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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로드 12권 성왕국의 성기사 上

1장 [마황 얄다바오트]

2장 [구원을 찾아서]

3장 [반격작전 개시]
1장 [마황 얄다바오트]

1.

로블 성왕국은 리 에스티제 왕국의 남서쪽에 있는 반도를


영토로 삼고 있었다.
신앙계 마법을 행사하는 성왕을 정점으로, 신전세력과의
융화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종교색이 짙은 국가였다. 그렇
다고는 해도, 슬레인 법국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특색을 가진 로블 성왕국의 국토에는, 두 가지 정도
의 드문 점이 있었다.
하나는 바다에 의해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져있는 점이었
다. 물론, 국토가 완전히 갈라져있다는 것은 아니었고, 거대
한 만- 종으로 약 40킬로, 횡으로 200킬로에 달하는 것- 에
의해 옆으로 눕힌 U자의 형태를 한 국토를 구성하고 있었
다.
이것 때문에 북부 성왕국과 남부 성왕국이라고 부르는 사
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하나.
반도의 입구에, 북쪽에서 남쪽까지 총 100킬로 길이를 넘
는 성벽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성왕국의 동쪽, 슬레인 법국과의 사이에 존재하
는 구릉지대에 사는 다양한 아인부족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상당한 시간과 국력을 투자해서 건설된 두텁고 훌륭한 성
벽은, 아인들의 존재 때문에 얼마나 성왕국이 고통받고 눈
물 흘려왔는가를 시사하고 있었다.
아인과 인간은, 그 능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확실히, 고블린 같은, 인간보다도 나약한 아인이 일부 존
재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인간보다도 키가 작고, 육체적 능력, 지성, 그리고
마법영창자가 태어나는 비율 등에서, 인간보다 열등한 종족
이다.
하지만 그런 고블린조차도, 암흑 속을 꿰뚫어보는 눈과,
지형지물 등에 숨기 좋은 작은 체구를 이용하면- 예를 들면
기습으로 벌어지는 야간 삼림전투 등- 인간에게 있어서 성
가신 적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아인의 대부분은 인간보다도 강인한 육체를 가지
고 있고, 또한 선천적으로 마법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종
족도 적지 않았다. 아인들의 침공을 허용하면,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해 지불해야할 피는 놀랄 정도의 양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왕국은 방비를 단단히 한 것이다.
아인들을 이 국토에 한 걸음도 들이지 않기 위해서.
한 걸음이라도 들어오려고 한다면 죽을 각오로 응전할 거
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진 성벽이었지만, 문제점이 있었다.


이것을 완벽하게 유지하려고 하면, 막대한 병력을 그 곳
에 상시 배치해둬야만 했다. 과거 성왕국의 수뇌부는, 아인
들 중의 1개 부족이 침공해왔을 경우의 타도 가능 병력이라
는 것을 계산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아인들이 공격해오기 전에 나라가 파탄난다는 것
이었다.
쓸데없이 노는 병력을 만들어둘 여유는 없었지만, 충분한
병력을 배치해둘 필요는 있었다.
성왕국의 역사- 성벽이 만들어진 이후의- 속에서, 가장
영토를 유린당한 것은 장마 중의 침공에 의한 것이었다.
흡반이 달린 손이나 멀리까지 뻗을 수 있고 마비독이 나
오는 혀 등을 가진, 상위종에 이르러서는 <카모플라쥬(녹아
들기)>의 마법처럼 피부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스라쉬라는
종족이, 야습을 해왔던 것이다.
성벽을 넘은 스라쉬들은 그대로 서쪽으로 진격.
몇 개의 마을이 희생당했고, 아직도 스라쉬들이 성왕국
내에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사라지지 않을 정
도의 비극을 만들어냈다.
이런 비극을 생각하면 병력은 넉넉하게 유지하고 싶었지
만, 그렇다고 모두 대기시켜 놓아서는 나라가 피폐해지고
만다. 그래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를 공존시키기 위해서
나라가 취한 방법은, 긴 성벽에 일정간격으로 작은 성채를
만들면서, 거기에 몇 개의 성채를 통괄하는 거대한 요새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성채에 배치되는 것은 시간을 끄는 전투에 특화된 소수병
력. 습격이 벌어지면 즉시 봉화를 올리고, 요새에 원군을
요청하도록 했다. 또한 각 성채를 순회해서 성채 간의 벽을
순찰하고, 유사시에는 예비전력이 될 수 있는 중대를 조직
해서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렇게 그 이후로는, 성벽에서 성왕국 쪽으로 아인들이
침공하는 일은 없어졌다.
다만, 당시의 성왕국 수뇌부는 편집증적으로 조심성이 많
았다. 이렇게 대책을 세워놓고도 요새선에서 안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압도될법한 거대한 성채도, 인간의 배에 달하
는 체구의 종족이나 비행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리 위협적이지 않다. 아무리 견고한 요새라고 하더라도, 아
인들의 특수한 능력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당시의 성왕은 과단성 있는 사람으로, 벽을 넘어왔을 때
의 대책에도 착수했다. 그것이 국가 총동원령이었다.
성왕국의 백성에게는 징병령이 시행되게 되었다. 성인이
되면 성별에 상관없이, 일정기간 병사로서 훈련을 받고, 실
제로 성벽에 배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아인
들이 성벽을 넘어왔을 때, 병력으로 국토를 방위하려고 생
각한 것이다.
일정 이상의 규모의 거주지의 방위력 강화도 실시되었다.
국군이 올 때까지 마을 사람들이 버티기 위한 것이고, 병탄
의 거점으로서 이용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성왕국의 마을이나 촌락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견고함으로, 군사거점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되었
다.

요새선에는 3개의 거대한 성채가 존재한다. 그것은 100


킬로에 달하는 장대한 벽에 세 개 밖에 없는 문을 지키기
위한 방위시설이었으며, 주위의 작은 성채에 보낼 원군을
대기시키는 주둔기지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 아인들의 침
입을 허용해서 국가 총동원령이 발동되었을 경우에는, 규합
한 대병력과 협공해서 싸우기 위한 거점도 되었다.
그 중 하나인 중앙부 거점.
석양이 지평선 저편에 가라앉았고, 붉게 물들어가는 대지
가 점점 어둠의 빛깔에 지배되어갔다.
성벽에 다리를 걸치고, 붉게 물든 대지- 서쪽의 구릉지대
- 를 노려보고 있던 남자가, 다리를 내렸다.
기골이 장대한 남자였다.
굵직한 목, 갑옷을 입고 있어도 알 수 있는 두터운 가슴,
걷어올린 소매에서 튀어나온 튼튼한 팔. 어느 부분을 보아
도 튼실하다고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남자였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노출되어온 바위 같은 얼굴은, 굵은
눈썹과 마구 자란 수염 때문도 있어서 야성미가 넘치고 있
었다. 두터운 몸과 우락부락한 풍모가 합쳐지면 오히려 조
화가 맞춰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눈만이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작고, 둥그스름한 눈은 소동물과도 같아서, 그것이 자아
내는 위화감은 우스움마저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구름이 놀랄만한 속도로 흘러갔다. 얄팍한 베일
너머에 밤하늘의 빛이 보였지만, 하늘 가득 별이 있는 정도
의 빛이 지면에 쏟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남자가 콧구멍을 벌리자 초가을의- 겨울의 향내가 희미하
게 섞인 차가운 공기에서 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녁놀만이 지평선을 물들이고, 짙은 보랏빛의 하늘이 보는
사이에 세력권을 확대시켜갔다.
구릉지대에 등을 돌린 남자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병사들
의 얼굴을 살폈다.
그를 신봉하고, 모여든 병사들은 역전의 맹자였다. 그런
전사들도 그 표정에 느슨함이 섞여있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의 업무를 마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이봐. 누구, 날씨 관측사한테 오늘밤의 예보 들어온 사
람 있나?"
그 몸과 마찬가지로, 남자에게 어울리는 굵직한 목소리로
하는 질문에,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들은 사람이 없는 것 같
습니다. 캄파노 반장 각하."
남자- 오를랜드 캄파노는 성왕국의 병사계급 중에서는 상
당히 낮은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성왕국의 병사계급은 아래에서 훈련병, 병사, 상급병사,
반장, 대장, 병사장...이 된다. 물론, 소속된 부대에 따라서
는 다른 계급도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병사들의 경우 이렇
게 구성된다.
반장은 결코, 각하라고 불릴만한 지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각하라고 부른 병사가 오를랜드를 놀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의 태도나 말투에서는 존경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역전의 강자의 분위기를 풍기는 병사들 전원이 오를랜드에
게 보내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런가. 그렇군."
오를랜드는 천천히 자신의 엉망으로 수염이 자란 얼굴을
쓰다듬었다.
"각하, 시간을 주신다면 제가 즉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만?"
"응?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우리들의 일은 여기까지.
이 다음은 그 사람들이 맡을 일이니까."

오를랜드 캄파노.
강함만으로 자랑스러운 성왕국 아홉 색(色) 가운데 한 색
(色)을 선대 성왕으로부터 받았다는 실적을 가진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반장이라는 낮은 지위에 머물러있는 것은,
오를랜드에게는 두 개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성격- 타인의 명령을 듣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가 강함을 중시하는 부분.
이 두 개가 융합되어, [나한테 명령하고 싶다면, 일단 싸
워서 내 등이 땅에 닿도록 만든 다음에 해라]라는 행동으로
나선다. 그리고 강자를 보면, [너 강해보이는데. 나랑 실력
좀 겨뤄보자]라며 어느 한 쪽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싸우려
고 드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 귀족이나 상관 상대로 폭력사건을 빈번하게
일으켜서, 강등당한 횟수는 10번에 이르렀다.
군대에서는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인간은 필요가 없었고,
미움을 받았다. 보통이라면 교정을 받거나 추방당해도 이상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그가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이기 때
문에 동경하는 사람도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허약한 귀족에게 턱짓으로 명령받는 일에 불만을 품고 있
던 난폭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실력으로 자신의 뜻대로 사
는 오를랜드의 삶은 통쾌함 그 자체였다는 모양이다.
그의 팀은 그런 난폭한 이에게 매료된 사람들이 모인 우
연대(愚連隊 - 역자 주 : 깡패를 가리키는 속어), 아니 우연
반이었다.
소속된 사람의 숫자도 많고, 대(隊)라고 해도 과언은 아
닐 정도의 인원이 있었으며, 거기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반에 소속된 인원들도 나름대로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상
관들도 불편하게 여겼지만 건드릴 수는 없는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오를랜드의 시선이 움직이고, 그들을 향해 접근해오는 남


자를 인식하고는, 덤벼드는 육식동물 같은 미소가 천천히
그려졌다.
오를랜드가 굵직한 남자인데 비해, 그 남자는 가늘었다.
하지만 나뭇가지처럼 가는 것과는 달랐다. 가느다란 강철이
라고 표현해야할 것이었다. 망치로 두드리고 두드려서, 쓸
데없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용도에 맞추어 인간이 만들
어낸다면 이렇게 된다는 견본 같은 가느다람이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눈은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날카로
웠다. 검은 눈이 작기까지 해서, 떳떳한 직업을 가진 사람
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잘 봐줘도 암살자. 그보다 더 안 좋
으면 그냥 살인귀였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이제 등장이십니까, 야간
담당 나으리. 잘 오셨습니다그려."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그렇게 조용한 발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옷차림은 오를랜드와는 전혀 달랐다.
오를랜드나 주변의 부하들의 무장은, 랑카우(牛)라는 마
수의 가죽을 몇 겹이나 겹친 중장 가죽갑옷에 소형의 원형
방패, 그리고 한쪽에만 날이 선 검이라는 성왕국 강병의 장
비였다. 참고로 오를랜드만은 같은 검을 허리에 8자루나 차
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남자는 마법이 담긴 경장 가죽갑옷. 오른가슴
에는 올빼미, 왼쪽가슴에는 성왕국의 문장이 새겨져있었다.
"...오를랜드. 네 반에서 보고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상관
에게 그 태도는 뭐냐? 불경하기 짝이 없군. 몇 번을 주의해
야되겠나."
"이거 실례, 병사장 공."
오를랜드가 대충 경례를 하자, 그의 반원(班員)들도 일제
히 경례했다. 부하들의 그것은 귀족이나 평범한 상관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진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분명한 경의
가 존재했다.
남자는 [하아]하고 보란듯이 한숨을 쉬었다. 납득은 하지
않았지만, 이 이상 말해봐야 의미는 없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게 됐수다, 나리. 하지만 전부터 이런 성격이 고
쳐지질 않더란 말이오)
오를랜드가 이 남자에게 그나마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
가 오를랜드에게 승리했기 때문이다.
(여길 관두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이기고 싶군요. 당신의
씨름판에서. 안 그렇수? 파벨 바라하 병사장 나으리)
남자- 파벨 바라하- 의 이명은 밤의 문지기. 오를랜드와
마찬가지로 아홉 색 가운데 하나를 맡은 남자였다.
등에 멘 크고 훌륭한 만듦새의 활에는 마법의 흐릿한 광
채가 깃들어 있었고, 허리에 찬 화살통에도 비슷한 광채가
깃들어있었다. 이것들이 나타내듯이, 그는 궁병이었다. 그
것도 백발백중이라고 일컬어지는 초명사수였다.
"매번 생각하는 겁니다만, 밤에 일하는 것도 고생이겠군
요. 아인들은 대개 어두운 곳에서 별 영향을 안 받고, 싸우
기는커녕 발견하는 것만해도 쉽지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나서는 것이다. 아인과 같은 눈
을 갖기 위해서는 타고난 특이한 힘이나 마법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훈련뿐이다. 우리는 그 훈련을 받았지."
"예이예이. 자랑스러운 따님도 그랬죠, 아마?"
파벨의 뺨이 움직였고, 오를랜드는 자신의 실언을 후회했
다.
술자리에서조차 조금도 표정이 변하지 않는 이 남자가 얼
굴을 움직이는 것은, 대개, 딸과 아내가 화제가 되었을 때
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 제법 우수한 아이지."
-시작됐다. 시작되버렸다.
오를랜드의 후회와는 상관없이, 파벨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째서 성기사 같은 것이 되려고 하는
지 알 수가 없어. 그 아이는 나약한 아이다. 절대 완력이 전
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애는 유충이 무섭다고 울어버리
는-. 아까 완력이 전부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아내를 제외한... 아내도 그런 구석은 있는데-. 나를 닮
아 정말로 귀엽다, 아니, 나를 닮았다는 얘기는 불쌍-. 다만,
그 애에게는 검의 재능이 없다는 것이 유감이야. 하지만 활
의 재능은 있다. 그 쪽을 단련하면 좋겠지만, 성기사는-"
긴 이야기를 한쪽 귀로 흘려들으면서, 중간중간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있었는데,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봐,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당연한 질문이 날아왔다.
(...아니, 안 듣고 있었습죠. 아마, 세 번째쯤부터)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서야, 평소
의 오를랜드라면 틀림없이 불쾌한 듯이 [안 들었다]고 대답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의 파벨에게 그 대답은 큰 실수
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번 더]라는 말을 들은 경험
이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정답은 이것이었다.
"듣고 있었습니다. 정말 귀여운 따님이시군요."
파벨의 표정이 급변했다. 오를랜드마저 긴장할만한 악귀
나찰 같은 표정이었지만, 사실 쑥쓰러워하는 것뿐이었다.
파벨의 뇌가 남이 딸을 칭찬했다는 기쁨을 맛보면서, 다
시 딸의 자랑을 늘어놓고 싶다는 욕구를 이겨낸 찰나를 잘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금 지옥이 시작되고 만다.
[그런데-] 딸의 이야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다. [-야간 업무는 체내 시계가 이상해
지진 않는 겁니까? 몸상태,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파벨의 연쇄살인마 같은 표정이, 평소의 살인자의 표정으
로 돌아왔다.
"...그 질문은 몇 번째인가? 대답은 평소와 다름없네. 딱
히 신경쓰이지 않아.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같은 것에
집착하지? 본심은 뭔가?"
알고는 있었지만 이 급격한 변화에는 늘 놀랐다.
아까까지의 당신은 어디로 간 거야, 라고 딴지를 걸고 싶
었지만, 지옥이 다시 시작되는 것은 오를랜드도 바라지 않
았다.
"...하아. 본심, 말입니까? 이상한 질문이군요. ...단순히
나를 이긴 남자가,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몸상태가 안 좋아
져서 은퇴라도 했다간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긴 다
음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요."
옛날, 이 성채에 소속되었을 무렵의 오를랜드는, 스스로
떠올리는 것조차도 부끄러울 정도로, 우쭐해있었다. 실력있
는 병사들이 자신을 동경해서 모여들고, 한 층 더 우쭐해졌
을 무렵, 어떻게 된 일인지, 파벨과 모의전을 하게 된 것이
다.
오를랜드의 특기는 검- 근거리전. 그에 비해 파벨의 특기
는 활- 원거리전.
두 사람이 싸우게 되면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싸워야하는
가가 중요해진다. 하지만 파벨이 스스로 근거리전을 해도
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오를랜드는 패배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를랜드는 파벨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리
고 동시에 다시 싸워서 이기고 싶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었
다. 이번에는 파벨의 특기분야, 원거리전에 적합할만큼의
거리를 두고, 그것을 뛰어넘어 이기고 싶다고.
"그런가. 싸우고 싶은가, 나와. 그것도 전성기, 몸에 아무
런 이상이 없는 나와."
날카로운 짐승의 미소를 지은 파벨에 비해, 오를랜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 그 말대로다. 이해할 수 있겠나. 당신과 싸우고 싶
단 말이다. 사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다. 하지만, 그건
허락되지 않겠지. 그래도 어쩌면 어느 한 쪽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생사를 건 싸움이 하고 싶다. 당신과, 그런 싸
움이 하고 싶다)
하지만, 오를랜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짐승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어서 파벨이 한 말은 그 직감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안하군. 너도 알고있겠지. 지금의 너에게 백병
전으로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지극히 소수이고, 그 중에 나
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거리전으로 승부하자, 는 말은 오를랜드의 혀
를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존경하는 상대에 대한 모욕이 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벨의 활 실력을 떠올려보면, 공격을 회피하면서, 거리
를 좁힐 자신은 아직 없었다.
-아직, 이지만 말이야.
"그럼, 얘기가 그것뿐이라면, 보고를 올려주게."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습니까. 나리. 아직 교대시
간 아니잖아요? 보십쇼, 종도 울리지 않고 있습니다."
교대시각을 알리는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수인계 준비도 해야하잖나. 종이 울리기 전부터 해둬
야하는 일도 있네. 종이 울렸을 때 즉시 임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해둬야해."
"그래도 아직 시간 있잖습니까, 나리. 조금만 더 얘기 나
누시죠."
"그럼 병사장 공의 부관 공에게 제가 보고를 해둘까요?"
말을 걸어온 것은 자신의 부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거 괜찮은데. 너, 최고. 그러면 어떻습니까, 나리."
"...하아. 오늘은 끈질기군. 뭔가 얘기하고 싶은게 있는 거
군? 휴. 솔직하게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하면 될 것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상담 상대로 선택하는 남자도 있지
만, 오를랜드는 존경하는 상대이기 때문에 상담할 수 없는
타입이었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역시, 나리십니다. 말이 통한다니까요."
"...하아.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냐. 시시한 이야기라면 용
서하지 않겠다."
[그게 말입니다] 투구를 벗고, 오를랜드는 머리를 긁적였
다. 차가운 공기가 뜨거워진 머리에 닿는 것이 묘하게 기분
이 좋았다. [실은 무사수행을 가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말인데 여길 떠나도 되겠습니까?]
주변에서 숨을 들이삼키는 소리가 났다. 눈앞의 가느다란
남자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왜 나에게 말하는 거지?"
"그야, 제가 이 나라에서 가장 인정하는 남자가 나리이기
때문입죠. 그런 당신이 막지 않는다면, 망설일 것이 없습니
다."
"...너는 군사가 아니지? 징병기간이 지났다면 너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성왕국은 징병제를 취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징병된 병사
와 구별하기 위해서, 직업군인을 군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파벨과 그 부하들은 전원이 군사였고, 오를랜드의
부하는 군사도 있고 징병된 사람도 있었다.
"그럼, 관둬도 되겠습니까?"
물어보니, 딸과 아내의 화제 이외에 처음으로 파벨의 표
정이 움직였다. 오를랜드의 탁월한 전사로서의 통찰력이 간
신히 잡아낸 정도의 변화였고, 주변의 누구도 깨닫지 못했
을 것이다.
오를랜드가 인정하는 강철의 사나이가, 자신의 사임에 감
정이 흔들렸다. 가슴 속에 희열인지 애절함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법은 그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막을 수는 없지. ...그
렇다고는 하나, 너 정도의 강자가 사라지는 것은... 커다란
구멍이 생기겠군. 무사수행이라면 더 일찍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지금이지? 역시 아인의 습격이 사라졌기
때문이냐?"
확실히 요 반 년 정도인가. 아인들이 이 성벽에 습격해오
는 일이 없어졌다. 지금까지는 1개월에 한두번 정도 수십명
정도의 아인들이 공격해오는 경우가 있었다.
수십명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뛰어난 육체를 가진 아인들
이다. 거기에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도 많았다. 작은 요새
라면 병사가 전멸당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숫자였다.
그 때마다 오를랜드나 파벨 같은, 어느 쪽이건 강인한 부
대가 원군으로서 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딱히 저는 아인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게 아니란 말이
죠? 저는 강한 녀석과 싸워서,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좋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호왕(豪王)은 상관없나?"
"아아, 그 녀석말입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마조(魔爪), 수제(獸帝), 회왕(灰王),
빙염뢰(氷炎雷), 그리고 나선창(螺旋槍)."
유명한 아인의 이명을 꼽았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처음
에 나온 이름 이상으로 오를랜드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호왕 바자.
어느 아인종족의 왕이며, 파괴왕이라고도 불리는 존재였
다.
그 이명은, 무기를 파괴하는 무투기에 뛰어나고, 그것을
주축으로 삼는 전투방법을 확립하고 있기 때문에 붙었다.
수많은 이름난 전사들을 꺾은 이 성왕국의 숙적은, 과거 오
를랜드와도 싸운 적이 있었고, 들고 있던 장검, 예비무기인
단검에 손도끼, 거기에 나무를 자르기 위해 쓰고 있던 나타
(なた - 손도끼의 일종)까지 파괴당하고 말았다.
오를랜드가 소지한 모든 무기를 파괴했으면서도, 요새에
서 온 원군을 보고 호왕이 퇴각하는 형태로 전투는 끝났다.
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냈다는 의미에서는 오를랜드의 승리
였고, 그의 무용을 칭송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오를
랜드 자신은, 자신이 호왕에게 있어서 리스크를 감수해서라
도 공격해야하는 적이 되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마음 속에
새기게 되었다.
"그 녀석과는 다시 한 번 싸우고 싶지만... 아마, 아직 이
길 수 없겠죠. 그 녀석에게 이기려면 영웅의 영역에 들어가
지 못하면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 나리도 알고
계시죠? 그 대전사, 가제프 스트로노프가 전사했다는 얘
기."
"아아, 잘 알고 있네. 상층부는 그것 때문에 주변 국가가
받을 영향에 대해 의논하고 있으니 말이야."
리 에스티제 왕국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전사의 죽음은,
이 성왕국의 군사- 그것도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 들 사이
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고 계십니까?"
"대강은 들었네. 듣기로는 마도왕이라는 매직 캐스터(마
법 영창자)가 일기토로 쓰러뜨렸다더군. 솔직히 말해서 매
직 캐스터가 일기토라니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지
만."
오를랜드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다만, 매직 캐스터라고 해도 그 폭이 넓었다. 신앙계 매직
캐스터라면 스스로를 강화하는 마법을 쓰면 어지간한 전사
보다도 강해진다. 그 이외에도 이 나라가 자랑하는 성기사
도 마법을 쓸 수 있으니, 넓은 의미에서는 매직 캐스터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일기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마도왕이 일개 군대를 파멸시켰다던가, 거
대한 산양인지 양인지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네."
"그건 처음 들었습니다만, 거대한 산양이라구요? ...괴상
한 매직 캐스터로군요."
산양이라고 하니, 오를랜드는 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패
배의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산양을 소환한다고 해도, 물
론 평범한 산양은 아닐 것이다.
"뭐, 그 괴상한 매직 캐스터에 대한 얘기도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그런 겁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나리에게 졌을 때도 그랬습니다만, 저란 녀석은 원거리
무기나 마법은 안중에도 없었거든요. 그런 건 검으로 짓눌
러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보다도 확
실히 강한 왕국 전사장이 졌다는 말은, 좀 그런 방면을 깔
보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 뭡니까."
"즉 무슨 말이지?"
"무사수행을 다시 해야겠다, 싶어졌다 그 말입니다."
"...이 국내에서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도전한다고
는 하지 않겠지?"
"안 합니다."
오를랜드가 이길 수 없는 상대는 다른 아홉 색 가운데 몇
명.
파랑을 이어받은 해병대 부대장 엔리케 베르스에.
하양을 이어받은 성기사단 단장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
검정을 이어받은 파벨 바라하.
바닷속의 머맨(인어)들. 그 중에서도 녹색을 이어받은 란
츠안린
남은 것은 아홉 색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최고위 신관 케
랄트 카스트디오.
즉 이 나라에서도 톱클래스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많고,
그런 인간에게 싸움을 걸면 큰 소동이 벌어지게 된다. 모의
전 정도라면 같은 아홉 색이라는 점을 내걸면 어떻게든 될
지도 모르지만, 진검을 사용한 싸움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
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었다.
진검을 든 전투와 모의검을 사용한 전투는 전혀 다른 것
으로, 때로는 승자와 패자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시험과
실전에서 그 기량이 바뀌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강자란 그
실전에서 강한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검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무사수행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어디에서 무사수행을 할 생각인
가?"
"아까 이야기에서 나왔던 마도국이라는 곳에 가보려고 생
각합니다. 상당히 강한 언데드도 있다는 모양이니까요."
아인즈 울 고운 마도국.
자신의 풀 네임을 붙이다니, 얼마나 자기 과시욕이 강한
것인가, 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을 밀어붙일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왕국, 성왕국을 지나다니는 상인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
다."
성왕국은 신전의 가르침이 침투해있기 때문에, 언데드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국민성을 가졌다. 그것은 파벨도 예외
가 아닐 것이다. 아니, 하고 오를랜드는 생각했다. 파벨이
싫어하는 것은 성왕국의 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아내
의 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그런 부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딸의 이야기
처럼 제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역시 이야기가 길
어지기 때문이다.
"성왕국의 현 방침이라는게 마도국을 묵인하는 방향이라
는 말이죠? 딱히 성왕국의 사람이 간다고 해도 문제는 없
다... 맞습니까?"
언데드의 병단이라는 것이 있는 마도국은, 아무리 좋게
말하려고 해도 성왕국에게 있어서 불구대천의 적이다. 마도
왕의 소굴이 된 에 란텔의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
면, 즉시 파병해야한다고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
만 성왕국은 현재, 아인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
구릉지대를 평정하기 전에는 타국에 군사행동 같은 것은 불
가능했다.
국민감정은 둘째치고, 수뇌부는 마도국에 대한 대응을 소
극적 비난 정도로 유지하고 있었다.
"...마도국인가. 위에 보고하면 군에 소속된 상태로도 갈
수 있겠지. 상층부는 아인 다음은 마도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법국과의 공동전선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아. 종교의 차이에 따른 마찰이라는 것도 골치아파보
이는군요."
"그래, 정말이지 그렇군. 그건 둘째치고, 소속된 상태라면
국가에서 원조도 받을 수 있고, 귀찮은 입국심사도 없을...
거다. 네가 간다면, 마도국의 내정을 알고 싶어하는 윗사람
들에게 있어서는 마침 잘 된 일일테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겠습니다만. 그런 상태라면 제멋대로
날뛸 수가 없잖습니까."
"너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 구제불능이
군."
"국제문제가 되어버리면 나리한테도 면목이 안 서구요."
밤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 파벨은 조금도 표정의 변화없
이 잠시 침묵하고 있었지만, 불쾌한 듯이- 늘 그렇지만- 중
얼거렸다.
"네 촌스러운 얼굴도, 더는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쓸쓸
해지는군."
오를랜드는 히죽 웃었다. 짐승처럼 거친 미소였지만, 사
실은 어울리지도 않게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파벨은 가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가라고도 하지 않았다. 돌아올 장
소를 마련해주려고도 했다.
"그거 죄송하게 됐군요. ...뭐, 강해져서 돌아올 겁니다.
그 때는 대련, 한 판 할까요?"
"말은 잘하는군."
오를랜드의 가벼운 미소를 보고, 파벨도 비슷하게 웃었다.
그것은 마치, 두 마리의 짐승이 포효를 울리는 것 같은 흉
폭한 광경이었다.
그 타이밍에 종이 울렸다.
야간 당번과의 교대시간인가, 조금 이야기가 길어져서 나
중에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군, 하는 오를랜드의 생각은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종소리에 흩어졌다.
오를랜드는 파벨을 따라, 튕기듯이 구릉지대를 돌아보았
다.
이 종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아인의 모습 발견]이었다.
400미터 이상에 걸쳐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일절 없는-
예전에는 언덕이나 숲 등이 있었지만, 성벽을 건축하는 과
정에서, 국가사업의 일환으로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면서,
평지가 되었다- 매우 넓은 초원 끝에, 점차 언덕 같은 차폐
물이 늘어나는 장소, 이제 별빛 정도밖에 없는 어두운 땅에
움직이는 그림자 같은 것이 있었다.
"나리."
이 어둠속, 이렇게나 먼 장소에 있는 아인의 정체를 파악
하는 것은 오를란드에게는 불가능. 그렇기 때문에 가장 눈
이 좋은 남자를 불렀다.
"틀림없다. 아인이야. ...스네이크맨(蛇身人 - 사신인 - 뱀
몸 사람)이군."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스네이크맨은 코브라 같은 뱀 머리와 비늘이 난 인간 같
은 몸과, 그리고 꼬리를 가진 종족이었고, 리저드맨의 근친
종족이라고 생각되는 아인이었다. 뱀의 머리는 강력한 독을
가지고, 손에 쥔 야만스러운 장창에도 그 독이 발라져 있어,
근접전은 가능하면 피하는 편이 좋은 상대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를랜드나 그의 부하들처럼 단련된 육
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독의 효과에 저항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높았다. 비늘은 다소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었
지만, 금속무기를 튕겨낼 정도의 강도는 없었다. 꼬리를 무
기로 사용했지만, 무기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남
은 것은 뱀 같은 감지기관이 있기 때문에 밤에는 상대가 유
리했지만, 그것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선두는 우리들의 일이 되는 건가? 아니, 여기에 올 때까
지 나리의 부대가 전원 사살해버리겠지)
스네이크맨은 차가운 물건을 싫어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
에, 금속제 갑옷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파
벨의 부하들 같은 일류 궁병이라면 화살을 꽂아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리, 몇 명 정돕니까?"
평소라면 스물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리?"
대답이 없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파벨을 보니, 평소에는
무표정한 그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
다.
"무슨 일입니까, 나리?"
"...숫자가 늘었다? 이건 혹시- 큰일이다! 타종족의 모습
도 보인다. 아머드(鐵鼠人 - 철서인 - 쇠 쥐 사람), 오거(거
대 식인귀), 저건 케이픈(洞下人 - 동하인 - 마을 아래 사람)
인가?"
"뭐라고?"
구릉지대에는 온갖 아인들이 존재했지만, 사이가 좋은 것
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토를 둘러싸고 다투고, 고블린과 오
거처럼 공존하는 경우나 한쪽이 노예로서 혹사당하는 경우
를 제외하면, 다른 종족과 보조를 맞추는 경우는 없다.
타 종족에게 영토를 빼앗겨 쫓겨나는 형태로, 성왕국에
공격해오는 경우조차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 이번에도 그런 경우일까.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에는-.
"대침공?"
누군가의 목소리. 본인으로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을 뿐
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아주 크게 들렸다.
"오를랜드. 묻고 싶은 말이 있다."
파벨의 목소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
다. 아니, 당연한 일이었다.
인종, 문화, 종교. 같은 종족이라도 다른 나라가 여럿 존
재하는 것처럼, 통일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종족이 다르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구릉지대에 존재
하는 아인들이 협력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국가의 존망을 건 싸
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를랜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다양한 종족을 규합하는데는 이해하기 쉬운 힘이 필요하
다. 인간이라면 재력이나 지력 같은 것도 힘의 일종이지만,
아인들의 경우에는 가장 중시되는 것은 완력. 즉-
(-무시무시한 강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는 말이지)
"네 전사의 감으로 대답해다오. 놈들이 이 성채- 가장 방
비가 두터운 이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어느 족이라
고 생각하나? 첫째, 방비가 허술한 장소를 돌파하기 위한
미끼로서 내놓은 별동대. 둘째-"
[-정면에서 돌파할 자신이 있다. 여기에서 성왕국의 전력
의 5분의 1을 완벽하게 짓밟아버리자] 오를랜드는 파벨의
날카로운 시선을 옆에서 느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 성채를 교두보로 삼자. 남은 것은 성왕
국의 사기를 깎아내면서, 아군의 사기를 높이자는 생각 아
니겠어?]
"...국가 총동원령이 발동될지도 모르겠군."
"하하! 성왕국의 역사상, 한 번 밖에 없었다는 대전쟁을
우리들의 시대에서 한 번 더 하다니, 뭐라 할 말이 없구만!"
"...나는 상부에 보고하고 오겠다. 너도 같이 가자."
"알았수, 나리! 너희들! 이제부터 즐거운 파티가 시작된
다! 예비무기 싹 쓸어와!"
적이 대군이면 대군일수록 진형을 짜는데 시간이 걸릴 것
이다. 그것도 다양한 종족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
만, 그것은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군대인
이상, 준비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설령, 최전선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할 일은 놀랄 정도로 많았다. 이제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를랜드는 파벨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2.

적의 대군이 천천히 진형을 갖추고 있는 사이에, 파벨은


자신의 목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적의 침공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신들도 병력을 이
성채에 모을 수가 있었고, 거기다 총동원령을 내리기 위한
시간도 벌 수 있기 때문에, 상관들은 그것을 환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파벨의 생각은 달랐다.
아인들 중에는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지성을 가진
자도 있었다. 이 정도의 군세를 이끄는 자가 무지몽매할리
가 없었고, 그렇다면 자신들에게 시간을 주는 불이익을 모
를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한 밤. 이제부터
전투는 아인들에게 있어서 유리하게 펼쳐질 것이다. 횃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파벨은 400미터 너머의, 적의 진지를 노려보았다.
종족단위로 뭉쳐있었고, 소지무기나 마법, 종족의 특성
등을 고려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도 아인들은 하나의 깃발 아래에 통합된 군대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좀 더 합리적인 대열을 취할 것이
다. 아니면 동맹 같은 형태로, 몇 개의 종족이 나란히 권력
을 가진 아인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체재인가.
"잘 안 보이는데, 나리. 적의 대장은 보입니까?"
"...아니, 지금 적의 수괴로 보이는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
다."
부하들에게도 수괴로 보이는 자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보
고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지휘관에 해당하는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오를 갖추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계속 숨어있지는 않을 거다. 먼저, 틀림없이 전선에 모습
을 드러낼 거야."
아인들의 성질상, 통솔자는 높은 전투력을 가지고, 그 무
위를 과시하기 위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때야말로, 파벨이 일을 할 최고의 타이밍이 된
다.
파벨은 자신이 든 활을 강하게 쥐었다.
대 아인용으로 특화된 마법이 담긴 컴파운드 롱 보우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림자에 녹아들어, 잠복하기 쉽게 해주는
망토 오브 섀도우(그림자의 망토), 발소리를 지워주는 부츠
오브 사일런스(무음의 신발), 저항력을 높여주는 베스트 오
브 레지던스(저항력의 상의), 사격무기에 대한 방어를 해주
는 디플렉션 링(벗어나는 반지) 같은 것까지 지급된 것은,
그 정도로 파벨이 나라로부터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언제든지 쏠 수 있도록 준비는 해둬라."
어두운 밤에 녹아들듯이 주변에 숨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인간이라면 사자를 보내어, 선언문을 읽는 등의 귀족풍
전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성채에 주둔하고 있는 장교
를 포함해, 성왕국의 백성들 중 구릉지대에서 오는 아인과
교섭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기껏해야 기만이나 책
략으로서 시간을 벌기 위한 교섭의 흉내 정도일 것이다. 상
대의 지휘관은 발견하자마자 즉시 사살할 생각이었다.
"...이제 너도 자기 부대로 돌아가는게 어떻겠나?"
"그래야겠습니다, 나리. 조심하십쇼."
"그래, 너도."
떠나가는 오를랜드의 등을 좆으면서, 파벨은 다소 불안함
을 느꼈다.
아인이 가진 특수능력 중에는, 치명적인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거쌍안족의 마안이었다.
얼굴의 밸런스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두 눈을
가진 아인이 가진 두 종류의 마안 가운데 하나가 <챰(매
료)>이었다. 이것에 당하면 무의식중에 상대에게 다가가버
린다. 그렇다, 성벽의 위에 있어도 상관없이, 눈 밑의 아인
에게 최단거리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특이한 능력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서, 매직
아이템을 장비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오를랜드는 그런 것
을 지급받지 않았고, 운이 없으면 일격에 당할 가능성도 있
었다.
불안을 지우기 위해 눈을 감자, 문득 파벨의 뇌리에 한 사
람의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홉 색 가운데 하나. 하양을 이어받은 여자였다.
(저 녀석과는 다른 의미에서 불안한 여자야. 지식이 부족
한 탓에 주변에 폐를 끼치기 십상이지. 분홍색이 고생할만
해. ...우리 애도 어쩌자고 그런데에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
평범하게 좋은 남자랑 만나서, 사랑하고, 맺어진다면 좋았
을 것을- 안 돼!)
부풀어오르는 딸에 대한 걱정을, 고개를 저어서 떨쳐냈다.
정신을 차린다는 의미를 겸해서, 다시 한 번, 아인들의 진
지를 보았다.
언덕 너머에 얼마나 많은 아인들이 있는지는 불명이었지
만, 휘날리는 깃발의 숫자는 많았다. 저 깃발의 숫자가 위
장이 아니라는 것은, 이 성채의 유일한 제3위계 마력계 매
직 캐스터가 하늘로 날아올라 확인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저 정도의 군세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서로 눈싸움만 하다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파벨은 늘 하던 의식을 행했다.
품 속에서 조각된 나무인형을 꺼내들고, 그것에 입맞춤을
했다.
딸이 여섯 살일 때, 만들어준 인형이었다. 동그란 중심에
막대가 넷 달린 것 같은 괴상한 인형은, 아버지를 만든 것
이라고 한다. 몬스터를 멋지게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다가
울린 것을, 아직도 파벨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
의 발차기와 함께.
몇 번이고 쓰다듬은 탓에 닳아버려서, 원래 있었던 눈이
나 입을 깎은 자리는 희미해져버렸다. 그 무렵보다도 성장
했으니, 더 자신을 닮은 인형을 새로 만들어줬으면 했지만,
부모 마음을 자식은 모르는 것인지, 그럴 기미는 조금도 보
이지 않았다.
이 곳의 근무가 길어져서, 딸이나 아내를 만날 기회가 줄
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날이 딸과의 사이에 거리가 멀
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옛날이라면 당장 안겨들어왔을텐데,
어느샌가 돌아와도 안아주는 일이 없어졌다.
아빠를 졸업한 거겠죠, 라고 아내는 웃으며 말했지만, 파
벨 입장에서는 큰 사건이었다.
(휴가를 2개월 정도 받을 수 있다면, 옛날처럼 다같이 캠
프라도 가고 싶군)
레인저로서의 지식을 알려주면, 딸은 감탄과 존경의 시선
을 보냈다. 그 점을 기대한 작전이었다. 그렇게 잘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는 있었지만.
인형을 다시 가슴에 밀어넣었다.
딸도 지금은 성기사를 목표로 하는 중이라, 집에는 없었
다. 파벨이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도 딸이 없는 경우가 많았
다.
(역시 집 가까이 사는 남자랑 결혼이라도 해주는 편이-
조금 정도는, 아니 조오금, 아니 아주 조오금 정도는 낫다)
성기사라는 직업은, 딸에게 가장 맞지 않는 길이었다. 계
속 지켜봐왔으니 틀림없었다.
그 딸은 어머니의 성기사로서의 모습에 동경해서, 그 길
을 선택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성기사로서는 실격
이다.
자신이 믿는 정의를 구현하는 기사야말로, 성기사인 것이
다.
그러니까- 아내가 무서워서- 파벨은 입에 올리지는 못했
지만, 성기사란 광신자라고도 생각했다.
(우리 애는 그걸 알고는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는
생각 안 하긴 해도...)
"-굉장한 숫자로군요."
옆에서 숨을 죽이고, 적 진지를 보고 있는 부관의 혼잣말
에 정신을 차린 파벨은 대답했다.
"그래, 그렇군. 단,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나를 서포트해
주면 된다."
부관만이 아니라, 주변의 자신의 부하들이 뿜어내는 분위
기가 미세하게 이완되었다.
(그래. 그거면 된다. 긴장은 저격의 천적이니까)
파벨이 무표정-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 을 풀고 희미한 웃음을 지었을 때, 적의 진지에서 움직임
이 있었다.
천천히 한 사람의 아인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저렇게 많은 숫자의 아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호위를
한 사람도 데리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불안 때문인가, 아
니면 자만심인가, 아니면 죽어도 아깝지 않은 메신저인가.
"쏠까요?"
"그만 둬라. 단, 사선(射線)은 확보할 수 있도록 이동을
개시해라. 그리고 내 명령을 기다려라."
부하에게 작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다음, 사삭하고 그
림자가 달리듯이 부하들이 주변에 넓게 산개했다.
적의 대장인가, 단순한 메신저인가를 판별하기 위해서,
파벨은 노려보았다.
(저 아인...은 대체 무슨 종족이지? 지금까지 본 적도 없
는 느낌인데... 저 옷은 뭐야? 민족의상인가? 가면도 그 일
부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허리 뒤쪽에 꼬리 같
은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아인의 복장이었다. 민족의상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확실히 그런 느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멀
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잘 만들어졌고, 인
간과 비교해도 상당히 고도의 기술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문화레벨이 높은 아인은 성가시다...)
파벨만이 아니라, 성벽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든 병사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그 아인의 언동 하나하나를 감시했다. 다
들 긴박한 분위기인 가운데, 아인은 앞으로 50미터 정도를
남겨둔 지점까지 걸어갔다.
"거기서 멈춰라! 그 다음부터는 성왕국의 영토이다! 네놈
들 아인들이 와도 되는 장소가 아니다! 즉시 물러나도록!"
먼 곳에 있는 파벨에게까지 들리는 큰 목소리를 낸 것은,
성채의 최고책임자, 성왕국에 다섯 명밖에 없는 장군의 자
리에 있는 남자였다. 광택이 없는, 흠집투성이의 전신갑옷
을 착용한 남자가 하는 목소리는, 아랫배까지 울렸다.
그의 주위에 있는 참모가 한 사람뿐인 것은, 적이 공격을
해왔을 때,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 대신 타
워실드를 가진 병사가 몇 사람,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즉시
뛰어들 수 있도록, 뒤에서 숨어있었다.
그에 대답하는 아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사람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듯한 깊이가 있었고,
아직 이렇게나 거리가 있었는데도 파벨에게까지 똑똑히 들
렸다.
"그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자- 당신은 누굽니까?"
"나는- 이 성벽을 지키는 장수이다! 너야말로 누구냐!"
상대에게 정보를 줄 필요는 없는데, 라고 파벨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장군이 연기 같은 것을 못한다는 사실
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어날만 해서 일어난 일
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과연. 과연. 이름을 묻는데 대답하지 않는 것은 실례가
되겠죠. 처음 뵙겠습니다, 성왕국의 여러분. 제 이름은 얄다
바오트라고 합니다."
[설마!] 외친 것은 장군의 근처에 있던 참모였다. [대악
마 얄다바오트! 왕국의 왕도에서, 악마들을 이끌고 날뛰었
다는 그 악마인가!]
"오오! 저를 아시는 분이 있다니 영광이군요. 그렇습니다,
리 에스티제 왕국에서 박수갈채를 받은 연회를 열었던 것은
접니다. 하지만- 대악마라는 건 슬픈 칭호로군요. ...그래,
저를 부를 거라면 마황 얄다바오트라고 불러주시겠습니까?"
파벨은 마황 얄다바오트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곱씹었다.
너무나도 오만한 호칭이었지만, 그 뒤에 이끄는 온갖 아
인들의 존재, 그리고 전해들은 왕도에서의 소동을 떠올려보
면 그 이름은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었다.
"네 이 놈! 왕도에 이어서, 우리나라에서도 행패를 부릴
작정이냐!"
"아뇨, 조금 다릅니다. 왕국에서는 아주 무서운 전사를 만
났기 때문에-"
얄다바오트가 따분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움직
임은 뭐라고나 할까 품위가 있어서, 파벨은 인간의 귀족을
상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뭐, 그 부분은 생략하기로 하죠."
"그러면 무슨 일이냐! 어째서 아인들을 이끌고 여기로 왔
느냐!"
"저는 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들고 싶어서 왔습니다. 비명
이, 저주가, 절규가, 끝없이 메아리치는 즐거운 나라로 만들
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몇백만이나 되는 인간 한 사
람 한 사람을 상대로 놀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이 저를 대신해서 인간이라는 나약한
생물을 절망의 늪에 깊숙이 빠드려, 비탄과 애원의 외침을
토하게 해줄 겁니다."
얄다바오트는 아주 즐거운 듯이 말했다.
파벨은 그 때 악마의 의미를 알았다. 성직자들이 소리높
여 외치는 [사악한 아인들] 같은 것들은 결국, 전의고양을
위한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 잠꼬대나 다름없다. 거
시적인 관점에서, 아인의 침공이란 생존을 둘러싼 자연스러
운 활동이었다.
파벨은 전신의 털이 꼿꼿이 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강한 결의를.
아내나 딸이 있는 성왕국의 대지에 저 악마를 보낼까보냐.
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얄다바오트라는 놈이 위협을 할 생각이었다면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인간은 겁많은 생물이 아니다. 인간
을 깔본 자신의 어리석음을, 날카로운 반격을 맞고 통감하
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땅에 있는 것은, 성왕국을 지킨다는 강철의 의지를 가
진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그것이 다소 녹슨 것처럼 보인
다고 해도, 지금 다시 조국을 위한 뜨거운 마음이 피어올랐
다.
"-그런 것을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
느냐! 들어라! 어리석은 얄다바오트여!"
장군이 울부짖었다.
그렇다. 그야말로 울부짖은 것이다.
"이 곳은 성왕국의 첫번째 방어벽! 그리고 마지막 방어벽!
이 뒤에 있는 것은 성왕국의 백성들의 안녕! 너희들이 그것
을 짓밟게 내버려두지는 않겠다!"
장군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가까이에 있던 병사들이 [우오
오오!]하고 포효했다. 단숨에 전의가 끓어오른 순간이었다.
파벨도 몸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마찬가지로 포효
하고 싶었다. 그것은 살짝 몸을 떤 자신의 부하들도 마찬가
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없는 박수소리가 그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수
의 출처인 악마는 한동안 손뼉을 친 다음 입을 열었다.
"요람을 지키는 번견입니까. 저도 그런 것을 싫어하진 않
습니다. 뭔가를 지킨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죠. -마음
에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포로로 잡은 사람들은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환영을 해드리죠."
웃음소리가 섞인 정말로 즐거운 것 같은 목소리.
얄다바오트는 딱히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
었다. 그 때문에 파벨의 위치에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신기하게도 목소
리는 똑똑히 들렸다. 마치 자신들의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신경쓰지 말자. 마법일 수도 있지)
확성 효과가 있는 마법이나 마법도구는 존재한다. 얄다바
오트가 그것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다
만, 그 등에 달라붙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투항 같은 것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가능한 한 즐
겁게 해주십시오. 그럼- 시작하죠."
파벨은 부하에게 사살명령을 내렸다.
장군으로부터 지시를 기다리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독자
적인 재량으로 행동하는 것을 허가받았다. 적 사령관을 쏠
수 있는 타이밍 같은 것은 그리 흔치 않다. 윗사람의 허가
를 받고 있어서는 그 찬스를 놓치기 때문이다.
파벨은 일어섰다.
주변의 부하들도 그를 따랐다.
조준하는 것은 한순간. 50미터 정도, 파벨에게 있어서는
지근거리 중의 지근거리. 여기에서 확실하게 죽인다는 의지
로 활을 당기고- 파벨은 얄다바오트와 가면 너머로 시선이
교차한 것을 직감했다.
(피할 시간도, 방어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 혼자서 전선
에 나온 그 오만함을 원망해라!)
"-쏴라!"
파벨의 목소리에 맞추어, 총 51개의 화살이 날았다.
마법의 활에서 발사되는 마법의 화살이었다.
불의 화살은 붉은 궤적을 그리고, 얼음의 화살은 푸른 궤
적을 남기고, 벼락의 화살은 노란 궤적을 그리고, 산(酸)의
화살은 녹색 궤적을 남기고, 파벨의 선(善)의 화살은 백색
궤적을 남기고, 허공을 날았다.
한계까지 당겨졌던 활에서 발사되는, 호를 그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얄다
바오트의 몸에 꽂혔다.
특히 파벨의 사격은 강렬했다. 무기나 특수기술을 행사한
한 발은 높은 곳에서 찍어내리는 중전사의 일격에도 필적하
는 파괴력을 가졌다. 이 한 발을 맞으면 전신갑옷의 남자도
날아가서 대지에 구를 정도였다.
하지만- 51개의 화살을 전신에 맞으면서도 얄다바오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의심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몸을 관통했을터인 화살이, 톡톡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뭐야!? -원거리 무기에 대한 방어능력인가!?)
2발째의 화살을 빠르게 준비하면서, 파벨은 얄다바오트가
어떻게 화살에 의한 일격을 막았는가를 빠르게 생각했다.
일부 몬스터는 능력에 의해 공격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라이칸스로프 같은 경우에는 은제 무기가 아니면,
거의 대미지를 입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얄다바오트도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얄다바오트의 방어는 어떤 공격이라
면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쏘아넣은 화살은 철제였고, 사악한 자에게 강한 효
과를 발휘하는 선(善)의 힘이 담긴 화살이었다. 악마가 그
것을 막아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아무튼 무효
화당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화살을 써서 상대의 정보를 모아, 그 비밀의 베일을 벗겨내
는 것이야말로 승리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다음 파벨이 준비한 것은 은화살. 이것에도 선의 힘이
담겨있었다.
"-그럼 이 쪽도 첫 수를 둬볼까요. 변변찮은 선물입니다
만,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10위계 마법 <메테오 폴
(운석낙하)>."
파벨은 머리 위에서 불가피한 속도로 접근하는 것을 감지
했다. 올려다보니 거기에 있는 것은 빛의 덩어리.
열기가 가해진 거대한 바위- 그보다도 거대한 무언가.
세계를 빛이 감싸고 있는 가운데, 한순간, 빛 속에서 아내
와 딸의 모습을 보았다.
환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딸은 스스로 살
아갈 길을 선택할 정도로 자랐다. 그런데도 보인 딸은 작고,
그녀를 안아올린 아내는 젊었다.
(아니, 지금도 아내는 젊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죽을-)

하늘을 찢어발기고, 성벽에 도달한 운석이 대폭발을 일으


켰다. 뱃속까지 울려퍼지는 것 같은 굉음. 생겨난 커다란
폭발은 거기에 있던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그리고 성벽
을 부쉈다.
폭풍에 의해 흩날리는 흙먼지가 내려앉고, 천천히 시야가
확보되어갔다.
거기에 있던 것은 성벽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박살난 광
경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병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파여나간 성
벽을 보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 따위가 거기에 있으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리가 없다,
고.
물론, 데미우르고스는 알고 있었다. 그에 견딜 수 있는 인
간도 있다는 사실을. 과거에 지고의 존재가 만들어낸 성지
인 나자릭 지하대분묘에 침입해온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하
지만 사전에 충분한 정보수집을 하고, 그런 인간이 없다는
것은 확인한 상태였다.
"그럼, 준비는 이 정도면 되겠군요."
데미우르고스는 손으로 정장을 털었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것은 아니었지만, 충돌의 충격으로 튄 먼지가 자신에게
까지 온 것인지, 조금 흙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
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도 같은 행동
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창조해주신 분으로부터 받
은 소중한 물건이니까.
물론, 데미우르고스는 이 이외에도 많은 옷을 가지고 있
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다뤄도 될 리가 없었다.
위대한 창조주를 떠올리고, 가면 밑에서 기쁘게 미소를
지은 다음,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인간들을 보았다.
추격을 하면, 적의 혼란은 더 커져서, 거기에 아인들을 침
투시키면 완전히 와해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하지
만, 그런 짓을 하기 위해서 지금 마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
었다.
데미우르고스가 쓸 수 있는 마법은 아주 적었고, 제10위
계는 이것 이외에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의 진가는 특수기
술에 있었으며, 마법을 사용한 것은 힘을 아끼기 위한 것이
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분히 가엾고 비참했다.
반격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정보의 수집, 조직의 재
편으로 필사적인 눈치였다.
(지휘관을 죽이지도 않았는데... 그 점이 이상하다고 깨달
아서 생긴 혼란도 아닌 것 같고... 괜찮을까요?)
데미우르고스는 인간들에게 등을 보이고, 자신의 노예들
이 만들고 있는 진지를 향해 걸었다.
뒤에서 올 공격을 경계하지도 않았다.
이미 충분한 정보수집을 마쳤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여
유였다.
데미우르고스는 강했다.
확실히 계층수호자로서는 하위에 위치할지도 모르지만,
싸울 때는 필승의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싸운다는 행위
는, 이길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
다. 즉 이길 수 없다면, 명령을 받지 않는 한 싸운다는 선택
지를 고르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미우르고스가 이길 수 없는- 즉 필승이라는 토대를 준
비할 수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자신보다도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책
모를 펼쳐, 영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의 저편까지 세계
정세를 읽어내는, 자신의 손에 모든 것을 장악하는 궁극의
정점.
나자릭 지하대분묘 최고의 지배자, 아인즈 울 고운.
데미우르고스가 충의를 바치는 지고의 존재뿐이었다.
(언데드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계신 것도 책모의 일환.
그 책략이 달성된다면 누구도 아인즈 님을 상처입힐 수 없
게 된다. 참으로 무서우신 분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굉장
하신 분이 우리들을 지배하고 계신다는 행복을, 다른 자들
은 이해하고 있을-)
텅 하는 소리가 나고, 처음으로 상정 외의 일이 일어났다
며 데미우르고스는 어깨 너머로 소리의 발생원을 보았다.
아마도 성벽의 위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다. 천천히 남자가
일어나는 참이었다.
"나, 나리가 죽어버렸어. 내, 내가 이기고 싶었던 남자가
아아아!"
남자가 말하면서 두 손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데미우르고스는 남자의 외견에서 모은 정보를 검색했다.
답은 금세 나왔다.
위협도 벌레(E)
오산일 확률 전무(E)
중요도 모르모트(E)
즉 쓰레기였다. 다만, 아홉 색이라는 힘을 가진 자- 전원
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획할 수 있다면 여러가지 실험에 사용해도 좋겠다고 생각
은 했지만.
"우오오오오!!"
포효하면서 남자가 달려왔다.
(느려. 너무나도 느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좀 더 머리를
써서 행동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사일런스(정적)>를
걸어서 조용히 내려와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인다거나...)
동료라면 눈깜짝할 사이에 좁혀올 거리를 남자가- 느릿하
게- 달려왔다.
이 저능한 남자는, 데미우르고스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사용하고 있는 무기를 파괴하는 대신 그 몇 배의 일격을 만
들어내는 특수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두
손에 검을 들고, 거기에 허리에 같은 검을 몇 자루씩 차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죽일까요. 가능한 한 깔끔하게 처리하는 편이 가
지고 갈 때- 아아, 이제 왔습니까)
남자가 피를 뿜는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닿지 않을만한 거
리를 확보하면서, 데미우르고스는 명령을 했다.
"-[그 검으로 자신의 목을 찌르게]."
푹, 하는 소리가 났다.
들고 있던 검으로 자신의 목을 꿰뚫은 남자의 눈동자에,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의 빛이 떠올랐다. 눈빛이 흐려지면
서 탁한 유리구슬처럼 변하는 것과, 쓰러지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통한 외침이 성벽에서 들려왔다.
데미우르고스는 몸을 돌려,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검지손가락을 하나 목덜미에 걸어 들어올리고, 그대로 진지
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즉시, 자신의 앞에 각 종족의 대표자- 권력자가
아니었다-가 모여들었다.
아인들은 데미우르고스의 머릿속에서 두 종류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나는, 피에 굶주린, 인간을 식량으로 여기고, 강자에게
는 따르는 등, 데미우르고스에게 플러스의 감정으로 복종하
고 있는 종족. 다른 하나는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공포 같은
마이너스의 감정으로 따르고 있는 종족이었다.
데미우르고스가 선택한 것은 후자의 그룹에서였다.
"모이는 것이 늦군요."
거기까지 말하고 그룹 안에서 적당히 선택한 아인의 어깨
부군을 잡았다. 제른(남색 구더기)이라고 불리는 종족이었
다. 그리고 그 대로 어깨의 피부를 뜯어냈다.
계층수호자 중에서는 힘이 없는 데미우르고스였지만, 그
래도 이 정도의 일은 가능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규와 함께, 어깨의 피부- 살점도
약간 붙은- 가 뜯겨나간 아인이 격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
을 굴렀다.
"그럼 공격을 개시해주십시오. 너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이 성채를 넘은 다음이 진짜니까요."
데미우르고스는 일변해서 다정하게 말했다.
나자릭에 속한 자들에게 보내는 그의 다정함은 진짜였다.
동료에게는 그는 아주 다정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이들에
게 보내는 다정함은 도구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일 뿐이었
다.
명령을 받은 아인들이 동족의 곁으로 달려갔다. 대지를
구르고 있던 아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데미우르고스의 명령에 따라, 탁월한 결과를 남긴 자들에
게만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
다. 물론, 정반대의 결과를 낸 자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미
래가 기다리고 있다, 는 이야기도 들었다.
데미우르고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는 아인들
의 등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갈까요. -악마 여러분."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의 특수기술을 발동해서, 일회용 악
마들을 대량으로 소환했다.
데미우르고스 입장에서는 아주 약한 종류의 악마들이었지
만, 더욱 강한 악마를 소환하려고 하면 숫자가 줄어든다.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악마에게 습격당했다고 성왕국의
병사들이 선전해주는 것, 즉 숫자가 중요한 것이다.
"알겠습니까? 아인들의 지원을 하십시오. 그리고 어느 정
도의 인간들을 적당히 추격하는 겁니다. 성채에서 한 놈도
남김없이 잡아들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도록."
하급 악마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
다.
소환된 몬스터는 소환자가 알고 있는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한다고는 해도, 상당히 대략적인 것이었다. 적이 누구
고, 아군이 누군가를 파악하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편
이 좋았다. 그 때문에, 소환되었을 때는 구두로 명령을 내
릴 필요가 있었다.
(자... 공이 제대로 표적을 향해 떨어지면 좋겠는데 말이
죠)
데미우르고스의 명석한 두뇌는 온갖 상황을 고려해서, 몇
십가지나 되는 전개를 계산하고, 목적한대로 굴러가도록 수
정안을 준비해두었다. 다소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은 상정한
바였다. 단, 가끔, 극도로 어리석은 자들이란 정말로 상정
외의 일을 일으키곤 한다.
(아인즈 님 정도의 귀재라면 어리석은 자의 행동마저도
완벽하게 읽어내시겠지만... 저는 아직 멀었군요. 그건 그렇
고 아인즈 님이 즐거워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그 생각을 하면 데미우르고스의 심장 고동이 빨라졌다.
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들인 무대를 지고의 주인이 즐기지
못한다면, 데미우르고스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성왕국 여러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인즈 님을 즐
겁게 해주십시오. 가엾은 여러분의 모습으로, 말이죠. ...그
런데,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어떻게 제 계획을 수정하셔서,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실까요)
진심으로 따르는 교사가 자신의 결과물을 수정해주는 것
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기대와 흥분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면
서, 데미우르고스는 미소지었다.
(아인즈 님이 하시는 일을 배우고, 보다 뛰어난 자신을
목표삼아, 더욱 충성스럽게 봉사한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일
인가!)
지고의 존재를 모시기 위해서 만들어진 데미우르고스에게
있어서, 주인에게 헌신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었다.
"아아, 정말로 기대가 되는군요..."

