압수단을 총동원하여 억압하는 한편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
통자, 농민, 도시빈민들에게는 미중유의 수탈과 착취를 더욱 가중
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이들은 최근 들어 이 나라의 민주화와 이 민족의 자주화,
그리고 민중의 생존권 확보를 위하여 애써 온 수많은 애국청년 • 학
생 • 노동자 • 농민 • 재 야인사들을 가혹하게 고문 투옥하고 , 중요한
민중민주운동단체들을 용공이척단체로 몰아 탄압을 노골화함으로
'’

266

써, 일체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탄압정책은 KBS-TV 시청료 거부운동의 폭발적 확산과
각 지방에서의 개헌추진대회의 엄청난 열기, 그리고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운동과 중퉁교사들의 교육민주화선언운동 등 그동안 억눌
려 있던 사회 각계각충의 광벙한 민주화 의지를 촉발시켰으며, 급
기야 오늘의 철식할 것 같은 상황은 1 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학
원에서, 노동현장에서 그리고 놓촌현장에서 10 여 명의 고귀한 생명
들이 분신, 투신, 음독 등 극단적인 방법에 의해 민중민주 제단에

바쳐지는 처절한 결과를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저들의 처절한 죽음


은 결코 자살이 아니라 현 지배구조로 발미암아 강요된 분명한 타
살이며, 그들의 외침은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마지막
정규이자, 외세와 군벌과 재벌 등 오늘의 지배집단과 그들의 횡포
를 비겁하게 방관해 온 우리들 모두에 대한 최후의 경고였다. 이에
우리는 저들이 못다 이룬 뜻을 우리들의 순교적 각오와 투쟁을 통
하여 쟁취할 것을 굳게 다짐하면서, 우리 모두의 의견올 모아 다음
과 같이 선언한다.

l. 비민주적 현행 헌법은 대통령직선제, 민주적 제권리와 민중생존권의


완전한 보장을 근간으로 한 민주헌법으로 지체없이 개정되어야 한다.
국민 모두의 거역할 수 없는 민주화 열망올 밑거름으로 진전되어
온 범국민적 개헌논의가 최근 일부 세력에 의해 왜곡되어감을 보고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개헌 문제는 단순히 선거제도
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 헌법에 당겨져야 할 민주주의제도의 구체
적 내용은 우리의 역사적 특수성에 업각하여 찾아져야 한다. 내각
책임제와 이원집정제가 비록 서구 여러 나라에서 채돼되고 있다 하
더라도, 엄청난 금권, 관권, 고문정치가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현상황에서는 대통령칙선제가 가장 민주적 정당성을 보장할 수 있
는 선거제도임을 확신함과 아울러 민주적 제권리와 민중생존권의
완전한 보장, 군부의 정치개업 금지, 국민저항권의 보장 동을 근간
으로 하는 진정한 민주헌법£로의 개정이 아닌 여타의 모든 타협척
개헌을 결단코 반대한다 더우기 근자에 논의되는 이원집정제와 소
267
위 보수대타협이 외세의 조정 하에 진행되는 현 군사독재정권의 변
형된 장기집권 음모임이 분명한 이상, 이의 저지를 위하여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2. 민족의 자주성과 자존을 위협하는 모든 반민족적 요소는 철저히 극복


척결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과 교회는 지금까지 너무나 무비판척으로 지배자들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만당해 왔으며 무엇이 진정 우리 민족을 위하
는 길인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해 왔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과 일본 등이 반공국가이며 북한 을 견제해 주는
나라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우방으로 여겨 왔으며 이들 나라
들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작금의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과 자국수입 규제조치 그리고 최근에 방한했던 슐츠
미 국무장관의 언통에서 여실히 드러난 한국민에 대한 미국정부의

모멸적 태도와 현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노골적 비호 등은 미국이


결코 우리의 무조건적인 우방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소련과 함께 한반도를 분단한 후 분단
상황올 고착화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의 진정한 발전을 저해해 왔£
며, 한반도를 핵기지화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가능성을 높
여 우리 민족의 생존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
리는 미국을 비롯한 외세에의 비굴한 굴종에서 벗어나 내외의 모든
반민족적인 세력을 극복 척결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확립해 나가기
위해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3.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의 생존권은 최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성원의 대다수 를 이루고 있 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들은 심각한 생존권의 위협에 직변하고 있다. 14시


간 이상의 장시간노동에도 불구하고 10 만 원이 채 안되 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이 아직도 수백만에 이르고 있으며, 농민 들은 외국농
축 산물 수입과 소값 파동 등으로 300 만 원 이상의 엄청난 빚더미에
올 라 앉았으며 도시빈민 들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위한 대
268

책없는 재개발정책 속에서 오갈 데 없이 거리로 쫓겨나기에 이르렀


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노동자는 분신으로 항거하였고, 어떤
영농후계자는 농약을 먹기에 이르혔으며, 어떤 빈민촌 주민은 연탄
불을 방안에 피워 놓고 한 많은 I영생을 마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절박한 궁지에 처한 이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
시빈민의 생존권올 보장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최우선적언
과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들이 진정 인간다운 삶올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가 시급히 강구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4, 언론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사회의 최대 장점은 그 사회의 각 분야에 있어서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노력들이 허용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 전체의 발전과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정치사회에서 보여
지는 권위주의와 편의주의가, 가장 자율적이여야 할 언론, 교육,
문화, 예솔의 영역에까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발
생한 민중교육지 사건이나 인중미술전 사건, 그리고 최근의 보임기
획 사건 등을 통하여 나타난 이땅의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풍토

는 이러한 현실의 대표적 단면에 불과한 것이다. 특별히 공영방송


으로서의 본분을 이 탈한 KBS 문제와, 신문들에 대 한 당국의 보도
지침 하달 등풍의 언론정책은 국민의 사고를 규격화시키고 판단 능
력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는 결과적£로 우리의 미래를 단선적이고
흑백논리적인 사고로 ·몰고갈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본성의 파
탄과 민족공동체의 와해로 귀결될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우
리 사회의 불신풍조와 편협하고 배타적인 파행적 사고들을 교정시
키고 나아가 진정한 통일민주국가 성취의 기틀을 마련하는 지름길
임을 선언한다.

5. 민중민주운동에 대한 폭력적 탄압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최근 당국은 민중민주운동에 대한 탄압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동
안 당국은 학원, 노동, 농촌 현장운통에 대한 극성한 탄압을 계속
해 왔으며, 최근에는 서울노동운동연합 관련노동자들을 보안사에서

\
ι 269

연행하여 혹독한 고문수사를 한 후 구속한 데 이어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민통련 및 그 산하단체들의 주요간부들을 구속 혹은 수배하
여 그 활동을 마비시킴으로써 작년 가을의 민주화운동청년연합에
대한 탄압에 이은 대대적인 민중민주운동 탄압에 나서고 있다. 그
러나 이러한 탄압은 모든 국민들 사이에 더욱 더 단단한 민주쟁취
의 의지를 심화시키고 확산시킬 뿐이라는 점을 경고하면서 민중민
주운동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지 할 것을 촉구한다.

6. 살인적인 고문 행위를 비롯한 모든‘ 불법적인 인권유린 행위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지난해 전세계 여론을 들끓게 했던 깅근태 씨에 대한 살인적 고


문 사건은 현 정권의 폭력적 실체를 여실히 폭로한 사건이었다. 이
러한 고문수사 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심각한 우려와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금년에 들어서도 수많은 청년, 학생, 노동자들에 대한 혹
독한 고문수사가 계속해서 자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의 과
영 시위진압 과정에서 직격 최루탄에 의한 중상자들이 속출하고 있
는 데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형화적 시위에 대한 당국의 폭력적
대응, 불법연행과 구금, 자의적인 압수수색, 일상적 가두검문, 수
배자 검거 를 구실로 한 사생활 침해 등등의 처사들은 모든 국민들
을 일상적 불안감에 휩싸이게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결
국 국내적으로는 심각한 사태를 불러일£킬 위험성이 있으며 대외

척으로는 우리 민족의 수치스러운 치부로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문에 의한 수사를 비롯한 온갖 폭력에 의한 불법적 인권유련은
이땅에서 영원히 근절되어야 한다. 이는 진정한 민족민주국가를 향
해가는 첫걸음이며, 당신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인간을 창조하신 하
나념의 변할 수 없는 명령인 것이다.

7. 모든 앙심수는 조건없이 전원 석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최근의 여야 정치협상에서 양성수 석방문제가 정치적 흥
정물로 이용되고 있는 점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당국은 1,
100 여 명에 이른 양심수 중 일부를 선별 석방함으로써 이미 과포화
상태에 이른 교도소를 정리하는 한편, 이를 통해 야당과 국민들에

270

대하여 정치적 생색을 내려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


나 현재 전국 각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1,100 여 명의 노동자, 농
민, 학생, 재야인사들은 모두 일신의 안일을 버리고 이 나라의 민
주화와 민중생존권의 보장을 위하여 굽힘 없는 투쟁을 전개해 왔던
사람들로서 이들은 전원 아무 조건 없이 즉각 석방되어야 마땅하
다. 특히 우리는 유신체제 이후 굵직한 여러 사건에서 국가보안법
등이 적용되어 장기간의 구속상태에 있는 수많은 민주인사들이야말
로 지체없이 석방되어야 한다고 촉구하며, 원칙적으로 양성수 석방
의 문제는 여야간 타협의 흥정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아울러 아직도 사면복권이 되지 않은 모든 인사들에 대해서는 전원
즉시 사면복권 조치를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모든 반민족적 • 반민주적 • 반민중적 현실의


근원은 한반도 민중의 염원을 짓밟은 미 • 소 외세 및 이에 결탁한
‘ 남북한의 독재권력에 의해 강요된 지속적인 분단상황임을 확인한
다. 분단과 그에 따른 반민족적 • 반민주적 구조와 질서의 고착으로
말미암아, 암울했던 일제 하에서조차 독립운동을 통해 연연히 이어
오던 민족정기는 흐려지고, 정치권력과 지배층 내부에는 민족과 역

사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기회주의와 정상배적 처세술이 만


연하여 민족적 • 민주적 • 민중적 가치와 질서를 압살하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 전반의 군사화와 폭력화 경향
및 군의 정치개업,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 • 사회 • 문화질
서, 민중의 소외, 외세에의 예속 등을 총체적으로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과 자주, 민중의 생존권 및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하
여, 모든 분단고착 세력들에 대항하여 앞장서서 결연한 싸움을 전
개할 것을 다짐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한국교회가 70 년대 이래 전개해 왔던 인권선
교운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계숭하연서 앞으로의 인권선교운동을
소극적, 사후대 책 적 운동에서 능통적, 구조적, 근본적 운동으로 전
환하여 민주챙취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할 시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오늘날의 한국교회 전반의 풍토가 과

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으며, “귀 있는


271

자는 들으라”는 성경 말씀대로 민중의 한맺힌 울부짖음에 올바로


귀기울이고 있는지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와 물량주의, 권위주의와 기복신앙의 깊은 함정에 빠진
교회라는 비판, 민중의 절박한 생존현실을 무시하고 내세만을 앞세
워 민중을 마취시키는 중산충 위주의 보수적인 교회라는 따가운 비
판을 우리는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져 주신 교
회의 본래적인 선교적 사명 을 감당하기 위하여 800 만 기독교인, 특
별히 옥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깊 이 회개하고 하나념 앞에 겸손
허 결단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공 의 를 이땅에 실현하는 도구로 쓰엄

받도록 간구하고 참여할 것 을 간 절 히 요청한다.


