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228novel Naver

You might also like

Download as pdf or txt
Download as pdf or txt
You are on page 1of 2

단 한 번만 사랑해 줘

#225. 내 남편은 질투가 심하거든 목록

#225. 내 남편은 질투가 심하거든


2024.06.20.

오필리아는 원래 승마라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는지 생


각했다.

어렸을 때 하슬렌이 사 주었던 조랑말은 분명 따뜻하고


귀여웠던 것 같은데, 다 커서 타 본 군마는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순한 놈으로 데려오겠습니다.”

헤이즐이 그렇게 말했던 게 거짓말 같았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허벅지가 쓰라렸다. 어깨가 자꾸 앞


으로 굽는데 자세가 이상해졌다가는 낙마를 한다니, 곧
죽어도 허리를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힘들어도 어쩌겠나.

오필리아는 보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사람을,


특히 적을 상대할 때는 예측할 수 없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안다.

배운 적도 없는 말을 타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네테펠은


그녀가 승마할 줄 모른다고 생각할 터였으므로.

그 전에 그는 제가 레덴에 있다고 생각할 테니 이 자리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놀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
다.

오필리아는 잡놈 같은 소꿉친구에게 우습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빌어 처먹을 자식 손에 세상에서 하나뿐인 남
편이 들어가 있는 상황에는 더더욱.

***

이 주 전, 오필리아는 어떻게든 네테펠의 뒤통수를 쳐 주


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레덴에서 에데그룬까지 올라왔
다. 육로로 주파하면 끔찍하게 오래 걸릴 게 뻔했으므로
해로를 이용했다.

해로, 라고만 하기엔 그렇게 정석적인 방법은 아니었지


만.

레덴에서 에데그룬까지 직항할 괜찮은 배를 구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기에 오필리아는 편법을 사용했다.

“해적은…….”

“여자의 부탁을 거절하면 삼 년 동안 재수가 없지요.”

급하게 찾아 만난 스타렛은 능글맞게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처음 얼굴을 보는, 잘생긴 해적은


씩 웃었다.

“제 직종은 운이 중요해서 말입니다.”

그랬던 것치고는 지난 생에는 제 의뢰를 꽤 튕겼던 것 같


았지만, 오필리아는 남자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해적의 손을 빌리는 것에 찬성하는 이는 없었다.

그녀의 명령으로 검은 포말에 연통을 넣었던 헤이즐조차


도 반대했다. 이 길이 아니면 시간을 버리게 된다는 그녀
의 말에 납득하면서도, 기사는 해적과 손을 잡을 수 없다
고 말했다.

“재고해 주십시오. 저것들을 뭘 믿고…….”

오필리아는 어차피 헤이즐이 제게 설득당할 것을 알고 있


었으므로 그 반대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모시는 왕
족이 해적과 열흘 넘게 함께 있겠다는데 찬성하는 게 더
미친 일이었다.

스타렛이 옆에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그때였


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귀부인들에게 친절해서.”

안심시키려는 건지, 속을 긁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발언
이었다. 헤이즐은 말만 하면 당장 저놈의 목을 자르겠다
며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기사도라도 배
워 온 것처럼 제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해적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 말은 사실이니 칼을 집어넣어도 된다네.”

“오, 역시 우리 왕비님께서는 뭘 좀…….”

“알지.”

아마 스타렛이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그에 대해 잘 알리


라. 인생을 몇 번 살다 보면, 한 사람을 다각도로 보게 되
므로.

오필리아는 진하게 반짝이는 녹색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


는 해적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눌렀다.

“그래도 애인 자리는 꿈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스타렛은 그녀의 말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부군이 있으신 분들은 다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그렇지. 하지만 결혼했기 때문만은 아닌걸.”

그리고 오필리아는 스타렛이 이해하기 가장 쉬울 이유를


가져다 댔다.

“실은, 내 남편이 자네보다 잘생겼거든.”

