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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RED

마크 로스코

켄: 저..

로스코: 쉿! 뭐가 보이지 ?

켄: 어..그냥..

로스코: 잠깐! 좀 더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야 하네. 그림이 고동치게 해. 너한


테 말을 걸게 하라고. 그림이 스스로 퍼져나가게 해. 널 두 팔로 끌어안게 해
. 널 껴안고 네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채울 수 있게 하라고. 그 그림말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도록. 이전에도 이후로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란 말이야.
그림이 알아서 하도록 해. 그렇게 할 수 있게 네가 도와주라고. 빌어먹을! 중
간에서 만나라고 ! 몸을 앞으로 숙여! 그림쪽으로! 관계를 맺으란 말이야! 관계
를! 그래, 뭐가 보이지 ?

켄: 어 그냥..

로스코: 잠깐, 잠깐. 자 뭐가 보이지? 구체적으로 말해봐. 아니 정확하게. 정확


하게 말해봐. 하지만 감성적으로, 친절하게, 인간적으로, 평생 단 한번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보라고! 이 그림들은 동정 받을 자격이 있어. 얘들은 감성적인 관
객이 봐줄 때만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해 . 얘들은 공간이 주는 관람객들에게서
만 살아 숨 쉰다고. 그게 얘들이 간절히 바라는 거고, 그것을 위해 얘들이 창
조되었고, 그게 얘들이 받아야 마땅해. 자 뭐가 보이지 ?
켄: 어..레드요!

로스코: 맘에 드나?

켄: 어..

로스코: 안 들려!

켄: 어..네!

로스코: 당연히 맘에 들겠지. 맘에 안들 리가 없지. 요즘은 모두들 모든 걸 좋


아해.티비도, 축음기도 , 팝콘도, 모든 건 특별한게 되어 버리고, 모든 건 좋
고, 예쁘고, 맘에 들어. 하늘 아래 모든게 재밌어. 대체 안목이라는 건 어디다
내다 버린거야? 그냥 좋은 거랑, 존중할만한 것, 가치 있다고 평가할 만 한
것, 똑똑히 새겨들어! 의미있다고 생각할만한 것에 대한 잣대는 대체 어디다
내다 버린 거냐고! 그래, 공룡이 떠드는 소리 같겠지? 권력을 잡을 기회나 노
리면서, 교활하게 수풀 속에 몸을 숨기는 너 같은 야만인이 보기엔 난 그냥,
산소나 종양, 공룡 같을 거야. 응? 내가 떠들어 대는 소리들은 이 세대엔 존재
하지 않는 이미 사라져 버린 언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말야. 진지함이나
의미를 열망하지 않는 세대는 렘브란트나 터너, 미켈란젤로, 마티스 그리고 나
로스코를 포함한 앞서나간 선배들. 극복해낸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밟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야! 열망하나?

켄: 네!

로스코: 뭘? 뭘 열망하는데?

켄: 어..전 화가가 되고 싶은 거니까, 제가 열망하는 건 미술이겠죠.

로스코: 그런 놈이 옷 꼬라지가 이게 뭐야 ? 여긴 일하는 곳이야. 아 , 나한테


잘 보이려고 쫙 빼입은 건 내 높이 사주지! 감동받았어! 하지만 다 쓸데 없는
짓거리야. 여기선 열심히 작업을 해야 된다고! 티케익이나 레몬에이드를 나눠
먹는 빌어먹을 사교모임이 아니란 말이야! 가서 자켓 걸어두고 와.
켄: 네.

로스코: 시드니한테 , 내가 뭘 원하는지 들었겠지?

켄: 네!

로스코: 작업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할 거야. 넌 내가 캠퍼스 줄


을 잡아당기고, 물감을 섞고, 붓을 빨고 , 그림을 옮기는 걸 도우는 거야. 바탕
색 칠하는 것도 돕고, 하지만 그게 그림을 그리는 건 아냐 . 그러니까 쓸데없
는 상상을 하고 온 거 라면 지금 당장 내 앞에서 꺼져. 넌 내 식사나 담배심
부름을 하면서 내 변덕을 다 받아줘야 돼. 그게 아무리 힘들고 모욕적이더라
도, 맘에 안 들면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대답해 할 거야 말 거야.

켄: 하겠습니다.

로스코: 명심해. 난 아버지도 정신과 의사도 친구도 선생도 아냐 . 난 단지 고


용주일 뿐이야. 알겠어?

켄 : 네!

로스코: 좋아, 넌 이제 내 조수로서 여기서 많은 경험을 접하게 될 거야. 특별


한 것을 말이야. 하지만 전부 비밀에 붙여야 돼. 그 어떤 것에서도 일절 발설
해서는 안 돼. 내게 적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마 . 난 적이 아주 수도 없이 많
아. 단순히 다른 화가들이나, 갤러리 오너들이나 , 박물관 큐레이터나 그 빌어
먹을 미술 평론가만 얘기하는 게 아냐! 나와 내 작품들을 혐오하는 불만으로
가득찬 관람객 패거리들! 것들은 심장도, 인내심도 생각하고 이해하는 힘도 없
는 놈들이야. 왜냐! 그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좀 전에 얘기했던 거 기억나나 ?

켄: 네 !

로스코: 지금 난 1년의 벽화 연작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서른이나 마흔


점 쯤 그린 다음 전체와 가장 잘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선택하게 될 거야. 푸
가처럼 말이야. 넌 밑 칠 작업을 돕고 , 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들여다보고
좀 더 그림을 그리겠지. 난 아주 여러 겹을 칠해. 유약처럼 한겹 한겹. 팬트
멘토처럼 이미지는 서서히 떠오르고 결국엔 광채가 나타나지.

켄: 그림이 완성됐는지 어떻게 아시죠?

로스코: 붓질 한번 한 번에 비극이 들어있어. 좋아 한 잔 하자고! 잔 가져와.


대답해.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말해봐!

켄: 그러죠.

로스코: 준비됐나?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켄: 잭슨 폴락!

로스코: 아..

켄: 죄송해요..

로스코: 아냐.

켄: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로스코: 아냐. 바보 같은 짓이야.

켄: 제발 다시 한 번 물어봐주세요.

로스코: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켄: 피카소요!

로스코: 폴락이라...늘 폴락이야! 이런 빌어먹을. 아 오해하진 마. 폴락은 아주


위대한 화가야. 우린 함께 등단했지. 그 친구를 아주 잘 알아.

켄: 어떤 분이셨죠?
로스코: 니체 읽어봤나?

켄: 네 ?

로스코: 니체 읽어봤냐고. 비극의 탄생.

켄: 아뇨.

로스코: 니체 없인 폴락을 논할 수 없어. 니체 없인 그 어떤 것도 논할 수 없


지! 도대체 요즘 예술 학교에선 뭘 가르치는 거야 ?

켄: 그러니까..

로스코: 프로이드 읽어봤겠지?

켄: 아뇨.

로스코: 융은!!

켄: 어..

로스코: 아이런은! 워즈 워는! 에이스퀴로스! 투르게네프! 소포클레스! 쇼펜너,


세익스피어! 햄릿은? 최대한 햄릿만큼은! 햄릿을 인용해봐 어서!

켄: 사느냐 죽느냐 ! 그것이 문제로다!

로스코: 그게 문젠가? 이봐 꼬마야. 너는 배워야 할 게 많아 . 철학, 신학, 문


학, 시, 드라마, 역사, 고고학, 인류학, 신앙, 문화. 붓과 알료 만큼이나 너한테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야. 교양을 쌓기 전엔 예술가가 될 수 없어. 공부를 하기
전에 교양인이 될 수 없고, 교양인이 되기 위해선 세상과 예술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어디서 속하는지 알아야 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선 과거를 알아야 하
고!

켄: 아까는 제 선생님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로스코: 복 받은 줄 알아! 예술에 대해 얘기해주다니..느낌이 어때?

켄: 느낌이 어떻냐구요?

로스코: 얘들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냐고.

켄: 아 잠깐만요

로스코: 됐어?

켄: 아 잠깐만요. 불안해요.

로스코: 그리고?

켄: 생각이 많아져요.

로스코: 그리고?

켄: 어..슬퍼요

로스코: 비극적!

켄: 네

로스코 : 식당에 걸 거야.

켄: 네?

로스코: 식당에 걸그림이라고. 언젠가 작업 중이였는데, 필립 존슨한테 전화가


왔어. 알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건축가 필립 존슨 말이야.