끝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오직 쟁취되는 것일 뿐이라는
인식을 거듭 확인하면서, 신앙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민주쟁취와
민족통일의 새아침이 동터오는 그날까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 을
쫓아 두려움 없이 십자가행진에 매진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야훼께서 나의 벚,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


야훼께서 는 내 생명의 피난처시니 내가 누구 를 무서워 하리요.”
(시 편 27: 1)

1986. 6. 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주최

’86 년도 인권문제 전국협의회 참석자 일동


272

10. ’86 반공해선언

1. 오늘 우리는 제 14 회 세계환경의 날 (δ월 5 일)올 맞이하여 지난


1 년 동안의 한국의 공해상황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처해 있는 공
해현실을 진단하고 우리의 냐아갈 바를 천명하고자 한다.
공해문제가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84년 말 인도의 배
팔 참사와 최근의 소련 체르노벌 핵발전소 사고로 여실히 중명되고
있다. 일순간의 사고로 인해 지역주민의 생명은 물론 인류 전체에
까지 그 피해가 미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핵발전소를 비롯한 선진국의 공해 • 사양산업의 무더
기 진출로 ‘세계공해의 박물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었다. 따
라서 어팔 참사나 체르노벌 사고가 강건너 불이 아닌 이땅에도 얼
어날 가능성이 항상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1. 일부 핵전문가들은 핵발전소의 사고 확률이 1 백만 분의 1 로


별똥에 맞아죽을 확률보다 척다고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350개밖에
건설 안된 핵발전소에서 이미 미국 드리마일과 소련 체르노벌에서
대규모 사고가 일어나 그 안전성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번 체르노벌 사고로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암에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유럽 각국의 방사능 오염은 평상시보다 1 백 배나 높아져


야채값이 폭락, 농민 들 이 일대 타격을 받고 있다. 이번 사고를 계
기로 세계의 반핵운동은 고조되었으며 각국의 핵발전소 규제 움직
임은 얼충 강화되고 있다.
그러면 5 기의 원전이 가동중이고 4기가 건셜중인 우리의 상황은
어 떠 한가. 관계 당국과 전문가들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강조하면서
‘ 한국에 가동중인 원자로는 소련과 다르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미국과 캐나다에서 도업해 염려없다’고 강조하지만 핵발전소의 원
273

리로 보면 다른 점보다 공통점이 많음은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 계획은 국민적 합의나 필요보다는 다국적기
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며 가통과 건설에 관한 정보는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세계 모든 나라에서 거부당한 주택난
방용 핵발전소를 세계 최초로 서울 강남아파트단지에 건설할 계획
으로 있다.
지난 78 ∼ 85 년 사이에 우리나라 핵발전소 가동중단 사고가 122 건
이나 일어난 것이 입증하듯이 우리나라도 안전성이 매우 심각한 수
준이다. 체르노벌 사고와 같은 대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현재 국내에 가동중이거나 건설중인 핵발전소에 대한 현황과 문제
점, 안전대책은 전연 공개되어야 하며 다국적기업의 핵 쓰레기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핵발전소 건설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l. 고도성장의 첨병을 자처했던 울산 • 온산공단은 불과 20년이


되기도 전에 주변의 농토와 어장은 죽어 버렸고, 그대신 매연과 폐
수로 인해 천여 명의 주민들이 뼈마디가 쑤시는 공해병에 걸리게
되었다. 당국은 형식적인 역학조사를 실시 공해병이 아니라고 부인
하였다. 그러나 온산병 증세를 나타내는 주민이 계속 늘자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사상 초유의 울산 • 온산 주민 4만여
명의 이주문제를 확정, 발표했다. ’‘’
오염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공해기업들이 피해보상을 해야 함에
도 불구하고 당국은 전체 이주비 1 천 2 백억 원 중 1백 32 억 원만

기업이 부담토록 하고 나머지는 국민 세금으로 보충토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둘러 만들어진 이주계획안은 공해 때문에 생존과 건
강을 박탈당하고 고향을 등져야 하는 주민들의 생계대책을 전혀 확
보해 주지 않고 있다.
지난 20년간 공해물질을 마음껏 내뿜으연서 기업은 엄청난 이익
을 획득한 반연, 지역주민 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결국 고향
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공해병에 신음하고 있는 주민들을 그대
로 방치한 채 이주로써 문제 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은, 국민의 건
강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정부당국이 도리어 국민이 병 들 고 죽어가
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274

l. 최근 들어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링픽을 앞두고 현 정권은


‘서울의 공기가 맑아졌다’, ‘한강에 물고기가 뛰논다’, ‘유람선과 보
트를 띄운다’고 하면서 매스컴을 동원,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있

다.
올렴팩을 앞두고 심각한 공해실상은 철저히 통제하고, 왜곡 발표
하고 있는 것이 다. 작년 여름 대 학생 수중탐사반이 한강을 종단하
연서 밝혀졌듯이 한강의 오염으로 많은 대학생이 피부병에 걸렸다.
이런 심각한 상태인데도 강물의 정화사업보다 외형적으로 한강이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공해방지대책이지, 올링팩을 위한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공해대책은 결코 아니다 올렴픽을 위해 오염도를 숨기는
것과 같은 파렴치한 작태를 중단하고, 서울의 대기오염도, 한강물
의 오염상태, 중금속오염도를 정확히 공개하여 그 대책을 원천적으

로 세워야 한다.

l. 작년 8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간창이 인체에 유독한 화학물


질을 사용한 독물간장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전국민이 공
해식품 때문에 불안해 하고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자 당국에서는 불
량 • 공해식품의 추방을 위해 ‘ 식품기동감시반 ’을 편성하고 86년부터
쌀, 과일, 채소와 수산물 동 31 개 풍옥에 대해 중금속과 농약의 허
용기준치를 정해 안전한 식품을 먹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
다.
그러나 감시반의 활동도 극히 형식적이며 아직까지 잔류기준치조
차 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라면에 첨가하는 인공 산화방지제
의 발암여부 논쟁이 식품회사에서 제기되자, 식품회사가 논쟁을 별
이지 않도록 각서를 받았다.

당국이 라면의 성분올 밝히고 유해성 여부를 규명해야 할 책임을


망각하고 도리어 통제, 은폐하고 있음이 식풍문제에서도 잘 나타나
고 있다.
275

l. 대대손손 물려 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그릇된 개


발정책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리산 개
발이다. 국럽공원 1 호이며 한반도의 지붕 지리산이 올럽픽을 앞두
고 관광도로를 개발한다는 명옥 아래 해발 1 천 m 이상까지 TNT,
불도저로 산을 깎고 부수면서 2차선 도로를 건설 중이다.
지역주민의 의사가 반영되지도 않고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은 채,
은밀하게 강행되었다는 점에서 이 개발계획의 배경은 철저하게 파
헤쳐져야 한다. 이 도로가 건설되연 지리산 일대는 자동차 배기가
스, 소음, 오물 등으로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될 것이며 희귀한
동 • 식물자원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
이 최선의 보존이다.

l.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공해문제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


는 제모순이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다. 공해는 독점의 소산이고, 억
압의 소산이고, 분단의 소산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의
식을 파괴하고,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이 국토를 파괴하고 있다.
이제 쾌적한 환경과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국

토를 오염시키고 민중의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공해물질을 배출하


고, 이를 조장하는 행위는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되고 이땅에서 영
원히 추방되어야 한다. 다국척기업의 이익을 위해 공해산업을 무조
건 수입하고, 소수독점자본의 공해배출행위를 눈감아 주는 반민중
적 행위와 체제가 종식되는 것이야말로 이땅의 공해문제 해결의 청
경이 될 수 있다.
공해문제의 해결이 반공해 주민운동을 통하여만이 가능하다면 지
방자치제의 실시, 언론자유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는 공해문
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필수척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해
문제의 해결과 민주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1. 대형참사 등 안전성이 문제되고 있는 핵발전소의 건설올 중단하고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에 관한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라
2. 온산공해병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를 실시하여 그 원인과 대책올 국
276
、‘

민에게 공개하라. 이주가 확정된 울산 • 온산 4만여 국민들에 대해서는


생존대책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 생존보장 없는 이주는 있을
수없다.
3.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대기오염도, 강물오염도, 수도물의 성분,
식품오염 상태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기업의 공해배출 행위를 색출하여
과감하게 처벌하라.
4. 농약공해는 심각하다. 농민의 80% 이상이 농약중독 경험이 있고
주곡인 쌀, 과일, 채소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되고, 이제는 우리들 몸속에
서도 농약이 검출되고 있다 이에 농약공해의 전반적 피해조사와 그 대
책을 세우기 위한 ‘범국민 대책기구’의 설립을 제의한다.
5. 지리산 관광도로 건설의 배경을 공개하고 파괴된 지리산국립공원을
원상태로 복원하라.

6. 공해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반공해 주민운동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


고 다함께 공해추방운동에 참여하자.

1986. 6. 5

한 국 공 해 문 제 연 구 소
277

11. 가난한 사람도 제 자리에 살 권리가


있다.

