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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南大學校 儒學硏究所 論文集

儒學硏究 第34輯 2016. 2. pp.345-370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 주자의 감응이론과 칼융의 동시성이론을
중심으로 -

박재갑(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고재석(성균관대), 전철(한신대)

<한글요약문>
우리 주위에서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는 현상들을 드물지 않게 접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기보다는 어떠한 중요한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닌지 반문하게 한다.
이 글에서 근거로 삼은 자료는 논문의 공동필자인 박재갑 교수 집안에서 일어난 두 가
지 사건이다. 첫째는 박재갑 교수의 15대 조상으로 1545년에 돌아가신 필재 박광우의 시
신을 이장하는 날 밤, 사촌 형인 박재학의 꿈에 필재 할아버지가 나타나 자신이 소장하였
던 방울을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이후 파주에 가서 방울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에게 방울
을 찾아온 사건이다. 둘째는 박재갑 교수의 부친이 돌아가신 날 이모의 출가한 딸 꿈에
박재갑 교수의 부친이 금시계를 가지고 나타나신 꿈을 꾸었다. 이모의 딸은 이모부가 돌
아가신 줄도 모르고 있었고 더욱이 이모부의 아들 부부가 금시계를 사갖고 온 것을 알 수
가 없었는데, 금시계와 관련된 꿈을 꾼 일련의 사건이다.
과학을 주류 패러다임으로 삼고 있는 현대문명에서 보면, 신비롭고 기이한 현상은 그저
우리가 확인하지 못하는 일상이나 정신현상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주자(朱熹,
1130~1200)의 감응이론과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동시성이
론은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현상은 제한적 합리성의 완고한 세계관 자체가 균열되는 사건이
며, 동시에 우리의 삶이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광대한 현실에서 펼쳐지는 사건임을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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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 실로 미지의 우주,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다원적 패러다임의 폭넓은 수용과 진지


한 대화가 더 요청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에서는 조상과 후손의 만남, 감
응, 현현의 사례를 성리학의 감응이론과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이론의 관점에서 조명
하고자 한다.

주제어: 조상, 후손, 주자, 감응, 칼 융, 동시성이론

1. 서론

인간은 경험세계의 현상들 중에서 인과관계의 증명이 가능한 경우에 그 현상


을 사실로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과학적 입장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그러
나 우리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시대에는 지구와 관련된 여러 현
상들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현재에도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는 현상들이 드
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들 중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기보다는
어떠한 중요한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재갑 교수는 집안에서 일어난 청동방울과 금시계 현상에 대하여 오랫동안
궁금증을 가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위의 학자들에게 말해왔다. 과학을 주류
패러다임으로 삼고 있는 현대문명에서 보면, 그리 신비롭지도 기이하지도 않은
현상이다. 그저 우리가 확인하지 못하는 인과관계의 반영이거나 정신현상의 사소
한 일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자(朱熹, 1130-1200)의 감응이론과 칼 구스
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동시성이론은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현상
들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해석과 관점을 제시한다.
본 논문은 조상과 후손의 만남의 사례를 주자와 융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
다. 이를 통하여 경험세계에서 발생한 일반적인 인과관계의 지평을 넘어선 사건
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을 검토하고 그 의미를 헤아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47

2. 조상과 후손의 만남 체험 : 청동방울과 금시계


이야기1)

1) 필재 박광우 조상의 청동방울에 대한 사례

(1) 박재학의 증언2)

대 어른이신 필재 박광우(朴光佑, 1495-1545) 조상을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15
오산리에서 모셔와 청원군 남이면 수대리로 묘를 이전하기로 한 일이라 아버님
4형제분들(첫째 종섭, 둘째 홍섭, 셋째 중섭, 넷째 명섭)은 모두 바쁘셨다. 셋째인
박중섭의 둘째인 본인 박재학은 그때가 대학 3학년인가 4학년이었던 걸로 기억된
다. 묘의 역사에 관한 시기는 단기 4300년 정미년이라고 비문에 쓰여 있다.
파주에 가셔서 필재 할아버님을 모셔온 날, 본인은 이장한다는 것만 알고 그날
밤 방앗간 창고에 모신 것 또한 알지 못하였다. 본인이 잠을 자는데 너무나 선명
하게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시고 수염이 배까지 땋아 내린 분이 현몽하셔서
말씀하시길 “평소에 내가 소장했던 노리개 방울을 놓고 왔다. 그러므로 아버지들
에게 이야기해서 찾거라” 하시고 사라지셔서 깜짝 놀라 깨어보니 새벽 3시이며
그것은 꿈이었다.
나는 너무 생생해서 잠을 못 이루고 있다가 일찍 일어나신 아버님께 말씀드렸
더니 “참 이상한 꿈이구나.” 하셨다. 그리고 아버님은 아버님 형제분들과 상의하
신 결과 파주로 다시 가보자고 하셔서 작은아버지(명섭) 와 파주로 가서 파묘를
3)

담당한 인부들을 다그쳐 물었다. 그 결과 백자 항아리와 그 속에 보관 중이던 방


울이 5개 달린 팔찌 모양처럼 생긴 것을 전해 받아 오셨다. 꿈에 있었던 일이 이
렇게 맞을 수가 있나 하면서 놀랐는데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1) 이고사는 논문의 공동저자박재갑교수집안에서 일어났던일을당시의향토잡지와신문
기사 등에 보고되었던 내용을 수집하고 여러 증언을 수합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2) 이 부분은 박재학(451121~, 충북 청주 거주)이 정리하여 박재갑 교수에게 보내온 2009년
편지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3) 작은 아버지 명섭은 박재갑 교수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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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버님은 나에게 방울 손자라는 별명까지 지어 주셨다. 그리고 필재 할아


버지를 모시던 날 저의 아버님이 너도 수대 산에 같이 가자고 해서 가보니 모셔
오신 관곽은 향나무로 된 이중 관인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상광하협의 모양인
데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밀폐가 터지는 것처럼 “펑” 소리와 함께
열려서 눈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눈을 비비고 필재 할아버지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정말 놀랐다. 미라 형태로 그대로 누워 계셨는데 얼굴 모습이나 수염을 땋아
늘인 모습이 그 전날 내가 꿈에서 본 할아버지와 너무 같아서였기 때문이다. 명주
가 아닌 비단옷에 무늬도 있고 얼굴은 물론 수염 길이까지 꿈과 너무 똑같았다.
그 후에도 오랫동안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모두들 놀랐다. 얼굴을 뵐 수 있고 옷도 그대로였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생생하게 다시 떠오른다.
(2) 박동섭의 증언4)

