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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B 수행평가 자료 ④]

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17장
자발적인류멸종운동과 포스트휴머니즘
우리 때문에 지는 부담을 덜어버린 세상, 사방에 야생 동식물이 멋지게 자라는 세상
을 생각하면 우선 마음이 솔깃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끼친 온갖 경이로움의 상
실을 생각하면 금세 아픔이 되살아난다.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지구상에 있는 새들 중에 적어도 3분의 1은 그 사실을 눈치
도 못 챌 겁니다. 조류학자 스티브 힐티의 말이다.
그가 말하는 새들은 아마존의 고립된 정글 유역, 오스트레일리아의 멀리 떨어진 가시
나무 숲, 인도네시아의 구름 자욱한 산비탈 등을 떠나지 않는 것들이다. 한편 우리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동물들, 예컨대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사냥당하고 멸
종 위기에 처한 큰뿔산양이나 검은코뿔소 등이 과연 그 일을 축하할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동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개나 말처럼 길들인 종
류이다. 그들은 늘 주어지던 먹이를 아쉬워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목줄이나 고삐를 매
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정 많았던 주인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돌고래, 코끼리, 돼지,
앵무새, 그리고 인간의 사촌 침팬지와 보노보원숭이까지 우리가 가장 영리하다고 생각
하는 동물들은 아마 우리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 그들을 보호
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들에게 위험을 주는 것 또한 대개
우리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없어서 슬퍼할 것들은 주로 우리가 없으면 정말로 살 수 없
는 존재일 것이다. 그들은 바로 우리를 주식으로 해서 살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대표
적으로 '페디쿨루스 후마누스 카피티스'와 '페디 쿨루수 후마누수 후마누스', 즉 사람 머
리와 몸에 사는 이를 들 수 있다. 후자는 적응력이 뛰어나서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옷
을 먹고도 산다(인간 중에 패션 디자이너를 제외하면 아주 독특한 특성이다). 진드기도
우리가 없으면 큰 상실을 맛볼 것이다. 워낙 작아서 우리 속눈썹에만 수백 마리가 살기
도 하는 진드기는 우리에게 쓸모없는 피부 각질을 먹어치워 줌으로써 비듬이 들끓지
않도록 해준다.
200여 종의 박테리아도 우리를 자기네 집이라 부른다. 특히 우리의 대장과 콧구멍,
입 속, 이에 사는 것들이 그렇다. 수백 마리의 작은 포도상구균이 우리 피부 어느 곳에
나 살며, 겨드랑이와 가랑이와 발가락 사이에는 더 많이 산다. 거의 대부분이 유전적으
로 우리한테서만 잘 살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가 없어지면 그들도 사라질 것
이다. 이 중에 우리의 죽은 몸을 보내는 송별회에 참석하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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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진드기도 마찬가지이리라). 널리 퍼진 신화와는 달리,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은 계
속 자라지 않는다. 세포 조직은 수분을 잃으면 수축한다. 그 결과 머리카락의 뿌리가
드러나기 때문에 묻혀 있던 시신이 밖으로 노출되면 머리가 길어진 것처럼 보일 뿐이
다.
우리 모두가 갑자기 쓰러져 죽으면, 대개는 청소 동물들이 몇 달 안에 뼈만 남기고
우리를 깨끗이 치워준다. 죽은 껍데기가 빙하 크레바스로 추락해 얼어버리거나, 진흙탕
깊은 곳에 빠져 산소와 생물 분해 요원들이 손쓸 틈이 없는 경우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은, 우리가 고이 잠들도록 챙겨드린 분들은
어떻게 될까? 인간의 유해는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불멸에 다가가려는 인류의 소망은
누군가가 바비 인형과 바비의 남자친구 켄 인형을 우리 자신의 이미지로 떠올릴 만큼
성공을 거두기나 한 것일까? 시신을 보존하고 봉하려는 우리의 광범위하고 값비싼 노
력은 얼마나 지속될까?

