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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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East-West Comparative Literature

Vol. 64. June 2023


https://doi.org/10.29324/jewcl.2023.6.64.139

Casey Han’s Diaspora Identity in Free Food for Millionaires


Mihye Eom (Hallym Polytechnic U)

ABSTRACT: The essay analyzes the portrayal of diasporic identity in Min Jin Lee’s novel, Free
Food For Millionaires, focusing on the challenges faced by the protagonist, Casey, as she navigates
her hybrid Korean American identity in the United States. Casey’s struggle lies in reconciling her
family’s traditional values with her own aspirations in American society. Not belonging fully to any
community, political party, or culture, Casey is confused about her identity and lives in a hybrid
cultural society. Bhabha’s concept of hybridity is useful in understanding Casey’s confusion and
search for identity in such a society. Hybridity, as Bhabha describes it, offers an understanding of
how diasporic individuals negotiate their identities within the context of the host culture. It
recognizes the “in-between” or “third space” where newness and innovation emerge, and cultural
differences are translated and transvalued. In conclusion, Free Food For Millionaires offers a deep
exploration of diasporic identity, focusing on the experiences of Casey. The novel portrays the
complexities of Casey’s journey as she grapples with her hybrid identity and navigates the
challenges of integrating into American society. The conclusion of the novel highlights an important
turning point for Casey. She decides to leave her full-time job and chooses to be with Eun-woo, a
person with whom she can share her passions and daily life. This decision underscores the
significance of individual values and personal fulfillment as sources of happiness and meaning in
life. Min Jin Lee’s novel presents a multi-dimensional portrayal of the Korean American experience,
touching upon themes of identity, class, gender, and the pursuit of the American Dream. Through
Casey’s story, the author sheds light on the complexities and struggles faced by individuals in the
diaspora, particularly in relation to their cultural heritage and the societal expectations they
encounter.

Key Words: Free Food for Millionaires, diaspora identity, Korean-America, Homi Bhabha, hybridity

Copyright © 2023 JEWCL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40 엄미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엄 미 혜

I
민진 리(Minjin Lee, 1970~)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 아닌 곳에서 뿌리를 내
려야 하는 해외 이주민들의 삶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민진 리는 파친코
(Pachinko, 2017)가 미국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와 BBC 방송 ‘올해의
책’(Best Books of the Year)으로 선정, 미국 픽션 부문 ‘비치상’(Beach Book
Award), 신인작가를 위한 ‘내러티브상’(the Narrative Prize) 수상 등 각종 매체의
호평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애플 TV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
은 한국계 미국 작가이다. 민진 리는 1976년 일곱 살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
주한 미국 이민자 1.5세대이다. 미국 이민자 1.5세대는 어린 나이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정규 교육을 받은 이민자들을 말한다. 민진 리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 2007) 은 민진 리의 자전적인 경험이
1

진솔하게 담긴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의 여 주인공


케이시 한(Casey Han)은 미국 이민자 1.5세대이자 명문대학을 졸업한 여성으로 예
일대(the Yale)와 조지타운 로스쿨(Georgetown law school)에서 공부한 작가 민진
리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민진 리는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며
1
본 논문에서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을 인용할 경우
FM으로 생략하여 표기할 것이다. 번역은 유소영 옮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 2022.
을 참고하여 번역할 것이며, “작가의 말”을 인용한 경우 백만장자 1,2로 축약하여 표기할 것
이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41

스토리는 직접 겪은 이야기들”(Sugarman)을 담고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뉴욕의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었던 인간형들과 문제들을 기록”(백
만장자 2 472)한 작품은 타자화된 경계인들의 소외와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인
식을 넓히고 보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Competence can be a curse, FM 3)라는 말로 작품
은 시작하는데 이것은 “명문대라는 안전한 울타리”(백만장자 2 475)에도 불구하
고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 케이시의 삶이 인종과 젠더, 계급의 차이로
빚어진 문제와 시련들로 얼룩져 있음을 예견한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소수인종으
로 인종, 젠더와 계급이라는 차별적 상황에 놓인 한국계 미국인의 전형을 그려내
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아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인물인지 너무나 보여주고 싶었다”(백만장자 2 472)고 서술하면서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정확한 재현의 부재”(백만장자 2 471)가 한국계 미국인
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만들고 있음에 주목한다. 또한 파친코 1의 서문에서 “광
범위한 인간성을 지닌 한국인을 그 자체로 오롯이 인정하는 일”(7)이 창작 활동의
의도라고 밝히면서 다양한 인간을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틀에 가둬두는 방
식을 타파하고자 한다. 김소영과 이주영·정기인 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2