필제 할아버님의 묘소 이장한 해는 1967년 2월경이었다. 필제 할아버지와 운곡


할아버지를 이장하신다 하여 산소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고, 다음날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산소 봉분을 헤치고 나니 사방 2m정도의 생석회 바닥이 나왔다. 큰 정
을 두 개로 바닥을 깨는데 소리 요란하였다. 옛 선조를 모신 묘를 파헤치는데 요
란한 소리를 내서 죄스러웠다. 바닥을 개봉하고 나니 목판이 나왔고, 목판을 들어
보니 겉관이 있었고 그 속에 속관이 있었다. 속관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명
주 천으로 된 것이 빈틈없이 꽉 차있었으며 그 천을 밖으로 들어내니 할아버님의
시신이 염한 상태로 드러났다. 머리 옆에는 병과 방울 5개, 손톱 자른 것과 머리카
락을 종이로 쌓아 놓은 것이 있었다. 인부들이 염한 상태를 벗기는 일을 중지시키
고, 종중 형님들께서 오셔서 같이 보는 앞에서 조심스럽게 염을 벗겼다. 할아버님
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산사람 색과 똑같았다. 머리카락은 긴 머리에 얼굴
뒤로 넘기고 수염은 댕기 머리 따듯하였으며 눈은 감고 계셨다. 신발은 여자 고무
신 같은 형으로 가죽신이고 키는 170cm 정도였으며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때 카
4) 이 부분은 박동섭(350826~, 경기도 파주 거주)이 2015년 박재갑 교수에게 보내온 편지를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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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로 작업하는 인부들 모습과 할아버님의 시신을 몇 차례 찍었는데 할아버님의


시신을 찍은 것은 현상되지 않았다. 신기해하였다. 그리고 산소에서 나온 병을 집
으로 가져갔는데, 어머님께서 보시고 버리라고 하는 것을 몰래 창고 속에 숨겨두
었다가 이듬해 겉관을 꺼내는 작업 할 때 그 병을 보냈다. 이장 작업 할 때 뜻하지
않은 경비로 모자라는 금액을 제가 부담하였는데, 윤섭 ․명섭 형님들께서 그 금
액을 갚는다고 오셨다. 형님들과 같이 얘기하다 방울 얘기가 나와 누가 필제 할아
버님의 꿈을 꾸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무슨 방울 같은 말씀을 하시며 큰 호령을 하
시는 꿈을 꾸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시기에 혹시 이것 아니냐고 옷장서랍에 두
었던 것을 꺼내 보여 드렸다. 그때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시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 하시며, 이번 일에 동생이 참 수고하였다고 칭찬을 들었다.
2) 박명섭의 금시계에 대한 사례

파킨슨병으로 72세에 돌아가신 박재갑 아버님 장례식에 미국에서 의사생활을


하시던 박재갑 큰형님 내외가 오시면서 어머님께 드리려고 금시계를 사오셨다.
그런데 박재갑 이모의 출가한 딸(조경란) 꿈에 박재갑의 아버님께서 금시계를 가
지고 나타나셨다. 이상하게 생각한 조경란이 박재갑의 이모에게 왜 이모부가 금
시계를 가지고 꿈에 나타나셨는가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모부가 돌아가
셨다고 답변하고 언니인 저의 어머니에게 왜 형부가 금시계를 가지고 경란이 꿈
에 나타나셨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박재갑 어머니가 큰아들인 박재길 내
외가 금시계를 사왔다고 말하였던 일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언젠가 박재갑의 큰
형 박재길이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께 “아버지는 조상 일에 지극정성이
셨고 형님들께도 순종하면서 착하게 사셨기 때문에 돌아가셔도 아버지 영혼은 좋
은 곳으로 가실 것이니 걱정하시지 마시라고 하시면서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사
실을 기록에 의하면 100만 명 중 한 사람 꼴로 전해준다고 하니 아버지도 그 중
한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말한 사실과 연관하여 돌아가
신 아버님께서 우리 자식들에게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러한 방법으로 알
려주신 것이라고 큰형 박재길은 말하였다. 5)

5) 당시어머니와함께있었던박재갑교수의이모이수자는더자세한내용을 2015년친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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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자의 감응이론

필재 박광우의 청동방울과 박명섭의 금시계 체험 사례는 초월적 존재인 귀신


과 자연적 존재인 인간이 교감하는 내용으로, 사후세계와 현실세계의 감응을 말
해주는 사건이다.
사실 동아시아 사상문화 속에서 조상이나 귀신이 나타나 인간과 遭遇하는 일
은 매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고대에는 조상숭배가 사회전체의 사상문화를 주도
하고 있어, 제사와 무속의 힘을 빌어 하늘과 소통하고, 하늘의 의지대로 현실을
만들어 가는 것은 꿈꾸던 이상이었다. 비록 공자 이후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절대
적 믿음과 맹목적 祈願의 문화가 다소 경계되긴 했지만, 여전히 사후에 조상들
6)

지로 보내왔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1991년 가을 형부가 돌아가셨을 때 오랜 기간 간병


을 하던 큰언니는 지쳐있었다. 더구나 미국에 사는 큰조카의 귀국을 기다리느라 5일장이
었고 청주교외에 있는 집에서 조문객을 맞느라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나는 언니
곁을지키고있었다. 큰형부의장례식 전날이른 아침이었다. 청주 시내에사는작은언니
가전화를했다. 조카딸(작은언니의딸)이새벽에꿈을꾸었는데, 큰형부가금시계를들고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꿈을 깨자 형부의 말은 생각나지 않고 시계를 내
밀던 모습만은 선명하다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시집가서 멀리 살고 있는 조카딸은 큰형
부와 가깝게 지낸 적이 없었고 더구나 형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 내
가 큰언니에게 조카딸의 꿈 이야기를 전하자 누워있던 언니가 벌떡 일어났다. ‘에구머니
나. 깜박잊고있었네. 엊그제귀국한큰며느리가뜬금없이금시계를주더라.’ 언니는한참
만에야 금시계를 찾아냈다. 시계는 너무헐거웠다. 체인으로된 줄을줄여야만 했다. 마침
둘째 조카가 지나가기에 시곗줄을 줄여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바쁘니 저녁때 줄여주겠단
다. 언니는 몹시 서운해했다. 조금 후 셋째 조카가 지나갔다. 부탁을 받은 조카는 즉각 도
구를 찾아와서 작업을 했다. 체인을 두 칸 떼어내도 헐거워서 다시 한 칸을 더 떼어내 언
니의 손목에 꼭 맞게 고쳐드렸다. 장례식이 끝난 후 집안의 대소가가 모인 자리에서 조카
딸의꿈이야기가화제에올랐다. 미루지않고두말없이 시곗줄을줄여준셋째, 또한떼어
낸 체인이 세 칸이었던 것도 화제에 올랐다. 미국에서 의사로 있는 큰조카는 영혼에 대한
이론을 피력하며 큰 형부가 언니에게 금시계를 통하여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
만 나는그런 이론은잘 모른다. 그러나한가지만은확실하게보았다. 혼자된 언니는편한
마음으로셋째네집으로가셨다가 1년후형부를따라가셨다. 나는가끔생각한다. 조카딸
의 꿈이 아니었으면 금시계는 어찌 되었을까.”[이수자(410125~, 경기도 고양 거주)]
6) 공자는 神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였고[不語怪力亂神], “鬼神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51

의 품에서 영생한다는 ‘靈魂不朽’의 관념은 지배적인 특성이었다.


