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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같은 나이의 두 남성.

토마스 위버 – 35-45 – 감명 깊은 이야기를 쓰는 성공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작가. 자신의 삶을 바쳐 성공을 얻은 인물.

앨빈 켈비 – 35-45 –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토마스의 가장 친한 친구.


활발하고 순수하며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테이블, 의자, 그리고 연단이 있는 작은 마을의 장례 예배당.


토마스 위버가 비싼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등장한다.
그는 문앞에서 잠깐 멈칫한다. 그곳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12 살 소년들의 목소리를 회상한다.)
어린 토마스(VO)

죽으면 좋은 말만 해 주네.

어린 앨빈(VO)

그게 송덕문이라는 거야.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다.)

네가 내 것 써 줄래? 나도 네 것 써 줄게!

어린 토마스(VO)

그게 가능하냐?

어린 앨빈(VO)

아, 그러게.

(토마스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연단으로 걸어간다.)

그럼, 남은 사람이 하기. 약속?

어린 토마스(VO)

약속하면 가도 돼?

어린 앨빈(VO)

응!

(토마스는 서류가방을 열고 노트 하나를 꺼낸다.

그는 노트를 펼치고 청중들 앞에서 연설하듯 그것을 읽는다.)

토마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자켓 주머니에서 펜 하나를 꺼내 글을 고친다.

그가 송덕문을 청중들 앞에서 낭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

(또 고친다.)

가장 오래된 친구였습니다.

가장… 하. 나중에 채워 넣기.

(그는 페이지를 뜯어내고는 새로운 페이지에 다시 써보려고 한다.)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앨빈과 저는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마다


함께 눈 천사를 만들고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인 멋진 인생을 보곤 했습니다.
클라렌스라는 천사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토마스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문득 알아차린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리에서 뛰어내린 조지 베일리를 구해주는 이야기죠.

(그는 계속해서 써 보려고 노력한다.)

이 이야기를 앨빈이 좋아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그는 체념하고 그 페이지를 뜯어서 바닥에 버린다. 그는 다시 쓰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토마스 위버입니다. 저는 다수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아, 미치겠네.

(그는 노트를 바라본다.)

아는 걸 써, 톰.

M1. WRITE WHAT YOU KNOW

아는 대로…
(그는 쓴다.)

7 살 때부터 오랜 친구죠
항상 함께하던…
(쓰는 것을 멈춘다.)

그런 친구
그랬었죠
아는 걸 써, 톰
아는 대로
(쓴다.)
머리는 좋은데
특이했었지
(단어 선택을 고민한다.)

특별했었죠…

(마침내 결정한다…)

아니, 특이했었죠.

그의 아버지 하시는 책방 늘 도왔는데


아버지가 쓰러진 후…
(쓰는 것을 멈춘다.)

아는 걸 써
아는 대로

이건 사실일 뿐야
과거일 뿐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모든 걸 깨뜨린 작은 틈새
그 짧은 순간 난 놓친 걸까?
또 이제 와 다시 찾아낸다 해도
그 무슨 소용일까
어디서부터가 내 탓인 건지
내 책임인지
놓쳐버린 그 순간이 나의 잘못인지
(그는 다시 노트를 바라본다.)

왜 몰랐었니
아는 걸 써, 톰
(그는 쓴다.)

난 대학 갔고
그는 남았지
그의 아버진 돌아가셨고
난 돕지 못했죠
앨빈 홀로 남겨두고…
(쓰는 것을 멈춘다.)

잘 나가는 인생
꽉 막힌 인생
모든 건 한순간 바뀔 수 있어
먼지처럼 작은 사건으로

그 애의 삶이
언제 변했었지?
그 인생이 방향을 비튼 그 순간
놓쳐버린 이야기

할 말이 없어
막혀있어
난 찾아야만 해, 앨빈
여기에 혼자 서 있는 이유
난 찾아야만 해
(토마스는 그 페이지를 뜯어낸다. 장례 예배당 벽은 사라지고

토마스는 자신의 마음 속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이동된다.

그의 인생의 추억들과 이야기들을 상징하는 종이와 책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수많은 책장으로 빼곡하다.

그곳에 앨빈 켈비가 조용히 앉아 있다.)

그 짧은 순간
놓친 이야기
아는 걸 써, 톰
아는 대로
(앨빈이 책장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앨빈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 톰.

토마스

방해하지 마, 앨빈. 나 글 쓰잖아.

(앨빈은 토마스의 어깨 너머로 노트를 본다.)

앨빈

백지잖아.

토마스

창작은 과정이야. 결과물은 마지막 단계일 뿐이라고. 이제 조용히 좀 해.

앨빈

도와주려는 건데…

(토마스가 째려본다.)

미, 미안해.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알겠어…

(토마스는 빈 페이지를 바라본다.

앨빈은 조용히 있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어디서 읽은 건데 말야, 사람의 뇌는 말 그대로 모든 걸 기억한대! 모든 순간, 모든


디테일까지 다. 그리고 그걸 어딘가에 저장한대. 사람마다 저장하는 방식은 달라.
너는 작가잖아, 톰. 그래서 너는 기억들을 마치 한 편 한 편의 이야기인 것처럼
저장하는 거야.

(앨빈은 토마스의 몸을 잡고 책장 쪽으로 돌린다.)

이것 좀 봐.

(앨빈은 책장에서 종이 한 움큼을 꺼낸다.)

네 얘기…
(또 꺼낸다.)

내 얘기…

(또 꺼낸다.)

우리 둘 다 나오는 얘기…

(또 꺼낸다.)

야, 이것들만 있어도 송덕문 열 개는 쓰겠다!

토마스

네 도움 필요 없어, 앨빈. 나 혼자서 할 수 있어.

앨빈

정말? 근데 왜 아무것도 못 쓰고 있어, 톰?

(이 말은 정곡을 찌른다. 정적.)

음, 이렇게 하자. 이야기를 하나 골라서 적는 거야. 그리고 또 고르고… 적고… 또


고르고... 뭔지 알겠어, 톰? 송덕문이 다 그런 거지. 온갖 이야기 잔뜩 하다가
마지막에 감동적인 말 한마디 딱 해 주면 사람들 다 엉엉 울고…

(앨빈이 이야기 더미를 의기양양하게 책상에 탁 놓는다.)

그럼 완성이잖아! 내 송덕문. 내 인생의 이야기.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 위버 씀.

토마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앨빈

쉬운 거 아냐?

(토마스는 책상에 앉아 이야기 더미를 쳐다보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다.)

자, 여기 좋은 게 있네. 이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때?

(앨빈이 페이지 몇 장을 골라 토마스에게 건네준다.)

‘시작’.

앨빈 켈비의 이야기.

토마스

이미 해 봤어. 우린 1 학년 때 처음 만났고, 그 이후로 쭉 가까운…


앨빈

아니,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지, 좀!

작가 “토마스 위버”의 방식대로 이야기해봐.

시작.

앨빈 켈비의 이야기.

M2. MRS. REMINGTON

나 여섯 살 때 엄만 돌아가셨어
빨리 적어.

토마스

앨빈.

앨빈

믿어 봐.

(토마스는 노트에 글을 쓰며 가끔씩 앨빈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앨빈이 준 종이들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토마스

앨빈의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일 때 돌아가셨습니다.

앨빈

잘했어.

남편과 아들 남겨두고서

아빤 책방 일에 너무 바빠지셨고
난 혼자 세상을 마주했었어
외롭던 초등학교 1 학년
그곳에서 내 영혼의 빛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토마스는 쓰는 것을 멈추고 이야기를 즐기기 시작한다.)
1 학년 때 선생님 덕분에
학교는 좋은 곳이 되었어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어
여자 얼굴에 검은 수염

갱년기가 지났을까
여자들은 그럴 때가 있대
뭐, 호르몬 때문에
그 어떤 강한 면도기도 선생님의 수염엔
뚝 부러지고 말았었다네

근데 그 미소에 난 하루가 밝아졌어


날 안아주는 품이 기분 괜찮았어
굵은 수염 땜에 두 볼이 긁혔지만
그 품 안에 웃을 수 있었어
(앨빈은 토마스가 안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빨리 적어!

(토마스는 다시 쓰기 시작한다.)

2 반 담탱이는 마녀였고
3 반 담탱이는 개거품
우리 담탱이는 스모선수
넘실대던 슈퍼 뱃살

할로윈만 되면 모두 파티의상 준비하고 긴장하며 기다렸었지


온 초딩들의 관심사는 알록달록 의상 입고 행진하는 할로윈 파티
선생님은 활짝 미소를 지으시며
완전 초능력 눈빛으로 우릴 평가했어
우린 얼음 되어 무대 위에 섰어
나름 1 등 상을 기대하면서
(토마스도 이야기에 끼어든다.)

토마스

한 애는 종이로 만든 날개를 등에 붙이고 옷걸이를 구부려 만든 천사 머리띠를 하고


톰 소여라고 써 붙여진 책 겉표지를 들고 있었어요. 다들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이었죠.

앨빈

나 빼구.

(앨빈은 토마스의 책상이 학교 책상인 양 그 위에 앉는다.)

레밍턴 선생님!

토마스

어떤 애는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했어.

앨빈

선생님, 저요!

토마스

어떤 애는 슈퍼맨이라고 우겼어.

앨빈

레밍턴 선생님, 저 알아요! “멋진 인생”에 나오는 천사 클라렌스입니다.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천사였어요.

(정적.)

토마스

애들은 전부 다 비웃었죠.

앨빈

난 울었고. 선생님은 다음 순서로 무대 위로 날 불러내셨어.

인자한 미소에 난 걱정 사라졌어


두 눈이 마주치자 괜찮을 걸 알았어

밝은 미소에서 맘에 힘을 얻어
두려웠던 한 발을 내디뎠어
토마스

아직도 천사 클라렌스가 누군지 모르는 불쌍한 자식들은 멍 때리고 있었는데…

(앨빈은 일어나서 무대 중앙으로 스윽 이동한다.)