켄: 개인적으론 모릅니다만!
로스코: 그치..당연히 모르겠지. 네가 그런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 리가 없잖
아! 내 말 자르지 마!! 필립 존슨은 리치 벤던 로워와 파크에비뉴에 들어 설
새로운 씨그램 빌딩을 설계중이라고 했어. 필립 존슨과 리스 벤던 로워..마술
처럼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이름들 아닌가. 그들은 건축계에 거물들이야. 혁명가
지. 그 두 사람은 뉴욕과 뉴욕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찬란한 야망을 반
영하는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빌딩을 지으려고 하고 있어. 그 빌딩안
에 식당이 생길 건데, 식당 이름이 포시즌이야. 비발디의 협주곡 포시즌 . 그
들은 나에게 3만 5천 달러를 지불했어. 지금까지 그 어떤 화가도 받아본 적이
없는 거액이지. 내 첫 번째 벽화들..사면의 벽을 빙 둘러싼 프리즘을 상상해봐.
벽을 가득채운 채 계속 이어지는 서사극..차례차례 이어지고 하나하나가 새로
운 장이 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야. 둘러보면 바로 거기 있는 거야. 피할
수 없는 불변의 그림들. 파멸처럼.

켄: 완성된 건가요?

로스코: 아직은 아니야. 이제 그림들을 연구해야 돼.

켄: 연구요?

로스코: 회화는 사유야! 밖에서 가르쳐주지 않나? 캠퍼스에 물감을 칠하는 시


간은 10퍼센트에 불과해 . 나머지는 기다림이야. 난 평생 바로 이걸 꿈꿔왔어.
장소를 만들어 내는 거야. 관람객들이 작품에 대해 사색하며 살아가고, 내가
작품에 들였던 관심과 주위에 필적할 만 한 노력을 바칠 수 있는 장소..예배당
같은..교감의 장소.

켄: 하지만 거긴 식당이잖아요.

로스코: 아니 ! 그곳은 사원이 될 거야.

( 암전,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두운 클래식의 느낌. )

로스코: 렘브란트와 로스코...렘브란트와 로스코...로스코와 램브란트 , 로스코


와 램브란트 그리고 터너..로스코와 램브란트와 터너, 로스코와 램브란트와 터

켄: 선생님! 요 앞에 중국식당이 문을 닫는데요!

로스코: 모든 가치 있는 것은 종말을 얻게 되는 법이야. 우린 영원한 과정 중


에 있어. 창조, 성숙, 소멸.

켄: 하지만 모퉁이에 다른 중국식당이 있긴 하죠!

로스코: 영원한 순환은 이어지고, 세대들을 사라져가고, 희망은 진부해져. 하지


만 모퉁이에 다른 중국식당이 있긴 하지!

켄: 잡담주제로 너무 심오한데요! 아 참, 어젯밤 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전 봤


어요.

로스코: 그래서 ?

켄: 그분은 세대들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던데


요?

로스코: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 사람은, 그래 뭐, 지금이야 달리처럼 돈을


받고 메뉴판에 싸인 이나 해주고 흉측한 작은 항아리나 만들어서 파는 사기꾼
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한창 땐 시간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 이해했었어. 영수증
은? 비극적이야 정말. 살아있는데 더는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우린
큐비즘을 끝장냈어! 듀크니와 나 폴락, 밧느니와 기타등등이 함께 말이야. 큐
비즘을 짓밟아 숨통을 끊어버렸지. 이젠 아무도 입체파 그림을 그리지 않아!

켄: 자부심이 느껴지는데요. 큐비즘을 짓밟아 숨통을 끊어버렸다.

로스코: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거야.

켄: 그걸 즐겨야 하나요?

로스코: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저 용감하게 해치우는 거야! 미술에서의 용기


란 텅 빈 캠퍼스와 맞서는 게 아니야. 마녀와 벨라스케스와 맞서는 거지. 우리
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전에 있던 것을 지나 지금 있는 것으로 나아가고, 앞으
로 있게 될 것을 미약하게나마 넌지시 알려줄 수 있길 바라는 거야. 지나가고,
지나가고 있나, 앞으로 올까 ?

켄; 하지만 피카소는요?

로스코: 물론 ! 모든 것은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려준 피카소에겐 감사해. 움직


임은 삶이야! 우린 세상에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악을 쓰며 울고 온 몸을
비틀고 꿈틀거려!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거야. 움직임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
어?

켄: 죽은 건가요?

로스코: 바로 그거야. 이 색들 사이의 긴장을 봐! 어두운 색과 밝은 색, 레드와


블랙과 브라운의 긴장들. 컬러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움직이는 상태로. 실제로 캠버스에서도 서로 인적 돼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서
도 서로 인적 돼 있게 되는 거야. 걔들은 밀려왔다..밀려가고..움직이고 있어.
부드럽게 호흡하면서 , 집중해서 보면 더 많이 움직이고 있어. 공간을 떠다니
면서 숨을 쉰다고, 움직이고, 소통하고 몸짓하고 흐르고 교류하고 서로 작용하
면서 얘들은 죽어있는게 아냐, 가만있지 않으니까.그런 움직임이 있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 그런 움직임은 너무나 순간적이지. 얘들은 시간을 요구하는
거라고.

켄: 그러니까 그림들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거네요? 시간이 가져야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로스코: 그래서 장소를 창조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중요한 거야. 관람객들이


시간을 들여 그림들을 보면서 사색하고 , 그림들이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장
소 말이야.

켄: 그래서 관람객이 꼭 필요한 거네요! 이 그림들은 풍경화나 초상화 같은 재


현적 그림과는 다르니까요!

로스코: 왜 그러지?
켄: 이 그림들은 변하고, 움직이고 숨을 쉬니까요! 재현적인 그림들은 변하지
않죠.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 없어요. 루브르에 있는 모나리자는 관
람객이 없는 한밤중에서도 미소짓고 있겠죠. 하지만 이 그림들은 관람객이 없
다면 숨을 쉴까요 ? 그래서 조명 어둡게 해놓으시는거죠?

로스코: 왜 ?

켄: 환상을 만들어 내시려고! 마술사처럼 ! 연극처럼 ! 신비해보이도록 ! 그림


들이 요동치도록! 밝은 조명은 무대효과를 망쳐버리죠! 가짜 넝쿨에 둘러싸인
휑한 무대가 그대로 드러나 버리잖아요!

로스코: 뭐 가 보이지 ?

켄: 갑자기 적응이 안 되는데요? 그냥..화이트요

로스코: 화이트로 보면 뭐가 떠오르는데 ?

켄: 뼈, 해골 , 시체안치소 빈혈 잔염 수술실 같은가요

로스코: 화이트로 보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데?

켄: 아녜요.

로스코: 왜!

켄: 별거 아니에요.

로스코: 왜!

켄: 눈 같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밤에 창밖에서 보이던. 겨울 이였거든요.


창밖에 쌓여있던 눈이 떠올라요. 화이트. 이 조명 안에서 그림들을 보니까 단
조롭네요. 평범하고. 조명이 그림을 망쳐버렸어요.
로스코: 이젠 얘들을 어떻게 다뤄야 되겠는지 알겠지? 얘들이 얼마나 다치기
쉬운지. 사람들은 내가 모든 걸 통제하려든다고 비난해. 조명, 그림 높이 , 갤
러리 팜플렛 등등 . 하지만 그건 통제하려는 게 아냐. 보호하려는거지. 그림은
옆에 뭐가 있느냐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해 . 그림을 세상속으로 내보내
는건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라고!

켄: 야외작업은 안하세요 ?

로스코 : 자연 속에서의 작업 말이야 ?

켄: 네

로스코: 거긴 나하고 상극이야. 빛이 안 좋아. 온갖 벌레에...으악..그래. 대자


연속 화가들 . 자연광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그 사람들이나 풀밭에서 노닥거리
라고 해 . 소처럼 말이야. 어렸을 땐 나도 멋모르고 밖으로 한번 나가봤어. 바
람에 종이는 날리고 이젤은 쓰러지고 개미들은 물감 속으로 기어가고 , 하 .
이런 빌어먹을. 그러다 처음 로마에 방문하게 됐지. 카라바지오의 사원의 배심
을 보려고 산타마리아 델포폴로에 갔는데, 자연광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어
두컴컴한 성당에 어두컴컴한 구석에 그림이 처박혀 있는 거야. 딱 동굴 속에
서. 근데..그림이 반짝이는 거야..일종의 환희 같은 걸로 반짝거렸어. 봐,봐,봐.
상상을 해봐. 카라바지오는 바로 이곳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탁을 받았어. 선
택의 여지가 없었지. 그곳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봤겠지. 바다 속처럼 그렇게
굉장히 어두웠어. 아이 어떻게 이런 곳에 그림을 그리지 ? 아이.. 이거야 원
참 . 결국 조물주에게 도움을 청했어.
‘ 오 주여! 이 형편없는 죄인을 좀 도와주소서! 말씀해 주소서! 높은 곳에 계
신 주님! 이런 염병, 니미럴, 씨부럴, 빌어먹을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 그때 그분이 오셔. 신의 섬광! 카라바지오는 안으로부터 그림을 비추고, 내적
광희를 줬어. 그림이 살아있어. 심해 바닥에 사는 스스로 빛을 내는 물고기처
럼 자신의 광채를 뿜어내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카라바지오는 .. 두 번
째 양동이 가져와!