3.

아인들의 연합군- 그것도 대군- 이, 가장 견고하고, 다수


의 병사가 배치된 중앙 대성채를 깨뜨리고, 성채를 넘었다
는 정보는, 즉시 성왕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아인 연합의 총대장은 마황 얄다바오트.
왕국에서 소동을 일으킨 악마이며, 압도적인 마법의 힘으
로 성벽을 종잇장처럼 무너뜨렸다고 한다.
아인 연합은 총 18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추측되
는 총 병력은 10만을 넘는다. 그런 아인의 군세는 성벽의
파괴, 그리고 성채의 파괴에 애를 먹고 있으며, 침공은 정
체중.
그 정보를 알게 된 성왕국의 정점, 성왕녀는 국가 총동원
령을 발령.
성왕국은 만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군대를 움직이면 필연적으로 두 개의 군대로 구성되게 된다.
북부 성왕국군과 남부 성왕국군이다.
각각이 요충지- 북쪽의 요충지인 도시 카린샤, 남쪽의 요
충지인 도시 데보네에 군대를 이동.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를 수 일간.
상황을 긴박하게 만드는 보고가, 성벽을 감시하고 있던
척후병들로부터 들어왔다.

-아인 연합군, 총 병력, 그대로 서쪽으로 침공-


-수 일 내에 북부 성채도시, 카린샤에 도달할 것으로 추
정-
"그런가요. 그럼 역시 여기가 전장이 되겠군요."
입을 연 것은, 성왕녀 카르카 베살레스.
계승순위는 낮았기- 성왕국은 지금까지 남자 계승이었다-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성왕의 지위에 앉지 못할 터였지만,
두 개의 자격에 의해 왕관을 물려받게 되었다.
하나는 외견의 아름다움이었다. 로블의 지보(至寶)라고
칭송받는 꽃과 같은 얼굴은 사랑스러움과 늠름함을 나란히
갖추었고, 금실과도 같은 길다란 머리카락은 윤기있고 고운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천사의 고리로 보일 정도였으
니, 부드럽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고 성녀라고 표현하는 자
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가 신앙계 매직 캐스터로서의 높은 소질이
었다. 열다섯살에 제4위계 마법을 행사하는 천재성을 발휘
하고, 선대 성왕과 신전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너무 유하다는 불만이야 있었지만,
지금까지 실책다운 실책을 범하지도 않고 국가를 통치해왔
다. 다만, 그 지배가 반석에 올라서있느냐고 하면 꼭 그렇
지도 않았고, 불씨는 계속 존재했다.
"-카르카 님께서 슬퍼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백
성들은 각오를 다지고 카린샤에 모여들었습니다. 과거의...
에, 어흠! 어떤 전쟁에서도, 이 도시가 주 전장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어느 곳보다도 높고, 견고한 벽을 가
지고 있습니다."
위로하듯이 말을 건넨 것은 갈색머리의 여성이었다.
성왕녀와 비슷하게 단정한 얼굴생김이기는 했으나, 날카
로운 눈동자에 깃든 칼날과도 같은 광채가, 차가운 분위기
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에 걸친 것은 은색의 풀
플레이트(전신 갑옷)에 하얀 서코트. 둘 다 역대 성기사단
단장이 착용한, 유서 깊은 마법의 걸작품이었다. 그리고 무
엇보다도 그 허리에 찬 검의 이름을 성왕국에서 모르는 사
람은 없었다.
4대 성검 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성검 서펄리시아.
십삼영웅 가운데 한 사람, 암흑기사가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진 네 자루의 검- 사검(邪劍) 휴미리스, 마검 킬리네이
람, 부검(腐劍) 코로크다발, 사검(死劍) 스피즈에 대응한다
고 알려진 네 자루의 검 가운데 하나였다. 참고로 4대 성검
의 남은 것들은 정검, 청검, 생검이라고 알려져있다.
강한 검을 가지면, 그에 빠져들어 기초를 소홀히 하게 된
다. 따라서 평소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그 검을 착용하고
있는 것은, 이제부터 일어날 전투에 물러서지 않는 결의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승리하지 않으
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
카르카의 친한 친구이며, 역대 최강이라고 알려진 성기사
단 단장으로서 그녀의 권력의 무력적 배경을 지탱해주고 있
다. 아홉 색 가운데 하나인 하양을 이어받은 인물이기도 했
다.
"그래요. 그래요. 게다가 비전투원은 도망치게 해뒀고, 피
해는 나오지 않을 거에요. 전후, 문제가 되는 건, 전쟁비용
쪽이 아닐까요?"
우후후후, 하는 불쾌한 웃음소리를 낸 것은 역시 여성이
었다.
눈꼬리의 방향이나 입가의 모양 같은 것에 약간 차이는
있었지만, 그 얼굴은 레메디오스를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
만 그 약간의 차이가, 남에게 주는 인상을 크게 바꿔놓고
있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은- 나
쁘게 말하자면 속이 검은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녀는 레메디오스의 두 살 아래의 여동생. 케랄트 카스
트디오.
신전의 최고사제이며, 신관단 단장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신앙계 제4위계이다. -라는 것으
로 되어있다.
실제로는 그 정보는 기만이었고, 친한 이들은 그녀가 제5
위계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참고로 그녀는 아홉 색이 아니었다. 신전세력도 성왕의
밑에 있지만, 권력의 균형에 관한 이런 저런 문제 때문에,
나라로부터 색깔을 하사받는 것을 피했다는 정치적 배려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두사람이야말로 카스트디오의 천재 자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고, 성왕녀의 두 날개.
여성인 카르카가 성왕으로 선택된 것은 이 자매가 뒤에서
손을 써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많은 귀족들이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악평이 퍼질 때는 셋이 나란히 퍼지는 경우
가 많았다.
몇 개의 악평을 불식해왔지만, 아무래도 그 중 하나- 세
사람은 모두, 미혼, 이라기보다 남자와 사귄 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심상치 않은 관계가 아닌가 하는 소문- 만이 아무
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카르카의 고민 중 하나였
다.
"그 말을 들으니 머리가 아파오네요. 이겨도 얻는 것이 아
무것도 없다는 건 정말 성가시군요."
"하지만, 이번 아인들은 좋은 무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
보가 있었습니다. 그걸 팔거나 하면 되는게 아닐까요?"
"그 말대로... 라고는 찬성할 수 없겠네요, 언니. 무구를
판다고 해도 어디에 팔죠? 깊이 생각도 안 해보셨죠. 타국
에 파는 수밖에 없는데, 아인들의 무구여서야 헐값에 팔릴
게 뻔해요. 게다가 무너진 성벽을 다 수리할 때까지는, 타
국의 무장을 강화시키는 행동은 피하고 싶군요. 특히 마도
국 같은 곳에는 흘러들어가지 않으면 좋겠어요."
"어머? 당신은 마도국이 싫었어요? 궁정에서는 그런 얘기
는 일절 들은 적이 없었는데?"
"좋아하는 신관이 어디 있겠어요. 카르카 님은 아니신가
요?"
카르카는 생각했다. 성직자로서, 성왕으로서 말하자면 혐
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개 국가의 원수로서 말하자면-
"-왕의 직무는 나라를,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것. 그리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 그걸 잘 해내고 있다면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카르카의 앞에서 자매가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여삐 여겨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네요. 언데드가 그
런 마음을 품을 리가."
"언니의 말에 찬성이에요. 언데드가 그런- 카르카 님이
품으신 것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요."
"둘 다 엄한걸. 하지만, 만나지도 않은 분의 험담을 하는
건 좋지 않아요."
두 사람의 난감한 표정은 아주 비스했다. 역시 자매구나,
하고 카르카는 새삼 생각했고, 입가에 피어오를 것 같은 미
소를 억지로 누르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막료들은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이후의 얄다바
오트 대책을 알려줘요, 케랄트."
성왕녀는 군략회의에는 참가하지 않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진지를 돌고 있었다. 성왕국의 병사는 타국에
비해 훈련도가 높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민병이었던 것
이다. 꾸준한 사기 고양은 필요불가결했다.
"예. 아인들이 이 도시를 포위했을 경우와, 그냥 지나갔을
경우, 그리고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었을 경우, 병력을 둘,
셋으로 나누어 복수의 목적을 동시에 노릴 경우, 등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 언니와 동생이 닮은 듯해도 닮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이런 때였다. 만약 언니 쪽에게 물었다면, 요령이 없
어서 머리를 감싸쥐고 싶어질 것 같은 보고밖에 받지 못했
을 것이다.
"과연... 그래서 어느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추측하고 있
나요?"
"예. 지금까지의 아인들의 침공을 생각해보면 도시를 포
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에는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 맞아요."
"뭐가, 그런 거지?"
레메디오스도 카르카의 호위로서 따라다녔기 때문에, 회
의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왕녀가 즉시 답에 도달
한 것에 비해, 그녀가 깨닫지 못한 것에는 다른 문제가 있
었다.
"...언니. 왕국에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악마, 얄다바오트
에요. 그게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
지만, 악마는 보통 안 좋은 쪽으로 지혜가 뛰어난 녀석이
많죠. 어쩌면 상정외의 전략을 취할지도 몰라요."
"과연... 작전을 짜는 막료들은 고생이 많구나."
성기사단의 단장에게 여러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
만, 카르카는 꾹 참았다.
"...큰일이네. 그래서 만약 아인들이 이 도시를 포위했을
경우에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죠? 양식은 충분하지만
방위전의 경우, 사기가 저하될 위험성이 있으니까요. 그 부
분도 검토했죠?"
"예. 보통이라면 남방에서 원군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
으면 되지만, 다만, 얄다바오트는 수수께끼의 힘을 사용해
서, 성벽을 일격에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어
요. 그게 상당한 불안요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세 사람은 나란히 미간을 찌푸렸다.
성벽에서 일어난 온갖 사건을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얼굴
이 어두워지겠지만, 그래도 카르카는 알고 있었다.
레메디오스는 다른 두 사람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라는 사
실을.
레메디오스는 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가 굳었다.
이것뿐이라면 결점일 뿐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정의를 행할 수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아주 복잡
해진다. 예를 들면 여기에 두 사람의 아이가 있다고 치자.
한 사람은 인간, 한 사람은 아인이다. 둘 다 순진무구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지만, 아인 아이는 어른들에
게 들켜서 잡히고 말았다. 인간 아이는 그를 살려달라고 탄
원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인 아이를 놓아주면, 성장해서
인간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 이 아인 아이를 죽이는 것은
선인가, 악인가. 쉽게 대답을 이끌어낼 수 없는 문제다.
카르카는 죽이는 것을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레메디오스는 망설이지 않고 죽인다. 그리고 그
것이 선이라고 흔들림없이 믿고, 결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
지 않는다. 자국의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일 모두가,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긍정되는 것이다.
성왕의 자리에 앉을 때, 친한 벗인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카르카는 말했다. [나약한 백성에게 행복을, 아무도 울지
않는 나라를]이라는 선언에 대해, [저는 협력자로서, 그 정
의를 돕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그 맹세를 가슴에 새기고
누구보다도 매진해준 그녀의 눈동자에 깃든 빛은, 광신에
가까운 구석이 있었다.
그것뿐이라면 위험인물이었지만, 카르카는 그것을 이유로
이 벗을 멀리하겠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람을 사랑
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고, 약자를 구하려고 행
동하는 선한 성품은 호의를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그녀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발언은 진심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오랜 세월 존재해온 조직이
라고 하는 것은- 구속하는 요소가 있어서, 경직되어간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피도 탁해져간다.
하나밖에 없는 권력의 정점을 향해, 형제가 다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그리고 승자가 결정되어도, 의심암귀 때
문에, 질투 때문에, 공포 때문에 다툼은 계속된다. 목숨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카르카는 그런 주박에서 중간에 해방되었다. 자신이 역대
성왕 중에서도 상위에 위치하는 마법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
는 것이 있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카르카는 그렇게
성왕의 자리를 포기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달랐다.
카르카가 지금, 혈족 중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오빠 한
사람, 카스폰드 뿐이었다.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레메디오스는 카르카의 마음
의 오아시스였다.
"음. 있을 수 없는 힘이야. 이야기에 나오는 마신을 방불
케하는 힘인걸."
"언니. 마신조차도 그 정도의 힘은 없었어요. 자칫하면 얄
다바오트는 마신보다도 상위의 존재일지도 몰라요."
"...큰일이네. 어떻게 이기면 되는걸까."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는 겁니까, 카르카 님! 왕국에서는
아다만타이트급 모험자가 격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
십니까!"
"...그렇군요. 저희들 수준의 모험자가 할 수 있는 일이었
다면... 문제는 얄다바오트가 그 성벽을 파괴할 수 있는 힘
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겠죠."
"그에 관해서는 막료들로부터, 성벽에서는 한 번 밖에 쏘
지 않았던 것을 보아, 연발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
견이 나왔습니다."
"납득이 가는걸. 연발할 수 있었다면 그랬으면 그만이었
을 거야.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 번 밖에 쏠 수가 없었던 거
겠지."
카르카도 레메디오스도 같은 의견이었다. 쏠 수 있다면
연속으로 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카르카도 그랬다. 자신이 쓴 왕관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성왕국에 전해지는 대의식마법 <라스트 홀리 워(최종성전)>
의 수속구인 마법의 아이템을.
"...뭐, 몬스터 같은 것들의 토벌에 익숙한 상위 모험자들
에게는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종군시키고 있어요. 우리 측
의 최대전력이 있다면 얄다바오트도 결코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는 아니겠죠. 실제로 격퇴한 사례가 있으니까요."
모험자를 병력에 포함시킨 건에 대해, 모험자 조합으로부
터는 강한 클레임이 들어왔지만, 카르카는 철회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것은 국가의 큰일이었으며, 전력을 분산시키는
일은 어리석음의 극치. 게다가 성왕국에서는 왕국만큼 모험
자 조합의 힘이 강하지 않았다. 억지로 명령에 따르도록 하
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요. 다만, 왕국에서의 얄다바오트의 자세한 정보를
모아두지 않은 것은 실수였어요."
"죄송합니다."
"아, 아뇨, 케랄트. 당신이 잘못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타국의 정보를 더 중시하려고 하지 않았던 제 잘못이니까
요."
"그렇지 않습니다, 카르카 님. 나쁜 건 케랄트 녀석이에
요."
"언니..."
"아이쿠! 나는 잘못없다. 나는 카르카 님의 경호나 몬스
터 퇴치 같은 일을 똑바로 하고 있으니까! 자기 일은 빈틈
없이 하고 있어.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지 아마!"
에헴! 하고 가슴을 펴는 레메디오스.
그 말은 옳았다. 옳았지만 뭔가 속을 긁는 요소가 포함되
어 있었다.
"...혹시 몇 개의 마을에서 갑자기 사람이 없어졌다는 사
건의 뒤에도 얄다바오트가 있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얼마 전의 일로, 복수의 마을에서 사람이 전원 사라졌다
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는 모을 수 없었지만, 어쩌면 얄다바오트가 배
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기 전에 그 이야기를 들
어둬야될까요. 그건 그렇고 정말이지. 왕국이 해치워줬으면
문제없었을텐데... 가제프 스트로노프는 녀석과 싸우지 않
았던 건가?"
케랄트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카르카에게 시선
을 돌렸다.
거기에 담긴 질문은 [언니에게는 말하지 않으셨나요?]라
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서, 카르카는 완벽한 대답을 보여
주었다. 피곤하다는 듯이 웃었던 것이다.
말로 표현하자면 [물론, 얘기는 했어요. 얄다바오트가 왕
도를 습격한 일도, 모험자에게 격퇴당한 일도, 그 이외의
악마들이 출현한 일도, 전사장이 그 악마를 격퇴한 일도.
듣고 있었을텐데... 아마도, 한쪽 귀로 흘려들었거나, 다른
정보 때문에 밀려난 거겠죠] 정도 될 것이다.
"...언니네 부단장, 두 사람이 불쌍해요."
"응? 왜 그 녀석들 얘기가 나오는 거야?"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케랄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레메디오스가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만큼, 그 뒷처리를 하
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그들이었다.
그 고생은 몹시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레메디오스의 순
수함- 나쁘게 말하자면 멍청함- 은 피곤한 마음을 치유해주
기도 하기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지는 않을까.
"...하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다른 악마, 비늘이 있는 악
마랑 싸우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가. 그 녀석이 쓰러뜨려줬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
지 않았을텐데. 설마, 그 아다만타이트급 모험자가 녀석보
다 강하지는 않겠지."
"그건 모르겠지만, 그 가능성도 있다고는 생각해요."
레메디오스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인정하는 강자가 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야
기를 듣고 발끈한 듯했다.
"뭐, 그 녀석은 검밖에 쓸 줄 모르니까. 나처럼 대 악마전
공격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면 또 얘기가 달랐겠지."
단순한 전투능력에 있어서 성기사는 전사보다 한 수 아래
였지만, 악의 존재와의 싸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레메디
오스의 말은 옳았지만, 케랄트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 때, 카르카는 살짝 종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
다.
레메디오스가 즉시 움직였다. 이럴 때에 솔선해서 움직이
는 것은 역시 그녀였다.
창문을 크게 밀어젖혔다.
초가을의 바깥 공기가 흘러들어오고, 세 사람의 체온으로
미지근하게 덥혀진 공기가 바깥으로 밀려나갔다.
눈이 확 뜨이는 것 같은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것은, 역시
종소리. 아까의 소리가 이명도 환청도 아니었다는 것을 증
명해주었다. 아니, 기분 탓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시에 복도를 달리는 몇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카르카 님, 저희 뒤쪽으로."
성검 서펄리시아를 뽑아든 레메디오스가 척 앞으로 나섰
고, 카르카와 문의 일직선상에 섰다.
문이 쾅 하고 큰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성왕녀님!"
큰 소리를 내면서 가장 먼저 뛰어든 남자가 누군지 알아
보았다- 참모장이었다.
"무슨 일이냐! 소란스럽게!"
레메디오스의 질책에, 참모장은 약간 거친 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느긋하게 걷고 있을 틈이 없다! 성왕녀님! 얄다바오트입
니다! 얄다바오트가 도시 내에 출현! 다수의 악마들과 동시
에 도시 내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인들은 같은 시
기에 행동을 개시하여, 아마도 이쪽으로 진군해올 모양입니
다!"
"뭐라구요!"
"아인들의 군세가 목격된 장소는 이 도시의 부근. 척후의
눈을 어떻게 속였는지 전혀 짐작이 되질 않습니다만, 허위
정보에 속아넘어갔습니다!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 틀림없습
니다!"
너무나도 심각한 정보에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즉시 여왕의 표정을 지은 카르카는 명
령을 내렸다.
"상정했던 바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만, 대 얄다바오트전
을 지금부터 개시합니다! 저희가 얄다바오트를 막고 있는
사이에 대 아인전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세요! 모험자들에게
도 제가 내린 명령을 전달하도록!"
수하의 대답을 들으면서, 카르카의 마음에 망설임이 되살
아났다.
얄다바오트를 얕본 것이 아닐까, 하고.
물론, 성벽을 쉽게 파괴했다는 악마를 깔볼 생각은 없었
다. 하지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잘
못은 아닐까. 정보수집을 완료할 때까지는 도주에 힘쓰는
편이 좋은 것은 아닐까.
아니, 하고 카르카는 자신의 안에서 솟아난 약한 마음을
억눌렀다.
여기에서 싸우지 않고, 언제 싸운단 말인가. 정보가 중요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 이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찬스는 없었다. 앞으로, 전쟁이 길어지면 자원은 줄어만 가
고, 지금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어려워져만 간다.
게다가 정보를 모두 모을 때까지 도망친다는 것은, 국토
를 계속해서 유린당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희생당할지 알 수 없
었다.
"...나약한 백성에게 행복을, 아무도 울지 않는 나라를, 이
지."
"그 말대로입니다! 카르카 님!"
자신의 혼잣말에,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레메디오스가 크
게 반응했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은 얼마나 세상을 몰랐던 걸까. 그렇
게나 어려운 목표는 없는데도.
"흥! 성벽을 넘고, 우쭐해졌군! 아인 병력들을 데려오지
않을 줄이야!"
기세를 높이며, 레메디오스가 포효하고 있었다. 그럴까.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다만, 결정적인 무언가가 잘
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방심해선 안 되요.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
각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물론이죠, 카르카 님. 저에게 방심이란 없다고 생각해주
시죠! 이 성검으로 멋지게 악마의 목을 잘라내어, 카프카
님께 바치겠습니다!"
(안 되겠어. 이 애를 냉정하게 만드는 건 나로선 불가능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르카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레메
디오스는 전투가 벌어지면, 다른 사람처럼 변하기 때문에.
"아, 목은 기쁘지 않지만, 당신의 충성은 아주 기뻐요. 그
래서 참모장,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기 위한 작전대로... 시
간을 벌어주겠죠?"
"물론입니다. 이미 그것을 위한 선견대를 움직이고 있습
니다."
카르카는 마음 속에 둔탁한 아픔을 느꼈다. 지금의 명령
은 죽으라는 것. 승산이 없는 병사들을 얄다바오트에게 보
내서, 시간을 벌라는 말이었다.
왕이란 소수를 버리고, 다수를 살리는 것이 사명.
우는 소리를 입 밖에 낼 수 있을리가 없다. 병사들은 그녀
의 명령으로 죽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
길 수 있도록, 끝까지 연기를 계속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숭배하는 성왕녀라는 지고의 왕의 연기를.
"자, 모두 갑시다!"
손뼉을 치고,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4.

레메디오스는 그 손에 쥔 성검으로 악마- 이름은 부단장


이 알려주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나를 베어버렸다.
성스러운 힘이 깃든, 악의 존재에게 더욱 강렬한 손상을 입
히는 검은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효과를 발휘했다. 도시
내에서 날뛰고 있던 악마는 대지를 구르며, 상처에서 하얀
증기 같은 것을 뿜어내면서 소멸해갔다.
고작 몇 초 후에는 악마가 있던 흔적은 아무것도 남지 않
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악마들의 폭거의 피해자가 있었다.
"무슨 짓을!"
지면에 쓰러진- 선견대와는 별개의, 도시 경비를 하고 있
던- 병사들을 보고, 레메디오스는 외쳤다.
가죽갑옷은 찢겨나가고, 복부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손
은 새빨갛게 물들어, 그 밑에 핑크빛의 내장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색은 이미 파란색조차 아닌, 하얀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의료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경험으로 알 수 있었
다. 위생병의 곁으로 데려갈 시간은 없었다. 지금 즉시 마
법적인 수단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었다.
병사가 죽지 않았던 것은 우연도 아니고 그들이 뛰어나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것이 악마의 목적일 것이다. 그것이 어
떤 목적인지, 레메디오스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다만, 그래도 병사들을 구하지 않을- 내버린다는 선택지
는 없었다.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준비시간을 벌기 위해서
방패가 된 용감한 병사들을 버리는 짓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무엇보다, 그녀는 정의의 성기사인 것이다.
"치료를 해!"
이번에, 레메디오스는 정예성기사들을 뒤에 이끌고 왔지
만, 그 이외에 신관들도 몇 사람 있었다. 그들에게 내린 명
령이었다.
그러자 바로 곁에 있던 부단장이 귓가에서 속삭였다.
"후방에 있는 위생병에게 맡기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신관의 마력을 써버리면, 얄다바오트와의 싸움에
서 마력 결핍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게 악마의 노림-"
[-잔말이 많다! 내가 명령했잖아, 즉시 스스로 이동할 수
있을만큼은 회복시켜! 그리고-] 부단장을 보았다. [-투구
너머로 속닥속닥 말해도 잘 안 들려! 똑바로 말해!!]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좋아!"
치료마법이 병사들의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시켰다. 완전
히 치료된 것은 아니었다. 제1위계의 마법이었다. 죽어가는
병사들을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간신히 움직
일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되었다. 즉시 죽을 가능성이 사라
진 이상, 거기에 마법을 더 사용할 여유는 없었다. 자원은
소중하게 사용하라고 동생이 시끄럽게 잔소리를 했던 것을
레메디오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용감한 제군, 그대로 들어라. 상처는 최저한, 치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확실하게 위생병에게 치료받도록."
걷게 되면 아픔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는 소리에 어울려줄 시간은 없었다. 얄다바오트의 근처까
지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병사들도 그녀의 강한 시선에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가를
깨달았는지, 이의도 반론도 제기하지 않고, 동의했다.
"좋아! 그럼 나는 이만!"
레메디오스는 선두에 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 금속갑옷
은 겉보기 이상으로 가볍고, 움직이기 쉬웠다. 그 때문에,
그녀의 근력의 덕도 보아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릴 수 있었
지만, 동생과 카르카와 부단장에게 [혼자서 돌격하지 말 것]
이라는 종류의 말을 몇 번이고 들었기 때문에, 전력질주는
자제하고 발걸음을 맞추었다. 시간 낭비한 만큼 빨리 가야
지, 하고 속도를 높이고 싶어지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렇게
했다.
이윽고 목적지, 도시의 한구석에 도착했다.
지극히 흔한 마을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피난은 이
미 완료되어 있었고,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단장님! 이 큰 길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직진. 그 다음,
다시 한 번 오른쪽으로 꺾으면 얄다바오트가 기다리고 있는
광장이 나옵니다. 저희들만이라도 선행해서, 확인해볼까
요?"
"아니, 카르카 님이나 동생을 기다리- 그리고 모험자들도.
그 다음, 최종확인을 한다. 깃발을 걸어라!"
명령을 내리고, 먼 곳의 건물에 부하가 깃발을 묶었다. 레
메디오스가 이끄는 성기사 정예 부대가 도착했다는 것을 다
른 부대에 전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작전에서는 카르카가 이끄는 근위대의 정예, 케랄트
가 이끄는 신전의 정예, 고위 모험자들, 그리고 레메디오스
가 이끄는 성기사단 최정예부대의, 네 그룹으로 나뉘어 얄
다바오트에게 접근한다.
성기사단에 소속된 성기사는 총 인원이 500명 정도. 대부
분이 난이도 20 정도의 몬스터와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실
력의 소유자였지만, 그 중에는 난이도 60 정도의 몬스터와
도 1대 1로 싸울 수 있는 강자가 있었다. 그런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을 위에서 순서대로 25명 모아온 것이 레메
디오스의 부대의 주축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도시에 데려온 남은 약 300명 정도의 성
기사는 여기로 진군 중인 아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성벽으
로 갔다.
원래대로라면 각개격파를 피하기 위해서, 전 그룹이 한꺼
번에 이동해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얄다바오트는 성벽을
파괴하는 수수께끼의 범위공격을 쏠 수 있다. 병력을 모은
곳에 그것을 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각자 행동하고 있
는 것이다. 아까 부대에서 떨어진 곳에 깃발을 걸어둔 것도,
얄다바오트가 깃발을 표적으로 공격해도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얄다바오트의 성벽을 파괴하는 힘은 몇 번씩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나? 이산드로."
성기사단의 부단장은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검술 실력은 평범했지만, 그 이외의 점을 인정
받은 구스타포 몬타녜스. 지금은 도시를 둘러싼 방벽으로
향하는 성기사들을 지휘하고 있어 이 자리에는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지금, 레메디오스에 옆에 있으면
서, 질문을 받은 상대- 아홉 색의 하나, 분홍색을 이어받은
이산드로 산체스였다.
"몇 번이고 쓸 수 있다면 지금,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뭔가 조건이 있거나, 다시 사용할 수 있기까
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역시 흩어져서 이동하는 건 걱정이 너무 심하다
니까."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막대한 힘을 소모
하기 때문에 온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방심
은 금물입니다."
"그런가. 알았다."
레메디오스는 이야기를 끊었다. 역시 머릴 써서 생각하는
것은 성격에 안 맞았다.
특히 정치 같은 것은 머리가 아팠다. 그 중에도 여자인 성
왕은 전례가 없다는 귀족들이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일은, 조
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르카에 대한 호칭도 그렇다.
그것은 [성왕] + [여자]라는 의미였다. '여'자를 앞에 두
는 것도, 새로운 호칭을 만드는 것도 반대한 결과였다.
그 점에서, 강하고 약하다는 것은 심플해서 좋았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신관단, 모험자단의 깃발도 올라왔
습니다."
"카르카 님은?"
"아직입니다."
"그런가... 하지만 슬슬 지속시간이 긴 방어마법 같은 것
은 걸기 시작해둬. 카르카 님이 도착하시자마자, 우리들이
가장 먼저 얄다바오트에게 접근한다. 놈의 시선을 끌어, 미
끼가 되는 거다.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상대의 특수한 공
격에 대비하라."
부하들로부터 일제히 늠름한 대답이 들려왔다.
"광장에서 움직인 기색은 없나."
선견대의 전멸은 확인되었다. 만약 목표가 움직였다면 선
행 정찰을 갔을 터인 모험자들로부터 연락이 들어왔을 것이
다. 그것이 없다는 것은, 얄다바오트는 출현한 장소에서 전
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깔보지마라, 악마 주제에. 여기에서 우리들을 전멸시키
면, 이 나라를 간단히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아, 아니 단장님. 어쩌면 시간을 벌고 있을 가능성도 있
습니다. 여기에서 저희가 얄다바오트와 싸우기 위해서 발이
묶여있으면, 아인들의 군대가 유리하게 싸울 수 있으니까
요."
"...과연. 그럴 가능성도 있군. ...이 얄다바오트라는 녀석,
제법 머리가 좋은데."
"악마니까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을까 싶
습니다."
"...흥. 우쭐해하고 있는 악마 따위, 박살을 내서 엉엉 울
게 만들어주마."
레메디오스가 신에게 맹세하고 있는데,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마지막 깃발이 올라왔다.
"부단장!"
"옛! 모두, 준비완료되었습니다!"
"좋아! 나를 따르라!"
레메디오스는 달렸다. 웃기지도 않는 악마의 얼굴에 검을
꽂아주겠다고 결의를 굳히면서.
길을 꺾고, 달리고, 다시 길을 꺾었다.
그러자, 인간의 잔해가 흩어지고, 넓은 범위에 걸쳐 진홍
으로 물든 광장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수상한 녀석이 보였다.
가면을 쓰고, 그 허리에는 꼬리가 달려있었다.
도망쳐온 병사들이 말한 것과 완전히 같은 모습.
박쥐 같은 날개도 꺾여있는 뿔도 없고, 괴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특징은 꼬리뿐이었다. 이렇게 보니 가면을 쓴 남자
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얄다바오트냐!!!"
"레드카- 이런!"
내장이나 피의 냄새가 뒤섞인, 코를 찌르는 것 같은 악취
가 풍기는 광장에 들어가보니, 짓밟은 살덩이가 질척한 소
리를 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쓸 의식은 더이상 조금
도 없었다. 그저, 전력으로 돌격해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녀의 일격을 아주 간단히 피한 얄다바오트에게 불쾌함
을 더욱 강하게 느끼면서, 올려베었다.
그것도 역시 피했다.
레메디오스는, 자신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
도 좋은 결과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을 모두, 싸우는 힘을 키우기 위해
서 사용했다. 명백하게 그 방향으로 재능이 있다고 알고 있
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나라에서는 최상위의 전사로서
이름을 알리기에 이르렀다.
그 성기사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의 감이 외쳤다.
얄다바오트의 회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방심하고 있는
것 같은 태도는 그에 어울리는 실력을 가졌기 때문. 여기에
서 시작되는 전투에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그리
고 자신도 더욱 마법적인 강화가 필요하다, 라고.
이런 때의 레메디오스의 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퇴각하라! 너희들은 퇴각하라! -아니, 커다란 포위망을
만들어라! 이 악마는 강하다!"
그 말만을 남기고,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거리를
벌렸다. 부하들은 훨씬 뒤로 물러났지만, 자신은 그렇게까
지 거리를 벌릴 수 없었다. 기껏해야 4미터 정도, 접근하면
즉시 베어버릴 수 있는 거리였다.
얄다바오트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아... 소 같은 여자군요. 뭡니까? 여기 붉은 천이라도
준비되어있는 겁니까?"
악마의 가벼운 말을 무시하는 레메디오스의 시야에, 카르
카나 케랄트가 이끄는 병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미 얄
다바오트와 조우해서, 검을 섞은 레메디오스의 모습에 놀랐
는지,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얄다바오트가 몸을 돌려 카르카를 보았다. 무방비한 등이
레메디오스의 앞에 드러났다. 하지만- 뒤에서 검을 휘두르
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이 레메디오스에게
정지신호를 보냈다.
"둘 다! 이 녀석은 강해! 병사들을 물러나게 하지 않으면
쓸데없이 죽게 된다!"
레메디오스의 외침에 두 사람은 즉시 그에 따라 행동해주
었다. 앞으로 걸어나오는 것은 카르카와 케랄트뿐이었다.
레메디오스는 얄다바오트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서, 두 사람의 앞에 서기 위해서, 원을 그리며 이동했다.
"레메디오스, 무리하지 말아요."
"그래요, 언니. 다같이 덤벼야할 상대 아니었나요."
등 뒤에서 쏟아지는 두 사람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얄
다바오트로부터는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 타이밍에 성벽을 파괴한 힘을 사용해올지도 모르는 것이
다. 그런 기미가 보이면, 즉시 덤벼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얄다바오트에게는 그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 여유가 레메디오스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반드시, 반드시 땅바닥을 기게 만들어주마!)
"당신이 얄다바오트군요."
카르카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인 악마에게 레메디오스는
더욱 불쾌함을 느꼈다. 이 악마가 하는 짓이 하나도 빠짐없
이 짜증이 났다.
"그 말대로입니다. ...당신의 노예는 대답도 듣지 않고 덤
벼들더군요. 혹시 아니었으면 어쩔 생각이었습니까? 뭐, 성
왕국에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야만족이 있는가 하고 감탄
하긴 했습니다만. 이런, 혹시 모르니 미리 질문해두죠. 당신
이 당대의 성왕이지요?"
"맞아요."
[이런 녀석에게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카르카 님]
레메디오스는 검 끝을 얄다바오트에게 겨누었다. [이 녀석
이 얄다바오트라고 알게 되었다면 남은 것은 죽여서 마계로
되돌려보낼 뿐. 대화를 나누었다간 혀가 더럽-]
"저, 저기, 레메디오스. 얘길 들어본다고..."
카르카의 곤혹스러운 목소리에 레메디오스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런 얘길 했던가.
뒤에서 케랄트가 마법을 쓴 모양인지, 몸 안에서 열기가
피어오르고, 놀랄만한 힘이 솟아올랐다. 아까는 피했지만,
이거라면 맞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 시점에 아
그렇군, 하고 레메디오스는 생각했다. 얘길 들어본 건 시간
을 벌기 위해서였나, 하고.
"-하, 하지만 나는 관대하니까 조금은 얘길 들어주지. 뭔
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있냐!"
얄다바오트가 가면 위로 눈가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때때로, 카르카나 케랄트, 그리고 종종 부단장들이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부디, 원하는만큼 시간을 버시죠. 저를 이길 수 있다고
필사적으로 준비한 여러분이 그것을 뛰어넘는 힘으로 유린
당해, 목숨을 빼앗긴다. 그 때문에 더욱, 보고 있는 자들의
절망감은 더해진다. -즐거운 광경입니다."
"그런 걸, 내가 허락할 리가 없잖아!"
"미안해요, 레메디오스. 좀 조용히 해줄래요?"
조금 강한 말투로 카르카가 말했고, 레메디오스는 입을
닫았다. 약간의 말투의 변화이긴 했지만, 이럴 때는 화가
난 상태라고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레메디오스. 조금 뒤로 물러나요."
"하, 하지만, 이 이상 거리를 두면 녀석이 무슨 짓을 했을
때 공격하는 것이..."
"아아, 상관없습니다. 얘기가 끝날 때까지, 혹은 여러분이
공격을 해올 때까지 저는 공격하지 않기로 하죠."
"악마가 하는 소리를-"
"레메디오스!"
"-예."
명령에 따라 뒤로 물러나자, 동생이 귓가- 투구 너머였지
만-에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카르카 님은 상대의 정보를 끌어내고 싶으신 거야. 저 악
마가 무슨 소릴 하더라도 참아야 돼."
발끈, 하고 레메디오스는, 나는 불만이로소이다 하는 태
도를 취했다.
상대는 악마. 그렇다면 말하는 것은 모두가 거짓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잽싸게 베어버리는 편이 머리를 쓸 일이
없어 편하다. 하지만 주군을 방해하는 것은 충성이라고 할
수 없다.지금은 꾹 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 마황 얄다바오트.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
다. 여기에 온 목적은 뭐죠? 이 나라를 유린하고 싶다면, 성
벽 때는 같이 있었던 아인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는 것은 어
째서인가요? 혹시-"
"-아아,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예측이 되는 군요. 아무래도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딱히 교섭이 하고 싶어서 저 혼자서 온 것은 아
닙니다."
레메디오스의 뒤에 선 카르카로부터 [그런가요]하고 유감
스러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혼자서 온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아인들의 군세
에 의한 난전 속에서, 죽어가는 것보다는, 저 한 사람에게
짓밟히는 편이 절망은 더 깊어질 것이기 때문.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왕국에서의 실패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설마 그
땅에 저와 동등한 힘을 가진 전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 저와 동등한 존재가 있는
지 없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 저 혼자서 온 겁니다."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 이렇게나 시간을 줬지 않
습니까. 있었다면 이 도시- 이 나라의 최중요인물인 당신의
근처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자는 찾아볼 수
가 없군요. 몰래 숨어있는 쥐새끼들 중에도 말이죠."
"너! 우, 우리들이 그 전사보다 약하다고 말하는 거냐!"
흘려들을 수 없는 말에 참는 것도 잊고, 레메디오스는 외
쳤다. 카르카나 동생에게 들은 말은 절반 정도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렸지만, 덤벼들어선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렇게 말씀드릴 생각이었는데 전달이 안 됐나봅니다?
알고 싶은 것은 그게 전부입니까? 성왕녀님?"
"하나 더 있었습니다만- 천사대, 앞으로!"
기백이 담긴 카르카의 목소리가 광장 가득 울려퍼졌고,
후방에서 포위망을 만들고 있던 근위대나 신관들 사이에 숨
어있던 천사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제3위계의 마법에 의해 소환된 불의 검을 그 손에 든 천
사- 불의 상급천사가 다섯. 제2위계 마법에 의해 소환된 엔
젤 가디언(수호의 천사)이 스물. 그리고 여기에 오기까지
카르카가 제4위계를 써서 소환한 프린시퍼리티 피스(안녕
의 권천사)가 하나였다.
천사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
지만, 카르카가 소환한 프린시퍼리티 피스가 낮은 위계의
신앙계 마법을 다루며, 악의에 대한 가호, 악을 공격하는
일격, 전체진정화 등의 특수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빈번하게 소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가득해진 전의에 영향을 받아, 이제 참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레메디오스는 돌격을 감행. 보통이라면
신관들로부터 엄호로 공격마법이 날아갈 터였지만, 천사를
소환하기 위해서 온존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은 없었다.
레메디오스는 습득하고 있는 직업, 이블 슬레이어의 특수
기술을 발동했고, 성검에 깃든 성스러운 힘에 더욱 힘을 불
어넣었다.
그 찰나- 얄다바오트의 등 뒤에 갑자기 모험자가 다섯 사
람 나타났다. 투명해지는 마법을 써서 거리를 좁히고 있었
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어째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는지
는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인비저빌리티(투명화)>라는 마법
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마법이고, 어떻
게 되면 효과가 사라지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모험자들에게 얄다바오트는 요격하
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눈치챈 기색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얄다바오트에게서 감지한 위협적인 느낌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실, 여기에 있는 것은 환각이나 분신
이고 실제로는 이 자리에 없는 것인가.
아니- 하고 그녀는 후자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것은 있
을 수 없다. 그녀의 감은- 악의 냄새를 맡는 코는, 거기에
얄다바오트가 있다고 알리고 있었다.
모험자들이 놀란 모습으로 황급히 얄다바오트에게 덤벼들
었다. 그들의 무기가 닿을 거라고 생각한 순간, 얄다바오트
의 등 뒤에서 기괴한 날개가 돋아났다. 그것이 마치 칼처럼
뒤에서 덤벼든 자들의 몸을 꿰뚫었다.
가슴이 관통되고, 폐에 피가 흘러들어간 듯했다.
피거품을 토해내면서도, 그래도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의
불꽃을 쥐어짜서, 단 한 사람의 모험자가 얄다바오트에게
다시 한 번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얄다바오트는 그 공격을 몸에 맞아도, 조금도 대
미지를 입지 않은 눈치였다.
여기에 모인 것을 보면, 그들도 실력자일 것이다. 당연한
준비로서, 성별(聖別)된 무기를 준비했을 것이다. 그래도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는 것은, 이 악마는 어지간히 고위의
존재.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일 사이에 그 정도로 상황이 변화하
는 가운데, 공격범위까지 접근한 레메디오스는 [으랴아아
아!]하는 절규와도 같은 포효와 동시에 성검을 비스듬히 베
어내렸다.
얄다바오트가 뛰어올랐고, 그 촉수 같은- 아니 어쩌면 이
것은 촉수일까- 날개로 관통한 모험자들을 레메디오스를 향
해 던졌다.
받아줘야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손잡이를 놓은 왼손으로, 그것들을 때려서 날려버리듯이
요격하면서-
"-유수가속."
무투기를 발동시켜, 접근했다. 그리고 찔렀다.
얄다바오트의 목을 노리고 찔러넣은 성검은, 갑자기 길게
뻗은 손톱에 밀려나-
"성격(聖擊)!"
손톱과 접촉한 순간, 검에 깃든 힘을 흘려넣었다.
성기사가 얻는 이 초보적인 특수기술은, 원래라면 날이
육체에 파고든 순간을 노려 발동시키는 것이었지만, 닿기만
해도 못 쓸 것은 없었다. 성스러운 힘이 겉에서 작렬하기
때문에 줄 수 있는 대미지는 훨씬 적어지지만, 그래도 이
기술을 사용한 것은 모험자들이 죽은 지금, 얄다바오트에게
대항할 수단이 있다고 주변에 알려서, 사기의 저하를 막아
야한다고, 성기사로서의 감- 동생으로부터는 야성의 감이라
고 불렸다- 이 외쳤기 때문이다.
"과연..."
뒤로 더욱 물러난 얄다바오트와 레메디오스의 사이에 천
사들이 끼어들었다. 그들은 머리 부근을 부유하면서 얄다바
오트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칫, 하고 레메디오스는 한 번 혀를 찼다.
얄다바오트의 손톱과 성검이 접촉한 순간에 일어난 날카
로운 금속음은, 상대가 가진 손톱이 어느 정도의 경도를 가
지고 있는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법에 의해 강화된 그
녀의- 자세가 완벽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일격을 쉽게 흘려
보낸 육체능력도.
저 정도의 강자와 싸울 수 있는 것은 일부의 강자들뿐. 제
3위계나 제2위계로 소환할 수 있는 천사는 평소의 몬스터
퇴치에서는 유효하지만, 이번 싸움에서는 방해가 될 뿐이었
다. 특히 눈높이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천사의 신발이 성
가셨다.
"<페네트레이트 매직 홀리레이(마법저항 돌파화 성스러운
광선)>"
동생으로부터 마법이 날아왔다. 하지만, 얄다바오트의 앞
에서 튕겨나듯이 사라졌다.
"<트윈 페네트레이트 매직 홀리레이(마법 이중저항 돌파
화 성스러운 광선)>"
카르카로부터 두 개의 광선이 날아왔다. 둘 중 어느 한쪽
이라도 얄다바오트의 마법무효화 능력을 돌파할 수 있기를
바랐겠지만, 유감이지만 둘 다 동생의 것과 같은 결과를 맞
이했다.
마법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은 방어능력을 가진다는 뜻일
것이다. 즉-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군!)
더욱 기합을 불어넣고, 큰 소리로 외쳤다.
"좀 더 머리를 써서 천사들을 싸우게 해! 의미가 없어!"
사실, 천사에게 머리 위라는 유리한 위치를 빼앗기고, 거
기다 주변을 포위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얄다바오트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그것도 그럴만했다. 이 정도의 숫자로 포위
하면서도, 얄다바오트에게 명중한 공격은 하나도 없었다.
달려온 모험자들이 레메디오스의 바로 곁에서 쓰러진 동
료를 회수해갔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몸은 그들이 죽었
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듯했다.
"...귀찮군요. 벌레들이라도 숫자가 많으면 불쾌합니다."
얄다바오트의 여유 넘치는 태도.
실제로, 후방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무효화하고, 물리적인
공격을 완전히 회피하고 있으면, 압도적 우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대와 싸운 적이 없다고 생각해?)
소환에 특화된 술자가 아니라면, 소환된 몬스터는 술자
본인보다도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사태는 때때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강자를 상대로 천사를 가장 유효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하늘로 올라간 천사들이 일제히 얄다바오트에게 덤벼들었
다. 검이 아니라, 태클이었다.
-그렇게 상대의 움직임을 막는 거다.
이것은 효과적이었다.
초조함을 느낀 것인지, 얄다바오트가 공격에 나섰고, 그
손톱에 의한 일격에 천사들이 몇 체씩 허공으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공격에 당해 빈 곳은 뒤에 있는 천사가 메우고,
허공으로 사라진 천사를 대신해 공격을 계속했다.
그것이야말로 소환 몬스터의 무서운 점이었다. 죽음이 진
정한 끝이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가진 능력을 완전히 살려
서 행동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폭포처럼 계속되는 천사들의 움직임을, 컨베이
어 작업을 하는 것처럼 베어나가는 얄다바오트에게 레메디
오스는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방심!)
조용히 이동하고 있던 레메디오스는 얄다바오트에게 뛰어
들었다. 위에서 덤벼드는 천사들을 경계하고 있던 얄다바오
트의 치명적인 틈을 간파하고.
"-뭣이!"
"으랏샤아아아아!"
특수기술을 발동시키고, 거기에 무투기를 발동시킨 성검
에 의한 혼신의 일격.
성검이 가진 최대의 힘을 온존시킨 것은, 하루에 한 번밖
에 쓸 수 없는 그것은, 아직 여기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고 그녀의 감이 속삭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외한 공격수단 중에는 최대급의 일격을 맞고,
얄다바오트는 거의 수평으로 날아갔다. 그대로 광장의 너머
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레메디오스는 검을 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언니! 해치웠군요!"
동생의 기뻐하는 목소리에 큰 소리로 외쳤다.
"아직이다! 그렇게 날아갈리가 없잖아!"
"언니의 바보 같은 힘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놈은 스스로 날아간 거야!"
그렇다. 얄다바오트를 포위망에서 눈을 뻔히 뜨고 놓쳐버
린 것뿐만이 아니라, 건물 안에 숨을 찬스를 주고 말았다.
얄다바오트와 다소나마 유리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은, 상
대를 포위하고, 일 대 다수의 상황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
이다. 좁은 가옥에 숨어들면 자신들에게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이걸로 얄다바오트의 움직임이 바뀌어, 놀이라는
방침을 버릴지도 모른다.
"레메디오스! 어쩌면 좋을까요!"
카르카의 외침.
평소에는 레메디오스가 질문하고 카르카가 대답하는 입장
이었지만, 지금은 역전되었다. 전투에 관해서는 두 사람보
다도 자신이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접근하지 말고 건물을 파괴해!"
그 명령에 따라, 신관들이 공격마법을 사용했다.
점점 무너져가는 가옥. 하지만 파편에 깔린 얄다바오트가
죽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마법의 갑옷을 입은 상태라면
레메디오스도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은 한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게다가-
레메디오스는 피가 묻지 않은 검신을 보았다.
그 정도의 일격을 정말로 스스로 몸을 날린 것만으로 받
아냈다는 말인가. 어쩌면 요새 같은 무투기를 사용한 것 아
닐까. 아니면 악마 특유의 어떤 특수능력일까. 온갖 가능성
이 있을 수 있었지만, 간파하지 못하면 안 되었다.
와르르하는 소리를 내면서, 범위공격마법에 의해 가옥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대량의 먼지가 피어올랐고, 무심코 기
침이 나왔다.
"레메디오스. 어째서, 얄다바오트는 나오지 않는 거죠?"
"...언니, 혹시 전이해서 이미 도망친 것 아닐까요?"
(그렇게 오만한 발언을 한 악마가? 상처라도 입지 않았다
면 녀석이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
"...화공을 써야겠군요.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죠. 거기에
카르카 님의 축복을 걸 수 있을까요?"
"언니, 성화의 의식을 치르는 건가요? 그걸 상대에게 손
상을 입히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다니... 그게 성기사가 할
짓인가요?"
"상관없어요. 그게 최선의 수단이라고 레메디오스가 생각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해요. 악마라
면 그걸로 상처를 입지 않을리가 없어요."
악마는 불 같은 것에 내성을 가진 것이 많지만, 성화는 불
과 성 속성을 겸비하기 때문에 불에 내성이 있어도 절반밖
에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럼 카르카 님. 의식의 준비를-"
"그럴 시간은 없어. 간략화해서 부탁드립니다."
카르카를 정면에서 보고 하는 발언에, 동생이 [그건]이라
고 말하려는 것을 눈짓으로 막았다.
의식마법인 성화를 간략화했을 경우, 술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상당히 커지게 된다. 카르카의 몸을 지켜야하는 수
하가 꺼낼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얄다바오트에게 시간을
주는 것은 위험했다.
"그게 최선의 수단이라고 당신이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겠
어요. 단, 저 혼자서 했을 경우, 그 이후 엄호는 불가능해집
니다. 그것만은 알고 있도록 해요. ...그럼 즉시 불을 놓아
주겠어요?"
"알겠습-"
"-후후후. 곤란한 분들이군요."
갑자기, 파편더미에서 들려온 얄다바오트의 목소리.
"언니!"
"나도 알아!"
즉시 레메디오스는 카르카의 앞에 서서, 검을 들었다.
얄다바오트는 역시 건물에 깔려있는 모양이었다.그리고
이 타이밍에 말을 했다는 것은 성화에 의한 공격을 선택한
것은 정답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설마, 건물에 깔린 쇼크로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닐테니까.
"슬슬, 저도 진심으로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호오. 그럼 더 빨리 힘을 써줬으면 좋았을 것을. 기다리
고 있으니까 빨리 힘을 보여주지 않겠어? ...카르카 님, 케
랄트. 뒤로 물러나."
두 사람에게 작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레메디
오스도 물러나서, 얄다바오트와의 직선상에 다시 소환된 천
사들에 의한 방벽을 만들었다.
"그렇군요. 그럼 조금 물러나주시죠. 제가 일어나는 충격
으로 죽어버려도 흥이 깨지니까요."
무너져서, 겹겹이 쌓인 나무나 벽돌이 들썩이며 밀려났다.
그리고 그것들을 떨어내면서, 뭔가 거대한 것이 천천히 일
어났다.
"...얄다바오트?"
무심코 레메디오스는 중얼거리고 말았다.
아까의 얄다바오트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다른 악마와 바뀐 건가 하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 정도의 악마가 몇이나 있을 리가 없었다.
틀림없었다. 이것이 얄다바오트였다. 이것이 얄다바오트
의 정체인 것이다.
펄럭이며 펼쳐지는 불꽃의 날개. 긴 꼬리 끝에도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굵은 팔의 끝에도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사악한 얼굴은 분노의 빛을 머
금고 있었다.
"신관들이여! 천사를 공격시켜요!"
케랄트의 명령에 따라, 신관들은 자신이 소환한 천사들을
돌격시켰다. 손에 든 무기로 공격하는 천사를 얄다바오트는
반격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 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주변을 포위당하고, 공격을 당해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아이가 전신갑주를 입은 성기사에게
덤벼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 본성이다."
뱃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은 굵직한 목소리가 얄다바오트
에게서 들려왔다. 그리고 한 걸음, 굵은 다리를 내딛더니,
그에 압도당해 천사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천사들의 공격을 모두 무시하고, 얄다바오트가 천천히 불
꽃에 휩싸인 손을 쥐고, 주먹을 만들었다. 거칠게 불꽃을
뿜어내는 그것은, 마치 붉게 타오르는 용암덩어리 같았다.
"어리석고 시끄러운 날벌레들- 사라져라."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레메디오스의 앞에 있었을 터인 천
사들이 소멸했다.
단련된 동체시력을 가진 레메디오스의 눈으로도, 한순간
의 잔상조차 남지 않을 것 같은 놀라운 속도로 얄다바오트
가 그 손을 휘두른 것이다. 그 일격에 레메디오스의 벽이
되어주던 천사들이 소멸당했다.
이것이 얄다바오트의 진정한 모습.
복수의 천사를 간단히 없애버리는, 그 압도적인 힘에 레
메디오스는 꿀꺽 침을 삼키며, 그리고 성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땀이 배어나오고, 갑옷 아래의 옷의 색이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걸-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이야아아아아!!"
레메디오스는 외쳤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무모한
돌격이라도, 여기에서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 마음이 패배를
인정해버린다. 검을 꽉 쥐고, 달려들었다.
그녀의 전력을 담은 상단에서의 일격.
얄다바오트는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스울 정도로 간단히 튕겨나갔다.
"-에?"
아다만타이트급의 경도를 가진 미지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을, 얄다바오트는 피부로 튕겨낸 것이다.
올려다보니, 얄다바오트의 시선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
다.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인간이 내려다볼 일이 없는
것처럼.
"맨손으로 상대하는 것도 귀찮... 아니, 좋은 무기가 있
군."
얄다바오트가 레메디오스를 무시하고 걷기 시작했다. 레
메디오스는 그 거구에 밀려났다.
"윽! 제, 제기랄!"
뒤에서 레메디오스는 새롭게 소환된 천사들과 함께 몇 번
이나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 금속 같은 광택을 가진 피부
에는 검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공격마법이 날아왔다. 하지만, 역시 전부 튕겨나갔다.
(이 녀석, 멈추지도 않고 어딜-)
얄다바오트가 가는 곳에 시선을 준 레메디오스는 핏기가
빠져나갔다. 거기에 있는 것은 카르카와 케랄트였다.
"너희들 뭐하는 거야! 공격해! 공격하라고!"
후방에 배치된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뭔가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얄다바오트를 카르카
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카르카와 케랄트를 물러나게 해! 이 녀석이 노리고 있는
건 그 두 사람이야!"
성기사와 신관들이 두 사람의 앞에 서서, 벽을 만들었다.
정말이지 약해빠진 벽이었다.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외치고, 몇 번이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떤 공격으로도 얄다바오트의 피부는 뚫을 수
없었다.
성기사들이 검을 휘두르고, 신관들이 마법을 날렸다. 그
래도 얄다바오트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무 일도 없
다는 듯이 그저 전진하고 있었다.
그 몸에 깃든 불에 닿은 자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
지만, 얄다바오트 자신은 공격의 의사마저 없는 것처럼 보
였다.
"둘 다 도망쳐! 지금의 우리로선 이 녀석을 막을 수 없
어!!"
외치면서도 레메디오스의 얼굴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있었
다.
왕국에서는 모험자가 격퇴했지 않은가. 아다만타이트급의
모험자와 자신은 동등하거나, 혹은 자신이 더 위였다. 그렇
다면 어째서, 그 자신이 얄다바오트를 막을 수가 없다는 말
인가.
(뭔가, 분명 뭔가가 있는 거야! 그걸 알아내야해! 이 녀석
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얄다바오트의 무적에는 뭔가 비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
다. 일부의 몬스터가 은 같은 특정물질 이외의 금속에 강한
것처럼, 그런 어떤 방어능력으로 그 몸을 지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대체 뭐냐고!!)
그녀가 믿어왔던 감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이럴 때, 부단장들이나 케랄트, 혹은 카르카
로부터 지시가 오고, 자신은 그것을 실행하면 되었다. 하지
만, 그 세 사람도 말을 해주지 않고 있었다.
초조함을 느낀 레메디오스였지만,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을 도망치게 한다면, 녀석의 목적은 저지할 수 있
다.
그것은 두 사람도 알고 있었는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즉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거면 되었다. 바보처럼 망설이고 있을 시간 따위는 진
정한 전장에는 없다. 레메디오스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이
나라의 정점인 성왕녀만 살아남아준다면 어떻게든 된다. 그
리고 최악의 경우, 성왕녀가 죽더라도, 동생이 살아남고, 시
체만 회수할 수 있다면 죽은 자의 소생도 가능하다.
신관 몇 사람- 아마도 제3위계는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
일 것이다- 이 카르카의 주위에 있으면서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라는 벽이 있다면 두 사람이 달아날 시간은 더욱 벌
수 있을 것이다.
"흐음- <그레이터 텔레포테이션(상위전이)>."
갑자기, 얄다바오트의 모습이 사라지고, 검이 허공을 갈
랐다.
"뭐!"
서둘러서, 주변을 둘러본 레메디오스의 귀에 단말마 같은
비명이 들려왔다. 레메디오스의 심장이 불길하게 고동쳤다.
목소리가 들린 것은 두 사람이 간 방향이었다.
하지만 그 쪽은 성기사의 벽에 막혀서 보이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마법의 아이템의 힘으로 공포는 억눌렀지만,
초조함은 생겨났다. 동생을 포함해서, 경호하는 사람이 죽
었다면 얄다바오트와 대치하고 있는 것은 카르카 단 한 사
람. 이 나라의 정점. 잃게 된다면 나라가 끝장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방해하지마아아아!"
외치면서, 레메디오스는 달렸다. 성기사들이 황급히 비켰
다.
카르카에게 도달하기까지 너무나도 멀었다.
어찌 이렇게 둔한 몸이란 말인가.
자신의 근력, 각력은 인간종 최고봉이라고 내심 자부하고,
남몰래 자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망한 착각이었
다고 이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일격을 버텨주기만 하면 된다. 크게 다치더라도 여기에는
신관이 여럿 있다. 죽지만 않았다면 어떻게든 된다.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면서 달린 레메디오스는, 얄다바오
트에게 잡힌 카르카의 모습을 발견했다. 케랄트는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얄다바오트는 거대한 손으로 카르카의 두 발을 잡고 있었
다. 그 두 손은 불꽃에 감싸여있었다. 신발이 불타고, 그 밑
에서는 살이 익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투구를 쓴 그
녀의 얼굴은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은 고통에 일그러졌고,
가지런한 이는 꽉 악물고 있었다.
(비겁한! 인질인가!)
얄다바오트는 무엇을 요구해올 생각인가- 긴장하던 레메
디오스는 이어지는 얄다바오트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괜찮은 무기군."
"-하?"
레메디오스는 순간, 자신이 가진 성검에 시선을 주었다.
이것이 갖고 싶다는 말인가.
"처음 봤을 때부터 딱 좋은 무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손을 들어, 늘어진 카르카의 몸을 시선의 높이까지 들어
올린 얄다바오트가 휙 팔을 휘둘렀다. 마치 검을 휘두르는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빠득 하는 소리가 들리고, 카르카의 억눌린 비명이 들렸
다.
얄다바오트의 압도적 파워와 스스로의 체중을 견디지 못
하고, 무릎의 관절이 원래대로라면 꺾일 일이 없는 방향으
로 꺾인 것이다.
그 때 레메디오스는 간신히 의미를 이해했다.
놈은 성왕녀, 카르카 베살레스를 무기로 삼겠다고 말한
것이다.
"무, 무슨 짓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간다?"
분노에 가득찬 얼굴에 희미하게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얄다바오트가 다가왔다.
이런 걸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레메디오스가 물러나고, 뒤에 있었을 성기사들이 마찬가
지로 물러났다.
(이, 이런 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 어떻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시선을 돌려보니, 얄다바오트의 뒤
쪽에, 아까까지 카르카를 지키고 있던 신관들과 케랄트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관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동생은 조금이나마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조용히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생- 살아있어! 누굴 먼저 구해야- 이산드로에게 물어
보는 수밖에 없어)
"이산드로! 어떻게 하지!?"
"후퇴를!"
"알았다! 전원 후퇴! 물러나라! 물러나!"
"-뭐지? 싸우지 않을건가? 모처럼, 너희들을 박살내기 위
한 무기를 손에 넣었는데... <파이어 볼>."
얄다바오트가 카르카를 들지 않은 쪽의 손을 내밀고, 거
기에서 제3위계의 공격마법을 쏘았다. 날아온 불꽃이 파열
하고, 범위 내의 성기사들을 불태웠다.
성기사들은 화염 내성의 마법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치명
상은 간신히 피한 모양이었지만, 그저 죽지 않았을 뿐이었
다.
카르카는 몸을 비틀면서 필사적으로 날뛰고 있었지만, 얄
다바오트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시끄러운 여자군. 지금 너는 내 무기. 그렇다면 무기는
무기답게 굴도록."
몸을 살짝 움츠린 얄다바오트가 카르카를 든 손을 들어올
렸다.
"그만둬!"
얄다바오트가 무슨 짓을 할 것인지 눈치채고, 레메디오스
는 비통하게 외쳤다. 하지만, 얄다바오트는 조금도 그녀를
보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퍽.
막는 것이 늦었는지 카르카의 안면이 대지와 격돌했다.
그리고 얄다바오트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보니, 저항할
의사를 잃은 것처럼 카르카가 늘어져있었다.
그녀가 쓴 투구는 앞부분이 열려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미모가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름다웠던 얼굴에는 새빨간 피가 흐
르고, 코도 무너졌는지 평평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 놈잇!"
"멍청아! 그만둬!"
부하 가운데 한 사람- 성기사가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막으려고 한 것이 너무 늦었다.
인간 한 사람을 들고 있는데도 놀랄만한 속도로 얄다바오
트는, 덤벼오는 기사를 향해 카르카(무기)를 휘둘렀다.
두 사람이 부딪히고, 강렬한 금속음과 함께 성기사가 튕
겨나갔다.
그 갑옷은 거인에게 일격을 당한 것처럼 찌그러졌고, 카
르카와의 충돌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레메디오스는 카르카로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타종족에 비해 표피가 부드러운 인간종이라도, 강자가 되
면 기나 마력으로 그 몸을 보호해서, 의식이 있다면 검으로
베더라도 부상을 입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 의식이 있다면, 그렇다.
충격으로 벗겨졌는지, 투구가 어딘가로 날아가버렸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 상태로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코는 무너져 앞니가 사라졌고, 흰자
위를 보이면서 희미한 신음소리만 내고 있는 모습은, 지보
라고 불린 아름다움의 한 조각도 남지 않았다. 너무나도 심
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좋지? 이산드로! 카르카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지!"
"모, 모르겠습니다!"
"쓸모없기는! 네 머리는 이럴 때를 위해서 있는 거잖아!"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해봤겠습니까! 전원 철수하는 수
밖에 없어요!"
"동생도, 카르카도 버리고 말이냐!"
"그 이외에,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 말을 듣고 레메디오스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이런, 적을 앞에 두고 싸우다니 무서운 인간들이군.
슬슬 시간이 됐어. 이쯤에서 놀이는 끝내기로 하지."
"뭐라고?"
얄다바오트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군세가 이 도시에 도달할 시간이 됐다. 서둘러서 성문
을 부수고, 포학과 살육의 태풍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겠
어."
"그, 그런 짓을 우리가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허락할 필요는 없다. 그냥, 받아들여라. 별이 보내는 선
물처럼, 말이지."
얄다바오트가 카르카를 들지 않은 쪽의 손을, 바라듯이
위로- 하늘로 들어올렸다.
"-그만둬!"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알았기 때문에, 레메디오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모두가 수수방관하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성왕
녀라는 인질이 있기 때문에 얄다바오트를 공격할 수가 없었
다.
아니, 공격을 했을 경우, 카르카의 몸으로 막아내는 것을
다들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러다 카르카가 죽어
버리면 어떻게 하면 좋다는 말인가.
레메디오스를 포함한 그들의 망설임을 무시하고- 별이 떨
어졌다.
2장 [구원을 찾아서]

1.