서 작가가 아시아인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과 ‘모범적 소수민족’(model


minority)의 신화의 문제점을 서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본 연구 역시 케이시의
여정이 미국사회에서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편견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모
범적 소수민족이라는 정형화된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선행연구와 동
일선상에서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모범적 소수민족의 신화를 벗어
나려는 케이시가 갈등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호미 바바(Homi Bhabha)의 혼
종성(hybridity)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한국계 미국인 케이시가 정체된 한국문화와 개방적인 미국문화 사이에서 혼란
을 겪으며 확립한 혼종된 정체성은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고 다른
2
김소영.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의 범주의 의미. 고
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석사논문. 2014., 이주영·정기인.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백만장자를 위
한 공짜음식의 텍스트, 파라텍스트, 콘텍스트」. 한국근대문학연구 23 (2022): 7-32.
142 엄미혜
각도의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한 인터뷰에서 “미국인이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고 말하면서 동시에 “한국에 매우 깊게 연결되어 있다”(Terry Hong)고 자신을 소
개한 민진 리의 정체성은 미국에서 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고
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케이시가 미국과 한국 두 사회적 공간 사이에서의 상호작용
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작가가 지향
하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추론해보고자 한다.

II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의 주인공 케이시 한의 네 가족은 1976년에 미국

으로 이민을 왔다. 케이시의 아버지 조셉 한(Jopseph Han)은 10대에 한국전쟁 피
난민이 되어 쓰레기통을 뒤져서 허기를 채우고 추운 바닷가에서 잠을 잤으며 더러
운 보호소에 머물러야 했다. 어른이 되어 대학을 다니지 못한 조셉의 삶은 어려웠
고,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뉴욕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조셉과 그
의 아내 리아(Leah)의 삶은 처음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하여 언어의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 등 미국에서 주변부에 존재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으로 녹록하지 않
았다.
거리에 나가면 리아는 여전히 두려웠고 리아와 조셉은 둘 다 손님들에게 바보처럼
보였다. 손님들은 열심히 일하는 여기의 세탁소 주인 부부가 영어가 아닌 다른 언
어로는 유창하게 말하고 읽고 쓸 줄 아는 사실에 관심이 없다.
Leah looked perpetually frightened in the streets, and both she and Joseph
were treated like idiots by their customers, who cared little that the
hardworking pair were fluent and literate in another language. (FM 36)

미국 문화에 대한 생소함, 그리고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 속에서 언어의 문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43

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셉이 전문직이나 화이트칼라 직업을 찾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조셉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전쟁과 가난의 고통을 떠올리며 악몽을
꾸었고, 이로 인한 불안감으로 인해 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기를 바
랬다. 자녀들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가지고 희생을 감내했기에 조셉은 케이시가 법
대에 진학해서 변호사가 되거나 정규직으로 취직하기를 강요한다.
“나는 네 나이 때 거리에서 김밥 장사를 했다. 김밥을 팔면서 단 한 입 먹을 시간
조차 없었다.”
“당장 잘 곳이 없는 게 넌 어떤 건지 모른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음식을 훔쳐 먹어
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몰라. 숙자 케네디 상점에서 일한 것 말고는 일해본
적도 없잖아.”
“When I was your age, I sold Kimbop on the streets. Not one piece...I
couldn’t afford te eat one piece of what I was selling.” (FM 8)

“You don’t know what it’s like to have nowhere to sleep. You don’t know
what it’s like to be so hungry that you’d steal to eat. You’ve never even had
a job except at that Sook-ja Knennedy’s store,” (FM 15)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종종 조셉은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회상하며 자녀들에게 돈


과 명예가 보장되는 직업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케이시에게는 아버지가 겪은 전쟁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잃은 것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고, 그것들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퀸스, 지금은 1993년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1953년에 머물러 있고, 한국전
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His losses weren’t hers, and she didn’t want to hold them. She was in
Queens, and it was 1993. But at the table it was 1953, and the Korean War
refused to end. (FM 9)
144 엄미혜
미국의 명문대학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 졸업을 앞둔 상태에서 로스
쿨을 1년 미루고 취업에도 실패하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케이시에 대
해 아버지는 못마땅해 할 수밖에 없다. 조셉의 생각에 모자나 만들며 옷 가게에서
시급으로 일하는 케이시의 삶은 실패한 삶으로 여겨졌다. 부녀의 갈등이 극에 치
달을 때면 조셉이 케이시의 기를 꺾기 위해 때리기까지 했다. 가부장제로 점철된
과거 한국의 가치관에서 자녀를 체벌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간주
되어 왔지만, 미국에서는 체벌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린 시절
케이시는 어머니로부터 체벌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했다.
케이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미국에서 부모가 체벌한다고 선생님에게 알리면 아이
들을 고아원에 보낼 거라고 그녀와 티나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케이시와 티나는
그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When she was a girl, her mother warned her and Tina that in America, if
your parents disciplined you and the teachers at school found out, the state
would put you in an orphanage. Consequently, Casey and Tina never told
anyone anything. (FM 36)