스타렛을 납득시키기 위한 말이기는 했어도 진심이었는


데, 헤이즐은 고개를 돌렸고 스타렛은 눈을 깜박였다.

“저, 저보다요……?”

“응, 자네보다. 내 남편이 누구인지 모르나?”

“아니, 아, 알긴 하지만…… 저보다…… 저보다요……?”

“내 남편은 아글란테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니, 당연하지.”

적어도 그녀가 아글란테에서 본 남자 중에는, 이드렌이


제일 잘생겼었다.

곁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던 헤이즐이 크흡,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낸 것은 그때였다

먹은 것도 없으면서 사레들린 것처럼 기침한 기사가 말했


다.

“……배에 탑승하시지요.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되었음에도 어쩐지 기분이 미묘해지는 발언


이었다.

어쨌든 스타렛은 그녀에게 약간의 바다 멀미와 함께 신속


한 뱃길을 선사했다. 이 주도 채 되지 않아 갈리사 항구에
다다랐을 때는 헤이즐조차도 정말 빠르다며 감탄했을 정
도였다.

그녀가 배에서 내리기 직전, 스타렛은 그녀를 붙잡고 말


했다.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중얼거리는 남자는 밤을 새웠는지 눈 밑이 퀭했다. 오필


리아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부군께서 아글란테에서 제일 잘난 분이실 수는 있지요.


하지만 저는 아글란테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해적은,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억울함에 가득 차서


말했다.

“저, 저는 바다 사람이니 바다에서는 제가 제일 잘생겼습


니다!”

바다에 있는 것이라고 해 보았자 물고기와 자기네 부하들


일 텐데, 그런 것들과 비교하여 어디다 쓰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필리아가 경쟁자를 잘못 찾은 해적에게 대꾸했다.

“응, 그래도 내 남편보다는 못하네.”

받아들일 때도 된 사실이었는데 스타렛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규했다.

“그럴 리가! 제, 제가 이 얼굴을 몇 년 동안 갈고 닦았는


데……!”

“내 남편은 타고났으니, 어쩔 수 없지.”

맨날 울고 토라지기만 해도 잘생겼으니 타고난 게 아니라


면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타렛은 순순히 인정하지 못했다.

“저도 타고났습니다!”

그거야 사실이지만 저렇게 자기 입으로 대놓고 말하니 조


금 거부감이 들었다. 오필리아가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그래.”

“‘……그래’가 아닙니다! 저도 타고났다고요! 저도……!”

갑판에 엎어져 나무판자라도 두드릴 기세로 억울해하는


남자는 헤이즐이 이 무슨 무례냐며 윽박지를 때까지 납득
하지 못했다.

아니, 납득은 헤이즐의 윽박을 듣고 난 후까지도 하지 못


한 것 같았다.

기사의 손에 의해 물러나게 되면서도, 스타렛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두고 보십시오. 분명 인정하시게 될 겁니다.”

“……그래.”

“그때가 되면, 제가 반드시…….”

불가능한 시도를 하겠다는 말을 거창하게 돌려 말하는 남


자가 안타까워, 오필리아는 결국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
다.

기사를 잠시 물리고, 오필리아는 고작 현실을 알게 된 것


뿐인데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구는 남자에게 말했다.

“실망스럽겠지만 인정하게. 자네는 절대 내 남편을 이길


수 없어.”

잔인하다 해도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 것을.

그녀 인생에 존재하는 남자들 중, 이드렌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터였다.

그리고 오필리아는 그보다 못한 남자는 보고 싶지 않았


다. 그녀가 단정 지었다.

“그러니 내 애인이 될 수도 없지.”

“……정말, 끝까지 단호하시군요.”

그런 말을 왜 뺨 잘못 맞은 정부 같은 태도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필리아가 헛기침했다.

“어쨌든, 애인은 할 수 없어.”

“…….”

“하지만 친구 자리는 비었는데 어떠한가?”