켄: 진짜 그리시게요?

로스코: 그럼 내가 뭘 할 것 같아! 블랙 사본과 마른 리버! 블랙 약간. 마른


넣어! ..마른 2개더 ! 뭐가 더 .. 필요하지...

켄: 레드요!

로스코: 누가 너한테 물어봤어! 씨이런 빌어먹을! 다시는 , 다시는 그딴 짓 하


지 마! 니가 뭔데 그 빌어먹을 주둥이를 놀리는거야. 니놈이 뭔데 내 작품에
대해 참견하는 거냐고! 너 뭐하는 새끼야, 뭐했어! 뭘 본거야! 어디서 너 따위
가 감히 이해도 하지 못하는 내 그림들이랑 함께 있을 권리를 얻은 거냐고!
뭐? 뭐?! 뭐?! 레드요? 너 저걸 그리고 싶은 거야 ? 그럼 니가 그려!

켄: 저 , 선생님 저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 게 아니라요...

로스코: 자, 레드다! 이것도 ! 이것도 ! 이것도 ! 그래서 뭔데, 레드가 뭔데! 난


스칼렛인가? 크림슨 ? 블록? 멀제리? 마젠타? 버건디? 세븐? 카넬리요? 커
널? 어떤 레드? 대체 레드가 뭔데? 대체 레드가 뭔데!!! 후...으아!!!!!!!!!!

켄: 해돋이요.

로스코: 해돋이..?

켄: 해가 뜰 때 붉은 빛이요, 그때 드는 느낌.

로스코: 아..그때 드는 느낌.. 그때 드는 느낌이라는 게 뭔데!

켄: 단순히 빨간 물감만 말한 게 아닙니다. 해가 뜰 때 레드의 감정에 대해 말


한 거죠.

로스코: 해돋이는 레드가 아냐.

켄: 아뇨 , 그래요

로스코: 아니라고 하잖아!!

켄: 해돋이는 레드고! 레드는 해돋이죠! 레드는 심장박동이고, 열정이고! 와인


이고, 빨간 장미 붉은 립스틱, 튤립, 당근, 고추죠.

로스코: 동맥에 흐르는 피!

켄: 그것두요.

로스코: 버려진 자전거에 쓴 녹

켄: 그리고 사과 , 토마토

로스코: 그라스텐의 야간폭격, 루소의 태양, 그라플로의 깃발, 엘그레토의 망


토!

켄: 토끼의 코, 토끼의 눈, 잉꼬!

로스코: 원자의 섬광! 면도하다 베인 자국, 면도거품속의 피!

켄: 루빈슬리퍼 ! 총천연색! 클레르코의 직통 전화기!

로스코: 러시아국기! 나치깃발! 중국 국기!

켄: 검! 석류! 홍등가! 붉을 때의 눈!

로스코: 루만 바닷가의 전갈!

켄: 멈춤 표시판! 스포츠카 , 홍조!

로스코: 레드장! 국고! 죽은 야수파 화가들!

켄: 신호등! 적갈색 머리!

로스코: 손목 긋기 , 흐르는 피!

켄: 새드 크라운!!!
로스코: 팥!!! ( 사이 ) 그래..레드..

켄: 네! 그거요!

( 큰 사이 )

로스코: 모든 걸 뛰어넘는 게 뭔지 알아 ?

켄: 뭐죠?

로스코: 마티스의 그림 레드스튜디오. 자신의 스튜디오를 그린 그림이야, 선명


한 레드에 바닥과 가구며 전부 레든데, 컬러들이 마티스에서 뿜어져 나와 모든
걸 삼켜버린 것 같아. 현대 미술관에 처음 걸렸을 때 . 난 몇 시간씩 그 그림
을 바라보며 지냈어. 매일 매일 들렸지. 그때나 지금하고 있는 이 모든 작업의
기원은 그 그림과 그걸 바라보면서 보낸 시간들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면 돼.
그림은 작용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그림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 귀에서
고동 치고 있어. 난 푹 빠져버렸고, 그 그림은 날 삼켜버렸지. 마티스가 만들
어낸 그 놀라운 4개의 색면들..에너지 넘치는 컬러의 형체! 다..옛날 얘기야.

켄: 아직 거기 있잖아요!

로스코: 더 이상 그 그림을 못 보겠어.

켄: 왜요?

로스코: 우울해서

켄: 그 그림 속에 모든 레드가 우울하다고요?

로스코: 이젠 더 이상 레드가 안보여. 그림에서도 철저하게, 엄청나게 레드에


푹 빠져있는데도 거기 있어..옷장 위 , 벽난로 선반 위 중앙 바로 윗부분에 수
많은 컬러 가운데 그 빌어먹을 엘로우 때문에 더욱 강조됐어. 마티스는 그걸
피할 수 없게 해놨어.
켄: 그게 뭐죠 ?

로스코: 블랙.

켄: 컬러 블랙이요 ?

로스코: 아니, 블랙. 내가 인생에서 두려워 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언젠


간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 거라는 거야.

( 암전 후 ,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 )

켄: ( 친구와 통화한다. )너야 말하기 쉽지. 그분을 모르니까. 안 그래도 적당


하다 싶을 때 보여드리려고 내가 그림그리는 거 아시니까 아마 예상하고 계시
겠지? 아니, 아니~ 그냥 선생님 기분에 달렸지 뭐 . 아 진짜 나한테 이래라 저
래라 하지 마 좀 . 너도 선생님이랑 똑같아. 어, 오셨다. 이따가 어떻게 됐는지
얘기해줄게. 기도해줘~ 오셨어요?

로스코: 다른 말을 구했어. 어 그건 내가 할 테니까 넌 캠퍼스나 완성해. 어젯


밤에 씨그램 빌딩에 갔었는데, 계획대로 잘 되어 가고 있는거 같더군.

켄: 식당은 어때요?

로스코: 아직 공사 중인데, 한 바퀴 둘러보게 해줘서 분위기 파악 좀 했어.

켄: 어떤데요?

로스코: 늘 그렇듯 거긴 자연광이 너무 많아! 하지만 괜찮을 꺼야. 주 연회장


에서도 벽들이 아주 잘 보일 거야. 스케치 좀 해왔어. 나중에 보여주지.

켄: 그런데 선생님! 거기가 정말로 그림들에게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하세요?

로스코: 당연히 적당하지! 거기에 걸려고 특별히 제작 하는 건데. 넌 생각을


좀 하면서 질문하란 말야!
켄: 자! 니체 읽어봤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비극의 탄생이요~

로스코: 내가 읽으래?

켄: 잭슨폴락에 대해 알고 싶으면 니체 읽어보라고 하셨잖아요.

로스코: 내가 그랬나 ?

켄: 네~

로스코: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했을 법한 얘기군.

켄: 근데 폴락의 어떤 면이?

로스코: 우선 책을 읽은 감정부터 말해봐.

켄: 흥미롭던데요?

로스코: 그건 레드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선문답 하지 마! 그러기엔


넌 아직 어려 .

켄: 왜 읽어보라고 하셨는지 알겠던데요?

로스코: 왜지?

켄: 그러니까 선생님은 스스로 아폴론으로, 폴락을 디오니소스로 보시는 거죠


?

로스코: 그 정도는 유치원생도 하겠다. 좀 더 생각해봐!

켄: 디오니소스는 와인과 과일의 신이죠. 움직임과 변형의 신이기도 하구요.


그게 폴락이죠. 야생적이고 반항적이고 술에 쩔어 있고 미쳐 날뛰죠. 날 것 그
대로의 경험. 아폴론은 질서, 메소드 ,경계의 신이죠. 그게 로스코죠. 지적이
고, 율법적이고 , 냉정하고, 자제하죠. 사색을 통한 성숙된 날 것 그대로의 경
험. 폴락은 물감을 뿌리고! 선생님은 연구하시죠! 그러니까 그분은 디오니소스,
선생님은 아폴론입니다!

로스코: 정확하게 맞췄지만, 핵심에선 완전히 벗어났어!

켄: 뭐가요?

로스코: 비극이 빠졌어. 핵심은 언제나 비극이야!

켄: 선생님한테나 그렇죠.

로스코: 넌 인간을 그렇게 깔끔하게 성격유형에 따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심리의 차이들이 수많은 세대를 걸치며 진화하고 사회적
신경증과 개인적 괴로움으로 뒤틀리고, 도착되고 ,믿음과! 믿음에 부재에 형성
된 인간심리의 차이들이 빌어먹을 그렇게 단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폴락은
감정이고 로스코는 지성!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거 같은데, 더 생각해봐!

켄: 아마 선생님 그림 같은 거겠죠?

로스코: 인생이 다 그렇지! 어떻게?

