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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
김경욱-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
김경욱
문서 토론
목차 [감추기]
1. 개요
2. 논란
3. 결말
4. 주석
1. 개요
4
_ 소설가 A씨의 페북에 간접인용으로 게재된 통화 내용 을 직접인용으
로 생생히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가 B씨:절필하는 한이 있어도 소설가 소설은 절대 안 쓴다더니.
진작 좀 쓰지 그랬어.
소설가 A씨:소설가 소설? 내가?
소설가 B씨:멋쩍으면 술이나 한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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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했다. 동명의 신인 작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목차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 순간 소설가 A씨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 말
미에 적힌 프로필마저 본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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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계정으로 보낼 메일을 썼다. 냉철하면서도 활어처
럼 퍼덕이는 문장, 담백하면서도 핵심을 꿰뚫는 문장, 오리지널 작가의 문장
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문장이었다.
소설가 A씨가 이제껏 써온 무미건조한 글과 달리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 꿈
틀거렸다. 겨우 열 몇 줄이었지만 500쪽짜리 장편이라도 탈고한 기분 아니
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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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라는 소설 독법의 기본도 모르나? 알 만한 사람들마저 왜들 이럴까. 그
러면서도 소설가 A씨는 덮어둔 잡지를 다시 펼쳐 들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
가. 당사자도 모르는 자전소설이라니. 두려운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
는 게 당연했다.
2.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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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벤치마킹하려는 의도였지만 첫 글이 안 써져 사실상 두 해째 휴면 상태였
다. 소설가 A씨의 페북은 잠에서 깨어나 외쳤다. “제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
한 분은 하루빨리 자수하여 광명 찾기를 권합니다. 눈 밝은 독자분들은 주변
에 범인으로 의심되는 분이 있으면 주저 말고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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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됐다. 문득이라는 부사가 그러했다. 특히 작중인물이 중요한 무언가
를 떠올리는 문장엔 어김없이 등장한다며 각 단편마다 빈도수를 정리한 글
까지 올라왔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상투어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무언가’ ‘이내’ ‘뇌리를 스쳤다’ ‘불현듯’…….
발굴된 상투어 목록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이후 소설가 A씨의 페북 계정은
다시 휴면상태로 돌아가는 듯했다.
_ [찾는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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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다. 주인공 또한 같은 라인 집집이 돌아다니며 엘리베이터에서 본 적 없다
는 서명을 받는다. 그런데 결말은 어떤가. 악전고투하며 꼭대기층까지 걸어
올라간 주인공이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아연 홀가분함을 느
낀다. 이토록 허망한 엔딩이라니. 이 소설가는 정녕 독자가 진심 궁금해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단 말인가? 모르면 소설가 타이틀을 반납할 일이고 알면서
도 이러면 직무유기다. 똥 누고 밑을 안 닦은 기분이랄까. 흉사에도 소설 쓸
궁리만 하는 인간이나, 끝까지 맞서기는커녕 덜 억울하자고 일부러 엘리베
이터를 타는 인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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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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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설가 A씨의 발표 목록에 새로 추가된 단편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이
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
4. 주석
1 혐오를 조장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표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표현, 프라이버시
를 침해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표현, 상투적이거나 교양과 거리가 먼 표현 등등.
2 이후 사건 전개에 관한 서술은 소설가 A씨의 페북 글을 바탕으로 일부 재구성했다.
3 『SNS시대의 작가의식 실태조사』, 공공예술정책연구원, 2019.
4 프라이버시 문제에 관해 본 매체에는 어떤 책임도 없음을 밝혀둔다.
5 https://www.choijergagyuk/hometraining/moontlepush-upbong#%5~&
6 『대산문화』 2020년 가을호, 100쪽.
7 프라이버시 문제에 관해 본 매체에는 어떤 책임도 없음을 밝혀둔다.
8 구나윤, 「원고 매수와 단편 미학의 상관관계」, 『한국현대소설문학흐름연구』 2017년 상반기호.
9 예술작품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도.
10 히브리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산에 도착하기 전에 머문 곳. “그들은 샘이 열두 개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 서 있는 엘림에 이르러 거기 물가에 진을 쳤다.” 텔아비브 대학교 문헌지질학과 애
덤 사이먼 교수는 출애굽기 15장 27절을 근거로 수에즈운하 120킬로미터 남동쪽에 위치한 알 라시드 오
아시스라고 추정한 바 있다.
11 어쩌면 소설이라는 비생산적인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반사회적 범죄가 되어버린 시대인지도 모
른다.
12 18세기 말 개발되어 고속 인쇄에 쓰인 인쇄용 금속판을 가리키는 불어. 문학과 영화에서 상투적이고 판에
박힌 듯한 표현을 칭하는 비평용어로 쓰인다.
13 역술이야말로 한계에 봉착한 이성주의를 극복할 대안적 세계관이라는 역술인협회의 항의가 있었다.
14 고혈압 질환의심 경계선은 심장 수축 시 140mmHg, 이완 시 90mmHg.
15 헤드라인 또는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 불교의 백팔지옥 중 허언을 일삼은
자들이 밤새 제 혀를 씹는다는 야마(夜魔)지옥. 일본어로 산(山). ‘야마 돈다’라는 표현이 있지만 머리와의
연관성은 밝혀진 바 없다.
16 본 매체는 ‘조작’이라는 단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17 「글 농사엔 농번기 따로 없어」, 동향일보, 1999. 10. 14.
18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살인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한민국 경찰청 범죄
분석통계에 따르면 현장을 다시 찾는 강력범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추
정된다.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 CCTV,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주민들.
19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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