앨빈

내가 털 슬리퍼랑 목욕 가운에 머리엔 핑크색 헤어롤을 달고

무대 위로 스윽 등장해줬지.

선생님은 물으셨어. “앨빈 켈비, 넌 뭐로 변신한 거니?”

유령이요. 우리 엄마의 유령!

(정적.)

그날 점심시간에 난 혼자 외롭게 있었어


잠옷과 털 슬리퍼 신고
애들이 계속 놀릴 때
선생님은 내 옆에 한 천사와 함께 다가왔어

앨빈

클라렌스 천사님, 이쪽은 앨빈 어머님이세요. 천사님의 엄청난 팬이랍니다.

따뜻한 미소에 난 그 맘을 알게 됐어
세상 살 땐 하나보단 둘이 낫다는 걸
선생님은 내게 선물 주신 거야
그날 할로윈 낮에 마주 앉은 두 눈에
우리 엄만 천사를 보고
(토마스에게 고개를 돌린다.)

난 널 봤어
이런 게 바로 이야기지. 이거 얘기해 주면 다들 놀라서 네 손바닥 안에 들어올걸.

(토마스는 그 종이들을 옆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노트를 본다.)

토마스

이게 아니야
앨빈

뭐 하는 거야?

(앨빈이 바닥에 흩어진 페이지들을 다시 주워 모은다.)

토마스

모든 걸 깨뜨린 작은 틈새
그 짧은 순간
난 놓친 걸까

앨빈

이걸 버린다니 믿을 수가 없네…

토마스

또 이제 와 다시 찾아낸다 해도…
앨빈

좋아, 알고 싶어?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준비됐지?

토마스

뭘 말이야?

(앨빈은 ‘레밍턴 선생님’ 페이지들을 던져 버리고

테이블 위의 종이 더미를 뒤적거린다.)

앨빈

어딨지? 찾기 쉬울 줄 알았는데. 겨우 지난 주 일이잖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자 책장도 샅샅이 훑어본다.

마침내 두꺼운 종이뭉치 뒤에 꽁꽁 감춰져 있던

몇 장의 얇은 페이지들을 찾아낸다.)
오. 아주 꽁꽁 묻어 버리셨네.

(그는 그 페이지를 읽는다.)

‘위대한 신의 도서관’.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

불과 일주일 전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앨빈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그는 토마스가 쓰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빨리 적어!

(토마스가 쓰기 시작한다.)

토마스

불과 일주일 전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앨빈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앨빈

…그의 아버지를 기렸습니다.

토마스

…그의 아버지를 기렸습니다.

앨빈

서로를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죠.

(토마스는 이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싫어 쓰는 것을 멈춘다.)

계속 적어.

(토마스가 다시 쓰기 시작한다.)

토마스

서로를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앨빈은 마을 신문에 광고를 냈죠. “장례식,


마을 예배당에서.”

(앨빈은 종이를 내려놓고 과거의 장면으로 들어간다.)

앨빈

늦었잖아.

(토마스는 앨빈을 무시하고 현재에 남아 이야기를 계속한다.)

토마스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 위버가 송덕문을 쓰고 낭독함.”

(앨빈은 토마스를 과거의 장면으로 들어오게 하려 한다.)

앨빈

늦었잖아.

토마스

아버지의 부고에 객원 연설자를 소개하는 사람은 앨빈밖에 없었을 겁니다.

앨빈

늦었잖아.

(마침내 토마스도 과거로 들어간다. 앨빈은 그에게 달려들어 힘껏 껴안는다.)

토마스

미안.

앨빈

그거 보여줘!

토마스

오자마자 그 얘기냐? 걱정하지 마, 분명 맘에 들 거야.

앨빈

빨리 읽어봐.

토마스

사람들이 기다리잖아.

앨빈

기다리라 그래.

(토마스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읽는다.)

토마스

“친애하는 가족과 친구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든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일생을 보내신 분이죠.

앨빈
음, 좋은데?

토마스

이게 아니야!

(토마스는 종이를 구겨서 던져 버린다. 토마스와 앨빈은 즉시 현재로 돌아온다.


토마스는 연단으로 돌아가 다시 노트를 본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앨빈

흠, 아직 준비가 안 됐나 보네. 그래, 뭐. 다른 걸 찾아볼게.

(앨빈은 종이 더미를 뒤진 후 다른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는 그것을 토마스에게 건넨다.)

이건 어때?

최고의 선물.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

앨빈은 그의 아버지가 하시던 책방 2 층에 살았습니다.

(토마스가 노트에 적기 시작한다.)

토마스

앨빈은 그의 아버지가 하시던 책방 2 층에 살았습니다.

앨빈

그 책방 이름은 바로 ‘작가의 공간- 헌 책과 새 책’ 이었죠.

토마스

그 책방에서 앨빈은 바깥 세계로부터 도망쳐 온전한 앨빈 자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앨빈의 엉뚱한 말들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죠. 우리는 틈만 나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앨빈

우리 아버지는 항상 저희를 따뜻하게 반기며 꼭 안아주셨어요.


토마스

책방 문에는 종이 달려 있었습니다.

(책방 종이 울린다.)

종이 울릴 때마다 앨빈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앨빈

종이 울릴 때마다 천사들의 날개가 돋는다!

토마스

멋진 인생에 나오는 대사죠.

우리가 11 살이던 해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는 늘 그랬듯이 함께 눈 천사를


만들고 멋진 인생을 보았습니다. 그리곤 앨빈이 절 아래층 책방으로 데려갔어요.

(앨빈과 토마스는 과거의 책방으로 들어간다.

밤이라 책방 문은 닫혀 있고 매우 어둡다.)

앨빈

따라와.

토마스

뭐 하는 거야?

앨빈

네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책을 고르려고.

토마스

좋네. 무슨 책?

앨빈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 이 거룩한 곳에 있을 거야.

토마스

거룩한 곳?

앨빈

거룩한 곳.
토마스

여긴 그냥 책방이잖아.

앨빈

아냐, 여긴 신비한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위대하고 강력한 곳이라고.

(토마스는 잠시 과거에서 빠져나온다.)

토마스

앨빈의 아버지는 손님들에게 딱 맞는 책을 찾아주는 기묘한 능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다시 과거로 들어간다.)

앨빈

책은 독자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토마스

마치 나 없는 앨빈처럼!

앨빈

맞아!

(앨빈은 깔깔 웃으며 톰에게 달려들어 와락 껴안는다.)

토마스

으악! 헤헤, 맞아.

(앨빈이 다시 화제로 돌아온다.)

이 곳은 말야, 독자와 책을 연결해 줄 수 있어. 인생을 뒤흔드는 독자와 책의 완벽한


합체가 가능하다구!

M3. THE GREATEST GIFT

사람들 아무 의심 없이 온다
여긴 거창한 그 땅이란 걸 모른 채
토마스

거룩한 그 땅 아냐?

앨빈

세상 끝에서 찾아온다
이야길 찾아 헤맨다
토마스

내 선물은 어디 있는데?

앨빈

이렇게 절박한 순례자들이 이 성지에 찾아와.

우리 아빠는…

“어서 와요”
눈 마주쳐 인사해,

“책방 주인장입니다
도와 드릴까요?”
대부분 대답은
“괜찮아요”
“그냥 혼자 둘러 볼게요”
“이야길 찾고 있어요”

그렇게 책더미를 뒤진다


책의 뒷면과 표질 읽는다
근데 예외없이 어쩔 수 없이 아빠를 찾는다!

아빤 잠깐 생각하신다
주문 같은 말 중얼거린다
으음… 바투 할루위드, 바투 할루위드…

딱 때 되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책을 찾는다
특별한 그 책은
독자들의 인생을 바꿔 놔
(토마스는 멍하니 앨빈을 쳐다본다.)
알겠어?

토마스

뭘?

앨빈

이 책방은 우리 아빠를 통해 얘기해. 우리 아빤 통로거든. 도구, 매개체! 난 아빠


아들이잖아. 그 목소리, 신비로운 속삭임, 책방의 영혼이 외치는 소리가 나에게도
들려. 지금 이 순간, 나의 조상들이 내린 영혼의 힘으로 네 선물을 향해 인도해 줄게!

(정적)

토마스

그냥 조립 비행기 사 주면 안 돼?

앨빈

쉿!

오소서
책방 영혼들이시여
앨빈입니다
(토마스는 집중하기 시작한다.)

토마스

토마스입니다!

앨빈

토마스에게 선사할 선물을 찾아주소서


이야길 찾아주소서
(그들은 기다린다.)

토마스

들려?

(앨빈이 귀를 기울인다.)

앨빈

아니. 잠깐! 뭔가 부족해. 아! 우리 둘 다 해야 돼!

토마스
뭘?

앨빈

자, 따라해!

고갤 숙인 채 벌떡 일어서
토마스

고갤 숙인 채 벌떡 일어서
앨빈

겸손하게 말씀을 기다려


토마스

겸손하게 말씀을 기다려


함께

신비한 책 곧 나타나길
조용히 기다려
앨빈

다음 단곈 좀 더 어려워
아빠 표정 좀 이상해져
(앨빈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토마스

어, 너 완전 이상해 보여.

앨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뭔가… 보이는 것 같아! 종이 날개, 천사 머리띠, 책 겉표지…

와우! 짱이야! 너만의 책을 찾았어!


토마스

뭔데?

앨빈

나의 선택에 고마워할 걸
넌 필요한지도 몰랐던 얘기
네 인생 변화시킬 책
(앨빈은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토마스에게 건네준다.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토마스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6 학년 3 반 토마스 위버, 독서감상문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토마스는 마치 6 학년 때의 교실로 돌아간 것처럼

관객들과 앨빈을 둘러본다.)

이 책은 앨빈이 신비로운 책방에서…

(그는 이 말이 우습게 들린다는 걸 알아차린다.)

어… 엄청 좋은 책이고,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서문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토마스는 책을 펼쳐 읽는다.)

