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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ppt

세종시대 시작> 왕은 세종이지만 상왕 태종이 권력을 여전히 손을 쥐고 있던 양왕체제기

그 동안, 아버지 태종 주도하에 이루어진 외척의 제거.

군사권의 문제는 내가 계속 처리하겠다 - 태종

그 일로 말미암아 장인인 심온 죄를 엮어 정치적으로 처벌, 제거/ 왕비는 보존

28pg

처가 신분 복구도 태종 죽고.

29pg

심온의 죄 신원이 된 것도 세종의 아들 문종 때 있어서

--------

태종: 무인년~1422

왕권-자의적인 권력? No.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체제이긴
했지만.

태종이 세종에게 요구한 것은. 내가 체제 잘 구축해놨어. 이 운용체제를 구동하는 유교국가가 조선인


것이야.

31pg

양왕체제기 속에 있던 또 하나의 성과: 집현전의 개편.

집현전) 현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물.

고려 시대에도 집현전은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음.

세종대에 이르러 경회루 앞 수정전 건물에 집현전을 들였음. 관사를 궁중에 둠.

문관 가운데 뛰어난 젊은 사람 뽑아서.

33pg

집현전의 최고 책임자를 정 3 품 당상의 지위에 있는 부제학으로 마련함.

정 3 품 당상=승정원의 승지 6 명(왕의 비서)= 사간원의 대사간

그 급으로 집현전의 부제학 자리 마련. 집현전 일해서 월급 받는 녹관으로 삼았음.

재주와 행실이 있고 젊은 사람 -박사,저작,정자 로 삼음.


34pg

그들로 하여금 옛날 제도를 연구시킴. - 고제 연구

정책창안 시 – 집현전 전거 (중국의 세금제도가 어떤지, 어떻게 평가받는지 알아오라) -법고

뿌리깊은 나무=

왕 왕도정치 – 인/ 의를 지키기 위해서 – 공론 여론 언론을 따라야 -> 경연을 한다

35pg

사가독서(휴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함)

출근하지 말고 재택근무해라.

오롯이 공부만 해라 라는 뜻.

36pg

집현전의 기능

국가정책을 결정할 때 자문하고 일을 처리

법고(경전/역사공부) 창신: 옛 것을 근거해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었음.


"법고창신"

그런 토대가 되어준 집현전.

양왕체제기 동안 집현전 확대됨.

상왕이 외척을 제거함으로써, 세종은 공신도 외척도 없이, 자기 뜻대로 일을 펼쳐 나갈 수 있었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집현전의 도움을 받으며 세종시대 창신해갔음. -> 공신 없지만 친위기구

문치주의 가능하게 됨!

법고 - 사회의 안정성 도모. 사회를 이해하고

근데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하면 사실 이러한 것이 무슨 소용?

[태종] 97p

세종 4 년 때 이방원 승하하심/ 유학자임을 강조하면서!

98p

세종의 곡, 곡을 하면서 장례 시작, 헌릉 내곡동에

졸곡- 곡을 마친다, 장례가 마침

101p
태종실록 편찬

[세종]39pg

그래서 세종이 고민한 문제는, 백성들 굶어 죽지 않게. -> 세금 문제라고 인식함.

그래서 전세제도를 개편하고자 함.

조선의 16-60 세 양인남자, 조세(땅)/공납/요역(군역) 의 세금이 있음.

조세를 어떻게 받을까 를 고민했음. "전세제도 개편"

40pg

손실답험제

41pg

세금을 거둘만한 땅이 얼만큼이냐. 토지측량사업

태종 대에 이루어졌음. 120 만결의 토지 파악 확보했음.

42pg

그에 대해 종래, 전에는 손실답험법

추수기에 중앙에서 직접 경차관 논밭에 나가 수확량 확인하고, 그걸 보고 세금액수 빼주는 것.

풍년이라는 가정 하에 정해진 전세.

나가서 얼마나 손해났는지 보고 판단해서 빼줌.

Ex 여기 원래 100 만원 내야 되는 땅인데, 손해 났으니 20 만원 까줄게 80 만 내라

고려말~조선초까지 이렇게 걷었음.

43pg

조선 넘어오면서 농법 발달.

시비법(거름 주는 것)

휴한법 극복

연작법의 보편화

-> 농업 생산력 증대 -> 경차관의 수가 점점 많아져 갔음,


44pg

경차관이 흉년을 풍년으로 꾸며서 세금 조작한 것.

45pg

향리(손실 위관)도 문제였음.

함께 다니면서 같이 농간 부림.

46pg

간활하고 교활한 향리(아전)들이…

이후로는 경작자에게 종이 한장에 직접 수령에게 고하라고

47pg 공법 실시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정세액을 정해놓고 그대로 거두자는 의견이 나옴. (공법)

향리들이 판단해서 내가 낼 세금이 달라지니까.

세금제도를 고치는 이유? 많이 걷기 위해. 세금제도를 세련되게 바꾸자. 그리고 백성들의 생산력을
증대시켜 많이 걷어도 괜찮아지게 하자.

발달된 농법을 보급하기 위해 농사직설 만들었음

여론조사기간.

48pg

공법(맹자, 고정세액법)에 대해 논술문제로 냄.

고정세액을 사용하면서 잘못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세종의 즉위식은 아주 큰 행사였다 – 양왕체제

1 외척 제거 / 2 집현전 확대 개편 – 대표적 최만리 / 3 전세제도

0510 일

49pg

'황희' 와 의논했음.
왕이 자문 구함. 황희가 아뢰길) ~

그러지말고, 각 고을마다 풍흉의 정도를 살펴서 3 등급의 고정세액으로 나누어서 거두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50pg

황희의 자문보다 더 단순히 하여 '결당 10 두씩, 평안도/함길도는 7 두씩 어때?' 라고 가부를 물어


아뢰거라 - 여론조사

57%찬성 vs 43%반대 나옴

결당 10 두씩이 이전 손실답험법 때보다 많이 내는 꼴이 되니까 반대했을 것.

51pg

그래서 더 고민 끝에 나온 공법절목
토지 생산력에 따라 비옥-중간-척박 3 등급 나눔

다시 각도의 토지 등급을 종래의 토지대장을 근거로 3 으로 나눔. 상상 상하 상중

비옥도 다시 완전비옥 중간비옥 덜비옥

중간도 다시

척박도 다시

이렇게 해서 총 9 개로 토지등급이 나누어진 것.

손실답험법 당시의 관례와 국가 경비를 참고로 고정세액 정함 - 손실답험법 하에 내던 것보다 많이


내지는 않도록 공법절목 완성함.

52pg

조선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였던 경상,전라 2 도에만 시험적으로 실시해보았음.

우리 토지등급 상정이 잘못되었어요 라는 민원들이 들어옴.

