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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007
H. 리처드 나이버 著
金 在 俊 譯
大 韓基督敎書會
Christ and Culture
by
H. Richard Niebuhr
tr. by
Seoul , Korea
차 례
머 리 말 ................ ..............................................................5
제 1 장 : 영속적인 문제
제 2 장 : 문화에 대 렴 하는 그리 츠 도
제 3 장 : 문화의 그리스도
제 4 장:문화위에 있는그리스도
1. 이원론자의 신학 .. .. ... ....... .. ... ..... .. ..... .. ....... ... .. .......... .. 151
2. 바울파 마르시온의 이원론척 동기 ................. ................ 161
3. 루터와 현대의 이원론 .... ... .... .. .. ... ..... ..... ........ .... ..... ... 171
4. 이원론의 장점파 결정 ... ... ..... .......... . ... .... ..... .......... ... . 185
1. 신학석 신녕 ....... .. ...... ... ............. ....... ................ .... ..... 190
2. 제 4 복음서의 개변주의적 동기 .. .. ................................ 195
3. 어거스틴파 문화의 개변 ... ........ ....... .. .. .. .. ... .... ....... ..... 205
4. 모오리 스의 견해 .. .......... ... ....... .. .... ... ..... ................ .. " '217
2. 신앙의 상대 주의 ..... ........ .... .... ......... .. .......... ...... ... ...... 233
3. 사회적 살존주의 .. ..... .. ......... ..... ... .............. ... ...... .... . "'240
4. 의존적 자유 ... ..... .... ... .. ...... .. ................ ..... ................. 248
머 리 말
5
에게 빚지지 않은 소유물이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사살 일 진대 우러
가 값 없이 받았으나 값 없이 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6
머 리 말
미국 커네티컷 주 뉴우헤이븐에서
H. 리처드 니이버
7
제 1 장
영속적안 문제
1. 문 제
9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야 우리에게 도움이 필 줄 얀마. 이 분야
에 있에서 기독교의 흔란은 언제나 있어 왔 ò 며 전 기독교 세대를 통
10
셰 l 장 영속적안 운제
2. I d i d. , p. 390.
3. I bi d. , pp. 373- 375.
4. Ibi d. , p. 39 1.
11
래에서 예수를 배척한 것도 아니며, 2천 년 간의 바유대적 기독교와
비기독교적 유대교는 예수가 문화에 위협을 주었다는 것보다는 않은
다른 영제플의 타당성을 입증할 것이다. 그러나 이 2천 년 동얀, 다
만 이 문제만을 중심으로 격성한 고투를 계속해 왔다는 것만은 확살
하마. 다만 유대안뿐 아니라, 그러이스안파 로마안, 중세기안파 현대
인, 서양안파 동양안 이 모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예수가 위
협한마는 이유로 그를 배척하였먼 것이다.
그리이 스 ·로마 문명이 복음에 공격을 가한 이야기 는 서 양 문화와
교회의 모든 역사에 한 극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흔히는 이것이 다
만 정치척 박해라는 이름A로서만 일컬 어지고 있었지만, 사회적 경건
에 근거한 대중의 증오, 문학적 논박, 철학적 반대론, 사제들의 항거,
그러고 경 제적 안전 보장 퉁 이 다 합하여 그러스도를 배격하는 데 가
담한 것이다. 즉 문제는 다만 정치적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석
인 변에서도 광뱀위하게 일 어난 것이다. 사살, 국가로서는 다른 기
판이나 그룹을보마도 훨씬 후에야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게 항쟁
을 걸어 왔던 것 이다.5 근년에 와서 다시 공개적안 충돌이 일어났다.
국 가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의 대변자에 의해서 뿐 아니라, 휴우머니즘
과 민주주의 운영의 열렬한 투사들에 있어서도 그러스도는 문화적 판
섭의 적」즈로 간주되었다.
이 렇게 예 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운동이 생긴 역사척, 사회적 상
황응 지극히 다양적이어서 , 적대자들의 개인적 또는 칩단적 동기는 여
려 가지로 다른 것이 있다. 기독교적 신념에 대척하는 철학적, 과학
적 신념 들은 기독교 신념 자체 보다도 훨씬 더 예리하게 서로 대럽되
어 였다. 문화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성에 판한 한, 이 여러
가지의 잉1 판들 가운데서 상당한 일치점을 말견할 수 있다. 고대의
유성론자들과 현대의 유물론자들, 기독교를 무신론으로 바난하던 경
건한 로마 인들, 기독교의 유신론적인 신양을 정죄하는 19세 기 무깐
론자들, 그러고 민족주의자들파 휴우머니스트들, 이들 모두가 복음
12
제 1 장 영속척안 운제
6. The D ecline and Fall 01 the Romaη Empjre , Modern Libraryed., VoL
1 , p. 402.
18
사람도 옆셔놓고 치독교를 공걱하는 것을 중지하고, 기독교 션자에
게 호소하여 말하기를, 신자들이 국방과 재건의 공석 (公的) 의 무에 서
울러남우후써 위협을 받고 있는 로마 제 국을 더 위태롭게 하는 것을
중지해 달라고 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레난이 기독교에 석의〔敵意)
를 가진 것도 이런 점에서였다. 즉 신자들은 현실 생활에 충분한 관
섭을 가지고 있지 않기 해문에, 낡은 질서블 박멸하고 새 질서를 건
설하려는 총력천에 용강하게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기옥교 신영을 종교적 아펀이라고 생각하였다. 문화를 초월하
여서는 삶의 의 01 가 없다는 것을 충분허 각성해야 할 백성들을 마취
시키려 고 집권자가 사용한 마약이라는 것이다.
또 하냐의 문화적 만(反)기독교주의자들이 여러 시대에 여러 신조
15 .
고 있었넌 것이다 11 그러냐 그러스도와 기독교안은 다 같이 그 극만
적안 유알신 신앙 혜문에 문화의 통알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 유알
신 신앙은, 많은 신들과 많은 종파들을 지 상〔地上) 또는 천상〈天上)의
한 군주의 통제하에 통얼시키려는 이방 종교의 보펀주의와는 전혀 마
른 한 분 하나닝을 믿는 신앙이다. 이렌 유일신 신앙이 국가적 또는
제국적 문화의 내변자들에거l 제기하는 정치적 운제는, 현대에 있어
서는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여졌 A나,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만기독교적, 특히 유애인 배격 운동에서 다시 투렷하게 드러나게 되
었다. 12 왕을뿐 아니라, 다른 정치 켠력의 표증까지도, 신성£로 보
호되어 있어야 하는 행펀임에도 불쿠하고, 01 유일신 신앙은 그들의
거룩한 후광(後光)을 박탈해 버리기 띠1 문이었다. 세상의 나라듣을 얻
기 위하여 사단에게 절하는 일을 일축해 버련 그리스도의 태도는 기
독교인들에게도 전승되어, 그플이 섬기는 주 하나념과 일치되는 그
러스도만을 예매하려 했다. 만주주의, 미국, 독알, 또는 로마 제국이
그 의무와 종교적 충성을 받을 수만 있다면, 많은 신들을 예배할 수
있다고 하는 태도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를 옹호하는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위와 같은 태도는 용남될 수 없다. 판용주의
적안 현대 운영이 그러스도와 적대적인 업장에 있 A면서도 그것이 밝
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자기들의 종교적 살행을 종교적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 돼문이다. 즉, 종교적이라는 용에는 공적으로 안정된
거룩한 기판과 판련되어 있는 어떤 특수한 의식에만 국한하여 사용하
는 것이다. 그리고 또 종교라는 것을 경제, 예술, 과학, 정치, 기술
둥 수다한 관삽사 중의 하냐로밖에 안정하지 않는 것도 무낸하게 지
내는 이유의 하나라 하겠다. 즉 기독교적 유알신 신앙은 정치나 살엽
계에 간섭하지 말며 다른 종교들파 사이 좋게 지낼 것을 배우라는 명
령 을 반대 자들에 게서 듣는다. 다만 종교적 칩 단으로서 의 주장뿐 아니
라, 그리스도와 하나넙의 주장에 대한 온갖 고려까지도 다른 신들,
소위 가치들이라는 것이 지배하는 영역우로부터 추방되어야 한마고
11. Cambridge Ancient History , Vol. 때, pp. 409 ff.; 356 ff.; C. N. Cochrane,
op. cit. , p p. 115 ff.
12. Cf. Karl Barth, The Church aη d the Political Problem 01 0μr Day,
1939; Hayes, Carlton J.H. , Essays in Nationalism , 1933.
16
제 1 창 영속적안 운제
17
음을 헬라 용어와 헬라 사상의 형식으로 해석하려는 그의 노력에서도
.1 8
제 1 창 영속적안 문제
2. 그리스도의 정의 (定義) 에 판 하여
19
부활하게 하는 것으로 되어 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럼들에거1 는, 기
독교는 새 교훈이라거나 새 생영이라는 것보다도 우선 새 공동체,
거 룩한 공쿄회 (公敎會)로 되 어 있 다. 그러 하여 그들의 주목하는 중
싱을 차지한 그리스도익 사엽은 이 새 사희의 건설이며, 이 새 사
회는 말씀파 성례건을 동하겨 그의 은혜를 중개하는 것 o ;료 되어
있마.
20
제 1 장 영속적안 문제
21
도그 본질 이 냐타냐는 현상의 엘 마만은지적할 수 있는것이다. 모든
기줄은 다 얼종의 설 명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 이 객판적 실 재의
설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스도에 래한 온갖 기술이 다 불완
전하여 그를 만난 다른 사 랑들에게 온천허 만족을 줄 수는 얹다 할지
라도, 기독교안의 권위인 예수 그리 스도는 천혀 기술할 수 없 다고 말
할수는 없다.
그리스도를 기숭하려는 옥적 으로, 도덕론자는 다소 자의적 (향、 강的)
안 땅 법 으로라도 예수 그러스도의 먹행을 지척하며 그것 을 정의하는
것을 강행할지도 모른 다. 그러냐 그것은 같은 목적을 가진 다른 방
연에서의 설영으로 보충되어야 할 것 이 사실이 다. 그러므로도덕석 기
술이 형이상학적 또는 역 사걱 기 술보다 본질 에 더 가깡 마고 주장할수
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닥행윤 말할 해, 우리는 그의 품격 의 탁
월성을 의미한다 . 다시 말하면, 한현으로는 그 자신의 생할에서 모
본을 냐타낸 품격, 또 한펀A 로는 그가 그의 신도들과 천교를 나누
는 품격을 의미한마. 어떤 기독교안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그러스도의
모본과 법이 요구하는 덕으로 알려지 며, 다른 기독교언에게 있어서
는 그것 이 중생 , 곧 많은 형제들의 첫 열애인 그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을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지는 은사라고 알려져 있다 . 그러 냐
기 독교인들이 법 을 강조하든 은혜 를 강조하든, 역 사척 예 수를 중요시
하든 선 재 (先tE) 하시고 부활 승천 하 신 주를 중요시 하든 간에 예수 그
러스도의 덕행 자체에는 다 릉이 없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먹행을 논하는 데 있어서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은 그의
사랑을 무엇 보다도 높이 평 가한다 . 13 이 지극한 사랑을 그의 안에 서
발견한다는 것 이 자유주의 사상가듣의 탈선적 안 생 각이 었 다고 말할 수
는 없다 . 공관복음서 에 는 사랑에 대한 인증(引證) 자료가 아무리 결 핍
돼 았다 할지라도, 그 나머 지 의 전 신약성 서 와모든세 대의 신도의 증
거가 예수 그러스도의 윤리에 있어서 사랑이 가장 큰 댁행이었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마 . 그러고그러 스도가 제자들에제 영한 것 이 라든지,
23
챙들을 배제한다는 의마에서 말할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
한 소위 중용(中庸) 즉 지나침과 부족, 또는 친철파 분노의 중간강
같은 것은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는, 하
나닝밖에는 쿠극적우로 사랑할 만한 존재, 궁극적으로 헌신한 만한
대싱-0 1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념 아버지이다. 하냐님밖에 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에게만 감사할 것이며, 그의 냐라만을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으로 예수의 품격 과 교훈에 나타난 하나넙 사랑
은 아버지의 접이 강도의 굴혈로 된다든지 , 아버지의 자녀가 학대를
받는다든지 할 경우에 분노로 나타날 수 있었으며, 분노의 동기 가 될
수도 있었단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 분노의 덕의 의마 를 강조하
는 것도 당연하며 또 가능한 것이마. 그러고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 행
동이냐 교훈에 있어서 하나닝에 대한 신앙파 그 앞에서의 겸비를 사
랑보마도 훨씬 더 강조했마는 것도 말할 수 있마.
예수의 이 먹행의 성질을 이해하려면, 그의 신학에 대하여 어느 정
도의 주의를 기울알 펄요가 있다. 예수을 기 술함에 있어서 사랑이라
는 용어에 전적으로 의거하려는- 경향은 하나닝과 사랑을 일치시키는
경향파 밀접한 판계플 가지고 있다. 부성〔父性)이 하나닝 속성의 거
의 천부안 것갇이 생각하며, 짜라서 하나닝을 사랑한다는 것은 부성
의 원리를 사랑하는 것으르 간주한다 .16 또는 하나닝은 “세계의 질서
의 기초가 되는 것만큼 또한 세계의 혼돈을 초월한 우극적 통일임 이
24
제 1 창 영속적안 문제
18. Harnack, op. cit., pp. 55, 68-76에 서 도 그렇 게 말하고 있으며 , 표헬응 꼭
갚지 않A냐 이것은 자유주의적 개혁 교회의 상식£로 되어 있다.
25
나님이 그리스도자신을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
한복음에 서 는 “네 이 웃을 네 옴같야 사랑하라”고 한 유대 적 진술로서
는예수의 행동과 요구를 석망하거1 표시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그 계
영을고쳐서 “내가 너회를 사랑한 것같이 너 희도 서 로 사랑하라”는 것
으로 하였 다 19 뿐만 아니 라, 에 수 그러 스도의 사랑은 한 안애 C仁愛)
의 표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닝의 아가페라는 결 정 석 행위라
는 것을 제자플은 밝히 。1 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대 교안들이 예수
그러스도에게서 체득한 것, 그러고 우리가 그를 상상만 하는 것이 아
니 고, 똑바로 그 자신을 응시 한다변 반드시 받 아들이 지 않을 수 없
는 것은, 그가 하나닝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인애를 특징으로 한 안
격 은 아니었마는 것 이다 . 그가 하나닝을 사랑한다는 것과 이웃을 사
랑한다는 것은 공통펀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만 공통된 근원
을 가진 두 구별 된 덕이마. 하나념 을 사랑한다는 것 은 유일한, 참 선
한 이를 찬양하는 것이며 모든은사(恩 !IJ!,)를 주는 이에 대한 좌사안 것
이다. 이 것 은 거룩한 기쁨이다. 01 것은 “존재 CB e ing)에의 잔성 ”이다.
그러나 시-람을 사랑한다는것은 찬양보다는불쌍히 여기는것이다. 이
것은 캄사라기보다도 주는 것파 용서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안간의
사악 ($평)파 불경성 (不敬性 )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마. 이것은
인간이 있는 그대 로 수 락하는 것을 응함이 이니라, 회 개할 것을 요구
하는 것 이 마. 하나닝 에 대 한 사랑은 미 소유척 (非 所有的 ) 안 이1 로스요,
사람에 대 한 사랑은 순수한 아기-페 이 다. 하나닝 을 사 랑 한마는 것 은
열 정 ( passion) 이요, 시 랑을 사땅한마는 것은 동정 (compass ion ) 이t:-}. 얘
19. 요 13:34, 15:12, 참고로는 악 12: 28- 34 , 마 22: 34-40 , 농 10: 2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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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영속적안 운제
20. A. Sch .veitzer, The Qμest 01 the H istorical Jesus , 1926 , p.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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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기대에로 정향되어 있다 "Zl 종말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케 전 달한 것은 예 수 안에서 메시야적 미래
가 임박했다는 신 냄으로 말미암아 고양된 종말론적 기대 였다는 것이
다. 그러므로 초대 기독교의 윤라는 위대한 희망의 윤리로 표시되었
다는 것이다 .
예수를 사랑의 영웅£로 설영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경우에 있에
서 그것이 갚은 진리를 제공했던 것파 마찬가지로, 예수를 종말론적
안 배 경 에서 묘사한 종 말론자들이 현대에 공헌한 것도 큰 것이었마.
그들의 노작은 쉬바이처가 목적하는 바에 큰 도움을 주었마. 쉬바이
처는 “펀대와 현대 신학계에 예수의 존재가 결정적우로 영 웅석 위대
성을 가지고 있마는 것을 그러려 한” 것이었마 22 예 수의 희망적안
기대에 는 극 단 적인 것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찮은 영광을 쿠하
든지 또는 도무지 영광을 기대하지 못하든지 했으므로, 이 점 에서 예
수와 그들은 달랐 마. 보통 도덕 은 마소 냉 소석인 색채 를 띤 자기 만족
에 머 윤든지 , 그렇 지 않으r넌 산에 대한 석당한 기디l 에서 양보하든지
하는 것이다 . 최고선에 대한 열렬헨- 기대는 윤리 자체의 변화를 가져
오지 않을 수 없는 것 이다.
그 러 나 1세기 팔레스딘의 둔명에서 멀리 떠 냐서는 예수의 이 철딱
한 기대 를 설영할 수 없는 것이며, 그가 그 제자들에게 이것을 전승
한 정도도 바로 이해한 수 없는 것이마. 그러나 종말론자들은 흔히
이 점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마. 예수의 희망은 하나닝 안에, 하나냥
을 향하여 있었다. 종말론자가 주장하려는 점은, 이렌 것이마 . 즉 예
수의 희 망의 소재 (iη)는 교의 (dog ma ) 였£며 , 예 수의 희 망의 대 상 (jor)
28
제 1 창 앵속적안 문제
29
긍후에도 잘아 게신 하나념과의 판계 안에 그 원천을 가지고 있다. 혜
수의 윤리의 열쇠는 종말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닙의 아들
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리 스도의 복종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기독교적 설존
25. Rudolf Bultmann , Jest,α and the Word, 1934. pp. 72-73.
26. Ibid. , pp , 77 , 78.
30
제 1 장 영속적안 운체
31
과 같이, 살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닝은 도덕적 결단의 상대자
로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결단하지 않을 수 없케 하
는 능력이에서 “사랑이 자기 자신의 실존에 대한 사실적인 파악에
서만 찾을 수 있는” 그이가 하나넘이다. “자기 자신의 생활의 본질。 l
자기 결단-의 충분한 자유 안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알지 옷하는 인간
에게 있어서는 하나닝 자신도 사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9 사밴
적 또는 자연주의적 신판에h鋼)에 대한 실존주의적 항거 의도는 이해
할 수 있마. 그러나 20세기의 자유 개념을 예수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신약성서의 그퍼스도에 대한 하나의 풍자화 o펴행IJ 휩)로 옐어지게 펀다.