켄: 어둠과 밝음 , 질서와 혼란. 같은 벽면, 같은 시간에 존재하면서 앞뒤로 움


직이죠. 우리 인생도 끊임없이 움직이잖아요! 우린 선생님 그림 속 컬러들처럼
디오니소스와 아폴론 모두에 속하면서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게 되는거에
요! 디오니소스의 이 엑스터시가 아폴론의 자제심과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거죠!

로스코: 전쟁이 아냐!

켄: 전쟁이 아니라구요!

로스코: 그래 . 갈등이 아냐! 차라리 공생에 가깝지.


켄: 맞아요,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죠. 디오니소스의 이 열정은 아폴론의 양식
형성 유지가 있을 때 비로소 집중되어지고 견딜만해지죠. 우리가 아폴론의 통
제력과 지성이 없었다면 , 우린 디오니소스의 이 맹렬한 감정에만 휘말려 살았
었을테니까요! 그렇게 우린 이 신화에서 저 신화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움
직이는거에요! 고동치면서!

로스코: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완벽한 균형이 지속될 때 완벽한 삶이 이루어지


는 거야. 근데 우리 인간의 비극은 그런 균형을 이뤄낼 수 없다는데 있어 . 우
린 존재해 . 우린 모두는 모든 순간 끊임없는 불균형의 상태로 우린 감정의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원하지만, 이성의 차가운 거짓말 없이는 견딜 수 없어. 우
린 덧없는 것, 기적적인 것을 붙들어 보려고 하지만, 나비를 잡아 핀으로 고정
시키려는 곤충 학자처럼 시간을 멈춰보려고 하지만, 캠퍼스에 담아보려고 하지
만 , 바로 그 순간에 이미 그것들은 죽어버려. 그런면에서 우린 어리석은 존재
들이야. 우리 인간들이란 레드를 블랙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애쓰고 있는거지.

켄: 하지만 블랙은 늘 거기 있죠! 마티스 그림 속 선반처럼 .

로스코: 창밖에 쌓여있는 눈처럼? 하하, 그래. 것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한번 눈길을 주기 시작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린 죽을 수밖에 없다는 암시가 사방에 ..하지만 우린 계속해! 그 자그마한
희망에 매달려 , 그 레드에 매달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것들을 견딜 수 있게
해주지.

켄: 못 견뎌낼 수 도 있구요!

로스코: 그게 바로 내 친구 잭슨 폴락이야. 결국엔 못 견뎌 냈지.

켄: 무슨소리죠?

로스코: 자살했잖아.

켄: 그분은 자살하신 게 아닌데요?

로스코: 그런가?
켄: 선생님, 잭슨폴락은요 . 자동차 사고로 죽었어요!

로스코: 어떤 사람이 몇 년에 걸쳐 술에 취해 지내, 고주망태로. 그러다가 올


즈모빌 컨버터블을 타고 작은 시골길을 미친 듯이 질주하는거야. 그게 게으른
자살이 아니면 뭐지 ? 장담하건데 내가 자살 할 땐 의심할 여지가 없이 할 거
야. 도랑에 처박혀 박살나버린 자동차 따위나 이게 자살이야 뭐야? 하는 질문
따위는 없을거라고. 물론 너무 뻔해서 뭐 머리만 아프단 말이야.

켄: 내가 자살할 때라뇨?

로스코: 뭐 ?

켄: 방금 그러셨잖아요.

로스코: 아니 그런 적 없어.

켄: 아니 , 그러셨어요.

로스코: 잘못 들었어. 아 , 니 영웅에 대해 한마디 해주지. 그 사람은 자신의


비극에 정면으로 맞섰어. 단호하게 맞섰고, 버틸 수 있을 한 버텼어! 그러다가
삶에서 물러나려고 했던 거야. 근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겠어? 그 사람은
잭슨 폴락인데?

켄: 그럼 그 분의 비극은 뭐죠?

로스코: 너무 유명해졌어!

켄: 선생님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세요.

로스코: 불행하게도 그의 뮤즈는 도망쳐버렸지. 자신의 양식에 신물이 나버린


거야. 가는 길에 대한 믿음도 잃어버렸고, 결국엔 자신의 그림을 봐줄 진짜 인
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된거지.
켄: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로스코: 그럼 넌 그런 진짜 인간이 존재한다고 믿냐?

켄: 그러니까요 선생님 제 말은요. 그분은 예술가셨잖아요. 라이프 매거진에


나오고 젊었고 또 유명하고 또 돈도 많고

로스코: 그 친군 아이오니에서 온 시골뜨기 화가였어. 그런데 갑자기 상품이


돼 버렸어. 폴락이 되어버린거야! 자, 내 말 잘 들어. 폴락을 죽인 건 그 올즈
모빌 컨버터블이야. 뭔 말인지 아냐 ? 박살나서가 아니라, 존재했기 때문에!
망할놈의 올즈모빌 컨버터블을 도대체 왜 산거야?

켄: 그럼 뭐 예술가들은 전부다 배고파야 하나요?

로스코: 그래! 예술가들은 배고파야해. 나만 빼고.

켄: 이것 좀 봐주세요.

로스코: 당연히 넌 폴락을 좋아했을 거야. 진짜 보헤미안 이였지. 매일 밤 술


마시고 떠들고 싸우고 춤추고 , 예술가에 대한 낭만적 상성에 딱 들어맞고, 이
로스코와는 정반대야. 넌 그 친구가 최악일 때부터 좋아했을거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넘쳐났으니까. 그 친군 예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림이 중요하
다고 생각했어. 찡해서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지 않아? 어떻게 이 얘기가 비
극 아닌 것으로 끝날 수 있었겠어. 고양은 !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예술 때문
에 우린 소멸되지 않을 거라고 했지. 폴락은 진실을 봤어. 하지만 더 이상 자
신을 보호할 예술이 없었던거야. 이런 상황에 누가 살아 남을 수 있었겠어.
됐어.

지난주에 집에 가던 길에 어떤 부부와 마주쳤어. 우리 집 창문을 들여다보면서


여자가 이러는 거야. 음, 도대체 로스코는 누가 좋아서 그리는 걸까 ? 하지만
내가 주문에 걸린 것처럼 로스코 한 장!

켄: 상품이죠.
로스코: 벽난로 그림!

켄: 네 ?

로스코: 벽난로 그림 ! 데커레이션이 될 운명을 타고난 그림들 말이야 .


펜트하우스 벽난로에 걸려있는거 말이야. 사람들은 대놓고 요구해. 소파와 어
울리는 게 필요한데, 아시죠? 아니면 그 부엌 테이블에 걸 뭔가 밝고 기운 나
는 그림말입니다. 아 ! 테이블이 오렌지색인데 오렌지색 그림은 있습니까? 그
림은 창가 폭에 맞게 잘라줄 수 있나요? ‘ 어 자기야~나도 이거 하나 가져야
겠어요. 잘난 척하는 옆집 년이 구매했거든요. 아 그 여잔 1점 가졌으니까 난
3점 쯤 가져야겠어요. 이야~! 이거 하나 가져야겠어요! 뉴욕 타임즈에서 사야
한다고 하니까요. 아니아니, 하하 누가 그러던데 뉴욕 타임즈에서 사야한다고
그랬나네요? 음~ 보라고 하지 말아요~ 난 절대로 보지 않아요~ 그 그림 너무
나 우울하단 말이에요! 아 ~ 이 희미한 직사각형들 유치원 다니는 우리 애도
그리겠네. 허, 이건 정말 사기야. 이 사람 사기꾼이에요. 그러면서도 그림을
사. 이건 투자거든 . 어디든 놓아도 어울리니까, 램프랑 놓아도 어울리니까. 폴
락 보다 싸니까! 실내 장식이니까! 그림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됐어.
밑칠을 하자. ( 로스코 밑칠을 할 때 들을 음악을 고른다. 음악이 나온다. 그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레드를 하얀 캠퍼스에 칠한다. )

로스코: ( 밑바탕이 칠된 그림을 보며. ) 그래, 그래. 됐어. 괜찮아, 적당해. 어


떤 것 같아?

켄: 예?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예요?

로스코: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켄: 괜찮은데요. 어 밑칠이 잘 되어있네요, 고르고.

로스코: 마르면 알 수 있겠지. 그럼 그리기 시작할 수 있고.


켄: 선생님 그런데, 정말 제 의견에 관심 있으세요?

로스코: 아니.

켄: ( 밑에 번진 빨간 물감들을 걸레질 하며 닦는다. )

로스코: 뭐야.

켄: 아니에요.

로스코: 뭐냐고.

켄: 이상해요. 뭔가 기억이 나서요. 컬러가..

로스코: 컬러 뭐.

켄: 별거 아니에요.

로스코: 컬러 뭐냐고.

켄: 말라붙은 피요. 피가 마르면 진해지거든요. 카펫위에서.

로스코: 무슨 카펫.

켄: 부모님이 돌아가신 카펫이요. 정확히 그 컬러에요! 피가 마르면 진해지는


게 놀라웠죠. 그래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로스코: 부모님께선 어떻게 되신 건데?

