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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혼 이론의 재음미
플라톤 혼 이론의 재음미
김 유 석(숭실대)
【주제분류】서양고대철학
【주 요 어】플라톤, 혼, 이성, 기개, 욕구, 이성적 부분, 비이성적 부분
【요 약 문】혼에 관한 플라톤의 주장들은 작품들마다 불일치를 보이거나 양립이 어려
울 정도로 상충되기도 한다. 혼은 순수하고 단일한 모습을 띠는가 하면, 부분을 갖기도
하고, 불사적인가 하면 사멸적인 부류를 갖기도 한다. 본 논문은 플라톤 혼 이론이 외관
상 불일치함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에서 일관된 설명이 가능함을 보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혼을 두 계기, 즉 몸에서 분리되어 있는 상황과 몸에 깃든 상황으로 나눠서 고찰
할 것이다. 혼은 몸에서 분리되어 있을 때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를 띠며, 물질적 간섭을
일절 받지 않은 채 자신과 닮은 형상을 관조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반면에 혼이 몸에
깃드는 순간, 그것은 몸의 제약을 받고 신체 기관을 통해서만 외부와 조우하며, 몸에 필
요한 요소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른바 혼의 비이성적인 부류내지는 기개와
욕구라는 부분은 바로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갖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혼의 부분에 관한 전통적인 문제들이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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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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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띠게 된다.
플라톤의 혼 이론에 관해서는 이미 수많은 연구들이 있어왔지만, 그것
들은 주로 개별적인 작품에 전개된 혼 이론에 집중되어 있을 뿐,5) 각 작
품들 간의 불일치를 본격적으로 해명하려는 연구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
는다. 많은 연구자들은 하나의 작품에 언급된 혼에 관한 논의를 모순 없이
해석하는 일에 집중하지만, 한 작품에서 제기한 해석을 다른 작품의 혼
이론에 적용시키는 데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사실 이
런 태도는 플라톤의 작품을 대하는 오랜 전통, 다시 말해 하나의 담론(=
한 편의 대화)을 하나의 완성된 생명 유기체 내지는6) 자기 완결적인 우주
로서7) 다뤄온 전통을 감안한다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나의 대화편
에서 제기되는 이론은 그 작품의 맥락과 문제의식, 그리고 내적 논리를
따라 이해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한 작품에서 도
출된 혼 이론을 전혀 다른 맥락과 문제의식을 지닌 다른 대화편에 적용시
키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철학적 대화’라는 독특한 서술 형식과 그
안에 들어있는 극적인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플라톤의 작품에서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플라톤 연구자들 자신이 가장
절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플라톤의 혼 이론을 전체로서 다룰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아니다. 혼에 관한 논의가 대화편들마다 작품의 맥락에 따라
다르다고는 해도, 따지고 보면 플라톤 철학 가운데 대화의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맥락에 의
존한다”는 말이 “맥락 밖에서는 무의미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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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의 혼 이론을 전체로서 살펴볼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물론 플라톤의
혼 이론을 전체로서 다루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8) 하지만 그런
연구들은 어느 정도 제한적이거나, 아니면 해석에 있어서, 이를 테면 발전
론과 같은 일정한 경향성의 지배를 받아 왔다. 여러 대화편의 논의들을
비교하면서 상충된 부분들은 축소하고 공통된 부분들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논의 자체가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지 않고 상충된 부분
들을 모두 끌어안으면서 논의를 재구성하자면, 플라톤의 생각이 시간 속
에서 점차 변해갔다는 진화론적 입장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9)
이 논문에서는 플라톤 혼 개념에 대한 통일적인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맥락에 따라 단일하기도 하고, 부분을 이루기도 하며, 불사적이기도 하고,
가사적이라고 언급되기도 하는 그의 혼 개념을 특정 맥락 안에 가두지도
않고 진화론적 해석에 의지하지도 않으면서 일관된 방식으로 이해해보려
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자 이 논문의 목표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의 비이성적인 부분(내지는 부류),10) 즉 기개와 욕구의 성질을 규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혼에 관한 논의가 겪는 모든 불일치는 바로 이 비이성적