하냐넘에 대하얘 섣대 복종한 예수는 또한 하나닝의 돗이란 모든 자
연파 모든 역사의 창조주요 주재자되시는 이의 뭇임을 잘 알고 있었
기 띠1 문이마 . 하냐넙의 뭇어1 는 구조외- 내용이 있는 것이마. 그는 십
계명의 빌-령자이다. 그는 긍흘을 기빼하시고 제물을 즐기지 않는다.
그는 그의 영령에 복종하기룹 요구할 뿐 아니라, 그를 밍고 그를 사
랑하기 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고 그가 창조하고 또 사랑하는 인간들
이 또한 서로 사랑하기 를 요구한다. 이 예수는 철저히 복종하였 다.
그 러 나 그는 또한 믿음파 사랑만이 복- 종을 가능케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그러고 이 모든 은사들은 마 하나닝이 주는 것임을 알았
다. 그의 복종은 “우조건적”이타는 말로 표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닝과의 판계에서 그와 만냐는 결단의 순간에 되어지는
것이었다. 그러으로 이 성격의 철저함은 그 자체 안에 있는 것도 아
니요 철저한 사랑과 희망과 민음에서 분러시킬 수 있는 무엇도 아니
었다. 이것은 아들로서의 복종이었다. 복종을 강요하는 어떤 원칙에
복종한다는 것만으로는 규정 지을 수 없는 그러한 아들의 복종이 다.
개신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에 주의 를 집중시키는 것과, 수도
원에서 그리스도의 깊은 겸비에 판성을 모A는 것을 고찰한다연, 그
것이 둘 다 같은 결 파를 안도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마. 그는 극단
의 신앙파 철저한 겸손S로 특정을 상았마. 그러나 신앙파 겸손은 그
덕옥(德目) 자체로서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에 대한 관계
성에서 다루어질 성질의 것이다. 즉, 마른 이들의 옥전에서 챙동하
32
체 1 장 앵속적인 운제
33
받은 말씀 Cthe Word) 자신이었으냐 그는 육체를 이루고 오셨다.
사람의 빛인 생명이 안간들의 암흑 속에 들어온 것이다. 잔살로 예
수 그라스도의 겸바에는 균형 잡히지 않은 무엇이 있다. 싶존주의
자들의 뒤를 이에 일어난 새로운 학파들이 예수를 과도하거1 겸바
있는 것이닥‘
34
제 l 장 영속적안 문제
35
척 아들 。1 되어 있는 판계상, 그는 또한 아어지 릇을 사 랑들에 게 냐다
내 는 도덕적 중보자가 되는것 이다. 二L 가온천한 안간적 에혹스를 가지
저 렇 게도 볼 수 있는 불분영한 것이 아니라, 0 1 것파 저것 을 함께 봉
수 있는(a mbi va lent) 것 이 었 마. 이 것 은 이 중의 운동을 내 포하고 있 다 .
사 란파 함께 하냐 넘을 향하고 하나념과 함께 사람을 향한다. 현세로
부터 타계로 헝:하고 타계로부터 현세 에 향한다. 행 위로부더 은헤 로,
은혜로부터 행위로, 시간우로부터 영원 에, 영원에서부터 시간적안 것
에 향한다. 하나닝의 도덕적 자걱 A로 볼 해, 예수 그러 스도는 하나
닝 절 만, 사람 철만의 중간적 존재안 것이 아니 라 단일한 안격우로서
온천한 사량으로 하냐닝을 향한 것이었으며 그의 아버지와 온선히 합
치 완 하냐닝 o 로서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중보적 ( mediato띠1)
존재 요, 중간석 ( med ian ) 존재 는 아니 었 마. 그는 중앙에 있 어 서 하냐
닝의 사랑파 사람의 사랑을 빛 내 는 분이 아니다. 그는 중간에서 한펀
으로 하냐닝께 복종하고 다른 한펀으로 가야사에게 복종한마거 냐, 하
냐닝을 받고 또 자연을 밍는다거나, 하냐냥에게 희 망을 두고 또 안
간 행동에도 희망을 건 다거냐 하는 이가 아니다. 그는 하나닝 A로부
터 사란에게, 사람으로부터 하나닝에게로 계속적으로 교매하는 운동
의 초점 으로 존재한 분이시마. 그러고 이 운동들은 질적 A로 다른 것
이어서, 말하자연, 아가페와 에 로스, 권위와 봄종, 약속과 희망, 겹
비와 영화, 진살파 신되 둥 이다.
36
체 ! 장 영속적안 운제
있는 것알까 ?
이 어 휘 에 대히여 신학자들이 내리는 정의는, 그 성질상 병신도들
이 내리는 정의와 같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평신도로서는 전문적 안
인류학자로 말마암아 제기된 논제에 개입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
나 적어도 처음에는 신학적인 설영이 붙지 않은 현상에 대한 정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안들 중에서 논의되는 점은
바로 야 신학적 설 영 안 것이다. 어떤 신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 문화
라는 것운 옴전히 세 속적 인, 그 본질상 우신적 (無神的)안 것으로 되어
37
있야서 예수 그러스도의 하나닝에 대하여는 적극적으로나 소극적으로
나 천혀 판켠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또 어떤 신학자
에 의하연 문화란 다만 소극적인 의미, 즉 하나닝을 적대하거나 우상
숭배로 하는 갱우에만 무신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신학자에 의하
연 문화는 하나닝 또는 하나닝의 법칙에 대한 자연적, 합리적 지식에
든든허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기독교안으로서는, 적어도 그 출
발에 있어서는 아주 신중하기 때문에, 이상에 열거한 그 어느 하나에
도 가담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논하고 있는 문화란 것은 헬라 · 로마 문명이라든가 중세기
또는 서양 운영이라든가 하는 어떤 특수한 사회의 그것에 국한된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인류학자들이 하는 것파 같이, 어떤 신
학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본질상 서양 문영파 판제되셔 있다고 생각
한다 이 서양 문명이란 말이 1 세기부터 시작된 하나의 계속되는 역
사적 사회를 지칭하는 것안지 또는 토인바가 말 하는 바와 같이, 일정
한 그리 고 다른 문화들을 흡수하여 친화(親和)한 한 문화 체 계 를 말
3R
제 1 창 영속적안 푼제
39
연 그것은 문화를 너무 좁은 뭇으로 규정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연,
운영이란 것은 더 진보한, 어쩌띤 더 도시적이고, 기술석이고, 노련
했다고까지 할 수 있는 사회 생활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32
우리가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주제로 논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안간
활동의 전석인 파정파 그 활동의 전적안 결과를 가리켜 혹은 문화라
하며 혹은 운영이라 하는 것이 통상적인 언어로 되는 것이다 .33 문화
란 것은 안간이 자연적 안 것 위에 억지로 뒤집어 씌운 “안공적 안, 제
이의 환경 ”이다. 이것은 언어, 관승, 이념, 신념, 전홍, 사회 조직,
전해받은 공예품, 기술석 진전, 그러고 가치 등A로 구성된 것이다.
40
제 1 자 C영속척안 운제
41
‘’
42
제 l 장 영속적안 운체
43
이 모든 것을안간을위하얘 하고있다는살용주의적 경헝:은 극복될 수
없는 것 A로 보 인다. 운화란 넓은 의미에서 참으로 안칸본위주의석인
것은 아니며, 다얀 어떤 특수한 운화가 있을 뿐이며, 그 특수문화 안
에서도 어떤 특수한 사회 또는 그 사회의 특수한 계급만이 자신들을
그 가치의 중심 또는 원천이라고 생각하고있다는점은 알단첨가되어
야 한다. 그러하여 그들이 어떤 보편적안 것의 대표자로 자기들의 특
수한 신분을 주장함으로써 자기들에 좋은 것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노
력을 정당화하려고 힘쓰고 있음은 상기해야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운제는 그형식과 종류가각양각색 임 이l 도 불구하고
어느것이나 마 가치의 장정적, 물질적 실현을 기하고 있마는 것이 득
44
제 1 장 영속적안 운제
45
에른, 다스리는 자와 마스림 을 받는 자 등의 다른 유형이 았다. 그러
고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도 특별한 직엽층, 칩단 등에서 그들
의 판송적안 개념에 따라 다르다. 뿐만 아니라, 개인들은 그들 각자
의 특수한 주장과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자는 그 개성에 있
어서 육신파 마음의 욕구, 자기, 또는 다안이나 자연 빛 초자연적 존
재자에 대한 판성 등 복장다단한 욕쿠를 가지고 있다. 가령 경 제적,
생물학적 해석을 문화에 적응한 다 하더라도, 그리고 경제적 생붙학
적 가치가 근본적인 것임을 시인한다 할지라도, 그 밖의 다른 거대한
상부 건축의 가치 들이 반드시 계산에 들어야 할 것이다 41 그러나 우
리가 푼화에 부딪치 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경험으로 말한다면 이련
해설에서 주장하는 그런 통얼성도 인정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사회
에서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각양 제 도의 활동 에 의하여 획득하는 가
치는 진살 로 수가 많다. 거기에는 아 주 다 르고 또 이교할 수도 없는
것도 있어서 사회는 수다한 그룹의 많은 사람을이 수마한 좋은 것들
을 성취 하고 보존해 온 것을 파도한 충돌 없이 어느 정도 결속시키려
고 힘쓰는 것뿐이다. 문화는 언제냐 평화와 번영, 정 의 와 질 서, 자유
와 공동복리 , 진리 와 미 (美) , 파학석 잔리 와 도댁 석 선 (월) , 기 숱적
숙련 파 살 제 적 지해, 거룩함과 생활 의 연 결을 추구하고 있마 . 이란
46
제 1 장 영속적안 운제
4. 전형적 해답들
47
어 거 스틴, 토마스 아퀴 나스와 루터 , 리 출파 폴스로이 등의 기 독교안
들과 판련하여 소개필 것이마. 여기서 , 이 천형적 해맙의 간단한
대략석 서술이 주어질 것안데 그것은 그 다음에 올 논술의 지침이
될 것이마. 이 전헝적 해당은 마섯 가지 유형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며, 그 중에서 세 유형은 서로 판련된 것으로서 그러스도와
문화가 서로 구밸되면서 피차 긍정되는, 중간행에 속하는 것 이 다.
그러냐 천체를 통하여 볼 해 이상한 동질적 유사점들이 발견될 줄
안다.
첫째 유형은 그러스도와 문화가 서로 대립된 것을 강조하는 해당이
다. 기독교안이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판슴이 어떤 것이든, 또는 인
간이 성취한 어떤 엽적을 이것이 보존하고 있든지 없든지 를 막론하고
그퍼스도는 이것에 반대의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며, 따라서 그는 사
람들에게 “양자택일" (兩者擇- )을 강요하는 것 A로 이해하고 있는 것
이다. 초대 교회사에 있어서 유대안들이 예수를 배 격한 것은 기독교언
이 유대적 문화에 적의〔敵향、)를 표시한 테 대한 결 과여서, 이에 대하
여 클라우스너 (Klausner)는 유대 인연을 변호하고 있 다. 그러 고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인에게서 법적 보호를 박탈한 것은 그들이 헬라·로마
문명을 도피하거나 공 격 한 데서 생긴 것이라 한다. 중세기에 수도원
규정 이 라든지 소종파 ω、宗派)운동에 있어 서 기 독교적 문화를 지 향하
는 사람은 “세상”을 포기하고 “거기서 나와 스스로 칼 라 서라”고 한
것도 같은 살례라 한다. 현내에 있어서도 이런 유 형 의 해담은 선교
사들이 새로 믿는 사람들에게 소위 이교적 사회의 판승파 기판에서
48
제 1 장영속척안문쩌
49
여 가장 찰 씌표되고 있다. 그러냐 초대나 현대에 있어서 그 밖에도
많은 대표자들이 이에 가담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간적 해당의 그룹이 았다. 그것은 이 책에서 제 4의
유형으로 기술펀 것야다. 얘기서는 그리스도와 문화 양자의 。l 중석,
붕가피적인 권위를 안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양자간의 상반성도 긍
정한마. 이렇게 해압하려는 사랑플은, 기독교인은 평생 동안, 서로
탑의되지 않는 두 권위에 동시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생기는 긴장성 안에서 살아가게 u} 렌이리는 것이마. 그들은 그라스
도의 주장을 세속 사회의 그것에 적용시키려는 이상에 진숭한 재 2,
저1 3 의 그룹들의 태도를 배격한다. 그 점에서는 그들은 “문화에 대렵
하는 그러스도”를 신봉하는 자들과 동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냐넘
어1 대한 복종이 사회 제도에 대한 복종을 전제로 하며 사회에 충성파
그 사회의 심판자안 그머스도에 대한 복종을 동시에 요청하는 점에서
그 신녕을 달리한다 . 01 리하여 사람은 두 가지 도덕에 복종하게 펀다.
50
제 1 장 영속적언 문제
51
제 2 장
1. 새 백성과 “세상”
52
제 2 장 운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53
수 그리스도의 야릉을 민고 그카 우리에게 주신 계맹대로 서로 사랑
할 것이니라. ‘ 6 야 요한 1서 기자가 잘 알고 있는 사랑에 매한 이중
의 계명, 7 즉 하나닝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그 사랑의
운동의 첫 시작이 사람으로푸터 하나넘 께로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닝
A로부터 사람을 향한 것이마. 이것을 확 안 한 결파로 어 떤 밴혁이 얼
어난 것을 본다. 즉 기독교안의 생 활에서 제 일 먼저 요구되는것은 하
나닝 을 믿는 것 이 아닐 수 없다는것이며 , 그하냐닝 신앙파하나닝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맏고 받아들이는 것파는 불가분의 판렌을 가지
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영적안 그러스도에만 층성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
도에 게도 충성해야 한다는 것 이 요한 1 서 기자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역사척 에수는 다만 역 사적 인물엘 뿐 아니라,
하나닝의 아들이어서 사랑파 의와 일을 성취시키는 능력파 명령하는
권위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하나념 아배지와 본걸적으로 연합되어 있
마는 것이마 8 이 예수 그러스도릎 사랑하고 맏는마는 두 파제와아울
러 그 밖에 다른 야녕, 즉 죄를 사하여 주는 것파 성령의 은사와 영원
한 생명 등에 도 밀첩한 판펀을 가지고 있 다. 그 러 냐 이상에 서 말한두
가지가 기독교인의 생활을 규정하는 중성이 펀다. 즉 예수를 그러스
도 하나닝의 아들로 시언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의미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면 기독교의 친교에 동참할 수 없 다는 것이마 .
。 1 기독교의 적극석 의의에 대한 간결한 진술에는 동시에 같은 정
도의 강력한부정적 연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스도와행제에 대한 충성
의 이변(꽃며)에은 문화 사희에 대한 배격이 나타나 았 다. 하나님의 자
녀로서의 형제단괴- 이 세상 사이에는 영백한 분리션이 그어져 있치 해
문 이다. 두 귀절 9 을 제외하고서는 “세상”이란용어는 이 기자가 의미
한 바에 의하면 교회 이외의 사회 천체를 의마한다. 신자도 물론 그
안에서 잘고 있 서는 하다 10 그러나 기독교안에 대한 그의 지시는,
6. 요알 3 :23.
7 요알 4 ’ 2 1.
8. C f. ibid. , 1 ‘ 1-3; 2:1 --2; 2:22-24; 3:8b; 4:2-3 , 9-10 , 14-15; 5:1- 5;
그 밖에 C. H. Dodd , Th e Johannine Epistles , pp. xxx.xxxvi; 1-6; 55-58.
9. 요알 2:2; 4: 14.
10. C f. Dodd , op. cit. , pp. 27 , 39-45.
54
제 2 창 문화에 대렁하는 그리스도
l!. 요일 2: 15.
12. 요일 5:19; 1:6; 2:8-9, ll; 3: 11-15.
13. Op. cit. , p. 42.
14. 요일 2:17; 2:8
15 요일 3:8 ; 5:4-5.
55
이 너무냐 가까이 왔다고 생각랬기 때문에 이런 점들에 대하얘 논의
할 기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란 상태에 있어서
는 밴하는 문화에 대한 관싱에서 떠나 오직 그리스도와 형제들에게
충성하는 것만이 전적 ξ로 요쿠되는 것이다.
덜 섬원하나 이 와 ùl 슷한 태도를 표시 한 것 이 2세기 기독교 문서
에 냐타나 았다. 그러 나 그 중에서도 터둘러안은 극단적안 래도블 취
하고 있다. 그 당시에 가장 애 독되던 서적들 중에서 ‘ 12사도의 교
훈,’ ‘헤르마스의 옥자, ’ ‘바나바의 서한,’ 그리고 ‘클레엔트의 제 1서
한’ 둥은 그러스도를 문화에서 분리시키는 생활 방식을 말하고 있 마.
그 중에 어떤 것은 요한 1서에서보다도 더 율법적이다. 그러스도 가
주되신다는 의미도 그러스도 또는 성서 에서 주어진 율법적인 연에 서
만 이해하려 한마. 하나닝의 은헤로 주어지는 새 생명 같은 것도 그
것을 값 없이 받는 은사와 현존한 현실로 생 각하는 것보다도 꼭종함 o
j료써 주어지는 보수로 여 기 는 것이었다 16 기독교인의 생 활의 관질이
은혜에 있다고 주장하든지 또는 율법 에 있다고 강조하든지 간에 그
자체는 어전히 새로운 것이었으며 고립된 사회였던 것이다 . 2세기에
공통A로 퍼져 있던 이런 유형의 이념은, 기 독교인은 유대 안이나 이
방안 이외에 저1 3 의 “민 족 즉 새 액성을 쿠성하고 있다는 신냄에
서 생긴 것이였마. 그러므로 클레벤트는 말하기를 “모든 것을 보시
고 모든 신들을 다스리시며 모든 육체 의 주가 되시는 하나 닝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러스도와 우리 플 택하셔 서 우리로 하여금 그를 통하
여 특별 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고 하였다 . 17 하르낙은 이 초대 신자
들의 신앙 내 용을 총팔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 그들은 생각
하기 흘 , 우리는 세계 보다도 더 오랜 존재이 다. ~ 세계는우리를 위하
여 창조되었다 . Q) 세계는 우리를 위하여 운영되고 있 다. @ 이 세계
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예속되었 무며 우리를 성기도록 되어 있다. (링
56
제 2 장 문화에 대랭하는 그리스도
57
여금 그들의 영광파 존귀가 당신께로부터 주야진 것임을 알게 하옵
시고 그들에 게 순종하는 것이 당신의 뜻에 만항함이 아닝을 알게 하
옵소서”한 것우로 보 아 알 수 있는 것이다 20
신약성서 기자 이외에 , “그리스도와 문화를 대립 ” 시키는 유형의 초
58
제 2 장 운화에 에렵하는 그리스도
59
를 알도록 하 71 위하여 오신 것이다 "26
60
제 2 장 운화에 대럽하는 그라스도
6l
고 그는 보았다. 터툴리얀은 최후의 심판의 광갱에 대하여 만족한 쾌
감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신으로 높 임을 받던 군주
플, 세상의 지자(智者)들, 철학자, 시인, 마극 작가들 , 극작가와 경기
자듭이 마 함께 암흑 속에 서 이 를 갈고 통곡하든지 또는 불바마 을결
속에서 둬 흔들바 고 있을 그 띠} 에 그블에꺼1 천대받던 옥수의 아듣 은
높이 돌려 영광받는 그 광장에 기 쁨을 느낀 것이마 34
이 북 샤프리 카의 위 대 한 신학자는 “문화에 대 립 하는 그러 스도”의
엽장을 매 표하는 기녕탑윤 세운 셈야다. 그러나 그의 표현은 그의 본
의보다도 더 파격하고 꾸준했던 것을 침작할 수 있다 35 문화가 이교
석 이라 한지라도 사실상 그 자신도 교회도 때써 포 문화에 의지하든지
또 는 가담하든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교회사상 만문화 운동의 최선봉에 선 거싱-(巨 像)이었다는 데는 틀럼
없 을 것이마.