“교회는 인간을 저버리지 못한다.” 인간을 저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야말로 교회가 자기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반드
시 따라 걸어야 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이다.”(인간의 구원
자 14 항).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울 앞두고 지금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
는 지역 중에는 최소한의 인간임을 거철당한 세업자들의 피맺힌 절
규가 절규를 넘어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도시농어촌선교위원회와 천주교서울

대교구청의평화위원회 는 천주교 개신교 재개발지역 - 공동조사위원회


(대표 이정학목사)를 구성하고 온갖 협박과 비인간적 처사가 난무
하는 상계동 173 번지 합동재개발 현지를 방문했다. 가옥주들은 주

민들의 20년 숙원사업이라고 하나 그 가욱주의 80% 는 재개발이 발


표되고 난 후에 칩을 산 외지인이요, 도봉구청은 “재개발법에 따라
개발절차상 문제가 없을 경우 숭인만 한다. 세업자 문제는 가욱주
와 타협하여 해결할 문제다”고 한다. 그런데 세업자들 이 제기하는
문제는 개발의 절차문제도 아니요, 가옥주와의 타협문제도 아니다.
“현재의 재개발은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인

가”라는 개발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 에 대답은,


지난 6 월 26 일 경찰이 지격보는 가운데 300 여 명의 장정들과 포크
레인을 앞세운 1 ,000 여 명의 가옥주들이 엄마가 끌어안고 있는 어
린애를 빼앗아 집어던지고 할머니까지도 구타하며 집안에 사람과
가구들이 있는 데도 집을 허문 것이었다. 그 결과 10 여 명의 세업
자들이 2 ∼ 4주의 상해를 업었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친형제
이상이던 20 여 %의 현지 가옥주와 세업자는 불공대천의 원수가 되
278

었다.
가옥주와 세업자, 그들은 무엇올 위해 싸웠으며 지금도 싸우고
있는가. 정부와 건축회사의 하수인으로 변한 재개발추진위의 주장
대로(세업자를 빨리 쫓아내지 못하면 이익금이 적어진다) 이 싸움
은 가옥주들의 동물적인 이익추구가 세업자들의 최소한의 인간임을

쳐부순 전쟁이었다. 따라서 재개발은 결국 정부와 건축회사를 위해


투기꾼들이 돈벌이를 위해 폭력으로 해치우는 것이 되었다.
이것은 “개발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두어져야 한다. 즉, 개발의 주체와 목적은 인간이요, 개발


의 중심점은 인간이어야 함에도”(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 사회개
발3) 불구하고 인간은 없어지고 개발만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이 개발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되는데도”
(동상) 가옥주들은 건축회사와 추진위에 의해 세업자를 내모는 도
구로 이용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발은 모든 인간을 위한 것
이나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의
발전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동상)는 주장은 한낱 우스개요, 실없
는 헛소리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는 현 정부가 전국적으로 시
행하고 있는 현행 재개발을 “개발이 아니라 저개발”(동상, 개발과
저개발 9)로 규정한다. 그것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이 던 주민
들올 탐욕으로 내몰아 급기야는 최소한의 인간성마저도 상실케 하
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재개발은 “주민들의 미래를 향한 일에 주민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운영에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동상, 개발활동의 제원
칙 5) 부동산 투기꾼들과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독점된 추진으로 인
해 지역공동체를 단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맹목적인 돈별 이 를 위
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상 수 있는 마지막 인간의 자리마저
박탈하여 그들을 길거리로 내몰고도 그 나라가 온천할 수 있겠는
가?
이같은 민중의 분열을 통해 득을 보는 것은 첫째는 공산집단 이
요, 다음으로는 독점, 독재권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행 재개발

속에 깔려 있는 반민중척이요, 반민주적인 속성과 함께 현정권의


사악한 정치적 도덕성을 규탄하며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279

l 현재 상계동 173번지에서 최소한의 인간이기를 위해 싸우는


세업자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2. 포천군 동교리 집단이주민은 농촌에서 살지 못해 도회지로 이
주해 온 세업자들을 다시 도시에서 추방하는 행위에 불과한
어셜픈 사기극임을 확인한다.
3. 현 시점에서 재개발지역에 대한 철거를 무조건 중단하고 일체
의 재개발정책을 전면으로 수정할 것을 츄구한다.
4. 인간이기 위한 마지막 자리는 그 어떤 명분이나 법으로도 박
탈될 수 없는 권리임올 확인한다.

1986‘ 7. 16.

전주교 개신교 재개발지역 공동조사위원회


280

12. 정신보건법안을 규탄한다

현 정부(주무부처 ; 보건사회부)는 정신보건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원안대로 통과되도록 힘쓰고 있다. 이 법안은 보건사회부가
1986년 9월 21 일 관보에, 좋은 점만 추려 업법취지를 공고한 후 각
부처협의를 거쳐 1986 년 11 월 4 일 국무회의를 통과시격 최종적인

정부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이 법안은 「정신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빛 ’ 보호에 관
하여 펼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에 이바지하
게 함(제 1 조)」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복지법인데 그 내용은 법의
취지와는 달리 • l)환자의 인신구속 절차가 일방적인 행정명령 하나
로 이루어질 수 있어 정신의학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범죄적
남용의 가능성을 보장해 주고 있다. 2)폭력과 쇠사슬로 감금해 놓
은 비의료적 수용시설을 정신요양원이라 이름하여 양성화시켜 놓고
있으며 ,3)복지법인인데도정부의 「별도 예산조치 필요없다(법안참고
사항, 3 페이지)」고 함으로써 도저히 법의 목적에 명시된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있어 국민의 인권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에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부당한 인신구속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에 대해 항의를 할 수 있는

법적 보장이 없다.

정신질환자들은 자신과 타언을 보호하기 위해 입원시켜야 할 경


우 본인이 병자란 사실, 그리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점을 전혀 모르
고 거부하므로 때에 따라서는 강제업원이 불가피하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정신보건법에서도 보사부장관이나 시 도지사 또논 시장 군
수가 가족의 의뢰를 받아 입원수용올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281

있으며(제 14 조), 「자기 또는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본인이나 가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적인 긴급의


료보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 15조).
여기에, 모략당하거나 정치적 이유로 부당하게 정신질환 환자가
아닌 사람이 정신질환으로 낙인찍혀 인신구속이 될 가능성이 있으

므로 정신보건법에서는 강제업원 조치를 규정함과 아울러 부당한


업원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법적 보장 이 모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법의 정신이고 세계보건기구의 방침이고 세계 어느나라의
정신보건법에도 반드시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 법안에는 그런 장치가 거의 없다.
이 장치는 3중장치여야 하는데 첫째가 정신과 전문의 2인의 진단을
거쳐 그 진단이 일치하는 경우에 한해 입원이 성렵되도록 규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법안에는 가족이 신청한 경우에는 행
정당국이 의료보호 조치를 병원이나 요양원에 「명령」(본 법안에 는
명령이란 단어로 일관되어 있음)하도록 되어 있고 정신과 전문의
진찰이나 진단과정을 명시하지조차 않고 있고 이를 거부할 수 없도
록 규정하고 있어 행정당국 마음대로 인신을 구속할 수 있도록 되
어 있고(제 10조) 긴급의료보호 조치의 경우에도 「정신과 전문의 2
인의 의견을 들어(제 15조 2항)」라고 하는 법적 구속력이 희박한 애
매한 표현을 씀으로써 행정당국의 명령으로 인신구속이 정당화되 는
길을 마련해 놓고, 범법자의 치료감호에 있어서도 정신과 전문의 2
인 감정서가 첨부되어야 하게끔 규정되어 있는데(사회보호법 제 10
조) 범법자도 아닌 환자의 인신구속을 「의견을 들어」 「명령」 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마련해 주는 것이 된다.
둘째 , 업원이 정당화된 후에라도 환자 또는 그 가족이 의료보호

조치(입원)의 부당성을 항의하고자 할 경우 정신의료심의회라는 기


구가 있어 행정당국이나 정신의료 시설과 환자 사이에서 중재역할
을 해주어야 하는데 본 법안에서는 그런 기구가 언급조차 되지 않
고 있다.

셋째 단계는 인신구속의 부당성을 정기적으로 법에 제소하는 절


차를 모법에 명시하여야 하는데 그런 언급이 본 법안에는 전혀 없
, -‘

282

다. 한편 의료보호 조치와 긴급의료보호 조치를 해제할 때에도 행


정관서의 「명령」으로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의견을 들어 해제하도록
되어 있는데(제 16조 1 항 2항) 이 경우에는 인신구속의 경우와 마찬
가지로 부당성을 항의할 통로가 없다.
긴급의료보호 조치의 절차에 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본 법안에는 되어 있으나(제 12조 4항) 인신구속과 관련된 절차는
모법에 명기함이 인권 차원에서 타당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법의
기본정신이다.
이상과 같이 정신보건법에 펼히 영시되어야 하는, 부당하다고 생
각되는 인신구속에 대한 항의창치 혹은 인권보장장치가 전혀 없고
행정당국의 일방적 「명령」으로 인신구속의 가부가 결정되므로 선의
의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을 막을 길이 없게 된다. 소련과 동구권
그리고 남아공화국에서 반동분자들을 정신과병원에 강제업원시켜
수강해 놓고, 업원장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정신과 의사마저 정신병
원에 수강해 온 전례들 (1977 년 하와이 선언 배경)을 상기할 때 본
법안의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게 된다. 이련 법
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는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는 중거가
구체척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2) 전근대적인 수용시설의 양성화는 올바른 의료혜택을 받아야 할 정


신질환 환자의 기본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정신질환 환자는 수용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치료의 대
상이어야 한다. 정신질환은 불치의 병 또는 사회척 기능을 상실한
상태가 아니다. 그들은 정신병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병은 의학치료로 회복될 수 있고 적어도 사회복귀가 가능한 병
이다. 치료를 못받았을 때 폐질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의료적인 수용시설에 감금되어 조기 척절한 치료의 기
회를 박탈당한다연 그것은 한 인간의 정신이 잘못된 제도에 의해
살해당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만성화된 정신질환자를 집단
으로 수용하다가 인간쓰레기라 명가하고 학살한 나찌의 전례를 상
기하면서 비의료적인 수용시셜의 법적 양성화가 초래할 비인도적인
283

사태를 심히 염려하게 된다.


비의료적 감금시설인 정신요양원을 국민의 정신건강을 도모한다
는 정신보건법에서 명문화시켜 놓고(제 2조 3 항)시설 책임자의 자격

규정마저도 해놓지 않고 있는(예외적으로 일본의 경우 정신요양원


의 규정이 있는데 의료혜태을 베풀어야 할 것과 정신요양원의 장은
반드시 의사여야 한다고 정해 있음) 그 저의를 전혀 이해할 수 없
으며 유럽에서는 이미 18 세기 말엽에 정신질환자를 쇠사슬로 묶어
놓던 감금 얼변도의 비의료적 수용시설에서 정신질환자를 해방시켰
는데 전근대적인 수용시설을 이제 와서 정신보건법에 명시한다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망말이며 선진조국을 표방하는 제 5 공화국의
의지와도 상충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3) 정신건강 증진에 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책임을 규정하기보다는 환


자 가족이나 민간 의료시설의 책임만 무겁게 부과시켜 놓고 있다.