조상이나 영혼 같은 초월적 존재의 개념이 陰陽변화의 자연현상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사상문화의 주류로 정착한 것은 후의 흐름이다. 특히 송대 도학자들은 불
교와 노장에 대척하기 위해, 그 사상을 斷章取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
였다.
주돈이는 태극도설에서 혼돈의 원시물질인 무극과 太極에서 음양오행의 변
화가 비롯되어 천지만물이 형성된다고 하였고, 이천은 귀신이 조화의 자취라고
여겼다. 장재는 太虛라는 원초적이고 미분화된 기를 상정하고, 천지만물은 기가
7)

응집하여 형성된 잠시의 사물[客形]이고, 사물이 흩어지면 다시 태허의 기로 돌아


간다고 보았다. 귀신은 기의 聚散을 일으키는 음양의 변화 능력일 뿐이다.
이러한 북송시기 도학자들의 관점은 남송시기의 주자에게 수용되었고, 주자는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여 초월적 존재에 대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
놓는다.
1) 초월적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주자는 천지만물이 無形의 理와 有形의 氣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천지


사이에는 이가 있고 기가 있다. 이는 형이상의 도이고, 사물을 낳는 근본이다. 기
는 형이하의 기이고, 사물을 낳는 바탕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에 반
드시 이를 품부 받아 성이 있게 되고, 반드시 기를 품부 받아 형체가 있게 된다.” 8)

理는 氣의 流行變化를 이끌며 만물을 형성하는 근본이고, 기는 형체을 이루며 이


를 드러내는 재료이다. 이 없이는 기가 생성될 수 없고, 기 없이는 이 역시 깃들
9)

遠之]”고 하여, 제사나 무당 등의 매개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天의 내재화라는


능동적 방식을 통해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공경과 정성을 다하면 누구
나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어 현실에서 이상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高在錫, 大同之
夢,儒家的理想社会 , 鵝湖 2013年4月 第454卷 參考.]
7) 二程集 : 鬼神者, 造化之跡也.
8) 朱子全書권49, 荅黄道夫 :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
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是以人物之生, 必稟此理然後有性, 必稟此氣然後有形.
9) 朱子語類권1, 理氣(上) : 未有天地之先, 畢竟也只是理. 有此理便有此天地, 若無此理, 便
亦無天地無人無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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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이 없다. 이와 기는 둘이면서 하나이다. 주자에게 차원을 달리하는 현상 저 너


머에서 권능을 행사하는 주재자나 영원히 생명을 이어가는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
다. 天은 자연법칙과 당위준칙의 근원인 天理이고, 鬼神은 천지만물의 유행변화
속에서 생성하고 소멸하는 기일 뿐이다. 그는 말한다.
귀신은 단지 기이다. 움츠리고 펼치며 떠나가고 다가오는 것은 기이다. 천지 사
이에 기 아닌 것은 없다. 10)

神은 펼치는 것이고, 鬼는 움츠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람 비 천둥 번개가 처


음 일어날 때가 신이고, 바람이 그치고 비가 지나가며 천둥이 멈추고 번개가 쉬는
때가 귀이다. 11)

나무에 싹이 트고 잎이 나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음양의 기가 유행


하면서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변화가 바로 귀신이다. 삶과 죽음은 천지만물이 12)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혹 한밤 13)

중에 갑자기 도깨비의 소리를 듣거나 도깨비 불빛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하늘에


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천둥치고 번개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천지자연의 조
화일 뿐이다. 다만 그는 기가 본원으로 돌아갔다 다시 다른 사물로 모인다는
14)

장재의 관점은 취하지 않는다. 순환의 방식이 불교의 윤회설과 유사하기 때문이
다. 흩어진 기는 결코 다시 모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낳고 낳는다[生生不息]’는 천
지자연의 조화가 곧 귀신인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 것은 精氣가 모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많은 기를 갖고 있지만 반
드시 그것이 다할 때가 있다. 다하면 혼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백기는 땅으로 돌아
가서 죽는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열기가 위로 상승하는데, 이것은 혼이 위로 올라
10) 朱子語類권3, 鬼神 : 鬼神只是氣. 屈伸往來者, 氣也. 天地間無非氣.
11) 朱子語類권3, 鬼神 : 神, 伸也, 鬼, 屈也. 如風雨雷電初發時, 神也, 及至風止雨過, 雷住
電息, 則鬼也.
12) 朱子語類권3, 鬼神 : 鬼神不過陰陽消長而已.
13) 朱子語類권3, 鬼神 : 氣聚則生, 氣散則死.
14) 朱子語類권3, 鬼神 : 人所常見, 故不之怪. 忽聞鬼嘯·鬼火之屬, 則便以爲怪. 不知此亦造
化之跡, 但不是正理, 故爲怪異.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53

가는 것이다. 형체는 점차 차가워지는데, 이것은 백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이


는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음을 의미
한다.15)

사람이 죽으면 기는 반드시 소실되고 흩어져 남음이 없는데, 소실되고 흩어지


는 것은 長短의 시간적 차이가 존재한다. 어떤 경우는 오래 걸리고, 어떤 경우는
빨리 흩어진다. 늦게 흩어져, 괴이한 도깨비가 되거나 후손과 자주 감통하는 귀신
은 다음과 같은 경우다.
상황 주자가 언급한 실제 사례
억울한 형벌에 처해 죽어 굴복하지 않거나, 갑자기 죽은 경우는 죽어서
죽음을 당한 도 그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떠도는 귀신이나 요괴가 된다. 하지
경우 만 그 기는 결국 흩어진다. 16)

산 속에 어떤 도인이 있었는데, 항상 內丹 수련을 했다. 어느 날


수련을 통해 정신이 몸을 이탈하여 7일간 돌아오지 않으면 자기 몸을 태워도
기를 양생한 좋다고 말하였는데, 죽은 줄 알고 7일이 안되어 몸을 태워버렸
경우 다. 그러자 도인이 돌아와 울부짖으며 몸을 찾았고, 벽에 글씨도
섰는데 묵이 묽어 금방 없어졌다. 17)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 기운이 따뜻하여 연기처럼 방안을 가


정신을 득 채우고 며칠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주자는 “수도자와 같이
수양한 경우 정신을 기르는데 힘썼기 때문에 기운이 응축되어 흩어지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18)

15) 朱子語類권3, 鬼神 : 人所以生, 精氣聚也. 人只有許多氣, 須有箇盡時, 盡則魂氣歸於天,


形魄歸于地而死矣. 人將死時, 熱氣上出, 所謂魂升也, 下體漸冷, 所謂魄降也. 此所以有生必
有死, 有始必有終也.
16) 朱子語類卷3, 鬼神 : 或遭刑, 或忽然而死者, 氣猶聚而未散, 然亦終於一散.
17) 朱子語類卷3, 鬼神 : 山中有一道人, 常在山中燒丹. 後因一日出神, 乃祝其人云 “七日不
返時, 可燒我.” 未滿七日, 其人焚之. 後其道人歸, 叫罵取身, 亦能於壁間寫字, 但是墨較淡,
不久又無.
18) 朱子語類卷3, 鬼神 : 某人死, 其氣溫溫然, 熏蒸滿室, 數日不散.朱子曰 “僧道務養精神,
所以凝聚不散.”
354 儒學硏究 第34輯(2016. 2)