인 것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혼이 부분을 갖는다는 것은 비이성적인
것들이 혼의 일부를 이룬다는 뜻이며, 혼의 사멸적인 부분 역시 바로 이
비이성적인 부분에 해당된다. 따라서 혼의 본성을 잘 이해할 수 있기 위
해서는 비이성적인 것들의 정체를 규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다음
의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인간의 혼을 고찰할 때는 서로 다
른 두 계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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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혼이 몸에 깃들어 있을 때이다. 분리되어 있을 때 혼은 순수한 이성의
형태로 머문다. 이때 혼은 단순하고 불사적이며 가지적인 형상들을 닮은
채 그 형상들을 관조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혼의 모습은 뺷파이돈뺸과 뺷티
마이오스뺸에서 몇몇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혼이 몸에 깃드는
순간,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몸에 깃든 혼은 몸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뿐더러 살아가기 위해 몸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
다. 플라톤이 몸에 깃든 혼의 본성에 대해 논의하는 작품은 바로 뺷국가뺸
이다. 특히 뺷국가뺸 IV권은 학자들 사이에서 혼의 구조와 부분들에 대한
논쟁들을 야기해왔는데, 우리는 이에 관한 전통적인 논쟁들을 검토하면서
이것들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개와 욕구
는 바로 지성적인 혼이 몸과 조우하는 상황을 전제하는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의 실마리를 뺷티마이오스뺸에 묘사된
지성에 의한 필연의 설득에서 찾게 될 것이다.
2. 혼의 두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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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테스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별하고, 전자는 개별적
인 것들이자 감각에 의해 포착되는 것들인 반면, 후자는 지성과 추론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부터 그는 몸을 가시적인 것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혼을 비가시적인 것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소크
라테스는 죽음을 몸으로부터 혼의 분리로 규정한 뒤에, 분리된 몸은 결합
된 것으로서 요소들로의 해체를 겪지만, 분리된 혼은 부분을 갖지 않는
단순한 것이자 비감각적인 것이기에, 어떠한 파괴나 해체도 겪지 않으며
따라서 불사라고 결론짓는다.
사실 닮음을 통한 논증이 뺷파이돈뺸 전체의 논변들 가운데 어떤 위상과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크라테스가 일관되게 몸과 혼
을 대립적인 것으로 이야기하며, 전자는 물질적인 본성에, 그리고 후자는
비물질적인 본성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혼이 몸 안에 머
무는 동안, 혼은 몸의 기관을 이용해 외계와 조우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혼은 헤매게 되고, 혼란에 빠지며, 마치 술에 취한 듯 현기증을 느끼는 상
태에 처한다. 반면에 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홀로 있을 때, 그것은 순수하
고 단일하며 불사이고 언제나 자신과 닮은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뺷파
이돈뺸에서 소크라테스가 언제나 강조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 바로 이
‘분리된’ 혼이라면, 그가 혼에 대하여 “신적이고 불사이며 지성의 대상으
로서, 단일한 형태를 갖고 해체되지 않으며 언제나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과 닮았다”고 묘사하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혼이 몸에서 분
리되어 그 자신 홀로 머무는 한에 있어서, 그것은 어떠한 비이성적인 것
과도 무관하며 그러한 요소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비이성적
인 것들은 오직 몸과 관련된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리된 혼은
언제나 순수하고 단일한 것으로 머물게 된다.13)
그렇다면 뺷티마이오스뺸에서 혼의 모습은 어떠한가?14) 이 작품에서 세
계 제작자는 우주의 혼과 별들의 혼, 그리고 인간의 혼을 차례대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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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가 우주 혼을 만드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는 나눌 수 없고
항상 동일성을 유지하는 영역의 존재, 동일자, 타자와 나눌 수 있으며 생
성하는 영역에 속하는 존재, 동일자, 타자를 각각 혼합하여 그것들로부터
중간적인 성질을 지닌 존재, 동일자, 타자를 구성한다. 다음으로 이 중간
적인 세 요소들을 하나로 섞고는 수적인 비례들에 따라 나눈 뒤에, 다시
그것들을 혼합하여 두 개의 띠로 가르고는, 끝과 끝을 이어 동일자의 회
전 궤도와 타자의 회전 궤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우주 혼을 완성한다. 설명
을 마친 뒤에 티마이오스는 혼이 “온 시간에 걸쳐 그치지 않고 지혜가 깃
든 신적인 삶을 시작했다”고 결론짓는다.