현대사회에 접어들고 꽤 오랫동안 우리는 시체를 방부 처리해 왔는데, 이는 불가피한
일을 아주 일시적으로만 연장하는 제스처일 뿐이라고 마이크 매튜스는 말한다. 그는 미
네소타대학에서 장례 과학 프로그램과 더불어 화학, 미생물학, 장례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방부 처리는 사실 장례만을 위한 것입니다. 세포 조직은 조금 굳어지긴 하지만
다시 분해되기 시작하니까요." 시체를 완전히 살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집
트의 미라 전문가들은 내장을 전부 제거했다. 부패가 제일 빨리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
이다.
내장에 남은 박테리아는 금세 시신의 수소이온지수가 변함에 따라 활발해지는 천연
효소의 도움을 받는다. "그 중에 하나는 고기 맛을 연하게 해주는 연화제 역할을 합니
다. 단백질을 분해하기 때문에 소화하기 쉬워지지요. 우리의 활동이 중단되면 방부 처
리를 하건 말건 침입해 들어옵니다.”
남북전쟁 때까지는 시신 방부 처리가 흔치 않았다. 죽은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쓰이면서 애용된 것이다. 부패가 빠른 피 대신 가까이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주입
했는데, 흔히 위스키가 이용되었다. "스카치 한 병이면 충분하지요."라고 매튜스는 인정
한다. "그 때문에 제가 몇 번이나 취했는지 모릅니다."
비소는 그보다 훨씬 잘 통했고 값도 쌌다. 1890년대에 금지되기 전까지 비소는 널리
이용되었으며, 고도의 비소는 미국의 오래된 묘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에게 종종 문
제를 일으키곤 한다. 대체로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시체가 썩었지만 비소는 남아 있는
경우였다. 그 뒤로 지금 애용되고 있는 포름알데히드가 나타났다. 포름알데히드는 인간
이 만든 최초의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의 원료인 페놀에서 나온다. 최근 들어 녹색장
례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포름알데히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 물질은 산화되어
포름산이 되는데, 포름산은 불개미나 벌침에 있는 독소로 지하수로 흘러들면 또 하나
의 독극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부주의한 사람들은 무덤에 가서도 환경을 오염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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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들은 또 흙에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은 그리도 아끼면서 왜 정반대로 시신을
묻으며, 하물며 흙이 아예 닿지도 못 하게 봉해버리느냐고 비난한다.
이렇게 봉하는 것은 고급 관을 사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과거 애용되던 소나무관은
이제 청동, 구리,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관으로 대체되거나, 어머어마한 양의 온대 및
열대 활엽수 목재로 만든 관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이 관이 흙 속에 바로 묻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할 이 상자는 또 하나의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상자의 내벽은 대개 콘크리트다. 이렇게 콘크리트를 치는 이유는 흙의 무게를 지탱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예전 묘지의 경우처럼 밑에 있는 관이 썩어 주저앉
으면서 무덤이 내려앉고 묘석이 쓰러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의 덮개는 방수가
아니기 때문에 내벽 바닥에 난 구멍은 무엇이 들어오건 다시 새어나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녹색 장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내벽을 친 상자를 만들지 말고, 관의 재료로
골판지나 버들가지처럼 빨리 분해되는 것을 이용하라고 한다. 아니면 관 따위에 넣지
말고,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시신을 천에 싸서 바로 묻어 남은 영양분을 땅에 돌려주
도록 하자고 한다. 사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사람은 이런 식으로 묻혔겠지만, 서구 세
계에서 이런 방식을 허용하는 묘지는 극히 적다. 한편 그보다 더 드물게 허용되는 방식
은 묘비 대신 나무를 심어 인체의 양분을 바로 거두어들이도록 하자는 수목장이다.
그러나 장례업계에서는 보존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견고한 것 이상의 것을 권한다. 콘
크리트 내벽도 청동으로 만든 지하실 무덤에 비하면 조잡하다며, 청동으로 만들면 자동
차만큼 무거워도 홍수 때 뜰 수 있다고 현혹한다.
그런 장례 벙커 제조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시카고의 윌버트 장례 서비스의 부사
장 마이클 파자르에 따르면, "무덤은 지하실과 달리 배출 펌프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의 회사가 내놓은 3중 벙커는 위에 물이 2미터 높이로 차도, 즉 지하수가 차올라 묘
지가 호수로 변해도 견딜 수 있도록 압력 테스트를 거쳤다. 게다가 내부에는 녹슬 염려
가 없는 청동 옷을 입힌 콘크리트 심이 있고, 그 안팎으로 ABS를 댔다고 한다. ABS는
아크릴로니트릴과 스티렌과 부타디엔 고무를 합성해 만든 것으로, 가장 분해가 안 되고
충격과 열에 강한 플라스틱의 하나다.
