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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제10권 제2호, 1-26

ⓒ 한국윤리학회 2021년 12월


ISSN 2234-8115 eISSN 2733-9920

(DOI)https://doi.org/10.38199/KJE.10.6
특집논문 공리주의와 결과주의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강 준 호*

【논문 개요】
이 논문의 목적은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함축하는 분배양상을 고찰하는 것
이다. 그가 자신의 경제학적 저술 전반에서 보여 준 일관된 관심은 빈민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었고, 법적 개입을 통한 빈민의 생계보장에 대한 제안은 당시의 관점에
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제안이었다. 이러한 제안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공리주의의 필연적 귀결일 수 있다. 벤담은 입법자의 거시적 관점에
서 이러한 궁극적 목적의 실현에 이바지할 네 가지 종속적 목적들을 설정한다. 그
것들은 생계, 풍요, 안전보장, 평등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 하위 목적들은 서로를
뒷받침하는 동시에 서로를 제약하는 관계에 있다.
이 논문에서 나는 우선 이 네 가지 하위 목적들을 개괄하고, 그중 생계 및 안전
보장과 관련해 벤담이 사유재산권을 강력히 옹호한 배경을 살펴볼 것이다. 다시 그
네 가지 하위 목적들 가운데 하나인 평등과 관련해, 그가 자신이 제시한 한계효용
체감 원리에 대해 어떤 견해를 취했는지를 밝히고, 이를 통해 그가 현실적으로 지
향한 평등 혹은 분배의 대략적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다른 세 가
지 목적들과 조화를 이루는 한에서 평등의 실현을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 제안한 상
속제 개혁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그의 공리주의
에서 재분배 정책의 기능과 한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주요어: 벤담, 공리주의, 재분배, 평등, 상속제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부교수. purdue2003@gmail.com


2 윤리학 제10권 제2호

1. 서론

빈민법(Poor Law) 관련 저술을 비롯한 그의 경제학적 저술 전반에서,


벤담(J. Bentham)의 일관된 관심은 빈곤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는 것에 있
었다. 정부 개입을 통한 빈민의 생계보장에 관한 그의 제안은 거의 최초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평할만하다.1) 그런데 이것은 그의 독특한 기여라기
보다는 공리주의 원칙의 실천적 귀결일 수 있다. 기본적 의식주 문제로 인
한 고통은 개인의 여타 주관적 고통에 비해 쉽게 인지될 수 있을 뿐만 아
니라 그 해결법도 비교적 선명할 것이다. 또 이미 충분한 재산을 가진 사
람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보다는 빈민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편이 공리주
의의 궁극적 목적,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실현을 위한 더 나은 방편
이리라는 것도 비교적 명백한 듯하다.
그러나 행복 혹은 만족 극대화 학설로서의 공리주의를 향한 비판의 한
주된 표적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든, 또 무엇의 만족이든 분배 문
제와 관련한 그것의 무관심이었다. 롤스(J. Rawls)의 비판에 따르면, 공리
주의는 만족의 총량의 분배를 오직 “간접적으로만 문제 삼을” 뿐이고,2) 공
리주의에서의 정의로운 분배란 단순히 전체 혹은 평균 공리의 극대화를 위
한 수단으로만 간주된다. 이것은 벤담과 밀(J. S. Mill)로 대표되는 고전 공
리주의만이 아니라 공리주의 일반을 향한 비판인데, 이러한 비판에 벤담이
나 다른 공리주의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찰하는 것은 이 논문의 목적
이 아니다. 이 논문은 다만 벤담이 행복의 분배에 무관심했다는 지적이 얼
마만큼 정당한지와 함께, 그의 공리주의적 사고가 어떤 현실적인 분배적
대안 혹은 양상으로 이어졌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오늘날의 주류 관념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
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공리주의적 특히 벤담의 관념과 대비하
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오늘날의 주류 관념은 정의를 행복 혹은 쾌락
과 독립된 내재적 가치로 보지만, 쾌락주의적 공리주의자 벤담에게는 정의
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행복이나 쾌락에서 독립된 가치일 수가 없다.

1) Samuel Fleischacker(강준호 역), 분배적 정의의 소사 , 172쪽.


2) Rawls, A Theory of Justice, p.26.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3

그에게 쾌락과 고통은 모든 가치의 원천이자 토대이다. “쾌락과 고통을 없


애보라. 그러면 행복뿐만 아니라 지금껏 애써 그것들[쾌락과 고통]과 무
관하다고 주장해왔던 정의, 의무, 책무, 덕은 모두 공허한 소리(empty
sounds)일 뿐이다.”3) 누구나 행복이 무엇인지 안다. 왜냐면 누구나 쾌락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의는 항상 논쟁의 대상이다. 쾌락과 고
통의 경험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개념에 실재(reality)와의 연결, 즉 의
미(sense)를 부여한다. 따라서 그것이 유의미한 말이나 개념이 되려면, ‘정
의’도 행복 혹은 쾌락과의 연결을 통해 정의되거나 설명될 수 있어야 한
다. 여태껏 정의가 무엇인지가 논쟁거리로 남은 이유는 그 개념을 바라볼
올바른 관점을 애써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정의는 ‘쾌락과 고통과 무관한’
토대를 가진 내재적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가치는 최대 행복 원칙
에 의존하거나 그 원칙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물론 정의에 대한 오늘날의 주류 관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이렇듯
정의를 최대 행복에 의존적 혹은 파생적인 가치로 간주하는 양상, 나아가
최대 행복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양상은 실로 적잖은 철학적
불편함을 낳는다. 그런데 이러한 불편함이 단순히 정의를 행복보다 우위에
두지 않았다는 불평일 뿐이라면, 어쩌면 벤담을 비롯한 공리주의자들은
‘왜 행복이 아니라 정의여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요컨대 공리
주의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의 대립은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한 서로 다른 직
관들 사이의 대립일 뿐이라고 보일 여지도 있다. 물론 단순한 직관의 대립
이라 해도, 인류가 고대로부터 정의에 부여해온 가치를 합당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여전히 가능하다. 벤담의 사상적 업적을 호의적으로 논하
면서도, 포스테마(G. J. Postema)는 정의 개념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해서
는 다음과 같이 힐난한다: “벤담의 손에서 정의 개념만큼 심한 손상을 입
은 도덕적 개념은 없다. 이 개념을 심각하게 다루려 하지 않으면서, 그
는 정의에 대한 논의를 흔히 사회적 반감이나 악의를 감추는 가면으