티마이오스의 논의에 따르면, 혼은 두 영역의 매개자라는 위상을 갖는
다. 우선 혼은 가지적인 영역의 요소를 나눠가짐으로 해서 가지적 형상을
관조할 수 있다. 즉 혼은 가지적인 형상들에 대한 앎의 원리로 기능한다.
하지만 동시에 혼은 가시적인 영역의 요소를 나눠가졌기에 감각 세계 안
에서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 즉 혼은 감각 세계에서는 운동의 원리가 되
는 것이다.15) 한편, 혼의 운동은 원 궤도를 통해 진행되는 회전 운동으로
묘사된다. 직선 운동과 달리 원 운동은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운동을 시작한 혼은 영원히 움직이며 또 그
런 점에서 불사이다. 인간 혼의 제작에 관한 이야기는 이 뒤에 등장하지
만, 티마이오스는 그 과정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 혼
의 재료와 구성 과정은 우주 혼과 같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의
혼은 그 순수함에 있어서 우주 혼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혼은 구조적인 측면이나 기능적인 측면 모두에서 우주 혼과 닮아
있다.16) 그런데 인간 혼이 우주 혼과 같은 재료와 구조를 갖는다면, 인간
의 혼 역시 불사이며 신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사실 혼이 몸에 깃들기
전에는 어떠한 신체의 작용도 겪을 필요가 없다. 또한 몸을 보살펴야 할
다른 어떤 부분이이나 활동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조화롭게 회전하며 자
기 자신과 닮은 것, 즉 형상의 진리를 양분으로 섭취할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뺷티마이오스뺸의 인간 혼과 뺷파이돈뺸의 인간 혼은 몸에서 벗어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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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에서 순수하고, 형상과 닮았으며, 죽음과 해체를 겪지 않고, 자신과 닮
은 형상들을 관조할 뿐이다. 하지만 몸에 깃드는 순간, 혼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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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운동이 심리적인 표지
(標識)로 바뀌어야 한다. 감각이니 감정이니 하는 것들은 일종의 심리적인
표지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혼 역시도 물체적인 성질들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부분내지는 기능이 생겨나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부류
의 혼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티마이오스에 따르면, 데미우르고스의 지
시를 받은 별의 신들은 인간의 몸을 만들면서 다른 기관에 혼의 서로 다
른 부분들이 머물 장소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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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만 비이성적인 혼들은 존재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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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자 하는데, 이는 어느 한 입장을 지지하거나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
라, 두 입장 각각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서이다.