2. 톨스토이의 문화 배척
62
제 2 창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63
사랑이 단 하나 았다. 그는 레오 툴스토이 (Leo Tolstoy) 였다 . 우리
는 그의 이론에 대하여 특별한 판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그
자신의 생활파 예술에서 표시한 그 위대하고 극적인 신녕과 서양파
동양, 기독교와 그 이전의 모든 면에 청투된 그 캄화력의 광염위한
것으로 보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툴스토이 의 큰 위기는 그가 중년 기 잘 지나 많은 곤란을 겪은 후 뷰
음서 의 예수 그러스도를 자기의 유일한, 그러고 명백한 권위로 받아
들인 그 순간에 결단펀 것이었다. 귀족3로 태어았고 풍부한 유산을
받았을 뿐 아니라 ‘천쟁파 펑화,’ ‘안냐 차레리나’의 작자로 유명한
그였지얀 그는 자기 존재의 무의마함과 사최가 평가하는 모든 가치
틀의 무가치함을 느낌무로써 자신의 생활에 결정적인 위협을 받고
있었나 . 그는 이 정망에서 안정」즈로 솟아오늘 수 없었마. 그는 실재
에 근거한 불가피석 진리로서 예수의 교훈을 안정하고, 동시 에 다
른 모든 권위의 오류를 시인하지 않고서는 그의 삶의 전적인 상태 에
서 새로운 촬동으로 옮걸 수가 없었던 것이다 37 플스로이에게 있
어서는, 예수 그러스도 는 언제냐 위대한 입 1섭자로셔 그의 계명은 안
간의 진정한 본성과 타락하지 않은 이성 의 명령에 부함되는 것이였
다. 예수가 참으로 하신 것은 사랑들에게 새 계영 을 주려는 데 있
었으매 그 계명은 만물의 본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실강한 것。 1
그의 희 싱의 중심을 이 루고 있다. 그는 그의 생애의 대 변혁에 관
하여 아래와 같이 썼다. “나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그의 계영에서 이
해하였마. 그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냐에게 축복이 되며 동시 에 모
듣 사람에게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이 계명을 지 키는
64
제 2 장 문화에 대랩하는 그리스도
40. Ibid. , pp. 376 f. , 386, 390 , 392 f. 404. C f. “ The Gospel in Brief,>> Works ,
Vo l. xi , pp. 163-167.
66
제 2 장 문화에 대렁하는 그러스로
67
마찬가지로 그객한 제도의 개혁이란 것도 전혀 불충분하마. 그리스도
는 교회를 창설하지 않았다. 그러고 그러스도의 교리 를 이해한 사람
이연 교회를 개혁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 교회와 그 의의 를 파멸시
켜 버리려 ” 할 것이마 44 이 교회에 매한 파제도 국가에 대한 비판과
‘ 68
제 2 창 문화에 대렁하는 그리스도
46. “ What Then Must We Do?" , Works , Vo l. xiv, pp. 209 ff. , 69f f., 311 ff.
47. “、Nhat I Believe," 찌'orks, Vol. xi , p. 420; cf “ A Confess ion ,>> Vo l. XI,
pp. 23 ff. ‘ On Life ," Vo l. xii , pp. 12 f.
48 “ Reason and Religion ," Works , Vo!. xii , p. 202; cf. “ A Confession ,’
Vol, xi , pp. 56 ff. , 73 f.
69
하였다 49 그가 부저항주의와 참 종교에 판한 설교냐 책자를 써 내든
데 그의 위대한 문학적 재능을 기울이지 아니한 대신에, 그는 비유와
。 1 야기책들을 써 내였마. 즉 “사 랑 있는 곳에 하나닝이 계시다
“ 주(主) 와 사람” 둥이 다.
70
제 2 장 문화에 얘렵하는 그리스도
3. 필요하나 부적절한 입장
71
세상파 2.] 천적안 얀냥에 있어서는 펼요하마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마.
72
제 2 장 문화에 대럽하는 그리스도
73
에거스탄이 로마 문화의 개혁을 시착한 것이었마. 베네믹트가 아니
라 프랜시스, 도마니크, 클례어보의 베르나르드가 중세기 사회의 개
혁을 성취한 것이다. 조오지 폭스 (George Fox) 가 아니라 펜 (William
Penn) 과 울연(John Woolman) 이 영 국파 마 국의 사회 제 도를 변화시
74
제 2 장 문화에 대랩하는 그려스드
75
아 철학적 사상을 샤용 하 였다. 터툴리얀은 그가 말하는 거의 모든 경
우에 자가가 로마안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너무 냐도 로
마의 법적 전동 안에 서 육성되었고 그 첼학에 의지했었기 때 문에 그
도움 없이는 기독교의 사건을 진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54 툴스토
이 에 내하여도 그가 1 9세 기 러시아 사람이라는 점에서 보연 잘 이해
할 수 있다 . 즉 그 시대 의 문화 운동에 의식석 또는 우의식적 A로 가
담한 사실과 러시아적 신비주의에서의 안간파 자연의 공동체적 의식
안에서 그플 볼 때 그는 밝히 이해되는 것이다. 극단적 기독교 그릎
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우는 마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그러스도
플 얀날 떼 그들의 문화, 즉 그들 자신의 한 부분무로 되 어 있기 예
76
제 2 장 운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77
적 규칙을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가령 그것이 그렇게 응용펀마 할
지라도 그것으로 알 상 생활의 모든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얻
을 수 있는 것 은 아니다 "55 다 른 데로부터 오는 도움이 필요하마.
즉 초 대 기독교에 있어서 는 유대 사회와 헬라적 유대 사회의 일반적 윤
리에서 도웅을 받았다 . 2세기의 기독교 윤리, 가령 ‘ 12사도의 교훈’
( Th e T eaching 01 the Twelve ) 이 나 ‘바나바의 서 간’ ( E pist! e 01 Barnabas)
등에 포항된 것은 신약성 서 와는 마른 외폐적안 자료을 엘마나 많이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 이다. 유대안이나 이방안
으로부터 구벨된 새 “만족”으로 자처 하는 이 기 독교 안 들은 자기 들
이 떠 나 온 그 옛 사회의 볍파 판습을 빌어마가 일상 생 활 의 필요
에 충당시켰마 . 그러나 그 볍이나 판슴시 가지고 있는 권위를 그대
료 받아들안 것은 아니였다. 수도원 규칙에 있어서도 갱우는 마찬
가지였마 누르시아의 에너l 닥드는 그의 모든 규융파 충고블 위한 성
서적 근거를 찾고 있었다. 그러 나 신약성서뿐 아니라, 성서 전체로
서도 그에게 충분한 자료플 제공하지 못하였다 . 그는 새 공동체 를 마
스려 가는 땅펀으쿄서의 규융을윤 사회 생 딴에서 얻은 안간 갱험 의
만영에서 찾지 않을 수 없였다. 성서적 안 것과 비성서적인 규율들을
함께 제시한 정신 자체가 벨씨 푼화와 판~,:ì 없이 다만 기독교안으
로만 행동한마는 것이 엘마나 불가능하마는 것을 보 여 주고 있는 것
이다. ~1 툴리안。 1 젤재와 안내 룹 권연하는 경우에 언제냐 나타나는
것은 스토 아 철학의 내용이었 마. 툴스로이가 우저항을 말하는 갱우
에 는 루소 (Rousseau) 석 사상이 그 안에 풍겨 있 었 다. 가령 예 수 그리
스도로부 터 추출한 것 이 외 에 다 른 아무 유산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
가 있 다고 하더 라도 이 은거 척 C띤居的) 공동체는 그들 자체 로서 의 새
문화를 발전시키 는 페로 지헝:하지 않을 수 없 냐 는 것이 사실이마.
55. Martin D ibe lius, A Fresh Approach to the New Te stament , p. 219.
78
제 2 장 문화에 대렵하는 그리스도
79
해에는 다 제거 되기 해문이라는 것 이다. “거기서는 우리들 사야에
아우 육욕 적 인 부끄러 움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가 제가하
56. “ To His Wife, " ( Aπti-Niceηe Fathers , Vo l. f( ) ; Cf, aIso “。n Monogamy,’
‘ On Exhortation to Chastity. ’
80
제 2 장 운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4 신 학적 문제들
82
‘、
58. 이 렌 형 태 로 이 성 파 계시 를 대 립 시 키 는 일은 다만 “문화에 대 립 하는 그리 스
도” 운통자 들에게만 국한판 것이 아니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부문에 있어
서 극단 적 기 독교 안을보다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지식의
문제에 대하여 배타적안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있다.
59. ()n the Flesh of Christ‘ ch. v.
83
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자연적” 지식과 문화 안에서 발견되는 부쾌한
이 해와의 사이에 염 연한 구별을 둔다. 뿐만 아니 라 그들은 영 (spirit) ,
또는 내적 광영으로 말 미암아 주 어진 계 시 와 역사적£로 주어지고 성
서를 통하여 천승펀 계시와의 사이에도 구벨을 둔다. 그들은 기독교
척 세계 이외에서 돌아가고 있는 이해와 기독교 안에 있는 지식파의
사이에 있는 구렬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러스도와 문화의 운제를 풀
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러스 도와 문화 문 찌에 내한 해답에 개재한 과재는 죄의
본성과 만연성의 문제 이 마 . 극단주의자들의 논리적 해당은 이런 것안
듯하마 즉 문화 안에는 죄가 가득하다. 그 러 나 기독교인들은 어둠에
서 나와 빛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세상우로부터
분리하는 근본적안 이 유는 거룩한 꽁동체를 부패에서 보존하려는 데
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 예 플 든 다연 어떤 퀘이커 교도냐 툴스로
이 같은 이들은 원죄의 교리 자체가 타협석안 기독교 자신 을 정당화
하는 척도 가 펀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마 . 여기서 그들은 신학계에 한
중요한 공한올 한 것이었마. 그것은 곧 안간의 죄 유전 을 사회적
견지에서 섣영하려는 경향 이마. 유쿠한 죄악의 역사를 형성한 책임은
아이들이 문화의 부패 속에서 육성되어 거기에 있는 것이요 교양받지
옷한 본성이 부패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죄와 거룩
함의 문제에 매한 이 런 해당은 배타석 기독교안 자신 들 가운데서도
천적안 지지를 받지 옷하였다. 한 가지 병액한 것은 거룩한 생활에 대
한 그러스도의 명령은 기독교안 자신을 안에서 항거에 봉착하는 것이
었 마. 그것은 그가 문화를 제승폈마는 것 때문이라기보마도 그의 주
어진 본성이 그러하기 때 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째문이다. 터툴리
안으로부터 툴스토이에 이 르기 까지 극단주의 자들의 금욕적 생 활, 성
(性), 음식파 금식, 분노, 수변에 이르기까지 그 실천하기 어려움은
84
제 2 장 운화에 대 립 하는 그리스도
85
이 요한 1 셔 기자는 은혜와 융엽을 결부시켜서 하냐님이 먼저 우려플
사랑하셨으므로 우리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감격 하여 우리 가 또한
하냐닝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 였 다. 터 툴리안
은 이보다 더 율법적이었 A며 많은 수도사들도 그러 하 였 다. 그러
나 이 “행위로 의롭마함을 얻으려 는” 자들을 대 항하여 프로테스단
트 가 얼 어 났 마. 그 런데 툴스로 이는 그 극단적안 행 위 주의자의 대표라
하겠 다. 그에게 았어서는 예 수 그러스도는 진 정 한 의미에서 다얀 새
율법의 교시-로 되 어 있 키 해문이며, 이 율법은 명백한 계명들로 진술
할 수 있음과 동시에 그것 을 준수하는 문제는 안간 자신 안에 본래부
터 있는 선 한 의 지 의 능력을 총집결함으로써 해 결할 수 있다고 주 장
했 기 때문이다. 그 러 나 율법주의 로 기울어지 는 경향파 아울러 터툴리
얀, 수도사, 소종파주의 자들 , 그리 고 툴스토 이 에 게 서 까지 도 그리 스
도 안에 있는 하나 넙£로 말미암 아 죄 사함받는 은헤어1 전적으로 의
지해야 한 다는 심정이 또한 반영되어 였다. 그러스도는 결 코 계 쇄 펜
새 사회 를 창건하고 새 율법을 제정한 이 가 아니다. 전 세계 의 죄
를 속량한 분이며 기독교인파 바 기 독교안 사이에 있 는 유 일한 차이 는
그 하는 엘 에 있 는 것 이 아니 라, 그 정 신 에 있는 것 이 라 하였다. 기
독교 안도 불신 자 와 마찬가지 일을 하 고 있 마. “ 같은 읍식을 먹으
61. TertuIlian , Apology , Xlii; cf. Tolstoy, “ Kingdom of God," Works , VoL
X X , pp. 452 ff.
86
체 2 장 문화에 대웹하는 그리스도
87
성서와 성서적 예수 그러스도를 포기하고, 인간의 최고 권위로서 개안
적인 양심을왕좌에 모신것이 되었다. 툴스토이는역사적 예수그러스
도를 불다〔佛햄) 안에, 예수 얀에, 공자 안에, 그리고 자기 자신 얀에
내재하는 영으로 내치시 켰다. 왜 극단주의 기독교인들이 맨 처음 그을
이 출발한 원리 즉 그러스도의 권위에서 그들을 이탈시키는 정신주의
(spiri tuaIism)의 유혹에 걸려드는지 그 속 깊은 데를 이해하기는 곤란
하다. 아마도 그러스도는 단 혼자서 예배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단 혼
자서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며, 극단적 기독교가 교회 얀에서 하나
의 중요한 운동으로 되어 있기는 하면서도 동시 에 기독교의 다른 유
형, 즉 그들파 반대되는 그룹파의 평형 없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
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88
제 3 장
문화의 그러스도
89
화 전체에 기독드교척 재가〔췄可)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
니다. 다만 진실한 사실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을 위하여 그리하는 것
이다. 그 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 본다면, 그틀은 합리적이요 항구적
언 것을 역사적이요 우연적인 것에서 분러시킨마. 그들의 근본척인
판섬은 현세적인 데 았 다 찰지라도 다계적인 것을 배제하지는 않는
다. 다만 초원척 안 세제는 시 간적 S로나 성 격적으로나 현세 생촬파
계속펀다고 이해하려 한마.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엽도 현
사회 생 활 얀에서 장차 올 더 좋은 내세 생활을 위하여 인간들을 훈
랜시키는 것으르 여긴 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교육자, 혹은 위대한 철
학자, 또는 개혁자로 간주되는 알 이 많다 . 두 세계 사이의 싣연 ( 深써j)
에 마리 블 놓는 것 과 같이 , 극단적 기 독교인이 냐 반(反)기 독교언들에
게는 녕지 못할 쿠령텅이로 보。 l 는 것에 그틀은 쉽게 다리플 가설하
는 것이마. 어띤 경우에는 그 구령텅이를 아주 무시해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갱 우에 는 역사적 발굴품이나 고대 사고 잉: 식의 파펀 퉁에서 안
출한 떤러한 자료들로 에워 버리기도 한다 뉴우먼 (F. W. Newman)이
나, 제 임 즈 (W illiam James) 등은 이 련 부류의 기 독교안을 성 리 학적 으
로 기 술하여 말하기 블 “한 벤 난 "c once. born) 사람, 또는 “건 강한 마음”
의 소유지. Che althy-minded) 라고 하였 다. 사회 학적 A로 그들 은 이 혁 명 론
자뜰이 리 하겠 다. “시 간의 파열 "(c n: cks in time) 말하자연 타락, 성육
90
제 3장 운화의 그려스포
91
이었다. 예수를 제외한다변 그들의 체계는 온전히 분해되고 말 것이
었 다”고 버 어 킷 (Burkitt) 교수는 설득력 있 케 논의 를 전개 하였 마. 그
들이 하려고 한 것은 복음을 그 당시의 파학과 철학에 조회-시키려는
것이었마. 마치 19세기의 기독교 변증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
리를 진화론적 용어로 서 울 하려 한 것과 같이, 이 사람들은 그 당시
즉 툴레 마 ( Ptolemy) 시 대 의 천문학과 soma.sema 즉 ‘ 육신은 영 혼의
92
제 3장 문화의 그려스도
7. Irenaeus, Against H eretics , fi , XXX i11, 9; cf. Ehrhard , op. cit. , pp. 162,
170 f.
93
펀이였고 목적이 아니었다. 그플이 성취한 것은 그것이 의식적이거냐
계획적이거나 또는 무의식적이거냐를 막론하고 그 노력의 총결론을
말한다변 새 신앙과 묵은 세계 사이에 있는 모든 긴장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엘마나 복음을 보존할 수 있었는
가 하는 것은 벨문제이다. 여기서 지석해야 할 점은 영지주의자들은
문화에 대해서나 그러스도에 대해서나 늘 골라장는 선택의 태도를 취
하고 있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자기 들의 판점 에서 저속하다
고 생각되는 것은 불문 에 붙이고 가장 종교적이요 기독교적이라고 보
얘치는 것만을 육성하였 다 8
이 영지주의 운동은 그 극단석안 대표자들이 교회에서는 이단으로
정죄받았음에도 불쿠하고 기독교 역사 안에서 가장 강력한 운동£
로 냐타나 있다. 그 중심적안 것을 따진마면, 그들은 기 독교를 교회
로보다는 종교로 해석하려 하였£며, 교회란 일종 의 종교적 회합A
j료 해석했으며 새 사회로는 해석하지 않았마. 그들은 예수 그러스도
를 한 종교적 진리의 계시자로 만 본 것이 아니 라 일종의 신A로 보았
다. 즉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보았 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삶의 주
(主)로 모시는 것은 아니였£며, 특허 만물의 창조주요 통치자인 하냐
념의 아들로는 보지 않았 다. 영 지 주의 7~' 종교는 보존하연 서 기 독교 율
리는 상실했다고 말 하는 것은 너무냐 단순한 해석이 마. 즉 “ 종교”와
“윤리 ”라는 용어를 기독교의 특성£로 안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 가 문
화적 입장을 시인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 즉 삶의 다원론적 개념 을 안
정하는 것이어서 생활 안에서 여러 활동 분야를 첨가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짜르는 난청은 영지주의의 경우에 서 드러난 대로 이른바 종교라
고불리워지는 것이 윤리에서 분리될 해 그것은교회에서 말하는종 교
와 관이(判짧)한 것£로 펀다 는 사실이다 . 곧 하나의 형이상학이요,
、 하나의 “ 영지 " CGnos is) 요, 일종의 신비적 종파는 되나, 전 생활을 자
배하는 신앙이 되지는 못한다.