왕국의 길을 한 사람의 소녀가 걷고 있었다.


특별히 귀여운 얼굴은 아니었다. 모두가 돌아볼 것 같은
용모는 아니었지만, 나쁜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치켜올라간 날카로운 눈꼬리에 검고 작은 눈, 늘
노려보는 것 같은 눈매와, 거기에 눈밑에 있는 기미가, 어
쩐지 뒷세계의 주민 같은 흉악함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파 속을 걷기에는 편리했지만, 도시의 문 같은 곳은 철
저하게 소지품을 검사받는 그 소녀, 네이아 바라하는 하늘
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침침하고 두터운 구름이 한 곳을 뒤덮고 있었고, 아
직 낮도 되지 않았는데, 해가 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한겨울도 지나갔지만, 아직 봄까지는 멀었다.
네이아는 피곤한 한숨을 내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예민
한 감각을 동원하면서, 체재하고 있는 여관으로 가는 길을
나아갔다.
도시 내에서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것은, 이 도시에 도착
하고부터 계속,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과도 같은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은 그녀의 기분탓일 것이다.
후드가 달린 망토로 얼굴은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
을 보면 그녀가 타국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그녀가 느끼고 있는 뭐라 할 수 없
는 묵직한 공기는 기분 탓이 아니었다. 걸어가는 사람을 훔
쳐보면,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고, 발걸음 역시 무거웠다.
겨울의 음울한 공기를 그 몸에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어두운 하늘 탓이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이
리 에스티제 왕국의 왕도를 둘러싼 폐쇄감이라고 하는 것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음울함은 좀 더 다른 원인이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에 일어난 전쟁에서 져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성
왕국의 지금의 백성들에 비하면 즐겁게 뛰어다닐 정도로 밝
은 분위기지만 말이야)
성왕국의 만을 사이에 둔 남쪽은 아직 안전하고, 지옥은
북쪽뿐이라는 모양이다.
그런 정보를 알아도 그리 행복할 수는 없었다. 북부 성왕
국의 패잔병이면서 해방군, 그리고 이 땅에 온 사절단원인
그녀에게 있어서는.
암울한 기분이 된 네이아의 손은, 구원을 바라듯이 허리
로 움직였다. 전해져오는 것은 철 특유의 차가운 감촉.
허리에 찬 검은 성왕국 성기사단의 문장이 들어간 그녀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성기사가 가진 검에는 경미하지만 마법의 힘이 담겨있지
만, 그녀가 가진 검에는 그것이 없었다. 이것은 훈련생 계
급인 종자용의 검이기 때문이다.
훈련을 완전히 마치고, 성기사로서 임명되었을 때 비로소,
사용해온 애검에 마법의 힘을 담아주는 것이다. 그것이 성
기사 임명의 의식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 때까지는 단순히
예리한 쇳덩이일뿐이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혹독한 훈련을
함께 해온 애검이었다. 불안을 느꼈을 때에 무심코 만져버
리는 버릇이 생겨도 무리는 아니었다.
철에서 전해지는 감촉에, 조금 마음이 진정된 네이아는
하얀 숨을 토해내고, 망토의 앞을 여미고는, 발걸음을 서둘
렀다.
앞으로 하게 될 나쁜 보고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걸음을 서두른 것이다. 안 좋은 일
은 빨리 끝내는 편이 나았다.
이윽고, 그녀들 사절단 일행이 묵고 있는 여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훌륭한 여관으로, 숙박비도 그만큼 높았다. 들리는
얘기로는 이 왕도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드는 여관인 모양이
었다.
고향인 성왕국 북부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동포가 고통
받고 있는 와중에, 자신들만이 사치를 만끽하고 있는 것은
꺼려지는 일이었다. 실제로, 사절단의 단장을 맡은 여성은
너무 사치스럽다고 반대했다. 수준을 낮추어, 남은 금전을
다른 일에 써야한다, 라고.
하지만, 부단장을 맡은 남자의 제안에 의해, 단장의 의견
은 철회되었다.
[성왕국의 대표인 우리가, 저렴한 여관에 머물고 있으면,
그것을 본 자들은 성왕국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피하는 의미에서도, 비싼 여
관에 체재하면서, 우리나라가 아직도 건재하다고 어필할 필
요가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부단장의 말은 타당했고, 사절단의
누구도 반론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장만은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는지 완고하게 반대했다. 어르고 달래서, 다
른 단원에게 설득되는 형태로 마지못해 여관을 잡게 된 것
이다.
다만, 그래도 쓸데없는 돈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은 전원이
알고 있는 바였다. 짧은 체재기간 사이에 끝낼 수 있도록,
종자일 뿐인 네이아도 목적수행을 위해서 차출되게 되었다.
사절단이 왕국을 방문한 목적은 성왕국에 대한 지원 의뢰
였으며, 네이아나 다른 단원들이 명령받은 것은, 먼저 왕국
의 권력자들에게 면회를 하는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약속만이라면 종자들이 가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단장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단원 중에서 종자는 자신 한 사람뿐, 다른 사람들
은 전원 어엿한 성기사였다. 약속을 잡았다고 해도, 나중에,
그 상대가, 다른 권력자의 곁에는 성기사가 갔는데, 자신에
게는 종자가 왔다고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보통은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그것은 네이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그 점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내보았지만 명령은 철회되지 않았다. 그 이상, 종자 주제
에 말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네이아는 버
텼다.
자신 한 사람의 실패로 끝난다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
지만 그 결과에 따라 고통에 신음하는 성왕국에 대한 원조
가 줄어들지도 모르는 것이다. 네이아의 실패로 많은 백성
들이 죽어버리는 가능성이 있는데도 [예, 알겠습니다]하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었다.
종자 따위가 즉시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으로, 단장
의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마치 모두 네이아가 잘못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것도 부단장이 사이에 끼어들
어, 간신히 진정되기는 했지만, 단장이 네이아를 그리 좋게
여기지 않는 것은 틀림없었다.
종자인 네이아가 동행한 것은, 그 예민한 시력으로 여정
도중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터였다. 그 이외의 부
분에서 능력을 기대해도 곤란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리도 없나...)
네이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아]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대로 하얀 숨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관에 들어가면 또 바늘방석일 거라고
생각하니, 위가 아파왔다.
네아아가 간 곳의 귀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 왕국에
서의 지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약속을 잡
지 못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장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은 틀림없었다.
(...보통, 무리란 말이지. 나름대로 지위가 높은 사람한테
당장 만나고 싶다고 해도. 내 신상을 알아보거나, 정보를
모으는 시간은 필요할 거고. 1주일 뒤 정도라면 면회할 수
있었으려나)
뭐 그것도, 상대가 거절하기 위한 구실이었다는 기분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며칠 안에 왕도를 떠난 다는 건 단장이 내린 지시였고...
단장이라...)
지금의 단장은 항상 신경이 날카로웠고, 감정의 통제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전의 단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네이아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단장은 관대하고 느긋한- 나쁘게 말하
자면 대강대강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왕녀를 잃은 싸움에
서 성격이 많이 바뀌고 말았다.
"...뜻대로 잘 안 되네."
종자로서는, 단장의 부조리한 질책에 고개를 숙이는 수밖
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고통은, 성왕국에서 아직도
살아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대단할 것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다.
각오를- 포기일지도 모르지만- 다졌을 무렵, 네이아는 여
관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리고 후드를 벗고, 여관의 훌륭한
문을 밀어젖혔다.
고급스러운 여관답게, 곧 라운지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작은 방이 있었다. 여기에서 신발에 묻은 흙 같은 것
을 떨어내도록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 다녀온 곳도 이 여관처럼 석조로
정비된 일등구획이었다.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 떨어낼 흙
이 묻을 리도 없었다.
네이아는 즉시, 들어온 곳과는 반대방향에 있는 문을 열
었다.
따스한 공기가 밀려왔다.
들어간 곳의 바로 정면에는 접수처가 있었다. 오른쪽에는
바 카운터. 왼쪽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근처에는 서로 마
주 보도록 배치된 소파가 놓여있었다.
이 방에는 모닥불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공기와 이렇게나 온도가 다른 것은, 마법의 도구 덕분인 모
양이었다.
성왕국에서는 매직 캐스터라고 하면 신관이었고, 그들이
마법 아이템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생활에 도움이 되는 종
류의 물건은 적었다. 왕국은 성왕국보다도 그런 기술력면에
서 한 수 위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가 얘기한
제국이라는 곳은 얼마나 굉장할까.
아마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이 끝날 거
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네이아는 제국에 대한 동경을 조금
품었다.
보통, 마을의 소녀 같은 경우 자신의 마을 이외의 곳을 볼
일도 없이 인생이 끝난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는 있지만,
전사로서 그렇게까지 우수한 재능이 없는 네이아 같은 사람
은 타국을 볼 일이 없이 끝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타국을 볼 찬스를 얻을 수 있었던 것
은, 불행 속의 작은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이아는 그런 것을 두루뭉실 생각하면서 계단을 올라가,
사절단이 묵고 있는 2층의 방으로 향했다. 여관의 사람도
네이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불러세우지는 않았다.
숙박비에 대한 것을 생각하면, 이 여관에 방을 하나만 빌
려서, 단장이나 부단장 일행이 묵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싼 여관에 묵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절약도,
상대에 따라서는 성왕국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할지도 모른
다는 부단장의 말을 단장이 인정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단장의 방에 도착해서, 네이아가 노크하자 문이 살짝 열
렸다. 경호를 위해서 방에 남은 성기사였다.
경호대상은 성왕국 최강의 성기사였다. 사절단 단장이었
다. 지킨다기보다는 종자에 가까운 의미가 더 강했지만, 그
렇다면 자신을 남기는 편이 적재적소에 가깝지 않을까. 모
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네이아는, 물론 그런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네이아 바라하, 지금 돌아왔습니다."
문이 열렸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 끝에 커다란 방이 보였다. 안에는 긴 테이블이 중앙
에 턱하니 놓여있었고, 거기에 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단장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와 부단장 구스타보 몬타녜스
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벽 쪽에는- 사절단원은 총 17명-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의 성기사들이 직립부동으로 서있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에 서류를 펼치고 있었고, 훔쳐보니 몇
개나 되는 이름의 태반이 가로선으로 지워져 있었다.
"단장님. 네이아 바라하, 돌아왔습니다."
가슴을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보고했다.
"-어땠지?"
"죄송합니다. 그 쪽에서 시간이 없다고 거절당했습니다.
적어도 2주일은 있어야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칫."
레메디오스가 혀를 찼다.
찌릿찌릿하는 아픔이 위장을 치달렸다. 그 혀를 차는 소
리는 네이아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거절한 왕국 귀족을 향
한 것인가. 전자인 것처럼도, 후자인 것처럼도 들렸지만, 그
런 무서운 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런가. 추운데, 수고했다. 그럼 방으로 돌아가서, 휴식
을 취하도록."
"옛!"
구스타보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흘릴 뻔한 것을, 네이아
는 참아냈다. 빠른 걸음으로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했지
만, 그 전에 레메디오스가 그녀를 불렀다.
"...그 전에 묻고 싶은데, 더 빨리 만날 수 있도록 교섭은
해봤나?"
"-예? 아! 옛! 물론, 그 쪽에는 그렇게 부탁해봤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무리라는 답변이..."
"네 교섭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 그, 그건-"
그렇지 않다, 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 쪽
이건 질책받는 것은 명백했다.
"...단장님. 그녀가 방문한 귀족만이 아니라, 다른 귀족들
도 비슷하게 거절해왔습니다. 그 중에는 성왕국에 대한 지
원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할 얘기가 있느냐고 말한 귀족
도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끼어들듯이 입을 연 구스타보에게, 레메디오스는 힐끗 시
선을 주었다. 뭐라 할 수 없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네이아 바라하."
"옛!"
공격대상은 역시 자신인가 하고 마음 속의 자신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당연히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패기있는 목소리를 냈다.
구스타보가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레메디오스는 그
것을 무시하고 네이아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얄다바오트가 이끄는 아인
들의 군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대
도시가 이미 넷이나 함락되었고, 작은 도시나 마을들에 이
르러서는 얼마나 점령당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네 개의 도시란, 대성전이라고 불리는 성왕국의 신앙의
중심인 신전이 존재하고, 정치의 중심인 수도 호반스.
수도의 서쪽에 있는 항만도시 리문.
가장 성벽- 요새선-에 가깝고, 아인들의 침공을 가장 먼
저 막아내기 위해 두터운 벽을 가진 성채도시 카린샤.
그리고 카린샤와 호반스의 사이에 있는 도시, 푸라트였다.
즉 북쪽에 존재하는 대도시는 모두 얄다바오트가 이끄는
아인군에게 제압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생존자가 포로가 되어,마을이나 도시에 만
들어진 수용소에 보내어지고 있다.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피도 얼어붙는 것 같은 짓이라고 한다."
"옛!"
수용소는 주변에 벽으로 둘러싸여있고, 잠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간수가 아인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접근해서 내부의 상황
을 살피고 온 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고통의 신음소리와 비
명이 바람에 실려 들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마인 통치자 얄다바오트가 포로로 잡
은 인간에게 자비로운 대우를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너는 그걸 알면서도, 이런 결과를 가지고 오다니 어떻게
된 거냐? 정말로 노력하고 있는 거냐? 그런 거라면 결과를
내야하는 것 아닌가?"
"옛! 죄송합니다!"
확실히 그 말은 옳았다. 레메디오스의 말은 옳다. 하지만
-
네이아의 마음 속에 떠오른, 또 하나의 감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포로가 된 백성을 구하지 못하는 성기사단의
단장은 뭔데?)
똑같은 논리를 들이밀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올랐다. 하지
만 성왕국의 종자로서 그것을 말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죄송하다고 말하면 어쩔 거지? 어떻게 결과를 낼 거냐?"
네이아는 말문이 막혔다.
어디까지나 네이아는 성왕국의 일반인. 귀족의 지위도 권
력도 재물도 아무것도 없었다. 성기사조차 아닌 단순한 종
자였다. 그런 네이아가 왕국의 귀족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뭔가를 제안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남은 것은
-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레메디오스의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떤 노력을 할 거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거다. 무의미
한 노력을 해도-"
"-단장님."
뭔가를 말하려고 했던 레메디오스를 구스타보가 막았다.
"일단 그 정도로 하시고,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곧 청장미 여러분이 오실 겁니다. 환영하는 것이 늦
으면 상대가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군. 종자 바라하, 더 노력해서 결과를 내도록."
"옛!"
레메디오스가 네이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빨리 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실례하겠습니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마음 속으로, 해냈다, 하고 환희에
떨면서 네이아는 방을 뒤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까까지
의 그녀의 원군은, 이 순간 최악의 적으로 변모했다.
"단장님, 청장미 분들이 오셨을 때 그녀도 있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구스타보의 말에, 한순간, 시야가 새까맣게 변하는 것 같
은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종자 따위가 그런 이야기에 끼
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레메디오스가 부관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까의 네이아에
게 보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어느샌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건가 하고 혼란을 일으킬 정도의 친근함이 담긴 시선이었다.
"그런가? 네가 그렇다면야... 그런데, 어째서지?"
"예. 그녀를 종자로서 데려온 것은 그 타고난 날카로운 감
각 때문입니다. 그녀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를 눈치챌지도
모릅니다."
얄다바오트와의 일련의 전투에서 많은 성기사나 종자가
죽어갔다. 하지만 아직 살아남은 성기사는 몇 명이나 있었
다. 그런데도 사절단의 일원으로 그녀가 선택된 것은, 그야
말로 그것이 이유였다.
전투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성기사였지만, 그 이외에
문제에서는 일반시민과 별 차이가 없었다. 즉 적에게 들키
지 않도록 이동하고, 멀리 떨어진 적을 감지해서,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척후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 동반할 필요가 있었
다.
보통이라면 모험자나 수렵병이 나서야했지만, 많은 사람
이 대지에 그 몸을 뉘였고, 살아남은 자들은 남쪽이나 타국
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없었
고, 그녀에게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녀 자신도, 아버지와 비교하면 훨씬 떨어졌지만, 성기
사로서의 훈련만을 받아온 자들보다는 날카로운 감각을 가
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 능력이 나라에 도움이 된
다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었지만, 그 마음도 상당히 깎여나
간 상태였다. 지금은 선택받은 것을 조금 원망스럽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가?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그렇게 하지. 허가
한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종자 바라하. 들은 것처럼 너도 방의 한구석에서 얘기
를 들어줘야겠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들에게 알리도
록. ...그럼 방으로 돌아가서, 옷차림을 정돈하고 다시 와
라."
"예!"
간신히 해방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퇴실하는 네이아의
뒤를 구스타보가 따라왔다. 그리고 방을 나서고 나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장님 때문에 미안하게 됐다."
네이아는 발을 멈추고, 돌아보더니, 지금까지 의문으로
여기고 있던 것을 물었다.
"...저는 뭔가 단장님을 화나게 만들만한 행동을 했습니까?
그 도시가 점령당한 전투에서 완전히 성격이 바뀌어버리셨
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었죠?"
"...그 전투에서 얄다바오트에 의해 많은 성기사들의 목숨
을 잃었다. 그리고 성왕녀님과 단장님의 동생분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일까.
네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
금은 성왕국에서는 그런 처지의 사람은 이제 드물지도 않았
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서 단장님 안에서 생겨난 상실감이
나 분노 같은 감정이 갈 곳을 잃어, 가까이에 있는 너에게
부딪히고 있는 거겠지. 우리 성기사에게 그 감정을 부딪힐
수 없는 것은 우리도 같은 싸움에 참가한 사람으로서 고통
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일 거다."
뭐야, 그건, 하고 네이아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즉, 그 싸움에 네이아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
이었다.
너무나도 부조리했다.
네이아를 비롯한 종자도 절반은 같은 도시에 가서, 많은
전사자를 냈다. 그 절반에 네이아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운
이었다. 네이아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아니었다.
"알았다면 내 부탁을 들어다오. 지금은 참아줘. 단장님은
지금의 성왕국에서 필요불가결한 분이다."
"...불만을 남에게 터뜨리고, 상대를 괴롭게 만들어도 말
인가요?"
"그래."
비통한 눈동자로 구스타보가 자신을 보았다.
분노가 몸 속을 치달렸고, 고함을 지르고 싶어졌다. 그 여
자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일행이 무사히 왕국
에 도착하기까지 네이아는 노력했다. 아인들의 경계망에 주
의하고, 야영시에는 누구보다도 주의를 기울였다. 사절단이
무사히 도착한 것은 네이아의 공헌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네이아의 가치가 그런 여자보다
못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네이아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 억눌렀다.
성왕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서도 지금은 참
아야만 했다. 어느 한 쪽이 빠지게 되서, 많은 백성의 탄식
을 멈출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라로 돌아가면 이런 일도 끝이었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참자.
네이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게 성왕국을 위한 일이라면, 웃으며 받아
들이겠습니다."

네이아가 일단 방으로 돌아간 다음부터 그리 시간이 지나


지 않아, 청장미의 사람들이 여관으로 찾아왔다.
벽 부근에서 직립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는 성기사들 사이
에 네이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왔
다.
유명인에게 사족을 못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왕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그들의 등장에 네이아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흥분하고 있었다. 자신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까지 도
달한 같은 여자 위인.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이 사람들이... 왕국에 존재하는 세 개의 아다만타이트급
모험자팀 중 하나. 청장미... 굉장해...)
그녀들의 이름이나 외견은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지
만, 이렇게 자기 눈으로 보니 이야기로 듣고 상상했던 이미
지와는 상당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선두에 서있는 것이 청장미의 팀 리더. 수신(水神)의 성인
(聖印)을 목에 건 신관. 그 마검을 가진 라퀴스 알베인 데일
아인드라였다.
같은 여자조차도 눈길을 빼앗길 정도로 단정한 얼굴은,
전투의 천재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위 모험자라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드레스를 입으면, 평민 출신의 네이아가 꿈
꾸는 공주님을 구현한 것 같은 여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미녀가 이미지에 맞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청장미라고 합니
다."
일어서서 맞이해준 레메디오스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저희의 의뢰에 응하여,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
다. 청장미 여러분."
"그 성검의 주인, 그 탁월한 능력으로 널리 알려진 성기사
인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 님이 불러주시다니, 저희야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에 레메디오스의 말투가 딱딱한 것에 비해,
라퀴스는 자연스러웠다. 귀족 영애라는 이야기는 사실인 듯
했다.
"아, 저야말로 그 마검을 가진 당신을 만나- 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흠. 자, 앉으시죠. 그리고 여
기 있는 이들은 성왕국의 성기사들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군요. 에에, 그리고 시간이 되신다면, 나
중에 그 마검을 보여주시면 좋겠, 습니다."
"기꺼이. 다만, 제게도 그 성검을 보여주시면 좋겠군요.
그럼 말씀대로 앉도록 하겠습니다. 자, 다들 앉자."
청장미의 사람들이 의자에 제각각 앉았다. 이미 팔꿈치를
얹고 있는 사람이나 팔짱을 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 뻔뻔한
태도도, 실력을 감안하면, 어울린다고나 할까 오히려 그것
이 옳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했다.
"먼저 저희들의 소개를 파는 편이 좋을까요."
레메디오스를 돕기 위해서인지, 대답한 것은 부단장이었
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소문은 성왕국에
도 널리 퍼져있습니다. 말씀드리는 것이 늦었습니다. 저는
성기사단 부단장인 구스타보 몬타녜스라고 합니다."
구스타보가 대답하자, 라퀴스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군요. 좋은 소문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
"-예. 좋은 소문밖에 들은 적이 없군요. 여러분의 무용담
에는 제 마음도 들떴을 정돕니다."
레메디오스가 뭔가를 말하려고 한 것을 구스타보가 끼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려내서 라퀴스의 미소에 대응
하고 있었다.
"그거 기쁘군요. 어떤 소문인지 듣고 싶기는 합니다만, 저
희들도 의뢰를 받아서 온 몸. 의뢰주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
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그럼 의뢰내용의 확인을 할
수 있을까요?"
"음. 그 전에 나는 저 애의 이름 정도는 듣고 싶은데-"
그 말에 놀라서 보니, 쌍둥이 도적 가운데 한 사람이 네이
아에게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한 쪽도 네이아에
게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티아와 티나라고 하는 쌍둥이 도적이었을
것이다. 성왕국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진 청장미의 멤버 가
운데, 무용담이나 일화가 전혀 들려오지 않는 수수께끼의
두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 뒤편에서 빛이 쏟아지는 무대 위로 끌려나오게 된
기분이었다. 어째서, 왜, 무슨 이유로, 라는 말이 뇌리를 치
달렸다.
"저 애는 전사계의 체격이 아니네. 우리 근육하고는 전혀
다르잖아."
"야! 그거 무슨 뜻이야!"
말을 한 것은 두터운 벽과도 같은 여전사, 가가란이었다.
"말 그대로의 뜻이지. ...저 애는 전사가 아니야. 아무리
봐도. 전사라는 건 이거."
"야야, 경험을 쌓으면 좀 더 몸이 단련되어가는 법이라니
까."
[가가란 진화 직전?] 샐쭉하고 도적의 표정이 더더욱 날
카로워졌다. [그런 심한 소릴 하지마. 저 애가 불쌍해]
"야, 너, 나랑 같이 수행하고부터 말이 심하지 않냐? 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자고 있을 때 바보 같은 힘으
로 끌어안아서, 옆구리가 아파졌-"
"-둘 다 그쯤 해둬. ...죄송합니다, 우리 동료가."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녀는 네이아 바라하. 저희들의 종
자입니다. 그녀는 날카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까
지 여행을 오는데 힘이 되어주었죠."
"알-았-음."
담담하고 무감정하게 말했기 때문에, 귀염성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흠. 우리가 잘못하긴 했는데,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는
군. 양쪽 다 이의가 없다면 빨리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겠어?
그리고 서로 귀족풍의 우회적인 말을 해봤자 아무짝에도 쓸
모 없잖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도 문제는 없겠지?"
라퀴스가 [이블아이]하고 비난하듯이 이름을 불렀다.
마력계 매직 캐스터 이블아이. 가면을 쓴 그 인물은 강대
한 마법을 사용하고, 어떤 때에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고 한
다. 몸은 아주 작아서- 왜소한 이형종이 아닌가 하는 소문
이 있다.
"아뇨,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저도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
은 특기가 아닌지라."
"단장님..."
"...후후. 그 쪽 보스는 이야기가 빠르군. 우리 보스는 어
떨까? 가장 애초에, 정보료에 걸맞은 금액을 지불한다면,
상대는 고용주다. 서로 속내를 살피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
하는 것보다는 잽싸게 돈 얘기를 마치고, 확실하게 계약을
나누는 편이 좋겠지?"
하아, 하고 라퀴스가 한숨을 쉬었고, 히죽 하는 의태어가
어울리는 분위기로 이블아이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 보스의 암묵적인 동의는 얻었다. 그럼 의뢰료에 대
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의뢰내용을 확인하겠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그 쪽 나라에서 날뛰고 있다는
얄다바오트에 대한 건이지?"
"알고 있었나."
"이봐이봐. 귀족들이 아는 정보를 우리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왕국에서 해로를 써서 이동하는 상인들도 있지.
게다가 모험자 조합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조금은 있으
니까. 그렇다곤 해도, 자, 어때? 서로 정보 교환을 한다는
형태로 하지 않겠어? 금전을 받는 것보다도 그 쪽의 정보를
받아두는 편이 우리로서는 고맙지."
"음... 조, 조금 구스타보와 상담해도 될까?"
이블아이가 상관없어, 라고 손으로 제스처를 보내자 레메
디오스와 구스타보가 일어나서, 옆의- 침실로 들어갔다.
"저기 말이야, 이 주전자, 써도 되나?"
테이블의 중앙에 놓인 주전자와 컵을 가리키며, 가가란이
물어본 상대는 네이아였다.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라고 마음속으로는 당황하면서도,
[괜찮습니다, 쓰시죠]라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
았고, 스스로도 완벽한 태도였다고 스스로 자신을 칭찬해주
고 싶을 정도였다.
가가란이 인원수만큼 물을 준비했을 무렵, 레메디오스와
구스타보가 돌아왔다.
"의뢰료를 지불할테니 그 쪽 이야기만 들을 수 있을까?"
어라, 하고 네이아는 생각했다. 여관의 요금도 아깝다고
말했던 레메디오스가 어째서, 동의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
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마도 구스타보의 말을 들었던 거겠
지만, 그가 애초에 설득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만? 단, 성왕국의 현 상황을 아
는 편이 그 쪽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
데 말이야."
"지정하는 요금을 지불하겠습니다."
구스타보가 턱 하고 작은 가죽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내밀
었다.
"흠. 이봐."
이블아이가 도적 가운데 한 사람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
자 한 쪽이 가죽주머니에 손을 슥 뻗어,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다 쥐더니, 이블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고 던져올린 감촉, 손에 떨어졌을 때의 감촉으로, 규정
된 금액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듯했다.
"좋아. 그럼 나, 이블아이가 대표로 이야기를 하지. ...그
렇다고는 해도, 아까도 말한 것처럼 얄다바오트에 관한 정
보를 모두 알고 싶다고 해도 조금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다. 일단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하지. 하지만 그 전에 구체적인 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얄다바오트라고 하는 것은 이런 차림을 한 녀석이 틀
림없겠지?"
이블아이는 테이블의 옆에 있던 책상에서 종이와 펜을 쥐
더니, 유려한 솜씨로 술술 묘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된 그림은, 아무리 호의적으로 봐도 아이
의 낙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레메디오스가 [아니,
다른...]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말을 마치는 것보다 먼저
쌍둥이 가운데 한 사람이 그림을 회수해서, 막을 틈도 없이
두 쪽으로 찢어버렸다.
"이 녀석! 무슨 짓이냐!"
이블아이는 격노했지만, 그 틈에 쌍둥이 가운데 다른 한
사람이 펜을 쥐더니, 새로운 종이에 빠르게 펜을 놀려, 완
성품을 내밀었다. [윽, 으으으...]하고, 가면의 매직 캐스터
는 분한듯이 억눌린 신음소리를 냈다. 흔한 표현으로, 비교
할 수조차 없이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핏 보니, 확실히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장이었다.
본 적도 없는 이국의 복장. 기묘한 가면. 그림을 본 레메디
오스가 분노에 주먹을 떨면서 [이 녀석이다]라고 짐승이 으
르렁대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 모습을 보고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이블아이는 쌍둥이
에게 덤벼드는 것을 멈추고, 다시 레메디오스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걸로 하나는 확정되었군. 동일인- 동일악마다. 뭐,
그런 괴물이 그렇게 여럿 있어도 곤란하니까, 이건 불행 중
최대의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군. 그럼-"
그 다음 이블아이가 왕도에서 일어난 일을 전체적으로 설
명해주었고, 네이아는 마음 속에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얄다바오트의 힘에 관해서는 각오하고 있었다. 게다가 악
마의 군세나 비늘이 달린 강한 악마 등의 존재는 확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놀라울 것은 없었다. 다만, 아다만타이트급
모험자팀이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호각이라는 메이드 악마
가 앞으로 다섯 더 있다는 새로운 정보에 절망감이 강해졌
다.
(메이드 악마라니 성왕국에서는 목격된 적이 없었을 터.
얄다바오트의 비장의 카드라는 말인가? 아직도 더 나올게
있단 말이야...)
"-그래서 여러분의 판단으로는 얄다바오트의 난이도는 어
느 정도라고 추측하고 계십니까?"
구스타보의 질문에 청장미 전원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리고 역시 대표로 이블아이가 말했다.
"먼저 이것만은 말해두겠다. 지금부터 말하는 수치는 어
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염두에 뒀으면 좋겠군. 그 악마의 난이도는
약 200은 될 거라고 추정된다."
"200..."
신음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은 구스타보였다. 네이
아도 비슷한 신음소리를 내려다가, 간신히 억눌렀다. 벽 가
까이에 정렬한 성기사들 중에는 그에 실패해서, 비슷한 목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유일하게, 레메디
오스만은 냉정함 그 자체로, 표정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네이아의 기억이 틀림없다면, 100이 인간이 쓰러뜨릴 수
있는 한계가 아니었던가.
"200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한 거지?"
레메디오스가 솔직하게 물어보자, 이블아이가 난감한 듯
이 대답했다.
"200은 인간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지만... 뭐, 올드(장년)
드래곤이 100 정도다."
"올드 드래곤인가... 싸워본 적은 없군. ...바다의 수호신
님 정도인가?"
바다의 수호신이란 바다에 사는 시 드래곤을 말하는 것이
다.
두 팔 두 다리, 날개가 퇴화되어있는 대신 길고 종방향으
로 굵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 시 서펜트보다도 드래곤에 가
까운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지
성을 보유하고 있다. 제물을 바치는 것에 따라 배를 지켜주
기도 하는 온후한 존재였다.
네이아는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 리문에서, 멀리서이긴
했지만 운좋게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해수면에서 높게 뻗어오른 머리. 확실히 그 모습은 수호
신이라고 불릴만한 위대함이 느껴졌다. 그것을 이길 수 있
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수호신님을 쓰러뜨릴 기준으로 삼는
건... 여기에 어부라도 있었다간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지을
걸요. 하지만, 올드 드래곤의 2배는 강하다는 뜻이 되는군
요."
"그렇군. 그 십삼영웅이 쓰러뜨렸다고 알려진 마신들보다
도 강하다고 판단된다. 인간 세상에 나타나면 틀림없이 대
참사를 일으키고, 나라가 여럿 멸망당한다. 그 정도로 강하
다는 뜻이지."
[하지만, 왕국에서는 얄다바오트가 소동을 일으켰을 때
칠흑의 모몬 공이 격퇴했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그 모몬 공
도 같은 정도의 힘을 가졌다는 말씀입니까?] 구스타보가 한
호흡을 쉬었다. [아니면- 얄다바오트를 격퇴하는 무언가 특
별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이블아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면 아래의 표정을 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지만, 그
표정은 홍조를 띠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템을 쓰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늠
름한 전투- 모몬 님과 얄다바오트의 격전의 와중에, 나는
놈의 부하들과 싸우고 있어서 승부를 전부 볼 수는 없었지
만, 아주 경악스러운 싸움이었다. 그야말로 영웅 중의 영웅,
용사 중의 용사에 어울리는 싸움이었다!"
"그, 그렇습니까."
몸을 내밀면서 말하는 이블아이의 박력에 밀려, 구스타보
는 그 한마디를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다! 그래, 그건 정말 굉장했다. 모몬 님은 나를 지키
면서 그 얄다바오트와 싸웠으니까."
"얄다바오트를- 그 괴물을 정면에서 싸워서 격퇴했다고?
정말인가?"
"뭐야? 넌 이 눈으로 본 내 말을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
냐?"
레메디오스의 질문에 이블아이가 험악한 목소리로 되물었
다. 그 불온한 분위기에 구스타보는 황급히 끼어들었다.
"아, 아뇨, 칠흑이 얄다바오트의 어딘가에 있는 약점을 찌
른 것이라면, 단장님으로서는 저희들끼리도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설명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저희야말로, 우리 이블아이가 의뢰인인 여러분에게, 어
른스럽지 못한 태도를 취해버려서 죄송합니다."
그에 대답하는 라퀴스. 장본인들은 제껴놓고, 주변 사람
들이 마음대로 사과를 건네는 모습은 어떨까 싶었다.
"흥. ...만약 가령 얄다바오트에게 약점이 있고, 그것 덕분
에 모몬 님이 이겼다고 해도, 말이다. 그 정도의 악마가 약
점을 그대로 방치해둘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확실히... 그 부분을 매직 아이템이나, 부하들을 이용해
서 보강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군."
메이드 악마라는 것은 처음 들었지만, 얄다바오트는 몇
마리 정도 되는 강대한 악마를 지배하에 두고 있다.
포로로 잡은 아인들로부터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최소한
세 마리는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인들의 거주지인 황야를 지배하고 있는 악마.
항만도시 리문을 지배하고 있는 악마.
그리고 아인들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비늘이 달린 악마.
"그래! 아까 얘기에서 나온 비늘 달린 악마에 대해서 자
세히 알려줄 수 있나?"
"그렇군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같은 부분을 자세
하게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이블아이를 대신해서 제가 싸운 악마에 대한 더 자세
한 설명을 할게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하
는 라퀴스의 이야기는, 그 악마가 가제프 스트로노프와 동
급이라고 할 수 있는 전사, 브레인 앙글라우스라는 남자에
게 쓰러졌다는 부분에서 끊어졌다.
"...그거 이상한걸. 얄다바오트는 성왕국의 수도를 점령한
다음,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대신에 아인들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장군이 그 비늘 달린 악마야. 죽지 않은 것
이 아닌가?"
"과연... 다만, 브레인이라는 남자와는 만난 적이 있는데,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어. 아마도 추측이지만, 유일무
이한 악마인 것이 아니라, 상위의 악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즉 뭔가 조건만 갖추어지면, 얄다바오트는 그 악마를 무
수히 소환할 수 있다는 겁니까? 혹은 같은 악마를 다수 소
환 가능하다거나?"
마법은 사용할 수 없지만, 네이아도 서적으로 배운 적이
있었다.
소환마법에 있어서 복수 소환은 어려웠다.
그런 것도 소환마법을 발동시키고 있는 사이에, 다른 소
환마법을 발동시켰을 경우, 전의 소환마법이 효과를 잃고,
지금까지 소환되어있던 몬스터는 귀환하고, 새로운 몬스터
가 소환되는 형태가 된다.
단, 더 고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하위의 마법으
로 소환할 수 있는 몬스터를 여럿 동시에 소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제4위계의 마법을 써서, 제3위계로 소환할 수 있
는 몬스터를 여럿 소환하는 식이다.
"모르겠군. 놈이 어떤 수단을 써서 소환하고 있는지가 수
수께끼야. 마법에 의해 소환되었을 경우,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여럿 소환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렇다면, 어째서, 왕국에서는 그러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남
는다. 소환에 특화된 매직 캐스터라면, 예외적으로 동시에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다는 모양이지만..."
"비늘 악마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얄다바오트가 즉시 재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뜻이다. 다만, 그건 얄다바오트가 마법으로 소환하
고 있을 경우의 이야기다. 특수능력으로 소환했을 경우에는,
또 다를지도 몰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건가?"
"미안하군. 그 부분은 몰라. 녀석에 관한 정보는 아주 적
으니까."
이블아이가 노골적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음.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단장님,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아니, 조금은 지금, 설명해줘. 아까부터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이게 단장... 우리의 톱인가...)
"그럼 말이야. 그 기분 나쁜 벌레 메이드도 얄다바오트가
소환한 건가?"
"모른다. 그렇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청장미 사람들도 팀 내에서 토론을 시작했다.
"저기,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이아는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전원의 시선이 모여들어
서, 강한 압력을 느끼고, 조금 후회했다. 자신이 말하지 않
아도 누군가가 질문하는 것을 기다리면 되었던 것일지도 모
른다. 다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각오를 다지고, 그대
로 물었다.
"초보적인 것을 묻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얄다바오트는
어디에서 왔나요? 얄다바오트라는 악마의 이름은 옛날부터
알려져있는 건가요?"
"불명이다. 여러가지로 책을 뒤져봤지만 그 이름은 발견
할 수 없었다. 외견을 기준으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단서는 없다."
"가명이었던 것 아닐까요? 다른 이름으로 날뛰고 있다거
나?"
"그건 일단 있을 수 없다. 악마도- 천사도 그렇지만, 이름
은 그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악마가 출현하려면
이름이라는 쐐기를 세계에 박아넣을 필요가 있지. 그 때문
에, 놈들은 거짓된 이름을 댈 수가 없다는 모양이다. 만약
거짓된 이름을 사용했을 경우, 소멸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실험결과가 있다는 모양이다."
네이아에게는 악마나 천사의 지식은 거의 없었지만, 아다
만타이트급 모험자팀에 소속되어있는 매직 캐스터가 그렇
다고 한다면 맞을 것이다.
"어딘가, 이 대륙의 끝에서 흘러들어온 경우가 있다면, 정
보가 없어도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생각을 거
듭했다간 무슨 일이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서, 어
쩔 도리가 없다."
이블아이가 어깨를 움츠렸다.
"...이봐. 얄다바오트의 모습이 다르다고 하면 어때? 네가
조사한 얄다바오트의 모습이라고 하는 건 그림의 모습이지?
혹시, 그 외견이 가짜라고 한다면?"
[호오] 이블아이가 레메디오스에게 몸을 확 내밀었다.[자
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우리는 그 모습의 얄다바오트를 나름대로 궁지에 몰아넣
었다. 그러자 녀석은 본성을 드러내서...] 레메디오스는 살
짝 눈을 감았다. [우리의 완전한 패배였다]
"자세하게 들려줄 수 있겠어?"
"그 정도는 상관없겠지, 구스타보."
"예, 이의는 없습니다. 만약 그 외견에서 놈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은폐는 손해를 낳을 뿐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전부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라고 레메디오스가 중얼거리면서,이블아이에게 얄다바오
트의 모습을 설명했다.
중간에 이 자리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싸움을 떠올린 것
인지, 레메디오스의 표정에 분노가 차올랐다.
"과연. 그렇다면 그 정보를 기반으로 다시 한 번 조사해보
지. 결과는 그 쪽에도 알려주고 싶으니, 언제까지 이 도시
에 있을지 결정되어 있다면 알려주겠나?"
"현재로서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즉 현재 들어본 바로
는 그 모습에 아는 바가 없다, 는 말씀입니까?"
"라퀴스는 아는 것 있나?"
라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됐다. 미안하군."
"알겠습니다. 그럼 결정되는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최악의 사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겠
군. 왕도에서는 허위정보를 흘리는 것이 목적이었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가능성도 있다."
"즉... 우리나라가 얄다바오트의 진정한 목표이고, 왕도에
서는 좀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그럴지도 모른다. 만약 왕국이 최중요 표적이었다면, 성
왕국 때처럼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도 됐을 것 아냐? 가능성
이 있다면 모몬 님의 실력에 놀라서, 계획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해서 본성을 온존한, 건가? 그렇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이블아이의 그 말에 실내가 어두운 침묵에 휩싸였다. 작
은 호흡소리조차도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누가 처음
으로 입을 열 것인가, 하는 긴장감 속에서, 용감함의 증거
를 드러낸 것은 라퀴스였다.
"그럼, 우리들, 도. 얄다바오트에 관한 정보를 듣고 싶어.
어디까지나 우리들이 얻은 정보는 조우한 사건에 대한 분석
에 지나지 않아. 결코 얄다바오트의 목적, 정체, 능력을 밝
혀낸게 아니지."
"악마를 소환해서 얄다바오트의 정보를 모으는 방법도 있
었지만... 영혼이 더럽혀지니까... 게다가 하급 악마를 소환
해도 상위의 악마에 대한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 그렇게
되면 상위의 악마를 소환하는 술법에 뛰어난 자와 접촉을
할 필요가 있는데..."
"유감이지만, 악마 소환에 뛰어난 지인은 없어."
보충한 것은 처음 말한 것이 이블아이. 이어서 쌍둥이 가
운데 한 사람이었다.
보통은 없겠지 하고 네이아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악마 소환에 뛰어난 술자라는 사악한 존재는, 다행스럽게
도 실력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런 것도 대부분, 자멸이나, 토
벌대에 의해 주살당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모두 이겨낸 술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런 인물은 어둠 속에 숨어서, 지인 같은 것을 만드려고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잖아. 다음에 그 괴물이 왕국에 왔을 때, 우리들의 손으
로 비참한 꼴을 당하게 만들어주고 싶고. 그걸 위해서도,
놈에 대한 정보는 가능한 한 많이 모으고 싶다."
"게다가 왕국 때는 아인 같은 것들을 이끌고 있지도 않았
어. 왕국에서 실패하고, 그 대책으로 아인들을 수하로 들인
거라면 더 주의가 필요."
가가란, 쌍둥이 가운데 다른 한 사람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의 정보를 원한다는 말인가."
청장미의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라퀴스가 마무리했
다.
"보수는 받은 것과 똑같은만큼 지불하겠어."
"단장님. 이후의 교섭은 제가 맡아도 괜찮겠습니까?"
구스타보의 질문에 레메디오스는 즉시 동의했다.
"-그럼 금전을 대신해서, 다른 형태로 지불해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뭐죠? 가능한 한 요구를 들어드리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뭐든지 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유력귀
족과 줄을 대달라는 말씀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
다."
"그러신가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그런게 아니라- 저희 나라에 오셔서, 함께 싸워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다시 정적이 되돌아왔다. 몇 초, 아니 더 긴 시간일까.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부터 소리가 났다. 라퀴스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숙인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그런 형태의 보수는 지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서 정보를 원하고 있는 거다.
그럼 본말전도가 되겠군."
이블아이가 어쩔 도리가 없다, 고 말하듯이 어깨를 으쓱
였다.
"얄다바오트와 싸우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진의 후방에
서 대기하다가, 치료 마법을 사용해주는 것만해도 충분합니
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럴 여유 따위는 없잖아."
가가란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성왕국의 북부는 얄다바오트가 이끄는 아
인들에게 지배당해, 이제 거의 저항을 할 기력도 없었다.
백성들의 다수는 수용소에 보내어졌고, 잔존한 성기사들은
패잔병으로서 동굴에 숨어든 형국이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아인들의 침공은 아직 간신히 틀
어막고 있습니다."
남부는 아직 영토를 유지하고 있었고, 군대도 얄다바오트
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을 간신히 틀어막고 있
다고 표현한다면 틀리지는 않았다.
거짓과 진실. 현 상황을 아는 네이아로서는 거짓이라고
평가할 만한 구스타보의 말이었다.
"그래서 와줄 수 있겠어?"
"거절한다."
바른 자세로 묻는 레메디오스에게, 이블아이의 대답은 명
확한 거절이었다. 청장미의 멤버들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은,
그것이 결코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모두의 뜻이라는 의미
일 것이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간신히 틀어막고 있다고 했습
니다만 여유는 없습니다. 성왕국 북부는 괴멸되었습니다만,
남부의 병력은 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 얄다바오트
에게 이기는 것은 무리일 겁니다."
구스타보는 그 부분에서 물을 자신의 컵에 붓고, 한 모금
마셨다. 그 다음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국토를 단숨에 빼앗기지 않은 것은 해군이 북쪽의 해안
선을 견제해서, 얄다바오트의 군대의 발을 묶고 있기 때문
입니다. 만약 어떤 대책을 세운 얄다바오트가 군대를 남쪽
으로 진군시키면, 순식간에 끝장날 겁니다."
단, 이것은 얄다바오트의 힘을 아는 북부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갖는 생각이었고, 남부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추
측되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의 힘만 있어도 쫓아낼 수 있
다, 거나.
이것은 정보의 공유가 잘 되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북부와 남부와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원래, 남부는 여성이 처음으로 성왕의 자리에 앉은 일-
그것도 오빠를 제쳐두고- 에 반발하는 귀족들이 다수파였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성왕녀는 북쪽과 남쪽으로 분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성왕녀의 즉위는 신전세력과의 유착
에 의한 것이고, 측근 케랄트 카스트디오의 암약 덕분이다]
라는 남부의 아무런 근거도 없는 중상모략을 묵살했다.
그 이후, 남부도 그 이상의 행동에 나서는 일은 없이 전면
적인 대립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남북의 힘의 균형이
잡혀있었기 때문. 북쪽이 붕괴한 지금, 이제 남쪽은 참을
필요가 없었다. 북쪽을 몇 단계나 아래로 보는 남쪽이라는
존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얄다바오트에게 공격당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인간들 사
이의 대립에 불이 붙는다니, 네이아로서는 농담으로밖에 들
리지 않았다. 게다가 슬금슬금 다음 성왕위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기척이 보이기 시작한 점을 보자면, 평민 출신인 네
이아로서는 불쾌감이 더해질 뿐이었다.
"그거 큰일이구만."
"예. 하늘을 나는 악마들과의 전투에 있어서 해군에 소속
된 얼마 안 되는 공전부대는 상당한 손해를 입었고, 이대로
계속 얄다바오트의 군대를 막아낼 수는 없습니다. 뭔가 현
상황을 타파할 힘이 필요한 겁니다! 부디, 힘을 빌려주십시
오! 한두달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보수는
얼마든지 가능한 한 드리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성왕국을 구해주십시오!"
구스타보가 고개를 숙이는 것에 맞추어, 네이아나 성기사
들도 일제히 [부탁드립니다!]하고 고개를 숙였다.
조용해진 실내에 라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주세요. 그리고- 죄송합니다만, 저희들이 성
왕국에 갈 수는 없어요."
"어째서냐!"
레메디오스의 노성에 황급히 고개를 들어보니, 레메디오
스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라퀴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성왕국을 공격한 얄다바오트가 거기에서 멈출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분명히 성왕국에서 힘을 길러, 왕국을 공
격해올 거라고!! 지금, 놈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미래에는
더욱 강대해질 것이 틀림없다!"
"그 말씀이 맞아요. 그럴 가능성은 아주 높겠죠."
구스타보가 막을 틈도 없이, 레메디오스는 계속해서 외쳤
다.
"그걸 알면서 어째서, 힘을 빌려주지 않는단 말이냐!? 너
희들만이 아니야! 이 나라의 귀족들도, 우리나라의 귀족들
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힘을 합쳐
서, 싸워야할 때란 말이다!"
"...이 나라의 귀족들이 힘을 빌려줄 수 없는 이유는 저희
와는 조금 달라요. 여러분은 마도국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왕국의 도시 가운데 하나를 빼앗아, 건국된 나라. 그리고
그 나라는 언데드가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땅이라는 것이 성
왕국의 인간의 인식이었다. 그렇게 레메디오스가 말하자 라
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대강은 맞습니다만, 조금 틀린 부분도 있어요. ...
언데드들이 마음대로 활보하고 있긴 하지만, 인간 역시 안
전하게 살고 있다고 해요."
"...에? 산 자를 증오하는 언데드가 세운 나라인데 말이
냐?"
"언데드도 여러가지 있겠지. 게다가 마도왕은 언데드의
왕.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언데드에게 인간을 상처입히지
말라고 명령하고, 복종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
이블아이가 불쑥 말했다.
"이블아이... 음, 즉 마도국이라는 눈앞의 문제가 있는데,
그 쪽 나라의 지원은 어렵다는 말이에요. 게다가 마도국과
의 일전에서 아주 많은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 영향은 장
래에 아주 크게 작용하겠죠. 유복해보이는 귀족들도 그렇게
까지 여유가 없는 거에요."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얄다바오트는 즉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냐! 얄다바오트 쪽은 실제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만. 마도왕이라는 자는 인간을 괴롭히지 않는 거
잖아!?"
"...극도로 피폐한 상태에서 2개의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죠."
레메디오스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저희들은, 얄다바오트와의 싸움에서 이 쪽의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부활마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아직 전성
기의 힘을 되찾지 못했어요. 그런 상태로 얄다바오트가 지
배하고 있는 지역에 가면 괴멸할 위험이 있어요."
"구스타보가 말했는데, 얄다바오트와는 싸우지 않아도 되
는 모양인데?"
"이 사람,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어..."
"티아! 실례. 음, 죄송하지만, 그렇게 일이 잘 돌아갈 거
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얄다바오트와 대치할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희들은 그 일을 거절할 겁니다. 장래
를 대비해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만약의 경우
입니다만, 얄다바오트가 다시 왕국에 공격해왔을 때를 대비
해서."
청장미의 멤버들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고, 설득은 불가
능해보였다.
이윽고 레메디오스가 쥐어짜듯이 말했다.
"그럼 누구라면, 우리나라를 구해줄 거란 말이냐?"
청장미의 멤버들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한 사람밖에 없겠지] 대답한 것은 이블아이였다. [라고
나 할까, 가장 먼저 말을 걸었어야하는 사람 아니냐?]
"...그건?"
"당연히 모몬 님이지. 그 얄다바오트를 격퇴한 모몬 님이
다."
"오오! 그런가!"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카스트디오 단장님. ...하지만, 분
명 그 분은 그런 사정이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었나. 그래, 그 마도국에 있으면서 마도왕의 수하
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니 설득할 상대는 마도왕이라는
뜻이 되겠지."
"켁!"
레메디오스가 괴상한 소릴 냈다.
네이아도 그 마음은 이해가 갔다. 언데드에게 도움을 청
하다니, 성왕국의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복잡한 심경일 것이
다.
종자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성기사단의 단
장이며 성검을 가진 기사라면, 그 기피감은 더욱 심각할 것
이다. 하지만- 레메디오스가 눈에 힘을 되찾고 청장미의 멤
버들을 보았다.
"...그게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수
단이라면 그렇게 하지. 아니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가
능하면, 그 모몬에게 소-"
"-모몬 님에게, 말이죠. 단장님."
"그, 그래! 모몬 님에게 소개장을 적어주지 않겠어?"
2.