본래 복지법이란, 정신보건법도 마찬가지로, 국민의 복지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책임을 규정짓는 법이다.
그런데 그 방대한 예산이 드는 정신보건제도를 마련하는 정신보
건법안을 비예산사업(법안참고 사항, 5페이지)으로 규정짓고 있는
데서부터 이 법안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해야할 일과
책임올 모두 환자 가족이나 민간시설에 떠넘기고 정부는 영령하고
감독하고 벌을 주는 일만 하도록 규정짓고 있다(제 18조 1 항 2항l
정신보건을 위해 꼭 필요한 정신보건연구원과 정신의료심의회의 설
치에 관한 것은 조항도 없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신병원을 어

느만큼 설치해야 한다는 그런 규정도 없다-


행정기관이 업원 감금을 민간시설에 명령해서 치료 또는 보호를
받도록 해 놓고서 그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행정기관이 부담한
다는 식으로 규정짓고 있어{제 19조) 행정명령으로 극히 형식척인
일부의 비용을 지급해도 되게끔 해 놓았다. 반면에 행정당국의 의
료보호 해제조치 영령에 응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또 환자 보호

자가 환자 관리를 게을리하고 행정당국의 지시에 불응했을 때는 l


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제 22조 2항)을 물도록
하는 등 지나친 벌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양질의
284

진료와 환자의 인도적인 관리가 도저히 불가능하게 되며 결과적으

로 환자와 가족의 권리가 침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정신보건법에는, 입퇴원, 즉 언신구속과 관련된 인권보호장치 그
리고 양질의 의료혜택을 베풀어야 하고 인도적으로 관리해야 할 정
부의 책임올 최소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의 방침이

다.
그런데 금번, 정부에서 국회에 제출한 정신보건법안은 국민의 인
권침해의 우려가 농후한 법으로 판단되며 이런 법은 국민의 인권차
원에서뿐 아니라 국가의 국제적 위신에도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악법으로 평가된다.
이런 악법올 구태여 만들어 내려는 정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
다. 단지 그들이 정신보건법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내용, 즉 인
권보장장치와 양질의 의료혜돼에 대한 정부의 책임 등에 관해 무식
했거나 아니연, 귀찮은 정신질환자를 가두어 놓고 쇠고랑을 채우
든, 병으로 죽든, 그들의 인도적 관리와 인권에는 아무 관심도 없
고, 복지법 하나 만들었다는 공척을 과시하고자 한 데서 비롯되었
는지도 모른다. 그런 무성의한 혹은 무책임한 태도들, 또 혹은 그
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떤 숭은 목적을 위한 의도적인 태도들 때
문에 올바른 치료를 받으려는 국민의 권리가 박탈당하고 인권탄압
의 도구로 악용될 법을 만드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개탄한다.

1986년 8 월 6 일

정신법저지 공동대책위원회
285

13. 시청료 거부 다]
;:><:; 자유언론 대책위
발표 문

발 표 문
-시 청료 거부 및 자유언 론 공동대 책 위원회 발족에 흐음하여-

이땅에 천인공로할 언론탄압의 실상이 하나 하나 노정되고 있다.


우리는 먼저 9월 6 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민주언론운동협
의회가 발표한 문공부의 「보도지침」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
언론이 이 정권의 일방적인 선전 • 홍보수단으로 전락되고, 또 보도
지침에 의하여 획얼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데 대하여 정부 와 언론

자체의 반성과 시정을 촉구한 국민적 비판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탄압은 날로 가중되어 국
민이 마땅히 알아야 할 주요사실과 진실이 문공부의 보도지침에 의
해 철저하게 은폐, 왜곡보도되고 있음이 구체적으로 실중되었다.
우리는 이른바 「보도지칭 」 을 통해 사회적 대소 사건 이 오직 권력유
지의 판단기준에 의해 지극히 세부적인 데 이르기까지 통제 • 조작
되고 있음을 명백히 확인하게 되었으며 언론탄압의 실상이 어떤 것
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는 이 나 라의 언론을
바로잡아 보기 위한 노력으로 「보도지침」을 간행한 민주언론운동협
의회가 이 자료집 발행을 계기로 더욱 더 가중되는 탄압을 받고 있
는 현실을 보고 언론의 자유를 열망하는 국민과 더불어 분노와 개
탄을 금하지 못한다.
KBS 는 공영방송임을 자처하며 국민의 시청료와 방대 한 독점적
광고료 수업으로 운영하면서도 계속하여 한 정권의 하수언으로 왜
곡 • 편향보도를 일삼는 등 공정한 보도와 건강한 공영방송으로의
회귀를 포기하고 있다. 이에 국민적 분노로 일어난 KBS 시청료납
’i ?

286

부 거부운동은 각계에서 활화산처럼 퍼져 온 것이다.


민주주의의 동액이요, 자유사회의 활력인 언론자유를 근본적£로
봉쇄하는 정부의 언론통제는 최근에 공개된 「보도지침」에서 확인되
듯이 날로 강화되고 있으며 KBS의 왜곡 • 편향보도 또한 어떠한
변설로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성화되고 있다. 프로축구와 야구
는 생중계하면서도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가름할 개헌공청회를 생
중계하는 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명백히 KBS
방송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우홍하는 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보도 태도를 시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시청료납부거부운동을 무
산시키기 위하여 시청료납부를 거부하는 국민에 대하여 개별적인
불이익 처분이나 협박을 얼삼고 당국은 공과금에 대한 통합고지서
를 발부하는 등 별의별 비열한 솔책을 다 동원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시청료납부거부운동에 동참해 준 국민에게 감사하
면서, 우리의 시청료납부거부운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불이익 처
분이나 협박을 받고 있는 국민에게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시청료납부거부운동을 우리가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면서 그 최종

책임이나 불이익을 국민 개개인에게 전가한 결과로 되고 있음에 책


임과 함께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이제 우리는 정부의 통합고지서 발부 계획, 체납시청료에 대한
압류, 협박 등 국민이 직연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법률적 및 현실
적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끝으로 앞으로의 시청료납부거부운동의 방
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 운동은 자유언론의 쟁취를 위한
범국민적 연대와 투쟁의 얼환임올 밝혀 두는 바이다.
l 우리는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언론자유의 쟁취가 무엇보다 시급
한 급선무임을 거듭 확인하며, 자유언론의 쟁취를 위해 국민과
더불어 공동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다.
우리는 「보도지침」이란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 문공부의 언
론탄압이 즉각 중지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부는 최근 사회
적 경악과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말」지의 보도지침 공개와
관련하여 언론과 민주언론운동협의화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온
갖 박해와 탄양조치를 즉각 중단할 컷을 요구하며, 이같은 탄압
287

이 계속될 때는 이에 맞서 국민과 더불어 단호히 투쟁해 나갈

것임을 엄숙히 경고하는 바이다.


2.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공정보도를 해야 하는 것은 악명높은
언론기본법에서도 그 의우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청료는 공정보도를 하고 그 대가로 받는다는 국민과의 계약이
며 의무로서 KBS 가 이를 지키지 아니할 때 시청료납부를 거부
하는 것은 원천척으로 정당한 국민적 권리임올 확인한다.
3, 전기료는 한전과의 계약에 따른 것이며, 수도료는 시청과의 관
계이고, 세금은 법률에 의한 의무 이행인 것이다. 따라서 그 부
과는 주체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아니한 경우 위법을 강요
하는 법치행정의 배반인 것이다. 당국은 국민의 편의 운운으로
정당성을 강변하지만 그럴진대 이제 구청장은 시민의 채권 징수
도 징수해 줄 수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당국은 시급히 통합고
지서를 철회하고 분리 고지할 것올 촉구한다.
4, 최악의 경우라 할 체납시청료에 대한 압류조치를 하는 경우에도
오직 5% 에 해당하는 가산금만 더 내면 된다는 사실을 명성, 필
요 이상의 피해의식올 갖지 마시고 또 압류하는 사람의 신원과
절차가 적법한 것인가를 확인하시며, 시청료납부거부운동 관계
단체 에 꼭 연락하여 주시 기 바라마지 않는다.
5, KBS 시청료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우리는 연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청료납부 거부운동 방향을 제시한다.
가. 시청료납부거부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국민의 피해의식을 줄
이고 참여 국민의 연대의식을 강화하며 이 운통을 주도한 우
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KBS 시청료납부 고지서를 이
시간 이후 각 운동단체에서 취합한다. 이는 범국민적 시청료
납부거부운동의 궁극적 책임을 개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운동단체 자신이 떠맡기 위함이다.
나. 각 단체는 시청료납부 고지서를 취합, 보관하며 그 누계를
발표한다.
다. 이와 같은 거부운동은 상당한 책임이 있는 정부관계자와
KBS 가 그간의 편향보도와 콩영방송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288

데 대해 KBS 를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날로부터 3개월 이


상의 KBS 보도 태도를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공개척
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판단, KBS 가 본래 공영방송 • 공정
보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선언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1986 년 9 월 29 일

시청료거부 및 자유언론 공동대책 위원회


KBS시청료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민주화추진협의회

신한민주당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민주언론운동협의회
KBS시청료폐지운동 여성단체연합
289

14. 이 돈 명 변호사를 즉각 석 방하라.

우리는 본회 회장 이돈영 변호사에 대한 전격적이요 정치보복적

인 구속에 경악과 함께 분노를 금치 못한다 이돈명 회장은 민주단


체 탄압의 일환으로 수배한 인사를 다만 양심의 명령에 따라 돌봐
주었을 뿐이다. 이돈영 회장은 신앙인으로서 세속의 법이 양심의
법과 충돌할 때 양심의 법 을 지켰으며, 법조인으로서 법률구조활동
을 하고 있는 그 양성범의 고통에 스스로 동참함으로써, 이 시대의
진실을 온옴으로 증거 하였다. 우리는 이돈명 회장의 신앙인으로서
의 이와 같은 회생적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회장의 이러한 희생과

고통이 이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의 양심을 흔들어 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연로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이돈명 회장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구속한 사실은 용공조작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현 정권의 부도덕성과 잔인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이 회장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을 다해 구속 및 수배받고 있는 모든 형제들의 고통이 끝나고 덜어
지기를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
도를 부탁드린다.

