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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許生)

허생(許生)1)은 묵적동(墨積洞)에 살았다. 남산 밑으로 곧바로 가다 보면 우물이 하나 있는


데, 그 곁에는 오래 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허생의 집 싸리문은 그 은행나무를 향하
여 열려 있다. 집이라야 비바람을 채 가리지 못할 작은 초가집에 불과했다. 그러나 허생은 오
직 책 읽기만 좋아할 뿐이어서, 그 아내가 삯바느질을 함으로써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는 지
경이었다.
어느 날 허생의 아내는 너무 배가 고파서 울면서 말했다.
“당신은 평생에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을 읽어 무엇에 쓰시려오?”
허생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의 독서는 아직 미숙하오.”
아내가 묻기를,
“공장(工匠)2) 노릇도 못한단 말입니까?”
허생이 말하기를,
“공장 일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찌 할 수 있겠소.”
아내가 다시 묻기를,
“그럼 장사치 노릇도 할 수 없단 말입니까?”
허생이 대답하기를,
“장사치 노릇도 밑천이 없으니 어찌 할 수 있겠소.”
부인이 화를 내며 내쏘았다.
“밤낮으로 글만 읽었어도 배운 것이라곤 오직 ‘어찌 할 수 있겠소’뿐이구려. 공장 노릇도
못한다, 장사치 노릇도 못한다, 그러면 도둑질도 못한단 말이오?”
허생이 어쩔 수 없이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애석하구나! 내 본디 십 년 기한으로 책을 읽으려 했지만, 이제 겨우 칠 년에 이르렀을 뿐
이구나.”
허생은 문을 나섰으나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곧장 운종가(雲從街)3)로 가서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물었다.
“한양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누구요?”
어떤 사람이 변씨(卞氏)4)라고 일러주었다. 허생은 드디어 그 집을 찾아갔다. 그는 허리를 숙
여 정중히 인사를 올린 후 이야기를 꺼냈다.

1) 연암은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윤영(尹映)이라는 실재(實在)가 확인되지 않는 사람의 말을 인용, ‘허생은 끝


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세상에서 그의 이름을 아는 자가 없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조선소설사(朝
鮮小說史)》 중 ‘대문호 박지원과 그의 작품’에서는, 허생은 실존인물인 와룡처사(臥龍處士) 허호(許鎬 : 1654~
1714)를 모델로 하였다고 주장했다.
2) 공장(工匠) : 물건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
3) 운종가(雲從街) : 조선시대 때 한성(漢城)의 거리 이름. 지금의 종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한 곳인데, 이곳에 육의
전(六矣廛)이 설치되었다.
4) 변씨는 허생과 같은 시대의 거부인 변승업(卞承業)의 조부. 《열하일기》 중 ‘변승업의 부유함은 그 돈과 재물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승업의 조부 때에는 수만 냥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허씨 성을 지닌 선비를 만
나 은 십만 냥을 얻었으니, 드디어 나라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 1 -
“나는 집안이 가난한데 무언가 작은 일을 해보고 싶소이다. 바라건대 만 냥만 빌려 주시
오.”
변씨가 말하기를,
“좋소이다.”
라고 대답한 후 선뜻 만 냥을 빌려주었다. 그런데 만 냥이나 빌려달라던 그 손님은 고맙다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나 버렸다.
그 집의 자제(子弟)들과 빈객(賓客)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허리띠라고
두르기는 했지만 술이 다 빠졌고, 가죽신이라고 신기는 했지만 뒤꿈치가 뒤집어져 있었다. 갓
은 너덜거리고 도포는 때에 절었으며, 코에는 허연 콧물까지 맺혀 있었다. 허생이 간 후 모두
크게 놀라 말했다.
“어르신네께서는 저 손님을 알고 계십니까?”
변씨는 대답하기를,
“모르네.”
“잠깐 사이에 평소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귀중한 만 냥을 헛되이 던져 주시면서, 그 이
름을 묻지도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변씨가 대답하기를,
“이 일은 그대들이 알 바 아니네. 대체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구할 때에는 반드시 자
신의 뜻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법이지. 먼저 자신의 신의를 내보이려고 애쓰지만 그 얼굴빛
은 어딘가 비굴하며, 그 말은 했던 것을 자꾸 반복하게 마련이네. 그런데 저 손님은 옷과 신
발이 비록 누추하지만, 그 말이 간단했고 그 시선은 오만했으며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네. 이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스스로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가 한번 해보고자 하는 일도 결코 작은 일은 아닐 것이니, 나 또한 그 사람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야. 게다가 주지 않았으면 또 모르거니와 이미 만 냥을 주었는데 그 이름
을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한편, 이미 만 냥을 얻은 허생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혼자 생각하였다.
‘안성(安城)은 경기도와 충청도가 갈라지는 곳이요, 삼남(三南)5)을 통괄하는 입구렷다.’
그는 곧장 안성에 가서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대추, 밤, 감, 배, 감자, 석류, 귤, 유자
등의 과일류를 몽땅 시세의 두 배 돈을 들여 사서 저장해 두었다.
허생이 과일을 독점해 버림에 따라 나라 안에서는 잔치나 제사를 치를 수 없게 되었다. 얼마
후 허생은 저장했던 과일을 풀었다. 허생에게 두 배를 받고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은 이번에는
반대로 십 배를 주고서 살 도리밖에는 없었다.
허생이 탄식하기를,
“겨우 만 냥으로 나라의 경제를 기울였으니, 이 나라 경제 기반의 얕고 깊음을 알겠구나!”
그리고 과일을 판 돈으로 칼․호미․무명․명주․솜 등을 사가지고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것을 팔아
말총6)이란 말총은 모조리 사들이며 말하기를,
“몇 해가 지나면 이 나라 사람들 상투도 매지 못하겠구나.”
라고 하며 그것을 저장해 두었다.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망건 값이 열 배로 뛰었다.