괴이한 도깨비가 되어 떠돌아다닌다거나, 죽어서도 산자와 감응하는 것은 기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현상이다. 그런데 주자는 이러한 경우도 결국 오래되면
기가 모두 흩어진다고 보았다.
반면 성현의 경우, 죽음을 편안하게 여기므로, 흩어지지 않거나 요괴가 되지 않
는다. 제자가 성인은 청명하고 순수한 기를 품부 받았기 때문에, 죽으면 기가 위
로 올라가 하늘과 합치되는 것인지 묻자, 그는 “서경에 ‘문왕께서 천하를 오르
내리며, 상제 곁에 있다’는 언급이 있다. 지금 문왕이 정말로 상제 곁에 있다고
말한다면, 마치 세상의 진흙으로 만든 동상과 같은 상제가 진정으로 있게 되니,
옳지 않다.”고 하여, 소멸하지 않은 존재가 영원히 실재 있다는 것을 거부하였다.
성인은 기운이 맑아 기가 순조롭게 소멸된다. 반면 그는 성현의 도와 공이 만세토
록 이어져, 후세 사람들이 그 도를 행하고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은, 후손들의 기가
그들과 서로 통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19)

2) 조상과 후손의 감응

기는 본래 위로 올라가므로, 아래에서 소진하면 위로 올라간다. 불의 연기처럼


밑의 땔감이 다 타고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기는 단 시간에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완전한 소멸에 이를 때까지
는 일정정도 현세 후손이나 사람들과 감응한다.
꿈을 꾸거나 길가다 마주치기도 하고, 무당의 몸을 통해서나 제사를 지낼 때
감응하기도 한다. 특히 주자는 “제사를 지내서 혼과 백에 보답하고 천지사방과
하늘과 땅에 간청하면 모두 감응하여 이르는 이치가 있다.”고 하였다.
귀신을 이렇듯 한시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선대에 대한 제사를 4대로 그치
게 한 데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그 이상의 조상은 관계가 소원하여 애틋한
추모의 정이 없을 뿐 아니라, 혼백을 지탱하는 기가 완전히 소멸되어 더 이상 제
사를 흠향할 수 없다. 특히 16세기 말부터 중국에 진출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당시
지식인들을 상대로 불멸의 영혼이나 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 먼 조상까지
19)  朱子語類권3, 鬼神 : 聖賢道在萬世, 功在萬世. 今行聖賢之道, 傳聖賢之心, 便是負荷這
物事, 此氣便與他相通.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55

제사를 지내면서도 그 제사를 흠향하는 귀신이 ‘유한한 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론을 반박하였다. 기가 흩어지는 과정에 있는 기에 불과하다면 먼 조상의 귀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후손의 제사를 받는 주체는 취산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영혼인 것이다. 20)

그런데 주자는 영혼조차 기와 분리된 영적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理는 氣


를 떠나 존재한 적이 없다.” , “理는 또 다른 하나의 物이 아니라 이 氣 속에 존재
21)

하는 것을 말한다. 기가 없으면 이 역시 자리할 곳이 없다.” 22)

기가 완전히 소멸되기 전까지는 영혼은 여전히 기의 맑은 부분에 해당할 뿐이


다. 초월의 영역을 현상 세계와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현세 사
람들이 겪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天人合一’의 동아
시아 유학의 사유가 기초에 있기 때문이다.
청동방울 사례는 移葬 당시 육체가 온전하여 기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이다.
주자는 “예기에서 ‘萇弘이 죽어 3년이 되자 푸른 옥으로 변하였다’고 하였는데,
그가 충성을 지키다 죽었기 때문에 그 기가 그렇게 응결된 것이다.” 라고 말하 23)

였다. 시간이 오래되었을 지라도, 큰 공을 세우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혹은


육체의 기에 해당하는 魄이 보존되어 있을 경우, 여전히 후손과 감응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금시계 사례는 막 세상을 떠났을 때 기가 왕성하여 후손의 꿈으로 감응하
는 경우이다. 그는 제자가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 기가 따뜻하여 방안을 가득
채우고 며칠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고 하자, 그 기가 왕성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라고 말하였다. 24)

다만 주자는 조상과 현세의 사람들이 감응할 수 있는 경우를 두 가지로 보았다.

20) 한국사상사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106-110쪽.


21) 朱子語類권1, 理氣(上) : 理未甞離乎氣.
22) 朱子語類권1, 理氣(上) : 理又非别為一物, 即存乎是氣之中, 無是氣, 則是理亦無掛搭處.
23) 朱子語類권3, 鬼神 : 萇弘死三年而化爲碧. 此所謂魄也, 如虎威之類. 弘以忠死, 故其氣
凝結如此.
24) 朱子語類권3, 鬼神 : 嘗見輔漢卿說: ‘某人死, 其氣溫溫然, 熏蒸滿室, 數日不散.’ 是他氣
盛, 所以如此.
356 儒學硏究 第34輯(2016. 2)

상황 주자가 언급한 사례
자손이 자손의

기는 조상의 기이다. 조상의 기는 죽자마자 바로 흩어지지
, 그 뿌리는 여전히 자손에게 있다. 뿌리가 여기에 있으니, 또 그
있는 경우 기를 여기에 모을 수 있다. 25)

자손이 있어야 조상의 기를 불러 올 수 있다고 하면, 자손 없는 조


상의 기는 결국 끊어지게 될 것이다. …… 자손이 있어야만 비로소
감응하고 이르는 이치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비록 자손이 없더라
자손이 도 그 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때, 예의에 합당한 제사를 지내면
없는 경우 조금의 기가 감응하게 된다. 26)

후손이 없는 경우에도 정성스럽게 제사지내면 감통할 수 있다. 만


일 제사를 주관할 후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제사를 지냈더라도
감통하지 못한다. 27)

자손이 조상에게 진실함과 경건함을 다하면, 오랜 세월이 지나 기가 다 흩어진


후라 할지라도 조상과 자손은 同氣이므로 감통할 수 있다. 반면 자손이 없더라도
제사를 예에 맞게 지내 혼과 백에 보답하고 천지사방과 하늘과 땅에 간청하면 모
두 감응하여 이르는 이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3) 청동방울과 금시계 사례가 주는 의미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물이나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기가 흩어지지만, 단 시


간에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완전한 소멸에 이를 때까지 제사나 후손들을
통해 감응한다. 필재 박광우와 후손의 감응도 그렇다. 귀신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
다. 나의 마음과 귀신의 마음은 일치하므로, 귀신을 위로하고 숭배하는데 힘쓰지
말고, 조상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헤아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
하다.
25) 朱子語類권3, 鬼神 : 子孫是祖先之氣. …… 他那箇當下自散了, 然他根卻在這裏. 根旣
在此, 又卻能引聚得他那氣在此.
26) 朱子語類권3, 鬼神 : 若說有子孫底引得他氣來, 則不成無子孫底他氣便絶無了! …… 不
成說有子孫底方有感格之理, 便使其無子孫其氣亦未嘗亡也.
27) 朱子語類권3, 鬼神 : 無主後者, 祭時乃可以感動. 若有主後者, 祭時又也不感通.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57