그 말에 스타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필리아는 그의 얼굴 중에서도 자랑이라고 할 만한 진녹


색 눈동자가 햇빛 아래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
닷바람과 햇볕에 딱 보기 좋을 정도로 그슬린 얼굴에 그
린 듯 잘 어울리는 색채였다.

“아, 하지만 남편에게 들키면 안전은 보장하지 못하네.”

장미에게 가시가 있듯, 이드렌에게도 날카로운 부분이 있


었다. 그녀에게는 애교에 가까운 것이라지만, 해적에게까
지 그러진 않으리라.

그러니 스타렛은 본인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드렌을 유의


할 필요가 있었다. 오필리아가 그 사실을 듣기 좋게 풀어
경고했다.

“내 남편은 질투가 심하거든.”

***

한 달을 거의 넘겨 도착한 에데그룬에는 얼굴이 반쪽이


된 펜렐과, 인상이 배는 까칠해진 살로데가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이드렌이 사라진 것을 급보로 들어 알고 있


었다.

“제가 더 확실히 막아섰어야 합니다.”

살로데는 보기 드물게 대놓고 후회했었다. 오필리아는 아


마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는 중일 남자에게 말했다.

“자책하지 말게.”

이드렌은 말린다고 해서 듣지 않았을 터였다.

애초에 저를 납치한 마하나스가 일을 꼬이게 한 원흉이었


다. 그의 머리를 레덴 성벽에 걸어 놓고 왔지만, 오필리아
는 할 수만 있다면 오라비를 다시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
다. 충동적으로 손을 썼던 것이라 너무 쉽게 보낸 게 아닌
가 싶었다.

“……성의 보안을 책임지지 못한 점 역시, 사죄하겠습니


다.”

“그것 역시 왕께서 이미 치죄하셨겠지. 그러니 내게는 사


과하지 말게.”

어차피 미안하단 말 따위는 별 쓸모가 없었다. 자잘한 잘


못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는 빨리 네테펠에 대해 대비해야
했다.

“그보다 에겔바못에 대한 소식을 들었나? 내가 해로를 이


용하여 확실한 정황을 알지 못해.”

“실은 그러잖아도 그것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


다.”

뒤이어 살로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가 지난 생에서


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테센도트의 2왕자와 에겔바못의 1황녀가 에데그룬에 왔


습니다.”

지난 생에서, 오필리아는 그들과 접점이 없었다.

에겔바못의 1황녀인 라헬리카 룬탈리스는 몇 번 만난 적


이 있긴 했다. 어렸을 때는 그들 모두 꼬박꼬박 회담에 참
석했었으므로.

그러나 오필리아는 회담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


다. 그나마 사귄 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이는 네테펠뿐이
었는데, 그와는 처음부터 사귀지 않는 편이 나았을 터였
다.

그렇기에 라헬리카 룬탈리스에 대해서는, 오필리아는 어


렴풋한 기억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굽이치는 금발. 무
리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오리엔 황태자가 곧잘 내 누이,
하고 부르던 말이나 늘 사이가 좋지 않던 자매, 한쪽 손에
들려 있던 부채 따위의 것들.

다시 만난 여자는 그러한 기억의 조각들과 닮아 있으면서


도 미묘하게 달랐다.

“오랜만이에요.”

그 말을 한 라헬리카가 제게 손을 내밀었을 때, 오필리아


는 여자의 습관으로 굳어진 게 뻔한 환한 미소와 그럼에
도 가리지 못한 피로를 보았다.

그녀의 곁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테센도트


의 2왕자였다.

대화는 1황녀가 주도했다.

“네테펠 룬탈리스가 반란을 일으켰어요. 부황과 모후, 황


태자를 시해했고, 2황녀를 포로로 잡았지요. 나라가 엉망
이 되어 동맹국인 아글란테에 왔는데…… 공왕은 우리를
만나 주지 않더군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배 있었다. 저와 비슷한 신


분의 친하지 않은 또래 여자는 오랜만이라 오필리아는 그
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평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결정권을 내게 주었으니, 편하게 말하세요.”