“나는 어른들이 그들 자신이 어린 시절 간간이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즐거이


떠올리며, 그때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했으며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
돌아보기를 희망한다. 1876 년 하트퍼드에서, 저자.”

(책을 덮는다.)

M3. 1876

1876 년 자동차도 없고
라디오나 티비 영화도 없던 때였죠
또 지금은 없는 병들도 많은 때였는데
그때 누가 쓴 이야기를 우린 아직까지 읽어요
1876 년 화장실도 없었고
또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랐었대요
매일매일 새로운 과학 기술이 나와도
그 옛날에 쓰여진 글이 살아있어요
(토마스는 흥분하기 시작한다.)

난 책은 그저 글씨뿐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이 책을 읽을 땐 톰 소여가 보여
한번 나타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긴 세월을 넘어 영원토록 남아있어
(토마스는 뭔가 떠올린다.)

언젠간 이런 얘길 쓰는 게 내 꿈이죠

1876 년 작은 촌에 살던
한 사람이 이 모든 모험을 적었죠
그 모험들에 숨을 불어 넣어줬기 때문에
76 년은 75 년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토마스는 다시 연단으로 돌아가 송덕문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 한 권의 서문이…

앨빈

내가 준 책이지!

토마스

…저를 이 자리까지…

(토마스는 이 페이지를 노트에서 뜯어내 옆으로 던져 버린다.)

지금 내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

앨빈

아니었어?

(토마스는 노트에 쓴다.)

토마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아는 걸 써, 톰
아는 대로
(앨빈은 책상 위의 종이 더미를 뒤진다.)

앨빈

1 학년 때 선생님 덕분에 학교는 좋은 곳이 되었어.


(앨빈은 페이지 몇 장을 고른다.)

더 좋은 곳.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

(토마스는 그 페이지를 가져가 읽는다.)

토마스

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앨빈과 저는 장례 예배당 안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앨빈

저기 계신다.

토마스

우린 12 살이었죠.

(토마스는 종이로 눈을 가린다.)

앨빈

뭐 하는 거야?

토마스

저는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앨빈

이 쫄보.

(앨빈은 자세히 보기 위해 목을 쭉 내민다.)

어, 수염 다 밀었네?

(토마스는 종이를 내리고 과거로 들어간다.)

토마스

우리 돌아가자.
앨빈

잠깐만, 들어봐.

(그들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작가는 저런 걸 소재로 써야 하는 거야.

(토마스는 받아 적기 시작한다.)

토마스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야?

앨빈

레밍턴 선생님 남편인 것 같은데.

토마스

뭐? 선생님이 결혼을 하셨었다니…

(토마스는 점점 더 열심히 받아 적는다.)

뭐라고 하셨는지 들었어?

앨빈

더 좋은 곳으로 가셨대.

토마스

좋은 곳 어디?

앨빈

음… 디즈니랜드 아닐까?

(그들은 숨죽이며 듣는다. 토마스는 계속 쓴다.)

토마스

죽으면 좋은 말만 해 주네.

앨빈

그게 송덕문이라는 거야.

(앨빈이 기발한 생각을 떠올린다.)


야! 네가 내 것 써 줄래? 나도 네 것 써 줄게.

토마스

그게 가능해?

앨빈

아, 그렇지.

(앨빈은 잠시 고민한다.)

그럼 남은 사람이 하기. 약속?

토마스

약속하면 가도 돼?

앨빈

응.

토마스

좋아. 약속.

(토마스는 가려 하지만 앨빈이 그를 붙잡는다.)

앨빈

잠깐, 받아 적어. 나, 토마스 위버는…

(토마스가 쓰기 시작한다.)

토마스

나, 토마스 위버는.

앨빈

앨빈의 송덕문을 써줄 것을 맹세한다..

토마스

앨빈의 송덕문을 써줄 것을 맹세한다.

앨빈

그리고 그와 내가 얼마나 친했는지를 세상에 알릴 것이다.

토마스

그와 내가 얼마나 친했는지를 세상에 알릴 것이다.


앨빈

그리고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할 것이다.

토마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할 것이다.

토마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남은 사람에게 해당한다.

앨빈

만약 약속을 어기면 기찻길에 죽은 채로 떨어져 영원히 썩을 것이다!

(토마스가 잠깐 과거에서 나온다.)

토마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훔친 문장이죠.

앨빈

입 다물고 적기나 하셔!

(토마스는 과거로 돌아가 적는다.)

토마스

약속을 어기면 기찻길에 죽은 채로 떨어져 영원히 썩을 것이다.

앨빈

이제 사인해.

(그들은 차례대로 사인한다.)

토마스

이제 다 끝났니?

앨빈

응.

토마스

그럼 가자.

(토마스는 떠나려 한다.)


앨빈

잠깐, 송덕문에 뭐라고 써 줄 거야?

토마스

죽으면 알겠지.

(토마스는 과거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앨빈을 관찰한다.)

앨빈

흥, 말이 되는 소릴 하셔.

(무언가가 앨빈의 관심을 끈다.)

봐봐. 이제 관 뚜껑 닫나 봐.

(앨빈은 관 뚜껑이 닫히는 것을 조용히 지켜본다.)

토마스

잘 가세요, 레밍턴 선생님.

앨빈

디즈니랜드에서 행복하세요!

토마스

그 짧은 순간
모든 걸 깨뜨린 작은 틈새
(토마스는 그 페이지들을 버리고 연단으로 돌아가 노트에 집중한다.

앨빈이 현재로 돌아와 그에게 말을 건다.)

앨빈

그래서… 뭐라고 써 줄 거야?

토마스

오늘 우리는…

함께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토마스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모든 걸 깨뜨린 작은 틈새
(앨빈은 다른 페이지들을 골라 읽기 시작한다.)

앨빈

‘짜부시켜도 되는 벌레’.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

(앨빈은 페이지들을 톰에게 건네준다.)

토마스

열네 살 때였죠. 전 아버지 방에서 스포츠 잡지 하나를 슬쩍해서 앨빈에게 갔습니다.

(앨빈은 과거로 들어간다.

그는 무릎을 꿇고 가상의 나비를 관찰하고 있다.)

앨빈

쉿~!

토마스

앨빈은 폭포가 보이는 다리에서 나비 한 마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습니다.

(토마스도 과거로 들어간다.)

야, 이 축구선수 좀 봐봐. 프리미어 리그에서 연속 3 번이나 우승했대!

앨빈

쉿! 봐봐. 이 나비가 날개를 파닥거릴 때마다 공기의 파동이 일어난대. 바로 이


파동이 점점 퍼져 나가 바람의 흐름이나 기상 변화를 일으킨다는 거야. 이게 바로
나비효과라는 거지. 요놈이 한번 파닥거리면 아프리카에 눈보라가 몰아칠 수도 있어.

토마스

(토마스는 잠깐 과거에서 빠져나온다.)

다른 열네 살 짜리들이 봤을 때 앨빈은 완전 또라이였습니다.

앨빈

“개성 있다”고 해줘. 봐봐.

(토마스는 다시 과거로 들어간다.

그들은 한참 동안 같이 나비를 바라본다.)

토마스
뭘 보라는 거야?

앨빈

기다려.

(그들은 다시 한참 동안 나비를 바라본다.)

토마스

이게 뭐야…

M4. BEFORE NORMAL

곧 있음 열다섯 살이야
넌 생각조차 못 하겠지만
야 고등학교 가면 이제 상황이 달라
거긴 개성 따윈 안 쳐줘
내 말 좀 들어 봐
(가상의 나비가 파닥거리기 시작하자 앨빈은 그것을 지켜본다.)

앨빈

파닥거렸어!

토마스

벌레야. 짜부시켜도 되는 쬐끄만한 벌레.

M5. NORMAL

여기 이 잡지 좀 봐봐 앨빈
웬만한 애들 다 봤어
벌레는 그만 좀 내비두고 미식축구 기사 좀 봐
(토마스는 앨빈의 얼굴 앞에 잡지를 들이댄다.)

앨빈

하지 마!

토마스

중학교 땐 좀 튀어도 별 문제 없었지만


야 고딩은 달라 좀 묻어가며 살자
(토마스는 앨빈에게 잡지를 보여준다.)

지미 패트릭… 떠오르고 있는 신진 스타. (앨빈에게) 경기 사진 정말 멋지지?

앨빈

아플 것 같아.

(앨빈은 나비를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이미 날아가 버렸다.)

아, 나비 없어졌잖아!

토마스

이제는 달라져야 해, 앨빈
개성은 위험한 거야
너 혼자 4 차원 세계에서 놀다 왕따로 평생을 살게 된다
(앨빈이 나비를 다시 발견한다.)

앨빈

아하, 여기 계셨군.

토마스

또라이 앨빈은 이제 졸업할 때 됐어


대세를 거슬러 가지 말고 살자
앨빈

쉿!

토마스

흙놀이도 이제 그만, 앨빈
죽은 엄마의 유령도 그만
온갖 양아치들은 앨빈 너 같은 애들만을 찾고 있어
(나비가 날갯짓한다.)

앨빈

우와!

토마스
순간이야, 눈에 띄게 된다면
처음 단추를 잘못 끼면 거기서 끝이야
앨!

앨빈

쉿!

(토마스는 슬쩍 과거로 들어간다.)

토마스

전 지미 패트릭의 얼굴로 나비를 후려쳤습니다!

앨빈

안돼!

(앨빈은 나비가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토마스는 완전히 과거로 돌아온다.)

파닥거려, 파닥거려. 완전 파닥거려. 오 마이 갓.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상상도 못


하겠어. 완전 엄청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토마스

아무 일도 없어!

(토마스는 그곳을 떠나려 한다. 앨빈이 그를 붙잡는다.

토마스는 과거에서 나와 그의 친구를 관찰한다.)

앨빈

움직이지 마. 짜부시켜도 되는 쬐끄만한 벌레가 그런 힘을 가졌는데, 우린 어떨 것


같아?