3) Bentham, Table of the Springs of Action, p.206, p.210. 여기서 벤


담은 예컨대 ‘정의에 대한 사랑’(love of justice)을 복합적 쾌락
(compound pleasure)의 한 예로 들고 있는데, 이것은 정의에 대한 우리
의 관념조차 어떻게 쾌락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4 윤리학 제10권 제2호

로 치부한다.”4)
이러한 힐난이 어디까지 정당한지와 관련해, 나는 우선 벤담이 최대 행
복의 달성을 위한 종속적 목적들로 설정한 네 가지 하위 목적들을 개괄하
고, 그중 생계 및 안전보장과 관련해 그가 사유재산권을 강력히 옹호한 배
경을 살펴볼 것이다. 다시 그 네 가지 하위 목적 중 하나인 평등과 관련
해, 그는 자신이 제시한 한계효용체감 원칙에 대해 어떤 견해를 취했는지
를 밝히고, 이를 통해 그가 현실적으로 지향한 평등 혹은 분배의 대략적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다른 세 가지 목적들과 조화를 이
루는 한에서 평등의 실현을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 제안한 상속제 개혁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 고찰을 통해 그의 공리주의에서 재
분배의 기능과 한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2. 생계와 안전보장: 생존과 사유재산

한 개인의 행복은 그가 경험한 주관적인 심리적 감각인 쾌락의 총량에


서 또 하나의 주관적인 심리적 감각인 고통의 총량을 뺀 값으로 결정된다.
전체 사회의 행복이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획득한 행복을 모두
더한 총량이다. 벤담은 이 총량의 극대화를 입법자의 궁극적이고 고유한
목적이자 역할로 규정한다. 그런데 입법자는 한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
구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물론 사뭇 다른 규모로 자신의
목적에 접근한다. 자신의 이익 혹은 행복에 대한 최선의 판단자로서,5) 각
개인이 일정한 여건하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대체로 그 자신의
몫이다. 입법자의 몫은 그의 고유한 권한, 즉 입법(legislation)을 통해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최대로 추구할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4) Postema, Bentham and the Common Law Tradition, pp.148-149.


5) Bentham, Jeremy Bentham’s Economic Writings, vol.3, p.333. 여기
서 벤담은 개인의 행복 혹은 이익 추구에서 정부의 간섭은 사실 불필요하
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당신만
큼 당신에게 이익인 것을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것을 당신만큼
열심히 계속해서 추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5

권리와 책무의 분배에서 입법자는 그 국가(body politic)의 행복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이 행복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를 탐구
하면서, 우리는 네 가지 종속적 목적을 발견한다. 생계(subsistence), 풍요
(abundance), 평등(equality), 안전보장(security) 이 모든 특수한 목적들
을 더 완벽하게 누릴수록 사회적 행복, 특히 그 법에 의존하는 행복의 총량
은 더 커질 것이다.6)

입법자는 자신의 고유한 방식, 즉 생계・안전보장 풍요 평등이라는 네


가지 종속적 목적의 성취를 겨냥한 입법을 통해 자신의 궁극적 목적에 접
근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전자의 세 가지 목적, 즉 생계 안전보
장 풍요의 성취를 극대화하고, 이러한 성취를 실행 가능한 한에서 네 번
째 종속적 목적인 평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분배함으로써 전체 사회의
최대 행복에 접근한다. 벤담은 이 네 가지 종속적 목적을 어떤 정치 공동
체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욕망할만한 “보편적 좋음(universal goods)”7)
혹은 이익으로 간주한다. 입법을 통해 생계 안전보장 풍요를 가능한 최
대로 누리고, 이 세 가지 목적과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 평등을 역시 가능
한 최대로 누리는 것이 모두의 이익인 것이다.8)
그런데 현실 사회에서 이 네 가지 종속적 목적의 추구는 개별적으로든
상호적으로든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중 예컨대 안전보장은 “신체, 명예, 재
산, (삶의) 여건”의 보장을 의미하는데,9) 그것은 대체로 다른 종속적 목적
들과 공통으로 재산(property)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되고, 벤담이 가
장 주목한바 역시 재산의 안전보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에서의 안전보
장은 한편 정부 활동의 재원 마련을 위한 과세(taxation)를 통해 개인의 경
제 활동과 권리에 대한 간섭을 허용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개인의 자유로
운 경제 활동과 사유재산권의 보장을 위해 정부 간섭의 제약을 요구한다.

6) Bentham, Principles of the Civil Code, p.302.


7) Postema, “Interests, Universal and Particular: Bentham’s
Utilitarian Theory of Value,” p.130.
8) Bentham, First Principles Preparatory to Constitutional Code,
p.153.
9) Bentham, Constitutional Code, p.107.
6 윤리학 제10권 제2호

안전보장의 목적이 이렇게 이중적 요구를 함축하는 것은 그것과 다른 종속


적 목적들 사이의 긴장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안전보장은 생계와 서로를 뒷받침하면서 서로를 제약하는 이중적 관계
를 맺는다. 네 가지 하위 목적 중 안전보장과 생계는 하나로 묶이고, 나머
지 두 하위 목적, 즉 풍요와 평등은 별개의 영역을 구성한다. 전자의 “두
목적은 [안전보장과 생계는] 삶 자체와 같다. 마지막 둘은 [풍요와 평등은]
삶의 장식물(ornaments)과 같다.”10) 한 개인의 생존은 그의 행복 추구의
선행조건이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로, 한 개인은 살아 있기에 행복하기를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계와 그 수단의 안전보장은 개인 생존의
토대이므로, 생계와 안전보장은 다시 개인의 행복 추구의 토대가 된다. 그
래서 정부 혹은 법의 한 핵심 기능은 안정적으로 “생계를 제공하는 것이
다.”11) 이러한 맥락에서 벤담은 개인의 경제 활동에 관한 자신의 일관된
입장과 상충할 것처럼 보이는 사회 입법(social legislation)의 이론적 정당
성을 다음과 같이 논한다.

