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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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이후 당은 대동강 이북의 고구려 옛 땅을 지배하고 고구려 유민들을 랴오허강

서쪽의 영주지방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

이곳에서는 고구려 유민 외에도 말갈인과 거란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들이 강제 이주되어 당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란의 반란을 계기로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 출신 대조영은 698 년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이끌고 중국 지린성의 동모산 지역의 정착하여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신라북쪽의 발해가 건국되면서 한반도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고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


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고구려 계승 의식을 내세웠습니다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하자 김씨가 그 남쪽을 영유하였고 대시가 그 북쪽을 영위하여
발해라 하였다 이것을 남북국이라 부르는 것으로 마땅히 남북 국사가 있어야 했음에도
고려가이를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무릇 대시가 누구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가 소유한 땅은 누구의 땅인가 바로 고구려 땅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자신이
저술한 발해골을 통해 남북국 시대론을 제시하였으며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주장하였습니다

대조영의 뒤를 이어 주기 한 무왕은 연호를 이난으로 정한 후 북만주 일대를 장악하며 영토


확장에 나섰습니다

발해 세력이 커지자 당은 흑수 말발과 신라를 이용하여 발해를 압박하였습니다

이에 무왕은 대문예로 하여금 흑수말과를 정벌하게 하는 한편 돌궐 일본과 교류하며

당과 신라를 견제하였습니다

또한 흑수말갈 토벌 과정에서 벌어진

당의 조치의 불만을 품고 732 년 장문 휴가 지휘하는 수군을 보내 산둥지방을 선제공격하게


하였습니다

[음악]

발해의 왕이 말하기를 흑수 말갈이 처음에는 우리에게 귀를 빌려 당과 통교하였다

그런데 당이 지금 관직을 요청하면서 우리에게 알리지 않으니이는 반드시 당과 함께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동생 대문예와 외숙부 이마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흑수를
공격하도록 명하였다

구당서의 내용을 통해 발해 무왕의 흑수말갈 정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해와 당의 대립관계는 문왕이 즉위하서 해소되었습니다 무왕

이후 발해의 왕들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문학 역시 독자적 연호인 대흥을

사용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신라와 친선관계를 유지하며

체제 정비에 힘썼습니다

문왕은 당의 선진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삼성 6 부제를 기반으로

중앙통치체제를 정비하였고

신라와의 상설 교통로인 신라도를

개설하고 사신을 교환하는 등

신라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또한 도읍을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루 천도하여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였습니다

발해는 9 세기 초 선왕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9 세기에 주기한 선왕은

독자적 연호인 건흥을 사용하며 주변

말갈 세력을 복속하였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요동 나무로는 대동강

2 부까지 확장하여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고 오경 15 부 62 주에

지방통치체제를

완비하였습니다이 무렵 당은 전성기를

맞이한 발해를 가리켜 바다 동쪽에


번성한 나라라는 뜻에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발에는 구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지배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중앙정치 조직은 당의 제도를 수용하여

삼성 6 부제를 받아들였으나 그 명칭과

운영은 독자적이었습니다

구강 아래 정당성 선조성 중대성을

두었고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습니다

정당성 아래 좌사정과 우사정을 두어

각각 3 부

총 6 부로 나누어 국정을 맞게 하였고

6 부에는 유교적 명칭인

춤인의지 예

신부를 사용하였습니다

발해는 삼성 6 부 이외에도 중정돼

주자감 문적원이 존재하였습니다

중정되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였고 주자감은

발의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유학을

교육하였으며

문적어는 책과 문서관리 비문 축문

외교 문서 등의 작성을 담당하였습니다

지방행정조직은 선왕 때 오경 15 부

62 주로 조직되었습니다

분사 행정적 요충지에 상경 용천부


중경 현덕부

동경 용원부 남경 남해부

서경 암록부 등 오경을

설치하였고이 중 상경 용천부가 가장

오랜 기간 발해의 수도였습니다

지방의 중심도시에는 15 불을 두고

62 주로 나누어 관리하였습니다

부에는 도도 주에는 자사

현에는 현승을 지방관으로 파견하고

도덕의 일원적인 지휘를 받도록

하였으며

지방 행정의 말단인 촌락은 수령이라

불리는 토착세력이 자체적으로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발해의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시비를 조직하여

왕궁과 수도를 경비하게 하였으며

지방의 중요 지역에는 별도의 지방군을

두어

지방관이 지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 걸쳐 발전하던 발에는

10 세기 초

지배층의 권력다툼으로 국력이 크게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거란의

야유라 부기는 부족을 통합하고

부가시아에서 대규모 정복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발해는 세력을 넓힌 거란의 공격을

받았고

결국 926 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발해가 멸망하자 왕족을 비롯한

상당수의 유민들은

고려의 망명하였고 남은 세력은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후발해 정안국 등 발의 계승국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발해의 역사를 이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발해의 역사 재밌게 보셨나요 저희는

고려의 역사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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