덮개는 독점 개발한 부틸 밀봉제를 써서 플라스틱 내벽과 빈틈없이 결합되도록 했다.
이 밀봉제만큼 강한 것이 없다고 파자르는 말한다. 그러면서 오하이오에 있는 사설 연
구소를 언급한다. "그들은 부틸에다 열을 가하고, 자외선을 쏘이고, 염산에다 절이기도
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수백만 년을 버틸 것이라고 나왔습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박사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고고학자들이 이 사각형 부틸
테두리만을 발견한다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막대한 경비와 온갖 화학 지식, 방사선에 견디는 폴리머, 멸종
위기에 처한 나무, 중금속을 다 들여 남기려 한 조상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처리할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면 인체의 효소는 박테리아가 먹지 않은 모든 조직을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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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버리며, 남은 몇십 년 동안 산성액으로 변한 방부 처리액과 섞을 것이다. 그것은 밀
봉제와 ABS 플라스틱 내벽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시험이 될텐데, 그 정도 시험은 간단
히 통과함으로써 유골보다 오래 버틸 것이다. 부틸 밀봉제만 빼고 청동과 콘크리트 등
이 전부 분해되기 전의 현장이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된다면, 시신 가운데 남은 것은 몇
센티미터 깊이의 인간 수프뿐일 것이다.
습도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하라나 고비나 칠레의 아타카마 같은 사막에서는 옷과
머리카락이 멀쩡한 천연 인간 미라가 종종 발견된다. 빙하나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우리
의 먼 조상이 죽은 당시 모습 그대로 묻혀 있다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1991년
에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가죽옷을 입은 청동기시대 사냥꾼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하지
만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오래 가는 흔적을 남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 미네랄이 풍부
한 진흙 속에 묻혔다가 결국 뼈의 칼슘이 전부 대체되어 뼈 모양의 돌로 변하는 일은
드물어졌다. 희한하고 어리석은 관행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말
오래 가는 기념물, 즉 화석이 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사라질, 그것도 당장 사라질 확률은 꽤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생물들은 다 남고 인간만 사라질 가능성은 더 희박하지만, 그래도
제로보다는 높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특별병원균분과의 책임자인 토머스 시아젝은 우
리를 한꺼번에 수백만 명씩 해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일을 한다. 시아젝은 원
래 육군 소속의 수의 미생물학자이자 바이러스학자였으며, 연구 분야는 생물 무기 공격
의 위협에서부터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뜻밖에도 다른 종으로부터 갑자기 전이되는
위험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징을 밝혀내는 데도 기여했다.
우울한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워낙 많은 인구가 도시라고 하는 과밀한 배양 접시, 즉
미생물들이 모여 번식하기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감염성 있는 병원체 하나
가 나타나 인류 전체를 쓸어버릴 가능성에 대해 그는 별로 확률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장 독성이 강한 것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려울 겁
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수시로 에볼라 바이러스나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같은 끔찍한 병원균
이 간헐적으로 발발하여 마을 전체나 선교사 또는 의료 봉사자들을 몰살시키곤 했다.
두 경우 모두 요원들에게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환자와 접촉한 뒤에는 비누로 잘 씻도
록 조치함으 로써 연쇄적인 감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위생이 핵심입니다. 누가 일부러 에볼라를 들여온다 해도 충분히 조심하면 약간의 2
차 감염은 있을 수 있겠지만 병원균은 금세 죽어버립니다. 더 생명력 강한 무엇으로 변
이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에볼라나 마르부르크 같은 고위험 바이러스는 아마도 큰 박쥐 등의 동물에게서 발생
하는데, 인간 사이에서도 감염된 체액을 통해 퍼진다. 인체 호흡기를 통해 침투하는 에
볼라를 발견한 뒤로 메릴랜드 포트디트럭에 있는 미군 소속의 연구자들은 테러리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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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그들은 이 바이러스를 동물에게로 다
시 퍼뜨릴 수 있는 에어로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기침이나 호흡을 통해 사람에게 쉽
게 옮겨질 만큼 입자를 작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라고 사이젝은 말한다.