두 자매는 부모님이 체벌하는 것이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


해 그 누구에게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케이시에게 침묵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침묵으로 일관한다. 리아는 조셉이 화를 내는 것은 남자이
기 때문에 괜찮지만 케이시가 아버지에게 포악하게 성질을 부리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리아는 오히려 성질 사나운 “이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FM 13) 걱정이 되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체득한 삶에 대한 태도로
인해 리아는 케이시가 잘 살기 위해서는 순종적이고 침묵해야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는 조셉과 리아는
케이시에게 백인과의 교제를 반대했고 배우자는 한국인이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래서 케이시가 한국인 은우(Unu)를 남자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리아는 은우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45

마음에 들었는데, “한국말을 했기”(FM 310) 때문이다. 조셉도 미국인 남자친구 제


이(Jay Currie)와 달리 은우를 소개했을 때 “악수를 하고 교회에 새로 온 신자를
만났을 때처럼 예의를 갖춰 미소를 지었다”(FM 310). 조셉의 생각에는 아무리 이
혼을 했지만 좋은 집안에서 자란 한국 남자가 미국 사람보다는 훨씬 나았던 것이
다. 이민 1세대인 리아와 같은 한국 여성은 좋은 딸, 혹은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아는 가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
해 수행한다. 요리와 세탁, 청소 등 집안일은 모두 리아의 몫이다. 한국에 있을 때
는 여섯 명의 오빠들을 위해 집안일을 했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한인교회의 인
간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어느 날 몸이 아파 교회에 나오지 못한 교회의 성가대 지
휘자 찰스 홍(Charles Hong)의 집을 방문했을 때 리아는 그의 집안일을 도와주었
다. 집안일을 하는 리아의 모습을 보고 찰스는 어린시절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들
이 열심히 마루를 닦던 모습을 떠올렸다. 리아는 여성이 해야 할 일들을 자연스럽
게 딸들에게 가르쳤다. 케이시의 동생 티나(Tina)는 좋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서 부모님들 앞에서 케이시처럼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한국인과 결혼을 한다.
부모님에게 잘 배워 익힌 티나는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의 정형적인 인물,
‘모범적 소수민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티나가 보기에 자신과 달리 여성으로서 기대되어지는 행동을 보이지 못하고
순종적이지 않은 케이시는 갈피도 잡지 못하고 힘든 길로만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와 맞서는 케이시의 행동은 “실수”(mistakes, FM 26)로 여겨진다. 케이시의
외모와 행동이 보여주는 특성은 한국인 친구 엘라 심(Ella Shim)의 아버지 심박사
(Dr. Shim)의 눈에도 숙녀답고 얌전한 티나와 예쁘고 얌전한 엘라와 같은 한국여
성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모습으로 보인다(FM 591). 티나와 달리 케이시
는 부모님의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가르침이 미국사회에서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케이시도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여성의 역할에 대해 보수적인 일면을 갖고 있다.
케이시는 커피와 시리얼, 화장실 휴지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항상 자신이 해
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이와 살 때도 집안의 사소한 일들을 자신이 했으며 은
146 엄미혜
우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은우와 함께 이런 일
들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 .] 버지니아는 남녀의 연애에 대해서
케이시를 구식이라고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쫓아다니는 게 좋다고 말했기 때문이
다. [. . .] 어머니만 집안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랬을 것이다. 케이시는 자
신이 구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he had always seen it as her job to make sure there was coffee, cereal, and
toilet paper in the house. When she lived with Jay. she’d taken care of these
domestic details, and so also with Unu; it had never occurred to her to share
these duties. [. . .] In romance, Virginia used to call Casey old-fashioned
because she liked men to do the pursuing. [. . .] It was the way she’d grown
up witnessing the things only her mother did at home. Casey felt backward
(FM 350)

남자친구와 동거하면서 집안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함께 장보러 가


자는 은우의 말에 어색해 한 자신의 모습을 미국인 친구 버지니아(Virginia)의 시
선에서 생각하며 자신의 사고가 구식이라고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은 의미가 있다.
케이시는 자연스럽게 배워 익힌 당연해 보이는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주
변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인 집안에서 체득한 관습에 의문을 품고 이것을 깨
뜨린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에 따르면 “정체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단일한 자
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는 하나의 사회적 이상에서 또 다른 사회적 이
상으로 욕망이 전치됨으로써 생기는 정체성이 끊임없이 연기되는 과정이
다”(Morris 117-18). 이렇게 볼 때 연기의 과정을 설명하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차연”(differance, Bhabha 58)의 논의를 차용해서 말하자면 케이시는
한국인과 미국인, 남성과 여성, 계층의 이분법 대립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복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때 “사이에 낀 공간”(in–between, Bhabha 7)에 놓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차연”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차이 속에서 거듭되는 차연을 통해 만
들어낸 케이시의 이산적 정체성은 인종, 젠더, 계층 등의 차이에 충돌이 발생하는
경계지대인 혼종성이 실현되는 공간, “제3의 공간”(third space, Bhabha 7)에 놓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호미 바바의 혼종성의 과정은 주체가 인식함으로써 사이
에 낀 공간에 놓여 어떤 것을 다르고 새롭게 만든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2-7). 혼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 147