청장미와의 회합이 끝난 다음 네이아를 비롯한 성왕국의


사절단은 즉시 왕도에서 출발했다. 왕국에는 성왕국을 도와
줄 상대는 더이상 없다고 포기한 것과, 얄다바오트의 진정
한 모습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은 몇 개월은 걸릴 것이라
는 점, 얄다바오트에게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존재인 모몬
이라는 인물과 접촉하기 위한 발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왕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
각하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초조했기 때
문이다.
말을 최소한만 쉬게 하는 정도로, 때로는 마법을 사용하
면서, 평범한 여행자라면 불가능한 속도로, 일행은 가도를
따라 동쪽으로 나아갔다.
왕국 최후의 마을을 지나, 이윽고 마도국과의 완충지대에
들어갔다.
살짝 높은 언덕 같은 것이 여행자의 시야를 가로막고, 사
람의 손이 가지 않은 나무들이 밀집된 원시림이 때때로 모
습을 보였고, 몬스터가 언제, 그 숲에서 출현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과거 왕국의 국토였다고 해도 결국 이런 법이
었다. 몬스터에게 습격당할 가능성이 낮아질 뿐 완전히 없
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땅을, 자신이 가진 시력이나 후각 등의 감각을 예민
하게 일깨우고, 네이아는 나아갔다.
(가도 부근에 뭔가가 숨어있는 기색은 없어. 대형 육식동
물이 가도를 지나간 흔적도 없어)
가도는 대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좀 더 나아가면 과거
의 왕 직할령에 들어가, 가도가 정비된 부분이 나오는 모양
이었다. 정비되어있는 편이 여행객에게는 편리했지만, 네이
아에게 있어서는 짐승의 흔적을 확인하기 쉬운 이런 땅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바닥이 더 유리했다.
네이아는 자신의 손바닥에 시선을 주었다.
좋아하는 손은 아니었다.
훈련을 계속한 끝에 단단해진 손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의 재능 부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는 예민한 감각을 물려받았지만, 유감스럽게
도 어머니로부터는 아무것도 이어받지 못했다.
네이아의 어머니는 과거에는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성
기사였고, 상당한 검술 실력을 자랑했다는 모양이다. 하지
만, 그 딸에게는 훈련해도 검의 재능은 없었다. 굳이 따지
자면 아버지가 사용하는 활 쪽이 훈련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잘 쓸 수 있는 정도였다.
아니, 절반이라도 훌륭한 재능을 이어받은 것만해도 행운
일 것이다. 하지만 네이아가 목표로 하는 성기사가 사용하
는 특수한 힘은 근접무기로밖에 담아낼 수가 없었다. 그 때
문에 원거리 무기의 재능은 성기사를 목표로 하는데는 쓸데
없는 장점이었다.
그 손으로 다시 고삐로 가져가서, 꽉 쥐었다.
몸을 살짝 움직여서, 안장에 닿는 위치를 다소 수정했다.
성왕국을 떠나, 상당한 시간동안 말을 탔기 때문에, 엉덩이
나 가랑이가 아파왔던 것이다.
성기사에게 부탁하면 하위 치료마법이라면 사용할 수 있
기 때문에, 아픔을 지워줄 수 있겠지만, 일단은 여자였기
때문에 조금 부끄러웠다. 말을 다루는데 영향이 나올 정도
가 아니라는 미묘한 정도가 한 층 더, 말을 꺼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중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약초라도 바르면 되겠
지. 아빠한테 고마워해야겠어. 전에, 엉덩이가 아파지면 어
쩌고 하는 얘길 들었을 때는 짜증났지만... 그 때 사과했던
가? ...하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 단장님. 석조 타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곧 있으
면 마도국의 영내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가도의 중간에서 갑자기, 석조 타일이 보이기 시작하는
모습은 아주 기묘한 것이었다.
"그런가. 그럼 이대로 단숨에 마도국으로 갈까? 아니면
야영할 거냐?"
네이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다면 해가 질 때까지는 도착할 거라고 생
각합니다. 단 상당히 강행군이 되겠죠.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조금 얘길 나누고 오겠다."
레메디오스가 고삐를 당기고, 말의 발걸음을 늦추고, 구
스타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마도국의 영토에 들어가게 되는 건데...
병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성채도 없고. 왕국에는 있었는데)
보통은 국경선이 되는 장소에 성채 같은 것을 짓는 법이
었지만, 그것이 없었다. 마도국은 하나의 도시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전 병력을 도시 내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일까.
네이아는 시선을 석조 타일 너머로 돌렸다.
완만한 언덕의 사이를 지나는 길을 나아갔다. 멀리까지
닿은 시선의 끝에는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의 숲이 보였다.
아버지가 데려다준 겨울 캠프를 떠올렸다. 자연은 어딜
가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도 성왕국의 겨울의 광경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귀찮다, 라)
아버지가 문득 했던 말은 가슴에 작은 가시로서 남아있었
다.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고 한다. 없었다면 숲에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자연의 은
혜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을 거라고.
어릴 적에는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더 귀찮지 않을까, 하
고 생각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가 한 이야기의 의미
를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증
거인가. 지금이라면 아버지나 어머니와 좀 더 다른 이야기
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잇는데, 또 마음에 아픔이 치달렸다.
그저, 이번 아픔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고 있는 방향- 동쪽 방향의 가도 저편, 언덕을 피하듯이
꾸불꾸불 나아간 끝에, 그 주변이 희미하게 보였던 것이다.
(-설마 화재!?)
네이아는 약간 눈을 가늘게 뜨고,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
았다.
유백색의 희미한 안개 같은 것은 연기가 아니라 안개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말씀하시는데 죄송합니다! 안개인 모양입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뒤쪽에 말을 걸자 갑옷의 얼굴덮개를 연 레메디오스가 의
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이아 바라하. 뭐가 신경쓰인다는 말이지?"
"예. 지도상으로는 이 부근에는 거대한 호수 같은 것은 존
재하지 않는데도, 이 정도의 안개가 발생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우유처럼 짙어지고 있는 안개는, 그 범위를 점점 넓
혀가고, 이윽고 네이아 일행의 곁으로 도달하려고 하고 있
었다.
아버지는 자연현상에 관한 온갖 지식을 알려주었지만, 그
가르침을 떠올려보아도 이런 식으로 안개가 발생하는 것은
이상했다.
"종자 바라하. 특수환경 변화가 아닌가?"
레메디오스보다도 상황파악이 빠른 구스타보가 질문했다.
특수환경 변화라는 것은, 넓은 범위에서, 보통이라면 일
어날 리가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강대한 의식마법의 실패에 의해, 부패성 독가스를 흩뿌리게
된 지대, 1년에 한 번, 1주일에 걸쳐 강대한 태풍이 일어나
는 사막, 특정 시기에만 일곱 색의 비가 내리는 장소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안개도 그런 희한한 현상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네이아가 모
은 것중에는 없었다. 그걸 그대로 말하면 한 소리 들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안개가 나온다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건 네 정보수집이 부족했다는 말인가?"
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충분한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카스트디오 단장님. 그보다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
가, 가 중요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말의 걸음은 멈추었다.
짙어져오는 안개는 결코 말을 타고 나아가도 되는 농도가
아니었다. 사전에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에 란텔 부근에는
단애절벽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가는 정도라
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응할 수 있겠지만, 이 급격한 안
개의 발생에는 그것을 꺼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네이아는 안개의 냄새를 맡았다.
물의 냄새가 날 뿐이고, 신경쓰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
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경쓰였다.
"단장님. 어쩌면 이건 어떤 몬스터에 의한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 몬스터는 안개를
발생시키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그 속에 숨어들어 사냥감
에게 덤벼든다고 합니다."
"...전원, 발검! 그리고 가도의 한가운데에 서는 것은 위
험하니 가도 바깥으로 나간다!"
이 즉단즉결이야말로, 전투에서 레메디오스가 우수하다는
증거였다.
네이아나 성기사들은 명령에 따라 말을 움직였고, 가도에
서 벗어났다. 그리고 거기에서 원진을 짰다. 그 무렵에는
농후한 안개가 세계를 뒤덮을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바로 곁의 동료의 모습조차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을 정
도였던 것이다. 15미터 이상 떨어지게 되면 보이지도 않았
다. 불안함이 가슴 속에서 부풀어올라, 안개의 일렁임조차
도 귀신의 행진처럼 보였다.
소리로 판별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주변에 있는 것은
풀 플레이트를 입은 성기사들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되면 금속이 부딪혀서, 네이아의 청각을 방해했다. 이런 상
황 속에서는, 주변에 무언가가 접근해온다고 해도, 감지하
는 것이 쉽지 않았다. 네이아가 아는 한, 이 상황 속에서도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자신의 아
버지 정도일 것이다.
아버지의 위대함을 절감하면서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이 안개는 정상이 아니군요. 바다라도 이 정도로
짙은 것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이제 곧 마도국의 도시가 아니었나? 이런 부근에 몬스터
가 있다는 말이냐? 아니면 반대로 마도국이기 때문에 이런
이상사태가 일어나는 거냐?"
"모르겠습니다만... 마도국의 어떤 방어마법이 아닐까요?"
"...마법에 대한 얘기는 그만둬. 머리가 아파오는군. 네가
뭔가 깨달은게 있으면 그 때 알려줘. 알기 쉽게 말이야. 만
약 몬스터라면 퇴치하고, 이걸 구실로 마도왕과 모몬의 파
견에 관해 교섭할 수 있을까?"
"어떨까요. 자국 내의 몬스터 퇴치는 그 나라의 책임이라
고는 하지만..."
청각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지, 단장과 구스타보의 대화
는 잘 들렸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먼 곳은 역시 자신이 없
었다. 이럴 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없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안 돼. 나는 이제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되니까!)
다만, 여기에 있으면 네이아의 능력에 방해를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자기 혼자만이라도 조금 먼 곳에 이
동해도 될지 확인해야할까.
(-관두는게 좋겠지)
네이아가 제안해보자는 마음이 희미해져갔다.
안 그래도 단장에게는 그리 호의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한 번 더 실패를 하게 되면, 어떤 처분을 받을 것인
가. 이 이상 귀찮은 일이 되는 것은 정말이지 사양이었다.
(게다가 이걸로 앞으로 단장이 내 선도를 따르지 않게 되
도 곤란하고)
필사적으로 네이아가 스스로를 변호했다. 다만, 위기 상
황에 조우했으면서도, 자신이라면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지도,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은 정신위
생에 좋지 않았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여기에서 이 일행이 붕괴했을 경우,
성왕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늦어진다
는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그 이상으로 레메디오스의 가시돋
힌 말에 네이아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 때, 아무래도 놓칠 수가 없는 것을 네이아는 시야 구석
에서 발견했다.
농밀한 안개 속, 마도국의 방향에 뭔가 거대한 것이 희미
하게 보였던 것이다.
"저기, 저 쪽을 봐주시겠습니까?"
네이아는 옆에서 말에 탄 성기사의 몸을 찔렀다.
"...아, 미안하군. 안개가 짙어서 보이지 않는데, 뭔가 있
는 건가?"
검을 강하게 쥐는 소리가 성기사로부터 들려왔다.
"아, 아뇨, 뭔가 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런가. 뭔가 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뭐든 좋으니까
알려다오."
"예, 그 때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이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시선을 전방으로 돌
렸다. 미소가 어울리는 여성과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 있다
고 한다면, 네이아는 후자였다. 인사를 할 때조차도, 미소를
보이는 것보다는 진지한 표정을 하는 편이 좋게 받아들여졌
다.
네이아는 다시 안개를 진지하게 노려보았다. 거리가 멀어
서 아무래도 네이아에게만 보이는 것 같았지만, 저건 절대
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성기사와의 대화로 마음의 게이지가 회복된 것인지, 네이
아는 단장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단장은 아직 구스타보
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건 위험하겠지? 만약 한동안 대
기하다가, 아무일도 없는 것 같다면 말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한다. 그러고보니 바다에는 안개를 발생시키는 몬스터가
있었지?"
"있습니다. 단 이 부근에는 바다나 호수가 없습니다. 종자
바라하가 말한 것처럼."
"녀석이 틀렸다거나, 정보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가능성
은?"
"그녀는 그런 실패를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희를 여기
까지 무사히 안내해주지 않았습니까. 성왕국을 빠져나올 때
- 파괴된 성벽의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아인 순찰병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말이죠. 저희들만으로는 불가능했을 일입니
다."
"힘으로 돌파할 수 있었을 거다."
다시, 네이아의 마음의 게이지가 단숨에 깎여나갔다.
얼마나 신경을 소모해가면서, 일행을 여기까지 데려왔다
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일행을 대기시키고, 차가운 빗속에서, 레인저 같은 이들
이 사용하는 잠복술을 모르기 때문에, 지면을 기다시피 하
면서 이동하고 진흙투성이가 되가면서도, 혼자서 정찰해온
추억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들키면 혼자서 선행하고 있는 네이아의 목숨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성왕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
하기 위해서, 그 마음만으로 죽을 각오로 왔던 것이다.
(그래. 나는 누군가가 칭찬해주길 바라고 노력해온게 아
냐)
필사적으로 자신을 타일렀다. 단장이 인정해주지 않더라
도, 다른 사람들은 분명히 네이아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있
을 것이다. 말로는 하지 않더라도.
(노력했으니까 대가가- 상이 갖고 싶다는 건 어린애의 응
석이다. 사람의 방패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 입술을 깨물
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몸을 방
패로 삼는 것이 성기사의 사명. 단장도 그래왔을 거야. 다
만... 하다못해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아니, 저 사람들은
충분히 작은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두 사람의 대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네이아가, 얘기나 하고 있지 말고 너희들도
주변 좀 경계해라, 라고 말하고 있었다. 특히 레메디오스는,
그 야수 같은 위험감지능력과 전투능력으로, 누구보다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짜증을 억누르고, 네이아는 의식을 안개 속의 그림자에게
집중시켰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 싫은 것과, 끼어들어가
면서 까지 말을 걸 기력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개가 바람에 밀려나갔는지, 지극히 짧은 순간
이긴 했지만, 네이아에게 그림자의 윤곽이 보였다.
다만, 그것은 너무나도 믿기 어려웠다. 이런 장소에는 절
대로 존재할리가 없는 것이었다.
(에? 거짓말이지? 저건... 배?)
그렇다. 네이아가 발견한 그림자의 정체. 그것은 바다에
뜨는 배였다.
그것도 상당히 거대한, 갤리어스 같은 배가 보였다. 순간
적인 일이라서, 곧 두터운 안개의 베일이 그림자의 정체를
감춰버렸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느냐고 하면 자신은 없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모은 정보만이 아니라, 구스타보도 이 부근에는
호수도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니, 호수가 있다고 해도
갤리어스 사이즈의 배를 이런 내륙에서 만들다니 머리가 정
상이 아니었다.
만약 이것이 배에 접한 장소였다면, 낡은 배를 요새나 뭔
가로 전용하기 위하여 육지로 끌어올렸다는 경우는 있을지
도 모른다. 실제로, 성왕국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륙에서는 그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잘못 봤나보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올바를 터였다.
그래도 결국 시선이 그 쪽으로 힐끗힐끗 움직이고 만다.
"...역시 뭔가 보였나?"
아까 말을 걸어준 성기사의 질문에, 네이아는 [에!?]하고
소릴 내고 말았다.
"아까 보던 방향 같은데, 역시 뭔가 보였나?"
"에? 아니, 그게..."
배 같은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같은 소릴 했다간 제정신
인지 의심받을 것이다. 네이아라면 의심할 것이다. 그럼, 뭐
라고 말하면 좋단 말인가.
"딱히 기분 탓이라도 상관없다.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주
지 않겠나? 그 쪽이 무슨 일이 있었을 때 대처하기도 쉽다."
너무나도 정론이었다.
힐끗 둘러보니, 네이아와 성기사의 대화에 다들 귀를 기
울이고 있었다. 시선이 네이아에게 모여들고 있었다. 이건
더이상 기분 탓이에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저, 뭔가, 커다란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다, 는 것뿐입
니다."
"그 커다란 그림자라고 하는 것이 몬스터인가?"
가장 물어보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네이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싫어, 묻지 말아줘,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네이아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몇십번씩 토해내면서 대답
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뭔가 건조물 같은 것이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보였단 말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뭔가가 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든 것뿐
입니다. 기분 탓이었을 가능성 쪽이 높을지도 모릅니다."
"건조물? 마도국의 성채나 뭐 그런 건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가도에 마도국
의 성채로 보이는 것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마을도 그렇
습니다. 국경이라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
다."
스스로 말해놓고도 뭔가, 배를 봤다고 하는 것보다는, 배
같은 건조물을 봤다고 하는 편이, 납득이 갔다.
"과연... 어떻게 생각하지? 구스타보."
"아주 납득이 갑니다. 다만- 건조물이라고 정확하게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란 말이지?"
"예. 정말로 한순간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아무튼, 좀 더 안개 속에서 대기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도국의 성채가 타국의 인간을
받아들여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 그러게 할까, 그럼 전원, 그대로 경계하라."
일제히 알겠다는 대답이 들렸다. 네이아도 같은 대답을
했다.
경계라고 해도 결국 모든 사람의 의식은 어느 한 점에 집
중되고 말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법이었다.
농후한 안개에 의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시간이 조
금 이어지고, 점차 건조물에 대한 흥미가 희미해졌을 무렵
사건은 벌어졌다.
"-읏!"
네이아가, 그리고 그 오른쪽에 서있던 성기사가 놀란 신
음소리를 거의 동시에 냈다.
농밀한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분명히 보인 것
이다.
"뭐, 뭐냐? 저건?"
기사의 질문에 네이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배는 이동하
는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간 광인 취급을 받으리라.
"저게 그림자인가... 움직이고 있군. 건물이 아니었나?"
단장의 의문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체로 추정
되는 것을 알리지 않았던 네이아로서는, 마지막까지 건조물
처럼 보였다고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만..."
"하지만 역시 움직이고 있는데? 게다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이 쪽으로 접근하는 것 아닌가?"
그 말대로였다. 저것이 정말로 배라면, 여기로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 된다. 즉- 저 배는 육지를 나아가는 배라는 말
인가.
(그럴 수가... 있을 수 없어)
이윽고, 짙은 안개 속에서, 네이아를 제외하고도 그 그림
자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해왔다.
그것은 틀림없이 배였다. 그것이 마치 바다를 가는 것처
럼 움직이고 있었다. 굵고 긴 노가 내밀어져 있었고, 그것
이 정말로 물을 가르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농담이냐, 저건."
레메디오스의 기가 막힌 것 같은 말은 모두의 심경을 대
변하고 있었다.
"마도국의 배는 땅 위를 간단 말인가? 내륙의 나라는 놀
라운 것을 개발하는군..."
아니, 그건 아니겠지, 라고 네이아는 마음 속에서 딴지를
걸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만이 생각하는 내용이 아닐 것
이다.
"안개 속을 나아가는 배... 저거랑 비슷한 걸 어딘가에서
들어본 기억이..."
"역시 굉장하군, 구스타보! 자, 떠올려봐라. 너라면 할 수
있어. 내게 여러가지를 알려주는 너라면 말이야. 그래. 머리
를 흔들어줄까?"
"그만두십시오. 라고나 할까 저는 딱히 현자가 아닙니다.
단장님이 그런 쪽의 지식을 하나도 배우려고 하시질 않으니
까 제가 대신 배운 정도니까요."
"...너나 동생이 있었으니까. 물어보면 알려줬고."
"너무 오냐오냐했다, 는 거군요. 얄다바오트를 지옥으로
보내버린 다음에, 지금까지 안 했던 만큼도 똑바로 공부해
주셔야겠습니다. 아, 덕분에 생각났습니다. 그겁니다. 유령
선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배. 뱃사람에
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라앉았을 터인 배가 모습을 드러
내면, 언데드가 타고 있다는 이야기를요."
"아아! 확실히 유령선이 나타나는 전조로 짙은 안개가 나
타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전원, 설형진을 취해
라! 유령선이라면 상대는 언데드! 적이다!"
단장의 명령에, 아무리 성기사들이라고 해도 동요를 느꼈
다.
"자!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카스트디오 단장님! 이제부터
가는 마도국은 언데드의 왕이 지배하는 땅. 혹시 저게 마도
국의 배가 아닐까요?"
"뭣!? 유령선을 땅 위로 끌어올려, 그걸 사역하고 있다는
말인가! ...뭐야 그건."
레메디오스가 할 말을 잃는 것도 당연했다.
언데드가 다른 언데드를 지배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바다를 움직여야할 유령선을 지배하에 두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언데드라니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
가.
이윽고 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야말로 유령선이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선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판자가 들린 곳이 다수 있었다.
아주 커서, 성왕국의 해군기함 '성왕의 철퇴'호보다도 틀
림없이 컸다. 너덜너덜하지만 않았다면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세 개의 돛대의 최후미에는 종방향 돛이 걸려있었고, 남
은 것은 횡방향 돛. 다만, 역시 너덜너덜해서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충각은 괴상할 정도로 날카롭게 튀어나와있었고, 갈아놓
은 것처럼 깔끔했다. 게다가 마법 같은 희미한 광채가 깃들
어있어서, 배 자체가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
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을 끄는 것이 메인 마스트에 드높이
걸려있는 문장. 그것은 그야말로 마도국의 문장이었다.
배는 지상에서 1미터 정도 부유하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배는 괴상한 모습으로 얼어붙은 일행을 무시하는
형태로 그 옆을 지나갔다.
모두가 경직된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이윽고
안개가 점차 옅어져갔다. 그 배가 안개를 뿜어내면서 항행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다면 배가 가장 접근한 때
에 가장 시야가 안 좋아져서, 배 자체도 볼 수가 없었을 것
이다. 아마도 배를 숨기기 위한 막처럼, 선체에서 조금 떨
어진 주변을 안개가 뒤덮고 있는 것이다.
혹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한 우리인 것인가. 네이아
는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마도왕... 언데드의 왕. 혹시 엄청나게 무서운 상대가 아
닐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산양을 소환했다고 듣고, 멋대
로 귀여운 산양을 떠올렸기 때문에, 네이아는 마도왕을 조
금 깔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안하다.
성기사들에게 있어서 언데드가 적인 것처럼, 언데드에게
있어서도 성기사는 적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말
로(末路)는...
그래도 과거에 얄다바오트와 호각으로 승부했다고 하는
모몬을 만나기 위해서는, 협력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이아는 손바닥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안개가 개인 것 같군. 가자, 모두들."
저 정도의 이형의 존재를 지배하는 언데드의 왕.
네이아도 각오를 다졌다.
(언데드이면서도 인간이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는 마도
왕... 실제로 어떤 분일까. 하지만, 뭐, 종자가 만날 수 있을
리도 없겠지만)

3.
멀리 마도국의 수도, 에 란텔의 그 유명한 삼중 성벽의 가
장 외벽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달려있는 훌륭한 문.
단, 네이아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둘 다 아니었다. 시선이
떠나질 않았던 것은, 문의 좌우에 선, 거대한 상(像)이었다.
그것은 기괴한- 뱀과 같은 것이 얽힌 지팡이를 쥔 언데드
의 모습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마도왕 아인즈 울 고운을 조
각한 것인 듯했다.
네이아가 있는 곳에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데도 불구하
고, 그 조각상의 디테일의 세세함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바로 아래까지 가더라도, 조형에서 흠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 주변에는 여럿의 인간형 생물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에? 어라? 좀 크지 않나? 성벽의 높이가 저 정돈데. 상
이 큰 건 이해하겠는데... 저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
체?)
다른 사람들도 네이아와 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성기사들
도 인간형 생물의 정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저거 인간이 아니겠죠?"
"그렇겠지. 저건 어쩌면 자이언트가 아닐까? 힐 자이언트
(언덕거인)와는 다른 종류의 존재라고는 생각하는데..."
"자이언트? 괜찮은 건가? 우호적인 자이언트도 있는 것은
알고 있는데..."
종자일 뿐인 네이아는 실제로 자이언트를 본 적이 없었지
만, 그 존재 정도는 몬스터 지식 강습에서 들은 적이 있었
다.
자이언트(거인)란 그야말로 인간을 크게 만든 것 같은 모
습을 한 존재였지만, 육체가 강인한 것은 물론, 종족적인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종족적인 능력에 의해,
인간은 생활하는 것이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
기 때문에, 그런 장소에 둥지를 트는 경우가 많고, 평야에
서밖에 살 수 없는 인간사회와는 그리 관계를 갖지 않는 아
인 종족이었다.
마법적으로 뛰어난 종족이 있는가 하면, 인간보다도 뛰어
난 문화를 가진 종족도 있었다.
종족적으로 선도 악도 존재한다. 십삼영웅 가운데 한 사
람이 자이언트였고, 성왕국에서는 시 자이언트(바다거인)라
는 것이 때때로, 거래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반적인 자이언트는 난폭하고 위험한
종족이었다.
인간 세상에 나오는 위험한 자이언트라고 하면, 언덕에
사는 힐 자이언트. 자이언트의 아종이라고 할 수 있는 트롤
(요괴거인) 등이 유명했다.
그럼, 자이언트는 어째서, 이 언데드의 도시에 있는 것인
가.
"...이 부근에는 옛날부터 자이언트도 있었던 건가? 그걸
지배하에 두었단 말인가?"
"자이언트를 사역하고 있단 말인가, 그 마도왕은? 그런
건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야."
성기사 가운데 한 사람이 놀란 목소리를 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도국으로 가기 위해서 온갖 정보를 수집했다. 물론, 모
르는 것투성이였기 때문에,목적을 달성했다고는 하기 어려
웠지만, 그래도 여러가지로 노력은 했던 것이다. 그것이 유
령선도 그렇고, 자이언트들도 그렇고, 수수께끼가 더해져만
갈 뿐이라니.
마도왕은 자이언트가 언데드가 된 존재가 아닐까, 하고
네이아는 생각했지만, 그런 특징이 있다면 수집했던 정보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뒤에서 구스타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자 바라하. 슬슬 대열을 변경한다. 뒤로 가도록."
"옛!"
여행하는 동안에는 네이아가 선두였지만, 도시 근처까지
왔다면 네이아가 있을 곳은 가장 뒤편이 된다. 그리고 네이
아가 있던 선두를 레메디오스와 구스타보가 간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소식을 전할 자를 먼저 보낼까요?"
풀 플레이트로 무장한 집단이 도시 근처로 나타났다면,
보통은 경계할 것이다. 그 때문에 왕국의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갈 때는 먼저 성기사가 한 사람 선행해서, 자신들의 방
문을 알린 다음, 성왕국의 국기를 건 집단이 도착한다는 수
순을 밟아왔다. 그것이 예의인 법이었다.
레메디오스는 그에 동의하고, 성기사 가운데 한 사람을
먼저 보내기로 했다.
출발한 성기사가 마도국의 성문에 도달했고, 그 다음 돌
아왔다.
"단장님. 마도국의 문지기에게 전달하고 왔습니다. 상대
는 환영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알았다. 그럼 가자! 깃발을 들어라! 가슴을 펴라!
성왕국 성기사단의 이름에 부끄러운 행동은 삼가도록!"
그 목소리를 신호로, 일동은 천천히 마도국을 향해 말을
타고 갔다.
이윽고 훌륭한 성문과, 거기에서 일하는 자이언트들의 모
습이 분명하게 보일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자이언트들은 상을 고정하면서 손질을 했고, 안 그래도
깔끔한 상을 더욱 깔끔하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이언트의 모습을 살펴보니, 피부의 색깔은 창백하고,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하얀색이었다. 뭔가 짐승의 가죽을 무
두질해 만든 것 같은 야만적인 복장 위에, 세련된 체인셔츠
(사슬옷)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슨 자이언트지?"
네이아의 날카로운 청각이, 선두의 두 사람의 대화를 잡
아냈다.
"추측입니다만, 프로스트 자이언트(서리거인)가 아니겠습
니까?"
[흐음] 레메디오스로부터 별 감흥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거 강한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지?]
"...저 좀 살려주십시오. ...프로스트 자이언트는 한랭지대
에 살고 있는 자이언트로, 냉기에 대한 완전한 내성을 보유
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불에 대해 취약하다는 단점도 있
죠."
"과연. 싸우게 된다면 불로 공격하라, 는 말이군."
"뭐, 그건 맞습니다. 미스릴급 모험자라면, 그리 고생하지
않고 이길 수 있겠죠. 단,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훈련
하고, 때로는 전사로서의 힘을 가지는 자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요주의할 상대지요."
그것이 자이언트였다.
전사의 훈련, 매직 캐스터로서의 훈련, 도적의 훈련. 그렇
게 기술을 쌓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종족적으로 뛰어
난 생물은 기술 훈련 등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일
부 종족들은 기술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을 통해 아
주 성가신 상대가 된다.
네이아의 아버지는 [짐승이라면 외견으로 드러나지. 하지
만, 외견으론 알 수 없는 강적은 무섭다]라고 재삼 말해주
었다.
"흐음. 자이언트와는 싸운 적이 없으니까. 아니, 오거 같
은 상대라면 싸워본 적이 있지만."
"오거와 한데 묶으면 그들이 불쾌하게 여길 겁니다. 시 자
이언트가 말하기를, 인간과 원숭이를 똑같이 여기는 것 같
은 느낌이라는 모양이니까요. 음유시인에게 건너건너 들은
것이라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불명입니다만."
"흐음. 시 자이언트를 성왕국은 고용할 수 없었지만, 마도
국은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고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어느
쪽 자이언트가 더 강하지?"
"음,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장으로서는 시 자이언트 쪽이 더 강하기를 바라고 있겠
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프로스트 자이언트가 어떤 대우를
받으면서 마도국에 있는 것인가, 라는 점일 것이다.
우호적인 관계로 여기에 와있는 것인가, 아니면 힘으로
종속시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금전이나 물자 등의 쌍방
에 이익이 되는 관계인 것인가.
묵묵히 일하고 있는 자이언트들의 눈치를 살펴도 그것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이언트는 이렇게 보니 확실히 굉장한 일꾼이
네. 타 종족과의 협력은 성왕국도 하고 있는 일이지만, 더
종족의 폭을 넓히게 되면 그만큼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겠
어. 성왕국에서는 절대로 무리겠지만)
머맨 같은 경우에는 옛날부터 성왕국과 협력을 해왔다는
실적이 있기 때문에 문제 없었지만, 아인과는 전쟁을 해온
기억이 있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일 일은 없을 것이다.
마도국은 자이언트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
종족도 받아들이고 있을까. 혹시 만약에, 여기에서 성왕국
을 공격하고 있는 아인과 조우했을 경우, 자신은 적의를 억
누를 수가 있을까.
(아니,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예를 들면 여기에 스네이크맨이 나타나면 어떨까. 성왕국
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지역에서 온 스네이크맨이, 이 나라
에서 인간과 융화되어 살고 있다면. 적대하는 세력에 스네
이크맨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그에게 검을 겨누는 것은, 위
험한 사상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감정론으로 말하자면 적개
심을 품지 않는 쪽이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
는 그것을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된다.
네이아는 조금 불안하게 레메디오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럴 수 있을까.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레메디오스에게 그런 걱정을
품는 것은 실례였다. 이 사절단의 단장으로서, 나라를 구하
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정도는 분명히 가능
할 것이다. 자신 따위가 걱정하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나아가도 괜찮겠습니까? 다른 문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문 자체는 개방되어있었지만, 자이언트들이 작업중이었기
때문에, 발 밑을 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줄
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대로 간다. 성왕국의 사절단이 자이언트에게 겁을 먹
고 다른 문으로 갔다는 것이 알려지면 웃음거리가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단장님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일행은 그대로 문을 향해 나아갔다.
고맙게도 자이언트들은 그들을 힐끗 보고는 작업을 잠시
멈추고, 안전하게 일행을 보내주었다. 네이아는 거기에 인
간에 대한 호의라기보다, 마도국을 방문하는 여행객에게 어
떤 감정을 품은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대로라면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막아서는 사람이 있
겠지만, 먼저 소식을 전한 사람이 왔다갔기 때문에, 도시의
위병으로 보이는 인간 병사들의 유도를 받아, 마법의 빛이
비춰지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태양의 광채와는 다른 빛에,
전투훈련을 받은 말들이 불안함을 품었는지 [푸르르]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어서 오십시오, 마도국 도시 에 란텔에. 성기사님 여러분
은 여기에 오신 것이 처음이십니까?"
"그래, 그렇다."
"과연. 그럼 실례지만, 말에서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짐을 검사하는 것일까, 하고 네이아는 생각했다. 타국의
사자라고 밝힌 집단에게 짐 수색이라니 좀 무례한 짓이었지
만, 그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다.
불만을 표하지 않고 말에서 내린 집단은 [여기로] 라는
말에 따라, 성문의 측면에 있는 커다란 문의 앞으로 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여기는 측탑이라고 불리는 병사들의
주둔소 겸 방위거점일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도시는 왕
국이나 제국의 일반적인 도시와는 여러가지 점에서 다른 점
이 있사오니, 처음 오신 분은 이 너머에 있는 방에서 [강습]
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강습?"
"예. 불필요한 소동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이 강습이 끝나
지 않는 한은 이 도시에 들어가시는 것을 허가할 수는 없습
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까지 와놓고 들어가지 않겠다고 거절할 리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레메디오스의 대답은 [받겠다]였다.
"그럼 가장 먼저 무기를 맡아두어도 되겠습니까?"
이것 역시 거절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연히, 레
메디오스는 난색을 표했다.
레메디오스가 가진 검은 성왕국의 신보(神寶). 허리에 차
고 성왕 앞에도 나설 수 있는, 그런 물건을 일국의 왕이라
도 만나는 것이 아닌 한 넘길 수가 없다고 말하자,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다른 여러분도,
그대로 들어가시죠. 앞으로 가주십시오. 검을 맡아두고 싶
었던 것은 여러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
약속해주십시오. 결코 이 안에서는 무기를 뽑지 않겠다고.
만약 그것을 약속하실 수 없다면 이 도시에서 떠나시는 편
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았다. 패검을 인정해준 그 쪽의 신뢰에 답하여, 우리들
은 이 안에서 결코 무기는 뽑지 않도록 하지."
레메디오스는 가슴- 성왕국의 문장이 새겨진 부분- 에 손
을 얹고, 선언했다. 성기사의 긍지와 성왕국에 대한 충성을
걸고, 라는 의미를 가진 맹세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제부터 가장 먼저 이 곳의 수호
자가 나올 겁니다."
성왕국이라면 감탄사조차 들려올 절대적인 맹세였지만,
타국에서는 이 정도의 취급이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넘기고,
병사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네이아는 무심코 [힉]하는, 비명이라고도 신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로로도 가로로도, 그리고
위아래로도 거대한 존재였다.
혈관 같은 진홍의 문양이 여기저기에 글진 흑색의 풀 플
레이트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곳곳에 달려있었다. 투구는
악마의 뿔이 달려있었고, 노출된 얼굴 부분에는 썩어가는
인간의 얼굴이 보였다. 뻥 뚫린 눈구멍 속에는 산 자에 대
한 증오와 살육에 대한 기대가 붉고 형형하게 빛났다.
단숨에 방의 온도가 내려가고, 암흑이 밀려오는 것 같았
다.
"무기를 뽑지 말아주십시오!"
병사의 외침에 모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검을 뽑지 않으면 반드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검을 뽑으면 일격에 죽을 겁니다! 그리고 그대로 영원히 고
통받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저희들에게 두 번 다시 보여주
지 말아주십시오!"
비통한 목소리는 경험한 자 특유의 것. 그는 그런 사태를
본 적이 있는 듯했다.
천천히 그 언데드가 네이아 일행을 응시했다. 사실상, 검
을 뽑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언데드는?"
레메디오스의 목소리에도 희미하게 떨림이 섞여있었다.
"이 도시에 다수 존재하는 경비병들입니다."
"...이런게."
레메디오스는 아연함인지 공포인지 동요인지 추측할 수
없는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것은 네이아도 같은 마음이
었다. 이런 얼핏 보기만 해도 이형의 강한 힘을 가진 것으
로 보이는 언데드가 다수 있는 나라라니 상상을 초월한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시, 실례합니다. 이 언데드를 마도왕- 폐하는 지배하고
계시나요?"
네이아가 무심코 질문하자,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 언데드보다도
더욱 강한 언데드도 지배하고 계신 듯합니다."
"위험하진 않습니까?"
구스타보의 질문에도 병사는 즉시 대답했다. 이야기를 하
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예. 지금, 이 도시의 주민 중에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
는데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언데드는 산 자를 증오하는 존재. 그것을 완전히 지배하
고, 산 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면, 마도왕이
란 어지간히 굉장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네이아는 마도왕
이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가졌는지 강하게 실감했다.
"...그런, 가. 그러면 방이라는 곳에 안내해주겠나?"
"그럼 제 뒤를 따라와주십시오."
검은 언데드가 천천히 문 앞에서 비키자, 병사가 당당하
게 지나갔다. 그에 비해 네이아 일행은 누가 가장 먼저 들
어갈까 하고 서로의 동향을 살폈다.
마도왕이 지배하고 있다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
는 속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배가 부르니까 덤비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전혀 구속되지 않은 육식동물의 앞
을 지나가는 것에 비하면 그 공포심이 곱절은 되었다.
레메디오스가 앞에 나서려고 했고, 구스타보가 막았다.
그리고 시선이 네이아에게 돌아왔다.
(카나리아는 나, 인가)
잃어도 아깝지 않은 목숨은 어느 쪽인가, 하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약자를 지켜줬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집단에 속한
종자는 그 약자에 포함되지 않는 듯했다.
네이아는 각오를 다지고, 눈을 꼭 감고,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똑바로 걷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은 아직
공격당하지 않았다. 걸음을 서둘러서, 언데드의 공격범위를
빠르게 지나갔다.
네이아가 무사히 지나간 것을 보고, 뒤에서 다른 성기사
들이 따랐다. 이윽고 아무도 공격당하지 않고, 일행은 목적
지인 방에 도착했다.
병사가 문을 열자, 긴 테이블이 여럿 있는 방에 간소한 의
자가 상당한 숫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럼 이 방에 앉아서, 조금 기다려주십시오."
"알았다. 안내해줘서 고맙군."
레메디오스가 턱짓을 하자, 구스타보가 품 속에서 작은
가죽주머니를 꺼내서, 그것을 안내해준 병사에게 넘기려고
했다. 팁이었다.
"그러지 말아주십시오!"
강한 거절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병사가 두 손을 머리 위에 들고, 그 가죽주머니에 닿지 않
도록 피하고 있었다.
모두가 조금 어처구니 없어하는 반응이었다. 네이아도 그
랬다. 병사가 그렇게까지 심각한 반응을 보일 이유로 짚이
는 것이 없었다.
"저희들은 마도왕 폐하로부터 급료를 받고 있으니, 그런
배려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 하지만, 신세를 졌으니... 게다가 대단한 금액은 아닙
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럼 저는 바깥에서 강습이 끝날 때
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병사가 신속하게 방에서 퇴실했다. 남은 사람들은 병사에
너무나도 과격한 반응에 얼굴을 마주 보았다.
"괜찮을까요?"
"저 쪽이 필요없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팁을 건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건네지 않아
도 문제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건네
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짐의 체크 등을 시간 단축을 위해
서 간소화해줬으면 좋겠다는 속내도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
만, 그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것은
지위에 어울리는 이의, 베푸는 자세의 측면이 강했다.
마도왕의 지시라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딱히 어디에 앉으라는 규칙도 없는 것 같군. 그럼 각자
마음에 드는 장소에 앉도록."
단장의 지시에 따라, 전원이 앉은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간신히 문이 다시 열렸다.
어깨 너머로 돌아본 네이아는 눈을 크게 떴다.
들어온 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가슴보다 위쪽은 인간, 그보다 아래쪽은 뱀인 종족. 나가
였다.
이 나가라는 종족 중에는 몇 종류- 예를 들면 바다에 사
는 시 나가 등이 성왕국 해안에 출몰하는 경우가 있다- 로
나뉘었고, 그 중에 어느 종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어
떤 종류라도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아인이었지만, 네이
아는 그렇게까지 공포나 놀라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도 아까의 검은 언데드 덕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그
나마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아! 그런 건가? 그 무서운 언데드는 압도하기 위한 것만
이 아니라, 아인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을 완화하는
게 목적인가? 이 나라는 인간이 아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
도록 꼼꼼하게 배려하고 있구나...)
아무래도 마도왕은, 강대한 힘을 가진 언데드라는 것이
전부가 아닌 모양이었다.
나가는 조용해진 방 안, 일행의 반응을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게 했군, 이 도시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인간들이
여. 나는 이 마도국에서 입국관리관의 일원으로서 일하고
있는, 류라류스 스페니아 아이 인다룬. 나가일세. 뭐, 그렇
게 빈번하게 만날 직업은 아니니까, 잊어버려도 상관없네.
서둘러서 미안하지만, 시작하지. 간단히 이 도시의 생활에
대해, 주변의 도시와는 다른 부분이나 요주의 사항을 설명
하겠네. ...먼저, 도시 내에서 무기를 뽑는 것은 금지일세."
지극히 당연한 주의였다. 네이아는 살짝 어깨의 힘을 뺐
다.
[흠. 평범한 내용이다, 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
군] 류라류스가 자신의 얼굴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찔렀다.
[얼굴에 다 드러난다네. 하지만 기억해뒀으면 하는 점은,
이 마도국에서는 온갖 종족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네. 언
데드가 활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일도 있겠지. 자네들이 위
험하다고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검을 뽑
는 것은 중죄라네?]
"잠깐 기다려. 위험한 존재가 있을 경우, 도망치라는 말인
가?"
"그게 아닐세. 이 도시의 안에 위험한 존재가 있다고 하더
라도, 자네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없을 것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섭다, 공격당하는 것 아닌가, 하고 성급하게 무
기를 뽑지 말라, 라는 말이지."
"공격당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건가?"
[할 수 있다네. ...자네들이 경계하는 것 같은 이 곳을 활
보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대부분이 마도왕 폐하의 부하]
류라류스가 피곤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 도시에서 하루 생
활해보면 위기감도 마비되서 신경도 쓰이지 않겠지만, 뭐,
그 첫 날이 문제일세. 아, 물론 방어를 위해서 검을 뽑는 거
라면 문제는 없네]
"과연. 방어를 위한 거라면 괜찮다는 말이군."
"음, 그렇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일어난 범죄에 관해서는
수사를 위해서 정신을 조작하는 마법을 사용하네. 이건 받
아줘야겠군."
네이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네이아만이 아니었다.
성기사들 사이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났고, 대표로 레메디오
스가 의견을 말했다.
"기다려다오. 마도국은 그렇게 뒤떨어지는 나라인가? 마
법에 의한 수단을 허락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법정에서
도 그렇다는 말인가?"
기본적으로 정신조작계 마법은 이런 범죄의 심문에 쓰이
는 일은 없다.
예를 들면 <도미네이트(지배)>를 사용하면, 어떤 상대라
도 일시적으로 범죄자로 만들 수가 있다. <챰(매료)>으로
대역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거이다. 이렇게 마음대로 범죄
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대문에, 포악한 지배자의
폭정에 필적하는 만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법정에서도 쓴다는 모양일세. 이런, 마도왕 폐하께선 결
코 거짓을 말하게 만드는 일이 없다고 단언하고 계시네. 걱
정을 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
을까. 정신조작계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나라가 그 인물
을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범죄자로 만들어서 처분할 수 있다
는 것이었으니. 만난 적도 없는 언데드를 신뢰할 수 있는
인간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아무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다들 같은 마음일 거라
고 생각되었다.
"하던 얘길 계속하기 전에 물어봐둘까. ...이 도시에 들어
가지 않고 돌아가겠나?"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들어가야겠어."
"호오. 여태 나왔던 대답 중에 가장 빠른 대답이군. 상인
이라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다음, 논의를 하기도 했는
데... 알았네. 그럼 얘길 계속하겠네."
그 후 류라류스의 이야기는 [언데드 마차가 달리고 있다]
같은,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은 이야기가 태반이었지만, 특
히 [드래곤이 가끔, 도시의 상공을 날아가지만 놀라지 마라.
말이 날뛰지 않도록 주의해라]라는 이야기에는 얼굴이 경련
했다.
드래곤이 도시 상공 같은 곳을 날아다니면 대형 사건 정
도가 아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영웅이 전투에 임해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대가 드래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사
는 용 살해자에 동경을 품는다. 압도적인 차이가 있는 종족
을 자신의 단련된 역량, 동료들, 무구로 쓰러뜨린다는 것은
자랑거리였으며, '초'라는 글자가 붙을 정도의 일부 전사에
게만 허락되는 위업이었던 것이다.
그런 드래곤이 사람이 사는 지역에 출현하면, 어느 정도
의 소란이 벌어질 것인가.
(언데드는 문지기를 봤으니까 상관없지만, 드래곤이라
니... 아, 아니, 한 마리 정도 상공 경비로 날아다니는 경우
라면 있을 법도 한가? 성장 단계에 따라서 그 힘이 상당히
차이가 난다고 하니까)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어린 개체도 드래곤이라고 하면 드
래곤이었다. 그런 어린 드래곤이라면, 그 언데드보다는 간
단히 지배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이걸로 얘기는 대부분 끝났네. 경청에 감사하지. 그럼 이
방을 나가서, 병사를 따라 문까지 가주겠나?"
"실례, 조금 이야기를 들어봐도 되겠나?"
레메디오스가 손을 들었다.
"흠? 뭔가?"
"우리를 죽이고 싶다거나 먹고 싶다거나, 그런 감정은 없
는 것인가?"
"옛날의 나였다면 그런 감정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금지되어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마도왕 폐하
를 본 다음부터는, 하등한 자들끼리 다퉈서 어쩌겠는가, 하
고 생각할 정도밖에 안 되는군."
"그 정도로 마도왕 폐하는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가?"
류라류스가 피곤함이 극에 달한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상상하는 수십배의 힘을 가지고 계시네. 그 분은
물론, 수하 분들도 상상을 뛰어넘는 힘을 소유하고 계시는
분들뿐이야. ...솔직히 말해서, 폐하께서 지키고 계신 이 도
시만큼 안전한 장소는 없을걸세."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레메디오스는 입을 다물었
다.
"자네들이 뭘 하러 왔는지는 모르네. 하지만, 내 강습을
받은 자네들에게 좋은 것을 알려주지. 내 티타임 친구- 미
망인 공이 말한 것이네만, 그 분과 적대하는 것은 어리석음
이 극에 달한 자이고, 즉시 그 발치에 몸을 엎드리고 자비
를 구하는 자야말로 현자일세."
놀랄 정도로 실감이 담긴 목소리였다. 어쩌면, 친구의 이
야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 류라류스라는 나가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충고에, 감사하지."
레메디오스가 일어났고, 이어서 일행 전원이 일어났다.
가장 뒤의 네이아는 류라류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
섰다.

4.

에 란텔의 거리를 걸었다. 일행이 가고 있는 곳은, 문지기


로부터 들은, 이 도시에서도 고급 여관으로 알려진 황금휘
정이었다.
네이아는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류라류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거리는 언데드와 아인
들 투성이고, 인간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는 이
미지를 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이 대부분
이었다.
언데드는, 문에서 본 것과 같은 종류의 언데드가 여럿이
한 조를 이루고 순회하고 있는 것과, 마차를 끄는 뼈로 된
몸을 가진 안개를 흩뿌리는 말 형태의 언데드 정도였고, 다
른 언데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한편, 아인은 특이한 것뿐이었다.
길을 정연하게 행진하는, 역전의 전사의 위풍을 가진 고
블린. 이것은 네이아가 아는 고블린의 이미지를 단숨에 깨
뜨려버렸다. 아니, 네이아만이 아닐 것이다. 성기사들 중에
도 경악하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외에는 토끼와도 같은 얼굴을 가진 메이드복의 아인,
똑바로 선 개구리와도 같은 아인 등을 보았지만, 각각 한
번씩밖에 보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나라구나.
무시무시한 언데드의 왕이 지배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
길을 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은 보이
지 않았다. 그것이 달관했거나 적응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
가, 언데드와의 공존에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가까지는
네이아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거리가 혼란에 빠지지는 않
은 것 같았다. 때때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올 정도였
다.
(얄다바오트에 비하면 훨씬 낫다, 고 봐야되려나)
레메디오스의 말이 갑자기 멈추었다. 선두를 나아가던 단
장이 멈추었으니, 필연적으로 일행은 거기에서 멈추게 되었
다.
"실례하지, 거기 드워프. 말 좀 물어도 되겠나?"
레메디오스가 말을 건 것은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드워
프들 세 사람. 그리고 드워프의 명령에 따라 토목공사를 하
고 있는 스켈레톤이 셋이었다.
스켈레톤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해버
릴 정도로, 이 도시에 온 다음부터 충격은 컸다.
"뭔가? 뭐야, 당신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나?"
"말 위에서 말하게 되어 미안하군. 우리들은 성왕국에서
온 자들인데, 황금휘정이라는 여관에 가고 싶다. 길을 알려
줄 수 있겠나?"
"황금... 황금휘정? 아아, 그 고급여관 말이군."
드워프로부터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문지기가 알려준
길과는 약간 달랐고, 목적지도 약간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진정한 목적은 길을 묻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과연. 고맙군. 구스타보, 그에게 사례를."
말에서 내린 구스타보가 사례를 보여주었다.
"길 정도야 공짜로 알려줄 수 있는데?"
"상관없습니다. 일하시는데 방해를 했으니까요."
"그런가? 미안하군."
드워프가 다가와서 구스타보로부터 사례를 받아들었다.
조금 웃고 있었다.
"이 돈으로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성왕국에서 온 당신들
에게 감사를 보내겠네."
"아니, 신경쓸 것 없다. ...그런데 당신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음? 보면 모르나? 도로의 정비일세. 마도왕 폐하의 요청
이지. 주로 이 도시의 사람들이 하고 있지만, 기술지도를
위해서 초대된 형태라네."
크하하하하, 하고 드워프는 호쾌하게 웃었다.
"과연. 그럼 그 쪽의 언데드는?"
"마도왕 폐하로부터 빌린 스켈레톤이네만? 이야, 정말로
언데드는 단순한 육체노동에 있어서는 엄청나다네. 사고방
식이 조금 바뀌어버릴 지경이야."
"언데드를 사용하고 있는 건가..."
"뭘 놀라고... 뭐, 여행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구만. 하지만,
이 마도국이라면 당연한 일일세. 마을에서도 언데드가 대활
약을 하고 있다고 들었네. 밭을 개간하는 것 같은 귀찮은
일도 명령하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야. 보게나, 언데드는 피
로를 느끼지도 않고, 수면도 필요없고, 식사도 하지 않네.
게다가 우리의 말을 이해하고, 원하는대로 움직여준다는 점
이 최고지. 말이나 소 같은 것을 사용하는 생활에는 이제
돌아갈 수가 없어.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도입되고 있을
정도라네."
"나라라는 것은 마도국 이외의 드워프의 나라를 말하는
건가?"
"그렇네. 우리들은 거기에서 왔지, 지금은 마도국의 아인
지구에 숙소를 두고 있다네."
"아인지구?"
"그렇다네. 인간 이외의 온갖 종족이 체재하고 있는 부근
을 그렇게 부르고 있지. 예전에는 이 도시의 슬럼 지구였지
만, 거기를 헐었다네. 온갖 종족이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이라는 목적으로 건축이 진행되고 있지. 뭐, 아직 완성까지
는 멀었지만, 우리 같은 자네들 인간보다도 작은 종족이 쾌
적하게 살 수 있는 가옥은 이미 건축이 끝났다네."
"사실 우리는 그 쪽 일을 담당하려고 불려왔던 건데 말이
야!"
드워프 동료가 끼어들었다.
"과연. 하지만, 슬럼을 헐어버렸다면, 거기에 있던 자들은
어디로 간 거지?"
단장의 시선이 언데드를 향해 움직였다.
"자세히는 모르네만, 마을에 파견되었다는 모양이었지 아
마? 이 도시의 주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기된 마을들이
있어서, 거기를 수복하고, 밭과 함께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언데드를 사용하는 정도는 그 쪽이 더 굉장하지.
언데드를 사용한 대규모 농작을 시작하고 있다는 모양일세.
그러니, 이 나라는 식량의 가격이 상당히 싸다네."
"싼게 중요한게 아니라니까. 맛있는게 많다는게 중요한
거라고! 그리고 술! 이 도시에서 살다보면 단숨에 살이 찐
다네!"
"여기 왔다가 살쪄서 돌아가면 마누라가 자기 건 어딨냐
고 바가지를 긁을테니, 살 좀 빼서 돌아가야겠구만!"
"이야, 제비뽑기 당첨되서 다행이지 뭔가!"
크하하하, 하고 드워프들이 호쾌한 웃음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말 형태의 언데드, 이름을 알고 있나?"
"모르네. 모르지만, 딱히 상관없잖나.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뼈밖에 없는 주제에 힘이 좋아서, 운
반에는 최적이라네!"
"그런가... 감사하지."
"우리도 고맙네. 자네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기도하지!"
드워프들과 헤어지고, 일행은 다시 여관으로 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단장님. 어째서 그 말 형태의 언데드의 이름을 물어보신
겁니까?"
네이아도 그것은 의문이었다. 레메디오스에게는 가장 흥
미가 없는 부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구스타보. 그 언데드를 봤을 때부터 네 언동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에 질문했던 거다."
"그러셨습니까..."
"구스타보, 너는 그 언데드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심증이긴 합니다
만... 아마도 아닐 겁니다. 그럴리가 없어요. 제가 착각하고
있는 걸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언데드를 지배할 수 있
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흐음.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말이 맞겠지."
그걸로 대화는 끝났다.
이윽고 문지기가 알려준대로 나아간 일행의 앞에, 황금휘
정으로 보이는 훌륭한 여관이 보였다. 글자가 적힌 간판이
걸려있었지만, 왕국의 글자는 성왕국의 것과는 다르기 때문
에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왕국과 제국은 원래 같은 나라
였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유사한 점이 있었지만, 성왕국은
두 나라와는 같은 나라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달랐
다.
"구스타보. 먼저 가서 방을 잡아다오."
"알겠습니다. 이봐, 두 사람 정도 따라오도록."
구스타보가 두 사람의 성기사를 데리고, 여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분 정도 지나 성기사 가운데 한 사람만이 돌아왔
다.
"단장님. 방 쪽은 문제없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말은 마
굿간이 뒤쪽에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데려와달라고 합니
다."
"그런가. 알았다. 종자 바라하. 말을 데리고 가라."
"옛!"
말의 고삐를 여관의 앞에 있던 나무에 연결하고, 한 마리
씩 마굿간으로 데리고 갔다. 원래대로라면 말을 돌보는 것
도 종자의 일이었지만, 그것은 여관 측에서 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그에 응해,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손님이 마굿간의 냄새를 풍기면서 여관으로 들어
오는 것을 피하기 위함일지도, 라고 생각할 정도로 여관의
안에는 좋은 냄새가 났다.
뭔가 향초나 향수일까.
외관을 봤을 때는 왕도의 여관과 동격일 거라고 생각했는
데, 안을 보니 어쩌면 1단계 위일지도 모른다. 오랜 여행으
로 더러워진 몸- 일단, 물로 닦고는 있었기 때문에 냄새는
안 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으로 있는 것이 조금 부끄러울
정도였다.
네이아는 여관의 사람이 알려준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
렸다.
"누구신지?"
"종자, 네이아 바라하입니다."
문 너머에 있던 것은 성기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아직 갑
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여행 도중에 상상하고 있던 에 란텔
과 현실의 에 란텔이 너무 달랐던 탓에, 여행의 피로를 씻
어낼 시간조차 아껴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인 듯했다.
"타이밍이 좋군. 이제부터 회의를 하려고 했다."
자신이 참가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소릴 해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윗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에 따르는 것이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당초의 예정대로 마도왕에게 면회를 요청하겠다.
구스타보, 부탁하마."
"물론입니다, 단장님. 그래서 그 외에는 어떻게 할까요?
예정으로는 권력자를 만나서 협력을 요청하기로 되어있었
습니다만..."
모몬이 모험자이기도 해서, 모험자 조합에 가게 되어있었
지만, 류라류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모험자 조합은 휴
업에 가까운 형태인지, 의뢰는 마도왕의 수하가 대리로 받
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조합에는 가지. 그래서 만약 한가한 모험자가 있고,
성왕국에 가도 상관없다는 자라면 데려가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구스타보가 두 사람의 기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들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이아에게는 어떤 일이 떨어질 것인가.
종자였으니, 성기사들의 갑옷이나 검을 손질하는 일이나,
세탁 등이 본래의 업무였고, 옷이 해진 곳을 고치는 것도
업무의 일환. 현재 기사 자리에 있는 인물의 태반이 그런
일을 경험해왔던 것이다.
(보기 드문 재능으로 단숨에 기사 자리에 오른 단장은 해
본 적이 없겠지만...)
"그럼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여관에 남도록 하면
되겠습니까?"
"아아, 왕국에서 소문을 수집하던 때는, 좀 더 암흑수도라
는 이미지를 품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평범한 도시로
군. ...소수 인원으로 돌아다녀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
나?"
"모르겠습니다만, 갑작스러운 위험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
니다."
"그런가. 그럼 신전에 몇 명을 보내서, 모몬과의 중개를
부탁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
"이 도시의 지배자인 마도왕은 언데드. 신전세력과는 사
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닌지?"
"하지만, 우리는 성기사. 신전에 가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겠어?"
구스타보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레메티오스의 말은 틀
리지 않았다.
"그래... 그렇군요."
"마도왕이 보여준 거리의 광경 이외에,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건가?"
"그 말도 옳습니다만..."
그러다 만약 성기사로서 용서할 수 없는 광경에 직면했을
때 우리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했기 때문에 구스타보는, 탐탁치가
않은 듯했다.
네이아는 자문자답했다.
성기사란 정의를 체현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면 성기사로서 올바른 행위는 마도왕을 규탄하는 것으로 이
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행동의 결과로 마도왕이 성왕
국을 원조해주지 않고, 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구하지 못하
게 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일일까.
성기사의 정의를 자신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던 아
버지를 떠올렸다. 성기사를 목표로 삼고, 단련을 계속하던
무렵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성왕국이 이런 상황
이 되고 마음이 약해진 것인지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망설임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다.
결국 스스로 나름대로의 대답을 이끌어내는 수밖에 없었
다.
네이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이야기는 진행
되었고, 두 사람이 한 조로 사대신의 신전을 방문하는 것, 2
인조를 둘 정도 구성해서 거리를 보고, 생생한 정보를 모아
오는 것, 무슨 일이 발생했을 떄에 대처하기 위해 레메디오
스와 다른 사람들은 남는다, 는 계획이 되었다.
네이아는 예상대로, 갑옷을 손질하도록 명령받았다.
회의가 끝나고, 네이아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갑옷에 손질
을 시작했다.
차가운 물로 천을 적시고, 그것으로 진흙을 닦아내고 있
었다.
마법의 갑옷인만큼, 흠집이나 찌그러진 부분은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안에서 망치 등으로 두드려줄 필요가 있었지
만, 손재주가 좋지 못하면 평평하지 못하게 되어, 더 초라
해지고 만다. 그 작업에 그리 자신이 없는 네이아 입장에서
는, 성기사의 마법이 담긴 갑옷은 최고였다.
아무런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업무가 있다는 것은 아주 고
마운 일이었다. 쓸데없는 것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니까.
이렇게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네이아는 전원의 갑옷을 깔
끔하게 만들었다.

마도왕과의 대면을 의외로 빨리 할 수 있게 된 것에, 네이


아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구스타보가 간 다
음날에는 면회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기사단 일행- 최후미에 네이아- 이 도착한 마도왕의 성
은 정말 초라한 것이었다. 확실히 이 수준의 도시를 지배하
는 사람이 살기에는 훌륭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왕을 자처
하는 자가 거점으로 삼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오랜 역사
에서 비롯되는 정연함도, 장엄함도, 힘있는 자의 유희도 없
는, 실용성만을 추구한 구조였다.
성왕국이나 왕국의 왕성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왕
성. 그것이 마도왕의 성이었다. 원래는 왕국의 지방도시였
기 때문에, 기존의 작은 성을 점거하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
는 듯했다.
그것을 본 투구를 벗은 성기사들의 얼굴에는, 네이아만
알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모멸의 빛깔이 배여있었다. 자국
의 왕성과 비교했던 것이리라.
그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네이아에게는 유령선이나 거리에서 본 언데드들
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정도의 언데드를 다수 지배할 수 있는 언데드의 왕이,
일부러 초라한 성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훌륭한 성이 갖고 싶으면,
그 드워프들 같은 장인들이나, 피로를 느끼지 않는 인력인
언데드를 사용하면 되니까...)
문을 지나가자 처음 보는 종류의 언데드가 2열로 서서 서
로 마주보고 있었다. 문에서 본 언데드와는 달리, 더 슬림
한 형태를 하고 있는 그것들이, 들고 있던 창을 교차시키고
있었다.
긴 창 끝에 달려있는 것은 오른쪽이 마도국의 국기. 왼쪽
이 성왕국의 국기였다.
국기의 아래, 그 안을 지나가도록,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연주되었다.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었지만,
식전의 일환으로서 순순히 받아들여도 될까.
네이아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예전에 받은 강의가 떠올
랐다.
마법에 대해서는 마음을 강하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 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음악이 마법공격일리는 없었다.
이것이 함정이라면 성왕국의 깃발을 들어올릴 필요가 없을
터였다.
네이아는 늠름하게 보이도록 걸으면서, 시선만은 좌우로
움직였다.
의장병에게 성왕국의 국기를. 틀림없이 이것은 마도국의
국빈으로서 환영해주고 있다는 뜻, 즉 네이아 일행을 성왕
국의 정식 사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으며, 네이아가
성왕국의 간판을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쁜 반면, 위가 아파올 정도로 중압감을 느꼈다.
깃발이 늘어선 길을 나아가자, 그 너머에 있던 것은- 네
이아는 숨을 들이삼켰다.
절세의 미녀였다.
(예뻐... 너무 예뻐...)
투명하리만치 깨끗한 미모.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하얀 드레스에는 주름도 얼룩도 없었다.
미소는 자비로워보였고, 천사로 착각할 것 같은 여성이었
다. 하지만 천사가 아니란 것은, 그 허리에 달린 칠흑의 날
개가 증명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성왕국 여러분. 과분하게도, 아인즈 울
고운 마도국에서 계층수호자 및 영역수호자, 전체 총괄이라
는 지위를 맡고 있는 알베도라고 합니다. 여러분께 알기 쉽
도록 말하자면, 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거 정중한 인사 감사드립니다. 저는 성왕국 사절단
의 단장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라고 합니다. 오늘은 저희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위대한 마도왕 폐하께서는
성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품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그거 정말 고마운 말씀이군요..."
레메디오스가 미소를 지은 알베도에게 압도당한 것처럼
말했다. 너무나도 엄청난 미모에 같은 여자라고 해도- 아니
같은 여자이기 때문인가- 휩쓸리고 있는 것이다. 살짝 움직
인 알베도의 시선이 그들의- 네이아의 위도 훑고 지나갔다.
"그럼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알현실로 안내하겠습니
다. 제 뒤를 따라와주시겠습니까?"
"아, 예. 그, 그러면 검은?"
"아아. 그렇군요."
알베드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어째서, 그런 미소를 지었을까 하고 네이아는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무기를 가지고 왕과 알현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무기를 넘겨주는 것이다. 이것에는
당신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맡아두겠습니다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무기는 그대로 가지고 계시기를."
네이아로서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레메디오스도 마찬가지로 [어째섭니까?]라고 되
묻고 있었다. 특히 성왕녀의 곁에서 있어왔기 때문에 누구
보다도 의문을 느낀 듯했다.
그 당연한 질문에 대해, 알베도는 또다시 웃었다.
"성왕국에서 오신 여러분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언데드가 많이 있는 저희 나라는 여러분 입장에서는
이단의 나라. 그러니까, 무기는 가지고 계시는 편이 여러분
께서 안심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여러분을 해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맡기고 싶다고
하신다면, 맡아둬도 상관없습니다만?"
"그럼 저희 나라도 마도왕 폐하로부터 받은 후의에, 답하
도록 하겠습니다. ...저 이외의 자들의 검을 맡아주시겠습니
까? 죄송합니다만, 제가 차고 있는 검은 저희 나라의 보물.
그것을 맡길 수는 없다는 점, 이해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알베드가 눈짓을 하자, 나타난 언데드가 검을 받아갔다.
아마도 성기사로서 자신이 사용해온 검을 언데드에게 맡
기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자도 있었겠지만, 단장의 명령
이라면 거부할 수는 없었다.
네이아도 넘겨주면서, 알베도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기보다 이 쪽에 대한
호의밖에 느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진심으로 네이아 일행
을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런 네이아의 예측은 옳은 것인가. 만약, 아니라면-
(-검을 든 상태로 자신의 주인에게 가도 좋다. 왕의 명령
이기 때문에? 아니면... 왕을 절대로 상처입힐 수 없다는 것
을 알고 있으니까?)
마도왕은 강대한 힘을 가진 매직 캐스터. 성왕국의 성기
사들이 몇 명이 덤비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
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왕의 가까이에 언데드 호위병들이 모여있는 걸지
도. 알베도 님한테는 전투능력이 없는 것 같고)
이 세계에서 가장 거친 일과 연이 없어보이는 미모의 재
상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자, 여러분. 마도왕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갈까요."