5) 삼남(三南) :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총칭.


6) 말총 : 말의 꼬리나 갈기의 털.

- 2 -
하루는 허생이 늙은 뱃사공에게 물었다.
“혹시 바다 건너편에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있지 않던가요?”
사공이 대답하기를,
“있습지요. 일찍이 바람에 휩쓸려 서쪽으로 삼 일을 곧장 흘러가 어떤 빈 섬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소이다. 제 생각으로는 사문도(沙門島)와 장기도(長岐島)의 중간쯤으로 짐작되오
이다. 꽃과 나무들이 저절로 자라나고 온갖 과일과 채소들은 스스로 여물고 있습디다. 노루
사슴들은 무리를 이루고 노는데, 심지어는 물고기들도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더이다.”
허생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노인께서는 나를 그리로 인도해 주시오. 그러면 함께 부귀를 누릴 수 있을 것이오.”
사공은 그 말을 따랐다. 바람을 따라 동남쪽으로 가서 마침내 그 섬에 도착했다. 허생은 높
은 곳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더니 섭섭한 듯이 탄식하였다.
“땅이 천 리를 넘지 않으니 무엇을 한단 말인가! 다만 땅이 기름지고 물이 깨끗하니 단지
부자 늙은이 노릇이나 할 수 있겠구나.”
듣고 있던 사공이 말하기를,
“섬이 비어 사람이 없는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산단 말씀이오?”
허생이 대답하기를,
“ 덕이 있는 사람 주위로는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오. 본디 덕이 없음을 두려워할 뿐, 어
찌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한단 말이오?”
라고 하였다.
이 당시 변산(邊山) 주변에는 도적의 무리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 주(州)와 군(郡)에서는 포
졸을 내보내어 이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도적들 또한 감히 함부
로 나다니며 노략질을 하지 못하니, 급기야는 굶주리고 곤핍한 지경에 이르렀다.
허생은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 그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천 사람이 천 냥을 노략질하면, 한 사람이 얼마씩 나누어 가지느냐?”
“그야 한 냥씩 나누어 갖겠지.”
허생이 또 묻기를,
“그럼 너희들에게는 마누라가 있느냐?”
도둑들은 하나같이 대답하기를,
“없다.”
허생이 다시 묻기를,
“너희들에게 밭이 있느냐?”
여러 도적들이 비웃으며 말하기를,
“밭이 있고 마누라가 있으면 무엇이 부족해서 도적질을 하겠느냐.”
허생이 말하기를,
“정말로 그렇다면, 어찌하여 마누라를 얻어 가정을 꾸리고, 소를 사서 농사를 짓지 않는가?
살아 생전에 도적이란 말도 듣지 않을뿐더러, 집안에 있을 때에는 마누라와 함께 즐거움을 누
리고 집밖에 나다닐 때에는 포졸에게 붙잡힐 근심도 없을 테니, 오랫동안 먹고 입는 것이 풍
족하지 않겠나?”
하고 하니 여러 도적은,
“누군들 그것을 원하지 않아 이렇게 사는 줄 아는가? 단지 돈이 없으니 문제지.”