필재 박광우의 생전 행적과 관련된 기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이다. 조선


시대 과거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답안지를 묶은 東策精粹가 한글로 번역
되었는데, 이 중 ‘三年喪’이란 논제로 글을 쓰고 장원급제한 박광우의 답안지는
글이 물 흐르듯 매끄럽다고 한다. 서두에서 상례의 본질이 왜곡된 문제 상황을
제시한 후, 본문에서 공자 증자 등 성인들의 사례를 들어 ‘孝의 가치’와 ‘제도의
변화’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행실과 제도의 근원이 효에 있다’고 강조하
면서 글을 끝맺는다. 효의 본질에 대해 정합적인 논리로 풀어 쓴 것이다. 효는
28)

인간이 지닌 보편적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하는 실질적인 가치이다. 공자는 “아래


로 일상에서 배우면서 위로는 하늘의 이치에 통달한다.” 고 하였고, 또 “세상 사
29)

람들은 모두 다 형제이다.” 라고 하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도리


30)

를 배우고 익혀, 누구나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 사람들을 나의 가족처럼 여


기고 아껴주는 것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이다. 그런데 그는 “효와 우
애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 라고 하여, 보편적 사랑인 仁을 구하는 공부의 첫
31)

발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모자식 사이의 조건 없는 사랑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궁극적 이상을 지향하되, 일반사람들도 누구나 마음먹고 노
력하면 보편적 사랑의 본질을 체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
다. 32)

또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江陵府 부사 朴光佑는 부임한 처음에 널리 민간의


폐해를 물어보아, 쓸데없는 허비와 시급하지 않은 일들을 일체 없애고 부역과 세
납을 가볍게 하여 백성 부리기를 균평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런 흉년에는 구제하
는 방법을 해보지 않는 것이 없고 아랫사람들 대함에는 엄격하고 분명하게 하여
민중들이 아전들의 꼴을 보지 않게 하여 민중들을 아끼는 마음이 전 사람들의 배
나 되었다. 그래서 떠돌아 흩어졌던 사람들이 풍문을 듣고 모두 모여들어 민중들
이 마치 부모처럼 친애하고 떠받든다.” 는 기록이 있다.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33)

28) 조선일보 2007년 4월 5일, 김연주 기자 논술의 원조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


29) 論語 憲問 : 下學而上達.
30) 論語 顔淵 : 四海之內 皆兄弟也.
31) 論語 學而 : 孝弟也者, 其爲仁之本.
32) 高在錫, 探析論語'直躬'故事所體現的東亞正義觀念 , 中國哲學史 2015年3期.
358 儒學硏究 第34輯(2016. 2)

시스템에서는 그가 “趙光祖와 교분이 있었고, 뒤에 李彦迪과 같이 을사사회의


화를 당하였으므로, 그 사상과 절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의로움[義]은 외재하는 가치가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드러
나는 지극한 사랑의 감정을 기초로 한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허황되다. 보편적
사랑을 토대로, 죽음을 무릎 쓰고 옳음을 선택한 박광우의 삶은 후손들이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매 순간 맑은 마음으로 옳음을 구분하고, 죽음을 무릎 쓰고라도 의
로움을 선택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융의 동시성이론34)

박재학 선생은 조상묘 이장에 대한 선지식과 필재 박광우 조상의 인상에 대한


선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꿈과 환상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조상묘 이
장에서 야기된 여러 신묘한 체험을 강렬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건을 접
근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 사건을 조명할 수 있는 하나의 가설
로서 본 연구는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이론을 주목한다. 칼 융은 분석심리학자
의 분야를 개척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이다. 그는 프로이트와는 다른 방식
의 심리학의 분야를 개척하였으며 그가 보여준 여러 제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시성”(Synchronicity) 개념이다.
동시성 개념은 “정신”과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에 관계되며 그 신비적 현상에 대한 칼 융의 진지한 해명의 모색이기도
하다. 융은 “동시성” 개념을 1928년 꿈에 관한 세미나에서 처음 제시한다. 융은
35)

2년 후 1930년에 동시성 개념을 원형과의 관계에서 조명하여 ‘동시성 원리’라는

33) 朝鮮王朝實錄, 中宗 102卷, 39年(1544) 甲辰 : 江陵府, …… 今府使朴光佑, 繼莅之初, 廣


詢民瘼, 無用之費, 不急之務, 一切蠲除, 輕徭薄賦, 役民均平. 如此凶饉之時, 賑恤之方, 靡不
畢擧, 御下嚴明, 民不見吏, 愛民之心, 有倍於前. 流亡之人, 聞風畢集, 民之愛戴, 有同父母.
34) 융의 동시성 개념의 정의와 내용에 관한 기존의 연구로 다음을 참조. 전철, 칼 구스
타프 융의 동시성 개념 연구: 융의 동시성 개념과 시공간의 문제의 과학신학적 함의 ,
한국기독교신학논총제68집, 2010, 171-173쪽.
35) Carl Gustav Jung, Der Mensch und seine Symbole, Olten: Walter Verlag, 1981, p.211.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59

개념으로 구체화 한다. 그리고 “비인과적인 연결원리로서의 동시성” 이라는 연 36)

구논문을 발표한다. 융은 사상적으로 원숙한 시기인 1951년에 “동시성에 관하


여”(Über Synchronizität) 라는 소논문을 그의 마지막 에라노스 강연(Ernos-Vortrag)
37)

을 통하여 발표한다.
그렇다면 융이 말하는 ‘동시성’의 내용은 무엇인가. 동시성은 우연한 사건의 ‘일
치’(Koinzidenzen) 를 뜻하는 말이며 이 ‘우연한’ 동시발생은 통계적으로는 천문학
38)

적으로 매우 확률이 낮은 사건들을 뜻한다. 내적인 세계, 즉 꿈이나 생각, 관념 39)

안의 사건들이 현실적인 사건과 어떠한 일치를 갖는 경우가 바로 동시성의 사건


이며 체험이다. 사실 융은 이러한 현상을 이미 많은 사람들은 이미 체험하였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러한 체험은 매우 내밀하고 신비적이기에 합리적이며 과학적
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융은 우리의 체험에 긴밀하게 닿아
있으나 아직 합리적이며 과학적으로 조명되지 않은 동시성 현상을 용기를 내어
주목하고 연구하였다.
융의 동시성이론은 동시성 현상에 대한 마술과 주술, 혹은 과학적 증빙에 목적
이 있기보다는 인간의 집단적 무의식을 통하여 특별히 발현되는 심리적 세계
(psychic world)의 주목에 목적이 있다. 이에 관하여 융은 동시성의 사건들이 대부
분 ‘개성화 과정’의 결정적 단계들을 수반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즉 꿈 40)

이 현실과 일치하는 사건과 같은 동시성 현상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관심보다, 이러한 내면과 외면의 일치 사건이 ‘개성화 과정’에서 어떠한 인
격적이며 심리적 의미가 있는지를 더 탐구하였다.