94
제 3장 문화의 그려스도
95
행한 것이라 하였다. 철학지-들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국
가와 그 시민을 놓보는 데 있어서 ...... 생 활로 냐 교훈으로나 그들은
2. “문화 - 프로테스탄티즘”과 리즐
96
제 3창 문화의 그리스도
97
우치는 데 있어서 철학자들이나 유대안보다 휠씬 우윌하다. 뿐얀 아
니라 더 나아가 사랑과 화평 과 공동 요구와 상부상조의 연대 적 단결
로 전 인류를 한 카족으로 연합하는 데 크케 우월하다 "13 철학자
들, 정치가들, 혁영카들, 시인들, 또는 소설가들로셔 제퍼슨과 같
98
제 3장 문화의 그려스도
14. 0η Religioη, tr. by John Oman , 1893; cf, pp. 246 , 249, 178 et p assim
15. K . Barth , D ie Protestantische Theologie im 19. Jah rhμndert, 1947, pp
387 ff.; c f. K. Barth , “ Schleiermacher" in his D ie Theologie uη d die
Kirche , 1928 , pp. 136 ff.; Richard B. Brandt , The Philosop hy of
Schleiermach er , 194 1, pp. 166 ff. , Schleiermacher 가 기 독교 윤려 와 천
학적 윤리의 통일 성에 대하얘 가장 척결하게 진솔한 것은 그의 논문 “덕
의 이 념 에 대 한 철 학적 논고”이 다. 그것 은 Saemmtliche W erke(Reimer) ,
Pt. II! , Vo J. n, pp. 350 ff 에 있 약.
99
른 방향에서 해밥을 제콩하고 었였다. 그러하얘 그러스도와 문명과의
구 별을 유지함파 동시에 이 양자에 대한 충성도 유치하려고 하였다.
오늘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전 세대를 문화척 프로테스탄다증 시대
라고 부르는 데까지 이르렀다 . 그러나 무조건하고 그렌 것은 물론 아
니 다. 우리 는 키에 르케 고르나 모오리 스(F. D. Maurice) 같은 19세 커
신학자들의 도움으로써 이 경 향에 비 판을 가해 가면서 그리 하는 것 이
다. 그리스도를 문화에 합치시키는 운동은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그 젤정에 달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의 가장 대표적안 신학자안 리층
이 아마도 문화의 그리스도 유형의 가창 훌륭한 현내적 섣명을 제
공한 사랑이라 하겠다. 제퍼슨이나 칸트와는 달라서 리층은 신약성
서의 여1 수 그러스도에게 정근되어 있다 . 진살로 그는 애떤 변에서 본
다변 복음서와 초대 교회사 연구에 대한 현대 학자의 정확성을 총
칩중시킨 선구자라 하겠 다. 그는 그러스도를 샤랑하고 교회블 멸시하
는 문화안을보다도 휠씬 더 교회 의 신조를 고수한 사랑이었마. 그는
그 자신을 기독교 공통체의 일원으로 자처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
써만 죄와 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말할 수 있케 되는 것이라 하였
다. 그러나 그는 또한 문화적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성실하케 부담하
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학, 국가, 경제 생활과 거숭 퉁에 대하여 그
의 동시대안안 롤스토이와는 극단적으로 만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
었다.
리층의 신학에는 두 주춧돌이 있다. 그것은 계시와 이성 (理性)이 아
니라 그리스도와 문화였다. 모든것에 대하여 자명한, 이성의 어떤 궁
극적 진리 를 추구함으로써 커 독교의 자기 비 판이 가능하며 또한 그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사상을 그는 얀호허 거부했다. 즉, 몇 가
지 종교적 제도에 대한 교의적 선언을 수락한다거나, 살재에 대한 어
떤 유력한 강정이나 강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고찰함A로써 그렬 수
있다는 사상을 배격했다. “신학이란 것은 71 독교의 본래척 내용을 적
극적안 형식으로 진술하는 것이어서 그 재료 내용은 신약성서 이외의
다른 아무데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16 성서의 켠위에 대
한 프로테스탄트 교리는 이 펄요성의 기 초를 구성해 주지는 않지만,
100
제 3 창 문화의 그리스도
101
의 승리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칸트의 용어대로 하연 목적의 왕국
이요, 신약성서걱인 용어로서는 하나님의 냐라를 성취하려는 것이마.
이 두 가지 출발쉽을 가진 리층은 양극\兩웰)의 긴장성, 존재의
재 단계 또는 기타의 것을 채용힘으로써 두 구별된 원리릎 결합시키
102
제 3장 운화의 그려스도
21. Unterricht in der christlichen Religion , pp. 53 f.; cf. .ll“sti!icatio까 aπd
Recoπciliation, pp. 661 ff
22. Just떠 cation and Recoπciliation, chap. \1.
103
해펀 그리스도라는 것야다. “하나념 냐라라는 기독교적 이녕은 안류의
연한을의미한마. 그연합은 모든성원들의 전혀 자연적 사정과특수사
정윷 초월한 호혜적(互惠性) 도먹 행위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이며 외연
적으로냐 내적으로나 가장 포팔적안 것이마”라고 리출은 말하였다 23
만알 여기에 하냐닝의 현현(願現)에서 바라는예수의 종말론적 희망야
결핍되 어 있마는 것이 사실이라연, 하늘과 땅의 주 가 되시는 초월석
하냐닝의 현재적인 통치 플 믿는 비종말론적 신앙도 또한 결띔되 어 있
다. 오든 것은 사감과 사람의 일에 판련되어 있다. “하나넙 ”이 란 만
어는 하나의 삽입어처럼 보안다. 후세의 리층주의자들이 “하나닝 냐
라”란 말을 “안긴의 형제됨 (brotherhood) " 이란말로 바꾼 것이 오히려
제격 일 는지 모른다. 이 운화적 사엽에서의 안간 노력의 옥석에 대한 말
은 19세기 사상과 온전히 합치된다. 위에서 이마 말한 바와같이 리출
이 말하는 예수 그러스도의 하냐넘 나라 개냉이란 것은 실질적 A로는
칸트의 목적의 왕국이란 것과 같은 것이며 , 전 안류를 사랑파 평화와
공동 요구와 상호부조(재 ICJs사助)에 의 하여 한 가족으로 모은다는 제퍼
슨의 생각과 밀접하게 판련되어 있다. 그 정치적 판점에 있어서는 테
니슨의 “전 인류의 의회와 세계의 연망”이라는 말과 통한다. 이것은
민주주 의 석 문화로 말마암아 평가된 위대한 가치들의 종합이다. 즉
자유와 개인의 본질척안 가치와 사회적 협동파 세계 평화 등의 종합
이마 .
104
제 3 창 문화의 그려스도
105
분적으로는 그 자신의 영향력 혜 문 이 였지만, 그보다도 그가 세 계 대
천 이전의 세계에 널리 퍼지고 갚이 뿌리 박힌 사상을 명백하게 표현
한 대표자였기 해문이다 . 그러스도와 문화에 대한 그의 이해〔理解)는
싹러 지도적 신학자들파 교인들의 비 난으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재생성
되 었 다. 라우웬 부쉬 (Walter Rausch enbusch)의 사회 복음 운동도 대 체
로 그리즈도와 복음에 대한 그 와 동일한 해석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
1 06
제 3 장 운화의 그리스도
3. 문화적 신앙에 대한 변호
107
식으로운화적 프로테스탄트를 공격하는 한, 결국중요한 점에서 서로
근본적 인 합치를 보고 있는 사람들끼리 의 집안 싸움에 불과한 것 이 라
하겠다 . 그 요점이란 것은 그러스도는 문화의 그러스도이며 안깐들의
최대 엄우는 그의 최선의 문화를 유치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기독교
108
제 3장 운화의 그리스도
109
득세 하는 그룹들에 게 로 나아가는 선교사들이 다. 01 렌 환경 에 았으
므로 그들은 반드시 그펠 리는 없겠지만, 흔히 그들이 상대하는 자들
의 계급 의식에 동참하기 쉽다. 그러하여 그들이 무지(無知)하고 저
속한 신도의 무리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애써 보여 주기위하여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슬픈 파오이다. 그러나 사회적무로 낮
은 지위에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그러스도가 그들의 비천함
에 동참했다는 사실에보다도 강자(彈者)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다는
데에 더 않은 갇사를 느끼는 사람들이 빠지는 꼭같은 죄라 하겠다.
。 l 련 고찰은 잠깐 그만 두고라도 사회의 지도적 지위에 있는 그룹을
기독교안이 되게 하는 것이 직정 대중을 회개시키는 선교 운동에 옷
지 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획-싣하마 . 바울은 그의 회
개와 능력에 있어서 하나의 상정적 안물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멸 시
하던 문화인으로서 그러스도의 추종자 카 된 수많은 사란들의 대표
자이다.
문화의 그러스도라는 입장을취하는사당들은이런 또는 이와 w] 슷한
방법으로 복음의 뢰-펀척 의미와 예수가 택함받은 성도의 소수 집단의
구주일 뿐 아니라 세계의 쿠주 라는 진리를 살증하려 한다. 뿐만 아니
라, 신약성서에 냐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파 생애에서 그 중점적
인 요소들을 지적해 냉으로써 극단적 기독교인들이 간파한 점을 보
충하였다. 그리스도는 그 시대에 적응하였다 . 그는 그의 사회 법규들
을 안정하였마 그는 그의 민족인 이스라옐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
하여 제자들을 보내었다. 그는 세기의 종말을 지적했을뿐 아니라, 시
간 안에서의 심판 마시 말하면 살로암 탑의 붕괴와 예루살렘의 멸망
둥을 말하였마. 그는 그의 민족파 그의 시 대의 정치석 파당파 함께
110
제 3장 운화의 그려스도
111
정의블 위한 정치적 배려, 종교적 진살성에 내한 교회적 판성 릉을셔
느 의마에서는 안정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으로 그들은 문화와의
접 촉을 꺼 리 지 않는마. 그리 하여 그들은 예 수를 지자 L 智 者 ), 예 언자,
진정한 대제사장, 절대 공정한 재판자, 대중의 행복을 위한 열정에
불다는 개혁자 등으로제시한다. 동시에 그들은세속적 부패와 투쟁하
는모든 세력들을 격려한다. 영지주의자블은 교회가은거적 종파로 화
하는 것을 막는 데 공한하였다. 아벨라르드는 중세기 사회의 첼학석,
과학적 계몽을 위하여 준비 하였£며 고행 〈함 行 )제도의 규칙 을 개선하
는 데 힘이 되였마. 문화 프로테스탄트주의자들은 산엽 문화가 그 독
특한 부패에서 졸。 1 킬 것을 끊임없이 설교하고 있마.
이 입장에 매하여 아래와 같은 반대론이 있을 것이마. 즉 문화
112
제 3창 문화의 그리스도
4. 신학적 반론
11 3
하는 일에 지나치게 쏠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문화의 운
제에 대한 문화 측 해답이 신약성서에 있는 예수의 모습을 끊임없이
왜곡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조화를 지향하는
그들의 노력 때운에 영지주의자나 문화적 프로테스탄트는 다 같이 욱
시적 복음과 새로운 예수의 생애를 그려 내는것은이상하게도 바랍직
한 알이라고 알고 있다. 二들유 신약성서 의 복장한 이야기와 해석에서
어떤 단펀들을 택하여 그것을 여l 수의 특색이라고 주장하며, 거기에 많
은 설 1 을 껏붙여서 그들 냐릉의 신화적안 예수를 재 건한 마. 어떤 사
11 4
제 3 장 문화의 그려스로
115
척 사상 경향이다. 그러나 극단주의자플 자신이 어느 정 도 이성에 의
손하지 않융 수 없는 것과 갚이 문화적 기 독교인들도 순수한 역사적
사실에 판여하지 않고는 그뜰의 함리호1- 작엽을 진행시킬 수는 없는
것이며, 이 성 이 우한자와 도덕율을 마루는 경우에는 어떤 절 대자 자
신의 자기 계시적 행동과 판켠을 맺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 독교
영지 주의 자 들 은 이교도들과 함께 “ 말씀 이 육 신윤 이 루었 다” 는 그L 백에
116
제 3창 문화의 그려스도
117
종교적 엽적까지도 거의 존중하지 않으며, 이 세상을 고통에서 구출
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위한 어떤 지레점을 인간이 딸견하리라는 것을
벨로 믿 지 않는 신자들의 업 장을 짜르게 된다.
극단주의 자들과 같이 문화의 그리 스도 신자들도 율법 파 은혜 의
양극성을 논할 때 율법 펀으로 기울어진마. 안간은 하나넙파(사변
석, 살천적) 이 성의 법 칙에 순종함으로써 진리 해득자와 천국 시만
A로서 의 높은 운영을 성취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마. 하나닝
의 은총 행위는 안간들의 게획에 대한 보조에 불과하다. 어떤 경 우에
는 하나닝파 그의 사죄와, 감사의 기도까지도 어떤 안 간적 목적을 위
한 방펀으로 보이 게 된 마. 안간이 자연에 대 하여 신석 (神的)인 종주
권〔宗主橋)을 주장하기 위하애는 하나닝 의 은혜를 믿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 다. 문화적 기독교는 척어도 현대에 있어서는 언제나 극단으
로 자기 신뢰에 기울어지는 휴우머니즘적 운동을 만들에 낸마 . 그들
은 은혜 의 교리, 특허 은혜에 의지하라는 교리를 싫어한다. 그것은
그 교리가 인간의 의의를 강소시키며 안간의 의지 를 약화하기 해문이
라는 것 야 다 . 그려 나 그와 만배 방향에 있는 운동틀도 얀플어 낸다 . 이
118
제 3장 운화의 그려스로
시 키 려 한다. 그러 냐 문제는 이 내 재척 , 합리 적 , 정 신적 , 도덕 적 인 원
리가 자연과 그 자연을 산출하고 지배하는 능력 둥과 어떤 판계를 가
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복잡한 사변에 의하여
이것을 해영하려 하연마. 그러나 현대인은 자연즈ζ호부터 하나님께로
추리해 가는 옹갖 논증을 거부하고 결국에 가서는 하냐넘이 깜무로
계시냐고 하는 얀타까운 문제를 일£키고 말았다. 그러고 안간의 종
교적, 도덕적 가치 판단들이 또한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이기도 한
가를 질운하게 되었다. 그는 운화석, 윤리적 생활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지진과 불 속에 냐타난 능력과 조용히, 작은
목소리로 안간의 마음속에 속삭이듯 말하는 그분 사이에는 어떤 일
치점이 있는 것인가, 안간이 자연에 직면할 때 그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자는 무자비하고 맹목적인 힘안지 ,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인지를 쿠명하는 문제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전능한 창조주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궁극에는 운화를 보존하려는 사랑들의 사변석안
문제가 아니라 아주 근본적인 문제안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종말론
적 1'1 전, 즉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무자비하고 캄캄한 멸망의 운영이
자기의 이상적 세계 위에서 임박해 있음을 보았을 때만 일어냐는 문제
가 아니 다. 안간의 과학과 그의 건축은 자연의 주어 진 질서 에 순응하
지 않는 경우에는 도저히 설 수 없마는 사살을 말견할 때에도 알어냐
는 운제이다. 그리하여 운화적 기독교의 정신주의와 이상주의는 자
연주의의 도전을 받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 도전에서 “하
나님은 영이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다만 3분의 1의 진리만을 주장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다른 문제도 생겨난
다. 즉 역사적 제 사건들이 운영 안에 냐타난 내재적 정신(영)들은
그러스도의 영파 모순되기도 한다는 점을 드러낼 때 얼어난마. 이리
하여 예수가 문화의 그러스도라는 점을 정직하게 고백하려연 이보다
도 훨씬 그 이상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다소간 영
백해지는 것이다.
119
제 4 장
문화 위에 있는 그러스도
1. 중립적 교회
12 0
제 4창 문화 위에 였 는 그리스도
121
점 이 다-이 하나닝은 전능하신 창조주에 게 서 분리 된 그러 스도도 아니
요, 예수 그러스도에게서 분리펀 자연의 창조주도 아니다. 그들이 의
미하는 하냐넙은 ‘그리스도 얀에 있는 하나닝,’ ‘하나닝 안에 있는
그리스도’이마- 그리고 이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복종은 자연적 문
화적 인간의 구체적 현실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마는 점이마. 그
의 성(性) 생활, 먹고 마시는 것, 다안을 명령하고 복종하고 하는 판
계는 하냐닝의 명령 아래에서, 하나님의 마스림을 받고 있는 하나님
의 영역안 것이마. 인간의 활동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의 지성과
의지 릎 사용하지 않은 채, 순순히 본능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수 없 A
매, 또한 인간은 필연의 세계에 살연서도 자유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
1 22
제 4장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123
툴라안, 아벨라르드, 툴스토이, 리층 등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의 단순화 작엽은 그들의 가장 뚜렷한 특정과 주도적 동
기들을 지적하는 데 공헨하는 바 있을 것이다.