“그러면 왕비, 무엇 하나만 묻겠습니다. 혹시 공왕이 자리


를 비웠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오필리아가 눈썹을 까닥였다. 짧은 찰


나였는데, 1황녀는 거기서도 무언갈 읽어 낸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맞는군요.”

그리고 라헬리카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설명했


다.

“성안에서 말이 샌 게 아닙니다. 아글란테의 신하들은 자


기 자리에 충실했어요. 다만 내 동생이 상단을 가지고 있
는데, 거기 소속된 이들 중 한 명이 그대 남편 같은 이를
아글란테 남부에서 보았을 뿐입니다.”

아마 저를 찾으러 왔을 때 목격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1황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만약 공왕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그대에게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부디 내 동생을
구해 주세요.”

그리고 1황녀는 그들이 아글란테에 닿기까지 있었던 일


을 설명했다.

“2황자는 이상한 사술을 써요. 그런 것을 어디서 얻어 왔


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듯합
니다.”

그리고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내 말이 허무맹랑하다 여기지 않습니까……?”

오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을 겪었던 것


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드렌이 같은 일을 겪지 않았다면, 그녀도 누군가


에게 간절히 납득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대도 무언갈 아는 모양이군요.”

오필리아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1황녀는 다행히 집


요하게 묻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니 상관없지요. 2황녀만 되찾


아 준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겠습니다.”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옆 나라까지 유명한 여


자가 하기에는 참 이상한 말이었지만, 오필리아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남들이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제 앞에 있는 여자에게 있다고 해서 놀라울


것도 없었다.

***

두 사람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진찰을 받았다.

진료는 남부에서도 받았고 로호스 영지에서도 받았지만,


헤이즐은 그녀를 에겔바못 출신의 의사에게까지 데려갔
다.

그 나이 지긋한 의사는 지난 생에 제 죽음과 관련이 있었


던 터라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기사는 완고했다.

“아직 독의 종류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하나스가 네테펠에게서 받았다는


독은 여전히 그녀 체내에 남아 있었지만, 정확한 성분을
알아낸 의사는 없었다.

네테펠이 저를 죽일 것 같지는 않았기에, 오필리아는 독


의 종류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마하나스가 처음
먹였던 약은, 그녀도 옛날에 마셔 보았던 수면제였을뿐더
러 그 이후 무엇을 제 몸에 넣었든 치사의 종류는 아닐 것
같았다.

사실 이드렌이 없는 한, 뭐가 어찌 되든 상관없기도 했고.

감히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이드렌의 신변


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면 오필리아는 지체하지 않고 그
가 맨 처음 했던 짓과 똑같은 일을 할 생각이었다. 레덴에
서 성물을 챙겨 온 이유 중에는 그것도 있었다.

몇 번을 다시 시작하는 게 대수일까. 이드렌도 만약 그녀


였다면 똑같은 선택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헤이즐은 그녀의 생각을 모를 것이기에 - 말해 주


어도 제가 미쳤다 여길 것 같았다 - 오필리아는 기사의 의
견대로 의사를 불렀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초췌해져 있었다.


듣기로는 모시던 스승이 최근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남자는 누군가를 모시기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였지만, 오


필리아는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 처
리해야 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노인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약을 누가 썼습니까……?”

그녀의 피를 뽑아다 몇 가지 약물로 반응 검사를 한 다음,


야윈 노인은 희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이건 제가 만들어, 제 스승님에게 드린 약입니다.”

이쯤 되니 그 스승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질 정도


다.

정말 흥미가 생겼다기보다는 그만큼 거슬렸다. 오필리아


가 대답했다.

“반란을 일으킨 2황자가 사주한 약이야.”

“아아, 역시…….”

그리고 노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오필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우는가?”

울어서 예쁜 남자는 이드렌밖에 없었다. 오필리아는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특히 요즘처럼
심란한 시기에는 더더욱.