종적인 정체성의 과정에서 이주민은 모국과 세상 사이의 경계지대 사이에서 혼란


을 겪으며 차연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흔적이 생기고 갈등과 교섭(negotiated)으로
점철된 이 흔적들로 더 이상 같지 않은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민진
리와 동시대 작가 창래 리(ChangRae Lee)가 집필한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의 주인공 헨리 박(Henry Park)처럼 케이시에게서 “미국의 사회와 한국
역사의 잔여물 사이에서 매 순간 정체성의 분열을 경험”하면서 매 순간 “자기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류보선 137)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한 케이시는 부모님들과 달리 영어와 미국문화에 익숙하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사회에 진입해서도 미국의 주류사회로 진입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
다는 것을 깨달으며 많은 순간 좌절을 맛보고 갈등을 겪는다. 게으르게 살고 있다
며 비난하는 아버지에게 소리치는 케이시의 이야기는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가난한 한국인으로 미국 학생들 속에 섞이지 못하고 소외된 타자였음을 잘
보여준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어요. 아버지가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
니 어쩌면 더 열심히 했을지 몰라요. 나 같은 애가 그런 대학에 다닌다는 게 어떤
건지 아버지가 아세요? 명문 사립고등학교 엑시터나 하치키스에 다닌 애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냐구요? 걔네 부모님들은 모두 컨트리클럽 회원
권을 갖고 있고 잘못을 저질러도 전화 한 통화면 끝나요. 코스마다 모두 A를 받아
도 보잘 것 없는 출신이라고 날 무시하는 애들하고 친구해야 하는 게 어떤 건지 아
세요? 아버지가 세탁소를 한다고 말하면 애들은 내가 씻지도 않은 애처럼 저 멀리
떨어져요. 별 볼일 없는 애들이 나를 유리처럼 대하고, 아주 더러운 걸 쳐다보듯 할
때 어떤 기분인지 아시냐구요?”
“I’ve always worked hard... Just as hard as you work at the store. Maybe
harder. Do you know what it’s like for me to have to go to a school like
that? To be surrounded by kids who went to Exter and Hotchkiss, their
parents belonging to country clubs, and having a dad who could always make
a call to save their ass? Do you know what it’s like to ace my courses and
to make to and keep friends when they think you’re nothing because you’re
from nowhere? I’ve had kids step away from me like I’m unwashed after I
tell them you manage a dry cleaner. Do you have any idea what it’s like to
148 엄미혜
have people who are supposed to be your equals look through you like
you’re made of glass and what they see inside looks filthy to them?” (FM
12-13)

퀸스에서 태어난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케이시는 어디에도 섞이지 못한


다는 불안함을 지울 수 없다. 케이시의 불안함은 식당에서의 경험을 통해 단적으
로 드러난다. 미국에 살면서 회원들만 이용하는 클럽이나 뉴욕의 가정집 등에 가
봤는데 “어디를 가든 그 안에 들어가면 금방이라도 그녀에게 나가달라고 말할 것
만 같았다. 그러면 자신 같은 여자에게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나갈 것
같았다”(FM 336-37). 식당에서 자신에게 “나가달라”고 말할 것만 같은 불안감은
카를로스 블로산(Carlos Bulosan, 1913-1956)의 단편 「침묵」(“Silence”, 1979)에
그려진 이주민이 “설 곳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모습”(김봉은 216)을 상기시킨다.
설 곳을 찾지 못하는 케이시는 그 어디에도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방
인으로 ‘사이에 낀 공간’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III
케이시는 “한국인일 뿐만 아니라 미국인이기도 했다”(FM 142). 아버지에게 매
를 맞고 집을 나온 케이시는 미국 남자친구 제이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미국
인 남자친구를 사귀어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금기사항을 깨고 보란 듯이 제이의
집으로 갔지만, 제이의 집에는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가 금발머리
의 여자 두 명과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제이의 아파트를 뛰쳐나온
케이시는 고급 칼라일(Carlyle) 호텔로 들어갔다. 이때 케이시가 종종 이 호텔에
머물던 친구 버지니아의 할머니 크레프트(Mrs. Craft)를 떠올리며 흉내 낸 목소리
로 안내 직원을 부른 사실은 흥미롭다. 케이시의 이러한 흉내내기는 오히려 직원
으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49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스키용 안경을 쓰고서 상류층 흉내까지 내고 있으니 여


자가 더 불쌍해 보였다. 그는 치료가 필요한지 물어보려다가 대신에 직장 할인가로
특실을 제공했다.
That she was wearing a ridiculous hat and ski glasses and trying to sound
posh made him feel more sorry for her. He considered asking if she needed
medical assistance but instead offered her an excellent room at a corporate
rate. (FM 45)