토마스

앨빈은 손가락을 까딱했어요.

앨빈

이건 뭐가 될까?

토마스

그 다음엔 손.
앨빈

이건?

토마스

그 다음엔 팔 전체를.

앨빈

이건?

토마스

결국 미친 익수룡이라도 되는 양 팔다리를 마냥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앨빈

우후! 나 좀 봐, 날씨를 바꾸고 있어, 제트 기류 방향을 돌리고, 빙하를 녹이고!

(토마스가 다시 과거에 끼어든다.)

토마스

아무것도 안 바뀌어! 너 지금 완전 바보 같아!

쉬운 거 아닌 거 알아 앨빈
기분이 구린 거 알아
야 나도 이런 말 해 주는 게 쉽지 않았는데 걱정된단 말야
지금 내 말대로 하면 인생 편해진다
널 보호하는 것도 힘들어
(앨빈은 잡지를 본다.)

앨빈

그 잡지 좀 줘봐.

(앨빈은 잡지를 받아 들고 표지를 자세히 본다.)

토마스

자 또라이 앨빈은 이제 안녕
앨빈

아까는 이거 못 봤는데.

토마스
내 친구로 남고 싶다면 평범해져…
(앨빈은 표지에서 무언가를 집어 든다.)

앨빈

애벌레야!

토마스

…나처럼…
(토마스는 황급히 다른 이야기를 고른다. 이야기가 갑자기 바뀐다.

앨빈은 가상의 가해자들에게 공격받으며 땅에 주저앉아 있다.)

앨빈

톰!

(토마스가 읽는다.)

토마스

‘일진과 양아치’.

앨빈

톰!

토마스

앨빈 켈비의 이야기.

앨빈

톰!

토마스

고등학교 1 학년 할로윈 파티에 앨빈은 또 다시 엄마의 유령으로 분장했습니다. 목욕


가운, 헤어롤, 전부 다 똑같이.

앨빈

톰!

토마스

여섯 살 땐 귀엽기라도 했지만 열일곱 살 먹고 그러니 완전 또라이 같았죠.

앨빈
톰!

토마스

도니 카터는 다리 건너까지 앨빈을 쫓아갔고, 제가 도착했을 때 앨빈은 바닥에


때려눕혀진 채 계속 맞고 있었습니다.

앨빈

톰!

(토마스가 과거로 들어간다.)

토마스

걔한테서 떨어져!

앨빈

톰!

토마스

꺼지라고 했다!

(토마스는 앨빈을 일으켜 준다.)

앨빈

엄마 가운을 뺏었어.

토마스

가운 돌려줘, 도니.

앨빈

제발 다시 돌려줘.

토마스

당장 돌려줘.

앨빈

안돼, 그러지 마. 제발, 제발! 멈춰!

(정적)

(토마스는 현재로 돌아온다.)


토마스

도니 카터는 다리 반대편으로 가운을 던져 버리고는 도망갔습니다. 우리는 가운이


폭포까지 흘러가 사라지는 걸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그들은 가운이 강에 떠내려가는 걸 지켜본다.

토마스는 다시 과거로 들어간다. 그는 잠시 앨빈을 바라본다.)

토마스

앨,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앨빈은 이야기 하나를 골라 톰에게 건네준다.)

‘앨빈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앨빈 켈비의 이야기.

앨빈

M6. PEOPLE CARRY ON

내가 왜 이럴까…
다섯 살쯤 기억인 것 같아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엄마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기억이 선명히 보여
엄마 옆에 나 앉아서 학교 얘길 나누었어
멈추지 않고 이야길 했어

난 엄마 아빠가 내 전부였어
한 편의 영화처럼 기억해
아빠에겐 엄만 천사 같아
난 둘의 모든 걸 합친 사람

어느 날 아주 갑자기 아빠랑 나뿐였어


난 멈추지 않고 우린 살았어
시간은 흘러갔고 나도 곧 변해갔어
엄만 기억이 되었어
그 옷자락에 남겼어

실 한 올 한 올 속에 엄마 영혼 깃든 것처럼
엄마의 가운을 끌어안았어
근데 오래된 사진처럼 내 손에 만져도
엄마의 기억 흐려져

파티처럼 사람도 많았어


나의 머릴 쓰다듬었어
빵과 붉은 와인, 하얀 식탁
장례식 날 나는 여섯 살
검은 정장, 참 진한 향, 여기저기 꽃다발과
작고 필요 없는 그림 하나하나 기억나
이런 게 남아있고 엄만 그렇게 사라져

난 멈추지 않고 계속 살아가
멈출 수 없어
멈출 수 없이
(앨빈은 토마스가 아까는 떠올리기 싫어했던 이야기를

이젠 떠올릴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앨빈

‘위대한 신의 도서관’.

톰과 앨빈의 이야기.
자, 우리 다시 한번 해 볼까? 불과 일주일 전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앨빈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그의 아버지를 기렸습니다.

토마스

서로를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죠.

앨빈

늦었잖아.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간다. 앨빈이 달려와 그를 힘껏 껴안는다.)

토마스

미안.

앨빈

그래서, 뭐라고 썼어?

토마스

오자마자 그 얘기냐? 걱정하지 마, 분명 네 맘에 들 거야.

앨빈

읽어줘.

토마스

사람들이 기다리잖아.

앨빈

기다리라고 해.

(토마스는 그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토마스

“친애하는 가족과 친구 여러분, 우리는 오늘 고든 캘비의 생에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보내신 분이죠.”

앨빈

좋은데.

(토마스는 이 기억을 완전히 떠올리고 싶지는 않아 현재로 돌아온다.)

토마스

그리고 저는 위대한 시인 존 돈이 쓴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삶 하나하나가


위대한 신의 도서관에 꽃힌 책의 한 페이지, 한 챕터가 된다는 내용이었죠.

(긴 침묵)

앨빈

봐도 돼?

(토마스는 앨빈에게 종이를 건네준다.)

토마스

앨빈은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앨빈

이게 다야, 톰?

토마스

앨빈의 아버지를 기리기에 완벽한 송덕문이었습니다.

앨빈

그냥 인용구잖아.

토마스

제 삶에서 본 가장 감동적인 글 중 하나였습니다.

앨빈

이미 죽은 시인이 쓴 글일 뿐인데.

토마스

영미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이 쓴 글이죠.

앨빈

난 네가 쓴 글이 좋다고.

토마스

아냐!

(토마스는 앨빈의 손에서 거칠게 종이를 뺏고는 바닥에 던져버린다.)

한번 나타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긴 세월을 넘어 영원토록 남아있어
앨빈

아는 걸 써, 톰
토마스

언젠가 이런 이야길 쓰는 게 내 꿈이죠


(앨빈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책장으로 다가간다.)

앨빈

나의 꿈… 나의 꿈…

(그는 페이지 몇 장을 고른다.)

‘나의 꿈’.

토마스의 이야기.

(앨빈은 토마스에게 페이지들을 건네준다.)

토마스

아…

(토마스는 페이지들을 받아들지만 앨빈이 어째서

그 이야기를 골랐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제가 가려던 대학은 지원서와 함께 짧은 이야기를 한 편 써서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써 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죠. 몇 년간 뭔가를 많이 끄적이긴 했지만 진짜
완성된 이야기를 쓴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패닉에 빠져 앨빈네 책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앨빈과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간다. 그들은 책방 안에 있다.

앨빈은 책장 정리 등의 일로 바쁘다.)

앨빈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 톰. 그냥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적어.

토마스

말이야 쉽지.

앨빈

쉬운 거 아냐?

(토마스는 잠시 현재로 돌아온다.)


토마스

그래서 전 하나를 골라서 적어 보기로 했습니다. 대략 삼백오십 단어 정도의 짧은


글을 썼죠. 앨빈에게 그 글을 보여주고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토마스는 다시 과거로 들어간다.)

앨빈

자, 그러니까. 내가 좋다고 하면 그걸 보내는 거지?

토마스

맞아.

앨빈

그리고 대학에서 좋다고 하면 넌 떠나는 거고.

토마스

응.

(앨빈은 잠깐 생각한다.)

앨빈

내가 별로라고 하면?

토마스

그럼 얘기가 달라지겠지?

앨빈

오, 네 운명이 내 손에 달려있다니, 좋아. 읽어봐.

토마스

나비. 토마스 위버 지음.

앨빈

나비?

토마스

응.

(토마스는 주저하지만 계속한다.)

M7. THE BUTTERFLY


아주 머나먼 나라에 아름다운 나비가 살았어요
꽃과 나무 가득한 왕국에서
강물이 수풀 사이로 춤추며 흘렀죠
봄바람 따라 바닷가로
(톰은 앨빈에게 평가를 바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앨빈

계속해봐.

토마스

그 나비는 작은 가지에 내려앉아서


달려가는 강물 바라봤죠
혹시라도 파도에 휩쓸려 갈까 봐
잎사귀 뒤에 숨에 말했죠

“나는 나비야
작고 중요치 않아
세상의 거대함 앞에 난 티끌일 뿐야
팔이 저릴 때 날개를 펴 춤추며 만족해
나는 나비야
중요치 않아”
(토마스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다. 앨빈은 조용히 앉아서 토마스를 지켜본다.)

어느 날 그는 강물에게 물어봤죠
“저기요! 어디로 가나요?
저 폭포 너머 세상에는 뭐가 있죠?
나도 알려줘요”

씩 웃으며 강물이 대답했죠


“바람 따라서 바다로 간단다
넓고 푸른 저 바다는 너도 좋아할 거야
너도 함께 떠나자”

“나는 나비죠
작고 중요치 않죠
세상의 거대함 앞에 난 티끌과 같죠
팔이 저릴 때 날개를 펴 춤추며 만족해
나는 나비야
중요치 않아”

근데 나비는 바다를 꿈꿨죠


흰 파도 위를 날고 싶었죠
하지만 파도 같은 건 너무 위험하기에
바람에게 한번 더 말을 걸었죠

“어떻게 그리 빨리 날 수 있죠?”
바람은 엄청난 얘길 해 줬죠
“내 몸의 힘은 공기의 흐름일 뿐
그 작은 날개로 시작돼
네 날개로!