1986. 10. 30.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r ι‘

290

15.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기도와 선언

인간의 자유와 창의, 그리고 인간성의 말현을 억누르는 모든 종


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갈구하는 민중의 욕구와 열망은 이제 세
계사의 전면에서 차츰 숭리의 구체적 결과를 확보하고 있융니다.
이땅에서도 정치적 압제와 경제적 수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민중

의 각성과 투쟁은 세계사적 흐름과 궤적을 같이하면서 뜨겁게 확대


되고 있읍니다. 우리는 1986 년 초반에 이웃 필리핀에서 단합된 민
중의 힘이 20 년 마르코스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에의 찬란 찬
가능성을 열 때, 또한 그 2월혁명에 필리핀 교회의 모든 신자, 성
직자, 수도자들이 독재자의 탱크 앞에서 손잡고 기도드렬 수 있었
던 정의를 향한 용기를 부끄러움을 가지고 지켜보연서 복음적 정열
의 무한함을 확인할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각성된 민중의 힘으로
벌받침된 민주화의 열기가 이땅에서도 솟구쳐 올랐을 때 우리 또한
자랑스런 한국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마주할 수 있었읍니다. 그
러나 꽃다운 젊음들이 자신의 몽을 불살라 민주주의를 피 토하듯
외치며 쓰려져가는 충격과 슬픔을 수도 없이 겪어 온 우리는 우리
들이 가졌던 희망이 얼마나 소박한 것이었던가를 뼈아프게 반추하

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한 해가 다 가고 있는 오늘, 참된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치루
어야 할 고통과 슬픔의 무게를 우리는 절감하고 있읍니다. 감욱의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정치범의 양산이 이루어지고, 용공화경으로

의 매도와 처단이 민주인사에 대한 무차별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 •


선전되며, 민중적 욕구를 반영하며 이땅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한 민
주 • 민중 • 민족운동단체를 물리적인 힘, 제도적인 폭력으로 압살하
는 오늘의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인간을 구원하고 온갖 억압에서 해
291

방시키며(세계의 정의 6) 인간영혼의 구원에 필요하다면 정치질서


에 관해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교회의 사영(사목헌장, 74 참

조)을 거듭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적 헌신


에의 정열을 가지고 오늘의 현실어L 대한 우리의 견해를 내외에 밝
히는 바업니다.

l , 우리는 오늘의 우리 현실이 사실상의 계엄상태요 위난의 시기


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과
공통체들이 보다 용이하게, 보다 완전하게 자기완성을 성취하고,

공동선을 향해 나가도록 도와 주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아무 법

적 근거 없이 자생적인 민주 • 민중 • 민생운동단체를 물리력으로 해


산시키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권리를 아무 제한없이 유린하며,
경찰력이 이 사회의 콧콧에서 언제, 어디에나 투입되는 등 국민의
인· 간다운 삶을 위협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에 떨게 하고 있읍니

다. 국민은 압수, 수색, 연행, 체포, 수배, 구류, 구속 등의 위험


과 언제나 직연하고 있으며, 또한 날이면 날마다 내 가족, 내 이
- 웃, 내 형제가 그러한 폭군척 공권력의 행사로 당하는 고통을 보고
듣는 아픔과 괴로움을 겪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언제 끝
날지 모른다는 데서 불안과 공포가 정신적 질환으로 되고 있읍니

다.
우리는 민주 • 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등 민주 • 민중운동단체
와 민생운동단체와 기관에 대한 해산명령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거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
라, 민주 • 민족 • 민생운동은 공개운동으로 전개되어 국민적 지지와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지, 그렇지 아니할 때, 우리 사회에 내재한
불만이 안으로 지하화하여 더 큰 폭발력을 유발하는 것으로 될 뿐
아니라 평화적인 민주화에 대한 전망을 차단하는 불행한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업니다. 더우기 현 정권의 반민주, 반민족, 반민중,
반민생적 성격과 그 정책이 이들 단체나 기관의 자생적 출현을 불
가피하게 하고 있는 만큼, 현 정권은 이러한 민주 • 민생운동단체를
해산할 도덕적 근거를 이미 갖지 못하고 있읍니다. 또한 우리는 우
리들이 참가하고 있는 민통련에 대한 탄압을 미구에 닥쳐 올 우리
292

자신들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이며, 여하한 시련 속에서도 민통련


과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바업니다.

2. 우리 사회는 아시아 운동회가 끝나자마자 잇달아 발생하고 있


는 서울대 대자보 사건, 유성환 의원 원내발언 파동, M.L. 당 사
건, 건국대 농성사건 등 용공좌경 시비에 휘말리고 있읍니다. 우리
는 먼저 결과적으로 우리의 형제를 국민의 대열로부터 분리 • 이간
시키는 것으로 될 용공좌경으로의 의도적인 모략과 매도, 허위조작

이 있어서는 안되며 더욱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고 확신합니다. 이돈명 변호사와 민통련 간부 구속의 경우에서 보


듯이 우리는 민주인사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국가보안법이 무차
별적으로 척용되는데 대하여 반대합니다. 이와 같이 독재정권을 지
탱하기 위하여 냉전논리와 위기의식을 강요하고 이데올로기를 정치
적 반대자인 민주인사 탄압의 명분으로 악용하는데서 반공 이데올
로기의 철폐 요구가 제기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

다.
가장 최선의 반콩은 국민의 민주적 참여의 권리가 보장되고 국민
이 인간다운 존엄올 가지고 살 수 있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입
니다. 민주주의가 국가적 목표라면 반공은 보족적 수단업니다. 민
주주의사회에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국민성원을 공산혁명분자,
또는 용공분자로 재단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건국대
사태 관련학생의 60%가 중류및 상류가정 출신인데, 이들을 공산혁
명분자로 단정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뱉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
읍니다.
우리는 또한 ‘반공’ ‘용공’의 회오리 속에 민족의 성엽이요 소원인
‘통일’의 실종과 굴절을 . 안타깝게 생가합니다. 우리는 유성환 의원
의 통일문제 발언 가운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도저히 납
득 할 수 없읍니다. 따라서 현 정권의 통일문제에 대한 솔직한 시각
과 입장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
리는 또한 학생들이 6. 25 의 아픔과 상처를 체험하지 못한 탓으로
민족의 통일과 자융에만 집착한 나머지 성급한 주장이나 과격표현
293

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자제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민주주의가 실


현되어 민중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것이 민족의
자융적 통일논의를 위한 첩경이요 제일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민주화를 목표로 하고 그것을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이 나라 경찰이 민중의 지망이로서 국민의 생명과 신


체와 재산을 보호해야 할 사명에 과연 충실하고 있는지 갚은 의혹
을 갖지 않을 수 없융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검근
태 씨의 경우에서 나타난 야만적인 고문, 서울대생 검성수 군과 노
동자 신호수 씨의 의문의 죽음, 부천경찰서에서의 여대생에 대한
패륜적인 성고문, 전투를 방불케 하는 시위진압과 일상화되어 버린
검문 검색 등으로 경찰은 이제 국민의 눈에 민중의 지망이로서가
아니라 두려움의 표적이 되고 있읍니다.
건국대사태는 그것이 민족사에서 건국 이래 최대의 옥사라는 점
에서뿐 아니라, 경찰이 학생을 상대로 대규모 작전을 감행했다는
점에서도 충격이요 불행이 아닐 수 없읍니다. 건국대생들이 이미
공개질의를 한 바와 같이 당초 건국대에서의 학생연합집회가 공산
혁명분자들에 의한 것이었다면 사전에 알면서도 왜 저지하지 않았
으며, 당시 경찰이 대학 캠퍼스를 포위해 기습적으로 최루탄을 무
차별 발사하며 수백 명의 경관을 학내 콧곳으로 진업시키는 상황에
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었는데, 사태를 이같
이 몰고간 것이 경찰의 실수인가 또는 계획된 유도작전이었는가(동
아일보, 11 월 8 일자 보도)를 경찰은 명예를 걸고 밝혀야 할 것업니
다. 1 천 2백여 명이 구속되는 대욱사(大짧事)가 작전에 의해 유도
되었다면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닌 것업니다. 우리는 또한 건국
대사태와 관련하여 공산혁명분자의 소행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
껍니다. 국가보안법 적용도 신중해야 하겠지만 대다수 관련학생과
그 부모가 받을 상처와 아픔, 그리고 우리 사회의 포용력의 문제는
더욱 큰 문제인 것입니다.

4. 우리는 오늘, 이와 같이 참담한 현실이 있게 되기까지에는 우


- - ’

294

리 자신올 포함하여 사회 각 분야와 중간집단이 스스로의 기능을


먼저 포기, 또는 상실한 책임이 크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
융니다. 우리 자신과 교회가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국민 앞에 겸허히 사죄하는 바업니다.
우리는 특히 ‘보도지칩’의 꼭둑각시가 되어 있는 언론, 그리고 이
제는 경찰의 영장 담당부서로 전락한 사법부는 그 책임이 더욱 크
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융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 편의를
위해 1 천 2백여 명에 대한 인신구속영장을 남발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고령의 이돈명 변호사에 대한 정치보복적인 구


속에 동의하며 , 압수 • 수색, 구류처분 및 법적 판결 이전의 형별부
과 를 경찰의 요구대로 순응 또는 추인할 뿐 아니라 저 무서운 고문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허위자백을 근거로 태연히 유죄를
선고하는 그런 사법부를 가졌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
입니다.
이 사회를 더 이상 타락하지 않게 하고, 이 사회의 공동선을 모
색해야 할 언론이 독재권력의 홍보창구화함으로써 이 사회는 거짓
폭력과 어둠을 향해 더 갚숙이 나아가고 있읍니다. 이제 우리는 독
재의 폭력과 주술에 길들여져서 나만의 안전이 최선이라는 이기적
인 틀을 깨고 나와, 각자 서 있는 분야와 집단에서 ‘예’할 것은 ‘ 예 ’
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자신, 살아 숨
쉬는 사회로의 일대 변환을 시도해야 될 때업니다. 그것이 나 자신
과 이 사회를 구원하는 길입니다. 각계각층, 각 분야에 계신 선의
의 모든 형제들에게 상가 양심으로 깨어 있을 것을 호소하는 바업
니다.