36) Carl Gustav Jung, “Synchronizität als ein Prinzip akausaler Zusammenhänge”, Naturerklärung und
Psyche, Zürich: Rascher Verlag, 1952. Carl Gustav Jung, “Synchronizität als ein Prinzip akausaler
Zusammenhänge”, Die Dynamik des Unbewusstsein. Gesammelte Werke 8, Düsseldorf: Walter Verlag,
1995, pp.457~553.
37) Carl Gustav Jung, “Über Synchronizität”, Die Dynamik des Unbewusstsein. Gesammelte Werke 8,
Düsseldorf: Walter Verlag, 1995, pp.555~566.
38) Jung, “Synchronizität als ein Prinzip akausaler Zusammenhänge”, 1952, p.478.
39) 앞의 논문 쪽 , 478 .
40) Carl Gustav Jung, Der Mensch und seine Symbole, 1981, p.211.
360 儒學硏究 第34輯(2016. 2)

1) 동시성 현상의 정의

융은 자신의 논문 “비인과적인 연결원리로서의 동시성”에서 동시성의 여러 유


형과 그 의미들을 다루고 있다. 동시성의 사건들은 두 개의 상이한 심리적 상태들
의 동시성에 의거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많은 동시성의 유형들을 언급하였는
41)

데, 융은 특히 여러 유형 가운데 소위 정신 ‘내면’의 사건과 정신 ‘외면’의 사건 사


이의 일치에 관한 유형을 중심으로 동시성의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
의 구체적인 체험들을 언급하면서 그러한 동시성의 현상이 어떠한 심리적이며 인
격적인 변화를 촉발하는지를 해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러한 현상이 가능한 실
재론적 구조에 대한 논의를 시공간 체험과 관련하여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그
는 논문에서 동시성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차원으로 정의한다.
구분 내용
관찰자의 정신적 상태가 동시적이며 객관적인 저 밖의 사건과 일
치하는 경우이다. 이때의 저 밖의 사건은 정신적 상태나 내용에
정의 1 상응하며 (풍뎅이의 사례처럼), 여기에서 정신적 상태와 저 밖의
사건 사이에는 어떠한 인과적 연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
고 위에서 제시된 시간과 공간의 정신적 상대화를 주목한다면 어
떠한 인과적 연관관계의 가능성조차 생각할 수 없다.
정신적 상태가 외적으로 상응하는 사건과 (대체로 동시적으로) 일
정의 2 치하는 경우이다. 이때의 저 밖의 사건은 관찰자의 지각 영역 너
머에서, 즉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서 발생되며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확인될 수 있는 경우이다(스톡홀름의 대화재의 사례처럼).
정신적 상태가 아직 발생되지 않은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과 일치
정의 3 하는 경우이다. 즉 이 양자의 사건이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일어
나는 경우이다. 이 경우도 나중이 되어서야 비로소 확인될 수 있
는 경우이다. 42)

41) Jung, “Synchronizität als ein Prinzip akausaler Zusammenhänge”, 1952, p.484.
42) Jung, “Über Synchronizität”, 1995, p.561.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61

2) 동시성 현상으로 본 조상의 현현43)

융의 동시성 이론의 관점에서 위의 방울이야기를 조명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차


원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박재학 선생과 박동섭 선생의 증언이 융의 동시성 이
론에 해당하는 형식과 사례인가에 대한 고려이다. 둘째, 융의 관점에서 이러한 우
연의 일치의 사례가 지시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려이다. 이러한 측면은
사후세계의 삶에 대하여 주체적 불멸성(subjective immortality)의 관점과 객체적 불
멸성(objective immortality)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을 뜻한다.44)

우선 박재학 선생의 꿈에 15대 어른인 필재 박광우 조상이 나타나 “평소에 내


가 소장했던 방울을 놓고 왔으니 즉시 연락하거라”라는 말씀을 받아 그 가족이
파주에 갔으며 결국 방울 다섯 개를 받아온다. 즉 필재 박광우 조상은 꿈을 통하
여 자신의 후손에게 그의 방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였으며 후손들은 결국 그 메
시지가 현실적으로 맞았음을 체험한다. 그리고 밀폐된 관을 열었을 때의 얼굴이
꿈에서 본 얼굴과 일치하였음을 박재학 선생은 진술한다.
이 방울 이야기 사례는 융의 동시성 이론의 관점에서 몇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15대 조상이 후손의 꿈을 통하여 어떠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였다는 것
이다. 둘째, 꿈에 나타난 조상의 메시지를 확인하여 보니 그것은 현실의 사건을
확고하게 반영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꿈에서 나타난 조상의 얼굴과 수백년 시간
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밀폐된 무덤의 조건으로 인하여 변하지 않은 얼굴을 확
인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일치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융의 관점에서는 내면과 외면
의 일치 사건에 대한 현상학적 진술과 그 가능성에 대한 탐구 또한 중요한 과제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의미를 헤아리는 것 또한 중
요한 해명의 과제이다.
필재 박광우 조상의 사례는 내면과 외면, 과거와 현재가 의미 있게 방울 이야기
43) 조상과의 만남을 현현(顯現)으로 봐야할 지 감응(感應)으로 봐야할 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
다. 아무래도 ‘현현’의 관점은 조상을 만나는 후손의 전망이 강조된 것이며, ‘감응’의 관점
은 조상과 후손 간의 공명이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44) 불멸성(immortality) 개념 연구에 대하여는 다음을 참조. 전철, 화이트헤드의 불멸 개념
연구: 화이트헤드의 객체적 불멸성 개념을 중심으로 , 화이트헤드연구제29집, 2010,
30-55쪽.
362 儒學硏究 第34輯(2016. 2)

를 매개로 매우 구체적이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융의 관심이기도 한


문제가 여기에서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사후의 영혼은 진정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인간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증명은 융에게도 여전히 심오하면서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융은 그에 대한 여러 체험들을 남겼으며 융 또한 박재
45)

학 선생의 경우와 비슷한 방식의 사례를 제시한 바 있다. 전날 장례를 치른 친구


가 융에게 환상으로 나타나 자신의 집으로 융을 데려가고 서재를 가리켰다. 이
체험을 한 융은 다음날 죽은 친구의 서재로 갔으며 정말로 환상에서 본 서가 밑에
발판이 있었고, 멀리서도 다섯 권의 적색포장 책이 보였던 것이다. 그 책의 제목
은 “死者의 유산”(Das Vermächtnis der Toten)이었다. 46)