3.1. 이성과 욕구
몇몇 학자들은 세 부분의 혼이 궁극적으로는 두 부분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콘포드는 이분설이 삼분설에 비해 더 근본적이
고 더 적절한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성과 욕망의 구별이 오르페우
스교나 피타고라스주의 전통에서는 그다지 낯선 개념이 아니라는 데 주목
하고, 이러한 전통이 플라톤의 혼 이론 형성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21) 그런데 그는 뺷국가뺸에서 세 번째 요소인 기개를 덧붙임으로써 자
신의 혼 이론을 수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혼 이론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치철학을 완성시키기 위한 필요 조치로 이해해야 한다. 삼
분설이야말로 국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 계급의 근거
가 되기 때문이다.22) 그런 의미에서 뺷국가뺸편의 혼 이론은 결과적으로 정
치철학의 완성을 위한 것이라고 콘포드는 결론짓는다. 페너 역시 이런 해
석을 따르고 있다.23) 그는 혼의 기개적 부분이 이성적인 부분이나 비이성
적인 부분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레온티오스의 분노는 욕구
적 부분에 맞서는 이성적 부분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고, 오뒷세우스의
분노는 이성적 부분에 맞서는 욕구적 부분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
다.24) 페너가 보기에도 플라톤이 기개적인 부분을 도입하는 것은 정치철
학의 목적 때문이다. 수호자 계급의 존재와 역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기
개를 혼의 세 번째 부분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콘포드와 페너의
해석에 따르면, 플라톤에게는 정치철학적 이유 외에는 삼분설을 받아들일
다른 어떤 이유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혼의 구성을 단순히 이성과 욕구로 나누는 것은 플라톤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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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에 대한 오해에 기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오해의 기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혼 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혼 이론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혼을 이성적인 부분(logistikon)과
넓은 의미의 욕망하는 부분(orektikon)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욕망하는 부
분의 하위에 다른 세 가지 종, 즉 욕구(epithymia)와 기개(thymos), 그리고
의지(boulēsis)를 놓는다.25) 로기스티콘은 오직 추론, 계산, 판단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반면에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행위를 추동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정과 욕구들은 오렉티콘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러한
도식을 플라톤의 것과 비교해보자.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욕구를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에피튀미아를 채택한다. 플라톤이
뺷국가뺸에서 레온티오스와 오뒷세우스를 인용하며 묘사한 분노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튀모스와 어울린다. 그렇다면 혼의 이성적인 부분은 어떨까? 아
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로기스티콘은 판단이나 추론, 계산만을 수행하는
반면, 좋은 것에 대한 욕망은 일종의 합리적인 의지(boulēsis)로 간주하여
오렉티콘의 하위에 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만일 우리가 유익하
고 좋은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이성의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인 바람에 의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설명은 인간의 행위를 욕구와 믿음
의 이분법으로 설명하려 한 흄 철학의 조상쯤에 해당될 지도 모른다. 그
러나 플라톤의 삼분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식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
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이성과 욕구가 분명히 구별되는 반면, 플라톤
에게서는 이성이 욕구와 잘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성은 판
단과 계산 능력뿐만 아니라, 좋은 것에 대한 합리적인 욕구까지도 포함한
다. 사실 그는 혼의 각 부류가 그것에 고유한 욕구를 갖는다고 분명하게
말하기도 한다.26) 따라서 이성과 욕구의 이분법은 플라톤의 혼 이론을 잘
설명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성과 욕구의 구별이 아니라,
(그것이 욕구든 분노든 무엇이든 간에) 이성적인가 이성적이지 않은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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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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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에 대한 근거와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상의 언급은 마치 혼의 비이성적인 부분들에도 어느 정도까
지는 이성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만한 여지를 준다. 사실 삼분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욕구적인 부분도 이성적인 요소를 약간은 가지고 있
다고 말한다.30) 예컨대, 구체적으로 규정된 대상을 욕망한다는 것은 최소
한 선택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시체를 구경하려 하는 레온
티오스의 호기심은 ‘최소한의’ 상상력을 전제한다. 민주정 하에서 사람들
이 정치인들의 연설에 호기심을 갖는 것 역시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 능
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31) 기개적인 부류의 경우, 분노나 경쟁심
등은 자기를 보호하거나 높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런 욕구
는 타인들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행위를 전제한다.32) 그리고
이것은 ‘최소한의’ 자기반성을 필요로 한다.33)
그렇다면 욕구적인 부분과 기개적인 부분은 어떻게 이성과 구별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최소한’이라는 말의 의미와 한계를 구체화하는 데서 찾
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욕구적인 부분과 기개적인 부분은 이성적인 능력
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만 배타적으로 사용할 뿐, 혼 전체의 좋음
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식의 설명이 그렇다. 욕구의 경우,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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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최소한의 지적인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욕구는 신체의 건강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오직 음료수만을 향한다. 욕
구적인 부분은 먹고 마시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만 지적인 능력을 사
용할 것이다.34) 이와 달리 이성적인 부분의 욕망은 자기에게 고유한 욕망
뿐만 아니라 전체의 좋음을 고려한다.35) 즉 이성은 어떻게 하면 음료수를
구할 수 있는가를 알 뿐만 아니라, 해당 음료수가 그의 건강에 좋은지 나
쁜지에 대해서도 고려한다. 이것은 기개적인 부분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
다. 기개의 경우, 자기를 의식하고 타자와 비교하는 능력이 혼 전체의 좋
음에 대한 성찰에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기개의 능력은 오직 자신의 목적
을 성취하는 데만 한정된다. 기개적인 부분 안에서는 경쟁심과 자존감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생각은 그 뒤에야 올 뿐
이다.3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뺷국가뺸편의 삼분설은 정치적 비유 이상
의 의미를 갖는다. 혼의 각 부분은 그것들에 고유한 욕구의 주체이자 행
위의 원리로서 실질적으로 혼을 구성하는 것들이다.