그래서 다시 전국 토지 등급 재조정, 그 개정안을 충청/경상/전라 시범실시

(여론조사 해서 한번 고치고 또 고침)

53pg

본격적으로 전제상정소 설치해서 둘 째 아들을 도제조(책임자)로 삼아서

54pg 공법 확정.
전국의 토지등급을 6 등급

농사의 풍흉에 따라 9 등급 으로 나누어

이렇게 나온 54 개의 고정세액값을 정해두고

이 확정안을 전라도에만 시행.

이 안이 경국대전에 그대로 등재됨. – 조선 멸망할 때까지

1427 년부터 시작해서 1450 년에 겨우 전라도에만 시행. 함경도에까지 해서 전국 8 도에 시행된 것은


1489 년. 거의 60 년 걸쳐 확정 실시.

계속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신중했음.

[손실답험법->공법(고정세법) 으로의 수취체제 바꾸는 것에 신중했다]

56pg 그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농업생산력 증대시켜주기 위해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 농사기술 알려주고, 과학기술 발전시키고 하려고 노력함.

많이 걷더라도, 많이 벌게 해주려고

57pg 농사직설

58pg 농사직설 반포. (감사= 관찰사)

농사에 힘쓰고 곡식을 소중히 여기는 것 ->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것이 왕정의 근본.

그래서 농사직설 반포한다.

59pg '삼강행실도' 라는 책을 통해 – 교화이자 세뇌

삼강(강: 물고기 잡을 때 그물에서 큰 그물눈/ 즉, 유교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큰 그물눈: 충, 효, 정)


군신사이에 충, 부자사이에 효, 부부사이에 정 이 3 강이 조선이라는 유교국가를 지탱하는 얼개임.

3 강의 핵심: 상하 명분. 윗사람을 아랫사람을 어루만져야 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따라야 함. 위: 임금/아버지/남편 & 아래: 신하/자식/부인.

먹고 살도록 해줬지? 세금 내랄 때 군말없이 내라!

이런 것을 그림으로 보여준 것. 너희도 이렇게 살아야 해.

그래도 안되니까 글로서 읽히려고 한글 만드는 것.

삼강행실도를 통해 상하명분을 강조하도록.

60pg 향약집성방
아프면 빨리 고쳐야지.

향약: 이 땅에서 나는 약

당약: 수입해온 약

- 향약채취월령: 달마다 어떤 약초를 캐야하는지,

- 향약집성방: 우리 땅에서 나는 약을 어디 아플 때 써야 하는지 책

61pg 의방유취 –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 – 의학 백과사전 (동아시아)

(향악집성방 + 의방유취 -> 동의보감)

이런 책들을 빨리 내려보내야지. 그래서 이루어진 활자 개량.

갑인년 활자 이루어짐. 20 여만 활자 만들어~

 세금제도 고치고, 농사직설로 가르치고, 국가에서 하란대로 하라고 삼강행실도 강조, 어떻게
고치는지 알려주고 등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것, (농업생산량 증대, 애민정신)

----

65pg

이런 선상에서 과학기술의 발달 역시 이루어졌음. – 농업생산력 증대 관련됨.

천문관측기구 설치 등으로 나타남. 왜 천문관측기구? 농사 짓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73pg

장영실

세종이 명하여 행 사직에 있던 장영실. 아버지는 원나라/어미는 기생 -> 신분 관노였음.

67pg

장영실 자격루

원나라 순제 – 물시계 – 자격루

자격루를 만들어 장영실을 정 4 품 관직에 앉힘.

본격적으로 시계를 만든 장영실

-> 혼천의, 자격루,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수표(다리에 눈금 강수량), 측우기

각종 시계와 기후, 강수량 측정하는 것들.

74pg 77pg

안여사건

장영실이 감독해 만든 왕이 타는 가마 부러져서..


75pg

그 사건을 계기로 퇴장.

의금부에서 아뢴 것. 이 죄는 곤장 1 백대에요.

세종은 장영실에게는 두 등급을 감형해 주었음.

76pg

의방유취: 의학백과사전 만든 것.

농업생산력 증대 & 편찬사업 & 과학기술발전 …

+ 북방 영토 개척(4 군 6 진)

<2 강>

편찬서, 과학기술의 발달 등 추진

77pg

이런 성과들을 통해 본인이 정치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 백성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서, 전근대사회에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재정문제인 세금문제도 해결하고자 했음.

78pg

그런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 중 하나가 또 북방 영토 문제임.

80pg

그 상대는 여진족이었음.

남방은 세종 1 년에 있던 대마도 정벌로 마무리되었고 북방영토개척은 그 성과가 도드라짐.

(대마도 정벌 1419 -> 태종의 업적/ 3 포 개항=계해 조약)

여진족은 압록, 두만강 건너편/ 요동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북방민족.

이들을 조선에서는 야인이라고 통칭함,

오랑캐, 오도리, 우디캐 이 세 종족이 조선과 관계있음. 이들을 통칭해서 야인이라고 한 것.

81pg

명의 경우, 야인들에 대해 오랑캐와 알타리들을 통치하기 위해 00 위, 00 소 라는 통치기구였음.

-> 위소설치. 구체적으로 통치기구를 설치했다기보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여진족의 추장을 명에서


설치한 건주위의 관리로 임명해서 그 관리가 지 밑에 있는 애들 다스리게 한 체제.

건주위-오랑캐, 모련위 등 설치.


83pg

조선에서는 압록강 건너편 여진족에 대해

1 번은 이들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태종 16 년, 압록강 상류에 군사거점지인 여연진 설치하여


조선 군사 배치했음.

압록강 건너편 여연진 건너편에는 명에서 건주위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 건주위는 7 개의 여진


부락으로 나누어져 있었음. 7 개의 여진 부락이 있는 곳에 명에서 건주위를 설치하고 그 부락의
추장들을 건주위의 관리로 임명했던 것. 그 중 한 곳의 추장 이만주가 세종 14 년, 압록강을 건너
여연군을 침입함.

세종은 북방 정벌로 당시 평안도 군사 책임자였던 '최윤덕'을 내세워서 압록강을 건너 건중위의 7


부락 쑤심.

(이 때 정벌은 해당지역을 조선의 영토로 삼겠다 x 해당지역을 조선의 군사가 가서 그곳의 사람들을
구축한다, 그 지역에서 몰아낸다 0)

최윤덕에게 모든 군사 작전권을 넘겨준 세종.

84pg

세종 15 년, 군사력 동원해야겠다 결심

파저강- 압록강의 지류.

정토해야한다. -> 최윤덕) 봄에 ㄱㄱ하자

85pg

계축년 출정 (서쪽을 정벌했다)

20 여일 만에 최윤덕 지휘 아래 군사 만 오천명 동원해서 토벌했음.