너는 강한 나비야
나의 힘이야
네가 춤출 때 난 하늘 위로 날 수 있단다
네 몸으로 공기 흔들며 그 춤을 출 때면
네 날갯짓에 이 세상이 변해”
나비는 팔을 펴고 나무 위의 가지를 떠나

날아 올라서 바다를 봤죠

(토마스는 앨빈의 반응을 기다린다.

앨빈은 토마스의 손에서 원고를 가져간다. 토마스는 과거에서 빠져나온다.)

앨빈의 눈에는 처음 보는 눈빛이 서려 있었습니다. 무슨 의미였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영원처럼 긴 시간 동안 종이만 들여다보다가 겨우 한 마디를 뱉었습니다.

앨빈

보내.

토마스

바로 그 순간일까?
앨빈

바로 그 순간일까?
토마스

놓쳐버린 이야기

(앨빈은 새로운 이야기를 골라 토마스의 손에 쥐여주고는

‘나비’ 페이지들을 가져간다.)

‘폭포 위에서’.

톰과 앨빈의 이야기.

내가 대학으로 떠나던 날, 우리는 다리 위에서 강물에 나뭇가지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가 나뭇가지 하나를 던진다.

그와 앨빈은 나뭇가지가 폭포로 흘러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앨빈이 나뭇가지 하나를 던진다.

그들은 다시 나뭇가지가 폭포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앨빈

나 너한테 삐졌어.

토마스

네가 나뭇가지 잘 못 던지는 게 내 탓이니?

앨빈

네 탓 한 적 없어.

토마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며.

앨빈

응…

토마스

그럼 당분간은 아버지를 돌봐드리며 살아야겠네.

앨빈

그렇지.

(앨빈이 나뭇가지를 던진다.)

아…

(토마스가 과거에서 잠깐 빠져나온다.)

제가 던진 나뭇가지들은 모두 폭포 아래로 자유롭게 흘러갔지만 앨빈이 던진


나뭇가지들은 모두 돌에 걸려버렸습니다. 참 상징적이죠…

(토마스는 과거로 돌아간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더 찾느라 조용해진다.)

앨빈

보고 싶을 거야.

토마스

편지할게.

앨빈

톰.
토마스

응?

앨빈

뭐 하나만 말해도 돼?

토마스

응.

앨빈

보고 싶을 거야.

토마스

그 말은 이미 했잖아.

(앨빈이 나뭇가지를 던진다.)

앨빈

아…

토마스

어머나. 나뭇가지 던지기 수업이라도 들어야 하겠는데!

(토마스는 앨빈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앨빈은 토마스의 팔을 밀어내고 그를 껴안은 다음 그의 목에 입을 맞춘다.)

저는 앨빈의 목에 팔을 두르고 머리를 헝클어트렸습니다. 그러자 앨빈이 제게 입을


맞췄습니다. 제 목에다가요. 여기, 귀 바로 밑에…

(앨빈은 나뭇가지를 던진다. 처음으로 그가 던진 나뭇가지가

폭포 밑으로 떨어진다. 그는 아주 기뻐한다.)

앨빈

봐, 봐!

(토마스는 이야기 하나를 고른다.)

토마스

‘이별’.
토마스의 이야기.

M8. SAYING GOODBYE (PART 1)

우리 처음 이별할 때
한 한 시간 내내 차 밖에 서서
평범한 하루인 양 얘길 했죠
우리 처음 이별할 때
우리 처음 이별할 때
도시로 떠나서 흥분된 맘
난 말할 수 없었죠 앨빈에게
우리 처음 이별할 때

내게 말했죠 등을 떠밀며
앨빈

걱정마
토마스

혼자서도 잘 할 거라고
앨빈

아빠랑 가게랑 돌보며 바쁠 것 같아


(앨빈은 톰을 껴안는다.)

토마스

날 안았죠
(앨빈이 화들짝 놀라며 톰에게서 떨어진다.)

앨빈

너 향수 뿌렸어?

토마스

흠.
함께

푸른 9 월 하늘 아래
세상은 변해가고
토마스

앨빈은 제자리 그대로


앨빈

다 변했어
함께

우리 처음 이별할 때
(앨빈은 이야기 하나를 골라 읽는다.)

앨빈

‘고향’.

토마스

크리스마스 이브였죠. 저는 다가오는 마감 기한에 짓눌린 채 고향으로 내려와


앨빈의 책방을 찾았습니다.

(앨빈은 페이지들을 토마스에게 건네준다.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가

책상으로 간다. 그는 펜을 집어 들고 책상에 앉는다.

글을 써보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짜증낸다.

앨빈은 토마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계속 방해한다.)

앨빈

나가자.

토마스

쉿.

앨빈

뭐 하는데?

토마스

글 써.
(앨빈은 토마스의 어깨 너머로 빈 종이를 바라본다.)

앨빈

아닌데? 아무것도 안 썼잖아.

토마스

창작은 과정이야. 글은 마지막 결과물일 뿐이라고.

앨빈

멋진 인생 시작할 때까지 30 분도 안 남았어. 밖에서 마저 하면 안 돼?

토마스

조용히 좀 해 봐. 지금 뭔가 생각날락 말락 하고 있다고.

앨빈

미안. 만약에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으면… 쉿…

(앨빈은 조용히 있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앨빈

있잖아, 어디서 읽은 건데 말야. 눈 결정의 종류는 거의 무한대로 추정된대. 아, 빨리


무한대로 다양한 눈송이 위에서 뒹굴러 나가자!

토마스

안 돼. 이거 진짜 중요한 거야.

앨빈

어디서 읽은 건데 말야, 신경쇠약의 가장 큰 증상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일이


끔찍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래. 네 머릿속에 이야기가 몇 천 개야, 톰. 그냥
하나 골라서 적어.

토마스

앨, 글쓰기도 요령이 있어.

M8. HERE’S WHERE IT BEGINS

느낌이 온다면 앨빈 시작인 거야


앨빈
아, 재미없어.

토마스

스쳐가는 요만한 아이템


이걸 하나 잡는 거야
(앨빈이 창문 밖을 내다본다.)

앨빈

저기 눈 좀 봐봐!

토마스

그러다 글발이 착착 오르게 되고


앨빈

완전 착착 쌓였어, 위에 눈가루 샥 덮혀있고!

토마스

이게 바로 창조의 예술

앨빈

완전 딱인데…

토마스

자, 이제 시작이야
앨빈

아, 좀 나가자아, 나가자!

토마스

쉿!

자, 이때 잡지 못하게 되면 사라져버려
뭔가 나올 때까지만 좀 기다려
시간을 줘
앨빈

이러다 눈 다 녹겠다…
토마스

딱 꽃혔을 때 가만히 생각을 해 봐


뭐라도 적어놔야 하는데…
백지잖아
앨빈

고개를 들어, 밖을 봐!

토마스

작가에겐 항상 영감이 필요해


이 시골구석에는 써먹을 게 없어
앨빈

좋아, 난 혼자 밖에서 우리 전통을 지키겠어.

토마스

나이 생각 좀 해라!

(앨빈은 밖으로 달려나간다. 책방 종이 울린다.)

앨빈

종이 울릴 때마다 천사의 날개가 돋는다!

토마스

아이템도 중요하지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 다음엔 아웃라인이 너무 중요해
여기서 바로 일류와 이류가 정해져
이때부턴 펜과 종이가 유일한 친구
(앨빈은 바닥에 철푸덕 누워 팔과 다리를 쭉 뻗고 휘적거린다.)

앨빈

나 눈천사 만들고 있다!

토마스

구성
빈틈없는 글의 구성
줄거리 깎아내고 반전을 넣고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해

인내
인내심 없으면 안 돼
여기서부터는 예술보다 기술이야
계속 수정해야만 해

기술
머리를 채워야만 해
뭐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괴롭혀
결국 이야기는 과학이야
앨빈

나 봐봐 톰! 나 좀 봐봐! 엇, 바지에 눈 다 들어갔다.

(토마스는 앨빈을 바라본다.)

토마스

눈송이 같아, 앨빈
잡을 수 없어
바로 사라져버려
(천천히 깨닫는다.)

인생처럼

기다려, 앨! 나 나간다!

(토마스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책방 종이 울린다.)

앨빈
종이 울릴 때마다…

토마스

닥쳐라!

(토마스는 땅 위에 드러누워 사지를 마구 퍼덕인다.)

야호!

느낌이 딱 왔어 앨빈
시작된 거야
앨빈

이쪽에다 만들어
눈이 아름답잖아
(앨빈은 땅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퍼덕거린다.)

함께

곧 사라져간다 해도 완벽한 천사로


(그들은 일어서서 눈천사를 감상한다.)

토마스

좋아 그래 나쁘지 않아
이젠 비켜봐
앨빈

이런 것 좀 해 줘야 글발 오르는 거야

함께

이게 바로 창조의 예술
나란히 보여
(토마스는 현재로 돌아온다.

방금 전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어떤 이야기를 찾아 책장을 뒤진다.)

토마스
눈 속의 천사들, 눈 속의 천사들…

(토마스는 책장에서 페이지 몇 장을 꺼낸다.)

눈 속의 천사들.

토마스 위버 지음.

아직 미완성.

(토마스는 책상으로 가 써 보려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하얀 눈밭에 누워


우리를 닮은 천사를 만들었죠
우린…
우린…
(토마스는 생각이 막혀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그는 이 이야기를 떠나 다른 이야기를 고른다.)

M9. SAYING GOODBYE (PART 2)

두 번째 이별했을 때
이 동네는 옛날 그대로 있고

앨빈의 삶도 제자리였죠
두 번째 이별했을 때

두 번째 이별했을 때
내 친구인 애니와 함께 왔죠
애니를 앨빈에게 소개시켜줬죠
두 번째 이별했을 떄
앨빈

반가워요!