가장 번영한 상태의 사회에서도 대다수 시민은 자신의 일상적 근면 외에는


다른 재원을 갖지 못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항상 빈곤과 마주할 것이다.
이것이 사회의 가장 서글픈 측면이다. 이러한 관찰로부터, 내가 보기에,
입법자는 빈민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정기적 조세를 법률로 제정해야 한
다는 것을 일반적 원칙으로 삼을 수도 있다.12)

여기서 이야기하는 ‘일반적 원칙’이란 일종의 국고보조의 원칙일 것이다.


벤담은 대체로 개인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간섭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유방임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13) 그

10) Bentham, Principles of the Civil Code, p.303.


11) Bentham, 같은 책, p.302.
12) Bentham, 같은 책, pp.314-316. 나의 강조.
13) Dicey, Law and Opinion in England, p. 44. 여기서 다이시는 “자유
방임주의에 대한 신념이 … 입법적 벤담주의의 본질”이라고 논한다.
Keynes, The End of Laissez-faire, p. 21. 여기서 케인스도 벤담에게
서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알고 있던 형태의 자유방임주의의 규칙을 발견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7

는 한편 경제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자유와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을 최상위


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한다. 다른 한편 그는 이러한 경제적 가치보다
더 상위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빈민의 권리가 과다한 재산 소유자
의 권리보다 더 강력하다. 방치된 빈민에게 당장 닥쳐올 죽음의 고통은 남
아도는 재산 일부를 빼앗긴 부자에게 닥쳐올 실망의 고통보다 언제나 더
큰 악일 것이다.”14) 생존의 가치, 즉 생존을 향한 인간의 투쟁은 다른 모
든 가치를 능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빈민을 구제하는 편이 사유재산권
의 불가침성을 보장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 여기서 그는 이른바 ‘소극
적 공리주의’(negative utilitarianism), 즉 쾌락이나 행복의 증대보다 고통
이나 불행의 감소를 더 무겁게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다방면의 저술에서 광범위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국고보조를 위한 과세는 두 가지 근거로 정당화된다. 첫 번째 근
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굶어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고통은 그들의
구제를 위한 과세로 발생할 고통보다 항상 더 큰 악이라는 확신이다. 두
번째 근거는, 생계와 그 수단의 안전보장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필시 사유
재산의 안전보장도 위협받을 것이라는 상식적 예측이다. 굶주림은 그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로부터 유산계급의 생명과 자산을 존중할 동기를 빼앗
을 것이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든, 사기로든
완력으로든, 자기 자신을 구제하려 하지 않겠는가.”15) 요컨대 생계와 그

한다”고 말한다. 물론 벤담의 경제이론을 자유방임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단편적 견해일 뿐이다. 지난 세기 중반부터 그의 경제이론은 “여러 측면
에서 ‘자유방임주의’와 정반대”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Macgregor, Economic Thought and Policy, p.68. 또한 브레너(J. B.
Brebner)는 벤담의 경제이론을 “개인주의가 아니라 집산주의
(collectivism)의 원형”으로 묘사한다. J. B. Brebner, “Laissez-faire
and State Intervention in Nineteenth-century Britain,” p.59. 그런
데도 벤담은 개인의 경제 활동에 대한 정부의 불필요한 간섭에 대해 지속
적인 거부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한 듯하다.
14) Bentham, Principles of the Civil Code, p.316.
15) Bentham, Writings on the Poor Laws vol.1, p.10. 또한, 이 두 가지
근거와 관련하여, Quinn, “A Failure to Reconcile the
Irreconcilable? Security, Subsistence and Equality in Bentham’s
Writings on the Civil Code and on the Poor Laws,” p.325를 보라.
8 윤리학 제10권 제2호

수단의 안전보장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사유재산권을 밑받침할 사회질서


의 안정성도 확보되지 못할 것이다. 적극적 생계지원의 필요성을 논하면
서, 벤담은 이러한 지원의 주된 근거는 경제적 취약계층이 범죄나 혁명 같
은 극단적 수단에 의지하지 않을 대안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질서의 안정성
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생계와 그 수단의 안전보장에서, 생계와 안전보장의 목적들은 서로를 뒷
받침한다. 안전보장은 과세를 통한 생계지원을 정당화하고, 생계는 사회질
서의 안정성을 보존함으로써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을 지원한다. 그러나 생
계와 안전보장의 목적들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제약하는 양상도
보인다. 생계지원에 대한 공적 책임의 정립은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에 대한
침해를 정당화한다. 요컨대 생계는 사유재산권과 관련된 한에서 안전보장
을 제약한다. 그런데 안전보장 역시 생계를 제약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안전보장은 생계지원의 공적 책임에 한계를 부여한다. 이러한 한계는 노동
의 생산성과 밀접히 연관된다.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에 관한 벤담의 논변은 단순하다. 생계는 생존 유지
에 필수적인데, 재산은 이러한 생계 수단을 생산하는 수단과 그 생산과정
의 산물로 구성된다. 따라서 재산은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한 사람의
노동 산물, 즉 재산에 대한 안전보장이 없는 경우, 생산적 노동에 대한 유
인(誘因)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면 자기 이익에 대한 욕망은 인간 행동을
즉 노동을 지배하는 동기이기 때문이다. 재산에 대한 안전보장은 노
동과 그것에 기초하는 산업(industry)의 필수조건이다. 만약 산업이 없다
면, 생계 수단이 생산될 수 없으므로 생계 혹은 생존 자체가 유지될 수 없
다.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은 노동의 유인을, 그리고 생계 수단을 생산할 산
업을 보존함으로써, 생계의 안전보장을 뒷받침한다. 그래서 생계와 그 수
단의 안전보장은 사유재산의 안전보장, 즉 노동의 유인과 생산적 산업을
저해하지 않은 선으로 제약되어야 한다. 예컨대 무조건적 구제나 생계지원
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재산이 없는 개인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계급에서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계급으로 퇴화할 것이다.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9

그리고 당장은 일하지 않고 살아갈 만큼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제한된


종류의 게으름이 조만간 모든 개인에게 퍼져서 결국 누군가를 위해 노동
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16)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의 주된 기능은 생산적 노동과 산업을 촉진하는 것