87pg

큰 승리를 거두어, 세종이 근정전에 나아가 잔치 (제 1 차 여진정벌)

88pg 이후, 이조에서 아뢰길

여연과 강계 사이에 따로 군읍을 두자. 조선 군사 배치하는 진 하나 더 설치하자.

그곳의 이름을 '자성'. 북쪽의 군은 그렇게 2 군이 되었음

89pg

정사년
이천의 지휘로, 계축년 때 정벌했던 곳 다시 가서 또 정벌했음.

90pg

역시 승리하여 이천은 승진했음.

91pg

여진정벌 - 계축서정, 정사서정

계축서정 후에 자성이 설치되며 2 군이 되었고,

정사서정 후에는 무창을 설치하고, 우예 설치하면서 4 군이 완성됨.

4 군(=4 진) 완성되었음. ( 3 군은 세종 때 신설, 1 군인 여연군은 태종 때)

92pg

4 군 완성된 이후 계속해서 여진이 침입하니까 세종 죽고 단종 3 년에 3 군을 폐지

세조 5 년 마지막 자성군까지 폐지되면서 4 군 폐지

그 지역은 4 군이 설치되었다 폐지되었다고 하여 폐 4 군 지역이라고 함.

그 지역에 더 이상 조선의 군사력이 미치지 않게 된 것임.

군사는 배치하지 않았어도 압록강으로 경계를 이루긴 해서 조선의 영역이라고 여기긴 했음.

뒤에 그 지역이 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4 군 완성으로 압록강 상류까지 조선의 영역을 확장했다.

-> 세종의 북방 영토 확장/개척.

군사력을 동원해 차차 4 군이 완성되는 수순을 밟은 것.

93pg

다시 설치된 것은 정조 12 년과 고종 6 년에 가서

4 군 중 2 군 부활됨.

94pg

4 군의 경우에 건너편 건주위를 공격한 군사를 동원한 후 설치한 것이라면, 6 진은 좀 다르다.

95pg

6 진은 두만강 건너편. (고려시대 동계 – 쌍성총관부 – 동녕부 – 함길도)


함길도 - 동북면 - 쌍성총관부 - 동계 - 발해 인 지역을 말하는 것임.

여진족의 후예가 토착민으로 살던 지역에 쌍성총관부 설치되면서 몽고 사람들도 와서 살았고 각


지역에서 들어간 이주민들도 있었고,,, 많은 종족들이 다양하게 얽혀 살아가던 땅임.

현재 함경도라고 불리는 이 땅이.

윤관이라는 고려 장군이 해당지역의 여진족들을 몰아내고 9 개의 성을 해안을 따라 세웠음 -> 윤관의


동북 9 성

두만강 유역 당연히 조선의 영토라고 생각한 세종. 그 곳이 조선왕조의 발상지니까.

윤관이 9 성을 설치하고 후에 여진에게 돌려줬음

96pg

그러면서 고종 45 몽고가 그 지역에 쌍성총관부 설치한 것이고

공민왕 5 년에 공격하면서 고려 동북면으로 회복하고,,, 그 지역임.

97pg

태조 대에는 여전히 동북면이었는데, 그 지역에 행정 구획을 하게 된 것은 정도전임.

정도전이 동북면 지역에 대한 정비. 두만강 꼭대기에 경원진 설치-> 조선군사 배치

그래서 임금이 정도전에게 너가 윤관보다 낫다.

98pg

태종 10 년, 우디캐가 쳐들어옴.

경원에 배치했던 군사들을 밑으로 남하해서 군사 후방에 배치하고 다시 그 지역을 경원이라고 했음.

그러다 태종 11 년 아예 경원부 폐지했고

17 년, 경원부를 북상해서 다시 배치시킴.

99pg

세종은, 야 원래 정도전이 설치했을 때는 저 위에 있었는데 지금 그보다 밑에 있잖아. 그 땅 되찾을래

김종서를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하며(7 년) 이징옥의 무력을 합해 답사 보냈음.

7 년을 거기서 근무하면서 답사해서 세종한테 진 어디어디 설치하면 좋겠음을 보고함.

101pg

세종 16, 경원 당초 정도전이 설치한 곳까지 북상하고, 회령진이라고 신설

세종 17, 종성진 설치

세종 19

세종 22
이 기간동안, 경원+4 진신설로 두만강 빙 두르는 5 진 설치함

102pg

세종이 친히 편지를 써서 김종서에게~

진 설치하는 문제로 둘이 계속 편지 오감

103pg

원래 문신 유신인 김종서

무예는 모자라지만,,

4 진 새로 설치! 포상한다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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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경원 뒀을 때 그 자리에 진 또 설치해서 6 진이 완성됨.

4 군과 6 진으로 조선의 영역을 압록강과 두만강 꼭대기까지 올려 그릴 수 있다.

6 진은 군대 동원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지역 살던 다양한 종족의 사람들을 타이르고 압박하며


설치한 것.

105pg

그래서 일부에서는 나 그래 조선의 인민으로 살아갈래요 vs 일부에서는 그래 우리 세금내고 살기


싫으니까 나갈게요.-> 두만강 건너편에 자기들끼리 새로 다닥다닥 붙어 살게 됨. 그들을
성저야인이라고 불렀음. 이내 이들을 통해 여진족 정보 간첩활동 시키고 했음.

이들이 물고오는 정보를 보고 조선의 북방대책을 1 차로 정했다고 하여 이들을 울타리 역할, 번호


라고 불렀음.

태조대에 두만강 경원 설치, 태종대에 압록강 여연 설치-> 세종대에 이르러 압록강 정벌하면서 4 군,
두만강유역 압박하면서 6 진 설치하게 된 것,

107pg

김종서는 돌아왔고, 황보인을 그리로 임명해서 잠깐 파견해 장성을 축조하도록 함. 장성은


행성이라고 함.

108pg

막 큰 성이 아니라 그냥 말 타고 오다가 흠칫할 정도를 행성이라고 함. 구자=GOP

봄가을로 파견되어 10 년동안 황보인이 행성을 축조했음. 20 번

110pg

황보인을 보내 행성을 쌓게 했다.

인-황보인

지친-지극히 친한 사람, 자기의 혈육도 잘 안만났는데


그 일- 행성 쌓는 일

경원 여연 설치 시작- > 세종 4 군, 6 진.

111pg

안싸우는데 -> 자체 방비 강화,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것 – 교린

안 싸우는게 제일 좋으니까 그러려면 자체 방비를 강화해야지 그럼 조선 군사 거기 배치해야지

4 군 6 진 설치하면서 행성도 쌓고. 죽기 직전까지

세종 전 시기를 거쳐 뭐 농사든 북방이든 과학기술이든 세금이든 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것

+ 한글 창제까지!

<3 강>

4 군은 압록강 꼭대기에, 6 진은 두만강 꼭대기에.

