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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의 합법화는 정당한가?

12210943 신소재공학과 배성민

전 세계 사람들은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사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만, 현실을 더 이상 이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죽음을 생각하곤 한다. 또한,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파산, 재산의 큰 손해로 실망하고 더
이상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될 때는 세상을 등지고 죽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말기 암 환자나 교통 사고 등 신체가 크게 부상당하는 대형
사고로 인해 더 이상 생명의 연명이 힘들다고 생각될 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게 자살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그 대안으로 고통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안락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본 영화 <Sea Inside>에서는
안락사를 희망하는 전신마비 환자 라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청년시절 다이빙을 하다 얕은
수심으로 인해 목뼈를 다쳐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라몬은 하루라도 빨리 안락사가
합법화되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정부는 합법적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아 지속적으로
법원에 호소하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된 오늘의 주제는 안락사의 합법화는 정당한지에 대한
것이다. 안락사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나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필자의 의견인
안락사의 합법화에 찬성하는 필자의 의견을 설명하고 싶다.

안락사를 거부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끊임없는 희생이 필요하다.


영화와 같이 주인공의 가족이 26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곁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시간적 소모와 경제적 소모가 발생한다. 보호자는 자기 계발이나 다른 무언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포기하고 오로지 환자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이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에게도 타격이 크지만,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 실제로 현재 대표적인 안락사 합법화 국가인 스위스는 안락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략 6 백만 원에서 천만원이 요구된다. 이는 아무나 안락사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만큼 안락사를 집행하는 데 있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과연 본인이 안락사를 희망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희망으로 인해 강제로 삶을 연장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과연
라몬의 경우와 같이 죽음을 희망하지만 환자 가족이 소유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지옥같은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단지 안락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때문에 죽음을
희망하는 환자의 삶을 억지로 연장하는 것은 환자 본인에게도 고통을 줄뿐더러, 다른
사람에게도 헛된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료 자원은 한정적이다. 의사 수가 많아져 환자와의 비율이 1:1, 혹은 그 이상으로


활성화되어 있으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의료 자원이
부족해 정부에서 의사를 늘리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는 한국만 겪는 문제가 아닌, 전 세계가
의료난에 허덕이고 있다. 안락사를 거부하고 삶을 계속 의료기술에 의존해 연장하는 행위는
부족한 의사 수를 더욱 부족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감기나 소화불량같이 금방
호전되는 병은 병원에 크게 부담이 되진 않지만, 전신마비, 암 말기, 식물인간같이 지속해서
환자의 고통을 완화할 수 없는 경우는 의사 자원을 낭비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환자가 본인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해 생을 마감한다면, 환자에게
투자되는 의료 자원을 다른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돌리면서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안락사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몇몇 사람은 안락사의


합법화를 거부한다. 대표적인 이유는 생명의 존엄성이다. 비록 환자 본인이 지속적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안락사를 선택하더라도, 이 환자가 가진 생명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명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 죽음은 환자 가족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 동료, 더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까지 정신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은 안락사의 합법화가 삶의
가치를 저하한다고 본다. 영화와 같이 아주 긴 시간동안 고통을 받아 안락사를 통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안락사의 큰 분류인 자살을 보다 쉬운 인식을 만들어 크게 고통을
동반하지 않은 사람이 자살을 선택할 수 있고, 이는 사회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종교적이나 윤리적인 이유로 인해 유럽의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등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한 국가 대부분에서 안락사를 거부하고, 허용하는 국가도 매우 제한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느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었간


사람들이 그렇게나 바라던 하루다’라는 글이 생각났다.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별 다른 점이
없는 24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단 1 시간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처럼 모든 사람이 남들의
강요로 삶을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개인마다
경제적 여유와 사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는 주어진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고
있지만, 라몬같이 온몸을 움직이기 힘들거나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한테는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내가 아직 젊고 죽음을 생각해 볼 만큼 고통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교수님께서 이 과제를 주셔서 이번 기회에 나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무의식적으로 보내는
일상적인 하루가 더 없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삶의 귀함을
느끼게 해준 교수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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