토마스

애니는 유명 잡지사 기자
앨빈

멋있다.

토마스

내 작품을 실어 줬죠
앨빈은 여전히 책방의 책이나 팔며
앨빈

너 어른 같아.

토마스
아이 같았죠

(토마스가 과거로 들어온다.)

우리 이제 간다! 애니도 차 안에 있는데 나와서 인사할래?

앨빈

안됄 것 같아.

토마스

왜?

앨빈

아빠가 부탁한 게 너무 많아.

토마스

10 초면 돼.

앨빈

할 일이 완전 많아

(토마스는 잠시 과거에서 빠져나온다.)

토마스

애니가 싫었나봐요.

앨빈

아냐, 좋아. 진짜야!

넌 참 멋지다. 저런 잘 나가는 친구도 있고. 너 성공한 게 느껴지네. 그럼 이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개도 기르고… 다 하겠네.

토마스

뭐, 아마도?

앨빈

강아지 이름, 내 이름 따서 지어 줄래?

토마스

그래.

함께

시간은 눈송이처럼 다 사라지죠


앨빈

너 행복해 보여서 좋다
토마스

이상하게 그 앤 슬퍼 보였어요
앨빈

잘 나가는 인생
꽉 막힌 인생
(토마스는 연단으로 돌아가 다시 송덕문 쓰기에 집중한다.)

토마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앨빈

모든 건 한순간 바뀔 수 있어
먼지처럼 작은 사건으로
(앨빈은 페이지 몇 장을 골라 토마스에게 건넨다.

앨빈은 책상 위에 앉는다. 토마스가 읽기 시작한다.)

토마스

‘먼지처럼 작은 사건’.

앨빈 아버지의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결국 책방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책방은


완전히 앨빈의 책임이 되었죠.

(토마스는 서류 가방을 들고 책상으로 간다. 책방 종이 울린다.)

토마스

종이 울릴 때마다-

(앨빈은 대답하지 않는다.)

저는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앨빈의 서류 작업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앨빈은 서류들에 서명하느라 바쁘다.

토마스는 그 앞에 서류 더미를 내려놓는다.)

서류 한 장 한 장에 서명할 때마다, ‘헌 책과 새 책’은 점점 앨빈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앨빈

어른이 된 것 같아, 너처럼!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가 서명한 서류들을 한 데 모은다.

그는 그것들을 서류 가방에 넣는다.)

토마스

자, 이제 완전히 네 것이 됐네. 축하해, 사장님.

(앨빈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토마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앨빈

아냐, 그냥…

M10. BEFORE INDEPENDENCE DAY (PART 1)

예전에 그때가 그리워


아빠랑 나랑 너랑 함께
행복했던 그때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모든 걸 결정해야 하는 이런 상황, 모든 게 처음이야. 어려워…

(정적)

(기발한 생각을 떠올린다.)

톰, 여기 잠깐만 머물면서 나 좀 도와줘!

토마스

머릿속엔- 할 일이 산더미인데.

앨빈

크리스마스 연휴만이라도 여기 있어줄래?

토마스

머릿속엔- 책 사인회도 있는데.

앨빈

어릴 적 그떄처럼!

토마스

머릿속엔- 중요한 미팅도 있는데!

앨빈

어때, 톰?

토마스

내가 내뱉은 말은…

(톰은 잠깐 과거로 들어간다.)

네가 도시로 놀러 오는 게 어때?

앨빈

…진짜? 내가 너한테? 난 한 번도 이 동네 떠난 적이 없는데!

(토마스는 현재로 돌아온다.)


토마스

전 모든 걸 책임진다고 했습니다.

앨빈

아빠는 좋은 병원에 모시고.

토마스

차표를 예매하고.

앨빈

이 책방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토마스

호텔도 예약하고.

앨빈

이거, 정말 떨리는 일이야.

토마스

앨빈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했습니다. 뭘 가져가야 하는지.

앨빈

넥타이 필요할까? 나 넥타이 없는데.

토마스

돈은 또 얼마나 필요한지.

앨빈

나 카메라 샀어. 흔들림을 방지해주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 아주 비싼 카메라야,


끝내줘!

토마스

결국 마지막 전화가 왔습니다.

M11. BEFORE INDEPENDENCE DAY (PART 2)

앨빈

이제 떠나 기다려
토마스

떠나기 전날 아침.

앨빈

나 내일 이 시간 도착한다
토마스

머릿속엔- 와, 이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앨빈

완전히 귀찮게 하게 될걸
토마스

머릿속엔- 일할 거 완전 많은데.

앨빈

여긴 다 망해도 상관없어
토마스

내가 내뱉은 말은…

(토마스는 잠깐 과거로 들어간다.)

…내일 봐.

M12. INDEPENDENCE DAY

앨빈

이제 떠나 기다려
아, 나 진짜 가는 거야?

나 아침에 실감이 났어
딱 눈을 뜬 순간부터
(연극 배우 같은 톤으로)

이 구리구리한 동네를 떠나라, 조지 베일리!


천사 클라렌스를 향하여-!
공지 대빵 크게 걸어놨어
가게 문 열면 딱 보여
“공지, 연말에 휴점
주인장이 떠납니다!”
첫 여행 떠나는 거야
조금 기대되는걸
내 인생이 변하는 날일까
토마스

앨, 그건 좀 오바 아니니.

(앨빈은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고 책방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토마스는 현재에서 그를 관찰한다.)

앨빈

역사를 뒤돌아봐
위대한 사건은 항상
평범한 사람의 하루에서 시작돼
어느 날 저 바다를 보다
먼 땅엔 뭐가 있을까
곧 모험을 시작해
미지의 땅을 향해

봐 운명이 나를 불러
조용히 속삭여
오늘 내 인생은 변한다
(토마스는 잠시 과거로 들어간다.)

토마스

그냥 버스 한번 타는 것뿐이야, 앨.

앨빈

넌 몰라, 톰!
넌 이런 기분 일상이잖니
떠오르는 스타 신인 작가
벌써 베스트셀러만 4 권입니다!

네 앞에서 나는 별거 아니지만
내 가슴 안에 무언가 뜨거워져
새 세상이 확 열리며 나를 불러
나 어쩌면 이제서야 날아올라
내 꿈 향해 두 팔 뻗어
크게 외쳐
내 차례가 됐어!
(앨빈은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서 입을 틀어막는다.

그런 각오가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 모든 게 다 변한 순간
인생이 틀어진 순간
그 누구도 쉽게 한 순간을 알 수 없어

하지만 내겐 지금 그 순간
그 순간이 내게 왔어
이젠 나의 미래는 예상할 수 없을걸

영화 속의 조지는 집 떠난 적 없이
차고 외로운 밤에 강물에 빠졌어
난 조지에게는 없던 새 삶을 받았어
오늘 내 인생은 변한다

M13. SAYING GOODBYE (PART 3)


이제 간다 기다려
토마스

머릿속엔- 그럼 취소해야 되는 스케줄이…

앨빈

드디어 그날을 같이 보내
토마스

머릿속엔- 저녁에 미팅 있는데.

앨빈

늘 그랬던 것처럼 둘이 함께
토마스

머릿속엔- 인생 참 꼬였다.

앨빈

이보다 좋은 게 뭐가 있겠어?
토마스

내가 내뱉은 말은…

앨빈

이제 간다
기다-
(토마스가 과거로 들어온다.)

토마스

앨… 오지 마.

(앨빈은 벙쪄서 한동안 멈춰 있다.)

앨빈
… 왜?

토마스

타이밍이 좀, 안 좋아…

(정적)

앨?

(정적)

무슨 생각하니?

앨빈

이게 뭐야
너와 나
(토마스는 서둘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 한다.)

토마스

그 다음에 이별할 땐…
앨빈

약속했잖아
좀 지켜봐
토마스

… 왜 항상 이별이지…?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간다.)

토마스

안녕, 앨.

앨빈

안녕, 톰…

(토마스는 재빨리 현재로 돌아온다.)

토마스

살다 보면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어
난 이별이 쉬워졌어요
잠깐! 내 말 좀 들어봐요. 정말 타이밍이 안 좋았어요. 난……

(토마스는 어떤 이야기를 찾으려 책장을 뒤진다.

그 이야기를 발견해 읽기 시작한다.)

‘레스토랑에서’.

토마스의 이야기.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가 책상에 앉는다.

앨빈은 뒤로 물러나 그를 지켜본다.)

M13. I LIKE IT HERE

토마스

여기 좋아 난
좀 불친절하지만 요리는 끝내준다
편집장이 예약도 잡아 줬어
지난번에 여기서 계약했어
양고기 요리로 시켰었어
여기 좋아 난
참 편하다
참 오랜만에 나 혼자 와인 한 잔
너무 좋다
근데 가격은 안 볼래
소화 안 돼
물 한 잔에 레몬 넣고 돈 달래
그래도 자꾸 다시 오게 돼
여기 좋아 난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


지금 할 것도 많고 바빠 죽겠는데
그래도 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어

복잡해 결정할 게 너무 많고
또 다가올 마감이 걱정도 되고
머리는 터지고
이건 아닌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원한 삶이 이게 맞을까
난 아직은 조금 서툰 것 같아
이 모든 걸 감당하기에
알아 나도 이젠 클 만큼 큰 거
이젠 다가오는 세월 걱정하지
근데 난 왜 조금도 큰 것 같지 않을까
이제야 뭔갈 좀 알아가는 것 같은데
왜 벌써 나를 이렇게 재촉할까

여기 좋아… 난…
앨빈

말해 줬어야지.

(토마스는 현재로 돌아온다.)

토마스

앨빈은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앨빈

아니, 다 이해해줬을 텐데.


토마스

너무 많은 일들이 닥쳐왔어요.

앨빈

뭐라도 말해 줬어야지.

토마스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제 자신을 보살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앨빈이 이야기 하나를 골라 읽는다.)