그러자 노인은 비참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그녀의 인내심이 끊어지기 직전의


적당한 선에서 끝났다.

의사는 제 삶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그 자신보다는


스승에 관한 이야기였다. 의사의 스승은 젊었고, 황궁의
의사였으며, 2황자의 시종이 아끼던 제자였고, 종내에는
그 주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자였다.

그러니까, 네테펠 룬탈리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희생당


했다는 뜻이었다.

오필리아가 그게 지금 이 상황과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궁금해질 무렵, 의사가 말했다.

“그러니 그 약은, 제 스승님의 스승님이 2황자에게 바친


것이었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지?”

“세상에 이 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니, 그런 경


로가 아니면 2황자는 약을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헤이즐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래서 몸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 거지?”

그제야 오필리아는 제가 본론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


았다. 의사도 마찬가지였는지 황급히 대답했다.

“복용한 사람을 일시적으로 숨이 멎은 것처럼 보이게 합


니다. 심장 박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느려지고,
피가 돌지 않으니 살이 차가워지며 몸도 굳습니다.”

그 말에 떠오르는 게 있어 등줄기가 선득해졌다. 오필리


아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약을 한 번 복용하면, 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지?”

“그것은 복용량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이 주를 넘겨서


는 안 되는데, 이 주가 넘으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그대
로 사망할 확률이 심히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주 동안은 의식이 없을 수 있다는 건가?”

“예, 하오나 그렇게 장기간 잠들어 있다가는 내부 장기의


효율이 떨어지기에…….”

오필리아는 의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얼굴을 쓸어내


렸다.

“당신이 날 그렇게 버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돌


아가지 않아서, 그러면 확인을 못 하니까…….”

이드렌은 울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오필리아는 제 죽음도 죽음이지만, 시간이 오래도록 돌아


가지 않았기에 그가 속상해했음을 알았다.

하지만 저도 왜 곧바로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는지는 몰랐


기에, 설명해 주지 못했는데.

만약 그때도 이 약을 먹었던 거라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그녀 대신, 헤이즐


이 의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약의 부작용은?”

“한 번 복용하고 나면 신체가 쇠약해진다는 것 외에는 달


리 없습니다. 그마저도 왕비 전하께서는 젊으시니 충분히
정양하시면 괜찮을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기사는 눈에 띄게 안도했다.

“다행입니다, 전하.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랍니다.”

그에 무어라 대꾸를 해 주어야 하는데, 오필리아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 앞에서 내내 울던 남편이 눈앞
에 아른거렸다.

이드렌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되었다.


해소된 의문에 기뻐할까, 아니면.

살아 있던 그녀를 관에 넣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까.

결과가 무엇이 되든 그에게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만


큼은 확실했다.

10.0 15명 별점주기

작가의 말
.

13 관심 공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시리즈앱에서 미리 만나보세요!

이전회 목록 다음회

댓글 2 댓글쓰기

클린봇이 악성댓글을 감지합니다. 설정

비타퓨전(alge****)
세상에
8시간 전 신고 2 0

wlsw****(wlsw****)
맞네.. 오필리아가 죽었다길래 죽은것처럼 보이는 약을써서
시체빼돌리는줄 알았더만 죽었다길래 진짜 독썼나? 했었는
데.. 관안에서 의식 못차려 죽은거 였구나..이드렌이 관옆에
죽치고 있었다니 네테펠이 오필리아 빼돌릴각을 못찾기도 했
겠고
2일 전 신고 3 0

댓글 더보기

선호장르 설정 선택해보세요!
좋아하는 장르를

공지사항 시리즈에디션 6월 에디션패스 승격작 안내

웹툰 웹소설 시리즈 시리즈온

로그인 PC버전 전체서비스

네이버웹툰(유) 사업자 정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작권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웹툰 이용약관 전용상품권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운영원칙 웹소설 고객센터 오류신고
© NAVER WEBTOON Limited.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고객센터 저작권침해신고


© NAVER CORP.

You might also like