2. 그리스도와 문화의 종합
124
제 4 장 운화 위에 있논 그리스도
1 25
지어져 있기 채문에 그련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푸정하지 않는 한,
운화 이천의 자연석 요구에 불응한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간
은 생활로 그것을 긍정한마. 안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
다. 二l것은 그가 사회석, 지적 , 그리고 자유하게 지어져 있기 때문
126
제 4장 운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127
독교인의 소영을 제시하고 있다 . “우리 모든 자의 목숨파 맛 먹는 그
의 옥숭을 우리 하나하나블 위하여 주셨 다. 그 러므로 그는 우리도 또
한 서로 냥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주라고 명령하신다. 만 일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형제에게 벚쳤다면, 그리고 주닝 무로 더불어 그렌 계약
5. Ibid. , xxxvii.
6. C f. H.O. Lietzmann , The Foundjηg of the Church Uniνersal, chap. xiii.
128
제 4창 문화 위에 있는 그려스도
130
제 4장 운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131
" 1 러한 태도는 위내한 사회 제도의 유지와 개선을 위한 의무감에서라
기보다, 건전한 도먹파 학문을 지속하려는 교회의 책임강에서 취해진
것이다. 이것은 문화를 기독교화하려는 것보다도 기독교안을 문화적
으로 만들려는 데 더 밟은 관심을 표시하고 았다. 기독교 역사상의
최대의 종합주의자라고 생 각할 수 있는 토마스 아퀴 나스 (Thomas
Aquinas) 는 기독교의 모든 위대한 제도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선
적으로 수락했고 또 성취했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대표자일 것
。1 다 . 부분적 £로는 로마 카툴릭 교회 가 그에 게 전적 무로 찬동했기
132
제 4 장 운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133
우리는 여기서 토마스가 문화의 운라와 복음익 윤리를 종합하려 했
넌 태 도에 중점 을 두고 논하려 한마. 살천적 철학과 실천 신학의 。f
러 분야에서와 마찬가지 로, 안생의 목석, 인간의 덕행, 그러고 볍에
판한 그의 이론에 있어서도 그는 문화적 이성 3로 식렬된 필요조건파
예수가 말한 것을 신적〈꽤的) 영령파 약속이라는 한체제 안에 결합시
켰다. 예수가 말한 것이란 교양인이 알고 있는 만물의 목적에 근거한
희망, 그러고 그러스도의 단생, 생애, 죽음, 부활에 근거한 희망을
말한마. 종합에 대한 그의 모든 노력은 삼위알체 교리가 운자 그대로
의 표현이라는 신냄에서 유도된 것이었다(그 토대 위에 서 있지는 않
더 라도). 즉 자연의 창초와 여1 수 그러 스도와 내 재 영 (內tE靈) 은 한 본
질에 속한다는 교리 이 다. 사람은 한 진리 로 나아가는 세 가지 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 진리로 가는 걸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134
제 4창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135
를통하얘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불완전한챙복에 불파하다. 01
것을 넘어 영원 안에 또 하나의 목적 이 있다. 모든 안간 노력은 이
옥적을 위한 하나의 부족한 준비에 불파하다. 이 궁극적 행복의 획
득은 안간으로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것 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하얘 하나넘우로 말미암아 안간에게 값 없 이 주어지는 것 이다. 이것
은 영상에 의하여 블완전한 행복을 얻는 사 람들에게 주어질 뿐 아니
라, 오히려 ,,] 철학적, 닝l 수도원적 환경 가 운데서 자 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바 르거1 산 사랑들에게도 주어 진다 . 이것은 또한 최 안에게 도
주어진다 .1 7 토마스는 인간이 단정한 실제 생훤 에서 욱상 생활의 불
완천 한 챙 복」즈로 올라 가고, 마시 거 기 서 영원한 축복의 완전한 행 복
으로 올라간다는 어 떤 상승적 계 단을 만둡으로써 안이 한 그의 종 합
체계 룹 구성하려 고는 하지 않았 마. 단 계가 있기는 하마. 그러냐 사란
이 그 하나하나의 단계 를 올라 가려 면 그 때 마다 바 약 01용짧〉이 요청 된
다. 그리고 그 비약은 한 중간적 단계를 넘어뛰게 한마 . 뿐만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 는 계단은 몽시 가파르 기 해 문에 언제나 인간 노력 이
외에 위고 부터 주어지는 성 례천적 능력야 있어야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3ô
제 4 창 운화위에 있는 그리스도
137
。 l 불가능한 덕행인 것도 아니다. 그것이 행운의 우발적인 선물인 것
은 아니다. 또는 해때로 이상한 도댁적, 정신석 천재들을 산출시키는
138
세 4 깅- 운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139
하나하나가 각자의 특수한 목석 에 봉사하연서 동시 에 서 로 봉사하는
140
제 4장 운화위 에 있는 그리스도
141
독교 만주주의 ”에 대 하얘 논하였 다. 그러 나 레 오는 봉건사회의 가장
적 (家長的) 정 신으로 이 를 말하였 고, 토마스가 중세 기 정 신에 동참한
것같이 레오도 현대 정치 운동에 동참한 자로서 이를 논한 것은 아니
었다 27 그가 추구한 것은 그리스도와현대 문화의 종합이 아니라, 새
로운 문화의 철학과 제도들을 재건하려는 것이었마. 이것은 종합주의
적 유행에 속한마는 것보다도 문화석 기독교의 알종안 것이마. 그들
의 근본적인 충성은 일종의 문화에 바쳐지고 있다. 그 문화는 물론
예수 그러스도 특히 그의 교회가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화이
다. 그러나 예수의 통치와 주권이 그들의 교리와 조직체와 운화적 종
교의 제도들의 승판들파 너우나 합치되어 있기 해운에, 토마스주의의
특색안 역동적 평형이 결핍되었다. 마만 수락판 학설 자체, 즉 옛 토
마스의 학설이 현재에 반사〔反照、) 또는 굴철 (J협 折) 펀 것을 볼 수 있을
뿐아마 . 레오 13세 는 이 렇 게 썼다. “그러스도의 입이라는 말에서, 우
리 는 도덕 의 자연적 교훈 들 또는 옛 사람들이 얻은 초자연적 지식 ,
즉 예 수 그리 스도 자신의 설영파 해석과 재가〔눴피)로 말미암아 완성
되고 최고의 경 지에 오른 모든 지식 을 의미할 뿐 아니 라, 또한 모든
142
제 4장 운화 위에 었는 그리스도
143
서 그것을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이렌 해밥을 갈망하는 사함은 많
다. 01 것이 주어져야 한다는요청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련해
탑도 보이 지 않는다. 위대 한 사상가의 산물로서 든, 그보다도 더 중요
한 사회 생활에서의 설제 활동, 여론의 조성, 모든 사람에게 스며 있
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서 둔 그란 해 답은 보이 지 않는마.
3. 종합의 문제점
144
제 4창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것이다.
아마도 엘마의 극단적, 배타적 기독교안을 제의하고서는 모든 신자
카 마 일반 사회에서의 덕챙괴- 공정한 사회 제도의 중요성에 대한 종
합주의자들의 확신에 찬동할 것이다. 다음에 다시 언급할 것이지만,
어거스틴 파와 루터파에서는 이 덕행과 제도를 다른 빛 가운데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추종자와, 하나닝의 공동 사회 안에 있는
각자시민들을 위하여는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같이 안정하고 있
다. 토마스식의 종합주의와 구 옐 되는 점은, 안간괴- 그 세계의 주어진
창조완 본성 안에서 정당성의 근거 를 발견하려는 토마스의 판섬점 이
다. 그의 주장, 즉 “당 위 "Cought)는 “현존 "Cis)에 근거해 았다는 것〔그
145
추와구세주는 하나야라는원칙, 그러고 구원이 아무리 창조를 초월한
마 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창조된 것의 파기 C破棄)를 의마하지 않는마는
원칙이다. 살제적으로 말한다연 속량받은 자들의 챙동은 아무리 율랩
을 초월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율볍 생활 이하의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그리고 율볍은 다얀 인간의 말명으로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는 하냐닝의 듯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신념에서 종합주의자들은 신
자가 불신자들파 협동해야 할 사엽에 대한 합리적안 근거를 기독교인
들에게 제꽁하였마. 바록 터플러안이 불신자들을 향하여 “우리가 당
신들파 함께 항해하며, 당신들과 함께 싸우며, 당신을파 함께 경작하
며 .. .... 교통에 있어서도 당신들과 연합해 있다”라고 말했다 할지라도,
그는 기독교안으로서 그런 연합 전선에 가담하는 이흔적 근거를 영시
한 알이 없으며, 어떻게 또는 어느 뱀위 안에서 협동이 가능한가를 지
시하지도 않았다. 그 반연에 문호썩 기독교안은 기독교의 독특한 원칙
을을 애매하게 할 정도로 불신자들파 공동노선을 만들어 버린다. 다
만 종합주의자만이 세상 일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신자로 하여금
즐겹게 그리고 지혜롭게 불신자와 협력하게 하며, 동시에 기독교적 신
앙파 생활의 특수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보이리라.
이 종합주의적 해답의 성취 에 나란히하여, 다른 한 입장이 있다.
그것 은 피조물을 위한 창조주의 계획에 대한 합리척 지식 이상의 것,
자연 볍척의 명령파 확인에 대한 호의적 복종 이상의 무엇을 복음은
약속하고 요청 한다는 사실의 단호한 입 증이 다. 이 극단적 비 판가들
은 클폐 벤트와 토마스가 사랑의 목표와 법 에 대 하얘 얼마나 높은 견해
를 가지고 있다는 사살을 잊어버리는 일이 너무 많마. 종합주의자들
에게 있어서는, 기독교안의 생활은 따치 여l 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종의 생활파 같다. 그들은 그들의 의무를 온천히 다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들에서 알하고 식탁에서 시중들고 집 안팎을 정돈한
다 할지라도 여전히 냐는 무약한 종이라고 하는것이마. 그러나 이 무
익한 종이 끔날에 임금의 잔치에 초대받게 펜다. 그러하여 그들은 이
중의 준벼를 해 온 셈이 된다. 그들의 모든 천한 일이 기다리 는 마
음의 블꽃으로 말마 암아 변화를 받는다. 그들의 월급 봉투에 대한
대망이 아니라, 돈으로살 수 없는 값 없이 주어지는 기쁨에의 대망이
다. 거기에는 언제나 더 많은 것, 다은 것이 붙어 있다. 거기에는 연
146
제 4 장 운화위에 있는 그려스도
147
캡칙에 대한 문화석 견해와 그 볍 자체를 동일 시하는 폐단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마는 것이 사 실이 마. 인간의 천성에 대한 클띄1
엔트익 이해는 흔허는 슬플 정도로 지역석 특색을 지난다. 로마스 아
퀴나스익 자견 낄서에 대한 위계적 견 해 도 역사 적 이 요, 중세 기석이
다 . 지역석 , 역사석 진리들은 그 헨실에 상응한다는 의미에서 잔리 알
지 모르냐 역사 단펜석임을 연치 옷젤 것 이녁 , 따라서 지냐치게 강
조할 "'11 는 ù1 진리로 되는 것이마. 종합주의, 그것은 단펀석, 역사석
안 것으로 구상되었고 , 창조의 볍칙을 상대적 공식 안에서, 그러고
속량의 법칙에 ::J1한 단펀석안 예견과 함께 이해하고 있는 것안 만큼,
그 자 퍼 가 지역적이요, 상정 걱안 것이 되지 않올 수 없는 것 이다. 그
러므로 종합주의 자가 。 l 사실을 안정하는 경 우에는 그들 자신의 해맙
이외의 다른 것도 암아들얄 용의가 생걸 것 이마 . 그란 경우에 그는 사
실상 이 렇 게 말한 것 이다. 즉 모든 문화는 계속하여 우한허 변화하도
록 되어 있는 것 이 며, 짜라서 종 합적 요안에 대한 자기 들의 입장은,
교 회약 사회 구조 안에서의 사회석 엽적파 마찬가지로 알시석 이 요,
불확정 적인- 것이라고 말판 것이마.
토마스에 대하여 흔히 말하기블, 그는 그의 전 시대 를 통하여 역사
적 이해가 결핍되었 다고 한다. 현대 사상에 의하면, 이성은 계속적
인 역 사의 운행 안에 서 문화의 천 부문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
그객으로 사회 제 도들은 그 속페 확삼히 항구석안 요소를 가지고 있
음에도 불-7-하고 우잔 꾀 변 하 는 것이어 서 , 모든 안 간의 엽적은 일시
석이요 지나가는 것 이 라는 기독교적 사고와 일치 되는 것이라한다.
종합주의 자가 이 사라져 버릴 것을 가지고, 어떤 의미에서든지 간에,
기독교안의 생활 에 대한 자기 학설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것.2..._로 여기
게 된다연 운화의 변천으로 말 0 1 암아 그것이 우l 협을 당하는 경우에,
1 48
제 4장 운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1 49
토마스주의에 반대하는 다른 바판으로서 이원론자, 개변론자, 그러
고 극단주의자 들이 았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언급만 하고 넘어가려
는 것이 있마. 그것은 그러스도와 문화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에는 기
독교적 완전을 향한 등급을 설정하려는 경향 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살
이 마. 기독교안을 저급의 법에 순종하는 자와 고급의 법에 순종하는
자로 냐누며, “심리척 안 사람 "(psychi야)파 “영지적 안 사람" ( Gnostics) ,
세속적안 사람파 종교적안 사람 퉁으로 나누는 데서 생기 는 온갖 잘
뭇。 l 야에 포함된마. 기독교안의 생활에 단계가 있는 것만은 사살이
마. 그러 나 유한(有限)의 단계 를 계 속적 ξ로 올라가연 무한에 더 가까
와잔마든지, 또는 제도화된 질서 , 교육의 방법, 예배의 유 형, 판단의
표준 퉁이 그 단계 들파 상호 판계를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결 코
아니다. 교안으로서의 책임성에 대한 성숙도에 따라 요구 사항파 기
대 사항을 조정하는 목회적 판리는, 영상 생활이 실제 생활보 마 더
그러 스도의 모습에 가강다든지 , 수도사가 경 제 안 또는 정치 안보다- 더
완전하게 그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판단과는 완전
히 다른 문제이다. 그 렌 판단은 인간파 죄안들의 염위 얀에서 는 할
수 없는 일 이다. 그러나 종합주의자들로서는 단계에 판한 이녕의 도
응 없이는 세상 생펠과 그리 스도 간에서펴 생판을 설합시켜 낼 수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화적 기독교인을 제외한 모든 그룹에서 종 합주의자에게 제기 하는
반대론의 요점은 이란 것이다. 즉 종항주의자가 안간의 볍죄와 그러
스도의 쿠속이 절대 필요하며 위대하 마는 점을 아무리 고백한마 할지
라도, 사실상 그들은 모든 안간의 행위 안에 내포된 근본악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결하려고는 하지 않는마는 것이다. 이란 내용의 반대론
을 가장 효파적으로 제기한 사람이 이원론자들이으로 우리는 이제 。 l
주제 를 다음 장에서 다루기르 한다.
150
제 5 장
1. 이원론자의 신학
151
문화적 기독교에서와 같이 언간은 어다서든치 자연파 충돌하게 마켠
이며, 그러스도블 문화의 정신적 세력 펀에 서 있는 분이라고 할 혜
의 문제도 아니다. 이원론자는 위에 말한 양자와는 같은 점이 있고
종합주의자와는 다른 점이 있다. 즉종합론자는 온건하고발전적인세
상을 그 마음 속에 그리고 있으나, 이원론자는 충돌 가운데 살고 있
으며 한 위대한 논쟁점 앞에서 살고 았다. 그 충돌은 하나닝과 안간
의 충돌이다. 그보다도 이원론지듣은 살존척 사상가들이므로 하나넘
파 우리 사이의 충돌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즉 문제
점은 하나닝의 의와 나의 의 사이에 놓여 있다. 우리의 모든 활동,
우리의 국가와 우리의 교회, 우리의 이교적 또는 기독교적 사엽, 이
란 오든 것들파 더불어 한펀어l 는 우리가서 있고, 그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닙, 하나닝 안에 있는 그라스도가 다른 한현이 된다. 이런 상황
안에서 보면, 그러스도와 문화에 대한 문제는 사람이 자신에케 괄을
질문이 아니라, 하나닝이 사람에게 물을 질문안 것이다. 이것은 기독
교인파 이 교도에 관한 질문 이 아니 라, 하나닝 과 사 람 에 대 한 질운
이다.
152
제 5장 역션적안 판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문화
153
의 하냐닝이시다.
그러냐 죄는 사랑 얀에 있는 것야요, 사랑은 최 얀에 있는 갯。1 다.
십자가에 옷박한 영광의 주 앞에 설 해, 인간들의 모든 사엽과 얼을
주의 선 (훈) 의 표준에서 보면 아주 부적당한 것 일 뿐 아니라, 더렵고
타 락된 것임을 알게 펀마. 인간 부패성의 뱀위와 그 철 저성에 대한
이 해에 있 어서 는 이원론자와 종합론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마.
그 병위에 관하여는, 클레멘트와 토마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은
말하기 를, 안간의 이 성 이 흐려질 수 있 다. 그러나 그 본성이 방향율
잘-뭇 잡은 것 은 아니 라고 말한 다. 그들에 의 하면 냐쁜 추론(reasoning)
을 고치는 걸은 더 좋은 추폰을 제공하는 데 있마. 그러 고 신적〔神的)
안 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 다. 뿐얀 아니라기독교적 형 식 안에 있는
안간의 종교적 문화, 즉 거룩한 교회의 제 도와 교리는, 그 거 룩한 제
도 안에서 고쳐야 할 소소한 악들이 아우리 많이 또 자주 나타 난다
할지라도 여전히, 악한 부패 의 권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러
냐 루터의 부류에 속 하는 이원 론자들은 안간의 모든 행위에 부패와
타락이 있음을 인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계시된 하냐
넙의 거룩함 앞에서는, 철학자의 지혜 와 우식 자의 우둔함이 다를 것
이 없으며 , 살인자의 죄와 법판의 처 형 사이에는 다틀 것이 없 다. 모
독자로 말미암아 성소를 더럽히는 일과 제사장들로 말미 암아 그것을
성 결 하게 하는 얼도 다를 것 이 없으며, 욕정적안 뱀죄와 영적인 옐광
사이에 도 마름이 없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이 온천허 꼭같은 것이
라는 말은 아니다 . 다만 하나닝의 거 룩하섭 앞에 대연할 때에는 거기
에 중대 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마. 마치 제일 높은 고층
건을파 가장 낮은 오막살이 블 비 교하는 것이 버l 텔고이 세 ( Betelgeuse,
오 리온 성좌에 있는 제일 높은 옐 이 픔 역자주)앞 에 서는 문제 가 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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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역설적안 판계를 가진 그려스도와 운화
1. Cf. Rudolf Otto, The Idea of the Holy , 1924, pp, 9ff.; A. E. Taylor.
The Faith of a Moralist , 1930 , Vol. 1. pp. 163 ff.
155
언간의 최를 그 렌 막연한 원시적 강정의 용 어 로 정의하는 것 을 허용하
지 않는다. 부정, 부끄러움, 불결 , 더럽힘 풍의 느낌은 안간의 자아
와 그 사회 의 본성 에 대하여 객관적인 도덕적 판단을 내렬 해에 따라
오는 강정이마 . 여기에 하나넘 앞에 선 사함이 있다 . 그는 하나님께
로부터 그의 생영을 받았마. 하나닝이 받들어 주고 하나 닝 이 용서하
셨다. 하나 닝 에게 사 랑을 받았고 생명도 받았다. 그렌데 이 안간이
자기의 생명괴- 자기의 존재의 근거안 그이 를 공객하는 데 가담하고
있마. 그는 그가 거부하는 바로 그 행동에서 자기가 주창해야 할 그
156
제 5장 역설적언 판겨l 를 가진 그리스도와 운화
157
것올 지석한마. 괴-학의 노직 속에서 이성은 혼란돼 있다 . 그것은한펀
으료는, 온천히 중럽적안 태도로 둔제를 처리하는 겸허성을 발휘하연
서, 마흔 한편A로는 힘을 위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 배문이었다 . 운
화 내에 있는 이성적 요소들에 대한 종합주의자들의 모든 변호론에
서 이원론자들은 이 치영석인 결점을 발견하였다. 안간의 일플 안어l
있는 이성이란 것은 결코 그 이기 석, 우신성, 왜곡(줌따1)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시유재산 제도른 말한다연, 그것이 다만 도
둑을 막아 준마는 의미만이 아니라, 강제 로 페앗거나 안다안에게서
속여 얻은 토지에 사는 정착만을 보호하게 원 해와 같이 외국안의 소
유를 약달하는 것도 안정해 주게 된마는 것이마. 합리석안 제도는 커
다란 윌-합리 위에 건설되 어 있마. 독신(獨身)과 결혼 제도는 수많은
죄 플 막~을 뿐 이 나 마 덮어 주고 있마. 그러으로 이원론자들은 인간 운
화 전체 가 우신적 C4!Th mili的)이 요 죽음에 이 르는 뱅 이 라고 선언함으로써
극단 론자와 보조(步쐐)블 같이하는 셈이 된마.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또 이런 마른 정도 있다. 즉 이원론자는 그 자신도 그 운화에 속해
있는 자로서 도저히 가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하나닝께서 문화 얀에서, 또 문화로 말미암아 그를 붙들어 주
신다는 것도 알고 있마. 만 알 하나닝께서 그의 은혜로 이 죄악 중에
있는 세상을 붙들어 주시지 않으신다연 이 세상은 1 분동 안이라도존
속할 수 없거 때문이라는 것이마.