이고, 노동 능력을 지닌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생계지원은 의존성과 나태
를 불러들여 생산적 노동과 산업의 유지나 성장을 저해할 것이다. 생계의
안전보장도 생산적 노동에 참여할 인구와 산업을 유지하는 것에서 그것의
부분적 정당성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사유재산에 대해서든 생계에 대해서
든, 안전보장은 한 사회의 생산적 노동력과 산업의 유지나 성장이라는 경
제적 목적의 성취로 수렴한다. 이 목적은 생계의 안전보장과 사회질서의
안정성을 위해 생계지원을 위한 과세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사유재산의 안
전보장을 위해 과세의 신중한 조정과 집행을 명령한다.
이러한 조정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의 생계지원이 어느 정도든,
정부가 국민의 생계유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관념은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
회보장의 청사진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다만 전 국민의 생계유지에 대한 공
적 책임은 필시 민간경제 영역에 대한 정부의 광범위한 간섭과 규제를 동
반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간섭과 규제는 다시 사유재산의 안
전보장이라는 목적으로부터 끊임없는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비록 벤담은
‘삶의 장식물’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했지만, 평등 역시 이 목적의 성취와
얽히면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3. 풍요와 평등: 한계효용체감 원리의 제한

벤담에게 풍요는 단순히 생계유지를 넘어선 달리 상한선이 정해지지

16) Bentham, 같은 책, p.38. 벤담은 노동 없는 생계지원은 항상 게으름을


위한 보조금이 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래서 생계지원은 생
필품으로 제한되어야 하며, 노동을 통해 지원금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제
공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10 윤리학 제10권 제2호

않은 수준의 부(wealth)의 획득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의상으로 이미 생


계를 전제하고 있기에, 생계는 풍요의 선행조건이다. 그러나 풍요는 무엇
보다 안전보장에 깊이 의존적이다. 왜냐면 사유재산의 안전보장 없이는 풍
요를 가진 사람은 그것의 유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안전
보장은 생계만이 아니라 풍요의 실현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생계의 안전보장과 풍요나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은 독립적으로 충족
될 수 있는 목적들이 아니라 서로 조율되어야 할 목적들이다. 평등은 바로
이 하위 목적들의 조율에 깊이 관여하는 목적이자 원칙이다.
입법자의 거시적 관점에서 행복의 총량을 계산하는 방식에는 ‘각 개인의
행복은 행복의 집합에서 다른 개인의 행복과 동등하게 중요하다’라는 평등
주의 혹은 불편부당(impartiality)의 공리(axiom)가 작용한다. “가장 무력한
극빈자의 행복은 보편적 행복에서 그 공동체의 가장 유력하고 부유한 구성
원의 행복만큼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가장 무력하고 가난한 사람
들의 행복도 가장 유력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행복만큼 입법자에 의해 존중
받을 자격을 가진다.”17) 이 공리는 모든 입법의 근본 원칙으로 상정되는
데, 사회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산물의 분배에서 모든 사람을 평등
한 입장에 놓는 기준이다. 모든 개인의 행복을 평등하게 고려하라는 공리
는 행복의 수단의 안전보장에 대한 불편부당한 법적 권리로 이어진다. “만
약 최고의 헌법적 권한을 나누어 가짐이 행복의 보장 수단이라면, 가장 유
력하고 부유한 사람들만큼이나 가장 무력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이러한 보
장 수단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18)
그런데 평등은 다른 세 하위 목적들과는 본성적으로 다른 듯하다. 그것
은 모든 입법의 근본 원칙이지만, 개인의 관점에서는 다른 목적들과 달리
“목적적 행동의 필요조건”이나 원천은 아닌 듯하다.19) 왜냐면 평등한 몫
이상의 부를 가진 개인의 관점에서는 평등이 자기 행복의 추구에 도움이
될만한 수단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평등한 생계지

17) Bentham, Constitutional Code, p.107.


18) Bentham, 같은 책, pp.107-108.
19) Kelly, Utilitarianism and Distributive Justice: Jeremy Bentham
and the Civil Law, p.124.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11

원을 통해 사회질서의 안정성을 위한 필요조건인 한에서, 그리고 사회


질서의 안정성을 사회 모든 구성원이 추구하는 목적과 목표의 실현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간주하는 한에서, 평등은 일반적인 욕망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벤담의 평등 논의의 초점은 단지 형식적 혹은 정치적 권리의 평등만이
아니라, 재산 혹은 부의 평등에 있다. 생계와 풍요는 모두 재산 혹은 부와
관련된 목적들이므로, 그의 평등 논의의 주된 주제들이다. 그런데 생계와
관련된 평등의 실현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목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계의 평등은 다른 하위 목적들과의 조율이 필요하지 않은,
다른 하위 목적들을 모두 희생해서라도 마땅히 실현해야 할 목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면 생계는 곧 존재이고, 평등한 인간들 사이에 존재의
등급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계의 평등은 생존 수단에 대한
모든 사람의 비록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연한 요구권리
나 자격을 가리킬 뿐이다. 그렇다면 흔히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풍요와
관련된 평등의 실현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벤담은 부의 양과 행복의 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사회적 재화를 되도록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
이 최대 행복 원칙에 부합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암시에서 한계효
용체감 원칙의 원형적 표현이 발견된다.

평등한 이익의 유용성은 다음과 같은 입장에 의존한다. 1. 한 사람이 소유하


는 행복의 양은 그 사람이 소유하는 재산의 양과 같지 않다. 2. 한 사람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양이 더 커질수록 재산의 증가로부터 그가 얻게
되는 행복의 양은 어떤 일정한 양으로 줄어들 것이다. 3. 재산에 의한 행복
의 증가는 이러한 비율로 증가한다. 최대량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최소량
의 행복의 수단을 가진 사람보다 두 배의 행복을 누리는지는 알 수 없는 문
제다.20)

돈의 단위와 행복의 단위를 동일시하고 돈의 양, 즉 부가 증가할수록 행

20) Bentham, Constitutional Code, p.18.