- 3 -
허생이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도적질을 한다면서 어찌 돈이 없음을 근심한단 말인가. 내가 너희들을 위해 갖춰
놓은 것이 있으니, 내일 바다를 살펴보거라. 바람에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배가 모두 돈을 실
은 것들이니, 너희들은 마음대로 그것들을 갖거라.”
라고 약속하고 떠나가 버렸다. 도적들은 모두 그가 미쳤다며 비웃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바다 위에는 허생이 정말로 삼십만 냥을 배에 싣고 온 것이 아닌가.
도적들은 모두 크게 놀라 허생에게 절을 올렸다.
“오직 장군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허생이 말하기를,
“힘 닿는 대로 지고 가 보아라.”
도적들은 다투어 돈을 짊어졌는데, 한 사람이 백 냥도 채 짊어지지 못했다. 허생이 꾸짖기
를,
“너희들은 백 냥도 짊어질 힘이 없으면서 어찌 도적질을 한답시고 날뛴단 말이냐! 지금에
와서 너희들이 평민이 되려고 한들, 이름이 이미 도적의 명부에 올라 있어 갈 곳이 없겠구나.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각기 백 냥씩을 지니고 가 마누라 한 사람과 소
한 마리씩을 구해 오거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여러 도적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허생은 이천 명의 사람이 일 년간 먹을 양식을 갖추고 그들
을 기다렸다.
마침내 도적들이 도착하였으니, 늦게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생은 이들을 배에 싣고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이처럼 도적들을 모두 데려가니, 이후 나라 안에는 도적 떼로 인한
소란이 없어졌다.
섬에 이르러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땅의 기운이 이미 비
옥하기 이를 데 없으니 온갖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김을 매거나 거름을 주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개의 이삭이 열릴 지경이었다.
추수가 끝나자 삼 년 동안 먹을 것을 쌓아 놓고, 그 나머지는 전부 배에 싣고 장기도로 가져
가 팔았다. 장기도는 일본의 속주(屬州)로서 삼십일만 가구나 살고 있었다. 마침 장기도에는
큰 기근이 들어 가지고 간 것을 모두 팔아치울 수 있었으니, 은 백만 냥을 벌 수 있었다.
허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야 나의 자그마한 시험을 마쳤도다.”
이에 섬 안의 남녀 이천여 명을 모두 모아 놓고 명령을 내리기를,
“내가 처음 너희들과 함께 이 섬에 들어올 때에는, 먼저 너희들을 부유하게 만든 후 따로이
문자도 만들고 좋은 문명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땅이 협소하고 내 덕 또한 부족하니, 이제
나는 이 섬을 떠나려고 한다. 이후 아이가 태어나거든 수저를 쥘 때 오른손으로 쥐도록 가르
칠 것이며, 하루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에게 음식을 양보하는 미덕을 가르쳐라.”
하고 하였다. 그리고 허생은 섬에 남겨질 모든 배들을 불태워 버리며 말하기를,
“가지 않으면 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은 오십만 냥을 바닷물 속으로 던지며 말하기를,
“바다가 마르면 이 돈을 얻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백만 냥이 한 나라 안에서 용납되지 않
거늘, 하물며 이 좁은 섬에서는 오죽하랴!”

