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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아무르에서 캄차카 반도까지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아무르에서 캄차카 반도까지
제19집 제1호
ISSN : 1975-0145(Print)
손성태
To cite this article : 손성태 (2015)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아무르에서 캄차카 반도까지, 한국시베리
아연구, 19:1, 2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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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아무르에서 캄차카 반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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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성 태*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언어적 흔적
(1) 종족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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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명
(3) 생활용어
2. 풍습
3. 유물과 유적
(1) 반달 형돌칼
(2) 화살촉
(3) 고래사냥 그림
(4) 온돌
Ⅲ. 맺음말
* 배재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214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국문요약>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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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I. 서론
2) 안동은 요동을 말한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한 후에,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으나,
우리민족의 저항으로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겼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요동은 당나라
말기에 안동이라고 불리었다.
3) 에벤키(Evenki)라는 말도 ‘어원커(鄂温克)’를 러시아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Wikipedia의 ‘Evenki’ 설명 참조하세요.
218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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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우리민족이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멕시코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우리민족이 알류산 열도를 건넜
다는 사실을 밝혀낸 손성태(2014)는 그의 저서 『우리민족의 대이동』에
서 아래와 같은 우리민족의 이동루트를 밝혀내었다.
II. 본론
1. 언어적 흔적
역사적 교류가 없었던 어느 두 지역의 언어가 우연히 일치하는 법은
없다. 모든 언어는 음소라는 최소 단위가 그 언어의 독특한 음운규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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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결합하여 형태소를 만들고, 그 형태소들이 그 언어의 음운규칙과
문법규칙에 따라 결합함으로서 ‘의미’있는 어휘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어휘들은 그 언어 고유의 문법규칙에 따라서 문법소들(뜻이 분명하지 않은
어휘들: 조사, 접사 등)과 결합하여 구(句)를 형성하고, 구들이 다시 그
언어 고유의 문법규칙에 따라서 결합하여 문장을 이룬다. 따라서 겉으로
단순하게 보이는 어휘나 지명일지라도 매우 독특하고 복잡하며 정교한
음소와 음운규칙이 개입되어 형태소를 만들고, 이 형태소들이 규칙에 따
라 결합하여야 비로소 ‘의미’있는 어휘나 지명으로 만들어 진다. 이런 이유
로 우리민족과 역사적으로 어떤 교류도 없었던 어떤 민족의 언어에서 우리
말과 같은 말이 발견된 예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와 역사적으로
교류가 없었던 프랑스어나 러시아어나 독일어에서 우리말과 같은 어휘가
발견된 전례가 없다.
4) Levin, M.G. & Potapov L.P., The peoples of Siberia, (The University of Chicargo Press,
1956), p. 721.
5) Levin, M.G. & Potapov L.P., op. cit., p.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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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족 명칭
먼저 아무르강 중하류에 살고 있는 나나이(nanai)족의 종족 명칭이다.
그들은 골디(Gol’di)라고도 불리었는데, 후자는 19세기 중엽부터 사용된
명칭이고, 원래 그들의 명칭은 나나이였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19세기 말 길약족과 그 주변 종족의 말을 처음으로 연구했던 러시아의
쉬텐베르그(Lev Shternberg)는 ‘나나이’라는 말은 ‘난이(nani)’와 같은 말
이라고 했다.
필자는 이 말이 ‘뛰어난 사람’을 뜻하는 우리말이라고 본다. 그 근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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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개의 종족명칭을 아래와 같이 형태소로 분석하면, 각 형태소의 ‘발
음’과 ‘뜻’이 정확하게 우리말의 그것과 일치하고, 각 형태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에 개입한 음운규칙도 우리말 음운규칙과 일치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이 두 명칭에서 대응되는 ‘아이’와 ‘이’가 모두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6) 우리민족은 ‘종족(宗族)’을 가리키는 별도의 어휘가 없어서 ‘아이’라는 어휘를 폭넓게 사용했던
것 같다. 캄차카 반도 원주민에 대한 최초의 탐사 기록을 남긴 크라쉐닌니코프(Stepan
Petrovich Krasheninnikov)는 그곳의 원주민들은 각 지역에 거주하는 집단을 ‘~아이’라고
불렀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Krasheninnikov, Explorations of Kamchatka, north
pacific scimitar, (Oregon Historical Society, 1972), p. 199 참조.)