12 윤리학 제10권 제2호

복도 증가한다는 단순한 관념에서 출발하지만, 벤담은 “가장 부유한 사람


들 편에서 행복의 초과량이 그의 부의 초과량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가장 부유한 사람의 부의 한 단위의 증가는 전체 사회의 행복의
총량에 점점 더 적은 양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사회의 여
러 경제적 계층 사이의 부가 평등에 근접할수록, 각 계층에서 나오는 행복
도 평등에 근접할 것이고, 전체 사회의 행복의 총량은 증대될 것이다. 그
러나 그는 이러한 원리의 현실 적용에 대해 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부의 수평적 체제는 결코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결론에 이른
다. 오히려 이러한 체제의 결말은 재앙이다. “만약 모든 재산이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이러한 분배의) 확실하고 직접적인 결과는 머지않아 더는 분
배할 것이 없어지리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파괴될 것이다.”21) 왜
냐면 이러한 상황에서, 즉 모든 재산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상황에서, “근
면한 사람들의 상태는 게으른 사람들의 상태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것이
고, 따라서 “근면해야 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벤담에게 정의 개념은 행복 개념과 불가분하다. 그래
서 한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든 ‘정의로운 분배’란 반드시 그 사회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이바지하는 분배여야 한다. ‘최대 다수’라는 문구가 평
등주의적 분배를 함축하기는 하지만, 분배의 준칙인 평등은 인간의 생산적
활동의 토대가 되는 다른 하위 목적들과의 충돌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이
러한 충돌에 대해 그가 제시한 궁극적 해결책은 사유재산 혹은 풍요에 대
한 말하자면 불평등한 몫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보장해야 한다는
준칙을 그들에게 평등한 몫을 보장해야 한다는 준칙보다 항상 더 우위에
두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을 뒷받침하면서, 그는 불평등한 분배구조의
정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사회의 주된 경제력, 즉 “정치경제학
용어로 생산자본(productive capital)이라고 불리는” 생산수단을 형성하는
것은 불평등한 노력으로부터 나오는 불평등한 몫이다.22)
다른 하위 목적들처럼 평등도 인간 사회가 최대한 근접해야 할 실질적
목적이자 원칙이며, 공리의 원칙은 모든 이해당사자에게 행복 추구를 위한

21) Bentham, Principles of the Civil Code, p.303.


22) Bentham, 같은 책, p.310.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13

평등한 밑바탕의 제공을 함축한다. 그러나 평등은 한계효용체감 원칙의


적용에 따른 부의 수평화는 다른 하위 목적들의 실현을, 그리하여 최대
행복의 실현을 위협할 수 있다. 그것은 재산의 대상들에서 나오는 이득을
향한 개인들 사이의 경쟁을 저해함으로써, 이러한 경쟁에서 발생할 풍요를
감소시킨다. 나아가 풍요의 감소는 생계지원을 밑받침할 사회적 잉여 자본
(capital surplus)을 감소시킴으로써, 결국 장기적으로 생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불평등은 경쟁의 불가분한 결과”지만, “경쟁은 (이익 혹은 자본)
증대의 근원이다.”23)
불평등한 부나 재산의 소유에 대한 기대(expectation), 말하자면 사유재
산권을 보장하는 것은 풍요만이 아니라 생계의 밑받침이다. 그런데 평등의
추구는 불평등한 몫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들을 품고 있는 기존 분배구조와
충돌할 수 있다. 평등 혹은 부의 수평화를 위한 조세나 재산몰수는 당사자
에게 즉각적 고통을 가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불안감
(alarm)은 모든 재산 소유자의 기대를 좌절시킬 수 있다. 입법자는 빈민의
처지만이 아니라 마땅히 이러한 고통과 기대의 좌절도 유념해야 한다. 어
떤 목적에서든 분배는 경제적 생산성과 보조를 맞춰야 하며, 불평등한 부
의 안전보장은 분배를 위한 자원 증대의 필요조건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았듯이, 벤담은 한계효용체감 원칙, 즉 평등한 분배의
원칙을 채택하지만, 그 원칙이 사회 구성원들의 기대들의 평등한 안전보장
이라는 원칙에 종속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현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불평등한 몫에 대해 기대를 한다.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몫에 대한 평등한
기대를 지닌 사회란 전혀 비현실적이고 논구할 가치도 없다. 입법을 통한
그의 용어로 ‘실행 가능한(practicable)’ 평등의 추구란 구성원들 각
자에게 돌아갈 몫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몫에 대한 그
들의 기대들을 평등하게 고려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기대들의 평등한 안전
보장은 오히려 조세나 재산몰수 등의 강제적 재분배에 의한 평등의 추구에
제약을 가한다.
사유재산의 안전보장과 생계의 안전보장 사이의 조율에서처럼, 평등의

23) Bentham, First Principles Preparatory to Constitutional Code,


p.320.
14 윤리학 제10권 제2호

추구는 산업 생산력의 증대라는 경제적 목적의 성취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


다. 벤담은 입법을 통해 개인의 노동이나 노력의 산물과 자유로운 경쟁체
제가 보장된다면, 그리하여 생산수단의 소유가 합법적으로 소수의 사람에
게 편중되지 않는다면, 자연적 생산성이 증대되는 동시에 평등의 실현에
근접할 것이라는 스미스(A. Smith)와 리카도(D. Ricardo) 등의 고전 경
제학자들의 그것과 유사한 낙관론을 펼친다. 입법을 통해 공정하고 자
유로운 경쟁체제의 유지를 보장하는 것이 평등의 목적을 실현하는 결정적
방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말하는 평등은 순수한 시장경제 체제와
부합하는 종류의 평등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해서, 벤담이 지지
하는 평등은 최대의 경제적 성장 혹은 진보(progress)를 가져올 수 있는
체제다.24) 자유로운 경쟁체제에 대한 옹호에서 그가 강조하는 바는 사실
자유보다는 이러한 경쟁체제로부터 예상되는 효과, 즉 그 체제가 최대의
경제적 성장 혹은 진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결과에 있다. 다시 이러한 성
장 혹은 진보가 개인의 행복 추구의 선행조건인 생계의 평등한 보장과 풍
요에 대한 기대의 보장을 위한 밑받침이 된다는 결과에 있다.

4. 벤담의 재분배 정책과 그 한계

반복하자면, 입법자의 궁극적 목적이자 소임은 언제나 전체 사회의 행복


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작업, 즉 입법의
목적은 행복의 실현 여건을 모든 구성원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물론 그가
모든 사회 구성원의 모든 사소하거나 고유한 기대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다. 그는 특정한 중심적 기대, 말하자면 개인의 정당한 기대를 파
악해야 한다. 이러한 기대를 파악하면서, 그는 어떤 특정한 관념의 좋음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기 인생의 목적을 추구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신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여건을 분배하는 것
이다. 정당한 기대의 집합은 네 가지 기본적 해악의 부재, 즉 (1) 신체, (2)

24) Kelly, Utilitarianism and Distributive Justice: Jeremy Bentham


and the Civil Law, p.198.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15

재산, (3) 유익한 삶의 환경, (4) 명성에 대한 해악의 부재(不在)로 구성된


다. 벤담은 이것들 가운데 재산을 정당한 기대의 원천들을 포괄하는 개념
으로 사용한다. “그것들의 본성에서는 아무리 이질적일지라도, 네 가지 대
상은 (즉 네 가지 기본적 해악의 부재는) ‘소유물(possessions)’이라는
공통적 용어에 포함된다.”25) 이렇게 개인의 정당한 기대의 집합을 재산이
라는 항목으로 환원하면서, 그는 기존에 확립된 분배체제에 기초한 사유재
산제를 강력히 옹호한다.