인간 정신과 영혼의 정체성이 사후의 세계를 넘어서도 연속적일 수 있으며 우


리 경험세계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박재학 선생의 방울 이야기
는 매우 의미 있는 증언이 된다. 왜냐하면 15대 조상의 메시지는 수백 년이 지난
현실과 강렬하게 연결이 되며, 또한 꿈에서 나타난 조상의 형상은 보존이 잘 된
무덤에서 그대로 확인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을 넘어선 영혼이 존재하
는가 라는 물음은 철학과 종교와 윤리의 지평에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고
앞으로도 놓치지 않아야 할 중요한 인간의 질문이다. 조상과 후손이 수백 년의
시공간을 넘어 꿈을 통하여 조우했다는 것은 칼 융이 제안한 동시성 현상의 매우
구체적인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 조상과의 만남에 관한 후손의 과제

영혼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영혼은 시공간적 현실과 어떻게 접촉하는가 라


는 질문, 즉 혹은 ‘사건의 내용’을 넘어서서 왜 이러한 동시성 현상이 일어나며
그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조명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 인간 정신의 꿈과 환상의 활동이 결정적으로 의식 너머의 세계, 집단적
무의식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는 것은 융이 제안한 중요한 가설이다. 그러므로
45) Aniela Jaffe, Erinnerungen, Träume, Gedanken von C. G. Jung, Zürich: Rascher Verlag, 1962, p.315.
아니엘라 야훼 저 이부영 옮김 꿈 회상 그리고 사상 집문당
, , , , , 쪽
, 2012, 355 .
46) 위의 책 쪽 , 356 .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63

꿈에서 등장한 필재 박광우 조상의 현현(Epiphany) 체험의 내용과 함께, 의식의 영


역을 넘어선 집단 무의식적이며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만족할 만한 해석이 요구
된다. 적어도 융이 말하는 집단적 무의식은 모든 다양한 시대의 경험들로 관철되
고 누적되는 영역이다. 사실 융에게 있어서도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마지
막 조명은 연금술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학문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의 마지막 한계 …… 초월적인 것, 原型 그 자체의 본질, 거기에 관해 우리는
더 이상 아무런 학문적 설명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 술회한다. 그만큼 융에
47)

있어서도 집단 무의식은 인간의 시공간적 경험을 향해 드러나고 누적되며 응축되


는 정신의 저장고였으며 불가해한 그곳을 향하여 그는 긴 성찰을 하였다.
후손들에게 드러난 필재 박광우 조상의 현현은 현상적으로 사후에도 인격의
연속성이 가능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듯 하다. 물론 이는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객관적인 관찰이나 반복적인 실험의 대상의 영역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지니지 않
는 비인과적인 사건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재 박광우 조상의
현현이 후손의 다양한 개성화 과정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융은 우리의 마음이 몸과 마찬가지로 조상대에 이미 존재해 온 것들로 이루어
지고 있다고 말한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의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마음
의 요소들이 끝없이 변화되어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철저하게
역사적인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 자연을 넘어선 요소(조상)와 감각적 자연의 요
48)

소(후손)의 대칭적인 조화와 질서는 융에 있어서 기본적인 사유이기도 하다. 이러


한 관점에서 필재 박광우 조상의 동시성 현상을 조명하면,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15대 후손 현재의 경험과 15대 이전의 조상과의 의미체계의 대칭성이 분명히 “이
장”의 과정 속에서 깨졌을 것이며, 이에 대한 정신의 보완과정 속에서 집단 무의
식은 꿈을 통하여 의식을 향해 어떠한 메시지를 던졌을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무의식과 의식의 질서가 개성화의 과정 속에서 견실하게
진행되지 않고 깨졌을 때 우리의 현세적 삶에 무의식적인 메시지가 자동적으로
47) 위의 책, 252쪽.
48) 위의 책, 268쪽.
364 儒學硏究 第34輯(2016. 2)

진입한다는 기계론적 관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울이야기’에 대한 ‘인


격적 해석’과 ‘심리적 해석’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감응하는 사건을 넘어서서,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 근원적인 실재의 조
화 안에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경험의 융합, 조화, 관계를 근간으로 한 ‘심리적-
인격적 해석’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격과 심혼의 평화는 그 경험의 주체가 개인이든 사회이든 과거의 역사적 차
원과 현재의 개별적 여건의 조화 속에서 등장한다고 융은 바라보았다. 융은 “살아
있는 자들이 死者를 괴롭힐” 경우 그것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도 온전한
49)

평화와 생멸하는 생 전체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평화에 대한 문


명적 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죽은 자들의 유산과 의미가 현재에 올바로
전승되거나 구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평화일 수 없다.
여기에서 필재 박광우 조상에 대한 원형적 문화적 성찰의 한 단서를 우리는 발
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방울에 관한 꿈과 체험을 통하여 필재 박광우 선생의 후손
들은 조상에 대한 새로운 의미체계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방울에 관한 경험
은 기존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필재 박광우 조상과 15대 후손, 죽은 자와 산 자
간의 조화로운 반응과 참여의 계기를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융 또한 동시성 현상
의 많은 경우는 인간의 개성화 과정을 더욱 도모하는 기폭제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조상의 넋에 대한 살아있는 자들의 재인식과 변화는 금시계 이야기의
핵심 의미와도 연결이 된다. 조상에 대한 효심과 함께, 조상의 관점에서 현재의
삶의 의미를 조명하고자 하는 후손들은 인격적 제한성을 넘어서서 죽은 자들의
의미체계와 산 자들의 삶이 긴밀하고 원숙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가족의 영적인
분위기를 통하여 꿈과 인격적 체험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
로 조상과의 감응은 결국 후손들의 삶의 양식을 새롭게 조명하였으며, 동시에 조
상과의 만남의 의미 또한 그 후손들의 삶을 통하여 대답되고 완성되어야 할 것으
로 보인다.

49) 위의 책, 272쪽.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65

5. 결론

필재 박광우 조상에 관한 신묘한 이야기와 정황은 매우 구체적이며 그 묘소는


현재 충청북도 기념물 제71호로 등재가 될 만큼 역사적 사건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묘소 이장과 관련한 사건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이장의 과정에서 출토된
관곽과 청동방울 5개 및 백자소호는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되어 보관되
고 있다. 50)

후손 박재학은 조상묘 이장에 대한 선지식과 필재 박광우 조상의 인상에 대한


선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꿈과 환상의 내용을 따라가 조상묘 이장에
서 야기된 여러 현실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수백 년을 넘어
꿈에서 현현된 조상의 얼굴을 잘 보관된 조상의 무덤 안의 죽은 얼굴로 생생하게
만났다는 것이다. 조상과 후손의 감응은 꿈과 현실 모두를 관통하였던 것이다.
주자의 세계인식에서 청동방울과 금시계 사건은 또 다른 방식의 함축된 의미
를 말해준다. 주자는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물이나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기가
흩어지지만, 단시간에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완전한 소멸에 이를 때까지 제
사나 후손들을 통해 감응한다고 본다. 귀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아
니라, 기의 취산 과정 속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실재하는 조상이다. 필재 박
광우의 청동방울 사건과 박명섭의 금시계 사례는 귀신을 위로하고 숭배하는데 지
나치게 힘쓰지 말고, 조상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헤아려 그것을 실천
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융의 관점은 시공간적 인과성을 넘어서는 듯한 동시성 현상의 사례를 인간은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의 시공간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의 시공간 경험은 현존하는 4차원 시공연
속체의 물리학적 가설에만 제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융에 의하면 정신과
혼 안에서 시공간은 상대화된다. 그리하여 융은 자연을 정신의 그림자라고도 말
한다. 그만큼 융에게 있어 수백 년 전 조상과의 감응 현상이 인간의 풍부한 경험
의 사례에서 냉정하게 배제되어야 할 환상이나 비합리적인 요소가 아니다. 더 나
50) 李元根, 貞節公 朴光佑선생의 遺蹟ㆍ遺物 , 考古美術第151號, 1981年 9月, 59-65쪽.
366 儒學硏究 第34輯(2016. 2)