15.9
는 의 미 를 말하려 하기 해문이다. 01 위대한 행동에 대한 이원론자들
의 속기록을 보연, 안간 생활의 뱅은 결국 율법이 아니요 은혜이며,
그 은혜는 은혜가 아니라 안간에게 과한 무한한 명령인 율법이다. 사
랑은 불가능한 가능이며 구원의 희망은 그렬 성싶지 않은 획중 이라는
둥을 말하려는 듯하마. 이란 진술은 추상적 S로 말한 것뿐이다. 그살
재는 사람파 하나넙 사이에서의 끊임 없는 내화와 갈둥이다. 그 물음
파 대답, 패배같이 보이는 하나넘의 승리, 승리로 바뀌는 안간 패배
둥으로 계속하얘 나타난다.
16 0
제 5장 역설적안 판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운화
161
에게 있어서 그퍼 스도는 ‘하냐 닝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마. 그
는 하냐닝의 심판의 중보자이며, 사죄 Ci/&.罪)를 위한 제물이며, 사람을
하나닝에게 화목케 하는 자이며 , 평화와 영생을 주는 자이며, 성령 이
시며, 사람을 위한 대도자(代j함者) 이며, 교회의 머리요, 새 안류의 시
조요, 보이지 않는 하나닝의 형상이며, “한 주닝이어서 그를 통하여
만물 이 있고그를 통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분이시다 . 그의 십자가 위
에서, 바울은 세상을 향하여 죽었고 세상은 바울을 향하셔 죽었다.
이제부터 산마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
도 아래서의 삶을 의마한다 . 그러스도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며
아무것 도 원하지 않는다 . 이 사도의 그리 스도는 예 수였 다. 나사렛 의
162
제 5장 역설걱안 판계를 가진 그려스도와 문화
163
기독교 문화의 업법자로서카 아니라, 그러스도는 삶의 새로운 원리
중개자로서 새 인류를 창조하는 위대한 사엽을 하셨고 또 하고 계시
는 것 이다. 그 삶은 하나닝파 더불어 있는 형화의 삶이다.
。1 것올 모두 종말론적 용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잘못일지 모른 다.
다시 말하연, 바울은 안간 문화를 당장최후 성판 앞에 서 있고 새 시
대가 곧 시작된다는 견지에서 보았다는 듯이 섣명하는 것은 부망한
지 모른다. 그리 스도의 십 자가에 서 안간의 노작은 성 판받았다. 그리
고 그의 부휠에서 새 삶이 이미 역사 얀에 도입되어 왔다. 누구든지
하냐념의 선과 모든 불경건에 대한 하나념의 진노에 눈 돈 사랑이라
면 누구나 인간 문화가 이미 심판받았고 정죄받았다는 것을 밝히 얀
다. 만일 오래 참으시는 안내가 어떤 사람파 그 사람의 행위를 더 오
래 제 속되케 한다연 , 그러고 최후의 섣만이 지연펀마변, 그것은 바울
의 복음을 더 멀리 전 파 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 속에 결 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새 삶은 다만 열 종의 약속이나 희망 일 뿐 아니
라 현재석 실재이다. 그것은 사랑야 하나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파
3. 칼 5 :19- 21.
1 64
제 5장 역 섣척안 판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문화
165
기독교인 사회를 위한 재정적 지원도 언급하였다 . 이 윤리는 71-톡교
인과 그들의 교회가 이기독교적 사회 제도에 대하여 갖는 판계 를 논
하는 한 각양각색이었마. 정치적 진권지들에게는 그 권세가 하나 넙께
후부터 주어진 것이으후 그들과 그들 의 엽플에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
인의 의무 라고 하였다. 그러띤서도 신자끼리의 소송 사건을 세상 재
판소에 고소하는 것 은 불가하다고 씌 망하였 다 . 경 제 제도들에 관하여
는 노예 제도까지도 거의 우판심하게 마루 었우며 £례 그런 것£로
간주하고 있마 . 마만 "1 기독교 사회의 종교적 제도나 습판에 대해서
만 철저히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라고 하였마. 이 기독교 문화의 율
리, 또는 문화 안에서의 기독교안 생판에 관한- 윤리는 여러 가지 근
원을 가지고 있마. 여러 가지 싣례로 보아 예수의 말씀이 기초석안
중요 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의 교훈에서 직접 인용한 것
은 그러 많지 않마. 그 나머지 여러 자세한 교 훈들은, 십계명이나 기
독교 선통이냐 바윷 자신의 상식에 ú1 추어 바 르고 적당하마고 생각되
는 공통 개냄에 근거한 것 이마. 전홍이나이성의 이용파는 밸도로, 직
접적 인 영감을 법이나 권고의 근원즈~~료 상은 것은 없 마.
1 66
제 5장 역설척인 판계를 카진 그리스도와 운화
4. 고전 7:2; 옴 13:4.
167
만 한 윤리적 원리, 곧 안간의 정신 생활 안에 있는 부쾌한 ‘ Ii..소플
나타낼 뿐 아니라, 사랑이 거기서부터 쿠원함을 받아야 할 어떤 신체
척인 형식도 의미한 것이마. 은혜 안에 있는 삶이란 다만 하나넙으로
부터 오는 삶일 뿐 이니라, 인간의 옴 밖에 있는 삶이t:-~. “우리가 아
한다.
2세 기 중에 , 그러 스도와 문화의 문제 에 대 한 이 원론척 해 답 이 종 이
상한 바울 추종자 마르시온에 의하여 혼란스렵고 변덕적£로 재현되
었다. 그는 흔히 영지 주의지-로 알려지고 있다. 왜냐하면 거의 무리할
정도로 기독교적 신양을 유대적 문화에서 분리하고 왜곡시키려고 광
분했 A벼, 특히 구약성서와 거기에서 파생된 요소들을 그리스도교의
성서에서 배제하려고 안간힘을 썼기 때운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영
지주의적 이녕을 그의 신학에 사용하였 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를
극단적 기독교안의 부류에 관련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가 교
회로부터 분리펀 한 종파를 창설하였고 그 종파는 엄격한 금욕주의로
특징을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흔히 이 정도블 넘어서서 일종의 마니
교안이 됐다고 생각된다. 마니교는 실재에는 두 개의 원리가 있고 세
계는 하나님과 악의 권세로 구분했다. 그러나 하르낙 (Harnack) 과 그
168
제 5장 역설척안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문화
169
는 것이다. 그는 두 윤리를 안정한다. 정의의 윤리와 사랑의 윤리 가
그 것 이다. 그러나 전자는 불가파적으로 부패와 결부되어 있 마. 그러
고 그리스도의 삶과 설교와 교재는 오직 후자와만 판계 있다 8 그러
므로 마르시온은 될 수 있는 대로 기독교인을 육체적 또는 문화적 세
계 로부터 끌어내려 하였으며, 성적 생활은 극도로 억제되고, 금식은
종교적 의식 이 상의 것으로 강조되며, 복음에 상응하는 안간 상호간에
긍흘 과사랑의 판계가 실현펀는 공동체를형성하려고 노 력히였마 9 그
러면서도 안간은 아직도 육신척으로 살고 있커 때문에 그 선하신 하
냐닝으로 말 미 암을 그들의 쿠원을 위한 준비와 희망 속에서 살 수밖
에 없는 것이 라 하였 마.
170
제 5장 역설적인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뭄화
10. 갈 5: 12.
171
서는 그렇게도 위대하신 시혜자(1íflí惠者)시라는 것을 알고 즐거운 마음
으로 값 없이 주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11 그러나 농만들을
대항하는 그의 책은 읽어 보면 아래와 같은 심한 말들이 씌어 있마 .
• 이 사건에 있어서 영주들이 나 군왕들이 기역해야 할 것은 그들이 이
란 자들이l 게 사용하기 위한 검을 맡은 하냐넘의 알꾼이며, 그의 진노
를 집행할 종야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는 장 잘 시간도 없다.
안내와 긍흘을 운운할 곳도 없다. 지금은 칼을 쓸 시절이요, 은혜 에
풀 해는 아니다 "12 그렇게 날키로운 것은 아니지만, 루터에게 있어
서 이란 종류의 이원석 선언의 뱅링은 다른 데서도 많이 발견된마. 그
는 이성과 철학, 상엽 (business) 파 거래 (trade), 종교적 제도와 의식
(熾式), 그러고 국가와 정치에 대하얘 이중석안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루터에게 있는 이란 이율배반〔二律背反)파 역설 때문
에 사람들은 흔히 루터가 생활을 부분석으로 나눠 생 각하고 있었다는
암시 를 받게 된마. 즉 루더는 세상적인 완손이 하고 있는 일을 기독
교적인 오른손이 얄아야 할 펄요가 없마고 가르쳤마는 것 이다. 그의
말언은 해로 이 견 해 를 지지해 주는 것우로 보인다. 그는 일시석 인 삶
과 영적인 삶, 외부석안 것파 내적안 것 , 육신파 영혼, 그러스도의
172
제 5장 역설척안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운화
173
께 있어서 그러스도의 엽은 극단석 기독교에서 밍고 있는 정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령권을 가지고 있으연 , 온천히 자말척이요 몰아적
(沒我的) 안 섬 정 으로 하냐닝 을 사랑하고 이 웃을 사랑하며 일시 석 안 것
이냐 영원한 것 이나 간에 자기 이익이라는 것에는 순간의 한눈도 팔
지 않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그가 민기 때문이다. 그 후에 투터의
도먹석 , 종교적 발전의 제 2 단계가 왔마. 그것은 윌-법과 익:속우로서
의 뷰음은 인간의 드러난 행위에 직접적~..!효 판렌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원천에 관펀된 것임을 철 저 히 이해한 때였마. 즉 하나닝 께서
인간 영흔을 재강죠해 주시는 분량에 짜라 인간은 땀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마는 것을 깨달은 배였다. 업법자로서의 그러스도는 모든 안
간으로 하여금 그들은 죄안이요 사랑 없고 민음 없는 자라는 것을 고
백하게 한다. 그러스도는 악한 냐무가 선한 열미} 를 맺지 옷한다는 것
과 그들은 악한 나무라는 것을 자인하게 한다. 따라서 그들이 의 롭게
행동함우후씨 의롭게 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엿보다도 먼저 그들
15. C f. “ T reatise on Good Wor ks ," W orks , Vol. I , “ Trea tise on Christia n
Li bert y," Works , Vol‘ II ; cf , Holl, op. cit. , pp. 217 ff ., 290 f.
174
제 5장 역설적안 판계를 가진 그려스도와 운화
175
이다 "19 정치척 활동과 군사까지라도 일상 생활보다 더 중요한 것。1
176
제 5장 역설척안 판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운화
17 7
엽사리 재결합되지도 않는다. 기 술은 일시적인 사물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 (spirit)은 기독교안파 영원의 판계에서의 기능이다. 이 정
신은 지극허 인격적 안 것이다. 그것은 안간 안에 있는 가장 깊은 것
이라 하겠 다. 그 러 나 기술은하나의 습판이며 숙련이요, 그가 속한 사
회 안에서의 직책 이나 직엽의 기능이다. 신앙의 기독교적 정신은 하
나 닝 의 긍흉을 향하여 정향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술은 하나닝
의 공의를 비웃음으로써 일 어나는 사악($惡)을 방지하려고 하는 경우
가 많다. 기 독교안은 순간순간마다 영 원한 하냐념 냐라의 시 민으로서
그 자신, 특히 그의 이웃의 당연한 현 세 생활의 잠정적인 가치에 판
계하고 있다. 정치 가로서 국가의 광범위한 벤영을 위하여 당장 식량
에 쓸 곡식말을 가는 경우에 이렌 충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런 충돌은 오을날 점점 더 증가되고 있다. 일 시적으로 우리의 일 용한
양식을 얻기 위 하여 우리의 최선의 지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영원의
시민 무로서의 우리는 이런 것 때문에 걱 정하지 않는다(적어도 걱정하
지 않아 야 할 것이 마). 이 긴장성 은 개안파 사회라는 양극에 연결 되
어 있기 해운에 더욱 그 도가 강하다. 그 자신으로 말한 다변 하나의
개안으로서 하나닝께 무한히 신뢰하며, 그 신뢰의 결 과로 세상에서의
보수를 바라지 않으띤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명령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낄 것 이다. 그 러 나 그와 동시에 그는 한 가족의
아버 치로서 생계를 세워 가며 그 자녀에게 의식〔衣食)을 제용하는 하나
님의 도구임을 알고 있마. 이렌 의미에서 그는 하나 님께 복종한 다는
한 마음만으로 자기의 받을 임금을 무(無)로 돌릴 수는 없게 펼 것이
다. 그 긴장은 분노하는 대석에게서 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분노의
도구로 사용펼 때에 더욱 날카롭게 나타난다 . 루터는 이 점에 있어 서
는 매우 영백하다. 사람이 다만 자기 자신이나 자기 소유물에 대한
178
제 5장 역설적안 판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운화
22. cf. 특히 “ Secular Authority ," Works, Vo l. m, pp. 236f f. C f. Kerr , op.
cit. , pp. 213 ff
23. “ The Fourteen of Consolation," ~Torks, Vol. 1. pp. 148 f.
179
가 되지 옷찬 것처럼, 기독교인의 자유[ 문화속에 있는온갖특수 부
운에서의 자율로 되어 버렸마. 영척인 생활파 현세적인 생활을 형행
적으로 분러시켜 생각하는 이원론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복음은
문화 세 계 안에 서 사랑무로 작용한다는 루터 의 상호작용론 (In teraction-
ism)을 혼동하는 것은 큰 착오라 아니할 수 없다.
180
제 5장 역설척안 관계를 가진 그려스도와 운화
181
키에르케 고르는 결국 19세기의 기독교인의 한 사랑으로서, 그 당시
의 문화적 기독교 또는 기독교화된 문화에 항의한 것이다. 다시 말하
연, 그 당시 중앙 유렵에서 루터의 이원론을 사용하여 복읍을 걸들임
A로써 모든 긴장을 완화한 데 대한 항면이었던 것이다. 이원흔적 답
변은 다른 사람들이 더욱 진싶하게 제공했다. 즉 그러스도에게 복종
하기 위하여 문화의 주장을거부할수없£면서도, 그리스도가 문화와
엘마나 깊이 영키어 있는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제
공되었다. 트렬취 (Ernst Troeltsch) 는 이 문제를 이중의 델레머로 경
험하였다. 즉 한펀으로는, 그는 서양의 운화적 종교였던 기독교의 절
대성에 판한 운제를상대로 투쟁하였으며, 다른 한펀으로는양심의 도
덕파 사회적 도덕 사이에 생 기는 충돌에 판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
도덕이란 국가와 국민 , 파학과 예술, 경 제 와 기 술 등으로 말미임-아
대표되는 제 가치의 획득파 보수를 지향하는 것이다. 기독교 자체가
역사적이고 변천하는 운영의 다른 어느 부분들보다 마를 것 없는, 하
나의 문화적 전통이 아니었던가? 트렬취는 이 문제에 대하여 운화적
기독교안의 해답을 그대로 받아들 일 수가없었다. 기독교는진살로상
대적이었마. 그 러 나 이것 을 통하여 인 간에게 절대적안 주장이 엄한다.
이 주장이 다만 서양인에케만 임했다 할지라도, 이것이 상대성 가운
데 나타난 하냐의 젤대임에는 틀럼없는 것이다.27 트휠취는예수의 주
장을 양성의 윤리와 일 치 시켰마 . 아무리 양심의 성 장이 역사적인 것
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그것은 자유의 인격성을승득하고 옹호해야한
다는 명령과 더불어 역사적 안간에 게 대결하는 것이다. 그 자유 인격
이란 것 은 단순한 운영으로부터 독 립판 것이며 내적 A로 연합되 고 밟
혀진 것이며 그,와 동시 에 모든 사람의 자유 인격을 존중하고 안류의
도덕 적 유대 cm뺨)에 의하여 그들을 연합하는 것이다. 양심의 도덕은
불폰 언제냐 자연에 대결하는 투쟁 에 참여할 것이다. “하나닝의 나라
는 역사를 초월하기 때문에, 역사를 제한하거나 규정하지 뭇한다.
지상(地上)의 역사는 최후의 인격적 결단파 성화(聖化)의 기초와 천제
로 남아 았다. 그러나 세상 역사는 그- 자체 얀에서, 이성파자연적 본
182
제 5장 역섣척안 판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문화
183
한켠의 생각파방법을 다른 한현 에 적용 하려 는 것을피해야한다 .31 야
。l 원론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시키는 실 제 적 행사와 그것을 정당화 하
는 학설 에서 나타난다. 미 국의 윌리 엄스 ( Roger Williams)는 이 련 이
원 론의 상정이 요 표본이라 하겠 다. 그는 정치 와 복음을 연합하려는
영국 국교와 청교도 등의 종합주의 또는 개변주의 를 배 격하였마. 양
자의 연합은 둘을 다 부패하게 하기 때문이라 한마. 즉 영석 힘파 불
터석 강압을 연합시킴으로써 복음을 부패하게 하는 것이며, 그 본성
에 전혀 생소한 요소를 도업함£로써 정치를 또한 부패케 하는 것이
다. 그는 또한 기 독교적 영 성 (spirituality)의 기 초 위 에 공화국을 건
설 하려 는 퀘이커 교도의 노력 에 대하여도 찬성하지 않았마. 그것은
정 치 적 A로는 정 당하지 뭇하고, 기 독교석 으로는 왜곡(종曲 )완 것 이 기
해문이었다 32 그리 스도에 대한 충성과 사회적 종교를 받아들이 는 것
을 동시에 수챙하는 것은 그러스도와 가이사를 동시 에 받 아들 이 는 운
제보마도 그에 게 있어서 더 어려운 것이었다. 영국 국교와 청교도와
갱례교를 떠 난 후에 이 진 리 탐쿠자의 태 도는 운제 해결을 위하기보
다도 일종의 생활 방식 Cmod:μ s νψeηdi) 이었마. 정치적으로나 교회석 A
로 나 윌리 엄스는 프로테스탄트의 공통적 이 원론의 대 표자로 남아 있다.