- 4 -
그리고 사람들 중에는 글을 아는 사람을 배에 태워 함께 떠나며 말하기를,
“이 섬에서 화근거리를 없애야지.”
하고 하였다.
이때부터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을 구제했다. 그
러고도 은이 십만 냥이나 남았다.
“이 정도면 변씨의 빚을 갚기 충분하겠지.”
하고 변씨를 찾아갔다.
“당신은 나를 기억하겠소?”
하고 허생이 묻자, 변씨는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그대의 얼굴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료. 만 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오?”
라고 하자 허생은 껄껄 웃으며,
“재물로써 얼굴을 기름지게 하는 것은 당신들에게나 있는 일이오. 만 냥이라 한들 어찌 도
(道)를 살찌우겠소.”
라고 말하며, 은 십만 냥을 변씨에게 전해 주며 덧붙이기를,
“내 일찍이 한 순간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책 읽는 것을 마치지 못했소. 이제 그대의 만
냥이 부끄러울 따름이오.”
라고 했다. 변씨는 크게 놀랐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고 사례하며, 십분의 일의 이자만
을 더해서 받기를 원했다. 이에 허생이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어찌 나를 장사치를 대접하듯 한단 말이오!”
허생은 옷자락을 떨치며 나가 버렸다.
변씨가 몰래 그 뒤를 따라가니, 그 손님이 남산 아래의 작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마침 우물 위쪽에서 빨래를 하는 한 노파가 있었다. 변씨가 묻기를,
“저 작은 집은 누구의 것이오?”
노파가 대답하기를,
“허 생원 댁이라오. 그는 가난하지만 글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아침 집을 나가
서 돌아오지 않은 지가 이미 오 년이 되었지요. 지금은 그 부인이 혼자 살면서 그가 떠난 날
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오.”
변씨는 처음으로 그 손님의 성이 허씨임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다음날 변씨는 허생에게서 받은 돈 십만 냥을 모두 털어 돌려주려고 하였다. 허생은 거절하
며 말하기를,
“내가 부자가 되려고 바랐다면 어찌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취하겠소? 나는 지금부터
당신의 덕을 입으며 살아가려고 하오. 당신이 종종 우리집의 형편을 살펴서 양식을 조금씩 보
태주고 몸을 가릴 옷가지나 주시구려. 일생을 이와 같이 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오. 무엇
때문에 재물을 주어 내 마음을 고단하게 만들려고 하시오?”
변씨는 온갖 말로써 허생을 설득하려 했지만 허생은 끝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변씨는 이때부터 허생의 살림이 곤궁할 것이라고 짐작되면 손수 물건들을 날라다 주었다. 허
생은 별 거리낌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았다. 혹시라도 지나치게 많다 싶으면 즉시
싫은 기색을 보이며 말하였다.
“당신은 어째서 내게 재앙을 가져다 주려고 하는가?”
하지만 술을 가지고 가면 크게 기뻐하며 취할 때까지 함께 술잔을 나누었다. 이렇게 몇 년이