알현실도 건물의 규모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역시 이것도 점거한 상태로 고치지
않고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앉은 옥좌는 눈부셨다. 그렇다기보다 금색으로 빛
나는 화려한 것이었다. 설마, 전부 금으로 만들어졌을리는
없었으니, 금도금을 한 것일까, 그래도 그 크기를 감안하면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거라고 추측되었다.
그리고 옥좌의 뒤에 있는 국기도 아주 훌륭했다. 무슨 실
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순한 검은 색으로는 낼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약간의 빛의 가감을 통해 짙은 보
라색으로도 보이는 깃발이었다.
"그럼 폐하께서 드십니다."
"다들, 고개를 숙여라."
레메디오스가 지시를 내렸다.
언데드에게 성기사가 고개를 숙인다, 는 선택지를 고른
레메디오스에 비해, 조금 놀라움을 느끼면서, 이의없이 네
이아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종자이기 때문에 이런
예법은 제대로 배워두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왕의 앞에 나
서는 것은 예전에 종자가 되었을 때의, 성왕 배알 때 정도
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이면서도, 눈만 돌려서, 주변의 성기
사들의 자세를 필사적으로 훔쳐보았다.
(아마도... 괜찮은 것 같아)
물론, 뒷모습만 본 판단이었기 때문에, 정면에서 보면 자
신만 조금 이상할 가능성은 있었지만.
(괜찮아! 성왕님 때는 이렇게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했으
니까. 아빠도 훌륭했다, 고 칭찬해줬었고)
"아인즈 울 고운 마도왕 폐하께서 입실하십니다."
왕좌의 대각선 앞에 선 알베도의 목소리와 함께, 네이아
에게만 들릴 정도의 수준으로 아주 작게, 종이가 구겨지는
것 같은 소리, 그리고 발소리와 함께 탁, 탁 하고 딱딱한 뭔
가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옥좌에 앉
은 것 같은 기척이 났다.
"허가를 내리셨습니다.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이럴 때에 호흡을 맞추는 일은 어려웠다. 너무 빨라도 너
무 늦어도 실례가 된다. 천천히 몇 초를 세고, 그 다음, 고
개를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정면에 있는 존재에게, 네이아는 시선을 빼앗겼다.
(저, 저게 마도왕, 아인즈 울 고운)
두개골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 두 개의 눈구멍에는 붉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언데드에 어울리는 외견이
었다. 하지만, 네이아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먼저 놀란 것은 그 옷이었다.
종자 임명식 후의 파티에서 본 어떤 귀족들보다도 비싸보
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기장이 길고, 옷자락이 펑퍼짐해서 넉넉한 옷에, 소매 부
분이 놀랄 정도로 넓었다. 얼룩 한 점 없는 순백의 천에, 소
매나 옷자락 부분에 금색이나 보라색으로 세밀한 장식이 되
어있었다. 허리 부근을 띠로 고정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것이 이상하느냐 따져보면 그렇지 않았다. 기묘하지만,
이국의 풍류가 넘쳐서,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옷과 같은 색깔의 장갑에는, 일곱 색으로 빛나는
플레이트 같은 것이 박혀있었다. 그런 손으로 들고 있는 것
은 일곱마리의 뱀이 서로 얽혀있는 지팡이였다. 그것이 탁,
탁하는 딱딱한 소리의 정체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 몸의 뒤에 깃든 검은 빛이
었다.
(...이게 언데드? 거짓말...)
네이아가 상상하는 언데드는, 좀비나 스켈레톤, 가스트
같은 것이었다.
그럼, 마도왕은 네이아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느냐고 묻는
다면, 언데드라는 단어로 한데 묶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었
다. 뼈밖에 없는 얼굴에서는 신기하게도 무서움을 느끼지
못했고, 차라리 청결하고 성스럽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더 강대하고- 무서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의 범주
에 들어가지 않는 존재- 즉 초월자였다.
옥좌의 옆에 선 알베도에 대한 것도 잊고, 네이아는 찬찬
히 마도왕을 보고 말았다.
그런 그녀가 제정신을 차리게 만든 것은, 마도왕이 말한
[그럼]이라는 한 마디였다.
"멀리 성왕국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소, 카스트
디오 공. 그리고 성기사단 여러분."
"감사합니다, 마도왕 폐하."
"국가 전체적으로 환영의 연회를 열어도 되겠지만, 귀공
들에게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소. 그 때문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낸 것이오. 그렇다면 쓸데없는 시간-
에두른 소리나 마음에도 없는 담소는 그만두고 이야기를 진
행하는게 어떻겠소. 속을 털어놓고 말이오. 이의가 있는
지?"
"조금도 없습니다, 마도왕 폐하."
"좋소. 그럼 성왕국의 현 상황을 들려주길 바라오. 한 점
의 거짓도 없이, 감추지 않고 이야기해준다면, 우리, 마도국
으로서도, 귀국에 유익한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
소."
모두 알아들은 레메디오스는 성왕국의 현 상황을 거침없
이 말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 들었는가는 네
이아로서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졌을 가능
성이 가장 그럴싸했다.
이야기는 왕국에서 구스타보가 청장미에게 말한 것처럼,
전국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는 부분에서 끝났다. 성왕
국이 붕괴 직전이라는 것을 타국의, 그것도 언데드의 왕에
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 것인듯했다.
"과연. 과연. 그럼 귀국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오?"
"예. 그래서 마도왕 폐하께 부탁이 있습니다. 귀국에는 그
유명한 모몬이라고 하는 모험자가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얄다바오트와 호각으로 싸운 전사를 빌릴
수 있다면 저희 나라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부디, 저희 나라에 전사 모몬을 파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
다."
마도왕의 눈동자에 깃든 붉은 빛이 문득 흔들리다 사라졌
고, 잠시 후 다시 들어왔다.
"생각했던 대로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준비를 하고 있던
대답을 하겠소. -무리, 라고."
"그 대답은 어째서인지요?"
"이건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이야기이오만, 모몬은 우리나
라의 평화에 한 축이 되어주고 있소. 그가 있기 때문에 백
성은 안심하고 살고 있지."
"마도왕 폐하의 언데드 군대가 있지 않습니까?"
[후후후] 마도왕은 조용히 웃었다. [성왕국의 여러분은
언데드 군대를 보고 신뢰할만 하다고 느낀 모양이구려. 그
럼 모몬을 대신해서 언데드 군대를 보내드리리까? 내가 지
배하는 언데드를 보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모두 강력한 것
들이지. 아인들 정도는 쉽사리 없애버릴 수 있을 거요]
레메디오스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언데드의 군대를 지휘해서, 성왕국에 귀환하는 상
상을 떠올린 것일까. 아니, 그런 상상이 떠오를 리가 없었
다.언데드를 지휘하다니 성기사로서 가장 있을 수 없는 행
동이었다.
확실히 언데드는 군대로서는 아주 커다란 메리트가 있었
다. 식량이 필요없고, 원시림 한가운데에 대기시키는 것도
가능한, 그야말로 이상적인 군대였다.
하지만, 생명을 증오하는, 생명을 가진 모든 산 자의 적인
언데드 군대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역시 공포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타국의 군대를 자국 내에 끌어들이는 짓 자체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일련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
그대로 점령공작에 들어갈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 그것은..."
레메디오스의 동요에 마도왕은 웃었다.
"바로 그거요, 카스트디오 공. 귀공들과 마찬가지로 생각
하는 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이오. 언데드를 사용한
작물의 생산, 개간, 경비 등에 관여하는 이들은 조금씩 받
아들이고 있지만, 그리 밀접하게 관여하지 않는 도시 주민
들은 유감이지만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소. 물론, 내
지배하에 들어온 당시보다는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지만,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오. 모몬은 그런 자들의 불안을 들
어주고, 온갖 케어를 해주고 있소. 지금, 그를 보내버렸을
경우, 백성의 불만이 어떤 형태로 폭발할지 알 수 없소."
"그럼 저희 성기사단이 남아서, 모몬 공을 대신해서 언데
드를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성기사가
언데드의 적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저희들이 마도왕 폐하의 언데드는 신용할 수 있다고 선전하
면 상당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음... 생각할 가치는 있는 제안이구려."
잠시 숙고한 다음, 마도왕의 얼굴이 아주 약간, 지팡이를
들지 않은 쪽의 손으로 움직였다.
"...흐음. 타국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거요. 고락을
함께한 인물이라면 신뢰감도 있겠지만, 갑자기 나타난 자가
언데드는 아군이라고 말해도 신뢰하긴 어렵겠지. 역시 이
도시에서 명성을 떨치는 아다만타이트급 모험자를 대신하
기에는 어려울 거요."
그야말로 정론이었다.
그 때문에 논리로 그것을 논파할 수는 없었다. 특히 레메
디오스 같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타입에게 있어서는 불가능
한 일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레메디오스에게, 마도왕이 물
었다.
"-좋소. 그런데 좀 다른 이야기를 하겠는데, 카스트디오
공의 이야기에 나오지 않은 자들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
소. 과거 모몬에게 들었소만, 얄다바오트에게는 상당한 힘
을 가진 메이드들이 있었다는 모양이오. 그 자들의 모습을
성왕국에서 보지 못했소?"
"성왕국에서는 그런 자들의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왕
국에서 청장미 분들에게 듣고서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았지
요."
"과연... 그렇다면, 메이드들은 얄다바오트의 비장의 패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 준동하고
있는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남쪽은 아직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소만, 남쪽과는
연락을 긴밀하게 취하고 있소?"
"어느 정도는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아직 수하를 보내지 않은 것인가? 내 걱정이
지나친 것인가. 흐음..."
마도왕의 얼굴이 천장을 향해 움직였다.
"마도왕 폐하께서는 남쪽에도 이미 얄다바오트의 수하가
잠복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았소만, 그 정도로 강력한 수하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사용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
소. ...처음에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던 것을 기
억하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묻겠소.
성왕국은 우리나라의 지원에 대해, 어느 정도의 보답을 할
수 있소?"
당연한 질문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하지만, 대답하는 것
은 아주 어려웠다.
"저희나라의 우정과, 신뢰, 그리고 경의를."
레메디오스의 대답에 마도왕이 신음했다.
다만, 레메디오스가 나쁜 것이냐고 하면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때로 성기사는 그것만으로도 목숨이 걸린 전
투에 나설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보수를 지불할 수 없는 한
촌의 요청을 받아, 아인들의 무리를 향해 싸움을 거는 자는
성기사의 거울로 칭송받았다.
"성기사다운 말이오. 내 과거의 벗이었다면 그 말을 듣고
움직였을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말은
아니구려. 꾸미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소. 실리를 제시
해줄 수는 없겠소?"
(모몬 공을 마도왕은 친구라고 말하는 거야? 모몬이라고
불렀던 건 부하이기 때문이 아니었던 거야?)
네이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레메디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가 약속
같은 것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만약 가령 얄다바오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 다음 대 성왕이 자리에 오르게 되겠지만, 그 인물
이 성기사들을 좋게 대할 가능성은 낮았다. 사이가 좋지 않
은 남쪽의 귀족들이 나서면, 성왕녀를 지키지 못한 자들로
서 레메티오스 일행은 칩거를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마도왕에게 약속했다고 해도 그것이 지
켜질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근본적으
로 이 집단에게 나라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조차 의문이었
다. 결국, 위치를 분명하게 정하지 못한 일반시민들이 온정
에 매달리기 위해 온 것이, 이 사절단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확약을 할 수 없었다. 국가를 한 사람이 짊
어지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왕뿐이었다.
"실례합니다, 마도왕 폐하. 저는 카스트디오 단장의 밑에
서 부관을 맡고 있는 구스타보 몬타녜스라고 합니다. 단장
을 대신해서 발언할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마도왕은 턱짓을 해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했다.
"감사합니다. 마도왕 폐하께서 바라실 만한 것을 확약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성왕국의 영토를 탈환했다고 해도, 얄
다바오트의 손에 황폐해진 국토의 회복에는 아주 오랜 시간
이 걸리고, 여기서 제시한 것을 즉시 넘겨드릴 수 있을 거
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도왕 폐하께 드리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얄다바오트의 위험성입니
다."
"흠... 계속해보게."
"예. 놈은 과거 왕국에 피해를 입혔을 때에는 데리고 있지
않았던 아인의 군대를 수중에 넣고 나타났습니다. 만약 지
금,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모습을 감춘 다음, 이
번에는 어떤 준비를 갖추고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즉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이야말로 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 찬스이니, 소동의 싹을 빨
리 뽑아내야한다, 는 말인가?"
"그러합니다, 과연 폐하십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부디, 모
몬 공의 파견을 허락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과연. 납득이 가는 이야기로다. 확실히 얄다바오트는 쳐
야하겠지."
"그렇다면-"
희색을 띄우려던 구스타보에게 마도왕이 쥔 손을 내밀다
말고, 그것을 멈추더니 지팡이로 탁 하는 소릴 냈다.
"하지만 역시 모몬의 파견은 어렵겠군. 얄다바오트를 퇴
치할 수 있다고 해도, 모몬의 부재로 우리 나라의 정세가
안정되지 않는 것은 곤란하네. 그럼 이건 어떤가? 좀 더 시
간을 벌어주면 우리나라의 정세도 안정되겠지. 그 때에 모
몬을- 물론 그가 동의해줄 경우의 이야기지만, 파견하겠네.
아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싸울 수 있다고 했지 않은
가?"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느 정도 나중이 되겠습니
까?"
"흠... 알베도, 어떠냐?"
지금까지 옆에 서있을 뿐이었던 재상이 처음으로 주인을
돌아보고, 말했다.
"앞으로, 저희 국내의 아인들이 더 늘어나는 것을 계산해
보면, 상정했던 것보다 늦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허락해주
신다면 앞으로 몇 년. 그렇군요... 5년 정도 시간을 주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라는군, 문제는 없겠는가?"
5년, 이라고 입 속에서 곱씹은 구스타보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건 조금 시간이..."
"과연... 확실히 귀국의 사정도 생각해야되겠군. 우호국의
부탁이니."
마도왕이 우호국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발음했다.
"우리나라도 전력을 다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해보
겠네. 그럼 알베도. 시간을 최소한까지 줄인다면 어느 정도
가 되겠느냐?"
"그렇다면 3년 정도면 어떻게 되지 않을지. 단, 우리나라
에 조금 혼란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우호국의 지원을 위해서니 말이야.
우리나라도 조금은 피를 흘려야되지 않겠나. ...피를 흘린다
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지만 말일세."
농담처럼 마도왕이 말했지만, 웃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흠. 그럼, 그걸로 어떻겠나? 2년이나 단축했다네."
상대는 2년이나 양보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3년도 너무
길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나올지, 그리고 성
왕국이 나라로서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면전에서
말했다간, 어쩌면 그 3년 후의 모몬의 파견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왕국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눈 앞까지 다가와있
었다.
자신이 온 것은 이럴 때를 위해서일 것이다. 목숨을 걸어
야만 한다.
죽음마저 각오한 네이아는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만, 마도왕 폐하."
"...누구냐?"
"저는 성왕국의 성기사단 종자를 맡고 있는, 네이아 바라
하라고 합니다. 무례함인줄을 알고 있사오나 말씀 올리건데,
좀 더 빨리, 모몬 공을 파견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마도왕이 생각에 빠지는 태도를 취했다.
"네이아! 종자 따위가 마도왕 폐하께 탄원이라니!"
레메디오스의 질책에 네이아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뿐이
었다.
(무례한 짓을 저지른 종자를 검으로 베어버리는 짓은 좀
더 기다렸다가 해주세요)
"아아, 상관없소. 네이아라고 했더냐. 그럼 언제쯤 모몬을
파견해줬으면 좋겠느냐?"
"하루라도 빨리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몬을 파견하는 일이 마도국의 손해로 이어진다고 알면
서 파견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렷다."
"옛!"
네이아는 고개를 숙였다.
이제 각오는 정해졌다. 만약 이러다 마도왕이 불쾌함을
드러낸다면 단장에게 처형당하고, 목숨으로 속죄할 뿐이다.
언제, 그 몸이 검으로 찢겨나가도 상관없도록, 눈을 감았
다.
"마도왕 폐하! 종자가 무례한 말씀을 드린 것을 용서해주
십시오! 마도국에 손해를 입히겠다는 생각을 저희는 조금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아, 신경쓸 필요는 없소. 그 나라에 태어난 자라면, 타
국에 손해를 입혀서라도 자국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은 당연한 일이오. ...흠. 알베도. 2년 안에 어떻게든 할 수
있겠느냐?"
"아주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가. 하지만- 해라."
네이아는 무심코 감고 있던 눈만을 움직여, 마도왕을 보
았다.
"예! 알겠습니다, 폐하!"
강한, 절대자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내린 명령을 듣고, 알
베도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린 것은 무모한 도전에 대한 불
안 때문일 것이다.
"네이아... 바라하. 그래서 2년이면 어떠냐? 아직 너에게
있어서는 너무 길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만, 남쪽의 군대
가 존재하고 있다면 버틸 수 있지 않겠느냐?"
2년도 너무 길다. 하지만, 이 이상, 마도왕의 후의에 매달
릴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마도왕 폐하!"
아까에 비하면 그나마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마
음에서 나온 목소리는 정말로 진솔한 것이었다.
이어서 레메디오스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마도왕 폐하! 저희 종자의 부탁을 들어주신
것, 깊이 감사드립니다!"
"신경쓸 것 없다. -카스트디오 단장. 좋은 부하를 뒀구려.
타국의 왕에게 종자가 탄원하는 일은 어지간히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 ...비아냥대는 것은 아
니오."
"아닙니다, 폐하의 말씀, 저 자도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
다."
"그렇소? 그럼 이제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지. 의미있
는 회담이었소."
"-마도왕 폐하, 퇴실하십니다."
알베도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네이아는 고개를 숙였다.
들어왔을 때와 같은 발소리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것이 멀어져갔다. 이윽고 문이 닫히는 소
리가 났다. 마도왕이 방을 나간 듯했다.
[퇴실하셨습니다] 네이아가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볼이
상기된 알베도가 미소짓고 있었다. [그럼 여러분을 바깥으
로 배웅해드리겠습니다]

방에 돌아온 네이아에게, 각오하고 있었지만 레메디오스


의 질책이 시작되었다.
"너, 멋대로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시뻘건 얼굴로 화를 내는 레메디오스와 네이아의 사이에,
손을 펼치면서 구스타보가 끼어들었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기다려주십시오! 종자 바라하가 단
독으로 나선 일은 사실입니다만, 결과적으로 1년이나 시간
이 짧아졌습니다. 이것은 칭찬해야될 일 아닙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쩌면 모든게 무너졌을지도 모르
는 일이라고! 애초에, 단독행동을 칭찬하라니, 그런게 말이
나 되는 소리야!"
"죄송합니다."
네이아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넌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이번에는
좋은 방향으로 굴러갔을지도 모르지만, 나쁜 방향으로 굴러
갔을 경우, 네가 책임을 질 수 있어!?"
"-죄송합니다."
"내가 묻고 있잖아! 대답해! 성왕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 때문에 원군이 안 온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말이냐!"
"아뇨, 책임은 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너는 왜 제멋대로 그런 짓을 했나! 무슨 생각
을 하고 있는 거야!"
네이아는 고개를 들고, 단장을 똑바로 보았다.
"만약의 경우에는 제 목숨을 거두시고, 그걸로 마도왕에
게 용서를 구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레메디오스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곧 그 눈은 불쾌한
듯이 가늘어졌다. 옆에 선 구스타보는 감탄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걸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냐! 너 정도의
목숨 하나로 사죄가 될 거라고!"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장님께서 어떻게든 해주실 거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지 못했다면 어쩔 생각이었나!"
그 말은 옳았다. 네이아를 죽여도 마도왕이 용서하지 않
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
서도 말한 것은, 3년은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이다.
(단장은 3년이면 된다고 생각한 거야? 어째서, 나는 아무
런 행동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비난받고 있는 거지? 도박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건 알아. 천칭 한 쪽에는 성왕국의 많은
백성들의 목숨이 걸려있었으니까. 그래도 그 때는 행동해야
할 때였을 터...)
결과가 좋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과정이 중요한 것인
가. 아마도 대답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어느 쪽이 되었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비
난받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에 올렸다간 어떻게 될까, 네이아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단장님, 그 정도로 해주십시오. 그녀 덕분에 1년이 짧아
진 겁니다. 상과 벌이 상쇄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같은 정도로 칭찬해주시던가요."
"......칫."
아직 할 말이 남은 것 같은 단장이 몸을 돌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후우 하고 구스타보가 숨을 토해냈다. 그 다음 네이아를
돌아보았다.
"네 각오는 훌륭했다. 단장도 저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네
활약을 인정하고 있어."
반드시 거짓말이었다. 어떤 인간도 속여넘길 수 없는 완
전한 거짓말이었다.
그런 마음이 표정에 드러난 것인지, 구스타보가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내 쪽에서 단장님께 말씀은 드려두겠다. 이번에는
얼굴을 마주치면 귀찮아질테니, 잠깐 바깥에 나가있어주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관을 나가서, 겨울의 추위 속에서, 훌쩍 걷기 시작했다.
"뭘까..."
바깥이라고 해도 이 나라의 어디에 가란 말인가.
네이아는 품 속을 뒤져서 작은 가죽주머니를 만졌다. 안
에는 얼마 되지 않는 소지금. 대단한 금액은 없었지만, 성
왕국 동화나 은화도 있었다. 그것을 만약 쓸 수 없더라도
교역공통금화를 한 닢은 가지고 있었다. 식사하는데는 충분
했다.
다만, 부모로부터 마지막 용돈으로 받은 소중한 금화를
지금 써도 되는 것일까.
이국의 땅을 네이아는 바라보았다.
"귀찮다라. 하아..."
"꽤나 무거운 한숨이로구나."
갑자기, 바로 등 뒤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서, 네이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바로 이 앞의 길로 들어가거라. 여기는 눈에 띄는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아무래도 벌써 잊지는 않았다. 무심
코 부를 뻔했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지시하는 대로
걸어가자, 뭔가가 뒤를 걷는 소리가 났다. 멀리서 목소리만
을 보낸 것이 아니라, 본인이 거기에 있는 것이었는데, 네
이아에게는 보이지 않게 되어있는 듯했다.
길로 들어가자 곧 [왼쪽에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거
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이아는 그 말에 잠자코 따랐다.
골목은 의외로 깔끔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몇 걸음 걸어간 네이아는 돌아보았고, 목소리의 주인의
이름을 불렀다.
"마도왕 폐하. 어째서 여기에? 게다가 모습이 보이지 않
는 건 마법입니까?"
"과연. 이상하게 순순히 내 말에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내
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느냐."
그렇게 말하고 마도왕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복장은 눈에 띄지 않는 지은 검은색 로브로 바뀌
어 있었다. 다만, 이 로브도 비로드처럼 윤기가 났고, 상당
한 고급품인 것으로 보였다.
네이아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예, 말씀하신대롭니다. 그래서... 수행원은... 어디에 있
는 겁니까?"
"아니, 없다. 수행원이 있으면 귀찮아지니까 말이다."
"그, 그건 대체?"
"흠. 나는 몰래 네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불러내
줬으면 좋겠구나... 아니, 방까지... 방의 창문을 열어주겠
느냐? 거기에서 들어가도록 하마."
기괴한 의뢰였다. 보통은 창문을 열거나 하지 않지만, 이
나라의 왕의- 그것도 성왕국에 지원을 약속해준 왕의 의뢰
였다.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할 수 없었다.
암살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럴 생각이라면
알현실에서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마도왕의 모습을 흉내낸 누군가가, 라는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지배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
때의 마도왕이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왕으로서
태어난 자밖에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
네이아는 생각하고, 전자를 택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음. ...그런데 어디 심부름이라도 가고 있었느냐? 그렇다
면 내가 네 단장에게 사과해두마."
"예?"
"-에?"
무심코 네이아는 마도왕과 얼굴을 마주보고 말았다.
"...일이 아니라, 자유시간, 같은 것이냐? 그렇다면, 소중
한- 그래, 정말로 소중한 휴식시간에 부탁을 한 것을 사과
할까?"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우, 우선 바로 단장
의 방의 창문을 열고 오겠습니다."
네이아는 즉시 마도왕의 옆을 지나 달렸다.
네이아가 놀란 것은, 갈라지고, 엉망이 된 손에, 기름 성
분이 포함된 부드러운 약을 살살 발라주는 것처럼, 제삼자
의 다정한 말이 마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력으로 달려서, 즉시 여관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이런 고급 여관의 안에서 우당탕 달릴 수는 없
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걸을 수도 없어서, 간신히 예의를
지키는 정도의 속도- 약간 여관 사람의 눈이 차가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로 나아갔다. 그리고 단장의 방에
도착.
곧 노크를 하고, 문을 열려고 하자 잠겨있었다. 자신만이
바깥에 나가있었다는 상황에 한순간 마음이 얼어붙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종자, 네이아 바라하입니다. 열어주십시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성기사 가운데 한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실례합니다] 예의를 지킬 시간조차 아까웠다. 방 안에
있는 레메디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마도왕 폐하십니다. 내
밀하게 이야기가 하고 싶다, 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네이아의 등 뒤로 움
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 쪽이 아닙니다."
네이아는 그 말만 하고 빠른 걸음으로 창가로 다가가서,
열었다.
역시 고급 여관이었다. 삐걱이는 소리도 없이, 창이 열렸
다.
"무슨 짓을!"
제삼자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난동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성기사 가운데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인 것도 당연할 것이
다. 성왕녀의 경호를 하고 있던 자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
랬다.
하지만, 네이아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어딘가에 있을터인 마도왕에게 손을 흔들었다.
뒤에서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손이 있었다.
"무슨 짓이냐, 종자 바라하. 창문을 조심성 없게 열다니.
게다가, 어디에 마도왕이 있다는 말이냐."
돌아보니, 얼굴이 시뻘개진 성기사가 있었다.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그 정도로 해두게. 자네들의 룰을 어긴 것은,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함이었지. 비난할 거라면 나를 비난해주게."
조용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졌다.
창틀에 발을 걸치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도왕
이었다.
무심코 검에 손을 가져가는 성기사를 네이아가 황급히 막
았다.
"흠... 놀라게 만들어버려서 미안하군. 내밀하게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왔다네. 창문에서 들어온 것은 예의없는 행동
이지만,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이해해주면 좋겠군. ...
그녀에게는 미안한 일을 했어."
바닥에 발을 가져간 마도왕이 실내를 제왕의 움직임으로
둘러보았다.
"...아인즈 울 고운 마도왕일세."
이름을 밝힌 순간, 누구보다도 빠르게 네이아는 한쪽 무
릎을 꿇었다. 뒤늦게 등 뒤에서- 다른 성기사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는 소리가 난 것을 들었다.
"되었네. ...일어서게나. 그리 시간이 없으니. 카스트디오
단장. 얘길 해도 되겠소?"
"저희에게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럼 여기로 오시죠."
일어선 네이아는 후 하고 한숨을 쉬고- 빙글 몸을 돌린
마도왕과 시선이 마주쳤다. 물론, 마도왕의 눈에는 안구라
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눈이 마주쳤다고 네이아가 마음대
로 생각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 쪽 종자는 참가하지 않는거요?"
"그녀는 어디까지나 종자니까요."
"아까 알현실에는 있었을텐데?"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말투로 내뱉
은 의문이었지만, 거기에 담긴 비아냥은 통렬한 것이었다.
"종자 바라하. 당신도 참가하도록."
"옛!"
그리 참가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체 어떤 목적으로 마
도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를 네이아는 어째서인지 알고
싶어졌다.
레메디오스와 구스타보, 그리고 마도왕이 테이블에 앉았
고, 네이아를 비롯한 이들이 벽 주변에 섰다. 그 청장미의
멤버들을 맞이했을 때와 같은 위치였다.
"그럼 마도왕 폐하. 굳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갑자기, 저희들의 숙소에 찾아오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구스타보가 이야기를 시작했고, 레메디오스가 한 번 고개
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그 때도 말했지만, 나는 에둘러 말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곡해하거나, 잘못된 이해를 할 수 있
으니까 말일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절실한, 실감이 담긴 말이었다.
"모몬을 파견하는 것은 2년 후로 결정되었지만, 그 전에
자네들이 하나, 요구를 받아들여준다면, 모몬에 필적하는
인물을 즉시 성왕국으로 보내는 것도 어렵지 않네."
"필적?"
레메디오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요구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겁니까? 내용에 따라서
는 즉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이어서 말한 구스타보에게, 마도왕이 웃었다.
"물론, 그럴 것이네. 자네들의 현 상황은 대부분 상상이
가. ...저항세력이라고 하면 듣기에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동굴에 숨어사는 지극히 소수의 무장집단이겠지?"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의 숨소리가 한순간 날아간 것 같았
다.
네이아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어째서, 마도왕이 사실을 말했단 말인가. 어째서 그것을
간파할 수 있었단 말인가. 특히 핀포인트로 동굴이라고 간
파한 것이 굉장했다.
단장과 구스타보의 시선만이 네이아를 향해 움직였다. 그
것은 우리들의 현 상황을 말했느냐는 의심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네이아는 [아니다]라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마도왕은 네이아 일행의 경악을 무시하고, 그대로 이어서
말했다.
"남부세력이 무사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협력해
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그 쪽의 귀족들과의 알력 때문. 그
렇다면 성왕녀를 지키지 못한 자네들이 새로운 성왕 밑에서
과거와 같은 지위에 앉는 것은 어렵겠지. 그렇다면 영토나
작위, 교역에 관한 특권 같은 것을 내게 제공할 수 있을 리
가 없네.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간 차기 성왕의 판단에 따라
서는 마도국과의 전쟁이 발발하겠지."
마치 암송하듯이, 정확하게 네이아 일행의 현 상황을, 그
리고 미래를 지적해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국보도 무리다. 카스트디오 단장이
가진 성검 같은 것은, 말이야. 가능성이 있다면 얄다바오트
가 빼앗아간 것으로 속이고 나라의 보물을 내게 넘기는 것
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역시 위험하지. 내가 자네들에게
서 보물을 받은 것을 차기 성왕에게 말하면, 자네들 성기사
들의 신용은 땅에 떨어져. 따라서 자네들은 그 자리에서 그
랬던 것처럼 내 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 -흠, 내 상상은
맞았던 모양이군. 정곡을 찔렸다고 얼굴에 적혀있지 않은
가?"
거기까지 말한 마도왕이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정적이 실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완벽하다. 너무나도 완벽하다.
네이아는 마도왕의 정확한 추측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것이 마도왕인가, 하고 네이아는 생각했다.
과거에 성왕녀를 가까이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간단한
인사 한 번 밖에 받지 못하고, [왕]이라는 존재에 접촉할 기
회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이
절대적인 지배자- 인간의 위에 설만한 안목을 가지고, 위엄
을 가지며, 그리고 그것들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완벽한 존
재와 만나는, 첫번째 경험이었다. 너무나 커다란 충격에 마
음에 강하게 새겨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
자랑하듯이 말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군... 딱히 자네
들도 내가 그 정도도 추측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
을게 아닌가?"
"무, 물론입니다, 폐하."
구스타보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거 다행이군. 내가 그 정도도 간파하지 못하는 바보라
고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나를 위해서 노력해주는 부하들에
게 면목이 서지 않을 참이었네. ...그럼 그것을 감안해서 내
가 원하는 것을 설명하겠네. -메이드일세. 메이드를 갖고
싶어."
마도왕으로부터 날아온 너무나도 괴상한 말에 모두가- 네
이아까지 포함해서- 어처구니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아아, 미안하군. 설명이 부족했어. 음, 그렇군. 얄다바
오트에게는 강한 메이드가 있다는 이야기는 알현실에서 했
었지? 그걸 갖고 싶네. 자네들은 마법의 지식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가?"
"전혀 없습니다."
레메디오스가 당당하게 말하자, 마도왕의 시선이 도움을
청하듯이 움직였다.
"그, 그런가... 그렇게 되면 어디부터 설명해야할지 모르
겠지만... 음, 그렇군... 아, 얄다바오트는 메이드들을 계약
이나 유사한 다른 무언가로 묶어두고 있다고 추측되네. 그
렇기 때문에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고, 그 술식을 차지해서,
메이드들을 지배하에 둔다. 그렇게 되면 내 나라는 강력한
부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일세."
"하, 하지만, 얄다바오트의 메이드라는 것을 저희 나라에
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만..."
구스타보의 대답에 마도왕은 큭큭 웃었다.
"왕국에서 모습을 보였네. 없을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렵
지. 얄다바오트를 궁지에 몰아넣으면 나올지도 모르지 않은
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아직 정말로 메이드가 있
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메이드가 없었을 경우에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 때는 그 때이네만, 딱히 그것을 대신하는 다른 요구를
할 생각은 없네. 공짜로 일하게 되겠군. 단, 메이드 복장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으니, 얄다바오트의 부하, 라는 범
주로 잡아두지. 아아, 그래. 뭔가 특정한 아이템으로 지배하
고 있을지도 모르니, 얄다바오트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가
운데, 성왕국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소유한
다는 조건도, 추가하겠네. 자칫 잘못하면 성왕국 내에서 날
뛰었던 메이드를 마도국에서 받아가는 셈이 되겠지만, 그
부분은 내 지배하에 들어왔다는 점을 들어 메이드들에 대한
원한을 잊어주게나."
"저희 나라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들을
용서하란 말씀입니까?"
레메디오스가 약간 불쾌한 듯이 말하자, 마도왕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이외에 성왕국에서 받을 수 있을만한 것이 없어보여
서 말이오. 아니면 뭔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있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레메디오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폐하, 당사자가 아닌 저희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자들에
게 원한을 잊어주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단장은 그렇
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는 노력해서, 설득하게나] 냉철한 목소리로 마도
왕이 말했다. [...아니, 그럼, 메이드들은 마도왕에게 마법
적으로 지배되어, 연행당했다고 성명을 발표하면 되겠군.
조금은 불만도 가시지 않겠나?]
어떨까, 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네이아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양보해주고 있는 마도왕에게 [아뇨]라고 버텼다
간 모든 것이 날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성왕국에게 있어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 찬스를 헛되
이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곤란합니다. 성왕국에서 소란을 일으킨-"
[-마도왕 폐하!] 구스타보가 레메디오스의 말을 잘랐다.
[저희끼리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조금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까지 양보해주었는데 아직도 논의가 필요하단 말인
가, 하고 마도왕이 책망해도 할 말이 없다고 네이아마저도
생각했다. 하지만-
"상관없네. 너무 시간을 낭비해도 곤란하고, 이동하는 것
도 성가시군.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네만, 상관없겠지?"
네이아는 마도왕의 관대함에 놀랐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둘이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오겠
습니다. 실례합니다만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상관없네. 천천히 이야길 나누고 오게나."
두 사람이 나란히 방을 나가고, 돌아온 것은 의외로 빨랐
다. 아니, 결론은 처음부터 나와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기다리셨습니다, 마도왕 폐하."
"아니, 좀 더 얘길 나눴어도 괜찮았는데 말일세. 그래서
어떤가?"
"예. 저희들이 내린 결론은, 마도왕 폐하의 말씀에 전면적
으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딱히 따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할 셈이었네만,
뭐, 상관없지. 그럼, 서면으로 남겨야겠는데, 지금은 그걸
위한 도구나 옥새가 없네. 이후, 작성하도록 하지. ...왕국
의 언어로 적어도 상관없겠나?"
"읽을 수 있는 자가 있으니,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폐하.
모몬 공에게 필적하는 인물이라는 분을 소개해주실 수 있겠
습니까?"
"아아, 자네들 눈 앞에 있네. -날세."
정적이 그 자리를 지배하고, 네이아 일행은 놀랐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고, 간신히 뇌가 활동을 시작했다.
"마도왕 폐하께서는 모몬과 같을 정도로 강하단 말입니
까?"
레메디오스의 발언에 네이아는 얼어붙었지만, 반대로 튕
기듯이 움직인 남자도 있었다.
[자,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단장님. 그보다 마도왕 폐하께
여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구스타보가 마도왕
을 돌아보았다. [저, 저 폐하께서 이 나라를 떠나, 성왕국으
로 오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건 문제없네. 모몬과는 달리 나는 전이마법을 쓸 수 있
지. 자네들의 거점에 도착만 하면, 마도국과의 왕복도 가능
해질 걸세."
"아, 아니, 하지만 일국의 왕이신 폐하가 오신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들었으면서, 내가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
던 것인가?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고, 메이드를 지배하에
두겠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마도국에서 처리하기에는
조금 멀지. 그리고 카스트디오 단장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나는 모몬보다도 강하오."
"그렇다면, 문제는 없군, 구스타보."
"그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마도왕 폐하! 농담을 하시는
것은 곤란합니다!"
위 부근을 누르고 있는 부단장이 포효했다.
"농담이 아닐세. 나 이외에 얄다바오트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난 혼자 갈걸세. 군대를 이끌고
갈 생각은 없지. 그렇기 때문에 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내가 혼자서 왔단 말일세."
"만약 폐하께서 얄다바오트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으시기
라도 하면, 저희나라와 마도국에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라고, 저희 구스타보가 말하고 있습니다만, 마도왕 폐하,
그 부분은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제없소."
"있-"
[-구스타보! 내가 얘기하고 있다. 방해하지 마라!] 구스
타보에게 뻗은 손을 다시 내리면서, 레메디오스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폐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실제로 태풍 같았지만- 이완된


분위기가 감도는 방에 구스타보의 목소리가 작렬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일국의 왕을! 데리고 가
서! 얄다바오트랑 싸우게 한다니!"
네이아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비상식적인 것도 정도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레메디오스가 조용히 말했다.
"이봐, 언데드가 어떻게 되건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주변이 고요해졌다.
"...악마와 언데드. 어느 쪽이 죽어가건 우리들에게는 손
해가 없어. 아닌가?"
구스타보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납득했기 때문이 아
니라,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경악 때문이었다.
"둘 다, 인간의 적. 그렇다면 둘 다 사라지는 것이 최선이
겠지... 그래도 어부지리는 노리지 않겠다. 마도왕이 얄다바
오트에게 빈사의 중상을 입는다고 해도, 우리는 손을 대지
않겠어. 그저, 그뿐이다."
레메디오스의 말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단장님. 그 정도의 숫자의 언데드를 지배하고 있는 마
도왕이 죽었을 경우, 그 언데드들이 자유를 얻어, 엄청난
소동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그 때는 왕국, 제국, 법국이 가장 먼저 방패가 되어주겠
지. 물론, 우리나라도 지원은 하겠지만, 성왕국의 얄다바오
트에 의해 받은 피해는 너무 커. 우리나라의 국력이 회복될
때까지, 그들이 애써주면 좋겠군. ...그렇게 생각하면, 마도
왕이 얄다바오트와 공멸해주면 우리나라의 이익은 크-"
[-단장님!] 구스타보가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의
어디에 정의가 있단 말입니까!]
"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딱히 타국에 불행을 퍼뜨리자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나도 성왕국을 지원한다는 마도왕이 이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조용히 말하는 레메디오스를 보고, 누구냐, 하고 네이아
는 생각했다.
이것이 성왕국 성기사단 단장, 레메디오스 카스트디오인
것일까.
네이아는 그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멀리서
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로 들었던 단장과
는 뭔가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구스타보. 이의는 이제 없겠지? 납득했으면 다음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다음, 말입니까?"
"...마도왕을 혹사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어째서, 자신은 이런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인가 하고, 네이
아는 생각했다. 아니, 그녀만이 아닐 것이다.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니, 서있는 성기사들이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
었다. 네이아도 분명히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구스타보, 좋은 아이디어 있나?"
"아, 아뇨, 없습니다. 그 이전에 마도왕 폐하를 데려간 저
희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요?"
"마도왕이 입만이 아니라, 정말로 얄다바오트에 필적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수도의 탈환 어때? 그렇게 단숨에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려달라고 하는 거지."
"...그건 최악입니다. 마도왕 폐하는 얄다바오트를 쓰러뜨
리고, 메이드들을 손에 넣으면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고 말
했습니다. 그러니까, 얄다바오트 토벌은 마지막의 마지막으
로 미루는 편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장님
의 제안대로라면, 남은 아인의 군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해
결책이 없습니다."
"그럼 어떤 전략이 좋을까?"
구스타보가 조금 생각하고, 그 다음 아이디어를 꺼냈다.
"먼저 저희의 아군을 늘리도록 하죠. 포로 수용소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는 겁니다."
"과연! 좋은 생각이야. 무엇보다, 구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왕족 분들 말이군요."
레메디오스가 [그래]라고 동의했다.
성왕녀는 죽었지만, 왕족 전원이 죽었다는 정보는 없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다면 그를 깃발로 삼아, 남부의
귀족들로부터 전면적인 협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귀족들도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어."
성왕녀에게 많은 귀족들이 그리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장으로서는 좋아하지 않는 강대였다. 하
지만 북부 귀족 중에서도 남부 귀족과 혈연이 있는 자가 있
을 것이다. 은혜를 베풀어둘 수 있다면, 남부 귀족에게 당
당하게 적극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레메디오스가 네이아를 째릿 보았다.
"종자 네이아 바라하. 너를 마도왕 담당으로 삼는다. 우리
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유도해라."
"예? 예!??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종자인 제가 왕을 모신
다니 무리입니다!"
"그 정도는 노력해라."
"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평소라면 알았다고 대답할 참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저항
했다. 이것은 간단히 받아들여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레메디오스는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아닐까.
[마, 맞습니다! 단장님] 구스타보가 가세해주었다. [나름
대로 신분이 있는 자가 시녀로서 모시지 않으면, 폐하를 우
습게 본다고 생각할 겁니다]
"...현재 해방군에, 여자는 그 외에 누가 있지?"
전투능력이 없는 여자 대부분은 남쪽으로 달아나버렸다.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방군에도 소수이긴 하지만
있었다. 그들 중에 누군가의 이름을 꼽으려고 했는지, 구스
타보는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보다 빨리 단장이 말했다.
"성기사단에 소속된 여자다. 신전세력에 소속된 여자에게
내가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기라도 했다간, 신전세력은 어떻
게 생각할까? 내 동생은 이제 없다고? 게다가 이런 역할은
이 자리에 있는, 내 생각을 들은 멤버 가운데 선택해야겠지.
제삼자에게 일만 떠넘길 수 있겠어?"
나한테 떠넘기려고 하고 있잖아, 라고 네이아는 생각했지
만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구스타보가 단장을 보았다.
"난 최전선에서 싸우게 된다고? 게다가, 나에게 마도왕의
상대를 시킬 셈이냐? 아니면 전부 마도왕에게 맡길 거냐?"
"설령 이용한다고 해도, 그렇게 노골적인 방법을 취할 수
는 없겠죠. 신용이라는 문제도 있고, 저희에게 싸울 힘이
없다고 판단하면 마도왕이 성왕국의 정복에 나서는 경우
도..."
우물거리는 구스타보를 보고, 원군이 괴멸되었다고 네이
아는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래. 분명히 말해두마. 네 일은 마도왕을 이용하기 쉽게
만드는 일이다. 띄우는 얘길 해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놔."
불가능한 과제 정도가 아니라,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일
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이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을 바꾸지는 않겠지, 하고 포기한 네
이아는 고개를 숙였다.
"옛! 노력하겠습니다만, 여러분도 협력해주시기를 바라겠
습니다!"
"그래. 뭔가 필요할 때는 이 녀석(구스타보)에게 말해라."
네이아는 상당한 절망감을 품으면서, 희미한 고양감을 느
끼는 자신에게 조금 놀라고 있었다.
(마도왕 폐하, 라...)
3장 [반격작전 개시]

1.

마차가 흔들렸다.
이 마차는 마도왕이 소유한 것으로, 평범한 외견과는 달
리, 내부는 고급스럽고 세련되었으며, 기능면에서도 뛰어났
다. 특히 장시간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아파지지 않는 쿠션
이 네이아를 감동시켰다.
네이아는 맞은편 자리에서, 바깥에 시선을 주고 있는 마
도왕을 훔쳐보았다.
무시무시한 언데드왕이었지만, 알현실에서 만났을 때 정
도의 위압감은 없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해온 여행 속에서, 마도왕과 대화할 시
간이 늘었다는 점이 이유일 것이다.
그런 네이아가 알게 된 한 가지가, 마도왕은 아주 관대하
다, 는 점이었다.
마도왕의 태도는, 왕에 어울리는 위엄있는 것이었다. 동
작 하나하나에 제왕의 품격이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네이아와 이렇게 마차에 타고 있을 때, 때떄로, 일
반인과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요즘은 특히 그럴 때가 늘어나있었다.
같은 마차에 타게 되어, 긴장한 네이아를 배려해서, 서민
적인 태도를 관대하게 연기하고 있는 듯했다. 요즘 그 빈도
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연기가 능숙해졌기 때문이 틀림없
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성기사가 신분이 높은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타국의 평민 상대로... 어쩜 이렇게 다정한 분일까)
그는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마차와 나란히 달리는 성
기사들을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더 다른- 네이아
와는 다른 무언가를-
"흠? 내 얼굴에, 뭔가 재미있는 거라도 묻었느냐?"
"엑! -아뇨, 실례했습니다, 폐하! 딱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
아무래도 멍하니, 마도왕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
다. 마도왕이 곤혹스러운 듯이 자신의 얼굴을 그 뼈로 된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확실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차에 타고 있는 것도 어색
하겠군. 그래, 얘기라도 할까."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마도왕의 대화 상대라는 것은 조금
위장이 아팠다.
"그렇게 격의없는 사이도 아니니, 프라이버시에 관한 이
야기는 피하고 있었지만, 며칠이고 같이 마차에 타고 있는
사이다. 그렇다면, 슬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지. 네
이아 바라하. 네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느냐?"
"제 이야기 말입니까?"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너무나도 막연했고, 어떤 이야기
가 마도와을 즐겁게 해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 그렇다. 예를 들면 어째서 종자가 되었는지. 그 종
자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
겠느냐?"
"그런 이야기라도 괜찮으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폐
하."
고개를 숙인 네이아는 그가 원하는대로 이야기를 시작했
다. 그렇다고는 해도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이야기는 아니었
다. 자신의 가족관계, 종자의 업무내용 같은 딱히 재미있는
부분이 없는 이야기였다.
(일단, 마도왕 폐하께는 국내의 정보를 주지 않도록, 하
고 지시는 받았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겠지)
그렇다기보다 거기까지 감춰버리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
다.
이윽고 담담한 기승전결이 조금도 갖춰지지 않은 이야기
가 끝나고, 마도왕이 깊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과연, 바라하 양은 종자 가운데에서는 드물게 궁수
란 말인가."
"궁수라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폐
하. 단순히 검보다는 활 쪽이 특기라는 것뿐이고, 검의 단
련에 전념하라고 꾸중을 듣고 있습니다."
네이아에게 있어서 궁수란 위대한 아버지 같은 인물이고,
자신은 평범한 인간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음, 원거리 무기가 특기인 성기사 후보생이라. 아주 레
어하군. 나라면 그대로 활 실력을 키우도록 권할 것이다.
그 외에 검을 잘 쓰는 자가 있다면, 검은 그 자에게 맡기면
그만이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마도왕의 말은 진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고 네이아가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괴상한 조합은, 레어 직업으로 가는 길]이라고 무슨 말
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혼잣말을 한
것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내 시중을 든다는 성가신 일을 떠넘기게 된 것은 안타깝
구나. 너 뿐만이 아니라, 성기사 제군들에게도 말이야. 네
능력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다른 곳에 배치하는 편이 나았
겠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오는 말에 네이아는 눈을 크게 떴
다.
이것이 이 왕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심장이 안 좋아지는
이유였다.
나라의 정점에 위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선의 높이까지 내려와서, 대화를 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안 돼! 폐하의 다정함에 응석을 부리면 안 돼! 한 걸음,
물러나지 않으면)
네이아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제가 폐하를 모시도록 명령받은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일.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엇보다, 폐하를 모시는 것 이
상으로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가... 역시 어떤 형태로든 보수를 주고 싶구나."
전에도 마도왕으로부터 보수를 지불한다는 이야기가 나왔
다. 그 때는 당연히 거절했지만, 또 그 이야기를 꺼내려는
모양이었다. 네이아는 즉시 실례가 되지 않는 형태로 거절
할 수 있도록 어휘를 고르기 시작했지만, 마도왕의 이야기
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타국의 왕에게 뭔가를 받는다는 것은 네 입장
을 난처하게 만들겠지. 그러니까 인사만으로 만족해다오.
여러가지로 신세를 질 거라고 생각한다만, 잘 부탁하마."
그리고 마도왕이 고개를 숙였다.
왕이 자신 같은, 고작 종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다.
왕의 어깨에는 당연히, 자국의 무게가 실려있었다. 왕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그 나라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여겨
지는 것처럼, 왕을 통해 그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
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왕이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나라가 고개를 숙이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지위가 높은 상대에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네이아는 타국의 평민이었다. 애초에 네이아 따
위에게 감사를 표할 필요성 자체가 전무했다.
(믿을 수 없어. 그렇게나 현명한 마도왕 폐하가 고개를
숙인다는 의미를 모를리가 없어. 그런데도, 마치 단순한 일
반인처럼 고개를 숙이는 것은 그렇게나 나를- 아니야. 자만
하면 안 돼. 나에게 그런 가치가 있을리가 없어. 이건 마도
왕 폐하가 얼마나 도량이 넓은지, 평민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하는 분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야. -아! 이런!)
"그만두십시오! 마도왕 폐하!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그렇다. 무엇보다 우선해야하는 것은 그 한 마디였다.
마도왕이 고개를 들어주었고, 네이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
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광경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폐하-"
네이아는 좁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범용한 몸입니다만, 폐하께서 용무를 마치시는 그 날까
지 충실하게 성심성의껏 모실 것을 맹세합니다."
자신에게 경의를 보이는 왕에게, 네이아도 그것에 답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 사람은 성왕국의 왕이 아니라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네이아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 고개를 들거라. ...자, 의자에 앉아 얘기를 계속하
지 않겠느냐? 아직 목적지에는 도착하지 못했잖으냐?"
[아닙니다] 의자에 다시 앉아, 네이아는 바깥을 보았다.
[어제, 폐하의 힘으로 무사히, 성벽이 있던 자리를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눈에 띄기 힘든 장소를 골라 나아가
고 있으니 시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내일,
혹은 이틀 뒤에는 거점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점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단순한 동굴이었지만.
"그런가.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지 않으냐? 아까 네 이야
기를 계속 들려다오. 아직 어째서, 성기사를 목표로 삼았는
가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구나. 활이 특기라면 그 쪽 길
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았느냐? 어째서 성기사를 목표로 삼
았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냐? 아니면 나라의 자랑이기
때문이냐?"
[아뇨-] 눈을 가늘게 뜨면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
절의 기억이었다. [-제 어머니가 성기사였습니다]
그것도 검술 실력이 뛰어난, 네이아와는 전혀 다른 성기
사였다.
"과연. 어머니가 시켜서, 아니면 어머니에게 동경해서, 그
런 것이냐."
"아, 아닙니다. 어머니는 성기사 같은 것은 되지 마라, 라
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모친으로서 해야하
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세탁이나 재봉은 할 줄 알았
지만, 요리 같은 것은 조금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엉성했습니다. 고기가 설익거나 하는 일은, 조금도 드
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요리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다
른 집도 그럴 거라고 어릴 적에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랬느냐. 그런 말을 하면서도 딸이 성기사가 되는 것
을 말리지 않았으니 좋은 어머니였구나."
"아, 아닙니다. 어머니는 종자가 된다고 말했더니 검을 가
져오셔서 [나를 이기면 허락해주마!]라고 하셨습니다. 허락
해주신 것은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방패가 되어주셨기 때문
입니다. 평범하게 싸웠다간 절대로 이길 수 없으니까요."
살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아아, 음, 좋은, 그래, 좋은 가족이었... 구나."
"예. 주변 이웃들은 이상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만, 좋은
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잘 됐구나. ...그, 그런데 어째서, 성기사를
목표로 삼았느냐? 아버지의 직업을 목표로 삼겠다고는- 흠.
아버지는 주부였느냐?"
"아닙니다, 아버지도 나라에 충성하는 군인이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목표로 삼지 않았던 것은... 어
째서일까요. 제 눈매가 안 좋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
았지만, 이것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
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친구에게 [왜 노려보는 거야] [화났어?]라는 얘
길 자주 들었다. 그런 때에 아버지에게 자주 불만을 털어놓
았다. 그 후, 그 말을 들은 어머니에게 맞는 사건까지 따라
왔다.
그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네이아는 말했다.
"다만, 종자가 되어 시야가 넓어진 것인지, 이건 아버지가
준 선물이구나 하고,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뭐, 눈매가
안 좋은 것은 필요없었습니다만."
"그래서 부모님은 현재 뭘 하고 계시느냐?"
"아버지는 성벽에서 얄다바오트의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
셨습니다. 어머니 쪽은 연락이 되지 않고, 어떻게 되었는지
는 불명입니다만,아마도 도시를 지키다 전사했다고 생각합
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셨을테니까요."
"괴로운 것을 묻고 말았구나."
살짝 마도왕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네이아를 초조하게 만드
는데는 충분한 행동이었다.
"고,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저 같은 것에게 고개를 숙이
시다니요!"
"세상을 떠난 가족에 대한 화제를 생각없이 건드렸지 않
으냐. 몰랐던 일이라고는 하나, 사과하는 것이 도의겠지."
고개를 든 마도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니, 그건 대등한 입장의 상대에게 하는 거고, 왕과
타국의 백성은 결코 대등하지 않아. 게다가 도움을 받는 입
장이니까...)
"음, 예외라고 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
폐하께서 고개를 숙이시는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그,
폐하를 얕잡아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냥 종자니까요."
"...음, 그런가. 아니 그 말이 맞구나. 왕이란 그런 것이었
지."
복잡하구나, 하고 마도왕이 중얼거렸다.
친근하게 대할 생각이라도 타국의 사람과 친밀해지는 것
은 어렵다, 라는 의미인 듯했다.
"그래. 그럼 사죄의 의미는 아니지만 바라하 양에게 이것
을 빌려주지."
마도왕이 로브 속에 슥 손을 넣더니, 활을 꺼내들었다.
(-하?)
옷에 숨겨둘 수 있는 크기를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네이
아는 눈을 계속 깜빡였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건 마법의 무기란다. 이걸 써서 나를 지켜다오."
그 활은 동물의 조직을 그대로 사용한 것 같은 부분은 있
었지만, 그것이 징그럽다기보다, 신성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초'
라는 글자가 두 번 붙을 정도의 일급품이었다.
"얼티메이트 슈팅스타 슈퍼다. 룬이라는 오래된 기술로
만들어진 것인데 말이다. 사연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대
여하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다. 아아, 사실은 여기에
룬이 새겨져 있었다만, 닳아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구나.
이런 난감할데가."
비명을 지르고 싶어지는 기분을 억지로 눌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거절해야 했다. 이건 마도국의 국
보 수준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보물을 조심성없
이 타국의 종자에게 빌려줄 수 있을까.
(겉만 그럴싸한- 걸리가 없어! 이거, 분명히 굉장한 무기
야!)
"왜 그러느냐? 받아주지 않겠느냐? 내 곁에 있으면서, 나
를 지키는 일까지 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조금은 좋은
무기를 장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만?"
"윽!"
정론이었다.
어쩐지 머리가 빙빙 돌았다.
"아아, 미안하구나. 모양새가 요란한 것이 문제였느냐?
그렇다면 좀 더 수수한 것이 있는데, 그레이트 보우 스페셜
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쪽도 룬이라는 굉장한 기술로 만들
어진 건데 말이다."
말하면서 마도왕은 다시 로브에 손을 넣어-
"그, 그만두십시오! 저는 이걸로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쪽은 사양하게 해주십시오!"
다른 무기를 꺼내려고 하던 마도왕을 네이아는 비명 섞인
목소리로 막았다. 다음에 나오는 물건을 보았을 때, 네이아
는 제정신으로 있을 자신이 없었고, 빌렸다간 하루종일 그
것을 닦는데 정신이 없을 것이다.
"폐하! 감사히 얼티메이트 슈팅스타 슈퍼를 빌리도록 하
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활을 받아들었다.
평범한 활보다도 장식이 많고, 아주 무거워보였지만, 손
에 들자 놀랄 정도로 가벼웠다. 손에 쥔 순간 흘러들어오는
힘이 육체를 강화시키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
로 이 활 자체가 놀랄 정도로 가볍기 때문이리라.
(아, 위험해. 생긴 것만 훌륭하고 내용물이 대단치 않은
매직 아이템이라는 마지막 가능성을 기대했는데, 이거, 분
명히 위험한 물건이야. 자칫 잘못하면... 성검보다도 굉장하
면... 에? 잠깐 기다려봐... 그, 그럴리는 없겠지)
"그런가? 변명을 좀 하겠다만, 그건 그리 굉장한 활이 아
니란다. 다른... 더 성능이 좋은 물건이 좋다면 말해다오."
큰일이었다. 이 이상, 이 방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주
곤란했다. 성왕국의 정점에 선 인간보다, 일개 종자의 장비
가 더 낫다는 형태가 잡혀버리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감사합니다, 폐하. 저 따위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셔서..."
이거, 분명히 다른 사람한테 들려주면 위험하다, 라고 생
각한 네이아는 꽉 쥐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마도왕에게 네이아는 미소를 지었
다. 미소가 무너질 것 같았지만, 가능한 한 교묘하게 감췄
다고 생각한다.
"다른 자들에게 보여줄 때는 내가 빌려준 거라고 얘기해
두거라."
(보여줘야돼!? 가능하면 뭔가로 싸서 숨겨- 호위를 위해
서 빌려준 무긴데 그런 짓은 못하겠지-. 아, 뭔가, 머리가
아파진다. 그건 그렇고 이게 굉장한게 아니라니... 폐하의
기준은 너무 높은거 아닌가... 이 활에 흠집이라도 나면 변
상해야되나? 누가? 아아, 위가 아프다... 활에 대한 건 생각
하기 싫어... 아!)
네이아는 아주 쓸만한 화제를 아직 꺼내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폐하! 저, 폐하의 거대하고 훌륭한 상(像)을 폐하의 나라
에서 봤습니다!"
"-호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작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대답에,
네이아는 뭔가 실수를 했을까 하고 불안해졌다.
자신의 이름을 국가의 이름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마도왕
은 자기과시욕이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거대한 상
을 만들어서, 그 힘을 주변에 널리 알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칭송하는 말이 부족했나?)
"그야말로 마도왕 폐하의 위대함만이 아니라, 그 힘을 널
리 알리는 상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상은 성왕국에는 없습
니다."
그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대함은 물론, 당장이
라도 움직일 것 같은 사실성은 미술적 건조기술의 극치일
것이다. 등대곶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시 드래곤의 상도
사이즈만은 비슷했지만, 더 조잡했고, 바닷바람에 닳아 초
라했다.
"부하들도 자주 그렇게 말해준단다."
(아아, 그런 말인가! 부하들로부터 칭송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 는 말씀인거야!)
"부하들은 그 상을 우리 나라의 여기저기에 세울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과연. 확실히 마도왕 폐하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한 좋
은 아이디어일지도 모르겠군요!"
마도왕이 네이아를 놀란듯한 느낌으로 보았다.
"...으음. 하지만, 나는 나라 전체에 내 상을 세워두는 것
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그런데도, 부하들
은 도시의 중앙에 100미터를 넘는 상을 만들어, 세계에 널
리 알리고 싶다는구나. ...크면 클수록 좋다는 것은 단락적
인 발상이다."
"어째서, 인가요?"
어흠 하고 마도왕이 헛기침을 했다. 문득, 언데드인데도
목에 뭔가 걸리는 일이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스쳤
지만, 마도왕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간에 끼어
들 수는 없었다.
"왕의 위대함은 물건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다."
"아아!"
네이아는 반쯤 놀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네이아는 마도왕이 언데드라는 것을 잊고, 진심으로 존경
의 뜻을 품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왕이구나.
문득, 마도왕이 손을 꽉 쥐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백성이 어려움 없이 생활을 보내기 위한 물자의 풍
부함에 의해 위대함을 알리는 거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내 상을 세워 위대함을 알려도 곤란하다. 나는 안녕을 가져
다주는 통치로 이름을 떨치고 싶은 거야."
"그 말씀이 옳습니다!"
네이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질문했다.
"폐하께서는 언데드이시면서도, 어째서, 그렇게까지 백성
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마도왕의 백성에 대한 자비로움은 결코 연기라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정말로 언데드인 것일까 하는 의문마저 피어
올랐다.
"...딱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는 보통이지
않으냐?"
충격이 네이아를 덮쳤다.
왕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나 위대한 존재일까.
성왕녀도 고위 귀족들도 이런 것을 생각하며 백성을 지배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언데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불사의 존재이
기 때문에 그러한 관점을 갖는 것일까.
네이아로서는 답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100미터나 되면 햇빛이 가려지는 것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성가시지 않겠느냐."
이어지는 마도왕의 농담스러운 말에 네이아는 위대한 왕
의 겸허함에 다시 황송한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왕 중의 왕이다.