미국의 상류층 흉내를 내지만 비웃는 호텔 직원의 태도에서 케이시가 꿈꾸는 미국


의 상류층 사회에 동화되고 싶어하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케이시가 백인 부자 할머니를 모방했지만 완전히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오
히려 이질성을 만들어낸다. 호미 바바에 따르면 사실상 모방은 인식 가능한 타자
로 “거의 똑같지만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닌 것으로서 차이를 가진 주체”(other, a
subject of a difference that is almost the same, but not quite, 86)에 대한 욕망
으로 동일시 될 수 없다. 그렇게 모방은 “진정한 것”(authentic)을 열망하지만 진짜
가 아니라 진짜인 척하고 흉내내는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부분적인 재현으로 나타
나는 아이러니”(the final irony of partial representation)를 드러낸다(88).
미국의 상류층에 속하고 싶어하는 케이시가 경제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 취업을 시도하면서 컨 데이비스(Kearn Davis) 투자은행의 면접장에 “노
란 실크 슈트”를 차려 입고 페미니즘 화제를 기대하며 “레이건 농담”을 던졌지만
“군청색과 짙은 회색 모직 옷을 입은 면접관들”은 케이시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FM 5). 케이시의 화려한 옷차림과 달리 어둡고 차분한 면접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고 입담이 좋다고 생각해서 던진 농담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엘라의
남편 테드(Ted)의 소개로 면접을 볼 때도 케이시는 “제이의 친구들이 투자금융에
대해 불평하던 표현을 그대로” 흉내 내어 말을 하며 “영업부 트레이더 지망생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다”(FM 103). 케이시가 미국인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이질감은 더 확대된다. 모방은 이질성을 만들고 “무한히 겉도는 이질성”으로 “불
안”(박문정 187)이 고조되어 삶에 대해 불편함과 존재에 대한 무능함을 느끼면서
150 엄미혜
“자기 존재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의 경계를 모호”(박문정 191)하게 만든다. 미국
인을 흉내내는 케이시의 모습은 이질성을 만들어내고 결국 그녀의 주체성은 모호
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모호한 상태에 놓여 혼란스러운 케이시는 미국에서의 행
복과 사랑은 한국인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케이시는 그런 욕구
와 소망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FM 142)고 좌절감을 드러
낸다. 학교에서 아무리 A를 받아도 무시당했던 것처럼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은 했
지만 여전히 많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미국사회에서 이질성을 느낀다.
케이시가 즐겨 착용하는 모자와 값비싼 옷들은 “부잣집 백인 여자”(FM 96)를
흉내내며 백인으로 ‘위장’을 한 케이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
해 케이시가 선택한 것은 상류층 백인 여성의 삶을 열망하고 그것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케이시는 화려하고 특이한 옷을 즐겨 입고 눈에 띄는 모자를 즐겨 썼다.
“주말에 차려입는 그녀의 옷은 멋있는 어떤 시대의 의상”(FM 387) 같았다. 케이
시에게 옷은 그냥 옷 한 벌이 아니라 “마법”(magic) 같았고 주문을 걸어 사람을
변신시키고 “어떤 이미지와 삶, 어떤 종류의 여성”(an image, a life, a kind of
woman)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FM 47). 그녀의 의상에 대해서 엘라의 아버지는
보통사람처럼 입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녀에 대해 이상하다고 서술하지만(FM
591) 미국인 서점주인 조셉(Joseph McReed)은 그녀를 멋지다고 말하면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여주인공 데이지 뷰캐년(Daisy Buchanan)을 닮았다
(FM 387)고 말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사회에 동화되고 싶어서 미
국인의 말투와 행동을 줄곧 흉내내던 그녀가 데이지를 닮았다는 말을 듣자 한국인
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케이시가 자신을 한국인
이라고 언급하는 모습과 조셉이 “국적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FM 387)라고 반문
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주류사회에 동화되고자 하는 케이시의 열망은 과소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취
업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길 때, 그리고 타
인을 만났을 때 케이시의 충동적인 소비는 강화된다. 백화점에서 현금이 없었던
케이시는 구매를 보류하기로 하지만 우연히 엘라를 만나자 충동적으로 처음 발급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51

받은 카드를 꺼내 구매를 해버린다. 케이시의 “천성은 체계적인 사람”(FM 113)이


지만 엘라를 만나자 당장 갈 곳이 없으면서 충동적인 소비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도한 소비를 하고나서 1달러짜리 라면에 물을 잔뜩 넣고 끓여 먹으며 배고픔을
견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인 소비를 멈추지 못한다. 케이시가 충동적인 소
비를 통해 추구하고 싶었던 것은 초라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
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들은 사물이 규정하는 정체성을 찾아다녔다. 그날 아침, 비록 대형 할인점
인 럭키스로 가야 할 형편이었지만 케이시는 베이야드 톨로 갔다. 케이시는 직장
면접에 가기 위해 입을 옷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럭키스의 둥근 옷걸이에 잔
뜩 걸려져 있는 옷들 속에서 골라내는 일은 그녀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때였더라면 철지난 이월 상품들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걸 즐겼을지도 모른
다. 오늘은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Everyone scrounged for an identity defined by objects. That morning, Casey
went to Bayard Toll, though her budget recommended Lucky’s, a discount
warehouse. What she wanted was an image of something to wear for a job
interview, and the notion of combing through the round, bulky clothing racks
of Lucky’s depressed her, although at other times she’d relished the challenge
of finding the treasures passed over from last season’s styles. Today, she
wanted luxury. She wanted to be someone else. (FM 42)