(1) Kooch강이라고도 불리고 Elovka 강이라고도 불렸던 강가에 살던 사람들을 구치-아이
(Kooch‐ai)라고 불렀다.
(2) 이런 식으로 된 종족 명칭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킥사-아이(kyksha-ai),
수아추-아이(suachu-ai)
코리약인들은 유카기르(ukaghir)족 사람들을 ‘애들(edel)’ 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종족을 이런 식으로 부르던 언어습관이 미국 인디언 부족 명칭에도 나타난다.
222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난 아이 → 난 사람, 뛰어난 사람
난이(nani) → nan + I
난 이 → 난 사람, 뛰어난 사람
(뛰어)나다 → 난 사람, 난 놈
하바숲-아이(Hava-sup-ai)
왈랍-아이(Hualap-ai)
야밥-아이(Yapap-ai)
양크통-아이(Yank-ton-ai)
구턴-아이(Kuten-ai)
7) Levin, M.G. & Potapov L.P., Op.cit., pp. 767~768./ Margus Kolga, Igor Tonurist,
Lembit Baba, Juri Viikberg, The Red book of the peoples of the Russian Empire, (NGO
Red Book, 2001), p. 246.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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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길(kil)은 우리말 ‘길’이다. 에(e)는 ‘의’이다. 우리민족의 언어 습
관에는 ‘의’를 ‘에’로 발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예: 나의 삶→나에 삶).
그리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께(ke)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소 결합에 관여
한 우리말 고유의 문법규칙으로, 명사와 명사를 연결할 때 가장 자주 사용
되는 여격 접사 ‘의(에)’가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하여 형성된 명사
구 ‘길에께’가 ‘길의 것, 길의 사람’을 뜻하는 우리말이 되며, 동시에 ‘사람’
을 ‘것’이라고 했던 과거 우리말 습관을 담고 있다.
멕시코 고대 문헌에 남은 ‘이동 과정’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이동하던 도중의 수많은 곳에 머물러,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십 년을
머물러 살다가 떠나기를 반복했고, 일부는 이동루트 중간에 머물러 정착하
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길약족이 만주 어딘가에 살았던 우리민족
으로서 캄차카로 향하던 도중에 아무르강 하류에 남아 정착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의 다른 명칭인
‘길래미, 질래미’라는 말도 우리말로 ‘길의 사람’을 뜻한다는 사실에 있다.
8) Margus Kolga, Igor Tonurist, Lembit Vaba & Juri Viikberg, Op. cit., p. 268.
224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니부히(Nivkh) → 니분(nibun) → 니 + 분
나(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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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람, 나의 동족이나 친족
13) Shternberg, Lev, The social organization of the Gilyak, (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1999), p. 21.
226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차브추밧(chavchuvat)
차브추브(chavchuv)
차워추워(chawchuw[tʃawtʃə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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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워추(chauchu)
차브차(chavcha [čavča])
춥자(chukcha)
17) 이 어휘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Levin, M.G. & Potapov L.P., Op. cit., pp. 799~801./
Margus Kolga, Igor Tonurist, Lembit Baba, Juri Viikberg, Op. cit.,, p. 86./ Fitzhugh,
William W. and Crowell, Aron, Crossroads of Continents, (Smithsonian Institution,
1988), p. 31./ http://en.wikipedia.org/wiki/Chukchi_language
228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코리약(Koryak) → 코리 + 야 + k(음소)
코리 야
→ 코리야, 즉 ‘코리족이야’를 뜻함.