켄: ( 붓을 양동이에 빨며 )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로스코: 아냐, 아냐, 아냐 . 얘기하고 싶을걸?

켄: 살해당했어요.
로스코: 살해 당하셨다고?

켄: 네.

로스코: 몇 살 때였지?

켄: 7살 때요. 아이오와에 살 때?

로스코: 어떻게 된 건데?

켄: 솔직히 자세히 기억나진 않아요.

로스코: 음, 음 아냐, 아냐, 아냐. 기억날걸? 자, 뭐가 보이지? ( 사이 )


뭐가 보이냐고.

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처음 보았던 건 창 밖에 쌓여있던 눈이에요. 썰매 타


러 갈 수 있어서 기뻤죠. 아빤 항상 눈이 오는 토요일이면 저랑 여동생을 데리
고 설매 타러 가셨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거
에요. 보통 엄만 그 시간엔 아침을 차리셨거든요. 근데 정말 조용했어요. 슬리
퍼를 신고 거실에 나갔죠. 정말 조용해요. 그리고 추워요. 어딘가 창문이 열려
있나봐요. 복도 끝에 여동생이 보여요. 부모님 침실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근
데 이상한 건 흥건히 고여 있는 오줌 위에 서있어요. 멍하니 처다보면서.. 그
아이 눈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 본 건 창 밖에 쌓여있던 눈이
에요. 와, 눈이 어찌나 쌓였던지. 썰매 타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피..침대가 피범벅이에요. 벽에도 피가 .. 부모님이 침대위에 계세요. 그리고
칼도. 그건 분명 칼이였어요. 나중에 알게됬죠. 강도가 들었었고, 최소한 2인조
이라는건 나중에 듣게 되었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제가 뭘 해야 될지 모르
겠어요.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죠. 난 여동생이 더 이상 이걸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여동생이.. 몸을 돌려서 그 아이를 밀고 문을 닫았어요. 문고리에
도 피가..레드요. 그게 다에요.

로스코: 그 다음엔 어떻게 됐지?


켄: 그 다음에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우린 이웃집으로 갔고, 그분들이 경찰에
신고했죠.

로스코: 너희 둘은 어떻게 됐지?

켄: 주정부에서 저흴 맡았고, 같이 양부모들 집으로 보내졌어요. 정말 좋은 분


들이였죠. 하지만 저흰 이곳저곳 전념하게 됐어요. 뿌리를 내리지 못한 거죠.
여동생은 회계사랑 결혼했구요.

로스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켄: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죠. 그 어떤 장소도 갖지 못했어요.

로스코: 범인은 잡았나?

켄: 아뇨. 전 가끔 그 사람들을 그려요.

로스코: 부모님들의 살해범들을 그린다고 ?

켄: 어.. 상상해서요.

로스코: 허어.. 어떤데?

켄: 평범해요.

로스코: 러시아에 살 때 , 어린 시절 코사크 인들이 사람들을 베고 구덩이에


던지는 걸 봤어. 적어도 그것까지는 기억하는 것 같은데, 아니면 누군가가 나
한테 그런 얘기를 했던 건지도 모르지. 아니면 그냥 내가 그냥 드라마틱하게
구는 건지도 모르고.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어.

켄: 미국엔 언제 오셨어요.

로스코: 10살 때. 포틀랜드로 와서 아는 것 많고 말도 많은 유대인들과 개토해


서 살았지. 그때 난 마르크스 로치코비치였어.
켄: 이름을 바꾸셨어요?

로스코: 내 첫 번째 딜러 말이 자기 고객들 중에 유대인 화가들이 너무 많다는


거야. 그래서 마르크스 로치코비치는 마르 로스코가 됐지. 하, 이젠 아무도 내
가 유대인인지 몰라.

켄: 선생님 뭐하나 여쭤봐도 되요?

로스코: 안 돼.

켄: 정말 블랙이 두려우세요?

로스코: 아니! 빛이 사라진다는 게 두려워.

켄: 장님이 될까봐요?

로스코: 죽어간다는게.

켄: 그럼 블랙을 죽음으로 보시는 건가요 ?

로스코: 다들 그러지 않나?

켄: 선생님 의견 묻는 겁니다.

로스코: 그래, 난 컬러 블랙과 생명력 감소가 같다고 봐.

켄: 블랙은 부패와 어둠을 뜻하나요?

로스코: 아닌가?

켄: 선생님한테 블랙은 레드의 부재죠.

로스코: 블랙은 레드의 반대니까. 컬러 스펙트럼 말고 현실에서.


켄: 전 그림 얘기하는 건데요?

로스코: 그래 그럼 그림 얘기 해봐!

켄: 선생님 그림에서 대담한 컬러들은 디오니소스 적인 요소에 해당하죠. 그


컬러들은 아폴론적인 요소인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에 제어되고 있구요. 밝은
컬러들은 선생님의 열정이고 살아남으려는 의지구요. 선생님의 생명력 말이에
요. 하지만 블랙이 그 밝은 컬러들을 집어 삼키면 선생님은 그런 과잉과 화려
함을 잃어버리시게 되는 거죠. 그럼 선생님한텐 뭐가 남죠?

로스코: 계속해봐! 내가 봐도 난 너무 멋있단 말이야.

켄: 그 컬러들을 잃어버리시면 선생님한텐 내용 없는 질서만 남겠죠. 숫자 없


는 수학만 남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자들처럼.

로스코: 자 내말 명심해.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 컬러들을 지탱하기가 힘들어


져. 팔레트는 빛을 잃고 우린 컬러들이 사라지기 전에 달려가 붙들어야 해.

켄: 하지만 선생님 .

로스코: 뭐.

켄: 아니에요.

로스코: 뭔데!

켄: 화내실 거잖아요.

로스코: 내가?

켄: 네.

로스코: 뭐냐고!!
켄: 그냥 생각해봤는데, 블랙을 죽음으로 보는 건 좀 감상적인 것 같아요. 고
리타분한 것 같고 좀 낭만적이라고 할까?

로스코: 진짜?

켄: 그러니까 솔직하지 못한 거죠.

로스코: 그래?

켄: 현실에서 블랙은 그냥 도구에 불과하잖아요. 이런 황토색이나 자홍색처럼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거죠. 블랙을 악의적으로 보는 건 색채를 괴상하게 인격
화 하는 거라구요.

로스코: 그럼 화이트를 죽음으로 보는 건 어떻지? 눈 같은 걸로.

켄: 그건 다르죠. 그건 제 개인적인 반응이에요. 전 화이트를 토대로 모든 예


술적 감수성을 추구하진 않는 다구요.

로스코: 아니 그래야만 할 걸 ?

켄: 그건 아니죠!

로스코: 네 자신의 삶을 이용해봐. 왜 못하지?

켄: 못하는 게 아니라.

로스코: 두려운 건가 ?

켄: 두렵지 않습니다!

로스코: 그럼 그 모든 화이트를 파고들어!

켄: 두려운 게 아니라 그건 너무 자기중심적인 거니까요!


로스코: 그렇게 말할 수 도 있겠지.

켄: 모든 예술들이 사이코 드라마여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로스코: 왜 안 돼지?

켄: 그건 아니죠!

로스코: 부모님들의 살해범들을 그렸잖아.

켄: 그것만! 그리는 건 아닙니다!

로스코: 그것만! 그렸어야지! 그렇다면 블랙이 뭔지 이해하게 됐을 텐데.

켄: 다시 돌아왔네요.

로스코: 늘 그렇지!

켄: 최소한 화이트를 죽음으로 보는 건 식상하진 않죠.

로스코: 이제 난 식상하게 된 건가?

켄: 말하자면요.

로스코: 솔직하지도 않고 식상하다?

켄: 보세요. 화가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블랙은 그의 작품 속에 스며들기 시작


하죠. 속된 말로 내리막길에 접어드는거에요. 화가는 우울해져가고 죽음을 두
려워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가고, 연관성도 잃어가고, 작별인사를 하게 되죠.

로스코: 예외도 있어!

켄: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죠!


로스코: 이야 이제 넌 진실을 안다!

켄: 반 고흐를 보세요!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요. 컬러들로 가득해요. 야외로 나


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황홀한 옐로우와 블루를 그려냈죠. 그리고 권총 자살
했고, 아니면 마티스!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요. 위대한 원색들의 충격 그 자체
였죠!

로스코: 너한테 그 컬러들이 경이롭다?

켄: 당연하죠!

로스코: 왜!

켄:....마티스! 그는 죽어갔고, 자신이 죽어간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마티스여


야 했죠. 너무 아파서 붓을 쥐을 수 없게 되자. 가위로 종이를 잘라 콜라주 작
업을 했어요. 절대 포기 하지 않았죠. 죽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천장에 컬러패
턴을 조직하고 있었죠. 그는 마티스여야만 했으니까요!