- 5 -
지나니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날로 돈독해졌다.
변씨가 조용히 묻기를,
“불과 오 년 사이에 어떻게 백만 냥을 벌었나?”
허생이 대답하길,
“알고 보면 쉬운 일이네. 조선은 배가 외국으로 자주 왕래하지 않고 수레가 각 지역으로 두
루 다니지 않는단 말이야. 다시 말하면 모든 물건이 그 안에서 생산되어서 그 안에서 소비된
다는 말이지. 누가 천 냥쯤 지녔다고 가정해 볼까? 이것은 적은 돈이라서 모든 물건을 다 살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천 냥을 열로 나눈다면 백 냥이 열 개일 테니, 열 가지 물건을 고루
살 수 있겠지. 백 냥으로 산 물건이니 가벼울 테고, 가벼운 만큼 나르기도 쉬울 걸세. 이런
까닭으로 한 가지 물건의 시세가 좋지 않아도 나머지 아홉 가지로 재미를 볼 수 있을 테니,
이는 일반적으로 이문을 남기는 법이라네. 하지만 이것은 소인의 장사법이지. 자, 이번에는
만냥을 지녔다고 하세. 만 냥이면 한 가지 물건을 모조리 살 수 있지. 수레에 실린 것은 수레
째 사 버리고, 선박에 실린 것은 선박째 사 버리고, 어느 고을에 있는 것 또한 통째로 사 버
릴 수 있지 않을까? 마치 그물코처럼 한 번 훑어서 몽땅 사 버리는 것이야. 예를 들면 육지의
산물 여러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거나, 해산물 여러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거나, 약재(藥材) 여러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몽땅 사 버리는
것이지. 이 경우에 한 가지 물건이 모조리 감춰지게 되니 모든 장사치들은 그 물건을 구경도
못하게 되겠지. 그러나 이것은 백성을 상대로 도적질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훗날에라도 어느
관리가 나의 이러한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그 나라는 병들고 말 것이야.”
변씨가 다시 물었다.
“처음에 자네는 내가 만 냥을 순순히 내어 줄 것을 어찌 알았는가?”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반드시 자네와 나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지. 만 냥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
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내가 스스로 내 재주를 헤아려 보건대 족히 백만
냥은 벌 수 있지. 허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내 어찌 자네가 돈을 빌려줄지 안 줄지를
미리 알 수 있겠나? 그러니 나를 믿고 활용한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그는
반드시 부(富)에서 더 큰 부를 누릴 터이니 이는 하늘이 명한 바라, 그가 어찌 돈을 빌려주지
않겠어? 또한 나는 이미 만 냥을 얻었으니, 그의 복에 힘입어 행동할 뿐이니, 하는 일마다 성
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 만일 내가 내 재산으로 일을 시작했다면, 그 성공과 실패는 알 수
없었을 걸세.”
변씨가 또 물었다.
“지금 사대부들은 남한(南韓)에서의 치욕7)을 설욕하려고 한다네. 이제 뜻있는 선비로서 팔
뚝을 걷어붙이고 그 슬기를 떨칠 때가 아닌가. 어찌 자네와 같이 뛰어난 사람이 스스로를 어
두운 곳에 감추며 이 세상을 마치려고 하는가?”
허생이 대답하기를,
“예로부터 어두운 곳에 묻혀 일생을 마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조성기8)는 적국(敵國)에

7) 1637년 청(淸) 태종(太宗)이 조선에 대하여 군신(君臣)의 예를 강요하며 침략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조선의
임금인 인조(仁祖)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의 항전(抗戰)을 포기하고 삼전도(三田渡)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한
사실을 가리킨다.
8) 조성기(趙聖期 : 1638~1689) : 숙종 때의 학자로 자는 성경(成卿), 호는 졸수재(拙修齋). 임천(林川) 사람으로 뛰
어난 재주가 있었지만 평생 독서와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저서로는 한문소설《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이 있다.

- 6 -
사신으로 갈 만한 사람이었지만 베옷을 입은 선비로 늙어 죽었고, 유형원9)은 군량(軍糧)을 수
송할 만한 재주가 있었지만, 해곡(海曲)10)에서 한적한 삶을 보냈지. 이 모양이니 근자에 나라
를 다스린다는 자들의 꼬락서니를 알 만하지 않은가. 나는 단지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그
돈으로 아홉 나라 임금의 머리도 살 수 있었지만, 모두 바다에 던지고 온 까닭은 이 땅에서
그 돈을 사용할 데가 없었기 때문이지.”
이 말에 변씨는 한숨을 쉬고 돌아갔다.
변씨는 원래 정승(政丞) 이완(李浣)11)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이공(李公)이 어영대장(御營
大將)12)이 되었을 때 변씨에게 묻기를,
“위항(委巷)과 여염(閭閻)13) 중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큰일을 함께 할 만한 사람이 있겠소
이까?”
라고 하였다.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자 이공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기이한 일이로군! 그 말이 사실이오?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이오?”
“제가 그와 삼 년을 사귀었지만 아직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이공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필시 이인(異人)14)이로다. 나와 함께 찾아가 봅시다.”
밤이 되자 이공은 수행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변씨와 더불어 걸어서 허생의 집을 찾아갔다.
변씨는 이공을 문밖에 세워둔 후, 혼자 들어가 허생에게 이공과 함께 온 사연을 말했다. 그러
나 허생은 못들은 척하며 말하기를,
“자네가 차고 온 술병이나 풀어 놓게.”
라고 하고는 즐겁게 술을 마셨다. 변씨가 이공이 이슬을 맞고 오래 서 있는 것이 민망하여 수
차례 이야기했으나 허생은 대꾸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허생은 드디어 말하였다.
“이제 손님을 청해도 되겠군.”
이공이 들어왔지만 허생은 자리에 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이공은 무안하여 안절부절못했
지만, 꾹 참고 나라에서 어진 사람을 구하는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허생은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밤은 짧고 말은 기니 듣기에 무척 지루하외다. 당신 지금 벼슬이 뭐요?”
“대장을 맡고 있소이다.”
허생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이 나라의 믿음직한 신하라 할 수 있소이다. 내가 와룡선생(臥龍先生)15)
같은 사람을 천거한다면, 당신은 임금께 여쭈어서 삼고초려(三顧草廬)16)를 하시게 할 자신이