4 군은 군사충돌 이후에, 6 진은 그냥 압박해서.

그 과정 속에서 세종 22 년부터 행성 축조까지

민생안정-생산력증대 + 세금 절도있게 걷겠다 공법으로의 개편 + 북쪽 영토 + 한글창제

한글창제 자료가 없다는 한계 ㅠㅠ

113pg 한글창제는 자료가 없어서 우리의 상상으로 메워야 함.

cf 석척기우제: 도마뱀 잡아다 놓고 도마뱀아 도마뱀아 비오게 해라

일본 승려들이 대장경판 달라고 요구한 예가 있음

114pg

아마도 세종 3 년, 명나라에서 홍무정운이 전래되어 오고, 이것이 아마 문자작업의 시초였을 것이다.

추측

117pg

그리고 세종 25 년 문자 창제되었다는 기록까지 그 사이 22 년이 공백임.

이어-비속어
119pg

문자 창제 후 집현전으로 하여금 운회 라는 것을 번역하게 하고 세자와 수양, 안평으로 하여금 그


일을 관장하도록.

120pg

이에 대해 집현전 최고 책임자 최만리가 상소를 올림

-> 세종은 그에 대해, 뭐라고?

 즉, 문자 창제 완성 후 집현전한테 운회 번역하게 하니까 그에 대해서 상소를 올린 것.

123pg

훈민정음 반포

서문 2 개임

세종이 쓴 서문

124pg

정인지가 쓴 서문.

125pg 그 이후, 이과와 이전이 사람을 뽑을 때, 훈민정음도 시험치도록 해라

126pg

용비어천가를 언문으로 번역하고 수양이라는 중이 석보상절 언문 편찬하고, 사서 언문 번역.

반포된 이후 각종 서적들이 번역되어 퍼졌음

127pg

우리 음운서인 동국정운 편찬됨

128pg

월인천강지곡 -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새겨지는 노래, 세종이 지음

정보공유, 공론정치를 위해 문자 창제 -> 문자 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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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pg

이런 과정 속에서 세종대에 정치적 상황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131pg

세종 18 년, 의정부 서사제가 부활함.

원래 2 가지 빼고는 의정부 서사 못했는데, 의정부서사제로 권력구조 개편함,


134pg

왜?

세종 건강문제,

집현전 중심의 고제 연구 심화 > 하은주 의 재상중심제 관철시키고자 함.

134pg

70 세 치사(은퇴) -> 78 세인 황희

영의정 황희가 재상권이 강화된다고 왕권의 저해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판단

136pg

황희 너 집에서 수양해 내가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볼게, 사진(=출근)

138pg

세자에게 맡기겠다

139pg

세자의 국정예습 (나머지는 세자한테 하는, 몸으로 친히 경험하는 것이 낫다)

140pg

사냥인 강무도 대행하게 함 (강무- 군사들 사냥, 군왕으로서 위엄 과시하는 행사)

141pg

마침 이 때에 건강도 악화됨

 여러 사업들을 완성해가면서 일이 너무 많으니 일부는 의정부에, 일부는 세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벌여 놓은 국정사업에 집중하겠다

143p

첨사원 설치

왕 -세자 (아들 트레이닝 시키는 기구, 중국의 송나라에 ‘첨사부’가 있어서 세자 트레이닝 함

세자가 서무를 체결하는 기관

<4 강>

세종 양왕체제기~의정부서사제로의 부활~서사제 실시 이후

-> 심온의 숙청, 집현전 확대 개편 ~ 공법착수, 4 군 6 진, 생산력증대 편찬사업 한글창제

할 것이 너무 많으니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은 의정부에 맡기고, 세자에 맡기고..


137pg 세자의 대리청정

너무 아파서

142pg

대리청정 그렇게 하면서 첨사원 기구 설치

대리청정 -> 정안군이 왕세자로 있으면서, 양왕체제기동안 상왕 국정 운영

아들에게 대리 시키려는데 중국이나 고려 때에 비슷한 일 있었니? 법고창신 하는 세종

그렇게 설치한 첨사원

143pg

강무, 종묘 대제, 조회-세자가 받으니까 동궁에서(계조당), 망궐례-명나라에 인사하는

이런 것들 세자에 대리 시킴

144pg

세자가 사인할 수 있게 된 것은 세종 27 년 / 번쇄(=잡다한 일)

145pg

아들이 일 하니까 나 별궁 갈게 이제

무악에 양왕체제기동안(세종-태종), 상왕 태종이 지어준 궁궐이 연희궁임

“세종 2 년에 무악에다가 태종이 지으면서, 아들이 쓸 거야 함”

연희궁으로 나갔음. (부득이 한 일 없음 오지 마라)

세자가 경복궁, 창덕궁 쓰면서 사인하고 (근데 세자는 아빠가 있는 곳에 매일매일 신하 이끌고
아빠한테 물어보고 함/양녕대군 집 있으면 거기 가서 의논하고/근데 세종이 5 일에 오라고 해서 5 일)

2 년을 밖에 있다가 경복궁으로 돌아왔음.

146pg

이제 모든 신하들은 세자에게 신하라고 칭하거라. (세자는 왕 방불 지위)

연달아 주변 사람들 죽어나감

148pg 큰며느리 죽음

149pg 5 번쨰, 7 번째 아들 죽음

150pg 왕비도 수양대군 집에서 죽음

그러니 세종 마음 갈 곳이 없어지네
152pg 불경

153pg

그 과정에서 신미 본격적 등장

154pg

내불당 설치 결정. 사설-불도 , 경복궁 문소전 옆

155pg

돌올-허리 펴고 꼿꼿이 앉아..

 세종 갈 곳 잃은 마음 불도로 이끈 것이 수양과 안평, 이 수양과 안평이 신미랑 가까이 지냈음

156pg

경찬회: 불당 다 짓고 불경 외면서 그것을 축하하는 자리

불당의 규모가 굉장히 화려하여,,

157pg

수양은 호불 행위를 얼마나 진심을 다 했는지

> 왕비인 소헌왕후 죽음 이후 세종도 숭불하게 되었고, 수양과 안평이 그 길로 인도한 것임

그런 속에서 군신 사이 갈등 계속 되었는데,

159pg

왕이 대리시킨다고 하면, 신하는 우선 안된다고 하는 것이 도리

첨사원 설치 반대

160pg

한글도 최만리 등 중심으로 반대

162pg

불사 반대, 법석- 승려가 와서 설교하는 것

---

162pg 이런 갈등들의 첨예화가 된 것은 불교 때문

 첨사원 설치 반대, 한글 창제 반대, 불사 반대

163pg

떠오르는 스타 '수양'
164pg

세자도 아팠음. 아파서 맡긴 일도 못해. 그러니 내가 다시 결정할 테니까 나한테 말해 이제 다시.