백화점에서 천 달러 넘는 옷을 입어보면서 그녀가 거울을 보며 어떤 어려움이 닥


쳐도 끄떡하지 않는 “원더우먼”(Wonder Woman)을 떠올린 순간이나 이 옷을 입
으면 마치 “새로운 삶”(new life)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상상(FM 50)하는
정황에서도 케이시의 과소비의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인종적인 차별뿐만 아니라 케이시는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테드와의 관계를 통
해서 젠더가 부여한 차별도 경험한다. 테드는 케이시와 동등한 학력을 가진 같은
한국인이지만 동질감은 느낄 수 없고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감을 발
견한다. 케이시는 집에서 쫓겨나와 엘라의 집에 얹혀 살고 있고 카드는 한도까지
다 써버린 상황에 놓여 있다. 이제는 담배조차 살 돈도 없어서 직업을 구하는 일
152 엄미혜
이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에 케이시는 테드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된다. 결국 같은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남성인 테드는 미국인들과 같은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고 케
이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만 졸업한 미국여성 델리아(Delia)와 같은 위치
로 박봉의 월급을 받으면서 많은 업무량을 처리해야 하는 보조직원의 위치에 놓이
게 된다.
대학원 방학 기간에 컨 데이비스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직장상사인 휴(Hugh)
가 선의로 케이시에게 점심식사를 사주며 하는 말은 미국의 상류층 백인 남성이
아시아계 여성을 타자화하여 선명한 이분법적 구도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케이시가 돈을 내려고 하면 이렇게 말했다. “난 잘생기고 성공한 증권거래인
[. . .]
이야 넌 나보다 훨씬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일하는 보조
.
직원이잖아. 게다가 그로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한 번도 숙제를 해 본 적이
없어. 이것 참 재밌지 않아?” 물론 휴는 케이시가 돈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
[. . .] not to mention the hundreds of lunches he’d bought for her. Whoever
she’d try to pay him, he’d say, “I’m a good looking and successful
stockbroker, and you are a poorly paid gofer who went to a far better
college than I did. And to think I almost never did my homework at Groton.
Isn’t that rich?” Of course, he said all this in this way to make sure she
never paid. (FM 335)

휴가 컨 데이비스 퇴직 선물로 사준 비싼 골프채는 미국의 상류층에 편입되고 싶


어하는 열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더욱 극명하게 깨닫게 되는 매개체가 된다.
선물은 매우 고맙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름을 넣을 돈이 없으면 롤스로이스를
사지도 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녀는 이미 제이에게서 선물 받은 아주 좋은 골
프채가 있었다. 하지만 골프를 거의 치지 않았다. 골프 회원권도 없고, 골프 칠 시
간도 없는 자신이 골프채를 두 세트나 갖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The gift was incredibly generous, but she felt terrible. What was the
saying-Don’t buy a Rolls-Royce if you can’t afford the gas? She already had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53

a very nice set of clubs from Jay, and she almost never played. It seemed
like some sort of cosmic joke for her to have two sets of clubs, no club
membership, and no time to play. (FM 334)

케이시는 “물건이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FM 22)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비싼 물건들이 자신을 주류사회에 데려다주지 못한다는 사실
을 실감한다. 비싼 물건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깨닫는다. 백화점 사장
사빈(Sabine)이 물려준 비싼 정장은 “위장”(a disguise, FM 334)을 한 것처럼 케이
시의 것이 아니다.
미국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겪는 케이시의 타자화와 갈등은 심화 된다. 부모님
을 속이고 만났던 미국 남자친구 제이는 케이시와 헤어지고 나서 아시아계 미국
여성과 결혼을 한다. 미국남자 제이의 눈에 케이시 자신은 그저 아시아 여자로 타
자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기계의 부품을 다른 부품으로 대체하는 것처럼 다른 아시아 여자와 결혼을 한
다는 사실이 케이시를 놀라게 했다. 제이가 아시아 여자를 만난 것은 패티시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제이와 게이코의 사랑이 진심일 수도 있지만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What threw her was the fact that he was with another Asian woman-as if
they were cogs to be replaced on a machine. That was the problem with
fetishes, wasn’t it? There could be real love, but one couldn’t feel certain
what was the basis for attraction. (FM 355)