9) 유형원(유형원 : 1622~1673) : 조선 효종( 宗) 때의 실학자(實 學者
)로 자는 덕 德夫
부( 반계 磻溪 화
). 호는 ( ). 문
文化( 술 념
) 사람으로 평생 저 과 학문 연구에 전 하였으며, 실학을 학문으로서의 위 올 놓
치에 려 았다. 그의 학문은
뒤 익 홍 정약 등
에 이 ․ 대용․ 졌 용 반계
으로 이어 다. 저서에 《 수록( 磻溪隧 등
錄)》 이 있다.
0 해곡 海曲
1 ) ( 북 안
) : 지금의 전 부 . 유형원은 효종 4년(1653년)부터 부 의 안 우반동 愚磻洞
( 술및
)에서 저 학문 연구
힘썼
에 다.
완 李浣 0
11) 이 ( 현 顯
: 16 2~1673) : 조선시대 효종․ 종( 宗) 때의 명
신으로 자는 징 澄之
지( 매죽헌 梅竹軒
), 호는 ( ). 경
훈련
주 사람으로 효종 때 냈 왕 밀명 대장을 지 으며, 의 을 받아 송
시열과 함 께 북벌 北伐
( )의 대업을 도모했으나,
죽음 무
효종의 으로 현 우 정 냈
산되었다. 종 때에는 의 을 지 다.
御營大將
12) 어영대장( 御營廳 主將
) : 어영청( )의 주장( )으로 종이품 벼슬 된
. 어영청은 인조 때에 설치 御營軍 어영군( )
발 된
이 전 완
것으로서 효종3년(1652년) 이 을 대장으로 삼아 처 으로 군영( 음 軍營 )을 설치하였다.
위 委巷 염 閭閻 백 들
13) 항( )과 여 ( 집
) : 성 이 모여 사는 거리와 .
異人
14) 이인( 통 범
) : 재주가 신 하고 비 한 사람.
先生 국 촉 蜀
15) 와룡선생(臥龍 ) : 삼 시대 軍師 ( )나라의 군사( )이자 승상( 丞相
)인 제갈 ( 량 諸葛亮 : 181~234). 자는 공 명
孔明( )이며 뛰어난 전략으로 유비를 도와 지금의 사천성 일대에 촉
나라를 세 고 만 ( 우 족 蠻族 정
)을 평 하는 등큰
웠 위魏
공을 세 다. 오 五丈原
( )나라를 치던 도중 장원( )에서 병사하였다.