로스코: 그런데 네가 보기엔 난 너무 낭만적이다 ? 기껏 생각해 낸 게 그게


다야? 마티스! 그 죽어가던 영웅은 가쁘게 마지막 숨을 헐떡이면서도 마지막
걸작을 창조해내려고 안간힘을 썼어! 잭슨 폴락.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아름다
운 청년은 고전적인 피에타 포즐한테 죽었고! 그리고 반 고흐! 모든 영웅에 언
급되고 모든 것에 상징이 되는 이해받지 못하는 순교자 반 고흐! 넌 그 화가들
을 모욕했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춘기적 사고로 그들의 위대함을 축소시켜
버린 거라고 . 그래, 그들과 사투를 벌여봐. 논쟁을 벌여보라고 . 하지만 그걸
로 그들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마. 그들을 따라잡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
들은! 니가 닿을 수도 없는 저! 넘어 에 있어! 그들과 평생을 보내! 그럼 그들
의 고통을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때까진 입 닥치고, 그들의 위대함이나 인정하란 말이야. ( 사이 ) 침묵은 너
무나 정확해!

켄: 커피 떨어졌는데 사가지고 올게요.


로스코: 그래, 아 잠깐. 런던에 내셔널 갤러리에 가면 램브란트가 그린 베르사
살의 만찬이란 그림이 있어. 구약 바니엘서에 나오는 그림인데 바빌론의 왕 베
르사살은 만찬을 베푼 자리에서 신을 모독해. 그래서 신의 손이 나타나 경고의
의미로 벽에 히브리어로 몇 자 적어. 그림에서 그 글자들은 어두운 캠퍼스 속
에서 뭔가 기적적인 것처럼 고동치고 있어. ‘ 매넬 매넬 테켈 우바르시. ’ 왕을
저울에 재어봤더니 부족하다. 블랙이 나한테 그래. 너한텐 뭐가 그렇지 ?

( 암전,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장면이 전환 된다. )


( 장면이 전환되고 엘비스 프레슬리 음악이 나온다. )

로스코: 그 자식이 날 죽이려고 해 .맹세할 수 있어. 그 놈들이 날 죽이려고


해! 그 버러지 같은 놈들이! 시건방지고, 속물적이고 성교에 눈 먼 그 개자식
들이! 바로 그 벽에 내 그림들이 걸려있었다고! 하, 그딴 게 좋다고? 내 갤러
리가. 내 벽들이! 쓰레기가 가득한 이스트 강처럼 오염되버렸어. 그 말도 안되
는 쓰레기들 때문에 그것까지도 숨이 막혀 버렸어! 듀크닝과 마넬과 수위스와
뉴먼과 폴락의 그 신성한 공간들이! 이 음악은 뭐야!!

켄: 엘비스 프레슬리요.

로스코: 알 수 없는 개소리군.

켄: 팝이에요.

로스코: 그게 뭐든. 네가 집세를 낼 때 음악을 골라.

켄: 전시는 어떠셨어요?

로스코: 그 젊은 화가들은 날 죽일 작정으로 나왔어.

켄: 너무 과격하신데요?

로스코: 아니 정확히 그래!


켄: 야수파화가들이 선생님을 죽이려고 한 다구요?

로스코: 그래!
켄: 프랭크 스텔라가요?

로스코: 그래!

켄: 로버트 라우센버우가요?

로스코: 그래!

켄: 로이 리히텐슈타인이요?

로스코: 누구 ?

켄: 만화책이요.

로스코: 그래!

켄: 앤디워홀이요? 노인네처럼 왜 그러세요?

로스코: 나 노인네야.

켄: 그렇게 늙지 않으셨어요.

로스코: 오늘 난 늙은이라고!

켄: 그러시다면 그런 거겠죠.

로스코: 중요한건 나 같은 사람들은 내 동년배들은 내 동료들은! 나와 함께!


등장한 화가들은!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거야. 우린 진지함
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켄: 정말 너무하시네요.
로스코: 뭐 ?

켄: 들으셨잖아요.

로스코: 방금 뭐라 그랬어?

켄: 뭘 보고 그 사람들은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거에요?

로스코: 그 자식들은 보라고!

켄: 봤습니다.

로스코: 평소처럼 말고 두 눈 부릅뜨고 보라고!

켄: 그렇게 봤습니다!

로스코: 그래서 뭘 봤는데 ?

켄: 아니에요.

로스코: 아아아 아니야 , 뭘 봤다며, 뭘 봤는데?

켄: 이 순간이요. 바로 지금.

로스코: 그 깃발들이나, 만화책이나, 수프 캔에서 ?

켄: 이 순간, 바로 지금, 그리고 약간의 미래도요.

로스코: 그리고 그게 좋았다?

켄: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아하죠.


로스코: 내 말이 그 말이야.

켄: 그러니까 예술은 대중적이면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로스코: 대중적이기만 하면 안 되지!

켄: 맘에 안 드시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프랭크 스텔라를 보면서 마크 로스코를


볼 때만큼 감동을 받아요!

로스코: 말도 안 돼.

켄: 진짜라구요!

로스코: 너 그 자식들의 문제가 뭔 줄 알아? 그건 바로 네가 말한 그대로야!


그 자식들은 바로 이 순간만을 위해서 그려! 그게 전부야! 완전 일시적이고!
완전 일회용이야! 크리넥스 처럼!

켄: 캠블수프나 만화책 처럼요.

로스코: 너 정말 앤디워홀이 100년 뒤에 미술관에 걸릴 거라고 생각해? 뒤젤


과 베르베르와 함께?

켄: 지금도 로스코 옆에 걸려 있던데요?

로스코: 그거야 돈이면 뭐든지 하는 그 빌어먹을 갤러리들 짓이고!! 아무리 쓰


레기 같고 천박해도 다 가르쳐 주지! 그건 일시야. 예술이 아니라고!

켄: 사람들한테 예술이 어떤 거라고 얘기 하시는 거 지겹지 않으세요?

로스코: 아니 천만에 사람들이 들을 때까지 할 거야. 그러니 너도 나한테 대놓


고 말하는 게 좋을 걸? 꺼지라고!

켄: 선생님은요. 지금 야만인들이 바로 눈앞까지 와서 화가 나신 거 뿐이에요!


그리고 아실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그 야만인들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로스코: 물론! 좋아하겠지. 그게 바로 빌어먹을 핵심이야! 사람들이 뭘 좋아하
는 지 알아 ? 행복하고 밝은 컬러들을 좋아해. 예쁜 것들을 좋아한다고! 아름
다운 것들을 좋아해! 빌어먹을. 누가 내 그림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난 그
냥 토해버릴 거야.

켄: 그게 뭐가 잘못됐어요?

로스코: 예뻐 , 아름다워, 근사해, 좋아! 그게 이 우리 인생이야. 모든 게 좋은


거! 우린 우스꽝스러운 빨간 광대를 쓰고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지고 티비는
행복한 것만 보여주고 모든 게 웃고 모든 게 웃기고 항상 즐거워야 하는 게
헌법에 의해 보장된 우리의 권리가 되어버렸다고! 안 그래? 우린 깔깔 거리는
분위기가 됐고 좋아 의 독재 아래 살고 있어. ‘ 오늘 어때 ? 좋아. 그 그림 어
때? 좋아. 저녁 먹을래? 좋~아. ’ 하지만 말이야. 모든 게 좋지만은 않단 말이
야! ‘ 어떻게 지내? 오늘 어땠어? 그 그림 어때? 아 혼란스러워, 묘해. 문제가
있어. 운이 없어. 난 좋지 않아 건강이 좋지 않아. 난 좋지 않아! 우린 좋지
않아! 우린 좋은 거 빼고 모든 거야!!! 이 그림들을 봐! 얘들을 보라고! 어두
운 사각형이 보여? 출입문 같은, 구멍이야. 하지만 맹렬하고 더럽고 원시적인
진짜인 무언가를 소리 없이 내지르고 있는 벌어진 입이라고! 근사하지 않아.
좋지 않은! 진짜인 무언가에 환희에, 시적이고 저주 받은 그 무엇! 만화책이나
수프 캔이 아닌! 널 뛰어넘는, 지금을 뛰어넘는! 그 무엇! 불멸의 무엇! 뭐가
됐든 그건 좋지도 예쁘지도 않은 거야. 난 니 심장을 멈추게 하려고 여기 있는
거야. 알아? 난 니가 생각하게 하려고 그림을 그린다고! 예쁜 그림이나 그리겠
다고 여기 있는 게 아냐!

켄: 입체파 화가들도 그렇게 말하겠죠. 선생님이 그들을 짓밟아 죽이기 전엔!