삼분설은 인간의 행위 동기를 설명하기에 유리하다. 혼의 각 부분이 자
신에게 고유한 욕구를 가짐으로써 자기들에게 걸맞은 운동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37)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기개적인 부류와 욕구적인 부
류에도 최소한의 이성적인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하지만 욕망의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의 정도가 무한하게 나눠질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이 ‘최소한’이라는 단서는 여전히 애매하다. 다시 한 번 목마름을 예로 들
어보자. 마시려는 열망은 혼의 욕구적인 부분에 속한다. 그런데 이 욕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규정되고 변형될 수 있다. 마실 것에 대한 욕구에서 시
원한 음료수에 대한 욕구로, 그 중에서도 오렌지 주스에 대한 욕구로, 기
왕이면 무가당 오렌지 주스에 대한 욕구로, 더 나아가 다른 것보다는 D사
에서 만든 무가당 오렌지 주스를 찾는 데로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 욕구
가 세분화되고 자세히 규정될수록, ‘최소한’의 이성적 능력 역시 점점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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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해지며 어느덧 ‘최대한’에 가까워질 것이요, 결국 대상에 대한 욕구와
좋음에 대한 욕구 사이의 구별은 희미해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플라톤
이 욕구와 기개 안에 이성적인 능력이 존재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
실이다. 욕구와 기개는 이성이 결여된 부분들이다. 뺷국가뺸에서 혼의 부분
에 관해 이야기되는 것은 주로 인격화된 사례들을 통해서이다. 거기서는
기개, 욕망이 그 자체로 고려되기 보다는 화내거나 욕구하는 사람을 통해
서 이야기된다. 하지만 욕구 자체와 욕구하는 사람, 화 자체와 화내는 사
람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에게는 이미
혼의 모든 부류가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비이성적 요소들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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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혼합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지성은 생겨나는 것들 가운데 대부분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이끌도록 필연을 설득하여 지배하였으니, 그런 방식과 조건
에 따라 필연이 지혜로운 설득에 복종함으로써 그렇게 처음부터 이 우주가
구성되었던 것입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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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전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다. 혼의 활동은 몸의 제약을 받게
될 것이며, 따라서 혼의 운동은 몸의 운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혼의 고유한 활동이라 할 수 있는 진리의 관조는 몸이 필요로 하는 것들
에 따라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40)
혼의 비이성적 부류들의 생성은 그것들이 혼의 이성적인 부류와 물질
운동 사이의 매개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떻게 보면 이성적인 혼이 물질적 몸에 심기는 사건이야말로 혼의 비이
성적 부분이 발생하는 유일한 조건이라 하겠다. 뺷티마이오스뺸에서 비이성
적인 부류들이 사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들이 전적으로 물체의 존재
와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몸에서 혼이 분리됨을 뜻한다.