그러나 만일 에볼라의 하나인 '레스턴'이 변이를 일으킨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바이러스가 현재까지는 인간 아닌 영장류만 죽이는데, 다른 에볼라 바이러스들과는 달
리 공기를 통해 침투한다. 마찬가지로 혈액이나 정액을 통해서만 감염되는 맹독의 에이
즈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옮겨다닐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종 전체가 절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사이젝은 생각한다. "이동 경로를 바꿀 수는
있습니다. 또한 지금 방식이 HIV의 생존에 유리합니다. 그래야 감염된 대상이 한동안
퍼뜨릴 수 있거든요.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에 지금의 지위로 진화해온 겁니다."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가장 지독한 인플루엔자도 우리 모두를 멸하는 데는 실패했다.
인간이 마침내 면역을 개발함으로써 유행병을 다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화
학 훈련을 받은 정신이상자 테러리스트가 재주 좋게도 우리가 개발하는 저항성보다 빨
리 진화하는 무언가의 유전자를 접합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성교
를 통해서도 공기를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는 유능한 사스 바이러스에다 유전 물질을
잘라 붙이고, 그것을 사이젝 같은 사람들이 미처 박멸하지 못한다면?
사이젝은 극악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유전자를 이
식한 살충제의 경우처럼 유전자 조작의 결과물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성 병균을 덜 옮기는 모기를 만들어내려 할 때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실험
실에서 만들어낸 이 모기를 풀어놓으면 경쟁에서 자꾸 뒤처집니다.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실험실에서 바이러스 하나를 합성하는 것과 실제로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감염성 있는 바이러스로 재창조하려면 숙주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
는 유전자가 아주 많이 필요하며, 수많은 후손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는 악의 없이 키득거리며 말한다.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은 도중에 자기가 죽을
수 있습니다. 훨씬 노력을 덜 들이고 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지요.“

산아제한을 좀더 엄밀히 추진해야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인류 전체의 씨를 말리려
는 인류 혐오적 기도를 두려워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옥스퍼드 미래인류연구소의 닉
보스트롬 대표는 인류의 생존이 막을 내릴 가능성(그는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을
계산해보곤 한다. 그는 특히 우연이든 고의든 나노 기술이 오류를 일으키거나 초지능
superintelligence이 제멋대로 날뛰게 될 가능성에 흥미를 두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든 혈액을 타고 다니면서 병을 치료하다가 갑자기 반항하는 원자만한 의료기나, 인간보
다 더 영리해져 결국 우리를 지구 밖으로 내모는 자기복제 로봇을 만들어낼 기술은 "적
어도 몇십 년은 더 지나서" 두고 볼 일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가 1996년에 낸 무거운 학술서 『세상의 끝』을 보면, 온타리오대학의 우주학자
존 레슬리도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 하지만 레슬리는 우리가 지금 고에너지 입자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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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가지고 노는 것이 우리 은하계가 돌아가는 진공 상태의 물리를 깨뜨리지 않거나,
또 한 번의 빅뱅을 유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경고한다.
기계가 인간보다 빨리 생각하지만 적어도 인간만큼 결함이 많은 시대의 윤리 문제를
따져보는 이 두 사람의 철학자는 선대의 지성이 고민하지 않았던 현상에 꾸준히 주목
해왔다. 그 현상이란 자연이 지금껏 우리한테 내던지는 전염병이나 유성에 대해서는 우
리가 잘 견디며 살아남았지만, 그 반발로 내던진 기술이 우리를 위기에 빠뜨리는 상황
을 말한다.