165pg

이런 때에 명 사신이 오기로 함

명에서 새로운 황제가 즉위해 조칙을 받들고 사신이 올 것이다.

왕도 친히 나가 환영할 수 없고, 왕세자도 아파서 안되는데,,,

왕자 시켜서 조칙 맞이한다고 전해줘

166pg

그렇게 둘째 아들인 수양이 명 사신 맞이

 의정부서사제;황희, 황보인, 김종서 -세자 대행-세자 sick- 세자자리의 위기 - 불교, 군신갈등증폭-


수양 대두

169pg

세종이 세자와 수양 불러서 내가 죽으면 너희 분명히

170pg

승하 직전, 밀린 사건 다 가져와라 모든 사무 사인

171pg 그로부터 3 일 뒤, 막내아들 집에서 승하

172pg

수불석권, 당시 세종을 해동요순 이라고 부름.

하은주 고대 3 대 이상 사회에서 주나라의 현명한 임금이 요임금, 순임금 - 극찬

불사- 부처를 섬겨

<문종 ppt>
세종 뒤를 이은 맏아들 문종

3pg 적통 장자로서 왕위 계승한 첫 번째 왕

5pg 문종이 존잘

6pg 세종 3 년 세자로 책봉되었음.

8pg 아빠 세종 죽은 영흥대군네 집에서 세종 관 앞에서 즉위함/ 임금= 문종, 널=관

10pg 왕이 되었을 때 홀아비였던 문종.


11pg 세종 9 년 결혼, 11 년 이혼

12pg 재혼했다가 또 다시 이혼

두 번 이혼한 문종

13pg 후궁이었던 권씨가 세자빈으로 승격

14pg 권씨가 아들 출산하고 다음 날 죽음.

세자빈이 없는 상태로 있던 문종.

15pg 문종은 즉위하면서, 세자빈으로 죽은 자기의 부인을 현덕왕후로 추존함.

그녀의 무덤 소릉 이라고 부르고

16pg

세자 기간 엄청 길었음.

20pg 그래서 준비된 임금

21pg 문종은 기상 예측을 잘했음

22pg 롤모델이었던 아버지 세종처럼 부지런했던 문종.

윤대법을 확대해 매일같이 관료들을 보는 것

세종 때 세웠던 법을 문종 와서 더 열심히

23pg

왕권 약화

24pg

의정부 서사제 부활 이후,

문종 대 의정부의 주축은 황보인과 김종서. 이들을 중심으로 의정부의 권한이 증대되어있던 문종 대


초반의 상황

이들은 책상에 앉아서 국가 정책을 피상적으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실제로 김종서는
함길도에서 7 년, 황보인은 행성축조 한 실질적으로 일을 해본 국정의 최고 책임자들이었음.

27pg

김종서는 인사권을 꽉 쥐고 있었음.

28pg 김종서 왕 주변 왕을 호위하는 내금위 인사도 좌우했음.

문신-집현전/무신-내금위 가 임금 주변이었는데.

30pg 종친들

32pg 문종이 동생들을 여러 일들에 참여시킴.


문종은 군사 관련해서 관심이 컸음

33,34pg

수양

35pg 수양에게 음률을 관장하게 하려고 관습도감 도제조로 삼았음.

종친에게 일 맡기면 안되는게 법인데, 수양을 일을 맡겨도 되나요?

문종) 관습도감에 권한이 없는데 괜찮을걸

38p 수양의 세력이 만들어짐

수양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한다고는 생각도 없던 문종

문종대에 관료들은 수양 세력을 경계하긴 하였음

40pg 문종 승하

경복궁 강녕전에서 승하

41pg

문종을 계승한 왕 사왕 - 나이 어려서

<단종 ppt>
그 뒤를 이은 추존한 현덕왕후와의 외아들

세손-세자 즉위의 최초

자식이 없음.

6pg

단종 실록부터는 수양의 동태를 자세히 기록. 주인공이 수양이네

원래 계승한 왕인 단종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나와야 하는데 수양이 얼마나 슬퍼했는지가 나옴

9pg

고아가 즉위한 것.

10pg
어린 고아 즉위 -> 모든 일을 의정부에 맡기겠다.

서정 만기 (여러 정치와 만가지 일)

의정부가 인사권 독점하게 됨

11pg

정치 정자 -> 인사 이동을 하다

이미 문종대에 내금위 인사권도 좌지우지하고 김종서한테 잘 보여서 자리 얻는 사람도 있었는데


단종 즉위하고 저렇게 되면서, 더 심해짐

이조와 병조의 3 품이 의논에 참여해 지들이 원하는 사람한테 황표 붙여 아뢰면 임금은 그냥


낙점할 뿐.

-> 황표정사

12pg

황표정사: 의정부 당상들에게 독점되어 있던 인사권

이 과정이 수양의 권력 장악(쿠데타) 명분 제공

13pg

얼마나 심했냐면,,

김종서 친척 뭐 이런 사람들은 피해야 하는데, 특별히 임명 이 지랄하면서 다 관직 올리고

상피(서로 피하는 관계), 특지 (특별한 명령), 천직(자리를 바꿔주니)

마음대로 인사하고

14pg 이러한 인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음,

자기 자손들 땡기는 인사 비판하니, 이건 당연한거라고 나오는 황보인 김종서

국가의 공적 권력을 사적 이익 도모에 쓰면서 뻔뻔하게 야 우리 죽을 때 다됐는데 우리 권력으로


애들 땡겨주는게 당연한거아니냐?

시정(시장바닥에) 용부(평범한 아바지) 관기(관직)

 인사 전횡

16pg

황보인과 김종서는 수양과 안평 중 안평과 손을 잡음

반역을 꾀하라고 부추김


17pg

황보인의 딸이 안평과 내연관계였음

안평=이용

이 과정에서 수양은 고립되는 상황

19pg

수양의 사람으로 대표적인 둘 - 권람, 한명회

수양보다 권람이 한 살 많아

문종 대에 역대병요 편찬하는 과정에서 친하게 지냈음

한명회는 궁지기 하고 있었음 (경덕궁(이성계 계성 옛집) 궁지기)

한명회가 권람에게 한 말

야 가서 수양대군 떠보지 그래'?

