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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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문제 3.

에 대한 답변
철학과 2022-10776 우정민
무어는 ‘좋은 행위’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좋음’에 관해 언급하며 윤리학의 탐구 대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윤리학이 오로지 행위만에 관해 기술한다고 생각
하지만, 이는 심각한 오해이다. 세상에는 좋음과 관련없는 행위들도 있으며, 행위가 아니지만
여전히 좋은 것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무어는 윤리학의 탐구 대상을 ‘좋은 행위’가 아
닌 ‘좋음’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리학의 중요한 질문인 “‘좋음’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기 위해 그는 우선 ‘좋음’을 정
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찰한다. 우리는 통상 어떤 단어를 정의한다고 할 때 그
단어가 언중들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그 단어를 언어적으로 사용하는 사
람들이 어떠한 의미를 의도하는지에 관해 살펴보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무어가 이야기한
정의란 이와는 다르다. ‘좋음’을 정의한다는 것은 그것의 “일정한 전체를 변함엇이 구성하는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진술”하는 것이다. 즉, ‘좋음’이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분석하고
그와 동시에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어에 따르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좋음’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음’은 단
순개념이기 때문이다. 단순개념이란, 개념적 부분을 갖지 않는 개념을 의미한다. ‘개’와 ‘노랑’
의 사례를 비교해보자. ‘개’는 네 발과 심장과 두 개의 귀와 주둥이와 꼬리 등을 가지는 등 그
것의 개념적 부분이 존재한다. 우리는 ‘개’가 가진 부분들을 언급함을 통해서 ‘개’를 완전하게
지칭할 수 있다. 하지만 ‘노랑’의 경우는 다르다. ‘노랑’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는 ‘노랑’이 부분을 갖지 않는 단순개념이기 때문으
로, ‘노랑’과 같은 것들은 그것의 부분을 언급함으로써 그것을 완전하게 지칭할 수 없다.
무어에 따르면 ‘좋음’이란 ‘개’보다는 ‘노랑’에 가까운 특징을 지닌 개념으로, 부분을 갖지
않는 단순개념이다. ‘좋음’은 여타의 다른 것들을 정의하는데에 활용되는 개념이지만, 그 자체
는 그 어떤 구성요소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정의한다는 것은 부분을 가진 복합 대상에게만 가
능한 것인데, ‘좋음’은 단순대상이므로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이에반해 ‘좋은 것’은 정의될 수 있다. 먼저, ‘좋음’과 ‘좋은 것’이 서로 다른 대상임
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좋은 것’은 ‘좋음’의 형용사가 적용되는 명사라는 점에서 둘은
구분된다. 우리는 “좋은 것이란 이러저러한 것이며 오직 좋은 것만이 이러저러한 것이다”의
형식의 명제를 통해 좋은 것에 관해 논할 때가 있는데, 무어에 따르면 이와 같은 좋음에 대한
필요충분적 진술은 – 비록 인간에게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을지 몰라도 – 충분히 발견 가능하
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좋은 것’은 ‘좋음’과 달리 정의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좋은 것’이 오로지 ‘좋음’만을 속성으로 가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즐거운 것들은 ‘즐거움’과 ‘좋음’의 속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무어는 철학자들이 ‘좋
은 것’이 갖는 다른 속성들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좋음의 정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좋음’이 단순개념이기 때문에 정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좋음이 우리에게 인지되는 방식을
설명하기에 상당히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좋음’이 추구해야 마땅하다는 속성을 가졌
다는 사실 이외에는 대단히 추상적인 형태로만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은 것이 무엇
인가에 관해서 위대한 철학자들이 유의미한 차원에서 의견을 달리한다는 사실 역시 또 하나의
증거이다. 하지만 ‘좋음’과 ‘노랑’을 유비하여 설명하는 무어의 설명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좋음’이 단순개념인 방식에 대해 ‘노랑’이 단순개념인 방식과 유사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랑’이 단순개념인 이유는 그것이 일
종의 감각질이어서 일인칭적 시점과 이에 따른 직접적 경험이 전제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
데, 이에 반해 ‘좋음’이 단순개념인 이유는 개개인의 일인칭적 시점에 기인하기보다는 그 개념
의 근본성 혹은 여타 개념과 맺는 관계 속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서인 것으로 보이
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좋음’이 단순개념이기 때문에 여러 ‘좋은 것’들에 내재하는 속성
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무어의 직관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선
하고 나쁜 것뿐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함, 자상함, 이해력이 좋음 등 다양한 좋은 능력들을 발
휘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공유하면서 그와 동시에 여타 개념들로 환원 가능한 복합 개
념으로서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좋음’을 우리의 개념 지도의 가장 근본에 위치
시키고, ‘좋음’을 담지하는 여러 대상들을 바탕으로 그것의 윤곽을 흐릿하게나마 그려보는 것
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최선의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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