"밝은 면만 보면 기술 역시 아직 우리를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파멸의 데이터를 분
석하지 않을 때면 인류의 수명 연장 방안에 대해 연구하는 보스트롬이 말한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멸종한다면, 환경 파괴보다는 신기술 때문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구의 나머지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든
말든 많은 다른 종이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외계에서 온 사육사들이 우리
를 전부 납치함으로써 이 수수께끼를 미해결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다른 모든 것은 그
대로 남겨둘 가능성은 희박한 정도가 아니라 자아도취적이다. 그들이 왜 우리한테만 흥
미를 갖겠는가? 그들이라고 해서 우리가 탐식해 온 먹음직스러운 자원을 보고 군침을
흘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우리보다 훨씬 더 힘센 외계인들이 우리와 똑같은 목적에
서 지구에다가 빨대 같은 것을 꽂아놓고 바다, 숲, 동식물을 쪽쪽 빨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정의상 우리는 외계의 침략자입니다. 아프리카 말고는 어디나 그렇지요. 호모
사피엔스가 가는 곳 어디나 멸종이 뒤따랐습니다."
자발적인류멸종운동VHEMT의 창립자인 레스 나이트는 사려 깊고, 말씨가 부드럽고
조리 있으며, 아주 진지한 사람이다. 능멸당한 지구로부터 인류를 추방하자는 주장을
아주 거슬리는 방식으로 펼치는 다른 단체들, 이를테면 낙태· 자살・비역(남색男色) ·
식인을 4대 기둥으로 삼으며 웹사이트를 통해 사람 사체를 요리하는 방법까지 알려주
고 있는 '안락사교회' 와 달리, 나이트는 전쟁·질병·고난에 대해 인류 혐오적 쾌감을 느
낄 줄 모른다. 학교 선생인 그는 같은 수학 문제를 풀어 늘 같은 답을 얻어낸다.
“어떤 바이러스도 60억 인구를 다 죽일 수는 없습니다. 99.99퍼센트가 죽는다 해도
65만 명이라는 자연 면역을 갖춘 생존자가 남게 됩니다. 유행병은 사실상 종을 강화시
키는 역할을 합니다. 5만 년만 있으면 지금의 상태로 쉽게 돌아올 수 있겠지요."
전쟁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전쟁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도 인간은 계속
해서 수를 늘려나갑니다. 대부분 인류사에서 전쟁은 결국 승자와 패자의 수를 함께 늘
립니다. 게다가 살인은 부도덕한 짓입니다. 대량 학살은 지구상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
법으로 절대 고려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오리건에 살지만 그의 운동은 전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인터넷상으로 그러하
다는 뜻이며, 16개의 언어로 된 웹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지구의 날 행사나 환경 컨퍼
런스 등에서 나이트는 세계적으로 인구 증가율과 출산율이 2050년이면 떨어질 것이라
는 유엔의 예측을 인정하는 차트들을 게시한다. 하지만 그가 진짜 보여주려는 차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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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것으로, 인구 자체는 계속해서 솟구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극적으로 번식하
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중국의 경우 출산율이 1.3퍼센트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매년
1,000만 명이나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근, 질병, 전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성장률을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오래 살다가 깨끗이 사라지기를' 이라는 모토를 내건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은 그가
예측하건대 우리 모두가 지구를 소유하는 동시에 소비한다는 생각이 순진했다는 사실이
확연해질 무렵 일어날 처참한 대량 소멸을 피하자고 주장한다. 우리와 다른 거의 모든
생명체의 목숨을 대대적으로 앗아갈 끔찍한 자원 전쟁과 아사를 목격하느니 차라리 인
류를 고이 잠재우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출산을 중지하기로 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니면 확실히 효과적인 바
이러스 하나가 출현하거나, 모든 인류의 정자가 생명력을 잃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제일
표가 나는 곳은 낙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는 위기임신센터일 겁니다. 아
무도 찾아 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다행히도 몇 달 뒤면 낙태수술을 해주는 사람들
이 업계를 떠나게 될 겁니다. 계속해서 임신을 시도했던 사람들한테는 안타까운 일이겠
지요. 하지만 5년쯤 지나면 다섯 살 이하의 아이가 죽는 끔찍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
을 겁니다."
살아 있는 모든 아이의 처지도 개선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더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입양이 안 되는 고아도
사라질 것이다.
"21년이 지나면 청소년 범죄 자체가 없어질 겁니다.” 그 무렵이면 체념하는 마음이
정착되면서 영적 자각이 공황을 대체할 것이라고 나이트는 예측한다. 인간의 생명이 끝
을 향해 갈수록 향상된다는 자각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더 충분해지고,
물을 포함한 자원도 다시 풍부해질 것이다. 바다는 다시 깨끗해질 것이다. 새 집이 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숲과 습지도 보존될 것이다.