- 7 -
있으시오?”
이공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다가,
“그건 어렵겠소이다. 그 다음의 일을 들을 수 있겠소?”
허생은 냉랭하게,
“나는 ‘그 다음’이란 것은 배우지 못했소.”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에 이공이 누차 묻자 대답하기를,
“명나라 장군과 벼슬아치들은 조선에 베푼 옛 은혜17)가 있다 하여, 나라가 망한 후 그 자손
들이 우리나라로 많이 탈출했소. 그들은 지금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
다는데, 당신은 임금께 청하여 종실(宗室)의 여자들을 두루 출가시키고 김류(金瑬)18)와 장유
(張維)19) 따위의 재산을 털어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줄 수 있겠소?”
이공이 또다시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그것도 어렵겠소이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허생은,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렵다니, 대체 어떤 일이면 가능하단 말이오? 좋소이다, 아주 쉬운
일이 있으니 당신이 한번 해보겠소이까?”
“원컨대 말씀해 주시오.”
“대체로 천하에 큰 뜻을 떨치고자 한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교분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오. 또한 남의 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먼저 간첩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지요. 지
금 만주(滿洲)의 무리20)들이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었으니, 그들은 예부터 중국인21)들과 친
하지 못했소. 그리고 조선이 다른 나라에 앞서 항복했으니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믿을 것이
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자제(子弟)를 보내어 학문도 배우거니와 벼슬도 하여 당
(唐)․원(元)의 고사(故事)22)처럼 하고, 상인들도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청한
다면 그들은 우리의 친절을 기뻐하며 허락할 것이 분명하오. 그러면 우리는 자제들을 가려 뽑
아, 변발(辮髮)23)하고 호복(胡服)24)을 입혀 들여보내면 되지요. 지식층은 빈공과(賓貢科)를
보게 하고 일반 백성들은 멀리 강남 땅에까지 장사를 가서, 그 허실을 염탐하고 그 고장 호걸
들과 친분을 맺는 것이오. 그때야말로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과거의 치욕도 씻을 수 있지 않
겠소? 만약 주씨(朱氏)25)를 구하지 못한다 해도 천하의 제후를 거느릴 만한 인물을 하늘에 추
천한다면, 성공하면 중국의 스승이 되는 것이요, 실패해도 백구(伯舅)의 나라26)는 잃지 않을
것이오.”
이공이 얼이 빠진 듯 듣고 있다가 말하였다.

초 顧草廬
16) 삼고 려(三 양 陽 융 隆中 땅
) : 유비가 남 (南 ) 량 초 집
중( ) 번
에 있는 제갈 의 가 을 세 찾
이나 아가 자신의 뜻
을 말하고 그를초빙 하여 군사로 삼았다는 고사.
진왜 명
17) 임 파 킴
란 때 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병한 것을 가리 .
김류 金瑬
18) ( 관옥 冠玉
: 1571~1648) :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자는 북 北渚 순( ), 호는 저( ). 順天
천( ) 사람으로 인
반정
조 워
때 공을 세 공신의반 오르 열에 화친
고 병자호란 때에는 을 주장하였다.
張維
19) 장유( 국 持國 계곡 谿谷 덕
: 1587~1638) :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자는 지 ( ), 호는 ( ). 德水
수( ) 사람으로 인
반정
조 화친
때 공신이 되었고, 병자호란 때에는 판 쳐우 정
을 주장하였다. 예조 서를 거 까 올랐
의 의 자리 지 다. 저
계곡집 谿谷集
서로 《 ( 음 해 陰符經註解 등
)》․《 부경주 ( )》 이 있다.
0
2 )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 女眞族 (킴 )을 가리 .
족 族
21) 한 (漢 ).

22) 나라․원나라 때에는 소위 빈 賓貢科 우
공과( 들 들
)가 있어 리나라의 유학생 을 받아 였다.
발 辮髮
23) 변 ( 머 위 깎 앙 머
) : 남자의 리 주 를 땋 뒤 길게 늘
고 중 의 리만을 아서 로 들 풍속
인 것. 만주 사람 의 이다.
服 오랑캐
24) 호복(胡 ) : 족 옷
의 의복. 여기서는 만주 의 을 가리킨다.
朱氏 명
25) 주씨( 황족
) : 나라의 .
백 伯舅
26) 구( 후 큰
)의 나라 : 제 중 가장 나라.