。i 원흔적 해답은 이론적무로 냐 실제적£로 문화 주창자들에게도 안
정을 받고 있마.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는 정 치 옹호자들, 경
제 생 활의 자율성 을 주장 하는 경 제 학자들, 종합주의 자냐 문화적 기 독
교안에 의하여 제의 된 이성과 신앙의 결합을 반대하는 철학자들 동은
결 코 반(反〕기독교적 태도에 속하는 사랑들이 아난 경우가 많다. 하르
트만 (Nikolai Hartmann) 같은 사람은 기 독교적 신 앙파 문화적 윤리 의
반립 성 (antitheses)을 주장했 A나, 그것 은 문화 펀에 유리 하게 해 결되
어야 한다는 아무 암시도 없이, 이율배반 C= 律背反)의 성립을 안정 하
였 다. 이성의 생활 안에서 신앙의 근거를 말견하지 뭇 하고 있는 실증
주의자들 까지도 신앙을 전 적으로 폐기 하려 하지 않는다. 신앙은 안
18 ¥
제 5장 역설척인 판계를 카진 그리 스도와 운화
4. 이원론의 장점과 결점
33. A.J. Ayer, Language , Truth and Logic (1 936)을 읽£라. 이 책은 종교와
윤리 릎 엄격한 의미에서 검토한다연 우의미한 것업을 진솔하였다. 그것은
다만 감정 의 표현 에 불과하다는 것 이 약.
185
죄의 위력 파 만연 성 의 안식에서 정지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내
적 충돌에 대한 바울의 자기 고벡이나 루태의 “용 강 하게 죄를 지어
라 "(Pecca fortiter) 는 인상 깊은 솔직 성 을 보여 준다. 이 런 고백 은 성
자의 이 야기 가운데 서 는 흔하지 않는 사건이 다. 신자들뿐 아니 라, 그
들의 공동체 안에까지 죄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안정하는 것은, 극
186
제 5장 역설척언 판계를 차잔 그리스도와 운화
187
말하는 죄의 만연성과 모든 인간 행위와 은혜와의 차야점이 결 코 우
가치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말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는 뭇했다는 것을 시사해 준마. 문화적 기독교인파 종합주의 기독교안
들은 문화의 업에 순종하라는권고와 더불어 이원론자의 편에 서야할
것을 암시한다. 그러냐 그 만변에, 그들은 이 원론자들이 반드시 설교
해야 하는 파제, 즉 그 순종에 따르는 최악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
다. 교회가 마태복읍파야고보서 플 닙 1-울 서간들파판련시켜 채택한것
은 마르시옹이 한 일보마 훨씬 지해후왔다 .
188
제 5장 역살적안 판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운화
18 9
제 6 창
문화의 변혁 자 그러스도
1. 신학적 신념
190
제 6장 운화의 뻔혁자 그리스도
1. 골 1 : 16.
191
나 개변론자에 있어서는, 하나념의 창조적 활동과 ‘하나닝 얀에 있는
그리스도’와는 두 주요 주저l 이어서 어느 하나라도 속량 개념에 압도
되거나 압도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창조완 세계 안에서 알하는 피
조자인 인간은 그의 맏음 없는 생각으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진노 아
래서 헛된 사불 속에 살고 있마고 믿을지 몰라도, 여전히 그는 그리
스도의 통치 밑 에 서 창조적 능력 과 하냐념 의 말씀의 질서 화 (ordering)
에 의하여 잘고 있다고, 개변주의자들은 보고 있마. 하기는 이원론자
들드 이와 비슷한 말을 종종 하는 것이 사살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
나닝의 진노, 특히 자연계 안에 냐다냐는 진노에 너무나 많이 판심을
가지기 애문에, 자연의 통치자가 에푸는 혜택에 대하여는 자옷 의혹
을 느껴게 되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개변주의자의 이론이 그의 적
극적인 창초판에 마치는 영향은 대만하다. 인간이란 파초불。 l 비록
억지로 받윤 갈고, 교육을 받고, 사회 를 조직하며, 또는 자기 존재와
더불어 주어진 질서를 왜 곡(뿜패)되게 다스린다 할지라도, 파조물 안
간 펀에는 여전히 하나닝의 창조적, 잘서화의 사엽에 대하여 긍정적
이고 잘서 있는 반응을 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개변
주의자듣의 주장야다. 그들이 창조에 랙하싹 큰 판심을 가지 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 이원론자가 등한시 한 기독폰으l 일변을 말전시킨 경향
。1 있 마. 한펀으로는, 말씀 즉 하나닝 의 아들이 창조에 동참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한 옛날에 그러한 잎이 있었다는 의미에
서가 아니라, 하나닝의 생각파 능력 안에 있는 만물의 논리석, 순간적
인 시초와 직접적안 기원(起源) 이라는 의미에서 동참했다. 그러고 다
192
제 6 장 둔화의 변혁자 그려스도
J. 93
다고 신체적이거나 형이상학적안 것은 아니다. 이것은 도먹적야요,
인격적인 것이다. 하나닝을 배반한 안간에게 미치는 결과는 전혀 인
간 펀에서만 나타나고 하나닝 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서 다
락의 결과라는 말의 의마 내용은 “부패”이다. 인간의 선한 본성은
부패해졌다. 이것은 존재해서는 안될 사물처럼 악한것이 아니라, 비
틀어지고 꼬이고 방향이 잘옷된 것이다. 인간은 그가 창조될 혜 그
에 게 주어 진 사랑으로 사랑한다. 그러 나 그는 잘옷 (wrongly) 사랑
하며 잘옷된 질서 속에서 사랑한다. 그는 그의 창조주께서 그에 게 주
신 욕망으로 션을 욕망한마. 그러 나 그에게 선하지 뭇한 선을 옥석하
며 그의 참 선을 잃어 버린다. 그는 과살을 맺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열린 것이며 쓰다. 그는 그의 살천적 이성의 도움A로써 사회 를
조직한다. 그러나 그는 마이성적인 걸을 치달는 지기 욕심의 강압 째
194
제 6창 문화의 변혁차 그리스포
2. 제 4 복음서의 개변주의적 동기
195
한 1서에도 체시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펀으로는 세상의 암흑 파
무상(떼、常)파 무자바 동에 대 한 너 우 나 많은 언 급이 있고, 다른 한펀
으로는 기독교인의 새 공동체가 낡은 사회에 비하여 너무냐 뚜렷하게
쿠멸되 어 있기 해문에, 이 문서의 경향은 오히려 배다척 기톡교를 1
7-
196
제 6 장 문희의 변혁자 그리스도
19 7
나닝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계와 악마적으로 형성된 우주를분러시7"1 는
알은 결코 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 타락 사상, 즉창조된 선의 전도
(願倒〕라는 사상이 이 복음서 전체 에 함축되 어 있다. 창조물, 곧 하나닝
의 말씀을통하여 하나닝으로부터 온 이 창조된 세계는 근본척으로 선
하다. 그러냐 이것이 하나념에 대한 응맙 속에서 자기 모순적이요 하
나님에 게 모순되게 CGod -contraditory) 되었다. 창조 행위와 구속 행위
198
제 6창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199
동, 두 가지 이다. 후자는 신앙을 요청한다. 그것은 그들 자신만으로
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신 앙을 배제한다. 그것은 그
들이 자기 충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마” 한 것은 정론이라 하겠 다 9
그러나 요한복음의 안간 행위 분석은 앞둬로 뻗쳐 았다. 즉 하나넙
의 사랑을 너무나 망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사랑은 A 례 자기
의 몫으로 정해진 것같이 생각하켜 자기애 〔 自己愛)를 가지고 하나넙
의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들파, 사랑에 사 랑우로 응답하는 사랑- 마만
말은 매후 갚는마는 태도가 아니라, 이-버지와 아들이l 게 사랑받는 모
든 사람에게 넘치는 봉사의 마음A로 사랑을 베푸는 사광-의 두 가
지 행위를 쿠별하는 것이다.
아버 지 와 아들파 세 상파의 공동체 (community) 안에 서 본 하나닝 의
선하심과 인칸의 완악성에 대한 이러한 신념 위에, 요한은 일종의 역
사판을 결부시켰다. 그의 역사판이란, 역사안에 있는시간석 차원, 즉
파거 와 미 래 가 영 원과 시 간의 판계 (eternity-time relation)에 마분히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복음서 서론에서 알한 창조는 괴-거에
속한 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현존한 것의 기원〈起 源)과 근거인 것이
다. 즉 존재의 영원한 시작이요 영원한 원리이다. 타락은 역사적 세대
들의 계옐 중에서 처 음에 위치하는 사람의 삶과 결부펀 한 사건 이 아
니라, 현재 하나닝의 말씀에서 옐어져 나가 있는것을의미한다. 세상
의 심판도 지금이다. 그것은 말씀이 입하시는 것과성령의 임재하시는
것으로 주어진 것이다_ 10 처]4 복음의 역사판은 “하나닝의 나라”라는 말
을 “영 생”이란 말로 대치한 것이 그 특색이다. 복음서 학도들이 거의
천부가지석한 바와 같이, 이 영생이란 어귀는어떤 바탕 (quality) , 삶
의 판계,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있는 현재의 공동체,
현재의 영적 예배, 사랑, 진실 응을 의미하는 것이마. 미래를향한 다
소의 긴장은 남아 있다. 어느 경우에나 어느 기독교안에게 있어어도
이 긴장이 완전히 제거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그려나
이 복음서의 중요한 요첨은 새 시작, 새로운 단생, 새 생명은 일시척
인 역사나 육체적 생활을 변경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하나닝파 함께 시작하는, 위로 부터 의, 하늘로 부터의, 영석안
200
제 6장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1 1. Hoskyns, op. cit. , pp. 229; Scott, op. cit. , pp. 247 ff. , 317 ff.
12. Hoskyns, op. cit., p. 120.
13. Scott , op. cit. , pp. 70-77.
201
혁 운동을 이교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자유로 하냐닙 아 버지를 예매하
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유대교를 의마한다. 이와 비슷하게 영지주의에
대한 요한의 태도도 애애하다. 한펀으로, 그는 이 인가 있는 지혜의
종파에 그러스도의 복음올 적응시키는 것을 배격하는 태도를 취한 것
으로 보인다. 이 태도는 요한 1 서 에서와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펀으
로는, 지성에 흥미를 느끼며 영에 관심을 가지는 갱에서 기독교 영지
주의자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마 14 부분적우로는 역사적 A로
설명될 수도 있지만, 이 이원적 태도는 문화석 종교 사상의 기독교석
변혁이라는 개 변주의적 판점에서 보면 훨씬 이해하기 휩다. 또 요한
은 2세기의 교회, 당시 교회의 교리와 성례천, 그러고 그 조직 동에
대하여도 개변주의자로서의 태도를 취하였다. 그는 유대교에 대항하
여 이 문화적 종교를 옹호하혀 한 듯하다 그러 나 그는 금식, 기 도,
성례전 엽수 둥의 외적 형식 에 기독교의 독특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
하는 배타석 기독교인들파는 거리가 먼 사랑이었다.
그는 밀의(密磁) 종교에서 사용하는 어귀 들을 이용하여 기독교 신앙
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한 것£로 보안마. 그러나 그러스도를 그런 밀
의 종파의 주요 안물 중 하냐로 만들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
다 15 그의 À-l 시 잔처}를 통한 그의 관심사 는 종교의 의적 행동엑서 스
202
제 6장 문화의 벤핵자 그려스도
203
엽의 온천한 변화를 예기하는 것같이 보이나, 그 만연에 그러스도에
대한 세상의 반대 의식과 적은 우리에 대한 그러스도의 판심을 기술함
무로써 둘 사이에 균형이 있게 하였다 . 예수께서는 그의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말씀하시를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랑을에게 내가 아버
204
제 6장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3. 어거스틴과 문화의 개변
205
제들파 그 사싱가들이 실패한 인간 문화의 갱신을 위한 건천한 이 론
을 성 취 하였 다 로마의 가이 사들 (Caesars) 과 그 사상가들에 게 있 어 서
는 그들의, 제 1 원리가 치영석안 자기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기 해운
에 그들의 갱신은 효 과을 거두지 뭇했던 것이 냐. 이런 논조로 어거
스틴을 설영하는 것은 우리의 기 독교 윤리석 유형 〔類型)에 판한 우
;;.1 의 도식 에 그흡 정연하게 들 어맞추는 것이다- 종 지냐치게 간결
한 감이 있다. 개연주의적 또는 변혁론적 동기 는 이 신학자에 게 중
대한 과제로 되어 있다. 그는 “‘산들 이 당신 백성에게 평강을 주리후
다’ 한 그 산 을 중 하냐에 판하여 ” 요한복음은 씌 어 졌 다고 하였다 23 그
206
제 6창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207
문화를 이 상화하는 문화주의 자의 태 도, 선한 운영 에 그러 스도를 첨 부
시키려는 종합주의자의 태도, 극복될 수 없는 비도덕적 사회에서도
복음적으로 살아 보려는 이원론자의 태도 등파는 대조적이마 27 그러나
로마의 법률가안 터툴리안, 러시아의 예술가안 툴스토이, 아리스토벨
레스주의 수도사안 토마스, 유대의 바리새안안 바울, 명목론자〔名 目論
者〕안 루터조차도 개벤주의석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어거스틴의 독
특한 점 은, 그의 이 론이 그의 논증 (demonstration) 을 풍부히 복사(짧
寫〕하고 있다는 점이마.
어거스틴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문화의 변혁자이마. 그 돗은 그리스
도가 안간 생 활의 방향을 전환샤키며 마시 생기를 붕어 넣으며 거듭
냐게 한마는 데 았다. 그 안간 생활이란 것은 온갖 인간 사엽에 표현
된 것으로서 본래는 선한 본성을 가잔 것이었£나 현재는 사실상 선
도되고 부패한 것이며, 그 부패 때문에 시간성과 죽음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이요, 그 저주는 외부로부터 가해진 벌이라기보다도 본질석안
자기 모순에서 오는 것이라 하였마. 그가 본 인생의 현실파 하나님의
가능성은 선힌- 칭조라는 이념에서부더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설영할 경우에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자기가 사면적 또는 실천적 추론에서 거짓된 출발을 몇
벤이고 꾀한 나머지 결국) 성부, 성자, 성신 삼위알체 하나닝으로부
터 재출발하여 거기서부터 자아와 다른 파조물의 이해에로 나아가
게 된 경 위 를 그의 ‘참회 록’ (Coηifessioηs)에 서 고백 하고 있 다. 이 렇 게
208
제 6장 운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209
썼다. 그것은 전도〔顆 f페)됨으로써 악하게 됐을 뿐이다 "29 인간의 도
덕적 장병도, 그의 본성 얀에 건강의 절서가 다소 였는 경우에만 촌
재할 수 였을 것이며, 그 잘명도 그의 본성만큼 복장하다. 그러나 그
것은 안간의 자기 모순적안 자키 주장이라는 단 한 가지 기원을 가지
210
제 6창 문화의 변혁자 그려즈도
211
이다 천챙 없는 형화란 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 종 의 팽화카
212
제 6창 운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213
판제에서 펀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마- 의복과 계급, 도
량형, 화페 등의 관례에 깨하어 4 0 하나닝과 더불어 안간이 새 시작
을 하게 함우로써, 하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새 시작을 하살 해에
일어나게 되는 위대한 변혁에는 모든 것, 정치 생활까지도 예외 없이
그 변화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알 어거스틴의 개변 주의
적 이념만을 추구해 간마연, 그가 문화의 세계적인 조화와 평화를 선
견(先見)한 기독교인의 대 표자였고 사랑들 앞에 소개했을지도 모른다.
즉 모든 사람의 챙동이 하냐넙의 은혜로우신 행동으로 말미암아 문화
얀에서 재조정되어 모든 사람을 하나닙께로 이 끌어 오고, 모든 사란
이 하나님 을 향하여 일하며 , 그러 함으-로써 하나닝 의 사랑과 영 광을
반영하는 사회 를 예 견한 사람으로 여걸 수 있을 것이다 41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의 사상을 이 방향으로 전개시키지 않았 다.
그는 성육신한 그러스도 안에서 선포되고 약속된, 위대한 종말론적 가
능성의 실현을 희망하면서 살제적 A로 그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마. 즉
창조되고 부패된 인간 세계의 쿠원과 그 인간들의 온갖 문화적 촬동
안에서 안간의 밴혁을 기대하고 있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닝의 피
조물 계에 있는 아름 마움을 배 양 (펄찮) 하고 그 안에 서 즐기 며 몰아적
〔沒我的) 안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 봉사하며,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신냄으로 죽음과 그 두려움을 정멸하며 , 냉 철 한 추론£
로 창조의 질서와 계 획 윤 발견해 내며 , 영원한 말씀의 확신파 표정으
로 모든 일시적 재물을 성려1 천석인 경외C1:&f흉)플가지고 사용함A로써
일시적안 사물들 가운데서 인간 의 모든 챙위가 하나닝께 영광을 돌리
는 헬-동으로 재지항:하게 된 가능성이 어거스단의 사상 가 운데 떠올랐
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여지없이 사라지고 말 뿐이었다. 그 대신으로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영석 사회 의 종말 론적 환 상이었다. 그 사회 는 택
함받은 개 인들과 천사들로 구성되어, 저주받은 우리들파는 영원한 평
행션을 이루며 잘고 있는 사회이마. 이 택함받은 자는 이로부터 새
인류가 탄생 될 남은 지-들을 말하는 것 이 아니 었 다. 그들은 구원 받은
214
제 6장 운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215
간이 하냐닝을 사랑할 수 있기 전에 하냐넘께서 안간을 택하여 그를
사랑하게 하셨마는 그의 근본적 인 통찰을, 하냐넙 은 어 떤 사람은 선
택하고 어떤 사람은 배척하였다는 신조로 변경시켰다. 따라서 ‘하나
닝의 도성 ’의 영광스러운 환상은 결국 두 개의 도성들, 서로 다른 개
인들료 다르게 구성된 영원허 갈라져 있 을 두 개의 도성 의 환 상으로
되어 버렸다. 여치서 우리는 바울이나 루터의 경우보 다도 더 극단적
안 이원폰을 딸견 하게 된다.
칼반도 어거 스단파 매우 비슷하다. 개변 주 의적 이녕이 그의 사상 파
실천에 뚜렷하다. 복음이 현재의 모든 생활에 침투되게 하켜는 의도
는 루터보마 강하다. 안간은 각자의 직엽 활동에서 그의 맨음과 사랑
을 표시 하며 하나넙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그의 보다 역동적안
직엽판, 국가는 다만 악행을 앙지하기 위하여 있다는 소극적인 직
책만을 가진 것이 아니 라 적극적으로 복리 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손
2 16
제 6창 문화의 변핵자 그리스도
4. 모오리스의 견해
217
고 말한다 42 사랑들에게 았어서는 이 가능 성은 목표를 향한 옐렬한
기대와 정 진을 의마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대와 노력은 또 다시 자기
중심 , 자기 권화〔權化〕의 행 동, 종교적 , 도덕 적 자기 수양으로 쉽 사리
천도필 수 있는 것 이 며, 그렇게 될 때 거룩을 자기 소유물로 얘기 고
、g
42 설교 “ On Christian Perfection" 에 서 .
43. C f. R. Newton Flew, The Idea of P erfection , 1934 , pp. 332 ff.
44. C f. 특히 , H ar ald Lindstroem , Wesley and Sanct!“fication , 1946
218
제 6장 운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45. C f. A lec R. Vidle r., The Theology of F .D. Maurice , 1948 , pp. 7 ff.