안전보장이라는 원대한 원칙을 참조하면서, 현존하는 대부분 재산과 관련하


여 입법자는 무엇을 명령해야 하는가? 그는 현실의 수립된 분배방식을 유지
해야 한다. 이것이 정의의 이름으로 그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의무
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이고 단순한
규칙이다. 안전보장이라는 최상위의 원칙은 이 모든 분배방식의 보존을
명령한다.26)

여기서 벤담은 네 가지 하위 목적들 사이에 롤스의 그것과 유사한


일종의 축차적 서열을 상정하고, 그중 최상위의 목적이자 원칙인 안전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 관념으로부터 그
는 언뜻 보기에 입법자가 기존 분배방식의 변화를 위한 개혁보다 사회경제
적 현상(現狀)을 유지하는데 더 힘써야 한다고 논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
다. 그런데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그는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한에서 공
리주의적 정의관에 따른 여러 재분배 정책들을 제안한다. 그가 제안한 재
분배 정책의 기조는 기대의 좌절 혹은 실망(disappointment)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는 사유재산을 현실 사회의 구성원이 가지는 기대의 가장 중요
한 원천으로 보았고, 위의 인용은 그러한 원천으로서 사유재산권의 중요성
을 역설한 것이다.
사유재산은 개인의 자유 혹은 불가침 영역의 구성요소로서 사회질서의
안정성 보존에 결정적 조건이다.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는 어떤 재산의 소

25) Bentham, UC 100: 173.


26) Bentham, Principles of the Civil Code, p.311.
16 윤리학 제10권 제2호

유자에게나 사회의 여타 구성원에게나 정당한 기대를 창출한다. 이 권리는


미래의 생산적 노동을 유인하는 필요조건이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전체 사
회의 최대 행복을 가져온다. 이렇게 단순한 도구적 정당성을 넘어서, 사유
재산은 개인의 지속적 존재의 조건이기도 하다. 개인이 지속적 자아의 관념
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속한 현실 사회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의 형성을 통해서인데, 사유재산은 바로 이러한 기대의 근
본 원천이다. 사유재산의 가치 혹은 정당성은 그것이 기대 형성의 주요 조
건이자 그 기대를 전제로 삼는 개인의 행복 실현의 조건이라는 점에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부의 평등화를 위한 (재분배) 정책은 사유재산에 대한
이러한 기대를 좌절시켜서는 안 된다. 요컨대 그 정책은 이른바 ‘실망 방
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정책에는 인내심과 기술이 필요
하다. 사유재산의 안전보장과 평등 사이의 조율과 관련해, 벤담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안전보장과 평등, 두 경쟁자 사이에는 지속
적 대립, 즉 영원한 전쟁만이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그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답한다. “어떤 지점까지는 그것들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약간의 인내심과 기술을 발휘한다면, 그것들이 서서히 일치하게 만들 수
있다.”27) 이 맥락에서 그가 말하는 ‘인내심’은 기다림의 인내심이다. “시간
이 이 두 상반된 관심사들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다.” 그리고 ‘기술’이란
“법이 분배에 간섭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28) 이로부터 벤담은 평등의
실현에서 혁명적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더 선호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벤담이 부의 평등화를 위해 제안한 재분배 정책들은 실로 인내심과 기
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내심과 기술 발휘의 방점은 바로 기대
의 좌절 혹은 실망을 방지하는 것에 있다. 그가 제안한 재분배 정책으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상속제의 개혁이다. 이 개혁안은 거대 자산을 공동체
에 더 고르게 분배하는 방안으로 제안된 것이다. 이 제안에서 그는 우선
남성과 여성의 법적 권리의 평등을, 그리고 여성이 남성 상속자와 동등한
혹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유산을 물려받을 권리의 보장을 역설한다.

27) Bentham, 같은 책, p.312.


28) Bentham, 같은 책, p.312.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17

제1조. 상속 문제에서 양성(兩性)은 동등한 입장에 놓인다. 같은 가족의 자녀


가운데서 비록 남성만 언급되지만, 여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원칙, 평등, 관
찰. 만약 차별이 있다면, 그 차별은 더 약한 성(즉 여성)에게 호의적이어야
한다. 더 많은 필요를 가지면서도 더 약한 성은 더 적은 방법과 수단을 가진
다. 재산을 획득할 소질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소질도
더 적다. 사실상 온갖 좋은 것을 가지고 달아나는 쪽은 더 강한 성(즉 남
성)이다.29)

벤담은 상속 관련법에서 성평등이 전체 공동체에 재산을 실질적으로 재


분배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재산의 평
등화’가 상속법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상속과
관련된 법을 만들면서 세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자라나는
세대를 부양할 필요성. 2. 실망의 방지. 3. 재산의 평등화.”30)
모든 사람은 죽을 운명이고, 사람은 많거나 적은 재산을 남긴다.
장자상속제(primogeniture) 대신 모든 부양가족에게 유산의 평등한 몫을
나누어줌으로써, 즉 한 사람의 재산을 여러 사람에게 흩어버림으로써, 전
체 사회의 재산이 고르게 분배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나아가 벤담은 무연
고자들의 경우에는 국가가 그들의 재산의 절반을 몰수해 공적 자금을 형성
하고, 그것을 공적 목적으로, 예컨대 세금 감면이나 국가 부채 탕감에 활
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31) 상속 관련법의 개혁안에서 그의 초점
은 당연하게도 누구의 기대도 좌절시키지 않으면서 부의 평등화를 촉진하
는 것에 있다. 아마도 유언을 통해 자기 재산의 처분을 결정할 권리는 사
유재산에 대한 권리의 일부이자 개인의 불가침 영역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벤담은 죽은 사람에게는 보장해야 할 기대가 없으므로,
또 유산 상속에 대한 제약이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 재산을 향유할 권
리를 제약하는 것은 아니므로, 상속법 개혁에 따른 재분배는 누구의 기대

29) Bentham, UC 150: 172.