5, 우리는 오늘의 정치상황이 민주제 개헌에로의 국민적 열망을


호도하여 , 개헌과 민주화의 주체인 민족 • 민주 • 민생 역량을 용공
화경으로 몰아 처단한 위에, 권력에 기생하려는 일부 야당 정치인
들과 야합, 국회에서 장기집권응모를 관철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로
의 개헌을 획책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민주화요, 우리가 통치구조의 문제에 관심이 있
295

는 것은 오직 민주화를 위해서 어느 것이 더 효융척이냐는 관정 에


서일 뿐업니다. 우리는 그 과정과 결과가 민주화가 아닌 그 어떤
개헌도 원하지 아니하며, 더구나 민주양섬세력의 압살이라는 반민
주의 폐허 위에서 논의되는 개헌의 정당성과 정통성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적어도 민주화를 향한 개헌이기 위해서는 민주화 요구와 관련하
여 구속된 전체 정치벙이 석방되고, 민주화의 과정에서 오히려 칭
송받아야 할 이들이 마땅히 법적으로 사면 • 복권되는 것이 선행되
어야 합니다. 법의 적용내용과 관계없이 모든 정치범이 석방되고
민주교사는 그들의 사랑하는 제자 곁으로, 농민과 노동자는 일터
로, 학생은 학원으로, 쫓기는 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런
국민적 화해와 축제의 분위기와 함께 민주제 개헌이 사섬없이 논의
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6. 우리는 검수환 추기경의 로마 발언이 애국적 충정과 종교인의

양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뜻을 온몸으로 지지하는 바입니다. 우


리는 우리의 교우 검대중(토마스) 형제가 자신을 비우는 참으로 어
렵고 힘든 결단을 한 데 대하여 경의와 함께 위로의 뭇을 간곡히
전하는 바업니다. 우리는 검대중 형제의 이와 같은 결단과 헌신이
이 나라 민주화에 중요한 디덤돌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다른 모든
정치인들에게도 같은 헌신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특히 불의한 세력에 의해 부당한 방법으로 죽음을 념나드

는 박해를 받아 온 사람의 이와 같이 눈물겨운 결단을 인간으로서


는 있을 수 없는 파렴치한 언동으로 비방하는 데 인간적 비애를 느
끼연서, 민족적 비극인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유형무형의 책임이 있
는 인사들이 먼저 정치적 야욕을 포기해 줄 것을 촉구해 마지 않는
바입니다. 항간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만에 하나라도 변형
된 수상독재체제를 통해 , 당 총재의 수상 지명이라는 비민주적 절

차를 통해 장기집권을 기도한다면 우리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할 것

입니다. 그것은 특정 집단의 장기집권을 위한 기도가 물리적인 힘


으로 관철될 때, 특정 집단은 물론 나라의 운영이 걷잡을 수 없는
296

파국에 직연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업니다.


오직 민주화를 위해서만 통치구조의 문제가 제기되고, 그 민주화를
위해서 자신의 정치적 야성올 진실로 비운다면 그때 우리는 민주제
개헌과 민주화를 전국민의 축복 속에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업니다.

7, 우리는 우리 민족의 현대사 속에서 미국과 얼본, 소련과 중국


등 외세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으며, 각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어떠
한 의미 를 갖는가 를 성찰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7
월에 있었던 한미통상협상의 일괄 타결과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미국 측의 수업규제와 한국시장 개방압력은, 국제간의 관계는 냉엄
한 국가이익에 의하여 수립되고 진행된다는 국제정치의 비정함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고 있읍니다. 우리는 외채와 외국상풍

이, 사실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외세라는 점에서 외채와 외국상품의


무분별하거나 다다익선(多多益善)식의 수입올 반대합니다. 우리가
자주국가의 자주국민으로서 우리 국민도, 우리의 농민과 노동자도,
미국의 국민이나 농민이나 노동자와 똑같이 인간척인 존엄과 품위
를 가지고 살 권리가 있고, 또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한미관계의 반성과 새로운 점검을, 용공이라는
시각에서 보고 탄압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민중적 요구를 발판으로
삼아 미국과의 협상에서 당당하게 대처하는 유리한 고지로 확보해

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민족척 주장을 탄압하는 정권, 국민


적 지지기반이 없는 정권은 외국의 정부와 국민에 의해 이용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내심으로부터는 경멸당할 수밖에 없을 컷입니다. 우
리는 민족의 존엄과 자존심을 지켜 내는 정부, 외세 앞에 당당하고
벗벗한 정부를 원합니다. 오늘의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구한말의
시대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자주적이고 민족의 권익을 관철
할 수 있는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것입니다.

8, 우리는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계획이 군사적 목적을 가진 것이


라연 그에 대해 단호히 반대합니다. 우리는 전민족의 생존을 송두
297

리째 위협할지 모르는 한반도 내에서외 어떠한 형태의 전쟁이나 살


상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또한 한반도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배치되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의사
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한반도가 핵 볼모지대로 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비록 거칠고 때로는 격한 표현을 쓰지만 죽
음으로써까지 호소하는 민주인사나 학생들의 자료를 들어 명시하는
증언이나 고발 가운데서 한반도에 전쟁억지력으로 작용하는 핵무기
이외에도 가공할 핵무기와 국지전에 사용할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으므로 해서 핵전챙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남북 사이에, 그리고 국민 내부
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부를 가진 자와 가

지지 못한 자 사이에, 지역과 지역, 계충과 계층 사이에 엄청난 분


열과 위화감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 민족의 평화에 대한 열망과
열청은 개국 이래 한시도 멈추어진 척이 없었읍니다. 우리는 한반
도가 인류가 소망하는 화해와 사랑을 실천하는 평화운동의 중심지
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핵무기와 핵전쟁 반대의
요구를 이단시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9. 우리는 경제정책에서 소외되고 국민경제 내부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들이 하루 속히 인간다운 삶
의 조건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를 위하여 우리의 기도와 모든 조력
을 아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오로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존엄 때문에 그들의
편이 되고자 합니다. 불의의 희생이 되고서도 호소할 힘이 없는 사
람들을 대신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칠
수 없고 속수무책인 가난이 있고, 강자가 약자를 부자가 빈자를 지
배하고 착취하는 질서, 공동선과 합법적인 자유와 욕l 곤한 계충의
향상이 방해받는 질서는 분명히 거짓의 질서요(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5),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많은 정치법 가운데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울부짖다가
투옥되어 철장을 붙잡고 지금도 같은 목소리로 절규하고 있는 노동
자와 농민 , 그리고 도시 철거민이 우리를 더 없이 가슴 아프게 합

298

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며, 더우기 우리나라에서의 가난은 제도와


정책의 소산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가난하게 살 권리가 있읍니
다. 상계동에서, 사당동에서, 목통과 왕십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그 터전이 끝없이 유린되고 있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
의 뿌리뽑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김은 밤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
들 도시 철거민이 된 사람들에 대해 도시미관의 장애물로서가 아니
라 누구보다 인간답게 살기를 소망하는 착하고 어진 우리의 이웃,
존엄한 인간A로 대해 줄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바입니
다.

우리는 남은 1986 년의 마지막과 1987 년의 초반이 우리 역사에 있

어서의 커다란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감합니다. 국민 내부의 화해


를 통해 나라의 민주화와 이 사회의 인간화를 이 룩해 나가느냐, 아
니연 질풍노도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반역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와 불의, 민주와 반민주가
중간지정에서 담합하는 것이 화해라고 보지 않습니다. 화해는 오직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기초하고 또 정의를 향하는 것이어야 합니
다. 그러나 화해를 향해서 한발쩍씩 물러서는 것, 경찰은 화학무기
인 가스탄을 사용하지 않고 학생은 화염병과 돌을 들지 않는 거기
에서부터 화해의 노력을 시작하자고 우리는 온옴으로 호소합니다.
우리는 또한 추위가 다가오고 있는데, 3천 영에 육박하는 사상미증
유의 정치범이 강옥문을 나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비록 우리들의 견해와 호소가 귀에 거슬린다 할지라도, 이 사회
가 더 이상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고, 급격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성실한 비판으로 이 사회의 안전판이 되고자 하는 우
리와 선의의 사람들의 진실에 찬 외침을 경청해 줄 것을 정부와 국
민 여러분께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이 나라, 이 사회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는 바업니다.

1986 년 11 월 17 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299

16. 연이은 벽화의 파괴와 화가의 입건을


규탄한다

본 협의회 회원이자 화가인 유연복, 검진하, 홍황기, 김용만, 최


병수 씨 등 5명이 제작한 벽화가 파괴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가운
데 4명이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연행되었고 이어 입건이 되었다.
본 협의회는 최근 가중되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국면 속에서
화가 이은홍의 구속과 신촌 벽화 파괴 둥을 목도했었다. 이 명백한
불법척 에술탄압이 미술에 대한 탄압만이 아니라, 모든 민주화 세
력에 대한 탄압의 일환임을 확인케 된 지금 또 다시 화가 당사자의
집 당벽에 제작되던 작품 「상생도」의 폭력적 파괴를 접하게 된 것
이다. 지난 2 일의 1 차 파괴와 복구, 3 일의 연행과 파괴, 4 일의 즉
결심판소 회부와 재판부의 송치 명령으로 인한 작가의 입건으로 이
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우리를 분노케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
술풍으로서의 벽화를 ‘광고물’로 취급한다는 어불성설과 나아가 「광
고물 등 관리법」 가운데 ‘미풍양속 및 도시미관 저해 혐의’ 적용이

라는 영뚱한 발상은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만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태극무늬를 배경으로 춤추는 남 • 녀 농부, 휴식의 기쁨과
물장구치는 어린아이 퉁 동성과 생산의 풍요와 민족통일을 기원하
면서 꽃과 구름이 념실대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표현한 벽화
가 어떤 미풍양속과 도시미관을 저해하는지도 의문이다.
예술 창작물에 대한 이러한 당국의 자의적 판단과 폭력적 파괴는
분영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국민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통사
무소, 구청, 경찰의 무분별한 행위는 사유재산에 대한 분명한 침해
이다.
따라서 본 협의회는 4 명의 벽화 작가들이 당국에 의해 입건되었
300

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해었음을 분명히 하


고 동시에 당국의 불법적 폭력을 규탄하면서 법적 투쟁 퉁 모든 방
법을 통원 , 작가들과 함께 싸워 나갈 것임을 내외에 굳게 천명한

다.

우리의 요구

l. 유연복 씨 등 4영의 화가를 즉각 석방하라.


l. 파괴된 벽화를 즉각 복원하고 당국은 파괴 책임자를 색출,처벌
하라.
1. 당국은 사유재산 파괴행위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고 갚이 반성할
것이며,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중인 화가 이은홍 을 석방하고 신촌
역 벽화 파괴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여 책임자의 사과 및· 처벌올
하고 벽화를 복원하라.

1986 년 8 월 4 일

민 족 미 술 협 의 회
301

17. 서울대 김성수 군 변사사건 관련자료

서울대 김성수 군 번사사건 재수사 진정


발신 신민당 인권옹호위원회
수신 검찰총장
참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제목 서울대 김성수 군 변사사건 재수사 진정

1986. 6. 21. 부산 서구 암남동 소재 송도 매렵지 앞바다 속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서울대 사회과학대 1 년 검성수 군(18 세,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315번지 15통 2반 연립주택 마동 202호)의 사언에
대해 관할 경찰서는 자살로 단정했으나 신민당 인권옹호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별첨과 같은 의문점이 있어 이에 대한 엄청한
재수사를 요청하는 바업니다.