혼이 분리된 뒤에 몸은 자연의 요소들로 해체될 것이다. 반면에 혼은 해
체되지 않기에 뺷파이돈뺸에서 묘사된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반대로 탄생
의 경우, 혼은 신생아의 몸에 심기고 몸은 혼의 운송 수단이 된다. 혼은
신체 기관을 통해 외계와 조우할 것이고, 몸을 조종하여 자신의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혼은 몸을 돌봐야 한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하고, 자연의 요소들로 이루어진 몸이 소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는 지속적으로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혼이 몸에 깃듦으로
써 새롭게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다. 몸과 관련된 이 모든 일들이 바로
비이성적인 부류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 모든 일들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
는 필연의 활동과 비슷하다. 필연이 물질적 요소들에 고유한 운동을 나타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의 비이성적인 부류들은 몸의 서로 다른 부위에
거처를 정하고는 신체의 존속과 활동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이성적인 부류들은 어떻게 이성과 몸 사이의 매개적인 역할
을 수행하는가? 앞서 인용한 대목에서 주로 논의된 것은 거친 인상들과 규
정되지 않은 욕망들, 쾌락과 고통, 그리고 양자의 혼합으로서의 두려움, 분
노, 무모함과 같은, 다양한 감각들 및 감정들의 발생이다. 그런 감각들과
감정들의 원천은 혼과 몸의 접촉하면서 겪게 되는 혼의 상태이다. 혼의 비
이성적인 부류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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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몸으로 전달된 물리적인 충격을 심리적인 신호로 바꾸어 머리에 위치
해 있는 이성적인 부류까지 그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계에
서 전달되는 신호들은 아직 아무런 규정성도 없는 원초적인 것들일 뿐이
다. 이것들이 세부적으로 규정되고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은 이성과의 접촉
을 통해서이다. 몸에 깃든 이성은 이 신호들을 외면할 수 없다. 몸과 결합
되어 하나의 생명체가 된 이상, 혼은 몸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이 신체적인 욕구에만 매몰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성은 몸이 요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받아들
이는 반면, 어떤 것들은 거부한다. 심리적 갈등은 바로 이 상황에서 발생한
다. 대우주의 차원에서 볼 때, 지성은 언제나 설득을 통해서 필연을 성공적
으로 지배한다. 따라서 이 우주는 언제나 조화롭고 질서 잡힌 운동을 수행
한다. 반면에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경우, 이성적인 부분이 비이성적인 욕구
를 적절히 지배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굴복하고 지배당할 수도 있다. 이성
이 비이성적인 신호들을 잘 지배하면, 인간의 삶 속에서 최대한의 좋음을
구현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혼은 물체 운동의 흐름에 휘말려 자신의 질
서와 조화를 상실하고 나쁜 상태에 빠져들 것이다.41)
이러한 논의는 뺷국가뺸 IV권의 혼 이론에도 적용될 수 있다. 몸에 갇힌
혼은 자신과 신체 모두를 돌봐야 한다. 혼 자신의 관심이 형상들을 관조
하고 그로부터 진리를 양분으로 섭취하는 것이라면, 몸을 돌보는 일이란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혼은 감각과 감
정들을 심리적 신호를 매개로 물리적인 운동과 접촉한다. 예를 들어 물리
적인 운동 가운데 일부는 혼의 욕구적인 부분을 통해 양분의 결핍으로 분
류될 것이며, 이것은 허기와 배고픔이라는 신호로 이성적인 부분에 전달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운동은 기개적인 부분을 통해서 위험 요
소로 분류될 것이고, 두려움이나 분노라는 심리적 신호로 이성적인 부분
에 전달될 것이다. 하지만 비록 물체의 운동이 두 부류의 혼에 의해 일정
하게 배치, 분류되고 심리적 신호로 전환된다고는 해도, 이것들이 이성적