20pg

권람이 수양에게)

그럼 누가 그런 사람인데 나한테 소개해줘봐

권람- 한명회 추천

발난(난을 일으키다)

21pg

한명회가 자기 친구들 데려와 인사시켜주고 (힘쓰는 사람들)

수양이 대접 잘 해줬음

한명회의 소개로 내금위 동원할 수 있게 됨

22pg 도성을 방어하는 감순 을 확보 (궁으로 들어가는 문을 관장)

한명회가 감순의 일을 맡은 홍달손 데려와서, 협모(협동해서 모의하면)

 권람의 소개로 한명회와 수양 만나고, 한명회가 내금위와 감순 소개해주고


수양에게 월부한 사람들 ex) 홍윤성 +해서 수양 세력 확보

의정부+안평 되면서 수양 고립 - 수양 세력 결성(한명회+권람+내금위+감순)

26pg

수양, 신숙주

사직(나라를 위해 죽는다)

신숙주를 서장관으로 임명해 중국으로 보냄

27pg (실 25p-26p)

황보석, 김승규 데려갈까 해/ 황보인,김종서 아들임

수양이 신숙주와 함께 두 아들 인질로 해서 사은사 다녀왔음.

이듬해 2 월 15 일 도착해,

감순 확보하고 구체적으로 떨쳐 일어날 준비가 되었음

30pg

3 월 23 일, 결의함

동생 용서할 수 없다. 안평도 치겠다

31pg

계유년 10 월 11 일~12 일 계유정난 일어남.

의정부의 인사권 전횡(황표정사)+안평세력->수양의 코너 몰림

결국 계유정난 -> 본인이 영의정이 되고, 이조판서 겸하면서 권력 교체

의정부 대신들 모두 숙청

<5 강>

단종의 즉위

단종시대는 의정부서사제 하에서 의정부 권한이 인사권 독점되어 있었고, 그 공적인 권력을 사적인
이해를 추구하는데 썼음 그래서 비판하는 기록들이 많음

의정부 세력은 안평과 결탁하여 한 세력이 되고 그 과정에서 수양이 고립됨.

수양은 당초에 친분 있던 권람과 한명회, 한명회를 통해 군사력 조건 갖추고


수양은 신숙주와 명나라의 사은사에 동행하면서 세종 대 집현전 출신의 학자로서 대표주자인
신숙주를 자기편에 포섭하고 이를 통해 세종대 집현전 학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계기 마련.

황보인, 김종서 아들 인질 삼아 같이 사은사 다녀옴

감순이라고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관장하는 홍달손을 편으로 엮고

수양에게 한 편이 되겠다고 하는 홍윤성 등 무신들 함께 하여

31pg 계유정난 발발

선언. 간사한 김종서 베고 단종에게 아뢰자 라고 새벽에 선언

33pg 그 날 저녁 수양이 나오니 부인이 갑옷 입히고

수양은 여타 시종 없이 혼자(단기로) 김종서 집 찾아감

혼자 왔으니까 무장도 안하고 맞이한 김종서

34pg 단종이 너한테 전하라는 편지가 있다 라고 김종서에게 편지 전해주고

김종서 죽임

35pg

수양은 단종이 있는 곳(시좌소)으로 달려가 환관을 불러 내 말 전하라고 함/

황보인, 김종서등 선발후문- 이미 일 저질렀고 뒤에 아룀

이미 김종서 부자 잡아 죽였어. 근데 황보인은 아직 있으니 지금 처단하라고 해라

36pg

단종은 이 사실을 듣고 수양에게 국가의 중한일 모두 위임하여 처리하게 하고

대궐로 들어오는 관료들을 살릴 사람 죽일 사람 분류해서

황보인 죽이고

안평대군 유배 보냄

37pg

모두 시장에 머리 전시함. (효수)

계유정난: 계유년(단종 1 년) 10 월 이틀에 걸쳐 권력을 사적이익에 도모하려 썼던 이들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사건

궁으로 관료들을 불러 혼자 들어오게 하고 오면 죽였음. 안오면 집 찾아가서 죽이고.


안평대군은 강화로 유배 보냄.

김종서가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깨어남. 사대문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나를 상하게 하는 사람을


잡아라 -> 근데 이미 문지기, 뭐 궁궐 다 수양이 먹은 상태인데

부상당한 상태로 김종서는 여장하고 처가집 가서 숨었음. 수양은 그 소식을 듣고 김종서 잡았음.
김종서는 죽는 것이 아니라 갇히는 것이라 생각해 야 가마 가져와서 나 잡아가 했는데 수양은 그냥
김종서 죽였음.

38pg

결과 -> 수양은 영의정 + 이조와 병조의 판사 겸하며 문신,무신 인사권도 장악함

 탈취한 것 = 권력을 찬탈

 단종실록 세조 때 편찬 : 따라서 편찬 방향이 세조의 정당성 높이는

물리력/폭력을 동원한 정변 -> 그 폭력을 가져다 준 사람이 한명회. 내금위 통해 군사력 접수하고
감순을 통해 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오케이

권력투쟁 과정에서 폭력 동원해 권력 찬탈한 수양

39pg

이 정변에 참여했던 43 명을 정난 공신으로 책봉

40pg

정적이자 골육지친이던 안평 죽음

수양이 겉으로는 안평 죽이지 말자고,,

근데 공론 따르세요 해서 안평 죽음

이러한 계유정난에 반발한 세력들 있음

김종서의 꼬붕이었던 이징옥. 김종서가 세종 때 두만강 둘러 5 진 설치할 때 데리고 다녔던

44pg

함길도에서 김종서의 핵심 후배였던 이징옥이 군사 일으킴

45pg

수양은 계유정난 이후

조선에서 지방군사력이 가장 센 곳이 함길도.


그 함길도의 군사책임자로 김종서의 후배인 이징옥이 있길래 신임 도절제사로 교체했음

이징옥이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수양이 김종서 죽였다는 것 듣고 다시 함길도로 돌아가 신임


도절제사 죽이고 반란 일으킴

여진족들이 대다수였던 함길도 지역. 이징옥은 금나라 황제를 표방함. 성저 야인들한테 반란에
참여하라고 함. 이것이 이징옥 난의 특징

46pg

10 월 25 일 당일 수양은 스스로를 중앙과 지방 군사를 모두 통괄하는 중외병마도통사직으로


임명하고 이징옥의 난을 토벌하고자 했음.

이징옥의 난을 계기로 수양은 군사권까지 손에 쥔

47pg 수양 본인이 직접 출정하겠다고 했는데 나가기 직전 급하게 함길도 관찰사가 이징옥


진압했다는 소식이 들어옴.

48pg 단종이 왕이지만 실질적으로 왕이었던 수양.

문서에 결재하는 사람 수양 만들고

둑 이라는 깃발도 수양 주고

수양은 영의정+이조 병조 판서+중외병마도통사 -> 모든 권력 장악한 상황이 됨

이제 어떻게 그림 좋게 단종을 물러내느냐 문제만 남음

51pg

그림 만들려고 단종 혼인시킴

52pg

계유정난 3 년 후 수양대군에게 양위.

단종이 전지하기를) 이제 대임을 영의정(수양)에게 전하고자 한다

간사한 무리 -> 이징옥

<세조 ppt>

문종의 아우, 단종의 삼촌

5pg 수양대군
피의 군주, 세조.