1986. 7. l

신민당 인권옹호위원회의 조사 결과 나타난 의문점

l . 6월 18 일 오전 10시 경 검군은 서울 영등포구 소재 자취방에서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간 후 소식 이 끊긴 채 실종
되었다가 6 월 21 일 부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경위가 석연치

않다.
2. 유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 ....
. ‘‘ •

302

최근 분신자살에 충격을 받은 박혜정 양(서울대 국문과 4년)이


한강에 투신 자살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비관하는 유서를 남겼

다. 또한 이경환 군의 시국관련 자살을 경찰 이 유서를 조작,


성적 비관 등 단순 영세자살로 단정을 내렸다가 민주화를 열망
하는 일기와 유서가 발견되어 경찰의 수사가 허위엄이 드러났

다.
3. 강릉이 연고지이고 서울에서 이화여대 다니는 누이와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산까지 내려가
자살할 만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4. 시체가 발견된 해안에는 철조망(펜스)이 쳐져 있어 일반인의 출
업이 통제되는 곳인데 이 철조망을 뛰어 념어 직경 25센티미터
가량의 시벤트 덩이 를 2개나 옴에 단 채 해안으로부터 10미터
까지 헤엄쳐 가 투신자살했다는 것은 납득이 안가며 시체가 수
성 17 미터의 바다속 바위틈에 끼어 있는 점도 의문이다.
5. 머리에 핏자국이 생길 정도로 몸부렴을 쳤다고 하면 안경이나
신발이 벗겨질 확률이 많은데 깅군의 경우는 안경과 신발이 안
벗겨져 있어 누군가가 바다속 바위틈에다 곱게 갖다 놓은 듯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자살자는 최후 순간에 옴부렴을 치게
마련이고 따라서 손발이 손상되는 것이 상례인데, 손발이 말짱
함은 물론, 안경, 신발까지 원형대로인 점이 큰 의문점이다.
6.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하는 김군의 유류품에서 차비조
차 나오지 않은 것은 이미 누군가가 깅군의 옴을 수색한 후 바
다속에다 수장시켜 중거 인멸을 꾀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있다.
깅군이 생존 시에 어떤 위기감을 느껴 자신에게 불리할지 모르
는 판금된 책이름이 적힌 쪽지를 신발 속에 강춘 것을 미쳐 증
거 인멸하지 못한 게 아니냐 하는 의문이 있다.
7. 6월 23 일 밤 11 시 경 검군의 누나에게 결려 온 괴전화의 정체
는?(별첨 진술서 참조)
8. 경찰은 검군의 고교 담임교사를 찾아가 ‘검군이 학과 적웅을 못
했다’고 얘기하도록 왜 종용했는가?(별첨 진술서 참조)
9. 검군이 최근 갑자기 성적이 떨어져 고민해 왔다는 가족의 진술
303

은 그 자체가 사실무근이며 허위날조라고 가족들은 주장하고


있는데 성적 운운의 수사 발표 경위는 무엇인가?(별첨 진술서
창조)
10. 여러가지 의문점이 해결되지 않은 채 경찰이 서둘러 자살로 단
정을 내려 의문점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6월 26 얼 가족들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서울시경과 부산 서부경찰서에 재

수사를 요구했는데 살해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수사는 없었는


가.

중요 관계인 진술 요지

신민당 인권옹호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변사


체가 발견된 부산 현지에 조사반원을 파견, 최초로 시체를 인양한
잠수부 최용태 씨 (31 세, 부산 서구 암남동 201)를 수소문해서 만나
당시의 상황을 조사하는 한편 가족들의 연고지를 추척해서 가족들
로부터 검성수 군에 대한 실종 경위와 여러가지 정황을 청취했다.
(가) 잠수부 최용태 씨 증언
머리(두피)에 핏자국(혈혼)이 있었다. 허리띠 오른쪽으로 직경
25센티미터 가량 되는 시멘트 덩이 2개가 노끈에 줄줄이 매달
린 채 몸에 묶여 있었다. 바다속 바위틈에 끼언 시체는 안경
을 쓴 상태였고 신발(케미캘 슈즈)도 그대로 신겨진 상태였
다.
옴에서 나온 유류품은 사진관에서 사진찍은 요금 영수증(깅
군 정퍼에서 나온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광사 발행 사진인환
권)이 나왔고 신발 속에서 책 이름이 적혀져 있는 쪽지가 발
견되었다. (서울대 마크가 찍힌 쪽지에는 『 민중과 지식인 』 ,
『자본주의 발전연구』 , 『 경제사 총론』 퉁 책 이름 6 ∼ 7개가 적
혀 있었음). 시체가 발견된 것은 해안으로부터 10미터 가량
떨어진 지점이고 수심이 김은 곳이다.(수심 17 미터)
304

익사체를 많이 건져 올린 경험에 의하면 자살자라고 하더라


도 마지막 본능적 옴부링 때문에 손발이 상당히 손상을 입기
마련인데 말짱하다(머리에 핏자국이 생길 정도라면 안경이나
신발이 벗겨질 확률이 많다. 투신자살자는 신발을 벗어놓고
투신하는 사례가 많음. 깅군의 경우는 안경과 신발이 안 벗겨
져 있어 누군가가 바다속 바위틈에다 곱게 갖다 놓은 인상).
옴에서 나온 종이 쪽지 이외에는 그 근처에서 유류품은 일체
발견되지 않았다.
(나) 백길영 씨 (42, 부산 서구 암남동 126 번지 24통 3반) 참고인 진


인양된 시체를 목격했다.
시체가 발견된 해안에는 철조망(펜스)이 쳐져 있어 일반인
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철조망을 뛰어 넘어 시멘트 덩이

를 2개나 매단 채 자살을 했다고 보기에는 납득이 안가는 점

이 많다.
(다) 김군과 서울에서 같이 자취생활을 한 누나 검은숙 양(2 1 세, 이
화여대 특수교육과 3년)의 증언
6월 18 일 오전 10시 경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1 동 자취방으로
성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성수 친구라고 해 주인집 할머니가
성수를 바꿔 주었다.
이날 성수는 파자마 차렴으로, 외출할 생각이 없었는데 전
화를 받고 급히 옷을 입고 나간 후 며칠째 소식 이 없다가 변
사체로 발견되었다.
부산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왜 부산까지 갔는지 모르겠
다. 성수는 총학생회 연극부원으로 써클활통에는 열성이었다.
6월 23 일 밤 11 시경 나를 찾는 괴전화가 왔다. 전라도 사투
리를 쓰는 20 대 가량의 남자 목소리인데 동생을 보호하고 있
으니 나를 만나자고 얘기해 당장 만나자고 얘기하니까 집이
사당동이라 멀어서 지금 곤란하니 내얼 약속하자고 해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장난치는 거 아니면 전화를 끊자고 하니 그럼 끊
을까요를 다섯 번 가량 되풀이하더니 전화가 끊겼다.
305

경찰이 성수의 고퉁학교 담임교사를 찾아가 “성수가 학과


적웅을 못했다”고 얘기하도록 종용한 사실이 었다. 가족이
“성수가 최근 성적이 떨어져 고민해 왔다”고 진술했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다.

306

18. 인천 연안가스 근로자 신호수 씨 변사


사건 관련자료

발신 신민당 인권옹호위 원회
수신 검찰총장
참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제목 인천 연안가스 근로자 신호수 씨가 인천사태 관련혐의
로 서울시경 대공수사반을 자칭하는 3명에 의해 강제
연행된 후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에 대한 수사와 관련
자 처벌 진정

아 래

인천 연안가스 근로자 신호수 씨 (24세, 전남 여수시 국동 37-


85)가 인천사태 관련 혐의로 서울시경 대공수사반을 자칭하는 3명
에 의해 1986 년 6월 11 일 무전기와 안테나가 있는 포니 II 숭용차
로 인천 소재 회사에서 강제연행된 후, 6월 19 일 신씨의 고향 인접

지역인 전남 여천군 돌산읍 형사리 대미산 산 중턱의 인적이 드문


동굴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을 관할 경찰서는 자살로 변사처리하
고 6월 21 일 가매장한 후 6월 27 일에야 가족에게 통보하였는데 신
민당 인권용호위원회와 전남 여수, 여천 광양 지역구 출신 신순법
의현이 조사한 바에 의하연 별청과 같은 의문점이 있어 이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참고사항 신순범 의원이 유가족들로부터 진정서를 받고 진상조
사를 개시하였음.

1986. 7. 10.
307

신민당 인권옹호위원회의 조사결과 나타난 의문점과


관련자들의 혐의점

l . 6월 11 일 오후 1 시 30분 경 서울시경 대공수사반이라고 밝힌 3


명이 연안가스와 관련이 있는 인천시 남구 소재 도화 가스충전
소에서 작업을 하던 신호수 씨를 무전기와 안테나가 달린 포니
II 숭용차로 강제적으로 불법 연행, 경언고속도로로 진업하여

서울 방향으로 간 후 신씨는 소식이 끊긴 채 실종되었다가 8 일

만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데 이에 대한 관계 당국의 책임 있는


명백한 해명이 아직 없다.
2. 신씨의 시체가 고향에 인접한 대미산 산 중턱의 인적 드문 동굴
에서 6월 19 일 발견되었는데 6 월 21 일 가매장한 후 뒤늦게 6월
27 일에야 가족에게 통보했는데 늦장을 부린 경위에 의문점이 있

다.
3‘ 인천 근무지에서 일을 잘하던 사람이 강자기 고향에 내려가서
집 가까이(고향집과 변사체가 발견된 장소와는 약 4 킬로미터 가
량)에서 유서 한장 없이 자살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
다. 근무지를 떠난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자살이라면(염세자살이
긴 시국관련 자살이건) 유서가 마땅히 있을 법한데 없음.
4. 신씨 발목의 흰색 면양말이 피로 뒤범벅이 되어 있고 무릎에 상
처가 있었으며 몸부럽 친 흔적이 역력한데 살해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수사와 용의자에 대한 수사는 없었는가.
5. 서울시경 대공수사반이라고 밝힌 3명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다는
점을 중시한다연 고문에 의한 죽음이라는 혐의에 대해서도 납득
할 만한 수사와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6. 의사의 소견에 따르연 시체 발견 약 5 일 전에 사망한 것 같다는
데, 그러연 6월 13 ∼ 14 일 사이에 사망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308

이것은 강제 연행된지 불과 2 ∼ 3 일 만에 사망했다는 결론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수사기관의 조사과정에서 사망한 것이라는
의문점이 있는데 이것을 밝혀내야 한다.