30) Bentham, UC 32: 151.
31) Bentham, Jeremy Bentham’s Economic Writings, vol.1,
pp.288-289.
18 윤리학 제10권 제2호

도 좌절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벤담은 성년의 건강한 자녀에게 부모 유산의 상속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은 가장 고통 없는 형태의 조세일 것으로 상상한다. 실로 그는 상속에 대
한 제약이 “단연 최선의”(absolutely the best) 조세 형태라고 논하면서,32)
상속세(inheritance tax)의 과감한 상향을 주장한다. 다소 긍정적 관점에
서, 이 제안은 어쩌면 “거대 자산을 해체하고 그것을 공동체 전체의 젊은
세대에게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33) 그러나 그것은 벤담 자
신이 말한 것처럼 어쩌면 그가 예상한 것 이상의 인내심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이 체감할만한 수준으로 거대 자산을 해
체하는 효과를 발휘하려면, 실로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어떤
사회의 전체 부의 상당 부분을 차치하는 거대 자산의 소유자들이 죽기를
기다려야 하고, 다시 여러 세대에 걸쳐 그 자산이 후손들에게로 분할되는
과정이 수없이 되풀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개혁은 그것이 법과 사회적 통념으로 안착해 그 사회
의 모든 구성원에게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시간과 기술은 기대의 좌절 혹은 실망을 방
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다. “입법자는 재산에 대한 사후(post mortem)
간섭으로, 특히 (그 간섭이) 잠재적 수혜자들이 자신의 기대를 변화시킬 충
분한 시간을 가지고 도입될 때만, 안전보장을 배격하지 않고 분배적 평등
을 높일 수 있다.”34) 요컨대 충분한 시간을 통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남자든 여자든, 장손이든 아니든 부모 유산의 상속에서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스스로 단념해야 한다.
그런데 수혜자들의 편에서 이러한 기대의 단념은 어쩌면 그리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훨씬 더 어렵거나 어쩌면 불가능한
일은 자기 재산을 비록 사후에라도 자기 바람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기대
를 단념하는 것일 것이다. 말하자면 충분한 시간은 ‘잠재적 수혜자들’이 아

32) Bentham, 같은 책, p.283.


33) Kelly, Utilitarianism and Distributive Justice: Jeremy Bentham
and the Civil Law, p.199.
34) Bentham, Principles of the Civil Code, p.334. 나의 강조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19

니라 ‘잠재적 시혜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


목적이 사회적 부의 평등화든 뭐든, 죽은 사람의 생시의 바람에 반해 그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기대의 안정성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한 사람
의 노동이나 노력의 가장 강력한 유인은 생시에든 사후에든 자기 자손의
윤택한 삶에 대한 기대일 수 있다. 상상컨대 이렇게 생시의 바람에 반하는
처분이 허락된다면, 사람들은 생전에 자신이 아끼는 자손에게 미리 재산을
증여하거나 은닉하려고 시도할 개연성이 무척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이
러한 일은 우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상속에 대한 이러한 제약의 결과가 벤담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또 하나의 개연성이 있다. 사람들은 생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재산을
모두 탕진하려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자녀를 위한 고액의 사교육비, 평생
연금, 의료비, 양로원 비용 등으로 자기 재산을 모두 소비해버릴 수도 있
다. 만약 이러한 소비 습관이 전체 사회에 만연해지면, 한편 그것이 국부
의 감소를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인간의 “훨씬 더 강력하고 보편적인 동기는 사는 동안 사적 즐거움을
위한 자기 자금을 늘리는 기능”이라고 말하면서,35) 벤담은 자기 바람대로
유산을 상속할 수 없더라도 인간이 자기 재산을 늘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논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사는 동안 미처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과도한 재산을 모으려 노력하지 않는 상황의 개연성이 높아
져, 그것이 부의 평등화에 이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가져올 결과, 즉 그것이 정말 부의 평등화에 이로울지에 대한 공리
주의적 계산은 확실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의문들로 벤담의 상속제 개혁안이 그의 생각처럼 실로 기대
의 좌절 혹은 실망을 방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문제가 되는 듯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의문은 그의 개혁안이 실로 불평등한 분배구조에 어떤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과거 장자상속제에 비하면, 그의 개혁안은
필시 복수의 자녀에게 부모 재산의 평등한 몫을 배분하는 기능을 발휘하겠
지만, 그것이 사회의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개선하리라고 기대

35) Bentham, Jeremy Bentham’s Economic Writings, vol.1,


pp.300-301.
20 윤리학 제10권 제2호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왜냐면 거대 자산의 소유자의 자녀들은 그것을 똑


같이 나누더라도 게다가 더 많은 부를 창출할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
이므로 유복한 삶을 유지하고 다시 자기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겠지만,
빈민 자녀들의 경우에는 “무(無)의 평등한 몫은 필시 무(無)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36) 상속세와 무연고자의 재산몰수로 형성된 공적 자금을 세금 감
면과 국가 부채 탕감에 활용하는 것은 필시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에 유용하
겠지만, 그것이 불평등의 축소에 얼마만큼 이바지할지에 대한 공리주의적
계산 역시 불확실한 문제인 듯하다.
부의 평등화를 위한 재분배 정책들 가운데서 벤담이 상속제에 주목하고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과감한 변화를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죽은 사람에게는 좌절될 기대가 없다고 상정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 재산의 처분과 관련해 어
떤 개인적 바람을 가졌든, 사후에 그의 재산이 어떻게 처분되든, 그는 실
망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논리지만, 어쨌든 벤담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인정한 듯하다.
벤담은 과세를 통한 평등의 추구 일반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입장을 취
하는 듯하다. 과세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사유재산의 안전보장에 대
한 충격 혹은 기대의 좌절이다. 부의 평등화를 향한 너무 갑작스러운
특히 예측하지 못한 움직임은 안전보장을 위협하고 기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부의 평등화를 위한 조세 입법은 사전에 모든 재산 소유자들
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그들의 불안감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러한 입법이나 정책을 정당화하는 필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당연한
방법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하는 부담보다 그것이 가져올 이득이 더 크다
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37) 이러한 방법은 예컨대 국가방위와 경찰 같은
안전보장에 쓰일 공적 지출을 위한, 혹은 교육 및 의료 제공을 위한 과세

36) Quinn, “A Failure to Reconcile the Irreconcilable? Security,


Subsistence and Equality in Bentham’s Writings on the Civil
Code and on the Poor Laws,” p.331.
37) Rosen, Jeremy Bentham and Representative Democracy: A Study
of the Constitutional Code, p.106.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21

의 정당화에 합당하게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순전히 재


분배를 위한 과세, 말하자면 가난한 자의 이득을 위해 부유한 자들의 잉여
자본의 일부를 빼앗는 것의 정당화에도 합당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
스럽다. 다시 말하자면, 부유한 자들이 어떠한 기대의 좌절도 느끼지 않으
면서 이러한 과세를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전혀
분명하지 않다.