다기야(Takiya) → 닭 + 이 + 야
부디야(pudya) → 불 + 이 + 야
코리약(Koryak) → 코리 + 야 + K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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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예문에서는 중간에 접사 ‘이’가 사용되었지만, ‘코리약’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코리’의 마지막 음(音)이 ‘이’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접사 ‘이’는 앞 어휘가 자음 소리로 끝날 경우에만 사용된다는 것이 우리말
의 음운규칙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책 + 야 → 책 + 이 + 야 → 책이야
물 + 야 → 물 + 이 + 야 → 물이야
시계 + 야 → 시계야
컴퓨터 + 야 → 컴퓨터야
24) 이러한 필자의 설명을 받쳐주는 또 다른 증거가 캐나다 서해안에 남아있다. 캐나다 서해안
원주민들은 그들의 전통 종교와 관련된 토템 폴(Totem pole) 기둥을 ‘굿대야(kooteeya)’라고
불렀다. 굿대야는 다음과 같은 우리말 형태소로 분석된다.
토템폴(Totempole) → 굿대야(Koot eya) → 굿대 + 야 (굿하는 곳에 세운 기둥이야)
25) ‘고리/코리’의 뜻에 대하여 초기 러시아 사냥꾼들이 전한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그들은 ‘활’이
라고도 하고, ‘불’이라고도 하고, ‘순록’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원주민들
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한 오류라고 필자는 본다.
26) ‘고리/코리’가 ‘노인’을 뜻함은 우리말 ‘고리타분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마’가 ‘손’을 뜻함은,
손성태, 『우리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인디언은 우리민족이다/멕시코편』, p. 453을 참조하
세요.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31
마리 → 마릭(marik) → 마리(mari) + k
(2) 지명
러시아의 지명을 보면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러시아 동부
지역, 즉 우리민족의 이동루트에 해당하는 동시베리아 지역의 지명에는
‘~칸(khan)’ 또는 ‘~카(kha)’로 된 명칭이 많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이
지명은 점점 줄어들고, 우랄산맥을 넘어가면 거의 사용되지 않았음을 발
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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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는 ‘~칸’에서 받침소리 ‘ㄴ’이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1735년부터
6년간 캄차카반도를 탐사하고서, 캄차카 역사를 기록했던 크라쉐닌니코
프(Krasheninnikov)는 캄차카를 캄차카(Kamchatka) 또는 캄차칸
(Kamchatkan)으로 기록하고 있다. ‘~칸’은 ‘장소’를 뜻하는 우리말 ‘간’으
로 보인다. 우리말에는 ‘헛간 곳간, 장독간, 뒷간’ 등과 같은 옛 어휘들이
꽤 많다.
그런데 ‘캄차칸’은 그곳에 살던 원주민의 말에서 유래된 지명이지만,
아직까지 그 뜻이 무엇인지 연구한 기록은 없다. 캄차카는 그들 자신을
‘코리야’라고 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고, ‘코리’는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
민족을 뜻하는 말이다. 또 나중에 보겠지만, 코리약족은 고대 우리민족
고유의 다양한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캄차칸’도 우리말이었을
것이다. 우리말에서 ‘칸’은 장소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지명은 다음
과 같이 구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232 ∙ 한국 시베리아연구 제19권 1호
캄차칸(Kamchatkan) → 캄차 + 칸
(3) 생활용어
아무르강 하류의 길약족이 우리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학자
는 1950년대 러시아 학자 크레노비치(Krenovič)였다. 그는, 1890년 러시
아 황제의 암살 음모에 www.earticle.net
가담했던 죄로 사할린 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살던 길약족의 언어를 처음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던 쉬텐베르그(Lev
Shternberg)의 제자로서, 스승과 그가 연구하던 길약족의 언어가 한국어
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 후 국내에서는 강길운과
김방한이 길약족의 말에서 다양한 우리말을 찾아내었다. 특히 강길운은
길약족의 언어가 어휘소(뜻이 분명한 단어)뿐 아니라 문법소(뜻이 불분명
한 조사같은 단어)까지 우리말과 일치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길약어는 우
리말과 ‘쌍둥이 언어’라고까지 말했다27).