중요관계인 진술과 증언 요지
(가) 번사체 발견자 강윤곤 씨(전남 여천군 돌산읍 형사리 989-9
방위병)와 인근 주민들의 중언을 정리
6월 19 일 오전 10시 경 강윤곤 씨(방위병)와 2명의 방위병
은 평소 인적 드문 대미산 중턱으로 산딸기 나무가 많이 있는
것을 알고(대미산은 집 부근으로 지리에 익숙한 장소임〕 딸기
를 따먹어 가며 산을 올라가고 있던 중,크고작은 동굴들이 있
는 바위 밑에 이르러 명소 박쥐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 호
기심으로 동굴 앞에 접근하자 큰새 한 마리(산비둘기)가 날아
갔다. 누군가가 “여기 산비둘기 집이 있는가 보다”하면서 수
풀을 헤치고 동굴 안쪽을 바라보니 흰색 면양말에 팬티만 걸
친 시체가 발견되었다. 3 명의 방위병은 급히 산을 내려와 우
두 지서에 신고하였으며 이후 의사가 와서 컴증했다(성심병원
김광식 원장). 시체가 발견된 장소는 높은 산은 아니라도 일
년 내내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한척한 산중턱이다.
의사의 검진 결과 약 5 일 전에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자살로 처리되었으나 인근 주민 들은,

* 한적한 장소라는 점
*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정
* 발목과 손목에 심한 상처가 있다는 점
부모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는 콧임에도, 집에는 둘러보지
않았다는 점 둥을 들어 완전범죄를 가장한 살인£로 간주하고
우연히 시체를 발견 못했으면 완전한 실종사고가 되어 버렸올
거라고 말하고 있다.
(나) 번사체 확인자 박산수 씨 (전남 여천군 돌산읍 평사리 도실
309
부락)

나는 지난 6 월 19 일 오후 1 시에서 2시경 돌산읍 사무소에서


(사회과)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까 “도실 부락 옆에 있는 대미
산 중턱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데, 이장은 무서워서 못간다
고 하니 박산수 씨가 가서 확인해 달라”고 하기에 대미산에
가서 약 40 미터 올라가니 이미 형사기동대가 지나간 뒤였다.
그때 시체는 바위 위에 옮겨져 돌로 베개를 해서 굽혀 두고
가마니로 덮어 두었다. 내가 발쪽에서부터 가마니를 제치고
보니 백색 연양말을 신었는데 양쪽 발목이 피로 얼룩져 있었
고 무릎에도 상처가 있었으며 양쪽 팔목에는 연한 영크색의
멍이 들어 있었다.
(다) 연안 파출소 근무자 문병길 씨(인천경찰서 연안 파출소 경
장)
냐는 지난 6월 11 일 13-14시 근무자였던 검진영 순경과 전
경대원들에게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들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13시 경이변 정성시간이니까 당번, 비번 할것없이 대부분
소내에 대기하고 있을 때인데 안테나가 달린 회색 포니 II 한
대가 오더니 세 사람이 들어와서 “서울시경에서 왔다고” 말하
고 “연안가스가 어디냐 ? ”고 물었읍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적어 온 연안가스 전화번호를 보고 소 내에 설치된 일반 전화
로 연안가스에 전화를 했읍니다.
그 이 후 어 딘가에 전화를 한통 더 했는데 경비 전화를 했는
지, 아니면 일반전화였는지, 우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조금 후에 “어디로 가면 연안가스가 나용니까?” 하고 묻길
래 근무자 중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와서 손으로 남쪽 방향을
가리키며 “바다쪽 왼쪽으로 가연 된다”고 말해 준 척이 있읍니

다.
(라) 연행 목격자 오욱환 씨(인천시 남구 도화동 도화 LPG 충전
소)
310

1986 년 6월 11 얼 13시 30분 경 우전기와 안테나가 장착된


포니 II 숭용차가 도착했융내다. 차량번호는 기억나지 않고 회
색 차량이었다고 생각됩니다 3명이 차에서 내려서 “신호수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가스통 밸브 작업을 하고 있던 신호수
가 나타났융니다.
경찰에서 왔다고 신분을 밝힌 뒤, 함께 소파에 앉아 약 15
분 간 대화를 했는데, 냐는 3 ∼ 4미터 떨어진 콧에 있었기 때
문에 대화 내용을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융니다.
그들은 곁봉에 “중거물”이라 씌여진 봉투를 꺼내더니 윗부

분을 짖고, 그 안에 든 유인물을 꺼내어 신호수에게 “이게 너


의 집에 있었던 게 맞지 ? ”하고 묻자 신호수는 아니라고 부인
했읍니다.
그러자 그 중의 한사람이 “이봐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해
야지 ! 내가 나이로 봐도 연상인데, 거짓말 하지마!” 하며 묻
는 말에 수공하라고 다그쳤읍니다.
이 말에 신호수가 반발을 하자 한 사람이 약도를 꺼내 가지
고 “너 여기 살았지 ? 중거물이 나왔으니까 순순히 인정해”하
연서 재차 다그치자 신호수가 한참 후에 유인물이 자신의 집
에서 나온 것이라고 시언했읍니다 그러자 그들은 신호수의
혁대를 풀고, 주머니 안에 든 소지풍을 확인한 후, 데리고 밖
으로 나가서 포니 II 뒷화석 좌측에 앉히고, 잠시 후 출말했읍
니다. 내가 문 밖으로 나가서 바라보니까 차가 바로 경인고속

도로 쪽요로 진업해서 서울 방향으로 갔읍니다.


( 마) 연안가스 종업원 검 형구 씨(인천시 중구 항동 7가 67-9 연안
가스 내)
지난 6월 11 일 아침 8시경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읍니다. 남자 목소리로 신호수를 바꿔달
라고 하기에 누구냐고 물으니까 “잘 아는 사람이다”라고 해서
신호수를 바꿔 주었융니다. 신호수가 전화를 받더니 “누구세
요?” “누구세요?”하면서 한참을 되묻더니 이육고 “경찰이
요?”하더니 한참 후 전화를 끊고 고개를 가우뚱하더니 “경찰
311

이 나를 왜 찾지 ? ”하연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읍니다.


그후 신호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를 했는데 오후 1 시쯤
연안 파출소라고 하며 전화가 걸려왔읍니다. 전화를 받아 보
니까 “거기 조한범 씨 댁업니까?” 하고 묻길래 “여기는 연안
가스고 조한범 씨는 우리 사장입니다 거기 어디십니까?” 하

고 되물었더니, “연안 파출소”라고 하길래 “연안 파출소요 ?


이해가 안가네요? 거기서는 여기 연안가스를 다 아는데 왜
조한범 씨 댁이라고 묻지요?” 하니까 “위치를 좀 확인하려고
합니다.”해서 내가 “관내니까 거기 파출소에서 잘 알아요” 하
고 조금 후에 전화를 끊었읍니다 장시 후 두 사람은 장바차
럼이고 한 사람은 신사복 차럼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앞
서 들어온 사람이 “서울시경 대공과에서 왔다”고 하면서, 손

에 든 신분증을 제시하는데 2./ 3쯤 보이는 신분증은 파란 바


탕에(?) 경찰이라고 쓰여 있었읍니다.
신호수가 어디 있느냐고 묻길래 “일 때문에 홍국상사(인천
시 남구 도화동 )LPG 충전소 2충에 갔다”고 하니까, 약도를
그려 달라고 하기 에 약도를 그려 서 주었읍니 다. 그때 한 사람
의 손등에 그림으로 된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을 내가 보았읍

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흥국상사 쪽으로 출말했읍니 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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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집 후 기

85 년 인권보고서의 후기를 쓰면서 우리는 86 년 인권보고


서에서는 인권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보고 를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86 년 인권보
고서의 후기를 쓰고 있는 우리의 심정은 실로 참담하다.

온 나라를 경악과 슬픔과 분노로 뒤끓게 한 박종철 군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우리의 『 인권보고서 』 는 할 말을 잃었
다.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다만 치떨리는 분노
로 이렇게 외칠 따름이다.
“박종철을 살려 내라!”

2
국가 공권력이 야만적인 가흑행위와 살인의 도구로 화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헌법의 이념인 민주적 기본질서

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고문근절을 향한 전


국민적인 결단과 노력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혈세로 유지되는 공권력이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간 이 끔찍하고도 처참
한 사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표시
되어야 하며, 모든 국민 개인과 정당, 사회단체, 종교단체
- ’

314

들은 일치단결하여 다시는 이처럼 치욕스러운 고문범죄가


이 땅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대대적인 고문반대운동을 전개
할 것을 호소한다.

3
이 보고서에 실린 온갖 인권침해 사례들--불법적인 연
행과 연금, 잔혹하고도 패륜적인 고문, 언론 • 출판의 자유
에 대한 침해, 집회 • 결사의 권리 박탈, 소외된 계층들의
생존권 요구에 대한 물리적 봉쇄 등은 모두 법과 양식과
이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공권력의 비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 이 공권력의 궤도이탈을 방지하고 시정함으로써 인권
옹호의 보루가 되어야 할 법원과 검찰의 사명을 중시하는
우리들 재야 법조인들로서는 오늘날의 법원과 검찰이 보이
고 있는 심각한 도덕적 위기의 징후에 대하여 실로 개탄과
분노를 금치 못하며, 다시 한번 법원과 검찰의 갚은 자성
을 촉구하는 바이다.

4
이 보고서가 나오기까지에 수많은 분들의 숨은 노력과
도움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자료수집과 원고정리
등 번거로운 작업을 기꺼이 맡아주셨던 작가 유시춘(柳時
春) 선생의 헌신적인 노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갚이
감사드린다.
이 보고서의 내용 중 미비하거나 잘못된 점은 전적으로
우리 소위원들의 무능과 게으름 때문이다. 널리 꾸짖어 바
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본협회 인권위원회가 지난 1. 27 . 개최한 고문대책공청회
의 자료집으로 발간한 『고문피해의 증언』은 이 86 년 인권
보고서의 별책부록 격이라 할 수 있다. 이 보고서 와 함께

널리 애 독하여 주시기 바란다.

1987. l . 28.

대한번호사협회 인권위원회
86 년 인권보고서 작성 소위원회
위원장 번호사 번 정 수
위원 변호사 황 인 철
위원 변호사 이 상 수
위원 번호사 - -조 영 래
.,.、 ‘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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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인권보고서

인 쇄 1987년 2 월 5일
발 행 1987 년 2 월 10 일

편집인 겸 발행인 대한변호사협회

주 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당주동 160

(非펌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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