앨빈

‘대회 수상’.

토마스의 이야기.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을 가진 후, 토마스는 비로소 중요한 일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토마스

하지만 집중하려 할수록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앨빈의 다정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앨빈

상을 또 받았어? 정말 대단해, 톰!

(토마스는 과거로 들어간다. 그는 연단으로 걸어가 시상식의 관객들을 둘러본다.)

토마스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분은 정말 좋은데, 어쩌다가 제가 수상했는지 신기하네요.

이야기를 써서 책으로 내고, 그 책을 사람들이 사서 읽어주고, 작은 일이죠.

특별한 게 아니에요. 작가로서 저는 단지 통로일 뿐입니다.

도구.

매개체.

M14. YOU’RE AMAZING, TOM


앨빈

정말 대단해
너는 충분히 그런 상 받을만해
좋네
정말 대단해
미리 알려줬더라면 갔을 텐데
좀 아쉽네
연락 안되는 걸 보니 네 스케줄 정신 없지
책 사인회, 시상식, 얼마나 바빠
됐어 난 괜찮아
정말 대단해
토마스

제 얘기들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자주 물어보시더라구요. 솔직히,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이 머릿속에는 이야기가 몇천 개는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 골라 적는 것뿐이죠.

앨빈

정말 대단해
난 어렸을 때부터 알았어 항상
토마스

하지만 외로운 작업입니다.

그저 나와 하얀 백지뿐이죠.

앨빈

정말 대단해
혼자 힘으로 이렇게 성공했네
와 훌륭해
네 열정과 기술을 봐
딴 사람들 못 따라와
야 말이야 쉽지
그 정도의 이야길 쓰는 거 쉽지 않아
토마스

그런데 딱 몇 마디를 적기 시작하면 그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에요.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아주 신비로운 느낌이죠.

(앨빈의 톤이 비꼬는 듯하지만 간절하게 바뀐다.)

앨빈

너는 중요한 사람
너는 예술가야
너의 이야긴 수많은 사람들 기쁘게 해
모두 인정해 세상은 너땜에 밝아졌어
네가 구원한 영혼들 덕분에 또다시 이렇게 수상을 하게 됐네
정말 대단해
토마스

제 작품들- 나비, 신기하고 신비로운 책방, 기억의 목욕가운, 제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레밍턴 선생님의 할로윈까지 전부다, 내 속 어딘가에 숨어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이야기들입니다.

오늘 주신 상은 그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라는 얘긴 줄 믿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앨빈의 목소리는 더욱 까칠하게 바뀐다.)

정말 대단해
그리 열심히 살더니 성공했네
좋네
정말 대단해
뭐 귀찮은 과거는 잊어버려
더 쉽잖아
누구는 무대 위에
또 누구는 그림자
토마스

물론, 감사드릴 분들을 빼놓고 이 자리를 떠날 순 없겠죠.

앨빈

원래 다 그래 난 신경 쓰지 마
토마스

매니저님.

앨빈

너 혼자서 세상의 박수를 받아


토마스

우리 편집장님.

앨빈

네 옆에 아무도 없음 뭐 어때
넌 부족한 거 없잖아
토마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제 책을 팔아 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앨빈

정말 대단해
(토마스는 현재로 돌아와 앨빈을 마주 본다.)

토마스

눈송이 같아, 앨빈
잡을 수 없어
바로 사라져버려
(그는 전에 던져 놓았던 ‘눈 속의 천사들’ 페이지들을 주워 들고 읽는다.)

눈 속의 천사들.

아직 미완성.

저는 다시 책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최대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글을 써 보려


했습니다.
(토마스와 앨빈은 과거로 들어간다. 토마스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기억은 몇 년에 걸쳐 진행된다.)

앨빈

메리 크리스마스, 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아마 작업실에 갇혀서 일만 하느라 못


오는 거겠지? 신간은 언제 나와? 손님들이 자꾸 찾더라고. 그래서 내가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했어. 창작은 과정이니까. 그래서, 잘 되어 가니? 보고 싶다.
사랑하는 앨이!

(토마스는 자신이 써내려간 글을 읽는다.)

토마스

크리스마스 이브엔 하얀 눈밭에 누워


우릴 닮은 천사를 만들었죠
(그는 쓴다.)

팔과 다리를 펼쳐 힘껏 파닥거렸죠. 햇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멈춘다.)

햇살 아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늦은 12 월의 햇살 속에서.

앨빈

메리 크리스마스, 톰! 어떻게 또 다시 나를 빼놓고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가 있어?


그래서, 신간은 언제 나와? 글이 잘 안 써지니? 왜 이렇게 답장이 없어! 사랑을 담아,
앨.

(토마스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토마스

쌍둥이 천사 둘을 탄생시켰죠
천사의 날개…

(그는 잠깐 동안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린다.)

아름다운 날개를 꿈꾸며


하루 종일 밖에서
앨빈
메리 크리스마스, 톰.

(토마스는 앨빈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토마스

겨울들을 보냈죠
앨빈

또 다시 크리스마스, 또 다시 편지를 보내.

토마스

드디어 완성됐을 땐 행복했죠


앨빈

답장 좀 해주면 좋겠다.

토마스

산 너머 해가 지고…
앨빈

사랑을 담아, 앨.

(토마스는 지금까지 그가 쓴 글을 읽어 보며 단어를 고민한다.)

토마스

드디어 완성됐을 땐 행복했죠


산 너머 해가 지고…
산 너머 해가 지고…
앨빈

메리 크리스마스, 톰.

토마스

(점점 더 절망하며)

산 너머 해가 지고…
앨빈

제발 답장 좀 해.

(앨빈의 목소리가 토마스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린다.)


토마스

산 너머 해가 지고…
(토마스는 한계점에 다다른다.)

산 너머 해가 지고…
산 너머 해가 지고…
산 너머 해가 지고…
산 너머…
제발 한 문장이라도
(그는 미완성인 이야기를 바라본다.)

알 수가 없어
막혀 있어
(토마스는 거칠게 페이지들을 던져버린다.

그는 현재로 돌아와 연단으로 다가간다.)

지금 도대체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앨빈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토마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고.

(그는 그의 빈 노트를 바라본다.)

막혀 있어
앨빈

아는 걸 써, 톰
(토마스는 미친 듯이 책장과 버려진 페이지들을 뒤진다.

이야기들이 마구 뒤섞인다.)

토마스

아는 걸 써, 톰
아는 걸 써
세상은 계속 정신없이 변해가
앨빈

눈 깜짝할 순간에 지나가 버려


토마스

과거는 과거로 묻어야 해


앨빈

짜부시켜도 되는 쬐끄만한 벌레가 그런 힘을 가졌다면, 우린 어떨 것 같아?

또라이 앨빈은 졸업할 때 됐어


앨빈

내 손에 만져도
엄마의 기억 흐려져
토마스

한번 나타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앨빈

약속을 어기면 기찻길에 죽은 채로 떨어져 영원히 썩을 거야!

토마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원한 삶이 이게 맞을까
앨빈

네가 내 거 써줄래? 나도 네 거 써줄게.

토마스

그 애의 삶이 언제 변했지?
앨빈

네 옆에 아무도 없음 뭐 어때
부족한 거 없잖아
토마스

잘 나가는 인생
꽉 막힌 인생
앨빈

정말 대단해
(토마스는 거의 무너져내리기 직전이다.)

토마스

생일 파티와 크리스마스
겉치레 인사
앨빈

보고 싶을 거야.

토마스

우리 마지막으로…
앨빈

잘 가, 톰.

토마스

그의 아버진 죽었고
난 돕지 못했죠
앨빈

늦었잖아.

(토마스는 얼떨결에 과거로 들어간다. 앨빈이 토마스에게 달려와 그를 껴안는다.)

토마스

미안.

앨빈

그래서, 뭐라고 썼어?

토마스
오자마자 그 얘기냐? 걱정하지 마, 분명 네 맘에 들 거야.

앨빈

그럼 읽어줘.

토마스

사람들이 기다리잖아.

앨빈

기다리라 그래.

(토마스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토마스

“친애하는 가족과 친구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든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보내신 분이죠.”

앨빈

좋은데.

토마스

“17 세기 시인이었던 존 돈은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챕터는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아름다운 단어로 다시 쓰여진다. 어떤 챕터는 세월로, 어떤 챕터는 병으로,
어떤 챕터는 전쟁으로, 어떤 챕터는 정의로 다시 쓰여진다. 신은 아름답게 쓰여진
챕터들을 한 데 모아서 위대한 신의 도서관에 꽃힌 한 권의 책으로 만든다.’ 고든
켈비 씨는 이제 위대한 신의 도서관에 꽃힌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를 기릴 것입니다.”

(긴 정적)

앨빈

봐도 돼?

(토마스는 앨빈에게 종이를 건네준다. 앨빈은 종이를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이게 다야, 톰?

그냥 인용구잖아.

토마스

아름다운 인용구야.

앨빈
이미 죽은 시인이 쓴.

토마스

극찬받는 시인이었어.

앨빈

난 네가 써 주길 바랬어.

토마스

알아.

앨빈

시도는 해 본 거야?

토마스

당연히 해 봤지.

앨빈

그럼 다시 해 봐.

토마스

지금?

앨빈

지금.

토마스

안 돼.

앨빈

왜?

토마스

앨빈, 사람들이 기다려

앨빈

상관없어.

토마스
이건 위대한 시인이 쓴 위대한 문학이야. 너희 아버지가 이런 인용구로 추모될 수
있다는 건 아주 행운이라고.

앨빈

무슨 말이야?

토마스

작은 마을에서 책 파는 삶이 위대한 삶은 아니잖아!

앨빈

난 작은 마을에서 책이나 팔면서 살아. 하지만 네 커리어는 다 거기서 나온 거잖아.

토마스

뭐라고?

앨빈

신기하고 신비로운 책방. 레밍턴 선생님의 할로윈. 나비.

토마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앨빈

그 영감은 다 어디서 나온 건데?