그러나 이들은 우리민족의 대이동 역사를 알지 못하여, 이러한 일치가
크레노비치의 견해에 따라서 차용(借用)으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즉 과
거 어느 시대에 길약족이 만주에 거주하던 우리민족과 매우 가까이 가서
살았고, 그로 인하여 우리민족과의 교류로 인하여 어휘를 배운 후에 다시
북쪽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언어 차용에는 한 가지 제약이 있다. 여러 민족 사이에 교류로
이것아, 친구야,
아/야/여 아/야/에 [a/ ya/ e]28) 호격조사 일치
친구여
가라, 머거라, 라/거라/가야
라/거라/거야 명령 서술어 일치
머거야29) [ra/ kaya]
에벤키어 우리말
됼(дёл) 돌
듈(дюл) 둘
모(мо) 나무- 나모(고어)
무(му)
www.earticle.net 물
아미(ами) 아비
어니(эни) 어미
배(бэе) 배(사람)- 무뢰배(無賴輩)의 배(輩)
28) 이것을 호격조사라고 한다. 옛날 우리말의 호격조사에 ‘~에’라고 한 흔적이 있다. 771년에
경주에서 만들어진 성덕대왕 신종은 일명 ‘에밀레종’이라고 한다. 종을 만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아서, 어린아이를 쇳물에 넣어 만들었더니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엄마를 부르
는 소리’같아서 ‘에밀레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에밀레’라는 말은
‘에미(엄마)+ㄹ+에’로 구성된 말이다. 즉 마지막 ‘~에’가 호격조사로서, 오늘날 ‘~아, ~야’에
해당한다. 에밀레는 결국 ‘엄마야’의 뜻이 된다. 따라서 길야크어의 호격조사 ‘에[e]’는 우리
호격 조사의 고어(古語)에 해당한다. 멕시코 원주민의 호격조사도 ‘~에[e]’이다.
29) 언어를 비교할 때, 현대 표준어로 비교하면 안 된다. 15세기에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를 창제하
기 전에는 우리민족은 ‘글자’가 없었다. 오직 ‘말’만 있었다. 따라서 ‘먹어라, 먹어야’와 같은
표준어는 ‘머거라, 머거야’라고 소리 나는 대로 말했다. 이것이 과거의 우리말이다. 따라서
‘소리나는 형태’로 비교해야 한다.
30) 이 의문 서술어는 경상도 방언이다. 우리는 앞에서 경상도 방언과 길약어가 일치하는 예들을
보았다.
31) 자료 출처는 2010년 6월 8일 중앙일보 기사 ‘러시아 사하공화국에서 우리말 뿌리 확인’과
강덕수 교수가 직접 보내준 개인적 자료에 의함.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35
춥지-코리약족의 어휘 러시아 해석 필자 해석
2. 풍습
아무르강에서 춥지-캄차카 반도에 이르는 지역으로 처음 간 외지인은
러시아 코사크족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은 모피(毛皮)용 짐승을 사냥하기
위하여 1640년대부터 동시베리아로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최초로 아무르
강에 온 사냥꾼은 포야르코프(Poyarkov)로서, 그는 먼저 제야(Zeya)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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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 어휘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Levin, M.G., Op. cit., pp. 799~801./ Margus Kolga, Igor
Tonurist, Lembit Baba, Juri Viikberg, Op. cit., p. 86./ Fitzhugh, William W. and Crowell,
Aron, Op. cit., p. 31./ http://en.wikipedia.org/wiki/Chukchi_language
34) Fitzhugh, William W. and Crowell, Aron, Op. cit., p. 39./ Levin, M.G. & Potapov
L.P., Op. cit., p. 799.
35) Krasheninnikov, S. Petrovich, Op. cit., pp. 197 & 199.
36) Levin, M.G. & Potapov L.P., Op. cit., pp. 799 & 801./ Margus Kolga, Igor Tonurist,
Lembit Baba, Juri Viikberg, Op. cit., p. 86.
37) Fitzhugh, William W. and Crowell, Aron, Op. cit., p. 32.