성왕국 해방군의 거점이 된 것은, 마도왕이 지적한대로


바위가 많은 산에 뚫린 천연 동굴이었다.
한 곳에서는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높이는 그리 높지 않
았지만 폭은 넓었고, 말도 들어갈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
외에는 창백한 빛을 뿜는 버섯- 키는 사람의 절반 정도 되
는- 이 자생하고 있어, 조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장소를 알고 있었던 것은, 과거 이 곳을 거점으로 삼
던 몬스터 토벌에 성기사단이 파견되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
었다.
그리고, 여기로 도망치고부터 손질을 해서, 이제는 동굴
안은 용도별로 몇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사람이 잘 곳에는
방 비슷한 것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이 산의 기슭- 100미터
이상 아래에 펼쳐진 숲의 나무들을 베어 모아온 목재로 간
단한 가구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은 동굴이었다.
여기에 도망친 것은 성기사가 189명, 신관- 견습이나 관
계자를 포함해서- 이 71명, 갈 곳을 잃은 평민이 87명의,
합계 347명. 개인실 같은 곳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역시 타국의 왕을 다인실에 묵게 할 수는 없었다.
언데드인 마도왕과 성왕국의 백성이 얼굴을 마주칠 시간
은 짧을수록 좋았고, 거점에 굴러다니는 기밀정보에 접촉하
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성왕국 측의 사정도 있었다.
하지만, 전이를 사용해서 평소에는 마도국에 있어주면 좋
겠다고는 말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결국, 억지로 짐을 이동시켜서, 마도왕을 위한 개인실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보통이라면 소식을 알리기 위한 자를 먼저 보내 마도왕이
온다는 것을 알리고, 준비를 하겠지만, 현재의 성왕국은 아
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적 발견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성기
사를 선행시킬 수는 없었고, 지금, 네이아는 마도왕과 마차
에 탄 채로, 동굴 바깥에서 대기중이었다. 그 안에서는 필
사적으로 짐을 날라, 침대나 선반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빌린 마도국의 깃발을 걸고 있을 것이다.
"...흠."
"무슨 일이십니까, 마도왕 폐하."
"...너희들을 모욕하는 것은 아니다만, 몇 가지 의문이 있
어서 말이다. 만약 대답할 수 있다면 알려주면 좋겠다만,
흔적을 감추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괜찮은 것이냐? 나중
에 누군가가 지우러 오는 것이냐?"
평탄한- 책을 읽는 것 같은 말투로 마도왕이 의문을 표했
고, 네이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야말로 그 말대로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산을 오르면 당연히 흔적이
남는다.
덤으로 말하자면 성기사들이 데리고 있는 말의 편자의 흔
적은 아는 사람이 보면 일목요연했다. 그럼 지금까지 발견
되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란 말인가. 아니면-
"폐, 폐하. 지금까지 숨기지 않았습니다만, 혹시 고의로
넘어가주고 있었을까요? ...대체 어째서."
떨리는 목소리로 네이아는 마도왕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마차를 타고 오는 여정에서 눈 앞의 이 왕이 아
주 현명하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즉시 대답을 들려주
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는 그야말로 정답이었다.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아 가
장 그럴듯한 것은..."
네이아는 한순간, 자기 혼자서 듣지 말고 단장의 앞에서
듣는 편이 좋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두려움이 자
극하는 호기심은 멈출 수가 없었다.
"너희들, 해방군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가 아니겠느냐?"
"해방군을 놓친다구요?"
"음, 예시로 드는 것이 안 좋은 것이다만, 나쁜 짓을 하는
쥐의 소굴을 발견했다고 치자. 흩어지면 귀찮아지지 않겠느
냐. 모든 쥐가 모여들면 단숨에 처리할 생각이겠지."
(그런가! 폐하의 말씀대로야. 그 이외의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어. 이 땅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파악하시다니... 상대의 사고까지 완벽하게 읽고 계신 모양
이고, 굉장해...)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을 거다.
다만, 이 쪽만이 아니라, 저 쪽의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도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 귀찮군."
이렇게나 많은 점을 적절하게 지적할 수 있는 마도왕의
총명함에, 네이아는 그저 감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폐하, 감사합니다! 즉시 단장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그럼 나도 같이 가지."
"예? 하지만, 오랜 여행으로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방을
준비하고 있사오니, 거기에서 쉬고 계시는 편이 좋지 않으
시겠습니까?"
"잊었느냐? 나는 언데드다. 휴식 같은 것은 내게 필요없
다."
그 말이 맞았다. 네이아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언데드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언데드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 지극히 당연한
지식이, 마도왕의 덕분에 언데드관(觀)째로 완전히 파괴당
하고 말았다. 때때로, 그냥 해골 가면을 쓴 인간 매직 캐스
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물론이다. 그리고 감사는 필요없다. 얄다바오트를 쓰러
뜨린다는 목적에 한해서 우리는 협력자이니 말이다."
우리라는 것은 성왕국과 마도왕이라는 의미라고 알고는
있었지만,네이아와 마도왕이라는 의미로 들려서, 조금 네이
아는 두근두근거렸다.
이윽고 마차의 문을 바깥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마도왕 폐하, 방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네이아가 먼저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있던 성기사 한 사람이 네이아가 든 활을 보고,
경악 때문인지 눈을 크게 떴다.
마도왕으로부터 빌린 활은 지금까지 한 번도 마차 바깥으
로는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 어쩌다 활을 빌리고부터 마도
왕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한 번
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여기까지 와버렸다.
(...놀라고 있어. 응. 그 마음, 저도 잘 알아요. 절대로 종
자가 들 무기가 아니죠...)
네이아는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마차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숙였다.
발치만을 보고, 마도왕이 땅에 내려선 것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든 네이아는 성기사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카스트디오 단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있어서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폐하도 동행한다
고 하십니다."
"아,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따라오시죠."
성기사, 마도왕, 네이아의 순서로 동굴로 들어갔다.
창백한 빛이 키가 큰 버섯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상당
히 기분 나빴다. 특히 버섯이 다수 있는 곳은, 버섯끼리 벽
면에 괴물처럼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피부는 창백한
빛에 노출되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신기
하게 그리 싫지 않았다.
동굴을 걷다보니, 때때로, 이 곳을 경비하고 있는 성기사,
그리고 평민이나 신관의 모습이 보였다.
먼저 동굴에 들어간 단장 일행으로부터 이야기는 들었겠
지만, 그래도 마도왕에 대한 경악의 시선을 제대로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실례란 말이지...)
마도왕은 결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이 왕은 아주 온후
했다. 다만, 그런 인물일수록 화를 냈을 때 무서운 법이었
다.
그걸 위해서도 실례되는 태도를 취하지 말라고 말해야겠
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해봐야 소용없을 것이고, 말
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성왕국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언
데드는 적이니까.
(단장한테 얘기는 해두기로 하고... 뭐, 무기를 뽑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긴 한데)
문득, 앞을 걷던 마도왕이 작은 종이를 꺼내들고,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적혀있는 건가 싶어 네이아
는 흥미를 가졌지만, 손바닥에 가려지도록 들고 있었기 때
문에, 거기에 적힌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안내받은 곳에는 한 장의 천이 걸려있었고, 그 너
머에서는 의견이 오가고 있는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
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마도왕 폐하께서 종자 바라하와 함
께 찾으셨습니다."
실내가 단숨에 조용해졌다.
그 때에는 마도왕의 손에 있던 종이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단장의 목소리에, 성기사가 천을 들췄다.
일어나서 마도왕을 맞이하는 성기사나 신관- 사절단에게
참가하지 않았던 자들- 들의 눈에는 온갖 감정이 담겨 있었
다.
네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마도왕도 알고 있
을 것이다. 하지만, 그 등에서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읽
어낼 수 없었다.
(이 분이 이 자리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어. ...
잔챙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제왕의 자세일지도 모르
겠네)
"다들, 들어라. 이 분이야말로 마도왕 아인즈 울 고운 폐
하시다. 이번에 우리나라의 어려움을 간과할 수 없다 하시
어 일부러 단신으로 도우러 와주셨다. 실례가 없도록 하
라!"
레메디오스의 말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마도
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들 고개를 든 다음, 마도왕이 당당한 분위기를 자아내
며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소. 아인즈 울 고운 마도왕이오. 나라로서가 아
니라, 개인적으로 그대들에게 힘을 빌려주려 하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꺼내 미안하지만, 여기에 도착하고부
터 어떤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제군들의 생각
을 듣고 싶소. 내게 붙여준 종자에게 설명을 들어주시오."
마도왕이 조금 옆으로 비켜주었기 때문에, 네이아가 옆을
지나는 형태로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실례합니다. 마도왕 폐하로부터 아까 들었던 이
야기를 하겠습니다."
네이아는 마도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원에게 들려주
었다. 짧은 이야기를 마친 다음, 실내는 묵직한 침묵에 지
배당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레메디오스가 네이아의 옆에 선 존재에게 물었다.
"아니, 그 전에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나는 어
디까지나 얄다바오트와 싸우기 위해서 온 것이지, 그대들을
지휘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오. 너무 내가 주도해서 관여
해서야, 얄다바오트를 퇴치한 다음, 귀찮은 일이 되지 않겠
소?"
방이 웅성이는 소리로 들썩였다.
"...아니면 내 지휘하에 들어오겠나? 그렇다면 내가 최선
의 수단을 사용해서 이 나라를 구하도록 하지."
(그게 최선 아닐까. 마도왕 폐하는 언데드지만, 하는 얘
기는 전부 올바르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주고 있어. 지금,
이 순간,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타국의 왕을 일시적으로 따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 아닐
까?)
"저희 위에 서는 분은 성왕녀 폐하뿐. 죄송하지만, 타국의
왕의 지휘하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즉시 레메디오스가 부정했다.
"-!"
(고통받고 있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취해야한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타국을, 그것도 굉장
한 왕을 이용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네이아는 고개를 숙였다. 가슴 속에 차오른 질척질척한
것을 결코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폐하시라면 어떤 생각이신지, 알려주시겠습니
까?"
"나라면, 말이오? 한 번 행동을 취한 다음에는, 즉시 거점
을 다른 장소로 옮긴다, 정도요."
"새로운 거점 말입니까..."
레메디오스 이하 방에 모여있던 자들이 복잡한 표정을 지
었다. 그것은 이 거점 이외에 숨을 수 있는 장소로 짚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은 모른다는 분위기로군. 그렇다면, 움직이면 움
직일수록 얄다바오트의 군대가 습격해오는 시기가 빨라질
것을 전제로 작전을 짜는 수밖에 없겠소. ...그럼, 이 정도
로 하지. 나는 방으로 돌아가겠소."
네이아도 동행하려고 했지만 마도왕이 손으로 막아섰다.
"미안하지만 바라하 양은 여기에 남아서, 내 대리로서 이
야기를 들어다오."
"알겠습니다, 폐하."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리로 인정
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책무를 확실히 다하지 않으면, 실
망할 것이다. 마도왕이 실망할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
이 술렁였다.
"그럼 잘 부탁하마. 괜찮겠소, 카스트디오 단장?"
"폐하께서 괜찮으시다면, 저희에게 이의는 없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안내해준 성기사와 함께 마도왕이 등을
돌리고, 나갔다.
길을 돌아서 보이지 않게 된 다음, 입을 연 것은 신관 가
운데 한 사람이었다.
"저것이 마도왕... 카스트디오 단장님. 저건 괜찮은 겁니
까? 늑대를 쫓아내기 위해서, 사자를 불러들인 꼴이 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장래의
독극물을 마시는 것은 뭐라해야할지... 파산하는 인간의 전
형 아닙니까?"
"그 이야기는 아까도 했잖아. 다시 꺼내지 마라. 이미 독
극물은 몸 속에 들어왔으니까."
(마도왕, 이라. 경칭은 안 붙이는구나)
마도왕이 사라진 다음 그들이 보인 태도에 네이아는 짜증
을 느꼈다.
성왕국의 백성으로서 언데드에 대한 감정은 이해할 수 있
었고, 그들의 태도는 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반대로 네이아
가 불쾌하게 느끼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어째서, 짜증을
느끼는 것인가.
"이용가치가 있는 한은 어쩔 수 없죠... 실제로 유익한 정
보를 얻었습니다만... 신관인 우리들도 저 독을 치료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뭐가 이용가치냐. 우리의 실수를 지적해준데다가 방책까
지 세워준 상대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느냐 아니냐로 생각하다니.
(-아아, 그런가. 마도왕 폐하에게는 느껴지고 지금의 성
왕국에는 없는 것. ...고결함이야. 그래서 내 마음은 이렇게
나...)
자신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마차에 함께 타고 와서, 마도왕이 언데드이면서도, 존경
할 수 있는 왕이라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판단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내야하는 감정은 동정심이 가
장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종자 바라하. 네가 든 활은 뭐냐?"
"아, 옛. 마도왕 폐하께서 이것을 사용하라고, 이 임무를
맡은 동안 빌려주신 무깁니다."
"...그걸 좀 보여주지 않겠는가, 종자 바라하. 그 활에 안
좋은 마법이 걸려있지 않은지 확인하겠다."
신관이 손을 뻗어왔다.
넘겨줘야할 것이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신관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이것은 제가 마도왕 폐하로부터, 폐하의 신변을 보호하
라고 빌리게 된 무기입니다. 이것은 저 이외의 분에게 넘기
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협력자를 이용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상대에게, 누가
일시적으로라도 빌려줄까보냐. 네이아는 마음 속의 분노가
눈동자에 비치지 않도록, 눈을 감으면서 대답했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이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아. 종자 네이아 바라하. 그것을-"
"그것은 폐하께 말씀드려도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실내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알았다. 이제 됐다. 얘기를 계속하지."
(흥. 마도왕 폐하에게 알려지면 곤란한 이야기를 하고 있
다는 자각은 있구나)
"그 전에 카스트디오 단장님. 종자 바라하는 마도왕- 공
의 곁으로 돌려보내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신관 가운데 한 사람의 시선이 활로 한순간 움직인 것을
네이아는 감지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해할 수 있었고, 가슴 속에 울컥하
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네이아는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잘라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마도왕 폐하께 여기에서 이야기를 듣
고 오라고, 명령받았습니다. 이대로 여기에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군... 구스타보. 어느 쪽이 좋다고 생각하지?"
"마도왕 폐하께서 여기, 저희들 앞에서 말하신 내용입니
다. 그녀를 바깥으로 내보내면, 나중에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대로 녀석을 참가시키지."
눈앞에서 할 소린가, 하고 네이아는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했다.
"그래서, 마도왕이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하지? 이제부터 이동한다고 해도. 안전한 장소에 짚이
는 곳이 있는 자는 있는가?"
아버지 파벨 같은 레인저의 기술을 가진 자가 있다면, 이
숫자가 장기간 야영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거나,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자는 없었다.
"마도왕- 폐하는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얄다바오트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가 움
직일 때까지 머물 장소를 찾아두면 되는 것이 아닌지?"
어떤 성기사의 제안에 찬동의 의견이 모였다. 하지만, 네
이아는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미뤘다가 일이 좋
은 방향으로 굴러간 적이 없다고. 결국, 그 때가 되서야 허
둥댈 뿐이었다.
"장소 이외에, 식량의 문제도 있잖습니까? 지금은 겨울이
니까 식량 보유량이 충분하지만, 그래도 이 겨울을 버티는
것이 고작입니다. 왕국에서 협력을 받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만,식량만이라도 구입해오는 것이 좋지 않았겠습니까?"
"유감이지만 왕국의 식량은 상상보다도 고가였습니다. 게
다가 샀다고 해도 이 인원수에 몇 개월분의 식량이라면 그
양이 막대하니, 운반이 어려웠을 겁니다."
"부단장님. 말씀하시는 바는 알겠지만, 식량이 없으면 방
법이 없습니다. 역시 남쪽에서 보내주도록 뭔가 손을 쓰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더 해안선에 거점을 옮겨서,
왕국에서 해로로 옮겨온다거나?"
[그렇게까지 금전적인 여유는 없습니다. 왕국의 거상에게
에둘러 지원을 요청해보았습니다만,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
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서 말입니다만...] 구스타보가 쓴웃
음을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곁에 그렇게까지 위험이 가
까워졌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겠죠. 해군이 점차 소모되어
가고 있다는 상황이 단두대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남쪽의 협력을 얻을 뭔가, 가 필요한 것인가."
"거점, 식량. 문제는 산처럼 많군요."
"...성왕녀님의 부활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것만 가
능하다면 아무 문제도 없는데."
"유감이지만, 청장미에게 듣기로는, 제5위계의 마법으로
는 시체가 없거나, 혹은 손상이 심각할 경우에는 어렵다고
한다."
"...마도왕 폐하의 힘이라면?"
"언데드의 힘을 빌린단 말인가?"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성왕녀님만 부활하
신다면, 남은 것은 얄다바오트(가장 큰 문제)뿐이다."
전원의 시선이 찌푸린 표정을 지은 레메디오스에게 향했
다.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지. 타국을 돌아다니면서 생각
한 것인데, 먼저 포로 수용소를 공격해서, 거기에 있는 백
성들을 해방한다."
몇 사람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성왕국의 백성은 모두가 전투훈련을 받고 있지요.
하나의 마을을 해방하면 그만큼 군대가 늘어날 겁니다."
"그러니까 포로 수용소를 공격한다. 거기에 식량이 있을
것이다."
"과연! 역시 카스트디오 단장님이십니다."
성기사 가운데 한 사람의 말에, 레메디오스가 히죽 웃었
다.
자랑스러워하는 레메디오스를, 네이아는 차가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누가 그것을 발안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
다.
"그리고 그 백성들과 협력해서, 계속해서 포로 수용소를
습격해서 해방해가는 거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남쪽
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귀족도 발견되겠지. 얄다바오트가
우리를 없애기 위해서 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군대를 편성
하고, 일격을 가한다. 그렇게 되면 놈들도 움직임을 멈추겠
지."
"과연!"
이번 목소리는 여러 사람에게서 들렸다.
"그것을 방침으로 삼지. 그럼 종자 바라하, 마도왕께 전달
-"
"-단장님. 기다려주십시오. 역시 저희들이 가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역시 일국의 왕에게 작전을
설명하는 거라면 예의를 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합니다
만."
구스타보의 말대로,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네이아가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런가. 그러면 그렇게 하지. 부탁하마."
"옛!"

네이아는 구스타보와 마도왕의 방으로 돌아갔다. 천쪼가


리 하나로 가렸을 뿐인 입구 앞에는 한 사람의 성기사가 서
있었다. 경계하고 있는 대상은 안에 있는 귀빈에게 해를 입
히는 자인가, 아니면 안에 있는 귀빈 본인인가.
구스타보에게 자리를 비키라는 명령을 받고, 성기사가 그
자리를 떠났다.
네이아는 마음속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호위를 물러나게 한 이상, 그가 여기에 온 것은 틀림없이,
설명 이외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암살 같은 것을 꾸미
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만에 하나 그럴 경우, 마
도왕의 방패가 되어 무기를 휘두를 필요가 생길 것이다.
"마도왕 폐하, 구스타보 몬타녜스, 그리고 종자 네이아 바
라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허가를 받아, 구스타보를 선두에 세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왕도나 마도국에서 본 여관을 떠올리면 슬퍼질 정도로 너
무나 초라한 실내였다. 그렇다기보다 이것은 일국의 왕이
머물 방이 아니었다.
벽이 동굴의 바위 그 자체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만, 가구도 초라했다.
성기사는 종자일 적에 재봉 등을 배우지만, 아무래도 가
구를 만드는 방법까지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도왕이 앉아있는 침대는 훌륭한 것이었다. 검은
광채는 그야말로 흑요석으로 만들어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위에 새하얀 이불이 덮여있었다.
보통이라면, 이렇게까지 훌륭한 침대를 어디에서 꺼냈는
가, 하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지만, 마도왕이라면 이 정도는
쉽다고 인식하고 있는 네이아의 놀라움은 크지 않았다. 게
다가 전이로 일단 자국으로 돌아가서,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네이아만큼 마도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구스타보
는 아니었다.
"폐, 폐하. 그, 그것은?"
[이거 말인가?] 마도왕은 자신의 침대를 가리켰다. [내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이네. 그리고 이 쪽 이불도 뭐, 같은
것이네. 분명,어디의 면 100%였는데, 상당히 자기에 편하
지. 잘 수 있다면 상당히 기분이 좋을 듯하네]
질문에 대답해주었는데도 [아, 예]하고 구스타보는 대강
대답했지만, 네이아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녀도 마법
이라는 건 뭐든지 가능하구나, 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
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도였으니까.
"그래, 바라하 양이 돌아온 것은 알겠는데, 부단장 공은
어떤 용건인가?"
"아, 아, 예! 종자 바라하를 깔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부
단장인 제가 설명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찾아뵈었
습니다."
"흠... 자네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외부인인 나로서는
할 말은 없네. 하지만 한 마디만 해두지."
그 때, 마도왕의 눈동자에 깃든 붉은 빛에 검은 것이 섞여
나왔다.
"나는 그녀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보낸 것이네. 그런
데 상사라고 해서 옆에서 끼어들었다는 것은, 사람을 보는
내 안목을 의심하는 것 같아 다소 불쾌하군."
어떤 눈으로 보더라도, 어떤 태도를 취하더라도, 결코 분
노라는 감정을 품은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마도왕이 처음으
로 네이아의 앞에서 희미한 분노를 드러냈다. 그것이 네이
아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분노라는 사실에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높이 평가해주는 것
은 그 뿐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사죄할 거라면, 내가 아니라, 그녀에게, 라고 해야겠지만,
뭐, 좋네. 그럼 설명을 들려주겠나?"
구스타보가 전체적인 설명을 끝마치자, 마도왕은 [흐음]
하고 미묘한 대답을 했다.
"과연. 그래서- 내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
로 설명을 하러 왔을 뿐인가?"
"아닙니다, 그래서 마도왕 폐하께서는 이 작전을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즉 그런 의미였다.
마도왕의 지혜를 빌리고 싶어서, 네이아에게 시키는 것은
걱정이 된다는 이유를 들어 온 듯했다. 성기사를 물러가게
한 것은, 마도왕과 상담을 하는 것을 들었다가, 타국의 왕,
그것도 언데드에게 완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알려지면
곤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와서 숨겨봤자 무슨 소용이야...)
마도왕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 그렇다면 빠르고 늦는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모두에게 널리 알려질 것은 틀림없었다.
성왕국 측의 가장 올바른 방법은, 여기에 있는 많은 이들
에게 마도왕의 자비로움을 전하고, 계속 감사를 담은 태도
를 취하는 것이 아닐까.
(언데드라고 해서 신용할 수 없다거나, 경계하거나 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마도왕 폐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생각
해...)
네이아가 그렇게 말해도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챰(매료) 같은 마법에 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다들 마도왕 폐하를 신뢰해줄까. 결국, 선
입관을 어떻게든 해야되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주
세요, 라고 실례되는 소리는 못하겠고...)
네이아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진
행되어갔다.
"...아니, 나는 자네들의 작전에 참견하지 않겠다고 말했
잖은가."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부디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실패할 가능성을 피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라네. 내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
실패라도 했다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책임은 나도 지지 못
한단 말일세."
"예. 그러니까, 여기에서의 이야기는 저, 그리고 마도왕
폐하, 마지막으로 종자 바라하 세 사람의 가슴 속에 묻어둔
다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라하 양에게도 말인가? 그녀에게는 들려주지 않는 편
이 좋지 않겠나?"
"아닙니다, 저희 이외의 제삼자가 있는 편이 여러가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녀 같은 특수한 기술을 가지
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
릅니다."
"...후우. 그렇다면 조금 이야기를 할까. 바라하 양은 상관
없겠나?"
"앗! 예.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아까의 작전을 들어본 한, 몇 가지 걸리
는 점이 있네. 먼저 식량이네. 포로 수용소에 식량이 다소
있을 거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네만, 대량으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네. 애초에 포로에게 양껏 식사를 주고 있느냐,
하는 문제도 있네. 나라면, 평소의 식사의 양을 줄이는 등
으로, 반란을 일으킬 수 없도록 체력을 깎아둘걸세. 그리고
그들을 구출하면 병사로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 말인데,
그들의 무기는 어떻게 조달할텐가? 이 동굴에 마련되어있
는가?"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것도 포로 수용소에서 손에 넣어
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부 포로 수용소에 기대하고 있다는 이 작전의 위험성
을, 알겠나?"
"예. 하지만, 거기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
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말에는 동의하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나라에 대
한 애정이 사라질지도 모르니 말일세. 다만, 식량만은 어떻
게든 해결하는 편이 좋을걸세. 솔직히, 여러가지로 남쪽의
협력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네만, 어떻게 하면
그게 쉬워지겠나?"
"왕족입니다. 성왕녀님은 돌아가셨습니다만, 왕족이 전원
죽은 것은 아닐 겁니다. 남쪽의 귀족들이 지지하는 왕족을
구출해, 그 분을 통해 남쪽의 귀족들에게 협력을 부탁하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피난처도 생겨날
것이고... 그런데 폐하. 성왕녀님은 돌아가셨습니다만, 폐하
의 힘으로 어떻게 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부활 말입니다."
"과연. 불가능하지는 않네."
너무나도 간단히 대답했기 때문에, 한순간이나마 네이아
는 귀를 의심했다. 소생마법은 신앙계 마법의 오의라고 할
수 있는 마법.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란 지극히 일부 중에
서도 일부. 그것을 아주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자는 이 세
상에 얼마나 있을까.
"물론 보수는 받겠네. 그래서, 사체는 어디에 있는가? 어
떤 상태지?"
"사체의 소재는 현재 불명이고, 상태도 알지 못합니다. 보
수에 관해서는 폐하께서 원하시는 액수를 지불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도왕은 손을 얼굴 앞에서 쥐었다.
"사체가 없다면 어렵겠군. 있다고 해도 손상 등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지네. 제대로 된 사체도 없이 내가
마법을 사용했을 경우, 언데드가 되버릴 가능성도 있어."
"그, 그것은 곤란합니다."
아무래도 성왕녀를 언데드 같은 것으로 만들었다간, 곤란
한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성왕국의 온 힘을 결집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성왕국에는 제5위계의 부활 마법을 쓸 수 있는 매직 캐
스터는 없는가?"
"제가 부족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호오... 그럼 살아남은 왕족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포로 수용소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으니, 도시 내부에 잠복하고 있을 가능
성은 없다고 봐야할 겁니다."
"포, 포로? ...어디에 있다는 정보는 뭔가 없나?"
아무것도 없다, 고 구스타보는 고개를 저었다. 마도왕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음. 상당히 무계획적인 상황이군."
"그렇습니다. 정보수집이 특기인 자는 성기사단에 없
고..."
[그런가...] 음, 음하고 마도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부하 한 사람 한 사람이 온갖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견고
한 조직 구성은 필요불가결한가. 그래도 첩보 기관이 복수
존재해서야...]
"그, 그래서 마도왕 폐하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마법으
로 어떻게든 할 수 없겠습니까?"
"마법도 그렇게까지 만능은 아니지만... 먼저 포로 수용소
의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겠군. 자세하게 그려진 지도를 보
여주게."
"죄송합-"
"여기에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제가 가지고 올까요?"
네이아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지도는 나라의 보물이었다.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공격할
때도 지킬 때도 유리해진다. 장기적으로 적이 될 수 있는
타국에 자국의 자세한 지리를 알려주는 것은 백해무익했다.
그래서 구스타보는 거절하려고 한 듯했다.
하지만.
네이아는 역시 그것까지는 허락할 수 없었다.
마도왕을 이용만 하고 넘어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지혜를 빌릴 생각이라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옳다.
구스타보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네이
아는 모른 척했다.
"아아, 그럼, 나중에 보여주게. 그럼, 미안하지만 바라하
양. 이 부근의 지리에 관해 네가 아는 것을 알려다오."
"옛!"
두 사람이 나란히 대답을 하고, 구스타보는 천을 걷고 바
깥으로 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마
도왕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나도 이익을 얻기 위해서 여기로
온 거란다. 얄다바오트의 메이드라는 악마들은 그만한 가치
가 있지."
"옛."
지도의 건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네이아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신이 하는 일을 분명히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하지만. 상당히 궁지에 몰렸구나. 이렇게 쉽게 둘로 갈라
지는 조직으로 잘도 여기까지 해왔다고 봐야겠군."
"-죄송합니다."
"아니, 딱히 사과를 할 필요는 없다만... 조직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성가신 것이로구나. 의견이
대립되었을 때는 다수결로 결정하지는 않는 것이냐? 당연
히, 나중에 그에 불만을 토하는 것은 금지, 라는 규칙으로."
"그런 방법으로 통솔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면 얼마나 좋
았겠습니까. 꿈만 같은 조직이군요."
[흠... 훌륭하다라] 문득 마도왕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좀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꿈만 같은 조직이구나]
"혹시 마도왕 폐하의 나라에는 그런 조직이 있는 겁니
까?"
[아, 아아,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내 나라에 그런 조직
은 유감이지만 없다. 다만, 후우] 마도왕이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게 되면 재미있겠구나]
"재미있는 겁니까?"
"-그럼, 이 부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느냐?"

2.

집단은 야음을 틈타, 포로 수용소로 나아갔다.


마도왕의 제안에 따라, 가능한 한 거점에서 먼, 해변의 포
로 수용소를 습격하게 되었다. 해변은 발자국을 감추기 쉽
고,멀리서 보면 해방군에 의한 습격이라고 확정하기까지 시
간벌이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단 문제가 있었다.
너무 먼 곳이라면, 이동하는 도중에 적의 정찰대에게 발
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먼 포로 수용소를 습격
하게 되었다.
옆에서 말에 탄 마도왕에게 네이아가 물었다.
"폐하, 마을까지 말을 타고 단숨에 접근할 겁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그래, 물론이다. 다만... 작전내용까지는 듣지 못했다만,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 조금 기대가 되는구나."
"기대가 되시는 겁니까?"
"크큭. 성왕국의 전략의 한자락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
어떤 능력으로 문을 깨뜨릴 것인가. 아니면 성벽의 위를 날
아서 침입할 것인가. 역시 그런 부분은 내 시선을 신경써가
면서 감추진 않을 것 아니냐. ...그 중에 내 지식에는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즐겁
구나."
마도왕은 틀림없이 실망하겠구나, 하고 네이아는 안타깝
게 생각했다.
성왕국의 기본적인 공성전술은, 천사들을 상공에서 공격
시키는 것과 동시에, 병사들이 돌격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기보다 그 이외의 수
단을 취할 전력이 없었다.
네이아는 레메디오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방군의 거의 모든 전력이 앞을 보고 있었다.
단장이 창을 들어올리자, 거기에 걸린 성왕국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가자!"
"와아!"
단장이 말을 걷어차고, 달려나가자, 성기사들이 그것을
따랐다. 아직 마을까지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전력이 아니라
비교적 가볍게 달리고 있었다.
"성기사들이 아까 베어놓은 통나무를 나르고 있는데, 저
건 혹시 파성추인가?"
"예. 저희 해방군은 성기사와 신관밖에 없고, 문의 해방이
나 잠입 같은 능력에 뛰어난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면
에서 문을 돌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장은 검술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문을 돌파하는 것이라면 저런 도구 쪽이
빠르니까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파성추에 의한 물리적 돌
파인가... 사다리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느냐? 성기사의 마
법으로 벽을 뛰어넘는 경우는 없느냐?"
마력계, 신앙계, 정신계 등 마법의 계열은 몇 가지로 나뉘
지만, 성기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그 외에 속하는 것이었
고, 가호라는 힘을 통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타락한 성기사
인 암흑기사 같은 경우에도 같은 가호의 마법을 사용한다.
네이아가 보고 들은 지식 중에는 사다리를 만들어내는 마
법 같은 것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과문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나도 그렇다. 일단, 성기사가 사용하는 마법 중에도 비행
마법은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상당한 고위계 마법이란다."
"그렇습니까? 성기사의 마법까지 알고 계시다니..."
역시 마도왕이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 이외의 지식도
아주 깊었다.
"적이 사용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가능한 한 온갖 마법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그만큼 노
력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알면 알수록 승리에 가
까워진다, 는 것이 친구의 가르침이었다만, 흐음."
재능이 없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 얘기보다도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폐하, 뭔가 책략이 있으시다면 단장에게 전달할까요?"
그토록 뛰어난 마도왕이었으니, 해방군이라는 손패로도
더욱 유효한 책략을 이미 떠올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
기 때문에 저런 태도인 것은 아닐까.
"음? 아, 아니, 그만두지. 에, 그래. 이 수용소의 해방이라
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너희들의 일이지. 몇 개나 있는 포
로 수용소를 공격하기 위해서, 더욱 유효한 수단을 모색하
는 첫걸음이다.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 그것을 해내야한
다."
마도왕의 말은 옳았다. 그보다도 이 분은 언제나 올바른
말을 한다.
하지만, 오늘만은 네이아는 마도왕에게 힘을 빌려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통받는 무고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싸움.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을 택하고 싶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옳다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습
니다. 하지만, 부디, 힘을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말에 탄 상태로 말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
다. 그래도 네이아는 고개를 숙이고, 마도왕에게 부탁했다.
마도왕은 진행방향을 보면서, 그 다음 입을 열었다.
"흐음... 네이아 바라하. 몇 번이고 말하게 하지 말거라.
실패에서 성공이 태어나는 법이다. 내게 의지하지 말고 스
스로 생각해낸 결과, 설령 실패했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
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거다. 그것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실패다."
마도왕의 말에, 네이아는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늘 마도왕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자립해서 나라를 부흥하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한
결과라면, 필요한 희생도 있다고 마도왕은 말하고 있는 것
이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그래도, 마도왕의 힘이 있다면, 더 많은 생명을 지금, 구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자립을 위해서 희생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정의
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많은 이를 구하는 것이 정의인가. 아니면-
생각이 무의미하게 계속되었고, 전혀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럼, 그녀들의 실력에 기대해볼까."
지금은 그저 많은 이들의 희생이, 가엾은 피가 흐르는 결
과로 끝나지 않을 것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대는 일직선으로 포로 수용소로 향했다.
마을까지는 다소 기복이 있었지만, 파수대 같은 것이 만
들어져 있었고, 정면에서 가면 일단 분명히 발견당할 것이
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공격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윽고, 마을이 보였다.
문 위에 있는 파수대에는 역시 경계병이 있었던 모양인지,
곧 종이 울렸고, 마을의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네이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파수대를 노려보았다.
거기에 있는 아인은, 직립한 긴 털의 산양을 닮았고, 체인
셔츠(사슬옷)를 착용하고, 대형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네이아의 기억이 맞다면, 아인의 종족명은 바포르크.
산악지대에 사는 아인종족이고, 그 강인한 다리는 그야말
로 산양과도 같은 성능을 가져, 약간이라도 디딜만한 곳이
있으면 성벽조차도 뛰어올라오는 무시무시한 전사였다. 게
다가 그 긴 털은 맞은 검에 얽혀서, 점차 검날을 둔하게 만
들기 때문에, 한 마리 쓰러뜨린 검신에 묻은 털을 떼어내야
한다고 아버지가 알려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포르크가 가진 창은, 문 위에서도 아래를 지나는 상대
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길었다.
즉시 방비를 다지면 귀찮아진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까
지는 훈련을 받지 않았는지,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자신들
이 준비를 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신관들은 말에서 내리더니, 즉시 천사들을 소환했다.
성기사들도 역시 말에서 내려서, 방패를 들었다. 파성추
를 가진 자들에게 쏟아질 공격을 막아내기 위함일 것이다.
단, 모든 성기사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10명 정도는 말
에 탄 상태로, 마을의 측면을 향해 이동을 개시했다.
"바라하 양. 저건 소수 병사를 주변에 전개시켜, 수용소에
있는 아인이 이쪽의 정보를 가지고 달아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역할을 맡았겠지? 혹시 도망을 치게 되면, 여기에서
승리를 거둬도 장기적으로 보면 패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
야."
"그, 그렇습니다! 말씀하신대롭니다!"
성기사단의 전술을 손쉽게 간파했다. 역시 대단하고밖에
는, 네이아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의문이 있었다. 마도왕은 어디에서 그런 전술을 배
웠을까.
아인들처럼, 두터운 피부를 가진 자는 갑옷을 착용하지
않는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자라면, 검을 들지 않을 것
이다. 인간이 갑옷을 입고 검을 드는 것은, 나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잔재주를 부릴 이유가 없다면, 그런 것은 필요가 없는 것
이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고 알려진 마도왕이,
공성 같은 전술을 알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폐하께서는 그렇게 많은 지식을 어디에서 얻으신 겁니
까?"
"음? 지식이라니... 아아! 아까 말했던 예상 말이냐? 흠.
그런 전술은 아까 말했던 내 친구로부터 여러가지로 교육을
받아서 말이다. 남은 것은 실전에서 시험해보는 등, 여러가
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통용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구
나."
"...폐하의 친구분이라는 말씀은 역시 그 분도 강하셨나
요?"
"그래. 뭐, 그의 강점은 육박전이나 정면에서의 마법전 이
외의 부분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아직, 나는
그에 비해 한 수 아래라고 할 수 있겠지."
후후, 하고 마도왕이 즐겁게 웃었다. 과거를 떠올린 자 특
유의 미소로.
마치 한 사람의 인간이 거기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예전에는 마도왕도 인간이었을까...)
마법의 힘에 의해 언데드가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였다. 존재할리가 없었다. 언데드는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는 넓으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는 너무나도 작다는 사실을, 사절
단으로서의 여행에서 잘 알 수 있었다.
바다의 저편, 산의 반대쪽, 깊은 숲 속, 그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네이아의 망설임 따위는 코웃음 한 번으로 날려버
리고, 그 답을 알려줄만한 현자도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아, 시, 실례했습니다."
"아니, 책망하는 것이 아니란다. 말에 타고 있으면서 넋을
놓고 있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었을 따름이다. ...이제부
터 전투가 시작되니까.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이해한
다."
"가, 감사합니다, 폐하."
그 때- 깃발을 지면에 꽂은 레메디오스가 성검을 뽑았다.
"전원! 얄다바오트로부터 이 땅을 구하기 위한 첫번째 싸
움을 시작한다! 정의를!"
레메디오스의 외침에 [정의를!]하고 전원의 목소리가 뒤
따라 외쳤다. 그리고 모두가 한덩어리가 되어 돌격했다.
"갔나. 바라하 양도 공격에 참가한다면, 좀 더 앞으로 나
서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저는 폐하의 종자로서의 임무가 있습니다. 그
런 제가 폐하를 두고 전투에 참가하다니-"
있을 수 없다, 고 네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음, 그런가. 그, 그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만... 그
무기는 남에게 빌려주거나 하지 않았느냐?"
"그런 짓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폐하께 빌
린 무기. 그것을 저 이외의 사람에게 빌려주다니 당치도 않
습니다!"
"아, ...그런가. 음, 그렇군. 감사하마."
조금 목소리의 톤이 낮아진 느낌도 들었지만, 거기에 포
함된 의도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뭔가 마도왕 폐하에게 실례되는 일을 했나? ...모르겠지
만, 사과하는 편이 나을까?)
네이아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마도왕이 다른 화제를 꺼
냈다.
"아, 모처럼 나왔지 않으냐. 주변을 둘러보아도 투명화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아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전장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거리까지 앞으로 나서보지 않겠
느냐. 신관들을 여기에 남겨두고 가도 문제는 없겠지. ...어
떠냐?"
"알겠습니다."
자신보다도 훨씬 강대한 힘을 가진 마도왕에게, 앞으로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라고 말하는 쪽이 실례였다.
종이 땡땡 격하게 울리는 수용소에 마도왕을 따르는 형태
로 가까이 가보니, 그 타이밍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문 위에 있는 파수대에 천사들이 덤벼들었고, 거기에 있
던 바포르크들은 창으로 요격했다.
망루에서는 화살이 발사되었다. 표적은 천사들이 아니라,
선두를 달리는 레메디오스. 아군에게 맞을 가능성이 없고,
방패를 들지 않고 달리는 그녀를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자들과는 그 기량이 달랐다.
날아드는 화살을 검으로 간단히 베어버리고, 속도를 유지
한 상태로 달렸다.
반격이라는 듯이 파수대를 공격하고 있던 천사들 가운데
몇이 망루로 쇄도했다. 곧 망루에서 바포르크의 시체가 셋
낙하해갔다.
그 무렵에는 성기사들이 문에 도착해서, 파성추를 밀어붙
이기 시작했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흔들리고, 삐걱하는 소리가 희미
하게 들려왔다. [다시 한 번!]이라는 성기사들의 목소리.
다시 한 번 문이 흔들렸다. 이번의 흔들림은 더욱 컸다.
그리고 이어서 한 번 더.
문을 구성하는 통나무 가운데 하나가 크게 꺾였다. 성기
사들의 환성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아직 지나가기에는 부족
했지만, 앞으로 몇 번만 더 치면 문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
다.
천사들 가운데 일부가 내부로 들어갔다. 네이아의 위치에
서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문을 지키러 간 바포
르크들의 발을 묶으러 갔을 것이다.
"-물러나라!"
갑작스러운 큰 목소리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곳은 문 위의 파수대. 천사들이 점거했을 터인 그곳에
어떻게 올라간 것인가. 바포르크가 하나 있었다.
문제는 이 바포르크가 그 손에 들고 있는 것이었다.
"물러나라!!"
바포르크가 반복해서 말했다.
그 바포르크의 오른손에는 소녀- 나이가 예닐곱 정도 되
어보이는 아이의 모습이 있었고, 그 목에는 칼날이 닿아있
었다.
"너희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 인간을 죽이겠다!"
지저분한 옷을 입은 소녀- 얼굴도 땟국이 묻어있는 것 같
았다- 의 몸은 손의 움직임을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살아
있기는 했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수용소에서 인
간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비겁한!"
성기사 한 사람이 외쳤다.
"빨리 물러나라! 봐라!"
성기사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
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네이아라도 이렇게나 떨어져있고,
게다가 밤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까지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마도왕은 아니었다.
"...어린 아이의 목에서 피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설마!"
"상처를 입혔을 뿐 죽이지는 않았겠지. 인질로서의 가치
가 줄-"
"-전원 뒤로 물러나라!"
레메디오스의 목소리에 따라 성기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후방의 신관들에게는 상황 파악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
상 사태라는 것은 알 수 있었는지, 천사들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동시에 신관들이 네이아의 옆을 지나갔다. 거리를
좁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듯했다.
"더! 더 물러나라!"
바포르크의 목소리에, 성기사들이 슬금슬금 후퇴를 시작
했다.
파수대의 바포르크들이 황급히 교대하고 있는 것이 보였
다. 천사와의 싸움으로 상처입은 자들이 상처가 없는 자들
로 바뀌었다.
"곤란하게 됐군."
"예. 곤란하게 됐습니다."
천천히 네이아는 빌린 활을 꺼내들었다. 바포르크는 소녀
를 방패처럼 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노릴 수 있는 부위는
작았고, 일격에 죽이려면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한다는 말인가.
더 활쏘는 훈련을 해두면 좋았을 것을, 네이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냈다.
그 때, 문득 마도왕이 사선을 가리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보다 그만두거라. 이
제 의미가 없어."
무슨 의미일까 하고, 되묻는 것보다 빨리, 마도왕이 모여
있는 성기사들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거기에서는 어떻게 소녀를 구할지로 다투고 있었다.
신관의 마법에 상대의 움직임을 막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면 된다는 의견이 강했지만, 마법에는 유효거
리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접근할 수가 있겠는가, 만약 상
대가 저항에 성공한다면 인질이 죽지 않을까. 의견은 여러
가지여서 답이 나올 기색이 없었다.
거기에 마도왕과 네이아가 도착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요. 곤란하게 되었소."
마도왕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쪽으로
쏠렸다.
"그건 알고-"
"-단장님. ...진정해주십시오. 적은 저기 있는 저들입니
다."
여유가 사라져서, 말투가 거칠어진 레메디오스에게, 구스
타보가 말을 걸었다.
"아니, 카스트디오 단장. 당신은 모르고 있소. 인질이 효
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결과, 협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 보여-"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인질 소녀의 목이 잘
려나갔다. 여기에서도 붉은 피가 뿜어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바포르크가 소녀의 몸에서 손을 놓고, 그 몸은 힘없이 무너
져내렸다.
조용해졌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뇌가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 것처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레메디오스의 노호성에, 네이아도
이성을 되찾았다.
"이 놈! 감히 인질을!! 네 요구에 따르지 않았나!"
[흥!] 바포르크가 이번에는 소년을 앞에 내밀었다. [그래
서 한 명 더 데려왔다! 자, 빨리 더 뒤로 물러나!]
"비겁한 놈!!"
"흥. 멍청하구나, 넌! 또 한 명, 새로운 녀석을 데려오지
않으면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냐!?"
꽉 쥔 레메디오스의 주먹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다
음 내뱉듯이 명령을 내렸다.
"전원, 물러나라!"
"주변을 말타고 돌아다니고 있는 녀석들에게도 모이라고
명령해! 빨리!"
레메디오스가 빠드득하고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이
가 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큰 소리였다.
"부단장. 그 녀석들에게 여기로 오라고 명령을 내려라..."
"하,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아이가 죽는다. 빨리 해!"
"좋지 않은 방법이오. 이미 인질의 유용성을 이해해버린
이상, 시간을 더욱 주게 되면, 그 시간은 이 쪽의 전의를 상
실시킬 수단을 마련하는데 쓰일 것이고,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오."
얼굴이 시뻘개진 레메디오스가 마도왕을 적에게 보낼 법
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이대로 두면 기습을 가한 의미가 없소. 게다가 문에 뭔가
를 가지고 오는 소리도 들리는군. 바리케이드를 만들기라도
했다간 부술 때까지 더욱 시간이 걸려서 귀찮게-"
"-시끄러워!"
레메디오스의 노호가 마도왕의 입을 막았다.
"누가 좋은 생각은 없나!? 누구 한 사람 죽지 않을 수 있
는 방법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편리한 방법이 있을리가 없었다. 만약 여기에, 예를
들면 잠입 같은 것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가 있다면, 상
황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레메디오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전투시의 상황판
단에 있어서, 짐승 같은 감을 가진 그녀가 떠올리지 못한다
는 것은, 그런 수단은 없다는 사실에.
그래도 어째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가.
어째서, 한 사람도 죽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것인가.
마도왕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이것이 필요한 희생이 아
닐까? 누구 한 사람 죽지 않는 방법 같은 것은 어지간히 실
력차와 행운이 없다면 있을 수 없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네이아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지금이라면 적은 희생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닐
까요?]
레메디오스의 가열찬 눈동자가 네이아를 향했다.
강한 전사가 뿜어내는 격정에, 몸이 떨릴 것 같았다. 하지
만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에 정의는 없다!"
레메디오스의 한 마디.
(정의? 정의란-)
주변의 성기사들은 입을 다물고, 누구도 아무말도 할 생
각이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의 모두가 적인 것 같은 기분이
든 네이아가 뒤로 물러나자, 등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돌아보니 거기에 있던 것은- 역시 마도왕이었다.
"-나는 바라하 양을 지지하오."
조용한 목소리로 찬동. 하지만 그것은 네이아 입장에서는
억만의 아군에도 필적하는 것이었다.
"시끄러워!"
레메디오스가 다시 한 마디. 그것은 멀리서 지원하기 위
해 와준 타국의 왕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용서할 수 있는
행동이 있고 아닌 행동이 있었다.
네이아의 마음에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국면을 바꾸는 것이지, 서로
짜증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상황을 변화시키겠소."
마도왕이 중얼거렸고, 일행과는 반대 방향- 문으로 걸어
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누가 불러세우는 것보다도 빨리,
바포르크의 경고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가면 쓴 놈! 물러나라고 했잖아!"
"물러나지 않는다! 인간 한 사람의 목숨에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마도왕도 그에 밀리지 않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뭐, 뭐라고!"
"우리의 목적은 이 안에 있는 모든 바포르크를 죽이는 것!
인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와이든 매직 파이어볼(마
법효과 범위확대화 화구)>."
큰 소리로 외친 마도왕이 손을 내밀자, 그 손안에 생겨난
불의 구슬이 문 위에 있는 바포르크와 소년을 덮쳤다.
그리고 거대한 불꽃의 폭발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파수대
를 둘러쌌다.
그 위에 있던 자들이 일격에 무너져내렸다. 소년을 잡고
있던 바포르크도 소년과 함께 뒤엉키듯이 머리부터 그쪽으
로 지면에 떨어졌다.
"<맥시마이즈 매직 쇼크웨이브(마법최강화 충격파)>."
이어지는 마법 공격에 의해 반쯤 무너진 문이 날아가고,
이어서 뒤에 있던 바포르크들이 쌓아올렸을 바리케이드도
역시 흩어져버렸으며, 큰 구멍이 생겨난 것 같았다.
"자! 성기사들이여! 돌격하라! 안에 있는 바포르크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라!"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처럼, 레메디오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놈이-!"
"-단장님!"
"크윽! -돌격이다!"
레메디오스의 말에 성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
다기보다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명령에 모든 것을 맡겼
다는 표현이 정답에 가까웠다.
"마도왕 폐하. 감사드립니다!"
구스타보도 그 말만을 남긴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
서 성기사나 신관들- 조금이라도 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
의 시선을 보냈다. 마도왕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
낸 것은 레메디오스 한 사람뿐이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마도왕이 네이아에게 말했다.
"-바라하 양. 내가 너희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법으로
소년을 구할 거라고 생각했느냐?"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도왕이 그렇게 한 것
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아, 예, 옛. 그 말씀이 맞습니다."
"흠. 그랬겠지."
마도왕이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아는 그대로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확실히 그럴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내가 습득하고 있는 온
갖 마법이 있다면 소년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간단했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바포르크들에게 소년을 구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처음으로 그 얼굴에 의문을 드러낸 네이아에게 마도왕은
다정하게 설명해주었다.
"그 이상, 인질이 유효하다고 알려지면, 이 안에 있는 포
로는 방패로 사용되어, 전투 중에 검 앞에 나서게 될 것이
다. 그렇게 되면 망설임을 느낀 성기사 측에도 피해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 이 쪽의 병력이 적은 이상, 한 사람이라도
성기사가 빠지는 것은 커다란 손해. ...란체스터라고 하는
법칙에 그렇게 적혀있다는 모양이다."
마도왕이 문으로 걸어가서, 네이아는 그것을 쫓았다.
"반대로 인질이 유효하지 않다고 알려지면, 바포르크들에
게 있어서 포로는 성가신 존재가 된다. 하지만, 공격을 받
고 벽을 돌파당할 것 같은 때에, 포로를 죽이는 것 같은 느
긋한 짓을 할 시간이 있을까? 저항할 수 없는 자를 죽인다
는 것은 우선도가 낮을 것이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 뜻이다. 죽이고 다니는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낭비
하는 것보다는, 적의 침공을 막을 준비에 힘을 쏟겠지. 그
래서 인질은 유효하지 않다고,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으
로 목숨을 빼앗을 필요가 있었다."
그 말이 맞았다.
레메디오스처럼 행동했다면, 결국 누구 한 사람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마도왕은 발치에 구르는 소년의 시체를 천천히 들어올렸
다.
"폐하, 제-"
"-내 일이 아니더냐, 이것은."
마도왕에게 안긴 소년과 함께 네이아는 레메디오스가 꽂
은 깃발이 있는 곳까지 돌아갔다.
가죽주머니의 물로 천을 적셔, 마도왕이 지면에 내려놓은
소년의 얼굴의 때를 네이아가 닦아냈다.
볼은 여위고, 팔이나 다리도 놀랄 정도로 가늘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
었다.
"바포르크 놈들..."
"이건 해야할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해두마. 나는 마
도국의 왕이며, 이 나라의 백성의 왕이 아니다. 그렇기 때
문에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하나의 목숨보다는 천의
목숨을 구한다, 고 말이다. 만약 이 소년만이 내 나라의 백
성이었다면, 이 아이를 우선해서 구했을 것이다. 납득이 가
지 않는다면-"
"-아뇨, 감사합니다, 폐하. 생각하시는 바를,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폐하는 정의로우시군요."
"-음? 무슨 말이냐?"
"죄송합니다. 아, 음, 폐하께선 정의로운 일을 하고 계신
거지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걸까 하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말았
다.
어처구니 없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비로운 마도왕
은 네이아에게 대답해주었다.
"...에? 아, 아니, 나는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무엇
보다, 정의로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타인이 할 일이
잖느냐.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주 심플하다. 뭐, 이름을 널
리 떨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만..."
상(像)에 관한 일이 네이아의 뇌내에서 되살아났다.
(이름을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건 역시 마도왕은 자기과
시욕이 강한 건가?)
"그렇다곤 해도 그건 이제 무리하게 할 필요가 없는게 아
닌가 하고 지금은 생각... 쓸데없는 소릴 했군. 내 목표는
나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뿐이고,
그것이 전부다."
언데드인 마도왕에게 자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
었다. 자신의 피를 이었다는 의미의 아이가 아니라, 커다란
의미에서의 아이라는 뜻일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나라의
백성을 아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 되었건 다정한 분이야... 확실히 가장 약한 존
재인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게라는 건 아주 훌륭
한 거지. 그런 분이 소년의 목숨을 어떤 마음으로 빼앗으신
걸까...)
문을 바라보는 해골의 얼굴에는, 아이를 죽인 일에 대한
슬픔이 배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쓸데없는 이야기로군. 자, 이 이야기는 끝이다. 바라하
양, 내겐 잘난듯이 말할 자격은 없지만, 너만의 정의를 발
견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폐하께선 자
신의 부하분들이 인질로 잡혔을 경우, 아까 같은 행동을 하
실 겁니까?"
"...불평을 말하게 되겠다만, 내 부하들에게는 다른 의미
에서 난감함을 느끼고 있다."
"그건 대체, 무슨 뜻인가요?"
"예전에, 호기심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인질로 잡혀,
나와의 교섭에 이용당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느
냐, 고. 그 때, 즉시 전원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결하겠
다고 단언해서 말이다. 아니, 내가 구하러 갈 때까지 기다
린다거나 그런 판단을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이다. 충성
심이 두터운 것은 기쁘지만, 조금 더, 그, 뭐라고나 할까,
조금 과격하다, 내 부하들은."
손을 조물조물 움직이면서, 피곤한 듯이 말하는 마도왕.
남의 위에 선 자로서 그것은 사치스러운 고민이 아닐까,
하고 네이아는 생각하고 있는데, 문 쪽에서 피에 젖은 검과
갑옷을 걸친 레메디오스가 나타났다. 투구를 벗고 있었지만,
앞머리는 땀 때문에 이마에 달라붙어, 피로에 젖은 모습이
었다.
네이아는 뒤에 서있는 구스타보에게 뭔가 지시를 내린 레
메디오스와, 한순간이나마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아니,
네이아와 눈이 마주쳤다기보다도, 마도왕을 본 레메디오스
의 시선이 지나가는 곳에 어쩌다가 네이아가 있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레메디오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다시 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 구스타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마도왕 폐하. 감사드립니다. 다소의 피해는 나왔습니다
만, 폐하의 힘 덕분에 최소한의 피해만 냈다고 확신하고 있
습니다. 원래는 단장이 감사를 드려야 옳습니다만, 백성들
의 비참한 상황에 심란함을 느끼고 있어, 제가 대신 말씀드
리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구스타보가 소년에게 힐끗 시선을 보냈고, 눈을 감았다.
"신경쓸 것 없네. 단장을 위로해주게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참한 상황이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예. 몇 사람을 구해 이야기를 들어본 바, 놈들은 포로의
피부를 벗겨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인들이라기보다 얄다
바오트가 보낸 악마들이 그것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비참한 상황에 심란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단장의 무례
함을 덮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
았던 모양이다.
네이아가 놀라고 있는데, 마도왕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
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피부를? 어째서지? 먹는 것인가? 닭껍질처럼?"
"아뇨, 저희들도 전혀... 아인들은 그에 관여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만... 뭔가, 마도왕 폐하께 짚이는 것은 없으십니
까? 악마의 의식 같은?"
"아니, 미안하군. 나도 전혀 모르겠네. 짐작조차 가지 않
아. 얄다바오트는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지?"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이 마도왕이 대답했고, 모두가 서
로를 마주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악마가 하는
짓이었다. 인간을 괴롭히고 싶었을 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신관들에게 나중에 물어보겠습니다. 그럼 마도왕 폐하.
아인을 소탕하기 위해, 어딘가에 숨은 놈들이 없는지 탐색
하고 있사오니, 좀 더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구스타보는 문으로 돌아갔다.
그 후 10분 정도가 지나자, 문 부근에서 조금씩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잡혀있던 사람들이었다. 인질이었던 소년과 마찬가지로,
겨울의 추위 속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다. 문이 있는 곳까지 경호해온 것으로 보이는 성
기사는 잠시 모습을 보이고, 다시 문 안으로 사라져갔다.
인원수가 적기 때문에, 피스톤 운송을 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직 완전히 제압이 끝나지 않은 것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혹은 둘 다이거나.
전신으로 환희를 표현하면서, 잡혀있던 사람들이 네이아
쪽을 향해 걸어왔다.
하지만 그 발이 일정거리에서 우뚝 멈추었다.
아마도 마도왕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조금 더 지나고부터 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도왕
이 가면이나 무언가를 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걸어오는 백성들 속에서 한 사람의 남자가 달려왔다.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온 남자는 네이아 일행의 발치에 눕
혀진 소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무너져 내렸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소년의 뺨을 쓰다듬고, 거기에 생명이 깃들지 않
은 것을 확인하고,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
다.
틀림없이 아버지일 것이다.
네이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년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는 아버지에게 마도왕이 조용
히 말을 걸었다.
"그 아이를 죽인 건 나다."
네이아는 움찔하고 마도왕을 보았다. 그런 이야기를 지금
해야했을까.
하지만, 그렇게나 총명한 마도왕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런 말을 갑자기 꺼낼리가 없었다.
"왜, 왜 죽였어!"
올려다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증오의 불꽃이 깃들어있었다.
그에 반해-
마도왕에게서는 비웃음소리가 났다.
"당연히, 너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뭐, 뭐라고!"
한순간이나마 아버지의 눈에 공포의 빛이 어렸다. 마도왕
의 얼굴이 결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듯이 좌우를 둘러본 아버지의
눈이, 네이아에게 꽂혔다.
하지만, 네이아가 무엇을 말하기 전에 먼저, 마도왕이 질
문을 했다.
"그럼 들려주지 않겠나. 너는 어째서 자신의 아이를 지키
지 않았지? 이 아이는 인질로서 우리들의 앞에 끌려나왔
다."
"지켰어! 하지만 빼앗겼다! 놈들은 나보다 강해서 어쩔
방법이 없었어!"
다시 마도왕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럼 하나 더 묻지. 왜 너는 살아있느냐?"
아버지가 말을 잃었다.
"어째서, 아이를 지키다 죽지 않았나, 그렇게 묻고 있는
거다. 모든 목숨의 가치는 동일하지 않다. 이 아이의 목숨
에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은, 아까의 태도를 보아 너
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네가 죽을 각오로 지키지 않
았지?"
백성들이 멀리서 이 쪽을 살피고 있었다.
느껴지는 것은 불안과 공포, 그리고 아이의 목숨을 빼앗
은 마도왕에 대한 분노일까.
"무, 무슨 말을..."
"네가 지키지 않았던 거다. 그걸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
리지 마라. 약한 네가 잘못이다. 그리고 하나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네가 너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
했던 바포르크보다도 강하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네 불
쌍함을 봐서, 어느 정도의 폭언은 용서하겠지만, 한도를 넘
으면 너를 죽이겠다."
뼈로 된 검지손가락을 뻗어, 아버지의 얼굴을 가리켰다.
"다, 당신이 강하니까- 강하니까 그런 소릴 할 수 있는 거
잖아! 모두가 그렇게 강한 건 아니라고!"
"그 말이 맞다. 나는 강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
지. 그리고 너희들이 약자라면-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
나? 약자가 강자에게 빼앗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다."
마도왕의 시선이 주변에 있는 백성들로 이동했다.
"너희들도 저기에서 경험해왔지 않은가? 바포르크라는 강
자에 의해서 말이지."
"강하면 무슨 짓을 해도 되는거냐!"
"그렇다. 강하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그것이 이 세
계의 법칙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도 적용되지. 나 역시
나보다 강한 상대의 앞에서는 빼앗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원하는 거지."
네이아는 마도왕이 얄다바오트의 메이드를 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분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나라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힘을 원하고 있는 거야. 역시... 힘이 중요한
건가...)
"뭐, 그렇기 때문에 약자인 너희들은 강자일 터인 이 성왕
국이라는 나라의 비호하에 있었겠지만... 가엾구나. 그런 약
자의 비호하에 있는 것이. 만약 나- 마도국이라는 나라의
비호하에 있었다면 이런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전력으로 백성을 지키고, 바포르크들을 물리
쳤을테니까."
주위에 있는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도왕의 의견은 냉철하고 잔인했지만, 이 세계의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 의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도왕에 대한 공포라는
감정이 그것을 막고 있었다.
"이, 이 녀석은 언데드 아니냐! 왜 언데드 따위가 이런 곳
에 있는 거야!?"
마도왕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아버지가
네이아에게 창끝을 돌렸다.
하지만, 네이아가 뭔가 대답하는 것보다, 역시 마도왕이
빨랐다.
"뻔하지. 너희들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실
제로, 너희들은 그 언데드 따위의 도움을 받은 거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희들끼리 나라를 구해보는 것이
어떠냐?"
그 선언에 남자의 눈이 네이아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
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나라의 사람들끼리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릴 수 있
다면, 마도왕은 여기에는 없었을테니까.
남자가 겁을 먹은 것처럼 소년의 시체를 안아올리고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달려간 방향에 있던 백성들
의 얼굴에 공포의 기색이 어렸다.
그 남자의 등을 향해 말한 것인가, 아니면 혼잣말이었는
가는 알 수 없지만 마도왕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네이아에게
는 들렸다.
"나도 약하면 빼앗기는 입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추구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과 같은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고 마음 속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되겠어."
3.