9pg

아무도 합의하지 않는 폭력을 동원하여 왕이 된 세조에 대해

왕위계승의 정당성? -> 이럴 때에 태조를 끌어다 씀

수양은 태조를 닮았다.

10pg 아버지인 세종도 수양을 인정했었다

수양에게 나라의 안위에 관계된다면서

11pg 징조

계유년 사건 2 달 전 가마솥이 스스로 달그락 거렸다 이걸 보고 비파라는 무당이 부인에게 대군이 39


에 왕 될 징조다

 이런 이야기들을 굳이 많이 가져다 쓴 것은 세조의 집권과 즉위가 당시 유교적 이념(충효정)에


용납되기 어려웠다. > 태조 닮았고, 세종도 인정했고, 하늘도 예고했었다 라고 구구절절

15pg

세조가 하교하기를, 문종과는 같은 어머니의 아우이고~

주상=단종

16pg 상왕을 창덕궁으로, 본인은 경복궁으로

17pg 왕비 책봉.

맡아들 세자로

19pg

제일 먼저 한 일은 국정장악력 높이기 위해 6 조직계제 부활함.

도평의사사체제 유지(태조)-의정부설치-6 조직계제(태종)-의정부서사부활(세종)-6 조직계제 부활(


세조)

의정부에 6 조 직계제로 권력 구조 개편하겠다는 뜻 전했더니, (의정부 권한 약화)

20pg 하위지가 반대하고 나섰음.


주나라 때의 의정부 서사제를 그대로 따르라고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음.

21pg 그래서 세조가 화남

야 너 하위지 관 벗어라

총재에게 위임? 장난하냐? -> 국정 장악력 높이려고 했는데 반대하니까 빡침

22pg

지난날 = 계유년 사건 때

하위지가 나한테 그랬었어.

6 조직계제 부활에 분노했다기보다

이미 계유정난 때 하위지가 “너 영의정이면 딴맘먹지말고 문종이나 잘 보필해라” 라고 말한 거에


뒤끝.

원래 목 잘라 죽이려고 했는데 용서해줄게.

-> 이 과정에서 하위지는 세조에 앙심을 품게 됨.

24pg

왕위 정당성 문제로 내 편하고만 있던 세조. (편가르기)

그들을 공신으로 책봉하는 데 모자라서 거듭된 혼인관계를 맺음. 공신+척신=훈척 이라고 함.

그래서 세조 시대는 절대적으로 지 편하고만 함께 한 훈척시대의 전개 라고 함

세조는 내편과 니편 분명하게 갈랐음.

내가 왕위에 오른 것은 너희 덕분이다 라고 직접 편지

(흉한 무리들 -> 김종서, 황보인)

25pg

또 다시 공신을 책봉함.

좌익 공신.

정난 공신 - 좌익 공신 거듭 책봉

26pg

그 공신들은 왕실과의 혼인관계 맺게도 함


철저하게 그들만의 리그 형성.

그 중 대표주자는 '정인지'.

(또 신숙주랑 한명회랑 사돈, 신숙주랑 윤자운이랑 사돈 -> 운명공동체)

27pg

근데 정인지는 마음속으로는 이런 과정으로 왕이 된 수양을 꺼려했음

그같이 나는 취하지 않겠다(=너처럼 살지 않겠다)

술 먹고 취해서 세조한테 너라고 하면서 지랄

그러나 훈구이기 때문에 가벼이 죄를 줄 수는 없다,, 라며 일단 지 편은 많이 봐줌

30pg

한명회는 좌승지까지 말도 안되는 승진함.

평안도 사정이 어떤지 감시하여 보고하도록 함

33pg

신숙주 칭찬

위징- 당 태종에게 간언하던 신언.

세조는 본인을 당 태종에, 신숙주를 위징에 비유하며 칭찬

35pg 윤자운

총융 -> 군사 다룰 때 (이징옥의 난 이후에), 보좌할 사람 찾기 힘들었는데

정인지 한명회 신숙주 윤자운 4 명은 공신으로 거듭책봉되고 함께 혼인관계 얽히는 끈끈함

내 집권의 정당성 의심받기 때문에 내편 니편 갈라치기 겁나 한 세조

-> 이에 대한 반발 있었음.

------

38pg

세조 2 년, 김질의 고변
세조 집권에 대한 반발. 단왕 복위에 대한..

김질이 말하길, 성삼문이 상왕(단종) 이야기하며, 신숙주 권람 한명회 등 죽여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조가 엄청 깜짝 놀라 성삼문 불러서 물었음

너 김질이랑 뭔 말 했니?/김질 나와서 쭉 말하니/성삼문은 김질이 말한 것은 맞지만, 그 뜻은 다르다.


난 염려해서 말한 것이지 단왕복위 이런 것이 아니에요 라고 말함.

그러다 ~~~~ 랑 공모했다고 성삼문이 대답함. -> 사육신

하위지를 잡아서 물으니, 불지 않음

이개도 불지 않고

의금부에 하옥해라 얘네

계획은 명나라 사신 초대연 때 상왕 복위시키려고 모의했습니다.

(근데 운검(호의무사) 폐지되서 못함, 호의무사가 죽이기로 했는데)

이 계획이 들통난 것.

 계유년에 이어 대대적은 관리 숙청 이루어짐

41pg

이 사건을 계기로 집현전 폐지.

성삼문 이하 이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집현전을 통해 출신한 학자들이라.

원래 집현전은 고제연구, 도서관, 경연 기능을 했지만

고제연구기능은 예문관에, 도서관은 장서각->홍문관으로 개칭, 경연도 예문관원들과 하면서

집현전 폐지

42pg

이들 처형함

[상왕복위모의사건]

충절 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할 것을 꾀하니~ 라고 하고 처형

상왕복위를 사적 욕망 때문이라고 폄하하여 처형했다고 세조실록에 기록.


43pg

이들을 충절의 아이콘이라고 만든 것은 숙종 대임.

숙종이 절의에 감동하여

숙종: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인조 대 뒤에 왕권 강조하기 위해 환국 정치하며 절대군주로 나설


때였음. 그래서 숙종은 신하들에게 너네도 쟤네처럼 나한테 충절을 다해라 라고 하려고 그들을
충절의 아이콘으로 만든 것.

44pg 그들을 사육신이라고 함. 그 때 죽은 4 명의 신하.

--------

<상왕 세력 절멸>

48pg

금성대군은 형이 뭔데 조카를 상왕으로 올리고 왕이 됐냐고 반발했는데

49pg

금성대군도 상왕복위 계획 이미 알고 있었다고 알려짐

50pg

단종의 장인(송현수)가 반역을 도모한다는 이야기 올라옴.

상왕이었던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궁에서 내보냈음.

