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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흐으으…….

계속해서 울기만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조지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우세요, 어머니. 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허어어어…….”

딸의 냉정한 말이 더욱 서러운 듯 레이디 캐서린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조지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제가 말했잖아요, 윈스턴을 믿지 말라고.”

조지나의 푸념 섞인 말에 곧바로 레이디 캐서린은 두 눈을 치켜뜨며 사납게 내뱉었다.“더 강하게


말했어야지! 윈스턴이 무슨 짓을 벌이는 건지 네가 자세히 설명을 했으면 우리도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네가 대충 말하니까 우리도 그냥 넘어간 거잖아!”

난데없이 돌아온 화살에 조지나는 기가 막혀 하, 소리내어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저라고 윈스턴이 어떻게 할 건지 자세히 알았겠어요? 왜 저한테 뭐라고 하는 거예요? 전 분명히


경고했는데!”

“그러니까! 네가 윈스턴한테서 더 자세히 상황을 알아 왔어야지!”“윈스턴이 저한테 그걸 왜


말하냐고요, 저도 한 팬데!”

갑자기 레이디 캐서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한 패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전 어머니 딸이잖아요.”

조지나는 터지려는 속을 간신히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저 역시 윈스턴에게는 적이나 마찬가지인 거라고요. 그런데 저한테 시시콜콜 친절하게 속셈을 다


밝혔겠어요?”

어쩌면 말했을지도 모른다. 조지나가 그를 더 졸랐다면. 어차피 어머니는 내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

그래봤자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는 생각에 조지나는 미약한 후회를 접어버렸다.


“이미 늦었어요.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고요.”

딸의 냉정한 말에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렸던 레이디 캐서린은 이번엔 태도를 바꿔 매달리기


시작했다.

“조, 조지나, 어떻게 하면 좋겠니? 윈스턴에게 말해다오, 우린 아무 잘못도 없다고 말이야. 그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우린 가족이잖니.”

사정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조지나는 한숨만 내쉬었다.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전 그저 어린애일 뿐인걸요.”

그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므로.

딸의 절망적인 반응에 다시금 레이디 캐서린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차올랐다. 부르르 몸을 떨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모습에 조지나는 그저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맞아,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

그녀는 허망하게 생각을 떠올렸다. 어쨌든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자신의 책임도 있긴 하지만


반대로 윈스턴에게는 공로를 세운 셈이지 않은가.

내가 USB 를 갖다주지 않았다면 윈스턴은 아직도 진실을 알지 못했을 거야.

조지나가 아는 선에서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까지 무자비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조지나는 그 일과는 무관하지 않은가. 가족이라고 해서 함께 포함이 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윈스턴은 분명히 말했었다, 조지나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결정을 내리겠다고. 그 때문에 그토록 고생해서 USB 를 찾아서 갖다바친
것이니.

그래도 확인은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조지나는 급히 자리를 떠나 방으로 돌아가 휴대전화의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에 전화했지만


비서는 윈스턴이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조지나는 당장 딜라이츠로
달려가고 싶은 것을 참고 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 벨소리가 울린 뒤 흘러나온
목소리에 막 말을 하려하는데, 건너편에서 먼저 소리를 냈다.

“지금은 손님이 와서 바빠, 나중에 얘기하자꾸나.”


차분히 말한 윈스턴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조지나는 넋 나간 얼굴로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
결국 어깨를 늘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원조를 해준다는 각서를 받았어야 했는데.

후우,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생각했다. 윈스턴이 부디 자신이 했던 말을 잊지만 말아주기를.

***

응접실 안에는 홍차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캠벨 부인은 뜨거운 차를 소리 없이 목으로


넘긴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건너편에는 그녀가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들이 앉아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 고맙구나.”

어머니의 미소 띤 얼굴에 윈스턴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찾아오셨는데 언제든 뵈어야죠.”

아들의 매끄러운 말투에 캠벨 부인은 자애롭게 입가를 끌어올렸다. 물론 그것은 전혀 진심이


아니었다.

“유진은 어디 갔니?”

매번 칭하던 ‘그것’이 아닌 ‘유진’이라는 표현에 윈스턴은 전혀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했다.

“안젤라와 함께 유치원에 갔습니다. 곧 끝날 시간이 될 겁니다.”