첫번째의 포로 수용소를 공격하고, 잡혀있던 사람들을 구


해낸 해방군은, 다음날에는 다음 포로 수용소로 향했다.
이것은 감정적인 결단이 아니라, 좀 더 절박한 몇 가지 이
유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실했던 것은, 당초에
염려했던 것 이상으로 포로 수용소에 비축되어있던 식량이
적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아인들이 포로에게 충분한 식량을 주지 않았던
사실과, 규정일수마다 아인들이 부근에 있는 소도시에서 식
량을 옮겨오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이 소도시에서 식량을 옮겨오는 아인들이 포로 수용소에
어떤 이상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하는 감찰단으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는 듯했다.
설령, 그 아인들을 전원 죽여서 식량을 강탈했다고 해도,
아인들이 그 소도시에 귀환하지 않으면, 이 포로 수용소에
서 트러블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것이 틀림없었다.
당연히 얄다바오트도 그 사실을 즉시 알게 될 것이다. 그
렇게 되면, 네이아 일행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대군을 보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마도왕의 뒤에 서서, 회의에 참가한-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지만- 네이아의 발이 아파질 정도의 말다툼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온 제안은 두 가지.
하나는 수용소를 하나 해방한다는 전과를 가지고, 남쪽으
로 피난해서, 거기에 있을 군대와 합류하는 것.
다른 하나가 선수를 쳐서, 소도시로 가서 거기를 점령하
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의 상반되는 의견은 모두 여러가지 문제를 품
고 있었지만, 성기사단 단장 레메디오스의 포효에 의해 후
자의 의견이 채용되게 되었다.
레메디오스가 소도시를 강습하는 것을 선택한 것에는 극
비의 이유가 있었다.
아인들로부터 정보를 알아낸 결과- 당연히 그 후, 모조리
죽여버렸다- 앞으로 가는 도시에 왕족의 피를 이은 자로 보
이는 인물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에 도달했다.
만약 정말로 왕족이라면 사태는 호전될 가능성이 높았다.
왕족이 아니라도, 나름대로 높은 지위나 연고를 가진 대귀
족이라면 만만세였다. 구출해주었다는 은혜를 방패로, 남쪽
의 군대에 압력을 가해달라고 하거나, 지원을 요구하는 등
의 일이 가능하게 된다.
단 네이아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폐하, 정말로 왕족, 혹은 유력귀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
까?"
옆에서 말에 탄 마도왕에게 물었다.
네이아가 말에 타는 것이 허락되는 이유는 마도왕을 따라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종자라는 낮은 지위에
있는 네이아의 말 같은 것은, 가장 먼저 빼앗아서 짐을 끄
는 말로 삼았을 것이다.
"함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에 상응하는 수준의 병력이 수비를 할 것이고, 상황에 따라
서는 악마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부분은 카스트디오 단장
이하 모두 알고 있는 듯했지. 그래도, 이 일전에 각오를 다
지고 임하는 걸거다. 때로는 도박에 나서는 일도 필요하니
까 말이다."
남쪽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아사자
가 나오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면 해방군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네이아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전방에 목적지인 소도시가 보였다.
최후미에서 말을 타고 있던 네이아는, 자신의 앞을 걸어
가는 민병들을 보았다.
그들은 지난번 포로 수용소에서 구출된 성왕국의 백성들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는 그들이 무
기를 쥐고 행군하고 있는 것은, 소도시에 있는 아인들의 숫
자는 지난번의 포로 수용소보다도 많다고 추측되었기 때문
이다.
상정 이상으로 쇠약해진 자들이 많았고, 병사로서는 기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동
원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아 정도의 기술로는 이 정도의 군대를 아인 정찰부대
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우선
해서 서둘렀다.
그 결과, 백성들의 피로는 더욱 심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덮개가 달리지 않은 짐마차에 태운 어른의 숫자는 늘어갔다.
덜컹덜컹 기분나쁠 정도로 흔들리는 짐마차에서도 자고 있
을 정도니, 어지간히 피로가 쌓여있는 듯했다. 대신 아이라
도 건강한 이는 걷게 했다.
신관들은 이렇게까지 걷는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때때로 부럽다는 듯이 짐마차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도 도착하면 당장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될텐데, 정말 괜찮은걸까)
도중에 있었던 작전회의에서, 도착 후, 즉시 도시 공략전
에 들어간다는 것이 결정되었다. 시간도 식량도 여유가 없
기 때문이었다.
밝은 시간대에 적이 기다리고 있는 시벽(市壁)의 안쪽으
로 공격해들어간다는 것은 위험하긴 했다.
적에게 접근하는 것은 밤이 더 나았지만, 밤눈이 좋지 않
은 인간에게는 불리했다. 특히 징병되었을 때만 전투훈련을
받았던 평민들에게 있어서는 밤의 전투는 위험성이 높았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대낮부터 공격하는 계획이 확립되었
다.
전방에서 전열을 가다듬어갔다. 최전선은 성기사들이었고,
그 뒤에 수용소의 집을 부수어 만든 나무벽을 든 평민. 가
장 뒤쪽이 신관들이었다.
작전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천사들이 시벽의 병력을 막
고 있는 사이에, 성기사들이 문을 부순다는 힘에 맡긴 전술
이었다. 평민들의 역할은 숫자를 맞추는 것으로, 병력이 이
만큼이나 있다, 하고 적을 압박하는 부분이 컸다. 그 때문
에, 평민들에게는 전투를 피하도록,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여럿이서 하나를 상대하도록, 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럼, 실력을 볼까."
마도왕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관전자인 마도왕은 전투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런 공성전이야말로 힘을 빌려주었으면 했지만, 회의에
서 그것을 입에 올린 사람은 없었다. 요청하는 것 같은 시
선을 느끼긴 했겠지만, 굳이 무시했을 마도왕은 현재, 최후
방에 있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소도시라고 해도 이 부근에서는 가장 커다란 도시였기 때
문에, 강철로 보강된 격자에 투석구, 벽의 재질은 나무가
아니라 돌이었고, 마을에서 만들어진 수용소보다는 잘 만들
어진 시벽과 문을 가지고 있었다. 단 이 도시의 인구는 1만
을 넘지 않기 때문에, 견고하다고 평할 정도로 높지도 두텁
지도 않았다.
공격하는 측에게 있어서는 성가시고, 수비하는 측에 있어
서는 불안하다, 는 평가가 어울릴까.
레메디오스를 선두로 성기사들이 돌격했고, 시벽의 위에
있는 아인들에게 천사들이 덤벼들었다.
다만- 천사들 가운데 아인의 공격을 받고,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져가는 것들이 조금씩 보였다.
아인들은 지난번 포로 수용소에서 본 것과는 같은 바포르
크였지만, 역시 도시를 지키고 있는만큼 쉽게 볼 수 없는
강병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도 눈에 띄는 것은 시벽 위에 있는- 흉벽에 가려
잘 안 보였지만- 훌륭한 창을 든 바포르크였다. 그 녀석이
많은 천사들을 쓰러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바포르크가 포효를 질렀다.
아마도 뭔가 특수능력이겠지만, 천사나 아래에서 문을 부
수려고 하는 성기사들에게 그 영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범
위가 좁은 것인가, 아니면 아군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인가
는 불명이었다. 하지만 뭔가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은 기억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문에서 양측이 격렬하게 격돌하
고 있었다.
격자 너머- 도시 내부-에서 바포르크들의 창이 찔러져나
왔지만, 앞에 나선, 아래쪽에 긴 스파이크가 달린 방패를
든 성기사들이 그것을 막아내고, 파성추를 가진 성기사들을
향한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거기에 레메디오스에 이르러
서는 튀어나온 창을 베어내고 있을 정도였다.
투석구에서 끓는 물이 쏟아졌고, 김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런 공격이 있을 거라고 상정하고 <프로텍션 에너지 필드
(화속성 방어)>가 이미 걸려있었기 때문에, 찬물을 부은 것
과 마찬가지로, 성기사들은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겨울이었기 때문에, 끓는 물의 온도가 떨어
지면 아주 귀찮아지겠지만, 지금은 아직 문제없었다.
끓는 물 대신 끓는 기름을 사용했다면, 검을 든 손이 미끄
러지겠지만, 아인들에게 기름은 귀중한 것인지, 그런 준비
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전진해간 백성들이 수용소에서 가지고 온 나무벽
을 내려, 방패로 삼았다. 원래대로라면 금속 종류가 더 좋
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장비를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짜낸 고육지책이었다. 부실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벽의 뒤에 숨은 민병들이 투석용 끈을
감기 시작했다. 목표는 천사들과 싸우고 있는 아인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날린 돌이
천사들에게 맞는 경우도 많았다.
아군에게 공격을 하게 되는 셈이었지만, 천사들은 마법이
걸리지 않은 공격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
는 없었다. 물론, 대미지를 경감시킬 수 있는 것뿐이고, 모
두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민병들이 날린 돌이
그리 큰 대미지를 주는 일은 없었다. 돌을 얻어맞는 아인들
쪽이 대미지가 더 크다는 말이었다.
천사가 쓰러질 때마다 신관들이 새로운 천사를 소환해서,
전선에 투입했다. 숫자는 적었지만, 피로도 손상도 없는 새
로운 천사가 계속 추가되는 것에 의해, 아인들의 저항이 약
해지는 것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흠. 상대가 방어마법을 걸고 있는 것을 전제로, 차가운
물을 붓는 편이 유효한가. 겨울의 냉기로 단숨에 체온이 떨
어질테니 말이야. ...보통은 불꽃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고."
전장을 보고 있는 마도왕은 담담하게 분석을 하고 있는지
중얼중얼 말하고 있었다.
뭐라 답할지 곤란한 말이었다. 아무래도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부상자가 나오는 전투 한가운데에서, 그렇군요,
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바라하 양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겠느냐?
내가 준 활이라면, 나름대로 결과를 낼 수 있을텐데?"
네이아는 마도왕의 곁에 서서, 그 몸을 방패로 삼는 것이
역할이었다. 그러니 전투에 참가하도록 명령을 받지는 않았
다.
다만,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마도왕은 활을 쓰게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빌린 무기를 쓰길 바라는 건가? 여기에서 조준해도 되겠
지만, 빌리고 있는 무기의 첫 일격이 빗나가는 건...)
망설이던 네이아가 대답하려고 한 순간, 문에서 큰 목소
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격자가 찌그러진 모양이었다.
목소리의 정체는, 성기사들측에서는 환성, 아인들측에서
는 초조함의 비명일까.
문이 파괴되면 성기사들이 쏟아져들어갈 것이다.
레메디오스의 묘기를 보고, 동요하고 있는 바포르크들의
초조함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성기사단이 웅성이는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네이아의 날카로운 시력이, 문에 쇄도하고 있는 성기사들
의 좁은 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잡아냈다.
그 때와 같은 광경이었다.
그 때의 아이보다도 더욱 작은 아이를 잡은 바포르크가,
문 너머에서 성기사들에게 무언가를 명령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말하는 내용은 상
상할 수 있었다.
성기사들이 뒤로 물러나고, 그 중에서도 레메디오스와 구
스타보가 선두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신관들에게 [천사들을
후퇴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놈들은 아이를 죽일 생각이다]
라고 명령했다.
"또 저러는군. 여기에선 얘기를 듣기 어렵겠어. 저기까지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 어떠냐?"
"제게 의견을 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도왕 폐하."
마도왕과 함께 네이아는, 약간 떨어진 곳- 문과 마도왕의
중간지점- 에 있는 민병들로부터 불안한 시선이 모이는 가
운데 토론하고 있는 레메디오스의 곁으로 갔다.
"역시 놈들과 교섭해야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레메디오스였고, 투구를 벗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은 그 이외의 사람들이었다. 지난
포로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때문에, 찬동
따위를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고 얼굴에 써있었다.
마도왕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든 구출해야한다고 말하는 레메디오스에 반
해, 남은 사람들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어떻게든 설득하
려는 참인 듯했다.
구체적인 방책이 나오지 않는 무의미한 의견의 응수가 있
었고, 몇 사람이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데, 이윽고 구스타보
가 눈에 힘을 주고 [단장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나 계속 의논했지 않습니까! 시간이 있어도, 아무
리 생각해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구할 수 없었
습니다!"
구스타보의 말을 들은 네이아는, 작전회의를 하고 있던
천막에서 마도왕이 떠난 후에도 단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회
의를 계속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성기사들
로서는 피를 흘리지 않고 극복할 수 없다는 것도.
레메디오스는 입술을 깨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
지만-
"단장님! 이제 희생없이 전투에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합
니다! 하나를 버려서, 다수를 구해야합니다!"
그 말에 레메디오스의 눈동자에 홍련의 불꽃이 깃든 것을
네이아는 보았다.
"-그런 건 성왕녀 폐하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는 성왕녀
폐하의 검이야! 이 나라의 모든 백성이 평안하게 살 수 있
기를 바라는 성왕녀님의!"
"하지만 성왕녀님은..."
돌아가셨다, 고 계속해서 말할 것 같은 구스타보보다도
먼저 레메디오스가 외쳤다.
"다음 성왕님은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검을 바친 성왕녀님의 뜻을 지켜나가야되지 않나! 충성을
맹세했으면서 그것을 깨뜨리면 어쩐단 말이야!"
아아, 그런건가 하고 네이아는 납득했다.
레메디오스는 구속되어있는 것이다. 충성을 바친 대상의
바람에.
백성을 사랑한 성왕녀를 모시는 기사단이, 백성을 버리는
행동을 취할 수는 없다고.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다음에 그녀가 충성을 바칠
인물뿐일 것이다.
"내 말이 틀렸나! 너희들은 무엇에 검을 바쳤나! 무슨 의
식을 거쳐, 성기사로서 인정받았냔 말이다! 이 기사단은 누
구를 모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종자 계급이 될 때는, 성왕을 배알하고, 그 검을 바치는
의식을 행한다. 마찬가지로 성기사는 성왕이 바뀔 때마다
배알하고, 당대의 성왕에게 검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한다.
그 때문에 이 성기사단에 소속되어있는 모두가, 성왕녀에게
검을 바쳤다.
[아니면 뭐냐?] 음색이 변했다. 열기가 단숨에 식고, 얼
어붙을 것 같은 냉기가 깃든 목소리로. [나약한 백성의 행
복을, 아무도 울지 않는 나라를, 그것을 바라는 성왕녀님의
바람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바꿀
필요는 있습니다."
"누가, 말이지? 누가 바꾸냐고! 그리고 대답 좀 해봐. 누
구 한 사람 죽지 않게 하는 것 이상의 정의가 존재한다는
말이냐!?"
구스타보가 입을 다물었다.
네이아는 아까 했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충성을 바친 성왕녀의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
었다.
레메디오스는 정의로운 일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고, 험난하더라도, 다른 길로 새
지말고 그저 한결같이 나아가라고.
대를 구하기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생각과, 소와 대 모두
를 구하고 싶다는 생각, 어느 쪽이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말할 것도 없었다.
후자이다, 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은 너무나도
이상에 가까워서, 평범한 사람이라면 곧 포기할 것이다.그
것을 이해하면서도 레메디오스는 모든 것을 구해야한다, 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포기했을 이상을 좇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성기사단의 단장이며, 최고위의
성기사일 수 있을 것이다.
레메디오스 한 사람만이 고고한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이야말로 불쌍한 존재였던 것이다.
같은 것을 생각한 것인지, 성기사 몇 사람이 수치심에 고
개를 숙였다.
하나를 버리고, 천을 구하는 마도왕의 정의는 왕으로서의
정의이고, 하나도 천도 구하고 싶다는 레메디오스의 정의는
이상적인- 빛나는 정의일 것이다.
모두가 정의였다. 잘못되지 않았다. 그래도-
(-힘이 없으면 정의로서 성립할 수 없어?)
가령 레메디오스에게 좀 더 강대한- 네이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신과도 같은 힘이 있다면, 인질이 된 아이를 구
하면서, 그리고 도시의 백성들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 죽지 않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여
기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정의를 행하려면 힘이 필요해. 아아, 힘이 갖고 싶어...
그러면 얄다바오트에게 이 나라가 더럽혀지는 일도...)
"...의견이 부딪히고 있는 도중에 미안하오만, 이대로는
결론이 나오지 않겠군."
아주 냉정한 목소리에, 그 자리의 열기가 흩어져갔다.
"마도왕 폐하..."
"카스트디오 단장. 이대로 두면 지난번처럼 상대에게 인
질은 효과적이라고 알리는 꼴이오. 나로서는 누구 한 사람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저 도시를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생각하오만?"
"그렇지 않다. 사실은 좀 더 굉장한 방법이 있을거야. 누
구 한 사람 죽지 않고, 슬퍼할 일이 없는 방법이!"
피맺히는 듯한 목소리에, 마도왕은 덤덤하게 말했다.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소만... 시간을 너무 낭비했소. 이
대로는 그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 거요."
레메디오스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입술에 약간 피가 배
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단장님. 저 아이는 희생당해 주어야겠습니다."
"그건-!!"
"흠. 뒷일은 내가 맡지. 시간이 경과해버린 이상, 지금부
터 자네들이 결사의 각오로 공격한다고 해도, 이제 큰 희생
이 따를걸세."
[괜찮으신 겁니까!] 무심코 입을 열어버린 것은 네이아였
다. [폐하의 마력은 얄다바오트와의 싸움을 위해서 온존해
둔 것. 그것을 사용한다면 얄다바오트와 싸울 때 불리하신
것이 아닌지!?]
"그 말이 맞다, 바라하 양. 하지만 많은 백성을 구하기 위
해서는 어쩔 수 없겠지. ...희생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너희들이 하는 것보다는 희생이 줄어들 거다. 어떻소? 내게
맡기겠소?"
"희생은... 나온단 말인가..."
"유감이지만 말이오, 카스트디오 단장."
고개를 떨군 레메디오스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걸어나
갔다. 도시 쪽- 불안한 듯이 지켜보는 민병들에게.
"실례했습니다, 마도왕 폐하. 단장을 대신해서, 저, 구스
타보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시시한 질문이네만, 자네들은 감사해주겠는가?"
마도왕의 질문에 다들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동의했다.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걸까, 하는 불
안감이 조금 섞여있던 것을 네이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런가, 그럼 나 혼자서 도시를 제압하겠네. 자네들은 도
망치는 자를 발견하면 죽이건, 포로로 삼건 해주게. 개인적
으로는 자세한 정보가 듣고 싶으니, 포로로 해주면 고맙겠
군. 그리고 언데드를 사용하겠지만, 그리 흥분하지는 말아
주게."
그 말을 남기고 대답도 듣지 않고 마도왕은 문을 향해 걸
어나갔다.
"<그레이터 매직 실(상위 마법봉인)>, <매스 홀드 스피시
스(집단 전종족 포박)>."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마도왕이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두 개 정도 외운 다음, 살짝 손을 흔들자, 흔들리는 것 같
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숫자는 열.
언데드 특유의, 생명이 있는 자는 받아들이기 힘든 기척
을 내뿜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반투명한
존재.
레이스(사령)였다. 그 모습은 보는 자의 종족과 같다고,
몬스터 강습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 명 정도의
그림자가 뒤섞인 것 같은 괴이한 외견이라는 점이, 강습의
내용과 달랐다.
"하이레이스(상위사령)들이여."
계속 걷는 마도왕을 따르는, 여럿 존재하는 이형의 그림
자. 그 발치에 있는 풀이 파스슥 시들어갔다. 겨울이기 때
문에 원래 갈색을 띠고 있긴 했지만, 급속하게 수분을 잃어
퍼석퍼석해져갔다.
"가서 내 지시를 기다려라."
중력을 느낄 수 없는 움직임으로, 언데드들이 조금도 흐
트러짐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작 몇 초만에 푸른 하늘
에 언데드들은 녹아들어, 네이아는 자신의 눈으로도 잡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환된 언데드들에게 자세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되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나 완벽한 작전을 세우는 마도왕에
게 빈틈 따위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저, 저건..."
"하이레이스다. 실체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벽 등을 지
나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지. ...물론, 무한히 지나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만... 그런 것을 묻고 싶은 것이 아니겠지?
뭐, 도시 공략을 위한 포석 가운데 하나란다. 그럼 바라하
양은 여기에서-"
"-모시겠습니다."
"흠... 그렇다면 이 아이템을 목에 걸거라."
"이, 이건?"
마도왕이 품 속에서, 커다란 카넬리마노(紅玉髓 - 홍옥수
- 수는 골수의 수)를 중심으로, 그 주변을 오망성이 둘러싼
목걸이를 꺼냈다.
"공포에 대한 완전한 내성을 부여하는 아이템이다. 하이
레이스는 공포를 흩뿌리고 다니는 힘을 가지고 있지. ...하
나만 말해두겠다만, 대혼란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공포에
지배당해, 덤벼드는 자들은 때로 무서운 힘을 발휘하지. 나
도 완전히는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따라오-"
"-모시겠습니다."
"으, 음. 그, 그러냐. 알았다."
네이아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건 그렇고... 이런이런,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전쟁이
다. 누구 한 사람 죽지 않는 전투가 있을리가 없지."
마도왕의 농담스러운 말에 네이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레메디오스가 말하던 것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마
도왕이 그 이야기의 의도를 읽지 못할리가 없으니, 아마도
마도왕 나름의 조크인 듯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도왕 폐하는 농담의 센스는 별로, 인 것 같아)
마도왕의 유일한 약점일지도 모른다, 라고 네이아가 생각
하고 있는 사이에, 문 부근에 도착했다.
"물러나게, 성기사들이여. 이제부터는 내가 이 도시를 공
격하겠네. 자네들은 뒤로. ...그렇군, 저기쯤까지 물러나주
겠나?"
마도왕이 손짓으로 최후미의 성기사에게 지시를 내렸고,
아무도 없는 들판을 걷는 것처럼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빨리 물러나라! 이제, 이 꼬마놈을-"
이윽고 마도왕과 아이를 인질로 잡은 바포르크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인의 표정을 판별하는 것은 아주 어려웠지만, 아무래도
놀란 것 같았다. 인질을 잡은 바포르크의 주변에 있는 아인
들도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네이아도 마도왕이 갑자
기 모습을 드러내면 놀랄 것이다.
"...어, 언데드?"
그 목소리를 계기로, 아인들 사이를 잔물결처럼 [언데드]
라는 말이 계속 전달되었다.
"그 말이 맞다. 아, 더 리빙이라고 했던가? 옛날, 한 번
배운게 끝이었으니까, 자신은 없다만."
[뭐, 뭐? 왜, 네가? 정말로... 아니, 인간?] 네이아에게
힐끗 시선이 이동했다. [너! 언데드를 사역하고 있는거냐?
역겨운 놈들!]
나는 네크로맨서(사령술사)가 아니다, 라거나, 마도왕께
실례다, 라거나, 여러가지로 생각하는 바는 있었지만, 네이
아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혼란에 빠져있는 와중에 미안하다만-"
"-물러나라, 언데드! 이 꼬마놈을 죽이겠다!"
소년의 목을 바포르크가 세게 쥐었다.
소년의 살았으면서도 죽은 것 같은 얼굴에 생기는 없었다.
멍한 눈동자에 언데드인 마도왕이 비치는 모양이었지만, 전
혀 반응을 보일 기색은 없었다. 그래도 목을 졸려 큭 하고
작게 호흡했다.
"흐하하! 언데드인 내게 산 자를 인질로 잡는단 말이냐!?
이거, 이거."
바포르크가 눈을 크게 떴다. 조금 기분나쁜 표정이다, 라
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네이아에게 있는 것은,
마도왕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뒤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그 언데드를 뒤로 물러나게 해라!"
(내가 사역하고 있는게 아닌데...)
"흠. 그럼 시작할까?"
"뭐? 물러나! 물러나라고!"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바포르크가 인질을 잡은채로, 뒤
로 한 걸음 후퇴했다.
자세히보니 그 외에도 인질로서 데려온 것인지,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본보기로 인질을 죽이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산 자에 적대하는 존재인 언데드에게,
생명이 있는 자가 인질로서 유효한가, 그들조차도 의문이라
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네이아는 칠흑의 바람이 불어온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 순간, 바포르크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원래 마도왕이
출현하고부터 전원의 시선이, 약간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
려고 집중되어 있엇지만, 극도의 변화가 있었다. 눈도 입도
크게 벌린채로, 얼굴이 몹시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것은
바포르크들만이 아니었다. 살겠다는 의지를 일절 보이지 않
았던 아이조차도 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아인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인간의 표정이라면 네이
아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보인 것은 공포.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공포.
"키야아아아아아!"
바포르크들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고-
"-흠. 해방. <매스 홀드 스피시스(집단 전종족 포박)>."
떠오른 마법진에 더해, 뭔가 마법이 마도왕에게서 날아갔
다. 그러자 단숨에 다수의 아인들, 그리고 인질로 잡힌 아
이들이 표정을 일그러뜨린 상태로, 마치 끔찍한 조각상이라
도 된 것처럼 움직임이 멈추었다. 하지만, 죽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조용한 호흡소리- 그것도 상당히 흐트러진 소
리가 들렸다.
그리고 위쪽- 시벽의 부근에서도 다수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일제히 털썩, 털썩하고 살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
가 네이아의 뒤쪽에서 들렸다.
"그럼, 가자꾸나."
소리에 한순간이나마 신경이 쏠리면서도, 앞을 보니 격자
가-
"<상위도구파괴>."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그것은 박살이 나서 잘게 부서진
격자가, 비처럼 쏟아지는 소리였다.
"...역시 건조물은 이걸로 파괴하면 마력의 소비량이 크구
나. ...저기까지는 아무래도 손을 쓸 수가 없었고... 소는 대
를 겸한다는 걸로 납득하는 수밖에 없나. 대는 소를 겸할
수가 없으니까."
(역자 주 - 대는 소를 겸한다. 큰 것이면 작은 것 대신으
로 쓸 수 있다는 속담인데... 모몬가는 반대로 기억하고 있
는 것 같습니다. 혹은 원래 속담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중얼주얼 혼잣말을 하면서 마도왕은, 작은 산처럼 쌓인
격자의 파편을 뛰어넘어, 막아설 사람이 없는 문을 지났다.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의 변화에 네이아는 혼란에 빠져 움
직일 수 없었다. 냉정함이 돌아오자 살짝 웃음까지 짓고 말
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찌그러뜨린 문이, 마도왕에 손에 걸리면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강자란 치사해)
마도왕을 쫓아 가볍게 뛰었다. 그는 경직된 바포르크들의
앞에서 네이아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 자들은] 마도왕이 손짓으로 굳어버린 아인들이
나 잡혀있던 아이를 가리켰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움
직임을 멈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있는 자들을 한
명씩 포박이라도 해다오]
"그럼 성기사들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지만, 나는 지금, 공포를 불러일으
키는 오라를 뿜고 있다. 범위 내에 들어온 자는 모두 공포
에 지배당하지. 그 때문에 대항수단을 준비하도록 해다오.
신관이라면 <라이온 하트(사자와도 같은 마음)>이 있지만,
성기사라면, <언더 디바인 플래그(신의 깃발 아래에)>였던
가?"
"잘 알고 계시군요..."
마도왕은 작은 웃음소리를 내면서, 바포르크들의 사이를
걸어갔다. 그 때-
"그오오오!"
포효소리와 함께, 위에서 창을 든 그 강자 바포르크가 턱
뛰어내렸다. 시벽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다.
눈을 새빨갛게 물들고, 입가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광기에 붙들린 것 같았다.
"과연. 흉전사화... 아니, 광란인가. 그거라면 확실히 공포
같은 정신작용- 이런."
찔러오는 창을 마도왕은 훌륭한 동작으로 회피했다. 훈련
을 받고 있는 자 특유의 낭비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마
도왕이 회피한 것에 의해 조각상이 되어있던 바포르크 하나
가 아군의 창에 맞아, 관통당했다. 붉은 피를 뿌리면서, 바
포르크는 결국 쓰러졌다.
광란의 바포르크에게는 아군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
게되는 모양이었다.
"이런이런."
바포르크가 창을 들어올렸다. 옆으로 휘두를까. 그렇게
되면 모처럼 마도왕이 구한 아이도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네이아는 초조해져서, 활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활
을 쏠 수는 없었다.
마치 사선을 막듯이 마도왕이 전진해서 바포르크에게 접
근한 것이다.
확실히 창의 길이를 감안하면 거리를 좁히는 것은 정답이
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도왕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난 것
이었다.
빠른 동작으로 바포르크의 머리를 좌우에서 누른 것이다.
마도왕의 완력이 어지간히 강한 것인지, 날뛰어도 바포르
크는 마도왕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포기한 바포르
크는 대신 창을 짧게 고쳐쥐고, 마도왕을 찔렀다. 아니 네
이아에게는 찌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도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어마법으로 막은
것일까.
"넌 그 트롤과는 다르니 말이다."
파샥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바포르크의 두 눈이 튀
어나왔다.
치명상인 것은 일목요연했다. 아니, 그런 모습으로 치명
상이 아닌 편이 더 불쌍했다.
마도왕이 손을 놓자, 그대로 바포르크는 대지를 굴렀다.
두 팔다리가 버둥대며 날뛰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의지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무, 무엇을 하신 겁니까?"
뒤에서 머뭇머뭇 물어보자, 두 손을 붕붕 흔들고 있던 마
도왕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두개골을 부쉈다. 광란하고 있다면 치명상을 주더라도,
쓰러지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뇌를 파괴당
하면 어쩔 방법이 없는 모양이군. ...그건 그렇고 무르더구
나. 알껍질보다는 조금 단단한 정도- 농담이었다."
네이아는 경직된 얼굴로 웃었다.
(역시 이 분에게 농담의 센스는 없어...)
"그럼, 바라하 양. 성기사들을 불러다오. 그들이 이 자리
를 확보하면, 나- 우리들은 앞으로 가지."
"옛!"
네이아가 전력으로 성기사들의 곁으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와보니, 바포르크들이 몇 성기사들의 발치에 쓰러져 있었
다. 문을 지나갈 수 있었을리가 없기 때문에, 아마도 시벽
에 있던 바포르크가 공포의 근원인 마도왕으로부터 도망치
기 위해, 뛰어내린 결과일 것이다.
네이아는 성기사들 곁으로 도착한 다음, 마도왕의 지시를
시급히 전달했다. 그 다음 다시 전력으로 달려 마도왕의 곁
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네이아가 돌아와보니 마도왕은 [그럼 가자꾸나]하
고 거리를 걸어갔다.
어째서, 문을 돌파했는데도 또다른 바포르크들이 나타나
지 않는가 하는 의문은 금세 풀렸다.
네이아의 귀는 다수의 비명을 잡아냈다. 마치 도시라는
무기물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이건..."
"아까 보낸 언데드들에게 공포를 뿌리고 다니도록 지시한
결과지. 혼란 속에서 어쩌면 인질이 짓밟힐 가능성은 있지
만... 불행한 사고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군."
둘러보니 필사적인- 아마도- 표정으로 이 쪽을 향해 달려
오는 바포르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쫓기는 작은 동물 같은,
가여움조차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어지간히 심한 공포에 노출되어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다
면, 저 언데드보다도 강한 존재에게 접근할 수 있을리가 없
었다.
"흠... 인간의 모습은 안 보이나? 그렇다면- <맥시마이즈
와이든 매직 파이어볼(마법 최강효과 범위확대화 화구)>."
마도왕의 손에서 발사된 불덩이가 바포르크들의 사이에
착탄해서, 한순간 거대한 불꽃의 폭발을 만들어냈다. 그것
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인들의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편이 가장 좋을지도 모르지만...
적의 수괴가 있는 모양이다. 이 도시의 중앙 부근에 있는
광장에 진을 치고, 하이레이스의 공포에 견디고 있는 모양
이라, 앞으로 가고 싶다만... 어떠냐?"
"마도왕 폐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그런가. 그럼 갈까."
걸어가보니 영혼이 얼어붙을 것 같은 비명이 여기저기에
서 들려와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
인들은 위생면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여기저기에 음식물
쓰레기나 분뇨 투성이여서, 네이아는 무심코 얼굴을 찌푸렸
다.
"...그런데 바라하 양, 저건 어떻게 할까?"
마도왕이 가리킨 방향에 시선을 돌려보자, 거기에는 알몸
이 된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
남자도 여자도 상관없이, 그들의 손은 나무에 꽂혀있었다.
공포로부터 달아나기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
는지, 두 팔은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아마도, 인간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드려고 했던 듯했다.
그들은 피로 때문인지 늘어져 있었고, 마르기는 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가는 위험은 없다고 판단되었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이 도시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도왕을 따라가더라도 네이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구하고, 안전한 장소까지 피난시키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불안이 있었
다.
만약 피난하고 있는 와중에 아인들이 습격해오면 어떻게
해야할까.
(웃음이 나와. 뭘 고민하고 있는 걸까. 단장이었다면 망
설이지 않고 그들을 구하겠지. 그게 불가능하다면... 역시...
힘이...)
"망설이고 있는게로구나. 그렇다면, 그대로 두고 가면 된
다. 이 부근에는 아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방치해두는
편이 안전할 거야. 갈까."
"옛!"
약간 내키지 않았지만, 마도왕을 따라 네이아는 이 도시
의 광장을 향해 걸었다. 어째서, 마도왕은 망설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뭔가 마법
을 쓰고 있을 거라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이윽고 길이 교차하는 시장 같은 광장에 도달했다.
"흠... 역시 희생자 없이 끝낼 수는 없었나."
마도왕이 보는 방향에 시선을 돌려보니, 아인의 시체 사
이에 인간의 시체가 섞여있었다. 아마도 공포에 의한 혼란
이 발생했을 때, 짓밟힌 자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마도왕은 농담으로 말했지만, 이 도시를 우격다짐으로 공
격하면 그에 상응하는 피해가 나왔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
하면, 마도왕의 압도적인 힘에 의한 공략으로 희생자는 최
소한으로 억제된 것이다.
마도왕은 말을 하지 않고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 턱짓
으로 광장의 중앙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덩치가 한 층 더 큰 아인의 모습이 있었다.
뿔이 비틀린 산양 같았고, 그 몸의 털은 은색이었다. 훌륭
한 체격은, 얼핏 보기에도 보통 상대가 아닌 것 같은 분위
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뿔 끝에는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케이스 같은 것이 걸
려있었고, 거북이의 등껍질 같은 문양이 들어간 녹색의 브
레스트 플레이트를 착용. 동물의 모피를 가공한 것으로 보
이는 적갈색의 망토를 걸치고, 왼손에 알이 큰 황색 보석이
중앙에 박힌 라지실드, 오른손에 옅은 황색의 검신을 가진
바스타드 소드를 든 모습은, 위풍당당한 전사의 용감함을
체현하고 있었다.
아인들 중에서 가장 무서운, 훈련된 아인이었다. 그것도
아마도 왕 같은 특별한 지위에 있는 존재였다.
네이아 한 사람뿐이었다면 틀림없이 전력으로 달아나야할
상대.
"그럼, 어떤 아이템으로 공포를 억제한 건지 흥미롭군."
마도왕의 즐거워보이는 말은, 아인이 장비한 아이템에 더
해, 양쪽 손가락에 낀 반지나 목에서 가슴까지 완전히 뒤덮
는 것 같은 목의 장식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허
리의 좌우에 각각 차고 있는, 인간의 아기의 것 같은 두개
골을 세 개 연결한 것도 그럴지도 모른다.
아인은 라지 실드의 뒤에 몸의 절반을 숨기면서, 메두사
(뱀머리인간) 같은 것이 사용하는 응시공격을 경계하고 있
었다.
"제법 하는군. 이 도시를, 내 부족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다니... 모든 산 자의 적을 다루는, 지저분한 마법의
사용자여. 네 이름을 묻지."
바포르크가 검을 겨눈 것은 네이아였다.
"-아, 아니 잠깐 기다려주세요. 아니에요. 난 아니에요!"
"...뭐라고?"
도움을 청하듯이 마도왕을 보니, 가슴에 손을 얹고, 네이
아 쪽을 보고 있었다.
"잘도 알았구나. 그녀야말로, 나의 주인이다."
"아, 아니! 자,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마도왕 폐하!!"
이 사람은 무슨 소릴 하는 걸까. 정말로 이 사람은 농담하
는 센스가 없었다.
초조함에 버둥버둥 손을 움직인 네이아를 보고 마도왕이
웃었다.
"흠. 조금 기분이 풀렸나?"
"에?"
[그럼- 시시한 농담을 했군] 그야말로 왕에 어울리는 움
직임으로 망토를 펄럭이며, 마도왕이 아인에게 고개를 돌렸
다. [내가 너희들에게 언데드를 보낸 존재. 언데드의 왕, 이
곳에서 북동쪽에 있는 나라,마도국을 지배하는 아인즈 울
고운 마도왕이다. 네 이름은 뭐라 하느냐]
"내 이름은 바자. '호왕' 바자다. ...마도왕이여, 그럼 그
여자는 뭐냐?"
"내 종자다. 그래, 어쩌겠나? 죽고 싶나? 아니면 무릎을
꿇겠나.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게 해주지."
"왕의 이름을 걸고, 무릎을 꿇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바자가 방패를 앞으로 들고, 검을 옆으로 들었다. 몸은 천
천히 낮추고, 머리부터 돌격하는 산양과도 같은 자세였다.
"흠... 그럼 조금 놀아주지. -바라하 양은 보고 있거라. 그
런데 산양. 이것저것 마법의 아이템을 장비하고 있는 모양
이다만, 그 허리에 차고있는 것에서는 마력이 느껴지질 않
는구나. 뭔가 특별한 것인가?"
"후하하하. 패션이라는 거다, 뼈."
"흠... 내 부하가 떠오르는군."
이야기를 뒤에서 듣고 있는 네이아는, 그런 부하가 있는
건가, 하고 움찔했다.
"제법 좋은 형태 아니냐. 이 도시에서 고르고 고른 명품이
다."
"...과연. 이해가 가는군. 네 마음은 잘 안다. 패션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인 모양이라더군. 메이드들 때문에 그걸 자
주 절감하고 있다... 자, 그럼 시작하지. <크리에이트 그레
이터 아이템(상위도구창조)>."
마도왕이 마법을 사용하자 칠흑의 검이 손 안에서 나타났
다.
(어째서 마도왕 폐하께서는 무기를?)
마도왕은 마력계 매직 캐스터일 것이다. 그것도 일류의.
그렇다면 무기 같은 것은, 마력이 결핍된 다음의, 이제 어
떻게 할 도리가 없을 때에만 사용할 것이다. 무겁다는 이유
로 무기를 전혀 들고다니지 않는 자들조차 있는 것이 마력
계 매직 캐스터라는 것이다.
마도왕은 어떤 이유로 검으로 싸우기로 한 것일까.
(-여기에 올 때까지 마력을 대량으로 소비했기 때문인가?
그건 위험한게... 폐하는 얄다바오트와 싸우기 위해서 오신
건데...)
<파이어볼>을 여러번, 게다가 많은 적의 움직임을 막는
마법, 그리고- 다수의 언데드를 소환하는 마법 같은 것을
사용했으니, 마력이 상당히 줄어들었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 언데드를 소환하는 마법은 상당히 고위마법이겠지...)
하이레이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강한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레이스보다는 확실하게 강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한 존재를 다수 소환했다는 것은 상당한 힘을 소모했을
것이다.
보통, 신관 같은 이들이 소환하는 천사의 경우 하나의 마
법으로 하나를 소환하는 것이 기본. 약한 천사라면 여럿 소
환할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보자면 상당한 고위-
어쩌면 제6위계 마법 같은 있을 수 없는 힘을 행사한 것일
지도 모른다.
(...제6위계...)
네이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제6위계 마법 같은 것은 전인미답의 영역. 소문에 따르면
성왕녀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제4위계. 그보다 2단계 위였
다.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마도왕이라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만약, 제6위계의 마법을 써서 소환했다면, 굉장한 마력
을 사용한 것도 납득이 가.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마도왕
폐하께 협력하는 편이 좋은거 아닐까?)
네이아는 아인과 대치하는 마도왕의 등을 보았다. 마도왕
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아인은 아주 강해보여서, 네이아가
몇 명이 있더라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마도
왕은 왕에 어울리는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고, 승기가
없는 싸움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혹시 마도왕 폐하께선 마법검사 같은 마력계 매직 캐스
터신가?)
검술실력과 마법실력을 동시에 키우는 일에는 메리트와
디메리트가 있다. 메리트는 다채로운 전법을 취할 수 있다
는 점이고, 디메리트는 양쪽이 모두 어중간하게 되기 쉽다
는 점이었다.
그럼 마도왕은 어떨까.
두 사람은 서로를 살피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양측의 거리가 좁혀지고, 검을 부딪히기에 충분한 거리가
되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바자 쪽이었다.
"<방패 돌격>."
방패를 정면에 든 상태로 돌격. 그것을 마도왕은 정면에
서 검으로 막아냈다.
거구로 전력을 다한 돌진을 완전히 견뎌내는 것은 역시
무리였던 모양인지, 마도왕의 몸은 뒤로 크게 밀려났다. 아
니, 깔끔하게 두 발로 지면에 착지했으니 알기 힘들었지만,
날아가버렸던 듯했다.
바포르크의 두개골을 맨손으로 깨뜨리는 마도왕을 날려버
렸다는 것에는 놀랐지만, 뼈로 된 몸으로는, 역시 완전히
막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네이아가 듣기로는, <요새>의
상위 무투기에 위력을 완전히 죽이는 것이 있는 모양이지만,
상당히 실력이 뛰어난 전사가 간신히 습득할 수 있다고 한
다.
두 사람은 동시에 접근해서, 검과 검을 부딪혔다.
양측의 공방은 너무나도 고속이어서 네이아의 눈으로도
완전히 잡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검이 부딪힐 때의 한순간의 경직뿐이었다.
만약, 네이아가 이 전투에 참가한다면, 한칼에 죽어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쇠와 쇠가 고속으로 부딪히고, 금속음이 시끄러울 정도로
울려퍼졌다.
양측의 완력은 길항하고 있었고, 양측 모두 검을 부딪힐
때마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강검을 휘두르는 바자에게 경악하면 되는 것인
지, 아니면 매직 캐스터이면서도 두 손으로 대검을 휘두르
는 마도왕을 존경하면 되는 것인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초 하이레벨의 전투에 자신
이 끼어들 틈은 없다고 확신했다.
두 사람의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네이아는 천천히
움직여서 장애물의 뒤쪽에 숨었다. 인질이 되는 것만은 피
해야만 했다.
(저렇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둘 다 상처를 입지 않았
어... 그보다 마도왕 폐하, 좀 과하게 굉장하셔...)
매직 캐스터가 이렇게까지 검으로 싸울 수 있다는 현실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뭔가 굉장한 마법이라도 쓰고 있나?)
네이아가 모르는 엄청난 마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대로 가면 마도왕 폐하의 승리는 확실해. 아니, 그걸
노리고 장기전으로 끌고 가실 생각인건가?)
언데드에게는 피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전
투에서의 동요 같은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바
자에게 불리했다.
그것은 바자도 알고 있는 모양인지, 점차 표정이 일그러
졌다.
(비장의 카드가 있다면 그-)
네이아는 경악했다. 갑자기, 마도왕이 그 대검을 바자를
향해 던졌던 것이다.
그러자 바자를 중심으로 한 반구형의 빛이 생겨나고, 날
아간 검과 길항했다.
빛의 방벽은 곧 가라앉았지만, 날아간 대검은 바자의 몸
을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
(큰일이야!)
네이아는 장애물의 뒤에서 달려나오려고 했다. 지금의 마
도왕은 맨손-
"-어라?"
어느샌가, 마도왕의 손에는 검붉은 핼버드가 쥐어져있었
다.
바자도 네이아와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그 눈을 크게 뜨
고 있었다.
"마법을 영창하지 않고, 어떻게... 게다가 네가 던진 대검
은 어디로 갔나..."
"단순한 무영창화다. 신경쓰지 마라. ...자, 내 부하에게
배우긴 했다만, 그리 자신은 없다. 형편없을테니 미리 사과
해두지."
마도왕이 핼버드를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력이 밀
려왔다.
전사는 자신의 주특기인 무기를 대부분 한 계통으로 통일
하는 경우가 많다. 검, 도끼, 철퇴 같은 식이었다.
마도왕이 원심력을 사용해 핼버드를 휘둘렀다. 그 손잡이
를 미끄러뜨려, 바자가 방어하기 힘든 발치를 노리는 공격
이었다. 손잡이가 긴 무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바자가 검을 내려 그것을 막아내려고 한 순간, 핼버드가
튀어올랐다.
속임수였다.
상당히 완력이 필요한 기술이었지만, 바자는 순식간에 들
어올린 검으로 그것을 막아냈다.
역시 마도왕의 주무기는 검이고, 핼버드는 그렇게까지 특
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무술의 흐름을 탄 깔
끔한 공격이긴 했지만, 움직임에 미묘한 어색함이 느껴졌다.
네이아 따위가 아직 움직임을 간신히 눈으로 따라잡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원심력을 실은 핼버드를 막아내고, 바자가 뒤로 뛰어 물
러났다.
"샌드스톰(사진풍 - 모래 티끌 바람)!"
검에서 뿜어져나오는 모래가 마치 벽처럼 펼쳐지고, 마도
왕을 덮쳤다. 마도왕의 시야는 완전히 차단되었을 것이다.
"<소기곤봉>! <강완호격>!"
네이아가 모르는 무투기에 더해, 대미지 량을 늘리는 호
격의 상위 무투기를 발동하고, 아까에 비해 배에 달하는 속
도로 덤벼들었다.
바자가 찬 뿔장식에서 기묘한 빛이 배어나와, 마치 유성
처럼 보였다.
"크아아아아!"
"흡!"
마도왕은 휘두른 일격을 핼버드로 막아-
"하하!!"
-바자의 비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끼릭하는 금속이 깎여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네이아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무기 파괴!"
무기에 직접 대미지가 들어가는 무기파괴였지만, 그 대미
지는 재질의 차이나 무기가 가진 대미지량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바자의 두 개의 무투기는 그것을 강화하기 위한 것
이었던 듯했다.
네이아는 초조함을 느꼈지만, 다음 순간, 바자가 눈을 크
게 뜬 것을 깨닫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금도 가지 않았다고!"
바자로부터 경악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뭐냐, 그 무기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후퇴한 바자를 추격하지 않
고, 마도왕은 핼버드를 빙글 휘둘러 허공에 아름다운 호선
을 그렸다.
"...음, 내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무기다만? 그렇게 간단히
망가지겠나."
"마법으로 만든 무기 따윈 물러터졌잖아!"
"호오. 지금까지 무기를 만드는 상대와 싸운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만, 고정관념에 붙잡히는 것은 위험하다. 때로는
네가 파괴할 수 없는 무기를 만드는 상대도 있단 말이지."
마도왕이 핼버드에서 손을 놓았다. 그러자 핼버드는 공기
속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져갔다. 아까의 대검과 아마 같은
요령일 것이다.
그리고 공기 속에서 뭔가를 쥐는 것 같은 동작을 하자, 이
번에는 그 양손에 각각 흑색의 롱 소드가 쥐어져 있었다.
"...그럼, 다음은 무엇을 해주겠나? 설마 지금 그것이 필
승의 방법이었다는 것은 아니겠지? 내게 더 경험을 쌓게 해
주지 않겠나?"
한걸음, 마도왕이 거리를 좁혔다.
"...비장의 수단이 있다면, 빨리 쓰는게 좋을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지 않는 적을 살려둘 정도로 다정하지는 않으니."
"흐, 흐흐!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언데드! 확실히 내 공격
을 모두 막아낸 것은 훌륭하다. 실로 멋지군. 하지만, 그것
은 방어에 전념했기 때문이 아니냐. ...나는 알 수 있다, 너
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을 들이면 언젠가 나
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말이다."
(간파하고 있었어!)
네이아는 초조함을 느꼈다. 자신마저도 깨달은 사실이었
다. 원래부터 전사로서 네이아보다 뛰어난 바자가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었다.
"과연.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군. 그야말로 정론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아니다."
마도왕이 손을 펼치고 무방비하게 거리를 좁혔다. 그 손
에 있던 검이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위험하-"
네이아가 외치는 것보다도, 바자가 그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습에 검을 휘두르는 쪽이 빨랐다.
그리고-
"...뭐냐?"
바자가 황급히,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뭐냐! 뭐냐! 이건 뭐냐고!"
휘두를 때마다 외치고 있었다. 공격을 계속해서 맞고 있
는 마도왕이 태연한 탓이었다.
"그렇다면-"
바자는 방패를 들고, 무투기를 발동시켰다. 방패를 든 돌
격을 당한 마도왕이, 뒤로 비틀거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
다.
오히려 바자가 약간 후퇴해버리는 상황이었다.
"어, 어째, 서."
아인의 표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
만 지금은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저것은 공포와 절망.
"...무투기라는 건 내게 있어서 미지의 기술이다. 특수기
술이 무투기로 변화한 것인가. 아니면 전사들에게 허락된
마법인가는 불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동급의 상대
와 싸우게 되었을 경우, 무투기를 맞은 경험과 지식이 승패
를 가를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그걸 위해서,
정면에서 네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만... 넌 전부 사용한
거로군?"
마도왕이 익살맞은 듯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그 손가락에
낀 아홉개의 반지 가운데 하나를 뽑았다.
그 이외에 뭔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마도왕이 한 행동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엄청나게 차가운
공기가 주변을 둘러쌌다.
네이아는 흠칫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있는 태
양이 얼어붙어, 깨져버렸는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
만, 하늘에는 분명히 태양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냉기와 칠흑의 기척은 마도왕이 내뿜는 것
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것을 하나의 존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이, 이것이 마도왕. 1만을 넘는 군대를 죽인 매직 캐스터
의 모습...)
"그렇다면- 이제 너와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군."
한 걸음, 바자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반대로 바자는 떨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마도왕이
뿜어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압력에 밀려난 것처럼.
네이아가 느낀 괴이한 기척을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바자일 것이다. 마도왕은 자신이 대항할 수 있는 상대
가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인식한 모양이었다. 전신의 털이
거꾸로 선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기, 기다려. 아니, 기다려다오. 정말 조금만 기다려다오."
바자는 오른손을 들어올린 다음,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
렸다.
"하, 항복, 이다. 항복한다."
"흠."
"나는 얄다바오트의 군세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아
주 도움이 될 것이다.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과연."
"...그, 그리고. 얄다바오트와 싸울 생각이겠지? 나는 인
간 따위보다 훨씬 강하다. 내게 부족의 사람들을 붙여준다
면, 얄다바오트- 얄다바오트 그 개자식과의 싸움에서 선두
에 설 것을 약속하겠다. 이거면 어떠냐?"
"호오."
"......기, 기다려주십시오. 그뿐만이 아니다! 만약 원한다
면 내가 모은 재물도 주- 드릴 생각이다. 내 목숨을 사기에
는 충분하다고 생각할만큼 가지고 있을 거다!"
"그게 전부인가?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은 거기까진가?"
[오, 와, 에] 바자가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눈
을 마도왕에게 돌렸다. [그, 그래. 아니, 아니다. 그, 그 이
외에도 여러, 여러가지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손
에 넣어줄 수- 아니. 반드시 손에 넣어오겠다! 정말이다!
믿어다오!]
"흠. 내가 정말로 손에 넣고 싶은 것은 네가 결코 가지고
올 수가 없는 것이다."
마도왕의 어조에 짜증이 섞인 것을 네이아는 느꼈다. 그
리고 그 이상으로, 대치하고 있는 바자는 더욱 강하게 느꼈
을 것이다.
"기, 기다려, 기다려. 제발 기다려. 음, 헤, 헤헤헤."
비굴한 웃음이었다. 광장에서 대치하고 왕이라고 칭했을
때의 분위기는 이제 아무데도 없었다.
"말을 잘못한 것은 사과하마. 아니, 하겠습니다. 정말, 입
니다. 내가 잘못했다. 정말로."
"흠..."
"그, 그래서, 어떠, 겠습니까. 나, 저, 저는 당신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헤헤. 아니, 언데드의 임금님을 적으
로 돌린 저는 정말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실수를 만회할 찬스를 주신다면, 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헤헤.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바자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손을 모아 자비를 구했다.
네이아는 가여운 모습이라고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모습을 보인 마도왕을 앞에 둔
적이 취해야할 행동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
았다. 동시에 마도국에서 만난 나가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
랐다. [즉시 그 발치에 몸을 엎드리고 자비를 구하는 자야
말로 현자일세]라는 말을.
그럼, 즉시 그 몸을 엎드리지 않은 자의 운명은-
"과연...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바로잡으려고 하는 자는
좋아한다."
"그, 그렇다면!"
바자는 얼굴 가득 희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기쁨은 순
식간에 빼앗겼다.
"-하지만, 너를 부하로 삼으면- 페스토냐나 니글레도가
싫어할 것 같구나. 그리고 안심해라. 나는 두개골만 사용하
는 아까운 짓은 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유익하게 전부를
사용해주마."
죽어라, 라고 마도왕은 가느다란 뼈로 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힉! 시, 시, 싫어!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기다려!
부탁이다! 부탁드립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그만둬! 나, 나
에게는 나름대로 가치가 이, 있습니다! -당신을 기쁘게 만
들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줘!!"
"산 자는 모두, 죽는다. 그게 이른가, 늦은가의 차이일 뿐
이다."
"그만둬! 그 눈으로 날 보지마! 주, 죽이지 마!"
일어선 바자가 등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생명체의 전력질주는 이렇게나 빠른 건
가, 하고 네이아는 느긋하게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마도왕의 마법은 더 빨랐다.
"시시하군. -<데스(죽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큰 폭발도, 광란하는 벼락도.
그저, 털썩하고 바자가 쓰러졌다. 그뿐이었다.
"정보는 아까웠다만... 뭐, 이런 정도겠지. 이의가 있나,
바라하 양?"
"아, 아, 아뇨, 마도왕 폐하의 판단에 틀린 것은 없습니
다."
"그런가? 그럼... 성기사들을 불러, 이 아인의 리더를 해
치웠다는 보고를 하지. 하지만... 조금 곤란하게 되었군..."

4.