- 8 -
“사대부들이 모두 몸을 삼가고 예법을 숭상하고 있으니, 누가 능히 변발․호복을 받아들이겠
소이까?”
허생이 크게 꾸짖기를,
“이른바 사대부라는 것들이 대체 무엇하는 것들이야! 이맥(彛貊)27)의 땅에 태어나서 스스로
사대부라 칭하니 염치없지 않은가! 게다가 옷은 흰옷만 입으니 이것이야말로 상복(喪服)이 아
닌가. 또 머리를 묶어서 상투를 트니 이것은 남쪽 오랑캐들의 몽치 상투가 아닌가. 이러고도
어찌 예법을 논한단 말인가! 번어기(樊於期)28)는 원한을 갚기 위해 자신의 머리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29)은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호복을 입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
다. 지금 명나라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당에, 겨우 머리털 자르는 것을 애석해한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장차 말을 타고 검을 휘두르며 창으로 찌르고 활을 쏘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인
데, 그 넓은 소매를 자르기는커녕 도리어 예의를 논해? 내가 지금 세 가지를 말했는데, 너는
그중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스스로 믿음직한 신하라고 자처한단 말이냐! 그러고
도 믿음직한 신하라고 우겨? 너 따위는 목을 베어야 해!”
라고 외치고는, 좌우를 둘러보며 칼을 찾아 찔러 죽이려고 하였다. 이공이 크게 놀라 뒷창문
을 박차고 뛰어나가 도망쳐 버렸다.
다음날 그는 다시 허생의 집을 찾았으나, 집은 텅 비어 있고 허생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열하일기․진덕재야설―

맥 彛貊
27) 이 ( 夷 국 동쪽
) : 이( ). 중 인이 컫 의 나라를 일 는 말.
번 樊於 ? B C
28) 어기( 국 진秦 무
期 : ~ . .227) : 전 시대 객
( )나라의 면 燕
장. 《사기》 ‘자 열전’에 의하 , 그가 연( )나라로 망
명 단丹 게 몸 탁
하여 태자 ( )에 荊軻 진 황 살
을 의 하고 있을 때 형가( )가 시 을 암 하려 하자 자신의 목 을 내주어 진 시
황 게
이 형가를 의심하지 않 하였다고 한다.
무령왕 武靈王 ? B C
29) ( 국 춘추 국
: ~ . .295) : 중 전 시대 조(趙)나라의 임금. 《사기》‘조세가(趙 世家 면
)’에 의하 , 그는
지형적으로오랑캐들 게 둘 싸 에 게 위해 위 웃음
러 인 조나라를 부강하 하기 주 의 비 에도 불구하고 호복을 입 채

마술 궁술 익혔
기 과 을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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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허생(許生)’은 현존하는 연암의 열 편의 소설 중 가장 유명한 걸작이다. 이 작품이 쓰여


진 시기는 앞서 소개된 작품인 ‘호질(虎叱)’이 완성된 후 대략 보름 뒤로 추정된다.
‘허생’은 서울 남산 아래 묵적동에 사는 허씨 성을 가진 어떤 선비의 기행(奇行)을 담은
전기체 소설이다. 여기서 주인공 허생의 실존 여부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물론 작품에 앞서
연암이 밝힌 바, 허생에게 돈을 빌려주는 갑부 변씨가 변승업(卞承業)의 조부임을 감안하면,
변승업의 조부와 동시대에 살았던 어떤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하지
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허생의 기상천외한 독점수법이나,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율도국과
도 같은 이상향의 건설, 그리고 당대의 권력자인 이완(李浣)에 대한 꾸짖음 등으로 미루어,
허생은 그 실존 여부와는 무관하게 연암에 의해 창조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연암의 사상은 이 작품 속에서 허생을 통해 재현된다. 연암은 우선 만 냥을 가진 독점업자에
게 좌지우지되는 빈약한 국가경제를 탄식한다. 이것은 그가 평소 주장하던 중상주의(重商主
義)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적을 모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후 그들을 위한
의관(衣冠)을 창제하고, 또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을 구제하는 부분은, ‘수호전(水滸傳)’과
‘홍길동전’등 당시 민간에까지 널리 알려졌던 군담소설(軍談小說)들이 취한 군도취의(群盜
聚義)라는 명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허생이 이완에게 말한 세 가지 제안
은, 본래의 의도와는 동떨어져 한갓 붕당(朋黨)으로 전락해 버린 북벌파(北伐波)에 대한 냉소
이며, 연암이 주장하는 북학(北學)의 이론이기도 하다. 이완이 자신을 향해 칼을 빼든 허생을
피해 달아난 순간, 연암은 북벌파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연암이 ‘허생’과 ‘호질’을 쓴 1780년은 그의 문학적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물론 200여
년 전 문호(文豪)의 사상과 문학성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두세 편의 대표작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표작조차 읽지 않고는 그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평가도 공언(空
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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