“그렇구나.”

캠벨 부인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을 꺼냈다.

“내가 그것을 유진이라고 불렀는데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구나.”

“놀라고 있습니다.”

윈스턴은 대답했으나 표정은 여전히 똑같았다. 캠벨 부인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좋아, 괜히 시간 끌지 않으마. 이제 그만하지 않겠니?”


“무엇을 말입니까?”

윈스턴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캠벨 부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네 형제들을 난도질하는 짓 말이다. 그 정도 했으면 됐지 않니? 이제 그만 하는 게 어떻겠니?”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투는 마치 괜한 투정을 부리는 아들을 달래는 것 같았다. 그를 열 살배기


아이 다루듯 하는 그녀의 행동에 윈스턴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글쎄요…….”

느린 말투로 천천히 입을 뗀 그가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윈스턴.”

캠벨 부인은 여전히 차분한 말투로, 그러나 아까와는 미묘하게 다른 톤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그것에 눈이 멀어서 어리석을 짓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모두 널 용서했단다. 두 번은


곤란하지 않겠니?”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투는 마치 괜한 투정을 부리는 아들을 달래는 것 같았다. 그를 열 살배기


아이 다루듯 하는 그녀의 행동에 윈스턴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글쎄요…….”

느린 말투로 천천히 입을 뗀 그가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윈스턴.”

캠벨 부인은 여전히 차분한 말투로, 그러나 아까와는 미묘하게 다른 톤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그것에 눈이 멀어서 어리석을 짓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모두 널 용서했단다. 두 번은


곤란하지 않겠니?”

말투는 다정했으나 내용은 협박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윈스턴은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넘겨버렸다.

“한 번은 속았어도 두 번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말투를 흉내내어 빈정거리는 아들의 반응에 캠벨 부인은 입을 다물었다. 화를 삭이는 건지,
당황해하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정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구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가운 말투로 캠벨 부인이 말했다.

“난 네게 충분히 기회를 줬는데 네가 계속 그것에 정신이 팔려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않겠니?”

윈스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에 캠벨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것이 사라지면 너도 정신이 돌아오겠지.”


그녀는 즐거운 기분으로 아들이 굳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대디이!”

“앤지!”

건물 밖으로 뛰어나오는 딸을 반갑게 안아 든 유진이 다정한 음성으로 물었다.

“재미있었어? 오늘도 친구들이랑 잘 놀았니?”

“응…… 뭐.”

고개를 갸우뚱하고 애매한 대답을 하는 모습에 유진은 의아해져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아이는
금세 헤실 웃더니 “비밀!”하고 대답했다.

“정말? 대디한테 얘기 안 해줄 거야?”

짐짓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안젤라는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지. 걱정 마, 난 대디의 딸이니까!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어!”

물론이다. 유진은 내 딸에게 불가능이란 없지, 하고 생각했으나 그래도 당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대디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 줘.”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마.”

딸의 대답을 확인한 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낯익은 차가 주차해 있었다.


안젤라의 손을 잡고 익숙한 차로 걸어갔던 유진은 차 문을 열고 서 있는 남자를 보고 문득
의아해졌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주춤거리는 그의 모습에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진 캠벨 씨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오늘 임시로 고용된 기사입니다. 계속


일하시던 앤더슨 씨가 몸이 안 좋아서 제가 오늘만 일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의심스러우시면
케인에게 전화로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그가 내민 신분증을 확인한 유진은 무안해지는 것을 참고 그의 말대로 집사에게 전화를 했다.


집사에게서 남자가 한 것과 같은 내용의 말을 듣고 난 뒤에야 유진은 마음을 놓았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전화를 끊고 인사를 하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그들이 차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안젤라와


유진이 차에 타고 난 뒤, 그는 선뜻 운전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에 유진은
무심코 운전석을 보았으나 곧 의심을 떨쳐버렸다. 다른 운전사들도 항상 하는 일이 아니던가.
집사에게 확인까지 해놓고 계속 의심하는 건 저 사람한테 미안하지.

아이의 운전 벨트를 매준 뒤 심호흡을 하며 기도하듯 두 손을 깍지 낀 유진을 룸미러로 확인한


운전사는 능숙한 솜씨로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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