도시의 탈환, 사람들의 해방은, 마도왕의 힘으로 간단히


이루어졌다.
공격 측인 성기사나 민병의 피해는 거의 없었고, 잡혀있
던 백성들 중에는 혼란 속에서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은 자
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놀랄 정도로 적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마도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
다. 만약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맡겨두었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해방에 기뻐하는 사람들, 한 잔의 스프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네이아와 마도왕은 미소로 가득한 거리를 걸었다.
마도왕 덕분에 해방되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마도왕이 걷
는 모습을 실제로 본 백성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나 혼란,
그리고 기피감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사실에 네이아가 납득할 수 있느냐
를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았다. 만약 마도왕이 불쾌하게 생
각한다면 뭔가 행동으로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신경쓰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네이아가 뭔가를
하는 편이 실례라고 봐야할 것이다.
네이아는 먼저 나아가는 마도왕의 등에 말을 걸었다.
"마도왕 폐하, 어디로 가십니까?"
손에 시선을 주고 있던 마도왕이 돌아보지 않고 네이아에
게 설명해주었다.
"흠. 이 도시의 중심, 저 커다란 건물이다. 만약 저것이
적의 거점이라면 즉시 조사해야하겠지. 성기사들은 잡혀있
던 사람들의 해방, 식량의 배급, 백성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포박한 아인들의 감금, 할 일이 많으니 말이다."
네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커다란 건물이잖습니까. 성기사 분들도 적의 거
점이라고 판단하고, 가장 먼저 조사하시지 않았을까요?"
도시를 함락시킨 것은 확실히 마도왕이었지만, 그 후의
세세한 업무는 성기사나 민병들이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도왕이 가는 건물도 당연히 탐색이 되지 않았을까.
마도왕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 네이아를 빤히 보았다. 그
다음 어깨를 으쓱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 음. 사실, 성기사들을 접근시키지 않도록 내 부하를
입구에 대기시켜두었다. 그러니 조사는 하지 않았을 거다."
"에? 그건 아까 하신 말씀과는-"
"-바라하 양. 여러가지로 알려줬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거다. 우리가 대표로서 조사해
야할 이유를, 말이지."
"아, 옛! 마도왕 폐하."
마도왕은 다시 손에 시선을 주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그
아인- 바자가 장비하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마도왕은 걸으
면서 그 아이템을 감정하고, 마법의 힘을 조사하고 있던 것
이다.
들은 바로는, 검이 샌드 슈터(모래의 사수), 갑옷이 터틀
셸(거북이의 등껍질), 방패가 란자즈 메리츠(란자의 공훈),
뿔에 건 케이스가 차지 오브 위드아웃 헤지테이션(망설임없
는 돌격), 반지가 링 오브 세컨드아이(제2의 눈의 반지)와
링 오브 런(질주의 반지), 망토가 망토 오브 프로텍션(수호
의 망토)이라고 한다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목걸이 등도 마법의 아이템이었는지, 대단한
마력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도왕은 조금 기쁜 것 같았다.
그런 마도왕의 등에서 시선을 돌리고, 땅을 응시하면서
네이아는 마도왕이 말한대로, 어째서 저 건물을 마도왕이
직접 탐색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이거다!]하
고 대답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 답을 알려달라고 하면 어처구니 없어하지는
않을까. 존경하고 있는 마도왕에게 무능하다는 딱지가 붙어,
버려지는 것이 무서웠다.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그 건물이 보였다.
언데드가 둘- 하이레이스가 저택의 입구의 앞에 서있었다.
마도왕이 가까이 가자, 그 두 마리는 길을 열어, 마도왕과
네이아를 보내주었다.
"여기는... 이 도시의 영주의 집인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이 도시를 통치하고 있던 귀족이 누구인지까지
는 네이아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정도의 도시라면, 남작
이상, 백작 이하 정도 될 것이다.
"그렇군. 여기에는 언데드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이란 말이지. 무력화되지 않은 아인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거라."
"에!? 마도왕 폐하! 그건-"
그만둬 주십시오 라고 말하려다 망설였다. 마도왕이라면
괜찮은 거 아냐? 하고 또 한 사람의 네이아가 마음 속에서
속삭였기 때문이다.
"여긴 내가 가야만 한다. 여기가 적의 본거지, 아인의 보
스의 소굴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근거는 크기 때문이라는
점뿐이지만- 어쩌면 지난번의 바자에 필적하는 강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 도시 해방은 깔끔하게 끝내고 싶으니 말이다."
"아!"
아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네이아는 납득하고, 자
신의 이마를 손으로 눌렀다. 동시에 마도왕의 자비심에 감
사의 뜻을 품었다.
(강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성기사를 접근하게 하고 싶
지 않았다는 말이구나! 아까, 말씀하신 내용이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방패가 되어 싸우는 모습이 알려지는게 부끄럽다
거나 뭐 그런 이유로 나한테는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감정을 품는 것이 실례인 것은 네이아도 잘 알고 있
었지만, 어쩐지 마도왕이 귀엽게 느껴졌다.
"...어떠냐? 납득이 가느냐?"
마도왕이 네이아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물었다. 네이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도왕도 기쁜듯이 [그런가, 다행이구나]
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이해한 것이 그렇게 기쁘시다니... 다정하시구나,
이 분은)
"마도왕 폐하께서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 이해했
습니다!"
"...응? 아아... 그 말대로다. 그... 이해하겠지? 눈에 띄고
싶지 않은 것이."
"알겠습니다!"
마도왕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뭐라고나
할까 그런 모습도 귀엽게 보였다.
".........아-, 그럼 갈까."
"옛!"
마도왕이 선두에 선 것은 종자로서는 아주 곤란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네이아가 앞에 나서는 것을 마도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도량이 넓은 그 뒷모습에 네이아는
동경의 시선을 보냈다. 왕이면서도 선두를 나아가는 모습은,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구석이 있었다.
넓은 입구에 들어간 네이아는 물었다.
"어디부터 조사할까요? 누가 있을 것 같은 기척은 들지
않습니다만..."
"흠. ...바라하 양은 시각, 청각은 뛰어난 모양인데, 후각
은 어떻지?"
"후각까지는,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
보다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각도 비슷한 수준
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극물을 맛본 적은 없어서 독극
물 감별은 불가능합니다만..."
"그런가. 그럼 이 죽음과 증오의 냄새는 눈치채고 있느
냐?"
죽음과 증오라고 말할 때의 마도왕은, 왕으로서의 패기가
느껴졌다.
"죽음과 증오 말입니까?"
"-이 쪽이다."
마도왕이 걷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에 망설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여기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이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걸음걸이였다.
(죽음과 증오... 그런 것에 냄새가 있을리가 없어. ...설마,
언데드인 폐하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냄새인가? 그렇다면
이 너머에는 그것을 발하는 존재가 기다리고 있다는-!)
네이아는 마도왕으로부터 빌린 활을 꽉 쥐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마도왕의 방패가 되어, 앞으로 나서 활을 쏠 필요
도 있을 것이다. 바자와의 전투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으면, 자신이 있는 의미가 없었다.
아인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아가서, 이윽고 전방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분위기가 다른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로 만들어진 것으로,아주 두터웠다.
일반적인 귀족풍의 건물 안에 마치 범죄자의 수용시설 같
은 문이 나타난 것이다. 그 너무나도 심한 위화감에 네이아
는 기분 나쁜 감각을 강하게 느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
이한 장소에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것은..."
"이 안이로군. ...따라오지 않아도 된단다."
네이아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선택지였다. 네이아가
고개를 젓는 것을 본 마도왕이 어깨를 으쓱이고, 그 다음
문을 밀어젖혔다.
마도왕의 완력 덕분인지, 철제 문은 아주 간단히 열렸다.
다만, 그 문은 상당히 두터워서, 특별주문한 물건으로 보였
다.
마도왕이 방으로 들어갔다.
(아!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 마도왕 폐하를 먼저 들
여보내다니! 이런 멍청이!)
네이아는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두터운 문을 보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내는 괴이한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고문실-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이라
는 것은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일단, 창문이 없었다.
벽에는 꽂혀있는 봉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이것은 자연적인 빛이 아닌, 마법에 의한 것이었다.
목제 책상이 하나, 그리고 목제 의자가 둘. 들어온 것과는
다른 문- 이것도 비슷한 철제- 이 하나 있었다.
마도왕은 실내의 중앙에 서서, 방을 빙글 둘러보았다. 그
런 가운데, 네이아는 책상 위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깨달았
다.
"...마도왕 폐하. 이것은 종이 같습니다만, 대체 뭘까요?"
네이아가 집어올린 종이에는 본 적이 없는 글자가 적혀있
었다. 마도국의 언어가 아닌 것은 분명히 보증할 수 있었다.
"흠... 악마들이 사용하는 글자와 비슷하지 않은가?"
마도왕이 품 속에서 모노클(역자 주 - 외알 안경)을 꺼냈
다. 네이아의 신기해하는 시선을 깨달았는지, 그것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건 문자를 독해해주는 매직 아이템이다. 나도 하나밖
에 없는 아이템이지. 그렇지만 이건 막대한 마력을 소비하
는 거란다. -바라하 양, 이런 문자를 읽을 수 있는 힘을 가
진 인간으로 알려진 사람이 있느냐?"
"문자를 읽는 힘 말입니까?"
"그래. 이 문자를 알고 있을 것 같은 인물이라도 상관없다.
그 외에는... 탤런트(날 때부터 타고난 이능) 같은 능력으로
문자를 독해할 힘을 가졌다거나."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것까지는..."
네이아는 성기사단의 종자일 뿐이었다. 그런 인물에 관한
정보에 접촉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확실히 같은 종자인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같은
것은 있었다. 예를 들면, [내 친구가 탤런트 같은 힘을 가진
녀석이 있는데, 목욕물이 지금, 몇 도인지 알 수 있대. 하지
만 정말로 그 온도가 맞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라거나 [친척 중에 뱃사람이 있는데 탤런트를 가지고 있어
서, 물 위를 다섯 걸음 정도 걸을 수 있어. 그 이상 걸으려
고 하면 가라앉지만]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이 아, 그렇구
나 라고 밖에 할 말이 없는 미묘한 능력이었고, 마도왕이
알고 싶어하는 것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가. 그거 유감이구나. 그럼 카스트디오 단장이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성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지위라면 나름대로 여러가지 정보
에 접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레메디오스라
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레이아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 단
장이 정보에 뇌를 할애하고 있을까, 하고.
"...그것도 좀 알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부단장에게 물
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 그렇겠군. 그 편이..."
마도왕이 말을 흐린 것은 네이아와 같은 감상을 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만약 그런 인물이 없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아아, 딱히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니란다. 얄다바
오트 측이 남긴 정보를 읽을 수 있다면, 이후 방침도 당연
히 바뀌지 않겠느냐?"
조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당연한 것을 마도왕
이 설명해주자, 네이아 생각도 해보지 않고 어리석은 질문
을 했다고 부끄러워했다.
"만약 번역할 수 있는 인물이 없을 경우에는 내가 마력을
소비해서 읽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얄다바오트를
더더욱 경계하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마력을 소비한 상태에
서 얄다바오트와 조우했을 경우, 아무래도 도망치는 수밖에
없을테니까. ...그렇지만, 호기심이 자극되긴 하는구나. 이
거 한 장 정도는 읽어볼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마력의 잔량에는 충분히 주의하도록 하마."
마도왕이 모노클을 쓰고, 종이에 시선을 주었다. 뭔가 눈
에 보이는 형태로 아이템의 발동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
만, 힘은 발휘되고 있을 것이다. 마도왕은 읽고 있는 것처
럼 보였다. 그렇지만 마도왕에게 눈은 없었기 때문에, 아마
도 읽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안경을 벗었다.
"역시 막대한 마력을 소모하는군."
마력을 대량으로 사용한 신관이 비틀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 네이아 입장에서는, 마도왕에게 그럴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도왕을 일반적인 매직 캐스터와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면 실례라고 봐야할 것이다. 아마도 마력도 막대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네이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마도왕은 안의
문으로 다가가서, 살짝 열더니 그 틈에서 안을 살펴보았다.
네이아의 청각이 희미한 호흡소리를 여럿 잡아냈고, 후각
이 피냄새를 잡아냈다.
네이아는 활을 꽉 쥐고, 마도왕과 문의 사이에 막아서듯
이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빨리 마도왕이 네이아에게
손을 뻗었다.
오지마라, 라는 의미였다.
"흐음... 바라하 양. 여긴 아인들이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악마들이 사용하던 장소다. 그걸 아는 것은, 이 종이에 적
혀있던 것이 악마들이 하고 있던 실험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지."
"...악마의 실험이라구요?"
듣기도 전부터 절대로 정상적인 것이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 팔을 잘라내고 다른 생물의 팔을 달아본다거나,
배를 갈라 내장을 교환하는 등의 실험을 해본 모양이다. 육
친끼리 해본 사례부터, 인간과 다른 생물- 아인들만이 아니
다. 동물 등을 사용해서, 거기에 마법을 걸어 치료했을 경
우의 변화의 관찰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무서운 실험을! 특히 육친의 몸을 붙이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 그런 실험을 했을 경우, 당연히, 그 피해자는 살아
있어줘야겠지. 뭐가 특히 원인이 되어 죽음에 이르렀는지
알 정도로는 오래,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마도왕이 몸을 돌리고, 문을 등진 다음, 어
깨 너머로 엄지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어쩐지 네이아는
이어질 말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안에 그 피해자들이 있다. 배가 갈라진 상태로 살아
서."
예측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너무나도 잔인한 실험에 네이
아는 한순간이나마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다. 이어서 생겨난
것은 이런 잔인한 실험을 한 악마들에 대한 증오.
"바라하 양! 즉시 신관들을 불러오거라! 그리고 카스트디
오 단장을 비롯한 수뇌부들도! 서둘러라!"
"옛!"
무엇을 위해서 부르는 것인가 라고는 되물을 필요도 없었
다. 네이아는 전력으로 달렸다.
머리 한구석에서 마도왕 폐하를 홀로 내버려두고 가도 되
는가,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신뢰할 수 있는 총명하고
압도적인 강자가 내린 명령이었다.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
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목소리는 곧 사라졌다.

신관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움찔 동요


한 어깨의 움직임이, 방 안에 펼쳐진 광경이 얼마나 처참하
고 끔찍한 것이었는지를 말 이상으로 충분히 전달해주었다.
눈 앞에서는, 마도왕이 레메디오스와 구스타보에게 손에
넣은 종이를 넘겨주고 있었다.
"이것을 봐주시오. 여기에 안에 있는 인물의 이름과 무엇
을 당했는지가 적혀있소. 이 이외에도 많은 종이가 있지만,
거기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있는지, 아니면 다른- 예를 들면
얄다바오트의 계획 같은 것이 적혀있는 것인지, 그것에 대
해서는 아직 불명이오. 당신들 중에 이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소?"
레메디오스는 한 번 보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즉시 구스
타보에게 넘겼다.
구스타보도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도왕 폐하께서는 이것을
한 장 읽으셨다죠?"
"그렇네. 매직 아이템의 힘을 빌렸지. 하지만, 그 아이템
은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네. 얄다바오트와 싸우기 위해서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마력을 말이야. 그래서 묻
고 싶은 것은 자네들 중 누군가가 이것을 읽을 수 있는 사
람으로 짚이는 것이 있느냐는 말일세. 독해계의 능력을 가
진 자, 혹은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라도 상관없네."
"아닙니다, 짚이는 곳은 전혀 없습니다. 남쪽의 귀족이 숨
기고 있을 가능성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가능
성은 아주 낮다고 생각됩니다."
"그런가... 그럼 이건 어떻게 할까? 나로서는 자네들이 노
력해서 해독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네만."
"마도왕 폐하의 아이템을 빌릴 수는 없겠습니까?"
"거절하겠네. 이것은 내 나라의 보물이네. 당신이 허리에
차고 있는 성검을 그렇게 간단히 남에게 빌려줄 수 없는 것
과 마찬가지요. 나 같은 매직 캐스터에게 있어서 검보다도
이런 아이템 쪽이 귀중하지."
레메디오스와 구스타보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리고
-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만, 오크(돼지귀신)들이 포로로
서 잡혀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크는 성왕국을 공격해온 것이 아니라, 포로로서 얄다바
오트에게 끌려왔다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들어봐도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고, 이제부터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곤
란한 모양이었다.
"흠... 알겠네. 장소를 알려주겠나? 그들에 대한 대응은
내게 맡겨둬도 된다는 말이겠지?"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스타보가 간단히 장소를 설명해주었다. 도시 자체는 그
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헤매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 대략적인 지역이 그려졌을 무렵, 문을 열고, 피
로에 전 얼굴의 신관이 한 사람,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어땠습니까!? 안의 백성들의 상태는!?"
"일단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치료마법을 걸었습니다. 역시
그런 잔인한 실험을 당한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은 저희도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제 한동안 여기에
남아서, 상황을 살피고 있겠습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다면, 그들을 바깥으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알았다. 그럼 성기사와 민병을 몇 명 정도 이 쪽으로 보
낼테니, 협력해서 데리고 나오도록."
"알겠습니다, 카스트디오 단장님. 그럼 마도왕 폐하, 실례
하겠습니다."
신관이 다시, 문을 열어, 안으로 돌아갔다.
신관을 배웅하고, 여기에서 할 일은 이제 없다고 판단한
네 사람은 각자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마도왕과 네이아는 당연히, 두 사람과 헤어져서 오크에게
갔다.
"그건 그렇고 악마가 있다면 변신하고 있는 상대를 간파
하는 힘을 가진 자가 있는 편이 좋겠군."
걸어가면서 마도왕이 네이아에게 말했다.
이 도시에서 악마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까의
종이에 악마의 문자가 적혀있었기 때문에, 악마가 있을, 혹
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악마는 변신도 할 수 있습니까?"
"아아, 그런 악마도 있단다. 남자나 여자, 때로는 동물 같
은 것으로 둔갑하는 악마가."
"그렇군요... 변신을 간파하는 힘을 가진- 탤런트(날 때부
터 타고난 이능)인가요. 죄송합니다. 그런 능력에 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아, 아니, 전설 같은 것에서는 들은 적
이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하지만, 현재 있을
지는..."
"...그 부분도 카스트디오 단장과 이야기를 하는 편이 좋
겠구나."
"변신이라고 하는 것은 환술과 같은 분야입니까? 환술은
잔재주 같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만."
"먼저 변신과 환술에는 큰 차이가 있다만,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길어지니까 생략하마. 다만, 환술을 깔보는 것은 위
험하단다. 술자의 기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그 위협성이
커지는 마법이다. 아니면 다른 허튼 짓을 하지 않고, 그 분
야에 특화되었을 경우에도 말이지."
"특화되었을 경우라구요?"
"그래. 맞다. 예를 들면 <퍼펙트 일루전(완전환각)> 같은
것은 오감조차도 속이는 환술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보다
높은, 극한까지 환술을 수련한 자가 며칠에 한 번 쓸 수 있
는 기술은, 세계에 환술을 거는 것이다."
세계에 환술을 건다고 해도 상상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
다.
"저, 세계에 환술을 건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입니
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온갖 계통의 마법을 대체할 수 있
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죽은 자조차도 살아나게 할 수 있지."
"에!? 환술로 말인가요?"
"그렇다. 세계에 거는 환술- 환술의 궁극의 오의지. 세계
가 속으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머엉, 하는 감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환술을 극한까지 수
련하면 그런 것까지 가능하다고 해도, 너무나도 굉장해서
뭔가 잘 알 수 없었다.
"자, 이 나라에서는 탤런트를 누가 관리하고 있지는 않느
냐?"
"아닙니다, 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마도국은 관리하
고 있습니까?"
"내 나라에서도 아직, 이로구나.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하
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만,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테니까...
10년 정도 뒤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마도왕은 10년이라는 긴 시간의 너머를 보고 있는 것 같
았다. 이런 부분이 왕과 평민의 차이일 것이다.
즉- 거대한 것이다.


오크들이 있는 곳은 창문이 바깥에서 판자로 막혀있는 건
물이었다. 상당히 커다란 건물로, 이 도시에서도 두, 세번째
로 크다고 생각되었다.
입구의 문에는 성기사들이 여럿 모여있었고, 안을 경계하
고 있는 눈치였다.
마도왕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성기사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이 건물 안에 오크가 있다고 카스트디오 단장에게 들어
서 왔네. 들여보내주겠나?"
"옛! 물론입니다, 마도왕 폐하."
"그럼 자네들은 여길 벗어나, 해야할 일에 종사해주게나."
성기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저희는 여기를 지키라고 단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 곳을 더날 수는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아까 했던 말은 철회하겠네."
마도왕은 그렇게 말하고, 성기사들의 사이를 지나, 문을
밀어젖혔다. 물론, 네이아는 그 뒤를 따랐다.
안에서 풍겨오는 지독한 냄새가 네이아의 코를 자극했다.
독극물 같은 것이 아니라, 옛날, 어떤 성기사를 모시고 갔
던 감옥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큼한 냄새였다. 그 이외에 다
양한 냄새-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냄새가 섞여있었다.
"이건 대체..."
단장 일행으로부터 들었을 때에도 생각했지만, 오크들은
어째서, 일부러 끌려온 것일까.
조금 더 있으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이해하면서도, 네이아
의 상상의 날개는 펼쳐져갔다. 만약, 이것이 오크만의 문제
가 아니라면, 얄다바오트와 싸울 커다란 깃발이 되어줄 존
재가 있다면, 저항하는 아인들도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마도왕이 계속 문을 열어나갔다.
이제 마도왕이 선두에 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
었다.
방을 지나, 통로를 지나갔다.
걸어가면서 금방 알아챈 일이었는데, 이 건물은 감옥보다
도 더러웠다.
피나 토사물, 오물 같은 것이 여기저기를 더럽히고 있었
다. 여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오크라는 것은 인간 정도의 키를 가진 돼지 같은 얼굴을
한 아인으로,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종족이었다.
그런 그들이 좋아서 이런 장소에 있을리가 없었다.
네이아는 앞을 걷는 마도왕의 긴 로브자락을 보고, 마도
왕의 화려한 옷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닌가 애를 태웠지만,
바깥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총명한 마도왕의 대역 같은 것은 아무도 할 수 없을테니까.
이윽고 전방에서 다수의 생명체의 기척과 소리가 나는 것
을 네이아의 날카로운 청각이 감지했다. 아이의 것으로 추
측되는 울음소리나 그것을 달래려고 하는 어머니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였다.
(오크...? 인간이 아니라?)
네이아는 당혹했다. 그들도 가족을 형성하고, 아이를 키
운다는 것을,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성왕국에 오는 오
크는 침략자였다. 증오해야 마땅할 적이었다. 그래서 그런
결론이 나온 시점에서 사고를 정지하고, 그 너머의 일은 생
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이아가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에 마도왕이 문을 열었다.
지독한 냄새가 더욱 강해졌고, 다수의 비명이 들렸다.
"언데드!"
"스켈레톤이야! 어째서!"
"인간 놈들! 우리를 언데드에게 팔아넘겼구나! 제기랄!"
"언데드를 사역하다니! 더러운 인간 놈들!"
"엄마! 살려줘!"
"아가야!!!"
입구에서 마도왕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무리 마도왕이
라도 당혹한 것일까.
"어흠! 닥쳐라!!"
마도왕이 큰 목소리로 명령하자, 소란스럽던 실내가 단숨
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곧 아까
의 배는 되는 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내용은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운명을 한탄하는 목소리나 자신은 어
떻게 되도 상관없으니까 아이만은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늘
어난 느낌이었다.
"......하아."
마도왕이 피곤한 것 같은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힘껏
문을 때렸다. 뼈로 된 팔이면서도 그 완력은 굉장했고, 경
첩이 튕겨나가며, 문은 옆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벽에 부딪
혀서 놀랄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냈다. 아인들은 물을 끼얹
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닥쳐라. 또다시 허가를 받지 않고 말하는 자는 각오하도
록."
공간이 얼어붙은 것 같은 고요함 속- 그 중에는 아이의
입을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는 부모로 보이는 모습도 있었다
- 에서, 마도왕이 방을 한걸음 들어가자, 아인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나는 딱히 너희를 죽일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그 반대지. 너희들을 해방해주기 위해 여기로 왔다."
오크의 돼지와도 같은 얼굴은, 표정을 보고 감정을 추측
하는 것이, 인간인 네이아로서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만
은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거짓말이야, 였다.
"일제히 입을 열어도 성가시군. 대표자, 앞으로 나오도
록."
한 호흡 간격을 두고, 한 사람의 오크가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그 옆에 있던 오크가 막았다. 그 다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여윈 오크였지만, 원래 상당히 튼실한 체구를 하고 있었
던 것으로 보였다.
"...네가 대표자라고 이해하면 되겠나?"
오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냐? 어째서, 아무말도 하지 않지?"
"저, 혹시 폐하께서 닥쳐라, 라고 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요?"
"...허가를 내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만,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거로군. 앞에 나선 오크. 발언을 허가
하마. 먼저 네 이름을 들려다오."
"간 즈 부족의 디에르- 디에르 간 즈다."
"디에르로군. 첫번째 질문이다. 이 안에 너희들이 모르는
자가 섞여있거나, 다른 사람처럼 성격이 바뀐 자는 없나?"
"아, 아니, 그런 자는 없다."
"그럼 다음, 너희들이 어째서, 여기에 갇혀있는지를 들려
다오."
"...얄다바오트라고 하는 악마를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다. 내 적이다. 그렇다기보다 나는 놈을 죽
이기 위해서 이 곳- 성왕국에 왔으니 말이다."
역시, 거짓말이야, 라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마도왕을 잘
알기 전에는, 네이아도 똑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
만, 지금의 네이아는 아니었다.
마도왕의 옆에서 모습을 보이며, 네이아는 입을 열었다.
"폐하가 하시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저는 이 나라의 사람.
그렇다면 여러분도 이해해줄 것 아닌가요? 얄다바오트가
여러분의 연합군을 이끌고 성왕국을 습격해왔으니까요."
디에르의 표정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기다려라, 인간- 아마도, 암컷."
아마도, 라니 무슨 뜻이냐고 생각했지만, 네이아도 오크
의 얼굴을 보고 수컷과 암컷을 가려내는 것은 어려웠다. 그
들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이 나라를 습격하지 않았다. 오크 부족 중에 얄다
바오트에게 협력한 자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반항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체벌의 의미에서 여기로 끌려왔기 때문이
다."
"흠... 얄다바오트는 너희들을 여기로 데려오고 무슨 짓을
했지?"
마도왕의 질문은 디에르만이 아니라, 오크 전원에게 강한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오크가 아이를 꼭
안고 있었다. 그리고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고, 토하고 있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정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마도왕이 조용히 말
을 흘렸다. [에-, 안 좋은 것을 물었던 모양이군. 물이라도
가져와줄까? 아니면 뭔가 원하는 것은 있는가?]
마도왕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뭔가 아주 허둥대고 있었다.
아마도 오크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깨워버린 것에 죄
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실
례가 되겠지만, 자신의 아이가 울려버린 남의 집 아이를 달
래는 부모처럼도 보였다.
(이건 아인도 인간도 관계없이 백성이라고 보는 마도국의
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겠지...)
성왕국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인은 적이었다. 그 때문에,
같은 상황에 놓여도 그들이라면 부드러운 말을 건네지는 않
을 것이다.
"특별히 원하는 것은 없다. 다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이
야기를 우리의 입에서 들으려고 하는 것은 그만둬다오. 들
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지옥이
었다. 명령을 받으면 말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하다못해 그
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해줬으면 한다."
훌쩍훌쩍 우는 암컷 오크의 목소리가 들렸고, 네이아는
얼마나 심한 짓을 벌이고 있었는가, 하는 공포를 느꼈다.
"...곤란하게 되었군."
마도왕이 중얼거렸지만, 너무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어느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는 네이아도 알 수 없었다.
"음, 그렇군. 너희들도 얄다바오트와 적대하고 있다면, 같
은 적을 가진 자로서 협력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러
왔다."
디에르의 시선이 아래로 움직였다.
"에전에는 싸우려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럴 생각은 없다.
여기에서 벌어진 악마의 소행에 마음이 꺾이고 말았어. 이
제 용기를 품을 수가 없다."
"그럼 만약 내가 너희들을 해방해주면 어쩔 생각이지?"
"가능하면 마을로 돌아가서, 아직 무사한 자가 있다면 멀
리 피난하고 싶다. 얄다바오트의 손이 닿지 않는 장소까지."
마도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내가 지배하는 영지에-"
"-거절하겠다! 네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위
험한지는 잘 알았다. 지금은 일단 동의해두고, 도망칠 수
있는 곳까지 간 다음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 옳겠지. 하지만,
배신은 최악의 행위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에서 거절하
는 편이 그나마 고통이 덜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겠지."
"뭐라고..."
너무나도 강한 거절에, 마도왕은 곤혹스러운 빛을 띄었다.
하지만 네이아는, 디에르의 마음을 아플 정도로 알았다. 마
도왕과 만나기까지는, 네이아도 언데드는 살아있는 모든 이
들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내 영지는 딱히 무서운 장소는 아니다만? 다양
한 아인들이 살고 있기까지 하다."
"거짓말마라! 분명히 거짓말이잖아! 나는, 우리는 안 속
는다! 아인이 아니라 아인이었던 언데드겠지!"
반광란 상태의 디에르의 모습은 예전의 자신이었다. 그래
서 선배로서, 후배에게 자신이 봐온 마도왕의 진정한 모습
을 알려줘야만 했다.
"폐하가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이에요. 이 분이야말로, 언
데드이면서도 산 자에게도 다정한 마음을 가지신 분입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인도 평등하게 통치하고, 수하들로부터
존경받고 계십니다. 그 증거로 놀랄 정도로 거대한 상(像)
을 만들-"
"-바라하 양! 진짜, 좀, 그 정도로..."
"하지만, 폐하!"
"부탁이다... 정말 부탁이니까..."
부탁한다고까지 하는데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인간, 너는 세뇌당하고 있는 거냐!?"
"아닙니다. 저는 이 눈으로 마도왕 폐하의 나라를 봤어요.
가장 먼저 만난 아인은 나가였어요."
아인들이 웅성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나
가라니?]라는 목소리도 들렸지만, 그것은 무시했다.
"그 외에도 토끼를 닮은 얼굴을 한 아인도 봤어요. 저는
마도국의 국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체재한 시간은 확실히
짧아요. 그래도,알아요. 거기에 사는 분들은 아까 여러분이
말한 것 같은 고통과 공포를 느끼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
어요. 물론 지금 여러분처럼 몸이 다치지도 않았죠."
아인들은 자신의 야윈 몸을 내려다보았다. 근육이 빠지고,
막대기처럼 변한 몸을.
"그녀- 바라하 양의 말이 맞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신용
하지 못하겠지. 다만, 내 지배하로 들어온다면 결코 그런
무도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내 이름, 아인즈 울 고운을 걸
고 약속하지. 왜냐하면 내 지배하에 있다는 것은 내 것이다.
그것이 상처입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 재산의 손실이니
까. 그리고 안심해라. 너희들이 지배하에 들어오고 싶지 않
다면, 강제하지는 않겠다. 마음대로 살아도 좋다. 우선 너희
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해주는 거지?"
네이아는 처음으로 디에르가 고정관념을 불식하고, 정면
에서 마도왕 본인을 본 것처럼 느껴졌다.
"흐흐. ...나는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려고 생각한다. 그
것을 위해서는 놈이 데리고 있는 아인들은 방해가 되지. 그
렇기 때문에, 너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그 힘을
깎아내기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건 무슨 말이냐?"
"너희들이 나는 얄다바오트와는 다른 친절한 상대라고 선
전해주면, 놈의 군세의 내부불화, 어쩌면 배신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느냐?"
"과연, 그런 건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한 교섭을 하게 되면 신용할 수
없었지만,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교섭이라면 신용할 수 있
는 것은, 아인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다만, 그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얄다바오트의 지배
하에 있는 자들의 대부분은 피를 탐하는 자들. 우리들이 고
향으로 돌아가서 소문을 퍼뜨려도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
다."
"그래도 상관없다. 쓸 수 있는 수단은 전부 써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얄다바오트가 공포로 지배하고 있는 거라
면, 배신하는 아인도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래,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내게 협력해서 얄다바오트와 싸울 생각은
없나?"
"...무리다. 말했잖아. 지금의 우리들에게 그럴 의지는 없
다."
"그런가. 그거 유감이군. 마도국에 올 생각도 역시 없나?"
"너 같은 강대해보이는 존재의 보호하에 들어가는 것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우리들만으로는 결정할 수가 없는 문
제다. 다른 자들과 이야기해본 다음,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르겠어."
"디에르!"
"돔바스.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어. 하지만, 얄다바오
트라는 우리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악마가 출현한 이상,
이대로 우리들끼리 고향을 지킬 수는 없어. 언젠가는 이렇
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돔바스라는 오크도 곧 입술을 깨물면서, 눈을 감았다. 그
도 이해는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가. 만약 내 나라로 오겠다면, 나, 마도왕이 전면적
으로 너희들을 지원할 생각이다. 내 토지에는 온갖 종족이
있지. 그들과 협력해서- 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함께 살아주
었으면 한다."
마도왕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성왕국에서는 아인은 적인데도, 마도국에서는 아인은 함
께 살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 이 커다란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을 생각한 네이아는 곧 대답에 도달했다.
(역시 마도왕 폐하, 인가. ...강대한 힘을 가진 폐하이기
때문에. 역시... 힘, 인가...)
"자, 그럼 너희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 먹을 식량을 제
공하지. 남은 것은 호위를 맡을 병사들이군. 그 몸으로는
무사히 돌아갈 때까지는 상당히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테니
까."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냐?"
"그렇게까지 해주고 말고. 마도국의 왕의 관대함에 흐느
끼고, 대대적으로 선전해주게나. 그럼 바라하 양, 넌 이 방
의 바깥으로 나가있어주지 않겠느냐? 그리 타국의 백성에
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마도국의 비기를 쓸 것이니 말이
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방을 나가면서도 네이아는 조금 쓸쓸함을
느꼈다. 마도왕이 하고 있는 말은 당연했지만, 마음 한켠에
알고 있어도 납득하지 못하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옆에 세워진 부서진 문 너머로 들려오는 오크들의 숨소리
같은 것이, 점점 줄어들어갔다. 마치 방 안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럴 것이다.
마도왕은, 장소만 기억하면 전이할 수 있다, 고 여행 도중
에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그들에게도 사용한 듯했다.
이윽고, 방 안에서 소리가 전혀 없어지고, 잠시 후 저벅저
벅 네이아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하나 들렸다 싶더니,
문 너머에 있던 것은 마도왕 뿐이었다.
"기다리게 했구나."
"아닙니다,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방은 텅 비어있었다. 네이아 따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마법으로 오크들을 전원 전이시켰을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수단- 마법의 아이템에 의해 전이시켰을까.
"그럼 카스트디오 단장과 합류해서, 이후의 에정을 물어
보기로 하자꾸나."
"옛! 알겠습니다!"

오크의 수용소에서 바깥으로 나온 두 사람은, 중간에 만


난 성기사에게 레메디오스가 있는 장소를 물었다. 전해들은
건물의 입구에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구스타보
가 있었다.
"오오, 마도왕 폐하! 지금, 찾아뵈려던 참이었습니다!"
아까 만났을 때와는 구스타보의 분위기가 달랐다. 희망이
라는 빛이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것처럼 활기가 느껴졌고,
목소리에도 힘이 느껴졌다.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던 듯했다. 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마도왕이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 있는가? 뭔가 낭보라도 있었던 것 같네만?"
"예! 폐하께서 부디 만나주셨으면 하는 분이 계십니다.
자, 이리로 오시죠."
만나주었으면 한다는 것은, 유력귀족, 혹은 왕족과 관계
되는 인물일 것이다.
마도왕은- 그리고 어째서인지 네이아도- 구스타보의 안내
를 받아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된 소박한 의자가 몇 개 놓여있는 방에는, 레메디
오스와, 그리고 또 한 사람 야윈 남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도왕이 방으로 들어오자, 일어서서 맞이해주
었다.
구스타보가 처음 만나는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이 분은 저희나라, 성왕가의 피를 잇고 계신 왕형, 카스
폰드 님이십니다."
확실히 듣고보니, 성왕국 금화에 새겨진 2대 성왕 폐하의
얼굴을 닮은 곳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이 정말로 여기
에 갇혀있었다는 것에 네이아는 눈을 크게 떴다.
"카스폰드 님. 이 쪽은 저희나라에 힘을 빌려주고 게신,
아인즈 울 고운 마도국 국왕, 아인즈 울 고운 폐하십니다."
"오오! 정말 뭐라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마도
왕 폐하. 처음 뵙겠습니다. 지금 소개를 받은대로, 우수한
동생에게 추월당한 오라비입니다."
정말 뭐라 답해야할지 알 수 없는 말을 건넨 왕형에게, 레
메디오스가 비아냥을 들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쓰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역시 성왕녀에 버금가는 왕위계승권을 가
지고 있는 인물에게 평소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었는지,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는 정도에서 참았다.
"-아아, 그렇군. 처음 뵙겠소, 왕형 공."
그리고 두 사람이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윽고 마
도왕이 손을 내밀고, 카스폰드가 잡았다.
악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윗사람이 건네는 것이었
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형일 뿐인 남자
와, 작긴 하지만 일국의 왕이라면 후자가 위. 그리고 지원
해주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으니 당연했지만, 당장 손을 내
밀지 않았던 것은 마도왕이 상대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배려심이 깊고, 관대한 분이구나)
네이아는 감탄했다. 비슷하게 구스타보도 감탄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시선 한구석에 잡혔다.
"마도왕 폐하. 이런 소박한 차림이라 죄송합니다. 가능하
면 귀공의 앞에 설 때는 그에 맞는 차림이었다면 좋았겠습
니다만..."
"부끄러워할 것 없소. 복장 같은 것으로 귀족의 품위는 깎
이지 않지. 오랜 세월 갇혀있던 몸으로 피곤하실 거라 생각
되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떻겠소?"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후의를 받아들이겠습
니다."
손을 놓은 두 사람은 마도왕이 먼저, 카스폰드가 나중에
의자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귀공이 무사해서 다행이군. 하지만, 어째서
이런 곳에 잡혀있던 거요?"
"그건 이 부근까지 제가 도망쳐왔기 때문입니다. 바그넨
남작에게는 정말로 신세를 졌지요. -그의 상태는 어떤가?
카스트디오 단장. 나와 이야기를 끝낸 다음, 자네들이 데려
갔네만."
"예. 바그넨 남작의 부상은 그리 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
에,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만, 열악한 환경 하에서 육
체의 피로가 심각했기 때문에, 지금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신관들의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 없겠나? 그의 지혜도
빌려줬으면 하는데."
"신관들은 다친 자들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남은 마
력을 소비해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긴급성이 없을 경우에는, 마력은 온존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군, 단장. 그저, 이 부근까지 나
를 데리고 필사적으로 지켜준 사람이야. 가능한 한- 내 말
뜻을 알겠나?"
레메디오스가 아니라, 구스타보가 이해했다고 고개를 깊
숙이 숙였다.
"자, 그럼 시급히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네만,
변신이나 환술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여기에 없
는가?"
"어째섭니까, 마도왕 폐하?"
"잡혀있던 백성들 사이에, 악마가 마법을 써서 잠입하지
않았나를 경계하기 위함일세."
카스폰드가 레메디오스를 보았다.
"단장. 폐하의 질문에 대답해주겠나?"
"아, 죄송합니다. 대신 부단장인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그
런 인물이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마도왕이 [흐음]하고 생각에 빠져있는데, 카스폰드가 다
시금 레메디오스에게 물었다.
"마도왕 폐하께서 이렇게 고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은 아
주 중요한 점이다. 다시 묻겠네. 신께 맹세코 모른다고 할
수 있겠나?"
두 사람의 성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카스폰드의 시선이
네이아를 향해 움직였다. 자신 같은 종자가 알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네이아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자 바라하도 모르는 것인가... 무엇이냐? 이상하다는
표정이다만, 네 이름은 단장에게서 들었다. 마도왕 폐하의
곁에서 모시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허둥지둥 네이아는 카스폰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맞소. 그녀는 아주 우수하오. 나도 이런 종자를
가지고 싶을만큼."
"과, 과분하신 말씀..."
네이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을 보고 마도왕과 카스폰
드는 즐겁게 웃었다. 그리고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마도왕은
표정이 전혀 없었지만- 돌아갔다.
"무지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
다만, 악마라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악마는 사람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사람으로 변신할 수도
있지만, 이건 누군가와 같은 모습으로 둔갑하는 것이 아니
오.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뿐이지. 누군가의 얼굴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 갇혀있던 자들 가
운데 아무도 모르는 자가 있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소."
"그렇다면 잡혀있던 자들에게 서로를 확인시킬 필요가 있
겠군..."
"환술의 경우에는 좀 성가시지. 환술을 사용하면 다른 사
람으로 둔갑하는 것도 가능하오. 그래..."
마도왕이 마법을 쓰자, 그 해골 얼굴이 카스폰드의 것으
로 변했다.
"이게 환술이오. 다만, 그 위계가 낮다면,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복장이 변하지도, 목소리가 변하지도 않소. 그리고
당연하지만, 기억이나 생각까지 복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
오. 그 때문에 친밀한 자끼리 대화를 시키면 곧 알아낼 수
있을거요."
마도왕의 얼굴이 하얀 해골로 돌아갔다.
"복장이나 목소리를 속이는 방법은 몇 가지 있으니, 역시
대화를 시켜 위화감이 없는지 조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
법이겠지만."
아까 오크에게 한 질문은 그것을 경계했던 것인가, 하고
네이아는 놀랐다.
(역시 폐하. 놀랄 정도로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계시는구
나...)
"과연... 들었는가, 즉시 그것을 조사하도록."
"기다려주시오. 본성을 드러낸 악마가 날뛸 가능성도 생
각해볼 수 있소. 카스티디오 단장처럼 강한 사람이 근처에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오만?"
"과연. 알겠습니다. 단장이 입회한 자리에서, 하도록 하겠
습니다."
구스타보가 고개를 숙였다.
"왕형 공.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이상이오. 뭔가 있다
면 말해주시오."
"그럼- 마도왕 폐하. 이후의 계획말입니다만, 저로서는 남
쪽으로 가서, 합류해서 전군을 이끌고 공격할 필요가 있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잡혀있던 귀족이
몇 사람 있었기 때문에, 그 자들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
고, 누가 힘을 빌려줄 것 같은지 작전을 짜고 싶다고 생각
합니다."
"흠. 이 나라의 귀족에 대한 것까지는 모르니, 귀공이 그
래야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래도 좋을거요. ...다른 수용소를
공격해서, 포로를 해방하지는 않을 것이오?"
"지금은 해방하지 않을 겁니다. 얄다바오트의 지배 지역
에서 많은 사람을 이끌고 다니면 아주 눈에 띄고, 행군속도
도 늦어질 겁니다. 구출을 해버린 탓에 더욱 많은 목숨을
잃는 결과가 되는 것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을 남쪽으로 보내고, 우리들만이 포로
수용소를 공격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카스트디오 단장. 동석하는 것은 허락했지만, 자네의 의
견은 묻지 않았네."
카스폰드가 마도왕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목소리로 말했다.
발끈한 레메디오스가 어금니를 깨물며 분노를 억눌렀다.
"나도 왕형- 아니, 카스폰드 공의 의견에 찬동하오. 다만,
이미 이 곳을 포함해, 두 곳을 함락시켰소. 그에 대한 본보
기로 희생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오만, 어찌할거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카스폰드는 어깨를 으쓱였
다. [희생없이 이 나라를 탈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
지 않습니다. 그 희생이 몇십, 몇백, 몇천 늘어나는 정도겠
죠. 그보다 우선해야하는 일이 따로 있으니까요]
백성들을 버린다는 발언에, 레메디오스도 구스타보도 놀
라고 있는 것이 네이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네이아 자신은
역시 평범한 왕족이란 이 정도가 보통인가, 하고 차갑게 생
각할 뿐이었지만.
"카스폰드 님, 변하셨군요. 예전에는 폐하처럼 백성들에
게 다정한 분이셨는데."
"뭔가, 카스트디오 단장? 실망한 것인가? 흥!"
카스폰드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입술이 일그러지고,
이를 드러냈다. 날카로워진 눈동자에는 조소의 빛.
"자네도 그 지옥을 맛본다면 성격이 변할걸세. 허울좋은
소리는 못하게 말이야. 구역질이 날 것 같군. ...무엇을 당
했는지 듣지... 못한 것 같군.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물어보
게나. 악마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모독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겠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억지로 지어내던 감정 밑에
있던 어두운 것이 흘러넘쳤다고 하는 편이 올바른 표현일까.
"가능하면 아인들은 모조리 죽이고 싶지만..."
힐끗 마도왕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마도왕은 어깨를 으쓱
이며 대답했다.
"정보를 알아낸 다음에는 마음대로 하시오. 오크는 내 뜻
대로 해방해버렸지만 말이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아주 유감입니다만. 뭐, 오
크는 같은 고통을 맛본 동료라고도... 다만, 성검과 교환한
다는 조건이었다면 주셨을 겁니까?"
"나는 매직 캐스터라, 검을 받아도 쓸데가 없소."
마도왕의 농담스러운 말에, 카스폰드는 가벼운 웃음소리
를 냈다.
레메디오스의 감정이 빠져나가버린 것 같은 얼굴과 구스
타보의 창백한 얼굴이 그 두 사람과는 대조적이었다.
너무나도 농담스럽게 들렸지만, 카스폰드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네이아는 몸이 떨렸다. 잡혀있던 아인들조차, 그들을 넘
겨받기 위해 국보마저도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원한을 품을
줄이야, 얼마나 심한 일을 당했을까.
"그럼 이 도시는 포기할 거요?"
"가능하면 그렇게하고 싶습니다. 일단 잡혀있던 자들의
회복, 남쪽으로 파견할 사자 등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이 될
겁니다만. 이르더라도 1주일 정도, 여기에서 기다려주셨으
면 합니다. 이 나라를 탈환했을 때는, 카스트디오 단장이
약속한 것에 더해, 그 은혜에 보답할 만한 사례를 하겠습니
다.
"그거 아주, 기대가 되는구려."

마도왕이 네이아를 데리고 퇴실한 후. 카스폰드가 [자]하


고 입을 열었다.
"그럼 마도왕이 떠났으니 본제로 들어가보지."
"예. 이렇게 많은 백성을 지키면서 이동하게 된다면 상당
히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가능하면 남쪽에서 다소나마 원
군을 빌리거나, 혹은 마차 등의 이동수단을 손에 넣을 필요
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스타보의 제안을 듣고, 카스폰드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
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나.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했지?"
"본제라 하심은, 남쪽에 어떻게 이동하느냐, 가 아닙니
까?"
"분명히 말해두지. 당장은 남쪽으로 도망가지 않을 거야.
여기에서 얄다바오트의 군세와 싸울걸세."
"무모합니다!"
구스타보의 말에, 레메디오스도 말을 덧붙였다.
"시벽이 있다고는 하나, 포위당하면 식량이 바닥나서 끝
입니다. 원군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의 농성전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레메디오스는 그리 머리를 써서 생각하지 않는 부류였지
만, 전투에 관해서는 신뢰할 수 있었다. 단장의 자신 넘치
는 말을 듣고, 구스타보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여기에서 싸울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시선에 담긴 의문을 감지하고, 카스폰드는 더
냉혹한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마도왕은 얄다바오트와 싸울 때까지 마력을 온존한다는
이야기를 자네들에게 들었는데-] 구스타보가 고개를 끄덕이
는 것을 보고, 카스폰드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곤란
하네. 얄다바오트를 쓰러뜨리고, 메이드 악마를 손에 넣으
면, 마도왕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그 때까지 이 나라에
침입한 아인들을 줄여주지 않으면 안 돼. 그걸 위해서는 궁
지에 몰려줘야겠지]
"그럼 마도왕 폐하와의 약속이..."
"마도왕이 마법으로 아인들을 몇 마리 죽이면, 성왕국의
백성의 희생이 조금이나마 줄지 않는가? 자네들은 어느 쪽
을 택할텐가? 언데드와의 약속과, 성왕국의 무고한 백성들
의 목숨 중에."
구스타보가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는 가운데, 표정에 조
금도 변화가 없이 레메디오스가 즉시 대답했다.
"당연히 성왕국의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입니다."
"그렇네, 단장. 그렇기 때문에 마도왕은 싸워줘야만 하네.
하지만, 약속을 해버린 이상,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나름대
로 이유가 필요하지."
"그걸 위해서 얄다바오트의 군대와 부딪힌단 말입니까?"
"그렇네. 정확히는- 남쪽으로 피난을 하기 위한 준비를
개시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 얄다바오트의 군대에게 포위
당한다.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마도왕의 힘을 빌린다는 걸
로, 어떻겠나?"
나쁘지는 않다, 고 레메디오스와 구스타보는 눈짓을 교환
했다. 하지만-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마도왕이 마력을 낭비하게 만들
면 얄다바오트와의 전투에서 불리해지는 것이 아닌지?"
"마력의 회복에는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들었네
만?"
"동생도 그렇게 말했다."
레메디오스의 동생은 신관이었다. 그런 그녀로부터 들었
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누구도 반론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몇 마리, 아인을 고의로 놓아준다. 그리고 여기에 얄다바
오트의 군세를 끌어들이는걸세. 식량이 바닥나기 전에, 말
이야."
"...얄다바오트의 군대는 어느 정도 올 것인가."
이미 이 세 사람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얄다바오
트의 아인의 군세는, 일련의 전투에서 줄어든 결과, 10만
전후 정도로 생각되었다.
군세를 구축하는 것은 총 12개 종족, 군세라고 할 수 있
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추가로 6개 종족이 더 있어서, 총 18
개 종족이었다.
12개 종족이란-
스네이크맨. 뱀의 머리를 가진 아인종족. 리저드맨의 근
친종족이라고도 알려져 있었다.
아머드. 강철 같은 털을 가진, 이족보행하는 쥐 같은 종족.
쿠아고아의 근친종족이라고 생각되었다.
케이픈. 인간보다 약간 큰 원숭이를 닮았고, 눈은 퇴화되
어 없었다.
제른. 상반신은 토끼에 팔이 달린 것 같은 느낌이고, 하반
신은 남색의 구더기처럼 생긴 끈적한 종족. 이형종이 아닌
가 하고 생각되었지만, 아인에게 효과가 있는 마법의 영향
을 받기 때문에, 아인인 모양이었다.
블레이더(도갑충). 손등 부분에서 칼 같은 날카로운 날이
달린 손을 가졌고, 갑옷과도 같은 외골격에 감싸인 곤충과
도 같은 종족. 이것도 제른과 마찬가지로, 아인에게 효과가
있는 마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아인으로 분류된다.
호르너(말 인간). 말과 같은 다리를 가진, 질주하는 것이
뛰어난 아인. 쉬지도 않고 달릴 수 있고, 그 주파력은 놀랄
정도라고 한다.
스파이던(인간거미). 네 개의 아주 길고 가는 팔과 가는
다리를 가진, 거미를 방불케하는 형상의 아인. 입에서 다양
한 실을 뱉어내어, 그 실로 옷 등을 만든다. 이 실로 만든
옷은 강철 수준의 경도를 자랑한다.
스톤 이터(돌먹는 원숭이). 소박한 무기를 들고 있다. 무
서운 점은 먹은 돌을 내뱉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약 100
미터는 가볍게 날아가는 돌멩이는, 강철 갑옷을 어렵지 않
게 찌그려뜨린다. 단 횟수가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견뎌내
는데 성공한다면 그리 두렵지 않았다.
올트로우스(반인반수). 켄타우로스(반인반마)의 하반신이
육식동물이 된 버전. 전투력이 높아진 대신 달리는 능력에
서는 켄타우로스보다 떨어졌다.
마기로스(마현인). 최대 제4위계까지 도달할 수 있는 타
고난 마법 구사능력을 가졌다. 그 마법의 종류 등이 문신으
로 드러난다는 모양이다. 강한 자는 전신이 빈틈없이 문신
으로 뒤덮여있다. 이 종족 중에는 때때로, 매직 캐스터의
능력에 눈을 뜨는 자도 있는데, 그런 자는 제5위계까지 사
용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왕족급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프테로포스(익아인). 가파른 절벽 같은 곳에서 사는 종족
으로 활공이 매우 특기. 비행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상당한
힘을 필요로 하는지, 하루에 일정시간밖에 하늘을 날 수 없
다. 게다가 그 후에는 활공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비행하고
있지 않으면, 갑옷으로 손상을 경감하는 것이 어려운, 바람
을 사용한 참격을 날릴 수 있기 때문에, 하늘을 날지 않는
편이 강한 종족.
여기에 바포르크(산양인)가 더해진다.
남은 여섯종족은, 무리를 짓지 않거나, 혹은 하나만 있어
도 나름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오거(거대 식인귀).
프리 운(흙정령 거대귀신). 오거와 비슷한 종족이지만,
흙의 힘을 가지고 있어, 상위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흙에 관련된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 운(물정령 거대귀신) 프리 운에 가까운, 물의 힘을 가
진 존재. 물에 관련된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가라쟈(뱀의 왕). 뱀에 비늘이 달린 몸과 팔을 가진 것
같은 외견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이름의 나가와는 실제로
는 전혀 다른 종족이며,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복수의
마법을 날 때부터 구사할 수 있으며, 때로는 갑옷이나 검
같은 것으로 무장하는 경우도 있다.
스프리건(수호귀). 소형에서 대형까지 자유롭게 크기를
바꿀 수 있는 종족. 기본적으로는 선한 종족이며, 사악한
스프리건은 아주 드물다. 단, 선하건 악하건 날뛰게 되면
손을 쓸 수가 없다.
즈오스티아(수신사족수). 수인의 상반신과 육식동물의 하
반신을 가졌다. 켄타우로스나 올트로우스에 가까운 종족.
비늘갑옷을 착용하고, 타원형 방패를 가지고 있다. 특별한
힘은 없지만, 짐승과도 같은 흉폭함과 완력을 가진 중장갑
기병. 개개인을 따져보아도 아주 강하기 때문에, 올트로우
스가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고블린과 홉고
블린의 관계와 유사했다. 단 특수한 힘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플라이(비행)> 같은 것을 쓸 수 있는 모험자라면
그리 강적은 아니지만, 정면에서 맞붙으면 오리하르콘급 모
험자팀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마도왕의 이야기로는 자네들의 거점은 발각되었을 가능


성이 있는 거잖나? 그렇다면, 우리 측의 병력도 알고 있을
테니, 그렇게 많은 병력을 보내진 않을 거야. 그렇기 때문
에 우리에게는 유리해지지. 단, 문제가 있네."
"식량이군요."
"그래. 신관의 마법으로 식량을 만들 수 있을텐데, 마력을
모두 써서 만들어낸다고 해도 너무나도 양이 부족해. 아인
들처럼 놈들을 먹을 수도 없고 말이야."
레메디오스와 구스타보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인간을 잡아먹는 아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침략해온 아인들에게 지구전을 걸더라도,
자신들이 패배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모든 수용소는
아인들의 식량 저장고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식량이 최대 며칠이나 버틸지, 조-"
"이미 조사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인들이 장비하고 있던
물건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잡혀있지
않았나 조사하고 있습니다."
"역시 훌륭하군, 단장."
세 사람은 한동안 농성전의 준비에 관한 회의를 계속했다.
그리고 1시간 이상 시간이 경과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
이 나왔는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좋아. 그럼 농성전을 대비한 준비를 시작해주게."

그로부터 1주일 후, 식사의 양이 줄고, 슬슬 이동을 개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 무렵, 지평선 너머에 아인의
군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은 상정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대군이었다.

5.

아인들의 군대가 대규모로 밀려오고, 우왕좌왕하는 도시


를 바라보면서, 아인즈는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비유가 아니었다.
극한까지 마음고생이 쌓인 아인즈는, 언데드임에도 정신
적인 피로에 의해, 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그리고 두 손
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쩌지...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냐고...)
기본적으로 아인즈는 거의 데미우르고스가 쓴 시나리오대
로 행동해왔다.
물론,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지시받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
에 애드립은 많았지만, 그래도 아인즈 나름대로 데미우르고
스가 원하는 흐름에 맞춰 행동할 생각이었다.
그보다도 애드립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솔직히 말해서, 데미우르고스로부터 작전 매뉴얼의 대부
분이 [흐름에 따라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힌 거나 다름없
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그것이 매뉴얼을 처음 본 아인
즈의 감상이었다.
만약 아인즈가 우수한 사람이었다면, 그것을 따라 완벽한
마도왕을 연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감이지만
아인즈는 지극히 일반적, 아니면 그보다 조금 떨어지는 정
도의 능력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즈와 데미우르고스의 사이에서 치열한
다툼이 발생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걸론 모르겠으니까, 더 상세하게 적어
줘]라는 아인즈의 애원에 대해, [총명한 아인즈 님께 그런
실례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데미우르고스의 겸손이 돌
아오는 공방이었다. 도중에 알베도도 휘말려버린 싸움은,
처음부터 불리했던 아인즈의 완전 패배라는 형태로 끝났다.
이렇게, 방치되어버린 작전 매뉴얼이 아인즈의 손 안에
남았다.
데미우르고스가 그를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좀 더
다른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부
하들이 보내는 신뢰와 존경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특히 [아인즈 님이시라면 더욱 훌륭한 결과를 내실 것이
니, 우리들 따위가 행동이나 언동을 구속하는 것은 곤란하
다]라는 생각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이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타국의 왕이 단신으로 오겠냐고...
구실도 억지 그 자체잖아... 그래도 여기까지는 올 수 있었
어. 도중에, 몇 번인가 억지로 밀어붙이거나, 실수할뻔 했지
만, 여기까지는 올 수 있었다...)
신 같은 것은 믿지 않았지만, 신에게 기도를 바치고 싶은
심정만 느껴졌다.
(데미우르고스도 알베도도 하다못해 내 능력을 고려해서,
안건을 올려주지 않으려나...)
절대 불가능한 할당량이 주어지면, 의욕은 뿌리째 뽑혀나
간다.
(...좋아, 힘내라, 나. 이 상황을 벗어나면 그 다음은 그나
마 편하다)
발에 힘을 주고, 아인즈는 일어났다.
계획도 중반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 부분도 최
악이었다.
데미우르고스로부터는, 이 도시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면, 85퍼센트 가까운 사상자가 나올 때까지 공격하겠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점에 대해 아인즈가 느끼는 바는 없었다.
데미우르고스가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면, 아인즈가 생각
하는 것보다 올바른 답일 것이다. 그만한 죽음이 나자릭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면, 그래야한다. 반대로 더 죽이는 편이
나자릭의 이익이 커지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문제는, 데미우르고스로부터, 여기에서 죽여서는 안 되는
인간을 알려달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 선에서 얘기가 끝나는 거라면 적당한 인간의 이름을
꼽아주면 되었지만, 주의사항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아인즈에게 심취, 혹은 아인즈 측에 붙을 것 같은
인간에 한해서라는 점이었다.
[아인즈 님이시라면 그 드워프처럼 이미 몇 명의 인간을
심취시켰을 거라고 생각되오니, 그 인간의 이름을 알려주십
시오. 주의해서 죽이지 않도록 행동하겠습니다]라고 데미우
르고스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는, 비아냥대는 거냐고 데미우
르고스의 생각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어딨냐, 그런 녀석이."
아인즈는 무심코 우는 소릴 했다.
아인즈에게 심취한 인간 따윈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성왕국에서는 언데드는 아주 미움받고 있다는 것
을 강하게 피부로 느껴왔던 것이다.
그런 역경 속에서 어떻게 언데드인 자신에게 심취하는 인
간을 만들라는 말인가.
하지만, 한 사람도 없는데요 라고 데미우르고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데미우르고스는 진심으로, 아인즈라면 몇 명의 인간을 심
취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명
을 심취시키는 것도 무리였습니다, 라고 말하면 데미우르고
스는 어떻게 생각할까.
(위가 아프다...)
데미우르고스가 말한 드워프라는 것은 곤드 파이어비어드
를 말하는 거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뿐이었
다. 마침 마음이 약해진 부분에 자신의 공격이 크리티컬 히
트했을 뿐이고, 그런 행운이 몇 번이고 일어날리가 없었다.
그리고 곤드라는 정보원을 얻었기 때문에, 드워프의 룬
장인들에게 효과적인 한 수를 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왕국에서는 그 정도의 사람은 없었다.
유일하게, 종자 네이아 바라하만은 우호적인 관계를 쌓기
에 이른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아직 그 정도가 한계였다.
일단, 더 우호도를 높인다는 의미에서도, 또다른 의미에
서도, 매직 아이템을 빌려주었지만, 그 효과의 정도는 불명
이었다. 언제나 살인청부업자 같은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고,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 명밖에 없어요, 라고 말하면 데미우르고스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인즈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데미우르고스가 상상하는 아인즈의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대체 어떻게 될까.
(드워프의 나라에서 데미우르고스한테, 나는 그렇게 머리
가 좋지 않아, 라고 말했는데 믿는 눈치는 아니었어... 일났
다. 그 녀석 시점에서 나는 대체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거냐
고... 그보다 점점 거대하게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보통 반대 아니야?)
기대가 아팠다. 무거운게 아니라 아팠다.
옛날의 자신은 충성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무겁고, 고통스
러운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특히 수하들이 아
인즈를 거대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이제 역시, 이 타이밍에서 데미우르고스가 나는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 아니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어떨까? 하지만
그 결과 데미우르고스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온 게획이 실
패로 끝나면 어떡하지? 자기가 몇 년씩 투자해서 좋은 거래
상대를 만들었는데, 상사의 멍청한 한 마디로 모든게 박살
이 나면...)
아아아, 하고 말하면서 아인즈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쩌면 좋지?
어떻게 하는게 최적의 답일까?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매번, 데미우르고스에게 실
망의 시선을 받는 결과가 나왔다. 납득이 가는 결론에 도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대가 너무 커서-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와버려서 낙하
했을 때의 대미지가 커지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대단한 녀
석이 아니라고 계속 말했는데...)
게다가 아인즈 자신의 계획은 상당히 실패한 상태였다.
아인즈는 공간에 손을 넣어, 하나의 검을 꺼내들었다.
룬이 새겨진 평범한 검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 네이아에게 넘긴 활에 필적하는 힘을 내
포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드워프들이 만든 룬 무기가 아니었다. 새겨
진 룬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고, 이것은 위그드라실의 기술
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아..."
아인즈는 한숨을 토해냈다. 아인즈는 이런 무기를 몇 개
나 준비해두고 있었다. 당초의 예정대로라면 이런 무기를
성왕국 측에 빌려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검에 놀란 성왕국의 사람들에게 [이
것이 룬 무기의 완성품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마도국이 만
들고 있는 룬 무기의 평판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네이아에게 무기를 빌려준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을 본 성왕국의 사람들이, 아인즈에게 무구를 빌리러
몰려올 거라고 생각해서 한 일.
하지만-
아인즈는 머리를 싸쥐었다.
(왜 아무도 빌리러 안 오는 거야? 생긴 건 저렇게 요란하
니까 반드시 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억지로
라도 그녀를 전선에 세워서, 싸우게 만들어야했나)
그 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아인즈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옷자락 같은 곳의 주름이 없나 고속으로 체크. 검을 공간
에 밀어넣고, 뒷짐을 지고, 지배자의 포즈를 취한 다음 문
을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신가?"
"마도왕 폐하, 입실해도 되겠습니까?"
문 너머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듣
기 어려운 목소리가 들렸다. 보통이라면 이름을 물어봐야되
겠지만, 데미우르고스로부터 올 거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
에 망설임없이 아인즈는 입실하도록 허가했다.
"아아, 상관없다. 들어오게."
아인즈의 방에 들어온 인물은 문을 닫더니, 형상을 변화
시켰다.
마치 알 같은 머리를 가지고, 그 눈동자와 입 부분이 긴
구멍처럼 되어 있었다. 손가락은 자벌레처럼 가는 것이 세
개뿐이었다.
도플갱어였다.
데미우르고스로부터 부탁받아 빌려준 이형이었다.
평범한 도플갱어였기 때문에,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변신했다고 해도 40레벨 정도까지 능력을 흉내낼 수 있을
뿐이고, 변신 전은 더욱 약했다. 뛰어난 능력이라고 하자면,
기껏해야 카르마 치 등의 여러가지 조건이 붙어있는 무구조
차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레거시
(유물)급 이상의 매직 아이템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뻥 뚫린 것 같은 구멍의 눈동자가 아인즈를 향했고, 이어
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아인즈 님께 무례를 범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
해주십시오."
"신경쓸 것 없다. 너는 네 일을 성실하게 했을 뿐이다. 그
점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없다."
"자비로운 말씀, 황송합니다."
아인즈는 문에 시선을 주었다.
"너는 지금, 아주 바쁜 것 아니냐? 여러가지로 지휘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많지 않으냐? 게다가 방의 바깥에는 누
가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목소리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되겠
군."
"괜찮습니다. 아인즈 님을 뵙기 위해 혼자서 간다고 명령
하면 트집을 잡을 자는 없습니다."
"그런 것인가."
예, 라고 도플갱어가 말하며 웃었다. 그렇지만 조심할 필
요는 있을 것이다.
"그럼 아인즈 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사실, 이 도플갱어가 온 이유는 알
고 있었다.
라고나 할까, 이 도플갱어에게 말하도록 약속이 되어있었
다.
그렇다. 몇 명을 심취시켰느냐는 이야기를.
"실례했습니다. 아인즈 님께 충성을 바치게 된- 구해야만
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흠..."
아인즈는 유유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천천히 걸어나왔다.
물론, 방의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방의
안을 걸어다닐 뿐이었다. 도플갱어를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이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아인즈는 확신
하고 있었다. 그렇다기보다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
건 그것대로 무서웠다.
시간은 그리 없었다. 필사적으로 생각한 아인즈는 우뚝
발을 멈추었다.
-이게 정답인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상 얼버무릴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도 없었어.
만약 인간이라면 심장이 시끄러울 정도로 뛰고 있겠지만,
이 몸에 고동을 칠 기관 같은 것은 없었다.
격렬한 감정이 치밀어오른 것에 의해 강제적으로 억압되
면서도, 작은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오는 가운데, 아인즈는
도플갱어에게 말했다.

"흠. 솔직하게 말하지. 살릴 필요가 있는 인간은 없다. 적


당히 솎아내도록."

[오버로드 12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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