52pg

금성대군이 노산군을 왕으로 복위시키고자한다는 소식이 고변으로 올라옴 (=불궤한 짓)

53pg

금성대군, 송현수 사사하고, 노산군 자살

상왕 단종의 존재가 있는 한 어떻게든 왕위의 정당성 문제 있었을텐데 어쨌든 노산군 죽으면서


세조는 굳

속적(관계를 끊는다, 족보에서 파인다)

===============

54pg 세조는 계유, 병자년 무고한 사람들 엄청 죽고,,,

저렇게 왕 되고,,

해서 이걸 덮을만한 엄청난 무언가가 있어줘야 함.


55pg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함. 내가 하늘의 아들이다. 라는 뜻

제사 지내는 제단 -환구단

58pg 본인이 친히 제사를 지냄,

세조 7 년 세조가 아파서, 대신들 천제 그만두거나 딴 사람 시키시죠 제안

내가 직접 안하면 제사 안한 것과 같아 안돼 친히 지내야해 내가

59pg

내부적으로는 국왕의 권위 강조

명분과 정통성을~

나는 왕이다 강조

------------

우리 아빠 세종, 할아버지 태종, 증조할아버지 태조 가 하지 못한 그런 성과 내가 낼게!

: 법전의 편찬

경국대전.

62pg

정도전 개인이 헌법 만들어서 올렸었음. 조선경국전

조준을 내세워 공식적으로 법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경제육전

왕의 수교/관습법 등 모아 성문화한 것.

태조대 경제육전

64pg

태종 대에 속육전 편찬

왜 만들엇느냐 - 조준이 경제육전. 근데 경제육전에는 우왕대부터 들어간 내용들

그래서 하륜 등이 위화도회군~태조까지 원육전이라 하고, 태종 이래로 속육전이라고 별도 편찬함.

(이어 -> 비속어)

66pg
세종 대에는 신속육전, 원전등록 편찬

71p

태조 태종 세종 다 만들었었는데 법전?

근데 세조는 이거 다 집어넣고, 내가 만들면 매 왕조마다 만들 필요 없이 이후 왕들은 이에 비추어서


만세사법을 삼겠다. 하여 경국대전 편찬 착수

74p

호전 -> 세금 관련

76p

예종 때 , 성종 때 고치고

77p

세조대 만든걸 고치고 고치고 -> 무술대전

 신축 대전 -> 을사 대전 (6 번째 고친 을사 대전이 경국대전)

80 프로는 세조 때, 반포는 성종 때 / 따라서 경국대전의 난산 (힘들게 태어남)

<불교>

81p

자기는 부처의 가호를 받았다

(불교적 미스터리 – 자기는 대단한 사람)

82p

상서로운 일들이 나타나는 것을 상소한 것 -> 상서

83p

살아있는 부처 -> 세조

계유넌 다음 날 궁으로 출근하는데 세조 집에서 북악산까지 무지개 있었음

그냥 신의 경지에 있는 세조 수양대군
정 2 품송 – 소나무 아래 지나갔다는 기록은 있음 (실록엔 X)

<훈신의 불경>

양정의 참살당함

87p

상성 – 세조

양정이 선위하라고 함 (함길도, 평안도 등 험난한 데 나를 보내서 세조한테 빡침)

술 취해서 세조한테… -> 불경의 끝

88p

양정 -> 좌익공신 / 참형은 양정에게만 하는 것으로만 그쳐라

89p

양계 -> 평안도, 함길도

양정 말고 보낼 사람이 없어서,

외방에 있으니까 불만 up

<원상제 실시>

91p

세자 대리청정

92p

승정원 재상 -> 원상 만듦 (원래는 3 품밖에 없었는데, 2 품 만듦)

신숙주, 한명회 재상 앉힘

<지방 반란>

94p

이시애의 난 (함길도가 계유정난 후 집권했을 때, 젤 먼저 반발한 곳 ‘이징옥의 반란’)

함길도 출신 애들이 수령 못하게

95p

이시애 -> 함길도 호족


96p (교란)

이시애가 강효문 설징신 죽엿는데, 이유가 한명회랑 신숙주랑 결탁해서 모반하려구

98p

왕명 받았다고 뻥침

우리 사람 다 죽이려고 한다 -> 이시애의 거짓 교란

99p

정토군 책임자 -> 자기 조카를 앉힘 ‘이준’ (임영대군의 둘째 아들)

New face 를 앉혔음 – 조석준

3 만명 -> 세종 여진정벌 때 만 오천명

101p

신숙주 한명회

뭇사람 입의 구실감 -> 루머를 만들었으며

루머 자체를 만든 것이 죄다

102p

남용신 -> 형구에 매는 사람

남용신이 신숙주 형구를 헐겁게 맴

그러나 인군 -> “세조”를 업신 여긴 것 -> 죽임

103p

길주 -> 반란 일어남

북청

함흥 (함길도 감찰사가 신숙주 아들 -> 신면 살해)

영흥

105p

106p
신숙주 한명회 석방시킴

(왜냐 신숙주 아들 죽었으니까) (그냥 혼내 준 것)

107p

임금이 감찰이 잘못되었다 -> 임금 니가 잘못 함

전주=인사

인사가 자기 뜻 안 맞으면 관여했음

“전천” -> 자기 멋대로 하는 것

109p

남이가 활약함

110p

만령 전투

111p

길주로 패주-> 도망감

112p

이 도에 근거 -> 함길도

이시애 반란 -> 세조가 공신들 따귀 때리는 것으로 사용

115p

이시애 난 -> 공신 책봉 적개공신

(정난 공신(세조의 집권) / 좌익 공신/ 적개공신)

New face 들로

116p

의정부 6 조로 적개공신
(새로운 권력과 대립)

117p

19 살 이준이 영의정 임명

(일부러 충성 경쟁하도록 만들었음)

120p

군군 -> 자기가 모든 일 극진하게 (최선을 다했다)

허물은 이에 불과하다 -> 당당하다

122p

영웅=세조

죽기 전날 왕을 넘기고

123p

다음날 죽음

태상왕=세조

검약-검소하다, 지수=잡고 지켜야할

127p

세조 평가

정당성 결여 ->

(쿠데타로 오른 정권은 세조를 칭찬

민주 정권에서는 부정적으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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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 -> 세조 실록 편찬만

사초를 기반으로 실록을 만든다

세조의 사초에 실명을 쓰게 만듦


26p

민수: 양성지 관련 욕을 많이 썼는데, 실록 쓰는 사람이 양성지니까, 사초 개작

득실(욕)

원숙강: 권람 관련해서 개작(지웠음)

27p

임금=예종

양성지, 권람 욕은 지우면서, 아빠 욕은 그대로 왜 씀?

민수 왈 세조는 죽었지만, 재상이 두려웠기 때문

28p

처벌

서연관=어렸을 때 가르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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