이 ;.<Jj 은 미 국에 서 는 Wintπess to the Light 이 란 제 옥무로 출판되 었 ò 며 ,
오오리스의 사상에 대한 훌륭한 소개가 씌어 있다. 그리고 Mau rice 이해에
없 지 풋할 저 서 로서 그의 아 들 Frederich Maurice 가 쓴 The Life of
Fre derich Denisoη M aurice Chiefly Told in H is L etters , 2 Vols. (1 884)
가 있다 ,
46. Life , Vo l. 1, p. 155.
219
념이 그로 하여금 사회주의자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되
어 있는 공동체는 다만 안간만으로 된 것이 아니마. 인간 이상의 것
이 함께하지 아니하연 참으로 안간석인 것이 될 수 없마.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더불어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안류의 “영적 조직
체”에 대한 모오리스의 이해 를 짜라 가연, 하냐닝 안에 있는 사랑, 안
간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안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아들의 안
성 (人뾰)과 신 성 C~lþ 앉), 창조하고 속 량하는 말씀, 하냐닝 안에 서 의 안
칸의 이웃 사랑, 이웃 안에서의 하냐닝에 대한 사랑, 가정, 국가, 교
회 둥에 대한 인간의 사랑, 이런 모든 복장하게 얽힌 사랑의 상호 관
계가 각각 그 위치를 지니고 있다 47 그러냐 그 중심은그러스도이다.
그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창조되어 하냐님과 연합하며 서로 연합하
는 가운데서 살게 되어 있다. 그러스도가 삶의 깎펀 본성과 칭조판
사회의 법파 그 사회의 성원(成員〕들의 죄와 만역 등을 드러내 보이신
다. 그는 하나 닝 안에서 서 로 연판된 공동체 안에, 그러고 그 공동체
를 위하여 있는 안간들을 속량하신다. 성서 에 기록펀 “온 역사의 본
질과 의미”는 그리스도의 “ 놀바운 기도 안에” 함축되어 있다. “아버
지꺼1 서 내 안에 겨1 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저희도 내
안에 있어 처 들로 하여금 하냐가 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이마 .48 그
리하여 모오리스는 결국 “바사회적안 기독교인”과 충돌했을 뿐 아니
라 “비기독교석안 사회주의자”와도 충돌하였다. 천자는 안간파 그러
스도의 판계를 외부적 의식의 근거 위에 두고 있으므로 종교로 그러
스도를 대신하며 안간의 사회 생 활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러
나 후자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 위에 사회 를 건설하려는 경향으로 겨
울어져 서 공통펀 자기 이익을 사회적 챙동의 기초로 삼는다. 안간은
“동물 더하기 영혼이 아니다 그러나 “안간은 동물적 본성을 가진
영들이다그플을 연합하는 결속은 상엽적안 것이 아니다. 공통의
폭정에 함께 굴종하는 것도 아니며, 폭정자에게 폭력으로 반항하는
것도 아니마그것은 언제나 영적 기만 위에 놓여 있으며, 언제냐
그러하다 교회의 최-교회의 무서운 배교(背敎)-는 교회가 그
220
제 6 장 운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221
‘우리 를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간구는 거의 부정직한 것같이 보알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 밑 에, 안에 온통 악이 있어서 세상에서 우
리를 내결하고, 밀살에서 우리를 위협하며 , 우리 자신들 속에서 또
우리 이외의 모든 다른 사람들 속에서 ‘우리 이 름은 군대마’고 말하
는 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가 엘마 냐 곤란하겠는가? ...... 재조정〔再調
整) 의 모든 계획이 이 땅을 억눌러 신음하게 하는 악을 더 악독하게
만드는 것처컴 보일 해, 우리 자신의 역사, 그러고 전 안류의 역사가
생에 대한 온갖 노력을 비웃고 만족하게 죽을 줄 알라고 명령하는 것
으로 보일 째, 오, 그런 기도문은 우리의 살존을 둬덮고 있던 또 하
나의 자기 망상이라는 기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52 안간
생활의 부패와 자기 모순이 교회 안에, 기독교 운화 자체 안에 나타냐
고 있마는 것이 더욱 중압과 실망을 주고 있다. 그러으로 오오리스는
이렇게 썼다. “냐는 망신들의 종파들-어느 것이든 간에 -그것은 기
독교 원리에 대한 역송이며 항거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우리가
그러스도의 옴에 속한 지체임을 안정하고우리를 진정£로 그러스도에
게 연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스도에 대한 어떤 관념의 견지
(堅持) 에 우리 를 연 합시 키 려 하고 있 다 "53 “그렇 다 ! 하냐닝 과 대 립
222
제 6창 문화의 변핵자 그리스도
223
기 고집 (self-will)을 정복할 수 있는 유알한 능력이신 그리 스도를 새
로이 증거하는 것밖에 다른 대담이 없다 56
모오리스어l 의하연, 인류 를 자기 중삼성에서 그러스도 중심성우로
캐변시키는 엘은 하나닝의 보펀적, 펀재석 가능성이었다 . 그것이 보
펀적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을 다 포함한다는 의미에 서이 마. 그들이
다 같이 말씀으로 지읍받은 파조울이며 헨살석 인 영적 조직체 아래
서 살고 있 기 때 운에 그들 오두 가 그리 스도의 나라의 성 원 (成 員)이 라
는 의미에서 보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 그 러고 또 하나의 의미는
현실석인 하나념의 통치 에 대한 보펀석 , 자발적 수락의 가능성이 살
현되게 하기 위하켜 교회는 모든 판싱융 기울이기 를 요청받고 있다는
점 에서의 보쉰싱。 l 마. 그리 스도에 대한 기독교인의 증언 속에마 이중
예 정흔- 하나닝과 더 불어 사 는 생 휠 에 보의 선택과 하나 닝우로부터 의
224
제 6장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59. Cf. 특허 The Kingdom 01 Christ , Pt. 1I, chaps. ii , iii , v; 또한 Vidler,
op. cit. , pp. 183 ff., Raven , C.E., Christiaη Socialism , 1848-1854 , pp. 13 f.
225
모오리스는 보펀성파 종말론적 즉각성을 결부시켰다. 그가 말하는
영원은 요한이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닙이 역사하시는 차원을
말함이요, 시간의 부정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창조가 하냐닙의 영
원한(시간 이천이란 의마가 아난) 사엽인 것같이 쿠속도 ‘그리스도 안
에 있는 하냐넙’이 그 영원한 사엽 얀에서 하시는 일이며, 그것은 언
제나 인간의 시간적 행동에 대립하는 것이마. 그 ‘영원은 안간의 과
거와 현재와 미래 를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그 중 어느
하나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넘은 계셨고, 계시고, 또 계실 것
이다. 그가 통치하시며 또 장래에도 통치하실 것이다. 인간이 바라는
머 좋은 질서는 새 창조에 의한, 물리적 조건의 변경에 의존하는것이
아니마. “우리 주넘께서 그의 나라, 또는 그의 아버지의 나라에 판하
여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 세계의 쿠조를 우시하는 것처럼
말한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가정이나 국카척 제도 안에서 그 나라의
표석을 보았A며, 사람들은 더 높고 더 넓은 친교를 생각하면서 꽁꾸
고 있던 나라에 판하여 말씀하신다지상적 일 뿐안 엽 무와 인간
정부의 흥망이란 한 사소한 일에 불파하다고 멸시하는 고담석 〔띔路的)
신 표현은〈석쉰 신학자들은 야것을 。9 용한다) 그믹스드에제서 배울
수 없다 그가 미래에 대한 안간의 희망을 품고 있였고 또 그것을
확증하 였 다 할지 라도, “우리 현재의 삶의 신성 (패1聖)함을 전적 으로 안
정하는 것과는 모순되는 예상” 을 장려한 일은 없었다. 그러 고 또 “이
땅 또는 육체가 악마의 파조물이요 그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마니
교적안 개녕”을 말씀한 일도 없였다 60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나라
가 이 세상 냐라인 것은 아 니다. 그러스도의 나라는 외 부적 상태
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을 마스리는 것이다. “그가 사
귀를 내쫓을 해 그것이 안간의 영을 개변시킨 것임을 엽증하였다.
교만, 탐욕, 증오 등 우리를 종£로 만드는 높은 곳에 있는 영석 사
악〔那惡)의 능력을 상대로 그는 큰 논쟁을 벌이였다여기 이 내석
영역에서, 이 인간 존재의 뿌리 속에서, 그는 여전히 그의 원수를 정
복하며 그의 신비한 교육을 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61 충돌의 시간은
지금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시간도지금이마. 우리는 운화 안에서의
226
제 6창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227
하나이나 많은 지체가 있는 것처럼 교회도 그러하다는 것을 들어 그
는 이 문제에 대답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228
제 7 장
1. 결정적인 결론
229
판계한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 1 시야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들
은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파 마찬가지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도 이 문제를 상대로 고투하였고, 말로 또 유력한 결단무로 자기
들의 해답을 제공했다는 것을 알게 필 것이다- 우리는 더 넓은 그물
을 역사의 바다에 던져, 신학뿐 아니라, 정치 , 파학, 운학, 그러고
230
제 7장 하나의 “결흔적안 비파학척 후기’
231
본에 도달해야 한다. 이 진행은 이해라는 평연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 이 결흔은 이론적안통찰이 나 전망의 영역에서 이루어질수있
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고찰에서 행동A로 , 통찰에서 결단요로 이동
함으로써 꾀해지고 획득되는 것이다. 각 신자는 옛날의 천투 기록올
232
제 7 창 하나의 “ 결흔적인 "1 파학적 후기”
2. 신 앙의 상대주의
233
안 것 ðl 다. 우리의 천문적 지식뿐 아니라 철학적 。1 해- 복장한 세계
에서 우리가 에떤 방향을 찾는 방현으로서의 더 큰 전형들-까지도우
러의 결정올 상대화시킨다. 누구나 다 일종의 자기 철학, 어떤 일안
척인 세계판을 가지고 었다. 그 세계관이 어떤 다른 사란에게는 신화
처럼 보일는지 모른마. 하여간 그 철학 또는 신화가 우리 의 행동에
영향을 주며 그 행동을 상대적으로 얀든다. 20세기의 신화도 1 세기의
신화보다 옷지 않게 우리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상대화시킨다.
우리는 지금 후자 cl 세커의 신 화) 의 기초 위에서 감히 챙동할 수 없다.
즉, 사귀를 내쫓는 일로 정신뱅 환자를 치료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신과 몸의 성질파 그 핀련성을 잘 이해하여 그 최선의 지식
을 이용하게 된다. 그러 나 우리 에게 상대적으로 참되다는 이렌 지식
안에도 사화적 요소가 또한 품져 있다는 것 을 우리는 알아야 한 다.
우리의 해견책파 결 단은 다 상대적이다 . 그 모든 것이 단연척이요
연약한 우리 신앙에 판계되어 있기 해문이마. 그리스도가 다시 오살
얘까지는, 역사 얀에 있는 기독교인이 온천히 믿음대로 갈아서 그의
모든 생각이 믿음에 복종하며 모든 순간파 장소가 그에게는하냐넘 냐
라 안에 있는 것으로 되는, 그런 기독교안은 말 견펀 척도 없고 앙으
로도 딸견되지 못할 것이다 각자는 자기로서는 움직알 수 없는 산과
쫓아낼 수 없 는 마귀와 대 변 하여 왔다. 오늘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하
마.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이교 문화의 천연적인 맹렬한 반항으로 드
러나, 사란들로 하여금 “하나닝의 긍흉파 능력도 이것은 막지 뭇한
다”고 단식하게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육체 얀에 있는 악일 수
도 있어서, 그 악은 옴 안에 있는 인간 또는 창조에서 시작된 역사
얀에 있는 안간은 하나넘께서도 속량하지 뭇하신다는 판단으로 사람
들을 안도한 다. 또 어떤 경우에 는 하냐념의 선파 능력에 대한 신앙은
언 간 이냐 동물, 또는 자연의 다흔 힘 속에서 악행자들을 보자마자 정
지되고 만다. 어디서든지 신앙이 정지되는 곳에서는 신앙의 결단도
정치되며, 신앙에서의 추론도 정치된다. 거기서부터 불신앙의 결단과
추론이 시 작완다. 만일 인간 사회 를 궁극적으로 통할하는 능력 이 그
사회에 대하여는 안자한 것 이 되지 않고 다만 개안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연 냐는 개인을 섬 기 는 데 로 전향할 뿐 아니라 사회
는 속량받을 수 없다는 나의 신녕에 따라 냐의 사회적 행동을 지도하
234
제 7장 하냐의 “결혼척안 "1 파학척 후기’
235
는 어떤 특정한 시간에, 어떤 특정 의무를 카진 특정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결단을 지으켜 우리의 추론을 추진하며 우리의 경험을 얻는
것야 틀링 없다.
236
제 7창 하나의 “결론적안 비파학적 후기’
237
식을 받아들알 수 있는 것이 마-
만일 우리가 ‘그러스도 안에 계신 하냐닝’의 절대석안 신살성에 매
한 신잉-을 가지고 있지 뭇하다연, 우리 신앙의 상대성을 식밸허-기 곤
란할 것이 사살이마. 우리의 믿음이 약하기 쩨문에 우리는 우리의 개
인적 또는 사회석 신념을 절대석인 것£로 만들려고 항상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 나 하나닝의 신설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적마면, 우리
의 행동에 내포되어 있는 죄의 용서에 대한 신뢰와 약간의 신념을 가
지고 석은 맏음의 결단을 내럴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특수
한 시간, 장소, 직엽 등에서 우리가 우리의 상대적안 의무를 수행 하
는 것도 그것이 절대자의 영령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추진될 때에는,
결코 상대주의냐 자기 주장이마고는 말살 수 없마 그러냐 내가 정당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의의 전 부요, 유일한 정의라고 주장할 때 또
는 내가, 냐의 상매성 안에서, 내가 순종하는 가운데 행한 것이 나
자신파 다릎 사랑파 하나님에 게 기익펄 만한 가치가 있어서, 냐 자신
의 행 동 증에서의 선려1 (先例)나 결 과, 냐 른 사란들의 활동 , 무엇보 다
도 그리스도의 -실 동£로 보충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상
대주의적이요 거칫 절대가 되는 것 이마. 그러스도 얀에서, 또는 그러
스도을 응하딱 알 려신 설대에 대한 신앙은 나의 상대적인 무지(無知)
와 지식, 상대석인 불신앙, 그리고 신앙, 시간, 장소, 직엽 등에서 내
가하고 있는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냐도 예외 없 이 완성된, 완
결펀 행동의 의 〔짧) , 모든 강조와 속펑:에서 역사하시는 은혜의 활동
에 의하여 보충 , 시정 또는 용서받을 펄요가 없는 의 는 되지 옷한다
는 것을 분영히 나타낸다.
238
제 7장 하나의 “결흔적안 에파학적 후 기.
239
하나닝과의 판계에 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 실 을 잊어버리고 있마.
그러하여 우리는 절대와의 가치 판계를고려에 넣지 않고 상대적 가치
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은, 기독교안은, 불-신앙적 행위라 하
겠마-이 모든 것은 너우냐 확설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의
타협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으로 우라 자신을 변영할 수
는 없마. 마만 우리는우리의 믿음 없음을 자인(自 않) 하게 되고, 우리
마음을 고쳐 주살 은혜에 믿음A로 의 지 해 야 될 것이다. 그러하 연 우
씌한 자의 수난의 뱃가로, 우리의 상처, 즉 스스로 상처 업었 A냐 스
스후 고치지는 뭇하는 그 상처 블 낫게 해 주신다.
3. 사회적 실존주의
240
제 7장 하나의 “경 흔적인 비과학척 후기’
241
나 그것이 캐안주의척안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연 우리가 우리의
결단을, 우리를 위하여,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하는 것 A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결단은 키에르케고르가 의미하는 개안루
의적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또는
242
제 7 장 하나의 “결흔적안 비과학적 후기’
4. 홈 9: 1-5.
243
다. 직접적안 대변이 없이는, ó] 런 모든 증언이 나에게 아무렌 잔라
도 되 지 옷한다. 그러 냐 동반자, 동역 자, 교사, 확실한 증인들이 없
으면 나는 나 자신의 상상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가
244
제 7장 하나의 “ 결 흔적인 "1 과학적 후기 ’
245
살 수 있는 것 이 아니기 해문야다. 우리는 지금 결단해야 한다. 01
숭어 있는 왕국과 불완전한 우리의 현상 앞에서 결단해야 하는 것
이다.
246
제 7장 하냐의 “결론적안 바과학적 후기’
247
대성을 가진다. 그러고 우리에게는 또한 가지의 동시대생이 었 다. 젤
대자안 하나닝 , 아브라함과 이 삭과 야곱의 하냐닝 , 죽은 자의 하냐닝
。 l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닝이신 그분, 그러스도 안에서 모든 시간을
함께 결속시키는 분파 동시대석이다. ‘그리스도 얀에 있는 하나닝, ’
‘하나닙 안에 있는 그러스도,’ 우리가 우리의 가장 적은 형제들 가운
데서까지도 얀나기 를 기대 하며 기역할 수 있는분 , 원치 않는종을통
해서도 성판을 집챙하시 는 분파 동시대적이다. 우리 의 결 단은 반드시
헨재의 순간에서 행해져야 한다-그러나 영원 속에 살아 계시 는 분의
역사석, 기억펀 챙 똥들로 말마암아 거룩하게 되어진 역사를 지니고
있는, 역사석 존 재자 들 의 띤전에서 이 루 어진다.
4. 의존적 자유
248
제 7장 하나의 “결론척인 ~l 파학적 후기”
249
이 아난 많은 선택들에 종속되 어 있다.
250
제 7장 하냐의 “결흔적얀 마파학적 후기’
25 1
에 넣고 있기 해문이 마.
2 52
제 7 장 하냐의 “결흔척안 "1 파학적 후기 x
253
이 안격파 야 사건을 통하여, 이 신앙은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
우리의 교회, 우리 인간 공동체 안에 도입되였마. 이제 이 신앙이 우
리 속에 말생했으며, 그를 통하여 신앙이 언제나 우리 얀에 있였다는
것을 알며, 이것이 없였더라면 우리가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그리고 신설은 모든 사불 안에 있는 도덕척 이성엄을 알게 펀다.
그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았는 이 신앙의 역사적 성육신 없이는,
우마의 신앙이 유지띨 수 없다. 우리 인간 역사 안에 주어진 역사적
싣재처럼, 그는 우리가 그 위에 건축할 모퉁이돌이며 거치는 반석안
것이다. 그는 다만 그의 신앙파 그의 신앙의 창조를 가지고 그저 있
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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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하냐의 “결흔적인 아파학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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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짧 神얻홉博士
韓國神寧大學長 歷任
그리스도와 文化
1958年 12 月 5日 初版
1991 下 7.月 30 日 15版
著 者 러처드 나이버
譯 者 金 在 俊
發行人 金 Ill:ì 破
冊컵중해 33 값 3, 90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