인 부분에 이르기 전까지는 여전히 원초적이고 규정되지 않은 상태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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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봐야 할 것이다. 플라톤이 기개와 욕구를 “비이성적인 것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42)
그렇다면 다양한 욕망들의 명칭들과 세부적으로 규정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실 “욕망은 원초적이고 비이성적이다”라는 주장이 무색하게 대
부분의 욕구들은 이미 일정한 규정성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커피’처럼
특정한 대상을 욕구하기도 하고, ‘뜨거운 커피보다는 차가운 맥주’처럼 대
상들을 견주어 선택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것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
는 호기심에 시달리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는 존중 받기를 원한다. 만일
내가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부당함
으로 인한 모멸감과 함께 상대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
듯 혼의 욕구적인 부분과 기개적인 부분에서 발생할 법한 대부분의 심리
상태들은 알고 보면 상당히 구체적으로 규정된 것들이며, 심지어 적잖이
계산적이고 숙고적인 측면까지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가 혼의 비이성적 부분을 엄격하게 받아들인다면, 결코 위와 같은 규정
능력들을 기개와 욕망에 할당해서는 안 된다. 원초적인 욕망들을 규정하
고 명명하는 것은 오직 이성의 일이다. 그런데 이성 역시 자기 고유의 욕
구, 즉 진리를 관조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이성에게는
자기 고유의 욕구와 비이성적인 욕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레온티오스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눈을 통해 들어온 영상은 비이성적인
부류에 의해 심리적 신호로 바뀌게 되고 이것은 다시 이성에 의해 ‘시체를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성은 욕구가 원하는 대로
했다가는 오히려 불쾌감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는 언제나 전체로
서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는 이성 고유의 욕구에 반하는 일이다. 갈등 끝에
이성은 비이성적인 욕구에 굴복하고 레온티오스는 결국 시체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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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우스의 경우는 어떨까? 시각 혹은 청각을 통해 들어온 거칠고 폭력
적인 인상은 비이성적인 부류에 의해 두려움이나 분노의 감정으로 변환되
어 이성적인 부분에 도달한다. 이성은 이런 감정을 ‘즉각적인 복수’의 욕구
로 규정한다. 그렇지만 이성은 즉각적인 복수가 좋음에 대한 욕구(즉 완전
한 복수)를 달성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다. 완전한 복수를 위해서
는 지금은 화가 나더라도 참으면서 기회를 노리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
기 때문이다. 결국 오뒷세우스 안에서는 이성이 기개적인 부류를 억제하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혼의 비이
성적인 부분에 ‘최소한의’ 이성적인 측면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다양한 심리적 신호들에 대한 규정과 해석은 모두 이성적인 부류에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성은 자신이 해석한 심리적 신호들을 자기 고유의 욕
구와 비교하고 가능한 한 좋은 쪽으로 선택하려 할 것이다. 두 욕구가 대
립할 경우, 이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비이성적인 욕망을 통제하려 할 것이
다. 이것은 우주론의 차원에서 지성이 필연을 설득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다. 차이가 있다면, 우주 혼은 언제나 필연을 지배하는 데 성공하지만, 인
간의 혼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는 점이다.