정말로 비극적이야. 살아있는데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돼버리다니. 맞죠?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돼.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전부 선생님이
하신 말씀 아니신가요? 선생님과 동료 분들은 입체파와 초 현실주의 자들을
그렇게 몰아내셨죠! 와, 정말 즐거우셨겠어요. 근데 이젠 선생님 차례가 되셨
는데 선생님은 더 이상 물러날 생각을 안 하세요. 자 ! 이제 그만 퇴장하시죠!
로스코 선생님! 왜냐하면 팝아트가 추상표현주의를 몰아냈거든요. 전 그저 그
들이 선생님과 선생님의 동료 분들보다 조금 더 조금이라도 동정심이 있길 바
랄 뿐이에요. 약간이라도 위엄 있는 모습으로 퇴장하시게 해주시길 기도할 뿐
이라구요. 생각해보세요. 이 죽어가는 종족의 마지막 헐떡임을. 헛된 노력이죠.

하지만 걱정하지마세요. 언제라도 돈 받고 메뉴판에 싸인 할 수 있잖아요?

로스코: 네가 감히?

켄: 제가 어디 사는지 아세요?

로스코: 뭐?

켄: 제가 어디 사는지 아시냐고요.

로스코: 아니.

켄: 업타운? 다운타운? 브룩클린?

로스코: 아니.

켄: 제가 결혼을 했을까요?

로스코: 뭐?

켄: 제가 결혼을 했을까요? 연애 중일까요? 동성애자? 아니면 뭘까요?

로스코: 도대체 나한테!

켄: 여기서 일한 게 2년째에요!! 하루 8시간 주 5일을요. 근데 선생님은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죠.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는 말씀이 없으셨죠. 집에 부르
신 적도 없구요.

로스코: 그래서?

켄: 제가 화가인 건 아시죠? 그렇죠?


로스코: 그런 것 같더라.
켄: 아뇨 . 정확히 말해보세요. 제가 화가인 걸아시죠?

로스코: 그래.

켄: 한번이라도 제 그림 보자고 하신 적 있나요?

로스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켄: 왜 그래야 하냐구요?

로스코: 넌 고용인이야. 이건 나에 대한 거야. 여기 있는 모든 건 나에 대한


거야! 맘에 안 들면 떠나! 아~ 이렇게 된 거야? 아이가 상처 받은 거야? 아빠
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아서 ? 엄마가 안아주지 않아서?

켄: 그만하세요.

로스코: 내 탓 하지 마. 너희 부모를 살해한 건 내가 아냐.

켄: 그만하시라구요!

로스코: 가서 정신과 의사나 찾아봐. 나한테 징징거리지 말고. 니 그 결핍! 지


겹다.

켄: 지겹다구요? 지겨워요?? 세상에..먹고 살려고 선생님 밑에서 겨우 이거였


죠! 떠들고, 떠들고, 떠들고, 와! 언제쯤 저 놈의 입을 다무는 순간이 올까. 정
작 자기 밖에 모르는 저 인간이! 거기 서서 존나 심오한 척 노력하고 있는데
결국 자기만 중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독불장군에 불과하죠. 끝도 없는 잔
소리의 장광설! 몇 주 동안 존나 캠버스만 바라보자! 그리지 말고 그냥 보기만
하자!
그 가식하면.. 세상에 그 가식 말이에요. 그 점을 두곤 선생님을 따라갈 화가
를 떠올릴 수 없어요! 미술사에서 선생님처럼 중요한 인간이 돼보겠다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 화가는 없을거라구요! 이 시발 그거 아세요? 모든 게 그렇게
항상 중요할 필욘 없어요. 모든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쥐어뜯고! 영혼을
드러내야 하는 건 아니라구요. 실제로 모든 사람이요.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술
을 원하는 건 아니라구요. 때론 그 빌어먹을 정물화나 풍경화 수프 캔 이나 만
화책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구요! 선생님도 그걸 깨달을 기회가 있었겠죠?
이렇게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잠두고 자연광이라곤 손톱만큼도 들어오지 않는
여기 이 잠수함에 자기 자신을 가둬두지 않으셨다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죠.
왜? 자연광은 선생님에게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선생님한테 그 무엇도 충분하
지 않죠. 선생님 그림을 구입하는 사람들마저도. 미술관은 무덤에 불과하고 갤
러리들은 돈 좋아하는 사기꾼이 놀아나고, 콜렉터들은 천박한 성공에 목을 매
는 인간일 뿐이죠. 아니 대체 선생님 그림을 소장할 자격이 있으려면 얼마나
고귀해야하는거죠? 아니 그런 사람이 있긴 한건가요? 진짜 질문은 이렇게 하
는 게 맞겠네요. 선생님 그림을 볼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있긴 한건가
요? 그런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그거죠? 맞죠? ‘ 우리 모두를 저울에
달아봤더니, 우리 모두가 부족하더라! ’ 선생님은 진짜 인간을 찾으면서 지냈
다고 하셨죠? 공감하면서 선생님의 그림을 봐줄 사람들을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믿을 수 없게 되셨어요. 그래서 완전히 믿음을 잃으셨
고! 완전히 희망을 잃으셨고! 그래서 블랙이 ! 레드를 삼켜버린거라구요!.....
선생님은요. 진짜 인간이 바로 코앞에 있어도 이젠 못 알아보게 되신거라구요.
그만하죠.

로스코: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마.

켄: 이건 게임이 아니에요.

로스코: 핵심을 찌르는 지적을 했어. 물론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켄: 그렇겠죠.

로스코: 사람들이 내 그림을 어떻게 볼까 하고 생각하면 우울해져. 그들이 친


절하지 않다면. 그림을 파는 건 앞 못 보는 아이를 면도칼이 가득한 방안으로
들여보내는 거 같은 거야. 그 아인 아플 텐데. 고통을 몰라. 전에 다쳐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난 이 그림들을 가지고 다른 걸 시도해보려는거야! 얘들은 그
렇게 쉽게 상처받지 않을 거야. 더 건강하고! 대지의 색조들은 얘들에게 힘을
줄 꺼야! 얘들은 혼자가 아니야. 연작이라고. 늘 곁에 있고 서로를 보호하게
될꺼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는거야. 성찰과 만전의 장소.

켄: 명상의 장소요.

로스코: 그래.

켄: 아무런 방해도 없는.

로스코: 그래.

켄: 신성한 장소.

로스코: 그래.

켄: 예배당.

로스코: 그렇지.

켄: 포시즌 레스토랑처럼 말이죠. 적어도 앤디워홀은요 농담은 알아들을 걸요?

로스코: 아니, 넌 이해 못해

켄: 거긴 대기업 소유의 대형 고층 빌딩 안에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이죠. 제가


뭘 이해하지 못했죠?

로스코: 넌 이해 못해! 내 의도를.

켄: 선생님 의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여생을 그 그림들 옆에서 강의나 하면서


보낼 생각이 아니 시라면요. 아 진짜 그러고 싶으실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림
은 스스로 얘기해야 되는 거죠. 아닌가요?

로스코: 그래 , 하지만

켄: 그냥 위선자라고 인정하시죠. 현대미술의 거장께서 소비의 사원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시잖아요. 예술의 상업화를 비난하지만 결국 선생님 돈 받으셨잖아
요.

로스코 : 난!

켄: 물론 선생님은 명성 적 경희에 가득 찬 성전을 만드시는 거라고 뭐 자기


자신을 속일 순 있겠죠. 하지만 현실은요. 돈 많은 갑부들을 위한 또ㅍ다른 식
당을 장식하는 것뿐이에요! 이건 그냥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벽난로 위 장식
품들 이라구요!

로스코: 내가 왜! 이 의뢰를 받아 들였다고 생각하지?

켄: 허영심 때문이죠.

로스코: 뭘 보고?

켄: 그 사람들은 듀크닝한테 갈 수 도 있었지만 , 선생님한테 왔죠. 이건 시스


틴 성당 이후에 가장 화려한 벽화의뢰잖아요.

로스코: 넌 거절했겠어?

켄: 즉시요.

로스코: 하하 말이야 쉽지.

켄: 이게 뭔 줄 아세요? 이게 바로 선생님의 그 빌어먹을 올즈모빌 컨버터블


이에요! 제발요..선생님 돈, 명예 그런거 필요 없으시잖아요. 뭐 하러 씨그램같
은 회사 때문에 스스로를 위선자로 만드시는 거에요 ?

로스코: 돈 욕심에 이 일을 수락했던 게 아냐! 나도 많이 생각했어!

켄: 물론 그러시겠죠.

로스코: 아, 물론 내 허영심을 자극한 것도 있어. 나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많


이 망설였어. 이게 타락은 아닐까. 비도덕적이진 않나. 부르주아의 변덕에 장
단 맞춰주는 건 아닐까. 이걸 해야만 하는 걸까!! 유럽여행에 오를 때만 해도
난 벽화들이 어떻게 보여 질 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다 피렌체에 있
는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도서관에 갔는데 , 가본 적 있나?

켄: 아뇨.