제이와 헤어지고 케이시는 새롭게 사귄 엘라의 사촌오빠 은우가 일을 그만두고 도


박으로 생활을 하는 불성실한 모습에 실망을 느끼던 중 휴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
는다. 이때 백인남자 휴와의 관계에서 케이시의 타자화는 극대화된다. 케이시는 휴
와 성관계 후 우연히 옷장 밑에서 포르노그래피를 발견한다. 그 비디오에는 아시
아계 여자 한 명과 백인 남자 두 명이 섹스를 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들의 섹
스하는 장면을 보면서 케이시는 아시아계 여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비
154 엄미혜
디오 속의 남자가 아시아계 여자한테 “나도 끝내게 해주겠어?”(Can you finish me
off, FM 626)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방금 전 휴와 섹스를 할 때 휴로부터 요구받
았던 말이다.
이게 휴가 자신을 보는 방식이었을까? 도대체 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이 그의 환상이었을까? [. . .] 그 여자는 케이시와 전혀 닮지 않
았지만 케이시는 빨간 슈트를 가지고 있었고, 휴는 그 옷을 입은 모습을 칭찬을 했
었다.
Was this the way he saw her? How could she ever know what he really
thought of her? Was that his fantasy? [. . .] The girl looked nothing like her,
but Casey used to own a red suit, and Hugh had complimented her on it.
(FM 626)

아시아인의 외모를 가진 모든 여성을 똑같이 취급하는 제이와 휴의 행동은 인종주


의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미나리>(2020)의 주
연배우 스티븐 연(Steven Yeon)이 한 토크쇼에서 “아시아인은 다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요”(Asian guys don’t all look the same, Team Coco)라고 외친 것이 화제
가 된 것처럼, 아시아계 미국인을 동질화하는 경향은 여전히 농후하다. 리사 로이
(Lisa Lowe)는 서로 다른 개인의 경험은 국가, 세대, 젠더, 계급에서 차이가 발생
하는데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차이
를 억압하는 것이며, 인종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71).
각기 다른 아시아인 사이의 차이와 혼종성을 경시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을 하나
의 동종의 집단으로 여김으로써 아시아인들이 “모두 똑같고” “전형”에 부합한다는
인종주의를 무심코 지지할 수 있다.
not only does it underestimate the differences and hybridities among Asians,
but it may also inadvertently support the racist discourse that constructs
Asians as a homogeneous group, that implies Asians are “all alike” and
conform to “types.” (Lisa Lowe 71)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55

케이시의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민진 리는 한국계 미국인들을 “모두 똑같은” 하나


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사고를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미국의 사회에 대해 필리핀계 미국인 작가 카를로스 블로산이 언급한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다른 어떤 곳보다 여기서 살길 원할 것이다”라는 구절
을 인용하면서 미국의 사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그 결함
도 인정”(백만장자 2 470)해야 한다고 서술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
이다. 케이시는 숨기는 것 없이, 실패를 할 때도 부끄러운 기색 없이 모든 것을 소
리 내어 말하는 버지니아를 좋아했다. 버지니아의 성격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은
어마어마한 개방성을 지닌 놀라운 나라다”(백만장자, 469-70). 아시아계 한국인
이라는 정체성을 하나로 고정시킬 수 없는 것처럼 한 개인의 성향이 미국을 특징
지을 수는 없지만, 뉴욕의 인간형들 중 케이시가 좋아하는 특징이다. 자신의 실패
나 문제점에 대해 개방적으로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여야만 그 문제점을 서로 이해
하고 해결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아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서 케이시는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높인다. 앞서
서술했듯이 리아는 전통적인 한국사회에서 이상적인 아내이면서 교회에서는 신실
한 신자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소극적이며 순종적인 여성성을 소유한 리아는 찰스
홍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도 그와 단둘이서 식당에 간 자신을 자책한다. 계속해
서 “안돼요”(FM 478)라고 말하는 리아에게 찰스는 “아름다운 리아. . . 오늘밤 우
리는 사랑을 나눈 거예요”(FM 479)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한다. 찰스
가 리아를 사랑하고 리아가 찰스를 마음에 두었다고 해서 찰스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리아의 경험은 “비백인 여성들이 놓여 있던 다층적 억압과 소외의
현실, 즉 남성 중심적 사회인 자신들의 출신 국가에서도, 백인 중심의 제1세계에서
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서발턴 주체로서의 제3세계 여성 문제”(이효선
265)를 폭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리아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케
이시는 어머니가 찰스에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 성폭행인 것이며 성폭행을 저지
른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156 엄미혜
“어머니가 식당에 데려간 게 죄가 아니에요. 그는 배가 고팠고 어머니에게는 차가
있었던 거예요. [. . .] 그자는 성가대 지휘자고 어머니는 그자에게 마음이 있었던
거죠.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어머니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그런 경험이 있었을 테니까. 그 사람은 그걸 이용한 거예요. 나쁜 자식 같으니라
구.”
“It wasn’t some sin for you to take him to a diner. He was hungry, and you
had a car. [. . .] He was your choir director, and you had a crush on him.
Big fucking deal. He knew you were having a crush on him, because he’s
been around, and he took advantage of you. he’s an asshole.” (FM 595)