4.2. 기개와 욕구
남은 문제는 왜 플라톤이 혼의 비이성적인 부류들 가운데 욕망보다는
기개를 더 나은 것으로 보고 이성의 연합군으로 삼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플라톤이 레온티오스나 오뒷세우스의 사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은 이성과 욕망의 대립이 아니라, 기개의 존재이다. 플라톤은 기개가 이성
에 의해 설득됨으로써 욕망에서 비롯되는 거칠고 폭력적인 충동을 강제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43) 이분설의 지지자들은 플라톤이 정치철학의
완성을 위해, 즉 도시와 개인 사이의 동형성을 완전하게 보이기 위해 인
위적으로 혼을 세부분으로 나눴다고 주장한다.44) 하지만 기개에 대한 선
호는 정치철학과는 무관한 다른 대화편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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뺷파이드로스뺸에서는 혼을 한 명의 마부와 두 필의 말로 이루어진 날개 달
린 마차로 묘사하면서, 기개에 속하는 말에 대해서는 “좋고 아름다우며
또 그런 혈통에서 나온다”라고 묘사한다.45) 그렇다면 이성이 기개를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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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자신의 연합군으로 만들려 하는 이유는 바로 기개 그 자체의 성격에
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성이 기개의 힘을 빌려 욕망을 제압하려 한
다면, 그것은 기개적인 부류가 욕구적인 부류보다 우월한 성질내지는 요
소를 적어도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삼분설의 지지자들은 기개가 이성의 성격을 일정 정도 공유한다고 본
다. 예컨대 쿠퍼는 기개적인 능력의 핵심이 자기 존중의 욕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체적 욕구가 오직 외적인 대상들만을 향하는 것과 달리, 기개
적인 부류는 자기 내부를 향해서도 관심을 돌릴 수 있다. 자기 존중의 욕
구란 자기와 타자의 비교를 전제하기 때문이다.46) 어윈은 좀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기개의 핵심은 일정한 평가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타자와 비교
하여 자신을 평가하는 가운데, 기개는 자기 인정의 욕망을 드러낸다는 것
이다.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자아 관념을 전제한다. 어윈이 보기에 이러한
자아 관념이야말로 이성과 공유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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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지닌 자기반성의 능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47) 물론 기개가 지
닌 자아 관념은 혼과 몸의 좋음을 전체로서 파악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
개는 이성의 보조자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러나 기개에 반성의 능력을
가정하는 것은 여전히 비이성적인 부류에 ‘최소한의’ 이성적인 능력을 부
여하는 것이다.48)
하지만 이성이 기개를 선호하며 자신의 연합군으로 삼으려 하는 이유
는 ‘최소한의’ 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개가 지닌 자기
방어적 본성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신체적 욕구는 몸에 필
요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외부의 대상을 향한다. 이와 달리 기개는 내, 외
부를 막론하고 모든 위험에 대한 즉각적인 방어 본능이다. 외부의 위험들
로 적이나, 야생동물, 혹은 혹독한 날씨 등을 들 수 있다면, 내부의 위험
들로는 욕구적인 부류에서 비롯되는 쾌락의 과잉과 그로 인한 자기 파괴
의 위험 등을 들 수 있다. 기개는 이런 위험들에 맞서 즉각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욕구라 하겠다. 기개가 철저하게 자기 방어내지는 보호를 향
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잘만 인도된다면, 전체의 좋음을 지키는 일에 요긴
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개에 자아 관념이나 반성과
같은 이성적 능력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기개의 활동은 자기의 생명 유
지를 위한 본능에서 비롯되며,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공
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동물
은 오직 욕구와 분노(또는 공포)만으로 생존을 유지한다. 욕구는 일상적이
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동물을 지켜주는 것은 분노와 공포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과 달리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자기 전체의 안전과 좋
음을 고려할 수 있다. 이성은 기개가 지닌 방어 본능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은 기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그 힘을 이용하여
욕구를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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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을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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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만일 비이성적인 욕구들이 전체로서의
좋음에 부합한다면, 이성은 그것들을 실현하려 노력할 것이나, 그렇지 않
다면 이성은 그것들을 수정하거나 아니면 억제하려 들 것이다. 반면 비이
성적인 부류의 경우, 욕구적인 부분은 신체에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여 몸
을 유지하고자 음식이나 성적인 대상과 같은 외부의 것들을 향해 발산하
려 하는 반면, 기개적인 부분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내⋅외부의 위험
에 맞서려 한다. 하지만 전체의 좋음을 아는 것은 오직 이성뿐이기에, 이
성은 기개를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고, 그 힘으로 이용하여 맹목적인
욕구를 통제하려 들 것이다. 좋음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성의 지배와 통제가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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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Iouseok Kim
(Soongsi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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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Scope: Ancient Greek Philosophy
Keyword: Plato, Soul, Reason, Anger, Desire, The Rational Part, The
Irrational Part
접수일: 2017년 05월 17일/ 심사일: 2017년 05월 20일~06월 10일/ 게재확정일: 2017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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