로스코: 거기 가면 계단 방을 꼭 찾아보도록 해. 숨겨져 있거든. 3단으로 된


작은 계단 방인데 납골당처럼 아주 비좁아. 근데 미켈란젤로는 그 밀폐된 공간
을 끌어안고 가짜문과 창문들을 만들어 냈어. 벽 위까지 풍부한 레드와 브라운
의 직사각형들로 . 바로 그거야. 그는 내가 포시즌에서 추구하려는 어떤 느낌
을 추구해냈어. 관람객들에게 모든 문과 창문들이 벽돌로 막혀버린 방안에 갖
혀있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지. 결국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 영원히
벽에 머리를 들이박는 것뿐이지! 그래. 거기가 뉴욕 최고의 부자들이 와서 음
식이나 씹어대면서 잘난척 해댈 장소인 걸 알아! 그래서 난! 빌어먹을 그놈들
의 식욕을! 완전히 망처버리고 싶은거라고!

켄: 씨그램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하셨어요?

로스코: 아, 그자들이 벽화들을 퇴짜 놓는 다면 정말 좋을텐데. 물론 그런 일


은 없겠지만 . 한잔할까?

켄: 그래야겠어요. ( 사이 ) 잘 모르겠어요.

로스코: 뭘.

켄: 선생님 얘기를 믿어도 될 지요.

로스코: 무슨 얘기.

켄: 벽화들 얘기요. 선생님의 그 악의에 찬 의도들이요. 늙은 사자는 여전히


포효하고 여전히 도발하고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고 부르주아들은 쑤셔
대고 있고! 아, 진짜 모르겠어요!
로스코: 네가 볼 땐 너무 낭만적이다?

켄: 그림들한테 너무 잔인하잖아요! 선생님 그림들은 무기가 아니에요. 선생님


은 그림들한테 그럴 수 없어요! 그림을 모욕할 수 없어요! 만약 그런 생각에서
시작하셨을지 몰라도 결국 예술이 일어나죠. 선생님은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게 선생님 일이니까요! 그래서 자기모순에 빠지신거죠. 코너에 몰리신 거라구
요!

로스코: 아니, 넌 틀렸어. 그림들의 힘은 그들의 있는 장소들을 초월해. 함께


작용하고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서로에게 속삭이면서 그림들은 여전히 장소를
창조해내. 내가 속이는 것 같나? 네가 볼 땐 이게 엄청난 자기기만이겠지?
대답해봐. 대답해!

켄: 네! 전 해고죠. 그렇죠?

로스코: 해고..( 사이 ) 넌 처음으로 존재 했어! ( 퇴장하며 ) 내일 봐.

(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켄, 정면을 응시한 뒤 암전.)


( 음악이 어두운 음악으로 바뀐 뒤, 조명이 켜진다. 로스코 의자에 기대 누워
있다. 손목엔 빨간 액체가 흐르고 있다. )

켄: 음악 좀 줄일까요? ( 사이 )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로스코: 어..으..어..그림을 그리려고 했어.

켄: 그러 신 것 같네요. 붓 갖다 드려요? 아니면 수건 갖다 드려요?

로스코: 거길 다녀왔어.

켄: 어디요.

로스코: 포시즌 레스토랑.

켄: 아..
로스코: 어제 너하고 그렇게 떠들고 나서 거길 다녀왔어. 저녁 먹으러.

켄: 네.

로스코: 오픈 한지 2주가 돼서야 이제 한번 보고 와야겠다 싶어서.

켄: 그리고요?

로스코: 52번가에서 들어갔어. 계단을 올라가면 레스토랑이 나와. 식당을 보기


도 전에 소리부터 들려. 잔들 부딪히는 소리. 은식기 들 . 목소리들. 소리죽여
속삭이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록 점점 더 커져. 경박한 소리들이야. 마치 총으
로 강요당하는 느낌이야. 안으로 들어가면 옷자락이 너무 촌스러운 것 같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유대인적인 것처럼 느껴져. 이름을 대. 예쁜 호스
티스가 널 한번 쳐다봐. 당신이 누군 줄 알지만 그닥 인상적이진 않네요. 여긴
백만장자들이 식사하는 곳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 여자가 손가락을
튕겨 매트르빌을 부르고, 매트르빌은 캡틴을 부르고, 캡틴은 헤드웨이터를 부
르고, 헤드웨이터가 날 데리고 테이블들 사이를 지나서 내 자리로 가는데, 사
람들은 연신 돌아보고 모두들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마치 맹수들처럼 말
이야. 당신 누구지? 재산이 얼마나 되지? 당신을 두려워해야 되나? 당신과
친해져야 되나 ?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야. 와인담당자가 와서 불어
로 주문을 받아. 넌 불편하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와인담당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넌 그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고 뭔가 비싼 걸 주문해서
너 자신을 더 당혹하게 만들어. 그 사람은 아무런 인상도 받지 않고 가버려.
그러다 주위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이 들려와. 들을 수밖에 없어. 근데 그게 정
말 최악이야. 목소리들, 원숭이들의 수다와 자칼들의 울부짖음. 이건 인간이
아니야. 그리고 모두들 똑똑하고 웃고 아무도 아무 곳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아무도 아무 곳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그저 하는 일이라곤 떠들고 짖고 먹고
나이프와 포크는 부딪히고, 말들은 자르고 이는 씹고 으르렁대! 그런데 그곳에
서.. 거기서.. 내 그림들이 내내 살게 될 거야..궁금해. 얘들이 날 용서해줄까?

켄: 그냥 그림들일 뿐이죠.

로스코: ( 전화를 걸러 간다. ) 것 좀 꺼줘. ( 노래가 꺼진다. 전화를 어디론가


건다. ) 아. 필립 존슨 씨 부탁해요. 나 마크 로스코요. 아 필립? 나 로스코요.
너무 언짢게 듣진 마요. 어제 저녁 식당에 갔었는데, 그런 식당에서 그런 금액
을 주고 그런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내 그림들을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소. 돈
을 돌려보내고. 그림은 내가 가지고 있죠. 아아, 유감은 없어요. 아마도 이렇게
될 일이였나봐요. 행운을 빕니다!

켄: 이제야 마크 로스코가 되셨네요!

로스코: 좀 더 가난해진?

켄: 돈이 있다고 부자는 아니죠.

로스코: 도움이 되긴 해.

켄: 선생님 오늘은 역사에 남을 날이에요!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로스코: 넌 해고야.

켄: 뭐라구요?

로스코: 넌 해고라고.

켄: 왜죠 ?

로스코: 알 것 없어.

켄: 아니 알아야 겠어요.

로스코: 주소나 적어줘. 마지막 월급 보내주지.

켄: 적어도 설명은 해주셔야죠.

로스코: 난 너한테 빚진 거 없어.


켄: 2년 동안 선생님 밑에서 일했는데, 그냥 순순히 그만 둘 거라고 생각하세
요?

로스코: 환송회라도 열어줄까?

켄: 이유를 알아야겠어요.

로스코: 네가 알빠아냐!

켄: 이유를 알아야 겠어요!!

로스코: 이봐! 넌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 나가! 난 필요 없어! 난 니 요구가


필요 없다고! 너 7살 때부터 집을 찾고 있었지? 하지만 여긴 아냐. 난 니 아버
지가 아니고, 니 아버진 돌아가셨다고! 기억나? ..미안. 그게 이유야.

켄: 어서요. 프로이드 박사님 . 그것뿐이 못하겠어요? 왜죠?

로스코: 이미 얘기했어.

켄: 왜죠?

로스코: 조수는 필요 없어.

켄: 헛소리 하지 마세요!

로스코: 넌 말이 너무 많아!

켄: 선생님이 더 많아요.

로스코: 취향은 정말 끔찍해.

켄: 아 정말 말도 안돼요!

로스코: 네가 지겨워졌어!
켄: 말도 안돼요!!

로스코: 왜냐면!! 니 인생은 저 밖에 있으니까! 내 말 잘 들어. 넌 더 이상 나


하고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어. 니 동료들을 찾아. 너 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
가야해. 너 자신의 삶을! 넌 이제 밖으로 나가야돼. 세상 속으로. 사람들을 향
해 니 주먹을 흔들어 대고, 니 주장을 펼치고! 사람들이 널 보게 만들어야 해.
내가 니 나이였을 땐 예술은 외로운 것이 였어. 갤러리도 컬렉션도 평론가도
돈도 없었지. 멘토도 없었어. 우리한텐 부모는 없었어. 우린 혼자였어. 하지만
그때가 최고의 시간들이였어. 왜냐하면 우린 잃을 건 없어도! 비전만은 가득했
으니까! 이제 됐어?

켄: 네..감사합니다.

로스코: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봐. ( 사이 ) 뭐가 보이지 ?

켄: 레드요.

( 켄 퇴장한다. 무대엔 로스코만이 남아있다. 무대엔 큰 캠퍼스에 새빨간 레드


로 칠해진 작품이 남아있다. 그걸 다시 바라보는 로스코 )

( 음악이 나오고 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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