그리고 케이시는 찰스 홍을 찾아가 어머니에게 저지른 행동이 강간임을 상기시키


고 교회를 떠나라고 소리친다.
어머니는 전부 다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 .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가

다 말해 줬거든요. 이 나쁜 새끼야. [. . .] 어머니가 하지 말라고 하는 말 들었어?”
“She thinks it’s all her fault. [. . .] She did tell me what happened,
motherfucker. [. . .] Did you here her say no?” (FM 630)

케이시의 행동은 한국계 미국 여성을 “소극적이고 의존적”(Kalra 55)인 사람으로


정형화하는 렌즈를 벗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작품의 결말에서 케이시는 원했던 월스트리트가 금융회사에서의 정규직을 포
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모자 만들기를 선택하고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하는 은우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넌 모자를 만드는 게 어때?” 은우가 말했다.
케이시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거 해서 돈 못 벌어.”
“언제부터 네가 돈을 원했다고?” [. . .]
“그냥 그런 모습이 상상이 안 돼.” 케이시는 모자 디자이너로 일하는 자신의 모습
을 상상해 보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Why don’t you make hats?” he said.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157

She almost laughed. “There’s no money in that.”


“Since when did you want money?” [. . .]
“I just con’t see it.” She tried to imagine herself as a milliner; that was no
impossible. (FM 645)

그동안 좇았던 금융업의 정규직과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은우와의 대화에서 진


정으로 좋아하는 모자 만들기를 떠올리면서 기뻐하는 모습과 은우와의 재회를 암
시하는 결말에서 케이시의 변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부고란에서
민진 리는 한국계 미국인 케이시가 “한 치의 후회도 없이 살았다”(백만장자의 공
짜음식 17)는 부고를 발견하고 작품의 주인공을 탄생시켰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부고란의 케이시와 주인공 케이시를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작가는 케이시
가 마지막에 ‘후회 없이 웃음’ 지을 수 있는 삶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정체
성을 확립할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IV
지금까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의 주인공 케이시 한이 한국계 미국인으
로서 이산적 정체성을 추구해 가는 양상을 추적해 보았다. “한국계 미국인이 얼마
나 복잡다단한 인물인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집필의 목적에 따라 작품은 케이시
한이라는 한 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케이시와 그녀의
친구 엘라 심, 그리고 어머니 리아 조, 세 여성인물을 중심으로 교차되며 구성되어
있다. 결말에서 케이시는 한국계 미국인 은우와의 재회를 선택하지만 엘라는 한국
계 미국인 테드와 이혼한 이후 미국인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e)과 약혼을 한
다. 이렇게 볼 때 케이시의 이야기만으로는 다양한 한국계 미국인을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지만, 케이시를 중심으로 한국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 사이에서의 갈등을
드러낸 서술에서 모범 소수민족이라는 정형성을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케이시의 부모
158 엄미혜
님은 정체된 한국의 가치관으로 백인남자 친구와의 교제를 반대하고 아버지의 폭
력적 상황에서조차 순종을 강요했다. 케이시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아
가기 위해 부모님이 강요하는 금기와 억압에서 벗어나 미국의 주류사회에 동일시
를 시도한다. 이때 케이시는 인종, 젠더, 계층의 이분법 대립구조에 끊임없이 전복
을 시도하고 인식하면서 “제3의 공간”이자 “사이에 낀 공간”에 놓이게 된다. 미국
남자친구 제이가 케이시와 헤어진 뒤 아시아계 여성과 결혼을 하는 정황과 휴의
집에서 발견한 비디오에서 두 명의 백인 남성과 섹스하는 아시아계 여성을 자신의
모습에 투영함으로써 케이시는 타자화를 경험한다. 결국 미국 주류사회에 동일시
하고 싶은 욕망으로 모방을 시도하지만 완전히 닮을 수 있다는 환상이 깨지고 차
연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이때 케이시의 이산적 정체성은
호미 바바의 문화론인 “혼종성”의 과정으로 차연을 거듭하면서 변화하는 혼종된
정체성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결말에서 케이시가 정규직을 포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과 일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은우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후회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미국 주류사회의 가치가 아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고유한 가치가 중요한 원천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림성심대>

주제어: 백만장자의 공짜음식, 이산적 정체성, 한국계 미국인, 호미 바바, 혼종성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 나타난 케이시 한의 이산적 정체성
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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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on Contributor:
Mihye Eom is currently teaching English conversation at Hallym Polytechnic University.
Her research interest lies in American fiction.
Email: eomga2@naver.com

Received: May 27, 2023 / Reviewed: June 7, 2023 / Accepted: June 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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