"자원 분쟁이 없는데도 전쟁으로 서로의 목숨을 낭비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정원
을 돌보면서 불현듯 마음의 평정을 찾는 은퇴한 기업 임원처럼, 나이트는 우리에게 남
은 시간을 갈수록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을 만들고 흉하고 불필요한 잡동사니들을 제거하
는 데 쓰면서 살기 위해 필요한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마지막 남은 인류는 마지막 석양을 평화로이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자기들이 에덴동
산에 가장 근접한 지구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요.“

지금은 자연 현실의 쇠퇴와 가상 현실의 부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
에 자발적인류멸종운동의 정반대는 제정신을 잃은 인류 멸종 주장을 통해 더 나은 삶
을 약속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멸종이 호모사피엔스를 위한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일군의 존경받는 사상가와 저명한 발명가들이다. 자칭 트랜스휴머니스트
인 그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든 것을 회로 속으로 업로드하여 여러 면에서(잘하면 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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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도 된다는 가정을 포함하여) 우리의 뇌와 몸보다 뛰어나도록 해줄 소프트웨어를 개
발함으로써 가상공간을 개척할 꿈을 꾸고 있다. 스스로를 확장하는 컴퓨터의 마술, 남
아도는 실리콘, 그리고 모듈 단위의 메모리 및 기계 부착의 광범위한 기회가 있기 때
문에, 인류의 멸종은 적재량이 제한되어 있고 별로 내구성 없는 배가 불필요한 짐을 밖
으로 던져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우리의 기술적인 사고는 마침내 그런 한계를 뛰
어넘으리라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포스트휴먼이라고도 한다) 운동으로 유명한 이들로는 옥스퍼드 철
학자 닉 보스트롬, 광학문자판독OCR과 평면스캐너와 시각장애인용 독서기를 개발한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 『시민 사이보그: 왜 민주사회는 재설계된 미래인간에 주목해야
하는가』의 저자이자 트리니티칼리지의 생명윤리학자 제임스 휴스 등이 있다. 아무리
파우스트적이라 해도 그들의 주장에서는 불멸과 초자연적 힘에 대한 유혹이 너무 강하
게 느껴진다(아울러 지금의 모순을 초월할 완벽한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신념을 보면 사뭇 찡해지기까지 한다). 단순한 물건과 생명체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로봇과 컴퓨터를 만드는 데 큰 장벽이 되는 것은 아무도 스스로를 자각하는 기계를 만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라는 주장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는 우리 주변의 온
갖 것을 다 계산할 줄 알지만 느낄 줄은 모르기 때 문에 세상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결함은 어떤 기계도 인간의 관리 없이 무
한정 작동한 경우가 없다는 점이다. 움직이는 부품이 없는 기계도 고장이 나며, 자동수
리 프로그램도 쉽게 망가진다. 만일 백업 카피 형태로 구제를 해 준다면 최신 기계를
계속해서 모방하는 복제 기계가 되려고 하는 로봇들의 세계가 열릴 수 있을지도 모른
다.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이 스스로를 회로 속으로 옮겨놓는 작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당
장은 아닐 것이다. 그들과 달리 탄소를 기초로 하는 인간의 본질에 애착을 느끼는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발적 멸종을 주장하며 황혼을 말하는 레스 나이트의 예언이
아픈 데를 찌른다. 그것은 진정 인간다운 존재라면 수많은 생명과 아름다움의 사멸을
목격하면서 느끼게 마련인 피로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때문에 지는 부담을 덜어버린
세상, 사방에 야생 동식물이 멋지게 자라는 세상을 생각하면 우선 마음이 솔깃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끼친 온갖 경이로움의 상실을 생각하면 금세 아픔이 되살아난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가장 놀라운 존재인 '아이'가 다시는 푸른 대지에서 뛰어놀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 뒤에 남을 것인가? 우리 영혼 가운데 진정으로 불멸한
것은 무엇인가?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의 문제는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전부 사라지
고 났을 때 믿는 자와 불가지론자 모두 갖고 있는 열정, 즉 우리 영혼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창조적인 형태로 표현
된 인류의 유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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