5. 결론

어떤 이론이 분배와 관련해 평등주의적인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단순히


그것이 부를 얼마만큼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지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평등이라는 가치 혹은 이념이 그 이론에서 얼마나 중
심적인지를 묻는 것일 수 있다. 분배 문제와 관련된 한에서 공리주의에 대
한 비판은 아마 후자의 물음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리 호
의적으로 보더라도, 평등이라는 가치 혹은 이념이 벤담의 분배이론에서 얼
마만큼 중심적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울 듯하
다. 그에게 평등은 어쨌든 전체 사회의 최대 행복의 달성을 위한 여러 종
속적 목적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나마도 다른 종속적 목적들보다
명백히 안전보장보다 더 열등한 지위에 있다. ‘종속적’ 목적이란 말 그
대로 그 자체로는 목적이 될 수 없는 목적이다. 그것이 하나의 목적이 되
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상위의 궁극적 목적, 즉 최대 행복의 실현에 이바
지하는 경우만이다. 그래서 단순히 부의 평등화 효과에만 주목하면서 그의
분배이론을 평등주의적이라 논하는 것은 ‘평등주의적’이라는 표현의 본래
의미를 오도하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벤담이 주장한 생계의 평등한 보장이 현실적으로 산출할 수 있
는 평등화 효과는 매우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상당히 진보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 실로 생계의 안정적 보장과
기본적 해악으로부터의 보호를 충실히 실현하는 정부는 사회적 재화의 매
우 강력한 평등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 산업혁명 시대의 급격한 산업구조
22 윤리학 제10권 제2호

변화 속에서 벤담이 영국민의 “열에 아홉”에 달한다고 묘사한38) 극


빈자와 빈곤 노동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돌아보면, 이러한 작업은 당시
로는 무척 과격한 체제변화를 요구했을 수도 있다. 실로 그가 역설한 생계
와 그 수단의 안전보장은 사회적 재화의 강력한 평등화 내지는 분배구조의
전혀 사소하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공리의 원칙에 함축된 생계의 안전보장이 현실 사회에서 부의
평등화 혹은 분배에 어떤 안정적 효과를 가져오든, 그 원칙이 곧 어떤 명
확한 분배 원칙을 함축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배 효과와 분배 원칙은
마땅히 구분되어야 한다. 분배 효과라는 측면에서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생계의 평등한 보장의 수준은 사유재산 및 기존 분배구조의 안전보장에 의
해 끊임없는 제약을 받는다. 벤담은 한편 노동자만이 실질적으로 국부를
늘리는 사회 구성원이고, 더 많은 생산적 구성원의 생계를 보장하면서 노
동 임금을 높이는 편이 “국가의 안전보장과 더 부합한다”고 논하지만,39)
다른 한편 생계지원은 생필품을 제공하는 수준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또한, 그는 한편 개인의 능동적 노동과 창의성을 견인할 수 있는 부
의 재분배를 논하지만, 다른 한편 그의 재분배 정책은 사회질서의 안정성
을 보존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서, 기대의 좌절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적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제약은 상속제 개혁을 통한 그의 재분배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
된다. 그 정책은 오랜 관행의 장자상속제 폐지와 양성평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관점에서는 일면 급진적인 듯하지만, 어떠한 기대의 좌절도
불안감도 조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으로 지극히 느리고 조심스럽게 추
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제안한 상속제 개혁의 효과가 실로 그가
기대한 만큼 공동체 전체의 모든 젊은 세대에게 얼마만큼의 혜택을 제공할
지에도 불확실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부차적인 문제
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이 기존의 분배구조에 어떤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도
결코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38) Bentham, UC 151: 8.


39) Bentham, Jeremy Bentham’s Economic Writings, vol.3, p.482.
강준호 - 벤담의 공리주의와 재분배 2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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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Korean Society of Ethics, December 2021 25
ISSN 2234-8115 eISSN 2733-9920

Bentham’s Utilitarianism and Redistribution

Kang, Joonho**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distributive aspect implied
in Jeremy Bentham’s utilitarianism. His constant concern in his economic
writings was in general to reduce the pain of the poor, and his suggestion
for the provision of subsistence for the poor by means of government’s
interference was a fairly radical one from the perspective of his time. This
suggestion may be a practically necessary consequence of his utilitarianism
that pursues as its ultimate end the greatest happiness for the greatest
number. Bentham sets up the four subordinate ends conducive to the
realization of this ultimate end. They are subsistence, abundance, security,
and equality. But they are in a dual relationship that they support and
simultaneously restrict one another.
In this paper, firstly, I will briefly summarize those four subordinate
ends, and, with regard to subsistence and security among them, look into
the theoretical background in which he strongly defended the private
property rights. Secondly, with regard to equality among the four, I will
scrutinize the position he took for the principle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 suggested by himself, and by this bring to light a general outline of
the equality or distribution he pursued in practice. Lastly, I will critically
examine the grounds of the reform of inheritance law he suggested as a

* Associate Professor, Humanitas College, Kyung Hee University.


purdue2003@gmail.com
26 The Korean Journal of Ethics Vol.10 No.2
ISSN 2234-8115 eISSN 2733-9920

practicable means of the pursuit of equality in so far as harmonized with


the three other ends. From this examination, I wish to make out the
function and limitation of redistribution policy in his utilitarianism.

Keywords: Bentham, utilitarianism, redistribution, equality, inheritance law

논문접수일: 2021년 12월 3일 논문심사일: 2021년 12월 9일~12월 18일


게재확정일: 2021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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