38) 크라쉐닌니코프가 남긴 보고서에 의하면, 춥지-코리약족은 풍습과 언어가 같은 하나의 민족이
었다. 또 캄차카반도 가까운 알류산 열도의 섬에 거주하는 원주민들도 같은 민족이었다.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37
男女淫婦人妒皆殺之(남녀음부인투개살지)
남녀가 음란하거나 부인이 질투를 하면, 죽였다.
3. 유물과 유적
(1) 반달형 돌칼
기원 이전부터 우리민족은 돌을 갈아서 만든 칼을 사용했다. 이 칼의
모양은 날이 반달처럼 둥글게 되어, 역사·고고학계에서는 반달형 돌칼이
라고 이름지었다. 반달형 돌칼은 고대 우리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대평
우리민족의 반달형돌칼
48) Valentina Gorvatcheva & Marina Federova, The Peoples of the Great North Art and
Civilization of Siberia, (Parkstone Press, 2000), p.77.
49) Waldemar Jochelso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in the Aleutian Islands, (The
University of Utah Press, 2002), pp. 63-65.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41
(2) 화살촉
우리민족의 북상 흔적은 반달형 칼 이외에도 토기나 창날 혹은 화살촉의
모양에서도 발견된다. 비록 유물 사진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동북 시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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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 지역 고고학적 유물을 조사했던 여러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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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의 화살촉>
(3) 고래사냥 그림
고래는 거대한 바다 동물로서, 배가 작고 어업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잡기 힘든 동물이었다. 그런데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의 암각화
52) Powell, J.W., Eighteenth annual report of the Bureau of American Rthnology to the
secretary of the Smithsonian Institutions, 1896-97, (Washington Government
Printing Office, 1899), p. 159.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43
보여주고 있다.
아래는 반구대 암각화(巖刻畵)의 전면도이다. 왼쪽에는 주로 고래가,
오른쪽에는 순록들이 새겨져 있다. 아래의 오른쪽 두 개의 그림은 반구대
암각화에서 ‘새끼를 업은 어미 고래’와 ‘줄이 달린 작살에 맞은 고래와 사람
들이 탄 배’의 모습을 확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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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온돌
온돌은 우리민족의 고유 난방 방식으로, 방의 바깥 아궁이에 불을 때어
뜨거운 열기가 방안 밑의 구들로 지나, 아궁이의 반대편에 있는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게 하여, 집안을 데우는 방식이다. 방안의 구들은 여러
갈래이지만 굴뚝이 있는 벽 가까운 곳에서 모두 하나로 합쳐지도록 되어
있다. 오늘날 온돌 유적이 발굴되는 곳은 우리 선조들이 기원전부터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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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낙 섬의 온돌 유적
아궁이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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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III.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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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James Forsyth, A history of the Peoples of Siberia, Russia‘s North Colony 1581~1990,
(Cambridge, Uni Press, 1992), p. 210.
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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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이동 흔적 ∙ 251
<참고문헌>
『구당서(舊唐書)』
김한규, 『요동사』, 문학과 지성사, 2004.
류근주, “高設式 溫突집의 형성 및 전개에 관한 연구”, 한국농촌건축학회
논문집, 한국농촌건축학회, 제2권 1호, 2000, pp.33-46.
리신호, 김준봉, “동북지역 농촌의 조선민족 살림집의 실태조사 연구 -연변
룡정시 룡산촌을 중심으로-”, 한국농촌건축학회논문집, 한국농촌건
축학회, 제4권 1호, 2002, pp.28-35.
브로단스키, 데, 엘, 『연해주의 고고학』, 정석배역, 학연문화사, 1988.
사마천, 『사기(史記)』
진수, 『삼국지(三國志)』
www.earticle.net
손성태, 『우리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민족이다/멕시코편』,
코리, 2014.
『신당서(新唐書)』
『위서(魏書)』
<Abstract>
SON, Seong-Tae
the route used Korean words for their tribal names and in
conversation of daily lives. Second I present evidences that the
natives of the route kept customs identical to that of ancient
Koreans. Finally I present archaeological evidence that the Koreans
ancestors lived some times in many places on the route. The
evidences consists of semi-lunar stone knives, arrowheads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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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