토마스

너 지금 농담하는 거지?

앨빈

새로운 걸 써 보기라도 했어?

토마스

그래.

앨빈

뭔데?

토마스

눈 속의 천사들.
앨빈

온전히 네가 떠올린 거야?

토마스

뭘 원하는데, 공동 저자로 올려줘?

앨빈

넌 이해 못 해.

토마스

난 그런 거 안 해.

앨빈

그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토마스

내 머리에서 나온 거야. 내가 생각해낸 말들이고. 내 이야기라고.

앨빈

그러니까 우리 아빠를 위해서 하나만 써 달라고.

토마스

못 해.

앨빈

왜?

(토마스는 과거에서 빠져나와 그 이야기를 잊으려고 애쓴다.)

토마스

내 이야기였어! 내가 썼다고! 앨빈은 필요 없었어!

(앨빈은 토마스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계속한다.)

앨빈

사람들이 기다린다. 그냥 내가 할게.

(앨빈은 연단으로 걸어간다.)

토마스

앨빈은 자기가 아주 쉽게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나 봅니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이야기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고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하지만 전 해냈고
혼자서 해냈어요! 빌어먹을 혼자서 해냈다고요!

앨빈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마스

저는 앨빈을 보기 위해 청중들 틈에 섞여서 들어갔습니다. 제가 제 인생을 바쳐서


겨우 해냈던 걸 과연 해낼 수 있는지 보려고요.

앨빈

오늘 우리는 제 아버지 고든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 아빠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토마스

저것 좀 봐요. 앨빈을 좀 보라고요! 편안해요. 자신감이 넘쳐요. 막힘이 없다고요.


이야기에 이야기에 이야기에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어요. 봐요.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해요.

(그는 잠시 이야기를 듣는다.)

심지어 잘 해요. 정말… 정말 잘 해요. 정말…

M15. I DIDN’T SEE ALVIN

그때 난 보지 못한 거죠
마이크 잡은 손의 외로운 떨림
먹먹하게 막힌 목소리
빌려 맨 넥타이
무대 위에서 어느새 커버린 그 모습
그의 모습을 못 본 거죠

난 그저 그를 따라 할 뿐
앨빈이 진짜 재능이 있던 거죠
앨이 박수 치는 동안 난 인사만 했죠
내 이야기의 시작은 늘 앨빈이었는데
그의 모습을 못 본 거죠

언제나 곁에서 모든 걸 줬어
마치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앨빈을 잃는다는 것이
난 뭔지 몰랐던 거죠
고개를 들어 봐 톰
고개 들어 봐
혼자야
(토마스의 생각이 아주 복잡해지자 앨빈은 과거에서 빠져나와 그를 관찰한다.)

그때 난…

그때 난 길의 끝은 잊고
내 시선을 늘 미래에 맞췄었죠
그에게 진 빚 같은 건 다 묻어버렸어
소중한 모든 것을 놓친 것도 모른 채

다신 그를 보지 못했죠
(긴 정적)

앨빈

‘끝’.

앨빈 켈비의 이야기.

토마스

이제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어, 앨.

앨빈
송덕문 다 안 썼잖아.

토마스

응…

앨빈

그럼 아직 끝이 아니야.

이번 이야기는… 네가 찾던 그 이야기야. 네가 놓쳐버린 그 순간.

토마스

그래. 좀 보여줘.

앨빈

미안, 안 돼.

토마스

왜?

앨빈

여기 없거든.

토마스

그럼 어디 있는데?

(앨빈은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말해줘.

앨빈

뭘?

토마스

왜 그런 거야?

앨빈

뭐가?

토마스

다리에서 뛰어내렸잖아.

앨빈
내가 그랬다고 생각해?

토마스

그런 거 아니야?

앨빈

아닐 수도 있지.

토마스

그럼 말해줘.

앨빈

안 돼.

토마스

왜 안된다는 건데?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그게 내가 놓쳐버린 바로 그 순간이야. 내가 알아야 할 그 이야기야.

앨빈

어디서 읽은 건데 말야, 사람의 뇌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기억한대. 모든 순간, 모든


디테일까지 다. 그리고 그걸 어딘가에 저장한대.

(토마스는 앨빈의 모호한 반응에 실망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보지 않은 건 기억할 수 없어. 넌 보지 못했잖아.

그러니까 평생 궁금해 해도 어쩔 수 없어.

알아, 궁금한 건 많은데 이젠 답을 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하겠지.

난 왜 이 마을에 남았을까? 왜 책방을 팔아버리지 않았을까?

왜 내가 너와의 우정에 그렇게 매달렸을까? 뭘 기대한 걸까?

그날 밤 다리 위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뛰어내렸을까? 그냥 넘어진 걸까?

조지 베일리처럼 오지 않을 클라렌스를 기다린 걸까?

나비의 날갯짓이 북극의 빙하를 녹일 수 있다고 믿던 순수한 소년이

왜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은 걸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이 모든 게 너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것 말고도 질문은 더 많겠지만, 내가 줄 수 있는 답은 하나야.


알 수 없어, 톰
알 수 없어
(앨빈은 책장과 종이들과 바닥에 흩뿌려진 페이지들을 둘러본다.)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 톰. 왜 없는 이야기를 찾아.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
참 아름답지 않니?
(앨빈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페이지들을 하나 하나 주워서 들여다보며 계속한다.)

여기 봐, 톰
영원토록 그 폭포가 보여

아홉 살의 그림
사춘기의 사진
네가 소중히 간직한 이야기

잘 둘러봐

네가 찾던 이야긴
잘봐
전부 여기 있잖아

그래, 알아
뭔가 아쉽지
정답을 바랬겠지
이게 다야
근데 이제 좀 시원하지 않니
흘러간 틈새에
놓친 순간 속에
커다란 비밀이 있는 게 아냐

잘 둘러봐

네가 찾던 이야기
잘봐
전부 여기 있잖아

(앨빈은 톰의 어깨를 잡고 톰이 모아온

인생의 이야기들로 채워진 책장 쪽으로 돌린다.)

완전 많아. 네 얘기, 내 얘기, 우리 둘 다 나오는 얘기!

하나 하나 골라서 적어 보는 거야.

이야길 적어
아는 걸 써
둘러봐 우리의 평생의 이야기
이젠 숨 불어 넣어 줘
우리 이야기
토마스

우리 이야기

앨빈

살아나게
토마스

살아나게
앨빈
우리의 수많은 기억과 추억에
생명을 주는 거야
수천의 순간
토마스

수천의 순간
함께

이야기로
앨빈

지워지지 않고
토마스

영원토록
앨빈

웃음과 눈물로
토마스

톰과 앨빈, 함께
앨빈

그려줘
너와 나, 톰
이게 전부야
참 즐거웠던 시간
근데 잘 봐, 톰
사실은 이게 끝이 아니야

호수의 돌멩이
치는 물결같이
멈추지 않고 시간 너머 남아
네 몫이야

내 삶의 이야긴 다
네것
둘러봐, 톰
네 거야

너와 나
사랑과
인생 다
둘러봐
전부야
(토마스는 ‘눈 속의 천사들’ 페이지를 찾는다.)

그건 뭐야?

토마스

쓰고 있는 거.

(앨빈은 그 페이지들을 가져가 읽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하얀 눈밭에 누워 우릴 닮은 천사를 만들었죠. 팔과 다리를 펼쳐


힘껏 파닥거렸죠. 늦은 12 월의 햇살 속에서.

그날만은 믿었죠
겨울 하늘의 마법 같은
우리 천사의 숨소리를
이거 좋은데.

쌍둥이 천사 둘을 탄생시켰죠
아름다운 날개를 꿈꾸며
하루 종일 밖에서 겨울들을 보냈죠
드디어 완성됐을 땐 행복했죠
산 너머 해가 지고…
(앨빈은 뒷 내용을 찾으려 페이지를 넘긴다.)

이게 다야, 톰?

토마스

산 너머 해가 지고…
(토마스는 페이지들을 가져가 잠깐 고민하더니 문득 생각해낸다.)

바지 속까지 다 젖도록
천사들의 춤 기다렸죠
(토마스는 페이지들을 공중에 던져 댄다. 페이지들은 하늘하늘 눈처럼 내린다.)

찬 바람에 눈송이 흩날리고


앨빈

나무 사이로 노랫소리 들릴 때
토마스

천사들의 영혼 꺠어나
함께

조각 조각마다 살아나
마법처럼 눈 위로 떠올랐죠
수천의 천사가 살아나서
수천 개의 이야기로
하나의 노랠 불렀죠
토마스

곧 바람에 눈 흩뿌려지고
앨빈

우리 천사들도
(토마스는 페이지들을 던지는 것을 멈춘다.

그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앨빈을 바라본다.)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엔
하얀 눈밭에 누워
천사들과 이별을 나눴죠
토마스

하지만 난 믿어요
계절은 변해 간대도
내가 부를 때면 살아나겠죠
앨빈

부르면
토마스

내 곁에
앨빈

네 곁에
함께

겨울 햇빛처럼
나를 감싸는 마법처럼

그 어린 시절
바로 그때처럼
우릴 닮은 천사
(토마스는 앨빈을 마지막인 것처럼 힘껏 껴안고 그의 목에 입을 맞춘다.

책장과 종이들은 사라지고 다시 장례 예배당 벽이 나타난다.)

앨빈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 주네.


토마스

그게 송덕문이라는 거야.

앨빈

네가 내 것 써 줄래? 나도 네 것 써 줄게.

토마스

그게 가능해?

앨빈

음… 그럼 남은 사람이 하기. 약속?

토마스

약속하면 가도 돼?

앨빈

응.

(앨빈은 뒤로 물러나 토마스를 지켜본다.

토마스는 연단에 가서 그의 노트를 집어 든다.

그는 송덕문을 읽기 시작한다.)

토마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토마스는 노트를 덮는다.)

앨빈 얘기 하나 해 드릴게요.

커튼이 닫힌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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