아가 융은 현존하는 4차원 시공연속체의 질서를 넘어선 동시성의 시공간적 질서


를 구상한 바 있기에 조상의 현현이 현재의 물리학적 질서를 파괴하는 사태로 해
석하지 않는다.
본 연구는 주자의 감응이론과 융의 동시성이론의 관점에서 조상과 후손의 만
남에 관하여 조명하였다. 동시에 우리는 조상의 현현이 왜 후손들에게 일어났는
지를 의미론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융의 관점에서는 모든 경험이 응
축된 집단적 무의식의 세계와 모든 경험이 현재화된 의식의 세계, 과거의 지나간
세계와 현재 출현하는 세계의 대칭과 조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지나간 세계와 현재의 세계가 접하는 곳에 관한 “이장사건”에서 이 두 세
계가 교차하는 “방울”의 의미가 깨졌을 때 무의식과 의식은 다시 삶의 질서와 의
미체계의 회복의 과정에서 교감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는 융도 고백하였듯이 학문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의 한계선상에 대한 매우 겸
허한 접근일 뿐이다. 최소한 이러한 “방울 이야기”를 통하여 조상을 몰랐던 후손
은 그와의 대화를 하였던 것이며, 후손을 향한 조상의 뜻과 의미와 가치는 후손에
게 전달되어 한 가족으로서의 새로운 의미체계를 선물 받은 것이다.
필재 박광우는 “효도는 모든 행실의 원천이고 온갖 변화의 근원입니다”라는 말
을 “삼년상의 도리”에서 말한다. 그만큼 조선 중기의 문신인 필재에 있어서 효
51)

개념은 그의 사상과 절의가 담겨진 핵심 정신이며 후손에게 끼친 영향이 매우 크


다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효의 상징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방울
52)

이야기”를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과 인간 경험 그 자체가 합리적인 것을 넘어서는 심오한 사건이다.
살아있는 존재가 사라진 존재와 감응하고 교감하는 것은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자명한 사건이다.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만나는 것을 합리적
현재가 비합리적 과거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 생의 심오함과 불가
해함은 편협한 합리성의 영역으로 퇴락되어 버린다. 비반성적인 합리성의 문명에
의해 주조된 감각에서 조상과의 감응과 조상의 현현은 쉽게 이해될 수 없는 환상
51) 박광우 저, 이정섭 역, 삼년상의 도리 , 국역동책정수, 국립중앙도서관, 2006, 3-8쪽.
52) 왜 필재는 청동방울에 대한애정을 그렇게 갖고 있었는가. 이 방울이야기의 실존적, 가족
적, 역사적 의미를 심화하는 것은 후손들의 중요한 과제라 여겨진다.
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67

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제한적 합리성의 완고한 세계관 자체가 균열되는 사건이며, 동시
에 우리의 체험은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광대한 현실에서 펼쳐지는 사건임을 자
각하게 한다. 바로 이러한 완고한 합리적 세계의 경계, 합리적 인과성이 균열되는
사건에 대하여 주자의 감응이론과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이론은 기존의 사유를
넘어선 인식의 전환을 새롭게 제공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간학문적인 조명과 풍
요로운 성찰이 매우 필요하다. 여전히 우주는 우리에게 미지와 신비로 남아 있다.
실로 이에 관한 동서양의 다원적 패러다임 간의 개방적인 대화와 진지한 탐구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된다.
368 儒學硏究 第34輯(201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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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과 후손의 만남에 대한 동서양 다원적 패러다임 연구 (박재갑 ․ 고재석 ․ 전 철) 369

[Abstract]

Eastern-western multi-paradigmatic Research on


Correlation between Ancestor and Descendant
- Focusing on Zhu Xi’s Theory of Correlation and Carl
Jung’s Theory of Synchronicity -

Park, Jae-Gahb(Graduate School of Cancer Science & Policy,


Natl. Cancer Center),
Go, Jae-Suk(Sungkyunkwan Univ.),
Chun, Chul(Hanshin Univ.)

We frequently witness phenomena which occur around us, not revealing the causal
relationship. We can ask ourselves whether such phenomena are hard to understand not
because they are not true facts but because they are beyond our understanding.
The reference data for such a phenomenon in this article are the two events that had
occurred in the family of Professor Jae-Gahb Park, one of the co-authors of this article.
Firstly, on the eve of the night when his fifteenth-generation ancestor’s grave was to be
moved, his ancestor appeared in his consin’s dream, telling him to go and find the bell
that his ancestor had cherished. Accordingly, his father and relatives went to Paju county,
where his ancestor’s grave is located, to remove the grave to another place. In the process,
his father told the participants what his consin had dreamt of including a grave keeper
who had kept the bell after reburial. The grave keeper returned it to his father after
hearing from him.
Secondly, On the day when Professor Park’s father died, his father appeared i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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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of his maternal aunt’s married daughter, carrying a gold watch with him. She was
not aware that Professor Park’s father was dead. Furthermore, Neither did she know that
Professor Park‘s old brother and his wife in America had bought the gold watch for his
father.
These two cases are representative examples of ancestors’ revelation through dream.
According to the modern civilization which regards sciences as its mainstream paradigm,
such mystical and arcane phenomena are just a part of mental phenomena that we cannot
verify with our knowledge.
However, there are two scholars presenting different explanations about the phenomena
of which the causal relationship is not understood yet: Carl Gustav Jung (1875~1961)’s
phenomenon of synchronicity and Zhu Xi (朱熹, 1130~1200)’s theory of correlation.
A phenomenon whose causal relationship is not understood yet is an event in which the
obstinate outlook of the restrictive rationality breaks off, and at the same time our life
spreads into the vast realm transcending our understanding. We are living in an era when
more discussions on the unknown universe and pluralistic paradigms on the questions about
life and death need to be made.
In this regard, Gustav Jung’s concept of Synchronicity and Neo-Confucian theory of
correlation is instrumental in overcoming the phenomenon and case in which the causality
breaks off.

Key words : Ancestor’s Incarnation, Zhu Xi, Correlation, Carl Jung, Synchronicity

❖논문투고일 : 2016년 1월 25일, 심사일 : 2016년 2월 2일, 게재확정일 : 2016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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